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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는 신체, 보이지 않는 신체

    게임과 신체는 불가분의 관계다. 현실세계 외부에 컴퓨터 기술로 별도의 가상세계를 만들고, 플레이어로 하여금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여하게끔 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라면, 플레이어의 신체는 게임 플레이를 위한 기본 조건이 된다. 이 때 신체는 가상세계에의 개입을 위해 게임 밖에서 플레이어의 생각과 의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 Back 보이는 신체, 보이지 않는 신체 22 GG Vol. 25. 2. 10. 게임과 신체 게임과 신체는 불가분의 관계다. 현실세계 외부에 컴퓨터 기술로 별도의 가상세계를 만들고, 플레이어로 하여금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여하게끔 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라면, 플레이어의 신체는 게임 플레이를 위한 기본 조건이 된다. 이 때 신체는 가상세계에의 개입을 위해 게임 밖에서 플레이어의 생각과 의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다른 한 편으로,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여한다고는 해도 플레이어의 신체는 게임 바깥인 현실에 있기에, 플레이어를 대신하는 게임 속 아바타의 존재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 때 아바타는 플레이어 신체를 연장한 가상세계 속 구현물로, 게임 밖 플레이어의 신체를 통해 입력된 명령을 게임 내에서 실현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듯 게임에서 신체는 크게 두 축, 즉 게임하는 플레이어의 신체, 그리고 게임 속 아바타의 신체로 논의된다. 둘을 게임의 밖과 안의 신체, 게임 시스템에 조응하는 신체와 게임에서 재현되는 신체, (가상세계 속) 눈에 보이는 신체와 보이지 않는 신체로도 구분할 수 있겠다. 두 축을 중심으로 게임과 신체가 서로 만나 얽히는 여러 지점들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게임과 게임 플레이를 새롭게 읽어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플레이어의 신체가 아바타 신체와 무엇을 통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것이 게임 플레이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관련해 논의 가능한 이슈들엔 무엇이 있고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들여다봐야 할지 살펴보고자 한다. 인터페이스와 신체 플레이어의 생각과 의지를 게임세계에 전달하는 도구로서 신체에 대해 언급했지만, 신체가 직접 게임세계에 침투 가능한 것은 아니다. 플레이어의 신체는 ‘인터페이스(interface)’를 통해야 비로소 스크린 너머 가상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가상의 환경과 사물 그리고 이야기에 직접 개입할 수 있게 된다. 게임에서 인터페이스는 플레이어와 게임 시스템 간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매개체를 말한다. 크게 ‘물리적 인터페이스’와 ‘정보 인터페이스’로 구분된다. 전자가 가상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플레이어에게 처음부터 주어져야만 하는 게임 외적 요소로 컨트롤러, 키보드, 마우스 등을 포함한다면, 후자는 플레이어가 가상세계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게임 내적 요소이며 인벤토리, 맵, 정보창 등이 이에 속한다. 인터페이스를 통해 게임 밖 플레이어의 신체는 게임 속 아바타의 신체와 연결된다. 물리적 인터페이스는 특히 플레이어의 물리적 신체와 맞닿는다. 플레이어의 개인적 공간에 머물고, 심지어 신체와 자주 접촉한다. 플레이어의 생각과 의지가 신체를 거쳐 물리적 인터페이스에 입력되면, 입력치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 정보 인터페이스나 캐릭터에게 보낸다.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위해 물리적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물리적 인터페이스가 점차 플레이어의 신체로 통합됨에 따라 일부 피트니스 게임이나 레이싱 게임,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이하 ‘VR’) 게임류에서 플레이어의 신체가 그 자체로 물리적 인터페이스화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 홀로그램이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이하 ‘AR’)은 물리적 인터페이스와 정보 인터페이스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게임이 매개되고 재현된 세계를 제공하는 것임에도, 인터페이스를 통해 가상세계를 즉각적으로 바꿔나가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은 그 세계를 마치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게임은 특정 시점(1인칭, 3인칭) 혹은 혼합형 시점(1+3인칭)을 사용하며 카메라 렌즈와 같은 매개효과를 이용해 플레이어를 그 세계 안으로 끌어들이고, 플레이어는 그 신체가 스크린 바깥에 있음에도 스크린 안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원격현전(tele-presence)’이라 부른다. 원격현전은 매개된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인지되는 존재감으로, 실은 부재 상태인 타자나 사물과의 공동 공간감, 몰입, 현실감 등과 같은 심리적 상태 혹은 주관적 관념으로 이해된다(International Society for Presence Research, 2000). 면대면으로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는 것과 달리 미디어나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를 통해 매개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경우, 수용자는 일반적으로 실재하는 물리적 환경과 미디어를 통해 구현되는 환경을 동시에 지각한다. 그럼에도 몰입적인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고도의 원격현전을 제공하고, 플레이어는 자신의 신체가 위치한 현실과 플레이가 이뤄지고 있는 가상현실 간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거나 최소한만 지각하게 된다(강신규, 2020). 원격현전을 통해 플레이어의 신체는, 인지적 차원에서 물리적 현실세계를 빠져나가 가상세계로 빨려들어간다. VR 게임과 신체 VR 게임은 기존의 물리적 인터페이스에서 벗어나 HMD(head-mounted display) 같은 기기를 착용한 플레이어의 신체를 입력장치화한다. 플레이어의 신체는 현실에 물리적으로 위치하지만, 기기를 통해 경혐되는 시청각 신호로 인해 뇌는 플레이어의 신체가 마치 가상공간 안에 있는 것처럼 인식한다. 플레이어의 신체가 가상공간 안에서 재현되기에 아바타는 VR 게임에서는 대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플레이어가 신체를 직접 움직여서 게임 속 자신의 움직임을 결정한다. 그 안에서의 활동은 기존 게임이 제공하는 가상세계에서보다 훨씬 더 조밀하고 촘촘한 감각의 집중을 요구한다.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해야 하는 일도 많다. 보통 게임에서의 시점이 장르나 특성에 따라 1인칭, 3인칭 그리고 혼합형 시점으로 다양하게 구분됐다면, VR 게임은 대부분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플레이가 이뤄지는 공간 역시 평면 공간, 스크롤링 공간, 입체(3D) 공간 등으로 구분되는데, VR 게임에서는 입체 공간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신체를 활용한 상호작용, 가상세계 안과 밖 시선의 일치, 입체 공간 제공 등을 통해 VR 게임은 기존 다른 게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원격현전을 유발할 가능성을 갖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세계가 핍진적(verisimilitude)일수록 플레이어는 비매개에 가까운 상호작용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현실과 얼마나 가까우냐가 아니라, 가상세계 안에 존재하는 환경, 캐릭터, 캐릭터의 행위, 상황과 개연성들이 얼마나 신뢰할 만하고 현실적이냐가 플레이어의 상호작용적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때 VR 게임은 비물질적이지만 물질적인 것으로 지각될 만큼 ‘실재’하는 인식의 세계를 탄생시킨다. 마치 현실세계에서처럼 가상세계가 물리적 시공간을 제공하는 것처럼 인식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상현실은 플레이어에게 ‘부재’를 떠오르게 만들 수밖에 없는데, 가상현실 속 모든 것이 물질적 구현이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존재로서의 현실 속 많은 것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기기를 착용한 눈과 귀가 인식하는 가상세계와, 플레이어의 신체가 감지하는 주위 환경이 어긋나기 때문에 VR 게임은 종종 플레이어에게 어지럼증이나 울렁거림을 발생시킨다. 특히 드라이빙 시뮬레이션이나 1인칭 슈팅 게임(first person shooter, FPS)을 오래 플레이하다보면, 이른바 ‘사이버멀미(cybersickness)’를 느끼게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사이버멀미를 줄이거나 없앨 수 있는 기술적 방안에 대한 고려가 다각도로 이뤄지고는 있지만, 현재와 같은 기술 상황에서 게임 개발자들이 사이버멀미를 피하기 위해 택하는 주된 방법은 아예 움직이지 않고 전지적 관찰자의 시점이 되거나, 순간이동으로 이동 과정의 표현을 생략하거나, 아니면 중력 없는 가상공간에 플레이어를 밀어 넣는 것이다. 멀미를 유발할 수 있는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취하는 셈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향후 물리적 인터페이스가 전정기관과 같은 플레이어의 신경(기관)을 직접 자극하고 (실제 자극이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신체가 그에 반응하게 될 때가 오면, 더 이상 플레이어의 신체가 가상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이는 가상세계가 보다 완전한 시뮬라크르(simulacre)가 됨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VR 게임이 야기하는 사이버멀미는 가상세계를 가상세계로 인식하게 하는, 우리 신체가 만들어낸 닻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강신규, 2020). AR 게임과 신체 AR 게임에서는 현실과 가상 간 경계가 투명해지고, 종종 가상세계를 위해 현실이 동원된다. <포켓몬고>는 현실세계 모든 곳을 무대로 삼아, 플레이어로 하여금 언제든 포켓몬스터(이하 ‘포켓몬’) 사냥을 통해 포켓몬 트레이너로서 활약하게 만드는 AR 게임이다. 포켓몬을 잡는 행위는 플레이어 신체의 물리적 공간 이동을 전제로 한다(홍성일·이수엽·박근서, 2017). 특정 지점에서 포켓몬을 마주치기 전까지 플레이어가 이동하는 행위는 현실 속에서 이뤄진다. 게임 플레이(포켓몬 사냥)를 위해 현실에서의 특정 행위(플레이어 신체의 이동)가 동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임 안의 것을 위해 게임 밖 요소가 동원되는 <포켓몬고>에서는, 게임 밖 요소가 더 많이 동원될수록 게임 안이 두둑해진다. 기존의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와 게임 시스템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데이터가 비롯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AR 게임에서는 그 데이터의 상당 부분이 게임 외부에서 온다. 플레이어와 게임 사이의 관계가, 플레이어와 게임 그리고 게임 밖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AR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공간과 게임 공간이 일치한다. 플레이어는 현실 속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며, 게임이 이뤄지는 공간 역시 현실이다. 따라서 AR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원격현전감이 아닌 현전감을 제공한다. 게임 속 공간 탐험이 게임 바깥 공간 탐험으로 바뀐다는 점도 AR 게임 플레이 고유의 특징이다. 기존 게임에서의 플레이는 곧 게임 공간을 탐험하고 통달하는 일과 관련되었다(박근서, 2009). 하지만 AR 게임에서의 플레이는 현실세계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기존 게임과 VR 게임이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다면, AR 게임은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현실세계에 필요한 가상의 정보를 중첩시킨다. 기존 게임과 VR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현실과 분리된 허구의 체험을 제공하지만 AR 게임은 현실과 가상의 접점을 유지한다. VR 게임의 경우 HMD와 같은 전용기기를 착용해야 디스플레이에서 가상세계를 인식할 수 있지만, AR 게임은 눈으로 보는 현실에 가상의 이미지나 정보 등을 입히는 방식으로 간단히 구현 가능하다. 따라서 현실세계에서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도 보다 쉽고 원활히 이뤄질 수 있다(강신규, 2020). 현실을 배경으로 플레이된다는 점에서 진짜 사실적이고 실재감을 느끼며 몰입할 수 있다는 특징도 지닌다. e스포츠와 신체 e스포츠에서도 ‘신체’가 화두다. 프로게이머의 국가 대항전이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 잡은지 오래지만, e스포츠가 전세계적으로 정식 스포츠 종목이 되진 못했다. 아시안 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지만, 올림픽 게임의 경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각국올림픽위원회(NOC) 등이 종목 채택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물론 e스포츠가 반드시 정식 스포츠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 관련 기관들의 승인이 있어야만 e스포츠가 진정한 스포츠가 되는 것도 아니다. e스포츠는 애초부터 경기장, 선수 간 경쟁, 규칙 등의 스포츠적인 요소와 스타 프로게이머, 팬 등과 같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융합된 스포테인먼트였다. 그럼에도 e스포츠가 정식 스포츠가 될 때 e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될 여지가 크고, e스포츠 육성을 위한 공적지원 역시 더 확대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e스포츠는 긍정적이지 못한 인식으로 인해 본격적인 지원이나 육성 대상이 되지 못했다. 당연히 기존 스포츠와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 측면도 있다. 종목 다양화와 국산 종목화, 인력 양성 및 경력 관리 시스템 확충, 관련 주체들 간 거버넌스 확립, 저작권 문제 등 e스포츠의 정식 스포츠화를 위해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e스포츠의 스포츠화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근대 스포츠의 핵심 개념인 ‘대근육 사용’ 여부다. 경기가 행해지는 데 있어 대근육을 중요하게 사용하지 않는 e스포츠는 스포츠 범주에 포함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인간 의지의 육체적 발현을 대근육의 사용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은 시대에 부합하지 않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의지와 의지 간의 경쟁은 단순히 오프라인 상 대근육의 움직임 논의를 넘어 새롭게 개념화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현재의 스포츠는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 행동을 개념화한 근대적 시각을 넘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왔다. 미디어 기술의 발전, 팬들의 즐거움 추구방식 변화, 스포츠 관련 기술 및 도구의 발전 등은 근대 스포츠 개념 재구성의 필요를 촉발시켰고, 이제 인간의 신체와 정신은 근대 스포츠가 추구해온 경쟁성, 조직성, 제도화, 집중력, 작전, 신체활동 등의 요소를 넘어서는 새로운 스포츠들로 향한다. 극한의 물리적 공간(암벽, 절벽, 인공적인 링, 도시의 빌딩과 빌딩 사이 등)에서 인간 육체의 모든 가능성을 실험하는 익스트림 스포츠, 이종격투기 등은 신체 능력을 극대화하여 경쟁을 추구하는 스포츠에 해당한다. 근대 스포츠의 특성을 지니면서도 신체 활동보다는 작전, 집중력 등의 요소에 의해 경쟁이 이뤄지는 컬링, 사격, 양궁, 골프 등은 정신적 요소가 부각되는 스포츠라 할 수 있다. 가상공간을 통해 행해지는 e스포츠는 일반 스포츠 경기보다 더욱 동일한 외적 조건에서 이뤄지는 경쟁이며, 신체적 능력과 정신적 요소가 동시에 요구된다. 먼저, 정신적 요소는 경기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노력을 통해 향상된 정신적 요소를 바탕으로 선수들은 경기에 임하며, 경기가 펼쳐지는 가상세계는 선수들의 정신적 요소를 견주는 장이 된다. 신체적인 능력의 경우 승패를 좌우할 만큼 절대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신적 요소 못지 않게 상당 부분 필요하다. 대근육을 쓰진 않으나 집중력 유지를 위해 기초 체력이 있어야 하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빠르고 정확하게 조작하는 일도 승패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채희상·강신규, 2011). 결국 e스포츠는 상당 수준의 신체적 반응과 순발력을 바탕으로 물리적 공간이 아닌 가상세계에서 전략, 집중력 등 정신적 요소를 극대화하여 경쟁하는 새로운 개념의 스포츠로 범주화될 수 있다. 전략과 집중력을 바탕으로 그 어떤 다른 스포츠보다도 빠르고 정확한 판단, 통찰력, 감정 조절과 상황 대처, 섬세한 컨트롤 등을 요구하는 멘탈 스포츠이자 피지컬 스포츠인 것이다. 게임 안과 밖의 여성 신체 게임에서의 신체에 대해 다루면서 ‘여성’ 논의를 빼놓을 수 없다. 게임과 여성에 대한 논의는 다각도로 이뤄져 왔지만, 그 중 신체를 중심으로 하는 논의에서는 주로 비판적 시각에서 게임 내 여성 신체의 재현(representation) 문제나, 플레이하는 신체로서 여성을 다루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전자가 게임 안의 여성 신체에 대해 살핀다면, 후자는 게임 밖의 여성 신체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여성 신체의 재현 논의는 게임 텍스트에서 여성이 전반적으로 희미하거나 부재하고, 텍스트 상에 드러난다 해도 스테레오타입화되거나, 성별화된 묘사의 대상이 된다는 데 주목한다(윤태진·김지윤, 2023; Dietz, 1998; Greenfield, 1994; Kinder, 1991). 여성 캐릭터가 게임 내러티브에서 부수적이거나 남성 의존적인 역할을 맡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식으로 왜곡된 몸매를 지녔거나, 게임세계 속 상황(예를 들어, 모험, 사냥 등)에 적합하지 않은 의상 혹은 아이템을 걸쳤거나, 마찬가지로 게임세계 속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행동 혹은 몸짓을 보이는 경우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재현된 여성이 어떻게 (특히 남성) 플레이어들에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논의들도 있다. 가령 FPS 속 플레이어 시선의 문제를 논의한 한 연구(Bryce & Rutter, 2002)는, 플레이어들이 특정 게임에 내재된 구조로 인해 불가피하게 남성적 시선을 채택하게 되고, 여성의 존재는 물신화된 대상으로 그려짐으로써 결국 남성적 즐거움에 동참하게 된다고 비판한다. 그런 게임에서 게임 플레이는 기존의 성 역할을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행위가 된다. 여성 플레이어가 신체적 차이로 인해 남성보다 게임을 잘 하지 못한다거나, 직접적인 경쟁 위주의 게임보다는 캐주얼하거나 커뮤니케이션에 기반을 둔 게임류를 좋아한다거나(Krotoski, 2004), (남성 플레이어가 설명을 통해 게임을 학습하는 데 반해) 모델이 될 만한 게임 플레이를 따라하면서 게임하기를 배운다(Graner Ray, 2004)는 식으로 여성 플레이어를 규정하는 경우도 많다. 게임을 잘 하는 여성 플레이어를 독특한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온라인게임에서 여성 플레이어를 한 팀으로 만났을 때 한탄 혹은 희롱하거나, 여성 플레이어에게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는 캐릭터 선택을 강요하는 등의 행위도 게임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다양한 신체가 재현되지 않는 상황이 게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해도, 인터페이스, 아바타, 상호작용, 그리고 시선 등을 통해 다른 미디어에 비해 보다 몰입적인 수용 환경을 제공하는 게임에서 여성에 대한 긍정적이지 못한 방식의 재현은 훨씬 더 문제적인 것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게임 플레이에서 성별의 차이를 내재적이고 불변하는 것으로 가정한 상태에서 여성 플레이어를 대하는 것도 문제다. 여성 플레이어 역시 남성 플레이어 못지 않게 다양한 게임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도 아주 능숙하게 플레이한다. 게임을 생산과 소비 차원, 재현과 플레이 차원에서 남성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여성을 비가시화된 대상으로 반대 편에 위치시키는 이해는, 게임 문화 전반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아주 지엽적이고 편협한 파악만을 허용할 뿐이다. 관련해 남성적인 것, 혹은 여성적인 것으로 당연하게 부여돼 오던 가치 체계에 의혹을 제기하고 보다 포괄적 관점에서의 플레이어를 바라보려는 시도(예를 들어, 전경란, 2009), 여성 플레이어의 취향과 지향성에 기초해 그들을 만족시킬 게임이 필요하다는 주장(예를 들어, Laurel, 1998), 탈남성적 시각에서 여성 게이머의 주체성에 주목하고 여성 게이머를 가시화하는 시도(예를 들어, 윤태진·김지윤, 2023)들이 다양하고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 이런 의미 있는 작업들을 남성적인 것에 대한 전복이나 여성적인 것의 회복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 문화의 정착을 위한 것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게임과 신체 이상에서 게임하는 플레이어의 신체와 게임 속 아바타의 신체에 초점을 맞춰, 게임과 신체가 관계 맺는 세 지점을 살펴보았다. 