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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게임 리버스-엔지니어링하기: 지적 재산권, 소액결제, 그리고 검열을 중심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게임 산업보다는 자급자족식 민족주의와 주체사상 이데올로기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십여 년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휴대용 디지털 기기 보급이 증가하고(Yoon, 2020) 여가활동에 대한 공적인 지원이 더해지면서(Evans, 2018), 북한 도시 중상류층의 일상적인 여가로서 게임이 떠오르고 있다. < Back 북한 게임 리버스-엔지니어링하기: 지적 재산권, 소액결제, 그리고 검열을 중심으로 06 GG Vol. 22. 6. 10. ***편집자 주: 유사한 지리적, 언어적, 문화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북한은 아주 머나먼 곳이며, 특히 디지털게임에 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농담처럼 평양의 유일한 스팀 IP를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우리는 북한의 디지털게임에 대해 궁금해해야 합니다. 이 글은 게임연구 전문 저널인 gamestudies.org에 익명으로 게재된 북한의 게임에 관한 논문을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으며, gamestudies 관리자를 통해 원저자로부터 한글번역 허가를 구하여 게임제너레이션에 게재하였습니다. 참고문헌 등은 원문 사이트에서 보다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원문보기 링크: http://gamestudies.org/2201/articles/anonymous 초록: 이 글은 북한 게임 산업의 역사 및 그 불법복제 의존성에 대해 살펴본다. 오늘날 북한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비디오게임은 해외의 유명 게임을 개조한 것으로, 여기서는 리버스-엔지니어링 방법론을 통해 북한의 개조판 게임에 대한 분석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그와 같은 개조의 목적이 소액결제 같은 시스템을 북한의 상황에 맞게 수정하여 들여오는 것, 그리고 콘텐츠의 민감한 요소들을 검열해서 민족주의적으로 또는 사회주의적으로 수정하는 것에 있음을 밝힐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불법복제 게임은 민족주의적이고 포스트-식민주의적인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면서도 자본주의적 소비 진작과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상반된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들어가는 말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아케이드용 해적선 전투 게임기 앞에 놓인 전투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장치의 밑바닥에는 'No Step!'이라는 영어로 쓰여진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다른 아케이드 게임기들도 살펴본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노동자들을 향해 'Do not step'과 'Caution' 등 게임기에 영어로 쓰여있는 지시문을 우리말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Han, 2020, p. 146)"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게임 산업보다는 자급자족식 민족주의와 주체사상 이데올로기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십여 년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휴대용 디지털 기기 보급이 증가하고(Yoon, 2020) 여가활동에 대한 공적인 지원이 더해지면서(Evans, 2018), 북한 도시 중상류층의 일상적인 여가로서 게임이 떠오르고 있다. 교육용 소프트웨어와 더불어 게임은 현재 북한 IT 유통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 . 완전히 국산으로 만들어진 게임도 몇몇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필자가 "현지화 수입(localized imports)"이라 부르는 방식 - 해외의 게임을 국가 승인 개발사가 북한의 디지털 환경에 적합하도록 다양한 수준에서 번역하고 개조하는 방식 - 을 거쳐 공급되고 있다. 이러한 개조는 엄밀히 말해 북한이 최근에 정립한 저작권법 위반이자 그 자신도 가입 되어있는 국제 저작권 협약 위반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는데, 저작권법은 반-제국주의적 또는 민족주의적 차원에서 종종 불법복제가 장려되곤 하는 개발도상국에서 느슨하게 적용되어왔기 때문이다(Wang, 2003). 북한에서도 이와 같은 합리화 - 게임 내 외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검열해서 제거해야 할 필요성에서부터 지적재산권의 불공정성에 대한 경제학적 비판에 이르는 - 가 확인되는 한편, 이와 같은 합리화는 저작권 보호를 위해 게임의 불법복제를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굉장히 엄격한 기술 및 법 체계와 공존하고 있다. 북한 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소프트웨어는 국가의 "중앙 소프트웨어산업 지도 기관(Central Guidance Organ of Software Industry)"에 등록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디지털 기기는 중앙기관에서 암호화 방식으로 승인을 받지 않은 경우 애플리케이션의 실행이 OS차원에서 금지 되어있다. 반면 저작권법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 예상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주는데 2) , 즉 플레이어를 자본주의적 소비자로 "호명"해서 디지털 아이템에 돈을 쓰게 만드는 인-게임 결제 전략을 위한 기반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북한의 게임산업에 대한 분석을 통해 기술적 인공물에 있어 이데올로기적 적응성과 탄력성에 대한 연구를 제공할 것이다. 게임은, 여타의 기술적 인공물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발현되는 맥락(Bijker, Hughes & Pinch, 1987)이나 수입되는 맥락(Choi, 2017)이 이데올로기적이고 경제적인 사회적 구성물이다. 그런데 만약 게임이 수입된 이데올로기적 환경이 그것이 원래 생산되었던 곳과 다르다면, 심지어 적대적이라면 어떻게 될까? 북한에서 게임은 리버스-엔지니어링(게임의 속성들을 이해하거나 변경, 또는 비활성화하기 위해 프로그램의 컴파일 바이너리를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그것이 원래 기원한 국가의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저항의 도구가 된다. 다른 문화적 수입품들과 마찬가지로, 게임은 북한에서 문화적 침투를 통해 (특히 미국) 제국주의에 복종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Ra, 2005, Kim, 2009). 해외 기업의 국내 시장 침투나 북한 수입업자들의 로열티 지불 또한 제국주의에 부역하는 행위라는 비난을 받아왔다(Hwang, 2017). 북한식 불법 복제는 외래 문화 요소를 제거하고, 자국의 프로파간다를 주입하고, 개조된 소프트웨어에 대해 완전한 소유권을 주장함으로써 그와 같은 제국주의적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현지화 된 북한 버전일지라도 원본 게임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은 부분적으로 여전히 발견된다. 게임 내 소액결제 시스템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소비가 지속적으로 유발되는 패턴은 북한의 사회적 기반에서 벗어난 것이다. 또한 북한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 하 여러 거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게임을 비롯한 여러 문화 상품에 대한 이용권한(license) 시스템을 수용하여(Stallman, 1997) 디지털 기기를 통해 전송되는 콘텐츠에 대한 감시와 통제에 활용하고 있다. 해적 행위(Piracy), 게임의 역사 그리고 리버스 엔지니어링 게임에 있어 해적 행위는 단순히 파일을 무허가로 복제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보호장치를 "크래킹cracking"하는 것, 크로스-플랫폼 호환을 위한 에뮬레이션 제작, 속성을 바꾸거나 추가하여 게임을 "모딩"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주의 행위자, 실천, 그리고 테크놀로지를 아우른다. 이와 같은 해적 행위는 상업용 비디오게임의 발전과 병행되어 왔으며, 업계(International Intellectuall Property Alliance, 2021)와 게임학 연구자들(Postigo, 2003; Kretzschmar & Stanfill, 2019)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아왔다. 게임 해적 행위에 대한 초기 연구들은 해적 행위자의 자유주의적인 혹은 반체제적인 에토스를 강조했다(McCandless, 1997; Tetzlaff, 2000; Goldman, 2005; Coleman, S., & Dyer-Witheford, 2007). "디지털 졸리 로저(역주: 해골이 그려진 해적기로 해적 행위자들을 상징한다)들의 조용한 전복 행위"(Kline et al., 2003, p. 217)를 글로벌 자본주의나 초국가적 거대기업 또는 저작권을 통한 지적 공유재산의 불공정한 점유 등에 대해 저항하는 반체제적인 또는 반식민주의적 입장으로서 읽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은 지하 네트워크와 불법적인 경제를 지나치게 낭만화(Nicoll, 2019)하고, 북미와 서구의 중산층 출신 남성 해적들이라는 특정한 소수 집단의 자기-특성화를 무비판적으로 반복해왔다는 비판(Wasiak, 2012)을 받았다. 예를 들어 냉전시대 후반 체코슬로바키아(Švelch, 2018)와 폴란드(Wasiak, 2014)에서 저작권은 생소한 개념이었고, 그에 따라 그에 대한 이해도, 법적인 집행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부 유럽의 공산당이 초기 비디오게임 시장에 대한 검열이나 규제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서 해적 행위는 그에 대항하는 기업이나 정부의 검열 없이 번성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남한(Nicoll, 2019; Jo, 2020)이나 홍콩(Ng, 2019), 또는 1990년대 중국(Liao, 2016)에서 그랬듯, 제한 없는 소프트웨어 복제행위는 은밀한 행위였다기 보다는, 정부의 간섭이 윤리적 차원에서 그치고 국제적인 저작권 협약이 강제되지 않는 일종의 (일상적) 규범에 가까운 행위였던 것이다. 학술 영역에 있어 이와 같은 변화는 해적 행위에 대한 연구를 기존에 한정되고 양극화된 것 - 범죄 행위 또는 반자본주의적/자유주의적인 저항으로 보는 - 으로부터 벗어나 이용자 중심적으로 게임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도록 이끌었다. 야로슬로프 스벨치(Švelch, 2018, p. 152)는 "국제적인 유통 인프라가 구축되기 전의 1980년대 그리고 이후 디지털 유통이 자리잡은 이후에도 주변부는 중심보다 거대했으며, 소형 컴퓨터들의 상당수는 해적판 게임의 실행에 활용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해적 행위의 일상성을 인정하는 것은 게임의 역사가 몇몇 소수의 거대 기업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게이머 커뮤니티와 공유의 네트워크, 창의적인 개조자들(modders), 그리고 모험적인 거래자들의 역사이기도 함을 인정하는 것이다(O'Donnell, 2013). 그 활용과 이용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전세계 게이머들이 외래의 테크놀로지와 콘텐츠를 전유하고 자국용으로 순화하는(domesticate) 방식을 강조함으로써 "주변부"를 실험과 혁신이 벌어지는 독특한 다수의 장소들로서 재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유(appropriation)에 대한 분석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면서 현지화와 혼종화의 과정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 게임의 현지화를 다뤘던 콘살보의 작업(Consalvo, 2016)은 일본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일본 게임에 대한 언어·문화적 각색을 매우 상세하게 다루었지만, 그 초점이 선진 시장 경제를 가진 국가들에 한정되어 있어 일본 게임이 문제가 되거나 금지되어 있는 국가에서 일본 게임에 깔린 정치적 담론과 전제가 어떻게 현지화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 1980년대 폴란드의 해커들이 사회주의적인 것보다 "서구적인" 것들을 선호했음을 기술했던 바시악(Wasiak, 2014)도 사회주의 경제 내 새롭게 부상했던 소비주체들에 대해 서구 유럽이 끼친 문화적 영향력이나 상업적인 행위의 확산이 지닌 함의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중국 시장 내 해적판 일본 게임의 확산을 다뤘던 랴오(Liao, 2016)는 중국 정부의 "테크노-민족주의"에 대해서는 기술하면서도 아시아권 내 일본 제국주의 문제나 중국에 시장의 논리가 유입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해적 행위를 통한 현지화의 그와 같은 과정이 기술적인(technological) 만큼이나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해적 행위를 저항 행위로 퉁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해적판 테크놀로지가 특정한 이데올로기 프레임 내에서 작동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항해서 작동하는 방식들을 다룬 최근의 연구들과 궤를 함께 한다. 예를 들어 남한의 게임 해적 행위가 "신식민주의" 내에서 작동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항해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다룬 니콜(Nicoll, 2019)의 작업 3) 이나 해적판 영화시장에 대한 분석(Lobato, 2012, pp. 74-74) - 해적 행위가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실천적인 비판인 동시에 "자유 기업 체제의 전형적인 형태"로서 읽힐 수 있다는 - 이 있다. 나는 북한 게임 산업의 해적 행위가 글로벌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것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자본주의의 많은 측면들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국가 검열을 통해 자본주의적 상징들을 제거하고 문화 보존이라는 명목 하에 외래적인 콘텐츠를 국내식으로 수정한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해적판) 게임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지적 재산 모델이 도입되고, 그 플레이어들을 소비주의적으로 충동질하며,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자 감시에 활용하는 것을 도모하고 있다. 북한 내에서 게임 해적 행위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 및 현대 미국 중심의 신제국주의에 대한 대응으로서 강력하게 진화된 민족주의로 나타나고 있다(Shin, 2006). 한편 저작권과 지적재산권 개념 그 자체는 지속적으로 북한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제국주의적 독점"의 "차별적인 특성"의 사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Hwang, 2017, p 62). 저작권 무시가 해외 자본에 대한 저항 행위가 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 따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모딩(modding)을 통한 복제 게임의 재전유는 종종 강렬한 민족주의적인 담론으로 가득 차 있는데, 때에 따라 반-일본 또는 반-미국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이렇게 수복된 게임은 외부의 위협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 무기로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급진적인 입지를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지배와 복종이라는 오래된 식민주의 관계를 극복하려는 탈식민국의 공식적인 노력은 종종 바로 그 관계를 다른 모습으로 재생산하고 고착화하는 것을 가장(disguise)하는데 그치곤 한다(Mbembe, 2011, p. 45). 마찬가지로, 탈식민화와 반-제국주의의 어휘들은 대중의 해방과 자주보다는, 권위주의 체제와 글로벌 기업들, 그리고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기업가들"의 경제·정치적 지배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Comaroff & Comaroff, 2009). 북한의 해적판 게임 산업은 글로벌 시장 논리에 대항하는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자국의 경제가 자본주의적으로 시장화되는 것을 고양시키고 있으며, 그러한 가운데서 외국의 지배에 대한 저항은 내부적인 종속을 도모한다. 이 글은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집해 온 북한에서 판매 중인 불법복제 모바일 게임에 대해 맥락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와 같은 현상을 탐구한다. 게임의 외부적인 특성에 대한 관찰만으로는 충분치 않았기에, 필요한 경우 소스코드의 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는 리버스-엔지니어링 방법론을 활용했다. 게임 역사에서 해적 행위가 주요 연구 주제였다면 리버스-엔지니어링을 통해 어떤 방식의 해적 행위가 게임에 대해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주요 분석 방법이었을 것이지만, 아직까지 리버스-엔지니어링이 해적판 게임 연구, 나아가 보다 일반적인 게임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 활용된 적은 없다 4) .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게 될 것처럼, 이 방법론은 해적 행위에 의해 게임의 바이너리에 가해진 수정과 개조에 대한 명확한 맵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데올로기가 컴퓨터 코드상에서 어떻게 번역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북한의 게임 역사와 현재의 게임 생태계 북한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전자 및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다룬 것은 1960년대 초반부터였다. 북한이 최초로 생산한 디지털 컴퓨터는 1961년 국립과학원(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서 소련제 디자인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었다(Hŏ, 1961). 냉전 시기에는 불가리아나 폴란드, 루마니아 등 사회주의 국가와 일본, 프랑스, 서독 등 자본주의 국가 양쪽 모두로부터 컴퓨터를 수입했다(Berthelier, 2019). 하지만 이 컴퓨터들의 용도는 경제 계획의 수립이나 과학적 연구, 또는 산업적인 활용 등에 한정되었다(Orlowski, 1985). 당시 컴퓨터에 대한 접근은 매우 엄격히 통제되었으며, 따라서 유희적 활용을 위한 여지는 거의 없었다. 북한에 최초로 소개된 게임은 범용 컴퓨터가 아니라 게임에 특화된 아케이드 장치에서 실행되는 게임이었다. 1980년 평양 호텔의 로비에 타이토의 아케이드용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기가 설치됐는데, 이는 2년 전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평양 호텔처럼 이 게임도 외국방문객들만 접할 수 있었으며, 플레이하려면 100엔 동전을 투입해야 했다. 이후 남은 80년대 동안 다른 게임기는 수입되지 않았다. 1990년에 들어오면서 바뀌는 당의 정책 그리고 일본 아케이드 게임산업의 발전상은 북한의 첫 오락실 개장으로 이어진다. 그 전부터 김일성과 김정일은 10여년 간 이어져온 생산성 하락 극복을 위해 북한 경제를 "계산기화(computerize)"할 것을 주문했는데(Kim, 1995; Kim, 1990), 그에 따라 1987년 3차 7개년 계획 때부터 북한 산업의 디지털화 계획이 수립되었다. 새로운 디지털 지식층의 육성은 과학 교육을 강조하면서 어린 세대가 컴퓨터와 친숙해져야 함을 의미했다. 따라서 김일성이 1991년 북한 최초의 오락실 개장 - 평양 만경대 지역에 700평방미터 공간에 100여대의 오락기를 갖춘 - 을 지원했던 것은 "세계의 최신 과학 트렌드에 맞춰 능숙하게 현 시대의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다룰 줄 아는 자립적이고 다재다능한 젊은 혁명 인재의 양성"(Chosŏn Ilbo, 1991)이라는 목표에서 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당이 새롭게 품기 시작한 디지털을 향한 야망이 북한에 게임이 도입된 유일한 요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락실의 게임기들 - 그 중 일부는 오늘날 평양에서도 여전히 작동 중이다 - 은 〈웨스턴건(Western Gun, Taito, 1975)〉이나 〈서브마린(Submarine, Bandai, 1978)〉 등의 1세대 게임으로, 이는 재일 한국인들로 구성된 "애국적 무역상(Patriotic traders)"이 보낸 것이었다(North Korean Central Communication Agency, 1992, p. 205). 1980년대 중반 하드웨어의 성능이 향상되고 신작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일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기 시작한 게임기들이 한국전쟁 이후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재일 한국인 내 조직 - ‘청년’ - 을 통해 평양에 도입되었던 것이다(Ryang, 2016). 1990년대엔 더 많은 아케이드 게임기들이 평양의 놀이공원이나 상점, 식당 등에 도입됐는데(Kyunghyang Sinmun, 1992), 게임기 외부에 적힌 제목이나 기호들은 종종 한글로 번역되어 표기됐지만, 게임 화면에서는 원래 언어가 그대로 사용됐다. 한편 북한의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게임을 개조하거나 만드는 것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의 주류 소프트웨어 기업으로는 조선콤퓨터센터와 평양정보센터를 들 수 있는데, 두 기업 모두 경제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산업 구축 및 산업적 활용을 위해 1990년에 세워졌다. 주요 업무로는 레이더 신호 처리 시스템, 오피스 작업, CAD 소프트웨어, 전문가 시스템, 처리 자동화 등이 있다(Department of Defense, 1996; 1995). 이러한 전략적 영역들 가운데 딱히 게임 개발 작업을 수행한 분야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모두 인공지능(AI)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알렌 뉴웰이 언급했던 것처럼 "게임을 플레이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언제나 인공지능 분야에서 선호되는 영역"이었는데(Newell, Shaw & Simon, 1963, p. 37), 조선콤퓨터센터의 엔지니어들은 실제로 1990년대 후반 자신들의 인공지능 연구를 바탕으로 바둑 기반의 〈은별바둑(1997)〉과 한국 전통의 체스 게임(역주: 장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반의 〈평양체스(1997)〉라는 게임 두 편을 제작했다. 이 두 게임은 여러 국제 게임 AI 컨퍼런스에서 수상했으며 남한과 일본에서 성공적으로 상업화되어 오늘날까지 판매 중에 있다 5) (Nam, 2002). * 평양정보센터가 2005년 상용화한 〈소년 장군〉 게임. 이어지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주로 해외의 소비자를 겨냥한 게임을 개발했는데, 이는 북한의 여타 소프트웨어 산업 전략과 맞춘 것이었다. 컴퓨터가 많지 않은데다 내수 소비는 더 기대하기 어려운 북한의 상황에서 수출 시장은 외화 획득의 기회와 함께 좀 더 많은 수익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지역에 합작투자 연결망을 연 조선콤퓨터센터는 2002년 자사의 온라인 바둑 게임(〈My Baduk〉)을 상용화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남한의 사업가와 파트너십을 맺고 온라인 카지노(DK Lotto, DK Casino & Jupae)를 구축했다 6) . 포커와 슬롯머신, 블랙잭, 복권 등을 제공하는 이 카지노는 2005년 남한에서 도박 방지 입법화 관련 이슈가 불거지기 전까지 남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Choe, 2004). 같은 해 평양정보센터는 싱가폴에 위치한 지사를 통해 〈소년 장군〉을 출시했는데([그림1]참조), 이 게임은 전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모바일용 영어 게임으로, 원작은 일본과 중국의 침략자들로부터 한국을 지키는 고려 시대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유명 만화/애니메이션 시리즈다. 2008년에 이르러 북한은 독일과 합작으로 만든 기업 노소텍(Nosotek)을 통해 플래시 및 모바일 게임을 외주 개발하기 시작한다(Williams, 2010; Campbell & Lim, 2010). 상업용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임들에는 북한의 문화 상품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데올로기적 내용이 거의 없다. 그러나 2013년부터 북한의 지원을 받는 웹 포털 〈우리민족끼리〉에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플래시 게임([그림2])이 올라오면서 북한 이데올로기의 게임화(gamification)가 시작된다. 브라우저에서 플레이 가능한 이 시리즈는 조지 W.부시와 아베 신조를 파리로 등장시킨 일종의 두더지 잡기 게임과 남한의 보수적인 이명박 대통령을 패러디한 "이명쥐" 대통령에게 펀치를 날리는 게임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한글로만 만들어진 이 게임들이 겨냥한 것은, 웹에 접속할 기회가 거의 없는 북한의 주민들이라기 보다는, 남한의 주민들 그리고 세계에 퍼져있는 한국 이주민이라 할 수 있다. * 우리민족끼리 포털에 출시된 정치적 플래시게임들. 2010년대 들어와 북한의 휴대폰 이용자 수가 크게 증가한 가운데, 2013년부터 5.11 공장에서 중국 모델을 기반으로 한 내수용 안드로이드 휴대폰을 생산하기 시작한다(Political Reporting Team, 2013). 이러한 휴대폰은 개인용 PC보다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그에 따라 게임용 플랫폼으로서 휴대폰이 빠르게 부상한다. 모바일 게임이 대중화되고 많은 인기를 모으면서 이제는 공공연하게 게임 중독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 방송이 등장할 정도가 되었다(Zwirko, 2021). 그러나 북한의 휴대폰들이 세계 여타의 폰들과 동일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북한의 모바일 게임은 인프라 구조의 한계 그리고 국가의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통제에 맞춰 독특한 생태계를 구축하게 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DVD나 MP3 플레이어 같은 장치들이 보급되고 모든 유형의 미디어(해외의 콘텐츠 포함)를 대량으로 저렴하게 복제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북한 당국은 문화적 -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 생산에 대한 독점을 유지하면서 북한 주민들이 소비할 콘텐츠를 더욱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전통적인 감시와 통제 방식이 빠르게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보다 기술적인 솔루션을 도입하는데, 현재 북한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디지털 장치 내 OS에는 암호화 서명 기반의 시스템이 내재되어 있어 비승인 프로그램의 설치와 장치 간 미디어 파일 공유가 금지되어 있다(Schiess, 2018). 즉 북한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설치되는 게임은 검열을 통과한 뒤 국가 기관의 암호화 서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국가적 통제에 더해, 게임의 유통 또한 휴대폰 이용자들의 제한된 연결성에 맞춰져 있다. 북한에서 휴대폰 이용자들의 인터넷 접속은 드물지만 WiFi나 셀룰러 데이터를 통한 인트라넷 접속은 가능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인트라넷을 사용하는데 드는 비용이나 데이터 비용 등은 평균적인 소비자 입장에서 여전히 비싸며, 공공 WiFi 같은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온라인 앱 스토어 같은 일반적인 유통 경로는 솔루션이 될 수 없다. 일부 특정한 앱의 경우 인트라넷 연결을 통해 라이센스나 인-게임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 앱들은 우선 오프라인에서 설치되어야 하며, 일단 실행되면 그 이용자는 지불 기록 증명과 이용권한 파일만 처리되는 구매 과정 - 따라서 앱 전체를 다운로드 받는 비용을 피하는 - 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 - 국가적 통제와 연결성 - 에 대한 솔루션이 제공되는 곳은 "정보기술 교류실" 또는 "정보기술 봉사"라는 이름이 붙은 물리적 상점이다. 국가로부터 승인받은 앱의 유통 및 설치에 대한 허가를 받아 운영하면서 휴대폰이나 컴퓨터 수리 같은 서비스도 제공하는 이 상점들이 바로 북한의 주요 게임 제공업자다. 상점 벽에는 신작 포스터가 붙어있으며 소비자들은 카탈로그를 통해 여러 게임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상점들은 평양 내에서는 흔히 볼 수 있으며, 그보다 드물긴 하지만 지방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 * 평양의 정보기술교류실(2018). 리버스-엔지니어링 된 게임을 리버스-엔지니어링하기: 방법론 북한의 상점에서 볼 수 있는 게임들은 전세계 여느 온라인 샵들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판매되고 있는 게임 대다수는 〈팜빌(Farmville)〉, 〈캔디크러쉬(Candy Crush)〉, 〈앵그리버드(Angry Birds)〉 같은 해외 게임들과 매우 유사한데, 그 이유는 그 게임들이 실제로 해외의 게임들이기 때문이다. 즉 북한측이 마치 북한산 게임인 것처럼 보이도록 해외의 게임들을 번역 및 개조하고 리패키징한 것이다. 예를 들어 〈피버 포 스피드(Fever for Speed, Agame, 2017)〉의 개조판 홍보 포스터를 보면, 제목이 〈만리차경주〉로 바뀌어 있고 7) 평양 컴퓨터스튜디오의 신제품인 것으로 홍보되고 있다. 또한 붉은색 공산당 스카프를 맨 어린이 캐릭터가 관객을 바라보는 모습의 배경에는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원"이라는 북한의 유명한 국가 슬로건이 적혀 있다. 오리지널 국산 게임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대부분은 교육용 게임이나 전통적인 아날로그 게임들(체스나 바둑, 체커 등)의 전자식 버전에 한정되어 있다. * 평양의 한 IT 상점에 걸려있는 〈피버 포 스피드 3D〉의 현지화된 개조판 게임 홍보 포스터. 지금부터는 이데올로기와 게임, 검열 간의 관계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평양에서 구매할 수 있는 현지화된 수입 게임 7편을 살펴볼 것이다. 북한이 접근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 그래서 현지 작업이나 데이터 수집을 더욱 어려운 - 국가이긴 하지만, 그 유명세는 상당히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다. 앙드레 슈미트(Schmid, 2021)가 "북한 연구는 결국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듯이, 남한,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유럽에는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아카이브와 자료들이 존재한다(상당 부분 디지털화 되어 온라인상에서 무료로 접근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북한에서의 현장조사도 완전히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예를 들어 이 연구에 사용된 게임들은 여행 비자를 지닌 외국인들이라면 북한 내 어느 도시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드웨어 구입은 좀 더 제한적이긴 하지만, 게임과 소프트웨어는 안드로이드 버전이 돌아가는 기기라면 어느 가게에서나 설치할 수 있다. 진짜로 어려운 일은 실제로 게임이 제작되는 과정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다. 정보가 대단히 부족하고, 게임 개발사 방문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개발사들이 자사의 게임 상당수가 해외에서 유래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양 같은 도시에서 게임의 소비자들과 대화하는 것은 (자주 접할 수 있기에) 어렵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본 게임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으며 시장 진입 전에 모든 게임들은 수정/개조 작업을 거치게 되어 있다. 게임의 원본과 북한의 개조 버전을 비교함으로써 어떤 요소들이 검열되는지, 어떤 개발사들이 지워지고 수정되고 또는 강조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인데, 이 글에서는 보다 알아채기 쉬운 외양상의 변화들부터 시작해서 게임 내 소스코드에 보다 깊숙이 내재된 수정/변화상을 살펴볼 것이다. 원본과 현지화 버전을 나란히 실행시키면서 화면상에서 나타나는 변화들을 확인하면, 게임 에셋이나 번역 또는 게임의 흐름 상의 변화들을 표면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다. 그러나 나름의 가치있는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음에도, 이 방법은 두 게임 간 차이를 부분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개조 버전의 어떤 속성이 (연구자가) 재현할 수 없는 특정한 조건 - 예컨대 북한의 인트라넷에 연결되어야 한다든가 - 에서만 활성화된다면, 그러한 부분은 간과되기 쉬울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림5]는 광흥 스튜디오가 만든 게임의 디컴파일 자바소스 코드의 조각들인데, 이는 게임의 이용권한 및 인-게임 아이템의 온라인 구매에 관한 것이자 통합권한관리 라이브러리다. 그러나 (북한의) 게임들은 그러한 속성의 일부만 사용하거나 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즉 코드를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게임의 권한체크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북한의 게임들은 결제를 위해 인트라넷과 QR코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더해 우리는 권한관리 라이브러리가 원본 게임 위에 덧입혀진 북한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코딩 스타일 상의 차이나 패키지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소프트웨어 프로텍션과 결제 모듈 같은 것들이 일반적임(새 게임을 쉽게 추가할 수 있도록 재사용 라이브러리가 생성되므로)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에 활용된 이용권 프로텍션의 수준이나 강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게임 내 모든 단어가 한글로 굉장히 주의 깊게 번역된 것과는 달리, 변수나 함수, 클라이언트 서버 메시지 등의 이름을 짓는 데는 영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 이용권한 라이브러리의 코드 조각들. 이 앱은 해당 사이트 이용자의 남은 "포인트"를 확인하고 게임이나 인-게임 아이템 구매를 위해 http를 경유하여 인트라넷에 연결해준다. 따라서 스크린상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어떤 개조가 있었는지, 그 내부의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 "워크스루 방법론"(Light, Burgess & Duguay, 2016) 같은 기존의 분석 방법론은 바로 그와 같은 한계를 지닌다. 