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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346개 검색됨

  •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느꼈던 게임의 과거와 미래

    2025년 3월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정식으로 일반 공개를 시작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은 아직 정확하게 공지는 되지 않았지만 현재(2025년)기준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정부에 등록된 게임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국내에서 이름에 컴퓨터가 들어간 등록박물관은 2023년 기준으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유일하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넷마블, 아카이빙, 박물관, 학예연구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인터뷰] 공모전 수상자들이 보는 비평의 미래와 자신의 미래

    이번 GG 대담에서는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 공모전 수상 이후에도 게임비평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김규리 게임연구자, 이현재 영화평론가, 영이 작가와 함께 그들이 왜 계속 게임에 대해 쓰는지, 그리고 게임비평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Back [인터뷰] 공모전 수상자들이 보는 비평의 미래와 자신의 미래 32 GG Vol. 26. 10. 10. 게임을 둘러싼 산업과 문화의 규모는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게임에 대해 쓰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자리는 여전히 작고 불안정하다. 게임비평을 실을 지면은 많지 않고, 비평을 읽는 독자와 만날 경로도 제한적이며, 게임을 연구하고 비평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계속 게임에 대해 쓰고, 게임을 더 오래 바라보고, 당장 소비되지 않을 이야기를 남기려 한다. 이번 GG 대담에서는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 공모전 수상 이후에도 게임비평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김규리 게임연구자, 이현재 영화평론가, 영이 작가와 함께 그들이 왜 계속 게임에 대해 쓰는지, 그리고 게임비평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공모전 수상 후, 어떻게들 지내시나요? 이경혁 편집장: GG의 대담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덧 공모전 특집을 맞아 그동안 GG의 공모전에서 수상하셨던 분들이 뭘 하고 지내시는지, 게임비평이란 걸로 앞으로도 쭉 무언가 할 생각이 있으신지 궁금하더라구요. 여러분의 근황과 사는 얘기들을 듣고자 초대했습니다.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해 주시죠. 김규리: 안녕하세요. 저는 2022년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 공모전 1회에 참여했고 장려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GG 필진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쓴 글은 디시인사이드의 <프롬 소프트웨어> 마이너 갤러리에서 특정한 여성 NPC를 죽이는 일종의 관습에 대한 것이었어요. <프롬> 게임에도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었고 갤러리라는 공간이 형성하는 놀이문화에 관심을 가져 비평문을 썼고 감사하게도 수상을 계기로 대학원 진학도 결심하게 됐습니다. 이현재: 저는 이현재라고 하고요, 2023년 2회 GG 공모전 때 비평상을 수상해 필진으로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경희대학교 K-컬처 스토리 콘텐츠 연구소에 있고 계속 기술문화와 서사 쪽 연구를 하고 있어요. 제가 공모전 때 쓴 글은 ‘오픈 월드'에 대한 글이었고 그 사례로 <리니지>를 인용했었구요. 게임 시스템 쪽에 관심이 많은 편이고 게임에서 이런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기획이 되었을까, 혹은 게임 수용자가 그 의도대로 사용하는가에 대해서 관심이 좀 많습니다. 영이: 저는 영이라고 합니다. 저도 2023년 2회 공모전 때 수상을 했고, 그때 쓴 글은 <게임과 행위 원리: 놀이와 협박>이라는 제목이었는데요. 게이머들을 유도하는 게임 자체의 명령과 그것을 따르는 플레이어의 의지가 곧 게임 바깥으로 확장돼서 삶의 의지 자체에 대한 연결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이 대담을 연다면 세 분께 제일 해보고 싶은 질문부터 시작해보고 싶었습니다. GG 공모전 수상 이후로도 몇 년의 시간이 더 흘렀습니다. 요즈음도 게임에 관련해서 계속 뭔가를 쓰시나요? 계속 게임과 관련된 뭔가를 하고 싶으신지요. 이현재: 우선 저는 올해 2월에 게임 관련 논문으로 프랑스에서 발표를 했구요. 크래프톤의 <인조이>와 넥슨 엠바크 스튜디오의 <아크레이더스>를 비교하며 AI 모빌리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논했어요. 당시 그 발표에서는 크래프톤과 넥슨의 재무구조 차이가 경영 이사회의 정치구조를 바꾸고, 그 구조가 게임 속에도, 예를들면 AI나 NPC에도 반영된다는 논지의 주장을 폈습니다. 제게 게임이 본업일지 참 많이 고민했는데 본업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왜냐면 가장 결정적인게 돈을 너무 많이 썼어요(웃음). <리니지>를 했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게임은 헤비 유저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헤비 유저들 사이에서도 프랙탈처럼 급이 나뉘고 그 프랙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게임의 역동성을 디자인한다고 생각하는데, 저 또한 계속해서 이런 부분에 관심을 두고 글을 쓰거나 연구하는 편입니다. 영이: 저의 경우 글을 쓰는 지분상으로는 게임이 많긴 많아요. 작년에 게임이론서 <게임 코러스>를 내기도 했고, 지금은 <프레시안>의 게임 필리아라는 코너에서 정기 필자로 글을 쓰고 있어요. 그 코너에서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게 많아요. 게임 씬에서 주요 화제라는 게 되게 빨리빨리 지나가잖아요. 그러다 보니 당장 써야겠다는 주제가 딱 생각났을 때 지면이 없으면 놓쳐버리고 추후에 쓰더라도 다른 주제로 묶어야 되는 경우가 많은데. 두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쓰는 자리가 있으니까 뭔가 생각이 났을 때 바로 피드백을 넣기가 좋다고 느껴져요. 그 외에도 게임적인 관점에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이 많이 오고 있어요. 저에게 최근 청탁이 올 때는 오히려 제가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도 '게임 분야를 하시니까 그 관점에서 써주실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렇다 보니 제게 어느 정도는 게임의 본업 지분이 큰 것 같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영이님의 경우 게임 관련 단행본이 나온 상태고, 한국 사회에서는 단행본이 한 번 나오면 이 사람은 그걸 하는 사람으로 포지셔닝되는 경향이 있죠. 저 또한 멀쩡한 다른 직장 다니다가 단행본을 하나 낸 후 인생이 이 쪽으로 왔다 보니 궁금했습니다. 규리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김규리: 저는 8월에 대학원 졸업을 했고 이제 무엇을 해야 되지 고민 중인 시점이기도 해요. 저 같은 경우 GG 공모전 수상이 ‘내가 이쪽으로 글을 써도 되는구나' 하는 기회를 확인할 계기였어서, 대학원에 있을 때도 비슷한 기회가 있으면 게임 관련 발표나 레포트를 많이 썼었어요. 예를 들면 전에 SF포럼에서 만든 대학원생 세션이 있었는데, 그때 이상 작품을 글리치의 파열로 해석하고 그의 작품구조가 글리치성을 전면에 내거는 여러 컬트적 게임과 어떻게 엮이는지에 대한 발표를 했구요. 학위논문으로는 게임에서의 로어를 다루었어요. 제가 문학 전공인데, 어떻게 하면 문학이라는 내가 친숙하게 여기는 하나의 텍스트를 바라보는 이 관점을 게임 속에서 잘 통약시켜 볼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문학과 게임 사이 제 포지셔닝에 대한 고민도요. 사실 학위논문이 게임적 주제를 다루긴 하지만 전체 분량에서 절반은 문학 텍스트 얘기인데요. 너무 게임 얘기로만 챕터를 짜면 논문 커미티가 안 좋아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본심 심사에서는 왜 굳이 문학을 넣었냐고 하시더라구요. 이런 걸 보면 학교 교수님들도 저를 게임 연구자라 보시는 것 같아서, 이 안에서 제 좌표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를 졸업하고도 계속 고민해야 하는 상황 속에 있네요. 게임 비평의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것들 이경혁 편집장: 세 분 모두 게임에 대해 무언가를 쓰고 싶어 공모전에 응모했고, 당선 뒤에는 어떻게든 그 수상이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나의 본업이 게임인가라고 물어본다면 모두의 얘기를 들어보면 마냥 쉬운 것만 같지는 않군요. 혹시 게임과 관련해 글을 쓸 때 어떤 여건이 좀 더 개선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나요? 이런 분들이 게임과 관련된 글 생산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나아지면 좋을까 고민이 있어요. 김규리: 제가 이번에 군산 북페어를 갔는데 독립 단행본이나 무크지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게임 관련 지면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으면 그냥 이런 식으로 지면을 아예 대척해서 독립으로 나가는 방법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물론 그래도 한편으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막막하긴 하죠. 이현재: 제가 게임 관련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사실 출판 쪽에서 제일 큰 기업인 와이즈하우스나 문학동네가 1년 매출이 350억 정도인데, 넥슨은 아시겠지만 4조에 육박하죠. 어쨌든 게임으로 비평을 쓴다는 건 출판 쪽에 더 가까운 일일 거라 매출액부터 격차가 느껴지긴 하는데요. 사실 게임을 하면서도 느끼는 건 게임이 어떤 의도로 어떻게 구성되었고 사람들에게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건지 알고 싶어하는 유저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그걸 파악해서 아카이빙을 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흔적을 남겨놓지 않으면, 나중에 기획자들이나 실무자들이 ‘저 게임을 어떤 의도로 만들었지' 고민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지게 돼요. 그리고 항상 이것도 불만이었는데, 게임 연구를 하면 생각보다 돈이 정말 많이 들어요. 게임 연구 분야에서 온라인이나 다른 게임보다 패키지게임 연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가 연구자료가 훨씬 싸기 때문입니다. 아까 제가 본업 관련 질문에서 돈을 너무 많이 썼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사실 게임에 대한 연구 욕구가 있으니까 돈을 쓴 건데 이게 지원비나 투자를 받는다기보다 사실상 제가 소비하는 걸로 봐야 하는 수준이라 만족스럽지 않아요. 저는 게임 산업이 이런 데에 대한 고민들을 좀 더 날카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분명히 여력이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해요. 뭐 문화재단이나 게임산업협회에서 꾸준히 자리를 만들려 하는 것, 그리고 넷마블이나 넥슨 같은 기업들이 게임 박물관을 만드는 것도 게임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의지가 있다 보니 하는 것일텐데요. 단순히 재무재표만 찍히는 사업이 아니잖아요. 게임사들이 이런 고민을 조금 더 한다면 좋겠고, 또 제 관심사 같이 기획자나 생산자의 의도와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적지 않게 있거든요. 크래프톤이든 NC든 넥슨이든 넷마블이든 이런 부분들에 관심을 좀더 기울여 주십사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김규리: 생각해 보니까 넥슨이 게임 논문 공모전을 2023년인가까지 했었는데 그 이후에 접었네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습니다. 나름의 이유는 있었습니다만... 저는 그렇다보니 GG에 오는 글들에 대한 고민도 있어요. 이 사람이 자꾸 비평보다 논문을 쓰려고 하네라는 고민이 늘 있거든요. 항상 청탁할 때 좀 가벼워도 된다고 얘기를 하는데, 필진 그룹에 연구자 출신들이 좀 많다 보니 글도 연구자 톤이고 각주도 참 많이 달리고요. GG에 온 글들은 전부 제가 따로 편집하는데, 나 진짜 각주 20개씩 넣는 사람들 용서하지 않겠어요(웃음). 이현재: 저도 거기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하는데 논문이 할 수 있는 역할과 비평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좀 다르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요즘에는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비평도 유튜브에서 하면 되지 않냐는 시선이 있는데 비평이 하는 역할을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이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기업 입장에서는 자기 게임에 대한 피드백이 필요하고, 그 피드백을 광고로 전환시켜야 되는데 그 과정에서 다이렉트로 유튜브를 연결하면 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것 같지만요. 하지만 피드백을 위해서 광고를 돌리지 광고를 돌리기 위해 피드백을 받는 건 아니잖아요. 어쨌든 각자의 역할들이 있다고 생각을 하다 보니 저도 나름대로 비평을 할 때 적절한 언어를 좀 찾아가는 편인 것 같아요. 물론 그 논문처럼 비평을 쓰시는 분들의 고민도 이해가 안 되지는 않아요. 누가 우리 비평을 읽을까? 어떻게 경로를 넓힐 수 있을까? 이경혁 편집장: 얘기하다 보니 결국 ‘비평을 왜 할까'라는 질문이 떠오르지만 우리가 그냥 이 얘기를 하면 힘드니까 다른 질문으로 돌려 볼까 합니다. 우리 모두들 내가 쓴 비평을 읽는 사람이 있긴 할까라는 고민 갖고 있지 않으세요? GG 사이트도 사실 트래픽이 빵빵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알음알음 읽는 사이트 정도의 트래픽이라 생각하는데요. 어떠신가요? 본인들이 쓴 글을 주변에서 많이 읽어 주나요? 김규리: 뭐랄까, 제가 비평에서 다룬 특정 게임을 좋아하는 분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공유되는 식? 비평 자체를 원래 읽던 독자는 아니지만 ‘우리가 파는 게임 얘기 나온다는데 한번 볼까', 이런 식으로 유입되는 분들은 종종 본 적 있어요. 그런데 이런 경로가 아니고 그냥 개인이 찾아서 비평을 읽는다면 무슨 경로가 있을까는 궁금하기는 합니다. 영이: 저는 <게임 코러스> 낼 때 이 책의 독자로 학술이나 예술 하시는 분들보다 제발 그 게임을 하는 분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항상 했었어요. 매체를 너무 도구적으로 향유하려는 시각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요. 제가 원래 연극 쪽을 했었는데, 그 쪽에서도 비슷하게 연극 자체에 대한 열정보다는 이론이나 학문의 도구로 예술을 차용해가는 관습이 있었고 그거에 조금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거든요. 지금도 게임 비평을 쓸 때는 꼭 게임을 우선시하는 분이 먼저 읽어줬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쓰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독자 경로를 좀더 찾을 수 있는 방향이 있다면 이런 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까 ‘자기가 하고 있는 게임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이야기도 해 주셨는데요, 절대다수는 아니더라도 어떤 게임을 하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게임에 대한 로어나 위키를 형성하는 분들이나 게임의 역사와 개발과정을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분들이 나름대로 계시다고 생각해요. ‘헤비 유저가 중요하다'는 아까 얘기와도 연결되는데, 자기가 즐기고 있는 게임의 외부적인 자료를 원하는 게임 플레이어분들이 제가 쓰는 게임 관련 글이나 비평에 연결될 수 있는 경로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해 게임 관련해 파볼 만한 기존 자원과 환경이 갖춰진 해외 풀과 국내 풀이 연결되고 환류될 수 있는 그런 소통 경로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확실히 해외 연결에 대한 니즈가 다들 좀 있으신 것 같습니다. GG 만들때 저도 해외 필진들을 찾으려고 참 분투 중이지만 이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예산만 된다면 아시아 전반의 게임 관련 필자들을 다 모아서 파티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김규리: 개인적으로는 <크리티컬 디스턴스>라고 해외에서 관련 전공자가 한 10년 정도 아카이빙을 해온 사이트가 생각났는데요. 