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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280개 검색됨

  • 게임에서 사랑이 재현되는 두 가지 형태 – 자기애와 애착

    캐릭터에 대한 애착(attachment)은 단순한 사랑의 방식이 아니다. 여기에는 애착의 대상인 캐릭터가 절대 연애의 주체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플레이어를 만족시킬만한 일러스트와 계량화된 수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포함된다. < Back 게임에서 사랑이 재현되는 두 가지 형태 – 자기애와 애착 16 GG Vol. 24. 2. 10. 들어가며 비디오 게임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별로 적합하지 않은 매체라는 견해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사랑을 테마로 하여 다른 예술 장르들은 작중 인물에 대한 감정 이입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을 진행하는 반면, 게임의 경우 이러한 스토리의 진행 과정을 세분한 뒤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형태로 만들어 플레이어가 직접 경험하게 만들어준다. 때문에 사랑을 테마로 하는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하나의 운명적 사랑을 결정적 플롯으로 풀어내기보다는 플레이어가 사랑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직접 탐구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90년대 이후 일본을 중심으로 제작된 수많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하 미연시)들은 이 때문에 고정된 스크립트가 아닌 수많은 분기를 가진 가능태로서의 스크립트인 스크립톤이 다수 뭉쳐있는 형태로 개발된다. 이러한 미연시들이 풀어내는 사랑은 각각의 에피소드로만 보면 전형적인 ‘낭만적 사랑’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낭만적 사랑이 한 명의 주인공으로부터 여러 이성을 대상으로 한 복수적인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90년대의 미연시들은 주인공의 바람둥이적인 기질을 성격적으로 반영하기보다는 차라리 기억상실을 시켜 매번의 사랑에 충실하도록 하는 다소 기형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들이 이러한 형태의 기형성을 큰 거부감 없이 흡수하면서 게임을 즐겼다는 점이다. 게이머의 사랑에 대한 주체적 유연성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낭만적 사랑이란 테마가 더 이상 별로 유효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극장가에서 정통 로맨스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퇴조한지 오래이며, 사랑이란 현실 속에서 찾아야 할 존재라기보다는 불가능한 대상을 희망하는 판타지의 영역에 머무는 것으로 변해왔다. 회귀, 빙의, 환생을 통해 어떻게든 불가능한 대상과의 합일을 합리화 시키는 웹소설들이 한 발 더 나아간 극단적 서사를 보여준다면, 게임은 서사의 극단성보다는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의 체험을 통해 실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플레이어에게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리얼리티나 현실성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그것을 일단 플레이어가 체험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디오 게임에서 사랑의 재현은 플레이어의 체험을 절차적으로 재구성하는 형태로 개발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운명적이고 결정적인 플롯을 통한 감정 이입에는 다른 매체가 더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개발자들은 게임 내에서 사랑의 재현을 독특한 형태로 변주시켜왔다. 특히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투사할 대상을 다양하게 준비하는 것, 다시 말해 플레이어가 애착을 가질 대상을 다양하게 준비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다. 블루아카이브의 김용하 PD가 NDC에서 일찍이 “모에론”을 통해 설파한 바 있지만 1) , 여동생계/동년배계/누님계로 3분화한 여성 캐릭터들은 그 어떤 성애를 가진 플레이어가 들어오더라도 하나 정도는 얻어걸릴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주력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게임 개발자들은 낭만적 사랑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최근 경향을 반영하여 자기애를 투영할 수 있는 중성적이면서 목소리 없는 캐릭터와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을 고안해 내었다. <페르소나> 시리즈나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주인공은 특별히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대사도 매우 절제되게 발화하는데, 이는 미리 설정된 캐릭터에서 빚어질 수 있는 감정 이입을 최소화하고, 캐릭터는 나 자신으로 간주하는 일종의 자기애가 투여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커스터마이징 시스템 역시 캐릭터의 외양을 플레이어가 스스로 꾸밀 수 있도록 하면서 자기애를 부추긴다. 물론 플레이어에 따라 본인 모습과 유사하게 꾸미는 경우도 있고, 이상형의 이성을 상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디자인하기도 하지만 이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움직이면서 그러한 다양한 외관을 향한 감정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향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자기애’와 ‘애착’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최근 게임들에 재현된 사랑의 주체화 과정을 간단히 분석해 보고자 한다. 2. 페르소나와 자기 치유의 메커니즘 - <페르소나> 시리즈 아틀러스 사의 <페르소나> 시리즈는 <여신전생> 시리즈의 스핀오프 형태로 1996년부터 출시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인기 시리즈 게임이다. <여신전생> 시리즈가 염세적인 아포칼립스 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악마들과의 다툼을 다룬 판타지 게임이라면, <페르소나> 시리즈는 <여신전생> 시리즈로부터 많은 설정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악마와의 다툼을 캐릭터 내면의 문제로 치환시킨다. 또한 학원물 형태로 진행되면서 <여신전생> 시리즈에 비해 훨씬 더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게임에서 ‘페르소나’는 C.G.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임과 동시에 게임 속 캐릭터의 내면에 응축된 억압된 자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게임에서 페르소나는 캐릭터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을 실체화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 <페르소나 4>의 주인공 스케치 이 시리즈에서 주인공은 늘 구체적인 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고(미디어 믹스 형태로 만들어진 애니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구체화되기는 한다), 다른 캐릭터들이 화려한 성우진의 목소리로 꾸며지는 반면 주인공의 목소리는 전면화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주인공 캐릭터를 중성화하고 목소리를 넣지 않는가에 대한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느 누가 플레이를 하더라도 주인공을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각 작품마다 줄거리는 좀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페르소나> 시리즈의 주인공은 스스로의 페르소나를 각성한 이후 주변 인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내면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예를 들어 <페르소나 4>에서 주인공은 아마기 유키코라는 같은 반 여학생의 페르소나와 마주치게 된다. 이나바 시의 고급 여관집 외동딸인 유키코는 여관의 차기 후계자로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으며, 학교에서도 정숙한 모범생으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성격이 굉장히 내성적이어서 같은 반 친구 치에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과 잘 대화를 하지 않는 소극적인 면모도 보인다. 유키코에게 여관을 물려받아야 하는 정해진 운명은 질곡과 억압으로 작용하여 그녀는 역헌팅을 하러 다니는 유키코 공주로 TV속에서 등장한다. <페르소나 4>에서 TV는 특정한 캐릭터의 본성이 드러나는 가상의 무대로 주인공이 TV 속으로 들어가 문제가 발생한 캐릭터의 본성이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 속에서 그와 다투게 된다. 유키코의 공주의 성에서 그녀의 본성을 해방시키면 그녀는 자신이 억눌러왔던 어두운 측면을 인정하고 페르소나를 각성시키게 된다. * <페르소나 4> 아마기 유키코의 캐릭터 일러스트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형태의 페르소나 각성 과정이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여러 번 반복된다는 점이다. 유키코보다 보다 명랑쾌활한 치에나 화려한 아이돌 활동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바라봐주길 바라는 리세, 겉으로는 덩치가 크고 불량한 캐릭터이지만 동성애 기질이 있고 섬세한 측면이 있는 칸지, 하드보일드한 남자 탐정을 동경하는 나오코 등은 게임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타자이지만 실제로 그 중 하나 정도는 실제 플레이어의 삶과 유사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는 “나”의 면모들이기도 하다. 그들의 트라우마가 주인공을 통해 치유되는 과정을 극복해내고 친구들과 관계가 심화되면서 플레이어는 마치 자신의 트라우마가 조금씩 치유되는 것 같은 느낌을 맛보게 된다. <페르소나> 시리즈를 둘러싼 이러한 자기 치유의 메커니즘은 비디오 게임의 매체적 특성과도 제법 잘 어울린다. 비단 <페르소나> 시리즈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다양한 인물군을 제시하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캐릭터와 연결되게끔 하는 방식은 상당히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과정은 겉으로는 플레이어의 이상형 찾기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과정 속에 상당한 자기 치유 과정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는 금세기를 전후하여 소설의 독자와 영화의 관객이 게임의 플레이어로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타인과의 사랑을 갈망하기보다는 자기애를 더욱 내면화하는 과정 속에서 유저들의 주체성이 변화해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3. 계량화된 사랑과 수치화된 외모 – 수집형 게임의 메커닉 사실 <페르소나 시리즈>는 일반적인 게임에 비하면 상당히 고도화된 스토리텔링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일반적인 게임의 사랑 재현 양상이라고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특히 최근작 <페르소나 5>에서는 악인처럼 설정된 가면 속 주인공이 타락과 구원을 반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피카레스크 식 구성을 선보이기도 하는 등 스토리텔링 과정에 고심한 면모를 보여준다. 모든 게이머가 고급스런 스토리 전개 과정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게임 개발자들은 스토리의 전개 과정을 간소화시키고 량화시킨다. * <우마무스메> 캐릭터의 일러스트와 능력치 개발자 입장에서는 고전적인 형태의 낭만적 사랑이 퇴조한 시기를 채운 자기애의 투사 과정을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다. 이미 자기애 세대의 플레이어들은 카드 한 장에 그려진 일러스트와 능력치만으로 캐릭터를 평가할 준비가 되어 있다. 카드 뒷면에 구구절절 적힌 캐릭터의 전사(前史)는 읽지 않아도 무방한 거추장스러운 것이 된다. 본래 게임에 사용되는 카드는 다양한 배경과 상징을 내재화한 게임 내용물이지만, 그것이 도구적으로만 활용될 때 이는 수치화된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 <우마무스메>나 <포켓몬>으로 상징되는 수집형 게임의 메커닉에는 복잡한 스토리를 대체하는 일러스트와 캐릭터의 상성, 능력치, 기술 등의 수치적 특성만으로도 그 본질이 치환될 수 있다는 믿음이 내재되어 있다. 캐릭터에 대한 애착(attachment)은 단순한 사랑의 방식이 아니다. 여기에는 애착의 대상인 캐릭터가 절대 연애의 주체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플레이어를 만족시킬만한 일러스트와 계량화된 수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포함된다. 즉,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가지는 애착의 대상은 살아있는 주체적 인간보다는 캐릭터에 가까운 무언가로 정의되게 된다. 아즈마 히로키 식으로 말하자면 그 캐릭터의 외양은 특정한 형태의 모에적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의해 조합되며, 그 캐릭터의 능력치는 적절한 비즈니스 모델을 유발할 수 있을 정도로 희소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수집형 게임을 플레이 할 때 우리는 언제나 산뜻한 기분으로 카드들을 뽑고 포켓몬을 수집할 수 있게 된다. 말의 외양만 보고 모든 플레이어가 그 말에 애착을 가질 가능성은 줄어드니, 모에화된 여성 캐릭터를 달리게 하면서 손쉽게 애착을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플레이어는 매우 손쉽게 애착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은 매우 간편하며, 매우 감사하게도 명목상 무료이다. 그러나 그 애착 과정을 좀 더 극대화하기 위해 억만금을 투자하더라도 카드로부터 구체적인 사랑을 얻게 되지는 못할 뿐이다. 1) http://ndcreplay.nexon.com/NDC2014/sessions/NDC2014_0015.html#k%5B%5D=%EA%B9%80%EC%9A%A9%ED%95%98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 [editor's View] 전쟁과 게임의 오랜 연에 관하여

