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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모전]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Ready or Not 비평을 중심으로
이 말은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의 CEO이자 영국 해군 출신이기도 한 리틀 존스가 한 말이다. 90년대말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에서 택티컬 FPS의 시초인 ‘레인보우식스’가 탄생한다. 톰 클랜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지금은 당연시되는 밀리터리 택티컬 FPS의 기본 공식들이 대부분 정립하여 FPS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 Back 13 GG Vol. 23.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yuYeon Lee After learning programming as a child, a wide-ranging interest in culture and the arts led to the goal of becoming a game designer. While at university, is preparing to enter the game industry, and at the same time frequents game-related exhibitions, festivals, and e-sports competitions.
- 타이쿤, 자유로운 세상을 생각하다
<돈스타브>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농사의 중요성을 알고있을 것이다. 당장의 굶어 죽을 위기에서 안정적인 식량 보급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밥을 찾아 헤매는 일은 너무나도 고달프다. 따라서, 수렵과 채집을 하던 게이머들은 어느 순간부터 터를 잡고 작물들을 키워나간다. 더 ‘효율적’으로 작물을 수집하기 위함이다. < Back 18 GG Vol. 24. 6. 10. Tags: 굶지마, 시뮬레이션, 타이쿤, 대량생산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eonwoo Lee Interested in games played together, and studies the relationality of games. Hopes that games can bring joy to everyone, all at once.
- 미술관에 놓인 게임: 게임은 미술관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한글로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영아적 판타지가 위협받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어Μουσείον을 무세이온이라고 표기해야 할 때다. 오랜 옛날 무사이Μουσαι의 신전을 부르던 이름이다. 갱스터 근성을 타고 태어난 로마인들이 그곳을 참숯으로 만들었다. 파편처럼 흩어진 여러 기록에 따르면, 무세이온은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을 거느린 거대기관으로, 세상의 온갖 학자들이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싸면서 각종 연구를 자행하였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보존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 Back 미술관에 놓인 게임: 게임은 미술관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12 GG Vol. 23. 6. 10. 1. 미술관의 기원 한글로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영아적 판타지가 위협받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어Μουσείον을 무세이온이라고 표기해야 할 때다. 오랜 옛날 무사이Μουσαι의 신전을 부르던 이름이다. 갱스터 근성을 타고 태어난 로마인들이 그곳을 참숯으로 만들었다. 파편처럼 흩어진 여러 기록에 따르면, 무세이온은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을 거느린 거대기관으로, 세상의 온갖 학자들이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싸면서 각종 연구를 자행하였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보존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세이온은 오늘날의 대학과 같은 시설이 아니었을까? 아쉽게도 주변머리만 남겨놓고 머리통을 빡빡 민 수도사들은(예를 들면 에라스무스) 무세이온을 이집트 왕이 헬레니즘 세계의 온갖 이교도적인 보물을 쌓아놓은 곳쯤으로 상상했다. 그리하여 왕이나 귀족이나 교회나 메디치 가문 등등의 소장품을 쌓아놓는 공간을 뮤제움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무세이온의 이름을 따서. 그리고 나중에 일본인들은 뮤제움을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나누어 받아들였다. 그 무렵은 중세와 달리 ‘예술품인 것’과 ‘예술품이 아닌 온갖 수집품’의 구별이 생길 때였다. 일본을 통해 대부분의 근대어를 갖게 된 우리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으로, 미술관은 사실 박물관과 정확히 같고, 그것의 주 기능은 온갖 물건을 수집, 보존, 해석, 연구하는 데 있다. 전시는 그 다음이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 위의 모든 미술관들은 대중에 개방하는 전시를 널리 일삼고 있는 바,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미술관은 완전히 근대의 산물, 좀 더 정확히는 대혁명의 산물이다. 이 사실을 언급하는 유명한 미술사가(예를 들면 앙리 웃세)가 지금까지 2천 명쯤은 있었을 것이다. 사실인즉 로마인의 갱스터 혈통을 물려받은 무리들이 왕을 단두대에 신나게 썰고 역대 왕들이 홀로 덕질해온 수집품들을 강탈해 공화국의 공공재로 선언했다. 이로써 최초의 근대적 미술관이 탄생했다. 공화국의 미술관Muséum de la république이 본래 명칭인 그곳은 한글로 발음을 표기할 수 없으니 간단히 루브르라고 하자. 국공립과 사립을 가리지 않고 세상의 모든 미술관들은 루브르와 같은 기능을 한다(잘 하든 못 하든). 루브르 이전에도 브장송이라든지 몇몇 동네에 공개전시를 여는 미술관이 드물게 있긴 했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겠다. 그렇다면 루브르와 같은 기능이란 무엇인가? 작품을 수집, 보존, 해석, 연구하는 일에 더해 전시도 하는 것이다. 단지 볼거리를 제공하는 차원이 아니다. 작품을 시대나 주제에 맞게 선별함으로써 사회 공통의 기억과 서사를 불러일으켜 공화국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전시다. 즉, 미술관의 원래 기능은 근대국가의 국민을 만드는 일이다. 좋은 미술관은 민주주의 발전의 경험, 여권신장의 역사, 이민자나 소수자를 대표représentation하는 기억, 변화해온 사회의 풍경 등을 담는 작품을 꾸준히 수집해 전시하고, 그럼으로써 사회구성원 모두를 통합하는 데 기여한다. 반면 영 좋지 못한 미술관은 미술 자체의 동시대적 실험 따위를 다루면서 사회구성원 모두로부터 멀어진다. 2. 미술관의 쇠퇴 그런데 위와 같은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19세기나 20세기까지의 일이다. 초강력 21세기가 도래한 지금, 미술관은 쇠퇴하고 있다. 정확히는 ‘루브르와 같은 기능’을 수행할 힘이.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19세기에 발명된 근대미술이 이제 과거처럼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과 200년 전, 아니 150년 전만 해도 그림과 조각이 가장 강력한 시각적 충격을 주는 매체였다. 바다를 그린 그림을 평생 내륙에서 살아온 사람이 처음 보았을 때 느꼈을 미술의 마법 같은 힘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제 미술에서 그런 힘은 완전히 사라졌다. 인터넷, 스마트폰,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통한 시각이미지가 넘쳐난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바다풍경’을 미술은 더 이상 그려낼 수 없다. 더구나 근대국민국가의 역할이 시효를 다하면서 단일한 공동체서사 또한 끝물이다. 이것이 둘째 이유다. 오늘날은 별의별 개인의 개별서사가 확산되는 시대다. 각자가 서사를 재구성하고 재전유하면서 스스로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다시 써내려간다(오만가지 젠더와 인종과 종교와 문화 정체성이 탄생해온 지난 십여 년을 떠올려보라). 