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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X를찾아서] 오버워치에는 미니맵이 없다

    미니맵은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 UI(User Interface)중 하나로, 게임의 상단이나 하단 구석에 항상 압축적이고 간략하게 표시되는 작은 지도를 말한다. 특히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 게임이나 FPS(First Person Shooter) 장르에서 게이머의 시야는 1인칭 혹은 3인칭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미니맵이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확장된 버전의 전체 지도는 특정 버튼을 눌렀을 때 보이는 토글(toggle) 화면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 반면, 미니맵은 대부분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Head Up Display)로서 화면에 상시 표시된다. < Back [UX를찾아서] 오버워치에는 미니맵이 없다 05 GG Vol. 22. 4. 10. 미니맵은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는 UI(User Interface)중 하나로, 게임의 상단이나 하단 구석에 항상 압축적이고 간략하게 표시되는 작은 지도를 말한다. 특히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 게임이나 FPS(First Person Shooter) 장르에서 게이머의 시야는 1인칭 혹은 3인칭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미니맵이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확장된 버전의 전체 지도는 특정 버튼을 눌렀을 때 보이는 토글(toggle) 화면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 반면, 미니맵은 대부분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Head Up Display)로서 화면에 상시 표시된다. 게이머는 미니맵을 통해 전체적인 게임 세계 속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그리고 주변 환경과 사물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게임에는 크게 두 가지의 공간 감각이 동원된다. 아바타의 신체를 경유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얻는 감각을 지각된 공간감각이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전체적인 게임 세계 속 스스로의 위치와 관계를 파악함으로서 얻게 되는 인지된 공간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미니맵은 그러한 두 차원의 공간감을 통합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방식으로 미니맵은 게이머가 게임 세계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주며 게임의 그래픽이나 서사가 미처 채워 넣지 못한 공간감을 보조해 준다. 나아가 공간을 사회적 행위의 결과물로서 구성된 것으로 본다면, 게임 환경을 그려내는 3D 그래픽이나 프로그래밍 된 물리법칙과 마찬가지로 미니맵 또한 게임 공간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참여한다. 이 글에서는 게임 속 미니맵이 무엇을 그려내고 재현하는지 보다는 미니맵이라는 비유를 통해 조망하는 시점과 가시성이 어떤 위계 관계를 만들어내는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는 게임 내에 구현되는 공간을 넘어, 게임을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서열체계와 그것이 의미하는 사회적 맥락을 생각해보도록 한다. 다만, 이 글이 이론이나 구체적인 분석을 포함하기 보다는 관련된 역사와 사건들을 간략하게 제시하는 “미니맵”과 같은 글이라는 점을 미리 밝히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미니맵의 작은 역사 * 〈Rally X〉(1980) 우측의 미니맵(위)과 〈Defender〉(1981)(아래) 상단의 미니맵. 미니맵의 초기 형태는 지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미니맵은, 지금과 비교해서 굉장히 단순한 그래픽을 사용했던 1980년대 아케이드 게임들, 가령 〈Rally X〉(1980)이나 〈Defender〉(1981) 같은 게임들에서도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아케이드 게임에서는 주로 단조롭고 비슷한 지형지물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미니맵은 지도의 역할보다는 근처의 적들을 보고 피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는 레이더 기능을 하는 것에 가까웠다. 미니맵이 조금 더 ‘지도’와 유사한 형태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1986년에 발매된 〈젤다의 전설〉에서 부터이다. 화면 좌측 상단의 회색 사각형은 젤다의 전설이 배경이 되는 하이랄의 전체 지형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안의 초록색 점은 현재 화면에 표시되고 있는 구역이 전체 지형 중에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보여준다. 한편 오늘날 다양한 정보와 기능을 포함하는 오늘날의 미니맵과는 달리, 당시의 미니맵은 플레이어의 위치 외의 정보를 포함하지 않았으며 상호작용도 전무한 수준이었다. 1986년작 젤다의 전설에서 미니맵의 그래픽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는데, 플레이어 캐릭터가 이동하더라도 플레이어가 화면에 표시되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초록색 점은 이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젤다의 전설〉(1986). 왼쪽 상단의 회색 사각형이 미니맵의 역할을 한다. * 〈젤다의 전설〉(1986)의 전체 맵. 이것이 미니맵에서 회색 영역으로 표시된다. 〈슈퍼 메트로이드〉(1994)에서는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해 플레이어가 탐험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플레이어가 이미 탐색한 지역을 붉은색으로 표시해주는 기능을 도입한 것이다. 플레이어가 아직 탐색하지 않은 미지의 지역을 가리거나 까맣게 남겨두어 정보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전장의 안개(fog of war)는 1977년 작 〈엠파이어(empire)〉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지만, 이를 미니맵에 도입한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평가받았다. * 〈슈퍼 메트로이드〉(1994). 우측 상단 미니맵에 플레이어가 지나온 지역이 붉은색으로 표시된다. * ‘전장의 안개’를 처음 도입한 〈엠파이어〉(1977). 이런 ‘전장의 안개’는 다른 게이머와 대적하는 멀티 플레이어 RTS(Real-Time Strategy) 장르 게임에서 자주 이용되는 게임 메커니즘이다. 아군 유닛을 전장의 안개가 낀 지역에 정찰 보내 시야를 확보하고 적군의 위치와 진입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이 같은 게임들에서 필수 전략으로 여겨진다. 일부 악의적인 유저들은 불공정한 방식으로 승리하기 위해 전장의 안개를 없애주는 불법 프로그램(맵핵; map hack)을 사용하기도 한다. * 아군이 정찰하지 않은 지역의 정보가 ‘전장의 안개’로 차단되는 〈스타크래프트〉(1998). 왼쪽 하단이 미니맵이다. 이런 ‘전장의 안개’가 적용된 미니맵은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적인 지도와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근대의 지도 제작은 식민 지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었고 자주 미지의 땅에 대한 탐험과 타 민족과의 전쟁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마치 RTS 대전 게임에서 전장의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미지의 검은 땅을 정찰하고, 적군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도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축소하고 기호화 시켜 표현한 재현물이라면, 그러한 지도를 재현한 미니맵은 게임 공간의 재현, 그리고 지도의 재현이라는 의미에서 재현에 대한 재현이 된다. 2000년대 이후 MMO, RPG, 오픈 월드 어드벤처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에서 미니맵은 점점 더 많은 정보를 포함하게 되었다. 도로, 몬스터, 적군, 친구, 퀘스트 가능 여부, 상점과 여관 등 건물들, 목적지까지의 거리, 방위 등 많은 정보들이 기호와 아이콘으로 표시되어 플레이어에게 제공되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에 들면서부터는, 화면의 한 구석을 차지하던 이런 미니맵이 유명 트리플-에이 게임 시리즈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7년, 한 코타쿠(Kotaku) 기자는 “지난 15년 동안 부상한 대악마, 비디오 게임 미니맵의 지배가 마침내 끝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2017년부터 줄줄이 발매된 〈어쌔신 크리드(assassin’s Creed)〉, 〈호라이즌 제로 던(Horizon Zero Dawn)〉, 〈파 크라이(Far Cry) 5〉에서 미니맵이 사라지거나 그 자리를 작은 나침반이 대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선택에 대해 어쌔신 크리드의 디렉터 진 게스돈(Jean Guesdo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미니맵에서 하나의 아이콘에서 다른 아이콘으로 이동하는 이러한 방식을 깨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쏟은 노력과 자원 때문에 우리는 플레이어가 주변 풍경을 바라볼 수 있기를 정말로 원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미니맵을 나침반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한 이유입니다. 나침반은 여전히 힌트와 정보를 제공하지만, 당신 역시 세계에 참여하고 더욱 관여해야 합니다.” 게임에서 미니맵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미니맵이 세계로부터 눈을 돌리고 조잡한 아이콘과 목적지를 가르키는 화살표만 따라가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처음 게임에 미니맵이 도입되었을 때, 게이머들에게는 비디오게임이라는 매체 자체가 일종의 미지의 땅이었다. 그러나 게임이 등장하고 40-5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미 베테랑 탐험가가가 된 게이머들에게 미니맵은 오히려 세계의 아름다움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걸리적거리는 요소가 된 것이다. * 〈GTA 3〉 왼쪽 하단에 위치한 동그란 미니맵. 내려다보는 자와 그러지 못하는 자 FPS 장르 게임들인 〈배틀그라운드(PlayerUnkown’s Battlegrounds〉(2017)와 〈포트나이트(Fortnite)〉에는 미니맵이 있지만, 〈오버워치(Overwatch)〉(2016)에는 미니맵이 없다. 2016년, 〈오버워치〉의 치프 디자이너 제프 카플란(Jeff Kaplan)은 왜 〈오버워치〉에 미니맵을 추가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초보 유저들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앞으로도 미니맵을 도입할 생각이 없다고 답한 바 있다. 미니맵을 제공했을 때, FPS 장르에 익숙한 고수 유저들과 초보 유저들 간의 실력 간극이 더 크게 벌어지기 때문에 초보 유저들을 배려하기 위해 미니맵을 제공하지 않도록 선택했다는 것이다. 전장의 안개를 구현하는 RTS 장르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전 게임들에서는 정보 싸움이 승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다만 〈오버워치〉에서는 적의 위치나 진입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UI가 구현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고지대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운용하는 캐릭터 조합과 전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고지대를 선점했을 때 적군에 비해 공격할 수 있는 각도가 잘 나온다거나 후방 유닛을 공격하기가 쉬워진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야를 확보해 진입경로와 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초기 〈오버워치〉에서는 이러한 고지대를 선점할 수 있는 점프기나 z축 이동기가 있는 유닛들을 선택하는 전략이 유행하기도 했다. 물론 〈오버워치〉에서도 미니맵과 유사한 화면을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오버워치〉의 프로 레벨 경기를 시청하는 것이다. 공식 〈오버워치〉 리그는 게임 리그 시청자들에게 게임의 상황을 최대한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의 화면을 제공한다. 그러한 시점 중 하나가 바로 이 탑-다운(Top-down) 시점이다. 이는 게임을 플레이할 때 옆에 띄워주는 화면은 아니라는 점에서 엄밀히 말해 미니맵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진영과, 유닛들의 진입 경로와 대치 구도를 아이콘을 통해 설명하는 화면이라는 점에서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 〈오버워치〉 리그의 탑-다운 뷰. * 〈오버워치〉 리그의 중계 화면. 뿐만 아니라 과거 〈오버워치〉 리그의 공식 중계 사이트였던 트위치(Twitch)에서는 〈오버워치〉 리그 올-액세스 패스(Overwatch League All-Access Pass)를 구매하는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시점과 각도로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준 바 있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스펙타클을 제공해주었다. 경기가 중계되고 있는 메인 화면과 더불어,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캐릭터의 몸에 그대로 들어가 마치 그의 몸에 빙의한 듯한 시점으로 경기를 시청할 수도 있었고, 위에서 본 탑-다운 시점과 같이 위에서 모든 유닛들을 내려다볼 수도 있었다. 정작 게임을 플레이하는 선수들의 캐릭터는 게임 내 중력법칙에 묶여 게임 속 땅에 발을 디디고 있어야 했던 반면 (물론 특정 기술을 사용해 잠시 동안 공중에 떠 있을 수는 있다) 게임을 시청하는 사람과 중계진은 자유롭게 떠다니며 선수-캐릭터들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시점에 대한 일종의 공간적인 비유로서, 프로 선수와 시청자 간의 높고 낮은 위치 설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오버워치〉 리그를 플레이하는 프로 선수 안에서도 고지대를 선점한 플레이어와 그렇지 못한 플레이어가 있는 것처럼,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선수와 리그 경기를 시청하는 시청자 사이에는 가시성의 격차가 존재한다. 〈오버워치〉의 플레이어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높은 지대로 올라가야한다. 하지만 아무리 고지대를 선점하더라도 선수는 관객이 볼 수 있는 광경을 볼 수 없다. 반면 관객은 선수의 시점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그를 위에서 내려다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시야와 정보의 불균형함은 제레미 벤담이 제안하고, 미셸 푸코가 근대적인 공간의 전형으로서 비평했던 파놉티콘의 구조를 연상시킨다. 미셸 푸코는 학교, 병원, 군대와 같은 공간들도 본질적으로는 파놉티콘 구조를 띄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감시 체계는 그러한 시설 안의 재소자들(학생, 환자, 군인들)을 유순하게 길들인다고 보았다. 파놉티콘 구조는 오늘날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정보의 세계에도 편재한다. 빅 테크 회사들이 이용자의 성별, 나이, 위치, 검색 기록과 시청 기록 등 갖가지 정보를 수집해 맞춤 광고를 내놓는다는 것은 오늘날 더 이상 놀라운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오버워치〉와 같은 대전 게임에서 미니맵이 사라지는 것은, 앞서 제프 카플란이 말했듯,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소수의 고수가 정보를 독식하는 것을 견제하고 게임이 극단적으로 서열화 되는 것에 맞서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여전히 이스포츠의 관객에게는 선수가 볼 수 없는 것도 전부 내려다 볼 수 있는 마치 신과 같은 눈이 부여된다. 물론 이러한 시선의 위계가 게임 리그를 시청하는 재미의 큰 부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모든 것을 조망하는 절대적인 관찰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김지윤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신체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임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 게이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202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 영화·미디어학과 (Cinema and Media Studies) 박사 과정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 기울어진 협곡에서 - <당신엄마가 당신보다 잘 하는 게임〉에 부쳐

    사람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공평하다는 것이다. 게임은 모니터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판단할 방법이 없고, 오로지 그가 제때에 버튼을 누르고 있는지 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게임은 인종, 성별, 계급에 상관없이 오로지 실력과 그것을 위해 쏟는 노력만 있으면 누구든지 승자가 될 수 있다. 이는 인터넷이 보편화 되던 시절 즈음에 유행하던 “전자민주주의”라는 장밋빛 구상, 즉 익명성을 전제로 하는 온라인에서는 모두가 계급장을 떼고 의견 대 의견으로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의 게임 버전이었다. < Back 05 GG Vol. 22.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TaeSeop Choi Books written include A Game User's Manual for Everyone, Korea, the Male, and Surplus Society.

