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검색 결과

공란으로 643개 검색됨

  •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게임제너레이션은 한국 디지털게임 비평의 활성화와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해 오고 있으며, 2024년의 공모전을 다음과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 Back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19 GG Vol. 24. 7. 22.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게임제너레이션은 한국 디지털게임 비평의 활성화와 신진작가 발굴을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해 오고 있으며, 2024년의 공모전을 다음과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 공모형식 및 참여방법: - 주제: 디지털게임에 대한 비평 (세부주제 자유. 기존 GG 아티클 및 공모전 수상작 참조) - 형식: 워드프로세스파일(HWP, DOC 등) 형식으로 제출. 글제목 및 저자명 포함. - 분량: 4천자 ~ 8천자 내외 (이미지 삽입 5개 이하) - 제출방법: 공모전 전용 이메일( ggcriticcomp@gmail.com ) 을 통해 제출 ■ 시상내역 - 총 4편 내외 당선작 선정 및 시상 - 상금 및 상장 수여: 편당 120만원(세전, 원고료포함). - 2024 G-STAR에서 시상식 진행 예정 - 당선작 GG 20호(2024. 10) 게재 ■ 일정 - 2024. 09. 07(토) 접수마감 - 2024. 09. 23(월) 심사완료 및 결과통지 - 2024. 10. 10(목) GG 20호 수상작 게재 - 2024. 11. G-STAR 일정 중 시상식 진행 (세부일정 확정 후 별도 통보) ■ 기타 - 제출된 원고는 반환되지 않습니다. - 수상작은 GG에 게재됨과 동시에 GG아티클과 동일하게 전재되어 타 매체에 기고할 수 없습니다. - 응모는 1인당 1작품을 기준으로 하며, 초과 투고시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기존 GG 공모전 입상자는 선정에서 배제됩니다. - 제출되는 모든 응모작은 표절검사를 실시하며, 수상 이후라도 표절 문제가 확인될 경우 수상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 기타 공모전 관련 문의는 공모전 공식 이메일( ggcriticcomp@gmail.com ) 으로 보내주십시오. ■ 주최: 게임문화재단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디스코 엘리시움〉 하나의 세계에서 태동하는 모순, 적대, 역설의 게임(장려상)

    그럼에도 비평적으로 찬사를 받으며 우뚝 선 ZA/UM의 개발자들은 이제 비디오 게임이야말로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예술이라고 밝히는 데에 이르렀다. “타인의 기억에 남고 싶다면, 체계적으로 반감을 사야 합니다. 반감을 살 준비가 되었다면, 정말로 역사적인 기회를 얻게 됩니다.”3)는 말은 그들에게 매우 적절하지 않을까. < Back 〈디스코 엘리시움〉 하나의 세계에서 태동하는 모순, 적대, 역설의 게임(장려상) 07 GG Vol. 22. 8. 10. 하나의 세계라는 조건 속의 여정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지만, 그들이 바라는 꼭 그대로 역사를 형성해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 스스로 선택한 환경 아래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곧바로 맞닥뜨리게 되거나 그로부터 조건 지어지고 넘겨받은 환경하에서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카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 〈디스코 엘리시움〉의 등장인물 〈디스코 엘리시움〉은 반세기 전 한때 공산주의 혁명의 파도가 엄습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난 혁명으로 풍비박산이 난 상태인 가상 국가 레바숄과 그 한 구역인 마르티네즈를 주 배경으로 한다. 탄광에서 일하며 벽화 페인트와 미술에 심취한 공산주의자 스컬 신디와 대기업 와일드 파인 사의 대사이자 초자유주의자인 조이스, 해리의 동료 킴 키츠라기를 순수 혈통이 아닌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인종주의자 운전수와 미확인파시스트 개리, 왕정파로 공산주의자들과 맞서 싸웠던 노인과 마조프주의자로 연합군에 저항했던 탈영병, 밀매 혐의를 받으면서도 항만 노동조합 대표자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현실 권력을 움켜쥔 에브라트 등의 사민주의자, 클럽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된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 이곳은 화해 불가능한 NPC들, 성원들이 살아가며 서로에 필연적으로 적대, 모순, 역설 등을 낳을 수밖에 없는 세계다. 한 세계의 구성원들이지만 동시에 결코 엮일 수 없으며, 불화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 이미 손쓸 수 없을 만큼 초토화된 곳에서 매우 불안정하게 공존하고 있다. 여기서 대두되는 것은 이러한 캐릭터들이 놓인 세계를 구성하는 조건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다.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육성해나가는 방식(능력치, 생각 캐비닛, 장비)에서 무엇을 추구하든, 어떤 피상적인 혹은 구체적인 사상과 이념을 가졌든, 아니면 그러한 것들에 전혀 관심이 없이 그냥 플레이하든 게임 진행에 문제는 없다. 인물들과의 상호작용과 주사위 판정에 따라 선택지와 이념 루트들이 부분적으로 변화하며, 게임에 대한 인상이 많이 달라지는 것은 맞다. 분명 〈디스코 엘리시움〉의 선택은 그 자체로 핵심적인 캐릭터 구축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게임 내 모든 활동은 플레이어가 공통으로 접촉하고, 대면하고, 공유하게 되는 한 세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플레이어는 전지적인 능력으로 세계를 뒤흔들고, 변형하는 일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는 곧 레바숄이라는 하나의 황폐한 세계를 플레이어의 주관적인 의지와 계획에 따라 마음대로 변화시키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임에서 해리의 자아와 의식, 그리고 이를 조작하는 플레이어의 주관적인 의도가 세계에 그대로 반영되지는 않는다. 그러한 반영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인공이 본인으로 다시 서는 과정에서 탐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계를 탐색하는 것은 플레이를 이어나가면서 분실한 신분증을 찾기 전까지 자신의 이름마저도 기억하지 못하는 해리 드 부아다. 주정뱅이 해리는 새로운 동료 킴 키츠라기와 함께 살인 사건을 조사해나감과 동시에 세계를 구성하는 NPC들에 접근하여 소통하거나 교감하며 세계를 탐색해나간다. 하지만 해리 또한 세계의 조건으로부터 독립된, 자유로운 인물이 전혀 아니다. 해리는 RCM 소속의 경찰로 권위를 위임받은 인물이다. 그 자신이 몸담은 RCM은 혁명 이후 연합 정부에 의해 국제 영역의 치안을 복구하고자 조직되었으며, 정치적으로 중립을 자처하고 있으나 치안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 단지 설립이 허락된 조직에 불과한, RCM의 경찰이라는 조건을 해리와 플레이어는 이를 끊임없이 자각해나간다. 그렇기에 〈디스코 엘리시움〉에는 선택이 반영되는 결과의 다양성을 내세우며 세계로부터, 인물로부터 독립된 각각의 가능 세계들을 앞세우려 드는 멀티 유니버스, 멀티 엔딩은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동원되는 평행세계, 대체역사, 가상현실 같은 개념들 또한 성립하지 못한다. 여기에 독립된 각자의 다원적 세계들이란 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디스코 엘리시움〉은 결과에 도달하는 선택의 과정들에 활로를 열어젖힘으로써 게임을 통해 정식화된 공통의 세계 속에서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있다. 그런 점에서 게임에서 선택지를 통하여 과정과 분기가 결정됨에도 그것이 세계를 뒤바꾸는 성공이나 실패의 특정한 루트를 창출하지 않는 것도 자연스러워진다. 일각에서는 네 개의 이데올로기를 가리키는 선택지를 골라서 특정 이념을 체화한 인물로 만들어도, 결국 같은 화면을 공유하며 세계의 결과는 차이가 없다는 점을 예로 들어 게임의 자유도를 비판하곤 한다. 그것은 적법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세계를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던함과 포스트모던함, 표층과 심층의 이야기의 공존 “만약 새로운 정치 예술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진실에 집중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의 근원적 대상으로서의 다국적 자본이라는 세계 공간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현실을 돌파하여 이 세계 공간을 재현할 수 있는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개인적·집단적 주체로서 우리 자신의 행동하고 위치를 다시 파악하기 시작하고, 현재 우리의 공간적·사회적 혼란에 의해 중화되어버린 투쟁하는 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치적 형식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면, 그것의 소명은 사회적이고 공간적인 차원에서 전 지구적인 인식적 지도 그리기를 창안하고 투사하는 일일 것이다.”(프레드릭 제임슨,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 문화 논리〉) 앞서 〈디스코 엘리시움〉은 어떤 사상과 이념을 택하든 하나의 세계를 공유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는 분명히 동시대 유행하는 어떤 RPG, 오픈월드 게임들의 방향과는 확연히 다른, 이전 세기의 전유물 같은 인상을 준다. 플레이어들이 종종 문학 작품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거나, 한 문학평론가의 ‘게임이 되는 소설, 소설이 되는 게임 1) 이라는 말은 그것을 대변하는 의견일 것이다. * 도덕주의자 퀘스트에 등장하는 연합 군함 아처 먼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무결자로 불리는 '돌로레스 데이'라는 존재를 다시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게임에서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뤄지는 이 인물은 무결자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존재이고 도덕주의자들(=인문주의자)의 상징이며, 통치 시기에는 엘리시움에 있는 여러 이솔라를 발견했다. 레바숄 또한 이 돌로레스 데이 시절에 만들어진 식민지였다. 돌로레스 데이에 대한 숭배는 단순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라 일종의 법칙으로 여겨졌으며, RCM의 법규도 돌로레스 데이 시절에 만들어진 법에 기반을 둔다. 돌로레스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은 경호원에게 총에 맞고 죽고, 돌로레스 데이의 시절이 돌연 막을 내린 이후 더는 이러한 세계의 질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엘리시움은, 레바숄은, 사회를 어떻게 질서화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가 실패하고 이러한 구상 자체가 외부 세력에 의해 짓눌려버린 곳이다. 그것은 곧 이성, 합리, 질서 등을 내세운 근대가 좌초된 것이기도 하다. * 교회 안의 클럽 반면 서브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이와 대비되는, 이전의 시스템이 더는 기능 하지 못하는 근대 이후의 포스트모던한 감각으로 살아가는 듯한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과 마주할 수 있다. 이들은 최신의 아노딕 댄스 뮤직을 구현하는 행위에 전념한다. 훼손당한 돌로레스 데이의 벽 조각상이 안치되어있는 교회 안에 들어와 클럽을 만든다. 진중한 대화라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들은 너무나 '소프트코어'한 세상을 '하드코어'하게 바꿔야 한다고 하거나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파시즘이든 무엇이든 거대한 이념과 사상들은 다 나쁘고 가치판단에는 별 관심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면서도, 대뜸 돌로레스 데이를 대량학살자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포스트모던'이라는 렌즈로 '오타쿠'와 현대 일본의 정신구조에 대한 분석하면서 이 개념을 축으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게임을 하는 것'이 '사회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점을 탐구한 아즈마 히로키는 근대와 탈근대의 세계를 트리형, 데이터베이스형으로 분류한 바 있다. 근대의 트리형은 우리의 의식에 비치는 표층적인 세계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표층을 규정하고 있는 심층, 즉 커다란 이야기가 있다는 것에 반해 포스트모던의 데이터베이스형 세계에서 표층은 심층만으로는 결정되지 않고 그 읽어내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디스코 엘리시움〉을 ’이야기하기‘의 방법으로도 볼 수 있다. 형사가 살인 사건의 진범을 잡는 표층과 기억을 잃은 자가 인물들과 소통하고 세계를 마주하며 다시 나아가는 심층의 이야기로서, 그리고 근대와 근대 이후의 감각이란 무엇인지에 관해서 말이다. 지나간 근대를 재료로 삼는 〈디스코 엘리시움〉에서 주인공 해리 또한 근대를 지나온 인물이다. 해리는 근대의 산물이라 여겨지는 인간의 재귀적인 자기 구성과 수정 능력을 통하여 세계와 마주하며 자신을 다시 찾아가며, 게임의 세계관도 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자기 자신을 누구로, 무엇으로, 어떤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지를 사고해나가는 해리나 자신을 다소 철학적인 항만 노동자로 소개하며,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우리는 투쟁하는가‘식의 거시적인 담론을 나누는 걸 즐기는 편이라고 말하는 마냐나 같은 인물은 이와 같은 부류일 것이다. 그러나 아노딕 댄스 뮤직의 아이들에게는 이는 관심사도 아니다. “거대한 이야기와는 철저히 단절한 새로운 세대는 처음부터 세계를 데이터베이스로 인식하기 때문에 그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 전체에 대한 특정 이야기의 공유화 압력의 저하, 다시 말해 '그 내용이 무엇이든 일단은 특정한 이야기를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는 메타 이야기적 합의의 소멸을 지적한 것이기 때문이다”(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이은미 옮김, 선정우 감수, 문학동네, 2007). 히로키식의 설명을 빌리자면, 트리형 세계 속에 작품의 심층적인 이념, 사회구조, 세계관으로 사고를 확장하는 것은 해리일 것이다. 반면 아노딕 뮤직의 아이들은 포스트모던 이야기구조, 데이터베이스형 모델을 추구하며, 근대의 커다란 이야기들이 실종된 채로 당장 본인들이 추구하는 아노딕 댄스 뮤직에 대한 파편적인 데이터베이스들로 자신들만의 세계와 이야기를 마음대로 만들어간다.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며 서브 퀘스트를 수락하고 진행하게 되면, 해리는 아노딕 댄스 뮤직에 맞춰 교회에서 춤사위를 벌인다. 한때의 찬란했던 신세대의 음악이라 불리던 디스코의 시절은 어느덧 저물고, 빈사 상태가 되었다. 해리는 새로운 세대의 아노딕 댄스 하드코어 음악을, ’돌로레스 데이‘의 조각상이 있는 교회 안에서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디스코 엘리시움〉이 그저 옛 찬란했던 20세기의 근대적 이상을 복원하는 것에 착수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이를 찬미하는 게임인가. 모던의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키면서 포스트모던을 부정하고, 아노딕 댄스 뮤직을 선도하는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에 조소하고 한탄하는 게임인가. 그렇지는 않다. 과거 기획의 실패, 우울, 좌절, 절멸, 절망, 패퇴, 패배주의, 허무주의 같은 것들이 내내 게임의 정서를 지배하는 듯한 종반부에는 극적인 반전들이 기다리고 있다. 인술린데 대벌레와 ’돌로레스 데이‘로 형상화한 도라, 그리고 탈영병 같은 존재들로부터 말이다. 해리(플레이어)는 탈영병을 마주하기 직전 꿈에서 자신의 오랜 결핍의 대상이었던 옛 연인이자 돌로레스 데이로 형상화된 도라를 마주하고, 이후 인술린데 대벌레를 만나 그 옛 연인을 이제는 잊고 극복하라는 충고를 받아들인다. 종반부에 예상치 못한 범인으로 대면하게 되는 탈영병 노인은 실패한 혁명의 잔여물이다. 탈영병 노인과 해리는 완전히 상반되는 궤적을 지닌다. 게임의 시작에서 해리는 연인 도라와의 결별을 중심으로 세상에 대해 환멸과 회의로 얼룩진 나머지 모든 권총으로 자살 소동까지 벌이며 세계와의 완전한 단절을 모색했던 자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도 자유를 찾지 못했다. 게임의 시작에서 모든 것에 절망하고 세계와 단절한 채로 자신을 고립시킨 해리가 개인으로 자유로워진 것은 외부 세계로부터 독립된 자생적 의식과 실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자신이 추방되기를 기꺼이 자처했던 해리가 다시 세계와 마주한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그는 근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도라 혹은 이를 형상화한 돌로레스 데이를 떠나보내고 새 출발을 하게 된다. 모순적 세계의 성공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모순 때문이다. 모든 일과 사물과 사람에는 그것들을 지금의 상태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고, 동시에 다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왜냐면 그것들은 발전해나가고 머물러 있지 않으며 못 알아볼 정도로 변한다. 지금 있는 것들 안에는 ‘아무도 모르게’ 다른 것, 그 이전의 것, 현재에 적대적인 것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베르톨트 브레히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마성열 편역, 책읽는오두막, 2013) 〈디스코 엘리시움〉의 리드 작가 헬렌 힌드페레(Helen Hindpere)는 ’포스트 소비에트‘의 시기에서 자란 기이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레바숄이 마치 10년 전의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2) . 〈디스코 엘리시움〉은 그러한 경험들의 잔향이 당연히도 짙게 배어있다. 하지만 이는 에스토니아라는 동구권의 한 국가에서 소련의 몰락 이후의 시기를 직접 겪은 이들이 게임을 매개로 하여 그것의 실상에 관해 증언하는 역사물이 아니다. 가상적 공간을 주 무대로 하는 〈디스코 엘리시움〉은 실존적 무게로 다가오는 정치적 실재를 소환하기도 하지만, 역사를 그 자체로 재현하거나 규명하는 것을 자처하면서 이를 훈고학적으로 늘어놓으며 일련의 무용담, 음모론, 교훈극으로 소화하지 않는다. 일종의 미학적 구성물로 승화하는 셈이다. 이로부터 한 예술비평가를 떠올리게 된다. 동구와 서구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면서 공산주의 붕괴 이후 서구 좌파들이 가지는 어떤 멜랑콜리나 채무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역사 이후의 시간이란 ‘최적의 사회질서에 대한 모색’이 이미 완수된 시대이며, 지금 중요한 것은 ‘앞서 일어난 혁명의 성과’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현세적 실천이라고 말하는 보리스 그로이스다. 역자 김수환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코뮤니스트 후기〉라는 책을 소련을 회고하는 역사 에세이가 아닌, 철학적 성격의 사고실험을 수행하기 위한 미학적 구성물에 가깝게 구성한다. “만약 공산주의를 언어라는 매체로 사회를 번역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이 약속하는 것은 목가라기보다는 자기모순 속에 놓인 삶, 최대치의 내적 분열과 긴장의 상황이다”라고 말하며, 자기모순을 숨기지 않은 채로 그 모순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체제를 거론한다. 그것은 대립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첨예화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세계에 내재한 모순과 분열, 적대를 숨기지 않고 그 모순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둘러싼 대립을 첨예화하는 〈디스코 엘리시움〉은 어쩌면 그와 매우 가까이 있는 것도 같다. RPG 캐릭터의 육성 방법으로 어느덧 암묵적으로 필수 사항이 된듯한 전투 시스템이 부재한 자리를 방대한 텍스트와 온갖 갈등, 모순, 역설, 적대로 얼룩진 세계관으로 채우는 〈디스코 엘리시움〉은 모두에게 어필할 게임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따분하거나 거북하거나 섬뜩할 수도, 혹은 고양되거나 짜릿하거나 흥분되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그럼에도 비평적으로 찬사를 받으며 우뚝 선 ZA/UM의 개발자들은 이제 비디오 게임이야말로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예술이라고 밝히는 데에 이르렀다. “타인의 기억에 남고 싶다면, 체계적으로 반감을 사야 합니다. 반감을 살 준비가 되었다면, 정말로 역사적인 기회를 얻게 됩니다.” 3) 는 말은 그들에게 매우 적절하지 않을까. 게임 개발사 하나 제대로 없던 에스토니아라는 동구권의 한 국가에서, 소설가 출신으로 실패를 경험한 로버트 쿠르비츠 등을 위시하여 게임과는 전혀 상관없던 이들에게 말이다. 1) (인하영, 2021) 문학평론가, 「게임이 되는 소설, 소설이 되는 게임」, 『경향신문』, 2021.10.28https:// 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10280300115 2) 〈Masterclass: Helen Hindpere Talks About Writing Disco Elysium: The Final Cut〉, https://youtu.be/Xf_hU7IW5qs 3) 보리스 그로이스, 〈예술 작품이 된다는 것(Becoming the Artwork)〉, 2020, 부산현대미술관 《동시대-미술-비즈니스 :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질서들(Contemporary-Art-Business: The New Orders of Contemporary Art)》 https://youtu.be/W9Uu13m5JxI 참고문헌 카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최형익 옮김, 비르투(VIRTU), 2012. (프레드릭 제임슨,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 문화 논리〉, 임경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2)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이은미 옮김, 선정우 감수, 문학동네, 2007). (베르톨트 브레히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마성열 편역, 책읽는오두막, 2013)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CT! 편집위원) 김서율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영화를 중심으로 문화 전반에 관심을 두고 종종 글을 끄적이거나 기고해왔다. 현재는 구로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일한다. 어느샌가 사회 운동에 뛰어들어 연구자와 활동가, 이론과 실천 사이에 단절된 통로를 고민하며 길을 모색 중이다.

