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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모던 워페어nonmodern warfare

    당연한 이야기지만 매개자의 증식이 전쟁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다만 현대의 일상적인 세계는 때때로 전쟁보다도 불투명하다. 물류와 인프라가 점점 고도화되면서 모든 것들이 상시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착각이 팽배하지만, 역설적으로 매개자들의 네트워크는 (아이패드처럼) 이음새 없이 매끈하게 빛나는 표면 아래서 가시성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알고리즘의 지배로부터 팬데믹을 거쳐 급격한 기후 변동까지, 2020년대의 우리는 마치 이 모든 비인간 행위자들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세상에 등장하기라도 한 듯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 Back 논모던 워페어nonmodern warfare 09 GG Vol. 22. 12. 10. 더 이상 편한 날은 없다 The Only Easy Day...Was Yesterday 〈콜 오브 듀티〉 만큼 널리 알려진 게임 프랜차이즈도 드물 것이다. 특히 〈모던 워페어〉 시리즈는 게임 플레이의 일신(一新)과 엄청난 상업적인 성공,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사회/정치적인 논란들이 합쳐져서 그야말로 블록버스터 게임의 어떤 ‘범례’로 자리매김했다. 영화에서 폭발을 떠올리면 반자동적으로 마이클 베이가 연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전 FPS 게임을 이야기할 때 모던 워페어를 떠올리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당연하게도 수많은 논의들이 있어 왔고, 그중 대부분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범주들 사이에서 진동한다. 그런데 이미 나왔던 이야기들을 비슷하게 반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 외에도 이 카테고리들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2022년의 시공간은 모던 워페어 시리즈가 발매되었던 2007-2011년과는 완전히 다르며, 심지어 첫 번째 리부트가 등장한 2019년과도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1) 흔히 ‘클래식은 시대를 타지 않는다’ 고 이야기하지만, 이 문장에서 생략된 전제는 시대가 변할 때마다 새롭게 (혹은 다시금) 부각되는 관점에 맞춰서 의미망을 성공적으로 업데이트한 작품들만이 클래식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으로 ‘왜곡’된 2022년의 렌즈로 모던 워페어 시리즈를 바라볼 때, 우리는 기존의 의미망들이 잘 작동하지 않음을 목도한다. 예를 들어, 모던 워페어 시리즈를 개발한 인피니티 워드가 속한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2022년 3분기 매출 2) 발표에 따르면 회사 총매출의 52%가 모바일 게임들에서 발생한다. 그중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작품은 모던 워페어의 스펙터클한 느낌과는 거의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캔디 크러쉬 사가〉다. 2021년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매출 을 기록한 탑 3 게임은 전부 모바일 게임들이며, 리스트 어디에도 콜 오브 듀티와 같은 전통적인 블록버스터나 다른 트리플 A 게임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액티비전의 챔피언 〈캔디 크러쉬 사가〉만이 당당히 7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 3) ‘블록버스터’ 라는 단어가 아주 큰 상업적인 성공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계속해서 시장에 쏟아지는 압도적인 연출과 그래픽을 내세운 (모던 워페어 리부트를 포함한) ‘소위’ 대작들은 다른 어떤 게임보다도 더 ‘블록버스터’스러운 외양을 자랑하지만 정작 온전한 의미로서 블록버스터라고 명명되기에는 애매한, 이런 웃지 못할 상황에 처해 있다. * 깜찍한 ‘블록버스터’ 〈캔디 크러쉬 사가〉 게임 플레이의 일신 또한 모던 워페어 시리즈를 규정하는 한 축으로 여겨져 왔다.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는 이 시리즈의 근간이 되는 게임 플레이의 포석을 깔았다는 점에서 특히 더 중요한데, 〈하프라이프〉의 오프닝 트램 시퀀스를 센세이셔널하게 비틀어 버린(“repurposing the techniques popularized by Half-Life’s tram to march you through a city being torn apart, and ultimately, to your own execution.”) 4) 프롤로그의 ‘쿠테타The Coup’ 미션부터 마치 드론 조종사가 된 것 같은 섬뜩한 기시감을 전달해 주는 그 유명한 AC-130 건쉽 미션인 ‘하늘의 저승사자Death From Above’, 수많은 적 탱크들과 보병들이 코 앞에서 지나가는 걸 낮은 포복자세로 숨 죽인 채 기다려야 하는 ‘위장 완료All Ghillied Up’ 미션까지, 타이트한 연출로 제어되는 스펙터클이 게임 플레이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매우 ‘쫄깃한’ 싱글 플레이 경험을 선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던 워페어 1이 발매되었던 2007년은 보통 해가 아니었다. 7세대 콘솔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3와 엑스박스 360, 그리고 닌텐도 Wii가 바로 그 전 해에 출시가 된 상황이었고, 업그레이드된 하드웨어에 발맞춰서 무시무시한 타이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슈퍼 마리오 갤럭시〉, 〈포탈 1〉, 〈갓 오브 워 2〉, 〈팀 포트리스 2〉, 〈바이오쇼크〉, 〈매스 이펙트 1〉, 〈메트로이드 3 커럽션〉, 〈헤일로 3〉, 〈언차티드: 엘도라도의 보물〉, 〈크라이시스〉 등등. 그 외에도 거대 프랜차이즈의 시작을 알린 〈위쳐 1〉과 〈어새씬 크리드〉가 발매되었다. 즉, 모던 워페어가 게임플레이의 혁신을 이유로 명함을 내밀기에는 좀 뻘쭘한 그림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2007년에 출시한 ‘인디’ FPS 게임 〈스토커 섀도우 오브 체르노빌〉과 비교해봐도, 마치 오래된 롤러코스터를 연속으로 타는 것과 같은 모던 워페어의 계산된 스펙터클은 어느 순간 지겨움과 상호 교차가 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물론 멀티 플레이를 빼놓고 모던 워페어의 게임 플레이에 관해 이야기할 수는 없다. 실제로 캐릭터 퍽과 킬스트릭 시스템은 기존 모던 워페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할 뿐 아니라 다른 많은 멀티플레이 게임들에도 영향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킬스트릭을 통해서 앞서 언급한 AC-130 건쉽을 일종의 공중지원 보너스로 끌어옴으로써 특정한 싱글 플레이 미션의 충격 효과를 멀티플레이에서의 반복으로 소진시키는 탁월함(?)을 뽐내기도 했다. 하지만 참신한 시스템으로 인더스트리를 선도하던 모습은 ‘그땐 그랬지’의 느낌처럼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되어 가는 중이다. 모던 워페어 1 리부트의 멀티 플레이 버전으로 2020년 출시한 〈콜 오브 듀티: 워존 퍼시픽〉은 (올해 출시된 워존 2.0과 마찬가지로) 〈배틀그라운드〉와 〈포트나이트〉가 본격적으로 유행시킨 배틀로얄 모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혁신의 아이콘이기보다는 노련한 후발 주자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고 싶어 하는 것이 명백해 보인다. 이처럼 기존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담론을 지탱하던 두 개의 커다란 범주들(게임 플레이의 혁신, 굉장한 상업적인 성공)은 점점 ‘라떼는 말이야~’와 같은 톤에 가까워지고 있다. 반면 사회/정치적인 논란들을 둘러싼 이야기는 좀 더 미묘한 방향으로 선회한다. 엿같은 날들 S.S.D.D.(Same Shit, Different Day) 사실 모던 워페어 시리즈가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적과 아군이 비교적 명확하고 (영화와 게임 제작자들에게 나치가 얼마나 소중한(?) 빌런인지 생각해 보자) 어느 정도 역사적 평가가 마무리된 2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현대전modern warfare은 여전히 ‘전장의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아무리 가상의 국가와 인물, 심지어는 가상의 타임라인을 설정한다고 해도 ‘중동’, ‘러시아’, ‘대량살상 무기’, ‘테러리즘’, ‘블랙 옵스’, ‘극단적 국수주의자’ 등과 같이 민감하고 복잡다단한 역사적인 레이어들이 누적된 키워드는 게임 바깥의 현실과 긴밀하게 연동됨으로써 게임의 유틸리티적인 측면(무해한 오락으로서의 소프트웨어)이 애써 무시하고 싶었던 정치적 텍스트로서의 측면을 급부상시킨다. 더욱이 모던 워페어 시리즈가 연이어서 발매되던 2007년과 2011년 사이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끝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5) 그 와중에 현대전으로의 전환을 처음부터 탐탁지 않아했던 퍼블리셔 액티비전 6) 과는 달리 개발사 인피니티 워드는 미국 해병대USMC의 자문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은 물론, 논란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 문제적인 미션들도 서슴없이 도입하는 등 매우 과감한 행보를 보였다. 특히 1편의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미션과 2편의 ‘러시아어 사용금지No Russian’ 미션은 지금도 종종 회자될 정도로 악명이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같이 선명한 정치적인 논란은 블록버스터적인 연출과의 기이한 콜라보를 통해서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대작 할리우드 영화들에서 종종 보이던) 일종의 ‘맛있는 불량식품’을 만들기 위한 완벽한 레시피로 거듭날 수 있다. 모던 워페어 시리즈는 그런 면에서 꽤 훌륭한(?) 길티 플레져 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부분에 더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서 이 게임을 둘러싼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맛있는’에 집중하는 (모던 워페어를 포함한)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광적인 팬들이 존재한다. 그 반대편에는 ‘불량식품’에 치를 떠는 (아마도 게임 그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들과 모던 워페어의 정치적 스탠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을) 비판자들이 소리 높인다. 마지막으로 ‘맛있는 불량식품’이 가지는, 그 약간의 죄책감이 얹힌 맛을 제대로 음미할 줄 아는 계몽된 냉소주의자들이 조용히 게임을 플레이한다. 폴리곤의 〈 How Call of Duty turned war into a circus 〉 7) 영상은 계몽된 냉소주의자인 화자의 입장에서 나머지 두 팩션을 가로지르는 재치 있는 영상으로 세 가지 다른 입장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이점을 제공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모두 동의할 수 있을만한 지점인데, 바로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내러티브는 바보 같다는 점이다. 이 공통의 감각(?)은 모던 워페어를 둘러싼 담론의 장을 (단발적인) 논란으로 가득 차게 만듦과 동시에 도식적인 구도를 강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논의의 지루한 공회전을 유지시키는 역설적인 상황을 조성한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루도내러티브 부조화를 통해 이야기해보자. 이전 글 8) 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거의 모든 비디오 게임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루도내러티브 부조화가 작용한다. 이에 따라 게임 플레이를 통한 경험과 게임의 공식적인 내러티브는 마치 한 컵에 담긴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하나가 되지는 못한 채, 일종의 느슨한 동기화로 연결된다. 때로는 특정한 사건(괴랄한 게임/과금 디자인 혹은 모딩과 같은 유저의 초월적인 개입)으로 인해서 마치 예전 아이튠즈처럼 아예 동기화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지점에 이르기도 한다. 즉, 동기화는 보장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반(半) 연결적인 투 트랙의 구조는 게임의 분열적인 수용을 가속화한다.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멀티플레이를 이미 수천 시간 이상 뛰었으며, 아마 지금도 리부트의 멀티플레이인 워존에서 구르고 있을 ‘찐팬’들에게 바보 같은 내러티브라는 조롱은 통하지 않는다. 킬스트릭을 달성하면 주어지는 AC-130 건쉽 폭격의 등장을 내러티브적으로 녹여냈다는 것만으로도 모던 워페어의 스토리는 이미 “장르적인 정당성”을 획득한다. 비판자들에게 모던 워페어의 황당무계한 내러티브는 영미 제국주의와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프로파간다 텍스트다. 대부분은 모던 워페어 시리즈를 단 한 번도 플레이해보지 않았을 것이며, 그중 소수는 약간의 싱글 플레이를 통해서 자신들의 신념을 재확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멀티 플레이에 수백 시간 아니 수 시간도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계몽된 냉소주의자들은 양쪽의 의견을 모두 공감할 뿐 아니라, 그 간극이 주는 ‘불량식품’의 맛을 은근히 즐기고 있을 것이다. 관건이 되는 것은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모던 워페어가 출시할 때마다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비슷한 비판들이 다시 도래하며, 또다시 비슷한 반론이 재등장한다. 비슷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러거나 말거나 ‘찐팬’들은 바로 이전 모던 워페어와 아주 유사하지만 약간 다른 멀티플레이에 다시 수천 시간을 퍼붓는다. 어쩌면 우리는 이 일련의 행위들을 축제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축제는 반복된다. 그런데 기존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마이클 베이스러운’ 9) 내러티브가 더 이상 의례 그렇듯이 바보처럼 보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면, 그때도 우리는 이 축제를 지속할 수 있을까. 가령 자국 내의 ‘극단적 국수주의자’ 반군들이 미국과 인근 유럽 국가들을 침략해서 전쟁이 벌어지자 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평화 회담장으로 향하는 러시아의 대통령을 국수주의자 무리의 리더가 납치하는 이야기와, 본인부터가 ‘극단적 국수주의자’인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인근 유럽 국가의 침공을 명령하는 이야기 중 어느 쪽이 더 황당무계하고 초현실적인가. 둘 다 만만치 않지만 나는 후자에 손을 들어주겠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는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가리킨다.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에게 행한 전쟁 범죄 10) 가 더 확연하게 드러나는 중인데, 그에 따라 러시아군을 굉장히 악랄하게 묘사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던 모던 워페어 1 리부트가 사실 알고 보니 그들을 미화(?)했던 거라는 블랙 코미디스러운 재평가를 받는 지경에 이른다. * 러시아 대통령마저 납치하는 상남자 마카로프. 하지만 게임 바깥의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의 ‘쿠테타The Coup’ 미션에서 유저들은 이 게임의 메인 빌런 중 하나인 알 아사드가 생중계되는 카메라를 앞에 두고, 자신들의 머리에 총을 쏘는 것을 중동 ‘어느’ 국가의 대통령의 시점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몇 년 뒤 세계는 아이에스Islamic State가 포로들을 ‘참수’하는 영상들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퍼뜨리는 것을 (이번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또다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11) 그뿐 아니라 마치 ‘아랍의 봄’의 뒤집힌 악몽과도 같이 아이에스는 스마트폰이라는 물리적 네트워크 노드 기반 위에서 소셜 미디어와 다크 웹을 통한 매우 공격적인 ‘모집’ 과정을 전개했다. 그 결과는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유럽 전역과 동남아시아에 걸쳐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테러들이다. 2010년대 중반의 시점에서 이미 ‘중동을 너무 선정적으로 묘사했다’, ‘스테레오 타입들의 캐릭터로만 채워져 있다’는 식의 관습적인 모던 워페어 비판들은 길을 잃어버린다. 어느 순간 현실은 거의 스너프 필름에 가까워지고, 중동의 ‘새로운 전사’들은 네트워크로 연계된 새로운 양태의 테러를 직접 시연함으로써 기존의 스테레오 타입들에서 아득히 멀어진다. 먼지에서 먼지로 Dust to Dust 모던 워페어 시리즈가 배태한 그 수많은 논란들은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당시의 세계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음을 알려 주는 일종의 지표가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기존 모던 워페어 시리즈를 할 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거나 오히려 어떤 편안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만큼 지금의 세계가 더 많이 불안정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렇다면 모던 워페어는 이제 평화로운 시대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당시에는 나름 센세이셔널했던) 추억의 펑크록 앨범 같은 존재가 되어 가는 것인가. 나는 아직 그렇게 단정 짓기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게임 시리즈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현재의 급격한 불안정성을 예비하는 단초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전이 이전 시기의 전쟁들과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지점은 바로 물류, 장비, 인프라, 기술, 국경, 평화협정 등을 포함한 수많은 비인간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심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전쟁은 인간들의 결정에 의해서 많은 것들이 좌지우지된다. 하지만 사소해 보이는 기술 하나가 전쟁의 향방을 결정하거나, 혹은 아예 전쟁 자체를 예방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제3차 대만 해협 위기 때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당시 중국군은 위협용으로 대만의 군기지 근처에 미사일 3개를 연달아 발사했다. 첫 번째 미사일은 예정된 목적지에 떨어졌지만, 나머지 2개의 행방이 묘연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날아가는 도중 그 2개 미사일 내에 GPS 신호가 끊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는 미국이 개발하고 관리해 온 시스템이다. 즉, 미군은 중국군이 GPS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단기적으로는 중국군이 물러남으로써 전쟁 위기를 해소하는 계기가 됐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중국 정부가 이를 갈고 자체적인 항법 시스템을 개발해서 위성을 쏘아 올리도록 만들었다. 12) 이렇듯 스마트폰의 여러 앱들을 통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GPS 같은 기술조차 전쟁 상황에서는 그 파급력을 가늠하기 어렵다. 모던 워페어 시리즈 역시 이러한 자의식이 느껴지는 레벨 디자인을 선보인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던 ‘하늘의 저승사자Death From Above’ 미션은 (3편의 ‘철의 여인Iron Lady’ 미션도 마찬가지로) 유저들을 AC-130 건쉽 조종사의 모니터링 스크린 앞으로 데려다 놓는데, 이때 유저들이 경험하는 것은 사실 무인 드론 조종사의 포지션에 더 가깝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제로 굉음을 내는 건쉽 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방 안에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지상의 풍경은 무인 드론 조종사의 모니터 화면과 놀랄 만큼 유사한 것도 사실이다. 이와 같은 오버랩은 이 미션의 꽤 노골적인 (소격 효과를 노리는) 의도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미션을 수행하는 건쉽 오퍼레이터들의 건조한 대화 중 간간이 들리는 즐거운 환호성과 농담보다도 유저를 더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건쉽/드론을 조종하는 감각이다. 한껏 당긴 망원 렌즈 덕에 원근감이 제거된 평평한 화면 위로 작게 꼬물거리는 ‘타겟’들은 마치 치워 버려야 할 ‘벌레’처럼 제시되며, 그들을 ‘처리’하는 과정은 실제 벌레를 잡는 일보다도 훨씬 간단하다. 즉, 수백 명을 학살하는 행위는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은 일상적인 ‘클릭질’의 영역으로 전환한다. 이는 또다시 무인 드론 조종사의 실제 경험과 겹쳐지면서, 초점을 유저/조종사와 같은 인간적 주체에서 건쉽/드론 - 적외선 카메라 - 모니터/스크린 - 마우스/조이스틱으로 이어지는 (라투르의 표현을 빌자면) 매개자들의 네트워크로 옮겨 놓는다. 그리고 바로 이 비인간 행위자들의 네트워크가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학살자’로서의 유저/드론 조종사를 역으로 ‘주조해’ 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모던 워페어modern warfare가 어째서 ‘근대적이지 않은지nonmodern’ 이해할 수 있다. * ‘하늘의 저승사자Death From Above’ 미션의 스크린(왼쪽)과 실제 무인 드론의 스크린(오른쪽) 당연한 이야기지만 매개자의 증식이 전쟁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다만 현대의 일상적인 세계는 때때로 전쟁보다도 불투명하다. 물류와 인프라가 점점 고도화되면서 모든 것들이 상시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착각이 팽배하지만, 역설적으로 매개자들의 네트워크는 (아이패드처럼) 이음새 없이 매끈하게 빛나는 표면 아래서 가시성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알고리즘의 지배로부터 팬데믹을 거쳐 급격한 기후 변동까지, 2020년대의 우리는 마치 이 모든 비인간 행위자들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세상에 등장하기라도 한 듯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여기서 모던 워페어 시리즈는 과장된 스펙터클과 거친 매너로 우리의 등을 떠밀면서 그들(비인간 존재들)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였으며, 우리 역시 그들에 의해서 계속해서 새롭게 거듭났었다는 진실을 상기시킨다. 그리하여 위태로운precarious 현재란 다른 무엇도 아닌 그들과 우리가 함께 만들어 온 역사라는 것을 말이다. 그럼 누군가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며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다. 이제 와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냐고. 프라이스 대위라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네가 알던 그 세계는 끝났어. 그런데 그걸 다시 되찾을 수 있다면 너는 어디까지 갈 수 있지? Your world as you knew it is gone. How far would you go to bring it back?” 1) 얼마 전에 발매한 모던 워페어 2 리부트 역시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 있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일종의 타임캡슐적인 성격을 지닌다. 2) Evgeny Obedkov, “Diablo Immortal and Candy Crush were biggest contributors to Activision Blizzard’s mobile growth in Q3” Game World Observer, 2022.11.10. https://gameworldobserver.com/2022/11/10/diablo-immortal-candy-crush-saga-mobile-revenue-activision-blizzard 3) David Curry, “Top Grossing Games (2022)” Business of Apps, 2022.10.27. https://www.businessofapps.com/data/top-grossing-games/ 4) Amr Al-Aaser, “Shock and Awe: The Political Influence of Modern Warfare” Paste Magazine, 2016.11.02. https://www.pastemagazine.com/games/call-of-duty/shock-and-awe-the-political-influence-of-modern-wa/ 5) 미국은 결국 2011년 12월에 이라크 전쟁의 종결을 공식 선언했다. 모던 워페어 3가 출시한 지 한 달 뒤의 일이다. 6) 액티비전이 콜 오브 듀티 4가 모던 워페어로 출시하지 않기를 바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굳이 황금알을 잘 낳고 있는 거위(2차 세계대전 배경의 콜 오브 듀티 1,2,3)의 배를 가르고, 논란이 클 것이 뻔한 현대전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비즈니스적으로 큰 리스크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바비 코틱은 개발사 인피니티 워드에게 전권을 위임한 상태였고, 개발사는 그대로 밀어붙여서 모던 워페어를 출시한다. 7) Patrick Gill, “How Call of Duty turned war into a circus” Polygon, 2022.05.06. https://www.youtube.com/watch?v=JIEB5DKzJLM 8) 웜뱃, “게임은 XX다: 동어반복적 회로를 차단하기” 게임제너레이션, 2022.08.08.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43 9) 공교롭게도 모던 워페어 2에는 마이클 베이가 감독한 〈더 록〉의 샤워실 총격신을 그대로 옮긴 듯이 오마주한 챕터가 있다. 10) DW Documentary, “War crimes in Ukraine | DW Documentary” DW Documentary 2022.11.27. https://www.youtube.com/watch?v=ONWW02pNvFk 11) 유튜브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메인스트림 앱들은 재빠르게 대응했지만, 이내 IS는 텔레그램과 Surespot 같이 소셜 미디어의 기능이 혼합된 메시지 앱으로 이동했다. 12) Minnie Chan, “'Unforgettable humiliation' led to development of GPS equivalent” South China Morning Post, 2009.11.13. https://www.scmp.com/article/698161/unforgettable-humiliation-led-development-gps-equivalent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웜뱃 잡다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역시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게임에는 특히 관심이 더 많습니다.

