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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트로닉스’라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이라는 것이 있다. 호기심의 방은 말 그대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진귀하고 이국적인 것들, 때로는 괴이한 것들로 가득찬 공간이었다. 주로 16-17세기 영국에서 개인 컬렉터들에 의해 만들어진 호기심의 방은 박물관의 기원 중 하나라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 공간이 단순히 수집품을 모아두는 곳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수집 공간’은 대중에게 공개되어 보여졌다. 당대에 가치있던 고미술품이나 유물, 또는 명망있는 화가의 작품이 아니었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상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Back ‘아카트로닉스’라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 08 GG Vol. 22. 10. 10.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이라는 것이 있다. 호기심의 방은 말 그대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진귀하고 이국적인 것들, 때로는 괴이한 것들로 가득찬 공간이었다. 주로 16-17세기 영국에서 개인 컬렉터들에 의해 만들어진 호기심의 방은 박물관의 기원 중 하나라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 공간이 단순히 수집품을 모아두는 곳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수집 공간’은 대중에게 공개되어 보여졌다. 당대에 가치있던 고미술품이나 유물, 또는 명망있는 화가의 작품이 아니었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상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호기심의 방의 주인들은 때로는 수집품의 특정 주제를 선정하여 출판물을 펴내거나, 수집물을 통한 연구를 독려하기도 했다. 이런 수집과 보여주기가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현상들―컬렉션의 형성과 보존 및 복원, 그리고 전시―이 갖는 의의를 간과할 수 없다. 부천 신중동의 한 번화가 건물 3층에서도 캐비닛(cabinet)들로 채워진 호기심의 방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2018년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센터, 특히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슈팅 게임 전문이라는 슬로건으로 2018년 개업한 아카트로닉스다. 이곳을 들어서는 순간 소위 아케이드 게임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라면 돈파치(首領蜂, どんぱち), 케츠이(ケツイ ~絆地獄たち~), 트윈비(Twin Bee, ツインビー) 등의 슈팅게임 기판들이 가동되는 있는 모습에 놀랄 것이다. 게임 자체가 아니더라도 3개 스크린을 가로로 연결해 서비스되는 다라이어스(Darius, ダライアス) 기체의 생경한 위엄과 같은 걸 접할 수 있는 아카트로닉스란 누구에게든 호기심을 자아낼 수 있는 곳임이 분명할 것이다. 아카트로닉스(Akatronics)라는 이름은 현역 플레이어인 이곳 점장의 플레이네임인 ‘Akatian’의 ‘Aka’와 ‘electronics’의 ‘tronics’를 합쳐 만들어졌다. 이름에서도 어렴풋이 알 수 있듯 이 공간은 점장 개인의 취향과 기준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된다. 아카트로닉스의 최수권 점장은 일산의 한 오락실에서 스탭으로 근무하며 휴가 때마다 일본에 방문해 게임센터를 둘러보고 슈팅게임과 국내에서는 찾기 힘든 몇몇 레트로 게임들에 매력을 느끼면서 아케이드 게임 기판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아카트로닉스 오픈으로 이어지게 됐다. 여기서 그가 기판을 수집할 때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기준은 일본의 각종 아케이드 게임 관련 회사들이 모여 설립한 일본 어뮤즈먼트 머신 공업협회(Japan Amusement Machinery Manufacturers Association)에서 지정하는 통칭 ‘JAMMA’ 규격이다. 이 규격을 위주로 기판을 매입 및 수집하는 것은 ‘현역 플레이어’로서 조작의 반응 속도와 화면 출력까지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1) 여기에 추가로 점장으로서의 취향이 반영되어 아카트로닉스만의 아케이드 게임 컬렉션이 만들어져나간다. 이 수집가의 공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 된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들이 가동, 또는 ‘보존’되어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아카트로닉스의 컬렉션은 현재 약 50개 정도의 기판으로 이루어져있다. 기판과 캐비닛의 수가 상이하기에 가동되는 게임은 수시로 바뀌는데, 최수권 점장은 나름의 노하우로 게임을 가동시키기 적합한지 기체 컨디션을 판단해 기판을 교체한다. 조이스틱과 버튼 상태 등 게임을 쾌적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최적화된 상태를 계속 점검하며 게임을 교체해 내놓는 것이다. 또 CRT 모니터를 확보해두고 매일 같이 점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2) 올해 초 세가(SEGA)가 아케이드 운영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의 유명 오락실들이 폐업한다는 소식 또한 계속해서 들려온다. 모바일 디바이스로 언제 어디에서든 바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고, PC와 콘솔에서도 특정 플랫폼이나 구독 서비스를 통해 원하는 게임을 바로 내려받아 해볼 수 있는 이 시점에서, 한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오프라인의 특정 장소로 가야한다는 것은 이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오락실 세대’라 하기 힘든 90년대생 필자는 이런 상황에서 우연히–아마도 알고리즘에 이끌려–사라만다(沙羅曼蛇, Salamander)와 다라이어스의 플레이 영상을 접한 후 80-90년대 아케이드 게임에 매료되어 ‘현역으로 가동되고 있는 기판' 3) 을 찾아 나섰고, 아카트로닉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는 그저 예전 게임을 해보기 위해 아카트로닉스를 찾아 집을 나섰을지 몰라도, 돌아오는 길에는 아카트로닉스라는 공간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보게 되었다. * 아카트로닉스의 하이스코어 보드 * 케츠이를 플레이하고 있는 최수권 점장 아카트로닉스에서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은 과거의 것으로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점수가 경신될 수 있는 것으로서 현재에도 유효하게 존재한다. 최수권 점장은 아케이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혼자하는 카드놀이의 총칭인 솔리테어(solitaire)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가 아카트로닉스를 통해 제안하는 방법들은 각 게임의 솔리테어로서의 재미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4) 동전 하나로 게임을 클리어하는 ‘원 코인 클리어’는 아카트로닉스에서 가장 장려하는 것이다. 과거 오락실에서는 동전 하나로 오랜 시간 플레이하는 것을 보다못한 사장님들이 게임을 강제로 꺼버렸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기도 하지만, 아카트로닉스에서 원 코인 클리어는 이곳을 방문하는 플레이어들의 목표로 추천된다. 또 여기엔 국내에서 유일하게 집계되는 ‘하이스코어’가 있는데, 일본 하이스코어 협회(日本ハイスコア協会, Japan Highscore Association)의 룰에 기반하여 아카트로닉스에서 집계되는 하이스코어는 플레이어들에게 스코어러(scorer)로서 점수를 격파하는 즐거움을 선물한다. 덧붙여 최수권 점장은 아카트로닉스를 일종의 ‘도장(道場)’이라고도 표현하는데, 마치 도장에서 무술을 수련하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듯, 플레이어들이 아카트로닉스라는 “정해진 장소에서 어디까지 (플레이)할 수 있을지” 5) 시험해보길 원하기 때문이다. 모든 게임은 녹화 가능하고 중계될 수 있으며, 플레이어는 일종의 수련자로서 스스로 플레이의 한계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돌파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 즐거움과 수련의 방식들은 나름의 자취를 남긴다. 매일 같이 집계되고 발표되는 하이스코어, 기록되고 스트리밍되는 플레이들…. 이처럼 아카트로닉스라는 공간에서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은 단순한 과거를 넘어 ‘경기’로서 영원한 현재성을 발휘해야 하는 무엇처럼 제시된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카트로닉스가 궁극적으로 ‘유지’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과거란, 어쩌면 수련자로서의 아케이드 게이머라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고. 나아가, 최수권 점장의 아카트로닉스 자체가 하나의 수련이자 도전인 것은 아닐까? 과거 유럽에서의 호기심의 방이 박물관의 원형처럼 기억되듯, 아카트로닉스와 같은 실천을 미래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아카트로닉스라는 새로운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에서, 진귀한 캐비닛(cabinet)들은 지금도 당신의 플레이를 기다리고 있다. [아카트로닉스 점장님의 추천] 아카트로닉스에 방문한다면 아카트로닉스의 자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3화면의 다라이어스와 테트리스 더 그랜드마스터 3를 꼭 플레이 해보시길! 1) 아카트로닉스 최수권 점장 인터뷰(2022.09.22., 부천 신중동) 2) 위의 인터뷰 3) “게임장 소개” 글의 표현 참고, 아카트로닉스 블로그, 2017년 10월 27일. https://akatian-retronics.tistory.com/3?category=761755 2022년 9월 20일 접속. 4) 위의 인터뷰 5) 위의 인터뷰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독립 기획자) 홍성화 큐레이터학과 예술학을 전공했다. 최근 레트로 게임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전시들을 준비하고 있다.
- [Editor's View] 게임과 소수자, 소수자와 게임
그런 고민의 결과로 ‘GG’ 4호는 ‘소수자들의 게임’을 다뤄보고자 했습니다. 소수자라는 건 단지 숫자가 적은 집단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주류’가 아닌, 주류로부터 스스로가 아닌 ‘대상’으로 취급받는 많은 존재들을 우리는 소수자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게임은 그런 소수자와 얽히는 부분에서 아직까지 짧은 역사 때문인지 고민을 오래 해 오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 Back [Editor's View] 게임과 소수자, 소수자와 게임 04 GG Vol. 22. 2. 10.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게임은 매우 당연하게 서브컬처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좀더 짧게 잡아 10년 전의 분위기도 게임은 서브컬처를 다루는 경우에 자주 거론된 바 있죠. 하지만 요즘의 분위기라면 어떨까요? 여전히 서브컬처로서의 속성을 강하게 띠고 있는 부분들이 있지만, 이제는 대중문화라고 불러도 딱히 이견을 달기 어려운 분위기가 게임 전반을 강하게 지배합니다. 본격적인 대중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관문이 몇 가지 더 있을텐데, 그 중의 하나는 모두에게 가 닿는 문화로서 매체가 가져야 할 범용성일 것입니다. 사회구성원 모두를 불편부당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하고, 그 이용과 재현에 있어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 물론 지금의 범용성있는 다른 대중문화들도 이를 완벽히 구현하는가를 물으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지만, 핵심은 결과보다도 그 지향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민의 결과로 ‘GG’ 4호는 ‘소수자들의 게임’을 다뤄보고자 했습니다. 소수자라는 건 단지 숫자가 적은 집단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주류’가 아닌, 주류로부터 스스로가 아닌 ‘대상’으로 취급받는 많은 존재들을 우리는 소수자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게임은 그런 소수자와 얽히는 부분에서 아직까지 짧은 역사 때문인지 고민을 오래 해 오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크게 재현의 문제와 접근의 문제로 게임과 소수자의 맥락을 조망하고자 합니다. 핀란드에서 보내온 이다 요르겐슨의 글은 유럽에서 진행중인 게임의 소수자 재현 문제에 대한 소고를 담고 있습니다. 김겸섭이 소개하는 곤잘로 프라스카의 접근은 게임연구의 한 축을 이루는, 억압적 현실을 다룰 수 있는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드러냅니다. 게임기획자로도 참여중인 시각장애인 당사자로서의 강신혜 작가는 시각정보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디지털게임에 관한 접근성의 문제를 직접 제기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나아갈 바를 모색케 합니다. 게임 속 여성의 대상화 문제를 직접적으로 미소녀 게임이라는 장르를 통해 다루는 박다흰의 글 또한 게임에서의 재현 문제가 대중문화 시대에서 안게 될 이슈들을 잘 함축합니다. 최근의 트렌드를 다루는 섹션 B에서는 애플, 구글이라는 모바일 대형플랫폼들이 보여주는 인앱결제의 현황을 점검하고, 부분유료라는 수익모델의 부상 앞에서 오랜 게이머로 살아온 게임기획자가 마주하는 고민들을 들어봅니다. 최근 몰락이라는 단어가 붙기 시작한, 하지만 한때 한국 게임문화의 중심이었던 아케이드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도 주목할 만 합니다. 섹션 C에서는 게임이 다루는 사회를 엿보는 글들을 모았습니다. ‘폴아웃’을 통해 오늘날의 미국을 돌아보고, ‘사이버펑크 2077’을 통해 SF로 드러나는 동시대 사회를 생각합니다. ‘디스코 엘리시움’ 속의 디스코가 갖는 의미, ‘동물의 숲’이 드러내는 여가와 자본주의의 문제 등을 다루고, ‘북리뷰’ 코너에서는 ‘리니지’ 바츠해방전쟁을 다뤄 주목받은 소설 ‘유령’에 대한 탈북자라는 소수자 관점으로의 접근을 시도합니다. 인터뷰 두 꼭지는 소수자라는 테마에 맞게 준비했습니다. 국립재활원에서 진행한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 현장에 직접 다녀왔습니다. 난민 문제를 다룬 게임 ’21 Days’를 직접 난민 당사자인 압둘 와합과 함께 플레이한 내용을 정리한 인터뷰 또한 소수자와 게임의 관계를 돌이켜보는 데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4호를 기획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생각보다 소수자 – 게임 문제의 이슈가 잡지 한 권으로 다 담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다는 점이었습니다. ‘GG’는 창간사에 담았던 대로 게임의 문화적 실천을 고민하는 잡지입니다. 4호의 기획은 GG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맛보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느낍니다. 한국 사회에서 게임이 가질 의미를 향한 더 힘 실린 실천이 되기 위한 길에서 4호의 기획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이정표이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매너리즘을 넘어서는 전통의 긍지: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
잘 짜인 레벨 디자인. 플랫포밍의 역사라 부를 수 있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시리즈는 1985년 첫 작품이 등장한 이후에도 현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 시리즈는 40년 정도의 시간을 거치며 시리즈는 수많은 변화를 거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인 플레이 양상은 변화하지 않았다. 달리고. 뛰고. 밟으면서 코스를 돌파한다는 핵심적인 요소다. < Back 매너리즘을 넘어서는 전통의 긍지: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 16 GG Vol. 24. 2. 10. 잘 짜인 레벨 디자인 . 플랫포밍의 역사라 부를 수 있는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 시리즈는 1985 년 첫 작품이 등장한 이후에도 현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 물론 , 이 시리즈는 40 년 정도의 시간을 거치며 시리즈는 수많은 변화를 거쳤다 . 하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인 플레이 양상은 변화하지 않았다 . 달리고 . 뛰고 . 밟으면서 코스를 돌파한다는 핵심적인 요소다 . 밟고 뛴다는 액션 측면은 유지하면서 부가적으로 붙는 아이디어는 시리즈의 첫 작품과는 다른 갈래에서 발전을 이룩했다 . 2D 플랫포밍을 넘어서 3D 플랫포밍으로 전환된 것도 이제 엿말이다 . 매 시리즈마다 새로운 컨셉을 제시하고 넓은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수집품을 찾는 탐색형 타이틀까지 발전이 이루어졌다 .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해지고 마리오 시리즈가 지속적인 변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무르는 작품도 나왔다 . 시리즈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2D 플랫포밍 . 우리가 2D 마리오 시리즈라 부르는 작품들이 그 예다 . 첫 플레이가 익숙해지면서 플랫포밍의 난이도가 점차 오르기 시작했고 그마저도 비슷한 메커닉을 채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 그 결과 , 2D 마리오 시리즈는 여타 3D 마리오나 탐색형과 다르게 변화하지 않는 . 혹은 매너리즘이라는 굴레에 빠지기 시작했다 . 새로운 컨셉은 다른 마리오 시리즈에서 진행하고 있기에 근본적으로는 뛰고 밟고 변신하는 것과 같이 변화할 수 없는 플레이가 자리했다 . 늘 비슷하다는 혹평과 저조한 판매량 . 그것이 11 년 동안 후속작이 나오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 파생작과 달리 11 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 , 자리한 후속작 . 2D 마리오 시리즈의 갈래에 있는 ‘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 ’ ( 이하 슈퍼 마리오 원더 ) 는 이제 익숙함을 넘어 매너리즘이 되어버린 플레이와 흐름을 해체하고 재조립한다 . 다른 시리즈가 근본적인 메커닉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컨셉으로 변화를 추구하듯이 , 효과적이고 쉼 없는 놀라움의 연속으로 본인들의 미래를 새로이 그리고자 했다 . 슈퍼 마리오 원더는 마리오 시리즈이기에 항상 같은 선상에 있던 플레이 양상 ‘ 뛰고 / 밟고 / 변신한다 ’ 는 개념을 유지하고 있다 . 이와 동시에 그간의 시리즈와는 다른 경험을 주기 위한 게임 디자인이 곁들여졌다 . 한 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변화와 플레이 과정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변화를 통해서 슈퍼 마리오 원더는 놀라움이라는 큰 가치를 전하기 시작한다 . 슈퍼 마리오 원더의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단계적으로 진행되던 레벨 디자인을 벗어나는 데에 있다 . 레벨 디자인의 교과서처럼 다가오는 형태 . 즉 , 첫 코스에서 굼바를 밟으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 이는 2D 마리오 시리즈가 꾸준하게 쌓아온 문법이기도 하다 . 플레이어가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플레이를 배우고 엔딩에 도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론이기도 했다 . 순차적으로 설계된 코스별 구조는 레벨 디자인 측면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는 시도이자 결과물이었다 . 게임을 진행하며 조금씩 난이도를 올려나가고 플레이어가 학습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였으니까 . 하지만 한편으로는 명백한 단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 지난 몇 년간 2D 마리오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약점 . ‘ 게임 플레이를 엔딩까지 진행한 사람이 적다는 점 ’ 으로 이어진다 . 플레이 과정에서 선보인 것들을 모두 활용하게 만들고 있기에 , 플레이어의 조작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 조작 타이밍에서 한 번의 실수가 실패로 이어지기도 하며 , 플레이어가 이를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적은 편이었다 . 그리고 동시에 플레이어들이 마주하는 레벨 디자인도 오랜 시간 재생산되며 , 익숙함의 영역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조작과 도전 체계에서 나오는 어려움이라는 감정 . 그리고 시리즈를 지속하며 이제는 익숙해진 레벨 디자인과 플레이 양상 . 슈퍼 마리오 원더는 이러한 두 개의 개선점을 가장 중심에 두고 게임 플레이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 시리즈의 전통이라 부를 수 있는 요소를 개편하고 지금까지 없었던 것들을 덧붙이는 과정과 같았다 . 우선 , 슈퍼 마리오 원더는 이와 같은 시리즈 전통의 레벨 디자인을 벗어나 ,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어느 정도 자유로이 플레이할 수 있는 형태로 두고 있다 . 하나의 메커닉을 선보이고 이를 체득시키는 과정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 동시에 난이도를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두면서 몇 개의 층위로 도전적인 게임 플레이라는 측면을 잡아낸다 . 대표적인 변화는 40 년 가까이 유지되던 시간 제한을 삭제한다는 결정이다 . 시간 제한이 사라지며 슈퍼 마리오 원더의 코스는 탐색을 할 수 있는 장소로 변모했다 . 탐색을 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는 코스에서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장소들을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다룰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개발진은 코스 여기저기에 숨겨둔 것들을 제공하는 한편 , 다음 코스로 넘어가기 위한 ‘ 원더 시드 ’ 라는 수집품을 조건으로 배치해 뒀다 . 이를 통해서 코스의 시작부터 끝까지 죽지 않고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 원더 시드를 획득하는 것이 슈퍼 마리오 원더의 중요한 지점으로 자리한다 . 샌드박스나 탐색형 마리오 시리즈의 그것과 같이 , 플레이어가 평면적으로 구성된 환경을 자유로이 둘러보고 코스를 클리어하는 형태가 된 것이다 . 원더 시드를 찾는 것이 코스 클리어의 진정한 목적이 되고 시간 제한도 없어졌다는 것은 곧 , 꼭 어려운 코스에 도전하지 않아도 진행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 게임 내 상점 등에서 원더 시드를 구매할 수도 있으므로 쉬운 코스를 선택해 엔딩까지 도달하는 방법도 가능해졌다 . 이렇게 개발진은 플레이어가 난이도를 선택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 캐릭터에 능력을 부여하는 ‘ 배지 ’ 나 코스별 난이도 표기 등이 대표적인 예다 . 배지의 경우 플레이어가 난이도를 직접 조정할 수 있는 데에 방점이 찍힌다 . 액션 측면에서 다른 능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 조금 더 멀리 날아가는 등의 기능이다 . 코스 자체의 어려움은 ★의 수로 표기되어 플레이어가 얼마나 섬세한 조작이 필요한지를 바로 알 수 있도록 해뒀다 . 이를 통해서 슈퍼 마리오 원더는 플레이어가 스스로 단계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 이전처럼 정해진 순서대로 클리어를 해야만 엔딩까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 직관적인 표기를 통해 쉬운 코스부터 어려운 코스까지 단계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 다음 월드로 진행하는 것 또한 키 아이템인 ‘ 원더 시드 ’ 가 담당하므로 사람에 따라서는 일부 코스를 거치지 않고도 게임의 끝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 슈퍼 마리오 원더는 도전적인 코스와 그렇지 않은 코스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 이마저도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 적과 접촉해도 사망하지 않는 요시나 톳텐 같은 캐릭터를 통해 한 단계 난이도를 낮추는 것도 가능해졌다 . 온라인 가입자에게 제공되는 멀티 플레이는 끝까지 엔딩에 도달하는 데에 일조한다 . 실시간으로 진행되지만 물리적인 간섭이 없는 ‘ 라이브 고스트 ’ 형태로 멀티 플레이를 설계하면서 플레이어들이 간접적으로 협력하고 부활 지점을 만들도록 했다 . 마리오 메이커와 같이 경쟁적인 요소를 걷어내고 코스 완주에 도움을 주는 형태로 작동한다 . 게임 내에서 다른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받거나 . 의미가 없이 재활용되던 시간이나 점수를 탈피하고 . 플레이어가 지표를 통해 난이도를 선택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을 보면 , 거기서 나오는 결과물은 명확하다 . 혁신적이거나 지금까지 없던 것이 아님에도 2D 마리오 시리즈 내에서는 큰 변화다 . 큰 어려움 없이도 누구나 도전 가능한 플레이를 코스나 메커닉의 직접적인 변화 없이도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한편 , 자꾸 사망해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면 보너스 스테이지와 같은 부가적인 요소를 자연스레 꺼내 간접적으로 돕는다 . 