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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레트로 게임: 8비트 시대의 흔적들
21세기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산업 규모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그 이전의 상황이나 흐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는 그 이전의 역사, 그러니까 ‘8비트 게임 시대’를 고찰함으로써 오늘날 중국 게임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이 글은 중국의 8비트 게임 시대를 조망하고 그 역사가 지닌 함의를 논한다. 이 글은 또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초기 게임사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 Back 중국의 레트로 게임: 8비트 시대의 흔적들 02 GG Vol. 21. 8. 10. - 편집자 주: 이 글은 중국의 게임연구자 Jian Deng이 투고해온 글을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이 너무 길어 번역은 핵심을 놓치지 않는 선에서 축약하였습니다. 원문이 필요하신 경우 별도로 게재한 아티클을 참고해 주십시오.- 원문링크: 21세기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산업 규모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그 이전의 상황이나 흐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는 그 이전의 역사, 그러니까 ‘8비트 게임 시대’를 고찰함으로써 오늘날 중국 게임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이 글은 중국의 8비트 게임 시대를 조망하고 그 역사가 지닌 함의를 논한다. 이 글은 또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초기 게임사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두 다리로 걷기”: 패미클론과 학습용 컴퓨터 1980년에 행정부의 지도 하에서 아케이드 게임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했던 중국이 처음으로 게임 콘솔을 개발한 것은 1981년 말의 일이었다. 베이징의 제1경공업연구소(北京第一轻工业研究所)에서 개발한 YQ-1은 〈퐁〉의 여러 버전이 내장된 콘솔로서 제너럴 인스트루먼트(General Instruments)의 AY-3-8500칩을 사용했다. 이 콘솔이 1982년 소량 출시되기 시작한 이래, 항저우나 우시, 상하이, 내몽골, 광저우 등 타 지방의 공장들에서도 유사한 콘솔장치들이 조립/생산되기 시작한다. * 1980년대 중국에서 생산되었던 YQ-1 콘솔의 모습(왼쪽), AY-3-8500칩(오른쪽) 1984년에는 2세대 콘솔이 중국 시장에 진입한다. 1985년까지 게임 콘솔은 외국에 거주하는 친척들이 주는 귀하고 비싼 선물이었는데(1986년 기준으로 1000위안 수준), 이러한 상황은 1987년 패미콤이 중국에 소개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가격이 비싼데다 중국의 PAL-D 텔레비전과 연결도 쉽지 않았던 패미콤이었지만, 중국 내수 시장에 “패미(콤)클론(이하 패미클론)”의 생산 기반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중국의 텔레비전에서도 패미콤이 작동할 수 있도록 개조된 패미클론들이 홍콩으로부터 수입되었지만, 이내 홍콩과 대만의 제조사들이 중국 본토에서 직접 콘솔을 복제/개조하기 시작한다. 중국의 국가적 개혁 및 개방을 통해 중국 남부에 거대한 규모의 저렴한 노동력이 이용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개 수십명 정도 규모의 이 공장들은 연간 수십만에서 백만대 규모의 콘솔을 생산하면서 중국 전역에 기술을 활성화시키는 한편 중국 본토의 기업들이 게임산업에 진입하게 되는 계기도 제공했다: 1987년 초반 선전과 주하이, 닝보 등 중국의 남부 해안가 도시들이 일본산 게임 콘솔 조립 산업을 주도하면서 난천(兰天), 왕중왕(王中王), 천마(天马), 소패왕(小霸王) 등의 패미클론들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당시 중국에는 7백개가 넘는 인기 비디오게임 소프트웨어가 존재했다. (Pan A2)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의 시기에 중국 남부 해안 지역의 콘솔 생산력이 크게 신장되면서 1989년 6-700 위안이었던 게임 콘솔의 가격은 1992년에 100위안 정도로 떨어졌다(Sun 79). 가격이 낮아지면서 평균적인 임금 수준의 노동자 가정에서도 게임용 콘솔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집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1993년에는 텐진의 뉴스타 일렉트로닉스(Tianjin Newstar Electronics Co., Ltd.)가 SUN 워크스테이션 시스템과 통합 회로 설계 소프트웨어(그리고 SM-T 생산라인까지)를 갖추고 중국 최초의 16비트 게임 콘솔 “소교수(小敎授)”의 개발에 성공한다. 이는 기술적으로 엄청난 성취로서, 중국은 당시 독립적으로 16비트 게임 콘솔을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는 소수의 국가들 중 하나가 된다. 중국 게임 콘솔 역사의 또 다른 흐름으로는 ‘학습기(学习机)’라 불리는 학습용 컴퓨터가 있다. 전지구적으로 게임의 산업적 발전이 활발하던 1980년대에 중국이 주목했던 것은 학습용 컴퓨터였는데, 그 이유는 컴퓨터를 통해 놀이를 훈련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오랜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콘솔 같은 명백한 오락장치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학습용 컴퓨터’라는 위장으로 부모들의 염려를 달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70년대 말 재개된 대학입시 제도 또한 관련성이 있는데, 대학 입시를 통해 사회 계층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중국 사회에서 지식에 대한 존중과 자신감이 상승했고, 이것이 학습용 컴퓨터의 필요성에 중국인들의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학습용 컴퓨터가 현대적 지식 매체로서 상상적으로 구축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와 같은 맥락이 존재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학습용 컴퓨터의 생산과 대중화 아래에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던 현대화가 은폐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학습용 컴퓨터를 통해 적당한 가격의 컴퓨터를 보급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주의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수준을 맞추고자 했다. 학습용 컴퓨터의 역사적 흐름은 덩샤오핑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재집권한 뒤 교육과 과학 그리고 기술의 현대화를 주요 국가적 목표로 삼았던 덩샤오핑은 1984년부터 컴퓨터의 대중화를 직접적으로 챙기기 시작한다. “아동을 위해 컴퓨터의 대중화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그에 따라 중국 사회가 컴퓨터 교육을 중시하게 되고 전국의 초중등 교육기관이 재빠르게 컴퓨터 장비를 구매하기 시작한다. 1986년에는 컴퓨터의 대중화와 교육의 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해 과학 기술 위원회, 국가 교육위원회, 전자산업부가 “중화학습기(中华学习机)” 개발에 합의하는 등 사회적/국가적으로 의지가 충만한데다 관련 부처의 지원이 뒤따르면서 학습용 컴퓨터는 이내 중국 전역에 빠르게 확산되어 간다. 이처럼 국가 차원에서 열성적으로 학습용 컴퓨터의 생산과 보급에 나섰음에도, 시장 경제적인 문제가 그 발목을 잡는다. 학습용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지닌 한계도 문제였지만, 진짜 문제는 개혁과 개방 과정에서 나타난 국가적 의지와 시장 원칙 간 내재하던 모순이었다. 그 목적이 본래 (특히 젊은이들이) 국가의 근대화에 조력할 수 있게 하는데 있었기 때문에, 학습용 컴퓨터의 게임 기능은 우선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의 여러 가정들이 컴퓨터를 구매하도록 이끈 그 시장 경제적 동기는 바로 게임 기능이었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점진적으로 상대적으로 (기능이) 통일되어있던 학습용 컴퓨터로부터 보다 다기능적인 시스템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이동은 기술적 발전이나 국가 소유로부터 사적 생산 및 판매로의 이동이라는 조직적인 움직임이라기 보다는, 1990년대 중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경제적 개혁의 심화에 따른 시장 중심적 권력 관계의 변동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가 점차 시장의 압력에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민간 영역에서 운영되던 학습용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불확실한 시장의 수요 및 다양성에 맞출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끝에 학습용 컴퓨터를 다기능 멀티미디어 제품으로 전환시키고, 게임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에 제품의 디자인 및 마케팅의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장 지향적 조치를 통해 학습용 컴퓨터들은 지배적인 정치적/사회적 권력이 부여했던 자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국가적 서사로부터 점진적으로 벗어난 학습용 컴퓨터들은 사실상 시장의 권위와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들을 긍정하는 게임장치로 변모해갔다. * CEC-1 학습용 컴퓨터, Subor SB-486D PC 학습용 컴퓨터 “문화 침략”: 게임 콘솔에서 중국의 8비트 게임소프트웨어까지 이처럼 1980년대부터 이어져온 중국의 게임산업이지만, 그 상업적 성공을 이끈 것은 1990년대 전세계를 주름 잡던 세가, 닌텐도, PC엔진 등의 일본산 게임 하드웨어의 복제품들이었다. 한편 복제품이 글로벌 게임 소프트웨어 어셈블리 언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생산 표준을 따라해야 했다. 즉 중국이 세계 콘솔 시장 경쟁에 참여하려면 일본의 게임 아키텍처와 로지스틱을 기반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1993년 전력산업 정보센터(电力工业信息中心)와 무장 경찰 과학기술 정보센터(武警科技信息中心站)는 QZM이라는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였는데, 이 시스템은 PC와 패미콤 간 커뮤니케이션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 시스템은 286 또는 386 마이크로 컴퓨터를 개발 플랫폼을 활용해서 닌텐도용 어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를 컴파일할 수 있었다. 이 소프트웨어는 즉각적으로 패미콤에 전송되어 실행될 수 있었다. 그 결과 소스프로그램이 컴퓨터에서 변환 및 디버그 되었고 성공적으로 작업이 수행될 수 있었다(Pan A2). 이 상황은 개발 패러독스로 이어졌다. 개혁 개방에 따른 사회/경제적 발전과 함께 발생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려 했던 중국이 발전의 딜레마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중국은 이미 구축되어있는 세계 시장 질서를 받아들이고 일본 게임산업의 중국 지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자주성을 더 중시할 것인가? 이 패러독스는 또한 중국의 게임산업에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문제를 강화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국 업체들이 일본신 게임장치의 복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시장 자주성을 지니게 된다 할지라도, 8비트 콘솔 제작에 있어 핵심적인 CPU는 여전히 해외에서 들여와야 했던 것이다. 이 문제로 인해 20세기 말에 이르러 중국의 게임산업은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특히 PC용 게임 소프트의 개발로 이동해간다. 사실 중국의 게임 소프트웨어 산업은 중국이 국가적으로 하드웨어 제조산업을 시작했을 때와 비슷한 시점에 시작되었다. 1982년 ISCAS(중국과학원 반도체연구소)가 로켓런처 게임칩을 생산했던 바로 그 해에 북경 과학위원회(北京科委)는 10개 대학과 연구기관을 모아 콘솔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섰다. 해외 전문가의 지도 하에서 중국은 1983년 초 중국적 특성을 가진 게임 프로그램 〈손오공(孙悟空)〉과 〈칠교판(七巧板)〉등을 개발하여 국제적인 게임기업들에 판매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프로젝트들은 변동하는 외부 환경과 맞물려 사라져간다. 대신 1980년대 후반 들어 불분명한 지식재산권을 가지고 있었던 소규모 기업들 - 얀샨소프트웨어(烟山软件), 파이오니어 카툰(先锋卡通) 등 - 이 8비트 게임의 해킹과 불법복제 사업에 뛰어든다. 이들의 성공은 경제적 생존이 최우선 되는 입장에서 게임 하드웨어 시장이 추구하던 모방 전략을 따른 결과였고, 이는 다시 말해 중국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의 번성이 일본의 8비트 게임 불법복제로 뒷받침된 것임을 의미한다. 1990년대에 들어와 게임의 내러티브가 보다 복잡해지면서 중국의 게임개발사들은 새로운 도전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끈 〈카게의 전설(The Legend of Kage)〉는 공주를 구하는 닌자의 이야기인데, 그 속에 일본의 닌자 문화를 표현하는 다양한 시청각적 상징들로 가득 차 있었다. 민족주의적인 중국에 있어 이는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기억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게임은 중국 시장에 넘쳐나고 있던 수많은 일본 게임들 중 하나일 뿐이었고, 이러한 상황이 1990년대의 중국 게이머들이 게임의 문화적 식민화와 같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으로 이어지면서 중국 내에 새로운 게임 소프트웨어 시장이 부상하는 계기가 된다. 중국 고유의 특성을 지닌 게임에 대한 수요가 생겨난 것이다. 이와 같은 플레이어들의 문화적 각성은 중국 IT 산업의 빠른 성장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새로운 IT 인력들의 다수는 게임 산업에 열광적이었는데, 그들은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소프트웨어 기반 운영에 있어 가장 낮은 수준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운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Wei 75). 비록 그들이 문화 지식인으로 성장했던 것은 아니었지만(그들은 엔지니어였다),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불안 아래서 중국의 문학과 예술작품에 실린 “대도(载道/도를 떠받든다)의 전통”을 과감하게 차용한다. 그들이 시도한 것은 정치적 도덕 교육에 기반한 보수적인 게임문화의 구축이었고, 이는 1990년대 중국 게임에 팽배했던 독특한 애국주의 기반의 정서를 형성했다. 1994년 10월 골든디스크 일렉트로닉(金盘公司)은 중국의 첫 PC게임 〈신응돌격대(The Magic Eagle)〉을 출시한다. 1998년에 이르면 15개 개발사들이 55편의 PC용 게임을 출시하는데, 이 게임들은 중국의 PC게임 첫세대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푸저우 웨이싱 컴퓨터 사이언스 & 테크놀로지(外星科技)는 언급할 필요가 있는데, 중국 게임산업계에서 이 회사는 중국의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6년부터 이 회사가 생산하고 출시한 270편 이상의 8비트 게임들은 중국 8비트 게임에 있어 핵심이었다. 이 회사를 필두로 1990년대 중국 본토에서는 열군데가 넘는 업체들이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 업체들은 무허가로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를 번역하고, 이식하고, 백포트하고, 해킹해서 유통시켰는데, 중국 8비트 게임 시장의 번성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표] 업체별 게임 소프트웨어 출시 현황 이 부분이 바로 8비트 게임 개발 과정의 중국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PC엔진의 출시 이래 세계는 16비트 게임 시대에 접어들었으며,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차세대 콘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의 중국에는 여전히 구식 8비트 게임을 겨냥한 게임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는 중국의 독특한 역사적 맥락과 연관이 있다. 중국의 게임업체들 또한 세계 시장을 열심히 따라잡고자 노력하던 무렵, 뤄양시에서 “2.29” 살인 및 시체 방화사건이 벌어졌다. 허난성 뤄양시에 거주하던 3명의 6학년생들이 게임방 주인에게 살해된 후 벌판에서 불태워졌던 것이다. 이 사건이 보도된 후 국가적 분노가 일어나면서 정부의 엄격한 게임 통제로 이어진다. 2000년 6월 12일 각 부처가 합동으로 “내수 시장을 대상으로 게임 장치와 그 구성요소들의 생산과 판매”를 완전히 정지하는 전자오락실 특별 관리 계획을 공포하였고, 그에 따라 중국 게임 하드웨어의 개발이 정체되기 시작한다. 그 영향으로 중국의 게임 소프트웨어 제조업체들은 대거 PC용 게임 생산에만 집중하게 된다(이 시기는 한국산 온라인게임의 영향으로 주로 온라인게임이 개발됨).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콘솔용 게임 소프트웨어에 천착하던 게임 업체들은 시장 내에 존속하는 8비트 게임 콘솔용 소프트웨어만 개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중국은 차세대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시장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다시 말해, 게임 콘솔 금지 정책은 중국 콘솔 게임의 발전을 억제했고, 그에 따라 8비트 게임 중심성이 비정상적으로 존속되었던 것이다. 관점에 따른 중국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 분류 중국의 8비트 게임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여기서는 생산 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하여 정리해보았다: 1. 일본 게임을 해킹한 게임: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은 중국인들이 8비트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역사적 계기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얀샨 소프트웨어가 남코의 〈배틀시티(Battle City)〉와 코나미의 〈콘트라(Contra)〉를 해킹해서 만든 〈얀샨탱크(얀샨 Tank)〉와 〈슈퍼콘트라 II(Super Contra II)〉가 있다. 얀샨 소프트웨어는 이전에 푸저우의 제16중학교 운영하던 기업이었는데, 그래서 “푸저우 제16중학교(福州16中)”이라는 단어와 "얀샨"(烟山)이라는 단어가 게임 중에 나타난다(이미지 참조). 중국 게임산업상 최초의 인-게임 광고라 할 수 있다. * 〈얀샨 탱크〉 내 인-게임 광고 2. 일본 게임의 번역판: 여기에는 주로 1990년대에 웨이싱(Waixing)에서 출시했던 무단 번역게임들이 해당한다. 이 회사가 무단으로 번역한 일본 게임에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시리즈,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등이 있다. 지식재산권의 관점에서 이와 같은 무단 번역 게임들은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중국 게임의 역사 내 그들의 위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해적판 8비트 게임들이 넘쳐나고 있었지만 비용과 기술의 한계로 인해 게임 플레이 가이드 같은 것들은 대개 번역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중국의 플레이어들은 〈드래곤 퀘스트〉 같은 복잡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JRPG 게임들이 중국에서 별 인기를 얻지 못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웨이싱을 비롯한 중국의 8비트 게임회사들의 번역 시도는 중국의 젊은 플레이어들이 동아시아 하위문화의 젊고 생생한 상상을 저렴한 가격으로 누릴 수 있게 해준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는 주류 정치적 서사에 묶여있던 젊은이들의 사고를 해방시킬 수 있는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다. 3. 이식된 게임: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은 보다 고성능 플랫폼의 게임들을 패미클론 플랫폼으로 각색하여 이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의 플레이어들은 여러 인기 걸작들을 패미클론 콘솔을 통해 플레이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서 포켓몬은 가장 중요한 이식 대상이었는데, 웨이싱의 포켓몬 시리즈, 난징 테크놀로지(南晶科技)의 젬 시리즈(Gem series), 쉔젠 진코타 테크놀로지(晶科泰, 이하 진코타)와 헹거 테크놀로지(恒格电子, 이하 헹거)의 포켓몬 시리즈, 마스 프로덕션(火星科技, 이하 마스)의 포켓 엘프 시리즈 등이 있다. 이러한 유형의 게임들이 중국 고전 PC게임 또한 이식해왔다는 것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예를 들어 난징 테크놀로지의 〈신월검흔(新月剑痕)〉 와 진코타의 〈헌원검(轩辕剑)〉 등은 대만 게임으로부터 이식된 것이다. * 난징 테크놀로지의 〈헌원검〉 4. 그림을 바꾼 게임(换皮游戏): 대개 JRPG 게임을 중국적으로 보이도록 시청각적인 요소들, 예컨대 스토리, 장면, 오프닝 등의 게임 내 시네마틱, 캐릭터 디자인, 장비 액세서리 등에 중국적 요소를 덧입히는 것이다. 즉 원본이 되는 일본 게임(주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게임플레이와 구조에 기반하되, 원본의 스토리를 중국의 것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난징 테크놀로지의 〈헌원검〉 시리즈는 명시적으로 대만의 소프트스타 엔터네인먼트(大宇公司)의 고전 CRPG 〈헌원검〉를 이식한 것이었지만, 〈드래곤 퀘스트〉의 게임 시스템(인터페이스, 레이아웃, 시스템 아키텍처 등)을 도입하여 중국의 스토리를 담았다. 5. 오리지널 게임: 중국에도 오리지널 8비트 게임들이 있다. 비록 이 게임들이 중국의 8비트 게임을 완전히 혁신적으로 새롭게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지만, 기존의 게임플레이를 활용해서 중국적인 테마를 지닌 게임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드래곤 퀘스트〉의 구조에 기반해서 중국적 스토리와 시청각적 요소들을 입힌 4번의 경우와 달리, 이 오리지널 게임들은 다양한 게임 플레이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중국의 문화적 특성을 지닌 8비트 게임의 개발을 추구했다. 중국의 게임산업의 발전이 아직 미진하던 1990년대의 그와 같은 시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당시 일본과 미국의 게임산업이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전세계가 “일본-미국 중심주의”의 게임 역사에 빠져 있었고, 그에 따라 각 국의 게임 역사가 그 자신과 괴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표현하는 8비트 게임의 개발은 “게임 제국”의 변방에 놓인 중국이 반드시 다뤄야 하는 문제였다. 많은 일본의 고전게임들이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활용해온 가운데 종종 무의식적인 변형과 왜곡이 뒤섞여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는 삼국의 “도시’ 개념을 일본 전국시대의 “일본식 성”의 개념으로 변형시켰다. 