    디지털게임의 연원을 찾을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쟁입니다. 놀이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디지털이라는 급격환 전환을 가능케 한 계기는 2차 세계대전이 부스트한 연산기계의 발전이었고, 생산과 효율을 위해 탄생한 연산기계는 놀이라는 우회로로 경로를 틀며 오늘날의 디지털게임을 탄생시켰습니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게임 개발자가 바라보는 확률의 구현

    게임에서는 확률이 필수 불가결이라는 의견도 있고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게임에서 확률을 실제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는 알고 있을까? < Back 게임 개발자가 바라보는 확률의 구현 17 GG Vol. 24. 4. 10. 한국 게임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제 중 하나를 고르라면 아마 확률일 것이다. 법적으로 게임 내 확률을 공지가 강제되면서 이러한 규제가 도움이 되는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게임에서는 확률이 필수 불가결이라는 의견도 있고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게임에서 확률을 실제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는 알고 있을까? 게임의 확률 이야기를 하기 위한 기본 교양으로, 프로그래머 관점에서 게임 개발자가 어떻게 확률을 다루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부분을 다뤄보도록 한다. 확률을 설명하는 두 축. 수학과 통계 한국의 교육과정이 계속 변해왔기 때문에 배우는 시기나 범위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의무 교육 과정을 끝까지 수행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확률과 통계를 배우게 된다. 기댓값이나 통계, 독립시행 등의 개념을 굳이 여기서 설명하지는 않는다. 확률은 비단 수학뿐만 아니라 과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개념이고 그 자체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분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확률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다는 이야기는 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첫 번째는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이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예이긴 하지만 어떤 의사 수술의 성공률이 90%라고 해보자. 그리고 당신이 이 의사에게 수술받는다고 하면 어지간하면 성공할 거로 생각할 것이다. 두 번째는 통계적으로 일어난 일에 대한 확률이다. 앞서 말한 예에서 한 가지 조건을 추가해 보겠다. 이 의사는 앞에 9번의 수술에 성공했다. 그러면 당신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극단적인 예이지만 수학적인 확률과 통계적인 확률이 차이가 있다는 점만 짚을 수 있으면 넘어가도 무방할 것이다. 다양한 학문과 분야에서 확률을 다루듯이 게임에서도 확률을 일차원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확률 역시 게임개발의 각 분야에서 다양하게 다루며, 크게 의도를 가지고 다루는 곳은 기획과 프로그래밍 분야일 것이다. 기획에서도 어떤 목적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그 목적이 달라지겠지만 크게는 “어떤 일이 얼마나 일어나게 할 것인가”일 것이다. 기획에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숫자를 다루기 위해 확률을 사용한다. 게임 기획에서 확률에 대한 접근 우선 확률이란 주제가 너무 민감하게 다뤄지는 경향이 있어서 앞으로 이야기하는 모든 예시는 게임 개발자가 어떤 속임수의 의도를 가지고 확률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가정하고 시작하도록 하겠다. - 오크 사냥터에서 오크를 100마리를 사냥하면 오크 대검을 한 자루 얻게 세상을 기획하고 싶다면 간단하게 오크 대검의 하락 확률을 1%로 지정하면 된다. - 어떤 사람이 만 원짜리 구매권 20장을 사서 SSR 카드를 1장 뽑게 만들고 싶다면 SSR 카드의 등장 확률을 5%로 하면 된다. - 미사일의 명중률은 상황과 기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전에서는 보통 사용 횟수와 격추 수로 계산하기 때문에 50%를 넘는 경우는 드물다. 현실을 반영하겠다고 미사일의 명중 확률을 50%로 집어넣어 놓을 수도 있다. 물론 현실과 기획은 다르다. 통계로서의 확률은 어디까지나 아주 큰 수에서만 그 수치에 수렴한다. 아주 납작하게 계속 동전을 던진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학습해서 이번에 동전에 앞면이 나왔다 해서 다음에 뒷면이 나올 확률이 올라가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게임 기획자가 50%의 확률로 성공하는 사건을 기획해 놓았다고 하더라도 한번 성공이 반드시 그다음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동전을 던졌을 때 처음 몇 번이 계속 앞에만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횟수가 무한대에 가까워질수록 앞이 나온 숫자가 뒤가 나온 숫자는 점차 같은 비율로 수렴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게임에서 모든 시도를 무한정 하지 않는다. 게임 기획자가 통 크게 강화확률을 ½ 라고 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10번을 시도해도 실패할 수 있다. 계산도 어렵지 않다. ½을 열 번 곱해 계산할 수 있고 그 결괏값은 0.00098 정도고 퍼센티지로 표시하면 0.098 % 정도이다. 0.01 %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만에 하나라는 정도의 확률이다. 만에 하나라는 관용구는 거의 일어나지 않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수학적으로 만에 하나라는 의미는 어떻게 될까. 게임의 이용자 수가 10만 명이라고 하면 통계수치를 그대로 적용하면 적어도 10명은 강화를 연속으로 10번 해도 실패한다는 의미이다. 거의 일어나지 않는 확률이긴 하지만 게임 이용자의 숫자가 10만 명이면 10명은 10번 해도 실패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용자 수가 많아질수록 그 숫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1/2 확률의 실패가 10번 연속으로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일이지만 통계적으로는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확률이 1/2보다 더 낮아지면 이러한 일을 우리는 더 많이 겪게 된다. 게임 기획에서도 이러한 것도 일종의 공정함 아닌가 하고 개입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지만, 점차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을 어떻게든 막아보기 위해 여러가지 기획적인 시도를 하게 되기도 했다. 이부분은 이후 실제 프로그래밍에서 직접적으로 사례를 이야기하겠지만 공격 등에서는 실패할때마다 성공확률을 점차적으로 높여준다던가 드랍률이 낮은 장비등의 경우라면 잡템들을 줘서 모여있는 잡템으로 교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등의 안전망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아날로그 게임에서 확률 다루기 그렇다면 이 확률을 게임에서는 어떻게 다룰까. 굳이 비디오게임이 아니더라도 예전부터 여러 종류의 게임에서 확률을 다뤄왔다. 가장 확실하게 확률을 취급할 수 있는 도구는 역시 주사위였기 때문에 많은 보드게임이나 TRPG에서는 주사위로 확률을 다뤄왔다. 주사위가 없던 어린 친구들은 6각으로 만들어진 연필을 굴리기도 했다. 특히 TRPG에서는 확률을 정교하게 다루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했는데 90년대 '던전 앤 드래곤'을 하려면 흔히 주사위 세트라고 불렀던 4면체부터 20면체까지 (가끔 100면체를 가지고 있는 마스터도 있었다.) 다양한 다면체로 이루어진 주사위가 필요했으며 단순히 주사위를 한번에 하나씩만 사용하지도 않았다. 보드게임 마니아라면 많이 익숙할 '카탄' 카탄에서는 랜덤으로 자원 판을 배치하며 해당 말에 해당하는 숫자를 주사위 2개로 결정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각 자원 판에서 자원이 나올 확률이 차이가 생겨난다. 이 때 주사위의 합으로 숫자를 정하기 때문에 2의 경우는 확률로서는 1/36이.. 7의 경우 1/6 으로 존재며 7의 경우 카탄의 독특한 규칙 중 하나인 도둑이 움직이게 된다. 이로서 게임에서는 자연스럽게 도둑이 가장 많이 선택되게 된다. TRPG에서는 다양한 공격이나 판정을 주사위로 진행하며 보정 또한 일어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암호처럼 느껴질 표기방법 2D6+3 은 6면체 주사위를 2번 굴리고 그에 3을 더해준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보니 무기들에 개성을 주기 위해 다양한 주사위로 사용한다. 바스타드 소드는 공격력이 1D8이고 시미타의 공격력이 2D4 라면 둘 다 최고 데미지는 8이겠지만 바스타드 소드가 데미지가 8이 나올 확률은 1/8 이고 시미타의 데미지가 8이 나올 확률은 1/16이 된다. 언뜻보면 시미타가 나빠 보일수도 있겠지만 최소 데미지는 2이고 중간값이 좀 더 안정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되는 셈이다. TRPG에서는 판정이나 공격 성공등은 이렇게 다양한 주사위를 다양한 개수로, 성공이 힘들게 하거나 쉽게 하는 부분은 또 추가 보정을 통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최근에 출시된 '발더스 게이트 3'에서는 이러한 계산을 굳이 노출하여 색다른 느낌을 연출하기도 했다. * 그림 1:발더스 게이트의 성공판정 확률 계산의 주요한 수단 – 난수 그 뿌리를 TRPG에 둔 만큼 당연히 비디오 게임의 RPG들은 이러한 다양한 확률 계산들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확률이 게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이 게임 개발자들이 컴퓨터 안에서 직접 확률 굴림을 해야 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확률처리는 난수를 통해 진행이 되었고, 컴퓨터에서 난수를 얻어오는 기능을 게임 프로그래머가 직접 작성하는 경우는 일반적이지는 않다. 현대에서는 대부분 게임 엔진이나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수학 라이브러리에서 제공하고 있는 랜덤 기능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과거에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현대 게임에서 유니티를 예로 들면 랜덤 데이터는 아래와 같이 가져온다. Random.value 이 코드로 게임 프로그래머는 0~1 사이의 임의의 실수를 가져 올 수 있다. 좀 더 주사위스러운 수를 가져오고 싶다면 Random.Range(0,6) 이런 식으로 6개의 숫자중 하나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진정한 난수를 찾아서 과거부터 일반적으로는 설명한 바 처럼 프로그래밍 언어나 게임 엔진에서 제공하는 난수 생성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게임 프로그래밍의 팁을 다룬 책들 중 전범으로 여겨지는 '게임 프로그래밍 잼스'에서는 난수를 직접 만드는 코너들도 존재한다. 외부 요소 없이 컴퓨터 자체만으로 만들어내는 난수는 진정한 난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컴퓨터에서 생성하는 난수는 의사난수(Pseudo Random) 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 컴퓨터에서 특별한 절차 없이 앞서 언급한 프로그래밍 언어의 수학 라이브러리를 사용하여 난수를 생성하는 경우 똑같은 수를 생성할 때가 있었다. 이처럼 컴퓨터의 난수 생성 과정은 내부에 보유한 거대한 난수표를 통해 이루어지며, 특별한 절차가 없다면 난수표의 시작지점이 동일해 계속 같은 난수를 얻게 된다. 그렇다보니 예전 피처폰용 고스톱을 동시에 시작하면 양쪽 폰에서는 같은 순서의 패의 나열이 만들어져서 한쪽 폰으로 패의 순서를 파악해 다른 쪽의 게임을 쉽게 진행하는 일종의 치팅도 존재했다. 보다 확실하게 난수를 얻기 위해서 복잡하게는 wifi신호의 노이즈를 이용하는 것부터 간단하게는 현재 시간으로 난수표의 시작 지점에 난수를 섞어서 다른 값이 나오도록 하여 진정한 난수를 얻을 수 있게 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보다 확실하게 난수를 얻어야 하는 분야에서는 마우스의 움직임 등으로 난수를 생성하기도 한다. 의사난수를 게임에서 활용하기 전략 게임을 즐겨하는 플레이어들이라면 가끔 1% 명중률을 맞추기 위해서 리셋 노가다를 하는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혹은 명중률 99%로 표시되는 상황에서 공격했는데 빗나가는 우울한 상황을 맞이해서 게임을 꺼버리고 다시 시도하는 경우들도 존재할 것이다. * 그림 2: 엑스컴 에너미 언노운의 명중률표기 다시 실행을 하면 새로 계산하면서 공격이 명중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게임을 종료하고.. 혹은 전원을 껐다 켜고 게임을 다시 실행해서 저장한 게임을 다시 불러와서 공격을 시도해도 99%에서도 어이없이 빗나가는 공격 화면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는 게임 개발자들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이미 아주 먼 옛날부터 이런식으로 리셋을 해서 확률을 지배하려는 노력을 게임 플레이어가 해왔기 때문이고 게임 기획자들은 이 것이 자신들이 만든 경험을 온전히 즐기는데 방해된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진정한 랜덤을 위해 시간이든 우주방사선이든 노이즈를 섞어서 난수를 만들어냈다면 안 그래야하는 것 아닌가요? 