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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우스워싱>: 노스탤지어가 흐물거릴 때

    자본주의적 체인 안에서 상품이 개별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은 세세하게 분할되어 실체는 추상적인 절차로 파편화되고 프로세스는 우연적인 집합에 불과할 때, 블랙 박스 속 물건을 통해 주권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지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 Back <마우스워싱>: 노스탤지어가 흐물거릴 때 21 GG Vol. 24. 12. 10. -이 글에는 <마우스워싱>에 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노스탤지어적 로우 폴리곤 역사학자인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는 저서인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에서 다양한 시대와 형태의 노스탤지어를 소개한다. 디즈니의 영화 리부트나 N64와 같은 1990년대의 미디어가 2020년대에 각광받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아널드포스터는 세대론적 관점을 제시한다. 2020년대 초반에 성년이 된 사람들이 1990년대에 태어났으며, 이 시기는 또한 “21세기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모든 것이 나오기 전의 마지막 시기”라는 설명이다 [1] . 실제로 itch.io와 같은 인디 플랫폼에 제출된 로우 폴리곤 기반의 게임들, N64나 PS1을 키워드로 게임의 제작자와 향유자는 노스탤지어를 적잖이 인용한다. 그러므로 이들 90년대생이 유년기에 향유하던 게임의 추억을 현재로 데려오고자 하는 시도로써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관점이 그렇게까지 이상한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이런 양식의 게임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배경으로는 제작에서의 이점을 간과할 수 없다. 호러 인디 게임 컴필레이션 을 엮은 브레오간 해케트는 90년대의 저해상도 3D로 게임을 제작하는 동기로 접근성을 언급한다. “텍스처에 4K 해상도가 필요하지 않고 캐릭터 모델이 수천 개가 아닌 수십 개의 폴리곤으로 계산될 때 솔로 크리에이터가 3D로 전환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이다 [2] . 그렇게 빚어낸 이미지는 AAA 게임과 직관적인 차이를 구획하고, 와 같은 작품이 드러내듯 아예 스스로를 실패작으로, 인디한 것으로 천명하며 등장하기도 한다 [3] . 무엇보다도 이런 종류의 기하학적인 신체와 저해상도 텍스처가 지속적으로 향유되는 데에는 특유의 매력이 있을 것이다. 3D로의 이행은 명백히 기술적 한계에 직면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평면적이면서도 블록 같은 질감은 투박하지만 분명 구체적인 신체성을 지닌 무엇이다. 그 위에 기입된 엉성한 텍스쳐는 계속해서 미끄러지므로 인식의 혼란을 초래하며 불안을 자아낸다. “때때로 게임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하는 이러한 그래픽은 따라서 호러 장르와 밀접하게 얽히게 된다. 이렇게 레트로 호러 게임이 향유되는 동기를 살펴봤을 때, 지난 9월에 출시된 심리 호러 어드벤처 게임인 <마우스워싱Mouthwashing>은 설명에 모범적으로 들어맞는 사례처럼 읽힌다. 롱 올간Wrong Organ 스튜디오의 멤버들은 스웨덴 게임 개발 교육 기관에서 만나 팀을 이뤘다. 거기서 그들은 전작인 <하우 피쉬 이즈 메이드How Fish is Made>를 완성했고, 확장팩에서 후속작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마우스워싱>의 핵심 인물인 ‘컬리’는 이 게임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아이코닉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그가 운행하던 우주선 ‘툴파르’ 호는 천체와 충돌하는 사고를 겪게 되는데, 폭발은 컬리의 전신을 강타하며 흔적을 아로새겼다. 작중에서 컬리는 사지와 눈꺼풀을 잃고 극심한 화상으로 인해 신음한다. 게임의 1인칭의 카메라는 플레이어블 아바타와 플레이어의 시점을 융합시키며 가상의 신체로부터 비롯되는 감각을 끊임없이 의식하게 한다. 격통이 화면 너머 플레이어에게 전달되지는 않기에 끔찍한 몸에 접속했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특별한 감각을 일깨우지는 않는다. 그보다 더 두드러지는 공포는 가상의 육신 내외부에서 일어나는 붕괴와 결합에서 파생된다. 어떤 퀘스트는 컬리의 살을 자르고 섭취할 것을 종용한다. 딱딱한 플라스틱 덩어리나 다름없어 보이는 저화질의 벌건 살은 가상의 신체가 언제든 인접한 다른 환경으로 무너져 내릴 가능성을 자극한다. 9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며 “21세기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모든 것이 나오기 전의 마지막 시기”를 향유한다는 게이머 노스탤지어에 관한 설명은 “추억 소환 섹션”에 놓여 있는 대상에 한정한다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4] . <마우스워싱>은 로우 폴리곤이라는 장치가 범연히 1990년대적인 것의 부흥이라고 설명한 바와 다소간의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상상적으로 구현된 미디어적 참조는 현재적으로 “풍부한 시청각적 라이브러리를 구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5] . <마우스워싱>이 엮어내는 영상 소스(뤼미에르 형제의 <유쾌한 해골>부터 1950년대 반공주의 프로파간다 애니메이션인 을 거쳐 가글액의 광고 화면으로 이어진다)는 로우 폴리곤이 표방하는 1990년대 게임 하드웨어 이전의 시기까지 소급해 가며 현재화를 시도한다. 주권성에 대한 노스탤지어 노스탤지어로 상상되는 과거는 현재를 인식하는 방식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노스탤지어는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시간에 속한 순간들”에서 촉발되는데, 결국 “현재 우리가 보유한 가치나 윤리, 자기감에 더욱 부합하게끔 정보를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6] . 이 지점에서 90년대와 지금 사이의 연속성을 되짚어보게 된다. <마우스워싱>의 내러티브가 디디고 있는 역사적 토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과 밀접하다. 80~9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를 통해 구현된 신자유주의는 “사사화privatiation와 개인의 책임”을 핵심으로 한다. “부와 의사 결정이 대중과 어느 정도 책임을 지는 정책 결정 기구에서, 개인이나 기업과 같은 책임지지 않는 자들의 손으로 넘어” 가는 것이다 [7] . 그 결과 구조 조정과 노동유연화, 고용 불안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풍경이 삶을 위협하기에 이른다. <마우스워싱> 속 툴파르 호는 마지막으로 남은 유인 우주 화물 서비스를 전문 기업인 포니 익스프레스의 소속이다. 열악한 근무 조건 속에서 승무원들이 화물을 운반하는 와중에 툴파르 호가 소행성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부함장인 ‘지미’는 구조가 올 때까지 다른 동료들을 책임지고 건사하고자 한다. 한편 비선형적으로 이어지는 게임의 내러티브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사고의 전후를 퍼즐처럼 재구성하도록 요청한다. 작중에서 상기의 영상 콜라주는 한 장의 메일을 트리거삼아 재생된다. 그 메일이란, 본사는 이번 배송을 완료한 후에 툴파르 호의 인원이 전원 해고될 것이며 포니 익스프레스의 서비스가 무인 체제로 전환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컬리가 함장의 자격으로 그 메일을 수신하는 장면은 잠시 중지되고, 구시대의 애니메이션들이 흘러나오며 경제적 주체로서의 가장과 같은 자본주의의 유익한 삶을 역설한다. 이미지의 잡동사니가 멎은 자리에는 끄트머리가 꺾여버린 사다리들이 놓여 있다. 사다리는 컬리가 지미와 나누었던 대화를 환기하는 요소다. 컬리 : ...최근 이런 생각을 좀 해 봤어. 이걸로 충분한 건가? 지금까지 잘해 왔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이대로 살아도 되나? 좋은 장거리 화물선 함장으로 말이야. 지미 : 그게 안 좋은 건가요? 컬리 : 내가 하려는 말이 바로 그거야. 안 좋지는 않아. 하지만... 아주 무서운 일이지. 이런 생각이 들어. “이게 내 최선인가? 앞으로도 평생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 … 지미 : 이 사다리의 꼭대기에 올랐는데... 애초에 잘못된 사다리를 오른 건 아닐까 생각하신다는 거죠. 그래도 어떤 관점에서 보든, 한참 위까지 올라가셨잖아요. ...전 아직도 그 사다리를 끝없이 오르고 있는데 말이죠. 『잔인한 낙관』을 저술한 로런 벌랜트는 신자유주의 문화에서 ‘좋은 삶’이라는 환상을 구성하는 애착심에 관해 이야기한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위험하고 불안정한 삶 속에서 우리는 소진되거나 마모되면서도, 더 좋은 삶이라는 환상에 애착을 품는다.“잔인한 낙관은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대상에 애착심을 유지하는 상태”이며 또한 “우리에게 ‘좋은 삶’이라고 호명하는 대상에 대한 정동적 애착심 속에 기거하면서 ‘좋은 삶’을 살펴보게 하는 자극제”이기도 하다 [8] . 위의 대사에서 컬리는 지금껏 유지해 왔던 삶의 형식이 어느 정도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는 정황을 감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벌랜트 식으로 표현하자면 마모된 주체인 그는 ‘좋은 장거리 화물선 함장’이 주는 낙관이 불능에 처했음을 미묘한 어휘로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허무감을 공유받는 지미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사다리의 ‘한참 위’에 있기에 가능한 토로라고 일축한다. 그러므로 사고 이후 임시 함장이 된 지미는 지속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되뇌며, 부상으로 불능 상태가 된 컬리를 대신하려 한다. 지미는 선원들의 안위와 툴파르 호의 위기를 책임지려 한다. 더 나아가서 이 위기를 성공적으로 수습함으로써 불안정한 고용 상태를 다시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도 한다. 지미는 생존 물품을 찾아보기 위해 운송 창고 개방을 결단한다. 창고를 개방할 수 있는 열쇠는 함장만이 소지 가능하다. 그가 의기양양하게 휘두른 주권은 곧 미끄러진다. 영상의 콜라주로 이어진 시퀀스가 종료되면 마침내 플레이어는 창고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 내용물은 생존에는 하등 쓸모없는 가글액에 불과하다. 이 가글액은 포니 익스프레스가 직접 생산하지 않은 물건일뿐더러 1950년대의 애니메이션과 병치된 광고 형식은 시대착오적이다. 요컨대 목전으로 닥친 자동화와 무인화의 미래를 절대 극복해 주지 못할 물건이다. 자본주의적 체인 안에서 상품이 개별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은 세세하게 분할되어 실체는 추상적인 절차로 파편화되고 프로세스는 우연적인 집합에 불과할 때, 블랙 박스 속 물건을 통해 주권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지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그는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 함선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주권성이란 객관적 상태라고 오인된 환상”으로 “개인적, 제도적 자기 정당화의 수행성을 열망하는 입장이며, 그 입장이 안전과 능률성을 제공한다는 환상과의 관계 속에서 통제권을 갖는다는 정동적 느낌”이다 [9] . 일반적으로 법에서는 주체를 행위하고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로 상정한다. 이는 범박한 의미에서의 게임이 플레이어의 개입을 통해 상호작용 하는 미디어로 정의된다는 지점을 환기한다. 지미의 행위를 견인하는 동기는 플레이어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로우 폴리곤 아바타를 꾸역꾸역 붙들고 있는 이유와도 일치한다. 툴파르 호와 승무원을 건사하는 것이다. <마우스워싱>의 게임 플레이는 정해진 루트를 따라 나가는 일방적인 워킹 시뮬레이터식 진행에 가깝다. 이 같은 구성은 전권을 휘두르는 주권성으로부터 비껴 나간다. 사고 당시를 재연하는 프롤로그는 이어질 전개의 메타포다. 소행성이 눈앞으로 들이닥치는 가운데, 조종간을 오른쪽으로 돌리라는 경고문이 주어지지만 플레이어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오직 왼쪽으로 꺾는 일뿐이다. 여기서 주권성은 실패한 선택지를 고르는 데에 발휘된다. 그렇게 지미는 툴파르 호를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고, 플레이어는 지미의 ‘업보’를 책임지지 못한다. 1인칭 카메라를 활용한 시점 트릭은 여태껏 플레이어가 불완전한 책임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그렇게 플레이어는 시점으로부터 미끄러져 나가며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마우스워싱>은 노스탤지어적 장치를 활용하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짤막한 역사적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있다. 잔인한 낙관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구현해 내는 것은 <마우스워싱>의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다. 모든 관계가 파탄 난 상황 속에서 지미는 부상당한 컬리를 수면 장치에 밀어 넣는다. 비록 컬리는 망가진 신체와 고통으로 잠 못 드는 신세임에도 일단 수십 년간 냉동 수면 상태에 있다 보면 언젠가는 구조되리라는 일방적인 기대에 내걸린다. 훗날 컬리가 어색하게 눈을 떴을 때, 그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1]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손성화 역.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 서울: 어크로스. 2024. 273쪽. [2] Natalie Clayton, “The horror games harking back to the PSone era”, 2019.10.31.등록, 2024.11.05.접속, WhyNowGaming, [3] 이 게임은 닌텐도 64를 위한 게임을 “야심넘치게 개발하다가 프로젝트를 폐기할 위기”에 놓인 일련의 이야기로 소개된다. https://l4ndo.itch.io/abandoned-64 [4]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273쪽. [5] Natalie Clayton, 위의 글. [6]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15쪽. [7] 리사 두건. 한우리·홍보람 역. 『평등의 몰락-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가』. 현실문화. 2017. 57쪽. [8] 로런 벌랜트. 윤조원·박미선 역. 『잔인한 낙관』. 서울: 후마니타스. 2024. 48·55쪽. [9] 로런 벌랜트. 184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자기 소개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데스티니2를 오래 즐겨왔고, 다음 작인 마라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익숙한 게임이 주는 재미와 낯선 경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보려 고민하고 있습니다.

