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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의 은유 : 요코오 타로의 질병 서사

    <니어> 시리즈와 <드래그 온 드라군> 시리즈에서 질병은 반복해서 절망의 폐쇄회로를 다룬다. 세계멸망의 꽃이 나타나 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에 레드아이가 퍼지고, 카임은 레드 드래곤과 계약을 맺어 2003년 도쿄 신주쿠에 이르기까지 결전을 벌이며, 레드 드래곤의 몸속에 마소가 확산되어 니어 월드에 전파되고, 인간이 만든 로봇들은 마소를 다른 세계로 돌려보내 세계멸망의 꽃은 Zero의 눈에 탄생하게 된다. < Back ‘병’의 은유 : 요코오 타로의 질병 서사 14 GG Vol. 23. 10. 10. 원문제목: “病”之隐喻:横尾太郎作品中的疾病叙事 “질병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것은 완전하게 오래된 두려움이다. 미스테리한 것으로 취급되고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모든 질병은 실제 전염성이 없더라도 윤리적으로는 전염성이 있다고 느끼게 만들 수 있다.” - 수전 손택 “질병은 생명의 그늘이다.” 인류 역사는 수많은 질병들과의 투쟁을 동반해왔다. 질병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을 땐 잠시나마 안정을 얻었지만, “보편적인 즐거움은 항상 위협받”는데, 곧바로 다시 새로운 질병이 다가와 고통받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에서 질병은 생리적인 질병 이외의 색채를 부여받았는데, 수전 손택은 암에 걸린 후 집필한 <은유로서의 질병>을 통해 질병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은유(가령 폐결핵으로 대표되는 낭만, 암에 부여된 게으름 등)를 밝히고자 시도했다. 그 책에서 손택은 “질병은 은유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가장 진실한 방법으로 질병을 다루려면 질병을 은유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될 수 있는 한 물들어서는 안 되며, 그런 사고방식에 저항해야 한다” [1] 고 말했다. 이와 달리 요코오 타로의 작품에서 질병은 완전히 은유적인 것이며, 은유적 색채를 제거하고 질병 자체에 환원할 필요가 없다. 요코오 타로의 이야기에서 ‘병’은 완전히 허구적인 병이며, 은유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질병’이라는 요소는 요코오 타로가 주도해 만든 <드래그 온 드라군(Drakengard)>, <니어 레플리칸트(NieR Replicant)>, <드래그 온 드라군 3>, 그리고 <니어: 오토마타> 등 네 작품을 관통한다. 이 게임들에서 ‘질병’은 서사 속 갈등의 진원지로, 대립하는 진영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한다. 그것들은 손택이 언급한 낭만화되거나 불명예스러운 생리학적 질병도 아니고, 푸코가 상상했던 병원체 및 숙주도 아니다. 요코오 타로 작품 속의 ‘질병’이란 인류사회로부터 고유한 요소들——통상 우리에겐 익숙하고, 요코오 본인은 상당히 싫어하는——을 추출해내고, 이러한 요소들을 능동적이고 은유적으로 재창조한 산물이다. 가령 <드래그 온 드라군>에서부터 <니어 레플리칸트>까지 4편의 게임들이 요코오 타로의 가치관 변화를 반영한다고 본다면, ‘질병’에 대한 표현은 이러한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스크린 앞에 앉은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방식 중 하나다. <드래그 온 드라군> : 홍안증후군(이하 ‘레드아이’)[2]과 백염화증후군 “약 10여 년 전, <드래그 온 드라군>을 만들 때부터 ‘살육’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거든요. 당시 인기 게임들을 참고하면서 ‘100명의 적 격파!’, ‘100명의 적군 병사들을 박살냈다’ 등 긍지넘치는 어투에 주목했습니다. 얼마 후 차분히 생각해보니 자랑스럽다는 어투로 ‘100명 살해’같은 얘기를 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군가 실제로 100명을 죽였다면 그건 이미 ‘변태적인 살인자’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드래그 온 드라군>을 만들 때, 저는 캐릭터들을 좀 더 광인처럼 설정했고, 왜곡된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잘못되고 정의롭지 못한, 왜곡된 세계 속 비뚤어진 인류의 이야기를 한 것이죠.” - <드래그 온 드라군 3> 발매 전 인터뷰 <드래그 온 드라군>은 요코오 타로가 주도해 만든 세계관을 가진 첫 작품이자, 이 시리즈 중 가장 컬트적이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게임에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질병은 바로 ‘레드아이’(인터넷상에서는 적동[赤瞳]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은 주인공인 카임의 부모에 대한 피해로 직결된다. 후속작에서 ‘레드아이’는 니어 월드에서의 인류 멸종, <드래그 온 드라군 3> 속 세계멸망의 꽃 및 우타히메 [3] 의 출현과 관련되어, ‘레드아이’와 그 유인책인 ‘마소(魔素)’는 일련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핵심이 됐다. <드래그 온 드라군>이라는 게임 자체로 돌아가보면, 요코오 타로는 주요 캐릭터들을 만들 때 ‘잔(残)’과 ‘질(疾)’이라는 두 요소를 각각의 캐릭터 설정에 삽입해 <드래그 온 드라군>이라는 “모두가 병든” 세계를 만들어냈다. 주인공 팀원들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용과 정령 등 생물들과 계약을 맺고, 목소리나 시력, 생육, 성장의 제한으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인터뷰에서 요코오 타로는 자신이 왜 이 게임에서 ‘결핍’이 있는 캐릭터를 고집했는지 이야기했다. 시장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게임의 플레이 방식은 ‘살해’라는 패턴을 피하기 어렵고, 이를 현실로 옮긴 ‘살인’은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이다. 요코오는 이것이 비록 허구일지라도, 주인공에게 조금이라도 살육의 합리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것들을 정신적 또는 육체적으로 ‘장애를 가진’ 개체로 설정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왜곡된 세계의 정의롭지 못한 집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코오 타로는 자신이 <드래그 온 드라군>의 세계를 “어두운 세계”라고 여기지 않으며, 이 세계를 만들면서 현실에서 영감——광적이고 편집증적인 인간들은 여러 이유로 서로를 도살한다——을 얻었다고 말한다. * 레드 드래곤과의 계약은 카임[4]에게 힘을 주지만, 그의 목소리를 앗아간다. 요코오 타로는 게임에서 주인공 카임을 벙어리로 만들고자 했다. 요코오 타로의 초기 작품들은 너무 난해해 게이머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주인공은 항상 시련을 겪으면서도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다. 그의 이야기는 일본식 영웅 서사시로 시작해 예상 밖의 방식으로 끝난다. <드래그 온 드라군>을 만들던 때의 요코오 타로는 중2병이 짙게 배어 있어 인류사회의 어두운 흐름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과 본능적인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 때문에 게이머와 “서로 상처를 주는” 태도로 서사를 쓴 것이다. <드래그 온 드라군>이라는 게임만 놓고 보면, 홍안증후군의 존재는 전쟁을 유발하는 모든 요소들을 하나로 모은 과장된 묘사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의 E 엔딩은 <니어>과 <드래그 온 드라군>의 세계관을 이어가며, 니어 월드에 인류 멸망을 불러올 백염화증후군을 불러왔다. 마소를 지닌 레드 드래곤과 마더 엔젤은 니어 월드의 인류와 기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드래그 온 드라군> 세계 속의 인격화된 신에게는 중립도 사랑도 존재하지 않으며, 하지만 제국군과 연합군의 충돌을 일으켜 세계를 멸망시켜왔다. 신주쿠 상공에 강림한 레드 드래곤은 “이것이 신의 세계입니다”라고 소리지르고, 작가와 창작된 허구 세계 둘의 관계를 밝혀낸다. * <드래그 온 드라군> E 엔딩 속 도쿄 신주쿠의 ‘거인’ 게임에서 백염화증후군은 적은 분량만 나타나는데, 주로 2003년 이후 니어 세계 인류의 운명을 배경으로 한다. 다른 세계(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에서 온 마소에 감염된 인간은 광포한 괴물 ‘군단’으로 변하거나, 그대로 백염(흰색소금)과 같은 물질로 부숴져버렸다. 마소는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퍼지고, 인간들이 마소에 맞설 때 거두는 짧은 승리는 새로운 재앙의 시작이 된다. (핵무기를 이용해 신주쿠의 모든 군단을 박멸하고, 군단을 이끄는 레드아이를 죽임으로써 마소는 더 확산된다.) * <니어: 레플리칸트>의 서장, 여름날의 도쿄에 내리는 하얀 눈 같은 물질은 백염증에 걸려 죽은 인간의 파편이다. <니어: 레플리칸트> : 붕괴체와 검은 병의 사회적 은유 “아마 여러분은 저의 게임에서 미치광이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을 텐데, 여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수백에서 수천 명을 죽인 사람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남자가 애인과 포옹하고 키스하는 것을 해피엔딩이라고 부르는 것은 제가 보기엔 어두침침한 광기입니다.” - 2014년 게임 개발자대회에서 요코오 타로의 강연 중 9/11 테러는 ‘사람은 왜 악행을 저지르는가’에 대한 요코오 타로의 인식을 바꿔놨다. <드래그 온 드라군>을 만들던 시기에 요코오 타로는 살육과 광기를 하나로 연결해 인간 간 폭력을 악한 인성의 탓으로 돌렸다. 9/11사건과 그후 세계적 범위 안에서 나타나는 충돌과 대립은 폭력에 대한 그의 인식을 바꿔놨다. 실제 살인자는 미치광이나 악마가 될 필요가 없고, 자신이 정의를 대변한다고 굳게 믿는 평범한 사람이며, 스스로 정의의 동반자라고 생각하면 쉽게 학살의 칼을 휘두른다. 다원적 정의를 긍정하는 것은 통일신앙의 붕괴를 의미하며, 요코오 타로가 위치한 일본의 문화적 배경은 그가 북아메리카의 동료들보다 빠르게 비이원론적 대립의 정의관을 받아들이게 했다. 그것은 곧 정의와 악의 싸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의 사이의 내전을 가리킨다. 우노 츠네히로(宇野常寛) [5] 는 < 리틀피플의 시대(リトル・ピープルの時代)> 에서 조지 오웰의 <1984>에 묘사된 '빅 브라더(big brother)'적 유일신앙이 1960년대 '정치의 계절’의 종언과 함께 말로를 걷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사회는 포스트모던 개념을 빠르게 소화해 수용(일본에서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는 학술용어가 아니라, 베스트셀러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다)했고, 통일적이고 온 국민이 희생할 만한 거창한 이상은 이미 무너져 버리고, 각기 다른 집단 간의 줄다리기만이 남았다. 이와 같은 생각에 기초할 때 <니어: 레플리칸트>의 적군과 아군 쌍방은 광적이고 편집증적인 정신장애인이 아니라, 제각각 대립적 입장에 있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은 ‘니어’이라는 이름의 연원인 동족상잔을 끄집어낸다. 니어(Nier)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일본어와 발음이 같은 영어 단어 'near'에서 따온 것으로, 적과 아군이 서로 비슷하다는 뜻을 갖는다. “동족상잔”이라는 주제는 <니어> 시리즈를 관통하는데, 레플리칸트와 마소, 기계생명체 [6] 와 요르하부대 [7] , 적대적인 쌍방은 모두 같은 근원을 갖는 산물이지만 게임 내내 자멸한다. <니어: 레플리칸트>에서 붕괴체와 검은 병은 동일한 병변이 각기 다른 숙주의 일체양면에 나타나는 질병으로, 둘은 모두 백염화증후군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려는 인류의 수단——게슈탈트 계획——에서 비롯됐다. 본래 “게슈탈트(gestalt)” [8] 는 심리학 용어로, “완형(完形)”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게슈탈트학파는 “1 더하기 1은 2보다 크다”, 즉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주장한다. <니어: 레플리칸트>에 대입된 이야기 속에서 ‘게슈탈트 계획’이라는 명명은 일말의 아이러니를 안고 있는데——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지만, 인간 생명의 존재는 영혼과 육체의 직접적인 결합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마소를 연구해 마법을 배운 후, 백염화된 육체에서 영혼을 구하기 위해 게슈탈트 계획을 가동해 마법으로 영혼을 육체로부터 떼어내고, 백염증이 완전히 사라져 만들어진 ‘인공생명’의 체내로 돌아갈 계획이다. “게슈탈트”라는 이름은 계획 실패의 필연성을 예고하고 있다. 육체와 영혼을 떨어뜨려 놓는 행위는 새로운 질병의 출현을 초래하는데, 그것은 곧 붕괴와 검은 병이다. 육체를 잃어버린 영혼은 곧 무너지기 시작해 점차 이성을 잃은 붕괴체가 되고, 영혼이 무너지거나 죽을 때마다 그것에 대응하는 ‘인공생명’ 레플리칸트도 검은 병에 걸린다. 검은 글자는 점차 온몸에 가득 채워지고, 레플리칸트는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육체를 갈망하는 영혼과 자의식이 생겨난 레플리칸트는 근원을 같이 하지만, 서로 대립하는 둘은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인다. 이야기 속 레플리칸트들은 자신들을 진정한 인간으로 착각하고, 몸을 되찾길 원하는 인간의 영혼을 “마물”이라고 부른다. 레플리칸트 니어는 마을과 여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마물을 죽이고, 점차 많은 마을 사람들이 검은 병에 걸려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하지만 자신이 마물을 죽였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행위는 검은 병의 확산을 가속화할 뿐이다. * 레플리칸트와 마물의 직접적인 충돌은 서로 상반된 요구와 소통할 수 없는 언어에서 비롯되지만, 왜 마물의 언어를 알아듣는 카이네와 온전한 인간이었던 에밀[9]은 마물을 죽이는 게 인류를 멸망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사실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을까? 에밀과 카이네의 캐릭터 설정은 <드래그 온 드라군>의 ‘에너지’에 대한 이해를 계승한다. 과학기술 실험은 에밀에게 마법의 눈을 안겨주었고, 이로 인해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에밀이 석화 마법을 제대로 장악하게 되는 것은 다시 시력을 회복한 뒤다. 누나와 하나로 합쳐 그가 마법을 완전하게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했는데, 이에 대한 대가는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카이네는 습격 중에 신체 반쪽이 파손된 후 마물에 붙어다니게 되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을 얻지만, 마물의 완전한 통제를 계속해서 억제해야 한다. 이야기에 빙의된 카이네는 마물의 언어를 이해하고, 전투 중 마물의 말에 여러 차례 동요와 고통을 느낀다. 에밀 역시 누나와 합체한 후 인간의 게슈탈트화 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것들 중 어느 것도 그들이 마물을 계속 죽이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로하여금 행동하게 한 것은 레플리칸트 니어에 대한 감정과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입장에 근거한 행동인데, 현실에서 같은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서로를 적대시할 수 있듯, 카이네와 에밀, 그리고 백의 서의 인간에 대해 생산하는 엇갈림은 말이 통한다고 해서 없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붕괴와 검은 병의 한계로 동류상잔은 반드시 둘 모두가 패배하는 결과로 끝나게 된다. 요코오 타로의 반전평화 사상은 여기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각자 정의로운 사명을 지닌 투쟁은 양측을 모두 파멸로 몰아넣고, 이때 의문을 제기해야 하는 것이 바로 ‘투쟁’이라는 갈등 해결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니어: 레플리칸트>의 내러티브는 우리에게 이상적인 답을 주지 못하며, 어쩌면 절벽의 마을 사람들이 마물과의 공생을 선택해 윈윈을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가능성은 무모한 레플리칸트 니어와 복수에 집착하는 카이네의 칼에 사라지고만다. <드래그 온 드라군 3> : ‘병’의 원흉 “테러와 불평등으로 인한 약탈은 여전하고, 다양한 형태의 경쟁도 볼 수 있죠. 단체들 간의 경쟁은 학생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고요.” - 요코오 타로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드래그 온 드라군 3>는 1~2탄에서 어지간히도 날아다니게 하던 여러 엔딩의 세계관을 수습하고, 이 시리즈의 세계관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두 작품에서 ‘홍안병’과 ‘마소’가 연결되며, ‘마소’에 보다 강한 은유가 부여된다. <드래그 온 드라군>의 E 엔딩은 니어 월드와 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를 창세신(저자)이 존재하는 세계 vs. 창작된 허구의 내러티브로 정의한다. 그리고 허구적인 레드 드래군과 모천사가 ‘현실’로 넘어와, 죽음에 이르는 바이러스(마소)를 그들의 세계 내에 퍼뜨린다. 니어 월드의 인류는 마법을 연마해 마소를 다시 다른 세계로 돌려보내고, 마소는 다른 세계(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에 모여 세계멸망의 꽃으로 이 게임의 주인공 제로(Zero)의 눈 속에 기생하게 된다. * 요코오 타로는 고도로 장르화된 게임 산업과 전투 살육 게임의 패러다임을 수차례 거부해왔지만, 그의 창작에 폭력은 항상 맴돌았다. 프로젝트 자금의 30퍼센트 가까이가 투입된다는 소문이 돌았던 <드래그 온 드라군 3>의 CG는 폭력미학을 연출해내며, 작은 공방 페이지 투어에 상시적인 소재를 제공한다. 모든 질병의 원흉——마소는 대체 무엇인가? 