코드 기반 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물(relic)들 - 미사용된 속성이나 기능 또는 애셋들, 개발자 코멘트 등 - 뿐만 아니라 "후드 아래(under the hood)"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호하게 남겨둔 채 "앱의 스크린이나 속성 그리고 활동의 흐름"만을 기록하는데 그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유저 인터페이스를 중심으로 앱을 분석함으로써 분석자가 놓칠 수 있는 사항들 - 예컨대 특정 속성을 활성화할 수 있는 조건이 맞지 않았던 것인지 여부 같은 - 을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비디오게임이라는 기술적 인공물의 "블랙박스"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소스 코드와 대면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 게임 개발사들이 원본 게임의 원 바이너리를 활용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디지털 포렌식 및 리버스-엔지니어링 기술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게임은 컴파일된 실행파일로서 유통되는데, 다시 말해 원본의 소스 코드가 기계어로 번역되어 데이터 파일이 포함된 애플리케이션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계어는 비트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간 관찰자가 해석하기 어려운데, 이를 보다 인간 친화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로 원본의 소스 코드를 바꾸어주는 툴이 여럿 있다. 디컴파일러는 원본 개발자가 썼던 본래의 코드에 가깝게 실행 파일들을 추출하는 것을 가능케 해 준다. 하지만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가 쉽게 디컴파일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보다 낮은 수준의 어셈블리 언어로 기계어를 좀 더 쉽게 해독해주는 역어셈블러를 사용해야 할 때도 있다. 북한에서도 게임 제작은 자바 프로그래밍언어로 코딩된 안드로이드 응용프로그램 패키지(APK), 유니티 게임 엔진으로 개발된 게임을 위한 라이브러리, 원래 C나 C++로 쓰여진 네이티브 코드 라이브러리 등 여느 모바일 게임들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Shim et al. 2018). 각 게임에 대한 분석을 위해 우선 압축 유틸리티를 사용해서 각 게임의 실행 파일, 라이브러리 파일, 에셋 파일을 애플리케이션 패키지로부터 추출했다. .obb나 .assetbundle 등 다른 파일 포맷으로 저장된 에셋인 경우 DevX의 유니티 언패커 툴을 사용했다. 그러고 나서 에셋들을 살펴보았는데, 이는 원본과 현지화된 게임을 종합적으로 비교하기 위해서다. 어떤 경우 애플리케이션 내 제거되거나 교체된 에셋 파일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럴 땐 Java와 C# 코드용 디컴파일러를 써서(각각 Jad-X와 ndSPY) 코드에 접근했다. 디컴파일이 불가한 네이티브 코드 라이브러리는 NSA가 개발한 리버스-엔지니어링 툴인 기드라(Ghidra)를 사용해서 역어셈블 작업을 수행했다. 이 연구에서 수행한 분석 방법은 실제로 실행하지 않고도 애플리케이션을 제어하고 데이터 플로우를 재구축할 수 있는 정적 분석(static analysis)인데, 이는 특정한 실행 환경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프로그램의 모든 기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가능한 분석방법이다. 애플리케이션의 엔트리 포인트를 추적하고 나서는 "후드 아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게임이 로딩되면서 코드 상의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코드의 로직을 따랐다. 기술적으로 원본과 현지화 버전 간의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을 부분적으로 자동화하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상당한 차이 및 작은 코드 뭉치들의 구조적인 변경으로 인해 기존의 솔루션에 의존하거나 새로운 실용적 솔루션을 개발해야 했다. 또한 사용자 인증 모듈 같이 관심이 있는 특정 속성들을 설치하고 디컴파일 및 역어셈블된 코드로부터 그 로직을 재구축하였다 8) . 정적 분석을 통해 비활성화되거나 활성화가 요구되는 흥미로운 속성들이 발견되었을 때는 일시적으로 그 실행파일들을 수정하여 최종 이용자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확인하였다. 연구 결과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이 5개 카테고리로 구분했다: "재전유" 카테고리에서는 용어 그대로 법적 소유권 및 저작권 표기가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지 살펴본 결과이고, "현지화"와 "이데올로기적 각색" 카테고리는 모두 게임의 외양을 해독하고 원본과 현지 버전의 애셋을 비교한 결과인데, 두 카테고리가 가끔 교차되는 지점이 없진 않지만, "현지화" 카테고리는 좀 더 문화적 번역에, "이데올로기적 각색"은 게임 내에 변형(transformation)되거나 추가 혹은 제거된 이데올로기적 콘텐츠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액결제"와 "게임 이용권한 및 프로텍션 모듈"은 대부분 디컴파일된 코드에 대한 해석으로, 이는 게임 바이너리에 새로운 결제 방식이 삽입된 방식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재전유: 북한 게임을 실행할 때 가장 먼저 화면에 뜨는 것은 북한의 컴퓨터 소프트웨어법에 따른 저작권 보호 메시지와 게임에 대한 크레딧을 소유한 개발사의 이름이다. 유저 인터페이스 상의 원본 게임 개발사나 퍼블리셔를 지칭하는 모든 언급은 전부 지워져 있지만, 바이너리상에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요소들이 남아있어 원래 타이틀을 확인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원본 게임 개발사에 문의해보니 자사의 게임이 북한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업체는 하나도 없었다. 현지화: 북한에서는 유럽, 미국, 러시아, 호주, 남한 등 세계 여러 나라의 게임들이 출신이 모호한 상태로 유통되고 있다(중국산 게임 또한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 연구에선 확인되지 않았다). 영어만 사용한 게임은 한국어로 번역되었고, 한글 제공 게임일지라도 남한식 철자법과 표현, 폰트를 사용한 경우 번역을 거쳤다. 남한의 언어는 영어에서 차용한 단어가 많아 북한 이용자들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텍스트 말고도 과도하게 외래적이라 여겨지는 것들도 바뀌었다. 예를 들어 페더웨이트 게임즈(Featherweight Games)의 〈로데오 스탬피드(Rodeo Stampede, 2016)〉는 "할로윈이나 크리스마스, 구정 등의 시즌에 맞춘 음악뿐 아니라 서부 아프리카와 라틴, 네팔 등지의 분위기가 섞인" 사운드 트랙을 제공하는데, 현지화 버전인 〈날으는 동물원(Pyongyang Morning Star Technical Development Center, 2018)〉에서는(역주: 원문에서는 〈Flying Zoo〉로 나와있으며 실제 북한에서 사용하는 한글 제목은 확인불가) 북한의 유명한 연주곡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수정은 단순히 소비자 취향에 맞춘 것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국가 혁명에 이바지하고 인민의 사고와 감정에 맞춘" 음악을 선호하는 공식 정책에 따른 것이다(Kim, 1991, p. 19). 원본과 현지화 버전 간 스프라이트 시트(sprite sheets) 비교는 [그림 6-1]과 [그림 6-2]를 통해 〈게임 오브 워리어즈(Game of Warriors, G-Station Studio, 2016; Kwanghung, 2018)〉 내 다양한 요소들의 다양한 수정과 변형 사례를 제시해보았다. 캐릭터 머리는 좀 더 아시아적인 얼굴의 2D 그래픽으로 바뀌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의 전통적인 장비를 쓰고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여기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캐릭터 중에는 한국의 전통 군사복을 입은 경우도 있었다). 바뀐 의상과 그림체는 북한의 SEK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만든 고려 시대 배경의 〈소년 장군〉 같은 인기 역사 만화/애니메이션과 유사하다. 영어 원본에는 "invading forces"로 표기된 적은 한국어 "오랑캐"로 바뀌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침략자였던 만주족을 멸시할 때 사용하는 명칭이다. 이처럼 의상의 변형을 통해 게임을 한국의 역사 내 재배치시키는 가운데, 이는 다른 한편으로 콘텐츠의 노골성에 대한 점잖은 정도(modesty)과 민감도(sensitivity)의 상이한 기준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원작 게임에서 말을 타고 등장하는 붉은 머리의 바바리안 캐릭터의 드러난 맨살은 북한 버전에서 어두운 푸른색 셔츠로 덮였다. 이와 같은 커버업은 학교에서 배우고 주변에서 강제되는 행동 규칙인 "사회주의 도덕"에 맞춘 것이다. 이러한 도덕은 북한인들이 지녀야 할 매너나 예의범절 그리고 적절한 복장 등을 규율하는데, 북한에서는 군인, 나아가 남성들이 팔꿈치 윗부분이나 무릎 아래를 노출하는 것이 올바르지 못한 복장으로 여겨진다. 게임에서 졌을 때 나타나는 해골 스프라이트의 경우 북한판에서는 두개골이 두 개의 칼 뒤에 숨겨지고 해골의 팔은 지워지는 등 덜 적나라하게 표현된 것을 알 수 있다. (레드 몬스터의 두드러지는 이빨이나 뿔 달린 헬멧 등의) 다른 요소들과 더불어 (바바리안 캐릭터의 벨트와 오른쪽 위에 위치한 헬멧 같은) 다른 곳에 나타난 두개골 또한 제거되거나 수정되었는데, 이는 그러한 모티브들이 일부 이용자들에게 부적절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 〈게임 오브 워리어즈〉 스프라이트의 원본 버전(왼쪽)과 현지화 버전(오른쪽). 이데올로기적 각색: 지금까지 살펴본 현지화 양상은 대개 게임을 현지 문화 등에 맞추는 것에 초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문화적 측면에는 언제나 정치적 차원이 동반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남한의 것들이 체계적으로 누락되고 북한의 언어로 재번역되는 이유는 단순히 상호이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외래어를 다수 차용한 남한의 언어가 북한의 언어에 비해 열등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남한의 외래어 남용이 언어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외래 권력에 복종하는 것임을 반영한다는 것이다(Chong, 2019). 뿐만 아니라, 남한의 경우 영어 원어를 말 그대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북한의 번역은 훨씬 더 주의 깊게 콘텐츠에 접근한다. 예를 들어 〈게임 오브 워리어즈〉에서 플레이어는 팽창주의 정복자의 역할을 맡아 적의 도시를 "정복"한 후 그것을 "식민지"로 바꾼다[그림 7]. 남한은 역사적으로 식민지 문제에 민감함에도 불구하고 "식민지"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판에서 정복된 도시들은 해방된 마을과 성으로 표현된다. 원본에서 깃발의 문장들은 정복된 적 도시를 표현하지만 북한판에서 이는 "해방"과 "강점"으로 대체되는데, 이 두 용어는 직접적으로 한국의 (일제)강점기와 북한의 전(前)지도자 김일성에 의한 해방을 의미한다. 북한식으로 현지화된 이 게임은 한국의 고대 역사를 참조한 동시에, 원본의 정복과 팽창의 로직을 북한의 역사 기술에 있어 가장 많이 반복되어온 - 외래 침략자들로부터 한국의 해방이라는 - 내러티브로 재구성되었다. * 원본 〈게임 오브 워리어즈〉의 도시 정복 튜토리얼 화면(왼쪽)과 북한판 화면(오른쪽). 북한판에서는 "마을 해방 --- 마을을 해방하였습니다. 더 많은 자원을 얻으려면 성을 갱신하십시오"라고 쓰여있다. 몇몇 수정사항들이 북한의 민족주의나 주체사상을 반영하거나 강화한다면, 다른 것들은 문제가 될 수 있는 상징들을 중화(neutralize)시킨다. 북한판 게임에서 다양한 형태의 돈(지폐, 동전, 보물 등)이 변형되는 방식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그림의 검 양쪽으로 쌓여있는 달러가 그려진 골드 코인은 북한판 그림에서 완전히 사라져 있으며, 게임 내에서 달러 코인은 금색 별로 대체되었다. 시리어슬리(Seriously)의 게임 〈베스트 프렌즈(Best Friends, 2014)〉의 북한 버전인 〈멍청한 달팽이(Kwanghung, 2018)〉의 경우(역주: 원문에는 〈Stupid Snail〉이라 표기되어있으며 실제 북한에서의 한글판 제목은 확인불가) 원본 게임에서 주류 통화로 사용되는 골드바(gold bar)가 노란 보석으로 대체되었다. 한편 〈시티 아일랜드 2(City Island 2, Sparkling Society, 2014)〉의 북한 버전의 경우, 골드바는 남았지만 게임 내 통화를 상징하는 미국 달러처럼 생긴 초록 지폐는 "유희 점수"를 의미하는 회색 종이로 대체되었다. 〈날으는 동물원〉의 경우 원본에서 Z에 두 개의 세로로 된 선이 관통한 모양의 코인이 북한판에서 삭제되었다. 이처럼 인-게임 통화의 재현 형태에 대해 일관된 처리 방식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 개발자들의 지속적인 수정과 변형 작업은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 - 부와 돈 - 가 문제점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변형된 코인, 골드바, 지폐 등은 화폐로서의 기능을 유지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돈의 단위로서 자신들의 기능은 빼앗긴 것이다. 이처럼 통화 상징들이 중화된 가운데, 목표가 수익의 극대화에 있는 게임들은 그 로직을 유지했다. 〈날으는 동물원〉에서 게임의 목표는 여전히 희귀 동물을 포획해서 주인공의 동물원을 발전시키고 보다 많은 관객들을 유입시킴으로써 수입을 증대시키는 것에 있으며, 〈시티 아일랜드 2〉의 경우 요령 있는 부동산 투자를 통한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소액결제: 이처럼 돈에 대한 재현을 순화시키려는 노력은 북한판 게임의 인-게임 통화가 실제 돈으로 구매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매우 역설적이다. 현지화된 게임에서 원본 게임에 딸린 광고나 구글 플레이 같은 결제 플랫폼 링크는 제거되는데, 여기서 인-앱 결제 방식은 제거되지 않고 남은 채 북한의 인프라에 맞도록 변형된다. 즉 북한 게임 산업의 행위자들에게 그 수익이 재배치되도록 수정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은 한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게임의 소스코드를 확인하면 새로운 소액결제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어있는지 알 수 있다. 대개 게임의 소액결제 시스템은 시리얼 넘버 시스템이나 암호화 키 파일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작동한다. 아이템 구매는 해당 아이템을 해제할 수 있는 시리얼 넘버와 게임에서 생성되어 - 오프라인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 텍스트 키나 QR코드를 교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텍스트 키 또는 QR 코드는 암호화 해시 함수(cryptographic hash function)를 이용자의 기기(모바일기기식별코드나 시간, OS 빌드의 식별자 등)의 다양한 식별자에 적용함으로써 생성된다. 이는 이용자들이 동일한 시리얼 넘버로 여러 기기에서 아이템을 해제하는 것을 방지해주며, 무엇보다도 시리얼 넘버를 제3자에게 증여하거나 재판매하는 것을 막는다. 따라서 이 시스템은 최종 이용자가 자신이 구매한 것에 대해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을 제한함으로써 (물리적 앱 상점이) 상품의 유통권 독점을 확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2차 시장을 통한 이용자 간의 수평적인 흐름이 아닌, 이용자로부터 유통사와 개발사로 흐르는 수익의 흐름에 대한 소유권을 확고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광흥 스튜디오가 유통 중인 게임에 대한 리버스 엔지니어링 작업을 통해, 이용자의 기기가 국가의 인트라넷에 연결되어 있을 경우 온라인 소액결제가 일부 게임에서 가능함을 확인했다. 결제는, 전자식 지불카드가 아니라, 이용자 계좌와 게임이 개발사의 인트라넷 사이트상에서 연결되어 구매한 사람의 계좌에서 포인트가 차감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짐작컨데 계좌상의 포인트는 전자식 결제로 또는 더욱 높은 확률로 오프라인 상점에서 현금으로 구매하게 되어있을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의 구매와 마찬가지로, 공유나 재판매를 방지하기 위해 이용자의 계좌가 기기 고유의 식별자와 묶여있는 것이다. 게임 이용권한 및 프로텍션 모듈: 게임 내 소액결제 시스템과 더불어, 게임 그 자체의 결제도 오프라인 IT 상점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무단 복제와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게임들은 강력한 암호화 방식(4096 bits RSA)으로 보안된 라이선스 키 파일에 의존하고 있으며, 라이선스 시스템은 종종 (사용권 파일 체크를 우회하기 위한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나 바이너리 수정을 방지하는) 파일 무결성 검사나 (디컴파일 또는 디어셈블된 소스 코드를 해독 불가하게 만들어 바이너리에 대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방지하는) 코드 난독화 같은 소프트웨어 프로텍션 방식을 이용해서 추가적인 보안을 하기도 한다. 게임 프로텍션 모듈의 환경설정이나 강도는 개발사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전부 불법복제를 방지하기 위해 고도화된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 국가가 승인한 스튜디오에 의한 해외 게임의 불법복제 뿐 아니라 - 스튜디오가 만든 현지화된 불법복제 게임에 대한 무단 불법복제가 그처럼 고도의 방지책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만연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북한 게임의 결제 및 라이선스 시스템 내에서, 물리적 앱 상점은 게임 개발자와 이용자가 상호작용하는 플랫폼으로서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이와 같은 경제적 중간층(economic middle layer)는 흥미롭게도 디지털 앱 스토어와 비슷하게 - 생태계를 둘러싸는 울타리 쳐진 정원(walled garden)이나 유저 락-인(lock-in) 테크닉, 독점 유지, 그리고 게이트 키핑 전략을 통한 콘텐츠와 자본의 흐름 통제 등의 - "플랫폼 자본주의"(Srnicek, 2017)적 특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게임 개발사나 앱 상점들이 이용자 데이터 수집 및 게임을 통한 수익 창출을 하지 않고 인-앱 구매가 유일한 수익 원천이라는 점은 플랫폼 자본주의와 다른 부분이다. 디지털 기기들이 여전히 거대한 규모로 데이터를 수집하지만, 이는 전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저작권, 감시, 그리고 소비 북한의 게임산업은 저작권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태도를 보여준다. 여러 국제 저작권 조약에 가입했고 세계 지식재산권 기구의 오랜 멤버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게임 개발사들은 해외 게임의 저작권을 무시하면서 리버스-엔지니어링을 수행하고 게임을 개조하면서 현지 시장에서 재판매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소비자에게는 자사의 게임들이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고 있음을 명확히 밝히는 한편, 불법복제를 방지하고 지적 재산을 수익화하기 위한 복잡한 테크닉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중성이 게임 산업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50여년 간의 북한 법학 학술저널과 경제학 저널을 살펴보면 지적 재산에 대한 경제적, 법적 담론들이 넘쳐난다 9) . 북한의 학자들은 저작권 보호가 보다 빈곤하고 기술적 발전이 떨어지는 국가들을 희생시켜 선진국의 부를 불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불공정한 행위라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Hwang, 2017). 예를 들어 1980년대 말 남한이 국제 저작권 규제를 따르기로 한 결정은 "미 제국주의"가 남한의 "괴뢰 정권"을 통해 강제한 또 하나의 강탈 책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Chon, 1988, p. 82). 어떤 경제학자는 저작권, 특허, 지적 재산 연관 법률에 대해 "제2의 인클로저 운동"이라고 기술했는데,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것이다(An, 2005, pp. 139-140). 국제 저작권법 또한 강국들이 자국의 규율을 독립적인 해외 영토에 강제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국가의 주권을 위협한다며 비판한다(Chon, 1998; Chong, 2004; Lee, 2013).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저작권과 지적 재산에 대해 훨씬 긍정적인 평가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지식 경제의 구축"과 보다 체계적인 입법의 추구가 필수라는 것이다(Kim, 2014). 이러한 변화는 저작권을 인정한 1998년의 개헌, 2001년 북한의 첫 저작권 법 및 2003년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보호법 추인과 더불어 진행되었다. 같은 해 북한은 베른 협약에 가입하기도 했다. 저작권 보호를 향한 이와 같은 갑작스러운 입법상 변화는, 일반적으로 1990년대 국가 경제의 붕괴를 경험한 뒤 재산권에 대한 법적 정의가 개정되면서 진행된 것이자 남한과 북한간 상호 화해를 추구하는 소위 햇볕 정책과 함께 강화된 것으로 생각된다(Shin, 2005). 이와 같은 새로운 접근은 북한 문화상품의 남한 내 상품화 증대 및 그에 따른 로열티 수익 증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5년에는 북한의 소설을 출판한 남한의 출판사가 로열티 미지급으로 저작권 소유자들에게 피소되기도 했다(Lee, 2005). 하지만 이와 같은 두 개의 입장에 있어, 특히 국가적 이익과 주권을 우선시하는 북한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에서 볼 때, 근본적인 모순은 없다. 북한 경제학자들과 법학자들은 지적재산권 법을 "입법적 식민화"라고 보았던 리처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의 주장(Stallman, 2006, p. 335)을 반복했으며, 그러한 비판은 부유한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국가들에 대해 저작권을 행사하는 것을 겨냥한 것이었다. 따라서 북한은 그러한 비판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반대로, 보다 선진화된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북한의 권리 소유자들이 해외에서의 저작권을 주장하면서 국가적 이익을 수호하고 있다. 보다 주목할만한 부분은 북한의 - 국외에서보다 - 국내에서의 저작권 활용 양상이다. 선진국의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국의 저작권 권리를 해외에서 추구하는 것은, 경제 및 문화적 제국주의를 향한 저항이나 반항으로서 볼 여지가 없지 않다. 하지만 북한 내 저작권 적용에 대해서는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북한의 국내 저작권 시행은, 창작자에 대한 보상이라기 보다는, 통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컴퓨터 소프트웨어 보호법 통과는 국내외의 모든 소프트웨어를 국가 기관 - 중앙 소프트웨어산업 지도 기관 - 에 등록하는 것이 소프트웨어의 "과학성, 객관성, 적시성(timeliness)"을 확보하는 것이자 개발자의 저작권에 대한 권리를 보증하기 위한 전제조건임을 규정한 것이었다. 이러한 등록 과정은 해당 소프트웨어의 오리지널리티와 보안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제시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앙의 국가 조직이 효과적으로 소프트웨어의 유통을 통제하고 "국가의 방식과 관습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이는 모든 작업물을 검열할 수 있는(Computer Software Protection Law, 2003, p. 6)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작권은 소프트웨어의 흐름을 감시하고 파일 공유를 방지하는데 사용되는 암호화 서명 체계를 뒷받침하는 법·제도적 장치가 되는 셈이다. 지적 재산의 보호가 대량 감시 및 디지털 기기를 통해 국가가 승인한 것 외 다른 콘텐츠에 접근하는 것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저작권은 노동 가치로부터 가격이 결정되는 경제 체제 하에서 인-게임 소액결제가 지닌 자본주의적 로직을 정당화하고 있다. 디지털 상품은 한계 생산 비용이 없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와 게임은 언제나 북한 경제학자들에게 문제적으로 인식되어왔다(Lee, 1998).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고정된 노동량과 연결시키는데 있어서의 그 어려움은 역으로 훨씬 유연한 가격 모델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게임의 경우 이를 통해 소액 결제 기반의 수익화 시스템이 번성할 수 있었다. 이 수익화 시스템은 현지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문제가 있는 대상으로서 제거되는 대신, 북한 시장에 맞게 각색되었다. 이러한 측면은 북한의 문화적 환경 내에서 게임이 독특해지는 지점인데, 게임이 이용자를 (현지화된 특성이나 이데올로기적 표현을 통해) 시민으로서 호명하면서 동시에 소비자로서도 호명하기 때문이다. 소비(consumerism)가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서 완전히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Betts, 2014; Gerth, 2020), 중앙 계획식 생산 및 사치나 불필요한 지출에 대한 멸시, 계층적 구별이 없는 세상에 대한 이상, 소비상품의 부족 등은 사회주의 내에서 소비를 드문 현상으로 만들었다(Stitzel, 2005; Tsipursky, 2016). 특히 북한의 경우 소비상품은 인민의 실질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것으로, 수익 창출을 위해 "인공적으로 구매 욕구를 촉진"하는 시도는 "물질적 문화의 삶을 망치는" 자본주의적 행태라는 비판을 받았다(Kim, 2015, p. 32). 소비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목적이 있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문청완은 소니(Sony) 등 자본주의 기업이 컴퓨터나 게임을 생산하는 것을 그 상품의 "실제적인 쓸모"와는 무관한 생산이라 보았다. 북한이었다면 동일한 상품(컴퓨터)이 교육이나 생산적인 활동을 관리한다는 목적을 표명하며 기획되었을 것이다(Mun, 2009). 이러한 형태의 소비를 보여주는 흔적들은 북한의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Schmid, 2017), 예를 들어 국가 선전 포스터, 잡지, 상점 등은 상품과 소유의 미학을 활용하면서 소비자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 상품을 꾸미고 전시하였다 10) . 이러한 형태의 소비는 일상적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국가의 사회주의식 생산 방식이 성취한 물질적 풍요를 보여주는데 활용되고 있다(Dobrenko, 2007, p. 282). 의심스러운 소비 또한 - 비공식적으로나마 - 흔했고, 희귀하거나 비싼 소비 상품들이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는 다양한 사례들을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Choi, 1991). 하지만 이상의 기존 소비 양상과 게임의 소액결제 모델은 상당히 다르다. 주지하다시피 인-게임 구매는 지속적인 소비 패턴을 도모하고 플랫폼 자본주의의 지대 추구 시장을 유지하도록 진화해왔다(Nieborg, 2015; Almaguer, 2018; Joseph, 2021). 소액 결제 시스템의 이와 같은 수익 극대화 로직은 북한에서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는데, "타임 랩스"나 잠긴 레벨, 구매해야 하는 보너스 등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유료화 장벽을 북한의 플레이어들이 돈을 써서 우회하는 방식이 장려되고 있다(Burroghs, 2014). 자본주의 세계의 플랫폼이 북한 소프트웨어 산업 중앙 지도 기관의 독점적 오프라인 플랫폼으로 대체되었을 뿐인 것이다. 기존의 소비 양식은 언제나 물리적 자원의 결핍/부족이라는 현실 그리고 계획 경제를 통한 물질적 풍요와 공정한 배분에의 약속 사이에서 협상해야 했다. 그러나 소액결제에서는 결핍/부족이 적용되지 않는다. 추가적인 저장소나 연산 작용 없는 아이템의 무한 증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템들은 또한 이미 원본 게임에 코딩되어 있고, 해적판에서는 추가적인 개발이나 디자인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이용자의 구매가 현지화 된 지불 시스템을 만든 노동에만 지불됨을 의미한다. 지불할 권리에다 지불하는 셈이다. 따라서 게임에 엮인 소비 형태는 목적이 있는 소비나 게임 개발에 투입된 노동으로부터 분리된다. 대신 그것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재정적 수익의 추출이다. 북한의 불법복제를 통한 해외 게임의 현지화는, 지정학적,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는 작고 빈곤한 후기-식민 국가의 관점에서 볼 때, 해외로부터의 영향을 제한하고 불공정한 지적 재산 규제에 저항하는 시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수익화에 기반한 소액결제가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은, 게임이 북한이 국가적으로 주장해온 가치에 반하는 소비주의적인 수익 추구 행위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북한과 같이 폐쇄적인 사회주의 국가 내에서 이러한 행위의 발생은 일종의 해방 신호로서 환영할만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수익화를 추구하는 게임의 부상이란 그 이용자와 생산자가 소련의 2차 경제를 연상시키는 "비사회주의적"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주체성의 증대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루딕(ludic) 경제는 전복과는 거리가 멀다. 그 경제 체계가 단일한 주체에 의해 엄격한 감시 시스템 하에서 국가의 수익을 극대화하는데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 당국이 지적 재산 체제 및 그와 연관되는 수익화 시스템을 빠르게 수용해서 활용하는 양상을 보면, 그것이 대량 감시와 소비자 착취와 엮여있음을 알 수 있다. 수익 극대화, 자본 축적, 독점 등의 자본주의 경제 논리를 고스란히 반영한 메카닉을 지닌 채 기존의 수익화 시스템과 통합된 게임의 북한 내 인기는, 나아가 놀이(ludicity)의 문화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속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자유화된 시장의 경쟁적 속성에서부터 로빈후드(Robinhood)앱에서 나타난 게미피케이션화된 주식과 옵션 거래, 그리고 암호화폐 기반의 P2E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게임과 탈중앙화된 금융 간의 혼합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이미 게임과 유사한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Giddings and Harvey, 2018). 그렇다면 그러한 게임에 대한 북한 이용자들의 열정은 자본주의에 내재된 놀이적인(ludic)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본주의의 게미피케이션이 그러한 것을 - 북한의 검열 체계 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 좀 더 보편화하고 있는 것일까. 1) 2019년과 2020년에 평양에서 6군데 IT 상점에서 접했던 소프트웨어 카탈로그들을 비공식적으로 살펴본 것에 기반한 판단이다. 알렉 시글리의 기사(Sigley, 2019)를 참조할 것. 2) 여기서 사용한 사회주의 경제체제라는 용어는, 상품의 가격이 민간 주체에 의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간 평등을 표명하는 정치적 목표에 맞춰 (그러나 그러한 목표가 실현되거나 실질적으로 추구될 필요는 없는) 중앙 계획 당국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되는 체제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북한이나 소련, 중국을 위시한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행했던 사회주의 경제 체제가 마르크스 등 여러 학자들이 말했던 사회주의를 제대로 실현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나 생산 수단의 소유(및 국가가 노동자의 대리로서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 것 등)에 대한 문제 등은 논외로 배제한다. 또한 공산주의라는 용어는, 사회주의 국가 내의 특정 조직이나 기관에서 사용한 경우(예컨대 공산당이라든가 청년 공산당 조직 등)를 제외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대중적인 정의는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이 중앙 계획 경제체제를 운영하는데 있어 나타나는 다양한 차이라든지 여러 문화적 요인들이 사회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끼친 영향 같은 것 등 다양한 입장들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나아가 각 국의 경제체제가 거쳐온 역사적 변화과정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력을 지니지 못한데, 예컨대 김정은의 경제 정책은 조부인 김일성 시대의 정책과 상이하며, 둘 다 상이한 시점에 상이한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이유로, 국가 주권이나 소비, 사적 소유 등과 관련해서 북한 사회주의의 특성을 논할 때는 부가적으로 역사적 맥락과 사례를 제공할 것이다. 3) 니콜은 조영찬(Cho, 2016)의 논의를 빌어 남한에 비디오게임 및 야구가 유입된 것이 일본과 미국의 "신식민주의"에 따른 결과라고 기술한다. 문화 제국주의적인 요소(Mohammadi, 1995)들과 미국과 일본의 기업들이 점령하다시피한 국내외 게임 시장을 통해 들어온 전(前)지배세력이자 경제적 제국주의 국가(즉 미국과 일본)의 게임들에 담긴 가치나 상징, 미학적 요소들이 결합되어있다는 것이다. 니콜은 나아가 불법복제로부터 성장한 한국의 게임산업이 국가적 - 그리고 민족주의적 - 상징으로 게임을 재전유함으로써 그 과정을 전복시키면서도 그러한 과정에 여전히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한편 리버스-엔지니어링 분석은 학계 외의 게임 보존가들 사이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 5) https://www.silverstar.co.jp/ 6) 해당 게임의 웹사이트는 www.mybaduk.com, www.dklotto.com, www.dkcasino.com, www.jupae.com을 통해 호스팅되었으며 지금도 the Internet Archive에서 접할 수 있다. 7) '리'란 동아시아권에서 400미터 정도되는 거리를 지칭하는 전통 단위다. 8) 사용된 방법론이나 툴에 대한 정보를 더 알고 싶다면, 다음의 링크를 통해 리버스-엔지니어링된 북한 게임들의 소스 코드 변경사항과 암호화 방식을 살펴볼 것: https://digitalnk.com/blog/2019/04/21/reverse-engineering-a-north-korean-sim-city-game/ 9) 여기에 해당하는 저널로는 〈경제연구〉, 〈정치법률연구〉, 〈김일성 종합 대학 학보〉가 있다. 10) 예를 들어 1970년대에 북한이 발행한 〈Korea Today〉 잡지(nos. 914(1972), 201(1973), 203(1973), 12(1974) 등)에 실린 백화점이나 산업박람회, 농산물박람회 사진을 보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불명 Anonymous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Editor's View] 재현의 도구냐, 사행성의 도구냐를 묻는 오늘날의 디지털 주사위