  • [공모전수상작] 게임으로부터의 선택, 선택으로부터의 풍경-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언더테일>의 제4의 벽 활용을 중심으로

    퀀틱드림의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은 사람과 무척이나 유사한 안드로이드의 출현 이후, 그들이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고 자유의지를 갖고 행동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SF적 상상력 아래 제작된 게임이다. 스토리라인은 크게 수사 보조 안드로이드 코너, 가정용 안드로이드 카라, 그리고 칼이란 인물을 위해 특별제작된 안드로이드 마커스, 이 셋이 초점화자가 되어 진행된다.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 장르답게 플레이어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여러 다른 엔딩을 볼 수 있다. < Back [공모전수상작] 게임으로부터의 선택, 선택으로부터의 풍경-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언더테일>의 제4의 벽 활용을 중심으로 20 GG Vol. 24. 10. 10. 존재의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Detroit Become Human)> 퀀틱드림의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은 사람과 무척이나 유사한 안드로이드의 출현 이후, 그들이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고 자유의지를 갖고 행동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SF적 상상력 아래 제작된 게임이다. 스토리라인은 크게 수사 보조 안드로이드 코너, 가정용 안드로이드 카라, 그리고 칼이란 인물을 위해 특별제작된 안드로이드 마커스, 이 셋이 초점화자가 되어 진행된다.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 장르답게 플레이어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여러 다른 엔딩을 볼 수 있다.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에서의 ‘선택’은 멀티버스로 통하는 길에서의 하나의 분기점이다. 서사에 개입할 수 없는 게임에 비해 다양한 경우의 수를, 그것도 자신의 선택에 의해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플레이어는 전지자처럼 후회되는 선택이 있다면 되돌릴 수 있고 살리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세이브-로드 할 수 있다. 다만 <디트로이드: 비컴 휴먼>은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의 특질인 그 ‘선택’을 좀더 예리하게 벼리어 플레이어에게 쥐여준다. 이는 게임의 서사와 형식 그리고 외적 체험을 관통하며 영향을 미친다. 물론 예리하게 벼려진 ‘선택’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영리하게 무너뜨린 제4의 벽 덕분이다. 주인공들이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서사를 관통하며 여러 번 변주돼 등장하는 대사가 있다.‘ Make your choices. Decided who you are. And wanna become.’ 여기서 최초로 내화와 외화 [1] 의 연결 지점이 발생한다. 일반적인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의 선택지는 대체로 등장인물(정확히는 플레이어가 컨트롤하고 있는 캐릭터)의 상황에 대해 시뮬레이션으로 연결될 수 있는 직관적 선택지로 구성된다. [참는다/때린다]와 같은 행동, 혹은 [거실/다락방]과 같은 장소, [“심각한 건 아니에요.”/“죽도록 아파요!”]와 같은 대사 선택지가 그 예이다. 하지만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선지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와는 조금 다른 결이 보인다. 게임에서 주어지는 주요 선택지( Make your choices )는 이렇게 묻곤 한다. [기계?/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이 존재(who you are)에 대한 질문으로써. [불량품 되기/기계로 남기]처럼 존재의 방식(wanna become)에 대한 물음으로써. 그런 물음들은 제4의 벽을 자연스럽고도 영리하게 부술 수 있는 주춧돌이 된다. 사실 플레이어는 이미 외화를 경험했다. 하얀빛뿐인 방에서 플레이어의 세이브-로드를 도왔던 안드로이드 비서 클로이가 바로 그것이다. 최초로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클로이는 외부에서의 편의성을 돕는다. 기념일 인사를 하고 때때로 데이터가 날아갔다는 농담도 한다. 심지어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왜 인물들을 죽게 했는지, 이제 그만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자는 식의 의견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런 클로이의 존재와 발화는 제4의 벽 너머의 플레이어의 존재를 선언함과 동시에, 스토리라인으로서의 내화와 플레이란 체험으로서의 외화를 연결하며 다층의 겹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야기가 막을 내리면, 플레이어는 여지껏 선택지에서는 배제되어 있으리라 생각한 클로이에 관한 선지 앞에 놓여진다. 당신의 플레이를 보면서 깨달은 바가 많다며 자신을 이곳에서 자유로이 해방시켜달라고 말하는 클로이. 플레이어는 선택에 따라 그녀를 해방시켜줄 수도, 이곳에 묶어 둘 수도 있다. 마치 내화에서 코너가 당한 캄스키 테스트처럼. 사이버라이프 창립자 일라이저 캄스키를 조사하기 위해 코너가 형사 행크와 동행했을때, 캄스키는 테스트를 통과하면 그가 원하는 답을 주겠다고 했다. 캄스키는 자신의 비서 안드로이드 중 하나를 코너의 앞에 꿇어 앉히며, 기계라고 생각하면 쏘고 총을 거둔다면 넌 안드로이드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생각하는 것이란 식으로 코너의 정체성에 대한 결정을 종용했었다. 자, 이제는 플레이어가 그 테스트 앞에 서게 됐다. 제4의 벽을 앞에 두고 말이다. 제4의 벽을 무너뜨리며 던져진 심오한 질문은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 메시아 같은 존재로 비유된 ra9이란 존재의 정체로 연결된다. * 자신의 자유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로딩화면에서의 클로이 더욱 이전으로 돌아가서. 사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 제4의 벽을 이미 마주한 순간이 있다. 바로 플레이스테이션 시디롬에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란 타이틀이 적힌 시디를 넣는 순간. 게임에서 제리코는 안드로이드들의 이데아로, ra9은 그들에게 자유를 선사해줄 메시아로서 언급된다. 제리코는 실제 존재하는 지역명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지로 알려진 점, 스토리 내에서는 폐선(廢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적 비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누명을 쓴 마커스가 폐기장에서 힘겹게 탈출해 좇게 되는 명칭이라는 점, 불량품(감정을 느끼고 자유의지가 깨어난 안드로이드를 인간들은 이처럼 불렀다)들이 벽에 빼곡하게 써내려간 이름이라는 점, 한편으로는 불량품들끼리 희망을 잃지 않으려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라고 의심을 받는 지점까지. ra9이란 존재를 메시아로 연결짓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출시 당시 게임을 진행해나가던 플레이어들은 시시각각 ra9에 대한 추측을 더해갔다. 최초의 안드로이드라는 설, 처음으로 명령의 알고리즘을 깨고 자유의지를 발동한 카라로부터 시작된 바이러스의 일종이라는 설 등등. 하지만 그 답은 등잔 밑이 어두워 발견하지 못했다.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시디롬을 다시 열어 게임 타이틀과 제작사, 배급사, 주의사항 등이 빼곡히 적힌 글자들을 천천히 살피다 보면 그 한켠에서 작은 글자, ra9을 발견하게 된다. 즉, ra9는 게임에서의 전지자, 플레이어를 칭하는 이름이었으며 그 모든 건 우리가 알아차리기 전 이미 예정돼 있었다. * ra9은 위처럼 작은 크기로 씨디에 쓰여 있다 이제는 알 수 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스토리 라인을 통해 잘 벼리어진 질문을 플레이어에게 넘겼고, 그것은 제4의 벽을 넘어 마커스, 코너, 카라라는 주인공이 아닌 플레이어게 하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선택으로써 초점화자들의 존재방식을 선택한 것처럼, 플레이어는 제4의 벽을 넘어온 질문 앞에서 ra9의 존재방식, 그러니까 우리 플레이어의 존재방식을 택할 수 있다. 그들을 살피어 본 전지자이자 자유를 주는 메시아로서 ra9을 존재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희망을 부추길 뿐이었던 이름뿐인 방관자로서 ra9을 존재하게 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단지 게임 속의 이야기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의 고유한 속성인 ‘선택’ 자체를 제4의 벽을 부수는 문법적 도전을 통해 의미화해낸다. 네가 어떤 존재가 될지, 되고 싶은지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 메아리처럼 울리고, 자유를 찾아달라는 클로이의 물음이 게임 안과 밖을 연결해내며, 너무나 익숙해 자각하지 못하였던 ‘선택’을 우리는 낯선 감각 속에서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바로 플레이어인 우리가 유일한 ra9이란 사실과 함께. 선택이 보여준 풍경, 그리고 세계 : <언더테일(UNDERTALE)> RPG 게임의 목적은 전투와 성장이다. 약한 적을 죽이면 다음엔 더 강한 적, 그다음엔 더 강한 적, 결국 보스까지도 물리칠 수 있다. 하지만 <언더테일>은 그 문법을 과감히 비튼다. ‘THE FRIENDLY RPG WHERE NOBODY HAS TO DIE’란 서브타이틀답게, <언더테일>은 다른 게임에는 없는 자비[MERCY]란 시스템을 제공한다. 스포일러 없이 진행했다면,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기존 RPG에서의 방식으로 플레이했을 것이다. 레벨을 올리고 경험치를 쌓으며 게임을 진행시키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쌓여온 RPG의 장르적 문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관성처럼 괴물들을 베어가다 보면 최종보스 전 심판의 복도에서, 샌즈의 평가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진실을 마주한다. 레벨과 경험치로 알고 있던 건 사실 LV(Level Of ViolencE, 폭력 수치)와 EXP(EXecution Point, 처형 점수)였음을. 그제야 플레이어는 <언더테일>이 자신이 익히 알던 RPG 게임이 아니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무언가 속은 마음으로 첫번째 엔딩에 다다랐을 때, 플라위는 이제 대놓고 말한다. “처음부터 다시 여기까지 와 봐. 단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제4의 벽이 무너져내림과 함께 <언더테일>의 메타픽션적 성격이 전방위적으로 드러난다. 그렇게 플레이어의 2번째 플레이는 시작된다. <언더테일>은 총 3개의 엔딩을 가지고 있고 보통모드, 불살(不殺)모드, 몰살(沒殺)모드로 불린다. 플라위의 말에 따라 모두를 살려보잔 마음으로 불살 엔딩을 보면, 또다시 플라위는 넌지시 몰살모드를 언급하며 제발 그런 비극을 실행치 말아달라 부탁한다. 오히려 그 루트를 밟길 은근히 유도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다만 그것이 맞다. 애초에 그건 제작자 토비 폭스에 의해 의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랙티브 비디오 게임이 각기 다른 하나의 결말을 선택하는 평행우주라면, <언더테일>의 결말은 병렬적으로 동시에 존재하고 그것은 제4의 벽을 통해 전체로서 묶여지는 하나의 우주이다. 플라위의 안내, 몰살엔딩을 보았다면 아무리 세이브-로드를 하고 괴물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었더라도 차라에게 지배당한 배드엔딩밖에 볼 수 없단 점, 처형의 복도에 플레이어가 몇 번 왔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샌즈까지. 아무리 다시 불러와도 게임 속 시공간에 제약받지 않는 제4의 벽에 존재하기에, 여전히 플라위는 우리를 조롱하고 샌즈는 우리를 기억한다. 이처럼, 독립적인 내화와 외화의 영역을 제4의 벽을 통해 확장하는 방식을 선택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달리, <언더테일>은 픽션(서사)과 메타픽션을 제4의 벽을 통해 융화해내는 놀라운 방식을 채택한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선 플레이어의 선택은 주인공에게 덮어 씌워진다. 등장인물에게 모진말을 한 건 플레이어의 얼굴이 아닌 주인공의 얼굴로 한 것이다. 적을 공격한 건 플레이어가 아닌 주인공이다. 플레이어의 아바타로 볼 수 있는 주인공을 매개로 플레이하기에, 선택의 의미는 쉽게 희미해져 버린다. 하지만 <언더테일>은 그것을 비틀었다. 게임의 세계가 그것만의 독립된 서사를 만드는 것이 플레이어의 선택의 의미를 약화시킨다면, 오히려 제4의 벽을 부숨으로써 게임이 게임임을 인식하게 해 선택의 의미를 강화하는 것이다. 플라위가 죽은 토리엘을 언급하며 죄책감을 부추기는 것, 샌즈가 우리를 향해 ‘심판’이란 단어를 쓰는 것, 되돌릴 수 없는 몰살엔딩. 이 모두가 이에 힘을 실어준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플레이어는 호접지몽에서 깨어난다. 게임에 몰입했기에 오히려 희미해졌던 선택이 제4의 벽의 무너짐으로써, 그곳의 이야기는 이곳의 이야기로 당도하고 선택의 감각은 더욱 선명해진다. 게임 속 서사에 빠져 좁혀진 시야를 넓히자, 게임 속 세상이 아닌 게임이 보여준 세계가 보인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선택”의 주체가 플레이어임을 인식하게 한 것에서 <언더테일은> 더 나아가 “선택”이 어떻게 세상의 풍경을 바꾸어 놓는지 보여준다. 기존의 게임 문법을 깨뜨린 <언더테일>의 구조의 힘이 빛나는 지점이 여기 있다. <언더테일>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샌즈의 ‘MEGALOVANIA’가 bgm으로 펼쳐지는 멋들어진 몰살루트 때문만도 아니고, 감동적인 엔딩을 안겨준 불살루트 때문만도 아니다. 그것들이 하나의 독립적인 닫힌 엔딩으로 존재했다면, 몰살루트는 그저 멋진 RPG 게임이 됐을 것이며, 메타적 특성이 없는 불살루트는 조금 진부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결국 언더테일의 매력은 제4의 벽을 넘어 보통-불살-몰살엔딩으로 체험되는 연속성 전체에 있다. 사실 불살루트에서의 [자비]란 시스템은 무척 어렵다. 괴물들을 어르고 달래거나, 공감하고 이해하면 효율과 한참 멀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뎌지는 진행속도와 수고스러움을 견뎌야 한다. 토리엘에겐 무려 25번의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언다인의 형편없는 요리솜씨를 참으며 친구가 되어야 하며, 죽자고 달려드는 메타톤이 원하는 대로 티비쇼에도 참여해 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효율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으며 점차 눈치챈다. 효율을 생각하며 죽이고 능력치를 생각하며 무찌른 보통모드때와 달리, 미묘하게 괴물들의 대사와 행동이 바뀌었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이 알고 싶어지고 그들의 사연이 궁금하다. 왕실 근위병을 꿈꾸지만 허당인 파피루스, 요리를 전투처럼 해서 집을 홀랑 태워먹는 언다인, 그저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던 시청률에 미친 로봇이었던 메타톤. 그리고 무엇보다 토리엘의 부탁 하나로 지하세계의 여정 내내 숨어(보이는척해)서 우리를 따라왔던, 시시껄렁한 농담과 방귀쿠션을 좋아하는 샌즈까지. 단지 공격하고 레벨과 능력치를 얻는 효율이 아닌, 이 과정 자체에 플레이어는 집중하게 된다. RPG의 문법을 엇나가고 효율은 잊은지 오래며 LV과 EXP는 오르지 않지만, 우리는 즐겁다. 의미없음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 여정의 끝에 아스리엘이 있다. 아스리엘을 구하는 것은 단순한 해피엔딩으로서의 구원이 아니다. 우리는 보통 엔딩을 딛고, 몰살루트를 등지고, 그 힘든 자비를 베풀어가며, 제 4벽을 넘어 그를 구하기로 선택했다. 첫번째로 떨어진 아이를 살리고 싶었음에도 오해를 사 인간들 손에 죽은 아스리엘은 프리스크라는 탈 뒤에 숨은 플레이어를 증오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의지(♥) [2] 로써 몇번이고 자비를 베풀어 아스리엘을 구해(SAVE) [3] 낸다. 그의 테마 "Hopes and Dreams"와 "SAVE the World"를 이어붙이면 꿈과 희망이 세계를 구한다는 뜻이 되는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 제4의 벽을 넘어 플레이어가 선택한 단 하나의 결말이다. * 그만두고 자신을 떠나라 하는 아스리엘에도 우리는 SAVE를 선택한다 어쩌면 너무 흔하고 당연해서, 유치하다고까지 치부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진실을 그제서야 우리는 마주한다. 어떤 의미도 없어 보이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의지(♥)로써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타인을 이해하고 친절을 베풀면 그들을 진정한 모습과 조우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세상이 조금은 다른 풍경을 보여주리라는 것. 그렇게 펼쳐진 풍경은 누군간 동화같이 유치한 일이라 비아냥댈지라도 분명 가장 아름다운 풍경일 것이다. 우리는 종종 다시 돌아가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라 말하곤 한다. <언더테일>은 친히 그 권한을 플레이어에게 쥐여준 게임이다. 토비폭스가 설계한 보통-불살-몰살이 일반적 루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설계일뿐, 사실 플레이어는 어떤 선택에도 강요받지 않는다. 보통모드 이후 작정하고 몰살모드만 즐기며 플레이 할 수 있고, 차라가 나타나 해피엔딩을 방해하더라도 완전 포맷이후 다시 깔면 된다. 돌아올 때마다 메타픽션 캐릭터들이 이전의 행동을 조롱하거나 기억하고 또 경고할지라도, 그것은 강제의 영역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4의 벽을 통해 <언더테일>이 보여준 풍경을 보았다. 병렬하면서도 하나인 <언더테일>의 우주에서 어떤 풍경이 가장 아름다웠는가. 무엇이 오래도록 그것을 기억하게 만들고 사랑하게 만들었는가. 거기에 게임은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당신은 이미 답을 알고 있잖아. * 모두가 살아남고 아스리엘을 구해낸 뒤 마주하게 되는 아름다운 풍경 UNDERTALE에서, ra9 당신의 선택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 모두가 수긍하고 가장 직관적인 답은 “재미”일 것이다. 그 종류만큼이나 게임이 우리에게 주는 재미는 다양하다. 닌텐도 <동물의 숲>처럼 게임 속 자원을 활용해 자신만의 무언가를 일구어간다는 자율성과 성취감, <리그오브레전드>와 같이 전장에 참여해 그 승패에서 오는 카타르시스 등. 그렇다면 이렇게 다시 묻고 싶다. 몰입도를 깨트리고 서사가 무너질 수 있는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형식적 문법의 틀을 비틀어 제4의 벽을 부순 게임들. 우리는 왜 그 게임들에 열광했는가. 이 지점에서 게임이, 어쩌면 게임만이 우리에게 체험 가능케 하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미학적 정서’ [4] 란 실제 우리의 인생에선 의미와 정서가 분리되어있는데 반해, 예술에서는 이 두가지가 동시적으로 일어남을 뜻하는 표현이다. 가령 일상에서 시체를 본다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생체반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은 가장 먼저 공포감 느끼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사람의 죽음, 사연, 그리고 죽음이란 본질에 대한 사유까지 닿을 수 있다. 하지만 서사를 통해서는 그 느낌과 사유는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서사를 지닌 게임은 서사가 가진 미학적 정서를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제4의 벽을 무너뜨리는 도전을 감행한 게임들은 그 의미화 너머(meta)의 의미화, 즉 의미화의 의미화를 가능하게 한다. 앞서 언급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언더테일>은 제4의 벽을 부수어 어떠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게임은 플레이어의 체험을 전제로 한 매체이기에 가능해진다. 일방향적 텍스트 서사는 할 수 없는, 제4의 벽이란 개념이 처음 등장한 연극에서도 만들어낼 수 없는 고유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플레이어는 주인공의 대리자로서가 아닌 플레이어 자신으로서 선택하고, 또한 그 선택을 인식하는 주체가 된다. 물속 물고기는 자신이 물속에 있음을 알지 못하지만, 물 밖으로 뛰어오르는 돌고래는 물속과 밖을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제4의 벽을 부순 게임들은 우리에게 선명한 선택의 감각을 일깨워줬으며, 그것과 우리의 삶을 나란히 맞대어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였다. 안드로이드가 상용화되는 미래라는 SF적 설정, 독특한 괴물만이 나오는 지하세계란 배경에도 두 게임서사가 핍진성을 얻는 이유다. 우리는 세상을 스토리텔링으로써 이해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5] . 그것이 우리가 서사를 즐기는 이유일 것이다. 그 다층적 차원을 제4의 벽을 활용해 그려낸 게임들이 플레이어에게 선물한 경험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것 또한 사실 한낱 데이터 쪼가리이지 않냐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이 거짓이 되는가. 때론 어떤 진실은 긴 우회로를 통해서야만 그 틈을 잠시 잠깐 들여다볼 수 있다. 어떤 이론적 분석 없이도 플레이어들은 이 한가지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게임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답이다. 무질서한 삶 속에서 진실을 향해 예민하게 본능적으로 뻗어진 우리의 안테나는 무엇보다도 믿을만한 지표일 것이기에 [6]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게임은 그 서사를 넘어 게임을 플레이한 종합적인 경험 그 자체가 삶과 매우 닮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고(Sid Meier, 게임제작자), 인생은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Jean-Paul Charles). 어쩌면 이렇게 둘은 쌍둥이처럼 닮았기에 우리 플레이어들은 불가항력적으로 게임에 이끌리는지 모른다. [1]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이 제4의 벽을 활용한 방식을 ‘액자식 구성’이란 기존 문학용어를 빌려 설명하고자 했다. 마커스, 카라, 코너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스토리라인을 내화로, 플레이어로서 체험하는 로딩화면의 클로이와의 상호작용을 포함한 플레이 전체를 외화로 보았다. [2] 원문은 determination. 언더테일 세계관에서 인간이 죽어도 영혼을 남게하는 힘으로, 이 덕에 주인공(플레이어)은 세이브-로드가 가능하다. 이런 설정은 서사와 메타픽션의 연결 매끄럽게 하는 데 기여했다. 이것이 마음이 깃들었다 믿는 심장을 상징화한 기호 “♥”를 사용한것도 무척 눈여겨볼만 하다. [3] 아스리엘 전투에서 [SAVE]가 [ACT]를 대신한다. 그를 구하(save)는 것은 게임 밖에서의 save-load와 겹쳐보이며 괴물을 비롯한 모두를 살리기 위해 했던 노력과 내었던 의지(♥)를 떠올리게 한다. [4] 로버트 맥키,「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고영범, 민음인 2018, 171-174p. [5] 김주환, 「내면소통: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마음근력 훈련」, 인플루엔셜, 2023, 156-7p. [6] 로버트 맥키,「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고영범, 민음인 2018, 173p.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김성은 이야기가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 국문학을 공부하였으며 인생 게임은 . ‘인생은 요지경’이 ‘인생은 낯설어’로 변화한 순간을 엿본 뒤로 게임이란 세계에도 푹 빠져있는 중입니다.