제작진이 공식 제시한 연표에서 두 세계는 서기 856년 대재앙이 ‘교회도시’를 탄생시키기 전까지 같은 역사의 거울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허공에 나타난 도시는 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에 마법과 괴물을 가져다주었고, 적지 않은 카오쥐당(考据党) [10] 유저들도 니어 월드에서 인류가 보낸 마소로 인해 대재앙이 일어났다. 여기서 교회도시는 바로 핵폭발 이후의 신주쿠일 것이다. 두 세계의 관계 속으로 다시 돌아가서, 마소의 하나로 엮는 것은 세 작품을 폐쇄 고리로 만들어버린다. ‘현실’ 세계는 허구의 세계를 이용해 자기 딜레마를 해소하고, ‘현실’에 의해 변화된 허구적 세계는 세계멸망의 위협을 준비한다. 세계멸망을 위협하는 격투에서 허구는 ‘현실’로 넘어오게 되면 ‘현실’의 딜레마를 일으킬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소위 ‘마소’는 추상적 사물의 은유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마소가 유발하는 모든 질병들——레드아이(인간이 미쳐가는 괴물로 변한다)와 백염화증후군(인간 공격을 거부하는 병을 앓다가 백염화되어 사망한다) 같은——은 의심할 바 없이 인간사회 규칙의 부정적 요소들을 상징하며, 요코오 타로의 인터뷰를 통해 이를 생각해보면 폭력과 살육, 악의적 경쟁, ‘타인을 짓밟고 이겨야 한다’는 정글의 법칙에 따른 사고로 귀납된다. 두 세계 간 마소의 흐름은 인간이 만든 허구적 이야기가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을 은유하며, ‘현실’ 세계와 허구 세계는 서로를 독살하고, 허구 세계의 멸망 위기는 ‘현실’ 세계를 전염시키는 병적 원인으로 전환된다. 요코오 타로는 자기 작품을 통해 정글의 법칙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인데——니어 월드의 과학기술은 로봇까지 만들어 시간여행을 할 정도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많은 시공간에서 인류를 구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두 세계의 모든 생명체들을 부정하는 행동으로, “적을 쓰러뜨리는” 간명하고도 난폭한 방법은 아무리 반복하더라도 인류의 멸종을 피할 수가 없다. <니어: 오토마타> : 인간에게 처방을 내리려 하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자본주의 지배하는 인간사회가 어떻게 붕괴를 피할 수 있을 것인지를 탐색해왔다. 요코오 타로의 게임들 역시 시종일관 인간이 왜 서로에게 해를 가해야 하느냐, 그리고 왜 그것에 익숙해지고 있는가에 대한 많은 질문들을 담고 있다. <니어: 오토마타>는 인류가 멸종한다는 전제 하에 인간 문명의 인조인간과 기계생명체의 이야기를 연설을 통해 계승하고 학습하며, 인간의 ‘육체’를 벗어난 뒤 남은 어떤 정신을 ‘인간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사유한다. <니어: 오토마타>의 내러티브에서 인간의 영혼과 육체는 이미 절멸해버렸지만, 질병의 은유는 여전히 남아있는데, 게임 속에서 기계가 만든 인조인간조차 ‘병’을 앓는 숙명을 피하기 어렵다. 벙커 기지에 숨은 논리 바이러스는 요코오 타로의 작품에서 현실적으로 추적 가능한 유일한 ‘바이러스’로, 본래는 컴퓨터 시스템을 공격하는 데 활용된다. 이 내러티브 속 논리 바이러스와 그것이 일으키는 질병은 고도의 은유를 담고 있는데, 그것은 병에 걸린 인조인간과 기계생명체에 나타나는 증상들——레드아이의 광폭과 검은 책——은 모두 시리즈의 전작에서 추적 가능하다. 이는 그것이 원래 갖고 있던 은유의 재창조이며, 요코오 타로 자신에 대한 오마주이다. * 붉을 빛을 발하는 레드아이를 제외하면, 이브의 검은 문양은 <드래그 온 드라군> 속 천사교회의 휘장과 높이가 비슷한 것처럼 여겨진다. ‘레드아이’는 기계생명체의 정상 상태이며, 요르하형 인조인간의 ‘병에 걸린 상태’이다. 요르하형 인조인간과 기계생명체의 핵심은 모두 ‘블랙박스’인데, 이는 질병과 건강, 각성과 광기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검은 병 역시 상징적 수법으로 돌아왔는데, 가령 아담의 영혼을 잃은 이브는 정신이 붕괴되고 그의 몸에는 검은 글자가 자라난다. <니어: 오토마타>에서 검은 병에 해당하는 병의 원인들을 돌이켜보면 영혼체의 붕괴에 있는데, 기계생명체로서 이브는 복제체만 걸리는 검은 병의 증상을 보인다. 기계생명체인 그는 지구에 도착해 인류가 남겨놓은 역사와 문화를 끊임없이 학습하는데, 이때 이브의 ‘병’이라는 상징성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아담의 죽음은 이브가 인류로부터 ‘인간성’을 학습한 부분을 가져가버린 것이다. 2B [11] 를 죽인 원흉인 논리 바이러스의 전염 방식은 미스테리다. 게이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2B가 왜 9S의 백신에도 불구하고 재발했느냐는 온라인상의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2B가 벙커에서나 추적 과정에서 탈출할 때 논리 바이러스 감염 여부와 무관하게 그녀의 죽음은 9S와 A2 간의 갈등을 촉발하는 계기로 이미 규정되어 있다. 2B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발작을 일으켜 폐허가 된 상점 앞에 쓰러진다. 그곳은 9S와 “기계생명체를 없애고 나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쇼핑도 하자. 네 티셔츠를 골라줄 거야”라고 희망과 행복의 약속을 했던 그 지점이기도 하다. 2B의 죽음과 이후 A2와 9S의 추락은 모두 “평화를 위해 모든 적을 소멸시킨다”는 논리가 불합리하고 아무 결과도 만들 수 없는 것임을 암시한다. 전투를 위해 싸우다가 죽은 요르하부대 인조인간들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없으며, 그저 보조기이자 플레이어가 생사의 순환을 깨뜨릴 때까지 오르내리는 작전을 반복할 수 있을 뿐이다. <니어: 오토마타>에 이르기까지 요코오 타로는 반전과 반폭력에 대해더욱 깊이 사유하고 설명해왔다. 그것은 전쟁의 후과를 반성하는 게 아니라, 폭력을 갈등 해결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논리이다. 그는 종으로서의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부터 인간 간 상호공격 행위에서 비롯된 ‘악의’ 자체로 화살을 돌렸고, 더 나아가 자기 희생과 상호원자라는 화해의 가능성까지 제시한다. * E 엔딩 직전의 탄막전. 게이머와 제작진의 전투에는 다른 게이머들의 지원이 필요하다. <니어> 시리즈와 <드래그 온 드라군> 시리즈에서 질병은 반복해서 절망의 폐쇄회로를 다룬다. 세계멸망의 꽃이 나타나 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에 레드아이가 퍼지고, 카임은 레드 드래곤과 계약을 맺어 2003년 도쿄 신주쿠에 이르기까지 결전을 벌이며, 레드 드래곤의 몸속에 마소가 확산되어 니어 월드에 전파되고, 인간이 만든 로봇들은 마소를 다른 세계로 돌려보내 세계멸망의 꽃은 Zero의 눈에 탄생하게 된다. 요코오 타로의 내러티브 속에서 ‘질병’은 구원도 회복도 불가능하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돌파하는 ‘윤회’에 가깝다. 질병은 서로 다른 시공간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어 현실의 어떤 절실한 고통을 지향하지 않고, 은유적인 색채를 짙게 감싸고 있다. 두 세계에서 레드아이와 백염화증후군은 하나같이 “하늘에서 내려온” 마소에서 비롯되는데, 붕괴와 검은 병 역시 대립하는 진영들 간 화해를 이루지 않는 한 치유가 불가능한 병이다. 이야기 속에서 모래의 나라의 전임 국왕은 죽을 때까지 검은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탐색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요코오 타로는 <니어: 레플리칸트>에서 화해 가능성을 거부하고 모든 결말을 동족상잔으로 이끌어 양쪽 모두를 절멸시켰다. 리메이크판에선 니어와 카이네를 좋아하는 게이머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해피엔딩’을 만들었지만, 복제체와 인간의 영혼 모두 파멸을 피하지는 못한다. 한데 나이를 먹으면서 요코오 타로 역시 마음이 약해졌는지, 아니면 코카콜라가 진행한 ‘스몰 월드 머신(Small World Machine)’ 이벤트가 그를 감동시켰는지 모르겠지만, <니어: 오토마타>에서는 그나마 따뜻한 가능성을 남겨놓았다. 바로 일면식도 없는 게이머들이 서로 돕고 자발적으로 저장 파일을 희생해, E 엔딩에서 주인공 세 명이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 요코오 타로는 자신의 강연들에서 코카콜라가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에서 개최한 ‘스몰 월드 머신(Small World Machine)’ 이벤트를 언급한 바 있다. 이 이벤트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민들이 함께 협력해 작은 게임을 완성하고, 게임에 성공하게 되면 참가자들에게 콜라 캔을 지급한다. 요코오 타로는 입장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적대하게 된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라고 여긴다. 중2 때(14세)나 지천명(50세)에 이른 지금 [12] 이나 질병이라는 은유는 요코오 타로 게임 세계에 가득 차 있다. 그 증상들 배후에 있는 병변은 하나같이 살육과 폭력, 약탈, 경쟁 등 ‘악의’를 낳는 행동을 가리킨다. 현대 사회에서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네이쥐안(内卷) [13] 과 세계 곳곳의 국지전들은 예술 창작자들을 괴롭게 하는 토픽이다. 거대서사를 향한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고, 어떠한 이념도 우리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만화가 후지모토 타츠키(藤本树) [14] 는 <체인소맨>에서 덴지의 답을 “그녀를 많이 안아줘”라고 했듯, 요코오 타로의 질병 치유 시도 역시 개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즉, 당신의 파일을 희생해 처방이 불가능한 플레이러를 구출하거나, 카이네가 다시 태어난 니어를 껴안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1] 수전 손택 저·이재원 역,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2002년 [2] 드래그 온 드라군 유니버스에서 홍안증후군, 즉 레드아이(赤目の病)는 [3] ‘드래그 온 드라군’ 서사 속 암흑의 시대에 강림한 여신들은 노래를 불러 마력을 발휘했고, 이를 통해 황폐한 대지에 평화를 안겨다 줬다. [4] [나무위키 ‘니어 레플리칸트/등장인물’] 절벽 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입이 험한 속옷 차림의 소녀. 할머니를 죽인 마물에게 복수하려 한다. 니어와 처음 만났을 때는 싸움을 벌이지만 곧 동료가 된다. [5] 일본의 평론가로, 비평지 ‘PLANETS’ 편집장이다. 주요 저서로는 『제로년대의 상상력』『리틀피플의 시대』『모성의 디스토피아』등이 있다. [6] 먼 미래에 지구를 침략한 이성인(외계인)들이 보낸 병기 [7] 인류가 지구를 탈환하기 위해 조직한 신형 안드로이드 전투용 보병 [8] 백염화증후군에 맞서기 위해 신체와 영혼을 나누는 기술 [9] 남쪽 평원의 저택에서 집사와 살고 있는 소년. 눈으로 본 상대를 돌로 만드는 힘이 있지만, 이를 통제하지 못해 붕대로 눈을 감고 있다. [10] 중국 대륙 인터넷 유행어로, 소설이나 영상물, 그밖에 콘텐츠를 시청 또는 소비할 때 해당 동영상이나 작품에 등장하거나 작품과 관련된 내용을 찾기 위해 정보를 검색하고 조사하는 것(디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11] [나무위키 “2B(니어 시리즈)”] 3인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하나이며 (1회차의) 주인공. [12] 요코오 타로는 1970년생으로 현재 53세이다. [13] ‘네이쥐안(内卷)’이란 클리포드 기어츠가 인도네시아 사회를 참여 관찰한 뒤 내놓은 저서 『농업의 내향적 정교화 Agricultural Involution』에서 제기된 involution 개념에서 유래한다. 프래신짓트 두아라(Prasenjit Duara)는 『Culture, Power, and the State: Rural Society in North China, 1900-1942』에서 근대 중국 역사의 바퀴가 안으로퇴행(involution)했다고 묘사한 바 있다. 즉, 한 사회나 조직이 급진적인 발전이나 점진적인 성장 없이 행하는 단순한 자기반복을 의미한다. 한데 2021년 인류학자 샹뱌오(项飙)가 펑파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개념을 다시 언급하면서 지식사회의 쟁점이 됐다. 극심한 경쟁 속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내몰린 사람들의 삶을 묘사한다. 질적 성장 없는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내부 경쟁. 이로 인한 노동자계급, 청년들의 집단적인 번아웃 현상.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가리킨다. [14] 일본의 유명 만화가로, 2013년 데뷔 이후 계속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소년 점프+에서 《체인소 맨》을 연재중이다. Tags: 드래그온드라군, 니어오토마타, 질병서사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Researcher) 张成(장청) 화동사범대학(华东师范大学) 철학과 박사후연구원.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 <원신>의 동남아시아 소프트 파워 효과 평가

    2023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애니메 페스티벌 아시아(AFA)에서 miHoYo는 컨벤션 센터 입구, 즉 전시장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덕분에 팬들이 굿즈를 사기 위해 부스로 몰려들면서 3일 내내 통로가 막힐 지경이었다. 부스에는 miHoYo의 글로벌 흥행작이자 2020년 출시 이후 회사를 세계 무대에 올려놓은 게임, 《원신》의 포토존과 캐릭터 상품이 가득했다. < Back <원신>의 동남아시아 소프트 파워 효과 평가 29 GG Vol. 26. 4. 10. 2023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애니메 페스티벌 아시아(AFA)에서 miHoYo는 컨벤션 센터 입구, 즉 전시장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덕분에 팬들이 굿즈를 사기 위해 부스로 몰려들면서 3일 내내 통로가 막힐 지경이었다. 부스에는 miHoYo의 글로벌 흥행작이자 2020년 출시 이후 회사를 세계 무대에 올려놓은 게임, 《원신》의 포토존과 캐릭터 상품이 가득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miHoYo 관련 행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사운드트랙 콘서트, 싱가포르 버블티 체인 LiHoTEA·디스커버리 채널 동남아시아 지사·도미노 피자 등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잇따랐으며(Yan, 2023; Genshin.Global , 2022; Lojo, 2024), 2023년에는 연간 플래그십 이벤트 '호요 페스트(HoYoFest)'를 동남아시아 6개국에서 동시 개최해 《원신》을 포함한 자사 게임 라인업을 한자리에 선보였다. miHoYo의 이 같은 확장세는 《원신》의 글로벌 흥행에 힘입은 바 크다. 2021년 3월, 출시 6개월도 채 안 되어 누적 플레이어 지출액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구글 플레이와 앱 스토어 양대 마켓에서 최단 기간 해당 기록을 세웠다(Chapple, 2021). 같은 해, 게임 업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더 게임 어워즈(TGA)에서 최우수 모바일 게임상을 수상하며 중국 게임 최초라는 기록도 남겼다(Bankhurst, 2021). miHoYo는 급격히 팽창한 해외 사업을 관리하기 위해 2022년 싱가포르에 글로벌 자회사 코그노스피어(Cognosphere)를 설립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원신》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이 게임이 중국의 소프트 파워 원천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Song, 2023; Li and Li, 2023). 소프트 파워란 한 나라의 문화, 정치적 가치관, 외교 정책을 통해 축적되어 타국의 인식과 관계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가리킨다(Nye, 2004). 소프트 파워는 국가 기관이 의도적으로 조성하기도 하지만, 국가의 개입 없이 독자적으로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miHoYo는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소프트 파워 형성에 기여한 비국가 행위자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중국 내에서 《원신》은 어떻게 평가받는가 중국 국내에서 《원신》은 국가적 자부심의 원천으로 여겨진다. 판 옌천(Fan Yanchen, 2024)은 이 게임의 해외 진출 성과를 분석한 글에서, "중국 게임이 '수출'에서 '세계화'로 나아가는 현 시점에서 《원신》은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중국의 이야기를 세계에 전하는 훌륭한 매개체"라고 언급했다. 이는 중국 당국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중국의 이야기를 잘 전하라(讲好中国故事)'는 기조와도 맥을 같이한다(Liu, 2018). 송 탕(Song Tang, 2023)의 글에서는 중국 네티즌들이 해외 플레이어들의 반응을 중국어로 번역해 국내에 퍼뜨리는 현상도 확인된다. 그들에게 이는 게임의 글로벌 흥행이 곧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다. 게임의 높은 완성도는 중국이 '낙후되어 있다'는 편견을 깨고, 오히려 '고도로 근대화된' 나라의 이미지를 심어주며 "문화 강국으로 도약하는 중국"이라는 집단적 비전에 기여한다고 평가된다. 중국의 문화적 이미지 제고에 《원신》이 기여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중국 정부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miHoYo는 2021년과 2022년 국가 문화수출 중점 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Ministry of Commerce, 2021), 이후 miHoYo가 개발한 신작들도 베이징의 지지를 받았다(Cao, 2023).