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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결제문화의 25년 변화가 드러내는 온라인게임의 특이점
디지털게임의 결제수단과 결제방식은 오늘날 게임계 이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단순히 신작 타이틀과 DLC, 시즌패스의 가격과 가성비 논란부터 시작해 최근에는 인게임 아이템의 가성비 문제, 이용자간 거래 문제, 그리고 확률형아이템 문제에 이르기까지 게임 분야의 핫 이슈 상당수는 게임의 결제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플랫폼, 산업, 결제, 정치경제학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번영과 몰락과 애도의 이야기, <33원정대>
특히 이야기의 결론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애도에 관한 고민들은 게임이 딱히 어떤 정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회적 참사와 그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애도, 그리고 그 애도를 조롱하는 것이 일련의 문화 코드가 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상당히 무겁고 곱씹어볼 만한 주제를 던진다.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떠난 이들로부터 넘겨받은 그들의 표상들은 남겨진 우리와 어떻게 관계맺으며 가야 할 것인가?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Editor's View] 트리플 A, 거대한 만큼 희미한 개념을 헤치며
안녕하세요,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입니다. GG의 호수가 오늘로 두자릿수에 진입했습니다. 격월로 나가는 호로 10회니 벌써 20개월을 지나왔다는 이야기겠지요. 매 호마다 GG는 오늘날 게임문화담론의 주요한 테마가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그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기획을 실어왔습니다. 때로는 기술에, 때로는 문화에 초점을 맞추며 지난 10호는 한국 게임문화담론을 이루는 여러 기초적인 요소들을 탐색해온 바 있습니다. < Back [Editor's View] 트리플 A, 거대한 만큼 희미한 개념을 헤치며 10 GG Vol. 23. 2. 10. 안녕하세요,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입니다. GG의 호수가 오늘로 두자릿수에 진입했습니다. 격월로 나가는 호로 10회니 벌써 20개월을 지나왔다는 이야기겠지요. 매 호마다 GG는 오늘날 게임문화담론의 주요한 테마가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그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기획을 실어왔습니다. 때로는 기술에, 때로는 문화에 초점을 맞추며 지난 10호는 한국 게임문화담론을 이루는 여러 기초적인 요소들을 탐색해온 바 있습니다. 이번 10호의 메인 테마는 트리플A 입니다. 사실상 게임문화담론을 이야기할 때 늘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마도 트리플A일 것입니다. 대규모 개발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른바 대작게임이라는 점에서 트리플A는 한편으로 영화의 블록버스터와도 닮은 꼴이고, 같은 대규모 개발을 거친 게임이라 할지라도 또 한편으로는 대형 온라인 기반 게임들과는 명백히 구분되는 무엇입니다. 그러나 이런 트리플 A는 사실 아주 명백한 규정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산업에서 바라보는 트리플A와 게이머들이 이야기하는 트리플A는 서로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영화나 다른 산업에서 이야기하는 블록버스터나 플래그십과도 같으면서 또 다릅니다. 이 오묘한 개념을 우리는 무엇이다 라고 정의하기보다는 그 존재하는 방식 자체를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북미와 중국을 위시한 해외의 필자들이 전하는 현지의 트리플 A 이야기, 국내 연구자들이 살펴본 트리플A에 관한 이야기는 오늘날 게임문화담론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트리플A라는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GG의 고민이 기사에 머물지 않고 더 많은 이야기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10호를 준비했습니다. 10호에는 새로운 연재도 선보입니다. ‘논문세미나’라는 이름의 새 연재는 게임연구 분야에서 새롭게 등장한 여러 연구논문들을 보다 알기 쉽게 조망하고자 합니다. 다양한 게임연구자들이 새로운 논문을 보다 읽기 쉬운 형태로 가공하여 소개하는 코너로, 게임연구에 관심있으신 많은 분들의 관심을 기다립니다. 이번 10호에도 GG는 게임과 게임문화에 관한 많은 고민들을 담았습니다. 팬데믹이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격리의 대안으로만 여겨졌던 디지털게임은 다시 본격적으로 일반 대중문화콘텐츠로서의 의미로 주목받기 시작할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 고민의 앞줄에서 GG가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Editor's View] 기술의 후예로서, 혹은 기술의 관찰자로서
디지털게임은 기술매체입니다. 아마도 현재까지, 그리고 근미래까지도 당분간은 가장 첨단의 기술을 활용해 인간이 삶과 사고를 그려내는 매체로는 게임이 유력할 것입니다. 아니, 달리 말하자면 첨단의 기술들을 통합적으로 활용해 만드는 앞으로의 모든 미래 매체들을 우리는 게임, 혹은 게임의 연장선상에 있는 매체로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북리뷰] 추억의 게임들을 지탱하는 기술들을 찾아서
책에서 다루는 게임들은 1989년까지이다. 1989년은 일본의 연호가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1989년이란 해는 1990년과 그 이전을 나누기도 하고 1990년대와 그 전을 나누기도 하는 적절한 분기점일수도 있겠다. 당연히 그 이후로도 게임은 개발되고 있고 여전히 개발자들은 하드웨어의 한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예전보다 하드웨어에 대한 제약이 줄어든 것은 사실지만 렌즈의 왜곡을 이용하여 화면크기에 대한 한계를 극복한 VR헤드셋들이라던가 기기한계를 정해놓고 한계 안에서 게임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인디게임들도 존재한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혼례-귀신-사랑 : <종이혼례복> 시리즈와 ‘중국식 공포’의 유행
최근 중국 내 추리 게임에는 ‘중국식 공포’가 유행하고 있다. <페이퍼돌스>(纸人; 리치컬쳐, 2019)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回门; 핀치게임즈, 2021)은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기의 오래된 저택에 들어가 결혼과 장례, 장례용 종이인형, 풍수 등 민속을 바탕으로 스릴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 Back 15 GG Vol. 23.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Activist, Writer) Xu Jia (Activist, Writer) Myeonggyo Hong Activist and writer. Works at the social movement organization Platform C on East Asian international solidarity and social movements. Author of To My Vanished Chinese Friend and A Ghost Throws a Punch at the World, and translator of Xinjiang Uyghur Dystopia and Dying for an iPhone (co-translated).
