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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 Player in Environment(PiE), '우연한 아름다움의 섬광'을 찾아서

    윌 라이트의 발언은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출발점을 제공한다. 이 장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전통적인 비디오 게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승리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클리어해야 할 최종 보스도, 달성해야 할 명확한 목표도 부여받지 않는다. 대신 플레이어는 스스로 플레이의 명분과 이유를 만들어내야 한다. < Back 와 Player in Environment(PiE), '우연한 아름다움의 섬광'을 찾아서 27 GG Vol. 25. 12. 10. 라이프 시뮬레이션과 '승리 조건의 부재'의 나비효과 <심즈>의 아버지이자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의 개척자 윌 라이트는 2001년 Game Studies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터랙티브 디자인 철학을 설명하며 주목할 만한 발언을 남긴다. 윌 라이트는 플레이어의 창조성을 활성화하는 것이 자신이 게임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라고 밝히며, 플레이어가 자신이 한 일이 자신만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일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발언은 단순히 게임 디자인의 기술적 측면을 넘어서, 라이프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가 본질적으로 플레이어의 주관성과 분리될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진1. 윌 라이트(2010) (출처: 위키피디아) 윌 라이트의 발언은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출발점을 제공한다. 이 장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전통적인 비디오 게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승리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클리어해야 할 최종 보스도, 달성해야 할 명확한 목표도 부여받지 않는다. 대신 플레이어는 스스로 플레이의 명분과 이유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시뮬레이션 게임 장르에서 플레이어가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넘어, 시뮬레이션과 어떤 방식으로든 의사소통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플레이어와 시뮬레이션의 의사소통은 플레이어가 자신이 시뮬레이션 속에서 처한 상황과 환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조작하느냐와 다르지 않다.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는 플레이어가 플레이 디자인을 완성하는 장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는 플레이어에게 조작할 수 있는 플레이 환경만 제공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시뮬레이션에 대한 플레이어의 이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플레이 공간을 제공하는 것과, 특정한 방향으로 플레이어의 이해를 유도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가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 자체가 필연적인 것인지, 우연적인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플레이어의 목표설정은 필연인가, 우연인가? 시뮬레이션 게임은 자체적인 규칙을 가진 미시계를 모델링하여 시뮬레이션을 구현할 환경을 마련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플레이어는 자체적인 규칙을 가진 미시계와 상호작용을 통해 그 미시계의 규칙들을 파악하고,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가며 시뮬레이션을 탐구해 나간다. 특히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는 게임 시스템의 복잡한 역학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이 입력한 입력값의 결과를 우연히 확인해가며 플레이어만의 고유한 서사를 획득해 간다. 윌 라이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게임들을 본질적으로 소프트웨어 장난감에 가깝다고 정의한 바 있다. 그는 게임이 거대한 가능성의 공간을 제공해야 하며, 모든 플레이어가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하는 특정한 가능성보다는 각 플레이어가 가능한 한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거대한 가능성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플레이어에게 큰 해법 공간을 제공하면 플레이어는 자신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만약 플레이어가 자신이 한 일이 자신만의 고유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에 훨씬 더 큰 공감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장난감에는 정해진 목표도 없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려는 주체 스스로가 놀이의 규칙과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윌 라이트의 이런 인터렉티브 디자인 철학은 ‘심시리즈’를 비롯한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목적을 제시하는 일반적인 비디오 게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플레이어는 필연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종속된 플레이를 한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우연히 시뮬레이션을 만지다보니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까? 윌 라이트가 지적하는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의 장난감적인 특성은, 게임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을 상기하게 만든다. 게임은 오랫동안 로저 이버트를 포함한 많은 평론가와 연구자에게 존재론적으로 예술의 특성을 가진 매체로는 인정될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들이 제시하는 평가의 근거는 대게 칸트가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에서 예술을 통한 미적 체험, 그리고 미적 판단의 기준을 제시했던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칸트는 미적 판단이 개념에 근거하지 않으며 어떤 의도도 갖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목적성’의 표상을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합목적성은 특정한 목적의 귀속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칸트는 이를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라고 불렀다. 칸트에게 미적 경험은 인식적 판단과는 다른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개념적 파악이나 실용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순수한 관조의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칸트는 자연에는 목적이 없기 때문에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이 어떤 질서인지는 모른다는 것이고, 종속된 것들은 딱히 목적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칸트에게 자연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는 것은 중요한데, 그 이유는 '자연이 어떤 것인지 몰라야' 내적인 질서 창출과 자발성을 바탕으로 법칙만을 추구하는 의지를 욕망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칸트는 이를 ‘선의지’라고 부르며,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일치’라고 보았다. 미적 판단에서 상상력은 어떤 자유로운 유희를 허용받으며, 하나의 개념에 종속되지 않고 오히려 일반적인 지성의 합법칙성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칸트의 개념이 난해한 이유는, 칸트가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일치’와 같은 것들이 개념이 아니라 일종의 현상 같은 것으로 이야기한 것에 기인한다. 이 때문에 ‘목적 없는 합목적성’은 아주 우연히 도달하게 되는 경지 같은 것이 된다. 물론, 칸트가 이렇게까지 ‘선의지’를 주장할 수 있는 데에는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칸트의 주장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타우마제인(thaumazein)’이라고 부르는, 인간에게 철학을 하게 만들 수 있는 어떤 현상에 대한 개념이 기저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Metaphysica)』에서 인간이 경이로움 때문에 철학을 시작했다고 주장하며, 이는 무지에 대한 예리한 자각과 무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타우마제인은, 설명하자면 “매번 보는 노을이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나한테는 갑자기 다르게 보이는 현상” 정도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칸트에게 ‘선의지’란 무언가를 추구하는 힘이나 동력 같은 것이라기보단, 프로그래밍 코드를 돌리다가 리팩토링 안 한 스파게티 코드가 문득문득 시스템과 맞아떨어지며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경이 체험 같은 것에 가깝다. 다시 말해, 플레이어가 자체적인 규칙을 가진 미시계와 상호작용을 통해 입력한 입력값의 결과가 우연히 시스템이 의도하지 않은 복잡한 역학의 질서와 맞아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체험을 제공한다면, 게임을 예술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는 힘을 잃게 된다. 이는 단순히 게임을 예술로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게임이 단순히 규칙의 집합이나 목표 달성의 도구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시스템과의 우연한 조우를 통해 미적 경험을 할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게임 연구자들 역시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게임을 예술의 한 형태로 볼 수 있게 만들만한 가능성을 보았으며, 이 가능성을 분석해왔다. 윌 라이트 자신도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며 시뮬레이션을 ‘역설계’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하기도 했었다. 시뮬레이션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플레이어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더 정확하게 모델링할수록 앞으로의 전략이 더 나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컴퓨터가 중간 모델이며, 플레이어의 머릿속 모델을 형성하기 위한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MDA에서 DPE로, 시스템 산출물에서 주관적 경험으로 오늘날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를 이해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연구자는 아마 워킹 시뮬레이터 장르의 대표작으로 종종 소개되는 (Thatgamecompany, 2012)의 개발자이기도 한 로빈 후니케(Robin Hunicke)일 것이다. 후니케는 2004년 시뮬레이션 장르를 이해하기 위한 MDA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다. MDA 프레임워크란 시뮬레이션 게임의 플레이를 디자인하는 개발자를 위한 프레임워크로, 게임을 개발할 때 매커니즘, 상호작용, 미학 혹은 경험 순서로 플레이를 설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림1. MDA 도식과 요소별 개념] - 출처: 「MDA: A Formal Approach to Game Design and Game Research」(Robin Hunicke, 2004) - 동시에 후니케는 MDA 프레임워크가 복잡한 라이프 시뮬레이션 게임을 구조화해 분석할 수 있으며, 플레이 경험을 시스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고, 플레이 동기와 시스템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발자와 플레이어 모두에게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후니케는 개발자는 MDA의 흐름으로 '설계 순서의 관점'에서 게임에 접근하면 되고, 플레이어는 ADM의 흐름으로 '경험 순서의 관점'에서 게임을 분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후니케의 MDA 프레임워크는 라이프 시뮬레이션이 가진 플레이 특성을 경험 지향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것은 분명하나, 미학 혹은 경험이 매커니즘과 상호작용에 종속된 결과로만 이해하게 만드는 한계 역시 품고 있다. MDA 프레임워크가 플레이에 대해 계층적으로 접근한 것은 게임플레이 디자인에 있어 명확함을 담보해줄 수 있으나, 한편으로 게임 디자인의 유기성을 저해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림2. DPE 도식] - 출처: 「The Design, Play, and Experience Framework」(Brian Winn, 2008) - (DPE는 본래 게이미피케이션 분석을 위한 프레임워크로, 베네디스는 DPE가 MDA보다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 분석에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제네시스 베네디스(Genesis Benedith)는 MDA 프레임워크의 이러한 한계를 지적하며, MDA 프레임워크가 UX전략이나 연출과 같은 규칙으로 환원 불가능한 게임 요소를 분석에서 배제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베네디스는 MDA가 <심즈>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DLC 등에 의한 게임의 기술 변화가 플레이어의 경험을 어떻게 바꾸는지, 플레이어가 창출한 서사 아크 등을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궁극적으로 MDA가 게임 개발에 있어 매커니즘 편향을 만든다고 지적한다. 베네디스는 이러한 복잡한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요소를 포함시키기 위해 DPE 프레임워크를 제안하는데, 이는 MDA가 집중한 내재적 분석을 외재적 요소까지 확장시킨 것에 가깝다. 베네디스는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를 분석하기 위해 게임 요소를 Design, Play, Experience로 확장해서 분석해야 한다고 말하며, DPE 프레임워크를 제안한다. DPE 프레임워크의 핵심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의 맥락을 중심으로 게임을 분석하여, 주관적 경험에 분석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프레임워크를 지나치게 넓게 확장하고, MDA가 왜 오늘날 시뮬레이션 게임의 표준 모델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간과한 주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MDA에서 DPE 프레임워크로 넘어오며 주관성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점만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의 분석이 왜 하필 플레이어의 주관성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인조이>, 콘텐츠 진공이 쏘아올린 작은 공 이즈음에서 크래프톤이 야심차게 ‘앞서 해보기’로 공개했던 <인조이(InZOI)>(2025~)를 떠올려보자. 분명하게 말할 수 있지만, <인조이>는 플레이어에게 까다로운 플레이 환경을 요구하는 주제에 지나치게 버그가 많고, 콘텐츠는 진공에 가까울 정도로 적다. 더구나 엔비디아와 협력을 통해 게임 내에 AI NPC ‘스마트조이’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현 상태만 두고 보면 <인조이>의 AI 환경 수준은, 긍정적으로 평가해봐야 ‘아직까지는’ CDPR의 <사이버펑크 2077>와 비슷하거나 못한 수준으로 보인다. 이는 분명히 <인조이>의 단점이며, 우발적 사건들이 난입할 가능성을 생각해가며 플레이해야 한다는 점에서 게임의 가장 중요한 소구점 중 하나인 ‘쾌적한 플레이 환경’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으로 인해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의 최적화 문제 △잦은 크래시 △예측 불가능한 버그로 인해 좌절감을 경험하고 있다. 그 와중에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할 게 없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단점만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게임 커뮤니티가 비판하고 있는 ‘콘텐츠 진공상태’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상태를 굳이 나쁘게 말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 ‘콘텐츠 진공상태’ 만큼은 (최소한 나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인조이>의 치명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조이>가 ‘앞서 해보기’를 런칭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 요인이자 존재 가치라고 생각한다. 