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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근대에서 현대로의 궤적을 따르다,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 아로코트 개발자
작년 8월 열린 부산인디게임페스티벌(BIC)에 출품된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The Fire Nobody Started)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게임들과는 다른 내러티브와 아트의 독창성을 자랑하는 게임이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형식의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각각 특정 시대로 대변되는 기차 칸들을 오가며 유럽 근세사의 질곡을 체험하게 된다. 산업혁명기부터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는 이 게임에는 인류로부터 비롯되는 발전과 폭력이라는 양가적 주제가 녹아나 있다. < Back [인터뷰] 근대에서 현대로의 궤적을 따르다,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 아로코트 개발자 23 GG Vol. 25. 4. 10. 작년 8월 열린 부산인디게임페스티벌(BIC)에 출품된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The Fire Nobody Started)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게임들과는 다른 내러티브와 아트의 독창성을 자랑하는 게임이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형식의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각각 특정 시대로 대변되는 기차 칸들을 오가며 유럽 근세사의 질곡을 체험하게 된다. 산업혁명기부터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는 이 게임에는 인류로부터 비롯되는 발전과 폭력이라는 양가적 주제가 녹아나 있다. GG에서는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이하 <더 파이어>)>를 제작한 ‘팀 스핏파이어’의 개발자 아로코트를 만나 서양 근세사라는 게임의 테마와 작가로서 개발자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들을 들어보고자 했다. 이경혁 편집장: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더 파이어>를 만드시게 된 계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아로코트: 원래 이 게임은 무한히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모티프였지만 아무래도 게임의 배경으로 쓰기에는 좁은 감이 있어 기차로 바꾸었어요. 어딘가를 향해서 끝없이 질주하는데 어딘가로 향하는지는 모르는 기차 안에서 대화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친구랑 이야기를 했어요. 메타 판타지 느낌으로 우로보로스처럼 세상 밖을 도는 열차로서 다양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임을 할까, 아니면 좀더 현실에 가까운 얘기를 할까 하다가 친구가 아무래도 기차라면 산업혁명이 떠오르니 산업혁명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렇게 친구와 얘기하며 한 2시간 만에 스토리 개요가 짜인 거죠. 이경혁 편집장: 기차로 시작할 수 있는 여러 맥락 중에 산업 혁명이라는 주제를 타고 가셨다는 거죠. 말씀하신 개발 동기로서의 기차가 이 콘텐츠의 외피라면 이 게임의 알맹이 자체는 근대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혹시 관련 전공자이신지도 궁금했습니다. 아로코트: 사실 저는 컴퓨터공학이 전공이라 역사 쪽 전공자는 전혀 아니에요. 다만 평소에 그 친구나 저희 아버지와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러면서 뭔가 제 안에서 관련 지식이나 고찰이 쌓여 갔던 거죠. 그렇게 쌓여왔던 것들이 그 날의 대화로 일종의 촉매가 되어서 게임으로서 형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에서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 자체는 그림이나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의 방식, 혹은 영화로도 만들어볼 수 있었을 텐데 여러 방식 중 게임을 고르셨습니다. 이 작품이 혹시 아로코트님께 첫 작품이신지요? 아로코트: 대중에 제 이름을 공개한 게임으로는 <더 파이어>가 처음입니다. 저는 정말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어떤 사람은 영화로 만들고 어떤 사람은 소설을 쓰듯이 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그게 게임의 형식으로 구체화되는 거죠. 이경혁 편집장: 첫 게임의 주제로 서구 근대사를 다루게 된 이유가 있으셨을까요? 게임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세지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로코트: 사실 대중에게 공개하는 첫 게임이긴 하지만, 제가 이제껏 기획해 왔던 게임의 성격이 굉장히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심리적 고찰에 가까웠다 보니 <더 파이어>가 특이한 사례긴 해요. 학생 시절까지는 정말 저에 대해서만 집중했는데, 어른 되고 나서 보니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조금 더 눈길이 가더라고요. 물론 다른 사람보다는 서구 근대사에 대한 관심이 좀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아버지가 이런 얘기를 해주신 적이 있어요. '세상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이나 정책은 없다. 내가 무언가를 선택을 하면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또 누군가는 어떻게든 고통을 받는다. 그렇게 보면 인간이 사회를 만들고 선택을 해야 되는 사회구조 자체가 원죄처럼 느껴진다'. 그게 굉장히 뇌리에 남았어요. 사회 구조 자체가 아무에게도 상처 입히지 않거나 피해 주지 않는 삶을 만들 수 없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구조 속에서 어떤 행위 자체는 필연적으로 또 어떠한 착취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근데 그런 걸 인식을 해봐야 이 세상은 너무 거대하고 저는 너무나도 작잖아요. 제가 그렇다고 혁명을 할 인물상인가 하면 그렇지 않고. 그래서 저는 게임을 통해 어떤 대답 대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하고자 했어요. 이 세상의 구조와 그 안에서 맞닥뜨리는 부조리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이라면, 사실 해답은 개개인의 삶과 경험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로 정해질 수는 없고 개별적인 것이겠죠. 하지만 각자의 해답에 대해서 서로 논의하고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해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모두 한번 이 질문을 생각해 보자라는 느낌으로, 어떻게 보면 그게 이 게임을 만들게 된 동기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저는 <더 파이어>에 실제로 사용된 문구나 글을 보면 피상적인 인용이 아니고 레퍼런스를 참조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마르크시즘에 대한 언설들도 나오는데 그것도 나름의 공부를 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혹시 이 주제와 관련해 책이나 자료 같은 소위 말한 레퍼런스로 볼 만한 것들이 있으셨을까요? 아로코트: 사실 처음부터 특정한 레퍼런스를 잡고 진행했다기보다는 작업을 하면서 참고한 것들이 많다 보니 딱 어느 것이 레퍼런스라고 짚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마르크시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있었긴 했지만 추가로 정보가 필요하면 그때그때 여러 가지 문헌들을 찾아봤어요.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에서 관련된 사항들을 읽고 가져올 수 있는 정보를 메모해두기도 했구요. 이경혁 편집장: 제작 과정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더 파이어>의 마지막 크레딧에 한 명이 더 들어가 있는 걸 보긴 했는데, 완전히 혼자 게임을 제작하신 것인지요? 전공은 개발자신데 그림도 그렇고 사실 글 쓰는 것도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아요. 아로코트: 마지막 크레딧에 나온 분은 아까 말씀드렸던 제 친구입니다. 게임 자체는 사실상 1인 개발로 이루어졌지만, 내용적인 부분에서는 친구가 초반에 등장하는 1차 세계대전 시기까지의 고증 작업을 도와주었어요. 예를 들어 챕터 3에서는 막스 베버의 책을 어떤 노동자가 읽었다는 설정을 만들었다가 고증을 통해 그걸 수정한다던지. 챕터 5에서 대공황 시대에 나오는 볼스테드 법의 허점에 대해 알려준다던지. 고증이 세게 들어간 부분은 제 친구가 써준 것도 있고, 그걸 기반으로 제가 다듬은 것도 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거의 다 제가 썼어요. 이경혁 편집장: 게임의 전체 플레이 타임이 1시간 정도로 그렇게 길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기존의 게임 팬들 사이에서 '이건 게임이 아니야'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만약 이런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답을 하시겠어요? 아로코트: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사실 게임의 정의에 대한 문제이긴 한데, 흔히 게임도 예술이다라는 얘기를 하잖아요. 무엇이 게임이라는 매체를 예술로 만드는가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대중들이 그 매체를 예술로서 다룰 수 있어야 하고 가장 단순하게는 다른 예술들이 할 수 있는 걸 이 매체도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게임이 예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안에서 정말 다양한 시도를 할 수도 있고 다른 매체들이 다룰 수 있는 주제를 게임도 다룰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요. 이 게임이 인기가 없을 거라는 건 짐작했어도 스스로 이 게임은 게임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네요. 이경혁 편집장: 인디게임의 1인 개발자로서 BIC(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에 참석하시게 된 계기와 현장 부스의 분위기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로코트: BIC는 처음에 게임 만들 때, 되든 안 되든 게임쇼 같은 데 작품을 내고 싶다는 제 로망이 있어서 직접 참여하게 됐어요. 현장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전시가 처음이었고 실은 돈이 없어서 장비도 못 빌렸거든요. 개발하던 걸 그대로 갖고 가서 동생 노트북과 제 노트북으로 전시를 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고 저는 그 정도면 만족이라고 생각해요. 또 현장에서는 그런 한계도 있었어요. 데모판 플레이 타임이 아무리 짧게 잡아도 한 10-15분은 걸리는데 저는 한 30분 정도로 상정했었으니까 게임쇼 내내 <더 파이어>를 돌린다고 해도 직접 경험시켜 드리는 데는 한계가 있더라구요. 이경혁 편집장: 저도 뒤쪽에서 봤습니다. 게임쇼의 안타까운 점이기도 하죠. <더 파이어>도 그렇지만 플레이타임이 긴 게임들은 사실상 거기서 시연이 어렵다 보니까요. 아로코트: 아무래도 게임 쇼에서는 뭔가 짧고 메커니즘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종류의 게임이 부스로서 사람들에게 강점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좀 많이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국내에서 <더 파이어>와 비슷한 시도를 하는 분으로 저는 소미(SOMI) 님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혹시 소미님 작품은 플레이 해보셨을까요? 아로코트: 네, 소미님은 항상 존경하는 분이에요. 스토리랑 게임의 시스템을 잘 맞물리게 하는 방법을 잘 아시는 것 같고 사실 그게 그분의 강점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사실 그래서 저도 원래는 어느 정도 게임에 퍼즐 요소를 넣어서 인물들의 이야기가 퍼즐로 표현이 되었으면 했는데, 프로그래밍을 그렇게 잘 못했던 건 아쉬운 점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 중간에 알파벳 맞추기라던가 퍼즐을 시도하시는 것도 느껴졌는데 확실히 게임에서 퍼즐 요소가 적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로코트: 원래는 시대별로 보드 게임을 반영해서 첫 번째 챕터에서는 틱택토, 두 번째 챕터는 체스 이런 식으로 반영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제 경우에는 아트까지 다 담당을 하다 보니 무엇 하나는 포기를 해야만 했었어요. 아트는 약간 (이 게임의) 정체성 같은 거라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림과 퍼즐 사이에서 퍼즐을 포기했던 거죠. 그래서 팀원을 되게 절실하게 원하긴 했어요. 저 스스로도 개인적으로 개발 쪽으로는 욕심이 많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소하게 작동하는 메카닉 하나도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여된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더 파이어>에서는 아트도 상당히 눈에 띄는데요. 아트에 비중을 많이 두고 싶으셨던 이유와 구성하기까지의 과정들이 궁금합니다. 아로코트: 전공자도 아니고 그림은 초등학생 때 이후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게임과 관련된 퍼즐 요소에는 확신이 없어도 아트는 이걸 해내면 정말 대단할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원래는 <더 파이어>에서 아트를 칸마다 다양화할 생각이 없었는데, 아까 저를 어드바이스해준 친구와 얘기하면서 시대에 맞춰 아트를 각자 그리자는 얘기가 나와서 하게 됐어요. 결국 제가 제 무덤을 팠던 거지만요(웃음). 이경혁 편집장: 각 시대별로 예술 사조를 다 맞추신 거잖아요. 마지막엔 팝아트랑 컨템포러리까지 가셨던 것 같아요. 아로코트: 실은 후반으로 갈수록 각 시대에 아트 스타일이 명확하게 들어맞지는 않아요. 예를 들면 1950년대 매카시즘이 나오는 시대의 아트 스타일로 바우하우스를 선택했는데 사실 바우하우스는 1930년대거든요. 점차 사조들이 갈래가 다양해지기도 하고, 그보다 후반으로 가면 저작권 문제도 있습니다. 이전 시대까지는 각자 모티프로 삼은 작가들이 있었어요. 첫 챕터인 산업혁명 시대 같은 경우에는 신문에 나오는 단색 리소그래피 판화를 택했고, 두 번째 챕터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 세 번째 챕터에서는 툴루즈 로트랙, 네 번째 챕터에서는 몽고메리 플래그 이런 식으로 명확한 작가들을 정했어요. 그런데 후반부로 가니 그렇게 하면 법적인 문제에 걸릴 가능성이 있어 그보다는 시대별 분위기에 맞춰서 선정하고자 했어요. 개인적인 느낌인데 그래서 후반으로 갈수록 제 취향이나 경향성이 조금 더 많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이경혁 편집장: 콘텐츠에 대한 질문으로 저는 이 얘기를 꼭 여쭤봐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제작자이자 창작자로서 인류의 근대라는 걸 어떻게 보시나요? 아로코트: 저희가 <더 파이어>를 만들 때 명확하게 합의하고 넘어간 게 있었어요. 우리가 볼 때 인류의 근대는 실패의 역사다. 지금도 보세요, 이 게임을 완성할 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갈 줄은 몰랐지만 계엄령도 내려지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지금보다 조금 더 이전 시대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만의 이상이나 최선을 상상하고 꿈꾸지 않았나 싶거든요. 근데 지금의 세상은 더 이상 최선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최악을 고르지 않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작품에서 불이라는 모티브를 많이 사용하셨지요. 처음에는 남포등에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그것이 나중에는 원자폭탄이 되고 최종에는 불이 타오르는 쪽으로 계속 걸어가면서, 마지막쯤에 ‘우리가 불이다’ 라는 선언을 하는 모습도 나오고요. 하지만 기술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이라는 이야기도 살짝 나오잖아요. 그래서 저는 <더 파이어>에서 불이 갖는 의미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했어요. 아로코트: 맞아요, 이중적이에요. ‘우리가 불이다’는 아까 말씀드린 인류의 사회와 구조 자체가 원죄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피우지 않은 불에 의해서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세상을 잘 살펴봤을 때 고통받고 있는 우리도 이 부조리의 일부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게임 후반부로 갔을 때 그렇게 산발적으로 그려놓은 불이라는 이미지와 상징을 하나하나 다 끌어모아서 하나로 통합하지는 않았어요. 