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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코옵에 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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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2. 10.

새해도 되고 하였으므로 다소 감상적으로 접근해보려고 한다. 주제는 ‘코옵(co-op)’이다. 코옵이 뭘까? 단지 게임 설계를 이르는 말에 그칠 것은 아닌 듯 하다. 의미를 따지다 보면 게임을 매개로 한 전반적 활동 전체로 의미가 확장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1982년에 태어났다(사정이 있어 공식적으로는 1983년생으로 살고 있다). 동시대를 살아온 또래들이 갖고 있는 어릴적 게임의 추억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첫째는 혼자 컴퓨터로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나 던전 RPG 같은 종류의 게임에 몰두한 경우다. 둘째는 콘솔을 활용해 혹은 오락실에서 최소 두 명 이상의 동료와 함께 게임을 한 경험이다.


나도 그렇다. 루카스 아츠사가 만든 컴퓨터용 어드벤처 게임에 몰두하면서도, 롬 카트리지를 후후 불어가며 ‘현대컴보이’를 붙들고 몇 시간씩 앉아있곤 했다. 그때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가난한 집이어도 재믹스, 패미컴, 알라딘보이 등의 콘솔 게임기를 갖추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어떻게든 아이를 키워내야 했던 부모들의 고충이 반영된 풍경이었던 것 같다.


아주 어릴 적에는(5~6세 정도 였던 것 같다) 어머니가 동전을 쥐어주고는 오락실에라도 가라며 등을 떠민 일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되도록 밖에 나가고 싶어하지 않는 성미였다. “나가 놀아”란 말을 아주 많이 들었던 기억이다. 하나 있는 아들이 밖에 나가 놀지 않고 집 안에서 계속 징징대기만 하니 어머니도 지쳤을 것이다. 뭐,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동전 몇 개를 들고 동네 형(형이래봐야 6~7세였을 것이다)과 함께 오락실로 향했다. 역시 비행기 게임이 눈에 들어왔다. <테라 크레스타>였을 것이다. 이전에 부모님을 따라 어쩌다 가게 된 다방 테이블 게임기에서 접해본 일이 있는 게임이다. 그때는 그런 게 있었다. 어른들이 권해서 조이스틱을 잡아 보기도 했는데, 금방 게임오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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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칵테일형 테이블 게임기. 일본과 미국 등에서도 대중화 됐던 물건이다. 국내의 경우 사진의 것보다 조악한 형태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처: [https://ultimatepopculture.fandom.com/wiki/Arcade\_cabinet](https://ultimatepopculture.fandom.com/wiki/Arcade_cabinet)

그러므로, 모처럼이니 도전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당당하게 동전을 넣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곧 게임오버 됐다. 이번에는 동네 형 차례다. 바톤 터치. 하지만 형아도 초짜인 것은 마찬가지다. 몇 차례 번갈아 가며 게임오버 화면을 보다가 마지막 동전을 넣었는데, 갑자기 일군의 무리가 나타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생(그 때는 국민학생이다)들이었을 거다.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비켜, 여기는 내 자리야.”


이미 동전을 넣었지만 힘 센 녀석이 자기 자리라는데 다른 방법은 없고… 물러났다. 더 남은 동전은 없고, 아쉬운 마음에 데모 플레이가 돌아가고 있는 다른 머신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는 흉내를 냈다. 오락실 주인이 나타나 그만 집에 돌아가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이 얘기를 하니 어머니는 그저 웃었다. 이것이 내 인생 최초의 (실패한) 코옵 경험이다.