첫 번째 지점은 ‘인터페이스’다. 게임 밖 플레이어 신체와 게임 속 아바타 신체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가 무엇인지, 인터페이스를 매개로 플레이어의 신체가 가상세계 속으로 어떻게 진입하는지, VR 게임과 AR 게임에서 인터페이스가 어떻게 달라지고 그것이 플레이어와 아바타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두 번째 지점은 ‘e스포츠’다. 특히 e스포츠의 스포츠화에 있어 프로게이머의 신체가 어떻게 화두가 되는지, 그렇다면 e스포츠에서 신체는 어떤 역할을 하고 정신과는 어떻게 조응하는지 들여다봤다. 세 번째 지점은 ‘여성’으로, 게임 안에서 여성 신체가 어떻게 문제적으로 재현되고 게임 밖에서 여성 플레이어의 신체가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논의했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게임이 신체와 밀접하게 관계 맺어왔듯, 앞으로도 둘 간 관계는 최소한 여전하거나 더욱 밀접해질 것으로 보인다. 단초는 기술의 발전, 이용자들의 다양한 플레이 방식 추구, 그리고 새로운 게임의 출현이다. VR 게임과 AR 게임이 인터페이스를 확장하고 또 경계를 허물면서 플레이어와 아바타의 신체가 마주하는 게임 플레이 경험을 달라지게 만들었듯, 앞으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기술과 게임은 게임 안과 밖의 신체가 갖는 의미를 바꿔놓을 수 있다. 현존하는 논의들이 게임과 신체가 관련 맺는 방식과 양상 그리고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게임과 신체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거나 진화해갈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향과 형태로 게임 플레이를 바꿔 나갈지 지속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강신규 (2020). 현실로 들어온 놀이: 서드 라이프 시대의 디지털게임. 원용진 등,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139~177쪽). 커뮤니케이션북스. 박근서 (2009). <게임하기>. 커뮤니케이션북스. 윤태진·김지윤 (2023). <여성 게이머는 총을 쏠 수 있는가>. 몽스북. 전경란 (2009). <디지털 게임, 게이머, 게임문화>. 커뮤니케이션북스. 채희상·강신규 (2011). e스포츠의 스포츠 범주화에 대한 탐색적 연구.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11권 3호, 85~95쪽. 홍성일·이수엽·박근서 (2017). 이동적 사사화 개념의 재활성화를 위하여: 텔레비전, 워크맨, 포켓몬고. <미디어, 젠더 & 문화>, 32권 2호, 305∼340쪽. Dietz, T. L. (1998). An examination of violence and gender role portrayals in video games: Implications for gender socialization and aggressive behavior. Sex Roles, 38, pp.425~442. Graner Ray, S. (2004). Gender inclusive game design: Expanding the market. Hingham MA: Charles River Media. Greenfield, P. M. (1994). Video games as cultural artefacts. Journal of Applied Developmental Psychology, 15, pp.3~12. Kinder, M. (1991). Playing with power in movies, television, and video games: From muppet babies to teenage mutant ninja turtles. Berkeley: Univ. of California Press. Krotoski, A. (2004). Chicks and Joysticks: An exploration of women and gaming. London: Entertainment & Leisure Software Publishers Association. Laurel, B. (1998). An interview with Brenda Laurel, in J. Cassel & H. Jenkins (Eds.), From Barbie to Mortal Combat (pp.118~135). Boston: The MIT Pres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슈퍼 히어로 '게임'의 과거와 오늘

    원전인 수퍼히어로 만화는 여전히 독자적 산업을 잘 이끌고 있다. 그리고 영상 컨버전이 최근에 들어 절정을 찍었다면, 게임 컨버전은 비교적 신생이다. < Back 슈퍼 히어로 '게임'의 과거와 오늘 16 GG Vol. 24. 2. 10. 한 장르의 팬으로서, 그 장르가 대중의 화제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을 마주할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 내가 사랑하는 장르를 많은 사람들이 갖고 놀기에 더불어 대화하는 즐거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틀린 정보나 나와는 너무 다른 해석 앞에서 불안과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다행인지 요즘은 그런 감정의 골짜기에 빠질 일이 별로 없다. 사람을 덜 만나서도 있지만 화제로 다뤄지는 빈도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두 번째 사가인 멀티버스 사가가 진행되면서, 수퍼히어로 장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서서히 식어가고 있다. 정확히는 영상화된 수퍼히어로, 수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관심이다. 원전인 수퍼히어로 만화는 여전히 독자적 산업을 잘 이끌고 있다. 그리고 영상 컨버전이 최근에 들어 절정을 찍었다면, 게임 컨버전은 비교적 신생이다. 수퍼히어로라는 장르 만화, 특히 미국 만화를 고향으로 두고 있는 수퍼히어로라는 영웅 서사 장르는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그리고 영상이나 게임으로의 컨버전 또한 이 세 가지 특징을 플랫폼에 맞춰 변용하는 것에 핵심이 있다. 수퍼히어로라는 부류의 캐릭터와 서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첫 번째로 수퍼파워, 초능력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요건은 캐릭터를 디자인할 때 반드시 코스튬, 복장을 정해놓는다는 관습이다. 세 번째는 코스튬을 입고 수퍼파워를 휘두르는 수퍼히어로의 반대항인 수퍼빌런이 등장하여 양자 간의 결전을 절정으로 하는 서사 구조를 기본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 세 특징 혹은 요건 중에서 앞의 둘은, 만화에서는 손쉽게 표현된다. 만화의 ‘수퍼파워’는 과장의 미학이기 때문이다. 초능력의 표현 또한 소설 문학 다음으로 경제적인 표현 수단 덕분에 손쉽게 표현한다. 반면 돈이 많이 드는 표현 수단을 쓰는 영상 문학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지드로잉가이드닷컴이라는 그림 교육 사이트에서 ‘superhero’의 예시로 든 코스튬. 하지만 이런 디자인의 코스튬이 실사로 제시되면 유치해지기 쉽다. 3D 그래픽의 경우엔 다소 허들이 낮아지긴 하지만 낮아질 뿐이다. 만화의 표현으로는 괜찮았던 코스튬이 영상에서는 유치하거나 불합리해진다. 초능력의 표현은 컴퓨터 그래픽과 특수효과가 어느 이상의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역시 유치한 연출 기법에 기대야 했다. 게임으로의 컨버전은 영상의 고생에 비하면 별 거 없었다. 영상의 ‘수퍼파워’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달이었기 때문에, 같은 수퍼파워를 쓰는 게임 입장에서는 미적 디자인과 게임 기획만 고민하면 되었다. 그리하여 영상과 게임 모두 공히, 코스튬이라는 요소는 미학적 코드를 약간 틀어서 해결했다. 초능력의 표현은 기술적 발전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수퍼히어로 장르가 영웅 서사의 일종이기 때문에 생긴 마지막 특징, 빌런과의 대결 서사는 표현형을, 클리셰를 결정짓게 되었다. 일단 대결 서사이기 때문에 기본 표현형은 액션 장르가 된다. 그래서 수퍼히어로와 수퍼빌런을 연기하는 모든 배우 및 스턴트는 다양한 액션을 소화해야 한다. 게임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로, 기본 장르가 액션으로 고정된다. 이 때문에 수퍼히어로 영화는 모두 액션 영화이거나 액션 요소가 강하며, 수퍼히어로 게임의 주류 또한 상황이 비슷하다. 수퍼히어로 영화의 성과 게임이 참고할 수 있었던 수퍼히어로 영화 장르의 역사를 보면 그 결과로 나온 클리셰의 구조를 요약할 수 있다. 영상화의 시도는 40년대부터 있었지만, 수퍼히어로 영화라는 하위 장르를 집대성한 첫 작품은 1989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영화였다. 2003년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2’는 앞선 배트맨의 성과를 좀 더 대중적인 형태로 구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수퍼히어로의 캐릭터성 – 작중 세계의 구현 – 영화 서사의 성격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모델이었고, 이는 사실 원전 만화에서 명작들이 가닿은 지점이기도 했다. 팀 버튼의 1989년 배트맨 코스튬. 원전의 코스튬에서 회색과 남색 부위를 없애버렸다. 이 코스튬은 어둑한 고담시를 구현한 미장센, 심리적 불안정을 드러내는 연기와 유기적으로 맞아떨어졌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는 현실적인 수퍼히어로를 보여주려 애썼다. 이는 마블의 캐릭터 묘사 전략이기도 한데, 영화의 사실적인 뉴욕 풍경 및 스파이더맨의 오리지널 캐릭터성과도 맞아 떨어졌다. 이 두 영화의 성취를 통해 수퍼히어로 영상 문학에서 정형화된 클리셰 구조가 등장했다. 초반에는 히어로와 빌런의 오리진 스토리를 보여준다. 이후 전개에서 둘의 갈등이 형성되어 부딪히면서 액션 장면들이 나오고, 빌런의 계획을 히어로가 박살내는 절정부에서 둘의 최종 결전이 벌어진다. 히어로의 승리로 이야기가 종결된 후에는 다음 영화를 예고하는 짤막한 에필로그가 덧붙는다. 이렇게 클리셰를 완성한 수퍼히어로 영화는 2008년,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와 존 패브로의 ‘아이언맨’에서 다음 단계로 진입한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정립된 서사 구조를 따라가는 한편 교묘하게 뒤틀어서 다른 용도로 썼다는 점이다. 다크 나이트 3부작은 원전 만화에서 성공했던 상징 체계 도입 전략을 써서 성공했고, ‘아이언맨’은 에필로그를 이용해 작중 세계 확장 전략을 시작했다. 다크 나이트 영화는 미국 의회도서관의 영구 보존 영화에 포함되는 걸작으로 남았다. 아이언맨의 첫 영화는 기획도 거창하지 않은 평범한 수퍼히어로 영화로 제작되었으나 ‘장비 제작’을 서사의 중심에 놓는 등의 독특한 테이스트가 현실감을 부여하면서 독자적인 성취를 이뤘다. 이 두 영화의 성취는 만화 원전의 두 회사, DC와 마블의 스타일과도 걸맞는다. DC는 수퍼히어로 장르를 개창한 회사이며, 그래서인지 영웅의 신적 면모를 강조하는 스타일을 갖고 있다. 이는 서사가 상징 체계와 궁합이 잘 맞는다는 의미다. 마블은 스탠 리 이후 ‘현실성의 닻’을 독자적 스타일로 하고 있다. 현실의 독자와 유사성을 설정과 서사에 집어넣어, 독자의 감정이입을 꾀하는 전략인데, 이것이 아이언맨 이후 진행된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다만 DC 캐릭터들의 작가주의적 스타일은 이후 한참 길을 찾지 못하다가 2019년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에서 간신히 부활한 반면, 마블이 시도한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인피니티 사가의 완성이라는 확장 전략의 업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수의 영상 작품이 하나의 서사로 확장 통합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그러나 현재에는 다음 클리셰로 발전하지 못하면서 목적 잃은 확장이 되어 답보 상태에 이르러 새로운 돌파구가 될 작품을 기다리는 상태다. 수퍼히어로 게임, 시작 그리고 수퍼히어로 게임은 영상 장르가 겪은 이 모든 경험을 흡수했다. 기본적으로 게임에서의 수퍼히어로 서사 또한 만화와 영화가 먼저 만들어놓은 클리셰 구조를 따라간다. 당연한 것이, 게임은 대결 서사를 녹여내기 딱 좋은 플랫폼이다. 하지만 초창기의 수퍼히어로 소재 게임은, 서사 구조가 복잡하거나 장대하지 않았고 게임 디자인이 심층적이지 않았던 초기 게임의 특성을 그대로 공유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르는 스크롤 액션이었다. 특히 이런 게임들은 영화 시장에서 히트한 작품의 홍보용 게임이었는데, 1989년 배트맨 영화를 기반으로 한 패미컴의 배트맨 게임 시리즈가 대표적이었고, 이런 류의 게임들은 대부분 퀄리티가 낮았다. 반면 코나미의 1992년작 ‘엑스멘’은 영화에 기대지 않은 게임이었다. 여전히 장르는 벨트스크롤 액션이었지만, 익숙한 장르를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이미 시장에서 널리 알려진 캐릭터의 인기를 이용해 충분히 히트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려 6인 플레이가 가능했던 엑스멘. 스크롤 액션 장르 다음으로 수퍼히어로가 이식된 장르는 격투였다. 역시 마블의 캐릭터들이 쓰였는데, 1994년의 ‘엑스멘: 칠드런 오브 디 아톰’, 1995년의 ‘마블 슈퍼 히어로즈,’ 바로 다음 해 나온 캡콤의 ‘엑스맨 vs 스트리트 파이터’와 이후 시리즈는 대결 서사를 납작하게 압축하면 격투 게임 디자인으로 치환 가능함을 간파한 결과물이다. 비록 캐릭터 밸런스는 엉망이었지만 캡콤의 ‘vs 시리즈’는 주욱 이어지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한다. 이 계보는 DC 방면에서는 2008년의 ‘모탈 컴뱃 vs DC 유니버스’를 거쳐 2012년의 ‘인저스티스: 갓즈 어몽 어스’로 이어진다. 인저스티스 시리즈는 수퍼히어로 게임 중 격투 장르의 최신판이다. 수퍼히어로 게임, 액션 어드벤처 스크롤 액션, 격투를 지나 수퍼히어로 서사가 게임에서 제대로 꽃을 피운 장르는, 액션 어드벤처다. 2009년 락스테이디의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은 배트맨의 캐릭터성, 원전 서사의 특성, 게임 디자인의 완성도 모두를 잡아낸 명작으로, 이후의 수퍼히어로 게임의 전형성을 제시해냈다. 하지만 이 정점까지 가는 길은 험했다. 2000년, 액티비전에서 ‘스파이더맨’이 발매되었고 후속작 ‘스파이더맨 2: 엔터 일렉트로’가 이듬해에 발매되었다. 최초의 3D 스파이더맨 게임이었으며 액션 어드벤처 장르에서 전투와 웹 스윙 액션을 구현해냈다. 이 시리즈의 시도는 곧이어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발매된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영화를 게임화한 시리즈와 액티비전의 2008년 ‘스파이더맨: 웹 오브 섀도우즈’, 2010년 ‘스파이더맨: 섀터드 디멘션즈’ 등의 시도로 확대되었다. 한편 2005년에는 영화 ‘배트맨 비긴즈’의 홍보용 게임 또한 유사한 성과를 올렸다. 영화에 기대는 게임임에도 2005년의 배트맨/스파이더맨의 두 작품은 다소의 완성도를 보인다. 스파이더맨은 웹 스윙 액션을 오픈월드에서 펼친다는 게임 디자인을 완성해가고 있었고, 배트맨은 연막탄 같이 환경에 맞는 도구를 사용해 적을 제압한다는 게임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둘 모두 각자의 캐릭터성을 구현해낸 성과다. 이 성과가 2009년의 ‘아캄 어사일럼’에서 시작되는 아캄 시리즈와 2018년 인섬니악의 ‘마블즈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캄 시리즈의 성취는 이후 스파이더맨 게임에서 재조합된다. 영화에서 있었던 일이 그대로 게임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마블즈 스파이더맨은 아캄 어사일럼과 함께 이후 등장할 수퍼히어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이 두 작품에서의 배트맨/스파이더맨은 원전 만화의 배트맨/스파이더맨을 체험하는, 게임 자체의 특성을 십분 이용했다. 아캄 시리즈의 수사 모드는 탐정 소설의 후예로서 “세계 최고의 탐정”인 배트맨의 캐릭터성을 반영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웹 스윙 액션 또한 같은 성격의 요소다. 수퍼히어로 캐릭터의 캐릭터 컨셉 자체를 게임 디자인에 녹여낸 것이다. 물론 프리플로우라는 간편하면서도 화려한 전투 시스템이 아캄 어사일럼에서 마블즈 스파이더맨으로 이어진 것도 성과였다. 이 두 시리즈를 통해 수퍼히어로 게임의 주류는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장르가 되었고, 이에 따른 클리셰도 정립되었다. 영화와 달리 문서의 형태로 전달이 가능한 오리진 스토리는 생략한다. 오픈월드 내지는 느슨하게 열린 형태로 연결되는 스테이지가 게임 내 공간이 된다. 액션 어드벤처에서 전투를 하며, 영상과 달리 시간 제한이 없는 게임의 특성상 빌런도 여럿 등장하기에 결전 서사도 여럿 중첩된다. 캐릭터는 롤플레잉처럼 레벨링 성장을 하는데, 이 과정을 배트맨의 장비나 스파이더맨의 수트를 업그레이드하는 형식으로 풀어낸다. 이 클리셰를 종합한 첫 번째 시도가 2020년의 ‘마블즈 어벤저스’다. 오픈월드는 포기한 대신 각 스테이지가 매우 넓으며, 빌런만이 아니라 히어로도 여럿 등장하며, 성장 시스템이 있고, 프리플로우 대신 진 삼국무쌍과 유사한 액션 시스템을 사용했다. 이 작품의 만듦새는 다소 떨어지긴 했으니 캐릭터별 특색을 가진 액션은 잘 표현되었고, 같은 형태가 이후의 AAA 수퍼히어로 게임에서 반복되었다. 바로 다음 해에 발매된 ‘마블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만 하나로 축소한 마블즈 어벤저스의 업그레이드 버전에 가깝다. 2022년의 ‘고담 나이츠’는 아캄 시리즈의 연장선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같은 해 발매된 ‘미드나잇 선즈’는 앞선 클리셰를 대부분 따르지만 장르가 X-COM 스타일의 턴제 전술인 것이 특징이다. DC 캐릭터의 레고 버전을 컨셉으로 한 레고 DC 게임 시리즈도 이런 분류에 포함된다. DC 캐릭터의 레고 버전을 이용해 게임을 만든 레고 DC 시리즈의 게임 또한 액션 어드벤처가 기본 장르다. 그리고 영화의 예에서 보듯 클리셰 정립이 완료되면 정체기가 등장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게임의 단점이 마블즈 어벤저스와 동일한 점, 고담 나이츠의 완성도가 애매했던 점, 마블즈 어벤저스와 미드나잇 선즈가 결국 흥행에 실패한 점은 수퍼히어로 게임 또한 영화처럼 다음 돌파구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넓은 맵에서 벌어지는 액션과 성장의 경험은 이미 충분하다. 오픈월드에서의 액션 어드벤처는 폭넓은 경험을 보장하지만, 경계가 명확하다. 그렇다면 다른 시도는 무엇이 있을까? 수퍼히어로 게임의 다른 시도 주류의 시도와는 동떨어진 장르에서도 수퍼히어로 서사를 써보려는 시도가 있다. 가장 먼저 모바일 환경의 게임에서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한 다양한 게임들이 있다. 2018년에 발매하여 2020년에 종료한 ‘DC 언체인드’는 액션의 외피를 쓴 수집형 게임이다. ‘마블 퍼즐 퀘스트’, ‘마블 스트라이크 포스: 스쿼드 RPG’, ‘마블 퓨처파이트’ 같은 게임들 또한 매치3 퍼즐이나 수집 장르의 게임에 수퍼히어로 스킨을 씌운 수준이다. 이런 사실상의 수집 장르 게임이 카드 배틀의 형태로 바뀌는 시도는 이제 시작되는 중이다. 2023년작 ‘마블 스냅’은 게임성 면에서는 호평을 받았으나, 얼리 억세스로 시작한 ‘DC 듀얼 포스’는 2월 29일에 서비스를 종료할 예정이다. 한편 MMO 장르에서는 수퍼히어로가 흔하지 않다. 유의미한 게임은 ‘시티 오브 히어로즈’(COH)와 ‘DC 유니버스 온라인’(DCUO)이다. COH는 2004년에 시작, DCUO는 2011년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MMORPG 장르가 클리셰와 시스템이 완성된 후 긴 정체기를 겪는 장르여서인지 신작이 없다시피하다. 그나마 2013년에 시작한 ‘마블 히어로즈’는 핵 앤 슬래시의 MMO였는데, 2017년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선구자인 COH 또한 2019년에 결국 서비스를 종료해 유저 서버만 남았으니, 현재 수퍼히어로 MMO 게임은 DCUO가 유일하다시피 한 상태다. COH와 DCUO의 특색은 커스터마이징에 있다. 이 두 게임은 기존 히어로/빌런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방식인데, 그래서 캐릭터의 초능력 또한 스킬 트리 조합의 형태를 통해 자기만의 초능력 조합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택했다. 스킬 조합을 통해 자신만의 수퍼히어로를 커스터마이징한다는 컨셉은 게임 제목인 ‘시티 오브 히어로즈’와 잘 어울렸다. DC 유니버스 온라인은 COH와 같은 계열의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한다. 이는 새로운 수퍼히어로가 되어 기존 DC의 수퍼히어로 캐릭터를 멘토로 둔다는 스토리와 어울린다. 아쉽게 끝난 장르 도전도 있다. 클래식한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을 만들어 온 텔테일 게임즈는 DC에서는 배트맨을, 마블에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사용해 2016년과 2017년에 게임을 발매했다. 수퍼히어로의 요건 중에서 서사 부분에 집중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게임들의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텔테일 게임즈가 경영난으로 인해 폐업하게 되면서 일단락 되었다. 다음 지점을 향한 고민 수퍼히어로 장르에서는 역사에서 반복되어온 공식이 하나 있다. 이 산업에서 혁신이라 할 수 있는 시도는 DC 코믹스가 먼저 시도한다. 장르를 개창한 최초의 수퍼히어로인 수퍼맨이 DC의 캐릭터이며, 수퍼히어로 팀이라는 아이디어도 DC가 먼저 시작했으며, 장르의 두 번째 확장기인 실버 에이지(Silver Age)를 시작한 것도 DC가 플래시를 통해 멀티버스 서사를 들여오면서였다. 실버 에이지의 다음 시대를 연 것도 DC였으며, 영상화 시대의 방점도 배트맨 영화들이 수행했다. 반면 마블 코믹스는 시장의 혁신을 완성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실버 에이지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아이언맨인 것과, 배트맨에서 생긴 영상화 조류의 변곡점을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 영화가 이어받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반면 게임에서 수퍼히어로 게임의 주류가 액션 어드벤처 장르로 정립되는 과정은 예외로 보인다. 다수의 스파이더맨 게임이 시도한 3D 오픈월드 액션의 시도가, 비슷한 시도를 한 배트맨 게임보다 더 충실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시도를 종합하여 변곡점이 된 작품이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이었고, 이 시스템을 계승해 발전시킨 작품이 ‘마블즈 스파이더맨’이라는 것은 역사의 공식대로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초기의 유산을 이어온 격투 장르와, 주류가 된 액션 어드벤처 장르 외의 수퍼히어로 게임은 성과가 미미하거나 없거나 계보가 끊긴 상태다. 앞서서 영화와 게임에서 수퍼히어로 장르가 정체기라는 서술을 했지만, 기실 수퍼히어로라는 장르 전체가 현재 정체기다. 최초 원전인 만화에서는 풍부한 역사와 저렴한 표현 형식의 강점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혁신을 꾀해 왔지만, 최근 10여 년 동안은 자기 복제 혹은 자기 변주의 레벨에 머무는 중이다. 그리고 만화에 비해 표현 형식을 구현함에 있어 자본이 더 필요한 영화와 게임의 경우에는, 이미 만화가 쌓아놓은 다양한 형식의 서사를 이식해 오거나 자신들만의 형식을 개척하기에는 굼뜬 편이다. 그리하여 현재 수퍼히어로 만화와 영화는 다음 단계의 성과가 어떤 것인지 제시하는 작품을 기다리는 중이다. 반면 수퍼히어로 게임은 현재 주류가 된 액션 어드벤처라는 장르적 한계를 깨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 그런 돌파구를 보여줄 작품을 기다린다. 수퍼히어로 영화는 등장 요소의 문화적 다양성을 다음 지점으로 정했고, 그 지점으로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쌓는 중이다. 수퍼히어로 게임의 화두는 무엇일까? 같을까, 다를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전쟁과 절차와 수사와 죽음과 : 탈군사주의와 전쟁 게임