할 것이 없는 상태를 어떻게 긍정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라이프 시뮬레이션이 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상태는 <심즈>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세계’보다는 ‘일상적 세계’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상이 무엇인지 되물어볼 필요가 있는데, 이는 게임에서 구현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가 아닌 ‘무엇을’에 가깝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91)는 『현대세계와 일상성(La Vie Quotidienne Dans Le Monde Moderne)』에서 일상을 일종의 패턴이자 리듬이라고 지적하며, 반복되는 특징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르페브르는 일상생활을 ‘환상과 진실, 힘과 무력함이 교차하는 지점, 인간이 통제하는 영역과 통제하지 못하는 영역이 만나는 곳’이라고 변증법적으로 정의하며, 일상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리듬들 사이의 끊임없이 변형되는 갈등이 발생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한편으로 반복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위치에 존재하는 두 개의 구간을 동일성을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앙리 르페브르가 일상이 패턴이라고 주장한 것에 동의할 수 있다면, 일상은 차이점을 통해 구분할 수는 없으나 동일성의 반복으로는 구분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동일성’을 ‘차이 혹은 변화 없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일상은 차이 혹은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는 특징을 갖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차이와 변화가 있냐 없냐가 아니라, 그 차이와 변화를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상태에 있으며, <인조이>는 플레이어가 사건과 사건 사이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인조이>에서 ‘콘텐츠 진공’이라고 느끼는 부분은 게임이 △플레이어의 플레이 방향을 지시하지 않음 △플레이어가 게임 빌드나 시퀀스 내의 사건에 개입하기 어려움(혹은 없음)에 가까워 보인다. <인조이>의 개발일지를 보아도 플레이어블한 개발보다는 생성형 인터랙티브 무비의 빌드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종종 있다. 가령, 가장 최근에 쓰여진 11월 26일 패치노트에는 “ 무법자 기질 조이가 자율 행동으로 '훔치기' 상호작용을 진행하지 않도록 개선” 이 올라와 있고, 11월 19일 패치노트에는 “ 식사 후 2시간이 지난 음식 그릇을 일괄 정리할 수 있도록 개선 ”이 올라와 있으며, 대부분의 패치에 AI의 행동을 감상하는 것으로 플레이 요소가 종결되는 빌드들이 개선사항으로 나온다. 이는 플레이어의 조작 경험을 ‘클릭 후 감상’ 정도의 극단적 단순함으로 느끼게 만들며, 폐쇄적인 플레이 환경 아래 놓여있다는 감각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조이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조이들이 그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변수들을 직접 통제할 수 없다. 조이들은 자율적으로 배고픔을 느끼고, 피로를 느끼며, 사회적 욕구를 느낀다. 플레이어는 이 모든 과정을 관찰할 수는 있지만,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조이들에게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기는 하나 <심즈>와 달리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지 않고,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이러한 <인조이>의 플레이 특성은, 심들이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며 플레이어에게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심즈>와는 분명 다른 특성이다. <심즈>에서는 심이 불을 내면 플레이어가 개입해 불을 끄거나 소방관을 불러야 한다. 심이 직장을 잃으면 플레이어가 새로운 직업을 찾아주어야 하고, 관계가 악화되면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개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심즈>는 플레이어에게 끊임없는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게임이다. 동시에 ‘채무 갚기’라는 커다란 미션 아래 다양한 할 거리를 플레이어에게 제시하는 <동물의 숲>과도 다르며, 점수와 같은 수직적 성과를 확인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스타듀벨리>와도 다르게 보인다. <동물의 숲>은 채무 상환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제공한다. <스타듀벨리> 역시 콘텐츠의 볼륨이 클지언정 농장 경영이라는 명확한 프레임워크 안에서 수익, 작물 품질, 마을 주민과의 관계 등 측정 가능한 수직적 성과 지표들을 제공한다. <인조이>에도 카르마 시스템이 있지만, 카르마 시스템이 수직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플레이어에게 무언가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AI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람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인조이>의 플레이 특성은 조작 감각의 부재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인조이>의 게임 특성은, 환경이 플레이어에게 어떤 조작 압박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PvE가 아닌 PiE(Player in Environment)라고 부를 수도 있을 듯하다. PvE가 플레이어가 환경과 대결하는 구조라면, PiE는 플레이어가 환경 속에 존재하며 환경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PiE와 메타적 경험, 혹은 우연한 아름다움의 섬광 이때 우리는 Environment가 게임이 가진 미시계의 전체적인 세팅과 분위기를 이야기한다는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으며, 글의 서두에서 시뮬레이션 게임 장르에서 플레이어는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넘어, 시뮬레이션과 어떤 방식으로든 의사소통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던 것을 상기해보자. PiE에서 플레이어는 조작을 통해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시뮬레이션을 파악하고 상호작용해야 한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조작이 사실상 제한된 게임 환경을 벗어나 다른 장소에서 게임을 이해하게 되는데, <인조이> 디스코드 같은 공간이 그러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인조이> 플레이어는 결국 게임 밖을 나와 디스코드 와 같은 공간을 통해 인조이의 단순한 조작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인조이>에서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상황이 펼쳐지는지 확인한다. 이 과정은 플레이어가 직접 <인조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하고, <인조이>와 <인조이> 밖을 오고가며 내가 <인조이>를 플레이하는 이유와 정보를 비교해가며 공략 아닌 공략을 확인하고 실현해야 한다. 그 과정은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과정에 가까우며, 매우 불편하고도 비효율적인 플레이 경로를 가졌다는 평가 역시 가능하다. 그러나 그 긴 경로와 과정은 <인조이>를 메타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동시에,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나와 다른 플레이어의 행태를 비교하게 만들고, 나아가 <인조이>와 그 개발자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여기에는 많은 가능성이 나의 플레이 목표에 개입하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개입은 <인조이>의 플레이가 플레이어의 목적에 종속될 수 없는 상태로 귀결된다. 동시에 <인조이>를 플레이 과정을 늘어뜨려 <인조이>가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게 만들고, 결국 주관을 통해서만 <인조이>를 파악하게 만든다.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통해 <인조이>는 플레이어가 자체적인 규칙을 가진 미시계와 상호작용을 통해, 입력한 입력값의 결과가 우연히 시스템이 의도하지 않은 복잡한 역학의 질서와 맞아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체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게 된다. 윌 라이트는 인터뷰에서 플레이어가 시뮬레이션을 ‘역설계(reverse engineer)’한다고 표현했다. 플레이어는 시뮬레이션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데, 시뮬레이션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더 정확하게 모델링할수록 앞으로의 전략이 더 나아진다는 것이다[^1]. 이는 플레이어의 머릿속 모델과 컴퓨터의 모델이 점차 가까워지는 과정이며, <인조이>는 이 과정을 의도적으로 복잡하게 만들어 플레이어로 하여금 더욱 능동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그 순간들이 우연히 상상했던 서사와 맞아떨어질 때의 경험이라는 점에서 칸트가 말한 ‘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체험이라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게임에서 ‘우연한 아름다움의 섬광’이란 바로 그 감각이 아닐까? 이는 <인조이>가 게임을 통해 AI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시스템의 복잡한 역학과 상호작용하며, 자신이 입력한 명령이 시스템의 자율적 질서와 우연히 조화를 이루는 순간을 경험하게 만드는 이상한 순간들이 있다. <인조이>가 제공하는 ‘콘텐츠 진공’ 상태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경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된다. 게임이 명확한 목표나 방향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하고 시스템과의 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매력적인 경험은 아닐 수 있다. <인조이>의 현재 상태는 분명히 미완성이며, 기술적 한계와 버그로 인해 필자를 비롯한 많은 플레이어들이 좌절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라이프 시뮬레이션 장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때, <인조이>가 보여주는 실험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플레이어의 주관성과 시스템의 자율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예측 불가능하지만 의미 있는 경험이 창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게임을 예술로 보는 가능성이란, 그 플레이의 지난한 과정 속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아름다움의 섬광에 있다. 그리고 <인조이>는,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섬광을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을 열어두고 있다. 이것이 바로 PiE, 즉 환경 속의 플레이어로서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게임 경험의 지평은 아닐까. 참고문헌 ○ Celia Pearce (2001). 「Sims, BattleBots, Cellular Automata God and Go: A Conversation with Will Wright」. Game Studies. - https://www.gamestudies.org/0102/pearce/ ○ Hunicke, R., LeBlanc, M., & Zubek, R. (2004). 「MDA: A Formal Approach to Game Design and Game Research」. Proceedings of the AAAI Workshop on Challenges in Game AI. ○ Benedith, G. (2024). 「Decoding The Sims: Analysis of Gamification Frameworks, User Experience, and Game Design Evolution」. Arizona Journal of Interdisciplinary Studie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원)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연구원. 콘텐츠와 IT 산업의 동향과 정책을 연구하며, 콘텐츠 전반에 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국 AI 및 디지털 정책 동향 조사·분석」(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디지털 보안 동향 조사 및 분석」(한국인터넷진흥원)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 참여했으며,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 신인상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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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D 횡스크롤 플랫폼 게임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록맨' 시리즈. 보스의 무기를 빼앗아 쓴다는 기믹과 대단히 어려운 난이도, 그리고 귀엽고 다부진 주인공 록맨으로 출시와 함께 게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캡콤은 1987년부터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이 프랜차이즈를 이끌고 있다.  < Back 09 GG Vol. 22.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후원 경제’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중심으로

    2023년 비디오 게임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RPG 게임을 꼽으라면, 대다수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꼽을 것이다. 여론은 <발더스 게이트 3> 쪽이 우세다. <스타필드>는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고 홍보에 힘입어 많은 판매량을 올렸지만, 게임 디자인에서 실망스러운 지점도 있어, 베데스다식 RPG 게임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을 받았다면 <발더스 게이트 3>는 풍부한 상호작용과 롤플레잉으로 RPG 장르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는 평을 받으며,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과 함께 올해의 게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 Back ‘후원 경제’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중심으로 15 GG Vol. 23. 12. 10. 2023년 비디오 게임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RPG 게임을 꼽으라면, 대다수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꼽을 것이다. 여론은 <발더스 게이트 3> 쪽이 우세다. <스타필드>는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고 홍보에 힘입어 많은 판매량을 올렸지만, 게임 디자인에서 실망스러운 지점도 있어, 베데스다식 RPG 게임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을 받았다면 <발더스 게이트 3>는 풍부한 상호작용과 롤플레잉으로 RPG 장르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는 평을 받으며,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과 함께 올해의 게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게임 그 자체보다는, 두 게임이 대표하고 있는 2020년대 RPG 게임, 나아가 ‘전통적인 자본’이 지배하는 고예산 AAA 게임과 킥스타터와 얼리 액세스 같은 ‘후원 경제’에 기반한 중저예산 게임 개발 과정과 자본 경제 현상을 다루고자 한다. 게임 커뮤니티 내 여론을 살펴보면, <발더스 게이트 3>를 마치 <스타필드>를 위시한 AAA 게임과 똑같은 제작 과정을 거친 게임인 것처럼 비교하는 의견이 많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발더스 게이트 3>의 창의성과 풍부한 디테일 칭찬하면서, <스타필드>를 위시해 어딘가 부족하게 나온 AAA 게임이 <발더스 게이트 3>보다 태만했으며 최종적으로 AAA 게임 제작진이 책임을 회피했다고 비판하는 의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발언들이 좋은 게임에 대한 갈증이라던가, ‘좀 더 잘 나올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라는 당연한 감정에서 비롯된 발언이겠지만 이렇게 비교하고 비판하는 것엔 논리적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같은 장르에 속하고, 화제작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는 전혀 다른 방법론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세부적인 게임 디자인 역시 1대 1로 비교할 수 없는 게임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타필드>는 거대 투자 자본의 지원으로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방향성으로 구축된 생산품이라면 <발더스 게이트 3>는 활성화된 후원 경제에 힘입어 만든 소수 취향을 노린 공예품에 가깝다. 물론 생산품과 공예품에는 어떤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취향에 기반한 ‘후원 경제’의 개입 여부가 어떤 중요한 차이점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스타필드>는 대자본의 투자로 거대한 상품을 만들려는 성격이 강한, 전형적인 AAA 게임이다.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25년 만의 새 IP라는 점을 강조한 토드 하워드의 인터뷰라던가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 쇼 등지에서 보여준 강력한 홍보 정책은 <스타필드>가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제니맥스 미디어, 마이크로소프트에 어떤 가치를 지닌 ‘상품’이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월 가의 투자자들 역시 이 게임에 거는 기대가 컸을 것이다. 한편 <스타필드> 제작진은 정보 공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는 디벨롭 컨퍼런스 2020에서 이뤄진 토드 하워드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인터뷰에서 그는 “<스타필드>의 정보 공개와 홍보는 출시 직전 짧고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를 반대로 말하자면 <스타필드>가 폐쇄적인 환경에서 제작되고 피드백을 받아왔다는 걸 보여준다. 