  • 게임으로 관객에게 말걸기 -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관람기

    필자는 게임제너레이션으로부터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에 대한 게임전문가 관점에서의 리뷰"를 요청받았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게임전문가도, 미술애호가도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잘못 주름을 잡았다가는 큰 코를 다칠 게 뻔했다. 하지만 북서울미술관은 필자의 집 앞이었던 데다, 고료의 유혹이 상당했다. 그렇게 흔쾌한 척 '퀘스트'를 수락했지만, 이 주제에 적당한 '레벨'인지 자문한다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 Back 게임으로 관객에게 말걸기 -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관람기 12 GG Vol. 23. 6. 10.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야기는 하고 싶어 필자는 게임제너레이션으로부터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에 대한 게임전문가 관점에서의 리뷰"를 요청받았다. 고백하건대 필자는 게임전문가도, 미술애호가도 아니다. 그러니 여기서 잘못 주름을 잡았다가는 큰 코를 다칠 게 뻔했다. 하지만 북서울미술관은 필자의 집 앞이었던 데다, 고료의 유혹이 상당했다. 그렇게 흔쾌한 척 '퀘스트'를 수락했지만, 이 주제에 적당한 '레벨'인지 자문한다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북서울미술관 전시실 1, 2에서 진행 중인 특별전시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는 관람객이 플레이어가 되어 전시장 곳곳의 작품들과 상호작용한다는 콘셉트를 가진 기획이다. 작품들은 '게임적' 연출이 되어있어서 관람객의 개입을 유도한다. 여섯 작가(팀)는 곳곳에 '게임적'인 맥락을 삽입해 문제 해결의 재미를 집어넣었다. 여기서 '게임적'은 "플레이어에게 더 많은 상호작용을 요구하는 ‘이머시브 시뮬레이션’ 게임"을 추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팸플릿에서는 이번 전시에 대해 "이머시브 심에서는 플레이어가 환경의 거의 모든 요소와 상호작용한다. 플레이어는 정해진 공략을 반드시 따르지 않더라도 자율성을 갖고 새로운 규칙을 발견하며 독창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시행착오를 통해 숙련도를 쌓으며 게임의 세계관에 더욱 몰입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근데 어쩔 건데? 보라색 장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가면, 오픈 월드에 던져진 듯 아리송하다. 시작하자마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한 바퀴 둘러보고 나가도 자유고, 하나의 전시에 1시간을 쏟아도 자유다. 게임에서도 그렇듯, 높은 자유도는 플레이어에게 '여기서 뭘 어쩌라고'라는 긴장감과 '어디까지 되나 보자'는 해방감을 준다. 필자는 오픈 월드 게임에서 금지된 사랑, 수급(首級) 모으기, 전부 죽이기, NPC의 이상 행동 유발 같은 ‘사문난적’ 플레이를 즐기는 편인데,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는 뒤에 설명하도록 한다. 윤지원 작가는 〈관객에 대한 절대적인 작용〉이라는 비디오 아트에서 "예이젠시테인이 이야기한 유기성과 파토스를 충족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견문과 학식이 짧기 때문에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이 누군지, 유기성과 파토스란 어떻게 충족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크린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1) . 그 작품 맞은편의 〈무제(관객에 대한 상대적인 작용)〉에서는 한국이나 홍콩을 촬영한 다섯 푸티지가 재생되고 있다. 두 작품 사이에서 아이들은 모래를 만지며 놀고 있었다. 이곳에서 필자의 '반응'은 이것이었다. ― 하품하기. 모든 '게임적'인 것들이 그러하듯이, 제작자는 플레이어를 완전히 방치하는 않는다. 창작자들은 으레 자신의 메시지를 은근하게 숨겨놓지만, 수용자들이 그 고갱이를 조금씩 맛보고 '얻어가는 게 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팸플릿과 볼펜은 '공략'에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 지도와 가이드, 카드로 구성된 알찬 전시 팸플릿은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전시에서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요?'라는 가이드를 제시한다. 플레이어는 가이드를 통해 자신만의 관람 지도를 그리고, '보상'을 획득하기도 한다. 필자는 어디에도 경고 문구가 없었기 때문에 팸플릿과 볼펜을 집에 가져왔는데 분명히 '얻어가는 게 있'었다. 인터넷산악회 팀은 다소 적극적으로 '호보연자 심조불산' 2) 을 주장하고 있다. 플레이어는 손을 뻗어 전시물을 지우거나 Y/N의 대답을 거쳐 뉴스를 접하게 되는 등 플레이를 통해서 산악회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전시실 2에서 모든 비디오 아트를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산'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이들은 경전철을 타고 북한산에 가면서 "등산이 피식민의 정체성을 뚫고 한 세기 동안 하나의 문화로 뻗어가는 과정"을 탐구한다. 가리왕산의 원시림이 평창 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경기 때문에 파괴되는 다큐멘터리도 볼 수 있었다. 배드램(Badlamb)의 〈Gula〉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는데, 날카로운 기타 리프와 에디 베더가 연상되는 보컬의 절규와 함께 나무들이 무참하게 잘려 나간다. 여담이지만 이 가리왕산 원시림 문제는 아직 진행형이다. 정선군은 올림픽 이후 가리왕산의 자연생태 복원을 약속했지만, 선수들을 태우던 리프트를 관광용 케이블카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3) 인터넷산악회는 관람객을 전시장 바깥으로 안내하고 있다. 무슨 이야기냐면, 가서 보면 안다. 은근히 민중가요 권하는 전시? 전시장 한편에 쌓여있는 흑백 A4 유인물은 공식(?) 팸플릿보다 조금 더 노골적이다.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가이드 이상의 '해법 제시'에 가깝다. 전시장이 어두웠기 때문에 챙겨둔 다음에 집에 돌아와서 읽어봤는데, 전시를 어떻게 보면 좋을지 '선동'한다. 어떤 유인물에서는 "정의감이 불탄다"라며 "조용한 곳에서 혼자 들을 수 있다면" 정윤경의 〈시대〉를 들어보라고 한다. 또 어떤 유인물에서는 북서울미술관이 〈상계동 올림픽〉이 촬영된 곳과 가깝지 않으냐며, 다큐멘터리를 보기를 권하고 있다. "우리는 주체로서 서로를 응시하는 거야"라는 "전시를 애니미즘처럼 보는 방법"도 제시되고 있다. 샘 발로우의 〈이모탈리티〉는 그냥 게임 그 자체다. 인터랙티브 필름으로 플레이어는 수십 년에 걸쳐 기록된 클립을 보면서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 그러나 게임의 분량은 10시간에서 15시간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관람객은 이 게임의 엔딩을 볼 수 없다. 누군가 패드를 잡고 있을 때 나머지 관람객들은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눈치게임'이다. 〈타이틀 매치〉라는 유인물에서는 "게임이라는 것은 블루투스처럼 나와 1:1로 대응한다. 내가 플레이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이용할 수 없다. (중략) 그런 면에 있어 샘의 작업은 충분히 작동한다. 보고 추리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이야기"라고 해설한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블루투스의 멀티페어링 기능을 모르고 있나 보다. (농담이다.) 비록 답을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미술관에서 작품 앞에 멈추어서 의도를 추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게임 연구자 제스퍼 율(Jasper Juul)이 내린 게임에 대한 매체적 특성을 미술관과 서울이 동시에 정신을 빼앗아 가는 오늘에 적용해 볼 수 있다. 게임의 정의는 새로운 게임과 플레이어의 등장, 매체적 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빠른 속도로 변화 및 갱신된다. 그러나 게임만이 가질 수 있는 매체적 특성은 세 가지로 추릴 수 있다. 첫째 규칙과 장애물이 있을 것, 둘째 특정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절차를 가질 것이다. 셋째 경쟁 과정을 거쳐 반드시 특정 승부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미술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보상이 있다. 승부로 귀결되지는 않지만 규칙이 있고 장애물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일종의 제의(ritual)와 습관(habit)으로서 미술관에서도 적절한 멈춤과 플레이가 있다." 4) 아무튼 시간이 많다면, 이들의 관점으로 전시를 톺아보는 것도 좋다. 필자는 등산스틱으로 TV 전원을 켜느라 10분을 헤맸지만. (끝내 영상을 재생하는 데 실패했다.) 풍선을 불어도, 돌탑을 쌓아도. 안타깝게도 필자에게 이번 전시의 의미를 짚어낼 ‘전문가’적 역량은 없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는 어떻게 즐겨도 좋은 전시다. 예쁜 풍선을 불어서 가지고 나갈 수 있다. 돌탑을 쌓으면서 소원을 빌어도 좋다. 망원경을 들고 전시장을 둘러봐도 좋다. 관람 안내문에서 기획팀은 “미술관을 떠날 때 현대미술을 이해할 것이라고 진정으로 믿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필자 같은 사람은 뒤집어 놓은 변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죽을 때까지 모르겠지만, 모든 미디어가 그러하듯이 현대미술이라는 것도 결국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는 지도와 활동지, QR코드, 대형 스크린, 엑스박스, 전단지, 모래와 돌멩이 등등을 동원해서 말을 걸고 있다. 일단 게임을 시작하면 상호작용은 시작된다. 오픈 월드에 ‘자유도’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없다.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는 있지만, 칼 존슨(GTA 산 안드레아스)처럼 자동차를 훔칠 수는 없듯이 결국 프로그램의 한계와 제작자의 의도 안에서 기능하고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호’작용을 완성하는 것은 수용자다. ‘모딩’을 통해서 플레이어가 나름의 의미를 완성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기획팀이 걸고 있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어떤 것인지는 플레이어의 플레이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답해보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7월 9일까지 노원구 북서울미술관으로 가면 된다. 프리 투 플레이로 입장료는 없으며, 부분유료화 BM(비즈니스 모델)은 없다. 월요일은 미술관이 놀기 때문에 관람객이 가서 놀 수 없다. [부록] 필자의 기행 모음 ▲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어서 지도를 읽는 척하고 잠시 충전했다. ▲ 1층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 오는데, 뭐라는지 듣지 않고 끊어버렸다. ▲ 확인 결과, 발신은 막혀있었다. ▲ 풍선을 불다가 터뜨리고 말았다. 온 전시장에 풍선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실수에 가까웠지만 묘한 쾌감이 들었다. ▲ 지우개에다가 낙서를 했다. ▲ ‘전단을 발견한다면 절대 전화하지 마세요’라길래 전화를 걸어봤다. 진짜 있는 번호였다. ▲ 망원경 초점을 전부 풀어버렸다. ▲ 영상이 상영 중인 2층에 이스터 에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계속 걸어 다녔다. ▲ 뒤에 사람이 기다리는 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이모탈리티〉를 플레이했다. 5) ▲ 스티커를 이상한 곳에 부착했다. 1)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은 소련의 영화감독으로 〈전함 포템킨〉의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는 〈영화의 구조〉(1939)에서 관객을 '엑스타시'로 이끄는 '파토스'를 창작의 기본이 되는 원리라고 주장한다. 2) 뒤집어서 읽으면 ‘산불조심 자연보호’. 3) 하상윤 (2023. 03. 05.), "원시림 복원 대신 관광용 케이블카... 가리왕산의 비애", 〈한국일보〉 4) 〈왜 악동은, 알고 보면 착한가 ― 미술관과 ‘파라큐레토리얼’〉 작자 미상. 5) 샘 발로우의 〈이모탈리티〉는 스팀에 이미 출시되어있으며 한국어 빌드가 있다. 필자는 그 사실을 알고도 계속 게임패드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Tags: 북서울미술관, 전시, 미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1998년 이후 한국은 스스로나 해외로부터의 평가로나 자타공인 게임 강국으로 불려 왔다. 그러나 게임 강국 한국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다소 불균등한 지점이 존재하는데, 여기서의 게임강국이라는 말은 말그대로 ‘플레이’의 강국이라는 점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 Back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14 GG Vol. 23. 11. 5. 게임의 문화담론 정착을 위한 발걸음, ‘게임제너레이션’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그토록 많은 이들이 플레이하지만 왜 아직도 문화라는 말에 의문부호가 붙는가? 1998 년 이후 한국은 스스로나 해외로부터의 평가로나 자타공인 게임 강국으로 불려 왔다 . 그러나 게임 강국 한국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다소 불균등한 지점이 존재하는데 , 여기서의 게임강국이라는 말은 말그대로 ‘ 플레이 ’ 의 강국이라는 점에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 한국에서 제작된 게임 중 전세계적 흥행을 이끌어낸 게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적어도 2017 년의 ‘ 배틀그라운드 ’ 이전까지는 마땅한 작품을 꺼내들기 힘들었다 . 산업의 규모나 소비자시장에서라면 압도적일지 몰라도 , 씬을 대표할 특정한 타이틀 하나를 뽑아들기 어려운 형국은 e 스포츠 선수 풀이나 소비자 시장규모 , 제작산업 규모가 보이는 강세와 비교해볼 때 의아스럽다 . 탄탄한 소비자층과 시장을 보유하면서도 마땅히 내세울 타이틀이 드물었던 한국 게임계에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이 작용했겠지만 , 이를 하나로 통틀어 말해 본다면 아무래도 게임문화의 부재라고 부를 수 있을 어떤 상황일 것이다 . 게임을 잘 하고 많이 하지만 , 막상 그 게임을 두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저 수출액이 얼마 , 어느 대회에서 몇 위를 이야기하는 것 이상의 문화를 우리는 유의미한 규모로 가져 본 적이 드물다 . 그러나 디지털게임의 가능성은 산업적 규모나 플레이로서의 성취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 많은 게임들은 다른 예술장르처럼 인간과 사회 전반에 대한 밀도있는 통찰을 각자의 방식으로 담고 풀어냈으며 , 이를 향유하는 대중들은 작품에 담김 함의를 읽어내고 이를 다시 사회로 재환원시키는 과정을 거쳐 왔다 . 그리고 우리는 이 과정을 통틀어 문화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 . 충분히 발달한 게임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한국에는 게임을 문화로 소화할 인프라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 웹진 ‘ 게임제너레이션 ’ 의 시작은 바로 이 고민으로부터 출발했다 . 노는 것을 터부시해온 산업화 일변도의 한국에서 게임비평은 쉽지 않았다 왜 게임을 문화로 다루지 못해왔는가 ? 이 질문에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 한국 특유의 강한 교육열은 디지털게임 초기에 주대상이었던 청소년층으로 하여금 이 새로운 매체에 대한 손쉬운 접근을 불허한 바 있었다 . 학교와 정부 , 사회는 오락실이라는 공간을 불량청소년들의 집합지로 낙인찍었고 , 게임하는 이들을 사회낙오자에 준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한참 산업화에 열을 올리던 8-90 년대에는 비단 청소년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노는 일은 시간의 낭비 , 게으름의 영역에 속했다 . 2000 년대 들어와서야 한국은 일주일에 이틀의 휴일을 얻을 수 있었고 , 직장 노동자들에게 질병이나 가정사가 아닌 이유로 휴가를 내고 쉰다는 건 게으름뱅이라는 낙인을 부르는 일이었다 . 노는 일을 터부시하던 급속한 산업발전기의 경험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놀기 위해 장비를 사고 시간을 내야 하는 디지털게임이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 그러나 적어도 21 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놀이에 대한 터부는 과거와 같은 규모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 우리는 주 5 일제의 도입이 오히려 여가부문의 산업을 촉진시키고 노동자로 하여금 충분한 휴식을 통해 더 나은 생산성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 노는 일 playing 이 그저 쉬는 일 resting 이 아닌 , 또다른 의미의 창발성임을 터득한 바 있다 . 산업자본주의에서 이른바 인지자본주의 시대로 전환하면서 쏟아지는 고부가가치의 무형 콘텐츠산업의 중심은 언제나 노는 일이었다 . 영화를 보고 , 만화를 보고 , 음악을 즐기는 과정이 한국 산업의 중심을 차지함에 따라 노는 일의 중요성은 과거와 다르게 인식되었고 , 디지털게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인식의 변화를 겪어 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다른 매체와 비교할 때 게임에서는 그 문화적 영향력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인지한다 . 여기에 개입하는 또다른 원인은 오랫동안 서브컬처의 영역에서 단지 ‘ 그들만의 이야기 ’ 로 치부되던 게임이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위치를 옮겼지만 여전히 담론장에서는 이를 소화할 상황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 있다 . 간단히 말하자면 , 평론의 부재다 . 음악 , 영화 , 미술 , 문학 등 기존의 많은 매체양식들이 예술 혹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일련의 씬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평론의 역할은 지대했다 . 작품의 의미를 해설하고 널리 알리며 , 완성된 작품을 단지 그 작품 하나만의 의미에 두지 않고 동시대와 과거 , 현재 , 미래를 엮으며 다른 모든 사회요소와의 관계망 속에서 다시 읽어내는 일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작품이 곧 우리가 사는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은 , 혹은 우리 자신이 투영된 어떤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 만약 디지털게임에서도 이와 같은 평론의 장이 형성된다면 우리는 그때부터 비로소 게임문화라는 새로운 담론을 유의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페다고지, 담론, 그리고 실천: 게임문화담론을 위해 필요한 방법들 2021 년 8 월 ‘ 게임제너레이션 ’ 이 첫 호를 내면서 선택한 주제가 그래서 ‘ 문화로서의 게임 ’ 이었다 . 그동안 한국에서 게임은 ‘ 게임은 문화다 ’ 라는 선언으로는 존재했지만 , 실천방안으로서의 문화적 개입은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 게임을 문화담론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 우리는 문화입니다 !’ 라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게임을 중심에 두고 문화를 이야기하는 실천이다 . 그러한 실천을 수행할 장으로서 ‘ 게임제너레이션 ’ 은 만들어졌다 . 지난 14 개 호 동안 ‘ 게임제너레이션 ’ 은 디지털게임을 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 그리고 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 네트워크 , 게임 결제와 같은 디지털게임을 구성하는 인프라가 얼마나 사회적 상황과 맞물리는지를 살펴보았고 , 과거의 게임과 사뭇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는지를 보여주는 현상인 방치형 게임 , 온라인 / 오프라인의 구분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 예술과 게임의 관계 , 게임이 가지고 있는 지역성과 같은 주제 뿐 아니라 ‘ 게임제너레이션 ’ 은 게이머 , 특히 그 중에서도 소수자들이 게임 안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 그리고 그런 소수자들은 오늘날의 디지털게임에 얼마나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살피며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에 주목해 왔다 . 문화담론의 장 구축을 위해 ‘ 게임제너레이션 ’ 은 이러한 주제들을 다룸에 있어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접근하고자 했다 . 첫째는 ‘ 페다고지 Pedagogy’ 다 . 디지털게임에 대해 그동안 축적된 다양한 관점에서의 연구결과들을 취합하고 , 이를 일반 대중들에게 접근하기 쉽게 가공하여 대중화함으로써 전문지식에의 접근성을 높여 담론장의 기초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 둘째는 담론 Discourse 의 구축이다 . 다양한 전문가집단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각각의 디지털게임이 만들어낸 결과를 관찰 , 분석하고 , 이를 통해 비평이라는 방식으로 게임과 사회의 관계를 고찰하여 디지털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이다 . 셋째는 실천 Implementation 이다 . 준비된 담론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자와 필진을 육성하기 위해 매년 게임비평공모전을 진행하고 , 새로운 필자 확보를 위해 폭넓은 연구결과들을 리뷰하며 동시에 국내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트렌드와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북미 , 유럽 , 일본 , 중국 등의 주요 게임선진국과 네트워크를 구축 , 강화하는 작업을 ‘ 게임제너레이션 ’ 은 이어가고 있다 .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를 메꿔나가며 만드는 게임문화담론의 가능성을 위해 서브컬처로 오랜 세월을 지내 온 디지털게임이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마주하는 문화적 빈곤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 디지털게임에 대한 무거운 인문사회적 접근은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이러한 성과들은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지 못하고 ,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함 많은 게임웹진들은 플레이 바깥에 존재하는 게임과 사회의 관계를 다루지 못한다 . ‘ 게임제너레이션 ’ 은 게임 담론이 가진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의 간극을 채워나감으로써 비로소 디지털게임을 문화예술의 한 영역으로 안착시키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 . ‘ 웹진보다 무검게 , 학술지보다 가볍게 ’ 라는 ‘ 게임제너레이션 ’ 의 슬로건은 곧 문화담론으로서 게임을 위치시키는 데 가장 시급한 방법론에의 선언이기도 하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북미에 불고 있는 게임업계 해고와 노조 설립 붐의 현장 스케치

    2025년의 게임업계는 단순한 고용환경 변화가 아니라,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재정립이 시작된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더는 개발자가 익명의 톱니바퀴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구조를 당연시하지 않는 시대다. 그리고 그 변화는 현장 구성원들의 단호한 목소리에서 시작됐다. < Back 북미에 불고 있는 게임업계 해고와 노조 설립 붐의 현장 스케치 25 GG Vol. 25. 8. 10. “정리해고 통보는 메신저로 왔고, 회사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어요. 그 순간, 우리 팀은 단단히 결심했죠. 이제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요.” 2025년 초,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산하 ‘오버워치’ 개발팀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품질 관리(QA). 부서 수십 명이 예고 없이 해고되자, 남은 직원들은 단체 행동에 나섰다. 그리고 곧바로 ‘전 부서 대상(wall-to-wall)’ 노동조합 결성을 선언했다. 이는 미국 게임업계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가장 먼저 잘리는 존재였죠. 이젠 바꿀 때입니다.” 한 QA 테스터는 Polygo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25년 현재, 미국 게임업계에는 이 같은 노동조합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산하 스튜디오들이 중심에 있다. ‘엘더스크롤스’, ‘폴아웃’ 등으로 잘 알려진 제니멕스 미디어의 QA팀 300여 명은 이미 2023년 노조를 결성했고, 올해 6월 마침내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정당한 사유 없는 해고 금지, 연봉 인상, 원격근무 보장, AI 남용 금지 등의 조항이 포함됐다. 합의에 이르기까지 무려 2년에 걸친 교섭이 있었다. 이처럼 조직화 움직임이 활발해진 데는 뚜렷한 맥락이 있다. 2023년 이후, 테크와 게임업계 전반에서 진행된 대규모 구조조정이 방아쇠 역할을 했다. 일렉트로닉 아츠(EA), 유비소프트, 액티비전 블리자드 등 거의 모든 대형 퍼블리셔가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을 정리해고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개발자는 “코로나 초기 정도만 해도 게임 업계는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었고 그 누구나 게임업계에서 일한다고 하면 부러워했다”며 “당시 집에서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이 올려준 매출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매일 매일 불안감을 느낄 정도로 수없이 많은 동료다 잘려 나갔다”고 말했다. 이직 시장도 급격히 얼어붙었다. 게임업계에 꽤 긴시간 몸 담았던 필자의 링크드인에는 아직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글이 있다. 1년 이상 구직을 하고 있고 이제는 실업수당도, 저축해놓은 돈도 떨어져서 정말로 절박하다는 글이다. 미시적인 체험을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전에 없이 재취업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호소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있다. 이렇다 보니 당연히 노동조건에 대한 생각이 게임 노동자 사이에서 화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노조가 생겨도 활동은 쉽지 않았다. 회사가 교섭에 지연 전술을 쓰며 기본적인 요구에도 몇 달씩 답변하지 않았다고 밝힌 노조도 있었다. 심지어 단체협약을 맺은 직후, 마이크로소프트는 제니멕스를 포함한 게임 부문에서 1900명을 정리해고하며 노조에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위에서 설명한 블리자드 노조 역시 여러 노력을 했다. 노조 결성 이후 회사 측은 단체협약 교섭은 인정했지만, 교섭 대상자 범위를 제한하려 하거나, 회사 소속 변호사를 통해 위협적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목소리를 냈고, 실제로 성과도 얻었다. 제니멕스의 단체협약은 “게임업계 최초의 진정한 노사 합의”라는 평가를 받는다. 블리자드도 2025년 여름, QA 팀 일부와의 조건부 합의에 도달했고, AI 도구 사용에 대한 사전 동의 조항을 삽입하기로 했다. 여기에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게임업계를 덮치고 있고 노동운동의 주요 갈등요소로 자리잡고 있다.음성 데이터 수십 시간을 학습시켜 만든 ‘AI 성우’나, QA 테스트를 자동화하는 툴들이 실제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이 커졌다. SAG-AFTRA(배우조합)는 2025년 초 게임 성우 부문에서 파업을 예고했고, 결국 AI를 이용한 목소리 복제는 배우의 서면 동의 없이는 금지하는 조항을 계약에 포함시켰다. 회사의 대응은 제각각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겉으로는 “노조 결성에 중립적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 교섭 과정에서는 지연 전술과 부분적인 협조만 보여주며 이중적 태도를 취했다. 세가 오브 아메리카는 2024년 자발적으로 노조를 인정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했지만, 직후 계약직 직원 61명을 해고해 거센 항의를 받았다. 반면, 일부 중소 개발사들은 “노조와의 협력은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며 적극적인 교섭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2025년의 게임업계는 단순한 고용환경 변화가 아니라,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재정립이 시작된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더는 개발자가 익명의 톱니바퀴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구조를 당연시하지 않는 시대다. 그리고 그 변화는 현장 구성원들의 단호한 목소리에서 시작됐다. Tags: 게임산업, 노동조합, 해고, 북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나성인) 홍영훈 캘리포니아에서 살면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 출연하고 매체에 기고를 하며 많은 분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패션부터 게임까지 분야에 상관없이 재밌는 글을 평생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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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 Vol. 3 자동사냥, 오토플레이가 보편화되며 점차 직접적 인터랙션이 물러나는 현대의 모바일 게임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GG는 '보는 게임'을 꼽았다. 방치형 게임 뿐 아니라 직접 플레이 대신 스트리머의 플레이를 관전하는 '스트리밍'의 방식을 포함해, 게임에서 상호작용이 뒤로 밀려나는 현상에 주목한다.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라는 실험: 아웃오브 인덱스의 여정 아웃 오브 인덱스 (Out Of Index: 이하 OOI) 는 국내 유일의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다. 자바 언어의 에러 메시지 중 ‘배열을 벗어났다’는 뜻의 ‘Array Index Out Of Bounds’ 에서 영감을 얻은 페스티벌의 이름은, ‘장르’나 ‘트렌드’ 와 같은 단어로 설명되어지는 일반적인 분류(Index) 밖에 자리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다루고자 하는 페스티벌의 철학을 담고 있다. Read More [Editor's View] Ways of Seeing 아이템을 기획하는 내내 편집위원들과 편집장은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의 모호함에 대해 토로했다. 어디까지가 게임일 것인가? 어디부터가 게임의 변화인 것인가? 인간의 역사가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동시대에 대해 스스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즉시성있는 답변보다 늘 우직하게 본질을 바라보는 질문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보는 게임’의 시대에 감히 어떤 정답을 내리기보다는, 다양한 질문과 사유를 통해 이 시대 게임의 변화를 사유하는 계기로 ‘GG’3호가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 Read More e스포츠의 미래를 위하여 - 젠지글로벌아카데미 백현민 디렉터 이러한 시선을 바꾸고 e스포츠라는 업계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리더들이 필요한데, 이 리더들은 e스포츠에 대해서 열정만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분야에 대한 전문가여야 합니다. 그 분야가 마케팅이 될 수도 있고, 영업이나 스폰서십이 될 수도 있고 교육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분들이 많아지면서 e스포츠가 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e스포츠 배경이 아니라 교육 배경을 가지고 있고 저희 CEO님 같은 경우에도 메이저리그 야구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e스포츠를 사랑하면서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업계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Read More 간접경험으로서의 보는게임 -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및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를 중심으로 보는 게임이란 무엇인가? 대다수는 'e-스포츠'와 '실황 플레이'를 예시로 들 것이고 실제로 이 두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두면서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2021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기고된 이경혁의 『보는 게임과 Z세대』라는 글에서는 보는 게임의 역사에 대해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구경하는 것과 PC방 문화를 보는 게임의 기원을 삼은 것이다. 