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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폼 콘텐츠 유행이 우리에게 남긴 것

06

GG Vol. 

22. 6. 10.

1. 숏폼 콘텐츠와 연쇄적 소비 


바야흐로 짧은 콘텐츠가 유행하는 시대이다. 평균적으로 50분의 상영시간을 가진 TV 드라마는 15분 내외의 웹드라마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으며, 유튜브에는 ‘너덜트’나 ‘숏박스’ 같은 채널을 중심으로 3-4분 정도로 짧은 콩트들이 유행하고 있다. 게임 역시 짧게는 수십 시간, 길게는 몇 백 시간의 플레이 시간을 요하는 PC나 콘솔 게임보다는 1회 플레이 시간이 짧은 모바일 게임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최근에 벌어진 일은 아니며, 모빌리티를 무기로 하는 각종 플랫폼들이 기존의 하드웨어를 대체한 2000년대 후반 이후 지속화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72초TV’가 상영시간을 채널명으로 전면화 하여 인기를 끈 것은 숏폼 콘텐츠(Short form contents)의 승리를 상징하는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 모바일 시대 초압축 드라마의 표본을 제시한 ‘72초 TV’의 한 장면

이러한 숏폼 콘텐츠가 고전적인 다른 고전적인 콘텐츠보다 주목받는 것은 이의 주 소비층이 10대와 20대의 젊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유행에 민감하고 시간을 부족한 이들에게 짧은 콘텐츠는 부족한 여가시간의 틈을 메울 수 있는 스낵 컬쳐(snack culture)가 된다. 등하교길이나 화장실에 들르는 잠깐의 쉬는 시간에도 몇 분만 할애하면 게임 한 판과 동영상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숏폼 콘텐츠는 금세기의 여가 문화의 틈새를 파고 들었다. 이러한 숏폼 콘텐츠의 대부분이 SNS나 유튜브 등의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서비스 된다는 점에서 구매력이 부족한 젊은 세대들에게 잘 먹히는 콘텐츠가 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핵심적인 서사를 바로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숏폼 콘텐츠에는 전후 맥락이 생략되어도 상관없는 내용들이 주종을 이룬다. 짧은 콘텐츠 재생시간 속에서 완전하지 못한 서사를 갖춘 숏폼 콘텐츠들은 긴 설명이나 전후 관계에 대한 인과관계를 설명하기보다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형적인 소재를 본론부터 진행하는 방식을 취한다. 너덜트 채널의 첫 에피소드인 “당근마켓 남편들”은 거두절미하고 바로 중고거래 현장을 비춘다. 이 영상에서 공감대는 이미 해당 마켓들 통해 거래를 해본 기혼 남성들의 일상적 공감을 양분으로 삼아 전후의 맥락을 제거하고 거래 현장만 집중하여 짧은 상영 시간에 맞게 콘텐츠를 압축할 수 있게 해준다. 


* 너덜트의 〈당근마켓 남편들〉

일반적으로 숏폼 콘텐츠는 짧은 플레이 시간을 바탕으로 연쇄적인 콘텐츠 소비를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튜브나 페이스북의 숏폼 콘텐츠를 멍하게 반복적으로 여러 개 지켜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게임의 경우도 한 번 플레이하는 시간이 짧을 뿐이지 이를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면서 실제로 하드코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못지 않은 시간이 소모된다. 게임학자 예스퍼 율(Jesper Juul)은 〈캐주얼 레볼루션(Casual Revolution)〉에서 캐주얼 게이머들이 게임을 캐주얼하게 소비할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실제로는 상당한 시간을 소비하여 하드코어하게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사실을 실제 사용자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 바 있다. (예스퍼 율, 이정엽 역, 『캐주얼 게임: 비디오 게임과 플레이어의 재창조』,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콘텐츠의 연쇄적 소비가 트래픽을 불러일으켜 광고 수익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하 BM)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유저들이 사이트에 오래 머무를수록 수익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플랫폼은 어떤 특정한 콘텐츠를 소비하고 나서 고양된 감정으로 사이트를 떠나는 현상을 방지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하나의 콘텐츠 소비가 끝났을 때 다음 콘텐츠를 이어 보고 싶은 감정을 계속 유발해야 한다. 이는 게임으로 환원하면 짧은 플레이를 무수히 반복해서 쌓아나가는 방식에 해당될 것이다. 다만 비슷한 메커닉의 반복적인 플레이는 지루함을 유발하여 접속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여기에 캐릭터 성장 시스템과 BM을 연계시키는 방식이 사용되는 것이다. 

  


2. 숏폼 게임의 메커닉 축소과정과 비즈니스 모델


물론 처음부터 숏폼 형태의 게임과 BM이 초창기부터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PC나 콘솔 게임이 스마트폰 플랫폼으로 처음으로 전환되던 시점에는 키보드나 컨트롤러를 이용한 복잡한 컨트롤을 손가락을 이용한 터치로 단순하게 바꾸는 UI 차원의 시도가 먼저 이루어졌다. 이 때 통상적인 게임 장르는 그대로 이식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의 환경에 따라 게임 메커닉을 약간씩 변형하면서 이식된다. 


예를 들어 PC 게임 플랫폼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 중 하나인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가 모바일 플랫폼에서는 같은 AOS 장르로 이식되기보다는 약간의 변형을 거쳐 숏폼으로 변화하게 된다. 〈클래시 로얄(Clash Royale)〉은 통상적으로 CCG(Collectible Card Game)이나 RTS(Real-time Strategy) 장르로 분류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의 메커닉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이를 숏폼으로 축소한 게임이라 볼 수 있다. 


