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ies Untold>: 기억에 접근하는 인터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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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8. 10.
※ 본 글은 <Stories Untold>의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먼저, 인터페이스와 동존할 것

<Stories Untold>(2017)가 기억에 접근하는 법. 그것은 매끈하지 않다. 플레이어는 기억에 …… 접근한다. 앞선 말줄임표에 덜그럭거리며 끼어드는 것. 바로 인터페이스다. 플레이어는 작중 주인공의 ‘기억(이란 외피를 두른 모종의 진실)’을 파헤치도록 (무)의식적으로 유도되며, 이를 위해 두 차원의 인터페이스에 긴박되어야만 한다. 이를테면 게임 내부에서는 1980년대 복고풍 아날로그 하드웨어들―CRT 모니터와 기계식 키보드, DOS 프롬프트, 계측기, 구형 라디오 송수신기 등―과의 대치에 낯가리는 동안, 게임 외부에서는 그것들을 컨트롤하기 위한 키보드ㆍ마우스 등과 씨름하는 작업이 동시에 요구되는 셈이다.
보통 게임의 인터페이스는 HUDㆍ정보창(인벤토리, 맵, 저널, 라이브러리 등)과 같은 게임 내적인 정보 인터페이스와 게임 컨트롤러ㆍ키보드ㆍ마우스를 아우르는 외적인 물리적 인터페이스로 구분되곤 한다[1]. 다만, <Stories Untold>는 이러한 두 층위의 인터페이스가 ‘물리적 인터페이스’라는 실재 및 재현으로 수렴하며 플레이어를 견인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엄밀하게는, 내적인 정보 인터페이스마저 게임 세계 내의 디에제틱(Diegetic) 물리 장치의 형태로 재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2].
즉, 플레이어는 게임 외부의 고정된 물리적 인터페이스를 지닌 채, 게임 화면 속에 재현된 다층적인 물리적 인터페이스를 번갈아 작동시켜야 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손끝에 닿는 하드웨어는 언제나 동일하지만, 가닿는 가상 화면 속 인터페이스들은 챕터마다 가변적인 조작 문법이 요구된다. 결과적으로 플레이어가 파편화된 기억에 접근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이중’의 (물리적) 인터페이스 간의 긴밀한 협응 구조가 이 게임의 뼈대이자 특질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3].
다만,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이중의 인터페이스 간의 협동 작업이 언제나 게임 내의 기억과 서사에 선행한다는 지점에 있다. 한마디로, 인터페이스는 항상 기억보다 먼저 도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플레이해 본 바에 의하면, 플레이 내내 게임 내의 파편화된 기억 이미지들에 대한 서사를 깊게 고민해 보거나 쉽게 몰입하기는 어렵게 되곤 하는데, 그보다 4개의 에피소드에 겹친 인터페이스의 불친절한 조작법 적응에 우선적으로 몰아 붙여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애초에 게임 자체가 극도로 튜토리얼이 축소된 환경이기도 하다.)
고로, 플레이어로서는 게임 내 주인공의 분절된 기억들을 마주하기 이전, 항시 인터페이스/들과의 불편한 동존(co-existence)에 ‘일단’ 내던져지게 되는 상황을 맛볼 수밖에 없다[4]. 더 나아가 에피소드마다 매번 반복 재생되는 (스킵 불가한) 인트로에서조차 게임 내 인터페이스들이 천천히 부유하는 이미지가 지배적으로 다가오는데,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인터페이스와 시각적ㆍ촉각적으로 대면하는 과정에 연속적으로 세뇌(?)되는 기분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Stories Untold>는 기억이라는 소재 자체보다, 바로 그 ‘기억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를 플레이의 핵심 경험으로 삼는 게임으로서 적극적으로 읽힐 필요가 제기된다는 판단이다. 왜 이 게임은 기억을 단순히 안온한 몰입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게임 내외의 인터페이스를 경유하여 ‘입력하고 만지도록’ 유도하는 것일까. 더불어 왜 기억을 목도하게 되는 통로가 하필이면 투박하고 레트로한 아날로그 하드웨어의 출현이라는 전제 조건 아래 성립되고 있는 것일까. 궁극적으로 본 글은 플레이어가 기억의 파편을 직접 짜맞추는 수준을 넘어, 기억을 더듬는 행위 자체를 복고풍의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는 물리적 행위로 번역해 낸 원리에 대한 탐색을 요청해 보고자 한다.