이처럼 대다수의 AAA 게임은 개발 과정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으며, 피드백을 받는 과정 역시 내부 QA라던가 체험판 같은 곳으로 한정시켜 자신을 신비화한다. 그리고 발매일이 다가올수록 이런 신비화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게임에 대한 호기심과 구매 의사를 증폭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동시에, 오해와 실망을 낳을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스타필드> 발매 후 이어진 거센 실망과 비판의 목소리는, AAA 게임이 취하는 일방적인 개발이 개발진 (내지는 임원진과 주주)의 내부 예측과 수요층의 기대랑 어긋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스타필드>를 기대하고 구매한 유저 대부분은 풍부한 요소들로 가득한 우주 탐사와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특유의 노련한 RPG 디자인과 결합한 게임을 기대했다. 그러나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우주라는 공간에서 가능한 콘텐츠를 전부 구현하기엔 AAA 게임 제작 체계상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대대적으로 단순화하고 가지치기하는 방법을 취했다. 게임의 핵심이자 가장 논란이 되었던 우주 탐사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스타필드> 제작진은 행성 지형의 절차적 생성이라던가, 이착륙/이동 과정의 간소화 같은 다양한 ‘간소화’를 동원해 우주라는 공간의 크기는 유지하되, 만들어야 할 콘텐츠 가짓수는 줄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스타필드>를 기대한 사람들이 원했던 방법론이 아니었고, 게임에 대한 멸칭과 제작진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돌아왔을 뿐이다. 사실 <스타필드>는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의 유일한 예측 실패작은 아니다. 이미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폴아웃 76>에서 오픈 월드와 온라인 게이밍, 기존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RPG 게임 간의 결합이라는 무리한 전략과 현장 관리의 실패로 발매 초기 거센 비판을 받은 전력이 있다. <스타필드>는 <폴아웃 76> 때보다는 비교적 긴 시간과 공력을 들여 개발된 게임이라 상황이 낫긴 하다. 하지만 굳어진 AAA 게임의 일방적이고 효율을 추구하는 개발 과정이 유저의 기대와 얼마나 괴리될 수 있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럼에도 그런 과정을 쉽게 바꿀 수 없는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 <스타필드>에 대한 밋밋한 반응은 그 점에서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의 개발 노선에 재고가 필요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발더스 게이트 3>는 반대로 ‘후원 경제’의 지원받아 개발 과정을 공유하면서 진행한 게임이다. 우선 이 게임은 발매일까지 베타 테스트가 이뤄지던 얼리 액세스로 구매할 수 있었던 게임이었다. 킥스타터 같은 크라우드펀딩이 동원된 게임은 아니지만 (라리안 스튜디오는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이 성공한 이후 크라우드펀딩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완성될 때까지 이뤄질 게임 개발 과정을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 팬덤에게 공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베타 테스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공식 커뮤니티에서 게임 유저로서 제작진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고, 제작진 역시 커뮤니티 업데이트를 통해 개발 진척과 변경 사항을 공개하기도 했다. 요컨대 <발더스 게이트 3>의 개발 과정은 커뮤니티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지 가능한 과감한 개발 과정이다. 여기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얼리 액세스 3년 동안, TRPG가 제공하는 풍부한 자유도와 콘텐츠를 할 수 있는 한계치 내에서 최대한 구현하려고 애썼다. 이런 노력으로 완성된 높은 자유도는 이미 많은 리뷰와 플레이 영상들이 소개하고 있기에,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발더스 게이트 3>는 후원자들이 원하는 게임 디자인을 위해 모든 자원이 총동원되었고, 그 결과물에 대다수가 흡족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쉽지 않은 결정이며, 흥미로운 결과다. 게임이 제공하는 시스템 내에서 플레이어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개발 노선은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게임을 만드는 쪽이나 플레이하는 쪽이나 복잡하게 여길만한 구석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스타필드>랑 달리 주류화된 CRPG가 아닌 (시점 변환을 제공하지만) 고전적인 탑다운 RPG 게임이라는 점 역시 거대 자본한테서는 근심을 샀을 요소였을 것이다. 여기다 라리안 스튜디오 전작들보다도 더욱 방대해진 이야기와 세계관, 많은 이벤트 신을 요구하는 게임이었기에 개발 난도가 만만치 않았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와 라리안 스튜디오는 명백히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게임을 개발했으며, 성장 과정 역시 시대적 차이점도 있다.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개발 과정에서 유추할 수 있겠지만) 1990년대부터 정착한 전통적인 게임 스튜디오의 발전 과정과 거대 IT 기업에서 볼 수 있는 월가 투자자본과 연계된 인수합병 과정을 밟아오면서 커진 회사다. 베데스다가 RPG 제작사로 시작한 1990년대 초중반은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는 ‘경제’를 형성할 정도는 아니었고, ‘셰어웨어’로 대표되는 대안적인 유통/발매 체계는 물리 매체와 게임 소매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인터넷 환경의 한계로 ‘셰어웨어’는 게임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방적으로 게임 일부를 보여주고, ‘정식판’의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유저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게임을 개발하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개인 제작에 머물고 있던 시절이었다.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 역시 기존 회사 경영/재정 관리 방식에 통달한 CEO 로버트 올트먼과 제니맥스 미디어가 개입하면서였다. 지금의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월가로 대표되는 거대 기업과 투자자본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태다. 반대로 라리안 스튜디오는 기존 회사 경영이나 상장하고는 관련 없이 설립되고 운영되는 회사다. 우선 제이슨 슈라이어의 기사 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라리안 스튜디오는 최고경영자이자 디렉터인 스벤 빈케와 그의 아내가 소유한 개인 회사에 가깝다. 그렇기에 라리안 스튜디오는 게임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주주들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슈라이어는 동시에 이런 구조의 회사는 위험 부담 역시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제로 디비니티 시리즈 첫 작품인 <디바인 디비니티>는 그럭저럭 성공했지만,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후속작 <비욘드 디비니티> 개발 당시엔 회사 인원이 3명 밖에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는 비화가 있다. 그럼에도 라리안 스튜디오는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성공 이후로도 개인 기업 체제하에 특정 장르와 취향의 게임을 만들고 있다. 이 점에서 있어서 라리안 스튜디오는 중소기업 규모 하에 꾸준히 특정 취향의 JRPG를 만들어 흑자를 내는 니혼 팔콤하고도 비슷하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상장 회사 체제하의 다작하는 니혼 팔콤과 달리, 라리안 스튜디오는 크라우드펀딩 같은 ‘후원 경제’의 도움이 컸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라리안 스튜디오를 견인한 ‘후원 경제’의 양태다: 라리안 스튜디오의 지지 기반은 흔히 볼 수 있는 과거의 영광 재현보다는 순수한 장르 매니아들의 입소문과 지지에 가까웠다. 사실 라리안 스튜디오는 과거의 영광이라고 할만한 게 별로 없었던 회사였다. <디비니티> 초기작은 소소하게 성공한 편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지지 기반은 미약했던 편이다.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은 킥스타터로 대표되는 ‘후원 경제’ 형성기였던 2010년대 초중반에 등장한 프로젝트였지만, 정작 펀딩 당시엔 (<발더스 게이트>를 배급한 인터플레이 출신도 포함된) 기존 선점자들에게 밀려서 눈에 띄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은 결과적으로 고전 RPG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는 데 성공하면서, 선점자들보다 훨씬 더 ‘후원 경제’ 붐을 적극적으로 타고 고유의 팬층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팬층 형성은 여타 크라우드펀딩을 받은 과거 영광을 누렸던 개발자들과 달리 영광스러운 과거가 없었기에, 더욱 과감하게 재해석할 수 있었다는 점도 컸다. 요컨대 라리안 스튜디오는 과거에 가진 게 별로 없었기에, 시대의 조류에 얻을 게 많았던 포지션이었다. 사실 <발더스 게이트 3>는 ‘후원 경제’로 성장해 어느 정도 체급을 키운 회사의 거대 프로젝트에 가깝다. 새로 설립된 지사를 제외하고도 본사 인원만으로 200명이나 동원했으니,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을 만들던 시절의 라리안 스튜디오하고 같다고도 볼 수 없다. 이렇게 보면 많은 게임 커뮤니티의 조롱감이 되었던 “그들은 운이 좋았다”로 요약할 수 있는, 제이슨 슈라이어나 자비에 넬슨 주니어 를 비롯한 업계 사람들의 주장도 틀린 것도 아니다. 슈라이어의 지적대로 개발 방향성에 비교적 자유로운 인디 게임 제작사는 라리안 스튜디오만큼 자본이나 인력을 투입할 수 없을 것이며, 반대로 라리안 스튜디오 이상으로 자본과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같은 개발사에서는 이런 기획이 통과될 가능성이 극히 낮다. 통과되더라도 상업적 타협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지점에서는 <발더스 게이트 3>는 프랜차이즈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가 라리안 스튜디오의 방법론에 신뢰를 보냈기에 가능했던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이랑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의 얼리 액세스는 거의 완성된 게임을 다듬어가고 보충해가는 비교적 전형적인 얼리 액세스였다면, <발더스 게이트 3>의 얼리 액세스는 무모할 정도로 긴 시간을 들여 팬들과 함께 게임을 만들어 간 쪽에 가깝다. 물론 얼리 액세스 스케줄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었는지 발매 후 내정되어 있던 콘텐츠가 삭제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이 정도면 프랜차이즈 소유주자 투자자로서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가 라리안 스튜디오에 많은 신뢰와 편의를 봐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발더스 게이트 3>의 ‘후원 경제’를 신뢰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수용한 개발론이 대대적으로 성공했다는 점은 2023년 비디오 게임계에서 주목해야 할 ‘현상’이라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발더스 게이트 3> 개발 과정에 적극적으로 돈을 내고 참여한 계층은, 거대 투자자본의 냉정한 시장 분석에 따르면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거금을 투자하기엔 손실이 따른다고 판단한 게임 장르의 팬들이었다. 이 팬들은 단순히 고전 RPG 장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하이퍼 FPS, 2D 플랫포머, 공룡 시뮬레이터 등… 200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ESD와 얼리 액세스, 크라우드펀딩의 등장, 인디 게임 시장의 체계화는 거대 투자자본에 소외당한 ‘팬덤’들이 대안적으로 자본과 경제를 형성하고 지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왔다. 얼리 액세스를 기반으로 커뮤니티와 소통하며 진행하는 개발 방법도 프론티어 디벨롭먼트의 <플래닛 코스터>를 비롯해 사례들이 나오고 있었다. <발더스 게이트 3>의 대대적인 성공은 (자신들을 믿고 원하는 게임을 만들어달라는) ‘후원 경제’의 파급력이 인디와 팬덤의 영역을 넘어서 주류의 영역으로 올라왔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거대 자본의 투자와 베테랑 제작사의 야심에 차 보이지만 실은 안전하게 검증된 개발 노선으로 구성된 <스타필드>가 좋은 평을 듣지 못한 것과 대조해보면, 게임 유저들이 AAA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거대 자본이 판을 짠 안전한 AAA 게임 개발론에 진력을 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후원자들은 르네상스 시절 귀족들이 예술가나 공예가들에게 수공예품을 주문 제작하듯이, 게임 개발사가 돈 걱정하지 않고 후원자 자신들의 취향을 반영해준 게임을 만들어주길 원한다. 다만 르네상스 귀족 후원자들의 후원이 계급 권력을 통해 예술품이나 공예품을 독점하면서 특권을 누리기 위한 도구였다면, 이 새로운 후원자들의 후원은 공통된 취향을 지닌 익명의 소비자들이 기존 자본 권력에서 소외된 취향을 복권하고자 한다. 물론 이런 후원 경제가 항상 긍정적인 현상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며, <발더스 게이트 3>의 개발 과정은 근래 비디오 게임 개발 역사 중에서도 보기 드문 실험이자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라리안 스튜디오가 향후 만들 게임에서 이 실험을 계속 택할지는 알 수 없다. 차기작 개발에 6년이나 투자하고 싶지 않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 개발을 하고 싶다는 스벤 빈케의 인터뷰 를 참조하면, 라리안 스튜디오의 차기작은 <발더스 게이트 3> 같은 개발 노선을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그저 운과 상황이 좋았던 짧고 행복했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 ‘후원 경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투자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발더스 게이트 3>의 성공은 2023년 비디오 게임계의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산업 전체가 <발더스 게이트 3>와 같은 길을 가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몇몇 혁신가들에게는 탐구해볼 만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Frights, Fears, and Fallout: Layers of Horror in Popular Gaming

    In my personal gaming history I have two distinct memories of fear. The first time I was truly scared while playing a game was during the first Resident Evil in what has become a notorious scene from the game. Though at the time Resident Evil felt more like a slower action game than a horror game, there was one key moment when the player walks down a hallway when suddenly one dog, then another bursts through the windows from the outside causing fright, disorientation, and panic. This is an example of a pretty standard jump scare in games (and other media), and though it did frighten me at that moment, I didn’t carry any greater fear of those dogs and what they represented beyond a slightly heightened anxiety while I walked the halls of Spencer Mansion.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Marc Lajeunesse Marc is a PhD candidate in Concordia University'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studies in Montreal, Canada. Marc’s research focuses on toxicity in online games. He is driven to understand toxic phenomena in order to help create more positive conditions within games with the ultimate hope that we can produce more equitable and joyful play experiences for more people. He has published on the Steam marketplace and DOTA 2, and is a co-author of the upcoming Microstreaming on Twitch (under contract with MIT Press). (Game Researcher) Cortney Blamey Courtney is a Communication PhD student and game designer at Concordia University, Montreal, Canada. Her doctoral research concentrates on the process of meaning-making in games tackling serious themes and exploring this relationship between player and designer in her own critical game design process. Her previous research unpacked Blizzard’s approach to community moderation in Overwatch by investigating both developer and community inputs on forums. She is a member of the mLab, a space dedicated to developing innovative methods for studying games and game players and TAG (Technoculture Arts and Games).