- 유쾌함으로 버무린 현실의 요소들: 투포인트 시뮬레이션 시리즈
<투 포인트 호스피털(Two Point Hospital)>, <투 포인트 캠퍼스(Two Point Campus)>, 그리고 최신작 <투 포인트 뮤지엄(Two Point Museum)>으로 이어지는 이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는 얼핏 보기에 한 편의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그래픽 같다. 과장된 캐릭터, 우스꽝스러운 효과음이 발생하며 현실에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유쾌한 소동이 게임 내내 난무한다. 웃으며 게임을 즐기다보면 문득, 서늘한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지금 뭘 한거지?” < Back 유쾌함으로 버무린 현실의 요소들: 투포인트 시뮬레이션 시리즈 27 GG Vol. 25. 12. 10. 머리가 전구로 변해버린 환자가 병원 복도를 서성인다. 의사는 그 환자를 ‘전구머리병’으로 진단하고, 진료실로 데려가 거대한 기계 장치로 머리를 갈아 끼운다. 뿅 하는 소리와 함께 전구는 사라지고 멀쩡한 머리가 나타난다. 환자는 돈을 내고, 의사는 숙련도를 쌓고, 병원의 잔고는 올라가며 명성은 올라간다. <투 포인트 호스피털(Two Point Hospital)>, <투 포인트 캠퍼스(Two Point Campus)>, 그리고 최신작 <투 포인트 뮤지엄(Two Point Museum)>으로 이어지는 이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는 얼핏 보기에 한 편의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그래픽 같다. 과장된 캐릭터, 우스꽝스러운 효과음이 발생하며 현실에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유쾌한 소동이 게임 내내 난무한다. 웃으며 게임을 즐기다보면 문득, 서늘한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지금 뭘 한거지?” 이 글은 1990년대 <테마 파크>, <테마 병원>의 정신을 계승한 투 포인트 시리즈가 어떻게 현실의 무거운 장면들을 만화적 유희로 바꾸고, 그 과정을 통해 플레이어가 부담 없이 복잡한 구조를 다뤄볼 수 있도록 만드는지를 살핀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병명과 우스꽝스러운 환자들 투 포인트 시리즈의 개발사 '투 포인트 스튜디오'(Two Point Studios)는 과거 <테마 파크>와 <테마 병원>을 만들었던 전설적인 개발진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다. 경영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2016년 <투 포인트 호스피탈>이라는 병원 경영 시뮬레이션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들이 인터뷰에서 밝힌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이 게임이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다. 개발자 마크 웨블리와 개리 카는 병원 시뮬레이션 게임의 개발을 위해, 실제 병원에 방문 조사하여 게임을 제작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게임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여러 종합 병원들을 컨택했고, 그중 한 곳이 이들에게 병원이 진짜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응답했다. 병원은 특별하게도, 수술실까지 참관할 수 있게 했다. 게임 개발자들은 처음으로 수술실 안쪽에 발을 들여보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개발자들이 병원 수술실에서 들어가게 된 사건은 "시뮬레이션 게임이 현실을 꼭 있는 그대로 재현할 필요는 없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픽 아티스트 개리는 평소 작은 상처에 난 피만 봐도 기절할 뻔 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의 그가 실제 수술대에서 벌어지는 적나라한 장면을 보고 기절의 위기를 겪었고, 수술에 방해를 받는 의사로부터 쫓겨나다시피 방출되었다. 수술실에서 쫓겨난 이 사건에서 그들은 많은 점을 깨달았고, 개발의 방향을 틀었다. "게임의 핵심은 병원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사람들이 병원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상상하는 것’을 게임으로 만드는 데 있다." 이 말은 초기 <테마 병원>부터 투 포인트 시리즈로 이어지는 개발진의 일관된 철학이 되었다. <투 포인트 호스피탈> 게임 속 병원은 피가 보이지 않는 밝은 병원이다. 환자들은 병의 고통에 신음하긴 하지만, 그 모습이 안타깝기보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비춰진다. 병원은 환자 중심에서 ‘질병 중심의 세상’으로 개편되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 정신병 '보헤미안 광시증', 환자의 머리가 냄비로 변하는 '냄비 근성', 환자가 개로 변하는 '광견병' 등 병명은 모두 가짜이며 이 병을 앓고 있는 자들의 모습은 코믹하다. 치료 과정 역시 수술용 칼 대신 만화 같은 기계장치가 등장한다. 심지어 치료에 실패해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그 죽음은 엄숙하지 않다. 환자는 유령이 되어 병원을 떠돌고, 미화원은 진공청소기로 그 유령을 빨아들여 퇴치한다. 현실을 희화화하는 장치 덕분에, 플레이어는 현실을 가지고 노는 일에 죄책감을 덜게 된다. 만약 이 게임이 실제 환자의 고통이나 마취 동안 벌어지는 수술 장면의 적나라함을 다뤘다면, 플레이어는 감정적 소모 때문에 게임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코믹함이라는 완충 장치는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윤리적 불편함을 제거했다. 플레이의 미학은 사실 재현을 포기하는 일로부터 생성된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생명을 다룬다는 부담감 없이, 오로지 효율과 최적화라는 게임의 메커니즘에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현실적, 비현실적 요소의 줄타기 투 포인트 시리즈는 비현실적인 소재가 가득하지만, 그 안에 내재한 경영 논리는 의외로 현실적이다. "말도 안 돼"라고 웃으며 시작했던 플레이어는 어느새 "병원이 망하지 않으려면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겠군"이라며 현실의 부조리를 이해 혹은 체화하는 것이다. 최신작 <투 포인트 뮤지엄>을 예로 들어보자. 이 게임에서 유물을 발굴하는 탐사 시스템은 말도 안되게 비현실적이다. 박물관에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서는 학예 연구사와 같은 유물 전문가들을 오지에 파견을 보내서 유물을 직접 구해오도록 시켜야 한다. 위험한 고대 정글에서 목숨 걸고 식인 식물을 포획해오거나 극지방으로 가 냉동 인간을 통째로 회수해 전시한다. 학예사가 아니라 인디아나 존스에 가깝다. 하지만 일단 박물관이 운영되는 논리로 들어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해설사가 도슨트 동선을 어떻게 짜야 관람객이 지갑을 열지를 고민해야하고, 일방향적인 전시보다 관객에 참여하는 체험형 전시를 곳곳에 배치해야 관람 만족도가 오를 수 있다는 점, 기부금 함은 어디에 둬야 가장 효율적일지 고민하는 과정은 소름 끼칠 정도로 현실적이다. 유물은 온통 가짜지만, 유물을 전시하고 박물관이 망하지 않도록 수익을 창출하는 운영 감각은 진짜 박물관 직원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필자는 시뮬레이션 게임의 즐거움이 모사 자체가 아니라 조작 가능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복잡한 시스템을 모형화하고, 그 시스템을 자신의 판단대로 조정해볼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투 포인트 시리즈 역시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긴장을 주면서 재미가 발생시킨다. 수술실의 피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병원의 작동 원리를 추출하여 조작 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투 포인트 시리즈는 병원, 대학, 박물관의 실사적 구현은 과감히 생략했다. 대신 예산 압박, 인력 관리, 회전율, 고객 만족도라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의 뼈대를 이식했다. 게임 속 세상은 가짜 질병과 유령이 나오는 판타지지만, 그 세상을 굴러가게 만드는 규칙은 철저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논리를 따른다. 게임이 전달하는 기묘한 리얼함이다. 투 포인트 시리즈는 현실의 인식 가능한 구조를 남기고, 감정적 부담을 제거함으로써 가장 이상적인 균형점을 찾는다. 병원 구조는 실제와 비슷하게 운영되지만, 치료 과정의 고통과 윤리는 삭제된다. 대학의 행정 구조는 실제와 유사하지만 학생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나 좌절, 불평등 같은 요소는 극도로 약화된다. 박물관의 운영 구조는 현실적이지만, 유물과 탐사는 가짜로 채워진다.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유예된 지점에서 플레이어는 현실을 조작해보는 쾌감을 온전히 경험한다. 감정을 제거한 구조적 리얼리티 투 포인트 시리즈가 현실을 ‘플레이 가능한 현실’로 번역하기 위해, 개발진이 선택하는 전략은 매우 일관적이다. 첫째, 현실에서 감정적, 윤리적 무게를 유발하는 요소를 제거한다. 둘째, 현실의 운영 구조와 절차를 추출한다. 셋째, 그것을 수치화해 조작 가능한 형태로 재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병원은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효율의 공간이 된다. 질병은 수술대가 아니라 기계와 약으로 해결 가능해지고, 환자의 고통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환자 만족도는 퍼센트로 계산되고, 병원의 평판도는 그래프가 된다. 교육의 질은 학생의 성취도 점수로 바뀌고, 박물관의 사회적 역할은 관람객의 즐거움 게이지로 환원된다. 복잡한 가치 판단과 인간적 고민은 수치와 인터랙션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 수치화는 시뮬레이션 장르의 특징이다. 플레이어는 이 세계에서 현실에서 불가능한 통제를 실현한다. 전시장에 유물을 구해 넣고, 병원을 최적화하고, 대학의 교육 구조를 원하는 대로 조정한다. 이때 오는 쾌감은 현실을 체험한다가 아니라 현실을 조작해본다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시뮬레이션 게임 특유의 조작적 쾌감이다. 