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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s View] 먹지 못하는 매체가 먹는다는 본능을 다루는 방식에 관하여
동물의 생존에는 먹는 행위가 필수적입니다. 인간도 동물이니 먹지 않으면 죽고,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먹는 일과 연관됩니다. 다만 인간의 먹거리를 먹이가 아니라 음식, 식량이라는 다름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는 인간의 먹는 행위가 단순한 생리적 욕구 해결과 생존본능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님을 드러냅니다. < Back [editor's View] 먹지 못하는 매체가 먹는다는 본능을 다루는 방식에 관하여 30 GG Vol. 26. 6. 10. 동물의 생존에는 먹는 행위가 필수적입니다. 인간도 동물이니 먹지 않으면 죽고,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먹는 일과 연관됩니다. 다만 인간의 먹거리를 먹이가 아니라 음식, 식량이라는 다름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는 인간의 먹는 행위가 단순한 생리적 욕구 해결과 생존본능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님을 드러냅니다. 재료를 구하고 요리해 음식을 만드는 행위, 혹은 이런 재료들을 축적해 식량이라는 자원으로 가공하는 행위는 때로는 사회적이고 때로는 정치적, 경제적이며, 많은 경우 문화적 맥락으로 다시 읽히는 과정입니다. GG가 디지털게임에 주목하는 이유는 게임이라는 매체가 원본으로 삼는 것이 인간과 그 인간이 이루는 사회 및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디지털게임이 다루는 음식과 요리는 인간이 오랜 역사 속에서 구축해 온 문화적 유산이 디지털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대상이고, 다른 매체와는 다른 게임만의 독특한 재현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에 녹아있는 음식과 요리를 새로운 관점에서 되새겨볼 수 있게 만드는 기제가 될 것입니다. 어느덧 30호에 이른 GG는 이러한 목적으로 게임 속에 재현된 음식과 요리라는 결과와 과정을 되짚어봅니다. 생물학적 욕구와 그 충족이라는 메커니즘부터 시작해 가공과 축적, 부패와 소진, 데코레이션과 영양공급 이상의 사회적 의미에 이르기까지 디지털게임은 음식과 요리의 많은 부분에서 과정으로서의 재현이 가질 수 있는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구현하고자 해 왔습니다. 각각의 맥락을 따라가는 여러 편의 글을 통해 우리는 이번 호가 인간의 먹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곱씹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30호 오픈과 함께 GG는 제 5회 게임비평공모전을 시작합니다. 여전히 디지털게임을 연구하거나 비평하는 사람의 수는 많지 않으며, 우리는 언제나 더 새롭고 더 많은 동료들이 함께 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련 공지사항에도 많은 관심 기울여주시고, 주변 분들에게도 공유해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공모전수상작] 게임으로부터의 선택, 선택으로부터의 풍경-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언더테일>의 제4의 벽 활용을 중심으로
퀀틱드림의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은 사람과 무척이나 유사한 안드로이드의 출현 이후, 그들이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고 자유의지를 갖고 행동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SF적 상상력 아래 제작된 게임이다. 스토리라인은 크게 수사 보조 안드로이드 코너, 가정용 안드로이드 카라, 그리고 칼이란 인물을 위해 특별제작된 안드로이드 마커스, 이 셋이 초점화자가 되어 진행된다.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 장르답게 플레이어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여러 다른 엔딩을 볼 수 있다.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eun Kim Loves all things that carry a story. Studied Korean literature; the game of a lifetime is Life is Strange. After glimpsing the moment when "life is a kaleidoscope" turned into "life is strange," has been falling deep into the world of games too.
- 숏폼 콘텐츠 유행이 우리에게 남긴 것
다만 이러한 현실 추수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BM을 긍정해 나가면서 한국 게임 시장은 더욱 노골적으로 메타버스, P2E, NFT 등 현행 법률로 합법화되기 어려운 영역까지 허용해 달라고 당국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최근의 게임 회사들은 플레이의 외부적 요소로 취급되던 현금과 결제, 캐릭터의 성장 요소를 더욱 외재화하여 환금성을 부추기게 된다면, 이는 한국 게임업계가 그동안 트라우마로 안고 있었던 “바다 이야기” 사태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 Back 숏폼 콘텐츠 유행이 우리에게 남긴 것 06 GG Vol. 22. 6. 10. 1. 숏폼 콘텐츠와 연쇄적 소비 바야흐로 짧은 콘텐츠가 유행하는 시대이다. 평균적으로 50분의 상영시간을 가진 TV 드라마는 15분 내외의 웹드라마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으며, 유튜브에는 ‘너덜트’나 ‘숏박스’ 같은 채널을 중심으로 3-4분 정도로 짧은 콩트들이 유행하고 있다. 게임 역시 짧게는 수십 시간, 길게는 몇 백 시간의 플레이 시간을 요하는 PC나 콘솔 게임보다는 1회 플레이 시간이 짧은 모바일 게임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최근에 벌어진 일은 아니며, 모빌리티를 무기로 하는 각종 플랫폼들이 기존의 하드웨어를 대체한 2000년대 후반 이후 지속화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72초TV’가 상영시간을 채널명으로 전면화 하여 인기를 끈 것은 숏폼 콘텐츠(Short form contents)의 승리를 상징하는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 모바일 시대 초압축 드라마의 표본을 제시한 ‘72초 TV’의 한 장면 이러한 숏폼 콘텐츠가 고전적인 다른 고전적인 콘텐츠보다 주목받는 것은 이의 주 소비층이 10대와 20대의 젊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유행에 민감하고 시간을 부족한 이들에게 짧은 콘텐츠는 부족한 여가시간의 틈을 메울 수 있는 스낵 컬쳐(snack culture)가 된다. 등하교길이나 화장실에 들르는 잠깐의 쉬는 시간에도 몇 분만 할애하면 게임 한 판과 동영상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숏폼 콘텐츠는 금세기의 여가 문화의 틈새를 파고 들었다. 이러한 숏폼 콘텐츠의 대부분이 SNS나 유튜브 등의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서비스 된다는 점에서 구매력이 부족한 젊은 세대들에게 잘 먹히는 콘텐츠가 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핵심적인 서사를 바로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숏폼 콘텐츠에는 전후 맥락이 생략되어도 상관없는 내용들이 주종을 이룬다. 짧은 콘텐츠 재생시간 속에서 완전하지 못한 서사를 갖춘 숏폼 콘텐츠들은 긴 설명이나 전후 관계에 대한 인과관계를 설명하기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형적인 소재를 본론부터 진행하는 방식을 취한다. 너덜트 채널의 첫 에피소드인 “당근마켓 남편들”은 거두절미하고 바로 중고거래 현장을 비춘다. 이 영상에서 공감대는 이미 해당 마켓들 통해 거래를 해본 기혼 남성들의 일상적 공감을 양분으로 삼아 전후의 맥락을 제거하고 거래 현장만 집중하여 짧은 상영 시간에 맞게 콘텐츠를 압축할 수 있게 해준다. * 너덜트의 〈당근마켓 남편들〉 일반적으로 숏폼 콘텐츠는 짧은 플레이 시간을 바탕으로 연쇄적인 콘텐츠 소비를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튜브나 페이스북의 숏폼 콘텐츠를 멍하게 반복적으로 여러 개 지켜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게임의 경우도 한 번 플레이하는 시간이 짧을 뿐이지 이를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면서 실제로 하드코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못지 않은 시간이 소모된다. 게임학자 예스퍼 율(Jesper Juul)은 〈캐주얼 레볼루션(Casual Revolution)〉에서 캐주얼 게이머들이 게임을 캐주얼하게 소비할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실제로는 상당한 시간을 소비하여 하드코어하게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사실을 실제 사용자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 바 있다. (예스퍼 율, 이정엽 역, 『캐주얼 게임: 비디오 게임과 플레이어의 재창조』,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콘텐츠의 연쇄적 소비가 트래픽을 불러일으켜 광고 수익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하 BM)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유저들이 사이트에 오래 머무를수록 수익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플랫폼은 어떤 특정한 콘텐츠를 소비하고 나서 고양된 감정으로 사이트를 떠나는 현상을 방지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하나의 콘텐츠 소비가 끝났을 때 다음 콘텐츠를 이어 보고 싶은 감정을 계속 유발해야 한다. 이는 게임으로 환원하면 짧은 플레이를 무수히 반복해서 쌓아나가는 방식에 해당될 것이다. 다만 비슷한 메커닉의 반복적인 플레이는 지루함을 유발하여 접속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여기에 캐릭터 성장 시스템과 BM을 연계시키는 방식이 사용되는 것이다. 2. 숏폼 게임의 메커닉 축소과정과 비즈니스 모델 물론 처음부터 숏폼 형태의 게임과 BM이 초창기부터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PC나 콘솔 게임이 스마트폰 플랫폼으로 처음으로 전환되던 시점에는 키보드나 컨트롤러를 이용한 복잡한 컨트롤을 손가락을 이용한 터치로 단순하게 바꾸는 UI 차원의 시도가 먼저 이루어졌다. 이 때 통상적인 게임 장르는 그대로 이식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의 환경에 따라 게임 메커닉을 약간씩 변형하면서 이식된다. 예를 들어 PC 게임 플랫폼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 중 하나인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가 모바일 플랫폼에서는 같은 AOS 장르로 이식되기보다는 약간의 변형을 거쳐 숏폼으로 변화하게 된다. 〈클래시 로얄(Clash Royale)〉은 통상적으로 CCG(Collectible Card Game)이나 RTS(Real-time Strategy ) 장르로 분류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의 메커닉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이를 숏폼으로 축소한 게임이라 볼 수 있다. * 〈리그 오브 레전드〉 소환사의 협곡 지도와 〈클래시 로얄〉의 지도 〈리그 오브 레전드〉의 가장 유명한 맵 “소환사의 협곡” 지도와 〈클래시 로얄〉의 지도를 비교하면 크게 3갈래로 갈려진 지도가 〈클래시 로얄〉에서는 2개의 다리를 중심으로 한 경로로 축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아군과 적군의 미니언들은 AI에 의해 자동으로 움직이고, 챔피언만 플레이어가 컨트롤 할 수 있지만, 〈클래시 로얄〉에서 플레이어는 각종 캐릭터의 처음 시작하는 위치만 지정할 수 있으며, 그 캐릭터의 개별 전투는 모두 AI에 의해 자동으로 진행된다. 또한 〈리그 오브 레전드〉는 특별히 정해진 플레이 타임이 존재하지 않지만 평균적으로 1회당 3-40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클래시 로얄〉은 처음 3분의 타임 어택과 추가 1분 30초의 타임 어택을 포함해 최대 1판이 4분 30초를 넘지 않게 디자인되어 있다. 다시 말해 〈클래시 로얄〉은 PC에서 사용되던 플레이어에 의한 복잡한 컨트롤을 최대한 줄이고, AI에 의한 자동전투를 극대화시키면서 플레이 타임을 거의 1/10로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클래시 로얄〉에서 더욱 강조된 부분은 각 캐릭터의 성장을 ‘카드 강화 시스템’을 통해 극대화 시켰다는 점이다. CCG 장르의 카드 강화 메커닉을 활용하여 자신의 카드가 성장하는 느낌을 부여하면, 그 카드의 효용을 실험해보고 싶어 다시 플레이를 시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의 덱이 8장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에 모든 성장을 진행하지 못하도록 강제할 수 있어 〈클래시 로얄〉의 BM은 그다지 노골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오히려 〈클래시 로얄〉은 현질을 통해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요소를 제한하여 게임의 밸런스를 훌륭하게 구현한 좋은 예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게임의 성공 이후 RTS의 AI 전투 시스템은 축소하고 카드 강화의 BM만 극대화 한 게임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긴다. 실제 이 때에도 RTS적인 요소들이 대폭 축소되었기 때문에 이들을 동일한 장르로 분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방치형 이나 CCG로 불리는 현질 유도 게임은 현재에도 무수히 양산되고 있지만, 문제는 앞선 사례들에서 적절히 제한되었던 현질의 밸런스 붕괴를 막기 위한 적절한 제한 요소들은 차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3. BM의 전면화와 미학의 소외 물론 콘텐츠의 길이가 짧다고 해서 미학적으로 열등하다고 간주하긴 어렵다. 소설과 영화에서도 장편과 단편의 미학이 다르며, 단편은 장편이 구현하기 어려운 단일 플롯의 직접성과 단도직입적인 풍자 등을 통해 독립적인 미학을 쌓아왔던 것이다. 장대한 서사시와 촌철살인의 미학은 애초부터 목표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필요가 없다. 게임에서도 짧은 플레이 시간 내에 추구할 수 있는 한 판의 쾌감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플레이 타임을 축소시키는 과정에서 잘려나간 풍성한 서사, 전후의 맥락, 컷신, 텍스트, 맵의 디테일, 전략적 요소 뒤에 더 강조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플레이 과정에서 앞서 말한 고전적인 재미요소를 제거하고 BM만 남겨놓아도 플레이어가 잔존한다는 사실이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확인된 이상 게임 회사들은 굳이 어렵게 게임을 풍성하게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모바일 게임의 소프트 런칭 시스템(특정 국가 하나 정도만을 대상으로 게임을 시범적으로 출시하는 방식으로, 게임 회사들은 이를 통해 특정 메커닉의 잔존율(retention)을 실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잔존율 낮은 메커닉이나 BM은 도태시키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은 특정 메커닉과 BM의 잔존율을 아주 쉽게 테스트 할 수 있게 해주어, 노골적인 BM의 확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게임 내 퀘스트를 클리어 하기 위해 설정만 해놓으면 해당 퀘스트가 다 클리어된다거나, 별다른 스토리에 대한 설명도 없이 바로 사냥과 전투가 시작되는 게임들을 더 이상 플레이어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방치형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형식적 요소와 몰입을 위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했던 것이 게임이라는 장르의 형식적 미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익성을 위해 깎여나간 게임의 숏폼화는 결국 BM와 노골적인 결제 모듈만 남기고 게임을 앙상하게 만들어버렸다. * 게임 플레이어 모두에게 1억이 지급되면 그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일까? 최근의 게임 광고들은 노골적으로 상당한 금액의 확률형 아이템을 지급한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지급되는 아이템이 상대적인 가치를 가질 리 만무하다. 물론 이러한 방치형 게임들을 유저의 차원에서 바라보면서, 시간이 부족한 학생이나 직장인이 성장의 재미만 누리게 하는 게임으로 일정 가치를 지닌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다만 이러한 현실 추수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BM을 긍정해 나가면서 한국 게임 시장은 더욱 노골적으로 메타버스, P2E, NFT 등 현행 법률로 합법화되기 어려운 영역까지 허용해 달라고 당국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최근의 게임 회사들은 플레이의 외부적 요소로 취급되던 현금과 결제, 캐릭터의 성장 요소를 더욱 외재화하여 환금성을 부추기게 된다면, 이는 한국 게임업계가 그동안 트라우마로 안고 있었던 “바다 이야기” 사태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 모험은 그곳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의 모험에 대하여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모험가가 된다. 평범한 일상을 벗어난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 나가며 때로는 자신 안의 영웅적 면모를 깨워 세상을 구하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 세계 곳곳에 산재된 난제를 해결하는 모든 여정에 기꺼이 뛰어들며 게임을, 모험을 이어왔다. 게임과 모험은 그 궤적을 함께하며 게임을 경험하는 친숙한 방법론을 구축해왔다. 게임의 역사 자체가 일종의 모험기처럼 계속해서 쓰여지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 글은 ‘게임’이라는 오래된 모험기를 다른 방향에서 펼쳐 본다. 거꾸로 펼친 모험기는 모험의 바깥에서 주인공의 모험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여인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 < Back 모험은 그곳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의 모험에 대하여 02 GG Vol. 21. 8. 10.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모험가가 된다. 평범한 일상을 벗어난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 나가며 때로는 자신 안의 영웅적 면모를 깨워 세상을 구하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 세계 곳곳에 산재된 난제를 해결하는 모든 여정에 기꺼이 뛰어들며 게임을, 모험을 이어왔다. 게임과 모험은 그 궤적을 함께하며 게임을 경험하는 친숙한 방법론을 구축해왔다. 게임의 역사 자체가 일종의 모험기처럼 계속해서 쓰여지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 글은 ‘게임’이라는 오래된 모험기를 다른 방향에서 펼쳐 본다. 거꾸로 펼친 모험기는 모험의 바깥에서 주인공의 모험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여인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모험 서사 속 여성의 위치를 묻는 질문에 여성은 본래부터 ‘그곳(there)’에 있으며 영웅이 도달하려는 곳 그 자체라고 대답했다. 그곳은 이를테면 영웅의 영광스러운 업적의 끝으로 모험의 종착지이자 그를 위한 보상이 기다리는 곳이다. 이 보상은 물질적인 부나 명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그에게 구출되길 간절히 기다리는 여인이 있다. 어떤 모험은 그곳에 붙잡혀 간 여인을 찾아 떠나면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는 영웅의 모험 동기이면서 동시에 승리를 거둔 이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되는 셈이다. 고전 게임 ‘동키콩’ 속 레이디가 그러하듯, 게임 속 수 많은 여인들이 게임의 목표이자 최종 보상이 되어 그곳을 지켰다. 그들은 모험의 시발점 혹은 목적지로 설정되지만 결코 이야기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게임의 서사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경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자 모험의 이정표가 될 뿐이다. 스스로는 모험을 떠날 수 없어 악당의 탑에 갇혀 구출되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 피치공주. 모험의 바깥에 자리한 여성 캐릭터로 ‘슈퍼 마리오 시리즈’의 피치공주를 빼놓을 수 없다. 1985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로 피치공주는 수많은 시리즈에서 납치를 당하고 마리오가 영웅으로 거듭나는 수 많은 여정 끝에서 구출되기만을 기다렸다. 시리즈가 이어지며 실질적인 지도자 역할을 수행한다거나 다양한 능력을 지녔다는 설정이 생겨났지만 스토리의 전개를 위해서는 아무 의심없이 납치 당하고 구해지고 있다. 그렇게 구해진 피치공주는 마리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마리오의 볼에 입을 맞춘다. 피치공주의 키스는 무사히 모험을 마치고 자신을 구해준 남성-주인공을 위한 보상으로서 여러 타이틀에서 반복되며, 남성-영웅과 납치된 여인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붙잡힌 여인’의 대표 명사인 피치 공주도 단독 주인공으로 모험을 떠난 적이 있다. ‘슈퍼 프린세스 피치’(2005)에서 피치공주는 납치된 마리오와 루이지를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 작품은 시리즈의 외전으로 제작되어 기존 시리즈와는 다른 점이 두드러지는데, 우선은 ‘여자아이들도 즐길 수 있도록’ 상당히 쉬운 난이도로 제작되었으며 ‘감정 액션’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감정 액션’은 희로애락이라는 4가지 감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술로, 극적이고 풍부한 감정 표현이 게임의 무기가 되었다. 피치공주는 상징과도 같은 풍성한 분홍 드레스를 입고 울고 웃고 화내며 맵을 활보했다. 닌텐도의 또 다른 공주,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젤다는 수동적인 ‘공주’ 캐릭터로 시작했지만 점차 새로운 캐릭터성을 보여주고 있다. 젤다는 세상을 구할 핵심적인 힘을 지닌 캐릭터지만 그 힘 때문에 적대 세력의 주요 타겟이 되는 일이 빈번했다. 시리즈가 전개되면서 ‘시간의 오카리나’(1998)나 ‘바람의 지휘봉’(2002)에서는 링크를 돕는 주요 조력자로도 등장했지만 ‘공주’로서 모험에 동참하지는 못했다. 두 작품에서 젤다는 남성으로 변장하거나 해적으로서 모험에 동참하여 활약하지만, 공주로서의 정체를 드러내자마자 납치당하거나 위험하다는 이유로 모험에서 배제된다. 또한 변장한 젤다는 짙은 피부와 활동적인 복장으로 자신을 감추다가 공주로서 정체를 드러내면 피부톤이 밝아지고 화려한 드레스로 환복한다. 