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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제너레이션::필자::만 또안 호
만 또안 호 만 또안 호 Read More 버튼 읽기 그린게이밍의 새로운 지평을 찾아서 2020년 이래 아이폰은 충전기 미포함으로 출시되고 있다. 애플에 따르면 이는 포장 쓰레기와 전자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서, 판매되는 아이폰 한 대당 소요되는 원자재량 및 포장용 패키지 절감을 통해 운송용 팔레트 한 대당 70% 더 많은 제품을 실을 수 있어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Calma, 2020).
- [공모전] 모바일 리듬 게임에서 ‘엄지러’를 선택하기-‘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 미쿠’를 중심으로
‘엄지족’이라는 신조어가 있었다. 2000년대 폭발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이 사회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을 때였다. 엄지를 이용해 스마트폰의 화면을 누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청년을 일컬어 ‘엄지족’이라 불렀다. M으로 시작하는 것에 착안해 이들 세대를 모바일 세대, M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모두가 ‘엄지족’이자 모바일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 Back [공모전] 모바일 리듬 게임에서 ‘엄지러’를 선택하기-‘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 미쿠’를 중심으로 13 GG Vol. 23. 8. 10. ‘엄지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엄지족’이라는 신조어가 있었다. 2000년대 폭발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이 사회 전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을 때였다. 엄지를 이용해 스마트폰의 화면을 누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청년을 일컬어 ‘엄지족’이라 불렀다. M으로 시작하는 것에 착안해 이들 세대를 모바일 세대, M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모두가 ‘엄지족’이자 모바일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바일 리듬 게임의 세계에서 ‘엄지족’, 다른 말로 ‘엄지러’는 여전히 실존한다. 스마트폰 리듬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0년대 후반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모두가 ‘엄지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바일 리듬 게임의 세계에서 ‘엄지러’의 위치는 다소 미묘하다. 노트를 정확한 타이밍에 터치해야 하는 일반적인 포맷의 모바일 리듬 게임을 상상했을 때, 분명히 모바일 리듬 게임의 유저 대다수는 엄지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엄지러’다. 그러나 노트가 더 많이, 빨리 등장하며 고난도의 플레이가 요구될수록 뚱뚱한 엄지 두 개만을 움직이는 플레이는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이론상 발로도 플레이할 수 있는 <지오메트리 대시Geometry Dash>나 엄지가 누비기 비교적 수월한 세로형 인터페이스의 <피아노 타일 2Piano Tiles 2>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기에 모바일 리듬 게임의 ‘엄지러’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한계가 있음을 알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엄지로 플레이하거나, 지금부터라도 낮은 레벨부터 다른 손가락을 사용하는 연습을 하며 플레이 스타일을 ‘교정’하는 방법이다. 전자를 선택한 이용자라도 이걸 엄지로 하라고 만든 것이 맞는지 의심되는 곡을 만나면 다시 갈등을 시작한다. 이 필연적인 고민은 하나의 의문을 낳는다. 리듬 게임의 ‘엄지러’는 바뀌어야만 하는가? 인터페이스의 전환과 ‘엄지러’의 탄생 ‘엄지러’는 원래 리듬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 계층이었다. 리듬 게임은 이전까지 감각적인 콘트롤러를 탑재한 아케이드 기기를 무기로 이용자를 매혹시켰다. 이용자는 강렬한 음악이 귓가를 때리는 오락실에서 버튼을 누르고, 돌리고, 발판을 밟고, 북을 치고, 기타를 치는 식으로 리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2000년대부터 오락실이 쇠퇴함에 따라 온라인과 콘솔, 모바일 등 각각의 형태를 기반으로 리듬 게임이 분화되었다. 모바일 리듬 게임으로 넘어오며 리듬 게임은 기존의 무기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각양각색의 감각적인 콘트롤러 대신 게임사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은 피처폰의 조악한 버튼, 조금 더 나아가서는 스마트폰의 작은 터치스크린뿐이었다. 이 터치스크린 속에서 특정한 버튼을 누르면 여전히 소프트웨어는 우리의 입력에 반응하지만, 과거와 같이 게임 소프트웨어 바깥에서 주어지는 ‘눌렸음’의 촉각적 신호는 사라진다.1) 이 물리적 제약은 감각적인 콘트롤러를 내세웠던 리듬 게임에 엄청난 도전이었다. 대신 스마트폰은 리듬 게임에게 휴대성과 대중성을 가져다주었다. 게임사는 모바일 환경에 맞춰 ‘엄지족’이 엄지로 간편하게 플레이할 수 있게끔 리듬 게임을 설계했고, ‘엄지족’은 엄지로 플레이를 했다. ‘엄지러’의 탄생이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리듬스타 등의 피처폰 모바일 리듬 게임이 인기를 끌었으며, 2010년부터는 고사양의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아이폰, 안드로이드와 같은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한 리듬 게임들이 개발되었다.2) 형태의 전환은 새로운 규범을 만들었다. 스마트폰으로 리듬 게임을 한다는 것은 게임사가 더는 이용자가 리듬 게임을 하는 방법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케이드 리듬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정해진 장소로 가 정해진 콘트롤러를 정해진 방식으로 조작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모바일 리듬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용자들에게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그들은 불특정한 장소에서 불특정한 기기를 불특정한 방식으로 조작한다. 이용자는 카페에서 태블릿을 눕혀놓고 모든 손가락을 활용해 게임을 플레이할 수도 있고, 핸드폰을 들고 집에 누워서 엄지로 플레이할 수도 있으며 최신형 접히는 핸드폰을 산 것을 후회하며 접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검지로 플레이할 수도 있다. 이 새롭고 다양한 사용자 경험 위에서 이전과 다른 플레이 문화가 축적됐다. 인터페이스의 전환이 새로운 장르적 전통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바일 리듬 게임에게 ‘어느 정도 엄지 플레이를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은 필수적인 동시에 중요하다.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리느냐에 따라 해당 리듬 게임의 방향성이 결정된다. 캐릭터 IP를 내세운 대중적인 모바일 리듬 게임인 처럼 이론상 엄지로만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있는 한편, 아예 어려운 리듬 게임을 테마로 한 <다이나믹스Dynamix>처럼 엄지 플레이가 거의 불가능한 게임도 있다. <칼파KALPA>처럼 엄지 플레이 난이도와 다지 플레이 난이도를 이원화하는 선택을 하거나, 특정 레벨 이상부터 다지 플레이를 필수로 만드는 등의 절충안을 내놓은 경우도 존재한다. “모든 곡은 두 손가락으로 풀 콤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미쿠’(이하 프로세카) 또한 이론상 엄지로만 플레이가 가능한 모바일 리듬 게임이었다. 주식회사 세가와 컬러풀 파레트, 크립톤 퓨처 미디어가 공동 개발한 프로세카는 보컬로이드 IP를 이용한 캐릭터 수집 요소를 결합해 만든 대표적인 모바일 리듬 게임 중 하나다. 이 리듬 게임이 호명된 이유는 이 게임이 더 이상 엄지로만 플레이 가능한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서버에서 개최된 창작 콘테스트 ‘초고난이도 프로세카 ULTIMATE’의 당선작 3곡이 게임 내 최고 레벨을 경신하는 37레벨로 수록되며 이 명제가 깨진 것이다. 이는 게임의 프로듀서인 콘도 유이치로의 “모든 곡은 두 손가락으로 풀 콤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과거 발언을 번복하는 문제로써 이용자들 사이에 논란이 되었다. 이에 게임사는 37레벨은 번외 레벨로 예외적인 경우이며, 이하의 레벨에서는 앞서 말한 원칙을 지키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사실 프로세카가 이론상으로 엄지로만 플레이가 가능했을 때에도 높은 난이도의 곡들은 거의 엄지로 플레이하기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프로세카에는 엄지만 사용하여 올 퍼펙트를 달성한 것이 확인되지 않은 곡이 다수 존재하며, 같은 난이도의 곡이라도 엄지로 플레이할 때 압도적으로 어려운 곡도 존재한다. 높은 난이도의 곡을 엄지로 플레이하는 이용자가 있더라도 그것은 극히 소수일 뿐이다. 그리고 가능과 불가능의 영역을 넘어, 여러 손가락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엄지로만 플레이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런데 왜 ‘엄지러’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 물론 여러 손가락을 사용하려면 태블릿과 같은 일정 크기 이상의 터치스크린을 눕혀야 한다는 제약이 존재한다. 하지만 높은 난이도의 곡을 시도할 정도로 열성적인 이용자가 단지 그것 때문에 엄지를 고수한다는 점은 이상하다. 더 이상한 점은 여러 손가락으로 플레이하는 이용자조차 37레벨 곡 업데이트에 대하여 ‘엄지 배려’를 하라고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높은 난이도의 곡 플레이가 가능한 ‘엄지러’는 원래도 거의 없었는데,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이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가? ‘엄지러’라는 전통 이 모든 반응은 ‘엄지 플레이’와 ‘다지 플레이’의 구분이 단순한 플레이 방식의 차이 그 이상을 함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이 구분이 단순한 플레이 방식의 차이였다면 엄지로 32레벨까지 클리어하고 막히면 33레벨부터는 다지로 플레이 해 클리어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33레벨 ‘엄지’ 클리어와 33레벨 ‘다지’ 클리어를 다른 것으로 구분한다. 게임 내적 시스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클리어하든 아무 구분 없이 표기되는 데도 말이다. 이용자들은 대신 게임 외적으로 엄지로 특정 레벨까지 클리어 한 사실을 자랑한다거나, 엄지로 특정 곡을 클리어 한 영상을 공유하며 그들만의 전통을 축적한다. ‘엄지러’를 기준으로 한 비공식 곡 난이도 표를 만들고, ‘다지러’가 엄지로 어디까지 플레이가 가능한지 도전하기도 한다. 이렇게 축적된 전통 위에서 ‘엄지러’의 높은 난이도 도전은 몇몇 이용자의 기행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런 모습은 플레이 방식의 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여러 직업이 있는 RPG 게임에서 상이한 난이도의 직업 루트를 선택하는 것과 더욱 유사해 보인다. 하나의 직업으로 최종 보스를 처치했다는 사실이 인정받으면서도 그것이 곧 다른 직업의 성취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다른 매체와 구분되는 게임의 특징을 논할 때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점이 바로 게임과 이용자 간의 상호작용으로 생성되는 새로운 맥락과 이용자의 창조성이다. 이경혁3)은 게임 매체의 수용이 일종의 창조 행위라는 것을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오락실의 <펌프 잇 업> 고수가 펼치는 두 발 외의 몸을 사용하는 펌프 퍼포먼스를 들었다. 이런 예시는 개별 이용자의 창조적 수용을 보여준다. ‘엄지러’의 전통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게임사를 포함한 모바일 리듬 게임이라는 장르의 구성원은 모두 이 암묵적인 장르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게임 외적으로 구축된 전통은 개별적인 창조적 행위가 아닌 인터페이스의 특징에서 촉발되어 장르의 구성원이 새롭게 창조한 ‘규범’에 가깝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앞선 프로세카 같은 리듬 게임은 특히 게임 내적 시스템의 영향으로 다른 모바일 리듬 게임보다 ‘엄지러’의 규범이 강하게 작용한다. 실제로 엄지 플레이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것뿐만 아니라, 대중성을 위해 양적 랭킹 시스템을 도입하였기 때문이다. 프로세카에는 일정 기간 동안의 플레이 횟수에 따른 양적 랭크인 이벤트 랭킹과 실력을 겨루는 질적 랭크인 랭크 매치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양적으로 순위를 매길 때 더 유리한 플레이 방법은 당연히 엄지를 이용한 플레이다. 이러한 이원화는 엄지 플레이에 확실한 효용을 부여함으로써 엄지 플레이의 지위를 보장한다. ‘엄지러’를 선택하기 단순한 플레이 방식 이상의 ‘엄지러’ 전통을 고려했을 때, 프로듀서의 발언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론상 엄지로만 칠 수 없는 곡의 등장이 강한 논란을 불러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RPG 게임의 비유를 다시 가져오면,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지 여부와 별개로 하나의 직업 루트에만 번외 콘텐츠가 개방된 셈이니 말이다. 혹여 ‘다지러’로 전직하더라도, 모바일 리듬 게임을 하는 한 ‘엄지러’의 전통은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다. 다시 질문해보자. 리듬 게임의 ‘엄지러’는 바뀌어야만 하는가? 무의미한 질문이다. 바꾼다 해도 내가 선택해 키운 ‘엄지러’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1) 이경혁 (2023.04.05.),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머물렀던 곳은 어디였을까: 터치스크린 시대의 숙련도, <게임제너레이션>, URL: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152d8082-f4a1-486d-875d-a05088a28625 2) 강현구 (2019), 스마트폰을 위한 리듬게임 User Interface Design 연구, 석사학위,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3) 이경혁 (2019), <(놀이에서 디지털 게임까지) 게임의 이론>, 문화과학사.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원생) 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 [인터뷰] e스포츠의 현장감은 어디서 오는가: 라이엇게임즈 함영승 PD
그런데 따지고 보면 뭔가 이상하다. ‘현장 중계를 가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말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경기를 보는 것이 아쉽다는 의미인데, 게임의 배경은 이미 온라인 세계가 아니던가? 그러면 e스포츠에서 현장감은 무엇을 의미할까?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소환사의 협곡’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인데, 대체 팬들은 어떠한 지점에서 현장감을 느끼는 것일까? 전통적인 스포츠에서 이야기하는 현장감과 e스포츠의 현장감은 그 성질이 다를까? 이러한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이번 호에서는 MBC에서 전통 스포츠를 중계하다가 지금은 LCK 중계를 하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의 함영승 PD를 만나고 왔다. < Back [인터뷰] e스포츠의 현장감은 어디서 오는가: 라이엇게임즈 함영승 PD 08 GG Vol. 22. 10. 10. 직관의 묘미. 전통적인 스포츠에서는 이를 현장감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오늘날에는 통신 기술이 발달해서 누구나 집에서도 스포츠 경기를 시청할 수 있지만, 현장이 아니고서는 경기장의 열기와 습도, 환호와 희열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실제로 야구나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경기장을 가보고 팬이 되었다는 사례도 많다. 이러한 맥락에서 e스포츠에서도 코로나 19로 현장 중계를 할 수 없었던 기간에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그리워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뭔가 이상하다. ‘현장 중계를 가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말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경기를 보는 것이 아쉽다는 의미인데, 게임의 배경은 이미 온라인 세계가 아니던가? 그러면 e스포츠에서 현장감은 무엇을 의미할까?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소환사의 협곡’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인데, 대체 팬들은 어떠한 지점에서 현장감을 느끼는 것일까? 전통적인 스포츠에서 이야기하는 현장감과 e스포츠의 현장감은 그 성질이 다를까? 이러한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이번 호에서는 MBC에서 전통 스포츠를 중계하다가 지금은 LCK 중계를 하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의 함영승 PD를 만나고 왔다. 편집장: 먼저 간단한 소개와 짧게나마 걸어오신 행보를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함영승 PD: 네. 저는 라이엇 게임즈에서 방송 총괄을 맡고있는 함영승이라고 합니다. 4년 반 전에는 MBC에 있었고, 스포츠국에서 다양한 종목의 중계와 콘텐츠를 제작했었습니다. 편집장: MBC 스포츠국에 계셨으면 다양한 종목들을 다루셨을 것 같은데, 스포츠 PD 시절에 중계하셨던 것 중에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함영승 PD: 인천 아시안게임 농구 제작을 담당했었는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처음으로 남자 농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행했던 평창 올림픽도 기억에 남고요.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비인기 종목인 모터스포츠 중계를 했던 경험도 기억이 많이 납니다. 일반 시청자분들이 잘 모르는 종목이다보니 스토리 라인을 살려주고 싶어서 다큐, 예능과 같은 사이드 콘텐츠도 만들고 기술적으로도 국내 최초로 차량 내부에 설치한 카메라를 생중계로 보여주며 다양한 재미를 드리고자 노력했었어요. 편집장: 스포츠 PD를 하다가 게임 쪽으로 넘어오셨는데, e스포츠를 중계하시면서 ‘기존의 스포츠와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좀 더 특별하다.’ 이런 점이 있으신가요? 함영승 PD: 일단 (e스포츠는) 한국에 있는 그 어떤 방송보다도 실시간 피드백이 매서운 그런 장르입니다. 이 지점에서 분명한 장점이 있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시청자들이 원하는 어떤 부분을 놓쳤구나’라는 것을 아주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죠. 다만, 그 노력이 즉각적으로 반영돼서 고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렇지 않은 것도 꽤 있어요. 예를 들어서 한 번 만든 타이틀이 너무 별로라는 평을 받아도, 그 타이틀을 다시 찍을 수는 없는 거죠. 선수단과의 약속이 있으니까요. 저희는 1년에 타이틀 찍는 날이 딱 정해져 있는 수준이에요. 그래서 처음에 만들었던 방향성이 틀렸다는 거를 깨달아도, 적어도 한 시즌은 지나야하는 아쉬움이 있을 때가 있고요. 마찬가지로 그래픽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되게 많은 비판을 받았어요. 예를 들면 “보라색투성이다”는 비판이 있었죠. '잘못됐다면 다음 시즌에라도 보강하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바로 고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즉각적으로 반영하려 노력하고 있고요. 그런 부분이 기존 스포츠 방송 대비 차이점으로 와닿았었습니다. 편집장: 그런데 야구도 보면 시청자 문자 참여가 있지 않나요? 야구 중계하실 때 받으셨던 피드백과는 차이가 있나요? 함영승 PD: 제가 주말에 MBC에서 메이저리그를 정규 방송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가 언제였냐면, 류현진뿐만 아니라 추신수, 박병호, 김현수, 오승환, 강정호 이렇게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이 대거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해였어요. 당시에는 그 선수들을 동시에 중계했거든요. 왜냐하면 시청자분들 중에서 1회부터 9회까지 즐기는 코어(core)한 야구 팬들도 계시지만, 한국 선수 플레이만 보고 싶은 팬들도 물론 계시거든요. 하지만 채널 숫자의 한계상 모든 한국 선수의 플레이를 동시에 보여드릴 수 없었어요. 그래서 실험적으로 모든 한국선수들이 뛰고 있는 경기의 피드를 다 받아서 마치 올림픽 중계처럼 우리 선수가 타석에 서거나 투구를 할 때 마다 옮겨가며 중계를 했습니다. 심지어 그때 박병호 선수가 마이너리그에 내려갔었거든요. 그래서 마이너리그 피드를 인터넷으로 따가지고 그것까지도 보여줬어요. 실시간으로. 그러면서 그때 어떤 걸 동시에 했냐면, 그 당시에 MBC에서 유행했던 프로 중의 하나가 마리텔이었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실시간 댓글 서비스까지 같이 넣은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이런 반응이 보이죠. 근데 그때는(전통 스포츠에서는) 보통 응원이 많아요. 선수에 포커스가 되어있죠. 그런 응원이 있는데, 여기는 응원 못지않게 다른 피드백도 많거든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큰 특징 중 하나인데, 야구나 축구, 농구는 그 자체를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리그오브레전드(이하 LoL)는 기업이 만들어낸 종목이라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 버그가 있다고 해보죠. 또는 버그가 아니어도 어떤 챔피언이 OP(Overpowered)이면 라이엇을 욕하게 되죠. 그런데 저희는 단순히 방송 생산자가 아니라, 라이엇의 구성원이다 보니까. 일단 게임 욕을 해도, 라코(라이엇 코리아)가 욕을 먹고, 방송하다 심판 판정에 이슈가 생겨도 라코가 욕을 먹고, 저희가 잘못을 해도 당연히 라코가 욕을 먹고, 그 모든 게 하나가 되어서 돌아오다 보니까 그런 지점들이 복합적으로 와 닿는 게 있습니다. 다만, 그래서 더 능동적으로 고민하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물론 시청자분들께 실망감을 드리는 부분들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편 방송국처럼 거대한 인프라를 갖고 있는 방송사들도 개국하고 몇 년 간은 크고 작은 방송 사고가 꽤 있었지만 현재 자리를 잡았듯이 저희도 시청자분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내부적으로도 꾸준히 인력 및 인프라를 늘려가며 성장해가고 있으니 앞으로도 많은 질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장: e스포츠의 현장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은데, 여기는 이제 스타디움이 있는 공간이지만 경기는 온라인상에서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현장을 중계하는 PD님의 입장에서 e스포츠의 현장 무대를 다른 스포츠의 현장과 비교한다면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요? 