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위한 제노바 첸의 작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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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3. 6. 10.
게임이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전시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듯, 게임을 만드는 것 역시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술 매체로서 게임,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 게임을 예술 매체로 취급하는 새로운 시각과 함께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들의 존재감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종종 사례로 언급되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제노바 첸(Jenova Chen)’이다. 제노바 첸(이하 첸)은 게임 〈저니 Journey〉(2012)의 제작자이다. 그는 댓게임컴퍼니(thatgamecompany)라는 개발 스튜디오의 대표이자 디렉터이며, 게임 퍼블리셔 안나푸르나 인터랙티브(Annapurna Interactive)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첸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게임 개발자로서 ‘클라우드’, ‘플로우’, ‘플라워’, ‘저니’, ‘스카이’와 같은 간결한 이름을 가진 다수의 게임 제작에 참여해온 인물이다.
첸의 게임들은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저니는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에서 가장 빠르게 판매된 게임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여러 어워드에서 올해의 게임(GOTY, Game of the year) 수상이 셀 수 없이 많이 언급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게임들은 예술 영역에서도 환영을 받아왔다. 첸의 〈플로우 flOw〉(2007, PS3)는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 영구적으로 소장된 14개의 게임 중 하나로 채택됐다. 또 다른 게임 〈플라워 Flower〉(2007, PS3)는 워싱턴 스미소니언 미술관이 보존하고 있는 영구 소장품이 되었다. 지난달부터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에서도 플로우와 플라워가 전시장에 등장하여 플레이 가능하게 전시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첸의 게임은, 게임을 구매하거나 다운로드 받아 즐기는 플레이어와 전세계의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람객 모두로부터 플레이되고 있다. 이렇게 게임을 예술 매체로 취급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그는 퍼블리셔와 미술관, 소비자와 관람객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이목을 끌어 왔다. 그의 게임들은 어떤 특징으로 분석될 수 있으며, 작가로서의 첸은 어떤 생각을 토대로 게임을 만들어왔을지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은 제노바 첸이라는 한 명의 게임 제작자에 주목하면서 그의 작품과 생각을 들여다본다.

* 제노바 첸
콘솔 게임이 금지된 나라에서 콘솔 게임의 나라로
중국 출신의 첸은 1세대 중국 컴퓨터 공학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왔다. 다른 가정보다 상대적으로 기술 친화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배경이 있었지만, 첸이 10대 시절의 중국은 콘솔 게임기 판매 금지령이 내려지고 있었다. 제한적인 게임 플랫폼의 상황에서 첸은 콘솔보다는 PC 게임을 주로 플레이하게 되었고, 특히 PC로 〈파이널 판타지 7 Final Fantasy 7〉(1997)를 플레이하길 좋아했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인 ‘제노바’는 훗날 자신의 영문 이름이 된 배경이기도 하다.
게임을 즐겨하다보니 게임 제작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면서 그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으로 하여 대학에 진학한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시각적으로 창작하는 일이 좋아서 공대 수업보다는 예술 대학 수업에 기웃거리는 일이 많았다고 전한다. 학사 졸업 후 그는 먼 훗날 픽사(Pixar)에서 일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USC)의 인터랙티브 디자인 석사 과정 하에 영화, 게임,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제작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게 된다.
학생으로서 참여한 두 번의 작업
〈클라우드 Cloud〉(2005, PC)는 대학원 재학 시절 첸의 초기 작업으로, 6명의 학교 사람들과 진행한 교내 게임 제작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클라우드는 꿈 많은 소년이 하늘을 유영하면서 구름을 뭉쳐 날씨를 변화시키는 짧은 스토리의 게임이다. 각각의 목적을 가진 4개의 스테이지에서 플레이어는 구름을 막대사탕 모양으로 디자인 하기도 하고, 작은 구름을 합쳐 더 큰 구름을 만들기도 하며, 비가 필요한 지역에는 흰구름과 먹구름과 충돌 및 상쇄시켜 비를 내리기도 한다.
첸은 클라우드를 제작할 당시 게임회사 EA로부터 장학금을 지원 받았다. EA는 USC와 협약을 체결하고 학생들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하면서 게임 개발을 장려했다. 이는 클라우드의 저작권이 첸이 아닌 USC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첸은 학교와 회사의 지원 덕분에 게임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동기를 얻게 되었고, 이 인연으로 클라우드 출시 이후에는 EA의 맥시스 스튜디오의 〈스포어 Spore〉(2008) 개발팀에서 잠시나마 일을 하기도 했다.