이러한 시뮬레이션적인 감각 덕분에 플레이어는 감정적, 윤리적 무게를 짊어지지 않는다. 직원은 급여 인상에 불만을 가지고 회사에 불행한 감정으로 다닐 수 있으며, 이는 업장의 경영에도 영향을 준다. 급여 인상 시 직원은 다시 행복해진다. 하지만 게임은 해고에 대해 어떤 도덕적 페널티도 부과하지 않는다. 기존에 있던 직원보다 더 능력 좋고 성격 좋은 지원자가 나타나면? 플레이어는 기존 직원을 해고 버튼 하나로 쫓아내고 새 직원 고용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훈련시켜 성장시키는 비용보다, 갈아치우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게임 속 직원들은 단순한 NPC가 아니다. 그들은 저마다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행복도를 요구하며, 끊임없이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능력은 좋은데 성격이 나빠서 동료들의 사기를 꺾는 의사’와 ‘성격은 천사 같은데 진료 속도가 느려 터진 의사’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은 모든 경영주의 현실적인 고충이다. 구조는 분명 현실을 닮았지만, 윤리적 판단과 감정적 부담은 삭제된 세계다. 투 포인트 시리즈는 진짜 같지만 실제와 다른 이중적 체험을 제공한다. 비현실적 요소로 감정의 부담을 덜어내고, 현실적 요소로 구조적 리얼리티를 부여한 결과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허구인데 이상하게 현실을 이해해버린 느낌을 갖게 된다. 이 균형이 시리즈 특유의 기묘한 리얼리티를 형성한다. 투 포인트 시리즈는 현실을 비판하는가? 투 포인트 시리즈를 하다 보면 병원, 대학교, 박물관 같은 권위적인 공간이 더 이상 낯설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짜 병명, 만화 같은 기계, 유령 청소기 같은 요소들은 본래 무겁고 진지한 공간을 기묘하게 가볍게 만들어버린다. 이런 연출 덕분에 플레이어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제도나 운영 구조를 마주하면서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게임은 현실을 고발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도보다, 이런 구조들을 ‘편하게 만져볼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해 제공하는 쪽에 더 가깝다.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내리는 결정들은, 현실이었다면 윤리적 고민이 동반되는 것들이다. 능력이 떨어지는 의사를 해고하거나, 병원이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를 돌려보내거나, 운영 효율을 위해 시설을 재편하는 일들은 현실에서라면 쉽게 할 수 없는 선택들이다. 하지만 투 포인트 시리즈는 고통과 갈등의 층위를 제거하고, 대신 우스꽝스러운 장면과 유머를 심어 넣어 플레이어가 이런 결정을 죄책감 없이 다뤄볼 수 있도록 만든다. 말하자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면죄부에 가까운 조건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 면죄부는 어떤 메시지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플레이어가 구조를 조작해본다고 해서, 그것을 현실의 실제 운영과 직접적으로 연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현실 같지만 현실이 아닌 장면들을 곁에 두고, 기관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가볍게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은 플레이어를 거대한 시스템의 비판자로 만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방관자로 머물게 하지도 않는다. 대신, 복잡한 구조를 한번 만져보게 하고 이런 방식도 있다는 정도의 인식을 남긴다. 결국 투 포인트 시리즈가 제공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부담 없는 체험의 공간이다. 현실의 권위적 공간을 희화화함으로써, 플레이어가 그 구조를 안전한 거리에서 가볍게 탐색하고 조작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죄책감 없이 시스템을 이해하고 가벼운 방식으로 운영의 논리를 경험한다. 이 시리즈의 핵심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투 포인트 시리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임이 아니다. 대신 현실을 해체해 장난감으로 재조립하면서, 우리가 그 장난감을 다루는 방식에서 역으로 현실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욕망을 발견토록 한다. 어쩌면 이 시리즈가 진짜로 보여주는 것은 병원이나 대학, 박물관이 아니라, 현실을 어떻게 다루고 싶어 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그린게이밍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
2020년 이래 아이폰은 충전기 미포함으로 출시되고 있다. 애플에 따르면 이는 포장 쓰레기와 전자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서, 판매되는 아이폰 한 대당 소요되는 원자재량 및 포장용 패키지 절감을 통해 운송용 팔레트 한 대당 70% 더 많은 제품을 실을 수 있어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Calma, 2020). < Back 22 GG Vol. 25.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n Toan Ho (Game Researcher)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눈 먼 돈 사냥: 멈춰버린 메타버스와 살아있는 메타버스 진흥법
그 시절의 보도자료 중 대부분은 메타버스-NFT&P2E 소식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모든 기업이 '메타버스'를 선언했다. 게임사는 물론이고 통신사, 제조사, 심지어 은행까지 너도나도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보도자료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실체가 모호한 가상공간 그림 몇 장에 'MOU 체결', '생태계 확장', '미래 선도' 같은 단어들이 버무려져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은 메타버스를 완성할 열쇠처럼 여겨졌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게임산업, 정책, 공공기관, 메타버스, 산업진흥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기억으로 남을 이들, 기억으로 살아갈 이들
어릴 적, 할머니는 나에게 어느 겨울 숲에서 곰을 만나 사망한 친척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소 잔인한 이야기라 자세히 서술하진 않겠지만, 할머니가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했고, 나는 그의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그 역시 나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겠지만, 적어도 그는 곰에 의해 죽은 사람으로 한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나에 의해 기억되고 있다 < Back 기억으로 남을 이들, 기억으로 살아갈 이들 31 GG Vol. 26. 8. 10. 어릴 적, 할머니는 나에게 어느 겨울 숲에서 곰을 만나 사망한 친척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소 잔인한 이야기라 자세히 서술하진 않겠지만, 할머니가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했고, 나는 그의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그 역시 나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겠지만, 적어도 그는 곰에 의해 죽은 사람으로 한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나에 의해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아마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의 머릿속에도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이름이나 성격, 한 일, 좋아하는 것, 그러니까 자신의 삶이 아닌, 죽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는.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한 세기도 채 되지 않는 인간의 삶이야말로 예정된 찰나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이 땅을 거쳐갔을 무수한 인류 중, 자신의 삶으로 남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사람은 매우 극소수다. 심지어 박물관에 모셔진 고대의 예술작품을 만든 장인이 누군지조차 많은 경우 우리는 알지 못한다.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수학 공식으로, 심지어 법률로 이름을 남긴 극소수의 사람들과는 달리,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나를 알고 있는 누군가의 머릿속에만 남게 될 것이고, 이들마저 떠난다면 그 흔적조차 사라질 것이다. 삶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죽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애석하게도, 이건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이 기억의 주도권을 가진 것은 엄연히 타인이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 <에디스 핀치의 유산What Remains of Edith Finch(2017)>에서 에디스는 남편 스벤이 용과 싸우다 죽었다고 증언한다. 그녀는 세상을 떠난 많은 가족들을 그녀의 방식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그들을 죽음으로 기억한다. [그림 1] 핀치 가족의 가계도는 떠나간 이들에 대한 기억으로 채워져있다. 단지 기이하고 독특한 죽음으로만 기억될 수 있는 인생이라고 한다면 다소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하지 않은가. 