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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신화: 오공>의 성취는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도 충분히 이해되는 것인가?
이를테면 많은 한국 게이머들은 매 챕터가 끝날 때 등장하는 ‘다음 회에서 알아보자’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는 회본 형태로 챕터가 정리되는 서유기 원전의 끝 문장을 그대로 차용해 온 부분이고 원전 ‘서유기’가 한국에서는 널리 읽히는 편은 아니라는 문제에서 기인한다. 그나마 친연성이 있는 한국에서도 이런 상황인데, 서구권까지 넘어가게 되면 사실상 <오공>을 이해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 Back 21 GG Vol. 24.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슈퍼 히어로 '게임'의 과거와 오늘
원전인 수퍼히어로 만화는 여전히 독자적 산업을 잘 이끌고 있다. 그리고 영상 컨버전이 최근에 들어 절정을 찍었다면, 게임 컨버전은 비교적 신생이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 낚시스피릿의 별매 낚시 컨트롤러로부터 본 게임 경험의 확장
전세계에서 게임을 하는 입력 인터페이스로 가장 많이 이용 되는 것은 무엇일까. 몇 년 전이라면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은 터치 인터페이스 역시 적지 않기 때문에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 말할 수 는 없겠다. 다만 터치인터페이스 위에 구현되어있는 가상 패드까지 고려하면 현재에도 게임 입력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입력 인터페이스는 게임 패드일 것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보았을때의 경향이며, 한국에서는 가정용 게임기보다 개인용 컴퓨터를 통한 게임이 더 익숙하기 때문에 흔히 키마라고 부르는 키보드 마우스 컨트롤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 Back 11 GG Vol. 23.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시뮬레이티드 셀프: 놀이하는 인간이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키는 방식에 대하여
세계는 불확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생동하는 물리적 실재를 파악할 수 없으며, 단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가정법에 따른 결과론, 혹은 결정론은 입자들의 불확정한 위치에 선형성을 부여하는 매력적인 시뮬레이션이다. ‘만약 ~라면 어땠을까?’ ‘만약 ~한다면 어떨까?’는 확률의 세계에서 확고한 인과관계를 부여할 뿐 아니라 대안적인 실재를 상상하도록 어떤 유희의 프레임을 제공한다. 만약 조선이 자생적 근대화에 성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와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지적인 유희를 즐길 뿐 아니라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절차들을 상정함으로써 확률의 시공간을 결과의 시공간으로 바꿔놓게 된다. < Back 14 GG Vol. 23. 10. 10. Tags: 에르고딕, 시뮬레이션, 턴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unwoo Shin A cultural researcher and cultural critic, specializing in critical theory of technology and the political economy of media. Researches cultural phenomena surrounding gaming, 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s, and blockchain, and teach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and the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 판단하고 행동하는 효율의 <피크민 4>
프라스카를 포함한 루돌로지스트 관점에서의 분석대로 비디오 게임은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디지털digital의 시뮬레이션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본질적으로 비디오 게임은 세계를 어느 정도 계산 가능한 것digit으로 치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비디오 게임의 세계는 숫자로 치환된 현실을 가진다. 이것은 디지털 게임에 있어 불변의 조건이다. < Back 판단하고 행동하는 효율의 <피크민 4> 18 GG Vol. 24. 6. 10. 수치적 접근과 감각적 접근 프라스카를 포함한 루돌로지스트 관점에서의 분석대로 비디오 게임은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디지털digital의 시뮬레이션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본질적으로 비디오 게임은 세계를 어느 정도 계산 가능한 것digit으로 치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비디오 게임의 세계는 숫자로 치환된 현실을 가진다. 이것은 디지털 게임에 있어 불변의 조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디지털 게임의 총체가 숫자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우리가 디지털 게임과 접촉하는 접면surface은 수치적 정보와 감각적 정보의 혼합물이다. 캐릭터는 힘 18과 민첩 14와 지능 8으로 이루어지지만 한편으로는 외형 등의 시각적 정보와 (게임에 따라서는) 목소리 등을 통한 청각적 정보로 이루어지는 감각적 규정도 동시에 가진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굼바는 한 번의 점프로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체력, 수치적으로 규정된 속도, 지향성의 운동 알고리즘을 가진 존재이며 동시에 도끼눈을 하고 마리오를 죽이기 위해 덤벼드는 괴물이기도 하다. 이런 조건에서 다음의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 수치가 감각에 복종하는가, 아니면 감각이 수치에 복종하는가. 여기에 명백한 대답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비디오 게임이란 수치와 감각이 일으키는 긴장의 중심에 존재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서 하나의 축이 다른 축을 앞지를 수 있다. 요컨대 게이머들 사이에서 유통되는 ‘효율론’의 경우, 전적으로 수치가 감각보다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전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치가 감각을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않는다.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강캐를 애캐로 삼으면 된다.’는 유쾌한 레토릭이 떠돌아다닌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강한 캐릭터가 아닐 때 생기는 안타까움을 역설적으로 논하는 일종의 해학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결국 ‘강캐’에 대한 메타적 접근(=수치적 접근) 조차도 ‘애캐’에 대한 친밀감의 접근(=감각적 접근)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명규의 서술대로 특정 캐릭터와의 연애를 하기 위해서라면 게임의 재시작조차 불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 감각적 접근이란 말 그대로 ‘감각적’ 접근이다. 플레이어는 어느 때에 대상으로부터 감각적 친밀감을 얻는가? 그것은 감각적으로 접촉할 수 있을 때다. 요컨데 찰리 채플린의 그 명언,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의 작동이 비디오 게임에서도 일부 유효하다는 것이다. 플레이어가 인물에게 접근할 때, 요컨대 그 대상의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을 때 감각적 인식의 가능성은 오른다. 따라서 게임이 규정하는 고정된 시점을 벗어나 캐릭터를 다양한 방향에서 비추어는 컷씬은 일거에 감각 접근을 수치 접근보다 앞지르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그 외에도 음성의 삽입을 통한 청각의 접근, 진동 등의 기능을 통한 촉각적 접근은 나와 대상이 연결될 수 있다는 감각적 가능성을 증가시켜 준다. 많이 배제되는 경향이긴 하지만, 비디오 게임에서 촉각은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비디오 게임을 여타 매체와 차별화시키는 감각이 바로 촉각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동작 인식 센서를 활용하는 게임이 아닌 이상에야) 결국 컨트롤러를 ‘손으로 잡고’ 버튼을 ‘손가락으로 눌러야’ 대상과 연결된다. 조금 과하게 표현하자면 컨트롤러는 <스타크래프트>나 영화 <아바타>에 등장하는 신경삭Nerve cord [2] 같기도 하다. 나와 게임이 연결되는 접촉의 연결지점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의 손으로부터 뻗어나간 신경삭이 게임 내부의 무엇과 연결되어 있느냐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요컨대 (대부분의 액션 게임들처럼) 특정한 인간과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대부분의 시뮬레이션 게임들처럼)확인 불가능한 가상의 신적god-like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 그림 1 : 코에이의 <삼국지 14> 이에 비추어 보자면 대부분의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극도의 효율적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배경에는 단순히 인구 혹은 전력戰力 따위로 수치되는 경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플레이어의 인지가 대상(=유닛)과 감각적으로 유리되어 있다는 전제도 함께 작동한다. 