마리오와 루이지를 구하고자 떠난 피치공주가 분홍 드레스를 벗어 던지지 못했 듯, 그들의 모험은 ‘공주다운’ 복장에 제한되었다. 시리즈의 주인공이 아니었던 이들은 시작부터 모험의 가장 바깥으로 떠밀려버리거나 주인공들의 영웅성을 돋보이게 할 역할로만 한정되어 ‘수동적 공주’라는 전형성 안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야 젤다는 세계를 구할 모험의 핵심적인 존재로서 설정이 확고해지고 있다. 가장 최근 소개된 후속작 트레일러에서는 긴 금발 머리와 드레스를 입은 익숙한 공주의 모습이 아닌 짧아진 머리에 모험가 복장을 한 젤다를 확인할 수 있다. 비로소 오랜 시간 링크의 모험을 지켜보던 젤다도 새로운 모험에 돌입하고 있다. * 사무스 아란. 한편 일찍이 모험을 나선 여성 캐릭터도 있다. 1986년 닌텐도에서 출시한 ‘메트로이드’ 시리즈의 주인공 사무스 아란은 강화 슈트를 입고 우주를 종횡하는 현상금 사냥꾼이다. 개발진들은 강화 슈트 속의 전사가 여성이라면 더 멋지지 않겠냐는 아이디어에서 ‘메트로이드’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처음 발매된 ‘메트로이드’에서 사무스 아란의 외모는 강화 슈트로 인해 드러나지 않으며 게임에서도 그의 성별을 추측할 단서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게임을 좋은 성적으로 클리어하면 엔딩에서 사무스 아란은 헬멧을 벗어 강화 슈트 속 전사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플레이어에게 ‘파격적인’ 반전을 선사했다. 더 좋은 성적으로 클리어하게 되면 레오타드나 비키니와 같이 노출이 심한 복장까지 볼 수 있었다. 복과묵하고 강인한 우주 전사도 게임이 끝난 뒤에는 ‘팬서비스’라는 명목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이러한 ‘팬서비스’는 시리즈에서 전통처럼 계속되었다. * 라라 크로프트. 사무스 아란이 마케팅의 일환으로 고의적으로 성별을 숨겨 화제성을 노렸다면, 여성으로서 강한 파급력을 보인 캐릭터로는 단연 라라 크로프트가 꼽힐 것이다. 라라 크로프트는 ‘툼 레이더’의 주인공으로 1996년 처음 등장하여 높은 인기를 얻으며 최근까지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변주되고 있다. 초기 라라 크로프트는 독립적이고 야망있는 캐릭터로 설정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90년대의 ‘걸 파워’ 유행도 맞물려 있다. 제작 초반에는 남성을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었지만, 설정을 여성으로 바꾸면서 수동적이지 않고 강하면서 동시에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로 수정되었다. 하지만 기획 의도에서 당당한 여성상을 추구한 것과는 별개로 실제로 라라 크로프트는 ‘섹스 심벌’로서의 이미지로 홍보되거나 소비되어 왔다. 여러 버전을 거치면서 많은 변화 있었지만 라라 크로프트를 떠올리는 상징적인 복장은 첫 작품에서의 쌍권총과, 민소매, 짧은 반바지를 입은 모습이다. 초반에는 기술의 한계로 인해 어색한 폴리곤 덩어리로 구현되었음에도 비현실적인 볼륨감이 두드러지며, 민소매와 반바지 차림은 자유로운 활동성보다도 몸매를 과하게 드러내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성적 대상화도 구체화되어 노출도가 높은 코스튬이 제공되거나 바스트 모핑이 도입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성적 대상화된 육체가 아닌 한 인물로서의 라라 크로프트에 주목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들이 게임 내에서 라라의 복장을 바꾸거나 누드로 만드는 모드를 제작하거나 모드로 새롭게 연출된 라라 크로프트의 모습을 공유하는 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사무스 아란과 라라 크로프트는 분명히 모험의 중심에 있지만 이들이 플레이되는 방식, 보여지고 소비되는 방식은 다른 ‘전통적인 영웅’들의 행보와는 크게 다르다. 남성 유저가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임 시장 특성상 여성 캐릭터들은 ‘캐릭터’가 아닌 ‘여성’에 방점이 찍힌 채로 탄생하고 소비되고 플레이되었다. 여성 캐릭터의 모험에는 게임 속 세계의 위험천만한 장애물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넘어서야 하는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역경이 더해져 왔다. 모험을 떠나는 여성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도 모험의 장벽이 되어왔다. 2014년 발매된 ‘어쌔신 크리드 : 유니티’에는 최대 4인까지 함께할 수 있는 협동 미션이 도입되었는데, 여성이나 유색 인종으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아 많은 비판이 있었다. 당시 디렉터 알렉스 아만시오는 초기에는 여성 암살자도 계획되었으나 “2배의 애니메이션, 목소리, 영상 소스”를 제작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컸기에 “여성 캐릭터를 삭제”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발은 #womenaretoohardtoanimate라는 해쉬태그를 통해 공유되었다. *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이 사건 이후로 ‘어쌔신 크리드’는 플레이가능한 몇 명의 여성 캐릭터를 선보였다. ‘어쌔신 크리드 : 신디케이트’(2015)의 이비는 쌍둥이 남매 제이콥과 함께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로 등장했고, ‘어쌔신 크리드 : 오리진’(2017)의 아야는 주인공 바예크의 아내이자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였다. 이비는 마스터 암살자가 될 만큼 유능하고 아야는 ‘어쌔신 크리드’ 세계관의 핵심 집단인 ‘형제단’을 창설했다는 설정이 있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이들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대폭 축소되고 홍보 아트에서도 이들의 존재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주인공의 성별을 선택할 수 있었던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2018)조차 홍보에서는 공식 캐논인 카산드라보다 알렉시오스가 주력으로 등장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 여성캐릭터가 단독 주인공으로 등장한 건 외전인 ‘어쌔신 크리드 3 : 리버레이션’(2012) 뿐이다. 그리고 2020년 블룸버그를 통해서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이러한 행보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이슈는 ‘어쌔신 크리드’의 제작사 유비소프트 내의 성추행, 성차별적 구조와 권력 남용에 대한 집단 소송 건이었다. 그리고 이 고발에는 2018년에 ‘어쌔신 크리드 : 오디세이’가 단독 여성 주인공으로 개발될 예정이었으나, ‘여성 주연 게임은 팔리지 않는다’라는 고위층의 주장에 의해 주인공의 성별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출시되었다는 폭로도 함께 실려 있었다. ‘어쌔신 크리드’를 해 본 유저라면 다음의 문장이 익숙할 것이다. “이 가상 시나리오는 다양한 종교, 성적 성향 및 성 정체성을 가진 다문화 팀에서 기획, 개발, 제작하였습니다.” 다양성을 명시한 문장 너머에는 넘을 수 없던 현실이 가로막고 있었다. 게임을 만들어내는 게임 바깥의 차별적인 문화가 실제 게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갖은 고난과 난제에 부딪히면서도 여성 캐릭터들의 모험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비욘드 굿 & 이블’의 제이드 (2003),’ ‘미러스 앳지’의 페이스 (2008),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의 맥스 (2016), ‘호라이즈 제로 던’ 의 에일로이 (2017), ‘하프-라이프 : 알릭스’의 알릭스(2020)까지, 이들은 더 이상 탑에 갇힌 공주가 아니라 스스로 뛰쳐나와 자신만의 모험을 이끄는 모험가다. 여성 캐릭터들의 모험의 양상이 다양해지면서 동시에 주변의 이야기도 더욱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때때로 유의미한 시도와 전진하지 못하는 입장이 반복되기도 하며, 어떤 성취는 또 다른 도전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모험가는 난제를 해결할 또 다른 가능성을 품고 다시 여정에 오른다. 모험의 본질은 닥쳐오는 장애물을 피하지 않고 세계를 마주하는 것이다. 현실과 타협하느라 고정관념에 얽매인 사고를 뛰어넘어서 새로운 상상으로 돌입하는 일이다.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게임 속 세계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런 가능성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전시 기획자) 서다솜 큐레이터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종종 전시를 기획하거나 글을 쓰고 주로 게임을 한다. 큐레이터 게임 동호회 'Mods'의 멤버다.
- Pings, Parley, and Pictures - How Players Communicate
Games are inherently social. In the wake of MUDs (Multi-User Dungeons) in the late 1970s to MMORPGs in the early 90s, playing games has been heralded as an opportunity to socialise and be social - antithetical to the usual “loner” gamer stereotype that is so pervasive in popular media. More recently, during the COVID-19 pandemic, games offered a pre-existing framework for keeping in touch and hanging out with friends when regions in Canada and the U.S. were facing mandatory lockdowns and curfews to stem the infection rates. Many turned to their headsets and keyboards to play games and catch up with friends when they could not see them face-to-face. However, a caveat to being a social space, is the potential for anti-social behaviours. This is not formed in the lack of socialising, a typical tenant of being anti-social, but rather in the deploying of modes of communication to have a different kind of social “fun”. < Back Pings, Parley, and Pictures - How Players Communicate 14 GG Vol. 23. 10. 10. Games are inherently social. In the wake of MUDs (Multi-User Dungeons) in the late 1970s to MMORPGs in the early 90s, playing games has been heralded as an opportunity to socialise and be social - antithetical to the usual “loner” gamer stereotype that is so pervasive in popular media. More recently, during the COVID-19 pandemic, games offered a pre-existing framework for keeping in touch and hanging out with friends when regions in Canada and the U.S. were facing mandatory lockdowns and curfews to stem the infection rates. Many turned to their headsets and keyboards to play games and catch up with friends when they could not see them face-to-face. However, a caveat to being a social space, is the potential for anti-social behaviours. This is not formed in the lack of socialising, a typical tenant of being anti-social, but rather in the deploying of modes of communication to have a different kind of social “fun”. So, how do players communicate in games? Not only how, but what do players communicate while playing? Games have encouraged socialisation through various communication channels, both inside and outside of the game world, as a way to organise, chat and, more often than not - to troll. The breadth of research into communicating in games parallels understanding and unpacking the age-old phrase of “toxicity”. Both authors of this article have studied different gaming communities ( Overwatch, DOTA2, World of Warcraft, Lost Ark, and MtG Arena ), to look at how and what they communicate. Text Chat and Talking Back The best place to start is text chat, the longest-standing way to communicate in games. A channel for conversation and information in MMORPGs like World of Warcraft , where players can recruit, sell, chat, and more. Historically, it was the only way to communicate in games, until the introduction of voice chat, and since that point, it is regarded as a more restrictive way to chat in games. 1) Text chat evolved in response to this. Players generated and built their own game-specific lexicon and abbreviations to make using text chat efficient once more for instantaneous conversations. A simple example of this can be found in League of Legends (Riot Games, 2009). When players load into their team screens, they typically head to the text chat to claim a “lane”, typing “mid”, “bot”, or “top” for top, middle, and bottom lane. A quick way to allocate yourself to a particular lane. A similar example of text chat being used to convey a message efficiently is in MMORPGs like Lost Ark when a world boss appears (a large enemy that appears on a particular schedule and needs multiple players to take down). In this case, a player might type that the world boss is “up” and what channel to join to fight it. Text chat can scale, from the micro to the macro, from one-to-one up to the entire server’s worth of players. This reach comes with consequences. Hate speech can be easily spread via text chat. Whether it is racist, sexist, or homophobic slurs, aimed at no one or everyone, they are regularly spotted in text chat. This problem has become so pervasive that many game companies have automated filters to block out hateful terms. The issue arises further when players get creative in how they write these words. Devin Connors, a community manager at Psyonix, discussed Rocket League’s language ban and chat filter system at GDC 2018 (Image 1). 2) The team initially had a list of 20 bannable words, which has since grown exponentially to include misspelling variants and swears or slurs found in other languages. * Image 1 - Devin Connors presenting the Rocket League Language Ban system at GDC 2018 (author screenshot) Blizzard manages poor sportsmanship displayed in text chat in a more tongue-in-cheek approach. When players type “GG EZ” at the end of a match in Overwatch , insinuating that the game was no challenge to beat the oppositional team, the acronym is swiftly corrected into one of many silly phrases (e.g. “ It's past my bedtime. Please don't tell my mommy.” Or “Gee whiz! That was fun. Good playing!”) . This is done as a way to de-escalate a micro-moment of toxicity without having to bring in the threat of a ban for behaving in poor taste. However, even seeing GG EZ replaced with messages like these, players will be aware of what was initially written, regardless of the appropriate veneer that was placed over it. Obviously, this type of behaviour is low on the threshold of toxicity compared to what the Rocket League team has to filter out, but is equally present in Overwatch matches. This all solely focuses on the use of just text in text chat, ignoring the considerable use of emoticons, emojis, and stickers that we use to communicate in our day-to-day texting, let alone during gameplay. Emotes and emoticons have been a staple of more complex communication systems in games, but they have become common as the sole method of inter-player communication in popular online card games like Legends of Runeterra (Riot Games, 2020), Magic: The Gathering Arena (Wizards of the Coast, 2018), and Marvel Snap (Nuverse, 2022). While Magic has text-based emotes, players are more likely to use any of the numerous animated stickers available in each of these games (Image 2). * Image 2 - A Collection of Emotes from Magic: The Gathering Arena - Authors’ Screenshot While it might first appear that limiting communication to a reasonably small set of phrases and animated images would limit player toxicity, this is not the case. Players are actually able to do quite a lot with very little - often going beyond what the intended function of these emotes might be. In Magic for example, one way to greet an opposing player at the start of a match is with an emote that depicts one of the game’s characters, Gisa, waving at you using the hand of a zombie (Image 3). While this purpose is a quirkier, possibly more fun alternative to the standard ‘hello’ emote, this emote can have other, more sinister uses. * Image 3 - Gisa Waves in Magic: The Gathering Arena - Author’s Screenshot Imagine a common scenario in a game of Magic : two players have been filling the board with creatures over several minutes, incrementally trying to beat the other. The game is a close one, with each player seeking to get just enough of an advantage with each new card played on the field. But then one of the players drops what is known as a ‘board wipe’ - a card that removes a massive number of cards from the battlefield that a player has spent an entire game establishing. And then the player who destroyed the board uses the Gisa emote, not to say hello, but to say “Goodbye to all your cards, and goodbye to all your fun.” This is but one way that players use these emotes. The important thing to take away from this example is that players develop their own use cases and interpretations of these emotes over time, and not all of them are positive and friendly, even if designers intend them to be. Some players will find a way to use them to troll players and these uses can pick up steam throughout a game community. It isn’t just the players acting alone here, however. One final point on these emotes is that they are often riffs on popular memes. For example, one Magic emote depicts the character Saheeli eating from a bowl of popcorn, inspired by the gif of Michael Jackson eating popcorn in a movie theater and other related images of popcorn ingestion (Image 4). * Image 4 - Saheeli the Emote and Michael Jackson Enjoying Popcorn. 