궁극적으로는 구조적으로 치밀하게 설계되었던 게임 플레이 양상이 탐색형 마리오 시리즈의 문법을 곁들이면서 많은 변화를 거친 셈이다 . 40 여년 정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게임 구조가 조금 여유롭게 변화했다 . 그리고 변화를 거치며 필연적으로 생기는 공간들은 새로운 기믹을 더하는 것으로 채운다 .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변화이자 전면에 자리하는 요소인 ‘ 원더 플라워 ’ 의 존재다 . 코스 진행 도중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 원더 플라워 ’ 는 기능적으로는 명확한 즐거움을 준다 . 이전 시리즈의 코스 구성을 보면 차이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 이전 시리즈에서 하나의 코스는 월드 컨셉의 아래에 있었다 . 수중 코스나 성 안 코스와 같이 월드의 컨셉에 맞춰서 개별 코스가 디자인되며 , 이와 어울리는 새로운 기믹과 플레이 방법이 제공되는 구조였다 . 원더 플라워는 이렇게 월드 컨셉 아래에 있던 코스의 디자인을 극단적으로 뒤트는 일종의 ‘ 킥 ’ 이자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에 가깝다 . 이전 시리즈의 경우 , 월드의 컨셉을 따라가면서 코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약간의 제한이 되기도 했다 . 치밀한 레벨 디자인으로 설계되어야 하기에 새로운 기믹을 넣거나 이질적인 요소를 넣기 어려워서다 . 하지만 슈퍼 마리오 원더는 앞서 언급한 구조적 변화로 말미암아 월드 컨셉의 제한에서 보다 자유롭게 다뤄진다 . 코스 중간에 만나게 되는 원더 플라워는 플레이어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점으로 인도한다 . 때로는 퀴즈쇼를 하게 되기도 하며 , 원래 코스에서 보지 못했을 다양한 색감의 플레이 등이 제공된다 .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원더 플라워는 개발진이 구상한 독특한 발상의 총체다 . 코스 자체를 뒤집어 엎어버리기도 하며 , 발상의 근본적인 출발 지점이 기존 시리즈의 한계를 벗어난다 . 심지어 사이드뷰에서 탑뷰로 시점을 바꾼다거나 . 이전까지 진행한 코스 자체를 없애버리기도 하는 등 온갖 상상력들이 여유 공간을 채운다 . 결국 슈퍼 마리오 원더는 코스를 돌파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도록 만드는 타이틀이 아니게 된다 . 이전 시리즈가 초급 - 중급 - 상급으로 차근차근 레벨 디자인과 도전적인 즐거움을 주었다면 , 이제는 다양한 기믹과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형태로 다뤄진다 . 이를 통해서 비슷한 코스처럼 다가오다가도 순식간에 인상과 경험 자체가 달라지는 장면을 마주한다 . 이전에 했던 경험의 확대 재생산이 아닌 , 지속적으로 새로운 경험이 자리하는 것이다 . 새로운 경험과 놀라움의 지속적인 공급은 원래의 마리오 시리즈가 가지고 있던 요소를 발전시킨 것이기도 하다 . 오랜 시간 시리즈를 내면서 익숙해졌기에 경험 자체가 흐릿해졌지만 , 근본적으로는 토관을 거쳐서 새로운 장소가 나왔을 때 . 혹은 블록을 두드렸을 때 나오는 즐거움이 슈퍼 마리오 시리즈가 전하는 핵심적인 경험 중 하나였다 . 하지만 그 당시의 특별한 경험은 현재 시점에서 익숙한 것이 되었고 이제 놀라움을 전하지 못했다 . 원더 플라워는 시리즈가 시간을 쌓아오며 도달했던 ‘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 을 정면에서 비튼다 . 어떤 기믹과 상황이 나올 것인지 알 수 없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경험들이 꽃을 피운다 . 코스마다 하나씩 마련된 원더 플라워는 시점이나 플레이 양상을 바꾸기도 하면서 코스 자체를 두 개의 맛으로 설계한다 . 일반적인 점진적인 난이도 구성을 보여주는 코스는 물론이고 , 놀라움이 가득한 원더 플라워 코스까지 . 다채로운 경험이 자리하게 되는 모습이다 . 정리하자면 , 슈퍼 마리오 원더는 그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을 원더 플라워를 통해 비트는 한편 , 코스의 전반적인 설계는 이전 시리즈의 것을 따르고 있다 . 그리고 자칫하면 어울리지 않을 수 있는 두 개의 요소를 한데 묶어서 뒤섞는다 . 결과적으로 개발진이 시도한 접목은 놀라움이 된다 . 이전 2D 마리오 시리즈에 없던 비주얼과 경험이 자리하는 한편 ,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반복 없이 모든 순간이 발견과 감탄의 연속으로 승화한다 . 이제 2D 마리오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월드 중심의 설계는 없다 . 대신 기믹과 이를 활용하는 디자인이 코스 전반을 관통하며 , 여기서 새로운 기믹과 플레이 양상을 ‘ 원더 플라워 ’ 로 더한다 . 이와 같은 방법론을 통해 슈퍼 마리오 원더는 시리즈 첫 작품이 전했던 놀라움에 가까워진다 . 덩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던 그 때의 감정 . 토관을 타고 지하로 내려갔을 때의 발견과 같은 것들이다 .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면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 시리즈의 한계를 벗어난 슈퍼 마리오 원더는 새로운 자극을 연속적으로 주는 데에 가장 큰 가치가 있다 . 그렇기에 모든 순간이 즐겁고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 지켜야만 하는 플레이 양상과 치밀한 레벨 디자인을 어느 정도 덜어내더라도 놀라움을 택한 슈퍼 마리오 원더 . 오랜 고민 끝에 매너리즘을 탈피하고 감탄과 발견이라는 고전적 가치를 재발견한 타이틀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정필권 농부이자 제빵사이자 바리스타. 현재는 게임 기자로 글을 쓴 지 8년차 입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번영과 몰락과 애도의 이야기, <33원정대>
특히 이야기의 결론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애도에 관한 고민들은 게임이 딱히 어떤 정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회적 참사와 그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애도, 그리고 그 애도를 조롱하는 것이 일련의 문화 코드가 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상당히 무겁고 곱씹어볼 만한 주제를 던진다.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떠난 이들로부터 넘겨받은 그들의 표상들은 남겨진 우리와 어떻게 관계맺으며 가야 할 것인가? < Back 번영과 몰락과 애도의 이야기, <33원정대> 26 GG Vol. 25. 10. 10. ***이 글은 해당 게임의 강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게임을 아직 플레이하지 않으신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이하 <33원정대>)>라는 인상적인 게임의 제목에서 미술이라는 매체를 활용하는 방식을 담은 ‘클레르 옵스퀴르’에 대해서는 이미 GG에서 한 차례 다룬 바 있다. 그러나 부제처럼 따라온 뒷부분의 ’33 원정대’라는 의미는 얼마나 다뤄졌을까? 이 글은 <33원정대> 전반에 담겨 있는 설정과 서사를 되짚으며 게임이 보여주고자 했던 희생과 애도의 메시지를 곱씹어보고자 한다. 벨 에포크: 빛과 어둠의 교차 <33원정대>의 배경이 되는 가상세계 속 도시 뤼미에르는 누가 봐도 프랑스 파리를 모티프로 삼은 도시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에펠 탑만으로도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이 도시의 근원은 공간적으로만 프랑스 파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에펠 탑이 존재하는 파리라는 것은 산업혁명 이후 근대적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19세기 후반 이후의 파리가 이 게임의 기본적 배경이다. * 뤼미에르 세계에는 휘어진 에펠탑이 상징처럼 등장한다. 근대의 기술과 번영을 상징하는 철탑은 시작부터 끝까지 휘어진 채 남아 있다. 이 무렵의 서구 유럽을 가리키는 용어인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는 인류의 문명 번영에 대한 찬사를 담은 말이다. 전에 없었던 막대한 부가 집중되고 기술은 인류의 상상을 넘어서는 생산력을 달성해 냈고, 그 가속도는 앞으로 남은 인류의 미래마저도 온통 장밋빛일 수 밖에 없는 전망을 동시대인들에게 남겼다. 그러나 정작 벨 에포크 이후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 말은 게임 제목의 ‘클레르 옵스퀴르’처럼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애니메이션 <푸른 바다의 나디아>에서 파리 만국박람회는 미래와 과학에 대한 예찬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는 흑인을 가둬놓고 전시한 인간 동물원이 함께 존재했었다. 서구 유럽이 달성한 막대한 부와 번영은 명백하게 식민지 착취를 통해 이끌어낸 결과물임을 <소공녀>와 같은 소설, <라지의 챔피언>같은 게임들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시절을 거치며 달성한 서구의 번영은 찬란한 미래가 아닌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전례없는 암흑기로 이어지며 벨 에포크라는 말에 빛과 어둠의 두 가지 의미를 시간축으로 담아내는 결과를 맞았다. 클레르 옵스퀴르, 명암 대비라는 제목을 단 게임의 배경이 벨 에포크라는 것은 번영과 몰락이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게임의 설정을 드러낸다. 무한히 진보하고 발전할 것이라는 단선적인 시간관이 아니라 번영과 몰락은 순환하며, 하나의 빛이 도리어 그림자를 내포하고 있음을 게임은 드러낸다. 게임 시작부에 펼쳐지는 한때 분명 화려했으나 몰락해버림을 숨기지 않는 도시 뤼미에르에서 열리는 죽음을 기리는 축제 ‘고마주’는 죽음을 축제로 바꿔버리는 행사다. 번영이 몰락을 이끈 벨 에포크와는 반대로 죽음을 축제로 만드는 이 행위는 빛과 어둠이 순서없이 순환하며 공존한다고 인식하는 게임 전반의 뼈대를 이루는 세계 인식이다. * 파멸은 예정되어 있고, 카운트다운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벨 에포크를 벨 에포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 이후 몰락이 이어지며 그 시기가 유일한 정점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원정대, expedition Expedition의 어원은 라틴어 expeditio이며, 이 말에는 군사 원정, 해방, 준비와 같은 의미가 들어 있다. 묶은 발을 풀어 자유롭게 함으로써 원정을 준비한다는 의미의 이 말은 알려지지 않은 세계를 향해 떠나는 도전적인 원정, 혹은 정벌을 위한 군사적인 원정으로 쓰이며, 게임 속에서 원정대는 실제로 어느 정도 탐험적이고 어느 정도 군사적인 의미로 꾸려진다. 어원은 고대 로마에서 비롯되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쓰는 원정대라는 말의 의미에 가까운 형식은 앞서 언급한 벨 에포크 시대에 확립된 바 있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대외 원정이었을 로알 아문센과 로버트 스콧의 남극점 원정은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0년대에 이루어졌고, 아프리카 대륙 횡단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원정은 1850년대에 이루어졌다. 대외 원정의 시작점이라 볼 수 있을 지리상의 발견과 대항해시대의 탐험들이 있지만, <33원정대>가 참고한 원정은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벨 에포크 시대의 원정에 좀더 가까운 형태다. * 오늘의 서구를 만든 것은 원정이었다. 근대적 시계의 발명은 항해를 위해 이루어졌고, 서구 열강은 식민지 개척과 착취를 통해 전례없는 번영을 이뤘다. 클레르 옵스퀴르라는 말이 가진 양면성은 게임 속 원정대의 의미에서도 두드러진다. 스토리를 밀고 나가 보면 이 원정의 의미 또한 결국 양면적이라는 사실을 만나게 된다. 세계는 현실세계가 아닌 한 예술가 집안에 의해 캔버스 안에 창작된 세계였으며,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것 같았던 페인트리스의 행동은 오히려 그림 속 세계인들에게 세계 멸망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였음이 드러난다. 자신들이 존재하는 세계의 본질에 한발 더 다가섰지만 그런 발견과는 다르게 세계는 멸망의 위기를 맞으며 원정대는 이를 극복할 수 없다. 00부터 시작해 역순으로 33에 이른 원정대 파견은 모두 실패하고 대원들은 사망했으며, 최장수 인원이 33세가 된 사회는 붕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33 그 수많은 원정대 중 왜 게임은 33번 원정대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택했을까? 33이라는 숫자는 서구권에서는 꽤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서구 점성술에서 태양과 상승궁의 순환이 맞아떨어지는 시기로 33년을 주기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널리 알려진 33의 서구적 의미는 예수의 생애다. 예수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나이를 보통 30세로 추정하며, 이때부터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약 3년간을 공생애라는 시기로 활동한다. 따라서 33년은 그리스도의 일생을 가리키는 의미를 내포한다. “나 예수 나이가 되었어!”라는 말은 프랑스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관용적 표현으로 성년이 된 시기, 완성 혹은 전환기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인다. 33이라는 숫자에 담긴 의미 중 <33원정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부분에도 방점을 찍은 듯 싶다. 원정대는 사실상 가망이 없는 이 원정의 결말을 어느정도 예측하고 있으며, 원정을 떠나지 않아도 어차피 고마주의 대상이니 삶에 있어서는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인지를 기반으로 꾸려진다. 벨 에포크의 화려한 전면 장식이 걷혀진 뒤에 몰려온 멸망의 어둠 앞에서 33세, 이제 막 인생의 본격적인 시기를 맞게 된 이들은 화려한 번영이 아니라 몰락의 전조 앞에 서며,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낸 원정대라는 방법론을 사용해 화려한 미래를 향한 장밋빛 길이 아닌 딱히 자청한 바 없는 희생을 향한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게 된다. 애도 세계의 진실이 드러나는 게임 중반 이후부터 이야기는 캔버스 속 인물들로부터 캔버스 밖의 실존인물들로 중심을 옮겨가며, 이 때부터 이야기는 세계에서 개인으로 화제를 돌린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애도라는 감정과 행위가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애도라는 감정과 행위를 설명하고자 한 프로이트의 개념을 재해석하면서 “성공적인 애도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프로이트는 사랑하던 대상을 상실한 인간이 겪게 되는 일반적인 과정으로 애도를 이해하며, 성공적으로 애도를 끝내기 위해서는 상실된 대상을 향한 집착을 벗어나는, 쉽게 말해 떠난 이를 비로소 가슴에서 떠나보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데리다가 말한 ‘성공적 애도는 불가능하다’는 이러한 프로이트의 입장에 대한 재해석이다. 데리다는 애도 과정 속에서 우리는 상실한 타자를 각자의 마음속에 내면화하는데, 이 때 우리는 상실한 대상의 본질 그 자체를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표상과 해석을 통해 재해석된 형태로 간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오히려 애도의 과정은 타자로서의 대상이 가지고 있었던 타자성을 잃게 되며, 프로이트가 말한 성공적 애도는 도리어 상실한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없애버리는 결과일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성공적인 애도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짧게 정리했지만 결국 프로이트와 데리다가 애도 개념을 두고 보여준 차이는 사랑하던 대상이 떠난 빈 자리와 그 흔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혹은 어떻게 떠나보낼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대목까지 글을 읽은 <33원정대> 플레이어들은 이 논쟁이 실제 게임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것이다. 게임 최후반부에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두 가지 엔딩은 각각 베르소와 마엘의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하여 따라가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게임에 등장하는 베르소는 현실에서는 이미 죽은 인물이며, 어머니 알린이 캔버스 속 세계에 죽은 아들의 기억을 담아 창조해 낸 가상 캐릭터다. 캔버스 속 베르소는 자신의 본체가 이미 죽었음을 알고 있으며, 그는 자신과 자신을 포함한 어머니가 그려낸 이 가상 세계가 소멸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일 것이라 믿고 행동해 나간다. 반면 실존했던 베르소의 동생인 마엘은 어머니가 점차 자신이 창조한 캔버스 속 가상세계에 빨려들며 무너져가는 현실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직접 캔버스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아직 능력이 약해 캔버스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린 채 16년을 살아 온 인물이다. 그런 마엘에게 캔버스 속 세계는 가상세계가 아닌 자신이 직접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실제 세계였고, 마엘은 베르소가 원하는 캔버스 속 세계의 소멸이 곧 자신에게는 전 세계의 멸망이라며 베르소와 대립한다. * 떠난 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애도할 것인가? <33원정대>의 엔딩은 서로 다른 애도를 향한 선택의 길을 제시하지만, 어느 길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최종전에서 서로 부딪히는 이 두 결말은 정확히 세상을 떠난 인물인 베르소를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상반된 대답이다. 세상을 떠난 베르소의 남겨진 기억은 프로이트적 애도, 상실을 인정하고 슬픔을 받아들이며 이를 가슴에 묻고 남겨진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로 나타난다. 베르소 엔딩을 선택해 진행했을 때 등장하는 실제 죽은 베르소의 묘비 앞에서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애도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묘지와 묘비는 전통적인 애도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베르소 엔딩에서 볼 수 있다. 마엘 엔딩은 데리다가 말한 불가능한 애도의 사례를 재현한다. 베르소는 마엘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뒤 캔버스 세계에서 자신을 소멸해 달라고 애원하지만 마엘은 이를 거부하고 베르소를 포함한 캔버스 속의 소멸된 모든 사람들을 되살리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말처럼 ‘성공적 애도’는 불가능하다. 결국 캔버스에 남은 베르소는 베르소 그 자신이 아니라 어머니와 마엘의 기억과 표상에 의해 재현된 존재이며, 페인트리스로서 재현된 베르소를 계속 살려낼 수 있는 마엘의 능력 안에서 베르소는 자신의 고유성을 잃고 소멸한다. 애도는 근본적으로 실패하며, 끝없이 지속될 뿐이다. 사랑했던 이를 떠나 보내고 남은 이들의 삶을 완벽히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33원정대>는 굳이 어느 방법이 옳다는 평가를 내리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데리다가 프로이트의 애도 개념을 전유한 것은 애도 그 자체를 보기보다는 애도라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윤리적 긴장을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데리다에게 애도는 완결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끝없이 실패하면서도 지속되는 과정이며, 남은 자가 짊어저야 할 윤리적 숙명을 드러내 보이는 관찰의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마엘 엔딩도 데리다가 이야기한 진정한 애도를 재현하기보다는 끝없이 자신에게 남은 표상으로 떠난 이를 재현하며 실패를 연속하는 현상으로서의 애도를 그려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두터운 베이스로 쌓아올린 탄탄한 판타지 <33원정대>는 턴 베이스 롤플레잉 게임으로, 제작진도 언급했고 플레이어들도 직관적으로 느끼듯 일본의 턴제 RPG, 특히 <페르소나>시리즈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게임이다. 두 게임의 연관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턴제 RPG라는 형식, 캐릭터 파티의 구성과 호감도가 전투에 작용하는 방식과 같은 메커닉 요소를 거론하지만, 오히려 <페르소나>로부터 가장 크게 영향받은 부분은 게임 세계의 설정 요소들이다. 멸망을 눈앞에 둔 세계 속에서 청년들이 팀을 이뤄 세계의 멸망에 맞서는 이야기는 <페르소나>가 일본 사회의 여러 맹점들을 게임 속에서 우화로 그려낸 것과 같이 <33원정대>에서도 새롭게 변주되어 그려진다. 서구의 오늘을 만든 근대의 번영 신화와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대절멸의 서사, 강력해진 미디어를 통해 더욱 실제같아진 재현된 표상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떠난 이를 애도하는 개념에 이르기까지 <33원정대>의 판타지 세계는 현실의 문제를 페인터라는 개념을 통해 다시 그려낸 결과물에 가깝다. 특히 이야기의 결론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애도에 관한 고민들은 게임이 딱히 어떤 정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회적 참사와 그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애도, 그리고 그 애도를 조롱하는 것이 일련의 문화 코드가 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상당히 무겁고 곱씹어볼 만한 주제를 던진다.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떠난 이들로부터 넘겨받은 그들의 표상들은 남겨진 우리와 어떻게 관계맺으며 가야 할 것인가? 빛과 어둠, 번영과 몰락, 소멸과 보존이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이 관계성 속에서 사고하고 빚어지며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되새겨볼 수 있는 다양한 계기들이 <33원정대>의 메인 퀘스트와 다양한 서브 스토리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아마도 당분간 ‘교양으로서의 게임’을 이야기한다면, <33원정대>는 두터운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멋지게 판타지를 구성해 낸 좋은 사례로 꽤 오랫동안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게임에 대한 트랜스페미닌 커뮤니티의 문화 코드화
