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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T : 현대의 전면전을 디지털 세계에 격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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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8. 10.

게임의 역사는 곧 승부의 역사이고, 그만큼 게임은 오랫동안 승부를 위한 각종 적대적 상호작용의 장으로서 발전해왔다. 굳이 적대적 상호작용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쓴 이유는, 그 유명한 ‘핑퐁’ 의 공 쳐내기도 포함되고, ‘스타크래프트’ 에서 상대 기지에 핵폭탄을 쏘아버리는 것도 포함될 정도로 게임의 승부는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런 카테고리 하에서 전면전 그 자체를 다루는 전략/전술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적대적 상호작용의 총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류가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폭력인 전쟁 그 자체를 다룬다는 건 그 자체로 흥미롭고, 이게 유희로서 향유될 수 있다는 사실도 어쩌면 흥미롭다.


그리고 그 전쟁을 다루는 게임들은 그 속에서도 서로 다른 방식을 취해왔다. 최초의 전쟁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군부의 워게임은 말 그대로 전쟁의 예행연습이었고, 그러한 방식을 거의 그대로 디지털로 옮긴 게임들도 속속 탄생했다. 워게임, 또는 RTT(Real Time Tactics)는 그중에서도 현실의 전쟁을 가장 그럴듯하게 묘사하는 게임이다.


남들이 보기엔 다 그게 그거 같은 전략/전술 시뮬레이션 중에서 RTT, 또는 워게임이 유독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일종의 장르론이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불완전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대체로 그렇다’ 라는 전제로 시작한다.



고증에서 나오는 비대칭 무기의 대결


RTT와 다른 전략, 전술 게임과의 차이는 디테일하게 파고든다면 수없이 많지만, 그 차이가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굳이 풀어서 설명하자면 RTT 와 RTS를 비롯한 다른 전략/전술 장르와의 차이는 그 지향점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RTT 는 현대전을 비롯한 각 시대별 전장을 실제와 유사하게 묘사하는, 시뮬레이션으로서의 목적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워게임이라는 형태의 시초 자체가 실제 군부의 모의전에서 출발했으니 당연하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강한 밀리터리 테마, 디테일한 시뮬레이션을 위해 한정된 전장/부대 단위 지휘, 하지만 전쟁을 스케일 다운하기 위한 비교적 빠듯한 게임적 허용을 통한 전력 간의 극적인 비대칭성 등이 드러나게 된다.


전력 간의 비대칭성은 현실의 무기체계에서 비롯된 특징이다. 보병용 개인화기로 탱크는 물론 전투기까지 때려잡는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해병 같은 사례와는 달리, 현실의 무기체계는 저마다 명확한 목적성을 가지고 그에 부합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현실의 보병화기는 당연히 장갑차량만 등장해도 무력화되기 마련이고, 장갑차량이나 전차에게는 사신과도 같은 대전차 미사일의 경우에도 몇몇 예외사례를 제외하면 당연하게 헬리콥터 같은 공중 표적은 공격시도도 할 수 없고, 대보병용으로 전용할 수 있다해도 비용 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그러한 용도로 전용하는걸 아예 지원하지 않는 병기들도 있다.


다른 게임 플레이어들이 본다면 비대칭성을 넘어 제대로 디자인된 유닛이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극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병기 개발에서의 기술적 한계와 비용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여느 게임처럼 만능병기가 실존하지 않는다. 모든 병기는 해당 병기를 운용할 군사집단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ROC에 맞춰 설계되고, 생산되며 이 ROC 란 성능과 비용, 기술적 한계 사이에서 교묘히 줄타기를 한 결과이니.



그래서 현실의 병기들은 같은 미사일이라는 분류 하에서도 어디서 발사하는지,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지, 비행/유도 방식이 무엇인지에 따라 무수히 많은 하위분류로 다시 나뉘며, 각각의 병기는 제각각에 맞는 용도로 적절히 사용될 것을 요구한다. 쉽게 말해 닭잡는 칼은 닭만 잡을 수 있고, 소잡는 칼로도 닭은 잡을 수 없거나 잡을 수 있어도 그 효율이 심히 떨어지게 된다는 것.


