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검색 결과

Search this site

공란으로 1280개 검색됨

  •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좀비물은는 비단 디지털게임에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앞선 매체들인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좀비는 매력적인 소재로 특히 호러물에서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의 좀비 또한 앞선 매체들의 영향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에 등장하는 좀비의 의미는 다른 매체의 의미를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특유의 요소들로 인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좀비에 관한 긴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지털게임에서의 좀비라는 보다 좁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Back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19 GG Vol. 24. 8. 10. PC ESD플랫폼 ‘스팀’에는 늘상 좀비물이 넘쳐흐른다. AAA급 타이틀은 말할 것도 없고, 저예산의 소규모 게임들로 가면 온통 좀비 천국이다. 좀비의 인기는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호러 장르라면 좀비는 더욱 본격적이긴 하다. 좀비물은는 비단 디지털게임에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앞선 매체들인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좀비는 매력적인 소재로 특히 호러물에서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의 좀비 또한 앞선 매체들의 영향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에 등장하는 좀비의 의미는 다른 매체의 의미를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특유의 요소들로 인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좀비에 관한 긴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지털게임에서의 좀비라는 보다 좁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게임 속 좀비의 등장과 변화 단순하게 좀비라는 개념을 처음 게임 안에 가져다 놓은 게임을 꼽으라면 1984년의 <좀비 좀비Zombie Zombie>를 꼽을 수 있겠지만, 이 게임의 경우는 좀비 게임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정도의 특성만을 보여주었다. 좀비 영화가 나름의 흥행을 이어가던 시절, 이 게임은 그저 영상물로서 갖는 좀비의 인기를 비디오게임으로 가져오는 정도에 머물렀다. 고층 빌딩 위에서 좀비라고 불리는 적들을 밀어 낙사시키는 방식의 간단한 규칙 안에서 적 캐릭터들의 행동은 굳이 좀비가 아니어도 무방할 패턴이었기에 본격적인 좀비 게임의 시작이라고 <좀비 좀비>를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 <좀비 좀비>는 좀비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게임규칙 면에서 좀비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블 데드Evil Dead>(1984)나 <고스트 앤 고블린(일명 ‘마계촌’) Ghost N Goblins>(1985) 등의 게임부터는 우리에게 익숙한 좀비의 행동패턴이 게임 캐릭터 안에도 들어오는 흐름을 볼 수 있다. 다소 느릿한 움직임과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패턴을 통해 적 유닛으로서의 행동에 좀비 특유의 방식들이 녹아들기 시작하지만, 여기서도 언데드라고 불리는 그룹과 엄밀하게 구분해 좀비라고 부를 수 있는 만한 유니크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었다. * <이블 데드>와 <마계촌>부터는 언데드와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좀비의 행동적 특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마도 본격적으로 좀비라는 개념이 게임 안에서 자신의 위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대중적 게임을 꼽으라면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1996)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언데드와 구분되는, 명확한 좀비로서의 외형과 움직임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게임 안의 공간이 어느 정도 3차원 공간으로 잡히는 시기와 엇비슷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적으로서 좀비가 갖는 특성 중 하나인 느릿한 움직임이 3차원 공간에서의 공격방식인 ‘조준하고 쏘기Aim and shoot’에서 좀더 두드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케이드 오락실에서 실감형 게임으로 직접 전자총을 들고 조준해 사격하는 방식인 <하우스 오브 데드House of Dead>(1997)이 주요 대상으로 좀비(혹은 언데드)를 대상으로 한 것도 어느 정도 같은 영향력 하에 나타난 일로 보인다. * 3차원 공간에서의 에임 앤 슛에서 좀비의 행동은 좀더 두드러진다. 하지만 ‘느릿한 움직임’이라는 좀비의 특성은 고정된 것은 아니기에 함부로 속단하기 어렵다. 오히려 2010년대 이후의 게임들에 등장하는 좀비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군집으로서의 양상이다. <데이즈 곤Dayz Gone>(2019), <그들은 수백만They are billions>(2017)등은 결코 느리다고 볼 수 없는 움직임의 좀비들을 투입하면서 대신 엄청난 숫자의 물량으로 밀려들어오는 좀비로부터 버터내야 하는 도전을 안기는 형태로 변화했다. 오늘날 좀비를 주적으로 삼는 많은 게임들에서 나타나는 좀비의 특성은 그래서 단일하다기보다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디지털게임과 좀비 디지털게임의 초창기부터 좀비라는 대상은 적으로 자주 활용되었는데,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좀비가 활용되는 것과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디지털게임의 특수성이 도드라지기도 하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워킹데드>같은 드라마들에서 좀비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적대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외형과 유사해 더욱더 불쾌감과 공포감을 주는 존재로 등장하지만, 게임의 경우에는 이러한 적에게 공격행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또다른 의미가 부여된다. 사회적으로 디지털게임은 폭력성에 관한 오해를 자주 받곤 하지만, 실제로 게임 안에서 강렬하고 적극적인 폭력행동을 수행하는 일은 게이머에겐 때론 버거운 윤리적 부담감을 안겨주는 일이 적지 않다. 유명한 사례인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에서의 ‘노 러시안’ 미션에서 많은 게이머들이 무고한 민간인에게 화력을 투사하라는 명령 앞에서 머뭇거렸다는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이것이 비록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폭력의 사용이 매우 높은 심리적 장벽 앞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경험한 바 있다. 이런 면에서 특히 액션이 중심이 되는 게임이라면 좀비는 매우 그럴듯하게 윤리적 문제를 비껴나갈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좀비의 신체는 인간의 신체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명백하게 이는 인간이 아님을 드러낸다. 작은 머리와 직립보행하는 두 다리, 양 팔을 가진 좀비의 신체는 액션게임에서의 조준과 식별 과정에서라면 실루엣상으로는 인간을 향한 사격과 동일하지만, 인간을 닮은 이들 폴리곤 위에 덧씌워진 텍스처는 아주 강력하게 이들이 인간이 아님을 어필한다. 사격의 기술적 과정에서는 인간을 쏘는 것과 동일하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좀비라는 존재는 막대한 화력을 투사할 때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앞서 이야기한 윤리적 장벽을 우회하며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좀비를 대상으로 하는 게임들의 상당수가 중화기를 동원한 강한 화력을 선보이는 구조로 만들어지는 것도 같은 의미다. 미니건이나 소형 전술핵과 같은 대량살상이 가능한 병기들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지만, 이를 인간을 향해 쏘는 일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좀비와 같은 대상이라면 보다 강력한 무기를 디자인하고 그 화력을 맛볼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근현대 화기가 갖는 위력이 만드는 강한 스펙터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좀비라는 타겟은 다른 매체와는 다른 게임만의 특징으로 거듭난다. 이러한 윤리적 문제는 좀비가 아닌 다른 대상으로도 나타나는데, <콜 오브 듀티: 나치 좀비> 나 <스나이퍼 엘리트: 나치 좀비 아미>와 같은 나치와 좀비를 결합한 게임들이다. 나치와 좀비의 콜라보레이션은 매우 간단한 의도가 담겨 있다. 중화기로 화력을 들이부어라! 이들은 ‘죽어도 싼’존재이기 때문이다! * 나치와 좀비를 콜라보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게임 속 좀비의 새로운 트렌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게임 속 좀비는 한 시기, 한 모습에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며, 매 시기마다 그 시기에 가장 걸맞는 형태로 변화해 온 바 있다. 그리고 이런 좀비는 윤리 문제를 넘어선 강한 화력의 투사대상이라는 관념 바깥으로도 확장되는 중이다. <식물 대 좀비Plants VS Zombies>에서 좀비는 전통적인, 위협적이지만 느릿한 존재이지만 공포보다는 코믹한 형태로 재구성된 대상이다. 코믹한 좀비는 혼자 사는 너드 아저씨 주인공의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들어오지만, 이를 막아내는 것은 감자, 해바라기, 콩 같은 앞마당의 채소들이다. 외부의 조력 없이 혼자 자신이 사는 집의 앞마당yard을 침공해오는 좀비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게임 속 플레이어의 활동은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물이지만, 이 때의 좀비는 공포가 제거된 대상이다. * <식물 대 좀비>에서 좀비는 공포를 뺀 대상으로 나타난다.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에는 동충하초 같은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좀비가 적으로 나오지만, 사실상 이 게임에서 가장 무섭고 위협적인 적은 좀비가 아니라 사람이다. 자주 이야기되는,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이야기가 <라스트 오브 어스> 세계관과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고, 이 속에서 좀비는 ‘차라리 사람보단 낫더라’라는 이야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폴아웃>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구울이라는 집단을 상정하는데, 방사능에 피폭되어 인간의 골격을 하고 있지만 외형은 좀비와 닮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명확하게 좀비라는 존재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지만, 그 좀비들과는 달리 지성을 갖고 집단을 이루며 인간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존재이며, 플레이어의 동료나 아군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좀비라는, 한때 ‘절대로 인간이 아님’을 강변하며 존재하던 개념 또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를 묻던 그 장면들처럼, 최근의 적지 않은 게임들은 완벽한 상상 속 창작물인 좀비 또한 반드시 인간으로부터 분리되고 구분지어져야만 하는 대상인가를 역으로 묻는다. 어떤 면에서, 좀비에 대한 이야기는 포스트휴먼에 관한 최근의 논의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우주에 손을 뻗는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세계에 고립되어 존재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하며 살아가는 현실에서 내가 아닌 타자와 진정으로 동기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심전심, 역지사지는 궁극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개념이기에 이상향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언어가 가진 소통 수단으로서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 Back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우주에 손을 뻗는다 29 GG Vol. 26. 4. 10.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세계에 고립되어 존재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하며 살아가는 현실에서 내가 아닌 타자와 진정으로 동기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심전심, 역지사지는 궁극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개념이기에 이상향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언어가 가진 소통 수단으로서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서로의 말을 듣고, 글을 읽으며, 서로의 생각과 의도를 이해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자신있게 서로를 칭송하고 비난한다. 협력하고 배제한다. 바벨탑의 저주는 어쩌면 사람들의 언어를 나누어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나뉜 언어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는 맹신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류가 자신의 우주를 뛰어넘어 다른 우주와 소통하기로 결심한 그 순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게 손을 뻗기 시작한 순간. 영영 이해할 수 없을 타자를 알아가기 위해 내 시간을 기꺼이 쏟겠다고 결심한 순간. 이 가공할 욕구는 어디서 나오는가?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길 원하며, 무엇 때문에 이해하려 하는가? 이는 비단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이야기가 아닌, 서로 다른 소통 방식을 구사하는 모든 개인을 향한 물음이다. 당신은 당신을 둘러싼 기이한 존재들-가족, 친구, 직장 상사 또는 부하 직원, 매일같이 소셜미디어에서 마주하는 익명의 존재들을,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길, 원하는가? 그러니, 처음부터 시작해보자. 우리의 애정과 관심 밖에 있는 존재들, 처음으로 마주하는 그 낯선 존재들을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갈망을 느끼는 순간. 낯선 세계에서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낯선 이들 사이를 단지 수첩과 펜을 들고 바지런히 뛰어다니는, <챈트 오브 세나르Chants of Sennaar> 속 이름도 얼굴도 없는 여행자로 존재하는 순간. 우리는 왜 그들을 이해하려 하는가?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왜 그들의 소통 방식을 이해하려 하는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이 진정 이해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너, 돕다, 나” 생전 게임을 해 본 적이 없는 친구들과 게임을 하다 보면 놀랄 때가 있다. 울타리 사이로 나 있는 틈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겠다는 친구, 여기서 뛰어내리면 더 빨리 내려갈 수 있지 않냐고 따지는 친구를 볼 때, 비로소 게임의 언어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비디오게임의 영역에서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그리고 으레 사용되는 언어가 존재한다. 키 매핑, 시청각적 가이드, 플레이어가 플레이할 수 있는 동사의 한계 범위는, 광범위하게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경험이 발휘되는 ‘감’의 영역이다. 어느새 2n년 동안 게임을 해온 나에게는 무의식적으로 사용되는 감각이지만, 게임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왜 저기 지나가는 저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없는지가 의문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게임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뭘 할 수 있고, 뭘 할 수 없는지 조금씩 파악한다. 몇 개의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 점프할 수 있는지, 얕은 개울에 들어갈 수 있는지, 의자에 앉을 수 있는지. 이것이 이 게임의 언어다. 키오스크나 AI 상담 챗봇을 사용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자유로워 보이는 게임이라도 플레이어에게 말을 건네는 규칙은 정해져 있다. 경험을 위해선 이 규칙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비슷한 이유로, 나는 긴 텍스트로 설명하는 튜토리얼과,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지저분한 시스템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렇게 복잡한 텍스트로 이루어진 튜토리얼은 플레이어가 순수하게 낯선 상태에서 게임을 알아가는 경험을 간섭한다. 플레이 중 직관적인 행동과 시도를 통해 게임의 언어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공식을 머릿속에 쏟아부으며 암기하게끔 한다. 반면 <챈트 오브 세나르>는 하나의 문제를 던져주며 플레이어에게 말을 건넨다. “문 열림”과 “문 닫힘”. * 여행자가 처음 만나는 인물은 퍼즐을 통해 기본적인 단어들을 전수한다. <챈트 오브 세나르>의 게임 언어는 단순한 편이다. 동사의 종류가 많지 않고, 처음 게임을 시작해서 홀로 길을 걷다가 첫 문제를 만나기 전까지의 30여 초 동안 플레이어는 모든 언어(규칙)를 다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플레이어는 비로소 이 작품에서 제시하는 소통의 본질을 경험한다. 낯선 문자의 의미를 파악해, 닫힌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 세 단어(문, 열다, 닫다)는 앞으로 플레이어가 마주하고 번역해야 하는 수많은 상형문자들과의 상호작용을 암시한다. 우리가 처음 시작한 게임의 규칙을 파악하는 것은 처음 접하는 언어를 파악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맞닿아있다. 모국어를 배우는 것은 자각이 없는 본능적인 행위였고, 학교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앞서 언급한, 긴 텍스트로 도움말을 쏟아붓는 학습 행위에 가까웠다. 그러나 결국, 스페이스바를 눌러보기 전엔 점프가 가능한 지 알 수 없고, 레버를 내려보기 전까진 이 문자가 “열림”인지 “닫힘”인지 알 수 없다. 언어가 담고 있는 의미를 감각하기 이전에 언어의 껍데기를 마주하는 것은 학습일 수는 있겠지만, 이해일 수는 없다. 나의 세계를 포착하는 단어장 만들기 작품에 등장하는 다섯 개의 언어는 모두 표의문자를 사용한다. 하나의 문자는 단순히 하나의 단어를 치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2층에 사는 전사들의 어떤 문자는 ‘집어들다’부터 ‘지니다’까지 광범위한 한국어 단어의 의미를 내포하지만, 추상적으로 그린다면 결국 하나의 개념에 수렴한다. 작품은 해당 문자가 어떤 단어에 조응하느냐가 아닌, 어떤 개념을 그리고 있는지에 접근한다. 때문에 여행자의 수첩에는 문자의 의미가 텍스트가 아닌 그림으로 그려진다. ‘문’이나 ‘열쇠’같이 대상이 명확한 개념부터 ‘아름답다’, ‘두렵다’ 같은 형용사, 심지어 숫자나 ‘금’, ‘은’처럼 형태가 없는 명사까지 모든 개념은 독창적일 정도의 간단한 그림으로 표현되고, 플레이어는 이 그림이 표현하는 개념에 걸맞은 문자를 짝짓는다. 만약 이를 텍스트로 표현했다면 그 순간 해당 문자의 의미는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규정되었을 것이다. * 여행자는 새롭게 알게 된 개념을 그림으로 기록한다. 이렇게 규정되어 치환된 단어는 해당 문자를 얼마나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예상하지 못한 함의와 뉘앙스가 섞여들어갈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는 표현의 중립성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수단이며, 플레이어로 하여금 각각의 언어와 문자에 어떠한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같은 개념이 다섯 개의 다른 문자로 표현될 수 있는 이상, 각각의 문자가 얼마나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까. 외국어 학습 유튜브 영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레퍼토리 중 하나는 ‘당신이 알던 것은 틀렸다’ 논조다. 우리가 한국어와 치환해서 사용하던 외국어 단어나 문장 구조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며, 때문에 그 언어에 더 적합한 다른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 부족이 사용하는 다섯 개의 언어는 문자도, 문법도, 문장 구성도, 어휘도 다르다. 연금술사들은 복수형을 표현하는 별도의 문자를 사용한다. 음유시인들은 목적어를 문장의 제일 앞에 제시한다. 은둔자들은 문자들을 결합해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 탑의 1층에 사는 신자들은 탑의 위쪽을 신이 있는 공간으로 여기며, 때문에 ‘위’를 ‘좋은 것’이라는 개념과 연결한다. 이들에게 ‘수도원’은 지리적으로 ‘위’에 있는 동시에 ‘좋은(신성한)’ 공간이기에, ‘위’라는 문자에 ‘공간’을 표현하는 부수를 붙여 ‘수도원’이라는 문자를 만든다. 이는 단순히 어떤 개념을 규정하는 것과 더불어, 해당 부족의 언어가 담고 있는 세계관과 정서를 보여준다. 사실 다섯 부족이 동일한 단어들을 단지 다른 문자로 표현하도록 설계한다면 개발 상의 편의를 확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부족들은 문자의 개수도 다르고, 사용하는 어휘도 다르다. 이는 각 언어의 세계관에 차이점을 둘 수 있다는 이점과 더불어, 다섯 개의 사회에서 경험할 수 있는 플레이 요소에도 차이를 둘 수 있다. 유일하게 숫자 어휘를 사용하는 연금술사들의 사회에서 금속을 계량하고 화합물을 만드는 퍼즐을 푸는 것은, 낯선 세계를 배회하는 여행자가 이들의 삶을 가장 밀접하게 체현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 음유시인들은 탑의 위로 올라갈 방법과 그럼에도 갈 수 없는 이유를 연극으로 만들었다. 견고한 관성의 경계 너머를 떠도는 유령이 있어 2층의 전사들은 1층의 신자들을 ‘불순하다’ 말하며 멸시하고, 3층의 음유시인들을 ‘선택받았다’ 표현하며 동경한다. 4층의 연금술사들은 5층의 은둔자들을 ‘요정’이라 부른다. 그리고 여행자는 완전한 이방인 그 자체다. 어디에서도 비롯되지 않았으며, 어떤 언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름도, 얼굴도, 말도 없는 그는 이 탑의 모든 층을 오르내리며 분리된 세계들을 관통하는 관계를 구축해낸다. 그의 여정을 함께하는 것은 칼이나 총이 아닌, 수첩과 펜 한 자루다. 이 유령은 탑 안에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다. 그러니까, 사상적으로. 이제 막 태어나, 어떠한 세계관과 편견에도 물들지 않은 순수한 상태. 사실상 이 게임을 이제 막 실행해 아무것도 모르는 플레이어와 마찬가지의 상태다. 때문에 여행자에게는 언어가 없다. 그는 언어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다른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 표현한다. 언어를 가진 다른 이들이 저지르는 실수들, 자신의 언어라는 장벽에 둘러싸인 세계, 그 편견에 스스로를 가두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탑에 사는 부족들의 분열과 몰이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모든 층이 견고하게 분리되어 있고, 때로는 잘못된 신념이, 우월주의적 오만이, 무시무시한 괴물이, 그리고 거대한 문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심지어 꼭대기 층에 살고 있는, 이 탑을 세웠다는 은둔자들은 서로마저 밀어내고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살고 있다. 이들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도 눈을 마주하거나 말을 나누지 않고 시뮬레이션 기계 안에서 세상을 관음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소통과 이해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스크린 속 모습만이 이들이 보고 있는, 보려 하는 세상의 전부다. 결국, 낯선 여행자가 이 탑에서 해내야 하는 일은, 단순히 다섯 언어를 공부해 소통을 매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해야 한다는 필요와 의지조차 없는 사람들의 관계를 매개해 주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이상을 좇는 것에 몰두한다는 삶의 방향을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각자가 머무는 층 안에서 그런대로 살아간다. 그리고 이 관성이 탑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시스템, 여행자가 궁극적으로 맞서야 하는 시스템의 본질이다. 여행자가 숨겨진 장소들에서 마주하는 탑의 관리자, 고립자는 이러한 고립이 탑에 거주하는 이들의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고 항변한다. 그러니까 고립자의 세계관, 시스템의 언어로 묘사되는 ‘안전’이라는 개념은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항구적인 불변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부족들 간의 아무런 접촉도, 그로부터 벌어지는 아무런 변수도 발생하지 않는 상태. 영원한 분열과 반목 속에서 서로를 자극하거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없는 상태. 탑으로 밀려드는 다른 부족들이 두려워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은둔자들은 이러한 관성이 자신들의 사회를 아사시키고 있음을 깨달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여행자를 만들었다. 여행자, 플레이어가 이 탑에 저지른 일은 단순히 다양한 언어들을 터득해 부족 간의 말을 번역해 준 것이 아니라, 이 항구적인 불변성에 변화의 씨앗을 심은 것이다. * 탑 곳곳에는 다른 부족과의 소통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전사들은 신자들 역시 자신들처럼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금술사들은 자신들이 음유시인들과 한 부족이었다는 발견을 음유시인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음유시인들의 사회를 떠받치던 노예들은 신자들의 사회에 노예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들이 찾고 있거나 혹은 찾아볼 생각도 못 했던 답을 다른 세계관을 가진 다른 사회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질문을 멈출 때, 사회는 숨이 멎는다. 사실은 이렇다. 모두가 소통을 원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모두가 낯선 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갈망을 느끼진 않을 수도 있다. 전 지구적 연결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연 그렇게까지 이 현실에 열광하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분명 고개를 젓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겐 너무나 많은 질문이 있고, 너무나 많은 답이 있다. 누군가는 답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더 이상 타인을 궁금해하지는 않으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만을 끊임없이 하고싶어한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와 만연하고 노골적인 몰이해에 둘러싸여, 우리는 더 이상 질문을, 궁금해하기를 멈추고, 자신만의 우주 안에 웅크린 채 관성에 의지해 살아가려 할지도 모른다. 소통을 해야 한다는 필요와 의지조차 상실한, 항구적인 불변의 상태. 그러나 이런 때조차도 소수의 몇몇이 존재한다. <챈트 오브 세나르>에서 스크린 속 다른 부족을 마주한 채 말을 던지는 사람들. 이들은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답을 갈망하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진다. 그리고 이들의 사이를 엮어주는 여행자. 완전히 다른 세계관에서 탄생하고 구조화된 두 언어를 매개하고, 두 세계가 서로의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 연금술사들은 전사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두 부족은 함께 괴물을 생포한다. 적어도 오늘날의 우리는 더 이상 수 백 년 전처럼 내가 사는 동네가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가진 않는다. 좋고 싫음과는 별개로 세상에 자신처럼 생각하는 사람만 있지는 않음을 알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쓰인 책과 영화, 음악, 게임을 매일같이 접하고, 직접 세상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큰 세상을 마주한다. 때로는 탑의 고립과 분열을 수호하려는 관리자가 등장할 수도 있고, 늘 관성에 의지해 그런대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사회에게 남은 미래는 서서히 죽어가는 것뿐이고, 종의 존속과 진화를 위해서는 유전적 돌연변이가 필수적이다. 누군가는 원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계속해서 낯선 세계를 이해하길 갈망할 것이고, 다른 우주로 손을 뻗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이머) 박해인 게임에서 삶의 영감을 탐색하는 게이머. 게임의 의도와 컨셉을 전달하는 방식들을 분석하는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 Beyond the K-Game