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담론은 서구권과 중국 내 관객의 반응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송(Song, 2023)은 중국 팬들이 만든 영상을 분석하면서, 어느 크리에이터가 《원신》 덕분에 미국인들이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을 이해하게 됐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서구의 시선을 특별히 의식하는 이 경향은 《원신》의 '중국성(Chineseness)'을 둘러싼 또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리와 리(Li and Li, 2023)는 《원신》에 대한 네티즌들의 엇갈린 의견과 무관하게, 서구 소비자의 반응에 유독 무게를 두는 태도가 "외국인, 특히 선진국의 서구 소비자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중국 플레이어들의 불안"을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해외 반응을 향한 중국 네티즌의 시선은 정작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로는 잘 향하지 않는다.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의 반응이 주목받지 못하고 서구 반응에만 관심이 쏠리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교육, 음식,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경우 대중문화 등 다른 중국 콘텐츠가 해당 지역에서 이미 충분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미-중 경쟁으로 인해 서구권, 특히 코로나19 이후 반중 감정이 고조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2022년 기준 세계 3위 매출국인 미국에서(Chapple, 2022) 게임이 열광적으로 수용되는 현상은, 변화하는 서구의 대중(對中) 감정을 보여주는 징표로 읽힐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라들, 특히 동남아시아의 반응을 간과할 수는 없다. '2024 동남아시아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중 경쟁 구도에서 전략적 파트너로 중국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자 비율이 50.5%로 미국(49.5%)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전년도 조사에서 중국을 선택한 비율이 38.9%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Seah et al., 2024). 중국의 인기가 예상치 못하게 급상승하고 있는 만큼, 《원신》과 같은 중국 문화 콘텐츠가 동남아시아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필자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플레이어 264명을 대상으로 게임에 대한 인상과 중국 문화 인식에 미친 영향을 설문 조사했다. 《원신》이 최고 인기를 누리던 시기, 이 게임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 매출 1위를 기록했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는 2위였다(Bashir, 2022). 플레이어 수가 많은 이들 5개국을 조사 대상으로 삼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나, 결과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화교 커뮤니티가 강하게 자리 잡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핵심 비교 국가로 선정했다. 인도네시아 역시 화교 인구가 상당한 만큼 비교 대상에 포함했다. 반면 필리핀과 베트남은 상대적으로 화교 비중이 낮아 인구 구성의 맥락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제외했다. 동남아시아의 《원신》 수용 태도 2024년 2월 1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이번 조사 결과, 동남아시아에서 이 게임의 소프트 파워 효과는 두 가지 이유로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첫째, 이 지역 플레이어들은 이미 주변의 화교 이웃 및 친구들을 통해 중국 문화에 충분히 노출되어 있어, 게임이 추가로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제한된다. 둘째, 플레이어들은 《원신》을 순수하게 '중국적인' 게임이 아닌 글로벌 게임으로 인식하며, 이는 소프트 파워로서의 잠재력을 희석시킨다. 응답자 구성은 인도네시아 37%, 말레이시아 33%, 싱가포르 30%였다. 긍정적이되 제한적인 효과 설문 결과에 따르면,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서 《원신》의 소프트 파워 효과는 긍정적이지만 제한적이다(그림 1 참조). * 그림 1: 다음 항목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십니까? 대다수 응답자는 중국 문화 전반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다만 게임 플레이 이후 중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응답자(35.5%)가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18.2%)보다 많았다. 이는 《원신》이 동남아시아에서 제한적이지만 긍정적인 소프트 파워 효과를 내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게임이 현지 관객에게 전반적으로 중립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신》을 플레이한 후 중국적 미감이 반영된 제품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항목에서 응답자들은 자신의 견해를 직접 서술했다. 이 항목에서 중립 응답을 선택한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첫 번째 집단은 게임을 문화 전달의 중요한 매개체로 보지 않는 플레이어들로, 문화적 가치를 위해 게임을 찾는 습관 자체가 없었다. 두 번째 집단은 이미 일상에서 중국 문화에 충분히 노출되어 있는 동남아시아 화교 인구로, 게임의 소프트 파워 효과가 상당 부분 무뎌진 경우다. 첫 번째 집단에 속하는 플레이어들은 게임이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입장이었다. 게임이 담고 있는 문화적 함의는 부차적인 문제로, 중국에 대한 인식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답했다. 두 번째 집단은 화교 참가자이거나 중국인 친구를 둔 비화교 참가자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이미 중국 문화에 익숙한 만큼, 《원신》이 자신의 인식에 특별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 뿌리내린 중국 문화가 《원신》의 소프트 파워 효과를 제한하는 가운데서도, 이 게임이 지역 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드러났다. "동의" 및 "강하게 동의" 응답자 중에서는 화교보다 비화교 응답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원신》이 비화교 플레이어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한다(그림 2.1, 2.2, 2.3 참조). * 그림 2.1 "《원신》을 플레이한 후 중국 문화에 대해 더 궁금해졌다" * 그림 2.2 "앞으로 몇 년 안에 《원신》의 배경이 된 중국 실제 장소를 방문하고 싶다" * 그림 2.3 "《원신》을 플레이한 후 중국적 미감이 반영된 제품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중국이 만든 글로벌 게임 《원신》이 중국 문화에 대한 인식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는 것과 더불어, 설문은 응답자들이 이 게임을 얼마나 '글로벌 게임'으로 인식하는지도 살펴보았다(그림 3 참조). * 그림 3: 《원신》은 글로벌 게임이다 결과에 따르면 51.9%가 "강하게 동의", 38.6%가 "동의"했다. "비동의"와 "강하게 비동의"는 각각 0.16%에 그쳤으며, 8%는 "중립"을 선택했다. 압도적 공감대의 배경으로는 ①다양한 문화를 소개한다는 점, ②전 세계적으로 서비스된다는 점, ③세계 각지의 플레이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꼽혔다. 이어서 응답자들에게 《원신》을 '중국 콘텐츠'로 인식하는지 물었다(그림 4 참조). * 그림 4: 《원신》을 중국 콘텐츠로 인식합니까? 응답자의 85%가 "그렇다"고 답했고, 15%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 중 다수는 개발사가 중국 기업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게임의 중국적 기원을 분명히 인정했다. 일부는 게임 내에서 '중국성'이 두드러지게 강조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반면 "아니다"라고 답한 소수는 일본 애니메이션 화풍의 도입을 핵심 이유로 지목했는데, 이는 《원신》의 중국성을 둘러싼 현재 진행형의 논쟁을 반영한다. 두 질문을 나란히 놓고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플레이어들은 이 게임을 중국적(로컬)인 동시에 글로벌한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고(Goh, 2015)가 제시한 '세계화된 다문화주의(worlding multiculturalism)'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업(miHoYo 같은)이 낯설고 새로운 것(전통 중국 문화와 미감)에 로컬(동남아시아)하고 친숙한(일본 애니메이션 화풍) 요소를 접목해, 소비자가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문화 상품을 빚어내는 방식이다(Otmazgin and Ben-Ari, 2015). 개발진은 중국 문화의 미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로컬과 글로벌 양쪽에 두루 소구하는 게임을 만들어냄으로써, 의도치 않게 '세계화된 다문화주의'의 역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한 셈이다. 이 지역 플레이어들이 《원신》을 중국적이면서도 글로벌한 게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결과다. 결론 설문 결과를 종합하면, 《원신》은 세계적 인기를 지닌 문화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중국의 역량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개선하는 데 분명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그것이 나이(Nye)가 개념화한 소프트 파워에 걸맞은 정치적 파급력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응답자들이 《원신》을 중국 게임인 동시에 글로벌 게임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은, 이 게임의 소프트 파워 효과가 동남아시아에서 궁극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게임의 글로벌한 성격이 그 안에 담긴 '중국성'을 압도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한, 소프트 파워로서의 잠재력은 희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SOJOURN: Journal of Social Issues in Southeast Asia Vol.39, No. 3 (2024년 11월)에 게재된 "Assessing Genshin's Soft Power Impact on Southeast Asia"의 축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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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논문세미나] 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

    세계 각국을 먼나라 이웃나라로 나눌 때, 아랍 국가들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먼 나라다. 아랍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막상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찾고자 결심한다면 우리는 의외로 많은 정보들과 마주할 수 있다. 급성장하는 아랍의 게임시장이 가진 매력적인 자본과 가능성에 전 세계의 게임사들이 눈독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도 포함이다. < Back [논문세미나] 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 24 GG Vol. 25. 6. 10. 세계 각국을 먼나라 이웃나라로 나눌 때, 아랍 국가들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먼 나라다. 아랍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막상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찾고자 결심한다면 우리는 의외로 많은 정보들과 마주할 수 있다. 급성장하는 아랍의 게임시장이 가진 매력적인 자본과 가능성에 전 세계의 게임사들이 눈독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도 포함이다. 2023년 기준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인터넷 보급률은 100% [1] 이며, 중동 인구의 약 52.9%가 콘텐츠 적극 소비 계층인 30세 이하 [2] 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대대적인 자본을 투자해 게임 및 이스포츠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3] .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Riyadh Season,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이스포츠 페스티벌 등 전 지구적 게임 행사도 활발하다. 이 먹음직스러운 수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국내 다양한 언론 및 기관이 아랍 게임 시장에 관한 분석을 내놨다. 그러나 그 너머를 목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장 분석 보고서는 많고 많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아랍의 단편이다. 이번 논문 세미나에서는 「장벽 허물기 -아랍 세계의 비디오 게임 문화와 산업의 등장(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을 다룬다. 이는 2023년에 출간된 『Handbook of Media and Culture in the Middle East』의 일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 Vít Šisler, Lars de Wildt, Samer Abbas는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UAE, 카타르 등의 아랍 지역 현장 조사, 40명 이상의 아랍 게임 개발자 인터뷰, 게임 분석 및 기존 연구의 메타분석을 진행했다. 저자들은 서구권의 주류 게임이 아랍인 또는 무슬림 표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대해 연구해왔다. 논문은 게임 환경과 비판적 트랜스문화주의 개념을 채택해 아랍 세계의 비디오 게임 소비의 역사와 현재를 개괄한다. 논문은 서구권에서 바라보는 구멍 난 아랍 게임 문화 형상의 간극을 메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논문은 아랍의 게임 현장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문화적 혼종성, 시각적 표현의 진정성 강조, 종교 및 문화적 문제에 대한 민감성이라는 특징을 가진 것으로 봤다. 저자들은 논문을 통해 정치·경제·종교·문화적 흐름이 지역의 게이머·개발자·기관의 게임 매체 활용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고 이를 글로벌 문화 생산 및 초국적 소비자 문화라는 맥락과 연결했다. 아랍 게임 시장의 현재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먼저 현재의 아랍 게임 시장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중동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 시장 중 하나다. 그것은 젊고 빠르게 성장하는 활동적인 게이머 인구, 높은 스마트폰 및 인터넷 보급률, 지역 및 글로벌 게임 퍼블리셔의 현지화된 콘텐츠 공급(The National 2020)에 힘입은 결과이다. 2021년 기준 아랍에서는 사우디, UAE, 이집트가 상위 게임 시장으로 꼽히며, 사우디는 약 8억3700만 달러로 전 세계에서 19번째로 큰 게임 시장으로 꼽혔다(Tashkandi 2021). 올해 발간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연구 [4] 에 따르면 중동 게이머는 국제 평균 이상으로 모바일게임 플레이를 선호하며, 배틀로얄, 슈팅, 스포츠 등 단기 집중형 장르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에 나타난 사우디와 UAE 게이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44.2%가 모바일게임을 이용한다고 답했고, 하루 평균 이용시간 또한 모바일게임이 3.73시간으로 가장 높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2022년 12월 기준 아랍 지역에서 인기 있는 안드로이드 무료 게임은 피파 모바일, 틱택토, 싸커 슈퍼 스타, 루도 클럽 등의 스포츠, 퍼즐, 보드게임 장르 게임이었다. iOS 기준으로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서브웨이 서퍼가 인기를 끌었다. 유료 게임으로는 마인크래프트가 가장 인기가 많았고, 가장 수익을 많이 내는 게임으로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있었다. MENA [5] 지역에서 유명한 이스포츠 게임으로는 ‘DOTA2’, ‘포트나이트’, ‘FIFA’ 등이 있다 [6] . 아랍 세계의 게임 연구 동향 비디오 게임 분야의 아랍에 관한 연구는 주로 서구권 개발자의 아랍 재현 방식 연구와 아랍에서의 게임 제작(및 그 자체 재현) 연구로 나눌 수 있다. 재현에 관한 연구는 주로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 시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인기 비디오 게임에서 악당이 일반적으로 중동 테러리스트로 묘사되는 방식과 아랍 문화 정체성에 대한 기타 환원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인 재현을 조사한다(Marashi 2001; Reichmuth and Werning 2006; Keogh 2021). 