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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대 JRPG의 얼굴들 – 야쿠자, 왕자, 그리고 이방인
<33원정대>는 두 현실 사이에 중재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둘 중 하나의 편을 택해야 하며, 선택은 곧 다른 하나의 세계와 가능성을 돌이킬 수 없이 폐기하는 행위로 기능한다. 각자에게 할당된 엔딩 이후 캔버스 속 세계의 운명은 정리되어 치워지고, 주인공들에게서 이전의 모험을 반복하거나 지속할 동기나 가능성은 사라진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프랑스게임, JRPG, 턴제, 애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ngHoon Majored in literature. Loves games and comics. The Sims 4 isn't really a favorite, yet has logged some 1,500 hours in it—unsure whether that's a source of shame or just funny. Also goes by the pen name Ttuibuchi.
- 숏폼 콘텐츠 유행이 우리에게 남긴 것
다만 이러한 현실 추수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BM을 긍정해 나가면서 한국 게임 시장은 더욱 노골적으로 메타버스, P2E, NFT 등 현행 법률로 합법화되기 어려운 영역까지 허용해 달라고 당국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최근의 게임 회사들은 플레이의 외부적 요소로 취급되던 현금과 결제, 캐릭터의 성장 요소를 더욱 외재화하여 환금성을 부추기게 된다면, 이는 한국 게임업계가 그동안 트라우마로 안고 있었던 “바다 이야기” 사태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eong Yeop Lee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Culture & Contents at Soonchunhyang University. Researches game storytelling and game design as central concerns, and led the founding of the Busan Indie Connect Festival—a leading indie game festival—where serves as head of the jury. Also a juror for the Independent Games Festival (IGF), one of the most prestigious indie game events internationally. Books include Digital Storytelling (co-authored, 2003), Digital Games: A New Territory of Imagination (2005), Indie Games (2015), Stories Become Transformers (co-authored, 2015), Mario, Born in '81 (co-authored, 2017), The Theory of Games (co-authored, 2019), and Games Are Games: Game × Ecosystem (co-authored, 2021).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스팀펑크적 제작 기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는 전투가 메인 컨텐츠인 MMORPG 게임이다. 세부적으로는 테마파크 유형이다. 작중의 세계에서 유저는 온갖 다양한 활동을, 현실의 그것을 모사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초나 광물을 채집할 수 있고, 낚시를 할 수 있고, 전투와 낚시를 통해 얻은 재료로는 요리를 할 수 있다. < Back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스팀펑크적 제작 기술 24 GG Vol. 25. 6. 10. 예술 매체는 현실을 모사한다. 인간의 문명사는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낸 역사다. 우리는 도구의 동물이다. 심지어 우리가 만든 가상 세계 속에서도 인간은 무언가를 만든다. 축약되고 변형된 형태로 모사한 것이지만 어쨌든 만든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는 전투가 메인 컨텐츠인 MMORPG 게임이다. 세부적으로는 테마파크 유형이다. 작중의 세계에서 유저는 온갖 다양한 활동을, 현실의 그것을 모사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초나 광물을 채집할 수 있고, 낚시를 할 수 있고, 전투와 낚시를 통해 얻은 재료로는 요리를 할 수 있다. 요리 외에도 만들 수 있는 것은 많다. 전문기술이라는 분류에는 채집과 제작 두 가지 종류의 기술이 있는데, 유저는 두 가지를 선택해 배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채집 기술 하나를 배우고 이 채집 재료를 이용하는 제작 기술 하나를 배우지만, 채집 둘 혹은 제작 둘을 배우는 경우도 있다. 약초를 채집했다면, 이를 재료로 사용하는 연금술과 주문각인을 고려해봄직하다. 채광 기술을 배웠다면, 광석을 이용하는 대장기술, 기계공학, 보석세공 등이 어울린다. 이런 제작 기술은 마법이나 전투 능력 등의 기술과는 성격이 다르다. 즉발 효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물건, 즉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영구적인 장비일 수도 있고 쓰면 사라지는 소모품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제작품은 전투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적거나 아예 없기도 하다. 캐릭터가 착용하는 장비나 능력치를 일시적으로 올려주는 아이템 같은 경우는 전투에 도움은 되지만 절대적인 수준은 아니다. 반면 기계공학으로 만들어 일시적으로 활공을 할 수 있게 하는 글라이더 같은 아이템은 전투와는 거의 무관한 단순 장난감이다. 예는 더 들 수 있다. 연금술을 배워 만들 수 있는 비약과 영약, 회복 효과를 주는 물약, 무기를 일시 강화하는 대장기술의 숫돌과 무게추, 주문각인으로 만드는 레이드에서의 버프 아이템인 반투스 룬 같은 것은 전투를 돕지만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다. 기계공학으로는 전투 중에도 부활을 쓸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해서 공략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 보석세공 기술로 만들 수 있는 아이템 ‘보석 맞추기’를 사용하면 타일 매칭을 미니게임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물론 몇몇 클래스는 제작 기술이 아니어도 아이템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마법사는 마법으로 음식을 만들 수 있고, 흑마법사는 생명석이라는 회복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아이템은 제작 기술로 만든 아이템과 달리 영구적이지 않아서 게임에서 로그아웃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린다. 캐릭터가 사용하는 마법과 전투 기술은 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즉시적이고 직접적으로 효과를 낸다. 버프를 주는 마법을 쓰면 버프가 생기고, 데미지를 주는 기술을 쓰면 적에게 데미지가 들어간다. 직업 기술의 효과는 즉각적이다. 제작 기술의 효과는 아이템이라는 매개체를 만들어 효과를 미래로 유예시킨다. 둘 다 체계화가 되어 있고 둘 다 캐릭터가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보다는 차이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제작 기술만의 특징은 결과의 일부를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판다리아> 확장팩에서는 가죽세공과 대장기술의 일부 항목 또한 비슷했다. 대부분의 레시피는 전문가 NPC에게서 배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때는 다른 제조를 하면 그 결과로 배우는 레시피들도 생겼다. 이때의 연금술은 아예 모든 레시피를 배우는 것이 다른 레시피 제조의 결과로 배우는 방식이었는데, 무엇을 배우게 될지는 랜덤이라 예상할 수 없었다. 특히 기계공학에서는 이 점이 도드라진다. 전력선과 같은 기계공학의 전투 부활 아이템은 실패 가능성이 있다. 몇몇 기계공학 아이템은 낮은 확률이지만 폭발하여 캐릭터를 하늘 높이 날려보내거나 큰 데미지를 주기도 한다. 용군단 확장팩부터 연금술에 적용된 ‘실험’이라는 메커니즘은, 실험에 성공하면 새로운 레시피를 배우게 되지만 실패하면 빈사 상태로 만드는 데미지를 입게 된다. 연금술의 실험이라는 요소는 위험부담을 전제하는 것이다. * 연금술 실험이 실패했을 경우의 예시 (필자의 캐릭터 중 하나) <용군단> 확장팩부터 적용된 다른 요소도 있다. 전문 기술에만 적용되는 전용 스탯이 생겼다. 이로 인해 채집할 때는 확률에 의해 재료를 더 많이 채집하거나 희귀 재료를 추가로 채집하거나 할 수 있다. 제작 기술에서는 일정 확률로 재료를 적게 소모하거나, 아이템이 하나가 아닌 여럿이 제작되거나 한다. 예상 외의 추가 성과라는 형태로 ‘예상 외 요소’가 늘어났다. 이는 전투용 기술에 흔히 따라붙는, 치명타를 달성했을 때 추가 데미지와 같은 요소와는 성격이 다르다. 전투 기술의 예상 외 요소는 긍정적 효과를 제공하는 것이고, 부정적 효과를 제공하는 경우엔 반드시 예상할 수 있도록 한다. 반면 제작 기술은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 모두 확률을 따른다. * 전문기술 스탯 4종류 중에서 지혜는 재료를 덜 소모하는 확률을 결정하고 복수 제작은 결과물이 더 많이 나올 확률을 결정한다. 기계공학에도 연구라는 요소가 최근 들어왔다. 소정의 재료를 소모해 연구 결과를 쌓고, 이를 소모해 새로운 레시피를 배우는 형태다. 물론 배울 레시피 후보는 랜덤하게 정해지기 때문에 예상할 수가 없다. 이 경우에는 예측 불가능 요소 외에도 이전 성과를 쌓는 적층 구조를 전제하고 있다. 예측 불가능 요소가 존재하는 것은 해당 분야가 완전히 파악되어 철저히 분류화가 되지 않았다는 설정을 시사한다. 현실의 자연과학과 공학은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 여전히 있다. 와우의 제작 기술이 전투 기술과 달리 예상 외의 결과를 낳는 요소가 다수 있는 것은 이런 현실을 게임의 확률 체계를 통해 모사한 결과다. 이전 성과의 일부를 다음 성과로 끌어가는 적층 구조 요소는 현실의 기술 발전이 반드시 이전 세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모사한 결과다. 예술 매체는 현실을 모사하기 때문이다. 반면 현실의 모습을 모사하지 못한 혹은 모사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현실의 기술은 그것이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개인보다는 팀의 연구로 발전을 하고, 나아가 팀과 팀의 피드백 및 협업으로 진보한다. 줄여 표현하면 학계가 진보를 이끈다. 하지만 게임 내에서는 체제 전체를 이끄는 진보라는 것을 구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존재하는 레시피를 숨겨둘지언정, 유저가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게 한다는 아이디어는 실현된 적이 없다. 제작 기술에 존재하는 레시피는 어디까지나 제작사가 제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결과 현실과 같은 의미의 발전은 존재하지 않고, 유저는 이미 완성된 테크트리에서 숙련도를 쌓아 올리는 학생으로서만 기능한다. 물론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내지는 못해도 실험과 연구를 통해 몰랐던 레시피를 배워나가는 것은 충분히 기술의 적층성을 반영한 형태일 수 있다. 또한 기계공학으로 만드는 탈것처럼 들어가는 재료의 규모가 많은 아이템의 경우엔, 기계공학 외의 다른 제작 기술이 만들어내는 재료 아이템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는 서로 다른 기술의 수평적 협업을 구현한 요소다. 반면 이런 협업 제작품의 경우에도 결국 유저 개인으로 수렴한다는 한계는 존재한다. 최후에 오토바이, 비행기, 로봇 등 현실이라면 산업계 하나가 필요한 결과물도, 조립해내는 기계공학 유저는 한 명일 뿐이다. 이 형태에는 엄밀히 말하면 개인만이 존재한다. 홀로 아이언맨 수트를 제작한 토니 스타크의 서사가 떠오른다. 하지만 소수의 천재가 기술 분야를 선도하는 이야기는 에디슨/테슬라 시절의 서사이며, 사실 그때도 상당 부분 허구였고, IT 분야의 초기 시절에나 살펴볼 수 있다. 기술 분야가 개창된 초기에는 한두 천재가 이끌어가지만, 산업이 성립한 후에는 집단과 집단의 협업 및 경쟁이 발전을 주도하는 것이 역사다. 게다가 학문 분야의 적층화가 많이 진행되어 복잡해지면, 일개 개인은 모든 분야를 섭렵할 수가 없다. 인간의 두뇌에는 용량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리지널 시절 <와우>의 연금술에는 분야 특화가 존재했다. 물약, 비약, 변환의 세 영역으로 나눠서 일정 숙련도 이상에서는 ‘대가’라는 이름으로 특화를 선택할 수 있었다. 같은 시기의 대장기술 또한 무기 대가와 방어구 대가로 나뉘었다. 가죽세공 또한 세 가지의 대가 전문화가 있었다. 이렇게 전문 분야를 선택하면 선택한 전문 분야에서는 같은 양의 재료로 더욱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각 분야만이 배울 수 있는 심화된 레시피도 존재했다. 기계공학 또한 오리지널부터 <판다리아> 확장팩까지의 시간 동안 두 가지의 분화 트리를 갖고 있었다. 고블린과 노움의 경쟁 컨셉이 있었는데, 에디슨과 테슬라의 직류 대 교류 싸움을 연상시키는 형태였다. 고블린 기계공학과 노움 기계공학의 분류는 다른 제작 기술의 대가 전문화처럼 각각의 분야만 배울 수 있는 레시피가 따로 있었다. 폭탄류는 고블린 기계공학에서 배울 수 있고, 독특한 효과를 내는 장비는 노움 기계공학으로만 배울 수 있는 식이다. 이런 차별화된 세부 테크트리는 나름 분과 학문 혹은 숙련공을 모사한 결과다. 앞서 살펴본, 제작의 주체가 유저 개인으로 집중되는 모습의 천재적 기술자 서사와 합쳐 보면 근대적 기술 발전의 초기 시절이 떠오른다. 천재적 개인의 시대에서 세분화된 분과 학문의 시대로 전환되던 그 시기, 르네상스부터 세계대전에 이르는 시대다. SF 중에서 스팀펑크 장르는 이런 ‘근과거’의 기술적 특징을 중심 소재로 사용한다. 이 특성 때문에 <와우> 내에서 기계공학을 비롯한 제작 기술은 옅은 향수를 동반하고 있다. 스팀펑크 특유의 이 정서는 현대인이 실제로는 살아보지 않았지만 현 기술 문명의 근간을 이루던 시기를 재조직한 세계를 대할 때 발현된다. 이는 <와우>가 독보적인 몰입도를 이룩한 데에 도움이 되었을 수 있다. 비록 게임 내 서사와 설정을 보면 호드가 소형 핵무기를 사용하고 얼라이언스가 지하철을 운행하고 드레나이가 우주를 항행하는 등 미래형 SF가 중세형 판타지와 결합해 있지만, 그런 식으로 융합되어 있는 다수의 요소 중에는 ‘살지 않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만들어내는 스팀펑크가 있다. *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팀펑크는 증기기관과 톱니바퀴가 공학의 중심이던 시절의 기술을 가져온다. SF지만 과거를 다룬다. 그리고 스팀펑크에서 가져와 재조직한 시절의 기술 발전이란, 현재도 그렇지만 현재보다 월등하게, 위험을 수반하는 진보였다. 고블린과 노움처럼 기술에 대한 대책 없는 낙관성이 있었고, 연금술의 연구 실험 시스템의 실패 폭발처럼 안전 대책은 취약했다. 이를 요약하는 이미지는 연구실에서 혼합물을 섞다가 폭발을 일으키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모습이다. 예술 매체는 현실을 모사하지만 렌즈를 거친다. <와우>는 전문 기술 중에서 제작 기술의 체계를 잡으면서 스팀펑크의 시대인 근과거, 기술 발전 초기의 세계관을 구현했다. 변인과 결과에 대한 완전한 파악이 되지 않아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기술, 아직 탐험 중이기에 위험 요소가 존재하는 측면의 기술, 기술 요소가 개인에게로 수렴되어 천재적 개인이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던 시절의 기술, 점차 분화가 쌓여가면서 다른 분야와의 협업과 이전 연구의 계승이 중요해지기 시작한 기술. 현재의 분업화, 조직화, 체계화된 연구는 좀 더 안전하고 세련되게 발전했지만 스팀펑크의 묘한 낭만은 없다. 그 낭만의 편린은 게임 안에서 살짝 맛볼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게임 to 현실, 현실 to 게임: <게임의 사회학> 서평