  • 변해가는 게임의 위상, 다큐의 관점도 변한다 - 〈하이스코어〉리뷰

    2000년대 중반 이래 게임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들이 간간이 등장해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하이스코어〉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게임 역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큰 틀에서 볼 때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굴한 점이 눈에 띈다. < Back 변해가는 게임의 위상, 다큐의 관점도 변한다 - 〈하이스코어〉리뷰 03 GG Vol. 21. 12. 10. 2000년대 중반 이래 게임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들이 간간이 등장해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하이스코어〉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게임 역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큰 틀에서 볼 때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굴한 점이 눈에 띈다. 가장 먼저 이야기 할 만한 부분은 - ‘게임’만이 아니라 - ‘플레이’에도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와 본격화되는 게임에 대한 학술적 (특히 인문사회학적) 연구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게임의 특성은 ‘상호작용성’이었는데, 이는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게임’이 플레이어들의 ‘플레이’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일단 완결된 상태로 수용자들에게 제시되는 기존의 매체들과는 달리, 게임의 이와 같은 특성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는 상이한 방식으로, 그러니까 그것을 플레이하는 사람의 의도나 취향에 따라 그 경험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와 같은 (수용자의) ‘능동성’은 한동안 게임학 연구에 있어 주요 의제였으며 심지어는 ‘게임 세대론’이 등장하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게임의 역사 연구 분야에서는 ‘게임’에 한정되어 그 발전과정이 기술되어온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게임을 만든 개발자나 업체 또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게임들의 개발과정 등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나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의 접근은 소위 ‘능동적’이라던 게이머들은 사라지고 소수의 천재적 개발자들이 내놓은 혁신적인 게임을 그저 열심히 소비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게임 소비자들만 남게 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하이스코어〉 1편부터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개발한 니시카도 토모히로와 1980년 아타리배 전국 게임대회 챔피언 리베카 하이네먼을 병치시킨 것은, 그래서 눈여겨 볼 만하다. 게임을 만들어낸 개발자조차 불가능한 게이머들의 엄청난 플레이가 게임의 디자인만이 아니라 그 플레이 또한 뛰어난 창의성과 혁신의 산물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존의 논의에서 게이머의 능동성은 대체로 모드나 머시니마 등 플레이 너머의 (생산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왔는데, 사실 게임의 ‘플레이’ 자체가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라 능동적인 창조 행위였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따른다면 플레이어들의 이와 같은 창의성이야말로 e스포츠가 발원할 수 있었던 근간이라 할 만한데, 기존 e스포츠 담론에서 이러한 측면은 소외되어온 감이 있다. 〈하이스코어〉에서 e스포츠는 메인 주제가 아니지만, 게임의 발전과정에 있어 ‘플레이’의 측면을 적극적으로 발굴함으로써 현재 산업적 측면에 치중되어있는 e스포츠 담론에서 향후 하나의 문화로서 e스포츠의 방향성을 고민할 수 있는 시사점으로 삼을 만한 지점이다. * 아타리 전국 게임대회 챔피언 출신인 리베카 하이네먼의 등장은 게임이용자라는 플레이의 또다른 한 축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깊다. 이미지: 넷플릭스 또 하나 〈하이스코어〉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다양성’이다. 게임은 전통적으로 산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젊은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라는 꽤나 균질한 집단적 속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져 왔으며, 이는 최근 몇 년간 게임계에서 PC(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화두가 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균질성의 신화는 성장기 때 게임을 즐기던 게이머들이 업계에 입문하는 특성상 또래들과 게임을 즐기던 남성 청소년 중심의 하위문화적 특성이나 취향이 업계에도 고스란히 전이되면서 형성된 것인데, 게임을 플레이하는 집단이 다양해지면서 그와 같은 문화적 속성을 공유하지 않는 타 게이머들과 마찰을 겪으면서 갈등이 상당히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에서 〈하이스코어〉가 게임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최초의 카트리지 교환형 콘솔 채널F의 개발자 제리 로슨을 조망한 것은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다. 채널F가 개발되었던 7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흔치 않았던 유색 인종으로서 초기 게임산업의 발전 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그 오래된 신화에 균열을 가하기 때문이다. 사망한 인물이라 자세한 인터뷰를 담을 수 없었던 점은 아쉽지만 - 이미 많이 늦었다는 방증이겠다 - 채널F처럼 게임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콘솔의 개발자가 이처럼 까맣게 잊혀져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 속에서 그처럼 묻혀져 있을 다양한 사람들의 존재를 예상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그들의 유산은 게임의 발전과정 안에 오롯이 녹아있을 것이며, 그것을 발굴해낸다면 게임의 문화적 가치와 의미는 또 얼마나 풍성해질지 가늠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 채널 F의 개발자 제리 로슨을 향한 조명은 이 다큐가 게임산업 발전사 속에서 소외되는 누군가를 잊지 않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이미지: 넷플릭스 EA의 간판 스포츠게임 〈매든 NFL〉 시리즈의 열혈팬으로서 후에 EA에 입사하여 〈매든 NFL 95〉에 사상 최초로 흑인 캐릭터를 등장시킨 흑인 남성 동성애자 게이머(이자 개발자) 고든 벨라미의 이야기 또한 게임 역사 내 다양성에 대한 화두를 이끌어낸다. “세상의 규칙이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을 평생 체감하며 살아가는 소수자들에게 있어 “모두에게 공평한 규칙이 적용되는” 게임의 세계란 그저 한낱 게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벨라미의 이야기는, 게임 문화 내 다양성이 지니는 중요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게임 캐릭터의 짙은 피부는 물리적으로 화면 내 작은 픽셀들의 바뀐 색조합에 불과하지만, 그 작은 변화는 평생을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의 정당성을 위해 싸워야 하는 소수자들에게는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혹은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이란 것을. 물론 소수자들에 한해 게임이 정체성이나 의사 표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게임이 소수자들에게 중요한 소통과 표현의 수단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이 세상에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매체였기 때문이라는 점은 생각해볼 만하다. 이미 주류의 취향과 가치관이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기성 매체와 달리, 젊은 매체는 비주류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자유롭게 담길 수 있는 여지를 지니며, 그와 같은 개방성과 다양성에 기반한 ‘가능성들’이야말로 이 매체의 ‘젊음’이 지녔던 문화적 가치였던 것은 아닐까. 초기 인디 게임의 사례로서 미국 사회 내 동성애자 혐오 정서에 대항하는 패러디 게임 〈게이블레이드〉의 존재는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단순한 오락물 그 이상의 어떤 것으로서의 가능성 말이다. 이처럼 게임의 ‘젊음’을 조망한 〈하이스코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시절 게임의 산업과 문화를 이끌었던 주요 인물들의 노색이 완연한 모습은 역으로 게임의 ‘나이듦’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나 한 발 떨어진 위치에서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회상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 시절 우리가 즐겨 플레이했던 게임, 그러니까 부모님과 선생님의 눈을 피해 짜릿하게 즐겼던 우리끼리의 그 오락이 더 이상 그 때의 그것이 아님을 새삼 일깨워준다. 게임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은 한 때 젊었던 게임이 지녔던 그 가능성들이 여전히 유효한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다른 가능성과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 혹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 것인지 등이 아닐까? 다른 말로 바꾸자면 이 과거의 흔적 또는 유물들을 현재와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나아가 미래를 위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게임의 역사를 다루는 다큐로서 〈하이스코어〉에서 아쉬운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기존에 다뤄지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이나 사건을 발굴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였지만, 그러한 발굴을 통해 새롭게 논의해 볼 수 있는 오늘날 게임의 가치나 의미를 끌어내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놀런 부쉬넬, 니시카도 토모히로, 로베르타 윌리엄스, 존 로메로 등 기존 게임사의 주요 인물들과의 인터뷰 또한 기존의 게임사 다큐나 저술에서 이미 이야기했던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과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오늘날과 미래에 대해 지닌 견해를 물었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꿈꾸고 가꿨던 그 게임이 오늘날의 게임과 얼마나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하여 그 다름은 또 어떤 의미인 것인지와 같은 논의가 담겨 있었더라면, 과거에 비추어 오늘날을 돌아보고 미래를 고민하는 역사적 탐구의 궁극적인 목적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게임사를 다루는 저술이나 프로그램에서 으레 첫 장에 위치하는 놀런 부쉬넬을 맨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하이스코어〉는 게임의 역사가 곧 혁신의 역사라는 관점을 분명히 내비췄는데, 개인적으로는 2020년이라는 시점에 나온 게임 다큐로서 좀 안일한 (혹은 진부한) 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의 역사가 정말로 재미를 좇는 혁신의 과정에만 한정된다면, 자동사냥이나 확률형 아이템 등이 디폴트화 되고 메타버스나 NFT, P2E 등이 대두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러한 화두들이 북미에서는 한국 만큼 현안이 아니어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서글프)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그러한 화두들이 결국엔 게임의 미래와 직결된 것들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재미를 좇는 혁신의 역사’라는 〈하이스코어〉를 비롯한 기존의 게임 역사 저술이나 다큐의 역사관에서 벗어난 작품이 나와주길 기대해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서울을 걷는 작은 이유, 피크민 블룸 서울 투어

    이 사람들의 정체는 바로 <피크민 블룸> 플레이어들이었다. 이들이 쓰고 있단 머리에 쓴 모자는 닌텐도의 유명 캐릭터인 ‘피크민’을 본뜬 것으로, ‘피크민 블룸 투어 2025: 서울’ 행사 참여자들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도심을 누비던 그들은, 사실 같은 게임 속에서 도시를 탐험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 Back 서울을 걷는 작은 이유, 피크민 블룸 서울 투어 24 GG Vol. 25. 6. 10. 들어가며 2025년 가정의 달인 5월 첫 주말, 서울 도심에 수상한 집단이 출현했다. 이들은 머리 위에 두 개의 큰 눈과 잎사귀 또는 꽃 모양의 장식이 달린 모자를 쓰고, 충무로에서 창덕궁까지의 거리를 누비며 서울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선가는 노란 잎사귀 모자를 쓴 사람이 광장시장에서 호떡을 집어 들고, 다른 한 편에서는 빨간 꽃 모자를 쓴 사람이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종묘 돌담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 파란 봉우리 모자를 쓴 사람들도 보였다. 이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도 않았다. 독특한 생김새의 모자를 제외하면 서로를 묶는 뚜렷한 공통점은 없어 보였다. 이 사람들의 정체는 바로 <피크민 블룸> 플레이어들이었다. 이들이 쓰고 있단 머리에 쓴 모자는 닌텐도의 유명 캐릭터인 ‘피크민’을 본뜬 것으로, ‘피크민 블룸 투어 2025: 서울’ 행사 참여자들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도심을 누비던 그들은, 사실 같은 게임 속에서 도시를 탐험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 피크민 블룸 투어 이벤트 포스터 ‘피크민 블룸 투어(Pikmin Bloom Tour)’는 AR 모바일 게임 <피크민 블룸>의 현장 이벤트이다. 이 행사는 평균 하루에서 이틀 동안 진행되며, 개최되는 지역의 특정 장소들을 방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별 진행이기 때문에 소요 시간은 참여자들에 따라 천차 만별이고, 동선 역시 개인의 재량에 달려 있다. 참여자들에게는 피크민 모자와 행사 지도, 특별 꽃 정수와 황금모종 등이 보상으로 지급된다. 행사는 무료이지만 인앱을 통한 추첨에 당첨되어야지만 참여 가능하다. 피크민 블룸 투어의 간략한 역사 지금까지 피크민 블룸 투어는 총 5회 개최되었다. 투어는 2023년 삿포로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는 벚꽃 시즌을 맞아 사람들이 거리의 꽃과 게임을 함께 즐기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로 추측할 수 있다. 이후 2년 동안 서로 다른 일본의 3가지 지역에서 투어가 개최되었으며, 각각은 시기에 맞는 이벤트 꽃과 함께 전개되었다. 이름 일자 지역 계절 이벤트 꽃 특징 Pikmin Bloom Tour 2023: Sapporo 2023년 4월 23일 삿포로 봄 벚꽃 첫 시도 Pikmin Bloom Tour 2023: Yokosuka 2023년 7월 23일 요코스카 여름 해바라기 인앱 패키지 도입 Pikmin Bloom Tour 2023: Kyoto 2023년 11월 12일 교토 오카자키 지역 가을 빨란 패랭이꽃 Pikmin Bloom Tour 2024: Fukuoka 2024년 3월 30일-31일 후쿠오카 봄 벚꽃 2일로 연장 Pikmin Bloom Tour 2025 : Seoul 2025년 5월 3일-4일 서울, 한국 봄 하얀 히비스커스 첫 일본 밖 개최 * 피크민 블룸 투어 요약 같은 이름의 프로그램인 만큼 5가지의 행사는 모두 같은 골격을 지니고 있다. 먼저, 참여자들은 정해진 선물 증정 장소에 방문하여 피크민 모양의 선 바이저, 지도를 수령한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된 지역을 찾아가며 이벤트 꽃 정수와 피크민 모종을 획득한다. 이벤트 장소에 들어서면, 세 가지 미션이 인앱에 표시되는데, 이는 이벤트 스팟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모두 달성할 수 있다. 모든 투어는 “(1) 7천보 이상 걷기 > 선물스티커(금색) 피크민 (2) 이벤트 꽃 3000송이 심기 > 선물스티커(금색) 피크민 (3) 이벤트 스팟 7개 방문하기 > 이벤트 뱃지”라는 유사한 미션과 보상 구조를 공유한다. * 피크민 블룸 투어 이벤트와 보상 두 번째인 요코스카 투어부터 참여자들만 살 수 있는 인앱 패키지가 추가되었다. 여기에는 현장 이벤트에서 수령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의 인앱 코스튬이 포함되어 있다. 구매한다면 ‘나’와 같은 패션을 한 피크민과 함께 걸어다닐 수 있다. * 요코스카 투어에서 판매된 Mii 코스튬 가장 최근에 개최된 피크민 블룸 투어: 서울은 이전의 행사들과 비교했을 때 약간의 특이점을 지닌다. 우선, 이는 처음으로 일본을 벗어난 개최된 투어이다. 비교적 작은 볼륨인 ‘미니워크’는 일본 밖에서도 이루어진 바가 있지만, ‘투어’가 일본 밖에서 이루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또한, 제철에 맞지 않은 꽃이 이벤트 꽃으로 선정되었다. 이번 피크민 블룸 투어 서울의 이벤트 꽃은 ‘하얀 히비스커스’였는데, 히비스커스의 일반적인 개화 시기는 6월에서 10월 (7~9월이 절정)이다. 대개 ‘시즌의 맞는 꽃’을 선보이던 <피크민 블룸> 운영진이 여름 꽃인 히비스커스를 봄에 선보인 이유는,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가 이와 같은 속(genus)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행사가 일본 밖에서 개최된 만큼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에 맞추어 이벤트 꽃을 선보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 인게임 하얀 히비스커스의 모습: 무궁화와 상당히 닮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섯 차례의 투어가 진행되는 동안, ‘피크민 블룸 미니 워크(Pikmin Bloom Mini Walk)’와 ‘피크민 블룸 저니(Pikmin Bloom Journey)’라는 두 종류의 또다른 현장 이벤트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먼저, 피크민 블룸 미니 워크는 투어를 간단하게 축약해놓은 버전으로, 지역 축제나 행사와 연결된 것이 특징적이다. 따로 신청이 필요하지 않고, 특정 지역에 들어가면 바로 참여가 가능하다. 이름 일자 지역 이벤트 스팟 행사 Pikmin Bloom Mino Washi Akari Walk 2023 2023년 10월 8일-21일 미노시, 일본 7종류 미노와시아카리전 Pikmin Bloom MINI WALK: Nagano Tomyo Festival 2024년 2월 9일-12일 나가노, 일본 9종류 나가노 등불 축제 Pikmin Bloom MINI WALK: Japan-Tag Düsseldorf/NRW 2024년 6월 1일 뒤셀도르프, 독일 6종류 일본의 날 Pikmin Bloom MINI WALK: Tainan City 2024년 10월 26일-11월 10일 타이난, 대만 8종류 대만 디자인 엑스포’24 Pikmin Bloom MINI WALK: Lucca Comics & Games 2024 2024년 10월 15일 루카, 이탈리아 9종류 루카 코믹스 & 게임스 Pikmin Bloom MINI WALK: San Diego Zoo 2024년 11월 16일-29일 샌디에고, 미국 4종류 없음, San Diego Zoo Wildlife Alliance와 협업 * 피크민 블룸 미니 워크 요약 투어나 미니 워크와 달리, 피크민 블룸 저니는 유료로 진행된 이벤트이다. 이벤트 티켓은 인앱 결제를 통해 구매할 수 있었다. 2024년에 1회 개최되었으며, 현장 이벤트인 ‘피크민 블룸 저니 2024: 도쿄 돔 시티(Pikmin Bloom Journey 2024: Tokyo Dome City)’와 온라인에서 참여할 수 있는 ‘피크민 블룸 저니 2024: 어디서나 챌린지(Pikmin Bloom Journey 2024: Challenge Anywhere)’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현장 이벤트와 온라인 이벤트를 동사에 진행한 특이 사례이다. 온라인 이벤트의 경우 장소와 상관 없이 5개의 빅 플라워를 흔들고, 2000송이의 파란 장미를 심으면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특별 이벤트 피크민과 투어에서 유료로 판매하던 패키지 보상 코스튬을 제공했다. 피크민 블룸 투어 서울 피크민 블룸 투어 서울은 이벤트 지역에 입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참가 자격을 얻은 플레이어들이 행사 지역에 입장하면 다음과 같은 인앱 이벤트가 발생하는데, 이를 기점으로 ‘현재 이벤트’란에 투어 미션이 추가된다. * 피크민 블룸 투어 서울 이벤트 화면 본격적인 이벤트 참여를 위해서는 정해진 선물 수령장소에 방문해야 한다. 이번 행사의 수령 장소는 현대 아울렛 동대이었는데, 여기에서 참가자들은 피크민 모자와 이벤트 지도, 엽서를 수령할 수 있다. 건물 안에서는 특별 AR 사진과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이벤트 부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 이벤트 수령 장소 몇 기념품의 모습 제공된 모자를 착용했다면, 남은 일은 지도를 따라 곳곳을 방문하는 것이다. 이번 투어에서 탐험해야 했던 장소는 총 12곳으로, 모두는 하나의 동선 안에 배치되어 있다. 각 장소는 저마다의 공간적 특징을 갖추고 있으며, 참여자들은 이에 맞는 피크민을 획득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충무로 극장에서는 영화관 피크민을, 청계천에서는 물가 피크민을, 그리고 광장시장에서는 김치(한식) 피크민을 획득할 수 있다. * 피크민 투어 서울의 이벤트 지도. 실물 지도가 주어졌지만, 참여자들이 따라 움직일 수 있는 표지는 두 가지가 더 있었다. 첫째는 인게임 화면이다. 게임 화면에는 각 이벤트 스팟이 범위와 함께 표시되어 있었고, 참가자가 이 범위 안으로 들어가면 붉은 빛이 들어와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다른 참가자들이다. 모든 참가자들이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기에 유저들은 서로를 손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가는 길에 확신이 없을 때 같은 모자를 쓴 사람을 따라가면 다음 장소로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 투어 플레이 화면 디지털 게임은 점차 개인적인 경험으로 변모해왔다. 동네 아이들이 화면을 기웃거리며 훈수를 두던 오락실 시절에서, PC방에서 자신의 모니터에 집중하는 시기를 거쳐, 이제는 손 안의 기기로 혼자만의 화면을 들여다보면 모바일 게임의 시대로 넘어왔다. 오늘날 디지털 게임은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개인적인 취미가 되었다. 피크민 블룸 투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만의 동선을 정하고, 시간을 알아서 조절하며, 개인의 속도에 맞추어 플레이한다. 사람마다 관심 있는 장소도 다르고, 걷는 속도도 다르기에 누구나 자기만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같은 투어에 참여하고 있다 해도 다른 참가자와 상호작용할 필요도 없다. 미션은 오로지 개인 화면에서 독립적으로 진행되며, 여기에는 어떤 다른 참가자들과의 상호작용도 필요로하지 않는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참가자들이 투어에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이 감각은 모자로부터 나왔는데, 색색의 피크민 모자를 쓰고 같은 도시를 누비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더라도,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작은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피크민 블룸) 투어의 장소성 장소는 단순히 지리적 위치나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다. 장소는 인간에 의해 특정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그 과정에서 고유한 가치와 분위기가 형성된 공간이다. 어떤 장소는 역사, 이야기, 상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다른 곳과는 분명히 구분되며, 이러한 의미는 사회적이면서도 개별적으로 부과된다. 따라서, 특정 장소에 대한 개인의 감각은 그가 속한 집단이나 축적한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투어’는 장소(성)을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투어는 개별 장소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프로그램화한 것으로, 참가자들에게 각 장소의 정체성, 관계, 역사를 전달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피크민 블룸 투어도 이와 같은 기능을 한다. 앱에는 특정한 이벤트 스팟들이 설정되어 있으며, 그 위치에 도착하면 장소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간략한 설명이 제공된다. 다만, 피크민 블룸 투어는 매우 느슨하다. 일반적인 투어는 엄격한 시간과 동선을 요구하곤 하지만, 피크민 블룸 투어에는 몇 가지 ‘스팟’들이 지정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참여하는 유저의 자유에 맡겨진다. 설명 역시 매우 간결한 수준으로 제공되어 있어 참가자들은 직접 장소를 둘러보며 의미를 확장해나갈 수 있다. 곧, 피크민 블룸 투어가 제공하는 것은 장소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이다. * 이벤트 스팟 화면 여기에 피크민 블룸 투어가 특별하게 덧붙이는 것은 ‘피크민’의 존재이다. 어떤 장소의 의미는 그곳을 함께 했던 사람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같은 레스토랑이라도 가족과 갔을 때와 연인과 갔을 때의 기억은 전혀 다른 것처럼, 피크민 블룸 투어 참가자들은 ‘피크민’들과 함께 걸으며 추가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더욱이, 방문한 장소에 따라서 획득한 특정 피크민들은 기억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참가자들은 이벤트 도중 장소의 특징에 맞는 피크민들을 획득하는데, 여기에는 공간의 이름이나 일자 등이 포함되어 있어 장소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반년 넘게 <피크민 블룸>을 플레이하면서, 나는 내 지도가 조금씩 확장되고 있는 걸 느꼈다. 이 게임을 통해서 나는 단순히 길을 걷는 것을 넘어,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고, 때로는 발명하듯 내 동선을 만들고 있었다. 예를 들어, 꽃을 더 심기 위해 일부터 평소에 걷지 않던 길로 돌아가기고 하고, 엽서를 얻기 위해 모르는 길목을 탐험하기도 했다. 특별한 모종을 찾기 위해 낯선 동네를 헤매고, 일종의 보물찾기처럼 숨겨진 장소를 찾아다니는 날도 많았다. 심지어, 이 원고를 쓰기 바로 전 날에도 커뮤니티 데이 배지를 얻기 위해 평소보다 먼 길을 돌아 집에 왔다. 라이프로그 상에서 새로운 곳이 푸르게 빛나는 것이 뿌듯함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 피크민 블룸 라이프로그 화면. 자주 간 곳은 초록빛이, 꽃을 심은 자리에는 꽃이 표시 되어있다. 내게 이번 피크민 블룸 투어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었다. 서울 도심을 배경으로 제공된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나는 익숙한 도시를 다시 탐험했다. 서울 거주자로서 대부분의 장소가 낯설지는 않았지만, 아예 모르는 골목을 찾아 새로운 엽서를 발견하는 일은 여전히 즐거웠다. 단순히 걸음을 기록하고, 가상의 식물을 심고, 작은 캐릭터를 모으는 행위가 어떻게 사람들을 거리로 이끌 수 있는 걸까? <피크민 블룸>에서 정확히 무엇이 ‘보상’이 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 작은 피크민들은 분명 사람들에게 동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 동력이 계속하여 우리의 삶과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길 바란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연우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 Beyond the K-Game

