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기술, 매체, 도구, 방법론으로서의 머시니마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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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10. 10.
머시니마(machinima)는 머신(machine)과 영화(cinema)의 합성어로, 비디오게임을 통해 제작된 영화를 부르는 용어다.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 기술이 일반화되며 출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영화 분야에서 CGI를 활용한 VFX 기술이 도입되며 이미 맹아를 싹틔우고 있었다. <트론 Tron>(1982)을 통해 본격적으로 CGI가 도입된 이래, 3D 애니메이션과 VFX의 기술적 발전사는 게임엔진의 발전사와 궤를 함께한다.
게임엔진은 실시간 랜더링이 가능하다는 지점에서 영화제작에 있어 프리비주얼 단계에 사용되거나, 버추얼 프로덕션으로서 활용된다. 이 과정에서 언리얼이나 유니티 등의 게임엔진이 활용된다[1]. 이를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2016) 제작과정을 담은 블루레이 부가영상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마치 영화 속 ‘오아시스’에 접속하듯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기기를 쓴 스필버그는 버추얼 프로덕션으로 제작된 영화 세트장을 살펴보며, 마치 VR 게임을 하듯 카메라 동선을 짜고 세트장의 디테일을 변경한다[링크].
라이브 스크린을 활용한 <오블리비언 Oblivion>(2013)이나 디즈니+ 드라마 <만달로리안 Mandalorian>(2019~) 또한 게임엔진을 적극 활용해왔다. 비슷한 방식으로, 미술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 작업들 또한 게임엔진을 적극 활용한다. 국내에선 여러 전시와 영화제 등을 통해 소개된 미디어 아티스트 루양의 <물질 세계의 위대한 모험>(2020)과 <도쿠_환상을 뒤엎는 이분법적 충돌>(2023)은 자신을 직접 3D 스캐닝한 젠더리스 아바타 ‘도쿠’를 사용한 여러 작품을 내놓았다.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 안가영은 <KIN거운 생활>(2021)을 통해 예술가들이 아바타를 사용해 도피한 세계를 그려낸다. 이들 작품은 게임엔진인 유니티로 제작되었다. 이처럼 영화, 그리고 무빙이미지 기반의 미디어아트 작업에서 게임엔진이 도입된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국내외 영화/애니메이션 전공에서 게임엔진을 활용한 실기 강의도 개설되어 있다.
머시니마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글에서 게임엔진을 사용한 작업을 왜이리 길게 이야기하는가? 이는 게임과 영화 모두 움직이는 이미지에 기반해 있다는 점에서 비교되는 매체이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CGI의 기술적 발전사를 공유하고 서로의 프로덕션에 서로가 활용된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허나 이보다 중요하게, 머시니마로 지칭되는 작품의 유형이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문제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루양이나 안가영의 작업은 특정한 게임을 통해서 제작된 작품이 아니다. 게임적인 특징들, 이를테면 아바타나 메타버스와 같은 용어들로 지칭되는 디지털 가상세계의 묘사를 위해 게임의 이미지가 채택된 것에 가깝다. 이는 게임엔진으로 가상의 게임을 제작한 뒤 그 플레이영상을 토대로 제작된 송민정의 <악사라 마야 AKSARA MAYA>(2019), 김경묵의 <폐쇄회로>(2020) 등을 정말로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때문에 본 글에서는 머시니마를 이미 출시된 게임을 통해 제작된 영화들로 한정하고자 한다.
머시니마의 짧은 역사
머시니마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도입부에 적어둔 것처럼 머시니마는 1990년대 비디오게임 녹화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디즈니의 스턴트 시뮬레이터 게임 [스턴트 아일랜드 Stunt Island](1992)에서 인게임 기능으로 처음 도입된 것이 그 출발점이다. 해당 게임은 가상의 섬에서 다양한 스턴트 시퀀스를 제작하고, 그것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녹화해 보여주는 것이 주된 플레이였다. 게임 안에서 영화의 한 시퀀스를 직접 만들어 보는, 전-머시니마(pre-machinima) 형태를 의도치 않게 취했던 게임이랄까.