여기는 기본적으로 한 주에 있었던 주요 게임 관련 유의미한 기사나 블로그를 큐레이션하기도 하고, 그 주의 신작이나 그 주의 게임 관련 타임라인에서 나왔던 주요 화두를 중심으로 전부 정리해요. 거기가 디스코드 채널을 운영하고 있어서 자기소개를 했었는데 GG를 말씀드리기도 했지만 일단은 잘 모르시더라구요. 그리고 말씀들을 듣다 보니 비평이라는 전문 영역을 살릴 필요도 있지만 기존의 다른 산업 분야 안에서 비평 글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어떤 세부적인 틀을 그 안에 또 만들어 놓을 수 있지는 않을까. 그 안에서 좀 야금야금 어떻게 자리를 해볼 수 없나 그런 생각도 드네요. 이경혁 편집장: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먹고사는 문제가 참 크네요. 지금 매체 비평 전반이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 아예 씬도 없는 게임 글을 써서 그걸로 먹고 사는 걸 상상하는 것 자체가 되게 발칙한 상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게다가 이 씬에서는 비평을 안 읽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습니다. 얼마 전에 트위터에 GG에서 올라온 게임 기사가 돌면서 조회수가 올랐는데, 거기 또 그 게임의 덕후 그룹이 있나 보더라구요. 이경혁 편집장: 그래서 아까 영이님 말씀처럼 특정 게임에 하드하게 달려드는 이 그룹들이 비평의 타겟이 되어야 하는가? 그 생각을 했었어요. 단 이 분들은 매체에서 이 게임이 아닌 다른 게임의 비평은 전혀 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요. 김규리: 지금 비평이 소비되는 방식 자체가 마치 2차 창작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데요. 요즘 웹소설들은 무조건 모바일 독자 환경에 맞춰서 글자 수는 50자 이내, 문단은 세 줄 이상 길어져서는 안되고, 무조건 직접 인용으로 대사 처리하는 식으로 스피디하게 생산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다른 한 편 포스타입이나 리디북스에서 연재되는 소설들은 모바일화된 독서 전통과는 비교적 거리가 있고 그걸 신경 쓰지 않아도 충분히 이걸 읽어주는 독자가 있어요. 왜냐하면 이 독자들은 이런 깊은 문장을 원한다는 그 자신감이 있어서. 포스타입 독자들이 ‘포스타입 소설이 진짜 문학이지' ‘나는 포스타입 읽고 국어 1등급 맞았어'하며 자조식으로 말하는 것도 결국은 이 사람들이 자기에게 익숙한 텍스트를 통해 깊은 독서에 대한 열망을 충족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거든요. 저는 비평이 바로 이 욕망을 저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영역이라고도 생각이 돼요. 그래서 단발성으로 끝나버리는 이 욕구들을 어떻게 장기적으로 연결고리를 계속 만들까, 그게 이 전체 플랫폼을 활성화하는 데도 정말 주요한 관건이 될 것 같아요. 이현재: 장기적 플랜 하니까 저도 생각났는데, 비평이 <씨네21>도 그렇고 <만화규장각>도 그렇고 하다못해 게이머즈를 생각을 해봐도 그렇게 부수가 엄청 찍힌다던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보지 않잖아요. 어디선가 계속 비평을 읽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고 하고 유튜브만으로는 부족하다는데 왜 그 사람들이 비평 쪽으로 오지 않고 이게 판매로 전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느낌도 커요. 버즈들은 분명히 잡히는데 왜 그 버즈가 트래픽으로 전환이 안 될까, 어떤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들이나 개량하는 방식들도 한계에 다다른 건 아닐까요? 이경혁 편집장: 실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저는 실제로 비평을 읽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있긴 있지만, 비즈니스 덩어리가 될 수 있는 매스의 규모로는 안 되기 때문에 아까 얘기한 포스타입 같은 소액 매출로 돌아가는 구조까지밖에 되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처음에 GG를 설계할 때 구독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이유도 그거였어요. 현재 그 많은 비평을 하겠다는 독립지들이 전부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일회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게 아닐까 해요. 한 번 보고 말지 두 번 돈을 내는 독자가 거의 없다는 거죠. 만약 GG를 정말 돈 내고 보라 그러면 몇 명이나 볼까 싶습니다. 영이: 말씀 듣다 보니 외국의 게임 저널과 국내 비평지들은 시스템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졌어요. 한국에서는 그런 현상이 없는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외국은 , <코타쿠> 등지에서 제도권 기성 비평가들이나 게임을 안 하지만 비평을 하는 사람들이 실제 플레이어들과 형성하는 대립 관계가 설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그만큼 게임 비평을 사람들이 많이 읽어서 이런 식의 대립 관계가 설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비평을 읽으니까 비평가 욕을 하는 거고 글을 읽었으니까 이 사람 게임 안 했네, 이런 비판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거기서는 어떻게 그런 시스템이 가능한 걸까요? 이경혁 편집장: 말씀하신 외국의 <가마수트라>나 <코타쿠> 같은 게임 비평지와 GG는 또 성격이 좀 다르죠. GG는 그것보다는 좀더 아카데믹한 영역에 와 있긴 해요. 한국도 외국과 비슷한 게임비평 전통을 만들려는 시도가 과거에 있었어요. 90년대 00년대에 나오는 오프라인 게임 잡지에서 시도가 있다가 실패를 합니다. 평론가들이 심지어 비평 관련 담론을 만들지도 못한 상태에서 웹진들이 하나하나 날아갔고, 지금 남아있는 웹진은 00년대의 온라인 게임 붐 속에서 커뮤니티를 베이스로 성장하게 됐어요. 인벤이 살아남은 이유도 와우 인벤 때문이었고 루리웹도 사실상 커뮤니티인데 지금 웹진 기능을 붙잡고 있는 정도지요. 비즈니스의 주도권이 커뮤니티에 더 있는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웹진에서 비평을 다루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수익 문제도 있고 광고에 의존을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광고를 준 게임에 대한 비평이라는 게 어려워지는 것이고. 예전에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비평의 영역을 보완했어요, 소위 말하는 게임 갤러리에 글 쓰는 사람들이 그 니즈를 충족해 줬죠. 어떻게? 공짜로. 그게 몇 년간 몇십 년간 쌓이다 보니 한국에서는 비평이 유료매체의 형태로 발행되거나 비평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기반을 담보하지는 못하는 형태로 자리를 잡은 거죠.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는 우리와 다른 길을 간 것인데 그게 한편으로는 좀 안타깝기도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비평의 역할 이경혁 편집장: 어쨌든 저는 독자들은 우리의 글을 대개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돈을 내는 건 다른 문제라 보고 이건 상당히 현실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비평이 잘 된다는 건 질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이고, 그런 질 좋은 글을 만드는 생산구조를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것일텐데요. 우리가 너무 먹고 사는 얘기만 한 것 같아 이번엔 좀 하이한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비평 공모전의 당선자로서 여러분은 비평이 왜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이현재: 저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해왔는데 비평은 콘텐츠의 가장 끝단에 있는 캡스톤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요. 캡스톤은 그 구조물에 대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지만, 없다면 건축적 관점에서 봤을 때 방향이 사라져요. 그래서 그 방향이 어디가 되어야 하는지 지목해 주는 역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걸 비평이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잘못된 방향설정을 할 수도 있고 늘 설정한 방향대로 가지는 않지만요. 최소한 게임 비평이 어떤 시기에 특정 게임에 대해, ‘이 게임이 NN년에 런칭을 해서 반년간 서비스가 되었고 N주년을 뒤돌아보니 이 게임이 쌓은 이야기가 이런 거더라'라고 정리할 수 있을 아젠다를 던져줄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영이: 비슷하게 생각하는데, 공연 예술에는 '내부 비평가'라는 직함이 있잖아요. 그게 다른 분야보다도 더 필요한 이유는 공연예술이 무정형적이고 휘발성이 강하고 텍스트로 고정되어 있지 않기에 피드백이 바로바로 환류되기 쉽지 않아서에요. 단순히 관중이나 극이 올라간 이후 비평가의 말만 가지고서는 이게 어떻게 보이고 이걸 어떻게 만들지 잡아가기 쉽지 않다 보니 제작과정에서 내부 평가가 실시간으로 존재해야 방향성이나 균형을 흔들리지 않게 할 수 있거든요.저는 게임도 공연 예술이랑 닿아있는 점이 많다고 생각을 해요. 휘발성 있고 무정형적이고 텍스트 기반이 아니라는 점에서. 게임이 텍스트 기반이 아니라 보는 이유는, 게임 경험이라고 하는 게 게임 소프트웨어만으로 완성이 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이것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이 반드시 존재해야만 작품이 완성되는 장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비평의 역할 또한 단순히 윤곽이나 형태가 뚜렷하게 잡히고 고정된 예술이 아니라 어떤 과정 중심적 예술의 형식이 강하죠. 그렇다보니 비평이 텍스트로 사후적으로든 과정 중에서든 어떤 방향의 형태를 잡아주는 것이 작품의 생명에 있어 꽤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그렇기에 다른 장르보다도 게임 분야에서 게임 외적 영역이 활성되어 있고 비평에 대한 욕구 또한 그런 데서 창출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게임이라는 원본의 형태만으로는 이 향유자인 플레이어들도 부족하다고 느껴서요. 그래서 작품 생명의 연장선으로서 게임 비평이 기능하는 역할이 크다고 저는 느껴집니다. 김규리: 앞의 두 분들은 진지하게 말씀하셨지만 사실 저는 그냥 제가 좋아서 비평을 쓰고 싶거든요(웃음). 저는 항상 문화론 이후 수혜를 받은 그 문학과의 전통 안에서 공부해와서 그런지, 굉장히 보잘것 없어 보이는 텍스트라도 그 안에서 어떤 단면을 포착할 수 있고 그걸 부각할 수 있는 나의 시선이 있으면 충분히 이야기 가능한 대상이라는 것을 거의 대전제처럼 훈련을 받아왔어요. 마찬가지로 게임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저는 <데스티니>라는 지금은 업데이트가 종료된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5-6년간 했는데. 이 게임의 작가진들이 미국적 세계관과 그를 통해 만들어진 이항대립적 서사를 어떻게 요리하며 비선형적으로 나아가고자 했고 실패했는가,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근데 리뷰나 유튜브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그냥 ‘<번지> 게임사 다양성 생기다 망했다', 아니면 ‘<번지>가 <소니>랑 결합을 해서 망했다' 이런 식으로 소비된단 말이죠(웃음). 어떤 작품에 대한 호오를 표출할 수 없게 굳어버린 매체 지형 안에서 호오를 그런 방식으로 그냥 쏠리게 하지 않고 재미있게 얘기를 풀어보고 싶거든요. 그럴 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게 비평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 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도 좀 드네요. 게임 담론장에 아사리판이 났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비평을 더 살려야 하는건 아닌가, 그런 당위는 나올 수 있겠다 싶어요. 다만 비평가들이 아무리 여기서 매우 정치하고 준비된 이야기를 제시한다 하더라도, 자기들끼리 안온한 공간에서 고담준론이나 펼치는, 나쁜 표현으로 얘기하면 ‘선비질'에 그치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도 있을 수 있지 않나요? 김규리: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으신 분은 제발 좀 알려주세요 저한테(웃음). 이현재: 오픈 월드가 나온 <엘든 링> 때부터 뭔가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대중은 고정된 방식의 이야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수동성을 적극적으로 소비해요. 유튜브로 대부분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도 그렇고요. 글은 어느 정도 내 속도를 가지고 내가 이해한 만큼 봐야 되는 건데 그걸 유튜브로 듣는다는 건, 유튜브가 맞춰준 속도의 정보 값을 받아들이겠다는 거니까요. 웹툰은 계속 하향 중인데 쇼츠가 엄청나게 성장하는 것도 영상 매체가 주는 수동성으로 대중이 계속 옮겨가는 것 같거든요.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고민을 해봤다는 흔적 정도는 최소한 남겨놔야, 우리가 지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뭐라도 한 번 해봤지 공격도 안 해보고서 지진 않았다'고 면피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저는 요새는 실제로 이런 마음으로 비평을 하고 있어요. 특히 '지금 있는 문제 다음에는 어떨 거냐' 이런 이야기는 논문으로 쓴다면 팩트가 근거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리젝을 당하는 주제일 거에요. 하지만 비평에서는 지금 있는 상황을 넘어 한 발 더 가볼 수 있잖아요. 한 발 앞이 아니라 두세 발 앞을 보는 거는 모험이 필요한 일이고, 돈이나 소비가 많이 필요한 일이잖아요. 이런 기능들을 비평이 어쨌든 할 수 있고, 지금 대중이 보고 싶지 않은 글이더라도 언젠가 여기서 결국에는 발굴이 되지 않을까 이런 마음으로 씨앗을 하나하나 뿌려야 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떠나서 여기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으면은 그래도 한번 해볼 만한 일이지 않나라고도 생각을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오늘 대담은 수상 이후로 얼굴 뵌지 오래된 여러분을 한번 뵙고 겸사겸사 공모전 시즌을 기념해 어떻게들 사는지, 비평이란 무엇인지라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내년에도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공모전을 하게 될 텐데요. 먼저 경험하신 분들 입장에서는 비평을 쓰는 일을 자기 타이틀로 갖고 싶은 사람에게 특별히 어떤 말씀을 드리고 싶으신가요?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홍보하시고 싶은 출판물이나 작품이 있다면 여기서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김규리: 비평은 본인이 비평을 쓰고 싶다고 착안했던 원 텍스트의 매력을 포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텍스트의 매력을 포착하고 나서 이걸 어디에 연결시킬 건지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게임에 대한 특성이나 해설, 매력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이상을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글이 확장되기 어려운 순환 구조 안에 닫히게 될 위험도 있다고 생각해서요. 이현재: 제가 속한 경희대 K-컬처 스토리콘텐츠연구소에서 이번에 책을 냈는데요, 출판원에서 생각보다 책이 많이 안 팔렸다는 얘기를 들어서(웃음) 여기에 홍보를 해보려 합니다. <2026 K-콘텐츠: 한류를 읽는 안과 밖의 시선>이라는 책이고, 저는 여기서 게임 파트 집필을 담당했어요. 한류와 K컬처의 연장선상에서 다루는 게임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 있다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ags: "인터뷰", "게임비평공모전", "게임비평", "게임 연구자", "비평의 미래", "김규리", "이현재", "영이", "게임 코러스", "Interview", "Game Criticism", "Game Criticism in Korea"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Playing with Shivering Bodies: Expectation, Exploration, Perception