사실 어머니가 “오락실에라도 가라”고 한 것은, 그로서는 파격 제안이었다. 오락실은 게임애호가 외의 어른들에게 탈선과 불법의 장소처럼 여겨졌다. 당시의 오락실은 여럿이 함께 게임을 즐기며 서로의 실력에 대하여 냉정하게 평가하고, 충고를 하고, 때로는 그 평가와 충고를 다소 물리적인 방식으로도 하고, 게임과 그 이후 소통을 통해 서로의 성격을 확인하며, 그러다 친구도 되고 사이가 돈독해지는 등, 그 시대 게임-청소년 문화 한 축을 형성하고 유통한 대표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 일탈의 현장이 아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시 게임애호가가 아닌 부모 입장에서 가라고 권할만한 곳은 못 된다는 게 상식이었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부모 입장에서 보다 안전한 선택은 가정용 게임 콘솔을 구비하는 것이었다. 물론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컴퓨터를 구매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다소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 컴퓨터가 MSX인 경우는 외양부터 설득력이 조금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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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보드에 떡하니 롬 카트리지를 삽입하는 공간이 있다. 실제로는 여러 용도로 쓸 수 있었으나, 그래도 롬 카트리지란 곧 게임이었다.

부모님이 ‘현대컴보이’를 사왔을 때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당연하게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의 왜인지 모를 일본판 패미컴용 카트리지가 컨버터와 함께 번들로 들어 있었다. 슈퍼마리오 3는 지금도 최애 게임으로 꼽는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꼼수의 상당수를 당시 혼자 몰두해서 알아냈다고 하는 작은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지금도 가끔 그리워지면 다양한 버전으로 플레이한다.


당시 어머니는 하루 1시간으로 게임 시간을 제한했다. 그러나 친구나 친척이 놀러와서 2인용으로 게임을 같이 한다면, 그건 좀 예외였다. 부모 입장에서 볼 때, 자식이 혼자 게임에만 집착하고 있으면 그건 문제로 보이지만, 안전한 가정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게임을 소재로 교우활동을 하겠다는 것을 제한할 이유는 크지 않았던 거다.


그 시절의 게임엔 대개 2인용 설계가 많았다. 굳이 그런 설계가 아니어도 되는데 많이들 그랬다. 왜였을까? 오락실의 경쟁 문화가 이식된 것이겠지만, 당시 게임 산업이 내가 했던 것과 같은 경험을 염두에 두면서 ‘가정’이라는 키워드를 겨냥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한다. 그때 게임기는 어쨌든 아이들을 겨냥한 것이었고, 구매력은 부모가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게임이 몇 인용이든, 코옵 기능이 있든 없든 사실 상관은 없었다.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왔던 것처럼, 나도 다른 집에 놀러가는 일이 많았다. 나는 ‘현대컴보이’를, 친구는 ‘패밀리 컴퓨터’를 갖고 있는데도 같은 게임이 돌아가는 것에 신기해 한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 4~5학년 즈음 친구가 된 은호는 부러운 녀석이었다. ‘현대 슈퍼 컴보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서운 형들과 마주칠 각오를 하고 오락실에 가야 할 수 있던 <스트리트 파이터2>가 돌아가는 게임기다(그게 꼭 같지 않다는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은호네 집에 가서 즐겼다. <동킹콩 컨트리>를 할 때에 특히 신이 났다.


그러나 이 때는 역시 게임기 주인이 갑… 그러니까 사적 소유에서 비롯되는 권력이라는 세상의 엄혹한 규칙을 체감한 시기이기도 했다. 은호가 갑자기 <파이널 판타지> 같은 롤플레잉 게임을 하겠다고 나오면 그저 뒤에 앉아서 구경을 하거나 응원을 보내는 신세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언제 다른 게임 하나 생각하면서…. 은호가 <메탈맥스2>를 하면서 길을 막고 있는 개를 비키게 하기 위해 개사료 아이템을 선택하던 광경이 아직도 기억난다.


여기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 수 있다. 한글 게임이 아니잖는가? 초등학생이 일본어를 알았을리는 없고, 게임잡지의 공략집을 봐야 했다. 그렇다. 은호네는 게임-인프라가 아주 풍부했다. 왜냐면 그에게는 나이 차이가 좀 나는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형이 <메탈맥스2>를 하면 은호는 뒤에서 구경을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의 처지를 정당화 해보려고도 했다. 사실 안 보이는 데에선 은호도 힘들거야. 체구도 작고 하니까 말이지.