후자 같은 경우 PC방이라는 한국적인 현상임을 감안해야 되겠지만, '보는 게임' 자체는 한국뿐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임을 염두에 두면 흥미로운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경혁의 글은 그 점에서 '보는 게임'이 관람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라는 오래된 인류의 유흥거리와 맞닿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Read More 게임기의 라디오 되기, 라디오의 게임기 되기: 이노 겐지의 「리얼 사운드- 바람의 리그렛」(1997)에서 생각할 것들 비디오 게임에서 소리의 영역은 어떤 역사에 맞닿아 있을까? 영화가 문학과 회화, 연극, 음악 등의 온갖 예술사를 흡수하며 갱신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처럼,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서도 직계와 방계를 넘나드는 여러 갈래의 영향 관계가 존재한다. 그 속에서 게임의 소리는 어떤 가능성의 영역이었을까? Read More 니체, 영원회귀, 아모르 파티, 그리고 ‘데스루프’ 〈데스루프〉 는 과정을 즐기는 게임이다. 지금까지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들은, 모두 그 과정의 가치가 결과에 종속되어 있었다. 결국 영원회귀가 가지는 긍정성은 결과에 의해 보장된다. 그리고 그 결실을 얻은 과정은 다시금 플레이 할 가치를 빠르게 잃는다. 그러나 〈데스루프〉 는 그 결말에 이르러 진정으로 모든 과정을 긍정해버리면서 다시금 그 루프로 뛰어들게 만든다. 물론 플레이 메카닉이나 콘텐츠 면에서 다시 이 게임의 파괴와 생성을 플레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게임에서 퇴장한 후에도 이들이 계속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플레이한 과정보다 더 즐거운 유희가 될 거란 것도. 이 부분이 조금은 특별하다. Read More 로우스코어 걸: (Not Really) Full Game Walkthrough 게임의 현실성에서 빠져나와, 잠시 현실의 게임성을 생각해보자. 세계가 0과 1의 현실로 재구성되고 있다 해도, 거기서의 ‘룰즈 오브 플레이’와 그에 따른 난관이 본질상 그대로라면 세계는 언제까지나 익숙한 현실일 뿐이다. 불균등하고 블록화된 구조로 작동하는 접속가능성(connectivity)이라든지, 메타버스와 관련해 각종 투기가 당연하다는 듯 횡행하는 상황 등을 둘러보면, 과거의 기술 물신적 낙관과는 다르게 가상 인프라의 역능 역시도 딱히 평평해지지 않는 세계의 현실에 귀속되어 있는 것 같다. Read More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채팅 비활성화와 게임 커뮤니티 문화 2019년 브리아나 우는 게임이 단순한 모방 범죄와 폭력성을 유발하고 있다는 담론에서 벗어나 이제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와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사회 문제가 생겼을 때 게임을 모방한 사건이나 게임 중독자의 일탈 행동 등 개인의 책임을 묻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이머 문화와 커뮤니티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할 지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Read More 모두를 위한 게임을 향하여: 게임 접근성 문제 게임 접근성을 우리 사회에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관련 제도와 사업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공공과 민간의 노력이 동시에 요청된다. 게임 접근성이 사회권 차원에서 제기되는 공공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공공이 먼저 관련 연구와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우리 사회의 게임 소외계층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고, 그들이 게임에 접근할 시 어려운 점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이용행태를 보이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Read More 무엇이 이스포츠팀을 팀으로 만드는가 2021년 10월말, 이스포츠 업계에서는 전기가 될만한 일이 일어났다. 북미의 명문 이스포츠 구단인 페이즈 클랜이 SPAC을 통해서 내년 상반기에 나스닥 상장을 노린다는 뉴스가 나온 것이다. 사실 이스포츠 구단들의 성장세는 가팔랐고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것이 최초도 아니다. 덴마크의 이스포츠 구단 아스트랄리스는 2019년 나스닥 코펜하겐 거래소에 상장됐고 영국의 길드 이스포츠는 2020년에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놀란 것은 페이즈 클랜 측이 밝힌 기업 가치는 10억 달러였다. Read More 방치형게임, 누가 어떤 마음으로 운영할까? 〈어비스리움〉운영진 인터뷰 스마트폰이 상용화되면서 일상의 많은 것이 컴팩트해졌다. 손안의 기기는 지갑이 되기도 하고 영화를 찍는 촬영 장비가 되기도 한다. 게임 또한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다양한 갈래를 보이고 있는데, 방치형 게임이 그중 하나다. ‘지금부터 당신의 수족관이 시작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는 〈어비스리움〉은 외로운 산호석이 친구를 찾아 힐링한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없던 산호석 주변에 각종 물고기와 산호가 늘어나는 모습은 한 사람의 사회적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유저가 힘들여 움직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Read More 변해가는 게임의 위상, 다큐의 관점도 변한다 - 〈하이스코어〉리뷰 2000년대 중반 이래 게임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들이 간간이 등장해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하이스코어〉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게임 역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큰 틀에서 볼 때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굴한 점이 눈에 띈다. Read More 보는 게임, 그 충족되지 않는 욕망 - 핀볼과 월드플리퍼 사이에서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희소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살아왔다. 쾌락에는 상대적 희소성이라는 맥락이 필요하며, 너무 많으면 지루해진다. 무엇보다 쾌락이 ‘래칫 효과(rachet effect: 수준이 한번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지 않는 효과)’를 일으켜, 자연과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상품화되지 않은 쾌락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린다. 포장된 쾌락은 전에는 귀하고 드물었던 것을 흔하고 따분한 것으로 만든다. 결국 포장된 쾌락 바깥 세계에 대한 흥미가 점차 약해지며 우리는 더 이상 그 세계를 열망하지 않게 된다. 내가 〈몬스터헌터 라이즈〉를 즐길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월드플리퍼〉의 포장된 쾌락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Read More 보는 게임의 한복판에서 보는 현재: 게임유튜버 김성회 ‘보는 게임’을 게임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이를 두고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실제로 조작하지 않는 것은 게임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특별한 조작 없이도 진행되는 ‘방치형 게임’은? 아예 참여하지 않고 관전만 하는 그러니까, 게임 스트리머의 방송을 보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게임을 둘러싼 시선과 그것을 향유하는 방법이 변해가는 오늘날 ‘보는 게임’을 이끄는 유튜브 ‘김성회의 G식백과’의 진행자 김성회를 만났다. 변화의 과정을 생생히 느끼고 있는 만큼 양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Read More 손맛보다 눈맛, 사람들은 이제 게임을 ‘본다’ 2020년 초, 한 모바일 게임의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제 모두들 손 떼!”라고 외치고, 가끔씩만 만져줘도 맛이 최고라며 게이머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게임은 원래 이 맛”이라고 선언한다. “어머, 어딜 손 대요?”라며 능청을 부리기도 한다. 게임의 제목부터 “키보드에서 떨어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위 방치형 RPG로 불리는 〈AFK(Away from keyboard) 아레나〉 이야기다. Read More 스스로 움직이는 게임: 방치형 게임에서의 플레이들 “게임을 한다”라고 하면 무슨 이미지가 떠오를까? 컴퓨터 앞에 앉아 역동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모양새를 “게임을 한다”라고 칭하던 시절이 있었다. “타닥타닥”(키보드), “딸깍딸깍”(마우스), “삐걱”(의자). PC방이라면 “웅성웅성”까지. 사람들은 기계 앞에 올곧이 앉아서 게임에 몰두한다. 누가 봐도 게임을 하는 모습은 티가 났다. 그래서 게임을 할 때 방, 거실, 피시방, 플스방 같이 분리된 공간으로서 게임의 장소가 중요했고, 사람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그곳에 방문을 해야 했다. Read More 왜 스네이크는 들개가 되었는가 1987년 코지마 히데오(小島秀夫, Hideo Kojima) 감독이 제작한 〈메탈 기어(Metal Gear)〉는 여러 가지 의미로 특이한 게임이었다. 한 명의 캐릭터로 적진을 돌파한다는 점은 같은 제작사의 〈콘트라(Contra)〉 시리즈, 그 외 많은 게임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스테이지를 헤쳐나가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사뭇 새로운 감각이었다. Read More 왜 한국 콘솔시장은 작을까? - 한국 콘솔게임에의 회상 8, 90년대에 성장한 게이머들은 아마 대부분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한국 게임 시장에서 콘솔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2020 게임백서에 따르면 4.5%인데, 사실상 명맥만 남았다고 볼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의 비율이 1.4%다. 북미의 38.4%와 유럽의 37.5%, 남미의 19.1%는 물론이고 2022년 세계 시장 비율인 25.2%와도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시장의 콘솔 게임 비율은 8.7%인데, 한국의 작은 콘솔 시장이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다. 반면 PC 게임과 모바일 게임은 아시아에서 각각 25.7%과 54.1%로 다른 권역에 비해 차이가 극명하다. Read More 일본의 보는 게임: 같은 듯 다른 일본의 상황들 일본의 ‘보는 게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보는 게임은 확실히 기존의 하는 게임과는 구별되는 현상이지만 완전한 새로운 것은 아니며 이전에도 존재했다. 특히 가정용 콘솔과 함께 일본의 게임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아케이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임센터에서는 이러한 ‘보는 게임’은 흔하게 일어나는 광경이었다. Read More

  • [논문세미나] Time War: Paul Virilio and the Potential Educational Impacts of Real-Time Strategy Videogames

    이번 논문 세미나는 하나의 사진과 함께 시작해 보려고 한다. 2011년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백악관 상황실에서 찍힌 이 사진에서 오바마를 비롯한 현장의 인물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시선을 한데 모으고 있다. 회의를 하면서 띄워둔 자료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 심각한 문제 발언을 했던 걸까? 여러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사진은 사실 빈 라덴 급습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을 지켜보고 있는 현장을 포착한 것이다. 이들은 빈 라덴이 사살되기 전까지 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을 모두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 Back [논문세미나] Time War: Paul Virilio and the Potential Educational Impacts of Real-Time Strategy Videogames 18 GG Vol. 24. 6. 10. 들어가며 이번 논문 세미나는 하나의 사진과 함께 시작해 보려고 한다. 2011년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백악관 상황실에서 찍힌 이 사진에서 오바마를 비롯한 현장의 인물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시선을 한데 모으고 있다. 회의를 하면서 띄워둔 자료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 심각한 문제 발언을 했던 걸까? 여러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사진은 사실 빈 라덴 급습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을 지켜보고 있는 현장을 포착한 것이다. 이들은 빈 라덴이 사살되기 전까지 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을 모두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이 사진이 보여주는 건 두 가지다. 첫째, 이제는 그 어떤 전투(또는 전쟁)든 원격으로 지켜보는 것이 가능하다. 둘째, 지금 내 눈앞에서 전투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는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있다. 이제 전투는 우리 눈에 굳이 보이지 않아도 될 만큼 빨라지고, 또 효율적이 되었다. 그리고 일찍이 이에 관한 것을 이론화한 인물이 프랑스의 정치 이론가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다. 오늘 보게 될 데이비드 웨딩턴(David I. Waddington)의 논문은 비릴리오의 <속도와 정치(Vitesse et Politique)> 및 <소멸의 미학(Esthetique de la disparition)>을 통해 실시간 전략 게임(Real-time strategy, 이하 RTS 게임)을 살핀다. 교육철학 연구자인 웨딩턴은 비릴리오의 이론을 RTS 게임과 아울러 보고, 해당 게임이 가진 교육적 가능성을 발굴해 내고자 한다. 비릴리오의 ‘속도’ 개념 비릴리오(Virilio, 2004)는 <속도와 정치>에서 정치 및 전쟁을 ‘속도’에 연관 지어 바라보았다. 그는 해당 저작을 통해 속도는 곧 시간과 같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런 비릴리오의 사유는 고대부터 1900년대까지 다양한 시대를 넘나들며 진행된다. 비릴리오 연구자인 존 아미티지(John Armitage)는 그의 사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본디 도시는 요새화된 형태로 유지되고 있었으며, 그 자체로 정치적인 공간이자 토대였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면서 요새화된 도시는 점차 사라졌고, 비릴리오는 이 같은 변화에 집중했다. 그 안에서 비릴리오가 주요하게 보고자 한 것은 요새화된 도시가 사라지게 된 이유였다. 아미티지(Armitage, 2003)는 비릴리오가 쉽게 운반할 수 있고 가속화된 무기체계가 등장한 것을 원인으로 지목했다고 설명한다. 쉽게 운반할 수 있다는 건 운반 시간을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며 가속화된 무기체계가 등장했다는 건 이전보다 더욱 빠른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비릴리오가 정치와 전쟁을 속도와 연결 지어 보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그래서 비릴리오가 볼 때 전쟁은 속도의 문제이며, 속도는 시간이나 마찬가지다. 즉 군사적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속도에 관한 요소들이 나타나면서 요새화된 도시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게 비릴리오의 주장이다. 이런 비릴리오의 의견은 맑스와는 대조적이다. “맑스가 유물론적인 역사 개념을 쓴 곳에서 비릴리오는 군사적 역사 개념”(Armitage, 2003, 10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논문의 연구자인 웨딩턴도 비릴리오의 속도 개념을 몇 가지 핵심 요소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에른스트 윙거(Ernst Jünger)에게서 따온 ‘총동원’이라는 용어다. 총동원은 전시 상황/비전시 상황을 가리지 않고 사회에서 활용되는 것들을 함축한 말이다. 이것은 경찰의 군사화, 신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 감시의 증가 등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두 번째는 ‘병참’이다. 병참은 비전시 상황에도 사회의 에너지를 군대에 모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병참은 총동원이 보이는 형태들과 연결되며, 세 번째 요소인 ‘공간의 붕괴’로도 통한다. 과거에는 좋은 지형(공간)을 선점하고, 그 지형을 감시와 위협에 활용하는 것이 전쟁에서 유리해지는 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쟁은 그 성격이 바뀌었다. 컴퓨터와 드론, 미사일, 핵무기가 공간의 의미를 잃게 만든 것이다. 이제 공간을 선점하는 것은 전쟁을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 전쟁을 벌이던 공간은 붕괴하였으며, 유리함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활용해야만 한다. 네 번째 요소는 ‘사라짐’이다. 그동안 전쟁의 이미지는 탱크, 전투기 등으로 대표되었지만, 오늘날의 전쟁에서 탱크와 전투기는 이전만큼 보이지 않는다. 사실 탱크와 전투기의 사라짐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일련의 단계가 존재한다. 지금은 위장하기 용이한 색과 무늬를 띠고 있으나, 이전의 군복은 눈에 띄는 밝은 색상이었다. 이런 군복은 점점 사라져, 현재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그럼, 거기서 끝일까? 아니다. 위장된 군복을 입은 군인은 탱크와 전투기 속으로 사라졌다. 맨몸으로 치고받으며 행해지던 전투는 차체와 기체를 이용하여 행해졌다. 그리고 이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된’ 전쟁은 최종적으로 사회 구조에서도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전쟁은 일상 어디서든 함께하고 있다. 이렇게 비릴리오의 이론을 정리한 웨딩턴은 그러한 관점을 토대로 RTS 게임을 바라본다. 그는 총동원, 병참, 공간의 붕괴를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인 장소 중 하나로 게임, 그중에서도 RTS 게임을 지목한다. 속도: 게임의 이름 이 연구는 RTS 게임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실 웨딩턴은 FPS 게임과 MMORPG 게임 또한 비릴리오의 이론에 적합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웨딩턴이 RTS 게임만을 본 건, 해당 게임이 총동원과 병참, 공간의 붕괴, 시간이 중요해진 전쟁을 제대로 이미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웨딩턴은 <스타크래프트(StarCraft)>를 예로 들어 RTS 게임의 작업 단계를 설명한다. 첫 번째는 자원 채집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자원이라면 광물과 가스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실시간 전투 여부에 상관없이 꾸준히 축적해야 하는 것이다. 자원을 채집하기 위해서는 유닛의 쓰임새를 구분할 줄 알고, 자원 채집 장소를 탐색하는 등 여러 관리가 필요하다. 이 자원채집은 ‘총동원’에 해당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총동원이 떠오르는 작업이 있다면 ‘병참’에 걸맞은 작업도 있기 마련이다. 바로 건물 건설과 군사 유닛 생성이다.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유닛을 생성하고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건물을 건설해야만 한다. 건물은 곧 강력한 유닛 생성과 연관되며, 이는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승리를 위한 밑 작업인 건물 건설과 유닛 생성은 총동원 격인 자원채집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병참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공간의 붕괴’로 대표되는 건 본거지를 방어하면서 적군을 제거하고, 적의 기지까지 파괴하는 행위이다. 특히나 강력한 군사 유닛은 혼자서도 밝혀지지 않은 맵을 탐험하고 적 기지를 감시하며, 원거리 급습을 효과적으로 이뤄낼 수 있게 한다. 테란의 유닛인 고스트로 적 기지를 조사하고 핵탄두를 떨어트리는 게 이에 해당할 것이다. ‘실시간 전략 게임’이라는 그 의미처럼 RTS 게임은 속도가 중요한 환경에서 펼쳐진다. 일꾼 유닛과 군사 유닛을 신속하게 배치하고 생산과 탐사를 효율적으로 할수록 승리 확률이 높아진다. 플레이어는 재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여, 속도에 따라 모든 것을 통제해야만 한다. 이러한 이유로 웨딩턴은 RTS 게임이 시간을 활용한 전쟁 게임이라고 본다. 학습과 RTS 게임: 긍정적인 관점 앞서 이야기했듯이 웨딩턴은 교육학 연구자이다. 그래서인지 웨딩턴은 이번 장에서 비릴리오의 개념을 잠시 내려두고, 다른 연구를 인용하며 RTS 게임이 가지는 학습 효과를 살핀다. 먼저 웨딩턴이 인용한 지(Gee, 2003)의 글은 RTS 게임을 하면서 느낀 압박감을 서술하고 있다. 지는 RTS 게임에 미숙하여, 게임이 요구하는 것보다 느린 속도를 가진 플레이어였다. 이런 지는 <라이즈 오브 네이션스(Rise of Nations)>를 통해 게임을 학습하는 방식에 대해 풀어낸다. 이를테면 지는 게임 내 일시 정지 버튼에 관심을 보였다. 일시 정지 버튼은 빠르게 진행되는 게임을 잠시 멈추게 하여, 플레이어가 화면 내 기능들을 살피고 전략을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해당 게임에는 조작 숙달을 돕는 각종 테스트가 존재했다. 지는 그를 통해 일종의 단련을 할 수 있었다. 일시 정지와 테스트로 나타나는 시스템의 배려는 게이머가 언제든 전투에 참여할 수 있게 대비시켜 준다. 웨딩턴이 지의 이야기를 끌어온 건 느린 속도의 게이머가 ‘실시간’으로 넘어갈 수 있게끔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위해서다. 그러면 웨딩턴이 이 주장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그 후에 인용된 블레어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블레어(Blair, 2013)는 <스타크래프트 2(StarCraft 2)>를 비롯한 RTS 게임의 플레이어 주도적인 통제 환경이 실생활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사실 여기에는 다양한 반박이 가능하다. 한 분야에서 획득한 전문성을 곧장 다른 영역에 적용하기 어렵다는(Thorndike & Woodsworth, 1901) 의견을 이 반박에 포함할 수 있겠다. 하지만 웨딩턴은 그를 인지하면서도, 블레어의 말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에 더 주목하였다. 학습에 활용될 수 있는 RTS 게임의 가능성을 보려고 한 것이다. 학습 속도: RTS 게임과 경험의 아치 지와 블레어 두 사람은 RTS 게임에서 획득할 수 있는 학습 효과를 서술하였다. 지의 경우에는 게임이 어떻게 플레이어를 그 안으로 이끌 수 있을지 말하고, 블레어는 게임으로 습득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해 얘기한다. 이에 웨딩턴은 그들의 주장에서 도출해 낸 생각을 밝힌다. 하나는 게임을 속도와 효율성을 단련하는 훈련으로 본 자신과 저들의 이야기가 일치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게임에서 학습되는 요소가 눈에 띄는 만큼, 그 안의 문제성도 관심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웨딩턴은 특히 후자를 유의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게임을 통한 학습이 가지는 문제점은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훈련 시킨다는 데에 있다. 이 사고방식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활용 가능한 것으로만 보는 시선(Heidegger, 1977: Ellul, 1964: Dreyfus, 2002: Borgmann, 1984, 1992 재인용)을 의미한다. 이런 부분에서 웨딩턴이 전유하는 속도 개념은 RTS 게임을 비롯하여 여타 게임으로 학습할 수 있는 요소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게임 경험은 우리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아니면 나쁜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사회에 좋은 방향으로 성장했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시선이 무미건조해지지는 않겠는가? 교육학자인 듀이(Dewey, 1938)는 “모든 경험은 이전에 있었던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흡수하는 동시에 어떤 식으로든 이후에 오는 경험의 질을 수정”(12쪽)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모든 경험은 아치’와 같다는 시를 인용하여, 경험에 차별을 둘 근거는 없다고도 이야기했다. 이번 장 제목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 듀이의 글은 RTS 게임 경험과 학습에 대한 웨딩턴의 생각을 어느 정도 대변하는 듯하다. 주요 이의 제기 경험을 아치에 빗댄 듀이의 글은 사실 게임 내 폭력적인 경험이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근거로 이용되기도 한다. 웨딩턴은 게임에서 행해지는 폭력적인 행위가 단순 놀이로만 해석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시카트(Sicart, 2009)의 주장은 게임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주류 의견에 반대된다. 시카트는 플레이어가 즉각적인 입력과 출력을 따르므로 그러한 행동이 나온다고 말한다. 이때 즉각적인 입력과 출력은 몬스터를 죽이고 골드를 얻는 것과 같은 행위를 뜻한다. 이런 시카트는 플레이어 개인의 가치와 판단 능력이 게임 시스템과 결합하여 새로운 해석을 낳을 수 있다고 본다. 시카트의 주장은 <맨헌트(Manhunt)> 분석을 통해 심화한다. <맨헌트>는 사람을 쇠지레로 때려죽이거나 비닐봉지로 목 졸라 죽이는 등 실제 살인이 연상되는 잔인함으로 유명한 게임이다. <맨헌트>는 내용상 무조건 살인을 저질러야만 하는데, 시카트는 이렇게 강제된 상황이 오히려 윤리에 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준다고 설명한다. 웨딩턴은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그런 반성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하지만, 시카트의 지적 자체는 옳다고 말한다. 게이머가 게임을 하면서 벌이는 행동과 게임 자체에 대한 평가는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웨딩턴은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RTS 게임에서 속도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 가상의 폭력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보다, 가상의 속도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예를 들면 <맨헌트>에서 가상의 살인을 저질러도 현실의 내가 살인자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게임 도중 재빠른 판단을 내리는 이는 이후에도 판단력 좋은 사람으로 인식된다. 한 마디로 게임을 하면서 나타난 속도는 현실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둘째, RTS 게이머는 플레이 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속도와 효율을 꼽는다. <스타크래프트> 플레이어가 자신의 속도를 높이는 것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한다는 연구 결과(Kow and Young, 2013: Yan, Huang, & Cheung, 2015 재인용)를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만큼 속도는 RTS 게임 한 판 한 판을 책임지는 필수 요소다. 웨딩턴의 서술 흐름이 시카트에서 속도 개념으로 흐르게 된 것은 게임과 속도에 관련된 담론이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반영된 게 크다. 웨딩턴이 보는 RTS 게임은 모든 것을 자원으로 보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효율성에 관해 학습할 수 있는 장소다. 또한 전쟁이 일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 전쟁 체험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게임을 속도와 연결해 바라보는 시도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웨딩턴은 게임이 실제 폭력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처럼 속도에 관한 것도 주시해 보기를 제언한다. 나가며 웨딩턴이 속도 개념을 이용해 궁극적으로 역설하고자 한 건 게임을 통해 효율적인 학습, 내지는 훈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웨딩턴의 주장은 자칫 효율 중심적인 사고로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존재한다. 이는 웨딩턴 그 자신 또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비릴리오의 속도 이론은 웨딩턴이 전개한 것과는 달리, 비판적인 입장에서 작성된 것이었다. 물론 비릴리오가 기술의 긍정적인 부분을 완전히 배제한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그의 글에 기술에 대한 경계가 서려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웨딩턴의 주장은 교육학 연구자라는 그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지만, 비릴리오의 속도가 왜곡되게 이해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움이 남는다. 그래도 웨딩턴의 이야기 자체에만 집중해 보자면, 효율성이 게임의 인상에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낙관적인 생각도 든다. 게임을 통해 학습 효과를 증진시키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상당한 이점이다. 즉 그동안 지배적이었던 폭력성이나 중독에 관한 담론을 탈피할 가능성도 생긴다는 소리다. 그러나 몇 가지 질문도 함께 남는다. 게임은 오직 효율성을 입증해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가? 게임에서 효율성과 학습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최근 게임을 이용한 교육이 조명받기 시작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할까? 이는 앞으로의 게임과 우리의 인식에 남겨진 숙제가 아닐까 한다. 참고문헌 Armitage, J. (2003). 폴 비릴리오의 정치 이론-<속도와 정치>를 중심으로 (서문), <속도와 정치> (7-42쪽). 이재원 (역) 서울: 도서출판 그린비 Blair, M. (2013). Real-time strategy video games; a new ‘drosophila’ for the cognitive sciences. [Online video]. Retrieved from https://www.sfu.ca/cognitive-science/defining-cognitive-scienceseries/dcs-archive/2013/spring/blair-rts-games-expertise.html (현재 이용 불가) Borgmann, A. (1984). Technology and the character of contemporary life. Illinoi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Dewey, J. (1938). Experience and education, Free Press. Gee, J. P. (2003a). What video games have to teach us about learning and literacy. London: Palgrave-MacMillan. Gee, J. P. (2003b). Learning about learning from a video game: Rise of nations. Wisconsin: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Sicart, M. (2009). The ethics of computer games. Massachusetts: MIT Press. Thorndike, E. L., & Woodsworth, R. S. (1901). The influence of improvement in one mental function upon the efficiency of other functions. Psychological Review, 8(6), 247-261. Virilio, P. (1977). Vitesse et Politique. 이재원 (역) (2004). <속도와 정치>. 서울: 도서출판 그린비. Yan, E. Q., Huang, J., & Cheung, G. K. (2015). Masters of control: Behavioral patterns of simultaneous unit group manipulation in StarCraft 2. Paper presented at the Proceedings of the ACM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 Seoul. Tags: 비릴리오, 가속, 속도의정치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백구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관해 관심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비주얼 노벨 올 클리어에 열을 올리는 중입니다.