    우리의 게임 실력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원코인, 즉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플레이 할때다. 다양한 BM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한다. 다행히 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인디 게임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넥슨은 참신한 도전을 위해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다. 심지어 여기서 만들어진 ‘데이브 더 다이브’는 스팀 인기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네오위즈 ‘P의 거짓’은 게임스컴 어워드 3관왕에 올랐다. 하면 된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거듭된 패배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동전을 넣던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 Back Beyond the K-Game 09 GG Vol. 22. 12. 10. K-게임은 어찌하여 호K호형 하지 못하는 신세로... 접두사 ‘K-’가 붙는 단어들이 있다. K-웹툰, K-드라마, K-POP, K-영화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닮은 점이 있다. 컨텐츠라는 점이다.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 안으로는 국민에게 사랑받고, 해외로는 우리의 자랑거리다. 그러나 K로 시작하는 컨텐츠임에도 저기에 끼지 못한 서자가 있다. 이름하여 K-게임이다.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많은 대중에게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게임업계는 항변할 것이다. K-게임은 컨텐츠 수출을 견인하는 산업일꾼이란 주장이다. 업계종사자 중에서는 억울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게임은 다른 K-게임과 다르다는 이유다. 맞다. 인정한다. 컨텐츠 수출액의 70%를 점하는 효자이고, 국내와 해외에서 사랑받는 K-게임도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있다. 수출역군의 일등공신도 BM(비즈니스 모델)이고, 대중에게 배척받는 이유도 BM이다. 예상하듯이, 그 BM은 확률형 아이템을 주 기반으로 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여러 자리에서 주장해 왔기에 ‘확무새’라고 지겹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주 독자층이 주로 ‘게임高관여층’일 것이기에 또 한번 쓸 수 밖에 없다. 태풍의 눈에 있으면 태풍의 세기를 체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극히 일반적인 게이머들의 생각을 되풀이해서 들어야 한다. 랜덤박스와 P2W의 결합: 게임사엔 최고의 궁합, 이용자는 최악의 조합 확률형 아이템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결과는 게임의 본질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한 달에 한 번 매직 더 개더링 카드팩을 살 수 있었다. 그 날은 매월 가장 설레는 날이었다. 카드팩을 뜯을 때 나던 그 특유의 카드 냄새, 드물게 나오는 레어카드의 기쁨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 'Mirri, Cat Warrior'. '매직 더 개더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템페스트 블록’중 엑소더스에 등장한 레어 카드. 당시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던 녹색 생물이다. 이 카드를 뽑고선 15년 인생 중 가장 큰 짜릿함을 경험했다. 문제는 확률형 아이템 모델이 ‘Pay to Win’(이하 P2W) 과 만났을 때다. P2W 시스템은 게임에서 승리하는 데에 필요한 핵심 조건, 즉 캐릭터 능력치나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하는 행위 및 이것을 유도하는 게임구조를 말한다. 이용자는 P2W을 통해 남들보다 적은 시간을 투자하여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 어찌 보면 참 편리한 시스템이다. 아울러 P2W 이 게임 밸런스를 과하게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살짝만 곁들여지면 게임의 재미를 더 높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다. 매운 맛을 좋아한다고 음식에 캡사이신 소스를 뿌려대면 응급실행이다. 마찬가지로 P2W이 과하면 게임을 해치는 독이 된다. 대다수의 P2W 아이템이 확률형 아이템 BM을 통해서만 획득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문제다. 더 좋은 P2W 아이템일수록 더 낮은 획득 확률이고, 자연스럽게 사행심도 함께 부추겨진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낮은 확률을 뚫고 어렵사리 아이템을 구해도 안심할 수 없다. P2W 아이템을 계속해서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먼저, 어렵게 획득한 P2W 아이템보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확’풀어 버린다. 그리고선 보다 높은 등급의 희귀 P2W 아이템을 랜덤박스로 내놓는다. 즉, 인위적으로 아이템 성능의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기존 아이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주로 대규모 패치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주기가 짧을수록 잦은 과금을 해야 한다. 지상 낙원을 꿈꿨던 랩처, 그러나 그 끝은 파국만이 있었다 “회사의 제1원칙은 수익 창출이다. 따라서 민간의 영리활동에 정부나 국회가 과하게 개입해선 안된다.” 업계의 논리다.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자유와 방종은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바이오쇼크'라는 게임시리즈가 있다. 심오한 세계관과 뛰어난 연출로 평론가, 이용자 모두에게 극찬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2007년에 출시된 '바이오쇼크 1'은 명작 중의 명작이다. '바이오쇼크1'은 수중도시 랩처가 배경 무대다. 이 곳은 앤드류 라이언이라는 자유지상주의자에 의해 건설된 도시다. 랩처엔 특징이 있다. 그 어떤 규제도, 간섭도, 책임도,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순도 100%의 자유로만 채워진 공간이다. 언뜻 들으면 낙원 같기도 하다. * 초기 랩처의 유토피아 모습. 그러나 랩처의 끝은 파멸이었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기본적인 규범과 도덕마저 부재했다. 욕망을 한껏 부추기는 환경은 즐비했지만, 제동장치는 없었다. 결국 랩처의 주민들은 광기에 빠져 공멸했고,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 방종으로 파멸한 랩처. 우리 게임업계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 BM의 폐단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개선의 기회도 충분히 주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무조건적인 규제가 아니라 업계에 자율규제를 맡겼다. 수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결과를 목도했다. 전 세계 초유의 게임이용자 집단 연쇄시위 사태, 이를 통한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를 코앞에 두고 있다. 문제는 업계의 대응 방식이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되자,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국회 문체위 모든 의원실에 입장문을 전달하는 협회의 모습에서 랩처의 그림자가 겹쳐보였다. 마치 랩처처럼, 협회는 게임 이용자들이 원하는 최소한의 규제, 최소한의 이용자 보호조치마저 거부했다. 그런가 하면 타 의원실을 통해 청부 입법하기도 했다. 자율규제를 유지·강화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끝에 결국 법안은 철회되었다. 그런가하면 민간 자율기구에서 사실을 왜곡하여 의원실을 폄훼하기도 했다. 업계 대응방식의 부작용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다시 '바이오쇼크 1' 이야기다. 스플라이서라는 존재들이 있다. 본래 평범했으나, 마약성 유전자 변형제인 '아담'에 중독되어 그 부작용으로 괴물화된 랩처의 주민이다. 업계 대응방식의 부작용은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이슈에 대해 여론이 돌아섰다. 질병코드 문제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2019년 당시와 지금을 놓고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3년 전에는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업계편에 서서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론전에서도 등재 찬성측을 압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랜덤박스 규제에 대한 업계의 대응을 보고 게이머들의 마음이 식어버렸다. 한번 차가워진 여론은 되돌리기 어렵다. 국내 게임사들은 이용자들에게 분노를 넘어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계가 게임 이용자들의 지지를 바라기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질병코드 등재에 찬성하고 나서는 게임 이용자들도 여럿 보이는가 하면, 확률형 아이템 위주의 게임을 도박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실제로 최근 질병코드 등재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사의 업보’라며 조소어린 관망세를 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K-게임업계의 대응은 스플라이서와 쌍둥이 꼴이었다. 본인의 선택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다. 원코인 남은 심정으로.. 지난 2년 동안 K-게임환경은 지각변동이 있었다. 연쇄 트럭시위, 마차 시위, 집단 소송은 물론 여러 정부 기관에 민원 제기까지, 이제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 게임업계는 이용자의 집단화를 두려워하고 피해야할 대상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도 애정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던 애정마저 식으면 K-게임의 엔딩은 ‘배드 루트’뿐일 것이다. 우리의 게임 실력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원코인, 즉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플레이 할때다. 다양한 BM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한다. 다행히 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인디 게임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넥슨은 참신한 도전을 위해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다. 심지어 여기서 만들어진 ‘데이브 더 다이브’는 스팀 인기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네오위즈 ‘P의 거짓’은 게임스컴 어워드 3관왕에 올랐다. 하면 된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거듭된 패배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동전을 넣던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 Here comes a new challenger!!!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국회 보좌관) 이도경 역대 국회 게임 관련 법안 최다 발의·최다 통과 시킨 것이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자부심은 와우에서 리치왕 하드모드 서버 퍼스트킬 한 것과 카오스 유명 클랜인 RoMg에서 샤먼을 했다는 사실입...

  • 부분유료결제는 영원할 것인가?