뒤에서 구경한 경험을 말하자면 다운이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에 친구가 된 다운이는 386 컴퓨터를 갖고 있었다. 그의 집에 가서 <커맨더 킨>, <둠> 같은 게임을 2인용 게임 느낌으로 번갈아 가면서 했다. 죽으면 내 차례가 오는 것이다. 문제는 다운이가 <프린세스 메이커 2>를 실행할 때였다. 그건 도저히 둘이서 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니다. 그러나 다소 무의미한 토론을 해가면서 <프린세스 메이커2>를 둘이서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내 역할은 별로 도움 안 되는 조언과 감탄을 내뱉는 정도로 제한되었지만.


이렇게 돌아보니 코옵의 경험이라는 것은 게임 설계의 문제라기 보다는 전반적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코옵의 형태가 새로워지기 시작했다. ‘게임방(PC방을 이렇게들 부르기도 했다)’에 가서 다들 <스타크래프트>를 하기 시작했던 거였다.


온라인 게임을 굳이 모여서 한다는 것은 논리로만 보면 비합리적인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각 가정에서 접속한 인터넷 품질 등의 기술적 문제를 고려하면 역시 PC방에 모이는 게 합리적이다. 이것 말고 문화적 요인도 있다. 앞서 잠시 언급한 오락실 문화가 PC방에서 재현된 것이다. PC방에서 게임애호가들은 경쟁하고, 서로의 실력을 평가하고, 싸우고, 친해졌다. 가끔 군것질도 함께 하면서.


대학생이 되자 대한민국은 인터넷 강국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PC방의 존재감은 강력했다. 방학이 되면 PC방에 초등학생들이 넘쳐나게 될테니 걱정이란 우스개가 유행할 정도였다. 그러나 집에서 온라인으로 코옵의 경험을 대체하는 경우가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도 이 때다. 김대중 정부가 정보통신 중시 정책을 펼친 결과다.


나는 퀘이크3 엔진을 활용한 <울펜슈타인: 에너미 테리토리>라는 FPS 게임에 열광했다. 이 게임은 오늘날의 <오버워치>와 비슷한 느낌으로, 각자 특성이 다른 클래스 중 하나를 각자가 알아서 선택해 공동으로 목표를 달성하도록 돼있다. 엔지니어가 벽을 폭파할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는 동안, 중화기를 다루는 클래스들이 이를 방어하고 위생병이 뒤를 받쳐 주면서 비밀요원이 적의 후방을 교란하는, 그런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각 클래스가 요구하는 게임 센스가 다르다 보니 게이머 개인의 적성이 중요했고, 그래서 누가 무슨 클래스를 선택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가령 이 바닥에서 명저격수로 이름을 떨친 ‘부림’님이 접속하면, 다른 사람들은 되도록 거기에 맞춰서 나머지 클래스를 구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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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치한 다이너마이트는 상대팀 엔지니어가 해체할 수 있었다. 물론 해체하기 직전 타이머가 다 돼 폭사할 수도 있었기에, 실제로 손에 땀을 쥐어야 했다.

이런 방식으로, 목표 달성을 위해 팀웍을 맞춰야 했기에 유저들끼리 IRC 채팅창이나 따로 마련된 커뮤니티에서 사이가 돈독해지는 효과도 있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싫어하던 내가 온라인에서 결성된 팀에 가입해 ‘정모’라고 불렀던 오프라인 모임에도 나갈 정도였다. 물론 이 내에서 여러 사건 사고도 있었지만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의 반영이었고, 기본은 오프라인의 경험이 온라인으로 옮겨 갔을 뿐이라는 느낌이었다. 오프라인에서의 코옵 경험을 온라인에서 대신 하는 것일 뿐이란 거다.