중국의 입장에서 이는 중국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명백히 잘못된 방식으로 재현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리지널 8비트 게임은 중국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중국인 고유의 관점을 통해 조망하면서 스토리를 전달하는, 고도의 문화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오리지널 8비트 게임들을 주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역사적 테마를 가진 게임: 주로 1990년대에 등장해서 대개 중국 근대의 역사를 다룬다. 대표작으로 〈임칙서의 금연(Lin Zexu's Smoking Ban, 林则徐禁烟)〉, 〈지도전(Tunnel Warfare, 地道战)〉 등이 있다. 대부분 롤플레잉 게임플레이를 채택하고 스토리상 근대 중국이 직면했던 “노예화와 멸종”의 위기를 강조하면서 아바타를 통해 플레이어들을 국가의 운명과 연결시키면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맞서는 주인공의 영웅적 행위를 강조한다. 이러한 게임들의 내러티브 콘텐츠는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던 중국의 게임산업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2. 전기(biography) 게임: 중국의 역사나 소설의 인물을 주요 캐릭터로 삼아 그 캐릭터의 영웅적인 행실을 다룬다. 대개 전통적인 중국 문학적 사고에 영향을 받았으며 권선징악, 의협심, 국가에 대한 충성 같은 주류적 가치를 표현한다. * 웨이싱의 〈포청천(Bao Qingtian, 包青天)〉, 난징 테크놀로지의 〈곽원갑(Huo Yuanjia, 霍元甲)〉과 〈황비홍(Huang Feihong, 黄飞鸿)〉, 마스의 〈악비전(Yue Fei Biography, 岳飞传)〉 (왼쪽 위부터) 3. 각색된 게임: 중국의 8비트 게임에 있어 메인이 되는 유형으로, 고전 걸작, 무협 소설, 유명 영화와 TV 드라마, 고대 신화와 전설, 그리고 외국의 동화 등을 각색한 게임들이 있다. 4. 고전 소설을 각색한 게임: 서유기, 수호지, 삼국연의, 홍루몽, 수당연의, 삼협오의, 경화연 등의 고전 소설을 각색한 게임들 * 웨이싱의 〈서천취경 2(The Journey to the West 2, 西天取经2)〉, 〈수호전(Water Margin, 水浒传)〉, 〈삼협오의: 어묘전기(Three Heroes and Five Righteousness: Legend of the Imperial Cat, 三侠五义:御猫传奇)〉, 난징 테크놀로지의 〈홍루몽(Dream of Red Mansions, 红楼梦)〉, 〈수당연의(Sui and Tang Dynasties, 隋唐演义)〉 (왼쪽 위에서부터 차례로) 1) 무협소설을 각색한 게임: 김용이나 구용 같은 작가의 무협소설을 각색한 게임들이다. 중국 게임의 역사에 있어 8비트 무협 게임은 문화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앞서 언급한대로 〈드래곤 퀘스트〉 같은 해외 게임들에 기반한 상상이 넘쳐나는 가운데, 무협 게임만이 유일하게 중국의 전통적 문학 및 예술적 사고가 “보장된 영토”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의 청소년 하위문화가 부상하는 가운데서, 이 게임들은 전통적 문학작품과 예술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나마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자 수많은 중국인 플레이어들이 수천년 간 내려온 고유의 대중 문학 및 예술적 사고에 노출시켜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무협 게임들은 중국 게임의 문학적/예술적 특별성을 반영한 것으로, 이는 “의협심”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 같은 중국 전통의 이데올로기적 자원들이 게임 영역에 나타나도록 만들었다. * 웨이싱의 〈초류향(Chu Liuxiang Legend, 香帅传奇之血海飘零)〉과 〈의천도룡기(Massacre Dragon Knife, 屠龙刀)〉, 난징 테크놀로지의 〈천룡팔부(The Demi-Gods and Semi-Devils, 天龙八部)〉와 〈절대쌍교(Handsome Siblings, 绝代双骄)〉, 진코타의 〈초류향신전(New Biography of Chu Liuxiang, 楚留香新传)〉 (왼쪽 위에서부터 차례로) 2) 영화와 드라마를 각색한 게임: 당대의 유명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각색한 게임들. 그러나 이 게임들은 원본 작품의 이름이나 컨셉만을 차용했을 뿐, 게임의 플롯은 완전히 다른 경우도 많았다. * 웨이싱의 〈대화서유(A Chinese Odyssey, 大话西游), 난징 테크놀로지의 〈무림외전(My Own Swordsman, 武林外传)〉, 마스의 〈타이타닉(Titanic)〉 (위에서부터 차례로) 3) 고전 신화와 설화를 각색한 게임: 일본이나 유럽 또는 미국의 마법 문화와는 완전히 상이한 고대 중국의 신이나 귀신에 대한 전설과 초자연적인 상상을 활용함으로써 중국 8비트 게임의 문화적 콘텐츠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 웨이싱의 〈봉신방격투(Fighting!The Legend of Deification, 封神榜格斗)〉와 〈천왕항마전(King Defeat Devil, 天王降魔传)〉, 난징 테크놀로지의 〈나타전기(The Legend of Nezha, 哪吒传奇)〉과 〈마도겁(Devil way, 魔道劫)〉 (위에서부터 차례로) 4) 외국 동화를 각색한 게임: 외국의 고전 동화를 활용한 게임들로, 이를 통해 해외의 동화들이 중국의 플레이어들에게 알려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게임들이 원본에 완전히 충실했다 말하기는 어려운데, 그 플레이가 원본인 고전 작품에 대한 경험이라기 보다는 그저 신나게 플레이한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중국의 8비트 게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상 살펴본 중국의 8비트 게임의 역사는 중국 게임의 역사에 있어 어떠한 의미를 지녔으며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실질적으로 독립적인 지적재산권을 지닌 내수용 8비트 게임의 생산과 판매는 1990년대 초반 웨이싱을 매개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실 내수용 8비트 게임은 적절하지 못한 시기에 등장한 것이었다. 당시 국가적 차언에서 컴퓨터 및 인터넷 기술의 발전에 매진하던 가운데 게임을 사랑하는 수많은 컴퓨터 인력들이 게임 소프트웨어 제작업계에 진입하면서 중국의 PC게임이 발전했다. 중국의 주류 게임사가 콘솔 게임의 역사로부터 컴퓨터 게임(온라인 게임도 포함)의 역사로 빠르게 바뀌어간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의 8비트 게임 소프트웨어 제조업계가 우세했었지만 PC게임 부문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8비트 게임은 비가시적인 형태로 “보이지 않게 발전”할 수 있었을 뿐으로, 그에 따라 중국 게임의 역사에 강력한 흔적을 남기지 못했던 것이다. 2000년도에 있었던 콘솔 금지 정책은 8비트 게임에 있어 유리한 면이 있었는데, 중국 정부가 16비트 게임 콘솔을 비롯한 차세대 고성능 게임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것 - 그리고 그에 따라 차세대 콘솔의 시대로 진입하는 것 - 을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8비트 게임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중국에서는 글로벌한 경향과는 달리 8비트 게임 중심성이 지속되었다. 비록 중국의 게임 제조업체들이 다양한 8비트 게임을 개발했음에도, 실질적으로 세계 게임 산업 및 중국의 8비트 게임 산업을 혁신하고 발전시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반대로, 게임플레이의 혁신이 게임 혁신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라면, 대부분의 8비트 게임들 - 앞서 언급했던 오리지널 8비트 게임들 포함 - 은 그저 일본의 8비트 게임의 디자인을 모방했을 뿐이며, 중국적인 특성을 지닌 오리지널한 게임플레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다시 말해 오리지널리티의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의 8비트 게임은 실패라 할 수 있다. 일본 게임의 질 낮은 복제에 가까운 이 게임들은 혁신적인 가치를 지닌 문학이나 예술작품이라기 보다는 수익을 위해 산업적으로 생산된 하급품에 가까웠고, 그에 따라 8비트 게임들은 중국의 플레이어들로부터 언제나 비판과 조롱을 받곤 한다. 그러한 8비트 게임일지라도 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나름의 장점과 의미가 없지 않다. 다양한 오리엔탈리즘적 담론들로 가득한 게임 영역에서 중국의 이미지는 자주 왜곡되곤 했는데, 예를 들어 에는 외국 게임 개발자들의 중국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상상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중국의 국가적 이미지를 저해하고 그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중국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8비트 게임들은 플레이어들이 상대적으로 “리얼”한 중국을 중국의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특정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국의 8비트 게임들은 치명적인 흠결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8비트 게임들의 플레이가 별로 인상적이지 못한데다 심지어는 버그로 가득해서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온전하게 경험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8비트 게임의 시장 매출은 실질적으로 형편없었으며, 그 게임들이 중국 게임산업의 발전을 주도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그 기저의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좀 더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고 8비트 게임의 텍스트와 그 생산 과정 및 사회적 텍스트 간의 상호작용을 논의하면서, 중국의 8비트 게임 역사를 오늘날 중국에 대한 하나의 증상이나 은유로서 취하여 그 역사적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8비트 게임은 1990년대 중국 십대들의 사고방식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했다. 1949년 중국 인민공화국이 건립된 이래, 문학과 예술에 대해 사회주의적 관점이 주도해온 환경 아래서 만화나 예술 영화 등 중국의 아이들을 위한 문화상품들은 혁명의 내러티브를 전달하고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교육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러한 문화상품들이 십대들이 좋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긴 했지만, 그것들은 청소년 문화의 영역 내 엄격한 사회주의 교육 및 이데올로기 체계의 연장일 뿐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일본의 8비트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여러 청소년 하위문화 상품들이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중국으로 대거 유입되고 1990년대에 이르러 엄청난 규모를 형성하게 되면서, 기존의 엄격한 문화적 상황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일본 문화 상품의 분방한 문화적 상상력이 중국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이데올로기적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일본의 청소년 하위문화가 당국이 엄격하게 통제하는 주류 문화와 첨예하게 충돌하게 되었고, 점진적으로 우세를 점하게 된다. 이른바 중국 십대 청소년들의 “마음의 해방”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8비트 게임 생산은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진행되었다. 중국의 게임 제조업체들은 중국의 이야기들을 8비트 게임 기술과 결합시키고자 했고, 8비트 게임이 중국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해방시키고 있던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중국의 문화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관심이 강화되는 것도 원했다. 그러나 이는 한정된 기술력으로 온전하게 실현될 수 없었고, 플레이어를 유인할 수 있는 혁신에도 실패하면서 8비트 게임은 시장에서 밀려났다. 즉 이 8비트 게임들은 콘텐츠 내에 중국적인 것을 담는 것에 지나치게 치중하다가 게임플레이의 재미 그 자체를 경시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8비트 게임의 상징적 가치가 언제나 그 사용 가치를 넘어섰던 것이다. 대부분의 8비트 게임들의 매출이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은 여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향후 8비트 게임의 발전을 도모하고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면, 중국적인 분위기가 확실히 담겨있는 8비트 게임을 계속해서 개발하되 혁신적인 8비트 게임 플레이의 가능성을 탐구해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할 때 중국 내 버려진 시장 부문인 8비트 게임의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참고문헌 中国音数协游戏工委(GPC),中国游戏产业研究院.2020年中国游戏产业报告[R/OL].(2020-12-18)[2021-09-03]. https://pan.baidu.com/s/1RbLCh5fKLCyTfFcZeFPHvA?_at_=1618218156065 . 中国文化部等,关于开展电子游戏经营场所专项治理的意见[R/OL].(2000-06-12)[2021-09-03] http://www.gov.cn/gongbao/content/2000/content_60240.htm Pan, Song 潘松. “Zhongguo dianshi youxiye fazhan gaikuang” 中国电视游戏业发展概况 [Report on Development of Chinese Video Game Industry]. Diannao bao 电脑报27 August 1993: A02. Print. Wu, Zhensheng, et al乌振声等. “Zhonghua xuexiji yuanli he yingyong(1)” 中华学习机原理和应用(1) [China Learning computer’s Principles and Applications]. Wuxiandian 无线电1(1988):5.Print. Zhu, Zhangying朱章英. “Mantan dianshi youxiji” 漫谈电视游戏机 [The Talk About the Video Games]. Jiayong dianqi家用电器4(1986):24.Print.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학자) 덩 젠 , 邓剑 쑤저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부교수. 디지털게임 문화연구를 주 관심사로 다루며, 〈澎湃新闻〉에서 게임에 관한 칼럼 등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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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10 대규모 인력과 자본을 투여해 만들어지는 트리플 A 게임은 현대 비디오게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덕분에 얻게 되는 가능성 뿐 아니라 한계도 동시에 존재한다. 트리플 A의 의미를 곱씹어본다. 1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어이쿠, 왕자님>, 게 섯거라 이놈아! 버틀러는 이러한 패러디적인 창조성을 원본이라는 것 자체도 원래 본질적으로 원본인 것이 아니라 원본이라고 가정되는 이상적 자질을 모방을 통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원본이 동시에 모방본이라는 점에서 원본과 모방본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모방본도 원본도 원본의 상상적 특성들을 모방하는 것이고,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의 모방적 자질을 드러내주는 것이라면 이제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한다는 역설적인 생각까지 가능해진다. 이는 원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와 패러디의 모방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오히려 패러디 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하여 더 높은 창조적 위치를 점유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Read More Prompt2Videogame: 더빙의 오래된 미래 이러한 맥락을 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데스티니의 ‘목소리’뿐 아니라 그 너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1조 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를 가질 GPT-4(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모델)에 연동된 데스티니는 플레이어와 어떤 대화를 하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그녀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사를 반복해서 중얼거리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가 말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잠재적인 사운드’에 대해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리 녹음을 했거나 혹은 기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사운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따라 반응이 3가지 정도로 나뉘는 고전적인 NPC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역시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대화의 분기가 한 10가지쯤 될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도 없다. 그녀는 플레이어의 대답에 긴밀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하며, 그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에 나설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대사나 대화에 있어서 데스티니에게 기존 게임 사운드의 특성들을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Read More The Coevolution of Arcade Games, Gamers, and Interfaces As such, interfaces may evolve to accurately construct the ideals projected on the design, but that design can easily change based on coincidental chance. The modified interface also brings about transformation to one’s gameplay itself, and this change in gameplay can change the experience provided by the game, thus bringing about an effect that makes the game itself feel different. Therefore, the interface is not merely a simple input device nor a factor that does not bring any fundamental changes to the game, but rather is the very hardware that constitutes the game and simultaneously the “physicalized” mechanical object connected to the gamer. The interface does not evolve or progress according to the game’s design; it lies in the process of ever-changing co-evolution while interacting with the game, the gamer, and all environments tied to the self. Read More Three Trends in Western AAA Games Research: Creators, Culture, and Cash. The AAA space continues to be one where art, industry, and culture coalesce. What games research attunes us to most is that each of these elements, while moving forward, seems to be stuck in stasis where the problems of the past remain unresolved. In the pleasure of the next big release, the anticipation of the next hype cycle, and the excitement of the next awards ceremony, it’s clear that AAA development is no-doubt heading full-bore into a future of even greater artistic heights, but these heights come with even more troubling extremes. Despite interventions on the part of games journalists and academics, and mobilization attempts from game workers, long-standing and pervasive issues with the legitimacy of games, and the exploitation of workers and players alike, persist. Academic work on the AAA space shines a spotlight on the issues that continue to go unresolved while major gaming studios propel forward in the perpetual quest for artistic recognition, prestige, and the almighty dollar. Read More [Editor's View] 트리플 A, 거대한 만큼 희미한 개념을 헤치며 안녕하세요,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입니다. GG의 호수가 오늘로 두자릿수에 진입했습니다. 격월로 나가는 호로 10회니 벌써 20개월을 지나왔다는 이야기겠지요. 매 호마다 GG는 오늘날 게임문화담론의 주요한 테마가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그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기획을 실어왔습니다. 때로는 기술에, 때로는 문화에 초점을 맞추며 지난 10호는 한국 게임문화담론을 이루는 여러 기초적인 요소들을 탐색해온 바 있습니다. Read More [논문세미나] “Sexuality does not belong to the game” - Discourses in Overwatch Community and the Privilege of Belonging 한때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AAA급 게임 〈오버워치(OVERWATCH)〉. 〈오버워치〉는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내 다양한 논쟁이 오갔던 2010년대 후반을 상징하는 게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 인기를 입증하듯, 〈오버워치〉에는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쏟아져나왔고 이를 통해 드러난 현상과 논의들이 논문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기를 풍미한 〈오버워치〉는 작년 10월, 서비스를 종료해 후속작인 〈오버워치 2(OVERWATCH 2)〉로 재탄생했다. 이 글은 Triple A!라는 주제를 맞아, 2010년대 후반을 대표한 AAA급 게임 〈오버워치〉에 관한 한 논문을 다루고자 한다. 바로 오버워치 속 ‘퀴어’를 다룬 논문이다. Read More [인터뷰] : “중꺾마”의 장본인,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인터뷰 흥미로운 점은 해당 표현을 처음 사용한 문대찬 기자가 ‘게임 전문지’가 아니라, 종합일간지의 기자라는 점이다. 