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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스네이크는 들개가 되었는가

    1987년 코지마 히데오(小島秀夫, Hideo Kojima) 감독이 제작한 〈메탈 기어(Metal Gear)〉는 여러 가지 의미로 특이한 게임이었다. 한 명의 캐릭터로 적진을 돌파한다는 점은 같은 제작사의 〈콘트라(Contra)〉 시리즈, 그 외 많은 게임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스테이지를 헤쳐나가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사뭇 새로운 감각이었다. < Back 왜 스네이크는 들개가 되었는가 03 GG Vol. 21. 12. 10. 1987년 코지마 히데오(小島秀夫, Hideo Kojima) 감독이 제작한 〈메탈 기어(Metal Gear)〉는 여러 가지 의미로 특이한 게임이었다. 한 명의 캐릭터로 적진을 돌파한다는 점은 같은 제작사의 〈콘트라(Contra)〉 시리즈, 그 외 많은 게임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스테이지를 헤쳐나가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사뭇 새로운 감각이었다. 코지마 히데오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게이머라면, 그가 작품에서 시도하고 있는 여러 연출이 영화적이라는 사실과 그 이유도 간단하게나마 알고 있을 것이다. 코지마 감독은 어린 시절 온 가족이 모여 매주 1편씩 영화를 감상하며 성장했고, 본래 영화감독이 되려고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게임 제작자의 삶을 살게 되었고, 그가 전개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여러 문제 의식은 그가 개발한 게임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재미있게도 시리즈의 첫 작품인 〈메탈 기어〉는 영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 탄생했다. 1985년 일본에서 [람보 2]가 흥행하자, 코나미(Konami) 경영진은 개발팀에게 MSX에서 실행할 수 있는 전쟁 소재 게임 제작을 지시한다. 베트남 전쟁으로 고통받은 개인의 아픔을 그려냈던 전작 [퍼스트 블러드(1982, ‘람보’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와 달리, [람보 2]는 다른 전개를 선보인다. 지휘관 사무엘 트라우트먼 대령의 설득으로 람보가 단신으로 적진을 돌파하는 모습을 선보인 것이다. 적진을 종횡무진하며 선보인 총격전과 액션은 [람보 2]의 흥행요소로 작용하여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코나미는 아마도 이런 흥행요소에 주목했던 것 같지만, 코나미가 원하는 화려한 효과를 구현하기엔 당시 MSX의 컴퓨팅 파워가 부족했다. 코지마 히데오 이하 개발팀은 역발상으로 총탄과 적병이 적게 등장해도 되는 방향으로 게임을 구상하기 시작했으며, 그 해결책으로 잠입을 게임의 핵심 요소로 도입하였다. 그렇게 〈메탈 기어〉는 원안이 되었던 [람보 2]의 요소 - 단독 침투한 요원과 무전을 통한 지휘관의 작전 지시 – 에 잠입이 더해져 탄생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부분은 기술적 한계로 인해 의도치 않게 게임 스테이지, 즉 공간에 대한 색다른 감각이 발생하였고 그것이 재미의 영역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다. 〈메탈 기어〉 의 배경은 용병 집단이 세운 가상 국가, ‘아우터 헤븐(Outer Heaven)’인데, 주인공 솔리드 스네이크(Solid Snake)는 선임 대원 ‘그레이 폭스’가 남긴 정체불명의 무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아우터 헤븐으로 잠입한다. 〈메탈 기어〉의 공간 경험은 일종의 ‘방’과 같은 감각을 준다. 아우터 헤븐이라는 거대한 배경을 구성하는 각각의 공간은 지형지물, 적병의 배치, 아이템 등의 차이를 두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연결된 방을 따라가다 보면 목표 지점에 도달하게 되고 거기서 주인공은 스토리의 분기점이 되는 이벤트를 맞닥뜨린다. 이런 아우터 헤븐의 공간 감각은 17,000여개의 정육면체 방으로 구성된 거대한 시설을 탈출하려 헤매는 영화 〈큐브(Cube, 1997)〉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컴퓨팅 파워의 한계 때문에 게임의 내용과 공간 감각은 각각 제한된 환경 아래에서 최선의 방향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적과의 교전을 최소화해야하는 잠입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고 여기에 거대한 스테이지를 세분화하여 큐브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인식하도록 요구하며 게임이 설계된 것이다. 이런 성격은 후속작으로 발전하면서 서서히 강화된다. 컴퓨팅 파워가 차츰 증가하면서 교전 시의 효과, 배경 등을 묘사하는 그래픽 효과는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게임의 본질은 잠입에 있었다. 항상 긴장한 상태로 최적의 잠입을 수행하기 위해선 적의 주의를 돌리고, 마취총이나 격투전으로 경비병을 무력화해야 하며, 골판지 상자 같은 사물을 이용한 은/엄폐를 통해 플레이어의 존재감을 숨겨야 했다. 이 때의 게이머는 철저히 스네이크에게 이입하여, 그야말로 ‘뱀’과 같이 최대한 엎드린 채 적의 시선을 피해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스네이크는 후방의 지휘관/조력자와는 최소한의 연결만을 유지한 채 최전선에서 단독으로 움직인다. 항상 작품의 도입부에는 왜 스네이크가 홀로 움직여야만 하는지 나름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설명이 등장한다. 〈메탈 기어 솔리드(Metal Gear Solid, 1998)〉는 폭스하운드(Foxhound) 부대를 제대하고 은거하던 솔리드 스네이크에게 옛 상사인 로이 캠벨 대령이 찾아오며 시작된다. 캠벨 대령은 스네이크가 복무했던 폭스하운드 부대가 반란을 일으켜 알래스카 쉐도우 모세스 기지를 무단 점거하고 요인 2명을 구속, 메탈 기어 렉스(REX)를 탈취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이들을 제압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스네이크는 거절하지만, 거듭된 대령의 설득 끝에 결국 홀로 적진으로 숨어들어간다. 〈메탈 기어 솔리드 2 선즈 오브 리버티(MGS 2 Sons of Liberty, 2001)〉에서 스네이크는 완전히 군을 떠나 반(反) 메탈 기어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 필란스로피(Philanthropy)의 민간인 활동가로 등장한다. 스네이크의 동료 ‘오타콘(본명 할 에머리히)’은 미 해병대가 비밀리에 신형 메탈 기어를 개발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신형 메탈 기어의 존재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스네이크가 해병대의 수송선에 직접 잠입하며 게임이 시작된다. 이후의 작품들 역시 스네이크가 왜 혼자 잠입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지 설명하며 시작하는데, 이런 초반부 서사는 사실상 시리즈의 전통으로 정착했다. 최전선에 배치된 실행요원이 후방의 지휘관/조언자와 무전으로 연결되어있는 MGS 시리즈의 작전 구조는 항상 유지되지만, 〈메탈 기어 솔리드 3 스네이크 이터(MGS 3 Snake Eater, 2004)〉를 계기로 스네이크의 소속감에 변화가 생긴다. 스네이크가 더이상 미국을 위해 움직이는 병사이자 요원이기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세력으로 거듭나고자 시도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이걸 파악하기 위해 MGS 시리즈를 작품 속 타임라인 순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메탈 기어 라이징 리벤전스(2013)는 MGS 시리즈의 타임라인에는 포함되지만 라이덴이 단독 주인공이고, 잠입보다는 액션 중심의 게임으로 본문의 맥락과 무관하여 위 표에서는 생략했다. 네이키드 스네이크와 솔리드 스네이크 모두 일정 시기는 미군 소속으로 지내다 민간인이 되는 패턴을 보인다. 특별히 집중해야 할 부분은 〈스네이크 이터〉를 계기로 변하는 네이키드 스네이크의 소속이다. 〈스네이크 이터〉 이후 미군을 떠난 네이키드 스네이크는 〈포터블 옵스〉에서 FOX부대에 납치당하는데,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반군을 조직할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이어지는 〈피스 워커〉에서 스네이크는 자신이 조직한 반군에 ‘국경 없는 군대(Militaires Sans Frontières)’ 라는 이름을 붙이고 미소 냉전의 양강 구도에 개입할 수 있는 제3세력을 자처한다. 특히 스네이크의 동료이자 MSF의 부사령관인 카즈히라 밀러는 MSF를 용병 비즈니스 집단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정도다. 용병은 의뢰를 받아 움직이지만, 계약이 끝나면 의뢰주와의 관계도 끝난다. 이들을 구속할 수 있는 공적인 권력은 사라졌으며, 이들 스스로가 기득권과 맞설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되면서 스네이크 이하 병사들은 목줄을 끊고 야생으로 돌아간 들개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공교롭게도 들개로 돌아간 스네이크가 부각되는 시점은, MGS 시리즈가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시점(현실의 2014년 경)인 의 시대(스토리 상 1975-1982년)와 겹치게 된다. 코지마 감독이 〈메탈 기어 솔리드 V〉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MGS의 세계에 오픈 월드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MGS V는 코지마 감독의 의도와 달리 각각 〈그라운드 제로즈(Ground Zeroes, 2014)〉와 〈더 팬텀 페인(The Phantom Pain, 2015)〉으로 분할 출시되었는데, 게이머들은 를 통해 코지마 식의 오픈 월드를 일부 맛보게 되었다. 는 MGS V 시리즈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게임으로, 1개의 메인 미션과 6개의 사이드 옵스(콘솔 별 특전 미션 포함)로 구성되었으나 배경은 모두 쿠바에 위치한 미 해병대 기지 ‘캠프 오메가(Camp Omega)’ 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이 기지로 잠입하기 위해 스네이크는 해안 절벽을 맨손으로 거슬러 오르거나, 기지와 외부를 오가는 수송 트럭의 짐칸에 숨어드는 방식을 택한다. 하나뿐인 배경을 총 7개의 미션에 재활용해버린 이 게임의 분량에 대한 불만은 차치하더라도, 확실히 의 시점부터 종래의 큐브적 감각의 파괴가 감지된다. 더 이상 큰 공간이 여러 개의 방 형태로 분절된 것이 아니라, 큰 공간을 그대로 인식하도록 만든 것이다. TPP는 GZ와 마찬가지로 오픈 월드를 유지하되, 파괴된 큐브적 감각을 다시 불러오려고 시도한다. TPP의 넓어진 전장은 플레이어에게 아프가니스탄과 아프리카 앙골라-자이르 국경지대를 오가게 만든다. 이 넓은 전장을 동분서주하게 하면서 큐브적 감각을 되살리려는 시도는 메인 미션을 실행할 때 나타나는 ‘핫 존(Hot Zone)’에서 발견할 수 있다. 메인 미션의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플레이어는 도보 또는 차량을 이용해 핫 존을 이탈하거나, 아군 헬기 피쿼드(Pequod)를 불러 기지로 돌아가면 되는데, 이 때 핫 존이라는 개념은 광활한 필드의 일부를 미션 영역으로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핫 존 경계는 큐브와 달리 구속력이 낮고, 이 경계를 넘으면 자연스레 작전구역 이탈로 인한 임무포기 또는 임무실패 상태로 이행된다. 컴퓨팅 파워의 발전이 불러온 게임 속 공간의 확장과 스네이크의 들개화(化)는 어쩌면 피하기 어려운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 과정은 화려한 전쟁 액션 게임을 개발하라고 했던 코나미의 지시와 MSX의 성능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고 했던 역발상과 마찬가지로, 의도치 않게 나타난 결과에 가까울 것이다. MSX 환경에서 출발한 MGS 시리즈는 첫 번째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의 등장으로 인해 극적인 컴퓨팅 파워 변화를 맞이했고, 3D 폴리곤 그래픽으로 보강된 게임 환경을 확보했다. 도트로 구현된 전장을 오가던 스네이크는 이제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전장을 누비게 되었고, 스네이크가 마주한 큐브적 공간은 차츰 확장되어갔다. 그러나 실내외를 막론하고 3차원으로 구성된 전장을 활보할 수 있는 컴퓨팅 파워의 등장은 차츰 큐브적 공간을 이탈하고 싶게 하는 욕구도 함께 불러왔다. 전장 환경 묘사가 세밀해질 수록 플레이어들은 정해진 경로 외의 환경으로 진출을 시도했고, 게임 제작사들이 여기에 응답하면서 차츰 오픈 월드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경쟁작들의 공간 인식이 차츰 발전하는 현실에 맞춰 MGS 시리즈 또한 종래의 큐브적 공간을 탈출해야만 했다. 시리즈의 확장은 동시에 솔리드 스네이크 한 명만으로는 서사를 확장하기 어려운 상황을 직면하게 했다. 게임 속의 1995년부터 2014년을 아우르는 솔리드 스네이크의 서사를 보강하기 위해 코지마 히데오는 1970년대 냉전기로 세계관 확장을 꾀한다. 냉전 속 MGS 시리즈의 서사를 이끌 주인공으로 과거의 영웅이자, 〈메탈 기어〉에서 솔리드를 지휘한 빅 보스(=네이키드 스네이크)를 소환하며 작품의 타임라인을 보강한다. 와 〈포터블 옵스〉, 〈피스 워커〉는 냉전 시대를 헤쳐나가는 네이키드 스네이크를 그려내며 전체 세계관의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결국 작품의 타임라인이 차츰 탈냉전의 시대, 즉 〈메탈 기어〉와 솔리드 스네이크의 시대로 다가가면서 냉전 구도를 탈피해야만 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큐브적 공간의 탈출과 냉전 서사의 탈피라는 두 가지 요구는 새로운 MGS 시리즈에 동시에 수용되어야 했다. 특히 로의 이행은 빅 보스를 중심으로 한 서사에서 두 가지 요구가 모두 극에 달하였으며, 가장 기술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전체 시리즈가 종료되어야 함을 뜻했다. 큐브적 공간의 탈피로 넓어진 공간을 인식하는 동시에 구속을 거부하고 독자세력화된 스네이크는 결국 제한된 공간을 밀착 돌파하는 뱀의 쾌감을 잃어버리고 목줄을 끊고 탈출한 들개로 변하는 것이다. MGS 시리즈가 가졌던 뱀의 은밀함은 경쟁작인 〈스플린터 셀(Tom Clancy’s Splinter Cell)〉 시리즈, 〈히트맨(Hitman)〉 시리즈〉 등으로 넘어가 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가 들개의 자유로움이라도 확보했는가? 안타깝게도 들개의 자유로움마저도 온전히 확보하지 못한 걸로 보인다. 들개의 자유로움을 잘 구현한 게임을 찾자면 다른 오픈 월드 장르 게임을 예시로 드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락스타 게임즈의 , 〈레드 데드 리뎀션 2(Red Dead Redemption 2)〉를 플레이할 때 21세기 미국의 도시와 18-19세기 서부 황야를 활보하며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이 느꼈을 법한 생동감과 자유로움을 체험하게 된다. MGS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에서 뱀의 은밀함, 들개의 자유로움 어느 하나라도 온전히 확보하지 못한 것이 시리즈 전체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결함이 되진 않는다. 5편에서 시도된 오픈 월드의 세계관은 코지마 히데오 특유의 영화적 스펙타클과는 잘 어우러졌고, 자연스러운 컷씬과 화면 전환 등의 효과로 플레이어가 게임의 그 순간에 확실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전체 스토리 라인에서 전반부에 해당하는 빅 보스의 시대를 마감하는 역할 또한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완결성을 확보하려고 한 노력 또한 여실히 드러난다. 냉전 시대 미국의 요원으로 소련의 핵병기를 성공적으로 저지한 네이키드 스네이크의 활약상은 결국 그를 바탕으로 한 복제인간 병사를 만들어내는 계획으로 발전한다. 3편 〈스네이크 이터〉에서 전체 MGS 스토리가 시작되고, 5편인 〈그라운드 제로즈〉와 〈더 팬텀 페인〉, 그리고 〈선즈 오브 리버티〉를 거쳐 〈건즈 오브 패트리어트〉에서 완결을 맞는다. 이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아버지(네이키드 스네이크)의 행로를 따라가는 아들(솔리드 스네이크)의 이야기가 된다. 냉전 속에서 국가의 도구에 불과했던 아버지는 도구로서의 운명을 거부하고 독자세력이 된다. 그러자 그의 아들이 다시 국가의 도구가 되어 아버지를 제압한다. 시리즈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아들은 여태까지의 삶이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 온 것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다. 메탈 기어의 위협, 같은 복제인간 형제인 리퀴드 스네이크와의 갈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뒤에야 솔리드 스네이크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고자 결의하며 뱀의 임무를 모두 내려놓는다. MGS 시리즈는 기술의 한계로 큐브적 공간 속에서 국가의 통제 하에 임무를 수행하던 사냥개이자 뱀이었던 ‘스네이크’가, 기술의 발전으로 큐브적 공간에서 방출되는 동시에 통제를 거부하고 들개가 되어 홀로 서는 이야기로도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스네이크의 변화와 함께 그 창조자였던 코지마 히데오 감독 역시 코나미와의 갈등 끝에 홀로 서게 되는 얄궃은 운명을 마주한다. 28년이라는 전통과 충성심 높은 팬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코나미에게 최신 MGS 시리즈란 투자비용 대비 수익이 낮은 상품이었고, 이 때문에 결국 코나미와 코지마 히데오는 결별의 수순을 밟는다. 이 과정에서 코나미는 의 2015 플레이스테이션 어워즈 수상, TGA 2015 시상식에 코지마 히데오가 출연하지 못하도록 저지하기까지 했다. 코나미와 코지마 히데오가 결별한 바로 다음 날, 코지마 히데오는 본인의 이름을 딴 독립 개발사 ‘코지마 프로덕션(Kojima Productions)’ 출범을 발표하는 동시에 소니(Sony)와의 파트너십 체결 사실도 공개한다. 팬의 입장에선 정말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또한 코지마 히데오 없는 MGS 시리즈를 상상할 수 없는 전 세계의 팬들 덕분에 2018년 출시된 코나미의 〈메탈 기어 서바이브(Metal Gear Survive)〉는 결국 흥행에 참패하고 MGS 시리즈의 이름과 명성, 게임 엔진만을 가져다 쓴 완전히 별개의 게임으로 남았다. 다행인 것은 〈서바이브〉 출시 이전에 이미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MGS의 이야기를 모두 완성해서 시리즈에 담아냈기 때문에, 코나미가 개입하여 주제의식을 흔들어버릴 가능성은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또한 〈데스 스트랜딩(Death Stranding, 2019)〉를 통해 새롭게 제기한 ‘연결’의 주제도 2021년 현재 COVID-19 팬데믹을 맞아 큰 공감을 사면서, 코지마 프로덕션은 MGS를 즐겨 온 팬들과 새롭게 그의 서사에 공감한 팬들과도 성공적인 연결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코나미와의 불쾌한 결별에도 불구하고 들개로 전락하지 않은 코지마 히데오는 〈메탈 기어 솔리드〉와 〈데스 스트랜딩〉 이후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우리에게 설렘을 선사할지 기대해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장민호 한양대학교 대학원 장르 테크놀로지와 서브컬처학과 박사과정. 미국소설 연구로 석사를 받았고 인간의 정체성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 관심사는 SF문학 속 비인간의 정체성 문제와 공존의 가능성 등이다.