  • [Editor's View] 게임의 상품성,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디지털게임은 그 출발점부터 시장에서 상품으로 규정된다는 속성과 긴밀한 연계를 이루며 발전해 왔습니다. 제작부터 유통, 소비에 이르기까지 이 매체는 정말 많은 자원을 소모하며, 그 소모되는 자원은 시장의 기능에 의해 충당되기에 게임의 속성에는 지속적으로 상품으로서의 성격이 개입합니다. < Back [Editor's View] 게임의 상품성,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09 GG Vol. 22. 12. 10. 디지털게임은 그 출발점부터 시장에서 상품으로 규정된다는 속성과 긴밀한 연계를 이루며 발전해 왔습니다. 제작부터 유통, 소비에 이르기까지 이 매체는 정말 많은 자원을 소모하며, 그 소모되는 자원은 시장의 기능에 의해 충당되기에 게임의 속성에는 지속적으로 상품으로서의 성격이 개입합니다. 이런 게임의 상품적 속성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텍스트 내부에도 늘 강한 영향력을 끼쳐 왔습니다. 동전투입 게임 시대의 1라운드 보스부터 오늘날 보편화된 현질과 자동사냥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게임 텍스트는 자신에게 소비자가 어떤 방식으로 비용을 지불하느냐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일어나는 결제양식의 변화가 다양해지는 시대 앞에 섰습니다. GG의 이번 호 고민은 그래서 상품으로서의 게임으로 향합니다. 플랫폼의 게임 독점, 구독결제 서비스, 부분유료결제 문제, 할인과 번들링에 이르기까지 많은 게임의 상품적 속성들은 게임이 만드는 세계 내부에까지 깊숙하게 침투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게임담론에서 게임의 상품적 속성은 그 비중만큼 두텁게 다뤄지지는 못한 듯 싶습니다. 미약하나마 GG가 그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다양한 필자들과 함께 GG는 2022년 12월에 상품으로서의 게임들을 이야기해봅니다. 새롭게 등장한 결제방식과 유통방식들 속에서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가치와 의미는 또 어떻게 흘러갈까요? 정답없는 고민이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찌보면 조금 늦은 발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GG의 독자들은 게임과 사회를 동시에 고민하는 독자들일 것입니다. 게임과 사회라는 두 주제 사이에서 게임의 상품성은 무척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제야 이 이야기를 던지는 늦은 감에 대해 송구하다는 말씀 드리며, 이번호도 많은 애정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온라인 시대에서 ‘PC방’이 살아가는 법

    게임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과 함께한 놀이 문화로 통한다. 처음에는 간단한 오락이 가능한 값비싼 콘솔기기로 시작해, PC 보급이 본격화됨에 따라 가정 내 기초 게임 환경 구축이 가능해졌고, 지금에 와서는 거리와 관계없이 편하게 온라인으로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열렸다.  < Back 온라인 시대에서 ‘PC방’이 살아가는 법 08 GG Vol. 22. 10. 10. 게임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과 함께한 놀이 문화로 통한다. 처음에는 간단한 오락이 가능한 값비싼 콘솔기기로 시작해, PC 보급이 본격화됨에 따라 가정 내 기초 게임 환경 구축이 가능해졌고, 지금에 와서는 거리와 관계없이 편하게 온라인으로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열렸다. * 우리가 접하는 '게임'의 모습은 계속 달라져왔다. 이런 게임의 변천사를 논하는데 있어서, 특히 국내에 한정해서 본다면 ‘PC방’은 빠질 수 없는 주제 중 하나다. 이르게 본다면 그 태동이 이루어진 1990년대부터, 가장 활발했던 2000년대까지, 한국 게이머에게 있어서 PC방은 누구나 한번쯤 거쳐간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게이머라면, 누구나 ‘PC방’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수많은 게이머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것은, 사실상 게임 트렌드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수많은 게임사들이 자사 게임의 인기를 확인하기 위해 PC방 순위를 확인했으며, 프로모션 역시 가장 먼저 PC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PC방은 여전히 존재는 하지만, 그 위세가 이전과 같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는 온라인 시대가 대두되면서 단순히 PC방이 쇠락한 것일까? 아니면 오프라인상에서 게임을 즐기는 문화에 변화가 생긴 것일까? 이번 칼럼을 통해, 지금 PC방이 점한 위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PC방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 곁에 ‘PC방’은 나름 오랜 시간 함께해왔다. 물론, 그 시작점은 어디까지나 외국의 ‘인터넷 카페’처럼 게임을 제공하기 위한 공간보다는 PC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국내에 한정해서는 이 PC방은 그야말로 게임 하나만을 위한 시설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점이 PC방의 ‘황금기’로 통하는 2000년대 초다. 수많은 사람들이 PC방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이미지를 형성한 시점으로, 이 시점에 이미 주요 가정에는 PC 보급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별다른 방해 없이 친구들과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과 다양한 PC방 혜택 제공 등이 맞물리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이 시절의 분위기란… 아마 PC방이라는 단어를 듣고 친구들과 컵라면과 오다리를 먹으면서 게임을 즐기던 모습이 떠오른다면, 분명 이 당시에 PC방을 진하게 체험해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학생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는 만큼, PC방에 대한 학부모 사이 경각심도 상당했다. 애당초 아직 게임을 즐기는 것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고, 동시에 PC방도 아직 간접 흡연 같은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았기에 점차 여러 규제들이 적용되던 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이때 축적된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나중에 PC방이 크게 달라진 후에도 걸림돌처럼 작용하기도 했다. 황금기가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PC방은 e스포츠와 같은 게임 문화를 등에 업고 인기 시설로 군림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분위기마저도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PC방의 쇠퇴에 대해서는 매번 업계에서도 다양한 주장이 나오지만, 가장 많이 꼽는 것이 바로 ‘필요성’의 감소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게임을 위해 가정 내 고사양 PC를 구매하는 일이 일반화됐으며, 게임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면서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많이 사라졌다. 아울러,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디스코드’와 ‘스카이프’ 같은 음성 채팅 프로그램이 떠오르면서 오프라인 모임을 고집할 이유마저도 없어졌다. 사실 그간 게임을 하면서 부족하게 느꼈던 부분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마당에, 게이머들 입장에서 더 이상 PC방을 선택할 이유들이 많이 사라졌다고도 할 수 있다. * 손님들의 게임 환경이 PC방을 뛰어넘은 셈이다. 이런 부분을 PC방 업계에서도 큰 위기로 인지하고, 이후에 크게 변한 모습이 우리가 현재 접하는 PC방 모습에 해당한다. 그저 게임 하나만을 보고 가던 시설은 복합 놀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상태며, 더 많은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시설의 청결함과 다채로운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다. 새롭게 달라진 PC방은 게임을 즐기는 손님의 편의를 높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높은 고사양 PC와 주변기기는 기본이고, 보다 넓어진 좌석, 스마트폰 충전기 완비, 수준 높은 먹거리 판매, 그리고 특정 손님들 취향을 겨냥한 커플석, 단체석, 스트리머석 같은 좌석들도 존재한다. * PC방도 젊은 손님을 잡기 위해,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를 서비스의 발전을 반증하는 것처럼, 현 PC방의 매출에서 먹거리 매출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일부 PC방은 준수한 먹거리의 맛과 24시간 영업을 강점으로 내걸고, 배달앱까지 진출한 상태다. 주변 매장과의 경쟁이 점화될 수 있는 요금을 건드리는 대신에, 대부분 다른 서비스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다양한 업체와의 협력도 지금의 PC방을 논하는데 있어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하드웨어 브랜드, e스포츠 구단과 협력하여 이에 특화된 PC방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조금 더 다양한 취향을 가진 손님을 만족시키고, 단골로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아끼지 않고 있다. * 먹거리도, 볼거리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금의 PC방이 보여주는 모습은 우리가 자주 접했던 동네 PC방 시절과는 크게 다르다. 오히려 그 형태는 하나의 기업체에 가까운 편이며, 보다 철저하고 확실한 기획을 바탕으로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아직 마무리 단계가 아닌 한창에 해당한다. 늘어난 선택지 속 ‘PC방’의 입지 위의 이야기만 들어보면, 지금의 PC방은 이전보다 훨씬 시설 면에서, 서비스 면에서 앞선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제 자연스럽게 손님이 늘어나는 일만 남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 좋은 시설이 해답은 아니다. 일단 소위 ‘황금기’로 통하던 시절과 지금 현재의 게임 문화 차이를 비교해보자. 일단 앞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과거에는 사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애당초 집에서 게임을 즐기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값비싼 콘솔은 아예 논외였다. 그런 의미에서, PC방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편한 마음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게임을 위해 최적화된 PC 사양, 남들 눈치는 크게 보지 않아도 되는 환경, 아울러 일부 게임의 월 정액제를 대신하는 가맹 PC방만의 혜택도 있어서 그야말로 게임을 위한 아지트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근처 PC방에 우연히 들렀다가 가까운 친구를 만날 확률이 높을 정도로, PC방은 만남의 장으로써 역할도 톡톡히 수행했다. 자연히 친구들이 많이 가는 PC방은 집결의 장소가 됐고, 이런 부분에서는 한 시절을 풍미한 다른 오프라인 게임 문화 ‘오락실’의 입지를 계승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게임은 이제 가장 보편적인 놀이 문화로 자리잡았으며, 이를 위한 고사양 PC도 집에 대부분 갖추고 있다. 아울러, 굳이 PC가 아니더라 모바일, 콘솔과 같은 다른 플랫폼 선택지도 다양하게 준비된 상태다. 이런 시점에 PC방으로 향하는 사람은 극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손님 연령대의 변화다. 지난 2021년에 공개된 엔미디어플랫폼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PC방 이용자 수는 고등학생(17세~20세)과 대학생(21세~25세)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매출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초년생(26세~30세)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다. 더욱이 이들의 이용 요금이 먹거리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간접적으로 PC방을 진득하게 이용하는 손님 태반이 연령대가 높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 엔디미어플랫폼 PC방 이용 유저 평균 사용 금액(시간) 현장 의견도 크게 다르진 않다. 이전과 달리 연령대가 높은 손님들이 예전처럼 단골로 자리잡는 경우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PC방 업주들은 결국 과거 PC방을 경험해본 세대들이 PC방을 주로 이용하는 것이고, 보다 다양한 것을 접하고 있는 지금의 세대들에게는 PC방이 오프라인 게임 문화로써 그다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 것 같다고 보고 있다. 그 말처럼, 지금의 세대들에게는 굳이 게임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널려있다. 오프라인 게임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굳이 장소가 PC방으로 한정되지 않고, e스포츠 대회 관람, 게임 행사 등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그게 꼭 PC방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다. 이전처럼 PC방이 더 이상 ‘필요’에 의해 가는 장소가 아닌 시점에, 현 PC방 업계가 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품기 위해 다변화의 과정을 겪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대로, 지금 국내 게이머들 입장에서 오프라인상으로 게임을 즐기는데 있어서,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전과 같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된 시기도 아니거니와, 게임을 즐기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 시기도 아니기에 사실상 이전처럼 PC방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는 힘든 상태다. 어떤 의미로, 우리가 기억하던 PC방에서 함께 놀면서, 그야말로 랜파티가 수시로 일어나던 시절의 이야기는 이제 정말 ‘추억’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 PC방이 아니더라도, 오프라인 문화는 번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프라인 게임 문화가 이전에 비해 쇠퇴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게임이 대표적인 취미로 자리잡으면서, 달리 PC방이 아니더라도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e스포츠 대회, 코스프레, 오프라인 행사, 팝업스토어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아울러, PC방도 이런 분위기에 밀려나지 않고, 그 나름대로 지속 발전해나가면서 게임을 즐기기 위한 건전한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아무리 그대로 이전과 같지는 않다고 보는 시선들도 있지만, 그만큼 이러한 PC방을 즐기는 방식이 계속 변화하는 시점이기에 아직 온전히 바뀐 인식이 자리잡지 못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 마찬가지로 PC방도 그에 걸맞은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온라인 시대에 접어들면서 게임업계에서는 PC방과 같은 오프라인 문화를 이제는 쇠퇴했다고 보고 다소 외면하는 시선도 있지만,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양한 기회와 가능성이 산재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게임을 즐기는 문화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 역시 간과해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NN 취재 기자) 이찬중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즐기는 것과 더불어, 지금의 PC방 모습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 [북미통신]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변화하는 북미 게임계의 DEI 기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하자마자 한 달안에 70개가 넘는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그 중에서도 취임 첫 날 바로 서명하고 공포한 행정명령들은 향후 정책적 방향을 가늠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중 하나가 백악관 행정명령 14151호다. 행정명령의 제목은 ‘급진적이고 낭비적인 정부 DEI 프로그램의 종료’다. < Back [북미통신]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변화하는 북미 게임계의 DEI 기조 23 GG Vol. 25. 4. 