이러한 녹화 기술은 이후 [둠 Doom](1993)이나 [퀘이크 Quake](1996) 등의 FPS 게임에서 리플레이를 기록하는 데모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주로 공략 영상이나 스피드런을 남기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되던 녹화 기술이 머시니마로 만들어진 최초의 사례 중 하나는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1996)이다. 이 작품은 [퀘이크]의 클랜 레인저스(Rangers)가 제작한 것으로 100초 분량의 멀티플레이를 자유 시점의 카메라로 담아낸다. 제목의 ‘캠퍼’는 FPS 게임에서 맵 구석에 엎드려 누군가 오길 기다리는 플레이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 작품 또한 그러한 게임플레이를 내용으로 삼는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양한 ‘퀘이크 영화’가 등장하며 인기를 끌게 된다.
같은 해인 1996년, 또 다른 최초의 머시니마 중 하나라 불리는 <기적 Miracle>(1996)이 갤러리를 통해 공개된다. 전투기 시뮬레이터 [F/A-18 Hornet](1996)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전투기가 물 위를 활주로처럼 달리는 모습을 담은 100초 가량의 영상이다. 이 작품의 경우 미술작가 밀토스 마네타스(Miltos manetas)의 작품으로, ‘퀘이크 영화’와 달리 작가의 개인전을 통해 갤러리에서 공개되었다. 다시 말해, 머시니마는 그 출발점부터 게이머와 미술가라는 두 주체에 의해 온라인과 갤러리라는 두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던 예술형식이라 할 수 있다.

[스턴트 아일랜드] 플레이 화면

레인저스 <캠퍼의 일기> 스틸컷
이 시기에 머시니마라는 용어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머시니마라는 용어는 ‘퀘이크 영화’에 매료된 휴 행콕(Hugh Hancock)이 영화제작자인 고든 맥도널드(Gordon McDonald)와 함게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트레인지 컴퍼니(Strange Company)를 설립한 이후 만들어낸 용어이다. 1999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행콕과 스트레인지 컴퍼니는 몇 편의 머시니마를 제작했고, 2000년 머시니마 제작자를 위한 온라인 허브 웹사이트 ‘머시니마 닷컴’[2]을 오픈한다.
2002년에는 머시니마 예술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achinima Arts & Sciences)를 설립하기도 하고, 이 단체를 통해 최초의 머시니마 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휴 행콕은 [퀘이크]로 제작한 <Eschaton - Darkening Twilight>(1997)나, 게임사 모놀리스 프로덕션(Monolith Productions)에서 개발한 게임엔진 ‘리스테크’를 활용한 독립적인 머시니마 제작을 위한 프로젝트 리스테크 필름 프로듀서(Lithtech Film Producer)를 통해 제작한 <오지만디아스 Ozymandias>(1999)[3] 등을 제작하기도 한다.
2006년에는 최초의 장편 머시니마 <블러드스펠 Bloodspell> 또한 공개한다. 다른 한편으로 P2P 플랫폼과 유튜브의 등장을 통해 머시니마는 일종의 팬 무비의 지위를 갖기 된다. 루스터 티스(Rooster Teeth)가 [헤일로 Halo](2001)을 통해 제작한 <Red vs. Blue>(2003)[4]는 ‘편가르기’가 중심인 게임 내 전쟁 상황에서 병사들이 “우리는 왜 싸우지?”라는 의문을 갖는다는 내용의 블랙코미디로, P2P 서비스를 통해 배급/배포된 이후 2006년부터는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다. 이후 18개 시즌에 한편의 장편으로 구성된 장기 시리즈로 연재된다.