3) The memes these emotes are inspired from often have the purpose of poking fun at something - particular rules and use cases that are often meant to turn a situation into a joke. The popcorn-eating Michael Jackson is often used when reading a lot of gossip in a forum thread, or when observing a social disaster or drama, for example. Emotes based on these meme formats come preloaded with meaning, not often positive, with only a player’s opponent as the possible audience for the message that the emote sends when it is used. While basing emotes off of memes creates a shared language between players that makes them more easily readable as artifacts of in-game communication, they also skew towards antagonism because of the way memes make a joke out of most situations. As often as the silliness of these emotes might defuse hostile or negative feelings during play, they are just as likely to produce them because of how they are used and their established associations. This is not an argument for or against emotes one way or another, but is instead meant to highlight that the culture of communication that games are nested within affects even the most limited forms of interplayer communication used in online games. Pinging to Point and Pout Sometimes, words and images just don’t cut it for conveying messages quickly during gameplay. Typically found in MOBAs like League of Legends or DOTA 2, “pinging” is where a player clicks on a map area, item, or character, and it lights up to notify other players. These pings can be signified with an exclamation point or question mark to draw the eye to the area. 4) These quick signifiers can be used for strategising, planning a route as a team, pointing out important items for teammates to collect, or as a warning system to avoid certain areas. 5) . An anecdotal example of the layers involved in pinging comes from one author’s experience playing DOTA 2 for the first time not with the AI but real fellow players. While playing one of their first matches, they noticed that another player was pinging the area around them. Only because someone familiar with the game was supervising was it made evident that this other player was trying to get their attention, flagging that they were making an incorrect choice, or they were in the wrong spot for that moment in play. More can be said about the lack of a tutorial preparing a new player for all the nuanced ways that players might communicate with you during a match, but that is down to community-constructed modes of communication, which is hard to cover within a game’s onboarding tutorial. Aggressive pinging, where a player will spam click the ping button, is often a signifier of frustration 6) for whatever another player is doing. It can also be a way to distract a player if a fellow teammate has opted to throw away the game and bother their teammates instead. A New Player in Voice Chat Moderation Voice chat is still a staple feature in many online games from first-person shooters, to multiplayer survival games, to large-scale group play in numerous MMORPGs. Voice communication affords players more opportunities for complex sequences of expression, which are often necessary for fast-paced online play. The catch is that the use of voice often produces in-game environments where players are able to say whatever they want to teammates and random players, which includes a substantial amount of toxicity 7) . Voice chat brought a more real-time way to communicate in games; a technological revolution in how players could coordinate and socialise. However, in doing so, voice chat removed a level of anonymity to players, exposing their identity (race, gender, sexuality) through what Kishonna Gray calls “linguistic profiling” 8) . Players are very quickly reminded of these intersections of their identities through hateful terms and treatment from other players in response to using their voice in voice chat. Compared to moderating text chat voice has been a difficult facet of online play to manage 9) , no doubt due to the amount of voice chat happening in games and the speed at which it occurs. It is no secret that players have requested some kind of integrated voice chat moderation, with some doing so since 2017 10) . Even though the moderating voice is a lofty task, one company, Modulate, is at the forefront of this endeavor. Modulate are the creators of ToxMod, a voice moderation technology designed to help game companies identify, triage, and proactively manage instances of toxicity that happen in the voice communications of their games. This past August, Modulate partnered with Activision to implement ToxMod in the upcoming Call of Duty: Modern Warfare III (Activision, 2023). In a conversation with Modulate COO Terry Chen, he expressed the importance of keeping in-game communication healthy: “Our overall intent is not only to protect people that are suffering from this marginalization, but also to make gaming and its spaces more fun. I think fun is at the forefront of what we do. [...] Voice chat, which has become more critically important in esports, especially for games like Valorant, where you need [voice chat] for a tactical advantage against the enemy opponents, there’s just this level of toxicity that makes it impossible to enjoy the game that you’re trying to love, and also improve.” To accomplish these goals, ToxMod uses machine learning technology to detect and rate toxicity, but ToxMod does not ban and punish users on its own. Instead, Terry views ToxMod as “a collaborator, kind of an additional player in the game that can listen and help out if necessary.” This is because the toxicity that ToxMod detects is flagged for moderators who have the job of making the final decision on what actions need to be taken against players, so ToxMod operates in partnership with developers and moderators to address the issue of toxic communication. To close this article, I asked Terry, as someone who is on the front lines of addressing toxicity, what more could be done by companies and players alike to work towards a solution? We’ve seen how toxicity is common across each of the in-game communication mechanisms we’ve explored, so what are we to do that isn’t being done? Terry offered two important solutions: 1) Listening to players from across a game’s player base rather than focusing on the needs of the most skilled or highest profile players as there is valuable feedback from more than the pros. In fact, most players are not playing at the highest skill levels and can provide a lot of valuable information about what is happening throughout the most densely populated segment or rank of a game. 2) To think about detecting and rewarding positivity. According to Terry, “The truest action would be implementing tools, whether it’s Modulate ToxMod, whether it’s something developed internally to detect bad behavior, but also reward positive behavior.” As players, developers, and researchers we find ourselves so confronted with the negative aspects of in-game communication that we take our eyes off the players who are setting good examples - and more work should go into refining and implementing systems that encourage more positive interaction - not just mechanically, but in the ways we communicate with one another in-game. On the other side of the avatar, we are real people after all. As we can see, there are two important facets to consider when discussing communication and social systems in games. The first is how to moderate them. It is a trepidatious task that requires people power, tech power, and clear guidelines to enact any form of governance in a social space. When introducing a competitive angle to gameplay (whether as an aspiring pro player or as a player who simply enjoys competing in the game space) - the stakes go up, and so there is more on the line for players to care about. In the same space, we have players who are just there for the vibes. To play with their friends, regardless of the outcome (though they would like to win). The second facet is “trolling” and toxicity via all these different modes of communication. Players will find ways to get creative with any system, to subvert it to their own wishes and enact toxicity however they see fit. Ultimately though, it goes back to the very start of this article; that games are inherently social. It is not the sole aim of most players to go online and be toxic, but rather to join into the collective and have a good time with others who enjoy the same play space. Turning to the future of communication in games, voice chat has more recently become somewhat fragmented with the success of Discord. Many players have shifted their voice communication from the dedicated game servers to their own personal, curated community Discord servers, where they hang out as a collective with friends instead of strangers in a game lobby. Though some game-specific Discord servers exist, they are less for communicating during play and more for marketing and building a community around the game. Virtual reality could yet revolutionise how players embody communication during play, though right now they are awkward half-bodied avatars with nausea-inducing equipment for some. There is potential on the horizon, and yet one thing is for certain -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to subvert social spaces. *For more on modulate you can visit their website, https://www.modulate.ai/ . 1) 2) Wadley, G., Carter, M., & Gibbs, M. (2015). Voice in Virtual Worlds: The Design, Use, and Influence of Voice Chat in Online Play. Human–Computer Interaction, 30(3–4), 336–365. https://doi.org/10.1080/07370024.2014.987346 3) Saheeli image from draftsim.com. https://draftsim.com/mtg-arena-emotes/ (accessed September 24th, 2023). Michael Jackson image from knowyourmeme.com. https://knowyourmeme.com/memes/popcorn-gifs . 4) Leavitt, Alex, Brian C. Keegan, and Joshua Clark. ‘Ping to Win? Non-Verbal Communication and Team Performance in Competitive Online Multiplayer Games’. In Proceedings of the 2016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4337–50. CHI ’16. New York, NY, USA: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2016. https://doi.org/10.1145/2858036.2858132 5) Wuertz, Jason, Scott Bateman, and Anthony Tang. ‘Why Players Use Pings and Annotations in Dota 2’. In Proceedings of the 2017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1978–2018. CHI ’17. New York, NY, USA: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2017. https://doi.org/10.1145/3025453.3025967 . 6) ibid. 7) Reid, Elizabeth, Regan L. Mandryk, Nicole A. Beres, Madison Klarkowski, and Julian Frommel. “‘Bad Vibrations’: Sensing Toxicity From In-Game Audio Features.” IEEE Transactions on Games 14, no 4 (2022): 558-568. 8) Gray, K. L. (2014). Chapter 3 - Deviant Acts: Racism and Sexism in Virtual Gaming Communities. In K. L. Gray (Ed.), Race, Gender, and Deviance in Xbox Live (pp. 35–46). Anderson Publishing, Ltd. https://doi.org/10.1016/B978-0-323-29649-6.00003-0 9) Märtens, Marcus, Siqi Shen, Alexandru Iosup and Fernando Kuipers. “Toxicity Detection in Multiplayer Online Games.” Proceedings of the 2015 International Workshop on Network and System Support for Games (NetGames). 03-04 December, 2015, Zagreb, Croatia, 1-6. 10) Blamey, Courtney. ‘One Tricks, Hero Picks, and Player Politics: Highlighting the Casual-Competitive Divide in the Overwatch Forums’. In Modes of Esports Engagement in Overwatch, edited by Maria Ruotsalainen, Maria Törhönen, and Veli-Matti Karhulahti, 31–47. Cham: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22. https://doi.org/10.1007/978-3-030-82767-0_3 . Tags: ping, voicechat, MTG, emote, toxicity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Cortney Blamey Courtney is a Communication PhD student and game designer at Concordia University, Montreal, Canada. Her doctoral research concentrates on the process of meaning-making in games tackling serious themes and exploring this relationship between player and designer in her own critical game design process. Her previous research unpacked Blizzard’s approach to community moderation in Overwatch by investigating both developer and community inputs on forums. She is a member of the mLab, a space dedicated to developing innovative methods for studying games and game players and TAG (Technoculture Arts and Games).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 <용과 같이>, 관광게임 속의 정치적 맥락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도 용과 같이 시리즈의 주인공 처럼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휴가를 내서 관광지로 여행을 떠난 경우가 그렇다. 일상으로 돌아가 해결해야 할 여러 복잡한 난제를 머리 속에 넣고 있는 상태에서도 우리는 도쿄 신주쿠, 오사카 도톤보리, 오키나와, 후쿠오카, 삿포로, 나고야, 요코하마 등의 거리를 거닐고 지역 음식 등 문화를 경험하면서 하루종일 즐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용과 같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우리는 코로나19 시대에 일본 관광을 즐기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게 이 시리즈가 본질적으로 관광 게임인 이유이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Kim is known for his activities as a critical expert on current affairs in various press media. But he is also an active gamer who never let go of games. Some of his publications includes 『a cynical society』, 『Otaku Loved Lenin』, as well as a co-author of 『Now, Here, Far-Rightism』, 『right-wing discontent』, 『Twitter, that 140-character egalitarianism』. His latest publication is 『Democracy where you vote because you don't like that side』.
- 어려움에 직면한 유럽의 게임 구독 서비스