〈게임 사회학〉은 저자 스스로 그 빈칸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책이었다. 저자가 스스로 게이머들이 왜 이런 행동을 보였을지 이유를 추적하고 그 인과성을 검증하는 모델을 세우는 과정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정량적인 연구라도 연구 문제를 설계하고 모델에 어떤 변수를 채택하고 분석 결과를 해석하는 일은 다시 사람의 몫이다. 전통적인 사회과학이나 통계학 연구자들이 딥러닝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딥러닝 모델이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관계를 설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 필요성이 부각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XAI는 알고리즘이 왜 이런 결과를 내놓았는지 추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량적인 연구와 정성적인 연구가 연결되는 지점이며, 앞으로 게임과 그 관련 데이터를 활용한 사회과학 연구가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 Back 게임 to 현실, 현실 to 게임: <게임의 사회학> 서평 10 GG Vol. 23. 2. 10. * 필자는 〈게임의 사회학〉 저자처럼 데이터 사이언스 방법론을 기반으로 인문사회과학 연구를 하는 연구자이다. 따라서 저자의 접근법(연구방법)에 좀 더 친숙하기 때문에 편향이 있을 수밖에 없는 점을 미리 인지하고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한다. 1. 완벽히 통제된 전수 데이터의 꿈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에게(특히 사회과학) 꿈같은 일은 자신이 검증하고자 한 가설이나 연구 문제에 딱 맞는 데이터를 구하는 것이다. 예컨대 부모의 소득과 수능점수의 인과관계를 밝히고자 한다면, 수능점수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변수(체력, 지능, 인내력 등)를 ‘통제’하고 부모의 소득만 다른 수험생을 찾아야 한다. 쌍둥이를 찾아서 서로 다른 부모에게 입양 보내지 않는 이상 그런 데이터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사회과학자들이 다루는 데이터는 늘 ‘표본’ 데이터이다. 데이터에는 늘 누락과 접근 불가능한 상황이 있으므로 전수 데이터는 만져볼 기회가 없다. 따라서 완벽히 통제된 전수 데이터는 꿈같은 말이다. 대신 사회과학자들은 늘 부족한(질적으로든 양적으로든) 데이터를 만회할 수 있는 여러 분석 방법론을 개발해왔다. 이른바 통계적 유의성(statistical significance)을 자신의 연구에서 목숨 걸고 사수하려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늘 부족한 데이터이지만 데이터에 맞는 분석 모형을 만들어 분석 결과의 유의함을 밝혀내는 일 말이다. 연구자들은 자신이 내놓은 분석 결과가 확률적으로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건하게(robust) 지지하게 될 수 있게 부단히 노력한다. GPU 같은 컴퓨팅 파워의 대중화와 프로그래밍 언어와 각종 분석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꿈이라고만 여겼던 초거대 데이터 세트를 연구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서평에서 다룰 게임 파생 데이터가 아니더라도 소셜 미디어나 건강보험 공공데이터 등 수천만, 수억 건의 데이터를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다루기 시작했다. 빅데이터 기반의 사회과학 연구인 이른바 계산사회과학(Computational Social Science)의 출현도 이와 연관이 있다. 이런 제반 사항이 잘 갖춰졌는데도 사회과학 연구자들에게 게임 데이터는 여전히 낯선 영역으로 보인다. 〈게임의 사회학〉에서도 그 부분을 지적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2. 게임은 현실을 표상하는가? 현실이 게임을 표상하는가? 저자는 서문에서 게임 데이터 기반 사회과학연구가 이제 걸음마 단계임을 강조한다. 왜 아직 연구자들은 게임 파생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게임 데이터 역시 통제가 필요하고 전수 데이터를 모으기 힘든 점이 있지만 현실에서 수집을 상상하기도 어려운 데이터를 가상공간에서는 구해볼 수 있는 장점이 충분히 있다. 1) 하지만 내 생각엔 다음 세 가지 이유로 연구자들이 활용하기를 꺼리는 듯하다. 1) 디지털 공간에 존재하는 게임 데이터의 수집과 핸들링을 위해서는 코딩 같은 추가 연구 역량이 필요하다. 2) 이전에 전통적으로 다루던 설문조사 등의 데이터보다 훨씬 더 많은 대량의 데이터를 다루기 힘든 측면. 3)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특징은 게임이 인간 현실사회를 반영하는 공간인지 연구자들이 의심한다는 점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는 데이터 자체의 선택 편향을 의심하는 연구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책의 전반부에서 ‘게임 -〉 현실’이라고 명명한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적확하다. 게임이라는 렌즈를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연구가 ‘게임 사회학’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를 ‘게임 〈-〉 현실’이라고 배분한 것도 이와 연결된다. 이제 게임은 단순히 인간 사회의 작동 원리나 특징을 바라보는 교보재가 아니라 사회 현실과 게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형태 역시 연구자들이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상 세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터넷 검색 엔진에 검색되지 않으면 세상에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볼 때, 필자의 말처럼 이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위해서는 반드시 게임을 들여다봐야 하는 시점에 도래한 것은 아닌가? 특히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당일 리니지의 아이템 거래도 그 수가 매우 줄었다는 부분 2) 에서 나 역시 게임이 현실과 분리되지 않고 그 둘이 연동돼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3. 계산사회과학의 한계와 객관성이라는 신화 다음으로 이 책은 사회과학이 중요하게 다루는 인간과 사회의 ‘행위’, ‘조직’, ‘경제 활동’, ‘범죄’, ‘호혜성’ 등의 개념을 게임 데이터를 가져와 정량적인 방법으로 잘 설명해냈다. 통계와 네트워크 분석, 더 나아가 기계학습 기반의 의사결정나무까지 여러 방법론이 소개됐다. 이러한 정량적인 방법론에 대해 연구자를 포함한 시민들은 그 자체로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고 평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계산사회과학 연구가 주목 받는 이유도 연구의 객관성과 과학성이 질적인 연구에 비해 우월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빅)데이터 방법론은 전가의 보도가 아니며 정량적인 모델이 객관적이라는 평가도 과대평가 된 신화이다. 특히 요즘 각광 받는 딥러닝 기반의 분석 방법론은 전통적인 통계 모형보다 매우 성능이 뛰어나지만, 해당 모델이 내놓은 결괏값을 설명해낼 수 없는 블랙박스인 경우가 많다. 또한 데이터 수집과 전처리 과정에서 여러 연구자의 의도가 들어갈 수밖에 없기에 정량적인 연구는 객관적일 거라 믿는 태도도 위험하다. 데이터에 내재하는 편향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인공지능에 내재한 여러 편향의 문제는 알고리즘 학습 때부터 내재한 것이다. 또한 계산사회과학이 내놓는 결과물은 해당 집단이나 개인의 가장 평균적인 면을 보여준다. 결국 분석과정에서 드러나지 않는 개인과 집단의 특이성은 배제되곤 한다. 4. 정량과 정성, 구별할 필요 없이 인문학은 거의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정성적인 연구를 계속해왔기 때문에 구별이 거의 없지만 3) , 사회과학에서는 연구자를 구분할 때 ‘질방(질적인 방법)’ , ‘양방(양적인 방법)’으로 나누곤 했다. 나는 이제 이러한 구분은 의미가 희석될 것으로 생각한다. 〈게임의 사회학〉에서도 그 두 방법을 모두 활용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게임 유저의 행동을 정량적인 방법으로 분석했을지라도 인터뷰나 민속지(Ethnography) 같은 전통적인 방법론으로 보완하였다. 결국 게임 데이터를 활용하는 연구자는 정량적인 분석을 시행하더라도 해당 게임에 참여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해는 모델링으로 채우지 못하는 빈칸을 채우게 할 것이다. 〈게임 사회학〉은 저자 스스로 그 빈칸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책이었다. 저자가 스스로 게이머들이 왜 이런 행동을 보였을지 이유를 추적하고 그 인과성을 검증하는 모델을 세우는 과정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정량적인 연구라도 연구 문제를 설계하고 모델에 어떤 변수를 채택하고 분석 결과를 해석하는 일은 다시 사람의 몫이다. 전통적인 사회과학이나 통계학 연구자들이 딥러닝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딥러닝 모델이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관계를 설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 필요성이 부각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XAI는 알고리즘이 왜 이런 결과를 내놓았는지 추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량적인 연구와 정성적인 연구가 연결되는 지점이며, 앞으로 게임과 그 관련 데이터를 활용한 사회과학 연구가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1)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 학문이 윤리적 한계 때문에 부딪히는 여러 가지 예약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48쪽). 2) 이 기간에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이 포함되어 있다. 다소 무리한 추측일 수도 있지만, 하필 그 전후 기간에 비해 유독 큰 폭의 하락이 있어서 그래프를 처음 봤을 때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중략) 게임은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한 경험이었다 (168쪽) 3) 최근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의 출현은 정량적인 인문학 연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인문학 연구자) 김병준 KAIST 디지털 인문사회과학센터 연구교수. 학부에서 문학을 사랑한 문학청년으로 국문학 공부했지만, 대학원에서는 자연어처리와 데이터 사이언스를 전공했다. 대량의 데이터와 정량적인 방법론을 활용한 디지털 인문사회과학 연구를 주로 한다. 가장 좋아한 인생 게임은 워크래프트 3, 주종은 오크. 아쉽게도 요즘엔 직접 게임을 할 시간이 없다.
- 게임제너레이션 GG
< Back GG Vol. Tags: 게임비평공모전,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단축키, 프로게이머, RTS, APM, 게임과 신체, StarCraft, Real-Time Strategy, Embodiment in Games, Esport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공모전] 모순된 세계의 충돌을 '다시' 그릴 때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미지를 좇는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고, 누군가에게는 믿음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며, 현재 우리가 가진 논리나 통용되는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실이 존재한다는 믿음. < Back [공모전] 모순된 세계의 충돌을 '다시' 그릴 때는 13 GG Vol. 23. 8. 10. 인간은 본능적으로 미지를 좇는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고, 누군가에게는 믿음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며, 현재 우리가 가진 논리나 통용되는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실이 존재한다는 믿음. 누군가에겐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이 그러할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 소설가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에 의해 발전한 이 세계에는 흥미로운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우리가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불가해한 힘, 또는 현실, 또는 진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된 인간은, 그 압도적이고 불가해한 힘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무기력한 태도가 바로 두 번째 요소다. 이 거대한 힘에 비하면 인간은 말 그대로 미물만도 못한 존재이며, 자신의 비천함을 받아들이고, 모든 존엄을 내려놓고, 그저 이 힘이 가진 무자비한 의지에 무릎을 꿇는다. 불가해하고 거대한 힘과 이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무력함. 러브크래프트는 늘 무언가를 상실한 것으로 묘사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혼란과 두려움, 무기력을 이러한 구도로 표현했다. 프로그웨어Frogwares는 2006년,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Sherlock Holmes The Awakend(이하 ’06)>를 통해 러브크래프트와 셜록 홈즈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앞서 말했듯 러브크래프트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과 그에 대한 무력함을 말한다면, 셜록 홈즈는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음을 증명하는 인물이다. 이 두 세계가 충돌했을 때 벌어지는 이야기는, 얼핏 매력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상대가 가진 장점에서 비롯된 한계를 정면으로 공격할 수밖에 없는 구도를 지닌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는 이 이야기는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가?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2023년, 프로그웨어는 이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말 그대로, 다시 만들었다. 이들은 20여년 전 자신들의 유산에서 새로운 시각과 이야기, 돌파구를 찾았고, 불가해한 세계에 맞서는 논리의 투사를 다시 한번 그려냈다. 2006년의 홈즈에서 2023년의 홈즈가 되기까지 2000년대 프로그웨어의 셜록 홈즈 시리즈는 고전적인 어드벤처 퍼즐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시나리오는 스테이지의 형태로 구성되었고, 플레이어는 각 스테이지를 풀어나가기 위해 주변에서 유용한 아이템을 모았다. 사건을 수사하면서 확보한 문서들은 퍼즐을 위해 플레이어에게 제공되는 단서로 쓰였다. <’06> 역시 이러한 형식을 따르고 있었고, 이를 통해 탐정 셜록 홈즈와 파트너 존 왓슨, 기벽을 가진 두 신사의 모험이라는 고전적인 컨셉을 충실히 구현했다. 이런 형태의 ‘모험’은 <셜록 홈즈의 유언The Testament of Sherlock Holmes(2012)>에서 종언을 고한다. <셜록 홈즈: 죄와 벌Sherlock Holmes: Crimes and Punishiments(2014, 이하 죄와 벌)>이 보여준 것은 단순히 향상된 그래픽뿐만은 아니었다. ‘인물 묘사’, ‘기록 보관소’, ‘기억의 궁전’ 등 지금의 셜록 홈즈 시리즈에 사용되는 핵심적인 추리 시스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셜록 홈즈의 관점에서 직접 추리를 시도해야 했다. 그리고 2021년 작 <셜록 홈즈 챕터 원Sherlock Holmes Chapter One(이하 챕터 원)>에 이르러, 프로그웨어는 자신들이 오랫동안 만들어왔던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역설적이게도, 셜록 홈즈 시리즈의 주인공은 오랫동안 그 자신의 그림자에 가려져있었다. 셜록 홈즈가 겪는 모험은 이야기를 위한 흥미로운 소재로 쓰이기에 충분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 자체의 견고함이 필요했다. 