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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란으로 1280개 검색됨

  • 변해가는 게임의 위상, 다큐의 관점도 변한다 - 〈하이스코어〉리뷰

    2000년대 중반 이래 게임을 다루는 다큐 프로그램들이 간간이 등장해온 가운데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하이스코어〉는 가장 최근에 출시된 게임 역사 다큐 프로그램이다. 큰 틀에서 볼 때 게임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게임 역사를 다룬 저술이나 다큐 프로그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전까지 다뤄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굴한 점이 눈에 띈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인터뷰] TRPG로 미술하기: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제작자 인터뷰

    지난 6월과 7월, 전시장 ‘팩션’에서는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라는 게임의 형식과 관객 참여형 예술을 결합한 전시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 열렸다. 전시장을 활용해 약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TRPG 게임 마스터가 되고 게임의 참여자인 관객들은 재난이 닥친 고향에 돌아왔다는 설정의 캐릭터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구성한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su Kim Studies a range of fields—culture and knowledge, space, and the academic field. Also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ves of gamers.

  • 물류는 게임 속에 어떻게 재현되는가

    물류 전문기자로 살아온 것이 어언 10여년. 필자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으니 “물류는 어디에든 있다”이다. 물류(物類)란 그 단어가 품은 의미처럼 ‘만물의 이동’이다. 우리가 물류라고 굳이 인식하진 않겠지만, 매일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오늘 입고 신은 옷가지와 신발, 식당에서 사용한 식기와 반찬 종지까지 모든 것에는 물류가 따라왔다. < Back 18 GG Vol. 24. 6. 10. Tags: 유통, 최적화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yong Um A wild content jack-of-all-trades, keenly interested in making money beautifully through vertical content. Drawing on experience as a content creator and community planner across various vertical media, has run "Connectus"—a business membership and community built on distribution and logistics content—since September 2021.

  • 리듬 게임, 가장 빈곤해서 가장 자유로운(우수상)