    알 수 없는 미래를 재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음악과 문학, 영화 등 기존의 많은 매체들이 시간선을 따라 정해진 사건을 풀어가는 형태였던 것과 달리 디지털게임은 '알 수 없음' 자체를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 왔다. 물론 현실에 존재하는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완벽하게 모사할 수는 없고, 제한된 방법으로서의 확률 계산을 통해 게임은 그 알 수 없는 미래라는 상황과, 그 상황에 놓인 인간의 머뭇거림과 결단을 그려내고자 한다. < Back [Editor's View] 재현의 도구냐, 사행성의 도구냐를 묻는 오늘날의 디지털 주사위 17 GG Vol. 24. 4. 10. 알 수 없는 미래를 재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음악과 문학, 영화 등 기존의 많은 매체들이 시간선을 따라 정해진 사건을 풀어가는 형태였던 것과 달리 디지털게임은 '알 수 없음' 자체를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 왔다. 물론 현실에 존재하는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완벽하게 모사할 수는 없고, 제한된 방법으로서의 확률 계산을 통해 게임은 그 알 수 없는 미래라는 상황과, 그 상황에 놓인 인간의 머뭇거림과 결단을 그려내고자 한다. GG 17호에서 우리는 디지털게임의 등장 이전부터 존재했던 운과 확률이라는 방식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살펴보고자 했다. 수학적 알고리즘이 품고 있는 독특한 미래에의 상은 디지털게임이라는 매체에 이르러 재현의 여러 방법론 중 하나로 편입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행성에 가까운 수익모델로 자리잡기도 한다. 그것이 긍정적인 의미이건 부정적인 의미이건 상관없이, 디지털게임 아니 게임 그 자체에서 확률과 운의 문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은 명확하다. 파웰 그라바첵의 지적대로, 오늘날 게임에서의 랜덤성은 한편으로는 도박으로의 길에, 한편으로는 새로운 재현 가능성으로의 길에 동시에 걸쳐져 있다. 양날의 검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이 확률의 문제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연구하고 다루는 모든 이들에게 지속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이 양날의 검을 다루는 개발자들, 마케터들, 그리고 양날의 검 앞에서 최적의 선택을 위해 몸부림치는 게이머들을 살핀다. 애초에 랜덤을 만들 수 없는 연산기계가 꽃피운 화려한 확률의 세계라는 아이러니 위에서 놀이의 근원에 자리한 운과 확률을 바라보는 일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또 유용한 일일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낚시스피릿의 별매 낚시 컨트롤러로부터 본 게임 경험의 확장