    The dark hallway I walk through seems to be deserted. I can only hear my own steps and the eerie soundscape of the cranking metal pipes surrounding me, and can barely see what lays beyond the light of my flashlight. I’m afraid, as I don’t know if something is waiting in the shadows for me. As I enter the next room, I hear heavy breathing and as the light catches a mutilated body, in between the dead and living, I feel my stomach contract from disgust. < Back Playing with Shivering Bodies: Expectation, Exploration, Perception 19 GG Vol. 24. 8. 10. The dark hallway I walk through seems to be deserted. I can only hear my own steps and the eerie soundscape of the cranking metal pipes surrounding me, and can barely see what lays beyond the light of my flashlight. I’m afraid, as I don’t know if something is waiting in the shadows for me. As I enter the next room, I hear heavy breathing and as the light catches a mutilated body, in between the dead and living, I feel my stomach contract from disgust. For playing such horror scenarios, found in similar form across multiple games, one of our key motivations is to experience strong emotions: the feeling of suspense in supernatural scenarios, the virtual threat of being hunted by often invisible enemies, the disgust caused by body horror. To achieve such feelings, digital games often rely on narrative motives established and familiarized through their movie counterparts and are aimed at creating similar expectations and experiences as other horror media. Still, the specific nature of digital games, their frameworks, interactivity, atmosphere, and direct experience of virtual environments, allow us to understand horror in digital games as a separate and unique phenomenon. As the category of horror games includes a large variety of different subcategories, from gore-loaded combat-games to narrative-driven psychological horror, it is impossible to provide a comprehensive overview over the experience of horror in digital games. Therefore, we will here take a look at some of the more general elements which affect horror experiences in digital games: expectation building, exploration and curiosity, and bodily perception. Emotions and Curiosity Before looking into players’ experience of horror games, the almost impossible has to be attempted, a definition of what horror games are. This problem is especially based in the large diversity of subcategories across horror games and their often-blurry lines. Typical examples for this issue as The Dredge or Prey (2017) include familiar elements of horror, while especially online it is often discussed to which extend they belong to the horror genre. Therefore, horror games are here very broadly understood as games which are primarily characterized by atmospheres which are perceived as scary, threatening, and/or distressing. Horror games, as well as general horror media, further provide narratives and spaces for transgression. They are primarily aimed at evoking strong emotional reactions in players, centered around the experience of suspense, uncertainty, disgust, and shock. Horror games are opportunities for intense stimulation: if we play Horror Games, we want to experience strong emotions and are curious to explore the abnormal, horrifying, and scary. Not only do narratives contribute to this objective: all parts of the game’s sensory design, including visuals, music and sound effects, and (rarely) haptics are typically designed to support and evoke such experiences. Based on those elements, and consciously not considering the multitude of elements relevant to specific subgenres across horror games, we arrive at an initial and very brief understanding of horror games, which will lead us through the following aspects and element: Horror games are first and foremost aimed at intense engaging and emotional experiences, playing with our natural, biological, and culturally informed perception of what is threatening and scary as well as our (morbid) curiosity towards the unknown and unfamiliar. In the next sections, we will dive deeper into some of those specific aspects contributing to those experiences. Managing Expectations: References and Representations This very broad understanding of horror games for the most part is unsurprisingly aligned with a general categorization of horror media, especially movies, and their impact on the consumer. Our experience of a horror game is typically preconditioned by our knowledge of general horror media and previously experienced other horror games. By relying on familiar motives and elements in its design, a game can present us with clear points of reference. Seeing a deserted village covered in fog, we immediately expect a scary experience coming up, as we have probably seen this exact motive several times in horror films, literature, or formative games as Silent Hill . Dan Pinchback in his essay on horror imagery in games describes this as “horror by reference” (2009, p. 81). We are used to encounter specific elements, as mansions, hellish demons or the undead, in horror media and therefore connect them immediately with previous experiences of horror. Additionally, games encompass what Pinchbeck refers to as “representational level” (2009, p. 81), the design of elements which support and contribute to our understanding of a scary or horrifying atmosphere. This includes the visual design of the surroundings, the creation of enemies and NPCs which are perceived as abnormal, as well as sound design, making the game a multisensory experience of horror. This further extends to the expected mechanics, for horror games typically including resource scarcity, hidden hints to the lore, the need to hide when an enemy approaches, and the expectation of the occasional jump scare. While from a design-perspective entirely relying on this familiarity to establish horror quickly can turn into predictable and boring experiences, the selective use of such still builds up necessary and motivating expectations in players. While those expectations do not have to necessarily be proven correct, being familiar with those elements will still influence what we want and expect from a horror game. As Pinchback writes, based on these familiar patterns and points of reference, “we are expected to find the subject matter horrific because we already know it is supposed to be” (2009, p. 81). Exploring Unknown Environments While many of the elements introduced so far can be found both in horror media and games, we now arrive at one of the major aspects setting horror games apart from their counterparts in literature and film: the opportunity to actively explore and engage with a horrifying environment, rather than just witnessing it. As we play horror games, we are typically curious towards our virtual environment, as we want to gain an understanding of it. Especially within survival horror games, it is not necessarily only a manifest enemy, which is perceived as the primary threat by the player, but rather the environment itself. To understand how to survive, the environment has to be made gradually comprehensible by players. While a general curiosity can explain players’ motivation for uncovering more information on their environment as they progress through the game, further the specific trait of morbid curiosity (Scrivner, 2021) relates here to the fascination of some players with disgusting, horrifying, and destructive elements and the wish to explore those more closely within the game world. Digital horror games typically support these types of curiosity by enabling explorative behavior through building up scenarios which cannot be understood immediately. Players must reveal new information on the unfamiliar, uncanny, threatening environment and/or its inhabitants to overcome those. While narratives of other horror media (especially movies) are also gradually unveiling new information and appeal to our curiosity, there we are just witnessing those reveals, rather than having the potential to reveal them ourselves. This becomes especially clear, if we do not only consider the players progression trough the main storyline, but also the typical presence of additional documents, logs, graffiti, and easter eggs, all potentially contributing to a curiosity-led experience of the environment. Depending on the game, it might be the exploration which dominantly contributes to feeling scared, with especially psychological horror games primarily relying on searching for new information and building up a generally discomforting atmosphere, rather than utilizing materialized enemies. A mechanical design aspect supporting such exploration, we encounter in games as Phasmophobia and Fatal Frame . We are initially able to only perceive a deserted space. Only by using in-game tools we can catch glimpses of supernatural powers surrounding us, never able to safely perceive the whole picture or gain a continuous insight. Especially in the case of Phasmophobia we initially enter spaces often without knowledge of what to expect besides a general haunting and have to uncover piece by piece what is waiting for us. Additionally, digital games as a medium allow for the extension of such tools into the physical space of the player. In SOMA the avatar is alarmed by audio-visual glitches, as soon as lethal monsters approach. This signaling is extended to the physical space of the player by intensifying controller vibrations, letting us experience the rising thread haptically. While this feature allows to regain a little bit of situational control, it still contributes to the feeling of an invisible threat. Even if a threat is not seen yet, it creeps into our sensory perception. The experience of spaces as horrifying clearly relates to the amount of information made available to the player through such sensory elements as well as HUDs and their presence or absence. HUDs provide us with a feeling of control, as they allow us to have insight into the information relevant to our navigation and survival. Making them diegetic as in Dead Space allows us to immerse ourselves more intensely into the virtual environment, while taking them away or reducing them actively creates uncertainty, which again contributes to a feeling of vulnerability and loss of situational control. And indeed, one of the probably most prominent elements of horror games in comparison to other game categories are the often reduced or fully absent HUDs. Using the example of Limbo , we can see why. With an already partially unclear plot, we are thrown into a 2D world without any additional information provided to us through health bars, maps, or hints. We seem to know nothing more (or even less) than the protagonist of the game. Exploration here functions as a way to gradually gain such control, by understanding at least partially how to navigate the unknown by familiarizing oneself with it, uncovering the reasons for horrifying events encountered, or finding ways to overcome initially seemingly invincible enemies. The here underlying idea is a simple one, also hinted towards in the previous section: if you do not know everything about your surroundings, you are not in full control of your environment and safety. Therefore, you should be scared. Embodied Perception The experience of digital games in general and horror games specifically is not only mental but also physical, meaning that atmosphere, actions, and narratives of the game are reflected in bodily reactions of the player. We flinch during jump scares, contract when witnessing extreme violence, feel tension in our muscles when trying to fight or escape an enemy. We relate on an embodied level to the virtual experience of our avatar, as the player’s body on a neural level mirrors what the virtual body experiences. Therefore, in-game events are not only experienced on a cognitive or emotional level, but initially through the player’s body, leading to an empathetic relation with the virtual body of the avatar. Here, the previously introduced elements of experience come together, as they also partially contribute to this bodily experience. Understanding horror games as somatic media, based on Max Ryynänen’s somatic film theory (Ryynänen, 2022), specific atmospheric and material elements are designed to trigger a real physical response. And while this approach once again stems from film theory, we can assume that playing digital games, with its audio-visual-haptic perception and our actions through the virtual body (rather than just witnessing it as in film) even intensifies this phenomenon. We are not just observing, we are actively involved in the virtual space through our actions. In an interview by Glen Schofield, developer of The Callisto Protocol, he points out that the third-person perspective allows for something crucial to somatic perception of the avatar: being able to see what happens to the avatars body in detail and how the virtual body reacts (Kim 2020). To mirror the experience of a virtual body, we have to perceive it visually. With the exception of Doom ’s iconic status bar face or the use of mirrors for example in SOMA , first-person perspective rarely allows us such a perception. Still, somatic perception is not limited to the body of the avatar itself, but also its surroundings and what is witnessed within there. Exemplary, this becomes especially clear in games which center bodies as a site of disgust, as the Cronenberg’ian mutants of the Resident Evil series or the mutilations of The Evil Within . We do not necessarily have to visually perceive those disgusting elements, equally the soundscape or in rare cases the appearance of unpleasant vibrations can make us aware of something abnormal and horrifying happening. And the more disturbing and disgusting is what we perceive, the more intense our bodily reaction to it (even though players’ familiarity might influence how intense they experience those). As we witness abnormal transformation and digusting acts, we know consciously that what we are witnessing is not real. And still our body reacts to some degree unconsciously as it would be real. We experience something as scary, disgusting, or threatening, because our body clearly signals it to us. In the case of digital games, this signaling however is expected and becomes part of an intense and activating play experience. Summary: Horror Media, Games, and Experience To summarize, horror games as well as horror media in general appeal to our curiosity for experiencing intense, horrifying, and dangerous situations without any real danger for ourselves. Horror games are embedded in a net of transmedia references, with our expectations and experiences of play being conditioned by horror culture surrounding us, no matter if film, literature, or tales. Our experience is informed by what is perceived as scary within our respective cultures, the literature we read, and the movies we consume. Still, there are significant differences between horror games and general media, specifically in relation to the experience of agency and our relation to protagonists. We are not observers, but rather interact and explore through our virtual extension, contributing both to the feeling of gaining and losing control. And while most of the of the here introduced elements are rather broad and do not take into consideration the intricate specifics of some subcategories of horror games, we can find a general definition of horror games through looking at the appearance of bodily reactions. Horror games first and foremost are somatic media: designed to make our body react on a subconscious level and played by us to experience such intense reactions. References Kim, M. (2020) The Callisto Protocol Wants to be The Scariest Next-Gen Horror Game Ever. Available at: https://nordic.ign.com/news/42235/the-callisto-project-wants-to-be-the-scariest-next-gen-horror-game-ever . Pinchbeck, D. (2009) ‘Shock, horror? First-person gaming, horror, and the art of ludic manipulation.’, in Horror video games: essays on the fusion of fear and play. Jefferson, NC: B. Perron, pp. 79–94. Ryynänen, M. (2022) Bodily Engagements with Film, Images, and Technology: Somavision. 1st edn. New York: Routledge. Available at: https://doi.org/10.4324/9781003248514 . Scrivner, C. (2021) ‘An Infectious Curiosity: Morbid Curiosity and Media Preferences during a Pandemic’, Evolutionary Studies in Imaginative Culture, 5(1), pp. 1–12. Available at: https://doi.org/10.26613/esic.5.1.206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Researcher) Aska Mayer A Doctoral Researcher at Tampere University Game Research Lab and the Finnish Center of Excellence in Game Culture Studies. Aska’s research is focused on bodily perceptions of digital games and technology, as well as apocalyptic media.