코리 아켄젤 <슈퍼마리오 무비> 스틸컷

필 솔로몬 <엠파이어> 스틸컷
다만 이렇게 대중적인 주목을 받아 온, 혹은 팬 무비로서 인기를 얻은 머시니마는 최근 힘을 잃고 있다. 머시니마 닷컴은 워너에 인수된 이후, 2019년 1월 워너에 의해 폐쇄된다. 그곳에서 운영하던 머시니마 유튜브 채널 ‘Machinima Inc.’ 또한 폐쇄된다. 2024년에는 루스터 티스가 폐업 소식을 알려 왔다.
물론 [하프라이프 2 Half-Life 2](2004), [카운터스트라이크: 소스 Counter-Strike: Source](2004), [블랙 메사 Black Mesa](2012) 등의 에셋을 활용한 머시니마 스키비디 토일렛(Skibidi Toilet)과 같은 시리즈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기는 하다. 다만 2014년 트위치의 등장 이후 게임 스트리밍 시장이 활성화된 이후 다양한 방식의 게임플레이 영상이 유튜브 등지에 업로드되는 상황에서 ‘팬 무비’로서의 머시니마는 힘을 잃는다. 이를테면 팬 무비로서의 ‘퀘이크 영화’는 있지만 ‘GTA 영화’나 ‘마인크래프트 영화’는 (물론 존재는 하지만) 팬 무비보다는 실험영화나 미술의 영역에서 소화되는 상황이다. 영국의 작가 듀오 래리 아키암퐁(Larry Achiampong)과 데이빗 블랜디(David Blandy)가 함께 제작한 <파농을 찾아서 Finding Fanon> 시리즈(2015~2016)와 그것의 외전인 <FF 외전 FF Gaiden> 시리즈(2016)는 [GTA V](2013)의 촬영용 모드를 활용하여 제작되었는데, [GTA V]가 풍자하는 백인중심적이며 폭력적인 세계관 속에서 탈식민주의 사상가 프란츠 파농의 유실된 희곡을 선보인다는 컨셉의 작품이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Super Mario Bros.](1983)의 카트리지를 임의로 조작해 글리치를 일으키고 그것을 통해 제작한 코리 아켄젤(Cory Arcangel)의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 Super Mario Cloud>(2002)나 <슈퍼 마리오 무비 Super Mario Movie>(2005) 또한 갤러리를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특히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의 경우 마치 회화와 같은 방식으로 전시되었다. 그 밖에도 [GTA V](2013), [마블 스파이더맨 Marvel’s Spider-man](2018), [어쎄신 크리드 오리진 Assassin’s Creed Origins](2017) 등 다양한 게임에서 글리치로 인해 한없이 추락하는 캐릭터들을 담은 <페더폴 Featherfall>(2019)나 필름 작업을 이어오던 실험영화 감독 필 솔로몬(Phil Sonomon)이 [GTA IV](2008)로 앤디 워홀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엠파이어 Empire>(2008)와 같은 작품들은 미디어아트와 실험영화의 교차점에서 머시니마를 실험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비디오에세이, 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
도입부에서 완성된 게임이 아니라 게임엔진을 활용한 작업들을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라는 하나의 의문을 제시했다. 또 하나의 의문을 제기하자면, 게임플레이의 녹화 장면을 기록하여 만든 모든 영상물을 머시니마로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다.
2021년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진행된 기획전 ‘GAME x CINEMA’[5]는 네 개의 섹션으로 여러 ‘게임 영화’를 구분했다. <트론>이나 <레디 플레이 원> 등 ‘게임 소재’의 영화들, <슈퍼 마리오>(1993)나 <반교: 디텐션>(2019) 등의 ‘게임 원작’ 영화들, 게임과 플레이어, 제작자와의 관계를 다룬 여러 편의 ‘게임 다큐멘터리’들, 그리고 마지막이 머시니마다.