  • [Editor's view] 무용한 것들의 세계 속 효율을 생각하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중 하나였던 김희성(변요한 분)이 자주 하던 말을 떠올립니다. 나는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그런 것들. 인간이 만드는 모든 것들 중에 유용한 것이 삶을 지탱하는 기초라면, 무용한 것들은 그 기초를 딛고 삶을 좀더 풍요롭게 만들곤 합니다. 먹고 살 만 해지면 자아 실현을 돌아본다는, 마르크스가 말했던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삶은 모두에게 요원하지만 누구나 꿈꾸는 것이겠지요. < Back [Editor's view] 무용한 것들의 세계 속 효율을 생각하기 18 GG Vol. 24. 6. 10.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중 하나였던 김희성(변요한 분)이 자주 하던 말을 떠올립니다. 나는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그런 것들. 인간이 만드는 모든 것들 중에 유용한 것이 삶을 지탱하는 기초라면, 무용한 것들은 그 기초를 딛고 삶을 좀더 풍요롭게 만들곤 합니다. 먹고 살 만 해지면 자아 실현을 돌아본다는, 마르크스가 말했던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삶은 모두에게 요원하지만 누구나 꿈꾸는 것이겠지요. 게임도 어찌보면 대단히 무용한 매체입니다. 우리가 이 매체를 붙잡고 있는 이유나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이지는 않습니다. 말 그대로 무용한, 그저 플레이하는 순간이 즐겁고 감동적이기에 우리는 게임을 플레이합니다. 오히려 게임이 뭔가에 유용하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이겠지요. 아이템 거래나 랜덤박스 같은 문제들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무용한 게임 안에서도 우리는 유용성의 방법론인 효율을 생각합니다. 최적의 파밍 루트, 특정 구간 돌파를 위해 최소한의 시간과 자원을 들이는 방법을 우리는 연구하고 훈련합니다. 하지만 이는 현실의 유용성에 연관된 효율과는 다른 의미겠지요. 무용한 것에서 효율을 찾게 되는 이 아이러니는 무엇일까요? GG 18호는 바로 그 질문을 다뤄보고자 했습니다. 같은 주제를 두고 필자들의 시선은 제각기의 방향으로 향합니다. 완전히 비효율적인 게임, 게임 안에서의 최적화, 현실의 물류와 게임의 물류... 그러나 찬찬히 이들 글을 읽다보면 우리는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효율의 추구가 무엇인지 얼핏하게나마 감을 잡게 됩니다. 저도 김희성만큼이나 무용한 것들을 사랑합니다. 제가 디지털게임을 이처럼 오래 붙잡고 있는 이유는 이 매체가 가진 특유의 무용함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무용함을 글과 말로 다루는 일은 나름 우리 삶과 사회에 작게나마 유용성으로 남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이번 호의 주제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무용하면서도 유용한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위한 제노바 첸의 작업들

    게임이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전시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듯, 게임을 만드는 것 역시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술 매체로서 게임,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 게임을 예술 매체로 취급하는 새로운 시각과 함께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들의 존재감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 Back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위한 제노바 첸의 작업들 12 GG Vol. 23. 6. 10. 게임이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전시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듯, 게임을 만드는 것 역시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술 매체로서 게임,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 게임을 예술 매체로 취급하는 새로운 시각과 함께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들의 존재감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종종 사례로 언급되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제노바 첸(Jenova Chen)’이다. 제노바 첸(이하 첸)은 게임 〈저니 Journey〉(2012)의 제작자이다. 그는 댓게임컴퍼니(thatgamecompany)라는 개발 스튜디오의 대표이자 디렉터이며, 게임 퍼블리셔 안나푸르나 인터랙티브(Annapurna Interactive)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첸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게임 개발자로서 ‘클라우드’, ‘플로우’, ‘플라워’, ‘저니’, ‘스카이’와 같은 간결한 이름을 가진 다수의 게임 제작에 참여해온 인물이다. 첸의 게임들은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저니는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에서 가장 빠르게 판매된 게임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여러 어워드에서 올해의 게임(GOTY, Game of the year) 수상이 셀 수 없이 많이 언급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게임들은 예술 영역에서도 환영을 받아왔다. 첸의 〈플로우 flOw〉(2007, PS3)는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 영구적으로 소장된 14개의 게임 중 하나로 채택됐다. 또 다른 게임 〈플라워 Flower〉(2007, PS3)는 워싱턴 스미소니언 미술관이 보존하고 있는 영구 소장품이 되었다. 지난달부터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에서도 플로우와 플라워가 전시장에 등장하여 플레이 가능하게 전시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첸의 게임은, 게임을 구매하거나 다운로드 받아 즐기는 플레이어와 전세계의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람객 모두로부터 플레이되고 있다. 이렇게 게임을 예술 매체로 취급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그는 퍼블리셔와 미술관, 소비자와 관람객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이목을 끌어 왔다. 그의 게임들은 어떤 특징으로 분석될 수 있으며, 작가로서의 첸은 어떤 생각을 토대로 게임을 만들어왔을지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은 제노바 첸이라는 한 명의 게임 제작자에 주목하면서 그의 작품과 생각을 들여다본다. * 제노바 첸 콘솔 게임이 금지된 나라에서 콘솔 게임의 나라로 중국 출신의 첸은 1세대 중국 컴퓨터 공학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왔다. 다른 가정보다 상대적으로 기술 친화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배경이 있었지만, 첸이 10대 시절의 중국은 콘솔 게임기 판매 금지령이 내려지고 있었다. 제한적인 게임 플랫폼의 상황에서 첸은 콘솔보다는 PC 게임을 주로 플레이하게 되었고, 특히 PC로 〈파이널 판타지 7 Final Fantasy 7〉(1997)를 플레이하길 좋아했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인 ‘제노바’는 훗날 자신의 영문 이름이 된 배경이기도 하다. 게임을 즐겨하다보니 게임 제작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면서 그는 컴퓨터 공학을 전공으로 하여 대학에 진학한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시각적으로 창작하는 일이 좋아서 공대 수업보다는 예술 대학 수업에 기웃거리는 일이 많았다고 전한다. 학사 졸업 후 그는 먼 훗날 픽사(Pixar)에서 일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USC)의 인터랙티브 디자인 석사 과정 하에 영화, 게임,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제작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게 된다. 학생으로서 참여한 두 번의 작업 〈클라우드 Cloud〉(2005, PC)는 대학원 재학 시절 첸의 초기 작업으로, 6명의 학교 사람들과 진행한 교내 게임 제작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클라우드는 꿈 많은 소년이 하늘을 유영하면서 구름을 뭉쳐 날씨를 변화시키는 짧은 스토리의 게임이다. 각각의 목적을 가진 4개의 스테이지에서 플레이어는 구름을 막대사탕 모양으로 디자인 하기도 하고, 작은 구름을 합쳐 더 큰 구름을 만들기도 하며, 비가 필요한 지역에는 흰구름과 먹구름과 충돌 및 상쇄시켜 비를 내리기도 한다. 첸은 클라우드를 제작할 당시 게임회사 EA로부터 장학금을 지원 받았다. EA는 USC와 협약을 체결하고 학생들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하면서 게임 개발을 장려했다. 이는 클라우드의 저작권이 첸이 아닌 USC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첸은 학교와 회사의 지원 덕분에 게임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동기를 얻게 되었고, 이 인연으로 클라우드 출시 이후에는 EA의 맥시스 스튜디오의 〈스포어 Spore〉(2008) 개발팀에서 잠시나마 일을 하기도 했다. * 〈클라우드〉 그렇게 제작된 클라우드는 온라인에 무료로 배포되어 홍보 없이도 약 50만 회 이상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며 인터넷 상에서 인기를 얻게 된다. 여러 게임들과 다르게 이 게임은 비폭력성을 띠며 긍정적 메시지를 추구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구름이 되어본다”는 설정이 마치 상상력 풍부한 어린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사람들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첸은 이때 익명의 플레이어들로부터 “당신들(개발자)은 아름다운 사람들이다”라고 쓴 팬 레터를 메일로 받기도 했다. 클라우드에 이어서 진행된 첸의 차기 게임 작업은 〈플로우 flOw〉(2006)였다. 독특하게도 그는 석사 졸업을 위해 플로우를 제작했다. 석사 학위 연구 프로젝트를 검증하기 위해 게임을 이론적으로 설계한 뒤 사람들에게 배포하여 테스트한 것. 플로우는 심해의 유기체로 태어나 바닷속을 유영하며 양분을 먹거나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어 유기체의 성장과 진화를 도모하는 게임이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 이론에 관심이 있었던 첸은, 몰입 이론에 기반한 새로운 게임 디자인론을 제시하고, 이를 적용한 게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논문을 쓰기 위해 제작된 게임이라고 하기에 게임의 인기는 기대치를 상회했다. 2006년 플래시 게임 포털에 게시되었던 플로우는 2008년까지 35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얻어 웹 상에 퍼져 나갔고, 순식간에 전세계인들이 즐기는 유명 게임이 되어버렸다. 회사로서 얻은 세 번의 창작 지원 플로우의 성공을 기점으로, 첸은 클라우드를 제작했던 대학원 동료 켈리 산티아고(Kellee Santiago)와 함께 회사 댓게임컴퍼니를 설립해 자신만의 게임 제작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댓게임컴퍼니와 소니(Sony)와의 계약이 성사되었다. 소니는 그동안 첸의 게임들이 보여준 가능성을 판단하고 플레이스테이션 플랫폼에 3개의 게임 출시할 수 있도록 일종의 창작 지원을 약속했다. 이는 댓게임컴퍼니 회사 설립과 운영의 기초가 되었다. 물론 소니와의 계약은 개발사에게 커다란 수익으로 이어지진 않는 구조였으며 저니 개발 당시 회사는 거의 파산 위기에 가까웠다고 공동 창업자 켈리는 훗날 언급하기도 했다. * 〈플로우〉 소니와의 계약 이후 댓게임컴퍼니는 우선 첸이 석사 논문 프로젝트로 했던 플로우를 기존 PC 플랫폼에서 PS3 플랫폼에 맞게 리디자인 하여 2007년에 출시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2년 간의 개발을 거친 플라워가, 2012년에는 3년의 개발을 거친 저니가 플레이스테이션 플랫폼에 출시되었다. 이 게임들은 연달아 호평을 받으면서 다음 작업에 대한 투자를 보증해왔다. 그리고 소니의 세 번의 창작 지원 이후, 첸은 모바일 플랫폼에 대한 도전으로 〈스카이: 빛의 아이들 Sky: The children of the light〉(2018)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이는 댓게임컴퍼니와 첸의 글로벌한 인지도를 현재의 수준까지 끌어올리게 되었다. 첸은 게임 개발사의 대표이자 디렉터, 게임 디자이너로서 클라우드, 플로우, 플라워, 저니, 스카이를 만들어냈다. 그는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게임 제작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다면에 걸쳐 작업에 투영해냈다. 개개인마다 해석의 여지는 다양하겠지만, 제노바가 연설, 인터뷰, 글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남긴 자료를 통해 필자는 그의 작업적 실천을 크게 세 개의 분류로 함축하고자 한다. (1) 영화의 기법을 게임에 적용하려는 시도 첸이 석사 생활을 했던 USC의 인터랙티브 디자인 과정은 게임에 특화 되어있는 곳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다루는 다양한 매체 중 하나가 게임이었으며, 그는 필름 스쿨에서 배울 법한 시나리오 라이팅을 실습하기도 했다. 첸은 시나리오 라이팅을 하면서 할리우드와 같은 전통적인 영화 산업에서 ‘3막 구조’를 충실히 사용하고 있음을 알았고, 이를 게임에 적용하려했다. 3막 구조란, 스토리를 3단으로 구성하여 도입부인 1막에서 주인공의 상황을 설정하고, 중반부인 2막에서 그 상황에 따른 여정을 제시하며, 마지막 3막에 다다라서는 그 여정의 결과를 마주하는 구조로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을 뜻한다. 영화에서 사용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게임에서 적용할 때 떠오르는 중요한 지점으로, 그는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강조했다. 영화를 볼 때 “왜 이 장면에서 갑자기 눈물이 날까”를 어렸을 때부터 궁금해왔다는 그는, 위치상 2막이 끝날 때쯤 감상자의 감정이 가장 낮은 지점에 도달했다가 3막에서 최고점을 찍었던 것에 그 원인이 있음을 판단했다. 3막 구조의 스토리텔링에서 서사는 2막이 끝날 때 쯤 가장 낮은 지점에 도달했다가 빠르게 최고점에 도달하며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 저니의 3막 구조 그의 게임들은 이러한 3막 구조 적용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저니의 도입부는 황량한 사막에서 여정을 떠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무너진 사원 사이를 지나가고 생명체를 가진 듯 움직이는 직물들과 상호작용하는 플레이어는 저 멀리 보이는 산 정상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향한다. 공중에서 이동하는 능력을 얻어 성장하여 점차 높은 곳으로 상승하고, 빠른 속도로 계곡 사이에 스키를 타면서 짜릿한 활강을 즐기던 플레이어는 심연에서 적을 만나 위기를 겪는다. 그러다가 산 정상에 올라가면서 그동안 축적해왔던 성장 요소를 모두 빼앗기고 힘을 잃어가다가 끝내 죽음을 겪게 된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야, 비로소 주변 상황이 변화하고 플레이어는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필자가 짧게 요약한 감이 있지만, 제노바는 여러 연설에서 저니의 3막 구조 적용에 대해 자세하고 설명하고 있으니 미세한 경험 설계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GDC 2013 연설 등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저니 뿐 아니라 초기작 클라우드나 플라워에서도 이러한 내러티브 구조는 발견된다. 긍정적이고 활기찬 여정에서 고난을 마주하고 끝내 희생이나 상실, 죽음을 통해 플레이어의 허망함을 필연화하고 극대화 시키는 것은 그의 게임의 특징 중 하나다. 이는 그의 전작들을 온라인 게임의 틀로서 통합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모바일 기반의 스카이에서 일명 ‘죽음을 통한 성장형 윤회’ 시스템으로 적용되어 플레이어의 지속적인 플레이를 이끌어내는 요소가 되고 있다. (2) 플레이어 스스로가 게임 경험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해외 저널 Communications of the ACM에 2007년 발표된 〈Flow in Games (and Everything Else)〉은 첸이 자신의 석사 학위 논문을 요약해 공개한 것으로, 그가 평소에 게임 디자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조나 철학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이론’에 경유하여 자신만의 디자인을 제안한다. 우선 칙센트미하이는 사람들이 어떤 일에 몰두하면서 현실에서의 걱정이나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잊은 채 긍정적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 순간을 ‘몰입’(Flow)이라고 규정했다. 이 몰입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도전과 그에 맞는 대상자의 숙련이 필요하다. 상황에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도전성이 높아진다면 불안을 일으키고, 반대로 숙달된 것에 반해 도전성이 크지 않다면 지루함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몰입 이론은 게임하는 행위를 포함한 취미나 사회 전반의 영역에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첸은 몰입 이론을 게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도전과 숙련이 균형을 이룬 상태인 ‘플로우 존’(flow zone)에 게임 경험이 위치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 존을 벗어날 경우 게임에 흥미를 잃거나 기쁨이 아닌 고통을 받아 이탈하게 된다. 게임에서 도전과 숙련이란 즉 난이도의 문제이기도 하며, 난이도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대해 기존에 가진 능력이나 지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첸은 이에 기존에 게임 조작 능력과 지식이 풍부한 ‘하드코어 게이머’와 게임을 즐긴 경험이 거의 없거나 조작 능력이 탁월하지 않은 소위 ‘캐주얼 게이머’로서 플레이어를 구분하고, 하드코어 게이머에게는 플로우 존은 도전 더 가깝게, 캐주얼 게이머에게는 숙련에 더 가깝게 설계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설계를 여러 개의 포인트와 경로 이동으로 바꿔 마치 플레이어가 스스로 좌표를 이동하며 플로우 존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며 “스스로 몰입을 찾아가도록 하는 자유”를 주는 것이다. * 첸의 몰입 이론 그가 이론을 적용하여 제작한 〈플로우〉는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지네 또는 새우의 모습을 닮은 해저의 한 유기체로 시작하고 나면, 영양분을 섭취해 몸을 성장시킬 수 있다. 비어 있는 몸의 마디마디가 채워지는 것처럼 플레이어는 자신의 캐릭터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바다를 유영하다 보면 다양한 영양분이 등장하고, 다른 유기체들이 등장해서 공격해 더 많은 영양분을 섭취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빨간색/파란색 영양분이 화면에 종종 등장하는데, 이 유색 영양분은 플레이어의 난이도를 나누는 분기점으로 작용한다. 빨간색 먹이를 먹으면 수심은 더 깊어지며 강한 유기체가 등장하는 경쟁과 불안 상태로 이어지고, 파란색 먹이를 먹게 되면 수면에 가까이 가지만 약한 유기체밖에 없어서 성장이 없이 평화가 지속된다. 첸은 현재 상태를 언어가 아닌 직관적인 색깔로 전달하는 것을 즐기는데, 적대적 존재는 주황색으로, 친화적인 존재는 흰색으로 표현, 그리고 심해로 가까워질수록 배경은 어둡게 변화한다. 이러한 설계에서, 물 속을 유영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거나 혹은 컨트롤이 익숙지 않아서 더 큰 적과 상대하기 어려운 플레이어는 빨간색 먹이를 먹는 것을 회피하거나 미룰 수 있다. 자신에게 너무 어려운 컨트롤을 요구하는 수심 깊이라면, 파란색 먹이를 먹어 오히려 난이도를 낮출 수도 있다. 플레이어들은 첸이 설계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느낌을 실제로 받았다. 따라서 게임은 “재밌다”는 평가를 받게 되고 다수의 어워드에서 ‘최고의 게임’에 뽑히기도 했다. 첸의 이론이 어느 정도 증명된 셈이다. 그는 플로우를 통해 자신의 경험 설계의 방법론을 쓰고 플라워, 저니, 스카이에도 여실히 적용해 나갔다. 게임 디자이너는 플레이어가 플로우 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가능한 다양한 균형점을 콘텐츠로서 제공하는 임무를 얻고 충실히 수행한다. 또한 이 균형을 알기 위해 개발 과정에서 플레이 테스트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3) 더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되는 것 앞서 짚은 첸의 게임 디자인론이 잘 적용된다면, 게임이 익숙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 동일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첸은 자신의 꿈을 “더 많은 사람들이 나의 게임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라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혀왔다. 그의 소망은 게임 제작에서 튜토리얼, 인터페이스, 플랫폼 등 다양한 영역에서 드러난다. 그의 게임은 글자가 잔뜩 써 있거나 플레이와 분리되어 있는 별도의 튜토리얼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조작이 쉽기도 하다. 첫번째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면서 게임 사용법이 자연스럽게 습득이 되는데, 이때 전개되는 스토리는 전체 맥락 위에 놓여 연속적이다. 플라워는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작방식이 쉽다. 컨트롤러 패드의 회전으로 꽃잎을 움직이고 단일 키 버튼으로 가속하는 것이 전부다. 플로우는 마우스의 이동으로만 조작이 가능하고, 스카이는 모바일 터치 인터페이스에서 매끄럽게 이해되는 캐릭터 이동 및 카메라 이동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첸은 직관적인 모바일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데에만 3년이 소요되었다고 전한다. * 인터페이스 게임의 플랫폼은 플레이어를 나누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콘솔 게임 기기가 없다면 콘솔 게임을 할 수 없다. 그는 플로우를 출시할 때,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구가 검증 되기를 원했다. 따라서 2000년대 당시 가장 파급력이 높았던 웹 플랫폼 ‘플래시’를 선택하게 된다. 플래시 플랫폼에서 게임은 다운로드나 사양의 제약 없이 플레이가 가능했다. 첸은 이전까지 플래시를 개발해본 적이 없었는데, 플로우를 플래시로 출시하기 위해서 3개월동안 공부하여 제작하는 과정을 거쳤다. 플라워와 저니를 출시 할 때에는 콘솔 플랫폼에 대한 고민거리가 있었다. 첸은 손쉬운 사용과 접근 가능성을 중요시해 인터페이스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정작 플레이스테이션이 없는 사람은 게임을 즐길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있었다. 콘솔 게임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전체 비율에서는 아직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그가 스카이를 모바일 플랫폼에서 출시한 배경에 있기도 하다. 가장 보편적인 게임 기계를 찾다가 누구나 한 대 씩 가지고 있는 모바일을 선택했다. 그 외에도 게임은 화면에 문자 언어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색이나 사운드, 컷신으로 상황의 변화를 드러낸다. 색의 경우 노란색은 흥미로움, 길을 잃거나 위기가 닥쳤을 때 짙은 녹색 또는 검정색, 생명력이 없을 때 흰색, 푸른 하늘은 해방감으로 그리고 있다. 플레이어의 현 상황을 한 마디로 보여주기 위해 매 스테이지 별로 등장하는 유적지 벽화는 저니의 상징적인 요소이다. 또한 캐릭터는 정체성이 모호하게 디자인되어 있어 인간 캐릭터의 경우 명확하게 남성인지 여성인지, 나이, 인종 등의 정보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그의 게임 중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이 글은 제노바 첸이라는 인물을 작가의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을지 타진해본 글이었다. 그는 1인 개발자는 아니었으며, 다수의 인원을 거느리는 팀의 디렉터로 활동했다. 모든 작업이 그의 아이디어를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작업에서 드러나는 공통적인 요소는 첸이라는 사람이 가진 가치관과 그의 실천 의식에 기반했다고 충분히 분석될 수 있다. Tags: 제노바첸, 플로우, 작가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보라무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논문세미나] 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