함영승 PD: 일단 같은 점은 관객분들이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흥분감이 있어요. 열기나 이런 특유의 현장감이 분명히 존재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경기가 펼쳐지는 무대 자체는 온라인상에 있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실존하는 선수들은 눈앞에 있잖아요. 그리고 저희 경기장이 부스가 아니라 오픈 무대잖아요. 그래서 선수들의 육성이 막 들려요. 막 ‘빨리 어디 가자’, ‘뭐 하자’ 이런 다급한 목소리도 들리기 때문에 현장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서 차이점은, 어떻게 보면 e스포츠의 되게 큰 특징인데, 캐스터, 해설가의 육성이 현장에 울려 퍼진다는 거죠. 야구장이나 축구장 가보시면 팬들의 웅성거림과 응원 소리, 응원가 이런 것들이 가득한 게 현장감을 주죠. 대신 거기에는 캐스터, 해설가가 없어요. 소거돼 있어요. 그거(해설가의 목소리)는 오직 방송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죠. 그러니까 기존 스포츠는 굉장히 오프라인적 이벤트이지만, 완성체로 만들어지는 것은 온라인인 거예요. 반대로 e스포츠 현장에서는, 경기 자체는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것 같지만, 어쨌든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크게 보이고 거기에 캐스터, 해설가의 보이스까지 더해져요. 그래서 현장 관람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e스포츠가 더 박진감 넘치게 느낄 수도 있어요. 그리고 현장감을 더 가미시켜주기 위한 장치들로 저희 같은 경우는 원소용을 잡으면 해당 원소의 조명으로 바뀐다거나, 바론을 잡으면 바론 조명으로 바뀐다거나 이런 방법들을 쓰고 있거든요. 결과적으로 저는 캐스터와 해설가가 e스포츠 현장감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제 개인적 견해로는 중계진분들은 장내 흥을 띄우는 역할까지 해오셨다고 봅니다. 축구나 야구, 농구 어느 종목과 비교해도 우리 중계진처럼 높은 텐션을 유지하며 중계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솔로킬, 한타 순간순간마다 역전 홈런 수준의 텐션을 뿜어내시거든요. 장내 분위기를 고조시켜야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역할까지 같이 하고 계신 거라고 봅니다. 편집장: e스포츠가 가지는 현장감의 특징으로 캐스터와 해설가의 목소리를 언급해주셨는데요. 그러면 이런 상상이 듭니다. 선수가 굳이 무대에 서지 않고, 캐스팅만 하면 어떨까요? 관객들이 현장감을 느낄 수 있을까요? 함영승 PD: 일단 먼저 말씀드릴 것은, 이미 그런 문화가 저희 안에서는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에요. 아시겠지만 CGV 상영이 그런 건데요. 이번 결승 같은 경우에는 전국 CGV 상영관에서 예매율이 90% 이상 되어서, 거의 한 8천 명이 결승을 CGV에서 보셨어요. 편집장: 저도 그 현장을 보고 싶어서 갔는데 너무 놀랐어요. 함영승 PD: 진짜 생각보다 엄청 많은 분들이 그렇게 즐겨주고 계세요. (CGV에서) 선수는 없었어요. 선수는 없지만, 대형 스크린이 주는 느낌, 사운드, 어떤 장면이 나왔을 때 함께 환호할 수 있는 유대감 이런 것들을 이미 즐기고 계신 것 같아요. 뷰잉 파티(viewing party)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는 다른 종목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플레이오프 기간에는 경기장 안에 못 들어가신 팬들도 꽤 많았어요. 근데 매진이 됐는데도 여기에(롤파크) 오세요. 롤파크라는 공간이 그런 문화를 제공하는 거죠. LoL을 좋아하고 LCK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이 만들어져 있잖아요. 그래서 표를 못 구해서도 오신 거예요. 함성이 안에서 막 새어 나오죠. 그때 저희가 롤파크 입장공간 쪽에도 경기를 틀어놓거든요. 그날 상당히 많은 분이 경기장 바깥 공간에 함께 모여 보시면서 응원을 하시는 모습에서 놀랐습니다. 편집장: 그런 지점들은 직관 스포츠와 방송 콘텐츠 사이의 새로운 점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데요. 스포츠펍에서 프리미어리그를 다 같이 본다던가 그런 것과 유사한 걸까요? 함영승 PD: 월드컵 거리 응원이랑 동일한 거긴 합니다. 같이 보는 게 더 재밌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LoL이 더 잘 성장하면, ‘언젠가는 롤드컵 결승으로도 광화문 거리 응원이 가능한 시대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제가 LCS 결승 중계 현장을 갔다가 되게 인상적이었던 게, 결승을 미식 축구장에서 했어요. 휴스턴에 있는 대형 미식 축구장 NRG 스타디움에서 했는데, 경기장이 개폐식 돔이라서 닫고 반으로 가르더라구요. 반을 갈라서 한쪽에서는 저희가 이번에 강릉에서 했던 일종의 팬페스타(Fan Festa) 같은 걸 하는 거예요. 안에 스폰서존도 만들고 각종 이벤트도 하고 그러는데, 개폐식 돔이고 반을 막으니 얼마나 깜깜하겠어요. 거기서 사람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문화를 향유하는 거죠. 아시다시피 LoL을 만들어서 서비스하고, e스포츠를 하고, 아케인을 만들고 하는 이 모든 행위가, ‘게임으로 오프라인에서도 유저분들께 유의미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이 현장에 갔을 때 강하게 느껴졌어요. 거기 오신 분들은 어떤 팀을 응원하고 거기에서 다양한 즐길 거리들을 체험하면서 더 깊이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문화에 대한 동질감, 연대감 이런 걸 갖고 돌아가시는 거죠. 그래서 저희도 이번에 ‘1박 2일간 팬페스타의 형태로 행사를 진행해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나왔고요. 물론, 기획을 하면서는 팬페스타 담당자 두 분이 ‘우리 둘만 손잡고 이 넓은 경기장에 서 있는 거 아닐까’하는 악몽을 꾸실 정도로 압박감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거의 7천 명 정도의 관객분들이 오셨어요. 이런 문화 행사, 축제 현장을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 저희에게도 큰 의미였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접점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온라인 콘텐츠임에도 현장을 통해 유대감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편집장: 사실 e스포츠라고 표현은 하지만, 결승전은 일종의 피날레로서 반드시 오프라인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 문화가 있죠. 그건 말씀하신 것처럼 몇만 명에 달하는 팬들이 와서 함께 함성을 지르고, 열광하면서 만들어지는 동질감과 유대감 때문일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아무리 온라인 시대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온라인이 미처 채우지 못하는 뭔가가 있지 않나는 생각도 드네요. 그러면 e스포츠의 현장감을 이야기할 때, 말씀해주신 부분들이 첫 번째는 아나운서의 캐스팅이었고, 두 번째는 오프라인에서 팬들이 가지는 유대감이라고 한다면 다른 요인은 없을까요? 함영승 PD: 선수들과의 상호작용이요. 저희가 공교롭게도 코로나가 터지면서 온라인 중계를 좀 했었어요. 그런데 온라인 중계를 진행하는 동안에 오프라인에 대한 갈증을 느꼈던 게 비단 저희나 팬분들만은 아니었어요. 선수들도 느꼈어요. 선수들도 ‘롤파크 와서 경기하고 싶다.’, ‘관중들이 있는 곳에서 게임하고 싶다.’, ‘관중들의 그 열기를 느끼고 싶다.’ 선수들도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그런 게 뭐 때문이냐면, 관객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진짜 멋진 플레이가 나왔을 때 순간적으로 환호성이 확 터지잖아요. 그런 걸 선수들도 느끼는 거예요. 그 울림이 느껴지는 거죠. 그때 선수들도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거예요. 특히 발로란트 같은 FPS 장르는 그런 지점에서 매력이 있는 게, 라운드가 명확하잖아요? 그러면 킬을 냈을 때 바로 함성이 빵빵 터져요. 멋진 플레이가 나오면. 그럴 때 선수들의 액션도 다른 게임에 비해 되게 크더라고요. 그런 것이 현장에 챈트(chant)를 유도해요. 편집장: 그러니까 선수의 플레이가 관객의 챈트 같은 새로운 인터렉션을 만들고, 거기에 또 선수가 반응을 하는. 그게 현장성이네요. 그것도 굉장히 핵심적인 지점이군요. 함영승 PD: 네.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 들어왔을 때 관객의 함성이 주는 웅장함, 그건 저도 많이 느껴봤어요. 저는 팬으로서도 많은 경기장을 다녀봤는데요. 텅 빈 데 가면 선수의 목소리가 다 들려요. 그런데 선수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도 긴장감이 별로 없어요. 반면에 관중이 꽉 들어찬 데서 울려 퍼지는 함성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있거든요. 그게 스포츠를 보는 재미를 한껏 배가시켜주는 거죠. 그러니까 그냥 선수들과 관중이 함께 한다는 것이 아니라, 관중들과 선수의 상호작용이 현장감을 만드는 것 같아요. 코로나 시기에 팬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서 “하나, 둘, 셋, OO 파이팅!” 이게 그리운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어떻게 했냐면, 경기 시작 전에 직원들이랑 관계사, 외주사 직원까지 롤파크에 다 모여서 오디오 녹음을 한 적이 있어요. “하나, 둘, 셋, OO 파이팅!”, “하나, 둘, 셋, OO 파이팅!”. 그리고 결승전 앞두고 그걸 틀어본 적이 있었어요. 팬들이 오글거린다고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중에는 ‘저거 그립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결국은 많은 관객들이 주는 전율 같은 걸 느끼고 싶은 거고, 내가 좋아하는 이 문화에 대한 연대감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선수들이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앞에 와서 인사를 하고, 끝나고 나서 팬 미팅을 하고 이런 접점이 있죠. 마치 아이돌 팬 미팅이랑 비슷한 형태의 문화가 있거든요. 전통 스포츠는 경기 끝나고 선수들 퇴장 동선에 서 있다가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는 경우는 있지만 매 경기 직후에 팬 미팅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건 제가 보기에 e스포츠만의 독특한 문화 같아요. 편집장: 상호작용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그 지점에서는 특히나 퍼즈(pause) 걸린 상황도 핵심적일 것 같네요. 다른 스포츠의 경우에는 오류가 나거나 우천 취소가 나거나 했을 때, 그냥 대기 상태로 오히려 현장감이 식는 분위기인데, LCK 중계에서 퍼즈는 본격적으로 캐스터와 팬들이 소통하고 상호작용이 가시화되는 게 아닐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함영승 PD: 일단 퍼즈 상황이 없어야 하는데 이번 시즌 게임 이슈 등으로 특히 자주 발생해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퍼즈 시 상호작용 같은 경우는 중계진 분들의 노고가 담겨있는데 아무래도 실시간으로 시청자 반응을 모니터링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좀 더 시청자들이 어떤 것을 원하고 있는지 파악을 할 수 있죠. 그리고 성캐(성승헌 캐스터)님이나 해설자분들도 ‘어떻게 보면 부정적일 수 있는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계세요. 이런 지점이 캐스터님이나 해설자분들께 부담이 되기도 하죠. 그래도 실시간 댓글 반응을 알 수 있고, 많은 분들이 노력해주시는 덕분에 그 시간을 치어플(응원 메시지)이나 영상 등으로 소통하면서 대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편집장: 현장성이라는 게 참 정의하기는 어려운데,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힌트가 곳곳에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제 그러면 결론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e스포츠를 현장에서 만드시는 입장에서, 관객이 꽉 차고 시끌벅적했던 경기가 끝나고 빈 경기장을 보시면 집에 가기 전에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함영승 PD: 코로나 시기에 선수들도 숙소, 관중들은 무관중 저희만 이 현장을 지켰어요. 그러면 그 텅 빈 경기장에서 주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때는 저희가 항상 출퇴근할 때마다 약간 우울한 마음을 살짝 갖고 있었거든요. 이 텅 빈 극장을 지키는 관리인 같은 느낌이었어요. 경기가 끝나고 난 다음에도 딱 그런 느낌이에요. 연극 공연이 끝난 뒤에 텅 빈 무대를 보는 느낌. 그러니까 관중들이 오시면, 극장에 손님들이 와서 영화 보기 전에 팝콘 사고 기다리면서 설레는 그런 현장. 그거를 보면 그 에너지가 여기 있는 제작진들한테도 느껴지고, 선수들한테도 전달되는 것 같아요.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은 팬 미팅이 있고, 웅성웅성하지만, 그분들 다 떠나고 나면 3층 롤파크는 무섭습니다. (웃음) 상당히 어둡고 그 생명력이 싹 빠져나간 공간이 돼서 그런 느낌을 받아요. *시즌이 끝나서 텅 빈 롤파크. 함영승 PD의 말처럼 어둡고 외로운 느낌이 든다. 편집장: 그러면 마지막으로 아주 선택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 PD님은 방송 제작자이신가요? e스포츠 운영자이신가요? 방송 제작과 현장성이라는 두 영역 모두 걸쳐 있으신 것 같은데요. 함영승 PD: 저는 하는 역할이 그래도 아직은 방송 제작자에 가깝죠. 편집장: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감상들을 굉장히 많이 이야기해주셨잖아요? 스포츠 중계 때랑은 좀 다른 현장성인 거죠. 함영승 PD: 그게 어떻게 보면 제가 이쪽으로 옮기게 된 가장 큰 계기이기도 한데요. 저희가 경기장을 갖고 있는 거잖아요. 그 차이가 큰 겁니다. 그러니까 경기장을 갖고,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면서 방송을 하고 있는 거죠. 기존에는 전국에 있는 모든 경기장에 중계차를 갖다 대고 중계를 해도, 저희 경기장이 아니었어요. 그저 차려져 있는 경기장에 카메라를 대고 담아오는 거예요. 근데 여기는 밥상 자체를 차려야 해요. 그리고 차린 것을 관객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게끔 고민하고, 이를 위해서 이벤트 팀이나 리그 운영이나 사업팀 모두의 행위들이 종합되어서 현장을 만들어내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KBO이자, 스포츠방송 제작사이자, 잠실 야구장이에요. 이 3개가 결합되어 있는 구조인 거죠.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제가 이쪽으로 옮기게 된 것이에요. 편집장: 현장에서 고민하는 방송 제작자의 길을 걷고 계시는군요.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논문세미나] Time War: Paul Virilio and the Potential Educational Impacts of Real-Time Strategy Videogames
이번 논문 세미나는 하나의 사진과 함께 시작해 보려고 한다. 2011년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백악관 상황실에서 찍힌 이 사진에서 오바마를 비롯한 현장의 인물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시선을 한데 모으고 있다. 회의를 하면서 띄워둔 자료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 심각한 문제 발언을 했던 걸까? 여러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사진은 사실 빈 라덴 급습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을 지켜보고 있는 현장을 포착한 것이다. 이들은 빈 라덴이 사살되기 전까지 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을 모두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 Back [논문세미나] Time War: Paul Virilio and the Potential Educational Impacts of Real-Time Strategy Videogames 18 GG Vol. 24. 6. 10. 들어가며 이번 논문 세미나는 하나의 사진과 함께 시작해 보려고 한다. 2011년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백악관 상황실에서 찍힌 이 사진에서 오바마를 비롯한 현장의 인물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시선을 한데 모으고 있다. 회의를 하면서 띄워둔 자료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 심각한 문제 발언을 했던 걸까? 여러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사진은 사실 빈 라덴 급습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을 지켜보고 있는 현장을 포착한 것이다. 이들은 빈 라덴이 사살되기 전까지 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을 모두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이 사진이 보여주는 건 두 가지다. 첫째, 이제는 그 어떤 전투(또는 전쟁)든 원격으로 지켜보는 것이 가능하다. 둘째, 지금 내 눈앞에서 전투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는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있다. 이제 전투는 우리 눈에 굳이 보이지 않아도 될 만큼 빨라지고, 또 효율적이 되었다. 그리고 일찍이 이에 관한 것을 이론화한 인물이 프랑스의 정치 이론가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다. 오늘 보게 될 데이비드 웨딩턴(David I. Waddington)의 논문은 비릴리오의 <속도와 정치(Vitesse et Politique)> 및 <소멸의 미학(Esthetique de la disparition)>을 통해 실시간 전략 게임(Real-time strategy, 이하 RTS 게임)을 살핀다. 교육철학 연구자인 웨딩턴은 비릴리오의 이론을 RTS 게임과 아울러 보고, 해당 게임이 가진 교육적 가능성을 발굴해 내고자 한다. 비릴리오의 ‘속도’ 개념 비릴리오(Virilio, 2004)는 <속도와 정치>에서 정치 및 전쟁을 ‘속도’에 연관 지어 바라보았다. 그는 해당 저작을 통해 속도는 곧 시간과 같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런 비릴리오의 사유는 고대부터 1900년대까지 다양한 시대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비릴리오 연구자인 존 아미티지(John Armitage)는 그의 사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본디 도시는 요새화된 형태로 유지되고 있었으며, 그 자체로 정치적인 공간이자 토대였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면서 요새화된 도시는 점차 사라졌고, 비릴리오는 이 같은 변화에 집중했다. 그 안에서 비릴리오가 주요하게 보고자 한 것은 요새화된 도시가 사라지게 된 이유였다. 아미티지(Armitage, 2003)는 비릴리오가 쉽게 운반할 수 있고 가속화된 무기체계가 등장한 것을 원인으로 지목했다고 설명한다. 쉽게 운반할 수 있다는 건 운반 시간을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며 가속화된 무기체계가 등장했다는 건 이전보다 더욱 빠른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비릴리오가 정치와 전쟁을 속도와 연결 지어 보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그래서 비릴리오가 볼 때 전쟁은 속도의 문제이며, 속도는 시간이나 마찬가지다. 즉 군사적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속도에 관한 요소들이 나타나면서 요새화된 도시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게 비릴리오의 주장이다. 이런 비릴리오의 의견은 맑스와는 대조적이다. “맑스가 유물론적인 역사 개념을 쓴 곳에서 비릴리오는 군사적 역사 개념”(Armitage, 2003, 10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논문의 연구자인 웨딩턴도 비릴리오의 속도 개념을 몇 가지 핵심 요소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에른스트 윙거(Ernst Jünger)에게서 따온 ‘총동원’이라는 용어다. 총동원은 전시 상황/비전시 상황을 가리지 않고 사회에서 활용되는 것들을 함축한 말이다. 이것은 경찰의 군사화, 신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 감시의 증가 등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두 번째는 ‘병참’이다. 병참은 비전시 상황에도 사회의 에너지를 군대에 모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병참은 총동원이 보이는 형태들과 연결되며, 세 번째 요소인 ‘공간의 붕괴’로도 통한다. 과거에는 좋은 지형(공간)을 선점하고, 그 지형을 감시와 위협에 활용하는 것이 전쟁에서 유리해지는 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쟁은 그 성격이 바뀌었다. 컴퓨터와 드론, 미사일, 핵무기가 공간의 의미를 잃게 만든 것이다. 이제 공간을 선점하는 것은 전쟁을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 전쟁을 벌이던 공간은 붕괴하였으며, 유리함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활용해야만 한다. 네 번째 요소는 ‘사라짐’이다. 그동안 전쟁의 이미지는 탱크, 전투기 등으로 대표되었지만, 오늘날의 전쟁에서 탱크와 전투기는 이전만큼 보이지 않는다. 사실 탱크와 전투기의 사라짐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일련의 단계가 존재한다. 지금은 위장하기 용이한 색과 무늬를 띠고 있으나, 이전의 군복은 눈에 띄는 밝은 색상이었다. 이런 군복은 점점 사라져, 현재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그럼, 거기서 끝일까? 아니다. 위장된 군복을 입은 군인은 탱크와 전투기 속으로 사라졌다. 맨몸으로 치고받으며 행해지던 전투는 차체와 기체를 이용하여 행해졌다. 그리고 이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된’ 전쟁은 최종적으로 사회 구조에서도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전쟁은 일상 어디서든 함께하고 있다. 이렇게 비릴리오의 이론을 정리한 웨딩턴은 그러한 관점을 토대로 RTS 게임을 바라본다. 그는 총동원, 병참, 공간의 붕괴를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인 장소 중 하나로 게임, 그중에서도 RTS 게임을 지목한다. 속도: 게임의 이름 이 연구는 RTS 게임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실 웨딩턴은 FPS 게임과 MMORPG 게임 또한 비릴리오의 이론에 적합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웨딩턴이 RTS 게임만을 본 건, 해당 게임이 총동원과 병참, 공간의 붕괴, 시간이 중요해진 전쟁을 제대로 이미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웨딩턴은 <스타크래프트(StarCraft)>를 예로 들어 RTS 게임의 작업 단계를 설명한다. 첫 번째는 자원 채집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자원이라면 광물과 가스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실시간 전투 여부에 상관없이 꾸준히 축적해야 하는 것이다. 자원을 채집하기 위해서는 유닛의 쓰임새를 구분할 줄 알고, 자원 채집 장소를 탐색하는 등 여러 관리가 필요하다. 이 자원채집은 ‘총동원’에 해당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총동원이 떠오르는 작업이 있다면 ‘병참’에 걸맞은 작업도 있기 마련이다. 바로 건물 건설과 군사 유닛 생성이다.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유닛을 생성하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건물을 건설해야만 한다. 건물은 곧 강력한 유닛 생성과 연관되며, 이는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승리를 위한 밑 작업인 건물 건설과 유닛 생성은 총동원 격인 자원채집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병참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공간의 붕괴’로 대표되는 건 본거지를 방어하면서 적군을 제거하고, 적의 기지까지 파괴하는 행위이다. 