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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 은유 : 요코오 타로의 질병 서사

14

GG Vol. 

23. 10. 10.

원문제목: “病”之隐喻:横尾太郎作品中的疾病叙事

 

“질병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것은 완전하게 오래된 두려움이다. 미스테리한 것으로 취급되고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모든 질병은 실제 전염성이 없더라도 윤리적으로는 전염성이 있다고 느끼게 만들 수 있다.” - 수전 손택

 

“질병은 생명의 그늘이다.” 인류 역사는 수많은 질병들과의 투쟁을 동반해왔다. 질병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을 땐 잠시나마 안정을 얻었지만, “보편적인 즐거움은 항상 위협받”는데, 곧바로 다시 새로운 질병이 다가와 고통받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에서 질병은 생리적인 질병 이외의 색채를 부여받았는데, 수전 손택은 암에 걸린 후 집필한 <은유로서의 질병>을 통해 질병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은유(가령 폐결핵으로 대표되는 낭만, 암에 부여된 게으름 등)를 밝히고자 시도했다. 그 책에서 손택은 “질병은 은유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가장 진실한 방법으로 질병을 다루려면 질병을 은유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될 수 있는 한 물들어서는 안 되며, 그런 사고방식에 저항해야 한다”[1]고 말했다.


이와 달리 요코오 타로의 작품에서 질병은 완전히 은유적인 것이며, 은유적 색채를 제거하고 질병 자체에 환원할 필요가 없다. 요코오 타로의 이야기에서 ‘병’은 완전히 허구적인 병이며, 은유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질병’이라는 요소는 요코오 타로가 주도해 만든 <드래그 온 드라군(Drakengard)>, <니어 레플리칸트(NieR Replicant)>, <드래그 온 드라군 3>, 그리고 <니어: 오토마타> 등 네 작품을 관통한다. 이 게임들에서 ‘질병’은 서사 속 갈등의 진원지로, 대립하는 진영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한다. 그것들은 손택이 언급한 낭만화되거나 불명예스러운 생리학적 질병도 아니고, 푸코가 상상했던 병원체 및 숙주도 아니다. 요코오 타로 작품 속의 ‘질병’이란 인류사회로부터 고유한 요소들——통상 우리에겐 익숙하고, 요코오 본인은 상당히 싫어하는——을 추출해내고, 이러한 요소들을 능동적이고 은유적으로 재창조한 산물이다. 가령 <드래그 온 드라군>에서부터 <니어 레플리칸트>까지 4편의 게임들이 요코오 타로의 가치관 변화를 반영한다고 본다면, ‘질병’에 대한 표현은 이러한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스크린 앞에 앉은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는 방식 중 하나다.

 


<드래그 온 드라군> : 홍안증후군(이하 ‘레드아이’)[2]과 백염화증후군


“약 10여 년 전, <드래그 온 드라군>을 만들 때부터 ‘살육’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거든요. 당시 인기 게임들을 참고하면서 ‘100명의 적 격파!’, ‘100명의 적군 병사들을 박살냈다’ 등 긍지넘치는 어투에 주목했습니다. 얼마 후 차분히 생각해보니 자랑스럽다는 어투로 ‘100명 살해’같은 얘기를 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군가 실제로 100명을 죽였다면 그건 이미 ‘변태적인 살인자’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드래그 온 드라군>을 만들 때, 저는 캐릭터들을 좀 더 광인처럼 설정했고, 왜곡된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잘못되고 정의롭지 못한, 왜곡된 세계 속 비뚤어진 인류의 이야기를 한 것이죠.” - <드래그 온 드라군 3> 발매 전 인터뷰


<드래그 온 드라군>은 요코오 타로가 주도해 만든 세계관을 가진 첫 작품이자, 이 시리즈 중 가장 컬트적이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게임에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질병은 바로 ‘레드아이’(인터넷상에서는 적동[赤瞳]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은 주인공인 카임의 부모에 대한 피해로 직결된다. 후속작에서 ‘레드아이’는 니어 월드에서의 인류 멸종, <드래그 온 드라군 3> 속 세계멸망의 꽃 및 우타히메[3]의 출현과 관련되어, ‘레드아이’와 그 유인책인 ‘마소(魔素)’는 일련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핵심이 됐다.