국가가 하나의 역사적 공동체라는 역할 대신 세금을 뜯으며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로 바뀌었듯, 미술관 또한 공동체 서사기능 대신 입장료를 뜯으며 구경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관광 비즈니스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셋째는 미술관이 반드시 수장해야 하는 시대적〮지역적 작품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가 하드웨어로서의 미술관은 지어놓았으나 이렇다 할만한 지역미술 씬 자체가 없는 지역미술관의 예를 들 수 있다. 이런 미술관은 아무런 공적 역할이 없는 짐짝일 뿐이다. 때로는 작품이 있어도 곤란하다. 예컨대 한국의 7,80년대 미술을 국립미술관은 어떻게 선별하고 배열해야 하는가? 훌륭한 작품은 웬만하면 독재에 부역하여 민주화 이후 국가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 역사적 저항의 현장에 있었던 작품은 웬만하면 훼손되어 사라졌거나 질적으로 좋지 않다. 그 시대의 삶을 증언해 줄만한 작품은 별로 없다. 미술품 생산이 일어날 만큼 여유롭지 않았고, 그나마도 웬만하면 검열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도 미술관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넷째 이유는, 미술관에 돈이 없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쇠퇴하는 한편으로 미술의 향유는 압도적으로 시장을 경유하게 되어, 세계 미술시장에 전례 없는 거품이 발생했다. 미술품이 공예품이나 공산품에 비해 특별히 우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가치에 비해 미술품이 너무 비싼 탓에 미술관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때로는 기업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작품을 충분히 구입할 수 없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왕을 단두대에 신나게 썰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근 들어 전세계 미술관에서 상설전이 축소되고 기획전과 대관전이 늘어나는 경향이 확산된 데는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미술관은 ‘루브르와 같은 기능’을 잃었다. 달라진 시대에 미술관이 어떻게 변모할지는 아직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21세기 거의 모든 미술관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 있다. 영상미술이 차지하는 비중의 가파른 증가다. 미술관은 본질적으로 19세기적 근대미술을 위한 공간이다. 설렁설렁 걸어 다니면서 작품을 눈으로 읽게끔 설계되어있다. 그런 곳에 반복재생되는 영상을 설치해보았자 전시지킴이의 신경증 발병확률을 효과적으로 올릴 수 있을 뿐, 영상은 미술관이 아닌 상영관에 알맞다. 지구상의 어떤 미술관도 상영관은커녕 집보다도 나은 영상시청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여기서 집이란 TV와 소파가 있는 일반 가정집을 뜻한다. 그럼에도 영상은 이제 미술관뿐 아니라 베니스 비엔날레 등 세계의 주요 미술행사까지 사실상 장악했다. 영상미술의 성장은 시간의 예술이 현대미술의 주류가 되었기 때문일까? 물론 흥미로운 영상작품이 많기도 하지만, 그 뒤의 이유는 비용이 싸기 때문이다. 우선 운송비와 보관비가 들지 않는다. 복제 가능하므로 원본이 훼손될 염려도 없다. 국경을 쉽게 넘을 수 있고 동시에 여러 장소에서 전시하는 일도 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적은 비용으로 현대미술 국제전을 열 수 있다. 영상을 주업 또는 부업으로 하는 미술작가가 늘어난 것도 미술관을 주 판매처로 하는 경제적 전략의 이유가 있다. 이런 현상도 미술관의 원래 기능이 쇠퇴하고 있다는 하나의 징표다. 3. 미술관에 놓인 게임 코로나 펜데믹 이전에도 프랑스인의 61%가 1년에 단 한번도 미술관과 박물관을 포함, 전시회를 방문하지 않았다. 1년에 5회 이상 방문한다는 프랑스인은 고작 8% 1) 에 불과했다. 인구의 다수가 미술관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는 통계는 너무 많은 나라에 너무 많이 있어서 열거할 수 없을 지경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미술전시회에 관객이 가득 차고 미술대상 수상작이 신문 1면에 실리는 시대를 경험했지만, 우리 세대는 미술 전시란 으레 고요히 비어있는 행사라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는 현재 미술관이 처한 상황의 중핵이 아니라 곁가지에 불과하다. 미술관을 찾지 않는 비관객은 미술관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오늘날 미술관의 주요 관객은 해당 공동체의 시민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관광객이다. 나머지 소수의 관객은 전세계 어느 통계를 보아도 점점 더 점점 더 고학력〮고소득층으로 굳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입장료를 아무리 낮추어도 점점 더 소수 특수계층이 향유하는 공간이 되어간다. 달리 말하면, 현재로서는 상위계층에 복무하거나 그저 관광상품이 될 수 밖에 없는, 원래의 공적인 기능을 잃은 미술관은 존재의 이유마저 잃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미술관은 게임을 전시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파리 그랑팔레에 이어 뉴욕현대미술관,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한국국립현대미술관까지, 게임을 주제로 하는 대형 전시를 열었다. 물론 게임은 미술관에 전시할 수 있는 예술이다. 이에 대해서는 논할 마음이 없다. 그런데 미술관이 게임을 불러들이는 까닭은 게임을 예술로 승인하기 위함이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지금의 구조적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미술관 나름의 절실한 필요가 있다고 해도 좋다. 새로운 관객층과 새로운 예술을 미술관에 데려오기 위해 게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미술관에 전시되는 게임은 어떻게 기능하는가? 게임은 감상의 대상인가, 체험의 대상인가? 전자라면 단지 몇 명의 플레이어만이 컨트롤러를 잡을 수 있는 게임의 특성상 게임의 미적 감상이 극소수에게만 허용된다. 후자라면 게임전시 자체가 제품시연회와 비슷한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고 만다. 그런데 애초에 감상과 체험이 나누어지는 것이기는 할까? 의문은 호기심천국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게임이 미술작품과 다르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미술관에 놓이는 것인가? 미술관으로서는 감상이든 체험이든 전시를 통해 게임을 어떻게 재정의하는지나 어떤 관객을 위해 무엇을 보이려고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영상을 전시할 때도 그러하니까. 그러나 게임은 영상과 다르다. 미술관에서의 게임 전시는 실패가 예정된 기획일지도 모른다. 미술관 스스로 무수히 많은 게임을 수집하고, 일정 주제에 따라 분류, 선별함으로써 만들어진 전시가 아니라면 특히 그렇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게임의 예술성이나 작동방식 때문이 아니다. 게임은 영상처럼 싸지 않다. 각각의 작품에 맞는 물성이 있는 기기가 필요하다. 운반비와 보관비가 든다. 전시기간 중에도 계속해서 비용이 든다. 관객/이용자가 기기를 직접 조작하므로, 관객규모에 비례해 훼손이나 고장의 위험도 커진다. 지난 달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 전시를 예로 들어보자. 정식오픈 전날, 기자간담회를 막 끝마친 시점에 이미 펌프기기 형태의 게임작품은 망가져 오작동하고 있었다. VR형태의 가상현실 작품은 같은 구간이 반복되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실험실에서 눈을 뜬 후 작품 속 나레이터의 안내를 듣고 나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일반에 공개하기도 전에 그랬으니, 전시 오픈 후에도 비슷한 고장이 여럿 발견되었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처하려면 능숙한 엔지니어가 전시장에 상주하면서 매순간 모든 작품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 미술관이 부담하기엔 너무 많은 비용이다. 