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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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4. 10.
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왈도.
게임 커뮤니티를 조금이라도 돌아본 사람이라면 ‘힘세고 강한 아침’이라는 문장을 어디선가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나온 말인지, 정확히 어떤 맥락이었는지는 몰라도 묘하게 웃긴 문장이다. 단어 하나하나는 익숙한데 문장으로 묶이는 순간 어딘가 미묘하게 비틀린다. 마치 한국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 어색함이 웃음을 만든다.

“깔깔깔, 힘세고 강한 아침이래! 이게 무슨 말이야!”
이 문장은 1998년 4월에 출시된 PC 게임 <마이트 앤 매직 6>의 국내 발매판 번역에서 등장한 대사다. 요즘 세대에게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말한 “이젠 가망이 없어.”라는 대사가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힘세고 강한 아침’은 그보다 훨씬 오래된, 일종의 조상 격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번역이 종종 인터넷 문화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사실이다. 번역이 어색할수록, 혹은 지나치게 직역에 가까울수록 오히려 새로운 재미가 생긴다. 커뮤니티에서는 스크린샷이 돌아다니고, 패러디가 생기고, 어느새 그 문장은 원래 게임과 별개로 독자적인 생명을 얻는다. 번역이 틀렸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이것도 번역이 겪게 되는 묘한 운명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범위를 넓혀 보면 이런 사례는 의외로 많다. 영화나 게임에서 어색하게 번역된 한 문장이 밈이 되어 커뮤니티를 떠돌다가, 나중에는 원작보다 더 널리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어떤 문장은 패러디가 되고, 어떤 문장은 유머의 소재가 되며, 어떤 문장은 인터넷 유행어가 되기도 한다. 언어가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는 셈이다.
배우를 비추는 조명 장치, 번역가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현상은 꽤 흥미롭다. 내가 번역가라는 직업을 설명할 때 종종 언급하는 책이 있다. 데이비드 즈와이그의 <인비저블>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겉으로 성과가 드러나지 않지만, 사회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다룬다. 난 번역가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번역은 기본적으로 눈에 띄지 않을수록 좋으니까.
게이머가 게임 속 텍스트를 읽으며 “아, 이거 번역이네!”라고 느끼는 순간, 어딘가에서 이미 삐걱거리고 있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읽히는 번역은 게이머의 기억에 거의 남지 않는다. 게이머는 번역문을 기억하기보다는 캐릭터와 이야기, 세계관과 게임 플레이를 기억한다. 번역은 그 경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배경이지만, 동시에 그 배경 속으로 사라져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번역을 종종 무대 뒤의 조명처럼 비유한다.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조명 장치가 독자적인 존재감을 드러내선 안 된다. 하지만 조명이 없으면 무대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번역 역시 비슷하다. 번역이 제대로 흘러간다면 게이머는 그것을 거의 인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번역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모든 시선은 번역으로 향한다. 아, 물론… 좋은 시선이 아니라, 안 좋은 시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커뮤니티에서 밈이 되는 번역은 이 원칙을 정반대로 뒤집는다. 번역이 너무 눈에 띄어서, 너무 이상해서, 그래서 오히려 기억에 남는다. 번역이 본래 지향하는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의 방향이다.
게이머의 열망, 유저 번역의 시작
이런 기묘한 번역들은 사실 지금으로부터 약 20~25년 전, 해외 게임들이 ‘한국어 미지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국내에 들어오던 시기에 특히 많이 등장했다. 당시에는 해외 게임사가 정식으로 한국어 번역을 진행해 출시하는 일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한국 시장 자체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현지화라는 개념도 지금만큼 체계적으로 자리 잡지 않았던 시기였으니까.