문대찬 기자가 소속된 쿠키뉴스는 2005년에 만들어진 온라인 뉴스 서비스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인터넷 종합일간지가 게임을 다룬다는 점을 넘어, 게이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미디어 일반에 진출하면서 만들어지는 변화를 보게 한다. ‘중꺾마’의 대중화만 하더라도 게임과 게임 산업의 맥락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게임 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장된 사례이다. 이번 호에서 편집장은 ‘중꺾마’의 장본인인 문대찬 기자와 만나, 게임이 서브컬쳐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Read More 古典名著邂逅现代科技: 《黑神话:悟空》与中国的3A游戏想象 但就在这“一切朝钱看”的时代与产业环境里,名不见经传的《黑神话:悟空》(흑신화:손오공,后文简称《黑神话》)却在2020年8月20日如电影《大话西游》(대화서유)里“身披金甲圣衣、驾着七彩祥云”的盖世英雄一般横空降世,不仅搅动整个中国游戏业,甚至点燃了社会舆论对中国游戏业的期待。人们在民族主义情绪的激荡下,憧憬着古典文学《西游记》与现代科技虚幻引擎(Unreal Engine)的“邂逅”能第一次铸就伟大的中国3A游戏。 Read More 개발자, 문화, 그리고 현금: 서구 AAA 게임계의 세 가지 경향 AAA게임은 예술, 산업, 문화가 결합되는 영역으로서 지속되어왔다. 게임 연구는 그러한 요소들이 - 진전을 계속하는 가운데 - 과거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 정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대 차기작 출시에 대한 기대 및 차기 하이프 사이클에 대한 예측 그리고 다가올 시상식에 대한 흥분 속에서, AAA게임 개발이 보다 높은 예술적 수준의 미래를 향해 최고의 속도로 내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높이에 도달하기까지 훨씬 큰 극단의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게임 언론계나 학계의 간섭, 그리고 업계 종사자들의 노동 관련 운동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적법성, 노동자와 플레이어에 대한 착취 등 오랫동안 존속되어온 문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Read More 게임 to 현실, 현실 to 게임: <게임의 사회학> 서평 〈게임 사회학〉은 저자 스스로 그 빈칸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책이었다. 저자가 스스로 게이머들이 왜 이런 행동을 보였을지 이유를 추적하고 그 인과성을 검증하는 모델을 세우는 과정을 보였기 때문이다. 즉 정량적인 연구라도 연구 문제를 설계하고 모델에 어떤 변수를 채택하고 분석 결과를 해석하는 일은 다시 사람의 몫이다. 전통적인 사회과학이나 통계학 연구자들이 딥러닝을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딥러닝 모델이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관계를 설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 필요성이 부각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XAI는 알고리즘이 왜 이런 결과를 내놓았는지 추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량적인 연구와 정성적인 연구가 연결되는 지점이며, 앞으로 게임과 그 관련 데이터를 활용한 사회과학 연구가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Read More 게임백서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들과 알려주지 않는 것들 2023년 1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이하 ‘백서’ 혹은 ‘게임백서’)〉를 발행했다. 백서는 연 1회 발행되며, 1년 간의 국내 게임산업 현황(산업, 수출입, 제작 및 배급업체, 종사자, e스포츠 등), 게임이용 동향(플랫폼별 이용, 게임에 대한 인식 및 태도 등), 해외 게임산업 현황(플랫폼별·국가별) 등을 다룬다. 국내외 산업규모, 이용행태를 파악하고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 정책수립이나 연구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백서 발행의 목적이다. Read More 고전 명작과 현대 테크놀로지의 해후: 『검은 신화 : 오공』과 중국 AAA게임의 상상 2017년부터 중국 게임산업의 실제 매출은 확고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곧 중국 게임산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AAA게임이야말로 한 나라의 게임산업의 종합적인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게이머들에게 뼈아픈 점은 중국이 내내 자체적인 3A게임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관련된 시도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상업적 성장 측면에서 중국 게임산업은 ‘최고의 시대’이지만, 문화예술과 창조성의 측면에서는 ‘최악의 시대’라는 것이다. Read More 고전게임 리메이크에서 트리플 A를 고려하는 방식에 관하여 세간에서 말하는 트리플A 게임만의 매력은 뭘까? 아무래도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세대의 가장 앞선 기술을 다각도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포기하기 어려운 요소이다. 특히 게임 장르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게임-문법은 이미 앞세대의 게임에서 대개 구현이 완성된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트리플A 게임은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든 비주얼과 사운드라는 면에 방점을 찍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은 생산비 증가와 개발 기간의 장기화라는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일각에선 ‘트리플A 포기론’까지 나올 정도이다. Read More 규모의 문화상품 - 블록버스터 영화와 트리플A 게임 약간의 오해를 감수하고 말해보자면, 어느 순간부터 게임 시장은 트리플A 게임과 인디게임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는 트리플A 게임과 종종 비교되곤 하는 영화의 블록버스터 개념과도 차이를 보인다. 소위 상업영화라 불리는 범주 속에 블록버스터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업영화가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중저예산의 로맨스, 코미디, 호러 영화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이 영화들은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등 비상업적 영역에 속해 있지 않다. 다만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어 제작, 유통, 홍보되는 영화가 아닌 작은 규모의 상업영화일 뿐이다. 게임은 그 반대의 위치에 놓인다. 영화는 소수의 블록버스터를 ‘텐트폴 영화’라 부르며 그에 속하지 않는 다수의 저예산 상업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으로 구성된 시장을 지닌다. 게임도 몇몇 트리플A 게임이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스트레이〉(2022), 〈잇 테이크 투〉(2021)와 같은 인디게임들이 흥행을 기록하고 〈뱀파이어 서바이버즈〉(2022)처럼 유행을 선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게임은 트리플A 게임이든 인디게임이든 상업성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비상업적 게임”이라는 어색한 어감의 단어조합은 극소수의 예술적 게임, 혹은 전시나 공공성을 위해 만들어진 몇몇 게임만이 속해 있을 뿐이다. Read More 모바일게임 이용자의 입장에서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에 대해 생각해보기 2022년 9월 29일 구글 스태디아의 서비스 종료가 발표되었다. 스태디아는 클라우드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서비스로 또 한가지의 특징은 월정액으로 구글이 계약해서 제공하는 여러 게임을 플레이할수 있는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 서비스였다는 점이다. 다만 따로 돈을 내야하는 게임도 있어서 완전한 구독형 서비스는 아니었다. 제공하는 게임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고 최신 게임을 하려면 월정액 요금 외에도 추가적인 비용을 내야했기 때문에 구글 스테디아는 이용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고 결과적으로 구글의 의지 부족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Read More 산업의 트리플A, 이용자의 트리플A 한 때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을 더욱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 그 이상의 신성함을 게임에서 꿈꿔보자. 하나의 통일된 지향을 추구하기 보다는, 여러 방향의 주변화된 상상력이 각자의 방식으로 누적될 때 인류에게 진정으로 울림을 주는 더욱 경이로운 경험을 우리는 협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통해 가능한 것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그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Read More 엘든 링: 황금 나무가 솟은 정원 게임을 하다 보면 어떤 순간에 도달한다. 완성한 지도에서 더 이상 가지 않은 장소는 없으며, 무한한 탐험을 약속하던 세계는 더 이상 광야가 아니다. 그때 〈엘든 링〉은 그림 같은 정원에 가까워진다. 자연물과 폐허를 포함한 정원은 “열정적인 기억, 회한, 달콤한 멜랑콜리를 더 잘 자극할 목적으로 새로이 부재를 만들어낸다.”16) 설령 엔딩이 일종의 종말을 선언한 이후에도, 플레이어들은 불완전한 총체성을 해소할 길 없이 꿈꾸며 정원을 헤맨다. Read More 이렇게 흥미로운 스토리에 이렇게 진부한 요소들이- <승리의 여신: 니케>의 SF 세계관과 캐릭터 디자인의 충돌 〈승리의 여신: 니케〉(이하 〈니케〉)는 2022년 11월 시프트업에서 제작하고 레벨 인피니트에서 서비스하는 FPS/TPS 모바일 게임이다. 출시 전부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광고에서 이미 한차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2019년 처음 트레일러가 발표되었을 당시 캐릭터들의 섹슈얼한 디자인과 가슴과 엉덩이의 모핑(morphing)이 과도하게 부각된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화젯거리가 있었기 때문인지, 2022년 출시를 앞두고서도 미디어를 통한 광고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부각된 광고가 있었다. Read More 채찍과 당근의 자강두천,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 공포 게임의 UX 디자인은 플레이어의 행동 패턴을 유도하고 또 감정선을 조절하는데 가장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때론 위협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면서, 무작정 사실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현실적이지도 않은 범위 안에 플레이어의 경험을 위치시키기 위해 수많은 요소가 무대 뒤에서 암약한다. 마치 영화 ‘캐빈 인 더 우즈’ 에서 미스터리 단체의 직원들이 주인공 일행에게 하나씩 위협을 던져주며 가지고 놀듯이 말이다. 만약 이런 시선으로 공포 게임을 본다면, 이제는 한 번쯤 그 의도와 예상을 부숴주겠다는 불순한 생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Read More 탈출 없는 삶에서 의미를 만드는 게임적 방법 〈하데스 Hades〉는 혹평이 거의 없는 좋은 게임의 정석 같은 게임이다. 2020년 하반기 최고작으로 뽑히며 더 게임 어워드(The Game Awards, TGA) 올해의 게임 노미네이트, 각본상, 인디 게임상, 액션 게임상을 수상했고, 메타크리틱 게임 리뷰에서 93점의 높은 점수를, 현재 스팀에서도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SF 문학상인 네뷸러상과 휴고상까지 수상하니, 국내의 한 게임 비평지에서는 “하데스는 깔 게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렇게 길게 수상 목록과 긍정적인 평가를 굳이 덧붙이는 이유는 〈하데스〉가 보편적으로 잘 만든 게임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Read More
- 게임제너레이션::필자::벨리 마띠 카훌라티, Veli Matti-Kahulathi
유베스퀼라 대학교의 시니어 연구자이자 투르투 대학(University of Turku)에서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게임과 플레이, 그리고 테크놀로지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으며 최근 〈Esports Play: Anticipation, Attachment, and Addiction in Psycholudic Development(Bloomsbury, 2020〉 를 저술했다. 벨리 마띠 카훌라티, Veli Matti-Kahulathi 벨리 마띠 카훌라티, Veli Matti-Kahulathi 유베스퀼라 대학교의 시니어 연구자이자 투르투 대학(University of Turku)에서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게임과 플레이, 그리고 테크놀로지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으며 최근 〈Esports Play: Anticipation, Attachment, and Addiction in Psycholudic Development(Bloomsbury, 2020〉 를 저술했다. Read More 버튼 읽기 북유럽 레트로: 핀란드의 레트로게임 문화 핀란드에서 컴퓨터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부터 였고 80년대부터는 상업화 되었으니 그 역사는 꽤 긴 편이다. 최초의 e스포츠 토너먼트 - 당시에는 “이스포츠”가 아니라 “핀란드 컴퓨터게임 챔피언십”이라 불렸다 - 가 1983년에 이미 개최되었으며, 90년대 초반에 이르면 게임플레이가 청소년들의 주요 여가활동으로 자리잡는다.
- 거대전쟁기계와 게이밍, 전 지구적 지각의 병참학 - 세계체제 자본주의 게임공간의 알레고리
이 냉혹한 전지구 권력의 게임공간 안에서 플레이어들은 힘의 수직적 전달자, 말 그대로 행위의 주체가 아닌 논 플레이어블 캐릭터(None Playable Character)가 된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전쟁은 이제 단순히 TV나 소셜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스펙타클이 아닌, 실존의 위협이라는 사실이 인지되어야 한다. “전쟁,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 Back 거대전쟁기계와 게이밍, 전 지구적 지각의 병참학 - 세계체제 자본주의 게임공간의 알레고리 25 GG Vol. 25. 8. 10. 시뮬레이션, 지각의 재목적화 혹은 전술화 먼 미래, 22세기 말 우주로 진출한 인류는 태양계 외곽에서 외계 종족 ‘버거’와 조우한다. 버거는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고 두 차례 지구를 침공하지만 지구 함대는 가까스로 막아내고 3차 전쟁을 준비한다. 지구인들은 뛰어난 상황 판단, 전술 지휘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선발해 게임으로 그들을 훈련시킨다. 이 게임은 각각 ‘마인드 게임’, ‘배틀 게임’, ‘함대 지휘 시뮬레이션’ 세 가지로 이뤄져 있다. ‘마인드 게임’은 심리 분석용 롤플레잉 게임, ‘배틀 게임’은 무중력 공간에서 펼쳐지는 분대 단위 전투 게임이며, ‘함대 지휘 시뮬레이션’은 대규모 함대를 통제해 싸우는 지휘 게임이다. ‘엔더 위긴’은 특출난 재능을 지닌 유망주로, 유년 학교에서 사령관 학교까지 승승장구하며 성장한다. 엔더는 졸업 시험으로 전 인류 군대를 이끌고 버거의 모행성을 침공하는 함대 결전 시나리오를 플레이하는데, 엄청난 아군 희생, 비인간적이고 극단적인 전략 운용 끝에 가까스로 버거 종족을 멸망시키는 데 성공한다. 게임이 끝나나자 그를 지도하던 선생들은 엔더를 추켜세우며 환호한다. “자네가 해냈어. 자네가 인류를 구원한 거야. 이건 게임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네, 엔더.” 망연자실한 엔더는 그제야 자신이 희생시킨 동료들, 폐허, 버거 종족 멸망이 모두 자기 손에서 벌어진 진짜였음을 깨닫는다. * 올슨 스콧 카드, 『엔더의 게임』(1985). 영화 <엔더의 게임>(2013). 올슨 스콧 카드의 SF소설 <엔더의 게임>의 스토리다. 이 작품은 <스타워즈>, <스타트렉>, 은하영웅전설>, <듄> 등 전쟁을 소재로 한 유명 스페이스 오페라물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게임을 소재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소설이 다루는 전쟁 게임 덕분에, 다른 작품들에 비해 훨씬 현실적으로 전쟁의 본질을 보여준다. 왜 그럴까? 프랑스의 기술철학자 폴 비릴리오(Paul Virilio)에 따르면, 전쟁의 핵심은 적의 인구와 영토를 파괴하는 물리력이 아니라 적의 ‘지각’을 지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마술적 스펙타클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스펙타클을 생산하는 것이 전쟁의 목표다. 적을 무찌르는 것은 곧 적의 지각을 사로잡는 것이고, 죽음 이전에 죽음의 공포를 적에게 심어주는 것이다…무기의 힘은 야만적인 물리력이 아닌 영적인 힘이다.” [1] 그렇다면 공포와 흥분, 무력감과 엔돌핀, 도파민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길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무엇이 될까? 흥분과 공포를 대리 체험하고 뇌리에서 구조화하도록 만들어주는 ‘시뮬레이션’은 게임을 만들고, 플레이할 때 가장 활성화된다. 두뇌의 시뮬레이션 기능은 인간 진화의 핵심으로 단순히 시청각적 감각의 모방을 넘어 지각의 체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인간은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상황의 서사를 시뮬레이션한 뒤 스스로 모방·학습해 나간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들은 예술의 본질이 모방이라고 했지만, 모방의 진정으로 구조적이고 구성적인 측면은 놀이에 있음을 우린 유년 시절 즐겼던 수많은 게임으로부터 배웠다. 경찰과 도둑놀이, 술래잡기에서 사냥감을 쫓거나 혹은 포식자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체득했으며, 장난감 총칼을 든 전투에서는 폭력의 위험성과 쾌감을 동시에 느꼈다. 게임, 특히 폭력이나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은 이 감각을 체험하는 가장 가깝고도 단순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임이 아이를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말이 진공에서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의 지각을 바꿔놓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쟁 미 해병대의 잔혹한 현실을 풍자한 전쟁드라마 <제너레이션 킬>에는 게임광 출신 병사 ‘트롬블리 일병’이 등장한다. 그는 전투에서 자신이 즐겼던 FPS 게임의 효과음을 입으로 내며 사격하고, 적군을 사살할 때마다 킬 카운트를 확인한다. “전쟁은 왜 이리 지루하죠? 게임은 화려하고 실감나던데.” 마인드게임, 배틀 게임, 지휘 시뮬레이션 폴 비릴리오는 인류 전쟁 역사의 본질이 ‘지각의 병참학’ 이었다고 정의한다. 전쟁은 점점 물리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지각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다시 말해 물리적인 힘이 직접 교차하는 성격은 사라지고 은폐와 드러내기, 즉 ‘보기’에 대한 테크닉의 장으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은 현대전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최첨단 대공 레이더는 드론을 포착하지 못했고, 수십억짜리 주력전차들은 마트에서나 파는 상용 드론에 무력화됐다. 군함 한 척 없는 우크라이나 해군은 해상 드론으로 러시아 해군 기함 모스크바함을 격침했다. 트위터X에는 양측이 올린 전투드론 영상으로 도배되어 있는데, 보병의 개인화기로는 드론을 잡는 게 불가능하다. ‘보는 순간 교전한다’가 아니라 ‘보는 순간 모든 건 끝났다’가 이 전쟁이 자아내는 냉혹한 현실이다. 현대 전쟁은 동호인들이 즐기던 값싼 취미에 의해 공간의 소멸을 야기하고 있으며, <콜 오브 듀티> 나 <메달 오브 아너>의 흥분 넘치는 ‘택티컬’은 전쟁의 도파민을 가장 장벽 없이 즐길 수 있는 밀리테인먼트로 기능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게임이 <엔더의 게임>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느낀 절망감을 반영하는가? ‘마인드 게임’에 해당하는 심리분석 및 RPG게임, ‘배틀 게임’에 해당하는 피지컬 중심의 전술 게임(FPS), 함대 지휘 시뮬레이션(실시간 및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은 놀라울 정도로 전쟁의 심연에 가까이 있다. 전쟁-게임-기술의 삼체문제가 향하는 지점은 더 많은 살상, 더 효율적인 응시, 유기체적 지각에 대한 무기체적 지각의 승리에 있다. 우리는 <에이스 컴뱃> 같이 화려한 현대 전투기 도그파이팅을 소재로 한 슈팅 게임에서 인간 인지와 감각의 승리를 자처하지만, 붉은 남작의 시대와 같은 낭만 넘치는 기사도 이야기는 전쟁기술과 게임기술의 결합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능동 위상 배열 레이더(은폐를 드러내는 장치),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물리력 투사), 조기 경보 시스템(전장 조망 체계), 네트워크전 시스템(데이터 공유), 그리고 조종사에 주어지는 HMD(헬멧 마운트 디스플레이)와 키네틱 조작장치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BVR(Beyond Vision Range) 전투는 밀리테인먼트에서 순수 인간 육체의 지각 능력이 얼마나 비루한지를 보여준다. 러-우 전쟁에 참전했던 서방의 한 용병은 전쟁 내내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자주포 포격음과 폭발소리, 드론의 비행 소리만 들었고, 육안으로 적을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증언한다. “그들을 눈으로 본다는 건 곧 내가 죽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 17세기 천체 망원경의 출현은 전쟁 기계와 정찰 기계를 합치시켰다. 광학장치로 조망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까지 전투가 확장되고, 현실적인 것과 가상적인 것은 뒤섞인다. 20세기 초 카메라와 항공기, 인공위성과 레이더는 H.G.웰스가 자신이 직접 제작한 전쟁게임 <리틀 워즈>의 현실-가상 복합 조망체계를 실현시켰다. 현대의 정찰드론과 VR기술의 결합은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에 물리력을 투사할 뿐 아니라 ‘본다는 것’의 의미를 바꾸고, 배틀 게임-지휘 시뮬레이션의 가상적 지각을 실제 전장에 위상학적으로 정렬시킨다. 개입할 수 없는 플레이어, 그리고 전쟁이라는 게임 공간 ‘게임을 즐기면 폭력에 둔감해지고 야만성에 휩싸인다’는 비판은 정말 1차원적인 발상이다. <콜 오브 듀티>, <스타크래프트>, <하츠 오브 아이언>이나 시리즈를 즐긴다고 플레이어가 야만 전사가 되지는 않는다. 이런 주장은 ‘게임은 질병이다’라는 허무맹랑한 거짓말과 더불어 종교 근본주의자, 전미 총기협회 관계자가 즐겨 쓰는 조삼모사 수사학에 불과하다. 총기 난사 사고의 근본적인 문제는 총을 둘러싼 삶의 규범(예컨대 미국 수정헌법 2조)에 있지 시리즈에 있지 않다. 한편 게임을 사랑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게이머들, 게임 산업 관계자들, 의료 전문가 집단은 게임과 폭력이 아무 상관없으며 산업에 해가 되는 규제를 모두 풀어야 한다거나 ‘자유’ 라는 측면에서 검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소모적인 갑론을박 속에서 두 가지가 뒤로 밀려나게 되는데, 하나는 전쟁-폭력-게임을 둘러싼 전 지구의 지정학적 갈등에 대한 구조적 비판이 사라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기와 게임을 결합하는 군산복합 기술체계의 실체가 가려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투의 폭력이 아닌 전쟁의 폭력이 무엇인지 아는 문제, 전쟁-게임을 매개하는 기술을 이해하는 문제가 시급하게 요청되는 바이다. 