그래서 본인은 미술전시로서의 게임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4. 미술관 전시보다 상설 게임박물관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는 게임을 예술로 정의한다. 오랜 옛날에는 예술에 포함되지 않았던 그림과 조각이 르네상스를 거치며 예술이 되었듯이, 또 사진과 영화와 만화 등이 20세기에 예술로 인정받았듯이. 게임은 시각예술과 음악, 영상, 문학적 서사가 혼합된 인터렉티브한 총체예술이다. 하지만 미술관에 전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게임에게도, 미술관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없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모든 예술이 미술관에 어울리지는 않는다. 연극이 예술이라 하여도 굳이 미술관에서 상연한다든지, 문학이 예술이라 하여도 책 페이지를 찢어 미술관 벽에 붙인다든지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드물게 있기도 하지만, 각각의 예술매체는 각각의 장르에 더 좋은 공간이 따로 있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연극을 위한 국공립극장과 문학을 위한 국공립도서관이 따로 있듯이, 게임도 게임을 위한 국공립시설이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저비용 혹은 무비용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곳.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한 기기들을 갖춘 곳. 그런 곳을 우리는 PC방이나 게임방, 플스방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렇다, 그런 공간을 공공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인은 주장하는 것이다. 나아가 더 필요한 것은 게임 자체만을 위한 박물관의 신설이다. 게임박물관은 방문객이 적은 비용으로 게임을 시연해볼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시대에 가장 널리 퍼진 문화적 관행 가운데 하나인 게임을 보존, 연구하면서 인류의 기억에 남겨두기 위해 필요하다. 게임박물관이 있는 나라는 이미 많다. 파리의 게임박물관, 영국 셔필드의 국립비디오게임박물관, 로마의 비디오게임박물관, 베를린의 컴퓨터게임박물관 등, 각각의 게임박물관들은 저마다 다른 주제와 테마를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게임을 수집해 공개한다. 게임과 게임기기는 물론 게임작품에 관한 여러 역사적 자료들도 끌어 모으는 중이다. 모든 게임박물관은 방문객이 직접 게임을 해볼 수 있게끔 신〮구형 PC와 게임기기들을 갖추고 있다. 일부 게임박물관은 교육 프로그램이나 지역연계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일부는 그렇지 않다. 아직까지 게임박물관들은 소규모에 불과하지만, 21세기의 남은 3/4을 지나면서 크게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아직까지 게임박물관이 없다. 문체부가 3년 전부터 게임박물관 설치를 추진했으나 아직까지 기본계획조차 제대로 수립되지 않았다. 게임박물관이 없다는 말은 문방구 앞에 쪼그려 앉아 플레이하던 게임기기(과자가 덤으로 나왔다)라든지 오락실에서도 밀려나는 옛 게임들, 한때는 휴대폰처럼 들고 다녔던 소형게임기기 등이 그대로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옛 게임만이 아니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지만 앞으로 유행에 밀려날 게임들도 곧 사라지게 된다. 또 자가 게임기기를 가진 사람은 게임을 향유할 수 있지만 게임기기가 없는 사람은 향유할 수 없는 문화격차가 방치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제목의 질문을 던져본다. 게임은 미술관이 처한 어려움을 구제할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그럴 필요가 없다. 게임은 미술관의 미술과 전혀 다른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은 미술에 의해서만 지탱된다. 본인은 우리 세대가 죽기 전에 미술창작의 많은 부분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리라 예상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미술이라는 단어는 지나간 과거의 인간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때 미술관은 다시 박물관의 역할로 돌아가, 근대미술박물관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지금 게임에 필요한 것은 미술전시를 위한 근대적 공간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의 예술인 그 자신을 위한 시설이다. 1) Statista Research Department, Frequency of visiting museums/temporary exhibitions in France 2018, Published Dec 9, 2022 Tags: 예술, 전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술가) 손이상 미술을 공부하고 사진작업을 하다가 밴드 음악을 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공연 연출을 하다가 공공미술 기획자가 됐다. 윈도우95에서 구동되는 턴제 게임만 한다.
- [게임과 예술] 로딩중인 세계의 권태와 노동에 관한 소고
상희는 유희와 즐거움의 이미지로서 소비되던 게임의 형식을 빌려 디지털 산업 사회에서 노동하는 신체에 관한 감각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즉각적인 쾌락과 만족, 완전히 개인화된 세계에서 내면적 사유로서 ‘권태’가 가진 정서를 재조명한다. < Back [게임과 예술] 로딩중인 세계의 권태와 노동에 관한 소고 16 GG Vol. 24. 2. 10. 마법과 환상, 신과 영웅이 사라졌다. 과거의 인간은 신이나 영웅이라는 신화적 인물을 만들어 그들의 통제 속에서 예정된 일을 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지금의 운명은 내 손에 달려 있으며, 미래는 나의 치열한 노력으로 구현되는 시간이 됐다. 삶의 방향키가 나에게 쥐어진 만큼, 오늘날 우리에게는 자유와 열정이 뒤따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인스타 릴스, 유튜브 숏츠 등 자극과 도파민이 과잉 생산되는 환경에서 더 큰 쾌락만을 좇는 인물들에게 남는 것은 무기력이다. 과거 부모의 세대를 떠올려보면, 노동과 유희는 분리된 영역으로 자리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퇴근 후 자기만의 취미를 갖거나, 게임을 즐기는 등 삶의 규칙과 질서를 세우는 일이 어색하지 않았다. 한편, 당대의 풍경에서 어느 정치인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공약은, 마지막 산업 시대형 구호로서 공허한 외침으로 느껴진다. 노동과 생산이 강제되는 오늘의 자본 사회에서 우리들의 유희와 놀이 능력을 지키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글은 ‘번아웃 증후군’이 유행처럼 번져가는 오늘날,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의 생태를 살펴본다. 특히 지난겨울 시청각랩에서 진행된 상희 개인전 《Worlding…》(2023.12.10.-12.31)을 중심으로 노동과 실존적 사유로서 권태라는 감정을 이야기해 본다. 전시의 제목이자 작품의 이름인 〈Worlding…〉(2023)은 비동기 온라인 게임의 양식을 활용한 참여형 VR 작업이다. 실시간 게임과 달리 유저간의 상호작용 없이 혼자서 플레이 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때 비동기 온라인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개별 플레이어들의 행위는 실시간이 아닐 뿐, 일정한 시차를 두고 흔적으로서 연결된다. 상희는 유희와 즐거움의 이미지로서 소비되던 게임의 형식을 빌려 디지털 산업 사회에서 노동하는 신체에 관한 감각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즉각적인 쾌락과 만족, 완전히 개인화된 세계에서 내면적 사유로서 ‘권태’가 가진 정서를 재조명한다. 게임 스테이지와 플레이하는 노동 〈Worlding…〉은 구체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출발한다. 관객/플레이어는 전임자에게 특정 과업을 인계받아 일을 시작한다. 임무는 늪지 위에 나타난 거인을 묻는 것. 