RTT 는 현실의 전장을 구현하는 것이 공통된 목적이므로, 지극히 제한적인 게임적 허용을 통해 이러한 실제 전장의 기본 구조를 답습한다. 그렇기 때문에 RTT에서 요구하는 숙련이란 이러한 상성 구조를 이해하고 적절한 병기를 배치, 그리고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몇가지 특징이 더 파생된다. RTT에서의 정찰은 단순히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적의 포진과 병기 배치를 파악하여 어떤 무기에 취약한지를 반드시 알아내야 하며, 내가 가진 전력 중에서 상대가 대처하기 어려운 수단을 찾아내 공격하거나 방어해야 한다. 이 정찰을 통해 미리 내 자산을 준비해두어야 한다. 이러한 병기들이 전장에서 갑자기 솟아나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병기에는 상성이 있다. 단지 RTT 에서는 그 상성이 매우, 굉장히 극단적일 뿐이다

많은 RTS 경우 다소 상성이 맞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유닛이 어느정도 다용도성을 보장하기에 수적 우위나 회전력을 무기로 승부를 걸 수 있다. 하지만 RTT에서는 경보병이 수십 분대가 있어도 전차 한대를 상대할 수는 없고, 마찬가지로 전차를 소대 단위로 모아놓아도 한대의 공격헬기를 당해낼 수는 없다. 때문에 이러한 상성 싸움은 정찰전, 심리전, 그리고 나아가 게임에 들어가기 전 적절한 부대편성까지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


그래서 RTT는 끝없는 가위바위보 물리기의 굴레에 빠지기 쉽다. 내가 상대의 모든 병력에 맞춰 보병, 대전차 화력, 대공, 공격헬기 같은 수단을 모두 마련해놨다 하더라도 병력 배치에 따라서 취약지점은 생길 수 있고, 상대가 그 지점을 적절한 수단으로 파고들면 조합은 깨지게 된다. 만약 그렇게 잃은게 대공병기라면 상대의 전폭기나 공격헬기가 파고들 것이고, 그럼 전차를 잃고, 그럼 보병이나 적 전차가 들이닥치고… 이러한 연쇄적인 전장붕괴가 실현된다.


예시로 들만한 게임은 RTT 에서 가장 최근작들이라 할 수 있는 ‘WARNO’ 나 ‘브로큰 애로우’ 같은 게임들이다. 이들 게임은 일정한 크기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면전을 그리고 있으며 지상전을 기반으로 몇가지를 추가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본격적으로 각각의 병기가 세분화되고 기술 발전에 따라 전차, 군용기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2차 세계대전까지가 사실상 RTT/워게임의 한계선이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 크다.



벌어지지 않은/을 전쟁을 상상하기


현대전을 다룬 RTT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게임의 성격을 결정하는 부분은 의외로 시나리오다. 톰 클랜시 스타일의 테크노 스릴러까지는 아니지만, ‘그럴싸한 가상 전쟁 시나리오’ 는 언제나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가장 뜨거운 화두이며 이 가상 전쟁 시나리오가 게임에 등장하는 세력과 병종, 그리고 대결의 구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이미 결과까지 모든 역사가 결정되어 있는 제 1, 2차 세계대전 같은 과거의 전쟁을 다루는 게임들 보다도 현대전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들이 더욱 두드러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그에 준하는 전면전 또는 총력전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에 준하는 위기 상황은 냉전이라는 상황 하에 언제나 존재했기에 이 소재를 활용하여 각 시대별 전장의 상황을 가상으로 그려나가는 식이다.