이 게임을 대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만들고자 했기 때문에, 그 상징들을 보면서 플레이어가 그 상징들과 제가 대략적으로 잡아놓은 형태를 보면서 플레이어가 불꽃이란 무언가에 대해서 스스로 결론을 내렸으면 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산업혁명이나 원자 폭탄 등으로부터 출발해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 등의 서사를 보면, 물질적으로 생명이 죽어나가는 순간들을 포착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완전히 근현대까지는 안 오셨고 사실상 베트남 전쟁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로코트: 사실 후반에 소련 붕괴나 911, 서브프라임 사태 이런 것들이 짧게 짧게 지나가잖아요. 원래는 그 사이에 이라크 전쟁을 넣어서 그 문제를 부각하려 했어요. 그랬지만 저한테도 두려움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웃음)... 저는 그래서 사실 계엄령이 내려왔을 때 정말 무서웠거든요. 이성적으로는 게임 창작자로서 역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이게 정치 사회적으로 짚고 넘어갈 만한 이야기인 것도 맞는데 왜 이런 부분에서 두려워해야 되나 생각하며 현타도 많이 오더라구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가 언어를 그래도 꽤 많이 지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번역은 어떻게 처리하셨을까요? 아로코트: 번역의 경우 제 친구가 영어 부분을 해줬고, 그걸 기반으로 BIC에서 마사케이라는 분을 만나서 그분이 일본어 번역해 주셨고 나머지는 itch.io (해외 인디게임 커뮤니티)에서 번역 자원봉사자 분들을 구해서 했었어요. 이경혁 편집장: 역시 개발자들은 itch.io에서 시작하시는군요. 게임의 판매수익은 얼마 정도 될까요? 그동안 들어간 공수가 있으니, 그와 대비해서 이 정도는 회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기대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이런 물질적 기반이나 상업적 성과가 창작자가 다음 작품으로 가는 데 또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해서 여쭤봤습니다. 아로코트: 저는 이 게임에 정말 (상업적으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돈을 벌면 좋으니까 최대한 게임을 알리기는 하는데,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이 게임이 해외에서도 되게 마이너한 분야이고 얼마만큼의 수요를 낼지 장담할 수 없는데 한국에서는 어떻겠어요.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시장의 크기가 있다 보니 그만큼 마이너 장르도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많이 느껴요. 그래도 그런 것 치고는 제 기대보다는 잘 됐다의 느낌이구요. 하지만 조금 더 잘 됐으면 좋겠다고 항상 느끼고 있어요. 이경혁 편집장: <더 파이어>의 경우 국내보다도 해외 쪽 반응이 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해외 반응들은 좀 보신 게 있으세요? 아로코트: <더 파이어>도 사실 국내보다는 해외 쪽에서 뭔가 조금 이제 힘을 낼 수 있는 작품 같은데, 해외 반응을 살피기 전에 게임이 애초에 해외로 잘 퍼져 나가야 되는데 그러기가 사실 쉽지는 않아요. 인디 게임 홍보에 가장 난점이고 가장 필요한 부분이 네트워크인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사회적인 인간이 아니기도 하지만 예전에 학생일 때는 그런 걸 모르고 살았다가 이제야 그것들을 체감하기 시작하니까, 이걸 앞으로 어떻게 홍보를 하고 알릴지가 정말 힘들더라구요. 우선은 비트 서밋(일본 국제 인디게임 페스티벌)에 내보긴 했습니다. 아무래도 <더 파이어>가 아트라는 명확한 장점이 있으니까 이걸로 어떤 수상을 하면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요. 이경혁 편집장: 개발자 본인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다가가 보면, 게이머로서는 또 어떤 분이신가 궁금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게임들을 두세개 정도 꼽아주시면 어떤 건가요? 아로코트: 쯔꾸르 게임 중에서 08년도에 나온 <오프>라는 RPG 게임이 있어요. 서양권에서는 많이 유명한 메타픽션 게임의 계보에 있는데. <오프>는 RPG 쯔꾸르라고 하면 보통 생각하는 일반적인 이미지를 전혀 따르지 않는 게임이었어요. 이렇게 게임을 만들어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저에게 있어 게임이란 시스템 이전에 이야기가 먼저 존재하고 게임은 그 이야기를 표현하는 수단인데요. 쯔꾸르 게임들, 특히 <헬로우 샤를로테>라는 게임을 하면서 그런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에반게리온 같은 느낌의 우울증 걸린 게임인데(웃음). 제가 고등학생 때 정말 힘들었고, 저한테 학교라는 공간은 단 한 번도 좋게 기억된 적이 없었는데 <헬로우 샤를로테>가 그러한 감성들을 정말 명확하게 풀어낸 거예요. 게임을 하면서 개발자가 겪었을 그 고통들이 정말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그 게임을 통해 저도 제가 가지고 있는 이 기억들을 언젠가 게임으로 다시 풀어내고 싶다, 자기 표현 욕구의 수단으로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외에는 <이브>나 <마녀의 집> <원샷> 같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게임과 메타적인 연출들을 많이 좋아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기획부터 완성까지 여러 고충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스스로 이 게임을 만들 때 재미있으셨을까요? 아로코트: 정말 솔직히 난점이 많았죠. 특히 아트 스타일을 만들 때는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요(웃음). 고쳐도 별로고 안 고쳐도 별로고, 진짜 내가 처음에 기대했던 거랑 너무 다르고. 그런데 재미있었냐라고 묻는다면 정말 재미있어요. 하는 시간만 놓고 봤을 때는 사실 힘들고 고민도 많이 해야 되고 특히 저는 주변에 아무도 없이 그냥 집에서 이것만 개발했거든요. 속으로는 내가 이렇게 시대별로 고생을 해봐야 누가 알아줄 거라는 보상도 확신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그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개발자로서 아로코트님의 향후 진로나 창업에 대한 생각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로코트: 언젠가는 회사를 세워서 제가 생각한 이야기들을 더 만들고 싶은 게 목표고,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일종의 IP나 프랜차이즈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제가 원하는 게임을 만드는 것 외에도 어느 정도 수익성이 나는 그런 것들을 많이 고려하지만 특별히 현실에 타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제 게임 스타일이 이런 걸로 고정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제 개발 능력의 모자람이기도 해서(웃음) 지금은 저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으신 분들과 협업을 할 기회가 생겼는데, 앞으로는 그럴 수 있다면 훨씬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싶어요. 이경혁 편집장: 마지막으로 후속작 계획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간단한 컨셉트 같은 걸 공개해 주실 수 있으면 그것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로코트: 후속작으로는 지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어요. <더 파이어>를 보고 같이 작업하자고 연락 주신 분들이 계셔서 그분들과 하는게 있고 개인적으로도 기획 중인 게임들이 있습니다. 먼저 팀으로 제작중인 게임으로 한국 도깨비가 등장하는 뱀서가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제작하는 스토리 게임 중에서는 우선 브로맨스 요소가 들어간 대화 형식의 게임을 만들고 있구요. 도시에서 괴물을 키우는 텍스트 어드벤처 계열 게임도 기획 중인데, 사이키델릭한 심리적 요소를 많이 곁들인 게임으로 계획하고 있어요. Tags: 근대, 인디게임, 역사, 1인개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상상된 공간의 지도화: 가상공간의 전시와 도식화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1)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백(Michel Houellebecq)의 문장이다. 영토가 위상학적 차원에서 물리적인 땅과 장소를 가리킨다면 지도는 그 땅을 표상하는 이미지다. 지도는 왜 영토보다 흥미로운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기호화 하는 작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도는 신체와 물리적인 공간을 서로 마주하게 만드는 일종의 ‘인터페이스’(inter-face)로 기능하며, 현상학적 맥락에서 분리할 수 없는 공간적 경험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아마도 우엘백이 말한 ‘흥미’는, 실재 세계를 매핑(mapping)하는 인식론적 태도와 세계를 이미지로 상상하는 형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Back 11 GG Vol. 23.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술비평) 이민주 이민주는 서양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글 쓰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꾸린다. 퍼포먼스와 퍼포먼스 도큐멘테이션의 관계를 짚은 《동물성 루프》(공-원, 2019, 공동 기획),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미학성과 정치성을 조명한 《논캡션 인터뷰》(의외의조합, 2021, 기획), 연극의 형식을 빌어 전시의 사건성을 모색한 《#2》(두산갤러리, 2023, 공동 기획)를 기획했다. 이미지가 만드는 사건과 수행적 성질에 주목하며 비평적 글쓰기를 고민하고,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번역 관계를 연구한다.
- 이제 게임은 플레이하지 않는다: 관리와 지배의 시대
‘아이들러’, ‘오토 배틀러’, ‘자동화’, ‘클리커’ 등의 키워드로 분류되는 이런 방치형 게임들은 과거 모바일 게임 중심으로만 유통되었다. 모바일 플랫폼에서 방치형 게임이 유행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로 반복 전투의 실행을 자동화에 위임함으로써 얻게 되는 게임 플레이 시간의 자유를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 Back 이제 게임은 플레이하지 않는다: 관리와 지배의 시대 29 GG Vol. 26. 4. 10. 최근 스팀 플랫폼에는 그간 스팀에서 잘 출시되지 않았던 방치형 게임 장르들이 자주 발견된다. <몰티즈와 복실복실 온천>, <미니 코지룸>, <우주 암석 파괴자> 등 최근 인기를 모은 방치형 게임은 일반적으로 해당 장르와 거리가 멀었던 PC 플랫폼의 틈새를 파고들어 나름의 틈새시장을 형성했다. PC 화면의 아주 작은 일부만 차지하거나 쉽게 화면 전환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이러한 게임들은 업무를 자주 방해하지는 않으면서 업무 중에도 띄워놓을 수 있는 장점을 바탕으로 PC 플랫폼에 정착했다. 물론 전투 위주의 모바일 방치형 게임과는 달리 생활형 소재나 아기자기한 게임 디자인으로 천편일률적이었던 방치형 게임에 다양성을 덧대었다는 점이 차별적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들러’, ‘오토 배틀러’, ‘자동화’, ‘클리커’ 등의 키워드로 분류되는 이런 방치형 게임들은 과거 모바일 게임 중심으로만 유통되었다. 모바일 플랫폼에서 방치형 게임이 유행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로 반복 전투의 실행을 자동화에 위임함으로써 얻게 되는 게임 플레이 시간의 자유를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플레이어가 게임에 접속하지 않는 동안에도 미리 설정된 자동화 공식에 따라 게임 플레이가 이루어지면서 플레이어는 일상 생활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적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 <몰티즈와 복슬복슬 온천>의 한 장면. PC를 통해 원고를 쓰면서도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다. 2010년대 이후 고안된 이 장르는 역설적으로 게임이 가진 몇몇 제약들을 붕괴시키면서 생존해왔다. 이를테면 일반적인 게임에서 가장 핵심에 해당하는 게임 플레이를 자동화시켰다. 본래 게임 플레이는 게임 디자인이 고안된 이후 항상 개발자가 게임 결과의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플레이어에게 할당시킨 영역이었다. 바꿔 말하면 게임 플레이어 입장에서 게임 플레이는 자신들에게 강제적으로 할당된 영역인데, 방치형 게임은 이러한 제약을 붕괴시킴으로써 플레이어가 이를 컴퓨터에 위임할 권한이 생긴 셈이다. 이렇게 되면 플레이어는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꾸기 위해 열심히 플레이하는 주체가 아니라 게임의 결과만 관리하는 ‘관리적 주체’로 변모하게 된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플레이로 인한 ‘결과의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미디어였다. 과거의 플레이어들은 결과의 불확실함을 자신의 승리로 바꾸기 위해 열심히 게임을 플레이해왔다. 그러나 방치형 게임 플레이어들은 그 결과의 불확실함을 참아내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이 고되거나 성가시다고 생각한다. 이는 기존 게임들에서 이루어지는 핵심적인 플레이 과정이 MMO 같이 다소 밀도가 떨어지거나 반복될 때 느끼게 된 게임 플레이의 노동화 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애초에 게임 디자인 과정에서는 밀도있는 게임 플레이를 극적으로 연출하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었지만, 게임의 완성도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중시한 모바일 게임들에서는 게임 플레이 과정보다 플레이 과정을 통해 생긴 아이템 등의 결과물들이 플레이어에게 더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 * <디아블로 2>의 카우 레벨(cow level) 장면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게임 플레이의 밀도보다 결과값의 중요성이 처음으로 인식되었던 게임은 <디아블로> 시리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기나 방어구 등 아이템에 붙는 접두사와 접미사에 따라 해당 아이템의 가치가 달라지면서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카우 레벨(cow level)을 반복해서 돌았던 행동들은 아마 RPG 게임에서 결과중심적 플레이가 본격적으로 극대화된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결과중심적 플레이에 대한 선호는 이후 개발자들이 본래 게임의 제약 사항으로 묶어두었던 현금 결제를 통한 제약의 우회로 이어지게 된다. 주로 MMORPG를 통해 구현된 이러한 유료화 방식은 캐릭터나 아이템의 강화뿐만 아니라 시간적 제약이나 게임 내 공간의 위상까지 무력화시키면서 플레이어를 ‘지배적 주체’로 변모시킨다. 이 지점에서 게임 플레이는 더 이상 과정 자체가 아니라 결과를 생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환되었다. 이 두 장르는 동일한 ‘과정 생략 욕망’을 공유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방식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방치형 게임이 게임 플레이 자체를 시스템에 위임함으로써 과정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MMORPG는 결제를 통해 플레이어가 그 과정을 직접 우회할 수 있도록 만든다. 전자는 플레이어를 ‘관리적 주체’로, 후자는 시스템을 지배하는 ‘지배적 주체’로 만든다는 점에서 동일한 욕망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분화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특히 모바일 게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이러한 MMORPG와 방치형 게임으로의 양극화 현상은 넓게 보면 사실 유사한 심리적 기제를 바탕으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게임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불확실성을 회피하고 과정을 생략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러한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은 동일한 조건 아래에서 경쟁을 통해 획득해야만 하는 어려운 과정을 회피하고 시스템의 외부를 현금이나 시스템 관리를 통해 우회하는 상황이 주는 쾌감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 장르를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은 단순히 게임 과정에서의 유희를 포기한 것이라기보다는 반복적인 노동을 알고리즘에 위탁하면서 결제나 시스템 관리를 통해 스스로가 게임을 제어하고 있다는 권력욕을 대리 충족시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PvP가 중심이 된 모바일 MMORPG를 플레이할 때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필드의 몹들을 사냥하는 PvE 컨텐츠는 자동화를 시키지만, 본인들의 길드가 장악한 사냥터가 다른 플레이어에게 침범당하거나 PK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게임 플레이에 개입하여 이러한 과정을 플레이하는 것을 즐긴다. * <리니지 M>의 다양한 자동사냥 옵션 설정 방식 “유능한 한국 모바일 게임 개발자가 되려면 게임을 재밌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돈을 내면 게임이 재미있어질 것 같다는 인상을 풍길 수 있도록 적당히 재미없어야 한다.” 