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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643개 검색됨

  • [Editor's View] 손이 바쁜 공모전 특집호를 마무리하며

    비록 한 해에 여섯 호 밖에 나오지 않는 것 같지만, GG의 발행은 꽤나 연속성이 있는 편입니다. 두 달에 한 번 발행하는 잡지를 위해 발행 전 달에 기획회의를 하고, 걸맞는 필자를 섭외한 뒤 각각의 필자들이 한 달간 원고를 준비합니다. < Back [Editor's View] 손이 바쁜 공모전 특집호를 마무리하며 26 GG Vol. 25. 10. 10. 비록 한 해에 여섯 호 밖에 나오지 않는 것 같지만, GG의 발행은 꽤나 연속성이 있는 편입니다. 두 달에 한 번 발행하는 잡지를 위해 발행 전 달에 기획회의를 하고, 걸맞는 필자를 섭외한 뒤 각각의 필자들이 한 달간 원고를 준비합니다. 수집된 원고가 편집을 거쳐 나오기까지의 두 달은 생각보다 빠듯합니다. 아직 직원 없이 혼자 일하는 편집장의 여건상 월간 발행은 무리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달 한 번도 GG 업무는 멈춘 적 없이 4년이 흘렀습니다. 게임비평공모전은 어찌 보면 GG의 여러 농사 중 가장 큰 축제이기도 합니다. 게임비평의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해내는 것은 곧 씬을 키우고 게임비평담론을 대중화할 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치열한 심사 토론을 거쳐 두 편의 수상작을 선정했고, 이번 26호에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공모전 특집호는 항상 저로 하여금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돌아보게 만들곤 합니다. 정기적으로 매 년 한 번씩 초심을 되돌아볼 수 있기에, 그리고 그 시작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변화해 왔는지를 짚어볼 수 있기에 여러모로 소중한 행사입니다. 올해도 공모전에 80편이 넘는 많은 응모작들이 들어왔습니다. 심사위원장 심사평에서도 보실 수 있듯이, 응모작들의 수준은 점점 올라가고 있어 심사위원들의 고충 또한 함께 늘어가곤 합니다. GG가 더 많은 자원을 쓸 수 있다면 더 넓은 가능성으로 더 많은 필자들을 모실 수 있겠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은 터라 매년 응모해주신 많은 분들께 송구한 마음 감출 길이 없습니다. 공모전 특집호를 내다 보면 손이 바빠집니다. 공고를 내고 홍보하고 수집된 응모작을 정리하고 심사하는 과정은 일반적인 기획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그래도 매 해마다 조금씩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해감을 느낄 수 있는 공모전 특집호를 만드는 일은 게임비평 씬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무척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GG와 함께 해 주시는 많은 독자분들께서도 성장하는 GG를 보며 뿌듯해 하실 수 있도록, 내년에도 변함없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확률형 부분유료결제 앞에서의 EA가 마주한 고민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으면, 얼티메이트 팀을 구성할 수 없으므로 한국 시장에 은 핵심 요소가 사실상 탈거된 상태로 시장에 출시되었다. EA는 얼티밋 에디션과 FC 포인트 판매 제외의 이유에 관해 "국내법 변경으로 인해 한국에서 FC 포인트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한국 유저들이 7월 17일부터 선수팩, 드래프트, 소모품, 진화에 사용하는 FC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소개했다. 국가의 규제와 게임사의 사업 전략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 Back 확률형 부분유료결제 앞에서의 EA가 마주한 고민 26 GG Vol. 25. 10. 10. 2025년 7월, 일렉트로닉 아츠(이하 EA)는 (옛 FIFA, 이하 FC 26) 의 국내 판매 구조에서 확률형 과금 요소를 사실상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 이용자는 선수 카드 뽑기 등 확률형 아이템 구매에 쓰이는 FC 포인트를 결제할 수 없다. 이뿐 아니라 마이크로트랜잭션(소액결제) 혜택이 포함된 얼티밋 에디션도 구매할 수 없게 막혔다. 아예 과금 축이 제거된 채 게임이 나오게 된 것이다. 옛 FIFA, 현 FC 시리즈는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게임 프랜차이즈다. 수십 년간 축구 팬들에게 사랑받아온 게임 시리즈가 한국에서는 이례적인 형태로 출시되는 것이다. 단적으로 게임의 얼티밋 에디션 구매가 막힌 것은 전쟁 중인 러시아와 한국뿐이다. 벨기에와 한국에서만 FC 포인트를 추가로 결제할 수 없다. 이 FC 포인트로 유료재화화로 선수 카드를 뽑는 팩을 구매할 때 주로 이용된다. 현재 'FC' 시리즈의 엔드 콘텐츠는 나만의 '궁극의 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선수 카드를 뽑아 스쿼드를 맞추고, 다른 플레이어와의 대전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으면, 얼티메이트 팀을 구성할 수 없으므로 한국 시장에 은 핵심 요소가 사실상 탈거된 상태로 시장에 출시되었다. EA는 얼티밋 에디션과 FC 포인트 판매 제외의 이유에 관해 "국내법 변경으로 인해 한국에서 FC 포인트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한국 유저들이 7월 17일부터 선수팩, 드래프트, 소모품, 진화에 사용하는 FC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1] 라고 소개했다. 국가의 규제와 게임사의 사업 전략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사진 1] 한국 출시 버전에서 얼티밋 버전은 제외된 모습 (스팀 상점 페이지). 한국 출시판에서는 FC 포인트의 판매도 제외되었다. 이 글에 주의를 기울일 독자라면 "국내법 변경"의 개요를 익히 알겠지만, 맥락을 되짚기 위해서 그 맥락을 짧게 톺아보자. 2024년 3월 개정된 게임산업법은 아이템 종류와 등급, 획득 확률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규정했다. 이뿐 아니라 2025년 1월 추가 개정을 통해 표시의무 위반 시 손해배상 특례와 입증책임 전환이 도입되었다. 이 조항은 6개월의 기간을 거쳐 지난 8월 1일 최종적으로 시행 중이다. 새로운 게임산업법은 공개된 수치와 실제 게임 로그 간 차이가 확인될 경우 징벌적 배상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게임사가 확률 정보를 누락하거나 거짓으로 표시해서 피해가 생기면 최대 3배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게임사는 이 과정에 고의나 과실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자료까지 만들어 소명해야 한다. EA가 아니라 그 어떤 게임사라 하더라도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의 '첫 사례'에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았을 터. EA는 패키지게임이 유행하던 1998년, 한국에 EA코리아의 형태로 일찌감치 진출을 했다. <에이펙스 레전드>는 물론 의 서비스를 EA가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책임 또한 EA코리아가 지게 되는 구조다. 한국에 지사가 없거나, 미래의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서 대리인 정도만 두고 있는 기업들과는 상황이 다른 셈이다. [사진 2] 테헤란로에 위치한 EA 코리아 사무실. 일찍이 한국에 진출해 경영활동을 하고 있어 이들은 국내 법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출처: EA 코리아) 더구나 EA가 한국에서만 각 카드 패키지에서 선수의 등장 확률을 공개해버린다면, 북미와 유럽의 플레이어들은 한국에서 발표된 장표를 참고해서 각 선수의 등장 확률을 모두 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페르소나 3 리로드>나 <앨런 웨이크 2> 사례처럼 과거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분류 결과 발표가 글로벌 게임 시장에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되었던 것과 유사하다. (지금은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서 '블라인드 심의' 제도가 따로 운영 중이다.) 의 얼티메이트 팀은 글로벌 동일 서비스로 운영되기 때문에, EA는 이 확률을 일종의 '영업 기밀'로 보아 한국에서 극단적인 수를 내린 것이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1%라고 표기가 되었는데, 실제로 을 많이 플레이하는 유럽 권역에서 그 확률을 검증하려고 시도할 경우에도 EA에게는 관리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러한 위험 사항등을 고려해 결론적으로 EA는 확률형 BM을 에서 사실상 제거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넥슨이 서비스하는 은 이미 한국 법에 따라서 아이템과 카드 등장 확률을 공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단일 서비스 형태로 운영되는 에서는 해당 리스크가 치명적이지만, 한국에서만 주로 서비스되는 에서는 규제 환경에 따른 준비와 실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팬들은 에 대해서 곧잘 '유통기한 1년의 게임'이라고 부르곤 한다. 1년마다 'FIFA', 'FC' 신작이 발매되기 때문에 얼티메이트 팀을 즐기기 위해서 새 풀 프라이스 게임을 구매해야 하는 상황을 자조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새 게임이 나오면 지난 편에서의 얼티메이트 팀 스쿼드 가치는 (유저들이 떠나간) 과거작에만 머무르게 된다. 차라리 수년 간의 라이브 서비스를 보증하는 F2P 부분유료화 게임 사례가 더 건강하게 느껴질 수준이다. [사진 3] 은 ‘FC 27’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그간의 역사에 따르면 말이다. 물론 은 '유통기한'이 지나도 스팀 등의 플랫폼에서 할인가로 판매된다. 그것을 플레이한다고 해서 배탈이 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BM이 빠진 상태로 출시된 이번 작에는 한국어 인터페이스와 자막이 추가됐으며, 전문 해설위원과 캐스터의 해설까지 실려있다. EA코리아 입장에서는 법이 바뀌었지만, 이 1년짜리 게임에 나름의 투자를 감행한 셈이다. '유통기한 1년의 게임'이라고 했지만, 'FC' 과거작은 게이머의 기기에서 계속 소비되고 있다. 를 이 나온 지금 플레이해도 어떤 문제는 없다. 다만 EA는 계속해서 '이제 새 게임이 나왔으니 그것을 사보지 않으련' 하는 광고 팝업이 노출될 뿐이다. 결국 이번 케이스는 세계 최대급 퍼블리셔가 한국에서만 확률형 과금을 접었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이는 확률 공개를 단순히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공개 수준과 검증 방식, 그리고 법적 책임 설계라는 차원으로 논의를 끌어올렸다. EA의 선택은 확률 공개 규제가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실제 산업 전략을 바꾸는 강력한 제도적 압력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토론은 이제 “확률 공개가 부분유료화 문제의 핵심인가, 혹은 더 큰 구조적 논의의 한 축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EA는 미국, 중국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단일 마켓인 한국 시장에서 게임의 핵심 BM을 제거시켰다. 세계 최대 스포츠 게임 프랜차이즈가 한국 시장에만 ‘반쪽짜리’ 형태로 들어오게 된 것은, 한국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의 효력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효력'으로 소비자들은 진정 그들의 권익을 보호받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은 보다 발전된 엔진과 메카닉을 자랑하고 있고, 때문에 EA의 시리즈를 넥슨의 온라인게임보다 선호하는 계층도 (소수에 이르지만) 분명 존재한다. 이번 조치로 법적 리스크는 사라졌지만, 국내 게이머는 글로벌 서비스와 유리된 경험을 유료로 경험해야만 하는 환경이 형성됐다. 지금의 확률 공개 제도의 핵심 목적은 소비자 보호였다. 하지만 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확률 공개냐 아니냐'의 이분법으로는 또렷이 설명할 수 없는 음영지대가 발생했음을 볼 수 있다. 새로운 규제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에서도 0.0000000067465506%의 확률이 공개되었지만 ([AG][NO.7 포함] 멀티 클래스 최종 OVR 116+ 선수팩 (3~7강)의 호날두 7강 카드) 정작 소비자들은 투명해졌다고 느낄 수 있을까?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는 소비자 보호와 건전한 시장 질서를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졌지만, 정작 확률형 아이템을 제공하는 게임의 구조적 문제 (파워 인플레이션과 지속적인 과금 유도, 소비자가 느끼는 심리적 매몰비용, 서비스 종료 등으로 인한 지속 가능성 여부 불투명)는 온전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원고를 탈고하는 지금, EA는 스스로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사우디 국부 펀드는 사모펀드와 함께 약 77조 2,600억 원(550억 달러)의 현금을 들여 EA를 인수하고, 회사를 비상장 회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EA는 나스닥 상장사가 가지는 사회적·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EA의 비상장화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다음 시간에 풀어보도록 하겠다. [사진 4] 넥슨 의 한 선수팩 확률표 (출처: 넥슨) [1] [게임메카] 확률 공개 때문? 'EA FC 26' 한국에 유료 재화 안 판다 / 2025.07.17., 김미희 기자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김재석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비평공모전 4년을 거쳐 온 편집장의 회고

    그렇게 시작한 게임비평공모전을 네 번째 거쳐오는 동안 나에게도 적지 않은 경험이 쌓였고, 어쩌면 게임비평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을 듯 싶다. 이 글은 어찌 됐건 2020년대 이후 꾸준하게 게임비평의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고자 뛰어 왔던 한 개인의 회고록일 것이지만, 그 경험은 단지 개인 혼자 되새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될 것이라 생각해 지면 한 켠을 빌어 이야기를 새겨두고자 한다. < Back 비평공모전 4년을 거쳐 온 편집장의 회고 26 GG Vol. 25. 10. 10. 크래프톤, 게임문화재단과 게임비평잡지를 창간하면서 반드시 함께 하겠다고 넣은 아이템이 게임비평공모전이었다. 게임비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보다, 비평임을 자처하는 글들을 뭉쳐 가면서 천천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그 과정이 있어야만 편집장이 가진 특정한 비평에의 고집이 좀더 다양한 지평에 선 비평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임비평공모전을 네 번째 거쳐오는 동안 나에게도 적지 않은 경험이 쌓였고, 어쩌면 게임비평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을 듯 싶다. 이 글은 어찌 됐건 2020년대 이후 꾸준하게 게임비평의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고자 뛰어 왔던 한 개인의 회고록일 것이지만, 그 경험은 단지 개인 혼자 되새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될 것이라 생각해 지면 한 켠을 빌어 이야기를 새겨두고자 한다. 모든 종류의 사고와 글쓰기에 뛰어들기 시작한 AI에 대한 고민 4회 공모전 응모작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트렌드가 AI의 개입이었다. 절반은 의심이고 절반은 확신이다. 응모작들은 예년에 비해 기초적인 글쓰기의 기술적 측면에서 큰 폭의 질적 향상을 이루었다. ‘글을 못 썼다’라는 이유로 예심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례가 크게 줄었다는 측면에서 확실히 오늘날의 글쓰기, 특히 공모전과 같이 심사가 곁들여지는 형식의 글쓰기에는 AI의 강한 개입이 나타난다. 나는 글쓰기에 있어 도구로서의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원론적 입장은 아니다. 두 가지 이유로부터인데, 첫 번째는 더 나은 정보와 전달력을 위해 향상된 효율의 도구를 활용하는 것에는 오히려 적극적일 필요도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설령 인공지능과의 협업에 의한 글쓰기를 반대하더라도 이를 공모전과 같은 심사 체계에서 완벽하게 필터링할 방법도 없다는 점이다. 다만 말그대로 심사가 이뤄지는 공모전이기에 이는 단순히 합격 – 불합격의 문제를 떠나 애초에 이 공모전을 시작했던 이유까지를 거슬러 되짚어야 할 순간을 만들어낸다. 게임비평웹진에서 개최하는 공모전의 목적은 당연하게도 신진 필자 발굴과 육성이다. 그런데 이는 단지 주최측의 목적일 뿐, 응모자 입장에서도 반드시 ‘내가 게임비평을 쓰겠어!’라는 동일한 목적을 지향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그저 상금과 스펙을 위해, 누군가는 연습삼아 참가할 수 있는 것이고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AI가 개입할 경우 주최측의 고민은 조금 더 깊어진다. 우리가 찾는 것은 게임에 대한 비평적 관심을 꾸준하게 가져갈 수 있는 필자이지만, 그 꾸준한 관심과 통찰을 AI라는 도구를 통해 충분히 가장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고 시상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반드시 해당 필자를 지속적으로 게임비평 담론을 생산해내는 사람이라고 짚어내기는 어려워진다. 이런 고민은 비단 게임비평 뿐 아니라 아마도 다른 모든 류의 글쓰기 공모전에서 공통적으로 떠안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GG 공모전은 적어도 GG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계속 지속될 예정인데, 앞으로 모든 심사에서 AI가 던진 이 새로운 고민인 지속가능한 게임비평 필자의 발굴이라는 고민은 더욱 심사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한 응모자 집단 4년째 비평공모전을 이어 오면서 확인한 또 하나의 변화는 헛스윙이 줄어들고 있다는 흐름이다. 1회 공모전에서는 상당수의 응모작이 GG의 정체성과 잘 맞지 않거나, 혹은 아예 게임비평과 무관한 글들이었다. 이를테면 가장 많이 나온 주제는 “게임을 마약으로 치부하는 한국사회”, “확률도박이나 만드는 한국게임”, “페미가 게임을 망친다” 였다. 이런 주제들은 주최자의 기운을 빼곤 한다. 애초에 GG가 뭐하는 곳인지 글 하나도 보지 않고 응모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4회째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주제의 응모가 거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 나름 길다면 긴 역사에 탑승해 흘러온 결과일 것이다. 적어도 게임제너레이션이라는 웹진이 어떤 글을 쓰고 있고, 어디를 지향하는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음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해 주는 변화로 보인다. 일반적인 리뷰가 아니라 비평이라는 관점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비평웹진의 독자 수는 아무래도 대중적이기는 어려우며, 이런 경우 독자층은 상당부분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 혹은 의지를 가진 집단과 겹치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GG는 과거보다는 좀더 올라간 인지도를 갖게 되었고, GG의 방향에 맞춰 글을 쓰거나, 혹은 GG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아예 응모를 피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이 이번 4회 공모전의 결과다. 아직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의 게임비평의 문제를 넘어 모든 종류의 비평 자체가 과거보다 허약한 대중성으로 인해 사그라드는 추세 속에서 이러한 흐름이 나타난다는 것은 나름 긍정적인 신호다. 아직 사회적으로 다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러한 흐름에 공감하고 게임비평의 필요성에 동의하며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자 하는 일련의 그룹이 존재하고, 그 존재감이 다소 뭉툭하지만 하나의 덩어리로 만져지기 시작한다는 것은 지난 4년의 작업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게임비평이 활성화되고, 대중문화 담론에서 갑작스럽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지금 당장 비평의 필요성을 말하는 입장에서 추구해야 할 과제는 큰 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불씨 하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 나가는 일이다. 언젠가 시기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왔을 때, 지금 살려낸 불씨 하나로 비로소 유의미한 불을 지펴낼 수 있는 불지킴이로서의 역할이 비평 전반이 죽어가는 시대에 비평을 생각하는 이들이 첫 손으로 꼽아야 할 일일 것이다. 과도한 무거움 언제가 될 지 모를 시기를 위해 비평의 불씨를 살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현재까지의 게임제너레이션과 게임비평공모전에 남는 다소간의 아쉬움은 필요보다 과하게 무겁다는 점에 있다. 이는 좀더 엄밀하게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냥 무겁다는 것이 아니라 ‘필요보다 과하게’에 방점을 찍은 무거움이다. 나는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간혹 불필요하게 두꺼운 학술의 옷을 걸치려 하는 일련의 글쓰기 습관을 경계하곤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 학술의 옷이라는 건 말그대로 옷처럼 대중 앞에 설 때 쉽게 발가벗기 어려운 일종의 습관이 함께 따라붙는다. 비평이라는 글쓰기가 상당부분 학술적 글쓰기가 일반적인 학계를 통해 학습되는 문제도 있고, 애초에 ‘진지하게 글쓰기’라는 방식에 묻은 스타일 자체가 그러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비평이 꼭 학술적이어야 할까?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GG와 공모전의 글들은 학술적인 글이라기보다는 학술적인 스타일의 글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대중성과 학술성의 가운데를 자임한다고 늘 이야기하는 웹진이지만 막상 거기 실리는 글들의 논지에 대한 근거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학자의 주장을 각주로 다는 것으로 갈음하곤 한다. 특정한 게임이 우리에게 주는 일련의 메시지와 감정들을 재해석하고 설명하는 데 반드시 다른 ‘학자’의 주장이 동반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저 손쉽게 남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일종의 잘 갖춰진 우상을 등 뒤에 두고 자신의 해석을 풀어가는 것은 아닐지 경계해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글의 문제는 앞서 이야기한 ‘불씨를 살리는’ 일과 맞닿는다. 