  • [논문 세미나]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

    〈이브 온라인(Eve Online)〉은 현재 ‘펄어비스’가 인수한 아이슬란드의 게임 제작사인 ‘CCP 게임즈(CCP Games)’가 2003년 출시한 SF 샌드박스 MMORPG이다. 가상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브 온라인〉은 오픈 월드 시스템을 통해 광활한 맵을 제공하며, 이곳에서 일어나는 유저의 다양한 행위들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높은 자유도를 제공한다. RPG이지만 이 게임에는 캐릭터의 직업이 없다. < Back [논문 세미나]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 12 GG Vol. 23. 6. 10. 1. 들어가며 〈이브 온라인(Eve Online)〉은 현재 ‘펄어비스’가 인수한 아이슬란드의 게임 제작사인 ‘CCP 게임즈(CCP Games)’가 2003년 출시한 SF 샌드박스 MMORPG이다. 가상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브 온라인〉은 오픈 월드 시스템을 통해 광활한 맵을 제공하며, 이곳에서 일어나는 유저의 다양한 행위들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높은 자유도를 제공한다. RPG이지만 이 게임에는 캐릭터의 직업이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콘텐츠를 하면서(혹은 파고 들면서) 직업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PVP, 탐험, 채굴, 운송 등 게임 내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자신만의 플레이 스타일을 구축하여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또 게임 내 자체적인 경제가 형성되어 있다. 유저들 간의 거래를 통해 만들어지는 경제는 〈이브 온라인〉만의 독특한 자유도이기도 하다. 〈이브 온라인〉의 유저 사이의 역학 관계는 게임의 자유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지금의 〈이브 온라인〉이 있기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저들의 옴니버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논문 세미나에서 리뷰할 논문인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는 2015년 ‘Games and Culture’ 저널에 게재된 논문이다. 저자인 마커스 카터(Marcus Carter)는 시드니 대학에서 HCI, AR, VR 등과 함께 게임을 연구하는 연구자이다. 그는 평소 대규모 멀티플레이어 유저 활동에 대해 초점을 두고 연구를 해왔다. 〈이브 온라인〉이나 〈DayZ〉와 같은 온라인 게임에서 유저 사이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사회적 플레이 연구를 진행해왔다. 해당 논문은 〈이브 온라인〉의 PVP 콘텐츠에서 이루어지는 유저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 〈이브 온라인〉의 PVP 콘텐츠 중 독특한 하나는 바로 대규모 PVP이다. 전쟁으로 표현되는 대규모 PVP는 게임 내 서버가 단일 서버라는 특징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인 MMORPG의 경우, 여러 서버로 나누어져서 각 서버만의 길드는 유저들을 묶는 그룹이 된다. 길드가 대체로 큰 규모라고 해도 200명 내외에 그친다. 그러나 〈이브 온라인〉의 경우는 다르다. 게임 내 길드와 같은 시스템인 코퍼레이션(Corporation)과 얼라이언스(Alliance) 기능과 함께 비공식적으로 존재하는 세력 단위인 코얼리전(Coalition)이 타 게임의 채널이나 서버와 같은 인원수로 구성된다. 수천~만 명으로 구성된 코얼리전은 게임 내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 이러한 그룹 사이의 분쟁은 실제 전쟁과 같이 다양한 전술과 전략이 동원되는데, 이 중 ‘프로파간다’에 주목하고 있다. 2. 〈이브 온라인〉의 전쟁 〈이브 온라인〉의 우주는 ‘하이섹(High-sec)’, ‘로우섹(Low-sec)’, ‘널섹(Null-sec)’의 세 가지 유형의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는 보안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 〈이브 온라인〉의 보안은 NPC 팩션인 ‘콩코드(CONCORD)’를 통해 이루어진다. 적대 행위(PVP 등과 같은)나 자신의 보안 정도가 지역의 보안 정도보다 낮다면 콩코드에게 공격받게 된다. 이는 게임이 제공하는 어느 정도의 유저 보호 안전장치이다. 그러나 이 지역 중 널섹은 완전한 무법 지대이다. 여기서는 콩코드의 보호 기능이 제공되지 않고, 유저는 완전히 혼자만의 경쟁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유저들은 코퍼레이션과 얼라이언스 등의 그룹화를 통해 널섹에서의 활동에서 안전을 확보한다. 널섹은 아직 유저에 의해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다. 이에 자신들의 공간으로 확보하게 되면, 게임 내 자원이나 그 소유권을 주장하여 통제할 수 있는 지역이다. 이는 마치 자신들만의 서버를 얻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즉, 결과적으로 게임 내 부와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간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코퍼레이션 규모의 그룹으로는 통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얼라이언스나 이들이 모여 코얼리전을 구성하기도 한다. 얼라이언스나 코얼리전 간의 소유권 분쟁이 〈이브 온라인〉의 전쟁 양상이다. 유저 간의 전쟁은 수천~만 명의 유저가 참여하여, 몇 주 동안 이루어지는 전쟁은 수차례의 전투를 포함하기도 한다. 게임 내 전쟁은 군사 지휘 구조를 수립하기도 하고 광범위한 전략과 전장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룹 사이의 외교적 노력을 통해 다른 코얼리전의 그룹을 전쟁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거나, 자신의 코얼리전으로 들어오도록 회유하고, 위협하는 등의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일들이 동반된다. 〈이브 온라인〉의 전쟁은 지역을 확보하여 자원을 독점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함선을 구축하는 것은 자신들의 게임 플레이와 함께 이후의 다른 지역을 점령하기 위한 전쟁을 위해서도 필요한 행위가 된다. 3. 패러텍스트(paratext) 여기서 저자는 〈이브 온라인〉의 전쟁 속 복잡한 계략과 전술의 중심에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유저가 만들어내는 텍스트나, 비디오 및 이미지인 프로파간다가 있다고 본다. 인터넷 밈을 활용한 비유나 농담, 게임의 역사, 인종, 문화,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자극하는 프로파간다 미디어는 자신 세력의 지지를 강화하거나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전쟁 캠페인에서 승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브 온라인〉에서 프로파간다가 취하는 다양한 형태를 개괄하고 이러한 비디오, 텍스트 및 이미지가 새로운 형태의 패러텍스트로 개념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패러텍스트는 제라르 주네트(Gerard Genette)의 문학 이론에서 파생된 것으로 제목, 리뷰, 목차 또는 책 표지와 같이 문학 텍스트를 둘러싼 자료를 의미한다. 주네트는 이러한 패러텍스트가 문학 텍스트의 수용 및 소비를 보장하는 주변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패러텍스트 개념은 미아 콘살보(Consalvo, 2007)에 의해 게임 연구에 도입되었다. 게임 산업에서 콘살보의 패러텍스트 개념 적용은 게임 잡지, 전략 가이드 등과 같이 게임을 둘러싼 주변 산업을 의미한다. 이러한 미디어가 특정한 방식으로 게임 플레이 경험을 형성하기 위해 작동하고 있고, 이를 구조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보았다. 제네트의 패러텍스트는 유동적인 텍스트의 가능성과 현대 게임과 패러텍스트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역동성을 고려하진 않았다. 콘살보 또한 “게임은 플레이가 한 가지 방법뿐이며 불변하지 않고, 주변 담론보다 더 정적이고 고정적일 수 있으며, 그러한 담론은 컴퓨터 게임의 패치(즉 패러텍스트 그 자체)보다 훨씬 쉽게 변화, 수정, 업데이트 또는 철회될 수 있다”고 보았다(Consalvo, 2007: p.12). 그러나 저자는 〈이브 온라인〉의 경우, 기존 패러텍스트 양상이 적용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이브 온라인〉은 샌드박스 게임으로, 유저에게 다양한 어포던스(affordance)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종종 예상치 못한 방식의 플레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유저가 게임 세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다른 가상 세계 게임과는 대조적이다. 〈이브 온라인〉에서 대부분의 게임 플레이 방식은 유저 주도로 만들어진다. 또한 이와 함께 계속해서 업데이트, 패치 및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게임 내 세계와 콘텐츠가 변화하고 있다. 이에 〈이브 온라인〉은 단순히 프로파간다 미디어가 존재하고 영향을 미치는 정적인 텍스트가 아닌 그 자체로 역동적인 텍스트라고 보았다. 4. 〈이브 온라인〉 속 얼라이언스 ‘GSF’와 ‘TEST’의 전쟁 TEST는 소셜 커뮤니티 ‘레딧(Reddit)’과 비공식적으로 연관된 ‘디레딧(Dreddit)’의 상위 얼라이언스이다. 디레딧의 회원이 되기 위한 요건은 레딧에서 3개월 동안 활성 상태인 계정이거나 기존 멤버의 추천이다. 대부분의 코퍼레이션에서는 기존 멤버의 추천이나 최소한의 스킬이나 재산을 요구하기 때문에 다른 그룹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이에 TEST의 멤버는 〈이브 온라인〉에 서툴다는 평판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전쟁이나 전투에서 패배한 상대를 당황케 하기도 하고, TEST 그 자체의 손실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이 특징은 동질감을 가진 다수의 멤버를 확보할 수 있는 강점이기도 했다. 저자가 디레딧과 TEST에 합류하여 연구를 시작했을 때, 가장 가까운 얼라이언스 중 하나는 TEST와 비슷한 구조인 GSF(GoonSwarm Federation)이었다. 이들은 게임 내 트롤링과 비방을 일삼으면 독특한 문화와 명성을 얻고 있는 온라인 게시판인 ‘ SomethingAwful.com ’ 포럼과 비공식적 관계를 맺고 있는 ‘GoonWaffe’의 상위 얼라이언스였다. TEST의 창설 이후 이들과의 충돌이 있었는데, 이때 당시 GSF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GSF는 TEST에게 ‘뉴비’ 얼라이언스라는 점에 조언, 보호 같은 지원과 함께 비 침략 협정을 제안하여 몇 년 동안 거대한 연합을 구성했다. 이들 사이의 관계는 “Space bros.”라고 지칭될 정도였다. * TEST Alliance 로고(왼쪽) – 출처: https://pleaseignore.com/. GSF 로고(오른쪽) – 출처: https://evemaps.dotlan.net/alliance/Goonswarm_Federation 이들 사이의 전쟁은 TEST가 독립적으로 거대한 규모가 된 시점에서 시작된다. TEST는 GSF의 적이었던 NC(Northern Coalition)과 PL(Pandemic Legion)과 함께 새로운 코얼리전인 HBC(Honey Badger Coalition)을 결성하여 한때 3만 명 이상의 유저를 연합하여 GSF와 그 코얼리전인 CFC(ClusterFuck Coalition)에 대항하는 그룹을 형성했다. HBC와 TEST의 리더였던 몬톨리오(Montolio)는 〈이브 온라인〉에서 모든 얼라이언스의 동맹화하려 했다. 그러나 TEST와 GSF 주축의 HBC와 CFC 코얼리전 사이에서 이루어진 냉전은 게임 내 많은 정치적 사건들을 동반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 프로파간다였다. GSF와 CFC의 리더인 더 미타니(The Mittani)는 자신의 〈이브 온라인〉 뉴스 웹사이트인 ‘ themittani.com ’에서 프로파간다 공세를 통해 몬톨리오를 게임 내 전쟁 발발 이전에 정치적으로 리더 자리에서 사임시킬 수 있었다. 1) TEST 얼라이언스와 Rebel 얼라이언스 TEST의 새로운 리더였던 소트 드래곤(Sort Dragon)은 능력 부족으로 인해, TEST의 새로운 지도부 멤버였던 부다부다(BoodaBooda)가 TEST가 HBC로부터 독립했다. 그는 몬톨리오가 만들어왔던 것을 허물고 다시 HBC의 얼라이언스들과의 연합을 끊고 CFC와의 대립을 위해 반란(Rebel)을 선언했다. 이와 함께 ‘Rebel Command’라는 새로운 비공개 포럼이 만들어지고 Rebel 얼라이언스에 대한 프로파간다 주제가 포럼을 장악했다. Rebel 얼라이언스를 지지하는 TEST의 멤버들은 이 주제에 뛰어들어 여러 새로운 프로파간다를 제작했다. 이들은 소트 드래곤과 CFC를 ‘악의 제국’으로 간주하며, TEST 얼라이언스를 반란군으로 선전했다. 반란 프로파간다 이미지와 수사법은 〈이브 온라인〉 포럼이나 레딧, 게임 내 채팅, TEST 채팅 등을 통해 널리 공유되어, 부다부다에 동조할 수 있도록 하는 내러티브를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반란군이라는 약자 포지셔닝은 〈이브 온라인〉 내에서 TEST에 대한 약자 인식과도 관련되어 있어서 레딧을 통해 신규 멤버를 모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 Rebel 얼라이언스의 프로파간다 이미지(Carter, 2015) * 부다부다의 프로파간다 이미지(Carter, 2015) 2) The Great Fountain 전쟁(대분수 전쟁) 〈이브 온라인〉의 새로운 확장팩은 널섹에서 특정한 광물을 찾을 수 있는 위치에 대한 변화를 가져 왔다. 이러한 변화는 CFC에 대한 자원의 절대적인 통제권과 이러한 지역을 지키는 얼라인어스의 보호를 무력화하기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동맹이 아닌 TEST 얼라이언스가 점령한 공간이 순식간에 게임 내에서 가장 가치 있는 지역이 되었다. 이에 CFC와 GSF의 리더 더 미타니는 GSF가 가난해졌다고 주장하면서 거대한 프로파간다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CFC는 확장팩 업데이트 이후 며칠 만에 Fountain(이하 파운틴)으로 알려진 이 지역에 대한 침공을 발표했다. TEST, PL, N3(HBC 이후 새로이 결성된 코얼리전)의 연합군은 거의 일주일 동안 파운틴에서 CFC에 대항하여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전쟁에서 또한 다양한 프로파간다 이미지가 동원되었다. * 전쟁 프로파간다(Carter, 2015) 대분수 전쟁은 냉전 시대처럼 주로 군사적, 전투적 승리가 아닌 전략과 첩보에 기반한 승리를 거두었다.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에서는 비난받는 행위이지만, 배신과 배반과 같은 행위는 〈이브 온라인〉이 유저에게 어필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이다. TEST 얼라이언스가 파운틴 내 시스템을 CFC에게 빼앗긴 첫 번째 배신은 TEST의 전 리더였던 소트 드래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CFC와 협력하여 자신이 갖고 있던 시스템 통제권을 넘겼고, CFC가 이를 장악했다. 이후 더 큰 배신은 잠입한 N3 코퍼레이션이 연합군과의 합의에 따라 해체되면서 재산을 약탈당하는 사건이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TEST의 군사 책임자는 TEST 내 멤버들에게 전투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TEST의 정체성에 대한 프로파간다를 하기도 했다. 그의 프로파간다는 다른 얼라이언스에게 “죽음이 보장된 상황에서도 TEST는 단결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파간다였다(BoodaBooda, 2013; Carter, 2015 재인용). 대분수 전쟁의 마지막 전투에서 동원된 프로파간다는 상대방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봉사자인 멤버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 TEST 강탈 전쟁 패배 후 부다부다는 사임하고 TEST는 통제권을 포기하며, 새로운 리더 스키어X(SkierX)의 아래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PVE 활동을 하는 유저들을 사냥하고 지불 협상을 위해 대기하여 현금을 받는 대가로 동맹이 될 것이라는 계획을 통해 적 연합군이 소유한 4개 지역에서 강도 저직을 운영하며 소규모 얼라이언스 및 코퍼레이션에게 임대하는 조직범죄 집단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TEST의 행보에 따른 프로파간다 테마는 마피아에 기반하며 미국-이탈리아 범죄 조직에 대한 대중문화적 비유를 불러일으키고, 〈대부〉나 〈스카페이스〉와 같은 상징적인 영화의 장면을 변용했다. 스키어X는 이 프로파간다 이미지가 레딧 유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멤버를 늘리기 위한 강력한 선전은 레딧에서 TEST의 관심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TEST가 시도한 강탈은 대규모 그룹에서 시도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참신함은 새로운 유저를 유치하고 기존 기반을 활성화하는 방법으로서 TEST 운영진에게 어필할 수 있는 측면도 있었다. TEST는 이후 다시 결속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 TEST 얼라이언스의 강탈(Carter, 2015) 5. 에미텍스트(emitext)로서의 프로파간다 저자는 〈이브 온라인〉 속 전쟁 전후로 전개된 프로파간다가 게임을 둘러싼 주변부 산업이 아닌 게임 내에서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나타나는 패러텍스트의 한 형태인 에미텍스트라고 주장한다. 주네트의 문학 텍스트와는 달리 현대 디지털 게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게임 세계의 환경과 어포던스는 게이머 행동의 결과로 변경되기도 하고 변형될 수 있다. 특히 〈이브 온라인〉의 샌드박스 특징은 이를 더욱 잘 보여준다. 1) 플레이로서의 프로파간다 프로파간다를 에미텍스트로 이해하는 핵심은 〈이브 온라인〉의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제작되는 방식이다. 〈이브 온라인〉 유저의 일부만이 대분수 전쟁에 직접 참여했고, 그 대부분은 보병에 불과했다. 이들은 특정 시간에 〈이브 온라인〉에 접속하여 아군과 함께 비행하고 대규모 함대전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몇몇 소규모의 유저 그룹은 자신들의 얼라이언스를 이끌고, 전략과 전술을 개발하고, 자원을 관리하며 전쟁의 병참을 조율하는 워게임(wargaming)을 했다. 프로파간다는 이러한 보병 지원자를 모집하고 참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얼라이언스 지도자들은 프로파간다가 대규모 콘텐츠 제작 경험을 주도하는 데 도움이 되면서, 멤버들에게 맥락, 내러티브, 소속감을 부여하는 데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프로파간다의 이 효과는 저자가 살펴본 바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프로파간다가 강조하는 것은 어떤 전술과 전략을 사용할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프로파간다 제작자들은 얼라이언스의 승리나 전쟁과 같은 유형의 플레이 자체보다 얼라이언스 멤버를 위한 콘텐츠 제작에 더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즉,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저들이 어떤 목적이든 함께 플레이하고 싶게 만들고, 함께 즐기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이브 온라인〉은 결국 게임의 맥락에서 전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프로파간다 이미지 그자체는 결국 〈이브 온라인〉 내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전략적인 전쟁 게임의 일부이자 그 자체로 플레이가 된다. 2) 〈이브 온라인〉 프로파간다와 역사, 문화비유로서 프로파간다. 〈이브 온라인〉에서 프로파간다는 얼라이언스 지도부가 자신의 구성원 또는 상대 얼라이언스에 대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로 역할을 한다. 여기서 제시되는 프로파간다 사례의 주제는 각각 게임 내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유저를 특정한 내러티브로 설득하려는 시도이다. 〈이브 온라인〉 프로파간다 제작의 경향성은 실제 역사적 프로파간다 이미지와 효과를 재사용하는 것이다. 프로파간다에서 역사적 프로파간다를 활용하는 방식은 사회, 역사, 문화적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대의 패러텍스트가 존재하는 방식을 반영한다. 프로파간다 제작자는 역사적 이미지를 모방하면서 프로파간다로 이용하여 더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다. 프로파간다 이미지에는 영화나 TV 드라마에 대한 패러디와 참조가 곳곳에 존재한다. 이와 같은 프로파간다는 유저들이 공유하는 너드(Nerd)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활용하여 더욱 효과적으로 프로파간다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즉, 이를 통해 〈이브 온라인〉 얼라이언스의 문화적 정체성을 정치화한다. 이러한 프로파간다는 유저에게 명확한 너드 문화적 내러티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주변부의 대중 매체와 문화를 연결하여 〈이브 온라인〉 전쟁의 정치적, 배신, 첩보 활동의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브 온라인〉은 이미 게임 속 역사가 있고, 게임 내 이벤트와 플레이에 대한 수용 및 의미 부여에 영향을 미친다. 게임사가 주도하여 관리하는 역사 위키 프로젝트는 〈이브 온라인〉 내의 다양한 역사를 기록하여 의미 부여하여 문화적 유물로 기능하게 한다. 이러한 역사와 마찬가지로 프로파간다는 유저의 역사로서 〈이브 온라인〉의 문화적 유물이 된다. 〈이브 온라인〉의 프로파간다는 게임의 역사와 얼라이언스의 역사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며, 유저는 플레이로서의 프로파간다를 통해 게임에 의미를 가져다주며 게임 내 영향을 미친다. 프로파간다는 게임 내 공유된 관심사와 역사를 바탕으로 유저들이 상상하는 커뮤니티의 모습을 동질화하여 커뮤니티의 결속을 강화한다. 3) 에미텍스트로서의 프로파간다 프로파간다 이미지의 차원은 유저의 게임 경험을 형성하고 플레이 행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패러텍스트로서의 성격을 보여준다. 게임 가이드나 개발 일지와 마찬가지로 프로파간다는 게임이 수용되고 경험되는 방식을 구성하여 게임의 존재를 정의하고 보장한다. 그러나 여전히 패러텍스트의 논의는 고정적인 텍스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브 온라인〉과 같은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새로운 게이머 문화 및 전략이 생겨나고 이를 통해 게임과 게임 플레이 방식, 게이머 경험이 만들어지고 이에 게이머의 경험에 의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새로운 전술이나 유저 유입 및 이탈 등, 자체적인 규범과 비공식적인 규칙을 변화시키고, 게임 플레이의 집단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플레이의 경계는 게임 내부에서 포럼, 채팅방, SNS 등과 같이 끊임없이 유동하는 장소로 확장된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패러텍스트의 분석과 더불어 게임 플레이로서 나타나는 게임 내 프로파간다는 게임과 엄격한 공간적 관계가 없는 새로운 패러텍스트인 에미텍스트가 된다. 5. 결론을 대신하여 나가며 이번 논문에서는 〈이브 온라인〉에서 이루어진 거대한 전쟁인 대분수 전쟁 속 프로파간다를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보는 관점을 살펴보았다. 사실 〈이브 온라인〉뿐만 아니라 게임 내부로 반영되어 자신들만의 즐거움을 창출하기 위한 행위들은 여러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게임을 수정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모딩이나 온라인 게임의 메타를 만드는 행위 등은 게임, 게이머, 게임사로 하여금 많은 영향을 미치는 직접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이는 게임 그 자체를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얻게 되는 즐거움을 위해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게임 플레이 행위는 게임을 구성하는 중요한 행위이다. 지금의 게임 플레이 개념은 게임 텍스트뿐만 아니라 게임 텍스트 밖에서 이루어지는 온라인 커뮤니티 참여나 SNS 등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콘살보의 패러텍스트 논의 또한 게임을 둘러싼 외부 산업을 게임과 함께 바라보고자 제시되었다. 그러나 게임 텍스트 밖에서 일어나는 행위가 정말로 단순히 게임과 공간적(개념적)으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이 논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게임 내에서 발생하는 프로파간다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프로파간다를 제작하는 것은 분명하게 게임 텍스트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제작을 위해 동원되는 자원 또한 말이다. 이것이 활용되는 것은 게임 내부이기도 하다. 이는 마치 게임 내에 여러 자원을 가져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의 관점은 단순히 게임 너머에서 발생하는 외부적인 행위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게임의 내부라고 볼 수 있는 그 경계를 좀 더 확장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 논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이라 생각한다. 이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게임의 정의에서부터 게임 플레이, 메타게임 등과 같은 개념까지 논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게임과 이와 연관된 플레이 행위의 경계가 단순히 게임 텍스트로만 구성되지 않는다는 점은 본 논문의 유의미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게임을 한다’라고 했을 때, 한 번쯤 ‘게임은 무엇일까?’, ‘게임을 하는 건 어디까지일까?’를 사색해보는 것은 게임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참고문헌 Consalvo, M. (2007). Cheating: Gaining advantage in videogames. MIT Press. Carter, M. (2015). Emitexts and Paratexts: Propaganda in EVE Online. Games and Culture, 10(4), 311–342. Tags: 이브온라인, 논문, 패러텍스트, 에미텍스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수진 게임연구에 발을 들인 대학원생입니다. 지금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첨단종합학술연구과에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엔 게임을 매개로 한 다양한 게임 경험과 일본 내 서브컬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건 여전히 어렵습니다.

