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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or's View] 무던히도 게임이 많았던 2023년을 마무리하며

    2년 반동안 GG의 글들을 눈여겨 봐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년 2월, GG는 여전히 디지털게임과 우리라는 주제를 들고 변함없이 돌아오겠습니다. 차분함과 평온함이 가득한 연말연시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Back [Editor's View] 무던히도 게임이 많았던 2023년을 마무리하며 15 GG Vol. 23. 12. 10. 2023년은 특히 작년인 2022년과 비교해 본다면 굵직하고 유의미한 게임들이 무더기로 쏟아진 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면서 게임은 시들해지겠지 싶었지만 오히려 쏟아지는 게임 덕분에 누군가에겐 밖에 나가기가 힘든 한 해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워낙 대작들도 많았고, 작지만 의미가 묵직한 게임들도 많았습니다. 아마 올해 이루어질 여러 게임 어워드는 어느 해보다도 치열할 것이고, 비록 수상에 이르지 못하고 후보로만 머무르는 게임조차도 다른 해였다면 GOTY급의 위상을 차지할 수도 있었을 수많은 게임들이 2023년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GG는 그동안 GG를 거쳐간 여러 필자분들에게 당신들에게 있어 2023년을 기억할 만한 게임은 무엇이었는지를 물었고, 그 답변을 글로 받아보았습니다. 이 중에는 올해 여러 어워드를 휩쓸 대중적인 게임도 있고, 혹은 정말 소수의 마니아들만 만져볼 법 했던 게임들도 있습니다. 게이머 개개인에게는 모두에게 각자의 GOTY가 있을 것이지만, 비좁은 지면에서 그 모든 걸 다루기는 어렵기에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2023년의 게임이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 물어보는 선에서 그치게 되었습니다. 2021년 6월에 첫 선을 보였으니 이제 GG의 나이는 두돌 반, 곧 햇수로는 4년차를 맞이합니다. GG는 특정한 게임 타이틀을 두고 평점을 매기지는 않습니다만, 내년부터는 여건이 된다면 GG의 입장에서 한 해를 정리하는 GGG(Game Generation GOTY)를 손대볼 의향도 있습니다. 2023년 12월호는 그 작업의 얼리 억세스라고 봐주셔도 좋겠습니다. 2년 반동안 GG의 글들을 눈여겨 봐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년 2월, GG는 여전히 디지털게임과 우리라는 주제를 들고 변함없이 돌아오겠습니다. 차분함과 평온함이 가득한 연말연시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게임, 폭력, 범죄 연구의 타임라인

    2023년 8월 11일, 검찰은 신림동에서 거리에서 서있던 20대 남자를 흉기로 공격하여 사망하게 하고 3명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에 대해 “현실과 괴리된 게임중독 상태에서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이 젊은 남성을 공격하였다”라고 설명하며, 사건의 원인을 게임중독으로 지목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논란에 대해서 각계에서 의견을 밝혔지만, 게임과 범죄 간의 연구들을 기반으로 한 의견들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 Back 게임, 폭력, 범죄 연구의 타임라인 14 GG Vol. 23. 10. 10. 2023년 8월 11일, 검찰은 신림동에서 거리에서 서있던 20대 남자를 흉기로 공격하여 사망하게 하고 3명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에 대해 “현실과 괴리된 게임중독 상태에서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이 젊은 남성을 공격하였다”라고 설명하며, 사건의 원인을 게임중독으로 지목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논란에 대해서 각계에서 의견을 밝혔지만, 게임과 범죄 간의 연구들을 기반으로 한 의견들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이에 따라 이번 논문 세미나에서는 게임과 범죄의 관계에 대한 계량적인 연구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리뷰해보고자 한다. 전반적으로 독자들이 계량연구에 익숙치 않은 것을 고려하여, 조금 평이하게 개인의 감정도 가득 담아서 리뷰를 하였으니, 이 점을 고려해주었으면 한다. 게임과 범죄의 연관성에 대한 시작: 게임과 폭력(aggression)과의 관계와 현실과의 괴리 게임이 범죄를 만들어낸다라는 주장은 생각보다 많이 만연해있다. 이러한 주장의 이론적 배경은 크게 두가지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첫번째는 GAM(General Aggression Model)이라고 부르는 이론이다 (Allen & Anderson, 2017). 이 이론은 Social Learning Theory (Bandura, 1977)에 근거하고 있는데, 어떤 행동을 습득하는 것은 직접적인 경험도 중요하지만 관련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론이다. 이들 학자는 이 이론을 TV, 영화나 게임과 같은 매체에 적용하여 폭력적인 콘텐츠를 계속 접하면 아이들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두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이론은 둔감화 이론(desensitization theory)이다 (Griffiths & Shuckford, 1989). 이 이론은 반복적인 폭력적인 매체의 노출은 이용자가 폭력적인 행동 및 이로 인한 피해에 대해 둔감하게 만들며, 이후 이용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원래 TV 콘텐츠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이론이지만 게임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이론에 기초하여 게임과 폭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실험을 통해서 폭력적인 게임을 이용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폭력적인 경향을 많이 보인다는 결과들을 만들어내고 이를 기반으로 게임이 폭력을 야기하며, 더 나아가 범죄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특히 게임과 폭력 간의 관계에 대한 대표적인 학자들(Anderson이라던지…)은 위의 실험결과를 기초로 미국의 학교에서 총기난사사건에는 폭력적인 게임이 연관되어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Ferguson, 2008). 이러한 실험들이 제대로 되어 있는가에 대한 논란도 매우 크다. 1) 무엇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은 제한이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하도 이상한 실험을 해대는 연구자들이 많아서(ex. 흑인들을 대상으로 몰래 진행한 매독실험, 감옥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다루겠다고 실제로 사람을 가두고 폭력적인 행위를 조장한 스탠포드 감옥 실험 등), 요즘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임상시험 심사위원회(IRB: Institutional Review Board)의 승인을 거쳐야 하며, 폭력적인 행동을 직접적으로 하는 실험은 당연히도 승인이 될 수 없다. 이에 따라 이들 실험에서는 폭력성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게임을 한 이후 설문을 진행하거나, 상대방에게 (듣기 괴로운) 백색소음을 얼마나 많이 들려주는지, 편지에서 빈칸에 어떤 단어를 채우는 지를 이용하였는데, 이러한 측정이 폭력성을 제대로 측정하는 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구심이 존재한다. 게다가 실험 프로세스 전반에 있어서 게임과 폭력간의 관계를 강력하게 믿는 사람들이 진행했던 실험에는 문제가 많았으며, 실험 프로세스에서 문제(ex. 대상 선택이라던가, 변인들에 대한 부적절한 통제 등)들을 개선한 후속 연구들 및 메타분석, 그리고 종단연구들에서는 게임과 폭력간에는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Ferguson, 2015). 특히 심리학 실험에 대한 문제들이 많이 제기되면서 최근에는 실험을 진행하기 전에 먼저 실험 설계를 공개하고, 이후에 공개된 실험설계와 일치하는 실험을 진행하는 형태로 실험연구를 진행하는 연구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는데, 게임과 폭력과 관련된 연구에서 이렇게 먼저 실험설계를 공개한 연구들과 공개하지 않은 연구들 간에 결과에 유의한 차이가 존재하였다 (Ferguson, 2020). 퍼거슨은 더 나아가 이러한 새로운 매체에 대한 “폭력”에 대한 우려가 역사적으로 반복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스 시대에는 글쓰기에 대해 높은 우려가 존재하였으며, 소설, 만화, 음악, TV, 영화 등을 거쳐 이제 게임에 오게 되었는데, 이러한 우려에는 반복적인 패턴이 존재하며 학자들은 이러한 패턴을 모럴 패닉(Moral Panic)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Drotner, 1999; Ferguson, 2008) 2) . 아무튼 게임과 폭력간의 관계를 긍정하는 연구들은 과학적인 절차 측면에서도 문제를 많이 보이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그림 1>과 같은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GAM 및 둔감화 이론에 기반한 실험연구의 결과대로라면 게임의 이용량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범죄가 증가해야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인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단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적으로 전반적인 범죄율 뿐만 아니라 청소년 범죄율 모두 90년대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 그림 1 – 범죄율과 비디오 게임 판매량 추이(1998-2015). 출처: 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2021) Ferguson은 게임과 폭력간에 사실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힌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게임과 범죄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첫번째로 학술연구를 발표한 사람이기도 하다. Ferguson (2008)은 무엇보다 폭력적인 게임과 연관관계가 높다고 주장한 총기난사사건의 범인에 대한 기존의 profile 연구들을 살펴보고 폭력적인 게임과 범죄간에 실제적인 연관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특히 Ferguson이 주목한 연구는 2002년에 미국 비밀경호국과 교육부가 공동 연구를 진행한 총기난사사건 범인들에 대한 프로파일 연구이다 (Secret Service, 2002). Ferguson은 이 연구결과에서 총기난사사건 범인들의 게임 이용률을 역산했는데, 이는 14%에 불과하여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총기난사사건의 범인들이 오히려 게임을 적게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위에 보인 그림 1을 첫번째로 학술논문에 제시하며 게임과 범죄간에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현실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였다. 물론 Ferguson (2008)의 그림은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짧은 기간의 그림이었지만, 양상은 비슷하게 나타났다. 게임은 범죄를 감소시키는가? 계량연구의 어려움 위 <그림 1>을 보면 “게임은 범죄를 감소시키는구나, 증명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 그림만으로는 사실 게임이 범죄를 감소시키는 지를 계량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이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 때문인데, 소위 “황새와 신생아 이야기”라는 우화로 유명하다 3) . 산업혁명이 한참 진행될 때, 네덜란드에서는 황새의 개체수가 증가하니 신생아 숫자가 증가하는 변화가 이루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산업화가 진행되며 도시에 인구가 몰리는 현상과, 도시에서 쉽게 음식을 구할 수 있게 된 황새들이 증가하는 것에 기인한 것이다. 즉, 황새와 신생아는 상관관계는 존재하지만,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버전으로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황새의 개체수가 감소하자, 신생아가 줄어든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아무튼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명료하게 계량적으로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가지 관점에서 접근을 한다. 하나는 시계열 분석이다. 어떤 요인이 원인이었다면, 그 영향은 이 원인이 발생한 시점 이후에 만들어지며, 그 이전에 변화가 있다면 이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접근이다. 다른 하나는 패널 데이터분석이다. 패널데이터 분석은 다수의 대상이 여러 시점의 변화들을 다루는 분석 모형인데, 특정 요인에 대한 영향이 다수의 대상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면 이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접근이다. 마지막은 준실험설계(quasi-experiment)라는 방법인데, 현실에서도 실험과 같이 특정한 요인에 노출된 실험군과 노출되지 않은 대조군을 구분할 수 있으며, 이들의 사전-사후 변화들을 비교하면 인과관계를 분석할 수 있다는 접근이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게임과 범죄 간의 연구에 대한 흐름은 이 세가지 모두가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접근방법들이 존재함에도 게임과 범죄 간의 인과관계를 연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게임업계 때문이다. 게임과 관련한 통계가 생각보다 부실하게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공개들을 꺼려하는 관행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엮어서 분석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학자들이 창의적인 방법으로 데이터 확보의 어려움을 딛고 분석을 진행해 왔다. Ward (2011)의 연구: Video games and crime 게임과 범죄 간의 인과관계에 대해서 첫번째로 계량적으로 접근한 사람은 텍사스 대학 알링턴 캠퍼스의 경제학자인 Micheal R. Ward이다. 이 분은 패널데이터 방식으로 접근을 하였는데, 사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패널데이터 분석을 하기 좋은 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단일한 경제체제 아래에서 전혀 다른 정치적, 경제적 정책을 활용하는 50개 주를 보유하고 있고, 50개주의 차이를 패널데이터로 살펴보면 인과관계를 (조금 쉽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 측면에서 미국의 주별 데이터는 큰 차이가 없었는지, Ward 교수는 미국의 400개가 넘는 카운티를 대상으로 1994년부터 2004년까지 패널 데이터 분석을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카운티 별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 범죄 간의 차이를 살펴보았는데, 카운티 레벨에서 게임 이용자 숫자를 확인하는 것은 어려우니 그 대안으로 카운티 안에 존재하는 게임샵의 개수를 게임 이용자 통계의 대안으로 활용하였다. 또한 통제변수로서 카운티의 평균 소득, 실업률, 카운티 내 경찰관 수 및 인구와 영화간의 개수, 스포츠용품 샵도 포함시켜 분석을 진행하였다. 분석 측면에서는 범죄라는 것이 자주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포아송 패널 회귀 분석을 사용하였는데, 뭐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아무튼, 분석 결과, 살인과 강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범죄에서 게임샵 개수가 많을수록 범죄가 감소하는 것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나타났으며,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강건성(robustness) 확인 과정에서도 명확하게 인과관계를 보임을 확인하였다. Cunningham et al. (2011) & Cunningham et al. (2016)의 연구 Ward 교수와 미국 베일러 대학의 Cunningham 교수, 그리고 독일 다름슈타트 대학의 Engelstätter 교수가 함께 공저한 이 연구는 준실험설계 방법을 활용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연구가 주목한 것은 성인과 청소년들의 게임의 양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게임이 새롭게 출시되었을 때 새로운 게임에 집중하는 청소년들과 그렇지 않은 성인들은 (게임과 범죄 간에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면) 게임 출시 이후 범죄율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는 관점에서 접근을 진행하였다. 또한 기존 Ward(2011)의 연구에서는 게임 매출 전반을 활용하였는데, 이번 연구에서는 폭력적인 게임과 비폭력적인 게임의 매출을 VGChartz의 자료를 활용하여 분리하여 활용하였다. 또한, 게임이라는 것은 자체는 출시 시점의 판매량보다는 게임 플레이가 중요한데, 게임 플레이 시간의 분포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모형화하여 분석에 반영하였다. 이를 통해서 일반적인 게임은 범죄율에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폭력적인 게임은 범죄율을 감소시키는 게 기여한다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또한, 성인과 청소년 간의 비교를 통해 청소년에 있어서 게임이 범죄율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것을 보이고, 이를 통해 게임과 범죄간, 특히 폭력적인 게임이 범죄율을 감소시키는 인과관계를 실증하였다. Markey et al. (2015): 게임과 범죄 간의 인과관계에 이론을 더하다. Markey는 미국 빌라노바 대학의 심리학과 뇌과학 학부 교수로서 심리학 관점에서 게임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하는 학자 중 한명이다. Markey 교수 연구팀은 시계열 관점에서 폭력적인 게임과, 일반적인 게임, 그리고 범죄 간의 인과관계를 시계열분석을 통해 분석하였으며, 분석 결과 게임은 현실의 폭력을 증가시키기보다는 감소시킨다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사실 이 연구에 실린 다음 그림 하나로 요약해볼 수 있다. GTA의 출시 및 이에 대한 이용자의 관심(구글 검색량)은 폭력적인 범죄를 감소시키는 데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를 시계열분석의 복잡한 도구들을 활용하여 실증하였다. * 그림 2 – 폭력적인 게임(GTA) 출시와 폭력적인 범죄 간 변화율 비교(2003 – 2011)> 그러나 이 연구의 가치는 시계열분석을 통한 인과관계 증명보다는 도대체 왜 게임이 범죄를 감소시키는 데 기여를 하는지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을 시도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카타르시스 이론을 제시하였는데, 격한 게임을 하고 나면 내재된 공격성이 해소되어서 현실에서 공격적인 행동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 범죄에 관련한 연구에서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지루함”이라는 결과가 있는 만큼, 이 이론도 설명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이론을 제시한 학자들 조차도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다. Beerthuizen et al. (2017) : 네덜란드에서 GTA5의 출시와 청소년 범죄와의 관계 이 연구는 서두에서 청소년 범죄가 전세계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를 밝히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 중 하나가 게임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연구를 시작한다. 