정작 게임비평의 확산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대중적으로 퍼져나가기 어려운 그들만의 리그 같은 글들만이 쌓여 있다면 우리는 그 순간에 필요한 일을 해 나갈 수 있을까? 그것이 정말 적절한 순간을 위해 대비해 온 결과가 맞을까? 이론과 근거를 쌓아나가는 일은 솔직히 말하면 GG같은 웹진이 할 일이 아니라, 별도의 재정과 인력을 굴리며 그런 일을 하도록 사회적으로 자리매겨진 ‘학계’가 해야 할 일이다. GG는 아카데미가 아니며, 아카데미어야 할 이유도 없고, 아니 더 나아가 아카데미가 되어서도 안 된다. 모든 비평은 결국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아주 단순하고 과감하게 요약하자면 결국 모든 비평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지금 세상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이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며,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갈 방안을 찾아낸 뒤 이를 세상 모두에게 알리며 공감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비평은 때로는 텍스트를, 때로는 수용자를, 때로는 씬 전반을 주목하지만, 그 주목의 대상이 무엇이건간에 원론적 의미에서의 목적인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속성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디지털게임에 대한 비평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등장하고 나름의 영향력을 확보하는 과정을 겪으며 인간과 사회는 게임을 통해 소통하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몇몇 사례들을 통해 게임이 인간을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변화시킨 과정을 목격했고, 반대로 인간이 게임을 새롭게 만들며 더 나은 세계, 혹은 더 어두운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 또한 동시에 목격했다. 게임비평의 근본적 목적이라면 이 변화가 보다 인간과 사회 전반을 위한 방향으로 향할 수 있는 방향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을 것이다. 고작 게임 비평 가지고 무슨 거창한 이야기냐고 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본래 모든 비평의 목적은 그리로 향하는 법이다. GG가 지향한다고 늘 말하는, 학술성과 대중성 사이라는 지향은 사실 이 근본적인 목적을 향하는 일종의 방법론이다. 깊은 성찰을 요하면서도 그 결과가 단지 소수의 그룹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모두에게 향할 수 있는, 깊이와 넓이를 모두 갖춘 통찰이 게임, 그리고 게임을 넘은 세상 전반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GG 창간의 목적이었고, 아마도 이런 입장에 공감하는 많은 필진들의 목적과도 유사할 것이며, 이런 작업들과 함께 나아가는 비평공모전의 지향과도 총론의 입장에서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년에 열릴 제 5회 공모전에서도 이런 지향이 좀더 많은 동지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레벨 업: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임 문화 개관

    분명히 는 말레이시아산 게임의 잠재력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구조적 문제에 얽매여 있기도 하다. 이 사례가 더 넓은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려면, 말레이시아 게임 산업 전반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Back 레벨 업: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임 문화 개관 26 GG Vol. 25. 10. 10. *** 이 글의 영문 버전은 아래 URL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4f5bf4be-c2c0-4cfe-afa8-85a124a83a98 어느 아담한 시골 마을의 늦은 오후. 수탉 렘보가 크게 울어 시골 분위기를 한층 더한다. 당신과 똑같이 생긴 쌍둥이, 그리고 유치원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들이 마당에서 팽이를 돌리고 있었다. 자유롭고 즐거운 하루가 또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렘보는 오후 산책길에서 소동을 벌이고 있었다. 빙수 장수에게 간식을 달라 떼를 쓰고, 숨바꼭질하던 아이들을 고자질하며,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을 놀려댔다. 그러다 마침내 천적인 마을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제 렘보는 장터와 빨랫줄 사이를 가로지르며 고양이에게 쫓기다가 숲 속으로 도망쳐 버린다. 이제 당신과 쌍둥이가 렘보를 잡아 마을 어른에게 데려다 주어야 한다. 이 사건들은 어드벤처 비디오 게임 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게임은 레스 코파케 프로덕션과 스트림라인 스튜디오가 협력하여 개발했으며, 사랑받는 말레이시아 애니메이션 시리즈 을 각색한 것이다. 게임은 장난기 가득한 일상 속 모험에 휘말린 두 어린 쌍둥이 형제가 가족, 우정, 공동체를 배워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과 더 단순했던 시절의 본질을 포착한다. 소란스러운 닭을 쫓는 것은 첫 번째 퀘스트일 뿐, 플레이어에게는 더 많은 탐험이 기다리고 있다. 2025년 7월 출시 행사에서 말레이시아의 디지털 장관인 고빈드 싱 데오는 이 게임이 “혁신성과 문화적 풍요로움을 구현함으로써 말레이시아 게임을 돋보기에 했다”라고 말했다(BERNAMA, 2025a).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동남아시아, 특히 말레이시아의 캄퐁 (시골 마을)에서 성장하는 경험으로 플레이어들을 초대한다. 퀘스트, 상호작용, 환경은 농촌 생활과 지역 유산의 매력을 반영하며, 게임을 즐거우면서도 동시에 교육적으로 만든다. 플레이어는 아늑한 목조 가옥, 분주한 야시장, 고즈넉한 논밭, 반딧불이가 빛나는 저녁 풍경 같은 무대를 체험할 수 있다. 메인 캠페인 외에도 낚시, 농사, 곤충잡기, 요리, 자전거 타기, RC카 경주 같은 미니 활동들이 준비되어 있다. 또한 이 게임은 애니메이션 원작의 따뜻하고 가족 친화적인 성격을 유지하며, 전투, 유료 결제, 실패 조건이 없는 오프라인 전용 게임이다. 이미지 출처: 스팀 안타깝게도, 큰 예산과 상당한 마케팅, 기존 팬층의 뒷받침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평가는 전반적으로 미지근했다. 디지털 플랫폼 스팀에서는 ‘대체로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유명 게임 웹사이트 카쿠초푸레이(Kakuchopurei)는 어설픈 조작감, 버그 투성이의 상태, 의미 있는 진행의 부재, 그리고 개발사를 둘러싼 노동 논란을 비판했다(Toyad, 2025). 온라인 공간 전반에서도 플레이어들은 RM180(미화 약 43달러)에 달하는 가격을 “제공되는 내용에 비해 너무 비싸다”고 보았으며, AAA 게임과 비교해 합리적 가성비가 아니라고 평가했다(Ralph, 2025). 애니메이션이 큰 인기를 끌었던 인도네시아에서도 유사한 비판이 현지 언론 Tempo 를 통해 보도되었다(M. Faiz Zaki, 2025). 소셜 미디어 보이콧과 홍보 위기 속에서도 개발팀은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패치와 수정을 내놓고 있다. 분명히 는 말레이시아산 게임의 잠재력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구조적 문제에 얽매여 있기도 하다. 이 사례가 더 넓은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려면, 말레이시아 게임 산업 전반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임 산업의 성장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다문화 국가로, 2025년 7월 31일 기준 인구는 3,420만 명이다(말레이시아 통계청, 2025). 게임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 6억 4,900만 달러의 매출이 예상되고, 연평균 7.55%의 성장률로 2027년에는 8억 700만 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BERNAMA, 2024). 이러한 전망은 기술력 부족, 기업 수 제한, 보조금 규모 축소, 인재 풀 협소 등으로 막 시작 단계였던 과거 보고서와 뚜렷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Chong, 2004). 말레이시아가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에 뛰어든 것은 1990년대였다. 모션 픽셀(Motion Pixel) 스튜디오는 루카스아츠의 글로벌 릴리즈 작품인 개발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한 바 있었다(Chong, 2004, p. 20). 2000년대에는 말레이시아의 주요 기업들이 글로벌 타이틀, 특히 MMORPG를 말레이시아 시장용으로 라이선스 받아 현지화하는 사업에 다수 착수한 바 있었다. 최근 말레이시아에는 게임 스튜디오 수가 급증했으며, 이들 대부분은 해외 유명 스튜디오들을 위한 게임 아트 아웃소싱 및 공동 개발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예로 패션 리퍼블릭(<디아블로 IV>, <언차티드 4>, <다크 소울 3>), 스트림라인 스튜디오(<스트리트 파이터 V>, <파이널 판타지 XV>), 레몬 스카이 스튜디오(<마블 스파이더맨>, <라스트 오브 어스 2>, <워크래프트 III: 리포지드>) 등이 있다. 이와 별도로, 말레이시아 스튜디오들은 자체 게임도 개발했다. 대표적인 3개 타이틀은 , , 로, 이들은 말레이시아가 글로벌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위상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Wong, 2024). 2023년, 말레이시아 디지털 크리에이티브 부문 산업은 53억 링깃(약 12억 5천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으며, 이 중 수출은 8억 링깃에 달했다(BERNAMA, 2025a). 다양한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정부는 MDEC(말레이시아 디지털 경제공사)을 통해 2030년까지 말레이시아를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지역·글로벌 허브로 육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BERNAMA, 2025a). MDEC은 현지 게임 개발 지원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플레이스테이션 스튜디오 말레이시아와 협력을 강화했다(BERNAMA, 2025b). 이미지 출처: 스팀 MDEC은 매년 이라는 동남아시아 게임 개발자 회의를 주최하여 역내외 전문가들을 끌어모은다. 행사 주요 내용에는 콘퍼런스, 비즈니스 네트워킹 프로그램, 전시회, 피칭, SEA 게임 어워드, 마스터클래스 워크숍이 포함된다. 또한 스팀에서 MDEC은 말레이시아산 게임을 전시할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개발된 뛰어난 IP들을 글로벌 관객에게 소개한다. MDEC의 지원 덕분에 말레이시아의 게임 산업은 계속해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게임 개발 인력을 유지하고 육성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더 많은 산업적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말레이시아에서 인재 유지에 영향을 주는 주요 문제는 커리어 성장이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기업 환경이 거론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많은 인재들이 싱가포르, 미국, 유럽과 같은 고임금 시장으로 떠나고 있다(MDEC, 2024, p. 69). 말레이시아에서 제작된 게임들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풍부한 문화적 요소를 포함해 지역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킨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된 외에도 토닥 스튜디오의 야심찬 MOBA 게임 를 꼽을 수 있다. 이 게임은 고대 및 신화적 동남아시아, 즉 누산타라(Nusantara) 문화를 영감으로 삼아 개발되었으며, 최근 지역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오픈 베타를 시작했다(Kalita, 2025). 이와 유사한 주제는 최근 인디 게임 개발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성장해 온 배경인 말레이시아 문화를 어린 시절 추억의 향수와 결합했다(Chandy, 2024b). 어떤 개발자는 한국 MMORPG <란 온라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Chandy, 2024a).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이머들의 경향 비디오 게임은 단순한 여가 활동일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해 가고 있다. 2022년 조사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통신멀티미디어위원회(MCMC)는 인터넷 이용자의 35.7%가 온라인 게임에 참여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봉쇄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집에 머물렀던 2020년(42.8%)보다 감소한 수치였다(MCMC, 2022, p. 97). 온라인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오락, 스트레스 해소, 사회적 상호작용, 수익 창출, 현실 도피 등이 있다(Yunus et al., 2021). 2020년 말레이시아 게이머들로부터 발생한 수익은 약 27억 링깃(5억 7천만 달러)으로, 2019년 25억 링깃(5억 2천7백만 달러)에서 증가했다(Hassan, 2021). 많은 게이머들은 매달 200링깃(약 48달러) 이상을 파워업, 외형 아이템, 특별 캐릭터 구매에 기꺼이 지출한다고 보고되었으며, 이로 인해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지출이 가장 높은 시장 중 하나가 되었다(Hassan, 2021). 플랫폼 측면에서, 휴대전화의 접근성과 저렴한 데이터 요금은 말레이시아인들로 하여금 모바일 게임을 선호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수요와 수익에서 PC 게임을 앞질렀다(Lai, 2020). 말레이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대표적인 타이틀로는 과 <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이 있으며, 이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영상 스트리밍과 함께 성장하며 상호작용적 관람 문화의 성장을 이끌었다. e스포츠의 인기가 증가하고 있음을 인식한 MOONTON 게임즈는 최근 말레이시아 e스포츠 연맹(MESF)과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하여 체계적인 게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선수를 훈련하며, 다가오는 동남아시아(SEA) 게임에서 금메달 획득 가능성을 높이고자 하고 있다(Salim, 2025). 또한 말레이시아는 장애인을 포함하는 포괄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Yeoh, 2021). 더 넓은 게임 환경 속에서, 말레이시아 게이머들이 자신의 플레이에 문화적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창의적 주체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주목할 만한 사례로는 에서 말레이풍 결혼 행렬을 재현한 것(Zikri, 2020), <심즈 4>에서 목재 기둥과 라탄 가구로 된 전통 가옥을 건축한 것(Ashaari, 2020), <마인크래프트 > 에서 말레이시아의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를 축소 재현한 것(Tan, 2020), 그리고 <로블록스>에서 왕궁의 총리 취임식을 시뮬레이션한 것(As, 2025) 등이 있다. 또한 게이머들은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 > 을 활용해 코로나19 봉쇄 기간 동안 의미 부여, 사회적 교류, 생산적 활동을 이어갔다(Tengku Sabri et al., 2024a, 2025a, 2025b). 게이머들은 개인 페이지와 게임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들의 창작물을 공유한다. 이러한 창의적 노력의 사례들은 말레이시아인들이 단순한 수동적 게이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게임 플레이 속에 구현하는 능동적 생산자임을 보여주었다. 비디오 게임을 둘러싼 말레이시아의 사회적 긴장 말레이시아 게임 산업과 문화가 빠르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비디오 게임에 대한 수용은 도전 과제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비디오 게임이 말레이시아 대중에게 소개되었을 때, 사회적 불안과 긴장이 함께 뒤따랐다. 2000년대 초반, 오락실은 청소년의 무단 결석, 비행, 폭력적 행동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았다. 또한 도박및 자금 세탁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받으며 정책에 의한 규제와 폐쇄를 겪기도 했다(Yoong, 2001). 같은 시기, 사이버카페(역자주: PC방)는 점점 인기를 얻었지만, 당국과 부모들에게는 해로운 생활 방식을 조장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불법 도박, 음란물, 사이버 범죄와 같은 우려가 제기되면서 이러한 카페들은 사회적으로 나쁜 평판을 얻게 되었다(Lee, 2014). 모바일 및 온라인 게임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종교적·문화적 우려도 제기되었다. 2016년에는 <포켓몬 GO>가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으며, 일부 종교 당국은 해당 게임에 대해 경고를 내리고 금지를 요구하기도 했다(Malay Mail, 2016). 최근에는 기도실에서 <모바일 레전드> 대회가 열리면서 논란이 일었고, 비판자들은 성스러운 공간을 모독했다고 주장했다(Fong, 2025). 결론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임 산업과 문화는 개발사 수의 증가, 투자 확대, 인프라 강화에 힘입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의 사례가 보여주듯, 여전히 개선해야 할 많은 부분이 남아 있다. 인력 유지, 품질 보증, 공정한 가격 책정과 같은 구조적 문제가 주요 과제로 남아 있다. 기술적·경제적 측면을 넘어, 말레이시아의 비디오 게임 문화는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산업과 게이머들을 함께 살펴보면, 말레이시아인들이 어떻게 일상 속에서 게임의 기회와 긴장을 헤쳐 나가는지를 알 수 있다(Tengku Sabri et al., 2024b). 산업의 미래 성장은 기술 혁신과 정부 지원뿐 아니라, 더 넓은 문화적·사회적 차원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말레이시아의 게이머, 개발자, 제도 모두가 활기차고 포용적인 게임 문화를 향해 함께 ‘레벨 업’해 가고 있다. 참고문헌 As,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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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Tengku Intan Maimunah Tengku Intan Maimunah is a PhD student at the Department of Media and Communication Studies, Universiti Malaya, Malaysia. Her research explores video game paratexts, focusing on the creative works and practices that players build around their favourite titles. Her gaming journey began on a Windows 98 PC and continues today on a Steam Deck. Outside of gaming, she edits and publishes books on visual arts. She credits her brother for the first step into the world of video games, her father for the love of stories, and her mother for the eye to see beauty in everything.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제4회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심사평