상황주의 예술가이자 좌파 정보기술 비평가인 맥켄지 와크(Mckenzie Wark)는 자신의 책 『게이머 이론』에서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게임은 단순히 군사 기술을 민간에 옮겨온 것이거나 병사를 훈련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인터페이스와 컨트롤러를 조작해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고 반응하는 능력(capability)의 총체라는 것이다 [2] . 문제는 VR기기를 쓰고 전투 중인 드론 조종사가 전쟁의 정치경제적 맥락에 개입할 수 없는 것처럼,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는 게이머들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다. 군인들처럼 게이머들 또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임무를 완수하는 것만 요구될 뿐이다. 무기에 복잡하게 연동되어있는 인터페이스, 통제장치의 코드(전쟁의 정치적 목적)는 감춰져 있고, 전쟁 폭력은 추상화된다. <제너레이션 킬>에서 트롬블리 일병이 왜 전쟁을 지루해 했는지 이제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게임에서는 ‘임무 완료’ 와 임무 소요시간, 성과 등이나마 보여주지만 현실에서 전투의 결과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적군을 몇 명 죽여서 어떤 정치적 승리를 거뒀는지, 그 영향력이 무엇이었는지 일개 병사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군인은 끊임없이 고통(agony)에 시달린다. 자신의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가 도대체 뭔지 파악할 길이 없어서이다. 와크에 따르면, 전 지구적 군산복합체를 중심으로 펼쳐진 세계체제 공간은 이제 게임공간(Gamespace)이 되어간다. 지정학, 전쟁, 국제정치, 산업과 노동 모두 게임 인터페이스-컨트롤러의 코드를 닮아가지만, 게임의 규칙은 불공정하고 깨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게임의 규칙이 공정하다고 믿고 이 게임의 알레고리(Allegory)를 수행하지만, 현실이라는 게임공간에는 정당한 보상도 공정한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간이란 곧 자본주의 불평등의 게임이며, 알레고리는 지배 권력이 예외상태로 배제된 자들을 추방하는 알고리즘이라 할 수 있다 [3] . 거대전쟁기계(Mega War Machine)의 전달자로서 플레이어 이런 관점에서 보면, <콜 오브 듀티>와 <배틀필드> 등 전쟁 스펙타클 게임류는 다른 문제, 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복잡한 지형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여주는 문제로 비판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 게임을 즐긴 사람들, 그러니까 프라이스 대위를 존경하거나 멋있다고 느끼는 플레이어들 중 중동의 복잡한 정세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이 게임들은 시아파와 수니파, 대영제국 시절의 식민주의와 이스라엘의 극단적인 시오니즘, 그리고 ISIS의 창궐과 아프가니스탄의 부족주의, 쿠르드족 민병대 등이 왜 각자의 이해관계로 전쟁에 얽히는지에 대해 지나친 일반화를 통해 말초적 재미로 소구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페르시아인과 아랍인들의 차이조차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프라이스 대위가 전쟁을 통해 도대체 무슨 값(price)를 받아내려는지도 알 길이 없다. 플레이어가 이른바 ‘택티컬’한 흥분 속에서 얻는 가짜 교훈이란 이슬람교가 극단적인 테러리즘 종교라는 일차원적 믿음과 허구헌날 클리셰로 등장하는 러시아 갱단의 무기 탈취 및 지구 멸망 시나리오 등이다. 다이어-위데포드와 드 퓨터의 명저, 『제국의 게임』은 이런 관점에서 게임이 MIME-NET(Military, Industry, Media, Entertainment Network)이라고 일부라고 비판한다. 비디오게임은 한 마디로 ‘제국’의 가상 이데올로기적 장치이다. 그것은 군사적인 해결책을 정상인 것처럼 포장하고, 지정학적 갈등을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로 그리며, 게이머들을 가상의 군인으로 훈련시킨다 [4] . * 당신은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는가? 전설적인 델타포스와 네이비 씰 대원이 되어 적진에서 ‘택티컬’한 교전을 하길 갈망하는가? 2004년 그런 확신을 안고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했지만,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을 향한 ‘택티컬한’ 침략이 하마스의 인질극에서 비롯됐다고 보는가? 실상은 20여년 가까이 이어진 봉쇄로 가자지구 인구 대부분이 굶어죽는 비참한 현실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자신의 선조들이 아우슈비츠에서 당한 인종청소와 똑같은 전쟁범죄를 재현하는 시오니스트들의 추악한 형용모순이다. 이스라엘인들이 가자지구에서 행하는 ‘전술’이란 굶주린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하고, 병원과 구호트럭을 폭격하는 학살행위 등이다. 불평등이라는 룰이 적용된 이 세계체제 게임공간에서, <콜 오브 듀티>를 즐기는 것의 의미와 <디스 워 오브 마인>이 생산하는 전쟁의 구조적 폭력 비판은 동시에 상기되어야 한다.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군 통수권자들이지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플레이어가 아니라 그저 폭격으로부터 살아남고자 발버둥 쳐야만 하는 NPC(None Playable Character)에 불과할 따름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전쟁을 찬미하고 미국 중심 국제 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는 게임 말고도 영화, 드라마, 다방면에 널려 있다. 그렇지 않은 매체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그러나 ‘세계 체제 게임공간’ 에 접속해 최신 전쟁무기를 휘두르는 플레이어의 감각은 이데올로기 너머의 문제로, 기술체계와 지각의 병참학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오래 전 기술문명사학자인 루이스 멈포드는 기술의 본질이 단일한 대상이나 혹은 용도 변경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거대기계(Megamachine)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거대기계란 물리적 강제력과 물리학, 수학, 천문학 등 과학적 지식, 그리고 관료제의 권위가 결합한 사회적 기계로, 인간 자체를 부품으로 삼아 구축된 사회조직의 총체이다 [5] . 고대 이집트 시대 피라미드에서부터 현대 증기기관까지, 인류의 기술 문명은 대량 살상 능력과 대량 생산 노동력, 사회 지배 이데올로기를 결합한 기술 체계의 앙상블로 진화해 왔다. 현대의 거대기계는 더 파괴적인 원자력과 미디어 재현 기술을 흡수하며 ‘권력의 펜타곤’으로 진화한다. 여기에는 기업의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대중매체까지 포함되며, 레짐의 유지와 권력 증식만을 목표로 움직이는 반 유기적 시스템(anti-organic system) 안에서 인간은 부품 그 자체로 전락한다 [6] . 게임산업과 군산복합체, 그리고 전쟁과 세계체제 빅테크-자본주의 권력은 이미 유기적으로 결합한 거대 전쟁기계(Mega Warmachine)이 된 것은 아닐까? 자폭드론은 VR과 조이패드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드론에 탑재된 전장AI는 피터 틸, 일론 머스크 같은 빅테크 기술 영주들이 정부와 동맹을 맺고 발달시킨 안면인식, 스타링크, 범죄자 식별 알고리즘을 망라하는 AI와 거대 언어모델을 동반한다. 이를 처리하기 위한 컴퓨터 연산 장치를 공급하는 업자는 엔비디아와 AMD 등 게임계 핵심적인 하드웨어 업체들이다. 이 냉혹한 전지구 권력의 게임공간 안에서 플레이어들은 힘의 수직적 전달자, 말 그대로 행위의 주체가 아닌 논 플레이어블 캐릭터(None Playable Character)가 된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전쟁은 이제 단순히 TV나 소셜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스펙타클이 아닌, 실존의 위협이라는 사실이 인지되어야 한다. “전쟁,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1] 폴 비릴리오, 『전쟁과 영화』. 권혜원 역, 한나래, 2004. [2] Wark, Mckenzie. 2007. Gamer Theory. Havard University Press. [3] Ibid. [4] 닉 다이어-위데포드, 그릭 드 퓨터, 『제국의 게임』. 남청수 역, 갈무리, 2015. [5]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1』. 유명기 역, 아카넷, 2013. [6] 루이스 멈포드, 『기계의 신화 2』. 김종달 역, 경북대학교 출판부, 2012. Tags: 전쟁기계, 이데올로기, 국제정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 되돌릴 수 있는가? - 13기병방위권, 호라이즌, 우크라이나
물론 게임은 현실과 다르다. 게임을 통해 얻은 이러한 통찰을 현실에 적용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회고적 평가를 전제하는 슬로건을 거부하는 것이 시작이다. 과거의 정상적 상태를 회복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원칙과 대안을 논하는 일이 필요하다. 과거 러시아가 지배한 영토가 어디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되는 이유는 애초에 없다. < Back 되돌릴 수 있는가? - 13기병방위권, 호라이즌, 우크라이나 06 GG Vol. 22. 6. 10.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매력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세계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는 데에 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말 그대로 세상이 멸망한 상황을 전제한다. 게임의 주인공은 망한 세상 안에서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이러한 노력은 유저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의 결실을 맺는다. 즉, 우리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장르를 향유하는 이유는 세상이 망하더라도 인류는 어떻게든 자기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서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세상이 망한다’라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어떤 대답이든 게임 밖 현실에 대한 불만족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세상을 ‘리셋’할 수 있다면 당장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대가를 치르는 원인이 된 어떤 실수 혹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믿음은 종종 정치적 구호로 표현된다. 가령 도널드 트럼프의 “Make America Great Again”은 무언가 잘못되기 시작하기 직전의 어떤 시점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즉 ‘정상화’의 욕망에 호응하는 회고적 선거 구호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감각은 전쟁에도 동원된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반복해서 호출하는 세계관도 결국은 이것이다. 푸틴의 전쟁 논리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일 때만 ‘정상적 상태’일 수 있다. 따라서 푸틴에게 있어서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새롭게 러시아의 영토로 병합하는 게 아니라 뭔가 잘못된 현재를 제대로 된 과거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게 푸틴이 지금의 사태를 ‘전쟁’이라 표현하지 않고 ‘특수작전’이라고만 고집스럽게 말하는 것의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 반면 우크라이나인들의 인식은 이와는 정반대인데, 그들에게는 소련으로부터 지배를 당한 과거가 비정상적 상태인 현재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해법은 소련의 지배를 받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9세기의 ‘키이우 루시’까지 언급하는 이유는 정통성에 있어 우크라이나의 우위를 근본적으로 확립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의 시계를 9세기로 돌릴 순 없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정치는 러시아가 아닌 유럽의 일부가 되는 게 가능했던 시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타협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이 오랜 기간 현안으로 다뤄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일반론적으로 말해서,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에 성공한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예를 들어 〈13기병 방위권〉의 결말에 대해 생각해보자. 〈13기병 방위권〉은 이상적 세계를 다시 만들기 위한 재시작의 시점을 언제로 해야 하느냐 라는 주제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물론 이것이 게임이 다루는 주제의 전부는 아니다). 일본인들이 만든 게임이다 보니 ‘역사’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그 점을 감안해서 보자면 게임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과거 시점이 1945년과 1985년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게임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때, 결국 일본인들이 ‘되돌아갈 수 있는’ 선택지는 패전으로 치달은 군국주의이거나 안보투쟁 이후 거품으로 귀결된 80년대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의 주된 배경은 1985년의 세계이다. 1945년의 세계는 비록 그것이 외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멸망을 피하지 못했다.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게임의 엔딩에서 자신들이 그 일부를 이루는 1985년의 세계를 새로운 미래에 다시 구현하려고 한다. 결국 〈13기병 방위권〉의 결말이 제시하는 ‘재시작’의 시점은 어찌됐건 1980년대로 봐야 하는 것이다. * 〈13기병 방위권〉은 일본 현대사의 여러 시점을 오가며 주인공들의 교복과 주변 환경 등을 통해 이를 드러내고자 한다. 각각의 시점은 실제 일본 현대사에서의 주요 분기점으로 나타난다. 오늘날의 일본 주류정치는 현실의 불만에 대한 돌파구를 군국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에서 찾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만든 일본 정부는 이제 ‘적 기지 공격 능력’을 거론하며 패권을 확장하려고 한다. 일본의 우익세력이 실제 전쟁을 일으킬 의지를 갖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이것은 어찌됐건 ‘전쟁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 어떤 행보로 평가하는 게 불가피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쟁의 가능성’을 실제로 뒷받침하는 알리바이로 기능한다. 일본 뿐만 아니라 독일의 재무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런 현실까지 고려하면 〈13기병 방위권〉의 메시지는 패전을 겪고 평화주의를 수동적으로 채택하는 결말을 굳이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것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은 현실에선 1945년이 있었기 때문에 1985년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패전이 있었기 때문에 요시다 내각의 평화주의가 가능했던 거고, 요시다 독트린이 있었기 때문에 그 반발로서 기시 내각이 1960년 신미일안보조약을 추진한 것이며, 그게 다시 1970년까지의 안보투쟁 국면과 그 이후 정경유착으로 기억되는 경제 우선의 시스템으로 귀결됐던 거다. 1985년은 그러한 이유로 조성된 호황기가 플라자 합의 등 대외 변수가 작용한 끝에 꺾이기 시작한 해다. 이 시점에 다시 시작한들, 불황과 이어지는 우익의 재부상을 막는 게 가능할까?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13기병 방위권〉의 결말은 ‘쇼와 향수’로의 도피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기만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회상편’과는 달리 ‘붕괴편’에선 기계들과의 싸움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은 작품 자신에 대한 우화처럼 느껴진다. 어느 시점에서 다시 시작해도 실패를 되풀이하는 게 불가피하다면 아예 태초로 돌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호라이즌〉 시리즈는 이런 가정에 대한 이야기다. 다만 〈호라이즌〉이 상정한 다시 되돌아 온 ‘태초’는 인위적이다. 멸망 후 도래한 암흑 속에서 신이 “빛이 있으라”고 말하는 것은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새로운 시작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되돌아간다’는 것을 전제하려면 ‘재시작’은 반드시 인간이 설정한 어떤 조건들의 반영이어야 한다. 〈호라이즌〉에서는 비록 100%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이아’ 시스템이 이 역할을 전담한다. 그러나 바로 이 조건 때문에 ‘재시작’은 그저 ‘되돌아가는 것’이 될 수 없었다. 〈호라이즌 제로던〉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가이아’ 시스템의 어떤 오류가 또 한번의 인류 멸망을 촉발할 위기를 일으킨 것을 주인공 에일로이가 막아내는 얘기다. 만일 〈호라이즌〉 시리즈의 얘기가 이렇게 마무리가 됐다면 우리는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태에 현명하게 대응한 인류가 이전 세계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재시작’의 시대를 순조롭게 이어가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결말은 이러한 기대를 순진한 것으로 만들고야 만다. 새로운 인류를 다시 멸망시킬 뻔한 ’가이아’의 오류는 돌발사태였던 게 아니라 이전 세계로부터의 연속성을 가진 사건의 결과였던 것이다. 심지어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결말은 이전 세계의 존재 때문에 멸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인류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즉, 이전 세계의 맥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모든 것을 새롭게 ‘재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되돌아가고자 했다’라는 사실까지 되돌릴 수 없는 이상 온전히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유일하게 남는 선택지는 설령 미래가 절망뿐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발을 딛고 선 바로 그 지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모색을 계속하는 것이다.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 엔딩의 에일로이와 동료들이 마주한 길도 그것이다. 물론 지구를 향해 달려오는 절대악에 직면해있는 이들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은 ‘게임’이기 때문에, 〈호라이즌〉 시리즈를 이것으로 끝내기로 한 게 아니라면, 에일로이와 동료들은 그게 뭐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물론 게임은 현실과 다르다. 게임을 통해 얻은 이러한 통찰을 현실에 적용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회고적 평가를 전제하는 슬로건을 거부하는 것이 시작이다. 과거의 정상적 상태를 회복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원칙과 대안을 논하는 일이 필요하다. 과거 러시아가 지배한 영토가 어디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되는 이유는 애초에 없다. 러시아의 침공이 부당한 이유는 먼 옛날부터 존재해 온 독립적 국가로서 우크라이나의 역사나 민족의 문제과 큰 관계없다.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전쟁은 오늘 이 순간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이미 답을 다들 알고 있는데, 안 되는 일을 안 된다고 말하는 걸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이 별로 없는 세상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인터뷰] 플래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퍼포먼스와 그 이후: RIP Flash 팀