<드래그 온 드라군>이라는 게임 자체로 돌아가보면, 요코오 타로는 주요 캐릭터들을 만들 때 ‘잔(残)’과 ‘질(疾)’이라는 두 요소를 각각의 캐릭터 설정에 삽입해 <드래그 온 드라군>이라는 “모두가 병든” 세계를 만들어냈다. 주인공 팀원들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용과 정령 등 생물들과 계약을 맺고, 목소리나 시력, 생육, 성장의 제한으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인터뷰에서 요코오 타로는 자신이 왜 이 게임에서 ‘결핍’이 있는 캐릭터를 고집했는지 이야기했다. 시장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게임의 플레이 방식은 ‘살해’라는 패턴을 피하기 어렵고, 이를 현실로 옮긴 ‘살인’은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이다. 요코오는 이것이 비록 허구일지라도, 주인공에게 조금이라도 살육의 합리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것들을 정신적 또는 육체적으로 ‘장애를 가진’ 개체로 설정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왜곡된 세계의 정의롭지 못한 집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코오 타로는 자신이 <드래그 온 드라군>의 세계를 “어두운 세계”라고 여기지 않으며, 이 세계를 만들면서 현실에서 영감——광적이고 편집증적인 인간들은 여러 이유로 서로를 도살한다——을 얻었다고 말한다.


* 레드 드래곤과의 계약은 카임[4]에게 힘을 주지만, 그의 목소리를 앗아간다. 요코오 타로는 게임에서 주인공 카임을 벙어리로 만들고자 했다.

요코오 타로의 초기 작품들은 너무 난해해 게이머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주인공은 항상 시련을 겪으면서도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다. 그의 이야기는 일본식 영웅 서사시로 시작해 예상 밖의 방식으로 끝난다. <드래그 온 드라군>을 만들던 때의 요코오 타로는 중2병이 짙게 배어 있어 인류사회의 어두운 흐름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과 본능적인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 때문에 게이머와 “서로 상처를 주는” 태도로 서사를 쓴 것이다. <드래그 온 드라군>이라는 게임만 놓고 보면, 홍안증후군의 존재는 전쟁을 유발하는 모든 요소들을 하나로 모은 과장된 묘사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의 E 엔딩은 <니어>과 <드래그 온 드라군>의 세계관을 이어가며, 니어 월드에 인류 멸망을 불러올 백염화증후군을 불러왔다. 마소를 지닌 레드 드래곤과 마더 엔젤은 니어 월드의 인류와 기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드래그 온 드라군> 세계 속의 인격화된 신에게는 중립도 사랑도 존재하지 않으며, 하지만 제국군과 연합군의 충돌을 일으켜 세계를 멸망시켜왔다. 신주쿠 상공에 강림한 레드 드래곤은 “이것이 신의 세계입니다”라고 소리지르고, 작가와 창작된 허구 세계 둘의 관계를 밝혀낸다.


* <드래그 온 드라군> E 엔딩 속 도쿄 신주쿠의 ‘거인’

게임에서 백염화증후군은 적은 분량만 나타나는데, 주로 2003년 이후 니어 세계 인류의 운명을 배경으로 한다. 다른 세계(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에서 온 마소에 감염된 인간은 광포한 괴물 ‘군단’으로 변하거나, 그대로 백염(흰색소금)과 같은 물질로 부숴져버렸다. 마소는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퍼지고, 인간들이 마소에 맞설 때 거두는 짧은 승리는 새로운 재앙의 시작이 된다. (핵무기를 이용해 신주쿠의 모든 군단을 박멸하고, 군단을 이끄는 레드아이를 죽임으로써 마소는 더 확산된다.)


* <니어: 레플리칸트>의 서장, 여름날의 도쿄에 내리는 하얀 눈 같은 물질은 백염증에 걸려 죽은 인간의 파편이다.
 

<니어: 레플리칸트> : 붕괴체와 검은 병의 사회적 은유


“아마 여러분은 저의 게임에서 미치광이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을 텐데, 여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수백에서 수천 명을 죽인 사람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남자가 애인과 포옹하고 키스하는 것을 해피엔딩이라고 부르는 것은 제가 보기엔 어두침침한 광기입니다.” - 2014년 게임 개발자대회에서 요코오 타로의 강연 중


