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함으로 버무린 현실의 요소들: 투포인트 시뮬레이션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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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12. 10.

머리가 전구로 변해버린 환자가 병원 복도를 서성인다. 의사는 그 환자를 ‘전구머리병’으로 진단하고, 진료실로 데려가 거대한 기계 장치로 머리를 갈아 끼운다. 뿅 하는 소리와 함께 전구는 사라지고 멀쩡한 머리가 나타난다. 환자는 돈을 내고, 의사는 숙련도를 쌓고, 병원의 잔고는 올라가며 명성은 올라간다.
<투 포인트 호스피털(Two Point Hospital)>, <투 포인트 캠퍼스(Two Point Campus)>, 그리고 최신작 <투 포인트 뮤지엄(Two Point Museum)>으로 이어지는 이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는 얼핏 보기에 한 편의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그래픽 같다. 과장된 캐릭터, 우스꽝스러운 효과음이 발생하며 현실에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유쾌한 소동이 게임 내내 난무한다. 웃으며 게임을 즐기다보면 문득, 서늘한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지금 뭘 한거지?”
이 글은 1990년대 <테마 파크>, <테마 병원>의 정신을 계승한 투 포인트 시리즈가 어떻게 현실의 무거운 장면들을 만화적 유희로 바꾸고, 그 과정을 통해 플레이어가 부담 없이 복잡한 구조를 다뤄볼 수 있도록 만드는지를 살핀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병명과 우스꽝스러운 환자들
투 포인트 시리즈의 개발사 '투 포인트 스튜디오'(Two Point Studios)는 과거 <테마 파크>와 <테마 병원>을 만들었던 전설적인 개발진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다. 경영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2016년 <투 포인트 호스피탈>이라는 병원 경영 시뮬레이션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들이 인터뷰에서 밝힌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이 게임이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다. 개발자 마크 웨블리와 개리 카는 병원 시뮬레이션 게임의 개발을 위해, 실제 병원에 방문 조사하여 게임을 제작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게임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함이었다. 여러 종합 병원들을 컨택했고, 그중 한 곳이 이들에게 병원이 진짜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응답했다. 병원은 특별하게도, 수술실까지 참관할 수 있게 했다. 게임 개발자들은 처음으로 수술실 안쪽에 발을 들여보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개발자들이 병원 수술실에서 들어가게 된 사건은 "시뮬레이션 게임이 현실을 꼭 있는 그대로 재현할 필요는 없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픽 아티스트 개리는 평소 작은 상처에 난 피만 봐도 기절할 뻔 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의 그가 실제 수술대에서 벌어지는 적나라한 장면을 보고 기절의 위기를 겪었고, 수술에 방해를 받는 의사로부터 쫓겨나다시피 방출되었다. 수술실에서 쫓겨난 이 사건에서 그들은 많은 점을 깨달았고, 개발의 방향을 틀었다.
"게임의 핵심은 병원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사람들이 병원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상상하는 것’을 게임으로 만드는 데 있다."
이 말은 초기 <테마 병원>부터 투 포인트 시리즈로 이어지는 개발진의 일관된 철학이 되었다.
<투 포인트 호스피탈> 게임 속 병원은 피가 보이지 않는 밝은 병원이다. 환자들은 병의 고통에 신음하긴 하지만, 그 모습이 안타깝기보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비춰진다. 병원은 환자 중심에서 ‘질병 중심의 세상’으로 개편되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 정신병 '보헤미안 광시증', 환자의 머리가 냄비로 변하는 '냄비 근성', 환자가 개로 변하는 '광견병' 등 병명은 모두 가짜이며 이 병을 앓고 있는 자들의 모습은 코믹하다. 치료 과정 역시 수술용 칼 대신 만화 같은 기계장치가 등장한다. 심지어 치료에 실패해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그 죽음은 엄숙하지 않다. 환자는 유령이 되어 병원을 떠돌고, 미화원은 진공청소기로 그 유령을 빨아들여 퇴치한다.