    글의 시작부터 이야기 했듯, 비디오 게임과 군사주의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파트너와도 같다. 즉 게임에 전쟁의 그림자가 조금이라도 드리우는 순간, 무시무시한 존재감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마사 이즈 데드」가 전쟁을 직접 지시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전쟁의 역량은 그 안에 깊숙히 파고든다. 다른 이유가 없다. 「마사 이즈 데드」가 비디오 게임이기 때문이다. < Back 전쟁과 절차와 수사와 죽음과 : 탈군사주의와 전쟁 게임 25 GG Vol. 25. 8. 10. ! Widget Didn’t Load Check your internet and refresh this page. If that doesn’t work, contact us. Tags: 군사주의, 욕망, 반전운동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텍사스 한복판에서 사회주의 게임의 깃발을 꽂다 - Tonight we Riot

    ‘투나잇 위 라이엇’은 너무도 투박하게. 그리고 솔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단순하게 바라보자면 그저 이룰 수 없는 폭력과 메시지만을 담은 게임이 될 것이란 것은 분명한 단점이다. 하지만 적어도 몇 부분에서는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려 노력하는 계기로는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현실의 한계와 폐해를 담아낸 게임이 있듯이, 한편으로는 해방이라는 소재로 사회주의의 한계와 현실적 고민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게임이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 Back 텍사스 한복판에서 사회주의 게임의 깃발을 꽂다 - Tonight we Riot 06 GG Vol. 22. 6. 10.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 미국 내에서 백인 비율이 가장 많은 지역. 마초이즘으로 대표되는 도시 텍사스. 텍사스는 맥시코와의 접경지역이라는 특성에 기반하여, 미국의 역사 속에서도 특수하고 주체적인 성향을 갖는 장소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텍사스의 중심 오스틴. 이 곳에서 하나의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이 있는 장소를 생각하면 떠올리기 어려운. 붉은 물결이 나부끼는 인디 타이틀 ‘투나잇 위 라이엇(Tonight We Riot)’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메인 화면부터 적기. 붉은 깃발이 나부끼는 투나잇 위 라이엇은 분명하게 위험한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문제가 극에 달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지극히 사회주의적-동시에 아나키즘적인-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혁명으로 세상을 뒤집어 엎자’는 동의하기 어려운 형태의 것으로 게임이 자리할 수 있어서다. 따라서 게임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개발사가 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와 전달 방식. 그리고 여러모로 문제작이 될 법한 이 게임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독특한 개발사의 위험한 메시지를 담은 ‘투나잇 위 라이엇’이 현재 사회상에서 가질 수 있는 존재감을 말이다. 텍사스 한복판에서 사회주의를 외치다 - PPU 512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왼쪽으로 매우 치우쳐진 게임을 만든 이들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무릇 창작물에는 만든 사람들의 생각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투나잇 위 라이엇’처럼 소재가 매우 명확한 게임이라면, 이와 같은 경향은 더 크기 마련이다. 어떤 인물들이기에 좌측 방향 지시등을 넣고 악셀을 끝까지 밟는 시도를 하게 되었는가. 배경에는 어떠한 요소가 있는 지를 알아보는 것으로 게임이 만들어진 맥락을 짐작해볼 수 있다. 우선 흥미로운 점은 ‘투나잇 위 라이엇’이 미국 개발자들 손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개발사인 픽셀 근로자 조합 512(PIxel Pushers Union 512, 이하 PPU512)는 미국 공화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위치하고 있다. 즉, 가장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띄는 장소에서 매우 급진적인 메시지를 담은 게임을 만든 셈이 된다. 개발사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노동조합(Union)’이다. 사무실 근로자를 뜻하는 속어 Pencil Pusher에서 영감을 받아 픽셀 근로자(Pixel Pusher)로 회사의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을 표방하는 만큼, 이 회사에는 마땅한 소유자가 없다. 회사는 구성원인 노동자들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고 이익이 모든 구성원에게 수익과 책임이 균등하게 분배된다. 회사의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특정 인물은 없으며, 모든 결정은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취합하여 결정한다. * 그러니까, 이런 친구들이다. ‘데드셀’로 성공 궤도에 오른 프랑스의 개발사 ‘모션트윈(Motion Twin)’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는 대표도 소유자도 없는 독특한 회사의 형태를 가진다. 기존과 다른 형태의, 소위 ‘좌파적’이라 정의할 수 있는 이러한 개발자들의 지향점은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 Wobblies, 워블리)와 지향점이 겹쳐 있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는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매니저를 선출하는 작업장 민주주의를 채택하여 운영하거나, 구성원들이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가지게 된다. 워블리의 성향이 아나코-생디칼리즘(anarcho-syndicalism)에 가깝다는 것을 고려하면, PPU 512와 같은 인디 개발사들의 성향은 아나키스트적 상향까지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이들은 구성원들의 직접행동, 연대와 노동자의 자주경영 등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해보면, 개발사의 성향 자체는 개인이 권력이나 통제로 억압되지 않고 공동체의 자치로 구성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구성원들의 노동운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PPU 512의 설립자이자 구성원 중 한 명인 테드 앤더슨(Ted Anderson)은 지난해 GDC2019에서 인디 개발사의 노동자 협동 모델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유럽의 게임 노동자 연합(Game Workers Unite)에 긍정적인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 여러가지 측면에서 정체성이 매우 확고한 개발조직인 셈. 이렇듯 PPU 512는 그 정체성이 매우 분명한 회사이자 조직이다. 개인의 자유와 결정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들에게는 구성원과 공동체의 자율이 중요하게 다뤄지며, 직접적인 노동 운동과 행동 등을 통해서 사회를 바꿔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PPU 512 구성원 전반의 가치관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창작물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분명하게 급진적인. 그리고 핍박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주제는 ‘투나잇 위 라이엇’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아주 직접적이고 포장이 없는 날것 그대로의 메시지가 말이다. 투박하게 게임으로 담아낸 소재 ‘투나잇 위 라이엇’은 인간성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담아낸다. 플레이어는 악덕 자본가가 지배한 디스토피아적 도시국가에서 한 명의 노동자이며, 붉은 깃발을 한 손에 들고 다른 노동자들을 규합하고 자본에서 ‘해방’되는 것이 목표다. 좌에서 우로 이동하며 등장하는 적들과 대치하고 노동자들을 제압하는 경찰과 자본 권력에서 해방을 노린다. 소재 자체는 그간 노동운동의 역사에 수도 없이 있었던 것들이지만, 표현은 직설적으로 이루어진다. 게임 플레이의 기본적인 틀은 ‘군중 제어 액션’ 또는 피크민과 같은 AI액션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스테이지 끝까지 군중을 최대한 많이 살려서 도달해야 하고, 스테이지 진행 도중에는 다양한 형태의 적들이 등장해 플레이어를 방해한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군중 속의 일원만을 조작하게 된다. 투나잇 위 라이엇에는 플레이어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적 캐릭터 또는 플레이어가 스스로를 투영할 수 있는 주인공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군중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도, 명령을 내리는 커서의 역할도 없다. 어디까지나 깃발을 든 사람은 노동자의 일원이며, 사망 시에는 다른 노동자가 깃발을 들고 해방을 이끌어 나간다. 이는 메시지와 게임 플레이 시스템에서의 조화라고 볼 수 있다. PPU 512가 기반을 두는 지향점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구성원인 노동자들의 자율과 선택이다. 그렇기에 게임은 영웅이 아닌 평범한 노동자, 군중의 하나로 플레이어를 설정한다.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집단을 만들고 직접행동으로 변화를 이끌어 나간다는 생각 그대로다. PPU 512가 개인의 주체적인 결정과 자유에 방점을 두는 것처럼, 게임 또한 개인이 집단으로 구성되고 목적을 달성하는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대를 지휘하여 무언가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형태가 유사한 인디 게임 ‘시 솔트(Sea Salt)’와 비교해보면 투나잇 위 라이엇의 플레이는 조금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종하는 주체가 플레이어기는 하지만, 시 솔트처럼 부대를 하나의 묶음으로 보기 보다는 그 속에 개별적인 존재들이 있음을 강조한다. 투나잇 위 라이엇에서 충원되는 유닛들은 전투에 소비되는 소모적인 자원보다, 보존하고 함께 목적에 도달하는 존재에 가깝다. 세밀한 움직임을 조절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위험을 피하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다. * 커서가 곧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는 인디 게임, '시 솔트' 흥미로운 것은 개발자 스스로가 "솔직하고 비현실적인 좌파적 게임(leftist game)"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음에도 파괴 행위에 대한 보상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스테이지의 목적은 자본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이지만,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폭력들에는 마땅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경찰들의 피가 바닥에 얼룩져도, 살수차가 터져나가도 스테이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게임 내에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클리어 시,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수에 따라서 결정될 뿐이다.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 투나잇 위 라이엇은 평이하게 구성된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다. 특징적이거나 놀라운 시스템, 플레이는 없지만, 적어도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딱히 모난 곳은 없다. 메시지가 분명한 게임임을 감안하고도 플레이 과정에서 과도한 불편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극복할 수 있는 어려움과 준수한 플레이를 보여준다. 이는 투나잇 위 라이엇의 게임 플레이가 메시지에 매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PPU 512는 이 부분에서 나름의 선을 지켰다. 자신들의 역할은 비현실적인 어디까지나 좌파적 게임을 구성하는 것에 있고, 담아낸 메시지와 비현실적 배경에서 어떤 것을 읽어낼지는 플레이어의 역할로 넘긴 셈이다. 등장하는 적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만든 게임에서 ‘담아낸 메시지가 옳다’고 강요하는 방향보다는, 그저 생각해보는 계기로 구성하고 게임으로서의 플레이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플레이의 방식과 시스템에 집중할 수 있다. 더불어 개발자들의 의도와 메시지를 읽어내고자 한다면, 스스로 몇 가지 해석을 곁들여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시선에 따라서는 파괴를 주제로 한 게임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억압 그리고 분노에 대하여 투나잇 위 라이엇의 게임 플레이는 너무도 확연하게 억압-자본에 의한 것이든, 권력에 의한 것이든. 혹은 극단적 자본에 의한 것이든-에 맞서는 저항을 그리고 있다. 억압이라는 폭력에 맞서 싸우는 일련의 과정은 적기와 피. 그리고 파괴와 폭력의 형태로 완성됐다. 비슷한 소재를 다뤘던 ‘라이엇: 시빌 언레스트(Riot: Civil Unrest)’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2017년 얼리 액세스로 출시된 ‘라이엇: 시빌 언레스트’는 ‘투나잇 위 라이엇’과 마찬가지로 투쟁이라는 다루고 접근한 바 있다. 실제 벌어졌던 사건들을 게임의 배경으로 놓아두고 시위대와 공권력. 양 측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했다. 라이엇 : 시빌 언레스트의 지향점은 파괴가 아니다.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며, 양측의 관점이나 가치관을 살펴보고서 플레이어 스스로가 감정과 생각을 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직설적이기 보다는 논란을 배제한,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접근법을 택했다. * 양 쪽 모두를 플레이할 수 있던 '라이엇: 시빌 언레스트' 하지만 ‘투나잇 위 라이엇’은 다르다. 의도가 명백하게 정치적이고 게임이 보여주는 폭력은 강렬하다. 존재하는 모든 억압으로의 해방이 이루어져야만, 노동과 생각의 해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주장에 근거한다. 이를 두고 ‘너무 급진적이어서 불편하다’는 감정이 고개를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게임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 이와 같은 행동으로 이어지기는 불가능하고 동시에 대중의 지지도 받지 못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임에 구현한 저항의 형태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개발 구성원 또한 동시에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개발 구성원의 지향점에 맞게 게임 전반을 구축하기는 했지만, 이외의 주변 환경은 여전히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다양 복잡한 사회 시스템이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벗어나서는 현재의 생활이 유지되기 어렵다. 당장 이들이 게임을 출시한 플랫폼들도 현재의 사회적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대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자본주의에는 이미 많은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가미되어 발전해 나가고 있는 상태다. 복지, 노동, 기본권 등 정책적으로든 사회 규범적으로든 사회주의의 요소들은 이미 현실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게다가 폭력을 통해서 근본적인 갈등과 문제점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지금까지의 역사를 통해 계속해서 증명된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PPU 512가 전달하고자 한 것은 적기와 피, 화염으로써 대표되는 노동 해방이 아니라, 분노에 대한 표현에 가깝다. 게임 플레이가 어느 정도의 목적성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가르치려 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담아내고자 한 메시지의 강렬함과는 별개로 중심은 게임으로서의 표현에 확실하게 무게를 두고 있으며, 사상을 선전하기 위한 매체로 작동하지는 않았다. 사회 복지나 안전망이 전무한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한 세계를 배경으로, 현실에서 벌어지기 어려운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극단적인 상상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있을 수 없고 벌어질 수 없음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분노를 표출하고 이후의 해결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역할에 가깝다. 속된 말로 "이렇게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빡쳐있다. 그러니까 우리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 좀 해보자" 같은 느낌에 가깝다. * 이코노미스트가 분석했듯, 사회 불평등이 사회주의 열풍으로 이어진 점에서 표현의 방향이 같다고도 볼 수 있다. 스스로의 정치성향을 아나코-생디칼리즘이라고 언급했던 노암 촘스키(Avram Noam Chomsky)의 발언과 ‘투나잇 위 라이엇’을 양 쪽에 놓고 생각해보자. 정치 성향에서 촘스키와 방향을 같이하는 PPU 512의 의도는 약간은 더 명확해진다. 촘스키는 자본주의의 폐해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 이후 자본이 정치를 억압하고 조종하여 자본의 이익을 최대화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 노동자와 시민은 억압되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여 자본과 정치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촘스키는 이 과정에서 해방의 방법론을 폭력이 아닌 대화와 소통으로 봤다. 언어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촘스키는 모든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비판적 사고를 통한 교류와 도출되는 대안들로 억압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투나잇 위 라이엇’은 이러한 관점에서 소재가 될 수 있다. PPU 512 또한 이러한 점을 노린 것처럼 보인다. 테드 앤더슨은 인터뷰에서 “내게는 모든 것이 정치적이다. 모든 사람이 평소에 행하는 크고 작은 활동들 모두가 그러하며, 크고 작든 간에 초라하거나 부정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이 이와 같은 정치적 측면의 역사와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정치와 개인은 불가분한 관계이며, 그렇기에 이러한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메시지를 담은 게임들로 현실적인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란 방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 GDC 2019에서 강연을 진행한 PPU 512의 테드 앤더슨 즉, PPU 512는 게임을 통해서 나름의 화두를 던진 셈이다. 결론을 내거나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시작으로 생각하고 고민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목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최근 몇 년간 미국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회주의적 화두-민주적 사회주의를 말하는 버니 샌더스와 같은 인사를 포함한-를 보면, ‘투나잇 위 라이엇’은 비현실적인 상황을 통해서 현실적 불합리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생각과 논의를 해보게 만드는 역할도 가능해 보인다. 투나잇 위 라이엇이 발매된 지 약 1년이 지난 2021년. PPU 512가 자리한 텍사스에 대한파 및 정전 사태가 발생하며, 이들의 시각은 한편으로는 명확하고 분명했던 우려와 같은 것처럼 느껴진다.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자리했던 텍사스는 1845년 미국의 아래로 편입됐다. 보다 거대한 부를 낳는 방향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후 텍사스는 자본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거의 모든 것을 시장에 흐름에 맡긴다는 선택을 내렸다. 지극히 독자적인 이들의 성향과 선택은 이후 텍사스를 미국 공화당이 꾸준히 강세를 보이는 주이자, 보수적이고 국수주의에 가까운 색체를 띄는 것으로 연결됐고 점차 시장은 극한으로 자유화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대적 흐름 속에서 텍사스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자본이라는 깃발 아래, 삶을 영위하고 하나의 부품과 같이 살아간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과 지역적 성향은 각자의 삶이 불평등하고 극복할 수 없는 하나의 억압과 제한 속에 있는 것처럼 만들었고. 필연적으로 안온한 생활이 위협받는 상황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상황은 PPU 512가 적기를 나부끼게 만든 이유이자. 게임을 통해서 스스로의 열망을 표현하는 배경이 됐다. 실제로 게임의 완성 이후인 2021년 2월. 대한파 상황에서 자본이 일상의 평온함을 위협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을 보면, 자본가와의 상황을 뒤집는 ‘투나잇 위 라이엇’은 텍사스라는 장소이기에 가능했던 것이자. 텍사스에서 조합을 만들었던 반골들의 감정 표현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투나잇 위 라이엇’은 너무도 투박하게. 그리고 솔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단순하게 바라보자면 그저 이룰 수 없는 폭력과 메시지만을 담은 게임이 될 것이란 것은 분명한 단점이다. 하지만 적어도 몇 부분에서는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려 노력하는 계기로는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현실의 한계와 폐해를 담아낸 게임이 있듯이, 한편으로는 해방이라는 소재로 사회주의의 한계와 현실적 고민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게임이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이 "저항하는 것은 곧 창조하는 것이고 창조하는 것은 곧 저항하는 것이다"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현실에 분노하고 개인의 상상력에 기반한 다양한 창조와 저항이 현실을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지는 않을까. 독특한 회사 구조와 발칙한 상상력을 소재로, 텍사스 한복판에서 사회주의를 외치는 PPU 512의 결과물은 최근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상황들. 사회적 배경에서 생각해 본다면, 나름의 의미를 갖출 수도 있을 것이라 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정필권 농부이자 제빵사이자 바리스타. 현재는 게임 기자로 글을 쓴 지 8년차 입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왜 스네이크는 들개가 되었는가