  • 게임커뮤니티가 걸어온 지난 25년과 오늘

    한 세기를 농구 한 경기로 본다면 이제 1쿼터의 막판이다. 쿼터나 25년이라고 하면 엄청 긴 세월은 아닌 것 같지만 사반세기로 지칭해 세기 개념이 오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묵직함이 있다. 한 쿼터도 긴 시간이고 역사의 한 두께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커뮤니티, 디시, 루리웹, 펨코, 인벤, 게임웹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 <발리언트 하츠>, 전쟁은 이기는 것이 아니다.

    작품이 1차 세계대전이라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전쟁의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 던졌을 질문들처럼, 게임은 여전히 전쟁이라는 경험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는 매체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1차세계대전, 어드벤처, 반전운동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aein Park A gamer who searches games for inspiration in life. Keenly interested in analyzing the ways games convey their intentions and concepts.

  • 노미배 천하제일 와갤요리 대회에 어서 오세요

     케이크는 거짓말이다. 〈포털〉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문장이다. 게임 속 인공지능 글라도스는 플레이어에게 모든 테스트 챔버를 통과하면 케이크를 보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제안은 거짓이었다. 정확히는 케이크는 있다. 다만 플레이어가 들어갈 수 없는 방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이 짓궂은 장면 이후 플레이어 중 누군가는 화면 너머 케이크, 블랙 포레스트를 진짜로 굽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잠깐 스쳐 지나간 레시피 조각을 짜맞춰 베이킹하고 사진을 올렸다. 글라도스의 케이크는 거짓말이긴 했지만 영원한 거짓말이 되지는 않았다. < Back 노미배 천하제일 와갤요리 대회에 어서 오세요 30 GG Vol. 26. 6. 10. 1. 케이크는 거짓말이‘었’다 케이크는 거짓말이다. 〈포털〉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문장이다. 게임 속 인공지능 글라도스는 플레이어에게 모든 테스트 챔버를 통과하면 케이크를 보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제안은 거짓이었다. 정확히는 케이크는 있다. 다만 플레이어가 들어갈 수 없는 방에 놓여 있을 뿐이다. 이 짓궂은 장면 이후 플레이어 중 누군가는 화면 너머 케이크, 블랙 포레스트를 진짜로 굽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잠깐 스쳐 지나간 레시피 조각을 짜맞춰 베이킹하고 사진을 올렸다. 글라도스의 케이크는 거짓말이긴 했지만 영원한 거짓말이 되지는 않았다. 〈포털〉만의 에피소드에 국한할 것도 아니다. 게임 속 음식은 늘 조금은 이상한 자리에 있다. 〈디아블로〉의 빨간 물약은 체력 회복이라는 숫자로 환원되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빵 한 조각은 일정 시간 동안 능력치를 올려주는 효용 아이콘이며, 〈젤다의 전설〉에서 링크가 솥에 재료를 던질 때 화면을 가득 채우는 요리 컷씬조차 영양 정보를 담은 인벤토리 칸으로 정리된다. 어느 경우든 게임 속 음식은 보이지만 먹을 수 없다. 이 어긋남이 게임 요리책이라는 출판 장르를 발생시킨 동력이다. 지난 십 년 사이 영미권 출판 시장에는 이런 책들이 꽤 많이 출간되었다. 〈폴아웃〉 요리책, 〈파이널 판타지〉 요리책, 〈어쌔신 크리드〉 요리책, 〈원신〉 요리책. 표지마다 게임의 로고가 박혀 있고, 사진은 게임 속 음식을 진짜 음식처럼 보이게 찍어두었으며, 안에는 레시피가 빼곡하다. 이 장르에 표준은 첼시 먼로 카셀이 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공식 요리책: 진짜 맛있는 아제로스 요리 백과』다. 책의 실물은 일단 묵직하다. 표지는 와우 특유의 짙은 황금색과 푸른색의 게임 로고가 박혀 있다. 누가 봐도 게임 굿즈처럼 보이는 책이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단순한 굿즈가 아니라, <와우> 세계관을 좋아해서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묶은 결과물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미디어 연구자 니콜 라메리히스는 팬이 게임 속 음식을 부엌에서 만들어 먹는 과정을 “글라도스를 진짜로 이기는 행위”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진짜 맛있는 아제로스 요리 백과』는 그 일을 한 권의 출판물로 정리한 결과다. 2. 헤드노트가 만드는 세계 이 책을 다른 요리책과 가르는 결정적인 장치는 레시피가 아니라 그 위에 붙은 짧은 헤드노트들이다. 보통의 요리책에서 헤드노트는 음식의 유래, 저자의 회상, 조리할 때 유의할 점 같은 것을 적어두는 자리다. 그런데 이 책의 헤드노트는 <와우>를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생소한 이름들을 슬쩍슬쩍 호명한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이런 문장들과 마주치게 된다. “호잰의 위핑 스프만은 건드리지 말 것.” “단팥빵이 리리 스톰스타우트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염소 치즈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제이나 프라우드무어 역시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볶음의 대가인 안시아 아이언 포우가 직접 지도한 조리법 중에 가장 간단한 요리가 바로 당근 볶음이다.” “이 언더시티의 스낵은 호드 종족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와우>를 해본 독자라면 이 이름들이 누군지 곧장 알아챌 것이다. 리리 스톰스타우트는 미스트 오브 판다리아 확장팩의 핵심 인물이고, 제이나 프라우드무어는 얼라이언스의 가장 유명한 영웅 중 한 명이다. 안시아 아이언 포우와 아비가일 쉬일은 게임 안에서 요리 스킬을 가르쳐주는 트레이너 NPC다. 헤드노트들은 <와우> 세계 안에 실재하는 인물들을 부엌의 우스갯소리에 호명하고 있다. 캐릭터 피규어, 일러스트 아트북, 사운드트랙과 같은 게임 굿즈는 현실 세계에서 게임 세계의 사물을 보여준다. 보는 사람은 분명히 현실 세계에 서 있고, 게임은 그 너머의 어딘가에 있다. 그런데 이 책의 헤드노트는 그 거리를 묘하게 흐트러뜨린다. “제이나도 동의할 것이다”라고 쓰는 순간, 책의 화자는 제이나를 마치 독자가 아는 누군가처럼 혹은 잘 알려진 미식가 친구처럼 호명한다. 화자는 현실 세계의 안내자가 아니라 제이나가 누구인지 자연스럽게 아는 <와우> 세계 안의 누군가다. 다른 헤드노트들이 이 감상을 강화한다. “이 조리법은 칼림도어의 먼지진흙 습지대에서 비롯된 원조 조리법과는 다르게 용을 해칠 필요가 전혀 없다.”— 용숨결 칠리 “서부 몰락지대의 낚시꾼들의 원조 조리법이 명실상부 최고다.” — 조개 스프 “한때 멀고어 지역의 타우렌 부족만이 먹던 주식이었다.” — 옥수수 만나빵 “한때 고대 모구 종족이 즐겨 먹던 속 채운 싱싱버섯은 현재 판다렌 대표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 속 채운 싱싱버섯 “원조 조리법”, “한때 어느 종족만이 먹던”, “현재 누구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표현들은 요리책이 아니라 식문화사 연구자의 어조에 가깝다. 음식 하나하나에 발생지가 있고, 종족 간 전파의 역사가 있으며, 지금의 위상이 있다. 헤드노트는 <와우>라는 세계에 진짜 식문화사가 있는 것처럼 발화한다. 마치 그 세계의 어느 학자가 혹은 어느 부지런한 여관 주인이 자기 세계의 음식들을 정리한 책이 있고, 독자가 지금 그 책을 읽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새콤달콤 덩굴월귤 소스의 헤드노트에 이르면 이 인상은 확실히 굳어진다 “󰡔푸짐한 요리책에 조리법이 실려 있던 순례자의 감사절 전통 소스이다. 과거에는 아제로스 이외에서는 이 조리법을 구할 수 없었다.” 책은 자기 안에 다른 책을 인용하고 있다. <푸짐한 요리책>이라는 책이 아제로스 안에 존재하고, 거기에 이 소스의 조리법이 실려 있었다는 진술. 그러니까 독자가 지금 읽고 있는 <와우> 요리책은 아제로스 안의 다른 요리책들과 같은 계보에 속한 책이다. “과거에는 아제로스 이외에서는 이 조리법을 구할 수 없었다”라는 진술은 그 가장(假裝)의 증거다. 이 책 자체가 그 이외의 어딘가로 조리법을 처음 전한다는 함의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 가장은 일관되게 유지된다. 추적자 과자의 헤드노트는 “다루기 힘든 반려동물을 찾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쓴다. <와우>의 사냥꾼 캐릭터가 펫을 부리는 인게임 메커닉에 대한 농담이지만, 농담의 화자는 그 메커닉을 마치 상식인 것처럼 다룬다. 알 약초구이의 헤드노트는 “꽤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어서 요리 실력을 높이고 싶은 요리사에게 연습용으로 안성맞춤이다”이다. <와우> 안에서 요리 스킬을 레벨업할 때 만드는 연습용 음식이라는 점을 그것이 일반적인 요리 학습의 상식인 것처럼 진술한다. 꿀이끼의 헤드노트는 “보통 버섯장수들에게서 살 수 있는데, 이제는 당신도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다”라고 적는다. “보통 버섯장수들에게서 살 수 있다”는 진술은 아제로스의 상식이고, “이제는 당신도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진술은 책의 존재 의미를 설명한다. 해당 요리책은 아제로스의 음식을 아제로스 바깥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가르쳐주는 책인 척한다. 이 가장은 독자의 위치를 미묘하게 옮긴다. 독자는 한국어판 양장본을 손에 들고 부엌에 서 있다. 그런데 책을 펼치는 순간, 잠깐 동안 아제로스의 어느 여관 주인이 막 펴낸 요리책을 들춰보는 사람이 된다. 호잰의 위핑 스프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듣고, 제이나가 어떤 치즈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모구 종족이 먹던 버섯이 어떻게 판다렌 음식이 되었는지를 배운다. 그 짧은 순간 동안, 부엌은 독자 집이지만 동시에 아제로스의 어딘가다. 3. 수습생 요리사의 부엌 헤드노트가 독자를 아제로스 안으로 데려간다면, 책의 형식과 시각 디자인은 그 안에서 독자에게 어떤 자리를 부여하는가. 먼저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 챕터는 음식 종류로 나뉘어 있다. 사이드, 빵, 수프와 스튜, 메인, 디저트, 음료. 어느 서양 요리책에서나 볼 법한 익숙한 분류다. 호드와 얼라이언스라는 진영은 앞서 본 헤드노트들 속으로 흩어져 들어가 있다. 칼도레이 잣 빵은 나이트엘프(얼라이언스)의 음식이고, 멀고어 향신료 빵은 타우렌(호드)의 음식이며, 판다렌 자두주는 진영을 떠난 중립 종족의 음식이다. 와인의 원산지 표시처럼, 진영은 풍미와 산지의 표지로 남아 있다. 대신 책의 구조를 지배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각 챕터에는 부제가 하나씩 붙어 있다. 사이드는 “간식의 길”, “빵의 길”, 수프와 스튜는 “국물 요리의 길”, 메인은 “본식의 길”, 디저트는 “후식의 길”, “음료의 길”이다. 이 명명법은 미스트 오브 판다리아 확장팩에서 도입된 인게임 요리 전문화 시스템의 차용이다. 게임 안에서 캐릭터의 요리 스킬을 어느 방향으로 전문화할지 선택하던 체계가, 책 안에서는 독자가 어떤 종류의 요리부터 시작할지 선택하는 체계가 된다. 조금 더 책장을 넘기면 더 많은 게임 인터페이스가 인쇄되어 있다. 모든 레시피 상단에는 숙련도 항목이 있고, 수습생, 전문가, 대가 중 하나가 표시되어 있다. 인게임 요리 스킬 등급을 본뜬 분류다. 챕터 시작 부분에는 친절하게도 업적 안내가 있어서, 각 길에서 다섯 개의 레시피를 만들면 업적이 해금된다는, 게임 시스템을 그대로 옮긴 표시가 박혀 있다. 레시피마다 “어울리는 음식” 항목이 붙어서 어떤 다른 요리와 짝지을지 알려주고, 일부 레시피에는 “사용 가능한 요리” 항목이 더해져서 그 음식이 어떤 다른 음식의 재료가 되는지를 알려준다. <와우>의 제작 시스템이 작은 활자로 책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셈이다. 책이 모방하는 것은 <와우>의 세계관만이 아니라 <와우>의 시스템 그 자체이기도 하다. 양파를 다지는 일은 수습생 단계의 행위가 되고, 다섯 개의 빵 레시피를 완성하는 일은 “빵 의 길”의 업적이 된다. 헤드노트가 독자에게 아제로스 안에 들어왔다고 속삭인다면, 인터페이스는 그 안에서 독자가 수습생 요리사라는 직책을 받았다고 알려준다. 사진은 또 다른 방식으로 동일한 작업을 수행한다. 모든 레시피에는 한 면을 가득 채우는 사진이 따라오는데, 그 사진들은 자연광에 가깝다. 한쪽에서 부드럽게 떨어지는 빛이 음식의 표면을 살짝 그늘지게 만들고, 따뜻한 황색조가 전체 화면을 감싼다. 음식 옆에 놓인 것은 나무 도마, 무쇠 팬, 도자기 그릇과 같은 평범한 부엌 도구들이고, 거기에 거친 마, 구리 주전자, 가죽으로 묶인 양피지과 같은 중세풍 소품이 더해진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사진 안에 살짝 숨어 있는 것들이 있다. 음식 뒤로 흐릿하게 처리된 무기 한 자루가 놓여 있거나, 주석으로 만든 맥주잔이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양념 육포의 사진을 예로 들면, 음식 옆에 야영을 연상시키는 덩굴이 놓이고, 나무 도마와 칼, 그리고 숫돌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이 작은 디테일들이 사진의 의미를 바꾼다. 양념 육포는 단순히 잘 찍힌 음식이 아니라, 누군가가 야영지에서 무기를 손질하면서 함께 먹었을 법한 음식이 된다. <와우>를 해본 독자라면 그 야영지를 어렵지 않게 떠올린다. 칼림도어의 어느 황량한 평원, 혹은 동부 왕국의 어느 숲속. 음식 사진 옆 페이지의 펜화도 같은 작업을 한다. 펜화에는 음식 자체가 아니라, 그 음식과 연상되는 풍경이 그려진다. 해산물 요리 옆에는 항구의 선박이, 고기 요리 옆에는 전사가 놓이는 식이다. 음식이 어느 세계의 누구의 식탁에 놓이는지를, 펜화가 옆에서 거든다. 사진이 음식의 현실감을 만들고, 펜화가 그 음식이 속한 세계를 환기한다. 이 사진들이 일반적인 푸드 포토그래피와 약간 다른 자리에 있다는 점은 짚어둘 만하다. 보통 푸드 포토그래피는 식욕을 자극하기 위해 찍힌다. 음식을 매혹적으로, 윤기 있게, 먹고 싶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와우> 요리책의 사진은 식욕보다는 정황에 충실하다. <와우>라는 세계에 속한 음식이 그 세계의 어느 자리에서 어떤 사람의 손과 무기와 야영지 곁에 놓이는가 하는 정황과 같은. 사진이 게임 화면의 색감을 흉내내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사진이 게임 화면처럼 보였다면, 그것은 여전히 화면 너머의 음식일 뿐이다. 사진이 자연광과 평범한 부엌 도구를 채택하되 그 옆에 흐릿한 무기를 두는 순간, 비로소 그 음식은 당신의 부엌에서 만들 수 있는, 그러나 동시에 아제로스의 야영지에서 누군가가 먹었을 법한 음식이 된다. 책은 세 가지 장치를 동시에 작동시키고 있는 셈이다. 헤드노트는 독자를 아제로스 안의 누군가가 된 듯한 자리에 앉히고, 인터페이스는 그 자리에 수습생 요리사라는 직책을 부여하며, 사진과 펜화는 그 직책으로 만드는 음식이 어떤 정황에 놓이는지를 보여준다. 세 가지가 한 페이지 안에서 함께 작동할 때, 책은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라 한 세계 전체를 부엌으로 가져오는 장치가 된다. 4. 생존자가 첨삭한 폴아웃 요리책 이 가장은 <와우> 요리책만의 것이 아니다. 게임 요리책이라는 장르는 비슷한 가장의 회로를 공유한다. 그중 빅토리아 로젠탈이 쓴 『폴아웃: 볼트 거주자의 공식 요리책』은 <와우> 요리책과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된다. “볼트텍 라이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독자는 당신이 알던 세계가 —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 분명 종말을 맞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전환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폴아웃> 세계관에서 볼트텍은 핵전쟁을 대비해 거대한 지하 방공호 시설을 운영하는 회사다. 게임의 플레이어 캐릭터는 그 방공호에서 깨어나 핵전쟁 이후의 황무지로 나와 모험을 시작한다. 책은 볼트텍이 방공호 거주자들에게 입주 안내서로 발간한 요리책처럼 가장한다. <와우> 요리책이 아제로스의 어느 식문화 연구자가 펴낸 책인 척한다면, <폴아웃> 요리책은 핵전쟁 직전 어느 미국 기업이 자기 고객들에게 나눠준 라이프스타일 책자인 척하는 것이다. 이 가장은 책 곳곳에서 일관되게 유지된다. 도입부 뒤에는 “볼트텍 방식의 손님 접대” “식이 제한 안내” 같은 절들이 이어진다. 손님 접대 절은 이렇게 적혀 있다. “여덟 명을 초과하는 모임은 별도의 서류 작업이 필요합니다. 부엌 사용은 언제든 박탈될 수 있는 특권임을 유념하십시오.” 식이 제한 절은 채식, 글루텐 알레르기, 유당불내증 대응 가이드를 회사 사보의 어조로 알려준다. “마가린이 너무 많이 비축되어 있습니다 — 부디 가져가 주십시오! 산소 탱크를 둘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농담들이 책의 맥락과 뉘앙스를 만든다. 거주자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권위주의적 회사의 매뉴얼이라는 <폴아웃> 세계의 분위기가, 한 권의 요리책으로 압축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정교함은 그다음에 있다. 책 안에는 두 번째 화자가 손글씨로 끼어든다. 회사 공식 텍스트로 인쇄된 레시피 옆에, 마치 누군가가 책에 연필로 끄적인 듯한 메모가 곳곳에 추가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닭 육수 레시피 옆에는 손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다. “방사능 닭은 잡기 쉽지만, 매우 빠를 수 있으니 조심해서 접근해야 한다.” 핵전쟁 이후의 황무지에서는 일반 닭이 없으니, 방사능에 노출된 변종 닭을 사냥해서 잡아야 한다는 메모다. 베이컨으로 감싼 관자 레시피 위에는 누군가가 제목을 “미스터리 미트 누카럴크”로 고쳐 쓰고, 그 옆에 이런 메모를 남겼다. “누카-월드의 미저들에게서 미스터리 베이컨을 구했다. 그곳에서 돼지를 한 마리도 못 봤다.” 데스클로 달걀말이 레시피 옆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닭 알이 그냥 굴러다니지는 않는다. 그런데 데스클로 둥지는 어디에나 있다. 데스클로 알 두 개로 일반 달걀 여섯 개를 대체할 것.” 이 손글씨 메모의 화자는 회사의 매뉴얼 위에 자기 경험을 덧붙이는 핵전쟁 이후 황무지를 떠도는 한 명의 생존자다. 그는 볼트텍이 알려준 닭 육수 레시피를 받아두되, 핵전쟁 이후에는 닭이 없으니 <폴아웃> 세계의 거대 도마뱀형 괴물의 알로 대체해야 한다는 현실을 메모로 남긴다. 회사의 권위적 어조 위에 생존자의 실용적 어조가 겹쳐지는 셈이다. 한 권의 책 안에 두 개의 화자, 두 개의 시간대, 두 개의 어조가 공존한다. 이 이중 화자 구조가 만드는 효과는 강력하다. <와우> 요리책이 단일한 가장을 일관되게 유지한다면, <폴아웃> 요리책은 두 개의 가장을 동시에 가동한다. 핵전쟁 이전의 권위적 회사와 핵전쟁 이후의 외로운 생존자. 책을 펼치는 독자는 이 두 시간대 사이에 끼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회사가 약속한 안온한 가정생활과 그 약속이 무너진 자리에서 데스클로 알을 깨는 생존자의 현실. <폴아웃>이 다루는 전쟁 이전 미국의 1950년대적 낙관주의와 그것이 폐허로 변한 이후의 디스토피아가 한 권의 요리책에 두 화자로 압축되어 있다. 이 책 역시 인게임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온다. 레시피마다 그 음식을 먹으면 얻는 S.P.E.C.I.A.L. 스탯 효과가 적혀 있다. <폴아웃> 게임 안에서 캐릭터의 능력치를 결정하는 힘, 인내, 지각, 매력, 지능, 민첩, 행운의 머리글자다. 데스클로 달걀말이를 만들어 먹으면 한 시간 동안 지능 +1, 누카콜라 한 잔을 곁들이면 30분 동안 인내 +1 같은 식이다. <와우> 요리책의 수습생/대가 등급이 요리 행위를 게임화한다면, <폴아웃> 요리책의 스페셜 효과는 음식 자체를 게임 아이템화한다. 부엌에서 만드는 모든 요리가 자기 능력치를 어딘가에서 약간씩 올려주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와우> 요리책과 <폴아웃> 요리책을 함께 놓고 보면 두 책이 같은 회로 안에서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가장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와우> 요리책의 가장은 따뜻하다. 호잰의 위핑 스프를 건드리지 말라는 호명, 제이나가 좋아하는 치즈에 대한 농담, 모구 종족에서 판다렌으로 전파된 버섯 요리의 역사. 그 가장 안의 아제로스는 살기에 나쁘지 않은 세계처럼 보인다. 반면 <폴아웃> 요리책의 가장은 차갑다. 거주자를 감시하는 회사의 매뉴얼, 핵전쟁 이후 데스클로 알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생존자의 메모. 그 가장 안의 <폴아웃> 세계는 살아남기 어려운 세계다. 두 책 모두 부엌을 다른 세계로 옮기지만, 그 결은 반대 방향이다. 5. 『또다요』를 계승하는 노미의 레시피 <와우> 요리책에는 후속작이 있다. 첼시 먼로 카셀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공식 요리책 2: 아제로스의 새로운 맛』는 70여 개의 레시피가 수록된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이다. 이 2권을 1권과 함께 펼쳐놓고 보면, 카셀이 1권에서 시작한 가장(假裝)을 어디까지 밀어붙였는지가 드러난다. 2권의 결정적인 변화는 화자다. 1권의 화자가 <와우> 세계를 아는 어느 식문화 연구자처럼 음식을 소개했다면, 2권에는 그 자리에 분명한 이름이 붙는다. 판다렌 셰프 노미. 노미는 판다리아 확장팩의 도시 언덕골에서 작은 요리 학교를 운영하는 NPC인데, 게임 안에서는 재료를 받아두고 자꾸 태워먹는 것으로 유명한 캐릭터다. 그 노미가 “판다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때, 나는 요리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고 싶었다.”는 회고로 시작하는 한 권의 책을 펴낸 것이다. 변화의 의미는 카셀도 개인 블로그에서 설명한 적이 있다. 1권과 달리 2권은 게임 세계관 내의 책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게임 안에서 어떤 퀘스트의 일부로 주워올 법한 책으로 의도되었다는 말이다. 1권에서 헤드노트들이 슬쩍슬쩍 흩뿌렸던 이 책이 아제로스 안의 어느 식문화 연구자가 펴낸 책인 것처럼 발화하는 가장은 2권에서는 명시적이고 일관된 책의 전제가 된 셈이다. 책의 표지를 펼치면 거기서부터 독자는 노미의 책을 들고 있다. 가장은 책 안에서 곳곳에서 발화된다. 챕터 구분도 달라졌다. 1권이 사이드와 메인과 디저트 같은 음식 종류로 나뉘었다면, 2권은 지역으로 나뉜다. 칼림도어, 부서진 섬, 동부 왕국, 쿨 티라스, 줄다자르, 판다리아, 어둠땅, 나즈자타, 노스랜드, 아웃랜드 그리고 그 너머. 노미가 여행한 곳들이다. 헤드노트들은 노미의 1인칭 회상으로 발화되고, 책 곳곳에 “노미의 메모”라는 작은 박스가 끼어들어 본문에 부연을 덧붙인다. 다크문 도넛 항목 옆에는 “달콤한 게 당긴다면?”이라는 노미의 메모가 따라붙는 식이다. 책 본문도 그 위의 메모도 노미가 쓴 것인 셈인데, 이 한 권 안에서 노미는 본문을 쓰는 셰프이자 그 본문 위에 친근한 부연을 끼적이는 친구의 자리를 동시에 차지한다. 게임 안에서 노미가 가졌던 평판을 카셀은 농담거리로 살리기도 한다. 책 곳곳에서 노미는 “음식을 태우지 않는 법”에 대한 팁들을 강조하기도 한다. 2권에서 또 한 가지 작은 변화는 숙련도 등급이 더 세분화되었다는 점이다. 1권에서 수습생, 전문가, 대가의 세 단계로만 나뉘던 것은, 2권에서는 기초 요리, 수습 요리, 숙련 요리, 전문 요리, 요리의 대가라는 다섯 단계로 펼쳐진다. 게임 세계관 내부의 책이라는 2권의 위치가 등급 분류의 두께까지 영향을 미친 셈이다. 2권의 목차 앞부분에 들어 있는 한 절의 제목은 특히 흥미롭다. “또 다른 요리책에 대해.” 노미가 자기 책 안에서 이전에 출간된 다른 요리책을 직접 호명한다. 자기 책이 시리즈의 두 번째 권임을 알고 있고, 1권의 존재를 자기 세계 안의 사물로 호명하면서 시작하는 것이다. 1권에서 새콤달콤 덩굴월귤 소스의 헤드노트가 “푸짐한 요리책에 조리법이 실려 있던” 한 줄로 슬쩍 열어두었던 책 안에 다른 책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2권에서는 책 자체의 전제가 된다. 자기 참조는 단순한 호명에 그치지 않는다. 2권은 1권의 레시피와 자기 레시피를 같은 식탁 위에 함께 놓는다. 본문의 어느 저녁 메뉴 추천을 보자. “아이스크림을 얹은 스테이크(141쪽), 땅콩 맥주빵(115쪽), 저민 장가르 양송이(또다요), 당근 볶음(또다요).” 페이지 번호와 함께 적혀 있는 두 요리는 책 안의 레시피이고, “또다요”라고 약칭이 붙은 두 요리는 1권에 실린 레시피다. 칼럼의 앞부분에서 인용했던 “볶음의 대가인 안시아 아이언 포우가 직접 지도한” 그 당근 볶음이 여기서 다시 호명된다. 1권과 2권은 따로 서 있는 책이 아니다. 같은 식탁에서 함께 펼쳐지는 두 권의 자매 책이고, 노미는 자신의 식탁에서 두 책의 요리를 함께 차려낸다. 축제 관련 절도 가장의 일부다. 2권 앞부분에는 “축제를 버프하라”라는 절이 있는데, 그 절 안에서 노미는 핼러윈 축제와 죽은 자들의 날, 해적의 날 같은 <와우>의 계절 이벤트를 호명한다. 그러면서 두 번 구운 고구마 레시피의 헤드노트는 이렇게 쓴다. “아제로스나 그 주변에서 순례자의 감사절 절반만큼이나 축제 가치가 있는 휴일은 없다.” “아제로스나 그 주변에서”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화자는 <와우> 세계 속에서 옆 동네의 휴일 풍경을 진술하고 있다. 1권에서 인터페이스가 책의 형식으로 차용되었다면, 2권에서 그 차용은 노미라는 화자의 인격적 발화로 변환된다. 노미가 자기가 사는 세계의 축제와 음식 효과를 생활의 일부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권은 1권의 단순한 후속작이 아니라 1권이 시작한 가장을 완성하는 책이다. 1권에서 독자는 헤드노트의 농담을 따라가며 아제로스의 어딘가에 잠깐씩 머물렀지만, 책의 표지에는 여전히 현실 세계의 저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2권에서 독자는 노미라는 분명한 화자의 책 한 권을 통째로 들게 된다. 시리즈가 한 권에서 두 권으로 늘어나면서, 카셀의 작업은 게임 굿즈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아제로스의 출판물을 현실 세계로 옮겨오는 일에 가까워진다. 글라도스는 케이크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케이크를 굽기 시작했고, 그 누군가가 책을 쓰기 시작했고, 그 책은 시리즈가 되었고,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은 아제로스 안의 어느 판다렌 셰프가 쓴 책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거짓말이었던 케이크가 진짜 케이크가 되고, 진짜 케이크가 책이 되고, 책이 두 권의 시리즈가 되고, 그 시리즈가 한국어로 옮겨져 누군가의 부엌에 도착하는 그 회로의 한 끝에, 독자는 노미와 함께 서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유도된 걷기와 우연한 만남의 장소 – AR 산책 게임의 지금