이에 따라 GTA 5의 출시효과를 모형화하여서 폭력적인 게임의 대명사인 GTA5가 네덜란드의 청소년 범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2012년부터 15년까지 일간 데이터를 활용하여 분석을 진행하였다. 분석 결과, GTA5의 출시는 청소년들의 범죄를 감소시키는 데 기여를 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GTA5만 이러한 효과가 발생할 수 있으니 게임을 바꾸어서 “콜오브듀티:블랙옵스2”, “콜오브듀티: 고스트”에 대해서도 동일한 분석을 진행하였는데, 이들 게임도 모두 청소년 범죄를 감소시키는 데 기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가 중요한 점 하나는 게임과 범죄간의 관계를 RAT(Routine Activity Theory)라는 범죄모형(Cohen & Felson, 1979)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후 연구들은 게임과 범죄간의 관계를 설명할 때 이 이론들을 중심으로 이 현상을 전반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RAT 이론은 범죄는 범죄동기를 가지고 있는 공격자가 효과적인 보호가 배제된 적절한 대상을 적절한 시간과 공간에서 만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이에 따라 이러한 공격자가 동일한 시간과 공간 내에 존재하지 않도록 한다면 범죄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때 게임이 인기를 끌게 되면 범죄동기를 가지고 있는 공격자는 게임으로 인해 피해자를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만나기가 어렵게 되고 범죄가 감소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피해자 측면에서도 게임을 하느라 집에 계속 있기 때문에 범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감소하고 이는 범죄율의 감소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RAT 이론을 활용하여 이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RAT 이론은 범죄자를 가두어서 범죄율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 즉 교도소의 운영을 지지하는 이론이지만 이렇게 게임과 범죄의 관계에서도 유효한 설명을 만들어내고 있다. McCaffree & Proctor (2018) : 이불 밖은 위험하다. 이 연구는 앞의 연구와 같이 RAT 이론에 주목하여, 집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통계를 만들어낸 뒤, 집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범죄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살펴보았다. 이렇게 연구들을 시간상으로 늘어놓으니 이 연구가 Beerthuizen et al. (2017)의 영향을 받은 듯 해보이지만, 보통 이러한 경제학 도구를 활용한 연구들이 출간되는 기간들이 1년이 넘어가기 때문에 거의 동시에 진행된 연구라고 봐도 무방해보인다. (게다가 RAT 이론이 게임과 범죄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해서는 Griffiths & Sutton (2013)과 같이 여러 학자들이 생각하고 있던 것이기도 하다.) 이들은 미국의 50개주의 통계들을 잘 엮어서 집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물론, 자료의 한계로 인해 1997, 2001, 2003년 3개년의 자료를 바탕으로 패널을 분석하였다. 분석에 있어서 집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 비율 뿐만 아니라 빈곤층 비율, 실업률, 인구밀도 등 범죄에 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져 있는 주요한 요인도 함께 반영을 하였다. 분석 결과, 집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높은 주에서는 범죄율이 낮게 나타나는 추세들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나타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집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모든 범죄율을 낮추어주는 것은 아니다. 절도, 무단침입, 살인 등에 있어서는 집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을수록 범죄율이 감소하였으나, 폭력범죄나 강간 등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이 없었다. 이를 통해, 집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범죄를 피하는 데 효과적이며, 이불 밖은 위험하다라는 오래된 격언이 의미가 있음을 다시 한 번 알려주는 좋은 연구라고 할 수 있겠다. Ferguson & Smith (2021) : 이번에는 전세계적으로 살펴볼까 기존의 연구들이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만 진행되었기 때문에 Ferguson과 Smith는 92개국의 통계를 기반으로 회귀분석을 통해 게임과 범죄 간의 관계를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92개국 전반에 걸쳐서 살인과 자살과 같은 문제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소득수준이나 빈부격차와 같은 경제적인 지표이며, 게임은 부차적인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살인의 경우 빈부격차가 높을수록 살인 범죄가 많이 발생하며, 게임은 오히려 살인범죄를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살의 경우, 소득수준이 핵심적인 유인이며 게임과 자살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계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반대되는 결과의 연구도 존재하지만, 문제들이 좀 많다. 물론, 위의 방법들과 유사한 도구들을 활용하여 게임이 범죄를 높인다고 주장하는 연구들도 존재한다. Impink et al. (2015)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일간 자료를 바탕으로 청소년의 범죄가 게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으며, 분석 결과 게임이 출시된 시점에서 청소년의 범죄가 증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게임의 출시가 범죄율의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였다. 문제는 이들이 통제변수를 단순히 게임등급별 게임 출시 여부로만 반영하였을 뿐만 아니라, 게임 출시 여부 이외 일반적인 범죄를 설명하는 통제변수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최재윤(2017)은 패널 회귀분석을 통해 54개국의 청소년범죄, 살인, 성폭력, 강도, 폭행, 절도, 빈집털이 등에 1인당 게임소비금액을 반영하여 게임이 범죄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였다. 이 때 게임 이용량은 1인당 게임지출비용을 활용하였으며, 비디오게임과 PC/온라인 게임, 모바일게임 소비를 분리하여 효과를 측정하였다. 또한, 통제변수로는 1인당 GDP, 청소년 인구비율, 인터넷보급률, 경찰 인원 규모 등을 반영하였다. 분석 결과 1인당 PC/온라인 게임 소비나 모바일 게임 소비는 범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청소년 범죄를 낮추는 효과를 보였으나, 1인당 비디오게임 소비가 증가할수록 청소년 범죄나 성폭력, 강도, 폭행, 강력범죄가 증가하는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1인당 비디오 게임 소비금액은 해당 국가의 게임 이용량을 대표하는 지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플랫폼별 차이가 범죄율에 미치는 영향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음에도 분리하여 분석을 하였는데, 이 부분에도 큰 우려가 존재한다. 그럼 저자는 리뷰만 하고 연구는 안하나? 물론… 이런 오해를 할 수가 있다. 이를 이해하려면 학술출판이라는 개념을 (이미 아시겠지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연구결과를 짜잔하고 만들었다면, 이를 논문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좀 잘하는 사람은 1주일만에 다 끝낸다고 주장하지만, 생각보다 이 기간이 오래 걸린다. 뭐, 오래 걸린다고 해도 1년씩 걸리는 건 아니다. 보통 방학 기간에 해결하기 때문에 6개월 정도가 일반적인 기간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낸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는 기간이다. 학술지에 투고하고 의견을 반영하여 출판되는 데 짧으면 6개월, 길면 2년까지 걸리기도 한다. 저자의 경우 2014년에 만든 연구가 2020년에 실리는 경험을 한 적도 있다 (어흑). 우리 연구팀의 연구가 공교롭게도 리뷰를 작성하는 기간에 논문에 투고가 되며, 자동적으로 아직 심사가 안된 논문이 공개되어버리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래서 최근 저자의 생생한 연구는 다음에서 보실 수 있다. https://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4586747 우리 연구의 핵심은 준실험설계(quasi-experiment)이다. 특히 셧다운제로 인해 16세 미만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게임량이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16세 이상에서는 이러한 효과가 낮게 나타났다. 이를 활용하여서 16세 미만은 실험군, 16세 이상은 대조군으로 잡아 게임 이용량의 감소가 학교폭력이나 청소년 비행 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분석 결과, 사실 게임 이용량이 감소하였다고 학교 폭력이 감소하지는 않았다. 즉, 게임소비량과 학교폭력 간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기존 연구들을 다시 한번 증명한 것이다. 유사한 실험설계를 활용하여 게임과 여러가지 부정적인 효과에 대한 인과관계 규명을 준비하고 있는데, 늘 게임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쪽의 강력한 재정적 지원을 보며 아쉬워할 뿐이다. 아무튼, 저자도 리뷰 뿐만 아니라 연구 측면에서도 열심히 뛰고 있다. 1) 게임과 폭력간의 관계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는 Anderson vs Ferguson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많은 연구들이 존재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Bayesian님이 정리한 [게임과 심리학]의 관련 링크( https://ppss.kr/archives/5827)를 참고하기 바란다. 또한 이 싸움의 전방에서 가장 열심히 싸운 퍼거슨 교수와 마키 교수는 “모럴 컴뱃”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이 책이 2021년에 나보라 박사님의 번역으로 출간되었으니, 이 책도 강력하게 추천한다. 2) 슬픈 사실은 이렇게 학술적으로는 명확하게 게임과 폭력간의 관계가 부정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이를 긍정하는 수많은 (잘못된) 연구들이 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3) 서양에서는 아이는 황새가 물어다준다는 설화가 존재한다. 참고문헌 Allen, J. J., & Anderson, C. A. (2017). General aggression model. The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media effects, 1-15. Bandura, A., & Walters, R. H. (1977). Social learning theory (Vol. 1): Englewood cliffs Prentice Hall. Beerthuizen, M. G., Weijters, G., & van der Laan, A. M. (2017). The release of Grand Theft Auto V and registered juvenile crime in the Netherlands. European journal of criminology, 14(6), 751-765. Cunningham, S., Engelstätter, B., & Ward, M. R. (2011). Understanding the effects of violent video games on violent crime. ZEW-Centre for European Economic Research Discussion Paper(11-042). Cunningham, S., Engelstätter, B., & Ward, M. R. (2016). Violent video games and violent crime. Southern Economic Journal, 82(4), 1247-1265. 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2021) Essential Facts about Games and Violence available at https://www.theesa.com/wp-content/uploads/2021/03/EFGamesandViolence.pdf Ferguson, C. J. (2008). The school shooting/violent video game link: Causal relationship or moral panic? Journal of Investigative Psychology and Offender Profiling, 5(1‐2), 25-37. Ferguson, C. J. (2015). Do angry birds make for angry children? A meta-analysis of video game influences on children’s and adolescents’ aggression, mental health, prosocial behavior, and academic performance.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10(5), 646-666. Ferguson, C. J. (2020). Aggressive video games research emerges from its replication crisis (sort of). Current opinion in psychology, 36, 1-6. Ferguson, C. J., & Smith, S. (2021). Examining homicides and suicides c ross‐nationally: Economic factors, guns and video games.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logy, 56(5), 812-823. Griffiths, M. D., & Shuckford, G. L. J. (1989). Desensitization to television violence: A new model. New Ideas in Psychology, 7(1), 85-89. doi: https://doi.org/10.1016/0732-118X(89)90039-1 Griffiths, M., & Sutton, M. (2013). Proposing the Crime Substitution Hypothesis: Exploring the possible causal relationship between excessive adolescent video game playing, social networking and crime reduction. Education and Health, 31(1), 17-21. Impink, J., Kielty, P., Stice, H., & White, R. M. (2015). Do Video Games Increase Crime? Available at SSRN 2652919. Jeon, R., Kim, J., & Yoo, C. (2023). No Gameplay Makes Jack a Good Boy?: A Study of Online Games and Aggression in a Quasi-Experimental Setting. Available at SSRN: https://ssrn.com/abstract=4586747 Markey, P. M., Markey, C. N., & French, J. E. (2015). Violent video games and real-world violence: Rhetoric versus data. Psychology of Popular Media Culture, 4(4), 277-295. McCaffree, K., & Proctor, K. R. (2018). Cocooned from crime: The relationship between video games and crime. Society, 55(1), 41-52. U.S. Secret Service & U.S. Department of Education. (2002). The final report and findings of the Safe School Initiative: Implications for the prevention of school attacks in the United States. Retrieved from https://www.secretservice.gov/sites/default/files/2020-04/ssi_final_report.pdf Ward, M. R. (2011). Video games and crime. Contemporary economic policy, 29(2), 261-273. 최재윤. (2017). 플랫폼별 게임이 범죄에 미치는 영향: 국가단위 자료를 이용한 분석. 법경제학연구, 14(2), 361-393. Tags: 폭력성, 연구리뷰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유창석 경희대학교 문화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넥슨, 엔씨소프트, CJ엔터테인먼트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11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게임산업이나 관광산업 등 엔터테인먼트 전반에 걸쳐 소비자 연구 및 산업정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경제학적 도구를 활용하여 연구를 진행하며, 최근에는 게임의 비즈니스 모델과 게임 이용자의 행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학교의 강력한 압박에 굴복하여 지금까지 29편의 국내 학술지 및 17편의 해외 학술지에 학술연구를 발표하였으며, Journal of Media Economics, Journal of Business Research, Information Processing & Management와 같은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술지에 지속적으로 연구를 발표하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김지운 김지운 인디음악 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예술사회학 연구와 (공연)사진 촬영에 매진중이다. 라캉 정신분석 철학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영번역을 맡았다. Read More 버튼 읽기 모든이에게 게임을! 국립재활원 “같이 게임! 가치게임” 프로젝트 인터뷰 그 중에서도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자립생활지원기술연구팀은 보조기기의 국산화를 위해 2020년부터 노인·장애인 보조기기연구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경제적 가치 부문과 사회적 가치 부문으로 나뉜다. 전자가 개인이 부담하기에 지나치게 비싼 해외 보조기기를 국내에서 연구개발하고 상용화하는 프로젝트라면, 후자는 장애인과 노인에게 꼭 필요한 보조기기 수요를 공모를 통해 파악하여 수요자와 함께 개발하고 오픈소스로 공유하는 프로젝트이다. 버튼 읽기 ‘보는 게임’ 제작의 현장을 찾아서 - ‘LCK’ 세계화의 주역,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진예원 프로듀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스포츠 리그는 라이엇 게임즈의 LCK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일 것이다. LCK는 국내와 해외 등지의 LOL 게이머들과 프로 선수들의 팬덤을 아우르는 최대의 축제이다. 이 축제에서 관객들은 경기를 관전하는 짜릿함과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다. 이렇게 LCK는 게임이 가져다 주는 재미를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롤드컵 결승은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 (Emmy) 상을 거머쥐어 그 저력을 톡톡히 증명해내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에서 LCK 프로듀싱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예원 PD를 만나 LCK 제작의 비화를 듣는 것은 물론 이스포츠의 전망까지 살펴보도록 할 예정이다. 버튼 읽기 불멍을 넘어, 소비자본주의 너머: 게임 〈리틀 인페르노〉 비평(우수상) 물건을 태워서 종잣돈을 늘리고 새로운 물건을 해금한다. 그리고 일종의 업적이기도 한 특정 물건의 조합을 찾아 태우는 재미는 분명 게임으로서의 즐거움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주된 게임성을 경험하게 하는 시스템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회의하고 그 밖을 사유하기를 적극적으로 재촉한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세지가 게임적 시스템과 충돌한다.