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을 텐데,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 것도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쉬운 방법이라면 미리 난수를 계산해서 저장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난수가 저장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모르지만 이미 결정이 되어있으므로 마치 운명처럼 어떻게 하든 결괏값은 항상 같을 수도 있다. 아니면 랜덤함수에서 제공하는 Seed라고 부르는 것을 사용하였을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컴퓨터의 의사 난수는 진정한 난수가 아니라 일종의 거대한 난수표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그 시작점을 의도적으로 정할 수 있다고 하면 어떨까. 만약에 이 난수의 씨앗 값이 같다면 난수표의 시작 위치가 같아서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오게 할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잡신호를 섞는 것도 사실 이 씨앗 값에 현재 시각, 혹은 전파 잡신호, 마우스 움직임, 온도 등 뭐든지 섞어서 만드는 경우가 보통이다. 같은 랜덤에서 같은 시드값이 주어졌다면 랜덤이 나오는 숫자의 순서는 항상 같을 것이다. 게임에서 난수를 사용하는 것은 확률 뿐이 아닌데, 절차적 생성 또한 이러한 난수를 사용한다. 가끔 아주 적은 세이브 용량에서 거대한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볼 때가 있을 것이다. 간단한 예를 찾아보자면 항상 다른 행성을 만들어 주는 게임인 <노 맨즈 스카이>를 생각해 보자. 절차적 생성에서는 같은 시드값에서는 같은 난수의 배열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시드값만 저장하고 난수를 만드는 알고리즘 혹은 난수표를 같게 사용하여 시드값만으로 게임 세상을 저장하기도 한다. 또는 같은 시드값으로 같은 세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확률 조작과 보정의 사이 앞서 이야기한 확률의 보정에 대해 좀 더 언급해 보도록 하자 * 그림3. 슈퍼로봇대전의 전투전 확률 표기 이런 확률 보정을 그냥 스킬 등으로 대치할 수도 있다. '슈퍼로봇대전'은 반드시 공격을 피하는 스킬인 “섬광”이나 반드시 공격을 맞추는 스킬인 “필중”을 넣어 굳이 게임기를 리셋하지 않더라도 확률을 지배할 수 있게 하였다. 앞서 이야기 했듯 게임 기획에서 굉장히 희소한 가치의 재화 (이는 장비가 될 수도 있고 캐릭터가 될 수도 있다.)가 존재할 수 있다. 한 서버에서 하나만 존재하는 검이 기획 상 존재한다면 어떨까. 이 장비의 드롭확률은 굉장히 낮겠지만 한번 생성되면 그 때부터는 0이 될 것이다. 이 것은 게임 월드의 보정을 위한 확률 보정이다. 가챠에서의 천장을 생각해보자 가챠 게임에서의 확률 보정은 조심스러운 부분이 존재한다. 필연적으로 확률 보정은 복잡한 공식이 필요하며, 이는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금전이 오가는 문제라면 민감한 부분이다. 가챠의 확률 보정은 마케팅을 위한 특정 횟수 (일반적으로 10회) 뽑기를 시도했을 경우 높은 등급의 (최고등급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카드를 한 장 주는 방식과 함께 이용자가 특정 최고 등급 카드를 몇 백 만원을 써도 얻지 못하는 경우를 피하게 해주기 위해서 특정 회수 이상 뽑기를 시도하면 반드시 해당 카드가 나오게 하는 천장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시스템이다. * 그림 4: 페이트 그랜드 오더 스크린샷 – 필자제공 '페이트 그랜드 오더'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330번 뽑기를 시도해도 카드가 안 나왔을 경우 100% 해당 카드를 제공하는 뽑기 시스템이다. 뽑기를 시도하려면 게임 내 재화가 필요하며 이 재화는 게임을 진행하면서도 얻을 수 있지만 구매로 얻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약 180개가 10만원이며 11번 뽑는데 (1번은 보너스다.) 30개가 필요하다. 대략 10만원으로 66번 뽑는다고 생각하면 적어도 한 캐릭터를 뽑는데 55만원 이상은 쓰지 않게 기획된 것이며 실제로 이 시스템이 적용되는 특정 카드만 뽑을 수 있게 하는 픽업 가챠의 경우 해당 최고 등급 카드의 등장확률은 0.8%이기 때문에 실제 기댓값은 125번 정도 뽑기를 시도하면 (20만원) 한 장 뽑을 수 있게 디자인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는 10번이상 뽑을 경우 무조건 4성이상 카드가 나오게 되어있기 때문에 실제 수치는 조금 더 작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서 이 금액이 과도한지 아닌지에 대한 가치판단은 하지 않겠다. 강화 역시 확률 보정이 일어나는 쉬운 사례 중 하나인데, 대부분의 장비 강화는 장비가 높은 등급이 될 때마다 확률이 떨어지게 기획되는 경우가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기획은 대부분 명시가 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확률이 낮아지는 것 역시 놓치기 쉽지만 확률의 보정이다. 어떤 사람이 오크를 10마리를 잡으면 열쇠를 얻을 수 있게 열쇠를 얻을 수 있게 열쇠의 드롭 확률을 10%로 잡아놓으면 어떨까. 운 좋은 사람들이라면 한번에 열쇠를 얻었겠지만 운이 없는 사람이면 100번 해도 열쇠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간단하게 오크 머리를 20개를 가져오면 열쇠랑 바꿔주게 기획하는 손쉬운 해결책도 있겠지만 게임 설정상 이 곳은 던전 안이라 오크 머리를 열쇠로 바꿔줄 NPC를 넣을 수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10번째 오크부터는 열쇠가 나올 확률을 점차적으로 올리거나 아니면 반드시 열쇠가 나오게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반드시 나오는 것보다는 확률을 점차적으로 올리는 것이 좀 더 재미를 주는 기획에 가까울 수도 있다. 퀘스트를 위해 특정 몬스터를 잡으면 아이템을 얻는 경우도 있다. 오크를 잡으면 얻을 수 있는 오크 이빨은 퀘스트에서만 이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퀘스트를 수행중에만 받으며 퀘스트 필요량을 다 채울 경우 필요 없다. 오크 이빨을 다른 사람이 대신 얻어주는 것도 기획에 어긋나기 때문에 오크 이빨은 딱 필요량만 얻어져야한다면 여기서도 확률 보정이 들어간다. 퀘스트를 받으면 오크 이빨이 10%확률로 나오고, 퀘스트의 수를 다 채우면 0%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확률 보정이 게임 안에 존재할 수 있다. 근데 이걸 다 합쳐 놓았다고 상상해보자. 오크 이빨도 나오고 칼도 나오고 열쇠도 나와야 하는데 이 확률 분포들은 100이 이미 넘어갔고 프로그래머는 내부 계산에서 100까지만 계산을 해서 확률 처리를 하게 해 놓았다. 계산식에 의하면 오크 열쇠는 105~115까지의 숫자가 나와야 드롭되는데 프로그래머는 숫자 처리를 100까지만 하게 했다. 여기서 열쇠를 얻어야만 던전을 나갈수 있다. 이런 식의 기획이라도 추가되었다면.. 결말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실수를 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렇게 난수를 다루다보면 가끔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특정 코드에서 에러가 나는 오류라면 쉽게 해결되지만 1~6까지 숫자가 나와야 하는데 6이 안 나오고 있는 문제는 의외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심지어 6이 적게 나온다면…? 지금은 이러한 실수 때문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 패턴이지만 예전에는 난수를 실숫값이 아니라 정숫값을 얻어올 수도 있었다. 주로 2진법을 사용하는 컴퓨터의 특성상 그 숫자는 최댓값이 십진법이 아니게 되는데, 좀 더 직관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여기서는 8비트, 0부터 255까지만 생각해 보겠다. 만약 임의의 난수가 0~255까지 나온다고 가정하고 우리가 여기서 0~9까지 10개의 숫자를 임의로 얻고 싶다고 할 때 어떤 방법을 쓸까. 컴퓨터에서는 나머지 연산(Mod 흔히 %로 표기)이 있어서 나머지를 통해 쉽게 숫자들을 얻을 수 있다. 근데 이걸 나머지 연산으로 0~9부터 구하면 과연 이 숫자의 분포가 고르게 될까…? 255는 숫자가 작아서 상대적으로 차이가 좀 커 보이지만 0~5까지의 숫자가 다른 숫자보다 경우의 수가 하나씩 더 존재하게 된다. (이 경우 0~5는 사례가 21개, 6~9는 20개씩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런 오류는 찾기 힘들다. 몇 년이 지나서 발견될 수도 있고 게임을 하는 이용자 수가 적어서 개발자도 이용자도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 아니면 적어도 1개는 쉽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의 확률을 계산하려면 어떨까. 어떤 가상의 게임에서 부활의 물약은 플레이어가 1개는 가지고 있으면 좋으니까 1개는 쉽게 나오고 2개부터는 있으면 좋으니까 좀 어렵게 나오게 만들고 싶다. 그래서 인벤토리에 부활의 물약이 있는지 체크하고 없다면 부활의 물약이 나올 확률을 높여주고 있다면 그때부터는 확률을 점차 줄여나가기로 했다. 이 기획은 잘 동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새로운 기획자가 와서 해당 기능이 있는 것을 보고 이 확률 계산을 10개가 필요한 퀘스트 아이템에 적용했다. 그리고 프로그래머가 만들어 둔 수식대로라면 인벤토리에 아이템이 8개가 되는 순간부터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마이너스가 된다고 하면 어떨까. 누구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날 이용자들이 퀘스트 아이템이 모두 8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로 비교해 보면서 깨닫게 되고 이용자 게시판은 불길에 휩싸일 것이다. 현대의 게임은 복잡하고 확률을 다루는 것은 더 복잡하며 프로그래밍에서 레거시라고 부르는 과거의 코드들은 블랙박스처럼 아무도 이게 왜 돌아가는지 모르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프로그래머의 경험으로서는 잘못된 데미지 계산 수식이 1년 동안 동작하고 있었고, 기획자가 잘못된 데미지 계산 수식을 기초로 (경험을 통해) 밸런싱을 하다가 1년 후에 발견하는 바람에 원 기획대로 수정했다가 게임이 난리가 난 적도 있었다. 개발자가 인간인 이상 실수 없이 완전하게 세상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확률을 게임에서 어떻게 다뤄야 할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얻지 못하게 하는 식의 확률 보정을 하지는 않는다는 가정을 했다. 나는 사기에 가까운 의도의 확률 보정은 게임의 재미를 해치게 만드는 편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로제 카이와는 놀이와 인간에서 게임을 4가지로 분류했고, 그 중 알레아는 확률이 엮여있는 게임을 이야기한다. 모든 게임이 운의 요소를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싱글 게임이라면 상관없지만, 멀티게임이라면 그리고 그 세상에서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재화가 존재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확률로 관리할 수밖에 없다. 아니라면 선착순이란 방법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카트라이더를 스피드전만 하는가. 확률이 노출되면 게임이 더 재밌어질까? 아니면 게임이 더 공정해질까? 그런 부분은 게임마다 다르리라 생각한다. 과거의 MMORPG 이용자 중에서는 레벨이 노출되는 그것조차 거부하면서 자신이 실제 가상의 게임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플레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한테 오크를 때리면 50% 확률로 출혈 효과를 입힐 수 있습니다. 라고 표시를 해준다면 어떻게 느낄까. “어우 깬다.”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확률을 사용한다면, 특히 재화 등에서 확률을 사용한다면, 프로그래머라면 좀 더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다. 물론 게임이 성공하면 발생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해킹이나 돈 복사 등이 아니더라도 실제 게임 내 풀리는 재화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게임 기획자들이 확률 등을 입력해서 적어도 천번 만번 정도를 직접 테스트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계산해서 성공 횟수와 실패 횟수 등을 테스트할 수 있게 해준다면 (물론 기획자들은 이 계산을 엑셀에서 한다! - 하지만 게임 내부의 수식 처리 결과가 과연 같을까…?) 적어도 실수 사례는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필요한 건 주사위를 굴려서 6만 6번 이상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상상력일 것이다. 퍼센티지로 따지자면 0.002 %지만 통계적으로는 5만 번 중 한번 존재할 수 있다. 게임에서는 이 숫자가 적은 게 아니다. 오크를 100마리 잡아 오라는 퀘스트를 던지는 게임에서는 이 숫자가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냥 1만 명이 5번씩만 하면 5만 번이다. 그리고 1만 명 중의 한 명한테는 그게 5번만의 일어난 일이다. 물론 이러한 부조리함조차 현실을 반영한 게임의 재미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일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일을 적어도 잊지는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럼즈펠드 말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언젠가는 더 크게 비용을 치를 수도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적어도 사기는 치지 말자.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북미의 루트박스: 한국과 다르면서 또 같은