1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하자마자 한 달안에 70개가 넘는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그 중에서도 취임 첫 날 바로 서명하고 공포한 행정명령들은 향후 정책적 방향을 가늠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중 하나가 백악관 행정명령 14151호다. 행정명령의 제목은 ‘급진적이고 낭비적인 정부 DEI 프로그램의 종료’다. DEI는 Diversity, Equity, Inclusion의 약자로 다양성, 평등, 포용을 이야기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성소수자나 소수인종과 같은 비주류 계층에 대한 차별하지 않고 나아가서 배려를 해주는 모든 정책을 의미한다. 행정명령은 정부기관 내에서 이 DEI 정책들을 폐기하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다양성과 관련한 직책은 모조리 없애고 인종이나 성적 지향이 고려되서 지급되던 보조금 등은 다 폐지한다. 정부기관 채용을 할 때나 수의계약을 맺을 때도 인종이나 성적지향에 대한 고려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사실 게임계에서도 DEI는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였다. 일부 게이머들은 게임 내용에 하등 상관없이 DEI적인 요소를 게임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서 비판을 하곤 했다. 게임 내 주요 캐릭터가 성적소수자이거나 소수인종인 경우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반응도 나오곤 했다. 심지어 게임 주요 캐릭터가 미형이 아니면 ‘또 PC(정치적 올바름) 묻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게임계는 DEI 문제에 대한 첨예한 전쟁터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해리 포터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게임 <호그와트 레거시>였다. 해리 포터 원작자인 J. K. 롤링이 트랜스젠더 혐오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내고 게임의 주요 제작진 중 한 명이 소수자 혐오 발언으로 가득찬 유튜브를 운영해온 것이 밝혀지자 많은 사람들이 게임의 제작사 워너 브라더스를 비판하고 나섰다. 결국 완성된 게임을 보면 주요 NPC는 트랜스젠더거나 동성애자가 많았고 학교 내 캐릭터들도 ‘적절하게’ 인종적 분배가 되있었다. 플레이어 커스터마이제이션에는 트랜스젠더도 있었다. <어쌔신 크리드> 최신작을 끌고 들어오지 않더라도 대작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북미의 경우 게임계에서는 DEI의 위세가 강한 편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주류 계층 모두를 고객으로 끌어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백인 남성 위주였던 미국의 게이밍 커뮤니티의 외연을 확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DEI였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부문 한 임원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고객층을 끌어들이는 방법’ 중 하나가 DEI 측면의 부각이라고 밝힌 바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취임하면서 DEI 정책 자체가 공격받자 게임계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직장 내 변화 가장 가시적인 변화는 역시 직장 내에서의 변화다. 한 때는 DEI의 전도사처럼 나섰던 테크업계와 게임업계는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블룸버그에 따르면 S&P 지수에 편입돼 있는 기업 100군데 중 DEI 프로그램을 축소한 것은 20%를 넘는다. 메타, 구글, 아마존도 DEI에 소극적으로 변했다. 게임업계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다. 엑스박스라는 플랫폼은 물론 액티비전블리자드킹의 모회사기도 한 마이크로소프트는 DEI 관련한 팀 자체를 폐지하기도 했다. 당연히 게임업계에서는 이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게임업계의 일터는 남성중심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문화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바 있어서 더욱 그렇다. 수유실이 없어서 회의실에서 수유를 하고 있는 여직원을 놀리려 남자 직원들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는 에피소드가 법정에서 명시된 블리자드의 케이스가 이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아직까지 현직의 이야기가 기사화 등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개발자 커뮤니티 등에서 변화를 느꼈다는 목소리는 조금씩 나오고 있다. 커뮤니티의 변화 게이밍 커뮤니티에서는 그동안 DEI를 공격하는 움직임이나 비판하는 목소리가 꽤 있었지만 트럼프 당선 이후로는 강도가 한층 심해졌다는 인상이 크다. 이미 10여년 전 게이머게이트 사건으로 성차별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괴롭힘 논란이 있었던 것을 상기하면 우려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에 가장 큰 사례는 스윗 베이비 INC 사건이었다. 스윗 베이비 INC는 캐나다에 있는 내러티브 컨설팅 회사다. 말 그대로 게임의 스토리에 대해서 자문을 하는 것이다. 게임 내 이야기 구성과 대사 작성 등을 전문으로 한다. <앨런 웨이크 2>와 <갓오브워 라그나로크> 등에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해부터 게이밍 커뮤니티 일부에서 스윗 베이비가 게임에 강제로 다양성을 주입한다는 음모론이 확산됐다. <앨런 웨이크 2>에 등장하는 사가 앤더슨이 흑인 여성인 것은 스윗 베이비 때문이라는 루머가 퍼졌다. <앨런 웨이크 2>의 디렉터가 직접 이를 부인했으나 소용 없었고 스윗 베이비가 참여한 게임은 불매하자는 스팀 그룹이 만들어져 가입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문제는 DEI가 마치 게임업계 전체의 적처럼 공격받는 현상에 대해서 플랫폼은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스팀은 스윗 베이비 안티 그룹에 대해서 활동을 제재하지 않았고 이 그룹을 움직이는 디스코드 서버 또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스윗 베이비의 CEO 킴 벨에어는 “우리는 게임 속 문제를 상상해 쓰는 작가들일 뿐, 실제 괴롭힘을 막는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플랫폼은 분명 더 나은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게임 내 변화 일터와 팬 커뮤니티 양 쪽에서 DEI가 거세게 공격받고 있기 때문에 이는 게임 내부의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나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서 미국에서는 이제 성별은 단 두 개라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의 피해는 커질 것이다. 게임에서 등장했던 트랜스젠더 캐릭터들은 이제 갈 곳을 잃을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과장된 위협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해 공개돼서 파장을 일으켰던 ‘프로젝트 2025’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프로젝트 2025는 보수성향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공개한 문서로 향후 미국 보수정치의 전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문서에서는 공공연하게 젠더나 인종과 관련된 ‘평등정책’을 축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힌다. 헤리티지 재단 대표 케빈 로버츠는 이미 트랜스젠더의 권리 옹호를 포르노그래피로 규정하고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프로젝트 2025가 그대로 실행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맥락을 같이 하는 ‘두 개의 성별’ 행정명령을 발표한 마당에 <사이버펑크 2077>과 <발더스 게이트 3>에 트랜스젠더 캐릭터가 있다는 이유로 포르노로 취급될 수 있다는 예상은 웃어넘기기 힘들다. 여기에 플랫폼이 콘텐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질 수는 없다는 플랫폼 책임 보호법도 폐지하자는 제안이 있어서 결국 게임사들의 자기검열은 더욱 심해지고 다양성과 관련한 콘텐츠는 보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예측은 힘을 얻는 중이다. 게임이라는 전장 게임은 이제 어린 세대만 즐기는 문화가 아니고 모든 세대가 즐긴다. 따라서 게임만큼 폭넓은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체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계가 이데올로기의 가장 치열한 전장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상업적인 이유로 혹은 문화적 트렌드로 지금까지 DEI가 힘을 발휘했다면 이제는 백래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최소한 트럼프의 정책적 추진력이 약화될 것으로 보이는 2026년 중간선거 전까지는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만드는 쪽과 게임을 즐기는 쪽은 어떤 선택을 할까에 대해서 고민은 커져만 갈 것으로 보인다. Tags: DEI, 트럼프, 북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나성인) 홍영훈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 [제4회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심사평

    실망하지 말고 계속 게임을 즐기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토론하며, 끊임없이 글을 생산해주기를 기대한다. 문학적 재능이나 학술적 깊이 하나만으로는 훌륭한 비평문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게임에 대한 애정을 품으면서도 독창적인 문제의식과 충실한 개념 자원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이왕이면 재미있게) 정리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비평가들의 출현을 기대한다. < Back [제4회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심사평 26 GG Vol. 25. 10. 10.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한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응모작 80여 편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상향 평준화’이다. 이전과 비교하여, 대중에게 공개되어도 모자람이 없을 좋은 글의 수가 부쩍 늘었다. 그런 의미에서 양과 질 모두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동시에, 눈이 번쩍 뜨이는 ‘걸작’은 드물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수상작으로 두 편만을 선정한 이유이다. 응모작들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고르게 높아졌음에도, 심사위원들이 중요하게 고려한 글의 형식적 완성도, 독창적인 시각, 비평의 보편성 확보, 그리고 게임에 대한 통찰과 애정이라는 주요 기준들을 모두 만족시킨 작품은 많지 않았던 셈이다. 최종적으로, 류호준의 <게임은 어떻게 우리를 소외시키는가>와 강현의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비평을 위한 시론: 캐릭터 뽑기가 갖는 의의란> 두 편을 제 4회 게임비평 공모전의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게임은 어떻게 우리를 소외시키는가>는 언뜻 보면 진부할 수 있는 ‘소외’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았으나, 이를 실존적 차원으로 확장해 게임 매체의 특수성과 연결한 점이 돋보였다. 글의 전개가 체계적이어서 독이성이 뛰어나고, 글의 구조가 수미상관을 이루어 설득력이 높았다. 무엇보다, 결론 부분에서도 자신의 문제의식을 흐트리지 않고 깔끔하게 완결지은 점을 높이 샀다. 다른 응모작들은 훌륭한 논의 전개를 펴다가도 제대로 된 마무리를 하지 못해 감점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글은 그러한 아쉬움을 느낄 수 없었다. 글이나 게임 레퍼런스 활용이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비평의 보편성과 깊이를 확보한 우수작이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었다.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비평을 위한 시론>은 서브컬처 게임의 ‘뽑기’ 메커니즘과 이용자 애착 관계를 비평적 주제로 삼아, 지금까지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던 영역을 다룬 흥미로운 시도였다. 글의 비평적 초점이 분산되었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이는 산업적 맥락과 수용자 경험을 함께 담고자 했던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선해하였다. 또한 제목에서 드러나듯, 새로운 현상을 포착하고 이를 비평으로 끌어오려는 ‘시론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즉 저자의 차별적 시선과 통찰력만으로도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비록 수상작에 포함되지는 못했으나, 마지막까지 수상 후보로 논의되었던 몇 편의 응모작을 추가로 언급하여 저자들의 노고를 상찬하고 격려하고자 한다. <게임 속 상점을 재개발하기>는 게임 속 ‘상점’이라는 익숙한 요소를 비평 대상으로 삼은 독창적인 발상이 돋보였다. 게임 속 상점의 본질과 의미, 그리고 각 게임에서 드러나는 맥락들을 잘 엮어낸 수작으로, 저자는 좋은 비평가의 소질을 가졌다고 평한다. 참신성에 비해 보편적 설득력이 미흡한 점이 다소 아쉬웠다. <슈퍼로봇대전: 축제적 시뮬레이션과 재매개된 기억의 양가성>는 문제의식이 매우 흥미로웠다. 글의 깊이도 인상적이었다. 폭넓은 독서량과 게임의 매체적 특성을 이어보려는 저자의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단, 개념 사용이 부정확하거나 과잉 차용되어 독이성을 떨어트린다는 흠이 있었다. <방어의 미학: 타워 디펜스가 재정의하는 게임적 주체성>은 장르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고 글의 흥미도도 높았다. 대신 추상적 개념들을 다소 성기게 활용하여 구체적 논의로 심화되지 못한 점, 즉 비평으로서의 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외부저장소로서의 플레이어>는 좋은 아이디어와 주제를 포착하여 짜임새 있는 내용을 전개했으나, 마지막에 글의 결론을 초점 하나로 수렴시키지 못하고 흩뜨려버렸다는 점이 감점 요인이 되었다. 주제의식에 비해 마무리가 약했다. <양동이와 쇠지렛대로 이룬 반역 게임 속 잔여적 사물성에 관하여>는 게임 속 오브제를 통해 ‘잔여적 사물성’ 개념을 제시한 시도가 신선했다. 글의 논리적 구성도 뛰어났다. 그러나 잘 알려진 사례를 반복적으로 다루어 다소 지루하다는 점, 독창적 논지를 끝까지 잘 밀고 가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논쟁적이고 흥미로운 문제 제기라는 점은 높이 살 수 있었다. 이 다섯 편은 물론이거니와, 아깝게 수상작에 포함되지 못한 좋은 글들이 여럿 있었다. 실망하지 말고 계속 게임을 즐기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토론하며, 끊임없이 글을 생산해주기를 기대한다. 문학적 재능이나 학술적 깊이 하나만으로는 훌륭한 비평문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게임에 대한 애정을 품으면서도 독창적인 문제의식과 충실한 개념 자원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이왕이면 재미있게) 정리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비평가들의 출현을 기대한다. 벌써 4회를 맞이한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이 그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으며, 두 분의 당선자 역시 이 토양 위에서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를 기원한다. 땀과 정성이 배인 글을 보내주신 모든 응모자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큰 감사와 축하를 보낸다.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윤태진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세대학교 교수) 윤태진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20년 이상 미디어문화현상에 대한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했다. 게임, 웹툰, 한류, 예능 프로그램 등 썼던 글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들”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게임문화연구』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고, 요즘은 《연세게임·이스포츠 연구센터(YEGER)》라는 연구 조직을 운영하며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게임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상상된 공간의 지도화: 가상공간의 전시와 도식화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1)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백(Michel Houellebecq)의 문장이다. 