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릴 수 있는가? - 13기병방위권, 호라이즌, 우크라이나
06
GG Vol.
22. 6. 10.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매력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세계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는 데에 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말 그대로 세상이 멸망한 상황을 전제한다. 게임의 주인공은 망한 세상 안에서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이러한 노력은 유저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의 결실을 맺는다. 즉, 우리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장르를 향유하는 이유는 세상이 망하더라도 인류는 어떻게든 자기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서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세상이 망한다’라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어떤 대답이든 게임 밖 현실에 대한 불만족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세상을 ‘리셋’할 수 있다면 당장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대가를 치르는 원인이 된 어떤 실수 혹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믿음은 종종 정치적 구호로 표현된다. 가령 도널드 트럼프의 “Make America Great Again”은 무언가 잘못되기 시작하기 직전의 어떤 시점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즉 ‘정상화’의 욕망에 호응하는 회고적 선거 구호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감각은 전쟁에도 동원된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반복해서 호출하는 세계관도 결국은 이것이다. 푸틴의 전쟁 논리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일 때만 ‘정상적 상태’일 수 있다. 따라서 푸틴에게 있어서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새롭게 러시아의 영토로 병합하는 게 아니라 뭔가 잘못된 현재를 제대로 된 과거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게 푸틴이 지금의 사태를 ‘전쟁’이라 표현하지 않고 ‘특수작전’이라고만 고집스럽게 말하는 것의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
반면 우크라이나인들의 인식은 이와는 정반대인데, 그들에게는 소련으로부터 지배를 당한 과거가 비정상적 상태인 현재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해법은 소련의 지배를 받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9세기의 ‘키이우 루시’까지 언급하는 이유는 정통성에 있어 우크라이나의 우위를 근본적으로 확립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의 시계를 9세기로 돌릴 순 없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정치는 러시아가 아닌 유럽의 일부가 되는 게 가능했던 시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타협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이 오랜 기간 현안으로 다뤄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일반론적으로 말해서,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에 성공한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예를 들어 〈13기병 방위권〉의 결말에 대해 생각해보자. 〈13기병 방위권〉은 이상적 세계를 다시 만들기 위한 재시작의 시점을 언제로 해야 하느냐 라는 주제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물론 이것이 게임이 다루는 주제의 전부는 아니다). 일본인들이 만든 게임이다 보니 ‘역사’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그 점을 감안해서 보자면 게임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과거 시점이 1945년과 1985년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게임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때, 결국 일본인들이 ‘되돌아갈 수 있는’ 선택지는 패전으로 치달은 군국주의이거나 안보투쟁 이후 거품으로 귀결된 80년대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의 주된 배경은 1985년의 세계이다. 1945년의 세계는 비록 그것이 외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멸망을 피하지 못했다.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게임의 엔딩에서 자신들이 그 일부를 이루는 1985년의 세계를 새로운 미래에 다시 구현하려고 한다. 결국 〈13기병 방위권〉의 결말이 제시하는 ‘재시작’의 시점은 어찌됐건 1980년대로 봐야 하는 것이다.
* 〈13기병 방위권〉은 일본 현대사의 여러 시점을 오가며 주인공들의 교복과 주변 환경 등을 통해 이를 드러내고자 한다. 각각의 시점은 실제 일본 현대사에서의 주요 분기점으로 나타난다.
