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 편안한(cozy)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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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8. 10.

@pixabay JerzyGórecki
아침 출근 전에 집 한 채를 청소하고 나왔다.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져 아침 식사를 마치고도 삼십 분이 남은 날이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버려진 별장 한 채를 청소하기로 했다.
그곳은 눈 내리는 설산 한가운데의 숲속 산장이었다. 거실에서는 벽난로가 뭉근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창밖으로는 온통 눈 덮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겨울 스포츠를 즐길 때 사용하는 숙소인 듯했다.
집주인이 보내온 의뢰서에는 야외에 쌓인 눈을 치우고 실내를 청소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유가 된다면 오래된 계단을 손보고,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위해 장식을 구매해서 집안을 꾸며달라는 부탁도 덧붙여져 있었다.
걸레를 들고 별장 안을 돌아다녔다. 창문이 많은 집이라 유리를 닦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다는 작업까지 마친 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집을 바라봤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별것 아닌 일인데도 마음은 뿌듯했다.
집주인은 넉넉한 사례금을 지급했고, 그사이 도전과제 하나가 달성됐다. 이제 노트북을 닫고 출근할 시간이다. <하우스 플리퍼 House Flipper>와 함께한 나쁘지 않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이상하게도 현실에서는 별로 즐겁지 않은 청소가 게임에서는 꽤나 편안하게 느껴진다.

* <하우스 플리퍼>에서 플레이어는 집을 수리하고, 청소하고, 꾸며서 수익을 얻는 업자가 된다. 의뢰는 끊이지 않고 들어오지만 느리게 작업한다고 아무도 타박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1인 사업자다.
힐링 또는 코지(cozy)라는 표현
<하우스 플리퍼>는 방치된 집을 청소하고 수리해 돈을 버는 게임이다. 적이 쫓아오지 않고, 청소에 제한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의뢰인이 원하는 가구를 제대로 배치하지 못하면 돈을 조금 덜 벌 수 있을 뿐, 실패라고 부를 만한 상황도 거의 없다. 갈등이나 긴장, 승패 같은 전통적인 게임의 요소 대신에 걸레질과 페인트칠 같은 단순한 노동이 게임의 주된 활동이 된다.
고백하자면 나는 싸우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이미 충분히 긴장하며 사는데, 게임에서까지 쫓기고 싸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게임들에 자꾸 손이 간다. 그리고 이런 게임은 생각보다 많다. 어질러진 물건을 정리하고, 이삿짐을 풀고, 농사를 짓고, 물약을 만들어 팔고, 산을 오르고, 택배를 배달한다. 비슷한 결의 게임들이 하나의 흐름을 이룬 지는 꽤 오래됐고, 우리는 이런 게임들을 흔히 ‘힐링 게임’이라고 불러왔다.
하지만 힐링이라는 단어를 오래 들여다보면 이상한 구석이 생긴다. 힐링(healing)은 치유를 뜻하고, 치유는 대개 상처나 고통을 전제로 한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플레이어는 회복이 필요한 사람이 되고 게임은 그 사람을 치료하는 일종의 처방전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힘든 날에만 이런 게임을 플레이했던 건 아니다. 별일 없이 평범한 날에도 집을 정리정돈하고, 농장을 돌보고, 자연과 함께하는 일은 여전히 즐거웠다.
영어권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힐링’ 대신 ‘코지(cozy)’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코지는 아늑함이나 포근함, 친숙함처럼 서로 겹쳐 있는 여러 감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코지라는 말을 그대로 옮겨 쓰기보다, 그 핵심에 위치한 감각인 ‘편안함’이라 부르려 한다.
그렇다면 게임에서의 편안함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일까? 파스텔톤의 색을 사용하고 음악을 잔잔하게 만들면 되는 것일까? 적이 등장하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플레이어가 아무것도 잃지 않는 상황이면 되는 것일까?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과 연구자들도 이 막연한 분위기를 그저 ‘편안하다’고 부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도대체 무엇이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는지를 설명해보려 했다.
확실한 건, 그저 예쁘고 귀여운 게임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편안함에는 조건이 있다
편안함의 정체를 파고드는 여정은 게임 디자이너들로부터 시작되었다. 2017년, 8명의 게임 디자이너는 정기 워크숍에 모여 게임에서 편안함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지를 논의했다.
이들이 제시하는 편안함의 조건은 세 단어로 요약된다. 안전함(safety), 풍요로움(abundance), 부드러움(softness).