    우리의 게임 실력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원코인, 즉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플레이 할때다. 다양한 BM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한다. 다행히 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인디 게임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넥슨은 참신한 도전을 위해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다. 심지어 여기서 만들어진 ‘데이브 더 다이브’는 스팀 인기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네오위즈 ‘P의 거짓’은 게임스컴 어워드 3관왕에 올랐다. 하면 된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거듭된 패배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동전을 넣던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 Back Beyond the K-Game 09 GG Vol. 22. 12. 10. K-게임은 어찌하여 호K호형 하지 못하는 신세로... 접두사 ‘K-’가 붙는 단어들이 있다. K-웹툰, K-드라마, K-POP, K-영화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닮은 점이 있다. 컨텐츠라는 점이다.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 안으로는 국민에게 사랑받고, 해외로는 우리의 자랑거리다. 그러나 K로 시작하는 컨텐츠임에도 저기에 끼지 못한 서자가 있다. 이름하여 K-게임이다.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많은 대중에게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게임업계는 항변할 것이다. K-게임은 컨텐츠 수출을 견인하는 산업일꾼이란 주장이다. 업계종사자 중에서는 억울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게임은 다른 K-게임과 다르다는 이유다. 맞다. 인정한다. 컨텐츠 수출액의 70%를 점하는 효자이고, 국내와 해외에서 사랑받는 K-게임도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있다. 수출역군의 일등공신도 BM(비즈니스 모델)이고, 대중에게 배척받는 이유도 BM이다. 예상하듯이, 그 BM은 확률형 아이템을 주 기반으로 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여러 자리에서 주장해 왔기에 ‘확무새’라고 지겹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주 독자층이 주로 ‘게임高관여층’일 것이기에 또 한번 쓸 수 밖에 없다. 태풍의 눈에 있으면 태풍의 세기를 체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극히 일반적인 게이머들의 생각을 되풀이해서 들어야 한다. 랜덤박스와 P2W의 결합: 게임사엔 최고의 궁합, 이용자는 최악의 조합 확률형 아이템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결과는 게임의 본질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한 달에 한 번 매직 더 개더링 카드팩을 살 수 있었다. 그 날은 매월 가장 설레는 날이었다. 카드팩을 뜯을 때 나던 그 특유의 카드 냄새, 드물게 나오는 레어카드의 기쁨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 'Mirri, Cat Warrior'. '매직 더 개더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템페스트 블록’중 엑소더스에 등장한 레어 카드. 당시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던 녹색 생물이다. 이 카드를 뽑고선 15년 인생 중 가장 큰 짜릿함을 경험했다. 문제는 확률형 아이템 모델이 ‘Pay to Win’(이하 P2W) 과 만났을 때다. P2W 시스템은 게임에서 승리하는 데에 필요한 핵심 조건, 즉 캐릭터 능력치나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하는 행위 및 이것을 유도하는 게임구조를 말한다. 이용자는 P2W을 통해 남들보다 적은 시간을 투자하여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 어찌 보면 참 편리한 시스템이다. 아울러 P2W 이 게임 밸런스를 과하게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살짝만 곁들여지면 게임의 재미를 더 높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다. 매운 맛을 좋아한다고 음식에 캡사이신 소스를 뿌려대면 응급실행이다. 마찬가지로 P2W이 과하면 게임을 해치는 독이 된다. 대다수의 P2W 아이템이 확률형 아이템 BM을 통해서만 획득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문제다. 더 좋은 P2W 아이템일수록 더 낮은 획득 확률이고, 자연스럽게 사행심도 함께 부추겨진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낮은 확률을 뚫고 어렵사리 아이템을 구해도 안심할 수 없다. P2W 아이템을 계속해서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먼저, 어렵게 획득한 P2W 아이템보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확’풀어 버린다. 그리고선 보다 높은 등급의 희귀 P2W 아이템을 랜덤박스로 내놓는다. 즉, 인위적으로 아이템 성능의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기존 아이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주로 대규모 패치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주기가 짧을수록 잦은 과금을 해야 한다. 지상 낙원을 꿈꿨던 랩처, 그러나 그 끝은 파국만이 있었다 “회사의 제1원칙은 수익 창출이다. 따라서 민간의 영리활동에 정부나 국회가 과하게 개입해선 안된다.” 업계의 논리다.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자유와 방종은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바이오쇼크'라는 게임시리즈가 있다. 심오한 세계관과 뛰어난 연출로 평론가, 이용자 모두에게 극찬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2007년에 출시된 '바이오쇼크 1'은 명작 중의 명작이다. '바이오쇼크1'은 수중도시 랩처가 배경 무대다. 이 곳은 앤드류 라이언이라는 자유지상주의자에 의해 건설된 도시다. 랩처엔 특징이 있다. 그 어떤 규제도, 간섭도, 책임도,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순도 100%의 자유로만 채워진 공간이다. 언뜻 들으면 낙원 같기도 하다. * 초기 랩처의 유토피아 모습. 그러나 랩처의 끝은 파멸이었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기본적인 규범과 도덕마저 부재했다. 욕망을 한껏 부추기는 환경은 즐비했지만, 제동장치는 없었다. 결국 랩처의 주민들은 광기에 빠져 공멸했고,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 방종으로 파멸한 랩처. 우리 게임업계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 BM의 폐단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개선의 기회도 충분히 주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무조건적인 규제가 아니라 업계에 자율규제를 맡겼다. 수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결과를 목도했다. 전 세계 초유의 게임이용자 집단 연쇄시위 사태, 이를 통한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를 코앞에 두고 있다. 문제는 업계의 대응 방식이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되자,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국회 문체위 모든 의원실에 입장문을 전달하는 협회의 모습에서 랩처의 그림자가 겹쳐보였다. 마치 랩처처럼, 협회는 게임 이용자들이 원하는 최소한의 규제, 최소한의 이용자 보호조치마저 거부했다. 그런가 하면 타 의원실을 통해 청부 입법하기도 했다. 자율규제를 유지·강화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끝에 결국 법안은 철회되었다. 그런가하면 민간 자율기구에서 사실을 왜곡하여 의원실을 폄훼하기도 했다. 업계 대응방식의 부작용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다시 '바이오쇼크 1' 이야기다. 스플라이서라는 존재들이 있다. 본래 평범했으나, 마약성 유전자 변형제인 '아담'에 중독되어 그 부작용으로 괴물화된 랩처의 주민이다. 업계 대응방식의 부작용은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이슈에 대해 여론이 돌아섰다. 질병코드 문제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2019년 당시와 지금을 놓고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3년 전에는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업계편에 서서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론전에서도 등재 찬성측을 압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랜덤박스 규제에 대한 업계의 대응을 보고 게이머들의 마음이 식어버렸다. 한번 차가워진 여론은 되돌리기 어렵다. 국내 게임사들은 이용자들에게 분노를 넘어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계가 게임 이용자들의 지지를 바라기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질병코드 등재에 찬성하고 나서는 게임 이용자들도 여럿 보이는가 하면, 확률형 아이템 위주의 게임을 도박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실제로 최근 질병코드 등재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사의 업보’라며 조소어린 관망세를 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K-게임업계의 대응은 스플라이서와 쌍둥이 꼴이었다. 본인의 선택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다. 원코인 남은 심정으로.. 지난 2년 동안 K-게임환경은 지각변동이 있었다. 연쇄 트럭시위, 마차 시위, 집단 소송은 물론 여러 정부 기관에 민원 제기까지, 이제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 게임업계는 이용자의 집단화를 두려워하고 피해야할 대상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도 애정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던 애정마저 식으면 K-게임의 엔딩은 ‘배드 루트’뿐일 것이다. 우리의 게임 실력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원코인, 즉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플레이 할때다. 다양한 BM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한다. 다행히 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인디 게임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넥슨은 참신한 도전을 위해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다. 심지어 여기서 만들어진 ‘데이브 더 다이브’는 스팀 인기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네오위즈 ‘P의 거짓’은 게임스컴 어워드 3관왕에 올랐다. 하면 된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거듭된 패배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동전을 넣던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 Here comes a new challenger!!!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국회 보좌관) 이도경 역대 국회 게임 관련 법안 최다 발의·최다 통과 시킨 것이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자부심은 와우에서 리치왕 하드모드 서버 퍼스트킬 한 것과 카오스 유명 클랜인 RoMg에서 샤먼을 했다는 사실입...