    거듭 말하자면 리듬 게임은 빈곤한 장르다. 그러나 그 빈곤함은 게임 일반에 공통된 특정한 요소를 급진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세공된 빈곤함이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조차도 우리는 상대와 ‘동시’에 손을 내밀어야 하고, “안 내면 술래”다. 동궤에서 리듬 게임은 유한하고 폐쇄적인 장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유한성과 폐쇄성 덕분에 우리는 극도의 해방감을 체험하게 된다. < Back 리듬 게임, 가장 빈곤해서 가장 자유로운(우수상) 07 GG Vol. 22. 8. 10. 가장 빈곤한 게임 장르로서의 리듬 게임 본고에서 우리는 〈비트매니아beatmania〉, 〈이지투디제이EZ2DJ〉를 필두로 해서 〈디모Deemo〉, 〈사이터스Cytus〉까지 이르는 리듬 게임을 게임 일반의 극한이 되는 형태로서, 정확히는 가장 빈곤한 게임의 형태로서 다루고자 한다. 다만 우리는 숱한 리듬 게임들을 하나하나 비평할 의도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고, 리듬 게임 전반에 공통된 요소를 가지고 다소 추상적인 수준에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다른 장르라면 지나친 단순화로 보일 이와 같은 장르 일반에 대한 비평은 리듬 게임 장르 특유의 빈곤함에 의거해서 가능해진다. 리듬 게임이 우리가 주장하는 것처럼 가장 빈곤한 장르라면 어떤 의미에서인가? ‘악보’에 맞추어 대응하는 ‘키’를 입력하는 것이 거의 전부인 이 단순한 장르에서는 자유가 전혀 허락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다. ‘타이밍’이 이 장르의 본질을 규정하며, 그 외의 모든 요소들, 예컨대 서사라든지 경험치라든지 하는 요소들은 이 장르에 대해 부수적이거나 장식적이다. 그런 요소들은 물론 몰입감을 더해주지만, 리듬 게임이 선사하는 쾌감에 불가결하진 않다. 리듬 게임이 이처럼 빈곤하리만치 단순한 장르라면 과연 거기에 새삼 비평할 만한 가치나 분석할 만한 구석이 있을까? 세계universe 자체를 집어삼킬 기세로 다가오고 있는 광활한 메타버스metaverse의 시대에 하필이면 리듬 게임에 대해서 논한다는 것은 퇴행적이고 고루하게 보이지 않는가? 이것이 즉시 제기될 법한 의문이다. 리듬 게임에는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ゼルダの伝説 ブレスオブザワイルド〉처럼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쌔신 크리드Assassin’s Creed〉나 〈레드 데드 리뎀션Red Dead Redemption〉 시리즈처럼 다른 세계의 안으로 들어가는 맛이 있는 것도 아니며 〈스탠리 패러블The Stanley Parable〉처럼 내러티브narrative를 비틀어 플레이어로 하여금 철학적으로 각성하도록 유도하는 맛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리듬 게임이 현실에서는 드문 어떤 체험을 환상의 형태로 제공하는 것조차 아니다. 리듬 게임의 재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지만 ‘플레이’라는 용어가 리듬 게임만큼 꼭 들어맞는 장르도 또 없을 것이다. 그 용어가 ‘연주’를 뜻하는 한에서 말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바로 그런 연유로 리듬 게임은 쉽게 냉소의 대상이 되곤 한다. 종종 이 냉소는 리듬 게임을 하고 놀 거라면 차라리 피아노, 드럼, 기타 등을 직접 연주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물음의 형태를 취한다. 실제로 리듬 게임인 〈락스미스Rock Smith〉로 기타를 익혀서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악보는 전혀 읽지 못하고 스케일scale 같은 개념도 알지 못하는 기타리스트 세대가 등장해서 고전적인 방식으로 기타를 배운 세대를 당황케 만든 바 있다. 그러므로 저 냉소적 물음에 진리치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곧이곧대로 보면 저 냉소는 리듬 게임이야말로 게임 플레이의 원초적 면모를 드러내고 있음을 함축한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현생現生을 살지 않고 게임을 하는가? 이런 의문은 현실보다 더 풍부하고 강렬한 체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체험을 제공하는 게임의 경우에는 별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리듬 게임의 경우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우리는 왜 악기를 직접 ‘연주’하지 않고 굳이 그 열화판처럼 보이는 리듬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일까? 현실이 게임보다 더 풍요로울 때조차도, 게임이 현실보다 더 빈곤할 때조차도 우리가 여전히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사실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즉 게임의 빈곤함을 단순히 현실에 비한 게임의 부족함이나 미진함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빈곤함이야말로 게임을 더욱 게임답게 만드는 속성이라고 간주하여야 한다. 리듬 게임에 고유한 유한성의 쾌감 악기 연주와 리듬 게임 플레이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빈곤함과 결부된 소진 가능성이다.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실제 음악의 ‘악보’는 우리에게 거의 무한한 해석의 자유를 허락한다. 무음無音의 음악인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33초〉조차도 그렇다. 그래서 하나의 곡을 두고도 그토록 다양한 연주와 변주가 등장하고 그토록 다양한 커버cover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음악의 경우 악보는 소진 불가능한 객체다. 하지만 리듬 게임의 ‘악보’는 그렇지 않다. 리듬 게임의 최종적인 목표는 다름 아니라 악보를 완전히 소진시키는 데 있으며, 거기에는 별다른 해석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리듬 게임 장르를 두고 통용되는 유명한 경구 “빛이 나는 곳을 손가락으로 누르는 게 아니라 손가락이 가는 곳에서 빛이 난다”는 악보가 플레이어에 의해 완전히 학습되었음을, 따라서 완전히 소진되었음을 뜻한다. 관건은 이런 소진을 통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인식하는 데 있다. 우리는 앞서 리듬 게임은 빈곤하다고 말했다. 즉 리듬 게임의 플레이어에게는 선택의 자유나 운신의 폭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화면을 왼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누를지 세 번째 손가락으로 누를지, 아니면 발판을 오른발로 밟을지 왼발로 밟을지 정도를 결정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징검다리를 있는 그대로 따라가는 게 리듬 게임의 제일 목표이자 유일한 목표다. 이는 리듬 게임을 깨기 위한 왕도가 게임이라는 ‘타자’에게 ‘자기’를 완전히 내맡기는 데에,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타자의 ‘리듬’에 자기의 ‘리듬’을 동기화시키는 데에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때 리듬 게임이라는 타자는 무한한 해석과는 거리가 먼, 전적으로 유한한 타자다. 즉 이론적으로 리듬 게임의 플레이어는 타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퍼펙트’한 판정으로 관통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현실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쾌락이다. 현실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 및 다른 물건들과, 즉 타자들과 끊임없이 교섭하고 협상하면서 그 리듬에 나를 맞추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현실적 타자들의 리듬이란 무척 변덕스러운 것이고, 실제의 악보 사례가 보여주듯 심지어는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이 변덕스러움, 자유로움, 무한함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타자의 리듬에 나의 리듬을 맞추고 동기화시키는 것은 기본적으로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사둔 요거트가 상하기 전에 챙겨 먹어야 하고 방금 받은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식기를 기다려야 하며 지하철역에 가득 들어찬 인파와 발걸음을 맞춰야 하고 오늘도 이어지는 상사의 일장연설에 적절한 ‘리듬’으로 맞장구를 쳐야 한다. 요컨대 이 현실 세계의 리듬은 나의 리듬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줄곧 나보다 느리거나 빠르다. 이와 달리 리듬 게임은 이런 리듬의 괴리를 완전히 극복함으로써 타자와의 무결한 동기화가 가능하다는 일체감을 플레이어에게 선사한다. 이런 일체감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전능감에 가까울 수 있지만, 결코 타자에 대해 폭력적인 전능감은 아니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왜냐하면 이 동기화는 타자의 리듬을 나의 리듬에 끼워 맞추는 식으로 이루어지기는커녕 정반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리듬 게임에서는 오히려 내 쪽이 타자의 리듬에 굴복해야 한다. 곡曲을 소진시키고 ‘클리어’하기 위해서 나는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타자를 완전히 소화했고 완전히 이해했다는 쾌감, 타자와 완전히 동기화됐다는 쾌감은 오로지 게임에서만 적법하게 허락되는 것이다. 그것은 현생에서는 물론이고 다른 문화 영역에서도 무척 희귀하고 심지어는 금지되어 있기까지 하다. 예컨대 영화, 소설, 회화, 음악 등의 경우, 내가 그 작품을 완벽히 이해했고 그것과 완벽히 동기화되었다고, 그리고 그런 내가 보기에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단언한다면, 그런 식으로 그것을 소진시킨다면 아주 난폭하고 비윤리적인 짓일 것이다. 내가 어떤 대상의 진리와 전모를 완전히 파악했다는 단언은 해당 대상을 두고 무한히 전개될 수 있을 풍요로운 대화의 가능성 전체를 미리 차단하기에 그렇다. 하지만 리듬 게임의 경우에는 바로 그런 유한한 차폐가, 즉 ‘풀 콤보 퍼펙트 플레이’가 합법적인 목표로 제시된다. 해석의 자유나 변주의 가능성 같은 데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유한’하고 ‘폐쇄’적인 타자의 악보에 나의 리듬을 녹여 넣음으로써 완전한 동기화를 달성해야 한다. 리듬 게임의 독특한 자유로움 물론 개방성 자체를 모사하는 것을 재미의 근거로 삼는 게임들이 있어서, 유한한 폐쇄성에 의해 가능해지는 완전한 동기화로부터 쾌감을 추출해 내는 리듬 게임과 대척을 이룬다. 아닌 게 아니라 근래의 게임 중 상당수는, 특히 장대한 서사와 드넓은 ‘오픈 월드open world’를 주요한 무기로 삼고 있는 게임들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다채로운 체험들을 가능케 만드는 데서 존재 가치를 확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플레이어에게 마치 무한히 자유로운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가상假想을 선사하는 것이다. 위에서 지나가듯 언급한 〈스탠리 패러블〉은 다름 아니라 무한한 자유라는 가상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픈 월드 게임들에 대한 ‘이념적’ 풍자로서 성립한다. 내레이터narrator가 플레이어의 행동을 미리 앞질러 말함으로써 결국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내레이터의 지시대로 게임을 진행해서도 곤란하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곤란하다는 이율배반을 체험하게 된다. 플레이어가 마음대로 하려고 해도 내레이터는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말하며, 심지어는 버그처럼 생각되는 요소가 눈에 띄어 이용하면 그것조차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내레이터가 응수하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플레이어는 결과적으로 자유라는 관념 자체를 의문시하게 된다. 〈스탠리 패러블〉은 이렇게 순조로운 내러티브라는 관념을 고장내고 게임 내부의 세계(“월드”)에 ‘자유롭게’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제 리듬 게임은 자유를 모사하기 위해 제작된 게임들에 대한 ‘물리적’ 논박으로서 〈스탠리 패러블〉을 보충한다. 오픈 월드 게임들에 대한 리뷰가 게임 내부의 세계 안에서 어디까지 용인되고 어디부터 금지되는지 실험해보는 과정을 필히 거친다는 사실은 그것들의 핵심적 재미가 무엇에 의해 산출되는지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게임이라는 대상을 향유하는 태세가 기본적으로 그것이 제공하는 모든 가능성을 샅샅이 탐사하고 소진시켜 보는 데 있음 역시 보여준다. 리듬 게임의 경우에 소진되어야 할 것이 악보라면 오픈 월드 게임의 경우에는 세계 자체일 뿐이다. 동일 선상에서 흥미로운 점은 많은 수의 게임이 리듬 게임으로 환원될 수 있을 것처럼, 혹은 적어도 리듬 게임이 게임의 어떤 본질적 면모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예컨대 유튜브에 많이 올라와 있는 〈슈퍼마리오Super Mario〉 시리즈의 타임 어택(-최단 시간에 게임을 클리어해서 엔딩을 보는 플레이) 영상들에서 고수들은 〈슈퍼마리오〉를 마치 리듬 게임처럼 플레이하는데, 이때 횡스크롤로 진행되는 〈슈퍼마리오〉의 스테이지는 〈비트매니아〉의 악보와 아주 유사한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스테이지의 설계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슈퍼마리오〉 고수는 악보를 외운 〈비트매니아〉 고수와 다를 바 없다. 둘은 모두 자신이 플레이하는 게임을 완전히 소진시킨 이들이다. 리듬 게임의 경구를 비틀어 인용하자면, ‘거북이가 오기 때문에 마리오가 점프하는 것이 아니라 마리오가 점프한 자리에 거북이가 오는 것’이다. 비단 〈슈퍼마리오〉의 경우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단순한 부류부터 복잡한 부류까지 모든 게임에는 타자와의 동기화를 통한 소진이 전부인 국면, 즉 리듬 게임을 닮는 국면이 존재하며, 이는 게임의 재미 일반을 설명하는 건 아닐지라도 오로지 게임에서만 합법적으로 수용되는 쾌감이라는 점에서 게임 특유의 것이다. 거듭 말하자면 리듬 게임은 빈곤한 장르다. 그러나 그 빈곤함은 게임 일반에 공통된 특정한 요소를 급진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세공된 빈곤함이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조차도 우리는 상대와 ‘동시’에 손을 내밀어야 하고, “안 내면 술래”다. 동궤에서 리듬 게임은 유한하고 폐쇄적인 장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유한성과 폐쇄성 덕분에 우리는 극도의 해방감을 체험하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타자의 리듬에 나의 리듬을 완벽히 동기화시키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한하고 개방적이고 유연한 실제의 타자와는 장단을 맞출 수 없다. 타자에게 나를 한 끗의 오차도 없이 딱 맞췄다는 감각, 그래서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었다는 감각은 곧 나를 가장 굳건하게 속박하고 있는 ‘자기’가 소산消散되는 감각으로, 게임 외의 영역에서는 거의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리듬 게임은 빈곤하고 유한하고 폐쇄적이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독특한 자유로움,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되는 이 자유로움을 맛보게 만든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파리8대학교 LLCP 박사과정) 김민호 데카르트의 『정념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데리다 사유의 전개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매체나 문화에 대한 철학적 비평에 관심을 두고 있다.