    이처럼 2022년의 연말을 맞는 지금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게임 플레이의 외부에 존재하는 거래 행위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 이제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 플레이와 밸런스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게임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사업적인 요소가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만드는 회사와 개발자의 입장은 늘 조심스럽다. 유저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하며,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트렌드를 선도하는지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 Back 부분유료결제는 영원할 것인가? 09 GG Vol. 22. 12. 10. 1. 게임 중소기업 대표 M씨의 일상 경기도 판교에서 중소 게임 개발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M대표는 요즘 들어 자주 조급한 마음이 든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풀린 풍부한 시중 투자자금 덕분에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방치형 게임 하나만 가지고도 쉽게 VC로부터 투자도 받고 대기업 퍼블리셔도 구할 수 있었던 그였다. 그러나 이 축복받은 코로나가 서서히 끝나가자 사람들은 게임을 플레이 하는 대신 바깥으로 나가 스포츠를 즐기고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람들의 집콕과 재택 근무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시중의 투자 자금 역시 게임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작년 초부터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말부터 시중 금리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투자사는 은근슬쩍 전화를 걸어와 투자 자금의 회수 가능성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3년 안에 우리 지분 엑싯할 수 있는거죠 형님? 형님만 믿습니다!” 투자사 P팀장의 능글맞은 농담을 그는 은근히 경멸하고 있었다. P는 8년 전 한 중견 게임개발 기업에서 M대표의 부사수로 일했던 후배 개발자였다, 아직 M대표가 세파에 시달리기 몇 해 전 지금보다는 조금 더 순수한 마음으로 인디 게임 회사를 처음 창업할 당시, P는 M대표 밑에서 기획팀 대리를 맡고 있던 30대 초반 청년이었다. M대표는 사업 감각이 남달랐던 그를 팀에서 빼내 같이 창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회사에 남는 쪽을 택했고, 얼마 뒤 판교에서 가장 건물이 크다고 자부하는 큰 게임 회사의 사업팀으로 이직해버렸다. P가 이직한 뒤 2년쯤 지났을 무렵 그는 전화를 걸어와 M대표를 그 커다란 건물로 불러냈다. "형님, 이제 이상적인 게임 만들기는 이제 그만두고 시장이 호응하는 게임 좀 만드시죠. 밑의 직원들도 먹고 살아야죠.” 몇 년 전만 하더라도 M대표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창업을 선택한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난 몇 년간 국내 인디게임 씬에서 제법 얼굴을 알린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섬마을 소녀의 탐험기를 소재로 한 플랫포머 게임으로 한 인디게임쇼에서 게임 디자인 상을 수상한 이후, 그는 이렇게 자기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면서 외롭지 않을 수 있겠다고 처음으로 느꼈다. 이듬해 그는 상해임시정부의 요원의 암살 이야기를 바탕으로 잠입 액션 게임을 제작하여 평단과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동시에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스팀(Steam)에서 M대표 회사의 게임은 평점은 매우 높았지만, 판매량은 시원찮았다. 퍼블리셔 없이 판매한 게임은 기껏해야 몇 만 카피 수준이었다. 그 매출로는 직원들 월급 주기에도 빠듯했던 것이다. 그는 지금 내년쯤 영남지방 어드메에 새로 들어선다는 글로벌 게임센터를 찾아가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이지만 본사 주소만 그 동네로 옮겨두고 알바생 두어 명을 현지에서 고용하여 출근하는 척 해놓으면, 1억 이상의 개발 지원금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래, 기차로 2시간 반 정도면 하루만에도 출퇴근을 할 수 있네. 이만하면 주말 부부도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M대표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깔린 2년 전 출시한 방치형 게임 앱을 실행시켜 보았다. 미소녀 캐릭터를 수집하여 성장시키는 방치형 게임이었다. 그는 메타버스 붐 때 이 게임의 미소녀 카드들을 NFT로 만들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그래서 이 게임의 후속작으로 게임센터의 지원사업을 따고 후속 투자도 유치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M대표는 사실 태생이 그렇게 주도면밀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오히려 낭만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디게임 씬에서는 이상론을 부르짓던 그였다. 게임업계의 사람들은 그가 술자리에서 대기업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경멸하듯 욕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M대표 역시 회사의 생존 앞에서는 자신의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M대표가 만나본 투자사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플랫폼을 PC나 콘솔에서 모바일로 바꾸고, 장르도 최근 트렌드에 맞는 게임을 추종하라고 권했다. 더불어 확률형 아이템을 포함한 부분유료결제를 필수적으로 도입하고,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과 게임 밸런스를 조화시킬 라이브 인력을 확충할 것을 권했다. PC 플랫폼에서 패키지 다운로드 형태로 한 카피씩 게임을 파는 모델은 한물 간 구식이라고,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 큰 돈을 만질 수 없다는 조언을 해왔던 것이다. 그 중 M대표가 가장 동의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게임을 절대 처음부터 재미있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이었다. 한국 유저들의 주머니를 열기 위해서는 아주 조금만 재미있게 게임을 만든 뒤, 돈을 더 내면 쉽게 게임을 이길 수 있다고 부추겨야 된다는 P팀장의 지론이었다. 페이 투 윈(Pay to win)”이라 불리는 그 방식을 M대표는 그간 게임도 아니라며 경멸해 왔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이전에 출시한 방치형 게임의 성공을 위해서는 페이 투 윈 뿐만 아니라 더 노골적인 비즈니스 모델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M대표는 올해 시도할 신작 게임에서는 미소녀 NFT를 활용한 게임으로 더 큰 투자를 받아 회사를 키울 야망에 부풀어 있었다. 게임센터 본부장 접대를 위해 해외 출장에서 사온 싱글몰트 위스키 케이스를 매만지며 그는 상념에 잠겼다. 2. 게임 비즈니스 모델의 종류와 변천 앞선 장에서 꽁트 형식으로 게임 중소기업 대표 M씨의 일상을 내세운 이유는 한국 게임시장의 화제거리가 대부분 게임 비즈니스 모델로 귀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게임 관련 뉴스는 대체로 게임 디자인이라든가 게임 문화와 관련된 것보다 회사의 매출액 규모나 확률형 아이템이나 P2E 등과 같은 특정한 비즈니스 모델의 성패 여부에 관한 것이 주종을 이룬다. 이처럼 한국 게임시장의 비즈니스 모델은 다른 나라의 경우보다 종류도 다양하고 그 성격 또한 게임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마다 다르고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지만, 대략적으로 7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1) 결제가 없는 방식 2) 동전투입식 결제 3) 패키지 결제 4) 정액제 결제 5) 부분유료결제 6) 가상화폐 기반 P2E, NFT 방식 7) 정기구독(subscription) 결제 방식이 그것이다. 이 중 1)에서 3)번까지는 해외에서 선도했던 모델이었으나, 4)번에서 6)번까지는 한국 게임업계가 선두 그룹에 끼어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최근 대부분의 부분유료결제는 모바일 플랫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나, 그 시작은 PC 온라인 게임이 기반이었다. 2000년대 초 NHN의 PC 게임 플랫폼 한게임에서 정액제 과금 방식 대신 아바타 장식용 아이템을 유료로 팔기 시작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부분유료화를 해외에서는 ‘free to play’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게임은 무료로 제공하고 광고나 아이템 판매를 통해 개발비를 보충하는 방식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부분유료화로 판매하는 아이템이 단순한 장식용에 그치지 않고 게임 밸런스에 영향을 주게 되면서 부터였다. 통상적으로 게임의 결제 방식은 게임 플레이와는 상관없이 게임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유료 아이템을 구매한 유저와 무료로 플레이하는 유저 사이에 게임 밸런스에 차이가 생기게 되면 결제 방식은 더 이상 게임 플레이의 외부에 있다고 보기 어렵게 된다. 특히 최근 모바일 MMORPG의 결제 방식은 확률형 아이템과 강화형 아이템을 조합하여 유저들이 지속적으로 결제를 유도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필요한 아이템만 결제하면 되기 때문에 실제로 게임은 무료라는 인상을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 게임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여 무료로 플레이하는 유저가 결제 없이 넘어가기 어려운 구간을 설계하고 결제를 통해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게 된다. 일부 플레이어는 이와 같은 부분유료화 결제 방식을 활용하여 게임 시작부터 결제를 하면서 게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하였다. 국내 모바일 게임은 대부분 상위 5% 이내의 납금 유저들, 이른바 ‘고래’들이 하위 95%의 일반 유저들이 납금한 규모보다 더 많은 금액을 투입한다. 이 때문에 국내의 몇몇 게임들은 게임 밸런스의 절묘한 균형보다는 상한선 없는 결제를 유도하는 비즈니스 모델 주도의 게임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2020년 기준 한국 게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6.9%이며, 매출 규모는 19조원 가량으로 세계 4위에 해당한다. 이러한 양적인 성장의 대부분은 부분유료화를 통해 달성된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져 온 부분유료화 제도는 확률형 아이템의 날개를 단 뒤 한국 게임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3. 부분유료화 제도의 균열과 새로운 결제 방식 영원토록 존속하여 한국 게임유저들의 마지막 한 푼까지 빨아먹을 것 같았던 확률형 아이템의 기세는 최근 몇 년 사이 상당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게임 유저들이 투명하지 않은 확률형 아이템의 시스템에 환멸을 느끼고 조직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넷마블의 〈페이트 그랜드 오더〉에서 시작된 이용자들의 불만은 엔씨소프트의 〈프로야구 H2〉와 〈리니지M〉 문양 시스템 롤백 사건을 거쳐 넥슨의 〈마비노기〉, 〈메이플 스토리〉 확률 조작 사건으로 점차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 트럭 시위 형태로 시작된 유저들의 조직적인 저항은 최근 대부분의 게임으로 확장되어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개발사의 무분별한 과금 요소를 지적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의 집단 행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이용자들이 게임사에 항의하기 위해 벌인 마차시위. 이러한 사태 속에서 한국 게임업계가 대응했던 방식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는 자율 규제 방식이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한국게임산업협회는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을 출범시켜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자율규제 방식은 국회로부터 확률형 아이템 공개, 더 나아가 확률형 아이템 규제의 입법화를 늦추기 위한 일종의 꼼수라고 볼 수 있다. 21대 국회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되어 있으며, 소위와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확률형 아이템에 관한 문제는 입법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문제가 전환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젊은 세대들일수록 게임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는 과도한 과금 시스템에 저항이 심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확률형 아이템을 버리고 확정형 아이템 중심으로 게임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8월 라인게임즈가 출시한 〈대항해시대 오리진〉의 경우 확률형 아이템 대신 ‘특권’이라 이름 붙은 1만원에서 9만9천원 상당의 확정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확정했다. 본래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CBT 진행 당시 확률형 아이템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하였으나, 유저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확정형 아이템 모델로 변경한 바 있다. * ‘특권’이라는 이름의 확정형 아이템만 판매하고 있는 〈대항해시대 오리진〉. 물론 이러한 확정형 아이템 역시 부분유료화 결제 방식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변화의 의미는 적지 않다. 게임 밸런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 확률형 아이템 방식이나 확정형 아이템 비즈니스 모델은 전 세계 게임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용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과금 모델은 중화권이나 일부 동남아 시장을 제외하면 게임을 유통하기 어려운 단점이 존재했다. 때마침 중국이 사드 사태 이후 한한령을 통해 한국 게임의 판호 발급을 극도로 제한하면서 한국 게임 신작이 중국에 출시되기 어려운 상황도 겹쳐서 발생했다. 국내 게임회사들로서는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하여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거나, 〈PUBG Mobile〉처럼 중국 회사와 합작하여 중국 게임의 마크를 달고 중화권 시장에 게임을 출시하는 어려운 방식을 택해야만 했었다. 그간 국내 게임회사들의 과도한 과금 유도 비즈니스 모델은 한국 게임의 세계화를 막는 주범이었다고 볼 수 있다. 창의적인 게임 디자인이나 세계관의 개발보다는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국내 게임 대기업들은 과거 10년 전과 비교하면 개발 조직에 비해 사업부와 대외 조직이 큰 폭으로 확장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분유료화 결제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결제 방식을 시도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메타버스와 가상화폐 붐을 타고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하는 “플레이 투 언(Play to Earn, 이하 P2E)” 방식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여러 게임을 묶어 플랫폼에서 매달 혹은 매년 일정한 금액을 과금하는 정기구독 방식이다. P2E 방식은 국내의 경우 위메이드에서 개발한 〈미르4〉가 대표적이다. 〈미르4〉는 가상화폐 위믹스와 연계하여 게임 내 특정 아이템을 가상화폐로 환전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 국내의 게임법 상 게임 머니나 게임 내 아이템은 현실의 화폐로 환전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국내 유저들은 VPN 등의 우회 방식을 거쳐야만 이러한 환전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르4〉는 국내 버전과 해외 버전이 빌드가 다른 글로벌 투 빌드 형태로 서비스되고 있다. 해외 버전에서는 캐릭터의 NFT도 판매되고 있는데, 이 역시 국내에서는 환전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국내에서 게임 아이템의 현금 환전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많은 게임 회사들이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이용한 P2E 모델의 게임을 다수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1차적으로는 〈미르4〉처럼 국내와 해외 버전을 다르게 출시하여 게임 아이템 환전이 합법화 된 해외에서만 해당 게임을 서비스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또한 상당수의 유저들은 VPN 등을 활용하여 해외 우회접속을 통해 환전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 회사 입장에서는 이를 묵인하고 방조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많은 게임회사들은 재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메타버스의 붐에 편승하여 장기적으로는 메타버스가 규제가 심한 게임법을 우회하여 별도 입법 과정을 통해 아이템 환전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게임 서비스 과정이 다소 번거롭더라도 이러한 P2E 모델을 채택한 게임사가 늘고 있다. * 〈미르4〉에서 게임 내 아이템 흑철을 DRACO로 교환하는 방법, DRACO는 해외 버전에서 위믹스로 교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 국내의 가상화폐 거래 사이트 연합체인 DAXA에서는 위메이드가 주관하는 위믹스가 유통량 고지 등에서 문제가 있다고 발표하여 연내에 상장폐지를 결정한 바 있다. 통상적으로 화폐의 유통 주체는 국가인데, 가상화폐는 탈중앙화라는 개념을 내세워 해당 화폐의 몇몇 오피니언 리더나 일부 조직, 혹은 회사가 이러한 화폐의 유통량과 방식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토론 과정이 DAO 등의 조직을 통해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탐욕에 눈이 먼 일부 회사나 조직이 가상화폐의 자전 거래나 유통량 허위 고지 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위믹스 상폐 사태나 테라 폭락 사태 등은 가상 화폐가 소수의 의지에 따라 가격이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P2E나 NFT 같은 가상화폐 기반의 결제 방식은 점점 유저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가을쯤 〈엑시 인피니티〉나 〈미르4〉처럼 P2E 기반의 게임들이 득세한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전 세계에 걸쳐 통화 유통량 축소와 금리 인상을 통해 가상화폐 관련 산업이 극도로 축소된 상황이다. 작년 연말 3N을 위시한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이 컨퍼런스 콜 등을 통해 대부분 P2E나 NFT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중 대다수는 자사의 주가 관리를 위해 원론적인 답변을 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가 다시 활황을 띄게 될 때 가상화폐 관련 비즈니스 모델은 언제든 다시 부상할 수 있다. 그 때까지 게임 회사들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고 통제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과 통화 유통 시스템을 만들지 지켜볼 일이다. * 단돈 1천원에 가입 가능한 엑스박스 게임패스. 부분유료화 제도에 균열을 가져온 또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은 정기구독 결제 방식이다. 사실 이 모델은 최근에 부각되기는 하였지만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졌다. 신문이나 잡지의 오래된 정기구독 모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EA는 2014년부터 자사의 플랫폼 오리진의 게임을 일정 금액을 받고 무제한 플레이할 수 있는 “EA Play”라는 정기구독 시스템을 서비스 해왔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엑스박스 게임패스”라는 구독 모델을 통해 최근 콘솔 게임 판도를 바꾸기도 했다. 사실 바로 이전 세대인 8세대 게임기까지만 하더라도 엑스박스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을 따라잡기 버거워하는 언더독에 불과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젊은 세대들이 더 이상 게임을 패키지 형태로 구매하지 않고, 세일 등을 활용하여 다운로드를 통해 저렴하게 구매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를 활용하여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스박스 게임 패스를 첫 달 1천원에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제공하여 많은 게임 유저를 유치할 수 있었다. 첫 달만 이용하더라도 한 번에 수백 개의 게임을 동시에 제공받기 때문에 유저 입장에서는 스팀 등에 유통되던 PC 게임의 상당수를 거의 무료에 가깝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엑스박스의 성공에 영향을 받아 소니 역시 올해 6월 자사의 구독 모델을 개편하여 “PS 플러스 에센셜”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특히 엑스박스 게임 패스는 인디게임 개발자들에게도 홍보의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일종의 계약금까지 제공하고 있어 예전에 비해 많은 서드파티 게임사들을 확보하고 있다. PS 진영에 비해 독점작이 적다는 평가를 받았던 엑스박스 진형은 물리적인 패키지를 포기하고 자사의 하드웨어에서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고정관념을 버리면서 새롭게 부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구독형 서비스는 여전히 패키지 다운로드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스팀이나 에픽 스토어에도 심각한 고민을 안겨줄 것으로 판단된다. 게임의 종류가 비교적 적은 편인 에픽의 경우는 필요할 경우 구독형 서비스를 병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출시된 게임이 4만 종 이상인 스팀의 경우는 기존 게임 보유 유저의 반발이나 이익 배분 체계의 복잡함 때문에 구독 경제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4. 나가면서 이처럼 2022년의 연말을 맞는 지금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게임 플레이의 외부에 존재하는 거래 행위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 이제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 플레이와 밸런스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게임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사업적인 요소가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만드는 회사와 개발자의 입장은 늘 조심스럽다. 유저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하며,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트렌드를 선도하는지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여러분이 중소 게임회사를 운영하는 M대표의 입장이라면 어떠한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할 것인가? 게임의 본질은 재미이기 때문에 창의성이 뛰어난 인디게임을 만들어 고전적인 패키지 다운로드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유행하는 장르의 모바일 게임을 확률형 아이템으로 도배하여 수익성을 꾀할 것인가? 한 발 더 나아가 P2E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인가?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 RTT : 현대의 전면전을 디지털 세계에 격리하기