때문에 그 자체로 개성이 강하고 존재감이 뚜렷한 이 캐릭터는 그 기본적인 묘사 이상으로 접근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프로그웨어는 이 견고하고 뚜렷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의 내면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2023년 작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Sherlock Holmes The Awakend(이하 ’23)>가 출시되었다. <’23>은 단순히 <’06>의 시나리오를 <챕터 원>의 시스템에 입히는 리메이크를 시도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현실적인 한계들도 있었겠지만, <챕터 원>에서 시도되었던 오픈월드 구조나, 플레이어가 결말을 선택하는 시스템을 <’06>의 시나리오에 구태여 입히려 애쓰지 않는다. <챕터 원>에서의 오픈월드 구조 대신, <’23>은 <’06>의 스테이지식 구성을 활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챕터 원>의 유산을 거부하고 <’06>을 그대로 구현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프로그웨어가 이 리메이크를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했으며, 이를 통해 무엇을 만들려 했는지다. 셜록 홈즈의 러브크래프트적 붕괴 <챕터 원>에서 프로그웨어는 홈즈에 대한 더욱 내밀한 관점을 구축했다. 이 관점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홈즈가 가진 광기, 진실(사건 해결)에 대한 집착이라는 잠재적인 광기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상실한 그는 끊임없이 진실의 가치와 중요성을 역설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그가 스스로에게 저지르는 신체적, 정신적인 자해 행위를 수반한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난제를 푸는 지적 유희가 아니라, 결핍된 진실을 추구하는 홈즈의 본능적 갈망으로 그려진다. 때문에 <’06>에서 낯설고 기이한 세계를 맞이하는 셜록 홈즈가 이성과 논리의 영역에서 이 세계를 ‘관찰’하며 수사에 몰두하는 것과 달리, <’23>에서 홈즈의 수사는 단순히 국제적인 실종과 인신매매라는 범죄의 배후를 찾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진실을 원한다. 저들이 말하는 세계, 저들이 섬기는 불가해한 힘, 그 오래된 신의 존재. 그것이 현실인지, 현실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홈즈는 저들의 세계에 직접 뛰어든다. 이로써 <’23>은 <’06>에서보다 더 내밀하고 노골적으로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표현한다. <’06>에서 기괴한 신의 조각상과 잔혹한 의식에 대한 묘사에 그쳤던 컨셉은, 셜록 홈즈라는 샤먼을 매개로 이 불가해한 세계를 직접 보여주는 레벨을 중간중간 삽입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이는 프로그웨어의 <싱킹 시티The Sinking City(2019)>에서 연구, 사용되었던 유산을 마음껏 활용할 기회가 될 뿐 아니라, 플레이어로 하여금 직접 이 혼란스러운(그리고 흥미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며, 이를 겪는 셜록 홈즈를 붕괴시킨다. <’23>은 셜록 홈즈가 겪는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경험을 플레이어블 레벨로 제공한다. 앞서 말했던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요소인 불가해한 세계와 그에 대한 무기력, <’23>은 셜록 홈즈를 통해 이를 충실히 구현하며, 이렇게 붕괴한 셜록 홈즈가 다시 그에게 요구되는 ‘셜록 홈즈’로써의 역할에 충실하려 할 때 이 무력함은 극대화된다. <챕터 원>에서 홈즈는 어머니를 앗아간 광기가 언젠가는 자신을 덮치게 될지 모른다는 근원적인 공포를 가지고 있다. <’23>에서는 마침내 광기에 잠식되었을 때, 그 날카로운 추론 능력과 예리한 감각은 더 이상 없을 것임을 실제적인 위협으로 느낀다. 그리고 매 순간, 자신이 이러한 능력을 잃고 있음을 누구보다도 절감하며 더욱 빠르게 붕괴한다. 여정의 최종장인 로체스터와의 조우. <’06>에서 등대 꼭대기에 올라선 로체스터에게 ‘당신을 사랑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라’고 설득하던 ‘협상’ 장면은, <’23>에서 여정을 좇으며 목격한 진실에 결론을 내리는 ‘자기 고백’의 장면이 된다. '당신들처럼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할까 두렵다'는 그의 고백은 결국 '이 모든 것은 현실'이라는 무력하고, 그가 끝까지 거부하려 했던 선언으로 귀결된다. 플레이어는 이 대화에서 제공되는 다른 대답을 선택할 수 없다. <’06>에는 이러한 선택지 대화 자체가 없었고, <챕터 원>에서는 매 선택지가 분기성을 띄었으며, <’23>의 다른 대화에서도 선택지를 통한 게임 오버 처리의 사례가 없다는 점을 봤을 때 이 대화 장면은 더욱 흥미롭다. 이는 결국 플레이어 역시 셜록 홈즈가 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무력한 순간을 함께 경험할 것을 요구받는 장면이다. 불가해한 세계로 입장하면서 여정을 시작한 그는 끝내 굴종과 무기력이라는, 러브크래프트 풍의 서사를 완성하는 불가피한 운명을 뼛속 깊이 맞이한다. 새롭게 지어진 셜록 홈즈의 세계 <’23>에서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핵심 요소들은 셜록 홈즈라는 인물을 통해 셜록 홈즈의 세계관에 녹아들었다. 그렇다면 셜록 홈즈의 세계관은 러브크래프트를 어떻게 수용하고 반응하는가? 러브크래프트의 무기력과 절망을 표현하면서 어떻게 범죄를 해결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셜록 홈즈의 세계관을 지킬 수 있는가? <챕터 원> 이후로 프로그웨어가 보여주는 괄목할 만한 행보 중 하나는, 다른 주요 캐릭터들을 적극적으로 서사에 끌어들여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챕터 원>은 셜록 홈즈의 내면과 개인사를 구축하는 과정을 통해, 셜록 홈즈와 존 왓슨, 마이크로프트 홈즈라는 세 인물 간의 관계를 구축한다. 그리고 이는 서사를 이끌어가고 작품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데에 있어 지속적으로 유용한 자원을 제공한다. 프로그웨어의 이전작들에서, 존 왓슨은 그다지 존재감과 역할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모험에서 그는 사건과 한 발짝 떨어져 있다가 뒤늦게 따라잡거나, 홈즈가 여러 이유로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할 때, 그 역할을 대신하는 캐릭터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 존 왓슨의 역할은 <’06>에 비해서도 눈에 띌 정도로 분량이 늘어난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현실적인 인물인 그는 홈즈처럼 이 불가해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그러나 홈즈가 실마리를 찾기 위해 심연에 몸을 던지는 역할이라면, 현실의 영역에 머무르며, 끊임없이 닥치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홈즈와 홈즈의 현실을 수호하는 것이 왓슨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지켜야하는 지 알고 있으며, 이를 위해 판단하고 행동한다. 다음 여정으로 향하는 기차를 탈 때면, 홈즈와 왓슨은 서로의 상처를 나눈다. 두 사람 모두 이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여전히 방황하고 있고, 적어도 이 방황을 함께하고 있다. 이는 <’06>의 같은 장면을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의 유대감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각색된 장면으로, 후에 서술할 작품의 메세지를 뒷받침하는 장치가 된다.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의 기차 장면은 두 사람의 유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각색되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를 해석하는 관점 역시 <챕터 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구축된다. 그는 광기가 어머니를 집어삼키는 과정을 지켜봤고, 그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었으며, 동생인 셜록을 이 진실로부터 보호하는 젊은 가장으로 등장한다. 때문에 <’06>에서 편지를 통해서만, 셜록 홈즈의 수사를 돕는 유용한 정보원 정도로 등장했던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23>에서는 셜록 홈즈의 수사와 삶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근거를 가진다. 그는 동생이 또 다른 광기에 빠져 기이한 세계로 끌려들어 가는 것을 염려하고, 분노하며, 조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결국, 셜록이 이 사건을 빠르게 종결하도록 가장 결정적인 증거를 손수 제공한다. 그가 제공한 자료는 작품을 곧바로 종막으로 이끈다. 끈질기게 추적해왔던 사건의 배후, 핵심적인 의문이 다른 이에 의해 손쉽게 풀려버린다는 전개는 <’06>에서 역시 다소 갑작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23>은 이 전개를 그대로 가져오며, 홈즈의 자기 구원 - 사건을 해결하고 진실을 찾는 여정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존 왓슨이 셜록의 붕괴에 분노한 마이크로프트를 설득해 내는 장면으로 각색한다. 존 왓슨이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독대, 설득하는 장면은 <’23>에서 추가되었다. 이 간단한 액트를 통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시나리오를 전달하는 기회이며 장치가 된다. 주요 인물들이 서로의 관점을 펼치고 대립하며 서로에 대한 생각과 결심을 표현하는 장치다. 주인공인 셜록 홈즈가 누구보다도 극단적으로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에 휘말려 붕괴하는 상황에서, 이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적극적인 묘사와 구도의 구축은 셜록 홈즈의 세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이러한 안전장치들에 기반해, 러브크래프트와 셜록 홈즈 세계관의 합은 드디어 결론에 다다른다. 절망과 무기력, 그리고 그 너머 마침내 사건을 해결했고, 세상을 구했고, 원하던 진실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홈즈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싱킹 시티>의 결말을 고려했을 때도,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이야기에서 모든 불안과 의혹으로부터 승리하는, 셜록 홈즈 세계관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23>의 결론은 이 승리의 상처 너머에 있다. <’06>의 셜록 홈즈는 철저히 외부인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관찰하고 접근한다. 로체스터의 의식을 막고, 그에게 자수를 설득한다. <’23>은 이 협상 장면의 방향을 러브크래프트 풍의 자기고백 장면으로 전환하며, <’06>에서 부재했던 한 가지 요소를 더한다. 로체스터는 불가해한 진실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셜록 홈즈를 굴복시키는 데에 성공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와 그의 신을 좌절시키는 것은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의 ‘관계’다. 홈즈와 왓슨의 관계, 이 전형적인 주제가 <’23>에서는 오히려 두 세계의 충돌이 낳는 모순을 돌파하는 해결책이 된다. 로체스터와 달리 셜록 홈즈에게는 언제든 그를 현실로 끄집어낼 친구가 있었다. 존 왓슨의 존재, 이 관계 덕분에, 홈즈는 사건을 해결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셜록 홈즈 식 결말을, 스스로의 붕괴라는 러브크래프트적 결말을 성취하는 동시에 이끌어낸다. 그리고 이 관계에서 조금 더 시야를 확장해 보면, 뉴올리언즈 챕터의 각색된 결말이 눈에 들어온다. 홈즈와 왓슨이 구해낸 아네슨은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폭력들을 막기 위해 이 사건에 뛰어들었지만, 그 결과로 심각하게 손상되고 붕괴되었다. 그를 염려하는 연인 루시와 수사를 도와준 샴페인은 그의 회복을 도울 것을 약속하며, 그가 이루고자 했던 뉴올리언즈의 정의를 위해 싸움에 나설 것을 선언한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홈즈와 왓슨의 관계는 작품의 메세지를 담은 단면이다. <’23>은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의 무기력과 절망을 포용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그 너머로 나아가 제시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강조한다. 다른 사람들의 존재, 이들과의 관계. 붕괴한 셜록 홈즈와 아네슨을 지탱하고, 그들이 폭력에 맞서 정의를 구현하며 세상을 구하게끔 만드는 것은 그들 주변을 지키는 존, 마이크로프트, 루시, 샴페인과 같은 인물들이다. 모순 가득한 두 세계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다 러브크래프트와 셜록 홈즈라는 두 세계의 조우 한복판에서, 셜록 홈즈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사건을 파헤치고 진실을 밝혀냈으며, 거대한 범죄를 막고 사람들을 구해냈다. 이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이 가진 가치관을 깊이 있게 체화했다. 이는 프로그웨어가 전작인 <챕터 원>에서 구축한, 진실에 대한 집착이라는 셜록 홈즈의 성향에 의해 지치지 않고 추동되었으며, 플레이어 역시 모순적인 두 세계를 오가면서 셜록 홈즈의 내면이 겪는 여정을 함께한다. <’23>에서 이 여정은, 원작에서의 기이하고 잔혹한 사건을 수사하는 모험에서 더 나아가 두 세계의 조우, 그 너머를 바라보는 관점을 결론으로 제시한다. 러브크래프트가 표현하는 공포와 절망, 이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이 압도적인 힘을 가진 신에 의해 무용해질 수 있다면, 인간은 무엇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불가해한 신의 힘, 또는 사건의 해결이라는 승리를 넘어선 곳에서 제시된다. 셜록 홈즈와 존 왓슨,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관계, 이 관계가 상징하는, 현실에 존재하는 타인들과의 견고한 유대와 삶에 있다. <챕터 원>에서 구축된 인물들 간의 서사, 그리고 20여 년의 간극을 뛰어넘기 위해 선별되고 집중된 플레이 요소들은 쉴 새 없이 맞물려 돌아가며 모순과도 같은 두 세계의 조우라는 이야기를 성립시키고 메세지를 끌어내는데에 기여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이머) 박해인 게임에서 삶의 영감을 탐색하는 게이머. 게임의 의도와 컨셉을 전달하는 방식들을 분석하는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 25년의 심즈, 내일의 인조이