작품은 핀치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기억을 들여다보면서 그들 삶의 좋았던, 행복했던 일화가 아닌, 그들의 마지막 죽음을 보여주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것은, 이 죽음들이 단지 사실로서의 죽음이 아닌, 다른 가족 구성원의 기억을 통해 구현된 죽음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동족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몇 안 되는 동물이며, 때문에 작품이 이렇게 구현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과정은 죽음 그 자체를 구현하는 것보다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다. 예컨대... “나는 바바라의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 중 에디스가 이것을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바바라 핀치가 세상에 남긴 것은 잘린 귀 한 쪽뿐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극적이고 허황된 타블로이드지의 가십 뿐이다. 이는 바바라의 엄마인 에디스가 선택한 그녀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다. 매우 고의적으로 선택된 버전의 기억. 딸이 실종된(그리고 아마 잔혹하게 살해되었을)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에디스가 하필 이 잡지의 버전을 간직하고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바바라의 죽음을 놀랍도록 모욕하는 이 버전이 역설적으로 그녀의 삶을 놀랍도록 투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포영화로 반짝 스타가 된 아역배우. 이제 그녀의 영광은 쇠락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영화와 연기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기회를 꿈꿨다. 그런 바바라가 자신의 전성기를 기억하고 열광하는 공포영화 속 괴물들과 살인마들에게 잡아먹힌다는 결말은 그런 면에서 유효하다. 영화를 사랑하고,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했던 바바라의 삶을 그녀의 죽음을 묘사하면서 구현한다. 때문에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영정 앞에 이 잡지를 둔다. 그녀가 자신의 꿈과 미래를 빼앗긴 것이 단지 불운한 비극이었으리라는 현실적인 추측에 비하면 이 잡지는 그녀가 사랑하던 것들에 대한, 또는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삶을 살았던 그녀에 대한 헌사일지 모른다. 바바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가족 구성원들의 죽음에 대한 기억은 그들의 삶을 투영한다. 몰리는 자신이 사랑하던 바다생물에 대한 꿈을 꿨고, 거스는 아빠의 재혼을 경멸했다. 이는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다양한 텍스트를 통해 드러난다. 때론 본인의 일기에서, 때론 주변인의 편지에서, 때론 사진으로도 기억이 증언되는 동안, 플레이어는 이들의 죽음을 직접 플레이한다. 그러나 플레이어는 수사관도, 탐정도 아니다. 플레이어에게 맡겨지는 몫은 이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샘이 아내 케이에게 쓴 편지가 낭독되는 동안, 플레이어는 그레고리의 죽음을 플레이한다. 아니, 이는 단지 욕조에서 벌어지는 물놀이에 불과하다. 장난감 오리, 개구리, 블록 인형 친구들과 욕조의 깊은 바닥으로 헤엄치는 즐거운 탐험으로 묘사된다. 샘이 편지에서 서술하는 것처럼, 그레고리는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발견하며 즐거워하는 천진한 아기이기 때문에. 편지에서 그레고리의 죽음에 대한 경위는 아주 짧고 우회적으로 묘사되며, 샘은 슬퍼하고 자책하는 케이를 위로하기 위해 편지를 썼을 뿐이다. 그리고 이 편지가 두 사람의 이혼 서류 마지막 장에 쓰였다는 표현은 그레고리의 죽음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까지 묘사한다. [그림 2] 각 인물의 죽음을 다루는 스테이지는 인물의 삶에 맞춰 다양한 구성으로 디자인된다. 이 기억들은 본질적으로 산 사람을 위한 것이다. 플레이어는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죽음을 경험하고, 이 한 장면으로 떠나간 사람의 삶까지 경험한다. 저택 곳곳에 깃들어있는 다양한 죽음의 기억들은 다양한 장르와 무드의 스테이지로 구현된다. 이 죽음들이 가진 공통점은 이들이 얼마나 우연찮고 기이했냐는 것보다는, 이들이 당사자의 삶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저택을 떠난 던이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어렸을 때 난 모든 집에 들어가선 안되는 문과 들여다보는 구멍이 있다고 생각했다.” 핀치 가족의 저택에는 이곳을 거쳐간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심지어 사위와 며느리인 스벤, 케이, 산제이의 흔적 역시도 작게나마 자리하고 있다. 이 저택은 가문에 속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담긴 공간으로, 세대를 거듭할수록 점차 기이한 모양으로 확장, 증축되어, 이 저택의 마지막 사람인 던과 에디스 2세의 방은 저녁이라도 먹으러 내려오려면 5분은 족히 걸릴 꼭대기에 얹혔다. 그리고 여기서 이 저택의 역사는 끝난다. 던과 에디스 2세가 저택을 떠나면서, 그리고 이 저택에서 평생을 살아온 에디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림 3] 저택에는 이 곳에 머물렀던 가족만큼이나 많은 공간이 덧붙여져있다. 에디스의 아버지인 오딘이 노르웨이에서 이곳 오르카스 섬으로 집을 가져왔다는 설정은 이야기 전개의 이점과 흥미로운 요소를 부여한다. 이 저택을 이야기의 뼈대로 삼는다면 노르웨이에서 있었던 핀치 가족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공을 들일 필요가 없이, 이 섬에서 살아온 4대가량의 구성원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설정상의 편의가 있을 것이다. 오딘이 가져왔던 집은 오딘과 함께 오르카 섬 앞바다에 가라앉고, 에디스와 스벤 부부라는 새로운 세대가 집의 벽돌 일부를 떼어와 새로운 곳에 정착해 새로운 핀치 저택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이주민 가족의 서사를 비유하는 직관적인 방식이다. 핀치 가족을 따라다닌다는 ‘저주’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도 그럴듯한 긴장감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러나 이 저택은 에디스에게서 시작해 에디스로 끝난다는 사실 역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이곳에서 자녀를 낳았고, 손주를 길렀고, 증손주를 봤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녀는 이 저택을 지키면서, 이곳에 왔다가 떠나간 많은 가족 구성원들(심지어 반려동물까지)을 기록했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각자의 방이 있다. 각자의 방에는 각자의 삶이 담겨있다. 이들이 세상을 떠나도 이 방은 비워지지 않고, 생전 모습 그대로 보존된다. 에디스는 모든 방에 떠나간 구성원들을 기리는 제단을 만들었다. 새롭게 생겨나는 구성원들에게는 비워진 방이 아닌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이 마련된다. 이 저택이 이렇게 기이한 형태를 갖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저택은 에디스의 기억이 담긴 무형의 저장소, 그러니까 그녀의 머릿속이 물리적 형태로 구현된 공간이다. 집의 공용공간들 역시 숨 막힐 정도로 많은 사진, 책, 신문, 소품들로 가득하다. 모든 크고 작은 부분들이 에디스의 삶에 쌓여온 크고 작은 기억의 파편들이다. 해변에 위치한 저택의 창 너머로는 종종 바닷속에 가라앉은 옛날 집의 흔적이 보인다. 에디스가 노르웨이에서 살아왔을 어린 시절이 담긴 집은 이제는 저 먼 바다에 그녀의 아버지와 가라앉아있고, 이제 그녀는 이 집의 새로운 주인으로서 새로운 가족과 함께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삶을 일궈야 할 책무가 있다. 그렇게 가족이 늘어났고, 방이 늘어났고, 저택이 커졌다. 죽음이 쌓였고, 무덤이 늘어났다. 그녀가 간직한 기억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저택을 떠났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온 손녀 던이 결국 한 아이를 잃고 난 다음 했던 일은, 에디스가 간직한 이 기억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새어 나오지 않도록 죽은 가족들의 방을 봉인하는 일이었다. 에디스가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기억을 꺼내오지 않도록 입을 막은 것이다. 그리고 에디스는 이렇게 봉인된 방문에 엿보기 구멍을 뚫었다. 던의 아이들에게 아주 조금씩 그녀의 기억을 얘기해 주기 위해서. “이 모든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패턴은, 우리 중 누구도 그렇게 멀리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딘이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기로 한 것은 가족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였다는데, 이곳에서도 저주는 끊이지 않았다. 가족들은 계속해서 죽음을 맞이했다. 에디스의 다섯 아이 중 한 아이만이 살아남아 어른이 되었다. 세 손주 중 한 아이만이 살아남아 어른이 되었다. 세 증손주 중 한 아이만이 살아남아 어른이 되었다. 이 ‘저주’가 가진 공통점이라고는 죽음이라는 사실 그 자체뿐이다. 시작도 끝도 알려지지 않은 이 저주의 실체는 플레이어들에겐 끝까지 명확하지 않은 요소로 남는다. 하지만 적어도 핀치 가족의 구성원들은 이 저주의 존재를 믿거나 최소한 의식했다는 것은 명확하다. 오딘은 저주를 믿었다. 아마 아내인 잉게보르와 아들 요한의 죽음을 저주와 연관지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저주를 피한다며 노르웨이를 떠났다. 다섯 남매 중 유일하게 어른이 된 샘은 죽음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군인이자 생존주의자가 되었고, 자신의 아이들도 엄격하게 훈련시켰다. 저주에 대한 이야기는 이들의 삶을 지배하고, 평생의 행동과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누군가는 저택을 떠났고, 누군가는 저주에 맞섰다. 그리고 이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보존해 온 사람이 에디스다. 