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의 동남아시아 소프트 파워 효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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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6. 4. 10.
2023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애니메 페스티벌 아시아(AFA)에서 miHoYo는 컨벤션 센터 입구, 즉 전시장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덕분에 팬들이 굿즈를 사기 위해 부스로 몰려들면서 3일 내내 통로가 막힐 지경이었다. 부스에는 miHoYo의 글로벌 흥행작이자 2020년 출시 이후 회사를 세계 무대에 올려놓은 게임, 《원신》의 포토존과 캐릭터 상품이 가득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miHoYo 관련 행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사운드트랙 콘서트, 싱가포르 버블티 체인 LiHoTEA·디스커버리 채널 동남아시아 지사·도미노 피자 등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잇따랐으며(Yan, 2023; Genshin.Global, 2022; Lojo, 2024), 2023년에는 연간 플래그십 이벤트 '호요 페스트(HoYoFest)'를 동남아시아 6개국에서 동시 개최해 《원신》을 포함한 자사 게임 라인업을 한자리에 선보였다.
miHoYo의 이 같은 확장세는 《원신》의 글로벌 흥행에 힘입은 바 크다. 2021년 3월, 출시 6개월도 채 안 되어 누적 플레이어 지출액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구글 플레이와 앱 스토어 양대 마켓에서 최단 기간 해당 기록을 세웠다(Chapple, 2021). 같은 해, 게임 업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더 게임 어워즈(TGA)에서 최우수 모바일 게임상을 수상하며 중국 게임 최초라는 기록도 남겼다(Bankhurst, 2021). miHoYo는 급격히 팽창한 해외 사업을 관리하기 위해 2022년 싱가포르에 글로벌 자회사 코그노스피어(Cognosphere)를 설립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원신》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이 게임이 중국의 소프트 파워 원천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Song, 2023; Li and Li, 2023). 소프트 파워란 한 나라의 문화, 정치적 가치관, 외교 정책을 통해 축적되어 타국의 인식과 관계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가리킨다(Nye, 2004). 소프트 파워는 국가 기관이 의도적으로 조성하기도 하지만, 국가의 개입 없이 독자적으로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miHoYo는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소프트 파워 형성에 기여한 비국가 행위자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중국 내에서 《원신》은 어떻게 평가받는가
중국 국내에서 《원신》은 국가적 자부심의 원천으로 여겨진다. 판 옌천(Fan Yanchen, 2024)은 이 게임의 해외 진출 성과를 분석한 글에서, "중국 게임이 '수출'에서 '세계화'로 나아가는 현 시점에서 《원신》은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중국의 이야기를 세계에 전하는 훌륭한 매개체"라고 언급했다. 이는 중국 당국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중국의 이야기를 잘 전하라(讲好中国故事)'는 기조와도 맥을 같이한다(Liu, 2018). 송 탕(Song Tang, 2023)의 글에서는 중국 네티즌들이 해외 플레이어들의 반응을 중국어로 번역해 국내에 퍼뜨리는 현상도 확인된다. 그들에게 이는 게임의 글로벌 흥행이 곧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다. 게임의 높은 완성도는 중국이 '낙후되어 있다'는 편견을 깨고, 오히려 '고도로 근대화된' 나라의 이미지를 심어주며 "문화 강국으로 도약하는 중국"이라는 집단적 비전에 기여한다고 평가된다.
중국의 문화적 이미지 제고에 《원신》이 기여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중국 정부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miHoYo는 2021년과 2022년 국가 문화수출 중점 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Ministry of Commerce, 2021), 이후 miHoYo가 개발한 신작들도 베이징의 지지를 받았다(Cao, 2023).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담론은 서구권과 중국 내 관객의 반응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송(Song, 2023)은 중국 팬들이 만든 영상을 분석하면서, 어느 크리에이터가 《원신》 덕분에 미국인들이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을 이해하게 됐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서구의 시선을 특별히 의식하는 이 경향은 《원신》의 '중국성(Chineseness)'을 둘러싼 또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리와 리(Li and Li, 2023)는 《원신》에 대한 네티즌들의 엇갈린 의견과 무관하게, 서구 소비자의 반응에 유독 무게를 두는 태도가 "외국인, 특히 선진국의 서구 소비자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중국 플레이어들의 불안"을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해외 반응을 향한 중국 네티즌의 시선은 정작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로는 잘 향하지 않는다.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의 반응이 주목받지 못하고 서구 반응에만 관심이 쏠리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교육, 음식,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경우 대중문화 등 다른 중국 콘텐츠가 해당 지역에서 이미 충분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미-중 경쟁으로 인해 서구권, 특히 코로나19 이후 반중 감정이 고조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2022년 기준 세계 3위 매출국인 미국에서(Chapple, 2022) 게임이 열광적으로 수용되는 현상은, 변화하는 서구의 대중(對中) 감정을 보여주는 징표로 읽힐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라들, 특히 동남아시아의 반응을 간과할 수는 없다. '2024 동남아시아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중 경쟁 구도에서 전략적 파트너로 중국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자 비율이 50.5%로 미국(49.5%)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전년도 조사에서 중국을 선택한 비율이 38.9%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Seah et al., 2024). 중국의 인기가 예상치 못하게 급상승하고 있는 만큼, 《원신》과 같은 중국 문화 콘텐츠가 동남아시아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필자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플레이어 264명을 대상으로 게임에 대한 인상과 중국 문화 인식에 미친 영향을 설문 조사했다. 《원신》이 최고 인기를 누리던 시기, 이 게임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 매출 1위를 기록했고,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는 2위였다(Bashir, 2022). 플레이어 수가 많은 이들 5개국을 조사 대상으로 삼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나, 결과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화교 커뮤니티가 강하게 자리 잡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핵심 비교 국가로 선정했다. 인도네시아 역시 화교 인구가 상당한 만큼 비교 대상에 포함했다. 반면 필리핀과 베트남은 상대적으로 화교 비중이 낮아 인구 구성의 맥락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제외했다.
동남아시아의 《원신》 수용 태도
2024년 2월 1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이번 조사 결과, 동남아시아에서 이 게임의 소프트 파워 효과는 두 가지 이유로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첫째, 이 지역 플레이어들은 이미 주변의 화교 이웃 및 친구들을 통해 중국 문화에 충분히 노출되어 있어, 게임이 추가로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제한된다. 둘째, 플레이어들은 《원신》을 순수하게 '중국적인' 게임이 아닌 글로벌 게임으로 인식하며, 이는 소프트 파워로서의 잠재력을 희석시킨다. 응답자 구성은 인도네시아 37%, 말레이시아 33%, 싱가포르 30%였다.
긍정적이되 제한적인 효과
설문 결과에 따르면,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서 《원신》의 소프트 파워 효과는 긍정적이지만 제한적이다(그림 1 참조).