게임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국가의 경영과 역사 속 전쟁, 용과 엘프가 나오는 판타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의 생존은 훌륭한 게임 소재다. 그렇지만 컴퓨터 조립(PC 제작 시뮬레이터)이나 트럭 운전(유로트럭), 자동차 조립(카 메카닉 시뮬레이터)처럼 비교적 사소한 일들도 게임이 된다. < Back 25년의 심즈, 내일의 인조이 24 GG Vol. 25. 6. 10. 게임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국가의 경영과 역사 속 전쟁, 용과 엘프가 나오는 판타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의 생존은 훌륭한 게임 소재다. 그렇지만 컴퓨터 조립(PC 제작 시뮬레이터)이나 트럭 운전(유로트럭), 자동차 조립(카 메카닉 시뮬레이터)처럼 비교적 사소한 일들도 게임이 된다. 이러한 시뮬레이션 게임 가운데 '청소'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청소게임은 꽤 매니악한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필자의 지인은 '방 청소를 미뤄두고 <하우스 플리퍼>를 밤새 플레이했다'는 경험을 전했다. <하우스 플리퍼> 외에 고압세척기와 비누액으로 묵은때를 벗겨내는 개운함을 주는 쾌감을 가진 <파워 워시 시뮬레이터>나 살인현장을 청소한다는 콘셉트의 <연쇄청소부들>,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고 세차만 하는 <카 워시 시뮬레이터> 등이 유명하다. 게임의 소재가 이렇게도 무궁무진한데, 그 자체로 무궁무진한 삶은 또 얼마나 좋은 게임 소재겠나. 인간의 희노애락과 생로병사는 그 자체로 많은 공감 요소를 가진다. 비디오게임의 시대가 오기 이전부터 인간의 삶은 역할극이 됐고, 그러한 놀이로 현실에서 꿈꿀 수 없는 로망이 충족됐다. 바비 인형을 가지고 하던 놀이는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대체됐다. 그리고 이 장르의 최고봉에는 단연 심즈 시리즈가 있다. 한국의 크래프톤은 올해 <인조이>의 얼리액세스를 시작하며 심즈 시리즈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적지 않은 프로젝트들이 심즈 시리즈의 아성을 넘보려했지만, 그 아성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과연 <인조이>는 이 독창적 장르 안에서 안착할 수 있을까? 그를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라이프 시뮬레이션의 최고봉 '심즈' 시리즈 먼저 짧게나마 25년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심즈 시리즈의 역사를 돌아보려 한다. <심즈>(2000)는 <심시티>, <심어스>, <심앤트> 등을 '심'시리즈를 창작한 윌 라이트가 만들었다. 그의 스튜디오 맥시스는 '장난감'을 디지털게임으로 구현해야겠다는 철학(Toy-Based Design Philosophy)으로 90년대 게임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가했다. 언급한 게임들의 연이은 성공으로 딸 캐시 라이트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윌 라이트는 소꿉놀이를 하던 딸의 모습을 보고 <심즈>의 밑그림을 그렸다. 게임의 프로젝트명은 '인형의 집'(Dollhouse)이었다. 그간 도시나 농장 같은 큰 공간을 무대로 삼았던 맥시스는 규모를 줄여 마을 속에서 인간의 삶을 게임에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심즈>는 식욕, 수면욕, 명예욕, 그리고 성욕과 같은 인간의 기본 욕구를 파라미터화했으며, 플레이어로 하여금 전지적 시점에서 심(인간 캐릭터)들의 생을 관리하도록 설계했다. 이뿐 아니라 집을 짓는 건축 모드나 상품을 구매해서 살림살이를 발전시켜 나가는 구매 모드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고도화된 상태로 준비됐다. <심즈>를 개발하던 중, 맥시스는 공격적 M&A 전략으로 공룡이 되어가던 EA에 인수됐다. <심즈>는 2000년 EA의 유통망을 타고 전 세계에 출시됐다. <심즈>는 발매 첫해 177만 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기록했고, 공격적인 확장팩 전략으로 5년 동안 약 630만 장이 판매됐다.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물론 개발자들까지 '이런 게임을 누가 재밌어하느냐'라는 반응을 내놓았지만, 윌 라이트의 '심'은 <심즈>로 당당히 마침표를 찍었다. <심즈>는 세계 비디오게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 <심즈> <심즈 2>(2004)는 전편의 엄청난 성공 덕에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2.5D 그래픽에서 회전 가능한 3D로 개발되었으며, 부모의 생김새를 물려받거나 관계도 히스토리가 남는 등 여러 측면에서 고도화가 이루어졌다. 윌 라이트의 회고에 따르면 2004년 나온 <심즈 2>는 "플레이어가 세밀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고, 캐릭터는 욕망과 두려움을 갖게 되었"으며 "이웃들은 절박한 주부들과 바람피는 남편들로 얽힌 TV 리얼리티쇼처럼 구성"되었다. <심즈 2>에 접어들면서 모드(Mod; modification) 커뮤니티가 훨씬 더 활발해졌다. 전작 <심즈>에 모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심즈> 플레이어들은 .iff 확장자를 분석하면서 여러 비공식 툴을 배포했고, EA도 이런 UGC(유저 창작 콘텐츠)를 딱히 막지 않았다. 그 결과 The Sims Resource, SimFreaks, 7DeadlySims 같은 홈페이지가 생겨났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보다 모딩 콘텐츠를 배포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심즈>는 태생적으로 2.5D 게임이었고, 게임으로 표현할 수 있는 UGC 또한 한계가 명확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한 <심즈 2>의 모딩, UGC 커뮤니티는 더 넓고 깊어졌다. 2000년대 중반이 되면서 패키지 게임을 하면서 온라인을 참고하는 일이 점차 익숙해졌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심즈>가 출시된 2000년의 인터넷 이용률은 52%, <심즈 2>가 출시된 2004년은 63%를 기록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DSL, 케이블 등 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보급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인터넷 접속을 경험했던 것이다. * <심즈 2> 한편, <심즈 2>의 선임 게임 디자이너를 맡았던 윌 라이트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매료되고 있었다. 그는 <심즈 2> 발매 이후 <스포어>의 개발에 착수했으며, 2009년에는 맥시스에서 퇴사했다. 그는 시간이 흘러 심즈 시리즈의 25년을 기념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나는 속편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I never really liked the idea of working on sequels)라고 고백했다. 윌 라이트는 떠났지만 <심즈 3>(2009)는 계속 개발됐다. <심즈 3>는 시리즈 최초로 오픈월드를 채택했다. 모든 부지를 연결한 대담한 시도는 박수를 받았지만, 발매 초기 최적화와 버그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오브젝트와 색감과 광택이 추가되면서 커스터마이징의 옵션이 전편에 비해 상당히 많아졌다. 오픈월드와 그 영향으로 높아진 자유도는 게임의 실행성과 범용성을 낮추는 대신 독특한 재미를 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오픈월드 게임은 모두 액션이나 슈팅, RPG 장르의 게임이었다. 라이프 시뮬레이션에서는 오픈월드 게임이 개발되지 않았다. (물론 개발이 이루어진 해당 장르의 게임 자체가 적다) 심을 '래빗홀'로 빠뜨리지 않고 일상을 모두 보이는 곳에서 진행하기로 한 기획은 기술적 어려움을 딛고 결국 성공했다. 주변의 심들은 함께 늙어가고, 하나의 월드에서 함께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기술적 난도가 너무 높았던 탓에 맥시스는 <심즈 4>(2014)에서 오픈월드를 포기했다. 오픈월드와 자유도, 커스터마이징 삼박자를 두루 갖추었기 때문에 몇몇 매니아들은 아직도 <심즈 3>를 플레이한다. * <심즈 3> <심즈 4>는 오픈월드를 포기한 대신 편의성과 접근성을 대폭 끌어올렸다. 월드가 작아지면서 스토리모드나 차량 등이 삭제됐지만, 커뮤니티에 자신의 플레이를 업로드하기 위한 여러 기능들이 추가됐다. '인칭 시점'과 '갤러리 공유' 등이 업데이트됐으며, 밥을 먹으면서 대화하는 것과 같은 사소한 기능들이 대폭 추가됐다. 동작과 감정 표현 또한 부드러워졌다. 다만 <심즈 4>는 가장 논쟁적인 심즈다. 오픈월드의 삭제에도 최적화 문제가 제기됐고, 게임이 원래는 온라인게임으로 개발되었으나 급하게 스탠드 얼론으로 출시됐다는 폭로까지 나왔다. 4편에 들어서 EA의 DLC 정책이 문제가 되었는데, 2025년 기준 <심즈 4>에는 90개 넘는 DLC가 출시되었다. 코어 이용자는 100만 원 이상을 사용해야 게임의 모든 월드, 직업, 테마, 아이템 등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차세대 심즈로 '프로젝트 르네'가 존재하지만, 발표가 늦어지면서 <심즈 4>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라이브게임의 형태로 계속 서비스되고 있다. * <심즈 4> 쉽지 않았던 심즈 뛰어넘기 25년의 역사 동안 심즈 시리즈에 도전장을 내민 프로젝트는 적지 않았다. <세컨드 라이프>(2003)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무기로 삼았고 한때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세컨드 라이프>는 2020년대 메타버스 열풍과 함께 재발굴되었으나 결론적으로는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자리를 내줬다. 독일에서 만든 <싱글즈>(2003)는 '성인용 심즈'로 주목을 받았으나 2005년 2편 이후 발매가 멈추었다. 연애와 섹스에 거의 모든 기능을 맞추면서 큰 반향을 이끌지 못했다. 인터페이스와 AI의 만듦새 또한 <심즈>보다 떨어졌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모바일게임으로 출발한 <버츄얼 패밀리>(2009)는 PC 환경을 갖추지 않은 게이머에게 어느 정도 반향을 끌었다. 간략화된 시뮬레이션 기능으로 말 그대로 '가상 가족'의 육성과 성장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은 PC 심즈 시리즈와 비교하기에는 기능적으로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18년 EA가 <심즈 모바일>을 내놓으면서 이쪽 시장에서도 양분화가 이루어졌다. * <세컨드 라이프> 파라독스의 '라이프 바이 유'는 가장 유력한 대항마였으나 출시를 2주 앞둔 2024년 6월 돌연 출시가 취소됐다. 해당 발표 이후 개발사는 폐쇄됐고 "게임이 순조롭게 개발되고 있었다"라는 전 직원의 폭로가 나오면서 파라독스 측의 일방적인 개발 취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게임이 두 차례 연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추가 연기로는 ROI를 맞출 수 없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추측이 나온다. 그밖에 '알터라이프'와 '파라라이브'가 현재 개발 중이나 언제 출시될지는 알 수 없다. 개발진의 규모가 EA-맥시스와는 비교할 수 없이 기 때문에 심즈 시리즈와 비교할 수 있는 라이프 시뮬레이션이 나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 여담이지만, 심즈 시리즈를 즐기는 주요한 이유는 ‘권능감’이었다. 수영장에 사다리를 치워버리거나, 불타는 방 안에 심을 가두어버리는 괴상한 플레이는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도전자들은 그러한 컬트적인 인기에 도달하지 못했다. * <라이프 바이 유> 인조이의 도전장 크래프톤의 <인조이>는 지난 3월 얼리엑세스를 시작했고 출시 1주차에 100만 장의 판매량을 돌파하며 그간의 심즈 경쟁자 중에서는 가장 훌륭한 초기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방송 플랫폼 SOOP(옛 아프리카)과 치지직에서 게임 카테고리 시청자 수 1위, 트위치에서는 3위를 기록하며 '보는 게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인조이> 창작물 공유 플랫폼 '캔버스'(CANVAS)는 이용자 수 120만 명을 돌파했다. 기사를 탈고 중인 현재(5월 29일) <인조이>에는 1,678명의 일 피크 이용자가 접속한 것으로 확인된다. <심즈 3>에는 1,487명, <심즈 4>에는 32,035명의 피크 이용자를 기록했다. 초반에 보여준 파괴력을 라이브까지 안정적으로 잇고 있지는 못하는 인상이다. 개발진은 흐름을 되살리기 위해서 이달(2025년 5월) 말 공식 모드 개발 툴을 업데이트하겠다고 밝혔다. 모드킷에는 어셋 다운로드 기능, 마야 블렌더 플러그인, 언리얼엔진 5 기반 모드 프로젝트 생성, 커스포지 연동 등이 지원된다. 모딩을 통해 자신만의 게임을 즐기는 해당 장르 커뮤니티의 동향에 주목하는 행보로 보인다. 특정 게임을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필자는 다만 심즈 시리즈라는 거울을 통해 <인조이>의 가능성과 한계를 비춰보고자 한다 * <인조이> 인조이의 미래는 심즈에 있다 ⓐ 심즈: 사회에 대한 메시지 사실 25년 전 <심즈>로부터 기술적으로 배울 점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윌 라이트가 추구했던 작가주의는 <인조이> 개발진이 참고할 만하다. <심즈>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소비문화를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게임이었다. 게임 속 구매 모드에서는 냉장고와 TV는 행복을 보장하는 아이템처럼 묘사됐지만, 금방 고장나리기 마련이고, 심은 그것을 고치려다가 죽어버린다. 도둑이 들어서 물건을 훔쳐 가고, 게임은 플레이어를 놀리는 듯한 문구를 노출했다. <인조이>에는 그런 날카로움이 거의 배제된 인상이다. 상호작용 옵션은 많지만 '사업 파트너'나 '천생연분'과 같은 미리 마련된 틀 안에 갇혀있으며, 시스템은 조이가 사고를 당하거나 좋은 일이 생길 때나 그저 다독일 뿐, 플레이어를 자극하지 않는다. 게임 속 구매 가능한 물건들을 모아놓은 카탈로그는 거의 비어 있으며, 얼리엑세스 버전부터 가전기업의 PPL 상품이 들어있다. <인조이>는 언리얼엔진 5의 기능성을 선보이는 훌륭한 쇼룸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서 창작자의 메시지를 찾기는 어려웠다. AI 기반 자율 시뮬레이션 속에 인간 사회의 아이러니나 직업의 애환 같은 것은 이 게임에서 거의 없었다. 굳이 비판적인 메시지가 아니어도 좋다. 게임의 김형준 디렉터는 <인조이>로 하여금 "사람들이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가족의 소중함에 대한 메시지는 게임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돋보일 수 있을까? ⓑ 심즈 2: 모딩으로 완성되는 게임 <심즈 2>의 진정한 가치는 모딩에 있었다. 유저들은 새로운 옷과 가구, 맵뿐 아니라 캐릭터의 유전 구조와 사회적 관계까지 손을 댔다. 개중에는 일반적인 윤리의 선을 넘는 튜닝도 존재했지만, 이는 곧 게임이 창작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스팀에 착한 게임만 있는 것은 아니듯 말이다) <인조이>도 '툴킷'이자 '플랫폼'을 지향해야 한다. 다행히 개발진은 그에 대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캔버스(CANVAS) 플랫폼과 5월 말 예정된 공식 모드킷 업데이트로 <인조이>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다만 모딩이 성공한 모든 게임이 그러하였듯, 자유로운 창작이 그 생태계를 지탱할 것이다. <심즈 4>에서는 범죄자 모드, 빌런 모드뿐 아니라 게임 속 시스템을 완전히 변경하는 모드들이 마련되어 있다. 아름다운 조이(인조이의 캐릭터)나 집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캔버스에서 활동하고, <인조이> 가능성의 극한을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별도의 창작마당에서 논다면 <인조이>는 활력을 얻을 수 있다. ⓒ 심즈 3: 양날의 검, 오픈월드 <심즈 3>의 오픈월드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다. 심들이 동네 곳곳을 로딩 없이 오가고, 이웃들도 자율적으로 삶을 꾸려갔다. 한 세계 안에서 모두가 동시에 살아가는 구조는 유례없는 몰입감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버그와 성능 저하라는 대가를 치렀다. <인조이>는 언리얼엔진 5 오픈월드를 채택했다. 높은 권장사양을 요구하고 있고, <심즈 3> 때와 유사한 최적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EA가 그러했듯이 크래프톤 또한 이 장벽을 넘어서야 게임이 오래 가는 플랫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게임을 즐기는 타겟층의 하드웨어 조건을 고려한다면, 권장사양의 다운그레이드는 반드시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심즈 4: DLC는 얼마나 많아야 할까? <심즈 4>는 라이브 게임으로 전환되면서 콘텐츠 확장에 집중했다. 문제는 그 확장의 방향이었다. DLC는 90종이 넘고, 모든 콘텐츠를 체험하려면 100만 원이 넘는 돈이 들게 됐다. 이는 유저들의 피로감으로 직결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심즈 4>에 들인 매몰비용이 <인조이>보다 많은 원인이 되었다. <인조이>는 현재 44,800원에 판매 중이고 이 기간 동안의 DLC는 무료로 제공한다. <심즈 4>가 부분 유료화 모델을 채택했고, 잠재적인 경쟁자인 후속작 프로젝트 르네 역시 부분 유료화 모델이 유력하게 점쳐지는 상황이므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크래프톤의 고민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BM에 대한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DLC의 수와 가격보다 그것을 유저들에게 설득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콘텐츠를 분절해 파는 구조는 유저의 피로도를 높일 수 있다. 그렇다고 유료 DLC가 전혀 없는 모델을 추구하면 만든 이들에게 상업적 효능감을 줄 수 없을 것이다. DLC 전략 또한 까다로운 커뮤니티와 ‘스파링’ 과정 끝에 제출되어야 할 것이다. DLC 전략은 콘텐츠 분할이 아닌, 커뮤니티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 크래프톤이 <인조이>를 일회성 화제작이 아닌, 살아 있는 플랫폼으로 키우고자 한다면, “무엇을 얼마나 팔 것인가”보다 “누구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 97개에 달하는 <심즈 4>의 추가 콘텐츠 마치며 삶은 게임이 될 수 있을까? ― <심즈>는 이 질문을 25년간 반복해 왔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인조이>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형의 집’ 안에 담긴 욕망, 기술, 플랫폼, 그리고 가족은 독특한 게이머 그룹을 형성했고 10여 년 전에 나온 <심즈 4>는 아직도 파급력있는 라이브게임으로 군림하고 있다. 도전자의 위치에 선 <인조이>는 <심즈>가 이룩한 것과 같은 역사를 그릴 수 있을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게임을 산책하기(장려상)