특히나 강력한 군사 유닛은 혼자서도 밝혀지지 않은 맵을 탐험하고 적 기지를 감시하며, 원거리 급습을 효과적으로 이뤄낼 수 있게 한다. 테란의 유닛인 고스트로 적 기지를 조사하고 핵탄두를 떨어트리는 게 이에 해당할 것이다. ‘실시간 전략 게임’이라는 그 의미처럼 RTS 게임은 속도가 중요한 환경에서 펼쳐진다. 일꾼 유닛과 군사 유닛을 신속하게 배치하고 생산과 탐사를 효율적으로 할수록 승리 확률이 높아진다. 플레이어는 재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여, 속도에 따라 모든 것을 통제해야만 한다. 이러한 이유로 웨딩턴은 RTS 게임이 시간을 활용한 전쟁 게임이라고 본다. 학습과 RTS 게임: 긍정적인 관점 앞서 이야기했듯이 웨딩턴은 교육학 연구자이다. 그래서인지 웨딩턴은 이번 장에서 비릴리오의 개념을 잠시 내려두고, 다른 연구를 인용하며 RTS 게임이 가지는 학습 효과를 살핀다. 먼저 웨딩턴이 인용한 지(Gee, 2003)의 글은 RTS 게임을 하면서 느낀 압박감을 서술하고 있다. 지는 RTS 게임에 미숙하여, 게임이 요구하는 것보다 느린 속도를 가진 플레이어였다. 이런 지는 <라이즈 오브 네이션스(Rise of Nations)>를 통해 게임을 학습하는 방식에 대해 풀어낸다. 이를테면 지는 게임 내 일시 정지 버튼에 관심을 보였다. 일시 정지 버튼은 빠르게 진행되는 게임을 잠시 멈추게 하여, 플레이어가 화면 내 기능들을 살피고 전략을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해당 게임에는 조작 숙달을 돕는 각종 테스트가 존재했다. 지는 그를 통해 일종의 단련을 할 수 있었다. 일시 정지와 테스트로 나타나는 시스템의 배려는 게이머가 언제든 전투에 참여할 수 있게 대비시켜 준다. 웨딩턴이 지의 이야기를 끌어온 건 느린 속도의 게이머가 ‘실시간’으로 넘어갈 수 있게끔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위해서다. 그러면 웨딩턴이 이 주장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그 후에 인용된 블레어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블레어(Blair, 2013)는 <스타크래프트 2(StarCraft 2)>를 비롯한 RTS 게임의 플레이어 주도적인 통제 환경이 실생활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사실 여기에는 다양한 반박이 가능하다. 한 분야에서 획득한 전문성을 곧장 다른 영역에 적용하기 어렵다는(Thorndike & Woodsworth, 1901) 의견을 이 반박에 포함할 수 있겠다. 하지만 웨딩턴은 그를 인지하면서도, 블레어의 말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에 더 주목하였다. 학습에 활용될 수 있는 RTS 게임의 가능성을 보려고 한 것이다. 학습 속도: RTS 게임과 경험의 아치 지와 블레어 두 사람은 RTS 게임에서 획득할 수 있는 학습 효과를 서술하였다. 지의 경우에는 게임이 어떻게 플레이어를 그 안으로 이끌 수 있을지 말하고, 블레어는 게임으로 습득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해 얘기한다. 이에 웨딩턴은 그들의 주장에서 도출해 낸 생각을 밝힌다. 하나는 게임을 속도와 효율성을 단련하는 훈련으로 본 자신과 저들의 이야기가 일치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게임에서 학습되는 요소가 눈에 띄는 만큼, 그 안의 문제성도 관심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웨딩턴은 특히 후자를 유의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게임을 통한 학습이 가지는 문제점은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훈련 시킨다는 데에 있다. 이 사고방식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활용 가능한 것으로만 보는 시선(Heidegger, 1977: Ellul, 1964: Dreyfus, 2002: Borgmann, 1984, 1992 재인용)을 의미한다. 이런 부분에서 웨딩턴이 전유하는 속도 개념은 RTS 게임을 비롯하여 여타 게임으로 학습할 수 있는 요소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게임 경험은 우리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아니면 나쁜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사회에 좋은 방향으로 성장했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시선이 무미건조해지지는 않겠는가? 교육학자인 듀이(Dewey, 1938)는 “모든 경험은 이전에 있었던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흡수하는 동시에 어떤 식으로든 이후에 오는 경험의 질을 수정”(12쪽)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모든 경험은 아치’와 같다는 시를 인용하여, 경험에 차별을 둘 근거는 없다고도 이야기했다. 이번 장 제목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 듀이의 글은 RTS 게임 경험과 학습에 대한 웨딩턴의 생각을 어느 정도 대변하는 듯하다. 주요 이의 제기 경험을 아치에 빗댄 듀이의 글은 사실 게임 내 폭력적인 경험이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근거로 이용되기도 한다. 웨딩턴은 게임에서 행해지는 폭력적인 행위가 단순 놀이로만 해석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시카트(Sicart, 2009)의 주장은 게임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주류 의견에 반대된다. 시카트는 플레이어가 즉각적인 입력과 출력을 따르므로 그러한 행동이 나온다고 말한다. 이때 즉각적인 입력과 출력은 몬스터를 죽이고 골드를 얻는 것과 같은 행위를 뜻한다. 이런 시카트는 플레이어 개인의 가치와 판단 능력이 게임 시스템과 결합하여 새로운 해석을 낳을 수 있다고 본다. 시카트의 주장은 <맨헌트(Manhunt)> 분석을 통해 심화한다. <맨헌트>는 사람을 쇠지레로 때려죽이거나 비닐봉지로 목 졸라 죽이는 등 실제 살인이 연상되는 잔인함으로 유명한 게임이다. <맨헌트>는 내용상 무조건 살인을 저질러야만 하는데, 시카트는 이렇게 강제된 상황이 오히려 윤리에 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준다고 설명한다. 웨딩턴은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그런 반성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하지만, 시카트의 지적 자체는 옳다고 말한다. 게이머가 게임을 하면서 벌이는 행동과 게임 자체에 대한 평가는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웨딩턴은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RTS 게임에서 속도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 가상의 폭력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보다, 가상의 속도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예를 들면 <맨헌트>에서 가상의 살인을 저질러도 현실의 내가 살인자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게임 도중 재빠른 판단을 내리는 이는 이후에도 판단력 좋은 사람으로 인식된다. 한 마디로 게임을 하면서 나타난 속도는 현실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둘째, RTS 게이머는 플레이 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속도와 효율을 꼽는다. <스타크래프트> 플레이어가 자신의 속도를 높이는 것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한다는 연구 결과(Kow and Young, 2013: Yan, Huang, & Cheung, 2015 재인용)를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만큼 속도는 RTS 게임 한 판 한 판을 책임지는 필수 요소다. 웨딩턴의 서술 흐름이 시카트에서 속도 개념으로 흐르게 된 것은 게임과 속도에 관련된 담론이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반영된 게 크다. 웨딩턴이 보는 RTS 게임은 모든 것을 자원으로 보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효율성에 관해 학습할 수 있는 장소다. 또한 전쟁이 일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 전쟁 체험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을 속도와 연결해 바라보는 시도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웨딩턴은 게임이 실제 폭력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처럼 속도에 관한 것도 주시해 보기를 제언한다. 나가며 웨딩턴이 속도 개념을 이용해 궁극적으로 역설하고자 한 건 게임을 통해 효율적인 학습, 내지는 훈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웨딩턴의 주장은 자칫 효율 중심적인 사고로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존재한다. 이는 웨딩턴 그 자신 또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비릴리오의 속도 이론은 웨딩턴이 전개한 것과는 달리, 비판적인 입장에서 작성된 것이었다. 물론 비릴리오가 기술의 긍정적인 부분을 완전히 배제한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그의 글에 기술에 대한 경계가 서려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웨딩턴의 주장은 교육학 연구자라는 그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지만, 비릴리오의 속도가 왜곡되게 이해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움이 남는다. 그래도 웨딩턴의 이야기 자체에만 집중해 보자면, 효율성이 게임의 인상에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낙관적인 생각도 든다. 게임을 통해 학습 효과를 증진시키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상당한 이점이다. 즉 그동안 지배적이었던 폭력성이나 중독에 관한 담론을 탈피할 가능성도 생긴다는 소리다. 그러나 몇 가지 질문도 함께 남는다. 게임은 오직 효율성을 입증해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가? 게임에서 효율성과 학습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최근 게임을 이용한 교육이 조명받기 시작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할까? 이는 앞으로의 게임과 우리의 인식에 남겨진 숙제가 아닐까 한다. 참고문헌 Armitage, J. (2003). 폴 비릴리오의 정치 이론-<속도와 정치>를 중심으로 (서문), <속도와 정치> (7-42쪽). 이재원 (역) 서울: 도서출판 그린비 Blair, M. (2013). Real-time strategy video games; a new ‘drosophila’ for the cognitive sciences. [Online video]. Retrieved from https://www.sfu.ca/cognitive-science/defining-cognitive-scienceseries/dcs-archive/2013/spring/blair-rts-games-expertise.html (현재 이용 불가) Borgmann, A. (1984). Technology and the character of contemporary life. Illinoi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Dewey, J. (1938). Experience and education, Free Press. Gee, J. P. (2003a). What video games have to teach us about learning and literacy. London: Palgrave-MacMillan. Gee, J. P. (2003b). Learning about learning from a video game: Rise of nations. Wisconsin: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Sicart, M. (2009). The ethics of computer games. Massachusetts: MIT Press. Thorndike, E. L., & Woodsworth, R. S. (1901). The influence of improvement in one mental function upon the efficiency of other functions. Psychological Review, 8(6), 247-261. Virilio, P. (1977). Vitesse et Politique. 이재원 (역) (2004). <속도와 정치>. 서울: 도서출판 그린비. Yan, E. Q., Huang, J., & Cheung, G. K. (2015). Masters of control: Behavioral patterns of simultaneous unit group manipulation in StarCraft 2. Paper presented at the Proceedings of the ACM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Seoul. Tags: 비릴리오, 가속, 속도의정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백구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비주얼 노벨 올 클리어에 열을 올리는 중입니다.
- 박물관/미술관 속의 게임들과 그 역사
최근 들어 미술관에 게임이 전시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 전시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와 같이 게임을 소재로 한 전시가 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들은 단순히 그 오브제의 집합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작품들이 연계되어 만드는 다양한 맥락을 통해 그 작품의 의미는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 Back 박물관/미술관 속의 게임들과 그 역사 12 GG Vol. 23. 6. 10. 최근 들어 미술관에 게임이 전시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 전시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와 같이 게임을 소재로 한 전시가 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들은 단순히 그 오브제의 집합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작품들이 연계되어 만드는 다양한 맥락을 통해 그 작품의 의미는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이 미술관에 전시되었다는 사실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재편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술적인 차원에서 볼 때 게임은 종래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채우고 있는 유물이나 회화 등의 작품과 비교할 때 동적일뿐더러 상호작용적으로 작동된다. 어렸을 때부터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로 무장한 젊은 세대에게 이러한 동적인 행위성 덕분에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다소 수동적이었던 기존의 작품 관람 패턴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게임이 게임만을 소재로 한 박물관을 갖게 되고, 다른 미술관에서 당당하게 전시를 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게임이 독자적인 박물관을 가지게 되고, 사회적인 편견을 넘어 미술관에 전시되게 된 역사를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 사례를 소개하려고 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최초의 게임들 * MoMI에서 최초로 박물관에 전시된 아케이드 게임들 비디오 게임이 본격적으로 산업의 태동을 맞이한 시점을 1972년 아타리의 〈퐁〉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1989년에 이르러서야 게임은 처음으로 박물관에 전시될 기회를 갖게 된다. 미국 뉴욕의 Museum of the Moving Image (MoMI)는 “Hot Circuits: A Video Arcade”라는 이름의 전시에서 아케이드 게임들을 전시했다. 이 박물관의 창립 이사였던 로셸 슬로빈(Rochelle Slovin)은 비디오 게임이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고 물리적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컴퓨터 스페이스(1971)〉나 〈퐁(1972)〉 같은 초기 아케이드 게임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아스테로이드〉, 〈스페이스 인베이더〉, 〈슈퍼 브레이크 아웃〉, 〈트론〉 등 14종의 아케이드 게임이 전시되었다. MoMI의 이 초기 전시들은 이 박물관이 수집하고 있는 ‘동영상(moving image)’라는 개념에 부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움직이는 영상 이상의 인터랙션을 안겨주었기에 이러한 게임들을 전시할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본질적으로 게임은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운 좋게 게임에 호의적인 큐레이터를 만나 전시하게 된 새로운 매체 정도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위의 사진처럼 MoMI의 전시는 단순히 기존에 존재하던 아케이드 게임을 그대로 수집하여 가져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집된 게임의 예술적인 특질을 추출하기는 쉽지 않다. 실제 해당 게임을 만든 개발자들에게도 본인들이 예술적인 작품을 만든다는 작가적 정체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로셸 슬로빈은 이러한 아케이드 게임들의 기술적인 특징이나 게임이 소비되는 사회적인 맥락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는 이 전시에 관한 에세이에서 “비디오 게임을 평가한다는 것은 TV과 영화, 그리고 현재의 뉴미디어를 지배하는 비디오-컴퓨터의 혼합 사이에서 구미디어와 뉴미디어 사이의 첫 번째 연결 고리를 만드는 중요한 단계”라고 썼다.1) 그는 1989년의 전시 이후 20년이 지난 2009년의 시점에서 당시의 전시들이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처럼 하나의 트렌드나 유행이 아니라 오히려 중요한 무언가의 시작”이었으며, “비디오 게임이 전 세대의 젊은 미국인들을 컴퓨터에 적응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당대의 아케이드 게임이 가진 기술적인 시각화가 다른 매체와 다른 비디오 게임 고유의 독자적인 미학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초기 비디오 게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게임이 컴퓨터의 사고방식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게임이 탄도학이나 군사 시뮬레이션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초기 형태의 컴퓨터와 칩은 힘과 벡터라는 순수한 수학만을 다루도록 설계되었다. 그들이 비디오 게임으로 재현되었을 때, 여기에는 순수한 수학의 강한 흔적이 여전히 존재했다. 이는 시각적 엔터테인먼트의 독특한 순간이었다. 기술이 게임의 원동력이자 콘텐츠가 되었다. 이것은 내가 본 것처럼 기술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내용과 기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기 위한 의미였기 때문에 이것은 박물관에 유용한 오리엔테이션이었다. 비디오 게임은 물리 법칙을 거의 감각적으로 시각화하고 느끼는 방식을 혁신 했다. 힘과 벡터 같은 물리적 법칙을 수학 공식을 통해 기술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기의 비디오 게임은 박물관에 전시될만한 맥락을 처음으로 획득하게 된 것이다. 특히 젋은 미국인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을 게임이 적응시키고 있다는 사회적인 맥락이 형성되었다는 점을 그는 주목했던 것이다. 이는 이 때를 즈음하여 게임이 단순히 아케이드만을 통해 소비되지 않고, 가정용 게임기나 개인용 컴퓨터를 통해 다양한 플랫폼으로 소비되고 있음에 착안하여, 초기의 아케이드 게임이 가질 희소성과 보존 가치에 주목했다. 이 때부터 MoMI는 초기 아케이드 게임뿐만 아니라 랄프 베어로부터 기증받은 인류 최초의 가정용 게임 콘솔인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의 프로토타입 버전인 ‘브라운 박스’ 등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는 현재에도 MoMI의 주요 컬렉션을 이루고 있다. 미디어 아트 옆에 놓인 게임 MoMI의 이 전시 이후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비디오 게임의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는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1998년 미국 미네소타 주에 위치한 워커 아트 센터(Walker Art Center)에서 열린 “Beyond Interface” 전시나 2000년 UC 얼바인 대학에서 열린 “Shift-Ctrl”전, 2001년 뉴욕 Museum of Modern Art (MoMA)에서 열린 “010101: Art for our Times”, 그리고 같은 2001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Bitstreams”전이 그것이다. 이 당시 전시의 특징은 게임을 독자적으로 전시하기보다 게임과 디지털 미디어아트를 동일선 상에 놓고 병렬적인 차원에서 이들의 유사성을 더듬어 나가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 휘트니 미술관 Bitstreams에 전시된 제레미 블레이크의 미디어 아트 Station to Station (2001)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이르면 게임은 미국과 유럽, 일본과 한국을 위시한 동아시아에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나름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을 당시였다. 〈스타크래프트〉를 위시하여 e스포츠의 가능성이 시작되었고, 3D 그래픽 카드의 출시를 통해 게임의 시각적인 표현력도 우수해지던 때였다. 물론 막 시작된 3D 그래픽의 표현 수준은 아직 언캐니 밸리의 위험한 구간을 통과하기 어렵던 때였지만, 도트나 벡터 그래픽을 바탕으로 한 2D 그래픽의 표현 수준은 슈퍼패미컴이나 PC엔진과 같은 4세대 가정용 콘솔에서 절정에 이르러 하나의 스타일을 확립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미 그 이전부터 몇몇 작가들은 컴퓨터 그래픽과 인터랙션을 하나의 표현 도구로 삼고 이를 통해 뉴미디어 아트를 선보이고 있었다. 이 당시 미술관에 전시된 게임은 독자적인 전시로 구성하기는 어렵지만, 디지털 아트라는 범주를 새롭게 설정하면서 그 맥락에 묻어가면서 전시 맥락을 획득한 경우라 볼 수 있다. 도구로서의 디지털은 쉬운 복제와 편집 가능성을 바탕으로 기존 작품의 권위를 쉽게 패러디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당시에 나왔던 리디아 와초프스카의 〈브레이크 아웃〉 패러디는 기존의 비디오 게임 매커닉을 패러디하여 디지털 아트가 재구성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 Lidia Wachowska, Breakout Animation Steal, 2002. 문제는 이처럼 게임이 디지털 아트와 더불어서 미술관에 점차 전시되면서 ‘예술 게임(art game)’과 ‘예술적 형식으로서의 게임(games as a art form)’이 구분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술가나 미디어아트 작가들이 게임적 요소를 하나의 도구로 삼아 예술가적 자의식을 가지고 제작한 예술 게임과 상업적 게임 중 예술성이 뛰어난 게임인 ‘예술적 형식으로서의 게임’은 지향하는 바가 분명히 다르다. 