두 번째 연구 흐름은 아랍에서 제작된 비디오 게임과 그 속의 아랍인과 무슬림 자기재현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Galloway 2004; Machin and Suleiman 2006; Tawil-Souri 2007). 이 논문의 저자들이 위치하는 곳도 이 지점이다. 또한 다른 연구자들의 중동 지역 게이머들의 소셜 미디어 참여 연구(AI-Rawi and Consalvo 2019)는 아랍 게이머의 공동의 정체성이 아랍어와 아랍 게임의 공유 소비를 통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아랍 세계 비디오 게임의 역사 시작: 해외 게임 소비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미국·유럽·일본과 마찬가지로 아랍 세계에 게임이 전파됐다. 초창기 아랍에서는 주로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 등의 해외 게임을 소비했다. 국산 게임 제작보다 선행된 해외 수입품의 유입은 아랍 지역의 국내 비디오 게임 산업과 그 결과물을 형성하는 ‘벤처와 관객의 기대치’를 설정했다(Wolf 2015,6). 불법 복제 게임, 소위 ‘해적판’ 게임은 아랍 세계에 비디오 게임이 확산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이 지역의 불법 복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대부분의 아랍 도시에서 해외 게임의 사본을 2~3달러에서 구입할 수 있었으며, 출시 직후의 게임 구매도 가능했다(Šisler 2013). 광범위한 불법 복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현지 생산자와 수입업자들은 값싼 해적판 제품과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밀려났다(Wolf 2015,7). 반면 불법 복제는 글로벌 불평등에 대한 전술적 대응으로서 다양한 계층의 게이머가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민주화 효과를 제공하기도 했다. 지역의 높은 불법 복제 수준은 게임 산업 관행에 영향을 미쳐 회사들이 월정액 구독과 회사 서버 액세스가 필요한 온라인 게임 제작으로 전환하도록 만들었다(Wolf 2015, 7). 비디오 게임에 대한 접근은 사이버카페(PC방)를 통해 더욱 용이해졌다. 이는 특히 이집트, 알제리, 요르단처럼 인터넷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발전 속도가 느린 국가의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지 게임 프로덕션의 등장 1981년, 아랍어 친화적 인터페이스를 갖춘 비디오 게임기에 관한 수요로 알-알라미예가 사크르라는 아랍어 가정용 컴퓨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일본의 MSX를 기반으로 제작돼 아랍 전역의 중산층 가정에서 인기를 얻었다(Kasmiya 2015, 30). 알-알라미예는 일부 게임을 아랍어로 현지화했고, 퀴즈 게임 로드 투 마카(Road to Makkah)와 같은 간단한 아랍어 게임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Abbas 2019). 이는 1990년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0년, 시리아 의대생 무하마드 함자가 제작한 ‘돌 던지기(The Stone Throwers)’는 초기 아랍 비디오 게임 제작에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 게임은 알 아크사 인티파다 [7] 를 다룬 단순한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이스라엘 군인으로부터 알 아크사 모스크를 지키는 팔레스타인인의 역할을 맡게 된다(Šisler 2018). 이 게임의 뒤를 이어 아랍의 문화를 더 밀접하게 반영한 다른 게임들이 개발됐다(Šisler 2008). 이 게임들은 서구권 비디오 게임에서 아랍인을 테러리스트와 종교적 근본주의자로 묘사하는 헤게모니적 왜곡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대항 담론’(Lefebvre 1991)으로 간주할 수 있다(Šisler 2018). 이러한 게임은 성격에 따라 크게 저항, 교육, 문화적 대화로 분류할 수 있다. 저항 게임은 일반적으로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과의 실제 분쟁을 바탕으로 한 1인칭 슈팅 게임이다. 대표적인 예로 레바논 헤즈볼라 운동(대표작: Special Force 1,2), 시리아 회사인 다르 알 피크르와 아프 카르 미디어(대표작: Under Ash, Under Siege), 요르단 스튜디오 투라스(대표작: Jenin: The Road of Heroes)가 있다. 이 게임들은 아랍 청소년들에게 자신만의 영웅을 제공하고 아랍인의 관점에서 분쟁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Šisler 2018). 초기의 교육용 게임은 이슬람의 기본 교리나 문명에 대해 가르치거나 가족적 가치를 홍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서구와의 문화적 대화를 위한 도구로 개발된 초기 게임에는 2005년 시리아 회사 아프 카르 미디어가 만든 전략 게임 ‘쿠라이쉬(quraish)’가 있다. 이 게임은 이슬람의 기원과 확산을 다루며 이교도 베두인, 무슬림 아랍인, 조로아스터교 페르시아인 등 다양한 관점에서 플레이할 수 있으며 아랍어와 영어로 제공됐다(Šisler 2018). 쿠라이쉬의 개발자 중 한 명인 라드완 카스미야는 후에 빈센트 고섭과 함께 팔라펠 게임즈를 설립했다. 중동과 중국에 사무실을 둔 이 회사는 첫 번째 게임 ‘나이츠 오브 글로리(Knights of Glory)’(2011)로 100만 명 이상의 유저를 확보했다. 이집트에서는 많은 인디 개발자들이 문화나 정치를 주제로 한 게임을 퍼블리싱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네잘 엔터테인먼트는 아랍 스타일 농장 게임 ‘알마디나(Elmadinah)’(2013)로 100만 달러 이상 투자를 유치했다. 이 회사의 전작 ‘크라우즈 보트(Crowds Vote)’(2012)는 2012년 이집트 혁명을 소재로 했다(Kasmiya 2015). 문화적 진정성과 현지화 초기 아랍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들은 지역의 전통·역사·종교에 관한 ‘진정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게임의 기본 구조가 외국의 것이기 때문에 아랍 세계의 초기 게임 제작에 나타난 것은 혼종성과 문화 간 교류였다(Šisler 2018). 해외 게임사에게 현지화는 수익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 됐다. 독일의 브라우저 기반 전략 게임 ‘트래비안(Travian)’은 통신사 결제와 선불카드 결제를 이용할 수 있는 최초의 아랍어 멀티 플레이어 게임이었다. 2009년 전성기 시절, 아랍어 버전 트래비안은 트래비안 전 세계 유저 1/5를 차지하며 매달 150만~3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Abbas 2019). 트래비안의 성공은 아랍 세계가 다른 유럽 브라우저 게임에 눈을 돌리게 했고, 아랍 지역 게임 회사에 투자가 유치되는 계기가 됐다. 다운로드가 필요 없고 저사양 PC를 지원하는 브라우저 게임은 쉽게 게임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지화된 무료 게임은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더욱 확산됐다. 그 결과 서구의 여러 회사가 아랍에 지사를 설립하고 아랍 시장을 겨냥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Campbell 2013). 현지화는 번역 이상으로 현지의 문화·종교·정치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아랍을 대상으로 한 현지화는 노골적인 성 묘사와 폭력, 종교 비판, 음주 등을 피할 필요가 있다. 가령 트래비안은 양조장 건물을 찻집으로 대체했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아랍 국가에 별도의 규제가 없었으나, 사우디와 UAE에서 성적인 표현과 아랍 문화에 대한 오해를 가진 몇몇 게임이 금지되면서 국가 미디어 정책에 규제 조치가 생기기 시작했다(Šisler 2018). 아랍 게임의 최신 트렌드 최근 아랍의 게임 현장에서는 다양한 이슈가 벌어지고 있다. 게임 산업의 잠재력을 알아본 정부의 투자 지원과 새로운 규제, 세계화를 통한 초국가적 네트워크 교류, 아랍의 관점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여전한 대표성 및 정치적 문제, (모바일) 캐주얼 게임의 유행, 아랍적인 게임을 위한 모딩 및 커뮤니티 번역이 바로 그것이다. 대표성 및 정치 문제와 같은 몇몇 이슈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부 지원 및 규제 2016년 사우디아라비아 시청각미디어위원회는 현지 및 수입 게임에 대해 지역 최초의 공식 연령 등급 콘텐츠를 도입했다. 금지 콘텐츠에는 누드, 노골적인 성행위, 동성애, 종교 비판,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 등이 포함된다. 2018년에는 UAE도 국가미디어위원회(NMC)를 통해 유사한 등급 시스템을 도입했다. 세계화와 초국가적 네트워크 * 라미 이스마일의 isthatarabic 홈페이지 내용 아랍계 개발자들은 글로벌 게임 제작에서 아랍 및 이슬람 문화에 대한 기존의 도식화 및 왜곡된 표현에 대해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8년 오사마 도리아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례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에서 ‘비디오 게임에서 무슬림 표현을 위한 방법 가이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네덜란드계 이집트인 게임 디자이너 라미 이스마일은 게임 회사들이 아랍 문자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문제에 맞서기 위해 웹사이트 https://isthatarabic.com 을 개설했다. 아랍계 게이머의 소셜 네트워크는 영어와 함께 아랍어를 사용하고, 지리적 근접성, 역사 및 종교를 공유한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구축된다. 아랍 개발자 네트워크는 점점 더 공식화되고 국제화돼 지역 전체를 위한 소셜 네트워킹 이벤트와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다(Šisler 2018). 대표적인 예로 아랍에서 가장 큰 연례 게임 개발 행사 ‘게임 잔가(Game Zanga)’는 참가자들이 72시간 동안 주어진 주제에 관한 게임을 제작한다. 이집트 혁명이 정점에 달했던 2012년의 주제는 ‘자유’였다. 대표성 및 정치 * 게임 ‘리일라와 전쟁의 그림자’ 첫 화면. 글로벌 산업이 대부분 북미에서 주도된 결과 현대의 국제 분쟁은 거의 기본적으로 미국 관점에서 표현된다. 가령 2023년 출시된 게임 ‘식스 데이즈 인 팔루자(Six Days in Fallujah)’는 2004년 이라크 전쟁 제2차 팔루자 전투에 참전한 미 해병대 분대의 시점에서 다큐멘터리적인 리얼리즘으로 전개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반면 아랍의 관점이 우세한 경우,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중립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쉽게 버려지기도 한다. 2016년 팔레스타인 디자이너 라시드 아부 에이데가 제작한 ‘리일라와 전쟁의 그림자(Liyla and the Shadows of War)’는 팔레스타인의 관점에서 전쟁의 민간인 희생을 탐구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애플 온라인 스토어 판매를 거부당하다가 이후 전 세계 게임 개발 커뮤니티의 대규모 항의(Batchelor 2017)가 있은 후에야 판매 허가를 받았다. 캐주얼 게임 사실 아랍 게임사에게 대표성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수익을 내 생존하는 것이다. 아랍 게임사들은 이를 위해 캐주얼 게임과 모바일 게임 개발을 택했다. 현재는 인기 있는 모바일 게임 중 아랍 세계에서 제작됐거나 아랍 친화적인 게임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모딩 및 커뮤니티 번역 게임 커뮤니티 전체에 존재하는 모딩 및 커뮤니티 번역의 전통은 아랍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13년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아랍어 번역본이 3년간의 작업 끝에 아랍 팬 번역가에 의해 출시됐다(Johnson 2013). 마치며: 아랍 게임 문화의 성장 가능성 게임 산업은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대표적으로 유니티 같은 게임 디자인 툴의 대중화, 스팀 같은 유통 플랫폼을 통한 글로벌 시장으로의 접근성 향상은 개발 및 퍼블리싱 비용을 낮춰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의 개발자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아랍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스튜디오는 여전히 드물다.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불확실성, 외국인 투자 부족, 분열된 게임 커뮤니티, 노하우 부족, 게임 개발 교육 부족 등 여러 가지 정치 및 경제적 문제가 산재해있기 때문이다. 아랍 세계에서 게임 산업은 30년 동안 존재해왔다. 그럼에도 네덜란드계 이집트인 게임 개발자 라미 이스마일에 따르면, 아랍 게임 개발 커뮤니티는 그가 제안한 지역 게임 개발 커뮤니티 6단계 중 초기 단계에 머물러있다. 그에 따르면 첫 번째 단계에서는 아마추어가 거의 없는 지역에서 지식 공유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그 다음에는 국제적으로 지식이 교환되지만 여전히 ‘서구에서 크게 성공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Ismail 2015). 그러나 이제까지 살펴봤듯, 성장의 여지는 존재한다.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며 아랍 게임 문화가 성장하고, 혼종화되고, 문화 간 교류에 접어들고 있다는 특징 이상으로 아랍에 고유한 플레이어 문화를 가진 신흥 소비자층이 나타났단 점에 주목한다. 게임 문화와 산업은 이들이 함께하는 참여형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저자들은 이들을 더욱 확장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해외 문화 소비로 시작해 점차 자체 게임 시장을 형성하게 된 한국의 입장에서 아랍 게임 문화의 성장 과정은 크게 낯설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아랍 게임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의심되지는 않는다. 이제 한국인 게이머로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랍 게임의 경제적 측면 그 이상을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초국가적 게임 커뮤니티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논문의 표현을 빌려와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게임 문화와 산업은 구성원이 함께하는 참여형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1] World Bank, 2024.12.16.,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2] EBS, 2021, ‘닫혀 있던’ 사우디에 무슨 일이?...아라비아의 변화 어디까지 [3] Mastercard Newsroom, 2023, Transforming Saudi Arabia’s esports and gaming landscape [4] 전종섭(한국콘텐츠진흥원), 2025.01.07., 신규 게임시장의 기회: 중동의 한국게임 소비행태 분석 [5] Middle East and North Africa의 약자. 아랍, 중동, MENA 지역의 개념적 정의와 범주는 모두 다르지만 여러 자료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혼용해 사용했다. 엄밀히 말해 아랍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 연맹 22개국을 의미하며, 중동은 아랍 국가들이 위치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아랍어 사용국 외에 이란, 튀르키예 등을 포함한다. 이 글에서는 가급적 원 자료 표기를 따르되 필자의 표현은 아랍으로 통일했다. [6] 해당 단락은 한국콘텐츠진흥원 UAE 비즈니스센터, 2023.06.30., ‘중동 콘텐츠 산업 동향’을 참고했다. [7] ‘인티파다’란 아랍어로 봉기를 뜻하는 용어로, 이스라엘 점령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인의 주요 봉기를 뜻한다. 제1차 인티파다는 1987~1993년, 제2차 인티파다는 2000~2005년까지 이어졌다. 알 아크사 인티파다는 제2차 인티파다의 다른 이름으로, 이슬람교도들에게 3번째로 성스러운 장소인 ‘알 아크사 모스크’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원생) 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 모험가들은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 게임과 노스탤지어

    2015년 9월 1일 게임 개발자 론 길버트(Ron Gilbert)는 자신의 블로그에 ‘Happy Birthday Monkey Island(원숭이 섬 생일 축하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다. 그가 1990년에 개발한 어드벤처 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이었다. 그는 글의 마지막에서 〈원숭이 섬의 비밀〉을 함께 만들었던 당시의 팀과 ‘이 게임이 25년간 살아 있을 수 있게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후, 오래전에 받은 한 통의 팬레터 사진1)을 첨부한다. 당시 12살이라고 밝히고 있는 크레이그 톰슨(Craig Thompson)이 그에게 보낸 것이다. < Back 02 GG Vol. 21.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arim Lee Researches and writes about memory, story, and image. Interested in moving-image work where public and private memory intersect. Drawn to things that rest on the boundary—beings that cannot settle and drift instead. These days, comes to think that approaching haltingly, and walking while looking back, may be the method of both writing and living.