  • <역전재판 456 오도로키 셀렉션> : 법정 미스터리와 내재적 오리엔탈리즘의 그림자

    ”이의있음!“ <역전재판>하면 가장 먼저 이 대사가 떠오른다. 나는 이 게임 시리즈를 2009년부터 하기 시작해서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주 재미있게 하고 있다. 주인공 변호사의 ”이의있음“ 이란 외침은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한다. 2009년 당시만 해도 한글판이 정식 발매되지 않았던 때라서 모바일 폰으로 영문판을 사서 플레이했고, 스마트폰, 스마트패드가 생긴 뒤에는 어플리케이션을 구입해서 일본어판으로 플레이 했다. <역전재판>은 2019년이 되어서야 1,2,3편의 합본판이 한글화가 되어 정식 출시되었다. 그리고 올해 초 4,5,6편의 합본판이 출시된다는 소식에 너무나 반갑고 기대가 컸다. 어른이 되어서 하는 <역전재판>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기도 했다. 변호사가 외치는 ”이의없음“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만들까? < Back 18 GG Vol. 24. 6. 10. Tags: 오리엔탈리즘, 판타지, 법정물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imong Lee From childhood to now, always in the company of Nintendo games. A few months ago, bought a Steam Deck on installment and has been enjoying it to the fullest. Studied business administration at Kyung Hee University and cultural mediatio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Yonsei University, and is currently a doctoral student in the Graduate School of Core Ethics and Frontier Sciences at Ritsumeikan University in Japan. Researches digital media content and culture, including games and webtoons.