늪지의 파수꾼이 되길 요청받은 관객은 낮 동안 사체가 된 거대한 육신을 흙으로 퍼붓고, 밤이 되면 처소로 돌아가 전임자가 남긴 일지를 읽는다. 플레이 타임의 대부분은 거인을 묻는 작업에 소요된다. 그러면, 다시 내일이 온다. 어제의 노동이 없었던 일처럼, 전날 묻어놓은 사체가 다시 벌거벗은 채 놓여있다. 마치 시시포스의 형별 같은 노동이 새롭게 반복된다. 앞서 언급했듯, 상희는 게임의 문법을 작업에 빌려왔는데, 그것은 작업의 서사를 스테이지화 하는 지점에서 알 수 있다. 통상 게임 공간은 플레이어의 경험을 구체화하는 수단으로서 의미가 확장된다. 서사는 스테이지 구축을 통해 전개되며 게임의 기승전결을 구성하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스테이지 단계를 따라 퀘스트를 달성한다. 반면, 하루를 단위로 분리되는 〈Worlding…〉의 스테이지에서는 ‘퀘스트’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오늘의 노동량을 채우세요.”라는 문구로 퀘스트를 쥐여주지만, 임무에 따른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 게임이 스테이지를 건너가는 방식으로 서사를 전개한다면 상희의 작업은 어제와 오늘이 다를 바 없는 동일한 장면의 무대를 마련하고, 보상 없는 퀘스트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은 화면 속 컨트롤러의 이미지다. 상희는 컨트롤러를 두 개의 손으로 표상하면서, 하루하루 스테이지를 거칠수록 노화를 거치는 손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점점 손은 거무죽죽한 껍데기로 변해간다. 두 개의 손은 거인을 매장하라는 ‘오늘의 노동량’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흙을 퍼붓는다. 두 손으로 컨트롤하지만, 아무것도 만질 수 없고 쥘 수 없는 이미지에 관한 공허한 감각이 느껴진다. 이 무기력한 손의 반복적인 운동은 내일이면 파헤쳐질 거대한 몸집 위로 다시금 흙을 쌓아 올린다. 절대 끝나지 않는 매장이 디지털 구조망에 실체 없이 묶여버린 노동하는 몸을 상기시킨다. 끝을 기다리는 게임 크라우드 워킹, 플랫폼 노동, 나아가 인공지능 노동까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기술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이 활개 친다. 노동 해방이라는 이 듣기 좋은 기획은 미래 신기술이 고된 노동을 줄여주고 우리의 삶을 더 자유롭게 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정말로 노동자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었는가? 기술과 사회가 가속할수록, 시스템을 체화한 우리 역시 이전보다 더 빠르고, 더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물리적으로 사무실을 벗어나도 업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가상과 현실이 불가능해진 것처럼 일터와 일상 간의 경계 역시 허물어진다. 기술을 사용하는 사회적 방식에 따라 핵심부서를 제외한 간접부서를 사내 하도급, 파견근로, 아웃소싱으로 외주화하면서 노동자는 노동자 아닌 형태로 일의 네트워크에 붙들려 있다.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연결된다는 것. 이 말은 노동과 유희의 경계 없이 우리 몸이 항시 노동하는 상태로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가속화된 세계에서 느린 몸은 무자비하게 도태된다. 기술 시스템의 자동화, 자율화가 더 빨리 진행될수록 개개인의 무력화 역시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상희는 게임의 조건으로부터 노동의 수행적인 성질에 관여하고 있다. 실행이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고, 수행이 신체의 반복 훈련을 통해 사건을 발생시키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면, 상희의 작업 속 노동하는 몸은 이미지의 실행으로써 당대 노동이 가진 수행성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이는 작업의 주요한 정서인 지루함과 ‘권태’에서 발견할 수 있다. 흔히 게임은 쾌락과 유희, 혹은 몰입과 중독의 차원에서 논의되곤 하지만, 작가는 권태를 말하기 위해 게임 형식을 빌려온다. 관객으로 하여금 게임이 서사화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스스로 밟을 땅의 형세 만들기를 제안하면서 말이다. 아무도 정해주지 않은 ‘오늘의 노동량’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게임의 타임라인. 컨트롤러를 쥔 물리적인 신체는 VR 공간의 움직임과 연동된 채 지루한 노동을 반복 플레이한다. 관객은 VR 게임에 매핑된 신체 이미지에 자기 몸을 맞춘다. 플레이 초반에는 몸의 불일치한 감각에 집중하지만, 하루하루 동일하게 디자인된 스테이지가 넘어갈수록 관객은 게임 속 신체와 연동하며 점차 뻐근해지는 팔과 어깨를 느낀다. 그렇게 플레이는 고통스럽게 지루해진다. 로딩 중인 세계에서 권태를 재발견하기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는 텅 빈 공간이다. 공동체적 질서, 삶의 방향성이 사라진 공터에서 권태에 쉽게 노출되곤 하는 것이다. 오늘날 혼자 놀고, 혼자 일하고, 혼자 먹는 사회에서 우리는 나르시시즘적 쾌락과 향유의 주체로 자리하게 되며, 가상의 풍경에 매혹된 채 스스로 고립되길 선택한다. 상희는 이런 오늘의 풍경을 가상의 공간에 옮겨두고 있다. 홀로 하는 외로운 노동, 언제 끝날지 모를 지루한 움직임, 타자가 부재한 세계관. 관객이 헤드셋을 벗어두고 떠나면, 늪지에는 새로운 관객, 즉 늪지의 새 파수꾼이 찾아올 것이다. 이들은 서로 마주치지 않는다. 전시 공간의 관객은 전임자의 과업을 이어 그의 노동 행위를 반복한다. 이때 작업에서 특기할 만한 지점은 플레이어가 HMD 헤드셋을 벗어두고 떠난 이후부터 발견할 수 있다. 긴 플레이 타임으로부터 해방되면, 관객은 지끈거리는 머리와 묵직한 어깨를 움직이며 헤드셋을 벗는다. 그리고 나면 VR 공간에서 축적한 개별 관객의 데이터가 종이 위로 출력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거인의 육체를 덮은 땅의 모양새에 따라 데이터가 지형도를 만든다. 고사양 그래픽과 함께 VR에서 구현된 땅이 2차원의 평면적 데이터로 공간에 쌓인다. 그와 동시에 전시 공간 아래 자리 잡은 지하실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전시에 참여한 모든 관객의 실행 데이터가 합산되어 지도의 형상으로 투사된다. 관객은 물리적 공간과 가상 공간이 서로 연동하는 방식으로써 또 다른 노동의 흔적을 발견한다. 말하자면, 〈Worlding…〉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권태로운 세계를 구축하면서 오롯이 흔적으로서 연결된 공동체를 감각하게끔 하는 것이다. 권태의 가장 주된 증상은 시간을 시간 자체로 인식하는 것에 있다. 권태의 주체는 시간을 감각하는 자기 자신을 마치 하나의 대상처럼 낯설게 의식한다. 그리고 이는 나와 당신을 구획하는 거리, 혹은 너와 나를 엮어내는 공동의 지형을 관찰하도록 제안한다. 모든 시간이 빈틈없이 꽉 차 버린 사회, 24시간 ‘온라인’으로 동기화된 몸으로부터 권태를 느낄 여유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상희는 너무 많이 묶여있는 몸들을 ‘비동기화’하길 시도한다. 묻히지 않는 거인의 죽음, 어디서 왔는지 그 실체조차 알 수 없는 대상으로부터 권태와 고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요컨대 상희는 재미의 왕국에서 세상의 사건 사고가 하나의 이미지, 또는 껍데기로 소비되는 장면을 포착하고, 분초를 다투는 오늘 사회의 시간에 무게를 싣는 방식으로 속도를 지연시킨다. 그렇게 로딩된 세계가 늘어뜨린 시간 속에서 권태의 자리를 마련하며 오직 홀로, 나를 대면할 실존적 사유를 요청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술비평) 이민주 이민주는 서양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글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린다. 퍼포먼스와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의 관계를 짚은 《동물성 루프》(공-원, 2019, 공동 기획),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미학성과 정치성을 조명한 《논캡션 인터뷰》(의외의조합, 2021, 기획), 연극의 형식을 빌어 전시의 사건성을 모색한 《#2》(두산갤러리, 2023, 공동 기획)를 기획했다. 이미지가 만드는 사건과 수행적 성질에 주목하며 비평적 글쓰기를 고민하고,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번역 관계를 연구한다.
- [논문세미나] <하스스톤>에서 플레이어들은 왜 감정 표현을 오용하는가?