트랜스페미닌 (transfeminine)은 논바이너리부터 트랜스여성까지, 트랜스젠더 중에 상대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젠더 표현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논바이너리 중에 스스로를 여성 젠더에 더 가깝다고 느끼는 이들 (she/they)이 여기 속하고 트랜스여성 (she/her)이 가장 확실하게 속하는 계열이다. 그리고 트랜스페미닌 커뮤니티라고 하면 다양한 SNS 및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를 기반으로 산발적으로 발생한 정체성 기반 네트워크를 이른다. < Back 게임에 대한 트랜스페미닌 커뮤니티의 문화 코드화 21 GG Vol. 24. 12. 10. 트랜스페미닌 (transfeminine)은 논바이너리부터 트랜스여성까지, 트랜스젠더 중에 상대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젠더 표현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논바이너리 중에 스스로를 여성 젠더에 더 가깝다고 느끼는 이들 (she/they)이 여기 속하고 트랜스여성 (she/her)이 가장 확실하게 속하는 계열이다. 그리고 트랜스페미닌 커뮤니티라고 하면 다양한 SNS 및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를 기반으로 산발적으로 발생한 정체성 기반 네트워크를 이른다. 정체성 기반 네트워크들이 으레 그러듯이 젠더 정체성만을 구심점으로 삼고 모이다 보니 사실상 소속원들끼리 정체성 외에 딱히 공통항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오히려 당연하게도 개개인 각자가 서로 전혀 다른 고유하고 개별적인 특질들을 가지고 있는 만큼 더더욱 그나마 공유되고 있는 조그마한 지표라도 발견하면 그것들을 중심으로 문화 코드를 형성하고 향유한다. 특히 최근 트랜스페미닌 커뮤니티에서 반복적으로 호명되는 게임들이 있다. <울트라킬> (2020), <시그널리스> (2022), <폴아웃: 뉴 베가스> (2010), <셀레스트> (2018), 그리고 <길티 기어 스트라이브> (2021)는 각자가 트랜스펨들을 중심으로 하는 탄탄한 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양식의 밈들에서도 유난히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렇다면 이 게임들은 어째서 트랜스펨 [1] 들에게 선택된 것일까? 이 게임들이 트랜스페미닌 정체성과 따로 특별히 공모하는 지점이라도 있는 걸까? <울트라킬>: 천사의 자기탐색과 CCTV 플레이어 [2] <울트라킬>은 아직 얼리 액세스 상태인 인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상당한 크기의 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 초고속-초폭력 고옥탄가의 FPS 게임이다. 미래에 모든 인류가 전쟁으로 인해 멸망한 뒤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울트라킬>의 세계관에서 오직 남은 것은 피를 연료로 삼아 작동하는 전쟁 기계들 뿐이다. 그리고 게임은 더 많은 피를 찾아 지옥으로 걸어 들어간 기계 “V1”의 이야기를 다룬다. 플레이어가 V1의 눈을 통해 경험하는 세계는 지옥을 지배하는 천사들의 고압적이고 수직적인 위계가 모든 영혼을 억압하고 있다. 딱히 V1에게 저항적이거나 혁명적인 정신이 있어서 천계와 맞서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직 더 많은 피를 흘리기 위한 여정 속에서 천계 의회를 대표해 검을 휘두르는 “지옥의 심판자” 가브리엘과 싸우게 된다.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한 명의 주인공이 한 명 이상의 여러 적수들, 혹은 체제 전체에 부딪히고 결과적으로 그것들을 무너뜨리는 구조는 액션 게임에서 상당히 보편적이다. 그러나 (심지어 아직 완결이 안 났음에도) <울트라킬>의 주요 적대 인물인 가브리엘이 지금까지 굳게 믿고 있었던 천국에 대한 믿음을 주인공과의 만남을 통해 뿌리부터 의심하게 되고 당연하게 믿고 있었던 세계관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며 스스로의 생의 목적, 나아가서는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여정은 액션 게임의 문법 속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편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작 주인공 V1은 단 한 줄의 대사도 갖지 않고 그 스스로가 고유하고 특별한 인격을 가지지도, 당연히 존재의 변화를 겪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울트라킬>의 서사는 주인공의 성장이 아니라 적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울트라킬>의 1막 마지막 장면의 보스전에서 가브리엘은 주인공과 첫 전투 이후 난생 처음으로 삶 전체에서 패배라는 것을 경험한다. 이때 대답 없는 신과 천국, 천사의 완전함에 대해 가브리엘이 가지고 있던 굳은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실패로 말미암아 천계에서 파면당한 가브리엘은 실패의 경험을 증오로 돌려 2막 보스전에서 다시 한번 주인공과 대면하게 된다. 그러나 게임 내 주인공의 적수라는 운명에 이기지 못하고 당연히 연거푸 패배하고 만다. 이 두 번째 패배 직후 가브리엘은 주인공으로 인해 피어올랐던 증오를 자기 존재 변화의 연료로 삼는다. 즉, 가브리엘은 절대적이며 운명적이어야 했을 신의 의지가 그대로 이뤄지지 않고 신의 가호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고는 그렇다면 자신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해서 살아온 것이며 이 모든 게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의문하게 된 것이다. “완벽해야 했을 조각은 처음부터 맞지 않는다 (The pieces never fit together to begin with.)” 찾아온 현현顯現에 따라 가브리엘은 처음으로 검을 다른 누구의 의지도 아닌 순수한 자기 자신의 의지로 휘둘러 지금까지 스스로 명령을 따라왔던 천국 의회를 직접 몰살한다. 총 3막으로 예정된 전체 서사 중에 현재 2막까지 완성되어 있는 <울트라킬>에서 플레이어에겐 별다른 서사가 주어지지 않고 주인공은 적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촉매 역할을 담당한다. 즉, 오히려 서사는 적대 인물이 경험하고 플레이어는 스스로가 인물의 변화 원인이 되어 적이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을 상대적 시선에서 목격하는 것이다. 가브리엘이 겪는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감정도 인격도 서사도 없는 V1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가브리엘과 정반대로 V1은 플레이어에게 오로지 게임 화면으로 송출되는 1인칭 시선만을 제공한다. V1은 스스로의 의지라고는 없이 철저히 플레이어의 의지에 따라서만 움직일 뿐이지만 오히려 그럼으로써 플레이어의 의지를 완벽하게 운반하는 그릇이 된다. 말하자면 주인공 캐릭터가 개별적 인물로서 존재하지 않고 플레이어의 의지에 개입하지도, 플레이어를 방해하지도, 가리지도 않으며 분리 없이 플레이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눈앞의 가브리엘이 자기 자신의 의지를 찾으며 점점 독자적 존재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소격 효과를 일으킨다. 플레이어 자신도 스스로 삶과 존재의 목적에 대해,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미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충분히 겪어온 트랜스젠더들은 이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기보단 경험적 공감을 느끼는 일이 더 잦을 것이다. 나아가 <울트라킬>의 게임플레이는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 매우 다채롭고 자유롭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팬 커뮤니티 형성에 용이한 조건을 가진다. 특히 게임 내 물리 엔진 및 총알 발사 메커니즘 등을 농락하며 수직 가속도를 수평 가속도로 전환해 맵을 눈 깜짝할 사이에 횡단하고 공중에 던진 동전에 총알을 420574331번 튕긴다든지 (아무렇게나 쓴 숫자가 아니라 실제 기록된 횟수이다) 하는 기행들이 가능한 환경은 플레이어들의 창의력과 집중력, 도전 의식을 자극한다. <울트라킬>의 제작자 하키타 (Hakita)는 본인이 바이섹슈얼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그 외에도 3D 디자이너 겸 그래픽 프로그래머인 빅토리아 홀랜드 (Victoria Holland)와 컨셉 및 텍스처 디자이너 프랜시스 시에 (Francis Xie)는 본격적으로 각각 트랜스여성과 트랜스남성 당사자이기도 하다. 즉, 작품 자체가 성소수자 당사자들에 의해 제작된 만큼 팬 커뮤니티 또한 성소수자들을 기반으로 구성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나아가 하키타는 기계 로봇인 주인공 V1에게는 어떤 젠더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냐는 팬들의 논의에 V1은 기계이기 때문에 젠더가 없으나 he/him 대명사를 사용한다고 답변했으며, 그럼에도 <울트라킬>에는 동시에 기계“임에도” 젠더가 존재하는 개체들마저 있다. “마인드플레이어” (Mindflayer)라는 적이 대표적인데, 게임 내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로 그녀는 머리 부분만이 기계 본체임에도 그 아래로 인간의 신체 형태와 유사한 플라스틱 외피를 굳이 스스로 형성해 활동한다. 플라스틱 신체 부분은 실질적으로 별다른 기능이 없이 오직 미적인 목적만을 지니고 있음에도 마인드플레이어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파괴되는 일이 있더라도 모든 힘을 다해 이 플라스틱 신체를 보호하려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필연적으로 주어진 신체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여 형성한 몸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마인드플레이어의 습성은 현실 속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단적인 비유로 읽힐 수밖에 없다. <시그널리스>: 몸과 시간, 인식의 비명 <시그널리스>는 엄밀한 의미에서 올해 출시된 <사일런트 힐 2>의 공식 리메이크보다도 더욱더 충실하게 <사일런트 힐> 시리즈를 계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서바이벌 호러 인디 게임이다. 즉, 게임플레이 측면에선 기본적으로 탑다운 형식의 2.5D 그래픽을 기용하며 때때로 1인칭과 3인칭을 오가고 라디오를 비롯한 퍼즐을 적극적인 사용하며 의도적으로 불친절한 인벤토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시그널리스>를 독립적인 걸작으로 만드는 면모는 극단적일 만치 비선형적이며 표현주의적인, 언뜻 난해하기까지 한 연출 방식이다. <시그널리스>가 한계까지 실험한 표현주의적 연출은 바로 시간과 인식의 비선형성, 존재의 분열 등을 다루는 서사와 운명적으로 맞물리며 빛을 발한다. 다시 말해 최근 인디 게임 중 <사일런트 힐>을 제대로 계승하는 또 다른 작품 <피어 앤 헝거> 시리즈가 그 계보 상의 공포와 끔찍한 그로테스크를 이어 나가고 있다면 <시그널리스>는 실질적으로 존재론적 비애와 절망의 측면에서 서바이벌 호러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먼 미래의 전체주의 사회 “유산 (Eusan)”은 성간 단위로 통치가 이루어지고 우주 개발을 진행 중이다. <시그널리스>의 세계관에서 “생체 공명”이라는 일종의 텔레파시 능력을 지닌 자들은 타인의 정신뿐만 아니라 신체의 유기체 조직에까지 간섭할 수 있고, 나아가 집단의 의식을 변형하는 형태로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의 유산 당국은 기존의 제국 체제에 대한 반란을 통해 세워졌는데, 이 제국의 여왕이 바로 강력한 생체 공명 능력을 통해 인류를 다스리던 자였다. 즉, 전 제국은 인식론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를 이루고 있었고 현 당국은 제국 통치에 대한 반발로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이 유물론적 통치 사회가 탐험이라는 명목을 뒤집어쓴 기약 없는 우주 항해를 통해 한 생체 공명자 “아리안느 양”을 사실상 사형이나 마찬가지인 추방 조치에 처하자 인식론적 공포가 물질세계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플레이어는 생체 공명으로 인해 변이되고 있는 세계를 헤치고 아리안느를 다시 찾아야만 하는 복제-인조인간 “엘스터”를 조종한다. <시그널리스>의 세계 속엔 두 유형의 인간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엘스터와 같은 “레플리카”이고 다른 하나는 레플리카의 원형이라는 의미로 레플리카가 아닌 인간을 이르는 “게슈탈트”이다. 레플리카는 뛰어난 개인들의 신경패턴을 복사해, 인공내골격에 생물학적인 배양물을 채워넣은 뒤 외골격으로 둘러싼 신체에 이식한 복제품들이다. 같은 판본을 기반으로 복제된 개체들이므로 예측 가능한 일꾼으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는 심산인 것이다. 그러나 복사 과정에서 기억은 전부 삭제하고 오로지 능력과 성격만을 남김에도 게슈탈트 생전의 중추 기억을 자극하는 외부 자극이 주어지면 기억의 편린이 재구성되고 만다. 또는 한정적이고 반복적인 임무 바깥의 새로운 상황을 접하게 된다면 독자적인 개인으로서 자아가 형성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레플리카가 게슈탈트의 기억을 되찾는 낌새를 보이거나 명확한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을 들킨다면 그 즉시 “폐기”당한다. 즉, 게슈탈트와 레플리카 모두 억압적이고 통제적인 사회 안에서 고유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내쫓기고 학대당한다. 특히 아리안느의 영향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킨 많은 레플리카들은 그전까지 탄압당한 욕망과 트라우마 등을 고통스러운 형태로 드러낸다. 아리안느의 생체 공명은 단순히 현재 인식되는 공간적 물질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 기억과 시간까지 변이시키는데, 이로 인해 플레이어가 엘스터의 눈을 빌려 인지하는 세계엔 엘스터가 아닌 다양한 개인들의 경험 또한 섞여 들어온다. 특히 이 지점이 <시그널리스>의 서사와 연출을 난해하게 만드는 최전방이다. 현재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경험이 정확히 누구의 시공간이었는지 유추하기가 극도로 어려우며, 시퀀스마다 불규칙하게 게임은 1인칭과 3인칭 관점을 오가는데 플레이어는 관점 변경을 전혀 통제할 수 없다. 이렇게 플레이어가 엘스터를 통해 경험하는 타인의 기억 중 하나는 아리안느가 유물론적 기치를 바탕으로 한 유산 당국에서 경시되는 예술에 관심을 가진다는 점, 그리고 하얀 머리와 붉은 눈 등 남들과 다른 외모로 인해 성장 과정 속에서도 괴롭힘을 당해오던 것이었다. 규범 사회에서 예외적 존재로 배제당하고 항상 폭력의 최전방에서 사는 트랜스젠더에게 <시그널리스> 속 유산 사회와 그 시민들 사이의 고통스럽고 불합리한 관계는 먼 얘기가 아니다. 특히 유기체적, 즉, “생물학적” 인간이 아닌 존재인 레플리카는 트랜스젠더에게 비유 이상의 즉물적인 개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게임 내에선 레플리카의 피와 살은 언뜻 인간의 평범한 살점과 구분되지 않는 외양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디까지나 생체공학으로 가공된 조직이기에 표류한 우주선 안에서 게슈탈트가 배고프다고 레플리카의 살을 뜯어 먹어 봤자 소화를 시킬 수 없다는 지침을 찾을 수 있다. 레플리카라는 이름에서부터 이미 그들은 고유한 인간 존재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자원”, 보급형, 모조품으로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에 존재하던 인간 도식의 모방이자 게슈탈트의 복제, 변주에 불과한 개체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레플리카는 단독적 인격과 자아가 필연적으로 깨어날 수밖에 없는 비극적 판형들인 것이다. 무엇보다 <시그널리스> 작중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게슈탈트, 레플리카를 막론하고 절대 대다수가 여성이다. 따라서 레플리카의 경우 그 키가 최대 260cm에 달하는 거대한 강철로 이루어진 “여성”들이라는 점에서 많은 트랜스펨에게 공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생체 공명의 영향으로 개인들이 몸의 물질적 차원과 몸에 대한 인식 사이의 경합을 겪어 변이하는 과정은 트랜스성의 관점에선 그저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시그널리스>에서는 인간 존재뿐만 아니라 함선이나 우주정거장 등 세계 전체의 물질적 차원이 인식의 변화에 의해 피와 살점, 내장 등으로 점차 침식되어 간다. 마치 트랜스적 신체 인지 방식이 바깥 세계로까지 확장된 듯이 말이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세계 관찰 관점의 자유를 제공하지 않고 1인칭 시각과 3인칭 시각을 임의로 강제하는 것 또한 매체의 폭력이라는 점에서 몸이 존재에게 가하는 폭력, 유물론적 유산 사회가 시민 개인들에게 가하는 폭력과 공명한다. 즉, 언뜻 호러 장르라는 특징 때문에 변이하는 신체가 존재들에게 고통이나 폭력인 것처럼 오인될 수 있지만 <시그널리스>에선 오히려 그전까지 개개인의 존재를 가두고 각자의 의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신체에 대한 인식의 반항이자 탈출이다. 그리고 인간 존재는 공간을 물질적 차원에서 인지하는 것 이상으로 시간 또한 신체를 통해 인식하고 몸에 직접 기록되기 때문에 트랜스 당사자들은 시간과 관계 맺는 방식도 비규범적인 경우가 많다. <시그널리스>에서 아리안느는 우주 속으로의 기약 없는 망명 속에서 결국 시간 감각을 잃어버리고, 그녀의 왜곡된 시간은 그녀가 생체 공명으로 영향을 끼치는 게임 내 세계에까지 직접적으로 반영된다. 이는 트랜스젠더들이 반드시 고유한 트랜스성으로서는 아니지만 현실의 조건으로 인해 흔히 처할 수밖에 되는 트라우마적 경험들로 인해 직조당하는 시간의 영원성과 동일하다. 마치 전쟁 경험자들이 흐르지 않는 특정 시간 속에 갇혀 평생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이들에게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지도, 일정하게 작동하지도 않는다. <시그널리스>는 서사의 비선형성 뿐만 아니라 사건들의 공시성 (synchronizität)을 통해서도 인과적이지 않은 세계 인식을 드러낸다. 즉, 직접 연관되어 있지 않은 전혀 다른 시공간 속에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공명하는”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 말이다. 끝으로 블랙홀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건의 지평선 바깥에서는 알 수 없다는 우주 검열 가설을 제창한 로저 펜로즈의 이름이 아리안느가 탑승한 우주선에 붙어 있듯이 억압당하는 개인들의 이야기는 바깥에서는 알 수 없다. 분명 다양한 현실의 시공간 속에서 실재해 왔음에도 스스로의 목소리가 주어지지 않은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제대로 남아 있지 않고 당장 현재 또한 트랜스젠더들의 삶은 당사자가 아닌 바깥의 시스젠더들에겐 전혀 미지의 영역인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우주에선, 누구도 당신의 비명을 들을 수 없다.” [3] 바깥을 향한 언어의 갈망 따라서 <시그널리스>는 <울트라킬>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밀착된 방식으로 트랜스성과 관계하기에 게임 외적 측면에서 살펴보지 않아도 어째서 트랜스펨 커뮤니티가 형성됐는지는 의문의 영역조차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쯤 되면 안 봐도 뻔하다고까지 할 수 있겠지만 2인 제작 게임인 <시그널리스>는 전적으로 트랜스 당사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제작자 유리 스턴 (Yuri Stern)은 논바이너리이고, 디자이너 바바라 비트만 (Barbara Wittmann)은 트랜스여성이다. 그러므로 <울트라킬>과 <시그널리스> 모두 작품 내외 양면으로 트랜스 정체성과 관계한다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극도의 고난이도 플랫포머 게임 <셀레스트> 또한 말 그대로 게임 안팎으로 스스로와 싸우며 산에 올라가는 고난과 역경을 감수하면서 자신을 찾는 과정을 그리며 트랜스젠더로서 정체화와 트랜지션 과정을 그려냈다. 역시 제작자 매디 소슨 (Maddy Thorson) 본인이 게임 출시 이후에 커밍아웃하였기도 하다. 그러나 <폴아웃: 뉴 베가스>와 같은 경우는 커뮤니티 상에서 다른 게임들보다도 특별히 사랑받고 있고 거의 트랜스펨의 상징과도 같은 지위에 올라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작품 자체가 직접적으로 트랜스성과 관계하고 있지도, 작품 제작 차원에 트랜스 당사자가 개입되어 있지도 않다. <길티 기어 스트라이브>도 전반적으로 <폴아웃: 뉴 베가스>와 크게 다르지 않고, <길티 기어> 시리즈 내에서 이미 2002년에 처음으로 출시되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역사를 가지고 존재해 왔던 “브리짓”이라는 캐릭터가 비교적 최근에 들어 와서야 본작에서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을 한 이후로 해당 캐릭터에게 초점을 맞춘 팬덤 문화가 형성된 바가 있지만, 이 한 명의 매우 국소적인 캐릭터를 제외하고 전체 게임 차원에서는 특별히 트랜스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도, 트랜스적 게임성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길티 기어> 커뮤니티에서 게임과 가장 충실하고 긴밀하게 관계하고 있는 트랜스펨들은 브리짓을 기점으로 유입층이 늘어난 팬덤 영역에서가 아니라 그 바깥의 전체적이고 실질적인 게임 영역에 자신을 투여하는 실제 격투 게임 대회를 중심으로 <길티 기어> 커뮤니티에서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애초에 트랜스펨 개인들이 게임 영역에 대거 투입되고 전문적인 수준까지 훈련되는 일이 많은 것은 현실의 물리적 사회 공간에 참여가 허락되지 않고 자리가 주어지지 않으며 아주 철저히 배제되어 온 지금 이 순간도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는 오랜 역사에서 오직 접근할 수 있는 취미라고는 외부의 공공장소로 나가지 않고 방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유가 크다. 따라서 이미 트랜스펨들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게임들을 즐겨왔고 그저 객관적이고 절대적으로 “좋은” 게임을 즐겨왔기 때문에 우연히 플레이 경험이 겹친 사례의 대표가 <폴아웃: 뉴 베가스>이다. 복잡하고 흥미로운 선택지와 플레이어 행동에 대한 예상치 못한 치밀하고 구체적인 결과들, 대화의 풍요로운 문체 등 현대적 RPG 게임의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폴아웃: 뉴 베가스>에 대한 트랜스펨들의 선호는 단지 자기 탐색의 시간을 불가피하게 많이 가질 수밖에 없는 트랜스 당사자들이 비교적 고상한 취향을 획득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는 반농담 반진담으로 설명하는 것이 용이할 것이다. 따라서 트랜스펨 커뮤니티가 문화 코드로 정체화하는 게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트랜스 정체성과 관계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필요 조건인 것만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그저 트랜스펨 당사자들이 실제로 지금까지 각자가 시간을 많이 투여해 온 게임들이라는 것만이 약분 불가능한 최소한의 정수다. 애초에 트랜스 정체성 자체가 하나로 압축될 수 있는 단일한 결정이 아니라 수없이 다양하고 고유한 개인들의 사실상 임의적인 집합체이기 때문에 당연한 사실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동일한 구심점을 축으로 공전하며 조직된 코드의 궤적들을 따라 문화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으로 주변적 존재들은 삶을 느낄 수 있는 자리를,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정체성을 공유하는 개인들끼리 같은 작품을 향유했다는 사실만으로 연결감을 느끼고 만연한 소외와 고독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당 작품을 매개 삼아 존재할 수마저 있다. 즉, 자신의 향유에 설명을 부여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증명을 이루고 작품을 자기 정체성의 코드로 기입해 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기존에 존재하던 기성 규범 사회의 문화 코드를 대여하거나 그것에 편입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탈취해 고유하고 독자적인 맥락을 발생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덧씌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개별적 언어, 방언을 만들어 냄으로써 소수자들은 스스로 설명 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또한 밖으로 내쫓긴 이들에게 기존 사회와 언어 안에는 자신들을 위한 자리가 없으므로 대안적 관점을 창조해 내는 것이지만 이를 통해 역으로 작품 자체 또한 확장하고 그 의미를 다양화하며 그 질료를 풍요히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즉, 트랜스펨 커뮤니티의 문화 코드 구성 과정은 정체성과 게임이 상호적으로 재조직하는 교차 전이이다. 참조할 계보가 없는 돌연변이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인공 고향은 말라붙은 터전에 다시 양분을 불어넣는다. 추신 트랜스펨들이 실제로 아주 오랫동안 게임을 즐겨왔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최근에서야 이러한 온라인 커뮤니티 상의 연결과 공유가 적극적으로 활성화된 측면이 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맥락은 기존에 “여자”는 게임 따위를 하지 않는다는 말 같지도 않은 편견이 생각보다 꽤 널리 퍼져 있었기에 트랜스펨들 또한 자신의 취미가 충분히 “여성적”이지 않게 인식될까 봐 자랑스럽게 드러내기를 꺼리고 수치심에 부인하고 감추며 억눌러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 게이머에 대한 오명이 점점 벗겨지며 오히려 스포츠 게임과 같은 남성 위주 게임을 “캐주얼”한, 비전문적 게임의 영역으로 밀어 넣어 버리고 역으로 여성 게이머를 “코어”하며 전문적인, 집요한 플레이어들로 재조명하는 관점이 유통되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트랜스펨들도 수치심과 열등감의 족쇄를 벗어던지고 게임에 대한 취미를 당당하게 드러내며 서로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1] transfem. 트랜스페미닌(지정성별상의 남성이 젠더 스펙트럼상 여성에 좀더 가까운 경우)의 줄임말. 트랜스페미닌함을 지닌 개인들을 이를 때 자주 사용된다. [2] <울트라킬>의 주인공 V1은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닮은 머리로 인해 팬 커뮤니티 내에서 CCTV라는 별명을 얻었다. [3] In space, no one can hear you scream. 리들리 스콧, 에이리언 (1979).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호르몬 일지』와 『게임 코러스』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 게임과 시신경제 (Necronomics)