  • GGOTY 2025: 2025년 GG가 뽑은 올해의 게임과 사건들

    게임제너레이션(GG)은 2025년을 돌아보며 총 27명의 필자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올 한해 출시된 게임 중 가장 주목했던 게임’(최대 3개까지 중복 답변 가능)과 그 선정 이유, ‘2025년에 접하신 사건, 책, 논문, 보고서, 영상 중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2025년 GG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글’과 그 이유 등을 물었습니다. 우리는 2025년을 어떤 시간으로 기억할까요? < Back GGOTY 2025: 2025년 GG가 뽑은 올해의 게임과 사건들 27 GG Vol. 25. 12. 10. ‘다사다난하다’는 말을 쓰기 가장 좋은 시간이 오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2025년은 어땠나요? 이 인사를 전하는 저 또한 일도 많고 탈도 많은(多事多難) 한해를 보낸 듯합니다. 게임계도 2025년도 참 복작거리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개발 공정에서 AI의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고, 국내 핵심 게임사 한 곳은 전례 없는 파업과 노사 갈등을 겪었습니다. T1는 <리그 오브 레전드> 2025 월드 챔피언십에서 쓰리핏의 위업을 달성했고, 국내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시행되었습니다.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33 원정대), <스플릿 픽션>, <킹덤 컴: 딜리버런스 2>(킹덤 컴 2) 등 흥미로운 게임은 또 얼마나 많이 출시되었나요? 게임제너레이션(GG)은 2025년을 돌아보며 총 27명의 필자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올 한해 출시된 게임 중 가장 주목했던 게임’(최대 3개까지 중복 답변 가능)과 그 선정 이유, ‘2025년에 접하신 사건, 책, 논문, 보고서, 영상 중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2025년 GG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글’과 그 이유 등을 물었습니다. 우리는 2025년을 어떤 시간으로 기억할까요? 첫 GGOTY의 주인공은 33 원정대! 27명의 필자들은 어떤 게임을 ‘가장 주목했던 게임’으로 뽑았을까요? 편집장, 편집위원과 상의는 하지 않았지만 제 멋대로 GGOTY(Gamegeneration’s Game Of The Year)라는 조어를 만들어보았습니다. 2025년, 총 7명의 필자가 <33 원정대>를 GGOTY로 지목했습니다. 나현수 필자는 “턴제가 이렇게 어려울 수 있다니”라고, 박동수 필자는 “JRPG의 특징을 흥미롭게, 그리고 훌륭한 내러티브와 함께 갱신”했다고 평했습니다. 강신규 필자는 “독특한 설정과 내러티브의 일치, 아름다운 화면과 스펙터클”이라고 전했습니다. <스플릿 픽션>은 총 6표를 받으며 GGOTY의 2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명규 필자는 “이미 스스로 성공했던 똑같은 시도를 한 번 더 비틀어서 흥미로운 플레이로 채운 담대함이 돋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선인 필자는 “로컬 코옵 플레이는 비디오 게임이 줄 수 있는 독특한 수용자성이라고 봅니다. 헤이즈라이트 게임에는 그런 이유로 계속 주목하게 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3위는 총 5표를 받은 <할로우 나이트: 실크송>(실크송)이었습니다. 김규리 필자는 “출시까지 7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실크송은 밈적 대상으로 부유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실제의 게임으로 발매되어 등장했을 때, 동시다발적으로 플레이된 실크송은 하나의 문화적 이벤트로 기능했”다며 게임이 불러 일으킨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이현재 필자는 “레벨 디자인! 레벨 디자인! 레벨 디자인!”이라는 간명한 외침을 남겼는데요. 과연 이 게임의 고난도를 짐작케 합니다. 데브캣의 <마비노기 모바일>은 4표를 받으며 4위를 기록했습니다. 올해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거머쥔 게임이기도 하죠. 이연우 필자는 “pc버전에 향수를 가지고 있던 라이트 유저들을 잘 이끌어냄”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임윤혁 필자는 “원작과 전혀 다른, 하지만 여태 쌓아둔 IP의 훌륭한 활용과 처참한 완성도에 반비례하는 재미”라는 복합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GGOTY 1위를 차지한 33원정대 공동 4위는 4표를 받은 <킹덤 컴 2>가 차지했습니다. 웜뱃 필자는 “새로운 세대 rpg의 가장 중요한 기수 중 하나로서 계속해서 사골국물처럼 회자될 작품”이라는 극찬을 남겼습니다. 이도경 필자 또한 “독창적인 세계관, 참신한 게임메커니즘”이라고 평가했습니다. 1위부터 4위까지는 모두 나란히 1표차를 기록했는데요. 5위 선정작도 3표의 <포켓몬 레전드 Z-A>입니다. 이규연 필자는 “포켓몬 XY라는 과거의 작품의 미완결됐던 스토리와 후속작의 부재를 해결하고 기존 턴제배틀에서 벗어나 실시간 배틀이라는 흥미로운 시스템을 추가”했다고 보았습니다. 윤수빈 필자는 “모든 화제작이 '리메이크'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시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리메이크'의 시대를 무사히 넘기고(?) 노스탤지어라는 세일즈 포인트를 '속편'이라는 접근으로 성공적으로 이어간 게임”이라며 <다마고치 원더 샵>과 <이나즈마 일레븐 영웅들의 빅토리 로드>를 같이 언급했습니다. 순위에 들지 않은 게임들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동헌 필자는 <루미너스 어라이즈>, <블루 프린스>, <스리폴드 리사이틀>을 선정하며 “각자의 장르적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준 게임들. 몇 년 사이 계속 지적되고 있는 게임 업계가 모멘텀이 약하다는 평가의 흐름 속에서도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박수진 필자는 <엘든링: 밤의 통치자>와 <아크 레이더스>를 꼽으면서 “올해 게임 시장은 협동 PvE 게임의 해였다고 생각한다” 며 “두 게임의 독특한 점은 장르 문법을 그대로 채택하면서도 협동과 환경(Environment)과의 인터랙션을 강조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하드코어 솔로 플레이를 강조하던 장르가 협동 멀티 플레이와 PvE를 강조하면서 플레이 장벽을 낮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인디 시뮬레이션 게임 <술탄의 게임>(Sultan's Game)에 대해 장민지 필자는 “정치적 딜레마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기도 하고, 플레이어의 윤리적 판단이 매 회차 다른 결과를 만들어냄”이라고, 김성은 필자는 “무척 다양한 스토리 흐름을 제공하는 rpg 시뮬레이션 게임. 우리는 게임에서 무엇을 체험하길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게임”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서도원 필자는 <스플릿픽션>과 <인조이>, <농부는 대체되었다>를 선정하면서 “올해는 새로운 매커니즘이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게임보다 이미 아는 세상을 더 깊게 판 게임이 다수를 이루었던 것 같”다고 정리했습니다. 강지웅 필자는 <마리오카트 월드>, <메탈 슬러그 택틱스>(2024년 출시), <인디아나 존스 앤 더 그레이트 서클>(Xbox, PC 버전은 2024년 출시)를 뽑으면서 “같은 게임에서 익숙함과 낯섦을 느끼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만한 넓은 스펙트럼의 매력”이라고 전했습니다. 