    결국 RTT/워게임이 만들어지고 플레이되는 이유와 목적을 이해하는게 우선이다. 최초 프로이센 왕국에서 이루어진 워게임이 그러했듯, 결국 이 게임들은 전술의 개념적 검증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고자 하며 그래서 그 최초의 워게임의 특징을 답습하는 양상을 띄게 된다. < Back RTT : 현대의 전면전을 디지털 세계에 격리하기 25 GG Vol. 25. 8. 10. 게임의 역사는 곧 승부의 역사이고, 그만큼 게임은 오랫동안 승부를 위한 각종 적대적 상호작용의 장으로서 발전해왔다. 굳이 적대적 상호작용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쓴 이유는, 그 유명한 ‘핑퐁’ 의 공 쳐내기도 포함되고, ‘스타크래프트’ 에서 상대 기지에 핵폭탄을 쏘아버리는 것도 포함될 정도로 게임의 승부는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런 카테고리 하에서 전면전 그 자체를 다루는 전략/전술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적대적 상호작용의 총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류가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폭력인 전쟁 그 자체를 다룬다는 건 그 자체로 흥미롭고, 이게 유희로서 향유될 수 있다는 사실도 어쩌면 흥미롭다. 그리고 그 전쟁을 다루는 게임들은 그 속에서도 서로 다른 방식을 취해왔다. 최초의 전쟁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군부의 워게임은 말 그대로 전쟁의 예행연습이었고, 그러한 방식을 거의 그대로 디지털로 옮긴 게임들도 속속 탄생했다. 워게임, 또는 RTT(Real Time Tactics)는 그중에서도 현실의 전쟁을 가장 그럴듯하게 묘사하는 게임이다. 남들이 보기엔 다 그게 그거 같은 전략/전술 시뮬레이션 중에서 RTT, 또는 워게임이 유독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일종의 장르론이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불완전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대체로 그렇다’ 라는 전제로 시작한다. 고증에서 나오는 비대칭 무기의 대결 RTT와 다른 전략, 전술 게임과의 차이는 디테일하게 파고든다면 수없이 많지만, 그 차이가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굳이 풀어서 설명하자면 RTT 와 RTS를 비롯한 다른 전략/전술 장르와의 차이는 그 지향점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RTT 는 현대전을 비롯한 각 시대별 전장을 실제와 유사하게 묘사하는, 시뮬레이션으로서의 목적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워게임이라는 형태의 시초 자체가 실제 군부의 모의전에서 출발했으니 당연하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강한 밀리터리 테마, 디테일한 시뮬레이션을 위해 한정된 전장/부대 단위 지휘, 하지만 전쟁을 스케일 다운하기 위한 비교적 빠듯한 게임적 허용을 통한 전력 간의 극적인 비대칭성 등이 드러나게 된다. 전력 간의 비대칭성은 현실의 무기체계에서 비롯된 특징이다. 보병용 개인화기로 탱크는 물론 전투기까지 때려잡는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해병 같은 사례와는 달리, 현실의 무기체계는 저마다 명확한 목적성을 가지고 그에 부합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현실의 보병화기는 당연히 장갑차량만 등장해도 무력화되기 마련이고, 장갑차량이나 전차에게는 사신과도 같은 대전차 미사일의 경우에도 몇몇 예외사례를 제외하면 당연하게 헬리콥터 같은 공중 표적은 공격시도도 할 수 없고, 대보병용으로 전용할 수 있다해도 비용 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그러한 용도로 전용하는걸 아예 지원하지 않는 병기들도 있다. 다른 게임 플레이어들이 본다면 비대칭성을 넘어 제대로 디자인된 유닛이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극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병기 개발에서의 기술적 한계와 비용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여느 게임처럼 만능병기가 실존하지 않는다. 모든 병기는 해당 병기를 운용할 군사집단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ROC에 맞춰 설계되고, 생산되며 이 ROC 란 성능과 비용, 기술적 한계 사이에서 교묘히 줄타기를 한 결과이니. 그래서 현실의 병기들은 같은 미사일이라는 분류 하에서도 어디서 발사하는지,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지, 비행/유도 방식이 무엇인지에 따라 무수히 많은 하위분류로 다시 나뉘며, 각각의 병기는 제각각에 맞는 용도로 적절히 사용될 것을 요구한다. 쉽게 말해 닭잡는 칼은 닭만 잡을 수 있고, 소잡는 칼로도 닭은 잡을 수 없거나 잡을 수 있어도 그 효율이 심히 떨어지게 된다는 것. RTT 는 현실의 전장을 구현하는 것이 공통된 목적이므로, 지극히 제한적인 게임적 허용을 통해 이러한 실제 전장의 기본 구조를 답습한다. 그렇기 때문에 RTT에서 요구하는 숙련이란 이러한 상성 구조를 이해하고 적절한 병기를 배치, 그리고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몇가지 특징이 더 파생된다. RTT에서의 정찰은 단순히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적의 포진과 병기 배치를 파악하여 어떤 무기에 취약한지를 반드시 알아내야 하며, 내가 가진 전력 중에서 상대가 대처하기 어려운 수단을 찾아내 공격하거나 방어해야 한다. 이 정찰을 통해 미리 내 자산을 준비해두어야 한다. 이러한 병기들이 전장에서 갑자기 솟아나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병기에는 상성이 있다. 단지 RTT 에서는 그 상성이 매우, 굉장히 극단적일 뿐이다 많은 RTS 경우 다소 상성이 맞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유닛이 어느정도 다용도성을 보장하기에 수적 우위나 회전력을 무기로 승부를 걸 수 있다. 하지만 RTT에서는 경보병이 수십 분대가 있어도 전차 한대를 상대할 수는 없고, 마찬가지로 전차를 소대 단위로 모아놓아도 한대의 공격헬기를 당해낼 수는 없다. 때문에 이러한 상성 싸움은 정찰전, 심리전, 그리고 나아가 게임에 들어가기 전 적절한 부대편성까지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 그래서 RTT는 끝없는 가위바위보 물리기의 굴레에 빠지기 쉽다. 내가 상대의 모든 병력에 맞춰 보병, 대전차 화력, 대공, 공격헬기 같은 수단을 모두 마련해놨다 하더라도 병력 배치에 따라서 취약지점은 생길 수 있고, 상대가 그 지점을 적절한 수단으로 파고들면 조합은 깨지게 된다. 만약 그렇게 잃은게 대공병기라면 상대의 전폭기나 공격헬기가 파고들 것이고, 그럼 전차를 잃고, 그럼 보병이나 적 전차가 들이닥치고… 이러한 연쇄적인 전장붕괴가 실현된다. 예시로 들만한 게임은 RTT 에서 가장 최근작들이라 할 수 있는 ‘WARNO’ 나 ‘브로큰 애로우’ 같은 게임들이다. 이들 게임은 일정한 크기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면전을 그리고 있으며 지상전을 기반으로 몇가지를 추가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본격적으로 각각의 병기가 세분화되고 기술 발전에 따라 전차, 군용기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2차 세계대전까지가 사실상 RTT/워게임의 한계선이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 크다. 벌어지지 않은/을 전쟁을 상상하기 현대전을 다룬 RTT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게임의 성격을 결정하는 부분은 의외로 시나리오다. 톰 클랜시 스타일의 테크노 스릴러까지는 아니지만, ‘그럴싸한 가상 전쟁 시나리오’ 는 언제나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가장 뜨거운 화두이며 이 가상 전쟁 시나리오가 게임에 등장하는 세력과 병종, 그리고 대결의 구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이미 결과까지 모든 역사가 결정되어 있는 제 1, 2차 세계대전 같은 과거의 전쟁을 다루는 게임들 보다도 현대전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들이 더욱 두드러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그에 준하는 전면전 또는 총력전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에 준하는 위기 상황은 냉전이라는 상황 하에 언제나 존재했기에 이 소재를 활용하여 각 시대별 전장의 상황을 가상으로 그려나가는 식이다. 소련이 미국 본토를 침공한다는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그만큼 흥미는 배가 된다 현대전 기반의 RTT를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소개한 작품인 ‘월드 인 컨플릭트’ 는 1990년 즈음 냉전 붕괴 직전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WARNO’ 역시 냉전 말기를 다룬다. 두 게임의 시기는 비슷하지만 그 세부적인 시나리오와 게임의 진행 양상은 조금씩 달라진다. ‘월드 인 컨플릭트’ 는 냉전말 경제붕괴에 다다른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최후의 발악으로 미국 본토를 포함한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1세계를 직접 침공하는 다소 허구성이 강한 시나리오다. 반면 ‘WARNO’ 는 그 제목처럼 실제 유럽 전장에서 NATO 와 WP 의 전면 충돌을 실제 당시의 작전계획을 반영하여 프랑크푸르트 근방의 풀다 갭 공세 같은 시나리오로 그려낸다. 여기에 가장 최근작인 ‘브로큰 애로우’ 는 보다 시대를 뒤로 이동하여, 냉전은 끝났지만 최근 불거지는 신냉전이라는 긴장관계를 활용하여 러시아 연방과 미군의 21세기 충돌을 그린다. 이러한 특징으로 각각의 게임들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차이는 우선 투입되는 병기의 차이이다. 냉전 말기를 다룬 두 게임은 실제 당시 배치되어 있던 세력과 장비들을 묘사하여 PIVAD 같은 현대에는 도태된 장비가 등장하고는 한다. 시대상 공통적으로 대공 병기의 위력이 부족한 편이며, 당시 NATO 나 WP 의 교리에 따라 특정 분야에 특화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인다. ‘브로큰 애로우’ 는 보다 미래의, 현시점에 가까운 근미래로 상정할 수 있으므로 대부분의 주력전차들이 능동방어시스템을 채용할 수 있으며 다수의 스텔스기 전력도 등장한다. 여기에 상상력을 좀더 발휘하여 그 실체가 불분명한 사일런트 호크, 러시아 연방의 신규 제식 전차이기는 하나 실제로 양산과 투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T-14 아르마타 전차까지 등장한다. 냉전 시대에만 존재했던 폐기된 전쟁 시나리오를 디지털 게임으로 구현해보기 이렇게 등장하는 병종, 장비가 다르다면 자연스럽게 각 게임이 묘사하는 전장의 모습도 달라진다. ‘WARNO’ 에서의 주력전차들은 대전차미사일에 매우 취약하지만, 능동방어시스템이 달린 ‘브로큰 애로우’ 의 주력전차들은 보병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게 된다. 또한 ‘월드 인 컨플릭트’ 는 그 설정을 살려 모든 장비가 공수 형태로 투입된다.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의 경우에도 실제로 존재하는 지역을 분쟁 시나리오에 맞춰 등장시키기 때문에 제각각의 특징을 보인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루는 ‘스틸 디비전’ 시리즈는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투를 죄다 다루고 있고, ‘워게임’ 시리즈 중 ‘워게임: 레드 드래곤’ 은 동북아시아와 한반도가 등장하여 매우 익숙한 지형이 펼쳐진다. 이러한 기본 시나리오를 통해 플레이 기반이 만들어지고, 게임의 전체 골격이 시대에 맞춰 설계된다. 각 게임은 몇가지 공유하는 플레이 측면의 공통점이 있지만(조작 방식, 연막 같은 기본 기능들의 역할) 그 공유하는 부분들 만큼 시대적 차이, 또 시대별 전장에 대한 해석 차이로 차별점을 가진다. 이는 워게임의 기본에 맞닿아 있다. 모든 워게임은 정해진 시나리오 하에서 출발하며, 그 시나리오는 바로 작전계획이다. 즉 기본적으로 민간의 유희로서 진행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군대에서 펼치는 워게임과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여기서 오히려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거나 일부러 누락시킬 수 있는 유희적 창작을 통해서 더 흥미로운 창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극대화 된다. 이런 시나리오 플레이에서 보이는 한가지 더 재미있는 현상은 플레이어들이 일종의 플레이 외적인 면에서 몰입을 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게 된다는 점이다. 90년대 초반 냉전의 시나리오는 매우 유명하고, 모든 밀리터리 매니아라면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들이 모두 달려들어 시나리오의 타당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에서 실제로 한 번도 실전에서 붙어보지 않은 병기들 간에 전면전이 펼쳐진다는 건 제인 연감 뜯어보며 병기 스펙 구경하는 밀덕들에게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일이다. 비록 그 결과가 반인륜적이지만, 이는 살상병기를 떠나서 어떤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하는 감상과 맞닿아 있다. 오히려 가공의 전쟁, 어차피 1시간 뒤면 휘발되어 사라질 혈흔과 포연이기에 철저히 감정을 배제하고 마치 카탈로그를 보고 물건의 성능을 가늠하고 실험을 거치는 것 같은 활동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기호 뒤에 가려진 저해상도의 폭력성 전쟁을 다루는 게임은 언제나 전쟁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지적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RTT는 가장 전쟁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전장에서의 개인의 말살을 그 자체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두가지 특징 때문에 RTT/워게임이야 말로 전장의 잔혹성, 비인간성으로부터 일종의 방관자적 스탠스를 취한다. 하나는 전장과 플레이어 시점 사이의 극단적으로 먼 물리적 거리, 그리고 두번째는 철저히 개별 유닛을 하나의 인격체나 생명, 어떠한 개인이 아닌 병기로서만 취급하고 집중하는 특징이다. 이러한 이유로 RTT 특유의 사실적이면서도 극히 간접적인 전장의 체험이 이루어진다. 전장과 플레이어의 물리적 거리감을 활용해 살육의 잔혹함과 유희로서의 게임 사이 간극을 활용하는 사례는 여럿 있어왔다. ‘콜 오브 듀티’ 의 그 유명한 건쉽 미션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RTT/워게임은 다른 전략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그 거리가 플레이어로부터 상당히 멀지만, 지휘하는 부대의 규모나 전장의 스케일이 더욱 크다보니 게임 플레이 내내 유닛의 실제 모습을 보는 경우는 아예없고 유닛 기호만 가지고 컨트롤을 할 정도로 그 거리감이 더 극적으로 벌어져 있다. 이는 실제 유닛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기호를 가지고 추상화한다는 느낌을 더 강화한다. 이렇게 온통 기호로 가득 들어찬 화면에서 유닛 하나에 몰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앞서 설명한 유닛들이 가진 강력한 비대칭성과 확실한 목적성에서 비롯되어 각각의 유닛은 그들의 장비로 대표되게 된다. 같은 보병 분대라 하더라도 어느 한 분대를 골라 투입하고 활용하는 이유는 그 보병이 가진 장비들(대전차미사일, SAM, 기관총 등) 때문이지 그 보병의 개인성, 인격 따위가 아니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실제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이들 보병은 그저 장비의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즉, 이런 게임에서 보병을 볼 때는 그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느냐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그냥 자벨린 대전차미사일, FIM-92 스팅어 라는 병기 자체로 인식하곤 한다. 보병 분대가 이럴진대, 전차나 헬리콥터 같은 탑승 병기는 더더욱 그렇다. 실제의 전쟁처럼 철저히 개인성은 말살되고 그저 전쟁의 톱니바퀴로서의 유닛을 보게되는 셈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유닛들은 끝없이 투입되고 활용되고 소모된다. 오히려 하나의 생명보다는 그저 전투를 진행하기 위한 자원으로서 병력의 소모를 줄이고 보존하는 방법을 궁리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전장의 원리란 결국 이런 것일까 싶기도 하다. 낮은 폭력의 해상도 덕분에, 대량살상을 성공하면 그것이 성과가 된다 즉, RTT 는 달리 말하면 ‘폭력의 해상도’ 가 상당히 낮은 편이다. 결국은 RTT 는 현실의 모사이자 시뮬레이션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가는데다 등장하는 폭력의 규모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차원의 벽을 뚫고 몰입과 공감을 하기보다는 그 차원의 벽을 지속적으로 인식하면서 거리감을 유지하게 된다. 실질적 구현이 아닌 개념적 구현에서 나오는 게임적 허용 하지만 RTT 역시 게임적 허용을 벗어날 수는 없다.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오류 또는 게임적 허용은 각종 무기의 사거리나 속도 같은 전장의 스케일이다. ‘WARNO’ 에서의 맵 크기는 3VS3 맵이 고작 9 km² 로 각 변이 3km 인 정사각형이며, 가장 큰 맵도 24X3km 로 현실의 전장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 또한 게임 내에서 표시되는 거리 단위도 실제 축적에 비해 훨씬 축소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대전차 미사일들은 수킬로미터대의 사정거리를 지니고 있고, 지대공, 중거리공대공 같은 수단은 더욱 길다. 이는 여러모로 극히 비현실적인 상황과 밸런스를 만들어낸다. 단적인 예시는 후방과 전방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생기는 후방에의 위협, 포병과 공군 같은 화력지원 병기의 제한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사실상 게임플레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필연에 가깝다. 게임의 규모를 리얼 스케일로 그린다면, 전력이 출발해 전장에 도착하고 배치가 완료되는 데에만 수시간이 소모된다. 무엇보다도 거리가 늘어나고, 시간이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기동이 제한되는 만큼 포병/전차/보병/항공/헬기 등의 유기적인 협동을 한명의 플레이어 입장에서 만들어내는 건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부분이 게임의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부분이기에 언제나 왈가왈부가 많은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실제 지대공 미사일이 적기를 포착하고 미사일을 발사할 때까지는 최소한 수십초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장이 잔뜩 좁아진 게임 내에서 그렇게 작동한다면 이미 전폭기가 맵 전체를 세바퀴쯤 돌고 폭탄을 모조리 투하한 뒤 코브라 기동 한 번 보여주고 집에 갔을 것이다. 반대로 항공기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한다면 대부분의 제트 군용기는 전장에 체공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짧으므로 원하는 때에 화력 투사를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례가 발생한다. 결국, ‘현대전’ 이라는 개념을 게임 또는 시뮬레이션으로 실증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스케일 다운과 전반적인 간소화가 필수적이다. 적외선 시커가 작동하고 플레어를 뿌려 회피하는 기동을 실제로 구현하는게 아니라 그저 확률 계산으로 간소화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고, 몇몇 게임에서 차량의 연료는 시뮬레이션 대상에서 제외하는 이유도 그렇다. 디지털 세계에 전쟁을 격리하다 이러한 일련의 특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RTT/워게임이 만들어지고 플레이되는 이유와 목적을 이해하는게 우선이다. 최초 프로이센 왕국에서 이루어진 워게임이 그러했듯, 결국 이 게임들은 전술의 개념적 검증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고자 하며 그래서 그 최초의 워게임의 특징을 답습하는 양상을 띄게 된다. 시나리오 중심, 적절한 스케일 다운과 간소화, 실제 전력을 반영한 유닛들. 그리고 그 뒤에 가려진 폭력성까지. 최초의 워게임은 근대 이전까지 일종의 도식화된 귀족들의 결투였던 전쟁을 고도화된 현대전으로 끌어올리는 도구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폭력의 직접적인 묘사가 배제되면서 철저히 효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뮬레이션으로서의 역할이 부각되었고, 그 기조가 이어진 것이 현재의 RTT다. 최초의 워게임에서 시작된 전술의 현대화, 병기의 발전은 마침내 그 억제력을 통해 현실에서 전면전을 근절시키는데 성공했다. 물론 최근에 들어서는 다시 전쟁이 우리의 삶을 침범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세상이 20세기 초로 돌아가지는 않을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에서 각각의 병기와 전술이 디지털 시뮬레이션에서나 그 탄생의 목적을 이루고 있는건 오히려 다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Tags: RTT, 현대전, 전술, 시뮬레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미술의 근간이 될 때, 〈게임사회〉 리뷰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현대 미술을 향유하는 이들과 관심이 거의 없는 일반 관객들 사이의 회색분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딱히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어렸을 때부터 향유해온 것도 아니지만 뒤늦게 재미를 붙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꿈보다 제법 마음에 드는 해몽이 나오면 그걸 감상으로 삼아 마음에 두기. 그게 나름의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 Back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미술의 근간이 될 때, 〈게임사회〉 리뷰 12 GG Vol. 23. 6. 10.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현대 미술을 향유하는 이들과 관심이 거의 없는 일반 관객들 사이의 회색분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딱히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어렸을 때부터 향유해온 것도 아니지만 뒤늦게 재미를 붙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꿈보다 제법 마음에 드는 해몽이 나오면 그걸 감상으로 삼아 마음에 두기. 그게 나름의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현대 미술을 보기 시작한 때부터 비디오 게임 아트는 항상 있어왔고, 자연스레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게 본업과 연결이 되어서일까? 아니면 그저 게임 자체가 흥미로운 소재여서일까? 어쨌거나 ‘미술관에 게임을 집어넣기’ 는 마치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술관에 적합한 게임이란 무엇인가?” 이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굳이 구분지어야 할까?” 같은 번외격 논제는 차치하고 “정말로 게임의 바운더리는 한계가 없어서 미술관에도 적합한, 딱 알맞은 게임의 형태가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은 마치 우주를 향한 궁극의 질문처럼 달콤하면서도 답답한 명제였다. 물론, 그동안 게임을 소재로 한 미술 작업은 이미 많았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히토 슈타이얼이나 하룬 파로키 등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김희천, 강정석 등 많은 이들이 이미 비디오 게임, 그리고 게임 플레잉을 가지고 여러 작업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거기서 더 나아가는 건 게임 자체의 형태, 게임이라는 미디어 자체를 미술관에 들이려고 하는 시도들이다. 즉 이는 개인이 상호작용하는 예술이 어떻게 전시 예술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근래에는 각종 상용 게임 엔진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고, 또 게임 플레이 경험을 가진 세대가 작가가 되기 시작하면서 그런 경향이 더 늘어났다고 생각해왔다. 시도는 정말 많았다. 보는 게임을 소재로 한 영상 작업, 아니면 아예 보는 게임의 형태로 실제 플레이 가능한 게임을 피처링 하는 작품, 김희천의 작품처럼 VR을 끼고 가상현실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 하물며 아예 게임 엔진으로 제작되어 직접 플레이어가 되어볼 수 있는 작품들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미술관에 적합한 게임을 찾는 과정에서 전시관을 들락거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게임사회〉 는 그런 시도의 종합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플레이 가능한 게임, 그리고 게임의 형태를 한 미술 작업, 게임을 소재로 한 영상 작업, 해킹한 게임기 기판으로 실시간으로 작동하는 작품, 또는 게임을 비롯한 서브컬처를 특집처럼 다룬 작품들까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서 위의 그 질문, “미술관에 적합한 게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을 찾았는가 하면, 오히려 그 명제 자체를 뒤집어버리게 됐다. 〈게임사회〉 의 적지 않은 작품들은 그 형식 자체가 ‘비디오 게임’이라는 익숙한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각 작품을 해석하고 이해하는데에는 그런 ‘게이머로서의 경험’ 또는 기반지식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각 작품의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몇몇 전시 작품들이 ‘게이머적인 경험’ 의 연장선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 컸다. 게이머로서의 경험과 결합하여 이 작품을 이해했을 때 그 깨달음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코리 아칸젤의 〈/로데오/ 할리우드 플레이하기〉 였다. 이 작품은 코리 아칸젤이 얼마나 게이머적 경험을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작업이기도 했다. AI툴 또는 자동화 매크로를 통해 양산형 P2W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함으로서 비인격적으로 변한 게임을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소모시킴으로서 나오는 해학이 이 작업의 재미였다. 이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무분별한 결제유도와 반복적이고 재미없는 플레이로 가득 찬 양산형 모바일 게임에 대한 비판으로서 게이머들에게 매우 천착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또다른 좋은 예는 재키 코놀리의 〈지옥으로의 하강〉 이었다. 이 작품은 두가지의 보편적 경험에 기반하는데 먼저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한 사회봉쇄, 그리고 ‘GTA5’ 라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게임의 경험이다. 우리가 ‘GTA5’ 를 플레이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파괴적이고 소모적이다. ‘무엇이든 가능한 오픈월드’ 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며, 좀더 정확히 정의하자면 ‘각종 금기가 해제된 오픈월드’ 라고 할 수 있다. 즉, 가장 먼저 이 게임에서 생각하게 되는 건 살인과 약탈, 방화, 파괴 같은 현실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행위들이다. 형식적으로는 그보다 많은 행위가 가능하지만, 금기가 없다는 점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런 비일상적 일탈로 플레이가 귀결된다. 하지만 〈지옥으로의 하강〉 은 그런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플레이에서 벗어나 그 무대 자체를 보여준다. 얼마나 일상과 닮아있는지, 어떻게 이 세상이 대리세계로 인정받고 있는지를 비춘다. 고속도로 옆 편의점, 발전소 옆 철길, 이곳을 정처없이 걷는 주인공. 마치 플레이어들에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이 살인과 약탈, 기타 파괴적 플레이로 물들였던 이곳이 사실은 판데믹 같은 우울한 시기에 우리가 조용히 묻어 지낼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니었냐고. 개인적으로 가장 나쁜 예는 〈노텔 (서울 에디션)〉 이었다. 전시 작품 중 가장 비디오 게임 그 자체의 형태를 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이 작품을 실망스럽다고 한 것이 의외일 수도 있다. 전시된 작품 중 우리가 알고 있는 ‘비디오 게임’ 의 형태와 가장 닮아있는 작품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오히려 기대치와 작품의 실제가 어긋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노텔 (서울 에디션)〉은 말그대로 비디오 게임 컨트롤러를 쥐고 인게임 3D 공간을 탐험하는 작품이다. 비주얼적으로도 훌륭하고, 흔히 미술가들이 만든 게임에서 발생하는 기술적인 문제도 크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관객은 이 작품을 그 자체로 게임으로 인식하게 되고, 흔히 알고 있는 게임의 기준으로 이 작품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 그렇게 되면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한계, 즉 어디까지나 공간을 구현하고 그 안에서 이동할 수 있도록 했을 뿐, 그 어떤 상호작용이나 탐험의 목적성이 결여되어 있음이 크게 다가온다. 그러한 이유로 〈노텔 (서울 에디션)〉은 전시장에서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낸 작품이기도 했는데, 과연 비 미술인 또는 미술 관객으로서의 경험이 없는 이들, 또는 게이머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작품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지 궁금해서였다. 작품은 누군가 플레이하면 그 주변에 둘러앉아 그걸 지켜볼 수 있게 되어 있었고, 많은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컨트롤러를 이어 받아가며 플레이했다. 하지만 그 반응은 대체로 한결같았다. “그래서 뭐지?”, “왜 아무 것도 없지?” 흥미롭게도 〈노텔 (서울 에디션)〉 그 형태적으로는 가장 게이머적 경험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직접 컨트롤러를 쥐고 플레이하며 겪게되는 경험은 ‘게임’ 이라고 하기엔 너무 황량한 것이었다. 굳이 이 작품을 게임의 장르적 해석으로 보자면 어드벤처 게임에 가까울 것이지만, 이 작품은 탐험의 이유와 목적, ‘왜’ 와 ‘무엇’ 이 결여되어 있었다. 물론 현대 미술 시조에서 그런 명확한 목표 지점을 설정하는 건 불필요한 일로, 또 작가가 관객의 이해를 제한하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결정적으로 이 작품은 ‘게임’ 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면서 동시에 좋은 미술 작업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해졌다. 오히려 정말로 디스토피아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비효율적인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작업들의 긍정과 부정을 정리해보면, 실상 게임을 미술관에 들여놓는데에 중요한 건 ‘형태’ 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지난해 보았던 이안 쳉의 〈세계건설〉 전시에서도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 이안 쳉의 〈사절〉 연작은 무한한 길이를 가진 일종의 자동화 시뮬레이션이다. 그러나 ‘무한한 길이’ 라고 되어있었지만 그 무한한 길이는 그 안에서 유의미한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적절히 하이라이트하지 못한다면 순간 만큼의 가치를 가지기 오히려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 는 스크린 뒤에서 PC를 통해 실시간 렌더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게임 라이브 컷씬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정작 그것이 관객에게 보여지는 방식은 폐쇄된 공간 안의 스크린 하나에서 상영되는 것이었기에 오히려 더 넓게 향유되고 더 깊이 플레이될 수 있는 작품이 이 공간에 갇혀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꼭 게임이라는 형태 자체에 집착할 필요는 없고, ‘게임플레이’ 라는 경험을 어떻게 미술관에서 재현하거나 또는 활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작가와 전시 관계자들이 ‘게이머로서의 경험’ 을 가지고, 이를 ‘게이머’ 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들고 구성하는게 더 중요하다는, 어쩌면 너무 정석적이면서도 원점회귀적인 결론에 다다르고 말았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부분은 이전의 어떤 전시들보다도 영유아, 중년층, 20대 남성 같은 기존의 현대 미술 전시의 주 소비층이 아니었던 이들이 많이 보인 전시였다는 점이다. 그만큼 게임이라는 소재 자체가 더 많은 이들을 현대 미술관이라는 장소로 이끌어낸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많은 관심이 갔다. 하지만 그 안에서 목격한, 그리고 간단히 이야기 해본 관객들에게서는 확실히 조금은 아쉬운 반응들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게이머들이 비디오 게임 아트라는 좋은 가교를 두고도 현대 미술로 넘어오기 어렵게 할까. 이번 전시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비디오 게임과 현대 미술의 불협화음은 ‘친절함’, 좀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UI/UX 였다. 일반 관객들의 시선에서 현대미술은 기본적으로 불친절함을 소양으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는 어느정도 오해와 편견이라는걸 알고 있다. 단순히 의미파악 자체에 여러모로 복합적인 사유와 다양한 의식의 단계가 필요한 것 자체로 불친절함이라고 부르는 건 다소 부적절한 표현이다. 많은 현대의 명시, 명작 영화들이 이해에 난점이 있다고 해서 ‘불친절’ 하다고 비판받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러나 미술관의 미술은 기본적으로 작품 외의 정보 전달을 극히 줄이고 설명이라고 할만한 것은 오직 스테이트먼트 하나만을 남겨 놓는다. 영상 작품들은 이미 상영되고 있고, 관객이 영상의 중간에 들어오게 되면 문맥을 파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즉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도 적고, 관람환경도 그렇지 않다. 그래서 어떤 전시 또는 작품을 이해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계속 ‘수용’ 하면서, 이를 머리속에서 정제하고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고난한 정신적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비디오 게임이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는 UI/UX 의 덕목과 상충되는 면이 있다. 비디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항상 일련의 튜토리얼이나 툴팁을 통해 게임을 이해하고 ‘이 게임을 플레이 하기 위해 지켜야하는 룰, 그리고 필요한 덕목’ 을 학습받는다. 심지어 명시화된 튜토리얼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라도 그런 학습 곡선을 고려해 게임의 구조를 만들기 마련이다. 그리고나서 플레이어는 비로소 게임을 이해해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바로 이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수많은 비디오 게임 아트 전시가 시도되어 왔지만 충분히 상호작용성을 바탕으로 한 게임적 경험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 전시가 적었던 이유는 바로 이 UI/UX 가 관객과 전시/작품 사이의 게임적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것이 가이드라인과 튜토리얼과 툴팁으로 채워져야 한다면 우리가 가지는 이해의 폭은 극도로 좁을 것이고 특정 가치관에 편향된 이해를 다수가 공유하게 되는 다소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결여된다면 이해 자체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기능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걸 하나의 재미로 여기고 있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현대미술이 소수의 향유자들이 아닌 일반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이유는 이 부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일반 대중에게 이제 미술관은 모던한 카메라 세트장처럼 쓰이고 있다. 즉 미술관은 비디오 게임처럼 ‘개인화된 경험’ 을 완전히 얻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환경이자 풍조를 가지고 있다. 이를 이번 전시에서 단적으로 느낀 지점은 바로 각종 ‘불편한’ 컨트롤러와 연결된 게임들을 사람들이 직접 플레이할 때였다. 많은 사람들은 왜 익숙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배치된 컨트롤러로 자신에게 이미 익숙한 게임을 플레이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스테이트먼트에는 그 의도가 써있기는 했지만 일목요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필자가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적응형 컨트롤러 또는 비직관적인 컨트롤러로 게임을 함으로서, 장애인이 일반적인 컨트롤러로 게임을 할 때의 불편함을 비장애인들이 체험한다.” 라는 의도를 덧붙이자 그제서야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결국 현대 미술관 내에서 이루어진 정규 전시이기에 기존에 잡혀있는 미술 전시의 틀을 바꿀 수는 없었고, 그것이 더 많은 이해를 원하는 이들에게 장벽처럼 작용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타까운 점은 분명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잘 녹아있는 좋은 작품들이 많았음에도 이를 수용하기 꽤 버거워하는 이들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게임사회〉 전시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게이머적인 경험이 베이스가 되었을 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MOMA 소장 게임 컬렉션은 그냥 평범하게 전시되었다면 오히려 플레이 되기 어려운 환경에 가져다 놓은, 죽은 게임이 되었을테지만 적절한 컨트롤러의 변형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앞서 언급한 코리 아칸젤의 작품, 그리고 재키 코놀리의 작품은 그 형태는 분명 평범한 영상 전시의 폼을 하고 있음에도 게이머로서의 경험과 천착되어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전시에서 얻은 또다른 깨달음은 게임은 확실히 사람들을 미술관으로 모을 힘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다녀갔지만 그동안 지켜 본 비 미술인 관객들의 행태는 딱 둘 중 하나였다. 그냥 슥 보고 지나가거나, 배경으로 두고 사진을 찍을 뿐. 하지만 이번 전시는 사뭇 달랐다. 많은 이들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려고 했고, 작품을 보며 자신의 게임 경험을 떠올려 이야기하고, 직접 작품을 체험하고자 컨트롤러를 움직였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가진 힘, 그리고 동시에 오프라인 공간이라는 한계는 이중적인 면이 있다. 〈게임사회〉 전시 또한 기존의 미술 전시들이 가진 일종의 딜레마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 작품의 면면에서 느낀 ‘게이머로서의 경험’ 은 즐거웠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들러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을 더 느긋하게, 지긋이 관람하고 싶다. Tags: 게임사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미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개발자, 문화, 그리고 현금: 서구 AAA 게임계의 세 가지 경향