  • 〈포켓몬 고〉는 당신의 시공간에 침투한다

    〈포켓몬 고〉는 2016년 글로벌 출시된 증강 현실 모바일 게임이다. 증강 현실이란 더해진 현실이라는 뜻이니, 현실 위에 정보 레이어가 한 겹 더해졌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지리 데이터 위에 포켓몬스터 데이터를 덧씌워보니 게임이 탄생했다. 출시 초기 〈포켓몬 고〉는 플레이어의 GPS를 추적하여 구글 맵 위에 포켓몬들을 등장시키고,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만 보여주던 포켓몬스터 트레이너의 삶을 살아보도록 선보였다. < Back 〈포켓몬 고〉는 당신의 시공간에 침투한다 08 GG Vol. 22. 10. 10. 〈포켓몬 고〉는 2016년 글로벌 출시된 증강 현실 모바일 게임이다. 증강 현실이란 더해진 현실이라는 뜻이니, 현실 위에 정보 레이어가 한 겹 더해졌다는 의미다. 일반적인 지리 데이터 위에 포켓몬스터 데이터를 덧씌워보니 게임이 탄생했다. 출시 초기 〈포켓몬 고〉는 플레이어의 GPS를 추적하여 구글 맵 위에 포켓몬들을 등장시키고,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만 보여주던 포켓몬스터 트레이너의 삶을 살아보도록 선보였다. 하지만 지리 정보를 이용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국의 사례와 같이 국가 기밀 등의 이슈로 국가별 지도 데이터 확보는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7년 개발사는 오픈 소스인 오픈 스트리트 맵(Open Street Map, OSM)으로 지도 데이터 기반을 바꿔 지금까지 현실 공간을 모험의 공간으로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구글의 사내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개발사 나이언틱이 자사의 지리 정보를 포기하고 오픈 소스를 선택한 것은 과감하면서 탁월한 결단이었다. 이후로 〈포켓몬 고〉는 철저히 커뮤니티 기반의 서비스가 된다. 오픈 스트리트 맵은 위키피디아처럼 전세계의 개인 편집자들이 정보 수집에 기여하여 하나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형태다. 〈포켓몬 고〉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플레이 요소인 포켓 스탑이나 체육관의 위치를 유저 커뮤니티가 논의하여 결정할 수 있게 ‘Niantic Wayfarer’라는 자체 심사 시스템을 구축했다. 〈포켓몬 고〉 속의 지리 정보는 수많은 유저들이 만든 결과물이다. 지리 정보의 기여자가 되기 위해서 트레이너 레벨 37 이상 달성해야한다. 플레이어는 트레이너를 넘어 ‘맵 제작자’가 되는 또 하나의 역할을 부여 받게 된 셈이다. 당신의 데이터를 주워 만드는 게임 〈포켓몬 고〉가 표방하는 주요 컨셉은 한마디로 “포켓몬들이 당신의 근처에 있다”는 것이다. 일명 ‘야생’ 상태의 포켓몬은 플레이어가 움직이고 있는 위치 근방에서 생성된다. 마주친 포켓몬에게 플레이어는 포켓볼을 던져서 잡는다. 이 과정은 모두 확률 싸움이다. 던진 포켓볼의 등급, 회전구의 여부나 던진 타이밍의 정확도, 나무 열매 아이템의 사용 여부, 그리고 포켓몬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희귀도 등이 점수로 합산되어 포켓몬을 최종 포획하는 확률이 결정된다. 이 말은 즉,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게임 조작 능력을 크게 요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커브볼이나 타이밍에 맞춰 던지는 행위는 며칠 플레이 하다보면 쉽게 손가락 요령을 얻을 수 있다. 길을 걷고, 발견하고, 던지는 이 심플한 〈포켓몬 고〉의 메카닉은 플레이어의 연령대 경계를 파괴한다. 때문에 어린이부터 중년층 이상까지 넓은 유저풀이 6년 가까이 이 게임을 즐기고 사용자수 순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게임의 또 다른 컨셉은 “당신이 사는 곳 근처가 게임의 무대가 된다”로 이어진다. 플레이어가 매일 드나드는 포켓 스탑과 체육관은 실제 지역의 거점에 기반한다. 퀘스트와 아이템을 획득하고, 자신의 포켓몬을 과시하거나 다른 유저와 싸우기 위해서 플레이어는 근처의 공원이나 프랜차이즈 편의점, 골목길 벽화, 특이한 조형물에 행차한다. 그곳이 게임이 펼쳐지는 주 무대다. 특히 체육관은 특정 시간이 되면 희귀 포켓몬이 출현하는 레이드의 공간으로 설정된다. 레이드를 벌여 여러 명의 플레이어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오프라인 자력이 〈포켓몬 고〉라는 게임이 작용시키는 ‘힘’인 것이다. 〈포켓몬 고〉는 보행하는 플레이어가 떨어뜨리는 데이터 조각들을 열심히 주어 담아 게임의 자료로 남김없이 가공한다. 보행 거리, 날씨, 자연 환경, 계절 등이다. 오늘 얼마나 걸었는가? 게임은 플레이어의 족적을 측정하여 포켓몬의 알을 부화시키고 퀘스트를 달성하도록 한다. 오늘 날씨는 어떠한가? 비가 내릴 때와 눈이 올 때 당신은 서로 다른 포켓몬을 마주할 것이다. 게임은 날씨에 맞는 포켓몬 군집을 배정하여 다양하게 등장하도록 짜여져있다. 혹시 사막 또는 해변 근처에서 걷고 있는가? 그렇다면 특정한 자연 환경에서만 서식하는 포켓몬이 나타나 있을 것이다. 사계절 중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가? 여름과 겨울에 만날 포켓몬들은 각각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예측할 수 없다는 현실의 본질은 게임에서 ‘이벤트화’되기 최상의 조건으로서 탈바꿈한다. * 포켓몬 고와 연동되는 계절 데이터 코로나19 위기에 단단해진 게임 현실 데이터로 치밀하게 직조된 게임은 당연하게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피할 수 없었다. 현실과 연동된 게임은 정지한 현실에 뒤따라 함께 멈춰버렸다. 사람들이 걷지 않자 포켓몬 트레이너도 한 발자국도 발을 뗄 수 없었다. 〈포켓몬 고〉는 시류에 맞추어 대책을 세우며 오프라인에서 세미-오프라인으로 기준점을 옮겨가기로 했다. 우선 포켓몬 출몰량이 증가하는 특별한 날인 ‘커뮤니티 데이’가 사라졌다. 사람들의 군집 가능성을 차단시킨 것이다. 전염병 사태가 더욱 심해지자 플레이를 집중하도록 만드는 장치였던 레이드 아워, 스포트라이트 아워 등 또한 무기한 중지되었다. 이에 따라 안전하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수단이 도입되었는데, 2020년 3월 3일 〈포켓몬 고〉의 플레이어들이 원격으로 서로 배틀을 진행할 수 있도록 배틀 리그 참가조건을 제거했고, 체육관이나 포켓 스탑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닿을 수 있도록 접근 반경을 조정했으며, 포켓몬 등장 확률을 높이는 아이템인 향로의 지속시간을 증가시켰다. (글을 쓰는 2022년 현재 중지되었던 이벤트는 재개 되었으며 배틀리그 참가 조건 등의 플레이 원격화 대책들은 유지 상태에 있다.) 자칫 존폐 위기에 있던 〈포켓몬 고〉는 위기를 기회삼아, 마치 포켓몬들이 방어 기술로 ‘단단해지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온라인-오프라인 하이브리드 형태를 구축하며 단단해졌다. 친구 관계는 오프라인으로(QR코드) 맺되 교류는 원격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다른 유저들과 침대에 누워서 싸울 수 있지만 출전할 포켓몬의 성장은 일정한 거리를 활보해야만 도모가 가능하도록 한다. 여러 명이서 힘을 합쳐 공략하는 레이드를 각자의 집에서 할 수도 있게 리모트 레이드패스 아이템을 추가하였지만 그 아이템의 취득의 난이도를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 리모트 레이드 패스 게임이 매개하는 지역 커뮤니티 ‘레이드방’ 게임이 출시되고 얼마 되지 않은 2017년, AR게임이라는 하이프를 겪은 이후 인기가 사라질 것 같았던 〈포켓몬 고〉는 여러 시스템을 추가하면서 국내에서 모바일 게임 이용자수가 가장 많은 게임 중 하나로 순위권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무엇이 인기를 꾸준히 유지하게 만들었을까?이렇듯 단단해진 게임의 코어에는 레이드 배틀(줄여서 레이드)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레이드는 불시에 출몰하는 고급 포켓몬을 체육관에 여러 사람이 모여 동시에 공격하는 파티 성격의 이벤트다. 인원을 모으고 서로의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사전 작당모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유저 커뮤니티가 활발하고, 이 커뮤니티에서 레이드 참여자를 모집하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주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형성된 커뮤니티는 마포구, 송파구, 구로구와 같은 구 단위로 형성되거나 김포, 제주와 같은 시 단위로 묶이기도 한다. 해당 위치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검색하여 채팅방에 참여할 수 있다. 필자는 지역 레이드방에서 활동하며 문화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을 관찰했고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포켓몬 고〉의 지역 레이드방은 온라인의 익명 구조에 있지만 같은 지역에 거주한다는 신뢰에 기반한 정보 공유의 장이 된다. 마치 GPS 인증 기반 중고 거래 장터앱 ‘당근 마켓’이 넓은 범위의 온라인 커뮤니티 ‘중고 나라’보다 끈끈한 공동체의 성격을 보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레이드방에서 주로 공유되는 정보는 인근 레이드 보스 출현 현황이다. 레이드 보스는 한 번 등장하면 45분이라는 제한 도전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지지만, 언제 어떤 포켓몬이 보스로 등장할지 플레이어가 알 수 없는 레이드 시스템의 특성상 하루종일 게임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레이드 현황을 시간 맞춰 파악하기 어렵다. 레이드방 참여자들은 어떤 레이드 보스가 해당 지역 근방에 등장하고 있는지 또는 등장할 예정인지를 스크린샷과 함께 정보를 공유하며 돕고 있다. 레이드 보스가 알에서 깨어나기 때문에 이를 ‘알 상황’ 공유라고도 부른다. A: 00쪽 알 상황 알 수 있을까요? B: (사진) A: B님 감사합니다. A: 여러분 00백화점 근처 ‘터검니’ 나왔어요! B: 저 지금 본가에 와 있는데 슬프네요. A: 혹시 ‘마기’ 등장하면 제보 부탁드리겠습니다. B: 저도 제보 기다립니다. 레이드는 1성, 3성, 5성과 같이 도전 난이도가 부여되어 있는데, 어려운 레이드의 보스는 일정 인원 이상이 참여해야만 성공 가능성이 확실해진다. 레이드에 도전하고 싶은 유저는 함께 도전할 팀원을 모집하는 공고문을 레이드방에 게시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채팅방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공고문 양식은 까다롭고 규격화 되어있다. 이 양식에는 만나기로 할 약속 시간과 장소, 레이드 난이도 또는 등장하는 보스 포켓몬 이름, 참여자 이름이 들어갈 공란의 수가 적시 되는 편이다. 만약 참여자가 스마트 폰을 2대로 참여한다면 2인분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디 옆에 +1을 적어두기로 합의된다. 레이드 모집은 하루에도 수도 없이 이루어지지만, 매주 특정 요일 및 시간마다 반복되는 레이드 아워 이벤트 때에 가장 활발한 편이다. 카카오톡 메시지 알림은 끊임 없이 울린다. 모집 공고문이 마감되면, 약속된 시간에 모인 레이드 팀원들은 서로의 인상착의를 올려 현실 만남에서 알아볼 수 있도록 한다. “조형물 앞에 하얀 외투 입고 서있습니다"와 같은 말들이 오고 간다. 레이드 개최자로부터 최초 공지되는 공고문 7:23 00지역 00조형물 앞 레이드 난이도 5성 1 A(개최자) +1 2 3 4 사람들의 참여로 채워지는 공고문 양식 7:23 00지역 00조형물 앞 레이드 난이도 5성 1 A(개최자) +1 2 B +2 3 C +1 4 D 5 E 6 F 7 G +1 8 H +1 레이드 시작 직전과 직후의 대화 (레이드 시작 전) A/31 : 어디세요? B/30 : 000앞 도착했습니다~ A/31 : 어디세요 다들 C/28 : 000이 어디 쪽인가요? D/30 : 0000 앞 광장이요 E/28 : 000앞인데 E/19 : 저도 000 앞이에요 (레이드가 끝난 후) C/28 : 000? 여기 이건가... 아머드 뮤츠 E/19 : 저희 끝났습니다.. G/26 : 끝났어요ᅮ E/28 : 헐 ᅲ A31 : 고생하셨어요 여러분~~ E/19 : 고생하셨습니다!! D/30 : 고생하셨어요~~~ ᄒᄒᄒᄒᄒ 오프라인으로 만나기 때문에 파티 약속은 신뢰가 매우 두텁다. 물리적인 공간 이동을 필요로 하여 다른 플레이어가 허탕을 치게 하면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이드 파티에 무단 결석시 채팅방에서 퇴장되어 더이상 활동을 할 수 없도록 처벌이 가해지기도 한다. 또한 해당 채팅방에서 모집된 레이드 팀원은 현장에 모인 일반 개인 유저들과 플레이가 뒤섞이면 안된다. 모집문에 기입된 명단이 모두 참석했는지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쇼를 하는 팀원의 경우 공개적으로 질타와 제재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레이드 리더는 반드시 참여코드를 생성하여 레이드 팀원만 플레이에 입장할 수 있도록 공유한다. 사람들은 같은 체육관 앞에 서있지만, 투명하게 세워진 경계에 의해 분리된다. 이러한 레이드 참여 규율들은 〈포켓몬 고〉 지역 커뮤니티 채팅방에 명시되어 있어 반드시 지켜야할 규칙으로서 나타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다고 마냥 이해타산적이며 친밀함의 경계를 삼엄하게 세우진 않는다. 다양한 배경의 플레이어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일들도 벌어진다. 참여자들의 주요 연령대는 20~30대지만, 극단에는 10대나 50대 이상도 존재한다. 이들은 서로를 연령 구분 없이 ‘님’이라는 수평적인 호칭으로 부르며 활발하게 플레이를 이어간다. 이들의 연령 구분 없는 문화의 단편적인 일화를 언급하자면, 나이든 유저를 혼내는 중학생 유저가 있었다. 14세라고 밝힌 한 레이드 개최 유저는 공고문을 올려 사람들을 모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 43세 유저가 레이드 약속 시간에서 5분 정도 지각을 할 것 같아 뛰어오고 있었고, 14세 레이드 리더는 “안 오시면 시작할 거예요”라는 엄포를 놓으며 닦달하였다. 나이든 유저를 버리고 시작했는지, 아니면 기다렸는지 채팅 밖 상황은 알 수 없지만, 게임의 유저 문화는 현실에서 오는 어떠한 위계가 작동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마음 따뜻한 광경이 펼쳐질 때도 있었는데, 한 49세 유저는 자신이 오늘 잡은 희귀 포켓몬을 자랑했다. 그러자 15세, 31세, 44세, 48세 유저들이 연이어 칭찬어린 말을 이어갔다. 손수 사진을 찍어 본인이 잡은 포켓몬을 보이고, 채팅방 속 읽은 숫자가 점차 늘어나더니 “잡으신 것 축하드려요!"라고 떠오르던 메시지들. 필자가 관찰했던 지역 커뮤니티 레이드방 풍속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서로 같은 목적을 지향하는 놀이 모임이자 익명의 지역 공동체에 가까웠다. 공간을 넘어 플레이어의 시간과 간식까지? 위치 정보에 기반하여 플레이어의 공간과 연동되는 것을 필두로 했던 게임은 점차 넓은 범위로 촉수를 드리 세운다. 시작과 끝이 있는 정적인 게임과 다르게, 출시 이후 플레이어의 삶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생명을 이어가는 라이브옵스(LiveOps)의 특성이 〈포켓몬 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게임은 날짜에 기반한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플레이어의 한 달 스케줄을 조직한다. 매주 화요일 오후 6시~7시는 특정 포켓몬이 등장하는 스포트라이트 아워, 수요일 6~7시는 희귀한 포켓몬이 레이드 보스로 자주 등장하는 레이드 아워, 한 달에 한 번 사전 공지되어 찾아오는 보상 집중의 커뮤니티 데이, 그리고 매주 달라지는 특별한 포켓몬 등장과 종종 추가되는 이벤트 기간까지. 〈포켓몬 고〉는 한 달 내내 계획을 세워 플레이어들을 더욱 게임과 결합시킨다. 플레이어들은 이에 맞춰 이벤트 달력을 만들고 커뮤니티에 공유하여 패턴을 맞추도록 노력한다. 기간 한정이지만, 〈포켓몬 고〉는 동일한 포켓몬스터 IP를 활용하는 포켓몬빵과도 연동을 시도한다.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품절 대란이 이는 포켓몬빵을 활용하여, 스티커 뒷면에 코드를 삽입해 〈포켓몬 고〉 게임 속 아이템을 증정한다. 플레이어는 처음엔 삶의 공간과 게임을 연동하고, 그 다음에는 삶의 시간과, 마지막으로 자신이 먹는 음식과 게임을 연결 짓는 은밀한 경험을 한다. * 사진 4- 커뮤니티에 공유되는 이벤트 달력 * * * 서비스 6년이 넘은 〈포켓몬 고〉는 가장 처음 기반을 닦은 GPS기반 컨셉에서 점차 플레이어의 다른 데이터와 연동을 실현하고 있다.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게임은 굴복하지 않은채 그 틈을 찾고 주인 없는 데이터를 주워 현실-가상현실 간의 연결을 꿰한다. 개발사의 이러한 시도 속에서 플레이어들은 레이드를 중심으로 끈끈한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한다. 오프라인 속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임의 대명사라고 볼 수 있는 〈포켓몬 고〉가 점차 온라인-오프라인의 하이브리드를 선보인다. 이 모든 것은 캐릭터를 매개로 한 구글과 닌텐도 자본의 기획, 점차 게임 콘텐츠로 활용될 포켓몬 수가 고갈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다음에는 또 어떤 ‘이벤트'를 기획하여 현실-가상현실 간 데이터 연결을 탄생시킬지 주목할만 하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성훈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Read More 버튼 읽기 동시대 JRPG의 얼굴들 – 야쿠자, 왕자, 그리고 이방인 <33원정대>는 두 현실 사이에 중재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둘 중 하나의 편을 택해야 하며, 선택은 곧 다른 하나의 세계와 가능성을 돌이킬 수 없이 폐기하는 행위로 기능한다. 각자에게 할당된 엔딩 이후 캔버스 속 세계의 운명은 정리되어 치워지고, 주인공들에게서 이전의 모험을 반복하거나 지속할 동기나 가능성은 사라진다. 버튼 읽기 여벌의 생명선_2인용 로컬 협동게임 속 목숨의 구도 이혼을 결정한 부부 코디와 메이의 영혼은 부모의 이혼을 막고 싶은 딸 로즈가 빈 소원 때문에 조그마한 목각 인형에 씌게 된다. 자기들 나름의 추론을 거쳐서, 인형으로 전락한 부부는 딸의 눈물이 저주를 풀게 해주리라고 판단한다. 두 사람은 세계에 육박하게 거대해진 아이의 놀이방을 헤매면서, 로즈가 가장 좋아하는 코끼리 인형 큐티를 찾는다. 큐티를 망가뜨리면 속상한 아이가 눈물을 흘리게 되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버튼 읽기 일상시뮬레이션, 현실을 편집하는 꿈을 꾸다 - <심즈> 시리즈를 중심으로 <심즈>는 특정 대상의 생활을 시뮬레이션하는 소위 ‘라이프 시뮬레이션(Life Simulation)’ 비디오 게임 중에서도 대명사 격에 위치한 시리즈다. 현대적인 직업을 갖고, 퇴근 후 집안일을 하며, 때에 맞춰 공과금을 내야 하는 생활을 다루는 <심즈> 시리즈는 “가장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실현하는 비디오 게임으로 예화 되기에는 부적절해 보인다. <심즈> 시리즈의 디자이너 윌 라이트(Will Wright)는 최초에 <심즈>를 구상했을 때 이 게임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을 회사에 설득하기가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버튼 읽기 [공모전] 최종장과 변방_비디오 게임 속 공간적 한계의 실감 게임 세계의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것은 어린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무료 플래시 게임이 세상에 존재하는 비디오 게임의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의 나는 커비와 똑 닮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플래시 게임에 빠져 있었다. 정식 게임판의 커비보다 이 안광 없는 가짜 “커비”와 먼저 면을 익혔다. 그때의 기준으로도 비춰봐도 결코 흥미진진한 게임은 아니었다.