전자의 경우 2000년대 전후를 위시하여 지속적으로 미디어 아트 포맷 형태로 미술관에 숱하게 전시되었으나, 예술적 형식으로서의 게임은 상업적 속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도 하거니와 이를 제작한 개발자의 예술적 자의식이 없거나 크게 도드라지지 않기 때문에 미술관에 전시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다른 맥락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이란 게임이 소비되는 사회적인 맥락에 있어서 흔히 게임의 본질적인 매체 효과로 간주되는 ‘재미’를 넘어 게임이 영감(inspiration)을 줄 수 있는 미학적 자질을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석파정 서울미술관, “안봐도사는데지장없는전시” (2019) 2019년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열렸던 “안봐도사는데지장없는전시”는 게임만을 다룬 것은 아니었지만, 작품 중 여러 예술적 형식으로서의 게임을 전시한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호주의 게임 개발사 Mountains에서 개발하고 안나푸르나 인터랙티브에서 퍼블리싱한 모바일 게임 〈플로렌스(Florence)〉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이 전시는 게임이 우리 사회 속에 어느새 미적 감각을 전달해줄 수 있는 주요 매체로 자리매김했음을 일깨워준다. 독자적인 게임 박물관을 향하여 필자 역시 2010년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린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전시를 기획하면서 게임을 미술관에 넣어보려 노력한 적이 있다. 놀공발전소와 함께 준비했던 이 전시에서 우리는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출시된 주요 게임 콘솔과 애플 II, MSX 등 한국에서 주요한 의미를 가진 개인용 컴퓨터들을 플레이 가능한 형태로 비치했고, 그 중 예술적으로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다양한 게임들을 게임 역사 순서대로 전시한 바 있다. 물론 이 때에도 게임만으로 미술관 전시를 진행하는 것에 대한 미술관 내외의 반감이 상당하여 상당수의 전시를 디지털 중심의 미디어 아트로 채워야 했었다. 때문에 필자는 전시 시작 입구 쪽에 백남준의 〈TV 촛불〉을 초를 켠 채로 세워놓았다. 백남준의 〈TV 촛불〉은 TV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 게임이든 미디어아트이든 그 뿌리는 같으며, 이를 어떻게 채울지가 더 중요하다는 선불교 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으로 나에게는 다가왔던 것이다. 이 작품의 선정은 미디어아트 없이는 게임만의 독자적인 미술관 전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편견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일종의 소극적 저항이었던 셈이다. * 백남준, TV 촛불 이는 현재 제주도에 위치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오픈 수장고를 통해 선보이고 있는 방식과 유사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폭넓은 게임 콜렉션을 자랑하는 미국 뉴욕 주 로체스터에 위치한 The Strong Museum이나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Computerspielmuseum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오픈 수장고 형식을 채택하고 있다. 물론 이 박물관들은 모두 전시된 게임 이상의 수많은 콜렉션을 보유하고 있고, The Strong Museum만 게임업계나 학계 관계자들에게 폐가식 형태로 이를 공개하고 있다. The Strong Museum 내에 위치한 International Center for the History of Electronic Games는 게임 그 자체를 수집, 보존, 전시하는 것을 넘어 실제 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최대한 존중하여 보관하고자 하는 곳이다. * 〈페르시아의 왕자〉 디렉터인 조던 메크너의 스토리보드와 모션 캡쳐 노트 필자가 이 박물관의 센터를 방문했을 때 놀런 부슈넬, 윌 라이트, 조던 메크너, 시드 마이어 등 유명 게임 개발자들의 다양한 게임 메커닉 스케치와 아타리 2600 등과 같은 올드 게임 콘솔의 디자인 설계도 등을 열람할 수 있었으며, 이를 분류하는 체계 역시 이미 규정이 확립되어 있었다. 게임을 보존해야 할 미디어로 간주하고 이를 철저하게 시행하고 있는 사회적 인식이 확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The Strong Museum의 사례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해준다. 1) Rochelle Slovin, “Hot Circuits: Reflection on the first museum retrospective of the video arcade game”, 2009. http://www.movingimagesource.us/articles/hot-circuits-20090115 Tags: 아카이빙, 박물관, 전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 [논문세미나] “Sexuality does not belong to the game” - Discourses in Overwatch Community and the Privilege of Belonging
한때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AAA급 게임 〈오버워치(OVERWATCH)〉. 〈오버워치〉는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내 다양한 논쟁이 오갔던 2010년대 후반을 상징하는 게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 인기를 입증하듯, 〈오버워치〉에는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쏟아져나왔고 이를 통해 드러난 현상과 논의들이 논문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기를 풍미한 〈오버워치〉는 작년 10월, 서비스를 종료해 후속작인 〈오버워치 2(OVERWATCH 2)〉로 재탄생했다. 이 글은 Triple A!라는 주제를 맞아, 2010년대 후반을 대표한 AAA급 게임 〈오버워치〉에 관한 한 논문을 다루고자 한다. 바로 오버워치 속 ‘퀴어’를 다룬 논문이다. < Back [논문세미나] “Sexuality does not belong to the game” - Discourses in Overwatch Community and the Privilege of Belonging 10 GG Vol. 23. 2. 10. - 게임제너레이션은 새 연재로 '논문세미나'를 오픈합니다. 디지털게임을 다룬 국내외의 주요한 논문들을 간략하게 정리, 소개함으로써 디지털게임 연구의 결과들이 대중적으로 손쉽게 유통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합니다. 새 연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1. 들어가며 한때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AAA급 게임 〈오버워치(OVERWATCH)〉. 〈오버워치〉는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내 다양한 논쟁이 오갔던 2010년대 후반을 상징하는 게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 인기를 입증하듯, 〈오버워치〉에는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쏟아져나왔고 이를 통해 드러난 현상과 논의들이 논문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기를 풍미한 〈오버워치〉는 작년 10월, 서비스를 종료해 후속작인 〈오버워치 2(OVERWATCH 2)〉로 재탄생했다. 이 글은 Triple A!라는 주제를 맞아, 2010년대 후반을 대표한 AAA급 게임 〈오버워치〉에 관한 한 논문을 다루고자 한다. 바로 오버워치 속 ‘퀴어’를 다룬 논문이다. 트랜스미디어, 팬덤, e스포츠 등 게임문화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타냐 발리살로(Tanja Välisalo)와 마리아 루오살라이넨(Maria Ruotsalaine)은 오버워치 관련 글을 이미 몇 차례 내놓은 적 있는 연구자들이다. 두 연구자는 이번 텍스트로 〈오버워치〉 속 퀴어 캐릭터들을 둘러싼 커뮤니티 의견들을 분석하고, 소속·비소속의 구성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오버워치〉 연구자들이 분류한 데이터들을 따라가며, 퀴어 캐릭터들을 둘러싼 커뮤니티 의견이 어떻게 나뉘고 현실 정치와 이어지는지 살피고자 한다. 그 후 소수자 표현이나 한국적 맥락에 대한 고민을 나눌 생각이다. 덧붙여서 이 논문은 2022년에 등록되었지만, 2016년에서 2020년까지의 데이터를 토대로 하므로 현재에 맞지 않는 상황이 보일 수 있다. 그 점을 고려하면서 봐주길 바란다. 2. 커뮤니티에 소속된다는 것 〈오버워치〉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Blizzard Entertainment)가 2016년에 런칭한 팀 기반 FPS 게임이다. 〈오버워치〉는 슈팅 게임이라는 본질 외에도 각각의 캐릭터에게 서사가 부여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오버워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 캐릭터들의 설정을 풀어내는데, 2016년에는 트레이서, 2019년에는 솔저: 76가 퀴어라는 사실이 공개돼 화제가 됐었다. 캐릭터들을 향한 플레이어들의 입장은 둘로 나뉘었다. 게임과 섹슈얼리티의 연결을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과 게임을 통해 드러난 다양성을 기쁘게 생각하는 입장이 그것이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입장 차이에서 발생한 토론을 살피며 소속·비소속 장소로써의 〈오버워치〉 트랜스미디어 세계를 분석한다. 어딘가에 소속될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협상과 투쟁이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소속감이 정체성이라는 개념과 유사하게 이해될수록 더욱 그렇다. 그럼 '소속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연구자들은 '(소속감이)애착 욕구 및 개인이나 그룹이 소속되길 바라는 방식을 포착하게 만든다'는 프로빈(Probyn, 1996)의 말을 인용해 이를 설명한다. 정서적인 영역으로 이해되기도 하는 '소속감'은 끊임없이 변화하거나 경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예를 들어, 북미 게임 커뮤니티의 권력은 여전히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에게 주어진 권력은 커뮤니티에 소속되기 용이하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유저들은 커뮤니티에 소속되기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다. '게이머의 싸움'은 보통 게이머 대 게임 회사·개발자의 대립을 연상시키지만, 사실 이 대립은 커뮤니티 내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3. 게임문화 속 LGBTQ 게임문화 속 LGBTQ는 그동안 다양한 층위에서 혐오를 접해왔다. 이를테면 게임의 LGBTQ 캐릭터 자체는 〈오버워치〉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게임 세계 안에서 퀴어 캐릭터의 존재는 대체로 한 명이었고, 그마저도 이성애자 캐릭터들에 의해 온갖 혐오적인 태도와 마주해야 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이하 WoW〉 운영 도중 LGBTQ와 관련해 비판받은 과거가 존재한다. 2006년에 있었던 이 일은 블리자드가 퀴어 친화적인 한 WoW 길드의 홍보를 금지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블리자드는 차별적 괴롭힘이 조장될 수 있는 상황을 막은 거라 발표했지만, 플레이어들의 반발에 의해 이 규정을 곧 철회하였다. 이런 과거들이 있었지만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퀴어 콘텐츠도 게임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퀴어 친화적으로 입장을 바꾸었고 여러 게임사에서 다양한 모습의 성소수자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의 주인공 엘리를 포함해,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 〈에이펙스 레전드(Apex Legends)〉, 〈발로란트(VALORANT)〉 등, AAA급 게임에서 퀴어 캐릭터를 찾는 일은 이제 그리 어렵지 않아졌다. 〈언더테일(Undertale)〉도 이 사례에 들어가는 게임 중 하나다. 논 바이너리(non-binary) 젠더인 주인공이 등장하고 성 중립적 대명사(they/them)를 사용하며 퀴어 스토리라인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이 있더라도 〈언더테일〉이 LGBTQ 게임으로 소개될 수 있느냐는 다른 영역의 이야기다. 연구자들은 〈언더테일〉이 메커니즘 측면에서 게이머들의 향수를 자극했고, 그로 인해 '게이머들의 게임'으로 정의되었다는 루버그(Ruberg, 2018)의 말을 옮긴다. 루버그(Ruberg, 2018)는 〈언더테일〉의 이런 인기가 퀴어 요소를 삭제하고 게임적 부분에만 초점 맞추는, 일종의 스트레이트워싱(straightwashing)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하였다. 이처럼 게임문화 속 퀴어는 여러 사건 및 논의와 함께 해왔다. 연구자들은 ‘정치적 담론과 대중문화 토론은 새로운 형태의 시민권이며, 이것이 대중문화 텍스트에 참여하게끔 강조한다’는 샌드보스(Sandvoss, 2014)의 말을 인용한다. 거기에 플레이어 커뮤니티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소속을 둘러싼 투쟁으로 인해 정치화되기도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이 안에서 투쟁의 수단이자 중심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4. 〈오버워치〉 속 데이터들 연구자들은 2019년에 진행했던 연구로 캐릭터들의 성적지향이 플레이어에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플레이어가 〈오버워치〉에 어떤 식으로 연결되고 소속되는지 알아보기로 한 것이 이번 연구다. 이를 위해 연구자들은 오버워치 공식 포럼과 레딧(Reddit)에서 정보를 수집하였다. 수집된 데이터는 다음의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는 트레이서다. 〈오버워치〉의 상징과도 같은 트레이서는 2016년에 퀴어 캐릭터라는 정보가 공개됐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오버워치〉의 설정들은 게임이 아닌 트랜스미디어로 전달된다. 그래서 트레이서의 퀴어 설정도 단편 만화 '성찰(Reflections)'에서 밝혀지게 되었다. 이후 수석 작가인 마이클 추(Michael Chu)도 트위터로 그녀가 레즈비언임을 공식 인정했다. 이렇듯 오버워치의 첫 퀴어 영웅인 트레이서에 관한 것이 첫 번째 주요 데이터다. 두 번째 는 솔저: 76이다. 2019년에는 솔저: 76도 퀴어 캐릭터라고 드러났다. 그가 게이라는 사실은 트레이서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나타났다. 빈센트라는 이전 애인이 언급되는 단편소설, '바스테트(Bastet)'와 마이클 추의 트윗으로 퀴어라는 게 확정된 것이다. 레즈비언인 트레이서에 이어, 게이인 솔저: 76에 대한 토론이 두 번째 주요 데이터다. 마지막 세 번째 주인공은 시메트라다. 시메트라는 퀴어 캐릭터가 아님에도 게이 아이콘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시메트라의 이런 ‘게이 아이콘화’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구성됐기 때문에 특이점을 보인다. 연구자들은 플레이어들의 성적지향과 시메트라가 어떻게 관계되는지 해석을 시도한다. 연구자들은 수집된 자료를 수사적-수행적 담론 분석(rhetoric-performative discourse analysis)을 통해 살핀다. 이 분석법은 원래 포퓰리즘 및 정치 연구를 위해 개발됐지만, 이 연구에서는 서로 다른 담론 사이의 관계와 역학, 구성을 살피기 위해 사용한다. 다음으로 연구자들은 포럼 내 토론을 분석하며, 이를 소비자 담론, 진정성 담론, 작가 담론, LGBTQ 재현 담론, 저항 담론, 총 다섯 가지 범주로 설정한다. 이 범주들은 주요 데이터인 트레이서, 솔저: 76, 시메트라와 함께 설명된다. 5. 〈오버워치〉 데이터 분석 1) 소비자 담론 소비자 담론은 퀴어 캐릭터가 게임에 드러나게 된 전말을 추측하고 평가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퀴어 설정에 불만을 가진 유저들은 블리자드가 관련 플레이어들을 달래고 만족시키기 위해 그리 한 것이며, 게임사는 게임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의견에서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 다른 두 그룹, 게임 플레이에만 집중하는 유저들과 설정에 더 관심 두는 유저들 간 계층구조가 형성된다. 특히 전자는 이상적인 커뮤니티 구성원의 범주를 설정하는 축이 된다. 이들의 불만은 '팬덤'이라는 용어에 관해서도 찾을 수 있었다. 〈오버워치〉 커뮤니티의 '팬', '팬덤'은 특정 담론 맥락에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데, 팬덤이 캐릭터들의 뒷이야기만 상상할 뿐, 게임은 하지 않는다는 게 그 근거다. 누군가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퀴어 캐릭터 공개가 마케팅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퀴어 캐릭터가 미디어에서의 화제성이나 신규 플레이어 확보를 위한 도구로 이용됐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내러티브 콘텐츠가 다른 게임 콘텐츠들보다 열등한 것으로 판단하고 계층 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퀴어 콘텐츠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데 일조한다. 2) 작가 담론 게임은 다인원 작업물이기 때문에 저작자 개념이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가 담론은 영화가 감독을 내세우듯 〈오버워치〉의 수석 작가 마이클 추를 주로 앞세운다. 마이클 추는 게임을 예술작품으로 접근하는 작가 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작가 담론은 퀴어 설정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등장했다. 이 담론은 게임에 대한 권한이 디자이너, 개발자, 작가에게 있으므로 플레이어가 불평할 수 있는 건 없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검열과도 연결되어, 게임에 변경을 요구하는 의견들을 ‘비난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포럼의 한 유저는 '퀴어 설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팬 픽션을 쓰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는데, 연구자들은 ‘주류 콘텐츠에서 LGBTQ를 배제하던 일이 역전된 것’이라 분석한다. 하지만 작가 담론 측이 이러한 의견을 내놓는 건 LGBTQ를 지지해서가 아니다. 작가 담론 측은 퀴어 캐릭터에 대한 찬반 의견을 표명하기보다 도리어 토론 자체가 끝나길 바란다. 더 이상의 논의가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의 태도는 작가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작가 담론은 〈오버워치〉 커뮤니티 소속 권한을 작가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이 권한은 〈오버워치〉의 흐름을 반대하는 토론에 한해, 작가 담론 지지자에게도 주어지게 된다. 3) 진정성 담론 대중문화와 그 수용을 다룰 때 되풀이되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진정성이다. 〈오버워치〉 퀴어 캐릭터들 또한 '진정성'을 가리기 위해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여기에는 〈오버워치〉 세계관과 이미 알려져 있던 캐릭터에 대한 사실이 근거로 활용된다. 솔저: 76의 경우, 그의 다른 설정은 공개되지 않고 오직 성소수자라는 사실만 밝혀진 것에 불만을 내비치는 유저가 상당했다. 이들은 대체로 이성애적이고 남성적인 이미지의 솔저: 76가 동성애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후술할 트레이서의 데이터와 조금 다른 이 반응은 남성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가 다르게 판단되는 지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솔저: 76의 퀴어 설정이 타 캐릭터 스토리에서 공개된 것에 의문을 제기한 유저도 있었다. 솔저: 76에 집중된 콘텐츠가 아니었기 때문에 진정성이 덜하다고 여겨진 것이다. 일부는 솔저: 76의 퀴어 설정을 부정하며 스트레이트워싱하기도 했다. 솔저의 사례만 언급됐지만 진정성에 대한 이 의심은 트레이서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이렇듯 진정성 담론은 캐릭터나 스토리 상의 타당성을 비판하고 〈오버워치〉 전체 맥락과 연관 지어 평가한다. 그 탓에 진정성 담론은 세계관이나 설정 등, 텍스트와 관계된 것들이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담론이 진정으로 권위를 부여하는 건 자신이 〈오버워치〉를 가장 잘 안다고 주장하는 커뮤니티 유저들이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품질 컨트롤러"처럼 위치 지어진다고 말한다. 4) LGBTQ 재현 담론 LGBTQ 재현은 이 연구에서 분석된 모든 논의 안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 단락의 첫 사례로, 트레이서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한 성소수자 유저의 글을 가져온다. 이 유저는 트레이서 같은 캐릭터들이 공감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역설한다. 연구자들은 해당 사례를 들어, 퀴어 캐릭터가 소수자를 재현하는 수단으로 간주된다고 설명한다. 언뜻 소비자 담론과 유사해 보이는 이 담론은 게임이 사회적 기능을 가진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따라서 퀴어 캐릭터의 존재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데, 몇몇 성소수자 유저는 '공격적이거나 혐오적인 태도를 조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LGBTQ 재현에 항의한 이들은 캐릭터들의 섹슈얼리티가 드러났다는 데 초점을 맞춰 비난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트레이서와 그 애인의 키스였다. 항의 측은 이성애를 중립적이며 비성애적인 것으로, 동성애는 '너무' 성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게다가 (동성)섹슈얼리티를 제하는 것이 해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거라 주장한다. 한 마디로 섹슈얼리티가 게임에 속하지 않길 바란 것이다. 이에 연구자들은 ‘캐릭터들의 섹슈얼리티와 그 의미를 부정하는 건 또 다른 형태의 스트레이트워싱’이라는 루버그(Ruberg, 2018)의 말을 인용한다. 이렇듯 게임과 섹슈얼리티의 연결을 불만스러워 하는 유저도 상당했지만, 이보다 많았던 건 '무관심' 측이었다. 한 유저는 '캐릭터는 캐릭터일 뿐, 트레이서의 애인이 왜 그렇게 관심받는지 모르겠다'고 밝힌다. 이것은 대중문화에 깊이 빠진 사람이 미성숙하고 불안정하다고 여기는 고정관념의 반영이다. 캐릭터에 관심 갖는 플레이어는 순수하게 게임만 즐기는 이들에 비해 부정적인 시선을 받는다. LGBTQ 담론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의견은 '현실의 문제를 게임에서까지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섹슈얼리티 문제는 동성애를 정치적인 주제로 보는 시선이 많기 때문에 게임에서 논하기 예민한 부분이 있다. 그 탓에 트레이서의 성적지향이 공개됐을 때, 그를 반기는 사람들을 일컬어 리버럴, 사회 정의 전사(social justice warriors), 눈송이(snowflakes)라고 칭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민감하고 미성숙한 사람을 뜻하며,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공격하기 위해 쓰는 이 용어들은 게이머게이트(Gamergate) 당시 확산됐다. 트레이서의 설정 공개와 게이머게이트는 사실상 다른 맥락이지만, 해당 용어는 〈오버워치〉 커뮤니티에까지 계승되었다. 5) 저항 담론 솔저: 76과 트레이서는 작가에 의해 퀴어로 설정됐다. 반면 시메트라는 퀴어 설정이 없음에도 ‘게이 아이콘’으로 환영받는다. 시메트라가 ‘게이 아이콘’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첫째로 그녀의 조작성이 큰 이유를 차지했다. 