9/11 테러는 ‘사람은 왜 악행을 저지르는가’에 대한 요코오 타로의 인식을 바꿔놨다. <드래그 온 드라군>을 만들던 시기에 요코오 타로는 살육과 광기를 하나로 연결해 인간 간 폭력을 악한 인성의 탓으로 돌렸다. 9/11사건과 그후 세계적 범위 안에서 나타나는 충돌과 대립은 폭력에 대한 그의 인식을 바꿔놨다. 실제 살인자는 미치광이나 악마가 될 필요가 없고, 자신이 정의를 대변한다고 굳게 믿는 평범한 사람이며, 스스로 정의의 동반자라고 생각하면 쉽게 학살의 칼을 휘두른다. 다원적 정의를 긍정하는 것은 통일신앙의 붕괴를 의미하며, 요코오 타로가 위치한 일본의 문화적 배경은 그가 북아메리카의 동료들보다 빠르게 비이원론적 대립의 정의관을 받아들이게 했다. 그것은 곧 정의와 악의 싸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의 사이의 내전을 가리킨다. 우노 츠네히로(宇野常寛)[5]<리틀피플의 시대(リトル・ピープルの時代)>에서 조지 오웰의 <1984>에 묘사된 '빅 브라더(big brother)'적 유일신앙이 1960년대 '정치의 계절’의 종언과 함께 말로를 걷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사회는 포스트모던 개념을 빠르게 소화해 수용(일본에서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는 학술용어가 아니라, 베스트셀러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다)했고, 통일적이고 온 국민이 희생할 만한 거창한 이상은 이미 무너져 버리고, 각기 다른 집단 간의 줄다리기만이 남았다.


이와 같은 생각에 기초할 때 <니어: 레플리칸트>의 적군과 아군 쌍방은 광적이고 편집증적인 정신장애인이 아니라, 제각각 대립적 입장에 있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은 ‘니어’이라는 이름의 연원인 동족상잔을 끄집어낸다. 니어(Nier)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일본어와 발음이 같은 영어 단어 'near'에서 따온 것으로, 적과 아군이 서로 비슷하다는 뜻을 갖는다. “동족상잔”이라는 주제는 <니어> 시리즈를 관통하는데, 레플리칸트와 마소, 기계생명체[6]와 요르하부대[7], 적대적인 쌍방은 모두 같은 근원을 갖는 산물이지만 게임 내내 자멸한다. <니어: 레플리칸트>에서 붕괴체와 검은 병은 동일한 병변이 각기 다른 숙주의 일체양면에 나타나는 질병으로, 둘은 모두 백염화증후군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려는 인류의 수단——게슈탈트 계획——에서 비롯됐다.



본래 “게슈탈트(gestalt)”[8]는 심리학 용어로, “완형(完形)”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게슈탈트학파는 “1 더하기 1은 2보다 크다”, 즉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주장한다. <니어: 레플리칸트>에 대입된 이야기 속에서 ‘게슈탈트 계획’이라는 명명은 일말의 아이러니를 안고 있는데——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지만, 인간 생명의 존재는 영혼과 육체의 직접적인 결합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마소를 연구해 마법을 배운 후, 백염화된 육체에서 영혼을 구하기 위해 게슈탈트 계획을 가동해 마법으로 영혼을 육체로부터 떼어내고, 백염증이 완전히 사라져 만들어진 ‘인공생명’의 체내로 돌아갈 계획이다.


“게슈탈트”라는 이름은 계획 실패의 필연성을 예고하고 있다. 육체와 영혼을 떨어뜨려 놓는 행위는 새로운 질병의 출현을 초래하는데, 그것은 곧 붕괴와 검은 병이다. 육체를 잃어버린 영혼은 곧 무너지기 시작해 점차 이성을 잃은 붕괴체가 되고, 영혼이 무너지거나 죽을 때마다 그것에 대응하는 ‘인공생명’ 레플리칸트도 검은 병에 걸린다. 검은 글자는 점차 온몸에 가득 채워지고, 레플리칸트는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육체를 갈망하는 영혼과 자의식이 생겨난 레플리칸트는 근원을 같이 하지만, 서로 대립하는 둘은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인다. 이야기 속 레플리칸트들은 자신들을 진정한 인간으로 착각하고, 몸을 되찾길 원하는 인간의 영혼을 “마물”이라고 부른다. 레플리칸트 니어는 마을과 여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마물을 죽이고, 점차 많은 마을 사람들이 검은 병에 걸려 죽어가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하지만 자신이 마물을 죽였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행위는 검은 병의 확산을 가속화할 뿐이다.


