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Back

<폴아웃 3>로 보는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

14

GG Vol. 

23. 10. 10.

한국의 대표적 록 밴드 자우림의 멤버인 김윤아가 트위터(지금은 엑스)에 한 마디 쓴 걸 가지고 정치권이 시비를 거는 것을 보면서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김윤아는 정확히 이렇게 썼다.


“나는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블레이드러너> + 4년에 영화적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기 시작한다. 방사능 비가 그치지 않아 빛도 들지 않는 영화 속 LA의 풍경. 오늘 같은 날 지옥에 대해 생각한다.”


보시다시피,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해 앞으로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얘기한 게 아니다. 아티스트로서의 감상을 말하고 있는 것 뿐이다. 로봇개가 대통령실 경비를 선다는 뉴스를 보면서 “<사이버펑크 2077>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쓰면 안 되는 것인가 어떤 사람은 현실판 아라사카나 밀리테크와의 부적절한 커넥션을 의심할 수도 있을 거고, 그런 얘기를 소재로 한 시나리오를 쓰는 데에 이를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했다는 이유로 여당 대표에게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 사회는 어떤 기준으로도 ‘자유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


영화든 게임이든 작품은 현실의 어떤 요소로부터 영감을 받아 태어난다. 그렇기에 작품은 늘 현실의 반영이다. 동시에, 작품은 현실을 정확하게 모사할 것을 강요받지 않는다. 가령 블레이드 러너 작중의 일본적 이미지는 1980년대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고들 하던 시기 서구인들이 가졌던 어떤 불안감의 표현이다. 친일 혹은 반일 ‘선동’이 아니다. 록펠러센터가 미쓰비시에 팔리던 시대다. <블레이드 러너>를 보고 ‘서구의 미래는 일본 자본에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그러한 불안감의 원인, 즉 버블경제는 미국과 일본의 시민에게 무엇이었나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게 바람직한 태도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현실을 반영한 작품을 해석해 다시 현실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핵전쟁과 방사능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한 지구 멸망을 다룬 이야기는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를 통해 볼 수 있듯, 인류 최초의 핵실험은 1950년대의 국제 정세를 지배할 정도였다. 역사학자 앨런 브링클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매카시즘 발흥의 원인 세 가지 중 하나로 소련의 핵실험 성공을 꼽았다(나머지 두 개는 중국의 공산화와 한국전쟁의 장기화이다). 그만큼 인류에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던 거다. 핵과 방사능을 주제로 한 창작이 많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이치다.


이러한 작품 중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직접적으로 연상하게 되는 것도 있는데, 핵전쟁으로 멸망한 황무지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겠다는 ’프로젝트 퓨리티’를 주요 소재로 한 <폴아웃3>가 대표적이다. <폴아웃3>의 주인공은 ‘프로젝트 퓨리티’ 가동을 가업으로 하는 집안에 태어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아버지와 생이별하는 것으로 모험을 시작해 결국은 물의 방사능을 정화하는데에 성공한다. 어찌보면 간단하게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서사 구조지만 현실과 연결해보면 쉬운 얘기는 아니다.





<폴아웃3>를 통해 현실을 돌아보도록 하자. 후쿠시마 원전의 현실에서 ‘프로젝트 퓨리티’는 가능할까? 도쿄전력은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가능하다는 방식의 설명을 내놓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들의 설명이 이론적으로 맞다는 것을 인증했다. 물론 이론이 실제가 될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IAEA는 장기간의 관찰에 나서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론이 실제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예외적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변수를 최대한 줄이고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확률적으로 볼 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시행횟수, 즉 시간이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방류가 최소 30년간 진행되는 것을 전제로 폐로 계획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데브리’라 불리는, 방사능 폐기물과 융합된 잔해물 제거에 여태까지 진척이 없으므로 폐로에 걸리는 기간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 언론은 70년 이상, 나아가서는 다음 세기까지도 방류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렇게 시간이 길어지면 예외적 상황이 발생할 절대적 가능성도 늘어날 것이다.


여기서 예외적 상황이란 ALPS의 고장 또는 외적 요인에 의한 파괴 등이다. 원전도 처음에 설계할 때에는 다양한 시나리오에서 안전성을 유지하는 걸 전제로 한다. 미사일에 직격을 당해도 멀쩡하다는 식의 설명이 대표적이다. 이론적으로는 후쿠시마 원전도 완벽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진과 쓰나미, 이로 인한 비상전력 차단과 냉각장치의 무력화는 ‘상정 외’의 사태였고,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원전을 만들 때에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ALPS를 중심으로 한 오염수 방류 시스템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있는가?