안전함: 위험이 도사리지 않고, 실수해도 잃을 것이 없는 상태.
풍요로움: 결핍이나 다급함이 없는 상태.
부드러움: 느린 템포, 따뜻한 색채, 잔잔한 청각적 요소로 안전과 풍요를 전달하는 감각.
편안함은 이 세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질 때 구현될 수 있고, 디지털 공간에서 실현된 상상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편안함의 환상’이기도 하다.
게임 디자이너들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욕구가 계층을 이룬다는 오래된 심리학 이론을 빌려온다.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고 안정감을 확보해야 비로소 타자와의 관계나 자아실현 같은 상위의 욕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편안한 게임은, 하위 욕구가 기본값으로 충족된 세계다. 굶지 않아도 되고, 쫓기지 않아도 되고, 무언가를 잃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에서는 플레이어가 당장 생존과 관계없는 일에 마음을 쓸 수 있다. 집을 꾸미거나, 물건을 모으거나, 누군가와 친밀감을 쌓거나, 아무 목적 없이 풍경을 바라보는 일 같은 것들이다.
단, 여기서 핵심적인 전제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모든 활동은 오직 플레이어의 '자발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발성이 결여된 강요는 편안함을 깨뜨린다. 편안함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은 그래픽도 음악도 아닌 자발성이다.
특히 정리정돈을 소재로 한 게임들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청소라는 행위가 편안해서’가 아니라, 손은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마음까지 다급해질 필요는 없으며, 활동의 총량(끝)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분석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우스 플리퍼>에서 청소가 편안했던 이유도 어느 정도는 설명된다. 현실의 청소는 피로하다. 무엇을 버릴지 결정해야 하고, 어디에 치울지 생각해야 하며,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청소가 힘든 이유는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선택,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질러진 물건의 질서를 찾아주는 <어 리틀 투 더 레프트 A Little to the Left>나, 손님이 재촉하지 않는 물약 상점의 연금술사 게임 <포션 크래프트 Potion Craft> 역시 마찬가지다. 실패에 대한 패널티를 없애거나 재촉하지 않음으로써,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어 리틀 투 더 레프트>, <언패킹>, <이지 딜리버리 co.>, <어 쇼트 하이크. 이들은 힐링 또는 코지(편안한) 게임으로 언급되고 있다.
같은 편안함, 세 가지 쓰임
흥미롭게도, 편안한 게임이라고 해서 반드시 편안한 스토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2020년 게임 연구자들은 편안한 미학이 게임 안에서 사용되는 방식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 번째 경우 ‘일치형’ 편안함은, 게임의 겉모습과 플레이 경험이 일치하는 경우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편안한 게임들이 이에 속한다. <어 쇼트 하이크 A Short Hike>는 주인공이 휴가를 떠난 섬에서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여정을 보여지만, 서둘러 도착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되고, 낚시를 해도 되고, 동전을 줍다가 다른 길로 새도 된다. 게임의 화면이 보여주는 세계와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는 행동이 모두 같은 방향, 즉 서두르지 않고 머물러도 된다는 쪽으로 동시에 향하는 유형이다.
두 번째 경우 ‘불일치형’ 편안함은, 겉으로는 편안해 보이지만 그 안에 슬픔이나 상실처럼 무거운 이야기를 담는 경우다. 편안함을 겉에 한 겹 감싸는 것이다. <댓 드래곤 캔서 That Dragon, Cancer>는 부드럽고 따뜻한 색채 속에서, 가족 상실의 슬픔을 전달한다. 무거운 이야기를 직접 마주하게 만드는 대신 익숙하고 편안한 세계 안에 놓아두는 것이다. <언패킹 Unpacking>도 비슷하게, 이삿짐을 풀어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해놓는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게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의 이별, 성장 등 삶의 굴곡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경우 ’상황형’ 편안함은 게임 전체는 긴장되어 있지만 특정한 순간이나 장소에서만 편안함을 제공하는 경우다. 편안함을 장르라고 부르는 일이 더욱 어려워진다. <다크 소울 Dark Souls>이나 <돈 스타브 Don’t Starve>의 모닥불을 예로 들 수 있다. 게임 전반이 긴장감을 주지만, 모닥불 앞만큼은 전투와 위험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편안한 장소가 된다. 상황적으로 등장하는 편안함의 유형이다.