극장 대신 온라인 상영으로 진행된 이 기획전에서 머시니마로서 소개된 작품들의 구성은 꽤나 다양하다. 앞서 언급한 <Red vs. Blue>나 <오지만디아스>, <캠퍼의 일기>, <페더폴> 등 P2P, 유튜브, 머시니마 닷컴, 혹은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소개된 여러 작품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튜브를 통해 주로 소개된 여러 비디오 에세이들이 있다.
1세대 유튜버라 할 수 있는 AVGN의 [캐슬바니아 2: 사이먼의 원정 Castlevania II: Simon's Quest](1987) 리뷰부터, 비디오게임 스피드런에 관한 유튜버 서머닝 솔트(Summoning Salt)의 비디오에세이, <4-2: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가장 악명 높은 레벨의 역사 4-2: The History of Super Mario Bros.' Most Infamous Level>(2018), 역시 비디오게임에서 카메라 시점의 문제를 다룬 유튜버 닉 로빈슨(Nick Robinson)의 비디오에세이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This Is What a 'Second Person' Video Game Looks Like>(2019) 등이 머시니마로서 소개되었다. 이들은 머시니마인가? 혹은 아닌가?

닉 로빈슨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다큐멘터리 영화제들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우리는 가상현실에서 만났다 We Met in Virtual Reality>(2022), <니트 아일랜드 Knit’s Island>(2023),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 Grand Theft Hamlet>(2024) 등은 각각 [VR Chat](2014), [데이즈 DayZ](2013), [GTA V] 등을 통해 제작된 다큐멘터리이며, 이들 작품은 일종의 메타버스로서 기능하는 멀티플레이 게임 안에서의 생활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갖는다. 특히 이들 작품은 별도의 모드를 사용하는 대신 게임 내 캐릭터의 시점을 그대로 녹화해 사용하는데, 때문에 영화의 감독은 촬영감독이자 게임 플레이어로 활동하게 된다. 일종의 자기민속지(Auto-Ethnography)적 성격을 갖는 문화인류학적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랄까.
이와 같은 자기민속지적 맥락은 영화의 적지 않은 부분을 넥슨의 MMORPG [일랜시아](1999)의 게임플레이 녹화화면이 차지하는 <내언니전지현과 나>(2020)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World of Warcraft](2004) 속 녹화되지 못한 순간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재연(reenactment)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The Remarkable Life of Ibelin>(2024) 등과도 연결된다. 다만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게임플레이 녹화화면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머시니마적 성격을 갖는, 게임을 ‘통해서’ 제작된 성격을 갖는다면,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머시니마보단 부분적으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갖는다. 머시니마는 결국 영화제작의 도구이자 배경으로서 게임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온라인 기획전 ‘이것은 가상이 아니다’를 통해 소개된 머시니마 다큐멘터리와 비디오 에세이들은 게임이 메타버스로서, 재연의 방식으로서 갖는 민속지적 성격과 미학적 실험을 드러낸다. 앞서도 언급한 필 솔로몬의 <엠파이어>나 토탈 리퓨절(Total Refusal)의 <근무 중 이상 무 Hardly Working>(2022)와 같은 작품은 플레이어의 개입 없이도 게임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그려낸다. 전자가 알고리즘에 따라 변화하는 게임 내 날씨, 빛, 소음, NPC 움직임의 기록이라면, 후자는 정해진 일과를 수행하는 [레드 데드 리뎀션 2 Red Dead Redemption II](2018) 속 NPC들을 쫓는다.