특히나 특별히 어떠한 인물이라 특정할 수 없는 매니저 혹은 전략 지도자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한 가상적 부표, 즉 커서는 그 전달 대상과의 촉각적 접촉을 완전히 끊어버린다. 이 때 유닛이란 신경삭으로 연결되지 않은 감각 바깥의 존재들이며 따라서 이들의 생존 혹은 고용 상태 같은 것도 어디까지나 가상적 감각으로 체화된다. 그들과 거리가 멀어질 수록, 요컨대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처럼 병사 1의 존재를 절대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단절이 발생한다면 결코 생명의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다. <삼국지>의 전투 중 부대와 부대의 싸움으로 100의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우리에겐 100명의 부상 혹은 사망으로 인지되지 않는다. <피크민4>와 접촉의 메커니즘 닌텐도의 <피크민 4>는 2024년 TGA에서 최고의 시뮬레이션/전략 게임Best Sim/Strategy Award를 수상했다. <피크민> 시리즈의 장르는 제작사에 의해 AI액션AIアクション [3] 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정확히 액션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모호한 지점이 있다. 오히려 TGA의 수상이 말해주듯,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공간 내에서 유닛을 ‘생산’하고, 업무적 분류에 따라 ‘명령’하는 실시간 전략RTS:Real Time Strategy에 가까운 문법을 가진다. 다만 목표가 적진의 괴멸이 아닌 물건의 수집이라는 점, 건설의 개념이 없다는 점, 자원 수집과 생산 명령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타의 RTS와는 다른 감각을 줄 뿐이다. 그럼에도 유닛을 어떻게 분리하고 운영할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RTS의 전략을 상당히 공유한다. 그런 면에서 <피크민 4>를 RTS로 구분하는 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이 부분적으로 ‘액션’으로 구분되는 이유는 세계를 비추는 방식이 신적이기보다는 인물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피크민> 시리즈에는 RTS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커서의 메커니즘이 배제되어 있다. 플레이어는 ‘주인공’으로 규정되는 중요 캐릭터 [4] 를 직접 조작해 유닛인 피크민들에게 명령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가상적 부표가 아닌 명백히 물리적인 주체와 신경삭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거치고, 시뮬레이션 일반과 상이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특히 유닛을 운용하는 가장 기초적인 메커니즘이 대상이 되는 피크민을 ‘들어 던지는’, 상당히 밀도 높은 물리적인 접촉 형태를 취한다. * 그림 2 : <피크민> 시리즈에는 언제나 피크민의 손실에 대한 상실의 메시지가 존재한다. <피크민> 시리즈의 독특함은 바로 이 접촉의 메커니즘에서 나온다. 전략적 판단을 전제로 하는 전략 게임의 세계임에도 개별 유닛 하나하나와 직접 접촉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각각의 피크민은 <스타크래프트> 같은 RTS의 유닛 일반과는 전혀 다른 존재감을 갖는다. 이들은 명백히 살아있으며, 자신들만의 생태가 있고, 때로는 죽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명령에 헌신하며 잘못된 판단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특히 피크민의 죽음은 시체 위로 승천하는 영혼으로 표현된다. 만화적 유쾌함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고체적’ 성질에서 부유하다 사라져버리는 ‘기체적’ 성질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피크민> 시리즈는 RTS로서는 이례적으로 개별적 유닛의 실존을 강력하게 표출한다. 효율과 계획력 * 그림 3 : 피크민은 스스로 놀지 않는다. 오직 플레이어가 그들을 놀리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피크민 4>에는 ‘계획력’이라는 개념이 강조된다. 작품은 계획력을 ‘순서를 생각해서 효율 좋게 작업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게임 내적으로는 피크민의 분산적 운용과 쉼없는 컨트롤을 통한 시간대비의 효율적인 움직임을 총칭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피크민 4>는 표면적으로 효율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효율은 전적으로 현재 보편적으로 유통되는 의미, 즉 감각을 앞지르는 수치의 전면화와는 근본을 달리하는 개념이다. <피크민 4>는 효율적인 수치보다는 효율적인 움직임을 강조한다. 앞서 구분했던 대로 수치와 감각의 개념으로 치환해 보자면, <피크민 4>가 강조하는 효율은 감각의 운용에 가깝다. 비록 게임은 몇 종/마리의 피크민과 동행 중인가 하는 수치적 스테이터스를 표시하긴 하지만, 이 수치의 효과는 전적으로 플레이어가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는가에 따라 극도로 변화한다. 이 변곡이 바로 본작이 추구하는 ‘계획력’이다. 이 감각적 효율 추구는 대상에 대한 전적인 친화를 기반으로 한다. 요컨대 여기에는 덜 효율적인 수치에 대한 배제 또는 제거의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피크민 4>의 효율은 오직 하나의 기준을 통해서만 작동한다. 그것은 플레이어의 감각 활용이며, 조금 더 물리적으로 말하자면 쉼없는 판단과 움직임의 동원이다. 이러한 규정에 의해 성패의 거시적 판단이 확고해진다. 요컨대 <피크민> 시리즈에는 ‘유닛이 약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리즈에서의 실패는 오직 플레이어의 상황과 능력에 대한 오판, 비전략적 혹은 비효율적 움직임 등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실패의 결과는 피크민이라는 생명의 소실로 연결되는 치명적인 감각의 실패를 낳는다. 전략 시뮬레이션이란 결국 매니지먼트의 시뮬레이션이다. 유닛으로 총칭되는 병력과 병기에 대한 관리가 그 규칙의 체계를 구성하는 장르인 것이다. 하지만 때로 비디오 게임의 매니지먼트는 지나치게 감각의 세계를 배제하곤 한다. 실패는 냉엄한 수치의 손실인 것 뿐인가? 혹은 패배의 원인은 수치적 불완전성, ‘더 뛰어나지 못한’ 관리의 대상이 포함되었기 때문인가? <피크민> 시리즈는 이러한 수치 매니지먼트 또는 효율론의 한계 지점을 가로질러 매니지먼트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로 되돌아간다. <피크민 4>는 계획력이라는 단어를 경유해, 플레이어로 하여금 매니지먼트의 본질에 대해 설파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직접 행동하라. 바로 이것이 매니지먼트의 효율이며, 그것은 감각의 무게다. [5] * 그림 4 : 계획력이란 순서를 생각해서 효율좋게 작업하는 능력을 말한다. 일상생활에서도 계획력을 발휘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을 것이다. [1] 「게임의 로맨스가 진짜 사랑은 아니지만 중요해, CRPG의 로맨스」 (이명규, GG 16호) [2] 이 두 작품에서 신경삭은 모두 다른 존재와의 정신적 연결을 위한 기관으로 등장한다. 특히 <아바타>에서는 신경 다발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장면이 다수 나온다. [3] 정확히 말하면 전작인 <피크민 3>까지 이러한 장르명으로 규정한다. [4] 전작들인 1편과 2편에는 올리마를 단독으로 조작했으며 3편에서는 알프, 브리트니, 찰리라는 3인 팀을 교체하며 조작할 수 있었다. 4편에서는 플레이어가 직접 제작한 캐릭터를 사용한다. [5] <피크민 4>의 로딩 스크린에 나오는 문구 중에는 일상생활에서도 계획력을 발휘하는 습관을 들여보라는 내용이 있다. 이러한 사유를 현실에까지 연장시키고 싶다는 바람의 투영같기도 하다. Tags: 피크민, 감각, 시뮬레이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논모던 워페어nonmodern warfare
당연한 이야기지만 매개자의 증식이 전쟁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다만 현대의 일상적인 세계는 때때로 전쟁보다도 불투명하다. 물류와 인프라가 점점 고도화되면서 모든 것들이 상시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착각이 팽배하지만, 역설적으로 매개자들의 네트워크는 (아이패드처럼) 이음새 없이 매끈하게 빛나는 표면 아래서 가시성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알고리즘의 지배로부터 팬데믹을 거쳐 급격한 기후 변동까지, 2020년대의 우리는 마치 이 모든 비인간 행위자들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세상에 등장하기라도 한 듯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 Back 09 GG Vol. 22.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Wombat A freelancer who does odd jobs of all kinds. Interested, fittingly, in all kinds of odds and ends. With games, the interest runs especially deep.