시신경제 (Necronomics)는 아킬레 음벰베 (Achille Mbembe)의 시신정치 (Necropolitics)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이다. 시신정치는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생명정치 (Biopolitics)가 권력이 생명의 영역을 지배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동시대의 현실은 죽음을 단지 생명권력 (Biopower)을 위한 수단으로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 Back 게임과 시신경제 (Necronomics) 22 GG Vol. 25. 2. 10. * <엘든 링>의 대표적 룬 노가다 장소 시신경제 (Necronomics)는 아킬레 음벰베 (Achille Mbembe)의 시신정치 (Necropolitics)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이다. 시신정치는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생명정치 (Biopolitics)가 권력이 생명의 영역을 지배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동시대의 현실은 죽음을 단지 생명권력 (Biopower)을 위한 수단으로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1] . 즉, 생명정치의 관점에서라면 제도적 폭력이나 전쟁이 발생시키는 죽음은 결과적으로 생명권력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는 장치여야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미 죽음으로 권력이 이양되었고 따라서 생명보다도 죽음 그 자체의 극대화가 목표라는 것이 시신정치의 전망이다 [2] . 시신경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생명이 가치를 띠고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곧 재화가 되는 체계에 주목한다. 즉, 살아있는 인간의 목숨보다 죽은 뒤 그 신체의 교환 가치가 더욱 높게 매겨지는 현실인 것이다. 게임 속에서 시신경제는 이미 가장 보편적인 체계 중 하나로 기용되고 있다. 적과의 전투를 주 플레이 내용으로 삼는 액션 게임에서 적의 죽음은 경험치뿐만 아니라 화폐의 축적에도 계산된다. 우리는 흔히 ‘노가다 (farming)’라는 어휘로 불리는, 획득 화폐의 극대화를 위한 적 살해의 최적 효율 전략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보통 적 살해 자체가 금전의 획득을 보장하지는 않고 시체의 인벤토리를 뒤져 적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금품을 노획하거나 장비를 장물로 팔아넘기는 행위를 통해 부차적으로 경제 활동을 일삼긴 한다. 그러나 대표적으로 프롬소프트웨어 (FromSoftware)의 게임들과 같은 경우엔 추가적 노획 행위 없이도 죽음 그 자체가 화폐의 획득을 보장한다. <소울> 시리즈에서는 ‘소울’의 형태로, <엘든 링>에서는 ‘룬’의 형태로, <아머드 코어> 시리즈에서는 현상금의 형태로 보상이 들어온다. 특히 소울 (soul)은 말 그대로 영혼 그 자체로, <소울> 시리즈에선 플레이어가 죽인 자의 영혼을 재화로 획득하며 사용한다. <엘든 링>의 룬은 <소울> 시리즈의 보상 시스템을 그대로 계승함에 따라 조금 덜 직관적으로 되지만, 세계관 내 우주적 존재의 ‘축복’이라는 점에 따라 존재와 생명에 아주 핵심적인 요소를 살해 행위에서 얻는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이다. <아머드 코어>에선 보상 금액의 형태보다 그것이 사용되는 방향이 시신경제에 접촉해 있는데, 현상금은 전부 주인공 파일럿 신체의 연장이나 마찬가지인 작중 기체 AC (Armored Core)의 부품들을 구매하고 강화하는 데에 투자된다. 특히 <아머드 코어 VI 루비콘의 화염>에서 주인공은 몸을 오로지 AC 탑승 및 조종에만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개조 받은 ‘강화인간’으로, 대신 그 외의 모든 신체 기능을 희생하는 수술의 부작용으로 인해 ‘뇌가 익어버려’ 기체 바깥에선 제대로 된 생활이나 거동을 영위할 수 없다. 따라서 작중 주인공이 살해하는 적들은 현재 사실상 그의 진정한 신체라고 말할 수 있는 AC의 활동 역량을 확장하는 금액으로 환산되고, 종국에는 재수술을 받아 AC 바깥에서도 그 자체로 활동할 수 있는 몸을 되찾는 것이 목적이다. 게임 내에서 정확히 어떤 연유에서 이름도 없는 주인공 강화인간 ‘C4-621’이 그런 극단적인 수술을 받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지만, 결국 <아머드 코어 VI 루비콘의 화염> 내에서 플레이어가 임하는 모든 전투와 파괴, 살해의 용도는 저당 잡힌 주인공의 신체를 되찾기 위해 채무 를 상환 하는 과정으로 귀결된다. 신체를 저당 잡는 튜토리얼 채무는 시신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 중 하나로 ‘죄와 벌’이라는 인간 법과 도덕 세계의 발생지이다. 니체는 독일어로 ‘죄 (Schuld)’가 ‘채무 (Schulden)’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 죄에 대한 벌은 언제나 등가물 을 가정하고 죄인을 고통 스럽게 해서라도 실제로 배상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 극히 경제적인 법을 각인시키기 위한 기억술 의 원형으로 고문을 꼽는다 [3] . “기억 속에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달구어 찍어야 한다: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것 만이 기억에 남는다. (중략) 인간이 스스로 기억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길 때, 피나 고문, 희생 없이 끝난 적은 없었다. 가장 소름끼치는 희생과 저당, 가장 혐오스러운 신체 훼손, 모든 종교 의례 가운데 가장 잔인한 의식 형태 – 이 모든 것의 기원은 고통 속에 가장 강력한 기억의 보조 수단이 있음을 알아차린 저 본능에 있다. (중략) 예를 들면 돌로 쳐 죽이는 형벌, 수레로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 말뚝으로 꿰뚫어 죽이는 형벌, 말로 찢어발기거나 밟아 죽게 만드는 형벌, 범인을 기름이나 포도주로 삶는 형벌, 인기 있었던 살가죽 벗기는 형벌, 가슴에서 살점을 저며내는 형벌, 그리고 또 범죄자에게 꿀을 발라 이글대는 태양 아래 파리떼가 우글거리게 놓아두는 형벌 등 고대 독일의 형벌을 생각해보라.” [4] 그러므로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규칙이라는 법을 전부 제대로 각인시켜야만 하는 의무를 가진 튜토리얼에서 가장 효율적인 예시로 시신경제가 등장하는 것 또한 우연은 아니리라. 2007년도 게임 <어쌔신 크리드>에선 주인공이 튜토리얼 이후 계급을 강등당하고 가지고 있던 모든 장비를 빼앗기는데, 어째선지 전투 및 이동 기술 등 각종 다양한 신체 능력마저 덩달아 잃어버리고 만다. 마찬가지로 2016년작 <용과 같이: 극>의 튜토리얼에선 가장 강한 ‘도지마의 용’ 전투 스타일을 모두 갖고 시작하지만 정작 튜토리얼이 끝나고 난 뒤엔 주인공이 10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터라 해당 신체 기술들을 전부 잊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이 게임들에서 계급과 인연 등을 차차 되갚아가며 다시 찾아야만 한다. 플레이어 캐릭터인 주인공은 분명 이 모든 신체 역량들의 원래 소유주였음에도 불구하고 튜토리얼이 끝난 직후 어느새 몸의 기능들을 저당 잡힌 채무자로 전락하고 만다. 이때 캐릭터의 신체는 외적인 시각에선 훼손되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기능들이 ‘죽은’ 것이다.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 튜토리얼에서 해당 게임 중 플레이 가능한 능력의 최대치를 맛보게 해주고 얼마만큼의 액션과 재미가 가능한지 미리 알려주려는 연출 전략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에게 주인공의 신체를 ‘죽여’ 앞으로 하나하나 갚아 나가야 하는 채무의 대상으로 각인시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게임 내 규칙에 자연스럽게 복속시킬 것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죽은 신체의 교환 가치 * <폴아웃: 뉴 베가스>에서 잘라 온 머리가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현상금을 깎는 다트리 소령 (Major Dhatri) 채무자는 자신이 되갚을 것이라는 약속에 신용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자신이 한 약속의 진지함과 성스러움을 보증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는 상환을 의무나 책임으로 자신의 양심에 새기기 위해서, 계약의 효력은 그가 상환하지 못할 경우 채권자에게 그가 그 외에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 그 밖에 그의 권한에 있는 것을, 예를 들면 자신의 육체나 혹은 자신의 자유, 또는 자신의 생명 역시 저당 잡히는 것이다. 더구나 특히 채권자는 채무자의 육체에 온갖 종류의 능욕과 고문을 가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부채 액수에 적합해 보이는 크기만큼 그의 육체에서 살로 도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곳곳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사지 하나하나와 신체의 각 부분을 정확하게, 부분적으로는 무서울 정도로 세세하게, 합법적으로 가격을 산정해왔다.” [5]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채무자가 자신의 신체를 저당 잡힐 때 자기 자신 외에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내놓고 있는 것이란 점이다. 즉, 니체의 채무법에서 채무자의 신체는 채무자 그 자신이 아니며 철저히 분리된다. 따라서 저당 잡힌 몸은 그 순간 생명을 가진 인간이 아닌 시체로서 죽은 물건이 된다. 시신경제에서 시체를 “돈벌이가 되는 물건”으로 만드는 건 죽음 그 자체이다 [6] . 즉, 단적으로 말해 시신경제는 장기매매라는 명백한 형태의 신체 부위 교환 형태를 굳이 띠지 않더라도 죽음 그 자체로 재화를 교환한다. 1755년 4월 24일 매사추세츠 영국령 식민지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머릿가죽 하나당 70파운드의 현상금을 달았다 [7] . <폴아웃 3> (2008)에선 바로 매사추세츠에서 대략 683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수도 황무지에서 손가락 하나당 5에서 10병뚜껑으로, 귀 하나당 10에서 15병뚜껑으로 보상받는다. <폴아웃: 뉴 베가스> (2010)에선 매사추세츠에서 4348킬로미터 떨어진 모하비 황무지에서 머리 하나당 250병뚜껑을 보상받는다. 특히 <폴아웃: 뉴 베가스>의 머리는 해당 부위가 파손되었을 시 가격이 50병뚜껑으로 줄어든다. 단순히 죽음과 부위의 차원에 가격을 매기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신체의 보존도마저 산정하는 것이다. “채무자에게 가해지는 형벌에서 채무의 상환량은 단순히 채무자가 입는 고통만이 아니라 채권자가 느끼는 쾌감까지 계산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고통을 보는 것은 쾌감을 준다.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더욱 쾌감을 준다.’” [8] 게임 속 시신경제는 게임 내에서 금전적 형태로 보상을 제공하지 않을 때조차 신체의 죽음을 교환한다. 정확히는 오히려 게임 속 인물들의 신체에 아무런 부차적 가치가 부여되지 않았을 때만 작동하는 시신경제가 있다. 바로 죽음과 웃음의 교환이다. 가장 잔인한 고어 액션 게임에서마저 적의 죽음은 플레이어가 구가하는 살해 행위에서 느낄 수 있는 역동적 쾌감 이상의 보상을 항상 제공한다. 최소한 얼마만큼 잔인하게 더 많은 적을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죽였는지를 추산하여 점수나 등급으로라도 보여주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게 일반적으로 게임이 시신경제를 작동시키는 방법이지만 그마저도 없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신체를 훼손시키도록 만드는 게임들이 바로 고어 코미디 게임들이다. 2008년 플래시 게임 <해피 휠스 (Happy Wheels)>부터 2019년 <피플 플레이그라운드 (People Playground)>, 2024년 <헬다이버즈 2>까지,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래그돌 (Ragdoll) [9] 고어 게임들은 공통적으로 플레이어 캐릭터와 적의 구분 없이 그 어떤 죽음에도 고집스러우리만치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는 경직된 래그돌 신체가 웃음을 자아내는 원리처럼 생명적인 것에 덧붙여진 기계적인 것 이라는 희극의 기본 명제에 부합하도록 만들기 위해 해당 캐릭터들의 신체에서 죽음이 응당 가져야만 할 의미마저 의도적으로 박탈하는 것이다 [10] . 심지어 적의 죽음에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플레이어 캐릭터의 죽음에 이렇다 할 페널티마저 크게 부여되지 않아, 죽이는 행위뿐만 아니라 죽는 행위마저 권장된다. 따라서 모든 신체는 지킬 이유도 없고 언제든지 교체되어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양陽의 가치도 음陰의 가치도 아무 의미도 없이 날아다니는 사지들, 육편들, 내장들은 피아의 구분도 없고 재화로서도, 그리고 당연히 인격으로서도 기능하지 않는다. 다만 그 ‘생명으로서 응당 있어야 할 것들이 없음’이라는 성질이 래그돌 고어 게임들 속 죽음에서 발견되고 결국 죽음은 웃음이라는 쾌락과 교환되며 역시나 또 다시 시신경제를 작동시키는 행위 목적이 되는 것이다. 하나의 장르로서 시신경제: 과잉과 음의 미학 * <크루얼티 스쿼드>의 플레이 화면 지금까지 다룬 시신경제는 장르를 불문하고 게임이 신체를 기용하는 방식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체계로서 등장했지만, 대주제이자 장르로서 이 개념에 투신하는 게임이 있다. 앞서 언급한 프롬소프트웨어의 게임들도 세계관 전반을 시신경제가 감싸고 있고, <사이버펑크 2077> (2022)의 세계 속에서도 직접적으로 편재한다. 우선 장기매매가 주 생계 수단인 ‘스캐빈저 (Scavengers)’라는 집단이 등장하고 <사이버펑크 2077>의 배경 ‘나이트 시티 (Night City)’ 사람들은 주인공과 NPC를 막론하고 거의 모두가 <아머드 코어> 시리즈에서 그러했듯이 ‘일을 하기 위한 몸을 사기 위해 일을 한다.’ 나이트 시티에선 강화인간의 수준을 넘어 모두의 일상적 신체 자체가 유기체보다는 무기물의 영역으로 대거 이동한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거진 인형人形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모습을 유지하고는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시신경제를 작동시키는 잔인함, 잔인함을 보장하는 인격은 신체의 죽음에 유지된다. 하지만 <사이버펑크 2077>조차 주제이자 내용으로서만 시신경제를 다룰 뿐 매체적 차원에서는 시신경제를 딱히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려한 그래픽의 AAA게임의 정반대편에서 ‘최악’, ‘최흉’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고 감히 말해도 어폐가 없을 <크루얼티 스쿼드> (2021)의 경우에는 게임의 모든 면이 전적으로 시신경제를 말하고 있다. 마치 누군가가 와서 망막에다가 직접 형광펜을 칠하고 썩은 찰흙을 덕지덕지 바르는 듯한 고채도 고대비 저-폴리곤 (Low-Polygon)의 끔찍한 비주얼과 누군가가 사용 중인 화장실을 그대로 공사하는 중 장비가 망가진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는 듯한 극악스러운 음향은 처음 마주했을 시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게임을 일정 시간 이상 플레이하면 진짜로 시청각적으로 고통스럽기 시작하게 되는 것을 넘어 두통마저 느껴진다. 메뉴 버튼의 기괴한 아이콘들은 정확히 뭐가 뭐를 가리키는지 눌러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나아가 듣도 보도 못한 HUD 프레임이 존재하는데, 다시 말해 정말로 1인칭 화면의 테두리를 상시 뒤틀린 이미지가 덮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레임의 상부 가운데에는 게임의 제목인 ‘CRUELTY SQUAD’가 계속 떠 있다. HP는 바의 형태도 아니고 게이지의 형태도 아니고 알 수 없는 방울-뭉치-덩어리의 형태로 정말 불필요하게 크게 화면에 부유한 채 꿈틀거리며 그 위엔 마찬가지로 생명 (LIFE)이란 글자가 굳이 쓰여 있다. 총알과 탄창 개수를 가리키는 숫자 사이에는 어째선지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고 총알을 발사하거나 무기를 바꾸는 등의 행위를 할 때에 이 얼굴은 전혀 알 수 없는 이유로 회전한다. 즉, 이 게임은 그래픽, 음향, UI를 불문하고 전력을 다해 실용성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총을 장전할 때 R키와 같은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마우스를 위아래로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는 기가 찰 지경이다. 문제는 이 흉물스럽고 황당한 디자인이 게임 속 극대화된 기업 자본주의 바이오펑크 디스토피아 사회의 끔찍한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면면과 더할 나위 없이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디스토피아는 과장되어 있기는 해도 당장 아무 인터넷 플랫폼이나 들어가 봐도 맞닥뜨릴 수 있는 주식 및 자기 계발 신봉자들처럼 NPC들이 ‘CEO 마음가짐 (CEO Mindset)’을 중언부언 읊어대고 펀코팝 (Funko Pop)의 패러디 천코팝 (Chunkopop)이 등장하는 등 작금의 현실이 지배받고 있는 체제와 크게 다르지도 않으므로 게임 속 세계가 어느 지점까지 ‘있는 그대로’ 생긴 것인지, 아니면 그 세계에 살며 해리되고 분열된 주인공의 정신 상태에 이러한 형태로 인식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이는 또한 현실에서도 개인들의 세계 인식 자체에 던질 수 있는 이미 고루한 실존적 질문이다. 구태여 인식과 세계의 현실을 분리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애초에 분리가 가능하지도 않을 만큼 이미 주인공은 정신뿐만 아니라 몸까지 철저히 뒤틀려 있다. 그의 두개골에는 총이 달려 있고 등에서는 가속을 위한 액체가 분비되며 내장은 밧줄처럼 사용된다. 그의 몸에는 살 위에 더 많은 살이, 내장 위에 더 많은 내장이 부착되어 있으며, 임계점을 넘은 생명 공학 그 자체가 구토하고 있다. 주인공은 회사 청산을 주 업무로 맡는 보안 업체 ‘크루얼티 스쿼드’의 청부업자로 <아머드 코어>, <사이버펑크 2077>의 연장선에서 번 돈으로 또 자신의 신체를 개조하고 개조한 신체로 더 많은 돈을 번다. 죽음이 삶을 위해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죽음을 위해 매진된다. 게임을 켜면 짧게 지나가는 도입 장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삶에의 권위... (The Authority on life...)” 그리고 주인공의 수입원은 암살 의뢰의 보상이기도 하지만 임무 수행 중 암살 대상 외에 아무런 처벌도 손해도 없이 아주 자유롭게 죽일 수 있는 민간인들의 장기를 수확해 실시간으로 암시장에서 거래하는 것 또한 포함된다. 게임 내 실시간 시장에선 주식과 장기가 나란히 거래되며 노골적으로 시신이 경제의 부富라는 것을 가리킨다. 나아가 말 그대로 시신경제에서 죽음이 최종적이며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표하기 위해 주인공은 고용주를 죽이고 신마저 죽일 수 있다. 그리고 ‘생의 요람 (Crade of Life)’에 도달해 그 자신이 신이 되는 결말에선 조르주 바타유 (George Bataille)의 『저주받은 몫』을 직접 인용하며 도대체 그래서 시신경제는 왜 죽음을 추구하며 작동하는 기계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지구 표면에서 에너지의 작용들이 결정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 있는 유기체는 원칙상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 (부)를 수용한다. 이러한 과잉의 에너지는 어떤 체계 (예를 들어 어떤 유기체)의 성장에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체계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되면, 또는 에너지의 과잉이 그 성장에 전적으로 흡수될 수 없다면, 자발적이든 아니든, 영광스러운 방식으로든 아니면 파국적인 방식으로든, 필연적으로 그러한 과잉은 이득 없이 상실되고 소비되어야 한다.”[ 11] 즉, <크루얼티 스쿼드>는 생의 과잉과 포화가 곧 죽음이라는 그 자체로서는 음의 가치를 경제의 방향타로 잡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시신 경제에서 부富와 부腐는 하나이다. 모든 사회가 아무런 의심 없이 성장을 테제로 삼고 있는 현실과 상승 지향의 영적 전파가 시신경제를 이 땅에 소환하는 의식의 제단이다. <크루얼티 스쿼드> 게임으로서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감으로써, 효율, 실용, 세련, 편안에 반대되는 음의 가치를 매체의 모든 자원을 다해 표현함으로써 시신경제의 현실을 고발한다. [1] Achille Mbembe. “Necropolitics.” Public Culture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3), vol. 15, no. 1, pp. 11–12. [2] Ibid., pp. 39-40. [3]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서울: 책세상), 402~406쪽. [4] 위의 책, 400~401쪽. [5] 위의 책, 404쪽. [6] 장-피에르 보. 『도둑맞은 손』 (서울: 이음, 2019), 50쪽. [7] Massachusetts. Acts and Resolves, Public and Private, of the Province of the Massachusetts Bay (Boston: Wright & Potter, 1869-1920), vol. 15, p. 308. [8] 프리드리히 니체. 앞의 책, 407쪽. [9] 래그돌은 본래 헝겊 인형이라는 뜻으로 게임 속 물리 엔진 상에서 관절에 힘이 없이 축 늘어진 채 허우적허우적 휘둘리는 신체 모델들을 일컫는다. [10] 앙리 베르그송. 『웃음』 (파주: 도슨트, 2022) 37쪽. [11] 조르주 바타유. 『저주받은 몫』 (파주: 문학동네, 2022), 29~30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호르몬 일지』와 『게임 코러스』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 북미의 루트박스: 한국과 다르면서 또 같은
관계자 A는 “미국게임업계의 모바일 게임을 경시하는 풍조는 오히려 업계관계자들 특히나 게임개발자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다”고 말하며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들은 좋은 개발자를 영입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작이 아니면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들이 많다. 인게임 결제가 있는 게임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크다보니 오히려 수가 적고 따라서 로트박스 문제는 관심 밖이라는 느낌이 있다”고 말하며 루트박스가 커뮤니티 안에서 크게 회자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 Back 북미의 루트박스: 한국과 다르면서 또 같은 16 GG Vol. 24. 2. 10. 세계의 루트 박스, 루트 박스의 세계 온라인이 보편화된 이후의 비디오 게임에 대해 사행성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새삼스러울 정도로 많이 제기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행성의 가장 큰 부분으로 지목되는 것은 뽑기. 우리에게는 가챠라는 이름으로 익숙하지만 익숙하지만 영미권에서는 이를 루트 박스 (Loot Box)라고 부른다. 아예 모든 종류의 루트 박스를 금지하고 있는 벨기에와 같은 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라도 유럽의 국가들은 루트박스에 대해서 공적인 제재를 선호하고 있다. 루트 박스에 대해서는 엄격한 나이 제한을 두고 있는 독일, 일부 루트 박스에 대해서는 불법 도박으로 규정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아예 EU 전역에서 루트 박스가 금지되는 법안을 준비 중인 네덜란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유럽 내의 큰 시장에서 그나마 가장 약한 제재를 가하는 곳은 영국이다. 루트 박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경고문구를 붙이는 선에서 처리되고 있다. 한국처럼 확률공개를 통해서 루트 박스를 규제하려는 국가도 있다. 2017년 5월 전세계 최초로 게임사들에게 확률공개를 의무화 했던 중국과 이를 따라 2023년부터 확률공개를 의무화한 대만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또한 확률공개를 의무로 만드려는 법안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루트 박스의 문제점에 대해서 인식하고 이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려고 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공적인 제재를 통해서 루트 박스를 통제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의의 주변에 있는 미국의 루트 박스 압도적인 규모의 게임시장을 자랑하는 미국에서도 루트 박스는 논의의 대상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202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게임시장은 주로 싱글플레이 패키지 게임 위주로 돌아갔기 때문에 루트 박스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았다. 물론 매출의 규모만 보면 모바일 게임들이 몸집을 계속 키워가고 있었지만 게이머 커뮤니티를 주도하는 여론 층은 콘솔에서 즐기는 스토리 위주의 게임에 대해서 고평가하고 논의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가챠가 포함된 모바일 게임이 시장을 완전히 주도하고 있던 한국과는 모양새가 달랐다. 미국의 게이머 커뮤니티의 여론을 주도하는 층은 여전히 콘솔에서 플레이하는 싱글플레이어 게임에 대한 선호가 굉장히 높고 게임을 사서 즐기는 행위를 일종의 책이나 영화 같은 전통적인 문화상품과 비슷하게 생각한다. 작품을 하나 사서 ‘클리어’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렇다 보니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돈을 써야하는 ‘인게임 결제’에 대해서 극도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게임의 스토리를 완결성 있게 즐기는 것을 선호하기에 DLC 또한 ‘인게임 결제의 다른 이름’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아직 루트 박스에 의한 피해가 한국에서처럼 게이머 커뮤니티 안에서 가장 중요한 논의거리까지는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루트 박스 자체가 화제의 중심에 올랐던 사건이 바로 2021년에 있었던 EA 내부문서 유출이었다. EA의 한 관계자가 내부문서를 캐나다의 공영방송 CBC에 제공하면서 누군가에게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했던 사실들이 드러났다. 54페이지의 프레젠테이션 안에는 현재는 EA FC로 이름을 바꾼 축구게임 FIFA 시리즈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매출을 견인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거대 프랜차이즈에 대한 EA의 내부 평가는 명확했다. 루트 박스를 통해서 원하는 축구선수를 뽑아야 하는 FIFA 얼티밋 팀(FUT)이라는 컨텐츠가 사실상 게임의 시금석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는 플레이어들을 FUT로 인도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고 기술해 놨다. 내부문서를 유출한 관계자는 루트 박스가 포함된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기쁘게 일할 수 없다고 내부고발을 한 이유를 밝혔다. 2024년 현재의 북미의 게임 커뮤니티를 봐도 루트 박스가 가장 뜨거운 주제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여론을 주도하는 층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는 아닐지언정 루트 박스가 게이머들의 경험을 망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다. 사적인 제재에 나서다 미국사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저변에는 항상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자유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발전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국 건국 초기 있었던 연방주의 논쟁부터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충돌했고 정부와 개인이 충돌해왔다. 그 과정에서 미국 사회는 정부의 공적인 행위를 통한 문제해결에 대한 기피와 불신을 품고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차상위계층에 대한 경제적 도움을 줄 때도 유럽은 세금을 많이 내 정부가 주도하는 복지를 강조하는 반면 미국은 개인의 기부가 모여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 그림을 선호한다. 