* 〈클라우드〉
그렇게 제작된 클라우드는 온라인에 무료로 배포되어 홍보 없이도 약 50만 회 이상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며 인터넷 상에서 인기를 얻게 된다. 여러 게임들과 다르게 이 게임은 비폭력성을 띠며 긍정적 메시지를 추구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구름이 되어본다”는 설정이 마치 상상력 풍부한 어린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사람들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첸은 이때 익명의 플레이어들로부터 “당신들(개발자)은 아름다운 사람들이다”라고 쓴 팬 레터를 메일로 받기도 했다.
클라우드에 이어서 진행된 첸의 차기 게임 작업은 〈플로우 flOw〉(2006)였다. 독특하게도 그는 석사 졸업을 위해 플로우를 제작했다. 석사 학위 연구 프로젝트를 검증하기 위해 게임을 이론적으로 설계한 뒤 사람들에게 배포하여 테스트한 것. 플로우는 심해의 유기체로 태어나 바닷속을 유영하며 양분을 먹거나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어 유기체의 성장과 진화를 도모하는 게임이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 이론에 관심이 있었던 첸은, 몰입 이론에 기반한 새로운 게임 디자인론을 제시하고, 이를 적용한 게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논문을 쓰기 위해 제작된 게임이라고 하기에 게임의 인기는 기대치를 상회했다. 2006년 플래시 게임 포털에 게시되었던 플로우는 2008년까지 35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얻어 웹 상에 퍼져 나갔고, 순식간에 전세계인들이 즐기는 유명 게임이 되어버렸다.
회사로서 얻은 세 번의 창작 지원
플로우의 성공을 기점으로, 첸은 클라우드를 제작했던 대학원 동료 켈리 산티아고(Kellee Santiago)와 함께 회사 댓게임컴퍼니를 설립해 자신만의 게임 제작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댓게임컴퍼니와 소니(Sony)와의 계약이 성사되었다. 소니는 그동안 첸의 게임들이 보여준 가능성을 판단하고 플레이스테이션 플랫폼에 3개의 게임 출시할 수 있도록 일종의 창작 지원을 약속했다. 이는 댓게임컴퍼니 회사 설립과 운영의 기초가 되었다. 물론 소니와의 계약은 개발사에게 커다란 수익으로 이어지진 않는 구조였으며 저니 개발 당시 회사는 거의 파산 위기에 가까웠다고 공동 창업자 켈리는 훗날 언급하기도 했다.

* 〈플로우〉
소니와의 계약 이후 댓게임컴퍼니는 우선 첸이 석사 논문 프로젝트로 했던 플로우를 기존 PC 플랫폼에서 PS3 플랫폼에 맞게 리디자인 하여 2007년에 출시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2년 간의 개발을 거친 플라워가, 2012년에는 3년의 개발을 거친 저니가 플레이스테이션 플랫폼에 출시되었다. 이 게임들은 연달아 호평을 받으면서 다음 작업에 대한 투자를 보증해왔다. 그리고 소니의 세 번의 창작 지원 이후, 첸은 모바일 플랫폼에 대한 도전으로 〈스카이: 빛의 아이들 Sky: The children of the light〉(2018)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이는 댓게임컴퍼니와 첸의 글로벌한 인지도를 현재의 수준까지 끌어올리게 되었다.
첸은 게임 개발사의 대표이자 디렉터, 게임 디자이너로서 클라우드, 플로우, 플라워, 저니, 스카이를 만들어냈다. 그는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게임 제작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다면에 걸쳐 작업에 투영해냈다. 개개인마다 해석의 여지는 다양하겠지만, 제노바가 연설, 인터뷰, 글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남긴 자료를 통해 필자는 그의 작업적 실천을 크게 세 개의 분류로 함축하고자 한다.
(1) 영화의 기법을 게임에 적용하려는 시도
첸이 석사 생활을 했던 USC의 인터랙티브 디자인 과정은 게임에 특화 되어있는 곳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다루는 다양한 매체 중 하나가 게임이었으며, 그는 필름 스쿨에서 배울 법한 시나리오 라이팅을 실습하기도 했다. 첸은 시나리오 라이팅을 하면서 할리우드와 같은 전통적인 영화 산업에서 ‘3막 구조’를 충실히 사용하고 있음을 알았고, 이를 게임에 적용하려했다. 3막 구조란, 스토리를 3단으로 구성하여 도입부인 1막에서 주인공의 상황을 설정하고, 중반부인 2막에서 그 상황에 따른 여정을 제시하며, 마지막 3막에 다다라서는 그 여정의 결과를 마주하는 구조로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을 뜻한다.