    세계 각국을 먼나라 이웃나라로 나눌 때, 아랍 국가들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먼 나라다. 아랍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막상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찾고자 결심한다면 우리는 의외로 많은 정보들과 마주할 수 있다. 급성장하는 아랍의 게임시장이 가진 매력적인 자본과 가능성에 전 세계의 게임사들이 눈독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도 포함이다. < Back [논문세미나] 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 24 GG Vol. 25. 6. 10. 세계 각국을 먼나라 이웃나라로 나눌 때, 아랍 국가들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먼 나라다. 아랍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막상 아랍의 게임에 대하여 찾고자 결심한다면 우리는 의외로 많은 정보들과 마주할 수 있다. 급성장하는 아랍의 게임시장이 가진 매력적인 자본과 가능성에 전 세계의 게임사들이 눈독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도 포함이다. 2023년 기준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인터넷 보급률은 100% [1] 이며, 중동 인구의 약 52.9%가 콘텐츠 적극 소비 계층인 30세 이하 [2] 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대대적인 자본을 투자해 게임 및 이스포츠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3] .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Riyadh Season,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이스포츠 페스티벌 등 전 지구적 게임 행사도 활발하다. 이 먹음직스러운 수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국내 다양한 언론 및 기관이 아랍 게임 시장에 관한 분석을 내놨다. 그러나 그 너머를 목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장 분석 보고서는 많고 많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아랍의 단편이다. 이번 논문 세미나에서는 「장벽 허물기 -아랍 세계의 비디오 게임 문화와 산업의 등장(Breaking Barriers –The Emergence of a Video Game Culture and Industry in the Arab World)」을 다룬다. 이는 2023년에 출간된 『Handbook of Media and Culture in the Middle East』의 일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 Vít Šisler, Lars de Wildt, Samer Abbas는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UAE, 카타르 등의 아랍 지역 현장 조사, 40명 이상의 아랍 게임 개발자 인터뷰, 게임 분석 및 기존 연구의 메타분석을 진행했다. 저자들은 서구권의 주류 게임이 아랍인 또는 무슬림 표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대해 연구해왔다. 논문은 게임 환경과 비판적 트랜스문화주의 개념을 채택해 아랍 세계의 비디오 게임 소비의 역사와 현재를 개괄한다. 논문은 서구권에서 바라보는 구멍 난 아랍 게임 문화 형상의 간극을 메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논문은 아랍의 게임 현장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문화적 혼종성, 시각적 표현의 진정성 강조, 종교 및 문화적 문제에 대한 민감성이라는 특징을 가진 것으로 봤다. 저자들은 논문을 통해 정치·경제·종교·문화적 흐름이 지역의 게이머·개발자·기관의 게임 매체 활용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고 이를 글로벌 문화 생산 및 초국적 소비자 문화라는 맥락과 연결했다. 아랍 게임 시장의 현재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먼저 현재의 아랍 게임 시장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중동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임 시장 중 하나다. 그것은 젊고 빠르게 성장하는 활동적인 게이머 인구, 높은 스마트폰 및 인터넷 보급률, 지역 및 글로벌 게임 퍼블리셔의 현지화된 콘텐츠 공급(The National 2020)에 힘입은 결과이다. 2021년 기준 아랍에서는 사우디, UAE, 이집트가 상위 게임 시장으로 꼽히며, 사우디는 약 8억3700만 달러로 전 세계에서 19번째로 큰 게임 시장으로 꼽혔다(Tashkandi 2021). 올해 발간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연구 [4] 에 따르면 중동 게이머는 국제 평균 이상으로 모바일게임 플레이를 선호하며, 배틀로얄, 슈팅, 스포츠 등 단기 집중형 장르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에 나타난 사우디와 UAE 게이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44.2%가 모바일게임을 이용한다고 답했고, 하루 평균 이용시간 또한 모바일게임이 3.73시간으로 가장 높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2022년 12월 기준 아랍 지역에서 인기 있는 안드로이드 무료 게임은 피파 모바일, 틱택토, 싸커 슈퍼 스타, 루도 클럽 등의 스포츠, 퍼즐, 보드게임 장르 게임이었다. iOS 기준으로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서브웨이 서퍼가 인기를 끌었다. 유료 게임으로는 마인크래프트가 가장 인기가 많았고, 가장 수익을 많이 내는 게임으로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있었다. MENA [5] 지역에서 유명한 이스포츠 게임으로는 ‘DOTA2’, ‘포트나이트’, ‘FIFA’ 등이 있다 [6] . 아랍 세계의 게임 연구 동향 비디오 게임 분야의 아랍에 관한 연구는 주로 서구권 개발자의 아랍 재현 방식 연구와 아랍에서의 게임 제작(및 그 자체 재현) 연구로 나눌 수 있다. 재현에 관한 연구는 주로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 시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인기 비디오 게임에서 악당이 일반적으로 중동 테러리스트로 묘사되는 방식과 아랍 문화 정체성에 대한 기타 환원적이고 오리엔탈리즘적인 재현을 조사한다(Marashi 2001; Reichmuth and Werning 2006; Keogh 2021). 두 번째 연구 흐름은 아랍에서 제작된 비디오 게임과 그 속의 아랍인과 무슬림 자기재현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Galloway 2004; Machin and Suleiman 2006; Tawil-Souri 2007). 이 논문의 저자들이 위치하는 곳도 이 지점이다. 또한 다른 연구자들의 중동 지역 게이머들의 소셜 미디어 참여 연구(AI-Rawi and Consalvo 2019)는 아랍 게이머의 공동의 정체성이 아랍어와 아랍 게임의 공유 소비를 통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아랍 세계 비디오 게임의 역사 시작: 해외 게임 소비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미국·유럽·일본과 마찬가지로 아랍 세계에 게임이 전파됐다. 초창기 아랍에서는 주로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 등의 해외 게임을 소비했다. 국산 게임 제작보다 선행된 해외 수입품의 유입은 아랍 지역의 국내 비디오 게임 산업과 그 결과물을 형성하는 ‘벤처와 관객의 기대치’를 설정했다(Wolf 2015,6). 불법 복제 게임, 소위 ‘해적판’ 게임은 아랍 세계에 비디오 게임이 확산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이 지역의 불법 복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대부분의 아랍 도시에서 해외 게임의 사본을 2~3달러에서 구입할 수 있었으며, 출시 직후의 게임 구매도 가능했다(Šisler 2013). 광범위한 불법 복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현지 생산자와 수입업자들은 값싼 해적판 제품과 국내 시장에서 경쟁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밀려났다(Wolf 2015,7). 반면 불법 복제는 글로벌 불평등에 대한 전술적 대응으로서 다양한 계층의 게이머가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민주화 효과를 제공하기도 했다. 지역의 높은 불법 복제 수준은 게임 산업 관행에 영향을 미쳐 회사들이 월정액 구독과 회사 서버 액세스가 필요한 온라인 게임 제작으로 전환하도록 만들었다(Wolf 2015, 7). 비디오 게임에 대한 접근은 사이버카페(PC방)를 통해 더욱 용이해졌다. 이는 특히 이집트, 알제리, 요르단처럼 인터넷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발전 속도가 느린 국가의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지 게임 프로덕션의 등장 1981년, 아랍어 친화적 인터페이스를 갖춘 비디오 게임기에 관한 수요로 알-알라미예가 사크르라는 아랍어 가정용 컴퓨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일본의 MSX를 기반으로 제작돼 아랍 전역의 중산층 가정에서 인기를 얻었다(Kasmiya 2015, 30). 알-알라미예는 일부 게임을 아랍어로 현지화했고, 퀴즈 게임 로드 투 마카(Road to Makkah)와 같은 간단한 아랍어 게임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Abbas 2019). 이는 1990년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0년, 시리아 의대생 무하마드 함자가 제작한 ‘돌 던지기(The Stone Throwers)’는 초기 아랍 비디오 게임 제작에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 게임은 알 아크사 인티파다 [7] 를 다룬 단순한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이스라엘 군인으로부터 알 아크사 모스크를 지키는 팔레스타인인의 역할을 맡게 된다(Šisler 2018). 이 게임의 뒤를 이어 아랍의 문화를 더 밀접하게 반영한 다른 게임들이 개발됐다(Šisler 2008). 이 게임들은 서구권 비디오 게임에서 아랍인을 테러리스트와 종교적 근본주의자로 묘사하는 헤게모니적 왜곡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대항 담론’(Lefebvre 1991)으로 간주할 수 있다(Šisler 2018). 이러한 게임은 성격에 따라 크게 저항, 교육, 문화적 대화로 분류할 수 있다. 저항 게임은 일반적으로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과의 실제 분쟁을 바탕으로 한 1인칭 슈팅 게임이다. 대표적인 예로 레바논 헤즈볼라 운동(대표작: Special Force 1,2), 시리아 회사인 다르 알 피크르와 아프 카르 미디어(대표작: Under Ash, Under Siege), 요르단 스튜디오 투라스(대표작: Jenin: The Road of Heroes)가 있다. 이 게임들은 아랍 청소년들에게 자신만의 영웅을 제공하고 아랍인의 관점에서 분쟁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Šisler 2018). 초기의 교육용 게임은 이슬람의 기본 교리나 문명에 대해 가르치거나 가족적 가치를 홍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서구와의 문화적 대화를 위한 도구로 개발된 초기 게임에는 2005년 시리아 회사 아프 카르 미디어가 만든 전략 게임 ‘쿠라이쉬(quraish)’가 있다. 이 게임은 이슬람의 기원과 확산을 다루며 이교도 베두인, 무슬림 아랍인, 조로아스터교 페르시아인 등 다양한 관점에서 플레이할 수 있으며 아랍어와 영어로 제공됐다(Šisler 2018). 쿠라이쉬의 개발자 중 한 명인 라드완 카스미야는 후에 빈센트 고섭과 함께 팔라펠 게임즈를 설립했다. 중동과 중국에 사무실을 둔 이 회사는 첫 번째 게임 ‘나이츠 오브 글로리(Knights of Glory)’(2011)로 100만 명 이상의 유저를 확보했다. 이집트에서는 많은 인디 개발자들이 문화나 정치를 주제로 한 게임을 퍼블리싱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네잘 엔터테인먼트는 아랍 스타일 농장 게임 ‘알마디나(Elmadinah)’(2013)로 100만 달러 이상 투자를 유치했다. 이 회사의 전작 ‘크라우즈 보트(Crowds Vote)’(2012)는 2012년 이집트 혁명을 소재로 했다(Kasmiya 2015). 문화적 진정성과 현지화 초기 아랍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들은 지역의 전통·역사·종교에 관한 ‘진정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게임의 기본 구조가 외국의 것이기 때문에 아랍 세계의 초기 게임 제작에 나타난 것은 혼종성과 문화 간 교류였다(Šisler 2018). 해외 게임사에게 현지화는 수익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 됐다. 독일의 브라우저 기반 전략 게임 ‘트래비안(Travian)’은 통신사 결제와 선불카드 결제를 이용할 수 있는 최초의 아랍어 멀티 플레이어 게임이었다. 2009년 전성기 시절, 아랍어 버전 트래비안은 트래비안 전 세계 유저 1/5를 차지하며 매달 150만~3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Abbas 2019). 트래비안의 성공은 아랍 세계가 다른 유럽 브라우저 게임에 눈을 돌리게 했고, 아랍 지역 게임 회사에 투자가 유치되는 계기가 됐다. 다운로드가 필요 없고 저사양 PC를 지원하는 브라우저 게임은 쉽게 게임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지화된 무료 게임은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더욱 확산됐다. 그 결과 서구의 여러 회사가 아랍에 지사를 설립하고 아랍 시장을 겨냥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Campbell 2013). 현지화는 번역 이상으로 현지의 문화·종교·정치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아랍을 대상으로 한 현지화는 노골적인 성 묘사와 폭력, 종교 비판, 음주 등을 피할 필요가 있다. 가령 트래비안은 양조장 건물을 찻집으로 대체했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아랍 국가에 별도의 규제가 없었으나, 사우디와 UAE에서 성적인 표현과 아랍 문화에 대한 오해를 가진 몇몇 게임이 금지되면서 국가 미디어 정책에 규제 조치가 생기기 시작했다(Šisler 2018). 아랍 게임의 최신 트렌드 최근 아랍의 게임 현장에서는 다양한 이슈가 벌어지고 있다. 게임 산업의 잠재력을 알아본 정부의 투자 지원과 새로운 규제, 세계화를 통한 초국가적 네트워크 교류, 아랍의 관점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여전한 대표성 및 정치적 문제, (모바일) 캐주얼 게임의 유행, 아랍적인 게임을 위한 모딩 및 커뮤니티 번역이 바로 그것이다. 대표성 및 정치 문제와 같은 몇몇 이슈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부 지원 및 규제 2016년 사우디아라비아 시청각미디어위원회는 현지 및 수입 게임에 대해 지역 최초의 공식 연령 등급 콘텐츠를 도입했다. 금지 콘텐츠에는 누드, 노골적인 성행위, 동성애, 종교 비판,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 등이 포함된다. 2018년에는 UAE도 국가미디어위원회(NMC)를 통해 유사한 등급 시스템을 도입했다. 세계화와 초국가적 네트워크 * 라미 이스마일의 isthatarabic 홈페이지 내용 아랍계 개발자들은 글로벌 게임 제작에서 아랍 및 이슬람 문화에 대한 기존의 도식화 및 왜곡된 표현에 대해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8년 오사마 도리아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례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에서 ‘비디오 게임에서 무슬림 표현을 위한 방법 가이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네덜란드계 이집트인 게임 디자이너 라미 이스마일은 게임 회사들이 아랍 문자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문제에 맞서기 위해 웹사이트 https://isthatarabic.com 을 개설했다. 아랍계 게이머의 소셜 네트워크는 영어와 함께 아랍어를 사용하고, 지리적 근접성, 역사 및 종교를 공유한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구축된다. 아랍 개발자 네트워크는 점점 더 공식화되고 국제화돼 지역 전체를 위한 소셜 네트워킹 이벤트와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다(Šisler 2018). 대표적인 예로 아랍에서 가장 큰 연례 게임 개발 행사 ‘게임 잔가(Game Zanga)’는 참가자들이 72시간 동안 주어진 주제에 관한 게임을 제작한다. 이집트 혁명이 정점에 달했던 2012년의 주제는 ‘자유’였다. 대표성 및 정치 * 게임 ‘리일라와 전쟁의 그림자’ 첫 화면. 글로벌 산업이 대부분 북미에서 주도된 결과 현대의 국제 분쟁은 거의 기본적으로 미국 관점에서 표현된다. 가령 2023년 출시된 게임 ‘식스 데이즈 인 팔루자(Six Days in Fallujah)’는 2004년 이라크 전쟁 제2차 팔루자 전투에 참전한 미 해병대 분대의 시점에서 다큐멘터리적인 리얼리즘으로 전개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반면 아랍의 관점이 우세한 경우,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중립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쉽게 버려지기도 한다. 2016년 팔레스타인 디자이너 라시드 아부 에이데가 제작한 ‘리일라와 전쟁의 그림자(Liyla and the Shadows of War)’는 팔레스타인의 관점에서 전쟁의 민간인 희생을 탐구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애플 온라인 스토어 판매를 거부당하다가 이후 전 세계 게임 개발 커뮤니티의 대규모 항의(Batchelor 2017)가 있은 후에야 판매 허가를 받았다. 캐주얼 게임 사실 아랍 게임사에게 대표성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수익을 내 생존하는 것이다. 아랍 게임사들은 이를 위해 캐주얼 게임과 모바일 게임 개발을 택했다. 현재는 인기 있는 모바일 게임 중 아랍 세계에서 제작됐거나 아랍 친화적인 게임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모딩 및 커뮤니티 번역 게임 커뮤니티 전체에 존재하는 모딩 및 커뮤니티 번역의 전통은 아랍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13년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아랍어 번역본이 3년간의 작업 끝에 아랍 팬 번역가에 의해 출시됐다(Johnson 2013). 마치며: 아랍 게임 문화의 성장 가능성 게임 산업은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대표적으로 유니티 같은 게임 디자인 툴의 대중화, 스팀 같은 유통 플랫폼을 통한 글로벌 시장으로의 접근성 향상은 개발 및 퍼블리싱 비용을 낮춰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의 개발자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아랍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스튜디오는 여전히 드물다.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불확실성, 외국인 투자 부족, 분열된 게임 커뮤니티, 노하우 부족, 게임 개발 교육 부족 등 여러 가지 정치 및 경제적 문제가 산재해있기 때문이다. 아랍 세계에서 게임 산업은 30년 동안 존재해왔다. 그럼에도 네덜란드계 이집트인 게임 개발자 라미 이스마일에 따르면, 아랍 게임 개발 커뮤니티는 그가 제안한 지역 게임 개발 커뮤니티 6단계 중 초기 단계에 머물러있다. 그에 따르면 첫 번째 단계에서는 아마추어가 거의 없는 지역에서 지식 공유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그 다음에는 국제적으로 지식이 교환되지만 여전히 ‘서구에서 크게 성공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Ismail 2015). 그러나 이제까지 살펴봤듯, 성장의 여지는 존재한다.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며 아랍 게임 문화가 성장하고, 혼종화되고, 문화 간 교류에 접어들고 있다는 특징 이상으로 아랍에 고유한 플레이어 문화를 가진 신흥 소비자층이 나타났단 점에 주목한다. 게임 문화와 산업은 이들이 함께하는 참여형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저자들은 이들을 더욱 확장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해외 문화 소비로 시작해 점차 자체 게임 시장을 형성하게 된 한국의 입장에서 아랍 게임 문화의 성장 과정은 크게 낯설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아랍 게임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의심되지는 않는다. 이제 한국인 게이머로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랍 게임의 경제적 측면 그 이상을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초국가적 게임 커뮤니티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논문의 표현을 빌려와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게임 문화와 산업은 구성원이 함께하는 참여형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1] World Bank, 2024.12.16.,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2] EBS, 2021, ‘닫혀 있던’ 사우디에 무슨 일이?...아라비아의 변화 어디까지 [3] Mastercard Newsroom, 2023, Transforming Saudi Arabia’s esports and gaming landscape [4] 전종섭(한국콘텐츠진흥원), 2025.01.07., 신규 게임시장의 기회: 중동의 한국게임 소비행태 분석 [5] Middle East and North Africa의 약자. 아랍, 중동, MENA 지역의 개념적 정의와 범주는 모두 다르지만 여러 자료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혼용해 사용했다. 엄밀히 말해 아랍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 연맹 22개국을 의미하며, 중동은 아랍 국가들이 위치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아랍어 사용국 외에 이란, 튀르키예 등을 포함한다. 이 글에서는 가급적 원 자료 표기를 따르되 필자의 표현은 아랍으로 통일했다. [6] 해당 단락은 한국콘텐츠진흥원 UAE 비즈니스센터, 2023.06.30., ‘중동 콘텐츠 산업 동향’을 참고했다. [7] ‘인티파다’란 아랍어로 봉기를 뜻하는 용어로, 이스라엘 점령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인의 주요 봉기를 뜻한다. 제1차 인티파다는 1987~1993년, 제2차 인티파다는 2000~2005년까지 이어졌다. 알 아크사 인티파다는 제2차 인티파다의 다른 이름으로, 이슬람교도들에게 3번째로 성스러운 장소인 ‘알 아크사 모스크’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대학원생) 손민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과 문화를 공부 중입니다. 글과 함께한 만큼 게임과 늘 함께 해왔습니다. 별별 게임 다 합니다.