    관계자 A는 “미국게임업계의 모바일 게임을 경시하는 풍조는 오히려 업계관계자들 특히나 게임개발자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다”고 말하며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들은 좋은 개발자를 영입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작이 아니면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들이 많다. 인게임 결제가 있는 게임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크다보니 오히려 수가 적고 따라서 로트박스 문제는 관심 밖이라는 느낌이 있다”고 말하며 루트박스가 커뮤니티 안에서 크게 회자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hoon Hong Lives in California and works in the game industry. Aims to offer insight to as many people as possible through podcast appearances and contributions to various outlets. Hopes to spend a lifetime writing engaging pieces across every field, from fashion to games.

  • 게임에서 재현과 미학적 아우라: <1979 레볼루션: 블랙 프라이데이>와 <믹스테이프>의 고체적 서사에 대하여

     실재에 가까운 재현은 매체가 태어난 이래로, 매체를 만드는 창작자와 그것을 소비하는 이용자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이상이자 욕망이었다. 게임 또한 ‘실재에 가까운 재현’이라는 이상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행동을 조작하고 결정하게 하며 그 결과를 다시 확인시키는 일련의 모달리티를 통해, 게임은 다른 매체가 좀처럼 도달하지 못한 실감을 구현해왔으며, 플레이어가 게임을 통해 느끼는 실감은, 게임이 실재에 다가서는 고유한 방식이었다. < Back 게임에서 재현과 미학적 아우라: <1979 레볼루션: 블랙 프라이데이>와 <믹스테이프>의 고체적 서사에 대하여 30 GG Vol. 26. 6. 10. 정렬된 선택과 결과, 그리고 강제된 수동성 실재에 가까운 재현은 매체가 태어난 이래로, 매체를 만드는 창작자와 그것을 소비하는 이용자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이상이자 욕망이었다. 게임 또한 ‘실재에 가까운 재현’이라는 이상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행동을 조작하고 결정하게 하며 그 결과를 다시 확인시키는 일련의 모달리티를 통해, 게임은 다른 매체가 좀처럼 도달하지 못한 실감을 구현해왔으며, 플레이어가 게임을 통해 느끼는 실감은, 게임이 실재에 다가서는 고유한 방식이었다. 게임은 실재에 가까워지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선택과 결과라는 두 개의 연결된 사건을 만들어 낸다. 둘 가운데 선택은 이용자가 자신의 의지로 조작하거나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용자의 의지와 감각을 결과에 정렬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게임이 주는 핵심적 쾌락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정렬에서 온다. 내가 누른 입력이 화면 위의 사건으로 되돌아오고, 그 결과를 다시 다음 입력의 근거로 삼는 회로야말로 게임이 이용자에게 부여하는 행위주체성(agency)의 실체[1]로 보기도 한다. 다만 여기서 '선택'이라는 말은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버튼을 누르는 조작(operation)이 곧 의미 있는 선택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작은 무수히 일어나지만, 그 조작이 결과의 분기점으로 이어져 이용자의 의지가 세계에 흔적을 남길 때 비로소 선택은 의미를 얻는다.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은 단지 이야기를 보는 일이 아니라 시스템의 논리를 몸소 수행하는 일이며, 그런 의미에서 게임의 작동은 언제나 하나의 행위[2]다. 그런데 이용자가 선택을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이용자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감각을 결과로부터 이탈시킬 가능성까지 품는다. 정해진 루트를 고의적으로 이탈하여, 의도된 결말을 비틀어 보며, 시스템의 빈틈을 의도적으로 겨냥하는 어긋남의 여지야말로 게임이라는 매체가 이용자에게 허락한 자유이며, 게임이 구현한 플레이가 플레이어가 선택이라는 근거다. 반면 어떤 게임들은 선택과 결과가 정렬되는지 여부를 이용자가 결정할 수 없도록 설계한다. 무엇을 누르든 이야기는 정해진 방향으로 흘러가고, 어긋남의 여지는 사전에 봉쇄된다. 선택과 결과의 정렬을 강제한다는 것은, 게임이 제공하는 세계의 이야기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일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정렬을 강제하는 게임은 프로파간다의 성격을 띠게 된다. 게임은 서사나 이미지의 차원에서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과 시스템의 작동 그 자체로 주장이 되기도[3] 한다.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무엇이 보상받고 무엇이 처벌받는지를 정하는 규칙의 배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설득 요소다. 다만, 선택과 결과의 정렬이 일어날 때 플레이어는 수동성의 영역에 놓인다. 게임이 이용자에게 강제하는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야기를 강제하는 일이 단순히 메시지를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것은 이용자가 결과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피드백의 기능 자체를 부전시켜, 게임의 고유한 매체적 특성을 회로가 훼손[4]하기도 한다. 따라서 정렬의 강제는 자칫 게임이 가진 매체적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개발자와 창작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 혹은 재현을 전달하기 위해 선택과 결과의 정렬을 강제하는 길을 택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 혹은 자본의 한계나 문제가 아니다. 분기점을 구현할 역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분기하지 않는 편이 전달하려는 무언가에 더 충실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매체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실재 재현의 이상을 향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게임이 피드백을 포기하고 얻은 것 게임이 피드백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포기해가면서까지 실재의 재현에 매달리는 이유를 가늠하려면, 먼저 재현이란 무엇인가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스튜어트 홀은 재현이 사회 아래에 놓인 현상임을 지적하며, 사회적 약속과 권력관계에 따라 동일한 대상조차 완전히 다르게 재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홀은 지식과 권력의 결합을 설명하기 위해 푸코가 꺼내 든 ‘담론(Discourse)’ 개념을 빌려와, 미디어에 의해 의미가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사물 자체에 고정된 의미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는데, 의미는 대상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담론적 실천 안에서 비로소 생산된다는 것이다. * 스튜어트 홀 (출처: 위키피디아) 이를 바탕으로 홀은 특정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대상을 재현하는 규칙과 담론을 형성한다고 본다. 그 증거로 그는 서구 미디어가 동양을 재현할 때 오리엔탈리즘을 경유해 묘사하는 사례들을 들면서,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가 상호 결탁하여 의미를 창출하는 과정을 역설한다. 동양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가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타자로서 거듭 그려진다. 홀은 이러한 미디어의 이미지 결탁하는 과정을, 대항적 독해(oppositional reading)를 통해 극복해야하는 대상으로 보았다. 생산과 소비의 결탁 이면에 숨은 의도를 파악함으로써 대중은 미디어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아이러니가 있다. 홀이 묘사한 대항적 독해와 대안 담론의 중심에는 언제나 보편과 주류라는 공리적 기준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대항적 독해란 결국 무언가 지배적인 코드에 맞서는 독해이며, 그 지배적 코드는 대중이 공유하는 공통의 감각을 전제한다. 문제는 이 전제가 오늘날의 파편화된 미디어 환경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옴니채널과 같은 초개인화된 경험이 일반화된 오늘의 유통환경에서, 주류적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더 이상 정규분포의 중앙값처럼 범용적인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아니다. 알고리즘이 각자에게 다른 세계를 전파하는 환경에서는, 모두가 맞서야 할 단일한 지배적 코드라는 것 자체가 흐려진다. 오히려 극단적인 주장을 통해 강한 배타성과 폐쇄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작고 단단한 집단 여러 개가 모여 주류를 이룬다. 대항과 지배의 경계는 무너지고, 누군가의 대항 담론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배 담론이 된다. 이것은 미셸 마페졸리가 그렸던 부족주의(neo-tribalism) 사회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페졸리에 따르면 부족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지금 그리고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제공하는 정서적 공명이 사람들을 뭉치게 만든다는 점이다. 합리적 계약이나 거대 이념이 아니라 함께 있음 그 자체의 정서가 결속의 근거가 된다. 마페졸리는 제도화된 권력(pouvoir)과 구별되는, 일상의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사회적 활력(puissance)에 주목하면서, 이 활력이 ‘미학적 아우라’를 통해 표출된다고 보았다. 미학적 아우라란 그 부족만의 독특한 스타일이나 은어와 같은 일상적 의례와 미학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미학적 아우라의 시원은 그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내거나 향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학적 아우라의 형식 그 자체라는 점이다. 마페졸리가 지적한 미학적 아우라는 발터 벤야민이 지적한 것처럼 유일무이한 원본에 깃드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복제되고 공유되는 형식 그 자체에 깃든다. 벤야민의 아우라가 진정성의 아우라라면, 마페졸리의 아우라는 형식의 아우라다. 게임이 실재의 재현에 매달리는 풍경은 바로 이 두 아우라 사이의 긴장 위에 있다. 게임은 실재의 현존이라는 벤야민적 진정성을 좇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게임이 플레이어의 손에 쥐여주는 것은 마페졸리가 지적한 미학적 아우라, 즉 형식의 아우라다. 다시 말해, 게임이 피드백을 포기하면서까지 실재의 재현에 매달리는 이유는, 전달하려는 메시지 자체보다 차라리 특정한 형식 그 자체에 있을지 모른다. * 미셸 마페졸리 (출처: 위키피디아) 서사에서 시스템으로: 게임의 미학적 아우라는 어떻게 변해왔나? 많은 이들이 마페졸리의 '미학적 아우라'를 떠올릴 때, 그 향유성과 현전성 때문에 탈정치적이고 프로파간다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표현이나 양식을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미학적 아우라 그 자체는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원하지 않더라도 프로파간다처럼 작동할 수 있다. 가령, FPS의 역사를 새롭게 정립한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이하 <모던 워페어>)를 떠올려 보자. <모던 워페어>의 가장 큰 특징은 △비교적 작은 볼륨 안에 담긴 미니멀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전투 △짧은 내러티브 드라이븐 △선형적 스토리를 활용한 시네마틱한 연출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살펴야 할 것은 <모던 워페어>가 가진 특징들을 통해 구현한 속도감이다. 