* 그림 1: 다음 항목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십니까?
대다수 응답자는 중국 문화 전반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다만 게임 플레이 이후 중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응답자(35.5%)가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18.2%)보다 많았다. 이는 《원신》이 동남아시아에서 제한적이지만 긍정적인 소프트 파워 효과를 내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게임이 현지 관객에게 전반적으로 중립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신》을 플레이한 후 중국적 미감이 반영된 제품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항목에서 응답자들은 자신의 견해를 직접 서술했다. 이 항목에서 중립 응답을 선택한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첫 번째 집단은 게임을 문화 전달의 중요한 매개체로 보지 않는 플레이어들로, 문화적 가치를 위해 게임을 찾는 습관 자체가 없었다. 두 번째 집단은 이미 일상에서 중국 문화에 충분히 노출되어 있는 동남아시아 화교 인구로, 게임의 소프트 파워 효과가 상당 부분 무뎌진 경우다.
첫 번째 집단에 속하는 플레이어들은 게임이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입장이었다. 게임이 담고 있는 문화적 함의는 부차적인 문제로, 중국에 대한 인식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답했다. 두 번째 집단은 화교 참가자이거나 중국인 친구를 둔 비화교 참가자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이미 중국 문화에 익숙한 만큼, 《원신》이 자신의 인식에 특별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 뿌리내린 중국 문화가 《원신》의 소프트 파워 효과를 제한하는 가운데서도, 이 게임이 지역 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드러났다. "동의" 및 "강하게 동의" 응답자 중에서는 화교보다 비화교 응답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원신》이 비화교 플레이어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한다(그림 2.1, 2.2, 2.3 참조).