게다가 그 시절에는 ‘게임을 정식으로 구매한다’라는 문화적 인식 역시 지금과는 꽤 달랐다. 많은 게이머가 웹하드 사이트에서 게임을 내려받고, 포털 사이트에 ‘○○ 게임 한글판’이나 ‘○○ 한글 패치’를 검색하며 인터넷을 뒤지곤 했다. 몇 시간을 헤매다 결국 바이러스에 걸려 컴퓨터를 수리 맡기는 엔딩을 맞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찾아다녀도 한글 패치를 끝내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검은 건 글자요, 하얀 건 배경이니라’ 하는 심정으로 게임을 하곤 했다. 퀘스트 설명은 물론, NPC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지만 일단 해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기묘한 플레이 방식이다. 이야기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 채로 퀘스트를 진행하고, 스킬 설명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로 스킬을 사용한다. 그런데도 게임은 이상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의미도 모른 채 버튼을 눌러 보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게임을 익혀 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모험처럼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게임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았고, 동시에 ‘한국어로 게임을 하고 싶다’라는 욕구도 강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유저 번역과 한글 패치 문화였다. 개인이나 소규모 팀이 자발적으로 게임 데이터를 뜯어 번역을 만들고, 그것을 패치 형태로 배포하는 일들이 이어졌다. 번역 품질은 들쭉날쭉했지만, 그 열정만큼은 놀라울 정도였다. 커뮤니티에서 이런 사람들이 ‘네임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면 거의 뭐 연예인 저리 가라는 수준으로 인기를 구사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작업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게임 파일 구조를 분석해야 했고, 텍스트 데이터를 추출해야 했으며, 때로는 프로그램을 직접 수정해야 했다. 그런데도 많은 게이머가 시간을 들여 자기들만의 번역을 만들었다. 순수하게 “이 게임을 한국어로 즐기고 싶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 시절의 번역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꽤 거칠었다. 문장은 어색했고, 용어는 제각각이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문맥조차 맞지 않았다. 하지만 게이머들은 그 번역을 붙잡고 게임을 했다. 왜냐하면 그 몇 줄의 문장이야말로 게임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게이머를 게임 속 세상으로 이끄는 존재, 현지화 담당자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대부분의 대형 게임은 출시와 동시에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현지화 과정도 훨씬 체계적으로 다듬어졌다. 현지화 담당자들은 용어집을 만들고, 세계관 설정을 확인하고, UI 글자 수를 맞추며, 필요하다면 개발팀과 소통하면서 문맥을 검증한다.
예를 들어 게임 번역에서는 단순히 문장을 옮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UI 버튼 하나에도 글자 수 제한이 있고, 아이템 이름이 너무 길어서 아이템 창을 벗어나거나 잘려선 안 되며, 캐릭터의 말투는 세계관과 어울려야 한다. 어떤 게임에서는 스킬 이름이 플레이 스타일을 암시하기도 하고, 어떤 게임에서는 아이템 설명이 세계관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게임 번역은 퍼즐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주어진 공간 안에서 의미와 어감을 모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문장이라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표현이 필요할 때도 있다. 대사인지, UI 문구인지, 아이템 설명인지에 따라 번역 방식이 달라지니까. 아, 물론 요즘에도 대부분의 중소 게임 회사에서는 퍼즐을 놓을 퍼즐 판조차 준비되지 않은 채로 번역을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번역 일을 시작한 뒤에는 게임을 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이야기를 따라가거나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UI 문장 하나, 스킬 이름 하나에도 눈이 멈춘다.
“왜 이 표현을 썼을까, 왜 이 단어를 선택했을까, 글자 수 제한 때문에 이렇게 줄어든 것은 아닐까.”
게임을 하면서도 자꾸 번역의 흔적을 찾는 나 자신을 보면 ‘참, 이 게임도 제대로 즐기기에 글렀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야기에 날개를 달아주는 번역
조명 장치라고 말했지만, 사실 번역엔 조명 장치보다는 조금 더 능력을 뽐낼 기회가 존재한다. 문학성, 문장력, 흡입력… 같은 문장을 번역하더라도 번역가에 따라 결과물은 꽤 달라진다.
예를 들어 원문에 “He laughed.”라고 적혀 있다고 해보자. 가장 단순하게 번역하면 “그는 웃었다.”다. 틀린 번역은 아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피식 웃었다.”, “쓴웃음을 지었다.”, “껄껄 웃었다.”, “코웃음을 쳤다.” 같은 표현으로 바뀔 수도 있다. 같은 한 문장이지만 캐릭터의 성격과 장면의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런 순간은 의외로 자주 등장한다. 특히 캐릭터 대사에서는 말투 하나만 바뀌어도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캐릭터가 “Let’s go.”라고 말한다고 해서 항상 “가자.”라고 번역할 필요는 없다. 상황에 따라 “출발하지.”가 될 수도 있고, “가 보자고.”가 될 수도 있고, “따라와.”가 될 수도 있다.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같은 문장이 전혀 다른 온도를 갖게 된다.
