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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한 게임가격이란 무엇일까?

09

GG Vol. 

22. 12. 10.

흔히들 스팀 라이브러리를 두고 하는 농담에는 ‘옛날에는 게임을 사서 안 했고, 요즘에는 게임을 사서 안 한다’는 말이 있다. 오랜 불법복제가 만연했던 시대를 지나 ESD플랫폼으로의 전환을 맞은 PC게임 이용자들은 한때는 게임에 돈을 내지 않았고, 지금은 돈을 써 놓고도 막상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뒤튼 말이다. 


라이브러리를 차고 넘치게 만들, 사람의 24시간으로는 미처 다 플레이할 수 없을 정도의 타이틀을 ESD플랫폼에서 구매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만큼 게임을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이 실제 플레이가 가능한 여가시간을 한참 넘을 정도에 이르렀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확실히 ESD플랫폼이 보편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게임 타이틀의 가격은 싸졌다고 볼 수 있는 부분들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게임 가격이 정말 싸졌다고 말하기는 또 어렵다. 이른바 AAA급 게임 타이틀의 가격은 정규발매를 기준으로 한다면 늘 천천히 오르고 있고, 디럭스판이나 한정판 같은 경우에는 이제 10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모습도 보기 어렵지 않다. 


싼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비싼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게임의 적정한 가격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한 편의 디지털게임 제작에는 적지 않은 인력과 자원이 들어가고, 적정한 가격은 제작자에겐 충분한 수익을 안겨줌으로써 더 나은 게임의 발전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고 이용자에겐 자신의 게이밍을 더욱 즐겁고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좋은 게임을 만족스러운 가격에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합의점이기 때문이다.



게임유통에서 정규가격을 짚는 일의 어려움


지나온 게임의 발전사를 더듬어보면 애초부터 게임의 정가라는 것이 매우 자의적이고 유동적인 무엇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케이드 오락실은 동전 한 개에 일정한 도전횟수를 제공받는 방식으로 일련의 정가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이는 플레잉타임이라는 기준으로 살펴보면 플레이어의 숙련도에 의해 가치의 변동이 크게 일어나는 방식이기도 했다(아마도 오래된 게이머들은 동네 고수가 오락실 주인에게 동전 하나 받고 쫓겨나는 장면들을 목격했을 것이다). 아케이드 게임 하나를 클리어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은 사람마다, 게이머의 숙련도마다 다르게 잡히곤 했다. 물론 모든 게이머가 특정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는 점도 생각해볼 지점이긴 하다.


그나마 콘솔, PC의 패키지 기반 유통체계에서는 정가라는 지점이 도드라질 수 있었다. 롬팩 한 개, 디스켓 한 장에 담긴 소프트웨어의 가격은 대체로 고정되었고, 플레잉타임과 무관하게 패키지 하나에 얼마라는 대략의 평균가격대가 존재했다. 하지만 온라인 유통이 보편화되는 시대에 들어 패키지 방식의 정가는 상설할인에 가까운 대규모 할인 시스템 속에서 다시 또 요동치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서는 구독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다시금 애매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온라인/모바일 시대 이후 보편화된 부분유료결제에 이르면 이제 게임의 정가를 논하기 어려운 처지에 이른다. 같은 게임을 같은 시간 플레이해도, 숙련도의 높고 낮음을 제해도 이제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소비금액대가 같은 게임을 둘러싸기 때문이다. 똑같이 우마무스메를 해도 한달에 100만원을 쓰는 사람과 무과금 이용자 사이에서 우리는 이 게임의 정가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먼저 짚고 가야 할 전제는 정가와 적정비용이 다르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한 사람이 게임에 얼마를 쓰는 것을 적절하다고 판단하는가는 정가의 문제가 아니라 적정비용의 문제다. 오락실에 갈 때 얼마만큼의 동전을 들고가는가는 개별 게임에 넣는 동전의 액수에 대한 총합으로 결정되는 문제이지 개별 투입동전의 단가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정가는 무엇이느냐는 이야기는 그래서 적절한 소비금액이 얼마인가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생산 – 유통 – 소비 과정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교환의 시너지를 이루며 상생할 수 있는 가격이 어디에 형성되느냐는 질문이 된다. 물론 이 또한 개별 소비자들의 적정 소비비용에 의해 영향받을 수 있겠지만, 우선순위는 생산자 – 소비자 사이에 맺히는 전통적인 가격에 의한 교환관계의 문제에 잡힌다.