스태디아는 실패했고, 엑스박스 게임패스는 성공했음에도 여전히 많은 게임팬들로부터 어느 정도 회의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가운데, 유럽에서 이와 같은 유형의 서비스가 미래 시장성을 가지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단 오늘날 게임 시장에서 하드코어 게이머는 소수다. 유럽에서 게임은 나이를 뛰어넘어 매우 광범위하게 확산 되어있는 활동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6~60세 연령대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많은 수가 아마도 휴대폰으로 무료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그친다 할지라도, 따라서 현 시점에 클라우드 게임이 그리 매력적인 상황은 아니라 할지라도, 구독 기반 게임의 부상은 그리 먼 시점의 일이 아닐 수 있다. < Back 어려움에 직면한 유럽의 게임 구독 서비스 09 GG Vol. 22. 12. 10. **You can see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at this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69 지난 15년 동안 게임을 만들고 소비하는 방식은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이는 보다 향상된 인터넷 연결 그리고 새로운 (모바일)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촉발된 변화였다. 한 때 컴퓨터 게임은 상점에서 물리적으로 판매되었고, 그렇게 해서 구매한 게임을 플레이하려면 거실에 위치한 가족용 컴퓨터나 게임용 콘솔 앞에서 여러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게임을 언제 어디서나 플레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우리가 게임을 소비하는 방식뿐 아니라 게임이 디자인되고 시장에 출시되는 방식까지 바꾸어 놓고 있다. 서비스로서의 게임, 소액 결제, 클라우드 게이밍, 인-게임 광고부터 해서 NFT와 콜렉터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결제 형식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플레이어들도 이와 같은 거대한 변화상을 느끼고 있지만, 그 변화가 플레이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게임 플레이를 둘러싼 보다 넓은 문화적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게임은 현재 글로벌한 현상이기 때문에 세계의 각 권역별로 그 맥락들은 상이하게 나타날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유럽인의 관점에서 게임 문화를 논하려고 한다. 유럽의 게임 문화와 게이머 정체성 역사적으로 유럽 게임 시장은 대중화 된 개인용 컴퓨터 및 아마추어 게임 개발 활동과 해적판의 번성이라는 특성을 보여왔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 지금도 여전히 – 단순한 여가용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진지한 문화이자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었다. 고가의 게임 하드웨어를 구매하거나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그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의 전형으로 여겨져 왔다. 이와 더불어 게임이 일부 헌신적인 매니아들을 위한 하위문화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형성되어왔으며, 이 하위 문화의 “구성원”들은 본인이 달성한 성취(achievement)와 더불어 소유하고 있는 게임 장비의 테크니컬 스펙을 통해 그 정체성을 드러내곤 했다. 실력중심주의(meritocracy)적인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게임 하위문화 내) 지위는 게임플레이 실력에 달려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플레이를 잘한다는 것은,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이와 같은 실력중심성이 게임의 가상적 환경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 게임 생태계로 스며들어 확장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이 게이머로서 지닌 정체성의 가치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그 성취 - 후에 자아의 확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 에 의해 규정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닌텐도 wii나 모바일 게임 등의 캐주얼 게임의 확산으로 어느 정도 바뀌긴 했다. 캐주얼게임이 보다 넓은 범주의 사람들에게 게임의 접근성을 높여주면서 게이머들의 하드코어한 “서브컬처”라는 규범이 변화해왔음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진정한” 하드코어 게이머들과 짧은 시간동안 간간이 플레이하는 캐주얼 플레이어들 간의 구분은 여전히 존재한다. 여기서 핵심은, 캐주얼 플레이는 하나의 활동인데 반해 하드코어 게이밍은 하나의 정체성이 된다는 점이다. 게이머 정체성에 도전하는 클라우드 게이밍 최근 비즈니스 모델이 게임을 망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한 가지 가능한 답변은 비즈니스 모델이 앞서 언급한 게이머 정체성의 구축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가장 중요한 발전 중 하나는 클라우드 게이밍과 리모트 플레이 서비스다. 구글 스태디아의 실패는 클라우드 게이밍이 기존의 게임 플레이 실천과 가치에 어떻게 도전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구글 스태디아는 런칭하기 전부터 “게임용 넷플릭스”라 불렸다. 스태디아는 플레이어들과 개발자들에게 각각 약속을 내걸었는데, 개발자들에게는 향후 출시될 타이틀 개발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엄청난 규모의 수용자들에 대한 즉각적인 접근을 약속했고, 플레이어들에게는 어떤 디바이스를 통해서든 언제나 옛 게임들을 비롯해서 새로 출시되는 메이저 작품까지 포함하는 게임의 다양성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월정액으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스태디아는 이 야심찬 약속들을 수행하지 못했으며, 그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독점적인 블록버스터가 부재하다는 것, 일단 스태디아에 게임을 올려놓으려면 개발자들이 게임 이식 작업을 해야 했다는 것, 플레이어들이 스태디아에서 게임을 하려면 이미 소유한 게임일지라도 또 사야 했다는 것. 그리고 구글이 플레이어들이나 게임 업계로부터의 신망을 얻지 못한 채 외부자로서 게임 산업에 진입했다는 것도 한 몫했다. 하지만 그 근간에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점이 존재한다: 스태디아가 게이머 정체성의 구축 그 자체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플랫폼상에서 언제나 게임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스태디아의 약속이 고가의 게임 하드웨어에 대한 수요를 한물 간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언데 어디서나 게임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은 언뜻 좋게 들리지만, 고가의 게임 하드웨어 소유 여부가 하드코어 게이머를 규정짓는 속성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국 스태디아가 한 일은 다양한 게임에 대한 풍족한 접근뿐 아니라 덜 헌신적인 플레이어 집단으로의 접근 또한 제공한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게임 문화 내 구축 되어있던 위계질서를 흐트러뜨린 셈이다. 앞서 게이머 정체성의 확장을 이야기하면서 언급했던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성취 또한 이와 연관되는데, 이러한 점과 관련해서도 스태디아는 문제가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 소프트웨어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서비스를 구독하고 그에 대한 접속권을 얻는 방식이,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게임에 쏟았던 자신들의 노력 및 그에 따른 성공과 성취가 자신의 것이라는 느낌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하게 만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외부자인 구글이 시장을 파괴하고 정복하러 왔다는 사실 또한 플레이어들의 의심을 샀다. 아마추어 게임 제작이 초창기 시절부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왔던 유럽의 게이머들은 당연히 더욱 그러했다. 업계 내 여타의 개발사들이 대개 게임 문화 내에서 “내부자 출신”으로 여겨졌던 것과 달리, 구글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소중한 문화를 정복하려 드는 거대 기업으로 보였던 것이다. 고결한 플레이어가 느끼는 위협감 물론 스태디아는 엑스박스의 게임패스처럼 새롭게 등장한 구독 서비스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유럽을 포함해서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편인 게임패스에 대해서도 여전히 비판적인 게이머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이러한 경향을 소유권의 부재 및 하드코어 게이밍 중심의 “하위문화”의 낮아진 문턱과의 연관 속에서 생각해볼 만하다. 또한 바람직한 게임 문화를 망친다고 여겨지는 새로운 유형의 게임 및 결제 방식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분노도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캐주얼 게임의 도래, 특히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 상에서 플레이하는 게임의 등장은 잘해봐야 수준 이하, 최악의 경우 게임도 아닌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불이 없는 무료 게임의 결제 방식(freemium games) 또한 게임 전체를 오염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한 방식의 게임들은, 좋은 게임의 제작이 아닌,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더 많은 돈을 쓰도록 만드는데 디자인의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한편 게임 내 리소스는 스킬과 노력을 통해서 얻어야 정직한 것이라 여겨지는 경향 속에서, 소액 결제는 – 지금도 어느 정도는 여전히 – 약한 수준의 속임수(cheating)이라 여겨져 왔으며, 따라서 이는 열등한 플레이어나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요약하자면 클라우드 게이밍 및 최신 게임 결제 방식의 발전 방향이 고결한 플레이어에게 위협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클라우드 게이밍의 미래 스태디아는 실패했고, 엑스박스 게임패스는 성공했음에도 여전히 많은 게임팬들로부터 어느 정도 회의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가운데, 유럽에서 이와 같은 유형의 서비스가 미래 시장성을 가지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단 오늘날 게임 시장에서 하드코어 게이머는 소수다. 유럽에서 게임은 나이를 뛰어넘어 매우 광범위하게 확산 되어있는 활동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6~60세 연령대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많은 수가 아마도 휴대폰으로 무료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그친다 할지라도, 따라서 현 시점에 클라우드 게임이 그리 매력적인 상황은 아니라 할지라도, 구독 기반 게임의 부상은 그리 먼 시점의 일이 아닐 수 있다. 게임 개발의 측면에서 본다면 더욱 그러한 상황이다. 유럽 게임 산업은 Rockstar North 같은 몇몇 거대 회사나 CD Project Red나 IO Interactive등의 중간 규모 업체 몇 군데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인디 스튜디오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에게 있어 앞서 언급한 상황들에 따른 어려움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유럽 시장에 있어 진짜 어려움은 완전히 다른 전선에서 올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해볼 수 있다. 예컨대 기술 산업 분야의 규제, 특히 개인 정보 취급과 관련된 엄격한 규제 같은 문제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이다 요르겐센 이다 요르겐센은 덴마크의 코펜하겐 IT 대학(IT University of Copenhagen)에서 게임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주로 젠더 재현, 게임 문화, 매체로서의 게임 등과 관련된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서던 덴마크 대학(the University of Southern Denmark)에서 박사후 과정 중에 있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 ‘대항해시대 오리진’, 멀티플레이의 계층화와 사이버 농노들
비동기 멀티플레이는 모바일 게임의 시류에서 도드라진 방식이다. 모바일, 그리고 무선 네트워크라는 아직 태동기에 불안정성이 남아있던 플랫폼들은 참여자들이 동시에 접속하지 않으면서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체계를 필요로 했고, 이것은 비동기 멀티플레이라는 방안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현재 이 방식은 비단 모바일 플랫폼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특유의 선택적 연결성 덕분에 많은 게임에서 채용되곤 한다. < Back ‘대항해시대 오리진’, 멀티플레이의 계층화와 사이버 농노들 08 GG Vol. 22. 10. 10. 비동기 멀티플레이는 모바일 게임의 시류에서 도드라진 방식이다. 모바일, 그리고 무선 네트워크라는 아직 태동기에 불안정성이 남아있던 플랫폼들은 참여자들이 동시에 접속하지 않으면서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체계를 필요로 했고, 이것은 비동기 멀티플레이라는 방안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현재 이 방식은 비단 모바일 플랫폼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특유의 선택적 연결성 덕분에 많은 게임에서 채용되곤 한다. ‘대항해시대 오리진’ 은 분명 상시 온라인 접속을 요구하는 온라인 게임이지만,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와 직접 마주하거나 연결되는 순간이 매우 적다. 분명 마을에서 직접 캐릭터를 마주할 수 있는 게임임에도 할 수 있는 실시간 상호작용은 매우 적다. 플레이어 간의 전투는 서로가 서로의 전투력을 상정한 AI와 싸우는 비동기 전투로 이루어지며, 거래소의 경우에도 간접적으로 돈과 장비를 주고 받는다. 이 게임에서 가장 큰 온라인 활동 중 하나는 바로 ‘투자전’ 이다. 협동 콘텐츠는 전무하며, 정작 ‘대항해시대’ 하면 떠올릴만한 유저 해적질, 속칭 ‘유해’ 는 그 여파가 상당히 간접적이고 애초에 양쪽이 모두 비동기로 전투를 하기 때문에 서로의 전투력을 복사한 AI와 대결하는 식이다. 굉장히 상호작용성이 떨어지고, 실질적으로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가 직접적으로 맞붙는다는 느낌이 드는 콘텐츠는 투자전 하나 뿐이다. 이 투자전은 기본적으로 각 도시들에 두캇(인게임 머니)과 젬(유료 재화)을 소모하며 투자를 할 수 있고, 이 액수를 비교해 가장 높은 사람에게 시장 자리를 부여하고 해당 국가와 플레이어에게 소유권과 그 도시에서 발생하는 이득을 주는 시스템에 기반한다. 그래서 각자 중요한 항구를 두고 자본의 전쟁을 벌이고, 이 게임의 실질적인 PVP는 바로 이 투자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특이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온라인 플레이의 구조 때문에 ‘대항해시대 오리진’ 은 플레이어가 얼마나 온라인 플레이에 접근할 수 있는가, 온라인에 천착해있는가를 자본이라는 조건으로 구분짓기 때문이다. 현재의 구조를 따르면 실질적으로 투자전을 통해 거시적인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을만큼의 자본이 있는 경우에만 유의미한 게임 내 온라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자본은 물론 게임 내에서 벌어들이는 두캇을 포함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간당 수급량에 제한이 있는 두캇보다는 레드젬, 즉 현질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투자전 자체의 문제는 단순히 비동기 멀티플레이의 거시화라는 관점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지속적인 현금 투입을 유도해야 하는 한국형 F2P 게임 비즈니스 모델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이 투자전을 제외한 다른 온라인 플레이들이 전무하거나 또는 유의미할 만큼 게임 내 가치를 가지거나, 또는 플레이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겹치고, 때문에 이 ‘투자전’ 이 이 게임의 온라인 플레이 자체를 대표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문제가 도드라져 보인다. 여기서 마찬가지로 비동기 멀티플레이를 지원하고, 또 마찬가지로 운송이 핵심인 게임 ‘데스 스트랜딩’ 의 온라인 활동은 어떤가. 비록 두 게임은 플레이어의 시점, 플레이의 밀도, 스케일 등 많은 면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운송과 비동기 멀티플레이라는 테마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데스 스트랜딩’ 에서는 자신 이외의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는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온라인 동기화를 통해 다른 플레이어가 건설한 도로나 건물, 장비들이 무작위 선별을 통해 내 월드에 설치되어 있고, 이것을 내가 직접 사용하면서 플레이 자체에 변화가 생긴다. 도로 하나, 충전기 하나의 차이만 해도 굉장히 큰 게임이고, 설원에서 죽기 일보 직전까지 운송을 하다 누군지 모를 사람이 설치해둔 충전기 하나를 본다면 그야말로 구원이나 다름없다. 내가 온라인 플레이에 참여하고 싶다면, 자원을 모아 건물을 설치하면 된다. 만약 정말로 필요한 건물을 적절한 위치에 설치했다면,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이용하면서 무수하게 쌓인 좋아요, 일명 따봉을 보게 된다. 재미있게도, 이 따봉은 플레이어가 온라인 플레이에 참여하도록 하는 순수한 원동력이다. 직접적인 채팅조차 불가능한 게임임에도 오히려 타 플레이어의 흔적, 영향이 게임 내에서 깊고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오히려 상시 온라인 접속을 요구하는 명실공히 온라인 게임인 ‘대항해시대 오리진’ 이 싱글 플레이도 가능한, 프리페이드 게임인 ‘데스 스트랜딩’ 에 비해 유저 간의 연결성, 온라인 플레이의 가치가 더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핵심은 동기식이냐 비동기식이냐, 플레이어 아바타를 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등의 차이는 이 상황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흥미롭게도, 이런 상황 하에서 ‘대항해시대 오리진’ 온라인 플레이는 ‘계층화’ 된다. 앞서 말했듯 이 게임의 온라인 플레이는 투자전이 핵심이자,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투자전은 한편으로는 이 게임에서 현질을 유도하는 가장 큰 요소다. 한때, 필자가 플레이 중인 대서양1 서버에서 투자전이 한창 과열 양상에 들었을 때 한 플레이어가 도시 하나를 먹기 위해 들인 현금은 추정치 약 800만원이었다. 이 게임에는 수많은 도시가 있고, 그 플레이어는 수십개의 도시를 한꺼번에 차지했다. 그럼 대체 얼마의 자본이 투입된걸까? 이처럼, 투자전은 단순히 게임 내에서 벌어들이는 두캇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로 벌어진다. 즉, 일정 규모, 적어도 백만 단위의 현질을 하지 않고서는 주요 도시를 차지할 수 없는게 이 시스템이다. 여기서 이러한 ‘도시 하나에 의미있는 영향을 끼칠만한 액수의 투자금’ 이 바로 일종의 입장권 역할을 한다. 이 게임에서 의미있는 온라인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이 액수를 내야하고, 거기서 얼만큼을 더 지불해야 하는가는 게임의 시스템이 아닌 경쟁 상대의 지불 능력에 달려있다. 때문에, 이 게임 내에서 투자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는 지극히 소수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의사결정이나 참여와 무관하게 결정되는 이 게임의 권력구도, 그리고 국가 및 도시 배치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이는 마치 전근대 시절 대부분 국가의 전쟁이 하급 국민까지 모두 생사를 걸고 싸우는 총력전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권력 충돌이었던 양상과 일치한다. 결국 극소수의 투자자들을 제외한 플레이어들은 모두 사이버 농노가 되어 조금씩 이 게임의 제한된 콘텐츠를 소비해나갈 뿐이다. 그래서 그런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게임은 정말로 온라인 게임이 맞는가? 나는 이 온라인 게임의 일부로서 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투사하고 있나? 또는 상위 계층에서 하향식으로 내려오는 영향에 맞추어 나는 어떤 영향을 상향식으로 끼칠 수 있는가? 보통 이러한 과금액수에 의한 플레이어의 계층화는 비슷한 F2P 모델을 가진 게임들에서는 모두 생겨나는 일이긴 하나, ‘대항해시대 오리진’ 은 그 계층의 카테고리도 얄팍하고, 상위 계층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훨씬 적음에도 그 괴리나 거리감은 훨씬 더 크다는 점이 부각된다. 즉, 왕족과 농노라는 양극화 계층만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 때문에 ‘대항해시대 오리진’ 의 플레이는 단순히 플레이어의 상승욕구를 자극해 돈을 쓰게하는 것을 넘어 아예 멀티플레이에 참여하는 걸 포기하도록 만든다. 물론 F2P 게임은 플레이어의 결핍을 만들어내고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현질을 하도록 유도한다. 수많은 역체감과 타인과의 비교우위를 만들어내어 이를 돋보이게 하고, 각 층위의 플레이어들이 서로 조금씩 다른 플레이 목표를 가지도록 조정한다. 그러나 이 게임은 후자, 최상위의 계층이 아닌 플레이어들이 이러한 대단위 상호작용, 멀티플레이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이나 별도의 멀티플레이 콘텐츠를 준비하지 않았기에 이러한 극단적인 양극화가 벌어진다. 결과적으로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바는, 온라인 플레이와 오프라인 플레이의 특색은 그저 기술적인 네트워크 연결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플레이어에 따라 오히려 ‘대항해시대 오리진’ 보다 ‘데스 스트랜딩’ 이 더 ‘온라인 게임’ 일 수 있다. 물론 온라인 플레이와 오프라인 플레이가 상하관계를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각각의 게임에서 구현할 수 있는 강점과 특유의 재미를 얼마나 잘 구축했느냐는 중요한 판단거리다. 그러나 ‘대항해시대 오리진’ 은 분명 온라인 게임이라는 명제를 깔고 있음에도 이 온라인 플레이가 매우 선택적으로, 그것도 돈에 의해 작동한다. 온라인 게임으로서 ‘대항해시대 오리진’ 의 세가지 큰 문제는 먼저 투자전 중심의 온라인 플레이로 인해 생기는 플레이어의 계층화, 두번째로는 그 투자전 자체도 어떤 기획의 복합적인 아름다움이나 재미는 없는 단순한 숫자 대결 콘텐츠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 게임 내에 투자전 이외에 제대로 된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이런 게임이 된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선은 이 게임 자체가 실무를 맡은 개발사가 기획 전권을 휘두르기 어려운 원본 IP를 토대로한 협력 개발 게임이고, 또 2차 클로즈 베타까지 게임의 근간이 계속 뒤엎어진 난항에 난항을 거듭한 게임이라는 개발 상황의 문제가 있다. 더불어, 그 근간이 F2P 모바일 게임이기에 수익 구조가 일부 고객들의 고액 지출에 기대어 디자인된 부분도 있다. 또 고의적으로 전투 부분에서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을 최소화시킨 영향도 있다. PVP 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때문에 수많은 고객이 이탈한 ‘대항해시대 온라인’ 의 사례를 재현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즉, ‘대항해시대 오리진’ 의 온라인 플레이는 직접 그 플레이를 하게 되는 게이머의 입장보다는 온라인 플레이와 라이브 서비스를 결합하여 수익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회사의 입장이 더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단지 이 게임만의 문제가 아니며, 국내 F2P 모델의 게임들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문제점이다. 게임이 수익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산업화의 결과물이며 개발자들, 그리고 그 게임의 제작과 퍼블리싱에 참여한 모두가 정당한 금전적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그게 이렇게 기형적 형태의 기획에 의존하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분명 과열된 투자전 와중에 벌어들인 수익은 상당하리라. 하지만 과연 그 추세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투자전의 열기가 한차례 빠지고 난다면, 이 게임은 지속 가능성이 있을까? 이는 ‘대항해시대 오리진’ 의 개발자나 또는 서비스사에 대한 도덕적 규탄이 아니다. 이는 왜 이 게임의 온라인 플레이는 이전작인 ‘대항해시대 온라인’ 에 비해 퇴화할 수 밖에 없었는지, ‘대항해시대’ 라는 인기 IP 이자 수십년이 지나도 아직도 특별한 재미가 있는 이 플레이 로직을 기반으로 왜 이 이상의 온라인 플레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는가 하는 게임 완성도 측면에서의 비판이다. 오프라인 베이스에 선택적 요소로서 비동기 멀티플레이가 첨가된 게임이, 오히려 상시 온라인 연결을 필요로 하는 대단위 멀티플레이어보다 오히려 더 밀도 있고 끈끈한 멀티플레이를 제공한다는 사실이 매우 아이러니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대항해시대 오리진’ 은 온라인 게임이 아니다. 멀티플레이어 게임이 아니다. 소수의 투자자들이 아닌 대다수의 플레이어들, 이 사이버 농노들은 이 ‘대항해시대 오리진’ 이라는 세계에서 어떤 플레이 목적, 또는 존재 의의를 찾아야 하는가? 그것이 이 과정을 거쳐 정제된 마지막 질문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관을 가진 신의 손』,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감추는 기억