결국 편안함은 게임 장르라기보다 게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재료에 가까워 보인다. 어떤 게임에서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고, 어떤 게임에서는 무거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표면이 되고, 또 어떤 게임에서는 긴장된 상황 사이에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장소가 된다. 같은 감각이 게임마다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편안함이 게임 안에 들어 있는 것이라면,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이 모두 편안함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결국, 편안함은 플레이어가 만드는 것
질문에 대한 답은 최근 연구에서 나온다. 편안함이 게임 안에 이미 장착되어 있다기보다, 플레이어가 느끼는 주관적 감각이라는 사실이다.
2026년 연구에 따르면 편안함의 바탕에는 친숙함과 예측 가능성이 존재한다. 게임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고, 그 행동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할 수 있으며, 게임 속 공간에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익숙해질수록 플레이어는 그 세계를 더욱 편안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우리가 집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비교한다. 집이 편안한 것은 어두운 밤에도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알고 불을 켜는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다.
많은 편안한 게임들은 게임에서만 작동하는 별개의 행동양식을 알려주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직관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한다. 어떤 장소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고, 게임이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반응하는지도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긴장하며 돌아다니던 공간이 어느 순간에는 익숙한 동선이 된다. 게임 세계가 더 이상 낯선 장소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장소로 바뀌는 순간, 그곳에서도 일종의 ‘집 같은 느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흥미롭게도 공포 게임도 누군가에게는 편안할 수 있다. 처음 플레이했을 때는 어디서 괴물이 튀어나올지 몰랐던 게임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적의 위치와 패턴을 모두 알게 될 수 있다. 어느 문을 열면 무엇이 나오는지 알고, 어느 복도에서 적을 만나게 되는지 알고, 도망쳐야 할 곳과 숨어야 할 곳도 알고 있다면 처음의 공포는 조금씩 다른 감각으로 바뀐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데이브 더 다이버 Dave the Diver>는 바다를 탐험하며 물고기를 잡는 편안한 게임으로 자주 꼽히지만, 평소에 낚시에서 잔인성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조금도 편안하지 않은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일한 게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휴양지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사냥터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편안함은 게임 안에 이미 들어 있는 속성이라기보다, 게임이 만들어놓은 조건과 플레이어의 경험이 만나는 곳에서 생겨나는 것에 가깝다.

* <포션 크래프트>에서 플레이어는 물약 상점의 주인이 되어 손님에게 물약을 제조하고 판매한다.
안전한 공간으로의 도피일까?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은 다르다. 누군가는 긴장을 통해 푼다. 강렬한 전투나 타격의 쾌감을 느끼고, 두뇌 싸움에서 승리하는 기쁨, 어제보다 강해진 캐릭터가 주는 성장을 실감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반면 누군가는 긴장이 제거된 저스트레스 공간으로 떠난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고, 아무것도 잃지 않는 공간에서 하루 종일 곤두선 신경을 내려놓는 것이다. 같은 스트레스 앞에서 정반대의 처방이다.
오랫동안 게임 산업의 주류 언어는 승리, 경쟁, 도전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편안한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이 주류 문법에 질문을 던진다. 그런 점에서 편안한 게임의 부상은 주류 문화에 대한 일종의 대안적 실천이라 볼 수 있다. 게임 연구자 스컬리 블레이커(Rainforest Scully-Blaker)는 이러한 실천을 “급진적 느림“(Radical Slowness)이라고 이름 지으며, 발전, 자본축적, 소비 등의 자본주의적 루프와 호흡에 반대하는 저항하는 행위로서 플레이어의 명상, 휴식, 망설임 수행을 짚어내기도 했다.
누군가는 편안하고 평화로운 세계로 떠나는 플레이어를 향해 '현실 도피'라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스트레스가 과잉인 현대 사회에서 위협이 제거된 세계로 들어가 불안을 잠재우는 행위로서의 게임하기로 보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도피라는 말의 부정적 어감을 다르게 생각하여, 폭풍우 치는 날 처마 밑으로 피신하는 일은 하나의 실천일 뿐, 긍정적이라거나 부정적이라는 가치 판단을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을까.
그러니 편안한 게임을 현실 도피라고 부르는 것이 틀렸다고 할 필요는 없고, 반대로 무조건 좋은 것으로 포장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잠시 현실을 벗어나는 일이 언제나 현실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때로는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잠깐 다른 곳에 머무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참고 자료
Group Report: Coziness in Games: An Exploration of Safety, Softness, and Satisfied Needs(2017)
Towards the aesthetics of cozy video games(2020)
Coziness in Games: Second Homes, Audiences, and Esthetics(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