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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네이크는 들개가 되었는가

03

GG Vol. 

21. 12. 10.

1987년 코지마 히데오(小島秀夫, Hideo Kojima) 감독이 제작한 〈메탈 기어(Metal Gear)〉는 여러 가지 의미로 특이한 게임이었다. 한 명의 캐릭터로 적진을 돌파한다는 점은 같은 제작사의 〈콘트라(Contra)〉 시리즈, 그 외 많은 게임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스테이지를 헤쳐나가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사뭇 새로운 감각이었다. 


코지마 히데오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게이머라면, 그가 작품에서 시도하고 있는 여러 연출이 영화적이라는 사실과 그 이유도 간단하게나마 알고 있을 것이다. 코지마 감독은 어린 시절 온 가족이 모여 매주 1편씩 영화를 감상하며 성장했고, 본래 영화감독이 되려고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게임 제작자의 삶을 살게 되었고, 그가 전개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여러 문제 의식은 그가 개발한 게임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재미있게도 시리즈의 첫 작품인 〈메탈 기어〉는 영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 탄생했다. 1985년 일본에서 [람보 2]가 흥행하자, 코나미(Konami) 경영진은 개발팀에게 MSX에서 실행할 수 있는 전쟁 소재 게임 제작을 지시한다. 베트남 전쟁으로 고통받은 개인의 아픔을 그려냈던 전작 [퍼스트 블러드(1982, ‘람보’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와 달리, [람보 2]는 다른 전개를 선보인다. 지휘관 사무엘 트라우트먼 대령의 설득으로 람보가 단신으로 적진을 돌파하는 모습을 선보인 것이다. 적진을 종횡무진하며 선보인 총격전과 액션은 [람보 2]의 흥행요소로 작용하여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코나미는 아마도 이런 흥행요소에 주목했던 것 같지만, 코나미가 원하는 화려한 효과를 구현하기엔 당시 MSX의 컴퓨팅 파워가 부족했다. 코지마 히데오 이하 개발팀은 역발상으로 총탄과 적병이 적게 등장해도 되는 방향으로 게임을 구상하기 시작했으며, 그 해결책으로 잠입을 게임의 핵심 요소로 도입하였다.


그렇게 〈메탈 기어〉는 원안이 되었던 [람보 2]의 요소 - 단독 침투한 요원과 무전을 통한 지휘관의 작전 지시 – 에 잠입이 더해져 탄생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부분은 기술적 한계로 인해 의도치 않게 게임 스테이지, 즉 공간에 대한 색다른 감각이 발생하였고 그것이 재미의 영역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다. 〈메탈 기어〉 의 배경은 용병 집단이 세운 가상 국가, ‘아우터 헤븐(Outer Heaven)’인데, 주인공 솔리드 스네이크(Solid Snake)는 선임 대원 ‘그레이 폭스’가 남긴 정체불명의 무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아우터 헤븐으로 잠입한다.


〈메탈 기어〉의 공간 경험은 일종의 ‘방’과 같은 감각을 준다. 아우터 헤븐이라는 거대한 배경을 구성하는 각각의 공간은 지형지물, 적병의 배치, 아이템 등의 차이를 두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연결된 방을 따라가다 보면 목표 지점에 도달하게 되고 거기서 주인공은 스토리의 분기점이 되는 이벤트를 맞닥뜨린다. 이런 아우터 헤븐의 공간 감각은 17,000여개의 정육면체 방으로 구성된 거대한 시설을 탈출하려 헤매는 영화 〈큐브(Cube, 1997)〉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컴퓨팅 파워의 한계 때문에 게임의 내용과 공간 감각은 각각 제한된 환경 아래에서 최선의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적과의 교전을 최소화해야하는 잠입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고 여기에 거대한 스테이지를 세분화하여 큐브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인식하도록 요구하며 게임이 설계된 것이다.