소련이 미국 본토를 침공한다는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그만큼 흥미는 배가 된다

현대전 기반의 RTT를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소개한 작품인 ‘월드 인 컨플릭트’ 는 1990년 즈음 냉전 붕괴 직전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WARNO’ 역시 냉전 말기를 다룬다. 두 게임의 시기는 비슷하지만 그 세부적인 시나리오와 게임의 진행 양상은 조금씩 달라진다. ‘월드 인 컨플릭트’ 는 냉전말 경제붕괴에 다다른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최후의 발악으로 미국 본토를 포함한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1세계를 직접 침공하는 다소 허구성이 강한 시나리오다.


반면 ‘WARNO’ 는 그 제목처럼 실제 유럽 전장에서 NATO 와 WP 의 전면 충돌을 실제 당시의 작전계획을 반영하여 프랑크푸르트 근방의 풀다 갭 공세 같은 시나리오로 그려낸다.


여기에 가장 최근작인 ‘브로큰 애로우’ 는 보다 시대를 뒤로 이동하여, 냉전은 끝났지만 최근 불거지는 신냉전이라는 긴장관계를 활용하여 러시아 연방과 미군의 21세기 충돌을 그린다.


이러한 특징으로 각각의 게임들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차이는 우선 투입되는 병기의 차이이다. 냉전 말기를 다룬 두 게임은 실제 당시 배치되어 있던 세력과 장비들을 묘사하여 PIVAD 같은 현대에는 도태된 장비가 등장하고는 한다. 시대상 공통적으로 대공 병기의 위력이 부족한 편이며, 당시 NATO 나 WP 의 교리에 따라 특정 분야에 특화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인다.


‘브로큰 애로우’ 는 보다 미래의, 현시점에 가까운 근미래로 상정할 수 있으므로 대부분의 주력전차들이 능동방어시스템을 채용할 수 있으며 다수의 스텔스기 전력도 등장한다. 여기에 상상력을 좀더 발휘하여 그 실체가 불분명한 사일런트 호크, 러시아 연방의 신규 제식 전차이기는 하나 실제로 양산과 투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T-14 아르마타 전차까지 등장한다.


냉전 시대에만 존재했던 폐기된 전쟁 시나리오를 디지털 게임으로 구현해보기

이렇게 등장하는 병종, 장비가 다르다면 자연스럽게 각 게임이 묘사하는 전장의 모습도 달라진다. ‘WARNO’ 에서의 주력전차들은 대전차미사일에 매우 취약하지만, 능동방어시스템이 달린 ‘브로큰 애로우’ 의 주력전차들은 보병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게 된다. 또한 ‘월드 인 컨플릭트’ 는 그 설정을 살려 모든 장비가 공수 형태로 투입된다.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의 경우에도 실제로 존재하는 지역을 분쟁 시나리오에 맞춰 등장시키기 때문에 제각각의 특징을 보인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루는 ‘스틸 디비전’ 시리즈는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투를 죄다 다루고 있고, ‘워게임’ 시리즈 중 ‘워게임: 레드 드래곤’ 은 동북아시아와 한반도가 등장하여 매우 익숙한 지형이 펼쳐진다.


이러한 기본 시나리오를 통해 플레이 기반이 만들어지고, 게임의 전체 골격이 시대에 맞춰 설계된다. 각 게임은 몇가지 공유하는 플레이 측면의 공통점이 있지만(조작 방식, 연막 같은 기본 기능들의 역할) 그 공유하는 부분들 만큼 시대적 차이, 또 시대별 전장에 대한 해석 차이로 차별점을 가진다.


이는 워게임의 기본에 맞닿아 있다. 모든 워게임은 정해진 시나리오 하에서 출발하며, 그 시나리오는 바로 작전계획이다. 즉 기본적으로 민간의 유희로서 진행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군대에서 펼치는 워게임과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여기서 오히려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거나 일부러 누락시킬 수 있는 유희적 창작을 통해서 더 흥미로운 창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극대화 된다.