  •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쇼의 미래를 묻다

    ‘게임기자가 되면 뭐가 좋아요?’. 최근 술자리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후배가 물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필자는 게임기자를 대변할 깜냥도 없을뿐더러, 글밥을 벌어 먹고사는 것이 날로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굳이 게임기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Back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쇼의 미래를 묻다 20 GG Vol. 24. 10. 10. ‘게임기자가 되면 뭐가 좋아요?’. 최근 술자리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후배가 물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필자는 게임기자를 대변할 깜냥도 없을뿐더러, 글밥을 벌어 먹고사는 것이 날로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굳이 게임기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목이 턱 막히는 질문이지만 이 답답함을 후배에게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가까스로 꺼낸 대답은 ‘게임기자는 게임쇼에 갈 수 있어’였다. 필자는 지금은 사라진 E3를 제외한 거의 모든 대형 게임쇼를 취재했다. 한국의 지스타, 플레이엑스포, BIC부터 중국의 차이나조이, 일본의 도쿄게임쇼, 대만의 타이베이게임쇼와 독일의 게임스컴, 미국의 GDC를 다녀왔다. 게임사들이 자체적으로 연 행사까지 포함한다면 필자가 다녀온 곳은 더 많다. 게임쇼는 여러 게임사가 신작을 발표하는 한편 개발 상황을 대중에 공유하는 쇼케이스이고, 사업적 기회를 찾는 기회의 장이며, 게임인들이 모이는 축제다. 게이머로서 게임쇼는 놓치기 아쉬운 현장이다. 필자가 이 원고를 탈고하는 지금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쎄에선 도쿄게임쇼가 막을 내렸다. 오는 11월, 지스타는 행사 20주년을 맞이한다. * 오는 11월 개막하는 지스타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다. 사진은 2024년 지스타의 행사장 조감도 일부 사라진 E3, 점점 올라가는 비용… 높아지는 게임쇼 무용론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디지털게임이 오프라인 쇼라는 형식을 통해 공유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를 경유하면서 온라인 쇼케이스 방식은 널리 퍼졌다. 신작 발표라면 소니의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나 제프 케일리의 초호화 발표회가 있고, 체험이라면 스팀의 얼리억세스가 있다. 북미를 대표하는 게임쇼는 E3는 사라진 게임쇼가 되었다. 단일 게임사 게임쇼로는 가장 유명한 블리즈컨은 개최와 미개최를 반복하고 있다. 요컨대 모든 사람이 코로나19를 지나며 비대면의 익숙함을 경험했지만, 디지털게임은 특별히 비대면 콘텐츠를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게임스탑이나 용산상가보다 온라인 유통망에서 게임을 구매하는 것이 익숙한 지금, 오프라인 게임쇼의 의미도 새로 생각해봐야 한다. 게임 CD와 CD-ROM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예전과는 달라진 것처럼 말이다. 최근 필자는 CD는 커녕 USB 저장장치를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이 대학생이 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아무튼, 이미 많은 업계인들이 <헤일로> 신작을 공개하면서 팔에 <헤일로> 문신을 보여주는 것보다 게임스컴 오프닝 라이브나 더 게임 어워드에 쇼케이스 자리를 구매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외신 에스콰이어에 폭로된 바에 따르면, 제프 케일리가 주최하는 각종 쇼케이스에 광고를 내려면 1분에 25만 달러, 약 3억 4,00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기자가 그간 만난 많은 업계인들이 오프라인 게임쇼에 출전하는 것보다 온라인 쇼케이스에 트레일러를 보내는 것이 저렴하다고 토로했다. 오프라인 게임쇼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플레이 가능한 게임빌드가 있어야 하고, 그게 없다고 하더라도 손님들을 만족시킬 적당한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하며, 코스프레 업체와 안내요원에게 인건비를 지불해야 하는 한편, 행사 주최측에게 부스 공간을 대여해야 한다. 철도로 운송이 가능한 경우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항공편으로 물자와 인력을 대야 하는 경우라면, 그 비용이 대단히 올라간다. 즉, 온라인 쇼케이스에 트레일러를 보내는 것은 게임쇼 직접 출전보다 경제적으로 더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다. 더구나 지금처럼 게임 업계가 감축 국면으로 접어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기자가 아는 모 게임사는 코로나19 이전까지 고용하고 있던 행사 관련 전담 인력을 대부분 내보냈다.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MS의 옛 게임사업부 대표를 맡은 피터 무어는 <헤일로 2>의 출시일을 문신으로 새겨 현장에서 공개했다. 현장 분위기는 열광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신작 발표의 플랫폼이 옮겨 가면서 이런 충격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듯한 인상이다. 한껏 기대를 받은 상황에서 출시된 <헤일로 2>는 대박이 났다. (출처: E3) 그럼에도 살아남은 게임쇼는 역대 최다 관중 갱신 그래서 오프라인 게임쇼에는 파리만 날리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각 게임쇼는 역대 최다 인원을 모객하고 있다. 지난 게임스컴과 올해 게임스컴은 소니와 닌텐도가 빠지고 그 자리를 한국과 중국의 게임사들이 채우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라인메쎄 사무국의 발표에 따르면, 2024년 게임스컴의 방문객 수는 총 120개국 출신의 33만 5,000여 명으로 역대 최고 관람객 수를 기록했다. 도쿄게임쇼의 방문객도 274,739명이 방문해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차이나조이도 338,000명의 집계를 올리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누군가에게는 무용한 논의일 수 있겠으나, 오프라인 게임쇼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느냐’에 달려있다. 현장에 찾아서 돈과 시간을 쓴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서 그 해 행사를 점검하는 한편, 다음 해에 대한 예측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게임쇼의 조직위원회가 꼬박꼬박 방문객 수를 집계하고 발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반대로 특정 게임쇼가 관람객 발표를 주저한다면, 이는 내년도 행사에 적신호가 될지도 모른다. E3가 사라진 가운데 주요 게임쇼들이 역대 최다 관람객 수치를 매년 갱신하면서 한때 코로나19로 침체됐던 오프라인 게임쇼에 대한 심리가 분출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엔 일상을 찾은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듯하다. 오프라인 게임쇼는 여전히 폭발력 있는 마케팅 창구이고, 방문객으로 하여금 대체 불가능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그중 백미는 단연 미발매 게임을 먼저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스컴은 소니와 닌텐도가 빠졌음에도 크래프톤이 <인조이>, 펄어비스가 <붉은사막>을 선보이며 전 세계 게이머를 사로잡았다. 소위 ‘국뽕’ 요소를 제하더라도 두 게임에 대한 열기는 <몬스터 헌터 와일즈>나 MS 게임패스 부스 못지 않게 뜨거웠다. 관람객들은 캠핑 의자를 끌고 와 5시간에서 6시간을 앉아 두 게임의 시연을 기다렸다. 지난해에도 게임사이언스의 <검은 신화: 오공>을 즐기려는 장사진이 들어섰다. “대기시간 수백 분”은 “사전예약자 몇만 명”보다 센 파급력을 지닌 듯하다. 사전예약은 버튼 터치로 가능하지만, 대기시간은 순전히 그 앞에서 기다려야 하지 않은가? 일반 관람객을 위한 ‘매직패스’ 부류의 탑승 예약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다. * 지난 게임스컴에서 수백 분의 대기시간을 기록한 크래프톤의 <인조이>. (필자 촬영) 챔피언의 사정, 컨텐더의 사정 그러나 단일 기업이 충분한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을 때에는 굳이 오프라인 게임쇼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듯하다. 소니의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가 그렇고, 닌텐도의 ‘닌텐도 다이렉트’가 그러하며 블리자드의 ‘블리즈컨’이 그러하다.(혹자는 이 문장을 과거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단일 게임쇼가 열리는 기간에 맞추어 자사 게임쇼를 열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2019년에는 EA가 E3를 앞두고 EA PLAY라는 이름의 자체 게임쇼를 열어 관객을 맞이했다. 앞으로도 세계 시장에서 주목도가 높은 게임사들은 자사의 마케팅 전략과 비용, 국가 내의 입지 등의 따라서 부스 출전을 결정할 것이다. 도쿄게임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닌텐도 부스를 한국의 플레이엑스포에서 찾을 수 있다.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라는 개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소니는 올해도 차이나조이에서 대형 부스를 냈지만, 굳이 독일 게임스컴까지 출전하지는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반면에 단일 회사와 IP의 지명도가 개별 게임쇼보다 부족하다면 그 기업은 여건이 되는 한 적극적으로 출전을 고려할 것이다. 당장 크래프톤과 펄어비스는 <인조이>와 <붉은사막>을 알리기 위해 수천 km를 날아갔고, 좋은 성과를 얻은 듯하다. (공교롭게도 두 회사는 모두 상장사인데) 다가오는 실적 발표에서 이들 기업이 출전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여러 비용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략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적인 물가 인상 기조가 끝나지 않는 이상, 오프라인 게임쇼 출전을 위한 비용도 올라갈 것인데, 그렇다면 이들 게임사들은 자사가 벌어들이는 영업이익의 규모를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차이나조이에 참가했던 소니는 게임스컴을 결석하고, 안방의 도쿄게임쇼에 다시 참가했다. 사진은 2024년 차이나조이에서 촬영한 소니 부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 PS5는 품귀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오공>이 출시됐기 때문. (필자 촬영) 몰맥락적 ‘쇼걸’ 대신 코스프레, 그리고 굿즈의 향연 게임업계의 올드비들은 게임쇼에서 ‘쇼걸’이 도열해 현장을 찾은 손님의 팔짱을 끼면서 부스 방문을 영업했다는 이야기를 전설처럼 꺼내곤 한다. 이제 그런 모습은 전과 달리 많이 사라졌다. 지금도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몇몇 곳은 ‘쇼걸’을 적극적으로 배치해 모객에 나서지만 이제는 대부분 찾아보기 어려운 문화가 됐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코스프레 모델로 보인다. 자사 IP와는 아무런 쇼걸보다는 맥락이 있는 전시로 평가되기 때문에 빠르게 쇼걸의 자리를 대체한 듯하다. 일각에서는 게임이 아닌 코스프레가 행사의 중심이 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내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본다. 행사장에는 매년 눈에 띄게 코스프레 참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매년 찾는 지스타에서도 코스프레 참가자가 늘어나는 것이 꾸준히 관측된다. 이런 개인 참가자 중 몇몇은 게임사에서 준비한 코스프레 모델을 뛰어넘는 수준의 분장을 보여주며 보는 사람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전 세계 어느 게임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는 포스트모템과 강연 중심의 GDC에서도 코스어를 여럿 목격했다. 이렇듯 게임쇼에서 코스프레는 이미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지도 오래다. 한국의 플레이엑스포는 코스프레 참가자를 위한 탈의실과 코스프레 가이드까지 안내하는 등 코스프레 친화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자도 누가 ‘택일하라’고 한다면 코스프레 중심의 게임쇼보다는 시연 중심의 게임쇼를 선호하는 쪽이지만, 그것은 개인의 호불호 영역에 불과할 뿐, 둘은 앞으로도 완전히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아시아권 게임쇼를 중심으로 코스프레 모델에게 과도한 촬영을 시도하는 몇몇 사진가들이 있어 유의가 필요할 듯하다. 여담이지만, 지난 게임스컴에서 필자는 한 업계 관계자로부터 ‘굿즈 배포의 관행’에 대한 사견을 들은 바 있다. 언젠가부터 게임 캐릭터나 게임사 로고 등으로 장식된 대형 비닐 백에 게임사에서 나눠주는 마우스패드, 휴대용 선풍기 등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게임쇼에서 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이 관계자는 이러한 굿즈 살포가 근래 트렌드가 된 ESG 경영에 맞춘 행보가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은 언제나 작은 성의에 감동하기 때문에 굿즈 배포의 문화를 단박에 없애기는 어렵겠지만, 행사장 한편에 무더기로 버려지는 종이부채 쓰레기를 보면, 다른 방식의 ‘작은 성의’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지스타 사진 중 기사에 쓰기 적합한 사진을 골랐다. 사진기사 본문에는 "부스에 미모의 여성들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라고 쓰여있다. (출처: 디스이즈게임) 오프라인 게임쇼의 미래는? 정리하자면, 게임업계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을 빠르게 학습했으며 지금도 비대면 행사와 마케팅이 자주 펼쳐지고 있다. 축소 국면에서 트레일러 마케팅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쓰이고 있고, 이 기조는 한동안 계속될 듯하다. 제프 케일리의 아성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플레이어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게임쇼의 현장감은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에 각 기업의 영업활동이 허락하는 한 오프라인 게임쇼는 계속될 것이다. 사라진 E3의 빈자리는 게임스컴 등 타 게임쇼들이 성공적으로 대체하고 있다. 본문에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같은 예술 행사에서도 게임은 당당히 현장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 소니와 닌텐도 같은 빅 플레이어들이 게임쇼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호사가들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게임사들은 근래 바둑을 두듯 빈자리를 파고 들어가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크래프톤과 펄어비스가 대표적이다. 지금으로서는 근거 없는 기자의 망상이지만, ‘퍼스트 펭귄’을 주시하는 업계의 특성상 이러한 시도는 당장 내년도부터 다른 한국 게임사들에 확대될 수 있다. 관람객들은 몇 시간씩 게임 시연에 줄을 서기도 하고, 자기 카드 덱을 들고 듀얼을 펼칠 수도 있고, 꼬리 달린 털옷을 입고 나와서 현장의 분위기를 돋울 수 있다. 오프라인 게임쇼의 성패는 언제나 얼마나 많은 관람객을 모았는지에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주최사와 게임업계에게 긍정적인 신호이고, 그들은 그 신호를 이어갈 수 있도록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채팅 비활성화와 게임 커뮤니티 문화

    2019년 브리아나 우는 게임이 단순한 모방 범죄와 폭력성을 유발하고 있다는 담론에서 벗어나 이제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와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사회 문제가 생겼을 때 게임을 모방한 사건이나 게임 중독자의 일탈 행동 등 개인의 책임을 묻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이머 문화와 커뮤니티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할 지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 Back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채팅 비활성화와 게임 커뮤니티 문화 03 GG Vol. 21. 12. 10. * 〈리그 오브 레전드〉 2021년 11월 21일 패치 노트 2021년 11월 21일,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게임 내 전체 채팅 기능이 사라졌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게임의 명성만큼이나 해로운 상호작용을 지닌 게임으로도 유명하다. 롤의 채팅 기능은 게임을 위한 전술을 교환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대신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번 패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팀원 간 채팅은 여전히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운영적인 측면에서는 기존에 존재하고 적극적으로 활용되던 기능을 삭제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고, 팀 내 채팅마저 삭제될 경우 당장 타인과 함께 플레이하지 않는 유저들 간에 전술을 교환할 수 있는 수단이 미흡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패치를 주목했다. 누군가는 진작 생겨야 할 기능이었다며 환영했고, 반쪽짜리 기능일 뿐이라며 못 미더워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체 채팅은 사라졌지만 게임이 끝나자마자 결과 화면에서 바로 상대 팀원에게 욕설을 퍼붓는 게이머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물론 이번 패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이미 제공되는 채팅 끄기 기능을 왜 쓰지 않냐면서 이번 패치로 인해 자신이 채팅할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빼앗겼다고 주장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 뿐만 아니라,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많은 게이머들은 게임 중 발생하는 폭력적인 대화들을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이미 게임 문화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폭력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게임 내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익명의 상대방에게 더 쉽게 저주를 퍼부을 수 있는가? 기존의 MMORPG 게임은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일정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요구됐다. 상위 컨텐츠를 플레이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 부대낄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면 (좋건 싫건 간에) 게임 속에서 사회 규범이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유저들과의 대결인 PVP 보다는 PVE 가 주목적이기 때문에 원망의 대상이 몬스터나 개발사 쪽으로 가지 유저로 가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MMORPG 중 PVP가 유명한 게임들의 경우 채팅 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거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AOS 게임은 부계정을 만들기가 타 장르에 비해 쉬운 편이다. 캐릭터의 숙련도를 정하는 것은 캐릭터의 레벨이나 전설적인 장비가 아닌 자신의 피지컬, 즉 순수한 실력이다. 게임 규칙을 지키지 않아 채팅이 막히고 아이디가 정지되더라도 다른 아이디로 접속하면 전과 같은 환경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 타인과 경쟁하는 게임에서 원망의 대상은 자신에게 패배의 경험을 제공하는 상대방이다. 같은 편이어도 예외는 없다. 끊임없는 조작이 필요한 AOS 게임의 특성상 채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부정적인 경험(캐릭터의 사망, 승패가 가려진 후)을 한 직후밖에 없는데, 이때의 흥분되는 감정들이 직접적으로 상대방에게 쏟아지기 쉬울 수밖에 없다.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증오 표현과 성희롱을 하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해 게임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속된 말로 게임을 던지는) 것도 불사하는 행동, 때로는 게임 밖으로 까지 뻗어나가 사이버 괴롭힘과 스토킹까지 지속하는 이런 행위들을 서구권 게임 업계에서는 독성 행동(Toxicity, 일부 논문에서는 유해 행동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했다. 게이머게이트 사건 이후, 게임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독성 행동이 어떤 기반에서 생겨나게 되었는지, 이런 행동들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지 사회문화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북미의 경우 게임 커뮤니티에서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이들의 경우 대부분은 보수적인 성향을 띄며 여성 보다는 남성의 수가 많았다. 상대적으로 어리거나 젊은 게이머가 많았으며, 백인이고, 이성애자의 비율이 높아 주류 사회의 포지션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공격성은 위보다는 아래로 향하였고, 타인이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빼앗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약자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욕설 대상은 여성과 타 인종, 성소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1)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이런 경향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단일민족 국가 정체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타인종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욕설은 상대적으로 덜 하지만 그 부분을 여성에 대한 욕설이나 성희롱으로 채운다. 주목할만한 사실로는 상대방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더라도 어떤 캐릭터를 고르는지, 어떤 플레이 스타일을 가졌는지를 보고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못 미친다고 생각되는 순간 상대방을 여성이라 단정하고 공격하는 경향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2) 공통적으로 독성 행동은 나이가 어릴수록, 여성보다는 남성이, 팀워크를 통해 경쟁하는 게임을 경험했을수록 더 흔하게 발생한다. 남성 게이머는 나쁘고 여성 게이머가 덜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을 하는 유저들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온라인 활동을 하는 이용자들의 수가 애초에 적기 때문이다. 게임 이용자들 중 1.4%만이 적극적인 온라인 활동을 한다. 댓글을 남기는 비율을 포함해도 10% 미만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 중 악성 유저의 수는 소수이지만, 이 소수가 게임과 게임 커뮤니티의 의견을 과대표하게 되면서 이들의 의견이 게이머 전체의 의견인 양 노출되게 된다는 점이다. 3) 이런 독성 행동은 게임 밖 커뮤니티에서 특히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자신을 드러낼 필요성이 없는 익명 사이트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한데 문제는 한국의 경우 게임 커뮤니티의 상당수를 익명 사이트(대표적으로 디시인사이드가 있다.)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카페나 팬 사이트와 다르게 익명 사이트들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강조한다. 이들은 친목과 규칙을 거부하고 쉽고 빠르게 글을 쓴다. 날것의 감성을 강조하여 원색적인 표현을 쓸 수록 반응이 좋기 때문에 자극적인 글들이 많고, (루머를 포함한) 최신 정보도 다른 곳에 비해 빠르게 올라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당연히 게임 개발자나 운영자들 또한 익명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게 되고, 원색적인 단어에 놀라던 사람들도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자극에 익숙해져 “잘못된 것 같긴 하지만, 원래 게임이 그렇다.” 는 식으로 무뎌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익명 사이트 문화가 게임 문화의 일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런 익명 사이트는 몇몇 유저가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쉽다. 독성 행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타인의 독성 행동을 학습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디시인사이드의 경우 유저 수가 작은 마이너 갤러리가 하나 있다고 하자. 이 곳이 아무리 ‘DC스럽지 않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도 사람이 증가하면 독성 발언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된다. 이들은 수가 소수일 때는 침묵하다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 한 두 명 보이기 시작하면 그동안 게시판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말을 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곧 마이너 갤러리의 분위기는 다른 갤러리와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하게 되는 식이다. 이들은 하나의 익명 사이트만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익명 사이트에서 동시에 비슷한 행동을 한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게시물을 여러 사이트에 공유하고, 각종 혐오 문화를 밈(MEME)과, 동영상, 짤방을 통해 재생산하여 퍼뜨리다 보면 대형 커뮤니티까지 이런 글들이 확대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침묵하기를 선택하고, 그것을 견딜 수 없을 때가 되면 커뮤니티를 떠난다. (게임 이용자들의 절반이 커뮤니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러다 보면 게임 커뮤니티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추구하게 된다. 남들보다 우위를 차지해야 하며 그렇지 못한 것들은 남성이어도 쉽게 웃음거리가 된다. 수준 미달인 상대방을 놀리기 위해 원색적인 욕을 서슴없이 하며, 그것들을 가식 떨지 않는 솔직함으로 표현한다. ‘상남자’스럽지 않은 것은 계집들이나 게이들이 하는 일이며, 자신들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서클 안에 속하는 우리들 뿐이다. 그 곳에서 말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분명 게임 속 커뮤니케이션 문화에 질려 떠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 채팅 기능이 없는 〈스플래툰〉과 〈포켓몬 유나이트〉 독성 행동에 대한 해결 방법은 아직은 일반론적인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다만, 〈에이펙스 레전드〉(Apex Legends) 등 몇몇 게임에서 채팅 기능을 제거하고 핑(Ping) 시스템을 통한 간접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도입한 이후 많은 게임에서 핑 시스템을 적극 차용하고 있으며 채팅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게임들 또한 등장하고 있다. 핑 시스템이 완벽한 대안이라는 말이 아니다. 핑을 쉴 새 없이 찍어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고, 감정 표현을 통해 상대방을 비꼬는 행위는 여전히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채팅 기능이 삭제되는 것 만으로도 타인의 노골적인 적대적 감정을 원치 않는 순간에 맞닥뜨리는 빈도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게이머도 게임사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발매될 게임들 중 의사 소통의 수단으로 채팅을 사용하는 게임들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 시스템적으로 다양한 대안을 세운다 하더라도 헤게모니 적 남성성을 과시하는 커뮤니티가 살아 있는 한 게이머들의 독성 행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AI 봇의 차단을 피해가며 사람들의 기분을 망치기 위한 방법을 자랑스럽게 공유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 게이머를 참교육한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나눈다.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영상들을 유튜브 클립과 이미지를 통해 재생산되며 집단 내에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이 선을 넘은 행위로 게임을 정지당하더라도, 게임 커뮤니티에는 여전히 이들의 게시물과 동영상이 남아 있다. 자극적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고, 이는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런 문화는 점점 더 부추겨질 수 밖에 없으며, 알고리즘으로 인해 유입되어 그 문화를 학습한 다른 이용자들에 의해 독성 문화는 계속해서 퍼져나갈 수밖에 없다. “비디오 게임은 총기 난사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게이머 문화는 증오를 조장한다.” 4) 2019년 브리아나 우는 게임이 단순한 모방 범죄와 폭력성을 유발하고 있다는 담론에서 벗어나 이제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와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사회 문제가 생겼을 때 게임을 모방한 사건이나 게임 중독자의 일탈 행동 등 개인의 책임을 묻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이머 문화와 커뮤니티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할 지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1) Weird (2020.12.09),Toxicity in Gaming Is Dangerous. Here's How to Stand Up to It, (https://www.wired.com/story/toxicity-in-gaming-is-dangerous-heres-how-to-stand-up-to-it/) 2) 이현준,(2021), ‘혜지’가 구성하는 여성에 대한 특혜와 남성 역차별 : 공정성에 대한 남성 온라인 게임 이용자들의 열망은 어떻게 여성혐오로 이어지는가?, 방송과 커뮤니케이션 17-19p 3) 박소영, (2020.08.19), 게임이용자 중 1.4%만 적극적 온라인 활동... "남성 게이머 과대표됐다",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80901430002130) 4) Wu, B. 2019. Video Games Don’t Cause Mass Shootings. (https://www.washingtonpost.com/outlook/video-games-dont-cause-mass-shootings-but-gamer-culture-encourages-hate/2019/08/09/655409a0-b9f2-11e9-a091-6a96e67d9cce_story.html)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이머, 게임 리뷰어) 딜루트 타인이 공들여 만들어낸 가상 세계와 이야기를 분석하는 행위를 즐겨 합니다. 선호하는 장르는 RPG이며 최근에는 보드게임을 즐겨 하고 있습니다.

