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유료결제는 영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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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2. 12. 10.
1. 게임 중소기업 대표 M씨의 일상
경기도 판교에서 중소 게임 개발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M대표는 요즘 들어 자주 조급한 마음이 든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풀린 풍부한 시중 투자자금 덕분에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방치형 게임 하나만 가지고도 쉽게 VC로부터 투자도 받고 대기업 퍼블리셔도 구할 수 있었던 그였다. 그러나 이 축복받은 코로나가 서서히 끝나가자 사람들은 게임을 플레이 하는 대신 바깥으로 나가 스포츠를 즐기고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람들의 집콕과 재택 근무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시중의 투자 자금 역시 게임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작년 초부터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말부터 시중 금리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투자사는 은근슬쩍 전화를 걸어와 투자 자금의 회수 가능성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3년 안에 우리 지분 엑싯할 수 있는거죠 형님? 형님만 믿습니다!”
투자사 P팀장의 능글맞은 농담을 그는 은근히 경멸하고 있었다. P는 8년 전 한 중견 게임개발 기업에서 M대표의 부사수로 일했던 후배 개발자였다, 아직 M대표가 세파에 시달리기 몇 해 전 지금보다는 조금 더 순수한 마음으로 인디 게임 회사를 처음 창업할 당시, P는 M대표 밑에서 기획팀 대리를 맡고 있던 30대 초반 청년이었다. M대표는 사업 감각이 남달랐던 그를 팀에서 빼내 같이 창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회사에 남는 쪽을 택했고, 얼마 뒤 판교에서 가장 건물이 크다고 자부하는 큰 게임 회사의 사업팀으로 이직해버렸다. P가 이직한 뒤 2년쯤 지났을 무렵 그는 전화를 걸어와 M대표를 그 커다란 건물로 불러냈다.
"형님, 이제 이상적인 게임 만들기는 이제 그만두고 시장이 호응하는 게임 좀 만드시죠. 밑의 직원들도 먹고 살아야죠.”
몇 년 전만 하더라도 M대표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창업을 선택한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난 몇 년간 국내 인디게임 씬에서 제법 얼굴을 알린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섬마을 소녀의 탐험기를 소재로 한 플랫포머 게임으로 한 인디게임쇼에서 게임 디자인 상을 수상한 이후, 그는 이렇게 자기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면서 외롭지 않을 수 있겠다고 처음으로 느꼈다. 이듬해 그는 상해임시정부의 요원의 암살 이야기를 바탕으로 잠입 액션 게임을 제작하여 평단과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동시에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스팀(Steam)에서 M대표 회사의 게임은 평점은 매우 높았지만, 판매량은 시원찮았다. 퍼블리셔 없이 판매한 게임은 기껏해야 몇 만 카피 수준이었다. 그 매출로는 직원들 월급 주기에도 빠듯했던 것이다.
그는 지금 내년쯤 영남지방 어드메에 새로 들어선다는 글로벌 게임센터를 찾아가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이지만 본사 주소만 그 동네로 옮겨두고 알바생 두어 명을 현지에서 고용하여 출근하는 척 해놓으면, 1억 이상의 개발 지원금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래, 기차로 2시간 반 정도면 하루만에도 출퇴근을 할 수 있네. 이만하면 주말 부부도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M대표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깔린 2년 전 출시한 방치형 게임 앱을 실행시켜 보았다. 미소녀 캐릭터를 수집하여 성장시키는 방치형 게임이었다. 그는 메타버스 붐 때 이 게임의 미소녀 카드들을 NFT로 만들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그래서 이 게임의 후속작으로 게임센터의 지원사업을 따고 후속 투자도 유치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M대표는 사실 태생이 그렇게 주도면밀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오히려 낭만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디게임 씬에서는 이상론을 부르짓던 그였다. 게임업계의 사람들은 그가 술자리에서 대기업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경멸하듯 욕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M대표 역시 회사의 생존 앞에서는 자신의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M대표가 만나본 투자사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플랫폼을 PC나 콘솔에서 모바일로 바꾸고, 장르도 최근 트렌드에 맞는 게임을 추종하라고 권했다. 더불어 확률형 아이템을 포함한 부분유료결제를 필수적으로 도입하고,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과 게임 밸런스를 조화시킬 라이브 인력을 확충할 것을 권했다. PC 플랫폼에서 패키지 다운로드 형태로 한 카피씩 게임을 파는 모델은 한물 간 구식이라고,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 큰 돈을 만질 수 없다는 조언을 해왔던 것이다. 그 중 M대표가 가장 동의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게임을 절대 처음부터 재미있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이었다. 한국 유저들의 주머니를 열기 위해서는 아주 조금만 재미있게 게임을 만든 뒤, 돈을 더 내면 쉽게 게임을 이길 수 있다고 부추겨야 된다는 P팀장의 지론이었다.