『프린세스 메이커』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경험이 있다. 시간을 들여서 정성껏 딸을 키웠는데, 마지막에 도착한 엔딩이 기대와 전혀 다른 것이었던 경험이다. 게임자체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수치가 모자랐는지, 어느 계절의 일정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무심코 고른 선택지 하나가 모든 것을 갈랐는지에 대해 게임은 침묵한다. < Back 『관을 가진 신의 손』,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감추는 기억 31 GG Vol. 26. 8. 10. 들어가며: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의 기억 『프린세스 메이커』를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경험이 있다. 시간을 들여서 정성껏 딸을 키웠는데, 마지막에 도착한 엔딩이 기대와 전혀 다른 것이었던 경험이다. 게임자체에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수치가 모자랐는지, 어느 계절의 일정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무심코 고른 선택지 하나가 모든 것을 갈랐는지에 대해 게임은 침묵한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의 몇 년, 현실의 몇 시간이었던 자신의 플레이를 스스로 되짚어야 하고, 혼자서 얻지 못한 답은 공략 게시판과 친구의 플레이 경험담 같은 것으로 채워진다. 육성 시뮬레이션은 처음부터 그런 장르였던 셈이다. 게임이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기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플레이어의 기억이, 나아가 플레이어들의 기억이 메워온 장르 말이다. 그런데 이 익숙한 감각을 유독 극단까지, 그리고 유독 정교하게 밀어붙인 게임이 있다. 『관을 가진 신의 손(冠を持つ神の手)』, 통칭 ‘카모카테’라고 불리는 이 게임은 2009년 일본의 동인 서클 ‘코무기바타케(小麦畑)’가 발표한 육성 시뮬레이션 무료 동인 게임다. 시골에서 자라 어머니를 여읜 주인공은 어느 날 이마에 새겨져 있던 인장, ‘선정인’으로 인해 신의 선택을 받은 차기 왕 후보임이 드러나고, 왕성으로 강제로 옮겨진다. 제목의 '관(冠)'은 바로 이 왕관을 가리킨다. 프린세스 메이커의 플레이어가 아버지가 되어 딸을 키웠다면, 카모카테의 플레이어는 1년이라는 기한 안에 왕 후보가 되어 성장하고 왕성 안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나가야 한다. 오랫동안 아는 사람만 아는 게임으로 남아 있던 이 작품은 2026년 6월 스팀을 통해 리메이크판이 정식 발매되면서 다시 조명받고 있다. 이 게임을 이번 호의 주제인 ‘기억’ 앞에 세운 이유는,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가 플레이어의 기억에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대리 기억해왔는지를 이 게임만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는 호감도 게이지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호감도는 존재하지만, 게임은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공략 캐릭터가 주인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게임 시스템 내부 어딘가에 숫자로 정확히 기록되어 있으나 플레이어는 그 숫자에 접근할 수 없고, 대신 캐릭터에 대한 '인상'을 스스로 판단하여 입력하고 저장과 불러오기를 반복해야 한다. 게임이 기억하는 것과 플레이어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이토록 선명하게 갈라지는 게임은 흔치 않다. 그렇다면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은 플레이어의 기억 중 무엇을 대신 기억해주고, 무엇을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겨두는가. 이 글은 ‘카모카테’ 라는 하나의 사례를 통해 따라가보고자 한다. 인상 시스템, 공략 캐릭터는 어떤 인상으로 남았는가? 이 게임을 처음 플레이했을 때, 호감도가 어디쯤 와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캐릭터에게 말을 걸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벤트를 겪어도 그 결과로 상대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감으로 이벤트의 선택지를 누르고, 감으로 인상도를 입력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각 캐릭터와의 만남과 이벤트를 겪은 뒤, 그 캐릭터에 대한 '인상(印象)'을 직접 입력한다. 『도키메키 메모리얼』처럼 호감도 확인이 시스템의 일부로 설계된 일반적인 연애/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면 시스템이 알아서 호감도 수치를 올리거나 내리고 그 결과를 게이지로 보여주었을 자리에서, 이 게임은 반대로 플레이어에게 묻는 것이다. 방금의 만남은 어떤 인상으로 남았는가. 조금 전 캐릭터와의 대화는 주인공 캐릭터에게 어떤 감정을 남겼는가. 그리고 이렇게 입력되어 누적된 인상도는 이후 어떤 이벤트가 발생할지, 이야기가 어느 분기로 흘러갈지를 결정하는 실질적인 변수로 작동한다. 말하자면 이 게임에서 관계의 기록을 담당하는 것은 게임이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이다. 게임은 입력된 기록을 받아 계산할 뿐, 그 기록이 실제 관계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첫 플레이는 이벤트를 줄줄이 놓친 채, 그 누구와도 이렇다 할 결말을 맺지 못하고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게임 내에 각 공략 캐릭터 당 애정, 우정, 증오, 배반, 살해 5가지의 루트나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 동인판 시절의 인상도 입력창 그 대신 발견하게 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동안 올려온 인상도를 단 한 번에 정반대로 뒤집어버리는 버튼이다. 그 버튼을 누르면, 캐릭터가 공략 캐릭터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 애정에서 증오로, 증오에서 애정으로 돌변한다. 이 ‘반전’ 시스템은 한 회차에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기능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인상을 정반대로 뒤집는다. 호의로 쌓아온 관계를 순식간에 적의로, 적의로 쌓아온 관계를 순식간에 호의로 바꾸어 놓는 이 장치는 그 자체로 극적인 장치이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버튼을 사용하는 플레이어의 상황, 이유다. 호감도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신중하게, 또는 감각에 따라, 그게 아니라면 그냥 누르는 것이다. 뒤집힌 결과가 어디에 도달할지는 결과를 보지 않고선 알 수 없다. 게임은 끝내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캐릭터와 무엇을 쌓아왔는지를 스스로 얼마나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가에 따라, 이 시스템은 정교한 한 수가 되기도 하고 무모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 '반전' 시스템 게임 시스템으로서의 대리 기억 그렇다면 게임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이는 플레이어에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사실은 게임 내부에는 정확한 숫자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호감도는 플레이어가 화면에서 확인할 수 없을 뿐, 게임 엔진 안에서는 캐릭터마다 하나의 변수로 계산되고 저장된다. 플레이어가 감으로 입력한 인상도와, 게임이 실제로 들고 있는 호감도는 서로 다른 층위에서 각자의 숫자를 유지하는 셈이다. 플레이어의 기억이 흐릿하고 주관적인 인상으로 남는 동안, 게임의 기억은 숫자 하나까지 정확하다. 세이브 파일이 보존하는 것도 이와 같은 층위에 있다. 육성 파라미터, 캐릭터별 호감도와인상도, 이후 분기의 조건, 도달 가능한 엔딩의 판정 조건 등, 이 모든 것은 저장되며, 그 기억은 게임의 몫이 된다. 다시 게임을 켜면 이 값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무엇을 몇 번 선택했는지, 어떤 이벤트를 몇 주차에 봤는지는 플레이어가 잊어도 게임은 잊지 않는다. 다만 게임이 기억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다. 어떤 선택을 거쳐 지금의 상태에 도달했는지, 그 선택의 과정 자체는 저장되지 않는다. 세이브 파일에는 인상도 몇이라는 최종값만 남을 뿐, 플레이어가 어떤 대화와 어떤 장면에서 느낀 점을 통해 이 값을 만들었는지는 기록되지 않는다.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의 기억은 과정을 소거한 결과값의 기억이다. 물론, 숫자만이 이 게임이 기억하는 전부는 아니다. 카모카테는 공략 캐릭터마다 고유한 테마곡을 두고, 해당 캐릭터의 이벤트가 시작되면 그 곡을 재생한다. 몇 마디만 들어도 곧 누구의 이야기가 시작될지 알 수 있게 하는 장치다. 이 설계는 유료 음원을 쓸 수 없었던 동인판 시절부터 자체 음원을 갖춘 스팀판에 이르기까지 형태를 바꾸지 않고 이어져왔다. 숫자가 아닌 소리로 이루어진 이 기억은, 인상도만큼 정밀하지는 않아도 그 나름의 방식으로 기억을 정확히 짚어낸다.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겨진 기억 게임이 기억하는 것은 결과값이라고 앞서 말했다. 그렇다면 그 결과값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어떤 대사와 어떤 나레이션과 어떤 표정이 플레이어의 인상도를 움직였는가는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주인공이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감각, 관계가 지금 얼마나 따뜻한지 혹은 얼마나 서늘한지에 대한 체감은 세이브 파일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이것은 저장되지 않기에, 전적으로 플레이어 자신의 기억에 맡겨진다. 게임을 다시 켜면 스탯과 인상도는 그대로 이어지지만, 그 관계가 어떤 감정의 궤적을 그리며 여기까지 왔는지는 플레이어가 스스로 복기해야만 이어진다. 그것은 공략 캐릭터가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갖는 호감도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게임이 호감도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감춘다기보다는, 근사치로만 짐작하게 하는 쪽에 가깝다. 게임 안에는 두 가지 방법이 마련되어 있다. 하나는 시장에 방문해 '점을 보는' 것이다. 점술사는 공략 대상 캐릭터들 중 주인공에게 느끼는 호애도와 호우도가 가장 높은 인물과 가장 낮은 인물을 알려준다. 정확한 수치도, 중간에 위치한 캐릭터들의 순위도 아니다. 오직 양 극단만이 게임 세계 안의 언어로 플레이어에게 전달된다. 다른 하나는 인상도를 입력하는 화면 자체에 있다. 인상도를 입력할 때마다 화면의 배경색이 노란색, 초록색, 보라색으로 바뀌는데, 이 색은 플레이어가 방금 입력한 인상과 실제 호감도 사이의 간격을 나타낸다. 노란색이면 그 간격이 거의 없다는 뜻이고, 보라색이면 그 간격이 크다는 뜻이다. 정확한 수치는 여전히 주어지지 않지만, 플레이어는 이 색을 단서 삼아 자신의 인상도가 공략 캐릭터의 호감도와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를 가늠하며 다음 선택을 이어가게 된다. * 인상도와 호감도 격차에 따른 배경색 변화 점보기가 게임 세계 안에 놓인 장치라면, 배경색은 화면이라는 인터페이스 층위에 놓인 장치다. 두 장치는 형식은 다르지만 하는 일은 같다. 정확한 답을 주는 대신, 플레이어의 기억이 놓인 위치를 어림잡게 해주는 것이다. 완전히 보여주지도, 완전히 감추지도 않는 그 중간의 자리에서 플레이어는 계속 짐작하고 기억하며 플레이를 이어가야 한다. 저장되는 기억과 해금되는 기억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은 분명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이 게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상도와 호감도라는 숫자는 게임 내부 어딘가에 정확히 존재하며, 세이브 파일은 그 숫자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보존한다. 그런데도 카모카테는 그 기억을 플레이어에게 온전히 넘겨주지 않는다. 저장되지 않아서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저장되어 있음에도 접근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은폐의 문제라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육성 시뮬레이션은 처음부터 정보를 얼마나 보여줄 것인가를 설계의 중요한 축으로 삼아온 장르였다. 수치를 전부 공개하고 그 위에서 최적의 육성을 계산하게 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일부만 보여주거나 특정 조건에서만 확인하게 하는 게임도 있다. 카모카테는 이 스펙트럼에서 은폐 쪽으로 가장 기울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은폐는 플레이의 감각을 특정한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관계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에, 플레이어는 매 순간 가늠하고, 불안해하고, 스스로의 기억을 의심하며 다음 선택을 고른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바로 이 불확실성이 공략 캐릭터와의 관계를 더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수치로 확인되지 않는 마음은,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실제 사람의 마음처럼 종잡을 수 없는 채로 남는다. 이 역설을 게임 디자인의 언어로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스팀판의 도전과제 체계다. 제작자는 스팀 리메이크의 초회 플레이를 원래보다 어려운 조건에서 시작하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호감도는 보이지 않고, 육성에 대한 보정도 없으며, 주인공의 능력치를 올리는 것부터 쉽지 않은 상태에서 플레이가 시작된다. 그런데 엔딩을 하나씩 보고 도전과제를 하나씩 달성할 때마다, 그동안 잠겨 있던 기능이 하나씩 열린다. 이벤트명 표시, 이벤트 회상, 능력치 지원, 호감도 표시, 무효 선택지 표시, 그리고 반전을 주차당 한 번이 아니라 무제한으로 쓸 수 있게 해주는 기능까지. 이 기능들은 원래 동인판 시절 유료 공략지원판에서 제공되던 것들이었으나, 스팀판에서는 플레이 자체를 통해 도달해야 하는 보상으로 재배치되었다. * 업적 달성으로 해금되는 공략지원기능 이 설계가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이 글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게임 시스템의 형태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하되 접근이 제한된 기억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잠겨 있다가 플레이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열리는 기능으로 이 게임 안에 구체화되어 있다. 플레이어가 쌓아가는 것은 인상도만이 아니다. 그 인상도에 접근할 권한 자체도, 플레이를 통해 함께 쌓여간다. 나오며 결국 이 게임의 인상 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관계란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모른 채로 계속 마주하는 것인가. 대부분의 게임은 전자를 택한다. 호감도는 게이지로 표시되고, 플레이어는 그 게이지를 보며 다음 선택을 계산한다. 카모카테는 후자를 택했다. 숫자는 존재하지만 감춰져 있고, 플레이어는 확신 없이 다음 대화를 건네야 한다.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이것은 프린세스 메이커가 이미 던져두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엔딩에 도달할 때까지 자신이 무엇을 쌓아왔는지 알 수 없었던 그 경험은,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가 처음부터 플레이어의 기억에 무언가를 떠넘겨온 역사와 맞닿아 있다. 카모카테는 그 역사를 계승하되, 감춰진 것과 드러난 것의 경계를 인상 시스템이라는 형태로 훨씬 더 정교하게 다듬은 사례다.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무엇을 대신 기억해주고 무엇을 끝내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겨두는가는, 결국 그 게임이 관계를 어떤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카모카테의 답은 인상 시스템의 구조 그 자체에 이미 들어 있다. 게임은 정답을 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채점표로 내밀지 않고, 플레이어가 스스로 적어낸 인상과 감춰진 숫자 사이의 어긋남을 안은 채 다음 플레이로 나아가게 한다. 반전 버튼 앞에서 망설이던 순간을 다시 떠올려보면, 그때 고려했던 것은 게임 내부의 숫자가 아니라 이벤트나 지금까지 골라온 선택지, 공략 캐릭터와의 관계에 대한 스스로의 기억이었다. 게임은 숫자를 기억하고, 플레이어는 시간과 관계를 기억한다. 다음 플레이를 시작할 때, 인상도와 호감도는 처음으로 돌아가지만 그 관계를 기억하는 플레이어의 감각은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Tags: 기억, 관을 가진 신의 손, 카모카테, 육성 시뮬레이션, 프린세스 메이커, 동인 게임, 호감도 시스템, Raising Simulation Games, Princess Maker, Doujin Games, Japanese Indie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콘텐츠연구자) 이미몽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닌텐도 게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전 스팀덱을 할부로 구매하여 열심히 즐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선 문화매개를 전공했고, 현재는 일본의 리츠메이칸 대학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입니다. 게임과 웹툰 등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와 문화를 연구합니다.