시메트라는 전통적인 FPS 메커니즘을 따르지 않았고, 이것이 ‘게이머 자본’을 획득하지 못한 이들에게 좋은 대안이 된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를 ‘퀴어 게임 메커니즘’이라 칭한 엔글(Engle, 2017)의 말을 가져오며, 시메트라가 대안적 존재이므로 퀴어에 친숙해질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물론 시메트라가 플레이 메커니즘만으로 퀴어에 친숙해질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시메트라가 게이 아이콘으로 불리는 데에는 게임적 특성 말고도 다른 이유가 함께한다. 그에 앞서, 시메트라가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것을 설명해두어야겠다. 이를 설명한 이유는 시메트라가 약자라는 사실에 마음이 간다고 밝힌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여왕’으로 불리는 시메트라의 당당한 모습에서 마돈나(Madonna)나 주디 갈런드(Judy Garland) 같은 게이 아이콘을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저항 담론은 소비자 담론과 반대된다. 소비자 담론은 플레이어가 다양한 서비스를 기대하는 고객으로 위치 지어지지만, 저항 담론의 시메트라 플레이어는 커뮤니티 바깥쪽에 자리 잡는다. 하지만 개발자의 의도와는 다르다며 시메트라의 게이 아이콘화를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트레이서와 솔저: 76의 퀴어 설정을 지지했던 작가 담론이 비공식 퀴어 독해를 반대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이 반대는 퀴어 관련 게시글과 공간을 규제하며 이루어진다. 이렇듯 시메트라 플레이는 소속을 위한 투쟁이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그럼에도 시메트라를 플레이하고 게이 아이콘이라 칭하는 건 게임 문화 내 이성애적 남성성에 저항하는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5. 〈오버워치〉 커뮤니티를 넘어 소속감은 각 그룹의 플레이어 및 게임 제작자, 사회와의 상호작용, 생산과 소비 사이의 역학에서 구성된다. 그를 추적한 이 연구는 퀴어 영웅의 도입을 둘러싼 논의와 권리를 정의한다. 연구자들은 〈오버워치〉 커뮤니티 내 개개인의 소속이 다양한 문화권과 투쟁에 연결된 점에서 착안해,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도 연결 짓는다. 캐릭터들은 〈오버워치〉를 이해하도록 돕는 동시에 논쟁의 연결점이 된다. 그러나 스트레이트워싱 사례 등, 〈오버워치〉 트랜스미디어 표현의 한계는 존재한다. 연구자들은 게임문화의 포용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트랜스미디어 내러티브에 섹슈얼리티, 젠더, 민족성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소수자 집단을 위해 커뮤니티 의견에 귀 기울일 것을 제언한다. 6. 나가며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게일 루빈(Gayle Rubin)은 그의 저작 〈일탈〉에서 미국의 성 정치 역사를 풀어낸다. 루빈(2011)에 따르면, 2차대전 이후인 1950년대 미국 사회는 ‘성범죄자’와 ‘동성애자’에 대한 불안이 집중된 시기라고 한다. ‘성범죄자’라는 용어는 강간범, 더 나아가 아동 성추행범을 의미하게 만들었고 이는 곧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기호가 되었다(Rubin, 2011). 서술한 사례 속 년도를 보면 알겠지만, 퀴어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100년의 세월도 채 흐르지 않았다. 이후 동성애자 탄압의 역사는 몇십 년간 이어졌다. 루빈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풀어낸 뒤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법적 형태, 사회적 관습, 이데올로기에 흔적을 남긴 싸움과 투쟁의 잔여물은 목전의 갈등이 사라지고 난 먼 훗날에도 섹슈얼리티를 체득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오늘날의 시대가 성 정치의 중요한 분기점이라는 사실을 이런 모든 신호가 말해주고 있다.”(Rubin, 2011, 293p) 사실 루빈의 글은 미국 성 정치 역사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게임과는 접점이 없어 보이는, 갑작스럽고 거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도 발제자가 이 글을 〈오버워치〉 논문 끝에 연결한 이유는 역사 서술 뒤에 이어지는 루빈의 말 때문이었다. 루빈은 섹슈얼리티가 먼 미래에까지 끼칠 영향을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하는데, 사실 이 말 자체는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미국의 퀴어 탄압 역사를 살피고 지금의 게임문화를 살피면 그 무게가 조금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과연 이 역사가 게임 문화 내 섹슈얼리티 문제에 단 하나의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초기 디지털 스페이스는 인종, 젠더,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희망적 공간으로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이 연구가 〈오버워치〉를 통해 보여주었듯, 오늘날 게임 커뮤니티는 다양한 문화와 투쟁으로 소속·비소속의 여부가 얽히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루빈의 논의를 끌고 와서 한국 게임 문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어진다. 연구자들이 〈오버워치〉 커뮤니티 내 소속을 분석하고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연결 지은 것처럼, 우리도 이를 한국적 맥락과 함께 보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과거 성소수자의 미디어 표현이 중요했던 이유는 미디어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었던 게 크다(Gross, 2001: Shaw, 2014 재인용). 그랬던 미디어는 이제 소수자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거기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수용과 경계가 뒤엉키기 때문에 재현의 문제가 더더욱 복잡해졌다. 그러면 여기서 앞으로의 AAA 게임에 대해서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영향력 있는 AAA 게임 스튜디오들이 LGBTQ 표현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고(Makuch, 2015: Ruberg, 재인용 2018) 그에 따라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게임은 여전히 남성성 중심으로 돌아간다. 캐릭터가 미디어 표현의 책임을 플레이어에게 전가하거나 다양성이 미적 다원주의로 환원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Shaw, 2014). 이런 상황 속에서 AAA 게임은 어떻게 다양성을 표현해나갈 것인가? 플레이어들의 소속·비소속은 어떤 식으로 변화할 것인가? 큰 힘에 따르는 큰 책임을 지게 된 AAA 게임의 추이를 지켜봐야 할듯하다. 참고문헌 Ruberg, B. (2018). Straightwashing Undertale: Video games and the limits of LGBTQ representation. Journal of Transformative Works and Cultures, 28. Rubin, G. (2011) Deviations: A Gayle Rubin Reader. 임옥희·조혜영·신혜수·허윤 (역) (2015). 〈일탈: 게일 루빈 선집〉. 서울: 현실문화. Shaw, A. (2015). Gaming at the Edge: Sexuality and Gender at the Margins of Gamer Culture. Minnesota University Pres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백구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비주얼 노벨 올 클리어에 열을 올리는 중입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호르몬 일지』와 『게임 코러스』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영이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호르몬 일지』와 『게임 코러스』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Read More 버튼 읽기 라이브 서비스 전쟁 · 역사 기계 - <폭스홀>과 <헬다이버즈 2> <폭스홀>은 극단적으로 상세화된 활동적 측면으로, <헬다이버즈 2>는 운영진의 적극적 개입과 플레이어 활동 반영 등의 실시간 소통의 방식으로 각각 전쟁 앞 개인의 감각을 생산해 플레이어들에게 역사를 체험하게 만든다 할 수 있다. 버튼 읽기 게임 시장에서 비디오 게임 콘솔과 범용 PC의 40년 경쟁이 낳은 변화들 범용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등장해 ‘PC 게이밍’이 성립되기 전 게임은 그 자신만을 구동하는 독자적인 콘솔의 영역에서 오롯이 유희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전용 기기가 아니라 범용 기기에서 실행되는 PC 게임의 세계는 콘솔의 옆에서 어떻게 자라났고 이 둘의 접촉은 어떤 변화를 낳았을까? 버튼 읽기 게임과 시신경제 (Necronomics) 시신경제 (Necronomics)는 아킬레 음벰베 (Achille Mbembe)의 시신정치 (Necropolitics)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이다. 시신정치는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생명정치 (Biopolitics)가 권력이 생명의 영역을 지배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동시대의 현실은 죽음을 단지 생명권력 (Biopower)을 위한 수단으로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버튼 읽기 게임에 대한 트랜스페미닌 커뮤니티의 문화 코드화 트랜스페미닌 (transfeminine)은 논바이너리부터 트랜스여성까지, 트랜스젠더 중에 상대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젠더 표현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논바이너리 중에 스스로를 여성 젠더에 더 가깝다고 느끼는 이들 (she/they)이 여기 속하고 트랜스여성 (she/her)이 가장 확실하게 속하는 계열이다. 그리고 트랜스페미닌 커뮤니티라고 하면 다양한 SNS 및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를 기반으로 산발적으로 발생한 정체성 기반 네트워크를 이른다. 버튼 읽기 - 부담 없는 플레이의 즐거움 를 통해 게임이 즐거움을 제공하는 데에 언제나 방대하며 무거운 내용과 숭고함, 비장함, 웅장함과 같은 중후한 인상들이 반드시 효용적이지만은 아닐 수도 있으리란 것을 생각해 볼 만하리라. 물론 그렇다고 또 즐거움이란 게 꼭 가벼울 필요도 없지마는, 게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경험’이란 무조건 부피와 무게를 늘려서만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버튼 읽기 [공모전] 게임과 행위 원리 – 놀이와 협박 플레이어는 게임을 왜 플레이하는가? 이 질문은 노는 자가 왜 노는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될 수 있다. 최근의 논의들 중에는 게임을 예술로 ‘인정’받고자 어떠한 실용성이나 사회 · 정치적 참여 등에 기여한다며 생산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게임은 그러한 효용적 가치들을 충분히 발생시킬 수는 매체인 것으로 보이긴 한다. 그러나 그것이 플레이어가 게임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가 정말로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실천과 효용을 함양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500시간 동안 앉아 있는가?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 간접경험으로서의 보는게임 -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및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를 중심으로
보는 게임이란 무엇인가? 대다수는 'e-스포츠'와 '실황 플레이'를 예시로 들 것이고 실제로 이 두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두면서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2021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기고된 이경혁의 『보는 게임과 Z세대』라는 글에서는 보는 게임의 역사에 대해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구경하는 것과 PC방 문화를 보는 게임의 기원을 삼은 것이다. 후자 같은 경우 PC방이라는 한국적인 현상임을 감안해야 되겠지만, '보는 게임' 자체는 한국뿐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임을 염두에 두면 흥미로운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경혁의 글은 그 점에서 '보는 게임'이 관람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라는 오래된 인류의 유흥거리와 맞닿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 Back 간접경험으로서의 보는게임 -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및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를 중심으로 03 GG Vol. 21. 12. 10. 보는 게임이란 무엇인가? 대다수는 'e-스포츠'와 '실황 플레이'를 예시로 들 것이고 실제로 이 두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두면서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2021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기고된 이경혁의 『보는 게임과 Z세대』라는 글에서는 보는 게임의 역사에 대해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구경하는 것과 PC방 문화를 보는 게임의 기원을 삼은 것이다. 후자 같은 경우 PC방이라는 한국적인 현상임을 감안해야 되겠지만, '보는 게임' 자체는 한국뿐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임을 염두에 두면 흥미로운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경혁의 글은 그 점에서 '보는 게임'이 관람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라는 오래된 인류의 유흥거리와 맞닿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실제적인 태동을 짚어야 한다면, 인터넷 방송의 역사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 방송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음악 라디오 개념에서 출발한다. 이 당시 영상 압축과 인터넷 환경은 영상을 촬영하고 재생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그러다가 2005년 유튜브, 아프리카TV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w플레이어나 다음팟TV 같은 사이트가 생기면서 영상 재생/공유 사이트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현 시점에서 대세라 할 수 있는 라이브 스트리밍이 등장하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이런 영상 재생/공유 사이트가 활성화되면서 '보는 게임' 문화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윤현정의 논문 『MCN 게이밍 콘텐츠의 스토리텔링 연구』 및 논문에서 인용한 Smith, T. 외의 논문 『Live-streaming changes the (video) game』를 참조하자면 게임 영상 콘텐츠는 경쟁이 존재하는 ‘e-스포츠’ 유형과 빠른 정복을 도전하는 '스피드 러닝', 그리고 스트리머가 게임 플레이에 서사적 코멘터리를 덧붙이는 'Let's play'로 분류할 수 있다. (p.28) 이 중에서 주목할 분류는 'Let's Play'로 지칭되는, 게임 플레이에 서사적 코멘터리를 붙이는 실황 플레이 영상이다. 현재 '보는 게임' 영상 중에서 유저 창작이 활발한 영상도 실황 플레이 영상이다. 'e-스포츠'와 '스피드 러닝'은 특수한 기술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기에 문턱이 높지만, 실황 플레이 영상은 비교적 문턱이 낮기 때문이다. 왜 실황 플레이 영상이 '보는 게임' 문화에서도 큰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 초창기 영상 사이트에서 실황 플레이 영상은, 실용적인 용도가 강했다. 그 이유를 찾으려면 게임 공략에 있어서 영상의 힘이 강력하며, 게임 커뮤니티 문화랑 밀접하게 발전해왔다는 점을 지적해야 되겠다. 실황 플레이 영상이 대두되기 전, 게임 공략은 글과 스크린 샷으로 설명하는 게 대다수였다. 영어 위키피디아 'Video game walkthrough' 항목에 따르면,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플레이어를 위한 게임 공략은 핫라인 통화를 통한 1대 1 전화 상담이나 텍스트 공유가 대다수였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꽤 오랫동안 게임 캡처, 특히 영상 캡처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특수 기기를 통해 게임 회사가 만든 공식 공략 영상이나 게임 언론 같은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게임 유저들은 제임스 롤프가 AVGN 33화 '닌텐도 파워' 편에서 회고했듯이 카메라를 플래시 쓰지 않고 위치도 TV에 맞춰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서 화면을 촬영해야 했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을 디지털 스캔하고 인터넷 공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다수 게임 유저들은 전문가들이 만든 공식 공략집이나 잡지를 통해서만 게임 스크린샷이나 영상을 접할 수 있었다. 그나마 1996년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라는 〈퀘이크〉 리플레이 영상을 통해 머시니마 개념이 등장하면서 유저들끼리 게임 영상을 공유한다는 문화가 등장했지만, 이 역시 게임 내 리플레이 파일을 등록해 재생하는 쪽에 가까웠다. 이런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지만 PC 게임은 물론이거니와 콘솔 게임에서 게임 스크린샷이나 영상을 공유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디오 파일로 유저들끼리 공유되는 공략 영상은 2005년 Something Awful라는 북미권 인터넷 코미디 포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로부터 비롯되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PC를 활용한 비디오 캡처 난이도가 대폭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기점으로 고전 게임을 중심으로 비디오 영상이 제작되었다. 최초의 유저 게임 공략 영상 역시 같은 포럼에서 마이클 "슬로비프" 소이어가 제작한, 〈The Immortal〉이라는 1990년 DOS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도 니코니코 동화라는 영상 공유 사이트에서 hacci 같은 초기 스트리머가 등장해 실황 플레이 영상을 올리면서, '보는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이런 '보는 게임' 문화 및 실황 플레이 영상이 폭발적으로 확장된 계기는, 2014년 PS4 셰어 버튼으로 시작한 콘솔 자체 공유 기능을 통해서였다. PS4 이전까지는 콘솔 게임은 기본적으로 영상 공유를 하기 쉽지 않았다. 콘솔 자체 캡처를 지원하지 않아서 캡처 보드를 필수로 했기 때문이다. PS4 셰어 버튼은 이런 캡처 보드 없이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 플레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XBOX와 닌텐도 스위치 역시 셰어 버튼 기능을 도입하면서 8세대 콘솔은 '보는 게임'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지나 실황 플레이 영상이 발전하면서, 영상의 경향도 조금씩 달라져 갔다. 초기 실황 플레이 영상은 공략이라는 개념에 충실한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목소리가 없거나 플레이어 '목소리'가 게임의 상황을 반영해 코멘트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게임 플레이 영상 역시 편집이 많이 개입해, 실수나 늘어지는 분량을 잘라내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경향이 있다. 화면에 뜬 실시간 채팅방도 그리 흔하지 않았기에 스트리머와 시청자 간의 소통은 댓글 란에서 사후적으로 이뤄지고, 밈보다는 영상 자체를 얘기하는 경향이 컸다. 그러다가 스트리밍 환경이 개선되자, 실시간으로 진행하면서 채팅으로 소통하는 부류의 실황 플레이 영상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런 실황을 진행하는 스트리머는 게임 플레이 그 자체보다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플레이어가 겪는 고충이나 유머를 즐기는 버라이어티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었다. 동시에 사후적인 게임 플레이가 아닌, 실시간 방송과 채팅을 통해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면 게임 플레이하는 경향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형성된 '보는 게임' 현상에 따르는 실황 플레이 영상과 팬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실황 플레이 영상의 특성은, 스트리머라는 대리자를 통해 간접 체험이 이뤄진다는 점에 있다. 기본적으로 실황 플레이 영상은 스트리머가 플레이하는 영상을 시청하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 게임 플레이를 하는 것은 스트리머기에 자연스럽게 시청자의 경험은 간접 경험이 된다. 그 점에서 스트리머의 존재는 매개체에 가깝다. 서사 역시 직접 경험보다는, 관람에 가까운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런 변모 때문에 게임에 대한 접근성 문턱 역시 낮춰지게 되었다. 또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스트리머의 개성이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같은 게임이더라도, 스트리머의 성향에 따라 영상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게임 때문에 보는 것이 아니라, 스트리머 때문에 게임을 보는 부류도 있을 정도다. 스트리머의 방송 스타일은 개별차가 있긴 하지만, 게임 내용에 대한 반응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경향이 크다. 그렇기에 '보는 게임' 현상을 따라 인기를 얻고 있는 게임 스트리머는, 다양한 게임을 다루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게임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 인기를 얻는 게임은 어떤 부류일까? 스트리머의 트위치 방송 관련해 통계를 내는 사이트인 트위치 트래커에서 시청자 선호에 기반한 게임 인기 순위를 보면 https://twitchtracker.com/statistics/games ) 2021년 11월 기준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GTA 5〉, 〈카운터 스트라이크〉, 〈콜 오브 듀티〉, 〈에이펙스 레전드〉, 〈발로란트〉,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가 상위권에 올라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인기 순위 절반 정도는 메타데이터가 없는 미등록 상태이기에, 순위권에 들었다는 뜻은 고정 시청자를 확보했다고 보는게 좋을 것이다. 이 중 주목해야할 게임은 〈GTA 5〉와 〈마인크래프트〉,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일 것이다. 이 두 게임은 언급한 게임들과 달리 E-스포츠라는 틀에 속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GTA 5〉와 〈마인크래프트〉는 오픈 월드 게임 장르이며, 플레이어의 창발적인 플레이가 방송의 주목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는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게임은 오픈 월드 게임이 아니라, 살인마와 생존자 간의 대결을 다루는 호러 멀티플레이 게임이다. 