  • 예술이 되기 전에, 현실의 주인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오로지 게임애호가일 뿐인 입장에서 게임과 예술에 대해 생각하면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외침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다들 아는대로 이러한 클리셰적 항변은 예술과 게임의 본질이나 실제로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 등을 따지는 것과는 큰 관계가 없다. ‘게임을 하는 나’에 대한 정당화 시도가 핵심이다. < Back 예술이 되기 전에, 현실의 주인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12 GG Vol. 23. 6. 10. 오로지 게임애호가일 뿐인 입장에서 게임과 예술에 대해 생각하면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외침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다들 아는대로 이러한 클리셰적 항변은 예술과 게임의 본질이나 실제로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 등을 따지는 것과는 큰 관계가 없다. ‘게임을 하는 나’에 대한 정당화 시도가 핵심이다. 하지만 이게 생산적 의미를 가지려면 게이머 스스로가 ‘인정투쟁’을 넘어 게임과 예술의 본질에 가 닿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이 예술일 수 있는 조건은 뭘까? ‘비평 가능한가’를 기준으로 제시해본다면 어떤가? 가령 “예술을 논한다”고들 하는데, 그게 뜻하는 바는 뭔가? 모나리자든 벽에 붙여 둔 바나나든 뭐든 ‘얼마나 팔렸느냐’, ‘쓸모가 있느냐’를 넘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의 가치평가를 둘러싼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 아니겠는가? 만약 “예술을 논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게임을 논한다”고 할 수 있다면, 게임을 예술의 일종이나 그 비슷한 뭔가로 취급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이 게임일 수 있는 조건은 뭘까? 게임이라는 매체의 가장 큰 형식적 특징은 ‘인터랙티브’에 있을 것이다. 물론 ‘인터랙티브에 기반한 게임이 아닌 것’들도 세상엔 많이 있다. ‘인터랙티브’를 게임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볼 순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터랙티브 하지 않은 것’을 게임이라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무언가가 게임이기 위해서는 선택이든 조작이든 입력이든 어떤 수단을 통해서건 사용자의 행위가 게임을 통해 형성된 공간 내 사건을 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게임은 일반적으로 불특정다수의 사용자 즉 대중을 전제한다. 대중이 매체를 통해 가상적 환경의 변화를 경험하고 거기에 적응하도록 한다. 즉, 예술의 그것에 비견될만한 것으로서 게임 비평의 정수는 그 게임이 무엇을 통해서 어떤 세계의 변화를 사용자에게 경험하게 하느냐,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리고 그게 현실 인식의 무엇으로 이어지느냐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닌텐도의 최근 신작인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은 상당히 인상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전작에서 오픈월드의 물리엔진을 응용력을 발휘해 활용하도록 한 것에 ‘조나우 기어’라는 장치를 더해 ‘놀이’로서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널판지에 팬과 배터리, 조종기를 달고 물에 띄우면 간이 보트로 활용할 수 있어 체력 소모 없이도 강을 건널 수 있다는 식이다. 기구를 만들고 불을 피워 하늘을 날 수도 있다. 이 덕에 퍼즐의 난이도가 하락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게이머 입장에서 당장 눈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할 수단을 보다 쉽고 다양하게 고려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의미있다. ‘오픈월드’를 표방한 게임이라도 게이머의 사용자 경험은 제작자가 그어 놓은 선 밖으로 벗어날 수 없다. ‘오픈월드’ 또한 가상의 환경에 불과한 탓에 제작자가 설계된 영역 밖으로 사용자가 나가는 것까지 보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보통 이러한 한계는 지형지물의 배치나 ‘보이지 않는 벽’ 등을 매끄럽게 배치하는 것으로 사용자 경험의 훼손을 자연스럽게 최소화 하는 포장을 거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은 이러한 ‘포장’을 훨씬 더 그럴듯하게 해내고 있다. ‘조나우 기어’들의 등장에 더해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트레루프’ 능력의 존재는 ‘오픈월드’의 한계를 상정하지 않은 듯한 인상을 준다. 아주 조그만 부분이라도 천장에 해당하는 부분을 게이머가 찾아낼 수만 있다면 하나로 이어지는 구조물의 꼭대기까지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기에, 애초에 제작자가 어느 정도 의도한 대로 움직이도록 해야 할 ‘레벨 디자인’ 단계에서 고려해야 할 바가 대단히 많아 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실제로 게임을 해보면 모든 천장을 다 뚫고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조나우 기어’로 만든 비행기 역시 일정 거리 이상 날아가면 사라지게 설계된 등의 한계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앞서의 수단을 통해 사용자가 게임으로 형성된 세계에 대한 훨씬 더 강한 개입력을 확보한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는 점은 누구나 놀라워할만한 대목이다. 이런 요소는 사용자 경험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전작인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부터 새로 시작된 젤다의 전설 시리즈는 본질적으로 멸망한 세계를 재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계를 재건하기 위해 서는 우선 그 세계의 주인이 되는 일이 필요하다. 집 청소를 예로 들어 보자. 내가 가진 예산의 한도 내에서 알맞은 청소용구 구매를 계획하고 실행한 후 그 도구로 청소를 하고 성과를 스스로 평가하는 것은 집 주인의 일에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로지 제공된 청소도구를 활용해 구체적인 지시사항을 따르며 청소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집 주인의 경험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대개의 게임은 아무리 ‘오픈월드’를 표방한다 하더라도 후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은 최소한 전자에 가까워진 느낌을 주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게임이 주는 사용자 경험은 ‘세계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형식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분명히 그렇지만 ‘이야기’로 보면 좀 다르다. 자연럽게 생길 수 있는 의문을 두루뭉술하게 넘어 간다. 눈 앞에서 바닥을 뚫고 나오는 주인공에 잠시 놀라기만 할뿐 곧바로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듯 무덤덤한 게임 내 등장인물의 존재 등이 그렇다. ‘게임적 허용’을 고려하더라도, 외양과 생태가 판이하게 다른 민족 간의 갈등이나 이해관계의 충돌이 묘사될 법도 한데, 잘해야 몇 번 튕기는 게 전부고 대개는 다들 속없이 주인공을 기꺼이 도와주기로 한다. 1차원적 감동이 있긴 하지만 현실과의 괴리는 크다. 아마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닌텐도는 ‘온 가족의 닌텐도’이다. 지위와 자격을 얻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감수하는 중세 정치를 묘사한 ‘크루세이더 킹즈 3’의 패러독스 인터랙티브가 아니다. 소년 소녀들의 세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둘째, 이게 일본의 방식이다. 불편한 얘기는 뒤에서 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는 누구나 수긍할만한 아름다운 얘기를 남기길 원한다. 되도록이면 문제를 직면하거나 직시하지 않으려 한다. 최근의 한일관계 개선 논의에서 논쟁거리로 등장하는 과거사에 대한 태도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일본이 불편한 주제를 오로지 외면만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온 가족의 닌텐도’의 이면에는 가히 세계 최대 수준이라고 볼만한 성인물 시장과 PC-98시리즈 등 자체 규격 컴퓨터 시절 성인용 어드벤처 게임 범람의 역사가 있다. 즉, 불편한 얘기를 하는 공간은 따로 있다. 하지만 거기가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시리즈’ 일 수는 없다는 거다. 그럼에도 이 얘기를 덧붙이는 건 ‘이야기’에 해당하는 요소까지 ‘주인이 되는 경험’에 결합시킬 수 있었다면 비평적으로 더 나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으리라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이야기’로부터 발생하는, 그러니까 우리가 실제로 살면서 겪을 법한 갈등을 뭔가 방법을 강구해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면? 현실에서도 ‘조나우 기어’와 오른팔 능력에 비할만한 뭔가를 찾아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 나가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현실엔 이미 ‘조나우 기어’와 오른팔 능력이 존재한다. 그것을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하자며 머리를 맞대자고 말하는 사람이 극소수일 뿐이다. 그나마 일본과 같은 ‘게임 선진국’이 만든 게임을 소재로 한다면 최소한 이런 얘기는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인 한국의 게임 이슈를 생각하면 슬퍼진다. 코인과 결합한 수익 모델 얘기라든가, 여성 캐릭터의 신체 부위라든가, 사기나 다름없는 사건과 같은 얘기들만 떠오르지 않는가? 이것이야 말로 다들 주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현실의 반영이다. 대개의 정치 사회와 관련된 이슈에서 이러한 풍경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똑같이 펼쳐지고 있다.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예술로 인정받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은 이러한 현실의 주인이 될 각오를 하고 있는가? ‘무엇이 어떤 것을 통해 예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일단 그 각오가 된 다음에야 가능할 것 같다. Tags: 예술, 전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프레임의 너머를 위한 프레이밍 : 「The Star Named EOS 별을 향한 여정」

    C. 티 응위옌은 ‘게임은 여러 행위성 형식을 저장하고 주고받기 위한 하나의 매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게임이란 하나의 도전적 고투를 통해 일시적 몰입을 발생시키는 기입적 매체이며, 그 기입의 중심에는 특정한 행위agency가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티 응위옌이 다루는 ‘게임’이라는 범주는 비디오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 ‘행위’의 범주를 조금 복잡하게 바라볼 필요는 있다. < Back 프레임의 너머를 위한 프레이밍 : 「The Star Named EOS 별을 향한 여정」 22 GG Vol. 25. 2. 10. C. 티 응위옌은 ‘게임은 여러 행위성 형식을 저장하고 주고받기 위한 하나의 매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게임이란 하나의 도전적 고투를 통해 일시적 몰입을 발생시키는 기입적 매체이며, 그 기입의 중심에는 특정한 행위agency가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티 응위옌이 다루는 ‘게임’이라는 범주는 비디오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 ‘행위’의 범주를 조금 복잡하게 바라볼 필요는 있다. 요컨대 프라스카의 주장대로 비디오 게임은 현실에 대한 해석체를 매개로 하는 2차성을 지닌다. 따라서 ‘현실’의 게임 [1] 과 달리, 비디오 게임에서의 행위는 어느 정도 중첩된 경향을 가진다. 이를테면 스포츠인 ‘양궁’에서 활을 쏘는 것은 물리적인 행위일테지만, 「마리오와 소닉 올림픽」 시리즈의 양궁에서는 게임적 메커니즘을 위해 해석된 행위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듯 비디오 게임이 저장하는 ‘행위’는 2차적 매개의 결과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적 거리감을 전제할 때, ‘창작의 행위들’은 대개 게임 메커니즘에 안치시키기에 곤란한 경향을 지닌다. 말하자면 2차적 매개가 가지는 표현의 유사성을 발생시킬 수는 있겠으나, 원본과의 괴리를 지우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파이널 판타지 6」에 등장하는 캐릭터 ‘리름’의 ‘그리다’ [2] 의 작동 원리는 ‘싸우다’와 별 차이가 없다. 그저 전투 중 해당 이름을 가진 커맨드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이 때, 우리는 ‘싸우다’가 그 원본성에 해당하는 공격적 행동과 상당히 밀접하다고 느끼는 데에 반해 ‘그리다’에서는 그러한 작동이 정지한다. 물론 이 커맨드의 목적이 적을 공격한다는, 즉 그림 그리기의 본래 목적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영향을 주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QTE의 방식으로 그래피티를 그리는 「젯 셋 라디오」의 경우는 어떠한가? 물론 앞선 리름의 사례보다야 조금 더 ‘그림을 그리는’ 감각을 주기는 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몇 번의 간단한 조작을 통해 복잡한 결과물이 순식간에 생성되는 이 현상이 현실의 복잡한 ‘그리기’로 즉각 치환되지는 않는다. 이런 면은 흥미로운데, 본 게임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버튼을 눌러 점프 후 난간을 타고 그라이딩’ 역시도 현실에 비해 꽤나 단조로운 조작을 요하나 그래피티 그리기 만큼이나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분명 ‘창작 행위’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근원적 인식이 작동한다. 창작의 행위에는 창작자의 자의적 목적성과 행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기를 휘두르거나 점프해 난간을 타고드는 행위들과는 다른 층위를 이룬다. 예를 들어, 무기를 휘두르는 행위는 명백한 목적(적들을 쓰러뜨림)과 행위의 효율성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버튼을 눌러 해당 행위가 작동할 때, 우리는 그것이 더 의도적이고 자유로울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않는다. 그에 반해 창작의 행위에는 창작자(를 조작하는 나)의 자의적 목적성과 그것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더 넓은 범주의 자유가 포함되어야 한다. 따라서 고정된 무브셋moveset으로 재현된 ‘그리기’는 우리의 현실과 지나치게 거리가 있다. 원본의 감각을 시뮬레이트하기에는 너무 먼 곳에 위치한 셈이다. 하지만 여기엔 딜레마가 있다. 비디오 게임이 창작자의 자의적 목적성과 행위의 자유를 담지하는 경우,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메커니즘과 분리되어 작용되곤 한다. 즉, 루두스rudus가 아니라 파이디아paidea의 형국을 띄는 것이다.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따라가는 게임 「파스파투」의 경우가 그렇다. 물론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계속 그림을 그려야 하지만, ‘무엇을 그렸나’가 게임의 진행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 게임에서 복잡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규칙이 규정하는 목적과 무관하다. 이는 플레이어의 자의적 목적을 위한 행위로 명백히 파이디아적이다. 무엇을 그려도 상관없다면 이것은 그저 창작의 툴로 전용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는 자유로운 건축(또는 조형)을 지원하는 「마인 크래프트」 역시 마찬가지다. 1x1x1의 입방체를 이용해 효율적인 보관 체계만을 이루던, 실제 사이즈의 건담을 만들던, 프로그래밍을 통해 작동하는 계산기를 만들던 그것은 게임이 제공하는 목적 지향의 수행과는 무관하다.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에서 걸어다니는 거대로봇을 만들 수야 있겠지만, RTS에서 건물 배치를 ‘예쁘게’ 배치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 모두 게임의 목적과 크게 조응하지 않는 그저 플레이어의 자의적 욕망에 의한 생산물일 뿐이다. 거칠게 정리한다면, 게임이라는 툴로 만들어진 독립적이고 아름다운 창작물이다. 따라서 비디오 게임, 특히 내러티브 비디오 게임에서 창작의 행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조금은 복잡한 세팅을 전제한다. 플레이어는 의도와 행위에 어느정도 자의성을 가지고 있되, 그 결과물 중 특별한 형태가 목적을 위해 선별되어야 한다. 루카스 아츠의 「룸」이나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에서의 연주 메커니즘 또는 「포켓몬 스냅」 시리즈의 촬영 메커니즘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물론 이들 역시 고정적인 대상, 특정한 마법의 주문이나 피사체로 수렴되어 버리는 만큼 기능적인 인상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 「룸」은 특별한 음계의 조합을 통해 마법을 시전한다. 「Behind the Frame : 가장 아름다운 경치」 「The Star Named EOS 별을 쫓는 여정」은 실버 라이닝 스튜디오Silver Lining Studio의 전작 「Behind the Frame : 가장 아름다운 경치」(이하 BTF)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정한 창작 행위를 서사 추동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것에 더해, 방탈출의 메커니즘을 이러한 창작을 위한 중간 단계로 제시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실버 라이닝 스튜디오의 디렉터 윌슨 옌Wilson Yen은 PocketGamers.biz와의 인터뷰에서 본 게임의 특징 중 하나를 ‘페인팅 메커니즘’을 든다. [3] 그만큼 ‘그리기’의 행위를 강조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플레이어는 특정 챕터를 클리어하기 위해 그림을 완성해야 하나, 챕터의 시작 시에는 물감의 종류가 부족한 상태다. 물감의 수색이 방탈출의 메커니즘으로 이어지며, 이 과정에 마주하 시각적 정보들이 서사의 빈 부분을 보충하는 식이다. 퍼즐을 풀고 물감을 획득하면 캔버스에 앉아 물감을 직접 발라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여기서 이 게임의 특징이 발생한다. 플레이어는 이미 스케치가 되어 있는 캔버스에 물감을 직접 찍어 ‘발라야’하는 것이다. PC라면 마우스 포인터로, 콘솔이라면 아날로그 스틱으로, 모바일이라면 터치를 이용해 내부에 색을 채워넣어야 한다. 「BTF」는 이 ‘칠하기’의 과정을 적극적인 태도로 다룬다. 즉 퍼즐이 완료되고 물감이 수집되는 순간에 자동으로(또는 컷씬을 통해) 완성되거나, 포인트 앤 클릭이나 QTE 같은 매개적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직접, 규정된 만큼의 면을, 자신의 손으로 채워넣어야 하는 것이다. 이 명확한 선택은 「BTF」라는 게임의 서사를 온건히 체감하기 위해선 ‘창작의 행위’ 역시 감각적으로 체감해야 한다는 전제로부터 결정된 것으로 여겨진다. 즉 ‘그리기의 행위’는 게임 디자이너가 의식적으로 배치한 중요한 메커니즘인 것이다. 「BTF」는 ‘창작의 행위’를 그 감각의 핵심에 둔다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퍼즐을 거치고, 스케치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캔버스에 포인터를 세심히 점점 채워나간다. 이 과정은 퍼즐을 해결하며 마주했던 방의 풍경들, 사진이나 그림 또는 텍스트 정보들을 다시금 상기하고 정리하는 것을 돕는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게임의 ‘프레임 뒤에Behind the Frame’있는 진실을 탐구할 수 있다. 그리고 완성된 그림이 그러한 진실의 편린과 맞닿아 하나의 서사적 세트를 이룬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흥미로워야 할 과정에는 약간의 어긋남이 있다. 이 ‘창작의 행위’는 시뮬레이트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쉽게 말해 「BTF」의 페인팅 메커니즘은 그저 ‘색을 찍어 바르는’ 것에 국한된다. 특정한 위치에 올바른 색을 적당히 발라만 놓으면 ‘완성된’ 그림으로 즉시 치환된다. 플레이어는 명암이나 텍스쳐를 위해 물감을 덧대 바를 필요도 없고, 심지어는 제시된 면을 가득 채울 필요도 없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그린 그림’과 ‘서사의 추동을 위해 필요한 그림’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전자는 그저 후자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흉내내기’에 가깝다. * 「Behind the Frame : 가장 아름다운 경치」는 플레이어의 불완전한 그리기를 완벽한 그리기로 순식간에 바꿔친다. 이 불일치는 「BTF」가 요구하는 과정상의 몰입을 일정량 끊어버린다. 내가 ‘적당히’ 바른 물감이 그럴싸한 그림으로 변화하는 순간, 플레이어는 게임이 제시하는 서사적 추동으로부터 튕겨져 나온다. ‘내가 그린 그림’이 진실의 편린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미리 그려둔 그림’이 진실의 편린으로 제시된다. 플레이어인 자신은 필요의 과정으로 그것을 (적당히 닮은 정도로) 제시한 것 뿐이다. 물론 비디오 게임의 서사가 모두 경험적 몰입의 과정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러한 작동을 위해 삽입된 페인팅 메커니즘이 그 목적을 배신한다면 조금 다른 문제가 된다. 「The Star Named EOS : 별을 쫓는 여정」 「The Star Named EOS : 별을 쫓는 여정」(이하 EOS)에서 창작의 행위는 그림 그리기가 아닌 사진찍기다. 이런 메커니즘의 선택 대해 프로듀서인 웨이첸 린의 인터뷰가 있다. “(실버 라이닝 스튜디오의) 게임 프로듀서 제레미(창)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사진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된 사진을 받는 순간이 ‘추억’과 ‘인화’를 연결시켜 주었다는 말을 따라, 우리 프로젝트 테마의 중심도 사진이 되었습니다.