이 시기 전반적 인터넷 문화가 그랬다. 온라인이 더 넓고 더 다양한 사람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줬고 이것이 독자적인 온라인의 문법과 문화를 만들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오프라인과 연결돼있는 상태였다. 또, 이 시기 인터넷 문화에는 이전 PC통신 문화의 흔적도 여러모로 남아 있었다. 게임 문화에도 비슷한 도식을 적용할 수 있다. 이전 단계 문화와의 연속성이 맥락으로서 존재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때까지 코옵의 경험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이를 개념적으로 연결한 활동으로 가능했다.


맥락의 큰 단절이라 할만한 흐름은 스마트폰, SNS, 유튜브 시대에 이르러 왔다. 이 시기 인터넷은 초연결의 시대에 도달한 후 마치 압력이 가득한 풍선이 뻥 터지는 것처럼 되었다. 원심력이 강화되면서 개별화, 파편화, 탈맥락화가 인터넷 문화의 핵심이 되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을 통해 자신만의 타임라인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다들 소비자로서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보고 싶은 것을 보며, 말하고 보여주는 사람 역시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부모들은 ‘보육’의 측면에서 게임을 활용하더라도, 더 이상 2인용이 기본인 콘솔 게임기를 아이에게 사주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 훨씬 효과적인 도구이다. 물론 여기에 코옵은 없거나 아주 희미하다. 게임애호가 소년 소녀들은 친구집에 놀러가서 함께 게임을 하기 보다는 자기 집에서 네트워크를 활용해 게임을 즐긴다. 이 경험에 디스코드 등을 통한 소통에 근거한 활동이나 온라인을 통해 새로 알게된 사람들과의 코옵이 없지는 않지만, 과거와 비교할 때 ‘인스턴트’화 된 면이 크다. 서로 간의 접속이 쉽게 되고 쉽게 끊긴다. 앞서 서술한 나의 경험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의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코옵’의 의미를 크게 잡으면 더욱 그렇다.


굳이 친구집에 가서 게임을 한다고 해도 환경의 변화로 선택이 제한적이다. 어디까지나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대체할 게임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락실은 거의 멸종했다. 어깨 너머로 게임기 주인의 플레이를 구경하며 침을 삼켰던 아이들은 이제 게임 유튜버의 방송 화면을 보며 게임을 간접 체험한다. 오히려 게임 내 캐릭터들이 자기들끼리, 마이클과 프랭클린과 트레버가 코옵의 경험을 나누는 세상이다. 여럿이 모여 게임을 경험한다는 컨셉을 하드웨어 설계에까지 반영하면서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닌텐도가 거의 유일해 보인다.


‘라떼는~’ 하려고 꺼낸 얘기는 아니다. 세상이 변했다면 변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시대에는 이 시대에 맞는 해법이 늘 있는 것이다. 다들 잘 하고 있겠지. 그러나 그래도 영포티 아저씨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자랄 때는 게임이 나름대로 훌륭한 사회화 도구가 됐던 것 같기도 한데…. 새로운 세대의 코옵 도구라고 볼 수 있을 <로블록스>에서 최근 일어난 몇 가지 사건(윤 어게인 시위 등)을 떠올리며 괜히 시사적인 데로도 생각이 간다.


그렇잖아도 에코챔버니 확증편향이니 하는 시대가 아닌가. 이 시대의 매체가 그런 효과를 만들어 냈다면, 게임이라고 그런 흐름에서 자유로울 리가 있겠는가? 그러고보니 어떤 나라에선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금지한다고 한다. 그런 일이 대세가 되면 다시 슈퍼마리오의 시대가 올까? 아니면 더 강력한 백래쉬(?)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만드는 결말로 가는 것일까? 괜한 걱정인가? 역시 나이를 먹은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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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가)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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