이 속도감은 빠르게 다음 캠페인으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이용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공략 이상의 피드백을 지양한다. 플레이어가 <모던 워페어>에서 얻는 쾌감은 명확한 적의의 대상인 적들을 돌파해나가는 슈터로서의 재미다. 다만 이 재미가 중동이나 러시아처럼 내전으로 병든 타국의 땅에서 교전을 벌이며 세계를 구한다는, 지극히 서구 중심적인 관점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전쟁을 명료한 선악 구도의 오락으로 소비 가능하게 만드는 이 감각은 이미 충분히 정치적[5]이다. 마페졸리가 지목한 '미학적 아우라'란 바로 <모던 워페어>가 속도감의 바탕으로 두고 있는 뚜렷한 선악 구도의 서사적 명확성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서사적 명확성이란 갈등의 뚜렷함, 즉 작품의 세계와 캐릭터 사이의 관계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과 결과의 선명함, 다시 말해 원인과 결과의 선명성을 뜻한다. 가령, <모던 워페어>에서 질주감을 형성하는 엄폐와 사격이라는 규칙은 플레이어에게 실패 상태에 선명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의 선명성은 복잡한 인물의 관계를 다루는 서사적 세계관 속에서도, 행위에 따른 결과라는 형식을 통해 미학적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 <1979 레볼루션: 블랙 프라이데이>의 카메라 시스템... 카메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스팟에 캐릭터가 도착하면 하단에 카메라 표시가 뜬다. 그 중, 역사적 사료와 병치되는 자료를 띄울 수 있는 상호작용이 있으면 카메라 포커스가 초록색으로 변한다 (출처: 플레이 캡처) <1979 레볼루션: 블랙 프라이데이>(이하 <1979 레볼루션>)는 복잡한 세계관 속에서도 선택과 결과의 선명성을 통해 미학적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사례로 지목할만하다. 주인공 레자가 들고 다니는 사진기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은 ‘미학적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모달리티로 주목할 만하다. <1979 레볼루션>은 인터랙티브 무비로, 실제로 모든 엔딩을 보더라도 세 시간 남짓한 짧은 플레이 타임을 가진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어떤 선택을 하든, <1979 레볼루션>은 이란 혁명을 비극으로 평가한다. 주인공이 새 정권에 붙잡혀 심문받는 액자 구조 안에서 과거가 회상되는 만큼, 결말의 정서는 시작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다. 더불어 게임은 특정한 지점에서 실제 이란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주인공이 이란에서 어떤 비극이 있었는지를 찾아다니는 형식을 띠게 된다. 여기서 핵심은 사진기 메커니즘이다. 플레이어가 게임 안에서 촬영한 장면은, 혁명기에 실제로 찍힌 역사적 사진과 나란히 병치된다. 가상의 이미지가 다큐멘터리의 이미지 위에 포개지는 순간, 게임은 자신이 재현한 것이 허구가 아니라 실재였다고 선언한다. 이는 실재의 재현을 메커니즘으로 구현한 사례이며, 동시에 플레이어에게 이란 혁명을 비극으로 기억하라는 강력하고 반복적인 학습 효과를 가져온다. 물론 <1979 레볼루션>이 전시하듯 이란 혁명은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 역사가 아니며, 그 희생자들 역시 마땅히 애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비평적으로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실제 이란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자료를 제시하는 방식이 실제의 재현을 강조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이 효과는 플레이어에게 이란 혁명을 비극으로 각인시키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혁명에 원인을 제공한 권력이라는 대범주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만드는 미학적 아우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미학적 아우라의 형성은 양가적이다. 그것은 홀이 바랐던 것처럼 작품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촉진해 대항적 독해를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플레이어가 권력을 지양하는 미학적 아우라 그 자체를 추종하게 만들어, 질서와 같은 공리적 상식마저 거부하게 만드는 힘을 가질 수도 있다. 아우라가 형식 그 자체를 근거로 삼을 때, 비판의 대상이었던 권력에 대한 거부는 어느새 형식에 대한 맹목적 충성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 권력 일반을 부정하는 정서가 미학으로 굳어질 때,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강제가 된다. [사진7. <믹스테이프> 포스터 (출처: 스팀)] 최근 각종 게임 커뮤니티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믹스테이프>는 이 미학적 아우라가 얼마나 위태롭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되새기게 만든다. <믹스테이프> 역시 <1979 레볼루션>처럼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인터랙티브 무비이며, 1990년대를 향한 노스탤지어적 텍스처를 플레이의 소구점으로 겨냥한 작품이다. 세 친구가 고교 시절의 마지막 밤을 향해 가며 추억을 되짚는 동안, 특정한 곡들이 플레이 가능한 회상의 장면을 불러낸다. 특이한 것은, <믹스테이프>에는 실패 상태(failed state)로 구현될 만한 캠페인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믹스테이프>에서 플레이어는 그 어느 것도 실패하지 않으며 어떤 결과로도 분기하지 않는다. 이는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제공해야 할 최소한의 선택 요건조차 구현하지 않았다는 비난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실패의 가능성이야말로 플레이어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실패할 수 없다면 성공도 없고, 결과가 갈리지 않는다면 선택도 없다.[6] <믹스테이프>의 상호작용은 결과가 아니라 정서를 위해 존재하는, 텍스처로서의 기능적 상호작용이다. 그러나 우리는 <믹스테이프>가 무리해 가며 선택의 영역을 제거한 선택이 어떻게 글로벌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믹스테이프>가 플레이어의 선택을 구현하지 않음으로써 얻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플레이어가 소비의 방향을 정할 수 없는 고체적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일회적 플레이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미학적 휘발성이다. 즉, 한 번 플레이하고 나면 버려지는 일종의 인스턴트 시뮬레이션 이상의 의미를 거둘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소구의 방향을 제시한다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은 오히려 높아진다. 선택지를 지운 대가로 <믹스테이프>가 얻은 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도착하는 매끄러운 정서의 패키지다. 여기서 우리는 ‘판매고’와 같은 성취의 언어가 무엇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를 의구심을 품고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믹스테이프>가 지향하는 '미학적 아우라'와 프로파간다 그 자체가, 쓰고 버리는 소비주의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모던 워페어>가 서사적 명확성을, <1979 레볼루션>이 권력에 대한 평가를 통해 최소한의 실재를 마련했다면, <믹스테이프>의 아우라는 어떤 메시지도 아닌 소비의 형식 그 자체를 향한다. 이렇듯 미학적 아우라는 점차 내용을 비우고 형식만을 남긴다. 전쟁이 가져오는 적의의 명료함에서, 권력에 대한 단죄를 부추기는 페스티쉬를 거쳐, 마침내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 노스탤지어의 질감에 이르는 과정은, 아우라가 메시지로부터 풀려나 형식 그 자체가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고체적 가상과 유동적 실재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세 작품의 공통된 특징은, 서사의 관계가 고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선택과 결과는 정렬되도록 강제되었고, 어긋남의 여지는 닫혔으며, 이야기는 단단하게 굳어 있다. 일찍이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의 특징을 유동성(liquidity)이라 지적한 바 있다. 바우만이 유동성의 대상으로 바라본 것은 다름 아닌 정체성과 의미였다. 정체성은 더 이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끊임없이 짊어지고 갱신해야 할 과제가 되었고, 그 과제는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소비사회에서 정체성마저 사고 버리는 상품이 될 때, 사람들은 어디에도 오래 머무르지 못한 채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그렇다면 유동성의 시대에 우리는 왜 굳이 고정된 서사를 소비하는가. 어쩌면 우리는 미학적 아우라라는 가상 속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려 정체성이 발붙일 곳 없는 유동성의 실재를 피해, 고체화된 가상으로 이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택이 사라진 자리, 결과가 미리 정해져 딱딱하게 굳어버린 세계는, 무엇 하나 단단히 붙잡을 것 없는 현실에 지친 이들에게 차라리 안식처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믹스테이프>가 되살리는 1990년대가 그토록 강력하게 소구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마치 온전히 복원할 수 있는 고향인 양 제시하는 경험한 적 없는 노스탤지어이며, 흘러내리는 현재에 맞서 굳어 버린 과거를 내미는 몸짓[7]이다. 그러나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과연 고체화된 가상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정체성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잠시의 피난처에 불과한, 또 하나의 쓰고 버리는 인스턴트일 뿐인가. 벤야민의 아우라가 복제 속에서 시들었듯, 형식의 아우라에 기댄 이 고체적 가상 역시 한 번의 소비로 휘발해 버린다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안식처가 아니라 더 매끄러운 유동성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Janet H. Murray(New York: Free Press, 1997), Hamlet on the Holodeck: The Future of Narrative in Cyberspace. Alexander R. Galloway(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6), Gaming: Essays on Algorithmic Culture. Ian Bogost(Cambridge, MA: MIT Press, 2007),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eogames. Espen J. Aarseth(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7), Cybertext: Perspectives on Ergodic Literature. Roger Stahl(New York: Routledge, 2010), Militainment, Inc.: War, Media, and Popular Culture Jesper Juul(MIT Press, 2013), The Art of Failure: An Essay on the Pain of Playing Video Games Svetlana Boym(New York Basic Books, 2001), The Future of Nostalgia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원)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연구원. 콘텐츠와 IT 산업의 동향과 정책을 연구하며, 콘텐츠 전반에 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국 AI 및 디지털 정책 동향 조사·분석」(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디지털 보안 동향 조사 및 분석」(한국인터넷진흥원)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 참여했으며,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 신인상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 덤덤한 덤, 쏠쏠한 덤 : 덤으로서의 게임들