  • “이걸 누가 읽는다고.” ─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와 기록에 관하여

    아마 슬슬 건강검진이 필요한 나이의 게이머 중에 페르시아의 왕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1989년에 나온 게임이니 젊은 게이머에게는 낯선 게임일 수도 있겠다. 가장 위대한 게임을 고르라면 1등이 아니더라도 100개 안에는 거의 반드시 들어갈 게임이고, 7세대 콘솔까지는 정규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며, 2025년에도 외전인 “로그: 페르시아의 왕자”가 나왔고, 흥행 성적은 아쉬웠지만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한 영화도 있으니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IP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 Back “이걸 누가 읽는다고.” ─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와 기록에 관하여 30 GG Vol. 26. 6. 10. 1990년 3월 5일 ... 애플판 「페르시아의 왕자」는 지난달에 150장도 팔리지 않았다. 저기서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로리는 내게 마케팅 매니저이신 라트리샤 T. 가 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냥 아케이드 게임이잖아. 원래 아케이드 게임은 안팔린다고."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 (스타비즈, 297p) 아마 슬슬 건강검진이 필요한 나이의 게이머 중에 페르시아의 왕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1989년에 나온 게임이니 젊은 게이머에게는 낯선 게임일 수도 있겠다. 가장 위대한 게임을 고르라면 1등이 아니더라도 100개 안에는 거의 반드시 들어갈 게임이고, 7세대 콘솔까지는 정규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며, 2025년에도 외전인 “로그: 페르시아의 왕자”가 나왔고, 흥행 성적은 아쉬웠지만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한 영화도 있으니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IP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 중 1,2는 조던 메크너가 직접 개발에 참여했고, 당시의 게임 개발은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노력이 거의 온전히 담겨 있기도 하다.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는 페르시아의 왕자 1, 2의 개발 당시 조던 메크너가 기록해놓은 개발일지를 기초로 나온 책이다. 어떤 분들은 이 책을 이미 본 기억이 있을 수도 있다. 파란 표지일 수도 있고, 검정 표지일 수도 있는데,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의 탄생 배경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가 나오게 된 것은 물론 조던 메크너가 당시 일지를 잘 작성해 놓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첫 번째 서적이 자비 출판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장희재님이 이 책에 흥미를 가지고 조던 메크너에게 허락을 받아 국내 번역을 진행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생소했던 크라우드 펀딩으로 진행했던 이 책은 지금 보기엔 적지만 당시에는 꽤 큰 금액이었던 목표치 120만원을 넘어 366만원을 달성했고, 성공한 펀딩의 사례로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펀딩을 진행했던 굿펀딩이란 서비스는 남아있지 않다. * 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첫 번째 원서, 굿펀딩판 국내 번역판, 30주년 기념판 미국판 원서, 느낌이있는책판 한국어 번역판 고백하자면 필자가 이 책의 리뷰를 객관적으로 하기 힘든 이유가 있는데, 이 무렵에 펀딩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기묘한 인연으로,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GDC의 고전 게임 강의에서 조던 메크너가 자신의 경험을 발표할 일이 있었고, 필자는 아마존에서 미리 주문해 샌프란시스코 친구의 숙소(예약한 숙소에서는 배송을 받을 수가 없었다)로 배송받은 책을 들고 가 사인을 받아 펀딩에 사용했다. 답장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소통이 마무리돼서 책은 무사히 나오고, "느낌이 있는 책" 출판사에서 새 표지로 책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어로 된 검정색 표지라면 아마 펀딩에 참여한 경우고, 파란 표지라면 이후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일 것이다. 다이피아에서 지금 기준의 품질로 보기에도 훌륭한 epub 버전 역시 존재한다. 전자책 시장이 충분히 자리 잡기 전이어서 초기에는 애플의 iBooks 서비스에만 출시하고 국내 서비스에는 나중에야 출간하게 되었지만, 책에는 담지 못했던 당시 개발 자료들을 사진과 영상 등으로 집어넣은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 나온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는 아시아권에서는 아마 유일하게 한국어로만 번역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국내 출판계약은, 특히 외국 서적의 경우 대부분 5년 단위인데, 5년 후에는 보통 추가로 돈을 내고 계약을 연장하거나, 아니면 절판시키는 흐름으로 진행된다. 특히 요즘 출판시장에서 그때그때 나왔던 책을 사두지 않는다면 구할 수가 없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계약기간이다.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 역시 그런 식으로 절판되었고, 많은 좋은 책들이 그렇듯이 프리미엄이 붙어 중고서점에 5만원이 넘게 올라와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를 출간할 무렵 이 책이 잘 팔려서 카라테카 개발일지(2012년 출간) 역시 출간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는 못했다. 그리고 2026년이 되어서야 게임서적 전문 출판사인 스타비즈에서 그동안 꾸준히 준비하고 있던 페르시아의 왕자, 카라테카 개발일지가 출간되었다. 이미 원문이 존재하는 일기를 책으로 만든 것이다 보니 2013년에 출간된 판과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이에 조던 메크너가 게임 개발에 사용했던 자료들을 미국의 스트롱뮤지엄에 기증했고, 30주년 기념판이 그러한 자료와 일기에 조던 메크너가 주석을 달아 새로 출간되었다. 덕분에 이번에 출간된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 한국어판은 30주년판을 기초로, 조던 메크너가 당시 상황을 설명한 가필과 당시를 볼 수 있는 추가 시각자료들을 넣고, 뒤에 30주년 기념 원고를 추가했다. * 새로 출간된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 책의 표지는 원판 게임의 그것을 사용했다. 그럼 21세기도 1/4이 지난 지금 우리가 1982년부터 1993년까지의 일기장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이야기하기 어렵다. 명작게임을 만든 개발자의 개발일지니까 뭔가 중요한 게임 개발의 비밀이 담겨 있지 않을까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런 목적을 가지고 이 책을 본다면 실망할 것 같다. 소프트웨어 개발 현장에서 자주 다뤄지는 것이 회고(retrospective)이다. 회고라는 단어를 소프트웨어 공학 쪽에서만 쓰는 건 아닌데, 국내에는 애자일 개발방법론이 소개되면서 자리 잡은 경향이 있다. 적어도 프로그래머인 필자에게는 그전까지 회고라는 단어가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는데, 소프트웨어 공학에서 하는 회고는 이전 작업을 돌아보고 다음 작업을 더 잘할 수 있게 검토하는 방법론이란 뜻이 더 강하다. 미국의 게임 산업에는 좋은 문화가 하나 있는데 바로 포스트모텀(Postmortem, 부검)이다. 단어를 보면 바로 느껴지겠지만 의료 용어인데, 이 역시 회고처럼 게임 개발이 마무리된 후 개발에서 잘한 것과 잘못한 것에 대해 정리해서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포스트모텀의 경우 형식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공유되는 양식이 있는데, 전체적인 프로젝트 설명과 함께 프로젝트에서 잘한 점 3~5가지, 프로젝트에서 잘못한 점 3~5가지 정도를 정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식은 누가 특별히 제시했다기보다는 미국의 게임 개발사이트 GameDeveloper(구 Gamasutra)에 올라오던 형식이었는데, 컨퍼런스와 출간 잡지에서도 해당 양식을 주로 사용했다. 이렇게 쓰인 포스트모텀은 "Postmortems from Game Developer"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한국에서는 "성공으로 이끄는 게임 개발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 Postmortems from Game Developer 의 표지 국내에는 90년대 말부터 특히 2000년대 중반까지 서양의 게임 개발 이론들이 많이 수입되었는데, 포스트모텀 문화도 같이 들어오면서 게임산업진흥원에서는 가마수트라에 실린 포스트모텀을 한글로 번역하는 한편, 국내의 게임 개발자들도 자체적으로 포스트모텀을 작성해서 공유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는 성공으로 이끄는 게임 개발 스토리 이외에도 국내에 번역된 "위대한 게임의 탄생"의 뒷부분에 추가로 국내 게임의 포스트모텀이 실리는 데도 영향을 주었으며, 이후 2, 3권은 국내 게임만으로 나왔다. 그 외에도 넥슨 내부에만 공개되었던 마비노기 개발완수 보고서 같은 케이스도 존재한다. * 2019년 <게임을 게임하다 /invite you_>에 전시된 마비노기 프로젝트 완수보고서 내용은 외부 공개가 되어있지 않다. 이러한 포스트모텀에 대해서 가장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면 포스트모텀은 그 부검이라는 의미처럼 프로젝트가 끝나고 쓰이는 문서라는 점이다. 실제로 온라인 게임 중심으로 넘어간 게임 시장에서는 우리 게임은 아직 안 죽었는데 어떻게 부검을 하죠 같은 이야기도 농담처럼 하고는 했는데, 이렇게 프로젝트가 끝나고 복기하면서 잘한 점과 못한 점을 정리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살아남은 프로젝트만이 이러한 포스트모텀을 할 기회를 얻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 사건이 끝나고 하는 복기에는 아무래도 편향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개발일지라는 기록은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써나간 온전한 의사결정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만, 당시엔 알 수 없으니까. 2012년 GDC에서 스프라이 폭스의 개발자 다니엘 쿡은 게임기획서 대신 일기를 남기라는 급진적인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어차피 기획은 바뀔 것이기 때문에 아이디어에 대한 반응과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으라는 주장인데, 당시에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 지침은 포스트모텀에서 놓칠 수 있는, 당시에 어떤 의도로 의사결정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남겨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억보다 더 정확하게 당시의 상황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일본에서 2025년 치쿠마쇼보(筑摩書房)에서 나온 “RPG를 만드는 법 - 하시노 카츠라와 『메타포: 리판타지오』”(RPGのつくりかた——橋野桂と『メタファー:リファンタジオ』)는 지금까지 나온 책 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타입의 아카이빙이란 지점에서 주목해 볼 만한 서적이다. 메타포: 리판타지오가 메타포란 이름을 얻기 전 「PROJECT Re-FANTASY」 라는 프로젝트 이름으로 개발이 발표될 무렵부터 일본의 작가, 비평가 겸 만화 스토리 작가인 사야와카(さやわか)가 아틀러스 내부의 개발자들과 게임이 개발되는 기간 동안 인터뷰해 가면서 작성한 이 책은 개발일지와 아카이빙의 중간지점이라는 독특한 시도이기도 하다.