그리고 이게 미국시장이 루트 박스를 대하는 흥미로운 지점을 만들어낸다. 미 연방거래위원회는 이미 2019년 루트 박스 판매에 대해서 소비자 보호 기능이 더 강화되야 한다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딱히 공적인 제재를 하지는 않았다. 상술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루트 박스가 문제임을 인식하고 이를 공적 제재에 나서려고 하지만 미국은 아직까지도 사적 제재를 통해서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집단소송을 통해서 루트 박스에 대한 견제가 들어가는 형국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에픽게임즈에 대한 소송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제기 된 집단 소송에 따르면 에픽게임즈는 포트나이트의 한 모드인 ‘포트나이트: 세이브 더 월드’에서 루트 박스를 판매했다. 소송을 진행한 측에서는 에픽게임즈가 루트 박스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이 게임에 필수적인 요소였으며 미성년자들도 어떤 상품이 나올지 모르는 채 구매를 하는 등의 ‘착취’를 당했다고 밝혔다. 에픽게임즈는 이후 패치를 통해서 루트 박스를 구매할 때 안에 있는 상품을 확인할 수 있게 바꾸었지만 이미 지금까지 구매했던 플레이어로부터 제기된 소송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에픽게임즈사는 2021년 집단소송에서 합의에 이르렀고 2650만 달러 규모의 게임 내 재화를 지급했다. 루트 박스 상품인 ‘라마’를 구입한 모든 플레이어에게 8달러 상당의 V-Bucks를 지급했다. 로켓 리그에서도 같은 일이 있어 루트 박스를 구매한 플레이어들에게 1000 크레딧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서 게임 내 재화를 받은 플레이어는 각각 650만 명과 29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에픽게임즈는 발표했다. 소송은 효과적인 루트박스 규제인가 물론 성공적으로 합의에 이른 소송만 있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에서는 EA를 상대로 FIFA 시리즈의 루트 박스에 대한 소송이 제기됐다. 원고인 마크 서덜랜드 측은 EA가 소비자를 기만해왔으며 루트 박스는 불법도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 측은 EA가 기만적인 판매방법을 썼을 수 있지만 루트 박스 판매가 일종의 도박이며 따라서 불법이라고 규정한 서덜랜드 측의 주장에는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2023년 공개한 판결문에서 캐나다의 법정은 게임 내에서 통용되는 재화나 아이템은 ‘현금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도 사용 할 수 있는 재화를 걸고 하는 도박과는 다르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물론 EA 측은 이런 판결에 대해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논리를 전개한 소송이 있었지만 결과는 거의 비슷했다. 모바일 게임 브롤 스타즈의 루트 박스가 미성년자에게 판매된 것은 불법도박이라고 주장한 레베카 테일러는 브롤 스타즈의 제작사인 슈퍼셀을 고소하지 않고 이러한 루트 박스 판매를 용인한 애플 앱스토어 측을 고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루트 박스를 구매할 때 쓰는 게임 내 재화인 ‘보석’은 도박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애플은 게임 내 재화 구매까지만 책임이 있고 이후에 게임 내 재화를 이용해서 하는 것들은 애플보다는 제작사 측에 책임이 있다고 명백히 밝힌 것이다. 물론 애플과 함께 양대 앱마켓을 이루고 있는 구글 플레이 스토어 측에도 비슷한 소송이 있었다. 같은 로펌에 의해서 제기 된 이 소송은 게임의 종류가 브롤 스타즈에서 파이널 판타지 브레이브 엑스비어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당연하게도 이 소송 또한 상술한 것과 같은 이유로 기각됐다. 실패한 소송을 보면 루트 박스에 대한 규제를 주장하는 측이 루트 박스가 불법도박이라는 점을 입증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따라서 루트 박스를 판매하는 게임들이 현재의 갑자기 게임 내부에서 현금을 가져갈 수 있는 ‘환전소’를 만들지 않는 이상 소송은 효과적인 제재가 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게임업계의 의견 업계 내부에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미국 게임업계에 현직으로 일하고 있는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익명으로 들어보았다. 관계자 A는 “미국게임업계의 모바일 게임을 경시하는 풍조는 오히려 업계관계자들 특히나 게임개발자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다”고 말하며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들은 좋은 개발자를 영입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작이 아니면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들이 많다. 인게임 결제가 있는 게임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크다보니 오히려 수가 적고 따라서 로트박스 문제는 관심 밖이라는 느낌이 있다”고 말하며 루트박스가 커뮤니티 안에서 크게 회자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BM과 관련한 업무를 하고 있는 관계자 B는 “현재 게이머 커뮤니티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30대 이상은 루트박스를 이용하는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모바일 네이티브인 10대들은 거부감 없이 루트박스를 이용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우려할 만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면서 “루트박스와 관련한 소송을 거 주체들이 대부분 10대 자녀를 둔 부모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부모도 모르는 사이에 루트박스에 돈을 탕진하는 일이 소송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나성인) 홍영훈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 [북리뷰] 스테이지를 전환하자는 제안, 〈모럴컴뱃〉
따라서 필요한 것은 ‘컨트롤러를 집어들고 게임을 계속 즐기면서’(246쪽) 게임에 대해 계속 대화하는 것이다. 〈모럴컴뱃〉은 게임에 대한 대화를 하기에 아주 좋은 책이다. 310개에 달하는 각주는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연구와 부정적인 연구를 포함하면서 게임에 관한 주요한 사건에 관한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다. 게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든 이 책의 자료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호기심이 찾는 여정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 Back [북리뷰] 스테이지를 전환하자는 제안, 〈모럴컴뱃〉 02 GG Vol. 21. 8. 10. 2018년 3월, 미국 백악관은 유튜브 공식 계정에 “Violence in Video Games”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시했다. 게임의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을 모은 1분 28초 길이의 이 영상은 게시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반발은 크게 두 가지 맥락에서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게임의 폭력성을 강조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으로만 영상을 구성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용이 그러하다 보니 성인만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영상을 연령 제한을 두지 않고 전체 공개로 등록한 것이다(후자는 문제가 제기된 후 링크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고 성인만 재생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비영리단체인 Games for Change는 “#GameOn - 88 Seconds of Video Games”라는 제목의 영상을 유튜브 공식 계정에 게시했다. 게임의 아름답고 장대한 장면을 백악관 영상의 길이만큼 보여준 이 영상은 게임에는 다채로운 장면이 있다는 응답과 더불어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 게임제작자와 게이머에게 품위 있는 격려를 보냈다고 평가받으며 큰 호응을 얻었다. 얼핏 보면 게임의 폭력성을 주제로 논박이 벌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 후로 별다른 논의가 더 이어지지 않았다. 게임의 유해성을 주제로 한 논쟁은 ‘늘 있으면서 때로 두드러지는’ 것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백악관이 게임의 폭력성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연이어 발생한 학교 내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해 느슨한 총기 규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었다.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백악관은 총기 사고의 원인을 느슨한 총기 규제 대신 ‘폭력적인 게임’으로 돌리기 위해 이 영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Games for Change의 영상에 굳이 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게임의 폭력성 논쟁의 핵심, ‘도덕적 공황’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오래된 오해를 심층적으로 탐색한 〈모럴컴뱃〉이 만일 이 사건보다 늦게 발간되었다면 저자들은 분명 이에 관한 내용을 책에 포함했을 것이다. 이 책에 담은 저자들의 논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을 강조해 폭력적인 게임이 현실에서 폭력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암시하는 영상과 그 편향적인 메시지를 백악관이 특정한 의도를 위해 강조하는 과정이 저자들이 제시한 개념인 ‘도덕적 공황(Moral Panic)’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이나 활동에 대한 공포가 그것이 실질적으로 사회에 가하는 위협에 비해 과도해지는 현상(41쪽)”인 ‘도덕적 공황’은 새로운 트렌드에 공포를 느끼는 사회의 유력인사, 그러한 공포가 유해하다고 강조하는 미디어와 정치가, 공포의 유해성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를 작성한 연구자가 공포를 반복 재생산하는 구조를 만든다(53쪽). 이 개념을 통해 게임의 유해성에 대한 논쟁이 왜 끝이 보이지 않는지, 그리고 게임의 유해성에 관한 논쟁에서 제시되었던 논의의 조각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볼 수 있다. 게임에 관한 도덕적 공황의 핵심은 게임이 유해하다고 ‘믿는’ 것이다(저자들은 이에 대해 ‘착각상관’(Illusory Correlation)이나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과 같은 심리학 개념으로도 설명한다). 믿음은 토론으로 좌우되기 어렵다. 게임의 유해성에 대한 논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게임이 유해하다고 믿는 이들이 게임이 유해하다는 주장과 근거에만 눈과 귀를 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함께 믿는 사람이 줄어들어 약해질 때 비로소 바뀔 수 있다. 이때 주의할 점은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이 약해진다는 것은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이 줄어든다는 것이지, 게임이 유용하다는 믿음이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염려와 의심이라는 발단 그렇다면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은 어떻게 약해질 수 있을 것인가? 이 물음은 논쟁의 해소 가능성과 더불어 게임을 즐기고 누리는 문화의 확산과도 연관된다.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이 약해진 토대 위에서 게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묻고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믿음’을 다른 표현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은 게임에 대한 편견에서 촉발된다. 그 편견은 게임이라는 새로운 매체에 대한 염려와 의심에서 비롯될 수 있다. 염려와 의심은 대상에 대한 두려움과 반감으로 이어지지만, 대상을 충분히 이해할 때 해소된다. 그런 점에서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은 게임에 대한 염려와 의심이 도덕적 공황을 통해 주관적 확신으로 공고화된 결과이다. 믿음의 결과에만 집중하면 게임의 유해성에 대한 논쟁이 해소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염려와 의심이라는 발단에 집중한다면 다른 가능성을 기약할 수 있다. 이러한 염려와 의심이 믿음으로 공고화하는 과정에 미치는 요인에 대해 저자들은 3가지를 제시한다. 새로운 매체에 대한 공포, 세대 차이, 그리고 정치화된 연구이다. 먼저 새로운 매체에 대한 공포는 새로운 매체가 겪는 일종의 통과의례에 가깝다. 만화도 그랬고 TV도 그랬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만화와 TV에 대한 두려움 역시 유해성을 중심으로 문제가 제기되었다(그리고 게임과 마찬가지로 제기된 문제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다!). 이러한 두려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잦아든다. 미디어를 두고 벌어지는 도덕적 공황은 시간이 해결해주듯(89쪽), 만화와 TV에 이어 게임도 ‘그다음 차례’(250쪽)가 되어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을 두고 살펴볼 만한 의문 세대 차이는 게임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응과 연관된다. 저자들은 이를 ‘골디락스 효과’(the Goldilocks Effect)라 부른다. 골디락스 효과는 각 세대가 자신들이 주로 활용하는 미디어가 적당하여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앞선 세대는 고루하기 짝이 없고 다음 세대는 통제 불능이라고 생각한다는 태도로 모든 세대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60쪽). 이는 게임의 유해성을 주로 제기하는 기성세대가 게임에 대한 이해가 낮은 이유와도 연결된다. 게임을 잘 이용하지 않으니 게임을 잘 이용하는 사람만큼 모르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게임에 대해 염려와 의심을 제기하는 건 일견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앞서 새로운 매체에 대한 공포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게임 다음의 매체가 무엇이 될지 모른다. 게임과 연결될 수도 있고 전혀 다를 수도 있다. 만일 게임과 다른 매체가 등장하고 새로운 세대가 그것을 즐긴다면, 현재 게임을 잘 아는 세대 역시 그에 대해 염려와 의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그래도 게임은 지금의 만화와 TV처럼 나름의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게임에 대한 염려와 의심은 ‘살펴볼 만한 의문’(220쪽)이다. 그런데 이러한 염려와 의심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반박만을 해온 것은 아닌지, 대화 대신 대결을 선택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게임의 유해성에 대한 질문이 유해성 여부만을 묻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에 대해 유해성을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또 그러한 질문은 어떤 배경과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살피면서 게임의 유해성을 파악한다면, 염려와 의심을 해소하고 게임에 대한 이해 위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시도되었던 ‘게임제목묻기운동’은 가치 있는 시도로 주목할 만하다. 게임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주장에 대해 ‘어떤 게임이 그러한지’, ‘어떤 유해성이 있는지’ 묻자고 제안하는 이 운동은 반박에 반박으로 맞서는 대립을 거듭하는 게임의 유해성 논쟁에서 새로운 물꼬를 트고자 하는 시도였다. 게임의 유해성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단체가 이 물음에 응답하지는 않았으나, 이 물음에 어떠한 답이 돌아온다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럴컴뱃, 누구 대 누구의? 저자들이 도덕적 공황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제시한 ‘정치화된 연구’(55쪽)는 게임의 유해성에 대한 염려와 의심이 그러하다고 믿는 근거로 작용한다. 결과를 과도하게 일반화하거나 잘못 추론한 연구(71쪽)는 폭력적인 게임이 실제로 현실에서 폭력을 일으키게 만든다는 염려와 의심이 맞는다고 생각하게 했다. 연구 결과는 사회 유력인사, 미디어와 정치인 등을 통해 확대되고 그 결과 연구자는 명성과 연구 재원을 확보한다. 그런데 특정한 목적을 위해 편향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연구 윤리에 어긋난다. 미국 연구윤리국은 연구 윤리의 출발점으로 정직성, 정확성, 효율성, 객관성을 꼽는데, 근거가 충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적 게임과 현실의 폭력적인 행위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결론 맺는 연구들은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고 부당한 편견을 피하는 객관성을 특히 어긴 것이다. 게임이 유해할지도 모른다는 ‘살펴볼 만한 의문’을 두고 도덕적 공황의 구조 위에서 사회 유력인사, 정치가, 미디어, 연구자 누구도 살펴보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 중 누구에게 이 가장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할 의무가 있었을까? 저자들은 기존에 이루어진 연구들이 어떠한 점에서 객관적으로 충분하지 않은지 설명하는 것으로 대신했지만 이 책의 제목을 통해 어쩌면 이 지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을지 모른다(역자도 밝혔듯(251쪽) 이 정도를 밝힌 것만으로도 굉장한 용기로 봐야 할 것이다). 저자들은 ‘폭력적 게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처음 이루어졌던 시기와 비교해 최근 게임이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리라 생각하는 학자와 의사의 비율이 낮다는 것을 제시한다(243쪽). 그런 점에서 책의 제목인 ‘모럴컴뱃’의 여러 중의적인 의미 중에서도 저자들은 책에서 ‘반-비디오게임 제국’과 ‘반란군 연합’으로 비유한 것처럼(83쪽) 게임의 유해성을 연구하는 시니어 연구자와 주니어 연구자 간의 전쟁이라는 의미에 무게를 두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쟁이 게임에 대한 낮은 이해와 편견(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연구자에게도 게임에 대한 염려와 의심이 있었을 것이다)에서만 촉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이 약해지는 것이 게임이 유용하다는 믿음이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시했다. 이를 적용하면, 젊은 연구자들이 과거와 비교해 게임이 유해하다고 덜 생각한다고 해서 게임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게임에 대한 연구가 확인한 것은 ‘비디오게임 플레이에 효능만 있는 것도, 유해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정도’(222쪽)이기 때문이다. 감정과 신체적 측면에서 게임이 유용한 효과를 제공한다는 결과가 확인된 사례가 있긴 하다. 그런데 현재는 이를 일반화하기보다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수행된 폭력적 매체 효과에 대한 연구를 통해 게임의 폭력성이 지닌 위험을 믿는 연구자가 줄어든 것처럼(243쪽) 게임의 가능성에 대해 계속해서 연구해나가는 것이 필요한 단계인 것이다. 연구 윤리를 준수하면서! 필요한 질문들 윤리는 연구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 유력인사와 미디어 그리고 정치가에게도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윤리가 있다. ‘폭력적 게임’을 둘러싼 도덕적 공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게임의 유해성 대신 다른 질문들이 제기되었을 것이다. 그 질문들은 게임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다. 이 질문은 ‘게임 리터러시’라는 용어로 최근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 게임보다 앞선 미디어를 통해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확인한 경험이 있었음에도 이를 뒤늦게 적용하게 된 셈이다. 만일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을 좀 더 일찍 다루고 있었더라면 게임이 인간의 공격성을 부추긴다는 것을 확인하겠다고 많은 사람이 한창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PC방의 전원을 내리는 실험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게임이 폭력적인 내용이 공격성의 증가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강제로 중단되면서 느끼는 짜증’(204쪽)일 뿐임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질문이 필요할까. 저자들은 게임의 유해성을 다룬 연구의 불충분한 근거를 지적하는 것 못지않게 현실에서 폭력적 행위가 발생하기 어려운, 하여 더더욱 게임과 연관 짓기 어려운 사회적 조건들을 제시한다. 이러한 접근은 그동안 게임의 유해성에 대한 논쟁에서 정작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를 주목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게임을 통해 폭력적인 상황을 경험한 게이머가 현실에서 게임과 똑같은 폭력을 재현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믿음’은 얼마나 인간을 불신하는 것인가! 따라서 게임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은 게임을 이용하는 인간을 중심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인간은 게임을 통해 어떤 경험을 하는지, 인간이 게임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어떠한 것인지, 그러한 즐거움은 게임 이전의 미디어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이러한 질문은 이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게임이 유해하다는 믿음 속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과 그 믿음이 사라진 데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다르다. 질문의 목적지가 살펴볼 만한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 대한 이해와 호기심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논쟁을 넘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임의 가능성을 찾아보자는 제안에 가깝다. 게임의 폭력성이 ‘존재한다-그렇지 않다’를 벗어나면 할 수 있는 질문은 너무나 많다. 먼저 게임의 상호작용성을 꼽을 수 있다. 게임 이전의 매체와 게임을 구분하는 중요한 차이인 상호작용성은 게임의 정체성과도 연관된다. 게이머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특징을 게임에 대한 이해가 낮은 세대는 특히 궁금해할 것이다. 게임이 아닌 다른 매체에도 상호작용성이 적용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게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게임에 대해 정말 살펴야 할 의문들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 있다. 저자들도 제시했듯 게임에서의 경험은 게임 내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게임에서 형성되는 이용자 간의 관계는 게임 밖의 경험으로도 이어진다. 이는 게이머가 게임을 통해 경험하는 것이 더는 현실과 단절된 것이 아님을 뜻한다.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논쟁이 게임이 제공하는 ‘안전하게 과장된’(35쪽) 경험을 단단히 잘못 이해한 것에 불과한 것을 확인했다면, 차별과 혐오와 같은 현실의 문제가 게임에서도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새로운 과제로 맞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컨트롤러를 집어들고 게임을 계속 즐기면서’(246쪽) 게임에 대해 계속 대화하는 것이다. 〈모럴컴뱃〉은 게임에 대한 대화를 하기에 아주 좋은 책이다. 310개에 달하는 각주는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연구와 부정적인 연구를 포함하면서 게임에 관한 주요한 사건에 관한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다. 게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든 이 책의 자료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호기심이 찾는 여정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 [인터뷰] AI로 새로운 게임성을 만든다는 것: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의 이가빈 PD,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의 한규선 PD