  • [editor's View] 기록 너머의 기억이 게임과 감응하는 과정에 대하여

    작은 메모리에 기록되는 수치화된 세이브 데이터부터 플레이어가 게임을 마치고 난 후에 갖는 감정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기억이라는 이름의 넓은 호수 표면을 탐색합니다. 때로 어떤 필자는 표면의 작은 물결에 이끌려 잠수해 들어가기도 할 것입니다. 기록 너머의 기억에 대해 게임이 할 수 있는 많은 말들에 귀기울여 주십시오. < Back [editor's View] 기록 너머의 기억이 게임과 감응하는 과정에 대하여 31 GG Vol. 26. 8. 10. 우리는 언어라는 체계 위에서 살고 사랑하고 사고합니다만, 그렇다고 마음 속의 모든 것이 언어기호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억이죠. 기억은 때로는 언어를 넘어섭니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놀이터에 비치던 햇살, 첫 단골 PC방에서 풍기던 특유의 방향제 냄새는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위해 언어로 표현하지만 그 기억 자체가 언어인 것은 아닙니다. 어찌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매체는 모두 각자의 기억이 주는 감정을 나누기 위해 기호화된 수단일 수도 있겠죠. 게임도 마찬가지로 기억이라는 방식에 다양하게 접근해 특유의 양식으로 이를 풀어냅니다. GG 31호는 그 기억과 게임이 맞물리는 지점을 생각하는 기획으로 꾸려졌습니다. 게임 속에서 기억은 때로는 주제와 소재로, 때로는 플레이 그 자체의 기록으로, 때로는 플레이어의 기억을 가상공간에서 이어나가기 위한 보조재로도 기능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나는 기억과 게임의 관계를 맥락화하기보다, 그 현상 자체를 폭넓게 널어놓고 조망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작은 메모리에 기록되는 수치화된 세이브 데이터부터 플레이어가 게임을 마치고 난 후에 갖는 감정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기억이라는 이름의 넓은 호수 표면을 탐색합니다. 때로 어떤 필자는 표면의 작은 물결에 이끌려 잠수해 들어가기도 할 것입니다. 기록 너머의 기억에 대해 게임이 할 수 있는 많은 말들에 귀기울여 주십시오. 아울러 GG가 5회째 여는 비평공모전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GG의 독자이시면서 동시에 할 말이 많은 분들이라면 망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공지의 마감일을 한번 더 확인해 주십시오. GG는 날이 선선해지면 다시 새 기획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기억, GG, 게임제너레이션, game critic, save, memory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묘를 파헤치면 주검이 나올까 –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의 로어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가 몰두하는 대상은 <다크소울> 시리즈의 로어를 관통하는 그윈과 그 친인척들로 엮인 주요 서사로부터 거리가 멀고, 다른 항목과 접점을 만들어 내기에도 희박해보인다. Hawkshaw는 굴하지 않고 꾸준히 <다크소울 1>로 되돌아가, 끝이 명시적으로 선언된 세계 안에서 여백을 ‘착즙’해내고 있다. < Back 묘를 파헤치면 주검이 나올까 –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의 로어 31 GG Vol. 26. 8. 10. <다크소울> 시리즈가 3을 마지막 넘버링으로 삼은 지 어느 덧 10년이 다 되었다. 프롬 소프트웨어 스튜디오의 디렉터인 미야자키 히데타카는 시리즈의 종결을 공언했고, <엘든링>의 성공과 함께 그 스타일이 미묘하게 이동한 것도 분명해 보인다. 그런 가운데서도 <다크소울>과 관련된 로어를 여전히 고안하고 업로드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Hawkshaw는 강화 아이템인 ‘쐐기석’의 플레이버 텍스트에 짤막하게 등장하는 ‘이름 없는 대장장이 신’에 관해 지속적인 관심을 드러낸다 [1] .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가 몰두하는 대상은 <다크소울> 시리즈의 로어를 관통하는 그윈과 그 친인척들로 엮인 주요 서사로부터 거리가 멀고, 다른 항목과 접점을 만들어 내기에도 희박해보인다. Hawkshaw는 굴하지 않고 꾸준히 <다크소울 1>로 되돌아가, 끝이 명시적으로 선언된 세계 안에서 여백을 ‘착즙’해내고 있다. 이러한 Hawkshaw의 사례는 지나치게 지엽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의 이야기를 궁금해한다면 한 번쯤은 시청하게 되는 Vaatividya의 영상들은 그보다 훨씬 부드럽고 편안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낸다. 그의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의 이야기 영상은 주로 메인 보스와 퀘스트 라인을 관통하며 이는 특정 서브텍스트 하나에 집착적으로 매달리는 Hawkshaw 식의 영상과는 다른, 보다 종합적이고 친절한 접근을 구현한다. 특정 NPC나 보스 등 한 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서사를 재구성하는 기획인 시리즈가 대표적인데, 이는 비선형적 구조로 인해 단일 플레이 회차에서 완결적으로 경험하기 어려운 NPC의 서사를 종합하고 재배열한다. 그러한 덕에 이 시리즈는 서로 다른 플레이 경험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놓친 서사를 사후적으로 복원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럼에도 두 채널은 근본적으로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에서 이야기를 향유하고 구상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드러낸다. 그들은 게임 내에서 병렬되는 시청각적 감각을 총체화하여, 일련의 인과관계로 짜인 ‘이야기’를 경험했다고 수용자가 여기는 그 감각을 길어내는 것이다.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의 향유자들 사이에서 (혹은 그보다 더 넓은 범주에서) 이와 같은 작업은 창작자와 시청자 모두에게 로어lore로 불린다. 한국어 웹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로어라는 어휘를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아래의 트윗과 같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2] 여기서의 로어가 Hawkshaw나 Vaatividya가 구사하는 로어와 완전히 동일한 의미로 언급되지는 않는 것 같다. 트윗에서 일컬어지는 ‘로어’는 정합적으로 굴어야 할 무언가다. 이미 벌어진 일이나 사건 등으로 상정되며, 어긋난다면 제작자가 자신의 산물에 일관된 통제와 관리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고 만다. 이렇게 작품의 정합성을 평가할 기준으로 작동할 만큼, 로어는 게임 어딘가에 명확한 실체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트윗의 저자가 로어를 제작자의 역량과 결부된 것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의 로어 영상을 만드는 이들 역시도 그러한 정합성을 추구한다. 게임의 이면에서 어떠한 이야기가 벌어졌다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특정한 ‘단서’를 마치 고고학적 현장에서 출토된 사료처럼 설명해 낸다 [3] . 그렇게 고안해 낸 이야기 사이에 오류 없는 무결한 내러티브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즉 이들의 작업은 게임 안에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자세로 이루어진다.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구조와 패턴을 통해, 이를 통해 ‘암시되는’ 디자이너에게 다다르겠다는 실천이기도 하다 [4] . 그러나 게임을 열심히 파고든다고 모든 뒷이야기를 재구축할 수 있을까? 미완성 상태로 공개되고만 <다크소울1>의 ‘잿빛 호수’가 지역에는 거대한 두개골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것이 이름없는 대장장이 신의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전혀 짐작조차 못 한 다른 누군가의 것일 수도, 애초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암시된 디자이너가 방기한 자리에 이야기를 갖다 붙이려 할 때, 결국 프롬 소프트웨어의 로어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영영 확인할 길 없는 파편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게임이 침묵하는 자리 위에 세워내는 셈이다. 바로 그렇기에 게임 내의 단서에 밀착해 이야기를 구축하려 하더라도 이러한 시도는 좌절되고 만다. 한국 및 일본 웹에서는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의 “세계관을 추측, 해석, 고찰 등 설정놀음”을 하는 것을 ‘프롬뇌’라는 단어로 일컫는데 [5] , 2000년대 초 게임중독자의 뇌가 왜곡된다는 유사과학 용어인 ‘게임뇌’를 패러디한 것이다 [6] . 이는 다소간 자조의 뉘앙스를 동반한다. 그러니 로어라는 단어는 미묘하게 다른 두 의미망으로 갈리는 셈이다. 한쪽에는 제작자로부터 발신되어 도착하는, 검증과 판정의 대상이 되는 로어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그러한 발신에 개의하든, 개의하지 않든 허황하게 불어가는 로어가 있다. 두 의미의 스펙트럼은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해서 생산해 가는 일종의 내러티브 엔진처럼 기능한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의 로어를 사례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이 열망이 어떻게 서로를 지탱하며 이야기를 생산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배치되는 로어 사실 게임 업계 내부에서 로어를 일종의 실무 용어로 통용한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게임 디자이너인 매튜 와이즈는 로어를 “주요 플롯이나 인물 간 상호작용의 부차적인 요소로, 이야기 주변의 역사나 맥락을 채워주는 내용”으로 정의한다 [7] . 이 같은 발화에서 중심 리소스는 직접 플레이 가능한 영역에 할당되며, 로어는 그보다 부차적인 아래의 위계에 놓인다. 이처럼 로어를 구체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타냐 크르지윈스카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주목한다. 이야기 자원을 확장하고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웅대한 세계성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8] . 게임 세계는 그와 같은 사소한 이야기들을 모두 수용해낼 수 있는 그릇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러한 용법에는 J. R. R. 톨킨의 자장이 얼마간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세 영문학에 해박했던 톨킨은 전승이라는 의미로 로어를 즐겨 사용했고 [9] , 그러한 상상력은 D&D 등을 거치며 세계를 설계하고 문서화하는 작업의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흔히 게임 세계는 통합적인 일관성을 지닐 것을 요구 받는다. 일관성이란 “공간적 좌표, 스타일, 물리 법칙뿐만 아니라 플레이어 캐릭터가 처한 세계의 현재 상태를 구성하는 과거 사건들에도 적용된다 [10] .” 현재 몰입한 시점의 상황이 어떤 역사적 사건과 누적된 선택의 결과인지까지 설득력 있게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때 지도, 연대기, 설정집, 아이템 설명 등으로 구체화되는 로어는 게임의 규칙과 연원을 서사적으로 설명해 주며, 플레이어가 개별 플레이 장면들을 더 넓은 세계에 좌표를 놓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점에서 로어는 세계관이나 설정과 동의어로 출현한다. 많은 게임에서 이 기능을 핵심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플레이버 텍스트다. 플레이버 텍스트는 “실제 게임 플레이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으나 게임 이용자에게 게임 속 세계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거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유머로 구성된 텍스트”로 정의된다 [11] . 한편 이선인은 소울 시리즈를 “세계에 대한 극도로 희소한 규정”으로, 이 세계가 “말하지 않는다”고 쓴다 [12] . 스스로에 관해 쉽사리 이야기해 주지 않는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에서 이 텍스트가 놓이는 자리는 조금 특별하다. 미야자키 히데타카가 <블러드본>의 플레이버 텍스트를 모두 손수 집필했다는 일화 [13] 는 그 텍스트를 대하는 플레이어의 태도에 일정한 각별함을 부여한다. 실제로 이 텍스트들은 전략적인 자리에 놓이기도 한다. 독특한 외양의 오브젝트 앞에 떨어져 있거나, NPC가 각별한 어조로 건네거나, 보스를 제압한 뒤에 주어진다. 다소 분절하기 곤란한 플레이의 국면을 인벤토리 내 수집 가능한 아이템의 형태로 번역해 내고, 그 아이템에 기입된 플레이버 텍스트가 방금 지나온 시공간의 내력을 사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플레이버 텍스트는 결국 “간접화법의 언어”이자 “우회하는 언어”다 [14] . 간접화법은 그것이 한 겹 우회한 원발화의 존재를 상기하면서 동시에 결여를 자극한다. 남은 자리는 침묵으로 머무르지 않고 그 자리를 대신할 말을 불러들인다. 게임이 하지 않은 말을 대신하는 문장들이 게임 바깥에서 생겨나고, 그것이 다시 다음 문장의 근거가 된다. 재미있게도 이 지점은 로어의 어원으로부터 파생되는 확장적 의미망과 공명한다. 비약하는 로어 로어가 일약 서브컬처의 용어로 쓰이기 이전, 민속학(folklore)은 로어의 용례를 대표해 왔다. 여기서 로어는 제도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전해 내려온 지식, 문자로 이어지기보다는 구전되며 유연히 확산되는 지식을 가리킨다. 이야기의 장이 네트워크로 옮겨지며 이러한 동력은 더욱 확장된다. 일례로 일본에서 전자게시판 ‘2ch’의 괴담글을 부르는 말인 ‘네트로어’는 인터넷을 의미하는 ‘네트’와 로어의 합성어이다. 아예 백룸이나 크리피파스타처럼 이야기되는 과정 전체가 하나의 로어로 묶이기도 한다. 이처럼 로어를 창작하고 확산하는 동력은 비약으로부터 비롯되는 경향이 있다. 나원영은 동시대에 일컬어지는 로어가 네트워크에서 형성된 비선형적 정보 탐색과 연결 짓기의 관습을 통해 발현된 것으로 본다. “해당 대상을 원래의 맥락에서 떼어와 뒷면에 픽션을 덧입히는, 뛰어난 괴담 생산장치이자 이를 효율적으로 전파하는 유통망의 기능을 수행”하는 작용인 로어화는 “각 정보 간에 멀리 떨어진 거리나 여러 사실을 바탕으로 이미 정립된 기준 등을 곧장 뛰어넘으며 현실보다 큰 허구적인 이면을 만들어” 냄으로써 성립된다 [15] . 심지어 이는 로어의 시발점과 아무런 연관성을 주장할 수 없는 데서도 발생한다. <엘든 링>이 트레일러 하나만 공개한 후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던 시기, 기대감으로 들뜨던 때 <엘든 링>의 서브레딧에는 ‘가짜 로어’ 현상이 벌어졌다. 이는 실재하지 않는 게임임에도 “그 게임의 규칙, 메커닉, 서사 등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 만들려는 의도로 제시된” 가짜 게임(fake game)의 한 갈래이다. 서브레딧의 이용자들은 아직 발매되지 않은 게임이 이미 나온 것처럼 가장하며 보스의 어려움을 성토하고 공략을 나누었다. 이런 게시글들이 혼란을 빚어냄에 따라 이후 커뮤니티는 유관 게시물에 ‘fake lore’라는 태그를 달도록 규칙을 제정한다. 이러한 가짜 로어 현상은 원전 텍스트의 부재 위에 로어 해석 관습을 선행시키는 극점의 사례로 분류해볼 수 있을 것이다 [16] . 이것은 문이 아니다 – 지형적 층과 위상적 층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에서 창발되는 로어의 경우, 일차적으로 플레이버 텍스트가 아이템이나 특정 국면에 관해 서술을 덧붙임으로써 스스로 로어화를 꾀한다. 한편으로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가 비약을 통한 로어화를 자극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사실적 그래픽 기술의 발달에 따라 디지털 게임은 점점 더 방대한 세계를 끊김 없이 보여 주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지만, 게임으로 구현된 모든 공간이 플레이어에게 실제로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실제로 밟을 수 있는 층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층이 분명히 나뉘어 있다. 일례로 <블러드본>의 성직자 야수 보스룸 구역 뒤편에는 진행 경로처럼 생겼는데도 끝내 열리지 않는 문이 존재한다 [17] . 이렇게 화면이 제시하는 이미지와 실제로 갈 수 있는 곳 사이의 어긋남을, 에스펜 올셋은 유희적 풍경(ludic landscape) 안의 두 층으로 구분한다. 전자는 “게임 엔진이 플레이어에게 제시하는 기호의 흐름(sign-stream)으로서의 지형적(topographical) 층”이며, 다른 하나는 “플레이어의 토큰(token)이 실제로 이동하는 이동 가능 공간(room-for-movement)으로서의 위상적(topological) 층”이다 [18] . 이 지점에서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열광적으로 구축하는 로어는, 위상이 지배하는 유희적 세계 안에서 다시금 지형을 해명 가능한 이야기의 공간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해석적 실천으로 이해될 수 있다. <블러드본>의 유명 모더인 Lance McDonald는 성직자 야수 보스룸 뒤의 공간을 아예 뜯어 보고, 그 주변 구조, 시리즈 내 다른 건축물과의 유사성을 단서 삼아 너머에 있었을지도 모를 공간과 역사를 추리하며, 엔진이 허용한 위상적 경로를 넘어 세계의 완결성을 상상 속에서 재구성한다 [19] . 유사하게 Vaatividya 역시 프리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로어 비디오를 제작한다. 원래의 게임 소프트웨어는 카메라를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등 뒤에 고정하여, 플레이어가 자신이 조작하는 캐릭터의 어깨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시점을 회전시켜 주변 환경을 파악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때 치트엔진과 같은 외부 툴을 활용한 프리캠은 이러한 설계를 우회하고 위상적 공간으로부터 벗어나게끔 조력한다. 그 결과 캐릭터의 위치와 중력, 충돌 판정 등을 일시적으로 무력화하고 세계를 임의의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일반적인 게임 플레이에서는 볼 수 없는 오브젝트의 이면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 정말 무엇이 존재하긴 할까, 묘를 파헤치면 주검이 나올까? <다크소울3>의 ‘깊은 곳의 성당’은 엘드리치의 석관을 모시는 방을 보스룸으로 삼는다. 떼 지어 나온 주교들은 거대한 석관을 둘러싸며 플레이어의 침입을 방어한다. Vaatividya는 한 영상에서 프리캠을 쓰며 훌쩍 도약해, 플레이어의 시점에서 볼 수 없는 관의 윗부분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 플레이어의 시선이 닿지 않으리라 상정된 관 뚜껑은 밋밋하기 그지없다. 애초에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들은 답을 알고 있다. 깊은 곳의 성당을 무사히 공략하고 거점으로 귀환하면, NPC 앙리는 다음과 같이 일러 준다. “엘드리치의 관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넬레 반 데 모셀라르와 캐서린 머피 홀리스는 게임 팬덤에서 로어를 개진하는 것과 음모론자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현상 이면에 누군가의 의도가 녹아 있을 거라고 가정하여, 그 뜻을 해독하거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열의를 자원 삼아 공동체를 형성한다. 현상이나 텍스트가 품은 불완전한 빈틈이나 모호함은 명료하게 정리되어야 할 대상이다 [20] . 물론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의 로어를 만들어내는 이들은 ‘어쩌면’이나 ‘perhaps’와 같이 확언을 유예하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어떤 오브젝트를 뒤로 놓인 맥락을 추리하는 상황에서 언급되곤 한다. 진정한 사실관계를 확정할 수 없는 이상, 자신이 덧붙인 추론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으며 잉여가 놓여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유예는 스스로 검토한 게임에서의 경험과 결부된다는 점에서, 텍스트의 공백을 메우는 추론이 자의적인 상상이 아니라 플레이 안에서 발굴해 낸 증거에서 출발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즉 게임이라는 인공물에서 암시되는 저자의 존재를 승인하되, 그 저자가 침묵하는 자리에서 발화의 권한을 자신에게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 ‘아마도’의 유예야말로 로어가 로어로 굴러가기 위한 형식이다. 발신된 설계를 향한 믿음과 그것을 초과하는 허황한 증식이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맞물려 도는 이야기 상상에의 엔진은, 저자가 침묵하는 곳에서도, 아마도 저자가 아예 없는 곳에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1] https://www.youtube.com/@Hawkshaw [2] 2026.03.13.등록. x.com [3] Paul Thomas., “The Analytical Behaviors of Genshin Impact Lore Enthusiasts: An (Auto)ethnographic Look at r/Genshin_Lore”, Game Studies vol.25(2), 2025, https://gamestudies.org/2502/articles/paul_thomas [4] 암시된 디자이너 개념은 모셀라르와 괄레니가 웨인 부스의 ‘암시된 저자’ 개념을 게임에 차용한 것으로, 부스의 암시적 저자란 실체로서의 인간the flesh-and-blood person(FBP)’와는 구분되고, 텍스트 내부의 서술자와도 구분되는 존재다. 그는 특정한 주제, 가치, 윤리 등에 의해 배열되고 연출된 인격적 관점에서 암시되는 이이다.(웨인 부스, 「암시된 저자의 부활」, 제임스 펠란·피터 J. 라비노비츠 외, 최라영 옮김, 『서술이론 1』, 소명출판, 2015, 139· 143쪽) 모셀라르와 괄리니는 암시된 (게임) 디자이너란, “플레이어가 게임(마케팅 자료를 포함한 주변적 요소들, 즉 paraludic elements까지 넓게 이해되는)을 역동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구성해내는 디자이너의 개념화(conceptualization)”라고 설명한다. 요컨대 플레이어는 이 추론된 인물에게 해당 게임의 창작을 근본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의도를 부여한다. (Nele Van de Mosselaer· Stefano Gualeni,. “The implied designer and the experience of gameworlds”, Proceedings of the 2020 DiGRA international Conference , 2020, Tampere, Finland. 12쪽.) [5] “프롬뇌”,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D%94%84%EB%A1%AC%EB%87%8C , [6] 박상우, “게임뇌 증후군,<정원사 챈스>”, 씨네21 , 2002.11.28.등록, https://cine21.com/news/view/?mag_id=15417 [7] Matthew Weise “Narrative design myth-busting: It's not "just lore"”. Game Developer, 2021.10.27.등록. https://www.gamedeveloper.com/design/narrative-design-myths-2-it-s-not-just-lore . [8] Tanya Krzywinska, “World creation and lore: World of Warcraft as rich text”, in: Hilde G. Corneliussen, et al. (ed), Digital culture, play, and identity: A World of Warcraft reader , MIT Press, 2009. [9] Dimitra Fimi, “Hobbit Songs and Rhymes: Tolkien and the Folklore of Middle-earth”, Dimitrafimi.org . 2009.03.등록, https://dimitrafimi.org/articlesandessays/hobbit-songs-and-rhymes-tolkien-and-the-folklore-of-middle-earth/ [10] Krzywinska, 위의 글, 127쪽. [11] 김홍균,「게임 플레이버 텍스트의 번역 양상 고찰 - 게임 ‘하스스톤’의 플레이버 텍스트를 사례로 -」, 『T&I REVIEW』 9, 2019, 74쪽. [12] 이선인, “지금 우리는 무엇을 ‘롤플레이’하는가.”, 게임제너레이션 , 2025.04.01.등록,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0a3f1970-eaf4-4a88-938b-9cd24e586eda#viewer-s7mgg128631 [13] 아나야마, “[인터뷰] SIE의 프로듀서, 야마기와 마사아키가 말하는 블러드본 개발 비화 요약”, 루리웹 , 2020.03.03.등록, https://bbs.ruliweb.com/ps/board/300001/read/2208936 [14] 이선인, 위의 글. [15] 나원영, “썩은 인터넷 가설: 2020년대 상반기 웹에 대한 간략한 소고 (1)”, 마테리알 , 2025.09.16.등록, https://ma-te-ri-al.online/archive/1494/ [16] Nele Van de Mosselaer, "Fake games: On dark and deceptive representations of non-actual games", Eludamos: Journal for Computer Game Culture, 16(2), 83-84p. [17] conjee, “[질문] 도대체 성당 지역 안열리는문 어딘가요?”, 루리웹, 2016.04.25.등록, https://bbs.ruliweb.com/family/4892/board/182048/read/9208780 . [18] Espen Aarseth, “Ludoforming: Changing Actual, Historical or Fictional Topographies into Ludic Topologies”, in Espen Aarseth·Stephan Günzel (Eds.), Ludotopia: Spaces, Places and Territories in Computer Games, 2019, transcript Verlag, p.131. [19] Lance McDonald, “Bloodborne Cut Content :: The Door Behind The Cleric Beast :: Unused Shortcut”, Youtube , 2018.05.09.등록, https://www.youtube.com/watch?v=h2ojsgp1SCw [20] Nele Van de Mosselaer · Kathleen Murphy-Hollies, “Conspiracy Thinking and Videogame Interpretation”, Conference: Abstract Proceedings of DiGRA 2025: Games at the Crossroads. Tags: 게임 로어, 프롬 소프트웨어, 다크 소울, 블러드본, 플레이버 텍스트, 팬덤 해석, 암시된 디자이너, FromSoftware, Dark Souls, Video Game Lore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게임이 이야기를 경험시키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최근에는 <마라톤>을 플레이했습니다.