2025년의 사건, 책, 논문, 보고서, 영상 중 주목해야 할 것은… "2025년에 접하신 사건, 책, 논문, 보고서, 영상 중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제목 혹은 주제를 적어주십시오"라는 문항은 대단히 포괄적인 질문으로 정리하기 다소 까다로웠습니다. 사건부터 간행물, 영화가 모두 한 답변에 모였기 때문입니다. “박찬욱, 어쩔 수가 없다”(이정엽 필자)와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KCD도입 재쟁점화”(이도경 필자)가 한 데 묶인 셈이지요. 그럼에도 몇 가지 흐름을 짚을 수는 있었습니다. 이동헌 필자, 임현호 필자는 “AI 도입” 을 뽑았습니다. 이 필자는 “본격적으로 개개인까지 AI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제작, 유통, 마케팅, 비평 등 게임 업계의 전통적인 방식이 전방위에 걸쳐 변했”다고, 임 필자는 “AI 도입의 당사자이자, 경험자로서 지금의 현상이 너무 과대해석 되어 있단 생각이고, 한번은 누군가 짚어야 된다”고 말하면서 공론장 형성의 여지를 남겼습니다. 이현재 필자와 신주형 필자는 “닌텐도 스위치2 발매” 를 올해의 사건으로 선정했습니다. 이현재 필자는 “여전히 폐쇄형 생태계를 구사하고 있는 닌텐도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아무리 스팀과 오픈 생태계가 활기를 띄더라도 콘솔은 여전히 게임 콘텐츠의 기준이다. 그리고 닌텐도 스위치는 4개월만에 천만 대 판매 고지를 넘겼다”라고 답변했고, 신주형 필자는 “초기 불량 및 실제 성능 등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 국내에서 구매난이 지속되었던 닌텐도 스위치2 일본판 품절 현상은 닌텐도 팬덤의 맹목적인 지지와 강력한 수요, 희소성의 가치, 생산량 등의 복합적 요인이 있겠지만 게임 문화 및 게임 산업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고 답변했습니다. 이현재 필자는 “일본 콘텐츠 산업 2.0 정책”을 강신규 필자는 “정부의 K-콘텐츠의 국가산업산업 추진 천명”을 나란히 선정하면서 게임·콘텐츠 산업이 산업 정책의 영역 으로 한 발짝 더 들어온 모습에 주목했습니다. 이 필자는 “일본경제산업성은 IP 비즈니스를 필두로 콘텐츠 & 관광 & 기술을 융합해 일본 경제의 구조 혁신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한국의 오답노트'가 무엇을 목적으로 두고, 어떤 결과를 보일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보았고, 강 필자는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게임산업 지원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쓰리핏의 금자탑을 세운 T1 또한 두 차례 언급되었습니다. 나현수 필자는 “트럭시위”와 “조화보내기 사건”을 지목하며 “이스포츠의 팬덤화의 고도화를 보여줌 실제 게임처럼 주류게임층과 고관여층의 분리가 나타나는 느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성은 필자는 “T1과 레드씨글로벌(사우디아라비아 국영 관광개발사) 스폰서십 체결 + 페이커 4년 재계약”을 고르며 “Lck의 흥행은 페이커라는 상징이 견인해가고 있다는 의견에 기대어, e스포츠계의 흥행이 4년 연장된 사건이라 봐도 무방하게 느껴진다. 또한 자본력으로 상징되는 사우디아라비아(오일머니..)의 국영 기업이 한국의 e스포츠 구단에 투자했다는 것(이는 lck에 대한 투자로도 자연히 이어진다)이 이젠 e스포츠가 스포츠인가?에 대한 질문을 넘어 그것만의 독자적인 문화와 강력한 시장을 형성해나가고 있음을 또한번 반증한 계기”라고 분석했습니다. 3년 연속 월즈 우승을 달성한 T1 “코지 게임”, 편안한 게임 은 장민지 필자와 이연우 필자가 주목했습니다. 장 필자는 “방치형(느긋하고 조용한 플레이스타일) 코지 게임의 성행”을 언급했고, 이 필자는 논문 를 주목할 만한 텍스트로 뽑으면서 “‘편안한’ 게임이 점차 주목받는 상황에서 읽어볼만한 텍스트”라고 추천했습니다. 이밖에 응답된 주요 간행물은 (이경혁 편집장), (ゲームスタディーズ[クリティカル・ワード])(박수진 필자), 2025 글로벌 게임 플레이 영향력 보고서(강지웅 필자), <메타월드빌딩으로서의 SCP 재단 위키: 미디어 소프트웨어의 탈모방론적 속성을 중심으로>(김규리 필자), <연속 종이: 비디오게임의 죽음>(박동수 필자) 등이 있습니다. 2025년 게임제너레이션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글은 무엇이었습니까? 해당 중제의 질문에는 졸고(拙稿) <확률형 부분유료결제 앞에서의 EA가 마주한 고민>이 3회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이규연 필자는 “이번년도에 주요사건으로 꼽은 확률형아이템에 대한 규제와 연관하여 게임 업계의 고민과 게임 산업의 변화에 대해 여러 게이머들도 읽어볼 좋은 글이기에 선택”했다고 전했으며, 이도경 필자는 “글로벌게임사의 BM에 대한 고민, 그리고 한국에 끼친 영향”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게임커뮤니티가 걸어온 지난 25년과 오늘>(홍성갑 필자)은 2명의 필자가 채택했습니다.서도원 필자는 “쉽게 읽히면서도 깊이있게 분석하여 관련된 큰그림을 제공함”이라며 이유를 자세히 쓴 반면, 김재석 필자는 “정리가 잘 된 느낌이었고, 옛날 생각도 나서 좋았습니다”라고 ‘옛날 생각’ 같은 불분명한 이유를 들었습니다. <「스플릿 픽션」에 대해 쓰지 못한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합시다.>(이선인 필자) 또한 2명의 필자가 채택했습니다. 웜뱃 필자는 “다른 사람의 매우 개인적인 소회임에도 저에게 울림이 있었다”고 상찬했고, 박동수 필자 또한 “적지 않은 시간 GG의 필진으로 글을 써오며 생각했던 '게임평론'이라는 지점에 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밖에 모든 아티클이 1표를 받으면서 필자들의 관심이 특정 작품이나 현상보다 담론장 곳곳에 골고루 퍼져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대'와 '레트로'의 불편한 공존에 관해> (이선인 필자) → 영이 필자 "현재 문화계 담론 속에 혼재된 개념들과 창의성 결여 현상에 대한 탁월한 정리" <평화주의자는 게임에서 총을 쏠 수 있는가?> (쥬 필자) → 이명규 필자 "게임플레이와 현실의 행동 모두 당사자로서의 행위이지만 그 성격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흥미롭게 소고" <재현, 시뮬레이션 그리고 구현이라는 꼭짓점의 버뮤다 삼각지대> (웜뱃 필자) → 이선인 필자 "기술적 재현으로서의 가상 인터페이스가 갖는 맹점을 흥미롭게 논증" <비평공모전 4년을 거쳐 온 편집장의 회고> (이경혁 편집장) → 이동헌 필자 "게임 비평의 방향과 현재의 고민을 다각도로 설명" <번영과 몰락과 애도의 이야기, 33원정대> (이경혁 편집장) → 장민지 필자 "타이밍이 너무 좋았고, 게임 플레이와 적절히 맞물린 글" <서울을 걷는 작은 이유, 피크민 블룸 서울 투어> (이연우 필자) → 김성은 필자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어떻게 외부 활동으로 확장되는지 보여줌" <경계에 선 매체: “콘솔 게임은 대중매체인가?”> (이미몽 필자) → 강신규 필자 "콘솔 게임의 궤적을 매체론, 그리고 본인 경험과 영리하게 연결" <거대 전쟁기계와 게이밍, 전 지구적 지각의 병참학> (신현우 필자) → 신주형 필자 "어렵고 흥미로운 내용을 재미있게 풀어낸 글" <그려진 힘, 그리는 힘, 그림의 힘> (권태현 필자) → 이정엽 필자 "게임 자체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미술사적 해설을 통해 보완될 지점을 확인" <<마우스워싱>: 노스탤지어가 흐물거릴 때> (김규리 필자) → 박수진 필자 "'학술지보다 가볍게, 웹진보다 무겁게'라는 슬로건에 걸맞은" <게임과 시신경제 (Necronomics)> (영이 필자) → 윤수빈 필자 "게임을 사회과학의 화두의 관점에서 새롭게 볼 수 있게 함"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논문세미나] '스트리트파이터'는 무술martial arts인가?