이런 성격은 후속작으로 발전하면서 서서히 강화된다. 컴퓨팅 파워가 차츰 증가하면서 교전 시의 효과, 배경 등을 묘사하는 그래픽 효과는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게임의 본질은 잠입에 있었다. 항상 긴장한 상태로 최적의 잠입을 수행하기 위해선 적의 주의를 돌리고, 마취총이나 격투전으로 경비병을 무력화해야 하며, 골판지 상자 같은 사물을 이용한 은/엄폐를 통해 플레이어의 존재감을 숨겨야 했다. 이 때의 게이머는 철저히 스네이크에게 이입하여, 그야말로 ‘뱀’과 같이 최대한 엎드린 채 적의 시선을 피해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스네이크는 후방의 지휘관/조력자와는 최소한의 연결만을 유지한 채 최전선에서 단독으로 움직인다. 항상 작품의 도입부에는 왜 스네이크가 홀로 움직여야만 하는지 나름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설명이 등장한다. 〈메탈 기어 솔리드(Metal Gear Solid, 1998)〉는 폭스하운드(Foxhound) 부대를 제대하고 은거하던 솔리드 스네이크에게 옛 상사인 로이 캠벨 대령이 찾아오며 시작된다. 캠벨 대령은 스네이크가 복무했던 폭스하운드 부대가 반란을 일으켜 알래스카 쉐도우 모세스 기지를 무단 점거하고 요인 2명을 구속, 메탈 기어 렉스(REX)를 탈취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이들을 제압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스네이크는 거절하지만, 거듭된 대령의 설득 끝에 결국 홀로 적진으로 숨어들어간다. 〈메탈 기어 솔리드 2 선즈 오브 리버티(MGS 2 Sons of Liberty, 2001)〉에서 스네이크는 완전히 군을 떠나 반(反) 메탈 기어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 필란스로피(Philanthropy)의 민간인 활동가로 등장한다. 스네이크의 동료 ‘오타콘(본명 할 에머리히)’은 미 해병대가 비밀리에 신형 메탈 기어를 개발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신형 메탈 기어의 존재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스네이크가 해병대의 수송선에 직접 잠입하며 게임이 시작된다. 이후의 작품들 역시 스네이크가 왜 혼자 잠입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지 설명하며 시작하는데, 이런 초반부 서사는 사실상 시리즈의 전통으로 정착했다.


최전선에 배치된 실행요원이 후방의 지휘관/조언자와 무전으로 연결되어있는 MGS 시리즈의 작전 구조는 항상 유지되지만, 〈메탈 기어 솔리드 3 스네이크 이터(MGS 3 Snake Eater, 2004)〉를 계기로 스네이크의 소속감에 변화가 생긴다. 스네이크가 더이상 미국을 위해 움직이는 병사이자 요원이기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세력으로 거듭나고자 시도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이걸 파악하기 위해 MGS 시리즈를 작품 속 타임라인 순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메탈 기어 라이징 리벤전스(2013)는 MGS 시리즈의 타임라인에는 포함되지만 라이덴이 단독 주인공이고, 잠입보다는 액션 중심의 게임으로 본문의 맥락과 무관하여 위 표에서는 생략했다. 

네이키드 스네이크와 솔리드 스네이크 모두 일정 시기는 미군 소속으로 지내다 민간인이 되는 패턴을 보인다. 특별히 집중해야 할 부분은 〈스네이크 이터〉를 계기로 변하는 네이키드 스네이크의 소속이다. 〈스네이크 이터〉 이후 미군을 떠난 네이키드 스네이크는 〈포터블 옵스〉에서 FOX부대에 납치당하는데,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반군을 조직할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이어지는 〈피스 워커〉에서 스네이크는 자신이 조직한 반군에 ‘국경 없는 군대(Militaires Sans Frontières)’ 라는 이름을 붙이고 미소 냉전의 양강 구도에 개입할 수 있는 제3세력을 자처한다. 특히 스네이크의 동료이자 MSF의 부사령관인 카즈히라 밀러는 MSF를 용병 비즈니스 집단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정도다.


용병은 의뢰를 받아 움직이지만, 계약이 끝나면 의뢰주와의 관계도 끝난다. 이들을 구속할 수 있는 공적인 권력은 사라졌으며, 이들 스스로가 기득권과 맞설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되면서 스네이크 이하 병사들은 목줄을 끊고 야생으로 돌아간 들개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공교롭게도 들개로 돌아간 스네이크가 부각되는 시점은, MGS 시리즈가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시점(현실의 2014년 경)인 의 시대(스토리 상 1975-1982년)와 겹치게 된다. 코지마 감독이 〈메탈 기어 솔리드 V〉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MGS의 세계에 오픈 월드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MGS V는 코지마 감독의 의도와 달리 각각 〈그라운드 제로즈(Ground Zeroes, 2014)〉와 〈더 팬텀 페인(The Phantom Pain, 2015)〉으로 분할 출시되었는데, 게이머들은 를 통해 코지마 식의 오픈 월드를 일부 맛보게 되었다. 는 MGS V 시리즈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게임으로, 1개의 메인 미션과 6개의 사이드 옵스(콘솔 별 특전 미션 포함)로 구성되었으나 배경은 모두 쿠바에 위치한 미 해병대 기지 ‘캠프 오메가(Camp Omega)’ 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이 기지로 잠입하기 위해 스네이크는 해안 절벽을 맨손으로 거슬러 오르거나, 기지와 외부를 오가는 수송 트럭의 짐칸에 숨어드는 방식을 택한다. 하나뿐인 배경을 총 7개의 미션에 재활용해버린 이 게임의 분량에 대한 불만은 차치하더라도, 확실히 의 시점부터 종래의 큐브적 감각의 파괴가 감지된다. 더 이상 큰 공간이 여러 개의 방 형태로 분절된 것이 아니라, 큰 공간을 그대로 인식하도록 만든 것이다.