* 레플리칸트와 마물의 직접적인 충돌은 서로 상반된 요구와 소통할 수 없는 언어에서 비롯되지만, 왜 마물의 언어를 알아듣는 카이네와 온전한 인간이었던 에밀[9]은 마물을 죽이는 게 인류를 멸망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사실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을까?


에밀과 카이네의 캐릭터 설정은 <드래그 온 드라군>의 ‘에너지’에 대한 이해를 계승한다. 과학기술 실험은 에밀에게 마법의 눈을 안겨주었고, 이로 인해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에밀이 석화 마법을 제대로 장악하게 되는 것은 다시 시력을 회복한 뒤다. 누나와 하나로 합쳐 그가 마법을 완전하게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했는데, 이에 대한 대가는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카이네는 습격 중에 신체 반쪽이 파손된 후 마물에 붙어다니게 되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을 얻지만, 마물의 완전한 통제를 계속해서 억제해야 한다. 이야기에 빙의된 카이네는 마물의 언어를 이해하고, 전투 중 마물의 말에 여러 차례 동요와 고통을 느낀다. 에밀 역시 누나와 합체한 후 인간의 게슈탈트화 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것들 중 어느 것도 그들이 마물을 계속 죽이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로하여금 행동하게 한 것은 레플리칸트 니어에 대한 감정과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입장에 근거한 행동인데, 현실에서 같은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서로를 적대시할 수 있듯, 카이네와 에밀, 그리고 백의 서의 인간에 대해 생산하는 엇갈림은 말이 통한다고 해서 없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붕괴와 검은 병의 한계로 동류상잔은 반드시 둘 모두가 패배하는 결과로 끝나게 된다. 요코오 타로의 반전평화 사상은 여기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각자 정의로운 사명을 지닌 투쟁은 양측을 모두 파멸로 몰아넣고, 이때 의문을 제기해야 하는 것이 바로 ‘투쟁’이라는 갈등 해결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니어: 레플리칸트>의 내러티브는 우리에게 이상적인 답을 주지 못하며, 어쩌면 절벽의 마을 사람들이 마물과의 공생을 선택해 윈윈을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가능성은 무모한 레플리칸트 니어와 복수에 집착하는 카이네의 칼에 사라지고만다.

 


<드래그 온 드라군 3> : ‘병’의 원흉


“테러와 불평등으로 인한 약탈은 여전하고, 다양한 형태의 경쟁도 볼 수 있죠. 단체들 간의 경쟁은 학생들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고요.” - 요코오 타로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드래그 온 드라군 3>는 1~2탄에서 어지간히도 날아다니게 하던 여러 엔딩의 세계관을 수습하고, 이 시리즈의 세계관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두 작품에서 ‘홍안병’과 ‘마소’가 연결되며, ‘마소’에 보다 강한 은유가 부여된다. <드래그 온 드라군>의 E 엔딩은 니어 월드와 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를 창세신(저자)이 존재하는 세계 vs. 창작된 허구의 내러티브로 정의한다. 그리고 허구적인 레드 드래군과 모천사가 ‘현실’로 넘어와, 죽음에 이르는 바이러스(마소)를 그들의 세계 내에 퍼뜨린다. 니어 월드의 인류는 마법을 연마해 마소를 다시 다른 세계로 돌려보내고, 마소는 다른 세계(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에 모여 세계멸망의 꽃으로 이 게임의 주인공 제로(Zero)의 눈 속에 기생하게 된다.


* 요코오 타로는 고도로 장르화된 게임 산업과 전투 살육 게임의 패러다임을 수차례 거부해왔지만, 그의 창작에 폭력은 항상 맴돌았다. 프로젝트 자금의 30퍼센트 가까이가 투입된다는 소문이 돌았던 <드래그 온 드라군 3>의 CG는 폭력미학을 연출해내며, 작은 공방 페이지 투어에 상시적인 소재를 제공한다.
 

모든 질병의 원흉——마소는 대체 무엇인가?