    그리고 그 운용기술, 다시말해 주어진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관념과 자세에서 존스는 70년대 무술영화 붐과 2000년대 대전격투 게임이 같은 맥락에 선다고 분석한다. 오늘날 현대 격투기에서 사실상 중국 전통무술의 실전성은 파훼되었지만, 7-80년대에 이소룡 영화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동양무술은 북미에서 실제로 무술 도장의 붐을 이끌어냈고 수많은 청년들로 하여금 괴성을 지르며 신체를 움직이는 무술의 동작을 따라하게 만들었으며, 같은 맥락에서 EVO #37 이벤트 또한 동시대의 수용자들로 하여금 디지털화된 무술과 비슷한 무엇을 따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Back [논문세미나] '스트리트파이터'는 무술martial arts인가? 13 GG Vol. 23. 8. 10. 크리스 고토 존스 (Chris G. Jones) 는 캐나다 빅토리아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 주전공은 동양철학과 일본불교 , 명상과 종교 계통이다 . 논문 < 스트리트 파이터는 무술 martial art 인가 ?> 이 왜 철학연구라조부터 나왔을지를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 철학자인 그는 ‘ 스트리트 파이터 ’ 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디지털 격투 게임이 플레이되는 과정을 살피며 그 속에 배어 있는 대중문화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이 기술미디어 시대에 어떻게 새롭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 2018 년에 나왔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이 논문을 오늘 소개한다 . From dragon to the Beast 대전격투 게임의 기원을 게임학자들이라면 다른 쪽에서 찾겠지만 , 존스는 대중문화사 속에서 대전격투 게임의 선조로 이소룡 Bruce Lee 과 그의 영화들을 꼽는다 . 그는 이소룡의 영화들 , < 용쟁호투 >, < 사망유희 > 와 같은 그의 대표작들이 유행을 탔던 1970 년대와 2004 년 격투 게임의 한 장면을 대비시키는데 , 바로 EVO #37 의 그 유명한 장면 , 우메하라 다이고의 ‘ 더 비스트 이벤트 ’ 다 . https://www.youtube.com/watch?v=JzS96auqau0 워낙 전설적인 e 스포츠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우메하라 다이고 대 저스틴 웡의 ‘ 스트리트 파이터 3’ 대결은 막판 KO 위기에 놓인 우메하라의 켄이 상대 춘리의 초필살기 연타를 가드하지 않고 ( 가드하면 가드 대미지가 들어와 KO 당한다 ) 하나하나 패리해내며 완벽하게 방어해낸 후 , 점프에 이은 초필살기 반격으로 역 KO 시키며 게임을 뒤집은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 존스는 이 장면을 보며 70 년대 이소룡 영화가 선보였던 무술 붐이 2000 년대에는 대전격투 게임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 존스는 7-80 년대 서구권에서 일었던 이소룡을 중심으로 한 무술 붐과 마찬가지로 학계는 2000 년대의 이 영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본다 . 우메하라의 역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리터러시가 필요한데 , 첫째는 ‘ 스트리트 파이터 3’ 의 기본적인 시스템과 규칙에 대한 이해 , 둘째는 이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이를 받아들여 정확한 움직임을 수행하는 신체의 운동능력이다 . 이를 존스는 각각 객체기술 object skill, 운용기술 locomotive skill 이라고 일컫는데 , 현재의 게임연구분야는 텍스트에 중점을 둔 관계로 주어진 규칙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운용기술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 그리고 그 운용기술 , 다시말해 주어진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관념과 자세에서 존스는 70 년대 무술영화 붐과 2000 년대 대전격투 게임이 같은 맥락에 선다고 분석한다 . 오늘날 현대 격투기에서 사실상 중국 전통무술의 실전성은 파훼되었지만 , 7-80 년대에 이소룡 영화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동양무술은 북미에서 실제로 무술 도장의 붐을 이끌어냈고 수많은 청년들로 하여금 괴성을 지르며 신체를 움직이는 무술의 동작을 따라하게 만들었으며 , 같은 맥락에서 EVO #37 이벤트 또한 동시대의 수용자들로 하여금 디지털화된 무술과 비슷한 무엇을 따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 존스가 무술을 이야기할 때 중심에 두는 것은 무술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자세와 방식이다 . 존스는 이소룡과 무술영화가 보여주는 체술은 체술의 보여주기에 머무르지 않고 일종의 신비하고 경건한 수련의 자세를 포함한다고 본다 . 이를테면 이소룡이 주요한 장면에서 명상에 가까운 집중을 보여주거나 , 무술영화들이 주인공의 수련을 다룰 때 끊임없는 ( 이른바 ‘ 용맹정진 ’ 으로 대표될 ) 반복숙달이 단순히 육체적 훈련에 머무르지 않고 일종의 정신수양에 가 닿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 존스는 주목한다 . 그리고 이는 오늘날의 디지털 대전격투 게임을 다루는 게이머들과 게이머 커뮤니티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 게이머 커뮤니티는 일정 수준에 오른 격투 게이머들의 경지를 수련과 정진을 통해 도달할 수 있으며 , 단순히 육체적인 숙달의 문제 뿐 아니라 정신적인 수양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 이를테면 앞서 이야기한 우메하라의 경우 , 4 초 동안 쏟아지는 춘리의 초필살기 13 개의 연타를 한번도 틀리지 않고 정확한 타이밍에 튕겨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눈과 손의 반응속도 뿐 아니라 그런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침착과 냉정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이며 , 이러한 자세가 곧 이소룡이 선보인 그것과 동일하다는 이야기다 . 격투 게임과 테크노-오리엔탈리즘, 오타쿠 무술이라는 주제는 서구에서 다분히 오리엔탈리즘적 관점과 엮여 받아들여져 왔다 . 이소룡은 서구인들에게 백인이 아닌 미국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반헤게모니적 남성성으로 인식되었다 . 그가 < 맹룡과강 > 에서 척 노리스와 맨손격투를 벌여 승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 이소룡의 무술영화는 < 정무문 > 에서 일제 강점기에 놓인 중국의 상황을 다루는 것처럼 민족 , 인종이라는 테마와 떼어놓기 어려운 주제였고 , 이와 같은 맥락은 현재의 대전격투 프로 게임 씬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 일명 ‘ 아시아인의 손 Asian Hands’ 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 아시아인들이 여러 e 스포츠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고 ( 이는 한국의 ‘ 스타크래프트 ’ 나 ‘ 리그오브레전드 ’ 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같은 맥락에서 서구인들은 과거 이소룡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 아시안 프로게이머들을 일종의 초인적이고 신비주의적인 ,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고 받아들인다 . 이는 단순히 서구인들의 시선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 실제 대회에 출전하는 일본 게이머들은 스스로가 ‘ 우리는 일본인이므로 훨씬 잘 해낼 것이다 ’ 라고 인터뷰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 존스는 신비주의적으로만 언급되는 ‘ 아시아인의 손 ’ 을 이해하기 위해서 키지마 kijima 의 오사카 게이머 관찰연구 결과 (2012) 를 살펴본다 . 존스에게 있어 격투게임에서의 일본 우세는 그들이 뭔가 신비하고 영적인 훈련을 거친다기보다는 아케이드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 서구에서 거의 소멸한 아케이드에서의 대전격투는 일본에선 여전히 주요 상업지구의 대형 오락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 ( 다만 이 지점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애매하다 . 아케이드의 소멸은 규모는 다를지라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반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이런 아케이드를 거점으로 삼아 일명 ‘ 무사도 ’ 라고 불리는 특유의 문화로부터 기인하는 도장깨기 dojo-yaburi 가 일본에는 활성화되어 있고 , 이 과정을 통해 일본 게이머들은 끊임없이 강한 상대를 만나며 더욱 수련에 정진할 수 있다는 것이 존스의 분석이다 . 그러나 이런 점보다 대중적으로는 ‘ 신비로운 아시아인들의 놀라운 격투능력 ’ 이 온라인 격투에서도 발휘된다고 이해된다 . 신화적인 무술 담론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무술담론과 현대 격투게임의 이와 같은 융합에는 80 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테크노 - 오리엔탈리즘의 오타쿠적 변형과 재수용이 함께 자리한다 . 홍콩과 도쿄 , 상하이의 네온사인 가득한 ‘ 이국적 ’ 야경으로 그려졌던 80 년대의 테크노 - 오리엔탈리즘은 디지털게임과 맞물리면서 오타쿠의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낸다 . 90 년대 이른바 ‘ 쿨 재팬 ’ 의 출현과 함께 일어난 이 변화는 아즈마 히로키의 <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2001) 을 통해 해석의 기초를 얻게 되었다 . 데이터베이스화한 동물 , 슈퍼 정보처리기로서의 오타쿠는 기존의 다른 매체 오타쿠와 달리 게임 오타쿠를 일정 몰입도에 도달하기까지 강박적 헌신과 지속적 연습을 이어간다는 형식으로 차별화시키며 일명 ‘ 야리코미 ’ 와 같은 게임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 이러한 게임 오타쿠는 무술 담론과 결합한 대전격투 게임과 만나며 오타쿠적 몰입을 무사도적 수련과 정진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대중적 이해를 낳았다고 존스는 이야기한다 . Emperor가 아니라 Demon King인 이상혁의 문제 서구권에서 바라보는 무술 , 혹은 무술의 개념을 가져온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 독자들 입장에서는 흥미로운데 , 무술과 같은 개념은 같은 동아시아권 문화에 있어 우리에겐 좀더 내재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 서구권에서 바라본 것처럼 우리에게 무술은 굉장히 신비로운 것으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 이를테면 한국에서도 격투 게임의 어떤 순간들을 무술 , 아니 좀더 우리 식으로라면 격투게임 고수들의 모임을 일종의 무림武林으로 비유하거나 , 무릎 배재민의 파키스탄 원정을 일종의 폐관수련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 분명 존스의 이해와 우리의 이해는 일면 상통하지만 , 과연 우리의 그것이 서구의 것처럼 신비스러운 대상인가를 생각해보면 둘의 차이 또한 명확하다 . 테크노 - 오리엔탈리즘은 디지털게임과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오타쿠 문화와 엮이며 독특한 장면을 자아낸다 . 다만 존스의 의견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 아마도 ‘ 왜 e 스포츠에서 동아시아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가 ?’ 라는 질문에 대해 존스의 의견은 명확한 단 하나의 답으로는 자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 당장 한국이 우세를 점하는 e 스포츠 종목들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이 존스의 개념 안에서 거론되는 오타쿠로 분류될 수 있는지와 같은 쟁점들을 새롭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 . 한국에서도 아케이드는 이제 대중적인 문화에서 멀어져가는 추세고 , 오히려 대전격투 게임의 고수들은 네트워크 플레이로 도장을 옮겨 안착한 지 오래다 . PC 방의 존재는 여전히 과거 아케이드와 같은 오프라인 도장 역할을 하고 있지만 , 애초에 ‘ 리그 오브 레전드 ’ 같은 게임은 PC 방의 로컬이 아닌 네트워크상의 5:5 대전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 또한 명백한 해답이 되기는 어렵다 . 결론을 대신하는 한 가지 힌트라면 , 적어도 우리는 왜 동아시아 선수들 , 좀더 우리 입장으로 좁혀 본다면 왜 한국의 e 스포츠는 그토록 높은 성과를 내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변의 접근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한국이 e 스포츠의 선두주자라는 것까지만을 이야기하지만 , 한편으로는 세계 최고의 LOL 플레이어인 페이커 이상혁의 별명이 서구권에서 ‘Emperor’ 가 아니라 ‘Demon King’ 이라는 사실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점을 존스의 글은 돌아보게 한다 . 테크노 오리엔탈리즘과 엮여 돌아가는 오늘날의 e 스포츠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e 스포츠 그 자체 뿐 아니라 , “ 동아시아의 e 스포츠 ” 로 끊임없이 서구에서 타자화되는 경향과 그 결과 또한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 참고문헌 Kijima, Y. (2012). “The Fighting Gamer Otaku Community: What are they ighting about?” In Fandom Unbound: Otaku Culture in a Connected World, eds. Mizuko Ito, Daisuke Okabe, and Izumi Tsuji. Yale University Press, 2012, pp. 249–74.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모에’는 어떻게 발현되는가?:  서브컬처 게임 속의 인물에 대한 애착 유발 구조의 고찰