    실망하지 말고 계속 게임을 즐기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토론하며, 끊임없이 글을 생산해주기를 기대한다. 문학적 재능이나 학술적 깊이 하나만으로는 훌륭한 비평문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게임에 대한 애정을 품으면서도 독창적인 문제의식과 충실한 개념 자원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이왕이면 재미있게) 정리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비평가들의 출현을 기대한다. < Back [제4회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심사평 26 GG Vol. 25. 10. 10.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한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응모작 80여 편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상향 평준화’이다. 이전과 비교하여, 대중에게 공개되어도 모자람이 없을 좋은 글의 수가 부쩍 늘었다. 그런 의미에서 양과 질 모두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동시에, 눈이 번쩍 뜨이는 ‘걸작’은 드물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수상작으로 두 편만을 선정한 이유이다. 응모작들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고르게 높아졌음에도, 심사위원들이 중요하게 고려한 글의 형식적 완성도, 독창적인 시각, 비평의 보편성 확보, 그리고 게임에 대한 통찰과 애정이라는 주요 기준들을 모두 만족시킨 작품은 많지 않았던 셈이다. 최종적으로, 류호준의 <게임은 어떻게 우리를 소외시키는가>와 강현의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비평을 위한 시론: 캐릭터 뽑기가 갖는 의의란> 두 편을 제 4회 게임비평 공모전의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게임은 어떻게 우리를 소외시키는가>는 언뜻 보면 진부할 수 있는 ‘소외’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았으나, 이를 실존적 차원으로 확장해 게임 매체의 특수성과 연결한 점이 돋보였다. 글의 전개가 체계적이어서 독이성이 뛰어나고, 글의 구조가 수미상관을 이루어 설득력이 높았다. 무엇보다, 결론 부분에서도 자신의 문제의식을 흐트리지 않고 깔끔하게 완결지은 점을 높이 샀다. 다른 응모작들은 훌륭한 논의 전개를 펴다가도 제대로 된 마무리를 하지 못해 감점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글은 그러한 아쉬움을 느낄 수 없었다. 글이나 게임 레퍼런스 활용이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비평의 보편성과 깊이를 확보한 우수작이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었다.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비평을 위한 시론>은 서브컬처 게임의 ‘뽑기’ 메커니즘과 이용자 애착 관계를 비평적 주제로 삼아, 지금까지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던 영역을 다룬 흥미로운 시도였다. 글의 비평적 초점이 분산되었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이는 산업적 맥락과 수용자 경험을 함께 담고자 했던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선해하였다. 또한 제목에서 드러나듯, 새로운 현상을 포착하고 이를 비평으로 끌어오려는 ‘시론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즉 저자의 차별적 시선과 통찰력만으로도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비록 수상작에 포함되지는 못했으나, 마지막까지 수상 후보로 논의되었던 몇 편의 응모작을 추가로 언급하여 저자들의 노고를 상찬하고 격려하고자 한다. <게임 속 상점을 재개발하기>는 게임 속 ‘상점’이라는 익숙한 요소를 비평 대상으로 삼은 독창적인 발상이 돋보였다. 게임 속 상점의 본질과 의미, 그리고 각 게임에서 드러나는 맥락들을 잘 엮어낸 수작으로, 저자는 좋은 비평가의 소질을 가졌다고 평한다. 참신성에 비해 보편적 설득력이 미흡한 점이 다소 아쉬웠다. <슈퍼로봇대전: 축제적 시뮬레이션과 재매개된 기억의 양가성>는 문제의식이 매우 흥미로웠다. 글의 깊이도 인상적이었다. 폭넓은 독서량과 게임의 매체적 특성을 이어보려는 저자의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단, 개념 사용이 부정확하거나 과잉 차용되어 독이성을 떨어트린다는 흠이 있었다. <방어의 미학: 타워 디펜스가 재정의하는 게임적 주체성>은 장르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고 글의 흥미도도 높았다. 대신 추상적 개념들을 다소 성기게 활용하여 구체적 논의로 심화되지 못한 점, 즉 비평으로서의 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외부저장소로서의 플레이어>는 좋은 아이디어와 주제를 포착하여 짜임새 있는 내용을 전개했으나, 마지막에 글의 결론을 초점 하나로 수렴시키지 못하고 흩뜨려버렸다는 점이 감점 요인이 되었다. 주제의식에 비해 마무리가 약했다. <양동이와 쇠지렛대로 이룬 반역 게임 속 잔여적 사물성에 관하여>는 게임 속 오브제를 통해 ‘잔여적 사물성’ 개념을 제시한 시도가 신선했다. 글의 논리적 구성도 뛰어났다. 그러나 잘 알려진 사례를 반복적으로 다루어 다소 지루하다는 점, 독창적 논지를 끝까지 잘 밀고 가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논쟁적이고 흥미로운 문제 제기라는 점은 높이 살 수 있었다. 이 다섯 편은 물론이거니와, 아깝게 수상작에 포함되지 못한 좋은 글들이 여럿 있었다. 실망하지 말고 계속 게임을 즐기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토론하며, 끊임없이 글을 생산해주기를 기대한다. 문학적 재능이나 학술적 깊이 하나만으로는 훌륭한 비평문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게임에 대한 애정을 품으면서도 독창적인 문제의식과 충실한 개념 자원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이왕이면 재미있게) 정리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비평가들의 출현을 기대한다. 벌써 4회를 맞이한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이 그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으며, 두 분의 당선자 역시 이 토양 위에서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를 기원한다. 땀과 정성이 배인 글을 보내주신 모든 응모자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큰 감사와 축하를 보낸다. 제4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심사위원장 윤태진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세대학교 교수) 윤태진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20년 이상 미디어문화현상에 대한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했다. 게임, 웹툰, 한류, 예능 프로그램 등 썼던 글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들”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게임문화연구』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고, 요즘은 《연세게임·이스포츠 연구센터(YEGER)》라는 연구 조직을 운영하며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게임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번영과 몰락과 애도의 이야기, <33원정대>

    특히 이야기의 결론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애도에 관한 고민들은 게임이 딱히 어떤 정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회적 참사와 그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애도, 그리고 그 애도를 조롱하는 것이 일련의 문화 코드가 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상당히 무겁고 곱씹어볼 만한 주제를 던진다.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떠난 이들로부터 넘겨받은 그들의 표상들은 남겨진 우리와 어떻게 관계맺으며 가야 할 것인가? < Back 번영과 몰락과 애도의 이야기, <33원정대> 26 GG Vol. 25. 10. 10. ***이 글은 해당 게임의 강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게임을 아직 플레이하지 않으신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이하 <33원정대>)>라는 인상적인 게임의 제목에서 미술이라는 매체를 활용하는 방식을 담은 ‘클레르 옵스퀴르’에 대해서는 이미 GG에서 한 차례 다룬 바 있다. 그러나 부제처럼 따라온 뒷부분의 ’33 원정대’라는 의미는 얼마나 다뤄졌을까? 이 글은 <33원정대> 전반에 담겨 있는 설정과 서사를 되짚으며 게임이 보여주고자 했던 희생과 애도의 메시지를 곱씹어보고자 한다. 벨 에포크: 빛과 어둠의 교차 <33원정대>의 배경이 되는 가상세계 속 도시 뤼미에르는 누가 봐도 프랑스 파리를 모티프로 삼은 도시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에펠 탑만으로도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이 도시의 근원은 공간적으로만 프랑스 파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에펠 탑이 존재하는 파리라는 것은 산업혁명 이후 근대적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19세기 후반 이후의 파리가 이 게임의 기본적 배경이다. * 뤼미에르 세계에는 휘어진 에펠탑이 상징처럼 등장한다. 근대의 기술과 번영을 상징하는 철탑은 시작부터 끝까지 휘어진 채 남아 있다. 이 무렵의 서구 유럽을 가리키는 용어인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는 인류의 문명 번영에 대한 찬사를 담은 말이다. 전에 없었던 막대한 부가 집중되고 기술은 인류의 상상을 넘어서는 생산력을 달성해 냈고, 그 가속도는 앞으로 남은 인류의 미래마저도 온통 장밋빛일 수 밖에 없는 전망을 동시대인들에게 남겼다. 그러나 정작 벨 에포크 이후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 말은 게임 제목의 ‘클레르 옵스퀴르’처럼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애니메이션 <푸른 바다의 나디아>에서 파리 만국박람회는 미래와 과학에 대한 예찬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는 흑인을 가둬놓고 전시한 인간 동물원이 함께 존재했었다. 서구 유럽이 달성한 막대한 부와 번영은 명백하게 식민지 착취를 통해 이끌어낸 결과물임을 <소공녀>와 같은 소설, <라지의 챔피언>같은 게임들을 보여주고 있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시절을 거치며 달성한 서구의 번영은 찬란한 미래가 아닌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전례없는 암흑기로 이어지며 벨 에포크라는 말에 빛과 어둠의 두 가지 의미를 시간축으로 담아내는 결과를 맞았다. 클레르 옵스퀴르, 명암 대비라는 제목을 단 게임의 배경이 벨 에포크라는 것은 번영과 몰락이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게임의 설정을 드러낸다. 무한히 진보하고 발전할 것이라는 단선적인 시간관이 아니라 번영과 몰락은 순환하며, 하나의 빛이 도리어 그림자를 내포하고 있음을 게임은 드러낸다. 게임 시작부에 펼쳐지는 한때 분명 화려했으나 몰락해버림을 숨기지 않는 도시 뤼미에르에서 열리는 죽음을 기리는 축제 ‘고마주’는 죽음을 축제로 바꿔버리는 행사다. 번영이 몰락을 이끈 벨 에포크와는 반대로 죽음을 축제로 만드는 이 행위는 빛과 어둠이 순서없이 순환하며 공존한다고 인식하는 게임 전반의 뼈대를 이루는 세계 인식이다. * 파멸은 예정되어 있고, 카운트다운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벨 에포크를 벨 에포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 이후 몰락이 이어지며 그 시기가 유일한 정점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원정대, expedition Expedition의 어원은 라틴어 expeditio이며, 이 말에는 군사 원정, 해방, 준비와 같은 의미가 들어 있다. 묶은 발을 풀어 자유롭게 함으로써 원정을 준비한다는 의미의 이 말은 알려지지 않은 세계를 향해 떠나는 도전적인 원정, 혹은 정벌을 위한 군사적인 원정으로 쓰이며, 게임 속에서 원정대는 실제로 어느 정도 탐험적이고 어느 정도 군사적인 의미로 꾸려진다. 어원은 고대 로마에서 비롯되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쓰는 원정대라는 말의 의미에 가까운 형식은 앞서 언급한 벨 에포크 시대에 확립된 바 있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대외 원정이었을 로알 아문센과 로버트 스콧의 남극점 원정은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0년대에 이루어졌고, 아프리카 대륙 횡단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원정은 1850년대에 이루어졌다. 대외 원정의 시작점이라 볼 수 있을 지리상의 발견과 대항해시대의 탐험들이 있지만, <33원정대>가 참고한 원정은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벨 에포크 시대의 원정에 좀더 가까운 형태다. * 오늘의 서구를 만든 것은 원정이었다. 근대적 시계의 발명은 항해를 위해 이루어졌고, 서구 열강은 식민지 개척과 착취를 통해 전례없는 번영을 이뤘다. 클레르 옵스퀴르라는 말이 가진 양면성은 게임 속 원정대의 의미에서도 두드러진다. 스토리를 밀고 나가 보면 이 원정의 의미 또한 결국 양면적이라는 사실을 만나게 된다. 세계는 현실세계가 아닌 한 예술가 집안에 의해 캔버스 안에 창작된 세계였으며,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것 같았던 페인트리스의 행동은 오히려 그림 속 세계인들에게 세계 멸망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였음이 드러난다. 자신들이 존재하는 세계의 본질에 한발 더 다가섰지만 그런 발견과는 다르게 세계는 멸망의 위기를 맞으며 원정대는 이를 극복할 수 없다. 00부터 시작해 역순으로 33에 이른 원정대 파견은 모두 실패하고 대원들은 사망했으며, 최장수 인원이 33세가 된 사회는 붕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33 그 수많은 원정대 중 왜 게임은 33번 원정대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택했을까? 33이라는 숫자는 서구권에서는 꽤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서구 점성술에서 태양과 상승궁의 순환이 맞아떨어지는 시기로 33년을 주기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널리 알려진 33의 서구적 의미는 예수의 생애다. 예수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나이를 보통 30세로 추정하며, 이때부터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약 3년간을 공생애라는 시기로 활동한다. 따라서 33년은 그리스도의 일생을 가리키는 의미를 내포한다. “나 예수 나이가 되었어!”라는 말은 프랑스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관용적 표현으로 성년이 된 시기, 완성 혹은 전환기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인다. 33이라는 숫자에 담긴 의미 중 <33원정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부분에도 방점을 찍은 듯 싶다. 원정대는 사실상 가망이 없는 이 원정의 결말을 어느정도 예측하고 있으며, 원정을 떠나지 않아도 어차피 고마주의 대상이니 삶에 있어서는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인지를 기반으로 꾸려진다. 벨 에포크의 화려한 전면 장식이 걷혀진 뒤에 몰려온 멸망의 어둠 앞에서 33세, 이제 막 인생의 본격적인 시기를 맞게 된 이들은 화려한 번영이 아니라 몰락의 전조 앞에 서며,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낸 원정대라는 방법론을 사용해 화려한 미래를 향한 장밋빛 길이 아닌 딱히 자청한 바 없는 희생을 향한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게 된다. 애도 세계의 진실이 드러나는 게임 중반 이후부터 이야기는 캔버스 속 인물들로부터 캔버스 밖의 실존인물들로 중심을 옮겨가며, 이 때부터 이야기는 세계에서 개인으로 화제를 돌린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애도라는 감정과 행위가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애도라는 감정과 행위를 설명하고자 한 프로이트의 개념을 재해석하면서 “성공적인 애도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프로이트는 사랑하던 대상을 상실한 인간이 겪게 되는 일반적인 과정으로 애도를 이해하며, 성공적으로 애도를 끝내기 위해서는 상실된 대상을 향한 집착을 벗어나는, 쉽게 말해 떠난 이를 비로소 가슴에서 떠나보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데리다가 말한 ‘성공적 애도는 불가능하다’는 이러한 프로이트의 입장에 대한 재해석이다. 데리다는 애도 과정 속에서 우리는 상실한 타자를 각자의 마음속에 내면화하는데, 이 때 우리는 상실한 대상의 본질 그 자체를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표상과 해석을 통해 재해석된 형태로 간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오히려 애도의 과정은 타자로서의 대상이 가지고 있었던 타자성을 잃게 되며, 프로이트가 말한 성공적 애도는 도리어 상실한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없애버리는 결과일 수 밖에 없으며 결국 성공적인 애도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짧게 정리했지만 결국 프로이트와 데리다가 애도 개념을 두고 보여준 차이는 사랑하던 대상이 떠난 빈 자리와 그 흔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혹은 어떻게 떠나보낼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대목까지 글을 읽은 <33원정대> 플레이어들은 이 논쟁이 실제 게임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것이다. 게임 최후반부에 플레이어가 만나게 되는 두 가지 엔딩은 각각 베르소와 마엘의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하여 따라가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게임에 등장하는 베르소는 현실에서는 이미 죽은 인물이며, 어머니 알린이 캔버스 속 세계에 죽은 아들의 기억을 담아 창조해 낸 가상 캐릭터다. 캔버스 속 베르소는 자신의 본체가 이미 죽었음을 알고 있으며, 그는 자신과 자신을 포함한 어머니가 그려낸 이 가상 세계가 소멸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일 것이라 믿고 행동해 나간다. 반면 실존했던 베르소의 동생인 마엘은 어머니가 점차 자신이 창조한 캔버스 속 가상세계에 빨려들며 무너져가는 현실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직접 캔버스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아직 능력이 약해 캔버스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린 채 16년을 살아 온 인물이다. 그런 마엘에게 캔버스 속 세계는 가상세계가 아닌 자신이 직접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실제 세계였고, 마엘은 베르소가 원하는 캔버스 속 세계의 소멸이 곧 자신에게는 전 세계의 멸망이라며 베르소와 대립한다. * 떠난 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애도할 것인가? <33원정대>의 엔딩은 서로 다른 애도를 향한 선택의 길을 제시하지만, 어느 길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최종전에서 서로 부딪히는 이 두 결말은 정확히 세상을 떠난 인물인 베르소를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상반된 대답이다. 세상을 떠난 베르소의 남겨진 기억은 프로이트적 애도, 상실을 인정하고 슬픔을 받아들이며 이를 가슴에 묻고 남겨진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로 나타난다. 베르소 엔딩을 선택해 진행했을 때 등장하는 실제 죽은 베르소의 묘비 앞에서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애도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묘지와 묘비는 전통적인 애도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베르소 엔딩에서 볼 수 있다. 마엘 엔딩은 데리다가 말한 불가능한 애도의 사례를 재현한다. 베르소는 마엘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뒤 캔버스 세계에서 자신을 소멸해 달라고 애원하지만 마엘은 이를 거부하고 베르소를 포함한 캔버스 속의 소멸된 모든 사람들을 되살리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말처럼 ‘성공적 애도’는 불가능하다. 결국 캔버스에 남은 베르소는 베르소 그 자신이 아니라 어머니와 마엘의 기억과 표상에 의해 재현된 존재이며, 페인트리스로서 재현된 베르소를 계속 살려낼 수 있는 마엘의 능력 안에서 베르소는 자신의 고유성을 잃고 소멸한다. 애도는 근본적으로 실패하며, 끝없이 지속될 뿐이다. 사랑했던 이를 떠나 보내고 남은 이들의 삶을 완벽히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33원정대>는 굳이 어느 방법이 옳다는 평가를 내리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데리다가 프로이트의 애도 개념을 전유한 것은 애도 그 자체를 보기보다는 애도라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윤리적 긴장을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데리다에게 애도는 완결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끝없이 실패하면서도 지속되는 과정이며, 남은 자가 짊어저야 할 윤리적 숙명을 드러내 보이는 관찰의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마엘 엔딩도 데리다가 이야기한 진정한 애도를 재현하기보다는 끝없이 자신에게 남은 표상으로 떠난 이를 재현하며 실패를 연속하는 현상으로서의 애도를 그려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두터운 베이스로 쌓아올린 탄탄한 판타지 <33원정대>는 턴 베이스 롤플레잉 게임으로, 제작진도 언급했고 플레이어들도 직관적으로 느끼듯 일본의 턴제 RPG, 특히 <페르소나>시리즈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게임이다. 두 게임의 연관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턴제 RPG라는 형식, 캐릭터 파티의 구성과 호감도가 전투에 작용하는 방식과 같은 메커닉 요소를 거론하지만, 오히려 <페르소나>로부터 가장 크게 영향받은 부분은 게임 세계의 설정 요소들이다. 멸망을 눈앞에 둔 세계 속에서 청년들이 팀을 이뤄 세계의 멸망에 맞서는 이야기는 <페르소나>가 일본 사회의 여러 맹점들을 게임 속에서 우화로 그려낸 것과 같이 <33원정대>에서도 새롭게 변주되어 그려진다. 서구의 오늘을 만든 근대의 번영 신화와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대절멸의 서사, 강력해진 미디어를 통해 더욱 실제같아진 재현된 표상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떠난 이를 애도하는 개념에 이르기까지 <33원정대>의 판타지 세계는 현실의 문제를 페인터라는 개념을 통해 다시 그려낸 결과물에 가깝다. 특히 이야기의 결론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애도에 관한 고민들은 게임이 딱히 어떤 정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사회적 참사와 그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애도, 그리고 그 애도를 조롱하는 것이 일련의 문화 코드가 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상당히 무겁고 곱씹어볼 만한 주제를 던진다.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떠난 이들로부터 넘겨받은 그들의 표상들은 남겨진 우리와 어떻게 관계맺으며 가야 할 것인가? 빛과 어둠, 번영과 몰락, 소멸과 보존이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이 관계성 속에서 사고하고 빚어지며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되새겨볼 수 있는 다양한 계기들이 <33원정대>의 메인 퀘스트와 다양한 서브 스토리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아마도 당분간 ‘교양으로서의 게임’을 이야기한다면, <33원정대>는 두터운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멋지게 판타지를 구성해 낸 좋은 사례로 꽤 오랫동안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유년기부터 게임과 친하게 지내왔지만 본격적으로 게임이야기를 업으로 삼은 것은 2015년부터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일련의 계기를 통해 전업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연구자의 삶에 뛰어들었다.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2016), 『81년생 마리오』(2017), 『게임의 이론』(2018), 『슬기로운 미디어생활』(2019), 『현질의 탄생』(2022) 등의 저서, '게임 아이템 구입은 플레이의 일부인가?'(2019) 등의 논문, 〈다큐프라임〉(EBS, 2022), 〈더 게이머〉(KBS, 2019), 〈라이즈 오브 e스포츠〉(MBC, 2020)등의 다큐멘터리 작업, 〈미디어스〉'플레이 더 게임', 〈매일경제〉'게임의 법칙', 〈국방일보〉'전쟁과 게임' 등의 연재, 팟캐스트〈그것은 알기 싫다〉'팟캐문학관'과 같은 여러 매체에서 게임과 사회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공부하고 이야기한다. 게임연구소 '드래곤랩' 소장을 맡고 있다.