- 어린이를 위한 게임은 없다
도발적인 제목을 들고 왔지만, 놀랍게도 필자는 어린이가 아니다. 더 놀랍게도 필자는 아직 2세가 없다. 당사자성이 없는 사람이 어린이와 게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게임제너레이션(GG) 편집장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가정에 어린이가 있는 필자를 새로 구해보시는 게 어떠냐'라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편집장은 '어린이가 없는 입장이 보다 객관적'이라고 답했다. GG 편집진의 고약한 취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Back 어린이를 위한 게임은 없다 18 GG Vol. 24. 6. 10. 도발적인 제목을 들고 왔지만, 놀랍게도 필자는 어린이가 아니다. 더 놀랍게도 필자는 아직 2세가 없다. 당사자성이 없는 사람이 어린이와 게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게임제너레이션(GG) 편집장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가정에 어린이가 있는 필자를 새로 구해보시는 게 어떠냐'라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편집장은 '어린이가 없는 입장이 보다 객관적'이라고 답했다. GG 편집진의 고약한 취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필자는 과거에 어린이였던 적이 있다. 필자는 그 유명한 PC방의 초글링 출신이다. <카트라이더>가 국민게임이던 시절, '놀토'만 되면 기자는 같은 반 친구들과 PC방으로 달려갔다. 매캐한 담배 연기 속에서 시프트(드리프트) 버튼을 열심히 눌렀던 기억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무렵 PC방에는 <리니지>라든가 <뮤> 같은 게임이 인기가 있었지만, <메이플스토리>, <큐플레이>, <마비노기> 등등 어린이들이 즐길 만한 게임도 대단히 많았다. 개중에는 FPS나 '성인풍' MMORPG로 월반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모두가 <카트라이더>를 플레이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 한때 <카트라이더>는 명실상부 국민게임이었다. 그리고 그 인기의 중심에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카트라이더>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당대 단순 영화 잡지를 넘어 문화비평지의 기능을 수행하던 주간지 <씨네 21>은 "국민 배우 안성기에 국민 간식 떡볶이에 국민 여동생 문근영까지, 조금이라도 인기 있는 상품에는 ‘국민’이라는 딱지가 붙는다"며 "요즈음 국민 게임 칭호는 <카트라이더>에 돌아간 모양"이라고 썼다. [1] 그리고 그 인기의 비결을 "유아적 놀이 경험"이라고 분석했다. 이 "유아적 놀이 경험"이란, 만화적 캐릭터들을 통해 기존의 레이싱게임보다 간편한 게임플레이를 담은 것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꾸준히 이 게임과 닌텐도 <마리오카트>와의 유사성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당대 이용자들에게 <마리오카트>와 <카트라이더>를 둘러싼 시비는 그다지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다. 어린이 시절의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카트라이더>는 최고 동시접속자 20만 명, PC방 점유율 1위, 출시 1년 만의 등록회원 1,000만 명의 금자탑을 쌓으며 넥슨의 역사를 썼다. <카트라이더>는 2023년 출시 18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고, 후속작 <카트라이더: 드리프트>을 출시됐다. 하지만 새 게임은 국민게임이었던 전작의 아성을 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넥슨의 창업자인 고 김정주 회장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스스로 돈을 싸 들고 와서 한참 줄 서서 기다리며 디즈니 콘텐츠를 즐긴다"며 "디즈니가 부러운 건 아이들을 쥐어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2] 넥슨의 방향성을 아이들과 부모를 "쥐어짜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것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넥슨이 2000년대 초중반 서비스했던 게임들은 실로 그런 면모를 보이고 있었고, 그 선두에는 <카트라이더>가 있었다. 이 쯤에 <카트라이더>의 옆자리에 설 게임은 단연 <메이플스토리>겠지만, 이 게임이 겪은 풍파에 대해서는 굳이 이 글에서는 구구절절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넥슨은 현재 <메이플스토리>의 블록체인게임 버전을 연구개발 중이다. [3] 아무튼 국민OO의 시절은 지났다. 국민OO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존재는 국민OO가 먹히던 시절에 그 지위를 획득한 이들에게 한정된다. 2020년대의 국민MC는 아직 우리 머릿속에 있는 그 사람이다. 이렇게 취향의 파편화가 세분화가 이루어지면서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사는지 알기 어렵다. 새로운 국민배우, 국민간식, 국민여동생은 없다. 할머니는 빠니보틀과 곽튜브를 모르고, 손자는 종편방송에 쏟아지는 트로트 예능을 모른다. 독자 여러분께도 퀴즈 하나. 이 중에 혹시 '흔남'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혹시 구글링을 시도하려고 했나? 흔한남매는 구독자 277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이다. 요즘 어린이에게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흔남의 존재를 모르는 초등학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전 세대를 아우르는 '매스'미디어는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특정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 일찌감치 집에 들어가는 시대는 지났다. 더구나 인구절벽으로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는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가 어떤 것이 있는지는 더욱 알기 어렵다. 어린이와 함께 살고 있거나, 어린이와 교류하지 않는 이상 어린이의 취향을 진단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다행히 필자에겐 조카가 있다. 조카를 '취재'한 결과, 필자와 조카 사이에 그나마 말이 통했던 것은 <포켓몬스터> 정도였다. 조카가 '1세대 포켓몬'을 알고 있다고 대답할 때, 필자는 왠지 모를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그 외의 콘텐츠로 조카들과 대화를 시도해보았을 때 필자는 좌절했다. 한 번 시도해보라. "삼촌 <신비아파트> 옛날 건데요", "<뽀로로>는 애들(네 녀석도 애면서!)이나 보는 건데요"와 같은 답변을 들을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게임을 찾는 일은 더 어렵다. 가장 참고할 만한 데이터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23 아동청소년 게임행동 종합 실태조사'다. 아동청소년의 65.2%는 이미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가장 많이 하는 게임은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와 같은 샌드박스 게임(23.7%)으로 나타났다. 그 뒤는 <브롤스타즈>, <발로란트>, <서든어택>과 같은 슈팅게임(23.5%)이 차지했다. [4] * 청소년이 가장 많이 즐기는 게임 장르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샌드박스 게임은 정의 그대로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세계를 창조하는 모래상자와 같다. 매달 1억 5천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접속하는 <로블록스>는 플랫폼이다. 즉, 그 플랫폼에 접속해 직접 관찰하지 않으면, 무엇이 인기를 끌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유튜브를 들여다 보지 않으면 요즘 뜨는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플랫폼 안에서 이 게임 저 게임을 탐험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로블록스>가 곧 게임과 같을 수 있다. 참고로 조카의 날카로운 분석에 의하면 <로블록스> 안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은 <입양하세요!>다. 본인은 <입양하세요!>에 '애들'이 너무 많아서 슈팅경쟁 게임 <머더>를 즐기고 있다고 한다. 그 말을 옆에서 같이 들은 조카의 친권자는 <머더>의 폭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고, 필자는 대뜸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심판관이 되었지만, 취재원 보호를 위해서 '에이,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답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즐기는 게임에 <서든어택>이 이름을 올린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들은 더이상 TV나 잡지로부터 게임에 대한 정보를 얻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구독 중인 인플루언서가 특정 게임을 플레이하고, 학교 같은 내집단에서 두루 공감대를 얻었을 때 그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관찰된다. 재미만 있어 보인다면, 2005년에 나온 FPS도 서슴없이 즐기는 것이다. 필자의 유일한 취재원인 조카는 15세 미만이기 때문에 <서든어택>을 즐길 수 없었다. 주변에서도 <서든어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꼭 그 게임을 플레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이뿐 아니라 각 게임 포털은 2차 인증 과정을 강화했기 때문에 예전에 필자가 그러했듯이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쉽지 않아진 모양이다. 한국갤럽 발표에 따르면, 10대 남성의 44%, 여성의 13%가 게임을 가장 즐겨하는 취미로 꼽았다. [5] 어린이들은 여전히 게임을 즐기고 있지만, 그 자리에 한국 신작 게임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인용한 표의 예시에 올라온 한국 게임 신작은 3년 전에 나온 <쿠키런 킹덤> 뿐이다. 고객의 모수 자체가 줄어드는 만큼 어린이 취향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 수지타산이 안 맞는 일이 되는 듯하다. 임원을 설득하기 좋은 기획은 '10대들이 즐기는 게임'보다는 '40대 직장인들이 즐기는 게임'일 것이다. 한때 게임은 '어린이들이나' 즐기는 매체로 여겨졌다. 오락실에나 PC방에나 어린이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찾아보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게 됐다. 애초에 그들의 인구가 감소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케이드와 PC방 산업의 규모가 줄어들었을 수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가보자. 앱스토어의 게임 - 어린이 탭으로 가면 인기 차트의 1위는 <유튜브 키즈>가 차지하고 있다. 2위는 색칠놀이 게임 <퀴버>, 3위는 샌드박스 게임 <토카보카 월드>, 4위와 5위는 <밴드 키즈>와 <아이들나라>이다. 