2. 하이퍼매개의 계승과 ‘기억의 인터페이스화’
결국 <Stories Untold>에는 ‘게임 세계에 선행하여 인터페이스를 의식하게 만든다’, 라는 큰 줄기의 전제가 흐르고 있는 듯한 인상은 쉽게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에는 ‘하이퍼매개(Hypermediacy)’ 개념을 어렵지 않게 연계할 수 있어 보인다. 해당 개념에 대해 한번 개괄해 보자면, 하이퍼매개란 매체의 존재를 전면에 드러내면서, 사용자가 특정 매체를 경유하고 있음을 의식하게 만드는 표현 전략이다. 본 개념을 제안한 볼터와 그루신은 그들의 저서에서 이런 하이퍼매개 환경의 사용자는 “반복적으로 인터페이스와 접촉하게” 되면서, “인터페이스를 읽는 법을 배우게” 됨에 대해서도 거론한 바가 있다[5].
예를 들어, 게임 내 스토리 진행 보다 게임 내외부의 ‘인터페이스’를 훨씬 거슬려하게 된다 던지, (특히 <Stories Untold>의 경우에서) 물리적 인터페이스와 끊임없이 접촉하면서도 그와 더불어 게임 내부 인터페이스와의 연동 또한 ‘유독’ 골몰하게 되는 현상 자체도 하이퍼매개로 지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현대 디지털 게임이 본래 인터페이스의 존재감을 최대한 덜어내는 ‘비매개(Immediacy)’를 중요한 미덕으로 삼아, 플레이어의 완전한 몰입과 현전감을 지향해온 것과는 꽤 다른 방향성을 보여주는 셈이기도 하다[6].
다만, 본고는 <Stories Untold>의 논리를 하이퍼매개의 한 사례로만 적용하기에는 왠지 아쉬운 부분이 생긴다고 본다. 본작은 무엇보다도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소재를 핵심 범주로 삼고 있는 만큼, 작품의 독특함 역시 하이퍼매개적 전략이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대상에 접근하는 방식과의 결합에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본작은 인터페이스의 존재를 단순히 표면에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 자체가 본래 투명하게 복원될 수 없는 것이므로, 플레이어가 인터페이스를 경험하는 과정 자체를 통해 그런 사안들을 드러내는 면이 있다. 주지하듯이, 기억은 이미 완결된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한 순간 변함없이 그대로 재생되는 정적인 데이터가 아니다. 기억은 결국 주체의 무의식과 인지적 한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왜곡되는 동적인 흔적으로, 이 역시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비평적 성찰이기도 하다[7].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Stories Untold>의 인터페이스는 애초에 고유의 불투명성, 그리고 기억 자체의 본질적인 불안으로 인하여 주인공의 기억을 투명하게 전달하는 창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오히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거친 매개의 신호들을 가시화하고 있는 구조를 띠면서, 기억에 접근하기 위해 마주해야 하는 “‘창문’ 자체”(하이퍼매개)로서 기능하는 것은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창문(하이퍼매개된 인터페이스)에 필연적으로 기억은 부딪힐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불완전한 기억과 불투명한 인터페이스 간의 저항이나 대치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본작의 플레이어는 인터페이스를 최대한 부드럽게 통과하여 기억에 도달하기 보다, 언제나 ‘플레이어-인터페이스’ 간 알력―때로는 지배ㆍ종속―의 관계를 거쳐 기억의 일부를 획득해 낼 수 있게 된다. 이때 플레이어의 신체는 인터페이스와 불편하게 동존(co-existence)하는 물리적 시간을 필수로 겪게 되기도 하는데, 본작의 경우 에피소드마다 별도의 시간 제한이 없으므로 이 관계성은 무한정 길게 늘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적 계승의 관점에서 보면, <Stories Untold>로부터 ‘기억의 인터페이스화’라는 개념을 끌어내 볼 여지가 발생한다. 