    2022년 즈음부터, 한국의 게임 업계는 만화‧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비주얼 표현 기법을 내세우는 게임들을 ‘서브컬처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호칭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만화‧애니메이션풍으로 묘사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이라는, 이름이라기보다 차라리 서술에 가까운 호칭으로 일컬어졌던 이들에게 상대적으로 간결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eonghoon Lee A gamer who searches games for inspiration in life. Keenly interested in analyzing the ways games convey their intentions and concepts.

  • 자아와 투쟁하던 이야기로 세상을 구하게 만드는 방법 - 헬블레이드 2: 세누아의 전설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고 묘사하는 것은 때로 놀라울 만큼 쉽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천재나, 비현실적인 실력을 가진 전사를 만들 수도 있다. 어떤 문제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고,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곤란함은 그들의 비범함 앞에서는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 Back 21 GG Vol. 24.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aein Park A gamer who searches games for inspiration in life. Keenly interested in analyzing the ways games convey their intentions and concepts.

  • <마우스워싱>: 노스탤지어가 흐물거릴 때

    자본주의적 체인 안에서 상품이 개별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은 세세하게 분할되어 실체는 추상적인 절차로 파편화되고 프로세스는 우연적인 집합에 불과할 때, 블랙 박스 속 물건을 통해 주권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지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 Back 21 GG Vol. 24.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yuri Kim Interested in the ways games let us experience stories. After poking around here and there, lately played Marathon.

  • 이토록 ‘스트레인지 리얼’한 토요일 – 탑승형 시뮬레이터 게임에 대한 소고

    그렇다고 해서 현실 모사를 향한 <에이스 컴뱃>의 시도와 곤혹이 완전히 축소되지는 않는다. 2025년 지스타 컨퍼런스의 세션에서 청중 질의를 소화하던 코노 카즈토키는 시리즈의 근본적인 제약을 쓰게 웃으며 인정한다. 30년 간의 진보를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 게임이 구름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구현했는지 거듭 되풀이하는 이유는, 실상 그 외에 발전사를 검토할 만한 인상적인 요소가 부족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Back 27 GG Vol. 25.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yuri Kim Interested in the ways games let us experience stories. After poking around here and there, lately played Marathon.

