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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않으면 죽는다 – 게임에서의 음식과 먹는 행위

30

GG Vol. 

26. 6. 10.

‘이게 사는 맛이지!’, ‘살맛 난다!’


유난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으레 나오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말 안에는 단순히 맛이 좋다는 것을 뛰어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피곤했던 하루가 풀리는 감각, 살아 있길 잘했다는 감각, 그러니 아직은 견딜 만하다는 감각.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감각이 바로 ‘살맛’이다. 무엇을 먹는가는 곧 어떻게 사느냐와 연결되고, 인간다운 삶의 기준으로도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음식은 인간에게 영양 섭취 이상의 의미로 자리 잡혀있다.


먹는 행위는 게임 안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삶의 다양한 부분을 표현하는 매체답게, 게임은 요리와 음식, 먹는 행위를 계속해서 재현해 왔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에서 음식을 찾는 이유가 각양각색인 것도 여러 재현 방식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삶에서의 ‘식(食)’이 그러하듯, 게임에서의 ‘식(食)’도 단순히 먹는 행위를 넘어선 지 오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음식은 초창기 게임에서부터 현재와 같은 모습이었을까? 게임 안에서 먹는 행위란 장르 별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먹는 것이 유독 중요한 장르가 있다면 무엇이고, 왜 그렇게 되었을까?

     


1. 게임 속 음식의 계보


게임 속 음식의 역할을 떠올려봤을 때 크게 연상되는 건 세 가지다. 회복과 생존을 위한 소비재, 버프를 위한 보조 아이템, 거래 물품. 이 외에 음식과 연계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까지 생각해 본다면, 아마 몇 가지 말하는 정도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 <버블보블>. 출처: 닌텐도 스토어

     

이런 음식은 초창기 아케이드 게임에서 점수로 기능했다. <버블보블 Bubble Bobble>과 같은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버블보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애초에 굶지 않았고, 음식은 플레이를 진행하다 보면 자연히 튀어나왔다. 이 안에서 음식은 플레이 성과를 시각적으로 환산하는 기호나 마찬가지였다. 현실 값어치나 포만감의 정도를 따라, 과일 한 알보다는 케이크 한 접시나 라멘 한 그릇이 더 큰 점수를 주는 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 <파이널 파이트>. 출처: Game Informer

(https://gameinformer.com/2020/08/25/the-top-10-health-items-in-gaming)

     

이렇게 가격과 포만감을 점수 기준으로 삼던 음식은 점차 체력을 회복시키는 장치로 나아가게 되었다. <파이널 파이트 Final Fight>에서 쓰레기통이나 상자를 부수고 등장하는 음식들이 그러하다. 위스키, 과일, 초밥, 바비큐 등 종류도 다양한 이 음식들은 캐릭터들이 다시 싸울 체력이 되어준다. 이 음식들의 회복량은 앞서 점수로 기능하던 음식들의 법칙과 동일하게 적용됐다. 만복감이 큰 음식일수록 회복 비율이 높아지고, 끼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음식은 회복 비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먹고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방식은 이러한 상징과 함께 나타나, 플레이어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한다.


다만 위의 사례들을 두고 게임 안의 음식이 완벽하게 재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쓰레기통과 상자 안에서 튀어나오는 음식은 조리 과정이 생략되어 있으며, 상하지도 않은 채 온전하다.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음식이 몸을 회복시키는 건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안에서는 소화되는 무언가에 대한 경계도 불안도 없다. 이 시기의 게임 음식들이 완벽한 재현 요소가 될 수 없는 까닭은 음식이 평범한 먹거리로 기능하지 않는 탓이다. 이 음식들에 요구되는 것은 폭력을 지속시키는 연료 역할이다.

     

* <마비노기>의 캠프파이어와 페스티벌 푸드.

     

이런 음식의 기능은 온라인 게임 시대에 접어들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이제 음식은 점수나 회복의 역할을 넘어, 플레이어 간 유대를 다지는 장치가 된다. <마비노기>의 캠프파이어는 악기를 연주하며 음식을 쉐어링하는, 낭만적 모험의 표본을 재현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밥을 먹으며 친해진다는 말도 있듯이, 모닥불 앞에서 서로가 가진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는 새로운 친목의 형태로 작용했다. 여기서 음식은 플레이어를 게임 세계 속 주민으로 정착시킨다고도 할 수 있다. 동시에 온라인 게임 속 음식은 능력치를 강화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마찬가지로 <마비노기>의 ‘페스티벌 푸드’가 버프로 기능하는 음식의 한 예다. 재료의 품질이 좋을수록 축제요리의 효과도 강력해지는데, 여기서 보정된 능력치를 통해 더욱 수월한 전투를 할 수 있게 된다. 축제요리를 먹는 것은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일종의 의식으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발전해온 게임 내 음식의 역할은 점수-회복-교감과 버프라는 계보를 형성한다. 이러한 계보는 게임으로 재현할 수 있는 음식의 요소를 모두 보여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음식은 서바이벌 게임에 이르러, 한 단계 더 다른 측면으로 나아가게 된다.