많은 사람들이 인생 첫 게임을 ‘플래시 게임’으로 접했고, ‘마시마로’나 ‘졸라맨’ 등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 등 플래시는 2000년대 문화 전반에서 사용되었다. 따라서 플래시 서비스의 종료는 단순히 하나의 소프트웨어가 단종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문화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R.I.P. 플래시 프로젝트는 플래시의 ‘죽음’을 기리며, 그 문화적 산물을 돌아보고자 하였다. < Back [인터뷰] 플래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퍼포먼스와 그 이후: RIP Flash 팀 05 GG Vol. 22. 4. 10. 게임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최근에 진행되었던 ‘R.I.P. 플래시 프로젝트’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https://www.thisisgame.com/webzine/special/nboard/5/?n=127359 ‘디스이즈게임’ 기사 참조) 어도비(Adobe)사의 플래시는 2020년 12월 31일부로 서비스가 종료되었고, R.I.P. 플래시 프로젝트는 이러한 플래시의 흔적들을 기억하고 그 죽음을 추모하려 했던 프로젝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첫 게임을 ‘플래시 게임’으로 접했고, ‘마시마로’나 ‘졸라맨’ 등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 등 플래시는 2000년대 문화 전반에서 사용되었다. 따라서 플래시 서비스의 종료는 단순히 하나의 소프트웨어가 단종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문화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R.I.P. 플래시 프로젝트는 플래시의 ‘죽음’을 기리며, 그 문화적 산물을 돌아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R.I.P. 플래시 프로젝트가 지난 2월 말,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그러나 ‘장례’가 과거에 잠재된 미래를 살피는 행위인 것처럼 이 프로젝트의 의의 역시 과거형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에 이번 호에서 편집장은 R.I.P. 플래시 프로젝트를 기획한 박이선 게임문화연구자와 권태현 미술 큐레이터를 만나 프로젝트에 대한 소회를 묻고, 앞으로의 방향을 듣고자 했다. 편집장 : 오늘 인터뷰에서는 R.I.P. 플래시 프로젝트의 결과와 소회를 여쭙고 싶어요. 스스로 평가를 해보셨을 때, 프로젝트의 성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권태현: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자신감이 높았어요. 시의적절하기도 하고, 나름 글로벌한 반응이 있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시작을 했죠, 그런데 실제로 작업을 진행하면서 스스로 의심하게 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플래시라는 것 자체가 글로벌한 플랫폼이고, 그 쓰임이라는 것도 굉장히 광범위한 거였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 거대한 것을 건드린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업은 너무 일부인데, 과대표 되는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죠. 박이선: 실제로 처음에 기획을 할 때에는 반응이 되게 좋았거든요. 처음에는 한예종에서 시작했다가, 반응이 좋아서 인천문화재단으로 옮기고, 그다음에는 텀블벅 펀딩으로 마무리를 했는데, 그 과정 내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줬어요.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연구를 하다 보니까 저희가 소프트웨어의 주체들, 그러니까 플래시를 만들었던 사람들까지 다 다루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플래시를 향유했던 사람들과 그 틀을 이용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담았지만, 정작 어도비나 매크로미디어(Macromedia)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데 한계가 있었기에 그때는 반쪽짜리 잔치라고도 생각했어요. 권태현: 그런데 결론적으로 원고를 조금씩 취합하고, 편집을 해나가고, 대담을 진행하면서 오히려 이 프로젝트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분명히 우리의 방법론이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학문적 베이스, 우리의 연구 역량으로 가닿을 수 없는 지점들이 있었고, 소프트웨어 생산자에 관한 연구는 기술 문화나 IT 연구하시는 분들이 훨씬 더 잘 정리할 수 있는 분야이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런 연구에서 누락 되기 쉬운 ‘사용자의 목소리’, ‘구술사’, ‘역사가 아닌 계보’를 봐야겠다는 목표를 잡았거든요. 이로써 프로젝트의 정체성이 확실해졌어요. 그래서 ‘플랫폼 스터디스(Platform Studies)’나 혹은 기술적으로 연구하시는 분들이 잘 정리해 놓은 것들이 있지만, 우리의 독창성은 한국이라는 맥락이나 게임이라는 맥락, 미술이라는 맥락과 같이 특정한 맥락 속에서 그것의 위치를 찾아가는 지점에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박이선: 결과적으로 그런 정체성을 명확히 잡고 프로젝트도 잘 되었어요. 소프트웨어 장례식을 한다는 게 특이하고, 플래시에 대한 감각도 공감이 된다면서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고, 특히나 텀블벅에서 만났던 분들은 학계나 미술계, 게임계가 아니라 단순히 플래시 게임과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사람들로서 저희를 지지해주셨어요. 게다가 그분들은 저희가 아직 홍보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자기가 속한 커뮤니티에 자발적으로 홍보를 해주셨거든요. 그런 점들이 너무 감사하고, 이런 지지가 저희 책을 만드는 데 힘이 되었어요. 그래서 결과물도 저는 굉장히 만족해요. 책의 구성에서도, 그러니까 플래시에 대한 간결한 소개부터 주변 인터뷰도 싣고, 거기에 학계에 계시는 분들이 각각 포인트에 맞는 견해들을 주셔서 전반적인 구성이 좋게 나올 수 있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주셔서 프로젝트가 잘 되었다고 생각해요. 편집장: 말씀 중에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요. 관련 자료를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 매크로미디어나 어도비 같은 회사에 대한 연구는 북미 등 해외에서 진행이 많이 됐을까요? 권태현: 일단 기본적으로 MIT Press에서 나오는 플랫폼 스터디스(Platform Studies) 시리즈에 플래시가 있어요. 그게 저희도 가장 많이 참조했던 텍스트인데, 거기 보면 유저(user) 문화 같은 것도 물론 있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기술적인 맥락이 어떻게 반영되는지와 인프라스트럭쳐(infrastructure) 자체에 대한 분석이 주(主)가 되기 때문에 그런 연구가 나름 정리가 되어있다고 볼 수 있고요. 그리고 기술적이고 산업적인 것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플래시가 가지는 산업적 위상에 대해서는 이선 씨가 저희 책 초반부에서 정리한 것이 있어요. 어도비가 플래시 단종하겠다고 발표한 바로 다음 날부터 2, 3일 동안 페이스북, 모질라 등 거대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성명을 발표했어요. 디렉터나 혹은 웹 브라우저 담당자 정도 되는 헤드(head)급 인사들이 편지를 썼거든요. 그것들을 저희가 전체를 번역해서 실었어요. 그런 것을 통해서 ‘기술적’인 산업이 아니라 그 산업 안에서의 관계, 그리고 거기서 플래시라는 것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플래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요. 재미있는 건 그러면서도 플래시의 시대가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네들이 짱이다’는 (웃음)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요. 박이선: 예를 들어 유니티 같은 경우는 “우리는 개발의 민주화 잃지 않을 거예요.” 이런 식으로 자기네 사명 다시 한번 외치는 거로 마무리하죠. (웃음) 권태현: 결과적으로 산업에 대한 연구는 이미 있는 것이 맞고, 저희의 프로젝트 안에서도 산업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인간적이고 조금은 관계 중심적인 차원으로 다루었어요. 그런 면들이 이 책의 기획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방식으로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편집장: 해외에도 이용자 수용 양상에 관련된 연구나 프로젝트가 많이 있나요? 왜냐하면, 말씀하신 대로 이용자들의 경험과 문화적 산물을 본다는 것은 지역적인 측면이 중요해지거든요. 그래서 다른 지역에 좀 비슷한 프로젝트들이 있었는가도 궁금해요. 박이선: 저희가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아까 말씀드린 MIT Press의 플래시 책이 사실상 유일했어요. 그 책은 2014년에 나왔던 책이거든요. 그때는 ‘플래시가 죽겠다’는 소식이 나오기 전이었고 저자는 그냥 플래시에 관심 있어서 플랫폼을 연구했던 거예요. 거기 안에는 수용자 연구도 있었지만, 기술 자체에 코드 분석 같은 것이 많이 담겨있었고 그 책 외에는 플래시에 대한 연구를 찾기가 힘들었어요. 권태현: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저희랑 유사한 콘셉트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유저들의 문화에서 눈에 띄는 프로젝트들은 ‘아카이브 프로젝트’였어요. ‘내가 재밌게 했던 플래시 게임이 없어지니까 일단 아카이브를 만들어야 된다’라고 생각하는 유저들은 굉장히 많았던 것 같아요. 박이선: 그런 맥락에서 제가 생각하는 비슷한 프로젝트는 이거였어요. 미국에 두 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운영하는 재단이 있어요. 웹 디자인 뮤지엄이라고, 운영자 둘 다 웹 디자이너로서 나이 많은 개발자들이 운영하는 곳이 있는데요. 우리가 90년대 구글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해도 볼 수가 없잖아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복원을 해서 다 사진을 찍어두는 프로젝트예요. 그런 일들을 사비로 해오고 있었고, 그중에 하나로 플래시가 있었던 거죠. 이분들이 플래시의 원형들을 굉장히 잘 보존한 걸 webdesignmuseum.org에 게시해놨어요. 저희 작업도 이분들의 작업을 많이 참조했죠. 그리고 그분들이 재단 페이트리언(Patreon, 모금 후원 사이트)을 하시거든요. 저희도 후원을 하면서 열심히 해 달라고 응원을 해드렸어요. 그리고 추가로 웹 아카이브( web.archive.org ) 재단, 그러니까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인 웹 재단이 저희가 그나마 참조했던 프로젝트였어요. 편집장: 제가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에는 이런 측면이 있습니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해외에서도 보기 드문 프로젝트였다면, 해외로 나가야 하는 의무도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권태현: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저도 몇 번 들었어요.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분들 중에서 외국에 계신 분들도 많았는데, 그분들이 “외국 친구들 보여주고 싶은데, 혹시 번역 계획이 있냐”는 연락을 두세 명한테 받았어요. 근데 저희가 일단 돈이 없어서 모르겠다고 말씀드렸죠. (웃음) 박이선: 재밌는 게 저희 프로젝트에 웹사이트가 있는데요. 그 웹사이트에 외국인들이 내용을 다 읽고 댓글을 다는 거예요. 거기 한글밖에 없는데 아랍어로도 댓글이 달리고. 그래서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주시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권태현: 그런데 사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어떤 연구를 하더라도 사실 지역적인 연구가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까 플래시 프로젝트보다는 한국 웹문화사의 성격이 되게 강해졌거든요. 그러니까 사실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 웹문화사에서 플래시는 당시 웹 문화의 조건이었기 때문에, 플래시에 대한 문화연구를 하면 그냥 당시의 웹문화사가 나와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당대의 한국 웹문화사의 성격이 강할 것 같고, 한국 웹문화사가 궁금한 외국인들이 읽었을 때 오히려 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플래시 일반에 대한 연구는 훨씬 더 좋은 콘텐츠들이 영문으로 있을 텐데, 만약에 저희 프로젝트를 번역했을 때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90년대 후반 한국 웹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생길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런 확장성을 생각해 보면 이 프로젝트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이 프로젝트에서 가지를 쳐서 뭔가를 더 할 수 있는, 그런 계획이나 움직임이 있을까요? 박이선: 지금은 우선 이 책을 서점에 납품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전시에 대한 기획들도 고민을 했는데, 코로나 19로 상황이 어려워졌죠. 권태현: 저희가 인천문화재단 펀딩을 받을 때, 인천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랑 콜라보를 하는 필수 요건이 있었어요. 그때 저희가 리스트를 봤는데, 국악을 하시는 분이 있는 거예요. 장례식 때 국악을 하는 드렁갱이(동해안별신굿에서 반주로 쓰이는 장단: 한국민속대백과사전)라는 것이 있거든요. 또 마침 연락을 해보니 그분이 드렁갱이 전문가였어요. 그래서 저희가 저희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드리고, 드렁갱이 음악도 받았어요. 그 음악을 틀어놓고 장례식을 한다거나 하는 계획들이 있었는데, 코로나 19로 어려워졌어요. 박이선: 당장은 어렵겠지만, 발전시키고 싶은 프로젝트는 있어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자발적으로 아카이브를 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국내에 ‘와플래시’나 ‘플래시아크’처럼 아카이브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최근의 기술로 과거의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분들이나 해외에 그런 단체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그분들께 “왜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이런 아카이브를 하는 거냐”고 물으면 그분들의 과거 이력이 나오겠죠. 그런 부분이 궁금하고, 아카이브를 통해서 뭘 하고 싶은지 묻고 싶어요. 물론 ‘광고를 달기 위해서 한다’는 답변을 할 수도 있지만, 노력이 워낙 많이 가는 일이기 때문에 그 동기가 궁금해요. 권태현: 이런 맥락에서 저도 아카이브나 마이그레이션 같은 문제를 확장시키고 싶어요. 미술계의 뮤지올로지, 이 ‘미술관학’이라는 학제를 기반으로 제가 작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재난과 치유》 라는 전시의 위성프로젝트로 〈영구소장〉( https://youtu.be/WQ7takHNmTg)이라는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것과 연동되어서 저희 프로젝트 후반부에 ‘소프트웨어의 피라미드’가 만들어졌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방금 이선 씨가 말씀해 주신 ‘아카이브 피버’, 이 아카이브 열망에 소프트웨어 버전을 연작처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쿠키런’이라고 해도, 박물관이 단순히 ‘쿠키런’의 최신 버전을 그냥 다운받은 형태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쿠키런’의 인터페이스나 캐릭터, 디테일한 게임 디자인, 빌드 등 소프트웨어의 아카이브는 그 형태나 필요성이 또 다른 거죠. 물론, 미술품 아카이브도 물리적인 보존의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전혀 다른 어려움이 있기에, 소프트웨어의 아카이브라는 것 자체가 되게 흥미롭고, 박물관학적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굉장히 높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소프트웨어의 아카이브를 미술관학이나 박물관학에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특히나 요즘 작품들은 이제 다 디지털 작업이기 때문에, 데이터로 미술관이 그걸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플래시나 게임의 아카이브 방법론에서 배울 점이 너무 많았어요. 편집장: 그런 부분이 참 아쉽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프로젝트가 생각보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거든요. 특히, 한국의 메이저 미디어에서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프로젝트가 끝났지만 조금 더 회자될 수 있는 영역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이선: 저희가 서울경제 등의 일간지에 나오긴 나왔어요. 그런데 저희한테 먼저 연락을 주신 기자분들의 나이대가 2, 30대세요. 그러니까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은 어렸을 때 졸라맨이나 마시마로를 봤던, 공감대가 있으신 분들인 거죠. 편집장: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겠네요. 그러면 혹시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공공 기관이나 박물관 등으로 이관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시나요? 권태현: 그런 가능성은 열려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작년에 넥슨 컴퓨터 박물관 측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비록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전시를 하지는 못했지만, 굉장히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셨어요. 박이선: 만약 20년 넘게 한국 게임을 만들었던 회사와 협업을 하면 저희 시각 외에도 훨씬 더 많은 얘기를 끌어낼 수 있겠죠. 넥슨의 경우에는 저희 연표에도 나오듯이, 애초에 플래시 부흥기 때 〈바람의 나라〉가 성장한 딱 그 시기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회사 측 견해가 들어가면 저희가 못 보던 시각이나 기술적인 측면 등이 추가적으로 들어가면서 유저 문화도 훨씬 더 깊이 있게 기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비단 넥슨뿐 아니라 그런 제안이 들어오면 소수의 사람이 할 때 보다 더 풍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기에 저희는 이 프로젝트가 확장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요. 편집장: 결국 이 프로젝트는 끝난 게 아닌 거잖아요.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는 언제 끝날 것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지난번에 종료했던 것은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종료였던 거고, 실질적으로 이 프로젝트의 종료는 언제, 어떻게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박이선: 저는 저희 ripflash.net의 방명록에 더 이상 글이 달리지 않을 때, 프로젝트가 종료될 것으로 생각해요. 지금도 매일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겠는 댓글이 달리고 있는데, 아마 구글에 플래시를 검색해서 들어오시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더 이상 플래시를 검색하지 않으면 이 프로젝트가 끝나는 것이겠죠. * R.I.P. 플래시 프로젝트의 홈페이지, ripflash.net 편집장: 인터뷰가 거의 끝나가는데요.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프로젝트가 일단 일단락 되었는데, 소회를 좀 말씀해주세요. 박이선: 일단 굉장히 힘들었어요. (웃음) 어떤 것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과거의 소프트웨어를 날짜별로 돌려가면서 그것의 의미를 찾는 일은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고, 지금 그 플래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나 그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적는 것도 사실 굉장히 힘든 일이었죠. 더 나아가서 이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홍보까지 해야 되는 상황에서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시도를 해봤고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워요. 권태현: 저희가 이 프로젝트를 오래 끌고 온 만큼 기다려주시는 후원자님들도 있었고, 초기부터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기에 지속적으로 힘을 받고, 추동력을 받아가면서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홈페이지를 만들어주신 개발자분도 프로젝트가 너무 재미있다고 자발적으로 참여해주신 분들이거든요. 그분들처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확장된 관계들이 일단 너무 소중하고 행복했어요. 결과적으로 책 말고도 남은 것들이 너무 많아요. 편집장: 마지막으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한국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었는지, 혹은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이선: 개인적으로는, ‘어떤 기술’을 이야기할 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사용자’들을 가시화했던 작업인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싣고 그 사람들을 찾고 그 사람들의 과거들을 아카이빙 해놓음으로써, “기술이라는 것은 탑-다운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플래시 문화가 보여줬던 것처럼 커뮤니티가 기술을 만들고 선도했다”는 메시지를 던지려 했어요. 실제로 그런 기록도 있었어요. 플래시 초기에 매크로미디어가 커뮤니티에서 업데이트 되어야 할 사항들을 많이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었는데, 이처럼 커뮤니티와 개발자들이 사업 관계로서 협력했었거든요. 그래서 결국 사용자와 커뮤니티를 가시화했다는 의의가 있을 것 같아요.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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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제너레이션::필자::윤창환
보드게임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보드게임을 만드는 재미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항시 보드게임 게이머 모집 중입니다. @imakeboardgames 인스타그램 으로 연락주세요. 윤창환 윤창환 보드게임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보드게임을 만드는 재미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항시 보드게임 게이머 모집 중입니다. @imakeboardgames 인스타그램 으로 연락주세요. Read More 버튼 읽기 온라인 시대의 살아있는 화석, 보드게임 이야기 1938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되어 그 존재가 알려진 실러캔스라는 어류 개체가 있다. 실러캔스는 약 3억 7천 5백만년 전 지구상에 출현하여, 약 7천 5백만년 전 절멸했다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러캔스는 살아있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오영진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이다. 가상세계에서 비극적 사건의 장소를 체험하는 다크투어리즘 〈에란겔: 다크투어〉(2021.03.20-21)와 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 연계 메타버스 〈끝나지 않는 항해〉(2012.06~19)를 연출했다. 오영진 오영진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이다. 가상세계에서 비극적 사건의 장소를 체험하는 다크투어리즘 〈에란겔: 다크투어〉(2021.03.20-21)와 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 연계 메타버스 〈끝나지 않는 항해〉(2012.06~19)를 연출했다. Read More 버튼 읽기 압둘 와합과 〈21DAYS〉를 플레이하다 필자는 최근 압둘 와합과 〈21Days〉를 같이 플레이해 보았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을 다룬 이야기가 드문 가운데 그것도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게임적 형식이라는 점이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압둘 와합(Abdul Wahab Al Mohammad Agha)은 시리아 출신으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 활동을 하다 시리아 내 한국 유학생들을 친구를 둔 인연으로 2009년에 처음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2011년 고국의 민주화 시위 이후 복잡하게 전개된 내전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는 ‘헬프 시리아’라는 단체를 만들며 시리아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난민들을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버튼 읽기 게이머는 난민이 될 수 있는가? - <로스트아크> 대량이주 사태와 난민의 정체성 2021년은 한국 mmorpg 게이머들에게 대량이주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메이플 스토리>나 <마비노기>의 경우, 아이템을 강화하는 세공도구 같은 유료아이템의 불투명한 확률 매커니즘이 문제였다. 랜덤이라고 표기되었지만 실은 옵션별 숨어있는 차등확률을 통해 랜덤확률에도 못미치는 효과를 보거나, 응당 적용되어야 할 옵션이 오류로 적용되지 않아 수년동안 0%의 확률로 실패한 뽑기를 유발한 것이 문제였다.