    1987년 코지마 히데오(小島秀夫, Hideo Kojima) 감독이 제작한 〈메탈 기어(Metal Gear)〉는 여러 가지 의미로 특이한 게임이었다. 한 명의 캐릭터로 적진을 돌파한다는 점은 같은 제작사의 〈콘트라(Contra)〉 시리즈, 그 외 많은 게임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스테이지를 헤쳐나가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사뭇 새로운 감각이었다. < Back 왜 스네이크는 들개가 되었는가 03 GG Vol. 21. 12. 10. 1987년 코지마 히데오(小島秀夫, Hideo Kojima) 감독이 제작한 〈메탈 기어(Metal Gear)〉는 여러 가지 의미로 특이한 게임이었다. 한 명의 캐릭터로 적진을 돌파한다는 점은 같은 제작사의 〈콘트라(Contra)〉 시리즈, 그 외 많은 게임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스테이지를 헤쳐나가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사뭇 새로운 감각이었다. 코지마 히데오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게이머라면, 그가 작품에서 시도하고 있는 여러 연출이 영화적이라는 사실과 그 이유도 간단하게나마 알고 있을 것이다. 코지마 감독은 어린 시절 온 가족이 모여 매주 1편씩 영화를 감상하며 성장했고, 본래 영화감독이 되려고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게임 제작자의 삶을 살게 되었고, 그가 전개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여러 문제 의식은 그가 개발한 게임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재미있게도 시리즈의 첫 작품인 〈메탈 기어〉는 영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 탄생했다. 1985년 일본에서 [람보 2]가 흥행하자, 코나미(Konami) 경영진은 개발팀에게 MSX에서 실행할 수 있는 전쟁 소재 게임 제작을 지시한다. 베트남 전쟁으로 고통받은 개인의 아픔을 그려냈던 전작 [퍼스트 블러드(1982, ‘람보’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와 달리, [람보 2]는 다른 전개를 선보인다. 지휘관 사무엘 트라우트먼 대령의 설득으로 람보가 단신으로 적진을 돌파하는 모습을 선보인 것이다. 적진을 종횡무진하며 선보인 총격전과 액션은 [람보 2]의 흥행요소로 작용하여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코나미는 아마도 이런 흥행요소에 주목했던 것 같지만, 코나미가 원하는 화려한 효과를 구현하기엔 당시 MSX의 컴퓨팅 파워가 부족했다. 코지마 히데오 이하 개발팀은 역발상으로 총탄과 적병이 적게 등장해도 되는 방향으로 게임을 구상하기 시작했으며, 그 해결책으로 잠입을 게임의 핵심 요소로 도입하였다. 그렇게 〈메탈 기어〉는 원안이 되었던 [람보 2]의 요소 - 단독 침투한 요원과 무전을 통한 지휘관의 작전 지시 – 에 잠입이 더해져 탄생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부분은 기술적 한계로 인해 의도치 않게 게임 스테이지, 즉 공간에 대한 색다른 감각이 발생하였고 그것이 재미의 영역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다. 〈메탈 기어〉 의 배경은 용병 집단이 세운 가상 국가, ‘아우터 헤븐(Outer Heaven)’인데, 주인공 솔리드 스네이크(Solid Snake)는 선임 대원 ‘그레이 폭스’가 남긴 정체불명의 무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아우터 헤븐으로 잠입한다. 〈메탈 기어〉의 공간 경험은 일종의 ‘방’과 같은 감각을 준다. 아우터 헤븐이라는 거대한 배경을 구성하는 각각의 공간은 지형지물, 적병의 배치, 아이템 등의 차이를 두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연결된 방을 따라가다 보면 목표 지점에 도달하게 되고 거기서 주인공은 스토리의 분기점이 되는 이벤트를 맞닥뜨린다. 이런 아우터 헤븐의 공간 감각은 17,000여개의 정육면체 방으로 구성된 거대한 시설을 탈출하려 헤매는 영화 〈큐브(Cube, 1997)〉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컴퓨팅 파워의 한계 때문에 게임의 내용과 공간 감각은 각각 제한된 환경 아래에서 최선의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적과의 교전을 최소화해야하는 잠입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고 여기에 거대한 스테이지를 세분화하여 큐브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인식하도록 요구하며 게임이 설계된 것이다. 이런 성격은 후속작으로 발전하면서 서서히 강화된다. 컴퓨팅 파워가 차츰 증가하면서 교전 시의 효과, 배경 등을 묘사하는 그래픽 효과는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게임의 본질은 잠입에 있었다. 항상 긴장한 상태로 최적의 잠입을 수행하기 위해선 적의 주의를 돌리고, 마취총이나 격투전으로 경비병을 무력화해야 하며, 골판지 상자 같은 사물을 이용한 은/엄폐를 통해 플레이어의 존재감을 숨겨야 했다. 이 때의 게이머는 철저히 스네이크에게 이입하여, 그야말로 ‘뱀’과 같이 최대한 엎드린 채 적의 시선을 피해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스네이크는 후방의 지휘관/조력자와는 최소한의 연결만을 유지한 채 최전선에서 단독으로 움직인다. 항상 작품의 도입부에는 왜 스네이크가 홀로 움직여야만 하는지 나름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설명이 등장한다. 〈메탈 기어 솔리드(Metal Gear Solid, 1998)〉는 폭스하운드(Foxhound) 부대를 제대하고 은거하던 솔리드 스네이크에게 옛 상사인 로이 캠벨 대령이 찾아오며 시작된다. 캠벨 대령은 스네이크가 복무했던 폭스하운드 부대가 반란을 일으켜 알래스카 쉐도우 모세스 기지를 무단 점거하고 요인 2명을 구속, 메탈 기어 렉스(REX)를 탈취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이들을 제압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스네이크는 거절하지만, 거듭된 대령의 설득 끝에 결국 홀로 적진으로 숨어들어간다. 〈메탈 기어 솔리드 2 선즈 오브 리버티(MGS 2 Sons of Liberty, 2001)〉에서 스네이크는 완전히 군을 떠나 반(反) 메탈 기어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 필란스로피(Philanthropy)의 민간인 활동가로 등장한다. 스네이크의 동료 ‘오타콘(본명 할 에머리히)’은 미 해병대가 비밀리에 신형 메탈 기어를 개발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신형 메탈 기어의 존재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스네이크가 해병대의 수송선에 직접 잠입하며 게임이 시작된다. 이후의 작품들 역시 스네이크가 왜 혼자 잠입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지 설명하며 시작하는데, 이런 초반부 서사는 사실상 시리즈의 전통으로 정착했다. 최전선에 배치된 실행요원이 후방의 지휘관/조언자와 무전으로 연결되어있는 MGS 시리즈의 작전 구조는 항상 유지되지만, 〈메탈 기어 솔리드 3 스네이크 이터(MGS 3 Snake Eater, 2004)〉를 계기로 스네이크의 소속감에 변화가 생긴다. 스네이크가 더이상 미국을 위해 움직이는 병사이자 요원이기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세력으로 거듭나고자 시도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이걸 파악하기 위해 MGS 시리즈를 작품 속 타임라인 순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메탈 기어 라이징 리벤전스(2013)는 MGS 시리즈의 타임라인에는 포함되지만 라이덴이 단독 주인공이고, 잠입보다는 액션 중심의 게임으로 본문의 맥락과 무관하여 위 표에서는 생략했다. 네이키드 스네이크와 솔리드 스네이크 모두 일정 시기는 미군 소속으로 지내다 민간인이 되는 패턴을 보인다. 특별히 집중해야 할 부분은 〈스네이크 이터〉를 계기로 변하는 네이키드 스네이크의 소속이다. 〈스네이크 이터〉 이후 미군을 떠난 네이키드 스네이크는 〈포터블 옵스〉에서 FOX부대에 납치당하는데,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반군을 조직할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이어지는 〈피스 워커〉에서 스네이크는 자신이 조직한 반군에 ‘국경 없는 군대(Militaires Sans Frontières)’ 라는 이름을 붙이고 미소 냉전의 양강 구도에 개입할 수 있는 제3세력을 자처한다. 특히 스네이크의 동료이자 MSF의 부사령관인 카즈히라 밀러는 MSF를 용병 비즈니스 집단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정도다. 용병은 의뢰를 받아 움직이지만, 계약이 끝나면 의뢰주와의 관계도 끝난다. 이들을 구속할 수 있는 공적인 권력은 사라졌으며, 이들 스스로가 기득권과 맞설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되면서 스네이크 이하 병사들은 목줄을 끊고 야생으로 돌아간 들개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공교롭게도 들개로 돌아간 스네이크가 부각되는 시점은, MGS 시리즈가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시점(현실의 2014년 경)인 의 시대(스토리 상 1975-1982년)와 겹치게 된다. 코지마 감독이 〈메탈 기어 솔리드 V〉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MGS의 세계에 오픈 월드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MGS V는 코지마 감독의 의도와 달리 각각 〈그라운드 제로즈(Ground Zeroes, 2014)〉와 〈더 팬텀 페인(The Phantom Pain, 2015)〉으로 분할 출시되었는데, 게이머들은 를 통해 코지마 식의 오픈 월드를 일부 맛보게 되었다. 는 MGS V 시리즈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게임으로, 1개의 메인 미션과 6개의 사이드 옵스(콘솔 별 특전 미션 포함)로 구성되었으나 배경은 모두 쿠바에 위치한 미 해병대 기지 ‘캠프 오메가(Camp Omega)’ 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이 기지로 잠입하기 위해 스네이크는 해안 절벽을 맨손으로 거슬러 오르거나, 기지와 외부를 오가는 수송 트럭의 짐칸에 숨어드는 방식을 택한다. 하나뿐인 배경을 총 7개의 미션에 재활용해버린 이 게임의 분량에 대한 불만은 차치하더라도, 확실히 의 시점부터 종래의 큐브적 감각의 파괴가 감지된다. 더 이상 큰 공간이 여러 개의 방 형태로 분절된 것이 아니라, 큰 공간을 그대로 인식하도록 만든 것이다. TPP는 GZ와 마찬가지로 오픈 월드를 유지하되, 파괴된 큐브적 감각을 다시 불러오려고 시도한다. TPP의 넓어진 전장은 플레이어에게 아프가니스탄과 아프리카 앙골라-자이르 국경지대를 오가게 만든다. 이 넓은 전장을 동분서주하게 하면서 큐브적 감각을 되살리려는 시도는 메인 미션을 실행할 때 나타나는 ‘핫 존(Hot Zone)’에서 발견할 수 있다. 메인 미션의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플레이어는 도보 또는 차량을 이용해 핫 존을 이탈하거나, 아군 헬기 피쿼드(Pequod)를 불러 기지로 돌아가면 되는데, 이 때 핫 존이라는 개념은 광활한 필드의 일부를 미션 영역으로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핫 존 경계는 큐브와 달리 구속력이 낮고, 이 경계를 넘으면 자연스레 작전구역 이탈로 인한 임무포기 또는 임무실패 상태로 이행된다. 컴퓨팅 파워의 발전이 불러온 게임 속 공간의 확장과 스네이크의 들개화(化)는 어쩌면 피하기 어려운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 과정은 화려한 전쟁 액션 게임을 개발하라고 했던 코나미의 지시와 MSX의 성능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고 했던 역발상과 마찬가지로, 의도치 않게 나타난 결과에 가까울 것이다. MSX 환경에서 출발한 MGS 시리즈는 첫 번째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의 등장으로 인해 극적인 컴퓨팅 파워 변화를 맞이했고, 3D 폴리곤 그래픽으로 보강된 게임 환경을 확보했다. 도트로 구현된 전장을 오가던 스네이크는 이제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전장을 누비게 되었고, 스네이크가 마주한 큐브적 공간은 차츰 확장되어갔다. 그러나 실내외를 막론하고 3차원으로 구성된 전장을 활보할 수 있는 컴퓨팅 파워의 등장은 차츰 큐브적 공간을 이탈하고 싶게 하는 욕구도 함께 불러왔다. 전장 환경 묘사가 세밀해질 수록 플레이어들은 정해진 경로 외의 환경으로 진출을 시도했고, 게임 제작사들이 여기에 응답하면서 차츰 오픈 월드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경쟁작들의 공간 인식이 차츰 발전하는 현실에 맞춰 MGS 시리즈 또한 종래의 큐브적 공간을 탈출해야만 했다. 시리즈의 확장은 동시에 솔리드 스네이크 한 명만으로는 서사를 확장하기 어려운 상황을 직면하게 했다. 게임 속의 1995년부터 2014년을 아우르는 솔리드 스네이크의 서사를 보강하기 위해 코지마 히데오는 1970년대 냉전기로 세계관 확장을 꾀한다. 냉전 속 MGS 시리즈의 서사를 이끌 주인공으로 과거의 영웅이자, 〈메탈 기어〉에서 솔리드를 지휘한 빅 보스(=네이키드 스네이크)를 소환하며 작품의 타임라인을 보강한다. 와 〈포터블 옵스〉, 〈피스 워커〉는 냉전 시대를 헤쳐나가는 네이키드 스네이크를 그려내며 전체 세계관의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결국 작품의 타임라인이 차츰 탈냉전의 시대, 즉 〈메탈 기어〉와 솔리드 스네이크의 시대로 다가가면서 냉전 구도를 탈피해야만 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큐브적 공간의 탈출과 냉전 서사의 탈피라는 두 가지 요구는 새로운 MGS 시리즈에 동시에 수용되어야 했다. 특히 로의 이행은 빅 보스를 중심으로 한 서사에서 두 가지 요구가 모두 극에 달하였으며, 가장 기술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전체 시리즈가 종료되어야 함을 뜻했다. 큐브적 공간의 탈피로 넓어진 공간을 인식하는 동시에 구속을 거부하고 독자세력화된 스네이크는 결국 제한된 공간을 밀착 돌파하는 뱀의 쾌감을 잃어버리고 목줄을 끊고 탈출한 들개로 변하는 것이다. MGS 시리즈가 가졌던 뱀의 은밀함은 경쟁작인 〈스플린터 셀(Tom Clancy’s Splinter Cell)〉 시리즈, 〈히트맨(Hitman)〉 시리즈〉 등으로 넘어가 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가 들개의 자유로움이라도 확보했는가? 안타깝게도 들개의 자유로움마저도 온전히 확보하지 못한 걸로 보인다. 들개의 자유로움을 잘 구현한 게임을 찾자면 다른 오픈 월드 장르 게임을 예시로 드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락스타 게임즈의 , 〈레드 데드 리뎀션 2(Red Dead Redemption 2)〉를 플레이할 때 21세기 미국의 도시와 18-19세기 서부 황야를 활보하며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이 느꼈을 법한 생동감과 자유로움을 체험하게 된다. MGS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에서 뱀의 은밀함, 들개의 자유로움 어느 하나라도 온전히 확보하지 못한 것이 시리즈 전체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결함이 되진 않는다. 5편에서 시도된 오픈 월드의 세계관은 코지마 히데오 특유의 영화적 스펙타클과는 잘 어우러졌고, 자연스러운 컷씬과 화면 전환 등의 효과로 플레이어가 게임의 그 순간에 확실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전체 스토리 라인에서 전반부에 해당하는 빅 보스의 시대를 마감하는 역할 또한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완결성을 확보하려고 한 노력 또한 여실히 드러난다. 냉전 시대 미국의 요원으로 소련의 핵병기를 성공적으로 저지한 네이키드 스네이크의 활약상은 결국 그를 바탕으로 한 복제인간 병사를 만들어내는 계획으로 발전한다. 3편 〈스네이크 이터〉에서 전체 MGS 스토리가 시작되고, 5편인 〈그라운드 제로즈〉와 〈더 팬텀 페인〉, 그리고 〈선즈 오브 리버티〉를 거쳐 〈건즈 오브 패트리어트〉에서 완결을 맞는다. 이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아버지(네이키드 스네이크)의 행로를 따라가는 아들(솔리드 스네이크)의 이야기가 된다. 냉전 속에서 국가의 도구에 불과했던 아버지는 도구로서의 운명을 거부하고 독자세력이 된다. 그러자 그의 아들이 다시 국가의 도구가 되어 아버지를 제압한다. 시리즈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아들은 여태까지의 삶이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 온 것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다. 메탈 기어의 위협, 같은 복제인간 형제인 리퀴드 스네이크와의 갈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뒤에야 솔리드 스네이크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고자 결의하며 뱀의 임무를 모두 내려놓는다. MGS 시리즈는 기술의 한계로 큐브적 공간 속에서 국가의 통제 하에 임무를 수행하던 사냥개이자 뱀이었던 ‘스네이크’가, 기술의 발전으로 큐브적 공간에서 방출되는 동시에 통제를 거부하고 들개가 되어 홀로 서는 이야기로도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스네이크의 변화와 함께 그 창조자였던 코지마 히데오 감독 역시 코나미와의 갈등 끝에 홀로 서게 되는 얄궃은 운명을 마주한다. 28년이라는 전통과 충성심 높은 팬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코나미에게 최신 MGS 시리즈란 투자비용 대비 수익이 낮은 상품이었고, 이 때문에 결국 코나미와 코지마 히데오는 결별의 수순을 밟는다. 이 과정에서 코나미는 의 2015 플레이스테이션 어워즈 수상, TGA 2015 시상식에 코지마 히데오가 출연하지 못하도록 저지하기까지 했다. 코나미와 코지마 히데오가 결별한 바로 다음 날, 코지마 히데오는 본인의 이름을 딴 독립 개발사 ‘코지마 프로덕션(Kojima Productions)’ 출범을 발표하는 동시에 소니(Sony)와의 파트너십 체결 사실도 공개한다. 팬의 입장에선 정말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또한 코지마 히데오 없는 MGS 시리즈를 상상할 수 없는 전 세계의 팬들 덕분에 2018년 출시된 코나미의 〈메탈 기어 서바이브(Metal Gear Survive)〉는 결국 흥행에 참패하고 MGS 시리즈의 이름과 명성, 게임 엔진만을 가져다 쓴 완전히 별개의 게임으로 남았다. 다행인 것은 〈서바이브〉 출시 이전에 이미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MGS의 이야기를 모두 완성해서 시리즈에 담아냈기 때문에, 코나미가 개입하여 주제의식을 흔들어버릴 가능성은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또한 〈데스 스트랜딩(Death Stranding, 2019)〉를 통해 새롭게 제기한 ‘연결’의 주제도 2021년 현재 COVID-19 팬데믹을 맞아 큰 공감을 사면서, 코지마 프로덕션은 MGS를 즐겨 온 팬들과 새롭게 그의 서사에 공감한 팬들과도 성공적인 연결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코나미와의 불쾌한 결별에도 불구하고 들개로 전락하지 않은 코지마 히데오는 〈메탈 기어 솔리드〉와 〈데스 스트랜딩〉 이후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우리에게 설렘을 선사할지 기대해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장민호 한양대학교 대학원 장르 테크놀로지와 서브컬처학과 박사과정. 미국소설 연구로 석사를 받았고 인간의 정체성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 관심사는 SF문학 속 비인간의 정체성 문제와 공존의 가능성 등이다.