저자들은 위의 요소를 모두 고려해 비매너 상호작용의 다섯 가지 형태를 정리한다. 제시된 유형들은 가장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것으로, 모든 플레이어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항복(concede)’은 여기서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모순점인데, 항복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모두가 비매너 플레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Back [논문세미나] <하스스톤>에서 플레이어들은 왜 감정 표현을 오용하는가? 14 GG Vol. 23. 10. 10. Text: Arjoranta, J., & Siitonen, M. (2018). Why Do Players Misuse Emotes in Hearthstone?: Negotiating the Use of Communicative Affordances in an Online Multiplayer Game. Game Studies: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computer game research, 18 (2). 1. 들어가며 누가 뭐라 해도 멀티플레이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해진 수 만을 두는 컴퓨터와 달리, 변칙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큰 재미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플레이어간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여기서의 큰 축을 담당해 왔다. 게임이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가상 세계에서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 인연을 맺는다. 이에 대한 기대는 정말 대단한데, 다수의 플레이어들에게 소통과 사교는 항상 게임을 플레이하게 하는 결정적 동기로 이야기 된다(Yee, 2005). 한편 ,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게임은 악성 채팅으로 가득 차있다. 소소하게는 도배부터 심각하게는 욕설까지 게임 내 공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발견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게임의 스트레스이며 가장 큰 이탈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은 공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라이엇게임즈(Riot Games)는 인 게임 내 부정적인 텍스트를 신고를 통해 검토하고 친 사회적인 행동에 보상을 주며, <콜오브듀티>(Call of Duty) 팀은 음성 채팅 중재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나아가, 텍스트 기반 의사소통이 언제나 반사회적 행동의 여지를 남긴다는 인식과 함께 게임 디자인적으로 채팅 기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기도 하는데 <하스스톤>(Hearthstone)은 이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번 호에서 다루는 은 <하스스톤>에서 이루어지는 비매너 의사소통 행위(BM)를 추적하는 논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하스스톤>은 채팅이 배제된 게임이기에 이는 ‘텍스트 기반 의사소통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공격적인 의사소통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분석한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들이 언급한 것과 같이, 이와 같은 접근은 플레이어들이 제한된 자원을 통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의미를 협상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의 문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인 게임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이번 호에 맞추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 <하스스톤>이 소통을 제한하는 방법 본론에 들어가기 전 <하스스톤>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제한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사실,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는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하스스톤>만은 아니다. 그의 의도 역시 다양한데, 게임 디자이너들은 공격적인 행동을 줄이고자 할 뿐만 아니라, 게임의 스토리라인이나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의사소통의 가능 방식을 설정한다. 대표적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에서 한 플레이어는 적대 세력의 플레이어와 채팅을 할 수 없으며, <저니>(Journey)에서 플레이어는 버튼으로 소리를 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하스스톤>에서 사용하는 의사소통 전략은 ‘감정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하스스톤>에서는 채팅이 금지되어 있으며, 플레이어 간 의사소통은 여섯 가지의 감정 표현으로 제한되어 있다. 한편, 게임 내 채팅이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닌데 친구추가를 한 상대와는 텍스트 기반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럼에도 채팅 기능은 로비에 한정되며 게임을 당장 함께하는 상대와 나눌 수 있는 것은 감정 표현 뿐이다. 그림1. <하스스톤>에서의 감정표현 연구가 시작된 2015년까지 감정표현은 ‘감사’, ‘칭찬’, ‘인사’, ‘사과’, ‘이런!’, ‘위협’으로 구성되었으나 2016년 4월 24일 ‘사과’가 삭제되고 그 자리에 ‘감탄’이 추가되었다. 1) 이에따라 데이터 수집도 두 차례 이루어졌는데, 연구자들은 ‘사과’가 ‘감탄’으로 대체된 이전과 이후의 데이터를 비교해보며 디자인의 변화에 따른 차이를 살폈다. 사용 가능한 감정 표현은 여섯 종류가 있으나 각각의 대사는 플레이어가 선택한 캐릭터에 따라 약간씩 달라진다. 이를테면 같은 ‘위협’ 표현에 대하여 사제 캐릭터 란두인이 “빛이 당신을 태울 것입니다!”라 한다면, 사냥꾼 캐릭터인 렉사르는 “네놈을 추격해주마!”라고 말한다. 위와 같은 감정 표현은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는데, 방해 받고 싶지 않은 플레이어를 위해 상대방의 감정표현을 차단하는 기능도 있다. 표 1. 하스스톤: 오리지널 영웅과 영웅 별 감정표현 한편 , 유저의 커뮤니케이션이 마냥 주어진 감정 표현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플레이어는 커서(터치스크린일 경우 손가락)의 위치, 카드 검토나 주문 선택의 과정을 통해 상대방과 암묵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3. < 하스스톤> 플레이어들이 (잘못된)의사소통을 하는 방법 그렇다면 <하스스톤>의 플레이어들은 실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그들은 주어진 기능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아니면 기능을 벗어나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내는가? 저자들은 <하스스톤> 포럼인 ‘Hearthpwn’ 2) 의 글을 수집하여 이를 살핀다. 그에 따르면, 플레이어들의 비매너 소통에는 ‘감정표현을 사용하는 방식’과 ‘그 외의 방식’이 있다. 1) 감정표현을 사용하기 플레이 중 이루어지는 감정 표현은 주어진 그대로의 의미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 모든 의사소통 행위는 그것이 발화되는 특정 맥락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게임이 시작할 때 하는 인사는 인사로 받아들여지지만 고민으로 시간이 지체되고 있을 때의 인사는 재촉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고맙습니다’는 정말 감사를 표할 수도 있지만 상대의 실수를 조롱하는 데에도 사용 가능하다. 즉, 같은 표현이라도 타이밍이나 상황의 단서에 따라 수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캐릭터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은 의미의 범위를 더욱 확장한다. 이를테면, 같은 ‘감사’인사라도 우서가 하는 ‘고맙네’는 안두인 린의 ‘감사합니다!’는 서로 다른 느낌을 준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각 캐릭터의 어조를 살려 감정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특히’ 상대방을 약 올릴 수 있는 캐릭터의 대사가 드러난다. 실제로, 본문에 언급된 한 플레이어에 따르면, 제이나의 ‘이런!’은 특히나 얄밉다. 그림 2. 한국 커뮤니티에서 밈(meme)으로 자리잡은 안두인의 감정표현(욕설은 블러처리) 3) 이처럼 , <하스스톤>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그 자체의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섯 종류의 감정 표현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만들어 내며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에 사용된다. 따라서, 몇몇 플레이어들은 문맥적 해석을 제거함으로써 합의된 어휘를 개발하고자 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감정 표현은 각각이 의도된 대로 동일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즉, ‘인사’ 표현은 인사를 하는 의미로 발화되고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감정 표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 역시 존재했다. 그들은 채팅을 제한하는 것이 오히려 공격적인 행동 가능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감정 표현을 통한 비매너 소통은 겉으론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제제할 방법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편 , 모두가 감정 표현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플레이어들은 감정 표현의 확장된 사용을 재미의 일부로 수용했다. 