  •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느꼈던 게임의 과거와 미래

    2025년 3월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정식으로 일반 공개를 시작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은 아직 정확하게 공지는 되지 않았지만 현재(2025년)기준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정부에 등록된 게임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국내에서 이름에 컴퓨터가 들어간 등록박물관은 2023년 기준으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유일하다.) < Back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느꼈던 게임의 과거와 미래 23 GG Vol. 25. 4. 10. 넷마블 게임 박물관 문을 열다. 2025년 3월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정식으로 일반 공개를 시작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은 아직 정확하게 공지는 되지 않았지만 현재(2025년)기준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정부에 등록된 게임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국내에서 이름에 컴퓨터가 들어간 등록박물관은 2023년 기준으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유일하다.) 물론 이전에도 게임을 가지고 있는 박물관이 없지는 않았다. 레트로 게임 카페를 표방하는 개인이 운영하는 공간이나 제주도에 있는 컴퓨터 박물관, 지금은 없어졌던 제로하나 박물관에도 과거의 게임을 상당 수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서울이라는 접근성과 게임 업계에서는 대기업에 속하는 넷마블이 운영한다는 지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넷마블의 게임 박물관에 기대하는 부분이 컸다. 필자는 게임 박물관이 일반 공개를 시작한 날과 두번째 주의 평일의 시간을 골라 방문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박물관도 조금씩 개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 언급된 내용이나 정보가 방문 시점에는 다를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이야기하고 싶다. 또한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박물관 개관 준비의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완전히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싶다. * 넷마블 박물관 초입 (직접촬영) 넷마블 박물관 직접 가보다. 역사속에서 초기의 박물관은 여러 유산들을 모아서 대중에게 공개하는 형태였다. 넷마블의 게임 박물관도 이러한 형식은 충실히 지키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넷마블의 게임 박물관을 처음 방문하면 넓은 공간에서 “나 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이 이야기해주는 인류의 게임에 대한 역사를 짧게 훑는 영상을 보여준 후, 보이는 수장고로 넘어간다. 보이는 수장고는 초반의 수장고와 유물에 대한 전시 공간은 게임 관련 유물을 보여주는 주된 공간이며 특히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1980년대 이전의 기기들은 레플리카이긴 하지만 사진이 아니라 실제 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은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큰 장점이다. 2배로 크기를 키운 둘을 위한 테니스나 PDP-1의 레플리카에서 재현한 스페이스워!(Spacewar!)의 동작화면은 국내에서는 쉽사리 보기 힘든 물건이며 전시 공간 마지막에 존재하는 실물 컴퓨터스페이스(ComputerSpace) 역시 마찬가지다. * 보이는 수장고 전경 (직접 촬영) 보이는 수장고 오른편에는 보기 힘든 수장품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보이는 수장고는 뒤에도 공간이 있어 수장품들의 뒷모습들도 확인할 수 있다. 90년대 대기업들에서 정식 발매된 가정용 게임기용 기기들이나 팩과 패키지 매뉴얼들의 실물은 지금은 대부분 수집가들의 손에 들어가있기 때문에 실물을 실제로 보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물건을 확인할 수 있는 보이는 수장고는 정말 좋은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 보이는 수장고 뒷편 보이는 수장고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소장품 인벤토리는 대형 스크린 5개로 이루어진 키오스크로 수장품들의 이미지가 계속 흘러가면서 이미지를 터치하면 수장품들의 정보를 확인 할 수 있다. 소장품들이 적지 않아서 흘러가는 소장품의 이미지를 보는 것도 즐거움을 준다. * 소장품 인벤토리 이렇게 보이는 수장고가 끝나면, 좀 더 어린 연령대의 관람객들을 위한 자신의 적성에 맞는 게임 개발자를 알아볼 수 있는 체험 키오스크나 게임 개발자들의 테이블과 실제 게임 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려주는 프로젝션 아트, 그리고 이어서 <제2의 나라>에서 게임 캐릭터 생성을 체험하는 코너가 나온다. 연령대에 따라 관심사가 갈리는 콘텐츠일 수 있겠지만 <제 2의 나라> 게임 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컴퓨터 모니터와 벽면을 넘나드는 캐릭터의 설명은 한번쯤 봐 둘만 하다. * 오른쪽 버튼을 꼭 눌러 보길 바란다. 게임의 사운드 트랙과 함께 박물관의 두번째 아카이브인 라이브러리가 나온다. * 도서 라이브러리 게임 박물관의 라이브러리는 다양한 책들이 존재한다. 해외서적과 함께 최신서적 중심으로 되어있긴 하지만 책은 점차적으로 늘려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 아카이브 키오스크 한편 한 켠엔 1990년부터 2010년대의 한국의 게임 역사를 정리해놓은 디지털 아카이브를 제공하고 있다. 이 디지털 아카이브는 인터랙티브 키오스크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해당 기가 한국에서 있었던 주요 게임 사건과 함께 당시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여기까지 지나면 게임에 등장하는 한국과 함께 마지막으로 올해 11월 30일까지 진행하는 한국 PC 게임 스테이지 특별전을 하고 있다. 보이는 수장고와 마찬가지로 한국 PC 게임 스테이지 역시 90년대 한국 PC 패키지 게임의 실물과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으며, 지금은 실물을 보기 매우 힘들어진 당시 PC게임 패키지와 매뉴얼등의 실물이 실제 전시되어있다. * 게임 체험존 마지막으로는 누구에게나 인기가 있는 게임 체험 존이 존재한다. 고전 아케이드게임 중심의 체험존이긴 하지만 실제 이야기를 들어보면 넷마블 사내 카페인 'ㅋㅋ다방'은 외부인들도 이용 가능하다보니 어린이들은 자리를 안떠나려고 하고 있고, 보호자들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게임을 좋아하는 데는 연령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보인다. 게임 박물관 VS 컴퓨터 박물관 한국에서도 컴퓨터 테마의 박물관은 몇 군데 존재하며, 게임 박물관을 표방하는 개인이 운영하는 곳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비교를 해볼수 있는 곳이라면 정식으로 국가에 등록된 박물관들과 비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국내에서 현재 컴퓨터 등을 테마로 한 등록된 박물관은 넥슨 컴퓨터 박물관 정도이다. 시대가 흐르면서 컴퓨터 역시 수집 대상이 되었고 박물관의 전시품에 포함되고 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 옆에 있는 G밸리 산업 박물관에서도 90년대 국산 가정용 컴퓨터들이 전시되어있으며 국립 중앙 박물관의 어린이 박물관 등에는 PC통신 시절 사용하던 단말기가 통신의 역사를 설명하며 배치되어 있었던 적도 있다. 한양대 박물관에는 국내 초창기의 아날로그 컴퓨터가 존재하며, 한글 박물관 또한 다양한 한글 시대 컴퓨터 소프트웨어들을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함께 조금씩 게임들이 전시되어있는 부분도 찾아볼 수 있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경우 주된 테마는 컴퓨터이기 때문에 게임 박물관과 바로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1층의 가정용 게임기의 발전과 실물 가정용 게임기의 전시라든가, 게임 사운드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체험 코너, 그리고 2층의 게임 체험 공간과 라이브러리, 3층의 교육코너와 함께 있는 오픈수장고들은 현재 디지털 기기 및 게임 박물관에서 어떤식으로 전시 및 체험을 진행하는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음을 알수 있다. 오픈 수장고의 경우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경우는 거리가 있고 살펴보기 힘들게 배치되어 있다면 넷마블의 그 것은 좀 더 보기 좋게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라이브러리의 경우는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좀 더 오래되었다 보니 과거 자료를 좀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번에 개관한 넷마블 게임 박물관의 경우는 매우 고가에 거래되는 수집품이 되어버려 그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던 국산 가정용 게임들의 실물을 오픈 수장고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한편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가장 자랑하고 있는 콘텐츠인 복원된 바람의 나라나 PC통신 서비스 같은 국내의 환경을 재현한 게임환경들은 넷마블에서는 체험해보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PC통신 체험코너 (2013년 직접 촬영) 조금 강하게 평가하자면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대한 느낌이라면 보기 힘든 유물들이 잘 정리되어있는 유물 쇼룸이다. 어디서도 보기 힘든 우주 거북선 패키지 라든가, 실물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정식 발매된 국산 게임기들, 레플리카지만 테니스포투(Tennis For Two), MIT PDP-1, 거의 원본에 가깝게 복각해놓은 마지막 코너의 퐁 까지 다큐멘터리나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기기들을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강점이며, 레트로 게임 마니아나 게임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면 한번 쯤 눈으로 봐야하는 물건들이 정말 많다. 다만 박물관 운영 초기라 이러한 유물에 대한 정보가 부드럽게 전달되는 지는 아쉬움이 있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이라면 유물 옆에 좀 길게 적어놓은 텍스트 패널을 둘 법 하지만 넷마블 게임 박물관의 경우 이러한 설명들을 모두 한 단계 아래에 숨겨놓은 경향이 강하다. 전체 디자인 철학이 그렇게 디자인되었다는 느낌인데, 이렇다보니 좀 거칠게는 쇼룸이라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본다. 대부분의 설명을 QR코드로 들어갈수 있는 음성 안내 페이지나 인터렉티브 키오스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은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나 사람이 많이 몰릴 경우, 혹은 키오스크를 놓치는 사람이라면 유물에 대한 설명을 놓칠수 있다는 점은 박물관의 구성에서 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 인터랙티브 키오스크 과거를 전시한 박물관과 게임 박물관의 미래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대한 평가를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어떤 사람들은 소장품 구색의 아쉬움을 이야기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도서관에 대한 자료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고, 공간의 크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먼저 던져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게임 박물관은 어떤 것을 전시해야 할 것인가. 앞서 말했듯이 넷마블 박물관은 희귀한 게임 관련 유물들이 정말 많다. 물론 게임 팩이나 가정용 게임기에 한정하면 더 많이 모은 수집가들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박물관의 전시는 대부분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명확해진다. “유물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들은 어떻게 전시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은 대부분 구성품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을 즐기고 있다. 가정용 콘솔이나 PC용으로는 패키지들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게임 구매의 주된 흐름은 주문형 게임으로 넘어가고 있으며 게임 패키지의 구성품도 소장용으로 나오는 아주 소수로 찍어 프리미엄이 붙는 패키지 외에는 칩만 들어가있으며, 게임에 대한 설명등은 유튜브나 홈페이지로 대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과거의 게임들은 에뮬레이터나 어밴던웨어 등으로 현재의 기기에서 즐길수 있는 경우가 존재하긴 하지만, 당시 패키지의 물성이나 기기의 물성들을 직접 체험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렇다보니 전문가라는 사람이 매뉴얼을 읽지 않고 기기와 게임의 특성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게임을 평가하는 경우도 발생하기 쉬운 상황이기도 하다. 이러한 게임을 위해서는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란 공간은 정말 필요한 부분이다. 대부분의 고전 게임 패키지들이 수집가들의 손에 들어가 빛을 보기 힘든 상황에서 연구자나 과거 게임의 구성품을 살펴 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편 2000년대 들어서 이러한 물성이 거의 없이 소프트웨어로만 존재하는 게임들은 박물관에 전시하기 참 힘든 상황이 되었다. CD 등으로 나오기라도 했다면 CD 등을 전시하겠지만 USB 디스크등의 실물 조차 안나오고 다운로드로만 존재했던 게임이라면 어떤 것을 전시해야할 것인가.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의문은 게임을 어떻게 아카이브할 것인가와도 연결된다. 특히 온라인 게임 중심의 시장이 진행되어온 한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는 더욱더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게임을 어떻게 아카이브 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들은 사실 전세계적으로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다만 점차 이러한 논의들이 활발해져가면서 미국, 유럽, 일본등에서는 단체등이 생기면서 점차 연구나 토론이 늘어나고 있다. 한편 유물로서의 게임만 전시하다보니 당대의 게임 문화, 개발자, 환경들에 대한 전달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도 약점이다. 유물에 대한 설명들도 아쉬운 지점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박물관의 준비 문제라기보다는 이러한 연구 자체가 부족한 한국 게임 학계의 토양에 대해 이야기해야할 것이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게임의 미래도 보존하길 바라며 시작하면서 박물관의 역사에서 유물의 전시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현대의 박물관의 역할은 좀 더 다양해졌다. 앞서 말한 아카이브와 함께 연구, 교육 등이 전시와 함께 따라오는 박물관의 역할이다. 박물관의 입구에서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지들이 존재하며, 라이브러리에 존재하는 <배틀 가로세로> 풍의 퀴즈 게임들은 어린이들이 박물관에서 학습할 수 있는 좋은 체험 프로그램이지만, 이러한 체험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공간의 아쉬움은 있다. 첫번째 방의 게임 영상이나, 제2의 나라 체험관 같은 넓고 화려한 체험관도 좋지만 좀 더 박물관스러운 아날로그한 학습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마블 게임 박물관의 개설이 반갑다. 지금까지의 한국에서는 게임 역사를 정리할 구심점이란 것이 부족했었고 이러한 박물관같은 구심점이 생겨나면 자석처럼 자료와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꾸준한 투자만 계속 된다면 박물관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물들이 모이고 연구가 계속되며 네트워크가 생겨날 수 있다. 이렇게 모인 자료들과 사람들은 새로운 게임의 역사를 조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의 박물관은 유물을 한번 배치하고 끝나는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기획전과 교육 프로그램 업데이트 되는 지식들을 피드백하는 공간이 되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 역시 앞으로의 게임을 아카이브하며 새로운 역사를 정리해나가는 게임 역사를 전시하는 공간의 최전선이 되기를 희망한다. Tags: 넷마블, 아카이빙, 박물관, 학예연구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 [공모전]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게임 관계자들에게는 상식적인 이야기겠지만, 게임에서 레벨 디자인은 게임이 담고자 하는 세계를 디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저가 어떻게 게임을 경험하고 반응할지 예측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세계가 어떤 주제를 담고 있는지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가령, 수많은 논쟁과 악습을 생산했음에도 <리니지2>(엔씨소프트, 2003~)의 레벨 디자인을 비난할 방법은 많지 않다. 물론 일부 플레이어로부터 <리지니2>의 레벨 디자인은 오늘날까지 게임업계의 악습으로 고착된 사행성 기반의 ‘착취적 BM’이 자라나는 초석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되려 엔씨소프트가 지난 10년간 ‘BM 연구’라는 그럴싸한 미명 아래에 범해온 운영 권력의 남용을 호도하는 지적에 가깝다. 그만큼 레벨 디자인은 게임 콘텐츠의 성패를 넘어, 게임 자체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 Back [공모전]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13 GG Vol. 23. 8. 10. 게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레벨 디자인’ 게임 관계자들에게는 상식적인 이야기겠지만, 게임에서 레벨 디자인은 게임이 담고자 하는 세계를 디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저가 어떻게 게임을 경험하고 반응할지 예측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세계가 어떤 주제를 담고 있는지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가령, 수많은 논쟁과 악습을 생산했음에도 <리니지2>(엔씨소프트, 2003~)의 레벨 디자인을 비난할 방법은 많지 않다. 물론 일부 플레이어로부터 <리지니2>의 레벨 디자인은 오늘날까지 게임업계의 악습으로 고착된 사행성 기반의 ‘착취적 BM’이 자라나는 초석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되려 엔씨소프트가 지난 10년간 ‘BM 연구’라는 그럴싸한 미명 아래에 범해온 운영 권력의 남용을 호도하는 지적에 가깝다. 그만큼 레벨 디자인은 게임 콘텐츠의 성패를 넘어, 게임 자체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레벨 시스템이 게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리니지>가 플레이어를 공성전까지 이끄는 경위를 간단하게 풀어보자. <리니지>를 기반하고 있는 바탕은 말 그대로 던전, 즉 맵이다. <리니지>는 로그라이크의 유산을 계승하며 ‘방’과 함께 콘텐츠들의 격리 수준을 꽤 높게 설정했다. 동시에 여기에 PvP 시스템을 함께 적용시켜 무작위성과 우연성을 겹쳐놓았다. 이렇게 급격히 상승한 무작위성과 우연성은 플레이어에게 행위의 결과에 대한 다양한 이유를 만들어준다. 다만, 그 이유는 ‘플레이어가 끼어드는 바람에 파밍을 망쳤다’와 같은 스트레스 요인으로 귀결된다. 이 스트레스들은 PvP 시스템과 얽혀있는 것으로서, “지면 복종해야 하고, 이기면 지배한다”는 강력한 행동 원리를 플레이어에게 쥐여준다. 이는 곧 <리니지>의 정체성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리니지>를 규정하는 건 공성전, 즉 “쟁”이다. <리니지>의 “쟁”은 단순한 부족 간의 전쟁이 아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나름의 사연을 쌓아온 플레이어가 플레이 내내 게임으로부터 부여받은 갈등과 스트레스를 폭발시키는 장에 가깝다. “쟁”의 레벨 디자인이야말로 <리니지>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 짓는 요소다. RPG로서 <리니지>에서 가장 유별나고 정체성이 강한 시스템은 캐릭터가 중첩되지 않는다는 현상이다. 이는 캐릭터가 픽셀을 잡아먹어 공간을 하나의 자원으로 삼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수백명의 플레이어가 한 공간에서 전략을 짜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처럼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에는 ‘하나의 자원을 둔 플레이어의 갈등’을 테마로, 멜서스적 위기를 구체적으로 재현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는 ‘리니지 라이크’라는 명사를 사용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오픈 월드, 그리고 개입과 자기효능감 이처럼 레벨 디자인은 하나의 게임 장르를 탄생시킬 수도 있는 게임의 핵심 요소다. 레벨 디자인에 있어 최근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오픈 월드(Open World)의 적극적인 적용일 것이다. 말 그대로 ‘열린 세계’인 오픈 월드는 흔히 “플레이어가 갈 수 없는 곳이 없는 게임” 정도로 일컬어진다. 장소의 이동에 대한 자율성이 오픈 월드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불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오픈 월드의 가장 큰 특징은 오브젝트(object)에 대한 접근(Enter) 권한이 절차적이지 않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게임의 구성 요소에 접근하기 위해 게임의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는 상태를 구현한 것이 오픈 월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여기에는 게임이 설정해놓은 다양한 미션 등을 통과해야 하는 과정들이 있지만, 오픈 월드를 적용하는 이유는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만끽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자기효능감이란 자율도를 사회학습이론의 거장인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제시한 개념으로서, 어떤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을 말한다. 