영토가 위상학적 차원에서 물리적인 땅과 장소를 가리킨다면 지도는 그 땅을 표상하는 이미지다. 지도는 왜 영토보다 흥미로운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기호화 하는 작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도는 신체와 물리적인 공간을 서로 마주하게 만드는 일종의 ‘인터페이스’(inter-face)로 기능하며, 현상학적 맥락에서 분리할 수 없는 공간적 경험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아마도 우엘백이 말한 ‘흥미’는, 실재 세계를 매핑(mapping)하는 인식론적 태도와 세계를 이미지로 상상하는 형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Back 상상된 공간의 지도화: 가상공간의 전시와 도식화 11 GG Vol. 23. 4. 10.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 1)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백(Michel Houellebecq)의 문장이다. 영토가 위상학적 차원에서 물리적인 땅과 장소를 가리킨다면 지도는 그 땅을 표상하는 이미지다. 지도는 왜 영토보다 흥미로운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기호화 하는 작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도는 신체와 물리적인 공간을 서로 마주하게 만드는 일종의 ‘인터페이스’(inter-face)로 기능하며, 현상학적 맥락에서 분리할 수 없는 공간적 경험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아마도 우엘백이 말한 ‘흥미’는, 실재 세계를 매핑(mapping)하는 인식론적 태도와 세계를 이미지로 상상하는 형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지도를 만든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를 발굴하는 모험적 가능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지배와 통치의 욕망이 투사된 이미지다. 게임에서 지도는 게임의 배경과 레벨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도, 즉 맵(map)은 플레이어의 무대가 되며 스토리 전개를 구성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게임맵은 플레이어의 행위와 게임 시스템 사이의 인터페이스로서 작동하며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안내하는 이미지다. 미술의 영역에서도 맵은 전시의 맥락에서 중요한 위상을 가진다. ‘전시 도면’으로 불리는 미술에서의 맵은 공간에서 목적지를 찾거나, 단순히 관객에게 동선을 안내하는 기능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시 이전부터 이후를 관장하는 시공간적 설계이며 공간과 작품의 관계, 그리고 작품을 향한 관객의 운동성까지 설정하는 또 다른 인터페이스다. 2) 인터페이스는 사전적 정의에서 ‘서로 다른 두 시스템을 접속’하게 하는 장치를 말한다. 상호작용을 기본 조건으로 하며 이질적인 대상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지에 관여하는 것이다. 사이를 매개하는 표면인 인터페이스 개념을 두고 던져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인터페이스는 무엇과 무엇 사이에 놓여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그것들을 연결하는가? 게임에서 인터페이스는 인간의 행위를 소프트웨어와 연결시키는 과정에서 작동된다. 정보의 송수신을 넘어서 상호적으로 반응하는 체계를 드러내는 조건인 것이다. 오늘날 게임은 콘솔게임 같이 컴퓨터 모니터 시스템을 넘어 3차원의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등 메타버스의 세계에서 구성되고 있다. 그리고 메타버스는 게임뿐 아니라 미술 영역까지 깊숙하게 진입하는 중이다. 메타버스의 경제 안에서 현실과 가상이 경계 없이 혼합되고 있다면 우리는 두 장소가 어떤 방식으로 겹쳐지고 있는지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글은 공간과 인간의 행위가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 살피기 위해 게임의 문법을 빌려오는 당대 미술의 형식을 살펴본다. 특히 공간이 하나의 이미지로서 작동하는 메타버스 전시에서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이미지로 펼쳐낸 지도/도면 이미지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지 상상해본다. 지도가 일종의 접속면으로서 공간과 신체 행위를 매개하는 대상물이 된다면, 게임에서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어의 경험을 유도하는가? 게임과 미술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관심을 방향 짓고 경험을 구조화 하기 위해 규칙들을 사용한다. 게임의 디자이너는 특정 종류의 규정적 활동을 조형하고 안정화된 경험에 관한 규정을 세운다. 3) 이 규정은 게임 맵을 통해 구성되곤 하는데, 특히 2000년대 이후 어드벤처(adventure)류 게임은 하나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주인공이 겪는 모험을 구성해왔다. 주인공은 몇몇 한정된 장소들을 돌아다니거나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챌린지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한다. 이때 게임맵은 게임의 배경을 설명하는 주요한 이미지로서 주인공의 모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역할을 하곤 했다. 한편, 오늘의 대다수 게임 공간은 3차원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추세다. 현실의 모습을 본 따오거나, 도시의 랜드 마크, 도로 등 풍경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플레이어의 경험을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다. 과거 게임맵이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인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안내하는 기능을 했다면, 오늘날 3D 애니메이션으로 시뮬레이션 된 게임은 게임의 공간을 단번에 파악 수 있는 맵을 제공하기보다 플레이어가 직접 공간을 탐색하면서 방향과 장소를 찾도록 설정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당대 게임맵은 플레이어가 공간을 스스로 탐험하면서 게임의 단계를 파악하게끔 유도한다. 이러한 방식은 게임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목표 설정과 스테이지를 직접 설정할 수 있도록 방향키를 건네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게임이 ‘의사소통의 기술’이라고 할 때, 게임의 형식은 모종의 규칙과 규정을 필수조건으로 둔다. 4) 플레이는 행위성의 양상 및 활동의 형식을 서로 상호 참조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조화 되는 것이다. 즉 마치 빽빽한 나무 사이로 길을 잃게 만드는 숲처럼, 게임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낯선 공간을 구축하지만, 게임의 정해진 규칙과 방향성은 결코 플레이어를 방황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물론 룰을 따를지 말지는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겨둔다. 하지만 게임은 질서화 된 공간이 안내하는 특정 서사를 통해 플레이어의 몰입을 유도한다. 그곳에서 설명되지 않는 공간은 없다. 버그가 아닌 이상. 미술에서 지도에 준할만한 것은 전시 도면이다. 게임맵이 플레이어에게 따라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전시 도면은 구체적이거나 단일한 지시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도면은 마치 여러 악보를 한데 모아 전체 곡의 구성을 파악할 수 있게끔 그려놓은 스코어(score)처럼 기능한다. 5) 말하자면 그것은, 개별 작품의 위치로부터 전시라는 하나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이미지다. 하지만 2차원으로 펼쳐진 전시 공간에 개별 좌표를 기입해두는 방식의 전시 도면은 ‘대상 중심적’(object-centered)이었던 전통적인 예술 작품 형식에 적합하다. 특히 전시 도면이 단순히 작품의 위치를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 VR 등 관객의 포지션이 중요한 작품을 하나의 좌표값으로 환원하기는 까다로워 보인다. 관객의 참여까지 작품의 일부로 확장한 까닭에 작품의 공간적인 범위와 기준이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기술 기반의 작품이 예술의 큰 조류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다양한 입력 센서와 인터페이스의 발전에 따라 작품은 더 이상 완결된 형태로 관객에게 다가서지 않으며,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와 개입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작품의 의미 생산과 ‘출력’값은 관객의 ‘입력’으로부터 산출되는 것이다. 관객의 움직임이라는 물리적인 행위는 카메라 기술과 이미지 처리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컴퓨터 시스템과 상호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예술의 형식은 게임의 덕목을 닮아있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어떤 경험(gamer experience)을 부여하느냐에 집중하는 것처럼 인터랙티브 형식의 작품 역시 관객과 어떻게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랙티브 아트는 전시라는 특수한 맥락 안에서 관객의 물리적 경험을 현상학적 차원에서 다루기보다 단편적인 행위만을 포착하고 투사하는 방식으로 반복되곤 한다. 이러한 반복은 작품에 대한 이미지적인 경험이라기보다 이미지 출력을 바라보게 하는 체험 수준에 머문다. 경험에 대한 예술의 갈망은 이후 여러 인터페이스의 발달과 함께 VR 기술을 예술의 형식으로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이용한 상호작용과 달리 VR 기술은 현상학적인 차원에서 관객의 공간적 경험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작품과 물리적 행위의 상호성을 구성한다. HMD(Head Mount Display)를 착용한 관객은 자신의 신체로 실제 공간을 수행하는 동시에 이미지가 구축해놓은 가상공간을 활보한다. 3D 컴퓨팅 기술의 발전과 HMD의 상용화 및 보급으로 더욱 정교화 되고 있는 VR 경험은 가상공간에서 작품에 관한 몰입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운 기술 경험에 대한 가능성이 아니라, 관객이 공간과 관계 맺는 방식이다. 역사적으로 미술은 관객이 작품으로부터 거리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탐구해왔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어떤 형식이건 간에 전시라는 특수한 시공간에 작품을 위치시키는 것은 관념적 이미지를 어떻게 물질적인 차원에서 다룰 것인지에 관한 실험이다. 하지만 VR 기술이 작품의 형식으로 도입되면서 전시는 물리적인 공간에 가상의 이미지 공간을 겹쳐놓기 시작한다. 공간을 그려낸 전시 도면이 포착하지 못한 또 다른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공간 안에 중층된 새공간. VR 작품을 표기하고 있는 도면은 실상 작품의 위치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진입하는 장치 혹은 출발점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은 물리적인 공간과 이미지 공간 사이를 거닐며 자신의 행위를 기입한다. 이러한 형식은, 게임 디자이너가 어떻게 인간 경험의 일부를 공간에 기입하고 기록할 것인지 고민하는 지점에서 게임의 방법론과 닮아있다. 6) 특수한 물리적 행위가 어떻게 게임의 특정 규칙 및 목표와 상호작용하는지 질문하면서 공간을 디자인하는 게임의 특징과 유사한 것이다. 이때 특정한 서사를 기반으로 구체적인 목표가 설정되는 게임 형식과 달리 VR 작품으로 기획된 전시 형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따라갈 서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미지 혹은 작품을 파편적으로 흩뿌리며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서사를 조합하고 구축하기를 제안한다. 이쯤에서 작년 하반기에 개최된 《닷과 대쉬의 모험》(2022, 엘리펀트스페이스)을 살펴보자. ‘버추얼 멀티플레이’라는 수식을 단 전시는 ‘규칙’과 ‘플레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가상현실에서 예술 작품을 경험하도록 기획되었다. 버추얼 소셜 플랫폼 ‘Figro’와 물리적인 공간에서 두 달간 진행된 전시는 어드벤처류 게임의 구성을 따라간다. “가상현실의 접속자는 단순 이용자를 넘어 미래의 현실을 탐색하는 탐험자로서 다양한 관계 맺음을 시도”한다는 기조를 내세웠다. 7) 네트워크로 연결된 현실에서 작품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전시는 2인이 참여하는 구성이며, 플랫폼에는 세 개의 작품이 있다는 안내원의 설명과 함께 시작한다. HMD를 착용하고 플랫폼에 들어서면 푸른 초원이 보인다. 저 멀리 작품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빛이 있다. 소목장세미의 〈환대의 재개장〉, 이해강의 〈느영나영〉, 임영주의 〈빙〉. 총 3인의 작가의 작업이 숲 속의 오두막처럼 위치한다. 이들은 하나의 메타버스에서 각자의 시나리오를 구축하고 있는데, 관객은 HMD 기기를 착용한 채 작품의 서사를 따라간다. 작품이 개별적으로 서사를 구축하는 한편, 전시에서 규칙과 서사를 발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전시가 개별 작품의 나열이 아라 작품 간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하나의 사건이라 할 때, ‘모험’을 표방하는 전시는 관객/플레이어로 하여금 어떤 방식으로 챌린지를 던져주는가? 개별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전시가 가공한 세계에서 사건의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작품은 지도에 없는 섬처럼 표류하며, 그사이를 오가는 관객의 어지러운 방황이 시작된다. 전시에서 지도, 즉 전시 도면이 공간 속에서 관객의 포지션을 이해하게 하는 일종의 인터페이스라고 한다면, 메타버스 전시에서 도면은 어떤 방식으로 그려져야 할까? 아니, 애초에 이미지로 표현된 공간을 설명하는 또 다른 이미지가 필요한 걸까? 이 질문은 우리가 가닿을 수 없는 공간을 표기해야 한다는 지배 욕망에 기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관객의 자리와 위상에 관한 물음이다. 메타버스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구현된 가상세계가 아니다. 이 세계는 디지털 디스플레이 안에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적 확장을 실험한다. 메타버스를 정처 없이 배회하는 관객을 위해 지도가 필요하다면, 메타버스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이미지화 되어야 하는가? 밀도 높은 이미지, 점점 더 리얼해지는 이미지가 공간에 자꾸만 레이어를 쌓고 있다. 이 중층의 이미지들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지를 공간화 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공간이 이미지화 되는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말하자면 공간을 무한하게 확장하기에 앞서 우리가 그곳을 상상하는 방식을 살펴볼 때다. 무섭게 선명해지는 이미지, 증식하는 레이어, 시뮬레이션 되는 세계. 다시 우엘백의 문장으로 돌아가 본다.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 지도가 실재하는 영토에 관한 상상으로부터 그려진 이미지라면,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은 언제나 현실 혹은 실재 자체가 아니라 그로부터 상상된 세계다. 1) 미셸 우엘백, 『지도와 영토』(서울: 문학동네, 2011), 270쪽. 2) 현시원은 당대 미술에서 단순히 정보적인 수단으로서 인식되어오던 전시 도면에 새로운 위상을 부여한다. 오늘의 전시 도면이 일종의 드로잉/이미지와 스코어로서 전시에 대한 사고와 실현을 매개하는 독립적인 형식임을 주장하고 있다. 더 자세한 연구 내용은 다음을 참고할 것. 현시원, “전시 만들기와 기록으로서의 ‘전시 도면’ 연구 -큐레이터의 실험적 실천으로서의 전시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22. 3) C. 티 응우옌, 이동휘 번역 『게임: 행위성의 예술』(서울: 워크룸, 2022), 190-191쪽 4) C. 티 응우옌, 이동휘 번역, 위의 책, 190쪽 5) 현시원, 위 논문, 135쪽. 6) C. 티 응우옌, 이동휘 번역, 위의 책, 36쪽 7) 뉴스와이어, “버추얼 멀티플레이 전시 ‘닷과 대쉬의 모험’, 온·오프라인 동시 개최”(2022. 10. 19.), https://www.newswire.co.kr/newsRead.php?no=953653 (최근접속일: 2023. 3. 25.)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술비평) 이민주 이민주는 서양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글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린다. 퍼포먼스와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의 관계를 짚은 《동물성 루프》(공-원, 2019, 공동 기획),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미학성과 정치성을 조명한 《논캡션 인터뷰》(의외의조합, 2021, 기획), 연극의 형식을 빌어 전시의 사건성을 모색한 《#2》(두산갤러리, 2023, 공동 기획)를 기획했다. 이미지가 만드는 사건과 수행적 성질에 주목하며 비평적 글쓰기를 고민하고,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번역 관계를 연구한다.