- [북리뷰] 도망쳐 도착한 곳의 낙원: 가브리엘 제빈,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심지어 게임을 업으로 삼은 이에게도. 그때 게임이 경이로웠던 것은 삶의 고통과는 무관한 신비 그 자체였기에 노스탤지어는 더욱 짙은 그리움을 부른다. 그럼 지금의 당신에게 게임은 어떤 경험인가. 지금 다시 플레이하면 분명 지루하게 느낄 그 시절의 게임들과 비교하면 오늘의 게임은 어떤 의미인가. 여전히 신비로운가, 혹은 신비를 잃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는 이 소설이 그렇게 묻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 Back [북리뷰] 도망쳐 도착한 곳의 낙원: 가브리엘 제빈,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23 GG Vol. 25. 4. 10. ‘자유도’보다는 ‘아름다운 구속’ 당신에게 최초의 경험을 준 게임은 무엇인가? “와! 이런 게 다 있었어!” 외치던 첫 전율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그런 건 단 한 번의 경험일 수는 없다. 아직 인생이 대부분 미답지로 남아 있던 유년기에는 이런 충격적인 사례들이 여러 차례 쌓였을 것이고, 그 이후의 새로운 경험이 주는 충격들은 기술 발달의 비약적인 속도와 반비례하며 실제로는 더 혁명적이었더라도 그 인상이 점차 사그라졌을 것이다. 모든 명작들이 그러하듯 인생의 첫 순간을 장식한 게임들 또한 아직 미성숙했던 기술과 시장이라는 맥락을 제하고는 말할 수 없다. 내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에게 첫 충격을 선사한 게임은 <페르시아 왕자>였다. 당대의 기술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수준의 부드러운 모션, 투박한 픽셀로 표현되었음에도 잔혹함이 생생하게 느껴지던 사망효과들은 작품성과 별개로 이 게임을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한 구석에 새기는데 큰 역할을 했다. 1인칭의 짜릿한 스릴을 맛보게 한 <울펜슈타인 3D>, 엉뚱해 보이는 곳을 때리면 숨겨진 요소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고인돌2>를 거쳐 <너구리>, <행온>, <수왕기>, <황금도끼>, <알렉스 키드> 등등 시대도 플랫폼도 제각각인 수많은 게임들을 조금씩 맛본 내가 마침내 정착한 곳은 TGL의 <파랜드 택틱스>, 팔콤의 <영웅전설> 같은 JRPG와 가이낙스의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였다. 그전까지의 게임들은 친구나 사촌형 어깨 너머로 잠깐 해보고 그쳤지만, 이 일본 게임들에 이르러 처음으로 온전히 애정을 들이며 내 손으로 엔딩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PC게임이 대중화되던 시기였던 만큼 수많은 명작들이 등장하던 가운데 유독 이들에 사로잡힌 이유는 그래픽과 음악, 서사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즈음 심지어 <디아블로>나 <툼레이더>도 출시되었지만 아직 초기 단계였던 3D 그래픽의 미감은 내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었다. 어린 내 눈에는 서구권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도 상당한 감점 요소였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런 음울한 스타일에 매혹되었다면 아주 비범한 게이머였을 것이 분명하다.) * 이 아찔한 미감의 차이. 오늘날의 미국과 일본의 게임을 생각하면 미감과 이를 가능케 하는 기술이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 딱 맞는 분류는 아니지만 ‘루돌로지’와 ‘내러톨로지’의 관점으로 본다면 유년기의 나는 확고한 ‘내러톨로지스트’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돌아보면 당시 나에게 게임이란 기존의 만화와 책이 제공하던, 잘 직조된 상상력과 감동에 더욱 강렬하게 몰입할 수 있는 도구에 가까웠다. 나에게 게임의 수행성이란 몰입을 증폭하는 이야기의 현현 이상의 의미는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일단 그 세계가 감각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중요했고, 이렇다 할 연출도 없이 뾰족 가슴으로 투박한 텍스쳐 사이를 뛰어다니는 라라 크로프트의 다채로운 액션은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가 플레이하는 캐릭터의 존재는 극중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과의 감정적 교류를 소설이나 만화에 비해 더욱 깊숙한 곳까지 끌어내는데 그 목적이 있다. 나는 현실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잘 만들어진 캐릭터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내 감정을 투사한다. (이는 지금까지도 AAA급 게임 중 오픈월드보다는 서사의 몰입도가 높은 리니어 게임을 더 선호하는 내 취향으로 이어진다. 극단적으로는 차라리 비주얼노블이라 부를 법한 ‘퀀틱드림’의 게임들이 꼭 그렇다.) 반면 ‘루돌로지’적 주인공은 다른 캐릭터와의 감정적 교류보다는 세계 자체와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수행성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캐릭터 자체는 좀 더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 비어있어야 하는 만큼 미안하지만 디자인도 좀 덜 공들인 느낌이다. 플레이 자체의 재미를 중시하는 ‘루돌로지스트’들에게는 표면적인 감각의 아름다움에 천착했던 내 기준이 영 마뜩찮거나 종종 ‘가짜 게이머’의 혐의가 붙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게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는 이들은 적지 않으며 중요한 본질의 하나다. 가브리엘 제빈의 소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이런 점을 잘 포착하고 있다. * 영문판(좌)과 한국어판(우)의 표지 디자인 셰익스피어와 호쿠사이, 레트로 게임의 만남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미국의 소설가 가브리엘 제빈이 2022년 출간한 소설로,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이르는 30년의 시간 동안 두 남녀 친구가 게임 개발자로서 성공해나가며 겪는 사랑과 도전에 대한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매력적인 인물 묘사와 매끄러운 전개로 600쪽이 넘는 분량을 순식간에 소화시키는 페이지터너인 동시에, “아, 이게 소설의 매력이지”라는 감상이 절로 나오는 기본기가 탄탄한 서사예술이다. 사실 열정과 재능으로 충만한 청춘남녀의 사업적 성공담을 깔고, 그 위로 우정과 애정, 내면의 폐허가 교차하는 이야기 자체는 대단히 새롭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모든 이야기가 비디오게임의 역사를 종단하는 자장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든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30년의 시간 동안 실제로 기념비적이었던 게임들이 세심한 애정을 담뿍 묻힌 채 하나하나 등장할 때마다, 한 시절이라도 게임에 빠져 본 독자라면 반가운 마음에 더욱 책을 놓지 못하게 된다. 소설에서 언급되는 게임들 중 내가 플레이해본 것들을 꼽아보면, 그 중에서도 <스트리트 파이터>나 <테트리스>, <수퍼 마리오> 시리즈처럼 게임과 무관한 대중에게도 익숙한 아이콘은 제외하더라도 <동키콩>, <개구리Frogger>, <덕 헌트>, <스페이스 인베이더>, <크로노 트리거>, <모탈 컴뱃>, <둠>, <울펜슈타인3D>, <메탈기어 솔리드>, <시간의 오카리나>, <킹스 퀘스트>처럼 반가운 이름들이 쉼 없이 등장한다. 한국에서도 읽어본 사람들의 호평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지만, 영미권에서는 출간된 2022년 아마존 ‘올해의 책’ 1위, 영국 선데이 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1세기 100대 소설’에까지 선정되는 등 평단과 대중의 거대한 인기를 힘입어 파라마운트에서 판권을 구매해 영화화 작업도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게임 외에도 소설에 동원된 문화적 코드는 방만할 정도로 많다. 일단 제목은 <멕베스>에 등장하는 대사로,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게임의 의미에 대해 작중 인물이 직접 설명하는 대목에서 인용된다. 실제로 책을 보면 독특한 표지 디자인부터 눈에 들어온다. 영문판의 표지는 수많은 서구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를 커다랗게 확대한 이미지 위에 레트로 게임 스타일의 화려한 폰트로 제목이 새겨져 있는 반면, 한국어판은 픽셀 느낌을 깔끔하게 살린 제목 위로 같은 호쿠사이 그림이 8비트 픽셀아트로 재해석되어 있다. 같은 작품을 주요 모티브로 살리되 각 문화권의 보편적인 미감을 따른 디자인으로 보인다. 한국어판의 디자인이 훨씬 마음에 드는 걸 보면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 것 같다. 애초에 서양 놈들 미감은 그 옛날부터 내 취향이 아니었다니까. 게임 제작을 다루는 소설인데 왜 호쿠사이의 파도가 표지에 강조될 만큼 중요하냐면, 두 주인공 샘과 세이디가 처음으로 함께 제작해 이들을 업계의 신성으로 만들어준 게임 <이치고>의 중요한 모티브이기 때문이다. <이치고>는 하버드에 다니는 샘과 MIT의 세이디, 샘의 룸메이트 마크스가 대학생 신분으로 함께 개발하는 첫 게임으로, 어린 주인공 ‘이치고’가 도로시처럼 풍랑에 휩쓸려 세계를 떠돌다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의 아마도 액션 어드벤처다. 당연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게임이니 상상해보는 것 말고는 실제 모습을 확인할 길이 없지만, ‘세련되고 깔끔한 그래픽과 캐릭터 디자인, 감동적이고 가족 친화적인 스토리’ 라는 작중 홍보문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댓게임컴퍼니’의 <저니>를 레퍼런스로 떠올리는 것 같다. 모험을 거치며 성장하는 아이의 서정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플레이데드’의 <인사이드>나 <림보>와 겹치는 지점도 보인다. 1996년이라는 작중 시점과 게임의 묘사를 고려하면 한국어판 표지의 디자인처럼 수려한 도트 그래픽의 2D 게임일 가능성이 높다. 호쿠사이는 대학생 셋이 컴퓨터 두 대로 제작하는 현실에 대한 돌파구로서 차용되었다. “세이디는 한정된 자원으로 비디오게임을 만들 때는 그 제약을 스타일로 풀어내는 것이 해답임을 알고 있었다. (중략) 1830년대에 호쿠사이의 그림이 복제 가능했던 것과 동일한 이유로(한정된 색상, 형태 언어의 기만적 간결성), 컴퓨터그래픽으로도 그 화풍을 재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저니>에서 모든 게이머가 황홀경에 빠지는 장면(좌), <인사이드>와 <림보> 소설은 <이치고>의 개발을 맡은 세이디가 오프닝의 폭풍우를 만족스럽게 묘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과정에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2D 그래픽의 한계 안에서도 파도의 역동성과 물의 투명함을 구현해 게임에 첫발을 디디는 게이머를 압도하며 시작하는 것이 이들에게 너무나 중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구현된 아름다운 그래픽은 대사가 많지 않은 것 같은 게임 <이치고>에서 주인공의 내면과 성장을 드러내는 미학적인 언어가 된다. 실제로 나를 비롯한 많은 게이머들이 게임 속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잠시 컨트롤러를 내려놓고 그 세계를 즐기거나 사진 모드를 켠다. 게다가 많은 경우 이러한 ‘전망대’ 포인트에서는 아예 제작진이 누리기를 종용하듯 카메라를 풍경 쪽으로 슬쩍 밀어주기도 한다. 퀘스트와 레벨업, 수집과 엔딩이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게임의 세계 속에서도 아름다움은 우리를 쉬게 만든다. 그리고 잠시 잠깐 찾아오는 이런 무의미의 시간들이 오히려 게임 속에 현실의 질감을 입힌다. 우리의 현실은 대부분 명료한 퀘스트보다는 무의미하고 무료한 시간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아름다움은 여전히 내가 게임 속 세상을 찾는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게임의 감각적 아름다움 그 자체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사실을 반갑게 되새기게 해준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소설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유태계와 한국계 혼혈 미국인이면서 편모를 사고로 잃고 다리에 장애를 얻은 채 한인 조부모 손에 자란 샘과, 똑똑하고 부유하지만 어릴 적부터 백혈병을 앓던 언니 때문에 가족들로부터 소외를 느끼던 세이디가, 어린 시절 각자의 방식으로 게임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묘사는 이 소설을 읽는 누구에게나 게임이 선사하는 자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불완전한 신체의 확장으로 얻는 자유이기도 하고, 목적과 방향이 분명하게 주어지며 모든 성취와 과오가 점수로 계량화 되어 제시될 때 안도하는 역설적인 자유이기도 하다. 게임이 허락한 법칙 안에서라면 어떤 행동이든 다 시도해 봐도 인생이 잘못되지 않고, 설령 잘못되어도 세이브와 로드가 있는 게임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자유 혹은 전능감은 최근 ‘회빙환’으로 대표되는 장르문학의 확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게임적 쾌감이다. 최종 보스를 물리친 레벨 그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다회차 플레이의 전능감. 다분히 게임적 발상을 두른 이런 이야기에 사람들이 보내는 열망은 역설적으로 삶에서 느끼는 부자유와 무력감의 반증일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이 독자로 하여금 게임과 삶에 대해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눈에 띄는 자리에 마련해놓은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샘과 세이디가 게이머로서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은 소설의 초반까지이고, <이치고>의 성공 이후로 두 사람은 창작자이자 사업가로서의 무게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이들에게 더 이상 게임은 자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별히 세이디에게 더욱 그랬다. 샘은 어릴 적부터 그를 둘러싼 여러 정체성의 이유로 사회적 시선과 기대에 부응하는 일에 일찌감치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태도는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자유로움으로 진화했고, 원래 갖고 있던 반짝이는 재능과 결합하며 샘은 주목받는 스타기획자로 질주하기 시작한다. 반면 <이치고>를 구현하는데 더 큰 역할을 한 세이디는, 늘 주변을 살피는 기질과 게임 산업 내의 여성이라는 위계가 결합해 성공의 과실을 샘만큼 누리지 못한다. 게다가 세이디는 게임이 예술이길 바랐다. 사람들을 충분히 즐겁게 해주면 족할 수 있었던 샘과 달리 세이디는 게임이 메시지를 체험시키는 순간이 찬란하게 빛나길 바랐다. 메시지와 독창성에 대한 열의가 넘치는 대중 예술은 높은 확률로 시장에서 외면받기 마련이다. 그것이 게임 시장이라면 더더욱. 세이디는 이야기 내내 그 간극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나는 독자이면서 게이머임과 동시에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 게다가 업계 기준으로는 내 작업물에 메시지와 독창성을 담아내고픈 열망이 비교적 큰 창작자로서, 하지만 그 열망의 크기에 비해 늘 상업적으로는 부족한 성적표를 받아드는 창작자로서 무엇보다 세이디의 괴로움에, <이치고> 속 폭풍우의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쏟아버린 바로 그 세이디의 막막함에 유독 몰입하며 소설을 읽었다. 한때 나에게 한없는 자유를 선사한 예술, 그 자유의 몸짓에 이끌려 뛰어든 업계에서 결과적으로는 매번 야망에 못 미치는 결과물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고 마는 이 짓궂은 농담 같은 광경을 책 속에서 고스란히 발견했기 때문에. 더 우스운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렇게 이리저리 털린 영혼을 터덜터덜 추슬러 돌아가 안식을 얻는 곳이 결국 다시 그 예술의 요람 안이라는 사실이다. 세이디에게는 결국 게임이, 나에게는 결국 수많은 콘텐츠들이. 그렇게 지긋지긋한 한계에 진절머리 쳤으면서 다시 아름다운 풍경을 향해 스리슬쩍 밀어 올려주는 카메라에 저항 없이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결핍과 고통, 도피와 안식 사이에서 소설에서 표지의 호쿠사이 이상으로 중요하게 등장하는 작품은 고전 게임 <오리건 트레일>이다. 한국에서는 고전 게임에 꽤 빠삭한 이들에게도 인지도가 별로 없지만 미국에서는 교육용 소프트웨어로 쓰인 덕에 한 세대를 관통한 하나의 현상에 가까운 작품이다. 나 역시 그 문화를 공유하지 못하니 추측만 할 뿐이지만, 한국에서 하나의 게임이 이렇게 신드롬에 가까운 위상을 가졌던 사례를 상상해보자면 <스타크래프트>, 혹은 ‘한메타자연습’의 <베네치아> 정도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쌍방향 상호작용이 전무하던 1970년대 교실에서는 이 원시적인 게임도 별천지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일방적으로 주입받던 지식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준 <오리건 트레일>은 이 기술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시기에 들어선 뒤로도 교실에서는 꽤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것 같다. 맥락을 다 떼어놓고 교실의 아이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게임에 빠져있는 풍경만 떠올린다면 내 눈에는 컴퓨터실의 ‘피카츄 배구’가 아른거린다. 그땐 이미 <스타크래프트>와 <파이널판타지8>이 나온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학교의 낙후된 컴퓨터에는 1MB가 채 안 되는 ‘피카츄 배구’가 선생님의 눈을 피해 깔려있었다. 학교를 나서면 호화로운 게임이 널려있던 시대에 집에서는 일부러 하라고 해도 마다할 게임을 교실에서는 다들 그렇게 삼매경일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군부대의 인트라넷을 통해서도 즐겼다는 소문도 들었다. 교실과 군대는 결핍의 공간이었으니까. 부족하고 괴로운 곳에서는 아주 조악한 게임도 무한한 자유를 경험케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게임에 가장 깊이 빠져들 때는 마음이 가장 황폐할 때다. 좋아하는 소설을 읽는 일도, 영화를 보는 일도 실은 마음의 체력을 많이 필요로 한다. 소설과 영화는 나에게 종이와 화면 너머로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온전히 완성된 채 나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다릴 뿐이다. 마음에 조금의 여유도 남아있지 않을 때는 그 참여조차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게임은 아주 직접적으로, 신속하게 나의 행동을 요구한다. 그 요구에 매번 바삐 응하는 동안에는 황폐한 마음을 돌아볼 새가 없다. 그렇게 아예 정신을 내던지고 게임의 뒤통수를 한참 따라다니며 괴로운 시간을 통과해 나간다.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게임 속 아름다움이 더 빛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도피라고 표현해도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위대한 예술들은 자주 삶의 고통에서 내몰린 도피의 흔적들이기도 하다. 때로는 게임이 시시하게 느껴질 만큼 삶이 무한히 풍요롭거나 내가 단단하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그런 조건이라면 아마 나는 일생 게임과 작별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글의 시작에서 나는 첫 게임의 추억에 대해 질문했다. 뒤이어 이어진 나의 게임 리스트와,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 인용한 수많은 고전 게임들의 이름은 게이머라면 누구에게나 한 시절에 대한 진한 향수를 일으킨다. 더 이상 돌아갈 장소로서의 고향이 존재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노스탤지어는 이제 떠나보낸 시간을 의미한다. 우리가 게임과 함께 보낸 최초의 시간들이 더욱 아련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른의 삶이 늘 뜻대로 되지 않는 덜컹거림의 연속이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게임을 업으로 삼은 이에게도. 그때 게임이 경이로웠던 것은 삶의 고통과는 무관한 신비 그 자체였기에 노스탤지어는 더욱 짙은 그리움을 부른다. 그럼 지금의 당신에게 게임은 어떤 경험인가. 지금 다시 플레이하면 분명 지루하게 느낄 그 시절의 게임들과 비교하면 오늘의 게임은 어떤 의미인가. 여전히 신비로운가, 혹은 신비를 잃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는 이 소설이 그렇게 묻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Tags: 북리뷰, 소설, 게임개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콘텐츠 제작자) 조얼 지상파 PD로 시작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주로 콘솔게임을 즐기며, 멀티플레이를 싫어하는 내향인.
- <다키스트 던전>을 <다키스트 던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개발진이 어째서 전작과 후속작의 틀을 바꾸고자 했는지. 어떤 요소들이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아야만 결정이 왜 내려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무엇이 다키스트 던전을 각별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 Back <다키스트 던전>을 <다키스트 던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21 GG Vol. 24. 12. 10. 지난 2021년 10월. 에픽 게임 스토어를 통해서 얼리 액세스를 시작한 ‘다키스트 던전 2’는 전작을 즐겼던 팬들에게는조금 당혹스러운 모습과 같았다.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전작의 연장선에 자리한 작품이었음에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플레이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다키스트 던전 2의 플레이는 조금 더 로그라이트에 가깝게 변했으며, 전작의 핵심 시스템이라 할 수 있었던 영지 관리와 같은 매니지먼트 요소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플레이어들의 기대감을 정면으로 반하는 것임과 동시에, ‘대체 왜 이렇게 바꿨는가?’하는 질문을 낳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개발진이 그렇게 만들고 싶어서’라는 문장으로 방향성을 일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장 만으로 모든 것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개발진이 어째서 전작과 후속작의 틀을 바꾸고자 했는지. 어떤 요소들이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아야만 결정이 왜 내려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무엇이 다키스트 던전을 각별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우선, 전작인 다키스트 던전 1의 플레이를 잠시 떠올려보자. 전작을 떠올렸을 때, 가장 앞에 자리하는 것은 역시나 무척이나 어려운. 난도 있는 게임 플레이가 될 것이다. 다키스트 던전 1은 플레이어의 결정이 무게감을 가지는 타이틀로 설계되어 있다. 한 번의 실수가 파티를 사망으로 인도하며, 여차하면 잘 육성된 파티를 잃고 키보드를 내려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나올 정도였다. 다키스트 던전 1이 가지고 있는 높은 난도는 ‘운’으로 대표되는 확률이 가장 중심에 자리한다. 운에 따라서 플레이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한 대만 때리면 되는 상황에서 파티가 두 바퀴를 돌 때까지 빚맞춤이 뜬다거나. 어느 순간 갑작스레 데스 블로우를 맞아서 캐릭터가 상태 이상에 빠지는 등의 플레이를 마주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운은 플레이어 뿐만 아니라 적에게도 적용된다. 적에게 운이 제대로 적용될 때에는 다른 타이틀에서 느끼기 어려운 각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초로 작동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캐릭터인 영웅이 모든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영향을 극복하고 적을 순식간에 제거할 때의 쾌감이 대표적이다. 운은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부정적인 것으로도 작동하지만, 한편으로는 플레이에게 잊을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는 요소임은 분명했다. 개발진이 말하는 ‘도전과 영웅적 승리’라는 지향점이 각별하게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운이라는 것은 플레이어가 실패와 시도를 누적하는 것을 통해서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영역으로 다뤄졌다. 