[Silver Lining Studio] game producer Jeremy [Chang] was deeply influenced by her grandfather during her childhood, sparking a strong interest in photography. (...) The moment of developing film and receiving the printed photos connected 'memories' with 'photographic prints' for her, becoming the theme of our project centered around photography.” [4] 사실상 창작의 행위가 추억과 연결된다는 지점에서 전작인 「BTF」와 연결된다. 따라서 그것이 담지하고 있는 서사의 형태나 퍼즐의 경향을 제외하면 「EOS」는 「BTF」와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저 물감 찾기가 사진의 피사체 찾기로 변경된 것 뿐인데, 어차피 ‘창작물의 완성을 위한 재료 수색’이라는 사실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EOS」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사진을 직접 찍도록 만드는 것은 「BTF」에서의 ‘그리기’와 동일한 목적-퍼즐의 과정에서 획득한 서사의 편린들을 묶어 하나의 진실로 재구성하기 위해 부여되는 여유의 시간-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 「The Star Named EOS : 별을 쫓는 여정」에서 플레이어는 어머니의 행적을 쫓으며 어머니의 사진과 유사한 대상을 찍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작품간에는 다른 체감이 존재한다. 「EOS」의 ‘사진 찍기’ 역시 그 자체로 기억의 원본은 되지 않는다. 이 게임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 자체가 원본이 되기 보다는 이미 원본으로 제시되는 ‘어머니의 사진’의 재현물이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어머니가 찍은 사진과 ‘거의 유사한’ 사진을 찍으려 한다. 따라서 결과물은 원본이 되는 ‘어머니의 사진’과 그 재현물인 ‘주인공(과 플레이어)의 사진’으로 양분된다. 그럼에도 이 체감은 전적으로 「BTF」의 그것과는 달리 작동하는데, 「EOS」에서는 주인공과 플레이어의 재현물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핵심은 분리가 발생하는 위치다. 「BTF」에서는 플레이어의 그림과 주인공의 그림이 분리되며, 따라서 게임의 내부에 존치되는 것은 주인공의 그림으로 한정된다. 플레이어의 그림은 게임의 내부에 머무르지 않는 일시적인 환영이자 ‘흉내’였을 뿐이다. 그에 반해 「EOS」의 사진은 게임의 내부에 머무르며 그것이 ‘재현’의 위치에서 서사를 추동하는 장치가 된다. 특히 「EOS」의 ‘앨범’은 이 차이를 더욱 명확하게 만든다. 플레이어는 챕터의 클리어를 위한 사진이 뿐만 아니라 스테이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게임 내부의 앨범에 남는다. 이를 통해 진행을 위한 정확한 재현물과 플레이어의 자의적/자유로운 창작물이 공존한다. 그리고 이것이 「EOS」는 「BTF」가 머뭇거렸던 지점을 뛰어넘도록 돕는다. 이 선택을 통해 창작의 행위를 게임의 메커니즘과 조금 더 확고히 조응시키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 플레이어는 자유로이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 결과물은 온건히 앨범에 남는다. 부자유의 가능성 실버 라이닝 스튜디오의 이 두 게임의 목적은 서사의 내부로 플레이어를 끌어들여 ‘자신의 현실처럼’ 체험시키는 것이다 [5] . 이 때 창작의 행위는 서사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인식하기 위한 핵심적 행위로 작동한다. 이러한 전제를 위해 게임 메커니즘은 플레이어/캐릭터 간 행위가 분리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창작의 행위’가 내러티브 비디오 게임의 내부에서 온건히 기능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 자신의 ‘창작 행위’가 서사의 추동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의적이고 자유로운 창작 행위가 반복할 수 있다면 ‘창작의 행위’에 대한 체감의 정도는 증가한다. 흥미로운 것은 「BTF」와 「EOS」 간의 결과적인 차이를 유발한 것은 그 자유로움이 아니라 제약이라는 점에 있다. 결국 「EOS」가 「BTF」의 한계를 돌파한 결정적 요인은 ‘회화’의 방식을 ‘사진’의 방식으로 전환한 부분에 있다. 이 때 플레이어의 조작계를 통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것’을 산출할 수 있는 그리기의 행위는 오히려 내적 추동을 위한 ‘정확한 상’으로부터 상당히 동떨어진 방향으로 이끌기 쉽다. 「BTF」는 이러한 미끄러짐을 ‘자동적 원본 제시’라는 방식으로 돌파하려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분리라는 한계지점을 낳은 셈이다. 「EOS」가 채택한 사진이라는 방식은 (게임이 재현현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회화의 행위성에 비해 가능성의 폭은 적을지라도, 그것이 필요로 하는 최종적인 상에는 언제나 근접한 결과를 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비디오 게임이 서사 추동의 메커니즘으로 담지할 수 있는 창작의 행위는 이러한 고리로부터 완전히 이탈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루두스의 게임은 ’완전히 개방된’ 자유로운 창작이라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논의를 언제나의 그 테마, 비디오 게임에서의 자유라는 것과 연결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완전한 자유가 그럴싸한 아름다움을 만들어주는가, 아니면 제시된 한계가 ‘통합적인 상으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주는가? 완전한 창작의 행위를 담지하는 루두스는 기술적 한계지점인가, 아니면 불필요의 영역인가? 실버 라이닝 스튜디오의 게임들은 어쩌면 의도치 않게 이러한 질문의 대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 이를테면 스포츠, 도박, 테이블 게임 등. [2] 「파이널 판타지 6」의 캐릭터 중 하나인 ‘리름’의 특수 커맨드. 전투 중 적 캐릭터의 모습을 그려서 해당 캐릭터가 가진 능력을 하나 발동시킬 수 있다. [3] “비하인드 더 프레임의 독특한 두 가지 요소는 페인팅 메커니즘과 2D 360도 파노라마입니다. 전자를 통해 플레이어는 주인공의 모든 작품을 직접 칠하게 됩니다.Two things we found that make Behind the Frame unique are the painting mechanism and the 2D 360-degree panorama. In the former, we let the players paint whatever the main character paints.” ( https://www.pocketgamer.biz/importance-storytelling-silver-lining-studio/ ) [4] gameradar.com ‘The Star Named EOS is a beautiful, deliberate puzzle game where most everything is "a meaningful clue"’ ( https://www.gamesradar.com/games/puzzle/the-star-named-eos-is-a-beautiful-deliberate-puzzle-game-where-most-everything-is-a-meaningful-clue/ ) [5] 실제로 윌슨 옌은 그러한 목적이 있다는 의미의 이야기를 한 바가 있다. “이 모든 결정은 플레이어가 마치 스토리를 체험하는 것처럼 몰입감 있는 게임 경험을 제공하려는 매우 단순한 이유에 기반했습니다.We made all these decisions based on a very simple reason, to provide an even more immersive gaming experience as if the players live the story.” ( https://www.pocketgamer.biz/importance-storytelling-silver-lining-studio/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No Game for Young Men

    While some critics pointed out similarities between Kart Rider and Nintendo’s Mario Kart series, this controversy did not concern its players, especially the young kids already enjoying the game—myself included. Kart Rider marked a pivotal moment in Nexon’s history, peaking at 200,000 concurrent players (in a country of 50 million people), dominating the PC-bang market, and reaching 10 million registered accounts in 2005, within just a year of its release. In 2023, after 18 years of service, Kart Rider was replaced by its sequel, Kart Rider: Drift, though the reception to this successor has been mixed and is still unable to surpass the legacy of its predecessor. < Back No Game for Young Men 20 GG Vol. 24. 10. 10.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64ec6d72-3c26-4dc7-b6bc-91c99e7c0b02 Unfortunately, I am not one of the “young men” nor do I have kids—yet. So I felt a bit uneasy when the Game Generation (GG) editorial team first asked me to write about recent trends in the game industry with a focus on children's gameplay. My initial response to the team was, “How about finding a new writer who’s a parent, someone who has kids?" I tried to politely decline the offer. However, the editor-in-chief replied, “Wouldn’t it be more objective to discuss this issue from the perspective of someone without kids?” And there I was, realizing not only how excited we were about this topic but also how cleverly they had lured me into it. Well, at least I was once a child myself. I belong to the South Korean generation that was once called the “PC-bang Zerglings,” named after a unit in the Starcraft (Blizzard, 1998) game series. It was the mid-2000s, a time when Kart Rider (Nexon, 2004) was seen as a nationwide kids' phenomenon in South Korea. Every Saturday, I would rush to the PC-bang with my classmates. I’ll probably never forget the experience of eagerly pressing the "Shift" key (for drifting in Kart Rider) amidst the haze of acrid cigarette smoke (FYI, smoking was still allowed in those places back then).Online games like Lineage (NCsoft, 1998) and Mu (Webzen, 2001) were widely popular among adult players in Korean PC-bangs at that time. There were also several games that kids could play, such as Maple Story (Nexon, 2003), QPlay (also known as Quiz Quiz) (Nexon, 1999), and Mabinogi (Nexon, 2004). Of course, some kids were eager to move past their childhood and went straight to playing FPS games or more 'adult-like' MMORPGs. However, there was always one game that every kid knew how to play: the legendary Kart Rider. * Kart Rider was truly a nationwide form of entertainment enjoyed by people of all ages in South Korea. At the heart of this phenomenon were the young players. Kart Rider was incredibly popular in Korea at the time. The magazine “Cine 21”, a highly regarded publication that covers a wide range of cultural sectors like films and media, once referred to the game as “Kookmin” (meaning “national” or “of the people”) due to its widespread acceptance among the Korean public [1] . The magazine attributed the game’s popularity to its "child-like play experience", highlighting its simple gameplay mechanics and charming cartoon-style characters that stood out from previous racing games. While some critics pointed out similarities between Kart Rider and Nintendo’s Mario Kart series, this controversy did not concern its players, especially the young kids already enjoying the game—myself included. Kart Rider marked a pivotal moment in Nexon’s history, peaking at 200,000 concurrent players (in a country of 50 million people), dominating the PC-bang market, and reaching 10 million registered accounts in 2005, within just a year of its release. In 2023, after 18 years of service, Kart Rider was replaced by its sequel, Kart Rider: Drift, though the reception to this successor has been mixed and is still unable to surpass the legacy of its predecessor. Jung-ju “Jay” Kim, the founder of Nexon, once remarked, “It is amazing to see how children and their parents willingly spend their own money and wait in long lines in queue to enjoy Disney content”, adding, “They do so happily of their own will, without being forced or being lured” [2] . This reflected Nexon's approach to its young players in the 2000s: to create games that would naturally attract kids (and their parents), encouraging them to engage and enjoy happily at their own will. This philosophy is evident in many of Nexon’s early 2000s game portfolios, with Kart Rider at the forefront. Another major success that followed was Maple Story, although I won’t delve into the game’s ups and downs over the years, like recent controversies around Maple Story’s heavy and toxic micro-transactions. Interestingly and ironically, Nexon is currently researching and developing a blockchain version of Maple Story [3] . There was a time when the world felt simpler, and Koreans shared similar experiences nationwide. The label “Kookmin (people of the nation)” was frequently attached to various phenomena in the 2000s—Kookmin actors for acclaimed actors, Kookmin popular dishes for widely-enjoyed new menus, and famous Kookmin songs that everyone listens to together. The game Kart Rider was indeed among these “Kookmin” icons. However, two decades later, in the 2020s, the world has become more diversified, complex, and arguably more fragmented. People no longer gravitate toward a single cultural trend; instead, the ability to recognize and embrace individual preferences has become more important. Henceforth, the era of “Kookmin” is over. For example, my grandmother wouldn’t know Pani Bottle or JB Kwak, some of the most famous YouTubers among South Korean Gen Z. Similarly, Gen Z has little interest in her favourite trot music shows, a genre that is popular among Korean boomers. With that in mind, here’s a quiz for our adult Korean readers: Have you heard of “Sibling War (also known as “hhnm”)? This YouTuber, with over 2.8 million subscribers, is overwhelmingly popular with South Korean kids, particularly those in elementary school. As such, mass media is no longer what it once was. There is no longer a singular, large-scale media that is embraced by all generations. In the past, Koreans would rush home to watch the same K-drama on TV and eagerly discuss the plot with friends and colleagues the next morning. Those days are now a thing of the past. It has become increasingly difficult to know what kinds of content different segments of society, particularly children, are consuming. Combined with the country’s historically low birth rate (Korea has the lowest birth rate among OECD countries, with 0.7 births per woman in 2023), Korea is becoming a less appealing place for young people as their population rapidly declines. It is now harder for adults to meet, interact with, and understand the younger generation. Unless you have children, it’s nearly impossible to know what Korean kids are enjoying or demanding these days. Fortunately for me, I have a nephew. So I decided to "interview" him to find out what content kids are currently into. Soon after I started the conversation, we quickly realized we had one topic in common; the legendary Pokémon series. With my excitement, my nephew said, “Yes, I also know the 1st generation Pokémon!” But the conversation didn’t last long. It soon became clear that, aside from Pokémon, we didn’t share many common media experiences. Readers might want to try this with their younger relatives and see how many things they have in common. But be prepared for responses like, “Who watches The Haunted House (2016) these days?” or “Nah, Pororo the Little Penguin (2003) is for babies!” (Even if your nephew might still look like a baby to you.) And neither of these are digital games. If we take a look at games, there are even fewer games to talk about with children these days. One reliable source on this trend is the "Comprehensive Report on Children and Adolescents’ Game Usage" published by the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in 2023. The study found that 65.2% of children and adolescents in Korea play some form of smartphone game. Popular titles include sandbox games like Minecraft and Roblox (23.7%), followed by first-person or third-person shooting games (23.5%) such as Brawl Stars, Valorant, and Sudden Attack [4] . Game genre (%) RPGs (e.g., Cookie Run: Kingdom, Dungeon Fighter Online, Maple Story, World of Warcraft, Blade & Soul, Mabinogi, etc) 8.9 AOS games (e.g., League of Legends, Arena of Valor, Dota, etc) 9.2 FPS/TPS games (e.g., Brawl Stars, Sudden Attack, PUBG, Overwatch, Valorant, etc) 23.5 RTS games (e.g., Clash of Clans, Clash Royale, Starcraft, etc) 2.6 Sports games (e.g., FIFA, Director Manru, Magumagu, FreeStyle Street Basketball 2, etc) 10.5 Casual games (e.g., Candy Crush Saga, Friends Pop, etc) 3.8 Sandbox games (e.g., Minecraft, Roblox, etc) 23. Others (e.g., web games, board games, racing games, arcade games) (e.g., Kart Rider, TalesRunner, Crazy Arcades, Animal Crossing: New Horizons, Modoo Marble, Super Star, etc) 17.8% * Games that are most enjoyed by children and adolescents in Korea (source: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2023) Sandbox games are those where players can freely create their own worlds and experiences, much like playing in a sandbox. Roblox, for example, is a platform accessed by over 150 million children globally each month. Essentially, it’s difficult to know what's trending in the virtual world of Roblox without logging in and observing or participating, like how you wouldn’t know what’s trending on YouTube without understanding how the platform functions. These days, children are exposed to a wide range of games within the Roblox platform and the Roblox world itself is regarded as a virtual gaming experience. According to my nephew's keen analysis, one of the most popular games on the Roblox platform right now is “Adopt Me!” However, he says there are “too many (naïve) kids” in the game, so he recently switched to another Roblox game called “Murder”, where the players reportedly behave a bit better. Overhearing our conversation, my nephew’s guardian expressed concern about the violence in “Murder” and immediately suggested banning him from playing—and seeking my support. But to secure the continuous access of knowledge from my informant, I responded, “Nah, he will be fine”. It’s also interesting to see that Sudden Attack (Nexon, 2005) is still listed as one of the games enjoyed by minors today. Perhaps that is because this new generation no longer gets game-related information from TV or magazines as we did in the past. Instead, minors in South Korea seem to discover games by watching game streamers and influencers that they follow. Recent studies have also found that these young players tend to enjoy games in a relatively reactive manner. For instance, they start playing the game when it becomes a common topic of interest within their social circle, like school friends. Coming from that context, it appears Sudden Attack’s old-style polygon graphics, as the game was released nearly two decades ago in 2005, doesn’t seem to bother young Korean players at all—as they value social experience through the game, and thus, as long as the game is enjoyable with their peers. My nephew (currently my only source of information) is too young to play Sudden Attack, as the game is rated 15+. But it was clear that he wasn’t interested in playing the game anyway because no one in his immediate schoolmates was playing the game (or even allowed to play it). Then it’s not worth the effort to go through the hassle of getting parental consent, installing and playing the game when there’s no social benefit thereof. Come to think of it, I think accessing the game by fake-using our parent’s ID was much easier back then in the 2000s before the time of two-factor authentication—I’ve been there, done that. According to Gallup Korea Research Group, 44% of males and 13% of females in their teens listed “gaming” as their favourite hobby [5] . This evidently indicates that gaming still remains a popular leisure activity among the younger generation. However, it’s unfortunate that fewer and fewer new games are being released in Korea targeting the younger audience. If we refer back to the 2023 Korea Creative Content Agency report, the only Korean game title on the list is Cookie Run: Kingdom (Devsisters, 2021), and that’s already three years old. It seems the Korean game industry no longer finds interest in making games for children with the decline in Korea’s birth rate and the overall number of younger population. Perhaps it’s no longer a profitable business. I can already see that it’s probably easier to pitch your game business to shareholders by saying, "We’re making games for adults in their 40s with disposable income" than saying that you’re interested in making games for teenagers. There was a time when games were considered childish—something that only youngsters would enjoy. Back then, kids would gather at arcades and PC-bangs. Now, it’s far less common to see young people in those places perhaps due to the declining number of children or the decline of arcades and PC-bangs. Or, it’s perhaps both. Let’s take a look at mobile games. In the Korean Apple App Store, the top five game apps in the “Kids” section are: YouTube Kids in first place, followed by the colouring game Quiber in second, the sandbox game Toca Boca World in third, Band Kids in fourth, and i-Nara in fifth. To me, only Quiber and Toca Boca World can really be considered “games,” while the others are more like social media or e-learning apps. YouTube Kids is also ranked first in Google Play’s kids’ section. Notably, both major mobile app platforms in Korea are dominated by apps focused on providing wholesome, educational content for minors. It’s interesting that Roblox, arguably the most popular game among children, isn’t on the list. It is directly provided by its developer, Roblox Corporation, and it is filled with games made by young creators. This makes me wonder: Is this a country where games for children can and will continue to exist? Will we ever see new games targeting younger players emerge in Korea again? * App Store’s “Kid” section, retrieved on May 31st 2024. There are hardly any games on the list. [1] Sang-woo Park, 「How the Kart Rider became a “kookmin” game 」<카트라이더>는 어떻게 국민 게임이 되었나)」, Cine21, 2005.09.16. [2] Jae-hoon Kim, Ki-joo Shin, 「PLAY: Gamer kids who became the founders of global game corporation – the story of Nexon (플레이: 게임 키드들이 모여 글로벌 기업을 만들기까지, 넥슨 사람들 이야기)」, 민음사, 2015.12.7. [3] Jae-seok Kim, 「Nexon is dreaming of Blockchain-based Maple Story (넥슨이 그리는 블록체인 메이플스토리의 꿈)」, Thisisgame.com , 2024.03.23. [4] 「Comprehensive Report on Children and Adolescents’ Game Usage 2023 (2023 아동청소년 게임행동 종합 실태조사)」, Korea Creative Contents Agency, 2024.03.05. [5] 「50 things that Koreans enjoy – cultural sector (한국인이 좋아하는 50가지 [문화편])」, Gallup Korea Research Group, 2024.05.22.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기자)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포터블'과 '모바일': 주머니 속 게임의 사반세기 변천사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두 개념의 차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 다 휴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문화적 의미와 게임 경험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2005-2011년 사이 닌텐도 DS 시리즈와 소니 PSP 시리즈가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과 병행하여 존재했던 시기에 주목하여 이 두 개념을 생산적으로 구분해서 사용하자고 제안한 연구도 있다(McCrea, 2011). < Back '포터블'과 '모바일': 주머니 속 게임의 사반세기 변천사 23 GG Vol. 25. 4. 10. "지하철에서 게임기를 꺼내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 혼밥하며 스팀덱으로 대역전재판을 하고 있는 사진 약속 장소로 향하는 지하철 안. 내 가방 속에는 약 640 그램의 묵직한 스팀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약속 장소까지 평소라면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게임을 하거나 웹툰을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어제 밤 늦게까지 플레이하던 '발더스 게이트3'의 전투를 이어서 진행하고 싶었고, 그 뒤의 새로운 지역을 더 탐험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스팀덱은 가방 속에 고이 모셔진 채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서서 갈 때도, 좌석에 앉아있을 때도 도저히 스팀덱을 꺼내들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의 시선들과 "저 사람 게임에 진심인가보다"와 같은 상상 속 목소리가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망설임이 아니라, 공적 공간에서 게임을 하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 그 시선이 내포하고 있는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마트폰 게임이었다면 당연히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플레이했을텐데, 스팀덱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이 경험이 포터블과 모바일 게임의 현 모습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게임보이나 닌텐도 DS를 학교에 가져가 몰래 게임을 하던 시절부터,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즐기는 시대를 거쳐, 다시 전용 게임기로 회귀하는 듯한 현상까지. 우리의 '주머니 속 게임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가 단순히 기술적 진화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포터블 게임기기가 점점 더 크고 무거워지면서 ‘과연 이것을 휴대용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겨난다. 동시에 스마트폰이라는 완벽한 휴대성을 지닌 기기가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무거운 전용 게임기를 구매하고 들고 다닌다. '포터블'과 '모바일'은 서로 다른 게임 문화를 의미했다. 포터블과 모바일의 구분은 쉽지 않지만, 포터블을 '게임 전용 기기에서의 몰입적 경험'으로, 그리고 모바일은 '다기능 기기에서의 접근성 높은 경험'으로 정의해보자.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이 경계는 다시 흐려지고 있다. 모바일 게임은 점점 더 콘솔 게임을 닮아가고, 포터블 게임기는 다양한 기능을 흡수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주머니 속 게임 세계는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그 변화는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어떤 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을까? 다마고치, 닌텐도 DS, PSP, PS Vita에서부터 스마트폰 게임, 그리고 다시 닌텐도 스위치와 PS 포탈, 스팀덱, 로그 엘라이 등으로 이어지는 휴대용 게임 문화의 흐름은 게임과 휴대용 게임 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주제다. 이 글은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개념이 단순한 기기의 차이를 넘어 어떻게 우리의 게임 경험과 일상을 재구성해왔는지, 어떤 사회문화적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휴대용 게임의 25년 여정은 단순한 기술 발전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게임을 어떻게 경험하고, 공유하고, 삶에 통합시켜왔는지를 보여주는 사회문화사이기도 하다. '휴대용 게임'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를까? 나에게는 그것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내내 손에 늘 들려있었던 닌텐도 DS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스마트폰 속 수많은 앱 중 하나일 테고, 또 누군가에게는 닌텐도 스위치나 최근의 스팀덱 같은 기기일 것이다. 같은 '휴대용'이라는 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경험은 사뭇 다르다. 여기서 우리는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두 개념의 차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 다 휴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문화적 의미와 게임 경험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2005-2011년 사이 닌텐도 DS 시리즈와 소니 PSP 시리즈가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과 병행하여 존재했던 시기에 주목하여 이 두 개념을 생산적으로 구분해서 사용하자고 제안한 연구도 있다(McCrea, 2011). 이 연구에서 ‘포터블’은 ‘게임이라는 목적 하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모바일’은 ‘게임이 다양한 기능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정의했다. 닌텐도 DS나 PSP 같은 '포터블' 게임기는 오직 게임만을 위해 태어났다. 그 모든 부품, 버튼, 화면은 게임 플레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다. 이 기기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구매하는 것이고,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게이머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물건이 되기도 한다. 반면 아이폰이나 갤럭시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게임은 그저 수많은 기능 중 하나다. 전화, 문자, SNS, 지도, 음악, 동영상, 그리고 가끔은 게임. 모바일 게임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지하철에서 시간을 때우거나, 심심할 때 잠깐 즐기는 부수적인 활동인 경우가 많았다. 닌텐도의 '게임 앤 워치'부터 시작된 포터블 게임기의 발전은 단순히 이동성을 강조한 '시계와 게임기의 결합'이라는 초기 개념에서 시작하여, 크로스 키, 듀얼 스크린, 음성 및 터치 입력 등 다양한 상호작용 시스템으로 진화해왔다(권용만, 2015). 이러한 진화 과정은 게임 전용 기기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게임 경험을 풍부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포터블과 모바일의 차이는 게임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쳤다. 포터블 게임은 장시간의 모험, 게임 맞춤형 조작, 깊은 이야기를 담는 경향이 있다. DS의 '제노블레이드 크로니클스'나 PSP의 '몬스터 헌터'는 몇 십 시간씩 투자해야 하는 게임들이다. 반면 '앵그리버드'나 '캔디크러시' 같은 초기 모바일 게임들은 짧은 시간에 쉽게 즐길 수 있고, 언제든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설계됐다. 물리적 느낌에서도 차이가 존재했다. 포터블 게임기의 버튼은 누를 때마다 확실한 감각적 피드백을 준다. 반면 스마트폰의 화면은 직관적이지만 손가락으로 화면 일부를 가리게 되고, 내가 정확히 어디를 터치했는지 확신하기 어렵지만 이것이 게임 플레이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윤장원, 2011). 이는 인터페이스나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게임 자체에 대한 몰입과 경험의 차이이다. 여기에서 주목해볼 부분은 포터블과 모바일이 구성하는 사회적 의미의 차이다. 2007년 아이폰 등장 이전, 지하철에서 닌텐도 DS나 PSP를 꺼내든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게이머'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게임이라는 취미를 가진 사람, 혹은 게이머라는 특정 문화에 속한 사람이라는 표식 같은 것이었다. 전용 게임기를 구입하고, 게임 카트리지를 모으고, 특정 게임 시리즈의 팬덤에 참여하는 행위는 게이머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건 너무 흔한 일이 되었다. 옆자리 직장인이 '쿠키런'을 하든, 학생이 '피크민 블룸'을 하든, 그것은 그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활동 중 하나를 하고 있을 뿐이다. 201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는 '포터블'과 '모바일'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닌텐도 스위치는 TV와 연결하여 사용하는 가정용 콘솔과 손에 쥐고 플레이하는 휴대용 게임기의 경계를 허물었다. 한편, 스마트폰 게임은 그래픽과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 점점 더 전통적인 콘솔 게임에 가까워지고 있다. '원신', '명조:워더링 웨이브', '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같은 게임은 더이상 '틈새 시간'에 즐기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장시간의 몰입과 헌신을 요구한다. 스팀덱은 아예 PC 게임을 손 안에 넣어버렸다. 이러한 경계의 흐려짐은 단순한 기술적 수렴이 아니라, 게임 문화 자체의 변화를 반영한다. 기존의 게이머와 비게이머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약화되고, 다양한 플랫폼을 넘나드는 게임 경험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포터블은 게임 전용 기기가 제공하는 깊은 몰입과 전문성을, 모바일은 일상에 자연스럽게 통합된 접근성 높은 게임 경험을 제공한다고 나는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러한 구분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융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게임을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문화적 이해를 돕는 렌즈가 된다. "엄마, 닌텐도 DS 사주세요. 포켓몬 하고 싶어요.“ 아마 2000년대 초중반, 초등학생 자녀를 둔 많은 부모들은 이런 간절한 요청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저렴한 물건이 아니었다. 당시 닌텐도 DS의 가격은 약 15만원, 게임 카트리지는 3~5만원 정도였으니, 초등학생에게 사주기에는 결코 낮은 금액이 아니었다. 당시 부모들이 생각하기에 닌텐도 DS는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비싼 오락기였을 뿐이다. 이러한 '초기 진입 비용'은 포터블 게임 문화의 확산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했다. 모바일 게임이 대부분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고 인앱 구매를 통해 점진적으로 돈을 쓰게 만드는 것과 달리, 전통적인 포터블 게임은 처음부터 상당한 투자가 필요했다. 게임기를 사고, 게임 카트리지를 사고, 때로는 추가 메모리나 액세서리까지 구매해야 했다. 이런 높은 진입 장벽은 어떤 의미에서 게임 경험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했다.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기에 더 소중했고, 투자한 만큼 더 깊이 몰입했다. 부모님을 설득해 게임기를 사거나,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게임기를 구입하는 과정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하나의 성취였고, 그래서 게임기를 받아든 순간의 기쁨은 무척이나 특별했다. 