지난 5월 2일 민형배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가상공간에서의 가상인물을 통한 음란행위”를 성범죄로 규정하고 있다1). 물론 민형배 의원의 개정안은 현실의 성폭행 범주를 고스란히 옮겨와 메타버스 속 성범죄를 온전히 규정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이 개정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메타버스라는 아바타를 신체의 확장으로 바라보며, 아바타의 경험이 실제 신체의 체험과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Back 게임을 산책하기(장려상) 07 GG Vol. 22. 8. 10. 지난 5월 2일 민형배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가상공간에서의 가상인물을 통한 음란행위”를 성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1) . 물론 민형배 의원의 개정안은 현실의 성폭행 범주를 고스란히 옮겨와 메타버스 속 성범죄를 온전히 규정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이 개정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메타버스라는 아바타를 신체의 확장으로 바라보며, 아바타의 경험이 실제 신체의 체험과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등의 용어로 불리는 가상공간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은 게임이다. 디지털 게임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이동 및 탐험을 경험하는 것이다. 아타리의 게임 〈어드벤처〉(1979)의 이스터에그를 찾아내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마지막 미션이 시사하듯, 게임이라는 경험의 본질은 공간을 탐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경험은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메타버스 성범죄의 사례는 게임에서의 경험이 실제의 경험과 동등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MMORPG에서 타 유저와의 의사소통, 오픈월드 게임에서 마주하는 NPC와의 랜덤 인카운터 등은, 도시를 돌아다니는 현대인이 마주하는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발터 벤야민은 보들레르나 에드거 앨런 포 등 19세기 문필가의 작품을 분석하며, 대도시 군중의 모티프가 반복됨을 지적한다. 그는 이들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대도시 군중 속을 걷는 거리 산책자의 충격체험이 신문, 아케이드의 간판, 대중교통 등이 초래하는 대도시의 촉각적 경험과 충격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분석한다 2) . 이는 변화하는 현대 파리의 모습을 보고 기억하는 산책자의 행위에 주목했던 보들레르의 관점이, 대도시 군중과 어깨를 부딪히며 나아갈 수밖에 없는 대도시의 산책자의 상황에 이르러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변화는 벤야민이 살아가던 1920~30년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동시에 대도시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가속화되고 있다. 어쩌면 벤야민이 말하던 충격체험은 대도시의 속도 속에서 삭제된, 폴 비릴리오의 말을 빌리자면 “속도에 의한 공간의 절멸”로 인해 사라지고 있는 경험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한 의미에서 디지털 게임이 구현하는 가상공간의 경험은, 삭제된 경험을 되살리는 것일 수 있다. 가상공간에서 서로의 아바타가 맞닿는 과정이 플레이어의 신체에 물리적인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디지털 게임은 인간에게 실제 살아가는 공간과 유사한 현실성의 공간을 제공한다. 이러한 디지털 공간의 현실성은 가상공간이 더 이상 실재가 아닌 가상이라 치부되며 실제의 열화된 버전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현실의 공간과 동등한 선상에 놓고 논의해야 할 필요성을 요구하게 된다 3) . 이러한 인식 속에서 게임이 제공하는 공간 경험은 신체가 느끼는 ‘정동적 놀람’의 상태를 동반한다. 게이머들이 〈레드 데드 리뎀션 2〉(2018) 속 아서 모건의 이야기에 동화되어 감동을 느끼거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2020) 속 엘리의 폭력적 복수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그러한 ‘정동적 놀람’ 상태의 대표적 예시다. 공간 경험에 기반한 정동적 놀람의 상태는 앞서 언급한 산책자의 충격경험과 유사하다. 앞서 언급한 예시를 이어가자면, 아서 모건의 여정을 함께한 플레이어의 경험은 광활한 게임 속 영토를 탐험하는 경험과 함께한다. 선형적인 구성의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엘리의 여정을 함께하더라도, 그것은 게임 속 스테이지를 옮겨 다니던 이동의 경험이다. 다시 말해, 플레이어는 게임 속 플레이어블 캐릭터 혹은 아바타의 가상 신체를 통해 게임 속 공간을 돌아다니는 산책자가 된다. 그러한 산책자로서의 경험이 강조된 게임을 꼽자면 코지마 히데오의 〈데스 스트랜딩〉(2019)이 있겠다. 〈데스 스트랜딩〉은, 물론 전투가 존재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동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다.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샘은 배송기사고, 멸망 이후의 미국 대륙을 횡단하며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이 쉘터에서 저 쉘터로 배송한다. 플레이어가 플레이하는 콘텐츠는 그러한 배송 자체다. 때문에 〈데스 스트랜딩〉의 핵심은 ‘배송하는 감각’을 재현하는 것에 있다. 디지털 게임이 게임기기의 입력장치를 통해 캐릭터의 움직임을 모방한다고 할 때, 〈데스 스트랜딩〉의 조작방식은 무거운 화물을 등에 짊어지고 움직이는 주인공 샘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체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 짊어진 화물의 중량에 따라 샘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그때마다 게임패드의 트리거 버튼을 알맞은 방향으로 눌러 샘의 무게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만약 무게중심을 잃은 샘이 넘어지게 된다면 짊어진 화물들이 쏟아지게 되고, 화물들을 다시 주워야 하는 것은 물론 화물이 데미지를 입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샘이 황량한 게임 속 세상을 걸어 다닐 때뿐 아니라, 바이크 등 탈것에 탑승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플레이어는 샘을 통해 게임 속 세계를 산책하며 그곳을 경험한다. 게임패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물리적 경험은 게임이 지닌 가상공간 속에서의 체험을 강조한다. 물류를 배송하며 겪는 BT(Beached Things, 좌초된 것들)나 택배도둑 뮬(Mule)과의 전투,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후에 따른 어려움 등은, 비록 벤야민이 정의한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일지라도, 일종의 충격체험을 플레이어에게 선사한다. 혹은 산책을 의도치 않은 게임 속에서 산책을 시도함으로써, 게임에 내재된 규칙을 전용하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2021년 배틀로얄 게임 〈배틀그라운드〉(2017) 내에서 진행된 〈에란겔: 다크투어〉 퍼포먼스가 대표적인 예시다. 퍼포먼스는 온라인으로 접속한 다른 참가자들을 이끄는 리드 퍼포먼서로 게임평론가 이경혁, 디지털 스토리텔링 연구자 권보연, 기계비평가 이영준을 섭외하여 각기 게임을 잘 아는 원주민, 게임을 잘 알지만 다른 게임세계에서 이주한 이주민, 게임 자체를 모르고 완전히 낯설게 초대된 이방인 역할을 수행하게끔 하고, 게임방송 BJ를 섭외하여 퍼포먼스를 중계하였다. 〈배틀그라운드〉 속에서 리드 퍼포먼서 및 이들을 돕는 조교 역할을 수행하는 퍼포머들이 참가자들과 함께 게임 내의 지역인 ‘에란겔’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한다는 컨셉으로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에란겔: 다크투어〉의 메뉴얼은 "단 한 명의 생존자가 되기 위해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대신, "단지 총성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이 게임 공간 속에 의미가 풍부한 각종 오브젝트와 건물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 4) 이라며, 마치 몰락한 구 소비에트 연방의 어느 변두리를 연상케 하는 게임의 무대가 되는 가상공간 에란겔 섬에 대한 다크투어리즘을 제안한다. 참가자들은 플레이어가 아닌 관광객으로서 게임에 접속하고, 세 명의 리드 퍼포먼서가 진행하는 게임 내 강연의 청중으로, 다른 퍼포먼서 및 참가자들과 함께 게임의 가상공간을 산책하는 산책자로, 마지막에는 한자리에 모여 게임이 구현하는 동작의 한계 내에서 집단적인 의식의 춤을 추는 퍼포먼서로 참여하게 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에란겔: 다크투어〉는 디지털 게임의 가상공간을 산책하고 관광함으로써 새로운 방식으로 그곳을 경험할 것을 제안한다. 세 리드 퍼포먼서의 강연은 기본적으로 디지털 게임이 그려내는 가상세계가 현실과 동떨어진 일종의 정서적 피난처나 단순한 유희공간이 아닌, 그것이 드러내는 이미지, 텍스트, 사운드, 규칙, 상호작용 등의 요소들을 통해 현실과 관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령, 〈배틀그라운드〉가 묘사하는 가상공간이 지금의 모습이 되기 전에는 어떤 인류학적 장소였을 수 있다는 암시를 찾아내거나, 각기 다른 규칙이 존재하는 다른 가상세계 혹은 현실세계의 이야기를 에란겔의 상황과 중첩시키는 등의 방식을 택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게임을 전용하는 것은 보들레르가 말했던 산책자의 기억술을 대도시가 아닌 디지털 게임이라는 대안적 공간 안에서 소생시킨다. 또는 정말로 산책과 결합된 게임의 형태를 떠올려볼 수도 있다. 나이언틱이 개발한 〈포켓몬 고〉(2016)를 실행하면 구글맵(Google Map)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지도가 등장한다. 현실의 지리학을 고스란히 가져온 지도 위에 포켓스탑과 포켓몬 체육관이 표시되어 있고, 플레이어의 실제 위치는 스마트폰의 GPS를 통해 게임 내 캐릭터의 위치와 동기화된다. 〈포켓몬고〉의 지도는 아무런 지명, 건물명, 교통수단 정거장 등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단지 텅 빈 지도 위에 공공시설, 역사적 장소, 공공성을 띠는 조형물 등이 포켓스탑의 형태로 등장할 뿐이다. 그것의 생김새마저 포켓스탑을 터치해야 등장하는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다. 〈포켓몬 고〉의 플레이어는 평소라면 지나쳤을 장소에 게임을 위해 머무르게 된다. 이를 통해 익숙한 산책로, 등굣길, 출퇴근길은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게임의 공간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접속 가능하지만, 게임의 가상공간 자체가 현실의 지리학을 따르는 덕분에 게임의 가상공간과 현실의 공간 사이의 위계가 무력화된다. 그럼으로써 〈포켓몬 고〉의 유저들은 새로운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한다. 희귀한 몬스터를 사냥하고 포획할 수 있는 레이드나 인게임 재화를 얻기 위해 필수적인 체육관 점령 등 다수의 유저가 참여해야 하는 콘텐츠는 지역 별로 〈포켓몬 고〉 커뮤니티를 형성하게끔 유도한다. 굳이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레이드나 체육관 점령 등을 위해 〈포켓몬 고〉를 켜고 산책하다 보면 다른 유저를 마주칠 수 있기도 하다. 그러한 상황을 발생시키는 것 자체가 〈포켓몬 고〉의 콘텐츠인 셈이다. 게임이 만들어내는 가상공간이 점차 현실의 공간과 위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되는, 소위 메타버스의 시대라 할 수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포켓몬 고〉의 사례는 그것을 물리적으로 입증하는 하나의 사례다. 더 나아가 정여름 작가의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2020)처럼 실제 공간 위에 덧씌워진 가상이라는 〈포켓몬 고〉의 컨셉을 영화와 미술 작업에 활용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다시 처음 언급한 “성폭력 특례법 일부개정안” 이야기로 돌아가자. 게임의 가상공간 안에서 산책자로서 활동할 수 있다면, 그것에 따른 부작용 내지는 현실에 존재하는 차별 또한 가상공간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산책자, 그러니까 플라뇌르(flâneur)는 프랑스어 남성명사다. 이는 보들레르나 벤야민이 플라뇌르를 개념화하던 시기의 산책자는 주로 남성이었으며, 여성은 남성의 시선이 닿는 사물적 대상이거나 소득을 얻기 위해 길 위를 서성이는 성노동자였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로런 엘킨이 제시한 "도시를 걷는 여자들", 즉 여성명사 플라뇌즈(Flaneuse)는 그러한 개념어의 전복이다. “성폭력 특례법 일부개정안”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작금의 상황은 게임과 메타버스 내에서도 플라뇌르는 여전히 가능하지만 플라뇌즈는 아직 불가능함을 시사한다. 게임에서의 공간 경험이 현실에서의 경험과 점점 분간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아니, 굳이 분간할 필요 없이 제2의 자연으로 가상공간이 존재하는 상황에 가깝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게임 내 성폭력, 각종 차별과 혐오발언은 자유로운 산책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그러므로 게임 속 가상공간이 제공하는 경험의 질을 규명하는 것은 그곳의 성격을 직시함으로써, 이곳저곳에 산재한 문제를 해소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의 경험이 모두에게 평등한 것이 될 때, 모두가 동등하게 게임 속을 산책할 수 있을 때, 가상공간의 유토피아라는 허황된 꿈에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다. 1) 국민참여입법센터 국회입법현황, https://opinion.lawmaking.go.kr/gcom/nsmLmSts/out/2115468/detailRP (2022.06.27 접속) 2) 발터 벤야민,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발터 벤야민 선집 4』, 최성만(역), 서울: 도서출판 길, 2010. 3) 오현주, 「디지털 게임 공간의 체험적 특성」, 홍익대학교 대학원 영상학과 박사논문, 2016. 4) <에란겔: 다크투어>에 관한 스테이트먼트, 매뉴얼 등은 다음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notion.so/03-20-21-14-00-15-00-2-4652d0e6c472438595a27e889dd55b7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서울을 걷는 작은 이유, 피크민 블룸 서울 투어