     


2. 음식에서 식량으로: 서바이벌 게임 안의 음식


앞서 말한 것처럼 게임 속 음식은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지표이자, 플레이를 지속해 나가기 위한 회복 아이템이었고, 공동체 경험과 능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보조 아이템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속성은 대부분 서바이벌 게임으로 계승되는데, 여기서 음식은 플레이어의 몸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제목부터 노골적인 <굶지마 Don't Starve>는 그야말로 매 순간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게임이다. 생존을 위협하는 걱정거리는 몬스터를 비롯하여 여럿 나타나지만, 플레이어에게 가장 큰 불안으로 다가오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굶주림이다. 동일 제작사 게임인 <산소미포함 Oxygen Not Included>에서도 이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식량자원이 귀한 이 세계관은 칼로리마저 중요하게 따져야 한다. 열량은 수명이나 다름없고, 식량의 존재 여부는 곧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이게 만든다.


* <프로젝트 좀보이드>.

     

좀비가 창궐한 세상이 배경인 <프로젝트 좀보이드 Project Zomboid>도 비슷한 방식으로 생존해야 한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 피우는 법을 익히고, 씨앗을 찾아 농사를 지으며,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준비해야 한다. 동시에 팀원들에게 적절한 자원을 분배하고, 남은 음식이 어느 정도로 부패했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수다.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식량인 통조림은 그것을 뜯을 도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이는 <더 롱 다크 The Long Dark>도 동일하다. 심지어 <더 롱 다크>는 제대로 된 도구를 사용하지 않을 시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 부분마저 현실감 있게 재현해 놓았다. 플레이어는 이런 극한 상황에서 음식을 먹고, 보존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이 세계에 더 오랫동안 발을 붙여두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에서 서바이벌 게임 속 음식은 소비재인 동시에 투자 대상으로도 볼 수 있게 된다. 사실 서바이벌 게임에서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도 남겨두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먹는 행위는 생산과 저장, 분배를 전제하게 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당장의 허기를 해결하는 동시에 미래의 허기까지 계산해야 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액션 게임에서 죽음은 적이 가져오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서바이벌 게임에서 나타나는 죽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한다. 그러므로 서바이벌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상대하는 것은 적만이 아니다. 시간 역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며,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변수는 플레이어 자신의 몸이 된다. 이 지점에서 음식은 이전 장르들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점수, 회복, 교감과 버프의 수단이었던 음식은 생존을 유지하는 필수 조건으로 변화한다. 음식의 조리법과 효과는 구체화되고, 상황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플레이어는 다가올 겨울과 재난, 이동 불가능한 상황까지 대비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도 허기는 반드시 찾아오고, 그에 따라 몸도 소모된다. 여기서 서바이벌 게임 내 음식의 속성이 마지막으로 드러나는데, 맛과 향은 구현되지 못해도 배고픔만큼은 집요하리만치 재현된다는 점이다. 식량이 줄어들수록 플레이어를 옥죄어오는 건 허기의 압박감이다. 허기는 곧 게임 오버와 연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서바이벌 게임은 오관(五官)보다 섭생의 감각을 전달하는 데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3. 먹음으로써 재현되는 것


게임 속 음식은 점수와 회복 수단에서 시작해, 공동체 경험과 생존의 조건으로까지 확장됐다. 이 계보는 인간의 삶과 몸에 대해 상상해 온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왜 게임은 이러한 요소들을 끊임없이 재현하고자 하는가? 그리고 왜 이것은 서바이벌 장르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재현되는가?


요리하고 먹는다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 너무나 당연해진 행위다. 늘 무언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실제로 먹고 있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먹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먹고 사는 문제란 원래 어렵다는 것. 그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게 서바이벌 게임이 아닐까 한다. 서바이벌 게임은 원초적인 긴장감으로 이 감각을 복원시킨다. 그러나 이 복원에는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바로 현실의 굶주림은 사회적인 문제이지만, 서바이벌 게임의 굶주림은 개인 관리에 관한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식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죽지만, 그 죽음은 사회적 비극이 아닌 실패한 플레이일 뿐이다. 이는 게임이라는 매체가 사회 그 자체를 다루는 듯해도, 개인의 행위를 보다 중심에 놓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게임이 무언가를 다루는 방식에는 언제나 일정 부분의 공백이 남는다. 음식에 관한 문제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게임 속에서 어떠한 ‘살맛’을 느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게임에서 살아남은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살아있길 잘했다고 생각하듯, 게임에서 느낀 즐거움과 만족감은 우리에게 사는 보람을 선사한다. 맛과 향은 전달할 수 없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희망만큼은 느끼게 해주는 셈이다. 이런 부분에서 게임이 음식을 통해 재현하는 것은 살아간다는 감각, 또 하나의 ‘살맛’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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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문화연구자)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 온라인 게임에 복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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