영화에서 사용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게임에서 적용할 때 떠오르는 중요한 지점으로, 그는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강조했다. 영화를 볼 때 “왜 이 장면에서 갑자기 눈물이 날까”를 어렸을 때부터 궁금해왔다는 그는, 위치상 2막이 끝날 때쯤 감상자의 감정이 가장 낮은 지점에 도달했다가 3막에서 최고점을 찍었던 것에 그 원인이 있음을 판단했다. 3막 구조의 스토리텔링에서 서사는 2막이 끝날 때 쯤 가장 낮은 지점에 도달했다가 빠르게 최고점에 도달하며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 저니의 3막 구조
그의 게임들은 이러한 3막 구조 적용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저니의 도입부는 황량한 사막에서 여정을 떠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무너진 사원 사이를 지나가고 생명체를 가진 듯 움직이는 직물들과 상호작용하는 플레이어는 저 멀리 보이는 산 정상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향한다. 공중에서 이동하는 능력을 얻어 성장하여 점차 높은 곳으로 상승하고, 빠른 속도로 계곡 사이에 스키를 타면서 짜릿한 활강을 즐기던 플레이어는 심연에서 적을 만나 위기를 겪는다. 그러다가 산 정상에 올라가면서 그동안 축적해왔던 성장 요소를 모두 빼앗기고 힘을 잃어가다가 끝내 죽음을 겪게 된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야, 비로소 주변 상황이 변화하고 플레이어는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필자가 짧게 요약한 감이 있지만, 제노바는 여러 연설에서 저니의 3막 구조 적용에 대해 자세하고 설명하고 있으니 미세한 경험 설계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GDC 2013 연설 등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저니 뿐 아니라 초기작 클라우드나 플라워에서도 이러한 내러티브 구조는 발견된다. 긍정적이고 활기찬 여정에서 고난을 마주하고 끝내 희생이나 상실, 죽음을 통해 플레이어의 허망함을 필연화하고 극대화 시키는 것은 그의 게임의 특징 중 하나다. 이는 그의 전작들을 온라인 게임의 틀로서 통합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모바일 기반의 스카이에서 일명 ‘죽음을 통한 성장형 윤회’ 시스템으로 적용되어 플레이어의 지속적인 플레이를 이끌어내는 요소가 되고 있다.
(2) 플레이어 스스로가 게임 경험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해외 저널 Communications of the ACM에 2007년 발표된 〈Flow in Games (and Everything Else)〉은 첸이 자신의 석사 학위 논문을 요약해 공개한 것으로, 그가 평소에 게임 디자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조나 철학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이론’에 경유하여 자신만의 디자인을 제안한다. 우선 칙센트미하이는 사람들이 어떤 일에 몰두하면서 현실에서의 걱정이나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잊은 채 긍정적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 순간을 ‘몰입’(Flow)이라고 규정했다.
이 몰입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도전과 그에 맞는 대상자의 숙련이 필요하다. 상황에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도전성이 높아진다면 불안을 일으키고, 반대로 숙달된 것에 반해 도전성이 크지 않다면 지루함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몰입 이론은 게임하는 행위를 포함한 취미나 사회 전반의 영역에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첸은 몰입 이론을 게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도전과 숙련이 균형을 이룬 상태인 ‘플로우 존’(flow zone)에 게임 경험이 위치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 존을 벗어날 경우 게임에 흥미를 잃거나 기쁨이 아닌 고통을 받아 이탈하게 된다. 게임에서 도전과 숙련이란 즉 난이도의 문제이기도 하며, 난이도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대해 기존에 가진 능력이나 지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첸은 이에 기존에 게임 조작 능력과 지식이 풍부한 ‘하드코어 게이머’와 게임을 즐긴 경험이 거의 없거나 조작 능력이 탁월하지 않은 소위 ‘캐주얼 게이머’로서 플레이어를 구분하고, 하드코어 게이머에게는 플로우 존은 도전 더 가깝게, 캐주얼 게이머에게는 숙련에 더 가깝게 설계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설계를 여러 개의 포인트와 경로 이동으로 바꿔 마치 플레이어가 스스로 좌표를 이동하며 플로우 존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며 “스스로 몰입을 찾아가도록 하는 자유”를 주는 것이다.

* 첸의 몰입 이론
그가 이론을 적용하여 제작한 〈플로우〉는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지네 또는 새우의 모습을 닮은 해저의 한 유기체로 시작하고 나면, 영양분을 섭취해 몸을 성장시킬 수 있다. 비어 있는 몸의 마디마디가 채워지는 것처럼 플레이어는 자신의 캐릭터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바다를 유영하다 보면 다양한 영양분이 등장하고, 다른 유기체들이 등장해서 공격해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빨간색/파란색 영양분이 화면에 종종 등장하는데, 이 유색 영양분은 플레이어의 난이도를 나누는 분기점으로 작용한다. 빨간색 먹이를 먹으면 수심은 더 깊어지며 강한 유기체가 등장하는 경쟁과 불안 상태로 이어지고, 파란색 먹이를 먹게 되면 수면에 가까이 가지만 약한 유기체밖에 없어서 성장이 없이 평화가 지속된다. 첸은 현재 상태를 언어가 아닌 직관적인 색깔로 전달하는 것을 즐기는데, 적대적 존재는 주황색으로, 친화적인 존재는 흰색으로 표현, 그리고 심해로 가까워질수록 배경은 어둡게 변화한다.