* 그림 2.1 "《원신》을 플레이한 후 중국 문화에 대해 더 궁금해졌다"

* 그림 2.2 "앞으로 몇 년 안에 《원신》의 배경이 된 중국 실제 장소를 방문하고 싶다"

* 그림 2.3 "《원신》을 플레이한 후 중국적 미감이 반영된 제품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중국이 만든 글로벌 게임
《원신》이 중국 문화에 대한 인식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는 것과 더불어, 설문은 응답자들이 이 게임을 얼마나 '글로벌 게임'으로 인식하는지도 살펴보았다(그림 3 참조).

* 그림 3: 《원신》은 글로벌 게임이다
결과에 따르면 51.9%가 "강하게 동의", 38.6%가 "동의"했다. "비동의"와 "강하게 비동의"는 각각 0.16%에 그쳤으며, 8%는 "중립"을 선택했다. 압도적 공감대의 배경으로는 ①다양한 문화를 소개한다는 점, ②전 세계적으로 서비스된다는 점, ③세계 각지의 플레이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꼽혔다.
이어서 응답자들에게 《원신》을 '중국 콘텐츠'로 인식하는지 물었다(그림 4 참조).

* 그림 4: 《원신》을 중국 콘텐츠로 인식합니까?
응답자의 85%가 "그렇다"고 답했고, 15%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 중 다수는 개발사가 중국 기업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게임의 중국적 기원을 분명히 인정했다. 일부는 게임 내에서 '중국성'이 두드러지게 강조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반면 "아니다"라고 답한 소수는 일본 애니메이션 화풍의 도입을 핵심 이유로 지목했는데, 이는 《원신》의 중국성을 둘러싼 현재 진행형의 논쟁을 반영한다.
두 질문을 나란히 놓고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플레이어들은 이 게임을 중국적(로컬)인 동시에 글로벌한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고(Goh, 2015)가 제시한 '세계화된 다문화주의(worlding multiculturalism)'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업(miHoYo 같은)이 낯설고 새로운 것(전통 중국 문화와 미감)에 로컬(동남아시아)하고 친숙한(일본 애니메이션 화풍) 요소를 접목해, 소비자가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문화 상품을 빚어내는 방식이다(Otmazgin and Ben-Ari, 2015). 개발진은 중국 문화의 미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로컬과 글로벌 양쪽에 두루 소구하는 게임을 만들어냄으로써, 의도치 않게 '세계화된 다문화주의'의 역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한 셈이다. 이 지역 플레이어들이 《원신》을 중국적이면서도 글로벌한 게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결과다.
결론
설문 결과를 종합하면, 《원신》은 세계적 인기를 지닌 문화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중국의 역량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개선하는 데 분명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그것이 나이(Nye)가 개념화한 소프트 파워에 걸맞은 정치적 파급력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응답자들이 《원신》을 중국 게임인 동시에 글로벌 게임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은, 이 게임의 소프트 파워 효과가 동남아시아에서 궁극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게임의 글로벌한 성격이 그 안에 담긴 '중국성'을 압도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한, 소프트 파워로서의 잠재력은 희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SOJOURN: Journal of Social Issues in Southeast Asia Vol.39, No. 3 (2024년 11월)에 게재된 "Assessing Genshin's Soft Power Impact on Southeast Asia"의 축약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