  • [Editor's View] 연결되고 재현되는 신체, 그리고 비평과 대중 사이를 잇는 가교로서

    사람으로 태어난 게이머에게 몸은 필요조건입니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상호작용을 요구하며, 이에 대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신체의 기능을 사용해 응답해야 합니다. 사람이 게임 안쪽에 재현되는 경우라면 신체의 중요성은 더 무거워집니다. 게임 속에 그려진 신체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에 의해 조작되는 신체이며, 이 결과물들은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신체를 사고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 Back [Editor's View] 연결되고 재현되는 신체, 그리고 비평과 대중 사이를 잇는 가교로서 22 GG Vol. 25. 2. 10. 사람으로 태어난 게이머에게 몸은 필요조건입니다. 게임 소프트웨어는 상호작용을 요구하며, 이에 대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신체의 기능을 사용해 응답해야 합니다. 사람이 게임 안쪽에 재현되는 경우라면 신체의 중요성은 더 무거워집니다. 게임 속에 그려진 신체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에 의해 조작되는 신체이며, 이 결과물들은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신체를 사고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디지털게임 연구와 비평의 많은 부분들은 실제로 게임과 신체의 관계에 주목합니다. 크게는 두 가지, 게임 소프트웨어와 조응하는 게임 외부의 신체와 게임 소프트웨어 안에 재현되는 게임 내부의 신체가 그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신체는 게임과 맞닿으며, 디지털게임의 이해를 위한 여러 요소들 중 신체와 게임의 관계는 형태소에 가까운 수준으로 우리의 게임에 대한 이해를 구성합니다. 게임에 처음 신체가 그려지기 시작한 초창기 게임에서부터 이러한 신체에 대한 관찰과 재현, 연결은 이어져 왔습니다. 조이스틱이라는 장치의 출현, 게임 내 체력 바의 구현, 온라인게임에서의 피로도 문제 등은 결코 게임 안에 독립적으로 디자인된 요소가 아닌, 현실의 신체를 모사하고 재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물들입니다. GG 22호는 그렇게 중요하면서도 아직 우리가 깊이 살펴보지는 못한 주제인 게임과 신체의 관계를 재조명합니다. 게임과 신체라는 테마로 글들을 모아내는 과정은 다른 주제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사실 이미 많은 것들이 이야기된 상황이지만 이를 하나로 모아 좀더 깊게 탐구하는 과정만이 모자랐음을 깨닫습니다. 수많은 게임 - 신체 사이에 대한 연구결과들과 사유의 조각들이 존재했지만 이를 통합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공간이 부족했다는 것은 게임제너레이션이 해야 할 일이 아직 한참 남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디지털게임은 이제 뉴미디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대중화, 보편화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매체가 된 만큼이나 이제 게임에 대한 비평과 연구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쌓여갑니다. 다만 이미 축적된 전문 연구자들의 논의를 어떻게 대중사회로 끌어 오고, 이를 통해 게임 제작자와 플레이어 모두에게 새로운 변화의 동력을 제공하는 과정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반성 속에 저희는 다음 호를 준비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학술과 대중이라는 어느 순간부터 유리된 듯한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가교로서 GG는 끝없이 둘 사이를 왕복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적정한 게임가격이란 무엇일까?

    흔히들 스팀 라이브러리를 두고 하는 농담에는 ‘옛날에는 게임을 사서 안 했고, 요즘에는 게임을 사서 안 한다’는 말이 있다. 오랜 불법복제가 만연했던 시대를 지나 ESD플랫폼으로의 전환을 맞은 PC게임 이용자들은 한때는 게임에 돈을 내지 않았고, 지금은 돈을 써 놓고도 막상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뒤튼 말이다.  < Back 적정한 게임가격이란 무엇일까? 09 GG Vol. 22. 12. 10. 흔히들 스팀 라이브러리를 두고 하는 농담에는 ‘옛날에는 게임을 사서 안 했고, 요즘에는 게임을 사서 안 한다’는 말이 있다. 오랜 불법복제가 만연했던 시대를 지나 ESD플랫폼으로의 전환을 맞은 PC게임 이용자들은 한때는 게임에 돈을 내지 않았고, 지금은 돈을 써 놓고도 막상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뒤튼 말이다. 라이브러리를 차고 넘치게 만들, 사람의 24시간으로는 미처 다 플레이할 수 없을 정도의 타이틀을 ESD플랫폼에서 구매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만큼 게임을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이 실제 플레이가 가능한 여가시간을 한참 넘을 정도에 이르렀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확실히 ESD플랫폼이 보편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게임 타이틀의 가격은 싸졌다고 볼 수 있는 부분들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게임 가격이 정말 싸졌다고 말하기는 또 어렵다. 이른바 AAA급 게임 타이틀의 가격은 정규발매를 기준으로 한다면 늘 천천히 오르고 있고, 디럭스판이나 한정판 같은 경우에는 이제 10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모습도 보기 어렵지 않다. 싼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비싼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게임의 적정한 가격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한 편의 디지털게임 제작에는 적지 않은 인력과 자원이 들어가고, 적정한 가격은 제작자에겐 충분한 수익을 안겨줌으로써 더 나은 게임의 발전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고 이용자에겐 자신의 게이밍을 더욱 즐겁고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좋은 게임을 만족스러운 가격에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합의점이기 때문이다. 게임유통에서 정규가격을 짚는 일의 어려움 지나온 게임의 발전사를 더듬어보면 애초부터 게임의 정가라는 것이 매우 자의적이고 유동적인 무엇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케이드 오락실은 동전 한 개에 일정한 도전횟수를 제공받는 방식으로 일련의 정가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이는 플레잉타임이라는 기준으로 살펴보면 플레이어의 숙련도에 의해 가치의 변동이 크게 일어나는 방식이기도 했다(아마도 오래된 게이머들은 동네 고수가 오락실 주인에게 동전 하나 받고 쫓겨나는 장면들을 목격했을 것이다). 아케이드 게임 하나를 클리어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은 사람마다, 게이머의 숙련도마다 다르게 잡히곤 했다. 물론 모든 게이머가 특정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는 점도 생각해볼 지점이긴 하다. 그나마 콘솔, PC의 패키지 기반 유통체계에서는 정가라는 지점이 도드라질 수 있었다. 롬팩 한 개, 디스켓 한 장에 담긴 소프트웨어의 가격은 대체로 고정되었고, 플레잉타임과 무관하게 패키지 하나에 얼마라는 대략의 평균가격대가 존재했다. 하지만 온라인 유통이 보편화되는 시대에 들어 패키지 방식의 정가는 상설할인에 가까운 대규모 할인 시스템 속에서 다시 또 요동치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서는 구독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다시금 애매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온라인/모바일 시대 이후 보편화된 부분유료결제에 이르면 이제 게임의 정가를 논하기 어려운 처지에 이른다. 같은 게임을 같은 시간 플레이해도, 숙련도의 높고 낮음을 제해도 이제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소비금액대가 같은 게임을 둘러싸기 때문이다. 똑같이 우마무스메를 해도 한달에 100만원을 쓰는 사람과 무과금 이용자 사이에서 우리는 이 게임의 정가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먼저 짚고 가야 할 전제는 정가와 적정비용이 다르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한 사람이 게임에 얼마를 쓰는 것을 적절하다고 판단하는가는 정가의 문제가 아니라 적정비용의 문제다. 오락실에 갈 때 얼마만큼의 동전을 들고가는가는 개별 게임에 넣는 동전의 액수에 대한 총합으로 결정되는 문제이지 개별 투입동전의 단가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정가는 무엇이느냐는 이야기는 그래서 적절한 소비금액이 얼마인가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생산 – 유통 – 소비 과정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교환의 시너지를 이루며 상생할 수 있는 가격이 어디에 형성되느냐는 질문이 된다. 물론 이 또한 개별 소비자들의 적정 소비비용에 의해 영향받을 수 있겠지만, 우선순위는 생산자 – 소비자 사이에 맺히는 전통적인 가격에 의한 교환관계의 문제에 잡힌다. 이런 전제를 들고 이야기를 더 풀어나갈 때 짚어야 할 또 하나의 전제는 단일재화로 유통되지 않는 오늘날의 디지털게임 유통방식에 관한 문제다. 게임은 과거 아케이드의 등장 이래 대여 서비스(아케이드) – 재화의 구매(가정용 콘솔과 PC) – 대여 서비스(서버-클라이언트 중심의 온라인/모바일게임)을 거치며 재화 혹은 용역의 입지를 그때그때 바꿔온 바 있었다. 구매와 대여라는, 아주 뭉뚱그리자면 서로 다른 이 두 유형의 게임 소비 방식이 서로 엇갈리고 또 공존해 있는 현실에서 정가라는 문제를 다루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에 수시로 존재하는 할인이벤트와 구독 문제까지를 포함한다면 사실상 게임에서 ‘정가란 무엇이다’, 혹은 ‘게임의 정규가격은 다음의 요소를 고려해 결정할 수 있다’는 단언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산자가 자신이 판단하기에 적정한, 다시말해 산정한 기간 안에 제작비를 회수하고 적정한 이윤을 낼 수 있는 바운더리 안에서 이용자 수와 객단가를 제시하고, 제시된 가격에 소비자가 구매와 이용으로 반응하는 시장결정을 통해서만 짚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굳이 이 어려운 일을 생각해보자고 제안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정가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 한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총 480개의 재화와 용역에 대한 실가격을 조사해 물가상승률을 알아보기 위한 지표로 삼는 지수다. 여기에는 오락 및 문화라는 카테고리로 총 47개의 항목이 들어가는데, 악기, 컴퓨터 및 컴퓨터 수리비, 영화관람료, 서적, 여행비 등이 포함된다. 갈수록 게임이용률이 늘어가고 있다는 조사가 적지 않고, 또 한 게임에 몇 억을 쓰는 일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보기 드물지 않은 사례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게임이용료는 소비자물가지수에는 아직 포함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유관한 항목이라면 아마도 PC방이용료 부문과 온라인콘텐츠 이용료일 것이지만, 이 또한 게임부문 물가의 정확한 반영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움은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게임이 정말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미디어이자 일상의 여가로 자리잡았다고 이야기하려면 그에 따른 여러 후속조치들이 뒤따라야 한다. 각종 제도의 정비와 인프라 구축은 비단 게임문화의 발전과 확산 뿐 아니라 게임이 동시대의 유의미한 여가이자 문화활동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프라 측면에서의 정비에는 게임의 소비에 대한 경제적 고찰도 포함된다. 한 달에 사람들은 게임에 얼마만큼의 비용을 쓰는지, 최고값은 얼마이고 최저값은 얼마인지와 같은 기초조사는 이미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중이지만, 이것이 비단 게임에 머무르지 않고 좀더 보편적인 경우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예로 든 소비자물가지수와 같은 지표에의 산입이다. 영화관람료와 TV, 휴대용멀티미디어기기가 항목으로 들어있는 상황에서 게임소프트웨어 가격의 이슈 또한 이제는 포함되어야 할 필요를 맞은 시대다. 단지 게임값을 물가에 연동시킨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이 사회적, 시장적 측면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이제 각종 지표에 포함하여 반영해도 될, 아니 이제는 포함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는 이야기다. “게임의 적정한 가격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은 그런 차원에서 의미지어진다. 적정가격을 묻는 일은 게임이용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머물지 않고, 여가와 문화라는, 산업화 시대를 지나 정보화 시대로 진입한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갈수록 비중을 키워나가는 카테고리 안에서 다른 요소들과 관계맺는 게임의 좌표를 향한 질문이다. 다른 여가/문화생활에 비해 게임가격은 어떠한가? 여러 문화생활 중 게임에 비용을 쓰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다른 매체나 여가에 비해 어떤 소구점이 있었는가? 이러한 질문은 단지 커뮤니티 게시판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제 사회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 안에 포함되어야 할 질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게임의 정가라는 질문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정가가 무엇인지를 쉽게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정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필요한 많은 조건과 변수들을 질문 앞에서 고민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과도한 현질이 가져오는 폐해이야기할 때나, 이름뿐인 ‘프리 투 플레이’의 허상을 짚을 때나 결국 이야기는 ‘그래서 게임에 정가라는 건 뭔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가격 이상으로, 우리는 ‘적정한 정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BIC 2022 탐방기