  • [Editor's view] 무용한 것들의 세계 속 효율을 생각하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중 하나였던 김희성(변요한 분)이 자주 하던 말을 떠올립니다. 나는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그런 것들. 인간이 만드는 모든 것들 중에 유용한 것이 삶을 지탱하는 기초라면, 무용한 것들은 그 기초를 딛고 삶을 좀더 풍요롭게 만들곤 합니다. 먹고 살 만 해지면 자아 실현을 돌아본다는, 마르크스가 말했던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삶은 모두에게 요원하지만 누구나 꿈꾸는 것이겠지요. < Back [Editor's view] 무용한 것들의 세계 속 효율을 생각하기 18 GG Vol. 24. 6. 10.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중 하나였던 김희성(변요한 분)이 자주 하던 말을 떠올립니다. 나는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그런 것들. 인간이 만드는 모든 것들 중에 유용한 것이 삶을 지탱하는 기초라면, 무용한 것들은 그 기초를 딛고 삶을 좀더 풍요롭게 만들곤 합니다. 먹고 살 만 해지면 자아 실현을 돌아본다는, 마르크스가 말했던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삶은 모두에게 요원하지만 누구나 꿈꾸는 것이겠지요. 게임도 어찌보면 대단히 무용한 매체입니다. 우리가 이 매체를 붙잡고 있는 이유나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이지는 않습니다. 말 그대로 무용한, 그저 플레이하는 순간이 즐겁고 감동적이기에 우리는 게임을 플레이합니다. 오히려 게임이 뭔가에 유용하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이겠지요. 아이템 거래나 랜덤박스 같은 문제들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무용한 게임 안에서도 우리는 유용성의 방법론인 효율을 생각합니다. 최적의 파밍 루트, 특정 구간 돌파를 위해 최소한의 시간과 자원을 들이는 방법을 우리는 연구하고 훈련합니다. 하지만 이는 현실의 유용성에 연관된 효율과는 다른 의미겠지요. 무용한 것에서 효율을 찾게 되는 이 아이러니는 무엇일까요? GG 18호는 바로 그 질문을 다뤄보고자 했습니다. 같은 주제를 두고 필자들의 시선은 제각기의 방향으로 향합니다. 완전히 비효율적인 게임, 게임 안에서의 최적화, 현실의 물류와 게임의 물류... 그러나 찬찬히 이들 글을 읽다보면 우리는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효율의 추구가 무엇인지 얼핏하게나마 감을 잡게 됩니다. 저도 김희성만큼이나 무용한 것들을 사랑합니다. 제가 디지털게임을 이처럼 오래 붙잡고 있는 이유는 이 매체가 가진 특유의 무용함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무용함을 글과 말로 다루는 일은 나름 우리 삶과 사회에 작게나마 유용성으로 남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이번 호의 주제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무용하면서도 유용한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위한 제노바 첸의 작업들

    게임이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전시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듯, 게임을 만드는 것 역시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술 매체로서 게임,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 게임을 예술 매체로 취급하는 새로운 시각과 함께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들의 존재감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 Back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위한 제노바 첸의 작업들 12 GG Vol. 23. 6. 10. 게임이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전시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듯, 게임을 만드는 것 역시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술 매체로서 게임,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 게임을 예술 매체로 취급하는 새로운 시각과 함께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들의 존재감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종종 사례로 언급되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제노바 첸(Jenova Chen)’이다. 제노바 첸(이하 첸)은 게임 〈저니 Journey〉(2012)의 제작자이다. 그는 댓게임컴퍼니(thatgamecompany)라는 개발 스튜디오의 대표이자 디렉터이며, 게임 퍼블리셔 안나푸르나 인터랙티브(Annapurna Interactive)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첸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게임 개발자로서 ‘클라우드’, ‘플로우’, ‘플라워’, ‘저니’, ‘스카이’와 같은 간결한 이름을 가진 다수의 게임 제작에 참여해온 인물이다. 첸의 게임들은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저니는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에서 가장 빠르게 판매된 게임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여러 어워드에서 올해의 게임(GOTY, Game of the year) 수상이 셀 수 없이 많이 언급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게임들은 예술 영역에서도 환영을 받아왔다. 첸의 〈플로우 flOw〉(2007, PS3)는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 영구적으로 소장된 14개의 게임 중 하나로 채택됐다. 또 다른 게임 〈플라워 Flower〉(2007, PS3)는 워싱턴 스미소니언 미술관이 보존하고 있는 영구 소장품이 되었다. 지난달부터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에서도 플로우와 플라워가 전시장에 등장하여 플레이 가능하게 전시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첸의 게임은, 게임을 구매하거나 다운로드 받아 즐기는 플레이어와 전세계의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람객 모두로부터 플레이되고 있다. 이렇게 게임을 예술 매체로 취급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그는 퍼블리셔와 미술관, 소비자와 관람객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이목을 끌어 왔다. 그의 게임들은 어떤 특징으로 분석될 수 있으며, 작가로서의 첸은 어떤 생각을 토대로 게임을 만들어왔을지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은 제노바 첸이라는 한 명의 게임 제작자에 주목하면서 그의 작품과 생각을 들여다본다. * 제노바 첸 콘솔 게임이 금지된 나라에서 콘솔 게임의 나라로 중국 출신의 첸은 1세대 중국 컴퓨터 공학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왔다. 다른 가정보다 상대적으로 기술 친화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배경이 있었지만, 첸이 10대 시절의 중국은 콘솔 게임기 판매 금지령이 내려지고 있었다. 제한적인 게임 플랫폼의 상황에서 첸은 콘솔보다는 PC 게임을 주로 플레이하게 되었고, 특히 PC로 〈파이널 판타지 7 Final Fantasy 7〉(1997)를 플레이하길 좋아했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인 ‘제노바’는 훗날 자신의 영문 이름이 된 배경이기도 하다. 게임을 즐겨하다보니 게임 제작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면서 그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으로 하여 대학에 진학한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시각적으로 창작하는 일이 좋아서 공대 수업보다는 예술 대학 수업에 기웃거리는 일이 많았다고 전한다. 학사 졸업 후 그는 먼 훗날 픽사(Pixar)에서 일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USC)의 인터랙티브 디자인 석사 과정 하에 영화, 게임,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제작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게 된다. 학생으로서 참여한 두 번의 작업 〈클라우드 Cloud〉(2005, PC)는 대학원 재학 시절 첸의 초기 작업으로, 6명의 학교 사람들과 진행한 교내 게임 제작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클라우드는 꿈 많은 소년이 하늘을 유영하면서 구름을 뭉쳐 날씨를 변화시키는 짧은 스토리의 게임이다. 각각의 목적을 가진 4개의 스테이지에서 플레이어는 구름을 막대사탕 모양으로 디자인 하기도 하고, 작은 구름을 합쳐 더 큰 구름을 만들기도 하며, 비가 필요한 지역에는 흰구름과 먹구름과 충돌 및 상쇄시켜 비를 내리기도 한다. 첸은 클라우드를 제작할 당시 게임회사 EA로부터 장학금을 지원 받았다. EA는 USC와 협약을 체결하고 학생들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하면서 게임 개발을 장려했다. 이는 클라우드의 저작권이 첸이 아닌 USC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첸은 학교와 회사의 지원 덕분에 게임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동기를 얻게 되었고, 이 인연으로 클라우드 출시 이후에는 EA의 맥시스 스튜디오의 〈스포어 Spore〉(2008) 개발팀에서 잠시나마 일을 하기도 했다. * 〈클라우드〉 그렇게 제작된 클라우드는 온라인에 무료로 배포되어 홍보 없이도 약 50만 회 이상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며 인터넷 상에서 인기를 얻게 된다. 여러 게임들과 다르게 이 게임은 비폭력성을 띠며 긍정적 메시지를 추구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구름이 되어본다”는 설정이 마치 상상력 풍부한 어린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사람들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첸은 이때 익명의 플레이어들로부터 “당신들(개발자)은 아름다운 사람들이다”라고 쓴 팬 레터를 메일로 받기도 했다. 클라우드에 이어서 진행된 첸의 차기 게임 작업은 〈플로우 flOw〉(2006)였다. 독특하게도 그는 석사 졸업을 위해 플로우를 제작했다. 석사 학위 연구 프로젝트를 검증하기 위해 게임을 이론적으로 설계한 뒤 사람들에게 배포하여 테스트한 것. 플로우는 심해의 유기체로 태어나 바닷속을 유영하며 양분을 먹거나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어 유기체의 성장과 진화를 도모하는 게임이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 이론에 관심이 있었던 첸은, 몰입 이론에 기반한 새로운 게임 디자인론을 제시하고, 이를 적용한 게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논문을 쓰기 위해 제작된 게임이라고 하기에 게임의 인기는 기대치를 상회했다. 2006년 플래시 게임 포털에 게시되었던 플로우는 2008년까지 35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얻어 웹 상에 퍼져 나갔고, 순식간에 전세계인들이 즐기는 유명 게임이 되어버렸다. 회사로서 얻은 세 번의 창작 지원 플로우의 성공을 기점으로, 첸은 클라우드를 제작했던 대학원 동료 켈리 산티아고(Kellee Santiago)와 함께 회사 댓게임컴퍼니를 설립해 자신만의 게임 제작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댓게임컴퍼니와 소니(Sony)와의 계약이 성사되었다. 소니는 그동안 첸의 게임들이 보여준 가능성을 판단하고 플레이스테이션 플랫폼에 3개의 게임 출시할 수 있도록 일종의 창작 지원을 약속했다. 이는 댓게임컴퍼니 회사 설립과 운영의 기초가 되었다. 물론 소니와의 계약은 개발사에게 커다란 수익으로 이어지진 않는 구조였으며 저니 개발 당시 회사는 거의 파산 위기에 가까웠다고 공동 창업자 켈리는 훗날 언급하기도 했다. * 〈플로우〉 소니와의 계약 이후 댓게임컴퍼니는 우선 첸이 석사 논문 프로젝트로 했던 플로우를 기존 PC 플랫폼에서 PS3 플랫폼에 맞게 리디자인 하여 2007년에 출시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2년 간의 개발을 거친 플라워가, 2012년에는 3년의 개발을 거친 저니가 플레이스테이션 플랫폼에 출시되었다. 이 게임들은 연달아 호평을 받으면서 다음 작업에 대한 투자를 보증해왔다. 그리고 소니의 세 번의 창작 지원 이후, 첸은 모바일 플랫폼에 대한 도전으로 〈스카이: 빛의 아이들 Sky: The children of the light〉(2018)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이는 댓게임컴퍼니와 첸의 글로벌한 인지도를 현재의 수준까지 끌어올리게 되었다. 첸은 게임 개발사의 대표이자 디렉터, 게임 디자이너로서 클라우드, 플로우, 플라워, 저니, 스카이를 만들어냈다. 그는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게임 제작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다면에 걸쳐 작업에 투영해냈다. 개개인마다 해석의 여지는 다양하겠지만, 제노바가 연설, 인터뷰, 글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남긴 자료를 통해 필자는 그의 작업적 실천을 크게 세 개의 분류로 함축하고자 한다. (1) 영화의 기법을 게임에 적용하려는 시도 첸이 석사 생활을 했던 USC의 인터랙티브 디자인 과정은 게임에 특화 되어있는 곳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다루는 다양한 매체 중 하나가 게임이었으며, 그는 필름 스쿨에서 배울 법한 시나리오 라이팅을 실습하기도 했다. 첸은 시나리오 라이팅을 하면서 할리우드와 같은 전통적인 영화 산업에서 ‘3막 구조’를 충실히 사용하고 있음을 알았고, 이를 게임에 적용하려했다. 3막 구조란, 스토리를 3단으로 구성하여 도입부인 1막에서 주인공의 상황을 설정하고, 중반부인 2막에서 그 상황에 따른 여정을 제시하며, 마지막 3막에 다다라서는 그 여정의 결과를 마주하는 구조로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을 뜻한다. 영화에서 사용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게임에서 적용할 때 떠오르는 중요한 지점으로, 그는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강조했다. 영화를 볼 때 “왜 이 장면에서 갑자기 눈물이 날까”를 어렸을 때부터 궁금해왔다는 그는, 위치상 2막이 끝날 때쯤 감상자의 감정이 가장 낮은 지점에 도달했다가 3막에서 최고점을 찍었던 것에 그 원인이 있음을 판단했다. 3막 구조의 스토리텔링에서 서사는 2막이 끝날 때 쯤 가장 낮은 지점에 도달했다가 빠르게 최고점에 도달하며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 저니의 3막 구조 그의 게임들은 이러한 3막 구조 적용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저니의 도입부는 황량한 사막에서 여정을 떠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무너진 사원 사이를 지나가고 생명체를 가진 듯 움직이는 직물들과 상호작용하는 플레이어는 저 멀리 보이는 산 정상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향한다. 공중에서 이동하는 능력을 얻어 성장하여 점차 높은 곳으로 상승하고, 빠른 속도로 계곡 사이에 스키를 타면서 짜릿한 활강을 즐기던 플레이어는 심연에서 적을 만나 위기를 겪는다. 그러다가 산 정상에 올라가면서 그동안 축적해왔던 성장 요소를 모두 빼앗기고 힘을 잃어가다가 끝내 죽음을 겪게 된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야, 비로소 주변 상황이 변화하고 플레이어는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필자가 짧게 요약한 감이 있지만, 제노바는 여러 연설에서 저니의 3막 구조 적용에 대해 자세하고 설명하고 있으니 미세한 경험 설계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GDC 2013 연설 등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저니 뿐 아니라 초기작 클라우드나 플라워에서도 이러한 내러티브 구조는 발견된다. 긍정적이고 활기찬 여정에서 고난을 마주하고 끝내 희생이나 상실, 죽음을 통해 플레이어의 허망함을 필연화하고 극대화 시키는 것은 그의 게임의 특징 중 하나다. 이는 그의 전작들을 온라인 게임의 틀로서 통합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모바일 기반의 스카이에서 일명 ‘죽음을 통한 성장형 윤회’ 시스템으로 적용되어 플레이어의 지속적인 플레이를 이끌어내는 요소가 되고 있다. (2) 플레이어 스스로가 게임 경험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해외 저널 Communications of the ACM에 2007년 발표된 〈Flow in Games (and Everything Else)〉은 첸이 자신의 석사 학위 논문을 요약해 공개한 것으로, 그가 평소에 게임 디자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조나 철학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이론’에 경유하여 자신만의 디자인을 제안한다. 우선 칙센트미하이는 사람들이 어떤 일에 몰두하면서 현실에서의 걱정이나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잊은 채 긍정적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 순간을 ‘몰입’(Flow)이라고 규정했다. 이 몰입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도전과 그에 맞는 대상자의 숙련이 필요하다. 상황에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도전성이 높아진다면 불안을 일으키고, 반대로 숙달된 것에 반해 도전성이 크지 않다면 지루함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몰입 이론은 게임하는 행위를 포함한 취미나 사회 전반의 영역에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첸은 몰입 이론을 게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도전과 숙련이 균형을 이룬 상태인 ‘플로우 존’(flow zone)에 게임 경험이 위치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 존을 벗어날 경우 게임에 흥미를 잃거나 기쁨이 아닌 고통을 받아 이탈하게 된다. 게임에서 도전과 숙련이란 즉 난이도의 문제이기도 하며, 난이도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대해 기존에 가진 능력이나 지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첸은 이에 기존에 게임 조작 능력과 지식이 풍부한 ‘하드코어 게이머’와 게임을 즐긴 경험이 거의 없거나 조작 능력이 탁월하지 않은 소위 ‘캐주얼 게이머’로서 플레이어를 구분하고, 하드코어 게이머에게는 플로우 존은 도전 더 가깝게, 캐주얼 게이머에게는 숙련에 더 가깝게 설계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설계를 여러 개의 포인트와 경로 이동으로 바꿔 마치 플레이어가 스스로 좌표를 이동하며 플로우 존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며 “스스로 몰입을 찾아가도록 하는 자유”를 주는 것이다. * 첸의 몰입 이론 그가 이론을 적용하여 제작한 〈플로우〉는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지네 또는 새우의 모습을 닮은 해저의 한 유기체로 시작하고 나면, 영양분을 섭취해 몸을 성장시킬 수 있다. 비어 있는 몸의 마디마디가 채워지는 것처럼 플레이어는 자신의 캐릭터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바다를 유영하다 보면 다양한 영양분이 등장하고, 다른 유기체들이 등장해서 공격해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빨간색/파란색 영양분이 화면에 종종 등장하는데, 이 유색 영양분은 플레이어의 난이도를 나누는 분기점으로 작용한다. 빨간색 먹이를 먹으면 수심은 더 깊어지며 강한 유기체가 등장하는 경쟁과 불안 상태로 이어지고, 파란색 먹이를 먹게 되면 수면에 가까이 가지만 약한 유기체밖에 없어서 성장이 없이 평화가 지속된다. 첸은 현재 상태를 언어가 아닌 직관적인 색깔로 전달하는 것을 즐기는데, 적대적 존재는 주황색으로, 친화적인 존재는 흰색으로 표현, 그리고 심해로 가까워질수록 배경은 어둡게 변화한다. 이러한 설계에서, 물 속을 유영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거나 혹은 컨트롤이 익숙지 않아서 더 큰 적과 상대하기 어려운 플레이어는 빨간색 먹이를 먹는 것을 회피하거나 미룰 수 있다. 자신에게 너무 어려운 컨트롤을 요구하는 수심 깊이라면, 파란색 먹이를 먹어 오히려 난이도를 낮출 수도 있다. 플레이어들은 첸이 설계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느낌을 실제로 받았다. 따라서 게임은 “재밌다”는 평가를 받게 되고 다수의 어워드에서 ‘최고의 게임’에 뽑히기도 했다. 첸의 이론이 어느 정도 증명된 셈이다. 그는 플로우를 통해 자신의 경험 설계의 방법론을 쓰고 플라워, 저니, 스카이에도 여실히 적용해 나갔다. 게임 디자이너는 플레이어가 플로우 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가능한 다양한 균형점을 콘텐츠로서 제공하는 임무를 얻고 충실히 수행한다. 또한 이 균형을 알기 위해 개발 과정에서 플레이 테스트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3) 더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되는 것 앞서 짚은 첸의 게임 디자인론이 잘 적용된다면, 게임이 익숙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 동일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첸은 자신의 꿈을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게임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라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혀왔다. 그의 소망은 게임 제작에서 튜토리얼, 인터페이스, 플랫폼 등 다양한 영역에서 드러난다. 그의 게임은 글자가 잔뜩 써 있거나 플레이와 분리되어 있는 별도의 튜토리얼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조작이 쉽기도 하다. 첫번째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면서 게임 사용법이 자연스럽게 습득이 되는데, 이때 전개되는 스토리는 전체 맥락 위에 놓여 연속적이다. 플라워는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작방식이 쉽다. 컨트롤러 패드의 회전으로 꽃잎을 움직이고 단일 키 버튼으로 가속하는 것이 전부다. 플로우는 마우스의 이동으로만 조작이 가능하고, 스카이는 모바일 터치 인터페이스에서 매끄럽게 이해되는 캐릭터 이동 및 카메라 이동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첸은 직관적인 모바일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데에만 3년이 소요되었다고 전한다. * 인터페이스 게임의 플랫폼은 플레이어를 나누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콘솔 게임 기기가 없다면 콘솔 게임을 할 수 없다. 그는 플로우를 출시할 때,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구가 검증 되기를 원했다. 따라서 2000년대 당시 가장 파급력이 높았던 웹 플랫폼 ‘플래시’를 선택하게 된다. 플래시 플랫폼에서 게임은 다운로드나 사양의 제약 없이 플레이가 가능했다. 첸은 이전까지 플래시를 개발해본 적이 없었는데, 플로우를 플래시로 출시하기 위해서 3개월동안 공부하여 제작하는 과정을 거쳤다. 플라워와 저니를 출시 할 때에는 콘솔 플랫폼에 대한 고민거리가 있었다. 첸은 손쉬운 사용과 접근 가능성을 중요시해 인터페이스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정작 플레이스테이션이 없는 사람은 게임을 즐길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있었다. 콘솔 게임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전체 비율에서는 아직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그가 스카이를 모바일 플랫폼에서 출시한 배경에 있기도 하다. 가장 보편적인 게임 기계를 찾다가 누구나 한 대 씩 가지고 있는 모바일을 선택했다. 그 외에도 게임은 화면에 문자 언어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색이나 사운드, 컷신으로 상황의 변화를 드러낸다. 색의 경우 노란색은 흥미로움, 길을 잃거나 위기가 닥쳤을 때 짙은 녹색 또는 검정색, 생명력이 없을 때 흰색, 푸른 하늘은 해방감으로 그리고 있다. 플레이어의 현 상황을 한 마디로 보여주기 위해 매 스테이지 별로 등장하는 유적지 벽화는 저니의 상징적인 요소이다. 또한 캐릭터는 정체성이 모호하게 디자인되어 있어 인간 캐릭터의 경우 명확하게 남성인지 여성인지, 나이, 인종 등의 정보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그의 게임 중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이 글은 제노바 첸이라는 인물을 작가의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을지 타진해본 글이었다. 그는 1인 개발자는 아니었으며, 다수의 인원을 거느리는 팀의 디렉터로 활동했다. 모든 작업이 그의 아이디어를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작업에서 드러나는 공통적인 요소는 첸이라는 사람이 가진 가치관과 그의 실천 의식에 기반했다고 충분히 분석될 수 있다. Tags: 제노바첸, 플로우, 작가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보라무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논문세미나] 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