이 사람들의 정체는 바로 <피크민 블룸> 플레이어들이었다. 이들이 쓰고 있단 머리에 쓴 모자는 닌텐도의 유명 캐릭터인 ‘피크민’을 본뜬 것으로, ‘피크민 블룸 투어 2025: 서울’ 행사 참여자들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도심을 누비던 그들은, 사실 같은 게임 속에서 도시를 탐험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 Back 서울을 걷는 작은 이유, 피크민 블룸 서울 투어 24 GG Vol. 25. 6. 10. 들어가며 2025년 가정의 달인 5월 첫 주말, 서울 도심에 수상한 집단이 출현했다. 이들은 머리 위에 두 개의 큰 눈과 잎사귀 또는 꽃 모양의 장식이 달린 모자를 쓰고, 충무로에서 창덕궁까지의 거리를 누비며 서울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선가는 노란 잎사귀 모자를 쓴 사람이 광장시장에서 호떡을 집어 들고, 다른 한 편에서는 빨간 꽃 모자를 쓴 사람이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종묘 돌담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 파란 봉우리 모자를 쓴 사람들도 보였다. 이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도 않았다. 독특한 생김새의 모자를 제외하면 서로를 묶는 뚜렷한 공통점은 없어 보였다. 이 사람들의 정체는 바로 <피크민 블룸> 플레이어들이었다. 이들이 쓰고 있단 머리에 쓴 모자는 닌텐도의 유명 캐릭터인 ‘피크민’을 본뜬 것으로, ‘피크민 블룸 투어 2025: 서울’ 행사 참여자들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도심을 누비던 그들은, 사실 같은 게임 속에서 도시를 탐험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 피크민 블룸 투어 이벤트 포스터 ‘피크민 블룸 투어(Pikmin Bloom Tour)’는 AR 모바일 게임 <피크민 블룸>의 현장 이벤트이다. 이 행사는 평균 하루에서 이틀 동안 진행되며, 개최되는 지역의 특정 장소들을 방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별 진행이기 때문에 소요 시간은 참여자들에 따라 천차 만별이고, 동선 역시 개인의 재량에 달려 있다. 참여자들에게는 피크민 모자와 행사 지도, 특별 꽃 정수와 황금모종 등이 보상으로 지급된다. 행사는 무료이지만 인앱을 통한 추첨에 당첨되어야지만 참여 가능하다. 피크민 블룸 투어의 간략한 역사 지금까지 피크민 블룸 투어는 총 5회 개최되었다. 투어는 2023년 삿포로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는 벚꽃 시즌을 맞아 사람들이 거리의 꽃과 게임을 함께 즐기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로 추측할 수 있다. 이후 2년 동안 서로 다른 일본의 3가지 지역에서 투어가 개최되었으며, 각각은 시기에 맞는 이벤트 꽃과 함께 전개되었다. 이름 일자 지역 계절 이벤트 꽃 특징 Pikmin Bloom Tour 2023: Sapporo 2023년 4월 23일 삿포로 봄 벚꽃 첫 시도 Pikmin Bloom Tour 2023: Yokosuka 2023년 7월 23일 요코스카 여름 해바라기 인앱 패키지 도입 Pikmin Bloom Tour 2023: Kyoto 2023년 11월 12일 교토 오카자키 지역 가을 빨란 패랭이꽃 Pikmin Bloom Tour 2024: Fukuoka 2024년 3월 30일-31일 후쿠오카 봄 벚꽃 2일로 연장 Pikmin Bloom Tour 2025 : Seoul 2025년 5월 3일-4일 서울, 한국 봄 하얀 히비스커스 첫 일본 밖 개최 * 피크민 블룸 투어 요약 같은 이름의 프로그램인 만큼 5가지의 행사는 모두 같은 골격을 지니고 있다. 먼저, 참여자들은 정해진 선물 증정 장소에 방문하여 피크민 모양의 선 바이저, 지도를 수령한다. 그리고 지도에 표시된 지역을 찾아가며 이벤트 꽃 정수와 피크민 모종을 획득한다. 이벤트 장소에 들어서면, 세 가지 미션이 인앱에 표시되는데, 이는 이벤트 스팟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모두 달성할 수 있다. 모든 투어는 “(1) 7천보 이상 걷기 > 선물스티커(금색) 피크민 (2) 이벤트 꽃 3000송이 심기 > 선물스티커(금색) 피크민 (3) 이벤트 스팟 7개 방문하기 > 이벤트 뱃지”라는 유사한 미션과 보상 구조를 공유한다. * 피크민 블룸 투어 이벤트와 보상 두 번째인 요코스카 투어부터 참여자들만 살 수 있는 인앱 패키지가 추가되었다. 여기에는 현장 이벤트에서 수령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의 인앱 코스튬이 포함되어 있다. 구매한다면 ‘나’와 같은 패션을 한 피크민과 함께 걸어다닐 수 있다. * 요코스카 투어에서 판매된 Mii 코스튬 가장 최근에 개최된 피크민 블룸 투어: 서울은 이전의 행사들과 비교했을 때 약간의 특이점을 지닌다. 우선, 이는 처음으로 일본을 벗어난 개최된 투어이다. 비교적 작은 볼륨인 ‘미니워크’는 일본 밖에서도 이루어진 바가 있지만, ‘투어’가 일본 밖에서 이루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또한, 제철에 맞지 않은 꽃이 이벤트 꽃으로 선정되었다. 이번 피크민 블룸 투어 서울의 이벤트 꽃은 ‘하얀 히비스커스’였는데, 히비스커스의 일반적인 개화 시기는 6월에서 10월 (7~9월이 절정)이다. 대개 ‘시즌의 맞는 꽃’을 선보이던 <피크민 블룸> 운영진이 여름 꽃인 히비스커스를 봄에 선보인 이유는,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가 이와 같은 속(genus)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행사가 일본 밖에서 개최된 만큼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에 맞추어 이벤트 꽃을 선보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 인게임 하얀 히비스커스의 모습: 무궁화와 상당히 닮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섯 차례의 투어가 진행되는 동안, ‘피크민 블룸 미니 워크(Pikmin Bloom Mini Walk)’와 ‘피크민 블룸 저니(Pikmin Bloom Journey)’라는 두 종류의 또다른 현장 이벤트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먼저, 피크민 블룸 미니 워크는 투어를 간단하게 축약해놓은 버전으로, 지역 축제나 행사와 연결된 것이 특징적이다. 따로 신청이 필요하지 않고, 특정 지역에 들어가면 바로 참여가 가능하다. 이름 일자 지역 이벤트 스팟 행사 Pikmin Bloom Mino Washi Akari Walk 2023 2023년 10월 8일-21일 미노시, 일본 7종류 미노와시아카리전 Pikmin Bloom MINI WALK: Nagano Tomyo Festival 2024년 2월 9일-12일 나가노, 일본 9종류 나가노 등불 축제 Pikmin Bloom MINI WALK: Japan-Tag Düsseldorf/NRW 2024년 6월 1일 뒤셀도르프, 독일 6종류 일본의 날 Pikmin Bloom MINI WALK: Tainan City 2024년 10월 26일-11월 10일 타이난, 대만 8종류 대만 디자인 엑스포’24 Pikmin Bloom MINI WALK: Lucca Comics & Games 2024 2024년 10월 15일 루카, 이탈리아 9종류 루카 코믹스 & 게임스 Pikmin Bloom MINI WALK: San Diego Zoo 2024년 11월 16일-29일 샌디에고, 미국 4종류 없음, San Diego Zoo Wildlife Alliance와 협업 * 피크민 블룸 미니 워크 요약 투어나 미니 워크와 달리, 피크민 블룸 저니는 유료로 진행된 이벤트이다. 이벤트 티켓은 인앱 결제를 통해 구매할 수 있었다. 2024년에 1회 개최되었으며, 현장 이벤트인 ‘피크민 블룸 저니 2024: 도쿄 돔 시티(Pikmin Bloom Journey 2024: Tokyo Dome City)’와 온라인에서 참여할 수 있는 ‘피크민 블룸 저니 2024: 어디서나 챌린지(Pikmin Bloom Journey 2024: Challenge Anywhere)’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현장 이벤트와 온라인 이벤트를 동사에 진행한 특이 사례이다. 온라인 이벤트의 경우 장소와 상관 없이 5개의 빅 플라워를 흔들고, 2000송이의 파란 장미를 심으면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특별 이벤트 피크민과 투어에서 유료로 판매하던 패키지 보상 코스튬을 제공했다. 피크민 블룸 투어 서울 피크민 블룸 투어 서울은 이벤트 지역에 입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참가 자격을 얻은 플레이어들이 행사 지역에 입장하면 다음과 같은 인앱 이벤트가 발생하는데, 이를 기점으로 ‘현재 이벤트’란에 투어 미션이 추가된다. * 피크민 블룸 투어 서울 이벤트 화면 본격적인 이벤트 참여를 위해서는 정해진 선물 수령장소에 방문해야 한다. 이번 행사의 수령 장소는 현대 아울렛 동대이었는데, 여기에서 참가자들은 피크민 모자와 이벤트 지도, 엽서를 수령할 수 있다. 건물 안에서는 특별 AR 사진과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이벤트 부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 이벤트 수령 장소 몇 기념품의 모습 제공된 모자를 착용했다면, 남은 일은 지도를 따라 곳곳을 방문하는 것이다. 이번 투어에서 탐험해야 했던 장소는 총 12곳으로, 모두는 하나의 동선 안에 배치되어 있다. 각 장소는 저마다의 공간적 특징을 갖추고 있으며, 참여자들은 이에 맞는 피크민을 획득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충무로 극장에서는 영화관 피크민을, 청계천에서는 물가 피크민을, 그리고 광장시장에서는 김치(한식) 피크민을 획득할 수 있다. * 피크민 투어 서울의 이벤트 지도. 실물 지도가 주어졌지만, 참여자들이 따라 움직일 수 있는 표지는 두 가지가 더 있었다. 첫째는 인게임 화면이다. 게임 화면에는 각 이벤트 스팟이 범위와 함께 표시되어 있었고, 참가자가 이 범위 안으로 들어가면 붉은 빛이 들어와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다른 참가자들이다. 모든 참가자들이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기에 유저들은 서로를 손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가는 길에 확신이 없을 때 같은 모자를 쓴 사람을 따라가면 다음 장소로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 투어 플레이 화면 디지털 게임은 점차 개인적인 경험으로 변모해왔다. 동네 아이들이 화면을 기웃거리며 훈수를 두던 오락실 시절에서, PC방에서 자신의 모니터에 집중하는 시기를 거쳐, 이제는 손 안의 기기로 혼자만의 화면을 들여다보면 모바일 게임의 시대로 넘어왔다. 오늘날 디지털 게임은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개인적인 취미가 되었다. 피크민 블룸 투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만의 동선을 정하고, 시간을 알아서 조절하며, 개인의 속도에 맞추어 플레이한다. 사람마다 관심 있는 장소도 다르고, 걷는 속도도 다르기에 누구나 자기만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같은 투어에 참여하고 있다 해도 다른 참가자와 상호작용할 필요도 없다. 미션은 오로지 개인 화면에서 독립적으로 진행되며, 여기에는 어떤 다른 참가자들과의 상호작용도 필요로하지 않는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참가자들이 투어에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이 감각은 모자로부터 나왔는데, 색색의 피크민 모자를 쓰고 같은 도시를 누비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더라도,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작은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피크민 블룸) 투어의 장소성 장소는 단순히 지리적 위치나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다. 장소는 인간에 의해 특정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그 과정에서 고유한 가치와 분위기가 형성된 공간이다. 어떤 장소는 역사, 이야기, 상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다른 곳과는 분명히 구분되며, 이러한 의미는 사회적이면서도 개별적으로 부과된다. 따라서, 특정 장소에 대한 개인의 감각은 그가 속한 집단이나 축적한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투어’는 장소(성)을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투어는 개별 장소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프로그램화한 것으로, 참가자들에게 각 장소의 정체성, 관계, 역사를 전달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피크민 블룸 투어도 이와 같은 기능을 한다. 앱에는 특정한 이벤트 스팟들이 설정되어 있으며, 그 위치에 도착하면 장소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간략한 설명이 제공된다. 다만, 피크민 블룸 투어는 매우 느슨하다. 일반적인 투어는 엄격한 시간과 동선을 요구하곤 하지만, 피크민 블룸 투어에는 몇 가지 ‘스팟’들이 지정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참여하는 유저의 자유에 맡겨진다. 설명 역시 매우 간결한 수준으로 제공되어 있어 참가자들은 직접 장소를 둘러보며 의미를 확장해나갈 수 있다. 곧, 피크민 블룸 투어가 제공하는 것은 장소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이다. * 이벤트 스팟 화면 여기에 피크민 블룸 투어가 특별하게 덧붙이는 것은 ‘피크민’의 존재이다. 어떤 장소의 의미는 그곳을 함께 했던 사람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같은 레스토랑이라도 가족과 갔을 때와 연인과 갔을 때의 기억은 전혀 다른 것처럼, 피크민 블룸 투어 참가자들은 ‘피크민’들과 함께 걸으며 추가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더욱이, 방문한 장소에 따라서 획득한 특정 피크민들은 기억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참가자들은 이벤트 도중 장소의 특징에 맞는 피크민들을 획득하는데, 여기에는 공간의 이름이나 일자 등이 포함되어 있어 장소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반년 넘게 <피크민 블룸>을 플레이하면서, 나는 내 지도가 조금씩 확장되고 있는 걸 느꼈다. 이 게임을 통해서 나는 단순히 길을 걷는 것을 넘어,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고, 때로는 발명하듯 내 동선을 만들고 있었다. 예를 들어, 꽃을 더 심기 위해 일부터 평소에 걷지 않던 길로 돌아가기고 하고, 엽서를 얻기 위해 모르는 길목을 탐험하기도 했다. 특별한 모종을 찾기 위해 낯선 동네를 헤매고, 일종의 보물찾기처럼 숨겨진 장소를 찾아다니는 날도 많았다. 심지어, 이 원고를 쓰기 바로 전 날에도 커뮤니티 데이 배지를 얻기 위해 평소보다 먼 길을 돌아 집에 왔다. 라이프로그 상에서 새로운 곳이 푸르게 빛나는 것이 뿌듯함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 피크민 블룸 라이프로그 화면. 자주 간 곳은 초록빛이, 꽃을 심은 자리에는 꽃이 표시 되어있다. 내게 이번 피크민 블룸 투어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었다. 서울 도심을 배경으로 제공된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나는 익숙한 도시를 다시 탐험했다. 서울 거주자로서 대부분의 장소가 낯설지는 않았지만, 아예 모르는 골목을 찾아 새로운 엽서를 발견하는 일은 여전히 즐거웠다. 단순히 걸음을 기록하고, 가상의 식물을 심고, 작은 캐릭터를 모으는 행위가 어떻게 사람들을 거리로 이끌 수 있는 걸까? <피크민 블룸>에서 정확히 무엇이 ‘보상’이 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 작은 피크민들은 분명 사람들에게 동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 동력이 계속하여 우리의 삶과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길 바란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연우 함께하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관계성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으로 다함께 즐거워지길 바랍니다.