온전한 의미의 게임은 2번과 3번이고, 4번은 학교 모임, 5번은 '학습'을 위한 앱이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키즈' 란의 '삶이 풍성해지는 게임' 코너에서도 <유투브 키즈>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마트폰 양대 마켓의 상위 차트는 보호자가 어린이로 하여금 건전하고 학습적인 콘텐츠를 학습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듯하다. 정작 어린이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로블록스>가 순위에는 빠져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로블록스>는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이 제공하고 있지만, 그 안의 게임들은 비슷한 또래의 창작자들이 직접 만들고 있다. 그리하여 필자는 가정의 달의 그믐에 생각한다. 어린이를 위한 게임은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걸까? * 5월 31일 앱스토어 게임 분야의 ‘어린이’ 코너 인기 순위. 게임이 거의 없다. [1] 박상우, 「<카트라이더>는 어떻게 국민 게임이 되었나」, 씨네21, 2005.09.16. [2] 김재훈, 신기주, 「플레이: 게임 키드들이 모여 글로벌 기업을 만들기까지, 넥슨 사람들 이야기」, 민음사, 2015.12.7. [3] 김재석, 「넥슨이 그리는 블록체인 메이플스토리의 꿈」, 디스이즈게임, 2024.03.23. [4] 「2023 아동청소년 게임행동 종합 실태조사」,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03.05. [5] 「한국인이 좋아하는 50가지 [문화편]」, 한국갤럽, 2024.05.22. Tags: 게임이용자, 유소년, PC방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시각장애인과 게임: 편견이라는 경계를 넘어
반지하게임즈의 스토리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 시각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에 대하여 당사자로서 이야기할 기회가 가끔 생기고 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만 잘 하지 못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직업도 게임과는 무관한 것이라서 사실 이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늘 조심스럽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평범한 시각장애인으로서 내가 경험한 게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시각장애인들이 더 폭넓게 게임을 즐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역시 한 게이머의 입장으로 말해 보고자 한다. < Back 시각장애인과 게임: 편견이라는 경계를 넘어 04 GG Vol. 22. 2. 10. 반지하게임즈의 스토리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 시각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에 대하여 당사자로서 이야기할 기회가 가끔 생기고 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만 잘 하지 못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직업도 게임과는 무관한 것이라서 사실 이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늘 조심스럽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평범한 시각장애인으로서 내가 경험한 게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시각장애인들이 더 폭넓게 게임을 즐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역시 한 게이머의 입장으로 말해 보고자 한다. 인간이 오감 중 시각에 의존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시각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에 대해서는 다른 장애 영역에 비해서도 그 논의가 더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90년대부터 시각장애인들도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90년대 중반에는 컴퓨터가 지금보다 훨씬 고가의 물건이었고, 컴퓨터의 기본적인 사용법부터 따로 강사 선생님에게 배웠었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쓰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기본적으로 화면에 출력되는 내용을 읽어 주는 기능을 활용한다고 보면 된다. 운영 체제에 따라 그 이름과 기능은 달라져 왔지만 기본 틀은 같다. 다시 컴퓨터를 배우던 초등학교 당시로 돌아와서, 그 당시 선생님께서 컴퓨터에 재미를 붙이고 익숙해지라는 의미에서 가르쳐 주신 간단한 게임이 내 인생 첫 게임이었다. 90년대에 시각장애인들이 주로 했던 게임들을 생각해 보면 음성을 들으며 할 수 있는 기억력 테스트 게임이나 숫자를 맞춰서 판정하는 야구 게임, 청기 백기 게임 같은 것들이었다. 그 외에 PC 통신을 다룰 줄 알던 사람들은 현재의 MMORPG 게임의 원형 중 하나가 되는 텍스트 머드 게임을 즐기기도 했는데, 초고속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비시각장애인들이 화려한 그래픽과 더 다양한 기능이 지원되는 다른 게임으로 떠나간 뒤에도 시각장애인들은 여전히 머드 게임을 활발히 즐기고 있다. 그 외에도 체스나 윷놀이, 트럼프 등 보드 게임이나 카드 게임을 PC로 이식한 게임들을 즐기기도 했는데, 오히려 윈도우즈 운영체제가 보편화되고, 모바일로 환경이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게임을 시각장애인들이 즐기기에는 더더욱 어려워진 것이 안타깝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애플에서 자사의 스마트폰인 아이폰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낭독 기능인 보이스오버 기능을 기본으로 탑재하면서 시각장애인들도 스마트 시대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모바일 게임이 범람하는 가운데서도 시각장애인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은 거의 없었다. 2010년대 이후에 시각장애인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은 대부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개발된 오디오 게임이 주류를 이루었다. 소리를 듣고 적의 위치를 파악해 물리치는 대전 액션 게임이나 RPG부터 TCG 게임, 퍼즐 게임, 리듬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 등 그 장르도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이 게임들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외국 제작사에서 만드는 게임들이라 영어 정도만 지원할 뿐이라 플레이를 하다 보면 게임을 하고 있는지 듣기 평가를 하고 있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게다가 시각장애인, 그 중에서도 PC 및 모바일에 익숙한 일부 사람들을 고객층으로 하다 보니 시장 규모가 작고, 그래서 만들어지는 게임들은 대부분 소규모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있다. 오디오 게임 외에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을 돌아보아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텍스트 위주로 플레이할 수 있는 웹게임이나 일부 모바일 게임인데 이마저도 대부분 영어 게임들이다. 번역기 돌린 수준이라도 한국어 지원을 해 주는 게임마저도 드문 실정이다. 사실상 2022년 현재 한국어로 시각장애인이 제대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현재 서버가 살아 있는 텍스트 머드 게임들을 합쳐 보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은 이유는 시각장애인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적으니까 플레이 가능한 게임을 더 많이 만들어 달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오디오 게임 등은 여러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그 규모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 나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법적,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현재 장애인들은 게임보다도 당장의 생존에 더 밀접한 생존권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게임 접근성 관련 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2021년도에 국회에서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하태경 의원 "게임법에 장애인 접근성 향상 넣고 가이드라인 개발하자“ - 디스이즈게임 https://m.thisisgame.com/webzine/nboard/4/?n=123269 )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 문제가 당장 급한 건 아니지 않냐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은 이미 하나의 문화 현상이다. 게다가 최근 떠오르고 있는 메타버스 또한 게임의 방식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은 이미 생활의 문제가 되어 가고 있는 셈이다. 또한 다양한 게임들을 거쳐 오며 시각장애인들이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불법과 탈법의 경계선을 줄타기해야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절감하곤 했다. 앞서 시각장애인이 한국어로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다고 언급했는데, 거기서 ‘정식으로’라는 말을 앞에 붙인다면 그 개수는 더더욱 줄어들게 된다. 정식으로 플레이를 할 수 없어 개인 개발자가 개발하는 비인가 접근성 모드를 활용하여 플레이하거나, 우연히 어느 정도 플레이는 가능하지만 일부 기능은 화면 낭독 기능으로 제대로 접근조차 되지 않아 현금 결제를 하고도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기도 한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개발되는 오디오 게임들 중에서도 다른 유명 게임의 게임 방식 등을 거의 그대로 베껴 오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데 마냥 탓할 수만도 없는 것이 그런 방식으로라도 명성만 들어 보았던 유명 게임을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게 게임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강한 유혹이다. 또한 일부 게임의 비인가 접근성 모드를 플레이하다 보면 제작사 차원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많기도 하다. 이러한 여러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에 대한 논의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고, 적절한 법을 만드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을 만들어 강제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로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게임 업계의 인식이다. 