초기 진입 비용이 높다는 것은 분명 단점이고 장벽이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게임 경험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포터블 게임의 가치는 단순히 초기 투자의 심리적 효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게임 자체의 디자인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경험일 것이다. 전통적인 포터블 게임들은 종종 상당한 '학습 비용(learning cost)'을 요구한다. '학습 비용'이란 게임을 능숙하게 플레이하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복잡한 전투 시스템, 다양한 무기 타입, 몬스터별 특성 등을 이해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포켓몬 시리즈'는 다양한 포켓몬의 타입, 기술, 진화 조건 등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학습은 일견 게임을 즐길 때 겪을 수 있는 어려움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실행을 통한 학습'(learning by doing) 안에서 '즐거움을 통한 학습'(learning by enjoying)이라는 독특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게임의 규칙과 시스템을 배우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성취감을 주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학습의 동기가 된다. 이러한 학습 곡선은 게임의 수명을 연장하기도 한다. 쉽게 배울 수 있는 게임은 쉽게 질린다. 반면 적절한 난이도와 학습 곡선을 가진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지속적인 도전과 성취감을 제공한다.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시리즈나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같은 게임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모바일 게임이 콘솔 게임과 유사한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무거워지는 포터블 기기, 무거워지는 모바일 게임 * 게임보이 사진 (출처: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 1989년, 처음 게임보이가 출시됐을 때의 무게는 220그램이었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작은 손에도 부담 없이 들 수 있는 무게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휴대용 게임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닌텐도 3DS는 230그램, PS Vita는 280그램, 닌텐도 스위치는 400그램, 그리고 최근의 스팀덱은 670그램에 달한다. 포터블 게임기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게이머들은 더 나은 그래픽, 더 긴 배터리 수명, 더 다양한 기능을 원했고, 제조사들은 이에 부응하기 위해 더 강력한 하드웨어를 탑재했다. 닌텐도 스위치가 HD 화면과 분리 가능한 조이콘을 갖추고, 스팀덱이 미니 PC 기능을 하면서 PC 게임을 돌릴 수 있는 성능을 갖추게 된 것은 이런 욕구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한 질문이 생긴다. "과연 이것을 '휴대용'이라 할 수 있는가?" 670그램의 스팀덱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는 없다.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닐 수는 있지만, 출퇴근길 붐비는 지하철에서 꺼내 들기는 쉽지 않다. '휴대용'의 의미가 변질된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기대가 변한 것일까? 이와 동시에, 모바일 게임도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물리적 무게가 아닌, 게임의 복잡성과 요구하는 시간과 자원의 측면에서 말이다. 최근의 모바일 게임들을 보자. '붕괴: 스타레일'은 다운로드 크기가 15GB에 육박한다. 이는 몇 년 전의 콘솔 게임 크기와 맞먹는 수준이다. '명조: 워더링 웨이브'와 같은 오픈월드 ARPG는 광활한 세계, 복잡한 전투 시스템, 깊이 있는 스토리라인을 자랑한다. 이런 게임들은 더이상 틈새 시간에 즐기는 '가벼운' 게임이 아니다. 상당한 시간과 집중력을 투자해야 하는 '무거운' 경험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런 복잡한 모바일 게임들이 종종 스마트폰보다 PC에서 플레이하기 더 적합하다는 점이다. 작은 화면, 손가락으로 가려지는 시야, 정밀한 조작의 어려움과 같은 모바일 인터페이스의 한계 때문에, 많은 유저들이 PC 버전으로 연동해 플레이한다. 심지어 개발사들도 이를 인지하고 모바일, 태블릿PC, 데스크탑 등과 연동되는 크로스 플랫폼 기능을 적극 지원한다. 모바일 게임이라는 이름을 가진 게임이 모바일이 아닌 환경에서 더 잘 작동하는 아이러니가 생긴 것이다. 함께 있어서 가능한 '로컬 플레이'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휴대용 게임 문화의 가장 특별한 측면 중 하나는 '로컬 플레이'라는 경험이었다. 여기서 로컬 플레이란 두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각자의 기기를 통해 함께 게임을 즐기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통신 플레이'라고도 불렸으며, 휴대용 게임기가 제공하는 가장 독특한 사회적 경험 중 하나였다. 이러한 로컬 플레이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물리적 근접성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사회적 경험에 있다. 온라인 플레이와 달리, 로컬 플레이는 상대방의 표정, 목소리, 반응을 직접 볼 수 있다. 게임에서 이긴 후의 환호, 패배한 후의 아쉬움, 희귀한 아이템을 얻었을 때의 놀라움 같은 감정의 교류가 게임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로컬 플레이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고속 인터넷의 보급, 스마트폰의 대중화, 그리고 온라인 서비스의 발전은 게임의 사회적 측면을 물리적 공간에서 가상 공간으로 옮겨놓았다. PS Vita는 여전히 로컬 플레이 기능을 제공했지만, 그 인기는 이전 세대만큼 크지 않았다. 모바일 게임은 주로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초점을 맞추었고, 로컬 플레이는 점차 특별한 기능이 아닌 부가적인 기능으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2017년 닌텐도 스위치의 등장은 로컬 플레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스위치는 그 디자인 자체에 로컬 멀티플레이를 핵심 요소로 포함시켰다. 분리 가능한 조이콘, 테이블 모드, 그리고 쉽게 휴대할 수 있는 크기는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마리오 카트 8 디럭스', '슈퍼 스매시브라더스 얼티밋', '스플래툰 2' 등의 게임은 온라인 플레이뿐만 아니라 로컬 플레이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로컬 플레이의 가치는 현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가상 공간에서의 연결이 일상화된 지금, 물리적 공간에서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은 오히려 더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향수나 복고 트렌드가 아닌, 인간의 근본적인 사회적 욕구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직접 느끼고, 감정을 공유하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한다. 오늘날 로컬 플레이는 온라인 플레이와 병존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아마도 두 경험 모두를 선택적으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일 것이다. 스팀덱이나 ROG Ally와 같은 최신 휴대용 PC 게임기들은 온라인 기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휴대용으로 기기를 들고 나가 같은 공간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로컬 플레이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이는 휴대용 게임 문화에서 로컬 플레이가 가진 고유한 가치가 여전히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사용자 경험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거 휴대용 게임기의 장점은 언제 어디서나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접근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무거운 포터블 기기들은 이동하면서는 아니지만, 공간의 자유로움을 제공한다. 침대에서, 소파에서, 카페에서, 화면 앞에 고정되지 않고 편안한 자세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모바일 게임 역시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다. 초기에는 '언제 어디서나 잠깐씩' 즐기는 것이 장점이었지만, 이제는 '어디서든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스마트폰의 성능이 향상되고, 모바일 게임의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변화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기존 카테고리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왜 무거운 전용 게임기를 구매하는가?'라는 질문은 남는다. 이미 강력한 게임기로써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데, 왜 추가로 스위치나 스팀덱을 사는 것일까? 이는 그저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문화적, 경험적 선택이다. 전용 게임기는 물리적 버튼이 주는 촉각적 만족감, 게임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어쩌면 '진지한‘ 게이머로서의 정체성 표현까지, 스마트폰이 제공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제공한다. 스마트폰 알림에 방해받지 않고, 손에 딱 맞는 그립감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많은 게이머들에게 중요한 가치다. 결국 무거워지는 포터블 기기와 무거워지는 모바일 게임은 ‘같은 현상의 두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게이머들이 더 깊고 풍부한 경험을 원한다는 신호이며, 게임이 단순한 오락보다 몰입형 미디어로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다. 휴대성과 편의성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더 나은 게임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것이 2025년 현재 휴대용 게임 문화의 핵심이다. 마치며 몇 주 전 오후, 나는 친구를 기다리며 조용한 카페 구석 자리에서 샌드위치와 음료를 주문하고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스팀덱을 꺼냈다. 주변을 살피고,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안전한 각도를 찾은 후에야 게임을 시작했다. 친구들과 닌텐도 DS를 들고 '동물의 숲'을 플레이하던 어린 시절의 나와, 오늘날 670그램짜리 휴대용 PC를 들고 인적 드문 카페에서 '발더스 게이트3'를 플레이하는 성인이 된 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명확한 연속성도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게임을 통해 다른 세계로 빠져들고, 그 세계를 언제 어디서나 내 손 안에 담고 다니고 싶은 욕구이다. 휴대용 게임 문화의 25년 여정을 돌아보면, 기술적 변화의 속도와 규모는 정말 놀랍다. 게임보이의 흑백 픽셀에서 스팀덱의 고화질 3D 그래픽까지, 2KB 게임 카트리지에서 100GB 이상의 다운로드 게임까지, 링크 케이블을 통한 두 명의 연결에서 전 세계 수백만 명이 동시에 접속하는 온라인 게임까지. 이러한 기술적 진화는 게임 경험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확장해왔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재구성해왔는지에 관한 문화적 변화이다. 휴대용 게임기는 단순한 기술적 장치를 넘어 우리의 시간, 공간, 사회적 관계를 재조직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시간의 측면에서, 휴대용 게임은 '틈새 시간'의 개념을 변화시켰다. 과거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5분,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30분과 같은 시간들은 그저 '죽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휴대용 게임은 이러한 시간들을 의미 있는 경험으로 채울 수 있게 해주었다. 동시에, 모바일 게임의 푸시 알림과 일일 퀘스트는 우리의 시간 인식과 일상 리듬에 게임의 논리를 침투시켰다. 공간의 측면에서, 휴대용 게임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를 흐렸다. 지하철, 카페, 공원과 같은 공적 공간은 이제 게임 경험의 배경이 되었다. 이것은 공간의 용도와 의미를 변화시키고, 때로는 공공장소에서의 적절한 행동에 대한 사회적 규범에 도전하기도 했다. 사회적 관계의 측면에서, 휴대용 게임은 새로운 형태의 교류외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로컬 멀티플레이는 직접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했고, 온라인 기능은 물리적 거리를 넘어선 연결을 가능하게 했다. 때로는 디지털 연결이 실제 대면 관계를 보완하거나 대체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두 개념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융합하며 진화하고 있다. 포터블이 의미하는 전용성과 깊이, 모바일이 상징하는 접근성과 일상성은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서로를 보완하며 휴대용 게임 문화를 형성해왔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모든 기술적, 문화적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연결, 몰입, 도전, 성취를 향한 갈망은 게임보이 시대에도, 스마트폰 시대에도, 스팀덱 시대에도 휴대용 게임 문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연결에 대한 욕구는 포켓몬 교환에서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으로, 몰입에 대한 욕구는 테트리스의 단순한 집중에서 오픈 월드 RPG의 복잡한 서사로, 도전과 성취에 대한 욕구는 하이스코어 경쟁에서 트로피와 업적 시스템으로 그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동일하다. 이러한 욕구들이 휴대용 게임 문화의 진정한 원동력이다. 기술은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더 좋은 그래픽, 더 강력한 프로세서, 더 큰 저장 공간은 결국 더 깊은 몰입, 더 풍부한 연결, 더 의미 있는 도전과 성취를 위한 도구이다. 카페에서 조심스럽게 스팀덱을 꺼낸 그 순간, 나는 여전히 공적 공간에서의 게임 행위가 갖는 미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그것은 25년간의 기술적 진화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문화적 위치가 여전히 협상 중인 상태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작은 기기 속에서 펼쳐지는 방대한 세계는 게임 경험의 본질적 가치를 증명한다. 결국 휴대용 게임의 미래는 단순한 기술적 혁신이 아닌, 인간의 근본적 욕구와 문화적 맥락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개념은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고, 우리의 일상을 재구성해나갈 것이다. 21세기 첫 25년의 여정이 그러했듯이, 앞으로의 25년도 기술적 발전과 인간적 지속성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변화의 연속일 것임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 여정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주머니 속에 작은 세계를 담아 다니며, 그 세계를 통해 게임을 즐기게 되지 않을까? 참고자료 권용만. (2015). NDS와 PSP를 중심으로 분석한 휴대용 게임기의 인터랙션 진화 윤장원. (2011). 아이폰 게임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분석 -휴대용 게임기 게임과 아이폰 게임의 사례 비교를 중심으로- Christian McCrea. (2011). We play in public: The nature and context of portable gaming systems. Tags: 모바일, 닌텐도, 포터블, UMPC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콘텐츠연구자) 이미몽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닌텐도 게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전 스팀덱을 할부로 구매하여 열심히 즐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선 문화매개를 전공했고, 현재는 일본의 리츠메이칸 대학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입니다. 게임과 웹툰 등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와 문화를 연구합니다.

  • 일상시뮬레이션, 현실을 편집하는 꿈을 꾸다 - <심즈> 시리즈를 중심으로

    <심즈>는 특정 대상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소위 ‘라이프 시뮬레이션(Life Simulation)’ 비디오 게임 중에서도 대명사 격에 위치한 시리즈다. 현대적인 직업을 갖고, 퇴근 후 집안일을 하며, 때에 맞춰 공과금을 내야 하는 생활을 다루는 <심즈> 시리즈는 “가장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실현하는 비디오 게임으로 예화 되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심즈> 시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Will Wright)는 최초에 <심즈>를 구상했을 때 이 게임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을 회사에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 Back 일상시뮬레이션, 현실을 편집하는 꿈을 꾸다 - <심즈> 시리즈를 중심으로 20 GG Vol. 24. 10. 10. "Video games are great. They let you try out your craziest fantasies. For example, on The Sims, you can have a job and a house." "비디오 게임은 위대하다. 게임은 당신이 가진 것 중 가장 정신 나간 공상까지 이뤄준다. 예를 들어 <심즈The Sims>에서, 당신은 직업과 집을 가질 수 있다." -인터넷 상에서 발견한 익명의 농담 * 심즈3(The Sims™ 3) 스팀 소개 이미지, EA 제공 <심즈>는 특정 대상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소위 ‘라이프 시뮬레이션(Life Simulation)’ 비디오 게임 중에서도 대명사 격에 위치한 시리즈다. 현대적인 직업을 갖고, 퇴근 후 집안일을 하며, 때에 맞춰 공과금을 내야 하는 생활을 다루는 <심즈> 시리즈는 “가장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실현하는 비디오 게임으로 예화 되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심즈> 시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Will Wright)는 최초에 <심즈>를 구상했을 때 이 게임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을 회사에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게임”의 기획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세계를 구하거나 제트기를 조종하는” 게임들과 비교하면 <심즈>에 흥미로운 요소가 없다고 생각했다(Barnes). “가장 정신 나간 공상”이라고 일컬어진 대목은 물론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그 공상은 <심즈>에서 플레이어가 서는 출발선과 관련을 맺는다. <심즈>를 최초로 시작할 때, 플레이어는 ‘심’이라고 불리는 아바타를 하나 혹은 여럿 만들어낸다. 심의 성격과 취향, 생김새를 빚어낸 플레이어는 주어진 초기 예산을 바탕으로 그의 심들에게 거주지를 지정한다. 자신의 거주지를 거점으로 심들은 <심즈>의 가상 세계에 진입하고 직업을 구해 본격적으로 생계와 살림을 꾸려 나간다. 심의 생계와 살림은 ‘허기’, ‘용변’, ‘재미’, ‘수면’, ‘위생’과 ‘사교’로 대표되는 그들의 여섯 가지 욕구를 충족하거나 억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플레이어는 단순히 즉각적인 욕구를 충족하기를 넘어서 다종다양한 야망을 이룰 수 있도록 심의 일상을 구조화해 나갈 수 있다. 『커밍 업 쇼트』에서 제니퍼 M. 실바(Jennifer M. Silva)는 포스트산업 노동 계급의 세대가 “성인이 되는 경험”을 “블루 칼라 일자리가 아니라 그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생겨난 유동성과 유연성”으로서 정의하는 보편적인 경향을 확인한다(실바 54-55). <심즈> 시리즈는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 중산층 교외의 삶을 테마로 삼아 출발했다. “당신은 직업과 집을 가질 수 있다”로 끝나는 펀치라인은 플레이어의 심에게 주어지는 출발점 자체가 “가장 정신 나간 공상”의 영역에 속하게 된 유동성과 유연성의 시대를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당신’의 현실에서 불가능한 바를 게임 속에서 이룬다는 대리 충족의 논리는 우리가 라이프 시뮬레이션, 혹은 생활 시뮬레이션을 유희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깔끔한 설명을 내놓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왜 우리가 가상 세계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기를 감수하는가? 그게 더 나은 삶, 더 좋은 삶의 가능성이 확정적으로 열려 있는, 개연성 있는 허구적 세계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더 좋은 삶’에 대한 정의는 물론 개인화되고 다양화될 수 있겠다. 하지만 어떠한 정의에서나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 그 좋은 삶의 가능성을 유지하는 목적 지향적인 행동으로 의미 지어지고, 반복할 만한 가치와 쾌감을 띄는 것은 동일할 것이다. ‘진짜 현실과는 다르게’ 말이다. 이는 아바타와 플레이어 사이의 강한 동일성을 근거로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제공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설명은 생활 시뮬레이션의 다양한 플레이 양상 중 한 가지 버전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여러 생활 시뮬레이션 중에서도 적어도 <심즈>는 아바타와 플레이어 사이의 강력한 동일시를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들이 강제력을 갖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아바타를 가상 세계의 중심에 두고서 등 뒤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혹은 아바타의 1인칭 시점으로 주변을 관망하도록 강제 받지 않는다. 