  •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깊이 읽기

    이 글은 이번 게임백서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들과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소개한다. 백서가 더 널리 활용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에 대해서는 지난 10호에서 살핀 바 있고, 그 내용들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므로 이 글에서 반복하지는 않도록 한다. 물론 그 중에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음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 Back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깊이 읽기 17 GG Vol. 24. 4. 10. 2024년 3월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이하 ‘백서’ 혹은 ‘게임백서’)>가 발간됐다. 백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년 발행하는 정기간행물로, 1년 간의 국내 게임산업 현황(산업 규모, 업종별 현황, e스포츠 동향, 산업 전망, 교육기간 현황 등), 게임이용 동향(플랫폼별 이용 현황 및 특성, 게임에 대한 인식 및 태도 등), 해외 게임산업 현황(플랫폼별·국가별) 등을 다룬다. 국내외 산업규모와 이용행태를 파악하고 경제적 가치를 분석해, 정책수립 또는 연구조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백서 발행의 목적이다. 공공과 민간 영역을 막론하고 게임산업이나 이용에 대한 다른 광범위한 조사가 없는 데다, 다른 콘텐츠산업(출판, 만화,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캐릭터, 지식정보, 콘텐츠 솔루션) 현황과의 비교 속에서 이뤄지는 조사인 만큼 그 데이터가 갖는 의미는 크다 하겠다. 주로 수치 중심의 데이터를 다루지만,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산업·이용 양상과 관련 이슈, 트렌드들에 대해서는 질적으로도 분석함으로써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즉, 게임백서는 게임산업과 이용에 관한 한 해 동안의 양적·질적 데이터가 망라돼 있는 결과물인 셈이다. 이 글은 이번 게임백서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들과 놓치면 안 될 흐름들을 소개한다. 백서가 더 널리 활용되기 위해 고려할 지점들에 대해서는 지난 10호에서 살핀 바 있고, 그 내용들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므로 이 글에서 반복하지는 않도록 한다. 물론 그 중에는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음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중요한 데이터와 흐름들에는 약간의 해석을 덧붙이고자 한다. 2022년 한 해 동안(2024년 초에 발간된 2023 백서이지만, 기준 데이터는 2022년의 것이다)의 게임산업과 이용을 둘러싼 양상, 이슈, 트렌드를 살피고, 그것들이 갖는 의미를 짚어본다. 한국 게임시장 규모: 22조원 돌파, 성장률 둔화, 플랫폼별 균형 있는 성장 2022년 한국 게임시장은 22조 2,149억 원 규모로, 2021년(20조 9,913억 원) 대비 5.8% 성장했다. 2020년 21.3%, 2021년 11.2% 성장했음을 감안하면, 성장률이 조금씩 둔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플랫폼별 시장에서 두드러지는 지점들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바일 게임시장의 굳건한 강세다. 그간 모바일 게임시장 규모는 빠르게, 큰 폭으로 팽창해왔다. 다만 전체 시장에서 모바일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49.7%, 2020년 57.4%, 2021년 57.9%, 2022년 58.8%로, 최근 들어 아주 크게 늘고 있지는 않다. 모바일 게임시장 비중의 확장세 둔화가 앞으로도 계속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다른 플랫폼들의 비중 역시 아주 크게 달라지고 있지는 않아, 당분간 아주 큰 폭으로 비중이 늘지는 않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비중이 크게 늘지는 않았음에도 매출액 13조 720억 원으로 전년(12조 1,483억 원) 대비 8.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게임 제작 및 배급업 중 아케이드게임(8.9%)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둘째, 아케이드와 PC 게임시장의 성장세가 아주 크지는 않은 가운데, 콘솔 게임시장이 1년 만에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됐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은 전년 대비 8.9% 성장해 2,976억 원 규모를, PC 게임시장은 3.0% 성장해 5조 8,053억 원 규모를 나타냈다. 하지만 2019년 전년 대비 31.4%, 2020년 57.3% 성장하다가 2021년 –3.7%의 성장률을 보였던 콘솔 게임시장은 1조 1,196억 원 규모로, 전년(1조 520억 원) 대비 성장률 6.4%를 기록했다.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던 해당 게임시장이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오프라인 활동 수요 폭증으로 대폭 증가했다가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4.3% 감소했던 PC 게임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선호경향의 혜택으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플러스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전체 게임시장 내 점유율은 26%대로 성장에 있어 한계가 드러났다. 콘솔 게임시장의 경유 성장률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됐다 해도, PC 게임시장과 유사하게 점유율이 2021년과 비슷한 5% 초반이다. 2022년 콘솔 게임기기나 타이틀 관련해 시장의 변화를 주도할 흐름이 발견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큰 폭의 하락을 보여 왔던 PC방 및 아케이드 게임장 매출액이 2021년에 이어 소폭 증가했다. PC방 매출은 2019년 2조 409억 원에서 2020년 1조 7,970억 원으로 큰 역성장(-11.9%)을 기록했고, 아케이드 게임장은 2019년 703억 원에서 2020년 365억 원으로 시장이 거의 반토막(-48.1%) 났었다. 이는 물론 코로나19만이 아니라 PC 게임시장의 성장 정체와 모바일게임으로의 이용 집중, 가정에서 플레이되는 콘솔게임의 인기 폭증 등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 유통시장 매출은 정부의 아케이드 게임산업 활성화 정책, PC 및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성장, 그리고 야외 활동 본격화 등과 맞물려 반등했다. 종합적으로, 2022년 한국 게임시장은 지난 4년, 그러니까 코로나19 전후를 비교해봤을 때 아주 크게 확대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2019년 9.0%, 2020년 21.3%, 2021년 11.2%, 2022년 5.8%), 플랫폼별로 비교적 균형 있게 성장해온 듯 보인다. 그동안 ① 크게 성장하는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콘솔게임), ② 성장이 정체된 플랫폼시장(PC게임, 아케이드게임), ③ 크게 역성장하는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개되던 흐름이, ① 여전히 성장 중이나 조금씩 안정화되는 플랫폼시장(모바일게임), ② 성장세 둔화와 뚜렷한 플랫폼시장(PC게임), ③ 하락세 혹은 보합세에서 다시 성장세로 전환된 플랫폼시장(콘솔게임, 아케이드게임) 및 유통시장(아케이드게임장, PC방)의 양상으로 전환된 것이다. * 그림 1. 한국 게임시장의 규모 및 성장률(2013~2023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28쪽. * 표 1. 한국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 및 성장률(2019~2022년). 단위: 억 원,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30쪽. 세계 게임시장 내 한국의 위상: 세계 4위로 3위인 일본을 바짝 추격 2022년 세계 게임시장 규모는 2021년 대비 0.9% 증가한 2,082억 4,900만 달러로 집계됐다. 2021년 성장률이 5.9%였음을 감안하면, 성장률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볼 수 있다. 엔데믹 이후 세계 게임시장은 가시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세계 경제위기, 전염병, 전쟁 등 외부 악재와도 맞물려 불확실성도 심화되는 상황이다. 전체 게임시장의 성장을 견인해왔던 모바일게임이 마이너스 성장(-0.5%)했고, PC게임의 성장률도 0.1%에 그쳤다. 콘솔게임이 2021년과 비슷한 수준인 2.6%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아케이드게임도 2021년(9.5%)에 비하면 크게 성장했다 보기는 어렵다(4.1%). 2016년 이후 세계 게임시장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해온 모바일게임은 2022년에도 916억 8,100만 달러 규모로, 점유율 44.0%를 기록했다. 그 뒤는 콘솔게임(591억 4,100만 달러, 28.4%), PC게임(363억 5,200만 달러, 점유율 17.5%), 아케이드게임(210억 7,600만 달러, 10.1%) 순이다. 표 2. 세계 게임시장의 플랫폼별 매출액(2020~2025년). (단위: 백만 달러, %). 출처: PwC(2023), Enterbrain(2023), JOGA(2023), iResearch(2023), Play meter(2016); NPD(2023); 한국콘텐츠진흥원(2024).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742~743쪽. 2022년 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7.8%다. 2019년 점유율이 6.2%, 2020년이 6.9%, 2021년 7.6%였음을 감안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비중이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순위도 2020년 5위에서 2021년 4위로 한 순위 올라간 후, 2022년에도 마찬가지로 4위를 유지했다. 2020년 0.8%, 2021년 1.4% 차이였던 5위 영국과의 거리도 2.2%로 더 크게 벌렸다. 3위인 일본과의 차이는 1.8%로 영국과의 차이보다 적다. 2021년 2.7% 차이에서 0.9%나 좁힌 것을 감안하면, 향후 몇 년 간 한국이 일본을 앞지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1위인 미국(22.8%)과 2위 중국(22.4%)의 차이도 0.4%밖에 나지 않아, 둘의 순위가 바뀔지도 관건이다. * 표 3. 세계 게임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과 위상(2022년). * 출처: PWC(2023), Enterbrain(2023), JOGA(2023), iResearch(2023), Playmeter(2016), NPD(2023); 한국콘텐츠진흥원(2024b).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767쪽에서 재인용. 한국게임 수출·입 규모: 수출 3.6% 증가, 수입 16.7% 감소, 아케이드게임만 수출 감소 2022년 한국게임 수출액은 89억 8,175만 달러(약 11조 6,040억 원, * 한국은행 2022년 연평균 매매기준율 적용)로 집계됐다. 전년(86억 7,287만 달러)과 비교했을 때 3.6% 증가한 수치다. 2017년 증가율 80.7%를 기록한 이후 2018년 8.2%, 2019년 3.8%로 수출성장세가 주춤하다가, 2020년만 23.1%로 반짝 높은 수치를 보이고 2021년 5.8%, 2022년 3.6%로 다시 이전 증가율 수준이 된 셈이다. 플랫폼별로는 역시 모바일게임의 수출규모가 55억 6,300만 달러(2021년 53억 3,030만 달러)로 가장 컸고, PC게임이 31억 9,467만 달러(2021년 31억 4,562만 달러)로 뒤를 이었다. 콘솔게임 수출규모는 1억 8,651만 달러(2021년 1억 5,674만 달러), 아케이드게임 수출규모는 3,757만 달러(2021년 4,021만 달러)로 나타났다. 전년대비 수출규모를 비교하면, 대부분 플랫폼에서 증가세를 보인 가운데 아케이드게임만이 전년대비 6.6%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표 4. 한국 게임 수출·입 현황(2016~2022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b).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31쪽의 표를 재구성. 수입은 전년대비 16.7% 감소한 2억 6,016만 달러(약 3,361억 원)를 기록했다. 2017년 이후 계속 감소해왔던 수입 증가율이 4년 만인 2021년 잠깐 반등했다가 다시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2016년부터 7년 간 수입액 증가율이 수출액보다 높았던 건 2018년과 2021년뿐이었고, 나머지 해에는 수출액 증가율이 수입액 증가율보다 높게 나타났다. 다른 모든 플랫폼의 수입액 규모에서 감소세가 나타나는 가운데(아케이드게임 –66.3%, 콘솔게임 –48.3%, 모바일게임 –13.4%), PC게임만이 5.4% 증가했다. 2021년 완전히 반대로 모든 플랫폼 수입액이 전년대비 크게 증가하고 PC게임만이 감소했던 것을 감안하면 특기할 변화라 하겠다. * 표 5. 한국 게임 플랫폼별 수출·입 규모 비교(2021년 vs. 2022년). 단위: 천 달러, %.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2024b).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 32쪽의 그림을 재구성. 게임 이용현황: 전체의 62.9%가 이용, 이용률 11.5% 감소, 모바일게임 이용률이 최고 만 10~65세의 일반인(n=10,000)을 대상으로 2022년 6월 이후 게임 이용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2.9%가 게임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게임 이용률은 2020년 이후 증가세를 보이다가(2019년 65.7% → 2020년 70.5% → 2021년 71.3% → 2022년 74.4%), 다시 2019년 수준으로 하락한 셈이다. 게임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n=6,292)들에게 있어 이용률이 가장 높은 플랫폼은 모바일게임(84.6%)이었다. PC게임(61.0%), 콘솔게임(24.1%), 아케이드게임(11.8%)이 뒤를 이었다. 또, 게임 이용경험이 있는 응답자(n=6,292)의 99.4%가 평소에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응답했다(전년 대비 0.4%p 증가). 업무/학업 외 목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 사용하는 기기를 조사한 결과 스마트폰이 93.2%로 가장 높았고, 데스크톱PC가 60.1%, 노트북이 56.4%, 태블릿PC가 42.8%였다. PC방 이용현황에 대한 조사결과는 다음과 같다. 게임 이용자들(n=6,292)의 56.8%가 2022년 6월 이후 1년 간 PC방을 이용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18.3%가 월 1회 이상 PC방을 이용하고 있었다. 성별로는 여성보다 남성이, 연령별로는 20대가 이용률이 가장 높았다. 게임 이용자의 1회 평균 PC방 이용시간은 169.2분, 미이용자는 126.5분이었다(42.7분 차이). PC방에서 게임을 한다고 응답한 사람(n=3,229)에게 PC방에서 게임하는 이유를 질문했을 때, 1+2순위 응답을 기준으로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56.7%)와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55.7%)를 꼽은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연령대가 낮을수록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를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게임업계 노동환경: 코로나19 이후 사업체 규모별 격차 심화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게임업계 생산환경은 신기술 기반으로 급격하게 변화를 맞았다. 메타버스, 블록체인, P2E(play to earn), 인공지능과 관련된 신기술 개발·도입이 활발히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관련기술 보유 인재에 대한 주요 게임사들의 확보 경쟁도 심화됐다. 이에 따라 주요 게임사들의 인력과 인건비 지출이 함께 증가했는데, 특히 개발직군의 임금이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22년 2분기 이후 10대 상장 게임사의 정규직 인력은 오히려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코로나19 특수의 종료, 인건비 급등에 따른 비용 부담, 신작 미출시 혹은 실적 미흡 등의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외적 환경도 긍정적이지 않다. 엔데믹이 본격화되는 국면에서 글로벌 금융시장 악화, 전쟁, 중국의 게임규제 강화 흐름들도 한국 게임업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단기간 내 인력상황이 급변한다는 것은, 그만큼 게임시장의 노동환경이 불안정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상대적으로 큰 회사들까지 그렇다면, 작은 회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유연화를 둘러싼 논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 출범 후인 2022년 6월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 및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확대 등을 포함하는 유연근로제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게임업계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단계적으로 적용되고 안착화되어 가는 분위기에서, 이러한 계획은 사측과 노조를 중심으로 한 종사자측 입장을 다시 한 번 갈라놓는 계기로 작용했다. 노동시간 유연화를 찬성하는 사측의 논거는 주 52시간제 자체가 게임업계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 중국 등 글로벌 게임사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우려가 커진다는 것, 현장에서 유연근로제의 활용률이 떨어진다는 것 등이었다. 반면 노조측은 노동시간이 유연화될 경우 그간 게임업계 노동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었던 크런치 모드가 다시 활성화될 우려가 크며, 과로사 등 여러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 결국 노동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 우려한다. 그에 따르면 일부 기업들이 시행 중인 휴양지 워케이션, 주 4일 근무제 도입 등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큰 기업에서 노조에 가입해 있는 종사자들은 교섭권을 바탕으로 처우와 복지 등에 있어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반면, 노조가 부재하고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소게임사 종사자들의 경우 노동환경 악화의 위험성이 더 커질 수 있다. 이처럼 2022년 국내 게임업계 노동환경은 안팎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속에서, 일부 긍정적인 변화, 그리고 고용, 노동시간, 처우 등에 있어 대체로 불안정한 요소들이 공존하는 양상을 보였다. 바로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국내 게임시장이 쇠퇴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당분간 노동환경은 더욱 안 좋아질 확률이 높다. 한국 게임시장 전망: 안정기에서 쇠퇴기로, 그리고 불확실성의 증대 한국의 게임들이 질적·양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전세계 게임시장에서 한국 게임시장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지만, 시장규모가 갈수록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 게임시장 규모는 2022년 대비 10.9% 감소한 19조 7,900억 원을 형성할 전망이다. 2013년 전후로 마이너스 성장한 적 없던 한국 게임시장이, 그리고 이제 20조 규모에 안정적으로 접어든 듯 보였던 한국 게임시장이 이처럼 위축될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엔데믹으로 향유 가능한 여러 엔터테인먼트와 야외 활동이 많아진 때문이자,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부진이 현실화되고 있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게임시장의 주축인 모바일 게임시장은 꾸준히 전체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유지는 하겠지만, 그 성장률은 한국 경제 전반의 움직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PC 게임시장은 멀티 플랫폼화와 충성도 높은 플레이어들의 존재에 힘입어 현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콘솔 게임시장 역시 멀티 플랫폼화, 니치마켓을 추구하는 게임 개발사들의 진입 등 성장에 긍정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지만, 차세대 콘솔기기가 언제 출시돼 얼마나 인기를 끌지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될 듯하다.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크지 않은 아케이드 게임과 게임장은 특별한 전기 없이 아케이드 게임을 즐기는 세대들의 엔터테인먼트 트렌드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가정 보유 PC의 고사양화가 상당히 진행되고 PC방을 찾을 유인이 낮은 상황에서 PC방의 인기는 갈수록 성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인건비, 개발비, 간접비 등 제반비용의 상승은 게임업계의 영업이익에 긍정적이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불경기가 심화되고 사람들의 전반적인 가처분소득도 감소 중이다. 글로벌 게임시장도 마찬가지지만, 한국 게임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예측이 어려운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다. 시장규모의 축소가 예상된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될지, 또 얼마나 계속될지, 그것에 정부, 업계, 그리고 플레이어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구체적이면서도 다양한 논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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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 Vol. 12 이제는 다소 진부해진 주제로까지 보이는 게임과 예술 사이의 관계들. GG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 전시를 중심으로 이 오래되고 진부한 이야기를 다시한번 되짚어보고자 한다. Computer games and art: the practice of deepening our gameplay experiences The question ‘are computer games art?’ is not a productive one if there is the expectation that there can be a reasonable answer to it without some questioning of the question itself. I will explain why this is so and make the case that we would be better served by thinking about the ‘aesthetic experiences’ that playing computer games may foster as opposed to their categorization as art or as non-art. Read More Visually Impaired and Gaming: Overcoming the wall of prejudice I sometimes have had chances to discuss about "game accessibility" ever since I started working for Banjiha Games (Korean word for "Semi-basement") as a writer, while representing people with visual impairment like me. Sure, I do like games. But I'm not good at it. And frankly speaking, my current work also has to do little with the game. So I must admit that I try to talk cautiously whenever such a topic arises Read More [논문 세미나]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 〈이브 온라인(Eve Online)〉은 현재 ‘펄어비스’가 인수한 아이슬란드의 게임 제작사인 ‘CCP 게임즈(CCP Games)’가 2003년 출시한 SF 샌드박스 MMORPG이다. 가상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브 온라인〉은 오픈 월드 시스템을 통해 광활한 맵을 제공하며, 이곳에서 일어나는 유저의 다양한 행위들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높은 자유도를 제공한다. RPG이지만 이 게임에는 캐릭터의 직업이 없다. Read More [인터뷰] 게임 전시가 줄 수 있는 사회적 담론의 균열 : <게임 사회> 기획자 홍이지 학예연구사 인터뷰 게임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2년 10월에 방영했던 EBS 다큐멘터리 <게임에 진심인 편>을 기억할 것이다. 해당 다큐멘터리 3부에서는 ‘근데 이제 예술을 곁들인’이라는 제목으로, ‘게임을 예술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담론들을 다루었다. 비단, <게임에 진심인 편>뿐만 아니라 게임과 예술의 경계를 어디로 둘 것인지에 관한 질문들은 훨씬 이전부터, 다양한 경로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 간단한 질문에 결론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쌓여왔던 담론의 두께만큼 다양한 관점이 혼재해있기 때문이다. Read More [인터뷰] 게임은 현대미술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 MMCA서울관 〈게임사회〉 展 국내 국립 미술관에서 게임을 주제로 한 전시가 기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임사회〉 전에 대한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관심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흔히 접하기 어려운 주제의 전시를 사람들은 어떻게 감상하고 있을까? 