- [editor's View] 먹지 못하는 매체가 먹는다는 본능을 다루는 방식에 관하여
동물의 생존에는 먹는 행위가 필수적입니다. 인간도 동물이니 먹지 않으면 죽고,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먹는 일과 연관됩니다. 다만 인간의 먹거리를 먹이가 아니라 음식, 식량이라는 다름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는 인간의 먹는 행위가 단순한 생리적 욕구 해결과 생존본능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님을 드러냅니다. < Back [editor's View] 먹지 못하는 매체가 먹는다는 본능을 다루는 방식에 관하여 30 GG Vol. 26. 6. 10. 동물의 생존에는 먹는 행위가 필수적입니다. 인간도 동물이니 먹지 않으면 죽고,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먹는 일과 연관됩니다. 다만 인간의 먹거리를 먹이가 아니라 음식, 식량이라는 다름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는 인간의 먹는 행위가 단순한 생리적 욕구 해결과 생존본능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님을 드러냅니다. 재료를 구하고 요리해 음식을 만드는 행위, 혹은 이런 재료들을 축적해 식량이라는 자원으로 가공하는 행위는 때로는 사회적이고 때로는 정치적, 경제적이며, 많은 경우 문화적 맥락으로 다시 읽히는 과정입니다. GG가 디지털게임에 주목하는 이유는 게임이라는 매체가 원본으로 삼는 것이 인간과 그 인간이 이루는 사회 및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디지털게임이 다루는 음식과 요리는 인간이 오랜 역사 속에서 구축해 온 문화적 유산이 디지털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대상이고, 다른 매체와는 다른 게임만의 독특한 재현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에 녹아있는 음식과 요리를 새로운 관점에서 되새겨볼 수 있게 만드는 기제가 될 것입니다. 어느덧 30호에 이른 GG는 이러한 목적으로 게임 속에 재현된 음식과 요리라는 결과와 과정을 되짚어봅니다. 생물학적 욕구와 그 충족이라는 메커니즘부터 시작해 가공과 축적, 부패와 소진, 데코레이션과 영양공급 이상의 사회적 의미에 이르기까지 디지털게임은 음식과 요리의 많은 부분에서 과정으로서의 재현이 가질 수 있는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구현하고자 해 왔습니다. 각각의 맥락을 따라가는 여러 편의 글을 통해 우리는 이번 호가 인간의 먹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곱씹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30호 오픈과 함께 GG는 제 5회 게임비평공모전을 시작합니다. 여전히 디지털게임을 연구하거나 비평하는 사람의 수는 많지 않으며, 우리는 언제나 더 새롭고 더 많은 동료들이 함께 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련 공지사항에도 많은 관심 기울여주시고, 주변 분들에게도 공유해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포터블'과 '모바일': 주머니 속 게임의 사반세기 변천사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두 개념의 차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 다 휴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문화적 의미와 게임 경험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2005-2011년 사이 닌텐도 DS 시리즈와 소니 PSP 시리즈가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과 병행하여 존재했던 시기에 주목하여 이 두 개념을 생산적으로 구분해서 사용하자고 제안한 연구도 있다(McCrea, 2011). < Back '포터블'과 '모바일': 주머니 속 게임의 사반세기 변천사 23 GG Vol. 25. 4. 10. "지하철에서 게임기를 꺼내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 혼밥하며 스팀덱으로 대역전재판을 하고 있는 사진 약속 장소로 향하는 지하철 안. 내 가방 속에는 약 640 그램의 묵직한 스팀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약속 장소까지 평소라면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게임을 하거나 웹툰을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어제 밤 늦게까지 플레이하던 '발더스 게이트3'의 전투를 이어서 진행하고 싶었고, 그 뒤의 새로운 지역을 더 탐험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스팀덱은 가방 속에 고이 모셔진 채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서서 갈 때도, 좌석에 앉아있을 때도 도저히 스팀덱을 꺼내들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의 시선들과 "저 사람 게임에 진심인가보다"와 같은 상상 속 목소리가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망설임이 아니라, 공적 공간에서 게임을 하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 그 시선이 내포하고 있는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마트폰 게임이었다면 당연히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플레이했을텐데, 스팀덱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이 경험이 포터블과 모바일 게임의 현 모습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게임보이나 닌텐도 DS를 학교에 가져가 몰래 게임을 하던 시절부터,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즐기는 시대를 거쳐, 다시 전용 게임기로 회귀하는 듯한 현상까지. 우리의 '주머니 속 게임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가 단순히 기술적 진화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포터블 게임기기가 점점 더 크고 무거워지면서 ‘과연 이것을 휴대용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겨난다. 동시에 스마트폰이라는 완벽한 휴대성을 지닌 기기가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무거운 전용 게임기를 구매하고 들고 다닌다. '포터블'과 '모바일'은 서로 다른 게임 문화를 의미했다. 포터블과 모바일의 구분은 쉽지 않지만, 포터블을 '게임 전용 기기에서의 몰입적 경험'으로, 그리고 모바일은 '다기능 기기에서의 접근성 높은 경험'으로 정의해보자.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이 경계는 다시 흐려지고 있다. 모바일 게임은 점점 더 콘솔 게임을 닮아가고, 포터블 게임기는 다양한 기능을 흡수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주머니 속 게임 세계는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그 변화는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어떤 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을까? 다마고치, 닌텐도 DS, PSP, PS Vita에서부터 스마트폰 게임, 그리고 다시 닌텐도 스위치와 PS 포탈, 스팀덱, 로그 엘라이 등으로 이어지는 휴대용 게임 문화의 흐름은 게임과 휴대용 게임 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주제다. 이 글은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개념이 단순한 기기의 차이를 넘어 어떻게 우리의 게임 경험과 일상을 재구성해왔는지, 어떤 사회문화적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휴대용 게임의 25년 여정은 단순한 기술 발전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게임을 어떻게 경험하고, 공유하고, 삶에 통합시켜왔는지를 보여주는 사회문화사이기도 하다. '휴대용 게임'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를까? 나에게는 그것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내내 손에 늘 들려있었던 닌텐도 DS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스마트폰 속 수많은 앱 중 하나일 테고, 또 누군가에게는 닌텐도 스위치나 최근의 스팀덱 같은 기기일 것이다. 같은 '휴대용'이라는 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경험은 사뭇 다르다. 여기서 우리는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두 개념의 차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 다 휴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문화적 의미와 게임 경험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2005-2011년 사이 닌텐도 DS 시리즈와 소니 PSP 시리즈가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과 병행하여 존재했던 시기에 주목하여 이 두 개념을 생산적으로 구분해서 사용하자고 제안한 연구도 있다(McCrea, 2011). 이 연구에서 ‘포터블’은 ‘게임이라는 목적 하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모바일’은 ‘게임이 다양한 기능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정의했다. 닌텐도 DS나 PSP 같은 '포터블' 게임기는 오직 게임만을 위해 태어났다. 그 모든 부품, 버튼, 화면은 게임 플레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다. 이 기기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구매하는 것이고,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게이머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물건이 되기도 한다. 반면 아이폰이나 갤럭시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게임은 그저 수많은 기능 중 하나다. 전화, 문자, SNS, 지도, 음악, 동영상, 그리고 가끔은 게임. 모바일 게임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지하철에서 시간을 때우거나, 심심할 때 잠깐 즐기는 부수적인 활동인 경우가 많았다. 닌텐도의 '게임 앤 워치'부터 시작된 포터블 게임기의 발전은 단순히 이동성을 강조한 '시계와 게임기의 결합'이라는 초기 개념에서 시작하여, 크로스 키, 듀얼 스크린, 음성 및 터치 입력 등 다양한 상호작용 시스템으로 진화해왔다(권용만, 2015). 이러한 진화 과정은 게임 전용 기기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게임 경험을 풍부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포터블과 모바일의 차이는 게임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쳤다. 포터블 게임은 장시간의 모험, 게임 맞춤형 조작, 깊은 이야기를 담는 경향이 있다. DS의 '제노블레이드 크로니클스'나 PSP의 '몬스터 헌터'는 몇 십 시간씩 투자해야 하는 게임들이다. 반면 '앵그리버드'나 '캔디크러시' 같은 초기 모바일 게임들은 짧은 시간에 쉽게 즐길 수 있고, 언제든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설계됐다. 물리적 느낌에서도 차이가 존재했다. 포터블 게임기의 버튼은 누를 때마다 확실한 감각적 피드백을 준다. 반면 스마트폰의 화면은 직관적이지만 손가락으로 화면 일부를 가리게 되고, 내가 정확히 어디를 터치했는지 확신하기 어렵지만 이것이 게임 플레이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윤장원, 2011). 이는 인터페이스나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게임 자체에 대한 몰입과 경험의 차이이다. 여기에서 주목해볼 부분은 포터블과 모바일이 구성하는 사회적 의미의 차이다. 2007년 아이폰 등장 이전, 지하철에서 닌텐도 DS나 PSP를 꺼내든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게이머'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게임이라는 취미를 가진 사람, 혹은 게이머라는 특정 문화에 속한 사람이라는 표식 같은 것이었다. 전용 게임기를 구입하고, 게임 카트리지를 모으고, 특정 게임 시리즈의 팬덤에 참여하는 행위는 게이머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건 너무 흔한 일이 되었다. 옆자리 직장인이 '쿠키런'을 하든, 학생이 '피크민 블룸'을 하든, 그것은 그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활동 중 하나를 하고 있을 뿐이다. 201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는 '포터블'과 '모바일'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닌텐도 스위치는 TV와 연결하여 사용하는 가정용 콘솔과 손에 쥐고 플레이하는 휴대용 게임기의 경계를 허물었다. 한편, 스마트폰 게임은 그래픽과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 점점 더 전통적인 콘솔 게임에 가까워지고 있다. '원신', '명조:워더링 웨이브', '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같은 게임은 더이상 '틈새 시간'에 즐기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장시간의 몰입과 헌신을 요구한다. 스팀덱은 아예 PC 게임을 손 안에 넣어버렸다. 이러한 경계의 흐려짐은 단순한 기술적 수렴이 아니라, 게임 문화 자체의 변화를 반영한다. 기존의 게이머와 비게이머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약화되고, 다양한 플랫폼을 넘나드는 게임 경험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포터블은 게임 전용 기기가 제공하는 깊은 몰입과 전문성을, 모바일은 일상에 자연스럽게 통합된 접근성 높은 게임 경험을 제공한다고 나는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러한 구분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융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게임을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문화적 이해를 돕는 렌즈가 된다. "엄마, 닌텐도 DS 사주세요. 포켓몬 하고 싶어요.“ 아마 2000년대 초중반, 초등학생 자녀를 둔 많은 부모들은 이런 간절한 요청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저렴한 물건이 아니었다. 당시 닌텐도 DS의 가격은 약 15만원, 게임 카트리지는 3~5만원 정도였으니, 초등학생에게 사주기에는 결코 낮은 금액이 아니었다. 당시 부모들이 생각하기에 닌텐도 DS는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비싼 오락기였을 뿐이다. 이러한 '초기 진입 비용'은 포터블 게임 문화의 확산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했다. 모바일 게임이 대부분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고 인앱 구매를 통해 점진적으로 돈을 쓰게 만드는 것과 달리, 전통적인 포터블 게임은 처음부터 상당한 투자가 필요했다. 게임기를 사고, 게임 카트리지를 사고, 때로는 추가 메모리나 액세서리까지 구매해야 했다. 이런 높은 진입 장벽은 어떤 의미에서 게임 경험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했다.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기에 더 소중했고, 투자한 만큼 더 깊이 몰입했다. 부모님을 설득해 게임기를 사거나,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게임기를 구입하는 과정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하나의 성취였고, 그래서 게임기를 받아든 순간의 기쁨은 무척이나 특별했다. 초기 진입 비용이 높다는 것은 분명 단점이고 장벽이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게임 경험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포터블 게임의 가치는 단순히 초기 투자의 심리적 효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게임 자체의 디자인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경험일 것이다. 전통적인 포터블 게임들은 종종 상당한 '학습 비용(learning cost)'을 요구한다. '학습 비용'이란 게임을 능숙하게 플레이하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복잡한 전투 시스템, 다양한 무기 타입, 몬스터별 특성 등을 이해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포켓몬 시리즈'는 다양한 포켓몬의 타입, 기술, 진화 조건 등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학습은 일견 게임을 즐길 때 겪을 수 있는 어려움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실행을 통한 학습'(learning by doing) 안에서 '즐거움을 통한 학습'(learning by enjoying)이라는 독특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게임의 규칙과 시스템을 배우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성취감을 주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학습의 동기가 된다. 이러한 학습 곡선은 게임의 수명을 연장하기도 한다. 쉽게 배울 수 있는 게임은 쉽게 질린다. 반면 적절한 난이도와 학습 곡선을 가진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지속적인 도전과 성취감을 제공한다.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시리즈나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같은 게임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모바일 게임이 콘솔 게임과 유사한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무거워지는 포터블 기기, 무거워지는 모바일 게임 * 게임보이 사진 (출처: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 1989년, 처음 게임보이가 출시됐을 때의 무게는 220그램이었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작은 손에도 부담 없이 들 수 있는 무게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휴대용 게임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닌텐도 3DS는 230그램, PS Vita는 280그램, 닌텐도 스위치는 400그램, 그리고 최근의 스팀덱은 670그램에 달한다. 포터블 게임기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게이머들은 더 나은 그래픽, 더 긴 배터리 수명, 더 다양한 기능을 원했고, 제조사들은 이에 부응하기 위해 더 강력한 하드웨어를 탑재했다. 닌텐도 스위치가 HD 화면과 분리 가능한 조이콘을 갖추고, 스팀덱이 미니 PC 기능을 하면서 PC 게임을 돌릴 수 있는 성능을 갖추게 된 것은 이런 욕구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한 질문이 생긴다. "과연 이것을 '휴대용'이라 할 수 있는가?" 670그램의 스팀덱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는 없다.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닐 수는 있지만, 출퇴근길 붐비는 지하철에서 꺼내 들기는 쉽지 않다. '휴대용'의 의미가 변질된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기대가 변한 것일까? 이와 동시에, 모바일 게임도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물리적 무게가 아닌, 게임의 복잡성과 요구하는 시간과 자원의 측면에서 말이다. 최근의 모바일 게임들을 보자. '붕괴: 스타레일'은 다운로드 크기가 15GB에 육박한다. 이는 몇 년 전의 콘솔 게임 크기와 맞먹는 수준이다. '명조: 워더링 웨이브'와 같은 오픈월드 ARPG는 광활한 세계, 복잡한 전투 시스템, 깊이 있는 스토리라인을 자랑한다. 이런 게임들은 더이상 틈새 시간에 즐기는 '가벼운' 게임이 아니다. 상당한 시간과 집중력을 투자해야 하는 '무거운' 경험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런 복잡한 모바일 게임들이 종종 스마트폰보다 PC에서 플레이하기 더 적합하다는 점이다. 작은 화면, 손가락으로 가려지는 시야, 정밀한 조작의 어려움과 같은 모바일 인터페이스의 한계 때문에, 많은 유저들이 PC 버전으로 연동해 플레이한다. 심지어 개발사들도 이를 인지하고 모바일, 태블릿PC, 데스크탑 등과 연동되는 크로스 플랫폼 기능을 적극 지원한다. 모바일 게임이라는 이름을 가진 게임이 모바일이 아닌 환경에서 더 잘 작동하는 아이러니가 생긴 것이다. 함께 있어서 가능한 '로컬 플레이'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휴대용 게임 문화의 가장 특별한 측면 중 하나는 '로컬 플레이'라는 경험이었다. 여기서 로컬 플레이란 두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각자의 기기를 통해 함께 게임을 즐기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통신 플레이'라고도 불렸으며, 휴대용 게임기가 제공하는 가장 독특한 사회적 경험 중 하나였다. 이러한 로컬 플레이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물리적 근접성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사회적 경험에 있다. 온라인 플레이와 달리, 로컬 플레이는 상대방의 표정, 목소리, 반응을 직접 볼 수 있다. 게임에서 이긴 후의 환호, 패배한 후의 아쉬움, 희귀한 아이템을 얻었을 때의 놀라움 같은 감정의 교류가 게임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로컬 플레이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고속 인터넷의 보급, 스마트폰의 대중화, 그리고 온라인 서비스의 발전은 게임의 사회적 측면을 물리적 공간에서 가상 공간으로 옮겨놓았다. PS Vita는 여전히 로컬 플레이 기능을 제공했지만, 그 인기는 이전 세대만큼 크지 않았다. 모바일 게임은 주로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초점을 맞추었고, 로컬 플레이는 점차 특별한 기능이 아닌 부가적인 기능으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2017년 닌텐도 스위치의 등장은 로컬 플레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스위치는 그 디자인 자체에 로컬 멀티플레이를 핵심 요소로 포함시켰다. 