게임업계에서는 한국 모바일 게임 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이와 같은 농담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MMORPG와 방치형 게임은 매우 동일하게 게임 플레이 과정을 반복적이고 지루하게 만들어 왔다. 이들은 게임의 외피를 덮어쓰고 있지만 그 과정의 재미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결과중심적인 레벨과 아이템, 수치적 데이터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물론 결제나 시스템 관리를 통해 기존 게임의 제약을 극복하는 순간 주어지는 쾌감이 존재하기에 이러한 게임들은 은밀하게 다른 게임들이 주지 못했던 욕망들을 충족시키면서 범박하게나마 재밌다는 느낌을 안겨준다. 엄밀히 말하면 결제 과정이나 자동화를 통해 강해진 내 캐릭터가 만족스럽다는 느낌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해당 장르들은 이러한 우회과정을 통해 PvP의 컨트롤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시간이 부족한 플레이어들을 해당 장르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TV 광고를 통해 플레이어가 게임의 ‘운영’에까지 개입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SOL과 같은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투표를 통해 운영 방침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는 플레이어가 단순히 주어진 규칙을 따르는 존재를 넘어, 게임의 규칙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지배적 주체’로 구성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모바일 플랫폼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MMORPG와 방치형 게임은 해당 장르의 불모지였던 스팀 플랫폼까지 천천히 상륙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MMORPG는 글로벌 스탠더드 시스템에 맞추기 위해 확률형 아이템이나 강화형 결제 시스템을 줄이거나 없애고, 방치형 게임은 천편일률적이었던 횡스크롤 형태의 단순 전투 시스템을 버리고 아기자기한 생활형 소재로 변모시키면서 미아 콘살보가 언급한 진정한 게이머(real gamer)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그 본진인 스팀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장르 이동이 아니라, 플랫폼 간 플레이 문화의 재구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진정한 게임 플레이’를 중시하던 PC 플랫폼조차도 이제는 과정의 밀도보다는 결과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플레이 양식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게임이 더 이상 ‘플레이의 미디어’가 아니라 ‘결과를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재정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게임이 더 이상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가 언급한 절차적 수사학(procedural rhetoric)을 통해 플레이어를 설득하는 매체가 아니라, 결과값의 축적을 통해 만족을 제공하는 데이터 중심 시스템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는 게임이 더 이상 ‘플레이를 경험하는 매체’가 아니라, 플레이를 최소화하면서도 결과를 관리하고 소비하는 새로운 형태의 인터랙티브 시스템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 여벌의 생명선_2인용 로컬 협동게임 속 목숨의 구도
이혼을 결정한 부부 코디와 메이의 영혼은 부모의 이혼을 막고 싶은 딸 로즈가 빈 소원 때문에 조그마한 목각 인형에 씌게 된다. 자기들 나름의 추론을 거쳐서, 인형으로 전락한 부부는 딸의 눈물이 저주를 풀게 해주리라고 판단한다. 두 사람은 세계에 육박하게 거대해진 아이의 놀이방을 헤매면서, 로즈가 가장 좋아하는 코끼리 인형 큐티를 찾는다. 큐티를 망가뜨리면 속상한 아이가 눈물을 흘리게 되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게임은 XX다: 동어반복적 회로를 차단하기(최우수상)
“장르에 무관하게 예술 작품은 환언하기가 불가능하다. (중략) 지식은 언제나 위로 환언하기 혹은 아래로 환언하기에 해당하지만, 예술은 소크라테스적 철학과 마찬가지로 지식의 일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 Back 게임은 XX다: 동어반복적 회로를 차단하기(최우수상) 07 GG Vol. 22. 8. 10. 달리의 이미지들 그레이엄 하먼의 책 〈예술과 객체〉 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장르에 무관하게 예술 작품은 환언하기가 불가능하다. (중략) 지식은 언제나 위로 환언하기 혹은 아래로 환언하기에 해당하지만, 예술은 소크라테스적 철학과 마찬가지로 지식의 일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1) 여기서 ‘환언’(환원과 헷갈릴 수 있는)이라는 개념이 많이 낯설다면 원문에 있는 패러프레이즈(paraphrase)를 가져오는 것이 좀 더 이해를 도울 수 있다. 거칠게 말하면 저자는 패러프레이즈의 가능 여부에 따라 지식과 예술이 구분되는 경계선을 긋는다.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떠오른 것은 당시에는 조금 뜬금없게도 OpenAI 사(社)의 이미지 생성 AI 시스템인 달리(DALL・E)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이었다. 그것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유저가 간단한 설명(예를 들어, 말위에 탄 우주비행사 같은)을 제시하면, 달리는 조금씩 스타일은 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그 설명에 부합하는 이미지들을 만들어 낸다. 그 중 한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로 바꿔도 제시된 설명에 부합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달리의 이미지들은 서로 패러프레이즈가 가능한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야기가 그렇게 간단히 흘러가지는 않는다. 이미지는 언제나 그것의 묘사나 혹은 분석만으로는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는 잔여를 남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통적으로 같은 설명에 기반한 이미지들이라고 해서 한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를 온전하게 ‘설명’해낼 수는 없다. 다만 달리의 이미지들에는 (James Bridle이 〈 Something is wrong on the internet 〉 2) 에서 날카롭게 펼쳐 보이듯이) 유튜브의 보상 알고리즘에 의해 추동된 채로 끊임없이 자동적으로 조금씩 변조되지만 여전히 똑같은 주제와 전개 과정, 캐릭터를 공유하는 수많은 영상들과 유사한 종류의 스산함이 묻어나는 것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 달리(DALL・E)의 이미지들(왼쪽) 그리고 챗봇 플라밍고와의 대화(오른쪽) 이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한 트윗 3) 을 인용한 김성완 인공지능 연구자의 페이스북 글 4) 이었다. 구글 딥마인드의 연구자인 Antoine Miech는 그들이 새로 개발한 AI 챗봇 플라밍고(Flamingo)에게 달리 2(2022년에 새롭게 등장한 달리의 새 버전)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보여준 뒤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 있냐고 묻는다. 가짜인 것 같다고 대답하자 그럼 이 가짜 사진을 만들어낸 기술은 무엇일까 라고 다시 묻는다. 플라밍고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It looks like someone used a GAN to create this image.”(누군가 GAN 모델을 이용해서 이 이미지를 만든 것 같습니다.) 이를 인용한 김 연구원은 “물론 DALL-E 2은 GAN 모델이 아니라 최신의 Diffusion 모델로 이미지를 생성한 거지만 이정도면 최고의 답변입니다.” 라고 코멘트를 덧붙였다.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고 또 대단한 성취가 맞지만 여기서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부분은 바로 플라밍고가 ‘얼추’ 맞췄다는 점에 있다. 만약 플라밍고가 ‘누군가 Diffusion 모델을 이용해서 이 이미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라고 확고하게 대답했다면 완벽한 답변이었겠지만 나는 별달리 흥미를 못 느꼈을테고, ‘스카이넷이 멀지 않았구나!’ 같은 부질 없는 한탄이나 하고 앉았을 터였다. 물론 Antoine 가 직접 이어지는 트윗에서 밝힌 것처럼 플라밍고를 훈련시킬 당시에 달리 2에 대한 웹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러한 모범적인 답변은 불가능했다. 즉, 플라밍고는 달리 2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도 제공된 사진이 (Diffusion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가장 발전된 형태의 머신러닝 테크닉(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을 이용해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것을 ‘추론’해 낸 것이다. 그 추론의 과정은 연구자들에게도 대부분 블랙박스에 가깝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 AI 챗봇은 (인간의 시지각은 인지 못하는) 딥러닝으로 구성된 이미지의 정체를 수월하게 알아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실제 인물 사진들과 This Person Does Not Exist 5) 같은 사이트에서 GAN 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이미지들을 랜덤하게 섞어서 보여준다면 나는 아마 둘을 구분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플라밍고라면 앞서 달리의 이미지를 봤을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의해 거의 자동적으로 ‘생성된’ 영상들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나와는 다르게, 혹시 플라밍고는 달리의 이미지들에서 풍겨져 나오는 그 소름끼치는 동질성을 꽤 적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적어도 플라밍고의 관점에서는 달리의 이미지들은 서로 패러프레이즈가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달리(DALL・E)의 이미지들은 비로소 지식이 된다. 이 지점에서 패러프레이즈가 가능한 것들, 즉 지식의 범주를 좀 더 넓혀 볼 수 있지 않을까. 몇 년 뒤 혹은 빠르면 내년에는 동영상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플라밍고 2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 때 유행하게 될 어떤 오픈월드 게임의 인게임 플레이 영상을 이 놀라운 챗봇에게 보여준다고 상상해 보자. 그것의 대답은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It looks like someone used Ubisoft's open-world formula to create this game.”(누군가 유비식 오픈월드 게임을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Ludonarrative dissonance 어게인? 게임 역시 지식이 될 수 있는가. 그런데 지식이 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 〈어쌔씬 크리드〉 시리즈의 디스커버리 투어 모드를 통해서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의 신전들을 마구잡이로 뛰어다닐 수 있으면 진정한 지식의 힘이 비로소 발현되는 것인가.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경우처럼 날이 추우면 말의 고환이 수축한다는 식으로 실제 동물들의 행동 패턴과 생리적인 과정들을 게임 속에서 정밀하게 재현하면 그게 바로 ‘살아 있는’ 지식인가. 15세기 초반 보헤미아 왕국(지금의 체코 지방)내에 프라하 인근 지역을 마치 스캔해서 옮긴 듯한 디테일과 당시의 실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킹덤 컴: 딜리버런스〉는 역사 지식 그 자체가 아닌가. 이 질문들이 그 모든 ‘당연한’ 답변들에 의해 집어 삼켜지기 전에 ludonarrative dissonance(이하 루도)의 샛길로 잠시 빠져 보자. '게임내러티브 부조화' 정도로 직역할 수 있는 루도를 둘러싼 논의는 한 블로그 글 6) 에서 시작되었다. 게임개발자 Clinton Hocking은 〈바이오쇼크〉를 플레이 한 뒤 자신이 느낀 어떤 불편한 감각을 전달해 줄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해서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단어가 좀 어려워 보여서 그렇지 이 개념은 사실 꽤 직관적이다. 게임의 공식적인 내러티브와 플레이어가 게임플레이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내러티브가 서로 심하게 상충될 경우 몰입감이 완전히 깨지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두 내러티브의 간극을 루도라고 정의한다. 민감한 스포일러의 이유로 바이오쇼크는 제외하고 〈배틀필드 1〉의 예를 들어보겠다. 1차 세계대전이 배경인 이 FPS 게임은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통해서 묵직한 반전(反戰)의 모티프를 전달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려한 그래픽으로 구현된 그 참상들을 ‘감상’하면서 잠시 간담이 서늘할 수는 있겠지만 총을 쏠 때마다 느껴지는 반동과 탱크를 직접 운영하는 감각, 폭탄들이 떨어져서 폭발하는 떨림 같은 촉각적인 경험에 중독되는 순간 그 반전(反戰)의 내러티브는 플레이어가 ‘손맛’에 취한 채 조건반사적으로 달성하게 되는 일종의 기이한 성취로 탈바꿈한다. 폴리곤의 비교적 최근 칼럼 7) 에서도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잊을만 하면 다시 등장하는 오래된 떡밥인 루도는 블록버스터(트리플A) 게임의 산업적인 측면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실재하는’ 두 내러티브의 부조화인 루도는 게임 고유의 현상이며, 고쳐야 할 문제라는 의견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루도가 없는 게임이 가능할까. 바꿔 말해서 두 개의 내러티브가 완벽히 매끈하게 엮이면서, 결과적으로 하나의 내러티브만을 가지게 되는 이상적인(?) 상황을 연출해 낸 게임은 무엇일까. 즉각적으로 〈테트리스〉와 같은 고전 게임이 떠오를 수 있다. 다만 테트리스의 경우는 의도적으로 게임플레이를 제외한 내러티브를 아예 배제한 경우에 가깝다. 게임 플레이를 통한 경험이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 시점에서 이러한 몇몇 고전게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게임들은 게임 플레이를 통한 경험과 (비록 장식에 불과할지라도) 공식적인 내러티브가 평행선을 달리는 구조를 채택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발사가 아무리 게임플레이를 내러티브에 일치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고 해도 예측 불가능한 플레이어들의 변칙성은 때때로 이러한 노력을 쉽게 무력화시킨다. 유튜브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스피드런(speedrun) 영상이 대표적이다. 문자 그대로 시공간을 초월해서 (버그마저 초월해 버리고) 〈엘든링〉을 7분 안쪽으로 클리어 해버리는 영상 8) 만큼 루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인터넷의 수많은 자생적인 커뮤니티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있는 모드(mod)들은 상황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든다. 모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베데스다의 게임 중 하나인 〈폴아웃 4〉를 살펴 보자. 인벤토리의 무게 제한을 해제해주는 모드는 거의 ‘바닐라’ 상태와 마찬가지라고 여겨질 정도로 매우 사소한 변형이지만, 그것이 내러티브에 끼치는 여파는 생각보다 크다. 무게 제한이 없어진 플레이어는 더 이상 보급과 거래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폴아웃 4〉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맵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정착지 건설에 매진할 이유가 사라진다. 또한 인벤토리의 용량을 늘려주는 캐릭터 퍽(perk)을 찍을 이유도 없어지기 때문에 플레이어 캐릭터의 성장 역시 달라진다. 가장 간단한 모드의 파급력이 이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내러티브 사이의 간극이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모더(modder)들은 그 ‘간극’을 만들어 내는 놀이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해도 무방하다. 이쯤 되면 우리는 더 이상 루도를 특정 게임들이 때때로 맞닥뜨리는 문제일 뿐이라고 납작하게 눌러 놓은 채 지나갈 수 없는 지점에 이른다. 그것은 차라리 현대의 디지털 게임이 가지는 핵심적인 특성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불편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루도가 피해갈 수 없는 근원적인 ‘문제’라면 우리(게이머)는 어떻게 여전히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일까? 