    AAA게임은 예술, 산업, 문화가 결합되는 영역으로서 지속되어왔다. 게임 연구는 그러한 요소들이 - 진전을 계속하는 가운데 - 과거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 정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대 차기작 출시에 대한 기대 및 차기 하이프 사이클에 대한 예측 그리고 다가올 시상식에 대한 흥분 속에서, AAA게임 개발이 보다 높은 예술적 수준의 미래를 향해 최고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높이에 도달하기까지 훨씬 큰 극단의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게임 언론계나 학계의 간섭, 그리고 업계 종사자들의 노동 관련 운동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적법성, 노동자와 플레이어에 대한 착취 등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문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Back 개발자, 문화, 그리고 현금: 서구 AAA 게임계의 세 가지 경향 10 GG Vol. 23. 2. 10. 2022년 12월 8일 할리우드 스타일로 “최고의 게임을 기념하는”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가 9번째로 개최되었고, 1억 3백만명의 시청자들이 시상식을 생방송 스트리밍으로 지켜보았다. 1) 오스카 시상식과 비슷하게, 이 행사는 크고 작은 게임들에 대한 업계 인식의 융합이자, 게임의 예술적 또는 기술적 장점에 대한 검증이자, 게임 마케팅의 방향성이 드러나는 문화적 공간의 지표라 할 수 있다. 작은 규모의 게임도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더 게임 어워드는 AAA마케팅 및 최신 블록버스터 게임들에 대한 문화적 장치(cultural apparatus)다. 실제로 더 게임 어워드는 축하공연이나 수락 연설같은 것을 없앤 속사포 스타일로 시상식을 진행한다. 이는 트레일러나 퍼스트룩, 게임플레이 프리미어 등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인데, 주로 정교한 음악 프레젠테이션이나 리드인(lead-ins) 등이 포함된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메탈기어 솔리드(Konami)〉와 〈데스 스트랜딩(Kojima Productions, 2019)〉 등으로 유명한 슈퍼스타 개발자 히데오 코지마(Hideo Kojima)가 등장하기도 했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Sony, 2022)〉나 GOTY 수상작 〈엘든링(FromSoftware, 2022)〉 같은 거대 AAA 작품들이 스크린에 나타나는 비중에 있어 절대적이었던 가운데 그보다 소규모인 게임들 또한 잊혀졌던 것은 아니었으나, 더 게임 어워드는 주로 큰 예산으로 만들어진 주류 게임들을 축하하고 홍보하는 행사였다. 행사의 밤은 이제는 유명해진 어느 젊은 청년의 히데타카 미야자키(Hidetaka Miyazaki) 수락 연설 난입 사건과 함께 종료됐는데, 이는 우리가 주류 게임 문화로서 아무리 격식을 갖춘다 할지라도 그 수면 아래에는 밈-주도의 사회적 일탈이 끓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더 게임 어워드에서 드러난 사회경제학적 권력의 융합은 서구의 AAA게임에 대한 연구에서 나타나는 3가지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첫째는 거대 예산 게임의 창의적 영역과 예술적 장점이고, 두번째는 그러한 거대 규모 프로젝트를 제작하고 출시하는 개발사와 노동 환경과 관련된 문화적 영역으로, 이는 게이머 커뮤니티에서 발생하고 있는 게임 문화와 엮어있다. 셋째는 프리미엄 엔터테인먼트 경험으로서 게임을 마케팅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수익 요소에 관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AAA게임의 맥락에서 이와 같은 경향을 둘러싸고 생성되고 있는 담론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게임의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장점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게임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위해성과 혜택에 대해 미디어와 학계에서 엄청난 관심을 쏟았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데, 특히 아동과 청소년에 대해 폭력적인 게임 콘텐츠가 미칠 영향에 큰 관심이 모였다. 2) 이 시기 여러 게이머들과 일부 연구자들이 어렴풋이나마 게임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 이해하고 있긴 했지만, 게임을 수준 낮은 미디어 형식으로 보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펠런 파커(Felan Parker)의 언급대로, 게임 및 게임이 지닌 예술적 특성에 대한 논의는 미국 영화비평가 로저 에버트(Roger Ebert)의 악명 높은,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자주 회자되는 “게임은 절대로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언급 이후 2005-2010년 사이에 등장했다. 3) 이와 같은 언급으로 촉발된 논쟁에 언론과 학계의 관심이 모아진 가운데, 그와 같은 ‘비-예술’의 전제로부터 게임이 벗어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감독들이 그러하듯, 게임 디자이너를 자신이 만든 게임에 뚜렷한 예술적 스타일을 남길 수 있는 작가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4 ) 그리고 이러한 경향을 몇달 전 게임 어워드에서 나타났던 핵심 게임 감독들의 높아진 격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AAA게임은 높은 가시성 그리고 생산 및 마케팅을 위한 엄청난 예산 덕에 새로운 콘솔을 위한 플래그십 게임으로서의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 AAA게임은 또한 게임 디자인에 있어 기술적 한계를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2010년 초반 인디게임 붐이 일기 전까지 예술적 게임 담론을 점유해왔다. 브랜든 커우(Brendan Keogh)는 AAA게임 개발사들이 수익 창출을 중시하는 거대 퍼블리셔 밑에서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게임들이 관습적이거나 안정지향적으로 전통적인 AAA게임의 틀에 맞춰 개발되어왔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5) 그럼에도 비디오게임 작가의 전설은 지속되었는데, 게임담론장에서 2010년대에 비해 ‘인디’게임들의 비중이 훨씬 적어진 가운데, 히데오 코지마의 〈데스 스트랜딩(Kojima Productions, 2019)〉 같은 게임은 관습에서 탈피한 게임플레이와 미학을 만들어냈다. AAA게임들은 부분적으로 ‘인디’적인 디자인 및 미학의 요소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왔다. 6) 물론 매년 출시되는 스포츠 시리즈 게임이나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Acitivision)〉 같은 FPS 프랜차이즈처럼 관습을 무시하지 않는 친숙한 AAA게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게임 시상식- 나아가 보다 확장된 게임 저널리즘 - 은 기존하는 친숙한 장르적 관습을 따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살짝 새롭거나 도전적인 것을 제공함으로써 자신들이 작가의 작품이라는 느낌을 주는 인디적인 감성을 살짝 가미한 형태의 AAA게임들을 칭송한다. 게이머와 업계는 그와 같은 방식을 지지하는데, 그 이유는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논쟁이 여전히 대중문화계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접근이 게임플레이를 하나의 가치있는 활동으로 보이게 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판매율을 높이고 소비자 기반을 넓힐 수 있도록 하는 게임의 숨겨진 문화적 속성을 승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AAA개발사 내부의 작업 방식은 안타깝게도 게임 작가에 대한 강조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는데, 학계에서 이 문제를 다룬 바 있다. AAA 노동 문화에 있어 과도한 업무량과 젠더적으로 편향된 작업환경은 눈에 띄는 특징이다. 게임업계의 과도한 업무량에 대한 초기 연구로는 2006년 다이어-위데포드와 드 퓨터(Nick Dyer-Witheford and Greig de Peuter)의 작업을 들 수 있는데, 노동 착취, 번아웃, 이직률, 그리고 이 극단적인 노동 문화 내 노조 결성을 향한 투쟁 등을 다뤘다 7) . 12년 후인 2018년에는 코타쿠의 전 작가 제이슨 슈라이어(Jason Schreier)가 당시 〈레드 데드 리뎀션 II(Red Dead Redemption II, 2018)〉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락스타 게임즈(Rockstar Games)의 ‘크런치 문화’를 폭로했다. 8 ) 근 20여년의 세월동안 거대 예산 게임 개발분야의 문제로 알려져 왔음에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크런치 모드는 여러 분석과 연구의 핵심적인 주제로서 다뤄지고 있는데, 특히 학계에서는 노조 결성 및 노동자 권리와 관련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9) 이와 관련해서 개발사 내 젠더 격차 문제가 있다. 2013년 게임 디벨로퍼 매거진(Game Developer’s Magazine)이 실시했던 설문조사를 인용한 연구에서, 드 윈터와 코큐렉은(Jennifer deWinter and Carly Kocurek)은 “급여에 있어 젠더 격차는 (96%가 남성인) 프로그래밍과 엔지니어링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게임 관련 고용 부문에서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10) 그 이유가 여성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기 때문이거나 여성이 게임업계에 진출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짐작과는 반대로, 연구자들은 여성들이 게임 문화의 여성혐오적이고 해로운 요소의 영향을 받은 개발사 내 업무 문화에 의해 훨씬 더 소외받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보다 빨리 번아웃하게 되고 업계를 떠나게 됨을 밝혀냈다. 11) 게임문화를 다룬 여러 연구들은 AAA게임들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처럼 게임문화와 작업환경 간에 무한으로 반복되는 고리 때문이다. 게임문화나 개발사 내 업무 환경에 있어 그 어떠한 변화라도 게임문화 내 노동 공간과 놀이 공간 사이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중요하다. 최근 AAA게임을 비롯한 게임 전반에 걸쳐 많은 관심이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화에 쏠렸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소액결제, 확률형 아이템, 배틀 패스가 핵심이었다. 이러한 경향이 모바일 및 그리고 프리-투-플레이(free-to-play) 게임과 연관되는 것이긴 하지만, AAA게임의 정의가 규정되어있는 것은 아니므로 프리-투-플레이 모델의 카테고리에 AAA 게임이 배제되어야 할 본질적인 의미는 없다. 배틀패스를 다뤘던 다니엘 조세프(Daniel Joseph)의 연구가 보여주었듯, 〈에이펙스 레전드(Apex Legends)〉, 〈도타2(DOTA 2)〉, 〈포트나이트(Fortnite)〉 등 거대 개발사에서 만든 대작들도 프리-투-모델이나 소액결제를 주요 수익화 모델로서 활용할 수 있다. 12) 조세프가 주목한 것은, 게임사들이 소비자로부터 효과적으로 돈을 뽑아내기 위해 그러한 모델을 통해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어려운 방식으로 게임을 쇼핑 플랫폼으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13) 게이머들로부터 보다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게임 서비스나 시즌제 모델이 크게 강조되면서 소액결제 방식이 AAA게임들의 제작방식을 바꾸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모델들이 얼마나 약탈적으로 진화할 지 크게 우려 된다. 이는 단지 착취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익화 방식이 AAA게임의 제작 및 소비 방식을 변질시킨다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러한 상황은 또한 AAA 게임 개발에 있어 노동 문제에 더해 새로운 형태의 크런치 모드를 만들고 있다. 조세프가 지적하듯 〈포트나이트〉 개발자들은 “...(중략)...게임의 엄청난 성공 및 다음 시즌과 배틀 패스를 끊임없이 개발해야 하는 문제로 인해 주당 100시간에 이르는 노동 시간을 보고”하고 있다. 14) AAA게임은 예술, 산업, 문화가 결합되는 영역으로서 지속되어왔다. 게임 연구는 그러한 요소들이 - 진전을 계속하는 가운데 - 과거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 정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대 차기작 출시에 대한 기대 및 차기 하이프 사이클에 대한 예측 그리고 다가올 시상식에 대한 흥분 속에서, AAA게임 개발이 보다 높은 예술적 수준의 미래를 향해 최고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높이에 도달하기까지 훨씬 큰 극단의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게임 언론계나 학계의 간섭, 그리고 업계 종사자들의 노동 관련 운동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적법성, 노동자와 플레이어에 대한 착취 등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문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메이저 게임 개발사들이 예술적 인정과 명성 그리고 전능한 달러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속에서, AAA 영역에 대한 학계의 작업은 계속해서 해결되지 못한 채 존속하는 문제들을 비출 것이다. 참고문헌 1. Zheng, Jenny. “The Game Awards 2022 Received Over 103 Million Views, Sets New Viewership Record.” Gamespot. December 16th, 2022. 2. Ivory, James D., “A Brief History of Video Games.” The Video Game Debate: Unraveling the Physical, Social, and Psychological Effects of Digital Games. Edited by Rachel Kowert and Thorsten Quandt.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2016, 16-17. 3. Parker, Felan. “Roger Ebert and the Games-as-Art Debate.” Cinema Journal 57, no 3 (2018):77-79. 4. Ibid., 95-96. 5. Keogh, Brendan. “Between Triple-A, Indie, Casual, and DIY: Sites of Tension in the Videogames Cultural Industries.” The Routledge Companion to the Cultural Industries. Edited by Kate Oakley and Justin O’Connor.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2015. 153-154. 6. Lipkin, Nadav. “Examining Indie’s Independence: The Meaning of ‘Indie’ Games, The Politics of Production, and Mainstream Co-optation.” Loading… The Journal of the Canadian Game Studies Association 7, no 11 (2012): 8-15. 7. Dyer-Witheford, Nick, and de Peuter, Greig. “‘EA Spouse’ and the Crisis of Video Game Labour: Enjoyment, Exclusion, Exploitation, Exodus.” Canadian Journal of Communication 31, no 3 (2006): 599-617. 8. Schreier, Jason. “Inside Rockstar Games’ Culture of Crunch. Kotaku. October 23rd, 2018. 9. Cote, Amanda, and Harris, Brandon, C. “‘Weekends Became Something Other People Did’: Understanding and Intervening in the Habitus of Video Game Crunch.” Convergence: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New Research into Media Technologies 27, no.1 (2021): 161-176. 10. deWinter, Jennifer and Kocurek, Carly. “” Gaming Representation: Race, Gender, and Sexuality in Video Games. Edited by Jennifer Malkowski and Treaandrea M. Russworm.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7, 65. 11. Ibid. 12. Joseph, Daniel. “Battle Pass Capitalism.” Journal of Consumer Culture 21, 1 (2021):68-83. 13. Ibid., 81. 14. Ibid.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마크 라제네스, Marc Lajeunesse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온라인 게임의 독성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삼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공평하고 즐거운 놀이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게임 내에서 더 많은 긍정적인 조건을 들어내기 위한 독성 현상에의 이해를 추구한다. 스팀 마켓플레이스와 DOTA 2에 관한 논문을 작성한 바 있고 곧 출시될 '트위치 마이크로스트리밍'의 공동 저자이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인터뷰] : “중꺾마”의 장본인,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인터뷰