  • ‘대항해시대 오리진’, 멀티플레이의 계층화와 사이버 농노들

    비동기 멀티플레이는 모바일 게임의 시류에서 도드라진 방식이다. 모바일, 그리고 무선 네트워크라는 아직 태동기에 불안정성이 남아있던 플랫폼들은 참여자들이 동시에 접속하지 않으면서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체계를 필요로 했고, 이것은 비동기 멀티플레이라는 방안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현재 이 방식은 비단 모바일 플랫폼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특유의 선택적 연결성 덕분에 많은 게임에서 채용되곤 한다.   < Back ‘대항해시대 오리진’, 멀티플레이의 계층화와 사이버 농노들 08 GG Vol. 22. 10. 10. 비동기 멀티플레이는 모바일 게임의 시류에서 도드라진 방식이다. 모바일, 그리고 무선 네트워크라는 아직 태동기에 불안정성이 남아있던 플랫폼들은 참여자들이 동시에 접속하지 않으면서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체계를 필요로 했고, 이것은 비동기 멀티플레이라는 방안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현재 이 방식은 비단 모바일 플랫폼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특유의 선택적 연결성 덕분에 많은 게임에서 채용되곤 한다. ‘대항해시대 오리진’ 은 분명 상시 온라인 접속을 요구하는 온라인 게임이지만,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와 직접 마주하거나 연결되는 순간이 매우 적다. 분명 마을에서 직접 캐릭터를 마주할 수 있는 게임임에도 할 수 있는 실시간 상호작용은 매우 적다. 플레이어 간의 전투는 서로가 서로의 전투력을 상정한 AI와 싸우는 비동기 전투로 이루어지며, 거래소의 경우에도 간접적으로 돈과 장비를 주고 받는다. 이 게임에서 가장 큰 온라인 활동 중 하나는 바로 ‘투자전’ 이다. 협동 콘텐츠는 전무하며, 정작 ‘대항해시대’ 하면 떠올릴만한 유저 해적질, 속칭 ‘유해’ 는 그 여파가 상당히 간접적이고 애초에 양쪽이 모두 비동기로 전투를 하기 때문에 서로의 전투력을 복사한 AI와 대결하는 식이다. 굉장히 상호작용성이 떨어지고, 실질적으로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가 직접적으로 맞붙는다는 느낌이 드는 콘텐츠는 투자전 하나 뿐이다. 이 투자전은 기본적으로 각 도시들에 두캇(인게임 머니)과 젬(유료 재화)을 소모하며 투자를 할 수 있고, 이 액수를 비교해 가장 높은 사람에게 시장 자리를 부여하고 해당 국가와 플레이어에게 소유권과 그 도시에서 발생하는 이득을 주는 시스템에 기반한다. 그래서 각자 중요한 항구를 두고 자본의 전쟁을 벌이고, 이 게임의 실질적인 PVP는 바로 이 투자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특이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온라인 플레이의 구조 때문에 ‘대항해시대 오리진’ 은 플레이어가 얼마나 온라인 플레이에 접근할 수 있는가, 온라인에 천착해있는가를 자본이라는 조건으로 구분짓기 때문이다. 현재의 구조를 따르면 실질적으로 투자전을 통해 거시적인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을만큼의 자본이 있는 경우에만 유의미한 게임 내 온라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자본은 물론 게임 내에서 벌어들이는 두캇을 포함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간당 수급량에 제한이 있는 두캇보다는 레드젬, 즉 현질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투자전 자체의 문제는 단순히 비동기 멀티플레이의 거시화라는 관점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지속적인 현금 투입을 유도해야 하는 한국형 F2P 게임 비즈니스 모델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이 투자전을 제외한 다른 온라인 플레이들이 전무하거나 또는 유의미할 만큼 게임 내 가치를 가지거나, 또는 플레이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겹치고, 때문에 이 ‘투자전’ 이 이 게임의 온라인 플레이 자체를 대표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문제가 도드라져 보인다. 여기서 마찬가지로 비동기 멀티플레이를 지원하고, 또 마찬가지로 운송이 핵심인 게임 ‘데스 스트랜딩’ 의 온라인 활동은 어떤가. 비록 두 게임은 플레이어의 시점, 플레이의 밀도, 스케일 등 많은 면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운송과 비동기 멀티플레이라는 테마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데스 스트랜딩’ 에서는 자신 이외의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는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온라인 동기화를 통해 다른 플레이어가 건설한 도로나 건물, 장비들이 무작위 선별을 통해 내 월드에 설치되어 있고, 이것을 내가 직접 사용하면서 플레이 자체에 변화가 생긴다. 도로 하나, 충전기 하나의 차이만 해도 굉장히 큰 게임이고, 설원에서 죽기 일보 직전까지 운송을 하다 누군지 모를 사람이 설치해둔 충전기 하나를 본다면 그야말로 구원이나 다름없다. 내가 온라인 플레이에 참여하고 싶다면, 자원을 모아 건물을 설치하면 된다. 만약 정말로 필요한 건물을 적절한 위치에 설치했다면,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이용하면서 무수하게 쌓인 좋아요, 일명 따봉을 보게 된다. 재미있게도, 이 따봉은 플레이어가 온라인 플레이에 참여하도록 하는 순수한 원동력이다. 직접적인 채팅조차 불가능한 게임임에도 오히려 타 플레이어의 흔적, 영향이 게임 내에서 깊고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결국, 오히려 상시 온라인 접속을 요구하는 명실공히 온라인 게임인 ‘대항해시대 오리진’ 이 싱글 플레이도 가능한, 프리페이드 게임인 ‘데스 스트랜딩’ 에 비해 유저 간의 연결성, 온라인 플레이의 가치가 더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핵심은 동기식이냐 비동기식이냐, 플레이어 아바타를 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등의 차이는 이 상황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흥미롭게도, 이런 상황 하에서 ‘대항해시대 오리진’ 온라인 플레이는 ‘계층화’ 된다. 앞서 말했듯 이 게임의 온라인 플레이는 투자전이 핵심이자,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투자전은 한편으로는 이 게임에서 현질을 유도하는 가장 큰 요소다. 한때, 필자가 플레이 중인 대서양1 서버에서 투자전이 한창 과열 양상에 들었을 때 한 플레이어가 도시 하나를 먹기 위해 들인 현금은 추정치 약 800만원이었다. 이 게임에는 수많은 도시가 있고, 그 플레이어는 수십개의 도시를 한꺼번에 차지했다. 그럼 대체 얼마의 자본이 투입된걸까? 이처럼, 투자전은 단순히 게임 내에서 벌어들이는 두캇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로 벌어진다. 즉, 일정 규모, 적어도 백만 단위의 현질을 하지 않고서는 주요 도시를 차지할 수 없는게 이 시스템이다. 여기서 이러한 ‘도시 하나에 의미있는 영향을 끼칠만한 액수의 투자금’ 이 바로 일종의 입장권 역할을 한다. 이 게임에서 의미있는 온라인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이 액수를 내야하고, 거기서 얼만큼을 더 지불해야 하는가는 게임의 시스템이 아닌 경쟁 상대의 지불 능력에 달려있다. 때문에, 이 게임 내에서 투자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는 지극히 소수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의사결정이나 참여와 무관하게 결정되는 이 게임의 권력구도, 그리고 국가 및 도시 배치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이는 마치 전근대 시절 대부분 국가의 전쟁이 하급 국민까지 모두 생사를 걸고 싸우는 총력전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권력 충돌이었던 양상과 일치한다. 결국 극소수의 투자자들을 제외한 플레이어들은 모두 사이버 농노가 되어 조금씩 이 게임의 제한된 콘텐츠를 소비해나갈 뿐이다. 그래서 그런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게임은 정말로 온라인 게임이 맞는가? 나는 이 온라인 게임의 일부로서 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투사하고 있나? 또는 상위 계층에서 하향식으로 내려오는 영향에 맞추어 나는 어떤 영향을 상향식으로 끼칠 수 있는가? 보통 이러한 과금액수에 의한 플레이어의 계층화는 비슷한 F2P 모델을 가진 게임들에서는 모두 생겨나는 일이긴 하나, ‘대항해시대 오리진’ 은 그 계층의 카테고리도 얄팍하고, 상위 계층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훨씬 적음에도 그 괴리나 거리감은 훨씬 더 크다는 점이 부각된다. 즉, 왕족과 농노라는 양극화 계층만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 때문에 ‘대항해시대 오리진’ 의 플레이는 단순히 플레이어의 상승욕구를 자극해 돈을 쓰게하는 것을 넘어 아예 멀티플레이에 참여하는 걸 포기하도록 만든다. 물론 F2P 게임은 플레이어의 결핍을 만들어내고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현질을 하도록 유도한다. 수많은 역체감과 타인과의 비교우위를 만들어내어 이를 돋보이게 하고, 각 층위의 플레이어들이 서로 조금씩 다른 플레이 목표를 가지도록 조정한다. 그러나 이 게임은 후자, 최상위의 계층이 아닌 플레이어들이 이러한 대단위 상호작용, 멀티플레이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이나 별도의 멀티플레이 콘텐츠를 준비하지 않았기에 이러한 극단적인 양극화가 벌어진다. 결과적으로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바는, 온라인 플레이와 오프라인 플레이의 특색은 그저 기술적인 네트워크 연결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플레이어에 따라 오히려 ‘대항해시대 오리진’ 보다 ‘데스 스트랜딩’ 이 더 ‘온라인 게임’ 일 수 있다. 물론 온라인 플레이와 오프라인 플레이가 상하관계를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각각의 게임에서 구현할 수 있는 강점과 특유의 재미를 얼마나 잘 구축했느냐는 중요한 판단거리다. 그러나 ‘대항해시대 오리진’ 은 분명 온라인 게임이라는 명제를 깔고 있음에도 이 온라인 플레이가 매우 선택적으로, 그것도 돈에 의해 작동한다. 온라인 게임으로서 ‘대항해시대 오리진’ 의 세가지 큰 문제는 먼저 투자전 중심의 온라인 플레이로 인해 생기는 플레이어의 계층화, 두번째로는 그 투자전 자체도 어떤 기획의 복합적인 아름다움이나 재미는 없는 단순한 숫자 대결 콘텐츠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 게임 내에 투자전 이외에 제대로 된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이런 게임이 된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선은 이 게임 자체가 실무를 맡은 개발사가 기획 전권을 휘두르기 어려운 원본 IP를 토대로한 협력 개발 게임이고, 또 2차 클로즈 베타까지 게임의 근간이 계속 뒤엎어진 난항에 난항을 거듭한 게임이라는 개발 상황의 문제가 있다. 더불어, 그 근간이 F2P 모바일 게임이기에 수익 구조가 일부 고객들의 고액 지출에 기대어 디자인된 부분도 있다. 또 고의적으로 전투 부분에서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을 최소화시킨 영향도 있다. PVP 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때문에 수많은 고객이 이탈한 ‘대항해시대 온라인’ 의 사례를 재현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즉, ‘대항해시대 오리진’ 의 온라인 플레이는 직접 그 플레이를 하게 되는 게이머의 입장보다는 온라인 플레이와 라이브 서비스를 결합하여 수익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회사의 입장이 더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단지 이 게임만의 문제가 아니며, 국내 F2P 모델의 게임들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문제점이다. 게임이 수익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산업화의 결과물이며 개발자들, 그리고 그 게임의 제작과 퍼블리싱에 참여한 모두가 정당한 금전적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그게 이렇게 기형적 형태의 기획에 의존하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분명 과열된 투자전 와중에 벌어들인 수익은 상당하리라. 하지만 과연 그 추세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투자전의 열기가 한차례 빠지고 난다면, 이 게임은 지속 가능성이 있을까? 이는 ‘대항해시대 오리진’ 의 개발자나 또는 서비스사에 대한 도덕적 규탄이 아니다. 이는 왜 이 게임의 온라인 플레이는 이전작인 ‘대항해시대 온라인’ 에 비해 퇴화할 수 밖에 없었는지, ‘대항해시대’ 라는 인기 IP 이자 수십년이 지나도 아직도 특별한 재미가 있는 이 플레이 로직을 기반으로 왜 이 이상의 온라인 플레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는가 하는 게임 완성도 측면에서의 비판이다. 오프라인 베이스에 선택적 요소로서 비동기 멀티플레이가 첨가된 게임이, 오히려 상시 온라인 연결을 필요로 하는 대단위 멀티플레이어보다 오히려 더 밀도 있고 끈끈한 멀티플레이를 제공한다는 사실이 매우 아이러니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대항해시대 오리진’ 은 온라인 게임이 아니다. 멀티플레이어 게임이 아니다. 소수의 투자자들이 아닌 대다수의 플레이어들, 이 사이버 농노들은 이 ‘대항해시대 오리진’ 이라는 세계에서 어떤 플레이 목적, 또는 존재 의의를 찾아야 하는가? 그것이 이 과정을 거쳐 정제된 마지막 질문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스플릿 픽션」에 대해 쓰지 못한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합시다.

    작년 겨울 즈음이다. 영화평론가 유운성 선생님께 ‘청탁이 점차 줄고 있다.’며 한탄한 적이 있다. 유운성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글 청탁이란 누구나 그 양이 줄어간다.’라고 답해주셨다. 마치 시간에 의해 소멸되는 무언가처럼, 평론가에게 있어서 글을 쓸 기회라는 것은 한정 자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요즘이다. < Back 「스플릿 픽션」에 대해 쓰지 못한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합시다. 26 GG Vol. 25. 10. 10. 내가 평론가로 등단한지도 벌써 8년차다. (이런 글에 걸맞는 매우 전형적인 클리셰다.) 2017년 만화 비평 공모로 등단해 지금은 게임에 관한 글도 함께 쓰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게임 비평을 더 많이 쓴다. 곧 있으면 평론가의 생활도 10년차에 도달할 예정인데 슬슬 이 직업이 어떤 존재인지 고민이 되던 차였다. 이럴 때에 ‘평론가’에 대한 글을 청탁받았다는 사실에는 뭔가 운명적인 것이 있다. 평소대로라면 청탁을 받는 순간부터 플레이 할 게임을 고르고, 스크린샷을 열심히 찍고, AI비서에게 연구 자료 조사를 돌려놓았을 일인데, 아무런 사전 조사도 연구도 없이 불쑥 내 이야기를 쓰려니 영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데에서 뭔가 근질근질 거리는 걸 보면 그래도 평론가처럼 살아오긴 한 모양이다. 평론가로 살아오기 작년 겨울 즈음이다. 영화평론가 유운성 선생님께 ‘청탁이 점차 줄고 있다.’며 한탄한 적이 있다. 유운성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글 청탁이란 누구나 그 양이 줄어간다.’라고 답해주셨다. 마치 시간에 의해 소멸되는 무언가처럼, 평론가에게 있어서 글을 쓸 기회라는 것은 한정 자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요즘이다. 한편 2023년에 좋은 상을 받을 기회가 생겼다. 시상식에 나가서 함께 수상한 분들과 대화해보니 절반 정도는 이미 등단을 거친 분들이었기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등단 이후에 청탁과 기고의 기회가 마땅치 않아서 집필을 그다지 하지 못하신 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청탁이 줄고 있다’며 미래를 걱정하는 것도 조금 배부른 생각이지 않나. 여러면에서 따지자면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어찌되든 약 3년 정도 한 잡지로부터 꾸준히 청탁을 받았으며, 지금도 GG로부터 계속 글을 쓸 기회를 받고 있다. 평론가에게 글을 쓸 기회라는 건 상시적 자원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가지 조건을 통해 발생하고 그때그때 예정된 이들에게 돌아가는 선택적 자원에 가깝다. 이 ‘여러가지 조건’에는 정말 여러가지 것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전부 나열하기도 벅차다. 그것들을 어떻게 해석하든 평론가는 어느정도 ‘선택받는’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며, 그 조건은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평론가 개인의 관점에선 언제나 공평하게만도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내가 머리를 기르는 걸 탐탁치 않게 생각하시는데, 아버지께서 불만을 말씀하실 때 마다 ‘내 직업은 눈에 띄는 게 중요하다.’며 적당히 둘러댄다. 그런데 이게 또 아무말이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평론가는 어찌되든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야 하는 직업이지 않은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 대한 ‘주목’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으로 기회는 증가하지 않을까. 평론가의 세계는 주목경제의 세계인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청탁을 줄 리 없을 터이니’ 그 세계에 순응하면서도, 또다른 한편 ‘경제성의 효과’에 의탁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가 가진 평론가의 자아와 충돌한다. 길을 걷다가 또는 대중 교통을 타고 이동하다가 문득 ‘어떤 사람이 계속 청탁받는 평론가인가’에 대해서 질문해보곤 하는데, 특별히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SNS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다양한 기회와 많이 접촉하는 쪽이 더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나에게 그런 능력이 없는 것도 알고 있고, 다른 한편 그게 전부는 아니겠거니 싶기도 하다. 올해에는 비평을 써본 적 없는 사람들과 함께 비평 쓰기 스터디를 진행했다. 스터디를 진행하는 멤버들의 자기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진행을 주도하는 입장에선 결과가 꽤 만족스럽다. 어떤 글이 비평인지 설명할 수 있겠다 싶은 확신은 작년 GG의 비평 공모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가질 수 있었다. 뭐가 되었든 8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비평 쓰기라는 행위에 꽤 익숙해진 모양이다. 하지만 ‘비평 쓰기’에 대해서는 알아도 ‘비평을 쓰게되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일천하다. 대체 누가, 어떤 경위로, 특정한 매체에 글을 쓰게 되는 걸까. 지난 8년간, 나는 ‘ㅇㅇ에서 글을 봤습니다. 저희 매체에도 써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청탁을 한 번 받아봤다. 이 직업을 얻기 전까진 평론가란 그렇게 글을 쓸 기회를 가진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미디어를 통해 보편적으로 유통되는 전형적인 판타지의 일종인가 싶기도 하다. 아니면 그저 나에게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지. 어찌되든 올해는 좋은 기회가 있어 대학 강의를 시작했다. 교강사 미팅을 나갔더니 나를 알아보고 인사해주시는 분이 계셨다. 맞인사를 하곤 너무 부끄러워서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는데, 혹시 이런 태도가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여전히 머릿 속을 맴돈다. 게임 평론가로 살아오기 앞서 유운성 선생님과의 대화 와중,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조언은 다음과 같았다. 청탁을 기다리기 보다, 개인적으로라도 글을 꾸준히 쓰고 책을 출판하세요. 저자가 된다면 강연의 기회가 생기니 그렇게 대중과 접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나는 선생님의 훌륭한 조언에 바로 찬물을 끼얹었다. 선생님, 그런데 게이머들은 게임 평론가를 좋아하질 않아서 강연의 기회는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아 그렇구나’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며칠 전에 나는 ‘만화 작가 토크 콘서트’의 사회를 맡았다. 게스트인 두 작가와 친분이 깊어서 생긴 좋은 기회다. 나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만화평론가이지만(심지어 대본 초안에는 내가 ‘평론가이자 스토리 작가’인 걸로 나와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비평 쓰기와는 다른 ‘평론가의 일’과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어떻게보면 지금 하고 있는 대학 강의도 만화 평론의 연장이기도 하니까. 이게 바로 내가 받은 조언의 핵심이다. 잘 생각해보면 평론가의 일은 집필에만 한정되진 않는다. 물론 여전히 비평 쓰기야 말로 이 직업의 근간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비평적으로 사유하기’가 그보다 더 심층에 있는 근간이라면 그 발산에는 다양함이 존재할 수 있다. 나는 2023년 즈음에 ‘게임 평론도 하는 만화 평론가’가 되기 보다는 확실히 ‘게임 평론가’가 되기로 다짐했다. 그 짐에 호응해주듯 GG로부터 계속 청탁을 받을 수 있었고, 이에 대해 언제나 감사한 마음 뿐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 뒤에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금붕어 똥같은 질문이 붙어다닌다. 