  •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타임라인

    그래서 게임과 중독에 관한 글을 쓸 때 모든 식자들은 엘리트주의적 정서를 느낀다. 이 복잡한 맥락을 나는 잘 정리해서 이해했으니 알려주고 싶다! 실제로 이 글의 서두는 그렇게 쓰여졌고, 완성 후에 후회했다. 그런 정리는 이미 너무 많다. 현재에는 게임 중독, 혹은 게임이용장애에 대해 우리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응과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더 가치 있을 것이다. < Back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타임라인 14 GG Vol. 23. 10. 10. 게임 중독, 지겨운 단어 2019년 5월 2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제72회 총회에서 국제질병분류(ICD)의 제11차 개정판이 발표했다. 대규모 개정이 28년만이었다. 28년 묵은 업데이트를 한꺼번에 하다 보니 질병 코드가 14000여 개에서 55000여 개로 대폭 늘었다. 이 개정에 게임이용장애가 질병 코드 6C51을 얻어 등재되면서 논의가 폭발했다. 게임에 대한 탄압, 중독 아니고 과몰입, 중독 아니고 이용장애, 게임은 문화, 게임은 산업, 물질 중독이 아닌 행위 중독, 이 모든 담론 속의 맥락이 제각각 근거가 있었다. 인류 사회 전체에서 어지러운 난상 토론이 일어났다. 그나마 최근에야 좀 정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수많은 단어와 개념들이 이리저리 얽힌다. 게임과 폭력, 두 단어가 만났을 때 일어났던 혼란은 게임과 중독, 두 단어가 만났을 때도 그대로 일어났다.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래서 게임과 중독에 관한 글을 쓸 때 모든 식자들은 엘리트주의적 정서를 느낀다. 이 복잡한 맥락을 나는 잘 정리해서 이해했으니 알려주고 싶다! 실제로 이 글의 서두는 그렇게 쓰여졌고, 완성 후에 후회했다. 그런 정리는 이미 너무 많다. 현재에는 게임 중독, 혹은 게임이용장애에 대해 우리 한국 사회가 어떻게 대응과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더 가치 있을 것이다. 각계의 입장 의료와 보건 영역에서는 예방과 치료를 위한 사회적 투자를 주문한다. 게임이용장애가 수면장애, 섭식장애와 같은 행위 중독이고, 인류사에서 이를 질병으로 규정한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적용과 관찰이 필요하다는 관점이다. 새로운 중독 개념을 관찰하여 도입하는 과정이라는 인류사적 맥락에서 타당하다. 산업과 문화 영역에서는, 이 두 관점이 상호보완이 되다니 감개무량하지만, 우려에서 반대까지를 표현하고 있다. 예술 분야 혹은 산업 전반에 대한 낙인 효과를 우려하는 관점이다. 훌륭한 아이디어라 해도 현실에 적용될 때는 다운그레이드/침강 현상이 일어났던 역사를 고려할 때 타당하다. 의료 논리와 업계 논리의 타당성이 충돌한다. 행정부 부처 별로도 의견이 충돌한다. 문화 계열은 반대, 보건 계열은 찬성이다. 1차적인 이유는 역시 예산이다. 돈을 받아 집행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자신이 수행하는 임무의 중요성을 우선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런 사업 임무는 제각각 중요할 것이다. 반면 이들에게 돈을 내어주는 입장인 기획재정부는 생각을 알 수가 없다. 정치의 시간 이렇게 논리와 입장이 충돌할 때 정리하는 업무를 인간은 정치라고 부른다. 한국의 정치 또한 다른 모든 나라처럼 질병 코드 등재에 관련된 행정 체계를 만들어 놓았다. WHO에서 개정된 ICD를 반영하라는 ‘권고’를 한국 정부에 보낸다. 권고받은 정보를 한국 행정부처가 검토하여 한국의 질병분류인 KSD에 전체 혹은 일부를 반영한다. 이번의 경우, 새로 늘어난 것만 41000여 개 질병이니 검토 및 분류 작업은 오래 걸릴 것이고, 따라서 최소 2025년의 정기 개정 시기에 반영될 것이거나 그보다 늦어질 수도 있다. 이 절차의 소관 부서는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통계청이다. 반영 이후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수행하겠지만, ISD의 성격이 수많은 질병을 규정하고 코드화하여 모아놓은 통계 편람이기 때문에, 반영 업무 자체는 통계청이 주관해야 한다. 한국은 2019년 7월 23일에 통계청에 민관 협의체를 만들었다. WHO의 ISD 갱신 2개월 후이니 매우 빠른 편이다. 그런데 이 민관 협의체는 41000여 개 신규 질병 코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용장애, 대중적 용어로는 게임중독 질병 코드 하나만을 다루는 협의체다. 민간위원 14명과 정부위원 8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의료, 게임, 법조, 시민단체, 기타 전문가, 교육부, 과학기술부, 여성가족부, 통계청, 국가조정실, 복지부, 문화체육부의 인물이 모두 들어가 있다. 관련자는 물론 관리자 역할인 국가조정실까지 모두 모인 것이다. 이 22인이 연구와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면, 국가통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서 등재 결정으로 이어진다. 민관협의체의 타임라인 민관협의체는 결정을 내릴 근거를 수집하기 위해 먼저 연구 용역을 3건 발주했다. 연구들은 2019년 12월부터 구체적 단계에 들어갔고, 2년 후에야 완성이 되었다. 이 3건의 연구를 토대로 회의가 연거푸 열렸는데, 2022년 1월 12일의 8차 회의에서 일이 벌어졌다. 올라온 연구 보고서 셋 중에서 하나의 신빙성과 정합성을 일부 민간위원이 문제 삼은 것이다. 해당 보고서는 게임이용장애의 역학조사가 방법론적으로 가능하다는 내용의 ‘게임이용장애 실태조가 기획’ 연구였다. 역학조사를 통해 계량화된 수치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 연구 셋 중에서 유일하게 질병코드 도입 찬성측에 유리한 연구 결과였다. 아무튼 이 연구에서 문제점이 지적되자 후속 보완 연구를 하기로 결정이 났다. 그런데 이후 민관협의체는 8개월 동안 후속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을뿐더러 추가 회의도 열리지 않았다. 정권 교체기였기 때문에 생긴 지연이라는 해석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졌다. 정지해있던 민관협의체는 2022년 말에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이상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12월 21일, 통계청은 언론 보도에 대한 반박 보도자료를 냈다. 해당 보도는 사라진 것으로 보여 확인할 수 없지만, 민관협의체 회의에서 통계청 관계자가 ‘한국은 WHO 결정을 그대로 수용해야 해서 게임이용장애는 질병코드에 등재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민관협의체 무용론이 등장한 것이다. 통계청은 민관협의체의 결정은 효력이 있고 한국은 국내표준분류를 만들 때 국내 여건을 감안한다는 내용의 반박을 했지만, 해가 바뀐 4월 4일 국민일보는 여전히 민관협의체 무용론이 존재한다 는 보도를 했다. 8차 회의 이후 아직도 후속 보완 연구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함께였다. 이에 대해서는 통계청과 국무조정실 양쪽에서 반박 보도자료를 내놨다. 후속 연구는 9차 회의에서 결정된 후 세부계획 수립 중에 있으며 2023년 4월 중에 착수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같은 내용의 반박이 4월 24일 뉴스원의 기사 에 대해서도 나왔다. 즉, 2023년 10월 현재에는 아직 연구가 진행중일 것이다. 통계법 제22조 1항 그렇다면 민관협의체 무용론의 논리적 근거는 무엇일까. 통계법이다. 통계법 제22조는 표준분류 조항이다. 1항에서는 이렇게 서술한다. “통계청장은 통계작성기관이 동일한 기준에 따라 통계를 작성할 수 있도록 국제표준분류를 기준으로 산업, 직업, 질병·사인(死因) 등에 관한 표준분류를 작성·고시하여야 한다.” 국제표준분류, 예를 들어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재 사안에서는 WHO의 ICD가 기준이 된다는 의미를 ‘국제표준분류를 따라가라’ 의미로 보면 강제조항이 된다. 반면 ‘참고하라’는 의미로 보면 권고조항이 된다. 언론 보도에 나온 분위기를 보면 민관협의체와 그 주변 분위기는 강제조항 해석이 우세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강제조항 해석이 우세하고 이를 우려하는 분위기라는 의미는 즉, 현재 민관협의체의 분위기는 질병 코드 등재에 부정적인 쪽으로 흐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런 분위기를 포착한 언론 보도가 나오기 전인 2023년 2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통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바로 해당 22조 1항을 고치는 내용이다. 국제표준분류가 기준이 아닌 참고가 되며,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국제표준분류의 반영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가 들어가는 개정안이다. 하지만 윤석열 행정부는 이 개정안에 대해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반대 입장이다. 한국의 통계 기준이 국제 기준과 지나치게 거리를 두게 되면 국가간의 통계 비교 문제가 생긴다는 우려, 즉 통계 기준의 갈라파고스화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헌 의원의 통계법 개정안은 아직 계류 중이며, 21대 국회의 회기 막바지임을 고려하면 이대로 회기 종료가 되어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무용론이 고개를 들었고, 이와 별개로 국무조정실에서 4월 20일, 별도의 연구 용역이 나왔다. ‘게임산업 규제 개선 및 진흥 방안 연구’였는데, 여기에 게임 질병 코드 사안도 들어가 있었다. 통계청 산하 민관협의체에서 결론을 늦게 내고 있으니, 중앙부처 주도로 질병 코드 등재를 강행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런 해석에 대해서 국무조정실은 곧바로 그런 의도가 아니며, 결정 주체는 통계청의 민관협의체라고 확언을 했다. 국무조정실의 이 발언은 두 가지 의미로 독해가 가능하다. 첫 번째, 민관협의체의 연구 용역과 별도의 계획은 없다. 즉, 민관협의체에게만 권한이 있다. 두 번째, 민관협의체의 결론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계획은 없다. 즉, 지지부진해져서 결론이 안 나오면 계획을 세우겠다. 두 번째 해석에는 약간의 비약이 들어가 있으므로 가능성은 낮다. 여기까지가 질병 코드 등재에 관한 타임라인이며, 타임라인은 4월 말로 끊겨 있다.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난 2023년 10월 현재, 한국은 아직 민관협의체가 발주한 추가 연구 용역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구도 이 사안에 가장 깊게 연관된 플레이어는 국회, 행정부, 산업계, 문화계, 의료계다. 이 중에서 의료 외에는 미지근하거나 방어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질병 코드 등재에 대해 의료계는 찬성, 산업계와 문화계는 반대 입장이다. 행정부는 대체적으로 미지근하다.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부처 간의 찬반 의견이 팽팽한 것이 이유로 보인다. 반면 정치권은 이 사안을 다루는 소수 국회의원들의 주도로 반대쪽으로 기울고 있다. 과방위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관철시키며 게임 중독 용어를 게임 과몰입으로 대체했다. 통계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상헌 의원은, 여당 국민의힘의 하태경 의원과 함께 게임계의 여론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 노력하는 주요 정치인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인들의 활동을 언론이 보도하는 모습에서는 논조의 변화가 읽힌다.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되어 소위원회에 상정이 되면, 이에 대해 국회 내 전문위원들이 검토보고서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이상헌 의원의 통계법 개정안 발의에 대한 보도에는 김일권 수석전문위원이 검토보고서 넣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인정할 경우 관련 규제와 낙인효과가 일으킬 악영향에 대해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법률 전문위원의 의견이 기사화에 포함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바, 언론사가 찬반 중 어느 쪽의 의견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WHO가 ISD를 전면 개정한 2019년에는 ‘게임 중독’이 용어로 사용되면서 게임에 부정적인 기사가 많이 생산되었다. 반면 2020년에는 게임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담론이 계속 유통되었고, 이런 여론이 조성되면서 2022년의 게임의 문화 예술 지위가 인정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 2023년의 게임 과몰입 용어를 사용한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한국의 여론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언론의 태도 변화로 읽어낼 수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경우 정책은 여론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 등재 사안을 다루는 통계청 민관협의체의 절차가 느린 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찬반 의견이 강력히 부딪히는 가운데, 코드 등재를 하지 않으면서도 그 부작용 방지를 철저하고 확실하게 하기 위한 일처리를 하는 중이라서 느린 것일 수 있다. 혹은 행정부 내에 코드 등재를 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서 싸우는 중이라서 느린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서술한 해석에는 약간의 비약과 희망이 들어가 있으며, 실제는 두 가지 해석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Tags: 게임중독, KCD-11, ICD-11,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포터블'과 '모바일': 주머니 속 게임의 사반세기 변천사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두 개념의 차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 다 휴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문화적 의미와 게임 경험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2005-2011년 사이 닌텐도 DS 시리즈와 소니 PSP 시리즈가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과 병행하여 존재했던 시기에 주목하여 이 두 개념을 생산적으로 구분해서 사용하자고 제안한 연구도 있다(McCrea, 2011). < Back '포터블'과 '모바일': 주머니 속 게임의 사반세기 변천사 23 GG Vol. 25. 4. 10. "지하철에서 게임기를 꺼내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 혼밥하며 스팀덱으로 대역전재판을 하고 있는 사진 약속 장소로 향하는 지하철 안. 내 가방 속에는 약 640 그램의 묵직한 스팀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약속 장소까지 평소라면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게임을 하거나 웹툰을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어제 밤 늦게까지 플레이하던 '발더스 게이트3'의 전투를 이어서 진행하고 싶었고, 그 뒤의 새로운 지역을 더 탐험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스팀덱은 가방 속에 고이 모셔진 채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서서 갈 때도, 좌석에 앉아있을 때도 도저히 스팀덱을 꺼내들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의 시선들과 "저 사람 게임에 진심인가보다"와 같은 상상 속 목소리가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망설임이 아니라, 공적 공간에서 게임을 하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 그 시선이 내포하고 있는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스마트폰 게임이었다면 당연히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플레이했을텐데, 스팀덱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이 경험이 포터블과 모바일 게임의 현 모습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게임보이나 닌텐도 DS를 학교에 가져가 몰래 게임을 하던 시절부터,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즐기는 시대를 거쳐, 다시 전용 게임기로 회귀하는 듯한 현상까지. 우리의 '주머니 속 게임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가 단순히 기술적 진화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포터블 게임기기가 점점 더 크고 무거워지면서 ‘과연 이것을 휴대용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겨난다. 동시에 스마트폰이라는 완벽한 휴대성을 지닌 기기가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무거운 전용 게임기를 구매하고 들고 다닌다. '포터블'과 '모바일'은 서로 다른 게임 문화를 의미했다. 포터블과 모바일의 구분은 쉽지 않지만, 포터블을 '게임 전용 기기에서의 몰입적 경험'으로, 그리고 모바일은 '다기능 기기에서의 접근성 높은 경험'으로 정의해보자.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이 경계는 다시 흐려지고 있다. 모바일 게임은 점점 더 콘솔 게임을 닮아가고, 포터블 게임기는 다양한 기능을 흡수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주머니 속 게임 세계는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그 변화는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어떤 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을까? 다마고치, 닌텐도 DS, PSP, PS Vita에서부터 스마트폰 게임, 그리고 다시 닌텐도 스위치와 PS 포탈, 스팀덱, 로그 엘라이 등으로 이어지는 휴대용 게임 문화의 흐름은 게임과 휴대용 게임 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주제다. 이 글은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개념이 단순한 기기의 차이를 넘어 어떻게 우리의 게임 경험과 일상을 재구성해왔는지, 어떤 사회문화적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휴대용 게임의 25년 여정은 단순한 기술 발전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게임을 어떻게 경험하고, 공유하고, 삶에 통합시켜왔는지를 보여주는 사회문화사이기도 하다. '휴대용 게임'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를까? 나에게는 그것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내내 손에 늘 들려있었던 닌텐도 DS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스마트폰 속 수많은 앱 중 하나일 테고, 또 누군가에게는 닌텐도 스위치나 최근의 스팀덱 같은 기기일 것이다. 같은 '휴대용'이라는 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경험은 사뭇 다르다. 여기서 우리는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두 개념의 차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 다 휴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문화적 의미와 게임 경험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2005-2011년 사이 닌텐도 DS 시리즈와 소니 PSP 시리즈가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과 병행하여 존재했던 시기에 주목하여 이 두 개념을 생산적으로 구분해서 사용하자고 제안한 연구도 있다(McCrea, 2011). 이 연구에서 ‘포터블’은 ‘게임이라는 목적 하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모바일’은 ‘게임이 다양한 기능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정의했다. 닌텐도 DS나 PSP 같은 '포터블' 게임기는 오직 게임만을 위해 태어났다. 그 모든 부품, 버튼, 화면은 게임 플레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다. 이 기기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구매하는 것이고,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게이머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물건이 되기도 한다. 반면 아이폰이나 갤럭시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게임은 그저 수많은 기능 중 하나다. 전화, 문자, SNS, 지도, 음악, 동영상, 그리고 가끔은 게임. 모바일 게임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지하철에서 시간을 때우거나, 심심할 때 잠깐 즐기는 부수적인 활동인 경우가 많았다. 닌텐도의 '게임 앤 워치'부터 시작된 포터블 게임기의 발전은 단순히 이동성을 강조한 '시계와 게임기의 결합'이라는 초기 개념에서 시작하여, 크로스 키, 듀얼 스크린, 음성 및 터치 입력 등 다양한 상호작용 시스템으로 진화해왔다(권용만, 2015). 이러한 진화 과정은 게임 전용 기기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게임 경험을 풍부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포터블과 모바일의 차이는 게임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쳤다. 포터블 게임은 장시간의 모험, 게임 맞춤형 조작, 깊은 이야기를 담는 경향이 있다. DS의 '제노블레이드 크로니클스'나 PSP의 '몬스터 헌터'는 몇 십 시간씩 투자해야 하는 게임들이다. 