- 전쟁과 절차와 수사와 죽음과 : 탈군사주의와 전쟁 게임
글의 시작부터 이야기 했듯, 비디오 게임과 군사주의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파트너와도 같다. 즉 게임에 전쟁의 그림자가 조금이라도 드리우는 순간, 무시무시한 존재감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마사 이즈 데드」가 전쟁을 직접 지시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전쟁의 역량은 그 안에 깊숙히 파고든다. 다른 이유가 없다. 「마사 이즈 데드」가 비디오 게임이기 때문이다. < Back 전쟁과 절차와 수사와 죽음과 : 탈군사주의와 전쟁 게임 25 GG Vol. 25. 8. 10. 야코 수오미넨은 《The Past as the Future? Nostalgia and Retrogaming in Digital Cutlure》에서 ‘디지털 게임을 포함한 미디어 문화는 본질적으로 유아성infantlism, 유치함chindishness 또는 청소년성juvenility을 내포하고 있으며(...)’라고 쓴다. 폭탄 같은 발언처럼 들리지만, 비디오 게임과 걸쳐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논제다. 요컨데 우리가 게임학이라고 부를때의 루돌로지Ludology의 어원으로부터 발생하는 근원적 질문이다. 우리 사이에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것이, 아니 게임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즐거움’에 대한 지향이라는 암묵적 동의가 있다. 이 때에 즐거움을 가장 원초적인 단위까지 훑고 내려가면 결국 유아성, 유치함, 청소년성 같은 것들과 마주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비디오 게임과 전쟁이라는 두 키워드를 하나로 조합하면 그러한 ‘원초적 즐거움’의 상이 그려진다. 몰려드는 적, 화면을 메우는 총탄, 화면 어딘가에 표시되는 점수 또는 킬마크… 등등. 애초에 군사적 기술의 변용으로 탄생한 이 매체는 「미사일 커맨더」같은 군사주의적 테마의 게임과 함께 성장해왔다. 꼭 그 대상 또는 배경이 현실에 기반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타이토의「스페이스 인베이더」, 코나미의 「콘트라」같은 외계인과의 혈투를 그린 아케이드 게임도 엄밀히 말하자면 군사주의와 매개하고 있다. 직접 전장을 모사하지 않더라도 총기나 냉병기를 다루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조금 과장해서 폴 비릴리오를 경유하자면, 레이싱 게임 같은 기술 중심의 게임 마저도 군사주의에 대한 어슷한 인상 정도는 가지고 있겠다. 전쟁과 비디오 게임의 사이에는 언제나 군사주의라는 존재의 무게가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군사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위치는 원초적 재미라는 근원적 공간이다. 반전을 외치는 비디오 게임이 군사적 쾌감을 준다는 루도내러티브 부조화 문제는 구태의연하고 철지난 이야기일 정도다. 그래서, 전쟁과 비디오 게임의 사이에서 이 군사주의를 걷어내면 그 자리에 ‘진지한serious’이라는 단어가 들어서게 된다. 시리어스 게임serious game이라는 단어의 현존 자체가 비디오 게임에 드리워진 루두스의 음산함을 시사한다. 게임이 진지해려면 특정한 수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군사주의를 우회하는 전쟁 비디오 게임은 대체로 이 시리어스 게임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물론 시리어스 게임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러가지 논의가 있다. 초기에는 교육적 효과를 가진 게임들을 지칭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근원적으로 교육적 목적이 아닌 게임들을 교육적으로 전환 사용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교육적 효과’, 아니 더 넓게는 ‘어떠한 효과’를 내포하는 게임들까지 아우르게 된다. 자우티Djaouti, 알바레즈Alvarez, 제슬Jessel은 기존의 비디오 게임을 ‘엔터테인먼트 게임’으로 구분한 뒤, 시리어스 게임을 ‘진지함serious’과 ‘게임성game’을 모두 가진 게임으로 규정한다. [1] 물론 여기서도 이 ‘진지함’이 어느 범주까지를 뜻하는지에 대해서 규정하지 않는다면, 매우 모호해지긴 하지만 말이다. [2] 여튼 게임이 어떠한 엔터테인먼트를 초과하는 ‘진지한 테마’를 목적한다면 시리어스 게임의 범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여기에 어떠한 충돌이 발생한다. 앞서 말했듯 루두스는 일정량 ‘진지함’을 배격하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전쟁과 비디오 게임 사이에 언제나 군사주의가 들어설 수 밖에 없었던 바로 그 논리적 귀결과 맞붙는다. 따라서 비디오 게임이 군사주의와 거리를 두고, 그 이면의 이야기를 ‘진지하게’하려 할때, ‘시리어스’와 ‘루두스’ 사이에는 강렬한 긴장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충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Juggler Games의 「우리에 대한 나의 기억My Memories of Us」이다. 이 게임은 2차 세계대전의 와중 한 유대인 소녀와 도둑 소년이 함께 수용소로부터 탈출해 도망치는 이야기를 다룬다. 메커닉적으로는「발리언트 하츠」에 큰 빚을 졌다 할 정도로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각각 다른 특성을 지닌 두 주인공을 통한 퍼즐 메커닉은 새로운 흥미로움을 낳는다. 손을 잡으면 서로의 능력이 공유되고 손을 놓으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는 메커닉은 게임이 부여하는 퍼즐을 보다 다채롭게 구축한다. 그러한 반면 이 게임은 ‘노년의 남성이 회상하는 과거’를 이유로 역사에 환상적인 면모들을 이식한다. 이를 통해 제3제국을 로봇으로, 제국의 총통을 로봇 왕으로, 유대인을 표시하는 노란 뱃지는 지워지지 않는 붉은색의 페인트로 묘사한다. 이 환상성(또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해야할까)이 있기에 더 다양한 퍼즐 메커닉이 나올 수 있었겠으나, 역사의 무게를 감소시켰다는 평은 피할 수 없었다. 《게임스팟》에서는 "게임의 더 귀여운 미적 요소와, 캐릭터들이 게토에 살게 되고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는 이야기 사이의 단절은 거슬린다. ...이러한 분위기의 혼란은 경험의 대부분을 약화시킨다." [3] 고, 《닌텐도 라이프》에서는 “주요 비판점은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만들어진 실질적인 위협과 그것이 기반으로 하는 진정한 공포 사이에서 나타나는 거슬리는 분위기의 불일치다.” [4] 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이 더 현실적인 아트를 가졌다면 게임 전체를 ‘흥미롭게’ 만든 퍼즐 메커닉의 삽입은 불가능했을 것이 자명하다. 「우리에 대한 나의 기억」은 군사주의를 우회한 비디오 게임이 필연적으로 겪게되는 전쟁의 진지함과의 각축전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 대한 나의 기억」은 나치 독일의 제3제국을 로봇 군대로 묘사한다. 의미가 구조를 앞지를 때 이런 충돌에 대해 이안 보고스트의 언어를 빌려 말하자면 ‘절차procedure’와 ‘수사rhetoric’ 사이의 긴장이라고도 정리할 수 있다. 게임적 절차(=구조)를 동원해 수사(=의미에 대한 표출)를 구축한다는 보고스트의 발안을 따르자면, 진지함은 언제나 수사의 목적에 위치한다. 여기서 절차는 이 수사의 구축에 결부된다. 하지만 게임의 절차, 그러니까 루딕 메커닉은 앞서 정리한대로 유희성을 기반으로 한다. 결국 진지함에 대한 수사를 어떻게 유희적으로, 그러니까 원초적이지 않은 흥미로움으로 구축하느냐가 긴장의 근원이다. 정리하자면 수사의 확고한 대상을 위해 절차가 동원되는가, 아니면 절차의 목적이 수사의 대상보다 더 높은 층위에서 작동하는가의 문제다. 이 긴장의 내부에서, 게임을 통해 전쟁의 ‘진지함’을 논한다면 과연 어떤 방식을 이루어야 할까? 이를테면 의미가 구조를 앞지르는 경우, 이는 명백히 역사 교육을 위한 콘텐츠가 된다. Charles Games의 「아텐타트 1942Attentat 1942」와 「스보보다 1945 : 해방Svoboda 1945 : Liberation」이 대표적인 예시다. 두 게임은 모두 체코의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 교육 자료의 일환으로 만들어졌으며, 의도적으로 복잡한 사회적 양태의 시기, 체코슬로바키아 총독이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암살된 뒤에 벌어진 억압적 통제 ‘하이드리하디’가 발생한 1942년과 체코슬로바키아에 있던 독일인들에 대한 폭력적 추방이 시행된 1945년을 그 조사의 배경으로 삼는다. 플레이어는 모종의 이유로 과거에 있었던 진실을 찾아내야 하는 현대의 체코인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노벨 게임’ 스타일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정보를 모아야 한다. 비록 재연 배우들을 사용하긴 했지만, 가상의 인터뷰라는 형식은 전쟁 중의 민중들이 겪은 미시사의 복잡함을 인지시킨다. 인터뷰이들은 대부분 타자에 대한 극도의 불안과 의심을 갖는다. 그리고 이는 전적으로 전쟁이라는 현상이 주는 공포로부터 기인한다. 유대인이 아님에도 유대인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할아버지의 역사를 추적하는「아텐타트 1942」의 경우, 주인공의 할머니는 불신으로 가득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누군가의 불온한 고발이 남편에게 부당한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인 지금까지도) 할머니의 의심의 대상인 이웃집 남자 역시 나치당의 폭압에 의한 피해자라고 고백한다. 그 역시 총독부에 의해 강압적으로 친독적인 기사를 써야 했던 과거에 고통받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정보는 파편화되어, 결국 켜켜히 쌓인 오해가 한 사람을 비극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아텐타트 1942」는 가상화된 인터뷰의 반복으로 진행된다. 「아텐타트 1942」는 이를 위해 역사 탐구를 가상적으로 분화시킨다. 게임 중 발생하는 모든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정보 전체를 한번에 획득하지 못한다. 하지만 진행 중 발생한 미니게임을 통해 지급받은 코인을 사용하면 인터뷰를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다. 이 ‘처음부터’ 다시는 문자 그대로의 처음부터, 즉 ‘이전의 인터뷰가 없었던 것’으로는 간주한다. 하지만 플레이어에게 이전 인터뷰의 정보는 남아있다. 이러한 인식상의 오류가 있음에도, 딱히 이런 과정을「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즈」처럼 초상적 능력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즉 사실상 주인공은 부족한 정보들로 구성된 한 플로우의 인터뷰 경험만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우연치 않게 진짜 ‘진실’과 접촉하게 된 셈이다. 이는 게임이기에 가능한 잠재태의 경험만이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일 뿐이다. 따라서 게임이 아닌 현실의, 그러니까 실재태의 인터뷰는 결코 진실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주의에 가깝다. 어쩌면 이 현상이 「아텐타트 1942」의 인터뷰이들이 가진 정보 부족의 비극을 일부 설명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은 근본적으로 가진 판단의 한계지점을 가지며 오해와 불신의 가능성은 언제나 곁에 도사린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거대한 이벤트는 이런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증가시킨다. 플레이어가 추적한 진실은 이러한 세계의 초상이며, 오직 각 인간에 대한 불가능한 정보 습득의 반복으로만 도달할 수 있다는 수사인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아텐타트 1942」는 매우 흥미로운 메커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미니 게임들에는 그다지 미덕은 없다. 물론 증언자들의 코너에 몰린 긴장을 체감시킬 의도로 삽입된 것들이긴 하나, 증언 기반이라는 한계로 인해 고정된 결과만을 산출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미니게임의 성패는 오히려 인터뷰의 반복을 위해 코인을 버는 용도로만 사용될 뿐, 증언의 디테일이나 결과를 극단적으로 변화시키진 못한다. 따라서 이 게임이 다루는 ‘절차’는 역시 확실한 의미 층위를 가지기 어렵다. 사실상 대부분의 ‘수사’는 게임 자체의 구조보다는 이 게임이 담지하는 인터뷰에서 (말 그대로의 수사로서) 나오기 떄문이다. 그렇다면 유사한 구분, 즉 의미가 구조를 앞지르는 게임 중에서도 구조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케이스라면 어떤 형태일까. Rayonist의 「그리프 라이크 어 스트레이 독Grief like a stray dog」를 예시로 들 수 있다. 사실상 아트 게임에 가까운 이 게임 역시 동유럽의 전쟁 시기를 다룬다. 주인공 나디아는 아버지가 전쟁에 나간 뒤, 무기력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우체부의 일을 맡는다. 이 마을의 집 대다수는 가족 중 한명이 참전한 상태인 터라 모두 긴장 상태에 있다. 그리고 나디아는 그 긴장의 트리거가 된다. 나디아가 전달하는 편지는 크게 두 종류인데, 흰 편지는 가족의 생존을 의미하지만 검은 편지는 가족의 전사를 의미한다. 편지를 전해주는 장면은 클로즈업 된 두 개의 팔로 묘사되며, 플레이어의 마우스 움직임에 따라 나디아의 손도 움직이게 된다. 보통 배달하게 되는 흰 편지는 그저 손을 움직여 상대방의 손에 편지를 쥐어주면 된다. 하지만 그 편지가 검은 편지일 때, 나디아의 손은 흰 편지 때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인다. 「그리프 라이크 어 스트레이 독」에서, 전사 통보 편지의 전달은 느린 속도로 표현된다. 이 게임에는 약 60분 정도 지속되는 짧은 서사와 그림책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아트가 있다. 하지만 게임의 코어는 바로 이 손의 움직임이다. 편지를 건네 준다는 간단한 행위가 조건에 따라 완전히 다른 움직임을 부여받는 것이다. 검은 편지를 건네 주게 될 때, 플레이어는 그 느린 팔의 움직임을 통해 나디아의 복잡한 감정을 공유받는다.물론 이 두 편지가 동시기에 공존한다는 점, 그리고 언제나 그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에서 편지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대한 제유나 다름없다. 그리고 팔의 움직임은 그 전쟁이 주는 상처와 고통에 대한 직접적인 표출이다. 물론 그러한 역학을 제외하면 게임 전체는 매우 빈약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만, 전쟁이라는 비극을 ‘플레이 가능한’ 행위로 번역하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의미와 구조가 만날 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리프 라이크 어 스트레이 독」은 전형적인 시리어스 게임이기는 하지만 의미와 구조가 융합되는 강렬한 체험을 선사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군사주의를 이탈한 비디오 게임은 (군사주의를 동원하는 비디오 게임과 마찬가지로) 절차와 수사가 거의 유사한 층위에 있을 때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이를테면, 역시 11bit Studios의「디스 워 오브 마인This war of mine」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게임은 「림 월드Rimworld」같은 전형적인 서바이벌 장르의 구조를 답습하고 있다. 플레이어가 다수의 캐릭터를 ‘관리’하며 방해되는 물건을 치우고, 필요한 재료를 수집하고,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일을 반복하며 하루하루 생존해나간다. 하지만 여기에 이 캐릭터들이 ‘전쟁에 의해 황폐화된 도시의 생존자’라는 서사 층위가 씌워진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다룰 수 있는 ‘세계 전체’는 한정적 자원의 세계로 규정된다. 즉 이 세계에서 획득 가능한 물건은 플레이어 캐릭터에게도, NPC에게도 본질적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런 와중에 플레이어는 밤마다 다른 건물에 들어가 필수적인 자원들을 챙겨와야만 생존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도시에 남겨진 다른 생존자들과 조우하는 경우가 생기며, 자원의 소유권을 놓고 경쟁하는 일도 발생한다. 때로 병든 가족 같은 사연을 가진 생존자와 조우할 때엔, 그들을 위해 의료품을 남겨올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생존을 위해 가져올 것인가 같은 도덕적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 게임의 특징은 바로 장르적 순수성에 있다. 「디스 워 오브 마인」에서 전시의 생존자라는 서사 층위를 벗겨내면 상당히 전형적인 서바이벌 장르의 구조만이 남는다. 자원의 한정성과 생존의 고통은 해당 장르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코드다. 즉 이 게임의 루두스적 구조는 매우 전형적이고 표층적인 역학을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진지한’ 층위가 이 구조를 더 강렬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구조는 반대의 사유를 가능케 한다. 전쟁이라는 사건은 인간들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가? 「디스 워 오브 마인」은 바로, 전쟁은 우리들을 서바이벌 장르의 고통스러운 세계로 밀어넣는다고 답한다. 이 사유의 과정은 전적으로 군사주의적이지 않은, 군사주의를 우회해서 작동한다. 따라서 「디스 워 오브 마인」은 비디오 게임의 장르를 경유하며 전쟁을 규정하는 흥미로운 사례가 된다. 혹은 좀 더 서사적 층위로 접근하는 Birdisland/PortaPlay의 「게르다 : 어 플레임 인 윈터Gerda A Flame in Winter」(이하 「게르다」)의 경우는 어떨까. 2차 세계 대전 당시 덴마크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이 게임은, 독특하게도 「디스코 엘리시움」과 유사한 TTRPG 스타일의 서사 중심Story-Driven 게임이다. 주인공인 게르다는 덴마크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독일/덴마크의 혼혈이다. 나치당이 마을을 점령하고 있는 1945년의 어느날, 남편인 안데르가 레지스탕스 혐의로 게쉬타포에게 체포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편을 지키고 싶어하는 게르다는 여러 사람들의 힘을 빌리려고 하며 이야기는 점점 더 복잡한 층위로 들어선다. 게임 메커닉은 장면 단위로 진행되며, 게르다는 장면 내의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나 아이템 수색을 통해 정보를 획득해나간다. 그리고 때때로 대화의 와중에 게르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두 종류의 선택지가 발생하곤 한다. 하나는 세 가지 능력치인 연민Compassion, 통찰Insight, 재치Wit 중 하나를 사용하는 선택지로, 즉시 호의적인 효과가 나지만 해당 능력치를 1 소모한다. 능력치는 각 장면이 끝난 뒤, 일기에 적을 내용에 따라 한 능력치를 1점 회복할 수 있다. 또 다른 선택지는 일종의 판정 국면이며, 대화 상대가 속한 소속과 대화 상대와의 관계도, 가지고 있는 정보를 기반으로 난이도가 결정된다. 「게르다 : 어 플레임 인 윈터」는 단순한 하나의 선택으로 급격한 관계의 증감을 경험시킨다. 흥미로운 것은 이 관계도의 증감이다. 관계도는 매 대화의 선택에 따라 즉시적으로 1씩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거의 모든 대화에 증감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번 선택의 고민은 깊어진다. 특히 각기 다른 소속의 인물들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국면인 경우에 고통은 증가한다. 양측 모두에게 호의적으로 작동하는 대답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관계도 상승을 포기하거나, 혹은 하락의 가능성을 감내해야만 한다. 이 시스템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전쟁이라는 테마를 건드린다. 하나, 이런 즉각적인 관계의 변화는 현실에 비추자면 매우 급작스럽고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대화란 본질적으로 인상을 결정하는 행위이기는 하나, 각각의 발언 또는 선택이 이후의 가능성을 훼손할 정도로 변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것은 게임의 메커닉이라고 하기에도 지나치게 과도하다. 하지만 「게르다」는 이 게임의 시기가 전시라는 사실을 통해 이 메커닉을 설득시킨다. 나치 통치의 덴마크는 극도의 분열 상태고, 독일인과 덴마크인은 서로를 의심하고 증오한다. 게르다가 일하는 진료소의 의사는 독일인은 절대로 치료할 수 없다며 거절하고, 독일인들은 모든 덴마크인을 잠재적 반동분자로 치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계도의 급격한 증감은 오히려 설득력을 낳는다. 그리고 이 메커닉과 설정은 놀랍게도 서로를 돕는다. 전시라는 배경은 메커닉을 설득시키고, 메커닉은 전쟁이 가져다주는 공동체의 균열을 설명한다. [5] 둘째, 게르다의 정체성이 분열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게르다는 덴마크에서 나고 자랐으며, 덴마크인 남편과 살고 있다. 하지만 나치당을 지지하지만 인간적인 면이 있는 게르다의 아버지, 게쉬타포의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하는 친척 등 독일인들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한편 가장 친한 친구는 게쉬타포 소속이지만 합리적인 남성인 볼프강과 연인관계이기도 하다. 이 모든 복잡한 관계는 게르다를 선택의 지점으로 몰아넣는다. 덴마크인들은 필요하다면 게르다를 독일인으로 취급하고 반대의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진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정체성을 설정하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설득해야 하지만, 남편을 구해야한다는 목적은 또 다른쪽과의 관계 역시 신경쓰도록 만든다. 결국 이러한 분열과 정체성의 혼란 역시 전쟁이라는 사건에 의해 발생한다. 이 또한 의미와 구조의 확실한 일치를 낳는다. 따라서 「게르다」는 「디스 워 오브 마인」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 「디스 워 오브 마인」이 장르적 전형을 끌어들여 ‘시리어스’를 설득시킨다면, 「게르다」는 ‘시리어스’와 ‘루두스’가 거의 동일한 역학으로 서로를 돕는다. 하지만 결국 둘 다 게임 메커닉이라는 자원을 이용해 전쟁이란 무엇인지 플레이어에게 전달한다. 동일한 면에서 흥미롭게 바라볼만한 게임이 바로 Madnetic Games의 「WW2 리빌더」다. 이 게임은 「하우스 플리퍼」 또는 「파워 워시 시뮬레이터」와 같은 청소/리노베이션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으로,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각 격전지를 원상복구하는 일을 맡는다. 플레이어의 주된 행위는 전형적인 리노베이션 게임의 그것으로, 현장에서 물건을 해체해 자원으로 만들고, 쓰레기를 치우고, 파괴된 도로를 메우거나 벽을 새로 건설하는 재생작업이다. 이 역시 「디스 워 오브 마인」과 유사한 작동을 가진다. 순수한 장르의 틀에 전쟁(정확히는 전후)이라는 서사 층위를 덧씌워서 전쟁의 감각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WW2 리빌더」에는 탈군사주의라는 맥락에서 더 깊은 효과가 발생한다. 그것은 청소/리노베이션 시뮬레이터라는 장르 자체가 가진 탈군사적인, 아니 정확히는 반군사적인 틀이다. 이 장르는 대체로 1인칭의 시점을 지니며, 플레이어는 호스의 물을 ‘쏘거나’, 해체 장비를 ‘휘둘러’ 먼지를 지우고 폐허화된 공간을 해체한다. 이 과정은 정확히 FPS와 반대의 역학이며, 사실상 거의 FPS에 대한 패러디다. 이들의 시점, UI, 조작법은 전적으로 FPS와 동일하지만 양자가 만들어내는 풍광은 정확히 반대의 것이다. FPS는 파괴하고, 시체와 폐허를 남기지만 청소/리노베이션 시뮬레이터는 정리하고, 깨끗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애초에 이 장르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비세라 클린업 디테일Viscera Cleanup Detail」부터가 가상적 전투의 뒷정리라는 컨셉이었던 것이다. 청소/리노베이션 시뮬레이션의 공간은 ‘사건’ 이전 상황을 연상하도록 설정되어 있으며, 플레이어의 역할은 그런 ‘사건’이 남긴 불쾌감을 떠안고, 장소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회복자라고 할 수 있다. 「WW2 리빌더」가 군사주의 게임의 가장 인기있는 테마인 제2차 세계대전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놀랄만치 통렬한 패러디다. 즉 이 게임의 모든 스테이지는, 그 앞에 있었을 FPS의 거대한 대전을 상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특히 각 스테이지마다 존재하는 검은 형체의 존재는 이 개념을 전면화한다. 게임의 특정 지점에 서 있는 이 검은 형체와 접촉하면, 플레이어는 잠시 전쟁 당시의 기억 공간으로 이전된다. 군수 공장의 부두라면 배가 진수하는 광경이, 폭격지라면 폭격 당시가 재생되는 식이다. 이를 통해 게임의 스테이지는 모두 전쟁이라는 역사를 가진 공간이 되며, 게임의 플레이 역시 가상화된 다크 투어가 된다. 따라서 「WW2 리빌더」는 다크 투어리즘의 게임이며 동시에 그 공간을 회복시키는 전후의 회복적 게임이 된다. 지나간 전쟁의 전장에 놓인 총을 그저 ‘고철’로 환원시킬 때, 이 게임은 군사주의와의 싸움에서 완벽히 승리한다. 「WW2 리빌더」는 전장에 남아있는 총기를 ‘고철 3개’로 표시한다. 게임은 이를 위해 주인공들에게 특정한 정체성을 부여한다. 