오늘날의 일본 주류정치는 현실의 불만에 대한 돌파구를 군국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에서 찾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만든 일본 정부는 이제 ‘적 기지 공격 능력’을 거론하며 패권을 확장하려고 한다. 일본의 우익세력이 실제 전쟁을 일으킬 의지를 갖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이것은 어찌됐건 ‘전쟁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 어떤 행보로 평가하는 게 불가피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쟁의 가능성’을 실제로 뒷받침하는 알리바이로 기능한다. 일본 뿐만 아니라 독일의 재무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런 현실까지 고려하면 〈13기병 방위권〉의 메시지는 패전을 겪고 평화주의를 수동적으로 채택하는 결말을 굳이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것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은 현실에선 1945년이 있었기 때문에 1985년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패전이 있었기 때문에 요시다 내각의 평화주의가 가능했던 거고, 요시다 독트린이 있었기 때문에 그 반발로서 기시 내각이 1960년 신미일안보조약을 추진한 것이며, 그게 다시 1970년까지의 안보투쟁 국면과 그 이후 정경유착으로 기억되는 경제 우선의 시스템으로 귀결됐던 거다. 1985년은 그러한 이유로 조성된 호황기가 플라자 합의 등 대외 변수가 작용한 끝에 꺾이기 시작한 해다. 이 시점에 다시 시작한들, 불황과 이어지는 우익의 재부상을 막는 게 가능할까?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13기병 방위권〉의 결말은 ‘쇼와 향수’로의 도피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기만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회상편’과는 달리 ‘붕괴편’에선 기계들과의 싸움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은 작품 자신에 대한 우화처럼 느껴진다.
어느 시점에서 다시 시작해도 실패를 되풀이하는 게 불가피하다면 아예 태초로 돌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호라이즌〉 시리즈는 이런 가정에 대한 이야기다. 다만 〈호라이즌〉이 상정한 다시 되돌아 온 ‘태초’는 인위적이다. 멸망 후 도래한 암흑 속에서 신이 “빛이 있으라”고 말하는 것은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새로운 시작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되돌아간다’는 것을 전제하려면 ‘재시작’은 반드시 인간이 설정한 어떤 조건들의 반영이어야 한다. 〈호라이즌〉에서는 비록 100%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이아’ 시스템이 이 역할을 전담한다. 그러나 바로 이 조건 때문에 ‘재시작’은 그저 ‘되돌아가는 것’이 될 수 없었다. 〈호라이즌 제로던〉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가이아’ 시스템의 어떤 오류가 또 한번의 인류 멸망을 촉발할 위기를 일으킨 것을 주인공 에일로이가 막아내는 얘기다. 만일 〈호라이즌〉 시리즈의 얘기가 이렇게 마무리가 됐다면 우리는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태에 현명하게 대응한 인류가 이전 세계의 지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재시작’의 시대를 순조롭게 이어가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결말은 이러한 기대를 순진한 것으로 만들고야 만다. 새로운 인류를 다시 멸망시킬 뻔한 ’가이아’의 오류는 돌발사태였던 게 아니라 이전 세계로부터의 연속성을 가진 사건의 결과였던 것이다. 심지어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의 결말은 이전 세계의 존재 때문에 멸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인류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즉, 이전 세계의 맥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모든 것을 새롭게 ‘재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되돌아가고자 했다’라는 사실까지 되돌릴 수 없는 이상 온전히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유일하게 남는 선택지는 설령 미래가 절망뿐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발을 딛고 선 바로 그 지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모색을 계속하는 것이다.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 엔딩의 에일로이와 동료들이 마주한 길도 그것이다. 물론 지구를 향해 달려오는 절대악에 직면해있는 이들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은 ‘게임’이기 때문에, 〈호라이즌〉 시리즈를 이것으로 끝내기로 한 게 아니라면, 에일로이와 동료들은 그게 뭐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물론 게임은 현실과 다르다. 게임을 통해 얻은 이러한 통찰을 현실에 적용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회고적 평가를 전제하는 슬로건을 거부하는 것이 시작이다. 과거의 정상적 상태를 회복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원칙과 대안을 논하는 일이 필요하다. 과거 러시아가 지배한 영토가 어디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되는 이유는 애초에 없다. 러시아의 침공이 부당한 이유는 먼 옛날부터 존재해 온 독립적 국가로서 우크라이나의 역사나 민족의 문제과 큰 관계없다.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전쟁은 오늘 이 순간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이미 답을 다들 알고 있는데, 안 되는 일을 안 된다고 말하는 걸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이 별로 없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