이러한 설계에서, 물 속을 유영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거나 혹은 컨트롤이 익숙지 않아서 더 큰 적과 상대하기 어려운 플레이어는 빨간색 먹이를 먹는 것을 회피하거나 미룰 수 있다. 자신에게 너무 어려운 컨트롤을 요구하는 수심 깊이라면, 파란색 먹이를 먹어 오히려 난이도를 낮출 수도 있다. 플레이어들은 첸이 설계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느낌을 실제로 받았다. 따라서 게임은 “재밌다”는 평가를 받게 되고 다수의 어워드에서 ‘최고의 게임’에 뽑히기도 했다. 첸의 이론이 어느 정도 증명된 셈이다.
그는 플로우를 통해 자신의 경험 설계의 방법론을 쓰고 플라워, 저니, 스카이에도 여실히 적용해 나갔다. 게임 디자이너는 플레이어가 플로우 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가능한 다양한 균형점을 콘텐츠로서 제공하는 임무를 얻고 충실히 수행한다. 또한 이 균형을 알기 위해 개발 과정에서 플레이 테스트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3) 더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되는 것
앞서 짚은 첸의 게임 디자인론이 잘 적용된다면, 게임이 익숙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 동일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첸은 자신의 꿈을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게임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라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혀왔다. 그의 소망은 게임 제작에서 튜토리얼, 인터페이스, 플랫폼 등 다양한 영역에서 드러난다.
그의 게임은 글자가 잔뜩 써 있거나 플레이와 분리되어 있는 별도의 튜토리얼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조작이 쉽기도 하다. 첫번째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면서 게임 사용법이 자연스럽게 습득이 되는데, 이때 전개되는 스토리는 전체 맥락 위에 놓여 연속적이다. 플라워는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작방식이 쉽다. 컨트롤러 패드의 회전으로 꽃잎을 움직이고 단일 키 버튼으로 가속하는 것이 전부다. 플로우는 마우스의 이동으로만 조작이 가능하고, 스카이는 모바일 터치 인터페이스에서 매끄럽게 이해되는 캐릭터 이동 및 카메라 이동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첸은 직관적인 모바일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데에만 3년이 소요되었다고 전한다.

* 인터페이스
게임의 플랫폼은 플레이어를 나누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콘솔 게임 기기가 없다면 콘솔 게임을 할 수 없다. 그는 플로우를 출시할 때,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구가 검증 되기를 원했다. 따라서 2000년대 당시 가장 파급력이 높았던 웹 플랫폼 ‘플래시’를 선택하게 된다. 플래시 플랫폼에서 게임은 다운로드나 사양의 제약 없이 플레이가 가능했다. 첸은 이전까지 플래시를 개발해본 적이 없었는데, 플로우를 플래시로 출시하기 위해서 3개월동안 공부하여 제작하는 과정을 거쳤다.
플라워와 저니를 출시 할 때에는 콘솔 플랫폼에 대한 고민거리가 있었다. 첸은 손쉬운 사용과 접근 가능성을 중요시해 인터페이스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정작 플레이스테이션이 없는 사람은 게임을 즐길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있었다. 콘솔 게임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전체 비율에서는 아직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그가 스카이를 모바일 플랫폼에서 출시한 배경에 있기도 하다. 가장 보편적인 게임 기계를 찾다가 누구나 한 대 씩 가지고 있는 모바일을 선택했다.
그 외에도 게임은 화면에 문자 언어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색이나 사운드, 컷신으로 상황의 변화를 드러낸다. 색의 경우 노란색은 흥미로움, 길을 잃거나 위기가 닥쳤을 때 짙은 녹색 또는 검정색, 생명력이 없을 때 흰색, 푸른 하늘은 해방감으로 그리고 있다. 플레이어의 현 상황을 한 마디로 보여주기 위해 매 스테이지 별로 등장하는 유적지 벽화는 저니의 상징적인 요소이다. 또한 캐릭터는 정체성이 모호하게 디자인되어 있어 인간 캐릭터의 경우 명확하게 남성인지 여성인지, 나이, 인종 등의 정보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그의 게임 중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이 글은 제노바 첸이라는 인물을 작가의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을지 타진해본 글이었다. 그는 1인 개발자는 아니었으며, 다수의 인원을 거느리는 팀의 디렉터로 활동했다. 모든 작업이 그의 아이디어를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작업에서 드러나는 공통적인 요소는 첸이라는 사람이 가진 가치관과 그의 실천 의식에 기반했다고 충분히 분석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