이런 시나리오 플레이에서 보이는 한가지 더 재미있는 현상은 플레이어들이 일종의 플레이 외적인 면에서 몰입을 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게 된다는 점이다. 90년대 초반 냉전의 시나리오는 매우 유명하고, 모든 밀리터리 매니아라면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들이 모두 달려들어 시나리오의 타당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에서 실제로 한 번도 실전에서 붙어보지 않은 병기들 간에 전면전이 펼쳐진다는 건 제인 연감 뜯어보며 병기 스펙 구경하는 밀덕들에게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일이다. 비록 그 결과가 반인륜적이지만, 이는 살상병기를 떠나서 어떤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하는 감상과 맞닿아 있다. 오히려 가공의 전쟁, 어차피 1시간 뒤면 휘발되어 사라질 혈흔과 포연이기에 철저히 감정을 배제하고 마치 카탈로그를 보고 물건의 성능을 가늠하고 실험을 거치는 것 같은 활동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기호 뒤에 가려진 저해상도의 폭력성


전쟁을 다루는 게임은 언제나 전쟁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지적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RTT는 가장 전쟁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전장에서의 개인의 말살을 그 자체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두가지 특징 때문에 RTT/워게임이야 말로 전장의 잔혹성, 비인간성으로부터 일종의 방관자적 스탠스를 취한다.


하나는 전장과 플레이어 시점 사이의 극단적으로 먼 물리적 거리, 그리고 두번째는 철저히 개별 유닛을 하나의 인격체나 생명, 어떠한 개인이 아닌 병기로서만 취급하고 집중하는 특징이다. 이러한 이유로 RTT 특유의 사실적이면서도 극히 간접적인 전장의 체험이 이루어진다.


전장과 플레이어의 물리적 거리감을 활용해 살육의 잔혹함과 유희로서의 게임 사이 간극을 활용하는 사례는 여럿 있어왔다. ‘콜 오브 듀티’ 의 그 유명한 건쉽 미션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RTT/워게임은 다른 전략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그 거리가 플레이어로부터 상당히 멀지만, 지휘하는 부대의 규모나 전장의 스케일이 더욱 크다보니 게임 플레이 내내 유닛의 실제 모습을 보는 경우는 아예없고 유닛 기호만 가지고 컨트롤을 할 정도로 그 거리감이 더 극적으로 벌어져 있다. 이는 실제 유닛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기호를 가지고 추상화한다는 느낌을 더 강화한다.


이렇게 온통 기호로 가득 들어찬 화면에서 유닛 하나에 몰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앞서 설명한 유닛들이 가진 강력한 비대칭성과 확실한 목적성에서 비롯되어 각각의 유닛은 그들의 장비로 대표되게 된다. 같은 보병 분대라 하더라도 어느 한 분대를 골라 투입하고 활용하는 이유는 그 보병이 가진 장비들(대전차미사일, SAM, 기관총 등) 때문이지 그 보병의 개인성, 인격 따위가 아니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실제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이들 보병은 그저 장비의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즉, 이런 게임에서 보병을 볼 때는 그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느냐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그냥 자벨린 대전차미사일, FIM-92 스팅어 라는 병기 자체로 인식하곤 한다.


보병 분대가 이럴진대, 전차나 헬리콥터 같은 탑승 병기는 더더욱 그렇다. 실제의 전쟁처럼 철저히 개인성은 말살되고 그저 전쟁의 톱니바퀴로서의 유닛을 보게되는 셈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유닛들은 끝없이 투입되고 활용되고 소모된다. 오히려 하나의 생명보다는 그저 전투를 진행하기 위한 자원으로서 병력의 소모를 줄이고 보존하는 방법을 궁리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전장의 원리란 결국 이런 것일까 싶기도 하다.




낮은 폭력의 해상도 덕분에, 대량살상을 성공하면 그것이 성과가 된다

즉, RTT 는 달리 말하면 ‘폭력의 해상도’ 가 상당히 낮은 편이다. 결국은 RTT 는 현실의 모사이자 시뮬레이션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가는데다 등장하는 폭력의 규모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차원의 벽을 뚫고 몰입과 공감을 하기보다는 그 차원의 벽을 지속적으로 인식하면서 거리감을 유지하게 된다.



