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오브 레전드의 채팅 비활성화와 게임 커뮤니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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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1. 12. 10.
* 〈리그 오브 레전드〉 2021년 11월 21일 패치 노트
2021년 11월 21일,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게임 내 전체 채팅 기능이 사라졌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게임의 명성만큼이나 해로운 상호작용을 지닌 게임으로도 유명하다. 롤의 채팅 기능은 게임을 위한 전술을 교환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대신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번 패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팀원 간 채팅은 여전히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운영적인 측면에서는 기존에 존재하고 적극적으로 활용되던 기능을 삭제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고, 팀 내 채팅마저 삭제될 경우 당장 타인과 함께 플레이하지 않는 유저들 간에 전술을 교환할 수 있는 수단이 미흡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패치를 주목했다. 누군가는 진작 생겨야 할 기능이었다며 환영했고, 반쪽짜리 기능일 뿐이라며 못 미더워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체 채팅은 사라졌지만 게임이 끝나자마자 결과 화면에서 바로 상대 팀원에게 욕설을 퍼붓는 게이머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물론 이번 패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이미 제공되는 채팅 끄기 기능을 왜 쓰지 않냐면서 이번 패치로 인해 자신이 채팅할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빼앗겼다고 주장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 뿐만 아니라,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많은 게이머들은 게임 중 발생하는 폭력적인 대화들을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이미 게임 문화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폭력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게임 내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익명의 상대방에게 더 쉽게 저주를 퍼부을 수 있는가?
기존의 MMORPG 게임은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일정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요구됐다. 상위 컨텐츠를 플레이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 부대낄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면 (좋건 싫건 간에) 게임 속에서 사회 규범이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유저들과의 대결인 PVP 보다는 PVE 가 주목적이기 때문에 원망의 대상이 몬스터나 개발사 쪽으로 가지 유저로 가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MMORPG 중 PVP가 유명한 게임들의 경우 채팅 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거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AOS 게임은 부계정을 만들기가 타 장르에 비해 쉬운 편이다. 캐릭터의 숙련도를 정하는 것은 캐릭터의 레벨이나 전설적인 장비가 아닌 자신의 피지컬, 즉 순수한 실력이다. 게임 규칙을 지키지 않아 채팅이 막히고 아이디가 정지되더라도 다른 아이디로 접속하면 전과 같은 환경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 타인과 경쟁하는 게임에서 원망의 대상은 자신에게 패배의 경험을 제공하는 상대방이다. 같은 편이어도 예외는 없다. 끊임없는 조작이 필요한 AOS 게임의 특성상 채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부정적인 경험(캐릭터의 사망, 승패가 가려진 후)을 한 직후밖에 없는데, 이때의 흥분되는 감정들이 직접적으로 상대방에게 쏟아지기 쉬울 수밖에 없다.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증오 표현과 성희롱을 하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해 게임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속된 말로 게임을 던지는) 것도 불사하는 행동, 때로는 게임 밖으로 까지 뻗어나가 사이버 괴롭힘과 스토킹까지 지속하는 이런 행위들을 서구권 게임 업계에서는 독성 행동(Toxicity, 일부 논문에서는 유해 행동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했다. 게이머게이트 사건 이후, 게임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독성 행동이 어떤 기반에서 생겨나게 되었는지, 이런 행동들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지 사회문화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북미의 경우 게임 커뮤니티에서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이들의 경우 대부분은 보수적인 성향을 띄며 여성 보다는 남성의 수가 많았다. 상대적으로 어리거나 젊은 게이머가 많았으며, 백인이고, 이성애자의 비율이 높아 주류 사회의 포지션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공격성은 위보다는 아래로 향하였고, 타인이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빼앗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약자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욕설 대상은 여성과 타 인종, 성소수자들이 대부분이었다.1)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이런 경향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단일민족 국가 정체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타인종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욕설은 상대적으로 덜 하지만 그 부분을 여성에 대한 욕설이나 성희롱으로 채운다. 주목할만한 사실로는 상대방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더라도 어떤 캐릭터를 고르는지, 어떤 플레이 스타일을 가졌는지를 보고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못 미친다고 생각되는 순간 상대방을 여성이라 단정하고 공격하는 경향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2)
공통적으로 독성 행동은 나이가 어릴수록, 여성보다는 남성이, 팀워크를 통해 경쟁하는 게임을 경험했을수록 더 흔하게 발생한다. 남성 게이머는 나쁘고 여성 게이머가 덜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을 하는 유저들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온라인 활동을 하는 이용자들의 수가 애초에 적기 때문이다. 게임 이용자들 중 1.4%만이 적극적인 온라인 활동을 한다. 댓글을 남기는 비율을 포함해도 10% 미만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 중 악성 유저의 수는 소수이지만, 이 소수가 게임과 게임 커뮤니티의 의견을 과대표하게 되면서 이들의 의견이 게이머 전체의 의견인 양 노출되게 된다는 점이다.3)