이번 호에서 GG는 〈게임사회〉 전에 다녀온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왔다. Read More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미술의 근간이 될 때, 〈게임사회〉 리뷰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현대 미술을 향유하는 이들과 관심이 거의 없는 일반 관객들 사이의 회색분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딱히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어렸을 때부터 향유해온 것도 아니지만 뒤늦게 재미를 붙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꿈보다 제법 마음에 드는 해몽이 나오면 그걸 감상으로 삼아 마음에 두기. 그게 나름의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Read More 게임 인터페이스로서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 전시 리뷰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이 다양한 담론장을 떠돌고 있다. 게임과 예술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행정과 법의 영역에서도 게임의 위상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오가는 중이다. (물론 예술가, 행정가, 정치인, 사업가, 그리고 게이머 각각의 입장과 목표는 모두 다르겠지만) 이러한 정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게임 주제전은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기에 일단 《게임사회》라는 전시는 주목할 만하다. Read More 게임과 예술 :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문에 현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 게임이 일정한 미적인 속성을 체계적이고 인공적으로 구성한 형식이 아니면 무엇일까. 너무나 당연했다. 사진과 영화가 아날로그 기술적 혁신에 대응하는 형식이었다면, 게임은 디지털 혁신에 대응하는 고도의 예술형식이라고 보는 게 당연하고 타당했다. “모든 예술형식의 역사를 보면 거기에는 위기의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는 이들 예술형식은 변화된 기술수준, 다시 말해 새로운 예술형식을 통해서만 비로소 아무런 무리 없이 생겨날 수가 있는 효과를 앞질러 억지로 획득하려고 한다. Read More 게임과 예술: 게임 플레이 경험을 깊이있게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합리적인 대답을 기대한다면 생산적일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게 되는 “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에 대한 사유가 게임을 예술 또는 비예술로 분류하는 것보다 더 나은 접근 방법임을 주장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Read More 게임으로 관객에게 말걸기 -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관람기 필자는 게임제너레이션으로부터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에 대한 게임전문가 관점에서의 리뷰"를 요청받았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게임전문가도, 미술애호가도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잘못 주름을 잡았다가는 큰 코를 다칠 게 뻔했다. 하지만 북서울미술관은 필자의 집 앞이었던 데다, 고료의 유혹이 상당했다. 그렇게 흔쾌한 척 '퀘스트'를 수락했지만, 이 주제에 적당한 '레벨'인지 자문한다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Read More 게임이 대체 왜 예술이 되어야 할까?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둘러싼 이야기들 C. 티 응우옌의 『게임: 행위성의 예술』은 게임에 대한 미학이자 윤리학이다. 그는 우리가 게임을 단지 이기기 위해서만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한된 행위성(agency)의 조건을 게임 플레이를 하는 동안 스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는 분투형 플레이(striving play)가 가능하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핵심에 있다. 우리는 게임 디자이너가 만들어 놓은 규칙과 환경, 그리고 행위성이라는 형식 안에서 머리 싸매는 고투(struggle)를 즐기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Read More 게임적 리얼리즘: "제3의 시간"과 다이성(多异性)의 순간 리얼리즘의 탄생은 근대 이래 과학주의의 확산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문화의 다양성, 사회적 상호작용의 게임화는 리얼리즘과 과학주의 간 긴밀한 관계를 위협하고 있고, 이로 인해 우리는 리얼리즘이란 것에 대해 다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즈마 히로키(東浩紀)의 ‘게임적 리얼리즘(ゲーム的リアリズム)’ 이론은 그 안에 이론적 균열과 논리적 모순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로하여금 리얼리즘 내러티브라는 문제와 침묵하는 독자를 자율적인 행위자로 바꾸는 게이머 문제를 사고하도록 해주었다. Read More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위한 제노바 첸의 작업들 게임이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전시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듯, 게임을 만드는 것 역시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술 매체로서 게임,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 게임을 예술 매체로 취급하는 새로운 시각과 함께 예술가로서 게임 제작자들의 존재감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Read More 미술관에 놓인 게임: 게임은 미술관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한글로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영아적 판타지가 위협받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어Μουσείον을 무세이온이라고 표기해야 할 때다. 오랜 옛날 무사이Μουσαι의 신전을 부르던 이름이다. 갱스터 근성을 타고 태어난 로마인들이 그곳을 참숯으로 만들었다. 파편처럼 흩어진 여러 기록에 따르면, 무세이온은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을 거느린 거대기관으로, 세상의 온갖 학자들이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싸면서 각종 연구를 자행하였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보존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Read More 박물관/미술관 속의 게임들과 그 역사 최근 들어 미술관에 게임이 전시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게임사회” 전시나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와 같이 게임을 소재로 한 전시가 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들은 단순히 그 오브제의 집합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작품들이 연계되어 만드는 다양한 맥락을 통해 그 작품의 의미는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Read More 예술이 되기 전에, 현실의 주인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오로지 게임애호가일 뿐인 입장에서 게임과 예술에 대해 생각하면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외침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다들 아는대로 이러한 클리셰적 항변은 예술과 게임의 본질이나 실제로 게임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 등을 따지는 것과는 큰 관계가 없다. ‘게임을 하는 나’에 대한 정당화 시도가 핵심이다. Read More 죄책감 3부작의 죄책감은 어떻게 발현되는가 한국의 게임개발자 somi는 자신의 작품 중 ‘레플리카’, ‘리갈 던전’, ‘더 웨이크’ 세 작품을 묶어 스스로 ‘죄책감 삼부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일련의 시리즈로 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세 작품에는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일련의 의도가 들어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somi는 자신의 게임을 통해 스스로 밝혔듯이 일련의 메시지를 게임이라는 매체의 방법론으로 표현하고자 했고, 하나의 시리즈로 명명된 그의 작품들 속에서 우리는 한 작가의 의도와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얻는다. Read More

  • 심사위원장 총평

    제 2회 게임 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는 총 51편의 원고가 투고되었다. 작년에 비해 수적으로는 다소 줄어들었으나, 원고의 전반적인 질적 수준과 비평의 주제 및 소재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큰 진전이 있었다. < Back 심사위원장 총평 13 GG Vol. 23. 8. 10. 제 2회 게임 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에는 총 51편의 원고가 투고되었다. 작년에 비해 수적으로는 다소 줄어들었으나, 원고의 전반적인 질적 수준과 비평의 주제 및 소재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큰 진전이 있었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이 각 원고에 대한 개별 평가를 하고, 이를 기반으로 집단 토론을 거쳐 7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작년과 달리 대상, 우수상 등의 위계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당선작에 대한 간단한 심사평을 접수번호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게임과 행위 원리"는 <핫라인 마이애미>의 서사와 숨겨진 결말을 통해 게임 플레이의 근본적 목적을 질문하는 글이다. 게임의 본질을 잘 이해한 작가가 특정 개념에 얽매이지 않은 채 창의적이고 참신한 논의를 전개하였다. 논리가 다소 거친 면은 있으나, 글의 재미와 완결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모바일 리듬 게임에서 '엄지러'를 선택하기"는 리듬게임 장르의 엄지러 규범의 의미를 파헤치는 흥미로운 비평문이다. 독창적 아이디어가 돋보였고, 가독성도 뛰어난 글이다. 다양한 예시와 논의가 결론에서 집약되는 논리적 수렴이 다소 미흡하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1993년 게임 <시스템 쇼크>의 오디오 로그를 차분하게 분석한 "오디오 로그의 문학적 요소와 방법론"은 심사위원 전원이 별 이의 없이 당선작으로 선정한 수작이다. 독창성과 문장력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고, 무엇보다 저자가 가진 문제의식이 잘 드러난 비평문이다. "모순된 세계의 충돌을 '다시' 그릴 때는"은 <셜록 홈즈 디 어웨이큰드>의 리메이크작 분석을 통해 러브크래프트와 셜록 홈즈의 만남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치밀한 관찰과 탄탄한 논리로 풀어나갔다. 성실함이라는 비평가의 덕목이 돋보였고, 문장력 또한 뛰어났다. "현 시대의 택티컬 FPS 게임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Ready or Not 비평을 중심으로"는 다른 투고작들과는 다소 결이 다른, 어쩌면 게임 비평의 영역을 확대하려 시도한 글이다. FPS 게임에 대한 장르 비평이자 게임비평을 통한 사회비평이기도 한 이 글은, 다소 힘이 떨어지는 결론에도 불구하고 저작 의도의 차별성을 높이 평가할 수 있었다. 게임 공간의 한계에 대한 호기심을 훌륭한 비평으로 승화시킨 "최종장과 변방_비디오 게임 속 공간적 한계의 실감"은 무엇보다 게임에 대한 저자의 지적 관심과 애정이 부각되는 글이다. 다소 장황하고 나열적 문체라는 점이 아쉽기는 했으나, 논지 전개의 발상이 흥미롭고 여러 게임을 넘나드는 횡단적 분석의 장점이 잘 살아난 비평문이라 평가하였다. 마지막으로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는 게임 텍스트나 수용자 분석이 아닌 생산과정 비평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내용적으로 다소 평이하고 현장과의 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유용한 개념의 활용이나 적절한 레퍼런스 등을 높이 평가하였다. 무엇보다 저자의 독창적 시선이 신선했다. 이번 공모전에 출품한 저자 51명은 모두 우리나라의 척박한 게임비평 씬을 어떻게든 일궈보려는 게임 애호가이자 게임 플레이어이자 게임 연구자들이라 생각한다. 이들의 애정이 여러 문을 거치고 턱을 넘고 다리를 건너 언젠가는 우리나라 게임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특히 수상에 영예를 안은 일곱의 새내기 비평가들은 당선의 기쁨이 이력서의 한 줄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게임에 대한 애정을 비평문 집필로 형상화하는 노력을 꾸준하게 지속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2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윤태진 심사위원 명단 윤태진 (심사위원장.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김상우 (더플레이 대표. 게임평론가)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명규 (게임웹진 기자)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교수)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세대학교 교수) 윤태진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20년 이상 미디어문화현상에 대한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했다. 게임, 웹툰, 한류, 예능 프로그램 등 썼던 글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들”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게임문화연구』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고, 요즘은 《연세게임·이스포츠 연구센터(YEGER)》라는 연구 조직을 운영하며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게임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게임과 시신경제 (Necronomics)

    시신경제 (Necronomics)는 아킬레 음벰베 (Achille Mbembe)의 시신정치 (Necropolitics)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이다. 시신정치는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생명정치 (Biopolitics)가 권력이 생명의 영역을 지배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동시대의 현실은 죽음을 단지 생명권력 (Biopower)을 위한 수단으로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 Back 게임과 시신경제 (Necronomics) 22 GG Vol. 25. 2. 10. * <엘든 링>의 대표적 룬 노가다 장소 시신경제 (Necronomics)는 아킬레 음벰베 (Achille Mbembe)의 시신정치 (Necropolitics)에서 영감을 받은 개념이다. 시신정치는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의 생명정치 (Biopolitics)가 권력이 생명의 영역을 지배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동시대의 현실은 죽음을 단지 생명권력 (Biopower)을 위한 수단으로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1] . 즉, 생명정치의 관점에서라면 제도적 폭력이나 전쟁이 발생시키는 죽음은 결과적으로 생명권력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는 장치여야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미 죽음으로 권력이 이양되었고 따라서 생명보다도 죽음 그 자체의 극대화가 목표라는 것이 시신정치의 전망이다 [2] . 시신경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생명이 가치를 띠고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곧 재화가 되는 체계에 주목한다. 즉, 살아있는 인간의 목숨보다 죽은 뒤 그 신체의 교환 가치가 더욱 높게 매겨지는 현실인 것이다. 게임 속에서 시신경제는 이미 가장 보편적인 체계 중 하나로 기용되고 있다. 적과의 전투를 주 플레이 내용으로 삼는 액션 게임에서 적의 죽음은 경험치뿐만 아니라 화폐의 축적에도 계산된다. 우리는 흔히 ‘노가다 (farming)’라는 어휘로 불리는, 획득 화폐의 극대화를 위한 적 살해의 최적 효율 전략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보통 적 살해 자체가 금전의 획득을 보장하지는 않고 시체의 인벤토리를 뒤져 적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금품을 노획하거나 장비를 장물로 팔아넘기는 행위를 통해 부차적으로 경제 활동을 일삼긴 한다. 그러나 대표적으로 프롬소프트웨어 (FromSoftware)의 게임들과 같은 경우엔 추가적 노획 행위 없이도 죽음 그 자체가 화폐의 획득을 보장한다. <소울> 시리즈에서는 ‘소울’의 형태로, <엘든 링>에서는 ‘룬’의 형태로, <아머드 코어> 시리즈에서는 현상금의 형태로 보상이 들어온다. 특히 소울 (soul)은 말 그대로 영혼 그 자체로, <소울> 시리즈에선 플레이어가 죽인 자의 영혼을 재화로 획득하며 사용한다. <엘든 링>의 룬은 <소울> 시리즈의 보상 시스템을 그대로 계승함에 따라 조금 덜 직관적으로 되지만, 세계관 내 우주적 존재의 ‘축복’이라는 점에 따라 존재와 생명에 아주 핵심적인 요소를 살해 행위에서 얻는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이다. <아머드 코어>에선 보상 금액의 형태보다 그것이 사용되는 방향이 시신경제에 접촉해 있는데, 현상금은 전부 주인공 파일럿 신체의 연장이나 마찬가지인 작중 기체 AC (Armored Core)의 부품들을 구매하고 강화하는 데에 투자된다. 특히 <아머드 코어 VI 루비콘의 화염>에서 주인공은 몸을 오로지 AC 탑승 및 조종에만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개조 받은 ‘강화인간’으로, 대신 그 외의 모든 신체 기능을 희생하는 수술의 부작용으로 인해 ‘뇌가 익어버려’ 기체 바깥에선 제대로 된 생활이나 거동을 영위할 수 없다. 따라서 작중 주인공이 살해하는 적들은 현재 사실상 그의 진정한 신체라고 말할 수 있는 AC의 활동 역량을 확장하는 금액으로 환산되고, 종국에는 재수술을 받아 AC 바깥에서도 그 자체로 활동할 수 있는 몸을 되찾는 것이 목적이다. 게임 내에서 정확히 어떤 연유에서 이름도 없는 주인공 강화인간 ‘C4-621’이 그런 극단적인 수술을 받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지만, 결국 <아머드 코어 VI 루비콘의 화염> 내에서 플레이어가 임하는 모든 전투와 파괴, 살해의 용도는 저당 잡힌 주인공의 신체를 되찾기 위해 채무 를 상환 하는 과정으로 귀결된다. 신체를 저당 잡는 튜토리얼 채무는 시신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 중 하나로 ‘죄와 벌’이라는 인간 법과 도덕 세계의 발생지이다. 니체는 독일어로 ‘죄 (Schuld)’가 ‘채무 (Schulden)’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 죄에 대한 벌은 언제나 등가물 을 가정하고 죄인을 고통 스럽게 해서라도 실제로 배상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 극히 경제적인 법을 각인시키기 위한 기억술 의 원형으로 고문을 꼽는다 [3] . “기억 속에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달구어 찍어야 한다: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것 만이 기억에 남는다. (중략) 인간이 스스로 기억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길 때, 피나 고문, 희생 없이 끝난 적은 없었다. 가장 소름끼치는 희생과 저당, 가장 혐오스러운 신체 훼손, 모든 종교 의례 가운데 가장 잔인한 의식 형태 – 이 모든 것의 기원은 고통 속에 가장 강력한 기억의 보조 수단이 있음을 알아차린 저 본능에 있다. (중략) 예를 들면 돌로 쳐 죽이는 형벌, 수레로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 말뚝으로 꿰뚫어 죽이는 형벌, 말로 찢어발기거나 밟아 죽게 만드는 형벌, 범인을 기름이나 포도주로 삶는 형벌, 인기 있었던 살가죽 벗기는 형벌, 가슴에서 살점을 저며내는 형벌, 그리고 또 범죄자에게 꿀을 발라 이글대는 태양 아래 파리떼가 우글거리게 놓아두는 형벌 등 고대 독일의 형벌을 생각해보라.” [4] 그러므로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규칙이라는 법을 전부 제대로 각인시켜야만 하는 의무를 가진 튜토리얼에서 가장 효율적인 예시로 시신경제가 등장하는 것 또한 우연은 아니리라. 2007년도 게임 <어쌔신 크리드>에선 주인공이 튜토리얼 이후 계급을 강등당하고 가지고 있던 모든 장비를 빼앗기는데, 어째선지 전투 및 이동 기술 등 각종 다양한 신체 능력마저 덩달아 잃어버리고 만다. 마찬가지로 2016년작 <용과 같이: 극>의 튜토리얼에선 가장 강한 ‘도지마의 용’ 전투 스타일을 모두 갖고 시작하지만 정작 튜토리얼이 끝나고 난 뒤엔 주인공이 10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터라 해당 신체 기술들을 전부 잊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이 게임들에서 계급과 인연 등을 차차 되갚아가며 다시 찾아야만 한다. 플레이어 캐릭터인 주인공은 분명 이 모든 신체 역량들의 원래 소유주였음에도 불구하고 튜토리얼이 끝난 직후 어느새 몸의 기능들을 저당 잡힌 채무자로 전락하고 만다. 이때 캐릭터의 신체는 외적인 시각에선 훼손되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기능들이 ‘죽은’ 것이다. 물론 이는 기본적으로 튜토리얼에서 해당 게임 중 플레이 가능한 능력의 최대치를 맛보게 해주고 얼마만큼의 액션과 재미가 가능한지 미리 알려주려는 연출 전략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에게 주인공의 신체를 ‘죽여’ 앞으로 하나하나 갚아 나가야 하는 채무의 대상으로 각인시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게임 내 규칙에 자연스럽게 복속시킬 것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죽은 신체의 교환 가치 * <폴아웃: 뉴 베가스>에서 잘라 온 머리가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현상금을 깎는 다트리 소령 (Major Dhatri) 채무자는 자신이 되갚을 것이라는 약속에 신용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자신이 한 약속의 진지함과 성스러움을 보증해주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는 상환을 의무나 책임으로 자신의 양심에 새기기 위해서, 계약의 효력은 그가 상환하지 못할 경우 채권자에게 그가 그 외에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 그 밖에 그의 권한에 있는 것을, 예를 들면 자신의 육체나 혹은 자신의 자유, 또는 자신의 생명 역시 저당 잡히는 것이다. 더구나 특히 채권자는 채무자의 육체에 온갖 종류의 능욕과 고문을 가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부채 액수에 적합해 보이는 크기만큼 그의 육체에서 살로 도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곳곳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사지 하나하나와 신체의 각 부분을 정확하게, 부분적으로는 무서울 정도로 세세하게, 합법적으로 가격을 산정해왔다.” [5]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채무자가 자신의 신체를 저당 잡힐 때 자기 자신 외에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내놓고 있는 것이란 점이다. 즉, 니체의 채무법에서 채무자의 신체는 채무자 그 자신이 아니며 철저히 분리된다. 따라서 저당 잡힌 몸은 그 순간 생명을 가진 인간이 아닌 시체로서 죽은 물건이 된다. 시신경제에서 시체를 “돈벌이가 되는 물건”으로 만드는 건 죽음 그 자체이다 [6] . 즉, 단적으로 말해 시신경제는 장기매매라는 명백한 형태의 신체 부위 교환 형태를 굳이 띠지 않더라도 죽음 그 자체로 재화를 교환한다. 1755년 4월 24일 매사추세츠 영국령 식민지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머릿가죽 하나당 70파운드의 현상금을 달았다 [7] . <폴아웃 3> (2008)에선 바로 매사추세츠에서 대략 683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수도 황무지에서 손가락 하나당 5에서 10병뚜껑으로, 귀 하나당 10에서 15병뚜껑으로 보상받는다. <폴아웃: 뉴 베가스> (2010)에선 매사추세츠에서 4348킬로미터 떨어진 모하비 황무지에서 머리 하나당 250병뚜껑을 보상받는다. 특히 <폴아웃: 뉴 베가스>의 머리는 해당 부위가 파손되었을 시 가격이 50병뚜껑으로 줄어든다. 단순히 죽음과 부위의 차원에 가격을 매기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신체의 보존도마저 산정하는 것이다. “채무자에게 가해지는 형벌에서 채무의 상환량은 단순히 채무자가 입는 고통만이 아니라 채권자가 느끼는 쾌감까지 계산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고통을 보는 것은 쾌감을 준다.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더욱 쾌감을 준다.’” [8] 게임 속 시신경제는 게임 내에서 금전적 형태로 보상을 제공하지 않을 때조차 신체의 죽음을 교환한다. 정확히는 오히려 게임 속 인물들의 신체에 아무런 부차적 가치가 부여되지 않았을 때만 작동하는 시신경제가 있다. 바로 죽음과 웃음의 교환이다. 가장 잔인한 고어 액션 게임에서마저 적의 죽음은 플레이어가 구가하는 살해 행위에서 느낄 수 있는 역동적 쾌감 이상의 보상을 항상 제공한다. 최소한 얼마만큼 잔인하게 더 많은 적을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죽였는지를 추산하여 점수나 등급으로라도 보여주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게 일반적으로 게임이 시신경제를 작동시키는 방법이지만 그마저도 없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신체를 훼손시키도록 만드는 게임들이 바로 고어 코미디 게임들이다. 