    전세계에서 게임을 하는 입력 인터페이스로 가장 많이 이용 되는 것은 무엇일까. 몇 년 전이라면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은 터치 인터페이스 역시 적지 않기 때문에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 말할 수 는 없겠다. 다만 터치인터페이스 위에 구현되어있는 가상 패드까지 고려하면 현재에도 게임 입력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입력 인터페이스는 게임 패드일 것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보았을때의 경향이며, 한국에서는 가정용 게임기보다 개인용 컴퓨터를 통한 게임이 더 익숙하기 때문에 흔히 키마라고 부르는 키보드 마우스 컨트롤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 Back 낚시스피릿의 별매 낚시 컨트롤러로부터 본 게임 경험의 확장 11 GG Vol. 23. 4. 10. 전세계에서 게임을 하는 입력 인터페이스로 가장 많이 이용 되는 것은 무엇일까. 몇 년 전이라면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은 터치 인터페이스 역시 적지 않기 때문에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 말할 수 는 없겠다. 다만 터치인터페이스 위에 구현되어있는 가상 패드까지 고려하면 현재에도 게임 입력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입력 인터페이스는 게임 패드일 것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보았을때의 경향이며, 한국에서는 가정용 게임기보다 개인용 컴퓨터를 통한 게임이 더 익숙하기 때문에 흔히 키마라고 부르는 키보드 마우스 컨트롤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게임패드는 지금 보기에는 게임을 하기에 매우 당연한 도구이고, 게임을 나타내기 위한 아이콘으로도 흔하게 사용된다. 많은 게임들이 게임패드를 지원하며, XBOX용 패드가 윈도우와 매우 잘 호환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 게임은 게임패드에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합니다.” 같은 안내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이 처음부터 게임패드로 게임을 즐겼던 것은 아니다. 굳이 〈둘을 위한 테니스tennis for two〉 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신호탄을 쏜 〈퐁Pong〉은 다이얼 형태의 동그란 컨트롤러가 달려있었다. 어떤 아케이드 게임들은 조이스틱이 달려있기도 했다.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한 스틱에서 온 컨트롤러 형태는 기계식 게임기를 거쳐 전자 아케이드 게임에서도 그대로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해 자리 잡았다. 게임 개발자들은 이 스틱으로 굳이 비행기만 조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2차원 평면에서 움직여야 하는 모든 것들을 스틱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번째 가정용 게임기로 여겨지는 마그나복스의 컨트롤러는 흰색 직육면체에 3개의 다이얼이 달려있는 형태였으며 아타리가 가정용으로 제작한 TV퐁은 게임기에 다이얼이 달려있는 형태였다. 이러한 다이얼이 달린 컨트롤러는 아타리가 만든 가정용 게임기인 아타리 2600에서 패들paddle 이라 불리는 전용컨트롤러 형태가 일반적으로 되면서 회전을 위한 컨트롤러를 칭하는 놉(knob), 휠(wheel), 다이얼(dial)대신 패들(paddle)이란 단어가 일반적인 호칭으로 자리잡았다. 기존 입력장치의 이름이 아닌 탁구채를 뜻하는 패들이 대표적인 이름으로 이유는 해당 컨트롤러가 탁구를 모사한 퐁을 위한 컨트롤러 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타리 2600의 컨트롤러중에 가장 대중적이고 일반적이었던 것은 조이스틱이었다. 게임기에 기본으로 포함되어있는 이 조이스틱은 경쟁 게임 사들의 조이스틱 보다도 가장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직관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기는 아타리의 조이스틱을 가장 초기의 게임에 대한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 아타리 2600용 컨트롤러 미국 기업들이 과도한 경쟁 때문에 스스로 가정용 게임시장에 대한 매력을 못느껴 시장을 포기하는 동안 일본의 닌텐도는 패미콤을 준비해서 전 세계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차지했다. 자사의 게임&워치의 동키콩에서 사용한 방향키(D-pad)를 이용한 게임패드는 닌텐도 패미콤의 게임패드에도 들어갔다. 이 입력방식의 변화는 가정용 게임기의 입력방식의 가장 큰 패러다임 변화중 하나일 것이다. 방향키와 B,A 버튼이 달린 (그리고 스타트와 셀렉트버튼이 있는) NES의 게임 패드는 매끈한 플레이스테이션의 듀얼쇼크가 나오기 전까지 아타리의 조이스틱에 이어 게임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 북미 NES용 컨트롤러 닌텐도는 패미콤의 출시와 함께 자사의 서드파티를 강력하게 관리했다. 미국 게임기 제작사들의 부진을 소프트웨어 관리에 실패한 것으로 보았던 닌텐도는 패미콤으로 출시되는 게임들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미컴 용으로 제작하는 게임들은 대부분 게임패드에 최적화할 수 밖에 없었다. 오리사냥 같이 아주 특수한 닌텐도 전용 광선총(재퍼 - 일본에서는 그냥 총(Gun)으로 발매되었다. 모양 역시 그냥 리볼버 권총에 가까웠다.)을 지원하는 총 컨트롤러나 R.O.B나 파워글로브 같이 대중적으로 자리잡는데는 실패한 컨트롤러만이 게임패드와 차별화된 플레이를 제공했다. 패미콤 이후 가정용 게임의 컨트롤은 게임패드르 완전히 굳어졌다. 아케이드에서는 여전히 아케이드만의 독특한 조종 방식을 가진 게임들이 나왔지만, 이러한 아케이드용 게임들이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되는 경우에도 대부분은 게임패드에 최적화된 조종 방식으로 변경되었으며 추가로 부가장치가 나올 때가 있었지만 그 가격은 대부분 게임 보다 비쌌고 가끔씩은 게임기보다도 비쌌다. 방향키와 두개의 버튼만 존재하던 게임패드는 게임기의 세대가 거듭되며 발전하면서 지금은 방향키와 조이스틱 두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4개의 입력버튼과 범퍼로 불리는 상단 좌우에 두개씩 위치한 버튼들 스타트 버튼과 옵션 버튼. 그리고 조이스틱을 버튼으로 활용하는 L3, R3 까지 10개의 버튼과 3개의 축입력장치가 거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현재는 대부분 자이로를 통한 6축센서와 함께 게임기에 따라 터치등의 추가 인터페이스가 들어가있기도 하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게임을 시작하기에는 과거의 게임기 비해선 복잡해졌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익숙해지면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의 게임 패드는 게임을 오래 할 수 있는데 도움을 주며, 게임 안의 캐릭터를 설명서를 보지 않더라도 대충 이전에 했던 감각으로 조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익숙함은 게임패드에 어울리지 않는 게임들이 거실에 자리잡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여전히 키보드와 마우스가 게임패드보다 편한 실시간 전략 장르나 AOS 같은 장르의 게임은 가정용 게임기보다는 컴퓨터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게임기와 컴퓨터가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게임패드와 키보드 마우스이외의 컨트롤러는 한정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주로 시뮬레이션 장르이다. 드라이빙 시뮬레이션과 플라이트 시뮬레이션 장르를 위한 주변기기인 드라이빙 휠과 플라이트스틱은 꾸준히 발매되고 있으며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각 장르의 마니아에게는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필수로 갖추어야 하는 장비로 인지되고 있다. 드라이빙휠의 경우는 특히 기능에 따라 장비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으며 실제 운전할 때 처럼 운전 상황에 따라 운전대에게 힘을 전달하는 포스피드백 기능이 있는 드라이빙 휠은 특히 더 비싼 가격이며 이를 위한 거치대나 시트. 좀 더 사실적인 게임을 위한 사람들에게는 시트를 움직여주는 모션시뮬레이터등의 장비를 더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러한 부가장비의 경우 게임값을 넘어서 가끔은 컴퓨터 혹은 게임기 값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기는 힘들며, 이러한 게임들 대부분 게임 패드로도 게임을 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닌텐도 Wii 가 본격적으로 자이로와 가속센서를 사용하는 컨트롤러를 사용하면서 컨트롤러에 제한된 게임 플레이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스포츠게임이 있겠지만 그러한 변화를 하나를 언급하자면 기존에 존재하던 낚시 게임이 이러한 컨트롤러 특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스포츠로서의 낚시는 아무래도 “손맛”이라 부르는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아케이드를 제외한다면 지금으로선 실제 물고기의 움직임을 포스피드백으로 전달하는 낚시대 컨트롤러가 대중화된 적은 없다. 적어도 진동 덕분에 물고기가 미끼를 무는 부분은 비단 6축을 사용하지 않는 게임이라 하더라도 진동기능이 있는 컨트롤러를 사용한다면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동물의 숲에서의 낚시는 컨트롤러 진동의 특성을 잘 살려서 정품 컨트롤러가 아니면 그 느낌을 충분히 느낄수 없다. 컨트롤러를 흔들고 돌리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낚시 게임에 릴을 감는 행위를 컨트롤러를 돌리는 것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 이 기능은 옵션이다. 손목의 건강과 함께 선택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 오락실은 점차 사라져가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극장 근처의 오락실이나 혹은 키즈카페 앞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기계가 있다. * 쇼핑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딥 시 파티 딥 시 파티라는 이 게임은 국내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사실은 2012년에 일본에 출시된 반다이 남코의 〈낚시 스피릿〉과 흡사한 게임이다. 6인 까지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점은 비슷하긴 하지만 컨트롤러가 매립되어있어서 미끼를 던지는 것도 버튼으로 해야하며, 스크린이 1개라는 차이점이 있다.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반다이 남코의 〈낚시 스피릿(Ace Angler〉은 현실 낚시 보다는 일본의 전통축제에서 볼 수 있는 금붕어낚시 등의 영향이 더 큰 편이라 낚시 시뮬레이션이란 장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 로드, 플로트, 릴등을 선택해서 현실 낚시와 가깝게 즐기는 게임과는 결이 다르다. 낚시 스피릿의 플레이 실제 낚시와는 거의 다른 물고리를 낚아 메달을 모으는 게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게임에선 다른 종류의 낚시 게임과는 같은 지점이 있다. 릴을 컨트롤하며 물고기가 낚였을 때 릴을 감아야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는 점이다. 던지는 방향과 힘을 버튼으로 정하고 필살기가 있으며 보스 스테이지가 존재하는 현실 낚시와는 매우 동떨어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낚시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점이라면 바로 이 컨트롤러 일 것이다. 2012년에 출시가되어 이제는 10년이 넘어가는 시리즈인 이 게임은 컨트롤러의 특성상 아케이드에서밖에 즐길수 없었지만 2019년에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게임이 출시되면서 상황이 좀 바뀌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동전을 잡아먹는 아케이드 게임은 집에서 했으면 그 손맛을 위해 좋겠지만 6인용 게임기를 집에 들여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닌텐도 스위치의 조이콘은 다양한 플레이 방식을 지원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오락실에서 낚시대를 휘두르고 릴을 감는 그 느낌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개발사는 게임의 고유한 조작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스위치 조이콘의 자이로센서와 각속도를 이용하여 조이콘을 휘두르는 형태로 낚시대를 던지고, 들고 돌리는 행위로 릴을 감는 동작을 재현했다. 전통적인 닌텐도 스위치와 컨트롤러를 붙여서 쓰는 방식으로도 게임을 하는데는 문제는 없다. 이경우는 다른 많은 낚시게임이 그렇듯이 버튼으로 릴을 감는다. * 인게임 도움말 닌텐도 스위치 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기로도 낚시 게임은 많이 나오는 편이며 고전이며 명작으로 불리는 세가 배스 피싱 같은걸 언급하지 않더라도 굳이 낚시 스피릿을 가져온 이유는 이 게임이 전용컨트롤러가 아닌 기존 컨트롤러에 붙여 쓰는 “사오콘”을 별매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종류의 컨트롤러를 확장하는 개념은 Wii 리모콘부터 PS Move, 가깝게도 VR 컨트롤러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는 편이지만 낚시 스피릿의 경우 2019년에 〈Ace Angler 낚시스피릿 Nintendo Switch버전〉을 이번엔 2022년에 나온 〈Ace Angler 낚시스피릿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이 두차례에 걸쳐 나왔는데 추가장치로 나온 사오콘의 형태가 다르다. 물론 새로 나온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에서도 이전 버전의 추가장치를 지원하고는 있고 이러한 별매 사오콘이 없더라도 조이콘을 통해서 물리적으로 컨트롤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며, 게임에 연결한 상태에서 버튼으로 플레이할 수도 있다. * 호리사에서 나온 첫번째 사오콘 첫번째로 나온 사오콘의 특징이라면 결과적으로 조이콘 두개를 쥐고 흔드는 형태의 플레이를 좀 더 편하게 만들어주는 가이드에 가깝다. 일본의 게임용 주변기기 전문 업체인 HORI사에서 제작한 이 컨트롤러는 결과적으로는 이 컨트롤러 없이도 같은 형식의 플레이가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릴역할을 해주는 부분있어서 좀 더 줄을 감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에이스 앵글러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과 함께 나온 두번째 사오콘 두번째로 나온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과 함께 나온 사오콘은 조이콘 두개를 쓰는 형태가 아닌 하나만 쓰는 형태로 돌릴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나는 릴이 달려있는 형태인데, 왼쪽 조이콘과 오른쪽 조이콘의 버튼 배치가 다른 것에 대응하기 위해 릴을 분리할 수 있는 형태의 아이디어가 특히 돋보였다. 두 컨트롤러의 중대한 차이점이라면 첫번째 사오콘이 조이콘 두개가 달려있으면서 또한 릴에 조이콘 하나가 붙어있어야만 하는 구조라서 실제로는 무거워서 플레이가 힘든 구조 였다면 두번째 사오콘은 처음부터 회전을 조이콘틀 통해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한바퀴 회전할 때마다 A버튼을 두번 누를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는 사실상의 연타기계라는 점이다. * 사오콘 연타 기믹 – 릴을 돌릴 때마다 흰 부분이 A버튼을 눌러준다 기계적으로 릴의 회전을 강제로 조이콘의 A버튼과 연결한 이 기믹 덕분에 정작 선택하는 A버튼을 누르기 힘들다는 단점이 생기긴 했으나 이전 버전보다 훨씬 가볍고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새로운 조이콘의 장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전 조이콘들의 조작 역시 지원을 하지만 낚시 스피릿의 후속작에서 조이콘을 직접 회전하는 방식이 아닌 버튼을 통한 입력으로 돌린 이유는 아무래도 무게가 동반된 회전 조작이 조종에 부담으로 작용했으리라 짐작한다. 이 게임은 컨트롤이 없더라도 1개의 컨트롤러로 즐길 때의 조작 방법으로 낚은 후에는 어찌되었던 열심히 릴을 감는 동작을 모사해야 물고기를 낚을수 있다는 점에서 낚시 게임이 가지고 있는 주요한 조작으로는 릴을 감는 행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낚시용 부가 컨트롤러로는 이미 Wii 리모트를 활용한 경우가 있었고 낚시 전용 컨트롤러로 가면 가정용 게임기는 물론 국내 PC용 게임으로도 나온 컨트롤러도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울 건 없다고 할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컨트롤러가 이러한 릴을 감는 장치를 어떻게든 구현해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낚시 컨트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VR 게임에서도 이러한 낚시 시뮬레이션이 점차 출시되고 있으며, 낚시가 주는 가장 큰 현장감을 제공하고 있다. VR 특유의 양손 컨트롤러는 현재로는 모두 게임패드를 절반으로 나눠 한쪽씩 쥐는 형태로 수렴하고 있으며 한손에 쥐기 편하도록 총의 손잡이 형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양손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많은 VR 게임들은 이 컨트롤러에 손을 매칭해서 두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가상 공간에 있는 물체와 상호작용 하도록 하고 있지만 물리적인 피드백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결국은 허우적대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따로 이러한 컨트롤러를 끼워서 사용 할 수 있는 확장 컨트롤러가 나오기도 한다. 현재로선 가장 인터페이스의 확장에 진심인 것은 따로 물리적 비용이 필요없는 VR 장르의 게임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회전시키는 입력장치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탄생과 함께 했지만 결국 기존 게임 컨트롤러에 포함되는데는 실패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레이싱휠이나 낚시 컨트롤러를 통해 이어져오고 있다. 지금은 아케이드에서 컨트롤러의 물성이 강하게 필요한 게임들만이 가정용 게임기에 피드백 되고 있지만 한차례 조이스틱이 사라졌다가 결국 게임패드에 포함되었던 것 처럼 새로운 물성이 게임 컨트롤러에 들어갈 수록 플레이의 가능성이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VR 공간이 될지 물리적 공간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플레이의 확장은 게이머에게도 게임디자이너에게도 좀 더 많은 가능성을 안겨 줄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놀이하는 전정기관에의 상상 - 멀미 너머의 게임