현재 시각장애인이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극단적으로 적은 이유는 물론 기술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시각장애인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게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과 함께 뒤따라야 할 것은 인식의 변화이다. 시각장애인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 시각장애인‘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소수이지만 그런 사례들이 존재하고 있다. 먼저 반지하게임즈에서 제작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 〈서울 2033〉의 예를 들고 싶다. 〈서울 2033〉은 출시 당시에는 시각장애인의 플레이를 상정하지 않고 만들어졌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일부 용감한 시각장애인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플레이를 시도해 본 결과 관리해야 할 중요한 수치를 읽어 주지 않아 불편한 점이 있기는 했으나 어쨌든 기본적인 플레이 자체는 가능했다. 그래서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앱스토어에 리뷰를 남겼는데 제작사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주셔서 지금까지도 접근성 관련 업데이트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반지하게임즈의 다른 텍스트 게임에도 아이폰의 보이스오버와 안드로이드의 토크백 접근성이 반영되고 있다. 사운드도 없고, 글도 많은데 시각장애인도 할 수 있는 모바일 인디게임서울2033 - 스브스뉴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230699 〈서울 2033〉의 보이스오버 접근성 관련 개발은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서울 2033〉은 텍스트 기반으로 선택지를 고르면 그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방식의 게임이다. 즉, 복잡한 조작이 필요 없다. 개발 엔진도 일반적인 게임 엔진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보이스오버로 어설프게나마 플레이가 가능해 개발사에 건의라도 해 볼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건의에 응답해 준 것은 결국 개발사의 의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만약 반지하게임즈에서 시각장애인이 무슨 게임이냐며 무시했다면 지속적인 시각장애인 유저들의 플레이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나 또한 공모전에 참여해 스토리 작가로 활동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서울 2033〉의 보이스오버 접근성은 완벽하지 않고,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종종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관련 건의를 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모습을 꾸준히 보이고 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 유저들 사이에서 〈서울 2033〉은 여전히 활발하게 플레이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1f-GYco-VE * 〈서울 2033〉에 적용된 보이스오버 접근성 시연 영상. 또 한 가지 사례로 XYRALITY에서 개발한 모바일 게임 〈성주와 기사〉를 들 수 있다. 〈성주와 기사〉는 예전에 유명했던 웹게임인 〈부족전쟁〉과 비슷한 방식의 게임으로 자신의 성채를 키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주변 지역을 평정해 나가는 게임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른 유저들과 동맹을 맺기도 하며 경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방식의 게임은 지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니 시각장애인이 플레이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나의 위치를 중심으로 거리를 제시하고, 좌표 개념도 있기 때문에 충분히 플레이가 가능하다. 〈성주와 기사〉의 사례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서울 2033〉과 같이 소설과 비슷한 형식의 스토리 중심 게임 뿐 아니라 다른 방식의 게임들도 발상을 조금만 전환한다면 충분히 시각장애인들도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도에 좌표 기능을 도입하고, 주요 지점이나 NPC의 위치를 알려 주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게임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이 게임은 방식이 간단해 보이는데 버튼에 보이스오버로 접근만 되어도 플레이가 가능할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한두 번 들었던 게 아니다. 실제로 시각장애인의 플레이를 상정하지 않고 만들어진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동원되는 온갖 꼼수들을 보고 있자면 편견을 깨고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기술 발전이 언제나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는 것일까? 실제로 장애인들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전 시대보다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만 하더라도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화면 낭독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너무나 빠른 기술 발전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약자들을 도태시키기도 한다. 무인 키오스크 앞에서 난감해하는 노인이나 장애인의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화려한 그래픽이 게임에 도입되기 이전, 텍스트 머드 게임이 주류이던 시절에 시각장애인 게이머들이 오히려 다른 비시각장애인 게이머들과 공감대를 더 많이 형성할 수 있었다. 엄청나게 비싼 슈퍼 컴퓨터 한 대보다 도로의 턱 높이를 낮추는 것이 휠체어를 탄 사람의 활동에는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서울 2033〉이나 〈성주와 기사〉 같은 사례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바는 명확하다. 시각장애인, 나아가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 그보다 한 차원 더 나아간 장애인의 각종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서는 기술 발전과 대규모 자본 투자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편견이라는 이름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 또한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게임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른다. 게임 속 세계에는 편견도 제약도 없다. 어떤 역경이라도 게임의 규칙 안에서는 넘어설 수 있는 난관일 뿐이다. 지난 1년 동안 아주 조금이지만 게임을 만드는 현장을 엿보면서 게임을 만든다는 일은 굉장히 창조적인 에너지를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과 게임. 지금 당장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느껴지지만, 게임을 만드는 분들의 열정과 아이디어가 모인다면 언젠가 그 두 단어의 조합도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반지하게임즈 스토리 작가) 강신혜 게임에 관심이 많은 시각장애인입니다. 현재 중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하는 동시에 반지하게임즈의 게임 스토리 작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게임으로 관객에게 말걸기 -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관람기
필자는 게임제너레이션으로부터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에 대한 게임전문가 관점에서의 리뷰"를 요청받았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게임전문가도, 미술애호가도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잘못 주름을 잡았다가는 큰 코를 다칠 게 뻔했다. 하지만 북서울미술관은 필자의 집 앞이었던 데다, 고료의 유혹이 상당했다. 그렇게 흔쾌한 척 '퀘스트'를 수락했지만, 이 주제에 적당한 '레벨'인지 자문한다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 Back 12 GG Vol. 23. 6. 10. Tags: 북서울미술관, 전시, 미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디아블로〉 시리즈의 역사로 바라보는 블리자드의 변화
2021년 2월 20일에 시작된 블리즈컨라인(BLIZZConline)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2005년 10월 처음 개최된 블리즈컨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가 자신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팬들을 위한 축제로써 기획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의 블리즈컨의 분위기는 분명 예전과 달랐다. 제작자와 게임 팬의 화합의 장이었던 블리즈컨이 끝나면 항상 팬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최근 들어 함성은 잦아들고 작은 수근거림이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 Back 〈디아블로〉 시리즈의 역사로 바라보는 블리자드의 변화 02 GG Vol. 21. 8. 10. 2021년 2월 20일에 시작된 블리즈컨라인(BLIZZConline)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2005년 10월 처음 개최된 블리즈컨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가 자신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팬들을 위한 축제로써 기획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의 블리즈컨의 분위기는 분명 예전과 달랐다. 