이런 전제를 들고 이야기를 더 풀어나갈 때 짚어야 할 또 하나의 전제는 단일재화로 유통되지 않는 오늘날의 디지털게임 유통방식에 관한 문제다. 게임은 과거 아케이드의 등장 이래 대여 서비스(아케이드) – 재화의 구매(가정용 콘솔과 PC) – 대여 서비스(서버-클라이언트 중심의 온라인/모바일게임)을 거치며 재화 혹은 용역의 입지를 그때그때 바꿔온 바 있었다. 구매와 대여라는, 아주 뭉뚱그리자면 서로 다른 이 두 유형의 게임 소비 방식이 서로 엇갈리고 또 공존해 있는 현실에서 정가라는 문제를 다루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에 수시로 존재하는 할인이벤트와 구독 문제까지를 포함한다면 사실상 게임에서 ‘정가란 무엇이다’, 혹은 ‘게임의 정규가격은 다음의 요소를 고려해 결정할 수 있다’는 단언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산자가 자신이 판단하기에 적정한, 다시말해 산정한 기간 안에 제작비를 회수하고 적정한 이윤을 낼 수 있는 바운더리 안에서 이용자 수와 객단가를 제시하고, 제시된 가격에 소비자가 구매와 이용으로 반응하는 시장결정을 통해서만 짚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굳이 이 어려운 일을 생각해보자고 제안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정가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


한국 소비자물가지수는 총 480개의 재화와 용역에 대한 실가격을 조사해 물가상승률을 알아보기 위한 지표로 삼는 지수다. 여기에는 오락 및 문화라는 카테고리로 총 47개의 항목이 들어가는데, 악기, 컴퓨터 및 컴퓨터 수리비, 영화관람료, 서적, 여행비 등이 포함된다. 


갈수록 게임이용률이 늘어가고 있다는 조사가 적지 않고, 또 한 게임에 몇 억을 쓰는 일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보기 드물지 않은 사례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게임이용료는 소비자물가지수에는 아직 포함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유관한 항목이라면 아마도 PC방이용료 부문과 온라인콘텐츠 이용료일 것이지만, 이 또한 게임부문 물가의 정확한 반영이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움은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게임이 정말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미디어이자 일상의 여가로 자리잡았다고 이야기하려면 그에 따른 여러 후속조치들이 뒤따라야 한다. 각종 제도의 정비와 인프라 구축은 비단 게임문화의 발전과 확산 뿐 아니라 게임이 동시대의 유의미한 여가이자 문화활동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프라 측면에서의 정비에는 게임의 소비에 대한 경제적 고찰도 포함된다.


한 달에 사람들은 게임에 얼마만큼의 비용을 쓰는지, 최고값은 얼마이고 최저값은 얼마인지와 같은 기초조사는 이미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중이지만, 이것이 비단 게임에 머무르지 않고 좀더 보편적인 경우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예로 든 소비자물가지수와 같은 지표에의 산입이다. 영화관람료와 TV, 휴대용멀티미디어기기가 항목으로 들어있는 상황에서 게임소프트웨어 가격의 이슈 또한 이제는 포함되어야 할 필요를 맞은 시대다. 단지 게임값을 물가에 연동시킨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이 사회적, 시장적 측면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이제 각종 지표에 포함하여 반영해도 될, 아니 이제는 포함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는 이야기다.


“게임의 적정한 가격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은 그런 차원에서 의미지어진다. 적정가격을 묻는 일은 게임이용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머물지 않고, 여가와 문화라는, 산업화 시대를 지나 정보화 시대로 진입한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갈수록 비중을 키워나가는 카테고리 안에서 다른 요소들과 관계맺는 게임의 좌표를 향한 질문이다. 다른 여가/문화생활에 비해 게임가격은 어떠한가? 여러 문화생활 중 게임에 비용을 쓰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다른 매체나 여가에 비해 어떤 소구점이 있었는가? 이러한 질문은 단지 커뮤니티 게시판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제 사회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 안에 포함되어야 할 질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게임의 정가라는 질문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정가가 무엇인지를 쉽게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정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필요한 많은 조건과 변수들을 질문 앞에서 고민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과도한 현질이 가져오는 폐해이야기할 때나, 이름뿐인 ‘프리 투 플레이’의 허상을 짚을 때나 결국 이야기는 ‘그래서 게임에 정가라는 건 뭔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가격 이상으로, 우리는 ‘적정한 정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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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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