제작진이 공식 제시한 연표에서 두 세계는 서기 856년 대재앙이 ‘교회도시’를 탄생시키기 전까지 같은 역사의 거울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허공에 나타난 도시는 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에 마법과 괴물을 가져다주었고, 적지 않은 카오쥐당(考据党)[10] 유저들도 니어 월드에서 인류가 보낸 마소로 인해 대재앙이 일어났다. 여기서 교회도시는 바로 핵폭발 이후의 신주쿠일 것이다. 두 세계의 관계 속으로 다시 돌아가서, 마소의 하나로 엮는 것은 세 작품을 폐쇄 고리로 만들어버린다. ‘현실’ 세계는 허구의 세계를 이용해 자기 딜레마를 해소하고, ‘현실’에 의해 변화된 허구적 세계는 세계멸망의 위협을 준비한다. 세계멸망을 위협하는 격투에서 허구는 ‘현실’로 넘어오게 되면 ‘현실’의 딜레마를 일으킬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소위 ‘마소’는 추상적 사물의 은유라고 볼 수밖에 없다. 마소가 유발하는 모든 질병들——레드아이(인간이 미쳐가는 괴물로 변한다)와 백염화증후군(인간 공격을 거부하는 병을 앓다가 백염화되어 사망한다) 같은——은 의심할 바 없이 인간사회 규칙의 부정적 요소들을 상징하며, 요코오 타로의 인터뷰를 통해 이를 생각해보면 폭력과 살육, 악의적 경쟁, ‘타인을 짓밟고 이겨야 한다’는 정글의 법칙에 따른 사고로 귀납된다. 두 세계 간 마소의 흐름은 인간이 만든 허구적 이야기가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을 은유하며, ‘현실’ 세계와 허구 세계는 서로를 독살하고, 허구 세계의 멸망 위기는 ‘현실’ 세계를 전염시키는 병적 원인으로 전환된다. 요코오 타로는 자기 작품을 통해 정글의 법칙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인데——니어 월드의 과학기술은 로봇까지 만들어 시간여행을 할 정도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많은 시공간에서 인류를 구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두 세계의 모든 생명체들을 부정하는 행동으로, “적을 쓰러뜨리는” 간명하고도 난폭한 방법은 아무리 반복하더라도 인류의 멸종을 피할 수가 없다.

 


<니어: 오토마타> : 인간에게 처방을 내리려 하다


영화감독 봉준호는 자본주의 지배하는 인간사회가 어떻게 붕괴를 피할 수 있을 것인지를 탐색해왔다. 요코오 타로의 게임들 역시 시종일관 인간이 왜 서로에게 해를 가해야 하느냐, 그리고 왜 그것에 익숙해지고 있는가에 대한 많은 질문들을 담고 있다. <니어: 오토마타>는 인류가 멸종한다는 전제 하에 인간 문명의 인조인간과 기계생명체의 이야기를 연설을 통해 계승하고 학습하며, 인간의 ‘육체’를 벗어난 뒤 남은 어떤 정신을 ‘인간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사유한다.


<니어: 오토마타>의 내러티브에서 인간의 영혼과 육체는 이미 절멸해버렸지만, 질병의 은유는 여전히 남아있는데, 게임 속에서 기계가 만든 인조인간조차 ‘병’을 앓는 숙명을 피하기 어렵다. 벙커 기지에 숨은 논리 바이러스는 요코오 타로의 작품에서 현실적으로 추적 가능한 유일한 ‘바이러스’로, 본래는 컴퓨터 시스템을 공격하는 데 활용된다. 이 내러티브 속 논리 바이러스와 그것이 일으키는 질병은 고도의 은유를 담고 있는데, 그것은 병에 걸린 인조인간과 기계생명체에 나타나는 증상들——레드아이의 광폭과 검은 책——은 모두 시리즈의 전작에서 추적 가능하다. 이는 그것이 원래 갖고 있던 은유의 재창조이며, 요코오 타로 자신에 대한 오마주이다.


* 붉을 빛을 발하는 레드아이를 제외하면, 이브의 검은 문양은 <드래그 온 드라군> 속 천사교회의 휘장과 높이가 비슷한 것처럼 여겨진다.

‘레드아이’는 기계생명체의 정상 상태이며, 요르하형 인조인간의 ‘병에 걸린 상태’이다. 요르하형 인조인간과 기계생명체의 핵심은 모두 ‘블랙박스’인데, 이는 질병과 건강, 각성과 광기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검은 병 역시 상징적 수법으로 돌아왔는데, 가령 아담의 영혼을 잃은 이브는 정신이 붕괴되고 그의 몸에는 검은 글자가 자라난다. <니어: 오토마타>에서 검은 병에 해당하는 병의 원인들을 돌이켜보면 영혼체의 붕괴에 있는데, 기계생명체로서 이브는 복제체만 걸리는 검은 병의 증상을 보인다. 기계생명체인 그는 지구에 도착해 인류가 남겨놓은 역사와 문화를 끊임없이 학습하는데, 이때 이브의 ‘병’이라는 상징성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아담의 죽음은 이브가 인류로부터 ‘인간성’을 학습한 부분을 가져가버린 것이다.