실질적 구현이 아닌 개념적 구현에서 나오는 게임적 허용


하지만 RTT 역시 게임적 허용을 벗어날 수는 없다.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오류 또는 게임적 허용은 각종 무기의 사거리나 속도 같은 전장의 스케일이다. ‘WARNO’ 에서의 맵 크기는 3VS3 맵이 고작 9 km² 로 각 변이 3km 인 정사각형이며, 가장 큰 맵도 24X3km 로 현실의 전장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 또한 게임 내에서 표시되는 거리 단위도 실제 축적에 비해 훨씬 축소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대전차 미사일들은 수킬로미터대의 사정거리를 지니고 있고, 지대공, 중거리공대공 같은 수단은 더욱 길다.


이는 여러모로 극히 비현실적인 상황과 밸런스를 만들어낸다. 단적인 예시는 후방과 전방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생기는 후방에의 위협, 포병과 공군 같은 화력지원 병기의 제한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사실상 게임플레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필연에 가깝다. 게임의 규모를 리얼 스케일로 그린다면, 전력이 출발해 전장에 도착하고 배치가 완료되는 데에만 수시간이 소모된다. 무엇보다도 거리가 늘어나고, 시간이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기동이 제한되는 만큼 포병/전차/보병/항공/헬기 등의 유기적인 협동을 한명의 플레이어 입장에서 만들어내는 건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부분이 게임의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부분이기에 언제나 왈가왈부가 많은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실제 지대공 미사일이 적기를 포착하고 미사일을 발사할 때까지는 최소한 수십초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장이 잔뜩 좁아진 게임 내에서 그렇게 작동한다면 이미 전폭기가 맵 전체를 세바퀴쯤 돌고 폭탄을 모조리 투하한 뒤 코브라 기동 한 번 보여주고 집에 갔을 것이다. 반대로 항공기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한다면 대부분의 제트 군용기는 전장에 체공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짧으므로 원하는 때에 화력 투사를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례가 발생한다.


결국, ‘현대전’ 이라는 개념을 게임 또는 시뮬레이션으로 실증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스케일 다운과 전반적인 간소화가 필수적이다. 적외선 시커가 작동하고 플레어를 뿌려 회피하는 기동을 실제로 구현하는게 아니라 그저 확률 계산으로 간소화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고, 몇몇 게임에서 차량의 연료는 시뮬레이션 대상에서 제외하는 이유도 그렇다.



디지털 세계에 전쟁을 격리하다


이러한 일련의 특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RTT/워게임이 만들어지고 플레이되는 이유와 목적을 이해하는게 우선이다. 최초 프로이센 왕국에서 이루어진 워게임이 그러했듯, 결국 이 게임들은 전술의 개념적 검증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고자 하며 그래서 그 최초의 워게임의 특징을 답습하는 양상을 띄게 된다.


시나리오 중심, 적절한 스케일 다운과 간소화, 실제 전력을 반영한 유닛들. 그리고 그 뒤에 가려진 폭력성까지. 최초의 워게임은 근대 이전까지 일종의 도식화된 귀족들의 결투였던 전쟁을 고도화된 현대전으로 끌어올리는 도구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폭력의 직접적인 묘사가 배제되면서 철저히 효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뮬레이션으로서의 역할이 부각되었고, 그 기조가 이어진 것이 현재의 RTT다.


최초의 워게임에서 시작된 전술의 현대화, 병기의 발전은 마침내 그 억제력을 통해 현실에서 전면전을 근절시키는데 성공했다. 물론 최근에 들어서는 다시 전쟁이 우리의 삶을 침범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세상이 20세기 초로 돌아가지는 않을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에서 각각의 병기와 전술이 디지털 시뮬레이션에서나 그 탄생의 목적을 이루고 있는건 오히려 다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Tags:

RTT, 현대전, 전술, 시뮬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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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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