    덤은 언제나 반갑지만, 플레이로 이어지느냐에 따라 쏠쏠한 덤인지 덤덤한 덤인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디지털 기술이 적용되는 방향도 비용을 치르도록 강제하는 것에서 시간을 쓰기 편하도록 보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꽤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은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이다. 무수히 많고 많아질 게임뿐 아니라 영상과 음악을 비롯한 디지털 콘텐츠들이 하루 24시간 중에서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 Back 09 GG Vol. 22.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woong Kang Senior researcher at the Institute for Social Development Studies, Yonsei University. Has written for various game outlets, including Gamers. Books include Game and Cultural Studies (co-authored) and The History of Korean Games (co-authored). Writes a regular game column for the children's magazine Goraega Geuraesseo. Believes that games are a culture that walks alongside us, touching countless moments of our lives.

  • 플레이할 결심: 공포 게임을 못_잘_안 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적 자기반성을 토대로

    나는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공포 게임이 무섭기 때문이다. 무서워하라고 만든 게임을 무서워해서 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긴 한데 뭔가 아쉽긴 아쉽다. 바로 내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공포 게임에도 명작이 참 많다. < Back 플레이할 결심: 공포 게임을 못_잘_안 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적 자기반성을 토대로 19 GG Vol. 24. 8. 10. 나는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공포 게임이 무섭기 때문이다. 무서워하라고 만든 게임을 무서워해서 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긴 한데 뭔가 아쉽긴 아쉽다. 바로 내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공포 게임에도 명작이 참 많다. 〈암네시아〉(Amnesia), 〈블레어 위치〉(Blair Witch),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맨 오브 메단〉(Man od Medan), 〈디 이블 위딘〉(The Evil Within),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Dead by Daylight),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Alien: Isolation), 〈화이트데이〉(White day),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 〈사일런트 힐〉(Silent Hill), 〈디텐션: 반교〉(Detention: 返校)는 플레이해 보지 않았지만 제목도 게임 속 장면들도 너무 친숙한 작품 또는 시리즈들이다. 고백하자면 이중 적지 않은 게임들을 소장하고 있다. 책 구매도 독서이듯 게임 구매도 플레이의 일환이기에 아직 플레이하지 않았을 뿐 언젠가 하긴 할 것인데 아직 그 시기를 가늠하기 힘들 따름이다. 그렇지만 명작으로 불리는 게임들을 제대로 플레이하지 못하고 있으니,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무서움은 피하는 게 상책이니 공포 게임은 떠올리지 않아버리기 쉽지만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다시 고개를 돌려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질문들이 이어진다. 공포 게임은 왜 무서운가? 공포 게임의 재미는 무엇인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는 공포를 즐기는 것일까,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일까? 공포 영화를 통해 비추어 본 공포의 정체 가장 궁금해지는 것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의 마음이다. 이들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즐거움을 느낄까, 괴로울까? 만약 그것이 즐거움이라면 어떤 즐거움일까, 한편 그것이 괴로움이라면 거기에 어떤 매력이 있을까? 공포 영화를 대상으로 유사한 질문을 던진 시도가 있다. 공포 영화를 관람하는 이들이 공포 영화의 무서움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괴로움을 느끼는지를 연구한 [1] 풍원과 나은경은 공포 영화를 관람하며 느끼는 즐거움이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 중 어느 한쪽이 아니라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양가적인 감정의 복합적인 즐거움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공포 영화의 무서움을 통해 “짜릿하고, 신선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는 것이 긍정적인 즐거움이라면, “끔찍하고, 불쾌하고, 징그럽고, 스트레스를 받는” [2] 느낌을 받는 것은 부정적인 괴로움인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면서 복합적인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를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의 마음에 적용하면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게이머가 경험하는 두려움은 긍정적인 즐거움과 부정적인 괴로움 모두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로 이어지는 출발점인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이 허구에 불과한데도 관객이 무서워하는 이유를 연구한 [3] 안의진은 콜린 래드포드(Colin Radford)가 제시한, 영화의 허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모순적인 관객을 뜻하는 ‘픽션 패러독스’(Fiction Paradox) 개념 [4] 을 활용해 관객이 공포 영화를 보면서 무서움을 느끼는 맥락을 설명한다. 관객은 영화에 등장한 괴물이 진짜 있다고 믿어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허구인 것을 알고 실제로는 그 괴물이 누구의 안전도 해치지 않음을 (두려움의 범위와 한계를) 인지한 상태에서 영화를 통해 느껴지는 공포감을 ‘즐거운 흥분’으로 받아들인다 [5] . 이는 관객이 공포 영화를 통해 느끼는 공포는 감각을 토대로 하는 것으로, 관객이 공포 영화에서 괴물을 보면서 공포를 느끼는 것이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는 모순적인 과정이 아니라 없다는 것을 아는 채로 즐기는, 합리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관객이 공포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두려움은 영화 속 괴물이 정말 눈앞에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실감이 나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괴물이 눈앞에 있는 셈 치고 ‘무서워하기로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포 영화를 통해 경험하는 두려움이 관객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공포 영화를 즐겨 본다’는 것도 자연스레 가능해진다(여전히 엄두는 안 나지만). 공포를 경험해서 얻는 재미가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두려움이란 주어지는 동시에 선택되기도 한다는 점은 두려움이 제한된 조건에서만 경험하는 비일상적이고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과 연결된 것임을 뜻한다. 이를 염두에 두면 공포 영화에 대한 다른 여러 논의들, 가령 특정 작품에서 표현한 공포가 갖는 의미를 당시의 사회적 정서를 토대로 해석 [6] 한다거나, 영화가 만들어진 허구적 세계에만 해당하는, 극장 안에 갇히는 공포와 극장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더 강렬해지는 공포 [7] 로 두려움의 정체와 영역을 확장하여 구분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종합하면 공포 영화를 통해 경험하는 두려움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며, 이 두려움을 통해 우리는 즐거운 동시에 괴로울 수 있다. 이를 공포 게임에 적용하면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경험하는 두려움은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며, 게이머는 이 즐거움과 괴로움 사이에서 복합적인 재미를 느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의 공포는 영화의 공포와 어떻게 다른가 어쩌면, 마음먹기에 달린 일인지 모른다. 공포 영화/게임에서 경험하는 두려움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함께 발휘되는 양가감정이라면, 마음의 방향을 어디로 두느냐에 따라 재미의 모양새가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공포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하는 데 필요한 건 마음의 방향을 옮기는 것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게 잘 안된다. 마음먹기로 결심은 하는데 실행에 옮기기 전에 매번 주춤하게 만드는 고비가 있어서다. 바로 게임의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이다. 영화와 달리 게임은 공포 상황을 직접 헤쳐 나가야 한다. 내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공포 상황도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포 게임에서 경험하는 두려움은 영화를 관람할 때와 달리 즐거움으로든 괴로움으로든 어느 정도 견디면 통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방향을 달리하는 것 외에도 그 방향을 꼭 붙들고 있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를 감내하면서. 더군다나 공포 상황이 펼쳐진 현장에 실제로 있는 것 같은 임장감을 토대로 한 VR 게임이라면? VR 공포 게임이 게이머의 두려움을 유발하는 요인을 분석한 He Zhang 등의 연구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을 중심으로 게이머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게 느끼면서 몰입된 공포를 경험한다 [8] 고 제시한다. 귀신이 갑자기 등장하거나,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린다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발생할지 모른다고 긴장할 때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두려움은 (영화든 게임이든) 스크린을 통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경험하는 두려움과는 다르다. 게임에서 경험하는 공포 상황은 여전히 허구이지만, 그것이 허구임을 아는 채로 즐기기까지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더 생기기 때문이다. 게임에 따라 상호작용성이 다양하게 적용되면서 두려움을 경험하는 구체적인 맥락이 달라지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인디 게임을 사례로 두려움을 ‘허구 감정’(fiction emotion)과 ‘게임플레이 감정’(gameplay emotion)으로 구분해 공포 게임 플레이를 통해 어떤 감정적 경험을 하는지 탐색한 Jan-Noel Thon의 연구는 인디 게임이 시청각적/서사적/놀이적 요소를 통해 대형 스튜디오와 다른 방식으로 두려움을 전달함을 제시한다 [9] . 