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Back

우리의 UX를 찾아서: 오락실 코옵을 추억하다

08

GG Vol. 

22. 10. 10.

매일 저녁 오락실에서는 뜨거운 응원전이 열렸다


그 시절 같은 학교 친구들에게는 일종의 의식이 있었다. 무슨 게임을 하든 가장 마지막 코스는 <갈스패닉 S2>로 플레이하기로 한 것이었다. <갈스패닉>이란 쉽게 말해 땅따먹기 게임으로 상하좌우에 대각선까지 8방향으로 기체를 조작해 구역을 확보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거짓말에 가깝다. <갈스패닉>에서는 땅을 따먹으면 그 구역에는 ‘갈’이 등장했고, 특정 퍼센테이지를 완수하면 온전한 일러스트를 볼 수 있었다. 이 게임의 핵심 인기 요인은 일러스트였다.


그래서 오락실 맨 구석 <갈스패닉 S2> 기기에서는 요구 조건 달성을 위한 협동 플레이가 펼쳐졌다. 그날 마침 잔돈이 가장 많이 남은 친구가 물주가 되고, 무리 중 가장 컨트롤이 좋은 친구가 자리에 착석한다. 날아오는 탄막이나 남은 시간을 일러주는 친구, 다음 패턴이라던가 적 몬스터를 가두는 법을 말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당시는 핸드폰 카메라로 완성 결과물을 촬영할 수도 없었으므로 눈으로 일러스트를 담아가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은 최선을 다해 이미지를 머릿속에 저장했다. 


이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이야말로 필자가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이다. 오락실은 그야말로 협동플레이(Co-Op, 코옵)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앞서 말한 <갈스패닉>뿐 아니라 여러 게임에서 코옵이 이루어졌다.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 모이는 오락실의 특성상 같이 자리에 앉아서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여럿이 함께 의사소통을 하면서 퍼즐을 풀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UX를 찾아서


돌이켜보면 오락실은 2인용 게임에 특화된 공간이었다. 일반적으로 오락기 하나에 자리는 2개이므로 1p와 2p가 겨루는 게임이 많았지만, 함께 목적 달성을 위해 달리는 게임도 적지 않았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임은 <스노우 브라더스 2>. 설계상 눈, 번개, 물, 바람 등 4종류의 캐릭터를 모두 골라서 플레이할 수 있었지만, 오락실에서는 기판의 한계로 대체로 2p 플레이까지 지원했다. 두 플레이어가 각자 몬스터를 볼로 만들어 가둔 뒤, 타이밍을 맞춰 터뜨리는 재미가 있었다.


아케이드판 <천지를 먹다>나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 같은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은 코옵의 진수라고 이를 수 있다. 두 사람이 좁은 기기에 나란히 앉아 어깨를 부딪치며 버튼을 재빨리 눌러가며 게임을 플레이하곤 했다. 서로 체력 회복 아이템을 양보하거나, 서로의 캐릭터에 더 도움이 되는 버프 아이템(또는 무기)을 양보하는 미덕이 작동했다. 미션에 성공할 때 하이 파이브를 하기도 하고, 나는 살았지만 혼자 남아서 플레이하기 싫어 2p를 부활시키기 위해 선뜻 100원을 내기도 했다.


그렇다. 다른 사람의 플레이를 위해서 돈을 내준다는 행위는 오락실에서 대단히 멋진 일이었다. 하던 게임을 뺏어서 하거나, 오락실 근처 으슥한 골목에서 돈을 뺏거나, 딸깍이(또는 딱딱이)를 작동시켜 몰래 크레딧을 추가하는 등 허용되지 않는 행위를 하지 않고서는 오락실에서는 누구나 100원짜리를 기기에 집어넣어야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이 엄정한 100원의 법칙 속에서 자신의 한 판 크레딧을 나누어주는 호혜는 온라인게임 시대에서는 ‘소매넣기’와 같은 뉴비 도와주기에서 간혹 찾아볼 수 있다. 그마저도 ‘고인물’ 유저가 잉여 자산의 일부를 나눠주는 것으로 그 무게는 다를 것이다.




100원의 행복


농담 조금 섞어서, 누구나 한 판에 100원을 넣어야 한다는 법칙은 곧 P2W(Pay 2 Win)과 연결시킬 수 있다. 특정 게임기에 동전을 많이 넣은 플레이어일수록 숙련도가 올라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PvP를 할 때 그 게임에 투자를 많이 한 사람이 유리한 측면이 크다고 볼 만하다. 