마리 풀스턴(Marie Foulston)의 <더 그래니즈 The Grannies>(2021)처럼 게임 내 글리치를 찾아다니는 게임개발자 클랜을 담아내는 사례도 있다. 혹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세컨드 라이프 Second Life](2003)나 [마인크래프트 Minecraft](2009)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담은 <메이드 인 세컨드 라이프 Made in Second Life: The Movie>(2023)과 <유토피아를 찾아서 Tracing Utopia>(2021)가 있다. 혹은 없어진 이민자 마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해당 마을의 풍경을 [마인크래프트]로 재현한 프로젝트 <쏘텔 재팬 타운의 기억 Redefining Community: The Evolution of Sawtelle Japantown>(2018)처럼 다큐멘터리에서 재연의 영역을 머시니마로 구현한 작품 또한 존재한다. 이들 작품은 각자의 방식대로 게임을 다큐멘터리적 대상으로, 혹은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하고, 머시니마는 그곳에 개입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해당 기획전의 프로그래머 강진석은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들을 “가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 세계의 일부이며 기록할 만한 것으로 재설정하는 작업”[6]으로 정의한다. 즉, 이들 작품은 게임을 다큐멘터리가 다룸직한 세계로, 우리가 생활하고 살아가는 세계의 일부이자 확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발언하는 머시니마이다.

토탈 리퓨절 <근무 중 이상 무> 스틸컷

조셉 드라페 <이라크에서의 죽음> 스틸컷
그렇다면 비디오 에세이로서의 머시니마는 어떠한가? 시네마테크KOFA의 기획전에서 상영된 유튜버들의 비디오 에세이와, 미술관이나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된 비디오 에세이/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들은 서로 다른 차이를 갖는가? 물론 유튜브의 비디오 에세이들 또한 게임과 세계, 그리고 (머시니마)영화 관한 충분한 비평적 함의를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라크에서의 죽음 dead-in-Iraq>(2007)이나 <나만의 풍경: 미군이 되는 법 My Own Landscapes>(2020)처럼 게임의 군사적 활용이나 <몬도 카네 Mondo Cane>(2018)처럼 디지털 윤리에 관한 문제를 던지는 머시니마 작업, 다시 말해 하룬 파로키(Harun Faroki)의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2009~2010)이나 <평행 I-IV Parallel I-IV>(2012~2014)에서 던진 문제의식과 공명하는 작업은 하나의 경향성을 이룬다. 혹은 <구성된 순간 The Constructed Moment>(2017)이나 <말로우 드라이브 Marlowe Drive>(2017), <지옥으로의 하강 Descent into Hell>(2021)처럼 게임플레이 경험을 사적 감정의 에세이로 풀어내는 일련의 경향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영화적 비디오 에세이로 여겨지는 일련의 머시니마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는 머시니마 사이의 차이라면 그것이 영화제나 미술관 등 제도적 승인을 받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AVGN처럼 밈이나 격한 말투로 남기는 리뷰가 되었건, 게임의 디자인이나 스피드런 같은 특정한 방식의 게임플레이에 관한 탐구이건, 마치 영화의 숏과 몽타주를 분석하고 사조를 탐구하는 일련의 영상 비평들과 같은 비평적 행위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7] 혹은 비디오 에세이가 비평적 성격이 강한 영화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면, 게임에 관한 비디오 에세이 또한 머시니마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경계는 매우 흐릿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게임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분석하고 리뷰할 수 있는 대상이자, ‘클래식’으로 여겨지는 작품들이 존재하며, 하나의 예술이자 문화의 형식이며, 접근이 용이한 예술적 도구로 자리잡았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샘 크레인, 피니 그릴스 <그랜트 테프트 오토의 햄릿> 스틸컷
머시니마의 한계와 미래?
재차 도입부의 문장으로 되돌아가서, 머시니마는 게임(machine)과 영화(cinema)의 합성어다. 다만 살펴본 것처럼 머시니마는 태생부터 영화관(cinema)이 아니라 온라인이나 갤러리/미술관에서 출발했다. 게임의 이미지를 영화관의 스크린 환경에서 실험하고자 한 필 솔로몬의 실험영화와 같은 사례들이 있지만, 최초의 장편 머시니마인 <블러드스펠>은 극장이 아닌 온라인 혹은 DVD를 통한 배급만을 진행했을 뿐이다.