게이머들은 많은 경우 특정한 논리 시스템을 대상으로 삼는 실험가들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역시 사례와 함께 중첩시켜 보자.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통칭 야숨)에서 우리는 시작하자마자 최소한의 조건만을 갖추고, 하이랄 성으로 곧장 ‘날아 가서’ (실력이 받쳐 준다면) 가논을 처단하고 게임을 30분이 지나기도 전에 끝내버릴 수 있다. 혹은 정확히 그 반대로 할 수도 있다.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가논과 그 짐승을 온 힘을 다해서 봉인하고 있는 젤다 따위는 나 몰라라 하고 링크 앞에 펼쳐진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세상을 마음껏 누비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게임이 바로 그 방향으로 게이머들을 은근하게 유도한다는 점이다. 물론 기억을 되찾고 재앙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 앞의 설산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다 한 가운데에 떠 있는 작은 섬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신전은 궁금하지 않아? 라는 식으로. 혹은 여관 주인을 짝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메뚜기를 10마리 잡아보자는 등. 그 광대한 세계가 끊임없이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정도(正道)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한다. 마치 게임 스스로가 루도를 원하듯이 말이다. 이런 면에서 야숨은 “오히려 아방가르드의 목표는 내용이 아무튼 그 매체를 가리키거나 암시한다는 것이어야 한다” 9) 는 그린버그식 정의에 완벽히 부합하는 아방가르드 게임일지도 모른다. ∗ 뇌전의 검을 들고 잔디를 깎는 링크 위와 같은 샌드박스적인 펼쳐짐은 게임 내에서 매우 다채로운 방식으로 구현된 물리적인 상호작용들과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키며 플레이어들이 계속해서 ‘실험’에 몰두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들을 실제로 발과 손을 ‘디딘 채’ 올라가 볼 수 있고, 게임 내의 대부분의 요소들과 촉각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철로 된 무기는 비오는 날 떨어지는 번개에 취약하며, 횃불을 들고 들판에 가면 들풀들이 탄다)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세계는 게이머들로 하여금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보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토록 반응성이 뛰어난 시스템에서 공식적인 내러티브는 중요한 맥락으로 부상한다. 이 세계는 논리적이지만 우리의 현실과 같은 세계는 아니다. 마치 장르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암묵적인 장치들이 핍진성을 심각하게 결여하고 있더라도 우리가 그 영화를 즐기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게임의 내러티브는 특정한 시스템만의 논리에 장르적인 정당성을 부여한다. 앞서 봤듯이 우리는 야숨에서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지만, 바로 그 모든 행동들의 가능성을 떠받치고 있는 하이랄의 대지는 가논의 재앙이 100년 간 유예된 세계이다. 어딜 가든 우리는 계속해서 그 흔적들과 마주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애써 무시한 채 마치 아무것도 없는 진공 상태에서 내가 하고 싶은 행동들을 한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링크(게이머)가 그 앞의 설산을 오를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의 캐릭터를 포함한 이 모든 것들은 어차피 그저 수많은 폴리곤 덩어리일 뿐 아닌가. 백지 상태에서 ‘모든 것은 가능하고, 뭐든지 해도 된다’ 라는 말은 마치 자유처럼 들리지만 사실 정확히 그 반대에 가깝다. 역설적으로 게이머들은 내러티브라는 관습화된 약속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야 비로소 그 세계에서 마음껏 실험할 자유를 얻는다. 그에 따라 게임은 게이머들이 내러티브라는 조건 아래에서 주어진 시스템의 한계를 가늠해 보는 지속적인 실험 과정으로 변모한다. 재현성 위기는 기회다 ‘게임은 지식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게임은 실험 과정일 수 있다’ 라는 답변은 대략 근사치에 가까워 보인다. 실험을 하다 보면 그게 지식이 되는 것 아닌가. 미안하지만 실험과 지식 사이의 그 (빌어먹을) ‘간극’은 생각보다 심대하다. 실험에서 지식으로 이르는 과정을 간단히 상기 해보자. 자신이 세운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 중 하나가 실험이고, 물론 실험 역시 검증되어야 한다. 그리고 실험을 검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같은 실험을 반복해 보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실험이 제대로 설계되었다면 그 실험을 누가 하든, 어디서 하든 혹은 몇 번을 반복하든 간에 (모든 변인이 적절하게 통제된다는 가정 하에서) 도출되는 값은 동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크 소울〉 시리즈에서 보통 헐벗고 다니는 고인물 ‘망자’들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들이 마치 미래에서 온 것처럼 가장 최적의 움직임으로 길 위에 잡몹들을 빠르게 압살해 버리고, 보스마저 한 대도 맞지 않고 여유 있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반복된 수많은 실험들(YOU DIED)을 통해서 이 실험의 결과값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크 소울은 리듬 게임이라는 농담 10) 도 바로 이 연장선상에서 나온다. 그런데 만약 플레이어들이 ‘YOU DIED’ 라는 문구를 볼 때마다 맵의 구조가 완전히 달라질 뿐 아니라 잡몹들의 출현 위치와 등장하는 숫자도 랜덤으로 변하고, 결정적으로 보스의 공격 패턴마저 전혀 예측 불가능하게 달라진다면 어떨까. 제 아무리 고일대로 고인 망자들이라도 팬티 한 장만 걸치고 다닐 수는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이 실제 랩에서 같은 실험을 반복하던 중에 일어난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그 실험은 엉터리이고, 실험이 바탕을 두고 있는 가설은 지식 근처에도 못 갈 것이다. 더 나아가서 그런 일이 유명하고 권위 있는 저널에 이미 게재된 논문을 바탕으로 한 실험에서 벌어졌다면? 그것도 한 두 건이 아니라면? 스캔들을 넘어서 위기 상황이라고 부를 만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실제로 그 일들이 벌어졌고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이것을 재현성 위기(The replication crisis)라고 부른다. 네이쳐(Nature)지에서 1,576명의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서베이 조사를 소개하는 2016년 아티클 11) 에 따르면 그들 중 70% 이상이 다른 연구자가 진행한 연구의 실험들을 재현(반복)하려다가 실패했다고 대답했다. 더 충격적이게도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자신들이 직접 한 실험들을 재현하는데도 실패했다. 재현성 위기가 단순히 자연 과학 영역을 넘어서 (특히 이 문제가 처음 대두된 영역이 심리학과 사회과학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지식계 전반에 던진 충격파는 결코 작지 않다. 그럼에도 이 현상을 게임과 겹쳐 보면 심각한 위기로 가득 찬 큰 길 옆에 또 다른 샛길을 어렴풋이 발견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다크 소울〉 시리즈가 충실히 이행된 실험의 메타포로 기능했듯이, 우리는 재현성 위기를 반영하는 게임들을 탐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언뜻 보기에는 타임루프물만큼 재현성 위기를 제대로(?) 겪고 있는 게임도 없어 보인다. 플레이어는 모종의 이유로 특정한 시간과 공간으로 계속해서 돌아가는 것이 강제된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같은 상황을 계속해서 맞닥뜨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반복적인 ‘실험’을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 아닌가. 그런데 폴리곤의 〈 Time loops are a weird genre for an anxious time 〉 12) 영상에서 올바르게 짚어내듯이 모든 게임은 근본적으로 타임루프물이다. (“All video games are implicitly time loops.”) 왜냐하면 캐릭터가 죽더라도 우리는 세이브를 통해서 (세이브가 없는 로그라이크 같은 게임이라면 게임오버를 통해서) 언제든 다시 특정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게임은 어떤 식으로든 재현성 위기에 처해 있다고 다시 고쳐 말해야 할까. 그 결론으로 시급히 달려가기 전에 잠시 게임에서 반복이 지니는 모호함을 상기 해보자. 우리는 게임의 소프트웨어적 특성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함에 있어서 자잘한 반복적인 행위들을 필연적으로 하게 된다. 특정한 버튼에 할당된 특정한 행위들을 하는 것의 조합들이 매우 다양한 결과들을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복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게임 개발자들은 플레이어를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최대한 반복적인 조합을 피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세심하게 디자인한다. 이는 특히 아이러니하게도 (또 어쩌면 당연하게도) 노골적인 타임루프물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반복되는 플레이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절차적으로 생성되는(procedurally generated) 레벨을 도입한 〈리터널〉, 계속 같은 곳으로 되돌아오더라도 새롭게 알게 되는 정보들을 활용해서 플레이어들을 끊임없이 새로운 공간으로 유도하는 〈포가튼 시티〉, 같은 지역이라도 어떤 시간대인지에 따라 분위기와 적들의 규모와 위치가 변하는 〈데스루프〉 등. 결과적으로 우리는 대놓고 타임루프를 표방하는 게임들 내에서 오히려 반복적인 ‘실험’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타임루프물이 아닌 게임이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잇 테이크 투〉는 마치 뷔페처럼 모든 스테이지에서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극도로 잘 조율된 레벨 디자인을 선보인다. 그뿐 아니라 역시 극도로 타이밍이 좋은 자동 세이브 기능 덕에 플레이 중 캐릭터가 죽더라도 이미 지나쳐 온 과정을 반복하는 행위를 최대한 피할 수 있다. 이제는 반복을 회피하려는 강박이 없으며, 그 반복의 결과들이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그런 게임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만약 있다 하더라도 그게 과연 ‘재미있는’ 게임일까. 나는 당연히 그런 게임들은 존재하며 심지어 끝내주게 재미있는 것도 있다고 주장할 참이다. 그 중 하나가 〈프레이〉다. 〈프레이〉가 특히 훌륭하게(?) 재현성 위기에 처해 있는 이유 중 큰 부분은 이 게임이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머시브 심(Immersive Sim)이라는 점에 있다. 앞서 언급한 야숨과 폴아웃 등도 반응성이 뛰어난 시스템 우선의 플레이 스타일로 몰입형 시뮬레이션적인 특징을 공유하지만 오픈 월드라는 형식을 경유해서 그것들을 마치 빵에 잼 바르듯이 얇고 넓게 펼쳐 놓는다면, 〈프레이〉는 ‘탈로스-1’ 이라는 우주 정거장 하나만을 배경으로 삼는 대신 해상도를 극적으로 높인다. ∗ 우주에서 바라 본 탈로스-1 스테이션 예를 들어, 나는 플레이 하던 도중 잠긴 문으로 막힌 공간을 발견했고 어떤 방법으로도 그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다만 촘촘한 창살 사이로 내부 공간을 엿보는 것이 가능했는데 그 안에는 문 옆에 조그만한 버튼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지고 있던 장난감 석궁으로 좁은 창살 사이를 조준해서 그 버튼을 맞추었고, 마침내 문이 열렸다. 그런데 만약 내가 다른 공간에서 키카드를 입수할 수 있었다면 그냥 그 키카드로 문을 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힘이 충분했다면 그 공간 뒤쪽에 장애물들을 치우고 그 공간으로 진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그 안에 진입하는 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관건이 되는 것은 게임의 물리엔진을 위배하지 않는 한 어떤 방식이든 허용되며, 스크립트로 짜여진 공식적인 루트는 없다는 점이다. 또한 나를 둘러싼 세계는 (아주 작은 버튼 같은) 꽤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논리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이 특성은 제한적인 공간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돌아다녀야 하는 이 게임의 레벨 디자인과 결합하며 이상적인 실험 환경을 구축한다. 여기서 반복되는 실험들의 제각기 다른 결과값들은 모두 ‘정당’하며 따라서 그들 사이에 위계는 없다. 즉, 이 실험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동어반복적 회로를 차단하기 게임은 예술이 아니며, 지식이 되는 것에는 실패한 실험 과정이라는 시나리오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심지어는 그렇게 인기가 있는 가능성도 아닐 듯하다. 게임은 예술 혹은 문화, 하다못해 지식이라도 ‘되어야만’ 하는 시대에 무슨 생뚱맞고 처량하게 실패한 실험 운운인가. 그런데 어쩌면 바로 실험이 ‘실패’한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게임 = 예술, 지식, 문화’ 와 같은 (완벽하게) 숨 막히는 동어반복적 회로를 잠시라도 차단하고 완전히 다른 회로를 돌려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게임이 당위적으로 스스로를 정의/선언할 필요가 없는 회로를 말이다. 〈포탈 2〉의 그 모든 ‘실험’들이 스펙타클하게 실패한 이후 글라도스(GLaDOS)는 마침내 골칫덩이 실험체인 첼(플레이어)을 바깥 세상으로 놓아준다. 특유의 위트와 미묘한 슬픔이 뒤섞인 그녀의 작별인사 13) 는 마치 기이한 예언이 그렇듯이 예상치 못한 어떤 가능성을 예비한다. Go make some new disaster (가서 새로운 사고를 쳐) That's what I'm counting on (그게 내가 바라는 바야) You're someone else's problem (너는 이제 내 알 바 아니니까) (I used to want you dead but) (예전에는 네가 죽기를 원했는데) Now I only want you gone (이제는 그냥 너가 사라져 줬으면 좋겠어) 1) 그레이엄 하먼, 『예술과 객체』, 김효진 역 (서울: 갈무리, 2022), p.90-91. 2) James Bridle, “Something is wrong on the internet” Medium, 2017.11.7. medium.com/@jamesbridle/something-is-wrong-on-the-internet-c39c471271d2 3) Antoine Miech, Twitter, 2022.5.3. twitter.com/antoine77340/status/1521218333412139009 4) 김성완, Facebook, 2022.5.7. facebook.com/story.php?story_fbid=7748085815216489&id=100000454416270 5) https://this-person-does-not-exist.com/en 6) Clinton Hocking, “Ludonarrative dissonance in Bioshock” Typepad, 2007.10.7. clicknothing.typepad.com/click_nothing/2007/10/ludonarrative-d.html 7) Chris Plante, “The Last of Us 2 epitomizes one of gaming’s longest debates” Polygon, 2020.6.26. polygon.com/2020/6/26/21304642/the-last-of-us-2-violence 8) Distortion2, “Elden Ring Any% Unrestricted Speedrun in 6:59 (WORLDS FIRST SUB 7 MINUTES)” Youtube, 2022.4.12. youtube.com/watch?v=XuUEk6e1LOE 9) 그레이엄 하먼, 『예술과 객체』, 김효진 역 (서울: 갈무리, 2022), p.230. 10) “[영상] 다크소울은 리듬게임이다.” 루리웹, 2021.9.16. bbs.ruliweb.com/family/4892/board/183787/read/9590253 11) Monya Baker, “1,500 scientists lift the lid on reproducibility” Nature, 2016.5.25. nature.com/articles/533452a 12) Polygon, “Time loops are a weird genre for an anxious time ” Youtube, 2022.1.29. youtube.com/watch?v=QWEVGbVoxQ4 13) TheMediaCows, “Portal 2: End Credits Song 'Want You Gone' by Jonathan Coulton [1080p HD] ” Youtube, 2011.4.19. youtube.com/watch?v=dVVZaZ8yO6o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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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세미나] Do Videogames Simulate? - 비디오게임 연구의 오래된 전제에 대한 고찰
