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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의 루트박스: 한국과 다르면서 또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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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4. 2. 10.

세계의 루트 박스, 루트 박스의 세계


온라인이 보편화된 이후의 비디오 게임에 대해 사행성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새삼스러울 정도로 많이 제기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행성의 가장 큰 부분으로 지목되는 것은 뽑기. 우리에게는 가챠라는 이름으로 익숙하지만 익숙하지만 영미권에서는 이를 루트 박스 (Loot Box)라고 부른다.


아예 모든 종류의 루트 박스를 금지하고 있는 벨기에와 같은 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라도 유럽의 국가들은 루트박스에 대해서 공적인 제재를 선호하고 있다. 루트 박스에 대해서는 엄격한 나이 제한을 두고 있는 독일, 일부 루트 박스에 대해서는 불법 도박으로 규정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아예 EU 전역에서 루트 박스가 금지되는 법안을 준비 중인 네덜란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유럽 내의 큰 시장에서 그나마 가장 약한 제재를 가하는 곳은 영국이다. 루트 박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경고문구를 붙이는 선에서 처리되고 있다.


한국처럼 확률공개를 통해서 루트 박스를 규제하려는 국가도 있다. 2017년 5월 전세계 최초로 게임사들에게 확률공개를 의무화 했던 중국과 이를 따라 2023년부터 확률공개를 의무화한 대만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또한 확률공개를 의무로 만드려는 법안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루트 박스의 문제점에 대해서 인식하고 이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려고 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공적인 제재를 통해서 루트 박스를 통제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의의 주변에 있는 미국의 루트 박스


압도적인 규모의 게임시장을 자랑하는 미국에서도 루트 박스는 논의의 대상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202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게임시장은 주로 싱글플레이 패키지 게임 위주로 돌아갔기 때문에 루트 박스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았다. 물론 매출의 규모만 보면 모바일 게임들이 몸집을 계속 키워가고 있었지만 게이머 커뮤니티를 주도하는 여론 층은 콘솔에서 즐기는 스토리 위주의 게임에 대해서 고평가하고 논의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가챠가 포함된 모바일 게임이 시장을 완전히 주도하고 있던 한국과는 모양새가 달랐다.


미국의 게이머 커뮤니티의 여론을 주도하는 층은 여전히 콘솔에서 플레이하는 싱글플레이어 게임에 대한 선호가 굉장히 높고 게임을 사서 즐기는 행위를 일종의 책이나 영화 같은 전통적인 문화상품과 비슷하게 생각한다. 작품을 하나 사서 ‘클리어’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렇다 보니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돈을 써야하는 ‘인게임 결제’에 대해서 극도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게임의 스토리를 완결성 있게 즐기는 것을 선호하기에 DLC 또한 ‘인게임 결제의 다른 이름’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아직 루트 박스에 의한 피해가 한국에서처럼 게이머 커뮤니티 안에서 가장 중요한 논의거리까지는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루트 박스 자체가 화제의 중심에 올랐던 사건이 바로 2021년에 있었던 EA 내부문서 유출이었다. EA의 한 관계자가 내부문서를 캐나다의 공영방송 CBC에 제공하면서 누군가에게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했던 사실들이 드러났다.


54페이지의 프레젠테이션 안에는 현재는 EA FC로 이름을 바꾼 축구게임 FIFA 시리즈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매출을 견인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거대 프랜차이즈에 대한 EA의 내부 평가는 명확했다. 루트 박스를 통해서 원하는 축구선수를 뽑아야 하는 FIFA 얼티밋 팀(FUT)이라는 컨텐츠가 사실상 게임의 시금석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는 플레이어들을 FUT로 인도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고 기술해 놨다. 내부문서를 유출한 관계자는 루트 박스가 포함된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기쁘게 일할 수 없다고 내부고발을 한 이유를 밝혔다.


2024년 현재의 북미의 게임 커뮤니티를 봐도 루트 박스가 가장 뜨거운 주제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여론을 주도하는 층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는 아닐지언정 루트 박스가 게이머들의 경험을 망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다.



사적인 제재에 나서다


미국사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저변에는 항상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자유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발전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국 건국 초기 있었던 연방주의 논쟁부터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충돌했고 정부와 개인이 충돌해왔다. 그 과정에서 미국 사회는 정부의 공적인 행위를 통한 문제해결에 대한 기피와 불신을 품고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차상위계층에 대한 경제적 도움을 줄 때도 유럽은 세금을 많이 내 정부가 주도하는 복지를 강조하는 반면 미국은 개인의 기부가 모여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 그림을 선호한다. 그리고 이게 미국시장이 루트 박스를 대하는 흥미로운 지점을 만들어낸다.