던전에서 획득한 재화와 보상들을 이용해 영웅들을 육성하며, 조금 더 나아진 상태에서 다음 던전으로 출발할 수 있는 구조가 대표적이다. 마을 경영 콘텐츠들은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운’ 들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영역에 두도록 만들었다. 마치 처음에는 20면체 주사위를 굴리다가, 시간이 지나며 16면체로. 그 다음은 8면체로 조금씩 확률을 개선하는 방식이다. 여전히 운이라는 형태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결과물이 조금씩 제어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게임 플레이는 점차 통제 가능한 영역이 늘어나고 궁극적으로는 다키스트 던전 1의 끝에 도달하는 경험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을 경영은 본질적으로는 타이쿤 장르와 같은 매니지먼트 형태를 가지게 됐다. 세부적인 수치를 조절하고 여분의 자원을 쌓고. 이를 적절하게 분배하는 플레이에 가깝다. 그렇기에 다키스트 던전 1은 후반부로 들어설수록 초반과는 다른 결의 정체성을 보여주게 된다. 통제 가능한 영역이 충분히 늘어나고. 플레이어가 게임 과정에 익숙해졌다면 다키스트 던전 1은 자원을 투입하고 거기서 보상을 얻는 플레이의 반복이다. 운을 어느 정도 감안해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시점부터 영웅과 파티는 하나의 캐릭터가 아니라 인적자원과 같이 다뤄진다. 이 즈음부터 효율적으로 자원을 파밍하고 변수를 교정하며 제어하는 과정은 주력 인적자원이 더 나아가기 위한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인 셈이다. 이 즈음부터 플레이어의 선택과 실수. 그리고 변수를 통제하는 과정이 가장 앞에 자리하며 다키스트 던전 1이 추구하던 ‘도전과 영웅적 승리’라는 조금씩 희석된다. 플레이어는 게임에 익숙해져서 긴장감 보다는 일종의 루틴과 같은 게임 플레이를 하게 되며, 반복 플레이를 통한 자산의 누적으로 인하여 초기와 같은 경험이 유지되지는 않는다. 개발사인 레드훅 스튜디오는 다키스트 던전 1의 이와 같은 플레이를 일종의 한계라고 인식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 그리고 플레이 양상이 영향을 미쳤다. 초반부의 플레이가 각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좋았으나, 후반부로 들어설수록 변수가 통제되고 항상 옳은 결정을 내리는 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더불어 양날의 검과 같이 다뤄지는 변수들이 막대한 진입 장벽으로 작동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흥미로운 것은 맞지만, 플레이어 전략에 맞는 플레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들어갔으며,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게임에서 이탈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전반적인 게임 플레이가 엔딩 까지의 플레이 타임을 가늠하기 힘들게 만들었으며, 꽤 많은 플레이어들은 중간 그라인딩 (파밍) 과정을 넘어서지 못한 상태에서 게임을 중단하기도 했다. 도전 과제를 보면, 이러한 양상은 꽤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초반부에서 중반부.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하나의 콘텐츠를 달성한 사람의 비율은 극단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전작의 문제점을 인식한 레드훅 스튜디오는 후속작인 다키스트 던전 2를 통해서 또 다른 형태의 모험을 기획하는 결정을 내렸다. 전작의 변수들이 가져다주는 장점과 단점을 답습하지 않고 형태와 플레이 양상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을 말이다. 그러면서도 앞서 언급한 ‘도전과 영웅적인 승리’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방침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웅적 승리. 즉, 고난을 넘어서는 행위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그리고 플레이어가 이를 어떻게 극복하도록 할 것인가에 가장 많은 고민을 들였다는 점이다. 자연스레 고난을 마주하고 플레이어의 선택이 결과를 낳고. 이를 통해서 고난을 극복하는 플레이가 핵심이다. 따라서 다키스트 던전 2는 플레이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확률을 조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모든 공격은 변수 없이 확정적으로 적중하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는 어느 정도는 플레이어가 예상한 형태로 진행된다. 사전에 수립한 전략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한편, 토큰 시스템과 스킬 업그레이드의 조합을 통해서 플레이어의 전략 / 전술이 전작과 비교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확률적인 요소는 ‘지옥으로의 로드트립’이라는 컨셉에 맞춰서 조율이 이루어졌다. 다키스트 던전 2의 게임 플레이를 구성하는 변수들은 무작위 생성을 통해서 제공된다. 하나의 ‘런’으로 구성된 플레이가 자리하며, 플레이어들은 마차에 올라타고 무작위로 배치되는 이벤트와 적들을 마주하는 구조를 택했다. 이러한 점에서 보자면, 다키스트 던전 2는 확률과 변수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전작과는 다른 지향점을 가진다. 확률의 범위를 조금씩 좁혀나가는 것. 또는 반복 플레이를 통해서 통제하는 데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수립한 전략과 전술을 이용해 확률과 맞서는 데에 코어 게임 플레이를 집중한다. 다만, 전략과 전술이 수립되고. 육성이 완료된 상태에서는 전투 자체가 루틴을 갖기 마련이다. 토큰 시스템으로 변경이 되면서 전투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도 줄어들었고 스트레스 관리도 사라지며 전투 과정 자체는 어느 정도 고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모든 것이 통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개발진은 여기서 캐릭터간의 관계를 플레이어가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위치시켰다.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장치로 캐릭터 관계를 넣어두면서 전투와 이후의 플레이는 플레이어의 예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게임 플레이 과정에서 캐릭터들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전투를 벌이기 어려운 고난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전작의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가늠이 안되는 게임 플레이 시간 / 그라인딩 과정은 거리가 그리 길지 않은 ‘런’을 통해서 보완됐다. 전작 대비 한 번의 플레이 시간 자체는 짧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무작위로 구성된 요소들이 고난으로 제시되고 플레이어가 자신의 구상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 핵심인 셈이다. 반복 플레이에서 누적되는 요소들은 마을이 아니라 ‘캐릭터’에게 집중한다. 이 또한 개발진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전작이 대략적인 세계관이나 분위기에만 집중했다면, 후속작에서는 각 캐릭터들을 세부적으로 설정하고 활용한다는 의도이기도 하다. 플레이가 누적되면서 캐릭터의 능력이 강화되는 것과 함께, 캐릭터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제시되는 것이 대표적인 요소다. 전작의 영웅들은 이제 이름으로 불리며, 인적 자원이 아니라 고난을 극복하고 성취하는 히어로에 가깝게 다뤄진다. 런의 반복을 하는 과정에서 캐릭터들은 각자의 이야기와 관계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며 캐릭터 자체의 매력과 설득력을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인적 자원에서 어떠한 기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되는 과정과 같다. 이렇게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과 여기에 곁들여서 세계를 여행한다는 가치는 다키스트 던전 2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지향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마을 하나에서 이야기가 끝났던 전작과 다르게, 다키스트 던전의 세계를 한층 더 넓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얼리 액세스 기간 동안 다키스트 던전 2가 지향했던 변화들은 제대로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흥행과는 별개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개발진이 구축했던 플레이들은 각 요소들이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캐릭터들의 이야기와 함께, 역경을 넘어 승리라는 쾌감을 제공하는 것에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결국, 게임 플레이가 바뀌었어도 ‘도전과 영웅적인 승리’라는 가치는 다키스트 던전 2에서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메커닉이나 실제 게임 플레이 양상이 크게 바뀌기는 했지만, 개발진이 제시하고자 했던 가치는 여전하다. 갑작스레 큰 성공을 거둔 인디 타이틀틀이 시리즈로 더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만들었고, 다방면으로 확장될 수 있는 여지를 명확하게 남기고 있다. 그리고 현재. 다키스트 던전 2는 현재 준비 중인 무료 업데이트를 통해서 전작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결에 자리한 신규 게임 모드 ‘킹덤스’를 준비 중에 있다. 다키스트 던전 2의 원래 모드가 개발진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었다면, 킹덤스의 신규 모드는 전작을 플레이 했던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들인 결과처럼 보인다. 전작의 영지 관리와 다키스트 던전 2의 플레이가 어느 정도 합쳐진 신규 모드는 다키스트 던전 2와는 다른 또 다른 변화이기도 하다. 2021년 에픽 게임즈에서 얼리 액세스를 출시한 이후 정식 발매까지 3년의 시간이 걸린 만큼, 이제 월드 전반을 더 확장한다는 의도에 맞춰 변화를 가미했다. 그간 쌓아온 것들을 바탕으로 세계와 캐릭터. 그리고 여러 게임 플레이를 동시에 잡겠다는 의도다. 전작의 코어 플레이였던 영지 관리는 그 개념을 변용해 킹덤스에 들어갔으며, 그간 런을 통해 이야기를 쌓은 캐릭터들은 해당 모드에서 전작과 마찬가지로 인적 자원과 같이 다뤄진다. 전작에서 아쉬웠던 점들을 기존 모드의 게임 플레이에서 보충했던 만큼, 이후에는 플레이어의 니즈에 맞춰 관리적인 측면을 늘리겠다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정식 출시 이후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다키스트 던전 2의 변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전작의 거대한 진입 장벽이 되었던 변수를 조율하는 한편, 한 번의 플레이 시간을 낮추는 결정. 그리고 형태가 크게 달라졌음에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고난을 극복하며 달성하는 영웅적 승리’를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고민이 들어가 있다. 그렇기에 다키스트 던전 2는 이 영웅적 승리가 게임 세계관 측면에서 보다 설득력을 갖도록 만들기 위한 과정인 것이며, 동시에 영웅적 승리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맛볼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기 위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두 작품에서 이 가치는 그대로 계승되어 있다. 단지 형태가 다를 뿐이다. 플레이어가 고난을 마주하고 극복하도록 만드는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의 방법론. 고난을 극복하고 영웅적 승리를 달성했을 때의 경험. 이것이 같은 방향에서 자리하고 있기에, 다키스트 던전 2를 후속작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정필권 농부이자 제빵사이자 바리스타. 현재는 게임 기자로 글을 쓴 지 8년차 입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게임적 리얼리즘: "제3의 시간"과 다이성(多异性)의 순간
리얼리즘의 탄생은 근대 이래 과학주의의 확산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문화의 다양성, 사회적 상호작용의 게임화는 리얼리즘과 과학주의 간 긴밀한 관계를 위협하고 있고, 이로 인해 우리는 리얼리즘이란 것에 대해 다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즈마 히로키(東浩紀)의 ‘게임적 리얼리즘(ゲーム的リアリズム)’ 이론은 그 안에 이론적 균열과 논리적 모순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로하여금 리얼리즘 내러티브라는 문제와 침묵하는 독자를 자율적인 행위자로 바꾸는 게이머 문제를 사고하도록 해주었다. < Back 게임적 리얼리즘: "제3의 시간"과 다이성(多异性)의 순간 12 GG Vol. 23. 6. 10. 게임적 리얼리즘: "제3의 시간"과 다이성(多异性) [1] 의 순간 游戏性现实主义:“第三时间”与多异性时刻 [2] 리얼리즘의 탄생은 근대 이래 과학주의의 확산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문화의 다양성, 사회적 상호작용의 게임화는 리얼리즘과 과학주의 간 긴밀한 관계를 위협하고 있고, 이로 인해 우리는 리얼리즘이란 것에 대해 다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즈마 히로키(東浩紀)의 ‘게임적 리얼리즘(ゲーム的リアリズム)’ 이론은 그 안에 이론적 균열과 논리적 모순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로하여금 리얼리즘 내러티브라는 문제와 침묵하는 독자를 자율적인 행위자로 바꾸는 게이머 문제를 사고하도록 해주었다. 디지털 게임 속에서 리얼리즘적인 스토리 시간과 내러티브적 시간이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읽는 시간 즉 ‘제3의 시간’, ‘노는’ 시간이 구해진 것이다. 실제 세계로부터의 신체적인 충동이 게임 행동의 핵심으로 전환되고, 리얼리즘 내러티브의 정신적 이끔이 게임적 리얼리즘의 감각적 이끔으로 대체된다. 행동을 주도하는 의미생성 방식이 그 핵심이 되는 것이다. 게이머는 더 이상 세계의 사물 뒤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사람들의 육체가 존재하는 방식처럼 세계의 사물 자체에 놓이게 됐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리얼리즘 비디오게임의 디자인, 소비, 상벌, 인식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일종의 파노라마적인 지식의 환각을 제공하고, 다른 한편으로 게이머는 신체의 감각에 빠져 파노라마 지식 환각의 의미를 조각화, 껍데기화하는 것에 전념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비디오 게임 내러티브에서 게이머의 행동 중 어느 것도 상징적인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며, 불안정한 ‘다이성’을 나타나게 된다. 이제 가상현실은 메타스페이스에 도달하였고, 이곳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게임적 방식’으로 개인의 일상 경험에 몰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험은 이제 거짓이나 상상이 아니라, ‘리얼’이다. 즉, 인류의 지식에서 배제됐던 ‘게임’은 “자유의지”(Immanuel Kant), “심리상태의 경계”(Friedrich von Schiller), 혹은 “정력의 과잉”(Herbert Spencer)의 게임이 되고, 메타버스 시대에 새로운 지적 경험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즉 “게임을 통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게임 자체가 지식”이 됐음을 가리킨다. 이에 따라 메타버스는 일상의 잉여로서의 ‘놀이’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 인류 일상의 이념을 변화시켰다. 세 가지 리얼리즘과 게임적 리얼리즘의 ‘캐릭터 독립(角色独立)’ 게임적 리얼리즘은 일본 연구자 아즈마 히로키가 창안한 개념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이 개념의 정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의 글이나 오오츠카 에이지(大冢英志)와의 대담을 통해 이 개념의 의미를 추론할 수 있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 동물화된 포스트모던>에서 아즈마 히로키는 세 가지 리얼리즘을 언급했다. 그는 오오츠카 에이지의 연구가 자연주의 리얼리즘과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이라는 두 가지 리얼리즘을 도출했다고 봤다. 자연주의 리얼리즘이 꼭 에밀 졸라(Émile Zola)로 대표되는 자연주의 유파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일본에서 라이트노벨이 등장하기 전에 존재했던 순수문학의 한 형태로서 ‘사소설(私小說)’을 지칭한다. 오오츠카 에이지에 따르면 사소설은 모두 상대적으로 안정적 발화 주체인 ‘나’를 갖고 있으며, ‘나’가 스토리의 논리와 구조에 따라 발화하는 소설이라고 언급한다. 한편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은 일본에서 새롭게 등장한 라이트노벨을 지향하는데, 이러한 종류의 소설에는 등장인물이나 캐릭터, 스토리, 플롯을 통제할 수 있는 안정적인 발화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라이트노벨의) 작가는 캐릭터 자체에 얽매이는데, 오타쿠들이 애정하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 속의 ‘2차원’ 캐릭터 자체가 이야기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라이트노벨은 사소설이 한 명의 ‘나’로 소설을 통제한다는 의식을 바꿔버렸다. 아즈마 히로키는 오오츠카 에이지의 두 가지 리얼리즘 구분으로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자연주의 리얼리즘이든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이든 작금의 현실을 완전히 드러내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아즈마 히로키는 이 새로운 리얼리즘을 ‘게임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면서 세 가지 리얼리즘의 분류를 완성했다. 그렇다면 게임적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아즈마 히로키에 따르면 게임적 리얼리즘과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은 모두 ‘캐릭터’가 핵심이지만, 게임적 리얼리즘의 경우 캐릭터의 메타서사 기능(메타적 스토리성)에 기초한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핵심포인트는 여전히 “캐릭터 독립”이라는 것이다. 즉, 이야기(故事)는 플롯(情节)이나 현실 때문에 설정되는 게 아니라, 어떤 캐릭터를 위해서 설정되는 것이다. 독자들이 그 이야기를 읽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감동적인 순간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 속 캐릭터의 삶과 상태를 느끼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캐릭터 독립이란 사실 캐릭터가 게임적으로 존재함을 가리키며, 이는 게이머나 독자가 자유롭게 캐릭터를 이용한 결과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아즈마 히로키가 말하는 ‘메타서사’를 구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게임 행위로부터 비롯된다. 곧 소위 게임적 리얼리즘이란 신체와 캐릭터 사이의 경계를 제거하고, 게이머/독자를 텍스트의 일원으로 만드는 방식——게이머/독자의 캐릭터화——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캐릭터’ 독립의 관점으로부터 설정되는 게임적 리얼리즘에서 중요한 측면을 망각하는데, 공교롭게도 ‘캐릭터 독립’은 독자가 읽고 소비할 수 있는 권력을 행사하는 결과라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독자가 캐릭터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갖기 때문에 스토리 설정의 내적인 동력이 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독자가 원하는대로 캐릭터를 위한 스토리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독자는 침묵하는 독서인이 아니라 ‘게임을 열독하는’ “게이머”가 된다. 따라서 ‘캐릭터 독립’은 읽는 행위의 문제를 지향하는데, 독자들이 이와 같은 캐릭터 독립을 원하기 때문에 캐릭터는 독립할 것이란 점이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텍스트에서 독자의 의지는 얼마든지 이야기의 의지(그것이 존재한다면)를 바꿀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적 리얼리즘은 사람과 캐릭터가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며, 즉 독자(게이머)가 캐릭터 속으로 완전히 녹아드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에서도 발생했지만, 가상현실 시대에는 더욱 전형적으로 변화했다. 가상현실 서사 [3] 에서는 인간과 캐릭터의 구별이 모호해졌다. 그들의 삶의 경계는 점차 통합되며, 이와 같은 인간과 머신의 공생은 새로운 캐릭터 의식을 낳았다. 근대 이후 과학적 진실에 대한 요구가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을, 내러티브 속 캐릭터의 ‘재생’에 대한 포스트모던 사회의 요구가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을, 가상현실 시대에 인간과 가상 캐릭터의 일체화가 게임적 리얼리즘을 만들어낸 것이다. 게임적 리얼리즘은 일종의 새로운 현실 경험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가상의 형식으로 실제의 신체적/정신적 경험을 창조하기 때문에 가상세계의 경험은 실제 생활 경험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뿌리는 바로 ‘게이머’ 자체다. 게이머는 캐릭터가 담고 있는 의미를 잠재적으로 구성하고, 실제 텍스트 활용의 과정에서 이와 같은 텍스트 활용 과정을 게임적 리얼리즘의 핵심으로 만들어버린다. 바로 여기서 게임적 리얼리즘은 단순히 장르(genre)나 형식(style)이 아니라, 가상현실 자체를 지향하는데, 이때 ‘게임적 리얼리즘’은 가상현실의 철학 이념과 스토리텔링의 규칙을 의미하게 된다. 여기서 ‘캐릭터 독립’이란 곧 읽는 행위의 문제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캐릭터 독립은 왜 발생할까? 그것은 독자가 이와 같은 독립을 원하기 때문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의 2차원적 내러티브에서 캐릭터가 꼭 이야기에 속하는 것은 아니며, 자율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동시에 그는 이야기가 결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 역시 아니라는 점, 즉 라이트노벨에서는 캐릭터의 성격이 플롯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라이트노벨은 사소설과는 다르다. 