    9월 1일부터 9월 4일 까지 부산역 근처 부산항 국제전시 컨벤션센터에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디게임 행사가 열렸다.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발이다. 올해로 8번째를 맞은 이 행사는 코로나로 인해 2020년 은 완전 비대면으로, 2021년엔 사전선정자만 오프라인으로 참여할수 있게 한정적으로 열렸다. 코로나가 완저히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진적으로 해제되면서 3년만에 완전 오프라인으로 열린 셈이다. < Back BIC 2022 탐방기 08 GG Vol. 22. 10. 10.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발이 오프라인으로 돌아왔다. 9월 1일부터 9월 4일 까지 부산역 근처 부산항 국제전시 컨벤션센터에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디게임 행사가 열렸다.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발이다. 올해로 8번째를 맞은 이 행사는 코로나로 인해 2020년 은 완전 비대면으로, 2021년엔 사전선정자만 오프라인으로 참여할수 있게 한정적으로 열렸다. 코로나가 완저히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진적으로 해제되면서 3년만에 완전 오프라인으로 열린 셈이다. 판데믹 이전에 마지막으로 열렸던 2019년 행사는 부산항 국제전시 컨벤션센터로 옮겨서 시작한 첫번째 행사였다. 이전에는 부산 영화의 전당 야외에서 행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장소로 옮긴 BIC페스티발은 전자기기가 중심이 되는 게임 시연 행사가 야외에서 진행되면서 생기는 많은 문제점이 해소되면서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되는 상황이었지만 2020년 12월부터 코로나가 전세계에 유행할지 누가 알았을까. 부산항 이전의 행사에는 참여를 한적이 없어 2015년의 부산 문화 콘텐츠 컴플렉스의 좁지만 뜨거운 분위기나 2018년 까지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야외에서 벌어지는 날씨와의 전쟁 같았던 행사는 전해듣기만 했었고 2019년의 컨퍼런스와 함께 진행된 행사를 보면서 미리 올껄! 이란 후회와 함께 좀 더 자주 찾아올 결심을 했었더란다. 결국은 3년만에 행사를 찾아오게 되었다. 첫인상이라면 역시 어떻게 도착하는가 일텐데 부산항 국제 컨벤션센터는 부산역이랑 가깝지만 그 사이에 큰 도로가 있고 도보가 정비되어있지 않아 짧은 직선 거리에도 불구하고 교통이 편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2022년에는 부산역에서 부산항까지 구름다리가 생겨서 매우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마지막 부산항과 구름다리의 연결 부분이 공사중이라 구름다리만으로는 행사장에 도착할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보로 10분이면 행사장에 도착할수 있다는 점은 큰 약점이 해결된 느낌을 주었다. * 아스티 호텔 27층에서 찍은 부산역과 부산항을 연결해주는 구름다리 행사장 구성도 변화가 있었다. 2019년 행사에서는 전시공간 두개중 한 공간만 사용하고 나머지 공간은 컨퍼런스로만 사용했기 때문에 좀 더 밀도가 높고 좁은 분위기였지만 이번엔 컨퍼런스는 중앙의 트인 공간에서 진행하고 양 쪽 홀을 모두 전시에 사용하면서 상대적으로 쾌적한 관람이 가능했다. 관람자수는 2019년에 비해 더 많았지만 인구밀도는 상대적으로 낮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 이런 행사장의 분리는 행사장이 복도와 공간이 분리되어있어 미처 문을 놓친 경우 행사장이 두개라는 것을 인지 못했던 경우도 있어 앞으로는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 BIC 페스티벌 행사장. 가장 사람이 많은 토요일 오후 행사장의 분위기는 BIC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새로울게 없겠지만 지스타같은 다른 대형 게임행사와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대형 행사가 게임을 보여준다에 가깝다면 BIC 페스티벌이 주는 행사의 경험은 좀 더 체험에 가깝다. 대형 게임행사에서는 대형 부스에서 도우미들이 몇십대가 늘어져있는 체험 공간에서 같은 게임을 AAA 신작을 해보고 큰 화면으로 게임 트레일러를 구경하는 곳이라면 BIC에서는 작은 부스에서 대부분 게임들을 플레이 하며 게임 플레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게임을 도와주는 도우미 대신 개발자들이 매의 눈으로 플레이하는 관람객들을 살펴보며 게임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다른 사람들이 플레이하면서 어떤 문제들이 발생한는지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가끔은 부담스러울 때가 있을 정도이다. B2B관이 아니면 외국인을 찾아보기 힘든 다른 행사와도 분위기가 좀 다르다. 눈에 확 띄는 외국인들도 있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온 개발자들도 자연스럽게 행사장에서 영어로 게임을 권하는 것도 BIC만의 독특한 분위기다. 로컬 행사이지만 글로벌 행사인 것이다. * 많은 부스에서 개발자가 직접 게임에 대해 설명해준다. 사진은 천궁 부스. 당신이 개발자라면 인디게임을 만들때 애로사항에 대해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꼽는다. 주류 게임과 벗어나서 자신만의 게임을 만드는 것은 힘드고 외로운 일이다. 그래서 다른 인디게임 개발자들과 만나서 자신들의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매우 소중하다. 그런 점에서 BIC는 그러한 개발자들에게는 매우 소중하고 필요한 행사다. 하물며 한국 밖의 개발자들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는 드물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게임을 보여주고 상대방의 게임을 보면서 의견을 주고 받을수 있는 자리가 드물다보니 개발자들의 파티 참여도도 높은 편이다. 비즈니스 데이 첫째 날은 행사장의 분위기가 뭔가 맞지 않았는지 지속되지 않았지만 둘째 날의 인디라 파티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개발자들이 뜨거운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 이후 이정도 규모의 개발자가 모였던 것은 처음이 아니었을까. 인디 게임 개발자에게 BIC는 아무래도 놓칠수 없는 자리가 될 것이다. * 인디라 행사 당신이 개발자의 팬이라면. 코로나가 전세계를 뒤덮기 직전에도 오프라인 게임 행사에 대해서 비관적인 의견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코로나 덕분에 취소되는 행사들에 대해서 “명예로운 죽음”이다. 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을 정도이다. 코로나로 인해 진행되지 못하던 행사들이 다시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면서 그동안 못한 외부활동에 대해 복수하려듯이 몰려나오는 관객들 덕분에 당분간은 오프라인 행사의 시대가 끝났다는 이야기는 들어가겠지만 여전히 대형 게임사들이 자체 행사를 준비하고 신작 공개들이 꼭 게임쇼에서만 진행되지 않으면서 게임쇼의 새로운 매력을 개발하지 못하는 이상 이러한 흐름은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인디게임 행사는 그 분위기가 좀 다르다. 게임회사와 이용자간의 상호신뢰는 무너진 지 오래고 열성 팬을 가지고 있는 게임회사들은 굳이 다른 팬들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게임쇼보다는 단독행사를 통해 팬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굳이 행사장에서 까지 트럭을 보고 싶지 않은 회사들은 앞으로는 참가 여부에 대해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디게임을 둘러싼 분위기는 AAA게임과는 사뭇 다르다. 인디게임의 수익모델이 대형 게임사의 약탈적이라고 부를수 있는 부분유료화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개발사와 직접 부대끼는 작은 규모의 팬덤 덕분일 수도 있다. 좋아하는 개발자를 직접 만나서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기회가 흔하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떤 개발자의 팬이고 그 개발자가 자신의 게임을 들고 BIC에 참여한다면 놓칠수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게다가 오면 다른 인디게임들도 많다. 새로운 게임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큐레이팅된 게임들을 오프라인으로 볼 수 있는 장소는 그만큼 좋아하는 게임을 새로 만날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오프라인 행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다른 것도 있다. 게임에서 특히 눈을 끌었던 〈MORSE〉는 키보드나 게임패드로도 진행에 무리가 없지만 실제 모스 부호 송신기로 게임을 즐기는건 국내에선 BIC 외에선 힘들었을 것이다. 터틀크림의 〈RP7〉도 마찬가지다. 직접 만든 7개의 스틱이 달린 컨트롤러는 역시 행사장 외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이다. 이 경험들은 아마도 실제 게임을 구매해도 개인적으로는 하기 힘들 다는 점에서 오프라인의 경험이 특히 아쉬워진다. * 좌: MORSE와 함께 전시된 모스 송신기 우: RP7 전용 컨트롤러 로컬의 글로벌 행사 BIC 참여작들은 더 이상 국내에 한정되어있지 않다. BIC 수상작들이 도쿄 게임쇼의 센스 오브 원더 나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을만큼 BIC의 문을 두드리는 해외 인디게임들도 많아졌다. 이번 BIC의 특징으로 PC게임의 강세를 꼽는 사람들도 있다. 도쿄 게임쇼에서도 비슷한 평가가 있었는데 스팀에서 도쿄 게임쇼 페이지가 생겨나기도 했다. 스팀에서는 게임 행사들이 있을 때 행사 참여작들만 모아서 보여주는 특설 페이지들을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최근엔 독일 게임스컴이나 일본 도쿄게임쇼 페이지가 있었다. 이번 BIC 참여작들 중에서도 스팀에 이미 판매중인 게임들이 상당수 전시되어있어서 스팀에 BIC 특집 페이지가 있었어도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있지만 몇 년 안으로는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든다. 한국에는 다 비슷비슷한 게임만 있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이곳에 오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모두들 생존을 위해 글로벌로 나가야 한다고 외치지만 로컬이란 지지대가 있느냐 없느냐는 주어지는 기회의 숫자의 차이를 만들 것이다. BIC를 지지대 삼아 다른 나라의 인디게임 행사를 참여하는 게임도 나올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게임개발자들도 생겨날 수 있다. BIC는 한국에선 부분유료화 모바일 게임만 살아남을수 있다는 편향된 시장에서 새로운 시도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버틸 수 있고 더 새로운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항구가 될 수 있는 행사가 아닐까 싶다. 이런 행사가 항구에서 열리는 것도 재미난 우연일 것이다. BIC페스티벌 2022는 행사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드는 행사였고 꼭 필요하고 한 번쯤은 와봐야 하는 행사가 아닐까 싶다. 누구나 여기서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게임을 발견하길 희망한다. ** 이 글의 필자는 BIC 컨퍼런스 강연자로, 행사진행간 숙박지원을 받았음을 알립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오래된 코옵에 관한 소고