시뮬레이션 철학자 폴 험프리스(Paul Humphreys, 1991)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핵심 용도를 세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여기에는 분석적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수학 모델의 해를 구하는 해결책 제공이다. 둘째, 실제 실험이 불가능하거나 비윤리적이거나 너무 비싼 경우 컴퓨터로 가상의 실험을 수행하는 수치 실험이다. 셋째, 자연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모델을 만들고 그 타당성을 검증하는 이론 모델 탐구다. < Back [논문세미나] Do Videogames Simulate? - 비디오게임 연구의 오래된 전제에 대한 고찰 27 GG Vol. 25. 12. 10. TEXT: Karhulahti, V.-M. (2015). Do Videogames Simulate? Virtuality and Imitation in the Philosophy of Simulation. Simulation & Gaming , 46 (6), 838–856. doi: 10.1177/1046878115616219 현생과 부동산 이슈로 포기하기는 했으나 한동안 버킷 리스트에 레이싱 게임용 휠과 페달, 전용 시트가 장착된 거치대를 올려둔 적이 있다. <이니셜 D>로 운전을 배운 사람에게 레이싱 게임이 전달하는 사실감은 드리프트 순간 아스팔트의 질감이나 타이어의 마찰력까지도 구현된 듯한 착각을 꽤 오랫동안 불러일으킨다. 비단 레이싱 게임만은 아니다. 과 같은 비행 시뮬레이터는 조종석의 복잡한 계기판을 정밀하게 재현하고, 실제 기상 조건까지 반영한 비행기 운전 경험을 구현한다. 이처럼 몰입감 높은 게임 플레이 경험 덕분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게임이 현실을 시뮬레이션한다고 표현하는 것을 용인해 왔다. 이는 단순히 플레이어의 감상에만 머무르는 말은 아니다. 게임 연구에서 ‘게임은 본질적으로 시뮬레이션’이라는 명제는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여졌다. 재현을 토대로 하는 다른 매체와 게임의 변별력이 시뮬레이션에 있다는 주장 역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물리학자, 컴퓨터 과학자, 혹은 분석철학자에게 “모든 게임은 시뮬레이션이다”라고 말한다면 이들은 분명 의아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시뮬레이션(simulation)’이라는 단어가 해당 분야에서는 게임 연구에서 포괄적으로 사용되는 것과는 달리 더 엄격하고 구체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시뮬레이션이라는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정의 자체가 본질적으로 다르기도 하다. 과학과 공학에서 시뮬레이션은 단순한 ‘모방’이나 ‘재현’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분야에서 시뮬레이션은 과학적 지식을 얻기 위한 정밀한 도구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를 예측하는 슈퍼컴퓨터의 복잡한 모델을 떠올려 보자. 이 시스템은 대기의 움직임, 해류의 패턴, 빙하의 융해 속도, 태양 복사 에너지 등 수많은 변수를 실제 물리 법칙에 기반한 수학 방정식으로 계산한다. 항공사에서 조종사 훈련에 사용하는 수백억 원대의 비행 시뮬레이터 역시 특정 항공기 모델의 공기역학, 엔진 특성, 기상 조건, 비상 상황까지 정밀하게 재현한다. 시뮬레이션 철학자 폴 험프리스(Paul Humphreys, 1991)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핵심 용도를 세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여기에는 분석적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수학 모델의 해를 구하는 해결책 제공이다. 둘째, 실제 실험이 불가능하거나 비윤리적이거나 너무 비싼 경우 컴퓨터로 가상의 실험을 수행하는 수치 실험이다. 셋째, 자연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모델을 만들고 그 타당성을 검증하는 이론 모델 탐구다. 이 모든 과학적 시뮬레이션의 공통점은 ‘참조 시스템’이 반드시 그리고 명확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후 모델은 ‘지구의 기후’를, 비행 시뮬레이터는 ‘보잉 747’이라는 실제 항공기를 참조한다. 얀 클라버스(Jan Klabbers, 2009)의 정의처럼, 시뮬레이션은 “유효한 대응 규칙을 통해 참조 시스템을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모델이다. 그 목적은 단순히 현실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거나 미래를 예측하고, 혹은 특정 기술을 훈련하는 데 있다. 반면 게임 연구에서는 이 용어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네임드 몬스터 오닉시아도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고, <포켓몬스터>의 피카츄도 시뮬레이션이라고 지칭한다. <다크 소울>의 망자의 저주나 <젤다의 전설> 속 마법 시스템 역시 시뮬레이션이라는 범주 안에 쉽게 포함되곤 한다. 여기서 과학자들의 질문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 피카츄의 참조 대상은 무엇이며, 마법 시스템이 모방하려는 현실의 메커니즘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것이 핀란드의 게임 연구자 벨리-마티 카훌라띠(Veli-Matti Karhulahti)가 2015년 학술지Simulation & Gaming에 기고한 「비디오게임은 시뮬레이션하는가?(Do Videogames Simulate?)」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에서 제기한 핵심 비판이다. 카훌라띠 는 게임 연구가 ‘시뮬레이션’이라는 용어를 과학적·철학적 정의와 무관하게, 지나치게 느슨하고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임 연구자들은 시뮬레이션의 핵심인 ‘참조 시스템’과 ‘모방’이라는 개념을 사실상 제거해버리고, “컴퓨터로 구동되는 모든 동적 시스템”이라는 의미로 용어를 확장해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장 보드리야르의 ‘하이퍼 리얼’ 개념이 게임 연구에 수용된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시뮬라크르(simulacra)’는 더 이상 원본을 참조하지 않는 복제품, 즉 원본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의미한다. 게임 연구자들은 이를 차용해, 게임 속 드래곤은 원본이 없으므로 현실의 드래곤을 모방한 것이 아니며, 그 자체로 실재하는 시뮬레이트된 드래곤이라고 주장했다. 에스펜 올셋(Espen Aarseth, 2006)은 “우리는 컴퓨터 게임에서 용을 시뮬레이트할 수 있으며, 실제 세계의 대응물이 없더라도 그 용은 여전히 허구의 용이 아니라 시뮬레이트된 용”이라고 썼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 시뮬레이션의 관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논리적 비약이다. 이러한 용어의 불일치는 단순히 학자들 사이의 말장난에 그치지 않는다. 카훌라띠 가 지적했듯이, 이는 “무관세 학제성(duty free interdisciplinarity)”의 전형이다. 한 분야의 용어를 그 분석적·역사적 맥락 없이 무비판적으로 가져다 쓰는 전형적인 사례로, 실제로 게임 연구가 다른 학문 분야와 소통하고 협력하는 데 심각한 장애물이 된다. 예를 들어 교육용 게임의 딜레마를 볼 수 있다. 교육학 연구자가 게임 기반 학습의 시뮬레이션 효과에 대해 논문을 쓸 때, 그들에게 시뮬레이션이란 화학 실험이나 역사적 사건과 같은 실제 학습 상황을 재현하는 특정 메커니즘만을 의미한다. 하지만 게임 연구자는 점수, 레벨업, 퀘스트를 비롯한 게임의 모든 동적인 요소를 시뮬레이션으로 이해할 수 있어, 두 연구자는 시뮬레이션이라는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완전히 다른 대상을 논의하게 된다. 카훌라띠 는 배리 앳킨스(Barry Atkins, 2003)를 인용해, 이러한 교육용 게임을 “시뮬레이터의 사생아”라고 부른다. 교육적 메시지와 유희적 경험 사이에서 필연적인 타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 시뮬레이션 개발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의사들은 해부학적으로 100% 정확하고 실제 수술의 물리적 반응을 정밀하게 재현하는 과학적 시뮬레이터를 기대한다. 반면, 게임 디자이너는 조작이 재미있고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으며 게임 메커니즘이 흥미로운 컴퓨터 게임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시뮬레이션’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양측에서 완전히 다른 기대치를 만들어 내 프로젝트를 표류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철학적 딜레마가 발생한다. 만약 게임 속 드래곤이 시뮬레이션이라면, 그것의 참조 시스템은 무엇일까? 일부 학자들은 디자이너의 생각이라 답한다. 하지만 카훌라띠 는 이 주장을 날카롭게 반박한다. 비물질적 참조 시스템인 디자이너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질적 참조 시스템인 실제 현상을 부정하는 것이며, 이는 시뮬레이션 검증의 수단인 테스트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시뮬레이션은 과학적 도구로서 가장 중요한 속성인 검증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게임이 시뮬레이션인지 아닌지는 과연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이 논쟁은 두 가지 주요 관점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플레이어 중심 관점이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현실의 무언가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그것이 곧 시뮬레이션이라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마인크래프트>를 플레이하며 실제 건축 공학의 원리를 탐구한다면, 그에게 <마인크래프트>는 건축 시뮬레이션이 된다. 또 다른 플레이어가 를 플레이하며 도시 교통 시스템의 혼잡도를 연구한다면, 그것은 도시 생활 시뮬레이터가 된다. 이 관점의 극단적인 예는 자넷 머레이(Janet Murray, 1997)가 제시한 <테트리스> 해석이다. 머레이는 <테트리스>를 1990년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미국 직장인의 삶을 시뮬레이션한다고 해석했다. 블록으로 형상화된 끝없이 밀려오는 업무를 필사적으로 줄 맞추듯 처리하지만, 결국 과부하에 이르러 게임 오버에 이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관점은 심각한 철학적 문제를 안고 있다. 만약 플레이어의 주관적 해석이 게임의 본질을 결정한다면, ‘시뮬레이션’이라는 개념은 어떤 것도 구별해내지 못하는 무의미한 용어가 되어버린다. <테트리스>가 직장 생활의 시뮬레이션이라면, <캔디 크러쉬>는 제과 산업의 시뮬레이션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시뮬레이션을 ‘은유’나 ‘알레고리’와 혼동하는 것이다. 카훌라띠 가 제안하고 옹호하는 것은 두 번째 관점, 즉 ‘시뮬레이션의 의도적 철학(intentional philosophy of simulation)’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게임은 스스로 무언가를 시뮬레이트하지 않는다. 게임이 시뮬레이션인지 아닌지는 그것을 설계한 설계자의 명확한 의도에 달려 있다. 여기서 ‘의도’란 단순히 디자이너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심리적 상태가 아니다. 그 의도는 반드시 ‘기능적 증거(functional evidence)’로서 게임 아티팩트 자체에 물질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즉, 디자이너가 특정한 현실의 참조 시스템을 모방하려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게임을 설계했으며, 물리 법칙, 경제 모델, 생태계 순환과 같은 모방을 위한 기능적 메커니즘이 게임 코드와 시스템 속에 실제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심시티>의 개발자 윌 라이트는 실제 도시 계획 이론과 제이 포레스터(Jay Forrester)의 시스템 동역학을 연구하여, 교통 체증, 공해, 범죄율, 세금 징수 시스템 등이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도시 모델을 게임에 구현하려 했다. 여기에는 명확한 ‘의도’와 ‘참조 시스템’, 그리고 ‘기능적 증거’가 모두 나타난다. 따라서 <심시티>는 명백한 시뮬레이션 혹은 시뮬레이터다. 반면, <테트리스>의 창시자 알렉세이 파지트노프는 어떤 현실 시스템도 모방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펜토미노>라는 수학적 퍼즐에서 영감을 받아, 떨어지는 블록이라는 순수하게 재미있는 게임 메커니즘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따라서 <테트리스>를 시뮬레이션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며, 범주의 오류이다. 그렇다면 현실을 참조하지 않는 게임 속 요소들, 즉 드래곤, 마법, 좀비, 외계인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들은 무엇일까? 단순한 허구(fiction)일까, 아니면 환상(fantasy)일까? 카훌라띠 와 현대 게임 철학의 맥락을 빌려 여기서 ‘가상성(virtuality)’이라는 대안적 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서 가상은 단순히 ‘가짜(fake)’나 ‘현실의 반대(unreal)’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같은 철학자들이 발전시킨 개념에 따라,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잠재성을 지닌, 현실의 또 다른 양태”로 이해된다. 인공 생명 연구의 선구자 크리스토퍼 랭턴(Christopher Langton, 1986)은 가상성을 “너무나 생생해서 생명의 모델이기를 멈추고 생명 그 자체의 예시가 되는” 영역이라고 정의했다. 게임 속 드래곤이나 좀비는 현실 세계의 불완전한 복사본,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게임 세계라는 고유한 맥락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독립적인 대상이다. 철학자들은 이를 ‘가상화된 픽타(virtualized ficta)’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셜록 홈즈를 생각해 보자. 셜록 홈즈는 현실의 런던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코난 도일의 이야기 세계라는 허구적 진실 속에서는 베이커가 221B번지에 살며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왓슨 박사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실제적인 인물로 자리한다. 마찬가지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드래곤 오닉시아는 그 게임 세계 안에서 실제로 기능한다. 먼지진흙 습지에 서식하고, 화염 숨결을 사용하며, 플레이어와 상호작용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현실의 어떤 도마뱀도 시뮬레이션하지 않지만, 아제로스라는 세계 내에서는 완벽하게 일관적이고 실제적인 가상적 대상이다. 이러한 구분은 게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게임 속 드래곤은 현실감이 떨어지는 나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게임 세계 속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성공적인 가상적 창조물로 재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시뮬레이션’과 ‘가상성’의 엄밀한 구분을 통해, 혼란스러웠던 게임의 범주를 훨씬 더 정교하게 구분하고 이해할 수 있다. 명확한 현실 참조 시스템과 모방 의도를 가진 시뮬레이션 게임은 처럼 정확성과 사실성을 기준으로 평가된다. 반면, 현실의 일부와 가상적 요소를 결합한 부분적 시뮬레이션 게임은 <심시티>나 <콜 오브 듀티>처럼 현실적 기반 위에 게임적 규칙을 더한다. <다크 소울>이나 <파이널 판타지>와 같은 가상성 게임은 현실 참조 없이 창조된 독립적 가상 세계의 일관성과 독창성으로 평가받는다. 마지막으로 <테트리스>나 <포탈>과 같은 추상적 혹은 절차적 게임은 세계의 재현이 아닌 순수한 규칙과 메커니즘, 즉 절차 자체에 집중한다. 이러한 개념적 구분이 단순히 학자들의 현학적 유희에 그치지 않고, 실제 게임 산업과 문화에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실천적인 이유가 있다. 연구의 명확성 측면에서, 게임 연구가 교육학, 의학, 공학 등 다른 학문과 성공적으로 대화하고 협력하려면 ‘시뮬레이션’과 ‘가상성’이라는 공통의 언어와 명확한 구분이 필수적이다. 또한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게임 개발팀 내부에서 우리는 중세 전투를 시뮬레이션하는 게임을 만든다고 합의했다면, 이것은 단순히 중세 판타지 게임을 만드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발 방향성을 제시하며, 역사적 고증이나 물리 엔진의 정확성에 자원을 집중해야 함을 의미한다. 비평의 기준도 확립된다. 비행 시뮬레이터가 실제 비행과 다르다고는 비판할 수 있지만, <엘든 링>의 마법이 현실 물리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고는 비판하지 않는다. 이는 애초에 시뮬레이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법적·윤리적 논쟁도 정교화할 수 있다. <콜 오브 듀티>가 실제 전쟁을 시뮬레이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둠>에서 악마를 사냥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윤리적 질문을 제기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성균관대학교 강사) 홍현영 패미콤을 화목한 가족 구성원의 필수품으로 광고한 덕분에 게임의 세계에 입문했다. <저스트댄서> 꾸준러. 『81년생 마리오』, 『게임의 이론』, 『미디어와 젠더』 등을 함께 썼다.