  • 2023년, 되새기고 싶은 게임들

    쏟아지는 게임들을 개인이 매년 다 챙겨 플레이해 볼 수는 없다.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꾸준히 신작들을 좇는 과정에서 느꼈던 올해의 여러 게임들을 간략히 정리해보면서 한 해의 게임들이 남긴 의미들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GG는 딱히 평점을 매기거나 개별 타이틀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웹진은 아니지만, 한 해의 마무리로서의 의미 정도는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 Back 15 GG Vol. 23.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그들만의 게임 바깥에서 서성거리기 : 다크소울3과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 (장려상)

    다크소울3은 나의 첫 패키지 게임이었다.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이 게임을 소개하는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고딕 건물이 빛바랜 색감과 얽혀드는 게임 속 광경이 매력적이었고,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스팀 게임이라는 걸 구매해 봤다. 무턱대고 시작한 게임은 참 까다로웠다. 알고 보니 다크소울은 어려운 난이도로 이름이 높은 타이틀이었다. 이 게임의 디자인은 다양한 함정이나 어려운 전투를 활용해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부각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고 화면에 떠오르는 'You Died' 문구는 일종의 밈이 될 정도였다. < Back 07 GG Vol. 22.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yuri Kim Interested in the ways games let us experience stories. After poking around here and there, lately played Marathon.

  • 자각몽으로서 게임(우수상)

    비디오 게임의 모순적인 표현을 지적하는 말로 ‘루도내러티브 부조화’(Ludonarra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쓰이곤 한다. 이는 게임 디자이너 클린트 호킹이 〈바이오쇼크〉를 비평하며 제시한 용어로, 말 그대로 게임 플레이(ludo)와 게임의 스토리(narrative) 사이의 부조화를 의미한다. 그는 〈바이오쇼크〉에서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는 규칙이 게임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내용과 상충하고, 게임의 진행에 따라 강제되는 선택이 전자에서 제시된 딜레마를 소거한다는 모순이 있음을 지적한다. < Back 자각몽으로서 게임(우수상) 07 GG Vol. 22. 8. 10. 루도내러티브 부조화 비디오 게임의 모순적인 표현을 지적하는 말로 ‘루도내러티브 부조화’(Ludonarrative dissonance)라는 개념이 쓰이곤 한다. 이는 게임 디자이너 클린트 호킹이 〈바이오쇼크〉를 비평하며 제시한 용어로, 말 그대로 게임 플레이(ludo)와 게임의 스토리(narrative) 사이의 부조화를 의미한다. 그는 〈바이오쇼크〉에서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는 규칙이 게임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의 내용과 상충하고, 게임의 진행에 따라 강제되는 선택이 전자에서 제시된 딜레마를 소거한다는 모순이 있음을 지적한다. 물론 이 ‘이야기 구조’와 ‘플레이 구조’의 대립 관계는 초기 게임학 연구의 내러톨로지와 루돌로지의 구분에서 유래하지만, ‘루돌로지스트에 속한 쪽’의 주역이었던 에스펜 올셋(Espen Aarseth, 2014)이 회상한 바에 의하면 당시 ‘내러톨로지스트’들이 게임에 서사학을 부적절하게 적용한 것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루돌로지스트’라는 자리가 주어졌을 뿐이었다. 덧붙여 그는 이 루돌로지스트들은 현재 모두 게임에 대해 서사학 이론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밝히며 루돌로지와 내러톨로지 대조의 오해를 지적한다. 이렇듯 게임 연구 방법론의 이원화는 다소 인위적인 구분에 기인하지만, 주류 비디오 게임(특히 대량의 자본이 투입된 소위 ‘AAA 게임’)의 방향성이 발전된 기술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스펙타클한 장면 연출을 위시하여 기존 영화적·문학적 서사를 게임 환경에서 재현하는 데 힘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루도내러티브 부조화’도 2년 전 논쟁적이었던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거론되어 왔다. 현대의 게임들은 이러한 단절을 의식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절충하는 방식을 써오면서, ‘영화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과 ‘플레이 같은 영화’를 보는 것 사이에서 전통적 서사 구조에 대해 여전히 양가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박인성, 2020). 여기선 이런 배경에서 대두된 몰입환경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원론적인 관점에서 기존 논의를 되짚어가며 디지털 게임에 대한 이해를 재고해보고자 한다. 이야기로 환원하기 단지 산만하고 무의미한 서술이 아니라 표현력을 가진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선 그 구성요소를 온전히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야기 속에 바깥의 행위자, 즉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환경에서 이를 행하는 건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플레이어는 이야기의 의미 구조하에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변수이고, 이야기의 청자가 단지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수용할 때와 달리 이들은 이야기의 과정과 내용 자체에 직접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 플레이어의 존재가 게임이 기존의 수용적인 예술 매체와는 다른 속성을 가지게 한다. 게임은 그 안에 영상이든 음악이든 텍스트든 다른 예술 형식을 적극적으로 담아낼 수 있지만, 그 표현 방식을 모방하기보다는 그것들을 데이터로써 포함할 뿐이다. 예스퍼 율(Jesper Juul, 2001)의 지적처럼 내러티브의 시간과 이야기되는 시간 간에는 시간적 거리가 존재하는 반면, 상호작용은 항상 현재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서술과 상호작용이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 때문에 이야기로서 서술되기 위해선 플레이어의 상호작용과 분리되고 그 영향력 바깥에 있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게임 스토리텔링은 플레이어의 입력이 허용되지 않는 컷신 속에서나, 시간적·공간적으로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해왔다. 이들은 그 자체로 게임 플레이를 형성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맥락을 제시하면서 현재 나의 행동을 유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 〈오브라 딘 호의 귀환〉에서 플레이어는 특수한 시계를 이용하여 과거의 한 시점으로 이동하지만 단지 관찰하고 정황을 추측하는 해석적인 접근만이 가능하다. 한편 비디오 게임이 스포츠나 보드게임 등과 달리 내러티브 요소를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게 가능한 것은 디지털 매체로서 가지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에릭 짐머만(Eric Zimmerman)과 케이티 세일런(Katie Salen)의 저서 〈Rules of Play〉에선 디지털 게임의 특징 중 하나로 ‘복잡한 시스템의 자동화’를 제시한다. 보드게임을 할 때는 이해한 룰에 따라 말을 손으로 움직이고 상호작용 결과를 직접 계산해야 했던 과정을 디지털 게임상에선 구현된 AI, 캐릭터가 움직이는 모습, 그래픽 엔진 등의 모든 자동화된 절차로 대신할 수 있다.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비-디지털 게임에서 손수 수행하기엔 너무 복잡한 수준의 상호작용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로부터 단지 귀찮은 과정을 생략하는 것 이상으로 디지털 게임은 가상의 공간과 캐릭터를 구체화하여 동적인 허구 세계를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플레이어의 존재는 이렇게 시스템이 자동화됨에 따라 축소된다기보다는 각 게임의 설정에 따라 그 역할이 바뀔 뿐이다. 최근 모바일 시장에서 지배적인 ‘방치형 게임’이라 하더라도 시뮬레이션을 재생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화를 소비하고 캐릭터나 아이템의 조합을 적절하게 구성하는 식의 운영을 요구하며 다른 조건과 방식의 플레이를 제공하고 있다. 1) 게임을 할 때 플레이어는 이러한 자동화된 구성요소 사이에서 입력을 요구받고 자동적인 절차를 거쳐 출력을 되돌려 받는다. 이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로 새로운 조건들이 만들어지고, 이에 다시 대응하는 과정이 연속된다. 게임 플레이를 이렇게 단순화했을 때 이 ‘모델’로부터 플레이어는 사건을 경험한다. 이 과정은 게임을 하는 동안 반복되지만, 플레이어가 스토리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 모든 시간이 아니라 그것이 의미 구조 안에서 (상정된 것이든 시스템에 의해 발생한 것이든) ‘이상적인 시퀀스’를 그려낼 때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건은 게임에서 항상 일어나지만, 이야기는 이를 사후적으로 의미화하고 재조합할 때만 존재한다. 따라서 게임 내부에 고정된 이야기를 조합하여 연속된 하나로 이은 것이 그 게임의 스토리라는 것도 지나치게 좁은 해석이고, 반대로 게임 플레이 전체를 두고 ‘내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던가 ‘각본 없는 드라마’ 혹은 ‘플레이어 스토리’나 ‘창발적 내러티브’라고 이르는 것 2) 도 가능성을 두고 말하는 비유일 뿐이다. 게임은 그 자체로 내러티브인 것이 아니라 ‘내러티브로 제시될 수 있는 것’에 가깝다. 3) 시스템으로 환원하기 한편으로 게임연구 초기엔 게임에 대한 텍스트적 해석에 반대하고 (‘학문적 식민지화’를 경계하며) 게임 매체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게임 내 기존 이론으로 해석하기 쉬운 요소들(텍스트, 이미지, 내러티브 등)이 도외시되기도 했다. 올셋(2004)은 한 에세이에서 체스 말이 어떤 모양을 가지든 체스를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라라 크로프트의 외모는 몸이 다르게 보인다고 다른 식으로 플레이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와 무관하다고 말한다. 이런 논지는 현재까지 몇몇 비평과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지속되어, 이들은 ‘진정한 게임’을 찾기 위해 ‘가장 게임다운 것’ 혹은 모호하기 그지없는 ‘게임성’을 추려내는 과정에서 항상 룰과 상호작용을 발견하고, 거기에 더해진 스토리와 이미지, 음악은 부차적이고 메커니즘을 보조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물론 상부 구조인 이야기로 환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위 요소로 환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호모 루덴스〉에서 하위징아(Huizinga, 1949/2010)는 놀이가 ‘외양의 실현’으로서 상상력을 질서화하는 과정이라 설명했다. 디지털 게임이 놀이의 시뮬레이션적 본질을 가지고서 ‘복잡한 시스템의 자동화’를 통해 허구세계를 다른 차원에서 구현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모방 행위’라는 의미를 고려했을 때, 게임이 그려내는 픽션은 단지 뼈대인 룰을 이해하기 위해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재현하는 데 있어 생생함을 더하고 그 일부로서 참여하기 위해 질서가 부여된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율(Juul, 2005)이 설명한 것처럼 픽션과 룰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규칙에 묘사 대상의 성질이 개입되고 또 반대로 구조가 표현 방식을 지정하는 식으로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경쟁하고 상호 보완하는 관계이다. 또한 디지털 게임은 시스템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맥락에 의해 경험하는 하나의 과정에 의해 이해되어야 한다. 앞서 기계적 관점에서 단순화시킨 디지털 게임의 플레이 과정을 돌이켜 봤을 때, 룰을 먼저 이해하고 진행하는 다른 놀이 형식과 달리 디지털 게임에서 프로그램이 절차를 처리하는 과정은 숨겨진다. 플레이어는 모니터와 스피커를 통해 출력된 것만을 감각할 수 있기에 작동 방식을 직접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그 기능을 알게 된다. 4) 일반적으로 가이드북이나 게임 내의 튜토리얼을 통해 기본적인 조작법을 익히고 게임을 진행하면서 메커니즘을 숙지할 순 있지만, 게임 시스템을 완전히 알고 행동할 수는 없다. 다니엘 벨라(Daniel Vella, 2015)는 이런 성질 때문에 게임의 본질로서 시스템에 대한 탐구는, 시스템이 의미하는 방식을 주장하기 위해선 전체 시스템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현상을 경험하고 이를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게임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리는 대신 오히려 의도적으로 작동방식을 숨기고 플레이하면서 발견하고 추론하도록 한다. 게임 속 세계를 탐험하는 행위도 근본적으로 이런 ‘미스터리’의 존재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폴 마틴(Paul Martin, 2011)은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의 풍경이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내고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바깥인 전체를 그리면서 ‘게임적 숭고’(Ludic sublime)를 제시한다고 하였다. *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오픈월드의 풍경에 외부는 없다. “세계는 눈이 볼 수 있는 데까지 뻗어나간다.”(Martin, 2011)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숭고함은 약화된다. 게임에 익숙해짐에 따라 시스템을 내면화시키고 전체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상을 그릴 수 있게 되면, 점차 게임의 세계는 가능성의 공간에서 질서정연한 우주로 변화하면서 이에 따라 플레이도 “좌절과 발견 사이의 팽팽한 기브앤테이크에서 생산적인 놀이를 위한 일상화된 운동”에 가까워진다(Welsh, 2020). 그럼에도 벨라(Vella, 2015)는 게임에 웬만큼 숙련된 상태라 하더라도 여전히 새로움을 발견할 여지는 있으며 5) , ‘블랙박스’라는 특성상 시스템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 불가능하다는 성질이 게임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미지와 몰입 서술한 대로 플레이어는 시스템에 직접 접근하는 대신 이미지, 인터페이스를 통해 메커니즘을 해석하며 이를 통해 상호작용한다. 디지털 게임의 이미지는 단지 표면적인 기호가 아니라 시스템의 인터페이스가 되고, 지표로서 룰과 상호작용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현재 포토리얼리즘을 추구하는 3D 그래픽 엔진의 사실적 재현 수준은, 게이머들이 이런 정교한 그래픽으로 그려진 신작 오픈월드 게임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특히 ‘자유도’에 대해)을 가지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그 외적 사실성만큼의 실제적인 시스템을 구현하는 건 현실의 물리법칙에 점근하는 수준의 정교함이 요구되는 일이기에, 게임들은 재현의 한계에 도전하는 대신 플레이에 적합한 방식으로 추상화되고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상호작용에 제한을 두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제약으로서 룰’은 유저 인터페이스를 통해 가시화되면서, 게임 이미지는 그림과 액자의 관계와 같은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이 미디어의 존재를 수시로 각성시키기 때문에 시각적 리얼리즘이 그리는 환영에 온전히 빠져들 수 없게 한다. 영화와 같은 스펙타클함을 추구하는 게임은 유저 인터페이스를 숨기고 심리스 스타일을 사용하면서 플레이어가 게임 세계에 온전히 몰입하기를 바라지만, 비현실적인 규칙의 존재가 인공적인 시스템의 존재를 상기시키고, 유저 인터페이스(하드웨어 인터페이스도 물론이고)에 의해 플레이어는 허구 세계와 늘 일정한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비디오 게임은 연극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그 내부 세계의 환영은 투명하게 노출된다기보다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적극적인 연상을 통해 상상된다. 초기 비디오 게임 그래픽의 투박함은 기술적 한계에 의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추상적인 기호로서 이해되어 그 비현실성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6) 점 두 개와 선 하나로 사람의 얼굴을 연상할 수 있는 것처럼, 재현이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한 의미가 제시될 수 있다면 환영은 만들어진다. *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2019). 여타 리마스터·리메이크 작품과 다르게 〈꿈꾸는 섬〉의 리메이크된 그래픽은 플라스틱 미니어처처럼 그려진다. 닌텐도는 여전히 추상성을 유지하는 방향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비디오 게임의 몰입 환경에 대해 고규흔(2004)은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아무런 계기판 없이 하늘을 날고 있는 행글라이더의 라이더가 자신이 대기 안에 존재함으로써 온몸으로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경험하고 상황을 판단하여 기체를 조종한다면, 계기판 앞에 앉은 파일럿은 자신의 대기에 존재하면서도 환경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의 패턴으로 나누고 객관화시킨다. 풍속과 고도, 현재의 운항 속도, 시야 거리 등등의 수치화된 정보를 기준으로, 행글라이더의 기수와는 달리 현 상황에 대해 객관적 방식으로 각성하는 것이다.” 그는 “고전적 리얼리즘에서의 관객”이 행글라이더의 기수라면, 게임 플레이어는 환영과 동화되지 않는 파일럿의 태도와 같다고 한다. 자각몽으로서 게임 *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Don’t Look Back〉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판의 미로〉의 주인공 오필리아에게는 다른 불행한 인물들과 달리 따로 판타지 세계가 주어진다. 오필리아는 요정에 이끌려 목신 판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고 과제를 수행한다. 이와 유사한 알레고리를 가진 게임 〈Don’t Look Back〉에서는 그림과 같은 장면으로 게임이 시작된다. 불행해 보이는 그에게도 역시 판타지 세계로서 지옥이 주어진다. 우리는 그를 조종하여 장애물을 통과하고 괴물들을 격파하며 거침없이 나아가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까지 물리친 후에 그는 아내의 영혼과 만난다. 이제 ‘규칙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이동하여 다시 이승으로 올라오는 것이 목표가 된다. 그 결과가 〈판의 미로〉에서는 사실관계가 모호하게 그려지지만 여기서는 보다 명확하다. 남자가 처음 떠난 자리로 돌아올 때, 이 과정을 함께한 플레이어의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고 ‘게임적 존재’들은 그대로 소멸한다. 〈판의 미로〉에서 오필리아에게 혼란스러운 현실과 대조적으로 판타지 세계에선 절대적인 규칙이 제시되고, 이에 따라 고난을 극복한다. 이 짧은 게임 안에서도 플레이어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상상하는 남자로서 게임을 하고, 목적을 달성하곤 합당한 보상을 기대하게 된다. 두 작품이 판타지를 체현하는 방식은 게임 플레이와 맞닿아있다. 이들이 진행하는 게임은 규칙을 두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긴장 속에서 문제를 극복하는 놀이이면서, 공상만이 아닌 구체적이고 생생한 모습으로 제시되는 공간이다. 상상된 시스템 속에서 꿈을 꾸고 있지만 일상적 현실을 자각한 채로 정교하게 욕망을 만족시킨다. 