    세계 각국을 먼나라 이웃나라로 나눌 때, 아랍 국가들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먼 나라다. 아랍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막상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찾고자 결심한다면 우리는 의외로 많은 정보들과 마주할 수 있다. 급성장하는 아랍의 게임시장이 가진 매력적인 자본과 가능성에 전 세계의 게임사들이 눈독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도 포함이다. < Back [논문세미나] 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 24 GG Vol. 25. 6. 10. 세계 각국을 먼나라 이웃나라로 나눌 때, 아랍 국가들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먼 나라다. 아랍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막상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찾고자 결심한다면 우리는 의외로 많은 정보들과 마주할 수 있다. 급성장하는 아랍의 게임시장이 가진 매력적인 자본과 가능성에 전 세계의 게임사들이 눈독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도 포함이다. 2023년 기준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인터넷 보급률은 100% [1] 이며, 중동 인구의 약 52.9%가 콘텐츠 적극 소비 계층인 30세 이하 [2] 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대대적인 자본을 투자해 게임 및 이스포츠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3] .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Riyadh Season,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이스포츠 페스티벌 등 전 지구적 게임 행사도 활발하다. 이 먹음직스러운 수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국내 다양한 언론 및 기관이 아랍 게임 시장에 관한 분석을 내놨다. 그러나 그 너머를 목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장 분석 보고서는 많고 많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아랍의 단편이다. 이번 논문 세미나에서는 「장벽 허물기 -아랍 세계의 비디오 게임 문화와 산업의 등장(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을 다룬다. 이는 2023년에 출간된 『Handbook of Media and Culture in the Middle East』의 일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 Vít Šisler, Lars de Wildt, Samer Abbas는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UAE, 카타르 등의 아랍 지역 현장 조사, 40명 이상의 아랍 게임 개발자 인터뷰, 게임 분석 및 기존 연구의 메타분석을 진행했다. 저자들은 서구권의 주류 게임이 아랍인 또는 무슬림 표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대해 연구해왔다. 논문은 게임 환경과 비판적 트랜스문화주의 개념을 채택해 아랍 세계의 비디오 게임 소비의 역사와 현재를 개괄한다. 논문은 서구권에서 바라보는 구멍 난 아랍 게임 문화 형상의 간극을 메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논문은 아랍의 게임 현장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문화적 혼종성, 시각적 표현의 진정성 강조, 종교 및 문화적 문제에 대한 민감성이라는 특징을 가진 것으로 봤다. 저자들은 논문을 통해 정치·경제·종교·문화적 흐름이 지역의 게이머·개발자·기관의 게임 매체 활용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고 이를 글로벌 문화 생산 및 초국적 소비자 문화라는 맥락과 연결했다. 아랍 게임 시장의 현재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먼저 현재의 아랍 게임 시장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중동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 시장 중 하나다. 그것은 젊고 빠르게 성장하는 활동적인 게이머 인구, 높은 스마트폰 및 인터넷 보급률, 지역 및 글로벌 게임 퍼블리셔의 현지화된 콘텐츠 공급(The National 2020)에 힘입은 결과이다. 2021년 기준 아랍에서는 사우디, UAE, 이집트가 상위 게임 시장으로 꼽히며, 사우디는 약 8억3700만 달러로 전 세계에서 19번째로 큰 게임 시장으로 꼽혔다(Tashkandi 2021). 올해 발간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연구 [4] 에 따르면 중동 게이머는 국제 평균 이상으로 모바일게임 플레이를 선호하며, 배틀로얄, 슈팅, 스포츠 등 단기 집중형 장르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에 나타난 사우디와 UAE 게이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44.2%가 모바일게임을 이용한다고 답했고, 하루 평균 이용시간 또한 모바일게임이 3.73시간으로 가장 높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2022년 12월 기준 아랍 지역에서 인기 있는 안드로이드 무료 게임은 피파 모바일, 틱택토, 싸커 슈퍼 스타, 루도 클럽 등의 스포츠, 퍼즐, 보드게임 장르 게임이었다. iOS 기준으로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서브웨이 서퍼가 인기를 끌었다. 유료 게임으로는 마인크래프트가 가장 인기가 많았고, 가장 수익을 많이 내는 게임으로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있었다. MENA [5] 지역에서 유명한 이스포츠 게임으로는 ‘DOTA2’, ‘포트나이트’, ‘FIFA’ 등이 있다 [6] . 아랍 세계의 게임 연구 동향 비디오 게임 분야의 아랍에 관한 연구는 주로 서구권 개발자의 아랍 재현 방식 연구와 아랍에서의 게임 제작(및 그 자체 재현) 연구로 나눌 수 있다. 재현에 관한 연구는 주로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 시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인기 비디오 게임에서 악당이 일반적으로 중동 테러리스트로 묘사되는 방식과 아랍 문화 정체성에 대한 기타 환원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인 재현을 조사한다(Marashi 2001; Reichmuth and Werning 2006; Keogh 2021). 두 번째 연구 흐름은 아랍에서 제작된 비디오 게임과 그 속의 아랍인과 무슬림 자기재현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Galloway 2004; Machin and Suleiman 2006; Tawil-Souri 2007). 이 논문의 저자들이 위치하는 곳도 이 지점이다. 또한 다른 연구자들의 중동 지역 게이머들의 소셜 미디어 참여 연구(AI-Rawi and Consalvo 2019)는 아랍 게이머의 공동의 정체성이 아랍어와 아랍 게임의 공유 소비를 통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아랍 세계 비디오 게임의 역사 시작: 해외 게임 소비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미국·유럽·일본과 마찬가지로 아랍 세계에 게임이 전파됐다. 초창기 아랍에서는 주로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 등의 해외 게임을 소비했다. 국산 게임 제작보다 선행된 해외 수입품의 유입은 아랍 지역의 국내 비디오 게임 산업과 그 결과물을 형성하는 ‘벤처와 관객의 기대치’를 설정했다(Wolf 2015,6). 불법 복제 게임, 소위 ‘해적판’ 게임은 아랍 세계에 비디오 게임이 확산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이 지역의 불법 복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대부분의 아랍 도시에서 해외 게임의 사본을 2~3달러에서 구입할 수 있었으며, 출시 직후의 게임 구매도 가능했다(Šisler 2013). 광범위한 불법 복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현지 생산자와 수입업자들은 값싼 해적판 제품과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밀려났다(Wolf 2015,7). 반면 불법 복제는 글로벌 불평등에 대한 전술적 대응으로서 다양한 계층의 게이머가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민주화 효과를 제공하기도 했다. 지역의 높은 불법 복제 수준은 게임 산업 관행에 영향을 미쳐 회사들이 월정액 구독과 회사 서버 액세스가 필요한 온라인 게임 제작으로 전환하도록 만들었다(Wolf 2015, 7). 비디오 게임에 대한 접근은 사이버카페(PC방)를 통해 더욱 용이해졌다. 이는 특히 이집트, 알제리, 요르단처럼 인터넷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발전 속도가 느린 국가의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지 게임 프로덕션의 등장 1981년, 아랍어 친화적 인터페이스를 갖춘 비디오 게임기에 관한 수요로 알-알라미예가 사크르라는 아랍어 가정용 컴퓨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일본의 MSX를 기반으로 제작돼 아랍 전역의 중산층 가정에서 인기를 얻었다(Kasmiya 2015, 30). 알-알라미예는 일부 게임을 아랍어로 현지화했고, 퀴즈 게임 로드 투 마카(Road to Makkah)와 같은 간단한 아랍어 게임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Abbas 2019). 이는 1990년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0년, 시리아 의대생 무하마드 함자가 제작한 ‘돌 던지기(The Stone Throwers)’는 초기 아랍 비디오 게임 제작에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 게임은 알 아크사 인티파다 [7] 를 다룬 단순한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이스라엘 군인으로부터 알 아크사 모스크를 지키는 팔레스타인인의 역할을 맡게 된다(Šisler 2018). 이 게임의 뒤를 이어 아랍의 문화를 더 밀접하게 반영한 다른 게임들이 개발됐다(Šisler 2008). 이 게임들은 서구권 비디오 게임에서 아랍인을 테러리스트와 종교적 근본주의자로 묘사하는 헤게모니적 왜곡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대항 담론’(Lefebvre 1991)으로 간주할 수 있다(Šisler 2018). 이러한 게임은 성격에 따라 크게 저항, 교육, 문화적 대화로 분류할 수 있다. 저항 게임은 일반적으로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과의 실제 분쟁을 바탕으로 한 1인칭 슈팅 게임이다. 대표적인 예로 레바논 헤즈볼라 운동(대표작: Special Force 1,2), 시리아 회사인 다르 알 피크르와 아프 카르 미디어(대표작: Under Ash, Under Siege), 요르단 스튜디오 투라스(대표작: Jenin: The Road of Heroes)가 있다. 이 게임들은 아랍 청소년들에게 자신만의 영웅을 제공하고 아랍인의 관점에서 분쟁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Šisler 2018). 초기의 교육용 게임은 이슬람의 기본 교리나 문명에 대해 가르치거나 가족적 가치를 홍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서구와의 문화적 대화를 위한 도구로 개발된 초기 게임에는 2005년 시리아 회사 아프 카르 미디어가 만든 전략 게임 ‘쿠라이쉬(quraish)’가 있다. 이 게임은 이슬람의 기원과 확산을 다루며 이교도 베두인, 무슬림 아랍인, 조로아스터교 페르시아인 등 다양한 관점에서 플레이할 수 있으며 아랍어와 영어로 제공됐다(Šisler 2018). 쿠라이쉬의 개발자 중 한 명인 라드완 카스미야는 후에 빈센트 고섭과 함께 팔라펠 게임즈를 설립했다. 중동과 중국에 사무실을 둔 이 회사는 첫 번째 게임 ‘나이츠 오브 글로리(Knights of Glory)’(2011)로 100만 명 이상의 유저를 확보했다. 이집트에서는 많은 인디 개발자들이 문화나 정치를 주제로 한 게임을 퍼블리싱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네잘 엔터테인먼트는 아랍 스타일 농장 게임 ‘알마디나(Elmadinah)’(2013)로 100만 달러 이상 투자를 유치했다. 이 회사의 전작 ‘크라우즈 보트(Crowds Vote)’(2012)는 2012년 이집트 혁명을 소재로 했다(Kasmiya 2015). 문화적 진정성과 현지화 초기 아랍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들은 지역의 전통·역사·종교에 관한 ‘진정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게임의 기본 구조가 외국의 것이기 때문에 아랍 세계의 초기 게임 제작에 나타난 것은 혼종성과 문화 간 교류였다(Šisler 2018). 해외 게임사에게 현지화는 수익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 됐다. 독일의 브라우저 기반 전략 게임 ‘트래비안(Travian)’은 통신사 결제와 선불카드 결제를 이용할 수 있는 최초의 아랍어 멀티 플레이어 게임이었다. 2009년 전성기 시절, 아랍어 버전 트래비안은 트래비안 전 세계 유저 1/5를 차지하며 매달 150만~3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Abbas 2019). 트래비안의 성공은 아랍 세계가 다른 유럽 브라우저 게임에 눈을 돌리게 했고, 아랍 지역 게임 회사에 투자가 유치되는 계기가 됐다. 다운로드가 필요 없고 저사양 PC를 지원하는 브라우저 게임은 쉽게 게임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지화된 무료 게임은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더욱 확산됐다. 그 결과 서구의 여러 회사가 아랍에 지사를 설립하고 아랍 시장을 겨냥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Campbell 2013). 현지화는 번역 이상으로 현지의 문화·종교·정치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아랍을 대상으로 한 현지화는 노골적인 성 묘사와 폭력, 종교 비판, 음주 등을 피할 필요가 있다. 가령 트래비안은 양조장 건물을 찻집으로 대체했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아랍 국가에 별도의 규제가 없었으나, 사우디와 UAE에서 성적인 표현과 아랍 문화에 대한 오해를 가진 몇몇 게임이 금지되면서 국가 미디어 정책에 규제 조치가 생기기 시작했다(Šisler 2018). 아랍 게임의 최신 트렌드 최근 아랍의 게임 현장에서는 다양한 이슈가 벌어지고 있다. 게임 산업의 잠재력을 알아본 정부의 투자 지원과 새로운 규제, 세계화를 통한 초국가적 네트워크 교류, 아랍의 관점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여전한 대표성 및 정치적 문제, (모바일) 캐주얼 게임의 유행, 아랍적인 게임을 위한 모딩 및 커뮤니티 번역이 바로 그것이다. 대표성 및 정치 문제와 같은 몇몇 이슈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부 지원 및 규제 2016년 사우디아라비아 시청각미디어위원회는 현지 및 수입 게임에 대해 지역 최초의 공식 연령 등급 콘텐츠를 도입했다. 금지 콘텐츠에는 누드, 노골적인 성행위, 동성애, 종교 비판,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 등이 포함된다. 2018년에는 UAE도 국가미디어위원회(NMC)를 통해 유사한 등급 시스템을 도입했다. 세계화와 초국가적 네트워크 * 라미 이스마일의 isthatarabic 홈페이지 내용 아랍계 개발자들은 글로벌 게임 제작에서 아랍 및 이슬람 문화에 대한 기존의 도식화 및 왜곡된 표현에 대해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8년 오사마 도리아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례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에서 ‘비디오 게임에서 무슬림 표현을 위한 방법 가이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네덜란드계 이집트인 게임 디자이너 라미 이스마일은 게임 회사들이 아랍 문자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문제에 맞서기 위해 웹사이트 https://isthatarabic.com 을 개설했다. 아랍계 게이머의 소셜 네트워크는 영어와 함께 아랍어를 사용하고, 지리적 근접성, 역사 및 종교를 공유한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구축된다. 아랍 개발자 네트워크는 점점 더 공식화되고 국제화돼 지역 전체를 위한 소셜 네트워킹 이벤트와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다(Šisler 2018). 대표적인 예로 아랍에서 가장 큰 연례 게임 개발 행사 ‘게임 잔가(Game Zanga)’는 참가자들이 72시간 동안 주어진 주제에 관한 게임을 제작한다. 이집트 혁명이 정점에 달했던 2012년의 주제는 ‘자유’였다. 대표성 및 정치 * 게임 ‘리일라와 전쟁의 그림자’ 첫 화면. 글로벌 산업이 대부분 북미에서 주도된 결과 현대의 국제 분쟁은 거의 기본적으로 미국 관점에서 표현된다. 가령 2023년 출시된 게임 ‘식스 데이즈 인 팔루자(Six Days in Fallujah)’는 2004년 이라크 전쟁 제2차 팔루자 전투에 참전한 미 해병대 분대의 시점에서 다큐멘터리적인 리얼리즘으로 전개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반면 아랍의 관점이 우세한 경우,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중립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쉽게 버려지기도 한다. 2016년 팔레스타인 디자이너 라시드 아부 에이데가 제작한 ‘리일라와 전쟁의 그림자(Liyla and the Shadows of War)’는 팔레스타인의 관점에서 전쟁의 민간인 희생을 탐구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애플 온라인 스토어 판매를 거부당하다가 이후 전 세계 게임 개발 커뮤니티의 대규모 항의(Batchelor 2017)가 있은 후에야 판매 허가를 받았다. 캐주얼 게임 사실 아랍 게임사에게 대표성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수익을 내 생존하는 것이다. 아랍 게임사들은 이를 위해 캐주얼 게임과 모바일 게임 개발을 택했다. 현재는 인기 있는 모바일 게임 중 아랍 세계에서 제작됐거나 아랍 친화적인 게임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모딩 및 커뮤니티 번역 게임 커뮤니티 전체에 존재하는 모딩 및 커뮤니티 번역의 전통은 아랍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13년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아랍어 번역본이 3년간의 작업 끝에 아랍 팬 번역가에 의해 출시됐다(Johnson 2013). 마치며: 아랍 게임 문화의 성장 가능성 게임 산업은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대표적으로 유니티 같은 게임 디자인 툴의 대중화, 스팀 같은 유통 플랫폼을 통한 글로벌 시장으로의 접근성 향상은 개발 및 퍼블리싱 비용을 낮춰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의 개발자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아랍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스튜디오는 여전히 드물다.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불확실성, 외국인 투자 부족, 분열된 게임 커뮤니티, 노하우 부족, 게임 개발 교육 부족 등 여러 가지 정치 및 경제적 문제가 산재해있기 때문이다. 아랍 세계에서 게임 산업은 30년 동안 존재해왔다. 그럼에도 네덜란드계 이집트인 게임 개발자 라미 이스마일에 따르면, 아랍 게임 개발 커뮤니티는 그가 제안한 지역 게임 개발 커뮤니티 6단계 중 초기 단계에 머물러있다. 그에 따르면 첫 번째 단계에서는 아마추어가 거의 없는 지역에서 지식 공유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그 다음에는 국제적으로 지식이 교환되지만 여전히 ‘서구에서 크게 성공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Ismail 2015). 그러나 이제까지 살펴봤듯, 성장의 여지는 존재한다.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며 아랍 게임 문화가 성장하고, 혼종화되고, 문화 간 교류에 접어들고 있다는 특징 이상으로 아랍에 고유한 플레이어 문화를 가진 신흥 소비자층이 나타났단 점에 주목한다. 게임 문화와 산업은 이들이 함께하는 참여형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저자들은 이들을 더욱 확장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해외 문화 소비로 시작해 점차 자체 게임 시장을 형성하게 된 한국의 입장에서 아랍 게임 문화의 성장 과정은 크게 낯설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아랍 게임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의심되지는 않는다. 이제 한국인 게이머로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랍 게임의 경제적 측면 그 이상을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초국가적 게임 커뮤니티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논문의 표현을 빌려와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게임 문화와 산업은 구성원이 함께하는 참여형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1] World Bank, 2024.12.16.,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2] EBS, 2021, ‘닫혀 있던’ 사우디에 무슨 일이?...아라비아의 변화 어디까지 [3] Mastercard Newsroom, 2023, Transforming Saudi Arabia’s esports and gaming landscape [4] 전종섭(한국콘텐츠진흥원), 2025.01.07., 신규 게임시장의 기회: 중동의 한국게임 소비행태 분석 [5] Middle East and North Africa의 약자. 아랍, 중동, MENA 지역의 개념적 정의와 범주는 모두 다르지만 여러 자료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혼용해 사용했다. 엄밀히 말해 아랍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 연맹 22개국을 의미하며, 중동은 아랍 국가들이 위치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아랍어 사용국 외에 이란, 튀르키예 등을 포함한다. 이 글에서는 가급적 원 자료 표기를 따르되 필자의 표현은 아랍으로 통일했다. [6] 해당 단락은 한국콘텐츠진흥원 UAE 비즈니스센터, 2023.06.30., ‘중동 콘텐츠 산업 동향’을 참고했다. [7] ‘인티파다’란 아랍어로 봉기를 뜻하는 용어로, 이스라엘 점령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인의 주요 봉기를 뜻한다. 제1차 인티파다는 1987~1993년, 제2차 인티파다는 2000~2005년까지 이어졌다. 알 아크사 인티파다는 제2차 인티파다의 다른 이름으로, 이슬람교도들에게 3번째로 성스러운 장소인 ‘알 아크사 모스크’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원생) 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깊이 읽기

    이 글은 이번 게임백서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들과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소개한다. 백서가 더 널리 활용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에 대해서는 지난 10호에서 살핀 바 있고, 그 내용들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므로 이 글에서 반복하지는 않도록 한다. 물론 그 중에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음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 Back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깊이 읽기 17 GG Vol. 24. 4. 10. 2024년 3월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이하 ‘백서’ 혹은 ‘게임백서’)>가 발간됐다. 백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년 발행하는 정기간행물로, 1년 간의 국내 게임산업 현황(산업 규모, 업종별 현황, e스포츠 동향, 산업 전망, 교육기간 현황 등), 게임이용 동향(플랫폼별 이용 현황 및 특성, 게임에 대한 인식 및 태도 등), 해외 게임산업 현황(플랫폼별·국가별) 등을 다룬다. 국내외 산업규모와 이용행태를 파악하고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 정책수립 또는 연구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백서 발행의 목적이다. 공공과 민간 영역을 막론하고 게임산업이나 이용에 대한 다른 광범위한 조사가 없는 데다, 다른 콘텐츠산업(출판, 만화,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캐릭터, 지식정보, 콘텐츠 솔루션) 현황과의 비교 속에서 이뤄지는 조사인 만큼 그 데이터가 갖는 의미는 크다 하겠다. 주로 수치 중심의 데이터를 다루지만,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산업·이용 양상과 관련 이슈, 트렌드들에 대해서는 질적으로도 분석함으로써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즉, 게임백서는 게임산업과 이용에 관한 한 해 동안의 양적·질적 데이터가 망라돼 있는 결과물인 셈이다. 이 글은 이번 게임백서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들과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소개한다. 백서가 더 널리 활용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에 대해서는 지난 10호에서 살핀 바 있고, 그 내용들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므로 이 글에서 반복하지는 않도록 한다. 물론 그 중에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음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중요한 데이터와 흐름들에는 약간의 해석을 덧붙이고자 한다. 2022년 한 해 동안(2024년 초에 발간된 2023 백서이지만, 기준 데이터는 2022년의 것이다)의 게임산업과 이용을 둘러싼 양상, 이슈, 트렌드를 살피고, 그것들이 갖는 의미를 짚어본다. 한국 게임시장 규모: 22조원 돌파, 성장률 둔화, 플랫폼별 균형 있는 성장 2022년 한국 게임시장은 22조 2,149억 원 규모로, 2021년(20조 9,913억 원) 대비 5.8% 성장했다. 2020년 21.3%, 2021년 11.2% 성장했음을 감안하면, 성장률이 조금씩 둔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플랫폼별 시장에서 두드러지는 지점들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바일 게임시장의 굳건한 강세다. 그간 모바일 게임시장 규모는 빠르게, 큰 폭으로 팽창해왔다. 다만 전체 시장에서 모바일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49.7%, 2020년 57.4%, 2021년 57.9%, 2022년 58.8%로, 최근 들어 아주 크게 늘고 있지는 않다. 모바일 게임시장 비중의 확장세 둔화가 앞으로도 계속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다른 플랫폼들의 비중 역시 아주 크게 달라지고 있지는 않아, 당분간 아주 큰 폭으로 비중이 늘지는 않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비중이 크게 늘지는 않았음에도 매출액 13조 720억 원으로 전년(12조 1,483억 원) 대비 8.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게임 제작 및 배급업 중 아케이드게임(8.9%)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둘째, 아케이드와 PC 게임시장의 성장세가 아주 크지는 않은 가운데, 콘솔 게임시장이 1년 만에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됐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은 전년 대비 8.9% 성장해 2,976억 원 규모를, PC 게임시장은 3.0% 성장해 5조 8,053억 원 규모를 나타냈다. 하지만 2019년 전년 대비 31.4%, 2020년 57.3% 성장하다가 2021년 –3.7%의 성장률을 보였던 콘솔 게임시장은 1조 1,196억 원 규모로, 전년(1조 520억 원) 대비 성장률 6.4%를 기록했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던 해당 게임시장이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오프라인 활동 수요 폭증으로 대폭 증가했다가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4.3% 감소했던 PC 게임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선호경향의 혜택으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플러스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전체 게임시장 내 점유율은 26%대로 성장에 있어 한계가 드러났다. 콘솔 게임시장의 경유 성장률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됐다 해도, PC 게임시장과 유사하게 점유율이 2021년과 비슷한 5% 초반이다. 2022년 콘솔 게임기기나 타이틀 관련해 시장의 변화를 주도할 흐름이 발견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큰 폭의 하락을 보여 왔던 PC방 및 아케이드 게임장 매출액이 2021년에 이어 소폭 증가했다. PC방 매출은 2019년 2조 409억 원에서 2020년 1조 7,970억 원으로 큰 역성장(-11.9%)을 기록했고, 아케이드 게임장은 2019년 703억 원에서 2020년 365억 원으로 시장이 거의 반토막(-48.1%) 났었다. 이는 물론 코로나19만이 아니라 PC 게임시장의 성장 정체와 모바일게임으로의 이용 집중, 가정에서 플레이되는 콘솔게임의 인기 폭증 등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 유통시장 매출은 정부의 아케이드 게임산업 활성화 정책, PC 및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성장, 그리고 야외 활동 본격화 등과 맞물려 반등했다. 종합적으로, 2022년 한국 게임시장은 지난 4년, 그러니까 코로나19 전후를 비교해봤을 때 아주 크게 확대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2019년 9.0%, 2020년 21.3%, 2021년 11.2%, 2022년 5.8%), 플랫폼별로 비교적 균형 있게 성장해온 듯 보인다. 그동안 ① 크게 성장하는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콘솔게임), ② 성장이 정체된 플랫폼시장(PC게임, 아케이드게임), ③ 크게 역성장하는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개되던 흐름이, ① 여전히 성장 중이나 조금씩 안정화되는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② 성장세 둔화와 뚜렷한 플랫폼시장(PC게임), ③ 하락세 혹은 보합세에서 다시 성장세로 전환된 플랫폼시장(콘솔게임, 아케이드게임) 및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환된 것이다. * 그림 1. 