- 2023년, 되새기고 싶은 게임들
쏟아지는 게임들을 개인이 매년 다 챙겨 플레이해 볼 수는 없다. 그래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꾸준히 신작들을 좇는 과정에서 느꼈던 올해의 여러 게임들을 간략히 정리해보면서 한 해의 게임들이 남긴 의미들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GG는 딱히 평점을 매기거나 개별 타이틀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웹진은 아니지만, 한 해의 마무리로서의 의미 정도는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 Back 15 GG Vol. 23.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Editor's View] 무던히도 게임이 많았던 2023년을 마무리하며
2년 반동안 GG의 글들을 눈여겨 봐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년 2월, GG는 여전히 디지털게임과 우리라는 주제를 들고 변함없이 돌아오겠습니다. 차분함과 평온함이 가득한 연말연시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Back [Editor's View] 무던히도 게임이 많았던 2023년을 마무리하며 15 GG Vol. 23. 12. 10. 2023년은 특히 작년인 2022년과 비교해 본다면 굵직하고 유의미한 게임들이 무더기로 쏟아진 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면서 게임은 시들해지겠지 싶었지만 오히려 쏟아지는 게임 덕분에 누군가에겐 밖에 나가기가 힘든 한 해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워낙 대작들도 많았고, 작지만 의미가 묵직한 게임들도 많았습니다. 아마 올해 이루어질 여러 게임 어워드는 어느 해보다도 치열할 것이고, 비록 수상에 이르지 못하고 후보로만 머무르는 게임조차도 다른 해였다면 GOTY급의 위상을 차지할 수도 있었을 수많은 게임들이 2023년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GG는 그동안 GG를 거쳐간 여러 필자분들에게 당신들에게 있어 2023년을 기억할 만한 게임은 무엇이었는지를 물었고, 그 답변을 글로 받아보았습니다. 이 중에는 올해 여러 어워드를 휩쓸 대중적인 게임도 있고, 혹은 정말 소수의 마니아들만 만져볼 법 했던 게임들도 있습니다. 게이머 개개인에게는 모두에게 각자의 GOTY가 있을 것이지만, 비좁은 지면에서 그 모든 걸 다루기는 어렵기에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2023년의 게임이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 물어보는 선에서 그치게 되었습니다. 2021년 6월에 첫 선을 보였으니 이제 GG의 나이는 두돌 반, 곧 햇수로는 4년차를 맞이합니다. GG는 특정한 게임 타이틀을 두고 평점을 매기지는 않습니다만, 내년부터는 여건이 된다면 GG의 입장에서 한 해를 정리하는 GGG(Game Generation GOTY)를 손대볼 의향도 있습니다. 2023년 12월호는 그 작업의 얼리 억세스라고 봐주셔도 좋겠습니다. 2년 반동안 GG의 글들을 눈여겨 봐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년 2월, GG는 여전히 디지털게임과 우리라는 주제를 들고 변함없이 돌아오겠습니다. 차분함과 평온함이 가득한 연말연시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4회공모전수상작]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비평을 위한 시론 - 캐릭터 뽑기가 갖는 의의란
하지만 ‘서브컬처’라는 명명에는 꽤나 기묘한 구석이 있다. 문화연구 분야에서 서브컬처는 고급 문화 혹은 주류 문화에 대응하는 하위 문화를 뜻하지만 근래에는 그 외연이 확장되어 “‘주변부’의 취향 공동체로, 전체 문화 속 문화 혹은 사회 내 다양한 문화들”로 규정되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국내에서는 일본의 오타쿠 문화와 거기서 파생된 컨텐츠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서브컬처가 수입 및 활용되며 정착된 사회적 의미가 존재한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강현 한일 오타쿠 문화 독립연구자. 근래 PC 싱글 게임 구력을 보드게임 구력이 추월하고 있다. 최근까지 티바트 세계(원신)와 뉴에리두(젠존제)의 수호자로 활동하고 있다.
- 최적화하는 재미, 최적화된 세상 - 자동화 시뮬레이션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최적화와 효율을 위함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최적화 게임’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산업 자본주의의 최적화를 이뤄온 과정을 따라간다. 물론, 최적화의 재미를 느끼는 게임에서 최적화의 행위를 성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실을 반영하는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비가시화된 존재들이, 자본주의로 최적화된 우리 사회의 비가시화된 영역을 생각해보게 한다면 그것 또한 게임이 줄 수 있는 의미이지 않을까? < Back 최적화하는 재미, 최적화된 세상 - 자동화 시뮬레이션 27 GG Vol. 25. 12. 10. 대학을 다닐 때, 책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교수님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질문의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내 후두부를 강력하게 두드렸던 당시 교수님의 답변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 교수님은 “학문을 한다는 것은 집 정리를 하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집에 큰 가구가 새로 생긴다면 기존의 가구들을 재배치해야 하는 것처럼, 책을 읽을 때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지식들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나의 편향과 신념, 습관, 체계들이 무너지고 새로 쌓이는 경험을 하는 것. 그것이 학문의 의미이자 재미라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당시 교수님의 이야기는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우습게도 내가 이때의 대화를 가장 많이 떠올리는 순간은 자동화 게임을 할 때이다. 자동화 게임을 즐겨본 유저라면, 자기 기지를 제 손으로 부숴보지 않은 유저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만약 한 번도 손보지 않고 엔딩을 향해 달려갔다면, 그것은 다른 의미로 존경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그전까지의 내 기지가 아무리 완벽했어도 재구성과 재배치의 작업이 필요하다. 단순히 새로운 기계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최적의 동선과 최적의 환경, 최적의 효율을 위해 다시 기지의 모든 곳을 다듬어야 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급박한 상황이라면 임시적으로나마 비효율적인 기지를 만들어놓을 수 있겠지만, 게임 플레이 시간이 쌓일수록 게이머의 다음 과제는 효율적인 기지 구성을 향해 나아간다. <끝없는 재구축의 과정> 자동화 게임? 최적화 게임!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애써 만들어놓은 기지를 부수고 새로 구축하는 과정이 마냥 괴롭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자동화 게임을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위의 문장을 반박하려 들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의 장르를 바꿔보자. 만약 RPG를 하는데 10시간 가까이 레이드한 보스몹을 결국 잡지 못하거나, 겨우 잡은 보상을 잃어버린다면 그 상실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혹은 지금까지 모은 재화들을 해킹당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허탈함과 분노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자동화 게임에서는 수십 시간씩 공을 들여 만든 기지여도 효율적이지 않으면 자기 손으로 부수고 새로 짓게 된다. 심지어 부수고 새로 지을 각이 보이지 않으면 산뜻하게 지금 기지를 버리고 새로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지금까지 쏟은 시간을 버린 것과 같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과제를 마주하면서 이걸 해결하고 더 좋은 기지를 만들 수 있다는 설레임이 동반되기도 한다. 이처럼 자동화 게임에서는 결과물이 중요하지 않다. 자동화 게임의 재미는 마치 레고처럼 창의성을 발휘해서 자신의 기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다만, 레고와 다른 점은 창의성을 발휘하는 목적이 주관적 심미성이나 상상력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뚜렷하고 명확한 효율성 자체에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동화 게임의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다가 노트를 펴서 수치를 계산하는 수학자가 되기도 하고, 게임 내 기술이 어디까지 실현될 수 있는지 실험하는 과학자가 되기도 한다. 가족 구성원이 이 광경을 본다면 아마 ‘대체 그 게임은 무슨 재미로 하는 거야?’라고 물을 만큼 겉으로 보기에는 노동의 과정과 다를 것이 없지만, 직장에서는 오롯이 추구할 수 없는 최적화 과정 자체에서 이 게임의 재미가 나온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자동화 게임의 목적은 자동화에 있지 않다. 완전히 자동화된 환경을 만들어서 바라본다면 뿌듯한 감정을 느끼겠지만, 그것이 뿌듯한 이유는 최적화를 향한 나의 노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최적화 게임’이 게이머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것은 변수의 계산 가능성 덕분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은 변화무쌍하고 다층적이며 예측불가능하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수치적으로 변수가 제공되어 계산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며, 잘 만든 ‘최적화 게임’들은 게이머에게 단계적으로 새로운 환경과 과제들을 제시한다. <산소미포함(Oxygen Not Included, 이하 산미포)>을 즐긴 게이머라면 누구나 산소 부족-식량 부족-전기 부족-물 부족-자원 고갈의 어려움을 순차적으로 겪을 것이다.(물론, 중간중간 앞 단계의 과제들이 다시금 찾아온다) <팩토리오(Factorio)>와 <새티스팩토리(Satisfactory)>에서는 필요한 광물이 순차적으로 늘어난다. 게이머들은 이러한 변수 앞에서 자원을 활용하고 환경을 구축하며 최적화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다시 돌아보는 막스 베버의 통찰 그런데 시야를 넓혀보면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모든 게임이 현실을 반영하는 시뮬레이션이라지만, 자동화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는 특히나 현실과의 유사성이 높은데도 게임을 하면서 현실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변수의 성격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 게다가 공장이라는 공간적 배경도 게이머의 경험에 따라 거리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생산과정에서 유통과정까지 효율을 추구하는 게임의 구조가 현실과 흡사함에도 관련 논의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커뮤니티를 둘러봐도 ‘현실에서 효율을 추구하지 않는 자신이 왜 게임에서 효율을 좇는지’ 궁금해할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답글이 달리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한국인의 특성’처럼 부정할 수도 없지만 논의에 도움도 되지 않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이다. 자동화 시뮬레이션과 현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비와 욕망이 직접적인 변수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RPG뿐만 아니라 <데이브 더 다이버>나 <문명>처럼 파편적으로라도 경제 시스템을 구현한 게임과 비교했을 때, 복잡다단하고 가변적인 욕망의 소유자는 물론이고, 정해진 확률에 따라 거래를 하려는 소비자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산미포>의 복제체(Duplicant)들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치만을 요구할 뿐이고, 문화적, 정신적 요구치인 사기와 스트레스 역시 소비 과정 없이 최소치의 수치만 충족시키면 되며, <팩토리오>와 <새티스팩토리>의 플레이어는 다른 인간 자체를 만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화 시뮬레이션의 생산물은 교환가치를 가진 ‘재화’가 아니라 다음 단계를 위한 ‘재료’로 인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화 시뮬레이션에서 구현되는 세상은 현실의 산업 자본주의와 흡사한 형태로 발전한다. 이러한 점은 ‘소비의 욕망 구조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막스 베버의 통찰을 되돌아보게 한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의 기원을 생산 과정에서 찾았다. 베버에 따르면, 종교 개혁 이전에는 개개인의 구원 여부를 개인의 외부, 즉 교회와 종교 권력이 확정시켜주었지만, 종교개혁 이후의 청교도인들은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이러한 차이는 일상생활에서의 차이로 이어졌다. 과거에는 종교 의례를 충실히 참여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청교도인들에게 일상은 신이 자신에게 요구한 삶의 태도를 증명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에 청교도인들은 세속적 직업 수행을 신의 소명으로 여기며,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 더 효율적이고 능동적으로 노동에 임했다. 이때의 자본주의 정신은 합리적 계산과 체계적인 노동, 절제된 생활, 이윤의 재투자 등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축적된 자본은 또다른 생산을 만들면서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소비와 욕망의 매커니즘이 구현되지 않는 세상은 베버가 말한 자본주의의 확장 과정을 잘 보여준다. 게임 내 재료가 쌓이면, 이는 바로 다음 생산 활동을 위해 투입된다. 많이 사용되는 재료는 더 넉넉하게 쌓으려고 하지만, 이 역시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로 인한 축적이다. 그렇게 공장은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은 물품을 만들 수 있게끔 점점 확장된다. 그 자체로 목적성을 가지는 생산 과정은 베버의 말처럼 다른 생산으로 이어지며 산업 자본주의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또 하나의 변수. 물류 산업 자본주의가 확장되는 또 하나의 변수는 물류 시스템이다. 자동화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물류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면, 게임의 중반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형태가 컨베이어 벨트가 되었건, 기차가 되었건, 드론이 되었건 생산 과정을 효율적으로 최적화하려면 물류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특히, 자동화 시뮬레이션의 고급 기술들은 여러 자원들을 대량으로 요구하기에 자원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생산품 역시 필요한 것으로 보내야 한다. 따라서 효율에 대한 추구와 산업의 발전은 물류 시스템의 탄생을 낳는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물류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영역이고 산업 발전의 산물일 뿐이다. 실제로 게임을 하면서 물류 시스템을 가장 중요한 변수로 먼저 떠올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크 레빈슨의 통찰은 이러한 생각을 뒤집는다. 레빈슨은 <더 박스: 컨테이너는 어떻게 세계 경제를 바꾸었는가>에서 물류 시스템의 발전이 산업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역설한다. 컨테이너가 사용되기 이전에는 모든 항구에서 짐을 일일이 손으로 싣고 내려야 했다. 도난이나 파손의 위험도 높았지만, 무엇보다 운송비가 막대하게 들어갔다. 