그러다 플레이어의 게임 숙련도가 특정 경지를 넘어가면, 동전 한 닢에 결말을 보는 ‘괴수’가 되어 오락실 사장의 눈초리를 받았을 것이다. 100원 하나 넣고 종일 <테크모 월드컵 98>을 플레이하며 다른 사람들을 무찌르는 사람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축구게임은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가 한 쪽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회전율이 지극히 떨어졌다. 결국 그를 제지시킬 수 있었던 건 야간자율학습을 무단으로 결석하고 오락실에 있다는 익명의 제보였다. 그 형보다 한참 어렸던 또래 친구들은 오락실 사장이 직접 그를 신고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필자의 오락실 최애 게임은 사이쿄의 슈팅게임 <텐가이>였다. 필자는 특유의 일본풍 룩앤필과 스릴 넘치는 게임플레이에 푹 빠져들었다. 그래서 절친했던 친구와 종종 <텐가이> 오락기가 있는 옆 동네 오락실까지 걸어가곤 했는데, 그 자체가 요즘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2022년에는 어느 누가 100원 내고 게임 한 판 하겠다고 20분을 걸어갈까? 게임잡지는 있었지만 게임잡지에서 오락실 게임 공략을 찾기는 어려웠던 시절, 오락실까지 걸어가는 20분 내내 친구와 무슨 캐릭터를 고를지, 어떻게 스테이지를 깰지 의논했다.


<텐가이>에는 히든 캐릭터 ‘아인’이 있었다. 선택창에서 상상상, 하하하, 상상상상상상상의 커맨드를 입력하면 해금되는데, 작동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히든 캐릭터를 골라주는 것도 일종의 협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킹 오브 파이터즈>(킹오파) 같은 PvP 게임에서도 코옵은 작동했다. <킹오파 97>에서 친구에게 ‘미친 이오리’(정식 명칭은 달밤에 오로치의 피에 미친 이오리)를 골라주는 것처럼 말이다.




‘현피’까지 3m


커플은 오락실에서 <컴온 베이비>나 <다른 그림 찾기>를 많이 플레이했다. 웃음소리와 함께 볼록한 버튼을 연타하는 소리 역시 추억으로 남아있다. <컴온 베이비>야말로 2021년 여러 매체로부터 ‘올해의 게임’에 선정된  <잇 테익스 투>의 프로토타입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싶다. 2인용 게임이라는 점도 그렇고, 플레이에 과하게 몰두했다가는 관계의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과거 오락실 죽돌이였던 필자는 <컴온 베이비>를 하다가 “왜 봐주지 않느냐”는 말을 꺼내면서 싸우는 커플을 본 적 있다.


사실 커플끼리의 싸움은 대체로 애정의 확인이었기 때문에 귀여운 수준이었던 적이 많다. 대전 격투 게임 중 건장한 남성 둘이 시비가 붙어 오락실 전체의 게임플레이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필자의 동네 오락실에선 <철권 태그 토너먼트> 중 데빌이 자꾸 레이저를 쏘는 탓에 상대방이 “얍삽이 그만 쓰라”며 물리적인 싸움이 벌어진 적 있다. 오락실의 대전 격투 게임에서 서로의 얼굴은 바로 맞은편에 있다.




우리에게 오프라인 코옵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제 우리는 온라인 시대에 살고 있다. 단적으로 게임 곳곳에 삽입된 미니게임들이 오프라인 코옵에 대한 헌사로 여겨지는 <잇 테익스 투>를 플레이하기 위해서도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만날 필요가 없다. 한 사람이 온라인에서 친구초대 버튼을 누르면 같이 게임 세상으로 떠날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오프라인 협동 플레이는 어떤 의미가 남아있을까? 물론 닌텐도 스위치에는 훌륭한 파티게임이 많이 남아있으며, 비록 소프트웨어는 없지만 여럿이 방탈출 카페에 가서 퍼즐을 푸는 것도 코옵이라면 코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오프라인 코옵은 이제 주류에서 밀려나 추억의 대상이 된 듯하다. 여러 사람이 한 화면을 보면서 반응하는 경험은 일상이 아닌 특별한 이벤트가 되고 있다.


오락실 오프라인 코옵이 대세였던 시절에는 새로운 정보를 구할 인터넷이 (상대적으로) 귀했고, 집에 게임을 실행할 콘솔이나 PC가 있는 경우도 드물었으며, 당연히 모두의 손에 전화기가 들려있지도 않았다. 플레이 이력을 남길 만한 방법은 순위표에 자신의 이니셜을 남기는 것밖에 없었다. 오프라인 코옵은 한 게임, 한 게임이 귀중했다.


온라인 시대에서는 ‘한 게임’에 대한 접근성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선됐다. 그리고 이 시대의 어느 한편에는 게임 중 익명성의 장막에 숨어 차마 담기 어려운 욕을 꺼내는 사람들이 보이고 있다. 온라인 랜덤매칭에서 만난 사람들은 때때로 가볍게 욕하고, 가볍게 사라진다. 두 시대를 나란히 경험한 입장에서 ‘오락실 시절이 좋았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옛날 오락실 오프라인 코옵에는 ‘노는 형’들이 자행한 여러 악행들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UX라는 단어를 문자 그대로 사용자의 경험의 총체라고 일컫는다면, 지금까지 살펴본 오락실만의 특수한 환경이야말로 게임 UX의 역사에서 특별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Tags:

이경혁.jpg

(기자)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이경혁.jp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