<니트 아일랜드>나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과 같은 최근의 장편 머시니마 다큐멘터리들 또한 몇몇 영화제에서만 극장상영 되었을 뿐, 일반 배급은 VOD나 무비(MUBI) 같은 OTT 플랫폼을 통해 진행되었다. 그렇다면 머시니마는 영화(cinema)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순한 영화(movie)이거나 미술관을 위한 무빙-이미지이거나 그저 또 하나의 콘텐츠인가? 물론 영화의 지위과 예전과 같지 않지만, 우리는 머시니마가 정말로 영화의 지위를 가져본 적은 없음을 생각해야 한다.
머시니마 제작을 위해 동원되는 게임의 가짓수가 생각보다 협소하다는 지점 또한 하나의 한계다. 초창기 머시니마가 [둠], [퀘이크], [헤일로] 등 녹화 기능과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 FPS 게임을 주된 플랫폼 삼았다면, 현재에 이르는 시점 동안에는 주로 [세컨드 라이프], [심즈 The Sims] 시리즈(2000~2014), [마인크래프트]처럼 자유롭게 상황과 배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샌드박스형 게임, 혹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GTA V], [레드 데드 리뎀션]처럼 광활한 공간과 다양한 NPC, 멀티플레이 기능과 여러 모드를 동원할 수 있는 게임들이 주로 사용되곤 한다.
이는 멀티플레이나 오픈월드 게임의 특징, 다양한 인물과 상황이 창출되거나 설정될 수 있으며 그것을 다양한 카메라 시점으로 기록할 수 있다는 지점에서 이들 작품이 채택되는 것일테다. 그렇다면 다른 머시니마를 떠올려 볼 수는 없을까? 이를테면 [프로젝트 좀보이드 Project Zomboid](2013)로 제작해 쿼터뷰만으로 구성된 머시니마 픽션이라던가, [스타듀 밸리 Stardew Valley](2016)나 [모여봐요 동물의 숲 あつまれ どうぶつの森](2020)으로 제작된 머시니마, 혹은 선명한 세계관과 내러티브를 지닌 [마블 스파이더맨]이나 [호라이즌 제로 던 Horizon Zero Dawn](2017), [데스 스트랜딩 Death Stranding](2019)의 머시니마 팬 무비는 불가능한 것일까.

휴 행콕 <오지만디아스> 스틸컷
어떤 면에서 지금의 게임과 게임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게이머들에게 새로운 공간, 그들이 게임의 구성요소들을 가지고 유희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갈 공간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는 지점이 새로운 머시니마 플랫폼으로서의 게임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머시니마의 사례는 아니지만, 과거 [메이플스토리](2001) 공식 가이드북에 ‘싸비’라는 유저가 인게임 스크린샷을 활용해 제작한 스크린툰 기억하는가? 게임 전체의 내러티브와 관계없이 한 길드의 이야기를 써내려 갔던 그러한 만화가, 지금의 [메이플스토리]에서 가능할까? 때문에 최근 게임들의 팬 무비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8]으로 유튜브에 업로드되거나, 시청자와 대화하며 개별적인 맥락의 이야기를 게임플레이와 함께 써내려가는 스트리머의 영상이 하나의 장르로 인식됨으로써 ‘이야기 기계’로서의 머시니마가 힘을 잃은 것일 수 있다. <캠퍼의 일기>나 <Red vs. Blue>처럼 게임플레이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리던 초창기 머시니마는 머시니마의 예술적/영화적 가능성을 점쳐보고자 했던 <오지만디아스>나 <블러드스펠>과 같은 작품들과 공존했다. 하지만 현재 영화제나 미술관에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머시니마는 게임을 창작 도구로 활용한 작품들이 아니라 게임이 자체적으로 갖는 사회적/예술적 기능에 관심을 둔 작품들이다.