이런 독성 행동은 게임 밖 커뮤니티에서 특히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자신을 드러낼 필요성이 없는 익명 사이트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한데 문제는 한국의 경우 게임 커뮤니티의 상당수를 익명 사이트(대표적으로 디시인사이드가 있다.)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카페나 팬 사이트와 다르게 익명 사이트들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강조한다. 이들은 친목과 규칙을 거부하고 쉽고 빠르게 글을 쓴다. 날것의 감성을 강조하여 원색적인 표현을 쓸 수록 반응이 좋기 때문에 자극적인 글들이 많고, (루머를 포함한) 최신 정보도 다른 곳에 비해 빠르게 올라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당연히 게임 개발자나 운영자들 또한 익명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게 되고, 원색적인 단어에 놀라던 사람들도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자극에 익숙해져 “잘못된 것 같긴 하지만, 원래 게임이 그렇다.” 는 식으로 무뎌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익명 사이트 문화가 게임 문화의 일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런 익명 사이트는 몇몇 유저가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쉽다. 독성 행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타인의 독성 행동을 학습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디시인사이드의 경우 유저 수가 작은 마이너 갤러리가 하나 있다고 하자. 이 곳이 아무리 ‘DC스럽지 않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도 사람이 증가하면 독성 발언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된다. 이들은 수가 소수일 때는 침묵하다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 한 두 명 보이기 시작하면 그동안 게시판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말을 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곧 마이너 갤러리의 분위기는 다른 갤러리와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하게 되는 식이다.
이들은 하나의 익명 사이트만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익명 사이트에서 동시에 비슷한 행동을 한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게시물을 여러 사이트에 공유하고, 각종 혐오 문화를 밈(MEME)과, 동영상, 짤방을 통해 재생산하여 퍼뜨리다 보면 대형 커뮤니티까지 이런 글들이 확대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침묵하기를 선택하고, 그것을 견딜 수 없을 때가 되면 커뮤니티를 떠난다. (게임 이용자들의 절반이 커뮤니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러다 보면 게임 커뮤니티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추구하게 된다. 남들보다 우위를 차지해야 하며 그렇지 못한 것들은 남성이어도 쉽게 웃음거리가 된다. 수준 미달인 상대방을 놀리기 위해 원색적인 욕을 서슴없이 하며, 그것들을 가식 떨지 않는 솔직함으로 표현한다. ‘상남자’스럽지 않은 것은 계집들이나 게이들이 하는 일이며, 자신들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서클 안에 속하는 우리들 뿐이다.
그 곳에서 말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분명 게임 속 커뮤니케이션 문화에 질려 떠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 채팅 기능이 없는 〈스플래툰〉과 〈포켓몬 유나이트〉
독성 행동에 대한 해결 방법은 아직은 일반론적인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다만, 〈에이펙스 레전드〉(Apex Legends) 등 몇몇 게임에서 채팅 기능을 제거하고 핑(Ping) 시스템을 통한 간접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도입한 이후 많은 게임에서 핑 시스템을 적극 차용하고 있으며 채팅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게임들 또한 등장하고 있다.
핑 시스템이 완벽한 대안이라는 말이 아니다. 핑을 쉴 새 없이 찍어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고, 감정 표현을 통해 상대방을 비꼬는 행위는 여전히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채팅 기능이 삭제되는 것 만으로도 타인의 노골적인 적대적 감정을 원치 않는 순간에 맞닥뜨리는 빈도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게이머도 게임사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발매될 게임들 중 의사 소통의 수단으로 채팅을 사용하는 게임들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 시스템적으로 다양한 대안을 세운다 하더라도 헤게모니 적 남성성을 과시하는 커뮤니티가 살아 있는 한 게이머들의 독성 행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AI 봇의 차단을 피해가며 사람들의 기분을 망치기 위한 방법을 자랑스럽게 공유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 게이머를 참교육한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나눈다.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영상들을 유튜브 클립과 이미지를 통해 재생산되며 집단 내에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이 선을 넘은 행위로 게임을 정지당하더라도, 게임 커뮤니티에는 여전히 이들의 게시물과 동영상이 남아 있다. 자극적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고, 이는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런 문화는 점점 더 부추겨질 수 밖에 없으며, 알고리즘으로 인해 유입되어 그 문화를 학습한 다른 이용자들에 의해 독성 문화는 계속해서 퍼져나갈 수밖에 없다.
“비디오 게임은 총기 난사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게이머 문화는 증오를 조장한다.”4)
2019년 브리아나 우는 게임이 단순한 모방 범죄와 폭력성을 유발하고 있다는 담론에서 벗어나 이제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와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사회 문제가 생겼을 때 게임을 모방한 사건이나 게임 중독자의 일탈 행동 등 개인의 책임을 묻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이머 문화와 커뮤니티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할 지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