2B[11]를 죽인 원흉인 논리 바이러스의 전염 방식은 미스테리다. 게이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2B가 왜 9S의 백신에도 불구하고 재발했느냐는 온라인상의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2B가 벙커에서나 추적 과정에서 탈출할 때 논리 바이러스 감염 여부와 무관하게 그녀의 죽음은 9S와 A2 간의 갈등을 촉발하는 계기로 이미 규정되어 있다. 2B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발작을 일으켜 폐허가 된 상점 앞에 쓰러진다. 그곳은 9S와 “기계생명체를 없애고 나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쇼핑도 하자. 네 티셔츠를 골라줄 거야”라고 희망과 행복의 약속을 했던 그 지점이기도 하다. 2B의 죽음과 이후 A2와 9S의 추락은 모두 “평화를 위해 모든 적을 소멸시킨다”는 논리가 불합리하고 아무 결과도 만들 수 없는 것임을 암시한다. 전투를 위해 싸우다가 죽은 요르하부대 인조인간들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없으며, 그저 보조기이자 플레이어가 생사의 순환을 깨뜨릴 때까지 오르내리는 작전을 반복할 수 있을 뿐이다.



<니어: 오토마타>에 이르기까지 요코오 타로는 반전과 반폭력에 대해더욱 깊이 사유하고 설명해왔다. 그것은 전쟁의 후과를 반성하는 게 아니라, 폭력을 갈등 해결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논리이다. 그는 종으로서의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부터 인간 간 상호공격 행위에서 비롯된 ‘악의’ 자체로 화살을 돌렸고, 더 나아가 자기 희생과 상호원자라는 화해의 가능성까지 제시한다.


* E 엔딩 직전의 탄막전. 게이머와 제작진의 전투에는 다른 게이머들의 지원이 필요하다.

<니어> 시리즈와 <드래그 온 드라군> 시리즈에서 질병은 반복해서 절망의 폐쇄회로를 다룬다. 세계멸망의 꽃이 나타나 드래그 온 드라군 월드에 레드아이가 퍼지고, 카임은 레드 드래곤과 계약을 맺어 2003년 도쿄 신주쿠에 이르기까지 결전을 벌이며, 레드 드래곤의 몸속에 마소가 확산되어 니어 월드에 전파되고, 인간이 만든 로봇들은 마소를 다른 세계로 돌려보내 세계멸망의 꽃은 Zero의 눈에 탄생하게 된다.


요코오 타로의 내러티브 속에서 ‘질병’은 구원도 회복도 불가능하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돌파하는 ‘윤회’에 가깝다. 질병은 서로 다른 시공간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어 현실의 어떤 절실한 고통을 지향하지 않고, 은유적인 색채를 짙게 감싸고 있다. 두 세계에서 레드아이와 백염화증후군은 하나같이 “하늘에서 내려온” 마소에서 비롯되는데, 붕괴와 검은 병 역시 대립하는 진영들 간 화해를 이루지 않는 한 치유가 불가능한 병이다. 이야기 속에서 모래의 나라의 전임 국왕은 죽을 때까지 검은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탐색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요코오 타로는 <니어: 레플리칸트>에서 화해 가능성을 거부하고 모든 결말을 동족상잔으로 이끌어 양쪽 모두를 절멸시켰다. 리메이크판에선 니어와 카이네를 좋아하는 게이머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해피엔딩’을 만들었지만, 복제체와 인간의 영혼 모두 파멸을 피하지는 못한다. 한데 나이를 먹으면서 요코오 타로 역시 마음이 약해졌는지, 아니면 코카콜라가 진행한 ‘스몰 월드 머신(Small World Machine)’ 이벤트가 그를 감동시켰는지 모르겠지만, <니어: 오토마타>에서는 그나마 따뜻한 가능성을 남겨놓았다. 바로 일면식도 없는 게이머들이 서로 돕고 자발적으로 저장 파일을 희생해, E 엔딩에서 주인공 세 명이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 요코오 타로는 자신의 강연들에서 코카콜라가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에서 개최한 ‘스몰 월드 머신(Small World Machine)’ 이벤트를 언급한 바 있다. 이 이벤트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민들이 함께 협력해 작은 게임을 완성하고, 게임에 성공하게 되면 참가자들에게 콜라 캔을 지급한다. 요코오 타로는 입장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적대하게 된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라고 여긴다.