    맥락의 큰 단절이라 할만한 흐름은 스마트폰, SNS, 유튜브 시대에 이르러 왔다. 이 시기 인터넷은 초연결의 시대에 도달한 후 마치 압력이 가득한 풍선이 뻥 터지는 것처럼 되었다. 원심력이 강화되면서 개별화, 파편화, 탈맥락화가 인터넷 문화의 핵심이 되었다. < Back 오래된 코옵에 관한 소고 28 GG Vol. 26. 2. 10. 새해도 되고 하였으므로 다소 감상적으로 접근해보려고 한다. 주제는 ‘코옵(co-op)’이다. 코옵이 뭘까? 단지 게임 설계를 이르는 말에 그칠 것은 아닌 듯 하다. 의미를 따지다 보면 게임을 매개로 한 전반적 활동 전체로 의미가 확장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1982년에 태어났다(사정이 있어 공식적으로는 1983년생으로 살고 있다). 동시대를 살아온 또래들이 갖고 있는 어릴적 게임의 추억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첫째는 혼자 컴퓨터로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나 던전 RPG 같은 종류의 게임에 몰두한 경우다. 둘째는 콘솔을 활용해 혹은 오락실에서 최소 두 명 이상의 동료와 함께 게임을 한 경험이다. 나도 그렇다. 루카스 아츠사가 만든 컴퓨터용 어드벤처 게임에 몰두하면서도, 롬 카트리지를 후후 불어가며 ‘현대컴보이’를 붙들고 몇 시간씩 앉아있곤 했다. 그때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가난한 집이어도 재믹스, 패미컴, 알라딘보이 등의 콘솔 게임기를 갖추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어떻게든 아이를 키워내야 했던 부모들의 고충이 반영된 풍경이었던 것 같다. 아주 어릴 적에는(5~6세 정도 였던 것 같다) 어머니가 동전을 쥐어주고는 오락실에라도 가라며 등을 떠민 일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되도록 밖에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 성미였다. “나가 놀아”란 말을 아주 많이 들었던 기억이다. 하나 있는 아들이 밖에 나가 놀지 않고 집 안에서 계속 징징대기만 하니 어머니도 지쳤을 것이다. 뭐,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동전 몇 개를 들고 동네 형(형이래봐야 6~7세였을 것이다)과 함께 오락실로 향했다. 역시 비행기 게임이 눈에 들어왔다. <테라 크레스타>였을 것이다. 이전에 부모님을 따라 어쩌다 가게 된 다방 테이블 게임기에서 접해본 일이 있는 게임이다. 그때는 그런 게 있었다. 어른들이 권해서 조이스틱을 잡아 보기도 했는데, 금방 게임오버 되었다. * 칵테일형 테이블 게임기. 일본과 미국 등에서도 대중화 됐던 물건이다. 국내의 경우 사진의 것보다 조악한 형태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처: [ https://ultimatepopculture.fandom.com/wiki/Arcade\_cabinet](https://ultimatepopculture.fandom.com/wiki/Arcade_cabinet) 그러므로, 모처럼이니 도전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당당하게 동전을 넣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곧 게임오버 됐다. 이번에는 동네 형 차례다. 바톤 터치. 하지만 형아도 초짜인 것은 마찬가지다. 몇 차례 번갈아 가며 게임오버 화면을 보다가 마지막 동전을 넣었는데, 갑자기 일군의 무리가 나타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생(그 때는 국민학생이다)들이었을 거다.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비켜, 여기는 내 자리야.” 이미 동전을 넣었지만 힘 센 녀석이 자기 자리라는데 다른 방법은 없고… 물러났다. 더 남은 동전은 없고, 아쉬운 마음에 데모 플레이가 돌아가고 있는 다른 머신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는 흉내를 냈다. 오락실 주인이 나타나 그만 집에 돌아가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이 얘기를 하니 어머니는 그저 웃었다. 이것이 내 인생 최초의 (실패한) 코옵 경험이다. 사실 어머니가 “오락실에라도 가라”고 한 것은, 그로서는 파격 제안이었다. 오락실은 게임애호가 외의 어른들에게 탈선과 불법의 장소처럼 여겨졌다. 당시의 오락실은 여럿이 함께 게임을 즐기며 서로의 실력에 대하여 냉정하게 평가하고, 충고를 하고, 때로는 그 평가와 충고를 다소 물리적인 방식으로도 하고, 게임과 그 이후 소통을 통해 서로의 성격을 확인하며, 그러다 친구도 되고 사이가 돈독해지는 등, 그 시대 게임-청소년 문화 한 축을 형성하고 유통한 대표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 일탈의 현장이 아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시 게임애호가가 아닌 부모 입장에서 가라고 권할만한 곳은 못 된다는 게 상식이었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부모 입장에서 보다 안전한 선택은 가정용 게임 콘솔을 구비하는 것이었다. 물론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컴퓨터를 구매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다소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 컴퓨터가 MSX인 경우는 외양부터 설득력이 조금 떨어졌다. * 키보드에 떡하니 롬 카트리지를 삽입하는 공간이 있다. 실제로는 여러 용도로 쓸 수 있었으나, 그래도 롬 카트리지란 곧 게임이었다. 부모님이 ‘현대컴보이’를 사왔을 때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당연하게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의 왜인지 모를 일본판 패미컴용 카트리지가 컨버터와 함께 번들로 들어 있었다. 슈퍼마리오 3는 지금도 최애 게임으로 꼽는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꼼수의 상당수를 당시 혼자 몰두해서 알아냈다고 하는 작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지금도 가끔 그리워지면 다양한 버전으로 플레이한다. 당시 어머니는 하루 1시간으로 게임 시간을 제한했다. 그러나 친구나 친척이 놀러와서 2인용으로 게임을 같이 한다면, 그건 좀 예외였다. 부모 입장에서 볼 때, 자식이 혼자 게임에만 집착하고 있으면 그건 문제로 보이지만, 안전한 가정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게임을 소재로 교우활동을 하겠다는 것을 제한할 이유는 크지 않았던 거다. 그 시절의 게임엔 대개 2인용 설계가 많았다. 굳이 그런 설계가 아니어도 되는데 많이들 그랬다. 왜였을까? 오락실의 경쟁 문화가 이식된 것이겠지만, 당시 게임 산업이 내가 했던 것과 같은 경험을 염두에 두면서 ‘가정’이라는 키워드를 겨냥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한다. 그때 게임기는 어쨌든 아이들을 겨냥한 것이었고, 구매력은 부모가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게임이 몇 인용이든, 코옵 기능이 있든 없든 사실 상관은 없었다.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왔던 것처럼, 나도 다른 집에 놀러가는 일이 많았다. 나는 ‘현대컴보이’를, 친구는 ‘패밀리 컴퓨터’를 갖고 있는데도 같은 게임이 돌아가는 것에 신기해 한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 4~5학년 즈음 친구가 된 은호는 부러운 녀석이었다. ‘현대 슈퍼 컴보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서운 형들과 마주칠 각오를 하고 오락실에 가야 할 수 있던 <스트리트 파이터2>가 돌아가는 게임기다(그게 꼭 같지 않다는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은호네 집에 가서 즐겼다. <동킹콩 컨트리>를 할 때에 특히 신이 났다. 그러나 이 때는 역시 게임기 주인이 갑… 그러니까 사적 소유에서 비롯되는 권력이라는 세상의 엄혹한 규칙을 체감한 시기이기도 했다. 은호가 갑자기 <파이널 판타지> 같은 롤플레잉 게임을 하겠다고 나오면 그저 뒤에 앉아서 구경을 하거나 응원을 보내는 신세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언제 다른 게임 하나 생각하면서…. 은호가 <메탈맥스2>를 하면서 길을 막고 있는 개를 비키게 하기 위해 개사료 아이템을 선택하던 광경이 아직도 기억난다. 여기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 수 있다. 한글 게임이 아니잖는가? 초등학생이 일본어를 알았을리는 없고, 게임잡지의 공략집을 봐야 했다. 그렇다. 은호네는 게임-인프라가 아주 풍부했다. 왜냐면 그에게는 나이 차이가 좀 나는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형이 <메탈맥스2>를 하면 은호는 뒤에서 구경을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의 처지를 정당화 해보려고도 했다. 사실 안 보이는 데에선 은호도 힘들거야. 체구도 작고 하니까 말이지. 뒤에서 구경한 경험을 말하자면 다운이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에 친구가 된 다운이는 386 컴퓨터를 갖고 있었다. 그의 집에 가서 <커맨더 킨>, <둠> 같은 게임을 2인용 게임 느낌으로 번갈아 가면서 했다. 죽으면 내 차례가 오는 것이다. 문제는 다운이가 <프린세스 메이커 2>를 실행할 때였다. 그건 도저히 둘이서 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니다. 그러나 다소 무의미한 토론을 해가면서 <프린세스 메이커2>를 둘이서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내 역할은 별로 도움 안 되는 조언과 감탄을 내뱉는 정도로 제한되었지만. 이렇게 돌아보니 코옵의 경험이라는 것은 게임 설계의 문제라기 보다는 전반적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코옵의 형태가 새로워지기 시작했다. ‘게임방(PC방을 이렇게들 부르기도 했다)’에 가서 다들 <스타크래프트>를 하기 시작했던 거였다. 온라인 게임을 굳이 모여서 한다는 것은 논리로만 보면 비합리적인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각 가정에서 접속한 인터넷 품질 등의 기술적 문제를 고려하면 역시 PC방에 모이는 게 합리적이다. 이것 말고 문화적 요인도 있다. 앞서 잠시 언급한 오락실 문화가 PC방에서 재현된 것이다. PC방에서 게임애호가들은 경쟁하고, 서로의 실력을 평가하고, 싸우고, 친해졌다. 가끔 군것질도 함께 하면서. 대학생이 되자 대한민국은 인터넷 강국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PC방의 존재감은 강력했다. 방학이 되면 PC방에 초등학생들이 넘쳐나게 될테니 걱정이란 우스개가 유행할 정도였다. 그러나 집에서 온라인으로 코옵의 경험을 대체하는 경우가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도 이 때다. 김대중 정부가 정보통신 중시 정책을 펼친 결과다. 나는 퀘이크3 엔진을 활용한 <울펜슈타인: 에너미 테리토리>라는 FPS 게임에 열광했다. 이 게임은 오늘날의 <오버워치>와 비슷한 느낌으로, 각자 특성이 다른 클래스 중 하나를 각자가 알아서 선택해 공동으로 목표를 달성하도록 돼있다. 엔지니어가 벽을 폭파할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는 동안, 중화기를 다루는 클래스들이 이를 방어하고 위생병이 뒤를 받쳐 주면서 비밀요원이 적의 후방을 교란하는, 그런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각 클래스가 요구하는 게임 센스가 다르다 보니 게이머 개인의 적성이 중요했고, 그래서 누가 무슨 클래스를 선택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가령 이 바닥에서 명저격수로 이름을 떨친 ‘부림’님이 접속하면, 다른 사람들은 되도록 거기에 맞춰서 나머지 클래스를 구성하는 것이다. * 설치한 다이너마이트는 상대팀 엔지니어가 해체할 수 있었다. 물론 해체하기 직전 타이머가 다 돼 폭사할 수도 있었기에, 실제로 손에 땀을 쥐어야 했다. 이런 방식으로, 목표 달성을 위해 팀웍을 맞춰야 했기에 유저들끼리 IRC 채팅창이나 따로 마련된 커뮤니티에서 사이가 돈독해지는 효과도 있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싫어하던 내가 온라인에서 결성된 팀에 가입해 ‘정모’라고 불렀던 오프라인 모임에도 나갈 정도였다. 물론 이 내에서 여러 사건 사고도 있었지만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의 반영이었고, 기본은 오프라인의 경험이 온라인으로 옮겨 갔을 뿐이라는 느낌이었다. 오프라인에서의 코옵 경험을 온라인에서 대신 하는 것일 뿐이란 거다. 이 시기 전반적 인터넷 문화가 그랬다. 온라인이 더 넓고 더 다양한 사람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줬고 이것이 독자적인 온라인의 문법과 문화를 만들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오프라인과 연결돼있는 상태였다. 또, 이 시기 인터넷 문화에는 이전 PC통신 문화의 흔적도 여러모로 남아 있었다. 게임 문화에도 비슷한 도식을 적용할 수 있다. 이전 단계 문화와의 연속성이 맥락으로서 존재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때까지 코옵의 경험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이를 개념적으로 연결한 활동으로 가능했다. 맥락의 큰 단절이라 할만한 흐름은 스마트폰, SNS, 유튜브 시대에 이르러 왔다. 이 시기 인터넷은 초연결의 시대에 도달한 후 마치 압력이 가득한 풍선이 뻥 터지는 것처럼 되었다. 원심력이 강화되면서 개별화, 파편화, 탈맥락화가 인터넷 문화의 핵심이 되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을 통해 자신만의 타임라인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다들 소비자로서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보고 싶은 것을 보며, 말하고 보여주는 사람 역시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부모들은 ‘보육’의 측면에서 게임을 활용하더라도, 더 이상 2인용이 기본인 콘솔 게임기를 아이에게 사주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 훨씬 효과적인 도구이다. 물론 여기에 코옵은 없거나 아주 희미하다. 