영국의 주인공은 전쟁 중 사망한 파일럿의 동생이며, 독일의 주인공은 참전자의 아내, 프랑스의 주인공은 전쟁 중 고향이 파괴된 참전 당사자다. 이들은 모두 전쟁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무엇인가를 상실한 자들이지만, 그 증오의 소용돌이에 잠식되기 보다는 조용히 삶의 공간을 회복시키는 일에 전념한다. 「WW2 리빌더」는 테마, 서사 그리고 메커닉이 모두 일거에 작동하는 가장 전복적인 탈군사주의 게임이자 안티 FPS다. 전쟁과 절차와 수사와 죽음과 이러한 탈군사주의 비디오 게임은 어느새 확고한 자기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분량의 문제로 모두 소개하진 못했지만, 시리아 내전에서의 탈출 중인 아내와의 텔레그램 대화를 컨셉으로 삼은 「버리 미, 마이 러브Bury me, My love」, 제2차 세계대전 중 수용소에 끌려가게 된 스탈린그라드 출신의 소녀가 주인공인 「톤 어웨이Torn Away」, 나치가 부상 중인 독일에서 반나치 지하 조직을 운용하는 「쓰루 더 다키스트 오브 타임스Through The Darkest of Times」, 2차대전 후 독일인 아이를 입양한 노르웨이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My Child Lebensborn」같은 게임들은 충분히 거론될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들이다. 이 게임들은 모두 군사적 테마, 전투나 사격 등의 메커닉을 가지지 않으면서도 전쟁의 이면에서 벌어진 일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조금은 독특한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글을 정리하려 한다. LKA의 1인칭 심리 호러 어드벤처 게임인 「마사 이즈 데드Martha is Dead」는 전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명시적으로 전쟁을 다루는 게임은 아니다. 주인공 줄리아의 아버지가 독일군 소속이라는 점, 주인공들인 쌍둥이 자매와 관계가 있는 남성이 파르티잔 활동을 한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 어떠한 전쟁의 지배력도 게임에 직접적으로 투영되지 않는다. 게임은 오직 쌍둥이 동생을 잃은 한 여성의 파괴되어가는 내면을 그리는 싸이코 스릴러의 전형을 따른다. 심지어는 그 쌍둥이가 실재했는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격인지조차 불분명하게 만든다. 「마사 이즈 데드」에서 동생 마사가 죽는 순간에 하늘엔 전투기가 날아간다. 하지만 이 게임은 미묘하게 전쟁이라는 요소를 게임의 내부에 가지고 들어오려고 한다. 줄리아가 동생 마사의 시체를 발견하는 그 장면에서, 하늘에는 비행기 엔진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몇 대의 비행기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광경이 보인다. 하지만 이후 마사의 죽음과 비행기의 운용에는 그 어떠한 인과관계도 도출되지 않는다. 마사는 그 때 죽었고, 비행기는 때마침 지나간 것 뿐이다. 하지만 줄리아의 꿈에 나타난 사신은 서로 자신이 마사라고 주장하는 쌍둥이를 보고 허탈한듯 말한다. ‘전쟁 시에는 항상 누군가 죽는 거야.’라고. 「마사 이즈 데드」가 게임의 내부에 전쟁을 끌고 들어오는 방식은 모던 시네마적 역학과 유사하다. 마사의 죽음과 비행기 사이에는 전적으로 미장센의 결부가 있다. 줄리아의 심리적 파괴의 작동에는 자주 군사적인 이미지가 끼어들어온다. 남자친구의 죽음은 줄리아의 내면적 파괴로 이어지지만, 거기에는 파르티잔 활동과 독일군의 점령이라는 세계적 혼란이 어슷하게 걸쳐져있다. 이 게임을 탈군사적인 독법으로 읽는다면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볼 생각이 없거나 관심이 없는 플레이어들에겐 구태여 그런 독법이 필요 하지 않다. 이것은 뭐랄까, 앞서 말한 방법에 따른다면, 마치 구조가 의미를 앞지른 게임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 게임에서 전쟁은 전달해야할 주된 테마는 아니지만, 독법에 따라서는 전쟁과 죽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음울하고 자기파괴적인 체험을 준다. 이 긴장은 어쩌면 비디오 게임에 군사적인 이미지가 등장하면서부터 원초적으로 도사리고 있는 어떠한 힘에 의해 발생한 것 같기도 하다. 글의 시작부터 이야기 했듯, 비디오 게임과 군사주의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파트너와도 같다. 즉 게임에 전쟁의 그림자가 조금이라도 드리우는 순간, 무시무시한 존재감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마사 이즈 데드」가 전쟁을 직접 지시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전쟁의 역량은 그 안에 깊숙히 파고든다. 다른 이유가 없다. 「마사 이즈 데드」가 비디오 게임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비디오 게임에 남은 숙제는, 군사주의라는 이 난감한 파트너와 어떻게 적당한 거리를 두는가 일지도 모른다. 비디오 게임은 「이카리」로, 「듄 2」로, 「코만도스」로, 「진 삼국무쌍」으로, 그리고 더 많은 게임들로 전쟁을 낭만적 이미지와 등치시켜 왔다. 군사 테마의 쾌감이 짙을 수록, 그것에 대한 반작용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아니 당위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그것이 수오미넨이 말한 비디오 게임의 원초적 테제, 유치함, 유아성 그리고 청소년성과 결별할 어떠한 방법에 도달하는 길일 지도 모른다. [1] 《Classifying Serious Games: the G/P/S model》(Damien Djaouti, Julian Alvarez, Jean-Pierre Jessel, 2016) [2] 이를테면 「파이널 판타지 VII」은 전형적인 JRPG의 구조를 가지지만, 기술 중심주의와 환경 파괴에 대한 진지한 서사를 가진다. 이 경우 「FFVII」를 시리어스 게임이라고 규정해야 하는가는 조금 복잡한 질문을 만든다. [3] https://www.gamespot.com/reviews/my-memory-of-us-review-war-has-changed/1900-6417007/ [4] https://www.nintendolife.com/reviews/switch-eshop/my-memory-of-us [5] 흥미로운 것은 이 게임에서 독일인과 게쉬타포의 관계도는 분리되어있다. 독일인은 ‘독일인’으로, 게쉬타포들은 ‘점령군’으로 표기된다. 독일인 소속의 인물들은 본래부터 이 땅에 살던 독일인을 포함하는 개념이기에, 때로 ‘독일인’은 상승해도 ‘점령군’은 줄어드는 선택지도 발생한다. Tags: 군사주의, 욕망, 반전운동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USA in Fallout, USA today
We once thought that the era of Donald Trump had come to an end, but it appears it hasn't. While Trump may have lost the election, his supporters' enthusiasm remains robust. What fuels this enduring energy? Moreover, is the driving force behind Trump's rise aligned with traditional 'American' values or does it run counter to them? It's worth recalling that Trump's campaign slogan was 'Make America Great Again'. Yet, years later, when President Joe Biden won the election after a vigorous anti-Trump campaign, he declared his presidential message as 'America is back.' So, which vision truly represents 'America' – Trump's or Biden's? < Back USA in Fallout, USA today 14 GG Vol. 23. 10. 10. We once thought that the era of Donald Trump had come to an end, but it appears it hasn't. While Trump may have lost the election, his supporters' enthusiasm remains robust. What fuels this enduring energy? Moreover, is the driving force behind Trump's rise aligned with traditional 'American' values or does it run counter to them? It's worth recalling that Trump's campaign slogan was 'Make America Great Again'. Yet, years later, when President Joe Biden won the election after a vigorous anti-Trump campaign, he declared his presidential message as 'America is back.' So, which vision truly represents 'America' – Trump's or Biden's? The Fallout game series also raises questions about 'what is the USA', although it's unclear whether this was the developers' precise intention. Let's consider the New California Republic (NCR) as an example, the epicentre of the Fallout world. NCR is a nation rebuilt by the power of its people from the ashes of destruction and appears to serves as a metaphor for how Americans perceive their nation's founding narrative – the USA that was built by the people, on the lands that European settlers deemed as 'uninhabited'. Furthermore, NCR represents a highly advanced civilisation with a touch of snobbism and expansionism, yet an attempt to avoid excessive conflicts with the outside world. This mirrors the historical fact that the USA, while aspiring to become a global power/player, maintained an isolationist foreign policy for a significant period before World War II. The protagonists in the Fallout series are typically residents of the vaults . For instance, in Fallout 1 and Fallout 2 , the protagonists have close ties to and support the NCR or its preceeding entities. These protagonists emerge from the vault that preserves remnants of the 'old world' and in the game, for the first time, encounter the 'new world' outside in a state of ruin. This reminds me of historical events when the European settlers from the 'civilised' world initially set foot in the 'barbaric' new world in ruin, seeking to establish colonies. As its name suggests, the New California Republic (NCR) establishes itself in the west, pushing into the wasteland, which notably evokes memories of the 'Western frontier'. America's westward expansion was driven by heightened nationalism under the leadership of Andrew Jackson and, in the process, resulted in significant conflicts and the destruction of native peoples and their cultures. This parallels the situations that gamers encounter through the various factions' conflict for control of the Hoover Dam in Fallout: New Vegas . Caesar’s Legion, an antagonistic faction in Fallout: New Vegas , consistently asserts authoritarian control over its territory. This reflects how colonist might have appeared from the perspective of indigenous people during the westward expansion. Historical accounts reveal that Native Americans resisted this expansion by forming alliances with or receiving military support from, British or French troops stationed in the region. In the context of the modern-day United States, Caesar’s Legion seems to draw inspiration from extremist groups like the Islamic State (IS) – also known as the 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 (ISIS). However, it's a well-known fact that modern Islamic extremists have their roots in military groups formed during the Cold War, in response to the imperialistic expansion of both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This parallel is mirrored in the game Fallout , where Caesar, the leader of Caesar’s Legion, was formerly associated with the 'Followers of the Apocalypse', a humanitarian and intellectual medical group. In a way, Caesar’s Legion can be seen as an anti-civilisational phenomenon born out of the frustrations with a failing civilisation. When players confront Caesar’s Legion in the game, they are also confronted with the historical ironies that the USA faces in its own history. The Enclave, a villainous group that appears in both Fallout 2 and Fallout 3 , serves as a significant element prompting questions about the ‘truly American'. To settlers, the Enclave represents an 'old world' power aiming to dominate the wasteland by controlling knowledge and employing force, with their actual power centre concealed in a distant location. This scenario bears resemblance to how historical Great Britain might have been perceived by the colonists in America across the Atlantic before the American Revolutionary War. Interestingly, the vault residents, despite sharing similar cultural and societal norms, opt to coexist with the wasteland and resist the Enclave. This mirrors the stance of the colonial intellectual class that led the War of Independence against Britain. Yet, there’s one crucial factor that I must point out. Historically, the dominant conflict within American political society during westward expansion revolved around the clash between the ‘old world’ and the ‘new world’, with the old world associated with power, knowledge, and the clerical system. For instance, America's evangelical church, which gained popularity during the Great Awakening, found itself in conflict with the established colonial clergy and intellectual elite. The evangelical doctrine of the time, which permitted ordinary worshipers to serve as preachers, obviously challenged the traditional churches of the 'old world'. From the evangelical perspective, these established churches were perceived as mere institutions that monopolised knowledge, power, and divinity. Coming from this historical trace, Richard Hofstadter once noted that American anti-intellectualism can trace its roots to a deep-seated antipathy toward knowledge and power, creating a point of convergence between anti-intellectualism and democracy. Within this context, we can interpret the vault residents as symbolic representations of colonial elites who have a favourable disposition towards the wasteland but can never truly become a part of the wasteland. This dynamic helps explain the ambivalent feelings that Fallout players have towards the Brotherhood of Steel (Brotherhood), another faction aiming to monopolise intellectual and military resources in the post-apocalyptic new worl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wasteland's inhabitants, the Brotherhood appears as nothing more than elite exploiters who make oaths of 'good faith', reminiscent of how settler communities may have perceived colonial intellectuals and clergy that misuse power. This narrative framework forces the players, empathising with the vault residents, to feel both sympathetic and rebellious against the Brotherhood. Fallout 4 sought to encapsulate these recurrent historical themes within the USA more condensedly and comprehensively. The game leveraged the spatial characteristics of the game’s New England region as a narrative instrument to reincarnate the early US history. The game's protagonist, who retains memories of the era preceding the Great War (translator's note: a fictional conflict in the Fallout series, posited to have occurred between the USA and China, culminating in a nuclear apocalypse), also serves as a bridge for players to engage with the game's narrative and the history. In Fallout 4 , players can construct and establish settlements, akin to the initial settlers who migrated to the American continent. Here, the Commonwealth Minutemen, one of the in-game factions that the protagonist first encounters in the game, play a pivotal role in bridging the historical context. Within this framework, the history of the US is portrayed as having begun sometime when patriots organised a militia for the nation’s independence. It is this thematic backdrop that explains the game design elements of small-scale city-building simulations in Fallout 4 . Moreover, in Fallout 4 , the Institute (translator’s note: one of the factions in Fallout 4) appears to allude to a period in history marked by the confluence of anti-intellectualism and anti-communism, known as McCarthyism in the US. The game's aesthetics are notably influenced by the country's post-war culture of the 1950s – the very essence of the Fallout universe aesthetics – which vividly encapsulates the era of McCarthyism. US scholars have attributed that rise of McCarthyism in the US to a series of political events, including the Soviet Union's successful nuclear test, China's expansion of communism, and the stalemate situation of the Korean War. These incidents compelled Americans to perceive a formidable ‘outside threats’ beyond their reach, subsequently prompting the US populace to embrace McCarthyism as a means of countering this perceived menace from within. In essence, McCarthyism aligns with a recurring historical pattern in the US, characterised by public apprehension in the face of power struggles, conflicts between old-world and new-world elites, and tensions involving intellectuals. This explains the in-game characters' reactions to the Institute in Fallout 4 . For example, we can observe the hostile responses of Fallout 4 characters toward "synths", the artificial humanoids produced by the Institute. They exhibit a deep-seated fear of synths, often calling them the 'boogeyman', and engage in witch hunts to locate and expose these synths. This behaviour fundamentally mirrors the way McCarthyism indiscriminately labelled intellectuals, government officials, and artists as 'communists' without any substantiated rationale. Another intriguing aspect of the story is the presence of a counteracting faction in the game, an underground movement that defines synths as oppressed beings and strives to liberate sentient synths from their creators. This faction, known as The Railroad, strikingly resembles a historical phenomenon, a covert network called the Underground Railroad, which aided the escape of black slaves from the South to free states in the North. By contextualising the game's narrative within the historical backdrop of the US, the synths first mirror the unjustly accused victims who were branded as 'communists' during McCarthyism. Simultaneously, they symbolise the oppressed history of ethnic minorities facing racial discrimination. The plot takes an intriguing turn as it becomes clear that the Institute's objective, mobilising synths, was ultimately aimed at the reconstruction of the world. It's worth revisiting that the Institute bears resemblances to communism in the historical context of McCarthyism. Throughout history communism underwent significant trial and error, resulting in substantial civilian casualties. However, even if one is compelled to acknowledge that communism represented an effort to address prevailing issues, the question arises: What might occur if the US were to embrace certain elements of communist ideology in the present day? Or, what if the US society were to recognise the social and economic value of immigrants (the synths) as an essential component for global stability? Furthermore, these same questions can be posed from an entirely opposite perspective, considering the metaphorical resemblance of synths to both 'communists' and 'slaves'. For instance, if we were to perceive the rise of Trumpism and the Bush administration's invasion of Iraq as attempts to resolve inherent prevailing issues in America, and strive for a better world, where do we go from there? Fallout: New Vegas and Fallout 4 give players multiple decision-making scenarios in this ‘where do we go from there?’ situation. Players can either opt to align themselves with a particular faction introduced in the storyline, aiming to undermine or annihilate their adversaries, or they can forge their own group. The commonly perceived 'true ending' of the game unfolds when the protagonist embarks on a journey, envisioning a new future shaped by human hands. Nevertheless, whether this path truly represents the best choice among the available options remains a matter of uncertainty. But regardless of the option the player decides to choose, the game's outcome often serves as a reflection of certain episodes from US history, as previously discussed. The ongoing political struggle in the US, exemplified by the conflict between the Trump and Biden administrations, therefore, can be seen as another iteration of the US’s historical pattern. Biden brings Trump, and Trump brings Biden – a cycle of perpetual conflict. The fictional world of Fallout emerges as a consequence of ‘resetting’ these recurring conflicts followed by the massive destruction. Yet, the humanity still hurtling down to the path of self-destruction through warfare. However, even within what may appear to be an endless cycle, one can choose to explore uncharted territories, akin to the Yes Men in Fallout: New Vegas or the Commonwealth Minutemen in Fallout 4 . Just as the American Revolutionary War once emerged, all these elements contribute to the complex tapestry of the US as what it is. Perhaps it is the reminiscent of Fallout 's timeless slogan, "War never changes". Tags: fallout3, projectpurity, GECK, fukushima, radioactive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Columnist) Minha Kim Kim is known for his activities as a critical expert on current affairs in various press media. But he is also an active gamer who never let go of games. Some of his publications includes 『a cynical society』, 『Otaku Loved Lenin』, as well as a co-author of 『Now, Here, Far-Rightism』, 『right-wing discontent』, 『Twitter, that 140-character egalitarianism』. His latest publication is 『Democracy where you vote because you don't like that side』.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 게임제너레이션::필자::구윤지
유미주의자이지만 항상 카니발적 그로테스크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타이쿤류의 게임들을 좋아해서 척추가 망가졌다. 게임이든 뭐든 궁금한건 못 참아서 빠르게 엔딩을 보고 자주 새로 시작한다. 구윤지 구윤지 유미주의자이지만 항상 카니발적 그로테스크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타이쿤류의 게임들을 좋아해서 척추가 망가졌다. 게임이든 뭐든 궁금한건 못 참아서 빠르게 엔딩을 보고 자주 새로 시작한다. Read More 버튼 읽기 〈Deluded Reality (망상 현실)〉: ‘통로’를 지나 풀 다이브(full-dive) 필자는 지난 호에서도 큐레이터 동료가 언급한 바 있는 전시, 《MODS》(2021, 합정지구, 서울)에서 장진승 작가와 프로젝트 ‘SYNC’를 진행했었다.1) 전시를 위한 이 프로젝트는 작가와 서로 관심이 있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작되었는데, 우리의 대화는 동시대 시뮬레이션 비디오게임 플레이어의 자율성, 몰입도로 초점이 맞춰졌다.
- 게임회사는 NFT의 꿈을 꾸는가 : ‘튤립’과 ‘국민템’ 사이에서
새로움은 한계가 눈에 보일 때 도드라진다.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는 배경에는 그 시도가 만들 새로운 결과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그러한 새로움을 필요로 하는 현재에 대한 불만이 함께 놓여있다. 이를 생각하면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떤 변화를 의도하는가와 더불어 그 변화가 왜 필요한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는 지금의 위치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나아갈 위치가 어디쯤일지 더 분명하게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 Back 게임회사는 NFT의 꿈을 꾸는가 : ‘튤립’과 ‘국민템’ 사이에서 05 GG Vol. 22. 4. 10. NFT, 현상인가 징후인가? 새로움은 한계가 눈에 보일 때 도드라진다.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는 배경에는 그 시도가 만들 새로운 결과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그러한 새로움을 필요로 하는 현재에 대한 불만이 함께 놓여있다. 이를 생각하면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떤 변화를 의도하는가와 더불어 그 변화가 왜 필요한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는 지금의 위치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나아갈 위치가 어디쯤일지 더 분명하게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블록체인을 접목한 게임에 대한 논의는 현재보다는 미래에 대한 논의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연관된 주제인 ‘P2E’나 ‘NFT’등에 대해서도 현재보다는 미래, 그중에서도 그동안 시도된 사례나 앞으로의 구상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무언가 빠진 것 같으면서도 일련의 다양한 시도들이 종횡무진 펼쳐진 다음 지속되는 것들이 다음 패러다임을 이루게 될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일단 결과에 대한 검증보다는 가능성의 좌표를 최대한 넓히는 과정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게임에서의 NFT를 사회적인 관점과 기술적인 관점으로 헤아리고자 한다. 대체불가능성과 탈중앙화를 중심으로 게임의 현재와 NFT를 통해 제기되는 미래상을 연결하면서, 연관된 기술적 과제는 무엇인지, 이러한 시도가 게임에 남기게 될 의미는 무엇일지 가늠하고자 한다. 대체불가능성의 여러 맥락 ‘대체불가능한 토큰(Non Fungiable Token)’이라는 뜻의 ‘NFT’는 기술적 맥락보다는 ‘고유성이 강력히 보장되는’ 소유권이 강조된 가상자산의 맥락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짙다. 이로 인해 ‘대체불가능한’이라는 속성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것을 전제로 두고 그것의 가치가 어느 정도일 수 있을지, 어떻게 활용할지 등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둔다. 한국 현행법상 아직까지 게임 서비스에 NFT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해서, 활용에 대한 논의가 실질적으로 실현되기까지 여러 제약과 시간이 따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도입하게 되면 초기비용이 큰 가상자산에 비해 게임은 조금 더 수월하게 가상자산에 접근하는 경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게임이 수월한 경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어느 정도 부담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게이머는 게임의 팬이 되는 경우가 많고 팬에게 블록체인에 접근하는 비용은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블록체인들에게 게임과 블록체인을 접목하는 시도의 계기를 제공한 〈크립토키티(CryptoKitties)〉의 사례를 주목할 만하다. 게임 내 거래를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을 통해서만 결제하게 한 이 게임은 희귀한 고양이를 만들수록 비싼 금액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이 게임의 재미는 어디에서 발생했을까? 희귀한 고양이를 만드는 과정일까? 아니면 고양이가 희귀할수록 금액이 치솟는 과정일까? 고양이에게서 느끼는 귀여움, 그리고 고양이를 수집하고 교배하는 과정이 이 게임의 속성으로 제시되지만, 게임 바깥에서 활용될 수 있는 화폐가 결합되었기 때문에 게임의 온전히 기본적인 재미만이 발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이 게임에서 희귀한 고양이를 만든 상황을 가정해보는 것으로 좀 더 살펴볼 수 있다. 만일 수집과 교배를 통해 희귀한 고양이를 얻는 데 성공했다면, 그것이 즐거운 이유는 무엇일까? 나만의 캐릭터를 얻었다는 만족일까, 아니면 높은 금액으로 거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일까. 아마 이 두 가지 모두일 것이다. 실제로 거래할 생각이 없더라도 캐릭터에 평가되는 높은 금액은 소장하는 만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미는 기존 온라인 게임에서 경험하던 만족과 닮은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관건은 NFT를 통해 새로워질 수 있는 측면이 무엇이냐일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게임회사와 게이머의 관점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대체불가능성에 대한 상반된 관점 먼저 게임회사는 NFT를 도입하는 것이 게임의 재미와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어떤 변화를 계획하는지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나인크로니클 (Nine Chronicles)〉과 같은 게임이 모든 로직과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올려 탈중앙화함으로써 블록체인의 특성을 게임에 전면적으로 적용한 사례도 분명 있지만, “왜 블록체인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실행하면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러한 경향은 비즈니스 모델에서도 드러나는데, 현재 가장 유효한 비즈니스 모델은 아이템을 미리 판매하는 것이며, 이는 블록체인만의 특징을 활용했다기보다는 기존의 모델에 블록체인을 접목한 것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게임에 가상자산을 접목하는 개연성이 선명하지 않다. 플랫폼의 수수료나 이용자 간의 거래를 회사가 직접 중개할 수 없는 법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의도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제시된 아이디어 대부분이 게임에 블록체인을 접목하는 것보다는 게임회사가 직접 발행한 가상자산을 화폐로 사용하면서 그 과정은 게임회사가 완전히 통제하려는 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게임회사의 NFT가 (아직) 상품으로서의 가치에 치중해 있다면 게이머들에게 NFT는 상반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투자상품으로서의 게임 아이템이고, 다른 하나는 (게임 서비스가 종료되어도 남아 있는) 소장품으로서의 게임 아이템이다. 후자를 주목할 만한데, 서비스 중심으로 운영되는 게임이 종료될 경우 게임이 서비스되는 동안 게이머들이 게임에서 소비한 시간과 재화가 함께 소멸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동안 게이머가 직접 남긴 스크린샷 외에 이용자가 게임에 대해 느끼는 가치를 기록으로 남길 방법이 뚜렷하게 없는 상태에서 NFT는 게임에 대한 고유한 기록을 남기는 방법의 새로운 유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NFT는 ‘애정’의 차원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기존에 존재하는 게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여러 방법들 외에 새로운 표현 경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대체불가능성’은 게임에 대한 애정, 팬심을 뚜렷하게 각인한다는 맥락으로 사용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정말 대체 불가능함을 달성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게임에 대한 애정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용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서버 종료를 통해 이루어지는 온라인 게임의 결말을 경험하면서 이용자들은 플레이하는 동안 충분히 누리고 즐기는 것으로 게임의 영속성에 대한 나름의 감각을 체득했다. 서버 종료가 되면 그것이 사라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과금을 하는 것에는 영속성에 대한 기대보다는 현재의 만족을 지향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서버 종료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기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여전히 게이머에게는 위험 요소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NFT는 소멸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면서도 게임에 대한 애정을 가장 뚜렷하게 입증하는 기록이 될 수 있다. 탈중앙화를 둘러싼 배경과 맥락 대체불가능성과 관련하여 현재 블록체인이 보장하는 것은 데이터이다. 작업증명(PoW)이나 용량 제한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관련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현재로서 게임의 모든 체계를 블록체인에 올리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게임 자체는 블록체인의 바깥인 아웃체인에 두고 게임회사가 게임을 관리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게임 서비스가 사라지고 아이템을 소유했다는 데이터가 남게 된다. 데이터가 있기는 한데 활용할 수는 없으니 대체불가능성이 덜 유효해진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데이터를 추가할 수 있지만 그럴수록 블록체인에 담을 수 있는 게임 데이터의 양은 줄어들고 비용은 커진다. 게임의 콘텐츠가 줄어들고 이용자의 활동을 기록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 게임을 플레이하기 힘들어지기도 할 것이다. 한편으로 전력 문제나 거래 비용, 거래시간과 같이 현재 블록체인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 시도되고 있는 방법들은 증명을 위임하는 등 효율화를 추구하면서 블록체인이 지향하는 탈중앙화에 배치되는 경향이 있다. 현재 많은 블록체인 거래들이 실제로는 거래소 중심으로 일어나서 블록체인이 지향하고 있는 탈중앙화와는 거리가 있기도 하다. 모든 것을 통제하는 중앙화된 방식을 게임회사가 의도한 것이라면 그것이 굳이 블록체인일 필요는 없다. 지금의 시스템에서 데이터와 아이템의 가치를 보장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아닌 기존의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는 것이 속도와 비용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기도 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개연성이 크게 보이지 않는 게임은 블록체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표방하더라도 법과 수수료를 피하기 위해 보장할 수 없는 가치를 보장한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기만행위라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임의 탈중앙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시도는 게임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중앙서버를 두지 않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게임회사와 이용자 관계의 새로운 전환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기존 게임에서 중앙화된 서버를 중심으로 게임회사와 이용자의 관계가 형성되었다면, 탈중앙화된 게임에서는 게임회사와 이용자의 관계가 보다 수평적이고 개방적으로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성립될 경우, 게임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과 수익모델 등에 두루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캐릭터의 ‘성장’과 ‘우위’를 지향하면서 발생한 기존 게임의 문제들이 ‘탈중앙화된 관계’를 지향하는 게임에서는 해소되거나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과 저것 사이 혹은 너머의 그것 게임에서의 NFT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나가게 될까. 다음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것보다는, 새로운 시도와 지금까지의 경험이 서로 병합되거나 절충되면서 확장되된 형태의 결과를 만들 가능성을 고려해볼 수 있다. 먼저 앞서 지적한 블록체인의 문제를 기술의 발전을 통해 해결할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블록체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작업증명(PoW)에 지나치게 많은 전력량을 사용한다는 것인데, 요즘은 이 방법을 채택하지 않는 블록체인 기술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블록체인이 새롭게 이 방법을 채택할 가능성은 낮지만 대체불가능성과 탈중앙화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의 기술적 대안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법과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원하는 게임회사의 욕망을 블록체인에 담으려는 것은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게임 속 화폐와 실제 화폐가 연계된다는 아이디어가 새롭진 않다. 이를 되짚어 생각해보면 게임 속 화폐가 실제 화폐와 연계되지 않아 온 이유가 있는 것이다. 블록체인이 새롭다고 해서 연계될 수 없는 이유를 단번에 뛰어넘을 수는 없다. 만일 특히 거래 시스템에서 블록체인 활용도가 높아진다면 그 방식은 기존 시스템에 블록체인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방식일 것이다. 자연히 가상자산과 실제 화폐의 연계는 기존의 법안을 충족시키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질 것이 요청된다. 게임 회사와 이용자의 새로운 소통 면에서도 블록체인 활용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이브 온라인(EVE Online)〉의 사례를 짚어 볼 만하다. 게임을 서비스하는 CCP 게임즈는 해마다 ‘이브 팬 페스트’를 개최한다. 이브 온라인 이용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데, 부대행사 중 ‘플레이어 프레젠테이션’은 신청한 게이머에게 40분의 프리젠테이션 기회 또는 원탁회의 주관 기회를 제공한다. 이 게임은 전 세계 단일 서버로 운영되어서 이용자들의 참여가 중요한데, 이 행사에서 여러 가지 정치적인 관계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게임회사가 이용자들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다양한 장을 만들고 또 실제로 그 의견을 수용해 게임에 반영함으로써 이용자의 피드백이 게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게임회사가 의사결정을 주도하여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블록체인은 이 과정에서 게이머의 의견을 기록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며, 의사소통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서비스가 오래 지속될 경우 게임회사와 이용자 사이의 의사소통 아카이브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뢰가 낮아진 게임과 이용자 간의 관계를 블록체인으로 보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게임 안에서 생성되는 아이템에 대한 기록을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이용자들이 누구나 블록체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면 확률 문제 등을 검증할 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와 문제가 제기되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신뢰와 깊이 연관된다면, 신뢰를 회복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의 토대 위에서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게임회사가 NFT를 통해 꾸는 꿈은 무엇인가? 다가올 미래를 암시하는 징후인가, 현재의 한계가 중첩된 현상인가? 분명한 것은 그것이 현상인지 징후인지 확인하기 위해 성큼 나아가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발걸음이 어떤 자취를 남기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발걸음의 경로와 좌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출발점을 중심으로 한 지형을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좌표를 확장하는 앞으로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면서 그동안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은 질문들을 살펴야 한다. “게임의 목적이 재미 추구가 아닌 다른 것이 될 때 그것을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부터 말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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