    매클루언의 아이디어를 빌리자면, 이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잘 인지되지 않는 것은 이 기관은 다른 감각기관들에 비해 그다지 기술에 의해 확장된 시도가 없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지구의 보편중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마치 우리를 둘러싼 공기처럼 너무나 보편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여지기에 ‘특별한’ 감각적 자극을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 Back 놀이하는 전정기관에의 상상 - 멀미 너머의 게임 22 GG Vol. 25. 2. 10. 미디어의 시대, 멀미의 시대 매클루언은 미디어를 신체의 확장, 좀더 구체적으로는 감각의 확장으로 이해했다. 기술 발전에 힘입어 인간은 신체 기능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역까지 감각이 가 닿을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내며 발전해 왔다. 청각만으로는 가 닿을 수 없는 거리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시야를 벗어난 먼 거리에서 일어난 일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술은 인간의 감각 확장을 단지 동시대의 것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들까지도 지금 당장 우리의 감각 앞에 고스란히 옮겨놓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감각의 확장이지만 다른 의미로는 감각의 과잉 시대인 미디어 시대에 인간은 지나치게 쏟아지는 새로운 자극들 앞에서 간혹 일시정지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멀미라는 증상이 대표적이다. 현재까지의 의학적 연구 결과들은 멀미를 여러 감각 정보들이 서로 다른 정보를 뇌에 전달할 때 생기는 문제를 뇌가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 신체를 일시적으로 주저앉히려는 기제로 이해한다. 눈으로 보는 상황과 전정기관이 인지하는 신체의 평형 상태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뇌로 전달할 때, 뇌는 이를 신체의 이상이라고 인식하고 신체 기능을 저하시켜 일단 정지 후 휴식을 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멀미에 관한 기록들은 고대 그리스의 뱃멀미로부터 시작된다. 매클루언의 이야기를 따라간다면 배 또한 신체의 확장이며 마찬가지로 미디어의 일종이며, 배를 탄 상태에서 전정기관이 느끼는 출렁임의 평형감각은 눈으로 보는 시각정보와 불일치하기에 멀미를 유발한다. 뱃멀미도 결국 미디어 멀미의 일종이며, 신체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정보 앞에 인간의 신체는 위험 상황을 인식하고 셧다운을 건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시각정보에 크게 기대는 인간에게 있어 멀미는 주로 새로운 미디어가 시각에 관련된 정보로 확장할 때 발생하곤 했다. 인류에게 기계적 스펙터클을 처음 제공한 시점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되는, 마차와 기차의 네모난 창문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고속의 이미지는 평행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마차와 기차가 만드는 진동은 전정기관으로 하여금 이 시각정보가 결코 평탄한 횡스크롤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마차 멀미, 기차 멀미에 이어 초창기 영화 스크린을 보며 멀미를 경험했음을 이야기한 많은 기록들은 뱃멀미로로부터 이어지는 동일한 맥락에 서 있다. 감각정보의 불일치가 만드는 게임 속의 불화들 디지털게임은 현대의 여러 미디어 중 멀미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매체일 것이다. 인간이 영상매체에 익숙해지면서 영화 멀미는 몇몇 특수한 시점의 카메라 상황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없어진 것과 같이 거론되지 않는데 비해 게임에서는 적지 않은 멀미 호소가 이어지곤 한다. 물론 <심시티>같은 조감 시야에서 멀미를 호소하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의 멀미는 1인칭, 혹은 3인칭 시점의 3D 기반 게임에서 나타난다. 영화에서도 1인칭 카메라를 통해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되는 경우에 멀미 이야기가 나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 때의 멀미들은 어느 정도 영상매체 속 화자의 위치, 다시말해 카메라의 시점에 의해 나타난다. 상당수의 영화들에서 카메라가 위치하는 곳이 3인칭 시점인 것과 달리,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는 많은 현대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들은 카메라가 언제나 주인공을 향해 맞춰진, 그것도 주인공의 위치와 운동이 연출자로서의 게임 제작자가 아닌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의도에 의해 변화하는 주인공을 향하고 있다. 이 때 플레이어는 컨트롤러를 잡고 있는 손과 같은 신체를 통해 가상공간인 게임 속 세계로 자아의 위치를 이전한다. 전후좌우로 뛰고 구르는 행위는 단지 스틱을 기울이고 마우스를 돌리는 문제가 아니라 마치 실제로 자신의 신체를 굴리고 기울이는 행위처럼 여겨진다. FPS게임에서 벽 뒤에 엄폐를 끼고 내다볼 때 자신도 모르게 신체를 기울이는 행위가 나오는 것이 이런 점에서다. 현재까지의 디지털게임들이 가상공간 안의 세계를 구현하는 방식은 상당부분 시청각 데이터를 통해서인데, 멀미는 이 때 정직한(?) 전정기관의 항의로부터 비롯된다. 눈과 귀는 플레이어가 2층에서 뛰어내렸다고 보고하는데, 전정기관은 가상공간으로부터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하기에 플레이어의 뇌에 “아닌데요? 자리에 앉아있는데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게임에서의 멀미는 감각정보로 치면 이런 과정을 거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VR과 같은 좀더 몰입적인 환경을 시청각 정보를 통해 제공하는 상황에 더욱 강렬해진다. 나는 <유로트럭> 같은 자동차 운전 게임을 VR로 플레이해본 적이 있는데, 운전하는 자세가 게임하는 자세와 크게 다르지 않아 멀미를 거의 못 느끼던 와중에 게임 속에서 도시 도로의 과속방지턱을 넘어가는 순간 멀미감이 확 쏟아짐을 느꼈다. HUD 속 디스플레이에서는 방지턱을 넘는 트럭의 시각 정보를 고스란히 제공했지만, 나의 전정기관은 아무런 정보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VR은 HUD착용자의 머리 움직임을 계산해 그 궤적만큼의 변화를 3D그래픽으로 표현하며 스크린의 시야를 사실상 360도에 가깝게 재현한다. 고개를 돌리면 돌린 방향만큼의 변화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이 장치에 대해 사람들은 “와, 진짜같다!”고 환호하지만, 이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시청각 정보에 국한된 감탄에 머문다. 현재까지의 VR기술은 우리의 평형과 운동을 감지하는 전정기관에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정기관의 평형감각은 영원히 인류 놀이의 적이기만 할 것인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우리는 전정기관이라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오감이라고 부르는 시, 청, 후, 미, 촉의 다섯 감각이 아니면서도 사실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하고 많은 감각정보를 제공하던 감각기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운동과 평형을 측정하고 그 정보를 뇌에 전달해 주는 이 기관은 그 중요성과 정보량에 비해 우리에게서 ‘감각’이라고 인식된 바가 거의 없었다. 매클루언의 아이디어를 빌리자면, 이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잘 인지되지 않는 것은 이 기관은 다른 감각기관들에 비해 그다지 기술에 의해 확장된 시도가 없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지구의 보편중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인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마치 우리를 둘러싼 공기처럼 너무나 보편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여지기에 ‘특별한’ 감각적 자극을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치부하기에는 우리는 전정기관을 가지고 논 적이 있다. 놀이공원의 바이킹과 롤러코스터가 대표적이다. 여러 안전장치를 통해 절대 떨어져 죽거나 다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이로드롭에서 떨어지는 그 순간의 아찔함을 놀이로 승화한다. 공포에 질려 눈을 질끈 감아도 여전히 바이킹이 최대 고도에서 떨어지기 시작하는 그 순간의 하강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놀이공원의 여러 탈것들은 아마도 전정기관이라는 숨겨진 감각을 발굴해 내 놀이의 미디어로 만든 몇 안되는 사례일 것이다. 전정기관의 운동감각을 다른 감각과 동일한 수준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놀이매체로서의 게임이 가지고 있는 멀미라는 극복점에 대해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여지도 갖게 된다. 조금 더 기술이 발전할 수 있다면, 놀이매체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서 전정기관의 평형감각을 가상으로 재현할 수 있는 어떤 기술이 놀이로서 출현하는 순간을 상상해보는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케이드 오락실에 가면 간혹 레이싱 게임 같은 경우에는 가상의 유압 서스펜션을 활용해 어느 정도 재현된 평형감각을 놀이에 활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직까지의 기술은 전정기관의 감각이 놀이에 도움된다는 사실까지를 확인했을 뿐, 이를 실제로 재현하는 방식은 가상의 재현이 아니라 실재적 재현에 가깝다. 말 그대로 플레이어의 몸을 기계에 싣고 흔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전정기관의 감각을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이 개발될 수 있다면, 아직까지 모든 다른 감각에 비해 정직한 정보를 흘리는 통에 멀미를 유발한다는 눈총을 받고, 때로는 3D 게임 멀미 극복을 위해 멀미약을 통해 평형감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홀대받은 이 감각기관의 의미가 놀이매체에서 다시 재조명받을 순간이 올 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친 상상이라고 지적받을 수 있는 발상이긴 하겠지만, 애초에 우리가 지금 누리는 많은 놀이 기술들은 처음부터 진지한 실현을 생각한 발상이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상상이었음 또한 기억해야 한다. 현재까지의 3D게임에서는 멀미 극복을 위한 기술 개발에 많은 자원을 쓰고 있지만, 먼 훗날에는 지금 이 시대를 역사 속에서 읽으며 한때 방해되는 감각으로 받아들여졌던 전정기관의 평형감각이 이제는 놀이의 주역이 된 감각이라고 이야기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인터뷰] DRX 무릎이 말하는 게이머와 조이스틱의 관계