제작자와 게임 팬의 화합의 장이었던 블리즈컨이 끝나면 항상 팬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최근 들어 함성은 잦아들고 작은 수근거림이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을 그저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직전 년도에 발매되었던 〈워크래프트 III: 리포지드〉는 그간 ‘블리자드 = 게임 제작의 명가’라는 평판에 물음표를 던져 주기 충분했고, 때문에 이런 어수선함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전후 사정으로 코로나 시대에 열린 온라인 블리즈컨인 2021년 블리즈컨라인에 팬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행사에서는 기존 발표 신작( 〈오버워치 2〉, 〈디아블로 IV〉)에 대한 개발 중간 보고 형태의 정보가 있었고, 블리자드가 제작했던 초창기 인기작(〈락앤롤 레이싱〉, 〈길 잃은 바이킹〉, 〈블랙쏜〉)의 리메이크 버전에 대한 내용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오래된 블리자드 팬들을 들뜨게 만드는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디아블로 II〉의 리마스터 버전인 〈디아블로 II: 레저렉션〉이 올해 발매 된다는 이야기였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기업인이자 요리 연구가(이자 열성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플레이어)인 백종원씨가 〈디아블로 II: 레저렉션〉의 최초공개 트레일러에 남긴 댓글은 순식간에 이슈화가 되면서 이 게임의 무게감을 증명했다. *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zG-4gDDazg 블리자드의 대표 IP 중 하나인 〈디아블로〉 시리즈의 첫 작품은 1996년 12월 31일 세상에 선보였다. 블리자드의 초기 협력사이자 합병 이후 블리자드 노스로 이름이 바뀐 콘도르에서 처음 제안했던 〈디아블로〉의 형태는 턴 방식의 로그라이크 게임이었다. 하지만 3 시간 동안 제작한 실시간 형태의 프로토타이핑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우리가 익히 아는 실시간 핵 앤 슬래시 형태의 액션 롤플레잉 게임인 〈디아블로〉가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출시 당시 다른 게임과 완전히 차별화되는 게임성과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 블리자드 최초로 도입된 베틀넷 시스템을 통한 협동 및 대결 플레이 같은 특별한 장점들은 〈디아블로〉를 그해 최고의 게임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다. 북미 출시 이후 국내에서도 PC 통신 게임 동호회를 중심으로 게임에 대한 기대감이 점차 높아지고 있었으나, 당시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운영하던 게임물 심의 장벽에 가로막혀 꽤 오랜 기간 동안 국내 정식 발매가 되지 않는 일이 있기도 했다. 당시 〈디아블로〉 1의 국내 유통사였던 SKC는 몇 차례의 발매 연기 속에 일부 영상 장면 등을 삭제한 검열판으로 심의를 통과하여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으로 게임을 발매하였다. * 출처: 컴퓨터 게이밍 월드 1997년 2월호 102 페이지. 〈 디아블로 〉는 잘해야 10만 부 팔릴 것이라 예상한 제작진의 기대를 가뿐하게 넘어 발매 첫 해 100만 부, 이듬해에는 전세계 200만 부 판매를 달성한다. 자연스럽게 후속편에 대한 이야기가 제작진 사이에서 논의되었다. 그리고 〈디아블로 1〉의 출시부터 3년이 지난 2000년 6월 29일 시리즈의 후속편인 〈디아블로 II〉가 발매되었다. 국내에서 〈디아블로〉는 게임 매니아들끼리 만 회자되는, 잘 만든 게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안 중 하나로 추진되었던 IT 인프라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이를 통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와 PC 방의 급격한 확산.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 힘입어 그저 그런 컴퓨터 게임이 아닌 대한민국 대중 문화의 위치를 차지한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다음 작품으로 내 놓은 〈디아블로 II〉는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게임이 되어있었다. 이러한 관심을 입증하듯, 〈디아블로 II〉는 15만 부의 선주문을 받은 상태로 북미와 거의 동시 발매가 이루어졌다(당시 해외 게임이 국내 동시 발매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이러한 초기의 관심과 달리, 새로운 대한민국의 전통 놀이로 취급되던 〈스타크래프트〉에 비해 〈디아블로 II〉의 인기는 금세 시들해 졌다(어디까지나 〈스타크래프트〉에 비교해서일 뿐이지만). 국내에서만 약 300만 부를 팔아 치운 〈디아블로 II〉는 운영 문제와 함께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국산 대작 MMORPG 게임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디아블로 II〉는 서비스 중이며 PC 방 점유율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 디아블로 II 〉 이후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IP에 기반을 둔 게임에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새로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워크래프트 III: 혼돈의 지배〉와 확장팩인 '얼어붙은 왕좌'가 각각 2002년과 2003년 출시되었다. 여기에 더해 2004년 11월 23일 서비스를 시작한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2021년 현재까지 총 8개의 확장팩을 출시하며 지금까지도 많은 유저를 보유하고 있는 블리자드의 대표 게임이 되었다. 이렇게 제작사로부터 외면 받은 줄 알았던 〈디아블로〉 시리즈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 것은 200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월드 와이드 인비테이셔널에서였다. 〈디아블로 3〉는 〈스타크래프트 II〉와 더불어 전세계 블리자드 팬들의 초 기대작이 되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서울 왕십리역에서 진행된 전야제 행사에서 〈디아블로 3〉의 한정판을 구매하기 위해 전날 새벽부터 수천명의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인원을 예상 못한 행사 주최측의 준비 미비로 그야말로 디아블로가 재림한 듯한 혼돈이 연출되었다.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서의 소장판 판매도 판매 시작부터 쇼핑몰 서버가 다운되는 등의 혼란이 발생했다. 대한민국에서의 〈디아블로 3〉 한정판 대란은 또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했는데, 한정판을 사들여 웃돈을 더 받고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는 사람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디아블로〉 시리즈에 등장하는 종족인 네팔렘을 차용하여 만들어진 ‘되팔렘’이라는 단어는 인터넷 게시판 뿐만 아니라 이후 기성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상은 이후 벌어진 쓰나미 같은 사태에 비하면 그저 지나가는 가랑비에 불과했다. 2012년 5월 15일, 〈디아블로 3〉를 구매한 게이머들은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이콘을 클릭했다. 하지만 그들을 반기는 건 Error 37 이라는 메시지 창 뿐이었고 정작 게임은 실행조차 되지 않았다. 사유는 이랬다. 불법 복제를 막고 경매장 등의 기능을 위해 야심 차게 도입했던 서버 인증 시스템이 몰려드는 사용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현상이 계속 발생한 것. 이 문제는 게임 발매 후 한 달이 다 되도록 해결이 되질 못했고, 결국 국내 지사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코리아는 게임 환불을 결정한다. * Error 37, 서버 롤백, 계정 오류 같은 기술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경매장 시스템, 게임의 난이도 배치와 말도 안되는 아이템 드랍 시스템 등으로 인해 초창기 게임의 평가는 계속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리자드는 특유의 뚝심으로 게임의 문제점을 하나 하나 개선해 나가고, 핵심 기능 중 하나였던 경매장 시스템을 날려버리는 특단의 결정을 내리면서까지 결국 죽은 게임을 살려내는데 성공한다. 2015년 8월까지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부가 판매되는 기록을 달성하였다. 전작과 12년의 갭이 있었던 〈디아블로 3〉와 달리, 다음 후속작은 비교적 빠른(?) 6년만에 발표되었다. 2018년 11월 최초 공개된 〈디아블로 이모탈〉은 디아블로 시리즈 최초의 모바일 게임이란 점, 그리고 그리고 게이머들에게 반발이 심한 극단적인 부분 유료화 정책으로 유명한 중국 게임 개발사와의 협업으로 개발 중이라는 점 때문에 팬들의 많은 우려를 샀다. 다행이 얼마 전 진행된 알파 테스트에서 우려는 어느정도 씻겨진 상태이지만, 블리자드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비단 팬들 만이 아니었다. 블리자드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우려했을까? 새로운 차기작인 〈디아블로 IV〉의 제작을 공개하였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출처: 〈디아블로 IV〉 공식 시네마틱 영상 | 세 명이 오리라 2021년 현재 〈디아블로 〉시리즈는 한 편이 신규 발매되었으며, 두 편의 신작이 개발 중에 있다. 과연 이 시리즈의 미래는 계속될 수 있을까? 블리자드는 신규 IP 제작에 매우 신중한 행보를 보여왔다. 회사의 대표 IP 인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는 모두 20세기인 말인 1990년대 처음 대중에 선보였고, 21세기 들어 완전한 오리지널 신규 IP는 오버워치 하나에 불과하다. * 출처: 블리자드 홈페이지 . 이는 블리자드의 개발 스타일과 큰 연관이 있다. 블리자드의 개발자들은 혁신적이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 다기 보다는 기존의 게임 메커니즘을 철저하게 분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를 자신들이 충분히 만족할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는 방식으로 결과물을 만들었다. 여기에 시리즈를 계속해 가면서 자기 자신을 복제, 발전해 왔던 것. 이것이 블리자드의 스타일이다.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로부터 시작해 〈디아블로 II: 레저렉션〉으로 끝나는 블리자드의 클래식 프로젝트는 그간 블리자드가 보여줘 왔던 행보와 비슷하면서도 매우 동떨어져 있다. 이들의 장기는 기존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 기존 것에서 한 발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프로젝트는 찬란했던 시대의 흑백 사진을 컬러로 바꾸는데 급급하다는 인상이다. 블리자드의 얼음 폭풍이 점차 잠잠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비단 회사를 둘러싼 온갖 구설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실리콘 앤 시냅스라는 이름으로 1991년부터 시작된 블리자드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블리자드의 미래를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색을 점차 잃어가는 게임 제작사를 바라보는 오래된 팬들의 마음은 어쩌면 안타까움 그 이상이 아닐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 개발자) 임현호 과거의 게임 개발 영웅들의 모험담을 쫓으며 게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게임 개발자. 매우 긴 기간 동안 대표, 기획자, 인디 게임 개발자, 프로젝트 매니저 등의 여러 타이틀을 달고 살았으나 게이머이자 게임 개발자로 불리길 희망하는 소시민.