한국 게임시장의 규모 및 성장률(2013~2023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28쪽. * 표 1. 한국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 및 성장률(2019~2022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30쪽. 세계 게임시장 내 한국의 위상: 세계 4위로 3위인 일본을 바짝 추격 2022년 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2021년 대비 0.9% 증가한 2,082억 4,900만 달러로 집계됐다. 2021년 성장률이 5.9%였음을 감안하면, 성장률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볼 수 있다. 엔데믹 이후 세계 게임시장은 가시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 경제위기, 전염병, 전쟁 등 외부 악재와도 맞물려 불확실성도 심화되는 상황이다. 전체 게임시장의 성장을 견인해왔던 모바일게임이 마이너스 성장(-0.5%)했고, PC게임의 성장률도 0.1%에 그쳤다. 콘솔게임이 2021년과 비슷한 수준인 2.6%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아케이드게임도 2021년(9.5%)에 비하면 크게 성장했다 보기는 어렵다(4.1%). 2016년 이후 세계 게임시장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해온 모바일게임은 2022년에도 916억 8,100만 달러 규모로, 점유율 44.0%를 기록했다. 그 뒤는 콘솔게임(591억 4,100만 달러, 28.4%), PC게임(363억 5,200만 달러, 점유율 17.5%), 아케이드게임(210억 7,600만 달러, 10.1%) 순이다. 표 2. 세계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2020~2025년). (단위: 백만 달러, %). 출처: PwC(2023), Enterbrain(2023), JOGA(2023), iResearch(2023), Play meter(2016); NPD(2023); 한국콘텐츠진흥원(2024).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742~743쪽. 2022년 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7.8%다. 2019년 점유율이 6.2%, 2020년이 6.9%, 2021년 7.6%였음을 감안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비중이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순위도 2020년 5위에서 2021년 4위로 한 순위 올라간 후, 2022년에도 마찬가지로 4위를 유지했다. 2020년 0.8%, 2021년 1.4% 차이였던 5위 영국과의 거리도 2.2%로 더 크게 벌렸다. 3위인 일본과의 차이는 1.8%로 영국과의 차이보다 적다. 2021년 2.7% 차이에서 0.9%나 좁힌 것을 감안하면, 향후 몇 년 간 한국이 일본을 앞지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1위인 미국(22.8%)과 2위 중국(22.4%)의 차이도 0.4%밖에 나지 않아, 둘의 순위가 바뀔지도 관건이다. * 표 3. 세계 게임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과 위상(2022년). * 출처: PWC(2023), Enterbrain(2023), JOGA(2023), iResearch(2023), Playmeter(2016), NPD(2023); 한국콘텐츠진흥원(2024b).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767쪽에서 재인용. 한국게임 수출·입 규모: 수출 3.6% 증가, 수입 16.7% 감소, 아케이드게임만 수출 감소 2022년 한국게임 수출액은 89억 8,175만 달러(약 11조 6,040억 원, * 한국은행 2022년 연평균 매매기준율 적용)로 집계됐다. 전년(86억 7,287만 달러)과 비교했을 때 3.6% 증가한 수치다. 2017년 증가율 80.7%를 기록한 이후 2018년 8.2%, 2019년 3.8%로 수출성장세가 주춤하다가, 2020년만 23.1%로 반짝 높은 수치를 보이고 2021년 5.8%, 2022년 3.6%로 다시 이전 증가율 수준이 된 셈이다. 플랫폼별로는 역시 모바일게임의 수출규모가 55억 6,300만 달러(2021년 53억 3,030만 달러)로 가장 컸고, PC게임이 31억 9,467만 달러(2021년 31억 4,562만 달러)로 뒤를 이었다. 콘솔게임 수출규모는 1억 8,651만 달러(2021년 1억 5,674만 달러), 아케이드게임 수출규모는 3,757만 달러(2021년 4,021만 달러)로 나타났다. 전년대비 수출규모를 비교하면, 대부분 플랫폼에서 증가세를 보인 가운데 아케이드게임만이 전년대비 6.6%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표 4. 한국 게임 수출·입 현황(2016~2022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b).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31쪽의 표를 재구성. 수입은 전년대비 16.7% 감소한 2억 6,016만 달러(약 3,361억 원)를 기록했다. 2017년 이후 계속 감소해왔던 수입 증가율이 4년 만인 2021년 잠깐 반등했다가 다시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2016년부터 7년 간 수입액 증가율이 수출액보다 높았던 건 2018년과 2021년뿐이었고, 나머지 해에는 수출액 증가율이 수입액 증가율보다 높게 나타났다. 다른 모든 플랫폼의 수입액 규모에서 감소세가 나타나는 가운데(아케이드게임 –66.3%, 콘솔게임 –48.3%, 모바일게임 –13.4%), PC게임만이 5.4% 증가했다. 2021년 완전히 반대로 모든 플랫폼 수입액이 전년대비 크게 증가하고 PC게임만이 감소했던 것을 감안하면 특기할 변화라 하겠다. * 표 5. 한국 게임 플랫폼별 수출·입 규모 비교(2021년 vs. 2022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b).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32쪽의 그림을 재구성. 게임 이용현황: 전체의 62.9%가 이용, 이용률 11.5% 감소, 모바일게임 이용률이 최고 만 10~65세의 일반인(n=10,000)을 대상으로 2022년 6월 이후 게임 이용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2.9%가 게임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게임 이용률은 2020년 이후 증가세를 보이다가(2019년 65.7% → 2020년 70.5% → 2021년 71.3% → 2022년 74.4%), 다시 2019년 수준으로 하락한 셈이다. 게임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n=6,292)들에게 있어 이용률이 가장 높은 플랫폼은 모바일게임(84.6%)이었다. PC게임(61.0%), 콘솔게임(24.1%), 아케이드게임(11.8%)이 뒤를 이었다. 또, 게임 이용경험이 있는 응답자(n=6,292)의 99.4%가 평소에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응답했다(전년 대비 0.4%p 증가). 업무/학업 외 목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 사용하는 기기를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이 93.2%로 가장 높았고, 데스크톱PC가 60.1%, 노트북이 56.4%, 태블릿PC가 42.8%였다. PC방 이용현황에 대한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게임 이용자들(n=6,292)의 56.8%가 2022년 6월 이후 1년 간 PC방을 이용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18.3%가 월 1회 이상 PC방을 이용하고 있었다. 성별로는 여성보다 남성이, 연령별로는 20대가 이용률이 가장 높았다. 게임 이용자의 1회 평균 PC방 이용시간은 169.2분, 미이용자는 126.5분이었다(42.7분 차이). PC방에서 게임을 한다고 응답한 사람(n=3,229)에게 PC방에서 게임하는 이유를 질문했을 때, 1+2순위 응답을 기준으로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56.7%)와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55.7%)를 꼽은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연령대가 낮을수록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를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게임업계 노동환경: 코로나19 이후 사업체 규모별 격차 심화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게임업계 생산환경은 신기술 기반으로 급격하게 변화를 맞았다. 메타버스, 블록체인, P2E(play to earn), 인공지능과 관련된 신기술 개발·도입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관련기술 보유 인재에 대한 주요 게임사들의 확보 경쟁도 심화됐다. 이에 따라 주요 게임사들의 인력과 인건비 지출이 함께 증가했는데, 특히 개발직군의 임금이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22년 2분기 이후 10대 상장 게임사의 정규직 인력은 오히려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코로나19 특수의 종료, 인건비 급등에 따른 비용 부담, 신작 미출시 혹은 실적 미흡 등의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외적 환경도 긍정적이지 않다. 엔데믹이 본격화되는 국면에서 글로벌 금융시장 악화, 전쟁, 중국의 게임규제 강화 흐름들도 한국 게임업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단기간 내 인력상황이 급변한다는 것은, 그만큼 게임시장의 노동환경이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상대적으로 큰 회사들까지 그렇다면, 작은 회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유연화를 둘러싼 논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 출범 후인 2022년 6월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 및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확대 등을 포함하는 유연근로제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게임업계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단계적으로 적용되고 안착화되어 가는 분위기에서, 이러한 계획은 사측과 노조를 중심으로 한 종사자측 입장을 다시 한 번 갈라놓는 계기로 작용했다. 노동시간 유연화를 찬성하는 사측의 논거는 주 52시간제 자체가 게임업계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 중국 등 글로벌 게임사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우려가 커진다는 것, 현장에서 유연근로제의 활용률이 떨어진다는 것 등이었다. 반면 노조측은 노동시간이 유연화될 경우 그간 게임업계 노동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었던 크런치 모드가 다시 활성화될 우려가 크며, 과로사 등 여러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 결국 노동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 우려한다. 그에 따르면 일부 기업들이 시행 중인 휴양지 워케이션, 주 4일 근무제 도입 등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큰 기업에서 노조에 가입해 있는 종사자들은 교섭권을 바탕으로 처우와 복지 등에 있어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반면, 노조가 부재하고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소게임사 종사자들의 경우 노동환경 악화의 위험성이 더 커질 수 있다. 이처럼 2022년 국내 게임업계 노동환경은 안팎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속에서, 일부 긍정적인 변화, 그리고 고용, 노동시간, 처우 등에 있어 대체로 불안정한 요소들이 공존하는 양상을 보였다. 바로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국내 게임시장이 쇠퇴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당분간 노동환경은 더욱 안 좋아질 확률이 높다. 한국 게임시장 전망: 안정기에서 쇠퇴기로, 그리고 불확실성의 증대 한국의 게임들이 질적·양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전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 게임시장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지만, 시장규모가 갈수록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 게임시장 규모는 2022년 대비 10.9% 감소한 19조 7,900억 원을 형성할 전망이다. 2013년 전후로 마이너스 성장한 적 없던 한국 게임시장이, 그리고 이제 20조 규모에 안정적으로 접어든 듯 보였던 한국 게임시장이 이처럼 위축될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엔데믹으로 향유 가능한 여러 엔터테인먼트와 야외 활동이 많아진 때문이자,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부진이 현실화되고 있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게임시장의 주축인 모바일 게임시장은 꾸준히 전체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유지는 하겠지만, 그 성장률은 한국 경제 전반의 움직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PC 게임시장은 멀티 플랫폼화와 충성도 높은 플레이어들의 존재에 힘입어 현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콘솔 게임시장 역시 멀티 플랫폼화, 니치마켓을 추구하는 게임 개발사들의 진입 등 성장에 긍정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지만, 차세대 콘솔기기가 언제 출시돼 얼마나 인기를 끌지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될 듯하다.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크지 않은 아케이드 게임과 게임장은 특별한 전기 없이 아케이드 게임을 즐기는 세대들의 엔터테인먼트 트렌드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가정 보유 PC의 고사양화가 상당히 진행되고 PC방을 찾을 유인이 낮은 상황에서 PC방의 인기는 갈수록 성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인건비, 개발비, 간접비 등 제반비용의 상승은 게임업계의 영업이익에 긍정적이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불경기가 심화되고 사람들의 전반적인 가처분소득도 감소 중이다. 글로벌 게임시장도 마찬가지지만, 한국 게임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예측이 어려운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다. 시장규모의 축소가 예상된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될지, 또 얼마나 계속될지, 그것에 정부, 업계, 그리고 플레이어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구체적이면서도 다양한 논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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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 Vol. 12 이제는 다소 진부해진 주제로까지 보이는 게임과 예술 사이의 관계들. GG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 전시를 중심으로 이 오래되고 진부한 이야기를 다시한번 되짚어보고자 한다. Computer games and art: the practice of deepening our gameplay experiences The question ‘are computer games art?’ is not a productive one if there is the expectation that there can be a reasonable answer to it without some questioning of the question itself. I will explain why this is so and make the case that we would be better served by thinking about the ‘aesthetic experiences’ that playing computer games may foster as opposed to their categorization as art or as non-art. Read More Visually Impaired and Gaming: Overcoming the wall of prejudice I sometimes have had chances to discuss about "game accessibility" ever since I started working for Banjiha Games (Korean word for "Semi-basement") as a writer, while representing people with visual impairment like me. Sure, I do like games. But I'm not good at it. And frankly speaking, my current work also has to do little with the game. So I must admit that I try to talk cautiously whenever such a topic arises Read More [논문 세미나]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 〈이브 온라인(Eve Online)〉은 현재 ‘펄어비스’가 인수한 아이슬란드의 게임 제작사인 ‘CCP 게임즈(CCP Games)’가 2003년 출시한 SF 샌드박스 MMORPG이다. 가상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브 온라인〉은 오픈 월드 시스템을 통해 광활한 맵을 제공하며, 이곳에서 일어나는 유저의 다양한 행위들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높은 자유도를 제공한다. RPG이지만 이 게임에는 캐릭터의 직업이 없다. Read More [인터뷰] 게임 전시가 줄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의 균열 : <게임 사회> 기획자 홍이지 학예연구사 인터뷰 게임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2년 10월에 방영했던 EBS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을 기억할 것이다. 해당 다큐멘터리 3부에서는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이라는 제목으로, ‘게임을 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담론들을 다루었다. 비단, <게임에 진심인 편>뿐만 아니라 게임과 예술의 경계를 어디로 둘 것인지에 관한 질문들은 훨씬 이전부터, 다양한 경로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 간단한 질문에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쌓여왔던 담론의 두께만큼 다양한 관점이 혼재해있기 때문이다. Read More [인터뷰] 게임은 현대미술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 MMCA서울관 〈게임사회〉 展 국내 국립 미술관에서 게임을 주제로 한 전시가 기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임사회〉 전에 대한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관심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흔히 접하기 어려운 주제의 전시를 사람들은 어떻게 감상하고 있을까? 이번 호에서 GG는 〈게임사회〉 전에 다녀온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왔다. Read More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미술의 근간이 될 때, 〈게임사회〉 리뷰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현대 미술을 향유하는 이들과 관심이 거의 없는 일반 관객들 사이의 회색분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딱히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어렸을 때부터 향유해온 것도 아니지만 뒤늦게 재미를 붙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꿈보다 제법 마음에 드는 해몽이 나오면 그걸 감상으로 삼아 마음에 두기. 그게 나름의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Read More 게임 인터페이스로서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 전시 리뷰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이 다양한 담론장을 떠돌고 있다. 게임과 예술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행정과 법의 영역에서도 게임의 위상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오가는 중이다. (물론 예술가, 행정가, 정치인, 사업가, 그리고 게이머 각각의 입장과 목표는 모두 다르겠지만) 이러한 정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게임 주제전은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기에 일단 《게임사회》라는 전시는 주목할 만하다. Read More 게임과 예술 :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문에 현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게임이 일정한 미적인 속성을 체계적이고 인공적으로 구성한 형식이 아니면 무엇일까. 너무나 당연했다. 사진과 영화가 아날로그 기술적 혁신에 대응하는 형식이었다면, 게임은 디지털 혁신에 대응하는 고도의 예술형식이라고 보는 게 당연하고 타당했다. “모든 예술형식의 역사를 보면 거기에는 위기의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는 이들 예술형식은 변화된 기술수준, 다시 말해 새로운 예술형식을 통해서만 비로소 아무런 무리 없이 생겨날 수가 있는 효과를 앞질러 억지로 획득하려고 한다. Read More 게임과 예술: 게임 플레이 경험을 깊이있게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합리적인 대답을 기대한다면 생산적일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게 되는 “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에 대한 사유가 게임을 예술 또는 비예술로 분류하는 것보다 더 나은 접근 방법임을 주장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Read More 게임으로 관객에게 말걸기 -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관람기 필자는 게임제너레이션으로부터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에 대한 게임전문가 관점에서의 리뷰"를 요청받았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게임전문가도, 미술애호가도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잘못 주름을 잡았다가는 큰 코를 다칠 게 뻔했다. 하지만 북서울미술관은 필자의 집 앞이었던 데다, 고료의 유혹이 상당했다. 그렇게 흔쾌한 척 '퀘스트'를 수락했지만, 이 주제에 적당한 '레벨'인지 자문한다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Read More 게임이 대체 왜 예술이 되어야 할까?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둘러싼 이야기들 C. 티 응우옌의 『게임: 행위성의 예술』은 게임에 대한 미학이자 윤리학이다. 그는 우리가 게임을 단지 이기기 위해서만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한된 행위성(agency)의 조건을 게임 플레이를 하는 동안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는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가 가능하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핵심에 있다. 우리는 게임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환경, 그리고 행위성이라는 형식 안에서 머리 싸매는 고투(struggle)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Read More 게임적 리얼리즘: "제3의 시간"과 다이성(多异性)의 순간 리얼리즘의 탄생은 근대 이래 과학주의의 확산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문화의 다양성, 사회적 상호작용의 게임화는 리얼리즘과 과학주의 간 긴밀한 관계를 위협하고 있고, 이로 인해 우리는 리얼리즘이란 것에 대해 다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즈마 히로키(東浩紀)의 ‘게임적 리얼리즘(ゲーム的リアリズム)’ 이론은 그 안에 이론적 균열과 논리적 모순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로하여금 리얼리즘 내러티브라는 문제와 침묵하는 독자를 자율적인 행위자로 바꾸는 게이머 문제를 사고하도록 해주었다. Read More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위한 제노바 첸의 작업들 게임이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전시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듯, 게임을 만드는 것 역시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술 매체로서 게임,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 게임을 예술 매체로 취급하는 새로운 시각과 함께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들의 존재감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Read More 미술관에 놓인 게임: 게임은 미술관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한글로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영아적 판타지가 위협받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어Μουσείον을 무세이온이라고 표기해야 할 때다. 오랜 옛날 무사이Μουσαι의 신전을 부르던 이름이다. 갱스터 근성을 타고 태어난 로마인들이 그곳을 참숯으로 만들었다. 파편처럼 흩어진 여러 기록에 따르면, 무세이온은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을 거느린 거대기관으로, 세상의 온갖 학자들이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싸면서 각종 연구를 자행하였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보존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Read More 박물관/미술관 속의 게임들과 그 역사 최근 들어 미술관에 게임이 전시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 전시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와 같이 게임을 소재로 한 전시가 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들은 단순히 그 오브제의 집합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작품들이 연계되어 만드는 다양한 맥락을 통해 그 작품의 의미는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Read More 예술이 되기 전에, 현실의 주인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오로지 게임애호가일 뿐인 입장에서 게임과 예술에 대해 생각하면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외침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다들 아는대로 이러한 클리셰적 항변은 예술과 게임의 본질이나 실제로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 등을 따지는 것과는 큰 관계가 없다. ‘게임을 하는 나’에 대한 정당화 시도가 핵심이다. Read More 죄책감 3부작의 죄책감은 어떻게 발현되는가 한국의 게임개발자 somi는 자신의 작품 중 ‘레플리카’, ‘리갈 던전’, ‘더 웨이크’ 세 작품을 묶어 스스로 ‘죄책감 삼부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일련의 시리즈로 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세 작품에는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일련의 의도가 들어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somi는 자신의 게임을 통해 스스로 밝혔듯이 일련의 메시지를 게임이라는 매체의 방법론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하나의 시리즈로 명명된 그의 작품들 속에서 우리는 한 작가의 의도와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얻는다. Read More