  • 마일즈 모랄레스의 정체성과 브루클린이라는 ‘장소’

    마일즈의 불안은 인물(아마도 다른 시간선에서 스파이더맨이어야 했으나 프라울러가 되고 만 마일즈)의 형상을 취하다가 거미로 변모한다. 그의 공포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자격과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었던 셈이다. < Back 마일즈 모랄레스의 정체성과 브루클린이라는 ‘장소’ 17 GG Vol. 24. 4. 10. 2024년 3월 27일 소니 애니메이션은 이라는 7분 14초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공개했다. 최근 스파이더맨의 세계관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손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현재 소니가 서사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스파이더맨은 1대인 피터 파커보다는 2대 마일즈 모랄레스다. 공개된 애니메이션도 스파이더버스를 잘 구현했다는 평을 받은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이후 시간선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마일즈의 불안한 심리를 악몽을 통해 보여준다. 파악할 수 없는, 즉 언어로 규정되어 특정한 국면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것들은 확정된 표상을 갖지 않는다. 마일즈의 불안은 인물(아마도 다른 시간선에서 스파이더맨이어야 했으나 프라울러가 되고 만 마일즈)의 형상을 취하다가 거미로 변모한다. 그의 공포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자격과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었던 셈이다. 스파이더맨은 미성숙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청소년이라는 정체성과 결합된 히어로다. 마일즈의 악몽은 영웅으로서 의무와 자신과 연결된 세계만을 지키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한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작과 끝이 전제된 서사에 기댄 선형적 방식은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스파이더맨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장소성에 기댄 히어로다. 그것은 웹스윙을 포함한 스파이더맨의 기술이 가진 매력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곳이 마천루의 숲, 맨해튼이라는 점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를 수식한 다른 표현이 “친절한 이웃”이기 때문이다. 이 표현에는 특수한 그리고 출중한 능력을 가진 구원자로서 영웅이라는 정체성보다 내가 살고 있는 거리 나아가 도시와 관계 맺는 인간이라는 특성이 잘 드러난다. 그리고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이 인간, 대상,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면 피터를 설명하는 요소는 뉴욕이라는 보다 공간에 가까운 이미지의 비중이 크다. 그에 비해 마일즈의 정체성은 브루클린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통해 만들어진다. ‘공간’과 구분되는 경험의 축적과 관계를 통해 의미가 부여된 ‘장소’를 구분해서 파악했던 것은 이 푸 투안의 접근법이다. 피터 파커는 퀸즈 출신이다. 그러나 퀸즈로 특정되는 장소보다는 스파이더맨이든 피터 파커라는 인간 개인이든 그의 정체성은 뉴욕이라는 냉혹한 자본주의의 정점에 서 있는 도시에서 좌절을 경험하고 의무감을 통해 각성하는 존재에 가깝다. 달리 말하면 피터 파커에게는 퀸즈가 그의 장소로 자리매김하는 사건이 부각되지 않는다. 이것은 1대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가 너무 오랫동안 뉴욕의 히어로로 활약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와 달리 새로운 세대인 마일즈의 정체성은 동시대의 브루클린이라는 장소와 맞물려 있다. 브루클린은 경찰이었던 아버지의 사망 후에 국회의원이 된 어머니 리오 모랄레스의 장소인 할렘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 말까지 뉴욕 재즈의 중심지는 할렘이었다는 평가가 증명하는 것처럼 할렘은 재즈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가 등장하면서 그 역동성과 흑인 공동체라는 정체성과 결합된 곳이었다. 도난당한 문화 박물관의 악기들을 찾아달라는 퀘스트는 흑인인 아버지와 히스패닉인 어머니 사이의 마일즈가 갖는 공동체적 정체성의 근간은 문화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가와 그들의 악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 문화적인 것을 포함한다. 마일즈 모랄레스라는 인물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인 힙합 역시 그는 의식하지 못하고 “옛날 음악”이라고 평가했지만 아버지가 좋아했던 재즈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와 같은 인물들의 계승이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마일즈의 표현대로 그것은 과거의 것이기에 새로운(그리고 젊은) 스파이더맨이라는 존재를 부각하기에 충분한 문화적 서사가 되기 어렵다. 오히려 청소년 마일즈의 주요한 인물 관계는 사이드킥 역할을 하는 강케와 여자친구 헤일리를 포함해 브루클린 비전이라는 학교를 중심으로 확장된 것들이다. <마블 스파이더맨2>에서 수행되는 퀘스트 중 상당수는 두 명의 스파이더맨 중 누구를 선택해 플레이해도 무관하지만 할렘과 브루클린에서 발생하는 퀘스트는 마일즈만 수행이 가능하다. 이 퀘스트들은 그야말로 “친절한 이웃”인 스파이더맨이자 브루클린 비전 재학생 마일즈를 연결하는 것들이다. 브루클린 비전의 라이벌인 미드타운이 훔쳐간 학교 마스코트인 사자 인형 랜스를 회수하기 위해 퀴즈를 푼다든지, 프롬파티에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썸남에게 고백하는 이벤트를 도와주는 일과 같은 퀘스트들은 재학생들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사건이다. 조력자로 활약하는 스파이더맨은 이들과 함께 브루클린을 경험하면서 영웅의 책임이라는 무거운 정체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친절하고 (세대적으로도) 가까운 히어로의 표상을 획득한다. 앞서 거론한 퀘스트 중 랜스 찾기는 도시가 도로를 정비하고 건물을 건축하는 기획자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퀘스트다. 마일즈는 도시 곳곳의 건물 옥상을 이동하면서 미드타운 학생들이 남긴 메시지를 통해 랜스를 숨긴 곳을 수색한다. 특정 각도로 거울을 움직여야 벽화에 투사되는 메시지는 그 내용보다는 도시에 산재한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벽화를 완상하기 위한 매개로 활용된다. 장소의 특수성은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의 몸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마일즈가 이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조언을 구하는 이는 그래피티 활동가이자 개인 전시도 기획하는 도시미술가이자 그의 여자친구인 헤일리다. 마일즈라는 하나의 인물만으로는 포섭할 수 없는 문화적 기호를 헤일리와 같은 인물을 통해 분산해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피티나 벽화와 같이 도시 계획과는 무관하게 거리를 수식하는 다양한 예술적 재현을 인식하는 일은 장소가 고립된 공간이 아닌 인간과 다른 인간, 다양한 사물과 연결되어 구축되는 역동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개념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한다. <마블 스파이더맨2>은 튜토리얼은 맨하탄과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이것은 이전 시리즈에 비해 브루클린과 퀸즈까지 확장된 맵을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뉴욕에 편입된 이래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브루클린의 공간적 성격은 극적으로 변모했다. 1960년대 쇠락한 제조업의 상징이었고 실업자와 범죄자의 온상과도 같이 여겨졌던 브루클린은 현재는 현대 예술과 디자인의 요람이자 첨단 기술을 가진 신규 기업이 사옥을 건설할 공간으로 선택하는 곳이 됐다. 마일즈가 자신이 살던 브루클린을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이라고 표현한 것은 과장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에 살던 마일즈는 어머니 때문에 할렘으로 이사했다.) 아울러 이곳은 1930년대 할렘에 거주했던 흑인들의 상당수가 브루클린 북부로 이주했다는 점에서 할렘의 장소성과 연장선상에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마일즈가 동시대적 현재를 보여주는 새로운 스파이더맨임을 알 수 있는 장치 중 그가 즐겨 착용하는 헤드셋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음악이다. <마블 스파이더맨2>의 아쉬운 점은 전작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스 모랄레스>에는 적절하게 활용됐던 힙합 중심의 OST가 이번 게임에서는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수자이자 방외자로서의 정체성에서 시작됐던 힙합이 대중성과 트렌드를 대표하는 장르가 된 것과 같이 마일즈는 그의 인종적 정체성의 비감에 고뇌하는 인물이기보다는 사교적인 성격의 캐주얼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음악, 나아가 사운드가 그를 견인하는 서사적 기법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상기하는 전략이다. OST 선정의 아쉬움에도 미스테리오가 운영하는 코니 아일랜드의 어트렉션 체험과 같은 에피소드는 실소를 짓게 만든다. 플레이어는 클럽 음악을 디제잉하는 마일즈를 통해 미스테리오발 미래 기술을 경험할 수 있다. 피터와 MJ, 해리가 코니 아일랜드를 추억의 놀이공원을 반추하는 것과는 상이한 체험이다. 마일즈의 브루클린 나아가 뉴욕이 그가 경험하는 사건과 관계 맺는 인물들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라면 플레이어에게 뉴욕은 어떤 곳일까? 혹자는 실제 뉴욕을 경험해본 이들이 게임을 통해 재현한 공간을 어떻게 감각할 것인가를 궁금해 하기도 한다. 그것은 재현물이 얼마나 실재적인(느낌을 주는)가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을 플레이한 입장에서 개인적인 즐거움은 뉴욕이라는 로컬리티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기호, 이미지, 기술과 같은 매개체의 역할이 수행하는 바를 확인하는 과정에 있었다. 심비오트 둥지가 조형물처럼 서 있는 뉴욕 경관을 윙슈트를 입고 날아가면서 볼 수 있는 경험은 오직 이 게임만이 재현하는 스파이더 세계관에서의 뉴욕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역으로 게임으로 인해 플레이어는 뉴욕에 대한 궁금증과 미디어 이미지에 기반을 둔 향수를 경험하기도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두려움, 공포 그리고 폴아웃: 게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공포의 양상