여기서 ‘기억의 인터페이스화’는 기억이란 것이 순전히 인터페이스를 통해 전달된다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에 직접 다가가는 과정이란 인터페이스를 다루는 신체적 실천과 결코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을 강력히 지시한다. 다시 말해, 본작에서의 기억이란 이미 인터페이스 안에 깔끔하게 내장되어 있다가 플레이어에게 즉시 전달되는 형태가 아니다. 오히려 반드시 인터페이스에 대한 신체적 실천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게 만들고, 한차례 치열한 수행을 마친 다음에야 비로소 사후적으로 점차 구성될 수 있는, 그런 류의 기억에 더 가깝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은 이렇게 정립된 개념이 결국 실제 플레이 분석의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느냐로 모아지게 된다. 과연 ‘기억의 인터페이스화’는 <Stories Untold>안에서 어떤 경험과 사유를 통해 구체화될 수 있을까.
3. 스산한 경계, 인터페이스의 역전
첫 번째 에피소드 “The House Abandon”. 해당 에피소드는 오래된 방안, 플레이어에게 8비트 시절의 텍스트 어드벤처라는 형식을 소환시키며 시작한다. 먼저는 낡은 CRT 모니터의 DOS 프롬프트에 명령어를 입력하게 되고, 동시에 활자화된 공간과 사물로의 탐색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게임 속 ‘나(주인공)’와 등치된다. 이때, 본래 플레이어에게 인터페이스란 자신이 플레이 경험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안정적인 통로에 가깝도록 지향된 것[9]으로, 해당 플레이에도 그런 내력이 전제되길 기대할지도 모른다. (PC판을 기준으로) 에피소드 1에서는 키보드를 활용하여 ‘LOOK’, ‘OPEN’, ‘GO’와 같은 동사와 특정 명사의 조합을 입력하는 규칙을 제시해 놓고 있으며[10], 사실 게임의 초반까지 이에 대해 수용하고 반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키보드만 잘 타이핑하면 될 문제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초반부 메커니즘은 인터페이스 자체가 가상 공간 내의 숨겨진 서사―차차 주인공의 ‘과오’에 대한 것이리라 눈치채게 되는 모종의 진실―에 안전하게 도달하기 위한, 신뢰할 수 있는 가교일 것이라는 믿음을 형성하며 플레이어를 게임에 진입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인터페이스를 향한 통제권의 환상성은 오래가지 않아 허물어진다. 마치 스무고개를 벌이듯이, 입력한 명령어 중 오직 게임 내 DOS 프롬프트의 기준에서 허용된 ‘올바른’ 단어만을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난관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이 ‘올바른’ 단어의 조합 범위는 생각보다 좁으며, 플레이어가 자유도를 발휘하여 문장을 구사한들 그것들은 공회전하며 인식 자체를 거부―“I’m sorry, I don’t understand”라는 메시지를 수반하며―당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화면 속 텍스트에 집, 나무, 마당 등이 묘사되어 있더라도, 플레이어의 접근을 허용하는 영역과 인식을 튕겨내는 경계가 명백히 갈리는 식이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점차 인터페이스의 한계가 곧 플레이어가 인식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가 되어버리며 운신이 좁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을 높은 해상도로서 기억하고, 혹은 무엇을 은폐해 둘지를 먼저 결정하는 쪽은 점차 인터페이스로 경도된다. 플레이어는 인터페이스로부터 언어 체계를 되려 심문받는, 수동적 존재로서의 징후를 감지하기도 한다.