    일종의 ‘비동기 멀티플레이’로서 산책 게임들은 사람들을 게임이 유도하는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게끔 하지만 때로는 상상치 못한 연대를 가능케 한다.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에서 누군가 설치해둔 집라인에 마음 깊이 감사하며 ‘따봉’을 눌러본 기억이 있는가. 산책 게임은 각자의 황량한 디지털 디스토피아를 산책하게끔 하지만, 이따금 고개를 돌리면 엄지를 치켜세울 직접 타인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 Back 유도된 걷기와 우연한 만남의 장소 – AR 산책 게임의 지금 22 GG Vol. 25. 2. 10. https://www.youtube.com/watch?v=4YMD6xELI_k * 구글맵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Google Maps: Pokémon Challenge” 만우절 이벤트 영상 나는 나름 <포켓몬 고 Pokémon GO >의 고인물이다. 2016년 속초 대란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2017년 1월 국내 출시 직후부터 지금까지 플레이하고 있다. 초창기의 <포켓몬 고>는 황량했지만 충만했다. 체육관에서 열리는 레이드도, GO 배틀리그라는 PVP 시스템도 없었다. 심지어 6개월 늦은 국내 출시 직후에야 2세대 포켓몬이 추가되었고, 2018년까지는 필드리서치(퀘스트)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4년 구글맵이 지도 곳곳에서 포켓몬을 발견할 수 있게끔 했던 만우절 장난 [1] 이, 닌텐도와 나이언틱의 공식적인 협력으로 이어지며 현실화되었다는 설레임은 순식간에 천만 단위의 유저가 스마트폰을 들고 산책하게끔 만들었다. 포켓몬을 직접 포획하고 도감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포덕’들을 유혹하기엔 충분했다. 우리는 텅 빈 지도 위를 걸어다니는 아바타와 자신을 동기화했고 CP가 더 높은 포켓몬, 아직 잡지 못한 포켓몬이 나타나기만을 바라며 걸음 수를 채웠다. <포켓몬 고>, 최근에 갑작스레 흥행하기 시작한 <피크민 블룸 Pikmin Bloom > 등 나이언틱의 게임들은 유저의 일상을 변화시킨다. 집 주변에 알지 못했던 장소들, 간판들 사이에 숨어 있던 교회와 생각 없이 지나치던 벽화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출퇴근길과 등하교길은 게임 속 스팟(포켓스탑, 빅플라워 등)을 포함하게끔 변경된다. 레이드 시간에 맞춰 산책을 떠나거나,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한 포켓몬이나 꽃의 정수를 얻기 위해 길을 나서기도 한다. 엘피 본의 지적처럼 온라인 지도 속에 담긴 ‘스마트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는 데이팅 앱에서 가까운 거리의 상대를 찾아 나서듯 <포켓몬 고>에서 피카츄를 찾아 나선다(Bown, 2022/2023, 56). * 왼쪽부터 <인그레스>, <포켓몬 고>, <피크민 블룸>, <몬스터 헌터 나우>의 플레이화면 나이언틱의 AR 게임들은 나이언틱은 구글맵(국내에서는 오픈스트리트맵 [2] )을 기반으로 현실의 지도 위에 게임의 가상을 겹쳐 놓는다. 첫 작품인 <인그레스>는 인라이튼드와 레지스탕스 두 진영의 ‘땅따먹기’를 지도 위에서 펼쳐낸다. <포켓몬 고>는 본가 시리즈의 연장선상으로 야생의 포켓몬을 연구하는 윌로우 박사의 부탁을 받아 모험을 시작한다. <피크민 블룸>은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생명체 피크민을 게임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설정을 갖는다. 지금은 서비스를 종료한 <해리포터: 마법사 연합 Harry Potter: Wizards Unite >은 마법사 세계의 존재들이 머글 세계에 유출되는 이상현상을 조사하고 해결한다는 설정이다. 가장 최근작인 <몬스터 헌터 나우 Moster Hunter Now > 또한 ‘몬스터 헌터’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연결되어 버렸다는 설정을 갖는다. 각각의 설정들은 현실의 제도를 게임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세계만들기(worldbuilding)의 일환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발 딛고 걸어 다니는 길을 다른 방식으로 전환한다. 워킹 시뮬레이터(walking simulator)가 아닌 걷기-기계(walking-machine)랄까. 이 게임들에서 강조되는 것은 수집이다. <포켓몬 고>에서는 전투보다는 포획과 도감채우기가 강조된다. 전투는 ‘고인물’을 위한 엔드 콘텐츠에 가까우며, 지방별 도감뿐 아니라 정화/그림자/별3/색이 다른/이벤트/메가진화 등 다양한 도감 카테고리를 제공하며 ‘도감작’의 재미를 게임의 최우선으로 내세운다. 무수한 ‘데코 피크민’을 선보인 <피크민 블룸>이나, 같은 수집물을 반복해서 모을수록 도감이 강화되었던 <마법사 연합>도 마찬가지다. 나이언틱의 산책 게임들이 유저들을 걷게 하는 방식은 걸음 수나 걸은 거리에 따른 보상체계, 저곳에 물리적으로 도달해야만 얻을 수 있는 수집품의 제공이다. 강가나 바다에서는 물 타입 포켓몬이 더 자주 등장하고, 대학 캠퍼스에 가야 대학 데코 피크민을 얻을 수 있다. 이 게임들의 세계는 현실의 지도 위에 가상의 세계를 결합함으로써 우리를 걷게 한다.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는 AR 게임의 화면에서 현실 세계와 게임의 가상 세계라는 위계는 다소간 무력화된다(박동수, 2022). 친구들에게 <포켓몬 고>를 추천할 때 종종 “좋은 산책 메이트”라고 소개하곤 했다. AR 게임은 우리를 물리적으로 움직이게끔 한다는 점에서 “방구석 게이머들을 집 밖으로 나가게 한” 게임이다. <포켓몬 고>가 걸은 거리를 기반으로 알 부화나 파트너 포켓몬과의 친밀도를 올릴 수 있게 했다면, <피크민 블룸>은 걸음 수를 통해 피크민 모종을 기르거나 임무를 클리어하는 등의 방식을 취한다. 피크민은 유저가 산책한 길 위에 꽃을 심고, 그 결과는 지도 위에 그려진 꽃길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친구와 함께 걸음 수나 심은 꽃의 수 등을 종합하는 ‘함께 걷기’ 임무나 특정한 기간 진행되는 ‘함께 걷기’ 등의 기능은 유저들이 더 멀리, 더 오래 산책하게끔 한다. 다른 AR 게임보다도 산책이 강조된 <피크민 블룸>이 러닝이 트렌드가 되고 건강 관리를 위해 산책이라도 하는 것이 필수적이게 된 지금 시점에서 급작스럽게 유행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또한 커뮤니티의 구성과 유저의 조직화가 필수적인 <인그레스>나 자연스럽게 지역 레이드 커뮤니티를 형성하게끔 유도한 <포켓몬 고>처럼 새로운 방식의 지역 커뮤니티를 가능케 하기도 한다. *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스틸컷. 용산 미군기지 출입구에서 <포켓몬 고>의 AR 기능으로 꺼낸 ‘뮤츠’를 캡쳐한 화면. 다른 한편으로 AR 게임은 구글 스트리트뷰나 구글어스로 방구석 세계일주를 하거나 배달의 민족에서 우리집으로 다가오는 라이더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과는 반대에 놓인다. 이전의 지도/GPS 기반 서비스들이 세계를 집안의 화면 안으로 옮겨두었다면, AR 게임은 우리의 걸음을 따라 세계를 재설정하는 일이다. 타라 피클(Fickle, 2019, 156)은 GPS 기반의 <포켓몬 고>가 여러 내비게이션 앱이 수년 동안 해왔던 방식대로 유저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변형시켰으며, 사용자가 "스마트폰의 형태로 지도가 지향하는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경험을 제공하며, AR과 GPS 기술을 탑재한 게임이 이국적이고 낯선 동시에 안전하고 친숙한 세계를 구현한다고 지적한다. 포켓몬이나 피크민 같은 가상의 생명체를 구현함과 동시에 우리를 세계의 중심에 두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포켓몬 고>의 구성이 ‘나’를 세계의 중심에 위치시키며 포켓몬이라는 포획 대상, 체육관이라는 점령 대상 등으로 구성되기에 제국주의적 혐의를 갖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Ibid, 160-161). 이는 태생부터 점령 게임이었던 <인그레스>나 몬스터를 ‘토벌’하는 <몬스터 헌터 나우>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지도’의 문제는 AR 게임을 여러 정치적 문제와 직면하게끔 한다. 실제로 <포켓몬 고> 출시 직후 미군은 기지 내 병력에게 안보구역 내에서 플레이하지 말 것을 경고했으며, 국내에서는 청와대 등의 보안 시설이 게임을 통해 노출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영화/미술 작가 정여름의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은 용산 미군기지 내 포켓스탑을 통해 기지 내부의 이미지를 염탐함으로써 AR 게임이 정치적, 군사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을 폭로한다. 하지만 AR 게임이 유저 중심으로 세계를 재편하는 구성을 취한다 하더라도, <포켓몬 고>나 <피크민 블룸>은 우리를 (벤야민이 말한) 산보객(Flâneur)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일상과 결합된 게임은 우리를 걷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시야를 주변에 놓인 대상이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 속 평평한 지도 위에 머물게끔 한다. 일련의 게임 속 지도는 등록된 길 외에는 무엇도 보여주지 않는다. 공공시설, 역사적 장소, 공공성을 띠는 조형물 등으로 구성된 특정한 ‘스팟’들은 해당 공간의 사진과 함께 등장한다. 우리는 그 공간들을 직접 보는 대신 게임으로 매개된 사진을 통해서 본다. 게임을 통해 스팟의 존재는 알게 되지만, 동시에 게임은 그 공간들을 비장소적 기호로 치환하여 스쳐지나가게끔 한다. <포켓몬 고>가 “(기업의 이익에 복무하는) 올바른 곳에 사람을 모이게 하거나 (예컨대 조직적인 봉기를 막기 위해) 잘못된 곳에 모이는 걸 막을 잠재적 능력”을 갖고 있다는 본의 지적(Bown, 2022/2023, 79)은 나이언틱이 몇몇 기업과의 콜라보를 통해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 카페 등을 스팟으로 지정한 사례에서 이미 드러났다. 산책 게임은 우리를 산책하게 하고 건강이라는 동시대적 이슈와 결부시키지만, 동시에 일련의 지도 서비스가 유도하는 행위성을 곧장 유저에게 부여한다.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포켓몬 고>는 유료로 ‘리모트 레이드 패스’를 출시한다. 산책이 위험한 행위가 되었기에, 본래 해당 체육관에 가야만 가능했던 레이드 콘텐츠를 원격으로 즐길 수 있는 아이템이다. <포켓몬 고>를 일상적 루틴으로 받아들인 유저들은 기꺼이 리모트 레이드 패스를 구매했고, 나이언틱은 역대 최고의 매출을 올렸다. <포켓몬 고>에 의해 이미 훈육된 유저들은 게임의 본질적 행위성이 수행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기꺼이 과금하는 이들이 되었다. 유저들에게 중요한 것은 스팟이 무엇이냐보단 레이드에 등장한 포켓몬이 무엇이냐였기 때문이다. * <피크민 블룸>에서의 ‘탄핵시위걷기’ 화면(좌)와 남태령 태그를 단 피크민(우) 이렇게만 본다면 나이언틱의 게임들은 건강을 경유하여 유저들의 무임자유노동(free labor)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빼가고 과금을 유도하는 다분히 기술-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속 존재처럼 다가온다. 물론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포켓몬 고> 등은 새로운 지역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그림자 전설 포켓몬을 포획할 수 있는 그림자 레이드나 이벤트성으로 진행되는 엘리트 레이드처럼 오프라인 참여를 강제하는 <포켓몬 고>의 몇몇 콘텐츠가 진행되는 동안 게임플레이를 위해 거리로 나갔던 경험을 떠올려 본다. 지역별 오픈채팅방을 통해 모인 학생부터 중년 남녀까지의 사람들부터 부모와 함께 스마트폰을 들고 레이드에 참여하는 아이들까지, 레이드를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이질적인 집합은 잠시간 길거리를 다른 풍경으로 바꿔 놓는다. 최근의 목격한 <피크민 블룸>에서의 사례는 산책이 일종의 연대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4년 12월의 어느 날 누군가는 산책을 통해 모은 ‘하얀 국화’의 꽃잎을 사용해 국회 빅플라워에 하얀 국화를 피웠다. 행진이 포함된 집회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피크민을 할 수 있다”라는 조언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누군가는 “광화문탄핵시위걷기”라는 이름의 ‘함께 걷기’ 초대 링크를 게시해 행진의 기록으로 남겼다. ‘남태령 대첩’이 있던 날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하는 방법으로 “피크민 하러 왔다고 말하자”라는 트윗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홍콩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 あつまれ どうぶつの森 > 유저가 ‘광복홍콩 시대혁명(光復香港 時代革命)’이라 적힌 섬을 만들었던 것처럼, 한국의 누군가는 <피크민 블룸>의 지도 위에 꽃으로 ‘탄핵’이라는 글자를 그려 넣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12월 23일 남태령에서 얻은 지하철역 피크민이 ‘남태령’ 태그를 달고 나와 당시를 상기하게 해주었다. <피크민 블룸>의 갑작스러운 흥행의 이유는 아무도 파악하지 못한다. 친구 추가 QR코드 기능의 추가라던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캐릭터가 귀여움을 얻으며 유행하기 시작했다던가, 산책과 건강이라는 트렌드에 맞춘 유행이라는 설명은 어딘가 부족하다. <포켓몬 고>가 강력한 IP를 앞세워 흥행에 성공했다면, ‘피크민’ 시리즈는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이다. 다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일련의 산책 게임은 우리를 언제나 게임하게끔 만들었다. PC나 콘솔이 아닌 무료 모바일 게임이라는 지점도 흥행의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산책 게임은 우리의 생활 세계 위에 덧씌워진 또 하나의 세계를 가능케 해주며, 지겨운 출퇴근길과 등하교길을 짧은 모험의 시간으로 만들어 준다. <피크민 블룸>이 처음 출시된 2021년 게임을 설치했다가 텅 빈 지도만을 보고 며칠 뒤 삭제했었다. 지금의 <피크민 블룸>은 발길이 닿는 거의 모든 곳을 꽃으로 뒤덮었다. 일종의 ‘비동기 멀티플레이’로서 산책 게임들은 사람들을 게임이 유도하는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이게끔 하지만 때로는 상상치 못한 연대를 가능케 한다.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 >에서 누군가 설치해둔 집라인에 마음 깊이 감사하며 ‘따봉’을 눌러본 기억이 있는가. 산책 게임은 각자의 황량한 디지털 디스토피아를 산책하게끔 하지만, 이따금 고개를 돌리면 엄지를 치켜세울 직접 타인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1] 해당 이벤트는 구글과 닌텐도의 협력을 통해 진행되었다. 나이언틱은 당시 구글 산하의 기업으로 스트리트뷰나 구글어스 등 구글맵의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 나이언틱의 CEO 존 행키와 닌텐도의 이와타 사토루, 포켓몬 컴퍼니의 이시하라 츠네카즈는 해당 콜라보의 성공 이후, 나이언틱이 2014년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인그레스 Ingress>를 기반 삼은 <포켓몬 고>의 개발을 결정한다. [2] 구글맵은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국내에서 지도 반출이 허용되지 않아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 서비스되는 구글맵의 국내 지도는 SK텔레콤이 제공하는 지도이며, 따라서 위키피디아 형태의 지도 서비스 오픈스트리트맵이 대안으로 채택되었다. 때문에 <포켓몬 고>의 국내 출시가 해외보다 7개월가량 지연되었으며, <포켓몬 고> 출시 이전까지 <인그레스>는 국내에서 지도 없이 텅 빈 화면 위에 ‘포탈’만 등장한 형태로 서비스되었다. 참고문헌 박동수 (2022). 게임을 산책하기. <게임제너레이션>. 7호.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bcefdd0f-d4d8-41fb-b5b5-a3ad5ecffdee#viewer-qbq94102365 . Bown, A. (2022). Dream Lovers: The Gamification of Relationships. 박종주(역)(2023). <게임, 사랑, 정치>. 서울: 시대의창. Fickle, T. (2019). The Race Card: From Gaming Technologies to Model Minorities. NY: New York University Pres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4회공모전수상작] 게임은 어떻게 우리를 소외시키는가