    내가 지금까지 게임을 플레이해오면서 기억하고 있는 공포의 유형으로는 2가지가 있다.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겁을 먹은 것은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의 악명 높은 장면을 플레이했을 때였다. 당시 <레지던트 이블>은 호러 게임이라기 보다는 속도가 느린 액션 게임쪽에 가까웠는데, 게임 내에서 복도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뒤이어 또 다른 한 마리가 창문을 뚫고 들어왔을 때 두려움과 혼란, 공포를 느꼈다. < Back 두려움, 공포 그리고 폴아웃: 게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공포의 양상 19 GG Vol. 24. 8. 10. 들어가는 말: 공포에도 종류가 있다 내가 지금까지 게임을 플레이해오면서 기억하고 있는 공포의 유형으로는 2가지가 있다.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겁을 먹은 것은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1] 의 악명 높은 장면을 플레이했을 때였다. 당시 <레지던트 이블>은 호러 게임이라기 보다는 속도가 느린 액션 게임쪽에 가까웠는데, 게임 내에서 복도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뒤이어 또 다른 한 마리가 창문을 뚫고 들어왔을 때 두려움과 혼란, 공포를 느꼈다. 이는 게임(및 여타 매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준적인 점프 스케어(역주: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 기법)였다. 당시 이 장면으로 겁을 먹긴 했지만, 스펜서 저택의 복도를 돌아다닐 때 약간 불안해진 것 말고는 그 개들 또는 그 개들이 상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지는 않았다. 게임을 하면서 겁에 질렸던 두번째 - 그리고 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는 - 기억은 <폴아웃3(Fallout 3)> [2] 에서 였다. 게임 초반 플레이어는 캐피탈 웨이스트랜드를 돌아다니면서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약탈자들이 점유하고 있는 어둡고 칙칙한 식료품점 수퍼-두퍼 마트(the Super-Duper Mart)를 발견하게 된다. <레지던트 이블>의 개들과 다른 점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임을 내가 이미 알고 있으며 이 곳에서 약탈자들이 나타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약탈자들의 모습은 가시적이기까지 한데, 한 때 식료품점이었던 이 황폐한 장소의 복도를 초록빛 형광등이 희미하게 비추면서 생기는 그림자로 인해 약탈자들의 실루엣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멀리서 희미하게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종류의 고기가 천장에 걸려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는 바로 시체고기인데, 인간 신체의 부속물들이 천장의 쇠사슬로 연결되어 늘어져 있는 이 모습은 플레이어도 만약 발각된다면 그렇게 될 운명임을 알려주는 지표다. 게임 초반에 이 장소에 도달했었기 때문에 자원이 별로 없어 이 상황에서 싸울 수 있는 힘이 부족한 상태였으나, <폴아웃3>의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웨이스트랜드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약탈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필요할 것임은 분명했다. 적들과 마주치지 않고 필요한 것을 찾아내기 위해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는 동안 내 심장박동은 점점 빨라졌고, 예상치 못하게 모퉁이에서 발소리를 듣거나 약탈자를 발견하게 되면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수퍼-퍼 마트에서는 단 하나의 점프 스케어도 없었지만, <폴아웃3>의 이 시퀀스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정말 무서웠던 기억으로 내게 남아있다. * <폴아웃 3>의 수퍼두퍼 마트와 레이더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내가 겪었던 이와 같은 두 종류의 공포 경험은, 두려움과 공포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으며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도 상이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점프 스케어 및 깜짝 놀라게 되는 공포(sudden frights)와 일상적인 공포간 차이, 그리고 스토리텔링, 게임 메커닉, 환경, 분위기에 대한 특정한 접근 방식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장기적 형태의 공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Sudden Frights 깜짝 놀래키기 깜짝 놀래키는 것, 즉 "점프스케어"는 많은 호러 게임에서 사용되어왔다. 우리는 호러 게임을 플레이할 때 긴장과 불안, 충격과 공포로 가득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플레이어들은 기꺼이 겁에 질리는 것을 기대한다. 갑작스러운 공포(sudden frights)에는 특정한 즐거움이 있으며, 그래서 놀이공원의 귀신의 집에서부터 호러 영화에 이르기까지 어떤 (놀래키는) 공포가 다가올 것인가에 대한 기대는 늘 엔터테인먼트의 일부가 된다. 밤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아웃라스트(Outlast)> [3] 와 <암네시아: 다크 디센트(Amnesia: The Dark Descent)> [4] 의 게임 디자인이 어떤 식으로 플레이어들을 깜짝 놀래키면서 공포를 주는지를 알아보자. 스포일러 주의 <아웃라스트(Outlast)>는 1인칭 서바이벌 호러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마운트 매시브 정신병원(Mount Massive Asylum)에서 수상쩍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를 가는 기자 마일즈 업셔(Miles Upshur)가 되어 게임을 플레이한다. 마일즈는 캠코더를 들고 정신병원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거기에 있던 모두가 a) 죽었거나, b) 임상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c) 임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살인자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마일즈는 “마틴 신부(Father Martin)”와 마주치게 되는데, 이 인물은 자칭 “월라이더(Walrider)”의 수행자로서 후에 정신병원 깊숙한 곳에 감금되어있던 어떤 환자가 조종하는 나노머신의 환영인 것으로 밝혀진다. <암네시아(Amnesia)> 또한 비슷한 1인칭 서바이벌 호러 게임인데, 다만 퍼즐적 요소가 좀 더 복잡하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어떤 성 안의 방에서 깨어나면서 시작하는데, 자신이 다니엘(Daniel)로 불린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게임은 성 깊숙한 곳에 있는 알렉산더(Alexander)라는 남자를 죽이라는 예전의 자신(다니엘)이 쓴 편지에 따라 진행되는데, 성 안에는 각 구역마다 끔찍하게 변형된 모습의 괴물들과 다니엘을 죽이려는 “섀도우”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 두 게임 및 유사한 유형의 호러 게임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두려움을 자아내기 위해 미지의 것(the unknown)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혹은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암네시아>에서 이는 다니엘이 자초한 기억상실증의 결과로서 발생한 말 그대로의 무지(알지 못함)의 형태로 나타나며, <아웃라스트>에서는 취재하는 기자로서의 마일즈라는 인물 설정에서 나타나는데,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생소한 장소를 별 다른 단서 없이 돌아다니는 두 명의 주인공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부분은 게임 내 환경 디자인에도 반영되어 있다. <암네시아>의 성과 <아웃라스트>의 정신병원에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을 무언가를 계속 추측하게 만드는 미로 같은 복도와 그림자 진 어두운 코너가 디자인되어 있다. 연구자 매즈 할(Mads Haahr)은 호러 게임에서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 플레이어의 시각을 변형시키는 다양한 방식들을 분석한 바 있는데, 흐릿하게 만들기(그림자와 안개), 왜곡(플레이어의 시각을 워핑(warp)하는 것), 그리고 매개(<아웃라스트>의 캠코더처럼 2차 렌즈로 세상을 보도록 하는 것) 등은 두 게임 모두에서 발견된다 [5] . 두 게임의 1인칭 시점 또한 플레이어의 가시 범주를 제한하는데, 이는 내 눈에 보이는 주변부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느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아웃라스트>에서 마일즈가 코너를 빠르게 살필 수 있는 "엿보기(peeking)" 메커닉은 플레이어가 자신을 발견한 적과 갑자기 맞닥뜨리게 만들기도 한다. 하나의 효과로서 공포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것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예측될 때 고조된다 [6] . 이와 같은 시각의 변형과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긴장이 점점 고조되는데 이 모든 과정의 목적은 그 긴장을 깨뜨리는 것이 된다. * <암네시아: 다크 디센트>의 복도. [7] 한편 청각 디자인은 플레이어에게 시야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나무가 삐꺽거리고 바람이 부는 소리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바짝 긴장하도록 하는 한편, 특정한 소리는 어떤 적이나 위협이 근처에 있음을 알려준다. <암네시아>에서 몬스터들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는 그들이 다니엘 근처에 있음을 의미하며, <아웃라스트>에서 체인이 쩔그렁거리는 소리나 무거운 발자국 소리는 마일즈를 잡으러 특정 구역의 보스들이 왔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청각 신호들이 플레이어에게 지침을 주지만, 이 적들은 여전히 "들을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8] 존재로서 플레이어에게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공포감을 더한다. 한동안 플레이어의 뒤를 쫓는 소리가 들리다가 마침내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점프 스케어 같은 느낌을 배가시킨다. 일반적인 환경음과 달리, 적에게 추격당할 때의 소리는 강렬한 음악과 함께 헐떡이는 숨소리로 빠르게 바뀐다. 플레이어가 적에게 발견되는 이 시나리오는 갑작스럽게 추격전이 벌어지면서 당연히 공포와 패닉을 유발시키지만, 플레이어는 이러한 추격전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자가 드리워진 주변을 부지런하게 살피고 청각 신호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플레이어의 뒤에서 적이 나타나면 점프 스케어는 크게 성공한다. 언제 어디서 위협이 발생할 수 있을지 알 수 있는 모든 도구를 갖추고도 예측하지 못한 적의 등장은 플레이어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9] . 무력함은 깜짝 놀라는 공포(sudden frights)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다. 두 게임의 오프닝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이 달리거나 숨거나 혹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에 대한 위협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옵션이 없는 것이다. 이는 권능에 대한 판타지를 제공해왔던 비디오게임의 전형에 대한 완전한 전복이다. 플레이어는 마법과 힘으로 무장한 용감한 전사가 아니라 단지 지옥같은 공간에서 도망치려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갑자기 나타난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방법이 없으며, 이는 완벽히 위협적인 상황이다. 이에 더해 <레지던트 이블>이라는 장르를 정의할 수 있는 메커닉인 자원 관리(resource management) 또한 플레이어의 무력감을 배가시킨다. <암네시아>와 <아웃라스트>의 경우 자원은 플레이어의 구역을 좀 더 밝게 유지하는 것과 연관되는데, <암네시아>에서의 틴더박스나 기름, <아웃라스트>의 캠코더용 배터리가 이에 해당한다. <암네시아>에서는 어둠에 노출되면 죽을 때까지 정신이 쇠약해지고, <아웃라스트>에서는 캠코더의 나이트비전으로 어둠 속의 적들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나이트 비전이 없다면 정신병원 안을 돌아다니는 일이 훨씬 더 위험해질 것이다. 플레이어는 (모든 자원의 위치를 아는 것이 아닌 한) 대개 게임하는 내내 자원 부족의 위기를 겪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은 플레이어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일부 구역은 적의 경로와 가까운 곳에 있어 플레이어는 종종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를 무서운 상황에 노출시키기도 한다. 자원을 확보하되 잡힐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그 구역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안전을 도모할 것인지는 서바이벌 호러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플레이어들에게 던져지는 전략의 문제다. * <아웃라스트>의 야간투시경 화면. [10] 깜짝 놀래키는 유형의 게임에서는 안전을 확보하는 것마저 불안할 수 있다. <레지던트 이블>의 경우 플레이어가 게임을 저장할 수 있는 세이프룸이 있지만, <암네시아>와 <아웃라스트>에는 그러한 메커닉이 없다. <아웃라스트>의 경우 마일즈가 게임의 목표에 맞춰 진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스토리 장면이나 컷신 - 열쇠를 찾은 것, 경비실로 가는 것 등 - 있다. 게임 초반에 플레이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이러한 컷신들이 긴장을 잠시 풀 수 있는 비디오게임의 "체크포인트"와 같은 것이라 여기게 된다. 하지만 마일즈가 보안실에 도달하자마자 마틴 신부에게 붙잡혀 마취된 후 정신병원 깊숙한 곳에 갇히게 되는데, 이 부분은 게임 내 주요 점프 스케어 중 하나다. 무력함과 마찬가지로 '그리 안전하지 못한 체크포인트'는 전형적인 비디오게임의 흐름을 뒤집으면서 플레이어를 깜짝 놀래키는데 기여한다. 깜짝 놀래키는 공포와 관련하여 언급할 마지막 부분은 지금까지 논의한 두 게임을 넘어 게임 내 플레이어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에일리언(Alien)> [11] 이나 <툼레이더(Tomb Raider)> [12] 같은 게임에서 리플리(Ripley)나 라라 크로프트(Lara Croft)는 (갑작스러워) 깜짝 놀래키는 방식으로 죽는다. 리플리가 제노모프(Xenomorph)에게 잡히는 장면이나 라라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건 속에서 손을 놓치는 장면 등은 플레이어를 깜짝 놀래키면서 그녀들이 죽거나 또는 어둠 속으로 추락할 것임을 예상하게 하는데, 이 모든 시퀀스에는 잔인한 유혈이 등장한다. 이러한 다양한 죽음의 시퀀스는 실패를 예감한 플레이어가 이번에는 어떤 끔찍한 방법으로 리플리나 라라를 죽게 한 것인지를 숨 죽인 채 온갖 애니메이션들을 봐야 함을 의미한다. 갑작스럽게 놀래키는 유형의 공포는 두려움에 대한 기대감, 겁을 먹으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 잘 디자인 된 게임플레이 경험에 대한 보상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실제로 우리를 다치게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다음의 점프 스케어를 기대하고 비명을 지르다가 웃어제끼면서 플레이를 이어간다. 갑작스러운 공포를 제공하는 호러 게임들이 초기 유튜버들의 커리어를 띄워준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갑작스러운 공포/놀래킴은 즐겁고 기억에 남으며 다른 누군가가 겁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공포/놀래킴은 호러 게임 장르의 기준과 기대치를 충족할 때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Persistent Motivating Fears 지속적으로 동기를 유발하는 공포 비디오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특정한 행동을 취할 때 우리의 감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하면서, 넬 반 데 모셀러(Nele Van De Mosselaer)는 허구적 게임 플레이어 찰스의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여기서 찰스는 공포 게임에서 슬라임과 맞닥뜨리는 등 비디오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을 대표한다: “화면 속에서 갑자기 초록색 슬라임 괴물이 자신을 향해 기어오자 찰스는 깜짝 놀랐다. 공포로 몸이 움츠러든 그는 콘트롤러의 스틱을 급하게 움직이면서 슬라임으로부터 도망쳤다. 자신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괴물을 보자 목숨이 위태로워진 찰스는 몸을 돌려 주먹으로 괴물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괴물은 고통스럽게 으르렁 거리면서도 찰스를 죽일 수 있었다 [13] ” 모셀러는 처음에는 도망치던 찰스가 몸을 돌랴 슬라임을 죽이려는 행동을 취하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괴물에 대한 찰스의 두려움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가 느낀 공포가 그로 하여금 괴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콘트롤 스틱을 급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었고, 또한 괴물이 너무 가까이 왔을 때는 공격 버튼을 눌러대도록 만든 것이다. 슬라임 괴물을 두려워 하지 않는 또 다른 찰스를 상상해보자. 그는 이미 세번이나 죽임을 당해서 괴물에 대해 (공포보다는) 분노를 느끼고 있다. 이 찰스는 괴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콘트롤 스틱을 사용하기 보다는, 괴물을 향해 가기 위해 스틱을 움직일 것이며 공격 버튼을 보다 열심히 눌러댈 것이다 [14] .” 모셀러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바란, 사소한 수준의 두려움일지라도 다양한 장르와 메커닉에 걸쳐 우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에 동기를 부여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공포(fear)는 놀람을 유발하는 순수한 정서적 반응을 넘어 오늘날의 게임 디자인에서 게임 내 행동과 메타게임적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호러 게임 속에서 평범한 적 대신 끔찍한 좀비가 등장한다면 적에 대한 공격적 대응이 도피하는 반응으로 바뀔 것이다. 하지만 공포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방정식에서 제외한다면 공포의 역할은 무엇일까? 인간은 다양한 것(어둠, 거미, 유령 등)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호러 게임이나 호러 관련 장르에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매일같이 다양한 공포(실직하면 어쩌지, 내 파트너가 나를 떠나면 어쩌지, 아프고 싶지 않아 등)를 접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일상적인 행동을 주도한다. 한정 시간 이벤트를 제공하는 호요버스의 인기 가챠 게임들이나 <로스트 아크> [15]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16] 등 인게임 머니를 벌기 위해 매일 플레이하도록 유도하는 지속형 게임의 플레이 패턴에 대해 생각해보자.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는 이러한 유형의 게임 모델에 있어 핵심적인 원동력이다. 한정된 기회를 놓치거나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뒤쳐질 수 있다는 생각은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에 있어 플레이어들이 강박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만드는 합법적인 두려움이다. 이러한 게임들은 종종 중독적인 플레이 패턴과 더 연계되지만, 플레이어 집단 내에서 사회적 지위가 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슬렌더맨이나 좀비보다는 덜 폭력적으로 보일지라도 플레이어로 하여금 더 자주 게임을 플레이하고 행동을 취하게 만드는 동기가 된다. 게임에서 캐릭터가 죽어 플레이어가 실패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이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광범위한 두려움을 활용하는 것인 한편, 그럼에도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 죽음과 현실에서의 죽음이 동일한 위험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게임에서 죽는 것은 이미 우리 안에 정립되어있는 상실 및 그것을 피하려는 욕구를 자극한다. 게임은 상실을 어느 정도 영구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아블로(Diablo)>나 <파이어엠블렘(Fire Emblem)> 같은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을 시작할 때 '하드코어' 캐릭터를 만들거나 '영구 사망(permadeath)'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이는 게임 내에서 캐릭터가 한 번 사망하면 재시도를 하거나 체크포인트 같은 데서 부활할 수 없어 영원히 캐릭터가 삭제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스타일의 게임플레이는 꽤 인기가 있으며 게임 플레이에 긴장감과 흥분도를 높린다. 사람들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 그것이 허구적인 것일지라도 자신이 캐릭터에 대해 내리는 모든 결정에 새로운 감정적 이해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Nuclear Anxiety and Lingering Terror 핵에 대한 불안과 지속되는 두려움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의 책 의 도입부를 보면 버디 홀리(Buddy Holly)나 제임스 딘(James Dean) 같은 유명인 사고 희생자들이나 체르노빌이나 보팔 등의 유명한 재앙, 그리고 결핵이나 에이즈 같은 악명 높은 질병의 이름들이 챕터 내에 크고 굵은 글씨로 눈에 띄게 표기되어 있다 [17] . 이러한 단어들은 우리 내면에 지속적인 공포와 불안을 일으키는 상징적 힘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한 것들은 과거의 비극적이고 끔찍한 사건에 대한 기억들을 우리의 마음 속에 집어넣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공포 - 과거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예상하게 되는 미래의 공포 - 를 각인시키기도 한다. 이와 같은 두려운 예측은 겁에 질리도록 하는 공포(terror)로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공포 안에서 미래의 공포가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18] . 다시 <레지던트 이블>과 <폴아웃3>로 돌아오자. 이제 나는 <레지던트 이블>의 개들이 촉발시켰던 점프 스케어보다 수퍼-두퍼 마트의 약탈자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포스트-아포칼립스적인 미국의 풍경을 담은 웨이스트랜드 내에서 약탈자들이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그들과의 첫 조우 이래 지속적으로 환기되었기 때문이다. 폴아웃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가 인간이 얼마나 절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폴아웃3>를 플레이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이었고, 이후 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내내 그런 느낌을 반복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전체 시리즈를 관통하는 거대한 두려움 - 여전히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핵 분쟁 및 그에 따른 두려움과 같은 [19] - 속에는 우리 사회가 갈수록 지속가능성을 잃어감에 따라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돌변할 수 있고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그에 따른 공포로 인해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는 훨씬 더 단순하고 작은 가능성을 제시한다. 데이비드 페캠(David Peckham)은 "불안은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 대해 우리가 치르는 대가" [20] 라고 말한 신경과학자 조셉 르두(Joseph LeDoux)의 연구를 언급한 바 있다. 폴아웃과 같은 시리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존재하는 역사적인 그리고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공포를 바탕으로 다가올 수 있는 미래들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 <레지던트 이블>의 개들처럼 점프 스케어를 통해 단순히 사람이 깜짝 놀라는 반응을 일으키는 것 보다는, 수퍼-두퍼 마트에 잠입을 시도하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는 여러 겹의 공포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호러, 공포, 패닉, 그리고 불안이 한데 아우러져 공포의 완전한 패키지로서 함께 제공되는 것이다. 그 공간의 분위기와 매달려있는 사체들은 내가 내 캐릭터에 가할 수 있는 끔찍한 결과를 예측하게 하는 공포를 야기한다. 발자국 소리를 듣거나 발각될 것 같다는 생각은 약간의 패닉을 느끼게 한다. 궁극적으로 폴아웃 세계의 약탈자들이 지닌 함의 및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지닌 끔찍한 가능성을 표상하고 있는 방식이야말로 게임 그 자체의 경계를 넘어 우리와 우리의 세계가 어떻게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나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기억하게 만든다는 점이 제일 중요하다. 게임은 그 어떤 매체보다도 우리가 공포스러운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의미있고 강력한 공포를 만들어내는데 있어 몰입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진정한 공포는 갑작스러운 소리나 끔찍한 괴물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서 발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및 그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우리라는 존재가 지닌 끔찍한 의미가 그러한 놀램과 함께 고조될 때 발생한다. 만약 게임이 이런 종류의 위협을 - 그것이 아무리 먼 곳에 있는 것일지라도 - 야기하기 위해 겁주기/놀래키기(scare)를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움을 느낄 때다. 갑작스럽게 놀래키는 공포(sudden frights)은 그 원천이 일상적인 것이든 초자연적인 것이든 간에 예상치 못했을 때 발생한다. 반대로 지속적인 공포와 불안은 '만약에(what if)?'로부터 야기된다. 폴아웃의 경우 너무나 현실적으로 무너진 사회의 모습을 '만약에?'으로 다루었다. 진짜가 아님을 알면서도 겁을 먹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위안도 분명 있겠지만, 우리 자신이 지닌 위험의 가능성 보다 더 불안한 것이 과연 있을까? [1] Capcom, 1996. [2] Bethesda Softworks, 2008. [3] Red Barrels, 2013. [4] Frictional Games, 2010. [5] Mads Haahr, ‘Playing with Vision: Sight and Seeing as Narrative and Game Mechanics in Survival Horror’, in Interactive Storytelling, ed. Rebecca Rouse, Hartmut Koenitz, and Mads Haahr (Cham: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8), 193–205, https://doi.org/10.1007/978-3-030-04028-4_20 . [6] Sara Ahmed, ‘The Affective Politics of Fear’, in The Cultural Politics of Emotion (Edinburgh, UNITED KINGDOM: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14), 62–81, http://ebookcentral.proquest.com/lib/concordia-ebooks/detail.action?docID=1767554 . [7] Amnesia: The Dark Descent Full HD 1080p/60fps GTX1070 Longplay Walkthrough Gameplay No Commentary, 2016, https://www.youtube.com/watch?v=hyUf3Ctx-Ck . [8] Rebecca Roberts, ‘Fear of the Unknown: Music and Sound Design in Psychological Horror Games’, in Music In Video Games (Routledge, 2014). [9] Tanya Krzywinska, ‘Hands-on Horror’, Spectator 22, no. 2 (2002): 12–23. [10] OUTLAST | Full HD 1080p/60fps Longplay Walkthrough Gameplay No Commentary, 2017, https://www.youtube.com/watch?v=zZNfd04GO-U . [11] Creative Assembly, 2014. [12] Crystal Dynamics, 2013. [13] Nele Van De Mosselaer, “How Can We be Moved to Shoot Zombies? A Paradox of Fictional Emotions and Actions in Interactive Fiction.” Journal of Literary Theory 12(2), 2018: 286. [14] Ibid., 286-287. [15] Smilegate, 2019. [16] Blizzard Entertainment, 2004. [17] Brian Massumi. “Everywhere You Want to Be: Introduction to Fear.” The Politics of Everyday Fear.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3; 3-38. [18] Joseph LeDoux. Anxious: Using the Brain to Understand and Treat Fear and Anxiety. New York: Penguin Books, 2015. [19] Ryan Scheiding. “War Never Changes? Creating an American Victimology in Fallout 4.” Representing Conflicts in Games: Antagonism, Rivalry, and Competition. Edited by Björn Sjöblom, Jonas Linderoth, and Anders Frank. London: Routledge, 2023; 135-152. [20] Joseph LeDoux, Lecture, New York State Writers Institute 2016. Cited in David Peckham, Fear: An Alternative History of the World. London: Profile Books, 2023, 7.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마크 라제네스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온라인 게임의 독성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삼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공평하고 즐거운 놀이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게임 내에서 더 많은 긍정적인 조건을 들어내기 위한 독성 현상에의 이해를 추구한다. 스팀 마켓플레이스와 DOTA 2에 관한 논문을 작성한 바 있고 곧 출시될 '트위치 마이크로스트리밍'의 공동 저자이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먹지 않으면 죽는다 – 게임에서의 음식과 먹는 행위

