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Back

[editor's view] 댓글로 사람이 죽는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14

GG Vol. 

23. 10. 10.

댓글로 사람이 죽는 시대입니다. 90년대 초반, PC통신이 미래의 희망으로 여겨졌던 시대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까요? 직접민주주의가 기술을 딛고 마침내 가능해졌다는 장밋빛 환상, 영화 <접속>으로 대표되는, 선의를 가진 익명의 사람들이 서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이버스페이스의 도래. 당시의 희망을 함께 나눴던 저로서도 오늘날 구축된 사이버상의 커뮤니케이션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부정적인 측면들을 품고 있습니다.


몇몇 미디어들은 특히 게임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좀더 문제적으로 바라봅니다. 멀티플레이 게임이 제시하는 상황 자체가 공격적이고, 그렇기에 커뮤니케이션 또한 더욱 공격적이라고요. 그러나 저는 이 주장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른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멀티플레이 게임과 채팅은 사실상 같은 기술적 뿌리를 가지고 있고, 역으로 채팅과 댓글이 있는 모든 곳은 공격적입니다. (GG가 댓글 기능을 구현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14호에서 우리는 인게임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로 대주제를 설명하고자 했지만, 이 용어는 다소 부적절합니다. 채팅, 이모티콘, 감정표현, 보이스챗은 규칙에 의한 상호작용인 디지털게임에서 규칙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하게 규칙 하에 이루어지는 게임에 영향을 주고, 게임의 승패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인도 아니고 인이 아닌 것도 아닌 이 애매함은 때로는 가상의 공간에서 벌이는 매직 서클 안에서의 게임이라는 개념을 현실과 강하게 연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문제적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게임이라기보다 오늘날의 랜덤 매칭 멀티플레이가 만드는 익명성에서 기인합니다. 우리는 익명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 가져야 할 에티켓을 만드는 일에서 그만 시기를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요? 기술발전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과거보다 더 나은 삶이 기술에 의해 제시된다고는 하지만, 단지 기술만으로 우리의 미래는 아름답게 채색되기 어렵습니다.


<심 어스>라는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특정 생물군을 지능을 가진 사회적 군집체로 진화시킬 수 있는데, 이들이 기술발전만 급격하게 이루고 철학과 윤리 발전이 늦어지면 결국 핵전쟁으로 멸망하는 경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전쟁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사회에서 댓글로 사람이 죽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게임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대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호도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이경혁.jpg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이경혁.jp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