    소외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인간 집단에서 배제되어 외로움을 느낀다는 뜻으로, 일상생활에서 소외라고 말하면 대체로 이를 의미한다. 반면 다른 하나는 철학 특히 마르크스가 주로 사용한 의미로, 한 인간이 특정 대상에 대한 주권을 상실하여 더 이상 주체로 있지 못 하고 오히려 그 대상의 객체로 전락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권리와 정체성이 외부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상태를 뜻한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oJun Ryu A gamer. Values games as entertainment, games as art, and games as experiment—all alike.

  • 게임, 전쟁, 격리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검투사 몇이 경기장에 있다. 다른 검투사 하나가 무기를 들고 입장한다. 새로 입장한 검투사는 적절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상대 검투사들을 하나씩 도륙낸다. 이따금 불필요하지만 화려한 동작도 섞어준다. 관중들이 환호한다.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 상대는 이미 전투 능력을 잃고 선 채로 죽어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승자는 화려한 기술로 그를 두 동강 내버린다. 홀로 남은 승자가 된 검투사는 신이 나 있는 관중들에게 분노를 담아 외친다. “Are you not entertained?” < Back 게임, 전쟁, 격리 25 GG Vol. 25. 8. 10. 장면 하나.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검투사 몇이 경기장에 있다. 다른 검투사 하나가 무기를 들고 입장한다. 새로 입장한 검투사는 적절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상대 검투사들을 하나씩 도륙낸다. 이따금 불필요하지만 화려한 동작도 섞어준다. 관중들이 환호한다.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 상대는 이미 전투 능력을 잃고 선 채로 죽어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승자는 화려한 기술로 그를 두 동강 내버린다. 홀로 남은 승자가 된 검투사는 신이 나 있는 관중들에게 분노를 담아 외친다. “Are you not entertained?” 2000년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이다. 장면 둘. 한 남자가 공항 출국 게이트에 있다. 게임 쇼에 참가해 우승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참여를 했다. 게임 종목은 어린이들의 골목 놀이였지만 패배의 대가는 죽음이었기에 남자는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 죽는 지옥을 경험했다. 홀로 남아 우승한 남자는 거금을 갖고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갈 참이다. 하지만 게임의 주최측과 연결된 마지막 통화를 끊자 그는 뒤돌아 걸어간다. 그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말이 아니야. 인간이야.” 2021년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이다. 두 장면의 두 인물은 목숨을 건 게임을 했고 승자가 되어 살아남았다. 그들이 경험한 것은 전쟁과 흡사하다. 이들이 일종의 선수로서 게임을 수행했듯, 전쟁은 군인이 선수로서 싸운다. 싸움 바깥에서 싸움을 지켜보는 관중이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만 전쟁의 승패는 그 관중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만, 이들의 게임은 관중에게 영향이 없다. 그래서 전쟁은 일종의 사업으로서 해석되지만, 이들의 게임은 관중에게 유희다. 전쟁과 유희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다 보면, 어떤 네덜란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호이징가 혹은 하위징어로 불리는 이 네덜란드 학자는 자신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문명의 근간은 놀이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분석한 놀이성, 놀이의 특징 중 하나는 규칙으로 시공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저녁 먹을 때까지, 여기 이 놀이터 내에서, 얼음땡 규칙으로 게임을 한다는 식이다. 그 시공간을 벗어나면 놀이가 끝나고 놀이의 규칙은 아무런 권위를 갖지 못한다. 이 특징이 확대되어 제의, 법률, 행정 등 문명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 모두가 놀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 네덜란드 아저씨의 고찰이었다. 경쟁과 협동은 놀이의 두 축이 되는 원리이고, 이는 자연에 대해, 인간 서로에 대해 투쟁하는 생존 추구의 상태를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제한적인 규칙 속으로 집어넣자 놀이가 되었다. 일상과는 다른 어떤 시공간을 가정하고 거기에서만 통하는 규칙을 만든다는 점은, 인간이 일상의 생존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이성은 생존 너머의 문명을 만드는 근간이 되는 원리다. 현대인으로서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워지는 대목은, 그래서 자본에 포섭되어 시장화한 스포츠는 삶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놀이가 아니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놀이는 직접 수행하는 방법 외에도 타인의 놀이를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콜로세움, 오징어 게임, 스포츠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는 생사를 거는지 아닌지를 제외하면 타인에게 게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자본으로 해석되었다 하여, 관중이 즐기게 되는 ‘보는 게임’으로서 놀이의 본질이 사라졌는지는 더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콜로세움에서 스타디움까지. 검투사에서 프로 선수까지. 관중을 대신해 게임을 하며 보는 게임을 제공하는 경우는, 싸움-전투-전쟁을 모사하긴 하지만 한 가지 한계가 있다. 소규모 전투의 모사라는 점이다. 격투기가 아니어도 양편이 나뉘어 싸우는 구기 종목이 그 경우다. 축구는 기병과 보병 전술과 유사하다. 농구는 흔히 기병과 궁병 전술에 비유된다. 핸드볼의 전술은 투창 전투와 많이 닮았다. 그렇다면 야구는 포병과 유사할까? 피겨 스케이팅과 같은 점수 경쟁 스포츠는? 하카처럼 전투 전의 의식을 겨루는 모습와 유사하다고 갖다댈 수 있겠다. 유희(遊戲)의 희(戱)는 중국 고대의 전장에서 전투 전에 위세를 겨루기 위해 호랑이 머리를 장식한 기물(䖒)을 창(戈)으로 치는 행위에서 만들어진 글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여전히 ‘태극 전사’니 ‘상암 대첩’이라는 식으로 전쟁의 용어를 스포츠에 갖다 쓴다. 팀 단위의 경쟁 스포츠는 전쟁에 대한 욕구를 대리 해소하는 용도 또한 갖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적용되는 전쟁의 국면은 전략이 아닌 전술이다. 소규모 전투가 아닌 대규모 전쟁을 경기장 안에서 구현해 전략을 게임화하려면 상당히 많은 권력-자본이 필요해진다. 압도적으로 많은 선수가 필요할 테니까. 혹은 ‘이 말 하나가 사람 천 명이다’라는 식으로 추상화되어 전술과 전투의 재미가 사라진다. 전략을 보는 지적 재미는 추가되지만, 이래선 흥행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무리 왕이고 부족장이라도 이런 이벤트를 만들었다간 재미없음 이유로 권좌에서 내쫓길 수 있다. 그래서 대규모 전쟁은 추상화되어 보드 위에 자리잡았다. 바둑, 체스, 장기와 같은 게임은 기물을 선수로 대체한다. 그래서 검투사의 유혈을 보고 공감 능력이 발휘되어 몰입이 깨져버리는, 콜로세움 입장료가 아까운 경우도 없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조감도 시야도 제공한다. 게다가 ‘보는 게임’에 특화된 가까운 경기장과 달리 보드는 ‘하는 게임’이 우선이다. 기술과 장르를 옮겨서 디지털 게임으로 오면, 앞서 있었던 많은 제약이 해제된다. 디지털 게임은 보드 게임의 추상성과 경기장 게임의 구체성을 모두 추구할 수가 있다. 프로세서의 연산 기능을 늘리기만 한다면 소규모 전투와 대규모 전쟁을 각각 혹은 한꺼번에 모사해낼 수 있다. 그렇게 전쟁은 게임이 가장 자주 다루는 소재가 된다. 병사 하나가 되어 전장을 누비는 개인 액션부터 10만 단위의 부대가 점 몇 개로 표시되는 전략까지 가능하다. 모두 바둑, 체스, 장기의 후예들이다. 여러모로 전쟁과 게임은 닮았다. 전쟁의 추동력은 전쟁을 수행하는 두 집단의 목표가 충돌하는 상황이니, 결국 경쟁이 핵심이다. 이기기 위해 군대는 계급에 따른 수직적 분업과 보직에 따른 수평적 분업을 수행한다. 분업이 수직-수평으로 직조하는, 협동의 체계가 군대 체계의 핵심이다. 전쟁을 요약하면, 협동하여 적과의 유혈 경쟁을 이기는 것이다. 유혈 부분을 빼면 게임과 동일하다. 게임에서는 1인 플레이의 경우에는 협동이 빠지기도 하고, 역으로 협동이 크게 강조되어 경쟁 요소가 옅어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전쟁의 저 두 핵심을 그대로 매체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결국 차이점은 유혈의 유무다. 싸움-전투-전쟁은 생명을 잃게 한다. 잘 기능하는 사회 구성원 하나를 키우는 데에 사회가 들이는 비용은 시간만 보아도 20여 년 이상이다. 게다가 인간의 공감 능력은 피 색깔만 비슷해도 그 죽음을 안타까워 할 수 있는데, 종까지 같은 인간의 죽음이기도 하다. 아무리 증오스러운 적이라 하더라도 죽음을 보고 직접 죽이는 것은 인간의 정신에 좋지 않다. 그러면서 아무 가치도 생산하지 않고 가치를 사용하기만 하니 문명 전체의 손해이기도 하다. 한편 전쟁은 전쟁을 수행하는 사회의 경제, 기술, 행정, 정치의 과실이 그대로 반영된다. 그 찬란한 과실을 갖고 하는 것이 조직적 살인이라는 점에서 철학적인 자괴감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서 전쟁은 추악하고 또 아름답다. 문명의 정수와 실력이 발휘되는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추악함을 최대한 제거하고 아름다움을 가능한 부각시키려면, 죽음을 무시할 수 있으면 된다. 콜로세움에서 죽는 검투사에게서 공감을 거두면 그 게임은 재미있다. 하지만 전쟁에서 죽음을 제거하기란 어렵고 모두가 공감 스위치를 끄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의 전쟁은 그래서, 호이징거 혹은 하위징어의 해석을 따르자면, 놀이성이 강화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에 규칙을 두는 것이다. 선전포고를 해야 정식 전쟁이고, 민간 피해는 최소화해야 하고, 전쟁 중의 약탈과 민간인 학살 같은 것을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포로를 정식 신분으로 만드는 등등, 전쟁에 놀이성이라는 족쇄를 채우려고 애를 쓰고 있다. 생사를 건 전투가 오직 전시에만 일어나게 하는 시도다.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놀이성의 특징인 시공간 제한에 의해 게임 안과 밖은 엄격히 구분된다. 콜로세움의 선수, 전장의 병사가 대신 생명의 위협을 받는 대신 제한된 시공간 바깥의 관중은 면제된다. 이미 검투사들을 관중 대신 데스 게임에 밀어넣으면서 인간 문명은 싸움에 놀이성을 부여해봤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약간 불편한 가설도 도출할 수 있다. 전쟁 게임이란 안전해진 사람들의 안도감을 흥분으로 바꾸는 것이 본질일 수도 있다.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의 쾌감, 전술의 합, 전략의 수려함은 결국 게임 밖의 나에게는 해를 가하지 않으므로. 저 사람들이 내 재미를 위해 죽어도, 나는 잠깐 마음이 불편하고 나머지 시간은 즐거우니까. 그래서 보훈은 국가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가 된다. 타인 대신 전장에서 목숨을 걸겠다고 나선 직업인들에 대한 예우다. 그럼 인간은 왜 전쟁을 게임에서 재현하고 있을까? 구성원 대다수가 전쟁에서 벗어나 안전한 문명 영역에 도달했으면서, 자꾸 그 특수한 지옥을 가져와 가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이렇게 뒤집어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전쟁을 게임 안으로 가두려 하는 걸까? 인류 문명이 전쟁을 국제 사회 질서의 한 부분으로 가두어가는 한편, 인간은 게임 규칙 속으로 전쟁을 가져오면서 콜로세움을 졸업했다. 현재의 스포츠에서 경기 도중 죽는 선수는 격투기 종목에서조차 극단적으로 적다. 오징어 게임은 어디까지나 은유이지 실제 현실에서 유사한 경기가 열리는 일은 없다. 이제 과거의 검투사 대신 뛰는 현재의 스포츠 선수는 전쟁과 유사한 활동을 할 뿐이다. 따라서 ‘대신 놀아주기’는 전쟁을 가두는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만들기가 어렵다. 인간이 전쟁을 게임 안에 가두는 중이라면, 오히려 전쟁을 잊거나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재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저 질문을 다르게 바꿔보면, 전쟁은 정말 그렇게 매력적인가? 인간의 내면에는 사실 전쟁의 유혈과 광기를 동경하는 부분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면 인간은 모순을 사랑한다. 전쟁은 찬란한 동시에 추악하다. 어쩌면 인간은 전쟁, 전투, 싸움, 죽음을 끊을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혹은 끊기 위해 게임 속에서 전쟁, 전투, 싸움, 죽음을 죽이는 중이라고 서술할 수도 있다. 혹은, 삶에서 아주 특정한 때에만 있는 이벤트라면 질병이라고 치환해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군인은 전쟁 속에서 전쟁을 해소하려 하는 의사로 비유할 수도 있고, 전쟁을 다루는 게임은 예방용 백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개인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으니 답은 아직 없다. 다만 우리 인류가 전쟁이라는 특정 시공간 상황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를 소망한다. Tags: 재현, 전쟁, 워게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영상기술, 매체, 도구, 방법론으로서의 머시니마에 대한 소고