반면 '앵그리버드'나 '캔디크러시' 같은 초기 모바일 게임들은 짧은 시간에 쉽게 즐길 수 있고, 언제든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설계됐다. 물리적 느낌에서도 차이가 존재했다. 포터블 게임기의 버튼은 누를 때마다 확실한 감각적 피드백을 준다. 반면 스마트폰의 화면은 직관적이지만 손가락으로 화면 일부를 가리게 되고, 내가 정확히 어디를 터치했는지 확신하기 어렵지만 이것이 게임 플레이에 심각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윤장원, 2011). 이는 인터페이스나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게임 자체에 대한 몰입과 경험의 차이이다. 여기에서 주목해볼 부분은 포터블과 모바일이 구성하는 사회적 의미의 차이다. 2007년 아이폰 등장 이전, 지하철에서 닌텐도 DS나 PSP를 꺼내든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게이머'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게임이라는 취미를 가진 사람, 혹은 게이머라는 특정 문화에 속한 사람이라는 표식 같은 것이었다. 전용 게임기를 구입하고, 게임 카트리지를 모으고, 특정 게임 시리즈의 팬덤에 참여하는 행위는 게이머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건 너무 흔한 일이 되었다. 옆자리 직장인이 '쿠키런'을 하든, 학생이 '피크민 블룸'을 하든, 그것은 그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활동 중 하나를 하고 있을 뿐이다. 201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는 '포터블'과 '모바일'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닌텐도 스위치는 TV와 연결하여 사용하는 가정용 콘솔과 손에 쥐고 플레이하는 휴대용 게임기의 경계를 허물었다. 한편, 스마트폰 게임은 그래픽과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 점점 더 전통적인 콘솔 게임에 가까워지고 있다. '원신', '명조:워더링 웨이브', '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같은 게임은 더이상 '틈새 시간'에 즐기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장시간의 몰입과 헌신을 요구한다. 스팀덱은 아예 PC 게임을 손 안에 넣어버렸다. 이러한 경계의 흐려짐은 단순한 기술적 수렴이 아니라, 게임 문화 자체의 변화를 반영한다. 기존의 게이머와 비게이머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약화되고, 다양한 플랫폼을 넘나드는 게임 경험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포터블은 게임 전용 기기가 제공하는 깊은 몰입과 전문성을, 모바일은 일상에 자연스럽게 통합된 접근성 높은 게임 경험을 제공한다고 나는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러한 구분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융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게임을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문화적 이해를 돕는 렌즈가 된다. "엄마, 닌텐도 DS 사주세요. 포켓몬 하고 싶어요.“ 아마 2000년대 초중반, 초등학생 자녀를 둔 많은 부모들은 이런 간절한 요청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저렴한 물건이 아니었다. 당시 닌텐도 DS의 가격은 약 15만원, 게임 카트리지는 3~5만원 정도였으니, 초등학생에게 사주기에는 결코 낮은 금액이 아니었다. 당시 부모들이 생각하기에 닌텐도 DS는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비싼 오락기였을 뿐이다. 이러한 '초기 진입 비용'은 포터블 게임 문화의 확산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했다. 모바일 게임이 대부분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고 인앱 구매를 통해 점진적으로 돈을 쓰게 만드는 것과 달리, 전통적인 포터블 게임은 처음부터 상당한 투자가 필요했다. 게임기를 사고, 게임 카트리지를 사고, 때로는 추가 메모리나 액세서리까지 구매해야 했다. 이런 높은 진입 장벽은 어떤 의미에서 게임 경험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했다.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기에 더 소중했고, 투자한 만큼 더 깊이 몰입했다. 부모님을 설득해 게임기를 사거나,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게임기를 구입하는 과정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하나의 성취였고, 그래서 게임기를 받아든 순간의 기쁨은 무척이나 특별했다. 초기 진입 비용이 높다는 것은 분명 단점이고 장벽이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게임 경험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포터블 게임의 가치는 단순히 초기 투자의 심리적 효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게임 자체의 디자인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경험일 것이다. 전통적인 포터블 게임들은 종종 상당한 '학습 비용(learning cost)'을 요구한다. '학습 비용'이란 게임을 능숙하게 플레이하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복잡한 전투 시스템, 다양한 무기 타입, 몬스터별 특성 등을 이해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포켓몬 시리즈'는 다양한 포켓몬의 타입, 기술, 진화 조건 등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학습은 일견 게임을 즐길 때 겪을 수 있는 어려움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실행을 통한 학습'(learning by doing) 안에서 '즐거움을 통한 학습'(learning by enjoying)이라는 독특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게임의 규칙과 시스템을 배우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성취감을 주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학습의 동기가 된다. 이러한 학습 곡선은 게임의 수명을 연장하기도 한다. 쉽게 배울 수 있는 게임은 쉽게 질린다. 반면 적절한 난이도와 학습 곡선을 가진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지속적인 도전과 성취감을 제공한다.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 시리즈나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 같은 게임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모바일 게임이 콘솔 게임과 유사한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무거워지는 포터블 기기, 무거워지는 모바일 게임 * 게임보이 사진 (출처: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 1989년, 처음 게임보이가 출시됐을 때의 무게는 220그램이었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작은 손에도 부담 없이 들 수 있는 무게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휴대용 게임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닌텐도 3DS는 230그램, PS Vita는 280그램, 닌텐도 스위치는 400그램, 그리고 최근의 스팀덱은 670그램에 달한다. 포터블 게임기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게이머들은 더 나은 그래픽, 더 긴 배터리 수명, 더 다양한 기능을 원했고, 제조사들은 이에 부응하기 위해 더 강력한 하드웨어를 탑재했다. 닌텐도 스위치가 HD 화면과 분리 가능한 조이콘을 갖추고, 스팀덱이 미니 PC 기능을 하면서 PC 게임을 돌릴 수 있는 성능을 갖추게 된 것은 이런 욕구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한 질문이 생긴다. "과연 이것을 '휴대용'이라 할 수 있는가?" 670그램의 스팀덱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는 없다.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닐 수는 있지만, 출퇴근길 붐비는 지하철에서 꺼내 들기는 쉽지 않다. '휴대용'의 의미가 변질된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기대가 변한 것일까? 이와 동시에, 모바일 게임도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물리적 무게가 아닌, 게임의 복잡성과 요구하는 시간과 자원의 측면에서 말이다. 최근의 모바일 게임들을 보자. '붕괴: 스타레일'은 다운로드 크기가 15GB에 육박한다. 이는 몇 년 전의 콘솔 게임 크기와 맞먹는 수준이다. '명조: 워더링 웨이브'와 같은 오픈월드 ARPG는 광활한 세계, 복잡한 전투 시스템, 깊이 있는 스토리라인을 자랑한다. 이런 게임들은 더이상 틈새 시간에 즐기는 '가벼운' 게임이 아니다. 상당한 시간과 집중력을 투자해야 하는 '무거운' 경험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런 복잡한 모바일 게임들이 종종 스마트폰보다 PC에서 플레이하기 더 적합하다는 점이다. 작은 화면, 손가락으로 가려지는 시야, 정밀한 조작의 어려움과 같은 모바일 인터페이스의 한계 때문에, 많은 유저들이 PC 버전으로 연동해 플레이한다. 심지어 개발사들도 이를 인지하고 모바일, 태블릿PC, 데스크탑 등과 연동되는 크로스 플랫폼 기능을 적극 지원한다. 모바일 게임이라는 이름을 가진 게임이 모바일이 아닌 환경에서 더 잘 작동하는 아이러니가 생긴 것이다. 함께 있어서 가능한 '로컬 플레이'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휴대용 게임 문화의 가장 특별한 측면 중 하나는 '로컬 플레이'라는 경험이었다. 여기서 로컬 플레이란 두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각자의 기기를 통해 함께 게임을 즐기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통신 플레이'라고도 불렸으며, 휴대용 게임기가 제공하는 가장 독특한 사회적 경험 중 하나였다. 이러한 로컬 플레이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물리적 근접성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사회적 경험에 있다. 온라인 플레이와 달리, 로컬 플레이는 상대방의 표정, 목소리, 반응을 직접 볼 수 있다. 게임에서 이긴 후의 환호, 패배한 후의 아쉬움, 희귀한 아이템을 얻었을 때의 놀라움 같은 감정의 교류가 게임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로컬 플레이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고속 인터넷의 보급, 스마트폰의 대중화, 그리고 온라인 서비스의 발전은 게임의 사회적 측면을 물리적 공간에서 가상 공간으로 옮겨놓았다. PS Vita는 여전히 로컬 플레이 기능을 제공했지만, 그 인기는 이전 세대만큼 크지 않았다. 모바일 게임은 주로 온라인 멀티플레이에 초점을 맞추었고, 로컬 플레이는 점차 특별한 기능이 아닌 부가적인 기능으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2017년 닌텐도 스위치의 등장은 로컬 플레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스위치는 그 디자인 자체에 로컬 멀티플레이를 핵심 요소로 포함시켰다. 분리 가능한 조이콘, 테이블 모드, 그리고 쉽게 휴대할 수 있는 크기는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마리오 카트 8 디럭스', '슈퍼 스매시브라더스 얼티밋', '스플래툰 2' 등의 게임은 온라인 플레이뿐만 아니라 로컬 플레이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로컬 플레이의 가치는 현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가상 공간에서의 연결이 일상화된 지금, 물리적 공간에서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은 오히려 더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이는 단순히 향수나 복고 트렌드가 아닌, 인간의 근본적인 사회적 욕구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직접 느끼고, 감정을 공유하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한다. 오늘날 로컬 플레이는 온라인 플레이와 병존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아마도 두 경험 모두를 선택적으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일 것이다. 스팀덱이나 ROG Ally와 같은 최신 휴대용 PC 게임기들은 온라인 기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휴대용으로 기기를 들고 나가 같은 공간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로컬 플레이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이는 휴대용 게임 문화에서 로컬 플레이가 가진 고유한 가치가 여전히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사용자 경험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거 휴대용 게임기의 장점은 언제 어디서나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접근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무거운 포터블 기기들은 이동하면서는 아니지만, 공간의 자유로움을 제공한다. 침대에서, 소파에서, 카페에서, 화면 앞에 고정되지 않고 편안한 자세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모바일 게임 역시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다. 초기에는 '언제 어디서나 잠깐씩' 즐기는 것이 장점이었지만, 이제는 '어디서든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스마트폰의 성능이 향상되고, 모바일 게임의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변화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기존 카테고리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왜 무거운 전용 게임기를 구매하는가?'라는 질문은 남는다. 이미 강력한 게임기로써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데, 왜 추가로 스위치나 스팀덱을 사는 것일까? 이는 그저 기술적 선택이 아니라 문화적, 경험적 선택이다. 전용 게임기는 물리적 버튼이 주는 촉각적 만족감, 게임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어쩌면 '진지한‘ 게이머로서의 정체성 표현까지, 스마트폰이 제공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제공한다. 스마트폰 알림에 방해받지 않고, 손에 딱 맞는 그립감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많은 게이머들에게 중요한 가치다. 결국 무거워지는 포터블 기기와 무거워지는 모바일 게임은 ‘같은 현상의 두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게이머들이 더 깊고 풍부한 경험을 원한다는 신호이며, 게임이 단순한 오락보다 몰입형 미디어로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다. 휴대성과 편의성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더 나은 게임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것이 2025년 현재 휴대용 게임 문화의 핵심이다. 마치며 몇 주 전 오후, 나는 친구를 기다리며 조용한 카페 구석 자리에서 샌드위치와 음료를 주문하고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스팀덱을 꺼냈다. 주변을 살피고,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안전한 각도를 찾은 후에야 게임을 시작했다. 친구들과 닌텐도 DS를 들고 '동물의 숲'을 플레이하던 어린 시절의 나와, 오늘날 670그램짜리 휴대용 PC를 들고 인적 드문 카페에서 '발더스 게이트3'를 플레이하는 성인이 된 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명확한 연속성도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게임을 통해 다른 세계로 빠져들고, 그 세계를 언제 어디서나 내 손 안에 담고 다니고 싶은 욕구이다. 휴대용 게임 문화의 25년 여정을 돌아보면, 기술적 변화의 속도와 규모는 정말 놀랍다. 게임보이의 흑백 픽셀에서 스팀덱의 고화질 3D 그래픽까지, 2KB 게임 카트리지에서 100GB 이상의 다운로드 게임까지, 링크 케이블을 통한 두 명의 연결에서 전 세계 수백만 명이 동시에 접속하는 온라인 게임까지. 이러한 기술적 진화는 게임 경험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확장해왔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재구성해왔는지에 관한 문화적 변화이다. 휴대용 게임기는 단순한 기술적 장치를 넘어 우리의 시간, 공간, 사회적 관계를 재조직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시간의 측면에서, 휴대용 게임은 '틈새 시간'의 개념을 변화시켰다. 과거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5분,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30분과 같은 시간들은 그저 '죽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휴대용 게임은 이러한 시간들을 의미 있는 경험으로 채울 수 있게 해주었다. 동시에, 모바일 게임의 푸시 알림과 일일 퀘스트는 우리의 시간 인식과 일상 리듬에 게임의 논리를 침투시켰다. 공간의 측면에서, 휴대용 게임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를 흐렸다. 지하철, 카페, 공원과 같은 공적 공간은 이제 게임 경험의 배경이 되었다. 이것은 공간의 용도와 의미를 변화시키고, 때로는 공공장소에서의 적절한 행동에 대한 사회적 규범에 도전하기도 했다. 사회적 관계의 측면에서, 휴대용 게임은 새로운 형태의 교류외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로컬 멀티플레이는 직접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했고, 온라인 기능은 물리적 거리를 넘어선 연결을 가능하게 했다. 때로는 디지털 연결이 실제 대면 관계를 보완하거나 대체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두 개념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융합하며 진화하고 있다. 포터블이 의미하는 전용성과 깊이, 모바일이 상징하는 접근성과 일상성은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서로를 보완하며 휴대용 게임 문화를 형성해왔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모든 기술적, 문화적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연결, 몰입, 도전, 성취를 향한 갈망은 게임보이 시대에도, 스마트폰 시대에도, 스팀덱 시대에도 휴대용 게임 문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연결에 대한 욕구는 포켓몬 교환에서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으로, 몰입에 대한 욕구는 테트리스의 단순한 집중에서 오픈 월드 RPG의 복잡한 서사로, 도전과 성취에 대한 욕구는 하이스코어 경쟁에서 트로피와 업적 시스템으로 그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동일하다. 이러한 욕구들이 휴대용 게임 문화의 진정한 원동력이다. 기술은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더 좋은 그래픽, 더 강력한 프로세서, 더 큰 저장 공간은 결국 더 깊은 몰입, 더 풍부한 연결, 더 의미 있는 도전과 성취를 위한 도구이다. 카페에서 조심스럽게 스팀덱을 꺼낸 그 순간, 나는 여전히 공적 공간에서의 게임 행위가 갖는 미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그것은 25년간의 기술적 진화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문화적 위치가 여전히 협상 중인 상태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작은 기기 속에서 펼쳐지는 방대한 세계는 게임 경험의 본질적 가치를 증명한다. 결국 휴대용 게임의 미래는 단순한 기술적 혁신이 아닌, 인간의 근본적 욕구와 문화적 맥락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개념은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고, 우리의 일상을 재구성해나갈 것이다. 21세기 첫 25년의 여정이 그러했듯이, 앞으로의 25년도 기술적 발전과 인간적 지속성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변화의 연속일 것임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 여정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주머니 속에 작은 세계를 담아 다니며, 그 세계를 통해 게임을 즐기게 되지 않을까? 참고자료 권용만. (2015). NDS와 PSP를 중심으로 분석한 휴대용 게임기의 인터랙션 진화 윤장원. (2011). 아이폰 게임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분석 -휴대용 게임기 게임과 아이폰 게임의 사례 비교를 중심으로- Christian McCrea. (2011). We play in public: The nature and context of portable gaming systems. Tags: 모바일, 닌텐도, 포터블, UMPC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미디어콘텐츠연구자) 이미몽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닌텐도 게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전 스팀덱을 할부로 구매하여 열심히 즐기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선 문화매개를 전공했고, 현재는 일본의 리츠메이칸 대학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박사과정에 재학중 입니다. 게임과 웹툰 등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와 문화를 연구합니다.