부모부터 손주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가족들을 ‘저주’ 때문에 잃은 사람이다. 때문에 던이 아이들을 저주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분리하려 했던 것은 아이들을 저주로부터 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노력이었다. 바바라가 공포영화 속 괴물들에게 잡아먹혔고, 월트가 두더지인간이었고, 스벤이 용 모양 미끄럼틀을 만들다가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용과 싸우다가 죽었다고 말하는 에디스의 기억으로부터 분리하려 했던 것은, 아이들이 저주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에디스가 저주의 기억을 보존하려 했던 것은, 평생을 겪어왔던 무수한 상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가족들을 기리고, 그들이 단지 이 땅에 잠깐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인간들 중 하나가 아니라, 각각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이름과 개성과 삶을 가졌던 소중한 존재들이었음을 기념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이는 이들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살아있는 유일한 사람인 에디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공포였을 가족의 저주는, 에디스가 가족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리는 방식이었다. [그림 4] 에디스는 가족들의 삶이 깃든 모든 공간에 가족들을 기리는 제단을 마련했다. 유달리 독특했던 이 가족의 죽음들, 삶의 모습을 반영한 죽음의 양태는 에디스가 죽은 뒤 저택을 떠난 가족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에디스의 제단으로 남지 못한 가족들의 죽음은 플레이할 수 있는 스테이지가 되지 못한다. 어쩌면 평범한 죽음들이고, 어쩌면 저주에서 벗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에디스의 기억을 거친다면 이들의 죽음 역시 다른 모습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 새로운 땅으로 이주하던 오딘이 옛 집과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며 핀치 가족의 새로운 세대가 시작된 것처럼, 에디스가 세상을 떠나고 저택이 버려지며 또 다시 새로운 세대가 시작되었다. 노르웨이에서의 가족의 역사가 해변 저 멀리 가라앉은 옛 집에서 삐죽 나와있는 지붕으로 남은 것처럼, 오르카 섬 저택에서의 가족의 역사는 에디스 2세가 기록한 한 권의 일기장으로 남았다. 망각은 기억의 필연적인 최후다. 시간이 지나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기억은 점점 희석되고 희미해질 것이고, 우선순위가 점점 밀려날 것이고, 마침내 사라질 것이다. 결국 핀치 가족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왔는지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저주의 이야기 역시 잊혀질 것이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기에, 가족의 기억 역시 선택할 수 없다. 루이스가 부친의 인도계 혈통에 더욱 마음을 두었던 이유는, 핀치 가족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서였다. 이 공동체와,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기억, 이 기억을 다루는 방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결국 저택에 돌아와 비범한 죽음을 맞았으니, 저주를 피해 가지는 못한 모양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쌓인 기억은 반드시 즐거울 수만은 없다. 때로는 온갖 치부와, 지저분한 구설수와, 못난 감정의 응어리와, 죽음과, 상실이 끼어들어가기 마련이다. 때문에 누군가는 이를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벗어나려 애쓴다. 상실의 기억이 누군가에겐 저주가 되고, 저주가 누군가에겐 애도가 되고, 애도가 누군가에겐 평생을 따라다니는 공포로 남는다. 이 모든 기억을 품은 기이한 저택에는 삶을 담은 죽음이 가득하고, 평생 이 저택을 지켜온 한 여성은 묵묵히 이를 기록하며 떠나간 이들을 기린다. 이들을 단지 죽은 자가 아닌, 실제로 이 땅을 밟고 다채로운 삶을 살았던 누군가로 남기기 위해. 작품이 이들의 죽음이라는 사실이 아닌 죽음에 대한 다른 이의 기억을 보여주면서, 이들의 죽음은 사건이라기보다는 한때 살아있었고 지금은 기억되기에 충분한 누군가의 결말이 되었다. 삶으로 이름을 남길 만큼 비범하진 않았지만, 다른 이의 머릿속에 잠시라도 남아있기엔 충분한 누군가. Tags: 기억, 에디스 핀치, 왓 리메인즈 오브 에디스 핀치, 죽음의 재현, 가족 서사, 워킹 시뮬레이터, What Remains of Edith Finch, Giant Sparrow, Death in Video Games, Walking Simulator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이머) 박해인 게임에서 삶의 영감을 탐색하는 게이머. 게임의 의도와 컨셉을 전달하는 방식들을 분석하는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 RTT : 현대의 전면전을 디지털 세계에 격리하기
결국 RTT/워게임이 만들어지고 플레이되는 이유와 목적을 이해하는게 우선이다. 최초 프로이센 왕국에서 이루어진 워게임이 그러했듯, 결국 이 게임들은 전술의 개념적 검증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고자 하며 그래서 그 최초의 워게임의 특징을 답습하는 양상을 띄게 된다. < Back RTT : 현대의 전면전을 디지털 세계에 격리하기 25 GG Vol. 25. 8. 10. 게임의 역사는 곧 승부의 역사이고, 그만큼 게임은 오랫동안 승부를 위한 각종 적대적 상호작용의 장으로서 발전해왔다. 굳이 적대적 상호작용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쓴 이유는, 그 유명한 ‘핑퐁’ 의 공 쳐내기도 포함되고, ‘스타크래프트’ 에서 상대 기지에 핵폭탄을 쏘아버리는 것도 포함될 정도로 게임의 승부는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런 카테고리 하에서 전면전 그 자체를 다루는 전략/전술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적대적 상호작용의 총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류가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폭력인 전쟁 그 자체를 다룬다는 건 그 자체로 흥미롭고, 이게 유희로서 향유될 수 있다는 사실도 어쩌면 흥미롭다. 그리고 그 전쟁을 다루는 게임들은 그 속에서도 서로 다른 방식을 취해왔다. 최초의 전쟁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군부의 워게임은 말 그대로 전쟁의 예행연습이었고, 그러한 방식을 거의 그대로 디지털로 옮긴 게임들도 속속 탄생했다. 워게임, 또는 RTT(Real Time Tactics)는 그중에서도 현실의 전쟁을 가장 그럴듯하게 묘사하는 게임이다. 남들이 보기엔 다 그게 그거 같은 전략/전술 시뮬레이션 중에서 RTT, 또는 워게임이 유독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일종의 장르론이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불완전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대체로 그렇다’ 라는 전제로 시작한다. 고증에서 나오는 비대칭 무기의 대결 RTT와 다른 전략, 전술 게임과의 차이는 디테일하게 파고든다면 수없이 많지만, 그 차이가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굳이 풀어서 설명하자면 RTT 와 RTS를 비롯한 다른 전략/전술 장르와의 차이는 그 지향점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RTT 는 현대전을 비롯한 각 시대별 전장을 실제와 유사하게 묘사하는, 시뮬레이션으로서의 목적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워게임이라는 형태의 시초 자체가 실제 군부의 모의전에서 출발했으니 당연하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강한 밀리터리 테마, 디테일한 시뮬레이션을 위해 한정된 전장/부대 단위 지휘, 하지만 전쟁을 스케일 다운하기 위한 비교적 빠듯한 게임적 허용을 통한 전력 간의 극적인 비대칭성 등이 드러나게 된다. 전력 간의 비대칭성은 현실의 무기체계에서 비롯된 특징이다. 보병용 개인화기로 탱크는 물론 전투기까지 때려잡는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해병 같은 사례와는 달리, 현실의 무기체계는 저마다 명확한 목적성을 가지고 그에 부합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현실의 보병화기는 당연히 장갑차량만 등장해도 무력화되기 마련이고, 장갑차량이나 전차에게는 사신과도 같은 대전차 미사일의 경우에도 몇몇 예외사례를 제외하면 당연하게 헬리콥터 같은 공중 표적은 공격시도도 할 수 없고, 대보병용으로 전용할 수 있다해도 비용 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그러한 용도로 전용하는걸 아예 지원하지 않는 병기들도 있다. 다른 게임 플레이어들이 본다면 비대칭성을 넘어 제대로 디자인된 유닛이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극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병기 개발에서의 기술적 한계와 비용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여느 게임처럼 만능병기가 실존하지 않는다. 모든 병기는 해당 병기를 운용할 군사집단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ROC에 맞춰 설계되고, 생산되며 이 ROC 란 성능과 비용, 기술적 한계 사이에서 교묘히 줄타기를 한 결과이니. 그래서 현실의 병기들은 같은 미사일이라는 분류 하에서도 어디서 발사하는지,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지, 비행/유도 방식이 무엇인지에 따라 무수히 많은 하위분류로 다시 나뉘며, 각각의 병기는 제각각에 맞는 용도로 적절히 사용될 것을 요구한다. 쉽게 말해 닭잡는 칼은 닭만 잡을 수 있고, 소잡는 칼로도 닭은 잡을 수 없거나 잡을 수 있어도 그 효율이 심히 떨어지게 된다는 것. RTT 는 현실의 전장을 구현하는 것이 공통된 목적이므로, 지극히 제한적인 게임적 허용을 통해 이러한 실제 전장의 기본 구조를 답습한다. 