  • 심사위원장 총평

    제 2회 게임 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는 총 51편의 원고가 투고되었다. 작년에 비해 수적으로는 다소 줄어들었으나, 원고의 전반적인 질적 수준과 비평의 주제 및 소재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큰 진전이 있었다. < Back 심사위원장 총평 13 GG Vol. 23. 8. 10. 제 2회 게임 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는 총 51편의 원고가 투고되었다. 작년에 비해 수적으로는 다소 줄어들었으나, 원고의 전반적인 질적 수준과 비평의 주제 및 소재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큰 진전이 있었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이 각 원고에 대한 개별 평가를 하고, 이를 기반으로 집단 토론을 거쳐 7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작년과 달리 대상, 우수상 등의 위계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당선작에 대한 간단한 심사평을 접수번호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게임과 행위 원리"는 <핫라인 마이애미>의 서사와 숨겨진 결말을 통해 게임 플레이의 근본적 목적을 질문하는 글이다. 게임의 본질을 잘 이해한 작가가 특정 개념에 얽매이지 않은 채 창의적이고 참신한 논의를 전개하였다. 논리가 다소 거친 면은 있으나, 글의 재미와 완결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모바일 리듬 게임에서 '엄지러'를 선택하기"는 리듬게임 장르의 엄지러 규범의 의미를 파헤치는 흥미로운 비평문이다. 독창적 아이디어가 돋보였고, 가독성도 뛰어난 글이다. 다양한 예시와 논의가 결론에서 집약되는 논리적 수렴이 다소 미흡하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1993년 게임 <시스템 쇼크>의 오디오 로그를 차분하게 분석한 "오디오 로그의 문학적 요소와 방법론"은 심사위원 전원이 별 이의 없이 당선작으로 선정한 수작이다. 독창성과 문장력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고, 무엇보다 저자가 가진 문제의식이 잘 드러난 비평문이다. "모순된 세계의 충돌을 '다시' 그릴 때는"은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의 리메이크작 분석을 통해 러브크래프트와 셜록 홈즈의 만남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치밀한 관찰과 탄탄한 논리로 풀어나갔다. 성실함이라는 비평가의 덕목이 돋보였고, 문장력 또한 뛰어났다.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Ready or Not 비평을 중심으로"는 다른 투고작들과는 다소 결이 다른, 어쩌면 게임 비평의 영역을 확대하려 시도한 글이다. FPS 게임에 대한 장르 비평이자 게임비평을 통한 사회비평이기도 한 이 글은, 다소 힘이 떨어지는 결론에도 불구하고 저작 의도의 차별성을 높이 평가할 수 있었다. 게임 공간의 한계에 대한 호기심을 훌륭한 비평으로 승화시킨 "최종장과 변방_비디오 게임 속 공간적 한계의 실감"은 무엇보다 게임에 대한 저자의 지적 관심과 애정이 부각되는 글이다. 다소 장황하고 나열적 문체라는 점이 아쉽기는 했으나, 논지 전개의 발상이 흥미롭고 여러 게임을 넘나드는 횡단적 분석의 장점이 잘 살아난 비평문이라 평가하였다. 마지막으로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는 게임 텍스트나 수용자 분석이 아닌 생산과정 비평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내용적으로 다소 평이하고 현장과의 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유용한 개념의 활용이나 적절한 레퍼런스 등을 높이 평가하였다. 무엇보다 저자의 독창적 시선이 신선했다. 이번 공모전에 출품한 저자 51명은 모두 우리나라의 척박한 게임비평 씬을 어떻게든 일궈보려는 게임 애호가이자 게임 플레이어이자 게임 연구자들이라 생각한다. 이들의 애정이 여러 문을 거치고 턱을 넘고 다리를 건너 언젠가는 우리나라 게임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특히 수상에 영예를 안은 일곱의 새내기 비평가들은 당선의 기쁨이 이력서의 한 줄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게임에 대한 애정을 비평문 집필로 형상화하는 노력을 꾸준하게 지속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2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윤태진 심사위원 명단 윤태진 (심사위원장.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김상우 (더플레이 대표. 게임평론가)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명규 (게임웹진 기자)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교수)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세대학교 교수) 윤태진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20년 이상 미디어문화현상에 대한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했다. 게임, 웹툰, 한류, 예능 프로그램 등 썼던 글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들”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게임문화연구』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고, 요즘은 《연세게임·이스포츠 연구센터(YEGER)》라는 연구 조직을 운영하며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게임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게임과 시신경제 (Necronomics)

    시신경제 (Necronomics)는 아킬레 음벰베 (Achille Mbembe)의 시신정치 (Necropolitics)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이다. 시신정치는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생명정치 (Biopolitics)가 권력이 생명의 영역을 지배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동시대의 현실은 죽음을 단지 생명권력 (Biopower)을 위한 수단으로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 Back 게임과 시신경제 (Necronomics) 22 GG Vol. 25. 2. 10. * <엘든 링>의 대표적 룬 노가다 장소 시신경제 (Necronomics)는 아킬레 음벰베 (Achille Mbembe)의 시신정치 (Necropolitics)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이다. 시신정치는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생명정치 (Biopolitics)가 권력이 생명의 영역을 지배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동시대의 현실은 죽음을 단지 생명권력 (Biopower)을 위한 수단으로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1] . 즉, 생명정치의 관점에서라면 제도적 폭력이나 전쟁이 발생시키는 죽음은 결과적으로 생명권력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는 장치여야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미 죽음으로 권력이 이양되었고 따라서 생명보다도 죽음 그 자체의 극대화가 목표라는 것이 시신정치의 전망이다 [2] . 시신경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생명이 가치를 띠고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곧 재화가 되는 체계에 주목한다. 즉, 살아있는 인간의 목숨보다 죽은 뒤 그 신체의 교환 가치가 더욱 높게 매겨지는 현실인 것이다. 게임 속에서 시신경제는 이미 가장 보편적인 체계 중 하나로 기용되고 있다. 적과의 전투를 주 플레이 내용으로 삼는 액션 게임에서 적의 죽음은 경험치뿐만 아니라 화폐의 축적에도 계산된다. 우리는 흔히 ‘노가다 (farming)’라는 어휘로 불리는, 획득 화폐의 극대화를 위한 적 살해의 최적 효율 전략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보통 적 살해 자체가 금전의 획득을 보장하지는 않고 시체의 인벤토리를 뒤져 적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금품을 노획하거나 장비를 장물로 팔아넘기는 행위를 통해 부차적으로 경제 활동을 일삼긴 한다. 그러나 대표적으로 프롬소프트웨어 (FromSoftware)의 게임들과 같은 경우엔 추가적 노획 행위 없이도 죽음 그 자체가 화폐의 획득을 보장한다. <소울> 시리즈에서는 ‘소울’의 형태로, <엘든 링>에서는 ‘룬’의 형태로, <아머드 코어> 시리즈에서는 현상금의 형태로 보상이 들어온다. 특히 소울 (soul)은 말 그대로 영혼 그 자체로, <소울> 시리즈에선 플레이어가 죽인 자의 영혼을 재화로 획득하며 사용한다. <엘든 링>의 룬은 <소울> 시리즈의 보상 시스템을 그대로 계승함에 따라 조금 덜 직관적으로 되지만, 세계관 내 우주적 존재의 ‘축복’이라는 점에 따라 존재와 생명에 아주 핵심적인 요소를 살해 행위에서 얻는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이다. <아머드 코어>에선 보상 금액의 형태보다 그것이 사용되는 방향이 시신경제에 접촉해 있는데, 현상금은 전부 주인공 파일럿 신체의 연장이나 마찬가지인 작중 기체 AC (Armored Core)의 부품들을 구매하고 강화하는 데에 투자된다. 특히 <아머드 코어 VI 루비콘의 화염>에서 주인공은 몸을 오로지 AC 탑승 및 조종에만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개조 받은 ‘강화인간’으로, 대신 그 외의 모든 신체 기능을 희생하는 수술의 부작용으로 인해 ‘뇌가 익어버려’ 기체 바깥에선 제대로 된 생활이나 거동을 영위할 수 없다. 따라서 작중 주인공이 살해하는 적들은 현재 사실상 그의 진정한 신체라고 말할 수 있는 AC의 활동 역량을 확장하는 금액으로 환산되고, 종국에는 재수술을 받아 AC 바깥에서도 그 자체로 활동할 수 있는 몸을 되찾는 것이 목적이다. 게임 내에서 정확히 어떤 연유에서 이름도 없는 주인공 강화인간 ‘C4-621’이 그런 극단적인 수술을 받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지만, 결국 <아머드 코어 VI 루비콘의 화염> 내에서 플레이어가 임하는 모든 전투와 파괴, 살해의 용도는 저당 잡힌 주인공의 신체를 되찾기 위해 채무 를 상환 하는 과정으로 귀결된다. 신체를 저당 잡는 튜토리얼 채무는 시신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 중 하나로 ‘죄와 벌’이라는 인간 법과 도덕 세계의 발생지이다. 니체는 독일어로 ‘죄 (Schuld)’가 ‘채무 (Schulden)’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 죄에 대한 벌은 언제나 등가물 을 가정하고 죄인을 고통 스럽게 해서라도 실제로 배상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 극히 경제적인 법을 각인시키기 위한 기억술 의 원형으로 고문을 꼽는다 [3] . “기억 속에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달구어 찍어야 한다: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것 만이 기억에 남는다. (중략) 인간이 스스로 기억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길 때, 피나 고문, 희생 없이 끝난 적은 없었다. 가장 소름끼치는 희생과 저당, 가장 혐오스러운 신체 훼손, 모든 종교 의례 가운데 가장 잔인한 의식 형태 – 이 모든 것의 기원은 고통 속에 가장 강력한 기억의 보조 수단이 있음을 알아차린 저 본능에 있다. (중략) 예를 들면 돌로 쳐 죽이는 형벌, 수레로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 말뚝으로 꿰뚫어 죽이는 형벌, 말로 찢어발기거나 밟아 죽게 만드는 형벌, 범인을 기름이나 포도주로 삶는 형벌, 인기 있었던 살가죽 벗기는 형벌, 가슴에서 살점을 저며내는 형벌, 그리고 또 범죄자에게 꿀을 발라 이글대는 태양 아래 파리떼가 우글거리게 놓아두는 형벌 등 고대 독일의 형벌을 생각해보라.” [4] 그러므로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규칙이라는 법을 전부 제대로 각인시켜야만 하는 의무를 가진 튜토리얼에서 가장 효율적인 예시로 시신경제가 등장하는 것 또한 우연은 아니리라. 2007년도 게임 <어쌔신 크리드>에선 주인공이 튜토리얼 이후 계급을 강등당하고 가지고 있던 모든 장비를 빼앗기는데, 어째선지 전투 및 이동 기술 등 각종 다양한 신체 능력마저 덩달아 잃어버리고 만다. 마찬가지로 2016년작 <용과 같이: 극>의 튜토리얼에선 가장 강한 ‘도지마의 용’ 전투 스타일을 모두 갖고 시작하지만 정작 튜토리얼이 끝나고 난 뒤엔 주인공이 10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터라 해당 신체 기술들을 전부 잊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이 게임들에서 계급과 인연 등을 차차 되갚아가며 다시 찾아야만 한다. 플레이어 캐릭터인 주인공은 분명 이 모든 신체 역량들의 원래 소유주였음에도 불구하고 튜토리얼이 끝난 직후 어느새 몸의 기능들을 저당 잡힌 채무자로 전락하고 만다. 이때 캐릭터의 신체는 외적인 시각에선 훼손되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기능들이 ‘죽은’ 것이다.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 튜토리얼에서 해당 게임 중 플레이 가능한 능력의 최대치를 맛보게 해주고 얼마만큼의 액션과 재미가 가능한지 미리 알려주려는 연출 전략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에게 주인공의 신체를 ‘죽여’ 앞으로 하나하나 갚아 나가야 하는 채무의 대상으로 각인시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게임 내 규칙에 자연스럽게 복속시킬 것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죽은 신체의 교환 가치 * <폴아웃: 뉴 베가스>에서 잘라 온 머리가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현상금을 깎는 다트리 소령 (Major Dhatri) 채무자는 자신이 되갚을 것이라는 약속에 신용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자신이 한 약속의 진지함과 성스러움을 보증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는 상환을 의무나 책임으로 자신의 양심에 새기기 위해서, 계약의 효력은 그가 상환하지 못할 경우 채권자에게 그가 그 외에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 그 밖에 그의 권한에 있는 것을, 예를 들면 자신의 육체나 혹은 자신의 자유, 또는 자신의 생명 역시 저당 잡히는 것이다. 더구나 특히 채권자는 채무자의 육체에 온갖 종류의 능욕과 고문을 가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부채 액수에 적합해 보이는 크기만큼 그의 육체에서 살로 도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곳곳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사지 하나하나와 신체의 각 부분을 정확하게, 부분적으로는 무서울 정도로 세세하게, 합법적으로 가격을 산정해왔다.” [5]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채무자가 자신의 신체를 저당 잡힐 때 자기 자신 외에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내놓고 있는 것이란 점이다. 즉, 니체의 채무법에서 채무자의 신체는 채무자 그 자신이 아니며 철저히 분리된다. 따라서 저당 잡힌 몸은 그 순간 생명을 가진 인간이 아닌 시체로서 죽은 물건이 된다. 시신경제에서 시체를 “돈벌이가 되는 물건”으로 만드는 건 죽음 그 자체이다 [6] . 즉, 단적으로 말해 시신경제는 장기매매라는 명백한 형태의 신체 부위 교환 형태를 굳이 띠지 않더라도 죽음 그 자체로 재화를 교환한다. 1755년 4월 24일 매사추세츠 영국령 식민지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머릿가죽 하나당 70파운드의 현상금을 달았다 [7] . <폴아웃 3> (2008)에선 바로 매사추세츠에서 대략 683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수도 황무지에서 손가락 하나당 5에서 10병뚜껑으로, 귀 하나당 10에서 15병뚜껑으로 보상받는다. <폴아웃: 뉴 베가스> (2010)에선 매사추세츠에서 4348킬로미터 떨어진 모하비 황무지에서 머리 하나당 250병뚜껑을 보상받는다. 특히 <폴아웃: 뉴 베가스>의 머리는 해당 부위가 파손되었을 시 가격이 50병뚜껑으로 줄어든다. 단순히 죽음과 부위의 차원에 가격을 매기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신체의 보존도마저 산정하는 것이다. “채무자에게 가해지는 형벌에서 채무의 상환량은 단순히 채무자가 입는 고통만이 아니라 채권자가 느끼는 쾌감까지 계산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고통을 보는 것은 쾌감을 준다.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더욱 쾌감을 준다.’” [8] 게임 속 시신경제는 게임 내에서 금전적 형태로 보상을 제공하지 않을 때조차 신체의 죽음을 교환한다. 정확히는 오히려 게임 속 인물들의 신체에 아무런 부차적 가치가 부여되지 않았을 때만 작동하는 시신경제가 있다. 바로 죽음과 웃음의 교환이다. 가장 잔인한 고어 액션 게임에서마저 적의 죽음은 플레이어가 구가하는 살해 행위에서 느낄 수 있는 역동적 쾌감 이상의 보상을 항상 제공한다. 최소한 얼마만큼 잔인하게 더 많은 적을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죽였는지를 추산하여 점수나 등급으로라도 보여주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게 일반적으로 게임이 시신경제를 작동시키는 방법이지만 그마저도 없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신체를 훼손시키도록 만드는 게임들이 바로 고어 코미디 게임들이다. 2008년 플래시 게임 <해피 휠스 (Happy Wheels)>부터 2019년 <피플 플레이그라운드 (People Playground)>, 2024년 <헬다이버즈 2>까지,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래그돌 (Ragdoll) [9] 고어 게임들은 공통적으로 플레이어 캐릭터와 적의 구분 없이 그 어떤 죽음에도 고집스러우리만치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는 경직된 래그돌 신체가 웃음을 자아내는 원리처럼 생명적인 것에 덧붙여진 기계적인 것 이라는 희극의 기본 명제에 부합하도록 만들기 위해 해당 캐릭터들의 신체에서 죽음이 응당 가져야만 할 의미마저 의도적으로 박탈하는 것이다 [10] . 심지어 적의 죽음에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플레이어 캐릭터의 죽음에 이렇다 할 페널티마저 크게 부여되지 않아, 죽이는 행위뿐만 아니라 죽는 행위마저 권장된다. 따라서 모든 신체는 지킬 이유도 없고 언제든지 교체되어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양陽의 가치도 음陰의 가치도 아무 의미도 없이 날아다니는 사지들, 육편들, 내장들은 피아의 구분도 없고 재화로서도, 그리고 당연히 인격으로서도 기능하지 않는다. 다만 그 ‘생명으로서 응당 있어야 할 것들이 없음’이라는 성질이 래그돌 고어 게임들 속 죽음에서 발견되고 결국 죽음은 웃음이라는 쾌락과 교환되며 역시나 또 다시 시신경제를 작동시키는 행위 목적이 되는 것이다. 하나의 장르로서 시신경제: 과잉과 음의 미학 * <크루얼티 스쿼드>의 플레이 화면 지금까지 다룬 시신경제는 장르를 불문하고 게임이 신체를 기용하는 방식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체계로서 등장했지만, 대주제이자 장르로서 이 개념에 투신하는 게임이 있다. 앞서 언급한 프롬소프트웨어의 게임들도 세계관 전반을 시신경제가 감싸고 있고, <사이버펑크 2077> (2022)의 세계 속에서도 직접적으로 편재한다. 우선 장기매매가 주 생계 수단인 ‘스캐빈저 (Scavengers)’라는 집단이 등장하고 <사이버펑크 2077>의 배경 ‘나이트 시티 (Night City)’ 사람들은 주인공과 NPC를 막론하고 거의 모두가 <아머드 코어> 시리즈에서 그러했듯이 ‘일을 하기 위한 몸을 사기 위해 일을 한다.’ 나이트 시티에선 강화인간의 수준을 넘어 모두의 일상적 신체 자체가 유기체보다는 무기물의 영역으로 대거 이동한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거진 인형人形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모습을 유지하고는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시신경제를 작동시키는 잔인함, 잔인함을 보장하는 인격은 신체의 죽음에 유지된다. 하지만 <사이버펑크 2077>조차 주제이자 내용으로서만 시신경제를 다룰 뿐 매체적 차원에서는 시신경제를 딱히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려한 그래픽의 AAA게임의 정반대편에서 ‘최악’, ‘최흉’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고 감히 말해도 어폐가 없을 <크루얼티 스쿼드> (2021)의 경우에는 게임의 모든 면이 전적으로 시신경제를 말하고 있다. 마치 누군가가 와서 망막에다가 직접 형광펜을 칠하고 썩은 찰흙을 덕지덕지 바르는 듯한 고채도 고대비 저-폴리곤 (Low-Polygon)의 끔찍한 비주얼과 누군가가 사용 중인 화장실을 그대로 공사하는 중 장비가 망가진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는 듯한 극악스러운 음향은 처음 마주했을 시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게임을 일정 시간 이상 플레이하면 진짜로 시청각적으로 고통스럽기 시작하게 되는 것을 넘어 두통마저 느껴진다. 메뉴 버튼의 기괴한 아이콘들은 정확히 뭐가 뭐를 가리키는지 눌러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나아가 듣도 보도 못한 HUD 프레임이 존재하는데, 다시 말해 정말로 1인칭 화면의 테두리를 상시 뒤틀린 이미지가 덮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레임의 상부 가운데에는 게임의 제목인 ‘CRUELTY SQUAD’가 계속 떠 있다. HP는 바의 형태도 아니고 게이지의 형태도 아니고 알 수 없는 방울-뭉치-덩어리의 형태로 정말 불필요하게 크게 화면에 부유한 채 꿈틀거리며 그 위엔 마찬가지로 생명 (LIFE)이란 글자가 굳이 쓰여 있다. 총알과 탄창 개수를 가리키는 숫자 사이에는 어째선지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고 총알을 발사하거나 무기를 바꾸는 등의 행위를 할 때에 이 얼굴은 전혀 알 수 없는 이유로 회전한다. 즉, 이 게임은 그래픽, 음향, UI를 불문하고 전력을 다해 실용성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총을 장전할 때 R키와 같은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마우스를 위아래로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는 기가 찰 지경이다. 문제는 이 흉물스럽고 황당한 디자인이 게임 속 극대화된 기업 자본주의 바이오펑크 디스토피아 사회의 끔찍한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면면과 더할 나위 없이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디스토피아는 과장되어 있기는 해도 당장 아무 인터넷 플랫폼이나 들어가 봐도 맞닥뜨릴 수 있는 주식 및 자기 계발 신봉자들처럼 NPC들이 ‘CEO 마음가짐 (CEO Mindset)’을 중언부언 읊어대고 펀코팝 (Funko Pop)의 패러디 천코팝 (Chunkopop)이 등장하는 등 작금의 현실이 지배받고 있는 체제와 크게 다르지도 않으므로 게임 속 세계가 어느 지점까지 ‘있는 그대로’ 생긴 것인지, 아니면 그 세계에 살며 해리되고 분열된 주인공의 정신 상태에 이러한 형태로 인식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이는 또한 현실에서도 개인들의 세계 인식 자체에 던질 수 있는 이미 고루한 실존적 질문이다. 구태여 인식과 세계의 현실을 분리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애초에 분리가 가능하지도 않을 만큼 이미 주인공은 정신뿐만 아니라 몸까지 철저히 뒤틀려 있다. 그의 두개골에는 총이 달려 있고 등에서는 가속을 위한 액체가 분비되며 내장은 밧줄처럼 사용된다. 그의 몸에는 살 위에 더 많은 살이, 내장 위에 더 많은 내장이 부착되어 있으며, 임계점을 넘은 생명 공학 그 자체가 구토하고 있다. 주인공은 회사 청산을 주 업무로 맡는 보안 업체 ‘크루얼티 스쿼드’의 청부업자로 <아머드 코어>, <사이버펑크 2077>의 연장선에서 번 돈으로 또 자신의 신체를 개조하고 개조한 신체로 더 많은 돈을 번다. 죽음이 삶을 위해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죽음을 위해 매진된다. 게임을 켜면 짧게 지나가는 도입 장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삶에의 권위... (The Authority on life...)” 그리고 주인공의 수입원은 암살 의뢰의 보상이기도 하지만 임무 수행 중 암살 대상 외에 아무런 처벌도 손해도 없이 아주 자유롭게 죽일 수 있는 민간인들의 장기를 수확해 실시간으로 암시장에서 거래하는 것 또한 포함된다. 게임 내 실시간 시장에선 주식과 장기가 나란히 거래되며 노골적으로 시신이 경제의 부富라는 것을 가리킨다. 나아가 말 그대로 시신경제에서 죽음이 최종적이며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표하기 위해 주인공은 고용주를 죽이고 신마저 죽일 수 있다. 그리고 ‘생의 요람 (Crade of Life)’에 도달해 그 자신이 신이 되는 결말에선 조르주 바타유 (George Bataille)의 『저주받은 몫』을 직접 인용하며 도대체 그래서 시신경제는 왜 죽음을 추구하며 작동하는 기계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지구 표면에서 에너지의 작용들이 결정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 있는 유기체는 원칙상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 (부)를 수용한다. 이러한 과잉의 에너지는 어떤 체계 (예를 들어 어떤 유기체)의 성장에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체계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되면, 또는 에너지의 과잉이 그 성장에 전적으로 흡수될 수 없다면, 자발적이든 아니든, 영광스러운 방식으로든 아니면 파국적인 방식으로든, 필연적으로 그러한 과잉은 이득 없이 상실되고 소비되어야 한다.”[ 11] 즉, <크루얼티 스쿼드>는 생의 과잉과 포화가 곧 죽음이라는 그 자체로서는 음의 가치를 경제의 방향타로 잡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시신 경제에서 부富와 부腐는 하나이다. 모든 사회가 아무런 의심 없이 성장을 테제로 삼고 있는 현실과 상승 지향의 영적 전파가 시신경제를 이 땅에 소환하는 의식의 제단이다. <크루얼티 스쿼드> 게임으로서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감으로써, 효율, 실용, 세련, 편안에 반대되는 음의 가치를 매체의 모든 자원을 다해 표현함으로써 시신경제의 현실을 고발한다. [1] Achille Mbembe. “Necropolitics.” Public Culture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3), vol. 15, no. 1, pp. 11–12. [2] Ibid., pp. 39-40. [3]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서울: 책세상), 402~406쪽. [4] 위의 책, 400~401쪽. [5] 위의 책, 404쪽. [6] 장-피에르 보. 『도둑맞은 손』 (서울: 이음, 2019), 50쪽. [7] Massachusetts. Acts and Resolves, Public and Private, of the Province of the Massachusetts Bay (Boston: Wright & Potter, 1869-1920), vol. 15, p. 308. [8] 프리드리히 니체. 앞의 책, 407쪽. [9] 래그돌은 본래 헝겊 인형이라는 뜻으로 게임 속 물리 엔진 상에서 관절에 힘이 없이 축 늘어진 채 허우적허우적 휘둘리는 신체 모델들을 일컫는다. [10] 앙리 베르그송. 『웃음』 (파주: 도슨트, 2022) 37쪽. [11] 조르주 바타유. 『저주받은 몫』 (파주: 문학동네, 2022), 29~30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호르몬 일지』와 『게임 코러스』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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