그래서 게임 번역가는 종종 제2의 기획자가 되기도 한다. 원시 언어를 사용해서 최초의 이야기를 만드는 제1 기획자(대개 이야기 기획자, 시나리오 라이터 등), 그 이야기를 각 문화권에 맞춰 캐릭터를 조금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제2 기획자, 바로 나, 현지화 담당자.
번역이라곤 하지만, 결국 게이머들은 우리가 만든 번역문으로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 때문에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 지금 어떤 감정인지를 가장 나은 방법으로 게이머들에게 전달하는 게 바로 현지화 담당자이자 번역가인 우리들이 맡은 일이다.
사실 꽤 많은 경우에 원문 자체가 엉망인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경력 많고 경험 많은 현지화 담당자가 있다면 이런 원문의 부족한 부분을 번역으로 절묘하게 메꿔 꽤 볼만한 작품으로 탄생시키기도 한다. 가끔 이런 과정 속에서 특정한 문장이나 단어가 적절하게 번역되면 그런 걸 게이머들은 ‘초월 번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문과 단어 하나하나를 정확히 대응시키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의미를 더 잘 전달하는 번역이다.
물론 이 영역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번역가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원문에서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역가는 늘 두 가지 사이에서 줄타기하게 된다. 원문에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독자에게 더 자연스럽게 다가갈 것인가… 일정은 어떤지, 번역을 만든 이후의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내가 번역한 이 한마디가 게임에 언제 어떻게 어떤 형식으로 입혀지게 되는지를 모두 고려해야 하니까.
어쩌면 번역이라는 작업의 가장 재미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문장을 두고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어떤 말투를 사용할지, 어디까지 자연스럽게 다듬을지 같은 고민을 말이다.
물론 이런 고민이 항상 눈에 띄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번역은 여전히 조명 장치처럼 조용히 뒤에 서 있다. 하지만 가끔은 번역 덕분에 캐릭터가 더 또렷해지고, 장면이 더 생생해지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때면 번역은 단순히 문장을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이야기에 작은 날개를 달아주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게이머가 바라보는 번역과 내가 바라보는 번역
가끔 커뮤니티에서 번역 이야기가 화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표현이 어색하다거나, 특정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다. 게이머의 관점에서 그런 반응은 자연스럽다. 게임을 즐기는 과정에서 언어는 매우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요소기 때문이다.
다만 내 입장은 게이머들과 사뭇 다르다. 게이머들은 이백만 개의 글자 중 단 몇 개를 골라 자기가 원하는 바를 피력하지만, 현지화 담당자의 관점에서 그건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글자 수 제한, UI 레이아웃, 기존 용어와의 통일성, 세계관 설정 같은 여러 요소가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번역이 특별히 변명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뜻은 아니다. 번역은 결국 돈을 받고 번역이라는 작업을 한 ‘작업자’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자, 마지막으로 ‘고객’인 게이머에게 전달되는 결과물이다. 문장이 어색하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더 나은 문장을 고민하는 편이 옳다. 다만 게임 번역이라는 작업이 생각보다 많은 제약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게이머’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없진 않다. 마치 맛없는 요리를 내놓은 요리사 주제에 요리의 과정에서 발생한 노고를 알아달라는 말처럼 이기적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힘세고 강한 아침” 같은 문장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 문장은 분명 이상하지만, 동시에 게임 번역의 역사 속 한 장면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게임을 전달하려고 했던 초기의 시행착오가 그대로 남아 있는 흔적이니까.
생각해 보면 번역은 늘 그런 일을 한다. 서로 다른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다. 그 다리가 때로는 삐걱거리기도 하고, 가끔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그 다리를 건너 게임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게이머가 번역이라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그 세계를 걸어 다닐 수 있다면, 아마 그 번역은 제 역할을 꽤 잘 해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난 내가 번역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참 즐겁게 생각한다. 게이머들에게 어떻게 하면 새로운 세계를 선물할지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상당히 즐겁기 때문이다. 누구의 입맛에도 맞는 최고의 작품을 선물하는 게 목표지만, 그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최소한 이것 하나만은 약속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게이머를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