한 마디로 많은 스튜디오가 오픈 월드를 게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플레이어가 게임이 결정해준 요소가 아닌 스스로 적절한 결정을 수행하고 있다는 믿음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다. 게임의 구성 요소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플레이 권한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믿음, 즉 자기효능감을 반드시 수반하는가? 얼핏 생각하면 이는 맞는 이야기다. 플레이어는 게임이 정한 규칙 등 다양한 구성 요소와 상호작용하며 상황들을 마주하고 그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상호작용을 거부하는 플레이를 통해 자기효능감을 충전하는 플레이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트롤링(Trolling)이다. 트롤링은 공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게임이 금지한 행동을 플레이함으로써 플레이어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무시하고 반사회적 행동을 수행하는 플레이를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트롤링 중 하나가 <리그 오브 레전드>(라이엇 게임즈, 2009~)에서 종종 일어나는 ‘그리핑’(Griefing)이다. 그리핑이란 고의로 팀의 승리에 이바지하지 않는 플레이로, 그리핑의 동기는 다양하나 궁극적인 목적은 게임이 정해놓은 협력 시스템을 고의로 어겨서 자기만족, 즉 자기효능감을 취하는 것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가장 대표적인 그리핑 유형으로 뽑히는 ‘피딩’(Feeding)은 고의로 상대에게 죽임을 당해 팀의 패배를 견인하는 것이다. 혹 <리그 오브 레전드>가 협력 플레이라는 것을 근거로 피딩이 시위의 일종이 아닌가 싶은 추측도 분명 있을 텐데, 피딩은 그런 숭고한 사례가 없진 않겠으나(?), 대게는 그러한 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피딩을 하는 경우는 단순하다. 레벨업 혹은 승급이 필요하지 않은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의 성장을 막기 위해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피더(Feeder)들은 다른 플레이어의 성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전능감(Omnipotence)을 느끼게 되며, 이는 트롤링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획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닷 말해, 협력 시스템을 활용해 왠만한 실력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타인의 게임 구성에 직접 개입(Access)하는 데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고 있다는 감각이 자기효능감의 중핵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선형적 오픈 월드, 혹은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오픈 월드는 직접 게임 요소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듦으로써 플레이어에게 자기효능감을 수반시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플레이어가 게임 요소에 직접 진입(Enter)할 수 있게만 한다면, 게임 요소에 개입(Access)한 것인가? <엘든 링>(프롬 소프트웨어, 2022)은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좋은 예다. <엘든 링>은 소울라이크 장르로서 튜토리얼부터 극악한 난이도의 미션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장르적 특징이다. 플레이어는 튜토리얼부터 차례대로 플레이 공략을 쌓아야만 엔딩에 이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난이도를 해결해나가는 성취감으로부터 자기효능감을 얻는다. 그러나 오픈 월드는 이러한 절차적 요소를 복잡하게 만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된다면 플레이어는 고난이도 캐릭터를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마주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절차적 요소의 핵심은 마디와 순서다. 어떤 진행에 있어 진행과 진행 사이가 구분되어 있고, 그 구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순서를 만들 수 있다면 절차로 볼 수 있는 정황이 충분하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마디와 순서에서 플레이어가 얻는 것은 예측과 기대이며, 플레이어는 이 예측과 기대를 바탕으로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엘든 링>이 오픈 월드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소울 라이크 팬들이 기대했던 것은 바로 이 진행과 진행 사이의 절차 구조상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특히 보스 콘텐츠까지 이르는 과정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 문제는 소울 라이크가 쌓아놓은 절차적 요소 자체가 워낙 단순하고, 그 단순함이 재미를 보장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엘든 링>에 있어 새로운 구조적 변화를 설계하기보단 비주얼 요소들에 집중했다. 그 결과, <엘든 링>은 충분히 잘 만든 게임임에도, 게임이 기획했던 바와 같이 오픈 월드를 플레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쉽지 않다. 물론, 보스까지 직통으로 연결되는 루트를 찾아 ‘길뚫 플레이’를 할 수 있지만, 이것이 게임 요소에 개입했다는 믿음을 주지는 않는다. 보스 콘텐츠라는 마디로 진입하는 것 자체가 <엘든 링>의 절차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마디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엘든 링>은 접근은 허락할지언정, 게임의 핵심적인 요소 자체에는 개입을 어느 정도 차단하는 일종의 절차적인 레벨 디자인을 꾸민 것과 같다. 이는 오픈 월드더라도 플레이어는 게임이 디자인한 특정한 순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과 같다. 오픈 월드라고 하더라도 플레이어와 레벨 디자인의 적극적인 상호작용, 그리고 플레이어의 온전한 주체성을 통해 게임 요소에 개입하여 얻어지는 자기효능감은 약한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플레이어에게 하지만 여기에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오픈 월드이고,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플레이했기 때문에 체험을 통해 습득한 서사는 비선형적이지만 꽤 괜찮은 세계관을 완결적으로 경험했다는 감각이다. <엘든 링>이 가진 독특하고 진중한 아트 디자인과 비주얼, 스테이지 간의 통일감과 앙상블이 세계관에 대한 플레이어의 체험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엘든 링>이 오픈 월드인 척하는 ‘반쪽짜리 오픈 월드’를 구현해놓았음에도 수많은 평론가가 <엘든 링>을 고티(GOTY, Game Of The Year)의 영역에 올려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이야기에서 하나의 완결된 세계관 체험을 통해 선형적인 서사로 경험되는 것은 흔치 않은 플레이다. 그리고 이러한 콘텐츠 체험은 무엇보다 소울 라이크 장르 팬이 아닌 장르 저관여 게이머도 유입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를 통해 <엘든 링>은 소울 라이크 장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 오픈 월드로서 선형적인 서사를 제공하는 <엘든 링>의 장점은 ‘디아블로’ 시리즈의 최신작 <디아블로 4>(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2023~)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디아블로 4>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가장 큰 장기인 압도적인 시네마틱 시퀀스를 통해 적절한 지점에 일종의 랜드마크를 세워놓는 효과를 본다. <디아블로 4>가 게임 내에서 보여준 핵앤슬래시 요소의 미성숙한 기술적 완성도와 많은 단점을 가진 게임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디아블로 4>의 시네마틱 시퀀스들은 레벨 디자인이 수행해야 하는 바로 그것,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정당화할 수 있는 요인을 마련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디아블로 4>의 시네마틱 시퀀스들이 오픈 월드의 요소를 마모시켰더라도,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지킨 것은 최소한 나에게는 <디아블로>를 속칭 ‘고인물 밭’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절치부심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디아블로M>이 던져놓았던 <디아블로> 시리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들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출시 5일 만에 글로벌 매출 6억6600만달러(약 8476억원)를 찍으며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역사상 최대 출시 판매액을 기록한 점은 그 반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사례들은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얻는 자기효능감이란 결국 반두라가 정의한 바와 같이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기대를 하게 한다. 게임의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구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특정한 요소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즐기게 만들기 위해 반드시 플레이어에게 모든 접근 혹은 개입 권한을 줄 필요가 없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게임에 있어 자기효능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건 어쩌면 플레이어에게 스스로 결정한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완성도 있는 세계관과 그 세계관을 구현한 게임의 명확한 존재 이유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레벨 디자인 너머에 있는 것 글을 열며 <리니지>를 언급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을 비판하는 건 대단히 복잡하고 힘든 일이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레벨 디자인은 게임사에서도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리니지 라이크’는 자기효능감과 거리가 먼, ‘착취적 BM’과 같은 악습으로 통한다. 나는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이 악습으로 받아들여 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더욱이 앞에서 밝혔든 <리니지>의 레벨 디자인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엔씨소프트가 범해온 운영 권력의 남용을 호도하는 일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는 되물어야 할 것이다. 높은 수준의 레벨 디자인을 구현하고, 대체 불가능한 재미를 통해 플레이어를 게임 안에 가두리(Lock-In) 시키는 일은 또 다른 ‘착취적 BM’을 양산하는 바탕이 되는 것일까? 나는 게임에는 죄가 없다고 믿는다. 악습을 결정하는 것은 스튜디오와 디플로이어들의 선택이며 태도라고 생각한다. <엘든 링>이 소울 라이크를 재탕하지 않고 반쪽짜리라도 오픈 월드를 선택한 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디아블로M>보다 시네마틱 시퀀스를 우선시 한 점은 모두 레벨 디자인을 넘어서는 일이다. 거기에는 게임을 사업 혹은 놀이 이상의 업(業)으로 대하는 태도가 있다. 이처럼 게임의 레벨 디자인을 완성하는 것은 레벨 디자인 그 자체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레벨 디자인의 궁극적 목적, 즉 게임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스튜디의 선택이자 태도다. 그리고 한편으로 게임의 명확한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구하는 일은 플레이어에게 최선의 재미를 서비스하는 기본적인 책무를 넘어, 게임을 통해 플레이어의 플레이를 책임지겠다는 게임 개발의 윤리적 태도이기도 하다. 게임과 재미는 진지한 비즈니스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원) 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뉴미디어・게이밍 섹터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 ‘아카트로닉스’라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이라는 것이 있다. 호기심의 방은 말 그대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진귀하고 이국적인 것들, 때로는 괴이한 것들로 가득찬 공간이었다. 주로 16-17세기 영국에서 개인 컬렉터들에 의해 만들어진 호기심의 방은 박물관의 기원 중 하나라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 공간이 단순히 수집품을 모아두는 곳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수집 공간’은 대중에게 공개되어 보여졌다. 당대에 가치있던 고미술품이나 유물, 또는 명망있는 화가의 작품이 아니었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상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Back ‘아카트로닉스’라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 08 GG Vol. 22. 10. 10.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이라는 것이 있다. 호기심의 방은 말 그대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진귀하고 이국적인 것들, 때로는 괴이한 것들로 가득찬 공간이었다. 주로 16-17세기 영국에서 개인 컬렉터들에 의해 만들어진 호기심의 방은 박물관의 기원 중 하나라고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 공간이 단순히 수집품을 모아두는 곳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수집 공간’은 대중에게 공개되어 보여졌다. 당대에 가치있던 고미술품이나 유물, 또는 명망있는 화가의 작품이 아니었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상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호기심의 방의 주인들은 때로는 수집품의 특정 주제를 선정하여 출판물을 펴내거나, 수집물을 통한 연구를 독려하기도 했다. 이런 수집과 보여주기가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현상들―컬렉션의 형성과 보존 및 복원, 그리고 전시―이 갖는 의의를 간과할 수 없다. 부천 신중동의 한 번화가 건물 3층에서도 캐비닛(cabinet)들로 채워진 호기심의 방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2018년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센터, 특히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슈팅 게임 전문이라는 슬로건으로 2018년 개업한 아카트로닉스다. 이곳을 들어서는 순간 소위 아케이드 게임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라면 돈파치(首領蜂, どんぱち), 케츠이(ケツイ ~絆地獄たち~), 트윈비(Twin Bee, ツインビー) 등의 슈팅게임 기판들이 가동되는 있는 모습에 놀랄 것이다. 게임 자체가 아니더라도 3개 스크린을 가로로 연결해 서비스되는 다라이어스(Darius, ダライアス) 기체의 생경한 위엄과 같은 걸 접할 수 있는 아카트로닉스란 누구에게든 호기심을 자아낼 수 있는 곳임이 분명할 것이다. 아카트로닉스(Akatronics)라는 이름은 현역 플레이어인 이곳 점장의 플레이네임인 ‘Akatian’의 ‘Aka’와 ‘electronics’의 ‘tronics’를 합쳐 만들어졌다. 이름에서도 어렴풋이 알 수 있듯 이 공간은 점장 개인의 취향과 기준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된다. 아카트로닉스의 최수권 점장은 일산의 한 오락실에서 스탭으로 근무하며 휴가 때마다 일본에 방문해 게임센터를 둘러보고 슈팅게임과 국내에서는 찾기 힘든 몇몇 레트로 게임들에 매력을 느끼면서 아케이드 게임 기판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아카트로닉스 오픈으로 이어지게 됐다. 여기서 그가 기판을 수집할 때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기준은 일본의 각종 아케이드 게임 관련 회사들이 모여 설립한 일본 어뮤즈먼트 머신 공업협회(Japan Amusement Machinery Manufacturers Association)에서 지정하는 통칭 ‘JAMMA’ 규격이다. 이 규격을 위주로 기판을 매입 및 수집하는 것은 ‘현역 플레이어’로서 조작의 반응 속도와 화면 출력까지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1) 여기에 추가로 점장으로서의 취향이 반영되어 아카트로닉스만의 아케이드 게임 컬렉션이 만들어져나간다. 이 수집가의 공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 된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들이 가동, 또는 ‘보존’되어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아카트로닉스의 컬렉션은 현재 약 50개 정도의 기판으로 이루어져있다. 기판과 캐비닛의 수가 상이하기에 가동되는 게임은 수시로 바뀌는데, 최수권 점장은 나름의 노하우로 게임을 가동시키기 적합한지 기체 컨디션을 판단해 기판을 교체한다. 조이스틱과 버튼 상태 등 게임을 쾌적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최적화된 상태를 계속 점검하며 게임을 교체해 내놓는 것이다. 또 CRT 모니터를 확보해두고 매일 같이 점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2) 올해 초 세가(SEGA)가 아케이드 운영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의 유명 오락실들이 폐업한다는 소식 또한 계속해서 들려온다. 모바일 디바이스로 언제 어디에서든 바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고, PC와 콘솔에서도 특정 플랫폼이나 구독 서비스를 통해 원하는 게임을 바로 내려받아 해볼 수 있는 이 시점에서, 한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오프라인의 특정 장소로 가야한다는 것은 이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오락실 세대’라 하기 힘든 90년대생 필자는 이런 상황에서 우연히–아마도 알고리즘에 이끌려–사라만다(沙羅曼蛇, Salamander)와 다라이어스의 플레이 영상을 접한 후 80-90년대 아케이드 게임에 매료되어 ‘현역으로 가동되고 있는 기판' 3) 을 찾아 나섰고, 아카트로닉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는 그저 예전 게임을 해보기 위해 아카트로닉스를 찾아 집을 나섰을지 몰라도, 돌아오는 길에는 아카트로닉스라는 공간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보게 되었다. * 아카트로닉스의 하이스코어 보드 * 케츠이를 플레이하고 있는 최수권 점장 아카트로닉스에서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은 과거의 것으로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점수가 경신될 수 있는 것으로서 현재에도 유효하게 존재한다. 최수권 점장은 아케이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혼자하는 카드놀이의 총칭인 솔리테어(solitaire)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가 아카트로닉스를 통해 제안하는 방법들은 각 게임의 솔리테어로서의 재미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4) 동전 하나로 게임을 클리어하는 ‘원 코인 클리어’는 아카트로닉스에서 가장 장려하는 것이다. 과거 오락실에서는 동전 하나로 오랜 시간 플레이하는 것을 보다못한 사장님들이 게임을 강제로 꺼버렸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기도 하지만, 아카트로닉스에서 원 코인 클리어는 이곳을 방문하는 플레이어들의 목표로 추천된다. 또 여기엔 국내에서 유일하게 집계되는 ‘하이스코어’가 있는데, 일본 하이스코어 협회(日本ハイスコア協会, Japan Highscore Association)의 룰에 기반하여 아카트로닉스에서 집계되는 하이스코어는 플레이어들에게 스코어러(scorer)로서 점수를 격파하는 즐거움을 선물한다. 덧붙여 최수권 점장은 아카트로닉스를 일종의 ‘도장(道場)’이라고도 표현하는데, 마치 도장에서 무술을 수련하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듯, 플레이어들이 아카트로닉스라는 “정해진 장소에서 어디까지 (플레이)할 수 있을지” 5) 시험해보길 원하기 때문이다. 모든 게임은 녹화 가능하고 중계될 수 있으며, 플레이어는 일종의 수련자로서 스스로 플레이의 한계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돌파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 즐거움과 수련의 방식들은 나름의 자취를 남긴다. 매일 같이 집계되고 발표되는 하이스코어, 기록되고 스트리밍되는 플레이들…. 이처럼 아카트로닉스라는 공간에서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은 단순한 과거를 넘어 ‘경기’로서 영원한 현재성을 발휘해야 하는 무엇처럼 제시된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카트로닉스가 궁극적으로 ‘유지’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과거란, 어쩌면 수련자로서의 아케이드 게이머라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고. 나아가, 최수권 점장의 아카트로닉스 자체가 하나의 수련이자 도전인 것은 아닐까? 과거 유럽에서의 호기심의 방이 박물관의 원형처럼 기억되듯, 아카트로닉스와 같은 실천을 미래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아카트로닉스라는 새로운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에서, 진귀한 캐비닛(cabinet)들은 지금도 당신의 플레이를 기다리고 있다. [아카트로닉스 점장님의 추천] 아카트로닉스에 방문한다면 아카트로닉스의 자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3화면의 다라이어스와 테트리스 더 그랜드마스터 3를 꼭 플레이 해보시길! 1) 아카트로닉스 최수권 점장 인터뷰(2022.09.22., 부천 신중동) 2) 위의 인터뷰 3) “게임장 소개” 글의 표현 참고, 아카트로닉스 블로그, 2017년 10월 27일. https://akatian-retronics.tistory.com/3?category=761755 2022년 9월 20일 접속. 4) 위의 인터뷰 5) 위의 인터뷰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독립 기획자) 홍성화 큐레이터학과 예술학을 전공했다. 최근 레트로 게임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전시들을 준비하고 있다.