그러나 컨테이너가 표준화되자 운송비가 줄어들면서 공장들은 항구 근처에 위치하지 않아도 되게 바뀌었으며, 원재료부터 완제품까지 만들던 공정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국제적인 분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게다가 운송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업들은 재고를 쌓아두지 않게 되었으며, 필요한만큼 만들어 필요한 곳에 파는 Just-in-Time 생산이 가능해졌다. 레빈슨은 이로 인해 분업화와 같은 기업 구조의 변화는 물론이고, 세계화와 노동 시장, 도시의 구조까지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자동화 시뮬레이션을 생각해본다면, 물류 시스템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개념만이 아니라, 필요를 만들어내는 개념이기도 하다. <새티스팩토리>에서 운송 수단이 발달하면, 그전까지는 멀어서 염두에 두지 않던 효율성 좋은 자원을 사용하게 되고 기지가 확장된다. 자원에 여유가 생기면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더 많은 기기들을 만든다. <산미포>에서 기존에는 어쩔 수 없이 복제체가 직접 움직여야 했던 지점도 자동화되며 최적화의 대상과 방식이 변한다. 분업도 더욱 활발해지면서 결과적으로 만들어내는 생산물이 늘어난다. 물류 시스템의 발전이 산업 자본주의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존재가 비가시화된 세상에서 현실의 비가시화된 존재를 상상하기 그런데 이처럼 현실에서의 욕망과 탐욕 없이, 생산이 생산을 낳고 물류가 필요를 낳는 세상에서도 착취와 소외의 흔적은 발견된다. 공장의 최적화를 위해서는 변수 없이 돌아가는 부품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다수의 자동화 게임들은 착취의 현장을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고자 한다. <팩토리오>와 <새티스팩토리>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기에, 공장 내부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움직이며 0.01초 단위로 작업을 규제받는 현실의 노동자가 나오진 않는다. <산미포>는 등장하는 노동자를 인간이 아닌 복제체로 정의한다.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판단력이 제거된 복제체들의 움직임은 게이머의 죄의식을 희석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 위에서 최적화를 위한 플레이는 자본주의의 생산 모델 발전 경향을 답습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유가 생기면 복지를 신경쓰기 시작한다> 게임의 초기 단계에서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그래도 게임 시스템이 시간과 능력, 생산량들을 표준화해놓기 때문에, 게이머들은 분업과 세분화 작업을 통해 노동의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테일러주의적 운영 방식을 보인다. 그러다 초기 생산물이 쌓이면,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컨베이어 벨트를 사용하는 포드주의로 발전한다. <산미포>에서 노동자의 식당이나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는 것도 부분적으로나마 복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포드주의와 맞닿는다. 이후 생산과 물류 시스템이 정착하고 당장 생존에 여유가 생기면 환경을 바꾸거나 주변을 꾸미기 시작한다. 낭비를 최소화하는 작업을 할 여유가 생기면서 근로만족도와 스트레스도 챙긴다. 팀워크와 자발성을 게임에서 구현할 수는 없지만, 생산성과 복지를 결합한다는 측면에서는 도요타주의적 운영 방식을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최적화와 효율을 위함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최적화 게임’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산업 자본주의의 최적화를 이뤄온 과정을 따라간다. 물론, 최적화의 재미를 느끼는 게임에서 최적화의 행위를 성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실을 반영하는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비가시화된 존재들이, 자본주의로 최적화된 우리 사회의 비가시화된 영역을 생각해보게 한다면 그것 또한 게임이 줄 수 있는 의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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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DRX 무릎이 말하는 게이머와 조이스틱의 관계
그렇다면 조이스틱에서 발생하는 감각과의 경험을 생생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오랜 기간 세계 최정상급으로 활동하고 있는 격투 게임 프로게이머라면, 아주 미묘한 감각과 게임 간의 상호작용을 더 면밀히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십여 년간 탑 티어를 놓지 않으며 수많은 게임기기를 이용해본 게이머라면, 조이스틱의 변천에 따른 감각적 차이를 잘 설명해주지 않을까? 이러한 기대를 품고 이번호에서 편집장은 글로벌 이스포츠 전문기업 DRX 소속 철권 프로게이머인 '무릎' 배재민 선수를 만나고 왔다. < Back [인터뷰] DRX 무릎이 말하는 게이머와 조이스틱의 관계 11 GG Vol. 23. 4. 10. 일찍이 마셜 매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를 신체와 감각기관의 연장이라고 보고, 발달하는 기술이 인간의 감각기관을 확장시키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굳이 복잡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게임 인터페이스에 활용되는 기술들이 게이머의 감각을 게임 속 캐릭터와 연결시킨다는 점은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터페이스들을 통해, 게이머의 눈은 게임 속 세상을 인지하고, 게이머의 손은 게임 캐릭터의 신체를 제어한다. 게이머의 아주 미세한 움직임 하나가 게임 캐릭터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도 하기에, 감각과 게임의 연결은 모든 게임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으로 감각과의 연결이 중요한 게임 장르를 꼽는다면 ‘대전(對戰) 격투 게임’이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프레임 단위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고, 반응해야 하는 격투 게임에서 조이스틱이나 패드는 게이머의 감각을 극한까지 받아들인다. 그리고 게이머의 반응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게임의 내용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게이머의 경험까지도 변화시킨다. 그렇다면 조이스틱에서 발생하는 감각과의 경험을 생생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오랜 기간 세계 최정상급으로 활동하고 있는 격투 게임 프로게이머라면, 아주 미묘한 감각과 게임 간의 상호작용을 더 면밀히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십여 년간 탑 티어를 놓지 않으며 수많은 게임기기를 이용해본 게이머라면, 조이스틱의 변천에 따른 감각적 차이를 잘 설명해주지 않을까? 이러한 기대를 품고 이번호에서 편집장은 글로벌 이스포츠 전문기업 DRX 소속 철권 프로게이머인 '무릎' 배재민 선수를 만나고 왔다. 편집장: 너무 유명한 선수를 모셔서, 굳이 소개를 부탁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웃음) DRX 무릎 선수는 오랫동안 대전 격투 게임에서 최정상급 위치를 유지해 오시면서 다양한 컨트롤러들을 만져보셨잖아요. 혹시 가장 처음 만져본 게임 컨트롤러가 무엇인지 기억나시나요? DRX 무릎: 맨 처음으로 만져봤던 건 오락실에 달려있는 기계였어요. 편집장: 혹시 어떤 게임인지도 기억하세요? DRX 무릎: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했던 게임이라서.. 아마.. 그 당시에는 〈스트리트 파이터 2〉였던 것 같아요. 당시에 동네에 오락실이 있었는데요. 아버지랑 목욕탕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구경시켜줄까?’ 해서 들어갔었는데, 오락기가 일렬로 쭉 있더라고요. 다 처음 보는 거라서 너무 신기했는데, 당시에는 게임 제목을 오락실 사장님이 직접 써서 붙여놓으셨어요. 편집장: 맞아요. 매직으로 보통 써놨었죠. (웃음) DRX 무릎: 네. 매직으로. 그때 정확하게 〈스트리트파이터 2〉라고 안 되어 있었고, 그냥 ‘장풍 2’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 당시에 무협 영화가 엄청 유행하던 때라 장풍은 알았죠. 그렇게 ‘장풍2 해보고 싶다’고 해서 했던 게 (컨트롤러를 만져본) 처음이었어요. 편집장: 당시에는 커맨드를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지 않나요? DRX 무릎: 네. 그냥 막 눌렀죠. 편집장: 그러면 당시에 왼쪽에 막대기가 있고, 오른쪽에 버튼이 있는 구조를 그때 처음 보신 거잖아요? DRX 무릎: 네. 그렇죠. 그 이후에 게임에 빠져서 게임기를 사주신 게 ‘제믹스’라는 게임긴데, 그거는 패드처럼 돼 있었어요. 편집장: 그러면 처음에 스틱을 잡으시고, 이거를 전후좌우로 움직이면 캐릭터가 움직인다는 걸 되게 어렸을 때부터 익히신 건가요? DRX 무릎: 그렇죠. 당시에는 게임기에 상하좌우 이렇게 적혀 있었거든요. 레버 방향 같은 거를. 그거 보고 조작을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대전 격투 게임이 움직임이 좀 자유롭잖아요? 그래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점프하고 싶다 하면은 그냥 (레버를 위로 올리는 손동작을 하며) 이렇게 했어요. 그러면 점프를 하더라고요. 편집장: 어떻게 보면 거의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배우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군요. 특히 〈스트리트 파이터〉와 같은 계열은 스틱 커맨드가 있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장품 같은 걸 쏘는 것도 사실은 어려운데, 따로 어디서 배우신 거예요. 아니면 이렇게 움직여보다가 익히신 거예요? DRX 무릎: 처음에는 아예 모르니까 그냥 버튼만 누르고 그러다가 나중에 오락실 가서 알게 됐죠. 어떤 분이 쓰는 것 보고 물어봤어요. ‘이거 어떻게 쓰는 거예요?’하고. 편집장: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기술을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보면 다들 쓰고 있었죠. 잡지 같은 데 기술표가 정리되긴 하지만, 다들 잡지를 사서 보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면 구전처럼 기술이 전해졌던 것이군요. DRX 무릎: 네. 오락실에서 어떤 아저씨가 알려주기도 하고, 뒤에서 손 보고 따라하기도 하고 그랬죠. 물론 아저씨라고 했지만 그때의 제 시각이니 사실 대학생일 수도 있고요. 편집장: 그러면 오락실 스틱부터 제믹스 콘솔까지 잡아보시고, 이후에도 정말 다양한 스틱들을 잡아보셨을 텐데, 지금 현재 쓰고 있는 스틱이 어떤 것인가요? DRX 무릎: 지금은 이제 조이스틱을 쓰고 있거든요. 음.. 저는 사실 다른 거를 쓰려면 쓸 수는 있지만, 이게 너무 익숙하고 너무 자유로워서 저는 딱히 다른 걸로는 안 바꾸게 되더라고요. 편집장: 격투 게임이 또 오래된 논쟁이 ‘키보드로 우승할 수 있는가?’ 이런 얘기도 있는데, 다른 기기들은 손에 잘 맞지 않으셨나보군요. DRX 무릎: 네. 일종의 세대 차이가 있지 않나 싶어요. 저는 오락실 세대라서 이게(조이스틱) 너무 익숙하고, 지금 사람들은 이게 너무 불편하다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나라마다 다른 점도 있는데요. 해외 같은 경우는 패드를 많이 쓰더라고요. 뭐.. 그 이유는 사실 되게 단순한데, 스틱이 비싸서. 플스(플레이스테이션)를 사면 패드가 딸려오고, 그걸로 하다 보니까. 그런 이유가 크더라고요. 그리고 해외에 오락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있긴 해도 차를 타고 엄청 멀리 가야 한다거나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편집장: 한편으로 오래된 격투 게이머분들은 그런 차이도 되게 민감하시잖아요. 예를 들어 무각이냐 사각이냐 같은. DRX 무릎: 네. 그것도 많이 다르죠. 되게 옛날에는 팔각도 있었고요. 사각 같은 경우는 거의 일본 오락실에서 많이 쓰는 건데요. 우리나라는 애초에 오락실에 대중적으로는 팔각이나 무각 레버가 달려 있으니까 시작을 이걸로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게(무각이) 너무 익숙하고, 사각은 잡는 레버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너무 짧아서 불편하더라고요. 편집장: 잡는 방식도 서로 다르지 않나요? DRX 무릎: 네. 정말 각자가 편한 대로 잡더라고요. 누구는 이렇게 잡고, 누구는 이렇게 잡고(아래 사진 참조). 뭔가 정답이 있다기보다는 자기 손에 맞는 대로 각자가 다른 것 같아요. * 무릎이 묘사했던 여러 조이스틱 파지법. 실제로 오락실에 가면 여러 방식의 파지법을 볼 수 있다. 편집장: 어떻게 스틱을 잡든, 사실 게임에서는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기판마다 차이점이 있나요? DRX 무릎: 음.. 공식 기판이 아닌 비인가 기판을 쓰는 스틱들이 있거든요. 일단 그런 것을 해보면 확실히 입력이 느린 느낌이 납니다. 예를 들어서 게임 시작하자마자 상대랑 같이 버튼을 눌러도 약간 미세한 차이가 있어요. 편집장: 혹시 그러면 대회 같은 곳에서도 비인가 기판이 나오는 경우도 있나요? DRX 무릎: 되게 예전에는 그것들이 나온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플레이스테이션 4부터는 비인가 스틱을 오래 쓸 수가 없어요. 8분인가 쓰면 갑자기 연결이 끊겨 버려서 게임이 안 되죠. 편집장: 정말 모르는 세계가 많군요. 저는 가끔 격투 게임의 세계가 무협지 같다는 생각을 해요. 파키스탄 가셨던 이야기를 보면 이것은 무협지에 나오는 이야기거든요. (웃음) 은둔고수를 찾아나서는. 그런 맥락에서 스틱을 잡는 행위를 일종의 수련 단계로 설명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까요? 그러니까 스틱에 익숙해지는 단계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의 단계라고 할까요? 스틱을 오래 잡고 있으면 점점 깨닫는 바가 있다거나 그런 점이 있을까요? DRX 무릎: 어려운 커맨드나 레버로 할 수 있는 단축 커맨드 같은 것들을 더 알게 되고 익숙해지는 지점은 있는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러면 격투 게임을 함에 있어서 초보가 겪는 몇 가지 장벽들에 대해서 대표적인 것들을 이야기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DRX 무릎: 보통은 대각선을 제일 어려워합니다. 무각 레버는 사각처럼 확실하게 들어가는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대각을 입력하라고 했을 때, ‘대각이 도대체 어디예요?’ 이런 얘기도 되게 많고요. 그리고 횡신을 할 때 (레버를) 위로 당기라고 해서 힘을 주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면 점프를 하거든요. 횡신은 힘을 조절해서 약간 레버를 튕기듯이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많이들 어려워하시죠. 편집장: 그러면 저 같은 초보가 모여서, 횡을 배우겠다고 하면, 어떻게 가르치실 것 같으세요? 이게 말로 설명이 될까요? DRX 무릎: 그렇죠. 어렵죠. 저라면 일단 횡신 같은 경우에는 ‘레버를 위로 올린 다음에 손을 떼라’ 약간 이런 식으로 설명할 것 같긴 해요. 그래야 힘이 빠지고 튕기면서 횡이 나가거든요. 편집장: 이런 맥락에서 무림의 영역이 떠오른 것인데요. 머리나 말로 인지하는 것과 다르게 몸이 익혀야 하는 지점이 있잖아요. 그러면 얼마나 게임을 해야 몸에 익을 것인가라는 궁금증이 있는데, 무릎 선수는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기술을 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그것까지는 보통 얼마나 걸릴까요? DRX 무릎: 요즘 분들은 그래도 한 3개월 이상 하면 대부분 사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한 달 정도면 본인도 어느 정도 기술을 다 사용할 수는 있지만, 조금 미숙하다는 걸 알고 있는 정도고. 한 3개월 하시면 (상대방의) 심리를 모른다뿐이지 기술 같은 거는 다 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편집장: 사실 격투 게임이 피지컬로만 다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막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요즘도 논란이 되고, 전에 영상에서도 말씀하신 것을 본 적이 있는데요. 그 지점에서 상대방 스킬을 보고 판단하는 심리적인 시간과, 그 판단 이후에 반응을 하는 손과 뇌의 시간 중에서는 어느 쪽이 더 무게가 있을까요? DRX 무릎: 제가 생각할 때는, 동체 시력보다는 머릿속에 입력된 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든요. 아무리 반응 속도가 빠른 스포츠 선수를 데려다 놓고 철권을 시켜도 기술을 모르기 때문에 반응할 수 없을 거예요. 단순히 날아오는 공 같은 것이 아니고, 머리에 ‘이 기술은 하단이다’라는 정보가 있어야 모션을 보자마자 (레버를) 딱 당기는 거거든요. 