현실을 희화화하는 장치 덕분에, 플레이어는 현실을 가지고 노는 일에 죄책감을 덜게 된다. 만약 이 게임이 실제 환자의 고통이나 마취 동안 벌어지는 수술 장면의 적나라함을 다뤘다면, 플레이어는 감정적 소모 때문에 게임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코믹함이라는 완충 장치는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윤리적 불편함을 제거했다. 플레이의 미학은 사실 재현을 포기하는 일로부터 생성된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생명을 다룬다는 부담감 없이, 오로지 효율과 최적화라는 게임의 메커니즘에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현실적, 비현실적 요소의 줄타기
투 포인트 시리즈는 비현실적인 소재가 가득하지만, 그 안에 내재한 경영 논리는 의외로 현실적이다. "말도 안 돼"라고 웃으며 시작했던 플레이어는 어느새 "병원이 망하지 않으려면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겠군"이라며 현실의 부조리를 이해 혹은 체화하는 것이다.
최신작 <투 포인트 뮤지엄>을 예로 들어보자. 이 게임에서 유물을 발굴하는 탐사 시스템은 말도 안되게 비현실적이다. 박물관에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서는 학예 연구사와 같은 유물 전문가들을 오지에 파견을 보내서 유물을 직접 구해오도록 시켜야 한다. 위험한 고대 정글에서 목숨 걸고 식인 식물을 포획해오거나 극지방으로 가 냉동 인간을 통째로 회수해 전시한다. 학예사가 아니라 인디아나 존스에 가깝다.
하지만 일단 박물관이 운영되는 논리로 들어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해설사가 도슨트 동선을 어떻게 짜야 관람객이 지갑을 열지를 고민해야하고, 일방향적인 전시보다 관객에 참여하는 체험형 전시를 곳곳에 배치해야 관람 만족도가 오를 수 있다는 점, 기부금 함은 어디에 둬야 가장 효율적일지 고민하는 과정은 소름 끼칠 정도로 현실적이다. 유물은 온통 가짜지만, 유물을 전시하고 박물관이 망하지 않도록 수익을 창출하는 운영 감각은 진짜 박물관 직원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필자는 시뮬레이션 게임의 즐거움이 모사 자체가 아니라 조작 가능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복잡한 시스템을 모형화하고, 그 시스템을 자신의 판단대로 조정해볼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투 포인트 시리즈 역시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긴장을 주면서 재미가 발생시킨다. 수술실의 피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병원의 작동 원리를 추출하여 조작 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한 것이다.
투 포인트 시리즈는 병원, 대학, 박물관의 실사적 구현은 과감히 생략했다. 대신 예산 압박, 인력 관리, 회전율, 고객 만족도라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의 뼈대를 이식했다. 게임 속 세상은 가짜 질병과 유령이 나오는 판타지지만, 그 세상을 굴러가게 만드는 규칙은 철저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논리를 따른다. 게임이 전달하는 기묘한 리얼함이다.
투 포인트 시리즈는 현실의 인식 가능한 구조를 남기고, 감정적 부담을 제거함으로써 가장 이상적인 균형점을 찾는다. 병원 구조는 실제와 비슷하게 운영되지만, 치료 과정의 고통과 윤리는 삭제된다. 대학의 행정 구조는 실제와 유사하지만 학생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나 좌절, 불평등 같은 요소는 극도로 약화된다. 박물관의 운영 구조는 현실적이지만, 유물과 탐사는 가짜로 채워진다.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유예된 지점에서 플레이어는 현실을 조작해보는 쾌감을 온전히 경험한다.
감정을 제거한 구조적 리얼리티
투 포인트 시리즈가 현실을 ‘플레이 가능한 현실’로 번역하기 위해, 개발진이 선택하는 전략은 매우 일관적이다. 첫째, 현실에서 감정적, 윤리적 무게를 유발하는 요소를 제거한다. 둘째, 현실의 운영 구조와 절차를 추출한다. 셋째, 그것을 수치화해 조작 가능한 형태로 재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병원은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효율의 공간이 된다. 질병은 수술대가 아니라 기계와 약으로 해결 가능해지고, 환자의 고통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환자 만족도는 퍼센트로 계산되고, 병원의 평판도는 그래프가 된다. 교육의 질은 학생의 성취도 점수로 바뀌고, 박물관의 사회적 역할은 관람객의 즐거움 게이지로 환원된다. 복잡한 가치 판단과 인간적 고민은 수치와 인터랙션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 수치화는 시뮬레이션 장르의 특징이다. 플레이어는 이 세계에서 현실에서 불가능한 통제를 실현한다. 전시장에 유물을 구해 넣고, 병원을 최적화하고, 대학의 교육 구조를 원하는 대로 조정한다. 이때 오는 쾌감은 현실을 체험한다가 아니라 현실을 조작해본다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시뮬레이션 게임 특유의 조작적 쾌감이다.