페이 투 윈(Pay to win)”이라 불리는 그 방식을 M대표는 그간 게임도 아니라며 경멸해 왔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이전에 출시한 방치형 게임의 성공을 위해서는 페이 투 윈 뿐만 아니라 더 노골적인 비즈니스 모델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M대표는 올해 시도할 신작 게임에서는 미소녀 NFT를 활용한 게임으로 더 큰 투자를 받아 회사를 키울 야망에 부풀어 있었다. 게임센터 본부장 접대를 위해 해외 출장에서 사온 싱글몰트 위스키 케이스를 매만지며 그는 상념에 잠겼다.
2. 게임 비즈니스 모델의 종류와 변천
앞선 장에서 꽁트 형식으로 게임 중소기업 대표 M씨의 일상을 내세운 이유는 한국 게임시장의 화제거리가 대부분 게임 비즈니스 모델로 귀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게임 관련 뉴스는 대체로 게임 디자인이라든가 게임 문화와 관련된 것보다 회사의 매출액 규모나 확률형 아이템이나 P2E 등과 같은 특정한 비즈니스 모델의 성패 여부에 관한 것이 주종을 이룬다. 이처럼 한국 게임시장의 비즈니스 모델은 다른 나라의 경우보다 종류도 다양하고 그 성격 또한 게임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마다 다르고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지만, 대략적으로 7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1) 결제가 없는 방식 2) 동전투입식 결제 3) 패키지 결제 4) 정액제 결제 5) 부분유료결제 6) 가상화폐 기반 P2E, NFT 방식 7) 정기구독(subscription) 결제 방식이 그것이다. 이 중 1)에서 3)번까지는 해외에서 선도했던 모델이었으나, 4)번에서 6)번까지는 한국 게임업계가 선두 그룹에 끼어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최근 대부분의 부분유료결제는 모바일 플랫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나, 그 시작은 PC 온라인 게임이 기반이었다. 2000년대 초 NHN의 PC 게임 플랫폼 한게임에서 정액제 과금 방식 대신 아바타 장식용 아이템을 유료로 팔기 시작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부분유료화를 해외에서는 ‘free to play’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게임은 무료로 제공하고 광고나 아이템 판매를 통해 개발비를 보충하는 방식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부분유료화로 판매하는 아이템이 단순한 장식용에 그치지 않고 게임 밸런스에 영향을 주게 되면서 부터였다. 통상적으로 게임의 결제 방식은 게임 플레이와는 상관없이 게임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유료 아이템을 구매한 유저와 무료로 플레이하는 유저 사이에 게임 밸런스에 차이가 생기게 되면 결제 방식은 더 이상 게임 플레이의 외부에 있다고 보기 어렵게 된다. 특히 최근 모바일 MMORPG의 결제 방식은 확률형 아이템과 강화형 아이템을 조합하여 유저들이 지속적으로 결제를 유도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필요한 아이템만 결제하면 되기 때문에 실제로 게임은 무료라는 인상을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 게임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여 무료로 플레이하는 유저가 결제 없이 넘어가기 어려운 구간을 설계하고 결제를 통해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게 된다.
일부 플레이어는 이와 같은 부분유료화 결제 방식을 활용하여 게임 시작부터 결제를 하면서 게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하였다. 국내 모바일 게임은 대부분 상위 5% 이내의 납금 유저들, 이른바 ‘고래’들이 하위 95%의 일반 유저들이 납금한 규모보다 더 많은 금액을 투입한다. 이 때문에 국내의 몇몇 게임들은 게임 밸런스의 절묘한 균형보다는 상한선 없는 결제를 유도하는 비즈니스 모델 주도의 게임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2020년 기준 한국 게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6.9%이며, 매출 규모는 19조원 가량으로 세계 4위에 해당한다. 이러한 양적인 성장의 대부분은 부분유료화를 통해 달성된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져 온 부분유료화 제도는 확률형 아이템의 날개를 단 뒤 한국 게임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3. 부분유료화 제도의 균열과 새로운 결제 방식
영원토록 존속하여 한국 게임유저들의 마지막 한 푼까지 빨아먹을 것 같았던 확률형 아이템의 기세는 최근 몇 년 사이 상당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게임 유저들이 투명하지 않은 확률형 아이템의 시스템에 환멸을 느끼고 조직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넷마블의 〈페이트 그랜드 오더〉에서 시작된 이용자들의 불만은 엔씨소프트의 〈프로야구 H2〉와 〈리니지M〉 문양 시스템 롤백 사건을 거쳐 넥슨의 〈마비노기〉, 〈메이플 스토리〉 확률 조작 사건으로 점차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 트럭 시위 형태로 시작된 유저들의 조직적인 저항은 최근 대부분의 게임으로 확장되어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개발사의 무분별한 과금 요소를 지적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의 집단 행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의 이용자들이 게임사에 항의하기 위해 벌인 마차시위.