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는 포스트모텀과 달리 당시 기록이 거의 그대로 담겨있다는 점에서 당시 분위기와 사회를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기록물이다. 아카이브적인 측면에서는 그렇다. 그래도 이 개발일지의 가치를 단순히 당시의 기록에 두고 싶지는 않다. 1983년 8월 29일 ... 지금부터는 일기를 더 품위있게 쓸 것 아, 젠장할 이걸 누가 읽는다고. 카라테카 개발일지 (스타비즈, 164p) 우리는 2026년 게임 산업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 한차례 게임산업의 성장세가 꺾일 무렵 대학생이던 조던 메크너는 시험을 망치고, 수업을 째고, 가끔 개발을 하나도 못하고, 영화 일을 할지 컴퓨터 일을 할지 고민한다. 자신이 게임으로 백만장자가 될 거라는 꿈도 가끔씩 꾸고, 다른 게임의 결과를 보며 자신도 저만큼 게임을 팔 수 있을 거라 낙관하고, 결과에 실망하며 계속 게임을 만들어 나간다. 애플 2판 페르시아의 왕자는 잘 안 팔렸지만 다른 매체로 컨버전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우리는 게임역사에 괜찮은 IP를 하나 얻었고, 이렇게 개발일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복간된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는 30주년 기념판답게 조던 메크너의 자료 외에도 당시의 개발자료와 사진들이 추가되어, 당시를 추억하는 게이머에게는 게임의 뒷이야기를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주고, 젊은 독자들에게는 당시의 개발 환경을 추측해 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아카이브나 게임 개발의 지식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떠나서,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막막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것은 대가이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이 개발일지들은 당신에게도 위로를 줄 것이다. 소개한 책과 기사들 *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 (2026, 스타비즈) * 카라테카 개발일지 (2026, 스타비즈) * 위대한 게임의 탄생 1,2,3 (2011~2013, 한빛미디어) * 성공으로 이끄는 게임 개발 스토리 (2004, 에이콘출판사) * RPGのつくりかた ――橋野桂と『メタファー:リファンタジオ』 (2025, 筑摩書房) * “혁신을 원하는가? 게임 기획서를 버려라” (2012, 디스이즈게임, https://www.thisisgame.com/articles/31448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모험가들은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을까? : 게임과 노스탤지어

    2015년 9월 1일 게임 개발자 론 길버트(Ron Gilbert)는 자신의 블로그에 ‘Happy Birthday Monkey Island(원숭이 섬 생일 축하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다. 그가 1990년에 개발한 어드벤처 게임 〈원숭이 섬의 비밀〉의 2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이었다. 그는 글의 마지막에서 〈원숭이 섬의 비밀〉을 함께 만들었던 당시의 팀과 ‘이 게임이 25년간 살아 있을 수 있게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후, 오래전에 받은 한 통의 팬레터 사진1)을 첨부한다. 당시 12살이라고 밝히고 있는 크레이그 톰슨(Craig Thompson)이 그에게 보낸 것이다. < Back 02 GG Vol. 21.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각문화연구자) 이하림 기억과 이야기와 이미지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쓴다. 공적 기억과 사적 기억이 교차하는 영상 작업에 관심이 있다. 경계에 놓여있는 것들, 정착하고 못하고 부유하는 존재들에 마음이 간다. 요즘은 머뭇대며 다가가는 것, 뒤돌아보며 걸어가는 것이 글과 생활의 방법인 것 같다고 생각 중이다.

  •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안내

    게임문화웹진 ‘게임제너레이션’은 디지털게임의 문화적 접근 폭을 넓히고 게임문화를 선도적이고 실천적으로 이끌어갈 새로운 필자의 발굴을 위해 아래와 같이 게임비평공모전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게임과 게임문화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많은 분들의 참가를 부탁드립니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e스포츠 25년, 그 좌충우돌의 역사

    초창기 e스포츠는 열악한 환경에서 탄생했다. 1999년 처음 중계된 제5회 하이텔배 KPGL(Korea Professional Gamers League) 당시에는 방송국 지원이 없어 탁구대에 천을 씌워 경기 테이블과 중계석으로 사용했으며, 경기복 두 벌을 출전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입었다. < Back e스포츠 25년, 그 좌충우돌의 역사 23 GG Vol. 25. 4. 10. 다른 그 무엇도 아닌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며 시작된 2000년은 한국이스포츠협회(이하 협회)의 전신인 ‘21세기 프로게임협회’가 창설되고 전문적인 리그대회가 한참 생겨나던 시기였다. 당시 e스포츠는 젊은 남성층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인기를 얻던 문화 콘텐츠였지만, 기성세대에게는 그저 유치하고 심지어 병리적인 사회 현상으로 여겨지곤 했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당시 게임을 플레이하던 프로게이머조차도 e스포츠가 이렇게 커다란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e스포츠는 치열하게 대결하며 전략과 열정을 공유하던 게이머 공동체에서 시작되었으나, 산업의 성장과 함께 e스포츠의 정체성도 변화되어 갔다. 연구자와 산업 관계자 각자 e스포츠에 대해 다른 정의를 내리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지점은 e스포츠가 기존 산업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디어학자인 허친스(Brett Hutchins) 는 e스포츠가 미디어와 스포츠, 컴퓨터 게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하이브리드 산업이라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게임과 e스포츠 문화를 연구하는 테일러(T.L.Taylor) 는 e스포츠가 텔레비전, 게임, 인터넷 그리고 온라인 네트워크의 융합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e스포츠는 그 전부터 존재했던 미디어·문화 산업의 울타리 안팎을 넘나들며 다른 그 무엇도 아닌 e스포츠만의 정체성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힘든 e스포츠의 혼종성은 게임 산업의 빠른 생애주기, 플랫폼의 전환 등 변화의 순간마다 과감한 결단을 통해 변화에 적응하고자 노력한 결과이다. 그래서 e스포츠는 매순간 위기와 함께 했다. 짧은 호황기를 누리다가도 돌발적인 변수로 인해 다시금 어려움을 맞닥뜨렸다. 불안정한 기반 위에서 내가 즐기고 있는 이 리그와 종목이 언제 무너지거나 중단될지 알 수 없기에 팬들은 늘 불안감을 품은 채 선수와 팀을 응원한다. 그렇기에 e스포츠가 무엇인지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보다는 그 변화의 흔적을 그저 따라가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에서 e스포츠가 시작된 시점으로 여겨지는 1999년은 내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e스포츠의 역사를 훑는 일은 나의 성장기를 되짚어 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글은 한 명의 팬으로서, 그리고 이 산업과 함께 자라온 동시대인으로서 e스포츠 문화의 궤적을 따라가 보려는 짧은 기록이다. 초기 e스포츠의 도약과 제도화 초창기 e스포츠는 열악한 환경에서 탄생했다. 1999년 처음 중계된 제5회 하이텔배 KPGL(Korea Professional Gamers League) 당시에는 방송국 지원이 없어 탁구대에 천을 씌워 경기 테이블과 중계석으로 사용했으며, 경기복 두 벌을 출전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입었다. 좁은 방 하나에서 선수들끼리 함께 자거나 PC방에서 생활하는 일이 빈번했다. 게임 자체에 대한 사회 전반의 부정적 인식과 신생 산업의 불안정한 기반에도 게임에 대한 열정으로 버티던 게이머와 산업 관계자들은 2000년 말 붕괴한 닷컴 버블로 인해 한 차례 무너져 내렸다. KPGL, PKO, KIGL과 같은 초기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빠르게 폐지되었고 우후죽순 생겨나던 게임대회 주최사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게임만 해서 먹고 산다는 목표는 당시로서는 허황된 꿈에 가까웠다. 많은 선수들이 다른 직업을 겸하여 생활하거나 게이머 경력을 통해 게임 관련 회사에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때문에 선수들의 프로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인정받는 신주영, 한국통신(Korenet) CF를 촬영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이기석, 지금은 방송인으로 더욱 유명한 기욤 패트리 등이 이 시기에 짧은 인기를 누린 게이머들이었다. 그리고 2003년부터 게임 방송사를 중심으로 한 차례의 도약이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온게임넷과 MBC 게임(당시 이름은 geMBC)이라는 두 케이블채널은 기존의 대회 주관 업체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꾸며 방송 중심의 게임리그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1대1 대결이던 기존 대회 형식에 더해 팀 단위의 리그를 새로 만들면서 그와 함께 대기업의 재정지원을 받는 프로팀이 등장한다. 임요환, 최연성의 SKT와 강민, 홍진호, 박정석의 KT는 스타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팀을 꾸리며 통신사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이러한 구도는 단순히 팬들의 즐거움을 넘어 기업이 홍보를 위해 전면에 나서 팀을 만들고 자본을 투자하여 리그의 판을 키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특히 광안리에서 진행된 2004년 스카이 프로리그 결승전(한빛 스타즈 vs SKT T1)에는 10만여 명의 관중이 몰려 상징적인 순간을 만들어냈고, 2005년 So1 스타리그 결승전(임요환 vs 오영종)은 역대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는 등 스타리그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당시 기사에서 SK텔레콤 T1은 팀 창단만으로 150억 원이 넘는 홍보 효과를 봤다고 전해지며 리그를 후원한 신한은행 역시 300억 원이 넘는 홍보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이를 기점으로 2006년까지 대기업팀의 적극적인 창단이 이루어졌다. * [2004년의 광안리 대첩(출처: https://home.kepco.co.kr/kepco/front/html/WZ/2023_09_10/sub1_4.html )] 특히 협회에 의해 2005년부터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대한 본격적인 제도화가 이루어졌다. 협회 공인 대회에서 입상한 선수는 준프로게이머의 자격을 얻게 되고, 매년 진행되는 드래프트 제도를 통해 특정 팀에 소속되면 프로게이머가 되는 식이었다. 또한 각 팀 내에서도 연습생을 10여명 내외로 육성하며 선수 인력의 재생산을 위해 힘쓰기 시작했다. 오늘날 대기업 구단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e스포츠 아카데미의 국내 모델이 이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프로게이머는 점차 많은 게이머와 청소년들이 꿈꾸는 어엿한 직업으로 자리잡았다. 