적은 예산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대신 독창적인 표현을 시도할 수 있는 공포 인디 게임은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두려움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포 VR 게임과 인디 게임의 사례는 임장감이 두려움에 대한 몰입을 강화하고 독창성이 두려움의 범위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영화와 비교해 게임이 새롭게 제공하는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공포 영화를 통해 경험하는 두려움이 게임에서도 유효하다면 그것은 어떤 경험일까. 공포 게임에서 가상의 캐릭터와 인간과 유사한 정도에 따라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에 차이가 있는지 탐색한 Angela Tinwell 등의 연구는 가상의 캐릭터가 인간과 유사할수록 무섭게 느낀다는 것을 제시 [10] 한다. 현실과 맞닿은 지점에서 두려움을 더 효과적으로 느끼는 셈이니 게임을 통해 경험하는 공포는 영화와 유사한 부분은 있지만, 동시에 더 넓고 짙은 셈이다 [11] . 공포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하겠다던 결심이 번번이 좌절되거나 제대로 실행에 옮겨지지 않은 데에는 나름 정당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굳게 마음을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암, 그렇고말고!) 그렇다고 깔끔하게 포기할 생각이 들진 않는다. 더 넓고 짙은 두려움이 가득한 세계이지만 그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상호작용성은 시도를 요구한다. 그 시도가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것을 요청한다. 그 시도는 일련의 규칙을 기반으로 한다. 시도하고,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는 분투의 과정을 통해 게이머는 게임에 펼쳐진 세계를 경험하고 탐색한다. 공포 게임에서 무서움은 실패를 유도한다. 게임에 구현된 규칙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부정적인 괴로움을 먼저 떠올리게 해 도전을 반복하면서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루게 한다. 이 무서움을 반드시 극복할 필요는 없다. 공포 게임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즐겁고도 괴로운 양가감정이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공포의 형식이 아니어도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게임도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그동안 선제적으로 고개를 돌렸던 두려움이 현실과 연결되어 있음을, 괴로운 동시에 즐거울 수 있음을 믿고 공포 게임의 세계로 다시 다가가 보려 한다. 분명 그 과정은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을 것이다. 무서우라고 만든 게임을 안 무서워할 도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보려 한다. 실눈을 뜨고서라도, 발걸음을 아주 더디게 내딛게 되더라도. [1] 풍원, 나은경. (2021). 공포영화를 보는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한 수용자 반응의 차이 연구: 관람자의 현실 공포 경험 및 관람 환경(장소/매체/동행)의 영향을 중심으로. 언론과학연구, 21(2), 118-155. [2] 풍원과 나은경의 논문, 136-137쪽. [3] 안의진. (2013). 관객은 허구에 불과한 공포영화의 괴물을 왜 무서워하는가?. 미디어, 젠더 & 문화,(26), 41-70. [4] 래드포드는 영화의 허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모순적’이라고 규정하기 위해 세 가지 전제를 제시했다. 첫째, 인간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나 사건에 감정 반응을 하는데, 둘째, 영화를 볼 때 영화의 인물이나 사건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셋째, 그런데 인간은 영화를 보며 감정 반응을 한다. 안의진은 이 전제를 공포 영화에 적용해 ‘인간이 공포 영화의 괴물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려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믿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공포 영화의 괴물을 보고 두려움을 느낀다’고 제시한다. [5] 안의진의 논문, 64쪽. [6] 송아름. (2011). 1990년대의 불안과 <여고괴담>의 공포. 한국극예술연구, (34), 291-324. [7] 김지미. (2012). 영화 가짜 공포와 진짜 공포. 황해문화, 76, 349-356. [8] Zhang, H., Li, X., Qiu, C., & Fu, X. (2023). Decoding Fear: Exploring User Experiences in Virtual Reality Horror Games. Chinese CHI 2023, Denpasar, Bali, Indonesia. doi:10.1145/3629606.3629646. [9] Thon, J.-N. (2020). Playing with Fear: The Aesthetics of Horror in Recent Indie Games. Eludamos: Journal for Computer Game Culture, 10(1), pp. 197–231. doi: 10.7557/23.6179. [10] Tinwell, A., Grimshaw, M., & Williams, A. (2010). Uncanny behaviour in survival horror games. Journal of Gaming & Virtual Worlds, 2(1), 3-25. [11] 현실과 맞닿은 공포에 대해서는 풍원과 나은경의 연구에서도 유사하게 지적되었다. 공포 영화를 관람하며 느끼는 두려움의 정도를 나이별로 구분하였을 때 연령이 더 높을수록 두려움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영화에서 제시된 공포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경험했을수록 두려움을 더 느끼는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 게임 to 현실, 현실 to 게임: <게임의 사회학> 서평

    〈게임 사회학〉은 저자 스스로 그 빈칸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책이었다. 저자가 스스로 게이머들이 왜 이런 행동을 보였을지 이유를 추적하고 그 인과성을 검증하는 모델을 세우는 과정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정량적인 연구라도 연구 문제를 설계하고 모델에 어떤 변수를 채택하고 분석 결과를 해석하는 일은 다시 사람의 몫이다. 전통적인 사회과학이나 통계학 연구자들이 딥러닝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딥러닝 모델이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관계를 설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 필요성이 부각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XAI는 알고리즘이 왜 이런 결과를 내놓았는지 추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량적인 연구와 정성적인 연구가 연결되는 지점이며, 앞으로 게임과 그 관련 데이터를 활용한 사회과학 연구가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Byeongjun Kim Research professor at the Center for Digital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KAIST. As an undergraduate, a literature-loving youth who studied Korean literature, but in graduate school majored in natural language processing and data science. Works mainly on digital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 research using large-scale data and quantitative methods. The favorite game of a lifetime was Warcraft III, race of choice the Orcs. Sadly, these days there's no time to actually play.

  • The Resonant Samurai: Historical Accuracy versus Market Appeal

    By now, the online backlash against the inclusion of Yasuke as one of two protagonists in the story has become somewhat infamous, if not tired, since outrage first erupted last year. Although the game had teased at the 2022 UbiForward as Codename Red, it wasn’t until the full reveal on May 15, 2024, with the cinematic trailer that the inclusion of Yasuke, as a co-protagonist, became clear.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ndrei Zanescu Andrei Zanescu is a postdoctoral fellow and part-time faculty member in Communication Studies, and Anthropology & Sociology, at Concordia University, in Montreal, Canada. He specializes in AAA studio cultural adaptation practices involving resonance as a corporate strategy, as well as the legitimation of games through the formation of awards bodies tied to film and television cultural capital. He regularly publishes game and platform studies concerning a range of games (Assassin's Creed, Magic the Gathering & DOTA 2) and awards bodies, and in New Media & Society (2021), Games & Culture (2024), The Journal of Consumer Culture (2021) and Convergence (Forthcoming). He is also a co-author of Streaming by the Rest of Us: Microstreaming Videogames on Twitch (MIT Press, 2025).

  • 게임에서 사랑이 재현되는 두 가지 형태 – 자기애와 애착

    캐릭터에 대한 애착(attachment)은 단순한 사랑의 방식이 아니다. 여기에는 애착의 대상인 캐릭터가 절대 연애의 주체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플레이어를 만족시킬만한 일러스트와 계량화된 수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포함된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eong Yeop Lee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Culture & Contents at Soonchunhyang University. Researches game storytelling and game design as central concerns, and led the founding of the Busan Indie Connect Festival—a leading indie game festival—where serves as head of the jury. Also a juror for the Independent Games Festival (IGF), one of the most prestigious indie game events internationally. Books include Digital Storytelling (co-authored, 2003), Digital Games: A New Territory of Imagination (2005), Indie Games (2015), Stories Become Transformers (co-authored, 2015), Mario, Born in '81 (co-authored, 2017), The Theory of Games (co-authored, 2019), and Games Are Games: Game × Ecosystem (co-authored, 2021).