그들은 각각의 감정 표현이 가지는 미묘한 느낌에 흥미를 가지고 감정표현을 확장시키는 것 자체를 ‘놀 거리’라 생각했다. 2) 플레이를 통하기 <하스스톤 >에서 상대방과 소통하는 방식은 감정표현 뿐만이 아니다. 해당 게임에선 그보다도 훨씬 많은 비언어적 표현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플레이어어는 의도적으로 천천히 플레이하며 시간을 끄는 ‘로핑(roping)’을 할 수 있으며, 승리가 확실해진 상태에서 불필요한 행동을 하며 플레이를 지속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캐릭터나 덱의 선택 을 통해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게임의 가장 단순한 기능도 여러 방식으로 사용되고 다양한 뜻을 전달한다. 플레이어의 창의성이 개입된다면 어떤 것도 소통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저자들은 위의 요소를 모두 고려해 비매너 상호작용의 다섯 가지 형태를 정리한다 . 제시된 유형들은 가장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것으로, 모든 플레이어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항복(concede)’은 여기서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모순점인데, 항복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모두가 비매너 플레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① 의도적으로 시간을 지연시키는 경우 . 플레이어의 차례가 끝나려 할 때 천천히 타는 밧줄을 가리켜 ‘로핑(roping)’이라고도 함 ② 스패밍 (spaming)을 비롯한 감정 표현을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행위. ③ 항복을 하지 않고 게임을 종료하는 행위 . ④ 승리가 확실 해졌음에도 불필요한 공격으로 플레이를 연장시키는 행위 ⑤ 게임이 끝난 후 , ‘친구 요청’을 보내 상대방에게 공격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 4. 나가며: 비매너라는 회색 지대 한국의 위키피디아 사이트인 ‘나무위키’에는 ‘인성질(하스스톤)’이라는 문서가 있다. 그에 따르면, 인성질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게임 하스스톤에서 제공하는 의사 표현 기능을 이용하여 상대를 희롱하는 행위’ 4) 로 본 논문에서 확인한 비매너 소통에 해당한다. 웬만한 논문보다 긴 길이의 위 문서는 여섯 가지의 감정표현만을 가지고 어떻게 상대를 화나게 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된 전략들은 본문의 것과 거의 일치한다. 텍스트가 영미권 커뮤니티를 분석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때 나타나는 유사성은 놀라운 수준이다. 현상이 유사한 만큼 본문에서 나타나는 문제의식 또한 공유해볼 수 있을 것이다 . 텍스트의 중심 주제인 비매너 플레이는 매우 다층적으로 나타나는 흐릿한 개념이다. 저자들은 비매너 플레이의 다섯 가지 양상을 정리하지만, 항목들에 논쟁의 여지가 있음을 밝힌다. 가령 게임 종료 직전 남은 카드를 모두 사용하는 것은 어떤 플레이어에겐 불필요한 플레이의 연장으로 해석되었으나, 다른 플레이어는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동일한 맥락의 같은 행위라도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에 따라 비매너인지 아닌지가 결정됨을 시사한다. 비매너 상호작용이란 깔끔히 떨어지는 명료한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하스스톤>에서 감정표현을 오용하는 것은 비의도적인 차원을 포함한다. 발화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감정 표현은 비매너인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직접적인 욕설 만이 비매너 플레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 텍스트 기반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도 상대를 향한 공격적인 표현은 언제나 가능하다. 즉, 단순한 감정 표현 몇가지라도 충분히 상대를 괴롭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언어적 소통의 공격성은 회색 지대에 위치한다. 무엇이 비매너인지 아닌지는 주관적이며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회색 지대야 말로 본 논문 제시하는 주목해볼만한 지점일 것이다. 게임에서 비매너 플레이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의 모호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참고문헌 Call of Duty Staff. (2023, 8, 30). 유해성 근절 진행 보고서 – 음성 채팅 중재. URL: https://www.callofduty.com/blog/2023/08/call-of-duty-modern-warfare-warzone-anti-toxicity-progress-report Yee, N. (2005, June). Motivations of Play in MMORPGs. In DiGRA Conference. Riot Games. (2022, 8, 29). 플레이어 관계분석 현황. URL: https://www.riotgames.com/ko/news/an-update-on-player-dynamics-ko 1) https://hearthstone.blizzard.com/ko-kr/news/20097359 2) https://www.hearthpwn.com/ 3) https://www.inven.co.kr/board/hs/3509/2037951 . 인벤 유저의 게시 글. 여기서 저자는 안두인 린의 한국 대사가 성우의 음성 녹음으로 인하여 훨씬 짜증이 난다고 이야기한다. 4) https://namu.wiki/w/%EC%9D%B8%EC%84%B1%EC%A7%88(%ED%95%98%EC%8A%A4%EC%8A%A4%ED%86%A4) Tags: Arjoranta, siitonen, 콜오브듀티, 하스스톤, 비매너, 커뮤니케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연우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 게임 인터페이스로서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 전시 리뷰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이 다양한 담론장을 떠돌고 있다. 게임과 예술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행정과 법의 영역에서도 게임의 위상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오가는 중이다. (물론 예술가, 행정가, 정치인, 사업가, 그리고 게이머 각각의 입장과 목표는 모두 다르겠지만) 이러한 정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게임 주제전은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기에 일단 《게임사회》라는 전시는 주목할 만하다. < Back 12 GG Vol. 23. 6. 10. Tags: 전시, 미술관, 게임사회, 국립현대미술관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Taehyun Kwon Writes and plans a range of projects. Works in the art world, yet is always more drawn to things not readily regarded as art. Explores how things outside art might be thought through as objects within it. Continues researching with weight placed on a perspective that grasps the political as a matter of the sensory. (7000eichen@gmail.com )
- 힘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번역가.
어쩌면 그래서 “힘세고 강한 아침” 같은 문장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 문장은 분명 이상하지만, 동시에 게임 번역의 역사 속 한 장면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게임을 전달하려고 했던 초기의 시행착오가 그대로 남아 있는 흔적이니까. < Back 힘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번역가. 29 GG Vol. 26. 4. 10. 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왈도. 게임 커뮤니티를 조금이라도 돌아본 사람이라면 ‘힘세고 강한 아침’이라는 문장을 어디선가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나온 말인지, 정확히 어떤 맥락이었는지는 몰라도 묘하게 웃긴 문장이다. 단어 하나하나는 익숙한데 문장으로 묶이는 순간 어딘가 미묘하게 비틀린다. 마치 한국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 어색함이 웃음을 만든다. “깔깔깔, 힘세고 강한 아침이래! 이게 무슨 말이야!” 이 문장은 1998년 4월에 출시된 PC 게임 <마이트 앤 매직 6>의 국내 발매판 번역에서 등장한 대사다. 요즘 세대에게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말한 “이젠 가망이 없어.”라는 대사가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힘세고 강한 아침’은 그보다 훨씬 오래된, 일종의 조상 격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번역이 종종 인터넷 문화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사실이다. 번역이 어색할수록, 혹은 지나치게 직역에 가까울수록 오히려 새로운 재미가 생긴다. 커뮤니티에서는 스크린샷이 돌아다니고, 패러디가 생기고, 어느새 그 문장은 원래 게임과 별개로 독자적인 생명을 얻는다. 번역이 틀렸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이것도 번역이 겪게 되는 묘한 운명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범위를 넓혀 보면 이런 사례는 의외로 많다. 영화나 게임에서 어색하게 번역된 한 문장이 밈이 되어 커뮤니티를 떠돌다가, 나중에는 원작보다 더 널리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어떤 문장은 패러디가 되고, 어떤 문장은 유머의 소재가 되며, 어떤 문장은 인터넷 유행어가 되기도 한다. 언어가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는 셈이다. 배우를 비추는 조명 장치, 번역가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현상은 꽤 흥미롭다. 내가 번역가라는 직업을 설명할 때 종종 언급하는 책이 있다. 데이비드 즈와이그의 <인비저블>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겉으로 성과가 드러나지 않지만, 사회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다룬다. 