하지만 다른 멀티플레이 게임과 달리, E-스포츠형으로 실력을 겨루는 게임이 아닌, 생존 및 협력 플레이가 중심이 되고 있다. 사실 이 게임은 발매 초창기인 2016년에는 평단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했으며 게임 시스템이나 밸런스에서 많은 지적을 받았다. 전문가 평점 분포도를 보여주는 메타크리틱 및 오픈크리틱에서도 6-70대의 평균적인 평가를 받았다.〈GTA 5〉나 〈마인크래프트〉처럼 평단과 게임 유저에게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게임이라고 보기 힘들 것이다. *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발매 이후 트위치 평균 그래프 (2011.11 기준, https://twitchtracker.com/games/491487 ) 하지만 발매 후 5년이 지난 2021년 11월,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는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순위권에서 사라지지 않고 트위치 게임 채널 내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렇다면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는 어떻게 해서 스테디셀러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 우선 공략이나 분석을 제외한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실황 플레이 영상은 긴박한 생존 대결보다는 생존/협력 플레이 도중 일어나는 유머러스한 촌극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런 영상들은 자막이나 채팅을 활용해 코믹한 예능 분위기를 강조하고, 공포 게임와 거리가 먼 썸네일로 시청자를 유도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한국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팬덤에서 공유되고 있는 은어 및 별명은, 해당 게임의 팬덤이 어떻게 실황 플레이 영상을 소비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커뮤니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은어와 별명은 게임 내 상황과 캐릭터를 희화화 하는 용도로 인터넷 유행과 결합해 쓰이고 있다. 이런 희화화는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를 플레이하는 스트리머와 시청자들이 게임을 예능처럼 즐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의 이런 경향은, 게임 서사의 간접 체험 및 경험 공유이라는 지점에서 생각할 만한 여지를 남긴다.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의 공식적인 장르는 생존 호러다. 게임 제작자의 의도와 게임 향유층의 방향이 다소 상충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충되는 상황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 게임 플레이 나아가 서사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사실 전반적인 실황 플레이 영상 트렌드를 분석해보면,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에서 호러 게임이 인기가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퓨디파이 같은 유명 유튜버들이 인기를 얻은 계기 역시, 〈암네시아: 더 다크 디센트〉 같은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를 통해서였다. 또한 슈퍼매시브 게임의 PS4 〈언틸 던〉 같은 경우엔, 8세대 콘솔 초창기에 시네마틱 어드벤처 게임과 호러 장르의 조합으로 실황계에서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이런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 대다수는 게임의 질과 상관없이 스트리머가 얼마나 게임에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크다. 호러 게임 하는 스트리머 대다수는 과장되게 놀라거나 반대로 무덤덤하게 딴죽을 거는 경향을 보이며, 시청자 반응 역시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사례처럼) '축제'처럼 즐기는 쪽에 가깝다. 깜짝 놀라는 장면에서 놀라는 코멘트조차 진심으로 두려워하기 보다는, '정말 놀랐다'는 식으로 공유에 가깝게 표출된다. 왜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 축제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는 호러 영상물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화관에 가서 호러 영화를 보게 되면, 주변에 놀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만 무서워하게 되는게 아니구나'하는 공감대를 느끼고 동조하게 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두려움을 공유하면서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감정의 동조화를 파악해 관객과 상영 공간 자체를 '축제'화한 시도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195~60년대 미국 저예산 호러 영화 제작자로 유명했던 윌리엄 캐슬이 있다. 당시 미국은 심야 영화와 드라이브인 시어터를 통해, 영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체험하는 새로운 유형의 관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캐슬은 이런 관객들을 보면서, 어떤 감정의 동조화와 유희적인 성향이 있다는 걸 간파했다. 캐슬은 영화는 물론이고 영화관에 장치를 도입해 유원지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주력했는데, 그 점에서 심야 영화와 드라이브인 시어터로 대표되는 컬트 영화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실황 플레이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이 만들어내는 반응과 캐슬이 추구했던 '유원지' 연출, 나아가 컬트 영화 문화랑 완전히 같다고는 보기 힘들다. 윌리엄 캐슬이 만든 영화는 유원지 구성 요소를 차용해 관객이 직접 체험하는 쪽에 가까웠고, 실황 플레이는 스트리머가 제시하는 플레이 영상을 통한 간접 체험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체험과 유희화를 공유하고 만끽할 느슨한 '공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컬트 영화에겐 심야 상영이나 자동차 영화관 같은 공간이 있다면, 게임 실황 플레이 영상엔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채팅창이나 영상 댓글란이 있다. 물론 스트리머들에겐 좀 더 진지한 팬 사이트가 있긴 하지만 이런 채팅창이나 댓글란은 즉각적인 반응이 가능하기에, 유동적인 공동체가 형성되는 경향을 보인다. 어떤 지점에서는 컬트 영화보다도 더욱 거리낌없는 구석도 있는데 이런 채팅창이나 댓글란은 기본적으로 '익명'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명 스트리머들의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는 서사의 간접 체험과 경험 공유를 통해 만들어지는 컬트 내지는 고유한 문화가 형성되는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전 격투 게임을 주로 하는 케인이라는 스트리머 팬들이 쓰는 밈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스트리머가 자주 쓰는 말이나 인터넷 유행어를 접목시켜 커뮤니티만의 고유한 하위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하위 문화는 위키백과나 케인 관련 커뮤니티에서 유통되어, 케인 팬들 간의 결속력을 강화한다. 또한 '보는 게임' 문화가 게임 문화의 문턱을 영화 감상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추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는 게임' 문화 도래 이전 게임 문화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한다는 전제를 내세우고 있었고, 그 전제가 어느 정도 문턱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보는 게임' 문화, 정확히는 실황 플레이 영상은 이런 문턱을 낮추고 영상으로 제시되는 간접 체험만으로도 게임 요소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실제로 '보는 게임'과 실황 플레이 영상을 다룬 정서현과 박주현의 논문 『1인 미디어 게임방송 이용 동기 및 이용 특성에 관한 탐색적 연구: 인터넷 게임방송 이용자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에서도 실황 플레이를 보게 되는 계기로 게임 정보 획득, 대리만족, 단발적 재미 추구를 언급했다고 밝히고 있다. (p.23) 게임 정보 획득과 대리만족을 거치고 난 뒤, 채팅방에 있는 다른 시청자들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경험 공유를 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보자면 '보는 게임' 시대에서 게임 서사는 직접 경험을 넘어서 간접 경험을 기반으로 소통의 재료로 쓰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서사를 체험하지만 체험에서 머물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실제로 게임 서사가 의도하는 방향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서사가 유도하는 반응과 반대의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런 체험을 공유하고 밈이나 유머로 승화하면서 즐기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서사의 원래 의도에서 이탈함과 동시에 발생하는 희화화와 축제적인 상황은 컬트 영화의 반응과 유사한데, 이런 유사성이 발생한 이유로는 느슨한 관람 공동체로써 공유할 만한 '공간'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컬트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모이는 관객과 특정 스트리머의 실황 플레이를 보기 위해 채팅방 및 댓글에 모이는 시청자는 느슨한 공동체적인 공간 속에서 경험, 나아가 유희와 코드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보는 게임' 문화의 대두는 현 시점에서 비디오 게임의 소비 양태의 다양화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본 글은 그 중에서도 플레이나 서사를 즐기는 방식이 간접 경험에 기반하며, '댓글'이나 '채팅방'을 통해 같이 경험을 공유하고 축제화 된다는 지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런 현상은 컬트 영화 상영이나 심야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현상과 유사하면서도, 동시에 고유한 차별점을 두고 있다. 향후 '보는 게임' 문화와 서사 체험, 경험 공유 비평 및 연구에 있어서 시청자/수용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참조 문헌 및 사이트 Video game walkthrough – Wikipedia 중 History 단락, https://en.wikipedia.org/wiki/Video_game_walkthrough AVGN 33화 '닌텐도 파워' 이경혁, 『보는 게임과 Z세대』, http://kofice.or.kr/b20industry/b20_industry_03_view.asp?seq=8042&page=1 (2021) 윤현정, 'MCN 게이밍 콘텐츠의 스토리텔링 연구' 및 Smith, T. 외의 논문 'Live-streaming changes the (video) game' (2016) 정서현과 박주현, 『1인 미디어 게임방송 이용 동기 및 이용 특성에 관한 탐색적 연구: 인터넷 게임방송 이용자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 (2019) https://twitchtracker.com/statistics/game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유동적 원근법에 관한 노트
변화하는 원근법과 그에 맞추어 재편되는 게임 내 공간감, 플레이어의 시각성은 앞으로 우리의 시각 문화에서 더욱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각성은 과연 우리의 눈에 어떤 변화들을 불러들일까? 복수 개의 원근법, 회전하는 원근법이 구성하는 세계는 어떤 풍경일까? 우리의 눈은 그런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더 많고 풍성한 논의가 이 글 위에 쌓여 가기를 기대해 본다. < Back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유동적 원근법에 관한 노트 01 GG Vol. 21. 6. 10. 미술과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에 관해서는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아주 짧게 정리하자면 원근법은 3차원 세계를 2차원 평면에 재현할 때 필요한 방법으로, 입체인 3차원 세계를 실제로는 입체가 아닌 2차원 평면 위에 재현하면서 마치 입체인 것처럼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기술이기도 하다. 화면 안에 적용된 원근법은 화면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드(grid)로 분할한다. 그리고 이 그리드를 기반으로 대상의 크기나 비율, 선명도, 색상, 명암의 방향 같은 요소들이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원근법은 무엇이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 어떻게 그려져야 하는지, 관객의 눈은 어디에 어떻게 참여할지 같은 질문들, 더 나아가 화면의 전체적인 풍경을 결정하는 기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원근법은 단순히 멀리 있는 것은 작고 흐리게, 가까이 있는 것은 크고 선명하게 그린다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화면 안의 모든 것이 배치되는 규칙, 어떤 것이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를 결정하는 화면 구성의 내적 논리의 설계 방법론이다. 우리의 눈과 뇌는 화면이 제공하는 원근법에 의거하여 화면 내부를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 인식하고 그 내부의 공간감에 우리의 신체를 동기화한다. 따라서 그 자체로는 입체감을 가지지 않는 평면 매체에서 원근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 회화에서 영화에 이르기까지, 원근법을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은 언제나 기묘하거나 이상하거나 놀라운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렇다면 모니터라는 평면을 사용하는 게임에서는 어떨까? 게임 내 원근법과 캐릭터의 이동, 크기, 비율 문제는 우리의 플레이 경험에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MMORPG 게임의 경우 몬스터가 아닌 이상 혹은 몬스터조차도 배경 세계의 원근법에 착실히 순종한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게임이 설정한 휴먼 스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며 캐릭터를 제외한 인게임 요소들, 예컨대 건축물, 아이템, 탈 것, 펫, 배경 같은 것들도 캐릭터의 크기에 맞추어 하나의 완결되고 고정된 원근법을 구축하는 데에 집중한다. 반면 1인칭 FPS 게임에서는 이 원근법이 더욱 강화된 형태로 드러난다. 서든어택이나 오버워치 같은 게임들에서는 주로 화면 정 가운데에 십자 모양이나 원, 탄젠트형의 에임(aim)이라고 부르는 조준점이 있다. 이 에임에 맞추어 1인칭 플레이어의 무기를 든 손이 정렬되는 모양을 보고 있으면, 1점 투시 원근법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화면 중앙에 소실점(vanishing point) 하나가 놓이는 1점 투시 원근법의 제1규칙, 가장 중요한 것을 소실점에 놓는다는 규칙은 회화에서 수차례 변용되었고, (프레임이라는 천성 때문에 회화에서보다는 그 정도가 약하지만)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관객의 시선이 쏠리는 곳에 무엇을 둘지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다. 어느 쪽이든 이런 게임들이 상정하는 게임 내 원근법은 우리의 실재와 최대한 유사하게 조성한다는 하나의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게임들의 카메라가 얼마나 인간 같지 않은 시야로 날뛸 수 있느냐에 상관없이, X축과 Y축은 고정되어 있다. 아주 잠시 이색적인 뷰로 한 장면을 비춘다고 하여도 플레이의 기본 전제는 변하지 않는 X축과 Y축이다. 그러나 AOS 게임의 경우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도타나 카오스(CHAOS),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 같은 게임들이 포함되는 AOS 게임의 경우 축약되고 매우 인위적으로 가공된 세계를 배경으로 사용하며 이미 우리의 실재로부터 벗어나 있는 원근법, 그러므로 쉽게 도식화하기가 곤란한 형태의 원근법이 화면을 구성한다. 내가 가장 많이 플레이 해 본 리그 오브 레전드를 두고 논의를 좁혀 보자. 일반적으로 2차원 평면을 사선으로 기울인 쿼터 뷰(Quater View)를 사용하는 2.5차원 게임에서 X축과 Y축은 마름모 모양의 면을 구축하고 그 위에 캐릭터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쿠키런 킹덤과 리그 오브 레전드의 맵을 비교해 보면 전자의 맵은 다이아몬드형, 후자의 맵은 정사각형으로 보기에 약간 다르지만 쿼터 뷰 게임이 설정하는 X축과 Y축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그림 1). (그림 1) 쿠키런 킹덤과 리그 오브 레전드의 소환사의 협곡 지도 (출처: 좌-쿠키런 킹덤 공식 유투브 채널 https://www.youtube.com/watch?v=VUIy7RaHcL4, 우-리그오브레전드 나무위키 https://namu.wiki/w/소환사의%20협곡)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특히 더 흥미로운 것은 이 Y축이 Y축이 아니라 X축으로 인식된다는 점에 있다. 퀸의 ‘후방지원’이나 자야의 ‘저항의 비상’ 같은 특정 챔피언의 특정 스킬은 X축 면에서 도약하며 (미니)맵으로 가시화되지 않는 인게임 Y축을 가시화한다. 아예 Y축의 패러미터를 벗어났다가 돌아오는 형식의 스킬을 사용하는 갈리오나 판테온 같은 챔피언들도 있다. 아주 얕은 수준이지만 렉사이 같은 챔피언은 X축 평면 아래, 즉 -Y축의 공간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리그 오브 레전드가 플레이어의 시점을 2차원도 3차원도 아닌 2.5차원 쿼터 뷰로 설정하면서, 앞서 언급한 챔피언들이 스킬 사용으로 지면을 도약하면서 인 게임 원근법을 떠받치는 X축과 Y축이, 그리고 숨겨져 있던 Z축이 등장하며 서로 뒤엉키게된다. (좌, 그림 2) 쿼터 뷰 게임이 상정하는 공간의 구성 원리 (우, 그림 3) 리그오브레전드 게임이 상정하는 공간의 구성 원리 챔피언이 지면을 도약하면 지면 위에서 이동 시 Y축이 자연스럽게 Z축으로 변하고, 챔피언이 도약하는 방향은 Y축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챔피언은 X축의 연장된 면 위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데,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X축의 방향이 달라지고, 여러 개의 방향이 이어지면서 X축은 (그림 2의 Y축이었던) Z축까지 가 닿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원근법에 상관없이, 각 라인은 미니맵에서 보여지는 순서대로 탑-미드-바텀이다.) 즉, 리그 오브 레전드의 원근법은 고정된 축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게임의 원근법은 캐릭터의 이동과 도약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며 축들을 뒤섞는다. 플레이어는 평균 20분의 플레이 타임 안에서 끊임없이 재배치되는 유동적인 축들에 놀랍도록 매끄럽고 빠르게 적응하는데, 이는 이전의 초지일관(初志一貫)적 시각성과는 물론 다른 양상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하나의 세계가 제공하는 원근법이 이것에서 저것으로, 다시 저것에서 이것으로 전환되는 유동적인 원근법으로 구성되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것을 아무런 문제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우리의 변화된 시각성이기도 하다. 이에 덧붙여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 스킨이나 캐릭터의 크기가 스킬의 적중 여부를 좌우하기도 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챔피언 스킨 때문에 게임 내에서 챔피언의 크기와 부피, 모양, 그리고 스킬의 크기와 부피가 달라지면 조준의 방법도 미세하게 바뀌게 된다. 최근 추가된 서리불꽃 건틀릿(Frostfire Gauntlet) 같은 아이템에는 챔피언 크기를 키우는 옵션이 달려 있다. 인터넷에서 롤 챔피언 크기라고 검색하면 이 옵션이 도대체 왜 있는 거냐는 플레이어들의 의문과 위엄을 위하여, 재미를 위하여, 논타킷 공격을 대신 맞아 아군 보호, 사거리 증가 등의 답변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는 자신의 기존 캐릭터에 맞추어져 있던 원근법의 축 변화와 그로 인해 재구성된 시각성에 기반하는 공간감에 시시각각 적응하고야 만다. 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는 시각성이 기존과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이 글의 주장을 보완하며,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한번 캐릭터의 비율, 스케일, 거리감, 공간감 등 원근법에 관여된 여러 문제들이 관건에 오르게 된다. 많은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 플레이어라면 한 번쯤 “이걸 맞는다고?” 혹은 “이걸 안 맞는다고?” 같은 말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떨 때는 내 캐릭터에 스킬이 닿지 않았는데도 맞았다는 판정, 닿았는데도 맞지 않았다는 판정이 의아하기도 하다. 이처럼 이해되지 않는 판정의 순간은 오히려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이 형성하는 공간감, 하나의 원근법에서 다른 원근법으로 교체되는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해 변화할 시각성에 관하여 고민하기에 더 없이 적절한 출발점이다. 모니터 평면 안의 크기와 비율, 스케일과 동기화되어 있던 우리 신체의 공간감이 끊기고 기존 원근법의 축이 변화하는 지점, 플레이 시간 내내 계속해서 눈의 새로운 적응을 요구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 게임 원근법의 변화무쌍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현한다. 변화하는 원근법과 그에 맞추어 재편되는 게임 내 공간감, 플레이어의 시각성은 앞으로 우리의 시각 문화에서 더욱 중요한 위상을 차지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각성은 과연 우리의 눈에 어떤 변화들을 불러들일까? 복수 개의 원근법, 회전하는 원근법이 구성하는 세계는 어떤 풍경일까? 우리의 눈은 그런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더 많고 풍성한 논의가 이 글 위에 쌓여 가기를 기대해 본다. [1] 물론 입체 매체, 예를 들자면 조각에서도 원근법은 중요한 문제다. 휴먼 스케일을 벗어나는 고대 그리스 조각들은 사람의 실제 몸과 비교하자면 머리가 훨씬 더 크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조각을 주로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기 때문인데, 실제 사람의 비율대로 제작하면 멀리 있는 머리가 더 작게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원근법은 크기와 비율의 문제에 관여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김얼터 리얼리티, 리얼리즘, 픽션, 그리고 매체의 관계에 관심이 있다. 시험에 들게 만들거나 시험하는 사물을 좋아한다. 미술 전시와 전시에 관여하는 텍스트를 생산하는 것으로 일하고 있다.