만일 ALPS에 문제가 생기고 상당 기간 이것이 방치될 경우 어떻게 되는가 찬성론자들은 과학을 믿으라며 ‘원자의 아이들 교단’과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화하기 전의 오염수를 마시는 것으로 안전성을 증명하겠다거나 ‘세슘 우럭’도 평생에 한 번 정도라면 먹어도 된다는 식이다. 반대론자들은 해양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방사성 물질에 영향을 받은 플랑크톤이나 소형 생물들이 먹이사슬의 상위를 차지하는 다른 생물의 방사능 농축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슘 우럭’의 존재는 이의 근거이다.


과학의 최대 장점이자 약점은 이 시점에서는 뭐라 단언할 수 없다, 즉 모른다는 점을 겸허하게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근거없는 우려라고 할지 모르지만,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근거가 없다는 게 없다는 것의 근거는 될 수 없다. 인류는 지금 있을지 모를 희생을 감수하면서 핵문명에 안주하느냐, 아니면 당장 고통스럽더라도 희생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후자는 불가능할 것 같지 않지만, 전자를 주장하는 힘이 워낙 막강하다.


사고 원전의 성공적 수습은 친원전론자 입장에선 대반격의 기틀이다. ‘사고가 나면 수습할 길이 없다’는 원전의 최대 약점을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 사람의 입장에서 봐도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배출은 승인돼야 한다. 원전에서 배출된 핵연료 등의 재처리 등을 시행하는 군사시설에서도 오염수 배출을 둘러싼 같은 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아웃3>에서 묘사된 ‘프로젝트 퓨리티’는 오히려 그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암시한다는 점을 같이 보면 어떨까 이야기에는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기 위한 비현실적 장치가 종종 등장한다. 가령 <발더스 게이트 3>의 일리시드 올챙이는 어떤가 감염병의 공포를 연상케 하는 이 장치 덕분에 주인공들은 서로의 의도나 동기를 의심하지 않고 곧바로 신뢰관계를 쌓을 수 있다. 올챙이 자체는 원 설정에 있는 것이라 해도 주인공들이 서로 신뢰를 쌓게 되는 계기가 되는 ‘올챙이 타임’은 시점이 인위적이다. 만일 이 장치가 없었다면 주인공들이 파티를 구성하기까지 그야말로 한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폴아웃> 시리즈 에서는 G.E.C.K이 그 역할을 한다. G.E.C.K은 시리즈마다 설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방사능 오염이라는 장애물을 타파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등장한다. 3편에서 ‘프로젝트 퓨리티’가 가능한 핵심 근거이다. 주인공이 볼트87에서 찾아내지 못했다면 ‘프로젝트 퓨리티’는 가능하지 않았다. 그런데 G.E.C.K은 애초에 노골적으로 비현실적 존재를 상정한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설정이 일관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거다. 게임에서와는 달리 현실에 G.E.C.K은 존재하지 않는다. Rad-away 같은 약물의 복용으로 방사능 오염을 한순간에 되돌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프로젝트 퓨리티’는 애초에 비현실적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핵은 G.E.C.K도 없고 Rad-away도 없는 우리가 함부로 이용하기에 너무나 위험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폴아웃3>를 통해 우리는 미래의 어떤 모습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세계 멸망 이후에도 어떻게든 인간은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인간은 절멸을 앞둔 위기 속에서도 ‘프로젝트 퓨리티’가 가능하든 그렇지 않든, 계속 노력할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방사능 비가 내리게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기에 서술한 문제가 실제로 발생하거나 그것이 우려될 때, 인류는 블레이드 러너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인류는 살아갈 것이고 또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의 결정을 신중히 하고 혹시 다른 대안이 없는지 좀 더 찾아보자는 주장은 보편타당성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우려나 악몽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남의 발언을 선동으로 규정하는 선동이 더 위험한 세상 아닌가?


Tags:

후쿠시마, 오염수, 폴아웃3, 프로젝트퓨리티, GECK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이경혁.jpg

(시사평론가)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이경혁.jp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