그렇기 때문에 RTT에서 요구하는 숙련이란 이러한 상성 구조를 이해하고 적절한 병기를 배치, 그리고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몇가지 특징이 더 파생된다. RTT에서의 정찰은 단순히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적의 포진과 병기 배치를 파악하여 어떤 무기에 취약한지를 반드시 알아내야 하며, 내가 가진 전력 중에서 상대가 대처하기 어려운 수단을 찾아내 공격하거나 방어해야 한다. 이 정찰을 통해 미리 내 자산을 준비해두어야 한다. 이러한 병기들이 전장에서 갑자기 솟아나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병기에는 상성이 있다. 단지 RTT 에서는 그 상성이 매우, 굉장히 극단적일 뿐이다 많은 RTS 경우 다소 상성이 맞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유닛이 어느정도 다용도성을 보장하기에 수적 우위나 회전력을 무기로 승부를 걸 수 있다. 하지만 RTT에서는 경보병이 수십 분대가 있어도 전차 한대를 상대할 수는 없고, 마찬가지로 전차를 소대 단위로 모아놓아도 한대의 공격헬기를 당해낼 수는 없다. 때문에 이러한 상성 싸움은 정찰전, 심리전, 그리고 나아가 게임에 들어가기 전 적절한 부대편성까지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 그래서 RTT는 끝없는 가위바위보 물리기의 굴레에 빠지기 쉽다. 내가 상대의 모든 병력에 맞춰 보병, 대전차 화력, 대공, 공격헬기 같은 수단을 모두 마련해놨다 하더라도 병력 배치에 따라서 취약지점은 생길 수 있고, 상대가 그 지점을 적절한 수단으로 파고들면 조합은 깨지게 된다. 만약 그렇게 잃은게 대공병기라면 상대의 전폭기나 공격헬기가 파고들 것이고, 그럼 전차를 잃고, 그럼 보병이나 적 전차가 들이닥치고… 이러한 연쇄적인 전장붕괴가 실현된다. 예시로 들만한 게임은 RTT 에서 가장 최근작들이라 할 수 있는 ‘WARNO’ 나 ‘브로큰 애로우’ 같은 게임들이다. 이들 게임은 일정한 크기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면전을 그리고 있으며 지상전을 기반으로 몇가지를 추가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본격적으로 각각의 병기가 세분화되고 기술 발전에 따라 전차, 군용기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2차 세계대전까지가 사실상 RTT/워게임의 한계선이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 크다. 벌어지지 않은/을 전쟁을 상상하기 현대전을 다룬 RTT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게임의 성격을 결정하는 부분은 의외로 시나리오다. 톰 클랜시 스타일의 테크노 스릴러까지는 아니지만, ‘그럴싸한 가상 전쟁 시나리오’ 는 언제나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가장 뜨거운 화두이며 이 가상 전쟁 시나리오가 게임에 등장하는 세력과 병종, 그리고 대결의 구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이미 결과까지 모든 역사가 결정되어 있는 제 1, 2차 세계대전 같은 과거의 전쟁을 다루는 게임들 보다도 현대전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들이 더욱 두드러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그에 준하는 전면전 또는 총력전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에 준하는 위기 상황은 냉전이라는 상황 하에 언제나 존재했기에 이 소재를 활용하여 각 시대별 전장의 상황을 가상으로 그려나가는 식이다. 소련이 미국 본토를 침공한다는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그만큼 흥미는 배가 된다 현대전 기반의 RTT를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소개한 작품인 ‘월드 인 컨플릭트’ 는 1990년 즈음 냉전 붕괴 직전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WARNO’ 역시 냉전 말기를 다룬다. 두 게임의 시기는 비슷하지만 그 세부적인 시나리오와 게임의 진행 양상은 조금씩 달라진다. ‘월드 인 컨플릭트’ 는 냉전말 경제붕괴에 다다른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최후의 발악으로 미국 본토를 포함한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1세계를 직접 침공하는 다소 허구성이 강한 시나리오다. 반면 ‘WARNO’ 는 그 제목처럼 실제 유럽 전장에서 NATO 와 WP 의 전면 충돌을 실제 당시의 작전계획을 반영하여 프랑크푸르트 근방의 풀다 갭 공세 같은 시나리오로 그려낸다. 여기에 가장 최근작인 ‘브로큰 애로우’ 는 보다 시대를 뒤로 이동하여, 냉전은 끝났지만 최근 불거지는 신냉전이라는 긴장관계를 활용하여 러시아 연방과 미군의 21세기 충돌을 그린다. 이러한 특징으로 각각의 게임들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차이는 우선 투입되는 병기의 차이이다. 냉전 말기를 다룬 두 게임은 실제 당시 배치되어 있던 세력과 장비들을 묘사하여 PIVAD 같은 현대에는 도태된 장비가 등장하고는 한다. 시대상 공통적으로 대공 병기의 위력이 부족한 편이며, 당시 NATO 나 WP 의 교리에 따라 특정 분야에 특화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인다. ‘브로큰 애로우’ 는 보다 미래의, 현시점에 가까운 근미래로 상정할 수 있으므로 대부분의 주력전차들이 능동방어시스템을 채용할 수 있으며 다수의 스텔스기 전력도 등장한다. 여기에 상상력을 좀더 발휘하여 그 실체가 불분명한 사일런트 호크, 러시아 연방의 신규 제식 전차이기는 하나 실제로 양산과 투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T-14 아르마타 전차까지 등장한다. 냉전 시대에만 존재했던 폐기된 전쟁 시나리오를 디지털 게임으로 구현해보기 이렇게 등장하는 병종, 장비가 다르다면 자연스럽게 각 게임이 묘사하는 전장의 모습도 달라진다. ‘WARNO’ 에서의 주력전차들은 대전차미사일에 매우 취약하지만, 능동방어시스템이 달린 ‘브로큰 애로우’ 의 주력전차들은 보병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게 된다. 또한 ‘월드 인 컨플릭트’ 는 그 설정을 살려 모든 장비가 공수 형태로 투입된다.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의 경우에도 실제로 존재하는 지역을 분쟁 시나리오에 맞춰 등장시키기 때문에 제각각의 특징을 보인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루는 ‘스틸 디비전’ 시리즈는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투를 죄다 다루고 있고, ‘워게임’ 시리즈 중 ‘워게임: 레드 드래곤’ 은 동북아시아와 한반도가 등장하여 매우 익숙한 지형이 펼쳐진다. 이러한 기본 시나리오를 통해 플레이 기반이 만들어지고, 게임의 전체 골격이 시대에 맞춰 설계된다. 각 게임은 몇가지 공유하는 플레이 측면의 공통점이 있지만(조작 방식, 연막 같은 기본 기능들의 역할) 그 공유하는 부분들 만큼 시대적 차이, 또 시대별 전장에 대한 해석 차이로 차별점을 가진다. 이는 워게임의 기본에 맞닿아 있다. 모든 워게임은 정해진 시나리오 하에서 출발하며, 그 시나리오는 바로 작전계획이다. 즉 기본적으로 민간의 유희로서 진행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군대에서 펼치는 워게임과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여기서 오히려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거나 일부러 누락시킬 수 있는 유희적 창작을 통해서 더 흥미로운 창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극대화 된다. 이런 시나리오 플레이에서 보이는 한가지 더 재미있는 현상은 플레이어들이 일종의 플레이 외적인 면에서 몰입을 하는 경우를 더 많이 보게 된다는 점이다. 90년대 초반 냉전의 시나리오는 매우 유명하고, 모든 밀리터리 매니아라면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들이 모두 달려들어 시나리오의 타당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에서 실제로 한 번도 실전에서 붙어보지 않은 병기들 간에 전면전이 펼쳐진다는 건 제인 연감 뜯어보며 병기 스펙 구경하는 밀덕들에게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일이다. 비록 그 결과가 반인륜적이지만, 이는 살상병기를 떠나서 어떤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하는 감상과 맞닿아 있다. 오히려 가공의 전쟁, 어차피 1시간 뒤면 휘발되어 사라질 혈흔과 포연이기에 철저히 감정을 배제하고 마치 카탈로그를 보고 물건의 성능을 가늠하고 실험을 거치는 것 같은 활동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기호 뒤에 가려진 저해상도의 폭력성 전쟁을 다루는 게임은 언제나 전쟁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지적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RTT는 가장 전쟁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전장에서의 개인의 말살을 그 자체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두가지 특징 때문에 RTT/워게임이야 말로 전장의 잔혹성, 비인간성으로부터 일종의 방관자적 스탠스를 취한다. 하나는 전장과 플레이어 시점 사이의 극단적으로 먼 물리적 거리, 그리고 두번째는 철저히 개별 유닛을 하나의 인격체나 생명, 어떠한 개인이 아닌 병기로서만 취급하고 집중하는 특징이다. 이러한 이유로 RTT 특유의 사실적이면서도 극히 간접적인 전장의 체험이 이루어진다. 전장과 플레이어의 물리적 거리감을 활용해 살육의 잔혹함과 유희로서의 게임 사이 간극을 활용하는 사례는 여럿 있어왔다. ‘콜 오브 듀티’ 의 그 유명한 건쉽 미션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RTT/워게임은 다른 전략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그 거리가 플레이어로부터 상당히 멀지만, 지휘하는 부대의 규모나 전장의 스케일이 더욱 크다보니 게임 플레이 내내 유닛의 실제 모습을 보는 경우는 아예없고 유닛 기호만 가지고 컨트롤을 할 정도로 그 거리감이 더 극적으로 벌어져 있다. 이는 실제 유닛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기호를 가지고 추상화한다는 느낌을 더 강화한다. 이렇게 온통 기호로 가득 들어찬 화면에서 유닛 하나에 몰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앞서 설명한 유닛들이 가진 강력한 비대칭성과 확실한 목적성에서 비롯되어 각각의 유닛은 그들의 장비로 대표되게 된다. 