난 번역가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번역은 기본적으로 눈에 띄지 않을수록 좋으니까. 게이머가 게임 속 텍스트를 읽으며 “아, 이거 번역이네!”라고 느끼는 순간, 어딘가에서 이미 삐걱거리고 있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읽히는 번역은 게이머의 기억에 거의 남지 않는다. 게이머는 번역문을 기억하기보다는 캐릭터와 이야기, 세계관과 게임 플레이를 기억한다. 번역은 그 경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배경이지만, 동시에 그 배경 속으로 사라져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번역을 종종 무대 뒤의 조명처럼 비유한다.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조명 장치가 독자적인 존재감을 드러내선 안 된다. 하지만 조명이 없으면 무대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번역 역시 비슷하다. 번역이 제대로 흘러간다면 게이머는 그것을 거의 인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번역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모든 시선은 번역으로 향한다. 아, 물론… 좋은 시선이 아니라, 안 좋은 시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커뮤니티에서 밈이 되는 번역은 이 원칙을 정반대로 뒤집는다. 번역이 너무 눈에 띄어서, 너무 이상해서, 그래서 오히려 기억에 남는다. 번역이 본래 지향하는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의 방향이다. 게이머의 열망, 유저 번역의 시작 이런 기묘한 번역들은 사실 지금으로부터 약 20~25년 전, 해외 게임들이 ‘한국어 미지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국내에 들어오던 시기에 특히 많이 등장했다. 당시에는 해외 게임사가 정식으로 한국어 번역을 진행해 출시하는 일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한국 시장 자체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현지화라는 개념도 지금만큼 체계적으로 자리 잡지 않았던 시기였으니까. 게다가 그 시절에는 ‘게임을 정식으로 구매한다’라는 문화적 인식 역시 지금과는 꽤 달랐다. 많은 게이머가 웹하드 사이트에서 게임을 내려받고, 포털 사이트에 ‘○○ 게임 한글판’이나 ‘○○ 한글 패치’를 검색하며 인터넷을 뒤지곤 했다. 몇 시간을 헤매다 결국 바이러스에 걸려 컴퓨터를 수리 맡기는 엔딩을 맞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찾아다녀도 한글 패치를 끝내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검은 건 글자요, 하얀 건 배경이니라’ 하는 심정으로 게임을 하곤 했다. 퀘스트 설명은 물론, NPC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지만 일단 해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기묘한 플레이 방식이다. 이야기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 채로 퀘스트를 진행하고, 스킬 설명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로 스킬을 사용한다. 그런데도 게임은 이상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의미도 모른 채 버튼을 눌러 보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게임을 익혀 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모험처럼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게임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았고, 동시에 ‘한국어로 게임을 하고 싶다’라는 욕구도 강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유저 번역과 한글 패치 문화였다. 개인이나 소규모 팀이 자발적으로 게임 데이터를 뜯어 번역을 만들고, 그것을 패치 형태로 배포하는 일들이 이어졌다. 번역 품질은 들쭉날쭉했지만, 그 열정만큼은 놀라울 정도였다. 커뮤니티에서 이런 사람들이 ‘네임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면 거의 뭐 연예인 저리 가라는 수준으로 인기를 구사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작업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게임 파일 구조를 분석해야 했고, 텍스트 데이터를 추출해야 했으며, 때로는 프로그램을 직접 수정해야 했다. 그런데도 많은 게이머가 시간을 들여 자기들만의 번역을 만들었다. 순수하게 “이 게임을 한국어로 즐기고 싶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 시절의 번역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꽤 거칠었다. 문장은 어색했고, 용어는 제각각이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문맥조차 맞지 않았다. 하지만 게이머들은 그 번역을 붙잡고 게임을 했다. 왜냐하면 그 몇 줄의 문장이야말로 게임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게이머를 게임 속 세상으로 이끄는 존재, 현지화 담당자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대부분의 대형 게임은 출시와 동시에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현지화 과정도 훨씬 체계적으로 다듬어졌다. 현지화 담당자들은 용어집을 만들고, 세계관 설정을 확인하고, UI 글자 수를 맞추며, 필요하다면 개발팀과 소통하면서 문맥을 검증한다. 예를 들어 게임 번역에서는 단순히 문장을 옮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UI 버튼 하나에도 글자 수 제한이 있고, 아이템 이름이 너무 길어서 아이템 창을 벗어나거나 잘려선 안 되며, 캐릭터의 말투는 세계관과 어울려야 한다. 어떤 게임에서는 스킬 이름이 플레이 스타일을 암시하기도 하고, 어떤 게임에서는 아이템 설명이 세계관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게임 번역은 퍼즐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주어진 공간 안에서 의미와 어감을 모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문장이라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표현이 필요할 때도 있다. 대사인지, UI 문구인지, 아이템 설명인지에 따라 번역 방식이 달라지니까. 아, 물론 요즘에도 대부분의 중소 게임 회사에서는 퍼즐을 놓을 퍼즐 판조차 준비되지 않은 채로 번역을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번역 일을 시작한 뒤에는 게임을 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이야기를 따라가거나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UI 문장 하나, 스킬 이름 하나에도 눈이 멈춘다. “왜 이 표현을 썼을까, 왜 이 단어를 선택했을까, 글자 수 제한 때문에 이렇게 줄어든 것은 아닐까.” 게임을 하면서도 자꾸 번역의 흔적을 찾는 나 자신을 보면 ‘참, 이 게임도 제대로 즐기기에 글렀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야기에 날개를 달아주는 번역 조명 장치라고 말했지만, 사실 번역엔 조명 장치보다는 조금 더 능력을 뽐낼 기회가 존재한다. 문학성, 문장력, 흡입력… 같은 문장을 번역하더라도 번역가에 따라 결과물은 꽤 달라진다. 예를 들어 원문에 “He laughed.”라고 적혀 있다고 해보자. 가장 단순하게 번역하면 “그는 웃었다.”다. 틀린 번역은 아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피식 웃었다.”, “쓴웃음을 지었다.”, “껄껄 웃었다.”, “코웃음을 쳤다.” 같은 표현으로 바뀔 수도 있다. 같은 한 문장이지만 캐릭터의 성격과 장면의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런 순간은 의외로 자주 등장한다. 특히 캐릭터 대사에서는 말투 하나만 바뀌어도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캐릭터가 “Let’s go.”라고 말한다고 해서 항상 “가자.”라고 번역할 필요는 없다. 상황에 따라 “출발하지.”가 될 수도 있고, “가 보자고.”가 될 수도 있고, “따라와.”가 될 수도 있다.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같은 문장이 전혀 다른 온도를 갖게 된다. 그래서 게임 번역가는 종종 제2의 기획자가 되기도 한다. 원시 언어를 사용해서 최초의 이야기를 만드는 제1 기획자(대개 이야기 기획자, 시나리오 라이터 등), 그 이야기를 각 문화권에 맞춰 캐릭터를 조금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제2 기획자, 바로 나, 현지화 담당자. 번역이라곤 하지만, 결국 게이머들은 우리가 만든 번역문으로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 때문에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 지금 어떤 감정인지를 가장 나은 방법으로 게이머들에게 전달하는 게 바로 현지화 담당자이자 번역가인 우리들이 맡은 일이다. 사실 꽤 많은 경우에 원문 자체가 엉망인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경력 많고 경험 많은 현지화 담당자가 있다면 이런 원문의 부족한 부분을 번역으로 절묘하게 메꿔 꽤 볼만한 작품으로 탄생시키기도 한다. 가끔 이런 과정 속에서 특정한 문장이나 단어가 적절하게 번역되면 그런 걸 게이머들은 ‘초월 번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문과 단어 하나하나를 정확히 대응시키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의미를 더 잘 전달하는 번역이다. 물론 이 영역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번역가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원문에서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역가는 늘 두 가지 사이에서 줄타기하게 된다. 원문에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독자에게 더 자연스럽게 다가갈 것인가… 일정은 어떤지, 번역을 만든 이후의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내가 번역한 이 한마디가 게임에 언제 어떻게 어떤 형식으로 입혀지게 되는지를 모두 고려해야 하니까. 어쩌면 번역이라는 작업의 가장 재미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문장을 두고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어떤 말투를 사용할지, 어디까지 자연스럽게 다듬을지 같은 고민을 말이다. 