  • 되돌릴 수 있는가? - 13기병방위권, 호라이즌, 우크라이나

    물론 게임은 현실과 다르다. 게임을 통해 얻은 이러한 통찰을 현실에 적용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회고적 평가를 전제하는 슬로건을 거부하는 것이 시작이다. 과거의 정상적 상태를 회복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원칙과 대안을 논하는 일이 필요하다. 과거 러시아가 지배한 영토가 어디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되는 이유는 애초에 없다. < Back 되돌릴 수 있는가? - 13기병방위권, 호라이즌, 우크라이나 06 GG Vol. 22. 6. 10.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매력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세계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는 데에 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말 그대로 세상이 멸망한 상황을 전제한다. 게임의 주인공은 망한 세상 안에서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이러한 노력은 유저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의 결실을 맺는다. 즉, 우리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장르를 향유하는 이유는 세상이 망하더라도 인류는 어떻게든 자기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서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세상이 망한다’라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어떤 대답이든 게임 밖 현실에 대한 불만족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세상을 ‘리셋’할 수 있다면 당장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대가를 치르는 원인이 된 어떤 실수 혹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믿음은 종종 정치적 구호로 표현된다. 가령 도널드 트럼프의 “Make America Great Again”은 무언가 잘못되기 시작하기 직전의 어떤 시점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즉 ‘정상화’의 욕망에 호응하는 회고적 선거 구호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감각은 전쟁에도 동원된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반복해서 호출하는 세계관도 결국은 이것이다. 푸틴의 전쟁 논리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일 때만 ‘정상적 상태’일 수 있다. 따라서 푸틴에게 있어서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새롭게 러시아의 영토로 병합하는 게 아니라 뭔가 잘못된 현재를 제대로 된 과거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게 푸틴이 지금의 사태를 ‘전쟁’이라 표현하지 않고 ‘특수작전’이라고만 고집스럽게 말하는 것의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 반면 우크라이나인들의 인식은 이와는 정반대인데, 그들에게는 소련으로부터 지배를 당한 과거가 비정상적 상태인 현재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해법은 소련의 지배를 받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9세기의 ‘키이우 루시’까지 언급하는 이유는 정통성에 있어 우크라이나의 우위를 근본적으로 확립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의 시계를 9세기로 돌릴 순 없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정치는 러시아가 아닌 유럽의 일부가 되는 게 가능했던 시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타협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이 오랜 기간 현안으로 다뤄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일반론적으로 말해서,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에 성공한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예를 들어 〈13기병 방위권〉의 결말에 대해 생각해보자. 〈13기병 방위권〉은 이상적 세계를 다시 만들기 위한 재시작의 시점을 언제로 해야 하느냐 라는 주제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물론 이것이 게임이 다루는 주제의 전부는 아니다). 일본인들이 만든 게임이다 보니 ‘역사’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그 점을 감안해서 보자면 게임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과거 시점이 1945년과 1985년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게임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때, 결국 일본인들이 ‘되돌아갈 수 있는’ 선택지는 패전으로 치달은 군국주의이거나 안보투쟁 이후 거품으로 귀결된 80년대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의 주된 배경은 1985년의 세계이다. 1945년의 세계는 비록 그것이 외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멸망을 피하지 못했다.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게임의 엔딩에서 자신들이 그 일부를 이루는 1985년의 세계를 새로운 미래에 다시 구현하려고 한다. 결국 〈13기병 방위권〉의 결말이 제시하는 ‘재시작’의 시점은 어찌됐건 1980년대로 봐야 하는 것이다. * 〈13기병 방위권〉은 일본 현대사의 여러 시점을 오가며 주인공들의 교복과 주변 환경 등을 통해 이를 드러내고자 한다. 각각의 시점은 실제 일본 현대사에서의 주요 분기점으로 나타난다. 오늘날의 일본 주류정치는 현실의 불만에 대한 돌파구를 군국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에서 찾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만든 일본 정부는 이제 ‘적 기지 공격 능력’을 거론하며 패권을 확장하려고 한다. 일본의 우익세력이 실제 전쟁을 일으킬 의지를 갖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이것은 어찌됐건 ‘전쟁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 어떤 행보로 평가하는 게 불가피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쟁의 가능성’을 실제로 뒷받침하는 알리바이로 기능한다. 일본 뿐만 아니라 독일의 재무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런 현실까지 고려하면 〈13기병 방위권〉의 메시지는 패전을 겪고 평화주의를 수동적으로 채택하는 결말을 굳이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것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은 현실에선 1945년이 있었기 때문에 1985년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패전이 있었기 때문에 요시다 내각의 평화주의가 가능했던 거고, 요시다 독트린이 있었기 때문에 그 반발로서 기시 내각이 1960년 신미일안보조약을 추진한 것이며, 그게 다시 1970년까지의 안보투쟁 국면과 그 이후 정경유착으로 기억되는 경제 우선의 시스템으로 귀결됐던 거다. 1985년은 그러한 이유로 조성된 호황기가 플라자 합의 등 대외 변수가 작용한 끝에 꺾이기 시작한 해다. 이 시점에 다시 시작한들, 불황과 이어지는 우익의 재부상을 막는 게 가능할까?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13기병 방위권〉의 결말은 ‘쇼와 향수’로의 도피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기만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회상편’과는 달리 ‘붕괴편’에선 기계들과의 싸움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은 작품 자신에 대한 우화처럼 느껴진다. 어느 시점에서 다시 시작해도 실패를 되풀이하는 게 불가피하다면 아예 태초로 돌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호라이즌〉 시리즈는 이런 가정에 대한 이야기다. 다만 〈호라이즌〉이 상정한 다시 되돌아 온 ‘태초’는 인위적이다. 멸망 후 도래한 암흑 속에서 신이 “빛이 있으라”고 말하는 것은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새로운 시작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되돌아간다’는 것을 전제하려면 ‘재시작’은 반드시 인간이 설정한 어떤 조건들의 반영이어야 한다. 〈호라이즌〉에서는 비록 100%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이아’ 시스템이 이 역할을 전담한다. 그러나 바로 이 조건 때문에 ‘재시작’은 그저 ‘되돌아가는 것’이 될 수 없었다. 〈호라이즌 제로던〉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가이아’ 시스템의 어떤 오류가 또 한번의 인류 멸망을 촉발할 위기를 일으킨 것을 주인공 에일로이가 막아내는 얘기다. 만일 〈호라이즌〉 시리즈의 얘기가 이렇게 마무리가 됐다면 우리는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태에 현명하게 대응한 인류가 이전 세계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재시작’의 시대를 순조롭게 이어가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결말은 이러한 기대를 순진한 것으로 만들고야 만다. 새로운 인류를 다시 멸망시킬 뻔한 ’가이아’의 오류는 돌발사태였던 게 아니라 이전 세계로부터의 연속성을 가진 사건의 결과였던 것이다. 심지어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결말은 이전 세계의 존재 때문에 멸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인류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즉, 이전 세계의 맥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모든 것을 새롭게 ‘재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되돌아가고자 했다’라는 사실까지 되돌릴 수 없는 이상 온전히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유일하게 남는 선택지는 설령 미래가 절망뿐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발을 딛고 선 바로 그 지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모색을 계속하는 것이다.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 엔딩의 에일로이와 동료들이 마주한 길도 그것이다. 물론 지구를 향해 달려오는 절대악에 직면해있는 이들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은 ‘게임’이기 때문에, 〈호라이즌〉 시리즈를 이것으로 끝내기로 한 게 아니라면, 에일로이와 동료들은 그게 뭐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물론 게임은 현실과 다르다. 게임을 통해 얻은 이러한 통찰을 현실에 적용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회고적 평가를 전제하는 슬로건을 거부하는 것이 시작이다. 과거의 정상적 상태를 회복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원칙과 대안을 논하는 일이 필요하다. 과거 러시아가 지배한 영토가 어디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되는 이유는 애초에 없다. 러시아의 침공이 부당한 이유는 먼 옛날부터 존재해 온 독립적 국가로서 우크라이나의 역사나 민족의 문제과 큰 관계없다.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전쟁은 오늘 이 순간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이미 답을 다들 알고 있는데, 안 되는 일을 안 된다고 말하는 걸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이 별로 없는 세상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개최 안내

    게임제너레이션은 한국 디지털게임 비평의 활성화와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해 오고 있으며, 2025년의 공모전을 다음과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 Back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개최 안내 25 GG Vol. 25. 7. 3. 게임제너레이션은 한국 디지털게임 비평의 활성화와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해 오고 있으며, 2025년의 공모전을 다음과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 공모형식 및 참여방법 - 주제ㅣ 디지털게임에 대한 비평 (세부주제 자유. 기존 GG 아티클 및 공모전 수상작 참조) - 형식: 워드프로세서 파일(HWP, DOC 등) 형식으로 제출. 파일명에 글제목 및 저자명 포함. - 분량: 4천자 ~ 8천자 내외 (이미지 삽입 5개 이하) - 제출방법: 공모전 전용 이메일( ggcriticcomp@gmail.com ) 을 통해 제출 ■ 시상내역 - 총 4편 내외 당선작 선정 및 시상 - 상금 및 상장 수여: 편당 120만원(세전, 원고료포함). - 2025 G-STAR(부산)에서 시상식 진행 예정 - 당선작 GG 26호(2025. 10) 게재 ■ 일정 - 2025. 09. 07(일) 접수마감 (23:59까지) - 2025. 09. 23(화) 심사완료 및 결과통지 - 2025. 10. 10((목) GG 26호 수상작 게재 - 2025. 11. G-STAR 일정 중 시상식 진행 (세부일정 확정후 별도 통보) ■ 기타 - 제출된 원고는 반환되지 않습니다. - 수상작은 GG에 게재됨과 동시에 GG아티클과 동일하게 전재되어 타 매체에 기고할 수 없습니다. - 응모는 1인당 1작품을 기준으로 하며, 초과 투고시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기존 GG 공모전 입상자는 선정에서 배제됩니다. - 제출되는 모든 응모작은 표절검사를 실시하며, 수상 이후라도 표절 문제가 확인될 경우 수상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기타 공모전 관련 문의는 공모전 공식 이메일( ggcriticcomp@gmail.com ) 으로 보내주십시오. ■ 주최: 게임문화재단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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