과연 무엇이 나를 ‘게임 평론가’로 있을 수 있게 만드는 걸까.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GG에 더는 글을 기고하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여전히 ‘게임 평론가’일까? 물론 게임을 플레이 하고, 비평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은 게임 평론가다. 하지만 이런 규정은 어디까지나 존재론에 의거한 자신(自信)의 규정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로부터 ‘게임 평론가’로 지칭될 수 있는 조건이란 마음만으로는 안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게임 평론가’로 인식되기 위해 GG에 기생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는 좀 어렵다.(GG 미안해요!) 브런치에 스스로 글을 쓰기로 결정하기도 했으나 ‘직업적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자꾸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아니, 블로그 등을 통한 자가 기고가 핵심적인 해결책이라고만도 말할 순 없다. 역시 비평가의 활동이라는 것이 가지는 더 넓은 방법들과 접촉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 몇달 전에 어떠한 소셜 커뮤니티 모임의 모임 주도를 시도해본 적이 있다. 게임 평론가라는 사실을 좀 강하게 어필하고 게임을 통해 대화하는 모임을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몇 개 정도의 기획서를 보냈지만 돌아온 건 ‘보드게임 모임처럼 모여서 즐겁게 게임을 하는 모임’같은 요청이었고, 나는 그냥 더 진행하기를 포기했다. 이 플랫폼과 함께 내가 원하는 방식의 ‘게임으로 사유하기’를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마음을 가져서다. 더 강하게 밀어붙여서 설득하고 관철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 에너지를 내기도 전에 먼저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해야하는 건가, 하는 회의감도 들어 한동안 시달렸다. 그런데 이 플랫폼이 특별히 유별난 곳이겠는가. 이게 아마 지금 우리 세계의 일반적인 인식일 것이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평론가에 대한 세계의 규정은 시대의 요구와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다. 대한민국에서 비디오 게임 평론가로 산다는 건 스스로 유령이 되기로 결정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좀 거칠게 말하자면) 이 세계에는 아직 이 ‘직업’을 맞이해줄 마음이 준비되어있지 않다. ‘대체 게임 평론가는 무슨 이야기를 해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템플릿처럼 준비해 다닌다. 그래봐야 애당초 상대가 비디오 게임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절반 정도는 무력한 언어로 소비된다. 게임이 일상적인 세대의 탄생, 게임 인구의 점진적 증가 같은 이야기야 떠돌고 있지만 「어벤저스 : 엔드 게임」을 천만명이 봤다는 뉴스를 볼때와의 기분과 사뭇 다르지는 않다. 어쩐지 세계가 아직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공허한 다짐을 반복하는 기분도 든다. 그럼에도 게임 평론가로 살겠는가? 새 동료들이 탄생하는 좋은 자리에 음울한 이야기나 쏟아내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마음 한구석이 편치는 않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쏟아내면서도 나는 여전히 게임 평론가로 살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이야말로 지금의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그런데 특별한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게임 평론이 재밌다. 나는 게임 평론이 다른 평론보다 ‘특별히’ 더 재밌다고 여긴다. 당연히 비디오 게임이 다른 분야에 비해 더 특별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내가 게임을 만화만큼, 혹은 영화만큼 좋아하기 때문인데, 딱히 우열은 가린 적은 없지만 세 분야를 비슷하게 좋아한다. 그리고 게임 비평을 특별히 더 좋아하는 이유는,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마주침의 기회가 적기 때문인 것 같다. 더 희소한 일을 하기 때문에 가치 있다는 편향된 결정은 아니다. 이경혁 선생님이 몇번이고 이야기하는 대로 지금의 시대에 게임 평론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나는 그러한 생각에 충분히 공감한다.) 필요는 하지만 요청받기는 어려운 일, 내가 하지 않으면 마주치기 어려운 일을 한다는 건 사유의 과감성을 준다. 어쩐지 내가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매우 커다란 심적 만족감(!)을 주는 면도 적지는 않다. 그런데 그런 자기 고유성이라는 명예로운 만족감의 탓만은 아니다. 그냥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아무말이든 일단 던져볼 수 있다는 내적 만족감이 크게 작동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게임 평론을 하는 재미라는 건 아이러닉한 측면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세계로부터 유령처럼 취급되는 존재니까 아무렇게나 떠돌 수 있고, 그게 재미있다. 이러면 다시금 평론가로 살며 비평을 쓰는 이유로 환원되어버린다. 결국 우리는 왜 쓰고 왜 떠드는가? 어떠한 이야기를 진탕, 공식적으로, 마음껏 떠들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러니 저러니 이유를 붙였지만 ‘비디오 게임’에 대해서 대범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우리에게만 부여되는 특권이다. 비록 누가 읽고 있는지, 듣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라도 특권화의 쾌락이 있다. 게임 평론가라고 칭할 수 있으니까 어느 자리에서건 권위있는 척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는 법이다. (자리를 함께하는 분들이 어떻게 쳐다볼지는 몰라도.) 여튼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이러다보면 언젠가 비디오 게임의 대중 강연도, 토크 콘서트도 많이 생길 지 누가 아는가. 이런 전장의 안개로 가득찬 미래를 뚫고 나갈 힘은 오직 쾌의 감각에서부터만 나오지 않을까. 실리나 명예, 가치의 취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불확실성을 뚫고 나가기엔 너무 나약한 힘이다. 공자의 말 ‘호지자불여락지자( 好之者不如樂之者) ’를 당위의 관점으로 보기보다 생존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럴싸하게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어떤 세계는 락지자만이 인고를 견딜 힘을 얻는다. 마지막. 평론가가 되고 한 4년차 즈음에 되었을 때, 어쩐지 나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평론가 동료들을 매우 친애하게 되었다. 그때 즈음이 평론가는 외로운 직업이라는 사실을 실감한 시기다. 물론 우리는 가끔 만날 수 있다. 서로에 대해 안부를 물을 수도 있고, 기회가 된다면 팟캐스트 같은 것으로 함께 프로젝트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결국 글을 쓸 때는 혼자다. 사유의 끝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남이 아니라 나를 끝없이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즐거워서 뛰어든 일이지만 때로는 외로운 일인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외로움을 안고 나아가야 하는 동지들에게 친애와, 연민과, 애정과, 존경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GG의 필진분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려 한다. 올 봄엔 GG에 기고하는 평론가 셋이 모여서 한참을 떠든 날이 있다. 차마시고 밥먹으면서 한 7시간은 떠들었던 것 같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동료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 때 나중에 온라인으로 「GTFO」를 함께하기로 했는데 역시나 실행은 안되고 있다. (다들 바쁜 것도 있고, 네 명일 때 최적으로 재밌는 게임이라는 말도 있어서 그만...) 그래서 생각하는데, 가끔은 멀티 플레이어 게임을 같이할 사람이 없을 때 함께 해주는 것도 꽤 괜찮은 연대라고 생각한다. 그래, 우리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스플릿 픽션」에 대해서는 쓰지 못한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하면 어떨까. 「스플릿 픽션」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게임과 데이팅 세계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온다. 그리고 그 일상은 현재 ‘디지털화’되었다. 연애관계의 돌입과 사랑의 속삭임을 우리는 ‘가상적으로, 디지털로, 플랫폼을 통해’ 수행(play)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관심은 인스타그램의 DM으로, 페이스북의 댓글로, 카카오 톡의 메신저로 꾸준히 접속하여 수치화된다. < Back 게임과 데이팅 세계 16 GG Vol. 24. 2. 10. 욕망의 수치화에 관하여 기본적으로 소개팅을 하다보면, 첫 만남 이후 관계 설정을 위한 만남의 횟수에 어느 정도 제한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소개팅 이후 가볍게 혹은 종종 계속해서 관계를 정의하지 않고 상대와 만나기란 어렵다는 뜻이다. 소개팅은 ‘연애’를 목적으로 한 만남이고, 이 때문에 첫 만남에 애프터를 신청할 것인지, 그리고 애프터 이후 몇 번의 만남 뒤에 공식적으로(officially) 연인관계로 돌입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존재할 가능성이 의외로 높다. 이처럼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떠올릴 때 ‘굳이 정의하지 않고 넘어가도 될 만큼 서서히 스며드는 애정의 관계’라는 것은 의외로 많지 않다. 앞서 언급한 소개팅의 법칙(!)도 마찬가지고, 의외로 친구 관계에서도, 더 나아가 아주 관습적이라 일컫는 결혼도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관계 혹은 감정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대체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하면 연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어쩌면 반대, 즉 연애를 해야만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한국 드라마에서 (이성애)연애의 완결은 마치 결혼인 것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는 수많은 형태의 (굳이 게임적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선택지’의) 사랑이 존재한다. 1) 가족 간의 사랑 2) 친구 간의 사랑 3) 연애 파트너, 즉 섹슈얼한 대상으로서의 사랑 4) 상대방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랑(짝사랑으로 주로 표현되는) 등. 생각보다 사랑의 모양새는 다양하고, 우리는 이를 정확하게 정의내리지 않으면서도 모순적으로 상대적 기준을 통해 수치화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 놓여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임, 특히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형태는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지 눈여겨보고, 이것이 과연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현재 욕망의 수치화가 높은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미디어 환경 내부에서 인간의 일상적 ‘플레이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쩌면 사랑을 게임을 통해 인지했거나, 이미 게이미피케이션이 고도로 진화된 상황에서 현실의 사랑을 진행 중일 수도 있다. 잘 생각해보자. 그렇지 않은가. 이미 사적/감정적인 대상이 모두 미디어에서 재현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이미 수치화한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내 메신저에 응답하는가. 사귀는 사이에서 하루에 전화는 몇 통을 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의 소셜 미디어 팔로우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말이다.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의 사적인 플레이 역사 : 사랑을 게임으로 배웠나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연구자 본인은 시스젠더 여성이고, 남성애자에 가깝다. 그러나 십대 때 본인이 접근할 수 있었던 다수의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은 ‘게임 주체’가 생물학적 남성으로 고정되어있고, 이 남성이 다수의 여성을 공략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접했던 게임이 바로 ‘동급생’, ‘두근두근 메모리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게임들을 진행하면서 연애시뮬레이션 안에서의 ‘연애’의 전형을 배웠다. 예를 들어 첫인상에 상대방의 특성 1) 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것들이 그랬다. 특히 이러한 연애시뮬레이션은 ‘첫만남’-‘대화를 통해 친밀도를 높이고’,-‘공략대상이 원하는 모습에 맞추어 능력치를 개발한 뒤’-‘퀘스트(이벤트)를 충족시켜’‘엔딩을 맞이하는’ 루트를 탔다. 물론 나는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두는 남성애자에 가까운데, 이 당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둔 연애시뮬레이션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열광했던 '프린세스메이커'를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감정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90년대 연애시뮬레이션은 게임의 특성상 육성 시뮬레이션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는데, 여성 게이머인 나에게 플레이는 관습적인 것에 가까웠고, 이를 통해 ‘목표’를 성취한다는 점은 똑같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러한 남성 주체 중심의 육성-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은 나의 게임 플레이 성향을 ‘관조’에 가깝게 만들기도 했다. 다시 말해, 연애시뮬레이션이 개념적으로 정의하는 연애관계에 이입하기보다 사랑에 대해 ‘관조적’일뿐만 아니라 ‘제 3자’의 위치에서 ‘관음’할 수 있는 주체에 더욱 가까웠단 뜻이다. 그러다 오토메 게임 2) 이 발매되기 시작했다. 이는 육성-연애시뮬레이션에 열광하는 많은 여성 게이머들이 어느 정도 3) 욕망하고 원했던 게임 텍스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오토메 게임은 외적 4) 으로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을 게임 주체로 하는 여성향 게임으로, 이 중에 한명은 너의 타입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여성이) 남성들을 공략하는 텍스트 기반의 게임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미연시(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게임)의 이성애 기반의 성별반전으로 아주 간단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기 등장하는 남성들은 매우 전형화된 카테고리로 나뉠 수 있는데, 이것은 결국 이후 유통되는 많은 오토메 게임, BL(Boy’s Love) 게임, 혹은 텍스트 기반의 라이트 노벨성이 짙은 게임의 남성 공략 캐릭터를 정형화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후술할 체리즈의 ‘수상한 메신저(2016)’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정형화된 남성 캐릭터 선택지를 내어놓는다. 1) 연상의 로맨티스트(다정캐) 2) 모태솔로에 순수 연하(햇살캐) 3) 츤데레(광공캐) 4) 히든 캐릭터(사연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오토메 게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후지쯔에서 제작하고 1998년 발매되었던 '판타스틱 포츈'이다. 이 게임은 놀랍게도 국내에서 정발되어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팬덤을 양산해냈다. 이 게임은 초반 선택할 수 있는 주인공이 3명이다. 육성 시뮬레이션이 여성 게이머들에게 매력적인 플레이 요소가 되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 게임은 남성 캐릭터를 연애적으로 공략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메인 캐릭터를 육성해야하는 이중고(苦)를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이 주인공 중 한명은 성별이 육성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중성인 존재 5) 가 섞여 있다는 것이 독특했다. 이처럼 연애+사랑의 루트를 타는 게임은 1) 캐릭터와 서사 2) 그리고 이 캐릭터와 서사에 접근하는 플레이 방식에 따라 진화하게 되는데, 이 당시에는 '판타스틱 포츈'처럼 미형의 남성을 공략하는 ‘여성’ 캐릭터, 그리고 이 캐릭터를 이 남성들이 원하는 이상향에 맞추어 ‘육성’해야 하는 플레이가 다수를 차지했다. 이러한 캐릭터와 플레이 방식은 이 게임들이 타겟팅으로 삼았던 여성 주체들이 게임에 몰입할 때, 플레이 주체로서 주인공에 자신을 동일시하기 보다는 앞서 언급했던 ‘관조’적 성향의 플레이를 지속적으로 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여성 게이머들은 이 세명의 주인공들을 돌아가면서 플레이하고, 자신과 동일시한 캐릭터를 찾아냈을 수도 있지만(그러면서 자연스레 남성 캐릭터들을 유사남친의 대상으로 바라봤을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다시 말해 전지적 플레이어 시점으로 이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읽어내기만’했을 가능성 또한 존재 6) 한다. 특히 세 명의 주인공은 얼굴이 전부 드러나 있고, 그 캐릭터를 육성하면서 마치 케어링을 하는 제 3자적 인물로서 플레이어들이 그려지는 것은, 게이머가 그 서사 안이 아닌 밖으로 자신을 위치 지으며 이 게임을 플레이할 가능성이 더 높은 요소들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처럼 사랑은 하나의 게임에서도 단 하나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판타스틱 포츈'은 자식 같은 세 명의 메인 캐릭터, 그리고 그 대상 자체에 몰입하는 나, 동시에 그들을 짝을 지어주기 위한 제 3자(즉 관계성에 몰입하는)로서의 나 사이에서 연애와 사랑을 저울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데이터화된다. : 디지털 로미오적 행태 여성향 게임이 확산되기 시작한 시점은 여성게이머들이 대중적으로 게임에 접근할 수 있는 시점과 맞물리는데, 그 시기가 바로 개인화된 미디어의 확산, 즉 휴대폰 플랫폼으로 게임이용이 확산되기 시작한 때다. 그 당시 한국에서 만들어진 게임 중 하나가 체리즈의 ‘수상한 메신저’다. 이 게임은 텍스트 노벨처럼 만들어진 전형적인 여성향 게임인데, 게임 타이틀에도 반영되어있듯 메신저를 기반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특성을 갖는다. 이 게임은 핸드폰으로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전화를 받는 상황이나 메신저에서 메시지를 주고 받는 방식이 실제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일상적인 메시지 주고받기와 전화통화를 게임 어플리케이션 내에서 진행이 가능하도록 되어있어서, 이전까지 제 3자의 전지적 플레이어 시점 방식의 이야기 진행이 아닌 강력한 자기 동일시 기제를 게임 안에 포함하고 있다. 이런 방식 자체는 나에게 데이팅 기술(Technology)에서 상대방이란 ‘기계’ 혹은 ‘게임 그 자체’일수 있겠구나를 알려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앨피 본(Alfie Bown)이 자신의 저서인 <게임, 사랑, 정치>(2022/2023)에서 서술했듯 “연애 시뮬레이션에서는 실제 대상과 상상적 대상의 은유적 대체가 실제적이고 분명하게 구현(182)” 된다. 실제로 나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등장인물(상대방)들에게 무작위로(물론 시스템화되어있다는 점에서 완벽한 무작위는 아니지만)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받지 못할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과의 채팅이 끝나고 나면 풀 보이스로 랜덤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 모든 시간대마다 전화 내용이 다르다. 심지어 새벽에도 온다. 마치 구 남친의 ‘자니’와 같은 순간처럼). 이러한 일상적 대화의 기술은 누군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게 만드는, 혹은 사랑이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보편적인 상황이다. 이것이 가상의 게임엔진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기술이 감정을 확장하는(물론 이것이 사랑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을지라도)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내가 마주한 것은 상대방이 아닌 기계였다. 