- [인터뷰] 게임연구학회의 새로운 도전, DiGRA-K 윤태진 학회장
024년 3월, 세계 최대 게임 연구 단체인 '디그라(DiGRA; Digital Games Research Association)'의 한국지회(디그라 한국학회)가 설립되었다. 디그라 한국학회는 영미권과 유럽, 남미 등에 이어 18번째로 설립된 지회로서, 게임 연구의 학제적 접근과 현장과의 연결성을 지향하고 후속세대 지원, 국제교류 및 협력연구 등의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분과를 뛰어넘는 학술교류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국내 게임 연구 분야에 있어, 다양한 업계 현장과 학계를 포괄하고자 하는 새로운 형태의 학회가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Back [인터뷰] 게임연구학회의 새로운 도전, DiGRA-K 윤태진 학회장 21 GG Vol. 24. 12. 10. 2024년 3월, 세계 최대 게임 연구 단체인 '디그라(DiGRA; Digital Games Research Association)'의 한국지회(디그라 한국학회)가 설립되었다. 디그라 한국학회는 영미권과 유럽, 남미 등에 이어 18번째로 설립된 지회로서, 게임 연구의 학제적 접근과 현장과의 연결성을 지향하고 후속세대 지원, 국제교류 및 협력연구 등의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분과를 뛰어넘는 학술교류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국내 게임 연구 분야에 있어, 다양한 업계 현장과 학계를 포괄하고자 하는 새로운 형태의 학회가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호 GG에서는 디그라 한국학회(이하 디그라-K)의 초대 회장인 연세대학교 윤태진 교수를 만나 디그라 한국학회의 지향성과 중점 사업 및 한국의 게임문화에 대한 진단 등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신규 편집위원: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비평지를 읽는 사람들을 위한 인터뷰이기도 하기에, 오늘 인터뷰에서는 게임 관련 학계의 흐름과 함께 게임 문화나 산업에 대한 연구나 비평으로서 학회가 하는 시도들을 말씀해 주시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회장님께서 디그라-K에 초대 학회장으로 출마하실 당시 취임 맥락과 포부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사담이 될 수도 있지만 편히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제가 귀차니스트라 조직의 요직 일을 하기 어려워하다 보니 나서서 회장을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게임 학회의 경우 사실은 아주 성격이 다른 상황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기존 학회와 달리 게임계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같은 상황이라, 학회를 통해 조그마한 오두막이라도 하나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마침 주위에 도와주는 분들이 나이와 경력 상으로 주니어였기 때문에 내가 조금만 시작해놓으면 이분들이 굉장히 잘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겸손하게 하는 말이 아니라 ‘땅만 조금 파면 될 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학회를 시작했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그렇다면 게임 관련하여 다른 여러 공동체의 유형이 있었을 텐데 왜 학회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하구요. 말씀하신 대로 새로운 학회를 만든다고 했을 때, 다른 국가에 여러 개의 지회가 있는 학회를 선택하여 한국에 지부를 만들기로 결정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기도 한데, 제가 위와 같은 막연한 고민을 하던 차에 디그라 학회 쪽에서 먼저 제안이 왔습니다. 일단 한국은 문화, 경제, 산업, 정치 분야를 막론하고 게임 분야가 세계적으로 굉장히 앞서 나가는 나라이기도 한데요. 디그라 학회가 16개 나라에 지회를 가졌지만 한국 지회는 없는 상황이었고 한국 학자가 디그라 학회에 참석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보니 헤드쿼터 입장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이 게임과 관련한 학술영역 개척을 적극적으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지회 제안과 함께 수년 내로 한국에서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해주면 어떻겠느냐는 오퍼가 있었고, 그게 계기가 되어 학회를 설립하게 됐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기존에 국내에 있는 다른 여러 게임 관련 학회들이 있고, 최근에 생긴 곳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기존의 학회들과 비교했을 때 디그라 학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우선 기존의 학회들은 몇 번 참여 경험이 있었지만 학문적인 입장이나 백그라운드가 제가 추구하는 바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연구 주제들이나 학회 진행 스타일 등이 낯설다 보니 내가 거기서 뭔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게 게임 연구 커뮤니티를 만들자라는 마음을 먹었을 때 제일 먼저 했던 생각이기도 해요. 컴퓨터나 정책 분야와 관련된 게임학회 같은 경우는 제가 만들자 하는 학회와 성격이 다르고 굉장히 특수한 분야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구요. 물론 그런 곳에서 일을 맡고 계신 선생님들과는 오히려 학회 설립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했었고, 학회 조직에 고문 등으로 모시기도 하면서 진행을 했습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사실 저 또한 기존의 게임학회들이 경영 쪽이나 공학 쪽 베이스가 많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낯설었는데, 한편으로 그런 학회들이 일종의 모학회 같다는 느낌은 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디그라-K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면, 디그라-K 역시 여러 분야의 이사진들이 있지만 밖에서 보면 신문방송학이나 문화연구로 치우쳐 있지 않냐고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혹시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저는 학회의 성향 문제는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을 많이 해요. 오히려 설립 당시에 내가 특정한 방향을 정한다고 해서 그렇게 가지 않더라구요.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디그라-K 학회를 시작할 때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두 가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법과 정책, 공학에 포커스를 맞춘 게임 학회가 있듯이 게임 문화에 포커스를 맞춘 좁고 깊은 학회를 만들면 색깔이 분명하고 추진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동시에 다른 하나는, 우리가 디그라 지회로서 세계 게임 학술대회 조직과 더불어 업계 사람들과 교류하며 현실 필드와의 관련성을 갖는 학회를 원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게임 문화에만 집중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어요. 학회 운영에 있어 특별한 개성을 갖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더 제너럴리스트로 가는 게 좋을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제가 논문 지도할 때 ‘깔때기’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깔때기 윗부분처럼 처음에 관심을 넓게 갖되 점점 좁혀 들어가며 자기만의 특별함을 가져야 된다고 얘기하거든요. 저는 우리 학회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회가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포괄할 수 있는 분야가 넓어야 하고 게임 프로그래밍이나 디자인, 개발과 마케팅 관련 관계자들도 들어올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모든 걸 다루는 학회를 지향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학회에서 우리가 좀더 강점을 갖고 있거나 더 하고 싶은 부분에 무게가 실리는 건 불가피하고 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봅니다. 이 상태에서 학회를 운영하다 보면 성격이 좀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그런데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자유도를 높여놓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사실 저도 최근엔 학회들이 누가 회장이 되든 변하지 않고 대부분 비슷하게 간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를테면 윗부분에 다양한 사람들을 크게 담아놓고 깔때기를 모으는 방향이 각자 다른 분들이 회장을 하신다면, 그때그때 어떤 회장이 하느냐에 따라 보편성과 구체성을 다 가지고 갈 수 있는 학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말씀하신 바에 동의하구요. 그럼 어쨌든 여러 모순적인 포지션을 유지하고 계시다고는 했지만 지금 디그라-K가 지난 3월 발족 후 조금씩 사업을 해나가고 있잖아요. 현재 학회에서 어떤 사업들을 하고 있으며, 그중에 특히 애정이 가거나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 무엇인지를 여쭤봐도 될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학회를 시작할 때부터 저는 그냥 터만 잘 파놓고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터를 파는데 있어 몇 가지 강조점이 있었어요. 가장 중요한 두 개는 학문 후속세대와의 연결과 국제적인 학술 교류입니다. 그 다음엔 학회와 현장과의 연결성을 잊지 말고 계속 필드로부터 정보를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는 걸 기본적인 자세로 지향하고자 했어요. 우선 우리가 디그라 세계학회의 지회라는 성격이 있다보니 국제적인 교류는 계속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학계의 문제이기도 한데, 학회에서 많은 비용을 대어 해외 학자를 데려오고 언론 보도에 크게 소식을 내는 것이 국제 교류로 오도되는 경향이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게임 쪽도 그렇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국제교류를 일상적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한국에 자비로 관광오는 사람도 많고, 제가 있는 대학의 경우 자비로 와서 연구를 하는데 소속만 빌려달라는 해외 학생들도 대단히 많아요. 그런 분들을 되도록이면 다 받고 싶고, 그들이 한국에 오면 혼자 연구만 하다 가는 게 아니라 이런 자리에서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를 활성화시키고 싶어요. 디그라-K에서 진행했던 두 건의 국제 발표 또한 이런 취지에서 개최한 행사였어요. 학생들이나 업계 관련자, 연구자들이 뭔가 외국의 누군가가 와서 영어로 발표하고 그들과 교류하는 게 ‘대단한 일’이 아니고 매우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느끼게 했으면 좋겠다는 게 하나가 있구요. 그 다음 학문 후속세대 얘기는 당연히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학문 분야를 막론하고 후속세대 양성에 욕심을 갖지요. 그런데 강조하고 싶은 건 게임 연구 분야는 독립된 학제라 보기 어렵다 보니 연구자들이 대부분 이탈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사회학이나 심리학에서 게임을 연구하던 분들이 시간이 지나면 취업이나 연구비를 위해 게임이 아닌 다른 분야를 하는 식으로 바뀐다는 거죠. 이런 걸 피하기 위해서는 게임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을 위해 자리를 만들거나 지원하고 북돋아줘서 누군가가 그들의 작업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강신규 편집위원: 말씀을 들으니 국제교류와 후속세대 양성 모두 거창한 형태로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해야 되는 일로 연결하신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런데 저는 게임 쪽은 후속세대 뿐 아니라 기성 연구자 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부터 게임을 다루던 미디어 연구자들 중 지금 게임 분야에 남아계신 분이 아마 회장님밖에 안 계실 거예요. 신진연구자든 기성연구자든 게임 연구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회장님은 어떠신가요? 회장님은 대중문화 전반, 특히 TV쪽을 많이 하시다가 게임 분야로 관심을 구체화시켜 현재까지 계속 하고 계시는데요. 스스로를 어떤 연구자로 정체화하시나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저는 스스로를 대중문화 연구자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의 100분의 1만큼도 웹툰을 안 보는 사람이지만 웹툰 갖고도 연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잘 나가는 걸그룹 멤버의 얼굴과 이름 매치도 못하지만 케이팝에 대해서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게임 전문 연구자라는 생각은 사실은 안 해요. 연구의 비중으로 보자면 제 연구는 2010년까지는 게임 연구의 비중이 컸고 그 이후에는 한류 연구를 오래 했고, 2017-18년부터 다시 게임 연구를 많이 한 셈입니다. 이제 은퇴가 얼마 안 남았다 보니 제 연구나 교육 생활 중 마지막 10년 정도는 게임 문화 연구를 주 전공으로 삼는다고 생각은 해요. 하지만 진짜 ‘게임 연구자’는 우리 후속 연구자들이 그 역할을 맡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그런 말씀을 들으니 진짜 게임 연구를 하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라는 의문점이 듭니다. 이건 GG를 보는 사람들이 궁금해할 이슈일 수도 있는데, 사실 저도 대학의 게임 강의 등에서 ‘내가 너희보다 잘 하는 게임이 있다’고 해야 제 말을 좀 더 잘 들어줄 것 같다고 느끼곤 합니다. 게임이란 분야가 누구나 ‘자기가 잘하는 게임에 대해서는 자기가 제일 잘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강하다 보니, 게임 연구자들에 대해 게임 플레이어들이 던지는 좋지 않은 시선 같은 것도 있는 것 같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분들에게 이를테면 회장님이 플레이어에게 연구자로서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으실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솔직히 굉장히 흔하고 보편적인 질문인데, 저는 그런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게임 연구자들의 교과서적인 답은 ‘게임 좋아하고 잘 한다고 좋은 학자는 아니다’, ‘내가 게임은 못 해도 학자로서 훈련과 트레이닝은 많이 받았다’ 이런 게 교과서적인 답일텐데. 저는 그걸로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비유처럼 얘기하는 건, 저는 제가 일종의 우리나라 70년대 텔레비전 연구자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80년대 대학을 다닐 때, 당시 텔레비전에 관해 가르치던 강사들은 산업이나 제작과정을 잘 모르거나 실제로 TV프로그램을 많이 보지 않는데 우리한테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기에 동료 교수나 지식인들에게도 비판을 듣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들의 강의가 아주 무의미했냐면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분들의 가장 큰 업적은 ‘텔레비전 드라마도 독립적인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해준 것이고, 그런 신념 하에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고 그들이 조금 더 발전시킨 논문과 책을 쓰게 한 역할이 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젠킨스가 얘기한 대로 결국 팬들이 공부를 하는 것이 대중문화 연구에 옳은 방향이라고 봅니다. 학자가 팬이 되는 것보다 팬이 학자가 되는 게 더 정확한 학문의 발전 방향인 것이죠. 근데 이제 그러기에는 저는 늦었다고 생각하고요. 따라서 저는 그런 질문이 나온다면, ‘당신들이 훨씬 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고 나는 당신들한테 길을 만들어 주겠다’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학회를 일종의 오두막처럼 만들고 그분들이 어떤 주인이 되는 때가 오면 훨씬 학술적으로도 성숙된 커뮤니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해외에서도 조금 나이가 있고 학문에 익숙한 학자와, 젊지만 어떤 감각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만나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 점에 있어 회장님께서 지도교수로서 게임을 좋아하는 학생들과 교류하고 코워킹을 하는 과정 또한 중요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 학생들과의 만남이나 마주침이 학문적으로 회장님한테도 역으로 자극이 좀 되셨을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그럼요. 너무 진부한 표현이지만 학생들에게 훨씬 실질적으로 많이 배웁니다. 학생들의 페이퍼를 내가 평가자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재미가 없는데 실은 제가 요즘 공부하는 것의 한 70%는 학생들 논문 읽으면서 배우는 것 같거든요. 학생들의 페이퍼를 보다가 재밌는 거 있으면 조금 더 찾아보고 이런 식으로 배우기 때문에 게임 연구도 사실은 저는 그런 식으로 해온 것 같아요. 강신규 편집위원: 비슷한 질문일 수 있겠는데요, 그렇다면 게임 연구가 게임 플레이어들한테 해줄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요? 디그라-K 학회가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 업계 및 연구자와의 교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플레이어와의 교류 또한 매우 중요한 최종 도달점 중의 하나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게임 연구자가 플레이어들에게는 어떻게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저는 지금 질문을 듣자마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영화 팬들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은 아마 게임 평론가보다 영화 평론가가 훨씬 많겠지만, 조금 좁혀서 ‘시네필’들을 얘기한다면 그 많던 시네필들 중 일부는 감독이나 제작자가 된 사람도 있고 유학 가서 학자가 된 사람도 있죠. 만약 우리나라의 영화학이 당시 굉장히 풍성했더라면 그런 사람들을 굉장히 잘 소화할 수 있었을 거에요. 계속 인터랙션이나 학습이나 교류를 통해 보람을 주면서 영화에 대한 그들의 에너지를 결국 학계건 업계건 연결을 시켰을 겁니다. 저는 우리나라 게임 평론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성격과 규모는 좀 다르겠지만 게임과 관련해 그런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GG의 게임 평론 공모전도 훌륭한 일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자리를 만들고 교류하는 일을 학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많이 알거나 막연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학자가 되지 않더라도 게임에 대한 다른 시각이나 개념, 타국의 게임 현황을 배우면서 게임에 대한 애정이나 에너지가 더 커지면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차츰 쌓여서 게임 업계나 학계에 굉장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신규 편집위원: 한편으로 저는 그간 대중문화나 영화를 연구하던 사람들이 게임 쪽을 자연스럽게 연구하고 비평하는 게 장르의 저변을 넓히고 경계가 사라진다는 의미에서 좋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럼 게임만의 고유한 무엇이 남아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도 듭니다. 디그라-K의 지향점을 말씀해 주시기도 했지만 게임과 관련한 (고유한) 이론과 방법론이 없는 상황에서 게임이 어떻게 나아가야 될 것인가를 저희가 굉장히 오래 논의했었죠. 대중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상으로서 게임을 한 번쯤 이야기할 수 있다는 분위기인데, 한편으로 그게 약간 공허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혹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신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그 부분은 저와 좀 생각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데, 저는 게임이 독립된 학문적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독립적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 독립된 이론과 방법론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에도 반대합니다. 질적 연구방법론을 예시로 들면, 분과별로 질방이 각자 있지만 주제와 소재만 바뀌고 내용이 크게 차이가 없죠. 분과적인 것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각자 방법론적 노력을 하는거라고 생각하고 이론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학회를 만든 것도 형식적이거나 제도적인 문제를 고려한 것이지 그 안의 내용물이 사회학회나 언론학회와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구요. 저는 오히려 우리 학회도 많은 사람들이 ‘잠깐 와보는 곳’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요. 같은 이유로 아마추어 평론가나 업계에서 열심히 뛰는 현장 인력들도 학회에 한 번쯤 와서 기여도 잠깐 하고 그러다 재미없으면 가고 하는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숏폼, 메타버스, VR, AR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현재 게임의 경계도 굉장히 애매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땐, 그럼 빨리 게임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만들어 제도화시켜서 뿌리를 내리자는 의견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게임의 영역과 경계를 아주 흐릿한 채로 오히려 넓혀서 다양한 주제를 게임 연구에서 할 수 있고 또 게임 연구에서 그런 쪽에 기여도 할 수 있게 만들자는 의견이 있을 텐데요. 저는 그 둘 중에 압도적으로 후자로 가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강신규 편집위원: 학회의 방향과 관련된 질문을 좀더 드려보자면, 게임 산업이나 문화에 대해 학회가 실천적으로 참여나 개입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혹시 생각하고 계신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를테면 게임 관련 규제 개선이나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과 관련된 부분이라던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두 가지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저는 학회가 그런 의제를 적극적으로 전면에 내거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고 있어요. 왜냐면 학회가 지향하는 것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하는 곳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어떤 게임이용장애의 질병화를 찬성하거나 반대한다던지,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을 어떻게 해야 된다던지에 대해 학회 이름을 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건 대전제로 하는 얘기구요. 그렇지만 둘째로 개별적인 사안에서는 사실 기민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게임이용장애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내년 초에 세미나 하나를 계획 중이에요. 외국 사례를 참조해 이게 정말 법령화가 되고 있는지,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를 그동안과는 좀 다른 시각에서 세미나를 해보면 어떨까 하고 추진 중에 있습니다. 