    그렇다면 조이스틱에서 발생하는 감각과의 경험을 생생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오랜 기간 세계 최정상급으로 활동하고 있는 격투 게임 프로게이머라면, 아주 미묘한 감각과 게임 간의 상호작용을 더 면밀히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십여 년간 탑 티어를 놓지 않으며 수많은 게임기기를 이용해본 게이머라면, 조이스틱의 변천에 따른 감각적 차이를 잘 설명해주지 않을까? 이러한 기대를 품고 이번호에서 편집장은 글로벌 이스포츠 전문기업 DRX 소속 철권 프로게이머인 '무릎' 배재민 선수를 만나고 왔다.  < Back 11 GG Vol. 23.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won Seo Studies culture in pursuit of a more interesting life. Curious about a wide range of cultural domains, including games, religion, and film.

  • [북리뷰] 스테이지를 전환하자는 제안, 〈모럴컴뱃〉

    따라서 필요한 것은 ‘컨트롤러를 집어들고 게임을 계속 즐기면서’(246쪽) 게임에 대해 계속 대화하는 것이다. 〈모럴컴뱃〉은 게임에 대한 대화를 하기에 아주 좋은 책이다. 310개에 달하는 각주는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연구와 부정적인 연구를 포함하면서 게임에 관한 주요한 사건에 관한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다. 게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든 이 책의 자료를 통해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호기심이 찾는 여정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 Back 02 GG Vol. 21.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woong Kang Senior researcher at the Institute for Social Development Studies, Yonsei University. Has written for various game outlets, including Gamers. Books include Game and Cultural Studies (co-authored) and The History of Korean Games (co-authored). Writes a regular game column for the children's magazine Goraega Geuraesseo. Believes that games are a culture that walks alongside us, touching countless moments of our lives.