만질 수 없어도, 바라보지 않아도, 무척이나 ‘생생한 ’기계. 실제로 이러한 감각은 현재 아이돌 팬덤들이 아이돌과의 메신저로 대화를 진행할 수 있는 위버스나 버블 7) 서비스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과 게임의 상관관계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온다. 그리고 그 일상은 현재 ‘디지털화’되었다. 연애관계의 돌입과 사랑의 속삭임을 우리는 ‘가상적으로, 디지털로, 플랫폼을 통해’ 수행(play)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관심은 인스타그램의 DM으로, 페이스북의 댓글로, 카카오 톡의 메신저로 꾸준히 접속하여 수치화된다. 우리가 욕망하는 사랑이 데이트 상대와의 눈맞춤인지, 아니면 친구와의 심도 깊고 즉흥적인 대화인지, 아니면 게임의 보상처럼 메시지 알림 소리를 울리는 버블의 인터페이스 그 자체인지 우리는 이제 알기 어렵다. “사랑과 욕망은 우리가 그것들을 경험하는 매체에 너무도 깊이 얽혀있다(Alfie Bown, 2022/2023, 225)”. 사랑은 수치화되었다. 어쩌면 이미 오래전부터 그랬을지 모른다. 이것이 디지털 공간에 편재되었을 때, 게임은 빠르게 흡수해 텍스트로 옮겨냈고, 동시에 현실의 사랑은 이미 게임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게임으로 사랑을 배웠고, 그래서 어느 정도 관조적인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빠져있는 사랑. 8) 나는 이미 그렇게 습득한 사랑을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나의 가상의 최애(feat. '플레이브' 남예준)를 위해, '풍화설월' 9) 의 주인공(feat. 금사슴반 클로드)들에게 이미 퍼붓고 있다. 이 때문에 의외로 현실세계의 연애와 사랑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느낌마저 든다. 참고문헌 Alfie Bown(2022). Dream Lovers: The gamification of Relationship. Pluto Press; London. 박종주역(2023). 게임, 사랑, 정치. 시대의창; 서울. 1) 이는 지금까지의 많은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한데, 대부분 연애시뮬레이션에서 비주얼(즉, 캐릭터 디자인)은 그 캐릭터의 특성을 반영하여 제작되고 이 때문에 외모는 공략법과도 깊이 연관되어있다. 실제로 연애시뮬레이션의 완결성은 비주얼이 팔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여성향 게임에서의 비주얼은 대체적으로 남성향 게임과는 달리 특정 신체를 부각하기보다, 얼굴과 목소리에 집중되어있다. 2) 乙女ゲーム 소녀의 게임. 3) 여기서 어느 정도, 라고 어중간하게 서술한 것은 기본적으로 당시 오토메 게임이 여성의 성적 욕망, 혹은 연애적 욕망에 대한 구체적 반영보다는 단순 성별반전에 가까웠기 때문이며 동시에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여성들의 모든 욕망을 단일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4) 외적이라고 굳이 덧붙인 것은 오토메 게임이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들을 주체로 하여 만들어진 게임이긴 하나,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주체의 성별은 실제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들 여성향이라고 말하는 장르의 콘텐츠를 실제로 이용하는 주체는 시스젠더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별주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쓰인 여성향/남성향과 같은 용어들은 이미 관습적으로 굳어진 용어로 본문에서 사용될 뿐, 실제 이용 주체를 명명하는 것은 아니다. 5) 3명 중 한명인 실피스는 선택지 플레이에 따라 여성/남성으로 나뉘게 되므로, 초반 성별이 정해지지 않은 존재(중성)로 나온다. 이 때문에 오토메 게임이지만 BL 게임으로 서사를 진행할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2차 창작이 활발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6) 이것은 여성 게이머 주체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기보다 초반 여성들이 게임 텍스트를 접할 때 일어나는 남성 중심적 서사에 적응하기 위한 기제로서 관습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바라보는 여성 주체에서도 유사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가정되는데, 여성은 남성의 시선이 내재화된 카메라와 그 카메라 시선의 대상(여성) 사이에서 동일시할 주체를 찾지 못하고 관조적이거나 유동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여성향 게임에서 ‘텍스트’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미지보다는 텍스트가 제 3자의 입장에서 거리두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에서는 간단히 언급하고 있지만, 이러한 거리두기의 연애방식(연애 관계에서 자신을 배제하고 그 관계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은 현대의 여성들에게 훨씬 더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 좋아하는 연예인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프라이빗 메신저 ‘구독’ 서비스. 물론 인터페이스 자체는 자신이 하는 텍스트 메시지와 연예인의 메시지 밖에 보이지 않지만, 진짜 대화를 나누는 것은 1:수많은 팬서비스 구독자다. 8) 사랑에 빠져든 나와 나를 배제한 사랑 모두를 뜻한다. 9) 닌텐도 게임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중 하나. 3개의 나라 3개의 반 중에 하나를 골라 육성하는 SRPG 게임이다. 메인 캐릭터를 남성과 여성 둘 중 하나로 선택할 수 있으며, 각각의 학생을 지도하면서 교류할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 게임비평의 쓸모

    게임 비평 역시 앞서 언급한 시의성이나 대규모 자본과의 관련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글의 형식은 게임 비평일 수밖에 없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 자문하지 않는 존재는 점차 자기 합리화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며, 이는 현재 한국 게임이 처해 있는 다양한 위기들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 Back 게임비평의 쓸모 20 GG Vol. 24. 10. 10. 비디오 게임을 둘러싼 많은 글들이 존재한다. 리뷰, 공략, 기사, 논문, 비평 등 그 형식도 다양하다. 이러한 글들은 모두 게임 산업이 굴러가는 맥락과 결부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게임 구매와 소비에 관한 패턴이 이 글들의 형식을 규정해주는 좋은 구분점이 된다. 비단 글뿐만 아니라 유튜브나 트위치 등에 올라가는 영상들도 맥락은 모두 유사하다. 게임 리뷰는 게임 전문 웹진이나 유튜브 게임 채널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유형으로 기본적으로 그 전제는 구매 가이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게임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게이머들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리뷰를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리뷰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리뷰들은 통상 별점과 같은 평가 기준을 두고 있다. 이는 게이머들이 구매 과정에서 겪는 고민을 손쉽게 정리해줄 수 있는 정량화 툴이다. 업계에서 말하는 좋은 게임 리뷰는 해당 게임의 장점과 단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게이머의 구매 고민을 줄여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게임 리뷰는 시의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제 막 출시된 신작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 리뷰를 올려서 연명하는 매체들은 가장 시의성 있는 게임만을 골라 이를 빠르게 평가하여 게이머들의 주목을 끌어야 한다. 그래야 게이머들이 모여 웹진의 트래픽도 올리고 이를 통해 광고도 수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 공략은 리뷰와는 달리 주로 이미 해당 게임을 구매한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한다. 해당 게임의 기본 조작법부터 시작하여 스토리 전개, 보스 공략법, 팁 등을 상세히 서술하는 것이 특징이다. 게임 공략 글은 과거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 게임 전문 잡지에 수록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보급과 유튜브 같은 영상 채널에서 라이브로 실시간 공략 등이 이루어지면서 한국에서 비디오 게임 전문 잡지는 <게이머즈> 정도만이 남아 있다. 게임 공략은 리뷰와 마찬가지로 신작 위주의 시의성 있는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해당 작품에 대한 가치 평가가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건조하고 짧게 서술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해당 글을 읽을 독자는 이미 게임을 구매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공략이 구매 가이드의 역할을 더 수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게임 공략은 점점 종이 매체에서 웹진 형태를 거쳐 유튜브 같은 영상 플랫폼 위주로 대체되고 있다. 스틸 컷 이미지와 텍스트 밖에 넣을 수 없는 종이 매체와 글, 이미지, 영상 모두를 넣을 수 있지만 게임 기사는 게임 업계 전반에 일어나는 현황이나 사건 등을 사실 위주로 알리는 글을 뜻한다. 기사 역시 대체적으로 시의성 위주로 작성되는 경우가 많으나, 때에 따라서는 특정한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는 비평적인 특집 기사가 수록될 때도 있다. 또한 게임 리뷰나 공략과는 다르게 게임 업계 전반에 대해 논평하는 메타적인 기사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부 게임 기사는 게임 리뷰와 공략이 논하지 못한 업계 전반의 상황이나 현안을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글들의 경우 대부분 외부 필진의 칼럼 형태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고 실제 기자들이 쓰는 기사들은 대체적으로 기자의 논평이 생략된 팩트 위주의 단신으로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게임 논문은 주로 게임 학계에서 활동하는 교수나 연구자, 대학원생 등이 게임과 관련한 학술적인 연구 결과를 수록한 글이다. 시의성이 있지 않고 특정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시도한다는 점, 메타적인 비평도 허용된다는 점에서 게임 논문은 게임 비평과 유사한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학술 논문은 기본적으로 다른 연구로부터 더 발전된 측면을 기존 참고문헌의 인용과 분석, 비판을 통해 증명하여야 된다는 점에서 게임 비평과 차이가 있다. 또한 게임 논문은 학술지마다 정해 놓은 글의 스타일과 인용 및 주석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게임 비평에 비해 상당히 딱딱하게 진행된다. 비평은 일종의 문예적인 창작이기 때문에 평론가의 표현적 재능이 필요하고 이는 문장과 스타일에서 자유로운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두게 된다. 그러나 학술 논문에서는 이러한 개인의 창작적 표현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비평과 구분된다. 이에 비해 게임 비평은 앞선 세 부류의 글처럼 시의성과 관련 없이 작성될 수 있다. 당연히 게임 비평 역시 현재 당장 출시된 게임을 논평하면서 시의성을 갖출 수도 있으나, 이럴 경우 비평이 갖추어야 할 작품으로부터의 ‘비평적 거리’를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비평(批評)이란 주로 예술 작품의 분석을 통해 그 가치를 논하는 작업인데, 이는 상당 기간 면밀한 관찰과 분석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또한 게임 비평에는 해당 게임을 분석하기 위한 특정한 시각이나 분석방법론이 동원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방법론은 분석 텍스트에 해당되는 게임을 논자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분석하게 만드는 도구인 셈인데, 이러한 분석 방법론을 자신의 글에 적용하여 특정한 게임 텍스트를 비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소양을 갖추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 때문에 게임 비평은 업계의 시의성으로부터 분리되는 경우가 많지만, 보다 면밀하게 해당 게임이나 사회적인 현상을 둘러싼 반응을 관찰할 수 있는 여유와 비평적 거리를 갖출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에서의 비평은 비단 게임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영화 등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평론가의 글이 갖추어야 할 질적인 완성도 관리를 위해 등단(登壇)이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 분야는 이러한 제도적 특성이 다소 미비한 측면이 있지만, 문학 쪽에서 기성 문예지나 신문에 비평을 게재하기 위해서는 신춘문예나 문예지의 공모전에 당선되어 일종의 자격을 갖추어야만 한다. 드물게 유명 문인이 신인을 문예지에 추천하여 그 글이 문예지에 두세 차례 기고가 되면 추천 완료라는 형태로 등단한 문인들도 있다.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만이 지닌 독특한 제도인 이 등단이라는 제도는 이처럼 일정한 자격을 갖춘 이들을 문인으로 대접하고, 이렇게 모인 문인들의 모임을 문단(文壇)이라 불렀다. 문단은 프로 작가와 아마추어 작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동해 왔을 뿐만 아니라, 문인들이 스스로에게 사회적 권위를 부여하는 일종의 의식으로 작용해 왔다. 문제는 이러한 문단이나 평론가 그룹의 자의식이 과도하게 작용하거나 리뷰와 구분되지 않는 행태를 보이면서 스스로를 상업적인 올가미에 빠져들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한국 문학 평론은 문단 내부로만 서로 읽어주고 평해주는 일종의 게토화에 빠져 있다. 수많은 문예지가 나오고 있고 거기에 다수의 문학 평론이 실리고 있지만 일반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지는 오래이다. 영화 평론은 기존의 영화 주간지들이 판매부수가 줄거나 폐간되면서 입지가 좁아진 지 오래이다. 또한 예전 송능한 감독이 <세기말>이라는 영화를 통해 “자네는 자네 마누라한테도 별을 주고 그러나? 마누라 얼굴은 두 개 반, 젖퉁이는 별 세 개. 사랑하는 대상이라면 신중해야지. 영화를 밥그릇으로 보니까 함부로 별을 주고 그러는 거 아냐? 천박한 짓이야. 그런 짓 하지 마.”라고 일갈했듯이 평론의 정체성을 지닌 채로 자본의 흐름에 따른 리뷰 위주로 글쓰기를 자행해 온 평론가들의 이중성 때문에 그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온 적도 있었다. 게임 분야에서 비평과 관련된 단체들은 대체로 이러한 공모전 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에서 게임 비평을 명시적으로 내세우는 거의 유일한 매체인 ‘게임제너레이션’도 창간 첫 해부터 게임 비평 공모전을 열고 있으며, 예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5회에 걸쳐 주관했던 게임비평상 역시 공모전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정부기관과 기업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던 게임비평상은 그 공모전을 뚫고 나온 게임평론가들이 지속적으로 글을 실을 수 있는 매체나 지면을 확보하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등단한 평론가가 활동하기 위해서는 우선 매체나 지면이 필요한데, 그 당시 존재했던 게임 매체들은 주로 게임 리뷰와 기사, 공략 위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신인 게임평론가들의 글이 실릴 사회적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 그 당시 게임비평상을 수상했던 이들 중에는 필자의 수업을 들은 제자들이나 학계의 선후배들이 꽤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현재 전업 게임평론가로 활동하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그 당시의 한국 게임업계와 학계 혹은 평론계가 게임평론을 사회적으로 인정할만한 제도적 장치와 인프라를 갖추지 않은 채 이러한 글들을 산발적으로 소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또 한편으로는 2000년대 후반 정도까지 한국 게임업계에서 제작해 온 게임들이 굳이 진지한 게임 비평의 대상이 될 필요성이 많지 않았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주최 게임비평상의 비평들을 메타적으로 분석한 전경란 교수의 논문 <게임비평에 대한 연구 : 게임비평 텍스트의 메타분석적 접근>에 따르면 그 수상작 30편 중 한국 게임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쓴 평론은 4편에 불과하다. <마그나카르타 2>, <타이니 팜>, <애니팡>, <아이 러브 커피> 등이 그 게임들인데, 이 중 <마그나카르타 2>를 제외한 다른 게임들은 페이스북이나 모바일 플랫폼에서 소비되었던 플랫폼과 게임 소비 패턴의 변화를 주로 다루고 있는 글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다시 말해 소셜 게임과 모바일 게임으로서의 변화가 가져온 게임 유저 층의 확대라는 차원을 제외하면 2000년대 후반까지 한국 게임 중 비평적 사고가 필요했던 게임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다. 신인 게임 평론가 대부분이 해외 게임에서 스토리텔링이나 인터랙션 구조, 테마의 사용이나 게임적인 수사학을 분석할 거리를 찾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게임제너레이션의 게임 평론상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게임 평론이 자생하기 어려운 지점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게임 평론이 아직 필요하다고 믿는 이유는 게임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매체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한국 게임은 인디게임을 중심으로 사회적으로 문제적 이슈들을 게임 내의 테마로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게임도 대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인디게임 개발자 Somi의 죄책감 3부작이나 최근 신작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와 같은 작품이 다룬 정치권력과 개인 양심의 충돌, 제주 4.3사건의 비극성에 초점을 맞춘 <언폴디드> 시리즈,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삶을 재조명한 <페치카> 등 사회적 임팩트를 주고자 하는 소셜 임팩트 게임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는 점은 게임 비평만이 다룰 수 있는 분석적 조망을 필요로 한다. 또한 최근 들어 게임 업계를 둘러싼 다양한 환경의 변화는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할 비평적 시선이 필요함을 역설해준다. 게임 기사와 리뷰를 주로 실어 온 게임 웹진들은 아무래도 광고에 매출의 상당 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 때문에 국내 게임 대기업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최근 들어 게이머들이 단순한 소비자에서 벗어나 트럭 시위와 같은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개진하면서 주체성을 갖춘 존재로 거듭하고 있다거나, 확률형 아이템과 같은 게임 규제가 신설되거나 전반적인 게임 비즈니스 모델이 변모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하여 업계와 객관적인 거리를 확보한 비평적 시선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매체들은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데에 소극적이거나 외부 필진을 통해 칼럼을 게재한 뒤 본지의 입장과 관련 없다는 진술을 넣는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게임 비평 역시 앞서 언급한 시의성이나 대규모 자본과의 관련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글의 형식은 게임 비평일 수밖에 없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 자문하지 않는 존재는 점차 자기 합리화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며, 이는 현재 한국 게임이 처해 있는 다양한 위기들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게임 비평은 현재 시점에서 한국 게임업계에 가장 부족하고 필요한 영역이라고 보인다. 한국 게임비평은 한국 게임이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맞아야 할 백신인 셈이다. 물론 기존의 문학이나 영화 평론이 걸어갔던 게토화나 리뷰화의 전철을 슬기롭게 피해나가야 하기도 한다. 그 어려운 길을 가는 이들을 묵묵히 응원하고 싶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 DejaVu Sans The NFT Games Dream – is it yet another tulip mania or path to our future?