즉 학회의 방향이 이를테면 산업 친화적이거나 정책 지향적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하며 이건 저는 굉장히 분명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단지 산업이나 정치, 국제관계 등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특정 이슈가 있다면, 이와 관련한 자리를 학회가 기민하게 만들어서 전문가들이 토론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강신규 편집위원: 오늘 회장님이 학회와 관련하여 말씀해 주신 부분들, 여기저기 있는 사람들이 그런 부분들을 알고 학회에 와서 편히 들을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일도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인터뷰가 GG에 실린다고 하니, 질문과 무관하게 한 가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우선 이 글의 독자가 대학원생 등의 연구자가 아니라 그냥 게임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평론가나 게이머일 가능성이나 비율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체감상 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게임 관련 조직이 생기거나 책이 출판되고 행사가 만들어질 때 일종의 ‘정치적 판단’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우려가 들어요. 정치적 판단이라 함은, 진보와 보수의 얘기가 아니라, ‘이거는 업계가 돈 벌려고 하는 일이야’, ‘저 사람은 페미니스트니깐 이거는 개판일 거야’ ‘이거는 누가 특정한 의도로 뭘 해보려고 만든거야’ 등의 어떤 냉소적인 반응의 문화랄까요? GG의 비평 콘테스트에 나온 글에 대해서도 저 글은 잘못 알고 쓴 글이라는 방식의 비방도 많았구요. 이런 걸 보면 텔레비전이나 케이팝 등 다양한 여러 대중문화 영역 중에 게임 쪽이 어떻게 보면 가장 긍정적 리액션이 적은 곳 같고, 무언가를 지지하거나 기여하는 발전지향적 태도를 제일 발견하기 어려운 곳이 게임 판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문화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있고, 그런 문화가 사라지는 건 어려워도 어떻게 완화될 수 있을까를 고민을 많이 하는데 사실 방법은 없거든요. 어떤 캠페인을 벌여서 될 것도 아니고 한편으로 이런 태도가 전세계적 트렌드이기도 하기에 어렵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이런 얘기는 해보고 싶어요.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일 욕하고 냉소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조금은 긍정적으로, ‘게임을 사랑하는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어떤 특정 게임사가 분명히 누군가에게 잘못한 일도 많겠지만, 사실 게임 산업이 망하지 않고 잘 되어야 하는 거니까요. 저는 산업이나 정책, 경영에 참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게임 판이 쇠락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생각을 하고, 이 부분은 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계에 어떤 연구결과물이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냉소적으로 ‘교수들이 또 대학원생 시켜서 아무거나 쓰고 책이나 낸다’는 식의 반응이 많은데요. 거기서도 본인들이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것이나 자극이 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찾아 좀더 긍정적인 리액션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강신규 편집위원: 저희가 오늘 굉장히 많은 것을 여쭤봤고 좋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편집장님께서 꼭 질문을 해달라고 하셔서 넣은 것입니다만 학회장으로서 ‘최애 게임’이 무엇이신지요? 윤태진 디그라-K 학회장: 우선 저는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온라인에서 싸우거나 협력하는 등 모르는 사람과 부딪혀야 하는 게임은 못하겠더라구요. 기본적으로는 제가 잘 못하는 걸 들키기 싫은 본능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웃음). 그러다 보니 네트워크가 없는 콘솔 게임이나, 혼자 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 위주로 하게 되네요. 그리고 저는 게임을 다른 일을 하다가 기분 전환용으로 잠깐 하는 것이기에 빨리 끝날 수 있는 아케이드류가 많아요. 보통은 간단한 크로스워드 퍼즐이나 3매치 류의 게임을 많이 해요. 참고로 제 게임 역사에서 제일 오래 했던 게임은 유학 초기에 했던 <동키콩>입니다. 유학 가서 말도 안 통하고 심심하고 해서 그거를 맨날 하다보니 잘하게 돼서 오락실에 제가 들어가면 사람들이 길을 열어주기도 했어요. 집에 아이가 좀 크고 나서는 <크레이지 아케이드>나 <위닝>도 많이 했구요. 최근엔 <대항해시대>나 <우마무스메> 등이 워낙 많이들 하니까 의무감에서 했었는데 <대항해시대>는 좀 재밌게 했었네요. 원하는 장르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말이 많으면 맛이나 보자는 마음에 플레이하는 게임도 꽤 많은 편이에요. 이상입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This is a Title 03 | 게임제너레이션 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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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캣스모폴리틱스(Catsmopolitics): 고양이와 기계가 자본세 지구에 착륙하는 방법
인종차별, 여성혐오, 소수자 차별, 장기화된 실업, 투기와 불평등, 전쟁과 극우정치가 만연한 오늘날 유일하게 아무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고양이일 것이다. 좌파도 우파도, 남성도 여성도, 베이비부머도 청년도, 무슬림도 카톨릭도 고양이를 사랑한다. 사람들은 기꺼이 골목길에 사료와 물그릇을 갖다놓으며, 고양이와의 사랑스런 일상을 촬영해 공유한다.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는 인간이 아닌 고양이다. < Back 캣스모폴리틱스(Catsmopolitics): 고양이와 기계가 자본세 지구에 착륙하는 방법 08 GG Vol. 22. 10. 10.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인종차별, 여성혐오, 소수자 차별, 장기화된 실업, 투기와 불평등, 전쟁과 극우정치가 만연한 오늘날 유일하게 아무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고양이일 것이다. 좌파도 우파도, 남성도 여성도, 베이비부머도 청년도, 무슬림도 카톨릭도 고양이를 사랑한다. 사람들은 기꺼이 골목길에 사료와 물그릇을 갖다놓으며, 고양이와의 사랑스런 일상을 촬영해 공유한다.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는 인간이 아닌 고양이다. 자연을 정복하고, 기계문명과 산업도시를 건설해 지구의 지배자로 거듭난 인간이지만 고양이 앞에서는 애정결핍 노예가 돼버린다. 오늘날 고양이는 신성불가침이라 할 수 있으며, 어쩌면 지구 역사상 유일하게 인간을 굴복시킨 생명체일지도 모른다. * 필자와 7년간 삶을 함께하고 떠난 고양이, 제리입니다. 이처럼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 존재인 만큼, 고양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열정도 남다르다. 고양이는 왜 고롱거리는 걸까? 고양이는 왜 발치를 맴돌며 머리를 비비는 것일까? 쥐나 벌레를 선물로 바치는 고양이의 심리는 무엇일까? 동물행동학자가 아닌 일반 사람(집사)들이 고양이의 언어를 이토록 이해하려고 애쓴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우화 속에서 의인화되지만, 고양이는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쉽사리 의인화되지 않는 존재다. 사람들은 고양이 행동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재해석하며, 고양이의 시각에서 사고하려고 든다. 고양이를 의인화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을 의묘화한다. 고양이의 시점에서 스스로를 굽신거리는 집사로 희화화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을 만났을 때 있는 힘껏 몸짓 발짓을 동원하는 노력과 비슷한 맥락이다.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나로부터 벗어나서 타자처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먼 곳에서 왔지만 가까워지고 싶은 존재, 친족이 되고 싶은 반려종으로서 고양이의 사회적 의미는 요즘 아주 의미심장하다. 〈스트레이〉는 이처럼 ‘고양이와 함께 되기’를 꿈꾸는 기묘한 심리를 투영한 게임이다. 고양이를 대상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고양이가 되어보는 것이다. 고양이를 묘사한 문학·영화는 항상 있어왔고, 인기도 많았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는 고양이의 시점에서 인간 사회를 묘사하며,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은 진창에서 벗어나는 노숙자 ‘밥’과 가족이 된 길고양이의 실화를 다룬다. 이슬람 성전 쿠란에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예배 중 자신의 품에 기어들어와 잠든 고양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자신의 옷소매를 자른 일화가 담겨 있다. 그러나 실제 고양이가 되어 발톱을 긁고, 점프하는 게이밍 경험은 그 이상이다. 〈스트레이〉는 고양이를 인간과 동등한 행위자의 관점에 위치시키면서, 객체라고 생각되는 비인간(고양이, 기계, 도시)들이 자아내는 사회적 관계를 SF의 형식 속에서 재배치한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고양이에게는 이름이 없다. 어디에서 왔는지, 가족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름이나 가족은 인간중심주의적 개념이며 비인간에게는 불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고양이의 관점에서 인간 세계관을 비평하고자 했던 나쓰메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생동하는 비인간의 세계 게임은 폐허가 된 도시를 기웃거리다 지하로 떨어진 고양이의 탈출 여정을 그린다. 플레이어는 철저히 고양이의 시점에서 공간을 탐색하고 길을 만들어 나가야한다. 인간의 감각, 인간적인 사고방식은 통용되지 않는다. 문을 지나가기 위해서 문고리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문을 긁어서 누군가가 열게 만들어야 하며, 거리의 평면적 공간이 아닌 건물의 수직적 공간을 이동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어디든 네 발로 착지할 수 있는 능력을 선물 받은 고양이에게 인간의 2차원적 운동은 고루할 뿐이다. 이 이름 없는 고양이로 가장 빈번하게 발 디디는 곳은 환풍구, 파이프라인, 테라스 난간이다. 스파이더맨이 아닌 이상 인간은 이런 식으로 공간을 인식하지도, 이동하지도 않는다. 〈스트레이〉에서는 인간적인 감각을 최대한 제쳐놓고 사고해야 한다. 게임은 매우 정교한 레벨링을 통해 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어지는 수직 도시 스테이지를 설계했으며, 각 페이즈들은 철저히 고양이의 동선에 최적화되어 있다. * 〈스트레이〉에서 인간 지각 요소인 미니맵, 위치표시기, 체력바, 마커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고양이의 시점에서 공간을 인식해야 하며, 사물과의 상호작용과 좌표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다소 불편하지만 이러한 비인간 감각에의 연동은 고양이만 갈 수 있는 경로와 퍼즐풀이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이 공간 이동 경험은 낯설고 신비롭다. 기존의 게임 문법과 다르게, 우리는 고양이의 눈높이에서 사물들을 바라봐야 한다. 시선을 넓게 던지고, 어딘가를 항상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내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미니맵이나 지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데카르트적 좌표계가 공간 인식의 준거가 되지 않으므로, 플레이어는 도시 곳곳의 후미진 공간까지 아주 면밀히 검토하고, 반복적으로 탐색하면서 고양이의 감각으로 경로들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게임들에서, 소실점은 언제나 인간의 눈높이(혹은 총의 조준선)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낯선 이물감이 든다. 길을 헤매고, 화면을 올려다보느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탓에 울렁거림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공간 디자인은 단순히 플레이어를 곤경에 빠트리기 위함이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로서의 경험을 재조직화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인간이라면 떠올리기 어려운 비밀 장소들을 발견하거나 문틈, 창살 사이를 비집고 다닐 수 있으며 수백 미터 아래를 가뿐히 뛰어내려 옆 건물로 이동할 수도 있다. 고양이의 입체적이고 아크로바틱한 운동 속에서 우리가 재발견하는 것은 탈인간적인 물질 감각이다. 무심히 지나친 타이어, 녹슨 드럼통, 콘크리트 쓰레기들은 역설적이게도 고양이가 유유히 지나다니는 길을 열어준다. 이를 통해 〈스트레이〉는 산업문명의 기초가 되는 기계와 도시를 반생태적인 독성 공간이면서 동시에 보잘 것 없는 쓰레기더미로 묘사하는 중의 문법을 도입한다. 미디어학자인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의 말을 빌린다면, 상징과 해석을 강조하는 문학과 다르게 탐색과 항해를 강조하는 게이밍의 ‘절차적 수사학(procedural rhetoric)’이 고양이의 행위성과 입체적인 도시 이동 경험을 중개하고 있는 것이다. 〈스트레이〉의 독창적인 디자인은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고양이와 함께 되기’ 경험을 극적으로 증폭시킨다. 수직적이고 기하학적인 공간으로 직조되어 있지만, 고양이가 자유롭게 도시 공간을 누비고 다니듯 플레이어는 손쉽게 고양이의 신체 행동과 동기화될 수 있다.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난해한 기믹이 동원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몇 가지 버튼만 적절한 타이밍에 누를 줄 안다면, 그리고 고양이의 관점에서 사고할 줄 안다면 누구든 이 생동하는 비인간 세계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스트레이〉는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즐겼던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게임(예컨대 인디아나 존스 게임 시리즈같은)의 담담한 재해석으로 여겨진다. 그렇다. 〈스트레이〉의 세계에는 오로지 비인간 행위자들만 존재한다. 인간은 기후 재앙으로 멸종한 지 오래고, 인간의 하인 노릇을 하던 로봇종인 ‘컴패니언’과 주인공인 고양이만이 살아남았다. 인간의 흔적은 폐허가 된 지하도시에 즐비한 기계장치들에 검붉은 녹으로만 남아 있다. 인공지능에서 개성을 획득한 ‘컴패니언’ 들은 인간의 사고와 관습을 흉내내기는 하지만 인간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말 그대로 새로운 생명체다. 읽을 수 없는 기계 언어로 쓰여진 간판들, 쓰러지고 부서진 건물들, 우스꽝스러운 복장에 외골수 행동을 하는 컴패니언들 속에서 제기되는 질문은 명쾌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은 무엇인가?’ 이다. 함께-되기의 캣스모폴리틱스(catsmopolitics)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실존적 질문은 인간의 실존을 묻는 까뮈의 〈이방인〉이나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처럼 난해하지 않다. 〈스트레이〉의 로봇종과 고양이, 그리고 고양이보그(catborg)인공지능 드론은 서로 돌보고 협생하는 관계다. 이 설정이야말로 게이밍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지적이고 영리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소형 드론 B-12는 플레이어(즉 고양이)에게 계속 자신을 깨우라는 신호를 보내며, 나중에는 플레이어를 돕는 보철물로 합류한다. 고양이 전용 웨어러블에 탑재된 B-12는 생동하는 비인간 세계와 소통하기 위해 고안된 기계신 같은 존재다. 어두운 공간을 비추고, 고양이가 수집한 아이템을 디지털화해서 저장하며, 컴패니언-고양이 간 소통이 가능하도록 기계언어 번역을 제공한다. 플레이어는 B-12로부터 지상으로 나갈 수 있는 퍼즐풀이 단서를 제공받지만, B-12가 위기에 처했을 때(과부하로 전원이 꺼지거나 기능이 정지되었을 때)는 거꾸로 구해내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 고양이, 컴패니언(로봇종), 인공지능 드론은 협생 관계이다. 드론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고양이와 합체, 고양이보그(catborg)가 되어 플레이어의 진행을 돕는다. 게임 속 오브젝트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라이트를 비출 뿐 아니라 컴패니언의 기계언어와 고양이의 야옹 소리를 번역해 소통이 가능하도록 만든다. 인간이 떠난 지하도시의 거주자 컴패니언은 고양이에게 다양한 도구를 제공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며 고양이가 지면으로 나가도록 돕는다. 한편 고양이(플레이어)는 컴패니언의 생존을 위협하는 박테리아 균체 저크(zurk)를 물리치도록 도움을 주게 된다. 비인간 행위자들 간의 ‘함께-되기(becoming with)’의 경험을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는 인간이 야기한 자본주의와 기술의 문제들을 탈인간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상상력을 펼친다. 고양이와 드론, 모든 유기체를 갉아먹는 균체인 저크(zurk)로부터 지하도시에 격리된 로봇종인 컴패니언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 협력한다. 이 비인간-행위자들의 끈끈한 네트워크는 인간이 만들어낸 질서 바깥에서도 객체들만의 정치가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스트레이〉에서 이들의 실존을 위협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질서와 발명품들이다. 고양이와 드론, 그리고 로봇종의 여정을 가로막는 위협은 멸망한 인간이 고안해낸 것들이다. 기후재앙을 맞이한 인류는 탄소배출을 중단하는 대신 탄소를 먹어치우는 박테리아를 개발한다. 요즘의 기후위기 국면에 대응하는 각국 정부들을 보면 정말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다. 물론 이 선택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박테리아는 처음에는 플라스틱과 탄소를 먹어치우지만, 유기체를 다 먹어치운 다음에는 금속까지 먹어치우는 방향으로 진화해버린다. 저크(zurk) 균체가 된 박테리아는, 동물과 인간 뿐 아니라 기계생명체인 컴패니언들까지 집어삼키고, 그 결과 식량난으로 멸종한 인간에 이어 컴패니언들도 지하 방공호에 긴 세월 격리된다. 이들을 격리하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규율하는 존재는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경찰 로봇, 센티넬(sentinel) 들이다. 센티넬은 격리를 해제하자고 주장하는 인간들을 감시하고 훈육하는 용도로 개발된 로봇들이지만, 인간이 사라진 후에는 밖으로 나가려는 컴패니언들을 억압하는 권력-기계가 된다. 포스트휴먼니즘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가 비평하는 것처럼, 인간 중심주의가 자아낸 트러블(기후위기, 계급갈등, 프랑켄슈타인 과학)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비인간의 존재를 가로지르는 ‘함께-되기(becoming with)’가 전제되어야 한다. 〈스트레이〉는 그 방법들을 플레이어들의 퍼즐 풀이 속에 아주 적절히 풀어놓는다. 인류가 처한 트러블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옵션은 ‘어떻게 인간을 구할 것인가’ 라는 고전적인 휴머니즘이 아니라 포스트휴머니즘, 즉 어떻게 ‘비인간과 함께할 것인가’의 주제의식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이 게임에서 고양이의 시각에서 사고해야만 했듯이, 사물의 관점에서 상호작용을 재구성해야 한다. 고양이, 로봇, 인공지능 뿐 아니라 균체, 건물, 뗏목, 전기, 라디오, 악기, 금고에 이르기까지 유기체와 무기체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함께-되기’가 요청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순히 객체(비인간 행위자)가 되어 상호작용하는 경험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브뤼노 라투르가 지적하듯이, 중요한 것은 끈끈하게 연결된 이 비인간 행위성들 속에서 가능한 정치, 즉 인간과 사물이 동등하게 객체이자 행위자임을 상정하는 가운데 그 네트워크가 창발할 수 있는 잠재적 코스모폴리틱스(cosmopolitics)를 발견하는 것이다. 내가 이 게임의 매커닉을 두고 캣스모폴리틱스(catsmopolitics)라고 부르는 맥락은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 이념으로서의 코스모폴리틱스는 아주 난해하고 사변적이다. 그런데 〈스트레이〉는 비인간인 동시에 인간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고양이의 행위성을 투사해, 함께-되기의 경험들을 퍼즐풀이 문법으로 수사하면서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선언한다. ‘캣스모폴리틱스’는 시네마나 문학에서는 달성되기 어렵겠지만, 〈스트레이〉 같은 게임에서는 고풍스럽고 위트넘치는 방식으로 플레이어들을 설득하게 된다. 그루브, 하모니, 에코, 고양이...펑크!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이 게임이 사이버펑크의 외형을 하고는 있으되 사이버펑크의 문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 어원 자체가 다르다. 사이버펑크(cyberpunk)의 펑크는 거칠고, 단순하며 반항적인 하위문화인 펑크(punk, 메탈과 록)에서 온 것이지만 펑크(funk)는 깊이 있고 은은한 냄새, 그루브, 전자음과 리듬과 결부된 재즈적 무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휘황찬란한 네온싸인의 거리와 녹슨 기계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가운데 고양이가 뛰노는 풍경은 아주 흥미롭지만, 〈스트레이〉는 권력의 감시와 대안적인 자유, 증강인간과 넷러너 등 사이버펑크의 전형적인 주제의식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맹신하는 트랜스휴머니즘과 기후재앙 시나리오를 비판적으로 소묘한다. * 사이버펑크(cyberpunk)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본질은 그루브와 조화가 강조되는 에코펑크(echofunk)이다. 부드러운 플로우와 애시드 재즈, 기계와 고양이 간의 따뜻한 상호작용 속에서 생태적인 감각이 되살아난다. 버스킹을 하고, 식물을 키우고, 테크노 음악을 발굴하는 로봇종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황폐한 지구를 떠날 궁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살고 있는 지구에 착륙하는 방법, 캣스모폴리틱스를 배우게 된다. 그런데 이 붓터치는 punk가 추구하는 강함(중독, 환각, 메탈, 가죽)이 아니라 funk의 부드러운 플로우 속에서 구현된다. 플레이어는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는 공간, 혹은 이벤트가 벌어지는 페이즈에 들어설 때마다 펑키한 애시드 재즈를 접하게 되는데, 이는 급박한 긴장의 폭발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꾀하는 기존 대중문화의 문법과는 정 반대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감미로운 펑키 무드는 오히려 긴장을 이완시키고 공간의 사물들을 여유있게 살펴보도록 만드는데, 이 때문에 플레이어는 오히려 느긋하게 고양이와 공간의 하모니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음악 뿐 아니라 펑크가 집약되는 공간은 아주 힙하고 히피스러운 소품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플로우에 몸을 맡긴 채, 고양이를 움직여 이 사랑스러운 프랑스 애니메이션풍 미장센을 하나하나 음미하기 시작한다. 소파에 누워 잠을 잘 수도, 카펫 위에 꾹꾹이를 할 수도 있으며 TV와 라디오를 켜거나 끌 수도 있고, 냥점프와 냥펀치로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 모든 행동은 느긋함을 유도하는 게임 매커닉과 펑키한 요소들(음악, 미장센)을 통해 조화되며, 느긋하게 진정된 상태가 아니면 좀처럼 되돌아보기 어려운 주제, 생태과 기술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의 친애하는 고양이가 가로되, 기술의 진보는 문명의 진보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스트레이〉는 고양이펑크인 동시에 에코펑크이며, 펑크가 구사하는 모든 느긋함의 미학을 플레이에 조화시키는 게임이다. 무엇보다, 〈스트레이〉의 캣스모폴리틱스 펑크는 인간의 자본주의 기술문명 자체가 프랑켄슈타인이 되어가는 현실, 즉 자본이 지구 지층을 뒤헤집는 자본세(capitalocene) 시대에 대한 가장 비판적이고 사변적인 우화다. 집도, 이름도 없는 고양이가 되어 귀여운 잔꾀를 펼치는 체험을 통해 우리는 지구에 안전하게 착륙하는 방법을 불현듯 깨닫게 될 것이다.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조스 같은 억만장자들은 화성으로 인류를 이주시키자, 태양계에 우주 콜로니를 만들자는 식으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이 있는 지구를 어떻게 떠난단 말인가?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지구를 떠나는 방법이 아니라 지구에 착륙하는 방법이고, 고양이-기계-로봇이 서로 환대하는 모습에서 스스로와 타인을 돌보는 방법일 테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고양이는 이렇게 말한다. “태연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깨달은 듯해도 사람의 두 발은 여전히 지면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디지털 문화연구/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신현우 문화연구자, 문화평론가이며 기술비판이론과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게이밍, 인공지능, 플랫폼, 블록체인을 둘러싼 문화현상을 연구하며 서울과기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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