사소설이 작가 중심적이라면, 라이트노벨은 독자 중심적이다. 캐릭터에 대한 독자들의 활용(물론 완전히 자유로운 활용은 아니다)은 캐릭터에게 자율적인 생명을 불어넣으며, 모든 캐릭터들은 각기 다른 사람들이 중복해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자신을 바꾼다. “제3의 시간” : 사람의 게임, 게임을 즐기는 사람에서 게이머로 나아가 게임적 리얼리즘은 캐릭터의 독립을 통해 그동안 매체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독서 행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사실 가상현실 시대의 비디오 게임 서사는 언제나 행동 주도로 이뤄지며, 인간과 캐릭터와의 간극이 가상현실 서사 속에서 사라지게 만든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메타버스적 ‘게임형태’는 인류 생존의 선형적 역사를 폭발시켜 현재진행형으로 변화시켰다. 전통적인 사실주의 서사는 이야기 발생 시간과 서사가 차지하는 시간으로 이뤄져 있다. 이것이 서사의 첫 번째 시간(이야기 시간)과 두 번째 시간(서사 시간)을 형성한다. 서사 시간은 문학의 핵심이며, 그것은 이야기 시간이 작품에 나타나는 방식을 제어한다. 상대적으로 리얼리즘 텍스트는 스토리텔링 시간과 스토리텔링 시간의 조화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는 반면, 모더니즘 텍스트는 오히려 서사 시간과 균형을 맞추는 데 더 많이 사용된다. 따라서 다니엘 벨(Daniel Bell) [4] 은 모더니즘의 특징은 현장성(거리의 소멸, eclipse of distance), 즉 독자로하여금 이야기꾼의 말버릇이나 말투가 독자에게 들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전통 소설들은 대체로 이야기 시간과 서사 시간의 조합이다. 하지만 전통 서사에서 읽는 시간——이를 ‘제3의 시간’이라고 하자——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며, 사람들은 ‘제3의 시간’을 ‘제로 시간’ [5] 으로 가정한다. 그러나 반대로 게임적 리얼리즘은 ‘제3의 시간’을 위주로 하여 텍스트의 사용 활동(제1의 시간)과 텍스트의 서사 행동(제2의 시간)이 함께 새로운 ‘게임 행위’(제3의시간)를 구성한다. ‘제3의 시간’ 안에서 신체의 충동이 게임행위의 핵심으로 변화하고, 게임적 리얼리즘의 ‘주인공’이 ‘캐릭터’에서 ‘플레이어’로 바뀐다. 서사자로부터 ‘서사’의 핵심적 지위는 플레이어의 ‘플레이’로 바뀌게 된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세계의 사물 뒤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탐구하지 않으며, 실제 삶에서 사람들의 신체가 존재하는 방식처럼 세계의 사물 자체에 놓이게 된다. 전통적인 텍스트에서 독자의 존재는 텍스트 입장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볼프강 이저(Wolfgang Iser)는 어떠한 이야기든 이상화된 암묵적 독자를 설정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암시적 독자(Der implizierte Leser)’ [6] 라는 관점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암시적 독자는 휴머니즘의 주체론적 환상을 더 많이 보여준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텍스트를 읽는 과정을 탐색했다. 그는 텍스트에 대해 “to be or to have”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위에 ‘쓰기 가능한 텍스트(writerly text)’의 범주를 제시했다. 하지만 ‘쓰기 가능한 텍스트’는 텍스트 의미의 틈새를 통해 구축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읽기 행위에서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바르트는 읽기를 일종의 성적 활동으로 간주하고, 그것의 은밀성만 강조했을 뿐 텍스트 읽기 자체에 주체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미학과 독자반응이론, 버밍엄 학파의 암호에 대한 강조를 수용하는 것은 사실 “텍스트 의미의 실현”이나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태도”에 중점을 두는 것이며, 제3의 시간이 서사 측면에서 제1의 시간이나 제2의 시간을 주도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독자, 관중 등은 ‘플레이어’와 같지 않다. 전자(독자)는 텍스트 뒤에만 나타날 수 있고, 후자(관중)는 텍스트 서사의 새로운 행동을 발현한다. 우리가 오직 게임적 리얼리즘 텍스트, 특히 비디오게임 텍스트 속으로 들어갈 때에만, ‘제3의 시간’은 완전히 구원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인류의 게임 발전은 세 가지 형태를 거쳤다. 최초는 낮에 사냥하고 밤에 사냥을 모방하는 ‘인간의 놀이’ 형태로 출현했다. 다음으로는 ‘놀이하는 인간’이 나타났는데, 프리드리히 폰 실러는 이를 두고 이질적 산업화 세계에서 게임을 통해 규율과 이질성에 저항하는 것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놀이란 곧 목적 없는 합목적성, 불규칙한 규율성, 자유의 상징(놀이 충동)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의 놀이’나 ‘놀이하는 인간’을 연구하지 않는다. ‘플레이어의 게임’, 즉 ‘플레이’를 핵심으로 하는 게임을 연구한다. 플레이란 텍스트를 즐기는 것이자 사용하는 것인데, 이는 곧 ‘제3의 시간’의 중심화를 형성한다. 이때 ‘플레이어’는 더 이상 텍스트 밖의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서사적 행동 속의 캐릭터라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전통 서사와 게임 서사는 매우 다르며, 후자는 전통 서사에 없는 ‘제3의 시간’ 서사를 만든다. 전통 서사는 독자들이 서사 시간을 통해 이야기 시간에 몰입하게 하고, 자신의 현실 시간을 잊게 한다. 따라서 전통 서사의 이야기 시간과 서사 시간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이야기의 폐쇄성을 형성하고, 일단 이야기가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나고 독자의 읽는 시간은 껍데기가 된다. ‘독자’는 설정적인 캐릭터가 되고, 읽기란 개인의 생생한 삶의 경험을 착취하는 과정이 된다. 말하자면 전통 서사는 텍스트의 독서자/사용자를 구조적으로 배척한다. 게임 서사는 이와 반대인데, 그것의 심오함은 ‘제3의 시간’이 이야기 시간을 빌어 서사 시간을 소멸시켜버린다는 데 있다. 사람들이 완전히 현실로 돌아오게 하거나, 혹은 현실의 시간이 거대한 작용을 하도록 하는 것인데, 게임은 이야기 시간과 서사 시간이 끝날 때에야 비로소 진짜 시작된다. 가상현실 시대, 게임의 ‘제3의 시간’은 더욱 풍부하고 생동감 있게 변화했다. 첫째, 그것은 서사가 단순한 인과적 사슬을 따라가게 하지 않고, 대신 이야기에 몰입한 ‘행동자’에게 이야기가 벌어지는 공간적 상황을 느끼게 함으로써 이야기의 시간적 논리를 공간적 논리로 대체시킨다. 전통적인 이야기에서 인간과 이야기는 표현하고 표현되는 관계인 반면, 가상현실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과 이야기는 함께 행동하는 관계가 된다. 즉 사람들이 이야기를 구동하며, 이야기가 사람을 인도하지 않는다. 둘째, 플레이어가 위탁한 ‘아바타’의 함의는 은유가 아니며, 유일무이한 개인의 완전한 대표 그 자체다. 따라서 게임 서사의 이야기는 ‘과거의 시간’을 다루지 않으며, 일종의 ‘현재진행형’이다. 플롯이 아니라 게임 캐릭터의 행동을 이끌어냄으로써 보다 넓은 상상력과 다양한 형태의 캐릭터 인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게임 서사의 핵심은 게임 텍스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게임을 진행하고 어떻게 게임 속에서 게임을 완성하느냐에 딸려 있다. 간단히 말해 오직 게임의 행동만이 독립적인 인간의 자유로운 태도를 설정——즉, 놀이가 인간의 모든 것을 구성한다——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인물의 운명은 더 이상 미리 짜여지지 않고 ‘사건화’된다. 여기서 가상현실 서사는 개개인이 자신만의 ‘작은 이야기’를 생성하고, 각각의 ‘작은 이야기’는 모두 결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침잠하는 사건이며, 영원히 ‘진행중’인 사건이란 점이 ‘제3의 시간’의 핵심이 된다. 그러니까 제3의 시간이란 영원히 일어나는 이야기를 가정한 시간이다. 분명히도 ‘제3의 시간’은 우리가 게임의 철학적 함의를 새로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게임은 인간의 이성적 생활의 ‘평안함’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 끼워져 있는 의제이다. 게임이야말로 상징계와 상상계에 의해 완전히 정복될 수 없는 진실의 일부를 폭로한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게임이 철학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이라는 사실이다. 19세기 이래 인류의 이성주의에 대한 강한 공감과 자제, 자율, 자각을 둘러싼 초자아적인 욕망은 게임의 사회정치적 함의를 배양해왔다. ‘게임’은 ‘게임 플레이를 하는 사람’의 통제력을 부각시킴으로써 이성주의 시대에 잠재된 ‘비인간화의 충동’, 즉 이질적인 노동규율에 완전히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려는 무의식적인 충동을 드러낸다. 여기서 ‘비인간화’란 인간의 탈인간화가 아니라, 사회 내에서 규정되는 방식보다 자신의 신체적 경험을 따르는 ‘인간화’, 즉 ‘비사회적 인간화’를 가리킨다. 전통적인 철학, 사회학, 인류학 연구 시야에서 ‘게임’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여전히 ‘면대면’의 인간 활동이며, 오늘날까지도 ‘게임’은 가상현실의 이야기 공간이다. 전통적 문화비평, 또는 미학 연구자의 관점에서 게임은 ‘서사’의 어떤 도움으로 껍데기를 구축하는 쾌감적 행동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게임은 일종의 ‘서사’로서 이야기의 시간적 단서들을 수정하고, 플레이어들의 게임 활동 중 ‘사건적 행동’의 문을 열어준다. 문화연구에서 ‘게임’(아케이드, 휘파람 부는 소년, 해변의 서퍼 등)은 청년 저항성의 표징이지만, 게임의 주이상스(jouissance) [7] 를 보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확실성에 대한 미련(결국 저항은 확실성을 내포한 행위이므로)이다. 문화연구에서 말하는 저항이란 어디까지나 확정적인 행위인데, 게임은 소환되지 않은 신체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경험이다. ‘ 다이성’의 순간과 플레이어로서의 나 제3의 시간에서 이야기는 이미 발생한 일(과거)에서 발생하고 있는 과정(현재진행)으로 바뀐다. 즉, 가상현실의 새로운 의미 표현의 물꼬를 튼 것(다의성, multi-paradox)이다. 이와 같은 다이성 속에서 ‘플레이어’가 함유하고 있는 뜻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내가 보기에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가상현실 시대에 게임적 리얼리즘의 ‘제3의 시간’은 다이성의 순간을 창조할 수 있다. 즉 여기서 다양한 가능성과 다양한 불가능성이 충돌의 순간을 교차하게 된다. ‘다이성’은 각종 모순과 역설의 동시발생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고정적 의미, 즉 역사적으로 안정적이고 통일적인 이해, 혹은 미리 결정된 플롯화 서사가 아니다. 일이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고 심지어 보고 싶지 않은 일이 발생하거나, 일어나길 바라는 일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전통 서사에서 이야기의 결말(이야기의 끝)과 엔딩(서사의 완료)은 따로 존재한다. 게다가 결과는 이미 일어났지만 엔딩이 여전히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엔딩과 결말의 분립은 독자의 ‘제3의 시간’을 ‘규칙화’, ‘권력화’, ‘질서화’하겠다는 전통 서사의 야망을 보여준다. 비디오 게임 서사와 전통적인 서사는 정반대인데, 게임 중의 서사 시간과 ‘제3의 시간’은 교묘하게 접목되고 스토리텔링의 시간은 여기에서 보류된다. 따라서 많은 슈팅 게임들이 반전과 평화를 말하지만 서사 시간과 ‘제3의 시간’은 이야기 시간을 빼앗고 침잠하여, 플레이어들을 끊임없이 ‘제3의 시간’의 살육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엔딩이 일어나는 순간은 바로 ‘제3의 시간’의 반복적인 중첩이 이뤄지는 순간이며, 스토리에서 사망한 플레이어가 계속해서 플레이해야 게임의 의의가 진정으로 풀리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하츠 오브 아이언 4(Hearts of Iron IV)’는 “1936~49년 간 세계 어느 나라든 정치·경제·첩보·외교·전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 기간의 판도를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많은 플레이어들은 히틀러를 선택해 전 세계를 점령하는 걸 선택한다……. 확실히 그것은 서사 시간과 스토리텔링 시간이 ‘제3의 시간’을 규율하는 게 아니라, ‘제3의 시간’이 독보적 시간이 됐음을 가리킨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가 어디에서 끝나느냐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어디에서 다시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로 인해 플레이어의 선택권은 ‘제3의 시간’이 되며, 그것은 플레이어가 게임의 스토리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자신의 쾌락을 구축하는 것으로 구현된다. 다시 말해, 게임 스토리의 시간과 서사 시간 사이의 모든 의미는 ‘제3의 시간’을 활성화하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플레이는 ‘제3의 시간’을 진정으로 텍스트 주도의 시간으로 만들고, 플레이어는 다이성의 주체, 즉 홑따옴표만 있는 “‘나”가 되는 것이다. 홑따옴표 ‘나는 처음엔 실제 사람이지만, 그 후에는 게임 속 캐릭터이다. 다시 말해 ‘나는 ‘나와 캐릭터’의 융합체이며, 이는 플레이어의 정의를 구성한다. 즉 ‘나는 ‘제3의 시간’을 게임 속으로 갖고 들어가, 모종의 캐릭터와 융합된다. 이것이 바로 ‘게임 텍스트’를 전통 서사 텍스트와 다르게 만드는 부분이다. 전통적인 서사 텍스트는 작품을 시작하는 첫 글자부터 끝맺는 마지막 글자까지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책의 앞표지부터 마지막까지의 전체 내용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 텍스트는 소위 ‘과학 텍스트(算学文本)’ 즉 기술적 인터페이스 텍스트일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 캐릭터 텍스트 즉 ‘나의 텍스트’라는 두 번째 측면의 텍스트이기도 하다. 물론 게임 텍스트는 게임 제작사가 생산해낸 일부이며, 플레이어와 더불어 플레이를 할 때 ‘제3의 시간’을 가지고 게임 속으로 들어가 캐릭터가 융합된 부분의 모음이다. 다시 말해 게임 텍스트는 동적 텍스트, 즉 플레이의 과정으로서의 텍스트인 것이다. 그럼 플레이어는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플레이어는 하나의 ‘잉여인(空余人)’ [8] 이다. ‘플레이어’는 게임 진행 중에 역설적인 경험을 분출해냄으로써 일종의 ‘잉여인’의 얼굴을 보여준다.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은 <벌거벗음(Nudities)>의 ‘페르소나 없는 정체성’이라는 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체가 순수하게 생물적인 비사회적 신분으로 귀결될 때, 그것은 각종 가면을 쓰고 인터넷상에서 제2, 제3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도 부여받는다.” 여기서 ‘나’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의 남아있는 부호로서의 신체인 플레이어 ‘나의 쾌락은 시비의 의의가 지배한다. 또 다른 텍스트를 맞닥뜨리면 ‘나는 곧 다른 얼굴이 될 수도 있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플레이어가 여전히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하는 ‘이드(id)’, 즉 한 사람 마음 속 욕망의 쾌감을 깊숙이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스나이퍼 엘리트(Sniper Elit)>에서 모든 플레이어는 살인자이지만 동시에 플레이어이기도 하다. 한데 게임은 이미 알고 있는 비밀을 모르는 척하는 방식일 뿐이다. 살인은 게임을 방불케 하지만 저격하는 쾌락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통해 살인이라는 고통스러운 일과 즐겁게 지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좀 더 깊이 분석해보면, ‘플레이어’가 또 하나의 “역사적 현실의 국외자”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편으로는 플레이어는 그 안에서 플레이의 가치를 점수나 장비, 등급을 통과해 창조하려고 노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가치의 표지물이 무의미한 행동(플레이)의 내적 뒷받침일 뿐, 플레이어의 플레이는 그런 가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강렬한 ‘씽킹 프롬 씽커(Thinking from Thinker)’를 보여준다. 그것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허무에 대항하는 것이고,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아즈마 히로키의 게임적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은 다음의 측면에서 철저하게 개조됐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캐릭터 독립으로부터 독자의 욕구가 게임적 리얼리즘에 대한 환원적이고 규정적인 성질을 도출하고, 이를 통해 비디오 게이머들이 서사의 시간에 대항하는 이와 같은 행동을 ‘제3의 시간’이란 개념으로 보여줬다. 이 지점에서 플레이 행동은 해방됐으며, 게임적 리얼리즘은 일종의 불안정한 자아를 지향하고, 케릭터와 안정적 세계 사이에 항구적인 모순과 대립을 지향하게 됐다. 한 사람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을 때, 그의 심리 상태는 안정적이고 합리적이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순간, 게임 속의 불안정한 ‘나로 변모할 수 있다. 그것은 살인의 쾌락, 돌격하는 용감함, 숨겨놓은 비열함, 죽은 동료들 가운데에서도 홀로 살아남았다는 기쁜, 그리고 전우를 구해냈다는 신성함 등을 아우른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다이성의 자아가 이렇게 터무니없이 강림해오는 것이다. 바깥 세계에는 안정성에 대한 갈망이 있지만, 게임의 ‘제3의 시간’은 불안정성에 대한 갈망으로 구축되어 게임의 현실적인 역설을 형성한다. 게임 규칙에 대한 준수와 세계의 결핍을 플레이할 가능성에 대한 싫증 역시 역설적이다. ‘게임적 리얼리즘의 순간’은 바로 ‘다이성’의 순간이다. 이 세계는 플레이할 만한 것들이 결핍되어 있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규정된 동작을 따라야 하며, 이는 곧 ‘플레이’에 대한 주도적인 욕망을 품게 한다. 하지만 게임은 플레이할 수 있고, 규정적인 것에 대한 파괴이며, 동시에 규정성을 내재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여러 역설들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게임적 리얼리즘은 역설적인 현실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플레이어’의 얼굴은 ‘다이성’의 형태를 띠게 된다. 그것은 플레이어로서 규칙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한다. 그것은 ‘현실’을 이미지의 세계로 분해하고, 이미지 차원에서 주변을 맴도는 것을 지향한다. 또한 그것은 물질적인 원칙을 게임의 정신 활동 속에 포함시킨다. ‘타자와 나’를 수면 위로 부상시키고, 주체의 안정적인 함의를 제거하여 게임적 리얼리즘 속에서 생명력있고 불확실한 상태에 있는 ‘어떤 것’으로 변화시킨다. 플레이어의 이와 같은 불안정성 때문에 게임산업은 비로소 천편일률적 충돌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것은 ‘비인간/폐인’이라는 의식을 고수하면서 인간의 역사적 활동에 대해 ‘현장에 내가 없는 척’ 가장하는 태도를 취해 가상현실 경험과 에고의 장벽에 빠져들게 한다. 디지털 세계의 파괴자로서 그것은 파괴력의 위대함을 부각시키고, 역사적 현실세계의 유령으로써 어둠 속에서 흔들리며 떨어질 것 같은(摇摇欲坠) 등불로 남겨져 있다. 그것은 침묵하고 있지만, 게임은 시끄럽게 울리기도 한다. 게임 세계가 닫히는 순간 그것은 크게 소리를 낸다. *본문출처 : 《난징사회과학(南京社会科学)》 2023년 제3기에 실린 본문은 1만3천 자로 이를 축약하였음. [1] 역주 : 원문의 ‘多异性’은 저자가 창안한 학술 어휘로 보인다. 영어로 하면 multi-difference 정도의 뜻을 갖는데, 이러한 의미를 정확하게 지시하는 한국어 어휘가 없어 한자 독음 그대로 직역했다. [2] 国家社科基金重大项目“虚拟现实媒介叙事研究”(21&ZD327) [3] 역주 : 국내에서 아즈마 히로키의 개념을 소개하는 텍스트들은 ‘작은 이야기’와 ‘커다란 이야기(거대서사)’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이를 각각 ‘故事’와 ‘叙事’로 구별하고 있다. 여기서는 원문의 故事는 ‘이야기’로, 叙事는 ‘서사’로 번역하였다. [4] 역주 : 다니엘 벨은 미국의 사회학자로, 《이데올로기의 종언(The End of Ideology)》(1960년)을 통해 포스트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이야기했고, 《탈산업사회의 도래(The Coming of the Post-Industrial Society)》(1973년)를 통해 '제조업 경제'에서 '과학기술에 기반한 경제'로의 전환을 전망했다.(위키피디아 참고) [5] 역주 :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가 창안한 ‘ti con zero’를 지칭한다. 그의 단편소설집 <티 제로(ti con zero)>(1967) 속 단편들은 수학과 시적 상상력이 혼합된 시공간과 우주의 진화를 다룬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Le città invisibili)>(1972)은 기존 이야기들의 시간중심 서사를 무너뜨리고, 공간 중심의 서사를 펼친다. 독자들에게 일정한 권한을 주되, 그 안에서 여러 의미를 갖는 내용을 담아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위키피디아, amazon.com 등 참고) [6] 역주 : 볼프강 이저는 독일의 문학 연구자이자 비평가로, 독자반응비평 이론을 연구했다. 이저에 따르면, 구조화된 행위로서의 독자의 역할은 독자가 텍스트 구조를 상상 속으로 수렴하게 하여 텍스트 구조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보여준다. 독자가 읽기 과정에 참여할 때 텍스트 구조가 연결되고 살아나며, 독자는 역사적 현실과 자신의 경험, 독자로서의 역할 수용 사이의 긴장 속에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7] 역주 : 저자는 라캉 이론을 통해 게임적 쾌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라캉에 따르면 주이상스는 강렬한 성적 쾌락인 동시에 쾌락원리 및 언어상징 너머의 전복(顚覆) 충동이다. 주이상스는 현실원칙을 파괴하기 때문에 결국 고통이 된다. 이때 주체는 분열적 상황에 빠지고, 대타자를 파괴하려는 강렬한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 [8] 역주 : 원문의 空余(공여)는 ‘남아돌다’를 뜻한다. 여기서는 空余人을 ‘잉여인’으로 번역했다. Tags: 번역 예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난카이대학 문학원 교수) 저우즈창, 周志强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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