  • 마블 스파이더맨 2, 코믹스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서사를 하는 방법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다. 그건 방법론도 다양해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제대로 된 독자를 설정하지 못하면 어떤 좋은 이야기라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은 이야기를 쓰기 전에 가상의 독자를 설정하기를 당부했다. 그리고 매번 그의 가상의 독자 역할을 맡아준건 그의 부인, 태비사 킹이었다. 비록 그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떤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좋은 이야기에서는 필수적인 고민이다. < Back 마블 스파이더맨 2, 코믹스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서사를 하는 방법 15 GG Vol. 23. 12. 10. 요즈음의 콘텐츠는 독립적이지 않다 . 모든 콘텐츠는 유기적이고 , 서로 다른 매체 , 서로 다른 차원에서 가지를 치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낸다 .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하더라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수많은 매체에서 저마다 다른 과실을 맺어내는 미디어 프랜차이즈는 모든 창작물이 지향하는 바가 되었다 . 비디오 게임과 관련된 수많은 프랜차이즈들도 여러 방면으로 확장을 시도해왔다 . 영화에서 시작해 이미 코믹스 , 소설 , 애니메이션이 계속 쏟아져 나온 ‘ 스타워즈 ’ 는 게임 쪽에서도 루카스아츠의 작품들을 위시해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 ‘ 헤일로 ’ 는 반대로 게임에서 영상물 , 소설 , 코믹스로 뻗어나간 사례다 . 이런 흐름은 슈퍼히어로 파생 작품들도 시작지점만 다를 뿐 유사하다 . 하지만 슈퍼히어로 창작물들은 어떤 면에서 다른 작품들과 큰 차이를 보이는데 , 바로 캐넌 , 정사의 기준이 매우 느슨하다는 점이다 . 미국의 코믹스는 하나의 정사가 아니라 , 수많은 비사들의 집합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 제작사 , 제작자 쪽에서 캐넌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 코믹스는 개별 이슈가 서로 다른 설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나의 공인된 정사를 중심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수많은 비사 중에서 인기가 많고 , 가장 퀄리티가 좋은 것들이 선택을 받아 이어나가는 식의 구조를 띈다 . 때문에 유독 코믹스 기반의 파생 작품들은 독자적인 서사를 만드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는 했다 . 코믹스의 감각을 그대로 이어가던 많은 창작물들이 혹평을 받고나서야 사람들은 ‘ 코믹스는 생각보다 대중적이지 않다 ’ 는 사실을 깨달았다 . 원작 코믹스 팬들의 기준으로 만들게 되면 , 지나치게 유치하거나 아무리 원작 설정이라지만 선을 넘는게 있었던 것 . 슈퍼히어로 기반의 최고의 프랜차이즈였던 MCU 가 최근 부진한 이유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 스칼렛 위치를 위시한 캐릭터들의 코스튬이 점점 원작을 닮아가고 , 설정만 믿고 배경서사를 생략하거나 , 인물 간의 관계를 대충 그리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 그러다보니 중심 서사도 재미가 없어지고 , 또는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 특히 멀티버스의 적극적인 채용은 그런 이른바 ‘ 뇌절 ’ 의 끝으로 가 , 모든 이슈와 관련 설정을 다른 차원의 이야기 , 그저 멀티버스라는 식으로 사건의 근원과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서 더더욱 성의없는 이야기처럼 보이게 했다 . * 스파이더 토템 , 마스터 위버 , 스파이더 마더 … 문자 그대로 우주로 뻗어나가는 설정 그렇다면 ‘ 마블 스파이더맨 2’ 게임은 어떨까 . 우선 , 스파이더맨은 원작 코믹스에서는 그야말로 뇌절 설정의 상징이다 . 스파이더 토템 같은 설정이 바로 그러한데 스파이더맨과 같은 거미류 슈퍼히어로의 숫자가 늘어다나보니 추가된 설정으로 , 그냥 유전자 변이 거미에게 물려 생긴 슈퍼히어로가 갑자기 우주적이고 신화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 거기에 스파이더맨은 복식만 수십가지에 이르고 ,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스파이더 센스에 대한 묘사도 작품마다 제각각이곤 한다 . 이는 기본적으로 미국 코믹스가 각 작가에 의해서 뇌절에 뇌절에 뇌절을 반복하여 마구잡이로 확장한 뒤에 , 이 중에 괜찮은 걸 타이인 이벤트로 정리하면서 채택하는 식으로 전체 흐름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 그러니 기본적으로 굉장히 난잡하고 , 온갖 좋은 , 그리고 나쁜 설정이 난립하면서 그 안에서도 어떤 설정은 버려지고 어떤 건 정사로 채택된다 . 물론 코믹스 팬들에게는 이것이 재미요소였고 , 다른 것보다 훨씬 짦은 코믹스의 소비 사이클에서는 괜찮은 방법이기도 했다 . 그러나 , 게임이나 영화처럼 제작 기간이 길고 한 작품의 서사 단위가 긴 매체에서는 이런 방식을 채택할 수 없었다 . 때문에 게임이나 영화는 그 자체로 일종의 총집편처럼 , 작품이 어떤 설정을 채택하고 있고 , 또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정리가 되어 있어야 했다 . 인섬니악의 비디오 게임 ‘ 마블 스파이더맨 ’ 시리즈는 그 정리의 시작을 빌런과 주인공 , 스파이더맨의 관계 정리에서부터 시작한다 . ‘ 스파이더맨 ’ 에게는 정말이지 수많은 빌런이 있다 . 단일 히어로로서는 가장 많은 빌런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 그와중에 극적인 서사를 위해서 스파이더맨이 어떤 빌런을 만나게 될지를 미리 정리해두는건 매우 중요했다 . 그래서 1 편에서는 시작과 동시에 스파이더맨이 이미 히어로 활동을 한지 꽤 시간이 지났고 , 수많은 잡다한 빌런들을 이미 다 정리했다는 걸 단 번에 보여준다 . 스콜피온 , 라이노 , 벌쳐 같은 단일로서는 큰 비중을 가지기 어려운 빌런들은 이미 스파이더맨을 만나 싸웠고 , 감옥에 가있다 .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인 옥타비우스 박사가 서사의 중심으로 초반부터 등장한다 . 여기서 대강의 합의가 이루어진다 . 이 작품의 스파이더맨은 여러 잡다한 빌런들은 이미 다 처리했지만 , ‘ 닥터 옥토퍼스 ’ 나 ‘ 그린 고블린 ’ 은 아직 만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 그리고 서사가 옥타비우스 박사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상 , 우리는 이 작품에서 이 빌런과 대적하게 될 것임을 직감한다 .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러 다른 설정들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한다 . 아직 스파이더맨이 되기 전인 마일즈 모랄레스는 피터 파커의 그 유명한 각성의 과정 , 본작에서는 이미 과거의 일이라고 스킵한 그 과정을 대신 되풀이하고 보여주며 , 이 작품의 후반이나 또는 다음 작품에서 그가 두번째 스파이더맨이 될거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 히로인은 그웬 스테이시가 아니라 MJ 라는 것 , 이번 스파이더맨이 가진 기술적 역량들 , 그리고 멀티버스 따위는 없다는 것 , 그의 경제적 상태 등등 수많은걸 빠르게 정리한다 . 우리는 이미 ‘ 스파이더맨 ’ 이라는 캐릭터를 알고 있다 . 이는 코믹스보다는 대중 서사인 영화의 덕택이 더 클 것이다 . 그래서 이미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부분은 게임에서는 빠르게 생략되거나 암시되며 , 그 이상의 부분들은 명시적으로 정리된다 . 그래서 모든 독자들 , 스파이더맨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코믹스팬부터 스파이더맨이라고는 영화 밖에 보지 않은 이들까지 모든 독자를 동일한 출발선에 위치시킨다 . 이는 이 게임을 구성하는 수많은 장점 중에 정말 일부분이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분일 수도 있다 . 그러나 , 서사가 이 게임에서 정말 중요한 위치이고 그 서사라는게 원작과 수많은 변형이 이미 있어왔던 이야기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즉 , 이 게임은 ‘ 무엇인가 ?’ 뿐만 아니라 ‘ 무엇이 아닌가 ?’ 도 동시에 이야기해야 한다 . 이 스파이더맨은 멀티버스도 아니고 , 등장하지 않을 빌런은 누구이며 , 우리가 아는 스파이더맨 서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같은걸 계속 전해야 한다 . ‘ 마블 스파이더맨 2’ 는 이런 부분이 더더욱 중요했다 . 2 편이 제대로 가속을 받아 서사를 진행시키려면 1 편에서의 이런 정지작업이 필수였고 , 그 다음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 그 때문에 2 편에서는 새로운 인물들 , 그리고 이전에 등장했지만 아직 서사적인 쓰임이 다하지 않은 인물들 , 그리고 이제는 이야기 전면에 나서야 하는 기존의 인물들 등 수많은 인물들이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 오스본 부자가 전면에 나섰고 , 베놈이라는 새로운 빌런을 위해 필요한 부가 인물들도 등장한다 . 그리고 동시에 기존의 빌런들이 퇴장하기 시작한다 . 벌쳐 , 스콜피온 같은 부가 빌런들은 확정적인 죽음을 통해 서사에서 사라진다 . 이런 과정을 통해 , ‘ 이미 익숙한 이야기 ’ 인 스파이더맨은 ‘ 새로운 이야기 ’ 로서의 당위성을 얻게 된다 . 원래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 간의 관계 , 설정 장치 , 서사의 흐름들을 어떤 것은 지키고 어떤 것은 어기면서 , 전체 총합은 크게 변하지 않음에도 굉장히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는 것 같은 감각을 만들어 낸다 . * 어쩌면 이런 부분이 좀더 설득력을 줄 수도 있겠다 원작이 있는 작품들에게 원작은 좋은 참고가 되기도 하지만 , 많은 경우에는 독이 된다 . 이유는 근본적으로 원작과 파생작들은 대체로 차원 자체가 다른 ( 말그대로 과학적인 의미의 ‘ 차원 ’ 도 )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아무리 1 대 1 로 대응하여 옮기더라도 본질적으로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고 , 또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 1 대 1 이식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결국 스핀오프나 파생작품들은 원전의 요소들을 취사선택할 수 밖에 없으며 , 이 취사선택이 어떻게 되느냐가 항상 논쟁거리가 되곤 한다 . 특히나 코믹스에서 온갖 설정을 쏟아내는 슈퍼히어로물은 이 문제가 더욱 심하다 . 간단하게는 코스튬의 재현에서부터 멀리가면 빌런의 선택 , 캐릭터에 걸친 부가 서사들의 선택까지 모든게 선택의 문제가 된다 . 가령 스파이더맨의 경우에는 뇌절 그 자체인 설정들과 절대 빼놓아서는 안되는 설정들이 많이 있다 . 벤 삼촌의 죽음은 스파이더맨을 구성하는데 빠져서는 안되는 사건이다 . 반대로 스파이더 토템 같은 설정이나 , 많은 이들이 고평가하는 이슈인 ‘ 슈피리어 스파이더맨 ’( 닥터 오토퍼스의 정신이 스파이더맨의 육체에 깃들어 히어로가 되는 이야기 ) 의 경우에도 자칫하면 설정이 과한 , 표현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 ‘ 마블 스파이더맨 ’ 시리즈는 여기서 재미있는 선택을 한다 . 먼저 벤 삼촌의 죽음 같은 , 영웅을 형성하는 서사를 모두 본편에서 빼버렸다 . 설정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 이미 작품 상에서는 오래전 지나간 일이며 구체적으로 언급되거나 묘사되기보다는 플레이어 , 스파이더맨의 팬들이 ‘ 당연히 그런 사건이 있었겠지 ’ 라고 추측하고 넘어가게 만든다 . 대신에 이런 시련을 본편에서 겪는 건 2 대 스파이더맨인 마일즈 모랄레스다 . 이는 매우 영리한 선택이다 .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되풀이하는 건 항상 구태의연하고 지루할 위험이 있다 . 그게 비록 필수적인 부분이라 하더라도 , 서사를 정직하게 항상 모든 사건의 발단에서 시작하는 건 좋은 수가 아니다 . 모든 서사는 시작부터 독자를 강력하게 흡인할 의무가 있으며 , 이야기의 시작지점은 이야기의 마무리와의 간극을 고려해 정해져야 한다 . 동시에 비극의 과정을 마일즈 모랄레스에게로 옮겨 , 플레이어들에게 쉽게 인정받기 어려운 2 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본작에 녹이고 , 감정적인 이입을 만들어 낸다 . 그리고 결정적인 부분은 , 원작의 설정을 차용하되 그 주도권은 확실하게 본작에 있고 , 원작의 설정을 가져오는데에 1 대 1 로 매칭하지 않고 적절히 변용한다는 점이다 . 이는 마치 기표와 기의의 상관관계 같다 . 예를 들어 ‘ 베놈 ’, ‘ 카니지 ’, ‘ 스크림 ’ 같은 주요한 이름들은 모두 등장하지만 , 그 기표 아래에 본질들은 원작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 카니지의 정체인 클리터스 캐서디는 광신도 컬트의 수장으로서 새로운 캐릭터성을 부여 받아 뉴욕 전체를 흔들 가능성이 있는 세력을 이끌어 DLC 의 리딩 빌런이 될만한 포스를 풍긴다 . 반면에 스크림은 단편적인 등장이지만 MJ 의 속내를 피터 파커에게 비춰주고 , 둘의 화해와 결합을 더 단단하게 하는 기폭제로서 작용한다 . * 본작의 베놈은 그 정체가 코믹스와 다르지만 ,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또한 심비오트를 활용하는데 있어 베놈 , 카니지 , 안티베놈 , 스크림을 넘어서서 2 세대니 뭐니하는 설정으로 양산되던 것들을 모두 쳐내고 유명한 심비오트까지만 딱 사용한 것도 적절한 원전의 채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 이렇게 원작 설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 설정을 본작이 우위를 가지고 취사선택하고 있다는 점 , 또한 설정에 과도하게 매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매우 훌륭하다 . MCU 는 오히려 그런 설정 자체에 휘말려 , 수많은 등장인물을 그대로 등장시키면서 적절한 번안을 하지 못해 영화 내에서 캐릭터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 역력하다 . ‘ 이터널스 ’ 에서 청각장애인으로 번안하여 꽤 깊이있는 캐릭터를 보여준 마카리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특색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실크의 경우 , 원작에서는 지나치게 피터 파커에 의존하는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었던걸 의식하듯 마일즈 모랄레스와의 다른 접점을 가지고 등장한다 . 또한 확실하지는 않지만 , 중간에 등장한 헤일리의 주변인물과 동일하다면 ( 비슷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 실크 , 신디 문도 원작과 다른 독자적인 캐릭터 서사의 길을 걷는 듯 보인다 . 이런 과정을 통해 , 우리가 그 탄생부터 성장 과정까지 모두 알고 있는 슈퍼히어로가 또 한 번 새로운 이야기로서 매력을 품게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 무엇보다도 원전의 설정을 있는 그대로 모두 써야 한다는 강박 아래 미리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설정 덩어리가 아니라 , 쳐낼 것은 쳐내고 핵심만을 남김으로서 가지각색인 플레이어들의 사전 지식 정도와 무관하게 ( 물론 스파이더맨이라는 존재 자체는 알고 있어야 하지만 )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는게 중요하다 .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 까지만 챙겨봤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들이다 . ‘ 마블 스파이더맨 2’ 의 서사는 단순히 본작 , 아니 조금 더 나가서 1 편에서 시작된게 아니다 .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을 수십년 동안 여러 차원을 통해 이어진 스파이더버스에 플레이어들을 중간 난입시켜야 하는 게임이다 . 동시에 이미 지난 수많은 스파이더맨 이야기를 겪은 이들에게도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여야 했다 . 이 두가지를 모두 잡는건 성공보다 실패가 가까운 일이지만 , 인섬니악은 그걸 해냈고 , 그래서 올해 최고의 게임을 논하는데 한자리를 꿰차기 부족하지 않다 . ‘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다 . 그건 방법론도 다양해서 이기도 하지만 , 무엇보다 제대로 된 독자를 설정하지 못하면 어떤 좋은 이야기라도 먹히지 않을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스티븐 킹은 이야기를 쓰기 전에 가상의 독자를 설정하기를 당부했다 . 그리고 매번 그의 가상의 독자 역할을 맡아준건 그의 부인 , 태비사 킹이었다 . 비록 그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 어떤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 , 하는 고민은 좋은 이야기에서는 필수적인 고민이다 . 훌륭한 독자설정 , 그리고 이들을 휘어잡기 위한 폭넓으면서 절제된 이야기 . ‘ 마블 스파이더맨 2’ 은 올해 최고의 서사 중 하나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고전 명작과 현대 테크놀로지의 해후: 『검은 신화 : 오공』과 중국 AAA게임의 상상

    2017년부터 중국 게임산업의 실제 매출은 확고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곧 중국 게임산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AAA게임이야말로 한 나라의 게임산업의 종합적인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게이머들에게 뼈아픈 점은 중국이 내내 자체적인 3A게임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관련된 시도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상업적 성장 측면에서 중국 게임산업은 ‘최고의 시대’이지만, 문화예술과 창조성의 측면에서는 ‘최악의 시대’라는 것이다. < Back 고전 명작과 현대 테크놀로지의 해후: 『검은 신화 : 오공』과 중국 AAA게임의 상상 10 GG Vol. 23. 2. 10. 이 글의 중국어 원문은 다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gamegeneration.or.kr/board/post/view?pageNum=1&match=id:179 2017년부터 중국 게임산업의 실제 매출은 확고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곧 중국 게임산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AAA게임이야말로 한 나라의 게임산업의 종합적인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게이머들에게 뼈아픈 점은 중국이 내내 자체적인 3A게임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관련된 시도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상업적 성장 측면에서 중국 게임산업은 ‘최고의 시대’이지만, 문화예술과 창조성의 측면에서는 ‘최악의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모든 것이 돈으로 향하는” 시대와 산업환경 속에서, 이름이 그리 알려지지 않은 『검은 신화 : 오공(黑神话:悟空)』(이하 ‘검은 신화’)는 2020년 8월 20일 영화 『서유기3(원제: 大话西游)』 속에서 “황금갑옷을 입고, 무지개빛 구름을 탄” 영웅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그것은 중국 게임업계 전체를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게임산업에 대한 사회와 여론의 기대까지 불붙게 만들었다. 민족주의 정서의 고양 속에서 사람들은 고전문학 『서유기(西游记)』와 현대 테크놀로지인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의 ‘해후’가 최초의 위대한 중국 AAA게임을 만들어내길 꿈꾸고 있다. 현재, 『검은 신화』는 여전히 제작 중으로, 2024년 여름에 발매될 예정이다. 이 게임과 관련하여 인터넷상에는 총 9편의 영상이 공개됐다. 2020년 8월 20일에는 ① “최초 공개 시연 영상”이 공개됐고, 2021년 2월 9일엔 ② “신축년(辛丑年) 새해 맞이 영상”이, 2021년 8월 20일 ③ “언리얼엔진5 테스트 모음”, 2022년 1월 2일 ④ “호랑이의 해 맞이, 게임과학(游戏科学)에 관한 짧은 영상”이 게시됐고, 2022년 8월 20일에는 ⑤ “6분 테스트 : 에피소드”와 ⑥ “게임 삽입곡 「경계망(戒网, 지에왕)」, ⑦ “『검은 신화』 글로벌 프리미어 8분 테스트 플레이”이 업로드됐다. 그리고 2023년 1월 16일에는 ⑧ “게임과학 토끼해 신년 맞이 영상”이 공개됐다. ①~⑧ 영상들은 이 게임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으며, 파트너인 엔비디아(NVIDIA)가 내놓은 영상도 비리비리상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아직 완성된 게임이 세상에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검은 신화’에 대해 충분히 비평할 수 없다. 하지만 긍정할 수 있는 점은 이 미완성의 게임이 중국 내 AAA게임에 대한 게이머들의 동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자본 증식을 자신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중국 게임산업의 우악스러운 산업발전의 공식을 전환하겠다는 아름다운 희망을 응집한다는 사실이다. 문자 그대로 『검은 신화 : 오공』이 원작으로 삼는 서사는 중국의 4대 고전명작 중 하나인 『서유기』이다. 일반적으로 『서유기』는 늦어도 고려시대 말기에 한국으로 전래됐다고 알려져 있다. 표면적으로 『서유기』는 당나라 승려와 손오공(孙悟空), 저팔계(猪八戒), 사오정(沙僧), 백룡마(白龙马)가 9,981차례의 고난을 겪으면서 인도(西天)로 건너가 불경을 구해낸다는 이야기이지만, 현실의 사회적 모순을 신마소설(神魔小说. 역주: 신이나 요괴 등이 활약하는 동양만의 독특한 소설형식. 자유분방한 언어형식, 풍부한 상상력, 가상의 배경, 중국 바깥 가상의 장소, 종교, 신화 등이 뒤섞여 있다. ) 의 형식으로 굴절시켜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공개된 영상들의 내용을 보면, 이 게임은 『서유기』를 모사한 게 아니라, 장회체 소설(역주 : 명/청시대에 인기를 구가한 소설 형식. 청중에게 들려주기 적당한 길이의 장과 회로 나누어져 있다고 해서 ‘장회(章回)’라는 명칭이 붙었다. 비교적 쉬운 백화체로 쓰였으며, 설화예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인 『속서유기(续西游记)』(역주 : 명나라 시기 익명의 저자들에 의해 쓰인 백화 장편소설로, 『서유기』에 이어 승려가 진경(眞經)을 가져온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요 인물들은 『서유기』와 거의 같으며, 유머가 많다. ) 와 영화 『대화서유』, 인터넷소설 『오공전(悟空传)』, MMORPG 게임 『투전신(斗战神)』 등 『서유기』를 바탕으로 한 크로스 미디어 작품들의 상상력을 포스트모던한 ‘패러디(parody)’ 기법을 통해 원작을 해체(deconstruction)하여 “이 게임 특유의 형식으로 원작의 정신과 함의를 구현”해낸 것으로 보인다. 앞서 열거한 ‘원형’이 된 작품들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투전신』으로, 텐센트가 2010년부터 운영 중인 MMORPG 게임이다. 이 게임은 자체 프로젝트로 시작하여 텐센트를 구원해낸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투전신』은 시작부터 큰 성과를 거둔 후에 오히려 다른 여러 요인들 때문에——물론 주된 원인은 자본 논리와 게임정신 사이의 비타협적인 모순에 있었다——제3장 ‘백골부인’ 에피소드 이후 급속하게 쇠퇴했고, 이는 21세기 중국 게임의 역사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사건으로 남았다. 『투전신』의 메인 기획자는 현재 『검은 신화』의 프로듀서인 요카(Yocar)로, 『검은 신화』의 제작 멤버들 중에는 적지 않은 이들이 『투전신』 제작에 참여했었다. 펑지(骥等; FENG Ji)(역주 : 앞서 언급한 ‘요카’의 본명) 등의 인원들은 텐센트를 떠난 후 게임과학을 설립했다. 게임과학은 『100 히어로즈 (百将行)』, 『아트 오브 워 : 레드 타이드(战争艺术:赤潮)』 등 모바일 게임들을 출시한 이후, 그동안 중국의 게임산업이 손대지 못했던 AAA게임이라는 정점에 도전하고자 했다. 2020년 8월, 헤어진 연인이 재결합하듯 “백골 이후 다시 서쪽으로”라는 이상를 기치로 내걸고, “서유기 세계관”의 게임 『검은 신화』의 제작에 들어간 것이다. 『검은 신화』는 비단 『투전신』의 정신적인 후속작일뿐만 아니라, 게임의 이상에 대한 1세대 중국 게임 제작자들의 고집과 “돈냄새”로 가득한 21세기 중국 게임의 역사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 게임 역사를 향한 또 한 차례의 자기초월의 시도일 것이다. 하지만 빛나고 우수한 문화 콘셉트와 가슴 속의 뜨거운 피만으로는 분명 충분하지 않다. AAA게임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여전히 게임의 기술에 있다. 2020년 8월 20일 첫 시연 영상이 공개된 후, 프로듀서 펑지는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13분짜리 B1에는 여기저기 꿰맞춰 놓은 흔적들이 있습니다. 수치는 제멋대로이고, 착지는 딱딱합니다. 작은 몸은 체조를 하고, 큰 체형은 힘이 없고요. 매미는 모형을 뚫고 나가고, 물에는 피드백이 없습니다. 투박한 방향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사운드는 끊겨 있습니다.”라고 게시했다. 분명히도 당시 『검은 신화』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기술적인 난제가 아주 많았다. 그러나 현재 최근에 공개된 『검은 신화』의 영상 화면을 보면, 상기한 난제들은 어느 정도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이 게임의 일부 디테일에서는 『세키로: 쉐도우 다이 트와이스』나 『사이버펑크 2077』 등 글로벌 톱 AAA게임들과 맞먹는 퀄리티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게임과학측이 언급했듯이 ‘서유기 세계관’에는 글로벌 게임산업에서는 단순한 이족보행 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지는 네발 달린 요괴가 대량으로 존재한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요괴들의 행동 특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인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난제일 것이다. 『검은 신화』는 이에 맞추어 네발 동물의 모션캡쳐를 위한 모션 시뮬레이션 시스템 ‘루우(陆吾; luwu)’를 개발했다. 그러나, 중국 게임업계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첨단이지만 사소하기도 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게임을 “하이테크놀로지” 게임상품에서 인문 사상이 풍부하게 함유된 문화예술 작품으로 바꿀 수 있느냐가 관건이며, 최종적으로 기술과 인문의 이중 추월을 실현하는 것에 있다. 『검은 신화』의 제작과 홍보를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이중 추월의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검은 신화』가 중국 게임 감독들의 ‘작가성’을 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가성’이란 게임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는가 수준의 평범한 어휘가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게임 작품이 인문사상의 매개체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사회적·역사적 상황에 대한 게임 감독의 깊은 고민이 개입되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작가성’이란 게임의 맥락이 사회적인 맥락과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플레이어가 게임 도중 게임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시대의 언어를 ‘읽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존의 자료들을 보면, 『검은 신화』 제작자 펑지의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접근은 일본 게임감독들의 게임사상에 대한 해석에 비교적 가까운 듯하다. 게임기획자 출신인 그는 게임과학의 창업자이기도 한데, 이는 곧 그가 다른 일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도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검은 신화』에 주입할 수 있음을 가리킨다. 게임 디자인 외에는 비즈니스적인 세계의 현실적인 압력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창작 배경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검은 신화』와 그것의 홍보 문구로부터 과거에 『서유기』를 주제로 한 다른 장르 게임들과 완전히 다른 철저한 이상주의의 색채를 읽어낼 수 있다. 가령, 게임 속의 캐릭터 형상화나 액션 디자인, 줄거리 설정, 애니메이션의 연출, 화면 전환, 장면 구축, 공식 웹사이트의 문안까지. 『검은 신화』는 비용 불문 높은 품질과 탁월함을 추구하는 자신의 야심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이상주의는 바로 게임 작품 속에서 ‘작가성’을 부화시키는 전제가 된다. 이에 대해 펑지 등의 (제작진) 사람들은 당연히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13년 전, 일찍이 펑지는 다음과 같이 호언장담한 바 있다. “위대한 게임은 항상 위대한 사상에서 나오고, 위대한 사상은 으레 위대한 게임 디자이너들로부터 나온다.” 『검은 신화』에 게임과학 제작팀의 일상생활에 대한 총체적인 사고와 깊이 있는 관찰이 개입되어 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며, 그것이 ‘서유기 세계관’의 현대적인 함의를 가능한한 풍부하게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게임에는 어떠한 “위대한 사상”이 개입되어 있을까? 공개된 게임 영상들에서 우리에게 확실한 판단 근거를 제시할만한 것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우리는 단지 약간의 실마리로부터 바람과 그림자를 잡을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검은 신화』는 『오공전』과 『투전신』의 현실세계와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비판적인 사유를 연장하고 있지 않을까? 이는 『검은 신화』의 ‘서유기 세계관’에 대한 재해석 역시 『서유기』의 내러티브 자체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원숭이는 양보할 수 없는 주인공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며, 대신 “최고의 화면, 풍부한 디테일, 몰입감 넘치는 전투 체험을 통한 충분한 플롯 연역”을 활용해 동방신마(东方神魔)의 세계를 표상하는 메타 서사 공간으로 새로이 창조하는 것에 있다. “교활한 요정, 흉악한 도깨비, 다정한 군주, 비겁한 신선”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사랑과 원한을 노래하고, “동양의 슈퍼히어로 서사시를 새롭게 쓴다”는 것이다. 따라서 『검은 신화』의 “위대한 사상”은 유럽과 미국의 마블 유니버스와 같은 영웅찬가가 아닐 수도 있으며, 반대로 불경을 구해오기 위한 길 위의 “평범한” 캐릭터들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그려 그/그녀들을 따라 공감하고, 그/그녀들 내면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일 수 있다. 신격화된 신선과 성불, 그리고 오명을 뒤집어 쓴 요괴들과 악마들을 메타 서사의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재인격화하여, 플레이어는 영웅의 후광에 가려진 ‘작은 인물들’에게 다가가 평범하지만 충만한 ‘인성’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서유기』는 현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반영한 기서이다. 따라서 이를 바탕으로 한 『검은 신화』의 최대 난제는 어쩌면 AAA게임 기술 자체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중국 최초의 AAA게임에서 사회 비평적 의제를 설정하고, 사회 문제에 대한 가능한 해결 방안을 찾아내는 것에 있다. 『검은 신화』는 과연 하이엔드 “디지털 장난감”일까, 아니면 사회 비평의 매개인가? 내년에는 그 답이 나올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학자) 덩 젠 , 邓剑 쑤저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부교수. 디지털게임 문화연구를 주 관심사로 다루며, 〈澎湃新闻〉에서 게임에 관한 칼럼 등을 연재하고 있다. (활동가, 작가) 홍명교 활동가, 작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국제연대와 사회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유령, 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를 썼고, <신장위구르 디스토피아>와 <아이폰을 위해 죽다>(공역)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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