한 차례의 위기 그리고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 그런데 이때부터 커진 파이 를 둘러싸고 산업 행위자들 사이의 치열한 힘 싸움이 시작된다. 2007년 협회와 양 방송사 사이의 중계권료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했고, 2010년에는 블리자드와 협회, 방송사 간 지적재산권 소송이 이어졌다. 그 전까지 게임사가 협회와 방송사의 IP 활용을 암묵적으로 승인하는 형식이었다면, 이제는 e스포츠 산업의 생산과 유통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초창기 e스포츠 리그의 제작과 주최, 방송을 도맡아 하며 독점적인 권한을 수행하던 방송사는 이 시기부터 서서히 힘을 잃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힘 싸움에 더해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까지 벌어지며 스타크래프트 리그뿐 아니라 e스포츠 산업 전반에 큰 타격을 입힌다. 다른 한편에서는 2011년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리그 오브 레전드가 서서히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이후 2013년, 넓게 보면 2016년까지 국내 e스포츠 산업은 과도기를 거치게 된다. 당시 나를 포함한 청소년들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또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세대였을 것이다. 당장 PC방에서 친구들과 하던 게임이 스타크래프트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로 바뀌었고, 당시 보급되기 시작한 스마트폰을 통해 아프리카 TV를 보는 것이 또래 문화가 되었다. 교실에서 남자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밈(meme)은 ‘날아오르라 주작이여’에서 ‘이걸 나진이’로 옮겨갔다. 페이커(Faker)가 미드 마이를 썼다느니 미드 리븐을 썼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경기 다음날 아침부터 화제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 TV와 트위치, 유튜브 게이밍과 같은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보는 게임’ 문화의 대중화를 이끌며 산업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매체였는데, e스포츠 역시 마찬가지여서 수용자층을 하드코어 게이머에서 캐주얼 팬으로까지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더불어 전현직 프로게이머가 스트리밍 플랫폼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선수와 팬 사이의 온라인 소통의 기회도 확대되었다. 라이브 채팅을 통한 정동의 공유는 기존의 TV라는 일방향적 정보 제공을 넘어 실시간 상호작용에 기반한 능동적인 콘텐츠 소비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테일러는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e스포츠가 단순히 스포 츠가 아니라 복합적인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워졌다고 분석했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또 다른 장점은 방송사에서 여러 사정으로 인해 제한적으로만 방영할 수밖에 없던 다양한 종목의 리그를 중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전까지 어렵게 찾아보아야만 했던 해외 리그나 철권, 워크래프트 3와 같이 한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는 데 실패한 종목의 국내 리그도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챙겨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터넷 스트리머 중심의 게임 대회가 인기를 끌고 아마추어 게이머 대상의 리그 역시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중계가 가능해지면서 풀뿌리 리그와 자생적 e스포츠 생태계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즉 스트리밍 플랫폼의 발전은 한편에서는 전 세계 팬들과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국제화의 흐름을 만들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과 소규모 리그에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e스포츠 문화의 저변을 넓혀주었다. e스포츠의 황금기 스트리밍 플랫폼의 발전에 힘입어 e스포츠 산업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 e스포츠 산업규모는 연평균 17.9%의 성장률을 보였으며 국제적으로는 매년 30.7%의 고속 성장이 진행되었다. 경기장 역시 양적·질적 확장이 이루어져 2016년 OGN e스타디움이 개장한 이후 2018년에는 LOL 파크와 VSG 아레나가, 2020년에는 아프리카TV 콜로세움, V.Space 아레나, 부산·광주 e스포츠 경기장이 연이어 개장했다. 프로게이머 평균 연봉 역시 2018년 50% 넘게 뛴 데 이어 2019년에는 80%나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경제적 성장과 함께 두드러진 건 기술의 발전이었다. 대표적으로 e스포츠 관전 및 연출 기능이 개선을 거듭하면서 e스포츠는 거대한 스펙타클 이벤트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초창기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관전 및 연출 기능은 옵저버의 수동 조작과 선수 얼굴 클로즈업이 전부일 정도로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해설진은 경기 시작 전이나 직후 맵 위에 마우스로 그림을 그리면서 바둑처럼 맵을 설명하고 각 선수의 전략을 예상했다. 선수의 미네랄과 가스 보유량, 인구수를 보여주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EVER 스타리그 2007’이었다. 반면 2010년대에 들어 게임사가 리그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려는 의욕을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관전 및 중계 모드의 기능을 대폭 개선하면서 보다 직관적이면서도 극적인 시청을 가능하게 했다. 2015년부터 LCK에서는 스포트라이트 카메라 기능을 통해 게임 화면을 3D 애니메이션처럼 연출할 수 있게 되었고 2018년에는 한국에서 개최된 월즈 무대에서 가상 걸그룹 K/DA의 증강현실 무대를 꾸몄다. 같은 해 OGN에서는 VR을 통한 배틀그라운드 경기 생중계가 국내 최초로 시도되었다. 이 같은 실험적 시도는 비록 모두 상용화되지는 않았더라도, 그 당시 기술의 발전과 e스포츠 산업 전반에 만연하던 낙관을 반영한 산물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9oDlvOV3qs * 리그오브레전드 2018 월드 챔피언십 K/DA 오프닝 세레머니 영상 다시, 겨울을 나는 e스포츠 그러나 최근의 e스포츠 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또 한 번 어려움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장 e스포츠 게임단과 게임 대회 운영사들의 누적된 적자가 문제되었다. 특히 젠지 e스포츠의 CEO인 아놀드 허(Arnold Hur)는 2023년 ‘e스포츠의 겨울’을 주장하며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함을 역설했다. 또 라이엇 게임즈나 블리자드, 일렉트로닉 아츠(EA)와 같이 게임과 e스포츠 업계를 지탱하는 게임사들이 2024년 들어 줄줄이 구조조정과 해고를 단행하며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위기를 초래한 내부적·외부적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지나치게 빠른 성장과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의 부재를 그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특정 종목에 편중되어 있는 산업 구조 역시 산업의 안정화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이에 게임사와 구단은 나름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LCK는 2020년부터 폐쇄형 프랜차이즈 리그 [1] 로 전환했으며 FC 온라인 슈퍼챔피언스 리그 역시 2025년부터 리그 프랜차이즈화를 시도하고 있다. 반대로 오버워치 리그는 프랜차이즈 및 연고제를 2024년부터 폐지하고 개방형 리그 시스템으로 개편했다. 다른 한편 2023년 정식출시한 게임 이터널 리턴은 국내 최초로 지역 연고 풀리그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e스포츠 구단 역시 참여 종목 다양화와 함께 아카데미 설립, 국내외 대학과의 활동 연계, 팬덤 마케팅 활성화 등의 노력을 통해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의 e스포츠는 빠르게 달려온 궤도를 잠시 조정하는 또 하나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처럼 갑작스럽게 닥친 위기에 무너지기보다, 이제는 산업 전체가 변화의 국면을 인식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차분히 모색하고 있다. 다가올 e스포츠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두가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나 e스포츠는 처음부터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다. 스포츠이자 게임이고, 방송이자 오락이며 문화인 이 복합적 정체성은 위기의 순간마다 유연하게 적응하며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힘의 원천이었다.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무너졌을 때도, 방송사가 사라졌을 때도, 플랫폼이 전환되었을 때도 e스포츠는 멈추지 않았다. 누구도 이 산업이 여기까지 올 줄 몰랐듯, 지금의 과도기 역시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한번 자신을 재구성할 시간, 본질을 점검할 기회일지 모른다. 아직도 춥고 눈이 내리는 날씨이지만, 곧 봄이 올 것이다. 변화의 속도에 익숙한 e스포츠가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따뜻한 봄을 맞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 Hutchins, B. (2008) Signs of meta-change in second modernity: The growth of e-sport and the World Cyber Games. New Media and Society, 10(6): 851-869. - Taylor, T. L. (2018) Watch me play : Twitch and the rise of game live streaming, Princeton, New Jersey : Princeton University Press. - 박건하. (2004) 게이머들의 PC방 문화와 프로게임리그의 형성에 관한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문화학협동과정 석사학위논문. - 이용범. (2020) 동북아시아 e스포츠 현황에 대한 기초연구 1: 정동(affect)의 실각, 한국 e스포츠 10년사.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20권 2호. 61-73. - 정헌목 (2009) ‘스타’ 게이머 팬클럽을 통해 본 e-스포츠 팬덤의 형성과정과 특성. <비교문화연구>, 15권 1호. 51-95. - 진예원. (2022) 이스포츠의 기술성(technicity) 분석을 통해 본 포스트디지털 문화 연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미디어문화연구전공 석사학위논문. [1] 프랜차이즈 모델은 리그에 소속되는 팀을 고정하여 이 팀들이 강등이나 해체의 위험 부담 없이 수익 창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을 의미한다. 반대로 개방형 모델은 리그 참가 및 탈퇴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에 리그 소속팀이 자주 바뀌며, 승강제를 도입해 경쟁을 보다 치열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프로야구 KBO 리그는 프랜차이즈 모델, 프로축구 K리그는 개방형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Tags: e스포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박여찬 e스포츠를 포함한 보는 게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 중입니다.