  • 역사적 트라우마와 유령의 소환술: 〈반교: 디텐션〉의 역사주의

    이처럼 애매하고, 역설적이고, 공백으로 가득 찬 대안적 역사인식의 상징극장(학교)을 탐색하며 퍼즐 열쇠들을 수집하는 플레이어는, 유령이 된 채 부재하는 현재의 표식들을 이어붙이고, 역사의 버려진 시신을 가르는 부검의가 된다. “너는 나고, 나는 너다” 며 자신의 그림자에게 읊조리는 주인공의 대사처럼, 파편화된 상흔들은 수집과 탐색행위로 이뤄진 이 부검에 의해 점차 진혼된다. 플레이어의 부검은 사망 원인 추적에 그치지 않고, 망자의 부릅뜬 눈을 감기는 의식으로 연동되는 것이다. < Back 역사적 트라우마와 유령의 소환술: 〈반교: 디텐션〉의 역사주의 02 GG Vol. 21. 8. 10. 유령의 소환술과 ‘유령되기’ 유령은 만져지지 않지만 눈에는 보이는 존재다. 유령은 가상인 동시에 실재에 현상하며, 현재에 머무르면서도 현재에 부재한다. 유령은 형이상학에 속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때때로 인식과 경험에 영역에도 걸쳐져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유령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언제나 뭔가를 암시하고 일깨우는 존재다. 고뇌에 빠진 햄릿 왕자의 앞에 나타난 왕의 유령은 자신이 독사에 물려 죽은 것이 아니라 동생 클로디어스에게 독살당했음을 알리고, 햄릿은 복수를 위해 일부러 미친 척을 하기 시작한다. 거란과의 전투에서 패해 포로가 된 고려의 무장 강조는 자신이 살해한 왕(목종)의 혼령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업보를 깨닫고 주저앉게 된다. 역사의 무수한 협잡의 순간마다 유령은 언어화되지 않은 목소리들과 더불어 되돌아오는데, 때론 ‘배회’하면서 혁명적 순환의 계기를 만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필연적으로 좌절을 겪지 않을 수 없는 운동 속으로 민중을 휘몰리게 만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수한 좌절과 분노의 비극적 순간들이 희극으로 소급되면서 역사가 진전되어 왔다는 것이다. ‘유령’은 역사가 비극의 플롯으로 치달을 때마다 한 세대를 구원하고자 천을 뒤집어쓰고 돌아오는 기계신이자, 부재하는 현재를 실재에 표시하는 인기척인 셈이다. “유령은 근본적으로 장래이며, 항상 도래할 것으로 남아있고, 도래하거나 다시 도래할 수 있는 것으로서만 자신을 제시한다.”1) 유령은 부르면 달려오는 시종이나 램프의 요정이 아니다. 유령은 태어나지도, 길들여지지도 않으며 단지 출몰할 뿐인 존재이다. 그것은 등재된 공식역사나 승자들의 후일담을 받들지 않는다. 유령은 숨죽인 채 우리 곁을 맴돌면서 패배의 순간, 비명이 질러지는 소리들을 엿듣는다. 잊혀진 이야기, 침묵 속에서 억눌러진 단말마들이 유령의 인기척에 새겨진다. 그런 점에서 유령이 보여주는 이미지와 목소리들을 받아 적는 우리는 역사가인 동시에 소환술사라 할 수 있다. ‘유령의 소환술’은 역사의 가장 희미한 빛을 점화한다는 점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이나 경외감만을 추구하는 유미주의와 다른 길을 간다. 수많은 예술이 유령의 흔적을 좇아 미사여구를 창조하지만, 유령 자체를 소환하려는 시도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비극을 현재의 희극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필연적인 비극 또한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소환의식은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실재하지 않는다고 애써 부인하는 비밀을 마주하는 용기로부터 출발한다. 대만의 어드벤처 게임 <반교: 디텐션>은 역사를 다룬다. 그러나 단순한 역사가 아니다. 패퇴한 장제스와 국민당이 대만에서 국부천대를 시작한 후 40여 년 간 지속된 백색테러 시기, 비참하게 생매장된 민중사가 주 무대다. 수많은 시네마와 게임이 역사를 상업적 소재거리로 삼아왔고, 승리의 시간들, 번영과 영화의 시기가 말초적 유흥 및 장르 문법으로 소비되어 왔다. 그러나 전체주의 권력에 의한 폭력과 광기의 날들은 상업 문법으로 접합되기 어렵다. 감각적 만족을 이용자 상호작용의 제1요소로 삼는 게임에서 아픔이라는 감각은 일반적인 고려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교>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은 서가에 기대서서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 유령을 빙의시켜 스스로 입을 여는 유령되기, 즉 유령의 소환술에 가깝다. <반교>의 시공간에 들어선 사람들은 유령이 되어 떠도는 여고생 방예흔(方芮欣, 팡 레이신)을 움직여 학교에 은폐된 비밀들을 풀어 나가야만 한다. 플레이어가 유령이 되어 스스로에게 암시를 던지고 진실을 좇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게이밍을 활용한 <반교>의 소환술은 매우 탁월하다. 유령의 기척을 느끼고 따라가 이야기를 엿들어야만 하는 기존의 서사 전개방식과 다르다. 플레이어는 평면과 횡으로만 구성된 폐교 공간을 헤매며 ‘유령되기’를 시도하는데, 이 유령되기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단단히 깨어 있는 상태로 만들어 자신(게임 속 인물과 자신이 연동된)에게 암시와 은유들을 던진다. 유령되기를 통해 플레이어는 스스로 배회하고, 암시하며, 진실을 좇도록 깨우치는 것이다. * 유령으로부터 은폐된 비밀의 단서들을 전달받는 것이 아닌 ‘유령되기’를 통해 스스로 일깨우고 진실의 조각들을 맞춰나간다. 〈반교〉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드러내기 위해 게임이라는 매체의 속성을 유령의 소환술로 매우 잘 전유한 예제다. 역사적 트라우마와 대면하기: 앰비규어티와 부검학 상실감, 우울, 원한 등과 달리, 마음과 뇌에 깊은 충격을 안기는 외상인 ‘트라우마’는 역사 중에서도 가장 다루기 어려운 문제다. 극심한 스트레스 장애를 유발하는 트라우마는 멜랑꼴리나 로맨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상품화된 카타르시스 경로를 따라가는 장르문법과 이질적이란 뜻이다. 트라우마는 분명하게 현존하는 고통이지만 그 본원은 과거의 특정한 사건에 얽매여져 있고, 해소될 길이 없다. 트라우마가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집단의 역사적 경험과 맞물려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트라우마는 ‘애도’와 깊은 연관이 있다. 우리는 사자를 애도하기 위해 슬퍼하고 자발적으로 상처 입는다. “살아있지 않은 누군가에 대해 바쳐진 존중 속에서 생성되는, 법을 넘어서는 어떤 정의의 명령에 우리는 응답한다.”2) 만약 애도가 좌절된다면, 우리는 개인이 연결되어 있는 역사의 신체에 깊은 상처를 입을 것이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한 세대와 공동체가 공유하는 집합적 고통의 기억이며, ‘모든 것이 변화하는 역사’라는 기관차가 마주하는 막다른 터널이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외상을 극복하지 못한 ‘영호’가 선로에 뛰어들고, <택시운전사>의 ‘김사복’이 학살의 기억을 떨치지 못해 작고하게 되는 이유이다. 이 아픔은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좀처럼 씻겨나갈 길이 없다. 신체를 절단한 사람이 수술 후에도 고통을 끊임없이 지각하듯이, 그 실체는 유령적이다. 본토 수복을 엿보며 대만을 장악한 국민당의 통치는 실로 끔찍했다. 명·청 시기에 대만으로 건너와 살고 있던 본성인(本省人)들을 지배하기 위해 국민당 정권은 2.28 사건3) 이후 계엄령을 강화하고, 40여년에 걸친 백색 테러가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언론과 결사의 자유는 완전히 사라지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산당 간첩으로 몰려 고문·처형되거나 실종됐다. 국민당은 계엄을 유지하기 위해 특히 학교 통제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 시기 대만에서 학교는 두 가지 방향으로 훈육되었다. 하나는 뒤쳐진 산업화를 이룰 일군을 양성하는 학교이고 다른 하나는 본토 수복을 위해 싸울 병력을 양성하는 학교이다. ‘군대식 교육’ 이 아니라 학교가 곧 군대였고, 청소년을 징집하는 창구였다. 이에 반발하는 교사들은 모두 간첩죄로 숙청되었으며, 지정되지 않은 책을 읽는 학생들도 모두 반역죄로 다스려졌다. 〈반교〉에 등장하는 군훈교관 백국봉(白國峰, 바이 궈 팡)은 학생과 교사들을 감시 훈육하는 정훈장교이다. 반면 학생들과 비밀독서회를 운영하는 장명휘(張明暉, 장밍후이) 선생과 은취함(殷翠涵, 인쯔이한) 선생은 타고르의 시를 읽어나가며 희망의 씨앗을 파종하려 한다. * 대만 시네마에서 끊임없이 배회하는 학교라는 유령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좌 상)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우 상) 〈반교: 디텐션〉(2019, 좌 하)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2020, 우 하)에 이르기까지, 대만 시네마는 광범위한 시간대(계엄 이전과 이후)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학교공간의 기억술을 펼친다. 긴 시간동안 군사주의의 억압과 독재가 학교에 집중적으로 투과한 결과, 학교는 문화적 상징투쟁의 장소로서 재현된다. 감시와 처벌이 이뤄지는 공간으로서의 학교와, 비밀과 약속이 지켜지거나 깨어지는 장소로서의 학교가 중의적인 역사적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반교>가 게임 속 ‘유령되기’를 통해 소환하는 역사적 트라우마는 공식사에 쓰여져 있지 않는 부분들을 역사화 한다. “예술작품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그 작품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승시켜준 역사와의 만남 속에서 우리는 창작자의 영향을 수용한다.”4) 역사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반교의 소환술은 크게 두 가지 접근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트라우마를 이루는 오브젝트(포대자루, 거꾸로 매달린 옷과 초상, 거울상 등)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해 억압의 기표들을 상징화하는 앰비규어티(ambiguity)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이 상징물들을 퍼즐풀이의 대상으로 재배치함으로써 이용자가 트라우마를 재구성하게끔 만드는 부검학의 측면이다. <반교>는 시적 언어가 ‘낯설게하기’ 를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비문법성의 세계-일상언어의 세계 간 대화를 게이밍의 독특한 방식으로 역설계했다. 낯선 상징과 메타포를 통해 모호화된 시를 읽어나가는 과정은 자동화된 세계(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행동, 표현, 감각들로 가득차 낯익고 익숙하기만 한 세계)에 대한 전혀 다른 독해를 요구하게 되는데, <반교>는 공동체의 상흔을 상기시키는 오브젝트들을 퍼즐풀이에 삽입함으로써 ‘낯설게하기’의 게이밍적 측면, 즉 역사적 트라우마의 ‘절차적 수사학(procedural rhetoric)’5) 을 부각시켰다. 이런 상징물로 가득찬 ‘학교’를 유령이 되어 탐색하는 과정 속에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혹은 잊어버리려 외면했던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난다. * 포대가 씌워진 인형, 뽑힌 이빨로 된 주사위, 호롱불을 들고 주인공을 찾아다니는 차사 귀신 등 <반교>의 상징물들은 단순히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는데서 그치지 않고 독재권력의 폭력을 암시하는 연상작용으로 이어진다. ‘낯선 느낌들’로 재배치된 공간의 탐색 경험은 트라우마의 공통감각을 직조하는 비문법성의 세계, 대안적 역사인식의 공간으로 플레이어를 스스로 등록시킨다. * 초현실주의적으로 재현되는 기억의 공간들. 〈반교〉는 2차원적 평면이라는 한계를 뒤집어 회화적 아이디어들을 의미심장하게 도입한다. 과거의 비밀들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평면의 공백 투사하며 읽어나가는 방식이다. 아버지의 외도와 가정불화를 암시하는 추상화적 대목(좌 상), 흠모하는 장 선생과의 데이트를 떠올리는 총천연색 경로(우 상), 잊기 위해 스스로 파편화했던 밀고의 기억들이 미러이미지화 되는 방식들(하)은 상반된 색체 대비와 원근법으로 〈반교〉의 평면을 수놓는다. 〈반교〉의 ‘유령되기’는 대사가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행간의 독해를 통해 플레이어가 사건을 인식하도록 하는 독특한 미디어 매커닉이다. 대안적 역사인식 공간의 재구성: 새로운 재현양식과 미적 전술 이처럼 애매하고, 역설적이고, 공백으로 가득 찬 대안적 역사인식의 상징극장(학교)을 탐색하며 퍼즐 열쇠들을 수집하는 플레이어는, 유령이 된 채 부재하는 현재의 표식들을 이어붙이고, 역사의 버려진 시신을 가르는 부검의가 된다. “너는 나고, 나는 너다” 며 자신의 그림자에게 읊조리는 주인공의 대사처럼, 파편화된 상흔들은 수집과 탐색행위로 이뤄진 이 부검에 의해 점차 진혼된다. 플레이어의 부검은 사망 원인 추적에 그치지 않고, 망자의 부릅뜬 눈을 감기는 의식으로 연동되는 것이다. <반교>는 이 부검 프로세스를 세련된 플레이 실천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회화적 앰비규어티를 더욱 부각한다. 연속성에 구속되려 하는 사건의 시간성을 탈주시키고, 과거-현재-미래를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후반부에 이르면 방예흔은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가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대문자화되지 못한 역사적 트라우마는 비로소 ‘낯설게 된 비문법’의 법칙 하에 하나의 문장이자 산문으로 읽히게 된다. <반교>는 정교하고 변화무쌍한 시스템을 제공하지도, 화려한 시네마틱 스펙타클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방대하고 치밀한 드라마텔링보다는 절제된 시적 조작을 추구한다. 그러나 가장 단순하고 오래된(2차원 공간의 어드벤처 퍼즐풀이) 게이밍의 문법을 변주해 독창적인 미디어 매커닉을 제시한다. 이 매커닉은 기존의 재현양식이 시도한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재구성한다. ‘유령되기’라는 소환술을 통해 역사적 트라우마를 어루만지고, 난도질당한 과거의 신체-유령통을 앓는 현재의 부재하는 신체를 오고가는 경험 속에 과거의 얼굴들을 대면시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반교>는 방법을 넘어 하나의 미학적 전술을 정립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전술은 미디어가 장르라는 문법과 상업적 경계를 넘어서, 한 시대와 세대가 공유하는 ‘죽은’ 공통감각의 회로에 전류를 불어넣는 전술이자, 침묵의 시대를 뛰어넘어 시민적 언어가 보편어가 되는 순간들을 상상시키는 회로도이다. 자유와 해방을 위한 새로운 재현의 언어들을 재발명하기 위해, 이 회로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난폭한 권력을 휘두른다 해도, 자유는 빼앗을 수도 억누를 수도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자유의 비가 이 섬에 고루 흩뿌려지길 원합니다.” -드라마 〈반교〉 中 1)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진태원 역, EJB, 2007, 91쪽. 2)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진태원 역, EJB, 2007, 194쪽. 3) 일왕 항복 이후 대만으로 건너온 국민당 지배세력과 외성인(外省人)들은 본성인들과 정체성이 달랐으며, 국민당은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 행세를 하며 대만과 본성인들을 식민 통치 하듯 다뤘다. 폭압적인 전시국가경제를 운영하며 민생이 파탄나는 가운데, 참다못한 본성인들은 계엄령 해제와 선거권을 요구하며 반정부투쟁을 벌였다. 이 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전 연령에 걸쳐 14만 여명이 군사법원에 기소됐고, 2-3만 명의 시민들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4)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폭력비판을 위하여 초현실주의 외』, 최성만 역, 길, 2008, 260. 5) 언어적인 기호계에서 예술작품은 고유한 수사를 통해 의미를 생성한다. 문학은 상징과 은유(문자적 수사학)를 통해, 시네마는 몽타주와 미장센(시각적 수사학)을 통해 수사를 실천한다면, 디지털 게임은 플레이어의 공간 탐색과 오브젝트 조형행위에 기반해 의미들을 구성해나가는 절차적 수사학(procedural rhetoric)을 현상한다. 절차적 수사학은 연산과 입출력을 바탕으로 하는 디지털 게임의 고유한 표현 방식이다. 이에 대해서는 Bogost, Ian. (2007).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eo Games, Cambridge: The MIT Press를 참조.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 보는 게임의 한복판에서 보는 현재: 게임유튜버 김성회

    ‘보는 게임’을 게임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이를 두고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실제로 조작하지 않는 것은 게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특별한 조작 없이도 진행되는 ‘방치형 게임’은? 아예 참여하지 않고 관전만 하는 그러니까, 게임 스트리머의 방송을 보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게임을 둘러싼 시선과 그것을 향유하는 방법이 변해가는 오늘날 ‘보는 게임’을 이끄는 유튜브 ‘김성회의 G식백과’의 진행자 김성회를 만났다. 변화의 과정을 생생히 느끼고 있는 만큼 양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jin Park Received a master's degree with a thesis on "women indie musicians." Writes mainly about music and is currently a contributor to the popular music webzine IZM.