근데 이것도 제가 봤을 때는 어느 정도 발동 프레임이 정해져 있어요. 사람이 보고 반응할 수 있는. 그 이하로 가면 사실 감으로 막는거죠. 적정 프레임이면 보고 입력된 걸로 하고 막을 수 있겠지만요. 편집장: 확실히 격투 게임에서는 경험을 통해서 경험치를 축적하고, 감으로 움직인다고 밖에 설명이 안 되는 영역도 존재하죠. 그런 지점에서 무릎 선수의 플레이가 감탄이 나오는 것은 한 두세 번 상대해보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으시던데요. DRX 무릎: 왜냐하면 게임을 하다 보면 본인만의 스타일, 자주 쓰는 타이밍이라든가 공격 패턴이 있어요. 그거를 감추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아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편집장: 프로 격투 게이머로서 일정한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데는 사실 경험이 피지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DRX 무릎: 네. 그게 제일 중요하죠.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평소에는 잘하다가 대회만 가면 긴장해서 제 실력을 거의 내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편집장: 또 캐릭터가 또 한두 개가 아닌데 그 패턴을 다 파악하고 그게 머릿속에 들어 있으면서 재깍재깍 나와줘야 하는 거니까. 그러면 초보 게이머들은 그런 변명을 합니다. “내가 피지컬이 너무 안 돼서 못 하는 거다”라고. DRX 무릎: 거의 그렇게 많이들 생각하시죠. 사실 그 지점은 반복 연습으로 뚫어야 하는 건데... 사실 즐기면서 게임을 하시는 분들은 반응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공격 패턴 같은 걸로 상대를 이기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죠. 편집장: 확실히 그런 지점에서 경험이나 감각이 중요하겠죠. 다시 좀 스틱 얘기로 돌아가면, 무릎 선수는 지금까지 여러 컨트롤러를 쓰셨을 거잖아요. 그러면 여러 스틱을 만지셨을 건데, 그중에 나한테 정말 잘 맞았던 뭔가가 있었다는 것이 있을까요? DRX 무릎: 제 기준에서는 잘 맞는 거는 어느 정도 레버랑 버튼의 배열이 약간 좀 공간이 있는 거라고 해야 할까요? 손이랑 버튼 위치가 좀 잘 맞는 스틱들이 있었어요. 이런 것들은 되게 게임하기 편했거든요. 그리고 레버의 탄성 같은 게 너무 강하면 게임을 하다 쉽게 피로가 쌓여요. 그래서 어느 정도 적정한 탄성의 스틱이 굉장히 잘 맞았죠. 편집장: 내 손에 맞는 편안함 같은 것들이 실제 퍼포먼스에도 영향이 크게 가나요? DRX 무릎: 아무래도 연습도 해야 하고 대회를 나갔을 때도 굉장히 긴 시간 동안 게임을 하게 되는데, 조작이 빠르고 많은 동작들을 넣어야 되다 보니까 손목이 굉장히 피로하거든요. 잘 맞는 레버로 게임을 하면 장시간 게임에도 멀쩡해요. 그런 점에서 차이가 있고, 조작이 굉장히 많이 들어나는 캐릭터를 하게 되면 하기 어려운 게 있어요. 편집장: 그러면 여러 컨트롤을 만지면서 이것은 그냥 기계가 아니라, 내 신체의 일부같이 여겨지는 그런 순간도 있으셨나요? DRX 무릎: 정말 잘 맞는 레버 같은 거를 만지게 되면, 기술이 정말 잘 나가요. 그런 것들 만나면 되게 좋았고. 지금 시대는 사실 본인한테 맞는 스틱을 구해서 쓸 수 있지만, 옛날 오락실 같은 경우는 그냥 달려있는 걸 썼었잖아요. 그러면 예를 들어서 기계가 한 네 대 있다고 쳤을 때, ‘저기서 두 번째 기계가 제일 잘 맞다’ 그런 것들이 있었죠. 편집장: 그것도 사실 오락실 주인이 정비를 하실 텐데 튜닝에 따라서 조금 또 스타일이 바뀔 수도 있는 거겠네요. DRX 무릎: 예전에는 몰랐지만 지금 봤을 때는, 고무의 탄성을 조금만 바꿔도 입력하는 느낌이 다르고요. 안에 있는 헤드 사이즈라고 하는 게 있는데, 그게 0.01 바뀌는데 느낌이 다르고 그래요. 스위치를 바꿔도 느낌이 다르고. 그래서 좋은 레버, 좋은 고무, 자기한테 맞는 헤드 사이즈 이런 것들을 찾아서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저는 무릎 레버라는 것을 만들어서 제 손에 맞는 것을 만들었죠. 편집장: 그거는 확실히 만족감이 드세요? 정말 딱 내가 생각하는 기술이 그대로 들어간다는 느낌이? DRX 무릎: 네. 세부적인 부품도 바꿔보면서 더 좋은 쪽으로 맞춰가다보니까, 저는 그거 말고 다른 걸로 하면 이제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어요. 편집장: 그러면 파키스탄 같이 해외 대회에서도 본인 스틱을 쓰세요? DRX 무릎: 네. 제 거를 가져가죠. 요즘은 대회를 다 콘솔로 하니까, 그런 것들이 장점이에요. 옛날에 오락실에서 했을 때는 확실히 좀 어렵죠. 예를 들어서 저는 이 오락실을 전혀 안 다녔는데, 대회한다고 해서 왔어요. 그런데 여기 다니는 사람들은 이미 익숙하니까 (스틱의 특성을) 잘 알잖아요. 제 입장에서는 ‘여기는 입력이 너무 안 되는데?’ 약간 이런 게 있어서 그런 불편함들이 있었죠. 편집장: 격투 게임 게시판 같은 곳을 가보면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아’ 이런 말들이 있는데. DRX 무릎: 요즘에는 옛날이 아닐까 싶어요. 확실히 ‘장비빨’이라는 것은 무시 못 하겠더라고요. 편집장: 장비빨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국제 대회 끝나고 영상을 보면 그렇게 잘 맞도록 주문 제작하신 조이스틱을 바닥에 내려놓거나 하시는 경우들도 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고급 물건이라고 볼 수 있는 조이스틱이 무릎선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DRX 무릎: 어렸을 때부터 이미 스틱을 만지다 보니까 너무 익숙한 개념이고요. 이렇게 편하게 다룬다고 해서 험하게 다룬다기보다는, 학교 다닐 때 매는 책가방 같은 느낌이에요. 언제든지 챙길 수 있고, 언제든지 사용해야 하는 그런 느낌이라서. 저한테 스틱은 그냥 또 다른 손인 거죠. 일종의 혼연일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편집장: 대회에서는 눈으로 보는 것도 있고, 내가 생각하고 반응하는 영역도 결국은 레이턴시가 걸려 나가는 건데요. 네트워크 레이턴시 같은 것들도 많은 영향을 주잖아요. 아예 대놓고 반응 속도에 문제가 있으면 차라리 경기에 문제 있다고 하고 재경기를 하면 되는데, 이게 애매하게 걸리는 것들도 있잖아요. DRX 무릎: 5핑이 제일 빠른 건데, 갑자기 막 4핑이 뜨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반응을 해도 안 되거든요. 이미 게임에서 입력이 늦게 들어가는 것이다 보니까, 그럴 때는 좀 그렇죠. 편집장: 그럴 때는 심판을 부르거나 하시나요? DRX 무릎: 보통은 어쩔 수 없다고 하고 그런 식으로 넘어갈 때가 많죠. 온라인은 어쩔 수 없지 않나 하고.. 편집장: 그래서 격투 게임에 초청전이 많은 거군요. 그러면 요새 이야기가 많은 가상 공간에서 격투 게임을 한다고 하면 그 안에서 뭔가를 할 수 있을까요? DRX 무릎: 아직 기술적으로 그게 어렵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만약 가상 공간에서 게임을 한다고 하면, 오락실에서 이제 건너편 기계에 있는 사람이랑 붙는 그런 느낌일 것 같은데, 그런 점은 재미있겠죠. 왜냐하면 사실 온라인에서 하는 게임은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옛날에 오락실을 가면 누군지는 모르지만 일단 건너편에 사람이 있고, 옆에 기계 보면 여기도 열심히 하고 있고 이런 느낌이라서. 제가 만약 게임을 안 하고 있어도 다른 화면을 보거나 잘하는 사람끼리 하는 것을 보고 재밌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냥 혼자 집에서 하다 보니, 설령 계급을 올렸다고 해도 옆에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그냥 자기 혼자만의 만족을 하고 끝나다 보니까, 아쉬운 그런 상태죠. 편집장: 그러면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는 건데요. 인터페이스를 없애고 사람이 자기 생각만으로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면, 어떨까요? 뇌파만으로 격투 게임을 컨트롤 할 수 있다면? DRX 무릎: 그러면 굉장히 더 피로할 것 같은데요. 그렇게 되면 머리로만 게임을 하는 건데 장시간 게임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편집장: 약간 그런 점도 있잖아요. 프로 게이머를 이루는 주요 요소를 세 가지로 말하자면, 기술이나 캐릭터에 대한 지식, 그리고 이 지식을 활용해서 다음 패턴이 뭐가 나올지 파악하는 심리, 그리고 이것들을 내 퍼포먼스로 뽑아내는 육체적인 능력. 이렇게 지식, 심리, 피지컬 중에 마지막 것이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랬을 때 게이머는 어떻게 바뀔까요? DRX 무릎: 손맛이라고 해야 될까요. 손맛이 일단 없어질 것 같고요. 제 영상 시청자분들 중에서는 손캠을 올려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으시거든요. 프로게이머 손놀림에는 리듬감도 있고 일반적인 손놀림이랑은 다르고 하니까. 그런 퍼포먼스 같은 것이 없어질 것 같네요. 편집장: 이런 질문은 다른 곳에서도 받아보셨겠지만, 오랜 기간 게임을 해오셨잖아요. 그런 지점에서 내 손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으세요? DRX 무릎: 좀 있어요. 옛날에는 쉽게 썼던 거(기술)를 지금은 좀 연습이 필요한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보기만 하면 뚝딱하고 30분 만에 하던 거를 지금은 1시간, 1시간 반 이렇게 연습을 해야 할 때가 있죠. 편집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정상의 위치를 유지하고 계신다는 건, 한편으론 피지컬적 요소가 떨어지는 만큼 아까 말씀하셨던 심리나 지식의 영역으로 커버하시는 지점도 있을까요? DRX 무릎: 네. 피지컬이 조금은 떨어지더라도 그걸 뭔가 다른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으니까요. 피지컬이 정말 좋은 선수라도 엄청 노련미가 있는 사람 만나서 지는 걸 보면 절대적인 것은 없구나 싶기도 하고요. 무조건 어리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못 이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옛날보다 게임은 오래 못하지만, 상대를 붙어보면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그런 게 생기는 것 같아요. 편집장: 그런데 그건 또 한편으로, 이 기사가 올라가면 ‘그건 무릎이니까 가능한 영역이다’고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 오랫동안 활동해오시면서 무릎 선수가 겪은 상대들 중에서 기량이 꺾인다든가, 혹은 에이징 커브가 왔다는 점을 느끼신 적이 있나요? 있으면 대충 어느 정도의 나이대에서 그런 지점이 온다고 느끼시나요? DRX 무릎: 예전에 이름을 날렸던 선수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확 내려가고 또 뭔가 전성기가 끝났다는 사람들을 많이들 봤죠. 제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선수들을 봤는데, 대부분 한 30대가 되면 좀 확 내려가긴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철권이 롤처럼 메타가 확 바뀌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게임을 할 때 오랫동안 플레이한 스타일을 잘 바꾸지를 못해요. 다른 게임처럼 전략 전술을 맞춰서 챔피언을 고르는 게임이 아니다 보니까, 캐릭터가 많지만 ‘나한테 맞는 캐릭터는 이거다’고 정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자신의 패턴이나 습관 같은 것들을 바꾸기가 어려운데, 새롭게 등장하는 사람들은 또 새로운 것들을 들고 나오잖아요. 그래서 (어떤 캐릭터나 플레이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끝나면 (그 선수가) 그냥 확 내려가는 그런 게 있어요. 편집장: 그러면 철권에서 에이징 커브라는 개념은 육체적인 반응 속도나 기량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착화되는 경향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사실 무릎 선수의 경우에는 거의 모든 캐릭터를 주챔급으로 하시는데, 게임을 분석하시고, 소위 말하는 ‘뇌지컬’로서의 장점들이 지금의 폼을 유지하시는 비결이실 것 같네요. DRX 무릎: 네. 에이징 커브를 겪는 많은 선수들이 고착화된 점을 잘 못 바꾼다고 해야 될 것 같아요. 한때 잘했어도 ‘이 캐릭터 플레이가 너무 어려운데 그걸 억지로 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 스타일에 맞는 캐릭터를 할래’라고 생각하는 선수들은 어느 날 오랜만에 성적을 내는 경우는 있어도 자주는 못 그런 것 같아요. 편집장: 그거는 확실히 달성하기는 쉽지 않겠네요.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니까. DRX 무릎: 그렇죠. 왜냐하면 여러 캐릭터를 어느 정도로 하는 사람들은 이미 너무 많거든요. 확실히 한 캐릭터만 메인으로 하는 사람들은 플레이가 약간 다른 느낌이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다른 캐릭터를 하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이랑 별 차이가 없는 정도의 수준까지밖에 안 돼요. 그래서 여러 캐릭터를 하기보다 한 캐릭터의 장인 느낌으로 가고, 변화를 거부하는 그런 게 있더라고요. 편집장: 격투 게임에 대해 사람들은 되게 쉽게 ‘피지컬 대결이다’고만 생각하지만, 무릎 선수가 그게 아니다는 걸 좀 보여주고 계시는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은, ‘표현한다’고 했을 때, 말을 언어를 써서 표현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스틱으로 내 캐릭터를 통해 일종의 퍼포먼스로 내는 것 역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건데, 스틱으로 상대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느낌이 드신 적이 있으세요? DRX 무릎: 뭔가 말을 안 하고, 게임만 해도 멋있게 하려는 그런 게 있으면 상대도 알아요. 저도 알고. ‘얘 지금 고난이도 콤보를 보여주려고 하는구나. 멋있게 하려고 하네’ 그러면 저도 그렇게 하려고 하고. 그런 거를 느낄 때가 있어요. 말을 안해도 붙으면 딱 알아요. 편집장: 저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언어를 넘어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고, 상대의 기량뿐만 아니라 태도까지도 알 수 있는 그런 영역이 있군요. 조금은 결이 다른 질문인데요. 나중에 ‘무릎 기념관’이 생긴다고 했을 때, 전시관에는 어떤 스틱이 올라갈까요? DRX 무릎: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긴 한데요. (웃음) 그러면 아마 맨 처음에 썼던 거를 전시하지 않을까요? 지금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맨 처음에 쓰던, ‘이걸로 시작했습니다’고 올릴 것 같네요. 편집장: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제 곧 큰 변화가 한 번 오지 않습니까? 이제 〈철권 8〉이 나올 건데, 초심자들에게 첫 캐릭터를 추천해주신다면요? DRX 무릎: 트레일러만 봤을 때는 사실 저는 폴이 정말 좋아요. 많은 사람들한테 캐릭터 추천해드릴 때 폴을 많이 추천하거든요. 철권의 대표 캐릭터이기도 하고 개발사도 폴을 많이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중간 성능 이상은 내거든요. 그런 캐릭터를 하는 것이 좋지 않나 싶습니다. * 무릎이 추천하는 철권의 대표 캐릭터 폴. 이전 시리즈보다 나이가 들고, 해맑아졌다. 편집장: 〈철권 8〉이 되면, 초보자 도장 같은 것도 활성화해 보실 생각도 있으신가요? DRX 무릎: 〈철권 8〉이 나오면 많은 분들이 도전하고 시작을 하실 텐데,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기획하고 있습니다. 편집장: 저도 이 기회에 많이 배우겠습니다. 컨디션 잘 챙기시고요.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문화연구자) 서도원 재미있는 삶을 살고자 문화를 공부합니다. 게임, 종교, 영화 등 폭넓은 문화 영역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 [Editor's view] 선언을 넘어선, 실천으로서의 게임문화
매우 급박하게 변하는 것 같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도도한 맥락을 놓치지 않고자 하는 것이 〈게임 제너레이션〉의 목표다. 첫 호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꾸준히 그리고 우직하게 그 길로 가고자 한다. 동시대의 교양으로서, 혹은 지금 시대의 가장 뜨거운 놀이로서 게임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 이어질 의 모든 이야기일 것이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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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DRX 무릎이 말하는 게이머와 조이스틱의 관계](https://static.wixstatic.com/media/d03518_9c4f835a6e694073a4b0ff1c003d1b33~mv2.jpg/v1/fit/w_176,h_124,q_80,usm_0.66_1.00_0.01,blur_3,enc_auto/d03518_9c4f835a6e694073a4b0ff1c003d1b33~mv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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