그렇게 플레이를 하다 보면, 이러한 주객전도의 정점이 에피소드1 후반부에서 고조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것은 책상 위의 DOS 프롬프트가 플레이어에게 의미심장한 문구를 반복적으로 타이핑 할 것을 명령하는 대목으로, “내 잘못이야(It was my fault)”라는 자백에 대한 요구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순간 인터페이스는 게임 내부의 장치를 넘어, 화면 바깥 플레이어의 손가락 움직임을 조종하고 규정하는 수준으로 잠시 앞질러 간다는 점이다. 이는 이른바 인터페이스의 선도(先導)에 의해서 구축되는 기억, 앞서 제기한 ‘기억의 인터페이스화’의 원리이기도 하다.

한편, 인터페이스 조작법은 두 번째 에피소드 “The Lab Conduct”와 세 번째 에피소드 “The Station Process”에서는 한층 더 정교하게 요청된다. 이로 인해 (특히 연속적으로 에피소드를 클리어하고 있는 유저라면) 육체적 수행과 피로감이 심화되는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 가령, 에피소드 1이 주로 ‘키보드 타이핑’이라는 다소 직관적인 규칙에 집중했다면, 실험실에 배치된 에피소드 2 주인공에게는 훨씬 머리를 써야 하는, 복합적인 제어 능력이 요구되기에 더 고단해진다.
주인공에게는 구체 모양의 외계 실험체를 조사할 의무가 주어지는데, 이를 위해 아날로그 엑스레이, 소형 CRT 모니터, 레이저 주사기, 신호 발생기와 증폭기, 기계식 드릴 등의 인터페이스 장비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화면 전환 키([TAP])를 누르면 맞은편 모니터가 나오며, 화면에는 모종의 매뉴얼이 적혀있다. 그러나 매뉴얼도 그다지 상세한 편은 아니기에, 결국 장비들에 부착된 토글스위치, 은색 슬라이더 바, 숫자 넘버패드, 회전식 다이얼, 거대한 물리 버튼 따위를 일일이 눌러가는 식으로 상호작용해 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의 신체 조작 문법 또한 산만해지고 다변화된다.

에피소드 3 “The Station Process”에서는 북극의 외딴 기후 관측소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곳에서도 역시 정밀 계측기나 무선 장비 따위와의 대치가 필수적이다. 외부 직원들의 전파 소리가 들려온다면, 이를 해석해 내기 위해 플레이어는 주파수를 미세하게 조율해 내는 작업에 복무해야 한다.
더불어 백색소음 중의 음성 단서를 청각적으로 식별해 내거나, 음어와 모스부호를 해독하면서도, 프롬프트에 오타 없이 도출된 명령어를 입력하는 일 또한 상당히 섬세한 집중력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특히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매번 필름을 수동으로 넘기며 초점을 조절해야 하는 마이크로피시 리더기를 활용한 매뉴얼 독해에도 애를 먹게 된다. 또한, 한 번 지나가 버린 음성 신호를 다시 기억해 내야 하는 변칙도 존재하는, 그야말로 그동안의 에피소드 중 가장 인지적 과부하를 자주 일으키는 요소가 곳곳에 개입되어 있다. 이런 과정에서 각종 인터페이스는 플레이어의 안정적 제어를 끊임없이 지연하고 교란시킨다. 더불어 기억 접근을 위한 시청각적 수행 또한 더욱 비대해질 것이 요청된다.
플레이어가 인터페이스를 통제하고 있다는 믿음. 이에 대한 강력한 의혹을 에피소드 3의 후반부는 암시하고 있다. 플레이어는 관측소에서 무언가에 의해 튕겨져 나오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고, 눈앞에 펼쳐지는 건 방향 감각이 모호한 설산 지대뿐이다. 그와 동시에 마우스 커서의 존재감이 돌연 사라져 버린다. 이 순간에 본작은 작중 세계 내의 디에제틱 기계 장치를 눈앞에 대두해 두는 앞선 에피소드들과 같은 배치를 잠시 감춰둔다. 대신 게임은 ‘마우스 커서’ 또한도 증발시키고 있는 셈이다. 플레이어의 신체와 화면 속 가상 세계를 가장 직관적으로 매개해 온 장치와의 연결마저 플레이어에게는 끊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눈앞의 인터페이스가 모두 사라졌음에도 플레이어는 그것으로부터 해방감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커서의 갑작스런 부재는 불현듯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자신이 인터페이스에 압박되면서도, 그것에 얼마나 의존하며 가상 세계를 지각해 왔는지에 대한 역설에 대해서 말이다.