TPP는 GZ와 마찬가지로 오픈 월드를 유지하되, 파괴된 큐브적 감각을 다시 불러오려고 시도한다. TPP의 넓어진 전장은 플레이어에게 아프가니스탄과 아프리카 앙골라-자이르 국경지대를 오가게 만든다. 이 넓은 전장을 동분서주하게 하면서 큐브적 감각을 되살리려는 시도는 메인 미션을 실행할 때 나타나는 ‘핫 존(Hot Zone)’에서 발견할 수 있다. 메인 미션의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플레이어는 도보 또는 차량을 이용해 핫 존을 이탈하거나, 아군 헬기 피쿼드(Pequod)를 불러 기지로 돌아가면 되는데, 이 때 핫 존이라는 개념은 광활한 필드의 일부를 미션 영역으로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핫 존 경계는 큐브와 달리 구속력이 낮고, 이 경계를 넘으면 자연스레 작전구역 이탈로 인한 임무포기 또는 임무실패 상태로 이행된다.


컴퓨팅 파워의 발전이 불러온 게임 속 공간의 확장과 스네이크의 들개화(化)는 어쩌면 피하기 어려운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 과정은 화려한 전쟁 액션 게임을 개발하라고 했던 코나미의 지시와 MSX의 성능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고 했던 역발상과 마찬가지로, 의도치 않게 나타난 결과에 가까울 것이다. MSX 환경에서 출발한 MGS 시리즈는 첫 번째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의 등장으로 인해 극적인 컴퓨팅 파워 변화를 맞이했고, 3D 폴리곤 그래픽으로 보강된 게임 환경을 확보했다. 도트로 구현된 전장을 오가던 스네이크는 이제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전장을 누비게 되었고, 스네이크가 마주한 큐브적 공간은 차츰 확장되어갔다. 그러나 실내외를 막론하고 3차원으로 구성된 전장을 활보할 수 있는 컴퓨팅 파워의 등장은 차츰 큐브적 공간을 이탈하고 싶게 하는 욕구도 함께 불러왔다. 전장 환경 묘사가 세밀해질 수록 플레이어들은 정해진 경로 외의 환경으로 진출을 시도했고, 게임 제작사들이 여기에 응답하면서 차츰 오픈 월드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경쟁작들의 공간 인식이 차츰 발전하는 현실에 맞춰 MGS 시리즈 또한 종래의 큐브적 공간을 탈출해야만 했다.


시리즈의 확장은 동시에 솔리드 스네이크 한 명만으로는 서사를 확장하기 어려운 상황을 직면하게 했다. 게임 속의 1995년부터 2014년을 아우르는 솔리드 스네이크의 서사를 보강하기 위해 코지마 히데오는 1970년대 냉전기로 세계관 확장을 꾀한다. 냉전 속 MGS 시리즈의 서사를 이끌 주인공으로 과거의 영웅이자, 〈메탈 기어〉에서 솔리드를 지휘한 빅 보스(=네이키드 스네이크)를 소환하며 작품의 타임라인을 보강한다. 와 〈포터블 옵스〉, 〈피스 워커〉는 냉전 시대를 헤쳐나가는 네이키드 스네이크를 그려내며 전체 세계관의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결국 작품의 타임라인이 차츰 탈냉전의 시대, 즉 〈메탈 기어〉와 솔리드 스네이크의 시대로 다가가면서 냉전 구도를 탈피해야만 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큐브적 공간의 탈출과 냉전 서사의 탈피라는 두 가지 요구는 새로운 MGS 시리즈에 동시에 수용되어야 했다. 특히 로의 이행은 빅 보스를 중심으로 한 서사에서 두 가지 요구가 모두 극에 달하였으며, 가장 기술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전체 시리즈가 종료되어야 함을 뜻했다. 큐브적 공간의 탈피로 넓어진 공간을 인식하는 동시에 구속을 거부하고 독자세력화된 스네이크는 결국 제한된 공간을 밀착 돌파하는 뱀의 쾌감을 잃어버리고 목줄을 끊고 탈출한 들개로 변하는 것이다. MGS 시리즈가 가졌던 뱀의 은밀함은 경쟁작인 〈스플린터 셀(Tom Clancy’s Splinter Cell)〉 시리즈, 〈히트맨(Hitman)〉 시리즈〉 등으로 넘어가 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가 들개의 자유로움이라도 확보했는가? 안타깝게도 들개의 자유로움마저도 온전히 확보하지 못한 걸로 보인다. 들개의 자유로움을 잘 구현한 게임을 찾자면 다른 오픈 월드 장르 게임을 예시로 드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락스타 게임즈의 , 〈레드 데드 리뎀션 2(Red Dead Redemption 2)〉를 플레이할 때 21세기 미국의 도시와 18-19세기 서부 황야를 활보하며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이 느꼈을 법한 생동감과 자유로움을 체험하게 된다.