이러한 사태 속에서 한국 게임업계가 대응했던 방식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는 자율 규제 방식이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한국게임산업협회는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을 출범시켜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자율규제 방식은 국회로부터 확률형 아이템 공개, 더 나아가 확률형 아이템 규제의 입법화를 늦추기 위한 일종의 꼼수라고 볼 수 있다. 21대 국회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되어 있으며, 소위와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확률형 아이템에 관한 문제는 입법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문제가 전환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젊은 세대들일수록 게임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는 과도한 과금 시스템에 저항이 심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확률형 아이템을 버리고 확정형 아이템 중심으로 게임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8월 라인게임즈가 출시한 〈대항해시대 오리진〉의 경우 확률형 아이템 대신 ‘특권’이라 이름 붙은 1만원에서 9만9천원 상당의 확정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확정했다. 본래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CBT 진행 당시 확률형 아이템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기획하였으나, 유저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확정형 아이템 모델로 변경한 바 있다.
* ‘특권’이라는 이름의 확정형 아이템만 판매하고 있는 〈대항해시대 오리진〉.
물론 이러한 확정형 아이템 역시 부분유료화 결제 방식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변화의 의미는 적지 않다. 게임 밸런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 확률형 아이템 방식이나 확정형 아이템 비즈니스 모델은 전 세계 게임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용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과금 모델은 중화권이나 일부 동남아 시장을 제외하면 게임을 유통하기 어려운 단점이 존재했다. 때마침 중국이 사드 사태 이후 한한령을 통해 한국 게임의 판호 발급을 극도로 제한하면서 한국 게임 신작이 중국에 출시되기 어려운 상황도 겹쳐서 발생했다. 국내 게임회사들로서는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하여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거나, 〈PUBG Mobile〉처럼 중국 회사와 합작하여 중국 게임의 마크를 달고 중화권 시장에 게임을 출시하는 어려운 방식을 택해야만 했었다.
그간 국내 게임회사들의 과도한 과금 유도 비즈니스 모델은 한국 게임의 세계화를 막는 주범이었다고 볼 수 있다. 창의적인 게임 디자인이나 세계관의 개발보다는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국내 게임 대기업들은 과거 10년 전과 비교하면 개발 조직에 비해 사업부와 대외 조직이 큰 폭으로 확장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분유료화 결제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결제 방식을 시도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메타버스와 가상화폐 붐을 타고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유혹하는 “플레이 투 언(Play to Earn, 이하 P2E)” 방식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여러 게임을 묶어 플랫폼에서 매달 혹은 매년 일정한 금액을 과금하는 정기구독 방식이다. P2E 방식은 국내의 경우 위메이드에서 개발한 〈미르4〉가 대표적이다. 〈미르4〉는 가상화폐 위믹스와 연계하여 게임 내 특정 아이템을 가상화폐로 환전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 국내의 게임법 상 게임 머니나 게임 내 아이템은 현실의 화폐로 환전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국내 유저들은 VPN 등의 우회 방식을 거쳐야만 이러한 환전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르4〉는 국내 버전과 해외 버전이 빌드가 다른 글로벌 투 빌드 형태로 서비스되고 있다. 해외 버전에서는 캐릭터의 NFT도 판매되고 있는데, 이 역시 국내에서는 환전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국내에서 게임 아이템의 현금 환전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많은 게임 회사들이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이용한 P2E 모델의 게임을 다수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1차적으로는 〈미르4〉처럼 국내와 해외 버전을 다르게 출시하여 게임 아이템 환전이 합법화 된 해외에서만 해당 게임을 서비스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또한 상당수의 유저들은 VPN 등을 활용하여 해외 우회접속을 통해 환전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 회사 입장에서는 이를 묵인하고 방조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많은 게임회사들은 재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메타버스의 붐에 편승하여 장기적으로는 메타버스가 규제가 심한 게임법을 우회하여 별도 입법 과정을 통해 아이템 환전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게임 서비스 과정이 다소 번거롭더라도 이러한 P2E 모델을 채택한 게임사가 늘고 있다.