* 〈리그 오브 레전드〉 소환사의 협곡 지도와 〈클래시 로얄〉의 지도 

     

〈리그 오브 레전드〉의 가장 유명한 맵 “소환사의 협곡” 지도와 〈클래시 로얄〉의 지도를 비교하면 크게 3갈래로 갈려진 지도가 〈클래시 로얄〉에서는 2개의 다리를 중심으로 한 경로로 축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아군과 적군의 미니언들은 AI에 의해 자동으로 움직이고, 챔피언만 플레이어가 컨트롤 할 수 있지만, 〈클래시 로얄〉에서 플레이어는 각종 캐릭터의 처음 시작하는 위치만 지정할 수 있으며, 그 캐릭터의 개별 전투는 모두 AI에 의해 자동으로 진행된다. 또한 〈리그 오브 레전드〉는 특별히 정해진 플레이 타임이 존재하지 않지만 평균적으로 1회당 3-40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클래시 로얄〉은 처음 3분의 타임 어택과 추가 1분 30초의 타임 어택을 포함해 최대 1판이 4분 30초를 넘지 않게 디자인되어 있다. 다시 말해 〈클래시 로얄〉은 PC에서 사용되던 플레이어에 의한 복잡한 컨트롤을 최대한 줄이고, AI에 의한 자동전투를 극대화시키면서 플레이 타임을 거의 1/10로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클래시 로얄〉에서 더욱 강조된 부분은 각 캐릭터의 성장을 ‘카드 강화 시스템’을 통해 극대화 시켰다는 점이다. CCG 장르의 카드 강화 메커닉을 활용하여 자신의 카드가 성장하는 느낌을 부여하면, 그 카드의 효용을 실험해보고 싶어 다시 플레이를 시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의 덱이 8장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에 모든 성장을 진행하지 못하도록 강제할 수 있어 〈클래시 로얄〉의 BM은 그다지 노골적이지는 않은 편이다. 오히려 〈클래시 로얄〉은 현질을 통해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요소를 제한하여 게임의 밸런스를 훌륭하게 구현한 좋은 예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게임의 성공 이후 RTS의 AI 전투 시스템은 축소하고 카드 강화의 BM만 극대화 한 게임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남긴다. 실제 이 때에도 RTS적인 요소들이 대폭 축소되었기 때문에 이들을 동일한 장르로 분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방치형 이나 CCG로 불리는 현질 유도 게임은 현재에도 무수히 양산되고 있지만, 문제는 앞선 사례들에서 적절히 제한되었던 현질의 밸런스 붕괴를 막기 위한 적절한 제한 요소들은 차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3. BM의 전면화와 미학의 소외


물론 콘텐츠의 길이가 짧다고 해서 미학적으로 열등하다고 간주하긴 어렵다. 소설과 영화에서도 장편과 단편의 미학이 다르며, 단편은 장편이 구현하기 어려운 단일 플롯의 직접성과 단도직입적인 풍자 등을 통해 독립적인 미학을 쌓아왔던 것이다. 장대한 서사시와 촌철살인의 미학은 애초부터 목표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필요가 없다. 게임에서도 짧은 플레이 시간 내에 추구할 수 있는 한 판의 쾌감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플레이 타임을 축소시키는 과정에서 잘려나간 풍성한 서사, 전후의 맥락, 컷신, 텍스트, 맵의 디테일, 전략적 요소 뒤에 더 강조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플레이 과정에서 앞서 말한 고전적인 재미요소를 제거하고 BM만 남겨놓아도 플레이어가 잔존한다는 사실이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확인된 이상 게임 회사들은 굳이 어렵게 게임을 풍성하게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모바일 게임의 소프트 런칭 시스템(특정 국가 하나 정도만을 대상으로 게임을 시범적으로 출시하는 방식으로, 게임 회사들은 이를 통해 특정 메커닉의 잔존율(retention)을 실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잔존율 낮은 메커닉이나 BM은 도태시키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은 특정 메커닉과 BM의 잔존율을 아주 쉽게 테스트 할 수 있게 해주어, 노골적인 BM의 확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게임 내 퀘스트를 클리어 하기 위해 설정만 해놓으면 해당 퀘스트가 다 클리어된다거나, 별다른 스토리에 대한 설명도 없이 바로 사냥과 전투가 시작되는 게임들을 더 이상 플레이어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방치형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형식적 요소와 몰입을 위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했던 것이 게임이라는 장르의 형식적 미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익성을 위해 깎여나간 게임의 숏폼화는 결국 BM와 노골적인 결제 모듈만 남기고 게임을 앙상하게 만들어버렸다. 


* 게임 플레이어 모두에게 1억이 지급되면 그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일까?

최근의 게임 광고들은 노골적으로 상당한 금액의 확률형 아이템을 지급한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지급되는 아이템이 상대적인 가치를 가질 리 만무하다.  


물론 이러한 방치형 게임들을 유저의 차원에서 바라보면서, 시간이 부족한 학생이나 직장인이 성장의 재미만 누리게 하는 게임으로 일정 가치를 지닌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다만 이러한 현실 추수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BM을 긍정해 나가면서 한국 게임 시장은 더욱 노골적으로 메타버스, P2E, NFT 등 현행 법률로 합법화되기 어려운 영역까지 허용해 달라고 당국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최근의 게임 회사들은 플레이의 외부적 요소로 취급되던 현금과 결제, 캐릭터의 성장 요소를 더욱 외재화하여 환금성을 부추기게 된다면, 이는 한국 게임업계가 그동안 트라우마로 안고 있었던 “바다 이야기” 사태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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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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