MGS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에서 뱀의 은밀함, 들개의 자유로움 어느 하나라도 온전히 확보하지 못한 것이 시리즈 전체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결함이 되진 않는다. 5편에서 시도된 오픈 월드의 세계관은 코지마 히데오 특유의 영화적 스펙타클과는 잘 어우러졌고, 자연스러운 컷씬과 화면 전환 등의 효과로 플레이어가 게임의 그 순간에 확실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전체 스토리 라인에서 전반부에 해당하는 빅 보스의 시대를 마감하는 역할 또한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완결성을 확보하려고 한 노력 또한 여실히 드러난다.


냉전 시대 미국의 요원으로 소련의 핵병기를 성공적으로 저지한 네이키드 스네이크의 활약상은 결국 그를 바탕으로 한 복제인간 병사를 만들어내는 계획으로 발전한다. 3편 〈스네이크 이터〉에서 전체 MGS 스토리가 시작되고, 5편인 〈그라운드 제로즈〉와 〈더 팬텀 페인〉, 그리고 〈선즈 오브 리버티〉를 거쳐 〈건즈 오브 패트리어트〉에서 완결을 맞는다. 이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아버지(네이키드 스네이크)의 행로를 따라가는 아들(솔리드 스네이크)의 이야기가 된다. 냉전 속에서 국가의 도구에 불과했던 아버지는 도구로서의 운명을 거부하고 독자세력이 된다. 그러자 그의 아들이 다시 국가의 도구가 되어 아버지를 제압한다. 시리즈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아들은 여태까지의 삶이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 온 것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다. 메탈 기어의 위협, 같은 복제인간 형제인 리퀴드 스네이크와의 갈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뒤에야 솔리드 스네이크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고자 결의하며 뱀의 임무를 모두 내려놓는다.


MGS 시리즈는 기술의 한계로 큐브적 공간 속에서 국가의 통제 하에 임무를 수행하던 사냥개이자 뱀이었던 ‘스네이크’가, 기술의 발전으로 큐브적 공간에서 방출되는 동시에 통제를 거부하고 들개가 되어 홀로 서는 이야기로도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스네이크의 변화와 함께 그 창조자였던 코지마 히데오 감독 역시 코나미와의 갈등 끝에 홀로 서게 되는 얄궃은 운명을 마주한다. 28년이라는 전통과 충성심 높은 팬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코나미에게 최신 MGS 시리즈란 투자비용 대비 수익이 낮은 상품이었고, 이 때문에 결국 코나미와 코지마 히데오는 결별의 수순을 밟는다. 이 과정에서 코나미는 의 2015 플레이스테이션 어워즈 수상, TGA 2015 시상식에 코지마 히데오가 출연하지 못하도록 저지하기까지 했다. 코나미와 코지마 히데오가 결별한 바로 다음 날, 코지마 히데오는 본인의 이름을 딴 독립 개발사 ‘코지마 프로덕션(Kojima Productions)’ 출범을 발표하는 동시에 소니(Sony)와의 파트너십 체결 사실도 공개한다. 팬의 입장에선 정말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또한 코지마 히데오 없는 MGS 시리즈를 상상할 수 없는 전 세계의 팬들 덕분에 2018년 출시된 코나미의 〈메탈 기어 서바이브(Metal Gear Survive)〉는 결국 흥행에 참패하고 MGS 시리즈의 이름과 명성, 게임 엔진만을 가져다 쓴 완전히 별개의 게임으로 남았다.


다행인 것은 〈서바이브〉 출시 이전에 이미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MGS의 이야기를 모두 완성해서 시리즈에 담아냈기 때문에, 코나미가 개입하여 주제의식을 흔들어버릴 가능성은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또한 〈데스 스트랜딩(Death Stranding, 2019)〉를 통해 새롭게 제기한 ‘연결’의 주제도 2021년 현재 COVID-19 팬데믹을 맞아 큰 공감을 사면서, 코지마 프로덕션은 MGS를 즐겨 온 팬들과 새롭게 그의 서사에 공감한 팬들과도 성공적인 연결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코나미와의 불쾌한 결별에도 불구하고 들개로 전락하지 않은 코지마 히데오는 〈메탈 기어 솔리드〉와 〈데스 스트랜딩〉 이후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우리에게 설렘을 선사할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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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자)

한양대학교 대학원 장르 테크놀로지와 서브컬처학과 박사과정. 미국소설 연구로 석사를 받았고 인간의 정체성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 관심사는 SF문학 속 비인간의 정체성 문제와 공존의 가능성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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