    Constraints can become stepping stones to innovation. The disproportionate market attention towards integrating blockchain technology into games is perhaps stemming from people’s desire to overcome the current constraints. Here, the idea of combining blockchains and games can be examined from two perspectives: First, exploring the intention behind advocating for this change, and second, discussing why such a change is deemed necessary at this time. Combining the findings from these two would allow us to acquire a comprehensive view of this matter and thus enable critical reflections on what the innovation could bring to our future. < Back DejaVu Sans The NFT Games Dream – is it yet another tulip mania or path to our future? 15 GG Vol. 23. 12. 10. Are NFTs for now or for the future? Constraints can become stepping stones to innovation. The disproportionate market attention towards integrating blockchain technology into games is perhaps stemming from people’s desire to overcome the current constraints. Here, the idea of combining blockchains and games can be examined from two perspectives: First, exploring the intention behind advocating for this change, and second, discussing why such a change is deemed necessary at this time. Combining the findings from these two would allow us to acquire a comprehensive view of this matter and thus enable critical reflections on what the innovation could bring to our future. Notably, a significant portion of the ongoing discourse about integrating a blockchain into games is concentrating on optimistic views toward the future. Discussions about related topics like Play-to-Earn (P2E) and Non-Fungible Tokens (NFTs) are also revolving around on the view towards the future rather than present; on what could happen, and should happen according to the previous attempts. Here, we cannot get away from the feeling that something is not right – something is off. Of course, one could still argue that these messy attempts and discourse are stepping stones towards the next paradigm shift and that we must first prioritise broader and newer attempts rather than hindering innovation with over-verification. Coming from this context, this article aims to delve into the issue of NFTs in games, exploring both the social and technical contexts. First, we take a look at the context of non-fungibility and decentralisation and the game industry’s vision towards its future, along with its remaining technical challenges. From there we look more in-depth at where these endeavours might leave their mark on games. Contexts of Non-Fungibility In recent days in South Korea, the term Non-Fungible Tokens (NFTs) is most commonly used in discussions regarding virtual assets, emphasising their potential value deriving from unique ownership attribution over notions about their technological aspects. Meaning, rather than delving into the technical feasibility of obtaining this non-fungibility status, the discourse surrounding NFTs tends to focus more on how much value can be derived from those assets and how to leverage it. Under current South Korean law, it is not possible to introduce NFTs into games, including its live operation services. There are many restrictions and thus a considerable amount of time would be needed before any NFT games can be fully in operation at a viable commercial level in this country. But the potential gain could be high: If NFT games can somehow reach the mainstream market, they could quickly become the most accessible medium for trading cryptocurrencies, using already existing in-game markets – without making much of an early investment in facilitating entirely new channels. Not to mention, South Korean game players are already accustomed to taking financial burden while playing games. Active players are more likely to become devoted fans of the game, and for them, paying to access the blockchain currency may be perceived as an acceptable range of costs. Here it’s worth closely looking at the case of the game “CryptoKitties” (Dapper Labs, 2017) a prime example of games and blockchain integration. The in-game transactions of “CryptoKitties” occur through trading with the virtual currency Ethereum, providing opportunities to trade more exotic digitally-generated cats at higher monetary values. So, what makes this game ‘fun’? Do players find it ‘fun’ when they successfully create exotic digital cats, or does the enjoyment come from engaging in monetary trading as the prices of digital cats might increase? While the game’s primary game design mechanic revolves around collecting and breeding cute digital cats, “CryptoKitties” trade mechanisms combined with real-world monetary values (i.e., currency that can be used even outside the game) make it hard for us to articulate what the particular design elements are that truly resonate with a feeling of ‘fun’ of players. Let’s consider a hypothetical situation where someone has successfully generated an exotic, high-valued cat in the game. If one considers acquiring a unique cat in the “CryptoKitties” through collecting and breeding as ‘fun’: Does that feeling stem from the self-satisfaction of acquiring a rare item (in this case, an exotic digital cat), or does that come from the optimistic expectations of being able to trade it for a higher amount of money? Perhaps it could be a bit of both. Even if the player has no intention of trading that digital cat, just having an expensive object may already give the person a prestigious and satisfying feeling. This somewhat resembles other game business models already common in some South Korean MMO games – and potentially online games from other regions. Then the question is, why NFTs? What makes incorporating NFTs into the game differerent from other conventional game design and business mechanics? In the next chapter, let’s examine the benefits of NFTs from the perspectives of game companies and gamers. Contrasting views towards Non-Fungibility At the current state, one of the primary issues is that game companies have yet to clearly define how the introduction of NFTs can make more ‘fun’ to the game, and what exact innovative changes they envision for their game’s live service. For example, the game “Nine Chronicles” (Planetarium, 2020) demonstrates the notion of decentralisation by going open-source as a blockchain game. But most blockchain game projects do not seem to provide a solid answer on why they need to choose blockchain technology in particular, and rather adopt blockchain first and then find its reasoning as they run. Furthermore, one of the most widely accepted business models among these blockchain-backed games is the pre-sales scheme, selling items early in advance, which is not entirely something new (from the consumer’s standpoint) but more of a replication of existing business models but with added blockchain hype. This inconsistency leads to worrying public views on game companies’ intentions regarding NFTs, which question the corporate vision as the attempt to introduce cryptocurrency into game services while evading state regulations. From the consumer’s standpoint, the company seems to be attempting to profit from the player-to-player item trades through NFTs. (Translator’s note: South Korean game law prevents game companies from directly facilitating player-to-player item trades if it involves purchasing or selling virtual items with real-world money, KRW. Instead, various third-party currency exchange agencies, apart from the game service providers, can mediate the exchange of virtual items with real money, subject to a certain amount of transaction fees.) Many blockchain game proposals from some major South Korean game companies aim to gain control over direct real-world item trade; Proposing to install virtual item trade through company-issued cryptocurrencies, which is a clear indication of the corporation’s attempt to evade government’s regulations. While game companies’ vision toward NFTs is still fixated on product value, for players, the future it presents has somewhat conflicting implications. Some players may view NFTs as a channel for game items as monetary investments, while others see them as collectibles that could last even after the termination of the game’s service. Considering that all online game services’ assets and efforts that gamers accumulate over time could vanish once the game service ends, without any reliable method to possess such intangible values made in games, NFTs can perhaps provide players a permanent ownership of the things that they have achieved in games. Here, NFTs can be interpreted as a token through which players could feel personally connected with the games that they love. Perhaps the NFTs could be perceived as a medium through which players can express their attachment towards the game — a non-fungible token that signifies their devotion as a fan of the game. For these individuals, NFTs are no longer just about the technical wonder but rather a tool for the meaning-making journey of their gameplay. For instance, online game players are aware that the online game service will eventually end. Despite knowing this potential future, they remain devoted to their current satisfactions with the game, accumulating virtual assets that may one day no longer be available. Perhaps NFTs can resolve this uncertainty (the risk) that players must endure, by becoming a proof of record of in-game items that can last indefinitely. A token with which they can enshrine their love towards the game that can safely be stored without the risk of losing it. Contexts of decentralisation What the blockchain currently guarantees in terms of non-fungibility is the data. While attempts to enhance technologies such as proof-of-work (PoW) and hardware storage capacities are in progress, uploading the entire game system to run on the blockchain is still challenging. Let’s consider a hypothetical scenario where the game system remains outside the blockchain, perhaps locally or internally within the game company’s server, while the game state (data) is kept on the blockchain. In this setup, even if the game company is no longer able to manage the game services — terminating its live operation — the records of the items still exist on the blockchain to prove who owns that particular item. However, without the game system to actually run or operate that specific item this is just a data record, which diminishes its non-fungibility – and thus, become basically worthless. While the game company could add more data, but this could significantly decrease the amount of data that can be stored in the blockchain, leading to higher costs. Higher production costs may result in slower updates , and keeping track of all gamers’ play data on the blockchain could burden computational power, potentially hindering seamless gameplay. Recent new methods proposed to improve blockchain usage (e.g., power consumption, transaction costs, and transaction times) contradict the goal of decentralisation for efficiency in proof delegation. Furthermore, most current blockchain transactions are mediated through trading platforms, which deviates from decentralisation in the first place. Another important note here is that if the game company intends to establish a genuinely centralised way to control its game service and trades, a blockchain is perhaps, unnecessary. As even with the conventional techniques already in use in current game technologies, the company could still choose and guarantee the value of their gamers’ data (and their item’s value) – and perhaps be able to do so more efficiently in terms of speed and cost than using a blockchain. Therefore, game corporations must truthfully reveal their intentions and reasoning for adding blockchains in games despite the corresponding complexity and cost risks. Without such justification, their proposals can only be seen, from the players’ standpoint, as a deceptive corporate manoeuvre – promising non-valuable values in an attempt to evade the law. What we find fascinating in attempts to decentralise games is not to facilitate a central server to operate and manage the game but rather to have it open by envisioning a pivotal shif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game companies and users – a relationship that has historically been one-sided and hierarchical. In decentralised games, the relationship between game companies and gamers can take on a more flat and open structure. This collective relationship could also influence how in-game interactions and business models are designed, potentially addressing or altering the stress on gameplay (as recently highlighted in South Korean gaming culture) caused by game designs that favour competition and a win-or-lose mentality. Finding somewhere in between What NFTs could bring to games? In this chapter, we explore intriguing attempts to mediate, compromise, negotiate, and introduce new models that could inspire further innovations. Technical enhancements could one day be able to solve blockchain-related issues. In particular, blockchain has been a significant concern because of its high power consumption due to proof-of-work (PoW). Therefore, newer technologies that do not rely on PoW are being introduced. While it is unlikely that existing blockchains already in operation will alter or adopt these new methods, it could potentially offer further future technical alternatives to issues related to non-fungibility and decentralisation that may arise. In contrast, the game corporations’ attempts to leverage blockchain technology to free themselves from laws and social responsibilities cannot be achieved solely through technical solutions. First, let’s acknowledge that the idea (or attempt) of connecting in-game currency with real-world currency without violating the law is not particularly new; perhaps there’s a good reason for that. The issue is more fundamentally interconnected with the world, and thus, no particular technology—let alone blockchain—can be a magic wand. We believe that even if the use of blockchain becomes more common than ever before, for instance in the banking system, the practices are likely to be somewhere between convention and innovation – a fusion of blockchain technology with the existing banking system. As such, the compatibility between virtual assets and real currency should be mediated, perhaps within the scope that satisfies the existing laws of our society. Implications could also involve using blockchain technology to enhance communication between game companies and players. One such inspiration is the game “EVE Online” and its annual event, ‘Eve Fan Fest,’ which any EVE Online player can sign up for and participate in. Among the many side events in Eve Fan Fest, one we would like to point out is the ‘Player Presentation,’ which offers a 40-minute presentation or a roundtable discussion to pre-registered players. The game operates a single shared universe (global region server) for players worldwide, eliciting user participation both in and outside gameplay: At the event, EVE Online players from various factions gather for discussions and negotiations regarding faction relationships and agreements. Perhaps we could use the blockchain to create and enable various forums like Eve Fan Fest, where South Korean game devs and players can join and engage together. Company representatives can listen to players’ opinions and reflect those ideas into the game’s service, enabling a feedback loop with real in-game implications. Such attempts can perhaps prevent potential conflicts or issues that may stagnate if the company solely dictates decision-making by dismissing the power of collecting intelligence from players. Instead, the blockchain could contribute to recording and tracing player’s ideas and opinions efficiently, supporting the enhancement of fairness and transparency in player communication and game company service decisions. In addition, if the game service continues for a long time, it can serve as an archive of accumulated communication between game developers and players. The blockchain may help regain the trust between South Korean players and game developers, which has reached a dangerously precarious state in recent years. Perhaps loot box probability disclosure, mandated by law in Korea from March 2024, can be verifiably realised by archiving all records of randomised items created in the game on the blockchain. Players may be able to further verify whether the game’s system is operating as the game company intends. At the time of writing, it seems evident that many in South Korean game companies and developers are concerned about what this new law could bring to the industry and how to even comply with this upcoming regulation. Perhaps with blockchain’s potential for transparency and decentralisation, the disclosure of loot box probabilities in South Korea is not far from reality. Of course, we cannot emphasise enough how a careful implementation of new technology, like blockchain, should be based on a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 real world and our real problems. Lastly, we again ask: So what do game companies hope to achieve through NFTs? Is the phenomenon of NFT games a futuristic indicator towards our near future, or are they just a mere reflection of the pending issues of our current reality? Attempts are being made to identify the nature of this phenomenon and clarify our understanding of the blockchain game discourse. Finding the right pathway cannot be achieved unless one can figure out one’s location, calculated based on observing the terrain relative to the starting point where one began one’s journey. As such, we must concentrate on navigating through our future discourse while carefully traversing our current and upcoming terrain of topics and never stop asking the very fundamental starting question: “What is fun in games—and can a game still be called a game when its purpose is something other than the pursuit of fun?”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펌프잇업의 플레이 분화에 놓인 '기계'의 의미