    유난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으레 나오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말 안에는 단순히 맛이 좋다는 것을 뛰어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피곤했던 하루가 풀리는 감각, 살아 있길 잘했다는 감각, 그러니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감각.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감각이 바로 ‘살맛’이다. 무엇을 먹는가는 곧 어떻게 사느냐와 연결되고, 인간다운 삶의 기준으로도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음식은 인간에게 영양 섭취 이상의 의미로 자리 잡혀있다. < Back 먹지 않으면 죽는다 – 게임에서의 음식과 먹는 행위 30 GG Vol. 26. 6. 10. ‘이게 사는 맛이지!’, ‘살맛 난다!’ 유난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으레 나오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말 안에는 단순히 맛이 좋다는 것을 뛰어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피곤했던 하루가 풀리는 감각, 살아 있길 잘했다는 감각, 그러니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감각.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감각이 바로 ‘살맛’이다. 무엇을 먹는가는 곧 어떻게 사느냐와 연결되고, 인간다운 삶의 기준으로도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음식은 인간에게 영양 섭취 이상의 의미로 자리 잡혀있다. 먹는 행위는 게임 안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삶의 다양한 부분을 표현하는 매체답게, 게임은 요리와 음식, 먹는 행위를 계속해서 재현해 왔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에서 음식을 찾는 이유가 각양각색인 것도 여러 재현 방식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삶에서의 ‘식(食)’이 그러하듯, 게임에서의 ‘식(食)’도 단순히 먹는 행위를 넘어선 지 오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음식은 초창기 게임에서부터 현재와 같은 모습이었을까? 게임 안에서 먹는 행위란 장르 별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먹는 것이 유독 중요한 장르가 있다면 무엇이고, 왜 그렇게 되었을까? 1. 게임 속 음식의 계보 게임 속 음식의 역할을 떠올려봤을 때 크게 연상되는 건 세 가지다. 회복과 생존을 위한 소비재, 버프를 위한 보조 아이템, 거래 물품. 이 외에 음식과 연계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까지 생각해 본다면, 아마 몇 가지 말하는 정도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 <버블보블>. 출처: 닌텐도 스토어 이런 음식은 초창기 아케이드 게임에서 점수로 기능했다. <버블보블 Bubble Bobble >과 같은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버블보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애초에 굶지 않았고, 음식은 플레이를 진행하다 보면 자연히 튀어나왔다. 이 안에서 음식은 플레이 성과를 시각적으로 환산하는 기호나 마찬가지였다. 현실 값어치나 포만감의 정도를 따라, 과일 한 알보다는 케이크 한 접시나 라멘 한 그릇이 더 큰 점수를 주는 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 <파이널 파이트>. 출처: Game Informer ( https://gameinformer.com/2020/08/25/the-top-10-health-items-in-gaming ) 이렇게 가격과 포만감을 점수 기준으로 삼던 음식은 점차 체력을 회복시키는 장치로 나아가게 되었다. <파이널 파이트 Final Fight >에서 쓰레기통이나 상자를 부수고 등장하는 음식들이 그러하다. 위스키, 과일, 초밥, 바비큐 등 종류도 다양한 이 음식들은 캐릭터들이 다시 싸울 체력이 되어준다. 이 음식들의 회복량은 앞서 점수로 기능하던 음식들의 법칙과 동일하게 적용됐다. 만복감이 큰 음식일수록 회복 비율이 높아지고, 끼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음식은 회복 비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먹고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방식은 이러한 상징과 함께 나타나, 플레이어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한다. 다만 위의 사례들을 두고 게임 안의 음식이 완벽하게 재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쓰레기통과 상자 안에서 튀어나오는 음식은 조리 과정이 생략되어 있으며, 상하지도 않은 채 온전하다.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음식이 몸을 회복시키는 건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안에서는 소화되는 무언가에 대한 경계도 불안도 없다. 이 시기의 게임 음식들이 완벽한 재현 요소가 될 수 없는 까닭은 음식이 평범한 먹거리로 기능하지 않는 탓이다. 이 음식들에 요구되는 것은 폭력을 지속시키는 연료 역할이다. * <마비노기>의 캠프파이어와 페스티벌 푸드. 이런 음식의 기능은 온라인 게임 시대에 접어들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이제 음식은 점수나 회복의 역할을 넘어, 플레이어 간 유대를 다지는 장치가 된다. <마비노기>의 캠프파이어는 악기를 연주하며 음식을 쉐어링하는, 낭만적 모험의 표본을 재현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밥을 먹으며 친해진다는 말도 있듯이, 모닥불 앞에서 서로가 가진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는 새로운 친목의 형태로 작용했다. 여기서 음식은 플레이어를 게임 세계 속 주민으로 정착시킨다고도 할 수 있다. 동시에 온라인 게임 속 음식은 능력치를 강화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마찬가지로 <마비노기>의 ‘페스티벌 푸드’가 버프로 기능하는 음식의 한 예다. 재료의 품질이 좋을수록 축제요리의 효과도 강력해지는데, 여기서 보정된 능력치를 통해 더욱 수월한 전투를 할 수 있게 된다. 축제요리를 먹는 것은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일종의 의식으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발전해온 게임 내 음식의 역할은 점수-회복-교감과 버프라는 계보를 형성한다. 이러한 계보는 게임으로 재현할 수 있는 음식의 요소를 모두 보여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음식은 서바이벌 게임에 이르러, 한 단계 더 다른 측면으로 나아가게 된다. 2. 음식에서 식량으로: 서바이벌 게임 안의 음식 앞서 말한 것처럼 게임 속 음식은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지표이자, 플레이를 지속해 나가기 위한 회복 아이템이었고, 공동체 경험과 능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보조 아이템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속성은 대부분 서바이벌 게임으로 계승되는데, 여기서 음식은 플레이어의 몸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제목부터 노골적인 <굶지마 Don't Starve >는 그야말로 매 순간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게임이다. 생존을 위협하는 걱정거리는 몬스터를 비롯하여 여럿 나타나지만, 플레이어에게 가장 큰 불안으로 다가오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굶주림이다. 동일 제작사 게임인 <산소미포함 Oxygen Not Included >에서도 이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식량자원이 귀한 이 세계관은 칼로리마저 중요하게 따져야 한다. 열량은 수명이나 다름없고, 식량의 존재 여부는 곧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이게 만든다. * <프로젝트 좀보이드>. 좀비가 창궐한 세상이 배경인 <프로젝트 좀보이드 Project Zomboid >도 비슷한 방식으로 생존해야 한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 피우는 법을 익히고, 씨앗을 찾아 농사를 지으며,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준비해야 한다. 동시에 팀원들에게 적절한 자원을 분배하고, 남은 음식이 어느 정도로 부패했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수다.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식량인 통조림은 그것을 뜯을 도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이는 <더 롱 다크 The Long Dark >도 동일하다. 심지어 <더 롱 다크>는 제대로 된 도구를 사용하지 않을 시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 부분마저 현실감 있게 재현해 놓았다. 플레이어는 이런 극한 상황에서 음식을 먹고, 보존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이 세계에 더 오랫동안 발을 붙여두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에서 서바이벌 게임 속 음식은 소비재인 동시에 투자 대상으로도 볼 수 있게 된다. 사실 서바이벌 게임에서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도 남겨두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먹는 행위는 생산과 저장, 분배를 전제하게 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당장의 허기를 해결하는 동시에 미래의 허기까지 계산해야 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액션 게임에서 죽음은 적이 가져오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서바이벌 게임에서 나타나는 죽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한다. 그러므로 서바이벌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상대하는 것은 적만이 아니다. 시간 역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며,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변수는 플레이어 자신의 몸이 된다. 이 지점에서 음식은 이전 장르들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점수, 회복, 교감과 버프의 수단이었던 음식은 생존을 유지하는 필수 조건으로 변화한다. 음식의 조리법과 효과는 구체화되고, 상황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플레이어는 다가올 겨울과 재난, 이동 불가능한 상황까지 대비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도 허기는 반드시 찾아오고, 그에 따라 몸도 소모된다. 여기서 서바이벌 게임 내 음식의 속성이 마지막으로 드러나는데, 맛과 향은 구현되지 못해도 배고픔만큼은 집요하리만치 재현된다는 점이다. 식량이 줄어들수록 플레이어를 옥죄어오는 건 허기의 압박감이다. 허기는 곧 게임 오버와 연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서바이벌 게임은 오관(五官)보다 섭생의 감각을 전달하는 데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3. 먹음으로써 재현되는 것 게임 속 음식은 점수와 회복 수단에서 시작해, 공동체 경험과 생존의 조건으로까지 확장됐다. 이 계보는 인간의 삶과 몸에 대해 상상해 온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왜 게임은 이러한 요소들을 끊임없이 재현하고자 하는가? 그리고 왜 이것은 서바이벌 장르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재현되는가? 요리하고 먹는다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 너무나 당연해진 행위다. 늘 무언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실제로 먹고 있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먹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먹고 사는 문제란 원래 어렵다는 것. 그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게 서바이벌 게임이 아닐까 한다. 서바이벌 게임은 원초적인 긴장감으로 이 감각을 복원시킨다. 그러나 이 복원에는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바로 현실의 굶주림은 사회적인 문제이지만, 서바이벌 게임의 굶주림은 개인 관리에 관한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식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죽지만, 그 죽음은 사회적 비극이 아닌 실패한 플레이일 뿐이다. 이는 게임이라는 매체가 사회 그 자체를 다루는 듯해도, 개인의 행위를 보다 중심에 놓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게임이 무언가를 다루는 방식에는 언제나 일정 부분의 공백이 남는다. 음식에 관한 문제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게임 속에서 어떠한 ‘살맛’을 느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게임에서 살아남은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살아있길 잘했다고 생각하듯, 게임에서 느낀 즐거움과 만족감은 우리에게 사는 보람을 선사한다. 맛과 향은 전달할 수 없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희망만큼은 느끼게 해주는 셈이다. 이런 부분에서 게임이 음식을 통해 재현하는 것은 살아간다는 감각, 또 하나의 ‘살맛’일지도 모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다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 온라인 게임에 복귀했습니다.