- 어린이를 위한 게임은 없다
도발적인 제목을 들고 왔지만, 놀랍게도 필자는 어린이가 아니다. 더 놀랍게도 필자는 아직 2세가 없다. 당사자성이 없는 사람이 어린이와 게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게임제너레이션(GG) 편집장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가정에 어린이가 있는 필자를 새로 구해보시는 게 어떠냐'라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편집장은 '어린이가 없는 입장이 보다 객관적'이라고 답했다. GG 편집진의 고약한 취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Back 18 GG Vol. 24. 6. 10. Tags: 게임이용자, 유소년, PC방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게임, 전쟁, 격리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검투사 몇이 경기장에 있다. 다른 검투사 하나가 무기를 들고 입장한다. 새로 입장한 검투사는 적절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상대 검투사들을 하나씩 도륙낸다. 이따금 불필요하지만 화려한 동작도 섞어준다. 관중들이 환호한다.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 상대는 이미 전투 능력을 잃고 선 채로 죽어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승자는 화려한 기술로 그를 두 동강 내버린다. 홀로 남은 승자가 된 검투사는 신이 나 있는 관중들에게 분노를 담아 외친다. “Are you not entertained?” < Back 게임, 전쟁, 격리 25 GG Vol. 25. 8. 10. 장면 하나.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검투사 몇이 경기장에 있다. 다른 검투사 하나가 무기를 들고 입장한다. 새로 입장한 검투사는 적절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상대 검투사들을 하나씩 도륙낸다. 이따금 불필요하지만 화려한 동작도 섞어준다. 관중들이 환호한다.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 상대는 이미 전투 능력을 잃고 선 채로 죽어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승자는 화려한 기술로 그를 두 동강 내버린다. 홀로 남은 승자가 된 검투사는 신이 나 있는 관중들에게 분노를 담아 외친다. “Are you not entertained?” 2000년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이다. 장면 둘. 한 남자가 공항 출국 게이트에 있다. 게임 쇼에 참가해 우승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참여를 했다. 게임 종목은 어린이들의 골목 놀이였지만 패배의 대가는 죽음이었기에 남자는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 죽는 지옥을 경험했다. 홀로 남아 우승한 남자는 거금을 갖고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갈 참이다. 하지만 게임의 주최측과 연결된 마지막 통화를 끊자 그는 뒤돌아 걸어간다. 그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말이 아니야. 인간이야.” 2021년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이다. 두 장면의 두 인물은 목숨을 건 게임을 했고 승자가 되어 살아남았다. 그들이 경험한 것은 전쟁과 흡사하다. 이들이 일종의 선수로서 게임을 수행했듯, 전쟁은 군인이 선수로서 싸운다. 싸움 바깥에서 싸움을 지켜보는 관중이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만 전쟁의 승패는 그 관중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만, 이들의 게임은 관중에게 영향이 없다. 그래서 전쟁은 일종의 사업으로서 해석되지만, 이들의 게임은 관중에게 유희다. 전쟁과 유희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다 보면, 어떤 네덜란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호이징가 혹은 하위징어로 불리는 이 네덜란드 학자는 자신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문명의 근간은 놀이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분석한 놀이성, 놀이의 특징 중 하나는 규칙으로 시공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저녁 먹을 때까지, 여기 이 놀이터 내에서, 얼음땡 규칙으로 게임을 한다는 식이다. 그 시공간을 벗어나면 놀이가 끝나고 놀이의 규칙은 아무런 권위를 갖지 못한다. 이 특징이 확대되어 제의, 법률, 행정 등 문명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 모두가 놀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 네덜란드 아저씨의 고찰이었다. 경쟁과 협동은 놀이의 두 축이 되는 원리이고, 이는 자연에 대해, 인간 서로에 대해 투쟁하는 생존 추구의 상태를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제한적인 규칙 속으로 집어넣자 놀이가 되었다. 일상과는 다른 어떤 시공간을 가정하고 거기에서만 통하는 규칙을 만든다는 점은, 인간이 일상의 생존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이성은 생존 너머의 문명을 만드는 근간이 되는 원리다. 현대인으로서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워지는 대목은, 그래서 자본에 포섭되어 시장화한 스포츠는 삶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놀이가 아니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놀이는 직접 수행하는 방법 외에도 타인의 놀이를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콜로세움, 오징어 게임, 스포츠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는 생사를 거는지 아닌지를 제외하면 타인에게 게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자본으로 해석되었다 하여, 관중이 즐기게 되는 ‘보는 게임’으로서 놀이의 본질이 사라졌는지는 더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콜로세움에서 스타디움까지. 검투사에서 프로 선수까지. 관중을 대신해 게임을 하며 보는 게임을 제공하는 경우는, 싸움-전투-전쟁을 모사하긴 하지만 한 가지 한계가 있다. 소규모 전투의 모사라는 점이다. 격투기가 아니어도 양편이 나뉘어 싸우는 구기 종목이 그 경우다. 축구는 기병과 보병 전술과 유사하다. 농구는 흔히 기병과 궁병 전술에 비유된다. 핸드볼의 전술은 투창 전투와 많이 닮았다. 그렇다면 야구는 포병과 유사할까? 피겨 스케이팅과 같은 점수 경쟁 스포츠는? 하카처럼 전투 전의 의식을 겨루는 모습와 유사하다고 갖다댈 수 있겠다. 유희(遊戲)의 희(戱)는 중국 고대의 전장에서 전투 전에 위세를 겨루기 위해 호랑이 머리를 장식한 기물(䖒)을 창(戈)으로 치는 행위에서 만들어진 글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여전히 ‘태극 전사’니 ‘상암 대첩’이라는 식으로 전쟁의 용어를 스포츠에 갖다 쓴다. 