유튜버들의 게임 리뷰, 스트리머의 게임플레이 영상, 게임에 관한 비평적 비디오 에세이, 게임 내에서 촬영된 다큐멘터리 등의 경계가 흐려지고, 게임에서 촬영한 무수한 콘텐츠가 오르내리는 지금, 머시니마의 방향은 영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직면하는 것을 향한다. 게임은 영화의 재료이자 도구라기보단 영화의 대상이 되었고, 그 안에서 머시니마라는 장르는 비디오 에세이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자연스레 이행한다. 일종의 메타비평으로서의 머시니마가 현재의 모습이라면, 미래의 머시니마는 어떤 모습일까? 혹은, 새로운 머시니마 극영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무수한 머시니마 속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머시니마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언급된 머시니마 리스트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 1996
<기적 Miracle> 1996
<Eschaton - Darkening Twilight> 1997
<오지만디아스 Ozymandias> 1999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 Super Mario Cloud> 2002
<Red vs. Blue> 2003
<슈퍼 마리오 무비 Super Mario Movie> 2005
<블러드스펠 Bloodspell> 2006
<이라크에서의 죽음 dead-in-Iraq> 2007
<엠파이어 Empire> 2008
<시리어스 게임 Serious Game> 2009~2010
<평행 I-IV Parallel I-IV> 2012~2014
<파농을 찾아서 Finding Fanon> 2015~2016
<FF 외전 FF Gaiden> 2016
<구성된 순간 The Constructed Moment> 2017
<말로우 드라이브 Marlowe Drive> 2017
<쏘텔 재팬 타운의 기억 Redefining Community:
The Evolution of Sawtelle Japantown> 2018
<몬도 카네 Mondo Cane> 2018
<4-2: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가장 악명 높은 레벨의 역사 4-2: The History of Super Mario Bros.' Most Infamous Level> 2018
<페더폴 Featherfall> 2019
<이것이 '2인칭' 게임의 모습이다 This Is What a 'Second Person' Video Game Looks Like> 2019
<나만의 풍경: 미군이 되는 법 My Own Landscapes> 2020
<더 그래니즈 The Grannies> 2021
<유토피아를 찾아서 Tracing Utopia> 2021
<지옥으로의 하강 Descent into Hell> 2021
<우리는 가상현실에서 만났다 We Met in Virtual Reality> 2022
<근무 중 이상무 Hardly Working> 2022
<니트 아일랜드 Knit’s Island> 2023
<메이드 인 세컨드 라이프 Made in Second Life: The Movie> 2023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햄릿 Grand Theft Hamlet> 2024
[1] 김철현, 「게임 엔진과 영화 제작 현황」, 『방송과 미디어』, 30(1), 2025. 35-43쪽.
[2] http://machinima.com/. 머시니마 닷컴은 워너에 인수된 이후 2019년 1월 폐쇄된다.
[3] 퍼시 비시 셀리의 동명 시를 원작 삼는 작품으로, “게임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이 작품을 호평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4] 링크의 영상은 2015년 ‘리마스터’된 영상으로, 2014년 [헤일로]의 리마스터 게임이 출시됨에 따라 머시니마 또한 리마스터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리마스터’의 가능성은 머시니마가 갖는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5] 프로그램 상영작과 소개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337
[6] 강진석, 「다큐멘터리로서의 머시니마」, 『다큐멘터리 매거진 DOCKING』, 2025, http://www.dockingmagazine.com/contents/40/340/
[7]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은 영상을 글로 비평하는 것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로, 영화에 대한 비평을 영화로서 시도하는 하나의 장르다. 비디오를 통해 영화의 수집과 편집이 용이해진 1980년대 출발하였으나, 디지털 영화로의 전환과 유튜브/비메오 등의 플랫폼 이후 더욱 활발해졌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논문을 참조할 수 있다. 이선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형식’과 ‘활동’으로서 영화비평: 시네 토크, 팟캐스트, 비디오 비평을 중심으로」, 『프리뷰』, 20(2). 2023. 83-120쪽.
[8] 이를테면 [스타듀 밸리]나 [할로우 나이트 The Hollow Knight](2018), [발더스 게이트 3 Baldur’s Gate 3](2023) 등 인기 인디게임의 팬 무비들은 머시니마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