만들어진 새로운 세계로서, 게임은 일방적으로 재생되는 꿈도, 잠깐 빠져드는 백일몽도 아닌 자각몽으로 경험된다. 1) 다만 그 자동화의 대상이 기존 액션 RPG 장르에서 핵심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자동 사냥’을 제공하는 RPG 게임들은 게임 커뮤니티 등지로부터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2) Soler-Adillon(2019)이 지적한 바대로 시스템의 자기조직화가 행위자의 인지와 직접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Importantly, they do so while responding to this sense-making process itself. However ... it is problematic to associate self-organization to processes in which the agents generating the phenomenon are aware of it” (Soler-Adillon, 2019) 3) 다만 게임이 기존 내러티브 구조를 따르는 대신 “더 큰 내러티브 경제에 기여”하는 매체라는 관점도 있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 2004)는 〈스타워즈〉 시리즈와 1983년 아타리에서 출시한, 영화의 한 장면을 시뮬레이팅하는 동명의 비디오 게임이 영화에서처럼 전체적인 플롯을 그려내지 못한다는 주장을 두고, 게임을 하며 환경적 세부 사항을 직접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미디어와 결합하여 더 큰 단위에서 풍부한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현대의 주류 온라인 게임에도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4) 워게임 디자이너 제임스 더니건(James F. Dunnigan, 2000)은 이를 컴퓨터 게임의 경험을 축소시키는 ‘블랙박스 신드롬’(Black box syndrome)이라 불렀다. 그는 내부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워게임의 핵심 요소라고 주장했다. 5) 일례로 1994년 출시된 〈둠 2 : 헬 온 어스〉의 한 숨겨진 구역은 출시 후 24년이 지난 2018년까지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유튜버 Zero Master가 특수한 방법을 써서 정상적으로 진입하는 방법을 찾아내어 이에 게임 개발자 존 로메로(John Romero)가 직접 트위터에 축하 메시지를 남긴 적이 있다. romero. (2018,09,01). CONGRATS, Zero Master! Finally, after 24 years! "To win the game you must get 100% on level 15 by John Romero." Great trick getting to that secret! 6) 이런 점에서 현대 인디 게임에서 흔히 표방하는 로우폴리곤이나 픽셀 그래픽이 활용된 레트로 스타일은 단지 노스탤지어만이 아닌 게임적 이미지의 물성에 관한 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Hocking, C. (2009). “Ludonarrative dissonance in Bioshock: The problem of what the game is about.” In D. Davidson (Ed.), Well played 1.0: Video games, value and meaning. ETCPress. Aarseth, Espen (2014) “Ludology,” in The Routledge Companion to Video Game Studies edited by Mark J.P. Wolf and Bernard Perron. 박인성 (2020). “2010년대 비디오 게임에서 나타나는 서사와 플레이의 결합 방식 연구 - AAA급 게임의 심리스(Seamless) 스타일을 중심으로.” 한국근대문학연구, 21(1), 83-111. Juul, Jesper (2001). “Games telling stories? - A brief note on games and narratives.” Game Studies, Vol. 1 Issue 1, July 2001. Eric Zimmerman, Katie Salen (2003). “Rules of Play.” MIT Press Soler-Adillon, Joan (2019). “The Open, the Closed and the Emergent: Theorizing Emergence for Videogame Studies.” Game Studies, Volume 19, issue 2 Jenkins, Henry (2004). “Game design as narrative architecture.” First person: new media as story, performance, and game. Ed. Noah Wardrip-Fruin & Pat Harrigan. Cambridge, Ma.: The MIT Press. Aarseth, Espen (2004). “Genre trouble: narrativism and the art of simulation.” First person: new media as story, performance, and game. Ed. Noah Wardrip-Fruin & Pat Harrigan. Cambridge: The MIT Press. Huizinga, J. (1949). Homo ludens: A study of the play-element in culture. 이종인 (역) (2010). 〈호모 루덴스〉. 일산: 연암서가 Juul, Jesper (2005). “Half-Real: Video Games between Real Rules and Fictional Worlds.” MIT Press. James F. Dunnigan, “Wargames Handbook: How to Play and Design Commercial and Professional Wargames.” 3d ed. (San Jose: Writers Club Press, 2000) Welsh, Timothy (2020). “(Re)Mastering Dark Souls.” Game Studies, Volume 20, Issue 4 Martin, Paul (2011). “The Pastoral and the Sublime in Elder Scrolls IV: Oblivion.” Game Studies, Volume 11, issue 3 Vella, Daniel. (2015). “No Mastery without Mystery: Dark Souls and the Ludic Sublime.” Game Studies, Volume 15, Issue 1 고규흔 (2004). 비디오 게임에 대한 스펙터클적 관점에서 계약의 관점으로 이동. 한국게임학회 논문지,4(3),29-4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학생) 김도근 디지털 미디어와 같이 자란 세대로 특히 디지털 게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게임으로 관객에게 말걸기 -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관람기

    필자는 게임제너레이션으로부터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에 대한 게임전문가 관점에서의 리뷰"를 요청받았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게임전문가도, 미술애호가도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잘못 주름을 잡았다가는 큰 코를 다칠 게 뻔했다. 하지만 북서울미술관은 필자의 집 앞이었던 데다, 고료의 유혹이 상당했다. 그렇게 흔쾌한 척 '퀘스트'를 수락했지만, 이 주제에 적당한 '레벨'인지 자문한다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 Back 12 GG Vol. 23. 6. 10. Tags: 북서울미술관, 전시, 미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디아블로〉 시리즈의 역사로 바라보는 블리자드의 변화

    2021년 2월 20일에 시작된 블리즈컨라인(BLIZZConline)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2005년 10월 처음 개최된 블리즈컨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가 자신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팬들을 위한 축제로써 기획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의 블리즈컨의 분위기는 분명 예전과 달랐다. 제작자와 게임 팬의 화합의 장이었던 블리즈컨이 끝나면 항상 팬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최근 들어 함성은 잦아들고 작은 수근거림이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 Back 〈디아블로〉 시리즈의 역사로 바라보는 블리자드의 변화 02 GG Vol. 21. 8. 10. 2021년 2월 20일에 시작된 블리즈컨라인(BLIZZConline)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만 했다. 2005년 10월 처음 개최된 블리즈컨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가 자신들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팬들을 위한 축제로써 기획되었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의 블리즈컨의 분위기는 분명 예전과 달랐다. 제작자와 게임 팬의 화합의 장이었던 블리즈컨이 끝나면 항상 팬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최근 들어 함성은 잦아들고 작은 수근거림이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을 그저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직전 년도에 발매되었던 〈워크래프트 III: 리포지드〉는 그간 ‘블리자드 = 게임 제작의 명가’라는 평판에 물음표를 던져 주기 충분했고, 때문에 이런 어수선함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전후 사정으로 코로나 시대에 열린 온라인 블리즈컨인 2021년 블리즈컨라인에 팬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행사에서는 기존 발표 신작( 〈오버워치 2〉, 〈디아블로 IV〉)에 대한 개발 중간 보고 형태의 정보가 있었고, 블리자드가 제작했던 초창기 인기작(〈락앤롤 레이싱〉, 〈길 잃은 바이킹〉, 〈블랙쏜〉)의 리메이크 버전에 대한 내용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오래된 블리자드 팬들을 들뜨게 만드는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디아블로 II〉의 리마스터 버전인 〈디아블로 II: 레저렉션〉이 올해 발매 된다는 이야기였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기업인이자 요리 연구가(이자 열성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플레이어)인 백종원씨가 〈디아블로 II: 레저렉션〉의 최초공개 트레일러에 남긴 댓글은 순식간에 이슈화가 되면서 이 게임의 무게감을 증명했다. *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zG-4gDDazg 블리자드의 대표 IP 중 하나인 〈디아블로〉 시리즈의 첫 작품은 1996년 12월 31일 세상에 선보였다. 블리자드의 초기 협력사이자 합병 이후 블리자드 노스로 이름이 바뀐 콘도르에서 처음 제안했던 〈디아블로〉의 형태는 턴 방식의 로그라이크 게임이었다. 하지만 3 시간 동안 제작한 실시간 형태의 프로토타이핑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우리가 익히 아는 실시간 핵 앤 슬래시 형태의 액션 롤플레잉 게임인 〈디아블로〉가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출시 당시 다른 게임과 완전히 차별화되는 게임성과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 블리자드 최초로 도입된 베틀넷 시스템을 통한 협동 및 대결 플레이 같은 특별한 장점들은 〈디아블로〉를 그해 최고의 게임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다. 북미 출시 이후 국내에서도 PC 통신 게임 동호회를 중심으로 게임에 대한 기대감이 점차 높아지고 있었으나, 당시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운영하던 게임물 심의 장벽에 가로막혀 꽤 오랜 기간 동안 국내 정식 발매가 되지 않는 일이 있기도 했다. 당시 〈디아블로〉 1의 국내 유통사였던 SKC는 몇 차례의 발매 연기 속에 일부 영상 장면 등을 삭제한 검열판으로 심의를 통과하여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으로 게임을 발매하였다. * 출처: 컴퓨터 게이밍 월드 1997년 2월호 102 페이지. 〈 디아블로 〉는 잘해야 10만 부 팔릴 것이라 예상한 제작진의 기대를 가뿐하게 넘어 발매 첫 해 100만 부, 이듬해에는 전세계 200만 부 판매를 달성한다. 자연스럽게 후속편에 대한 이야기가 제작진 사이에서 논의되었다. 그리고 〈디아블로 1〉의 출시부터 3년이 지난 2000년 6월 29일 시리즈의 후속편인 〈디아블로 II〉가 발매되었다. 국내에서 〈디아블로〉는 게임 매니아들끼리 만 회자되는, 잘 만든 게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안 중 하나로 추진되었던 IT 인프라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이를 통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와 PC 방의 급격한 확산.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 힘입어 그저 그런 컴퓨터 게임이 아닌 대한민국 대중 문화의 위치를 차지한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다음 작품으로 내 놓은 〈디아블로 II〉는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게임이 되어있었다. 이러한 관심을 입증하듯, 〈디아블로 II〉는 15만 부의 선주문을 받은 상태로 북미와 거의 동시 발매가 이루어졌다(당시 해외 게임이 국내 동시 발매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이러한 초기의 관심과 달리, 새로운 대한민국의 전통 놀이로 취급되던 〈스타크래프트〉에 비해 〈디아블로 II〉의 인기는 금세 시들해 졌다(어디까지나 〈스타크래프트〉에 비교해서일 뿐이지만). 국내에서만 약 300만 부를 팔아 치운 〈디아블로 II〉는 운영 문제와 함께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국산 대작 MMORPG 게임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디아블로 II〉는 서비스 중이며 PC 방 점유율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 디아블로 II 〉 이후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IP에 기반을 둔 게임에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새로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워크래프트 III: 혼돈의 지배〉와 확장팩인 '얼어붙은 왕좌'가 각각 2002년과 2003년 출시되었다. 여기에 더해 2004년 11월 23일 서비스를 시작한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2021년 현재까지 총 8개의 확장팩을 출시하며 지금까지도 많은 유저를 보유하고 있는 블리자드의 대표 게임이 되었다. 이렇게 제작사로부터 외면 받은 줄 알았던 〈디아블로〉 시리즈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 것은 200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월드 와이드 인비테이셔널에서였다. 〈디아블로 3〉는 〈스타크래프트 II〉와 더불어 전세계 블리자드 팬들의 초 기대작이 되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서울 왕십리역에서 진행된 전야제 행사에서 〈디아블로 3〉의 한정판을 구매하기 위해 전날 새벽부터 수천명의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인원을 예상 못한 행사 주최측의 준비 미비로 그야말로 디아블로가 재림한 듯한 혼돈이 연출되었다.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서의 소장판 판매도 판매 시작부터 쇼핑몰 서버가 다운되는 등의 혼란이 발생했다. 대한민국에서의 〈디아블로 3〉 한정판 대란은 또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했는데, 한정판을 사들여 웃돈을 더 받고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는 사람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디아블로〉 시리즈에 등장하는 종족인 네팔렘을 차용하여 만들어진 ‘되팔렘’이라는 단어는 인터넷 게시판 뿐만 아니라 이후 기성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상은 이후 벌어진 쓰나미 같은 사태에 비하면 그저 지나가는 가랑비에 불과했다. 2012년 5월 15일, 〈디아블로 3〉를 구매한 게이머들은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이콘을 클릭했다. 하지만 그들을 반기는 건 Error 37 이라는 메시지 창 뿐이었고 정작 게임은 실행조차 되지 않았다. 사유는 이랬다. 불법 복제를 막고 경매장 등의 기능을 위해 야심 차게 도입했던 서버 인증 시스템이 몰려드는 사용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현상이 계속 발생한 것. 이 문제는 게임 발매 후 한 달이 다 되도록 해결이 되질 못했고, 결국 국내 지사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코리아는 게임 환불을 결정한다. * Error 37, 서버 롤백, 계정 오류 같은 기술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경매장 시스템, 게임의 난이도 배치와 말도 안되는 아이템 드랍 시스템 등으로 인해 초창기 게임의 평가는 계속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리자드는 특유의 뚝심으로 게임의 문제점을 하나 하나 개선해 나가고, 핵심 기능 중 하나였던 경매장 시스템을 날려버리는 특단의 결정을 내리면서까지 결국 죽은 게임을 살려내는데 성공한다. 2015년 8월까지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부가 판매되는 기록을 달성하였다. 전작과 12년의 갭이 있었던 〈디아블로 3〉와 달리, 다음 후속작은 비교적 빠른(?) 6년만에 발표되었다. 2018년 11월 최초 공개된 〈디아블로 이모탈〉은 디아블로 시리즈 최초의 모바일 게임이란 점, 그리고 그리고 게이머들에게 반발이 심한 극단적인 부분 유료화 정책으로 유명한 중국 게임 개발사와의 협업으로 개발 중이라는 점 때문에 팬들의 많은 우려를 샀다. 다행이 얼마 전 진행된 알파 테스트에서 우려는 어느정도 씻겨진 상태이지만, 블리자드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비단 팬들 만이 아니었다. 블리자드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우려했을까? 새로운 차기작인 〈디아블로 IV〉의 제작을 공개하였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출처: 〈디아블로 IV〉 공식 시네마틱 영상 | 세 명이 오리라 2021년 현재 〈디아블로 〉시리즈는 한 편이 신규 발매되었으며, 두 편의 신작이 개발 중에 있다. 과연 이 시리즈의 미래는 계속될 수 있을까? 블리자드는 신규 IP 제작에 매우 신중한 행보를 보여왔다. 회사의 대표 IP 인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는 모두 20세기인 말인 1990년대 처음 대중에 선보였고, 21세기 들어 완전한 오리지널 신규 IP는 오버워치 하나에 불과하다. * 출처: 블리자드 홈페이지 . 이는 블리자드의 개발 스타일과 큰 연관이 있다. 블리자드의 개발자들은 혁신적이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 다기 보다는 기존의 게임 메커니즘을 철저하게 분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를 자신들이 충분히 만족할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는 방식으로 결과물을 만들었다. 여기에 시리즈를 계속해 가면서 자기 자신을 복제, 발전해 왔던 것. 이것이 블리자드의 스타일이다.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로부터 시작해 〈디아블로 II: 레저렉션〉으로 끝나는 블리자드의 클래식 프로젝트는 그간 블리자드가 보여줘 왔던 행보와 비슷하면서도 매우 동떨어져 있다. 이들의 장기는 기존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 기존 것에서 한 발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프로젝트는 찬란했던 시대의 흑백 사진을 컬러로 바꾸는데 급급하다는 인상이다. 블리자드의 얼음 폭풍이 점차 잠잠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비단 회사를 둘러싼 온갖 구설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실리콘 앤 시냅스라는 이름으로 1991년부터 시작된 블리자드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블리자드의 미래를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색을 점차 잃어가는 게임 제작사를 바라보는 오래된 팬들의 마음은 어쩌면 안타까움 그 이상이 아닐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 개발자) 임현호 과거의 게임 개발 영웅들의 모험담을 쫓으며 게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게임 개발자. 매우 긴 기간 동안 대표, 기획자, 인디 게임 개발자, 프로젝트 매니저 등의 여러 타이틀을 달고 살았으나 게이머이자 게임 개발자로 불리길 희망하는 소시민.