미 연방거래위원회는 이미 2019년 루트 박스 판매에 대해서 소비자 보호 기능이 더 강화되야 한다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딱히 공적인 제재를 하지는 않았다. 상술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루트 박스가 문제임을 인식하고 이를 공적 제재에 나서려고 하지만 미국은 아직까지도 사적 제재를 통해서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집단소송을 통해서 루트 박스에 대한 견제가 들어가는 형국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에픽게임즈에 대한 소송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제기 된 집단 소송에 따르면 에픽게임즈는 포트나이트의 한 모드인 ‘포트나이트: 세이브 더 월드’에서 루트 박스를 판매했다. 소송을 진행한 측에서는 에픽게임즈가 루트 박스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이 게임에 필수적인 요소였으며 미성년자들도 어떤 상품이 나올지 모르는 채 구매를 하는 등의 ‘착취’를 당했다고 밝혔다. 에픽게임즈는 이후 패치를 통해서 루트 박스를 구매할 때 안에 있는 상품을 확인할 수 있게 바꾸었지만 이미 지금까지 구매했던 플레이어로부터 제기된 소송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에픽게임즈사는 2021년 집단소송에서 합의에 이르렀고 2650만 달러 규모의 게임 내 재화를 지급했다. 루트 박스 상품인 ‘라마’를 구입한 모든 플레이어에게 8달러 상당의 V-Bucks를 지급했다. 로켓 리그에서도 같은 일이 있어 루트 박스를 구매한 플레이어들에게 1000 크레딧을 제공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서 게임 내 재화를 받은 플레이어는 각각 650만 명과 29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에픽게임즈는 발표했다.



소송은 효과적인 루트박스 규제인가


물론 성공적으로 합의에 이른 소송만 있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에서는 EA를 상대로 FIFA 시리즈의 루트 박스에 대한 소송이 제기됐다. 원고인 마크 서덜랜드 측은 EA가 소비자를 기만해왔으며 루트 박스는 불법도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 측은 EA가 기만적인 판매방법을 썼을 수 있지만 루트 박스 판매가 일종의 도박이며 따라서 불법이라고 규정한 서덜랜드 측의 주장에는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2023년 공개한 판결문에서 캐나다의 법정은 게임 내에서 통용되는 재화나 아이템은 ‘현금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에서도 사용 할 수 있는 재화를 걸고 하는 도박과는 다르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물론 EA 측은 이런 판결에 대해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논리를 전개한 소송이 있었지만 결과는 거의 비슷했다. 모바일 게임 브롤 스타즈의 루트 박스가 미성년자에게 판매된 것은 불법도박이라고 주장한 레베카 테일러는 브롤 스타즈의 제작사인 슈퍼셀을 고소하지 않고 이러한 루트 박스 판매를 용인한 애플 앱스토어 측을 고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루트 박스를 구매할 때 쓰는 게임 내 재화인 ‘보석’은 도박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애플은 게임 내 재화 구매까지만 책임이 있고 이후에 게임 내 재화를 이용해서 하는 것들은 애플보다는 제작사 측에 책임이 있다고 명백히 밝힌 것이다.


물론 애플과 함께 양대 앱마켓을 이루고 있는 구글 플레이 스토어 측에도 비슷한 소송이 있었다. 같은 로펌에 의해서 제기 된 이 소송은 게임의 종류가 브롤 스타즈에서 파이널 판타지 브레이브 엑스비어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당연하게도 이 소송 또한 상술한 것과 같은 이유로 기각됐다.


실패한 소송을 보면 루트 박스에 대한 규제를 주장하는 측이 루트 박스가 불법도박이라는 점을 입증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따라서 루트 박스를 판매하는 게임들이 현재의 갑자기 게임 내부에서 현금을 가져갈 수 있는 ‘환전소’를 만들지 않는 이상 소송은 효과적인 제재가 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 게임업계의 의견


업계 내부에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미국 게임업계에 현직으로 일하고 있는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익명으로 들어보았다. 관계자 A는 “미국게임업계의 모바일 게임을 경시하는 풍조는 오히려 업계관계자들 특히나 게임개발자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다”고 말하며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들은 좋은 개발자를 영입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작이 아니면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들이 많다. 인게임 결제가 있는 게임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크다보니 오히려 수가 적고 따라서 로트박스 문제는 관심 밖이라는 느낌이 있다”고 말하며 루트박스가 커뮤니티 안에서 크게 회자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BM과 관련한 업무를 하고 있는 관계자 B는 “현재 게이머 커뮤니티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30대 이상은 루트박스를 이용하는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모바일 네이티브인 10대들은 거부감 없이 루트박스를 이용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우려할 만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면서 “루트박스와 관련한 소송을 거 주체들이 대부분 10대 자녀를 둔 부모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부모도 모르는 사이에 루트박스에 돈을 탕진하는 일이 소송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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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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