    도입부에 적어둔 것처럼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디즈니의 스턴트 시뮬레이터 게임 [스턴트 아일랜드 Stunt Island](1992)에서 인게임 기능으로 처음 도입된 것이 그 출발점이다. 해당 게임은 가상의 섬에서 다양한 스턴트 시퀀스를 제작하고, 그것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녹화해 보여주는 것이 주된 플레이였다. < Back 영상기술, 매체, 도구, 방법론으로서의 머시니마에 대한 소고 26 GG Vol. 25. 10. 10. 머시니마(machinima)는 머신(machine)과 영화(cinema)의 합성어로, 비디오게임을 통해 제작된 영화를 부르는 용어다.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 기술이 일반화되며 출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영화 분야에서 CGI를 활용한 VFX 기술이 도입되며 이미 맹아를 싹틔우고 있었다. <트론 Tron >(1982)을 통해 본격적으로 CGI가 도입된 이래, 3D 애니메이션과 VFX의 기술적 발전사는 게임엔진의 발전사와 궤를 함께한다. 게임엔진은 실시간 랜더링이 가능하다는 지점에서 영화제작에 있어 프리비주얼 단계에 사용되거나, 버추얼 프로덕션으로서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언리얼이나 유니티 등의 게임엔진이 활용된다 [1] . 이를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 >(2016) 제작과정을 담은 블루레이 부가영상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마치 영화 속 ‘오아시스’에 접속하듯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기기를 쓴 스필버그는 버추얼 프로덕션으로 제작된 영화 세트장을 살펴보며, 마치 VR 게임을 하듯 카메라 동선을 짜고 세트장의 디테일을 변경한다[ 링크 ]. 라이브 스크린을 활용한 <오블리비언 Oblivion >(2013)이나 디즈니+ 드라마 <만달로리안 Mandalorian >(2019~) 또한 게임엔진을 적극 활용해왔다. 비슷한 방식으로, 미술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 작업들 또한 게임엔진을 적극 활용한다. 국내에선 여러 전시와 영화제 등을 통해 소개된 미디어 아티스트 루양의 <물질 세계의 위대한 모험>(2020)과 <도쿠_환상을 뒤엎는 이분법적 충돌>(2023)은 자신을 직접 3D 스캐닝한 젠더리스 아바타 ‘도쿠’를 사용한 여러 작품을 내놓았다.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 안가영은 (2021)을 통해 예술가들이 아바타를 사용해 도피한 세계를 그려낸다. 이들 작품은 게임엔진인 유니티로 제작되었다. 이처럼 영화, 그리고 무빙이미지 기반의 미디어아트 작업에서 게임엔진이 도입된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국내외 영화/애니메이션 전공에서 게임엔진을 활용한 실기 강의도 개설되어 있다. 머시니마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글에서 게임엔진을 사용한 작업을 왜이리 길게 이야기하는가? 이는 게임과 영화 모두 움직이는 이미지에 기반해 있다는 점에서 비교되는 매체이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CGI의 기술적 발전사를 공유하고 서로의 프로덕션에 서로가 활용된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허나 이보다 중요하게, 머시니마로 지칭되는 작품의 유형이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문제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루양이나 안가영의 작업은 특정한 게임을 통해서 제작된 작품이 아니다. 게임적인 특징들, 이를테면 아바타나 메타버스와 같은 용어들로 지칭되는 디지털 가상세계의 묘사를 위해 게임의 이미지가 채택된 것에 가깝다. 이는 게임엔진으로 가상의 게임을 제작한 뒤 그 플레이영상을 토대로 제작된 송민정의 <악사라 마야 AKSARA MAYA>(2019), 김경묵의 <폐쇄회로>(2020) 등을 정말로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때문에 본 글에서는 머시니마를 이미 출시된 게임을 통해 제작된 영화들로 한정하고자 한다. 머시니마의 짧은 역사 머시니마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도입부에 적어둔 것처럼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디즈니의 스턴트 시뮬레이터 게임 [스턴트 아일랜드 Stunt Island ](1992)에서 인게임 기능으로 처음 도입된 것이 그 출발점이다. 해당 게임은 가상의 섬에서 다양한 스턴트 시퀀스를 제작하고, 그것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녹화해 보여주는 것이 주된 플레이였다. 게임 안에서 영화의 한 시퀀스를 직접 만들어 보는, 전-머시니마(pre-machinima) 형태를 의도치 않게 취했던 게임이랄까. 이러한 녹화 기술은 이후 [둠 Doom ](1993)이나 [퀘이크 Quake ](1996) 등의 FPS 게임에서 리플레이를 기록하는 데모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주로 공략 영상이나 스피드런을 남기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되던 녹화 기술이 머시니마로 만들어진 최초의 사례 중 하나는 <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 >(1996)이다. 이 작품은 [퀘이크]의 클랜 레인저스(Rangers)가 제작한 것으로 100초 분량의 멀티플레이를 자유 시점의 카메라로 담아낸다. 제목의 ‘캠퍼’는 FPS 게임에서 맵 구석에 엎드려 누군가 오길 기다리는 플레이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 작품 또한 그러한 게임플레이를 내용으로 삼는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양한 ‘퀘이크 영화’가 등장하며 인기를 끌게 된다. 같은 해인 1996년, 또 다른 최초의 머시니마 중 하나라 불리는 < 기적 Miracle >(1996)이 갤러리를 통해 공개된다. 전투기 시뮬레이터 [F/A-18 Hornet](1996)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전투기가 물 위를 활주로처럼 달리는 모습을 담은 100초 가량의 영상이다. 이 작품의 경우 미술작가 밀토스 마네타스(Miltos manetas)의 작품으로, ‘퀘이크 영화’와 달리 작가의 개인전을 통해 갤러리에서 공개되었다. 다시 말해, 머시니마는 그 출발점부터 게이머와 미술가라는 두 주체에 의해 온라인과 갤러리라는 두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던 예술형식이라 할 수 있다. [스턴트 아일랜드] 플레이 화면 레인저스 <캠퍼의 일기> 스틸컷 이 시기에 머시니마라는 용어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머시니마라는 용어는 ‘퀘이크 영화’에 매료된 휴 행콕(Hugh Hancock)이 영화제작자인 고든 맥도널드(Gordon McDonald)와 함게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트레인지 컴퍼니(Strange Company)를 설립한 이후 만들어낸 용어이다. 1999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행콕과 스트레인지 컴퍼니는 몇 편의 머시니마를 제작했고, 2000년 머시니마 제작자를 위한 온라인 허브 웹사이트 ‘머시니마 닷컴’ [2] 을 오픈한다. 2002년에는 머시니마 예술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achinima Arts & Sciences)를 설립하기도 하고, 이 단체를 통해 최초의 머시니마 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휴 행콕은 [퀘이크]로 제작한 < Eschaton - Darkening Twilight >(1997)나, 게임사 모놀리스 프로덕션(Monolith Productions)에서 개발한 게임엔진 ‘리스테크’를 활용한 독립적인 머시니마 제작을 위한 프로젝트 리스테크 필름 프로듀서(Lithtech Film Producer)를 통해 제작한 < 오지만디아스 Ozymandias >(1999) [3] 등을 제작하기도 한다. 2006년에는 최초의 장편 머시니마 < 블러드스펠 Bloodspell > 또한 공개한다. 다른 한편으로 P2P 플랫폼과 유튜브의 등장을 통해 머시니마는 일종의 팬 무비의 지위를 갖기 된다. 루스터 티스(Rooster Teeth)가 [헤일로 Halo ](2001)을 통해 제작한 < Red vs. Blue >(2003) [4] 는 ‘편가르기’가 중심인 게임 내 전쟁 상황에서 병사들이 “우리는 왜 싸우지?”라는 의문을 갖는다는 내용의 블랙코미디로, P2P 서비스를 통해 배급/배포된 이후 2006년부터는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다. 이후 18개 시즌에 한편의 장편으로 구성된 장기 시리즈로 연재된다. 코리 아켄젤 <슈퍼마리오 무비> 스틸컷 필 솔로몬 <엠파이어> 스틸컷 다만 이렇게 대중적인 주목을 받아 온, 혹은 팬 무비로서 인기를 얻은 머시니마는 최근 힘을 잃고 있다. 머시니마 닷컴은 워너에 인수된 이후, 2019년 1월 워너에 의해 폐쇄된다. 그곳에서 운영하던 머시니마 유튜브 채널 ‘Machinima Inc.’ 또한 폐쇄된다. 2024년에는 루스터 티스가 폐업 소식을 알려 왔다. 물론 [하프라이프 2 Half-Life 2 ](2004), [카운터스트라이크: 소스 Counter-Strike: Source ](2004), [블랙 메사 Black Mesa ](2012) 등의 에셋을 활용한 머시니마 스키비디 토일렛(Skibidi Toilet)과 같은 시리즈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기는 하다. 다만 2014년 트위치의 등장 이후 게임 스트리밍 시장이 활성화된 이후 다양한 방식의 게임플레이 영상이 유튜브 등지에 업로드되는 상황에서 ‘팬 무비’로서의 머시니마는 힘을 잃는다. 이를테면 팬 무비로서의 ‘퀘이크 영화’는 있지만 ‘GTA 영화’나 ‘마인크래프트 영화’는 (물론 존재는 하지만) 팬 무비보다는 실험영화나 미술의 영역에서 소화되는 상황이다. 영국의 작가 듀오 래리 아키암퐁(Larry Achiampong)과 데이빗 블랜디(David Blandy)가 함께 제작한 <파농을 찾아서 Finding Fanon > 시리즈(2015~2016)와 그것의 외전인 시리즈(2016)는 [GTA V](2013)의 촬영용 모드를 활용하여 제작되었는데, [GTA V]가 풍자하는 백인중심적이며 폭력적인 세계관 속에서 탈식민주의 사상가 프란츠 파농의 유실된 희곡을 선보인다는 컨셉의 작품이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Super Mario Bros. ](1983)의 카트리지를 임의로 조작해 글리치를 일으키고 그것을 통해 제작한 코리 아켄젤(Cory Arcangel)의 <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 Super Mario Cloud >(2002)나 <슈퍼 마리오 무비 Super Mario Movie >(2005) 또한 갤러리를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특히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의 경우 마치 회화와 같은 방식으로 전시되었다. 그 밖에도 [GTA V](2013), [마블 스파이더맨 Marvel’s Spider-man](2018), [어쎄신 크리드 오리진 Assassin’s Creed Origins ](2017) 등 다양한 게임에서 글리치로 인해 한없이 추락하는 캐릭터들을 담은 <페더폴 Featherfall>(2019)나 필름 작업을 이어오던 실험영화 감독 필 솔로몬(Phil Sonomon)이 [GTA IV](2008)로 앤디 워홀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엠파이어 Empire>(2008)와 같은 작품들은 미디어아트와 실험영화의 교차점에서 머시니마를 실험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비디오에세이, 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 도입부에서 완성된 게임이 아니라 게임엔진을 활용한 작업들을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라는 하나의 의문을 제시했다. 또 하나의 의문을 제기하자면, 게임플레이의 녹화 장면을 기록하여 만든 모든 영상물을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다. 2021년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진행된 기획전 ‘GAME x CINEMA’ [5] 는 네 개의 섹션으로 여러 ‘게임 영화’를 구분했다. <트론>이나 <레디 플레이 원> 등 ‘게임 소재’의 영화들, <슈퍼 마리오>(1993)나 <반교: 디텐션>(2019) 등의 ‘게임 원작’ 영화들, 게임과 플레이어, 제작자와의 관계를 다룬 여러 편의 ‘게임 다큐멘터리’들, 그리고 마지막이 머시니마다. 극장 대신 온라인 상영으로 진행된 이 기획전에서 머시니마로서 소개된 작품들의 구성은 꽤나 다양하다. 앞서 언급한 나 <오지만디아스>, <캠퍼의 일기>, <페더폴> 등 P2P, 유튜브, 머시니마 닷컴, 혹은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소개된 여러 작품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튜브를 통해 주로 소개된 여러 비디오 에세이들이 있다. 1세대 유튜버라 할 수 있는 AVGN의 [ 캐슬바니아 2: 사이먼의 원정 Castlevania II: Simon's Quest ](1987) 리뷰부터, 비디오게임 스피드런에 관한 유튜버 서머닝 솔트(Summoning Salt)의 비디오에세이, <4-2: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가장 악명 높은 레벨의 역사 4-2: The History of Super Mario Bros.' Most Infamous Level >(2018), 역시 비디오게임에서 카메라 시점의 문제를 다룬 유튜버 닉 로빈슨(Nick Robinson)의 비디오에세이 <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This Is What a 'Second Person' Video Game Looks Like >(2019) 등이 머시니마로서 소개되었다. 이들은 머시니마인가? 혹은 아닌가? 닉 로빈슨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다큐멘터리 영화제들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우리는 가상현실에서 만났다 We Met in Virtual Reality >(2022), <니트 아일랜드 Knit’s Island >(2023),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 Grand Theft Hamlet >(2024) 등은 각각 [VR Chat](2014), [데이즈 DayZ ](2013), [GTA V] 등을 통해 제작된 다큐멘터리이며, 이들 작품은 일종의 메타버스로서 기능하는 멀티플레이 게임 안에서의 생활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갖는다. 특히 이들 작품은 별도의 모드를 사용하는 대신 게임 내 캐릭터의 시점을 그대로 녹화해 사용하는데, 때문에 영화의 감독은 촬영감독이자 게임 플레이어로 활동하게 된다. 일종의 자기민속지(Auto-Ethnography)적 성격을 갖는 문화인류학적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랄까. 이와 같은 자기민속지적 맥락은 영화의 적지 않은 부분을 넥슨의 MMORPG [일랜시아](1999)의 게임플레이 녹화화면이 차지하는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World of Warcraft ](2004) 속 녹화되지 못한 순간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재연(reenactment)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 >(2024) 등과도 연결된다. 다만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게임플레이 녹화화면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머시니마적 성격을 갖는, 게임을 ‘통해서’ 제작된 성격을 갖는다면,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머시니마보단 부분적으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갖는다. 머시니마는 결국 영화제작의 도구이자 배경으로서 게임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온라인 기획전 ‘이것은 가상이 아니다’를 통해 소개된 머시니마 다큐멘터리와 비디오 에세이들은 게임이 메타버스로서, 재연의 방식으로서 갖는 민속지적 성격과 미학적 실험을 드러낸다. 앞서도 언급한 필 솔로몬의 <엠파이어>나 토탈 리퓨절(Total Refusal)의 <근무 중 이상 무 Hardly Working >(2022)와 같은 작품은 플레이어의 개입 없이도 게임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그려낸다. 전자가 알고리즘에 따라 변화하는 게임 내 날씨, 빛, 소음, NPC 움직임의 기록이라면, 후자는 정해진 일과를 수행하는 [레드 데드 리뎀션 2 Red Dead Redemption II ](2018) 속 NPC들을 쫓는다. 마리 풀스턴(Marie Foulston)의 <더 그래니즈 The Grannies >(2021)처럼 게임 내 글리치를 찾아다니는 게임개발자 클랜을 담아내는 사례도 있다. 혹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세컨드 라이프 Second Life ](2003)나 [마인크래프트 Minecraft ](2009)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담은 <메이드 인 세컨드 라이프 Made in Second Life: The Movie >(2023)과 <유토피아를 찾아서 Tracing Utopia >(2021)가 있다. 혹은 없어진 이민자 마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해당 마을의 풍경을 [마인크래프트]로 재현한 프로젝트 <쏘텔 재팬 타운의 기억 Redefining Community: The Evolution of Sawtelle Japantown >(2018)처럼 다큐멘터리에서 재연의 영역을 머시니마로 구현한 작품 또한 존재한다. 이들 작품은 각자의 방식대로 게임을 다큐멘터리적 대상으로, 혹은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하고, 머시니마는 그곳에 개입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해당 기획전의 프로그래머 강진석은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들을 “가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 세계의 일부이며 기록할 만한 것으로 재설정하는 작업” [6] 으로 정의한다. 즉, 이들 작품은 게임을 다큐멘터리가 다룸직한 세계로, 우리가 생활하고 살아가는 세계의 일부이자 확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발언하는 머시니마이다. 토탈 리퓨절 <근무 중 이상 무> 스틸컷 조셉 드라페 <이라크에서의 죽음> 스틸컷 그렇다면 비디오 에세이로서의 머시니마는 어떠한가? 시네마테크KOFA의 기획전에서 상영된 유튜버들의 비디오 에세이와, 미술관이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된 비디오 에세이/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들은 서로 다른 차이를 갖는가? 물론 유튜브의 비디오 에세이들 또한 게임과 세계, 그리고 (머시니마)영화 관한 충분한 비평적 함의를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라크에서의 죽음 dead-in-Iraq >(2007)이나 <나만의 풍경: 미군이 되는 법 My Own Landscapes >(2020)처럼 게임의 군사적 활용이나 <몬도 카네 Mondo Cane >(2018)처럼 디지털 윤리에 관한 문제를 던지는 머시니마 작업, 다시 말해 하룬 파로키(Harun Faroki)의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 >(2009~2010)이나 <평행 I-IV Parallel I-IV >(2012~2014)에서 던진 문제의식과 공명하는 작업은 하나의 경향성을 이룬다. 혹은 <구성된 순간 The Constructed Moment >(2017)이나 <말로우 드라이브 Marlowe Drive >(2017), <지옥으로의 하강 Descent into Hell >(2021)처럼 게임플레이 경험을 사적 감정의 에세이로 풀어내는 일련의 경향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영화적 비디오 에세이로 여겨지는 일련의 머시니마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는 머시니마 사이의 차이라면 그것이 영화제나 미술관 등 제도적 승인을 받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AVGN처럼 밈이나 격한 말투로 남기는 리뷰가 되었건, 게임의 디자인이나 스피드런 같은 특정한 방식의 게임플레이에 관한 탐구이건, 마치 영화의 숏과 몽타주를 분석하고 사조를 탐구하는 일련의 영상 비평들과 같은 비평적 행위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 [7] 혹은 비디오 에세이가 비평적 성격이 강한 영화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면, 게임에 관한 비디오 에세이 또한 머시니마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경계는 매우 흐릿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게임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분석하고 리뷰할 수 있는 대상이자,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작품들이 존재하며, 하나의 예술이자 문화의 형식이며, 접근이 용이한 예술적 도구로 자리잡았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샘 크레인, 피니 그릴스 <그랜트 테프트 오토의 햄릿> 스틸컷 머시니마의 한계와 미래? 재차 도입부의 문장으로 되돌아가서, 머시니마는 게임(machine)과 영화(cinema)의 합성어다. 다만 살펴본 것처럼 머시니마는 태생부터 영화관(cinema)이 아니라 온라인이나 갤러리/미술관에서 출발했다. 게임의 이미지를 영화관의 스크린 환경에서 실험하고자 한 필 솔로몬의 실험영화와 같은 사례들이 있지만, 최초의 장편 머시니마인 <블러드스펠>은 극장이 아닌 온라인 혹은 DVD를 통한 배급만을 진행했을 뿐이다. <니트 아일랜드>나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과 같은 최근의 장편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들 또한 몇몇 영화제에서만 극장상영 되었을 뿐, 일반 배급은 VOD나 무비(MUBI) 같은 OTT 플랫폼을 통해 진행되었다. 그렇다면 머시니마는 영화(cinema)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순한 영화(movie)이거나 미술관을 위한 무빙-이미지이거나 그저 또 하나의 콘텐츠인가? 물론 영화의 지위과 예전과 같지 않지만, 우리는 머시니마가 정말로 영화의 지위를 가져본 적은 없음을 생각해야 한다. 머시니마 제작을 위해 동원되는 게임의 가짓수가 생각보다 협소하다는 지점 또한 하나의 한계다. 초창기 머시니마가 [둠], [퀘이크], [헤일로] 등 녹화 기능과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 FPS 게임을 주된 플랫폼 삼았다면, 현재에 이르는 시점 동안에는 주로 [세컨드 라이프], [심즈 The Sims ] 시리즈(2000~2014), [마인크래프트]처럼 자유롭게 상황과 배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샌드박스형 게임, 혹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GTA V], [레드 데드 리뎀션]처럼 광활한 공간과 다양한 NPC, 멀티플레이 기능과 여러 모드를 동원할 수 있는 게임들이 주로 사용되곤 한다. 이는 멀티플레이나 오픈월드 게임의 특징, 다양한 인물과 상황이 창출되거나 설정될 수 있으며 그것을 다양한 카메라 시점으로 기록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 이들 작품이 채택되는 것일테다. 그렇다면 다른 머시니마를 떠올려 볼 수는 없을까? 이를테면 [프로젝트 좀보이드 Project Zomboid ](2013)로 제작해 쿼터뷰만으로 구성된 머시니마 픽션이라던가, [스타듀 밸리 Stardew Valley ](2016)나 [모여봐요 동물의 숲 あつまれ どうぶつの森 ](2020)으로 제작된 머시니마, 혹은 선명한 세계관과 내러티브를 지닌 [마블 스파이더맨]이나 [호라이즌 제로 던 Horizon Zero Dawn ](2017),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 ](2019)의 머시니마 팬 무비는 불가능한 것일까. 휴 행콕 <오지만디아스> 스틸컷 어떤 면에서 지금의 게임과 게임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게이머들에게 새로운 공간, 그들이 게임의 구성요소들을 가지고 유희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갈 공간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는 지점이 새로운 머시니마 플랫폼으로서의 게임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머시니마의 사례는 아니지만, 과거 [메이플스토리](2001) 공식 가이드북에 ‘싸비’라는 유저가 인게임 스크린샷을 활용해 제작한 스크린툰 기억하는가? 게임 전체의 내러티브와 관계없이 한 길드의 이야기를 써내려 갔던 그러한 만화가, 지금의 [메이플스토리]에서 가능할까? 때문에 최근 게임들의 팬 무비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8] 으로 유튜브에 업로드되거나, 시청자와 대화하며 개별적인 맥락의 이야기를 게임플레이와 함께 써내려가는 스트리머의 영상이 하나의 장르로 인식됨으로써 ‘이야기 기계’로서의 머시니마가 힘을 잃은 것일 수 있다. <캠퍼의 일기>나 처럼 게임플레이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리던 초창기 머시니마는 머시니마의 예술적/영화적 가능성을 점쳐보고자 했던 <오지만디아스>나 <블러드스펠>과 같은 작품들과 공존했다. 하지만 현재 영화제나 미술관에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머시니마는 게임을 창작 도구로 활용한 작품들이 아니라 게임이 자체적으로 갖는 사회적/예술적 기능에 관심을 둔 작품들이다. 유튜버들의 게임 리뷰, 스트리머의 게임플레이 영상, 게임에 관한 비평적 비디오 에세이, 게임 내에서 촬영된 다큐멘터리 등의 경계가 흐려지고, 게임에서 촬영한 무수한 콘텐츠가 오르내리는 지금, 머시니마의 방향은 영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직면하는 것을 향한다. 게임은 영화의 재료이자 도구라기보단 영화의 대상이 되었고, 그 안에서 머시니마라는 장르는 비디오 에세이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자연스레 이행한다. 일종의 메타비평으로서의 머시니마가 현재의 모습이라면, 미래의 머시니마는 어떤 모습일까? 혹은, 새로운 머시니마 극영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무수한 머시니마 속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머시니마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언급된 머시니마 리스트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 1996 <기적 Miracle> 1996 1997 <오지만디아스 Ozymandias> 1999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 Super Mario Cloud> 2002 2003 <슈퍼 마리오 무비 Super Mario Movie> 2005 <블러드스펠 Bloodspell> 2006 <이라크에서의 죽음 dead-in-Iraq> 2007 <엠파이어 Empire> 2008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 2009~2010 <평행 I-IV Parallel I-IV> 2012~2014 <파농을 찾아서 Finding Fanon> 2015~2016 2016 <구성된 순간 The Constructed Moment> 2017 <말로우 드라이브 Marlowe Drive> 2017 <쏘텔 재팬 타운의 기억 Redefining Community: The Evolution of Sawtelle Japantown> 2018 <몬도 카네 Mondo Cane> 2018 <4-2: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가장 악명 높은 레벨의 역사 4-2: The History of Super Mario Bros.' Most Infamous Level> 2018 <페더폴 Featherfall> 2019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This Is What a 'Second Person' Video Game Looks Like> 2019 <나만의 풍경: 미군이 되는 법 My Own Landscapes> 2020 <더 그래니즈 The Grannies> 2021 <유토피아를 찾아서 Tracing Utopia> 2021 <지옥으로의 하강 Descent into Hell> 2021 <우리는 가상현실에서 만났다 We Met in Virtual Reality> 2022 <근무 중 이상무 Hardly Working> 2022 <니트 아일랜드 Knit’s Island> 2023 <메이드 인 세컨드 라이프 Made in Second Life: The Movie> 2023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 Grand Theft Hamlet> 2024 [1] 김철현, 「게임 엔진과 영화 제작 현황」, 『방송과 미디어』, 30(1), 2025. 35-43쪽. [2] http://machinima.com/ . 머시니마 닷컴은 워너에 인수된 이후 2019년 1월 폐쇄된다. [3] 퍼시 비시 셀리의 동명 시를 원작 삼는 작품으로, “게임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이 작품을 호평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4] 링크의 영상은 2015년 ‘리마스터’된 영상으로, 2014년 [헤일로]의 리마스터 게임이 출시됨에 따라 머시니마 또한 리마스터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리마스터’의 가능성은 머시니마가 갖는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5] 프로그램 상영작과 소개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337 [6] 강진석, 「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 『다큐멘터리 매거진 DOCKING』, 2025, http://www.dockingmagazine.com/contents/40/340/ [7]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은 영상을 글로 비평하는 것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로, 영화에 대한 비평을 영화로서 시도하는 하나의 장르다. 비디오를 통해 영화의 수집과 편집이 용이해진 1980년대 출발하였으나, 디지털 영화로의 전환과 유튜브/비메오 등의 플랫폼 이후 더욱 활발해졌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논문을 참조할 수 있다. 이선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형식’과 ‘활동’으로서 영화비평: 시네 토크, 팟캐스트, 비디오 비평을 중심으로」, 『프리뷰』, 20(2). 2023. 83-120쪽. [8] 이를테면 [스타듀 밸리]나 [할로우 나이트 The Hollow Knight ](2018), [발더스 게이트 3 Baldur’s Gate 3 ](2023) 등 인기 인디게임의 팬 무비들은 머시니마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곤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박동수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미술, 게임, 방송 등 시각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영화평론가, 팟캐스트 [카페 크리틱] 진행자, 공동체상영 기획자이기도 하다.