물론 이런 고민이 항상 눈에 띄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번역은 여전히 조명 장치처럼 조용히 뒤에 서 있다. 하지만 가끔은 번역 덕분에 캐릭터가 더 또렷해지고, 장면이 더 생생해지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때면 번역은 단순히 문장을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이야기에 작은 날개를 달아주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게이머가 바라보는 번역과 내가 바라보는 번역 가끔 커뮤니티에서 번역 이야기가 화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표현이 어색하다거나, 특정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다. 게이머의 관점에서 그런 반응은 자연스럽다. 게임을 즐기는 과정에서 언어는 매우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요소기 때문이다. 다만 내 입장은 게이머들과 사뭇 다르다. 게이머들은 이백만 개의 글자 중 단 몇 개를 골라 자기가 원하는 바를 피력하지만, 현지화 담당자의 관점에서 그건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글자 수 제한, UI 레이아웃, 기존 용어와의 통일성, 세계관 설정 같은 여러 요소가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번역이 특별히 변명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뜻은 아니다. 번역은 결국 돈을 받고 번역이라는 작업을 한 ‘작업자’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자, 마지막으로 ‘고객’인 게이머에게 전달되는 결과물이다. 문장이 어색하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더 나은 문장을 고민하는 편이 옳다. 다만 게임 번역이라는 작업이 생각보다 많은 제약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게이머’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없진 않다. 마치 맛없는 요리를 내놓은 요리사 주제에 요리의 과정에서 발생한 노고를 알아달라는 말처럼 이기적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힘세고 강한 아침” 같은 문장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 문장은 분명 이상하지만, 동시에 게임 번역의 역사 속 한 장면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게임을 전달하려고 했던 초기의 시행착오가 그대로 남아 있는 흔적이니까. 생각해 보면 번역은 늘 그런 일을 한다. 서로 다른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다. 그 다리가 때로는 삐걱거리기도 하고, 가끔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그 다리를 건너 게임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게이머가 번역이라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그 세계를 걸어 다닐 수 있다면, 아마 그 번역은 제 역할을 꽤 잘 해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난 내가 번역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참 즐겁게 생각한다. 게이머들에게 어떻게 하면 새로운 세계를 선물할지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상당히 즐겁기 때문이다. 누구의 입맛에도 맞는 최고의 작품을 선물하는 게 목표지만, 그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최소한 이것 하나만은 약속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게이머를 위해’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병욱 게임을 사랑하고, 이야기를 사랑하고, 그만큼 게이머를 사랑하는 번역가이자 작가. 캐릭터의 감정과 세계관을 말보다 섬세한 호흡으로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 물론 짝사랑이다 보니 가끔 게임에게 차이곤 한다.
- <마우스워싱>: 노스탤지어가 흐물거릴 때
자본주의적 체인 안에서 상품이 개별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은 세세하게 분할되어 실체는 추상적인 절차로 파편화되고 프로세스는 우연적인 집합에 불과할 때, 블랙 박스 속 물건을 통해 주권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지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 Back 21 GG Vol. 24.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yuri Kim Interested in the ways games let us experience stories. After poking around here and there, lately played Marathon.
- 상상된 공간의 지도화: 가상공간의 전시와 도식화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1)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백(Michel Houellebecq)의 문장이다. 영토가 위상학적 차원에서 물리적인 땅과 장소를 가리킨다면 지도는 그 땅을 표상하는 이미지다. 지도는 왜 영토보다 흥미로운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기호화 하는 작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도는 신체와 물리적인 공간을 서로 마주하게 만드는 일종의 ‘인터페이스’(inter-face)로 기능하며, 현상학적 맥락에서 분리할 수 없는 공간적 경험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아마도 우엘백이 말한 ‘흥미’는, 실재 세계를 매핑(mapping)하는 인식론적 태도와 세계를 이미지로 상상하는 형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Back 11 GG Vol. 23.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inju Lee Lee Minju majored in Western painting and art theory. Writes and organizes a range of projects. Has curated Animal Loop (Gong-Won, 2019, co-curated), which examined the relationship between performance and performance documentation; Non-Caption Interview (An Unexpected Combination, 2021, curated), which illuminated the aesthetics and politics of the documentary image; and #2 (Doosan Gallery, 2023, co-curated), which explored the event-ness of the exhibition through the form of theater. Attending to the events and performative qualities that images produce, reflects on critical writing and researches the translational relationship between image and text.
- 게임 역사 초창기의 기록들: 닌텐도 뮤지엄 방문기
2024년 10월 2일, 닌텐도 뮤지엄(Nintendo Museum)이 마침내 문을 열었다. 프로젝트 발표 이후 3년만의 소식이었다. 닌텐도의 역사와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이 박물관은 일본 교토부 우지시에 자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박물관은 1969년에 세워진 우지 오구라 공장(Uji Ogura Plant)을 개조한 것인데, 이 공장은 닌텐도가 일본 전통 카드 게임인 화투와 서양식 트럼프 카드를 제작하던 시절부터 비디오 게임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까지 함께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닌텐도의 변천사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다시금 과거와 현재를 모아놓은 셈이다. < Back 22 GG Vol. 25.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eonwoo Lee Interested in games played together, and studies the relationality of games. Hopes that games can bring joy to everyone, all at once.
- Oldies But Goodies - 클래식 게임의 조건
그래서 다시 클래식 게임이다. 그의 분투는 눈물겹다. 이 보다 더 순수할 수 없을 그 시대만이 줄 수 있는 순정의 게임 경험과 이를 통한 자수성가형 성취감을 제공한 클래식 게임은 게임 미디어의 '형식'으로서 명예의 전당에 봉인되는 순간, 수 많은 아류작과 온전한 장르의 모태가 됨으로써 태를 바꾸어 '미디어'로 존재한다. 이렇게 미디어로 명명된 클래식 게임은 상징으로 일반화되고, 상징을 통해 제시된 '기대'는 클래식 게임 고유의 경험을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재현하고 확장한다. < Back 02 GG Vol. 21.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angwoo Park Has taught game-related courses at a few universities and graduate schools, run game columns in a few magazines and newspapers, and written a few books on games—though has bought far more than that. Consulted for developers on game production and publishing, ended up serving as a game company CEO toward the end, and is now retired. Lives not as a game critic, game studies professor, game consultant, or game company CEO, but simply as "someone who really loves games."
- [인터뷰] 척박한 사회에 다정함을 심고 있는 당신을 위해: 인디게임 개발자 somi
그가 돌아왔다. ‘죄책감 3부작’으로 한국 인디게임씬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인디게임 개발자 somi가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라는 제목의 신작으로 돌아왔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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