분리 가능한 조이콘, 테이블 모드, 그리고 쉽게 휴대할 수 있는 크기는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마리오 카트 8 디럭스', '슈퍼 스매시브라더스 얼티밋', '스플래툰 2' 등의 게임은 온라인 플레이뿐만 아니라 로컬 플레이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로컬 플레이의 가치는 현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가상 공간에서의 연결이 일상화된 지금, 물리적 공간에서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은 오히려 더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향수나 복고 트렌드가 아닌, 인간의 근본적인 사회적 욕구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직접 느끼고, 감정을 공유하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한다. 오늘날 로컬 플레이는 온라인 플레이와 병존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아마도 두 경험 모두를 선택적으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일 것이다. 스팀덱이나 ROG Ally와 같은 최신 휴대용 PC 게임기들은 온라인 기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휴대용으로 기기를 들고 나가 같은 공간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로컬 플레이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이는 휴대용 게임 문화에서 로컬 플레이가 가진 고유한 가치가 여전히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사용자 경험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거 휴대용 게임기의 장점은 언제 어디서나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접근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무거운 포터블 기기들은 이동하면서는 아니지만, 공간의 자유로움을 제공한다. 침대에서, 소파에서, 카페에서, 화면 앞에 고정되지 않고 편안한 자세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모바일 게임 역시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다. 초기에는 '언제 어디서나 잠깐씩' 즐기는 것이 장점이었지만, 이제는 '어디서든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스마트폰의 성능이 향상되고, 모바일 게임의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변화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기존 카테고리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왜 무거운 전용 게임기를 구매하는가?'라는 질문은 남는다. 이미 강력한 게임기로써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데, 왜 추가로 스위치나 스팀덱을 사는 것일까? 이는 그저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문화적, 경험적 선택이다. 전용 게임기는 물리적 버튼이 주는 촉각적 만족감, 게임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어쩌면 '진지한‘ 게이머로서의 정체성 표현까지, 스마트폰이 제공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제공한다. 스마트폰 알림에 방해받지 않고, 손에 딱 맞는 그립감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많은 게이머들에게 중요한 가치다. 결국 무거워지는 포터블 기기와 무거워지는 모바일 게임은 ‘같은 현상의 두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게이머들이 더 깊고 풍부한 경험을 원한다는 신호이며, 게임이 단순한 오락보다 몰입형 미디어로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다. 휴대성과 편의성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더 나은 게임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것이 2025년 현재 휴대용 게임 문화의 핵심이다. 마치며 몇 주 전 오후, 나는 친구를 기다리며 조용한 카페 구석 자리에서 샌드위치와 음료를 주문하고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스팀덱을 꺼냈다. 주변을 살피고,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안전한 각도를 찾은 후에야 게임을 시작했다. 친구들과 닌텐도 DS를 들고 '동물의 숲'을 플레이하던 어린 시절의 나와, 오늘날 670그램짜리 휴대용 PC를 들고 인적 드문 카페에서 '발더스 게이트3'를 플레이하는 성인이 된 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명확한 연속성도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게임을 통해 다른 세계로 빠져들고, 그 세계를 언제 어디서나 내 손 안에 담고 다니고 싶은 욕구이다. 휴대용 게임 문화의 25년 여정을 돌아보면, 기술적 변화의 속도와 규모는 정말 놀랍다. 게임보이의 흑백 픽셀에서 스팀덱의 고화질 3D 그래픽까지, 2KB 게임 카트리지에서 100GB 이상의 다운로드 게임까지, 링크 케이블을 통한 두 명의 연결에서 전 세계 수백만 명이 동시에 접속하는 온라인 게임까지. 이러한 기술적 진화는 게임 경험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확장해왔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재구성해왔는지에 관한 문화적 변화이다. 휴대용 게임기는 단순한 기술적 장치를 넘어 우리의 시간, 공간, 사회적 관계를 재조직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시간의 측면에서, 휴대용 게임은 '틈새 시간'의 개념을 변화시켰다. 과거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5분,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30분과 같은 시간들은 그저 '죽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휴대용 게임은 이러한 시간들을 의미 있는 경험으로 채울 수 있게 해주었다. 동시에, 모바일 게임의 푸시 알림과 일일 퀘스트는 우리의 시간 인식과 일상 리듬에 게임의 논리를 침투시켰다. 공간의 측면에서, 휴대용 게임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를 흐렸다. 지하철, 카페, 공원과 같은 공적 공간은 이제 게임 경험의 배경이 되었다. 이것은 공간의 용도와 의미를 변화시키고, 때로는 공공장소에서의 적절한 행동에 대한 사회적 규범에 도전하기도 했다. 사회적 관계의 측면에서, 휴대용 게임은 새로운 형태의 교류외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로컬 멀티플레이는 직접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했고, 온라인 기능은 물리적 거리를 넘어선 연결을 가능하게 했다. 때로는 디지털 연결이 실제 대면 관계를 보완하거나 대체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두 개념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융합하며 진화하고 있다. 포터블이 의미하는 전용성과 깊이, 모바일이 상징하는 접근성과 일상성은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서로를 보완하며 휴대용 게임 문화를 형성해왔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모든 기술적, 문화적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연결, 몰입, 도전, 성취를 향한 갈망은 게임보이 시대에도, 스마트폰 시대에도, 스팀덱 시대에도 휴대용 게임 문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연결에 대한 욕구는 포켓몬 교환에서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으로, 몰입에 대한 욕구는 테트리스의 단순한 집중에서 오픈 월드 RPG의 복잡한 서사로, 도전과 성취에 대한 욕구는 하이스코어 경쟁에서 트로피와 업적 시스템으로 그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동일하다. 이러한 욕구들이 휴대용 게임 문화의 진정한 원동력이다. 기술은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더 좋은 그래픽, 더 강력한 프로세서, 더 큰 저장 공간은 결국 더 깊은 몰입, 더 풍부한 연결, 더 의미 있는 도전과 성취를 위한 도구이다. 카페에서 조심스럽게 스팀덱을 꺼낸 그 순간, 나는 여전히 공적 공간에서의 게임 행위가 갖는 미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그것은 25년간의 기술적 진화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문화적 위치가 여전히 협상 중인 상태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작은 기기 속에서 펼쳐지는 방대한 세계는 게임 경험의 본질적 가치를 증명한다. 결국 휴대용 게임의 미래는 단순한 기술적 혁신이 아닌, 인간의 근본적 욕구와 문화적 맥락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개념은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고, 우리의 일상을 재구성해나갈 것이다. 21세기 첫 25년의 여정이 그러했듯이, 앞으로의 25년도 기술적 발전과 인간적 지속성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변화의 연속일 것임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 여정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주머니 속에 작은 세계를 담아 다니며, 그 세계를 통해 게임을 즐기게 되지 않을까? 참고자료 권용만. (2015). NDS와 PSP를 중심으로 분석한 휴대용 게임기의 인터랙션 진화 윤장원. (2011). 아이폰 게임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분석 -휴대용 게임기 게임과 아이폰 게임의 사례 비교를 중심으로- Christian McCrea. (2011). We play in public: The nature and context of portable gaming systems. Tags: 모바일, 닌텐도, 포터블, UMPC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콘텐츠연구자) 이미몽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닌텐도 게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전 스팀덱을 할부로 구매하여 열심히 즐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선 문화매개를 전공했고, 현재는 일본의 리츠메이칸 대학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입니다. 게임과 웹툰 등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와 문화를 연구합니다.
- <폴아웃 3>로 보는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인간은 절멸을 앞둔 위기 속에서도 ‘프로젝트 퓨리티’가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계속 노력할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기에 서술한 문제가 실제로 발생하거나 그것이 우려될 때, 인류는 블레이드 러너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인류는 살아갈 것이고 또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결정을 신중히 하고 혹시 다른 대안이 없는지 좀 더 찾아보자는 주장은 보편타당성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우려나 악몽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의 발언을 선동으로 규정하는 선동이 더 위험한 세상 아닌가? < Back <폴아웃 3>로 보는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14 GG Vol. 23. 10. 10. 한국의 대표적 록 밴드 자우림의 멤버인 김윤아가 트위터(지금은 엑스)에 한 마디 쓴 걸 가지고 정치권이 시비를 거는 것을 보면서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김윤아는 정확히 이렇게 썼다. “나는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블레이드러너> + 4년에 영화적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기 시작한다. 방사능 비가 그치지 않아 빛도 들지 않는 영화 속 LA의 풍경. 오늘 같은 날 지옥에 대해 생각한다.” 보시다시피,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해 앞으로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얘기한 게 아니다. 아티스트로서의 감상을 말하고 있는 것 뿐이다. 로봇개가 대통령실 경비를 선다는 뉴스를 보면서 “<사이버펑크 2077>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쓰면 안 되는 것인가 어떤 사람은 현실판 아라사카나 밀리테크와의 부적절한 커넥션을 의심할 수도 있을 거고, 그런 얘기를 소재로 한 시나리오를 쓰는 데에 이를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했다는 이유로 여당 대표에게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 사회는 어떤 기준으로도 ‘자유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 영화든 게임이든 작품은 현실의 어떤 요소로부터 영감을 받아 태어난다. 그렇기에 작품은 늘 현실의 반영이다. 동시에, 작품은 현실을 정확하게 모사할 것을 강요받지 않는다. 가령 블레이드 러너 작중의 일본적 이미지는 1980년대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고들 하던 시기 서구인들이 가졌던 어떤 불안감의 표현이다. 친일 혹은 반일 ‘선동’이 아니다. 록펠러센터가 미쓰비시에 팔리던 시대다. <블레이드 러너>를 보고 ‘서구의 미래는 일본 자본에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그러한 불안감의 원인, 즉 버블경제는 미국과 일본의 시민에게 무엇이었나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게 바람직한 태도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현실을 반영한 작품을 해석해 다시 현실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핵전쟁과 방사능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한 지구 멸망을 다룬 이야기는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를 통해 볼 수 있듯, 인류 최초의 핵실험은 1950년대의 국제 정세를 지배할 정도였다. 역사학자 앨런 브링클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매카시즘 발흥의 원인 세 가지 중 하나로 소련의 핵실험 성공을 꼽았다(나머지 두 개는 중국의 공산화와 한국전쟁의 장기화이다). 그만큼 인류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던 거다. 핵과 방사능을 주제로 한 창작이 많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이치다. 이러한 작품 중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직접적으로 연상하게 되는 것도 있는데, 핵전쟁으로 멸망한 황무지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겠다는 ’프로젝트 퓨리티’를 주요 소재로 한 <폴아웃3>가 대표적이다. <폴아웃3>의 주인공은 ‘프로젝트 퓨리티’ 가동을 가업으로 하는 집안에 태어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아버지와 생이별하는 것으로 모험을 시작해 결국은 물의 방사능을 정화하는데에 성공한다. 어찌보면 간단하게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서사 구조지만 현실과 연결해보면 쉬운 얘기는 아니다. <폴아웃3>를 통해 현실을 돌아보도록 하자. 후쿠시마 원전의 현실에서 ‘프로젝트 퓨리티’는 가능할까? 도쿄전력은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가능하다는 방식의 설명을 내놓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들의 설명이 이론적으로 맞다는 것을 인증했다. 물론 이론이 실제가 될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IAEA는 장기간의 관찰에 나서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론이 실제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예외적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변수를 최대한 줄이고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확률적으로 볼 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시행횟수, 즉 시간이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방류가 최소 30년간 진행되는 것을 전제로 폐로 계획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데브리’라 불리는, 방사능 폐기물과 융합된 잔해물 제거에 여태까지 진척이 없으므로 폐로에 걸리는 기간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 언론은 70년 이상, 나아가서는 다음 세기까지도 방류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렇게 시간이 길어지면 예외적 상황이 발생할 절대적 가능성도 늘어날 것이다. 여기서 예외적 상황이란 ALPS의 고장 또는 외적 요인에 의한 파괴 등이다. 원전도 처음에 설계할 때에는 다양한 시나리오에서 안전성을 유지하는 걸 전제로 한다. 미사일에 직격을 당해도 멀쩡하다는 식의 설명이 대표적이다. 이론적으로는 후쿠시마 원전도 완벽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진과 쓰나미, 이로 인한 비상전력 차단과 냉각장치의 무력화는 ‘상정 외’의 사태였고,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원전을 만들 때에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ALPS를 중심으로 한 오염수 방류 시스템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있는가? 만일 ALPS에 문제가 생기고 상당 기간 이것이 방치될 경우 어떻게 되는가 찬성론자들은 과학을 믿으라며 ‘원자의 아이들 교단’과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화하기 전의 오염수를 마시는 것으로 안전성을 증명하겠다거나 ‘세슘 우럭’도 평생에 한 번 정도라면 먹어도 된다는 식이다. 반대론자들은 해양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방사성 물질에 영향을 받은 플랑크톤이나 소형 생물들이 먹이사슬의 상위를 차지하는 다른 생물의 방사능 농축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슘 우럭’의 존재는 이의 근거이다. 과학의 최대 장점이자 약점은 이 시점에서는 뭐라 단언할 수 없다, 즉 모른다는 점을 겸허하게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근거없는 우려라고 할지 모르지만,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근거가 없다는 게 없다는 것의 근거는 될 수 없다. 인류는 지금 있을지 모를 희생을 감수하면서 핵문명에 안주하느냐, 아니면 당장 고통스럽더라도 희생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후자는 불가능할 것 같지 않지만, 전자를 주장하는 힘이 워낙 막강하다. 사고 원전의 성공적 수습은 친원전론자 입장에선 대반격의 기틀이다. ‘사고가 나면 수습할 길이 없다’는 원전의 최대 약점을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 사람의 입장에서 봐도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배출은 승인돼야 한다. 원전에서 배출된 핵연료 등의 재처리 등을 시행하는 군사시설에서도 오염수 배출을 둘러싼 같은 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아웃3>에서 묘사된 ‘프로젝트 퓨리티’는 오히려 그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암시한다는 점을 같이 보면 어떨까 이야기에는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기 위한 비현실적 장치가 종종 등장한다. 가령 <발더스 게이트 3>의 일리시드 올챙이는 어떤가 감염병의 공포를 연상케 하는 이 장치 덕분에 주인공들은 서로의 의도나 동기를 의심하지 않고 곧바로 신뢰관계를 쌓을 수 있다. 올챙이 자체는 원 설정에 있는 것이라 해도 주인공들이 서로 신뢰를 쌓게 되는 계기가 되는 ‘올챙이 타임’은 시점이 인위적이다. 만일 이 장치가 없었다면 주인공들이 파티를 구성하기까지 그야말로 한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폴아웃> 시리즈 에서는 G.E.C.K이 그 역할을 한다. G.E.C.K은 시리즈마다 설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방사능 오염이라는 장애물을 타파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등장한다. 3편에서 ‘프로젝트 퓨리티’가 가능한 핵심 근거이다. 주인공이 볼트87에서 찾아내지 못했다면 ‘프로젝트 퓨리티’는 가능하지 않았다. 그런데 G.E.C.K은 애초에 노골적으로 비현실적 존재를 상정한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설정이 일관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거다. 게임에서와는 달리 현실에 G.E.C.K은 존재하지 않는다. Rad-away 같은 약물의 복용으로 방사능 오염을 한순간에 되돌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프로젝트 퓨리티’는 애초에 비현실적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핵은 G.E.C.K도 없고 Rad-away도 없는 우리가 함부로 이용하기에 너무나 위험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폴아웃3>를 통해 우리는 미래의 어떤 모습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세계 멸망 이후에도 어떻게든 인간은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인간은 절멸을 앞둔 위기 속에서도 ‘프로젝트 퓨리티’가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계속 노력할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기에 서술한 문제가 실제로 발생하거나 그것이 우려될 때, 인류는 블레이드 러너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인류는 살아갈 것이고 또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결정을 신중히 하고 혹시 다른 대안이 없는지 좀 더 찾아보자는 주장은 보편타당성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우려나 악몽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의 발언을 선동으로 규정하는 선동이 더 위험한 세상 아닌가? Tags: 후쿠시마, 오염수, 폴아웃3, 프로젝트퓨리티, GECK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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