    앤서니 던에 따르면 전자제품의 사용자 친화적 인터페이스는 사용자들을 제품에 구현된 가치와 개념을 사용자들이 스스로 제품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동안 학습시킨다.1) 이것이 전적으로 맞는 전제라고 가정한다면 게임도 마찬가지일까? 게임은 다른 전자제품들과는 다르다. 일반적인 상품은 그것이 완성되거나 완벽하게 조립된 것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로서의 게임은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그 소프트웨어가 제공하고자 하는 게임이라는 상품의 형태는 게이머의 ‘수행’이라는 행위에 의해서 각각의 게이머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체험된다. 소프트웨어로서는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게이머가 게임을 수행하고 난 뒤에야 ‘게임’ 그 자체는 완성된다.  < Back 펌프잇업의 플레이 분화에 놓인 '기계'의 의미 11 GG Vol. 23. 4. 10. 편집자 주 - 이 글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1990년대 이후 전자오락 문화의 변형에 대한 연구, 2023) 4장의 내용의 일부를 가져와 새롭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앤서니 던에 따르면 전자제품의 사용자 친화적 인터페이스는 사용자들을 제품에 구현된 가치와 개념을 사용자들이 스스로 제품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동안 학습시킨다. 이것이 전적으로 맞는 전제라고 가정한다면 게임도 마찬가지일까? 게임은 다른 전자제품들과는 다르다. 일반적인 상품은 그것이 완성되거나 완벽하게 조립된 것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로서의 게임은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그 소프트웨어가 제공하고자 하는 게임이라는 상품의 형태는 게이머의 ‘수행’이라는 행위에 의해서 각각의 게이머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체험된다. 소프트웨어로서는 완성된 상품이기도 하지만, 게이머가 게임을 수행하고 난 뒤에야 ‘게임’ 그 자체는 완성된다. 그런데 게임이라는 것은 보통 비물질적인 무엇인가로 인지된다. 특히 개인용 컴퓨터와 콘솔게임기는 물론이고 스마트폰과 같이 모바일기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현재의 게임은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하기에 더욱더 비물질적인 것이라는 상상이 견고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게임의 수행이라는 것은, 그 어떤 게임이라도 신체와 게임을 연결해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매개되어야만 가능하다. 즉 인터페이스를 통해 게임의 소프트웨어와 게이머가 연결되지 않으면 게임이라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처럼 게임은 그 물질적인 토대가 확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수행(performance) 혹은 게임 플레이라는 물질적 차원의 행위가 가지는 힘에 주목해야한다. 인터페이스로서의 조작장치와의 상호작용은 게이머가 단순히 게임에 신호를 전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자신의 신체의 움직임을 체험하는 동시에 그 움직임이 화면이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재현되는 것을 종합하여 게이머들의 신체에 각인되는 총체적 감성과 지성이 작동하는 행위이다. 즉 인터페이스를 매개로 이뤄지는 게이머의 게임 수행은 손과 몸으로 ‘사물’을 더듬으며 지혜를 얻는다는 제작(make) 행위와 연결되는 지점인 것이다. 제작 문화(메이커 문화)에서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은 주요한 정치적 행위이다. 손과 몸으로 사물을 더듬어가며 지혜를 얻는 것은 사물의 속성을 파헤치고 그 안에 내재된 설계를 간파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제작 문화의 차원에서 게임을 바라보려는 접근은 있어왔다. 흔히 모드(mod)라고 부르는 ‘플레이어 혹은 이용자에 의한 수정 및 변경’을 통해 게임을 변형시키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모드’라는 행위는 기술적 소양이 일정부분 쌓여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가능한 게임 실천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게다가 모드행위에만 집중한다면 게임을 즐기는 평범한 게이머들이 수동적이며 그들의 게임 실천은 행위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라는 견해를 갖게 만들 위험성도 있다. 제작문화라는 것이 손과 몸으로 사물을 더듬어가면서 사물의 속성을 파헤치고, 그 설계를 간파하는 것이라고 할 때, 게임 수행은 손과 몸을 이용해 게임기의 인터페이스를 더듬어가며 게임을 이해하는 제작 행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일반 게이머들도 게임 수행을 통해 게임의 설계에 접근하고, 비판적 제작 혹은 해킹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행위를 할 능력이 있지 않을까? 이제부터 〈펌프잇업〉이라는 게임이 명확한 게임성을 갖고 있지 못했던 시기, 즉 하나의 게임기에서 다른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시기를 되짚어보며 확인해보도록 하자. 게임의 공연성 1990년대 말부터 리듬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게임이 전지구적 유행을 하게 된다. 이는 1997년 일본 코나미라는 회사의 〈비트매니아〉의 출시 이후로 시작해 〈댄스댄스레볼루션〉의 대히트에 기인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펌프잇업〉이 크게 유행했다. 〈펌프잇업〉은 춤이라는 놀이가 게임에 매개되어 들어간 아케이드 게임이다. 리듬게임은 전자오락실을 일종의 공연장과 같은 분위기로 만드는 효과가 있었는데, 〈펌프잇업〉은 이런 게임의 공연성을 한층 더 강화하였다. 전자오락실 업주들의 업주들은 이런 〈펌프잇업〉의 공연성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펌프잇업〉을 위시로 한 리듬게임의 유행에 따라 어두컴컴하던 전자오락실은 점점 환해지고, 외부에서도 〈펌프잇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지켜볼 수 있게 하려고 하였다. 또한 〈펌프잇업〉의 숙련도가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가 있는 이용자에게 게임을 공짜로 즐길 수 있게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는데, 이는 일종의 광고 수단으로 사람들을 자신의 업장으로 유인하는 전략의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퍼포먼스 혹은 프리스타일 플레이 게이머들은 게임 설계에 내장된 규칙에 따라 게임을 진행한다. 대다수가 알고 있겠지만, 〈펌프잇업〉의 규칙은 간단하다. 특정한 곡을 선택하면, 게임이 제공하는 리듬에 맞춰 화면에 표시되는 화살표(노트)에 맞춰 발판을 발로 밟는 것이다. 〈펌프잇업〉이 게이머들에게 요구하는 목표는 두 가지이다. 정확하게 발판을 밟아서 일정 점수를 획득하여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고득점을 획득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 게이머에게 제시하는 목표와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고자 하는 목적이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 게이머들이 궁극적으로 게임을 하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임이 게이머에게 제시하는 목표를 완수해가면서 재미를 찾을 수도 있지만, 꼭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할 필요는 없다. 〈펌프잇업〉은 앞에서 이야기했듯 춤이라는 것이 매개되어 들어가 있는 공연성이 강한 게임이다. 숙련도를 쌓은 게이머들에게 〈펌프잇업〉의 플레이는 게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게임을 바라보는 구경꾼들에게 보여주는 ‘공연’이기도 했다. 따라서 게이머들은 그들이 흔히 갤러리라고 칭하던 구경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화려한 게임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고득점을 노리는 게임에서 구경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공연으로 변모하자 일정 점수를 획득해서 게임을 다음 단계로 진행시키는 규칙은 중요하지만, 고득점을 획득해야한다는 게임의 규칙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된다. 이렇게 〈펌프잇업〉은 춤을 추면서 구경꾼과 상호작용한다는 새로운 게임으로 변모해간다. 이렇게 변화된 새로운 게임에서는 자신들이 구상한 안무를 위해 의도적으로 게임에서 밟으라고 강제하는 발판을 밟지 않아도 ‘게임오버’가 되지 않는 선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보여주고 싶은 안무를 위해 1P와 2P의 발판을 모두 이용하는 ‘더블 모드’가 선호되었다. 이렇게 되자 게임성이 변화하자 게임의 인터페이스를 이용하는 방식도 변화되었다. 게이머들의 안전을 위해, 또 정확하게 발판을 밟을 때 이용하라고 설치된 안전 바를 잡는 것은 추한 행동이 된다. 안전 바를 뛰어넘는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안무에 이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안전 바는 자신들의 퍼포먼스를 제약하는 방해물로 인식되었다. 게임제작사도 자신들의 설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게임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설계를 고수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런 이용방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는 〈펌프잇업〉이 전국적인 유행을 하자 게임 제작사가 개최한 전국대회가 어떻게 치러졌는지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이 피플크루 막 이랬어요. … (중략) … 결국 비보이들이 심사위원을 봤어요. … (중략) … 심사도 일단 뭘 얼마나 멋있게 하던 간에 하다가 죽으면 탈락이에요. 그거는 확실했어요. 그 규칙은 있었어요. 하다가 죽으면 안 된다. 점수도 중요하긴 하죠. … (중략) … 그러니까 심사위원석에 있으면 이게 보여요. 이 사람이 딱 추고 있는 걸 보면 이 사람은 (춤)선이 있는 사람이다. 잘 춘다. 한눈에 확 들어오는 그런 사람들을 따로 체크를 해두죠.” “이제 2회 대회 때 우승했을 때 상금 500만 원에 부상으로 컴퓨터 하나 그리고 안다미로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자격 같은 것도 있었어요. … (중략) … 이제 조금 잘 하는 사람들한테 채보 작업 5) 을 맡겼어요. 그러니까 이제 춤추고 이렇게 좀 유명하고 잘하는 사람들한테 채보 작업을 맡겨서 (중략)” 명확한 심사기준은 오로지 ‘게임 오버’가 되지 않는 것이었고, 게이머들이 어떻게 춤을 추는가를 심사했다. 고득점이라는 〈펌프잇업〉에 내장된 규칙은 동점자 처리용 정도로만 사용되었다. 발판이라는 인터페이스는 게이머의 ‘발’의 움직임만을 요구했으나 게이머들은 발판이라는 인터페이스 위에서 자신의 ‘온 몸’을 이용해 게임을 적극적으로 즐겼고, 이런 게임 수행은 게임제작사에도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게임의 방향성을 변경시키는 비판적 제작 행위 혹은 해킹적 실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테퍼들의 창조적이면서도 수동적인 플레이 〈펌프잇업〉에서 퍼포먼스 플레이만이 유행을 했던 것은 아니다. 일명 ‘스테퍼’라고 불린 집단도 존재했다. 이들 역시 게임기의 발판이라는 조작장치 위에서 발 뿐만 아니라 무릎, 손, 머리 등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들이 퍼포먼스를 펼친 이유는 퍼포머들과는 달랐다. 이들은 게임이 제공하는 난도로 표현되지 않을 만큼 더 높은 수준의 숙련도를 가지고 있음을 뽐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퍼포머들은 같은 기계를 이용하지만 다른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즉 〈펌프잇업〉이라는 ‘무대’는 공유하지만 ‘다른 공연’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퍼포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멋’이지만 스테퍼들에게 중요한 것은 ‘점수’이다. 쉽게 발로만 누르는 것이 아니라 무릎, 손, 머리 등으로 발판을 누르면서 스스로 난도를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것을 통해 그들의 숙련도를 보여준다. 게임이란 무릇 후속작이 나올 때마다 게임의 난도가 올라 신규 게이머들의 유입이 어려워진다는 경향이 존재한다. 채보 작업에 스테퍼들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경향이 급속도로 진행된다. 왜냐하면 스테퍼들에게는 난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특별히 안무를 짜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이 가능했으며, 어려운 채보를 진행하는 도중에 퍼포먼스를 구사하는 편이 자신들의 숙련도를 더욱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플레이는 난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는 측면에서는 창조적인 게임 수행이지만, 동시에 게이머 스스로가 게임의 재미를 능동적으로 찾기 보다는 게임이 제공하는 장애믈을 넘어서는 것에 의존한다는 점에서는 수동적인 플레이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이제 그거(퍼포먼스)를 하면서 위에서 멋있게 하고 그런 것들이 먹히는 시대였잖아요. 지금은 사실 그런 게 이제 잘 통용되지 않는 세상이 온 거죠. 펌프라든가 그런 것도 그때 당시에는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그런 걸해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구경하고 했지만, 요새는 글쎄요.” 퍼포머와 스테퍼들이 가지고 있는 게임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은 경합을 했고, 결국 스테퍼들이 지배적인 게이머 집단이 되었다. 퍼포머들의 공연은 조금씩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취급받기 시작했고 게임기에 손상을 가하는 옳지 못한 행위로 간주되기까지 되었다. 스테퍼들이 바라는 대로 〈펌프잇업〉은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게임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노트들에 대응해서 발을 이용에 입력하는 게임, 즉 본래의 〈펌프잇업〉이 강제하는 고득점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게임으로 또다시 변경되었다. * 초창기 〈펌프잇업〉의 채보.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DK8GyszjmUg&t=53s 에서 캡쳐. 인터페이스와 신체의 결합의 효과 〈펌프잇업〉은 한때 추한 행위로 여겨졌던 안전 바를 부여잡고 일반적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벗어난 빠른 발놀림, 즉 피지컬을 요구하는 게임으로 변했다. ‘온 몸’을 이용해 게임이 강제하는 규칙에서 벗어난 다른 의미들을 생산하는 게임 수행은 어려워졌다. 이제 게이머들은 안전 바를 두 팔로 움켜쥐고 자신의 몸을 기계와 연결시킨다. 이렇게 기계와 연결된 게이머가 게임을 수행하기 위해 이용하는 것은 자신의 다리 뿐이다. 춤이 매개된 온 몸을 이용하던 놀이는 전자오락기의 인터페이스에 자신의 몸을 연결해서 고정시키고 ‘다리’만을 사용한다. 더 이상 나뉘어질 수 없는 의미의 개인(indivisual)으로 존재했던 게이머들은 이제 나뉘어질 수 있는 가분체(divisuals)라는 것이 된다. 〈펌프잇업〉의 발판이라는 인터페이스는 과거나 현재나 모두 살아있는 인간 게이머의 발동작을 요구했으나, 과거에는 숙련도가 쌓였다면 게임의 규칙을 벗어나 창조적으로 새로운 의미생산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펌프잇업〉은 온몸을 움직이며 발판이라는 인터페이스와의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상체를 인터페이스에 연결하고 고정한 뒤 자신의 몸에서 ‘상체와 하체를 분리’시킨다. 이렇게 상체는 게임기의 일부가 되고, 신체에서 분리된 하체는 게임을 수행한다. 하체의 게임 수행은 이전처럼 무언가를 표현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신체를 얼마나 잘 제어하는지를 보여줄 뿐이고 게임에 입력되고 수치화되는 하체의 움직임만이 중요해진다. 게임을 잘 하기 위해서는 자기 신체의 역량을 증진, 즉 피지컬을 계발해야한다. 얼마나 잘 계발했는가는 게임 화면이라는 인터페이스에 점수와 등급으로 나타나고, 이것을 통해 다른 게이머들과 경쟁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춤이라는 의미 생산의 요소는 〈펌프잇업〉이라는 게임에서 희미해진다. 한때 두 가지 차원에서 즐길 수 있던 〈펌프잇업〉은 명확한 게임성을 가진 하나의 게임으로 수렴되었다. 제품의 디자인이 품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학습할 것인가? 아니면 제품의 설계에 내장된 행위유발성에 저항하여 방향성을 재설정 할 것인가? 이것은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당신이 게임과 연결되는 인터페이스를 어떻게 활용하면서 플레이하는가에 달려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술문화연구자) 전은기 문화인류학과 문화연구를 전공하고, 현재 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과 한양대학교글로벌다문화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게임에서 사랑이 재현되는 두 가지 형태 – 자기애와 애착

    캐릭터에 대한 애착(attachment)은 단순한 사랑의 방식이 아니다. 여기에는 애착의 대상인 캐릭터가 절대 연애의 주체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플레이어를 만족시킬만한 일러스트와 계량화된 수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포함된다. < Back 게임에서 사랑이 재현되는 두 가지 형태 – 자기애와 애착 16 GG Vol. 24. 2. 10. 들어가며 비디오 게임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별로 적합하지 않은 매체라는 견해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사랑을 테마로 하여 다른 예술 장르들은 작중 인물에 대한 감정 이입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을 진행하는 반면, 게임의 경우 이러한 스토리의 진행 과정을 세분한 뒤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형태로 만들어 플레이어가 직접 경험하게 만들어준다. 때문에 사랑을 테마로 하는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하나의 운명적 사랑을 결정적 플롯으로 풀어내기보다는 플레이어가 사랑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직접 탐구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90년대 이후 일본을 중심으로 제작된 수많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하 미연시)들은 이 때문에 고정된 스크립트가 아닌 수많은 분기를 가진 가능태로서의 스크립트인 스크립톤이 다수 뭉쳐있는 형태로 개발된다. 이러한 미연시들이 풀어내는 사랑은 각각의 에피소드로만 보면 전형적인 ‘낭만적 사랑’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낭만적 사랑이 한 명의 주인공으로부터 여러 이성을 대상으로 한 복수적인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90년대의 미연시들은 주인공의 바람둥이적인 기질을 성격적으로 반영하기보다는 차라리 기억상실을 시켜 매번의 사랑에 충실하도록 하는 다소 기형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들이 이러한 형태의 기형성을 큰 거부감 없이 흡수하면서 게임을 즐겼다는 점이다. 게이머의 사랑에 대한 주체적 유연성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낭만적 사랑이란 테마가 더 이상 별로 유효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극장가에서 정통 로맨스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퇴조한지 오래이며, 사랑이란 현실 속에서 찾아야 할 존재라기보다는 불가능한 대상을 희망하는 판타지의 영역에 머무는 것으로 변해왔다. 회귀, 빙의, 환생을 통해 어떻게든 불가능한 대상과의 합일을 합리화 시키는 웹소설들이 한 발 더 나아간 극단적 서사를 보여준다면, 게임은 서사의 극단성보다는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의 체험을 통해 실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플레이어에게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리얼리티나 현실성이 중요하다기보다는 그것을 일단 플레이어가 체험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디오 게임에서 사랑의 재현은 플레이어의 체험을 절차적으로 재구성하는 형태로 개발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운명적이고 결정적인 플롯을 통한 감정 이입에는 다른 매체가 더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개발자들은 게임 내에서 사랑의 재현을 독특한 형태로 변주시켜왔다. 특히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투사할 대상을 다양하게 준비하는 것, 다시 말해 플레이어가 애착을 가질 대상을 다양하게 준비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다. 블루아카이브의 김용하 PD가 NDC에서 일찍이 “모에론”을 통해 설파한 바 있지만 1) , 여동생계/동년배계/누님계로 3분화한 여성 캐릭터들은 그 어떤 성애를 가진 플레이어가 들어오더라도 하나 정도는 얻어걸릴 수 있는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주력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게임 개발자들은 낭만적 사랑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최근 경향을 반영하여 자기애를 투영할 수 있는 중성적이면서 목소리 없는 캐릭터와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을 고안해 내었다. <페르소나> 시리즈나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주인공은 특별히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대사도 매우 절제되게 발화하는데, 이는 미리 설정된 캐릭터에서 빚어질 수 있는 감정 이입을 최소화하고, 캐릭터는 나 자신으로 간주하는 일종의 자기애가 투여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커스터마이징 시스템 역시 캐릭터의 외양을 플레이어가 스스로 꾸밀 수 있도록 하면서 자기애를 부추긴다. 물론 플레이어에 따라 본인 모습과 유사하게 꾸미는 경우도 있고, 이상형의 이성을 상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디자인하기도 하지만 이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움직이면서 그러한 다양한 외관을 향한 감정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향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자기애’와 ‘애착’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최근 게임들에 재현된 사랑의 주체화 과정을 간단히 분석해 보고자 한다. 2. 페르소나와 자기 치유의 메커니즘 - <페르소나> 시리즈 아틀러스 사의 <페르소나> 시리즈는 <여신전생> 시리즈의 스핀오프 형태로 1996년부터 출시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인기 시리즈 게임이다. <여신전생> 시리즈가 염세적인 아포칼립스 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악마들과의 다툼을 다룬 판타지 게임이라면, <페르소나> 시리즈는 <여신전생> 시리즈로부터 많은 설정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악마와의 다툼을 캐릭터 내면의 문제로 치환시킨다. 또한 학원물 형태로 진행되면서 <여신전생> 시리즈에 비해 훨씬 더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게임에서 ‘페르소나’는 C.G.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임과 동시에 게임 속 캐릭터의 내면에 응축된 억압된 자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게임에서 페르소나는 캐릭터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을 실체화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 <페르소나 4>의 주인공 스케치 이 시리즈에서 주인공은 늘 구체적인 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고(미디어 믹스 형태로 만들어진 애니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구체화되기는 한다), 다른 캐릭터들이 화려한 성우진의 목소리로 꾸며지는 반면 주인공의 목소리는 전면화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주인공 캐릭터를 중성화하고 목소리를 넣지 않는가에 대한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느 누가 플레이를 하더라도 주인공을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각 작품마다 줄거리는 좀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페르소나> 시리즈의 주인공은 스스로의 페르소나를 각성한 이후 주변 인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내면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예를 들어 <페르소나 4>에서 주인공은 아마기 유키코라는 같은 반 여학생의 페르소나와 마주치게 된다. 이나바 시의 고급 여관집 외동딸인 유키코는 여관의 차기 후계자로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으며, 학교에서도 정숙한 모범생으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성격이 굉장히 내성적이어서 같은 반 친구 치에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과 잘 대화를 하지 않는 소극적인 면모도 보인다. 유키코에게 여관을 물려받아야 하는 정해진 운명은 질곡과 억압으로 작용하여 그녀는 역헌팅을 하러 다니는 유키코 공주로 TV속에서 등장한다. <페르소나 4>에서 TV는 특정한 캐릭터의 본성이 드러나는 가상의 무대로 주인공이 TV 속으로 들어가 문제가 발생한 캐릭터의 본성이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 속에서 그와 다투게 된다. 유키코의 공주의 성에서 그녀의 본성을 해방시키면 그녀는 자신이 억눌러왔던 어두운 측면을 인정하고 페르소나를 각성시키게 된다. * <페르소나 4> 아마기 유키코의 캐릭터 일러스트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형태의 페르소나 각성 과정이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여러 번 반복된다는 점이다. 유키코보다 보다 명랑쾌활한 치에나 화려한 아이돌 활동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바라봐주길 바라는 리세, 겉으로는 덩치가 크고 불량한 캐릭터이지만 동성애 기질이 있고 섬세한 측면이 있는 칸지, 하드보일드한 남자 탐정을 동경하는 나오코 등은 게임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타자이지만 실제로 그 중 하나 정도는 실제 플레이어의 삶과 유사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는 “나”의 면모들이기도 하다. 그들의 트라우마가 주인공을 통해 치유되는 과정을 극복해내고 친구들과 관계가 심화되면서 플레이어는 마치 자신의 트라우마가 조금씩 치유되는 것 같은 느낌을 맛보게 된다. <페르소나> 시리즈를 둘러싼 이러한 자기 치유의 메커니즘은 비디오 게임의 매체적 특성과도 제법 잘 어울린다. 비단 <페르소나> 시리즈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다양한 인물군을 제시하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캐릭터와 연결되게끔 하는 방식은 상당히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과정은 겉으로는 플레이어의 이상형 찾기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과정 속에 상당한 자기 치유 과정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는 금세기를 전후하여 소설의 독자와 영화의 관객이 게임의 플레이어로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타인과의 사랑을 갈망하기보다는 자기애를 더욱 내면화하는 과정 속에서 유저들의 주체성이 변화해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다. 3. 계량화된 사랑과 수치화된 외모 – 수집형 게임의 메커닉 사실 <페르소나 시리즈>는 일반적인 게임에 비하면 상당히 고도화된 스토리텔링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일반적인 게임의 사랑 재현 양상이라고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특히 최근작 <페르소나 5>에서는 악인처럼 설정된 가면 속 주인공이 타락과 구원을 반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일종의 피카레스크 식 구성을 선보이기도 하는 등 스토리텔링 과정에 고심한 면모를 보여준다. 모든 게이머가 고급스런 스토리 전개 과정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게임 개발자들은 스토리의 전개 과정을 간소화시키고 량화시킨다. * <우마무스메> 캐릭터의 일러스트와 능력치 개발자 입장에서는 고전적인 형태의 낭만적 사랑이 퇴조한 시기를 채운 자기애의 투사 과정을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다. 이미 자기애 세대의 플레이어들은 카드 한 장에 그려진 일러스트와 능력치만으로 캐릭터를 평가할 준비가 되어 있다. 카드 뒷면에 구구절절 적힌 캐릭터의 전사(前史)는 읽지 않아도 무방한 거추장스러운 것이 된다. 본래 게임에 사용되는 카드는 다양한 배경과 상징을 내재화한 게임 내용물이지만, 그것이 도구적으로만 활용될 때 이는 수치화된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 <우마무스메>나 <포켓몬>으로 상징되는 수집형 게임의 메커닉에는 복잡한 스토리를 대체하는 일러스트와 캐릭터의 상성, 능력치, 기술 등의 수치적 특성만으로도 그 본질이 치환될 수 있다는 믿음이 내재되어 있다. 캐릭터에 대한 애착(attachment)은 단순한 사랑의 방식이 아니다. 여기에는 애착의 대상인 캐릭터가 절대 연애의 주체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플레이어를 만족시킬만한 일러스트와 계량화된 수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포함된다. 즉,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가지는 애착의 대상은 살아있는 주체적 인간보다는 캐릭터에 가까운 무언가로 정의되게 된다. 아즈마 히로키 식으로 말하자면 그 캐릭터의 외양은 특정한 형태의 모에적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의해 조합되며, 그 캐릭터의 능력치는 적절한 비즈니스 모델을 유발할 수 있을 정도로 희소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수집형 게임을 플레이 할 때 우리는 언제나 산뜻한 기분으로 카드들을 뽑고 포켓몬을 수집할 수 있게 된다. 말의 외양만 보고 모든 플레이어가 그 말에 애착을 가질 가능성은 줄어드니, 모에화된 여성 캐릭터를 달리게 하면서 손쉽게 애착을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플레이어는 매우 손쉽게 애착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은 매우 간편하며, 매우 감사하게도 명목상 무료이다. 그러나 그 애착 과정을 좀 더 극대화하기 위해 억만금을 투자하더라도 카드로부터 구체적인 사랑을 얻게 되지는 못할 뿐이다. 1) http://ndcreplay.nexon.com/NDC2014/sessions/NDC2014_0015.html#k%5B%5D=%EA%B9%80%EC%9A%A9%ED%95%98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수) 이정엽 순천향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게임 스토리텔링과 게임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인디게임 페스티벌인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창설을 주도하고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디게임 행사인 Independent Games Festival(IGF)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디지털 스토리텔링』(공저, 2003), 『디지털 게임, 상상력의 새로운 영토』(2005), 『인디게임』(2015), 『이야기, 트랜스포머가 되다』(공저, 2015), 『81년생 마리오』(공저, 2017), 『게임의 이론』(공저, 2019), 『게임은 게임이다: 게임X생태계』(공저,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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