이러한 시뮬레이션적인 감각 덕분에 플레이어는 감정적, 윤리적 무게를 짊어지지 않는다. 직원은 급여 인상에 불만을 가지고 회사에 불행한 감정으로 다닐 수 있으며, 이는 업장의 경영에도 영향을 준다. 급여 인상 시 직원은 다시 행복해진다. 하지만 게임은 해고에 대해 어떤 도덕적 페널티도 부과하지 않는다. 기존에 있던 직원보다 더 능력 좋고 성격 좋은 지원자가 나타나면? 플레이어는 기존 직원을 해고 버튼 하나로 쫓아내고 새 직원 고용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훈련시켜 성장시키는 비용보다, 갈아치우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게임 속 직원들은 단순한 NPC가 아니다. 그들은 저마다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행복도를 요구하며, 끊임없이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능력은 좋은데 성격이 나빠서 동료들의 사기를 꺾는 의사’와 ‘성격은 천사 같은데 진료 속도가 느려 터진 의사’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은 모든 경영주의 현실적인 고충이다.
구조는 분명 현실을 닮았지만, 윤리적 판단과 감정적 부담은 삭제된 세계다. 투 포인트 시리즈는 진짜 같지만 실제와 다른 이중적 체험을 제공한다. 비현실적 요소로 감정의 부담을 덜어내고, 현실적 요소로 구조적 리얼리티를 부여한 결과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허구인데 이상하게 현실을 이해해버린 느낌을 갖게 된다. 이 균형이 시리즈 특유의 기묘한 리얼리티를 형성한다.
투 포인트 시리즈는 현실을 비판하는가?
투 포인트 시리즈를 하다 보면 병원, 대학교, 박물관 같은 권위적인 공간이 더 이상 낯설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짜 병명, 만화 같은 기계, 유령 청소기 같은 요소들은 본래 무겁고 진지한 공간을 기묘하게 가볍게 만들어버린다. 이런 연출 덕분에 플레이어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제도나 운영 구조를 마주하면서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게임은 현실을 고발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도보다, 이런 구조들을 ‘편하게 만져볼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해 제공하는 쪽에 더 가깝다.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내리는 결정들은, 현실이었다면 윤리적 고민이 동반되는 것들이다. 능력이 떨어지는 의사를 해고하거나, 병원이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를 돌려보내거나, 운영 효율을 위해 시설을 재편하는 일들은 현실에서라면 쉽게 할 수 없는 선택들이다. 하지만 투 포인트 시리즈는 고통과 갈등의 층위를 제거하고, 대신 우스꽝스러운 장면과 유머를 심어 넣어 플레이어가 이런 결정을 죄책감 없이 다뤄볼 수 있도록 만든다. 말하자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면죄부에 가까운 조건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 면죄부는 어떤 메시지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플레이어가 구조를 조작해본다고 해서, 그것을 현실의 실제 운영과 직접적으로 연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현실 같지만 현실이 아닌 장면들을 곁에 두고, 기관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가볍게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은 플레이어를 거대한 시스템의 비판자로 만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방관자로 머물게 하지도 않는다. 대신, 복잡한 구조를 한번 만져보게 하고 이런 방식도 있다는 정도의 인식을 남긴다.
결국 투 포인트 시리즈가 제공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부담 없는 체험의 공간이다. 현실의 권위적 공간을 희화화함으로써, 플레이어가 그 구조를 안전한 거리에서 가볍게 탐색하고 조작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죄책감 없이 시스템을 이해하고 가벼운 방식으로 운영의 논리를 경험한다. 이 시리즈의 핵심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투 포인트 시리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임이 아니다. 대신 현실을 해체해 장난감으로 재조립하면서, 우리가 그 장난감을 다루는 방식에서 역으로 현실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욕망을 발견토록 한다. 어쩌면 이 시리즈가 진짜로 보여주는 것은 병원이나 대학, 박물관이 아니라, 현실을 어떻게 다루고 싶어 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