    흥미로운 점은 해당 표현을 처음 사용한 문대찬 기자가 ‘게임 전문지’가 아니라, 종합일간지의 기자라는 점이다. 문대찬 기자가 소속된 쿠키뉴스는 2005년에 만들어진 온라인 뉴스 서비스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인터넷 종합일간지가 게임을 다룬다는 점을 넘어, 게이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미디어 일반에 진출하면서 만들어지는 변화를 보게 한다. ‘중꺾마’의 대중화만 하더라도 게임과 게임 산업의 맥락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게임 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장된 사례이다. 이번 호에서 편집장은 ‘중꺾마’의 장본인인 문대찬 기자와 만나, 게임이 서브컬쳐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Back [인터뷰] : “중꺾마”의 장본인,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인터뷰 10 GG Vol. 23. 2. 10. 작년 한 해, 한국 사회를 관통한 밈이 있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이 밈은 2022년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일명 ‘롤드컵’에서 프로게임단 DRX의 데프트(김혁규) 선수 인터뷰로부터 기인했다. 데프트 선수가 직접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인터뷰를 했던 쿠키뉴스의 문대찬 기자가 인터뷰를 요약하는 과정에서 〈DRX 데프트 "로그전 패배 괜찮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표현하며, 해당 문구가 탄생한 것이다. 상대적 약팀이라고 평가받던 DRX가 우승을 하자 해당 표현은 일종의 사회적 밈이 되었고, 이후 다른 e스포츠나 연예계,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 상황에서 사용되며 전국민적인 인지도를 쌓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 유행했던 밈인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하냐?: 누군가의 불평에 대한 반응)과 같이 부정적인 성격이 아니라, 끈기와 의지, 꿈을 희망하였기에 ‘중꺾마’는 정치권, 스포츠계, 기업을 넘어 조선일보나 KBS, MBC, SBS, JTBC 등 기성 언론에까지 사용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해당 표현을 처음 사용한 문대찬 기자가 ‘게임 전문지’가 아니라, 종합일간지의 기자라는 점이다. 문대찬 기자가 소속된 쿠키뉴스는 2005년에 만들어진 온라인 뉴스 서비스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인터넷 종합일간지가 게임을 다룬다는 점을 넘어, 게이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미디어 일반에 진출하면서 만들어지는 변화를 보게 한다. ‘중꺾마’의 대중화만 하더라도 게임과 게임 산업의 맥락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게임 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장된 사례이다. 이번 호에서 편집장은 ‘중꺾마’의 장본인인 문대찬 기자와 만나, 게임이 서브컬쳐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경혁 편집장: 먼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문대찬 기자: 쿠키 뉴스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서 이제 7년 차 기자인 문대찬입니다. 게임과 e스포츠를 취재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원래는 스포츠 기자로 들어왔는데, 저희 팀 자체가 게임 스포츠 팀이거든요. 그래서 2019년 말부터 e스포츠랑 게임 쪽 팀장울 맡게 되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나 그 이전부터 e스포츠를 보신 거죠? 문대찬 기자: 네. 어렸을 때 임요환 선수 팬이었거든요. 그래서 당시에는 e스포츠를 봤었고, 최근에도 후배 기자들 기사를 봐줘야 하니까 e스포츠 동향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죠.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e스포츠를 취재한 것은 작년이 첫 번째 시즌이었어요. 종합지 기자의 e스포츠 취재기 이경혁 편집장: 첫 해에 대박을 터트리신 거군요. (웃음) 스타 리그를 보시다가 이제는 LOL 리그를 취재하게 되셨는데, 그 둘 사이에는 간격과 차이가 조금 있잖아요. 어떤 부분이 조금 다르시던가요? 문대찬 기자: 간극이 있죠. 그런데 저는 오히려 기자를 하면서 (스타리그때 보다) e스포츠를 좀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e스포츠 보다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를 조금 더 좋아했었거든요. 그런데 e스포츠를 취재하다 보면 다른 스포츠보다 선수들과 1대1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보장되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선수 한 명, 한 명을 알아가게 되고 e스포츠의 매력에 확 빠졌어요. 지금은 진짜 누구보다 e스포츠에 열광하면서 챙겨보게 되었죠. 이경혁 편집장: 선수들도 인터뷰에 협조적인가 보네요. 문대찬 기자: 네. 최근 들어서는 더더욱 그런 경향이 강해졌어요. 그리고 그중에서도 정말 프로 의식이 넘치는 선수들이 있거든요. 그중 한 명이 데프트 선수예요. (‘중꺾마’가 나온) 그 인터뷰도 정말 특별했던 게, 이번 시즌에는 패배 인터뷰가 도입됐지만, 원래 시즌 중에는 패배한 선수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없었거든요. 롤드컵이나 국제대회에서만 허용이 되었는데, 사실 그날도 DRX가 패하면서 저는 걱정이 되었어요. 선수들 기분도 안 좋을 거고, 그러면 나올 수 있는 내용도 얼마 없을 거니까요. 그런데 데프트 선수가 너무나 프로 의식이 넘치게 인터뷰를 열심히 해줬어요. 저는 원래도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묻기보다 선수들이 성장하는 서사에 초점을 맞춰서 인터뷰를 하는 편인데, 데프트 선수가 그날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해준 덕분에 저도 그 방향으로 더 집중해서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사실 패배 인터뷰라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우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중꺾마’는 그 상황 속에서도 선수와 미디어의 적극적인 교감에서 나온 결과물이겠네요. 그런데 궁금한 것이 ‘중꺾마’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을 때, 크레딧에 대한 욕심이 안 생기기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문대찬 기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처음에 이 표현이 화제가 되었을 때, 이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는데, 저는 결국 미디어와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해당 선수가 빛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아쉬움이나 그런 건 없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래도 문화체육부 장관이 DRX에게 표창장을 줄 때, 인간적으로 기자님도 같이 받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거든요. (웃음) 문대찬 기자: 팬들도 그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런 말씀들이 고마웠죠. (웃음) 그리고 처음에는 진짜 실감이 안 났어요. 그런데 (언론)업계 분들을 만나다 보니 이분들이 다 이야기를 해주시고, 어떤 선배 기자님은 “오늘이 너의 날이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참 감사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은 선수들의 반응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걸 느껴요. 최근에 어떤 선수와 인터뷰를 했는데, “오늘 ‘중꺾마’ 기자님 만난다고 해서 긴장을 했다”면서 “‘중꺾마’ 같은 걸 만들려다가 말실수를 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게임단 관계자님들도 선수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도 더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렇게 선수들한테 제가 인터뷰를 하고 싶은 기자가 된 점이 가장 뿌듯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만족스러워요. 게이머 DNA를 가진 기자 이경혁 편집장: 정말 많이 달라졌겠네요. 선수 입장에서도 ‘기회가 왔다’고 생각할 수 있고, 요즘 기자는 부정적인 댓글을 들을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데, 그런 걸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멋있습니다. 이제는 ‘중꺾마의 장본인’이 아니라, ‘인간 문대찬’에 대해서 조금 들어보고 싶은데요. 아까 말씀하신 스타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문대찬 기자: 사실 저는 딱 거기까지 봤어요. 최연성한테 결승전에서 패하고 눈물 흘렸을 때요. 그 이후로는 마음이 아파서 스타크래프트를 못 봤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어떻게 보면 ‘택뱅리쌍’으로 대표되는 후기 리그 시대는 못 보신 거군요. 스타를 직접 하기도 하셨나요? 문대찬 기자: 스타는 저도 친구들이 한창 하니까, 같이 많이 했었죠. 다만 저는 스타에서 아무래도 멀티테스킹이 어려웠어요. 롤은 곧잘 하는데, 스타는 그게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1:1 게임을 부담스러워해요. 누군가와 함께 짐을 짊어지고 하는 게임들을 좋아해서 롤이나 배틀 그라운드 같은 게임들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저는 게임을 혼자서 즐긴다기보다 어떤 사회적 커뮤니티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럼 어릴 적에는 어떤 게임들을 하셨어요? 처음 해보신 게임을 기억해보신다면 뭐가 될까요? 문대찬 기자: 제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갔을 때, 지금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컴퓨터를 사주셨어요. 그때 CD가 같이 들려왔었는데,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여러 가지 고전 게임들이 들어가 있는 CD였어요. 거기에 알라딘 게임이 있었는데, 제 기억으로 그게 제 인생 첫 번째 게임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도 한 목숨 죽으면 동생이 한 목숨 하고 그렇게 플레이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웃음) 이후에는 막 엄청 깊게 어떤 게임들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 빠지면 저는 되게 오래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마구마구를 진짜 열심히 했었거든요. 여기에도 친구들이 꽤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했으니까 돈을 많이 쓸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덱을 맞출 정도로 했었죠. 이경혁 편집장: 그렇게 게임을 하시면서 이제는 기자가 되셨는데, 사실 중요한 점은 게임 전문 기자가 아니라 종합지 기자이신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궁금한 것이 있는데, 게임과 e스포츠를 다루는 스포츠 기자와 다른 정치부나 경제부 등의 기자들은 서로 어떤 관계인가요? 문대찬 기자: 사실 회사 내에서도 다른 부서 기자분들과 교류할 일이 거의 없어요. 회사에서도 사실 e스포츠나 게임을 다룬다고 하면 뭔가 큰 걸 하고 잘하는 것 같은데 (라고만 생각하시고) 잘 모르시죠. 그래서 종합 매체에서 게임을 한다는 게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어요. 장점은 일단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는 영역이다 보니까 조금 더 자유롭게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이직을 하지 않고 오래 있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야하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성장 과정에서도 학원을 안 가고 싶으면 안 갔어요. 부모님께서도 그렇게 해 주시는 편이었고요. 그런데 저희 회사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예요. 특히 게임과 e스포츠를 종합 매체에서 다루고 있는 매체가 저희랑 저희 계열사인 국민일보밖에 없어요. 그 상황에서 다른 매체 같은 경우는 (게임을 다루기에) 힘든 부분들이 있는데 저희는 배려도 많이 받고, 게임 전문지가 가지고 있는 이해관계 같은 것들도 없어요. 야간의 일정을 하더라도 다음 날 오전에 쉴 수 있게 해주고 그런 식이어서 저희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거죠. 다만, 단점도 회사의 많은 분들이 게임이라는 분야에 대해 잘 모르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사를 쓰더라도 저희는 엄청 쉽게 썼고, 이것보다 더 쉽게 쓸 수 없는데, 어떤 분들은 너무 어려워서 모르겠다거나 하는 반응들을 보이셔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희 팀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던가 그런 측면들이 있죠. 사실 ‘중꺾마’가 처음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을 때 보고를 했어요. 그런데 당시 사내에선 큰 관심을 못 받았거든요. 단순히 ‘게임계 유행어’ 정도로 생각하신 것 같아요. 월드컵 때 중꺾마가 큰 관심을 받으면서 뒤늦게 노를 젓기 시작했는데, 그런 부분들이 아쉽죠. * 쿠키뉴스 홈페이지 메인 배너, ‘중꺾마’가 들어가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종합지에서 게임을 다룬다는 것에 의미가 되게 크다고 생각해요. 게임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이 영역을 산업적으로만 접근한다거나 하면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이런 맥락에서 종합지에서 게임을 전문적으로 다루시는 분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전망이 좀 있을까요? 문대찬 기자: 그래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롤 파크에 오시는 통신사나 언론사 기자님들이 엄청 많아졌었어요. 기자실이 부족할 정도로요. 특히 결승전에는 무조건 거의 오시고, 이제 개막전도 많이 오셔요. 실제로 경제지나 이런 곳에서도 젊은 기자들에게 e스포츠 좋아하는지 많이 물어보신대요. 좋아한다고 하면 가보라고 해서 취재하시고, 그런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런 기자들이 갈수록 성장하면 점점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이 대중화되려면 미디어 종사자도 많이 늘어야 할 건데, 그런 부분에서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군요. 마지막으로 게임 기자로의 어려움을 여쭙고 싶은데요. 기자님의 기사를 볼 때, 단편적이지 않은 게임들을 다뤄주시는 지점들이 인상 깊었거든요. 그런데 일반 독자들도 함께 볼 수 있는 기사를 쓰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으실까요? 문대찬 기자: 정말 그 부분이 가장 큰 고민이기는 해요. 게임에 대해서 잘 아는 일부 독자층을 만족시키는 기사를 쓸 것이냐? 아니면 이제 종합지의 신분으로, 모두가 다 알 수 있는 기사를 쓸 것이냐? 사실 노력도 많이 해봤어요. 가령, ‘한타’ 같은 용어들도 어려워하세요. 그런데 이걸 쉬운 용어로 바꾸기가 참 어려운 거죠. 홈런 같은 건데, 홈런을 뭐라고 다르게 표현하지는 않잖아요? 어떻게 보면 게임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혀 없으신 것이어서, 저희도 정말 많은 단어들을 바꿔봤어요. 한타는 대규모 교전이라고 쓰거든요. 그런 식의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고, MMORPG도 다중 접속 역할 분담 게임 이런 식으로 최대한 풀어서 쓰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 맥락에서 저희가 만든 기획 중에 ‘쿡기자가 해봤다’라는 기획이 있어요. 이걸 많은 분들이 좋아하세요. 왜냐하면 저희가 거기에 참석하는 기자들의 명함 같은 것들을 만들어놓았거든요. 이 기자는 어떤 게임을 선호하고, 게임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고 시작을 해요. 어떤 기자가 혼자서 기사를 쓰면 그 판단은 해당 기자의 취향에 따라서 독자들에게 전달이 되는데, 각기 다른 취향을 가진 기자 셋이 모여서 한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까 게임사 입장에서도, 독자들에게도 선택을 할 수 있게 정보를 전달드릴 수 있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향들로 많이 생각을 해보고 있어요.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오락실 시대의 대표주자 대전격투 게임, 어떻게 변해왔나

    2000년대 이후 대전격투게임에 초점을 맞춰, 사반세기 동안 대전격투게임과 그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논의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대전격투게임의 주요 변화 양상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은 무엇이고, 그것이 게임 플레이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역사적 맥락, 산업 구조, 기술 변화, 문화 수용 등의 차원을 고려한다. < Back 오락실 시대의 대표주자 대전격투 게임, 어떻게 변해왔나 23 GG Vol. 25. 4. 10. 21세기 사반세기의 대전격투게임 대전격투게임(fighting game)은 말 그대로 플레이어가 컴퓨터나 다른 플레이어를 상대로 싸우는 류의 게임을 말한다. 체스나 장기처럼 추상화되지 않고, 캐릭터끼리 직접 몸을 맞대 치고박는 원초적인 싸움 형태를 취함으로써 플레이어들에게 강한 자극을 주는 장르이기도 하다. 정확하진 않지만, 보통 1976년 세가에서 아케이드용으로 출시했던 <헤비급 챔프(Heavyweight Champ)>를 대전격투게임의 기원으로 꼽는다. 1:1 대결이라고는 해도 복싱시합에 국한돼 있었던 데다 스틱과 버튼도 사용하지 않아 지금과 같은 의미의 대전격투게임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그래도 흑백으로 그려진 두 명의 복서를 글러브 모양의 컨트롤러로 움직이며 펀치를 날리는 방식을 취하는 등 대전격투게임의 기본적 형태를 지녔다고는 할 수 있다. 이후 다양한 대전격투게임이 등장했지만, 대전격투게임이라는 장르를 확립한 대표적인 게임은 <스트리트 파이터 2(Street Fighter 2, 1991)>였다. 마치 영화나 만화의 세계를 그대로 게임으로 만든 듯한 연출과, 특수한 커맨드 입력을 통한 기술 시전이라는 신선한 조작방식에 더해, 플레이어의 실력으로 승부내기를 권장하는 게임 디자인은 많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강한 흥미를 유발시켰다. <스트리트 파이터 2>의 그야말로 엄청난 히트 이후 1990년대 초중반까지 대전격투게임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아랑전설(Fatal Fury, 1991)>, <버추어 파이터(Virtua Fighter, 1993)>, <킹 오브 파이터(The King of Fighters, 1994)>, <철권(Tekken, 1994)>을 비롯해 굉장히 많은 수의 대전격투게임이 발매됐다. 1990년대 게임문화 전반의 흐름을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던 장르였고, 아케이드뿐 아니라 콘솔과 같은 플랫폼으로도 수많은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는 조금씩 대전격투게임 붐이 사그러들기 시작했고, 2000년대부터는 마니아들 중심으로 플레이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스테디셀러 장르가 되어 AAA급 게임부터 인디게임에 이르기까지 매년 대전격투게임이 꾸준히 발매되고 있고, 특히 북미와 일본에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2000년대 이후 대전격투게임에 초점을 맞춰, 사반세기 동안 대전격투게임과 그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논의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대전격투게임의 주요 변화 양상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은 무엇이고, 그것이 게임 플레이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역사적 맥락, 산업 구조, 기술 변화, 문화 수용 등의 차원을 고려한다. 변화의 배경 구체적인 변화 양상을 논의하기에 앞서, 그 변화를 추동한 요인들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기술적 혁신과 플랫폼의 전환, 그리고 온라인화와 네트워크 대전의 부상이 대표적이다. 첫째, 기술적 혁신과 플랫폼의 전환이다. 2000년대 초반 가정용 콘솔과 PC의 기술적 발전은 대전격투게임 환경에 극적인 전환을 가져왔다. 특히 플레이스테이션 2(PlayStation 2)와 Xbox의 등장은 아케이드에서 콘솔 중심으로의 본격적인 이동을 촉진했으며, PC방 문화의 안착은 대전격투게임 플레이 무대 중심을 바꿔놓았다. 고해상도의 그래픽, 향상된 프레임 속도 등 기술적인 발전은 플레이어들에게 아케이드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몰입감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기술적 혁신은 아케이드 산업의 쇠퇴와도 관련 맺는다. 이와는 별개로 ‘바다이야기 사태’와 같은 사건으로 인해 이 시기 한국에서 아케이드의 위상이 급격히 하락하게 된 측면도 있다. 이는 대전격투게임 플레이어의 감소를 야기하는 한편, 가정 내에서의 게임 환경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는 계기로 작용했다. 둘째, 온라인화와 네트워크 대전의 부상이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 확대와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은 대전격투게임의 플레이 양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온라인 대전 기능은 지리적 한계를 없애고 글로벌한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특히 Xbox 라이브(Xbox Live)와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PlayStation Network) 같은 플랫폼은 온라인 대전 환경을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온라인화는 단순한 환경 변화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격투게임에서 중요한 심리전과 반응속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롤백 넷코드(rollback netcode)와 같은 기술이 도입되었으며, 이는 보다 원활한 대전 환경을 제공하고 경쟁을 더욱 심화시켰다. 랭킹 시스템의 확립으로 경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플레이어들 간의 실력 격차를 더욱 명확히 드러내면서 숙련된 소수의 ‘고인물’ 문화 형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변화의 양상들 기술 변화와 온라인화를 중심으로 대전격투게임은 사반세기 동안 여러 측면으로 변모해왔다. 첫째, 2D에서 3D 그래픽 중심으로 이동한 듯 보였던 대전격투게임 트렌드 속에서, 다시 2D 스타일이 부활하는 움직임이 발견된다. 2000년대 초 대전격투게임은 하드웨어의 발전과 함께 본격적인 3D 그래픽 기반으로 전환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철권>, <버추어 파이터>, <데드 오어 얼라이브(Dead or Alive)> 시리즈로, 이들은 다면체 기반의 입체적 전장과 움직임을 제공하면서 시각적 현실감을 극대화하였다. 동시에 2D 기반 대전격투게임들은 조금씩 비인기 타이틀로 밀려났다. <스트리트 파이터 3: 3rd 스트라이크(Street Fighter III: 3rd Strike, 1999)와 같은 2D 고전 명작들도 복잡한 메커니즘과 고난이도 탓에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8년 <스트리트 파이터 4>가 출시되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이 게임은 3D 모델링 기술을 사용하되 2D 게임 플레이를 유지하는 ‘2.5D’ 방식으로, 전통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포섭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과거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새로운 플레이어층도 유입시키는 전략이었다. 이후 <길티 기어 Xrd(Guilty Gear Xrd, 2013)>는 셀셰이디드 렌더링(cel shaded rendering) 기법을 통해 3D 모델로 2D 애니메이션과 같은 비주얼을 구현하여 비평적 호평과 상업적 성공을 모두 거두었으며, <드래곤 볼 파이터 Z(Dragon Ball Fighter Z, 2018)>는 애니메이션 IP를 기반으로 동일 기술을 적용해 폭넓은 플레이어 층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술적·미학적 변화에 대한 고려는 3D에서 2D로의 단순 복고가 아니라, 시각 스타일과 게임 플레이의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둘째, 글로벌 시장 전략과 캐릭터 다양성의 강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전격투게임 캐릭터의 재현은 스테레오 타입의 단순 반복에 가까웠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대전격투게임 제작사들은 캐릭터들의 다양성에 신경을 쓰고 있다. <철권 7(2017)>은 샤힌(사우디), 조시(필리핀), 라르스(스웨덴), 리로이(흑인 무술가) 등의 캐릭터를 도입하였고, 현지 언어(아랍어, 타갈로그어 등)를 사용하는 음성 연출도 탑재했다. 이는 외양적 다양성만이 아니라, 문화적 리얼리즘 구현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의미한다. 또한 캐릭터 성별과 체형의 다양성, 성격과 배경의 서사성도 중요해졌다. <스트리트 파이터 6>의 마농(프랑스 여성 유도 선수), <길티 기어 스트라이브(Guilty Gear Strive, 2021)>의 브리짓(트랜스젠더), <더 킹 오브 파이터즈 XV(The King of Fighters XV, 2022)>의 돌로레스(흑인 여성 샤먼) 등은 기존 남성 중심, 체격 중심의 캐릭터 구성을 넘어서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시장 다변화 전략과 맞물리며, 문화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는 게임산업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이처럼 대전격투게임은 다문화적 접점으로 기능하는 장르로 변모하고 있다. 셋째, 싱글플레이 요소와 RPG적 시스템의 결합이다. 대전격투게임의 본질은 PvP 대결이지만, 플레이어층 확대를 위해 PvE 콘텐츠와 싱글플레이 요소가 강화되는 경향도 보인다. 대표적인 예는 <모탈 컴뱃(Mortal Kombat)> 시리즈의 시네마틱 스토리 모드다. 단순한 컷씬 삽입을 넘어, 할리우드식 내러티브 구조를 도입함으로써 기존 대전격투게임에 새로움을 더했다. 2023년 출시된 <스트리트 파이터 6>의 월드 투어 모드는 더 나아가 오픈월드 탐색, NPC 대전, 캐릭터 육성 시스템 등을 통합한 RPG형 콘텐츠를 구현하였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대전격투게임은 대전 외적인 플레이 구조에서도 기술 습득의 서사화, 성장의 게임 플레이화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장비 아이템, 스탯 강화 등 RPG 요소는 기존 대전격투게임의 단순반복성을 완화하며, 플레이어의 새로운 정체성 형성 및 몰입 강화 기능을 수행한다. 대전격투게임이 경쟁 중심 장르에서 경쟁과 모험이 함께하는 장르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로의 이행이다. 대전격투게임의 온라인화는 게임 플레이 방식뿐 아니라 커뮤니티 성격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아케이드게임장 중심의 직접적인 대면 교류는 온라인 포럼,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플랫폼과 같은 비대면 커뮤니티로 대체되었다. 이 변화는 커뮤니티의 글로벌화와 함께 플레이어 간 정보·전략 공유를 급격히 가속화시켰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성장은, 숙련된 플레이어 중심의 폐쇄적인 문화가 심화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특정 기술과 전략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와 공유가 이루어지는 반면, 신규 플레이어들에게는 다소 배타적인 환경이 조성되면서, 결과적으로는 전체 플레이어층의 확장보다는 특정 그룹의 전문화가 더욱 강조되는 현상을 초래했다. 다섯째, e스포츠의 부상과 글로벌 경쟁문화 확산이다. 2000년대 들어 대전격투게임이 겪은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e스포츠화의 급격한 발전이다. EVO(Evolution Championship Series)와 같은 글로벌 대회가 본격화되면서, 대전격투게임은 전문성을 요구로 하는 종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과정에서 전문 플레이어가 등장하고 스폰서십과 프로리그가 활성화되었고, 이는 게임의 기술적이고 전략적인 수준을 극도로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e스포츠의 발전은 격투게임의 위상을 높이고 새로운 플레이어를 유입시키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지만, 전문적이고 고도화된 경쟁 환경으로 인해 일반 플레이어와 전문 선수 사이의 간극을 넓히는 문제점도 함께 발생시켰다. 여섯째, 인디 개발자의 실험적 다양성 추구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스팀(Steam)’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유통 플랫폼의 확산과 유니티(Unity),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 등과 같은 개발 툴의 민주화로 인해 인디게임 씬의 대전격투 장르로의 진입이 활발해졌다. 랩 제로 게임즈(Lab Zero Games)의 <스컬걸즈(Skullgirls, 2012)는 여성 중심 캐릭터, 복고풍 애니메이션 스타일, 커뮤니티 중심 업데이트 구조로 대전격투 장르의 실험성과 다양성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인디 팀 마네6(Mane6)에서 개발한 <뎀스 파이팅 허드(Them’s Fightin’ Herds, 2020)>는 원래 <마이 리틀 포니(My Little Pony)> 팬 게임으로 시작해 독자 IP로 전환된 사례로, 비주류 미학과 대중성의 융합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인디 대전격투게임들은 기술적 실험, 표현 양식의 다양화, 커뮤니티 참여 모델의 구현 등을 가능케 했으며, 기존 주류 대전격투게임의 방향에도 일정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인디 개발자들은 커스터마이징, 모드 지원, 공개 개발 등의 방식을 통해 개방형 게임문화를 격투게임에 도입한 주체로도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의 사반세기 지난 25년 동안 대전격투게임의 변화는 기술 혁신과 온라인화의 토대 하에, 2D 스타일의 부활, 글로벌 시장 전략과 캐릭터 다양성의 강화, 싱글플레이 요소와 RPG적 시스템의 결합,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로의 이행, e스포츠의 부상과 글로벌 경쟁문화 확산, 인디 개발자의 실험적 다양성 추구 등 다양한 축에서 이뤄져 왔다. 이러한 변화는 대전격투게임의 대중화와 전문화를 동시에 만들어내면서 복잡한 문화적 현상으로 이어졌다. 앞으로의 대전격투게임은 기술 발전과 플레이어 문화의 상호작용 속에서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과제를 계속 안고 나아갈 것이다. 대전격투게임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규 플레이어 유입을 촉진하고, 동시에 숙련된 플레이어를 위한 깊이 있는 경험을 유지하는 전략적 접근이 요청된다. 물론 둘 간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게임 디자인 차원의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초보자들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복잡한 입력 없이도 주요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끔 조작체계를 단순화한다거나,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IP와의 협업을 통해 대중성을 강화한다거나, e스포츠 이벤트와 스트리밍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 장르 인지도를 높이거나, 기존의 플랫폼 제한을 넘어 여러 플랫폼(PC-콘솔-모바일 등)에서 크로스 플레이가 가능하게 하는 등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동시에 숙련된 플레이어들이 요구하는 깊이와 전략성까지 유지하려는 균형 잡힌 디자인을 추구함은 물론이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숙련된 플레이어와 신규 플레이어 간의 실력 간극이 완전히 좁혀지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의 25년 동안 대전격투게임이 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똑같이 즐기는 장르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해 볼 만하다. Tags: 대전격투게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그들만의 게임 바깥에서 서성거리기 : 다크소울3과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 (장려상)