하나의 아바타만 조작하는 플레이가 장려되는 것도 아니다. <심즈 4>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시점에 일치된 카메라로 심들이 자리한 공간을 원형 극장처럼 360도 돌려가며 관망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정밀 카메라를 조작하는 듯한 감각으로 한 아바타의 움직임을 쫓거나 상을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도 있고, 하나의 심, 하나의 가정만을 조작하지 않고 다른 동네에 사는 여러 가정을 돌아가며 조작할 수도 있다. 거주지만이 아니라 심들이 방문할 수 있는 술집, 클럽, 헬스장을 지을 수 있고, 심의 생활을 플레이하는 도중 잠시 시간을 정지시키고 인테리어를 바꿀 수도 있다. 이러한 가단성은 ‘놀이터’, ‘모래사장’ 혹은 ‘장난감’으로 시뮬레이션 게임을 다루는 논리를 뒷받침한다. ‘놀이터’의 은유는 게임 연구가 곤살로 프라스카(Gonzalo Frasca)의 논의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시뮬레이션의 교육적이고 윤리적인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던 프라스카는 카이와와 피아제의 개념을 참조하며 “루두스”와 “파이디아”의 이원론을 비디오 게임에 도입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루두스적인 게임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규칙들을 가지며 “체스보드”, “운동장”, “축구장”과 같은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게임이라면, 파이디아적인 게임은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는 규칙들을 갖지 않으며, 전통적으로 “놀이터”에서 펼쳐지는 역할극과 같은 놀이 행위다(프라스카 11). 그는 ‘루두스’의 위상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고 “파이디아”의 위상이 최종 심급이며, “괴물과 트롤”이 아니라 “우리와 매우 친숙한 실제 사람”을, 그리고 그들이 삶을 관리해가는 체계를 모델화했다는 점에서 <심즈>가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이슈들”을 다루기에 적합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프라스카, 46). 프라스카는 “루두스”의 차원이 존재하지 않는 “파이디아”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의 동기, 이 특정한 유형의 게임을 함으로부터 얻어지는 쾌와 재미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조작을 촉구하고 전제하는 매체의 잠재력을 논의할 때, 게임 디자인에 호응하거나 그것을 ‘오용’하는 조작의 동인, 곧 관습적 경로를 따라가면서 변주하는 쾌감을 살피지 않는 건 반쪽짜리 논의가 될 테다. ‘놀이터’의 은유를 통해 말하자면, 젠더화된 소꿉놀이, 아름다운 모래성을 짓고 파괴하는 손짓, 이파리와 자갈 따위를 배치해 개미의 진로를 방해하는 감각 등이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거나 강화하며 재미를 만들어내는지 질문하는 게 역시 필요한 것이다. 오히려 프라스카가 시뮬레이션의 급진적 가능성이 충분히 개화되지 못한 형태로서, 혹은 보편화될 수 없는 형태로서 평가했던 플레이 유형들로부터 우리는 <심즈> 시리즈와 같은 생활 시뮬레이션이 선사하는 재미에 대한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표적으로 <심즈>의 ‘포토앨범’ 기능에 대한 프라스카의 언급을 살펴보자. 심들의 생에서 특별한 순간들을 스냅사진으로 찍을 수 있도록 하는 이 기능을 플레이어는 디자인된 의도를 넘어서 “그들의 심들이 주연하는 스토리들을 창조”하려고 활용한다(프라스카, 228). 플레이어들은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는 어떤 상황을 창조하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고 “텍스트적인 주석”을 덧붙이는 등의 편집을 가미함으로써 “스토리보드”를 구성하고 이를 온라인상에서 공유한다(프라스카 ,81). 심들의 자율성으로 인해서, 가족 앨범 스토리의 시퀀스에 추가할 만한 제대로 된 스냅사진을 찍는 건 많은 시간과 정성이 소요될 수 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심즈>의 많은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시간과 정성을 감수하고 스냅사진 기능을 활용해 대체로 “통속적이거나 멜로드라마적”인 “선형적인 내레이션”을 만들어냈다(프라스카, 81). 게임이 고정된 내러티브로 환원되는 걸 경계했던 프라스카는 “만화를 창조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는 것은 사진을 찍기 위해 무비카메라를 활용하는 것과 같다”고 평하며 좀 더 친숙한 영상과 애니메이션의 문법적 관습에 기댄 이러한 실천들이 시뮬레이션이란 매체의 가능성이 완벽하게 표현된 형태는 아니라고 본다(Frasca 82). 하지만 프라스카의 이러한 부인 속에서 플레이어들이 많은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포토앨범’ 기능을 활용하는 강력한 동인이 시뮬레이션된 세계로부터 선형적인 이야기를 함축한 시퀀스를 발생시키고자 하는 욕구이며 “사진을 찍기 위해서 무비카메라를 활용”하는 비효율적인 행위에서 오는 쾌락임이 드러난다. 프라스카의 논의는 주로 심즈 프랜차이즈의 첫 판본을 다루고 있다. 시리즈는 UI와 그래픽, AI의 정교함 상에서 기술적으로 발전했고, ‘포토 앨범’의 기능 역시 정교화되었다. ‘심즈 일지’로 불리는 스토리텔링 형태도 이에 발맞춰 복잡성을 획득했다. 게임 내에서 제공하는 스크린샷 기능, 모더(modder)들이 배포하는 특수한 조명 효과, 포토샵 보정 기능 등을 활용하여, 플레이어들은 심들의 반복되면서도 변화하는 일상을 기록하고 그것을 시퀀스를 가지도록 배치한다. ‘일지’라는 규정은 개인화된 경험에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대체로 ‘심즈 일지’는 ‘나’를 주어로 하지 않고 심에게 부여된 가상의 이름을 주어로, 즉 3인칭으로 서술된다. 플레이어들은 아바타에 동일시되기보다는 카메라의 줌인과 줌아웃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카메라 감독과 같은 위치에 선다. ‘심즈 일지’의 제작 과정은 특정 시퀀스나 내러티브를 환기하는 요소들을 정교하게 배치하고 주변 환경을 조성하며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갖고서 움직이는 심들을 수고스럽게 조작함으로써 이뤄진다. 하지만 ‘심즈 일지’를 만드는 유저들은 이러한 조작 과정을 최종적인 내러티브 산물로부터 세심하게 삭제한다. <심즈 4>의 경우 ‘심즈 일지’를 더욱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게임 내에 스크린샷과 녹화 기능을 단축키로 제공한다. 플레이어는 심들을 기동하고 조작하는 버튼 인터페이스와 ‘욕구’와 관련된 UI를 편리하게 배제한 채로 스크린샷을 저장할 수 있다. 저장된 스크린샷의 개연성 있는 배치와 텍스트 주석을 통해서 ‘일지’는 심들에게 개인화된 역사성을 부여한다는 환상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환상을 지탱하는 강력한 근거인 기록물은 버튼을 누른 뒤 다시 하위 버튼을 누르는 식의 마우스 연타, 특정 행동을 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의 계측, 원하는 상황을 연출해 내도록 돕는 모드의 다운로드 등 게임 내외적으로 이뤄지는 복잡한 조작을 거쳐 연출되지만, 이러한 조작 절차는 자주 비가시화된다. ‘심즈 일지’로부터 우리는 자신의 시뮬레이션에 대한 조작 과정이 전면화되기를 원치 않는 플레이어들의 소망을 읽을 수 있다. 인터페이스를 배제하는 스크린샷의 기능은 ‘포토앨범’ 스토리텔링에 이미 잠재되어 있던 수요에 게임 디자인이 반응한 결과다. 게임사에서 새로운 DLC를 예고할 때 보이는 티저 이미지 등에서도 역시 조작 인터페이스는 드러나지 않게 처리된다. <심즈> 시리즈의 트레일러들은 마우스와 키보드 클릭이 필요치 않은, 일일 연속극의 예고편을 차라리 연상시킨다. ‘심즈 일지’를 작성하는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상호작용하며 시뮬레이션을 조정해 나가는 차원의 인터페이스는 기록 과정에서 전면화되지 않기를 넘어서 은폐되어야 한다. 시뮬레이션된 세계가 띄는 허구적인 리얼리티는, 이 시뮬레이션의 전제 조건들과 설정들을 조작하는 인터페이스의 은폐를 통해서 추체험된다. * The Sims 4 그로잉 투게더: 공식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The Sims 제공 은폐를 실천하는 다양한 전략들 중 흥미로웠던 심즈 일지의 양태는 심들이 하는 대화를 상상적으로 구성하고 스크린샷의 하단에 ‘자막’을 달아서 표시하는 형식이다. 심들은 옹알이처럼 들리기도 하는 “심리시(Simlish)”라는 가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걸로 가정되어 있는데, 자막 형식의 사용은 마치 실재하는 언어를 플레이어의 모국어로 번역해낸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이 같은 편집은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를 없는 체하는 기만과는 다르다. 오히려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은폐의 전략들을 활용하면서, 플레이어는 ‘현실’에 대한 편집자이자 촬영 감독의 자의식을 표현해낸다. 게임 커뮤니티와 게임 내 상호작용을 포괄하여, 게임 내외적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자의식의 표현이 <심즈> 시리즈가 전하는 쾌의 중핵을 이룬다. 앞서 언급한 ‘모더’들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심즈> 시리즈는 모딩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프랜차이즈다. 나는 <심즈 4>를 정확히 밝히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긴 시간 동안 플레이했는데, 이는 <심즈 4>가 시리즈 중 가장 진보했거나 흥미로운 판본이기 때문은 아니다. 심즈 유저들과 모더의 커뮤니티가 현시점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성화되어 있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타냐 시보넨(Tanja Sihvonen)의 정의를 빌려오자면, 모딩(Modding)은 “공식적으로 발매된 컴퓨터 게임, 그 게임의 그래픽과 소리, 캐릭터를 사용자 정의 콘텐츠를 통해서 확장하고 변경하는 다양한 방식”을 가리키는데, 이는 “새로운 게임 메카닉, 새로운 게임 플레이 레벨”을 창조하는 것까지 의미할 수 있다(Sihvonen 6). 모더들은 게임 플레이 상의 편의성과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증대하기 위하여 게임의 전제들을 뒤바꾸기도 하고, 심의 외양과 건축물을 꾸밀 수 있는 사용자 정의 콘텐츠(custom contents)를 창조한다. <심즈>의 모더 역시 모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코딩 절차나 포토샵, 블랜더와 같은 툴의 사용을 전면화하기보다는 허구적 리얼리티의 편집자로서 자의식을 표현하는 다양한 전략들을 취한다. 그 전략들이 자주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현대적 직업의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표현된다는 건 특기할 만하다. 가령 게임 속 심에게 입힐 수 있는 새로운 복장들을 만들어내는 모더들은 심들의 옷을 갈아 끼우는 게임 플레이 기본 화면을 통해 자신의 옷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보단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은 심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모델 화보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공유 페이지의 전면에 내세우는 게 일반적이다. Sentate와 같은 모더들은 그가 제작한 의상 모델링을 걸치고서 <심즈 4> 내에서 워킹을 하는 심 모델들이 출연하는 패션쇼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 Sentate Haute Couture 2022 Collection (Sims 4 CC), Sentate 제공 케이팝 아이돌과 한국의 예능인을 닮은 심을 창조하는 유튜버 심즈 아무나AMUNA 역시 그가 세심한 조작을 통해서 빚어낸 심을 ‘출연’시켜 뮤직비디오나 한국 예능의 문법을 패러디한 영상들을 만들어낸다. 한편, <심즈> 시리즈에서 깔끔하게 지워지거나 코믹하게 그려질 따름인 폭력과 비극적인 사고를 구현하는데 관심이 있는 모드 “Life is Tragedy”의 경우 과잉의 부정적 감정 표현을 선보이는 막장 멜로드라마의 제스처들과 컬트 영화의 황당무계한 폭력들을 함께 빌려온다. 모더의 홈페이지는 자신의 모드로 <심즈> 상에서 연출할 수 있게 되는 장면들을 슬래셔와 코미디에 각각 반 발자국씩 걸쳐 있는, B급 영화의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섬네일을 통해 예고한다. <심즈> 시리즈의 모더와 플레이어 모두 다양한 층위에서 시뮬레이션의 전제들을 조작하고 변경하며 상상적으로 현실을 구성하는 이들이란 점에서 시뮬레이터로 느슨하게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시뮬레이터가 화려하게 인테리어한 건축물을 만들고 그것을 다른 플레이어의 심이 생활해갈 수 있는 환경으로서 공유한다면, 또 다른 이는 하이틴 드라마나 컬트 무비의 PD이자 촬영 감독이 되고, 패션 디자이너와 뮤직비디오 촬영 감독으로서 의식을 표현하기도 한다. 시뮬레이터의 무궁무진하면서도 일관성 있는 자기표현은 <심즈> 시리즈의 폭넓은 자유도나 소위 ‘현실’과의 근접성을 뒷받침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시뮬레이터의 자기 상은 매스미디어의 문법들, 그 심상들과 함축을 조립하고 편집하는 소위 ‘창작자’의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자의식을 대체로 참조한다. ‘자기 브랜딩’의 영역을 유희화하는 수준에까지 말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심즈> 시리즈가 무한한 자유도를 보장한다기보다는, 그것에 함축된 통속성, 현대적 분업과 ‘창조적’ 생활의 맥락이 시뮬레이터의 즐거움을 장르화하고 구체화하는 차원을 확인할 수 있다. 게임 텍스트, 게임의 이데올로기적 함축과 인터페이스와의 관계, 그리고 그 게임에 지배적인 장르들이 교차하여, 시뮬레이터의 자의식과 그것을 표현하는 즐거움이 띌 수 있는 형상들을 빚어낸다.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하며 그 제반 조건을 변화시키고 조작하며 편집적인 현실을 생성하는 과정은 시뮬레이터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시뮬레이터의 자기 표현 과정 역시 게임적인 쾌가 펼쳐지는 장소이며, 게임 디자인과 플레이가 상호 개입하며 기틀을 잡아가는 구조물로서 식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 문헌 곤살로 프라스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 김경섭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 제니퍼 M. 실바. 커밍 업 쇼트 : 불확실한 시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 문현아, 박준규 역, 리시올, 2020 Barnes, Adam. “The Sims Turns 20: Creator Will Wright Reflects on the Battle He Waged to Get One of the Best Games of All Time Made.” Gamesradar , GamesRadar+, 4 Feb. 2020, www.gamesradar.com/the-making-of-the-sims/ . Sihvonen, Tanja. Players Unleashed ! Modding the Sims and the Culture of Gaming . Amsterdam University Press, 2009.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메타버스, 호흡을 고르고 냉정하게 바라보면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고 발언했다. 에픽게임즈 CEO 팀 스위니도 10억 달러 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메타버스를 핵심 비전으로 언급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향후 5년 후에 페이스북을 메타버스 회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펄어비스와 텐센트도 메타버스를 주요 아젠다로 언급했고, 지난 NDC에서도 넥슨 김대훤 부사장이 “더이상 게임 회사, 게임 산업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 제안했다. 다분히 메타버스를 의식한 발언이다. < Back 메타버스, 호흡을 고르고 냉정하게 바라보면 01 GG Vol. 21. 6. 10. 바야흐로 오늘날 게임업계의 키워드는 메타버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고 발언했다. 에픽게임즈 CEO 팀 스위니도 10억 달러 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메타버스를 핵심 비전으로 언급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향후 5년 후에 페이스북을 메타버스 회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펄어비스와 텐센트도 메타버스를 주요 아젠다로 언급했고, 지난 NDC에서도 넥슨 김대훤 부사장이 “더이상 게임 회사, 게임 산업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 제안했다. 다분히 메타버스를 의식한 발언이다. 게임지에서 일하는 필자도 하루에도 몇 통씩 메타버스 관련 보도자료를 받는다. 오전에만 한국콘텐츠진흥원, 버추얼휴먼,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그리고 에픽게임즈 코리아로부터 '메타버스'라는 키워드가 담긴 보도자료를 받아서 읽었다.그래서 대관절 메타버스란 무엇인가? 보도자료는 대답이 없다. 메타버스는 최근 만들어진 개념어가 아니다. 접두어 메타(Meta)에 세상을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가 합쳐진 메타버스는 ‘초월적 세상’ 정도로 읽을 수 있다. 영문 위키피디아는 메타버스를 "유저간 공유되는 영구적인 3차원 가상 공간을 현실 세계와 연결해 만들어진 미래의 인터넷" [1] 이라고 정의한다. 한국에 메타버스를 알리는 데 앞장서는 김상균 강원대 교수는 “디지털 미디어에 담긴 세상, 디지털화된 지구” [2] 라고 썼다. 최근 뜨는 용어로 부각된 메타버스를 완전 부정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메타버스가 약속하는 것이 ‘새로운 세상’이라는 들썩임에 동조하기 어렵다. 메타버스가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이유의 대부분은 이미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제공하고 있어서 ‘새로운’ 감각을 받지 못했다. 또 과문한 탓에 아직 게임과 메타버스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찾지 못했다. 게임이라는 매체는 오래전부터 디지털 세상에서 유저간 공유되는 3차원 가상 공간을 제공해왔다. 어쩌면 게임이야말로 메타버스의 프로토타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오늘날 메타버스를 아젠다로 삼은 기업들은 대부분 게임사이거나 게임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젠슨 황은 GPU와 메타버스 플랫폼 <옴니버스>를, 팀 스위니는 언리얼엔진과 <포트나이트>를, 마크 저커버그는 오큘러스 헤드셋과 <호라이즌>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업계가 그간 게임이라고 호명하던 대상을 달리 불러야 할 까닭은 되지 않는다. 필자는 다소 확정적으로 오늘날 메타버스라는 마케팅 용어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행어가 모이는 메타버스… 과연? 이런 와중에 ‘초월적 세상’의 화폐를 NFT, 대체 불가능 토큰으로 삼으려는 시도가 상당히 활발하다. 현재 생태계에서 메타버스는 기업들이 자사 콘텐츠에 기존 화폐가 아닌 NFT를 도입하기 유리하도록 활용되고 있다. 일찌감치 블록체인 사업에 뛰어든 위메이드는 <미르4> 글로벌 버전의 NFT 결제를 지원할 예정이다. 네이버제트가 서비스 중인 <제페토>는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다른 유저와 만나 점프, 슈팅, 라이딩 게임을 할 수 있다. 현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인앱 재화가 있고, 페이팔 계정을 통해 재화를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다. 현행 게임법은 사행성을 띤 게임물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제페토>는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네이버제트는 <제페토>가 게임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가상세계 플랫폼의 법적정의를 분명히 하고 게임과 구분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3] 고 제안했다.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훨씬 이전 일이다. 게임 생태계 일각에서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답을 찾으려는 이들이 있었다. 법에 가상세계를 어떻게 제도에 담을지에 관한 논의를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2021년 메타버스라는 방패를 들고 섰다. 그리고 필자는 <제페토>와 뒤에 살펴볼 <세컨드라이프> 의 지향점은 유사하다고 본다. 규제 당국은 암호화폐와 관련한 룰이 없어 난감하다. 스카이피플은 거래소 없이 자율등급을 받아서 게임을 연 뒤 게임 밖 NFT 거래소를 열어 아이템을 판매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파이브스타즈>는 15세 등급으로 운영됐고, 거래소 운영을 확인한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게임의 등급분류를 취소시켰다. (6월 23일 스카이피플은 행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에서 승소했다. [4] ) 7월 국회에서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가격을 암호화폐로 사고파는 것이 합당한지를 놓고 토론회가 열렸다. 이렇게 메타버스의 이름 아래 몇 년 동안 업계에서 유행했던 개념들이 하나로 모이고 있다. 메타버스는 VR과도 밀접하다. 전진수 SK텔레콤 메타버스 컴퍼니장은 “VR도 메타버스로 가는 여정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이 말을 듣고 VR에 대한 업계의 회의가 떠올랐다. 정부는 실감형 콘텐츠를 미래 먹거리로 보고 적잖은 공적 자원을 투자했다. 정부는 작년 실감형 콘텐츠 육성에만 1,500억 원을 투자했지만 모두가 기억하는 K-실감형 콘텐츠는 없다. 그런데 조사에 따르면, 2019년 연간 매출액 10억 원 미만인 VR 관련 회사가 68.7%다. 이 중 ‘1억 원 이상 3억 원 미만’이 23.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100억 원 이상 매출 기업은 전체 조사대상 중 6.3%, 4개 업체에 불과했다. [5] VR은 언젠가 크게 뜰 수 있고, 메타버스 콘텐츠의 톱니바퀴가 되겠지만, 오늘날 언급되는 장밋빛 전망은 대중이 실제로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수준보다 훨씬 높은 곳에 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누구를 위한 ‘초월적 세상’인가? 가장 우려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 있다. 메타버스를 건설하려는 사람들이 사용자 생각은 얼마나 하고 있냐는 것이다. 메타버스 IP의 소유권은 기업이 가지고 있다.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기업이 철저하게 소유권을 가지는 ‘초월적 세상’에서 유저들은 계속 행복할 수 있을까? 