문화비평가 마크 피셔(Mark Fisher)는 ‘으스스함’에 대하여 논한 적이 있다. 그가 말한 '으스스함(The Eerie)'이란 본래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곳에 무언가 존재할 때, 혹은 무언가 있어야만 할 때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고 한다[11]. 그리고 해당 장면에서 감지되는 모종의 스산함 또한 비슷한 원리라고 본다. 응당 존재해야 할 마우스 커서가 사라졌음에도, 플레이어의 신체는 여전히 그것을 더듬듯 움직이게 되는 것. 그리하여 그의 부재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의식하게 되는 으스스함이 있다.
이후 플레이어는 가까스로 다시 관측소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눈에 익은 관측소가 아닌, 에피소드 1에서 머물렀던 낡은 방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반전을 염두에 둔 연출이기도 하나, 좀 더 엄밀하게는 지금까지 인터페이스들을 경유하며 축적되어 온 파편화된 수행들, 그리고 그로 인해 얻어진 기억들이 비로소 하나의 기억으로 수렴되기 시작했음을 암시하는 공간적 회귀이기도 하다는 판단이다. 플레이어는 같은 공간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수렴되기 시작한 기억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공간을 읽지 못하게 만든다. 더불어 인터페이스를 자신이 조작하는 것이 아닌, 사실상 인터페이스에 의해 자신이 점진적으로 감각ㆍ지각을 조작당해 왔다는 위기감이 엄습한다. 이러한 스산한 경계를 가로지르는, 인터페이스의 역전 관계는 ‘기억의 인터페이스화’의 대한 가장 극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4.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파훼하기: 낡은 인터페이스의 물질성
<Stories Untold>는 특유의 지난함이 감돌게 되는 게임이다. 우선적으로 게임에서 기억은 상냥하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플레이어는 기억을 목도하기 위하여, 굳게 닫힌 기억으로 향하는 출입문들을 부단히 상대해야 한다. 그 출입문이란 바로 인터페이스로, 플레이어는 그들과의 동존 또한 요구된다. 쉽지 않은 힘겨루기에 대한 시도도 필요해진다. 손에 열이 오르도록 키보드를 두드리고 다이얼을 돌리거나, 혹은 주파수를 튜닝하며 거친 매뉴얼을 더듬어 해독해 내야 한다. 이런 일련의 수행들은 단지 기억을 엿보기 위한 일회적 절차는 아니다. 오히려 게임의 저변을 이루는, 궁극적으로는 주인공의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파훼하기 위하여. 플레이어가 반복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전제 조건으로 호명될 수 있다.
기억은 플레이어에게 있어 선형적으로는 발견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다층적인 인터페이스들과의 상호작용은 수행의 결과를 축적시키고, 이후 기억은 점점 불어나 유추할 수 있는 형태로서 구성되기 시작한다. 타이핑-스크롤-해독되는 기억. 처음에 이 기억의 파편들이란 서로 연결되지 않은 형태로 흩어져 있으나 결국은 한 흐름의 기억, 즉 진실을 향해 응집하곤 한다. 이처럼 인터페이스라는 물질적 필터를 거쳐, 기억을 사후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과정과 그에 매몰되어 보는 작업은 <Stories Untold>의 고유한 불안이자 미학으로서 다가오기도 한다. 다만 마지막으로 남는 의문이란, 바로 이 게임은 왜 기억의 출현을 이토록 낡고 투박한 인터페이스의 물질성 위에 구축해 놓았는지에 대한 사안이 될 것이다.