2008년 플래시 게임 <해피 휠스 (Happy Wheels)>부터 2019년 <피플 플레이그라운드 (People Playground)>, 2024년 <헬다이버즈 2>까지,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래그돌 (Ragdoll) [9] 고어 게임들은 공통적으로 플레이어 캐릭터와 적의 구분 없이 그 어떤 죽음에도 고집스러우리만치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는 경직된 래그돌 신체가 웃음을 자아내는 원리처럼 생명적인 것에 덧붙여진 기계적인 것 이라는 희극의 기본 명제에 부합하도록 만들기 위해 해당 캐릭터들의 신체에서 죽음이 응당 가져야만 할 의미마저 의도적으로 박탈하는 것이다 [10] . 심지어 적의 죽음에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플레이어 캐릭터의 죽음에 이렇다 할 페널티마저 크게 부여되지 않아, 죽이는 행위뿐만 아니라 죽는 행위마저 권장된다. 따라서 모든 신체는 지킬 이유도 없고 언제든지 교체되어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양陽의 가치도 음陰의 가치도 아무 의미도 없이 날아다니는 사지들, 육편들, 내장들은 피아의 구분도 없고 재화로서도, 그리고 당연히 인격으로서도 기능하지 않는다. 다만 그 ‘생명으로서 응당 있어야 할 것들이 없음’이라는 성질이 래그돌 고어 게임들 속 죽음에서 발견되고 결국 죽음은 웃음이라는 쾌락과 교환되며 역시나 또 다시 시신경제를 작동시키는 행위 목적이 되는 것이다. 하나의 장르로서 시신경제: 과잉과 음의 미학 * <크루얼티 스쿼드>의 플레이 화면 지금까지 다룬 시신경제는 장르를 불문하고 게임이 신체를 기용하는 방식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체계로서 등장했지만, 대주제이자 장르로서 이 개념에 투신하는 게임이 있다. 앞서 언급한 프롬소프트웨어의 게임들도 세계관 전반을 시신경제가 감싸고 있고, <사이버펑크 2077> (2022)의 세계 속에서도 직접적으로 편재한다. 우선 장기매매가 주 생계 수단인 ‘스캐빈저 (Scavengers)’라는 집단이 등장하고 <사이버펑크 2077>의 배경 ‘나이트 시티 (Night City)’ 사람들은 주인공과 NPC를 막론하고 거의 모두가 <아머드 코어> 시리즈에서 그러했듯이 ‘일을 하기 위한 몸을 사기 위해 일을 한다.’ 나이트 시티에선 강화인간의 수준을 넘어 모두의 일상적 신체 자체가 유기체보다는 무기물의 영역으로 대거 이동한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거진 인형人形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모습을 유지하고는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시신경제를 작동시키는 잔인함, 잔인함을 보장하는 인격은 신체의 죽음에 유지된다. 하지만 <사이버펑크 2077>조차 주제이자 내용으로서만 시신경제를 다룰 뿐 매체적 차원에서는 시신경제를 딱히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려한 그래픽의 AAA게임의 정반대편에서 ‘최악’, ‘최흉’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고 감히 말해도 어폐가 없을 <크루얼티 스쿼드> (2021)의 경우에는 게임의 모든 면이 전적으로 시신경제를 말하고 있다. 마치 누군가가 와서 망막에다가 직접 형광펜을 칠하고 썩은 찰흙을 덕지덕지 바르는 듯한 고채도 고대비 저-폴리곤 (Low-Polygon)의 끔찍한 비주얼과 누군가가 사용 중인 화장실을 그대로 공사하는 중 장비가 망가진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는 듯한 극악스러운 음향은 처음 마주했을 시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게임을 일정 시간 이상 플레이하면 진짜로 시청각적으로 고통스럽기 시작하게 되는 것을 넘어 두통마저 느껴진다. 메뉴 버튼의 기괴한 아이콘들은 정확히 뭐가 뭐를 가리키는지 눌러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나아가 듣도 보도 못한 HUD 프레임이 존재하는데, 다시 말해 정말로 1인칭 화면의 테두리를 상시 뒤틀린 이미지가 덮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레임의 상부 가운데에는 게임의 제목인 ‘CRUELTY SQUAD’가 계속 떠 있다. HP는 바의 형태도 아니고 게이지의 형태도 아니고 알 수 없는 방울-뭉치-덩어리의 형태로 정말 불필요하게 크게 화면에 부유한 채 꿈틀거리며 그 위엔 마찬가지로 생명 (LIFE)이란 글자가 굳이 쓰여 있다. 총알과 탄창 개수를 가리키는 숫자 사이에는 어째선지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고 총알을 발사하거나 무기를 바꾸는 등의 행위를 할 때에 이 얼굴은 전혀 알 수 없는 이유로 회전한다. 즉, 이 게임은 그래픽, 음향, UI를 불문하고 전력을 다해 실용성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총을 장전할 때 R키와 같은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마우스를 위아래로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는 기가 찰 지경이다. 문제는 이 흉물스럽고 황당한 디자인이 게임 속 극대화된 기업 자본주의 바이오펑크 디스토피아 사회의 끔찍한 동시에 우스꽝스러운 면면과 더할 나위 없이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디스토피아는 과장되어 있기는 해도 당장 아무 인터넷 플랫폼이나 들어가 봐도 맞닥뜨릴 수 있는 주식 및 자기 계발 신봉자들처럼 NPC들이 ‘CEO 마음가짐 (CEO Mindset)’을 중언부언 읊어대고 펀코팝 (Funko Pop)의 패러디 천코팝 (Chunkopop)이 등장하는 등 작금의 현실이 지배받고 있는 체제와 크게 다르지도 않으므로 게임 속 세계가 어느 지점까지 ‘있는 그대로’ 생긴 것인지, 아니면 그 세계에 살며 해리되고 분열된 주인공의 정신 상태에 이러한 형태로 인식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이는 또한 현실에서도 개인들의 세계 인식 자체에 던질 수 있는 이미 고루한 실존적 질문이다. 구태여 인식과 세계의 현실을 분리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애초에 분리가 가능하지도 않을 만큼 이미 주인공은 정신뿐만 아니라 몸까지 철저히 뒤틀려 있다. 그의 두개골에는 총이 달려 있고 등에서는 가속을 위한 액체가 분비되며 내장은 밧줄처럼 사용된다. 그의 몸에는 살 위에 더 많은 살이, 내장 위에 더 많은 내장이 부착되어 있으며, 임계점을 넘은 생명 공학 그 자체가 구토하고 있다. 주인공은 회사 청산을 주 업무로 맡는 보안 업체 ‘크루얼티 스쿼드’의 청부업자로 <아머드 코어>, <사이버펑크 2077>의 연장선에서 번 돈으로 또 자신의 신체를 개조하고 개조한 신체로 더 많은 돈을 번다. 죽음이 삶을 위해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죽음을 위해 매진된다. 게임을 켜면 짧게 지나가는 도입 장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삶에의 권위... (The Authority on life...)” 그리고 주인공의 수입원은 암살 의뢰의 보상이기도 하지만 임무 수행 중 암살 대상 외에 아무런 처벌도 손해도 없이 아주 자유롭게 죽일 수 있는 민간인들의 장기를 수확해 실시간으로 암시장에서 거래하는 것 또한 포함된다. 게임 내 실시간 시장에선 주식과 장기가 나란히 거래되며 노골적으로 시신이 경제의 부富라는 것을 가리킨다. 나아가 말 그대로 시신경제에서 죽음이 최종적이며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발표하기 위해 주인공은 고용주를 죽이고 신마저 죽일 수 있다. 그리고 ‘생의 요람 (Crade of Life)’에 도달해 그 자신이 신이 되는 결말에선 조르주 바타유 (George Bataille)의 『저주받은 몫』을 직접 인용하며 도대체 그래서 시신경제는 왜 죽음을 추구하며 작동하는 기계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지구 표면에서 에너지의 작용들이 결정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 있는 유기체는 원칙상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 (부)를 수용한다. 이러한 과잉의 에너지는 어떤 체계 (예를 들어 어떤 유기체)의 성장에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체계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되면, 또는 에너지의 과잉이 그 성장에 전적으로 흡수될 수 없다면, 자발적이든 아니든, 영광스러운 방식으로든 아니면 파국적인 방식으로든, 필연적으로 그러한 과잉은 이득 없이 상실되고 소비되어야 한다.”[ 11] 즉, <크루얼티 스쿼드>는 생의 과잉과 포화가 곧 죽음이라는 그 자체로서는 음의 가치를 경제의 방향타로 잡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시신 경제에서 부富와 부腐는 하나이다. 모든 사회가 아무런 의심 없이 성장을 테제로 삼고 있는 현실과 상승 지향의 영적 전파가 시신경제를 이 땅에 소환하는 의식의 제단이다. <크루얼티 스쿼드> 게임으로서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감으로써, 효율, 실용, 세련, 편안에 반대되는 음의 가치를 매체의 모든 자원을 다해 표현함으로써 시신경제의 현실을 고발한다. [1] Achille Mbembe. “Necropolitics.” Public Culture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3), vol. 15, no. 1, pp. 11–12. [2] Ibid., pp. 39-40. [3]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서울: 책세상), 402~406쪽. [4] 위의 책, 400~401쪽. [5] 위의 책, 404쪽. [6] 장-피에르 보. 『도둑맞은 손』 (서울: 이음, 2019), 50쪽. [7] Massachusetts. Acts and Resolves, Public and Private, of the Province of the Massachusetts Bay (Boston: Wright & Potter, 1869-1920), vol. 15, p. 308. [8] 프리드리히 니체. 앞의 책, 407쪽. [9] 래그돌은 본래 헝겊 인형이라는 뜻으로 게임 속 물리 엔진 상에서 관절에 힘이 없이 축 늘어진 채 허우적허우적 휘둘리는 신체 모델들을 일컫는다. [10] 앙리 베르그송. 『웃음』 (파주: 도슨트, 2022) 37쪽. [11] 조르주 바타유. 『저주받은 몫』 (파주: 문학동네, 2022), 29~30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호르몬 일지』와 『게임 코러스』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 낚시스피릿의 별매 낚시 컨트롤러로부터 본 게임 경험의 확장

    전세계에서 게임을 하는 입력 인터페이스로 가장 많이 이용 되는 것은 무엇일까. 몇 년 전이라면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은 터치 인터페이스 역시 적지 않기 때문에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 말할 수 는 없겠다. 다만 터치인터페이스 위에 구현되어있는 가상 패드까지 고려하면 현재에도 게임 입력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입력 인터페이스는 게임 패드일 것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보았을때의 경향이며, 한국에서는 가정용 게임기보다 개인용 컴퓨터를 통한 게임이 더 익숙하기 때문에 흔히 키마라고 부르는 키보드 마우스 컨트롤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 Back 낚시스피릿의 별매 낚시 컨트롤러로부터 본 게임 경험의 확장 11 GG Vol. 23. 4. 10. 전세계에서 게임을 하는 입력 인터페이스로 가장 많이 이용 되는 것은 무엇일까. 몇 년 전이라면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은 터치 인터페이스 역시 적지 않기 때문에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 말할 수 는 없겠다. 다만 터치인터페이스 위에 구현되어있는 가상 패드까지 고려하면 현재에도 게임 입력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입력 인터페이스는 게임 패드일 것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보았을때의 경향이며, 한국에서는 가정용 게임기보다 개인용 컴퓨터를 통한 게임이 더 익숙하기 때문에 흔히 키마라고 부르는 키보드 마우스 컨트롤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게임패드는 지금 보기에는 게임을 하기에 매우 당연한 도구이고, 게임을 나타내기 위한 아이콘으로도 흔하게 사용된다. 많은 게임들이 게임패드를 지원하며, XBOX용 패드가 윈도우와 매우 잘 호환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 게임은 게임패드에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합니다.” 같은 안내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이 처음부터 게임패드로 게임을 즐겼던 것은 아니다. 굳이 〈둘을 위한 테니스tennis for two〉 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신호탄을 쏜 〈퐁Pong〉은 다이얼 형태의 동그란 컨트롤러가 달려있었다. 어떤 아케이드 게임들은 조이스틱이 달려있기도 했다.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한 스틱에서 온 컨트롤러 형태는 기계식 게임기를 거쳐 전자 아케이드 게임에서도 그대로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해 자리 잡았다. 게임 개발자들은 이 스틱으로 굳이 비행기만 조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2차원 평면에서 움직여야 하는 모든 것들을 스틱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번째 가정용 게임기로 여겨지는 마그나복스의 컨트롤러는 흰색 직육면체에 3개의 다이얼이 달려있는 형태였으며 아타리가 가정용으로 제작한 TV퐁은 게임기에 다이얼이 달려있는 형태였다. 이러한 다이얼이 달린 컨트롤러는 아타리가 만든 가정용 게임기인 아타리 2600에서 패들paddle 이라 불리는 전용컨트롤러 형태가 일반적으로 되면서 회전을 위한 컨트롤러를 칭하는 놉(knob), 휠(wheel), 다이얼(dial)대신 패들(paddle)이란 단어가 일반적인 호칭으로 자리잡았다. 기존 입력장치의 이름이 아닌 탁구채를 뜻하는 패들이 대표적인 이름으로 이유는 해당 컨트롤러가 탁구를 모사한 퐁을 위한 컨트롤러 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타리 2600의 컨트롤러중에 가장 대중적이고 일반적이었던 것은 조이스틱이었다. 게임기에 기본으로 포함되어있는 이 조이스틱은 경쟁 게임 사들의 조이스틱 보다도 가장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직관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기는 아타리의 조이스틱을 가장 초기의 게임에 대한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 아타리 2600용 컨트롤러 미국 기업들이 과도한 경쟁 때문에 스스로 가정용 게임시장에 대한 매력을 못느껴 시장을 포기하는 동안 일본의 닌텐도는 패미콤을 준비해서 전 세계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차지했다. 자사의 게임&워치의 동키콩에서 사용한 방향키(D-pad)를 이용한 게임패드는 닌텐도 패미콤의 게임패드에도 들어갔다. 이 입력방식의 변화는 가정용 게임기의 입력방식의 가장 큰 패러다임 변화중 하나일 것이다. 방향키와 B,A 버튼이 달린 (그리고 스타트와 셀렉트버튼이 있는) NES의 게임 패드는 매끈한 플레이스테이션의 듀얼쇼크가 나오기 전까지 아타리의 조이스틱에 이어 게임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 북미 NES용 컨트롤러 닌텐도는 패미콤의 출시와 함께 자사의 서드파티를 강력하게 관리했다. 미국 게임기 제작사들의 부진을 소프트웨어 관리에 실패한 것으로 보았던 닌텐도는 패미콤으로 출시되는 게임들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미컴 용으로 제작하는 게임들은 대부분 게임패드에 최적화할 수 밖에 없었다. 오리사냥 같이 아주 특수한 닌텐도 전용 광선총(재퍼 - 일본에서는 그냥 총(Gun)으로 발매되었다. 모양 역시 그냥 리볼버 권총에 가까웠다.)을 지원하는 총 컨트롤러나 R.O.B나 파워글로브 같이 대중적으로 자리잡는데는 실패한 컨트롤러만이 게임패드와 차별화된 플레이를 제공했다. 패미콤 이후 가정용 게임의 컨트롤은 게임패드르 완전히 굳어졌다. 아케이드에서는 여전히 아케이드만의 독특한 조종 방식을 가진 게임들이 나왔지만, 이러한 아케이드용 게임들이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되는 경우에도 대부분은 게임패드에 최적화된 조종 방식으로 변경되었으며 추가로 부가장치가 나올 때가 있었지만 그 가격은 대부분 게임 보다 비쌌고 가끔씩은 게임기보다도 비쌌다. 방향키와 두개의 버튼만 존재하던 게임패드는 게임기의 세대가 거듭되며 발전하면서 지금은 방향키와 조이스틱 두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4개의 입력버튼과 범퍼로 불리는 상단 좌우에 두개씩 위치한 버튼들 스타트 버튼과 옵션 버튼. 그리고 조이스틱을 버튼으로 활용하는 L3, R3 까지 10개의 버튼과 3개의 축입력장치가 거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현재는 대부분 자이로를 통한 6축센서와 함께 게임기에 따라 터치등의 추가 인터페이스가 들어가있기도 하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게임을 시작하기에는 과거의 게임기 비해선 복잡해졌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익숙해지면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의 게임 패드는 게임을 오래 할 수 있는데 도움을 주며, 게임 안의 캐릭터를 설명서를 보지 않더라도 대충 이전에 했던 감각으로 조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익숙함은 게임패드에 어울리지 않는 게임들이 거실에 자리잡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여전히 키보드와 마우스가 게임패드보다 편한 실시간 전략 장르나 AOS 같은 장르의 게임은 가정용 게임기보다는 컴퓨터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게임기와 컴퓨터가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게임패드와 키보드 마우스이외의 컨트롤러는 한정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주로 시뮬레이션 장르이다. 드라이빙 시뮬레이션과 플라이트 시뮬레이션 장르를 위한 주변기기인 드라이빙 휠과 플라이트스틱은 꾸준히 발매되고 있으며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각 장르의 마니아에게는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필수로 갖추어야 하는 장비로 인지되고 있다. 드라이빙휠의 경우는 특히 기능에 따라 장비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으며 실제 운전할 때 처럼 운전 상황에 따라 운전대에게 힘을 전달하는 포스피드백 기능이 있는 드라이빙 휠은 특히 더 비싼 가격이며 이를 위한 거치대나 시트. 좀 더 사실적인 게임을 위한 사람들에게는 시트를 움직여주는 모션시뮬레이터등의 장비를 더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러한 부가장비의 경우 게임값을 넘어서 가끔은 컴퓨터 혹은 게임기 값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기는 힘들며, 이러한 게임들 대부분 게임 패드로도 게임을 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닌텐도 Wii 가 본격적으로 자이로와 가속센서를 사용하는 컨트롤러를 사용하면서 컨트롤러에 제한된 게임 플레이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스포츠게임이 있겠지만 그러한 변화를 하나를 언급하자면 기존에 존재하던 낚시 게임이 이러한 컨트롤러 특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스포츠로서의 낚시는 아무래도 “손맛”이라 부르는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아케이드를 제외한다면 지금으로선 실제 물고기의 움직임을 포스피드백으로 전달하는 낚시대 컨트롤러가 대중화된 적은 없다. 적어도 진동 덕분에 물고기가 미끼를 무는 부분은 비단 6축을 사용하지 않는 게임이라 하더라도 진동기능이 있는 컨트롤러를 사용한다면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동물의 숲에서의 낚시는 컨트롤러 진동의 특성을 잘 살려서 정품 컨트롤러가 아니면 그 느낌을 충분히 느낄수 없다. 컨트롤러를 흔들고 돌리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낚시 게임에 릴을 감는 행위를 컨트롤러를 돌리는 것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 이 기능은 옵션이다. 손목의 건강과 함께 선택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 오락실은 점차 사라져가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극장 근처의 오락실이나 혹은 키즈카페 앞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기계가 있다. * 쇼핑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딥 시 파티 딥 시 파티라는 이 게임은 국내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사실은 2012년에 일본에 출시된 반다이 남코의 〈낚시 스피릿〉과 흡사한 게임이다. 6인 까지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점은 비슷하긴 하지만 컨트롤러가 매립되어있어서 미끼를 던지는 것도 버튼으로 해야하며, 스크린이 1개라는 차이점이 있다.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반다이 남코의 〈낚시 스피릿(Ace Angler〉은 현실 낚시 보다는 일본의 전통축제에서 볼 수 있는 금붕어낚시 등의 영향이 더 큰 편이라 낚시 시뮬레이션이란 장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 로드, 플로트, 릴등을 선택해서 현실 낚시와 가깝게 즐기는 게임과는 결이 다르다. 낚시 스피릿의 플레이 실제 낚시와는 거의 다른 물고리를 낚아 메달을 모으는 게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게임에선 다른 종류의 낚시 게임과는 같은 지점이 있다. 릴을 컨트롤하며 물고기가 낚였을 때 릴을 감아야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는 점이다. 던지는 방향과 힘을 버튼으로 정하고 필살기가 있으며 보스 스테이지가 존재하는 현실 낚시와는 매우 동떨어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낚시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점이라면 바로 이 컨트롤러 일 것이다. 2012년에 출시가되어 이제는 10년이 넘어가는 시리즈인 이 게임은 컨트롤러의 특성상 아케이드에서밖에 즐길수 없었지만 2019년에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게임이 출시되면서 상황이 좀 바뀌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동전을 잡아먹는 아케이드 게임은 집에서 했으면 그 손맛을 위해 좋겠지만 6인용 게임기를 집에 들여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닌텐도 스위치의 조이콘은 다양한 플레이 방식을 지원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오락실에서 낚시대를 휘두르고 릴을 감는 그 느낌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개발사는 게임의 고유한 조작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스위치 조이콘의 자이로센서와 각속도를 이용하여 조이콘을 휘두르는 형태로 낚시대를 던지고, 들고 돌리는 행위로 릴을 감는 동작을 재현했다. 전통적인 닌텐도 스위치와 컨트롤러를 붙여서 쓰는 방식으로도 게임을 하는데는 문제는 없다. 이경우는 다른 많은 낚시게임이 그렇듯이 버튼으로 릴을 감는다. * 인게임 도움말 닌텐도 스위치 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기로도 낚시 게임은 많이 나오는 편이며 고전이며 명작으로 불리는 세가 배스 피싱 같은걸 언급하지 않더라도 굳이 낚시 스피릿을 가져온 이유는 이 게임이 전용컨트롤러가 아닌 기존 컨트롤러에 붙여 쓰는 “사오콘”을 별매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종류의 컨트롤러를 확장하는 개념은 Wii 리모콘부터 PS Move, 가깝게도 VR 컨트롤러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는 편이지만 낚시 스피릿의 경우 2019년에 〈Ace Angler 낚시스피릿 Nintendo Switch버전〉을 이번엔 2022년에 나온 〈Ace Angler 낚시스피릿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이 두차례에 걸쳐 나왔는데 추가장치로 나온 사오콘의 형태가 다르다. 물론 새로 나온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에서도 이전 버전의 추가장치를 지원하고는 있고 이러한 별매 사오콘이 없더라도 조이콘을 통해서 물리적으로 컨트롤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며, 게임에 연결한 상태에서 버튼으로 플레이할 수도 있다. * 호리사에서 나온 첫번째 사오콘 첫번째로 나온 사오콘의 특징이라면 결과적으로 조이콘 두개를 쥐고 흔드는 형태의 플레이를 좀 더 편하게 만들어주는 가이드에 가깝다. 일본의 게임용 주변기기 전문 업체인 HORI사에서 제작한 이 컨트롤러는 결과적으로는 이 컨트롤러 없이도 같은 형식의 플레이가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릴역할을 해주는 부분있어서 좀 더 줄을 감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에이스 앵글러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과 함께 나온 두번째 사오콘 두번째로 나온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과 함께 나온 사오콘은 조이콘 두개를 쓰는 형태가 아닌 하나만 쓰는 형태로 돌릴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나는 릴이 달려있는 형태인데, 왼쪽 조이콘과 오른쪽 조이콘의 버튼 배치가 다른 것에 대응하기 위해 릴을 분리할 수 있는 형태의 아이디어가 특히 돋보였다. 두 컨트롤러의 중대한 차이점이라면 첫번째 사오콘이 조이콘 두개가 달려있으면서 또한 릴에 조이콘 하나가 붙어있어야만 하는 구조라서 실제로는 무거워서 플레이가 힘든 구조 였다면 두번째 사오콘은 처음부터 회전을 조이콘틀 통해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한바퀴 회전할 때마다 A버튼을 두번 누를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는 사실상의 연타기계라는 점이다. * 사오콘 연타 기믹 – 릴을 돌릴 때마다 흰 부분이 A버튼을 눌러준다 기계적으로 릴의 회전을 강제로 조이콘의 A버튼과 연결한 이 기믹 덕분에 정작 선택하는 A버튼을 누르기 힘들다는 단점이 생기긴 했으나 이전 버전보다 훨씬 가볍고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새로운 조이콘의 장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전 조이콘들의 조작 역시 지원을 하지만 낚시 스피릿의 후속작에서 조이콘을 직접 회전하는 방식이 아닌 버튼을 통한 입력으로 돌린 이유는 아무래도 무게가 동반된 회전 조작이 조종에 부담으로 작용했으리라 짐작한다. 이 게임은 컨트롤이 없더라도 1개의 컨트롤러로 즐길 때의 조작 방법으로 낚은 후에는 어찌되었던 열심히 릴을 감는 동작을 모사해야 물고기를 낚을수 있다는 점에서 낚시 게임이 가지고 있는 주요한 조작으로는 릴을 감는 행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낚시용 부가 컨트롤러로는 이미 Wii 리모트를 활용한 경우가 있었고 낚시 전용 컨트롤러로 가면 가정용 게임기는 물론 국내 PC용 게임으로도 나온 컨트롤러도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울 건 없다고 할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컨트롤러가 이러한 릴을 감는 장치를 어떻게든 구현해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낚시 컨트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VR 게임에서도 이러한 낚시 시뮬레이션이 점차 출시되고 있으며, 낚시가 주는 가장 큰 현장감을 제공하고 있다. VR 특유의 양손 컨트롤러는 현재로는 모두 게임패드를 절반으로 나눠 한쪽씩 쥐는 형태로 수렴하고 있으며 한손에 쥐기 편하도록 총의 손잡이 형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양손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많은 VR 게임들은 이 컨트롤러에 손을 매칭해서 두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가상 공간에 있는 물체와 상호작용 하도록 하고 있지만 물리적인 피드백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결국은 허우적대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따로 이러한 컨트롤러를 끼워서 사용 할 수 있는 확장 컨트롤러가 나오기도 한다. 현재로선 가장 인터페이스의 확장에 진심인 것은 따로 물리적 비용이 필요없는 VR 장르의 게임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회전시키는 입력장치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탄생과 함께 했지만 결국 기존 게임 컨트롤러에 포함되는데는 실패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레이싱휠이나 낚시 컨트롤러를 통해 이어져오고 있다. 지금은 아케이드에서 컨트롤러의 물성이 강하게 필요한 게임들만이 가정용 게임기에 피드백 되고 있지만 한차례 조이스틱이 사라졌다가 결국 게임패드에 포함되었던 것 처럼 새로운 물성이 게임 컨트롤러에 들어갈 수록 플레이의 가능성이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VR 공간이 될지 물리적 공간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플레이의 확장은 게이머에게도 게임디자이너에게도 좀 더 많은 가능성을 안겨 줄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디지털 연산장치와 확률이라는 조합의 아이러니