이윤 창출을 지상과제로 삼는 기업들이, 돈이 안 돼서 메타버스를 ‘섭종’한다면 메타버스에 진심이던 사람들은 세상을 잃어버리게 된다. 블리자드는 2018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공식 e스포츠 리그를 즉각 폐지해버린 적 있다. 비록 그 수가 주도적인 e스포츠보다 적었지만, 선수와 팬들은 하루아침에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던 대상을 잃어버린 것이다. 메타버스의 최우수 사례로 알려진 <마인크래프트>의 청소년 이용 불가 사태도 비슷하게 볼 수 있다. 세간에 알려진 바와 같이 바뀐 MS의 정책에 의해 미성년 회원들이 게임이 즐길 수 없게 되었다. 10년 넘게 유지 중인 셧다운제의 비합리성과 별개로 MS는 이 사건이 공론화되기 전까지 미성년자들을 차단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아울러 콘텐츠 산업은 흥행 산업이다. AR이 뜰 것 같았지만 널리 성공한 콘텐츠는 <포켓몬 GO> 하나였던 것처럼, 우후죽순 등장하는 메타버스 콘텐츠가 모두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간혹 <제페토>에서 <로블록스>로 또 <마인크래프트>로 디지털 국경을 넘나드는 정력적인 유저층도 존재하겠지만, 장기적으로 기업이 원하는 그림은 아닐 것이다. 게임이 메타버스의 프로토타입이라면, 넷마블의 스토리 플랫폼 〈BTS 유니버스 스토리〉가 모든 메타버스가 뜰 수 없다는 주장의 적절한 근거가 될 것이다. 사용자들은 그저 IP가 좋아서, 홍보모델의 팬이라는 이유로 그 콘텐츠에 애착관계를 가지고 오래도록 붙잡지 않는다. [6] 코로나19가 끝나도 메타버스에서'만' 만나시겠습니까? 한편 코로나19를 극복하려는 여러 모색은 세간의 메타버스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건국대 총학생회는 가상 캠퍼스를 만든 뒤 그곳에서 축제를 진행했고, 트래비스 스콧은 <포트나이트> 안에서 가상 콘서트를 열었다. BTS 멤버들도 <메이플스토리>와 <서든어택>으로 아미와 만남을 가진 적 있다. <마인크래프트>로 졸업식을 연 일본 초등학생 사례도 있다. 이러한 이벤트는 메타버스의 사례로 자주 호출되지만, 코로나19로 발생된 제약을 극복하려는 대체재 성격이 강하다. 건국대 학생들에게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메타버스 축제를 열자 한다면 과연 기뻐할까? 코로나19가 끝난 뒤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을 언택트로만 보려고 할까? 이전부터 뮤지션들은 인터넷으로 팬들과 소통하지 않았나? 또 <마인크래프트>로 졸업식을 연 학생들은 분명 귀엽고 독창적인 시도를 했지만, 알려진 총인원은 8명으로 그리 많지 않다. 인류는 코로나19와 그로 빚어진 고난을 반드시 극복해야 하고, 조금씩 그 길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로도 우리는 언택트 라이프를 이어나갈까? 필자가 봤을 때, 판데믹은 온라인 소통의 이점을 재확인해주었을 뿐이지,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전격 이주하는 출발점은 아니다. 이미 많은 전문가가 메타버스는 현실의 삶을 완벽히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만나지 못해서 매일 밤 <클럽하우스>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결국에는 ‘이 시국’을 뚫고 만났다는 유의 사례는 상당히 많다. “코로나 사태에도 붐비는 클럽과 헌팅포차”를 보면 알 수 있듯 “인간은 신체를 가졌기에 (중략) 지난 5천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모이는 경향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 [7] 이다.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수백만 년의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생화학적 체제의 지배를 받는다.” [8] 코로나19 이후에도 우리는 실제 만남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토론이 메타버스의 밸류에이션을 바로 매길 수 있다 메타버스라는 신조어에 대한 토론도 부족하다는 인상이다.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배달 어플리케이션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평점을 남기는 것도 메타버스라고 할 수 있을까? 에 국순당 주점 광고를 하는 게 메타버스인가? 어디까지가 메타버스이며, 메타버스와 게임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직 메타버스에는 규범적, 기술적 의미에 대한 정의가 부족하다. 미국의 린든 랩에서 2003년 서비스를 시작한 <세컨드 라이프>는 가상세계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유무형의 가치를 실현시키고, ‘린든 달러’를 현금화 할 수 있도록 열어놓았다. 당시 <세컨드 라이프>가 게임인지 소셜미디어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이 토론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대두와 함께 사그라들었다. 단일 플랫폼의 온라인 시뮬레이션보다는 라이프의 영토를 온라인 그 자체로 확대하는 것이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세컨드 라이프>를 소셜미디어가 아닌 게임으로 분류하는 것이 중론이다. 물론 메타버스가 일반화된 미래에 <세컨드 라이프>를 메타버스의 원류로 분류할 지도 모른다. 2007년, <세컨드 라이프>는 한국에서도 공식 서비스를 진행한 적 있다. 당시 문화관광부, 정보통신부, 여성가족부 3개 부처가 한 자리에 모여 <세컨드 라이프>를 어떻게 볼지 회의를 연 적 있다. 지난한 논의 과정을 생략하고 결론만 보자면, 린든 화폐의 환전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린든랩은 한국 공식 서비스를 2009년에 마쳤다. 이와 별개로 <세컨드 라이프>의 접속자 규모는 감소했다. 앞으로 우리가 메타버스의 벨류에이션을 매길 때 <세컨드 라이프>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어떤 장벽이 작용했나, 사용자들은 어떻게 반응했나, 기업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앞서 살펴본 <제페토> 문제를 볼 때도 함께 비춰봄직하다. 마치며 메타버스에 ‘기회의 땅’이나 ‘골드러시’ 같은 수식어가 붙은 보도를 본다. 이것이야말로 일종의 은유가 아닐까 한다. 19세기 금을 따라 서쪽으로 ‘러시’한 개척민 중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개중에는 지하 깊은 곳에서 금을 캤다고 착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착각한 사람들이 캤던 것은 금이 아니라 유황과 철을 화합한 파이라이트, 황철석이었다. 진짜로 금이 나와서 대박이 터진 곳도 있었지만, 금이 동나자 이내 유령 도시가 되어버렸다. [9] 1821년, 스코틀랜드의 탐험가 그레거 맥그레거는 항해에서 돌아와 중앙아메리카의 포야이스라는 나라의 왕이 되었다며 ‘기회의 땅’ 포야이스의 국채를 사라고 홍보했다. 비옥한 토양에 사금이 물처럼 흐르는 곳이라며. 그러나 포야이스 같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10] 한 시장 조사 업체는 메타버스의 2025년 시장 규모가 2,800억 달러(약 315조 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달 기획재정부,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동으로 메타버스 TF를 꾸렸다. 언론과 시장은 메타버스에 대한 부푼 꿈으로 가득하다. 메타버스가 진정 잘 나가기 위해서는, 이런 매운 사례도 한 번쯤 봐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사족으로 붙여봤다. [1] 방승언, 「미래의 인터넷? '메타버스 게임', 거품일까 아닐까?」, 디스이즈게임, 2021.5.20. [2] 김상균, 「메타버스」, 플랜비디자인, 2020, p.23 [3] 한국콘텐츠진흥원, 「가상세계산업 관련법 개정 및 진흥법 제정방안 연구」 (2011) [4] 김한준, 「스카이피플 '파이브스타즈', 게임위에 집행정지 가처분 승소」,지디넷코리아, 2021.6.24. [5] 한국콘텐츠진흥원, 「2020 가상현실 게임사업체 실태조사」 [6] 김재석 「BTS 유니버스 스토리, 흥행 저조의 이유는?」, 디스이즈게임, 2020.10.7. [7] 유현준, 「공간의 미래」, 을유출판사, 2021, p.13 [8]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2015, p.544 [9] https://ko.wikipedia.org/wiki/%EA%B3%A8%EB%93%9C_%EB%9F%AC%EC%8B%9C [10] https://en.wikipedia.org/wiki/Gregor_MacGregor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되돌릴 수 있는가? - 13기병방위권, 호라이즌, 우크라이나

    물론 게임은 현실과 다르다. 게임을 통해 얻은 이러한 통찰을 현실에 적용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회고적 평가를 전제하는 슬로건을 거부하는 것이 시작이다. 과거의 정상적 상태를 회복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원칙과 대안을 논하는 일이 필요하다. 과거 러시아가 지배한 영토가 어디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되는 이유는 애초에 없다. < Back 되돌릴 수 있는가? - 13기병방위권, 호라이즌, 우크라이나 06 GG Vol. 22. 6. 10.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매력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세계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는 데에 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말 그대로 세상이 멸망한 상황을 전제한다. 게임의 주인공은 망한 세상 안에서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이러한 노력은 유저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의 결실을 맺는다. 즉, 우리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장르를 향유하는 이유는 세상이 망하더라도 인류는 어떻게든 자기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서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세상이 망한다’라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어떤 대답이든 게임 밖 현실에 대한 불만족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세상을 ‘리셋’할 수 있다면 당장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대가를 치르는 원인이 된 어떤 실수 혹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믿음은 종종 정치적 구호로 표현된다. 가령 도널드 트럼프의 “Make America Great Again”은 무언가 잘못되기 시작하기 직전의 어떤 시점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즉 ‘정상화’의 욕망에 호응하는 회고적 선거 구호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감각은 전쟁에도 동원된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반복해서 호출하는 세계관도 결국은 이것이다. 푸틴의 전쟁 논리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일 때만 ‘정상적 상태’일 수 있다. 따라서 푸틴에게 있어서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새롭게 러시아의 영토로 병합하는 게 아니라 뭔가 잘못된 현재를 제대로 된 과거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게 푸틴이 지금의 사태를 ‘전쟁’이라 표현하지 않고 ‘특수작전’이라고만 고집스럽게 말하는 것의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 반면 우크라이나인들의 인식은 이와는 정반대인데, 그들에게는 소련으로부터 지배를 당한 과거가 비정상적 상태인 현재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해법은 소련의 지배를 받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9세기의 ‘키이우 루시’까지 언급하는 이유는 정통성에 있어 우크라이나의 우위를 근본적으로 확립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의 시계를 9세기로 돌릴 순 없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정치는 러시아가 아닌 유럽의 일부가 되는 게 가능했던 시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타협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이 오랜 기간 현안으로 다뤄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일반론적으로 말해서,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에 성공한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예를 들어 〈13기병 방위권〉의 결말에 대해 생각해보자. 〈13기병 방위권〉은 이상적 세계를 다시 만들기 위한 재시작의 시점을 언제로 해야 하느냐 라는 주제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물론 이것이 게임이 다루는 주제의 전부는 아니다). 일본인들이 만든 게임이다 보니 ‘역사’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그 점을 감안해서 보자면 게임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과거 시점이 1945년과 1985년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게임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때, 결국 일본인들이 ‘되돌아갈 수 있는’ 선택지는 패전으로 치달은 군국주의이거나 안보투쟁 이후 거품으로 귀결된 80년대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의 주된 배경은 1985년의 세계이다. 1945년의 세계는 비록 그것이 외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멸망을 피하지 못했다.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게임의 엔딩에서 자신들이 그 일부를 이루는 1985년의 세계를 새로운 미래에 다시 구현하려고 한다. 결국 〈13기병 방위권〉의 결말이 제시하는 ‘재시작’의 시점은 어찌됐건 1980년대로 봐야 하는 것이다. * 〈13기병 방위권〉은 일본 현대사의 여러 시점을 오가며 주인공들의 교복과 주변 환경 등을 통해 이를 드러내고자 한다. 각각의 시점은 실제 일본 현대사에서의 주요 분기점으로 나타난다. 오늘날의 일본 주류정치는 현실의 불만에 대한 돌파구를 군국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에서 찾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만든 일본 정부는 이제 ‘적 기지 공격 능력’을 거론하며 패권을 확장하려고 한다. 일본의 우익세력이 실제 전쟁을 일으킬 의지를 갖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이것은 어찌됐건 ‘전쟁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 어떤 행보로 평가하는 게 불가피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쟁의 가능성’을 실제로 뒷받침하는 알리바이로 기능한다. 일본 뿐만 아니라 독일의 재무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런 현실까지 고려하면 〈13기병 방위권〉의 메시지는 패전을 겪고 평화주의를 수동적으로 채택하는 결말을 굳이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것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은 현실에선 1945년이 있었기 때문에 1985년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패전이 있었기 때문에 요시다 내각의 평화주의가 가능했던 거고, 요시다 독트린이 있었기 때문에 그 반발로서 기시 내각이 1960년 신미일안보조약을 추진한 것이며, 그게 다시 1970년까지의 안보투쟁 국면과 그 이후 정경유착으로 기억되는 경제 우선의 시스템으로 귀결됐던 거다. 1985년은 그러한 이유로 조성된 호황기가 플라자 합의 등 대외 변수가 작용한 끝에 꺾이기 시작한 해다. 이 시점에 다시 시작한들, 불황과 이어지는 우익의 재부상을 막는 게 가능할까?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13기병 방위권〉의 결말은 ‘쇼와 향수’로의 도피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기만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회상편’과는 달리 ‘붕괴편’에선 기계들과의 싸움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은 작품 자신에 대한 우화처럼 느껴진다. 어느 시점에서 다시 시작해도 실패를 되풀이하는 게 불가피하다면 아예 태초로 돌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호라이즌〉 시리즈는 이런 가정에 대한 이야기다. 다만 〈호라이즌〉이 상정한 다시 되돌아 온 ‘태초’는 인위적이다. 멸망 후 도래한 암흑 속에서 신이 “빛이 있으라”고 말하는 것은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새로운 시작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되돌아간다’는 것을 전제하려면 ‘재시작’은 반드시 인간이 설정한 어떤 조건들의 반영이어야 한다. 〈호라이즌〉에서는 비록 100%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이아’ 시스템이 이 역할을 전담한다. 그러나 바로 이 조건 때문에 ‘재시작’은 그저 ‘되돌아가는 것’이 될 수 없었다. 〈호라이즌 제로던〉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가이아’ 시스템의 어떤 오류가 또 한번의 인류 멸망을 촉발할 위기를 일으킨 것을 주인공 에일로이가 막아내는 얘기다. 만일 〈호라이즌〉 시리즈의 얘기가 이렇게 마무리가 됐다면 우리는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태에 현명하게 대응한 인류가 이전 세계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재시작’의 시대를 순조롭게 이어가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결말은 이러한 기대를 순진한 것으로 만들고야 만다. 새로운 인류를 다시 멸망시킬 뻔한 ’가이아’의 오류는 돌발사태였던 게 아니라 이전 세계로부터의 연속성을 가진 사건의 결과였던 것이다. 심지어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결말은 이전 세계의 존재 때문에 멸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인류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즉, 이전 세계의 맥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모든 것을 새롭게 ‘재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되돌아가고자 했다’라는 사실까지 되돌릴 수 없는 이상 온전히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유일하게 남는 선택지는 설령 미래가 절망뿐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발을 딛고 선 바로 그 지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모색을 계속하는 것이다.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 엔딩의 에일로이와 동료들이 마주한 길도 그것이다. 물론 지구를 향해 달려오는 절대악에 직면해있는 이들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은 ‘게임’이기 때문에, 〈호라이즌〉 시리즈를 이것으로 끝내기로 한 게 아니라면, 에일로이와 동료들은 그게 뭐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물론 게임은 현실과 다르다. 게임을 통해 얻은 이러한 통찰을 현실에 적용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회고적 평가를 전제하는 슬로건을 거부하는 것이 시작이다. 과거의 정상적 상태를 회복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원칙과 대안을 논하는 일이 필요하다. 과거 러시아가 지배한 영토가 어디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되는 이유는 애초에 없다. 러시아의 침공이 부당한 이유는 먼 옛날부터 존재해 온 독립적 국가로서 우크라이나의 역사나 민족의 문제과 큰 관계없다.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전쟁은 오늘 이 순간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이미 답을 다들 알고 있는데, 안 되는 일을 안 된다고 말하는 걸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이 별로 없는 세상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Kim Gyuri

    A researcher studying at Sungkyunkwan University, Department of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with the focus on immersive gameplay prompt from pre-existing canon versus unexpected encounterments. She is a long-time player of Bungie’s and excited for reboot. Kim Gyuri Kim Gyuri A researcher studying at Sungkyunkwan University, Department of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with the focus on immersive gameplay prompt from pre-existing canon versus unexpected encounterments. She is a long-time player of Bungie’s and excited for reboot. Read More 버튼 읽기 Is this Lies of K?: “Lies of P” game discourse in the context of the South Korean game industry’s longing for a stand-alone game title “Lies of P” (Neowiz, 2023) takes place in Krat, a fictional city inspired by the Belle Époque period in Europe. One of the game’s NPCs (non-player characters), Eugénie, is portrayed as an outsider from a distant country east of Krat. She claims to come from the so-called ‘country of the morning,’ with a visual character design that resembles East Asian ethnic groups. Perhaps this character’s story was inspired by the Joseon Dynasty, a kingdom that existed on the Korean peninsula from the 14th to 19th century, which was typified as the “Land of Morning Calm” in the West around the 18th century based on the loose translation of the country’s name in Chinese characters (朝鮮).