해당 질문은 곧 <Stories Untold>가 왜 1980년대의 고전적 하드웨어를 집요하게 호출해 내는가, 에 대한 의문과도 직결되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표적으로 게임내 에피소드 1에서의 인터페이스는 ‘ZX 스펙트럼(ZX Spectrum)’을 적극 차용하고 있는데 이는 1982년에 출시한 영국의 가정용 컴퓨터로, 이후로도 등장하는 CRT 모니터, 계측기, 라디오, 마이크로피시 리더기 역시 당대 아날로그 기기의 감각을 세밀하게 구현해낸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디어 이론가 유시 파리카(Jussi Parikka)를 참조해 보자면, 그는 미디어 문화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박제하는 곳이 아니라, “과거가 갑자기 새롭게 발견되고 새로운 기술이 점점더 빠르게 구식이 될 수도 있는 시간과 물질성”의 역동적 과정이라는 측면을 언급한 바가 있다[12], 달리 말해, 오래된 매체는 그저 과거를 보여주는 재현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에 의하면 오래된 인터페이스 또한 당대의 기술적 감각과 작동 방식이 있었다면, 그것을 현재 속에서 다시금 경험하게 만드는 물질적 조건으로서 기능할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
그리하여 본작 역시 낡은 인터페이스들을 그저 복고적 연출이나 노스탤지어의 대상으로 곱씹기 위해 배치해 두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고 해석해 볼 여지가 생긴다. 오히려 그것들이 눈앞에 소환되었을 때, 플레이어는 오늘날 낯설어지거나 혹은 이미 퇴색된 인터페이스의 조작 방식을 자신의 신체로 다시 익혀야 하는 처지에 직면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인터페이스)는 납작하고 고루한 이미지가 아니라, 현재의 축축한 감각 속에서 다시 작동할 힘을 얻는 것으로서 경험된다. 궁극적으로 본 게임은 바로 이런 낡은 물질적 감각을 적극 견인하는데, 이를 통해 작중 주인공이 끝내 현재로 불러들이기 거부하고 퇴색되기를 바랐던 과거의 기억 또한, 플레이어의 수행을 통해 다시금 현재로 호출해 내도록 그 역동성을 강제하는 면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궁극적으로 에피소드 4(“The Last Session”)에서는 지금까지 벌어진 일련의 모든 내막이 종합되는 대목이다. 모든 걸 설명해 볼 수는 없지만 간단하게 밝히자면, 결국 주인공에게 인터페이스는 스스로의 끔찍한 과오—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회피하고 봉합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막으로, 반면 플레이어는 역설적으로 그 방어막을 끈질기게 통과해 기억(진실)을 다시 구성하게 만드는 유력한 수행인이 되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작은 과거의 매체를 안온하게 향유하는 게임이 아니라, 오랜 인터페이스들의 물질성을 경유해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신체 속에 재작동하는 차원이라는 면에서도 ‘기억의 (낡은) 인터페이스화’의 의의를 고찰하게 만드는 내력을 가진다. 이처럼 본작에서의 기억은 과거에 고정된 채로 보존되는 대상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인터페이스를 거치는 수행 속 현재적으로 다시 구성될 수 있는 경험으로, <Stories Untold>는 이런 원리에 결코 가볍지 않게 연루된 게임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는 존재한다. 그러나 <Stories Untold>는 그러한 이야기의 완벽한 보관보다는, 되려 그 이야기가 어떤 매개로서 호출될 수 있는지, 혹은 현재 삶 속에서 재구성된 형태는 무엇인지를 되묻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재구성하도록 외면했던 기억을 현재로 불러왔을 때, 그것에 직면할 수 없는 저항과 직면할 수 있는 용기, 그 사이 인터페이스와의 스산한 동존 관계에 대해서도 본작은 직시하게 만든다.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기억의 재구성 과정과 마냥 아름답게 결별할 수 없는 우리의 운명에 대해서까지.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파훼하(지 않)기 위하여. 무의식 깊은 곳에서 손끝까지 끌어올려지게 되는 얼룩덜룩한 기억들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