같은 보병 분대라 하더라도 어느 한 분대를 골라 투입하고 활용하는 이유는 그 보병이 가진 장비들(대전차미사일, SAM, 기관총 등) 때문이지 그 보병의 개인성, 인격 따위가 아니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실제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이들 보병은 그저 장비의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즉, 이런 게임에서 보병을 볼 때는 그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느냐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그냥 자벨린 대전차미사일, FIM-92 스팅어 라는 병기 자체로 인식하곤 한다. 보병 분대가 이럴진대, 전차나 헬리콥터 같은 탑승 병기는 더더욱 그렇다. 실제의 전쟁처럼 철저히 개인성은 말살되고 그저 전쟁의 톱니바퀴로서의 유닛을 보게되는 셈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유닛들은 끝없이 투입되고 활용되고 소모된다. 오히려 하나의 생명보다는 그저 전투를 진행하기 위한 자원으로서 병력의 소모를 줄이고 보존하는 방법을 궁리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전장의 원리란 결국 이런 것일까 싶기도 하다. 낮은 폭력의 해상도 덕분에, 대량살상을 성공하면 그것이 성과가 된다 즉, RTT 는 달리 말하면 ‘폭력의 해상도’ 가 상당히 낮은 편이다. 결국은 RTT 는 현실의 모사이자 시뮬레이션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가는데다 등장하는 폭력의 규모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차원의 벽을 뚫고 몰입과 공감을 하기보다는 그 차원의 벽을 지속적으로 인식하면서 거리감을 유지하게 된다. 실질적 구현이 아닌 개념적 구현에서 나오는 게임적 허용 하지만 RTT 역시 게임적 허용을 벗어날 수는 없다.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오류 또는 게임적 허용은 각종 무기의 사거리나 속도 같은 전장의 스케일이다. ‘WARNO’ 에서의 맵 크기는 3VS3 맵이 고작 9 km² 로 각 변이 3km 인 정사각형이며, 가장 큰 맵도 24X3km 로 현실의 전장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 또한 게임 내에서 표시되는 거리 단위도 실제 축적에 비해 훨씬 축소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대전차 미사일들은 수킬로미터대의 사정거리를 지니고 있고, 지대공, 중거리공대공 같은 수단은 더욱 길다. 이는 여러모로 극히 비현실적인 상황과 밸런스를 만들어낸다. 단적인 예시는 후방과 전방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생기는 후방에의 위협, 포병과 공군 같은 화력지원 병기의 제한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사실상 게임플레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필연에 가깝다. 게임의 규모를 리얼 스케일로 그린다면, 전력이 출발해 전장에 도착하고 배치가 완료되는 데에만 수시간이 소모된다. 무엇보다도 거리가 늘어나고, 시간이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기동이 제한되는 만큼 포병/전차/보병/항공/헬기 등의 유기적인 협동을 한명의 플레이어 입장에서 만들어내는 건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부분이 게임의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부분이기에 언제나 왈가왈부가 많은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실제 지대공 미사일이 적기를 포착하고 미사일을 발사할 때까지는 최소한 수십초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장이 잔뜩 좁아진 게임 내에서 그렇게 작동한다면 이미 전폭기가 맵 전체를 세바퀴쯤 돌고 폭탄을 모조리 투하한 뒤 코브라 기동 한 번 보여주고 집에 갔을 것이다. 반대로 항공기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한다면 대부분의 제트 군용기는 전장에 체공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짧으므로 원하는 때에 화력 투사를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례가 발생한다. 결국, ‘현대전’ 이라는 개념을 게임 또는 시뮬레이션으로 실증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스케일 다운과 전반적인 간소화가 필수적이다. 적외선 시커가 작동하고 플레어를 뿌려 회피하는 기동을 실제로 구현하는게 아니라 그저 확률 계산으로 간소화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고, 몇몇 게임에서 차량의 연료는 시뮬레이션 대상에서 제외하는 이유도 그렇다. 디지털 세계에 전쟁을 격리하다 이러한 일련의 특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RTT/워게임이 만들어지고 플레이되는 이유와 목적을 이해하는게 우선이다. 최초 프로이센 왕국에서 이루어진 워게임이 그러했듯, 결국 이 게임들은 전술의 개념적 검증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고자 하며 그래서 그 최초의 워게임의 특징을 답습하는 양상을 띄게 된다. 시나리오 중심, 적절한 스케일 다운과 간소화, 실제 전력을 반영한 유닛들. 그리고 그 뒤에 가려진 폭력성까지. 최초의 워게임은 근대 이전까지 일종의 도식화된 귀족들의 결투였던 전쟁을 고도화된 현대전으로 끌어올리는 도구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폭력의 직접적인 묘사가 배제되면서 철저히 효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뮬레이션으로서의 역할이 부각되었고, 그 기조가 이어진 것이 현재의 RTT다. 최초의 워게임에서 시작된 전술의 현대화, 병기의 발전은 마침내 그 억제력을 통해 현실에서 전면전을 근절시키는데 성공했다. 물론 최근에 들어서는 다시 전쟁이 우리의 삶을 침범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세상이 20세기 초로 돌아가지는 않을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에서 각각의 병기와 전술이 디지털 시뮬레이션에서나 그 탄생의 목적을 이루고 있는건 오히려 다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Tags: RTT, 현대전, 전술, 시뮬레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하지만, 게임 요리에서는 아무 맛이 나지 않는걸
그러나, 다른 여느 일상의 메커니즘처럼 요리를 게임에 구현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핵심 가치인 맛이라는 스테이터스를 플레이어들에게 현실과 동일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게임에서 이러한 행위, 또는 메커니즘은 수치화를 기반으로 재창조될 수 밖에 없고, 요리 또한 그렇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 수치화가 대략 가늠이라도 잡히는 다른 요소에 비해 맛이라는 가치를 파라미터로 표현할 수 있을까? < Back 하지만, 게임 요리에서는 아무 맛이 나지 않는걸 30 GG Vol. 26. 6. 10. 게임의 수많은 게임 플레이와 메커니즘은 현실의 그것을 모방하는 식으로 구현되곤 한다. 자연 법칙, 행정 절차, 인문학적 상식 등등 수많은 행위 또는 현상의 시뮬레이팅은 게임의 기본이다. 게임을 하다보면 느끼는 또 하나의 재미는 이렇게 모사된 현실의 현상이나 행위들이 어떻게 비슷하고 어떻게 달라지는지 찾아보는 일이다. 그러한 대표적인, 게임 속에서 매우 자주 찾아볼 수 있지만 구현의 딜레마가 느껴지는 메커니즘 중 하나는 바로 요리다. 의식주 중의 하나로 우리 삶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지만 게임에서는 항상 구현의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요리란 레시피라는 공식을 따라가는 행위이다. 아무리 간단한 음식도 조리법이 있기 마련. 때문에 과정을 실수 없이 해내야 하는 퍼즐 요소로서 수많은 게임에서 활용되었다. 문제는 요리를 하나의 게임 플레이로 구현할 때, 성공의 이면에는 실패가 있다는 점이고, 요리를 하고 나면 발생하는 음식이라는 결과물이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게임플레이에서, 실패의 위험이 있기에 성공의 가치가 생겨나는 법이다. 그런데 요리에서의 실패는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다. 일단 ‘실패한 요리’ 란 무엇일까? 현실에서는 어떤 요리를 실패한다고 하던가? 간단히 생각했을 때, 관건은 역시 ‘맛’ 이다. 어쨌거나 소화 가능한 유기물이라면 모두 가능한 영양분 섭취라는 면을 제외하고, 요리,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맛이다. 특히 요리라는 과정을 볼 때, 우리가 어떠한 레시피라는 공식을 따르는 이유 자체는 적절한 조리를 거쳐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기 위함이기에 ‘레시피를 따라 조리하는’ 요리라는 과정의 성공 여부는 결국 맛에 좌우되게 된다. 그러나, 다른 여느 일상의 메커니즘처럼 요리를 게임에 구현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핵심 가치인 맛이라는 스테이터스를 플레이어들에게 현실과 동일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게임에서 이러한 행위, 또는 메커니즘은 수치화를 기반으로 재창조될 수 밖에 없고, 요리 또한 그렇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 수치화가 대략 가늠이라도 잡히는 다른 요소에 비해 맛이라는 가치를 파라미터로 표현할 수 있을까? 결국 현실에서 실패한 요리와 게임의 실패한 요리는, 이러한 감각 전달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요리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건 맛이 거의 전부라 해도 거짓이 아닐진대, 게임에서는 그 맛을 전달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맛있음’ 을 기반으로 성공을 재정의하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진다. ‘맛있는 요리’ 또는 ‘맛있는 음식’ 이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맛있음’ 이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효과로 정의될 수 있는가? 고민 끝에, 수많은 게임들은 이러한 ‘맛있음’ 의 효과를 일종의 섭취한 플레이어의 상승효과로서 받아들였다. 맛있는 음식은 기본적으로 섭취한 인간의 행복을 고양시킨다. 