  • B급 게임이란 무엇인가

    게임과 B급이 여러 차원에서 연결돼 왔기에, 둘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분명한 것은, 게임에서 ‘B급’이라 불리는 것들 역시 (그렇지 않은 것들 못지않게)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가며 게임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게임과 B급에 대한 논의는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감이 있다. 이 글에서는 앞서 말한 연결지점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지점을 중심으로 게임+B급에 대해 논의하도록 한다. B급 정서나 코드가 게임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그것을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핌으로써, 게임에서의 B급, B급 게임, B급 게임문화 등이 게임문화 전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리한다. < Back B급 게임이란 무엇인가 05 GG Vol. 22. 4. 10. 주류 대중문화의 주변부에서 꽃을 피우는 문화가 있다. 이 문화는 기존 대중문화에 반기를 들기도 하고 재/구성하기도 하면서 스스로의 위상을 만들어간다. ‘B급’ 문화 이야기다. B급 문화의 시초는 B급 영화였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제작여건이 나빠지자 할리우드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저예산 영화를 만들어 메이저 영화와 끼워팔기+동시상영 전략을 구사했다. 관객들은 졸지에 A급이 된 메이저 영화와, 저예산 B급 영화를 한 편의 가격으로 볼 수 있었다. 이후 1940년대 말부터 독립영화제작사들이 출현하면서 B급 영화의 의미는 메이저 영화가 표현하지 못하는 자유로우면서도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정신을 뜻하는 의미로 변화해갔다. 탈장르화·탈문법화와 함께 B급 영화가 적극 활용한 방법론 혹은 기법은 키치(kitsch), 패스티시(pastiche), 패러디(parody), 오마주(hommage) 등이었다(조주영·안숭범, 2015). 그리고 이제 B급은 그 대상이 영화에만 한정되지 않는 데다, 비주류 정서나 코드를 통한 자극적 유희성을 추구하는 창작물의 의미까지 넓게 포함한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B급이란 무엇일까? 다른 대중문화 장르에서도 대체로 그렇겠지만, 게임과 B급은 여러 차원에서 연결돼 왔다. 그 연결지점을 구분하면 다음 정도겠다. 첫째, 예술은 말할 것도 없고, 대중문화 장르 사이에서도 게임은 B급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주류가 될 수 없는 B급 대중문화물 중 대표적인 것이 게임이었다. 둘째, 수준 미달의 게임을 B급 게임으로 부르기도 한다. 셋째 그리고 가장 일반적으로, 영화나 다른 대중문화 장르를 통해 구축된 B급 정서나 코드를 활용한 게임을 일컬을 때 사용된다. 넷째, 소수에 의한 열광적인 수용문화와도 관련된다. B급 문화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추종자들이 나타나고, 그들에 의해 작품이 끊임없이 재/해독되어야 한다. 작품에 내재한 의미들이 드러나고, 일견 가볍고 유치한 것이 수용자들의 굉장히 적극적인 해독행위와 만나 진지하게 읽혀질 때 비로소 B급 문화가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게임과 B급이 여러 차원에서 연결돼 왔기에, 둘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분명한 것은, 게임에서 ‘B급’이라 불리는 것들 역시 (그렇지 않은 것들 못지않게)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가며 게임문화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게임과 B급에 대한 논의는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감이 있다. 이 글에서는 앞서 말한 연결지점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지점을 중심으로 게임+B급에 대해 논의하도록 한다. B급 정서나 코드가 게임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그것을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핌으로써, 게임에서의 B급, B급 게임, B급 게임문화 등이 게임문화 전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리한다. B급 게임은 무엇을 담는가 B급 게임도 다른 B급 문화장르처럼 비교적 저예산으로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비주류 콘텐츠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자유분방하고 오락적·자극적인 스타일을 지닌다. 게임 속 이야기 전개가 (있는 경우) 탈개연적·비약적이고, 느슨하거나 비논리적임은 물론이다. 상호텍스트적(intertextual) 방법론의 활용도 B급 게임에서 빈번하게 발견된다. 우스꽝스럽거나 진지하지 않은 그림체와 여타 그래픽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물론 최근에 와서는 이러한 B급의 공식들도 조금씩 바뀌기는 하는 듯하다. 가령 B급 게임도 이제는 얼마든지 메이저 게임에 비견되는 예산과 기간을 필요로 할 수 있다. 그리고 B급의 스타일이나 방법론은 이제 꼭 B급이 아닌 게임에서도 빈번히 발견된다. B급 게임을 규정하는 데에는 시대적 맥락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높은 완성도와 전작의 인기로 후속작이 출시될 때마다 세간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바이오하자드(Biohazard)〉 시리즈지만, 처음부터 〈바이오하자드〉가 지금과 같은 위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6년 캡콤이 출시한 첫 〈바이오하자드〉는 크게 기대하는 타이틀이 아니어서 소량만 출시됐다. 출시 직후 화제가 됐던 것은 충격적인 오프닝 영상이었는데, 제작비 문제로 무명배우를 기용해 찍었던 오프닝 영상은 B급 호러물의 느낌을 보여주었다. 어지간한 슬래셔물을 능가하는 잔인한 장면들은 사회적으로도 논란을 야기했다. 가정용 비디오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에 그렇게까지 잔인한 장면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당시 시대관념에 비춰봤을 때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문의식, 2015. 1. 16). B급을 B급이게 만드는 요건들이 느슨해지거나 그 경계가 희미해지거나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B급 게임은 존재한다. 〈엄마는 게임을 숨겼다〉라는 게임 시리즈가 있다. 주인공은 하루 종일 게임만 한다. 그러다 엄마에게 걸린다. 엄마는 게임기를 숨기고, 주인공은 한 스테이지 스테이지 갖은 방법을 동원해 게임기를 찾는다. 설정만 봤을 때는 그냥 조금 우스꽝스런 게임인 듯하지만, 게임기를 찾는 기상천외한 방식(옷장 앞을 막고 있는 축구선수?를 따돌리면 게임기가 등장한다거나), 당황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게임오버 씬(주인공이 “마마, 칙쇼!!”라고 외친다거나...), 그리고 다양한 사물들의 맥락 없는 배치(게임 〈고양이 장애물〉의 생선 등), 그럼에도 지나치게 맑은 색감과 깔끔한 그림체는 묘하게 부조화스러운 조화를 이루며 플레이어들을 긴장케 만든다. B급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비주류 취향 게임들이 모여 B급 장르화되는 경우가 있다. 설정·연출·전개 등이 비상식적이고 약을 빤 듯한 분위기를 내는 ‘바카게(バカゲー)’가 대표적이다. 바카게는 바보, 멍청이, 무능하다는 뜻의 ‘바카(バカ)’와 게임의 줄임말인 ‘게(ゲー)’의 합성어이며,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병맛겜’ 정도가 될 듯하다. B급 장르로 ‘슈르게(シュールゲー)’도 빼놓을 수 없다. ‘슈르(シュール)’는 초현실주의(surréalisme)의 일본어 발음인 슈루레아리스무(シュルレアリスム)에서 앞 자만 따온 말이다. 슈르게는 말 그대로 초현실적 게임, 즉 기괴하거나 난잡한 그래픽, 이상한 외모나 성격의 캐릭터,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만이 아니라 현실을 가장한 비현실적 상황 등을 주된 요소로 삼는 게임류를 가리킨다. 당연하게도, 바카게나 슈르게가 게임성을 포함하는 개념은 아니다. 둘에는 게임성이 우수한 게임과 그렇지 못한 게임이 모두 포함되며(물론, ‘우수한 게임성’에 대한 기준도 수렴되지는 않을 테지만), 마니아층의 지지를 얻는 것이 일반적이나 바카게/슈르게적 요소가 적당한 수준이라면 그 게임은 대중적으로 폭넓게 사랑받기도 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B급 게임을 만드는 데 특화된 게임사들도 있다. 1970년대 설립돼 2000년대 초반까지 〈트리오 더 펀치(トリオ・ザ・パンチ, 1989)〉와 같은 게임을 만들었던 일본의 데이터 이스트(Data East)사, 〈어스 디펜스 포스: 아이언 레인(Earth Depense Force: Iron Rain, 2019)〉의 D3 퍼블리셔(D3 Publisher), 그리고 미소년/녀 게임을 주로 만들어 온 FURYU 등이 예다. (B급 장르화와 마찬가지로) B급 게임 제작에 특화됐다 해서, 이러한 게임사들을 이상한 게임이나 만드는 B급 메이커 취급을 해선 안 된다. 콘셉트나 스타일이 다소 독특하고 괴상할 뿐, 게임성까지 후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들이 B급 게임만 만든 것도 아니었다. 데이터이스트의 〈미드나잇 레지스탕스(Midnight Resistance, 1989)〉, 〈나이트 슬래셔즈(Night Slashers, 1993)〉 같은 게임들은 오락실 플레이어들에게 뜨겁게 사랑받은 명작들이다. 하지만 이제 게임 개발비용의 점증과 출시게임의 대형화로 인해 점점 B급 게임사나 장르들이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모바일게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모바일게임의 양적·질적 수준도 높아져, B급 게임들이 다른 모바일게임들 사이에서도 경쟁을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모바일게임에서 일어나는) 방치형 플레이 방식의 보편화 역시 플레이에 있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B급 게임들에 긍정적이지 못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것이 B급 게임과 상호배타적 개념이 아님에도,) 인디게임까지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외적 환경 속에서 내부적으로도 B급 게임사나 장르들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새로운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어, B급 게임들이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설상가상과 악화일로라고 할 수 있다. B급 게임은 어떻게 수용되나 B급 게임은 특유의 정서와 코드를 통해 플레이어를 게임의 안과 밖에 보다 강력하게 가둔다. 일본에서 유행했던 코나미(Konami Holdings Corporation) 〈러브플러스(Love plus)〉 시리즈의 플레이 문화를 살펴보자. 〈러브플러스〉의 후속작 〈러브플러스+〉(닌텐도 3DS용)와 〈러브플러스i〉(아이팟 터치·아이폰·아이패드용)는 가상의 애인과 추억을 쌓아나가는 증강현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게임 속에서 시간도 흘러가고, 카메라를 통해 플레이어를 캐릭터가 인식하고 불러주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 캐릭터들의 복장도 변하고, 매시간 경험할 수 있는 이벤트도 다르다. 캐릭터들이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모닝콜도 해준다. 때로는 플레이어와 함께 1박 2일 여행을 가기도 한다. 때문에 계절과 시간에 따라 데이트 코스를 치밀하게 짜야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 터치 기능을 이용한 스킨십도 가능하다. 때로는 게임기 마이크에 대고 특정 대사를 입력해야 게임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꽤 리얼하게 가상세계 속의 캐릭터와 연애를 해나가게끔 만든 게임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 게임이 플레이어들에 의해 단순히 집에서만 플레이되는 수준을 넘어, 플레이어들을 집 바깥으로 나서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러브플러스〉 시리즈는 이를테면 〈포켓몬 고〉처럼 위치기반 서비스 요소가 강한 것도 아니고, 게임을 하기 위해 반드시 현실의 다양한 공간을 돌아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일본의 특정 지역에서 특정 캐릭터가 등장하는 콘텐츠가 있기는 했지만, 오로지 이러한 부분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현실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현실에서 가상의 여자친구와 당당하게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한 발 나아가 특별한 데이트를 위해 현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도 등장했다. 이러한 〈러브플러스〉 시리즈의 독특한 플레이 문화는 일본에 한정돼서 일어난 현상이기에 보편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동안 플레이어를 집에 틀어박히게 하는 것으로나 여겨져 왔던 게임이 오히려 플레이어를 자발적으로 집 밖에 나서게 했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갖는다(강신규, 2020). 다른 한 편으로 플레이어들이 원래는 그렇지 않았던 게임을 주체적으로 이용함으로써 B급 문화를 형성할 수도 있다. 대표사례가 ‘모드(MOD: modification)’다. 모드란 기존에 출시된 게임의 내부 데이터를 플레이어가 수정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행위를 말한다. 모드를 통해 플레이어는 B급과는 상관없던 콘텐츠에 B급 정서와 코드를 불러들일 수 있다. 이를테면 VR(virtual reality) 게임인 〈로보 리콜(Robo Recall)〉은, 모드 킷을 공개해 플레이어로 하여금 직접 게임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어떤 플레이어가 만든 ‘트럼프 리콜’ 모드는 적의 얼굴을 모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으로 바꿔 플레이어로 하여금 트럼프들과 싸우게 만든다. 물리쳐도 물리쳐도 좀비처럼 끝없이 트럼프가 나타나 플레이어에게 달겨드는 식이다( www.roborecallmods.com ). 이러한 모드는 현실세계의 적을 가상세계로 불러옴으로써 게임의 문법을 바꿀 뿐 아니라, 단순한 소비자-수용자를 넘어 적극적인 의미의 생산자-행위자-창작자의 위치로 플레이어를 불러들인다(박근서, 2009). B급의 요건들이 어느 정도는 존재함에도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개인에 따라 그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어 논란이 야기되는 경우도 있다. 2021년 10월 반지하게임즈의 〈어몽 오징어게임〉을 둘러싼 논란은 하나의 예다. 〈어몽 오징어게임〉은 제목 그대로 게임 〈어몽어스〉의 임포스터 룰을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적용한 게임이다. 2021년을 강타한 두 게임(어몽어스+오징어게임)을 패러디하고 오마주해, B급 감성을 담은 독창적인 게임으로 재창조하자는 것이 제작사 반지하게임즈의 의도였다. 하지만 기성 콘텐츠의 인기에 편승해 인디 정신을 잃었다는 비판과, 원작을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 패러디·오마주한 게임을 출시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플레이어들의 옹호를 동시에 받으며 논란이 됐다(김재석, 2021. 10. 13). 창작자/사가 B급을 의도해 기획·제작한 게임이라 해도, 그것이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수 있다. 〈어몽 오징어게임〉 논란은 이미 B급 콘텐츠임이 전제된 후 그것이 수용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전 단계인 B급이냐 아니냐의 문제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독특한 사례라 하겠다. 이처럼 B급 게임이 수용되는 맥락은 고정적이지 않으며, 복합적이다. 더 많은 B급 게임들을 위하여 이제 (꼭 게임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대중문화 장르에서) B급은 일종의 상업적 코드로 각광받으면서 그 위상을 확대해가고 있다. 제작규모나 기간, 거대 게임사, 유명 창작자 유무로 B급을 판단하는 시선은 수명을 다했다. 평균 제작비를 훨씬 웃도는 자본이 투여된, 거대 게임사의 유명 창작자가 만든 게임들도 B급 정서나 코드를 빈번하게 활용한다. 그러다보니 자유분방한 실험이나 탈구속적인 전복을 기도하는 B급 게임이 생각보다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B급 게임과 관련된 가장 큰 변화는, B급의 보편화가 아닐까 싶다. 물론 어떻게든 B급임을 드러내는 게임들도 많지만, B급을 완전히 제거한 게임도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게임에 B급 정서가 은밀히 숨어 있거나, 의도와 다르게 만들어지기도 하며, 플레이어의 경험이나 욕망과 마주침으로써 B급이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하지만 B급의 보편화는 B급 게임을 사라지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A급 게임의 한 재미요소 정도로 B급이 게임에 녹아드는 것보다는, B급 정서와 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B급 게임 자체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창의적인 콘텐츠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콘텐츠는 더 많다. 상업적으로든 비상업적으로든 성공하는 콘텐츠가 나오면 유사한 콘텐츠로의 쏠림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콘텐츠의 창의성과 다양성은 유지되기 어렵다. 이는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독보적 위상을 갖는 마이너 리그가 존재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런 식으로 거의 모든 대중문화 분야에서 특정의 소수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성일권, 2015. 5. 21.). 게임도 전반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인디게임이나 저예산 게임이 제작되고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국내·외에서 그러한 게임들을 위한 플랫폼이 생겨 전세계 플레이어들에게 다가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메인스트림 게임들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게임문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자산은, 다양한 장에서 기획되고 창작되는 수많은 무명의 게임들일 터다. B급 게임은 그 대표주자로서 더 많이 기획되고 만들어지고 플레이돼야 한다. 참고문헌 김재석 (2021. 10. 13). [해설] 오징어게임 카피 게임, 어떻게 볼 것인가? 〈디스이즈게임〉. URL: https://www.thisisgame.com/webzine/special/nboard/11/?n=134570 조주영·안숭범 (2015). 한국 B급 영화 정체성 탐색을 위한 비평장 고찰: 전통적인 미국 B movie 개념과의 비교를 통해. 〈인문콘텐츠〉, 37, 45~71쪽. 문의식 (2015. 1. 16). B급 호러로 시작해 블록버스터 대명사로, 바이오하자드. 〈게임어바웃〉. URL: http://www.gameabout.com/news/articleView.html?idxno=34724 박근서 (2009). 〈게임하기〉. 커뮤니케이션북스. 성일권 (2015. 5. 21). [나쁜 장르의 B급 문화] 왜 B급 문화인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URL: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588 〈로보리콜〉 모드 (www.roborecallmods.com)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이렇게 흥미로운 스토리에 이렇게 진부한 요소들이- <승리의 여신: 니케>의 SF 세계관과 캐릭터 디자인의 충돌