    다크소울3은 나의 첫 패키지 게임이었다.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이 게임을 소개하는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고딕 건물이 빛바랜 색감과 얽혀드는 게임 속 광경이 매력적이었고,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스팀 게임이라는 걸 구매해 봤다. 무턱대고 시작한 게임은 참 까다로웠다. 알고 보니 다크소울은 어려운 난이도로 이름이 높은 타이틀이었다. 이 게임의 디자인은 다양한 함정이나 어려운 전투를 활용해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부각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고 화면에 떠오르는 'You Died' 문구는 일종의 밈이 될 정도였다. < Back 그들만의 게임 바깥에서 서성거리기 : 다크소울3과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 (장려상) 07 GG Vol. 22. 8. 10. 1. 암호 설정 fromgall, 그곳의 ‘전통’ 다크소울3은 나의 첫 패키지 게임이었다.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이 게임을 소개하는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고딕 건물이 빛바랜 색감과 얽혀드는 게임 속 광경이 매력적이었고,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스팀 게임이라는 걸 구매해 봤다. 무턱대고 시작한 게임은 참 까다로웠다. 알고 보니 다크소울은 어려운 난이도로 이름이 높은 타이틀이었다. 이 게임의 디자인은 다양한 함정이나 어려운 전투를 활용해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부각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고 화면에 떠오르는 'You Died' 문구는 일종의 밈이 될 정도였다. 튜토리얼 보스인 '군다'를 9번의 시도 끝에 잡았을 때,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지고 말았다. 동시에 짜릿한 흥분이 온몸을 내달렸다. 거듭된 죽음 끝에 쟁취해낸 승리는 퍽 달콤했다. 그렇게 맵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는데, 공략을 봐도 내 힘으로 온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했다. 그러던 와중 '프롬 소프트웨어 갤러리(이하 : 프롬갤)'라는 사이트를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프롬 소프트웨어 사가 발매한 다크소울3을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이들은 fromgall이라는 통일된 서버 비밀번호를 설정해 까다로운 보스나 맵을 협력해줬고, ‘복지’와 같은 이름으로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뉴비에게 각종 템을 지원했다. 별도의 가입 절차 없이 익명으로도 글을 업로드할 수 있다는 갤러리의 특성은 이제 막 게임이라는 걸 시작한 당시의 나에게 더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눈팅 끝에 익명으로 도움 요청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댓글은 바로 달렸다. “그었음.” 나는 프롬갤의 게시글을 훑으며 게임 관련 새로운 정보를 발견하기도 하고, 타인의 기묘한 플레이를 보며 즐거움을 얻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특정한 게시글은 어떤 순간에서 내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분리감을 느끼게 했다. 프롬갤의 '전통'이었다. ‘어떤 한 집단에서 꾸준히 전해져 내려오는 행위’라는 전통의 사전적 의미를 환기하듯, 다양한 사람이 게임 내에서 유사한 행위를 수행하고 그것을 인증하는 형식으로 게시글을 작성했다. 많은 갤러들은 이에 긍정적으로 동조함으로써 긴 수명을 유지했다. 이 특정한 게시글은 일정한 포맷을 갖고 있다. 그 골자는 이러하다. 요르시카라는 이름의 NPC가 있다. 이 NPC는 '암월의 검'이라는 계약을 주관한다. 플레이어는 그와 계약을 맺고 특정 아이템을 모아 바쳐 보상을 얻는다. 아이템을 얻는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지난한 노가다를 요한다. 모든 노가다를 마쳐 보상을 다 얻은 플레이어는 요르시카를 (창의적으로) 죽인다. 2. “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 1) 프롬갤에 게시된 글을 바탕으로 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전통 포맷을 한 번 살펴보자. “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는 글은 프롬갤의 전통의 요소를 모두 갖췄다. ‘드뎌(드디어) 끝났다’는 부사와 동사를 통해 작성자가 요르시카와 계약-서약자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장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작성자는 NPC의 이름 뒤로 디시인사이드에서 욕설 ‘시발’을 변용한 ‘야발년’을 결합하여 이 인물에게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캡쳐된 게임 화면에서 작성자의 캐릭터는 ‘탐욕의 낙인’이라는 머리 장비를 장착하고 있다. 이는 캐릭터의 발견력 스탯을 올려주는 장비로, 아이템 노가다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상자를 뒤집어 쓴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의 모습은 그 자체로 노가다 행위를 증빙해준다. 다크소울3에서 발견력 스탯을 증가시키는 장비는 제한적으로 존재하므로 공물 노가다에 뛰어든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외관은 전형적인 구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스크린샷 속 캐릭터의 모습은 작성자와 유사한 경험을 겪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표상이 된다. 작성자는 이제 막 암월의 검 노가다를 끝냈다. 공물 아이템 30개를 모아왔을 때 요르시카가 이를 보상과 교환하며 출력하는 특수 대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왼쪽 하단의 UI는 작성자의 캐릭터가 장착하고 있는 장비를 보여주는데, 윗칸은 주문 아이템이 할당된 자리이다. ‘암월의 빛의 검’이라고 적힌 흰 글씨는 스크린샷 속에서 캐릭터가 대검에 인챈트하고 있는 기적의 이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적은 암월의 검 계약의 최종 보상이다. 작성자는 대사를 확인했으며, 노가다의 보상을 획득했다. 따라서 프롬갤의 전통이란 곧 게임 내 성취를 인증하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요르시카라는 NPC가 인게임에서 제공할 수 있는 물리적(인벤토리에 기입되는) 인센티브를 모두 취득했다. 이제 다른 동기가 개입하지 않는 이상 그와의 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 이에 그는 요르시카로부터 받아낸 기적을 살해에 직접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요르시카 어금니 꽉 깨물어라..’는 문장은 막 행할 폭력을 예고한다. 그는 자기 캐릭터가 암월의 빛의 검 기적을 대검에 바르는 순간적인 모션을 포착함으로써 역동성을 강화하며 이미지를 끝맺는다. 한편으로 NPC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죽였는지는 글의 매력을 판가름하는 요소가 된다. 이 글에서 인용한 게시글의 작성자는 오른손에 로스릭 기사의 대검으로 요르시카를 가격하려 한다. 그런데 UI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검의 이미지 우측 상단에 빨간 X자가 표시되어 있다. 이는 작성자의 캐릭터가 대검 아이템을 장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스탯을 갖지 않았다는 알림이자 경고다. 요구치를 충족하지 않은 장비는 제 성능을 낼 수 없으며 미진한 피해를 준다. ‘일부러 데미지 낮춰서 더 때릴꺼라는 생각은 안하십니까? 당신’이라는 타 갤러의 댓글은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작성자의 행위에 개연성을 부여해준다. 타인이 내러티브를 붙여 해석해줌으로써 작성자의 게시글은 전통의 계보에 안착하는 데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즉 전통이란 프롬갤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축적된 일정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발화 형식이라고 바라볼 수 있다. 3. 게임에서의 죽음 문제 여기서 내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살해 행위 그 자체가 아니다. 율이 게임 플레이를 두고 “플레이어가 게임 내부의 규칙과 상호작용 하면서 그 자신의 목표, 레퍼토리, 선호를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한 바 있듯, 게임은 플레이어의 직접적인 개입을 필요로 한다. 플레이어의 상호작용과 몰입을 강화하기 위한 요소로써 죽음은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죽음은 지속해오던 모든 상태 일체로부터 정지되는 것이며,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는 영원한 단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게임 속 죽음은 플레이어가 규칙을 이해하게 해주는 수단이 된다. 특히나 RPG 게임과 같은 장르에서는 길을 막는 적을 제거하면서 특정한 장소에 도달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게임 메커닉으로 차용해 왔다. 플레이어가 경험한 죽음은 내부 규칙을 이해할 단초가 되며, 피드백을 거쳐 적을 성공적으로 살해할 경우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역량을 높인다. 게임에서의 죽음은 바로 이 지점에서 플레이어 개인의 폭력성·사회성에 대한 우려와 만나기도 한다. 화면 속이지만 누군가를 찌르고, 때리고, 살해하는 행위는 규범과 법률 속에서 자란 교양 시민과는 반대 선상에 놓인 행위로 이해된다. 게리 영은 이를 STA(Symbolic Taboo Activity)로 설명한다. 이는 가상에서는 가능한 행위이나 현실에서는 법과 도덕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들이라는 것이다 2) . 그러나 플레이어의 행동 범주를 설정하는 절대적인 배경으로 게임의 규칙이 존재한다. 특정한 행위를 유도하는 일련의 규칙이 있는 이상 이를 개인의 비도덕성 문제로 환원하기는 어렵다는 측면이 존재한다 3) . 실제로 요르시카를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인 '요르시카의 성령'은 강력한 살해 동기로 작동한다. 이렇게 바라보았을 때 단순히 요르시카를 죽이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주로 플레이어 개인이 그 게임 세계 내부에 시선을 두고 플레이를 수행하고 완결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는 놀이가 일상생활과 분리된 그 고유의 질서를 갖는다는 ‘매직 서클’의 의미를 환기한다. 4. 여기 ‘나쁜 남자’가 있다 프롬갤 전통이 갖는 독특한 지점은 커뮤니티에 전시하여 공유하는 과정에 있다. 전시는 게임 밖의 세계에 위치한 청중을 동반한다. 독특한 플레이는 화제성을 갖기 마련이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의 인터페이스는 경우에는 ‘추천’을 받아 ‘개념글’로 올라가는 구조를 통해 화제성을 수치화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위해 원칙과 같이 보편적인 범주로 규정된 것 이상으로 발휘된 폭력이 심저에서 불쾌감을 자극할 때, 게시글 아래에 달린 경악성의 댓글은 그가 수행한 괴멸적인 플레이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즐길 수 있다. 니스는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지는 행위에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즐거움을 준다”고 이야기한다. 4) 이 ‘나쁜 남자’와 같이 규범을 위협하는 존재에 자기를 동일시할 수 있는 데서 즐거움은 증폭된다. 전시는 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할수록 좋다. 그러한 목적성을 갖고 특정한 라인을 따라 행위를 수행하게 되면 갤러들은 익숙한 내용에 익숙한 반응과 익숙한 호의를 내비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플레이가 따라가야 할 일종의 포맷이 생기는 셈이다. 그렇게 형성된 게시판 내의 놀이 형식에 맞추어 나의 플레이를 만드는, 게임의 매직 서클 내외부를 넘나드는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프롬갤이라는 공동체 내의 동력이 게임 내 플레이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에서 작성자는 NPC를 폭행하기 위해 대검을 선택했다. 대검이라는 무기 종은 프롬갤 내부에서 특정한 상징성을 갖는데, ‘상남자’라면 마땅히 들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무기로 플레이하는지에 따라 ‘게이’와 ‘진짜 남자’를 구분하는 발화를 프롬갤 내에서 목격할 수 있다. 게이와 상남자의 구분을 통해 프롬갤이라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남성성에 대한 상상을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직검과 방패의 조합을 의미하는 ‘직방’은 이상적인 남성성을 갖추지 못한 ‘게이’와 동의어로 활용되는데, 이는 구르기를 통해 공격을 피하는 대신 방패로 막아내는 게 남자답지 못한 행위로 여겨지는 탓이다. 대검을 들기 위해서는 캐릭터가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어야 한다. 방패를 들지 않고서 자신의 체격을 훨씬 상회 하는 무기를 든 캐릭터는 그 자체로 공세적인 인상을 준다. 그는 비열하게 방패 뒤로 숨지 않는 ‘진정한 사나이’나 다름없다. 이는 수잔 제퍼드가 레이건 시대의 할리우드 남성 재현을 설명하기 위해 표현한 ‘하드 바디’를 떠올리게 한다. “지치지 않는, 근육질의, 무적의 남성 육체”에 대한 환상을 바탕으로 프롬갤은 “자신의 뜻을 남에게 강요하기 위해 강화된 몸”을 꿈꾼다. 5) 그러는 한편 암월의 검 계약은 플레이어를 노가다로 인도하며, 그는 희박한 확률이 그저 터지기만을 바라면서 주체성을 상실한다. 플레이어는 무력한 확률 앞에서 억울함을 환기한다. 프롬갤의 갤러들은 이를 남성 섹슈얼리티의 문제로 치환하여 요르시카를 정복함으로써 주체성을 되찾으려 한다. 게시글 작성자의 캐릭터는 대검을 들 수 없는 스탯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소화하기 힘든 장비를 들기를 고수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프롬갤이라는 집단 내부에서 설정된 남성성의 환상을 입고서 요르시카를 살해한 셈이다. 5. 밈 앞에서 웃지 못할 때 이길호는 디시인사이드에서 발생하는 게시물이 끝없이 분화하고 변형되는 과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산물은 하나의 갤러리 안에서 생산된다. 그것은 갤러들 사이의 관계에서 결과적으로는 어느 특정 갤러의 결과물로 도출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생산물의 소스는 명백히 다른 갤러에게 제공받았다. 그것은 여러 갤러들의 손을 거치면서 변형을 맞는다. 최종적으로 하나의 갤러가 일종의 ‘완성본’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매 순간 새로운 변형의 힘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미완성’이다.” 6) 이러한 갤러리 내 생산물의 분화 과정은 밈의 발생과 활용 방식을 닮아있다. 본래 밈이란 리처드 도킨스가 특정한 문화 요소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한 문화 유전자의 개념이나 온라인 생활에서는 달리 통용된다. 주로 밈이란 “특정한 이미지, 영상, 대사나 어휘 등이 유행하면서 퍼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7) 밈의 재미가 “공동의 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며, 이에 밈이 호응을 얻은 것은 “개인주의 시대에 나타나는 하나의 증상”이라는 분석이 존재한다. 8) 밈이 생산되는 환경은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와 유사해 보인다. 갤러들은 모여든 게시판에서 해당 주제를 갖고 말하기 위해 존재한다. 친목질을 배제한다는 엄격한 수평 관계를 유지하며 그저 한 개인으로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디시인사이드의 게임 게시판이 유머러스한 공간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게임 플레이라는 공감대를 나누는 과정에서 타 갤러와 동질감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유머란 곧 집단 내부에서 통용되는 규율이나 사고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에서 유머를 느낀다면 그것은 어째서인가? 또 유머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전통이라는 밈에서 유머를 느낄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프롬 갤러들이 발화하는 여성 혐오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들 공동체 내부에서 승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르시카를 살해하는 게시글은 2016년 다크소울3이 발매된 이래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주 개념글로 올라갔다. 2022년 프롬 소프트웨어의 신작인 엘든링이 출시된 이래, 엘든링의 열기를 즐기는 지금의 시점에서 요르시카를 죽이는 전통은 이제 개념글에서 찾아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프롬갤의 전통을 전통으로 만들어낸 동원을 상실하지 않은 이상, 새로운 전통이 태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다만 밈이 될 정도로 화제성을 가진 플레이가 아직 전시되지 않았을 뿐이다. 나쁜 남자가 되기 위해 안달 난 프롬갤 앞에서, 나는 그저 서성거리고 있다. 1) 권천. “[일반] 똥3)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 2021.11.28.등록. 2022.06.02.접속. 프롬소프트웨어 마이너 갤러리.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fromsoftware&no=2383063&page=1 2) Young, G. (2019). Enacting immorality within gamespace: Where should we draw the line, and why? In A. Attrill-Smith, C. Fullwood, M. Keep, & D. J. Kuss (Eds.), The Oxford handbook of cyberpsychology (pp. 588–608). Oxford University Press. pp. 589. 3) 미구엘 시카트. 김겸섭 역. 컴퓨터 게임의 윤리(n.p.: 커뮤니케이션 북스, 2014 4) Young, G. (2019). Enacting immorality within gamespace: Where should we draw the line, and why? In A. Attrill-Smith, C. Fullwood, M. Keep, & D. J. Kuss (Eds.), The Oxford handbook of cyberpsychology (pp. 588–608). Oxford University Press. pp. 600. 5) 수잔 제퍼드. 이형식 역. 하드 바디(n.p.:동문선, 2002) 6) 이길호. 우리는 디씨. (2012). 이매진: 서울. 82쪽. 7) 정지우. “무엇이 밈이 되는가”. 민음사. 릿터(32). 14쪽. 8) 이자연. “밈 검열, 그게 진짜이긴 해?”. 민음사. 릿터(32). 30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자기 소개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데스티니2를 오래 즐겨왔고, 다음 작인 마라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익숙한 게임이 주는 재미와 낯선 경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보려 고민하고 있습니다.

크래프톤로고

​게임세대의 문화담론 플랫폼 게임제너레이션은 크래프톤의 후원으로 게임문화재단이 만들고 있습니다.

gg로고
게임문화재단
드래곤랩 로고

Powered by 

발행처 : (재)게임문화재단  I  발행인 : 유병한  I  편집인 : 조수현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로 114, 2층(방배동)  I  등록번호 : 서초마00115호  I  등록일 : 2021.6.28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