부차적으로 만약 그 음식의 재료들이나 조리 방법이 특히 건강할 경우, 육체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도 자명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게임 속 음식, 요리들은 섭취자에게 버프를 제공하고, 더 귀한 식재료를 쓰고, 더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치고, 더 맛있는 형태일 때(통솔적인 의미에서) 더 좋은 효과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또다른 문제는 이러한 스테이터스 강화 요소가 모든 게임에 항상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게임에서 ‘맛있는 요리’ 라는 결과물을 판단하려면, 그 게임에서 ‘맛없는 요리’ 또는 ‘실패한 요리’ 는 어떠한 형태를 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봐야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게임 속 ‘실패한 요리’ 의 유형을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각 이렇다. 1. 아예 음식이 만들어지지 않음. 2. 부정적인 효과가 달리거나 긍정적 효과가 적은 별도의 ‘실패한 음식’ 이 생성됨. 3. 실패한 요리=게임 오버 또는 임무 실패. 첫번째, 요리에 실패할 경우 아예 음식이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는 가깝게는 ‘마비노기 모바일’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게임의 경우 요리는 확률 생성에 기반하여, 10% 단위로 끊긴 성공 확률에 따라 제작대에 재료를 투입하고 확률적으로 음식이 만들어진다. 매우 단순한 방식이다. 두번째, 요리에 성능이 다른 실패한 요리가 별도로 생성되는 경우 또한 매우 많은 게임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몬스터 헌터’ 시리즈를 보면, 전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고기를 굽는 액션은 기본적으로 타이밍에 맞춰 버튼을 눌러야 하는 간단한 퍼즐의 형태다. 고기가 구워지는 도중 고기는 3단계에 걸쳐 모습이 변하고, 구워지는 고기가 적절하게 익은 모습일 때 버튼을 눌러 완료하는 형태다. 실패한다면 덜익은 고기나 탄 고기가 생성되고, 이들은 그 긍정적인 효과(스태미너 증가)가 적게 설정되어 있다. 세번째, 요리의 성공/실패 여부가 게임의 성공/실패 여부 자체를 판가름 하는 기준인 게임들도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는 아예 요리를 협심해서 만드는게 목표인 ‘오버쿡드!’ 가 있으며, ‘커피톡’ 시리즈 역시 넓게는 여기에 포함할 수 있다. ‘커피톡’ 에서는 어떤 재료를 넣더라도 음료는 만들어지지만, 누군가에게 무언가 제공해야 하는 정답이 정해져 있고, 이들이 두루뭉술하게 주문하는 재료의 조합을 가지고 하나하나 맞추어 완성해 제공해야 한다. 즉, 여기서는 요리 자체의 완성이 아니라 ‘먹는 사람의 기호를 맞추는 것’ 까지가 성공적인 요리라는 의미이며, 이를 맞추는 건 게임의 엔딩과 업적 달성에 영향을 주니 게임의 성취도 자체로 음식의 성공을 판가름하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두번째 케이스들이다. 어쨌거나 게임의 아이템 데이터 베이스를 쓸모가 그저 ‘실패 판정’ 인 아이템이 차지하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사하중이나 다름 없다. 그 뿐 아니라 여러가지 이유로 이 ‘실패한 요리’ 가 쓰임새를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이렇게 만들어지는 ‘실패한 요리’ 가 특별한, 또는 유용한 쓰임새를 가진 게임들을 살펴보면 ‘룬 팩토리’ 시리즈와 대중적인 게임 중에서는 ‘원신’ 이 있다. (이미지 출처 : 룬 팩토리 4 정보봇 @RF4_KR_info) ‘룬 팩토리’ 시리즈의 실패한 요리는 레시피에서 어긋난 요리를 하게 되면 발생한다. 이 요리들은 적에게 디버프를 거는 용도로 쓰일 수 있고, 또 일부 괴상한 취향을 가진 NPC 에게 주어 호감도를 올리는 용도로 쓰인다. ‘원신’ 에서도 실패한 요리는 비슷한 쓰임이 있다. 이상한 요리를 만들어 접대하거나, 호감도를 올리기 위해 선물하기도 한다. 또 업적 중에도 이 이상한 요리를 만들어내는게 있다. 또한, ‘몬스터 헌터’ 에서도 일부 아이템의 재료로서 잘못 구워진 고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요리를 일종의 스킬 체크로 활용하는 방식과 음식이라는 아이템을 얻기 위한 허들로서 활용하는 방식 두가지에 따라 게임 속 ‘요리’ 와 ‘음식’ 의 위상이 달라진다. ‘오버쿡드!’ 와 ‘커피톡’ 은 요리라는 스킬 체크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활용하는 게임들이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나 ‘룬 팩토리’ 시리즈, ‘마비노기 모바일’ 등은 음식이라는 아이템을 얻기 위한 과정이고, 이에 실패할 경우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을 얻게 되는 식이다. 그리고 이쯤 오면, 이들 요리를 판단하는데 ‘맛’ 이 대체 무슨 상관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이야기했듯, 근본적으로 이러한 괴리는 게임 속 ‘요리’ 라는 개념이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으로 그 맛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의 ‘실패한 요리’ 와 개념적으로나 표현적으로나 차이가 생기는데서 발생한다. 현실의 요리는 ‘맛이 없다’ 고 하면 끝이지만, 그 맛이라는게 게임 속에서는 전달할 수 없으니 그 ‘실패’ 를 여러 개념으로 대체하다보니 생기는 일이다. 비슷한 느낌은 현실에서도 있다. 맛있는 요리를 구분하는데 있어 절대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먹기엔 맛이 없는데, 다른 사람이 먹으면 괜찮고, 또는 만족한 맛은 아닌데 가격 생각하면 괜찮은 것 같고, 또 보기에는 나쁘지 않고... 반대로 나쁘지 않지만 이 가격에 이 수준이면 안될 것 같고. 현실에서 ‘맛있는 요리’ 를 구분하는데에 ‘맛’ 이 지배적이라는데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지만, 그 ‘맛’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기대치, 취향 자체가 모두 다르니 오히려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기 어렵다. 결국 게임에서의 요리의 성공과 실패는 현실과는 달리 명확한 기준이 필요했고, 둘은 극적으로 대비되어야만 했다. 더구나 이러한 요리, 그리고 음식이라는 아이템이 게임마다 가지는 플레이에서의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실패한 요리’ 라는 개념은 여기저기 분화하게 되었고, 그 ‘실패한 요리’ 의 대척으로서 ‘성공한 요리’ 또한 변화해 왔다보니 현실의 요리와 게임 상의 요리 상의 괴리가 좁혀지기는 커녕 벌어지기만 했다. 즉 게임 상에서 현실의 요리를 최대한 모사하려던 시도가 결국 또 거리감을 오히려 만드는 셈.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게임 속 요리의 가치 기준이 현실과 아예 상관이 없어져도 되는 건 아니다. 결국 게임 속에 등장하는 요리와 레시피는 현실의 것을 따오거나 그에 기반할 수 밖에 없고, 과거 유행했던 플래시 게임 ‘고향만두’ 처럼 엉터리 스킬체크로 가득하다면 게임이 보여주는 요리에 전혀 공감할 수 없게 된다. 요는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 상에서 맛을 보지는 못하지만, 레시피와 외형, 그리고 조리 과정 등을 통해 그 맛을 유추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맛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 맛으로 연결되는 논리적 연관성(조리법, 외형, 재료의 종류 등)을 설득력 있게 내어야 그나마 게임 속 요리와 현실 요리의 간극을 좁히고 맛을 간접적으로 연상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게임 내에 등장하는 요리/음식이 특별하게 기억에 남은 경우는 그 맛을 어떻게 표현했느냐보다도, 맛을 제외한 다른 음식의 특성을 이용하여 요리가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했을 때였다. 애초에 맛으로 승부할 수 없다면, 감성으로 승부하면 된다. 그래서 게임 플레이에서 어떤 확실한 가치나 대단한 목적이 아닌, 그저 평범한 행위로서 하는 요리가 더 깊게 기억에 남고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다. ‘천수의 사쿠나 히메’ 에서 농사를 하고 밥을 짓는건 그다지 특출난 게임 플레이도 아니고 대단한 요리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자체로 값지게 쌀을 수확해 밥을 지어 동료들과 나눠먹는 기억이 너무나 특별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커피톡’ 시리즈에서도 어떤 음료를 탄다고 해서 대단한 효과가 돌아오는건 아니지만, 마시고 난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요.” 라고 하는 말 하나를 듣기 위해서 레시피를 검토하며 몇 번이고 재시도를 하곤 했다. 정말 일상적인 요소이지만 요리가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하기 때문이고, 요리란 어떤 과정 속에서 플레이어의 행동과 몰입감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예를 들어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서의 요리와 음식은 어디까지나 주된 콘텐츠가 아닌 사냥을 준비하는 과정의 일부이고 플레이어의 준비 상태를 점검하는 기능이기도 하다. 그만큼 앞서 소개한 게임들 중 게임 내에서 작거나 크거나 요리가 구현되었을 때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는 메커니즘의 논리나 구현의 적절함 만큼이나 ‘요리’ 라는 행위가 들어갈 당위성이 크게 영향을 미쳐왔다. 요리는 게임 속 일상성을 유지하고 플레이어의 몰입을 끌어들이는 요소이고, 때론 게임 내 다른 캐릭터와의 유대를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결국 게임이나 현실이나 요리와 음식의 쓰임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저 맛을 느낄 수 있냐 없냐이고, 이런 면에서는 우리가 직접 섭취하는 음식이 아니라 브라운관을 통해서 보는 간접 경험으로서의 요리, 음식과 맥락이 맞닿아 있는 것 같다. 핵심 감각을 배제한 상태에서 어떠한 물질의 특성을 표현하는 건 언뜻 불가능해보이지만, 때론 보이지 않아도 아름다움을 알 수 있듯이 훌륭한 요리, 맛있는 음식의 가치는 다른 방식으로라도 전달되기 마련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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