    〈승리의 여신: 니케〉(이하 〈니케〉)는 2022년 11월 시프트업에서 제작하고 레벨 인피니트에서 서비스하는 FPS/TPS 모바일 게임이다. 출시 전부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광고에서 이미 한차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2019년 처음 트레일러가 발표되었을 당시 캐릭터들의 섹슈얼한 디자인과 가슴과 엉덩이의 모핑(morphing)이 과도하게 부각된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화젯거리가 있었기 때문인지, 2022년 출시를 앞두고서도 미디어를 통한 광고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부각된 광고가 있었다. < Back 이렇게 흥미로운 스토리에 이렇게 진부한 요소들이- <승리의 여신: 니케>의 SF 세계관과 캐릭터 디자인의 충돌 10 GG Vol. 23. 2. 10. 엉덩이 모핑이 주가 되는 게임은 아니다 〈승리의 여신: 니케〉(이하 〈니케〉)는 2022년 11월 시프트업에서 제작하고 레벨 인피니트에서 서비스하는 FPS/TPS 모바일 게임이다. 출시 전부터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광고에서 이미 한차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2019년 처음 트레일러가 발표되었을 당시 캐릭터들의 섹슈얼한 디자인과 가슴과 엉덩이의 모핑(morphing)이 과도하게 부각된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화젯거리가 있었기 때문인지, 2022년 출시를 앞두고서도 미디어를 통한 광고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부각된 광고가 있었다. 그래서 출시 이후 게임에 대한 리뷰에 접근하는 유튜브 채널들 등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걸 알 수 있다. 출시된 게임은 제작사인 시프트업의 이전 작품들이 그랬던것처럼 수려하지만 섹슈얼리티를 한껏 강조한 여성형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이들 캐릭터를 수집하여 플레이어인 지휘관이 일종의 미소녀 하렘을 만드는 형태를 보여준다. 거기에 가슴과 엉덩이 모핑이 강조된 게임이라니, 이러한 요소들을 좋아하는 유저들의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정도의 의미에 그치는 게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짜 흥미로운 요소들은 사실 부각해 광고한 것들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 있다. 바로 세계관의 설정과 스토리텔링이다. 우선 〈니케〉는 아주 완성도 높은 SF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세계관의 설정과 그 안에서 주가 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인 ‘니케’의 설정,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스토리 모두 잘 짜인 상태이다. 특히 튜토리얼 성격의 첫번째 챕터 이후에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홍보에 그치는 기타 게임의 애니메이션에 비해 세계관 전체를 잘 조망하고 플레이어가 선택한 ‘지휘관’에 나를 이입시키는 장치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계속해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제작사는 왜, 엉덩이 모핑을 전면에 내세워서 게임을 홍보하는 전략을 취한 걸까? 게다가 인게임 상황에서는 더더욱 의아함이 커진다. 광고 등에서 한껏 강조했던 게임 상황에서의 캐릭터들의 뒷모습에서 보여주는 모핑은 눈길을 보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아무리 에임(aim)을 자동으로 설정해 놓고 플레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하더라도, 중간중간 상황에 개입해 줘야 하고 미션의 진행사항을 확인해 봐야하는 경우 캐릭터들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만한 여유는 없다. 결국 게임을 하는 상황에서는 이들의 캐릭터 디자인 정보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고, 캐릭터 정보창에 가서 따로 확인을 해야 가능하다. 그러기 때문에 결국 〈승리의 여신: 니케〉에서 초반 광고로 부각되었던 엉덩이의 모핑과 같은 요소는 게임에 대한 특정 유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로만 작용하고, 게임을 수행하게 하는 요소로는 작용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1) 그렇지만 이 게임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스토리텔링인데, 한국에서 생각보다 많이 시도되지 않았던 SF적인 장르 세계관을 충실하게 구현해서 스토리 자체의 몰입감을 유의미하게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게임의 몰입도를 판단하는데 스토리텔링만 개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니케〉의 경우 게임을 진행하게 하는 요소에 스토리텔링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세계관 자체가 그동안 한국에서 나온 SF 세계관의 게임 중에서도 꽤 완성도 높은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완성도 높은 SF 스토리텔링의 장점 〈니케〉는 SF에서 자주 사용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상황에서의 디스토피아(Distopia)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소들은 왜 아포칼립스 상황이 닥쳤는가에 따라서 나타나는 디스토피아의 양상과 구체성이 달라지게 되는데, 〈니케〉의 경우 아포칼립스를 추동한 요소가 기계 생명체인 ‘랩쳐’의 공격을 받고 지상에서 지하로 피신해 방주라는 거대 시설에서 생존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개의 디스토피아 물이 그렇듯, 인류는 기계 생명체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니케’라는 사이보그를 발명했고, 그들을 통해 랩쳐들의 침공을 저지하고 랩쳐들에게 빼앗긴 지상의 탈환을 위한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 * 이미지 출처: https://www.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19867063836200&id=100232432466330&_rdr 여기에서 흥미로운 지점들은 ‘니케’를 사이보그로 설정하고, 그들이 기존에는 보통의 인간이었으나 개조되면서 뇌를 NIMPH(Neuro-Implanted Machine for Protecting Human)라는 나노머신에 의해 컨트롤 당하는 개체들로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으로 인해서 캐릭터들이 가지게 되는 다양한 요소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들은 각각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들을 소거당하고 인간에 의해서 조종되는 인형과 같은 존재들이 되었지만 유기체 뇌를 여전히 가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계의 몸을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에 다양한 스토리의 설정이 가능하다. 이는 캐릭터들을 수집해야 하는 게임에서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기존에 인간을 변형시켜 사이보그로 만들었다는 캐릭터들의 기본 설정은 비인간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백그라운드 스토리를 가질 수 있고, 그것이 억지스럽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니케〉는 캐릭터를 단순히 수집하고 단순히 전투의 지휘관으로 통제권을 가진 사용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맺는 것과 같이 캐릭터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재미를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내가 수집한 캐릭터들은 단순히 게임에서 활용하는 도구에서 그치지 않고, 수집된 스토리를 기반으로 관계가 발전되는 형태를 보여준다는 특징이 생긴다. 2) 또한 이 지점에서 SF 스토리텔링의 성공적인 형태들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인데, 흔히 비인간 캐릭터들을 설정하면 인간보다 월등한 특수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는 것에 그치는데 비해 〈니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 비인간 캐릭터들은 뛰어난 능력과 함께, 인간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같은 것들이 함께 부가되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해 발생하는 인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비인간 캐릭터들의 가능성들을 오히려 제한하는데, 〈니케〉에서는 사이보그(Cyborg)라는 설정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명확하게 활용하여 이러한 지점들을 극복하고 스토리의 풍부함을 확보하고 있다. 3) 그러기 때문에 게임 스토리 내에서 ‘니케’들은 자신이 인간으로부터 개조된 사이보그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자신들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이 도구라는 사실에 자조하거나 절망하기도 하지만 굳이 인간을 닮거나 동경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에서 인간과 니케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사회적인 부조리나 그 사이에 일어나는 다양한 가치의 충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의 충돌에 마치 만화의 주인공처럼 부딪히는 주인공(유저)의 시각은 SF 스토리텔링이 보여주는 지금의 현상 너머의 진보적인 가능성을 그리는 특징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게다가 거대 사기업이 자신들만의 고유한 기술력으로 회사를 구성하고, 수집해야 하는 ‘니케’들 역시 그 회사의 특징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설정들은 수집의 또 다른 구체성과 흥미를 유발한다. 일리시온(ELYSION)과 미실리스(MISSILIS), 테트라(TETRA)라는 거대 기업들이 소위 플레이어의 수집대상인 엘리트 니케들을 제작하는 회사들인데, 각각의 회사들 마다의 특징이 명확하게 그러기 때문에 그곳에서 등장하는 ‘니케’들 역시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프랭크 하버트(Frank Herbert)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듄(DUNE)〉에서의 세력들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이러한 구체적인 설정과 세계관 구조의 치밀함은 단순한 수집을 넘어, 캐릭터들을 확보하면서 나에게 주어지는 이야기가 풍부해진다는 장점을 가져온다. 섹슈얼리티한 캐릭터 디자인과 모핑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이와 같이 〈니케〉는 SF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는 그동안 한국에서 선보였던 게임뿐 아니라 웬만한 미디어 콘텐츠를 통틀어서도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의 SF 스토리텔링의 경우 장르가 가지고 있는 관습(convention)이나 코드(code) 들의 외향적인 요소들만 차용하여 서사 내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2010년대 이후 소설 등에서는 끊임없이 구체적인 시도들이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문제들이 어느정도 해소되었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비롯해 게임과 같은 미디어 콘텐츠에서는 유독 그러한 문제점들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니케〉의 경우, 이러한 아쉬움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정도로 SF 스토리텔링을 적확하게 구현하고 있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캐릭터들을 모아서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다양하게 마주하는 문제와 해결 방식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부터, 해결을 위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 인식의 전환 양상 역시 SF에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새롭게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하는 것과 맞닿아 있는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SF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사고실험을 구현하고 있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나 〈호라이즌〉 시리즈와 같은 작품과의 결은 다르지만, 오히려 그들 작품에서 지나치게 프로파간다적이고 무겁게 다루려 했던 지점들을 재치있게 풀어냄으로써 모바일 게임이라는 형식 내에서 취할 수 있는 의미들을 효과적으로 구현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지점들 때문에 오히려 캐릭터들에 반복되고 있는 섹슈얼리티한 디자인의 강조나 모핑 요소와 같은 것들이 더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아쉬움은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등의 문제로 단순히 게임을 판단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미치는 영향을 감안했을 때도 이러한 요소는 장르의 특성에서 효용성을 확인하기 어려운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 내에서 가상적 실재감을 확대시키는 현전감(Sense of Presence)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했을 때, 게임 플레이 시에 느껴지는 구체적인 정보가 시각작용, 그리고 그에 따라서 움직이는 조작감과 인터페이스의 요소들이 중요하다. 4) 하지만 〈니케〉에서는 게임 플레이시에 아주 복잡하고 거대하게 발생하는 적(랩쳐)을 처리하는 FPS라는 게임의 특징 상 짧은 시간내 복잡한 요소들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내가 처리해야 하는 상대에 내가 지정한 에임이 정확하게 가 있는가를 확인하고 혹여 빗나가 소모되는 탄이 없는지를 확인 해야지 캐릭터들의 뒷모습을 감상하고 있을 여유는 없는 것이다. 거기에 모핑 등의 요소들을 넣음으로써 오히려 게임 중 인지되는 정보들이 너무 복잡하게 얽히는 듯한 경향도 있어 일종의 사이버 멀미(cybersickness) 5) 를 유발하기도 한다. 아무리 방치형 게임을 선언하고 있다고 해도 비효율적인 정보들이 게임내 난립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게다가 〈니케〉가 스스로 그려 놓은 세계관 내에서도 이러한 캐릭터 디자인들이 충돌하는 경우를 만들어낸다.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인 지휘관은 아무런 편견 없이 사이보그인 ‘니케’들을 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것이 그 세계의 균열을 만들고, 다른 부조리들을 없애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특히 타자화되고 대상화되는데 익숙한 비인간 ‘니케’들을 오히려 능동적으로 타자화와 대상화하지 않고 동일한 객체로 인식하고 대하는 모습이 세계관 전체에서 드러난다. 수많은 세계관 내 부조리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 역시 그로부터 기인한다. 그런데 게임에서 유저들은 편견과 대상화에 맞서는 능동적인 주체를 수행함에도 유독 성적으로 대상화된 부분들은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이상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는 스토리를 쌓아 올라가면서 다양한 전사를 가진 캐릭터들을 상담하고 그들의 아픔과 한계를 공유하는 경험이 늘어나면서 더 크게 와닿는 부분들이다. 나는 이들을 편견 없이 동일한 개체들도 대하고 있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시각적인 부분은 인간들이 도구적으로 성적 대상화한 지점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각종 편견을 걷어내는 플레이어의 스토리 전개가 쌓아질수록, 반대로 내적으로 쌓이는 묘한 도덕적 부채감 역시 생겨날 수 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섹슈얼리티를 강조한 캐릭터 디자인을 단순히 유저들의 성향과 호응의 문제로 보기에는 진지하게 쌓아 놓은 세계관 위에서 잃는 것이 너무 많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지점들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사전 테스트에서 유저들의 반응을 조사했을 때 78%가 ‘캐릭터의 외형 및 설정이 매력적’이었다고 답한 것이 레퍼런스가 되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특정 요소를 부각한 외형적인 것들로 판단한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게임을 플레이하면 할수록 하게 된다. 오히려 78%가 답변했을 때 외형과 더불어 함께 배치된 단어인 ‘설정’과 37%를 각각 치지했던 ‘스토리와 세계관의 몰입감’과 ‘독특하다’라고 답변했던 지점들을 상기해 보았으면 한다. 6) 왜냐하면 〈니케〉는 한국에서 SF 스토리텔링이 미디어 콘텐츠에 구현되었을 때,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과 완성도를 가져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좋은 예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토리의 치밀한 구성과 완성도를 가진 게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특히 중세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는 검과 마법의 세계에 비해 SF적인 미래와 경이감(Sense of wonder)을 형성하는 세계관의 구성이 여전히 미흡한 현 상황에서 〈니케〉는 이정표로 삼을만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후의 환상적인 세계관을 구성할 때 SF적인 요소들이 더 확장될 것으로 기대되는 미래에 이러한 요소들이 좀 더 많은 관심과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1) 해당 부분은 개발사에서도 실제 게임을 출시하면서 언급한 부분이다. “독특한 캐릭터 표현으로 주목받았으나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즐길 거리가 많아 감상할 시간이 많이 없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초반의 홍보는 정말 의도적으로 특정 유저층에게 어필한 것이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한국의 게임시장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SF 세계관을 비롯해 FPS와 수집형을 동시에 배치한 게임의 성격을 우회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도 해석해 볼 수 있다. (출처: http://m.game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134 ) 2) 물론 이러한 스토리의 발전에 따라서 관계성이 변화하고, 이전과 다른 행동이나 외향, 반응 등을 이끌어 내는 것 자체가 새로운 형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등에서 그동안 충실하게 보여주었던 방법이고, <니케>는 이러한 방식을 아주 열심히 게임 안에서 구현하고 있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서비스가 시작된 <우마무스메>, <무기마도>, <블루 아카이브>, <에버소울>과 같은 게임에도 이러한 요소들은 기본적으로 구현되고 있기 때문에 최근 캐릭터 스토리에 공을 들이는 수집형 게임들은 꾸준히 관심을 받고 성공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니케>의 경우 탄탄하게 구성된 SF 세계관 내에서 이 정도의 완성도 있는 캐릭터 스토리들을 만들어 냈다는데서 이후의 다른 SF 세계관을 구성하는 게임 및 미디어 콘텐츠에서 참고할 만한 자료들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3) 사이보그(Cyborg)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체를 일컫는다. 미디어에서 사이보그에 대한 대중성을 확보해준 대표 콘텐츠인 <로보캅>(1987)의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을 보면 사이보그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들은 SF 서사 내에서는 다른 비인간 캐릭터들인 로봇(robot)이나 안드로이드(Android)들이 그 시작부터 인간중심주의 적인 위계를 가지고 인간에 대한 저항과 동경을 가지는 존재로 그려졌던 것에 비해, 인간의 의미에 대한 확장인 포스트휴먼(posthuman) 담론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개체로 볼 수 있다. 4) 이승제, 조현주, 「FPS 게임에 나타난 현전감의 구성 용인 연구」,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16(4), 한국디자인문화학회, 2010, pp.426-427 참조. 5) Rebenitsch, L., and Owen, C. “Review on cybersickness in applications and visual displays.”, Virtual Reality, 20(2), 2016, pp.101-125. 6) http://www.gamepl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853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평론가) 이지용 SF로 박사학위를 받고 SF평론을 비롯한 문화예술평론과 해당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를 빌미로 게임기를 구입하고, 만화를 사 모으며 온갖 OTT를 구독중이다.