    디지털게임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아이러니는 이 매체의 물적 기반인 컴퓨터의 시작이다.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위해 설계된 이 전자장치는 애초에 암호해독이나 탄도 계산 같은 전쟁 기술을 보조하는 도구로 만들어졌는데, 그런 도구로 사람들은 놀이하는 방법을 찾아내 즐기고 돈을 번다. 전쟁용 전자장비를 활용해 만든 놀이들의 상당수가 전쟁과 전투를 재현하려 든다는 점까지를 생각한다면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 Back 디지털 연산장치와 확률이라는 조합의 아이러니 17 GG Vol. 24. 4. 10. 디지털게임에 관한 가장 흥미로운 아이러니는 이 매체의 물적 기반인 컴퓨터의 시작이다 .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위해 설계된 이 전자장치는 애초에 암호해독이나 탄도 계산 같은 전쟁 기술을 보조하는 도구로 만들어졌는데 , 그런 도구로 사람들은 놀이하는 방법을 찾아내 즐기고 돈을 번다 . 전쟁용 전자장비를 활용해 만든 놀이들의 상당수가 전쟁과 전투를 재현하려 든다는 점까지를 생각한다면 꽤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 컴퓨터 – 디지털게임이라는 물적 기반과 콘텐츠 사이의 관계에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있는데 , 난수 random number 다 . 디지털 기술 기반의 컴퓨터는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난수 생성이 불가능한 장치다 . 요즘은 듀얼코어 이상에서 몇 가지 방법으로 난수를 만드는 법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 애초에 주어진 데이터를 신속정확하게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기에서 외부 입력 없이 자체적으로 랜덤한 수를 뽑아낸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 하지만 그 컴퓨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디지털게임이라는 매체에서 난수는 결정적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난수를 만들 수 없는 기계를 딛고 성립한 매체에서 난수가 필수요소에 가깝다는 점은 이 매체의 근본에 운과 확률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 달리 정리해보면 , 결국 운과 확률로 만들어지는 게임의 흐름을 보조하기 위해 일련의 전자 연산장비가 도구로 활용된다고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 모든 디지털게임이 무작위의 결과물들만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 오히려 최근의 이른바 AAA 급 게임에 이르면 영화의 작법을 따라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를 쭉 따라가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 이런 영역에서 디지털 주사위는 정해진 결론을 향하는 과정에서의 우연을 만드는 정도로 역할을 줄여나가는 추세다 . 하지만 우리가 이른바 ‘ 게임만의 독특한 재미 ’ 를 이야기할 때는 대부분 이 주사위의 힘이 개입한다 . ‘ 테트리스 ’ 에서 다음 블록이 예측되는 순간 , 이 게임은 상황대처가 아닌 암기력의 게임이 되고 말 것이다 . 액션 게임 등에서 확률로 표기된 치명타가 일정 타격 수마다 반복될 때 , ‘ 하스스톤 ’ 같은 카드게임 류에서 카드 덱이 랜덤이 아니라 순서를 지정할 수 있게 될 때 이들이 가진 재미는 사라진다 . 이런 맥락에서라면 주사위의 개입을 통해 다양해진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 곧 플레이어의 플레이 행위가 된다 . 실재하는 우주와 세계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경우의 수를 가상공간 안에 그대로 구현할 수는 없겠지만 , 적어도 통제된 환경 안에서 디지털게임은 무작위 확률을 통해 상황을 ‘ 흩뜨러뜨린다 ’. 그리고 이를 정렬하고 재구성하여 주어진 과제를 클리어할 수 있을 만큼의 정돈을 만들어내는 것이 확률 개념을 상대할 때의 플레이가 갖는 역할이다 . 이 때 디지털 주사위가 만드는 확률의 역할은 ‘ 모르는 영역 ’ 의 창조다 . 확률을 통해 표현되는 디지털게임의 규칙들은 모두 ‘ 모름 ’ 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 테트리스에서 다음 블록이 무엇이 나올지 , ‘ 다크 소울 ’ 에서 보스가 다음 순간에 어떤 패턴으로 공격해 들어올지에 대해 디지털 주사위는 각 순간별로 플레이어에게 다음 순간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을 연출한다 . 디지털게임 소프트웨어는 끊임없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고 , 늘어난 엔트로피를 줄여나가는 것이 플레이의 목적이 된다 . 온라인 네트워크가 보편화된 이후의 디지털게임에서는 이 엔트로피값의 증가에는 주사위 이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추가되는데 , 바로 플레이어다 . 싱글 플레이 시절에는 불가능했던 ,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맞상대하게 되는 대전형 멀티플레이의 순간에는 디지털 주사위가 제공하는 것 이상의 새로운 ‘ 모름 ’ 이 덧붙는다 . 상대가 어떤 패턴을 익숙하게 쓰는지 , 선호하는 캐릭터나 스타일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온라인 익명 매치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 이 때의 랜덤성은 아마도 매치메이킹이 되는 순간일 것이다 . 어느 정도 게임 결과에 따라 매기는 랭킹에 의해 기대승률 50% 를 맞추는 보정이 이뤄진다고는 하지만 , 여전히 멀티플레이에서 내가 누구와 게임하게 될 지는 ‘ 모름 ’ 의 영역이다 . 이 랜덤한 매치메이킹의 효과는 랜덤을 애초부터 잘 만들 줄 모르는 디지털 연산장치의 확률 제시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 모든 모르는 영역을 파훼하고자 하는 플레이어의 힘은 멀티플레이 영역에 들어오면서 사실상 영원히 상대적인 극복의 굴레에 들어앉는다 . CPU 가 만들어내는 제한된 랜덤 상황은 결국 고정되어 있고 , 이는 어떻게든 파훼된다 . 수많은 게임 플레이 경험이 누적되며 플레이어의 숙련도는 계속 향상되지만 , 소프트웨어의 난이도는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 난이도 – 숙련도 경합에서 난이도의 제시가 상대방 플레이어라는 주사위보다 더한 경우의 수를 가진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 끝없이 향상되는 두 사람의 숙련도 덕택에 이 경합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순환의 고리를 돌게 된다 .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연산장치는 굳이 ‘ 모름 ’ 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일을 더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맞는다 . ‘ 모름 ’ 이라는 엔트로피를 기준으로 정리해 본다면 , 그래서 디지털 주사위는 사실 사람 혹은 사건이라는 실제로는 훨씬 더 예측불가능한 세계를 매우 낮은 레벨에서 재현해 낼 뿐이라고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 . 랜덤을 만들 줄 모르는 기계는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현실의 일부를 프로그래밍된 가상공간 안에 일부 재현할 뿐이다 . 다만 통제된 환경 안에서 펼쳐지는 아주 작은 수준의 경우의 수는 오히려 그 엔트로피를 충분히 낮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 모름 ’ 이며 ,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이 ‘ 모름 ’ 에 도전할 가치가 충분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 이른바 ‘ 공략 ’ 이라고 불리는 많은 패러텍스트들이 플레이와 동떨어지지 않은 맥락에서 생산되는 것이 바로 이 이유에서다 . 게임 공략들은 게임 텍스트가 제시하는 ‘ 모름 ’ 의 상황에 펼쳐진 전장의 안개를 걷어내기 위한 활동의 결과물들이다 . 어떤 이는 랜덤하게 떨어지는 아이템의 드랍률을 수집 , 분석해 최종적인 아이템 루팅 테이블을 만들고 이를 확률로 정리해 정례화한다 . 누군가는 주사위의 결과물에 다양한 수식적 치장을 가한 공격 / 방어의 메커니즘을 분석해 수식의 구조를 밝히고 , 이를 통해 최적의 공략 루트를 도식화한다 . 확률이라는 이름으로 온 사방에 분산된 채 높은 엔트로피를 지니고 있던 게임의 주사위가 만들어낸 세계는 공략이라는 정리된 장 앞에서 질서정연하게 정리된다 . 같은 맥락은 디지털 주사위가 아닌 사람과의 플레이에서도 나타난다 . ‘ 리그 오브 레전드 ’ 의 랜덤 매칭이 갖던 높은 엔트로피는 op.gg 와 같은 전적 사이트를 통해 체계적으로 나의 상대나 아군이 어떤 전적과 승률을 가지고 있는지를 일목요연한 데이터로 가공되며 해소된다. 게임 텍스트 내부에서의 플레이와는 별개로 , 확률이 만들어내는 ‘ 모름 ’ 의 영역에 존재하는 수많은 경우의 수는 텍스트 밖에서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줄어든다 . 결국 , 디지털게임이 만들어내는 재미도 요약해 보면 1,000 피스 퍼즐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완성된 그림을 무질서한 1 천개의 조각으로 쪼갠 뒤 , 이를 다시 맞추는 일에 재미라는 의미를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 우리는 확률 기계가 제한적으로 생성해 낸 수많은 경우의 수 사이를 헤매며 다시금 이를 정리하고픈 욕망에 휩싸인다 . 게임 텍스트 안에서는 클리어와 엔딩 도달이라는 결과로 , 게임 텍스트 밖에서는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체계화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연산장치가 만들어낸 가상세계의 데이터 엔트로피가 분명 정리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사실에 흥분하며 또 도전한다 . 설령 이 기계가 근본적으로 랜덤값을 만들기 어려운 장치라 해도 , 마치 화투장 48 개를 가지고 흩어놓은 뒤 다시 맞추는 패 떼기 놀이와 같이 ,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사실은 엔트로피 놀이에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 아니 , 오히려 그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윤상의 노래 ‘ 달리기 ’ 에서처럼 ,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욱 흥분하며 게임에 달려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구독 서비스의 대두 앞에서 떠올리는 생각들

    구독 서비스의 미래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과거 부분유료결제와 확률형아이템이라는 결제방식의 변화가 가져온 게임 내부까지의 변화를 겪으며 우리는 다음에 올 결제양식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저 시장의 흐름에 맡기기만 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노동과 생산의 영역에서 가격의 결정이 그저 시장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짐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은 오늘날 최저임금제와 같은 여러 보완책들을 이끌어낸 바 있다. 아주 같은 맥락은 아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소비와 이용의 차원으로 들어온 여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련의 ‘여가의 정치경제학’과 같은 생각을 떠올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 Back 구독 서비스의 대두 앞에서 떠올리는 생각들 09 GG Vol. 22. 12. 10. 구독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책이나 신문, 잡지 따위를 구입하여 읽음’이다. 애초에 단어 자체에 購讀, 읽을 ‘독’자가 들어가는 상황이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최근에 이 단어는 읽는다는 행위를 떠나 다른 쪽에 주안점을 찍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지금의 구독은 개별 단위의 구매가 아닌, 정기적으로 일정 수량 이상의 상품 혹은 서비스를 결제하여 사용하는 일을 가리킨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단어의 출전에 가까웠던 신문과 잡지의 구독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지만, 확장된 의미의 구독은 신문, 잡지를 넘어선 온라인 미디어의 구독에 머물지 않고 이제는 신선식품이나 생필품의 정기배송까지도 묶어 부를 수 있는 말이 되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 게임 또한 구독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플레이스테이션, XBOX같은 전통적인 콘솔 플랫폼 뿐 아니라 게임 구독 서비스는 애플 아케이드나 구글과 같은 스마트폰 기반의 범용 플랫폼에서도, 심지어 넷플릭스 같은 비게임 플랫폼에서도 출시하는 보편적인 흐름이 되었다. 디지털게임은 상품으로서의 속성을 강하게 띠고 있는 매체고, 구독과 같은 결제방식에서의 중대한 변화는 당연히 게임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변화는 함부로 예측하기 어렵겠지만,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결제방식에 대한 고민들을 시작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1. 구독 방식은 일정한 지분을 가진 결제방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유통사나 플랫폼 입장에서는 구독 서비스에 거는 희망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로 하여금 정기 번들링의 형태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게임을 제공한다는 슬로건 안에는 불확실한 매출 볼륨을 정기적이고 고정적인 형태로 바꿈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구독 서비스의 확대가 개별 소프트웨어 판매와 상충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특히 플랫폼 단위의 구독 서비스는 소비자의 결제를 플랫폼 단위에서 배타적으로 자사의 고정적 현금흐름으로 묶어낸다는 점에서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는 선택일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유통사가 제시하는 이득을 확인하기 어렵지 않다. 정기결제를 통해 출시되는 더 많은 게임들을 폭넓게 만나볼 수 있는 방식은 특히 다양한 게임들을 이른바 ‘찍먹’하고자 하는 게이머 입장에선 갈수록 개별가격대가 만만치 않게 올라가는 개별구매에 비해 효율적일 수 있다. 다만 이는 개별 게이머들의 성향에 의해 크게 호오를 탈 수 있는데, 이를테면 게임 하나에 집중하는 스타일의 게이머들에게는 별다른 메리트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이 호/오라는 두 개의 입장으로 갈리는 상황에서 개별 판매와 구독이 동시에 존재하는 플랫폼 스토어는 그래서 한편으로는 소비자에 대한 세부 분류를 강화하는 가격 마케팅의 일환으로 판매정책이 세밀해지는 효과를 얻는다. 그 결과가 소비자로 하여금 어떤 게임을 선택하기 쉽게 하고, 또 제작자로 하여금 어떤 게임을 더 많이 / 더 오래 만들도록 하는지를 떠나서라면, 구독 서비스의 도입과 보편화는 게임결제양식의 한 축으로 나름의 자리를 구축할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2. 구독 서비스를 통해 게임제작자들은 기존보다 나은 개발환경을 얻게 될 것인가? 다만 제작자 입장에서라면 이야기는 조금 더 무거워질 수 있다. 당장 구독 서비스는 현재 한국에서 게임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결제방식인 부분유료결제 방식과 크게 상충하기 때문이다. 이미 게임 내에서 별도의 월정액 결제방식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플랫폼 단위의 ‘구독’은 정기결제라는 방식보다는 이용자로 하여금 게임 선택의 폭 자체를 키워버리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 핵심이기에 방식만 같을 뿐 다른 의미를 가진 개념이 된다. 게임을 선택한 뒤 그 게임에 정기결제를 넣는 방식은 일종의 매몰비용을 지속적으로 누적시키면서 이용자를 특정 타이틀에 고정시키는 효과를 낳지만, 정기결제가 먼저 이루어진 뒤에 서로 다른 게임제작사의 게임을 취사선택하는 방식은 정기결제로 만들어지는 이윤을 게임사가 아닌 플랫폼에 집중시킨다는 측면에서 부분유료결제와는 다른 효과를 낳는다. 적어도 부분유료결제로 운영되는 게임들이 구독 서비스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일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제작자의 입장은 단지 부분유료결제라는 기존의 방식 하나에만 영향을 주는 것으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앱스토어 등을 통해 타이틀 판매 단위로 플랫폼으로부터 수익을 정산받는 개별판매에서도 수익구조의 변화에 따라 개발사들의 제작방식 또한 달라질 거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카테고리 내에서 다운로드/스트리밍되는 횟수나 총 플레잉타임을 기준으로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라면 구독서비스에 들어가는 게임들의 경우에는 카테고리 내에서 최초 선택될 수 있는 게임규칙이 무엇인가에 대한 심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지만, 적어도 이런 변화가 머지않아 여러 게임들에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은 가능할 것이다. 대규모 부분유료결제가 아니더라도 소소한 인앱결제가 도입된 게임들의 경우에는 구독 서비스 안에서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재검토도 이루어질 것이다. 이용자가 사실상 무료라고 여기고 접근한 게임 안에서 추가적인 결제를 요구하는 순간을 맞을 때, 그는 기존의 다른 방식 – 그것이 free-to-play이건, 개별판매 방식이건간에 – 에 비해 더 쉽게 지갑을 열 것인가, 아니면 빠르게 다른 게임으로 갈아탈 것인가? 이런 고민들 또한 머지않아 게임규칙 안에 녹아들 것이고, 그 결과 또한 금새 시장에 출력될 것이다. 3. 구독 서비스는 게임플랫폼이라는 독자적인 양식에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주문형 비디오 플랫폼으로 구독결제 방식의 대명사가 되기도 한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게임 구독 서비스에 도전한다는 소식은 여러모로 흥미로운데, ‘구독’이라는 개념을 게임과 TV라는 매체보다 더 상위에 있는 개념으로 이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좀 뭉뚱그려보자면, 영상물을 시청하는 것과 게임을 선택해 플레이하는 것은 결국 정기결제를 통해 제공받는(큐레이션을 포함한) 범주 안에서 동일한 소비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 지점에 대해서는 그러나 통일된 의견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영상물 시리즈나 영화 한 편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시청하는 경우와 게임 하나를 붙잡고 업적 100%를 찍는 일을 같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게임에 비해서는 서로 다른 콘텐츠라도 비슷한 시청시간으로 구성되는 영화, 드라마에 비해 게임은 소비시간 측면에서도 게임마다 큰 진폭을 보인다. 이런 차이는 정말 ‘구독’이라는 결제방식 안에서 하나로 불릴 수 있는 만큼의 차이일까? 만약 충분히 구독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이 다른 매체와 묶일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때부터는 게임전용 플랫폼이라는 특수성이 보편성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이를테면 역으로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안에서 영상물 시리즈를 구독하거나 하는 일은 왜 또 불가능할 것인가? (한편으로는 컨트롤러라는 부가 인터페이스가 이미 마련되어 있는 게임플랫폼이 되려 범용성 측면에서도 나을 수도 있겠다.) 결국 여가시간의 활용이라는 공통의 시장을 두고 영상과 게임이라는 두 플랫폼이 격돌할 가능성이 앞선 가정으로부터 나오는 환경을 고려해볼 수 있게 된다. 방향은 예단하기 어렵지만, ‘여가의 정치경제학’을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 부분유료결제라는, 한때는 뭐 이런게 있나 싶었던 결제방식이 보편화한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 방식의 도입은 모바일 디바이스와 같은 흐름을 타고 한편으로는 게임 대중화의 길을 트기도 했지만 동시에 pay-to-win이라는 지금까지도 많은 게이머들의 뒷목을 붙잡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음을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경험해온 바 있다. 구독 서비스의 미래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과거 부분유료결제와 확률형아이템이라는 결제방식의 변화가 가져온 게임 내부까지의 변화를 겪으며 우리는 다음에 올 결제양식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저 시장의 흐름에 맡기기만 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노동과 생산의 영역에서 가격의 결정이 그저 시장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짐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은 오늘날 최저임금제와 같은 여러 보완책들을 이끌어낸 바 있다. 아주 같은 맥락은 아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소비와 이용의 차원으로 들어온 여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련의 ‘여가의 정치경제학’과 같은 생각을 떠올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게임과 예술: 게임 플레이 경험을 깊이있게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합리적인 대답을 기대한다면 생산적일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게 되는 “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에 대한 사유가 게임을 예술 또는 비예술로 분류하는 것보다 더 나은 접근 방법임을 주장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 Back 게임과 예술: 게임 플레이 경험을 깊이있게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12 GG Vol. 23. 6. 10. You can see this article's english version at below URL: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match=id:229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합리적인 대답을 기대한다면 생산적일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게 되는 “미적 경험(aesthetic experience)”에 대한 사유가 게임을 예술 또는 비예술로 분류하는 것보다 더 나은 접근 방법임을 주장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적 작품이란 곧 미적 경험의 주입과 같은 것이 아닌가요?” 이에 대한 대답은 ‘당연하다’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와 같은 ‘경험’의 유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게임이 다양한 감정을 지닌 주인공이 겪게 되는 복잡다단한 내면의 상태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면, 우리는 게임을 문학이나 철학적 작품과 비교(하고 또 그에 따라 판단)하고자 할 것이다. 나의 제안은 (게임의) 예술적 지위 여부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그 경험을 조망함으로써 관심의 초점을 (기껏해야 미심쩍을 뿐인 목표인) 게임의 고급 문화로의 편입으로부터 보다 심오한 게임플레이 경험으로 옮기자는 것이다. 이처럼 게임플레이 경험 깊이의 심화라는 목표는, 우리로 하여금 그 경험에 보다 많은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면서 게임이 기존의 경험적 한계를 넘어서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미학’ 그리고 ‘경험’ 게임은 멀티미디어 작업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게임은 숙련된 개인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져 단일 매체의 경계를 가뿐히 넘어서는 종합예술(Gesamstkunstwerks)라 부를 수 있다. 