  • 어린이를 위한 게임은 없다

    도발적인 제목을 들고 왔지만, 놀랍게도 필자는 어린이가 아니다. 더 놀랍게도 필자는 아직 2세가 없다. 당사자성이 없는 사람이 어린이와 게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게임제너레이션(GG) 편집장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가정에 어린이가 있는 필자를 새로 구해보시는 게 어떠냐'라고 완곡하게 돌려 말했다. 편집장은 '어린이가 없는 입장이 보다 객관적'이라고 답했다. GG 편집진의 고약한 취미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Back 18 GG Vol. 24. 6. 10. Tags: 게임이용자, 유소년, PC방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게임, 전쟁, 격리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검투사 몇이 경기장에 있다. 다른 검투사 하나가 무기를 들고 입장한다. 새로 입장한 검투사는 적절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상대 검투사들을 하나씩 도륙낸다. 이따금 불필요하지만 화려한 동작도 섞어준다. 관중들이 환호한다.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 상대는 이미 전투 능력을 잃고 선 채로 죽어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승자는 화려한 기술로 그를 두 동강 내버린다. 홀로 남은 승자가 된 검투사는 신이 나 있는 관중들에게 분노를 담아 외친다. “Are you not entertained?” < Back 게임, 전쟁, 격리 25 GG Vol. 25. 8. 10. 장면 하나.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검투사 몇이 경기장에 있다. 다른 검투사 하나가 무기를 들고 입장한다. 새로 입장한 검투사는 적절하고 신속한 동작으로 상대 검투사들을 하나씩 도륙낸다. 이따금 불필요하지만 화려한 동작도 섞어준다. 관중들이 환호한다.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 상대는 이미 전투 능력을 잃고 선 채로 죽어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승자는 화려한 기술로 그를 두 동강 내버린다. 홀로 남은 승자가 된 검투사는 신이 나 있는 관중들에게 분노를 담아 외친다. “Are you not entertained?” 2000년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이다. 장면 둘. 한 남자가 공항 출국 게이트에 있다. 게임 쇼에 참가해 우승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참여를 했다. 게임 종목은 어린이들의 골목 놀이였지만 패배의 대가는 죽음이었기에 남자는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 죽는 지옥을 경험했다. 홀로 남아 우승한 남자는 거금을 갖고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갈 참이다. 하지만 게임의 주최측과 연결된 마지막 통화를 끊자 그는 뒤돌아 걸어간다. 그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말이 아니야. 인간이야.” 2021년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이다. 두 장면의 두 인물은 목숨을 건 게임을 했고 승자가 되어 살아남았다. 그들이 경험한 것은 전쟁과 흡사하다. 이들이 일종의 선수로서 게임을 수행했듯, 전쟁은 군인이 선수로서 싸운다. 싸움 바깥에서 싸움을 지켜보는 관중이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만 전쟁의 승패는 그 관중들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만, 이들의 게임은 관중에게 영향이 없다. 그래서 전쟁은 일종의 사업으로서 해석되지만, 이들의 게임은 관중에게 유희다. 전쟁과 유희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다 보면, 어떤 네덜란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호이징가 혹은 하위징어로 불리는 이 네덜란드 학자는 자신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문명의 근간은 놀이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분석한 놀이성, 놀이의 특징 중 하나는 규칙으로 시공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저녁 먹을 때까지, 여기 이 놀이터 내에서, 얼음땡 규칙으로 게임을 한다는 식이다. 그 시공간을 벗어나면 놀이가 끝나고 놀이의 규칙은 아무런 권위를 갖지 못한다. 이 특징이 확대되어 제의, 법률, 행정 등 문명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 모두가 놀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 네덜란드 아저씨의 고찰이었다. 경쟁과 협동은 놀이의 두 축이 되는 원리이고, 이는 자연에 대해, 인간 서로에 대해 투쟁하는 생존 추구의 상태를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제한적인 규칙 속으로 집어넣자 놀이가 되었다. 일상과는 다른 어떤 시공간을 가정하고 거기에서만 통하는 규칙을 만든다는 점은, 인간이 일상의 생존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이성은 생존 너머의 문명을 만드는 근간이 되는 원리다. 현대인으로서 완전히 동의하기 어려워지는 대목은, 그래서 자본에 포섭되어 시장화한 스포츠는 삶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놀이가 아니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놀이는 직접 수행하는 방법 외에도 타인의 놀이를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콜로세움, 오징어 게임, 스포츠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는 생사를 거는지 아닌지를 제외하면 타인에게 게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자본으로 해석되었다 하여, 관중이 즐기게 되는 ‘보는 게임’으로서 놀이의 본질이 사라졌는지는 더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콜로세움에서 스타디움까지. 검투사에서 프로 선수까지. 관중을 대신해 게임을 하며 보는 게임을 제공하는 경우는, 싸움-전투-전쟁을 모사하긴 하지만 한 가지 한계가 있다. 소규모 전투의 모사라는 점이다. 격투기가 아니어도 양편이 나뉘어 싸우는 구기 종목이 그 경우다. 축구는 기병과 보병 전술과 유사하다. 농구는 흔히 기병과 궁병 전술에 비유된다. 핸드볼의 전술은 투창 전투와 많이 닮았다. 그렇다면 야구는 포병과 유사할까? 피겨 스케이팅과 같은 점수 경쟁 스포츠는? 하카처럼 전투 전의 의식을 겨루는 모습와 유사하다고 갖다댈 수 있겠다. 유희(遊戲)의 희(戱)는 중국 고대의 전장에서 전투 전에 위세를 겨루기 위해 호랑이 머리를 장식한 기물(䖒)을 창(戈)으로 치는 행위에서 만들어진 글자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여전히 ‘태극 전사’니 ‘상암 대첩’이라는 식으로 전쟁의 용어를 스포츠에 갖다 쓴다. 팀 단위의 경쟁 스포츠는 전쟁에 대한 욕구를 대리 해소하는 용도 또한 갖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적용되는 전쟁의 국면은 전략이 아닌 전술이다. 소규모 전투가 아닌 대규모 전쟁을 경기장 안에서 구현해 전략을 게임화하려면 상당히 많은 권력-자본이 필요해진다. 압도적으로 많은 선수가 필요할 테니까. 혹은 ‘이 말 하나가 사람 천 명이다’라는 식으로 추상화되어 전술과 전투의 재미가 사라진다. 전략을 보는 지적 재미는 추가되지만, 이래선 흥행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무리 왕이고 부족장이라도 이런 이벤트를 만들었다간 재미없음 이유로 권좌에서 내쫓길 수 있다. 그래서 대규모 전쟁은 추상화되어 보드 위에 자리잡았다. 바둑, 체스, 장기와 같은 게임은 기물을 선수로 대체한다. 그래서 검투사의 유혈을 보고 공감 능력이 발휘되어 몰입이 깨져버리는, 콜로세움 입장료가 아까운 경우도 없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조감도 시야도 제공한다. 게다가 ‘보는 게임’에 특화된 가까운 경기장과 달리 보드는 ‘하는 게임’이 우선이다. 기술과 장르를 옮겨서 디지털 게임으로 오면, 앞서 있었던 많은 제약이 해제된다. 디지털 게임은 보드 게임의 추상성과 경기장 게임의 구체성을 모두 추구할 수가 있다. 프로세서의 연산 기능을 늘리기만 한다면 소규모 전투와 대규모 전쟁을 각각 혹은 한꺼번에 모사해낼 수 있다. 그렇게 전쟁은 게임이 가장 자주 다루는 소재가 된다. 병사 하나가 되어 전장을 누비는 개인 액션부터 10만 단위의 부대가 점 몇 개로 표시되는 전략까지 가능하다. 모두 바둑, 체스, 장기의 후예들이다. 여러모로 전쟁과 게임은 닮았다. 전쟁의 추동력은 전쟁을 수행하는 두 집단의 목표가 충돌하는 상황이니, 결국 경쟁이 핵심이다. 이기기 위해 군대는 계급에 따른 수직적 분업과 보직에 따른 수평적 분업을 수행한다. 분업이 수직-수평으로 직조하는, 협동의 체계가 군대 체계의 핵심이다. 전쟁을 요약하면, 협동하여 적과의 유혈 경쟁을 이기는 것이다. 유혈 부분을 빼면 게임과 동일하다. 게임에서는 1인 플레이의 경우에는 협동이 빠지기도 하고, 역으로 협동이 크게 강조되어 경쟁 요소가 옅어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전쟁의 저 두 핵심을 그대로 매체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결국 차이점은 유혈의 유무다. 싸움-전투-전쟁은 생명을 잃게 한다. 잘 기능하는 사회 구성원 하나를 키우는 데에 사회가 들이는 비용은 시간만 보아도 20여 년 이상이다. 게다가 인간의 공감 능력은 피 색깔만 비슷해도 그 죽음을 안타까워 할 수 있는데, 종까지 같은 인간의 죽음이기도 하다. 아무리 증오스러운 적이라 하더라도 죽음을 보고 직접 죽이는 것은 인간의 정신에 좋지 않다. 그러면서 아무 가치도 생산하지 않고 가치를 사용하기만 하니 문명 전체의 손해이기도 하다. 한편 전쟁은 전쟁을 수행하는 사회의 경제, 기술, 행정, 정치의 과실이 그대로 반영된다. 그 찬란한 과실을 갖고 하는 것이 조직적 살인이라는 점에서 철학적인 자괴감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서 전쟁은 추악하고 또 아름답다. 문명의 정수와 실력이 발휘되는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추악함을 최대한 제거하고 아름다움을 가능한 부각시키려면, 죽음을 무시할 수 있으면 된다. 콜로세움에서 죽는 검투사에게서 공감을 거두면 그 게임은 재미있다. 하지만 전쟁에서 죽음을 제거하기란 어렵고 모두가 공감 스위치를 끄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의 전쟁은 그래서, 호이징거 혹은 하위징어의 해석을 따르자면, 놀이성이 강화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에 규칙을 두는 것이다. 선전포고를 해야 정식 전쟁이고, 민간 피해는 최소화해야 하고, 전쟁 중의 약탈과 민간인 학살 같은 것을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포로를 정식 신분으로 만드는 등등, 전쟁에 놀이성이라는 족쇄를 채우려고 애를 쓰고 있다. 생사를 건 전투가 오직 전시에만 일어나게 하는 시도다.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놀이성의 특징인 시공간 제한에 의해 게임 안과 밖은 엄격히 구분된다. 콜로세움의 선수, 전장의 병사가 대신 생명의 위협을 받는 대신 제한된 시공간 바깥의 관중은 면제된다. 이미 검투사들을 관중 대신 데스 게임에 밀어넣으면서 인간 문명은 싸움에 놀이성을 부여해봤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약간 불편한 가설도 도출할 수 있다. 전쟁 게임이란 안전해진 사람들의 안도감을 흥분으로 바꾸는 것이 본질일 수도 있다.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의 쾌감, 전술의 합, 전략의 수려함은 결국 게임 밖의 나에게는 해를 가하지 않으므로. 저 사람들이 내 재미를 위해 죽어도, 나는 잠깐 마음이 불편하고 나머지 시간은 즐거우니까. 그래서 보훈은 국가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가 된다. 타인 대신 전장에서 목숨을 걸겠다고 나선 직업인들에 대한 예우다. 그럼 인간은 왜 전쟁을 게임에서 재현하고 있을까? 구성원 대다수가 전쟁에서 벗어나 안전한 문명 영역에 도달했으면서, 자꾸 그 특수한 지옥을 가져와 가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이렇게 뒤집어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전쟁을 게임 안으로 가두려 하는 걸까? 인류 문명이 전쟁을 국제 사회 질서의 한 부분으로 가두어가는 한편, 인간은 게임 규칙 속으로 전쟁을 가져오면서 콜로세움을 졸업했다. 현재의 스포츠에서 경기 도중 죽는 선수는 격투기 종목에서조차 극단적으로 적다. 오징어 게임은 어디까지나 은유이지 실제 현실에서 유사한 경기가 열리는 일은 없다. 이제 과거의 검투사 대신 뛰는 현재의 스포츠 선수는 전쟁과 유사한 활동을 할 뿐이다. 따라서 ‘대신 놀아주기’는 전쟁을 가두는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만들기가 어렵다. 인간이 전쟁을 게임 안에 가두는 중이라면, 오히려 전쟁을 잊거나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재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저 질문을 다르게 바꿔보면, 전쟁은 정말 그렇게 매력적인가? 인간의 내면에는 사실 전쟁의 유혈과 광기를 동경하는 부분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면 인간은 모순을 사랑한다. 전쟁은 찬란한 동시에 추악하다. 어쩌면 인간은 전쟁, 전투, 싸움, 죽음을 끊을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혹은 끊기 위해 게임 속에서 전쟁, 전투, 싸움, 죽음을 죽이는 중이라고 서술할 수도 있다. 혹은, 삶에서 아주 특정한 때에만 있는 이벤트라면 질병이라고 치환해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군인은 전쟁 속에서 전쟁을 해소하려 하는 의사로 비유할 수도 있고, 전쟁을 다루는 게임은 예방용 백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개인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으니 답은 아직 없다. 다만 우리 인류가 전쟁이라는 특정 시공간 상황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를 소망한다. Tags: 재현, 전쟁, 워게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고전 명작과 현대 테크놀로지의 해후: 『검은 신화 : 오공』과 중국 AAA게임의 상상