  • 부서지는 몸, 나뒹구는 몸 - <스케이트 스토리>와 퀴어한 실패의 미학

    “You Died.”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한 번 이상은 보게 되는 문구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사망에 다다르면 화면은 까맣게 암전되고, 중앙에 붉은 글씨가 떠오르며 죽음을 알린다. 단정적인 선언과 형식은 게임 오버 화면을 밈으로 기능하게 했다. 이는 다시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에 관해 떠올리는 정의와 끈끈한 관계를 맺기도 한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yuri Kim Interested in the ways games let us experience stories. After poking around here and there, lately played Marathon.

  • 스트리밍 어드벤처 : 서사라는 꿈과 퍼즐이라는 전의식으로

    어드벤처 게임이란 상당히 이상한 맥락의 장르명이다. 농담을 조금 보태자면, 서사가 있는 비디오 게임 중 ‘어드벤처’를 경험하지 않는 게임이 어디 있겠는가? 어니스트 아담스Ernest Adams는 『 Fundamental of Game Design』에서 ‘많은 모험적인 특징을 가진 게임들이 어드벤처 장르가 아니며, 반대로 많은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들이 모험을 다루지 않는다.’라며 이 장르명이 가진 이상한 아이러니를 언급한다.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nin Lee Writes and lectures freely across comics, games, and film. A lifework: clearing every Final Fantasy title except the MMORPGs. Mainly plays on the Steam Deck.

  • 두려움, 공포 그리고 폴아웃: 게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공포의 양상

    내가 지금까지 게임을 플레이해오면서 기억하고 있는 공포의 유형으로는 2가지가 있다.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겁을 먹은 것은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의 악명 높은 장면을 플레이했을 때였다. 당시 <레지던트 이블>은 호러 게임이라기 보다는 속도가 느린 액션 게임쪽에 가까웠는데, 게임 내에서 복도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뒤이어 또 다른 한 마리가 창문을 뚫고 들어왔을 때 두려움과 혼란, 공포를 느꼈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Game Researcher)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 편안한(cozy)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고백하자면 나는 싸우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이미 충분히 긴장하며 사는데, 게임에서까지 쫓기고 싸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게임들에 자꾸 손이 간다. 그리고 이런 게임은 생각보다 많다. 어질러진 물건을 정리하고, 이삿짐을 풀고, 농사를 짓고, 물약을 만들어 팔고, 산을 오르고, 택배를 배달한다. 비슷한 결의 게임들이 하나의 흐름을 이룬 지는 꽤 오래됐고, 우리는 이런 게임들을 흔히 ‘힐링 게임’이라고 불러왔다. < Back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 편안한(cozy)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31 GG Vol. 26. 8. 10. @pixabay JerzyGórecki 아침 출근 전에 집 한 채를 청소하고 나왔다.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져 아침 식사를 마치고도 삼십 분이 남은 날이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버려진 별장 한 채를 청소하기로 했다. 그곳은 눈 내리는 설산 한가운데의 숲속 산장이었다. 거실에서는 벽난로가 뭉근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창밖으로는 온통 눈 덮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겨울 스포츠를 즐길 때 사용하는 숙소인 듯했다. 집주인이 보내온 의뢰서에는 야외에 쌓인 눈을 치우고 실내를 청소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유가 된다면 오래된 계단을 손보고,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위해 장식을 구매해서 집안을 꾸며달라는 부탁도 덧붙여져 있었다. 걸레를 들고 별장 안을 돌아다녔다. 창문이 많은 집이라 유리를 닦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다는 작업까지 마친 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집을 바라봤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별것 아닌 일인데도 마음은 뿌듯했다. 집주인은 넉넉한 사례금을 지급했고, 그사이 도전과제 하나가 달성됐다. 이제 노트북을 닫고 출근할 시간이다. <하우스 플리퍼 House Flipper>와 함께한 나쁘지 않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이상하게도 현실에서는 별로 즐겁지 않은 청소가 게임에서는 꽤나 편안하게 느껴진다. * <하우스 플리퍼>에서 플레이어는 집을 수리하고, 청소하고, 꾸며서 수익을 얻는 업자가 된다. 의뢰는 끊이지 않고 들어오지만 느리게 작업한다고 아무도 타박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1인 사업자다. 힐링 또는 코지(cozy)라는 표현 <하우스 플리퍼>는 방치된 집을 청소하고 수리해 돈을 버는 게임이다. 적이 쫓아오지 않고, 청소에 제한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의뢰인이 원하는 가구를 제대로 배치하지 못하면 돈을 조금 덜 벌 수 있을 뿐, 실패라고 부를 만한 상황도 거의 없다. 갈등이나 긴장, 승패 같은 전통적인 게임의 요소 대신에 걸레질과 페인트칠 같은 단순한 노동이 게임의 주된 활동이 된다. 고백하자면 나는 싸우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이미 충분히 긴장하며 사는데, 게임에서까지 쫓기고 싸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게임들에 자꾸 손이 간다. 그리고 이런 게임은 생각보다 많다. 어질러진 물건을 정리하고, 이삿짐을 풀고, 농사를 짓고, 물약을 만들어 팔고, 산을 오르고, 택배를 배달한다. 비슷한 결의 게임들이 하나의 흐름을 이룬 지는 꽤 오래됐고, 우리는 이런 게임들을 흔히 ‘힐링 게임’이라고 불러왔다. 하지만 힐링이라는 단어를 오래 들여다보면 이상한 구석이 생긴다. 힐링(healing)은 치유를 뜻하고, 치유는 대개 상처나 고통을 전제로 한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플레이어는 회복이 필요한 사람이 되고 게임은 그 사람을 치료하는 일종의 처방전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힘든 날에만 이런 게임을 플레이했던 건 아니다. 별일 없이 평범한 날에도 집을 정리정돈하고, 농장을 돌보고, 자연과 함께하는 일은 여전히 즐거웠다. 영어권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힐링’ 대신 ‘코지(cozy)’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코지는 아늑함이나 포근함, 친숙함처럼 서로 겹쳐 있는 여러 감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코지라는 말을 그대로 옮겨 쓰기보다, 그 핵심에 위치한 감각인 ‘편안함’이라 부르려 한다. 그렇다면 게임에서의 편안함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일까? 파스텔톤의 색을 사용하고 음악을 잔잔하게 만들면 되는 것일까? 적이 등장하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플레이어가 아무것도 잃지 않는 상황이면 되는 것일까?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과 연구자들도 이 막연한 분위기를 그저 ‘편안하다’고 부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도대체 무엇이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는지를 설명해보려 했다. 확실한 건, 그저 예쁘고 귀여운 게임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편안함에는 조건이 있다 편안함의 정체를 파고드는 여정은 게임 디자이너들로부터 시작되었다. 2017년, 8명의 게임 디자이너는 정기 워크숍에 모여 게임에서 편안함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지를 논의했다. 이들이 제시하는 편안함의 조건은 세 단어로 요약된다. 안전함(safety), 풍요로움(abundance), 부드러움(softness). 안전함: 위험이 도사리지 않고, 실수해도 잃을 것이 없는 상태. 풍요로움: 결핍이나 다급함이 없는 상태. 부드러움: 느린 템포, 따뜻한 색채, 잔잔한 청각적 요소로 안전과 풍요를 전달하는 감각. 편안함은 이 세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질 때 구현될 수 있고, 디지털 공간에서 실현된 상상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편안함의 환상’이기도 하다. 게임 디자이너들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욕구가 계층을 이룬다는 오래된 심리학 이론을 빌려온다.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고 안정감을 확보해야 비로소 타자와의 관계나 자아실현 같은 상위의 욕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편안한 게임은, 하위 욕구가 기본값으로 충족된 세계다. 굶지 않아도 되고, 쫓기지 않아도 되고, 무언가를 잃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에서는 플레이어가 당장 생존과 관계없는 일에 마음을 쓸 수 있다. 집을 꾸미거나, 물건을 모으거나, 누군가와 친밀감을 쌓거나, 아무 목적 없이 풍경을 바라보는 일 같은 것들이다. 단, 여기서 핵심적인 전제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모든 활동은 오직 플레이어의 '자발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발성이 결여된 강요는 편안함을 깨뜨린다. 편안함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은 그래픽도 음악도 아닌 자발성이다. 특히 정리정돈을 소재로 한 게임들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청소라는 행위가 편안해서’가 아니라, 손은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마음까지 다급해질 필요는 없으며, 활동의 총량(끝)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분석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우스 플리퍼>에서 청소가 편안했던 이유도 어느 정도는 설명된다. 현실의 청소는 피로하다. 무엇을 버릴지 결정해야 하고, 어디에 치울지 생각해야 하며,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청소가 힘든 이유는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선택,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질러진 물건의 질서를 찾아주는 <어 리틀 투 더 레프트 A Little to the Left>나, 손님이 재촉하지 않는 물약 상점의 연금술사 게임 <포션 크래프트 Potion Craft> 역시 마찬가지다. 실패에 대한 패널티를 없애거나 재촉하지 않음으로써,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어 리틀 투 더 레프트>, <언패킹>, <이지 딜리버리 co.>, <어 쇼트 하이크. 이들은 힐링 또는 코지(편안한) 게임으로 언급되고 있다. 같은 편안함, 세 가지 쓰임 흥미롭게도, 편안한 게임이라고 해서 반드시 편안한 스토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2020년 게임 연구자들은 편안한 미학이 게임 안에서 사용되는 방식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 번째 경우 ‘일치형’ 편안함은, 게임의 겉모습과 플레이 경험이 일치하는 경우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편안한 게임들이 이에 속한다. <어 쇼트 하이크 A Short Hike>는 주인공이 휴가를 떠난 섬에서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여정을 보여지만, 서둘러 도착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되고, 낚시를 해도 되고, 동전을 줍다가 다른 길로 새도 된다. 게임의 화면이 보여주는 세계와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는 행동이 모두 같은 방향, 즉 서두르지 않고 머물러도 된다는 쪽으로 동시에 향하는 유형이다. 두 번째 경우 ‘불일치형’ 편안함은, 겉으로는 편안해 보이지만 그 안에 슬픔이나 상실처럼 무거운 이야기를 담는 경우다. 편안함을 겉에 한 겹 감싸는 것이다. <댓 드래곤 캔서 That Dragon, Cancer>는 부드럽고 따뜻한 색채 속에서, 가족 상실의 슬픔을 전달한다. 무거운 이야기를 직접 마주하게 만드는 대신 익숙하고 편안한 세계 안에 놓아두는 것이다. <언패킹 Unpacking>도 비슷하게, 이삿짐을 풀어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해놓는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게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의 이별, 성장 등 삶의 굴곡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경우 ’상황형’ 편안함은 게임 전체는 긴장되어 있지만 특정한 순간이나 장소에서만 편안함을 제공하는 경우다. 편안함을 장르라고 부르는 일이 더욱 어려워진다. <다크 소울 Dark Souls>이나 <돈 스타브 Don’t Starve>의 모닥불을 예로 들 수 있다. 게임 전반이 긴장감을 주지만, 모닥불 앞만큼은 전투와 위험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편안한 장소가 된다. 상황적으로 등장하는 편안함의 유형이다. 결국 편안함은 게임 장르라기보다 게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재료에 가까워 보인다. 어떤 게임에서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고, 어떤 게임에서는 무거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표면이 되고, 또 어떤 게임에서는 긴장된 상황 사이에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장소가 된다. 같은 감각이 게임마다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편안함이 게임 안에 들어 있는 것이라면,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이 모두 편안함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결국, 편안함은 플레이어가 만드는 것 질문에 대한 답은 최근 연구에서 나온다. 편안함이 게임 안에 이미 장착되어 있다기보다, 플레이어가 느끼는 주관적 감각이라는 사실이다. 2026년 연구에 따르면 편안함의 바탕에는 친숙함과 예측 가능성이 존재한다. 게임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고, 그 행동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할 수 있으며, 게임 속 공간에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익숙해질수록 플레이어는 그 세계를 더욱 편안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우리가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비교한다. 집이 편안한 것은 어두운 밤에도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알고 불을 켜는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다. 많은 편안한 게임들은 게임에서만 작동하는 별개의 행동양식을 알려주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직관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한다. 어떤 장소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고, 게임이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반응하는지도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긴장하며 돌아다니던 공간이 어느 순간에는 익숙한 동선이 된다. 게임 세계가 더 이상 낯선 장소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장소로 바뀌는 순간, 그곳에서도 일종의 ‘집 같은 느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흥미롭게도 공포 게임도 누군가에게는 편안할 수 있다. 처음 플레이했을 때는 어디서 괴물이 튀어나올지 몰랐던 게임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적의 위치와 패턴을 모두 알게 될 수 있다. 어느 문을 열면 무엇이 나오는지 알고, 어느 복도에서 적을 만나게 되는지 알고, 도망쳐야 할 곳과 숨어야 할 곳도 알고 있다면 처음의 공포는 조금씩 다른 감각으로 바뀐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데이브 더 다이버 Dave the Diver>는 바다를 탐험하며 물고기를 잡는 편안한 게임으로 자주 꼽히지만, 평소에 낚시에서 잔인성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조금도 편안하지 않은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일한 게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휴양지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사냥터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편안함은 게임 안에 이미 들어 있는 속성이라기보다, 게임이 만들어놓은 조건과 플레이어의 경험이 만나는 곳에서 생겨나는 것에 가깝다. * <포션 크래프트>에서 플레이어는 물약 상점의 주인이 되어 손님에게 물약을 제조하고 판매한다. 안전한 공간으로의 도피일까?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은 다르다. 누군가는 긴장을 통해 푼다. 강렬한 전투나 타격의 쾌감을 느끼고, 두뇌 싸움에서 승리하는 기쁨, 어제보다 강해진 캐릭터가 주는 성장을 실감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반면 누군가는 긴장이 제거된 저스트레스 공간으로 떠난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고, 아무것도 잃지 않는 공간에서 하루 종일 곤두선 신경을 내려놓는 것이다. 같은 스트레스 앞에서 정반대의 처방이다. 오랫동안 게임 산업의 주류 언어는 승리, 경쟁, 도전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편안한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이 주류 문법에 질문을 던진다. 그런 점에서 편안한 게임의 부상은 주류 문화에 대한 일종의 대안적 실천이라 볼 수 있다. 게임 연구자 스컬리 블레이커(Rainforest Scully-Blaker)는 이러한 실천을 “급진적 느림“(Radical Slowness)이라고 이름 지으며, 발전, 자본축적, 소비 등의 자본주의적 루프와 호흡에 반대하는 저항하는 행위로서 플레이어의 명상, 휴식, 망설임 수행을 짚어내기도 했다. 누군가는 편안하고 평화로운 세계로 떠나는 플레이어를 향해 '현실 도피'라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스트레스가 과잉인 현대 사회에서 위협이 제거된 세계로 들어가 불안을 잠재우는 행위로서의 게임하기로 보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도피라는 말의 부정적 어감을 다르게 생각하여, 폭풍우 치는 날 처마 밑으로 피신하는 일은 하나의 실천일 뿐, 긍정적이라거나 부정적이라는 가치 판단을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을까. 그러니 편안한 게임을 현실 도피라고 부르는 것이 틀렸다고 할 필요는 없고, 반대로 무조건 좋은 것으로 포장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잠시 현실을 벗어나는 일이 언제나 현실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때로는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잠깐 다른 곳에 머무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참고 자료 Group Report: Coziness in Games: An Exploration of Safety, Softness, and Satisfied Needs(2017) Towards the aesthetics of cozy video games(2020) Coziness in Games: Second Homes, Audiences, and Esthetics(2026) Tags: 코지 게임, 힐링 게임, 하우스 플리퍼, 어 쇼트 하이크, 포션 크래프트, 게임 디자인, Cozy Games, House Flipper, A Short Hike, Wholesome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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