  • 울기 싫은 플레이어의 애도하기: <마이 리틀 퍼피>

    애도는 개와 인간의 관계만큼이나 <마이 리틀 퍼피>의 중요한 주제다. 봉구에 대한 애도는 재회에 대한 염원에서 시작해 게임에 등장한 모든 영혼에게 각자의 해피엔딩을 쥐어주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봉구와 ‘아빠’는 개와 인간, 죽은 자와 산 자로 관계맺으며 서로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 Back 울기 싫은 플레이어의 애도하기: <마이 리틀 퍼피> 28 GG Vol. 26. 2. 10. 인간사의 비극에는 꿈쩍 않던 사람이 을 볼 때는 눈물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꼭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동물의 감정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일까. 그 순수함에 감응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리하여 동물이라는 소재는 보편적인 ‘눈물버튼’으로 쓰인다. ‘마이 리틀 퍼피’는 명백히 동물이 ‘눈물버튼’인 사람들을 겨냥한 게임이다. 견종 중에서도 귀여움으로 이름 높은 웰시코기 ‘봉구’가 사후세계에서 ‘아빠’를 마중나가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반려동물을 먼저 보낸 게이머라면 아마 천국의 강아지들이 주인과 재회하는 도입부부터 눈물을 훔쳤으리라. 필자 또한 반려견을 잃어버려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은 경험이 있기에 그리웠던 강아지를 만나자마자 무너지는 사람들을 보고 휴지를 찾아 일어서야 했다. 무지개 다리를 내달리는 봉구의 치명적인 뒷태와 다리가 짧아 높은 턱을 오르지 못해 바둥거리며 낑낑대는 모습에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은 무조건 반사적인 행동이다. 게임은 반려견과 죽음이라는 소재에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생전에 보호소에서 주인을 만나고 먼저 떠나기까지의 사연과 주인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 여기에 섬세하게 구현한 강아지의 움직임이 더해져 애틋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필자는 <마이 리틀 퍼피>에 쉽게 마음을 열어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눈물은 ‘눈물버튼’이 눌린 결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파에 울지 않으려는 소비자 특정 소재에 ‘눈물버튼’이 눌리는 현상은 해당 창작물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다. 신파의 서사를 접했을 때 발생하는 감정은 기계적인 반사작용으로 여겨진다. 이에 정형화된 신파에 익숙해진 소비자는 흔히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감해지거나, 여전히 눈물을 흘리면서도 창작물과 심리적 거리를 두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곤 한다. 전형적인 한국식 신파 영화를 보고 나와 벌건 눈으로 ‘눈물이 나서 자존심이 상한다’며 성을 내는 관객이 좋은 사례일 것이다. <마이 리틀 퍼피>의 플레이 중반까지 나는 예시로 든 관객과 같이 이중적인 반응을 보였다. 신파에 냉담해진 소비자는 신파의 냄새를 맡는 순간부터 이러한 태도를 보이며 감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슬픈 영화를 보며 울지 않기 위해 일부러 촬영장의 모습을 상상하거나 배우의 연기일 뿐이라고 거듭 생각하는 식이다. 이는 특정 형식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자신의 감정적 반응을 통제하려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정형화된 형식에는 진정성이 부족하며, 이에 감응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문화비평가 에밀리 부틀이 주장하듯 진정성은 21세기의 시대정신이다. 사람들은 창작물의 진정성에 천착하며 그것에 자신이 감동할 가치가 있는지 추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눈물버튼’이라는 표현의 유행을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부틀에 의하면 진정성은 자신의 가식을 인정하는 개념으로 팔린다. ‘눈물버튼’을 탓하는 이는 자신의 감정적 반응은 자동반사적인 것일 뿐 진정으로 감동하진 않았다며 진정성의 결여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반응 때문에 신파의 소재로 인지되는 순간부터 그 소재의 확장성은 제한된다. 특정 소재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뻔하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실제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의외성을 적극적으로 간과하고, 재해석의 필요를 무시하곤 한다. 설사 99%가 전형적 신파의 반복이라 하더라도, 수용자의 상황에 따라 유의미한 감정의 승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신파의 힘을 빌렸다는 것만으로 작품을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신파라는 말에 갇혀 소재가 가진 힘이 소실되는 것은 창작자에게도, 소비자에게도 손해이다. 필자 역시 ‘눈물버튼’이 눌리길 거부하는 소비자이기에 <마이 리틀 퍼피>와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했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며 위험천만한 맵을 지나게 하고 있자니 봉구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감동적인 재회를 위해 나의 컨트롤 미스로 강아지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봐야 한다는 것에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며 <마이 리틀 퍼피>의 잔인함은 이 게임이 재현하려는 세계의 중요한 성격으로 드러난다. ‘힐링 게임’에 어울리지 않는 잔인함 전형적 신파의로 소비되기 쉬운 주제에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점은 연출과 재현이다.‘마이 리틀 퍼피’의 제작진은 강아지 시점에서 전개된다는 점을 특징으로 내세웠으나 이는 이미 다양한 매체의 창작물에서 시도된 바 있다. 고양이의 행동양식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화제가 된 게임 <스트레이>와 비교해 보면 그와 같은 수준의 본격적인 시점 전환이 의도된 것은 아니다. <마이 리틀 퍼피> 역시 강아지의 행동을 매력적으로 구현해 냈지만, 인간의 언어는 완전히 배제된 <스트레이>와 달리 <마이 리틀 퍼피>는 그림과 자막을 통해 강아지들의 의사를 인간의 언어로 해석해준다. 그보다 눈에 띄는 건 게임이 재현하기로 선택한 인간과 개의 모습이다. 봉구가 천국에서 처음 만나는 인물들을 자세히 보면 심상치 않다. 갓난아기와 아기를 지키는 허스키, 교복을 입은 학생, 헤진 옷을 입은 노인까지 각자의 사연이 있으리라 짐작되는 이들이 등장한다. 게임의 배경이 사후세계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게임 내 모든 캐릭터가 망자임을 인식하고 그들이 세상을 떠난 배경을 유추하게 된다. 평화롭지 못한 죽음을 맞은 것이 분명해보이는 천국의 인물들은 플레이어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일회적인 장치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기자기한 천국의 풍경에서 이들이 등장했을 때 플레이어가 느끼는 위화감은 게임 중반부의 사막 맵에서 진돗개 가족과 들개 무리를 마주했을 때 다시 찾아온다. 어미 진돗개와 새끼 세 남매는 봉구 이외에 처음으로 생전의 사연이 소개되는 캐릭터들이다. 보호소에서 지내던 어미 개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새끼들은 입양을 기다리다 안락사되었다. 입양 공고에서 예쁘게 보이기 위해 둘렀던 장식을 사후에도 하고 있다. 이들의 등장을 통해 게임이 조명하는 세계는 봉구와 아빠라는 개체 간 관계를 넘어서, 개와 그들이 생전에 속했던 세계의 관계로 확장된다. 봉구와 진돗개 가족을 위협하는 들개 무리의 등장은 이를 더욱 분명히 한다. 들개 무리는 실험견, 투견 등 인간에 의해 학대당한 개들로 구성되어 있다. 학대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은 들개들의 모습은 게임의 동화적인 디자인과 어긋나며 위화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감각은 대자연만이 펼쳐진 사후세계와 대비되는 잔인한 이승의 세계, 인간의 세계를 가리킨다. 들개 무리와의 추격전이 펼쳐지는 미니게임에 실패할 경우, 들개들이 봉구와 진돗개 가족을 위협하는 장면이 나오며 게임이 종료된다. 마냥 사랑스러운 게임을 기대한 플레이어라면 이 장면에서 분명 당황했을 것이다. 처참한 모습의 들개들이 공격성을 표출하는 모습은 게임의 메인 빌런인 악령들의 공격과 달리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게임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잔인한 재현은 수의사 캐릭터가 등장하며 절정에 이른다. 수의사는 저승의 은신처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거나 아직 천국으로 가지 못한 개들을 돌보고 있다. 생전에 보호소에서 일하며 수많은 강아지를 안락사시켜야 했던 그녀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죽음을 택했다. 안락사된 개들과 정신적으로 무너진 수의사는 게임 전체에서 가장 어둡고 잔인하게 묘사된다. 시커멓게 칠해진 수의사의 눈은 공포게임 연출을 연상케 할 정도로 이질적이다. 예고없이 나타나는 잔인한 재현과 게임의 동화적 미학이 불화할 때의 이질감은 익숙한 신파의 구조에서 플레이어를 미끄러트린다. 잔인함의 구체성이 현실을 호출해 냉소를 유지하게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이 미끄러짐을 통해 플레이어는 신파로부터의 거리두기를 중단하고 게임이 ‘개’라는 종을 다루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로써 신파에 갇힌 ‘펫 로스’라는 소재의 확장이 가능해진다. 이질적 연출의 등장과 동시에 이야기의 중심은 봉구에게서 진돗개 가족, 들개 무리, 수의사로 이동하며, 게임은 인간과 개의 양면적인 관계를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 이들의 사연을 통해 그려지는 두 종의 관계는 긴밀하고도 일방적이다. 개에게 사랑을 주는 것도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다. 사랑과 상처의 흔적은 미련이 되어 개들이 죽어서도 저승을 떠돌게 한다. 이처럼 귀여움과 잔인함이 병존하는 이질적인 재현 방식은 불편한 진실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바로 인간에게 종속된 개의 삶에는 태생적으로 잔인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표현형이 사랑이든, 상처이든 간에 말이다. 개와 망자라는 타자와의 관계 게임을 플레이하며 필자가 느낀 잔인한 일방적 관계는 생물학자이자 페미니즘 이론가 도나 해러웨이가 <반려종 선언>에서 지적한 바 있다. 해러웨이는 개들의 ‘무조건적 사랑’의 능력이 있다는 믿음은 그 자체로 개와 인간 모두에게 가학적이며, 이 사랑이 소중하다면 오히려 무조건적인 사랑의 담론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과의 사랑의 관계에 종속된 개는 이 사랑의 환상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버려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라는 개체와 종 전체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시도하지 않고 사랑의 관점으로 개를 보는 것은 “종류와 개체 모두를 무조건적으로 죽이게 된다.” <마이 리틀 퍼피>는 봉구를 통해 무조건적 사랑의 담론을 충실히 재생산하는 한편, “개 자신의 가치-와 삶-는 개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인간의 인식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해러웨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재현을 보여준다. 들개 무리는 게임의 마지막까지 인간과 함께하지 않고 저승을 떠돌길 선택한다. 과거 자신들을 받아줬던 수의사에게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들개들은 유유히 길을 떠난다. 이들의 존재는 저승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무조건적 사랑’을 실천하는 다른 개들 역시 사랑의 담론에 종속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는 그간 함께한 봉구와의 여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개의 입장이 되어보길 권하는 이 게임을 통해 필자는 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됐다. 인간은 개를 관찰해 가상의 개를 모델링할 수 있지만 개를 완전히 이해할 순 없다. 그러나 해러웨이에 따르면 이와 같은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한 인식, ‘부정의 방식으로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핵심은 타자나 자신에 대해 알 수 없지만, 관계 안에서 누구와 무엇이 출현하고 있는지를 항상 질문하는 것이다.” 개와 인간은 함께 관계를 구성하며 그 속에서 서로를 변형시키고 있다는 것만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존재한다. 해러웨이는 이 관계를 통해 개와 인간에게 서로에 대한 ‘권리’가 구축되며,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개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무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위한 이야기이다. 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알 수 없으며, 애도의 목적으로 쓰여지는 모든 이야기는 산 자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해러웨이가 말하는 개와 인간의 관계에서처럼,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는 상호적이다. 산 자가 죽은 자의 흔적을 만질 때에 죽은 자도 산 자를 변화시킨다. 애도는 개와 인간의 관계만큼이나 <마이 리틀 퍼피>의 중요한 주제다. 봉구에 대한 애도는 재회에 대한 염원에서 시작해 게임에 등장한 모든 영혼에게 각자의 해피엔딩을 쥐어주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봉구와 ‘아빠’는 개와 인간, 죽은 자와 산 자로 관계맺으며 서로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더불어 봉구가 생전에 ‘아빠’라는 개인을 어떻게 구성했는지도 되돌아보게 된다. 이야기는 신파에 대한 냉소로 되돌아온다. <마이 리틀 퍼피>는 감정의 과잉이라는 신파의 문법을 적극 활용한다. 그러나 이 감정은 들개 무리와 수의사의 이야기를 통과하며 개인 간의 애틋함이라는 전형적 서사의 감정에서 인간과 개의 관계가 지닌 비대칭성과 책임에 대한 고찰이 남기는 감상으로 변모한다. 이때 플레이어가 느끼는 감정은 ‘눈물버튼’이 눌린 결과를 넘어서, 개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 재고를 거친 것이 된다. 역설적으로 봉구와 아빠의 이야기 역시 이 과정을 통해 다시금 힘을 얻게 된다. 애도의 진정성조차 평가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마이 리틀 퍼피>는 감정을 솔직하게 밀어붙이며 플레이어에게 ‘아빠’의 애도에 동참하길 요청한다. 꼭 반려동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떠나보내거나 사랑한 적 있는 플레이어라면 이 여정을 함께하며 그 솔직함에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Tags: 건조, 강아지, 반려동물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에디터) 박유진 시사 유튜브·팟캐스트를 만드는 직장인이자 평범한 게이머. 시사를 녹여낸 게임 이야기를 전하는 일에 종종 함께합니다.