    2017년부터 중국 게임산업의 실제 매출은 확고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곧 중국 게임산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AAA게임이야말로 한 나라의 게임산업의 종합적인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게이머들에게 뼈아픈 점은 중국이 내내 자체적인 3A게임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관련된 시도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상업적 성장 측면에서 중국 게임산업은 ‘최고의 시대’이지만, 문화예술과 창조성의 측면에서는 ‘최악의 시대’라는 것이다. < Back 고전 명작과 현대 테크놀로지의 해후: 『검은 신화 : 오공』과 중국 AAA게임의 상상 10 GG Vol. 23. 2. 10. 이 글의 중국어 원문은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79 2017년부터 중국 게임산업의 실제 매출은 확고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곧 중국 게임산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AAA게임이야말로 한 나라의 게임산업의 종합적인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게이머들에게 뼈아픈 점은 중국이 내내 자체적인 3A게임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관련된 시도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상업적 성장 측면에서 중국 게임산업은 ‘최고의 시대’이지만, 문화예술과 창조성의 측면에서는 ‘최악의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모든 것이 돈으로 향하는” 시대와 산업환경 속에서, 이름이 그리 알려지지 않은 『검은 신화 : 오공(黑神话:悟空)』(이하 ‘검은 신화’)는 2020년 8월 20일 영화 『서유기3(원제: 大话西游)』 속에서 “황금갑옷을 입고, 무지개빛 구름을 탄” 영웅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그것은 중국 게임업계 전체를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게임산업에 대한 사회와 여론의 기대까지 불붙게 만들었다. 민족주의 정서의 고양 속에서 사람들은 고전문학 『서유기(西游记)』와 현대 테크놀로지인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의 ‘해후’가 최초의 위대한 중국 AAA게임을 만들어내길 꿈꾸고 있다. 현재, 『검은 신화』는 여전히 제작 중으로, 2024년 여름에 발매될 예정이다. 이 게임과 관련하여 인터넷상에는 총 9편의 영상이 공개됐다. 2020년 8월 20일에는 ① “최초 공개 시연 영상”이 공개됐고, 2021년 2월 9일엔 ② “신축년(辛丑年) 새해 맞이 영상”이, 2021년 8월 20일 ③ “언리얼엔진5 테스트 모음”, 2022년 1월 2일 ④ “호랑이의 해 맞이, 게임과학(游戏科学)에 관한 짧은 영상”이 게시됐고, 2022년 8월 20일에는 ⑤ “6분 테스트 : 에피소드”와 ⑥ “게임 삽입곡 「경계망(戒网, 지에왕)」, ⑦ “『검은 신화』 글로벌 프리미어 8분 테스트 플레이”이 업로드됐다. 그리고 2023년 1월 16일에는 ⑧ “게임과학 토끼해 신년 맞이 영상”이 공개됐다. ①~⑧ 영상들은 이 게임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으며, 파트너인 엔비디아(NVIDIA)가 내놓은 영상도 비리비리상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아직 완성된 게임이 세상에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검은 신화’에 대해 충분히 비평할 수 없다. 하지만 긍정할 수 있는 점은 이 미완성의 게임이 중국 내 AAA게임에 대한 게이머들의 동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자본 증식을 자신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중국 게임산업의 우악스러운 산업발전의 공식을 전환하겠다는 아름다운 희망을 응집한다는 사실이다. 문자 그대로 『검은 신화 : 오공』이 원작으로 삼는 서사는 중국의 4대 고전명작 중 하나인 『서유기』이다. 일반적으로 『서유기』는 늦어도 고려시대 말기에 한국으로 전래됐다고 알려져 있다. 표면적으로 『서유기』는 당나라 승려와 손오공(孙悟空), 저팔계(猪八戒), 사오정(沙僧), 백룡마(白龙马)가 9,981차례의 고난을 겪으면서 인도(西天)로 건너가 불경을 구해낸다는 이야기이지만, 현실의 사회적 모순을 신마소설(神魔小说. 역주: 신이나 요괴 등이 활약하는 동양만의 독특한 소설형식. 자유분방한 언어형식, 풍부한 상상력, 가상의 배경, 중국 바깥 가상의 장소, 종교, 신화 등이 뒤섞여 있다. ) 의 형식으로 굴절시켜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공개된 영상들의 내용을 보면, 이 게임은 『서유기』를 모사한 게 아니라, 장회체 소설(역주 : 명/청시대에 인기를 구가한 소설 형식. 청중에게 들려주기 적당한 길이의 장과 회로 나누어져 있다고 해서 ‘장회(章回)’라는 명칭이 붙었다. 비교적 쉬운 백화체로 쓰였으며, 설화예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인 『속서유기(续西游记)』(역주 : 명나라 시기 익명의 저자들에 의해 쓰인 백화 장편소설로, 『서유기』에 이어 승려가 진경(眞經)을 가져온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요 인물들은 『서유기』와 거의 같으며, 유머가 많다. ) 와 영화 『대화서유』, 인터넷소설 『오공전(悟空传)』, MMORPG 게임 『투전신(斗战神)』 등 『서유기』를 바탕으로 한 크로스 미디어 작품들의 상상력을 포스트모던한 ‘패러디(parody)’ 기법을 통해 원작을 해체(deconstruction)하여 “이 게임 특유의 형식으로 원작의 정신과 함의를 구현”해낸 것으로 보인다. 앞서 열거한 ‘원형’이 된 작품들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투전신』으로, 텐센트가 2010년부터 운영 중인 MMORPG 게임이다. 이 게임은 자체 프로젝트로 시작하여 텐센트를 구원해낸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투전신』은 시작부터 큰 성과를 거둔 후에 오히려 다른 여러 요인들 때문에——물론 주된 원인은 자본 논리와 게임정신 사이의 비타협적인 모순에 있었다——제3장 ‘백골부인’ 에피소드 이후 급속하게 쇠퇴했고, 이는 21세기 중국 게임의 역사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사건으로 남았다. 『투전신』의 메인 기획자는 현재 『검은 신화』의 프로듀서인 요카(Yocar)로, 『검은 신화』의 제작 멤버들 중에는 적지 않은 이들이 『투전신』 제작에 참여했었다. 펑지(骥等; FENG Ji)(역주 : 앞서 언급한 ‘요카’의 본명) 등의 인원들은 텐센트를 떠난 후 게임과학을 설립했다. 게임과학은 『100 히어로즈 (百将行)』, 『아트 오브 워 : 레드 타이드(战争艺术:赤潮)』 등 모바일 게임들을 출시한 이후, 그동안 중국의 게임산업이 손대지 못했던 AAA게임이라는 정점에 도전하고자 했다. 2020년 8월, 헤어진 연인이 재결합하듯 “백골 이후 다시 서쪽으로”라는 이상를 기치로 내걸고, “서유기 세계관”의 게임 『검은 신화』의 제작에 들어간 것이다. 『검은 신화』는 비단 『투전신』의 정신적인 후속작일뿐만 아니라, 게임의 이상에 대한 1세대 중국 게임 제작자들의 고집과 “돈냄새”로 가득한 21세기 중국 게임의 역사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 게임 역사를 향한 또 한 차례의 자기초월의 시도일 것이다. 하지만 빛나고 우수한 문화 콘셉트와 가슴 속의 뜨거운 피만으로는 분명 충분하지 않다. AAA게임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여전히 게임의 기술에 있다. 2020년 8월 20일 첫 시연 영상이 공개된 후, 프로듀서 펑지는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13분짜리 B1에는 여기저기 꿰맞춰 놓은 흔적들이 있습니다. 수치는 제멋대로이고, 착지는 딱딱합니다. 작은 몸은 체조를 하고, 큰 체형은 힘이 없고요. 매미는 모형을 뚫고 나가고, 물에는 피드백이 없습니다. 투박한 방향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사운드는 끊겨 있습니다.”라고 게시했다. 분명히도 당시 『검은 신화』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기술적인 난제가 아주 많았다. 그러나 현재 최근에 공개된 『검은 신화』의 영상 화면을 보면, 상기한 난제들은 어느 정도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이 게임의 일부 디테일에서는 『세키로: 쉐도우 다이 트와이스』나 『사이버펑크 2077』 등 글로벌 톱 AAA게임들과 맞먹는 퀄리티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게임과학측이 언급했듯이 ‘서유기 세계관’에는 글로벌 게임산업에서는 단순한 이족보행 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지는 네발 달린 요괴가 대량으로 존재한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요괴들의 행동 특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인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난제일 것이다. 『검은 신화』는 이에 맞추어 네발 동물의 모션캡쳐를 위한 모션 시뮬레이션 시스템 ‘루우(陆吾; luwu)’를 개발했다. 그러나, 중국 게임업계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첨단이지만 사소하기도 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게임을 “하이테크놀로지” 게임상품에서 인문 사상이 풍부하게 함유된 문화예술 작품으로 바꿀 수 있느냐가 관건이며, 최종적으로 기술과 인문의 이중 추월을 실현하는 것에 있다. 『검은 신화』의 제작과 홍보를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이중 추월의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검은 신화』가 중국 게임 감독들의 ‘작가성’을 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가성’이란 게임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는가 수준의 평범한 어휘가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게임 작품이 인문사상의 매개체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사회적·역사적 상황에 대한 게임 감독의 깊은 고민이 개입되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작가성’이란 게임의 맥락이 사회적인 맥락과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플레이어가 게임 도중 게임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시대의 언어를 ‘읽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존의 자료들을 보면, 『검은 신화』 제작자 펑지의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접근은 일본 게임감독들의 게임사상에 대한 해석에 비교적 가까운 듯하다. 게임기획자 출신인 그는 게임과학의 창업자이기도 한데, 이는 곧 그가 다른 일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도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검은 신화』에 주입할 수 있음을 가리킨다. 게임 디자인 외에는 비즈니스적인 세계의 현실적인 압력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창작 배경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검은 신화』와 그것의 홍보 문구로부터 과거에 『서유기』를 주제로 한 다른 장르 게임들과 완전히 다른 철저한 이상주의의 색채를 읽어낼 수 있다. 가령, 게임 속의 캐릭터 형상화나 액션 디자인, 줄거리 설정, 애니메이션의 연출, 화면 전환, 장면 구축, 공식 웹사이트의 문안까지. 『검은 신화』는 비용 불문 높은 품질과 탁월함을 추구하는 자신의 야심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이상주의는 바로 게임 작품 속에서 ‘작가성’을 부화시키는 전제가 된다. 이에 대해 펑지 등의 (제작진) 사람들은 당연히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13년 전, 일찍이 펑지는 다음과 같이 호언장담한 바 있다. “위대한 게임은 항상 위대한 사상에서 나오고, 위대한 사상은 으레 위대한 게임 디자이너들로부터 나온다.” 『검은 신화』에 게임과학 제작팀의 일상생활에 대한 총체적인 사고와 깊이 있는 관찰이 개입되어 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며, 그것이 ‘서유기 세계관’의 현대적인 함의를 가능한한 풍부하게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게임에는 어떠한 “위대한 사상”이 개입되어 있을까? 공개된 게임 영상들에서 우리에게 확실한 판단 근거를 제시할만한 것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우리는 단지 약간의 실마리로부터 바람과 그림자를 잡을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검은 신화』는 『오공전』과 『투전신』의 현실세계와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비판적인 사유를 연장하고 있지 않을까? 이는 『검은 신화』의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재해석 역시 『서유기』의 내러티브 자체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원숭이는 양보할 수 없는 주인공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며, 대신 “최고의 화면, 풍부한 디테일, 몰입감 넘치는 전투 체험을 통한 충분한 플롯 연역”을 활용해 동방신마(东方神魔)의 세계를 표상하는 메타 서사 공간으로 새로이 창조하는 것에 있다. “교활한 요정, 흉악한 도깨비, 다정한 군주, 비겁한 신선”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사랑과 원한을 노래하고, “동양의 슈퍼히어로 서사시를 새롭게 쓴다”는 것이다. 따라서 『검은 신화』의 “위대한 사상”은 유럽과 미국의 마블 유니버스와 같은 영웅찬가가 아닐 수도 있으며, 반대로 불경을 구해오기 위한 길 위의 “평범한” 캐릭터들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그려 그/그녀들을 따라 공감하고, 그/그녀들 내면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일 수 있다. 신격화된 신선과 성불, 그리고 오명을 뒤집어 쓴 요괴들과 악마들을 메타 서사의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재인격화하여, 플레이어는 영웅의 후광에 가려진 ‘작은 인물들’에게 다가가 평범하지만 충만한 ‘인성’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서유기』는 현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반영한 기서이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한 『검은 신화』의 최대 난제는 어쩌면 AAA게임 기술 자체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중국 최초의 AAA게임에서 사회 비평적 의제를 설정하고, 사회 문제에 대한 가능한 해결 방안을 찾아내는 것에 있다. 『검은 신화』는 과연 하이엔드 “디지털 장난감”일까, 아니면 사회 비평의 매개인가? 내년에는 그 답이 나올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학자) 덩 젠 , 邓剑 쑤저우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부교수. 디지털게임 문화연구를 주 관심사로 다루며, 〈澎湃新闻〉에서 게임에 관한 칼럼 등을 연재하고 있다.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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