  • 21

    GG Vol. 21 게임과 시간이 얽히며 만들어지는 21세기 디지털게임의 독특한 현상들을 기술, 철학, 산업의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4X장르의 강자 패러독스 인터랙티브가 구축한 대전략의 길 개인적으로 4X/대전략 게이머가 되는 일에는 하나의 허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문명’ 시리즈로 만족할 것이냐, 아니면 거기서 더 나아가 다른 4X, 대전략 게임에도 손을 대기 시작하느냐다. 애초에 일반적으로는 4X 라는 명칭도 무슨 소리인지를 잘 모른다. Read More <검은 신화: 오공>의 성취는 중국 문화권 바깥에서도 충분히 이해되는 것인가? 이를테면 많은 한국 게이머들은 매 챕터가 끝날 때 등장하는 ‘다음 회에서 알아보자’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는 회본 형태로 챕터가 정리되는 서유기 원전의 끝 문장을 그대로 차용해 온 부분이고 원전 ‘서유기’가 한국에서는 널리 읽히는 편은 아니라는 문제에서 기인한다. 그나마 친연성이 있는 한국에서도 이런 상황인데, 서구권까지 넘어가게 되면 사실상 <오공>을 이해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Read More <다키스트 던전>을 <다키스트 던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개발진이 어째서 전작과 후속작의 틀을 바꾸고자 했는지. 어떤 요소들이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아야만 결정이 왜 내려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무엇이 다키스트 던전을 각별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Read More <마우스워싱>: 노스탤지어가 흐물거릴 때 자본주의적 체인 안에서 상품이 개별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은 세세하게 분할되어 실체는 추상적인 절차로 파편화되고 프로세스는 우연적인 집합에 불과할 때, 블랙 박스 속 물건을 통해 주권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지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Read More [Editor's View] 시간 속의 게임, 게임 속의 시간 좋으나 싫으나 우리는 시간 속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존재들이 살아온 시간의 시간의 누적을 기록해 역사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 누적 속에서 놀이는 사실 오랫동안 잉여시간 취급을 받아온 것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Read More [논문세미나] 우리 삶 속의 게임: : No Time to Dream 브랙스턴 소더만(Braxton Soderman)의 은 젠더화된 게임 취향을 ‘시간’의 관점에서 규명한 글이다. 그에 따르면 흔히 게이머는 ’하드코어(hardcore)’와 ‘캐주얼(casual)’ 집단으로 구분되고, 이중 하드코어 게이머는 ‘백인 청소년 남성’, 캐주얼 게이머는 ‘중년의 여성’ 집단으로 표상되곤 한다. 즉, 백인 청소년 남성들이 곧 ‘하드코어 게임’을 즐기는 ‘하드코어 게이머’이며, ‘캐주얼 게임’을 플레이하는 ‘캐주얼 게이머’는 곧 중년 여성들이라 인식되어왔다는 것이다. Read More [논문세미나] 평행하다가도 뒤엉키는 게임과 현실의 시간: "Introduction to Game Time". In First Person: New Media as Story, Performance, and Game 게임에 열중하다가 시계를 봤을 때 몇 시간이 훌쩍 흘러가있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반대로 온라인 게임을 할 때면 많은 양의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몬스터가 다시 리젠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우두커니 한 자리에 서있는 그 순간은 몇 초밖에 되지 않더라도 어느 때보다 지난하게 흘러간다. 시간은 어떤 플레이를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체감되기 때문에 게임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흘러가는 면이 있다. Read More [인터뷰] 게임연구학회의 새로운 도전, DiGRA-K 윤태진 학회장 024년 3월, 세계 최대 게임 연구 단체인 '디그라(DiGRA; Digital Games Research Association)'의 한국지회(디그라 한국학회)가 설립되었다. 디그라 한국학회는 영미권과 유럽, 남미 등에 이어 18번째로 설립된 지회로서, 게임 연구의 학제적 접근과 현장과의 연결성을 지향하고 후속세대 지원, 국제교류 및 협력연구 등의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분과를 뛰어넘는 학술교류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국내 게임 연구 분야에 있어, 다양한 업계 현장과 학계를 포괄하고자 하는 새로운 형태의 학회가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Read More 게임에 대한 트랜스페미닌 커뮤니티의 문화 코드화 트랜스페미닌 (transfeminine)은 논바이너리부터 트랜스여성까지, 트랜스젠더 중에 상대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젠더 표현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논바이너리 중에 스스로를 여성 젠더에 더 가깝다고 느끼는 이들 (she/they)이 여기 속하고 트랜스여성 (she/her)이 가장 확실하게 속하는 계열이다. 그리고 트랜스페미닌 커뮤니티라고 하면 다양한 SNS 및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를 기반으로 산발적으로 발생한 정체성 기반 네트워크를 이른다. Read More 어느새 넘쳐나는 연말 게임쇼 총정리 어워드가 필요로 하는 여론이 이 세 원천에서 발원하기에, 보통 시상식 심사는 창작자 중심 구성에서 출발해 비평자가 추가되고, 여기에 수용자를 대변하는 용도로 대중 투표가 추가되어 구성이 된다. 문화산업계에서 가장 젊은 업계인 게임의 시상식 또한 창작자들의 심사 투표로 이루어지는 경우, 비평자들이 갑론을박을 하며 심사 투표하는 경우, 대중의 투표가 추가되는 경우로 분류할 수가 있다. Read More 자아와 투쟁하던 이야기로 세상을 구하게 만드는 방법 - 헬블레이드 2: 세누아의 전설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고 묘사하는 것은 때로 놀라울 만큼 쉽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천재나, 비현실적인 실력을 가진 전사를 만들 수도 있다. 어떤 문제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고,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곤란함은 그들의 비범함 앞에서는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Read More 지연시간을 두고 벌이는 개발자와 이용자의 개선과 적응 현대 게임 서버의 개발자들은 0.3초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게임 서버를 개발한다. 이부분을 명시적으로 정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0.2초~0.5초에서 지연이 발생했을 때도 자연스럽게 게임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설계해야 한다는 부분은 경험을 통해서나 혹은 선배 개발자들의 조언을 통해 이어져 내려오기도 한다. Read More 쿨타임과 숨고르기 숨고르기가 중요한 이유는 지속에 있다. 게임은 승패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재미있지만, 이겼을 때만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과정이 충분하다면 지는 것도 재미있을 수 있다.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을 우선시한다면 패배는 게임을 지속하는 것을 방해하며, 다른 게임을 선택할 때 이길 수 있느냐를 가장 염두에 두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게임에 흥미를 느끼는 동안 지더라도 다시 도전하고, 다른 게임을 선택할 때 자기만의 취향과 기준으로 고를 수 있다. 숨고르기는 게임을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Read More 플레이시간의 자본주의적 상품관계 - 탕진의 재미와 축적의 재미 온라인게임 시대가 만들어낸 이 변화는 놀이 역사에서 보기 드문 전환을 만들어냈다. 노는 일이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놀이의 본질은 일종의 무용함, 생산의 시간에 맞선 시간 탕진의 즐거움에 가까웠지만,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그 무용함의 효용마저도 상품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기도 하다. Read More 필연적으로 실패하지만 계속되는 것, 선택을 위해 제시되는 두 개의 분기점은 결국 실패하지 않는 삶, 매끈한 하나의 서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선택은 불가피하다. 오히려 굴절된 한 분면만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가 그 선택이 충실한 것임을 간절하게 희구하게 만드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Read More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신현우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Read More 버튼 읽기 거대전쟁기계와 게이밍, 전 지구적 지각의 병참학 - 세계체제 자본주의 게임공간의 알레고리 이 냉혹한 전지구 권력의 게임공간 안에서 플레이어들은 힘의 수직적 전달자, 말 그대로 행위의 주체가 아닌 논 플레이어블 캐릭터(None Playable Character)가 된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전쟁은 이제 단순히 TV나 소셜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스펙타클이 아닌, 실존의 위협이라는 사실이 인지되어야 한다. “전쟁,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버튼 읽기 합리적 트릭스터: 플레이어와 설계자 사이의 숙련화 게임 게임에 몰입한 플레이어에게 수지타산이나 합리성만큼 낯선 단어는 없을 것이다. 게임 플레이야말로 가장 비합리적인 행위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유용한 생산물을 안겨주지 않는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주변으로부터 ‘공부를 그렇게 했어봐라’ 는 말을 듣는 이유는 게임이 기본적으로 인생에서 효율적인 시간에 해당하지 않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인간의 노동은 삶의 여러 토대를 제공하지만, 게임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일지언정 물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버튼 읽기 시뮬레이티드 셀프: 놀이하는 인간이 시뮬레이션을 작동시키는 방식에 대하여 세계는 불확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은 생동하는 물리적 실재를 파악할 수 없으며, 단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가정법에 따른 결과론, 혹은 결정론은 입자들의 불확정한 위치에 선형성을 부여하는 매력적인 시뮬레이션이다. ‘만약 ~라면 어땠을까?’ ‘만약 ~한다면 어떨까?’는 확률의 세계에서 확고한 인과관계를 부여할 뿐 아니라 대안적인 실재를 상상하도록 어떤 유희의 프레임을 제공한다. 만약 조선이 자생적 근대화에 성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와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지적인 유희를 즐길 뿐 아니라 구체적인 시뮬레이션 절차들을 상정함으로써 확률의 시공간을 결과의 시공간으로 바꿔놓게 된다. 버튼 읽기 대안세계를 향한 미래고고학: 반문화의 문제계로서 〈사이버펑크2077〉 〈2077〉은 한계와 단점이 뚜렷한 게임이다. 수많은 구매자들이 비난했듯이 이 게임은 수 년간 홍보해온 수많은 시스템과 기능들을 대부분 폐기처분 했으며, 짜임새 있는 트리형 서사구조 구축에는 성공했지만 플레이어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는 실패했다. 버튼 읽기 역사적 트라우마와 유령의 소환술: 〈반교: 디텐션〉의 역사주의 이처럼 애매하고, 역설적이고, 공백으로 가득 찬 대안적 역사인식의 상징극장(학교)을 탐색하며 퍼즐 열쇠들을 수집하는 플레이어는, 유령이 된 채 부재하는 현재의 표식들을 이어붙이고, 역사의 버려진 시신을 가르는 부검의가 된다. “너는 나고, 나는 너다” 며 자신의 그림자에게 읊조리는 주인공의 대사처럼, 파편화된 상흔들은 수집과 탐색행위로 이뤄진 이 부검에 의해 점차 진혼된다. 플레이어의 부검은 사망 원인 추적에 그치지 않고, 망자의 부릅뜬 눈을 감기는 의식으로 연동되는 것이다. 버튼 읽기 보편과 토착의 긴장 속에 도사리는 지정학적 미학: 〈7인의 사무라이〉에서 〈고스트 오브 쓰시마〉에 이르기까지 〈라스트 사무라이〉가 일본 대중문화에 심취한 와패니즘의 대명사인 반면, 〈킬 빌〉은 오리엔탈리즘을 전유하는 대중주의다. 무사도와 신성한 사무라이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라스트 사무라이〉의 상당 부분은 뉴질랜드 로케이션으로 촬영되었고, 〈킬 빌〉은 이소룡과 사무라이를 섞고 중국계 미국인 배우 루시 리우에게 기모노를 입혀 대문자 오리엔탈(The Oriental)을 혼성모방한다. 버튼 읽기 캣스모폴리틱스(Catsmopolitics): 고양이와 기계가 자본세 지구에 착륙하는 방법 인종차별, 여성혐오, 소수자 차별, 장기화된 실업, 투기와 불평등, 전쟁과 극우정치가 만연한 오늘날 유일하게 아무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고양이일 것이다. 좌파도 우파도, 남성도 여성도, 베이비부머도 청년도, 무슬림도 카톨릭도 고양이를 사랑한다. 사람들은 기꺼이 골목길에 사료와 물그릇을 갖다놓으며, 고양이와의 사랑스런 일상을 촬영해 공유한다.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는 인간이 아닌 고양이다. 버튼 읽기 기억의 조작술: 사건의 컨벤션으로부터 벗어나기로서 인디게임 장르는 게이밍에서 오랜 논쟁의 주제 중 하나다. 디지털게임의 매커닉과 외형은 무궁무진하지만 소설이나 영화, TV쇼와 마찬가지로 어떤 약속된 경로들이나 재현의 양태가 축적되고 있음다. 컨벤션(convention)은 창작자와 텍스트, 그리고 수용자 사이에 형성되는 하나의 묵시적인 관습으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텍스트들이 생산되고 반복적으로 읽히는 과정에서 공통의 컨벤션을 체화한다. 장르가 계약을 통해 창작자-수용자 모두 텍스트의 진행 과정을 사전에 공식화한다면, 컨벤션은 비공식적으로 모두가 따르는 불문율이다. 장르는 헌법처럼 작동하지만 컨벤션은 그 안의 관습법 혹은 윤리처럼 흐른다. 장르는 끌어당기는 반면, 컨벤션은 대류한다. 장르는 포뮬러(정형화된 공식)와 컨벤션을 만들고, 스타일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스테레오타입과 클리셰를 생산한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서다솜

    큐레이터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종종 전시를 기획하거나 글을 쓰고 주로 게임을 한다. 큐레이터 게임 동호회 'Mods'의 멤버다. 서다솜 서다솜 큐레이터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종종 전시를 기획하거나 글을 쓰고 주로 게임을 한다. 큐레이터 게임 동호회 'Mods'의 멤버다. Read More 버튼 읽기 모험은 그곳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 게임 속 여성 캐릭터들의 모험에 대하여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모험가가 된다. 평범한 일상을 벗어난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 나가며 때로는 자신 안의 영웅적 면모를 깨워 세상을 구하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 세계 곳곳에 산재된 난제를 해결하는 모든 여정에 기꺼이 뛰어들며 게임을, 모험을 이어왔다. 게임과 모험은 그 궤적을 함께하며 게임을 경험하는 친숙한 방법론을 구축해왔다. 게임의 역사 자체가 일종의 모험기처럼 계속해서 쓰여지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 글은 ‘게임’이라는 오래된 모험기를 다른 방향에서 펼쳐 본다. 거꾸로 펼친 모험기는 모험의 바깥에서 주인공의 모험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여인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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