크래프톤의 스튜디오 중 하나인 렐루게임즈는 딥러닝 기술을 게임과 접목시켜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여러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음성 역할 시뮬레이터와 프리폼 채팅 어드벤처라는 독특한 게임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평단과 게임사의 관점뿐 아니라, 유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하<즈큥도큥>)의 이가빈 PD와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하<스모킹건>)의 한규선 PD를 만나, AI 기술의 가능성과 현시점에서의 한계를 짚어보고, 새로운 게임성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 Back [인터뷰] AI로 새로운 게임성을 만든다는 것: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의 이가빈 PD,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의 한규선 PD 19 GG Vol. 24. 8. 10. 바야흐로 AI의 시대이다. 미래 기술로 인식되던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고, 그중에서도 게임은 기술적 도입의 가능성을 넓힐 수 있는 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게임을 만드는 공정에서 AI 기술이 활용된다고 'AI 게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순 없을 것이다. AI 기술을 이용해서 게임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이 다양해지고 그로 인해서 새로운 게임성이 만들어질 때, 'AI 게임'의 시대가 열린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만들고자 하는 게임 기획자들이 있다. 특히, 크래프톤의 스튜디오 중 하나인 렐루게임즈는 딥러닝 기술을 게임과 접목시켜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여러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음성 역할 시뮬레이터와 프리폼 채팅 어드벤처라는 독특한 게임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평단과 게임사의 관점뿐 아니라, 유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마법소녀 카와이 러블리 즈큥도큥 바큥부큥 루루핑>(이하<즈큥도큥>)의 이가빈 PD와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하<스모킹건>)의 한규선 PD를 만나, AI 기술의 가능성과 현시점에서의 한계를 짚어보고, 새로운 게임성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경혁 편집장: 최근 게임씬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렐루게임즈의 PD님들을 모셨는데요.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와 맡으신 게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가빈 PD: 안녕하세요. 저는 이가빈이라고 하고요. 게임 디자이너 출신으로, 지금은 '마법 소녀 그 긴 거' 담당 PD를 맡고 있습니다. 저희는 음성 인식을 통해서 유저들의 목소리를 게임의 데미지로 바꾸어 공방을 주고받는 형태의 게임을 만들었고요. 딥러닝을 본격적으로 사용해서 (게임 내) 판정이나 자연어 인풋, 에셋에도 딥러닝이 들어가게끔 만들었습니다. 한규선 PD: 저는 한규선이고요.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이라는 게임 PD입니다. 저희 게임은 근미래의 탐정이 돼서 로봇 용의자들과 대화를 하는 게임이거든요. 그래서 사건 현장에 가서 증거들을 수집하고 그 증거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용의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때, GPT가 사용되어서 게이머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고, 무슨 말이든 로봇 용의자가 받아치면서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저희 게임의 가장 큰 특장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는 두 게임을 다 굉장히 재미있게 즐겼는데요. 플레이하면서 레퍼런스에 대한 생각이 들었어요. 먼저, <즈큥도큥> 같은 경우에는 옛날 플래시 게임 중에 <장미와 동백>이라는 게임이 떠올랐는데요. 혹시 이 게임을 아시나요? 이가빈 PD: 실제로 많이 참고했어요. 특히 그 게임의 대화나 컨셉에서 화족(근대 일본의 귀족 계급)이 나오잖아요? 화족이라고 하면 고고한 컨셉인데, 실제로 인물들은 상욕을 하고 뺨을 때리거든요. 그렇게 반전을 넣은 것을 보면서 컨셉에 반전을 주는 지점이라거나 B급 감성 같은 것들을 어떻게 풀어내는지 참고를 많이 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실제로 참고를 하셨군요. 저는 <즈큥도큥>를 보면서 그 게임 생각이 많이 났거든요. 익숙한 컨셉이지만 이걸 더 직관적으로 살려낸 느낌이 들었어요. 한편으로, <스모킹 건>을 보면서는 게임이 아니라, <크라임씬> 생각이 많이 났거든요. 플레이하는 입장에서 보면 <크라임씬>을 유저가 직접 하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사건의 전말' 같은 것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한규선 PD: 오! 맞아요. 저도 <크라임씬> 팬이었고, <대탈출>이나 그런 프로그램들을 다 좋아하거든요. 실제로 처음 기획할 때에는 사실 인간 용의자를 상정하고, <크라임씬> 같은 컨셉을 아예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GPT나 AI 기술이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아서, 인공지능이 말을 잘 못했거든요. 그래서 용의자를 로봇으로 설정한 게 그런 한계를 어느 정도 커버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스토리를 풀어나가거나 게임의 컨셉을 지키는 입장에서 더 잘 표현되는 지점들이 생겼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도 처음에는 '왜 굳이 로봇 이야기일까?'라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유저에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더라구요. <장미와 동백> 이경혁 편집장: 지금 두 게임 다 렐루게임즈 소속이고, 다른 인터뷰에서도 말씀하셨던 것처럼 AI 기술을 중요하게 다루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더 사람들의 관심도 받고, 관련된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관련해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먼저, GPT를 쓰기 때문에 아무래도 비용이 많이 나갈 것 같은데, 매출과 비교했을 때 효용이 있나요? 이가빈 PD: 사실 얼마를 벌어도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죠. (웃음) 서비스를 할 수록 비용이 나가거든요. 한규선 PD: 추리 게임 장르 같은 경우에는 장르적 특성도 있는 것 같고요. 만약에 다시 하라고 그러면 조금 더 대중적인 장르를 할 것 같아요. 사건의 전말이 공개됐을 때, 플레이어들은 다시 플레이할 만한 필요성을 많이 못 느끼거든요. 그래서 더 넓은 시장으로 가는 걸 목표로 하고 있고, 그렇게 되면 조금 더 유의미한 매출이 발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매출과 관련된 질문을 드린 이유는, 오늘날 AI에 관련된 담론 때문인데요. 일각에서는 스토리텔링 기반의 게임에서 콘텐츠를 만들 때 AI가 적용되면 리소스적인 효율성이 나올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게임을 만드시는 입장에서 스토리를 AI가 만든다고 하면, 조금 더 경제적인 효율성이 나올 수 있을까요? 한규선 PD: 스토리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저희 같은 경우에는 오리지널 스토리를 다 쓰고 있거든요. 이야기나 대사 같은 것들을 제작팀이 다 쓰고 있고, GPT나 AI에 맡기는 부분은 일부 리소스 정도이지, 이야기를 탄탄하게 만들려면 아직은 AI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제작팀마다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가빈 PD: 저희도 비슷해요. GPT나 LLM 같은 경우엔 인간 상식의 평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만약, 스토리를 라이트하게 쓰고자 한다면 쓸 수는 있는데, 극단으로 가는 자극적인 스토리나 상상력이 많이 필요한 부분, 혹은 강한 조미료를 뿌려야 하는 부분은 맡기기 힘든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규선 PD: AI는 절대로 아스파탐을 못 떠올릴 거예요. 아마. (일동 웃음) 이경혁 편집장: 그렇군요. 오늘날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AI는 모든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영역으로 그려지곤 하지만, 실제로 작업하시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만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여쭤보았습니다. 한규선 PD: 그래도 보조도구로는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이가빈 PD: 맞아요. 도구로써는 정말 좋은 역할을 해줘요. 저희도 주문 같은 걸 만들어야 한다거나, 스토리에서 메꿔야 할 빈 공간이 있을 땐 AI에 물어보고 참고도 합니다. 일단, 어딘가에 물어볼 곳이 있다는 사실은 무조건 좋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좋아요. 이상한 답변을 주더라도 내가 물어볼 곳이 있고 진지하게 같이 고민을 해준다는 건 좋은 거죠. 이경혁 편집장: 약간 그런 느낌일까요? 옛날 수도승들이 벽하고 대화하는 느낌? 한규선 PD: 제가 느끼기에는 어떤 질문의 정수까지는 닿지 못하는데, 아는 것은 많은 친구 느낌이에요. 질문을 하면 아는 것이 많아서 뭐든 대답은 하는데, 정수에는 미치질 못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그런데 사실 AI가 제작 도구로써도 활용되지만, 다른 방식으로도 게임씬에 들어오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는데요. 가령, <스모킹 건> 같은 경우에는 AI가 배우의 역할도 하지 않나요? 게임을 만드실 때, 거기 나오는 안드로이드에게 일종의 액팅 지도를 해야 하지 않나요? 한규선 PD: 실제로 액팅 지도가 들어가 있어요. 등장하는 캐릭터가 한 18개 정도 되는데, 그 캐릭터성을 다 다르게 표현하려 했거든요. 정보를 가지고 있는 형태는 유사할 수 있어도, 그거를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는 각자 다 다르게 하고자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캐릭터마다 다 세팅을 하시는군요. 중간에 오타쿠 의사 로봇이 나올 때, 저는 연기 지도가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기존의 게임 디렉터와 다르게, 약간 영화 감독 같은 작업이 되었겠는데요? 이런 작업은 기존의 게임 개발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장면들이잖아요. 한규선 PD: AI를 활용한 작업은 저희에게 익숙합니다. 저희는 2019년부터 이런 작업을 4년째 했었거든요. 이경혁 편집장: 그러면 4년간 작업을 하시면서 AI를 활용한 작품 중에서 괜찮은 레퍼런스가 되었을 게임이 있었나요? 이가빈 PD: 내부에서 만든 게임이 주로 떠오르긴 하는데요. 사실 저희 <즈큥도큥>의 전신이 되는 게임 중에 <워케스트라>라는 게임이 있었어요. 이 게임은 음성으로 군대를 움직여서 전략 전투를 하는 게임이었는데요. 개발 테스트에서 음성으로 누굴 공격하라거나 어떤 스킬을 쓰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저는 주체적으로 말을 못 고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옵션을 제공하고 어떤 말을 해야할지 제공해야겠다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해서 만든 것이 <즈큥도큥>였어요. 한규선 PD: 저희도 이전에 프로토타이핑했던 <데몬>이라는 게임이 있었는데요. GPT가 악령이에요. 이 악령의 이름을 말하면 이기는 게임이거든요. 그래서 얘한테 정보를 숨겨놓고, 그걸 찾아서 성불시키는 게임이었는데, 뭐 개발 과정에서 처참하게 망했죠. (웃음) 이경혁 편집장: 저는 되게 재밌어 했을 것 같은데요? 한규선 PD: 저도 지금 만들면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당시에 가빈 PD님이 테스트를 엄청 깊게 해주셨거든요. 그 과정에서 게임에 정보를 숨기는 것이 어렵구나 하는 점을 배우고, 그다음에 추리 게임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스모킹 건>에서도 그런 장면을 봤었던 것 같아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기사에 실을 수는 없겠지만. 한규선 PD: 와! 맞아요. 그거를 이런 식으로 알아차리실 줄은 몰랐는데... 저만 알고 있는 건데... 맞아요. 이경혁 편집장: 기사를 읽으시는 분들도 전신이 되는 게임의 컨셉이나 노하우가 어디에 담겨있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으실 수 있겠네요. 이경혁 편집장: <즈큥도큥>에 대해서도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렐루게임즈에서 여러 인터뷰가 있었지만, <즈큥도큥> PD님은 인터뷰에 거의 나오신 적이 없잖아요? 이가빈 PD: 네. 이번이 첫 인터뷰예요. 이경혁 편집장: 아시겠지만, 지금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다니, 왜 이런 걸 만들어서, 만든 사람 주소 알아야 된다 뭐 이런 글들이 나오고 있어요. (웃음) 그러면서 우스갯소리지만, 커뮤니티에서는 '이걸 만든 사람은 지금까지 대체 어떤 게임을 했기에 이런 걸 만들 수 있냐'는 궁금증도 올라오거든요. 그런데 저도 그건 궁금하더라구요. 한규선 PD: 저도 궁금하네요. (웃음) 이가빈 PD: 개발자는 어떤 게임을 해놨냐는 질문에 두 가지 분류의 답이 있을 수 있잖아요? 먼저 만들어 온 게임으로 치면, 저는 <테라>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테라> 콘솔로 넘어갔다가, 지금은 없어진 프로젝트인데 소울라이크 게임에서 전투를 담당하는 디자이너였어요. 그리고는 라는 AI 활용 퍼즐 게임에서 처음 AI를 만났죠. 그전까지는 던전 만들고, 전투 만들고, 칼과 방패를 들고 몬스터들과 싸우는 게임들의 콘텐츠 디자이너였어요. 플레이한 게임도 사실은 그것들과 그렇게 크게 다르지는 않은데요. 소울라이크도 했었고, 시뮬레이션을 되게 좋아했었어요. 갓오브워나, 시티 빌더 류도 포함해서 경영 쪽이나 아니면 <용과 같이>도 재밌게 했었어요. 한규선 PD: 내면에 흑염룡이 있으셨군요. (웃음) 이가빈 PD: 그렇게 싱글 플레이를 위주로 했었고요. 딱히 그 안에서 '그런' 게임은 없었다. (일동 웃음) 상상하신 것처럼 집에 가서 뺨 때리고 그러지 않았어요. 저도 여러분과 같은 게임을 하면서 모두가 다 밟는 코스를 밟아왔어요.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웃음) 이경혁 편집장: 한편으로, 게임 제목에 대해서도 많은 추측과 이야기들이 있는데요. 어떤 의도로 게임 제목을 정하셨나요? 이가빈 PD: 그게, 원래는 가명이었어요. 어떤 게임을 만들지 소개하는 게임 기획 단계에서 원래는 '최대한 읽기 수치스러운 이름으로 정해야지' 하면서, 제가 생각했을 때 읽기 부끄러운 단어들을 이렇게 다 띄워놓은 건데, 출시할 때가 되니까 이름을 지을 시간이 없어서 (웃음) 바빠 죽겠는데 이름까지 처음부터 다시 정하려면 힘드니까. (그냥 냈어요) 한규선 PD: 최고의 선택이었다. (일동 웃음) 이경혁 편집장: 수치스러운 이름이라고 하셨는데, 게임 내용에서도 저는 참 이게 어렵더라고요. 방에 아무도 없어도 피드백을 주잖아요. 처음에는 뭣 모르고 시작했다가, 제 목소리라는 걸 깨닫고 그때의 수치감은... (웃음) 한규선 PD: 저도 디자이너지만, 디자이너로서 봤을 때 되게 혹독한 게임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보통은 그냥 자기 목소리 녹음을 해서 들어도 굉장히 어색한데 거기에 이펙트도 먹이고, 에코도 넣어서. 이가빈 PD: 원래 시작은 감정 모델로 음성을 보내서 데미지를 계산하는 통신 시간을 채우기 위함이었어요. 음성 데이터가 갔다 오는 시간이 꽤 걸리거든요. 유저에게 그 딜레이를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까 어떤 시스템이든 만들어야 했는데, 저희는 거기에서 유저의 메인 경험 안에 수치심이라는 걸 넣고자 했어요. 그리고 이 시간을 활용해서 수치심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죠. 이경혁 편집장: 멀티플레이를 제공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까요? 이가빈 PD: 그렇죠. 멀티플레이랑 PVE가 근본적으로 다른 건 뭐냐면, '진심으로 이기고 싶은 상대이냐? 아니냐?'. 그러니까 유저의 몰입도 측면에서 조금 더 내가 많은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냐? 없냐?를 결정짓는 부분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멀티를 딱 한 번 해보고 도저히 못 하겠어서 접었는데, 서로 모르는 사람이 길에서 만나서 바지를 누가 더 길게 내리는가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일동 웃음) 이가빈 PD: 그런데 그 시원함도 있죠. 일탈감? 해방감? 한규선 PD: 저희 팀 같은 경우에도 게임 출시하고 난 다음에 이제 쉴 수 있다고 했을 때, 다들 <즈큥도큥>를 한 번씩 키는 거예요. 그 해방감이 있죠. 이가빈 PD: 사회적 체면이라는 게 사실은 되게 별거 아니거든요. 이게 처음에 되게 창피하고 그렇지만, 사회적 체면을 내려놔야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점점 무뎌져 가는 부분들이 있어요. 저희는 그런 지점들을 고민하면서 게임을 만들었어요. 저희 팀원들의 경우에도 사실 매일 이걸 해야 하거든요. 처음에는 수치스럽다가, 지금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요. 한규선 PD: 다만, 저는 그게 무서울 때가 있어요. (일동 웃음) 처음에는 옆에서 게임을 하면 막 킥킥대면서 그랬는데, 지금은 심각하게 주문을 외우는데도 다들 일상화되어 있어요. 이가빈 PD: 그렇죠. 결국 수치심엔 내성이 생겨요. 몇 번 하고 나면 무뎌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게 또 리스크이지 않나요? 게임이 장기적으로 갈 수 있는지를 본다면 그 해방감과 상쾌함이 순식간에 끝나는 것도 문제잖아요. 이가빈 PD: 맞아요. 그러니까 계속 더 강한 수치심을 느끼게끔 개발하고 있어요. (일동 웃음) 그런데 저는 이 해방감이 짧아도 좋고, 언젠가 끝나도 좋으니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드리고 싶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스모킹 건>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시나리오가 거의 SF 형태인데 크레딧에 나오는 작가분들이 원래 SF 작품 활동을 하시는 분들인가요? 한규선 PD: 아, 시나리오는 주로 제가 썼고요. 원래 SF를 생각하고 한 건 아니었어요. 처음에 로봇이 살인범 이려면은 두 가지 경우밖에 없더라고요. 하나는 스스로 자유 의지를 가지고 살인을 한 경우든지, 아니면 사람의 조종이 있어야 하든지 두 경우이죠. 그런데 시나리오를 확장하려다보니, 아이디어가 점점 커졌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제가 흥미롭다고 느꼈던 점은 로봇 3원칙을 안 썼다는 점이었거든요. 보통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 클리셰인데도, 그걸 안 쓰신 이유가 있을까요? 한규선 PD: 저도 처음에 검토를 했었는데, 로봇 3원칙 자체가 특정 작품에서 나온 이야기더라고요. 그래서 이 개념을 사용할지 고민을 하다가, 그냥 우리만의 방식으로 풀어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이런 세계관을 구축하신 것도 대단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추리 게임을 좋아해서 더 관심이 가는데, 시즌제를 만드실 계획은 혹시 없으신가요? 한규선 PD: 시즌 2를 만들고는 싶어요. 시나리오도 어느 정도 생각해놓은 게 있거든요. 마지막 부분에 보면 회수하지 않은 떡밥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다뤄질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시즌 2를 언급해주셨는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AI를 활용한 게임이 종합적인 연출의 능력들도 필요하다 보니 다른 장르의 게임들에도 활용할 여지가 많을 것 같아요. 혹시 다른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하셨나요? 한규선 PD: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처음 써봤거든요. 그런데 종합적으로 연출하고 상상력을 표현하는 일들이 너무 재밌는 작업이더라고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한 NPC라는 영역을 발견했죠. 그래서 나중에는 이런 기술과 시나리오를 조금 더 대중적인 장르에 접목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예를 들어 RPG라든지, 시나리오가 탄탄하게 있는 게임에다가 이런 기술을 도입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발더스게이트> 같은 게임에 자유 대화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군요. 한규선 PD: 네. 맞습니다. 그런데 핵심은 그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대화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대화를 통해서 거래를 한다든지 설득을 한다든지 이런 시스템이 메인인 어드벤처 게임도 만들어보고 싶고, 시즌 2를 만들어도 시즌 1에서 배웠던 노하우들을 확장시켜서 플러스 알파로 넣고 싶은 기술들이 많습니다. 특히, <스모킹 건>에서 말로 NPC를 제어하는 파트가 있거든요. 이후 작업에서는 이런 기능을 확대하면서 완전 새로운 게임성을 느끼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한편으로 <스모킹 건>의 시점이 1인칭이잖아요. 주인공 캐릭터를 아예 안 보여주는데, 1인칭으로 설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한규선 PD: 최근에 어떤 분이 리뷰 쓰신 내용에 공감이 갔는데, 플레이어가 직접 입력하는 게임 형식이기에 이 캐릭터를 규정하는 데 괴리감이 클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실제로 유저들의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어떤 사람은 굉장히 강압적으로 게임을 진행하고, 어떤 사람은 친절한 탐정이 되거든요. 이렇게 사람마다 플레이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제가 캐릭터를 규정해버리면 느낌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캐릭터를 규정하지 않은 거고요. 그리고 게임 내의 인터랙션 요소가 제4의 벽이라고 그러잖아요. 현실까지 이어지는 요소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도 모두 플레이어가 탐정이 되는 경험을 주고 싶었던 점들과 연결돼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두 게임 다 AI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또 다른 공통점으로 플레이어마다 각기 다른 방식의 플레이를 보인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제작자의 입장에서 유저들의 데이터들을 보실 때, '이런 플레이는 생각도 못 했는데'라고 떠올린 적이 있으세요? 이가빈 PD: 저희 게임에선 똑같은 문장을 어떻게 연기하느냐에서 다른 플레이 모습들이 나오는데요. '향아치'라는 유튜버분께서 조선시대 양반들이,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창을 하듯이 말씀을 하시는데, 이렇게까지 다양한 컨셉을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한규선 PD: <스모킹 건>은 사건 해결을 위해 추리를 하는 내용들이 정해져 있지만, 그 외의 부분은 사실 다 열려 있어요. 예를 들어, 저녁 식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면 충분히 할 수 있게끔 되어 있죠. 그런데 저희가 이 게임을 처음 디자인했을 때, 그런 자유의 영역이 재미의 요소가 될 순 있어도 이걸로 5시간을 플레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추리 자체의 완성도라든지 이야기의 깊이가 없으면 이 게임을 끝까지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유저분들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니까 자유 대화하는 부분까지 충분히 즐기시더라구요. 특히, 게임에서 에코라는 친구가 말을 되게 잘하는데, 많은 분들이 이 친구와의 대화를 즐기시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추리의 영역은 결말이 정해져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한편으로는 결말이 있어도 사건을 플레이어가 조립하는 과정은 각자 달랐던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기존의 게임이 메시지를 전달할 때, 고정된 메시지가 일단 나가고 플레이어마다 그 메시지를 다르게 해석했다고 한다면, <스모킹 건>은 고정된 메시지가 나가는 것이 아닌 지점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유저가 완전히 사건을 다르게 구축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으신가요? 한규선 PD: 네. 예를 들어서 어떤 캐릭터가 어떤 일을 했느냐에 대해서는 해석하는 게 되게 다양하게 열려 있어요. 물론, 전체적인 사건의 전말은 기준점이 마련되어 있지만, 그 사이사이는 플레이어가 메꾸게끔 기획했는데 그걸 되게 즐기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이 상상을 하셔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오고, 그런 부분을 정식 스토리에 반영한 경우도 많아요. 이경혁 편집장: 요즘 AI를 활용하는 게임 개발 프로젝트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지요. 혹시 PD님들은 렐루게임즈 외에 다른 곳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도 알고 계신가요? 이가빈 PD: 스팀에서만 찾아봐도 AI를 활용한 프로젝트들이 많아요. 