  • 압둘 와합과 〈21DAYS〉를 플레이하다

    필자는 최근 압둘 와합과 〈21Days〉를 같이 플레이해 보았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을 다룬 이야기가 드문 가운데 그것도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게임적 형식이라는 점이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압둘 와합(Abdul Wahab Al Mohammad Agha)은 시리아 출신으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 활동을 하다 시리아 내 한국 유학생들을 친구를 둔 인연으로 2009년에 처음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2011년 고국의 민주화 시위 이후 복잡하게 전개된 내전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는 ‘헬프 시리아’라는 단체를 만들며 시리아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난민들을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 Back 압둘 와합과 〈21DAYS〉를 플레이하다 04 GG Vol. 22. 2. 10. 시리아 난민을 다룬 시리어스 게임 〈 21Days 〉(2017)는 독일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 모하메드 쉐누가 자신의 가족들을 기다리며, 21일동안 노동과 교육, 외로움과 편견으로부터 견뎌내는 경험을 다루고 있다. 서울대 정보문화학 연합전공 수업 〈게임의 이해〉를 통해 만난 현유지, 고은비, 최우빈, 김진형, 이원석 등이 이정엽 교수의 코디네이팅을 받아 출시했다. 제작자들은 게임연구자 이안 보고스트의 시리어스 게임이론을 기초로 플레이어가 퀘스트 완료에 성공하기보다는 오히려 실패하도록 만듦으로써 난민의 현실을 드러내는 게임 디자인을 추구했다. 필자는 최근 압둘 와합과 〈21Days〉를 같이 플레이해 보았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을 다룬 이야기가 드문 가운데 그것도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게임적 형식이라는 점이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압둘 와합(Abdul Wahab Al Mohammad Agha)은 시리아 출신으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 활동을 하다 시리아 내 한국 유학생들을 친구를 둔 인연으로 2009년에 처음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다. 하지만 2011년 고국의 민주화 시위 이후 복잡하게 전개된 내전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는 ‘헬프 시리아’라는 단체를 만들며 시리아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난민들을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난민에 대한 막연한 혐오가 없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스토리텔링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토리텔링은 나와 다른 자의 입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그들 또한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유일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은 이야기라도 게임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특이성이 있을까? 당사자 입장을 가진 플레이어로서 압둘 와합이 느낀 바를 중심으로 기록해 보았다. 이는 컴퓨터 게임이라는 형식에 대해, 타자의 입장을 플레이한다는 윤리적 당위를 넘어서 그 입장을 어떻게 구조화하고 설계하는 것이 더 좋을 지 논평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몇 가지 비판적인 발언으로 시리아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감에 따라 여권 갱신 등이 자유롭지 않아 활동에 제약이 생긴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귀화뿐이었다. 압둘 와합은 2020년 10월 한국에 귀화했다. * 교사 김혜진이 저술한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2021, 원더박스) 표지 - 게임 하기 앞서 Q: 압둘 와합은 게임을 즐겨했었나? A: 유년시절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주로 경험해 보았다. 축구게임같은 스포츠 게임을 친구들과 했었다. 게임을 자주 하기에는 언제나 부모님의 잔소리가 많으셨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웃음) 요즘 사람들처럼 깊게 파고 든 적은 없었다. Q: 오늘 플레이할 게임은 조작이 어렵거나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지는 않으니 저와 상의하면서 플레이하면 될 것 같다. A: 좋다. - 0Days 압둘 와합은 게임의 첫장면, 난민관리국에서 모하메드의 난민인정이 신속하게 이뤄지는 부분에서 놀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이 게임이 시작부터 가장 어려운 것을 해결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에서는 난민인정을 받기까지 신원조회부터 적응교육까지 여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는 “게임에서지만 가장 어려운 것을 시작부터 이루게 되어 기쁘네요.”라고 말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같은 상황은 게임 디자인 안에서 의도된 것이었다. 그 동안 난민 소재의 시리어스 게임들이 주로 유럽지역 탈출루트 이동의 어려움이나 난민캠프에서 어려움을 극적으로 게임화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21days〉는 그러한 고난이 끝나고도 발생하는 일상의 어려움을 시뮬레이션 하고자 했다. 그들이 한 사회에 들어와 겪는 노동의 고단함과 차별 또한 난민의 고통이지만 표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임 상에서 주인공 모하메드는 자신의 난민인정 이후 아내와 아들을 독일에 무사히 도착하게 해 UN의 가족결합원칙 하에 난민인정을 받게 만드는 일을 목표로 삼게 된다. 이제부터 플레이어는 이를 위해 브로커를 고용할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압둘 와합은 모하메드가 받아든 난민인정 증명서의 국적이 ‘RYSIA’인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것이 제작진의 오타인가 싶었지만 이 또한 의도된 것으로 실제하는 시리아 난민뿐 아니라 모든 난민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특정 국가를 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게임적 의도는 게임이 끝난 후 제작자에게 문의하여 압둘 와합에게 알려주었다. - 1 Days 우리는 모하메드를 난민관리국이 소개해 준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도록 했다. 공사장 반장에게 일에 대해 설명을 받는 데, 자막 곳곳에 ㅁㅁ표시로 구멍이 나서 자세한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다. 아직은 모하메드의 언어능력이 좋지 않아 독일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벽돌을 나르는 일 같은데, 대충 알아듣고 한 것으로 처리가 되었다. 3시간 30분을 일하고 80시리를 받았다. 압둘 와합은 이 같은 게임적 표현이 재밌다고 평가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와 일할 때도 열심히 일하라는 것인지, 그만 두라는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워 고생한 경험이 떠올라요”라고 말했다. 모자란 언어능력이 신경쓰여 공사장 아래 위치한 어학원에 등록해 독일어를 공부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압둘 와합은 이 부분은 게임적인 연출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난민들은 어학교육을 이수하는 조건으로 생활비를 보조받기에 자신이 개인적으로 등록하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언어학습은 〈21Days〉의 중요한 요소로 언어능력이 모자랄 때, 일을 맡지 못하거나 노동 시 급료가 깍이는 패널티가 있다. 심지어 어학원 등록비는 40시리로 비싸다. 벌면 족족 어학원비로 나가도록 디자인되어 있어 이 게임의 난이도에 영향을 끼친다. 필자는 지속적인 언어학습이 없을 때 외국인이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압둘 와합에게 주었다. 노동도 하고 공부도 했으니 우리는 모하메드에게 음식을 먹이기로 했다. 더 싼 맥도날드가 있었으나 그곳에는 돼지고기가 섞인 음식이 많아 실제로도 무슬림들은 꺼려 한다고 한다. 첫날이니 아랍 음식점으로 가서 케밥과 허머스, 페투쉬, 팔라펠 중 무엇을 먹을 지 골랐다. 압둘 와합은 웃으며 비싼 음식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비싼 순서가 팔라펠→페투쉬→허머스→케밥 순서가 아니라 케밥(고기)→페투쉬(샐러드)→허머스(병아리콩으로 만든 소스형 음식)→팔라펠(병아리콩으로 만든 고로케) 순이 대충 맞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게임상에서 케밥은 가성비가 좋은 음식이니 우리는 앞으로도 자주 케밥을 먹어야 겠다고 농담을 던졌다. - 2Days 어제보다 떨어진 멘탈 지수가 신경쓰였다. 혹시 지도상에 보이는 모스크에 가서 기도를 하면 이 수치가 올라갈 수 있을 지 궁금했다. 모스크에 가는데, 교통비가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게임에서 이동은 곧 시간과 돈을 소모한다. 궁금하다고 아무 곳이나 가기보다는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스크에 가니 같은 처지에 있는 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대화 도중 모하메드는 “그래도 이 나라만큼 난민들을 환영하는 나라는 없어”라고 대답했다. 압둘 와합은 게임에서 언급하고 있는 독일 메르켈 총리는 난민들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사람이며, 훌륭한 정치가라고 평가했다. 메르켈은 각종 난민문제로 지지율이 흔들리는 가운데 뚝심있게 난민유입 정책을 체계적으로 세워나가 여론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모스크에서 기도를 하니 멘탈 수치가 올랐다. 압둘 와합은 한국에 와서 고국이 어려움에 휩싸일 때,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내 계획은 무엇이고 그 진행과정대로 진행하고 있는 지, 나는 왜 무엇을 위해 고생해야 하나 같은 질문을 던지며 매일 기도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이 게임에서 모스크에 가서 기도하는 일이 멘탈점수를 높이는 것은 사실적인 표현이라고 말했다. 귀가하는 도중 숙소 앞에서 노래하는 버스커에게 팁을 주었다. 무려 10시리나 되었기에 몇 번을 망설이다가 주었다. 혹시나 독일인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압둘 와합은 멘탈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고독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정이 게임 상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지 기대하며 우리는 버스커 친구에게 돈을 주었다. 그는 시리아에 파병된 아들을 둔 자로 훗날 자신이 일하는 라이브 카페를 소개해 주었다. -3 Days 아내가 보내달라는 200시리를 보내야 하는 날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의 사치?를 반성하고 일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배고픔 수치가 절반 이상 떨어져도 계속해서 오전 오후로 일하기로 했다. 공사장에 일이 없어 레스토랑에 취직해 설겆이를 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어학원은 다니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급해도 공부를 멈추면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앞에는 난민을 혐오하는 남자가 “ㅁㅁ나는 무슬림”이라고 모하메드에게 외쳤다. 굶어가면 모은 돈 중 200시리를 아내에게 송금했다. 배고픔 수치가 너무 떨어져 있어, 싫어도 맥도날드에 가서 핫도그를 먹고 이른 잠을 청했다. - 4 Days 아침부터 교통비가 없는 상황이 되어 모하메드는 40분이나 걸려 모스크에 가야 했다. 압둘 와합은 별 다른 현지인 커뮤니티에 가입하지 못하고 직장과 모스크 정도만을 가야하는 게임안의 상황이 너무 리얼하며 동시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럽식 레스토랑이 선택지에 생겼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고 동시에 돼지고기가 든 음식이 많았다. 게임 상에서 먹을 수는 있었지만 플레이어인 압둘 와합은 선택하지 않았다. 공원에 들려 “우리 나라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다고” 주장하는 노인을 만났다. 압둘 와합은 자신이 만났던 어떤 한국 할아버지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결국엔 그 사회에서도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외국인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이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물론 공원에는 모하메드에게 선의를 보이는 시민도 있었다. 다시 돈을 벌어야 하니 공사장까지 걸어가 노동을 했다. - 5 Days 아내의 편지가 도착했다. 가방을 도둑맞아서 송금한 돈을 다 잃어버렸다고 한다. 가족에게 3일안에 다시 200시리를 보내야 하게 되었다. 교통비가 없어 역시 또 공사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오전 오후 일을 했으니 아랍식당에 가는 호사를 누리기로 했다. 배고픔이 조금 가시면서 멘탈도 약소하게 오르게 되었다. 버스커 친구가 일하는 카페 블루노트에 갔더니 입장료 25시리를 지불하라고 한다. 술과 음악을 즐기는 현지인들을 부러워 하며 친구의 노래를 들었다. 취객 중 하나가 이민자였는데, 그는 모하메드에게 “어허 독해져야 해”라고 충고했다. 순간 매우 한국적인 충고라서 압둘 와합과 나는 한참 웃었다. 압둘 와합은 아직 해금되지 않은 지역 중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문화원과 유원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장소를 모하메드가 다녀야 그 사회에 대한 호기심도 유지하고 멘탈도 건강해진다는 논리였다. 실제 본인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었다. 모하메드는 이제 숙소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버스커 친구와 이런 저런 속내를 털어놓으며 고향에 있던 부모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압둘 와합은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자 대개의 나이든 부모님들이 피난을 고사하고, 젋은 자식들부터 탈출시켰다고 말해 주었다. - 6 Days 아내에게 돈 독촉하는 편지가 왔다. 플레이어에게 긴장감을 주려는 게임 내 장치는 이해되지만 돈 이야기만 들어야 하는 모하메드의 상황이 피로하게 느껴졌다. 돈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맥도날드로 가서 가장 싼 햄버거를 먹었다. 조금 먼 곳에 주유소 일자리가 해금되어 있어 세차 일을 했다. 압둘 와합은 독일의 난민 정책은 실제로는 난민에 대한 직업훈련코스가 정비되어 있어, 게임처럼 공사장과 식당, 주유소 같이 일용직만 전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독일 외 지역 대개의 난민들은 저런 악순환 고리 속에서 바보가 되어가기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사실적인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공원에서 다시 만난 할아버지는 역시 또 난민혐오적 발언을 한다. 모하메드는 최대한 정중하게 대답한다. 압둘 와합은 이 상황이 모하메드의 심성이 착한 것이 아니라 싸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언행이라고 해석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뭔가 한탕을 노리는 룸메이트를 만났다. - 7 Days 주유소에 일이 없어 공사장으로 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계속 했더니 멘탈과 배고픔이 계속 떨어졌다. 아내에게 돈을 송금해야 하기 때문에 모하메드에게 밥도 먹지 않고 일만 시켰다. 이른 오후에 숙소에 들어가 잠을 잤다. - 8 Days 아내로부터 브로커를 고용하기 위해 250시리가 필요하다고 편지가 왔다. 압둘 와합과 나는 모하메드의 멘탈과 배고픔 수치의 관리를 완전히 포기하고, 오직 빠르게 일만 시키기로 했다. 배고픔이 거의 바닥을 치니 캐릭터는 느려지고 멘탈 수치는 점점 감소되고 만다. 모하메드는 공원의 할아버지와 티격태격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IS에 대해 욕하고 있기에, 우리도 그 IS를 피해서 도망친 사람들이라고 답변했다. 압둘 와합에게 이 할아버지의 생각이 혹시 바뀔 수 있을까 질문해보았다. 압둘 와합은 자신의 경험으로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하메드는 이 날도 녹초가 되어 잠이 들었다. - 9 Days 아내는 기차역 근처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연락을 했다.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남자를 또 숙소 앞에서 만났다. 배고픔과 멘탈 수치가 바닥이 치는 가운데, 일할 의욕도 공부할 의욕도 잃어버렸다. 모스크에 가서 간신히 멘탈수치를 높였다. 하지만 이미 바닥난 멘탈과 배고픔에 모하메드는 일할 의욕을 잃었다. 멘탈수치를 조금이라도 높이고자 카페 블루노트에 가서 음악을 들었지만 크게 오르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숙소로 이른 귀가를 했다. 룸메이트는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뭔가 나쁜 일인 것처럼 보였다. 잠을 잤다. 아내가 말한 250시리를 모으지 못한 상황이다. - 10 Days 아내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아들 압둘이 아프다고 한다. 오늘까지 반드시 기차표를 살 돈을 보내야 하는데 여의치 않았다. 일할 의욕이 사라져서 모스크에 갔다. 약간의 멘탈 회복이 되어 공사장에 갔으나 결국 작업명령을 못 알아들어 사고를 치게 되었다. 급료가 깎였다. 결국 아내에게 보낼 돈을 다 벌지 못하고 숙소에 왔다. 숙소에 도착하니 룸메이트가 3층 카심의 방으로 오라는 쪽지를 남겼다. 주인 없는 방에 가서 룸메이트 메흐디의 지갑이 떨어진 것을 보게 되었다. 훔칠까 말까 고민하다 훔쳤다. 이것만 훔치면 아내에게 돈을 보낼 수 있으니까. 아내에게 송금하고 돌아오니 메흐디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화가 나 있었다. - 11 Days 아내가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했다. 내일까지 다시 200시리를 보내야 한다. 하지만 모하메드는 멘탈도 체력도 바닥이 나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 12 Days 도저히 방법이 없어 모하메드는 모스크에 갔다. 멘탈 수치가 조금 올랐지만 돈도 없고, 여전히 배고프다. 어학원을 다닌 지 오래되니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도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아내에게 송금하지 못했다. - 13 Days 아내와 아들에게서 소식이 없다. 모하메드는 이제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렸다. 이렇게 배드엔딩을 보게 된 압둘 와합과 나는 매우 허탈한 마음이었다. 우리는 모하메드의 가족이 도착하기 까지 21일 중 겨우 13일을 버틴 것이었다. 이 게임을 더 나은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1Days〉는 일반적인 세이브 로드 시스템이 없었다. 완전히 새로 시작하거나 지난 날 중 하나를 선택해 그 이후의 날짜는 되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재플레이가 가능했다. 다음날 터키로 실제 출국을 앞 둔 압둘 와합이 사정상 빠진 이후, 필자는 게임 4일차로 되돌아 가 플레이 해 보았다. 하지만 게임 상의 모하메드가 겪는 현실은 소매치기의 유혹과 범죄가담 등으로 더욱 더 암울해져 갔다. 노동조건은 가혹해지고 건강상태는 나빠지니 필연적으로 옳지 못한 길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가족과 상봉하는 날짜가 다가오지만 내용상으로 결코 좋은 엔딩이 아니었다. 이 게임은 성실한 노동자가 된 모하메드의 행복한 가족상봉은 애초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스팀에 진열된 이 게임에 대한 평가로 누군가 ‘순진한 프로파간다’라고 적어놓았는데 세상에 프로파간다를 이렇게 암울하게 재현하는 법은 없을 것이다. 난민들의 입장을 미화시키기는 커녕, 그들의 행동이 필연적으로 어긋나도록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깔끔하게 클리어하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하여금 실패시켜 그 원인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 게임 플레이 후 소감 1회차 게임이 끝난 뒤 압둘 와합에게 아래와 같이 질문하였다. Q: 난민문제에 대한 게임적 접근법에 대한 본인의 의견은? A: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의 문제를 다루는 일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뉴스나 영화도 좋지만 게임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특이성이 분명 있다고 본다. 5년 전에 한 시리아 출신인 압둘라 알 카람이라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는 직접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 난민 포비아와 이슬람 포비아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는 플레이어들에게 게임을 통해 시리아 사태를 경험시켜 난민들에 대한 선입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압둘라 알 카람의 게임 [〈 Path Out 〉(2017)]의 초반부 한 씬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내전이 발발하기 직전 시리아인의 평범한 생활상을 경험하던 중 플레이어는 도시의 골목에서 낙타를 발견하게 된다. 대개의 플레이어는 당연히 낙타를 향해 타기 위해 돌진한다. 그 때 프로그래머는 게임 화면에 실사화면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시리아인들이 낙타를 타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며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일갈한다. 게임 플레이와 다큐적 표현, 가벼움과 진지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그 때부터 게임의 가능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게이머 세대에게 게임을 통해 세계의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매우 필요하다. Q: 〈21Days〉는 의도적으로 배드엔딩만을 보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A: 그렇다. 아마도 이 게임은 난민의 고난을 체험시켜 현실을 환기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다. 게임을 통해서 직접 당사자가 되는 경험을 주는 이런 시뮬레이션은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개발자 분들이 난민이 하나의 사회에 편입되는 과정을 테마로 후속작을 따로 만들어주시도 좋을 것 같다. (웃음) 중간 중간 모하메드가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데 실은 이런 결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희망’이 필요하다. 희망이 높은 자는 범죄의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는 디자인도 멋지지 않을까? Q: 게임적인 구조 안에서 희생되는 현실의 디테일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이러한 현실적인 요소들 하나 하나 다 신경쓰다 보면 게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게임은 복잡한 현실에 대한 최대한 단순한 구조적 분석을 바탕으로 하기에 중요한 것은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Q: 만약 이 게임에 해피엔딩이 가능하려면 어떤 요소를 추가해 달라고 말하고 싶은가? A: 게임 안에 희망(hope)이라는 수치를 추가하고, 모하메드의 선택지에 여행과 놀기를 집어넣어 반영하고 싶다. 실제로 이러한 장소들은 난민으로서 내게 큰 도움이 된 적이 있다. 현지 독일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도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웃음) 난민이나 이주노동자가 그 사회에 잘 적응하는 방법은 그 곳을 즐겁게 느끼는 일에서 시작한다. 실제로 이 게임의 주인공처럼 일만 하는 사람은 고독을 견디지 못한다. 그런 사례를 자주 보았다. 일만 하다가 멘탈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다. - 재현에서 아쉬웠던 점 압둘 와합은 모하메드가 게임상에서 아내에게 돈을 송금할 때 ATM기를 사용하는데, 실제로는 그리 용이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갓 난민지위를 얻은 자가 유럽밖으로 돈을 보내는 일에는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 차라리 모하메드쪽에서 브로커를 고용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게임 상에서 아내에게 메시지를 받을 때, 컴퓨터 메일로 받는데 실제로는 스마트폰 문자로 소통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내의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동하는 가운데 컴퓨터를 쓰는 행위보다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편이 기동성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난민들이 되도록 좋은 스마트폰을 갖고 있으려는 이유다. - 게임과 사회 게임 플레이가 반드시 퀘스트 수락과 클리어만으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으며, 때로는 현실의 부조리를 시뮬레이션해 보다 나은 질문을 유도하기 위해 설계될 수 있다는 것을 〈21Days〉의 사례는 잘 보여준다. 게임체험을 내적 구조 안에 갇힌 유희가 아니라 현실 밖으로 질문하는 하나의 사고방식으로 여길 때 게임은 사회와 또 다른 연결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게임의 개념을 무엇이든 접속 가능한 매개의 개념으로서 상상하면 게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재미의 회로와 현실의 회로 사이를 연결하는 일은 여전히 발명중이며, 이 발명품들로 게임의 역사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계보를 가질 것이다. 옳음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다름을 위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21Days〉를 응원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오영진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이다. 가상세계에서 비극적 사건의 장소를 체험하는 다크투어리즘 〈에란겔: 다크투어〉(2021.03.20-21)와 학술대회 [SF와 지정학적 미학] 연계 메타버스 〈끝나지 않는 항해〉(2012.06~19)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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