게임을 플레이할 때 우리는 그 초점을 전체적인 경험에 맞추거나, 또는 시각적 재현이나 애니메이션, 레벨 디자인, 대사, 음악 등 보다 협소한 부분에 맞출 수 있다. 여기서 내가 ‘경험’이라 칭한 것의 개념은 ‘미학(또는 미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통해 드러날 수 있는데, 그 의미는 다원적이다. 서양 미학은 일반적으로 아이스테시스(aísthēsis, 감각 및 그로부터 얻는 분별력)과 노에시스(noesis, 순수하게 지적인 이해 또는 이성의 적용)을 구분해왔다. ‘미학’은 종종 ‘감각(sensation)’, ‘지각(perception)’ 및 ‘판단(judgement)’의 개념이 중첩되어 확장된 방식으로 이해되곤 하는데, 여기서 감각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감각적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고, 지각에서는 관찰자의 활동이 대상을 인식하거나 인지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며, 판단의 경우 미학적 판단이 개념이나 이성의 적용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닌다. ‘게임 미학’이란 컴퓨터게임, 디지털게임 또는 비디오게임이 지니는 특별한 독특성을 함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게임 미학은 ‘게임의 플레이란 어떤 느낌인가’와 같은 게임플레이 경험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감각을 통해 특정한 유형의 경험이나 인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데, 미학적 관점에서 연구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지속적으로 소위 ‘고급’ 문화(high culture)와 대중문화(popular culture)간의 연속성을 주장해왔다. 듀이의 생각은 인간이 분열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와 같은 분열은 우리의 (감정적, 지적, 감각적) 능력이 서로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지 못하도록 구획되거나 분리될 때 발생한다. 이 분열은 ‘예술’의 영역이 ‘생활’의 영역과 분리된 것으로 여겨지는 순간에 발생하는데, 예컨대 미술 갤러리나 오페라 하우스 같은 지정된 공간에 진입할 때에만 미적 경험이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그리고 그 외부에서는 미적 경험이 불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그 순간에 발생한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그 외의 다른 모든 경험들을 비(非)미적인 것으로 방치하는 것이자, 심지어는 임금을 벌거나 집 청소하기, 건강 유지, 친구와의 대화 등 다양한 여타의 경험들을 직접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적인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거기에는 다른 어떤 가치도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즉각적인 경험(immediate experiences)이 향상되면서 미적 경험이 개인의 주요 관심사와 삶에 통합될 때 가능한 풍요로움을 놓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 큐레이터, 비평가들을 탓하자는 뜻은 아니며, 예술세계에 우리의 경험을 깊이 있게 발전시킨 작품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 그러한 작품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예술세계를 분리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원하는 금전적 이해관계가 실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비/예술의 구분을 짓는 권력을 공고히 하고 ‘이것이 예술이다’라는 상징적 지위를 부여하는 권능은 현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게임은 예술인가?’라는 질문에는 다양한 중요 가정들이 내재하는데, 이러한 가정들이 게임 플레이 경험에 대한 세밀한 주의력을 발전시키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우선 어떤 것이 예술 작품인지 아닌지를 추정할 때 적용되는 ‘예술’의 개념에 대한 가정이 있다. 이러한 가정은 이분법적으로 분류함으로써 질문의 확장을 억압할 수 있다. 둘째, ‘게임’을 단일한 카테고리로 묶는 가정이 있다. 이는 단일한 장르에서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 게임플레이를 분석하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게임을 (대부분의) 다른 예술 작품들의 방식을 통해 식별이 가능한 객체 또는 작품이라고 보는 가정이 있다. 이러한 인식틀에서 (게임의 미적) 가치는, 게임플레이의 경험을 최대한 활성화하기 위해 플레이어가 게임플레이에 들여오는 과정보다는, 개발자의 예술적 통찰이 담긴 표현에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다크 소울(Dark Souls, 2011, From Software)〉 같은 게임이 우울증에 대해 도움이 된다는 보고가 있는데, 그와 같은 플레이어의 경험적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긴 과정 동안 형성된 플레이어와 게임 간의 연결 속에서 플레이어가 가지게 된 심리적 상태(와 게임플레이에 대한 전념)였다. 비평가의 미학적 기준 지난 2005년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Roger Ebert)는 저자의 통제를 필요로 하는 문학이나 영화 등의 진지한 예술과는 달리, 본래적 속성상 플레이어의 선택을 요하는 게임은 예술의 위상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후에 이와 같은 발언이 바보같은 짓이었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에버트의 주장은 게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 - 게임은 유치하고, 세련되지 못하며, 즉각적인 만족을 충족시킬 뿐이며, 화려한 시각효과만 가득하고, 모호성을 배제하기 위해 정량화되고, 저속한 감정에 영합하는 것이라는 - 에 부합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수행했던) 로저 에버트의 주장에 대한 해체나 반박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주장의 본질을 강조하려 한다. 그 주장이란 예술의 지위를 진지하게 다투려면 게임이 다른 예술 형식들과 같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이와 같은 주장은 논쟁의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당연한 것이며, 심지어 일부 게임 철학연구자들조차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예술 철학자인 그랜트 태비노어(Grant Tabinor)는 주로 게임을 예술로 간주할 수 있을지와 같은 존재론적 문제를 연구해왔다.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음에도, 그는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일부 비디오게임만이 예술로 간주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접근 방식은 예술에 대한 기존의 정의에 기반하여, 게임이 해당 조건을 충족시키는지 여부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어떤 단일한 이론에만 의존하는 접근은 피하는 대신, 미적인 속성이 목록화된 ‘클러스터 이론(cluster theory)’의 방식을 취했다. 즉 목록의 미적인 속성 중 충분한 수를 충족시킨 게임은 예술작품이라 간주되는 것이다. 2009년의 저작 〈The Art of Videogames〉의 177페이지에서 태비노어는 미학자 베리스 거트(Berys Gaut)가 제시했던 클러스터의 정의를 언급하는데, 이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속성들에 부합하는 것을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것들은 예술 작품이 아니다: (1) 아름다움이나 우아함 등(감각적인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속성)과 같은 긍정적인 미적 속성을 지닐 것, (2) 감정을 표현할 것, (3) 지적으로 도전적인 것(예를 들어 기존의 견해나 사고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 (4) 형식적으로 복합적이되 일관될 것, (5) 복잡다단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 (6) 개별적인 관점을 보여줄 것, (7) 창의적인 상상력을 수행할 것(독창적일 것), (8) 숙련된 고도의 기술로 생산된 인공물 또는 퍼포먼스일 것, (9) 기존 예술 형식(음악, 회화, 영화 등)에 속할 것, (10) 예술작품을 만들겠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산물일 것 태비노어는 베리스 거트가 예술 작품이라면 이와 같은 10개의 조건을 전부 충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군집적인 정의를 구성하는 조건을 제시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태비노어가 기존의 클러스터 이론이 제시한 이와 같은 조건들이 광범위하게 옳다는데 동의하는 것 - 그러한 이론이 세부 사항에 대한 수정 권한을 보유하고 있을지라도 - 은 명백해 보인다. 이러한 접근 방식에 따라 그는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 1978, Taito)〉나 〈레드 데드 리뎀션(Red Dead Redemption, 2010, Rockstar San Diego)〉 등 게임계에서 클래식으로 인정받은 게임들을 예술적 지위에서 배제했는데, 왜냐하면 이 게임들은 클러스터 이론과 매우 부분적으로만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Routledge Companion to Game Studies(p. 60)〉의 한 챕터에서 태비노어는 〈레드 데드 리뎀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레드 데드 리뎀션〉은 최신 게임 예술의 정점으로서 자주 거론되지만, 게임의 드라마나 내러티브는 섣부르게 흉내낸 파생적인 서부극에 가깝다. 영화로 치면 단호하게 B급이다. 많은 경우 게임의 서사나 캐릭터, 연기, 각본 등에서 낮은 수준이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승인된 예술에서 나타나는 세련됨의 정도에 도달하는 경우를 게임 중에서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상기의 글은 결국 〈레드 데드 리뎀션〉에 대해 ‘내러티브, 캐릭터, 연기, 각본’에 따라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그와 같은 요소들은, ‘상호작용(또는 그 고유한 속성을 지칭하는 다른 프레임)’에 의해 생성되는 게임플레이 경험의 리듬이나 느낌보다는, 클러스터 이론에 더 부합하는 것들이다. 결국 태비노어는 게임이 단순히 기존 예술형식의 파생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하나의 예술 형식이라고 보는 입장임에도, 클러스터 이론을 적용한 그의 주장은 기존의 예술 이론에서 나온 (미적) 속성의 목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러한 속성들은 게임이 예술로서의 자격 - 심지어는 게임이 미학적으로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 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은 문화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수립된 것들이다. 결국 태비노어의 철학적 방법론은 이와 같은 결과로 이어져 버렸다. 게임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은 게임플레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기존의 철학 분야만 게임플레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계는 중립적인 역사적 맥락 내에서 게임을 소개함으로써 게임플레이의 속성에 관한 문제를 우회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에서 최초로 열렸던 게임 전시는 2002년 바비칸 아트 갤러리(the Barbican Art Gallery)에서 열렸던 〈Game on: the History and Culture of Video Games〉였다. 미국의 스미소니언 미술관(The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또한 2012년 The Art of Video Games 전시를 통해 〈컴뱃(Combat, 1977)〉에서부터 〈리틀 빅 플래닛(Little Big Planet, 2011)〉까지의 과정을 역사적으로 접근했다. 또 다른 (우회) 전략으로는 게임의 아바타나 가상세계 거주의 개념, 게임의 표상적 측면 등 게임에 대한 이해에 있어 보편적인 측면들을 앞세우는 것이 있다. 미국의 아티스트 코리 아켄젤(Cory Arcangel)은 게임의 시각적 측면에 관념적으로 접근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게임-관련 예술(game-related art)’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현대미술 박물관, 휘트니 박물관, 시카고 현대 미술 박물관 등지에서 전시되었다.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1983년의 게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모딩하여 푸른 하늘과 8비트의 하얀 구름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없앤 비디오 설치 작품 〈슈퍼마리오 클라우드(Super Mario Clouds)〉가 있다. 여기에는 마리오도, 쿠파도, 굼바도 없다. 이 작품에서 게임플레이는 시각적 명상(visual contemplation)을 위해 퇴치되었다. 아켄젤은 또한 2011년 바비칸에서 〈Beat the Champ〉라는 전시를 선보였는데,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간 순서대로 14개의 볼링 게임을 정렬한 이 설치 작품에서도 게임플레이는 배제되었다 . 전시 공간을 걸어가면서 관객은 볼링공이 핀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거터볼(gutter ball) 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는 점수를 낼 수 없도록 아켄젤이 볼링 게임들을 프로그래밍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갤러리의 관객들은 로저 에버트가 찬양했던 작가적 통제(authorial control)와 조우하게 된다. 연이어 발생하는 상황(실패)에 대한 사유를 유도하기 위해 디자인된 실패한 볼링 게임의 상황을 관객들이 오디오-비주얼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플레이의 경험적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실패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사회적 및 게임의 맥락이 거세된 (미리) 결정된 실패다. 전시회장에 전시된 콘솔의 존재는 - 해당 전시에서 게임 플레이는 단순한 녹화본이 아니었다 - 관객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할 수 없다는 불능성(inability)을 강조한다. 이 불능성은 게임플레이와 연계되어 발생하는 긴장과 불안, 춤을 추듯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의 움직임, 게임 리듬에 적응해가는 과정, 피할 수 없는 좌절, 그리고 어떤 게임이 가장 매력적인 게임플레이를 제공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판단을 경험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아켄젤은 게임을 가지고 이 작품을 만들었으며, 이는 또한 그가 게임을 전시한 방식이기도 하다. 〈수퍼마리오 클라우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예술성은 전시의 개념적이고 시각적인 측면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예술 세계에서 익숙한 언어다. 하지만 이는 분명 게임이 아니다. 하나의 경험으로서 게임플레이의 신체적 도전 또한 다뤄지지 않았다. * Image from: https://coryarcangel.com/shows/beat-the-champ 한편, 로비 쿠퍼(Robbie Cooper)의 설치작품 〈Immersion(2008)〉은 게임플레이를 핵심적인 관심사로 둔다. 이 작품은 전세계 디지털 미디어 이용자들의 신체적인 반응을 기록한 것 인데, 아이들의 게임 플레이로 구성된 부분이 눈에 띈다. 플레이어 얼굴의 고화질 캡쳐는 플레이어들의 순간적인 마음 상태를 우리가 엿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이 작품에서 카메라는 마치 플레이어들이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는 듯한 위치에 놓여있다). 비록 바뀌는 게임 화면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대신 게임에서 들려오는 사운드와 플레이어의 얼굴 표정 및 신체 자세 간의 대응을 볼 수 있다. 한 소녀가 격투 게임인 〈철권5: 다크 레저렉션(Tekken 5: Dark Resurrection)〉을 플레이하고 있다. 타격이 이어지면서 캐릭터들의 신음소리나 고함소리 등과 함께 특수 효과가 곁들어 진 사운드가 들린다. 우리는 게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맞출 수 있는데, 왜냐하면 〈철권〉을 플레이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움직임이 어떤 사운드를 내는지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쿠퍼의 주체들이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인지적으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으며, 또한 플레이어에 의해 어떤 행동이 수행되었으며 이후 그러한 행위가 플레이어-게임 간의 장치적 루프(machinic loop) - 즉 게임플레이 - 내에서 플레이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겪는 경험의 복잡성 및 그러한 경험이 플레이어의 신체적 존재감과 어떤 식으로 엮여들어가는지에 대해 우리가 주의를 집중시키는 데 성공한 쿠퍼지만, 그 너머를 밝히는 것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거울을 들어 보여주기는 했지만 관련해서 주석은 달지 못한 셈이다. * Image from: https://robbiecooper.com/project/immersion 게임 경험을 발전시키기 위해 기존의 게임플레이 규범에 도전하는 인디 게임개발자들은 플레이어와 개발자들이 ‘좋은 게임플레이’ 모델로서 수용하여 일반화된 장르 경험을 인식시킴으로써 우리의 게임 경험을 발전시켜왔다. 그에 따라 그들은 현재의 게임 디자인에 있어서 진부해진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다른 대안적인 경험은 무엇일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해왔다. 물론 보다 규모가 큰 개발사들도 이러한 시도를 해왔다. 나는 여기서 그와 같은 혁신의 역사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와 연관된 인디 게임의 사례들은 수없이 많고, 이에 대해서 다른 곳에서도 많이 논의가 되어왔으므로, 여기서는 간결하게 정리하고 넘어가려 한다. 우선 〈언더테일(Under Tale, 2015, Toby Fox)〉은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유일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그리고 그것이 게임플레이가 생성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플레이어로 하여금 RPG라는 장르가 지녀온 가정을 대면하도록 만들었다. 〈브레이드(Braid, 2008, Number None)〉는 시간-기반 메카닉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면서 많은 게임들에 영향을 미쳐왔던 인과성에 대한 생각을 재고토록 했다. 〈스탠리 패러블(Stanley Parable, 2013, Galactic Cafe)〉는 게임 내 반복성의 한계를 통해 선택과 자유의 문제를 다루면서 게임 속 자유가 궁극적으로 제한적이라는 문제를 다뤘다. 〈항아리 게임(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 2017, Bennett Foddy)〉는 플레이어가 ‘(스스로를) 이겨내는 것’이 가능한지, 아니면 그 자신의 자아 또는 ‘하드코어 게이머’로서의 정체성을 위해 자신에 대한 가혹한 기대 속에 갇히게 되는지를 통해 플레이어와 그 자신 간의 관계를 시험하게 한다. 그 밖에도 다양한 게임들이 게임플레이 경험에 대한 성찰을 유발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신중한 제안들을 기다려야 한다거나 게임의 예술로서의 지위나 미학적 경험을 그러한 게임들에 온전히 의지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깊이 있는 게임플레이 경험을 위해 일상의 삶과 예술을 통합하자는 존 듀이적 프로젝트는 우리가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루어 예술적인 관심을 일상으로 가져올 때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다. 이번 글에서 나는 게임플레이 ‘경험’ 및 그 경험을 깊이 있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각 개인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게임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규범에 맞춰 자신들의 능력을 구획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듀이적 이념과 부합한다. 다양한 범주의 게임들이 공유하는 게임플레이 경험이 지니는 보편적인 측면들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와 같은 기술적인 일반화(descriptive generalization)는 개인들이 특정 상황에서 겪게 되는 특정한 경험들에 대한 희미한 그림자일 뿐임을 인정해야 한다. (게임 플레이 경험에는) 게임의 메카닉을 내재화하고, (게임에) 적응해가면서 추론해낸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대응하면서 점진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술이 발전하는 것에는 기쁨이 존재한다. 또한 다양한 선택에 대한 전략적 평가와 그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한 추측이 존재한다. 관련성 여부에 따라 정보의 조각들이 선택적으로 기억되거나 잊혀지는 긴장이 존재한다. 또한 (게임플레이 경험에는) 움직이는 특정 자극에 대해서 지적이지만 무의식적인 주의 집중 - 다른 것에는 향하지 않는 - 이 존재하는데, 이는 복잡다단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회와 위협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휴식과 패배 또는 승리가 걸린 순간들이 흘러들어왔다가 나가는 흐름에 대한 감상도 존재한다. 일부 레벨 같은 특정 맥락에서는 찰나의 행동이 일부 가능성을 응축시키고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으로, 콘트롤이 포기되면서도 행사되는 고요한 순간에 자동적이고, 직관적으로, 그리고 원숙하게(능수능란하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이 존재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게임플레이 경험과 관련해서 기억상실을 겪곤 한다. 게임을 플레이한 경험을 우리 자신의 머리 속에서 단순한 '재미'의 경험으로 치부하고는 나중에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예술’이라 여기지 않는 것에 대해 미학적 관점을 적용하지 않는 탓이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을 보다 나아지거나 도전을 이기는 유형의 훈련으로 여겨, 그 진척의 정도에 따라 가치를 측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 대신, 게임플레이의 윤곽과 질감에 대해 곰곰히 곱씹어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게임플레이가 어떤 식으로 펼쳐졌고, 어떻게 발전해갔으며, 어떤 부분이 다를 수 있었을지, 그리고 그 가운데서 우리를 매료시켰던 점 또는 그렇지 못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물론 게임플레이 중에는 수행해야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플레이하는 그 순간에 그와 같은 성찰을 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게임에 능숙해질수록 그와 같은 성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월해질 것이다. 그와 같은 성취(게임 내에서의 성취와 게임플레이 경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대한 성취 모두)를 이루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습관의 철학자인 클레어 칼라일(Clare Carlisle)은 생각, 신체적 감각 및 감정적 반응에 대한 우리의 주의력이 행동을 통해 습관화할 수 있으며 감정적 감수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복잡다단한 게임플레이 경험 속에서 우리는 그 경험의 미학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우리의 경험에 깊이를 더함으로써 게임이 잠재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포용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Tags: 예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연구자) 펑 주, Feng Zhu 펑 주 박사(Dr. Feng Zhu)는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디지털 인문학부에서 게임과 가상환경(Games and Virtual Environment)을 가르치고 있으며, 권력, 주체성, 놀이의 교차점으로서 게임플레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로 우리가 게임플레이를 통해 어떤 식으로 습관화되는지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수행하며, 특히 반영성과 주의력의 양가적 형태를 심어줄 수 있는 종단적 자아 형성으로서 게임플레이 형식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 가운데서 일부는 존재의 미학적인 측면에서 해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연구자) 나보라 게임연구자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꽤 오래 전부터 해왔지만, 게임학을 접한 것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우연히 게임 수업을 수강하면서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간간히 게임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역사>, <게임의 이론>, <81년생 마리오> 등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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