사소하게는 에셋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죠. <도키도키(두근두근 AI 심문게임)> 같은 게임이나 <페이크북>도 그렇고, 저희도 (관련된 게임이 나오는 소식에 대해) 약간 촉각을 곤두세워보는 것 같아요. 특히, AI로 게임을 만들었다고 하면 궁금해져요. 저희는 AI 기술의 가능성도 알지만, 시행착오도 겪어봤잖아요. 그러다 보니, AI와 관련된 한계를 어떻게 처리했을지, 어떤 돌파구를 찾았을지 이런 점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것처럼 에셋에 도입하는 경우는 많지만, 한편으로 게임에 AI를 넣는 것과 게임을 AI로 만드는 것은 다르잖아요? 저는 렐루게임즈의 시도가 좋았던 지점이 게임의 규칙과 메커니즘에 AI를 넣었다는 점이거든요. 한규선 PD: 렐루게임즈의 규칙이랄까 대원칙이 하나 있는데, 게임의 코어에 딥러닝이 들어가지 않으면 저희는 프로젝트 승인 자체가 되질 않아요. 아이디어 단계에서 이 게임이 코어에 딥러닝 기술을 필요로 하느냐를 살펴보고, 거기에 게임적 재미를 어떻게 부여할지 살피게 됩니다. 만약 AI 기술과 관계없이 재미있는 게임 기획을 가져오면 승인이 안 날 거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제안도 안 해요. 이가빈 PD: 저희는 만드는 중에도 계속 체크를 해요. 이게 진짜 딥러닝 없이 불가능한 게임인지. 이경혁 편집장: 그렇군요. 그런데 게임을 만들면서도 AI 기슬이 발달하잖아요? 그러면 <호라이즌 제로 던>의 엘리자베스 소벡 박사가 가이아를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드실 것 같은데, 변화하는 기술을 보며 어떤 기분이 드세요? 한규선 PD: 저희 게임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AI가) 말을 되게 못했어요. 예전에는 비용이나 속도 문제 때문에 GPT 3.5를 썼었는데, 그때 로봇은 말도 잘 못하고 약간 떨어지는 느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GPT 4로 바꾸니까, 로봇이 초등학생이다가 갑자기 대학을 준비하는 애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나 감격스러운 순간이 있었어요. 특히, 유튜버분들이 플레이하는 거 보면 옛날에는 조금 불안한 지점이 있었는데, 요즘은 저도 놀랄 정도로 말을 잘하고, 내 새끼, 잘한다 이렇게 될 때가 있거든요. (웃음) 앞으로는 더 발전할 거라고 봐요. 어떻게 보면 지금 자유대화가 가능한 NPC의 상용화 앞 단계에 있다고 봐야 하는데, 저는 앞으로 그렇게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이경혁 편집장: 맞죠. 대화형 인공지능의 영역에서 사람들은 오류가 있는지의 여부를 중요하게 살펴보지만, 저는 오류가 있어도 괜찮은 영역이 놀이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모킹 건>의 시나리오를 보면 오류가 생기는 지점도 상정을 하시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반가웠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 AI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나오는 주제가 편향성이잖아요? 인간이 AI의 편향성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들도 나오고 있는데, 현업에서 AI를 다루시는 입장에서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가빈 PD: 저는 편향성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AI를 따라가더라도 어디까지 얼마나 따라갈 것인지에 대한 취사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오히려 그런 의존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AI 기술을 원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있어요. 한규선 PD: 저도 동감하는 지점이, 정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들은 오히려 쉽지만, 어슴푸레한 뭔가가 있다고 하면 오히려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유의미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지점들은 연구할수록 더 확립될 거고요. 이가빈 PD: 조금 더 첨언하자면, 가끔은 AI를 따라가다 보면 역으로 발견할 수 있는 지점들도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임들을 모아서 어떤 아웃풋이 나왔는지 발견하다 보면 사람들이 어디서 재미를 느끼는지, 왜 이런 게임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한규선 PD: 저희 회사에서 만든 는 AI로 생성하는 퍼즐 게임이거든요. 여기서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스테이지들이 있고, 이것을 얼마나 생성하는지가 중요한 과제였어요. 이런 지점에서 '재미 자체를 학습하는 딥러닝'을 만드는 것이 회사의 중요한 장기 프로젝트 중 하나예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지점들에선 게임 분야가 더 AI를 활용할 수 있는 여지들이 많은 것 같네요. 이가빈 PD: 처음에 저는 게임에 AI 기술을 적용하기 조금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모든 게임은 행동에 대한 피드백과 학습이 일어나고, 거기서 몰입이 생기면서 유저들이 즐기게끔 설계가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딥러닝을 도입하면 유저의 행동 자체도 모호해지고 피드백도 모호해지는 부분들이 나오게 되거든요. 예를 들어, 게임에서 자연어로 질문을 하면 이거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보다 훨씬 모호한 행동이에요. 그러면 피드백도 모호할 수밖에 없죠. 유저들도 행동을 하면서 이게 얼마나 스스로에게 유의미하고 보상이 될지 모르다 보니,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좌우하느냐가 AI 게임 개발의 핵심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한규선 PD: 그런 지점에서 오늘날 AI에 관한 기사도 많고, 관련 게임에 대한 이야기도 쏟아져 나오지만, 실제로 AI나 자연어 기술을 활용한 게임이 많이 나왔는지 묻는다면 아니거든요. 기술 발전에 비해서 게임 분야의 활용이 좀 더디거나 오히려 보수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렐루게임즈가 주목받는다고 한다면,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이 이유가 될 것도 같고요. 그래도 이렇게 일종의 거품이 생기는 지점들은 사람들의 기대치가 있다는 의미이니, 앞으로 AI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가 밝혀지면 더 많은 발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두 게임 다 AI를 사용했지만, 기술을 활용한 방식이 다르고 게임성이 다르기 때문에 홍보 전략도 달라질 것 같은데요. 그런 지점에서 어떤 분들이 우리 게임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한규선 PD: 일반적으로 추리 게임이라는 장르는 정해진 선택지를 따라서 진행하기 마련인데, <스모킹 건>은 그런 지점에서 새로운 방식의 플레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추리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즐거워하실 것 같고요. 그리고 수다 떨기 좋아하시는 분들? 시시콜콜한 대화를 즐거워하시는 분들도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과 로봇, AI 사회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나 고민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엔딩까지 재미있게 플레이하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이가빈 PD: <즈큥도큥>는 뭐랄까요. 햄버거집에 가서 주문 못하시는 분들? 부끄러움을 되게 많이 타시거나 그런 분들이 한번 해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렸을 때는 저도 짜장면 집에 전화 못하고 되게 창피하고 그랬었는데, 아르바이트를 한 번 하고 나면 모르는 사람한테 말을 붙일 수 있는 용기가 생겨요. 그런 것처럼 극단적인 체험을 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시뮬레이티드 셀프: 놀이하는 인간이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키는 방식에 대하여
세계는 불확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생동하는 물리적 실재를 파악할 수 없으며, 단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가정법에 따른 결과론, 혹은 결정론은 입자들의 불확정한 위치에 선형성을 부여하는 매력적인 시뮬레이션이다. ‘만약 ~라면 어땠을까?’ ‘만약 ~한다면 어떨까?’는 확률의 세계에서 확고한 인과관계를 부여할 뿐 아니라 대안적인 실재를 상상하도록 어떤 유희의 프레임을 제공한다. 만약 조선이 자생적 근대화에 성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와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지적인 유희를 즐길 뿐 아니라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절차들을 상정함으로써 확률의 시공간을 결과의 시공간으로 바꿔놓게 된다. < Back 시뮬레이티드 셀프: 놀이하는 인간이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키는 방식에 대하여 14 GG Vol. 23. 10. 10. 불확정성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현미경 세계는 불확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생동하는 물리적 실재를 파악할 수 없으며, 단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가정법에 따른 결과론, 혹은 결정론은 입자들의 불확정한 위치에 선형성을 부여하는 매력적인 시뮬레이션이다. ‘만약 ~라면 어땠을까?’ ‘만약 ~한다면 어떨까?’는 확률의 세계에서 확고한 인과관계를 부여할 뿐 아니라 대안적인 실재를 상상하도록 어떤 유희의 프레임을 제공한다. 만약 조선이 자생적 근대화에 성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와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지적인 유희를 즐길 뿐 아니라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절차들을 상정함으로써 확률의 시공간을 결과의 시공간으로 바꿔놓게 된다. 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주사위 놀이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즐긴다. 놀이는 언제나 불확정성을 데카르트 좌표계로 옮겨놓는 과정이다. ‘시뮬레이션’은 모의실험인 동시에 유희의 근원이며, 인간은 오래 전부터 시뮬레이션과 유희를 접목시켰다. 가장 오래된 게임인 바둑과 장기는 전쟁에 대한 각기 시뮬레이션이었다. 그러나 전장은 현실과 마찬가지로 불확정성으로 가득하다. 날씨, 사기, 진군 속도, 무기, 영양상태, 파발마의 속도, 말의 종자 등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승패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전쟁 시뮬레이션은 전장의 요소들을 극도로 추상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폰은 앞으로만 전진하고, 나이트는 뛰어넘으며, 승패는 킹을 잡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킹을 쓰러트리는 순간 결정된다. 그러나 놀이하는 인간은 어두운 방 안의 헬륨 풍선의 위치를 찾는 사람처럼 좌표에 도달하기까지의 복잡한 과정을 즐긴다. 시뮬레이션은 추상화 될수록 명료해지지만, 명료함은 복잡성을 제거하므로 역설적이게도 유희를 완성하는 동시에 방해한다. * H.G. 웰스가 1913년에 제작한 워게임 (좌)와 게임즈 워크숍의 워해머 40K(우) 대안적인 현실 또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선지자이자 미래의 고고학자이기도 했던 H.G. 웰스가 전쟁 게임에 광적으로 집착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전장의 요소들을 바꿔가며 놀이를 즐기는 워게임 매니아였고, 스스로 워게임 시뮬레이션을 제작했을 정도였다. 게티스버그 전투를 묘사한 웰스의 워게임 <리틀 워즈>는 단순히 모형을 가지고 하는 병정놀이가 아니라 엄격하고 복잡한 규칙에 따라 부대를 이동시키고, 포 구경에 따라 성냥개비 또는 몽당연필을 실제로 발사할 수 있는 장치와 태엽으로 움직이는 기관차 등이 구현된 ‘워게임 시뮬레이션’ 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병정놀이를 빙자한 워게임을 즐기는데, <워해머> 시리즈의 매니아들은 직접 제작하거나 구매한 피규어를 갖고 며칠 내내 광적인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문제는 워게임이 시뮬레이션과 놀이 사이에서 교묘히 표류한다는 것이다. 웰스와 같은 편집광은 혼자만의 세계에서 재미있게 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모든 놀이는 동료와 상대, 그리고 공동체를 동반한다. 공통으로 적용되는 룰이 없다면 놀이가 될 수 없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이 명료화되는 과정, 즉 연성화된 규칙과 단순한 절차들의 발명은 시뮬레이션이 놀이로 전화하는 필연적인 의례다. 동료, 또는 상대방과 담소를 나누며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절차는 무엇일까? 순서대로 한 번씩, 한 수씩 주고받는 것이다. 불확정성의 시공간을 일시 정지하고, 그 안에 깊이 들어가 불확정성의 요소들을 조작함으로써 어떤 ‘배치(assemblage)’를 만들어내는 것이 게임의 주된 목표가 된다. 이제 워게임은 역동적인 동시에 정주적인 것이 되었다. 전장에서 정지는 곧 죽음이지만, 워게임에서 정지는 더 복잡한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다. ‘턴제’가 된 시뮬레이션은, 불확정성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현미경이자 놀이를 구조화하는 프레임이 된다. 시뮬레이션의 재배치: 시뮬라시옹에서 에르고딕으로 * 헥스타일로 명료화된 시뮬레이션의 지도학. 전쟁을 소재로 하는 보드게임을 넘어 문명, 경영, TRPG등 게이밍 전체를 떠받드는 프레임이 된다. 프레임은 단순하면서 단단할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소재를 버틸 수 있는 강도를 지녀야 한다. 전자게임이 등장하기 전 단계의 보드게임은 워게임 시뮬레이션이 주조했던 추상적 시공간, 즉 타일 중심의 규칙을 연성화해 다방면에 도입했다. 따라서 입자(atom) 세계의 시뮬레이션이 비트(bit) 세계의 시뮬레이션으로 재편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주사위를 인간이 직접 손으로 굴리느냐, 혹은 컴퓨터가 대신 굴려주고 계산해주느냐의 차이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결과 시뮬레이션을 둘러싼 많은 결과들이 이전보다 훨씬 복잡한 방식으로 대두되게 되었다. 시뮬레이션의 가장 큰 장벽인 자연 연산 부문이 기계 연산으로 대체되면서, 워게임의 딜레마였던 복잡성과 명료성이 교집합을 이룰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디지털 게이밍에서는 불확정성과 결정성의 요소들은 하나가 될 수 있다. 확률론적 결정론, 혹은 인과율과 양자얽힘이 공존하는 세계가 곧 디지털 게임의 시뮬레이션이다. *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앤 매직3(좌상), 문명2(우상), 듄2(좌하), 워크래프트2(우하) 시뮬레이션이라는 건축물의 형태가 턴제에서 실시간으로 바뀌어도, 그 프레임인 ‘타일’에 의한 공간직조는 변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원본없는 실재, 초월적 실재인 시뮬라시옹이 물자체로 이뤄진 실재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소비자본주의의 풍경을 두고 ‘실재의 폐허’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 영토에 경계를 긋고 유희의 공간을 창출하는 게이밍의 세계에서 실재의 폐허는 거꾸로 시뮬레이션의 천년왕국이 된다. 시뮬라크르가 더 정교해질수록, 그것들의 어셈블리지가 불확정성과 인과성을 더 광범위하게 포섭할수록 근사한 에르고딕(ergodic)은 골계미를 더해간다. 왜 골계미인가? 동일성의 반복이 아닌 차이의 반복을 통해 프레임의 강도를 더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재와 달리 게이밍에서는 아무리 강도 높은 프레임이라 해도 마음대로 형태를 바꾸거나 심지어 재설계할 수 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파도의 강도를 상상하며 모래성을 쌓는 아이처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가동시킨다. 그들은 육면 주사위를 던질 뿐 아니라 즐기며, 평균 3에 수렴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던진다. 어제는 중국 문명을, 오늘은 영국 문명을, 내일은 인도 문명을 즐길 것이다. 오전에는 외교를 통한 승리를, 오후에는 전쟁을 통한 승리를 추구할 것이며 똑같이 게임을 즐기는 ‘시뮬레이티드 셀프(simulated self)’ 들과 이런 전략을 토론하고, 공유하고, 경쟁할지도 모른다. 시뮬레이티드 셀프, 혹은 시뮬레이티드 리얼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웰스의 워게임에서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실시간 전술 시뮬레이션에 이르기까지 시뮬레이션은 패러다임 전환이라 부를만한 변화를 겪은 적이 없다. 웰스가 고안해낸 타일과 턴 기반의 규칙들은 불변하기 때문이다. ‘실시간’은 결국 윤곽선을 가린 타일 위에서 동시에 기물을 움직이는 워게임에 다름아니다. 느긋하게 식사하거나 담소를 나눌 턴이 사라졌기 때문에 전장의 안개(fog of war)가 치열함을 더한 새 요소로 가미되었을 뿐이다. 오히려 실시간 전술 게임은 ‘시뮬레이션’이란 관면에서 보면 인지와 반응속도에 더 의존하는 형식이다. 커맨드 앤 컨커, 스타크래프트 등의 게임은 점점 도태되고 즐기는 플레이어도 점점 줄어드는 반면, 턴 기반의 시뮬레이션 게임은 다양한 변주를 통해 재탄생되고 있는 현실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젊은 게이머들은 치열한 실시간 경쟁과 화려한 그래픽보다 오히려 도트 그래픽으로 잘 짜여진 정적인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예컨대 <데이브 더 다이버>), 턴제 시뮬레이션 방식의 게이밍에서 더 큰 새로움을 만끽한다. * <발더스 게이트3> 와 <재기드 얼라이언스 3>와 같은 전통적인 턴제 시뮬레이션 기반 게임의 선풍적인 인기는 레트로(retro)라기보단 재매개(remediation)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게이밍이 다양한 형식적 실험과 편향을 넘어 고유한 시공간적 프레임을 자아내는 의례로서 시뮬레이션이 대두되고 있다. 요컨대 워게임에 열광했던 웰스나, 전설적인 시리즈, <재기드 얼라이언스> 시리즈, <문명>과 <심시티>를 즐기는 플레이어, 그리고 최근 전대미문의 비평적 성공을 거둔 <발더스 게이트>를 즐기는 플레이어들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보드판 위에서 기물을 움직인다 할 수 있으며, 각자의 컨셉과 설정을 구조화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천년왕국은 더욱 진화할 것이다. 아마도 시뮬레이션의 패러다임 전환은 ‘시뮬레이티드 셀프’에서 ‘시뮬레이티드 리얼’로의 이행으로 이뤄질 것인데, 이는 형식이 아닌 기술을 통해서 성취될 가능성이 크다. 생성 인공지능의 도입은 우리가 게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비인간 요소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예컨대 NPC, 몬스터등이 생성 인공지능을 탑재해 비인간 인격체가 된다고 생각해보라) 함께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 속에 인게임-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인공지능이 뒤섞이면 어떻게 될까? 핍진성은 실재에 근접하거나 보드리야르가 우려했던 실재의 폐허로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고, 우리는 이를 피할 수는 없다. 엔비디아를 위시한 많은 빅테크가 시뮬레이션 내에서의 비인간 행위자의 가능성을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비트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은 그래픽의 평면이 매끄러워 지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들이 매끄러워지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발더스 게이트>의 몬스터와 동료들이 비인간 인격체라면 우리는 어떤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킬수 있을까? 생성 인공지능과 게이밍의 절합을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의 친애하는 웰스 경은 어쩌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서 ‘시뮬레이티드 리얼’을 목격하고 돌아와, 투명인간이 된 채 홀로 워게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을 수도 있다. 앞으로 게이밍과 시뮬레이션에서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시뮬라크르들을 조작하는 주체가 누가 될 것인지,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술미학적 상상력일 것이다. Tags: 에르고딕, 시뮬레이션, 턴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없앴던 비범함에 대해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르웨이의 ‘마츠 스틴’라는 게이머의 삶에 주목한다. 작품은 작년 한 해 동안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더불어 여러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얻었고, 현재는 OTT서비스 ‘넷플릭스’와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다. < Back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없앴던 비범함에 대해서 23 GG Vol. 25. 4. 10.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르웨이의 ‘마츠 스틴’라는 게이머의 삶에 주목한다. 작품은 작년 한 해 동안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더불어 여러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얻었고, 현재는 OTT서비스 ‘넷플릭스’와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다. 하지만 제목만 봤을 때, 이것이 게임에 관한 다큐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게임을 소재로 한 다큐들이 <하이 스코어>(2020), <낫 어 게임>(2020), <프리 투 플레이>(2014), <인디 게임: 더 무비>(2012)처럼 제목에서부터 ‘게임’에 대한 내용임을 알려왔다는 점과 다르게, 이 다큐는 게임 다큐라는 사실보다는 ‘이벨린’이라는 인물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벨린은 누구이길래 주목받게 되었는가? 걸을 수 없는 소년에게 쥐어진 게임기 다큐는 1990년대 홈 캠코더로 촬영된 한 소년의 어린 시절 영상으로 시작된다. 이 소년의 이름은 ‘마츠 스틴’.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가족의 사랑 속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몸 상태에 이상이 감지된다. 거동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의지하거나, 늘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반복된다. 이 의자는 점점 휠체어로 대체되고, 화면 너머로 마츠가 중증 질환을 앓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츠가 앓은 병은 ‘듀센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 질환이다. 어린 시절 발병해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이 점차 소실되는 병으로, 걷거나 음식을 먹는 등 일상적인 신체 활동이 서서히 불가능해진다. 점점 불편해지는 몸은 사회생활을 가로막았고, 대인 관계 또한 큰 장벽에 부딪혔다. 다른 아이들이 운동을 하거나 어울려 놀 때, 마츠는 그들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곤 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홈비디오 속에서 유난히 자주 포착되는 물건이 있다. 바로 게임기다. 마츠는 게임보이, 닌텐도64와 같은 콘솔 게임기를 즐겨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부모가 이를 제지하기 마련이지만, 마츠의 부모는 달랐다. 게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던 마츠에게, 그가 원하는 만큼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 가족들과 휴양지 여행을 떠난 어린시절 마츠의 두 손에는 게임 보이가 들려있다.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아제로스 대륙을 여행한 마츠 2000년대에 들어서며 블리자드의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가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은 판타지 세계관 ‘아제로스’ 대륙으로 접속해, 아바타의 몸을 빌려 또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마츠도 이에 동참하여 노트북으로 와우 세계에 접속했고,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마츠는 <와우> 세계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와우>를 플레이한 10년 동안 총 플레이 타임은 약 2만 시간 가까이에 달했다. 아제로스의 방대한 대륙을 여행하며 그는 다양한 국적의 유저들과 교류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의 신체는 점점 움직이기 어려워졌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에도 제약이 따랐다. 처음에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해 조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마츠는 특수 장비의 도움을 받게 된다. 