팀 단위의 경쟁 스포츠는 전쟁에 대한 욕구를 대리 해소하는 용도 또한 갖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적용되는 전쟁의 국면은 전략이 아닌 전술이다. 소규모 전투가 아닌 대규모 전쟁을 경기장 안에서 구현해 전략을 게임화하려면 상당히 많은 권력-자본이 필요해진다. 압도적으로 많은 선수가 필요할 테니까. 혹은 ‘이 말 하나가 사람 천 명이다’라는 식으로 추상화되어 전술과 전투의 재미가 사라진다. 전략을 보는 지적 재미는 추가되지만, 이래선 흥행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무리 왕이고 부족장이라도 이런 이벤트를 만들었다간 재미없음 이유로 권좌에서 내쫓길 수 있다. 그래서 대규모 전쟁은 추상화되어 보드 위에 자리잡았다. 바둑, 체스, 장기와 같은 게임은 기물을 선수로 대체한다. 그래서 검투사의 유혈을 보고 공감 능력이 발휘되어 몰입이 깨져버리는, 콜로세움 입장료가 아까운 경우도 없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조감도 시야도 제공한다. 게다가 ‘보는 게임’에 특화된 가까운 경기장과 달리 보드는 ‘하는 게임’이 우선이다. 기술과 장르를 옮겨서 디지털 게임으로 오면, 앞서 있었던 많은 제약이 해제된다. 디지털 게임은 보드 게임의 추상성과 경기장 게임의 구체성을 모두 추구할 수가 있다. 프로세서의 연산 기능을 늘리기만 한다면 소규모 전투와 대규모 전쟁을 각각 혹은 한꺼번에 모사해낼 수 있다. 그렇게 전쟁은 게임이 가장 자주 다루는 소재가 된다. 병사 하나가 되어 전장을 누비는 개인 액션부터 10만 단위의 부대가 점 몇 개로 표시되는 전략까지 가능하다. 모두 바둑, 체스, 장기의 후예들이다. 여러모로 전쟁과 게임은 닮았다. 전쟁의 추동력은 전쟁을 수행하는 두 집단의 목표가 충돌하는 상황이니, 결국 경쟁이 핵심이다. 이기기 위해 군대는 계급에 따른 수직적 분업과 보직에 따른 수평적 분업을 수행한다. 분업이 수직-수평으로 직조하는, 협동의 체계가 군대 체계의 핵심이다. 전쟁을 요약하면, 협동하여 적과의 유혈 경쟁을 이기는 것이다. 유혈 부분을 빼면 게임과 동일하다. 게임에서는 1인 플레이의 경우에는 협동이 빠지기도 하고, 역으로 협동이 크게 강조되어 경쟁 요소가 옅어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전쟁의 저 두 핵심을 그대로 매체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결국 차이점은 유혈의 유무다. 싸움-전투-전쟁은 생명을 잃게 한다. 잘 기능하는 사회 구성원 하나를 키우는 데에 사회가 들이는 비용은 시간만 보아도 20여 년 이상이다. 게다가 인간의 공감 능력은 피 색깔만 비슷해도 그 죽음을 안타까워 할 수 있는데, 종까지 같은 인간의 죽음이기도 하다. 아무리 증오스러운 적이라 하더라도 죽음을 보고 직접 죽이는 것은 인간의 정신에 좋지 않다. 그러면서 아무 가치도 생산하지 않고 가치를 사용하기만 하니 문명 전체의 손해이기도 하다. 한편 전쟁은 전쟁을 수행하는 사회의 경제, 기술, 행정, 정치의 과실이 그대로 반영된다. 그 찬란한 과실을 갖고 하는 것이 조직적 살인이라는 점에서 철학적인 자괴감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서 전쟁은 추악하고 또 아름답다. 문명의 정수와 실력이 발휘되는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추악함을 최대한 제거하고 아름다움을 가능한 부각시키려면, 죽음을 무시할 수 있으면 된다. 콜로세움에서 죽는 검투사에게서 공감을 거두면 그 게임은 재미있다. 하지만 전쟁에서 죽음을 제거하기란 어렵고 모두가 공감 스위치를 끄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의 전쟁은 그래서, 호이징거 혹은 하위징어의 해석을 따르자면, 놀이성이 강화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에 규칙을 두는 것이다. 선전포고를 해야 정식 전쟁이고, 민간 피해는 최소화해야 하고, 전쟁 중의 약탈과 민간인 학살 같은 것을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포로를 정식 신분으로 만드는 등등, 전쟁에 놀이성이라는 족쇄를 채우려고 애를 쓰고 있다. 생사를 건 전투가 오직 전시에만 일어나게 하는 시도다.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놀이성의 특징인 시공간 제한에 의해 게임 안과 밖은 엄격히 구분된다. 콜로세움의 선수, 전장의 병사가 대신 생명의 위협을 받는 대신 제한된 시공간 바깥의 관중은 면제된다. 이미 검투사들을 관중 대신 데스 게임에 밀어넣으면서 인간 문명은 싸움에 놀이성을 부여해봤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약간 불편한 가설도 도출할 수 있다. 전쟁 게임이란 안전해진 사람들의 안도감을 흥분으로 바꾸는 것이 본질일 수도 있다.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의 쾌감, 전술의 합, 전략의 수려함은 결국 게임 밖의 나에게는 해를 가하지 않으므로. 저 사람들이 내 재미를 위해 죽어도, 나는 잠깐 마음이 불편하고 나머지 시간은 즐거우니까. 그래서 보훈은 국가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가 된다. 타인 대신 전장에서 목숨을 걸겠다고 나선 직업인들에 대한 예우다. 그럼 인간은 왜 전쟁을 게임에서 재현하고 있을까? 구성원 대다수가 전쟁에서 벗어나 안전한 문명 영역에 도달했으면서, 자꾸 그 특수한 지옥을 가져와 가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이렇게 뒤집어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전쟁을 게임 안으로 가두려 하는 걸까? 인류 문명이 전쟁을 국제 사회 질서의 한 부분으로 가두어가는 한편, 인간은 게임 규칙 속으로 전쟁을 가져오면서 콜로세움을 졸업했다. 현재의 스포츠에서 경기 도중 죽는 선수는 격투기 종목에서조차 극단적으로 적다. 오징어 게임은 어디까지나 은유이지 실제 현실에서 유사한 경기가 열리는 일은 없다. 이제 과거의 검투사 대신 뛰는 현재의 스포츠 선수는 전쟁과 유사한 활동을 할 뿐이다. 따라서 ‘대신 놀아주기’는 전쟁을 가두는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만들기가 어렵다. 인간이 전쟁을 게임 안에 가두는 중이라면, 오히려 전쟁을 잊거나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재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저 질문을 다르게 바꿔보면, 전쟁은 정말 그렇게 매력적인가? 인간의 내면에는 사실 전쟁의 유혈과 광기를 동경하는 부분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면 인간은 모순을 사랑한다. 전쟁은 찬란한 동시에 추악하다. 어쩌면 인간은 전쟁, 전투, 싸움, 죽음을 끊을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혹은 끊기 위해 게임 속에서 전쟁, 전투, 싸움, 죽음을 죽이는 중이라고 서술할 수도 있다. 혹은, 삶에서 아주 특정한 때에만 있는 이벤트라면 질병이라고 치환해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군인은 전쟁 속에서 전쟁을 해소하려 하는 의사로 비유할 수도 있고, 전쟁을 다루는 게임은 예방용 백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개인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으니 답은 아직 없다. 다만 우리 인류가 전쟁이라는 특정 시공간 상황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를 소망한다. Tags: 재현, 전쟁, 워게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