게임애호가 소년 소녀들은 친구집에 놀러가서 함께 게임을 하기 보다는 자기 집에서 네트워크를 활용해 게임을 즐긴다. 이 경험에 디스코드 등을 통한 소통에 근거한 활동이나 온라인을 통해 새로 알게된 사람들과의 코옵이 없지는 않지만, 과거와 비교할 때 ‘인스턴트’화 된 면이 크다. 서로 간의 접속이 쉽게 되고 쉽게 끊긴다. 앞서 서술한 나의 경험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의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코옵’의 의미를 크게 잡으면 더욱 그렇다. 굳이 친구집에 가서 게임을 한다고 해도 환경의 변화로 선택이 제한적이다. 어디까지나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대체할 게임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락실은 거의 멸종했다. 어깨 너머로 게임기 주인의 플레이를 구경하며 침을 삼켰던 아이들은 이제 게임 유튜버의 방송 화면을 보며 게임을 간접 체험한다. 오히려 게임 내 캐릭터들이 자기들끼리, 마이클과 프랭클린과 트레버가 코옵의 경험을 나누는 세상이다. 여럿이 모여 게임을 경험한다는 컨셉을 하드웨어 설계에까지 반영하면서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닌텐도가 거의 유일해 보인다. ‘라떼는~’ 하려고 꺼낸 얘기는 아니다. 세상이 변했다면 변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시대에는 이 시대에 맞는 해법이 늘 있는 것이다. 다들 잘 하고 있겠지. 그러나 그래도 영포티 아저씨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자랄 때는 게임이 나름대로 훌륭한 사회화 도구가 됐던 것 같기도 한데…. 새로운 세대의 코옵 도구라고 볼 수 있을 <로블록스>에서 최근 일어난 몇 가지 사건(윤 어게인 시위 등)을 떠올리며 괜히 시사적인 데로도 생각이 간다. 그렇잖아도 에코챔버니 확증편향이니 하는 시대가 아닌가. 이 시대의 매체가 그런 효과를 만들어 냈다면, 게임이라고 그런 흐름에서 자유로울 리가 있겠는가? 그러고보니 어떤 나라에선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금지한다고 한다. 그런 일이 대세가 되면 다시 슈퍼마리오의 시대가 올까? 아니면 더 강력한 백래쉬(?)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만드는 결말로 가는 것일까? 괜한 걱정인가? 역시 나이를 먹은 것일 게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GDC 2023 탐방기: 기술과 트렌드의 변화로부터 일어난 흐름들

    길었던 팬데믹의 터널이 끝나고 게임쇼에도 봄이 돌아왔다. 물론 모든 게임쇼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발표되었던 E3 2023의 취소 소식은 게임 업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보스턴에서 3월 말에 열린 PAX EAST는 GDC 2023과 비슷한 시기에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B2C 부분에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필자 역시 4년 만에 GDC를 찾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20년부터 2022년 GDC에 모두 등록했었다. 다만 온라인으로 열렸던 2020년과 2021년에는 참석이 불가능했고, 작년은 패스를 등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 Back GDC 2023 탐방기: 기술과 트렌드의 변화로부터 일어난 흐름들 11 GG Vol. 23. 4. 10. 길었던 팬데믹의 터널이 끝나고 게임쇼에도 봄이 돌아왔다. 물론 모든 게임쇼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발표되었던 E3 2023의 취소 소식은 게임 업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보스턴에서 3월 말에 열린 PAX EAST는 GDC 2023과 비슷한 시기에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B2C 부분에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필자 역시 4년 만에 GDC를 찾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20년부터 2022년 GDC에 모두 등록했었다. 다만 온라인으로 열렸던 2020년과 2021년에는 참석이 불가능했고, 작년은 패스를 등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GDC 2023에서는 기존에 제공하던 온라인 중계를 막대한 비용 문제로 거의 중단하고 오프라인 중심으로 다시 돌아왔다. 공식 홈페이지 통계상으로는 28,000여명의 업계 관계자가 방문했다고 하는데, 이는 작년 GDC 2022의 12,000명가량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을 기록한 셈이다. 이는 팬데믹 이전 2019년의 GDC 참가자 29,000명에 거의 근접한 수치이다. 실제 참가한 개발자들 얼굴에서는 Covid-19의 영향을 느끼기 어려웠다.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즐겁게 서로를 대면하면서 식사하고 담소를 나누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다만 처음 패스를 받는 과정에서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추가되어 예년보다 매우 긴 패스 수령 줄이 이어졌다. * GDC 2023 기간 중 패스를 수령하기 위해 늘어선 긴 줄 팬데믹 기간과 그 이후의 GDC는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팬데믹 기간 중에 게임업계에서 일어났던 AI, Web3(메타버스, 블록체인 등) 등의 기술적인 변화와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GDC는 월요일과 화요일에 열리는 특정 주제 중심의 서밋과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리는 메인 컨퍼런스로 양분되어 왔다. 그간 서밋은 인디게임, 내러티브, 게임 교육, 로컬라이제이션, 시리어스 게임, 스마트폰/태블릿 게임, 과금 제도, VR/AR 등 게임 디자인과 관련한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올해 GDC 2023 서밋은 내러티브나 인디게임, 게임 교육 같은 전통적인 서밋이 어느 정도 남아있긴 했지만 많은 부분들이 기술 중심 서밋으로 대체되었다. AI, Web3, F2P, 퓨처 리얼리티(구 VR/AR), 온라인 게임 테크놀로지, 툴, 비주얼 이펙트 등 수많은 기술 중심 서밋들이 작년과 올해 새롭게 생겨났고, 이는 모두 팬데믹 이후 새롭게 부상한 게임 업계의 다양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중 AI 서밋이 가장 많은 개발자들을 불러 모았으며, 자연어처리, 행동 패턴 설계 같이 AI의 전문 영역을 넘어 게임 배급과 유통 부문까지 AI의 영향력이 확장될 수 있음을 확인한 해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과거에 비해 한국 게임 개발자들이 GDC를 많이 방문했으며, 발표 횟수도 늘었다. 이번 GDC에서 가장 적극적인 포지셔닝을 보여준 한국 게임회사는 위메이드였다. 작년에도 위메이드의 장현국 대표는 발표를 진행했으며, 올해는 아예 메인 스폰서 자격으로 Web3 서밋 키노트 스피치를 담당했다. 작년 GDC에서 장현국 대표는 위믹스 생태계에 100종 이상의 게임이 온보딩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결과적으로 말해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올해까지 위믹스 플레이에는 25종의 게임이 각기 다른 토큰노믹스를 가진 채로 게임을 서비스 중이다. 아직 절반의 성공에도 이르지 못했지만, GDC 엑스포 장에는 엄청난 크기의 위메이드 부스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메인 스폰서의 화려한 위용 뒤에 느껴지는 조급함을 감출 수는 없었던 것 같다. * GDC 2023 메인 스폰서로 이름을 올린 위메이드 최근 10여 년간 거의 매해 GDC에 참여하거나 최소한 온라인으로 컨퍼런스에 참가해 온 필자는 한국 게임 개발자가 한국 게임회사 소속으로 비즈니스 모델이나 로컬라이제이션을 제외한 게임 디자인 영역에서 GDC 발표를 진행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예외가 있다면 2018년 〈PUBG〉의 사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말 스팀에 〈PUBG〉가 출시될 당시에는 한국 게임회사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까운 비즈니스 모델로 PC 게임 플랫폼에서 판매 1위를 달성했다는 것이 정말 예외적인 사례로 취급받았던 시기였다. 물론 그 이후로도 이러한 사례가 자주 나온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처럼 GDC에서 한국 게임사들의 발표가 거의 예외없이 게임 비즈니스 모델로 귀결되고, 게임 디자인이나 내러티브, 창의성에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히 알려진 불편한 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 GDC 2015에서 〈룸(Loom)〉에 관한 클래식 게임 포스트모템을 진행하고 있는 브라이언 모리아티(Brian Moriarty) 한편으로 올해 GDC에서 느끼게 된 또 하나의 변화는 전통적인 게임 디자인 분야의 위상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게임 업계 내에서 아이디어 발상과 메커닉 개발에 치중하는 컨셉 디자인의 분야가 점점 시스템 기획이나 레벨 디자인 등으로 축소되어 버린 것도 한몫 할 것이다. IGF 파이널리스트에 올라온 소수의 창의적인 게임 일부를 제외하면 인디게임으로 엑스포에 전시된 상당수는 익숙한 장르를 그대로 답습하거나 약간의 변주만을 거친 경우가 많았다. 컨퍼런스에서도 게임 디자이너들이 즐겨 찾았던 포스트모템(postmortem) 강연들이 대거 축소되어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2010년대 GDC에서는 최소 4-5회 정도의 클래식 게임 포스트모템 강연이 진행되었다. 올해에는 단 하나 반다이 남코 사의 CTO인 노부히코 모모이가 진행하는 〈다마고치〉의 클래식 게임 포스트모템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컨퍼런스 1주일 정도를 남겨놓고 개발자의 개인 사정으로 취소되었다. 인디 게임 포스트모템도 서밋 기간 중 보통 4-5회, 메인 컨퍼런스 기간 중에 2-3회 정도 열리는 것이 관례였으나 올해에는 거의 열리지 않거나 기술 중심 세션으로 대체되었다. 때문에 정식 클래식 게임 포스트모템은 아니었지만 〈별의 커비〉 시리즈 30주년을 맞아 해당 시리즈의 여러 측면을 회고하는 “The Many Dimensions of Kirby” 강연이 반사적인 인기를 누렸다. HAL 연구소의 쿠마자키 신야와 카미야마 타츠야가 출연한 이 강연을 보기 위해 강연장을 몇 바퀴 돌 정도의 긴 줄이 늘어섰으며, 예정 시간을 30분 넘긴 이후에야 모두 입장이 가능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커비 캐릭터의 비정형성과 공중 부양, 몬스터를 빨아들인 후 외양과 스킬이 변화하는 전통적인 메커닉의 고안 과정이 개발 과정에서 산출된 다양한 컨셉 아트와 함께 제시되어 눈길을 끌었다. 그 외에는 1인 개발자 제임스 와들(James Wardle)이 출연한 “‘Wordle’: One Year Later”의 포스트모템이 인기를 끈 강연이었다. 그는 이 게임을 뉴욕타임스에 매각하여 7자리 숫자의 달러 수익을 거두었지만, 수익을 위해 게임 개발을 했던 것은 아니라고 언급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 〈별의 커비〉 30주년을 기념한 GDC 2023 강연 이런 몇몇 예외적인 사례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게임 디자인 강연과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GDC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점점 게임 개발이 분업화되어가고, 모바일 게임 중심으로 광고를 통한 수익화가 하나의 공식으로 자리잡으면서 게임 디자인이나 메커닉의 개선을 통한 컨셉 디자인의 영역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인디 게임 개발사들 역시 이제는 대형 퍼블리셔나 VC로부터의 투자 과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면서, 인디스러운 스타일만 유지한 채 인기 장르의 게임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내러티브와 비주얼만 바꾸어 기존 게임을 모방하는 케이스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점점 자기복제가 만연화 되어가도 이를 합리화하기에만 급급한 인디 게임 분야의 돌파구를 찾아보기 위해 방문했던 올해의 GDC였지만, 미국 인디 게임 씬에서도 뾰족한 해답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인디 게임 씬은 그간 외부에서 투입되는 자본의 단맛을 보면서 외연을 키워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는 AA급 게임과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인디 스타일 게임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졌으며, 완성도가 높은 인디 게임들은 점점 스타일리시한 AA급 정도의 게임을 지향하고 있다. 올해 IGF를 심사하면서도 느낀 사실이지만, 많은 심사위원들이 거칠면서도 날것을 보여주는 저예산 인디보다는 세련된 스타일의 AA급 인디게임을 더 높은 위치로 보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올해 GDC는 여느 해보다 복잡한 심정을 안고 행사장을 떠나게 되었다. 이런 필자를 배신하지 않는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맛있는 클램 차우더와 샤도네이 와인 한 잔 뿐이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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