게임에 필요한 조작키가 원형으로 배치된 이 맞춤형 장치는 마츠를 위해서 특별하게 제작된 것이었고, 이 덕분에 다른 유저들과 함께 게임 플레이를 지속할 수 있었다. * 마츠가 사용하는 컴퓨터 조작 장치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알린 마츠의 죽음 듀센병 환자의 평균 수명은 보통 20대에 머무른다. 마츠 역시 병세가 악화된 끝에, 2014년 가족들의 깊은 슬픔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계속 재생되던 홈비디오 테이프는 멈추었고, 가족들은 애통스러운 감정으로 그를 추억한다. 그리고 마츠가 오랜 시간을 보냈던 온라인 세계에도 이 사실을 알리고자, 가족들은 그가 생전에 운영했던 온라인 블로그에 부고 소식을 게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츠를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츠를 ‘이벨린’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벨린이 <와우> 세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전해온 것이다. 다큐 제목에 등장한 ‘이벨린’은 마츠의 <와우> 캐릭터명이다. 긴 머리를 가진 건장한 남성 도적. 이벨린의 모습은 휠체어 위의 왜소한 현실의 마츠와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마츠는 이벨린으로서, <와우>의 길드 ‘스타라이트’에 오래 몸담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폭넓은 관계를 맺었다. 유가족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활발한 사회적 삶이 그 안에 있었다. * 게임에서 다른 유저들과 활발하게 사회생활했던 이벨린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현실에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기 어려웠던 마츠는, 이벨린으로서 연인을 만나 사랑을 경험하기도 했다. ‘루머’라는 캐릭터와 숲속에서 데이트를 하며 첫사랑을 나눴고, 루머의 현실 인물인 ‘리세트’가 가족과 갈등을 겪었을 땐 직접 편지를 써 그녀의 부모와 화해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또 한 명의 길드원이 자녀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자, 마츠는 그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도록 주선해 관계를 회복하도록 도왔다. 그는 단지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진심으로 돕고 응원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마츠 덕분에 삶이 더 나아졌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게임만 하며 고립된 삶을 산 듯 보였던 마츠. 그러나 그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었다. 이벨린이라는 이름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깊은 삶을 살아냈다.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가족은, 마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이전에는 제한된 삶으로 여겼던 그 생애가 사실은 너무도 풍성하고 비범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뒤늦은 기쁨과 안도 속에서 치러진다. * 홈비디오 속의 마츠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채팅으로 기록된 과거의 시간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이 과거를 다시 그려내는 방법은 매우 독특하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가 과거에 기록된 영상이나 사진을 편집하거나, 당시 인물들을 인터뷰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반면, 이 작품의 핵심 기록물은 다름 아닌 ‘채팅 기록’이다. 마츠는 음성 채팅 없이 텍스트로만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그가 나눈 모든 의사소통은 대화 로그로서 기록되어 있었다. 일부러 아카이브 하지 않아도, 이미 보존되고 기록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보존된 이벨린의 문장들은 사후에도 그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흔적이 되었다. 제작진은 이 채팅 기록을 대역 성우가 낭독하도록 하여 현재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성우들이 읽은 대본은 모두 이벨린이 나눴던 채팅과 동일한 문장이었고, 이 음성은 애니메이션에 더빙되어 영상으로 제작되었다. 재연 애니메이션은 실제 게임 내 캐릭터와 주변 사물, 배경, 다른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으로까지 장면 하나하나로 연출되어 게임 속에서 녹화되었다. * 이벨린의 목소리를 맡은 에드 라킨(Ed Larkin)외에도 모든 성우가 장애인이다.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Behind The Scenes | Netflix”) 여기에 제작진은 마츠의 삶을 더욱 면밀하게 재현하기 위해 또 다른 층위를 더했다. 채팅을 읽는 성우들을 모두 장애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한 것이다. 이벨린과 이벨린의 첫사랑 루머, 주변 길드원, 친구들 모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로 입혀졌다. 루머를 연기한 성우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가상 캐릭터’가 아닌, 실제 사람이 뒤에 있는 ‘아바타’였기 때문에 깊은 존중감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실제로 이 상황에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섬세하게 고려하면서 연기해야만 했다고 인터뷰에서 덧붙였다. 연극 대본처럼 남은 채팅 기록 덕분에 게임 속 캐릭터로 과거를 재현하는 이 방식은 게이머의 삶을 다큐로 풀어내는 방식 중에서 매우 신선하고 도전적인 시도로 보인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재현’과 ‘재연’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다. 다큐로서의 과거를 충실히 복원했다기보다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감정적으로 과장된 재연이 되는 듯한 느낌이 남기 때문이다. 특히 이벨린이 루머와 숲속 호숫가에서 연애하며 첫키스를 나눴던 사건을 정면 카메라로 촬영하여 보여줄 때는, 마츠의 매우 사적인 기록, 그러니까 원치 않는 사춘기 소년의 일기장을 억지로 들춰보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기도 했다. 물론 마츠가 살아생전에 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여했기 때문에, 이 역시 그가 의도한 연출일 수도 있겠다. * 데이트를 즐기는 이벨린과 그의 첫사랑 루머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Official Trailer | Netflix”) 현실 도피라는 오해 마츠는 매일 아침, 이벨린으로 접속해 아제로스 대륙(게임 속 세계)을 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현실에선 달릴 수 없었지만, 게임 속에서는 원 없이 달릴 수 있었다. 현실의 제약이 닿지 않는 가상 세계는 마츠에게 해방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는 이벨린이라는 존재로 살아가며 자유로운 신체로 움직였고,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을 넘어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능동적인 주체로서 자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자칫 ‘게임은 현실 도피처’라는 식의 해석으로 단순화되기 쉽다. 실제로 마츠는 자신의 블로그에 “게임은 탈출구이고, 모니터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향하는 관문”이라고 썼다. 게임을 탈출 혹은 도피의 수단으로 보는 관점은, 현실의 고통과 결핍에서 심리적으로 벗어나기 위한 몰입이나 위안으로만 게임을 설명하곤 한다. 이때 현실은 그대로 남아 있고, 억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잠시 보류될 뿐이다. 더 나아가 장 보드리야르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러한 가상 세계는 실재를 대체하는 이미지에 불과하며, 우리는 그 안에서 ‘해방의 감정’만을 소비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다큐가 게임을 낭만화하고, 단선적인 감동 구조로만 재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 매일 30분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대륙을 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벨린 (출처: 유튜브 영상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 Behind The Scenes | Netflix”) 그러나 마츠의 사례는 단순한 현실 도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가상 세계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했고, 사람들과의 대화와 연대를 통해 현실로도 울림을 확장시켰다. 게임 속에서 나눈 말과 관계는 다시 현실에서 목소리가 되었고, 그 메아리는 여전히 강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벨린의 첫사랑 루머의 목소리 역을 맡은 켈시(Kelsey Ellison)는 자신도 장애인으로서 가상 세계로의 탈출이 주는 자유를 공감하는 한편, 마츠가 도피주의(escapism)를 잘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하루 종일 누워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는 마츠를 수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적어도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능동적인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데에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츠가 단지 억압된 현실의 신체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부족하다. 자유/억압의 이분법적인 규정보다, 완전히 새로운 문법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했던 인물로 바라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존재의 전환, 존재의 확장으로서 바라봄이 더 정교하고 정당할 것이다. 마츠는 생전 이렇게 말했다. “이벨린은 저의 확장판이에요. 저의 다른 면모이죠” 존재의 확장이라는 비범함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단순한 감동 서사를 넘어, 가상 세계 안에서의 삶이 어떻게 존재를 확장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츠는 게임으로 도피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확장했고, 새로운 문법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었다. 가상 세계가 현실의 억압을 완전히 지워주진 않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한계를 넘는 관계를 만들고, 사회적 의미를 생산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살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다큐가 보여주는 진짜 이벨린의 ‘비범함’이라는 평가는 마츠가 이벨린으로서 보여줬던 활약뿐만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조건 속에서 여전히 현실을 향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채팅 기록, 함께 시간을 보낸 동료들, 그리고 이 다큐를 본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벨린’은 마츠가 단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했던 하나의 주체였음을 증명한다. * 이벨린이 죽은 이후, 블리자드는 이벨린이 자주 다니던 엘린 숲 한켠에 이벨린을 추모하는 비석을 세웠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곳에 모여 그를 다시금 기억했다. 그리고 블리자드는 이벨린의 캐릭터에 관한 유료 아이템 판매하고 그 수익을 듀센 치료를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출처: 유튜브 영상 “Rest in Peace, ibelin) Tags: 다큐멘터리, WOW, MMORPG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코스믹 호러의 게임적 변용
이토 준지풍의 그림체와 크툴루 세계관이 결합된 <공포의 세계>의 장점 역시 동일하다. 그로테스크하고 이질적으로 변화한 마을 구성원들을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경험이야말로 등대에 강림할 고대신보다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일상의 궤도에서 이상 징후와 균열을 발견할 때 불안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 Back 코스믹 호러의 게임적 변용 19 GG Vol. 24. 8. 10.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바로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 H.P. 러브크래프트, 공포 문학의 매혹 중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라는 특수한 조건에서만 실현 가능한 장르를 게임을 통해 재현하는 일은 그 목적이 플레이어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이라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 코스믹 호러는 단어 그대로 인간의 사유와 이성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거대한 존재를 마주쳤을 때 경험하게 되는 우주적 공포를 의미한다. 오랜 기간을 통해 축적해 온 문명을 포함한 인간적 가치가 통용되지 않는 불가해한 공포를 목도하는 상황과 그에 대한 매혹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대변하는 특징이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적 세계관은 그가 활동했던 시대보다는 오히려 지금에 와서 적극적으로 향유되고 차용하고 있다. “거기서 크툰을?”이라는 밈으로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을 <하스스톤>의 고대신의 저주 덱만 하더라도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고대신 중 하나인 크툴루 이미지를 빌려온 대표적인 사례다. 크툰(C'Thun)이라는 이름조차 크툴루(Cthulhu)를 연상케 하는 의도적인 작명이다. 게임을 비롯한 서브 컬쳐에서 크툴루가 코스믹 호러를 대표하는 표상이자 오마쥬로 손쉽게 활용되는 이유는 러브크래프트의 작업물 중 드물게 크툴루 만이 소설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외양이 묘사되어 있고 작가의 스케치도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시각화할 수 있는 뚜렷한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점은 공포를 야기하는 데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크리쳐를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했던 나 <콜 오브 크툴루>와 같은 게임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던 요인 중 하나는 시각적 재현을 통해서는 공포를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래픽 해상도나 디자인, 크리쳐의 거대함을 체감할 수 있는 상대적 크기의 구현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분명하게 가시화된 것일수록 공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러브크래프트는 기이한 이야기가 예술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정밀하게 사건을 묘사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분위기의 조성을 제안한 바 있다. 코스믹 호러를 경험하게 되는 소설적 사건은 그 자체가 비현실적이며 허구적인 것이기에 정밀한 묘사를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인간의 기분을 명확하게 상징화하는 것이야말로 묘사보다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영역이다. 공포, 그것도 특정한 맥락의 사건을 통해 야기되는 감정의 결을 상징화하는 작업은 시각을 중점적으로 매개하는 매체가 좀처럼 도전하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모호함, 불분명함에서 오는 상상이 야기하는 불안감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포 영화는 본질적으로 시각 중심적 매체라는 영화의 장점 일부를 포기하고 카메라의 시야를 제한하고 대상을 어둡고 흐릿한 배경을 통해 부각하는 전략을 취한다. 아울러 관객이 사건을 목도하는 전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감상의 가이드라인으로써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게임은 플레이어의 행위성을 사건 전개의 중심축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영화와 같은 시각 매체 감상자가 경험하는 무력감, 일방향적인 위치에서 수행되는 관음에서 비롯된 공포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글의 마중물로 활용한 인용문과 같이 공포는 대상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서 기원하는 감정이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에서 앎으로 포섭할 수 없는 존재를 목도한 이들은 필연적으로 광기에 사로잡힌다. 다만 서술자는 광인으로 대변되는 낯선 타자를 목격할 때 경악하거나, 서서히 잠식되는 광기로 인해 미지의 대상에 매혹되며 변화하는 자신의 내면을 진술하는가로 나뉠 뿐이다. 최소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이 둘은 선행과 후행의 문제일 뿐 어느 쪽을 배제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소설 <벽 속의 쥐>의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는 <다키스트 던전>은 고대신의 유적을 저택에 은닉하고 있는 전대 가주의 편지로 시작된다. 지하의 유적을 탐사하며 결국 고대신의 제물로 후손을 끌어들인 선조의 목적을 저지하더라도 탐사대의 파멸은 불가피하다. 광기에 잠식된 이들은 결코 이전과 동일한 내면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다키스트 던전>은 후손의 자살을 암시하는 장면과 새로운 희생양이 될 또 다른 후손을 초대하는 편지로 끝을 맺는다. 이와 같은 서사는 한낱 인간으로서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거대한 악의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상기하는 러브크래프트적 세계관을 잘 보여줬다. 그러나 그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다키스트 던전>이 광기를 하나의 변수이자 수치화할 수 있는 요소로 디자인한 게임이라는 점이다. 공포가 대응할 수 없는 미지에서 창출되는 감정이라면 공포 게임의 행위성은 그를 위배하는 방식으로, 달리 말하면 미지를 해소하고 장악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된다. 이 모순적인 결합방식을 시도한 결과물 중 눈여겨볼 만한 대표적인 게임은 크툴루 세계관을 기반으로 추리와 코스믹 호러의 공존을 시도한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이다. 추리는 과학을 포함한 근대적 지식을 동원해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을 지향하는 행위다. 이 경우 만약 이성이 미지를 해체하는 유용하고 적확한 도구라면 해소될 수 있는 공포는 하나의 소재로 활용될 뿐이다. 그러나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의 서사는 이성과 공포의 대결에서 공포에 손을 들어줬다. 홈즈는 어머니를 파멸로 이끈 광기가 자신에게도 유전될 것을 염려하면서도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괴이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광기에 접근한다. 그리고 광기에 매혹된 자신이 근대적 이성으로 무장한 이전의 ‘나’는 같은 인간일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성은 미지의 사건을 해결하기에 충분한 도구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질서와 법칙으로 무장한 자신의 세계가 확신을 가질 수 없는 불안한 외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홈즈는 이전과는 다른 내면을 가진 인간이 된다. 심지어 고대신을 소환하고자 하는 이교도의 제의를 저지한 후일담에서 짐작할 수 있듯 홈즈의 정신은 그의 정체성이 붕괴되었던 상황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것은 게임을 통해 재현된 캐릭터의 내면일 뿐이며 플레이어의 영역에서 꼼꼼하게 단서를 모아가며 추리하는 플레이 경험은 이 게임이 ‘호러’ ‘어드벤처’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전자의 수식어가 약소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차라리 행위성을 제한하는 동시에 특정 행위성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광기를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다키스트 던전>이 광기를 활용하는 방식이 바로 그런 형태다. 플레이어는 지속적으로 특정 확률로 이상상태를 겪는 캐릭터들을 컨트롤하며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관철할 수 없는 세계를 인식한다. 물론 이것은 공포를 직접적으로 창출하기보다는 긴장감을 통해 몰입감을 고조시키는 효과이기는 하다. 그러나 공포를 해소하는 어드벤처식 게임 장르를 대신해 제안할 수 있는 하나의 예시로 고려될 수는 있을 것이다. <드렛지> 역시 광기를 게임적 요소로 활용한다. <드렛지>는 확률의 결과물만 보여주는 <다키스트 던전>보다 광기에 노출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재현한다. 게임 초반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새롭게 마을에 정착하고자 하는 낚시꾼의 일과 사이에는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이질감이 불거져 나온다. 심해에서 건져 올린 것 같은 기괴한 생김새의 어종, 이방인인 주인공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응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의미심장한 대사, 낮과는 전혀 다른 위협이 도사린 밤바다의 풍경은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정작 크툴루의 오마쥬인 것이 분명한 고대신은 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매우 짧게 모습을 드러낸다. 구체적으로 재현되면 될수록, 즉 대상을 명확하게 인지할수록 공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측면에서 이와 같은 전략은 유의미하다. 오히려 <드렛지>는 미지의 존재가 응시하는 시선을 화면 상단이나 심해의 충혈된 눈으로 표현하거나 광기에 잠식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점차 붉게 번져가는 파라미터 등의 인터페이스로 재현한다. 불분명하고 암시적인 분위기가 캐릭터의 불안을 야기하고 공포라는 감정을 창출하는 것이다. 광인은 타자의 모습으로 재현되기 쉽다. 그러나 <드렛지>는 분열된 자아를 통해 이성의 영역에서는 확신할 수 없는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투신하는 인간의 모습과 미지에 공포를 느끼는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다. 희생된 아내를 부활시키기 위한 수집가의 광기는 설사 그것이 고대신을 소환해 마을이 소멸하는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다섯 가지의 물건을 모아달라는 의뢰를 수락한 어부는 결국 이것이 스스로 초래한 비극의 후일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광기는 자신의 다른 얼굴이었던 셈이다. 코스믹 호러는 이제까지 믿어왔던 판단 능력에 대한 의심이자 철학의 붕괴, 신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공포다. 정상성, 실재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공포는 지극히 인간적인 발명이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토대, 근거가 전면적으로 붕괴될 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발상이 게임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플레이가 경험하는 공포란 오히려 사소한 사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토 준지풍의 그림체와 크툴루 세계관이 결합된 <공포의 세계>의 장점 역시 동일하다. 그로테스크하고 이질적으로 변화한 마을 구성원들을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소름 돋는 경험이야말로 등대에 강림할 고대신보다 공포스러운 일이다.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일상의 궤도에서 이상 징후와 균열을 발견할 때 불안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Editor's View] 게임과 소수자, 소수자와 게임](https://static.wixstatic.com/media/d03518_5241a82347ca4455814e9dc13f080bd5~mv2.jpg/v1/fit/w_176,h_124,q_80,usm_0.66_1.00_0.01,blur_3,enc_auto/d03518_5241a82347ca4455814e9dc13f080bd5~mv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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