중2 때(14세)나 지천명(50세)에 이른 지금[12]이나 질병이라는 은유는 요코오 타로 게임 세계에 가득 차 있다. 그 증상들 배후에 있는 병변은 하나같이 살육과 폭력, 약탈, 경쟁 등 ‘악의’를 낳는 행동을 가리킨다. 현대 사회에서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네이쥐안(内卷)[13]과 세계 곳곳의 국지전들은 예술 창작자들을 괴롭게 하는 토픽이다. 거대서사를 향한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고, 어떠한 이념도 우리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못한 것처럼 보인다. 만화가 후지모토 타츠키(藤本树)[14]는 <체인소맨>에서 덴지의 답을 “그녀를 많이 안아줘”라고 했듯, 요코오 타로의 질병 치유 시도 역시 개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즉, 당신의 파일을 희생해 처방이 불가능한 플레이러를 구출하거나, 카이네가 다시 태어난 니어를 껴안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1] 수전 손택 저·이재원 역, 『은유로서의 질병』, 이후, 2002년

[2] 드래그 온 드라군 유니버스에서 홍안증후군, 즉 레드아이(赤目の病)는

[3] ‘드래그 온 드라군’ 서사 속 암흑의 시대에 강림한 여신들은 노래를 불러 마력을 발휘했고, 이를 통해 황폐한 대지에 평화를 안겨다 줬다.

[4] [나무위키 ‘니어 레플리칸트/등장인물’] 절벽 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입이 험한 속옷 차림의 소녀. 할머니를 죽인 마물에게 복수하려 한다. 니어와 처음 만났을 때는 싸움을 벌이지만 곧 동료가 된다.

[5] 일본의 평론가로, 비평지 ‘PLANETS’ 편집장이다. 주요 저서로는 『제로년대의 상상력』『리틀피플의 시대』『모성의 디스토피아』등이 있다.

[6] 먼 미래에 지구를 침략한 이성인(외계인)들이 보낸 병기

[7] 인류가 지구를 탈환하기 위해 조직한 신형 안드로이드 전투용 보병

[8] 백염화증후군에 맞서기 위해 신체와 영혼을 나누는 기술

[9] 남쪽 평원의 저택에서 집사와 살고 있는 소년. 눈으로 본 상대를 돌로 만드는 힘이 있지만, 이를 통제하지 못해 붕대로 눈을 감고 있다.

[10] 중국 대륙 인터넷 유행어로, 소설이나 영상물, 그밖에 콘텐츠를 시청 또는 소비할 때 해당 동영상이나 작품에 등장하거나 작품과 관련된 내용을 찾기 위해 정보를 검색하고 조사하는 것(디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11] [나무위키 “2B(니어 시리즈)”] 3인의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하나이며 (1회차의) 주인공.

[12] 요코오 타로는 1970년생으로 현재 53세이다.

[13] ‘네이쥐안(内卷)’이란 클리포드 기어츠가 인도네시아 사회를 참여 관찰한 뒤 내놓은 저서 『농업의 내향적 정교화 Agricultural Involution』에서 제기된 involution 개념에서 유래한다. 프래신짓트 두아라(Prasenjit Duara)는 『Culture, Power, and the State: Rural Society in North China, 1900-1942』에서 근대 중국 역사의 바퀴가 안으로퇴행(involution)했다고 묘사한 바 있다. 즉, 한 사회나 조직이 급진적인 발전이나 점진적인 성장 없이 행하는 단순한 자기반복을 의미한다. 한데 2021년 인류학자 샹뱌오(项飙)가 펑파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개념을 다시 언급하면서 지식사회의 쟁점이 됐다. 극심한 경쟁 속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내몰린 사람들의 삶을 묘사한다. 질적 성장 없는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내부 경쟁. 이로 인한 노동자계급, 청년들의 집단적인 번아웃 현상.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가리킨다.

[14] 일본의 유명 만화가로, 2013년 데뷔 이후 계속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소년 점프+에서 《체인소 맨》을 연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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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온드라군, 니어오토마타, 질병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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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er)

화동사범대학(华东师范大学) 철학과 박사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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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작가)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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