* 〈미르4〉에서 게임 내 아이템 흑철을 DRACO로 교환하는 방법, DRACO는 해외 버전에서 위믹스로 교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 국내의 가상화폐 거래 사이트 연합체인 DAXA에서는 위메이드가 주관하는 위믹스가 유통량 고지 등에서 문제가 있다고 발표하여 연내에 상장폐지를 결정한 바 있다. 통상적으로 화폐의 유통 주체는 국가인데, 가상화폐는 탈중앙화라는 개념을 내세워 해당 화폐의 몇몇 오피니언 리더나 일부 조직, 혹은 회사가 이러한 화폐의 유통량과 방식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토론 과정이 DAO 등의 조직을 통해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탐욕에 눈이 먼 일부 회사나 조직이 가상화폐의 자전 거래나 유통량 허위 고지 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위믹스 상폐 사태나 테라 폭락 사태 등은 가상 화폐가 소수의 의지에 따라 가격이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P2E나 NFT 같은 가상화폐 기반의 결제 방식은 점점 유저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가을쯤 〈엑시 인피니티〉나 〈미르4〉처럼 P2E 기반의 게임들이 득세한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전 세계에 걸쳐 통화 유통량 축소와 금리 인상을 통해 가상화폐 관련 산업이 극도로 축소된 상황이다. 작년 연말 3N을 위시한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이 컨퍼런스 콜 등을 통해 대부분 P2E나 NFT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중 대다수는 자사의 주가 관리를 위해 원론적인 답변을 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가 다시 활황을 띄게 될 때 가상화폐 관련 비즈니스 모델은 언제든 다시 부상할 수 있다. 그 때까지 게임 회사들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고 통제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과 통화 유통 시스템을 만들지 지켜볼 일이다.
* 단돈 1천원에 가입 가능한 엑스박스 게임패스.
부분유료화 제도에 균열을 가져온 또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은 정기구독 결제 방식이다. 사실 이 모델은 최근에 부각되기는 하였지만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졌다. 신문이나 잡지의 오래된 정기구독 모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EA는 2014년부터 자사의 플랫폼 오리진의 게임을 일정 금액을 받고 무제한 플레이할 수 있는 “EA Play”라는 정기구독 시스템을 서비스 해왔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엑스박스 게임패스”라는 구독 모델을 통해 최근 콘솔 게임 판도를 바꾸기도 했다. 사실 바로 이전 세대인 8세대 게임기까지만 하더라도 엑스박스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을 따라잡기 버거워하는 언더독에 불과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젊은 세대들이 더 이상 게임을 패키지 형태로 구매하지 않고, 세일 등을 활용하여 다운로드를 통해 저렴하게 구매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를 활용하여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스박스 게임 패스를 첫 달 1천원에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제공하여 많은 게임 유저를 유치할 수 있었다. 첫 달만 이용하더라도 한 번에 수백 개의 게임을 동시에 제공받기 때문에 유저 입장에서는 스팀 등에 유통되던 PC 게임의 상당수를 거의 무료에 가깝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엑스박스의 성공에 영향을 받아 소니 역시 올해 6월 자사의 구독 모델을 개편하여 “PS 플러스 에센셜”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특히 엑스박스 게임 패스는 인디게임 개발자들에게도 홍보의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일종의 계약금까지 제공하고 있어 예전에 비해 많은 서드파티 게임사들을 확보하고 있다. PS 진영에 비해 독점작이 적다는 평가를 받았던 엑스박스 진형은 물리적인 패키지를 포기하고 자사의 하드웨어에서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고정관념을 버리면서 새롭게 부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구독형 서비스는 여전히 패키지 다운로드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스팀이나 에픽 스토어에도 심각한 고민을 안겨줄 것으로 판단된다. 게임의 종류가 비교적 적은 편인 에픽의 경우는 필요할 경우 구독형 서비스를 병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출시된 게임이 4만 종 이상인 스팀의 경우는 기존 게임 보유 유저의 반발이나 이익 배분 체계의 복잡함 때문에 구독 경제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4. 나가면서
이처럼 2022년의 연말을 맞는 지금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게임 플레이의 외부에 존재하는 거래 행위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 이제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 플레이와 밸런스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게임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사업적인 요소가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만드는 회사와 개발자의 입장은 늘 조심스럽다. 유저들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하며,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트렌드를 선도하는지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여러분이 중소 게임회사를 운영하는 M대표의 입장이라면 어떠한 비즈니스 모델을 선택할 것인가? 게임의 본질은 재미이기 때문에 창의성이 뛰어난 인디게임을 만들어 고전적인 패키지 다운로드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유행하는 장르의 모바일 게임을 확률형 아이템으로 도배하여 수익성을 꾀할 것인가? 한 발 더 나아가 P2E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