  • : 기억에 접근하는 인터페이스

    궁극적으로 본작은 바로 이런 물질적 감각의 복원을 통해, 작중 주인공이 끝내 현재로 불러들이기를 거부했던 기억마저 플레이어의 수행 속에서 다시금 호출하도록 강제한다. 모든 내막이 종합되는 에피소드 4(“The Last Session”)가 밝히듯 주인공에게 인터페이스는 스스로의 끔찍한 과오—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회피하고 봉합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막이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역설적으로 그 방어막을 끈질기게 통과해 기억(진실)을 다시 구성하게 만드는 유력한 수행인이 된다. < Back : 기억에 접근하는 인터페이스 31 GG Vol. 26. 8. 10. ※ 본 글은 의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먼저, 인터페이스와 동존할 것 (2017)가 기억에 접근하는 법. 그것은 매끈하지 않다. 플레이어는 기억에 …… 접근한다. 앞선 말줄임표에 덜그럭거리며 끼어드는 것. 바로 인터페이스다. 플레이어는 작중 주인공의 ‘기억(이란 외피를 두른 모종의 진실)’을 파헤치도록 (무)의식적으로 유도되며, 이를 위해 두 차원의 인터페이스에 긴박되어야만 한다. 이를테면 게임 내부에서는 1980년대 복고풍 아날로그 하드웨어들―CRT 모니터와 기계식 키보드, DOS 프롬프트, 계측기, 구형 라디오 송수신기 등―과의 대치에 낯가리는 동안, 게임 외부에서는 그것들을 컨트롤하기 위한 키보드ㆍ마우스 등과 씨름하는 작업이 동시에 요구되는 셈이다. 보통 게임의 인터페이스는 HUDㆍ정보창(인벤토리, 맵, 저널, 라이브러리 등)과 같은 게임 내적인 정보 인터페이스와 게임 컨트롤러ㆍ키보드ㆍ마우스를 아우르는 외적인 물리적 인터페이스로 구분되곤 한다 [1] . 다만, 는 이러한 두 층위의 인터페이스가 ‘물리적 인터페이스’라는 실재 및 재현으로 수렴하며 플레이어를 견인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엄밀하게는, 내적인 정보 인터페이스마저 게임 세계 내의 디에제틱(Diegetic) 물리 장치의 형태로 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2] . 즉, 플레이어는 게임 외부의 고정된 물리적 인터페이스를 지닌 채, 게임 화면 속에 재현된 다층적인 물리적 인터페이스를 번갈아 작동시켜야 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손끝에 닿는 하드웨어는 언제나 동일하지만, 가닿는 가상 화면 속 인터페이스들은 챕터마다 가변적인 조작 문법이 요구된다. 결과적으로 플레이어가 파편화된 기억에 접근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이중’의 (물리적) 인터페이스 간의 긴밀한 협응 구조가 이 게임의 뼈대이자 특질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3] . 다만,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이중의 인터페이스 간의 협동 작업이 언제나 게임 내의 기억과 서사에 선행한다는 지점에 있다. 한마디로, 인터페이스는 항상 기억보다 먼저 도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플레이해 본 바에 의하면, 플레이 내내 게임 내의 파편화된 기억 이미지들에 대한 서사를 깊게 고민해 보거나 쉽게 몰입하기는 어렵게 되곤 하는데, 그보다 4개의 에피소드에 겹친 인터페이스의 불친절한 조작법 적응에 우선적으로 몰아 붙여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애초에 게임 자체가 극도로 튜토리얼이 축소된 환경이기도 하다.) 고로, 플레이어로서는 게임 내 주인공의 분절된 기억들을 마주하기 이전, 항시 인터페이스/들과의 불편한 동존(co-existence)에 ‘일단’ 내던져지게 되는 상황을 맛볼 수밖에 없다 [4] . 더 나아가 에피소드마다 매번 반복 재생되는 (스킵 불가한) 인트로에서조차 게임 내 인터페이스들이 천천히 부유하는 이미지가 지배적으로 다가오는데,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인터페이스와 시각적ㆍ촉각적으로 대면하는 과정에 연속적으로 세뇌(?)되는 기분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는 기억이라는 소재 자체보다, 바로 그 ‘기억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를 플레이의 핵심 경험으로 삼는 게임으로서 적극적으로 읽힐 필요가 제기된다는 판단이다. 왜 이 게임은 기억을 단순히 안온한 몰입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게임 내외의 인터페이스를 경유하여 ‘입력하고 만지도록’ 유도하는 것일까. 더불어 왜 기억을 목도하게 되는 통로가 하필이면 투박하고 레트로한 아날로그 하드웨어의 출현이라는 전제 조건 아래 성립되고 있는 것일까. 궁극적으로 본 글은 플레이어가 기억의 파편을 직접 짜맞추는 수준을 넘어, 기억을 더듬는 행위 자체를 복고풍의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는 물리적 행위로 번역해 낸 원리에 대한 탐색을 요청해 보고자 한다. 2. 하이퍼매개의 계승과 ‘기억의 인터페이스화’ 결국 에는 ‘게임 세계에 선행하여 인터페이스를 의식하게 만든다’, 라는 큰 줄기의 전제가 흐르고 있는 듯한 인상은 쉽게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에는 ‘하이퍼매개(Hypermediacy)’ 개념을 어렵지 않게 연계할 수 있어 보인다. 해당 개념에 대해 한번 개괄해 보자면, 하이퍼매개란 매체의 존재를 전면에 드러내면서, 사용자가 특정 매체를 경유하고 있음을 의식하게 만드는 표현 전략이다. 본 개념을 제안한 볼터와 그루신은 그들의 저서에서 이런 하이퍼매개 환경의 사용자는 “반복적으로 인터페이스와 접촉하게” 되면서, “인터페이스를 읽는 법을 배우게” 됨에 대해서도 거론한 바가 있다 [5] . 예를 들어, 게임 내 스토리 진행 보다 게임 내외부의 ‘인터페이스’를 훨씬 거슬려하게 된다 던지, (특히 의 경우에서) 물리적 인터페이스와 끊임없이 접촉하면서도 그와 더불어 게임 내부 인터페이스와의 연동 또한 ‘유독’ 골몰하게 되는 현상 자체도 하이퍼매개로 지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현대 디지털 게임이 본래 인터페이스의 존재감을 최대한 덜어내는 ‘비매개(Immediacy)’를 중요한 미덕으로 삼아, 플레이어의 완전한 몰입과 현전감을 지향해온 것과는 꽤 다른 방향성을 보여주는 셈이기도 하다 [6] . 다만, 본고는 의 논리를 하이퍼매개의 한 사례로만 적용하기에는 왠지 아쉬운 부분이 생긴다고 본다. 본작은 무엇보다도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소재를 핵심 범주로 삼고 있는 만큼, 작품의 독특함 역시 하이퍼매개적 전략이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대상에 접근하는 방식과의 결합에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본작은 인터페이스의 존재를 단순히 표면에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 자체가 본래 투명하게 복원될 수 없는 것이므로, 플레이어가 인터페이스를 경험하는 과정 자체를 통해 그런 사안들을 드러내는 면이 있다. 주지하듯이, 기억은 이미 완결된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한 순간 변함없이 그대로 재생되는 정적인 데이터가 아니다. 기억은 결국 주체의 무의식과 인지적 한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왜곡되는 동적인 흔적으로, 이 역시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비평적 성찰이기도 하다 [7] .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의 인터페이스는 애초에 고유의 불투명성, 그리고 기억 자체의 본질적인 불안으로 인하여 주인공의 기억을 투명하게 전달하는 창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오히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거친 매개의 신호들을 가시화하고 있는 구조를 띠면서, 기억에 접근하기 위해 마주해야 하는 “‘창문’ 자체”(하이퍼매개)로서 기능하는 것은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창문(하이퍼매개된 인터페이스)에 필연적으로 기억은 부딪힐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불완전한 기억과 불투명한 인터페이스 간의 저항이나 대치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본작의 플레이어는 인터페이스를 최대한 부드럽게 통과하여 기억에 도달하기 보다, 언제나 ‘플레이어-인터페이스’ 간 알력―때로는 지배ㆍ종속―의 관계를 거쳐 기억의 일부를 획득해 낼 수 있게 된다. 이때 플레이어의 신체는 인터페이스와 불편하게 동존(co-existence)하는 물리적 시간을 필수로 겪게 되기도 하는데, 본작의 경우 에피소드마다 별도의 시간 제한이 없으므로 이 관계성은 무한정 길게 늘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적 계승의 관점에서 보면, 로부터 ‘ 기억의 인터페이스화 ’라는 개념을 끌어내 볼 여지가 발생한다. 여기서 ‘기억의 인터페이스화’는 기억이란 것이 순전히 인터페이스를 통해 전달된다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에 직접 다가가는 과정이란 인터페이스를 다루는 신체적 실천과 결코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을 강력히 지시한다. 다시 말해, 본작에서의 기억이란 이미 인터페이스 안에 깔끔하게 내장되어 있다가 플레이어에게 즉시 전달되는 형태가 아니다. 오히려 반드시 인터페이스에 대한 신체적 실천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게 만들고, 한차례 치열한 수행을 마친 다음에야 비로소 사후적으로 점차 구성될 수 있는, 그런 류의 기억에 더 가깝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은 이렇게 정립된 개념이 결국 실제 플레이 분석의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느냐로 모아지게 된다. 과연 ‘기억의 인터페이스화’는 안에서 어떤 경험과 사유를 통해 구체화될 수 있을까. 3. 스산한 경계, 인터페이스의 역전 첫 번째 에피소드 “The House Abandon”. 해당 에피소드는 오래된 방안, 플레이어에게 8비트 시절의 텍스트 어드벤처라는 형식을 소환시키며 시작한다. 먼저는 낡은 CRT 모니터의 DOS 프롬프트에 명령어를 입력하게 되고, 동시에 활자화된 공간과 사물로의 탐색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게임 속 ‘나(주인공)’와 등치된다. 이때, 본래 플레이어에게 인터페이스란 자신이 플레이 경험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안정적인 통로에 가깝도록 지향된 것 [9] 으로, 해당 플레이에도 그런 내력이 전제되길 기대할지도 모른다. (PC판을 기준으로) 에피소드 1에서는 키보드를 활용하여 ‘LOOK’, ‘OPEN’, ‘GO’와 같은 동사와 특정 명사의 조합을 입력하는 규칙을 제시해 놓고 있으며 [10] , 사실 게임의 초반까지 이에 대해 수용하고 반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키보드만 잘 타이핑하면 될 문제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초반부 메커니즘은 인터페이스 자체가 가상 공간 내의 숨겨진 서사―차차 주인공의 ‘과오’에 대한 것이리라 눈치채게 되는 모종의 진실―에 안전하게 도달하기 위한, 신뢰할 수 있는 가교일 것이라는 믿음을 형성하며 플레이어를 게임에 진입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인터페이스를 향한 통제권의 환상성은 오래가지 않아 허물어진다. 마치 스무고개를 벌이듯이, 입력한 명령어 중 오직 게임 내 DOS 프롬프트의 기준에서 허용된 ‘올바른’ 단어만을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난관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이 ‘올바른’ 단어의 조합 범위는 생각보다 좁으며, 플레이어가 자유도를 발휘하여 문장을 구사한들 그것들은 공회전하며 인식 자체를 거부―“I’m sorry, I don’t understand”라는 메시지를 수반하며―당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화면 속 텍스트에 집, 나무, 마당 등이 묘사되어 있더라도, 플레이어의 접근을 허용하는 영역과 인식을 튕겨내는 경계가 명백히 갈리는 식이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점차 인터페이스의 한계가 곧 플레이어가 인식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가 되어버리며 운신이 좁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을 높은 해상도로서 기억하고, 혹은 무엇을 은폐해 둘지를 먼저 결정하는 쪽은 점차 인터페이스로 경도된다. 플레이어는 인터페이스로부터 언어 체계를 되려 심문받는, 수동적 존재로서의 징후를 감지하기도 한다. 그렇게 플레이를 하다 보면, 이러한 주객전도의 정점이 에피소드1 후반부에서 고조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것은 책상 위의 DOS 프롬프트가 플레이어에게 의미심장한 문구를 반복적으로 타이핑 할 것을 명령하는 대목으로, “내 잘못이야(It was my fault)”라는 자백에 대한 요구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순간 인터페이스는 게임 내부의 장치를 넘어, 화면 바깥 플레이어의 손가락 움직임을 조종하고 규정하는 수준으로 잠시 앞질러 간다는 점이다. 이는 이른바 인터페이스의 선도(先導)에 의해서 구축되는 기억, 앞서 제기한 ‘기억의 인터페이스화’의 원리이기도 하다. 한편, 인터페이스 조작법은 두 번째 에피소드 “The Lab Conduct”와 세 번째 에피소드 “The Station Process”에서는 한층 더 정교하게 요청된다. 이로 인해 (특히 연속적으로 에피소드를 클리어하고 있는 유저라면) 육체적 수행과 피로감이 심화되는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 가령, 에피소드 1이 주로 ‘키보드 타이핑’이라는 다소 직관적인 규칙에 집중했다면, 실험실에 배치된 에피소드 2 주인공에게는 훨씬 머리를 써야 하는, 복합적인 제어 능력이 요구되기에 더 고단해진다. 주인공에게는 구체 모양의 외계 실험체를 조사할 의무가 주어지는데, 이를 위해 아날로그 엑스레이, 소형 CRT 모니터, 레이저 주사기, 신호 발생기와 증폭기, 기계식 드릴 등의 인터페이스 장비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화면 전환 키([TAP])를 누르면 맞은편 모니터가 나오며, 화면에는 모종의 매뉴얼이 적혀있다. 그러나 매뉴얼도 그다지 상세한 편은 아니기에, 결국 장비들에 부착된 토글스위치, 은색 슬라이더 바, 숫자 넘버패드, 회전식 다이얼, 거대한 물리 버튼 따위를 일일이 눌러가는 식으로 상호작용해 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의 신체 조작 문법 또한 산만해지고 다변화된다. 에피소드 3 “The Station Process”에서는 북극의 외딴 기후 관측소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곳에서도 역시 정밀 계측기나 무선 장비 따위와의 대치가 필수적이다. 외부 직원들의 전파 소리가 들려온다면, 이를 해석해 내기 위해 플레이어는 주파수를 미세하게 조율해 내는 작업에 복무해야 한다. 더불어 백색소음 중의 음성 단서를 청각적으로 식별해 내거나, 음어와 모스부호를 해독하면서도, 프롬프트에 오타 없이 도출된 명령어를 입력하는 일 또한 상당히 섬세한 집중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특히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매번 필름을 수동으로 넘기며 초점을 조절해야 하는 마이크로피시 리더기를 활용한 매뉴얼 독해에도 애를 먹게 된다. 또한, 한 번 지나가 버린 음성 신호를 다시 기억해 내야 하는 변칙도 존재하는, 그야말로 그동안의 에피소드 중 가장 인지적 과부하를 자주 일으키는 요소가 곳곳에 개입되어 있다. 이런 과정에서 각종 인터페이스는 플레이어의 안정적 제어를 끊임없이 지연하고 교란시킨다. 더불어 기억 접근을 위한 시청각적 수행 또한 더욱 비대해질 것이 요청된다. 플레이어가 인터페이스를 통제하고 있다는 믿음. 이에 대한 강력한 의혹을 에피소드 3의 후반부는 암시하고 있다. 플레이어는 관측소에서 무언가에 의해 튕겨져 나오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고, 눈앞에 펼쳐지는 건 방향 감각이 모호한 설산 지대뿐이다. 그와 동시에 마우스 커서의 존재감이 돌연 사라져 버린다. 이 순간에 본작은 작중 세계 내의 디에제틱 기계 장치를 눈앞에 대두해 두는 앞선 에피소드들과 같은 배치를 잠시 감춰둔다. 대신 게임은 ‘마우스 커서’ 또한도 증발시키고 있는 셈이다. 플레이어의 신체와 화면 속 가상 세계를 가장 직관적으로 매개해 온 장치와의 연결마저 플레이어에게는 끊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눈앞의 인터페이스가 모두 사라졌음에도 플레이어는 그것으로부터 해방감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커서의 갑작스런 부재는 불현듯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자신이 인터페이스에 압박되면서도, 그것에 얼마나 의존하며 가상 세계를 지각해 왔는지에 대한 역설에 대해서 말이다. 문화비평가 마크 피셔(Mark Fisher)는 ‘으스스함’에 대하여 논한 적이 있다. 그가 말한 '으스스함(The Eerie)'이란 본래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곳에 무언가 존재할 때, 혹은 무언가 있어야만 할 때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고 한다 [11] . 그리고 해당 장면에서 감지되는 모종의 스산함 또한 비슷한 원리라고 본다. 응당 존재해야 할 마우스 커서가 사라졌음에도, 플레이어의 신체는 여전히 그것을 더듬듯 움직이게 되는 것. 그리하여 그의 부재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의식하게 되는 으스스함이 있다. 이후 플레이어는 가까스로 다시 관측소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눈에 익은 관측소가 아닌, 에피소드 1에서 머물렀던 낡은 방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반전을 염두에 둔 연출이기도 하나, 좀 더 엄밀하게는 지금까지 인터페이스들을 경유하며 축적되어 온 파편화된 수행들, 그리고 그로 인해 얻어진 기억들이 비로소 하나의 기억으로 수렴되기 시작했음을 암시하는 공간적 회귀이기도 하다는 판단이다. 플레이어는 같은 공간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수렴되기 시작한 기억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공간을 읽지 못하게 만든다. 더불어 인터페이스를 자신이 조작하는 것이 아닌, 사실상 인터페이스에 의해 자신이 점진적으로 감각ㆍ지각을 조작당해 왔다는 위기감이 엄습한다. 이러한 스산한 경계를 가로지르는, 인터페이스의 역전 관계는 ‘기억의 인터페이스화’의 대한 가장 극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4.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파훼하기: 낡은 인터페이스의 물질성 는 특유의 지난함이 감돌게 되는 게임이다. 우선적으로 게임에서 기억은 상냥하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플레이어는 기억을 목도하기 위하여, 굳게 닫힌 기억으로 향하는 출입문들을 부단히 상대해야 한다. 그 출입문이란 바로 인터페이스로, 플레이어는 그들과의 동존 또한 요구된다. 쉽지 않은 힘겨루기에 대한 시도도 필요해진다. 손에 열이 오르도록 키보드를 두드리고 다이얼을 돌리거나, 혹은 주파수를 튜닝하며 거친 매뉴얼을 더듬어 해독해 내야 한다. 이런 일련의 수행들은 단지 기억을 엿보기 위한 일회적 절차는 아니다. 오히려 게임의 저변을 이루는, 궁극적으로는 주인공의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파훼하기 위하여. 플레이어가 반복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전제 조건으로 호명될 수 있다. 기억은 플레이어에게 있어 선형적으로는 발견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다층적인 인터페이스들과의 상호작용은 수행의 결과를 축적시키고, 이후 기억은 점점 불어나 유추할 수 있는 형태로서 구성되기 시작한다. 타이핑-스크롤-해독되는 기억. 처음에 이 기억의 파편들이란 서로 연결되지 않은 형태로 흩어져 있으나 결국은 한 흐름의 기억, 즉 진실을 향해 응집하곤 한다. 이처럼 인터페이스라는 물질적 필터를 거쳐, 기억을 사후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과정과 그에 매몰되어 보는 작업은 의 고유한 불안이자 미학으로서 다가오기도 한다. 다만 마지막으로 남는 의문이란, 바로 이 게임은 왜 기억의 출현을 이토록 낡고 투박한 인터페이스의 물질성 위에 구축해 놓았는지에 대한 사안이 될 것이다. 해당 질문은 곧 가 왜 1980년대의 고전적 하드웨어를 집요하게 호출해 내는가, 에 대한 의문과도 직결되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표적으로 게임내 에피소드 1에서의 인터페이스는 ‘ZX 스펙트럼(ZX Spectrum)’을 적극 차용하고 있는데 이는 1982년에 출시한 영국의 가정용 컴퓨터로, 이후로도 등장하는 CRT 모니터, 계측기, 라디오, 마이크로피시 리더기 역시 당대 아날로그 기기의 감각을 세밀하게 구현해낸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디어 이론가 유시 파리카(Jussi Parikka)를 참조해 보자면, 그는 미디어 문화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박제하는 곳이 아니라, “과거가 갑자기 새롭게 발견되고 새로운 기술이 점점더 빠르게 구식이 될 수도 있는 시간과 물질성”의 역동적 과정이라는 측면을 언급한 바가 있다 [12] , 달리 말해, 오래된 매체는 그저 과거를 보여주는 재현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에 의하면 오래된 인터페이스 또한 당대의 기술적 감각과 작동 방식이 있었다면, 그것을 현재 속에서 다시금 경험하게 만드는 물질적 조건으로서 기능할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 그리하여 본작 역시 낡은 인터페이스들을 그저 복고적 연출이나 노스탤지어의 대상으로 곱씹기 위해 배치해 두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고 해석해 볼 여지가 생긴다. 오히려 그것들이 눈앞에 소환되었을 때, 플레이어는 오늘날 낯설어지거나 혹은 이미 퇴색된 인터페이스의 조작 방식을 자신의 신체로 다시 익혀야 하는 처지에 직면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인터페이스)는 납작하고 고루한 이미지가 아니라, 현재의 축축한 감각 속에서 다시 작동할 힘을 얻는 것으로서 경험된다. 궁극적으로 본 게임은 바로 이런 낡은 물질적 감각을 적극 견인하는데, 이를 통해 작중 주인공이 끝내 현재로 불러들이기 거부하고 퇴색되기를 바랐던 과거의 기억 또한, 플레이어의 수행을 통해 다시금 현재로 호출해 내도록 그 역동성을 강제하는 면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궁극적으로 에피소드 4(“The Last Session”)에서는 지금까지 벌어진 일련의 모든 내막이 종합되는 대목이다. 모든 걸 설명해 볼 수는 없지만 간단하게 밝히자면, 결국 주인공에게 인터페이스는 스스로의 끔찍한 과오—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회피하고 봉합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막으로, 반면 플레이어는 역설적으로 그 방어막을 끈질기게 통과해 기억(진실)을 다시 구성하게 만드는 유력한 수행인이 되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작은 과거의 매체를 안온하게 향유하는 게임이 아니라, 오랜 인터페이스들의 물질성을 경유해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신체 속에 재작동하는 차원이라는 면에서도 ‘기억의 (낡은) 인터페이스화’의 의의를 고찰하게 만드는 내력을 가진다. 이처럼 본작에서의 기억은 과거에 고정된 채로 보존되는 대상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인터페이스를 거치는 수행 속 현재적으로 다시 구성될 수 있는 경험으로, 는 이런 원리에 결코 가볍지 않게 연루된 게임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는 존재한다. 그러나 는 그러한 이야기의 완벽한 보관보다는, 되려 그 이야기가 어떤 매개로서 호출될 수 있는지, 혹은 현재 삶 속에서 재구성된 형태는 무엇인지를 되묻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재구성하도록 외면했던 기억을 현재로 불러왔을 때, 그것에 직면할 수 없는 저항과 직면할 수 있는 용기, 그 사이 인터페이스와의 스산한 동존 관계에 대해서도 본작은 직시하게 만든다.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기억의 재구성 과정과 마냥 아름답게 결별할 수 없는 우리의 운명에 대해서까지.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파훼하(지 않)기 위하여. 무의식 깊은 곳에서 손끝까지 끌어올려지게 되는 얼룩덜룩한 기억들이 있다. [1] 박근서, 『게임하기』, 커뮤니케이션북스, 2009, 166쪽. [2] 게임 디자인 연구에서 ‘디에제틱(Diegetic)’이란 가상 세계 내에 존재하는 사물로 캐릭터와 플레이어가 동시에 상호작용하며 인지ㆍ조작할 수 있는 UI를 뜻한다. 반대로 정보 전달에 큰 목적을 두어 2D 그래픽을 덮어씌우는 디자인인 ‘논 디에제틱(Non-Diegetic)’과는 대비된다. (김예은ㆍ김승현, 「가상현실 콘텐츠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분석 및 디에제틱 디자인 가이드」, 『디지털콘텐츠학회논문지』 제24권 제11호,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 2023, 2640-2643쪽 참조.) 예를 들어, 본 게임의 DOS 프롬프트나 터미널 화면은 외견상 2D 평면이지만, ‘3D 가상 공간 속 책상 위에 놓인 CRT 모니터’라는 사물에 종속되어 재현된다는 점에서 디에제틱 범주에 부합한다. 본 게임은 거의 모든 시스템 정보와 텍스트, 튜토리얼을 게임 세계 안의 물리적 ‘디에제틱’ 인터페이스 속으로 완전히 내포시킨다. [3] PC판과 달리 텍스트 직접 입력이 어려운 콘솔(Nintendo Switch, PS4 등) 이식판의 경우, 명령어 타이핑 대신 화면에 제시된 단어들(동사+명사쌍)을 각각 선택하여 조합하는 메뉴기반 접근 방식(Menu-based approach)이 적용되었다. (Staff, “The tale of porting No Code‘s text-based Stories Untold to Switch”, 『Game Developer』, 2020.03.11, https://www.gamedeveloper.com/design/the-tale-of-porting-no-code-s-text-based-i-stories-untold-i-to-switch 참조.) 본고는 PC판의 플레이 경험을 중점으로 삼고 있으나, PC판과 콘솔판 모두 입력의 기계적 방식만 달라졌을 뿐, 플레이어가 가상 화면 속의 불친절한 조작 체계를 수동으로 직접 조율해야 하는 ‘이중의 인터페이스 제어’라는 게임플레이의 본질과 수행적 가치는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4] 하이픈을 삽입한 ‘co-existence’로 표기한 것은, 주체와 대상이 매끄럽게 융합된 상태가 아니라 이질적인 두 존재가 팽팽한 긴장 속에 대치하는 ‘동존(同存)’의 상태임을 임의로 강조하기 위함이다. 게임 안과 밖의 인터페이스 모두 플레이어에게 온전히 지배당하는 투명한 도구로서만 머무르지 않으며, 플레이어는 게임 진행을 위해 불투명한 기계적 실체와 강제적으로 함께(co-) 버텨내야 하는 수동적 과정에 투입된다. [5] 제이 데이비드 볼터ㆍ리처드 그루신, 『재매개: 뉴미디어의 계보학』, 이재현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37쪽. [6] 박근서, 앞의 글, 161-162쪽 참조. “인터페이스의 문제는 단지 게임의 사용성을 높이는 문제를 떠나 경험의 주요한 수단이라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터페이스의 숙달과 그 정도가 곧 게임 경험의 강도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터페이스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아마도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소위 ‘유비쿼터스’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 복잡하고 어려운 인터페이스는 몰입을 방해한다.” [7] 박태진, 「기타 : 기억과 진실, 그리고 뇌: 인지심리학적 고찰」, 『독일어문학』 45권, 한국독일어문학회, 2009, 299-313쪽 참조. [8] 제이 데이비드 볼터ㆍ리처드 그루신, 앞의 책, 38쪽. [9] 제시 셸, 『The art of Game Design』, 전유택ㆍ이형민 옮김, 에이콘출판, 2010, 312쪽. [10] 본작 게임 내부의 도움말([HELP]) 시스템은 플레이어에게 다음과 같은 지침을 마지막에 덧붙인다. “진행이 막힌다면 서술 문장과 아이템 이름을 올바르게 읽고 있는지 확인하세요.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 올바른 단어를 찾아내는 것 또한 이 게임의 재미 중 일부니까요! (If you get stuck, make sure you are reading the description and item names correctly, and don‘t stress- finding the correct words is part of the fun!)" 시스템이 제시하는 이 위로는 결국 플레이어가 인터페이스를 통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시행착오 내지는 인지적 지체의 과정 자체가 이 게임이 설계한 핵심적인 수행이자 의도된 장치임을 증명한다. [11] 마크 피셔,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안현주 옮김, 구픽, 2024, 99쪽. [12] 유시 파리카, 『미디어고고학이란 무엇인가』, 권수진 외 5인 옮김, 현실문화, 2026, 27쪽. Tags: 스토리즈언톨드, 인터페이스, 기억, 재매개, 텍스트어드벤처, 미디어고고학, 마크피셔, storiesuntold, nocode, gamestudies, hypermediacy, mark fisher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정찬미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문합니다. 서브컬처의 애호가이자 관망자. 시대를 사유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론들을 추적하는 중입니다.

  • <사이렌> 속 불쾌한 플레이

    리플레이 디자인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사이렌>의 내러티브는 더욱이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다. 이 게임의 내러티브 진행은 극도로 제한된 정보량으로 제공되는 내러티브 전개이다. 게이머는 일반적으로 주어진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면서 게임의 스토리를 파악하기 어렵다. <사이렌>은 그저 스테이지가 시작하면 게이머에게 클리어 조건을 제시하고 방치한다. < Back 23 GG Vol. 25. 4. 10. Tags: 게임디자인, 난이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jin Park A graduate student who has stepped into game studies. Currently taking courses at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Lately, exploring the varied game experiences mediated by games, as well as subculture within Japan. Writing is still h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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