  • [Editor's view] 게임비평공모전에 부쳐

    GG 7호는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들을 중심으로 꾸몄습니다. 게임비평이라는 영역 자체가 사회 전반에서는 다소 낯선 부문일 수 있겠지만, 무려 93건의 응모작이 들어온 것을 보면서 적어도 게임에 대한 비평적 접근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심사 과정에서 가졌던 고민들과, 공모전과 GG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드리고자 합니다. < Back [Editor's view] 게임비평공모전에 부쳐 07 GG Vol. 22. 8. 10. GG 7호는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들을 중심으로 꾸몄습니다. 게임비평이라는 영역 자체가 사회 전반에서는 다소 낯선 부문일 수 있겠지만, 무려 93건의 응모작이 들어온 것을 보면서 적어도 게임에 대한 비평적 접근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심사 과정에서 가졌던 고민들과, 공모전과 GG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드리고자 합니다. 2022년 5월 첫 공지를 올린 후 7월 8일 접수마감까지 대략 2개월동안 공모전에는 총 93개의 글이 들어왔습니다. 저를 포함한 총 5분의 심사위원분들과 함께 응모작을 읽고 토론하여 7월 말에 최종 수상작을 선정하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심사위원들과 함께 고민한 가장 큰 이슈는 ‘우리에게 게임비평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였습니다. 게임비평이란 무엇일까요? 제게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지만 개인의 생각만으로 잡지가 추구하는 비평의 방향을 재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게임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적을 수도 있고, 다양한 레퍼런스를 뒤져 가며 무겁게 게임의 의미를 파고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텍스트 내적인 요소들의 작동방식에 대한 평가도, 게임이 다루는 서사적, 미술적 요소들의 완성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게임 바깥의 관계들과 맺는 영향력을 다루는 것도 게임비평의 영역일 수 있겠지요. 1회 공모전에서는 그래서 어떤 한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비평의 폭넓은 의미를 최대한 열어보자는 입장으로 공모전을 시작했습니다. 수상작들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제각각의 주제를 다루지만, 심사위원들이 포괄적으로 동의한 일련의 방향성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GG는 이것만이 게임비평이다 라는 배타적인 시선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GG 공모전이 선택한 비평의 정체성이 있다고 한들 단 한 회의 공모전으로 그 정체성이 오롯이 드러나지는 않으며, 수상하지 못한 많은 글들이 함량미달이라는 의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게임비평의 방향성 중에 GG는 이런 정체성에 가깝다는 정도의 선언이 이번 공모전 수상작의 의미일 것입니다. 수상작 선정보다 제게 더 의미있었던 것은 93건의 다채로운 입장과 방향을 드러낸 글과 글쓴이가 존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직 우리는 무엇을 게임비평이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적어도 게임에 대해 갖는 비평적 태도가 충분히 유의미하며 시도할 만한 무엇이라는 점에 동의하는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수상하신 분들께는 큰 축하를, 그리고 9명밖에 안되는 좁은 자리에 미처 다 모시지 못한 많은 응모자분들께는 앞으로도 함께 게임문화를 지켜보고 이야기하실 수 있는 응원과 격려를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비평공모전에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리며, GG는 더 풍부한 게임문화담론을 만들어가는 데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UX를 찾아서] 체력과 기회

    난이도 – 숙련도 길항에 관여하는 데이터값들에서 중요한 것은 ‘공격력이 1천만!’, ‘체력이 500만!’같은 숫자 크기가 아니다. 100만에서 99만 9,999를 뺀 1이라는 값, 난이도와 숙련도가 주고받은 그 연산의 결과값이 길항의 의미이자 결과물이기에 체력과 공격력은 동시에 하향될 수 있다. 최근 모바일게임 광고에서 ‘플레이어의 강함’을 어필하기 위해 보여주는, 막대한 공격력을 뽑아내는 장면이 별로 와닿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플레이어 캐릭터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선 전혀 강해지지 않는다. 플레이를 통해 정말 강해지는 것은 아마도 플레이어의 몸에 쌓이는 숙련도뿐일 것이다. < Back [UX를 찾아서] 체력과 기회 06 GG Vol. 22. 6. 10. 디노미네이션 오랜 와우저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2000년대 초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60레벨 만렙 체력은 대략 4천 대 근처였다. 캐릭터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풀 파밍이 완료된 탱커도 1만을 넘는 경우가 흔치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월이 좀 지나 같은 게임에서 캐릭터의 체력은 지나간 시간과 비례하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014년 출시된 확장팩 ‘드레노어의 전쟁군주’ 에 이르면 10만 단위의 체력도 보기 드물지 않은 상황을 맞았는데, 이때 블리자드는 능력치 압축이라는 이름의 디노미네이션을 결정했다. 디노미네이션은 게임 안에서 작동하는 스탯들을 동일한 비례식 하에 전반적으로 낮추어 잡는 변화를 가리킨다. 특정 패치를 기점으로 게임 내의 모든 스탯들, 레벨, 캐릭터의 체력과 공격력, 마나량과 회복량, 몬스터의 체력과 공격력 같은 전반적인 수치가 일제히 하향조정되었다. 물론 상호작용하는 모든 수치가 함께 하향된 터라 전체적인 게임의 밸런스가 크게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언제 하향했냐가 무색하게 이어지는 패치를 통해 다시금 게임 내의 모든 수치들은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게임 플레이 속에서 플레이어는 지속적으로 과거보다 더 강한 적과 맞서 싸운다는 감각을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이룬 승리는 경험치와 레벨, 아이템이라는 보상을 통해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누적되며, 이를 바탕으로 플레이어는 또다시 다가오는 더욱 강한 도전에 맞서는 구조 안에 선다. 플레이 이력이 서버에 기록되며 마치 플레이어의 소유물인 것처럼 인식되는 온라인 기반의 게임이 지속되는 한, 이 영원한 우상향의 그래프는 지속될 것이다. 체력과 기회 디지털게임에서 체력의 근원을 거슬러올라 생각해보면 ‘기회’라는 개념에 맞닿을 것이다. 체력 개념이 보편화하지 않았던 초창기 아케이드 시절에도 난이도 – 숙련도의 대결 안에는 도전기회라는 규칙이 존재했었다. 제시된 난이도를 향한 도전의 의미는 실패의 가능성이 있을 때 발생한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에서 외계인 무리가 지상에 닿을 때, 〈팩맨〉에서 식탁보 유령에게 붙잡힐 때, 〈테트리스〉에서 쌓인 블록이 천장에 닿을 때 맞는 게임오버의 순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플레이어는 분투하며 클리어를 향해 달려나간다. 한 판의 플레이는 그러나 한 번의 기회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게임소프트웨어마다, 혹은 아케이드나 콘솔 기기의 설정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대체로 한 판의 게임에는 일정 숫자의 도전기회가 주어졌다. 잔기, 생명 등으로 표현되었던 이들 도전기회는 한 손으로도 셀 수 있었던 간단한 숫자의 기회였고, 기회의 상실은 작은 규모의 리스타트 – 플레이가 이어지지 않고 실패 후에 다시 리트라이되는 방식으로 표현되곤 했다. 체력 개념은 기회의 부여 차원에서 이 실패 후 리트라이를 좀더 연속적인 감각으로 바꿔낸다. 이를테면 벨트스크롤 액션게임 〈골든액스〉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는 1개의 생명당 총 3개의 체력 바를 가지고 나오는데, 적의 공격을 받으면 체력 바가 하나씩 줄어들고 체력 바가 0이 되면 하나의 라이프가 날아가는 방식이다. 이때 도전기회, 다시말해 허용되는 실수의 수는 체력바 X 생명 수로 나타난다. 3개의 생명을 가지고 시작했다면 클리어까지 허용되는 피격의 수는 총 9번인 것이다. 그러나 생명과 라이프는 그 실패의 결과 면에서 연속성이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나타난다. 피격당했지만 생명이 줄지 않는 경우에는 말그대로 체력이 깎이면서 나타나는 약간의 경직과 넉백 정도에 머무르지만, 캐릭터가 사망한 경우에는 아예 새로 캐릭터를 출현시키면서 생명을 깎는 연출을 보여준다. 같은 기회지만 체력  생명으로 이어지는 점층적인 구조를 통해 실패의 패널티는 다르게 기능한다. 〈파이널 파이트〉에 이르면 이제 체력은 바bar로 표시된다. 적의 공격은 모두 동일한 1회의 피격이 아니라 적과 공격의 유형에 따라 다른 수치의 피해를 플레이어의 체력에 입히는데, 이때부터는 그 피해량을 숫자로 매기는 대신 일종의 인포그래픽인 체력바를 통해 표현한다. 플레이어는 정확히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히고 입는지 수치를 통해 확인할 수 없다. 〈너구리〉에서 한 번만 압정을 밟아도 게임오버되던, 가벼운 숫자의 도전기회는 체력 바라는 표현의 시대에 이르면서 점차 실패와 도전의 관계를 좀더 연속적인 변화량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동시에 보너스 점수 등을 통해 추가 도전기회를 받을 수 있었던 방식 또한 체력 바의 시대에는 숫자로 표기되는 점수 대신 음식, 약물과 같은 체력과 상관관계를 이루는 아이템을 획득해 받은 피해를 복구하는 은유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체력 바의 시대에 이르면 도전과 기회는 횟수가 아닌 게이지로서 좀더 연속적인 형태의 기회로 변화한 것이다. 방향성이 아니라 표현의 다변화 횟수로서의 기회가 체력이라는 형태의 연속적 기회로 변화한 데에는 일정부분 컴퓨팅 기술의 발전 또한 기능했을 것이다. 이는 역으로 서두에 언급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디노미네이션 사례와도 통하는데, 디노미네이션의 이유로 당시에는 과도하게 상승한 수치 때문에 개별 컴퓨터의 연산능력이 불필요하게 많이 사용된다는 점이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8비트 시대의 컴퓨터로는 아무래도 연속적인 기회로서의 체력 연산보다는 상대적으로 간단한 규칙이 우선했을 것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디지털게임의 규칙은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TRPG와 같은 아날로그 게임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이를테면 대전격투 게임에서 타격과 피격의 순간 각각의 행동에 맞추어 공격력과 방어력을 계산해 실시간으로 반영해 결과에 반영하는 게임규칙을 가능케 하면서도 동시에 연산력과 같은 제한에 의해 생명, 체력과 같은 다른 양식의 도전기회를 규칙화하는 영향력을 동시에 발휘한다. 그러나 이 변화의 방향은 반드시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당장 오늘날의 전투형 게임들은 도리어 방대해진 체력량을 새로운 연출요소로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타격감(이 개념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을 위한 연출에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꽂아넣는 피해량이 막대한 숫자로 표기되는 방식이 들어간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 체력 바는 자세히 보면 전체 체력 바의 총량을 100%의 길이로 두되, 레벨업과 아이템을 통해 향상되는 체력의 수치를 체력바 사이에 일정 단위로 표기되는 눈금을 통해 플레이어로 하여금 가늠할 수 있게 한다. MMORPG에서 나타나는 수치의 우상향도 다른 장르에서는 다른 의미로 나타난다. 매 게임마다 다시 리셋되는, 서버에 레벨과 경험치가 축적되지 않는 순환형 시간에 놓인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플레이할수록 나의 캐릭터가 강해진다’는 전제가 희미해지기 때문에 체력의 절대값은 반드시 우상향하지 않으며 고정된 최대값 – 최소값의 범주 안에 위치한다. 이처럼 도전기회라는 규칙은 기술과 환경, 노하우의 변화에서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인다기보다는 더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을 확보하며 다양화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플레이어 캐릭터는 강해지지 않는다 서두에 언급한 디노미네이션의 사례와, 세부적인 규칙연산의 결과를 플레이어에게 데이터로 보여주느냐 혹은 연속적인 기호를 통해 보여주느냐의 문제의 기저에는 결국 난이도 – 숙련도 길항이라는 디지털게임의 근본적인 갈등구조 자체에는 크게 변화하지 않아 왔다는 전제가 있다. 난이도 – 숙련도 길항에 관여하는 데이터값들에서 중요한 것은 ‘공격력이 1천만!’, ‘체력이 500만!’같은 숫자 크기가 아니다. 100만에서 99만 9,999를 뺀 1이라는 값, 난이도와 숙련도가 주고받은 그 연산의 결과값이 길항의 의미이자 결과물이기에 체력과 공격력은 동시에 하향될 수 있다. 최근 모바일게임 광고에서 ‘플레이어의 강함’을 어필하기 위해 보여주는, 막대한 공격력을 뽑아내는 장면이 별로 와닿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플레이어 캐릭터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선 전혀 강해지지 않는다. 플레이를 통해 정말 강해지는 것은 아마도 플레이어의 몸에 쌓이는 숙련도뿐일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게임세대의 문화담론 플랫폼 게임제너레이션은 크래프톤의 후원으로 게임문화재단이 만들고 있습니다.

gg로고
게임문화재단
KRAFTON_Horizontal_Logo_Black.jpg
드래곤랩 로고

Powered by 

발행처 : (재)게임문화재단  I  발행인 : 유병한  I  편집인 : 조수현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로 114, 2층(방배동)  I  등록번호 : 서초마00115호  I  등록일 : 2021.6.28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