  • ‘대항해시대 오리진’, 멀티플레이의 계층화와 사이버 농노들

    비동기 멀티플레이는 모바일 게임의 시류에서 도드라진 방식이다. 모바일, 그리고 무선 네트워크라는 아직 태동기에 불안정성이 남아있던 플랫폼들은 참여자들이 동시에 접속하지 않으면서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체계를 필요로 했고, 이것은 비동기 멀티플레이라는 방안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현재 이 방식은 비단 모바일 플랫폼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특유의 선택적 연결성 덕분에 많은 게임에서 채용되곤 한다.   < Back 08 GG Vol. 22.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보더랜드4 - 변방의 수렵채집

    탐험가들의 후예로서 우리 인간은 미지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것에 대한 낭만을 갖고 있다. 황무지, 너른 들판, 혹은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풍부한 사냥감을 품은 목초지?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담은 숲? 농사 짓기 딱 좋은 비옥한 강변? 식량원이 바닥나서, 종교적 열망에 들떠서, 단순한 호기심에서 등등 여러 이유로 호모 사피엔스는 터전을 걷고 일어나 지도의 바깥으로 행진했다. < Back 보더랜드4 - 변방의 수렵채집 27 GG Vol. 25. 12. 10. 탐험가들의 후예로서 우리 인간은 미지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것에 대한 낭만을 갖고 있다. 황무지, 너른 들판, 혹은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풍부한 사냥감을 품은 목초지?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담은 숲? 농사 짓기 딱 좋은 비옥한 강변? 식량원이 바닥나서, 종교적 열망에 들떠서, 단순한 호기심에서 등등 여러 이유로 호모 사피엔스는 터전을 걷고 일어나 지도의 바깥으로 행진했다. 지도는 내 삶의 터전이 있는 지역을 가운데에 놓고 그리게 된다. 지도의 끄트머리는 세계의 끄트머리고, 그 바깥은 다른 세계다. 그 경계를 넘어가면 다른 천하가 펼쳐진다. 천하통일은 그 경계 안에서만 성립하는 개념이다. 그 경계 지역은 변방이다. 변방의 개념은 중심 지역이 성립해야 생겨난다. 생존과 공동체 존립에 중요한 자원, 물과 식량과 재료가 많은 곳에 인구가 몰려 중심이 되고, 변방은 그런 중요도가 떨어지는 먼 곳이기에 인구 밀도도 낮다. 권력도 중앙 권력과 결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었다. 게다가 두 세계가 맞닿는 지역이기에 보통 방패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변방의 인상은 혹독한 환경 혹은 강인한 거주민이다. 신성로마제국의 변경백 작위, 중국의 만리장성은 그런 방어의 맥락이 낳은 결과물이다. 경계의 땅. 영어로 직역하면 보더랜드 정도가 될 것이고, 이는 루트 슈터라는 하위 장르를 정립시킨 슈팅 게임의 명작 시리즈의 제목이기도 하다. 보더랜드 시리즈의 무대인 행성들은 인간이 거주하는 행성의 지도에서 변방에 속한다. 자원이 있긴 하지만 많지는 않고, 환경은 딱 거주만 가능할 정도로 혹독하다. 멸망한 옛 문명이 남김 유적인 ‘볼트’가 있긴 하지만 이 행성에만 있는 유적도 아니니 중요한 행성이 아니다. 그래서 권력화한 기업들이 채굴과 전쟁을 위해 온 적은 있다. 그들이 데려온 인력은 노예 노동을 맡은 죄수 혹은 용병들이었고, 이들은 기업이 떠난 후에도 남았다. 자원과 유적을 놓고 만인이 만인을 적대하는 세계가 되었다. 공동체가 만들어지긴 했으나 마을 혹은 용병단 정도의 규모다. 방어의 맥락은 없지만 폭력으로 다져진 사람들이 사는 ‘변방’이다. 보더랜드 시리즈의 오프닝은 이런 변방 공간의 덧없는 폭력성을 보여준다. 처음 카메라가 잡는 대상은 10초 안에 허무하게 죽는다. 그 인물을 죽인 인물들도 몇 초 후에 죽는다. 생명의 존엄 같은 개념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세계라는 것을 빠르게 보여준다. 이 정도면 변방을 넘어 세계 바깥이다. 보더랜드를 비롯한 황무지 서사의 특징은 서사의 무대가 되는 지역을 다스리는 권력 구조, 더 정확히는 제도화된 권력 구조가 없거나 매우 약하다는 점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만드는 사회적 종족이고, 공동체의 작동을 위해 권력 구조를 만들고, 권력의 작동을 통해 생존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면 인구가 늘어나 공동체가 확장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문명이 등장한다. 반대로 말하면 권력 기구 따위 없는 세계는 문명의 세계가 아니다. 야생의 법칙 중 하나인 폭력의 법칙이 제1규칙의 자리에 있게 된다. 자원도 많지 않은데 이를 제도적으로 가공 생산품으로 바꿔낼 문명도 존재가 희박하다 보니, 대부분의 자원과 도구 – 무기는 서로를 죽이고 뺏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 토마스 홉스는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투쟁하는 자연 상태를 상정하고 여기에서 모든 인간의 평등권 개념을 끌어냈다. 완벽한 자연 상태의 자유에서는 오히려 개인의 생존이 위험하기에 인간은 자유를 일부 포기하면서 공동체 권력이라는 개념을 만들게 된다는 논리였다. 물론 잘 죽이고 잘 뺏으려면 협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을 단위나 도적단 단위 정도의 공동체는 만들어지지만 그 이상의 권력은 쉽게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등장하면 행성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 할 수 있는 유적, 볼트를 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면 볼트를 열고 싶은 다른 사람들의 욕망과 충돌한다. 그렇게 갈등이 끊이지 않고, 플레이어는 그 갈등 한가운데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상대를 총으로 쏴 그의 자원과 무기를 탈취한다. 쏘고 줍는, 루트 슈터 장르가 보더랜드 시리즈에서 정립되었다. * 상자를 열고 적을 죽여서 전리품을 얻는 것은 전투를 컨텐츠로 삼는 거의 모든 장르에 있는 자원 수급 방법이지만, 보더랜드 시리즈와 같은 루트 슈터 장르에서는 의미가 약간 달라진다. 루트 슈터 장르를 지탱하는 두 행동, 쏘는 행위 슈팅과 줍는 행위 루팅은 이 장르에서 가치 있는 재화와 장비를 획득하는 주된 방법이다. 구매와 보상으로도 얻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그리고 가치가 가장 높은 방법은 적에게서의 루팅이다. 보통의 MMORPG에서도 루팅은 주요한 획득 방법이지만, 제작이나 퀘스트 보상이라는 다른 주요 획득처가 존재한다. 같은 전리품 맥락의 획득이지만 루트 슈터에서는 다른 획득처가 중요하지 않거나 없다. 그리하여 루트 슈터에서의 루팅은 약탈 혹은 채집에 가깝고, 시뮬레이션으로의 게임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수렵 채집의 시뮬레이션이라고 정의할 수 있게 된다. 마침 변방, 세계 바깥이라는 작중 세계의 황량함은 수렵 채집 시대를 떠오르게 한다. 부족 규모의 공동체, 황무지에서 벌이는 적대적인 개체들과의 전투, 약탈, 문명 이전의 서사다. 보더랜드 시리즈를 수렵 채집 시대에 SF 스킨을 씌워 문명 바깥을 구현한 작품으로 본다면, 최근작인 4편의 서사적 맥락이 독특해진다. 이전작들의 무대인 판도라 행성은 변방 내지는 세계 바깥이라고 요약하기 딱 좋은 시공간이었다. 4편의 카이로스 행성은 겉보기에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여기에는 타임키퍼의 교단이라는 지배 권력이 존재한다. 타임키퍼의 지배 수단은 볼트(Bolt)라는 장치다. 이를 사람의 신체에 심어 모든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 여기에 자신의 우주적 사명이라는 것을 교리화하여 세뇌하다시피 한 신도들을 조직화해 교단을 꾸렸다. 이 세력이 카이로스를 지배하면서 외부에서의 관찰에 잡히지 않도록 행성 전체를 가려놓기도 했다. 그래서 카이로스는 지도에 없는 행성이었고, 운 나쁘게 불시착한 용병이나 해적들이 토착민과 함께 경쟁하며 살고 있다. 즉 카이로스는 중심 성계에서 변방에 위치한 것이 아니다. 단지 강력한 독재 권력이 지도에서 지워놨기에 변방이 된 것이다. 게임 플레이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플레이어는 볼트(Vault)를 열기 위한 경쟁을 하는 볼트 헌터고, 카이로스의 볼트를 독점하려는 타임키퍼와 그의 교단을 상대로 전투와 약탈을 한다. 이전작에서의 회사, 용병단 등의 적과 형태는 다르지 않다. 반면 설정된 반동 세력의 규모와 성격은 정반대다. 카이로스에는 교조적 독재 문명이라는 제도 권력이 존재한다. 전제를 다시 정리해보자. 변방은 각 세계의 끝이기에 문명이 없거나 옅다. 방어 전담 지역이기 때문에 혹은 중요하지 않아 무관심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변방/바깥은 만인 투쟁 상태의 무법 지대로 그려진 것이며, 그래서 보더랜드 시리즈의 수렵 채집 시뮬레이션을 펼쳐놓기 좋은 무대다. 반면 카이로스는 명백히 문명화된 설정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수렵 채집 시뮬레이션, 문명 바깥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지역 중에선 아웃랜드, 크아레쉬처럼 이미 문명이 멸망한 지역이 등장한다. 이런 지역은 열리기 이전, 정보가 거의 없을 때는 황무지처럼 묘사되었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이 진입하여 스토리를 접하게 되면 각 세부 지역에 존재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체를 만나고, 그들에게서 퀘스트를 받거나 그들과 적대해 싸우면서 아직 문명의 잔재가 남아있음을 접하게 된다. 이는 카이로스에서의 서사와 유사하다. 이건 수렵 채집이 아니라 전쟁의 서사다. 그렇다면 카이로스를 무대로 한 보더랜드4의 이면에 독재는 문명이 아니라는 함의가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전쟁과 대립이 다시 시대의 테마로 떠오르고 있는 현재의 지구 정세와 연결해 사유할 지점이 생긴다. 변방의 황무지 행성이라는 무대를 홉스의 자연 상태에 가깝게 포장하는 데에는 보더랜드의 설정에 존재하는 기업들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총기와 장비는 제조사마다 독특한 특수 효과를 지닌다. 이 제조사들은 여러 행성을 실질 지배하는 지배 권력이기도 한데, 작중의 은하계는 이미 정치 권력이 기업 권력에 무력으로 패배한 상태로 기업 간의 경쟁이 곧 전쟁을 포함하는 세계다. * 국가가 사라지고 기업이 정치 권력을 대체하는 세계는 SF에서 보통 디스토피아로 묘사된다. 보더랜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기업들은 적으로 등장하는 서넛을 제외하고는 묵직한 배경으로서의 기능만을 수행한다. 이들이 벌이는 경쟁 내지는 기업 전쟁은 플레이어의 스토리와는 거리가 있다. 그 서사는 변방이 아닌 저기 중심부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기업 중에서 플레이어의 스토리 수행에 의해 사세가 기우는 경우는 있어도 사라지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이런 배경 설정에서 다른 해석을 뽑아낼 수 있다. 홉스가 상상했던 자연 상태에 가까운 상태는 문명 바깥의 상태다. 독재 치하에서 폭력이 제1수단인 카이로스 또한 문명 외의 상태라면, 기업 전쟁이 횡행하는 은하계 또한 문명 외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약간의 비약은 섞여있지만 말이다. 지도 밖으로의 행진은 개척의 서사다. 우리가 겪은 마지막 개척 경험은 미국 서부 개척을 마지막으로 현실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보더랜드의 수렵 채집 시뮬레이션은 개척이 아닌 생존 서사에 가깝다. 문명은 생존 문제를 해결하고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게 만드는 기능이 있는 바, 생존 서사는 곧 문명의 농도가 옅거나 없는 상태의 서사다. 더군다나 수렵 채집 행위를 매개로 하니 이는 전쟁의 생존 서사와 또 다른, 문명 유무의 맥락에서 읽히는 서사가 된다. 이런 사유의 끝에서, 폭력이 만성화되고 생존이 우선인 상태는 문명 외의 상태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어쩌면 기업 전쟁이 만연한 보더랜드의 은하계처럼 겉보기에는 문명 사회로 보이는 상태도 문명이 옅어진 것일 수 있다. 서부 개척 시대의 무법자 인생이 마지막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수렵 채집의 세계에서 문명 국가의 세계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울 수도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제1회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안녕하십니까, 게임제너레이션입니다.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을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 Back 제1회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07 GG Vol. 22. 8. 10. 안녕하십니까, 게임제너레이션입니다. 제1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을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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