  • 전업 게임평론가의 솔직한 고민

    경험과 지식,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딱 잘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둘 모두가 필요한 것이 교양을 딛고 서는 게임평론의 전제가 된다는 생각은 굳건하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대중성은 오히려 게임평론에 필요한 요소 중 이 둘보다 후순위에 선다. 경우에 따라서는 훌륭한 게임 경험과 이를 적절히 일반화하고 풀어내는 지식의 조화만으로도 대중성은 완성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 Back 전업 게임평론가의 솔직한 고민 20 GG Vol. 24. 10. 10. 평론은 애초에 대중적이지 않았다. 게임은 더욱 그럴 것이고. 평론이라는 영역이 대중과 유리되었다는 이야기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어불성설이다. 어찌보면 평론은 애초에 대중과 가깝게 있었던 적을 손에 꼽기 어렵기 때문이다. 출판이 그나마 활성화되었던 시절의 문학평론, 다양한 분야에 대한 비평이 이루어지던 잡지가 잘 팔리던 시절의 여러 평론 등의 옛날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나마도 평론이 팔리던 시절에도 평론이 대중문화의 일부라고 이야기할 만한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대중적인 평론의 시절이라면 아무래도 영화평론의 전성기를 꼽을 것이다. 영화잡지가 지금보다 다채로웠던 시절도 따지고 보면 이 평론이 대중적이었느냐에 대해 할 말이 많겠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대중적이라는 평가로 사람들의 기억에 영화평론이 남는 것은 평론이 대중적이었다기보다는 영화가 대중적이었기 때문으로 보는 편이 낫다. 평론이라는 이름을 단 모든 것들이 애초부터 대중성과 거리가 멀었는데, 디지털게임의 영역이라고 다를 것이 있겠는가? 평론이라는 이름을 단 많은 것들이 점차 사그라들어가고 있는 시점의 측면에서도 디지털게임의 평론이라는 말은 설 자리를 찾기 어렵다. 애초에 대중적이지 않은 글과 말의 방식이 단지 대중적인 매체를 다룬다고 해서 갑자기 흥할 리 없고, 안그래도 죽어가는 판이 단지 매체가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갑자기 부흥할 이유도 없다. 여러 모로 게임평론의 생존 조건은, 좋지 않다. 교양으로서의 비평에 필요한 경험과 지식의 균형점 매체에 게임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2014년부터니까, 나는 햇수로 어느새 10년차를 채운 게임평론가가 되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시작했던 일은 구르고 굴러 이름 뒤에 다양한 게임 관련 직함이 덧붙었지만, 여전히 나는 내가 하는 일의 방향이나 의미, 가능성에 대해 확신에 찬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 잡지를 맡은 지도 만 삼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나는 어떤 말과 글이 디지털게임을 이야기하는 데 필요하다고 쉽사리 선언하지 못한다. 따라서 게임평론이 어떻게 하면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도 나는 선뜻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 수 없다. 다만 수 차례 이어진 질문에는 한결같이 “씬”의 형성이라는 이야기를 해 오기는 했다. 이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현답이라기보다는 일반론을 주워섬기는 수준에 불과하다. 너무나 당연한 말. 읽는 사람이 늘고, 그러면 그 속에서 쓰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라는. 하나마나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이 말은 중요하다. 게임평론, 비평의 쓸모에 대해서는 다른 글 에서 이야기했으니 필요의 당위성을 두 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지만, 이를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원론 수준의 솔루션을 내지 못한다. 다만 ‘씬의 활성화’라는 원론은 각론에 들어가면 조금 더 다른 이야기를 담기는 한다. 이를 테면, ‘씬’이라는 일종의 구분짓기를 만드는 경계에는 ‘교양’이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배경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을 ‘교양’은 비평을 존재하게끔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 때의 교양은 고정된 개념으로서의 지식이라기보다는 상호관계적이고 변증법적인 현상으로서의 의미다. 앞선 시대의 지식과 담론이 새로운 매체로 연장되고, 동시대의 경험과 의견이 이와 함께 버무려지면서 나타나는 지금 시대의 지식담론이다. ‘씬’을 만드는 조건에는 단순히 쓰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유무 뿐 아니라, 이들이 딛고 있는, 정의하기 어려운 이 교양이라는 조건이 추가된다. 교양이 매우 비정형적이며 유동적인 영역이라는 점은 게임비평의 현실적 존재를 어렵게 만드는 조건이다. 아주 단적인 이유를 먼저 꺼내보자면, 당장 디지털게임이라는 매체를 비평으로 다루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교양을 달성하기 위한 물리적 조건의 문제가 등장한다. 두 시간 내외로 볼 수 있는 영화 한 편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겠지만, 어쨌든 디지털게임은 다른 매체에 비해 그 매체의 내용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비교불가능한 시간 소모를 요구한다. 스탠드얼론 패키지 하나를 클리어하는 시간을 이야기한다면 이는 매우 작은 단위다. 패치마다 추가되는 요소들이 있고, DLC를 통해 확장되는 이야기가 있으며, 온라인게임의 경우에는 아예 릴리즈 버전마다 게임이 달라지기도 한다. 매체가 시간을 요구하는 조건 자체가 이미 험악한 난이도인데, 제한된 24시간의 하루를 똑같이 갖고 있는 사람에게 교양을 위한 게임플레이와 기타 경험의 축적을 동시에 요구하는 일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불가능한 요구가 될 수 있다. 게임과 학습이라는 두 영역의 교집합을 모두 다룰 수 있을 만큼의 시간적 여유는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는 둘의 균형보다는 한쪽으로 더 기울어진 평론의 생산이다. 3년째 비평공모전 심사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이 이 지점이다. 어떤 글은 오직 자신의 게임 경험만을 풀어놓으려 했다.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타인과 교감이 불가능할 정도로 오로지 독자적이기만 한 경험은 비평이 아니라 감상에 머물게 된다. 또 어떤 글은 오로지 자신이 배운 일련의 지식체계에만 무게가 실리는 바람에 디지털게임 비평이라기보다는 그저 내가 체득한 지식의 틀을 통해 게임을 보니 이렇다, 라는 적용에 머물기도 한다. 경험과 지식,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딱 잘라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둘 모두가 필요한 것이 교양을 딛고 서는 게임평론의 전제가 된다는 생각은 굳건하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대중성은 오히려 게임평론에 필요한 요소 중 이 둘보다 후순위에 선다. 경우에 따라서는 훌륭한 게임 경험과 이를 적절히 일반화하고 풀어내는 지식의 조화만으로도 대중성은 완성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시장성의 문제 비평과 평론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많은 이들이 놓치는 또 하나의 균형점은 시장성이다. 어떤 이들은 비평이 경제적 문제와 무관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게임에 대해 말하고 글쓰는 일로 먹고사는 입장에서 이는 다소 아쉬운 소리로 들린다. 결국은 이 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자리잡기 위해서는 들인 노력과 시간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받는 노동으로 자리잡아야 하는데, 그러한 부분이 고려되지 않은 말이기 때문이다. 학계와 같은 곳은 역으로 그런 시장논리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논리와 지식의 생산을 위해 일종의 소도와 같은 형태로 연구자를 보호하는 방식이 적용되고 있긴 하지만, 게임비평과 같은 경우는 아직 그와 같은 보호논리 안에 포함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더 슬픈 것은 오히려 그 학계라는 곳 또한 평론과 마찬가지로 이미 최초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많이 엇나가 있다는 점이다. 학문의 자유를 보장받기보다는 사업실적으로까지도 평가받는 공간에서 경제적 문제와 무관한 비평의 성립이 가능할까? 때문에 지금의 게임평론가는 작게는 자신이 먹고살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법, 좀더 넓게는 앞서 말한 형이상학적 의미의 “씬”의 형성이 현실에서 어떻게 다른 경제적 주체들과 관계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해법을 가져야 한다는 또 하나의 의무를 등에 지게 된다. 단순히 말과 글을 준비하는 일만으로도 벅찬데, 그러한 결과물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어떻게 관계맺는지까지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일을 생업으로 가져가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두 가지의 방법이 현실에 존재한다. 전업이 아닌 부업, 혹은 취미로 게임평론을 수행하는 것이 첫 번째다. (실제로 나도 처음 시작이 그랬다.) 하지만 이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미 교양으로서 평론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요구하는 시간을 생업에 나눠 써야 한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두 번째는 생산물로서의 평론이 경제적 가치로 직결될 수 있는 루트 – 이를테면 최근의 유튜브 운영 – 같은 방식이 실제 존재한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이는 다분히 어려운 문제다. 보다 빠르고 감각적인 매체로서 자리잡아가는 인터넷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교양으로서의 다소 느리고 무거운 감각의 게임평론을 안착시키는 것을 장담하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수익을 노린다면 보다 자극적인 형태의, 이를테면 강한 어조로 ‘똥겜’을 욕한다던가, 별점을 통해 줄세우기를 한다던가, 혹은 게이머 커뮤니티와 같은 여론의 흐름들이 원하는 방향에 편승한다던가 하는 방식을 수행할 수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는 교양으로서의 평론과 지향점이 다르다는 어려움이 따른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순간이 나타날 수도 있겠고 또 그러한 노력이 없다고 이야기는 것은 아니지만, 감히 이것이 게임평론의 살길이다 라고 자신있게 주장하지는 못하겠다. 다시 일반론으로 현재 전업 게임평론가, 게임연구자로 살아가는 입장에서 고민하는, “게임평론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는 그래서 다시 교양으로서의 평론이 어떻게 하면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남을 것인가 라는, 게임 자를 뗀 평론의 생존 일반론 편으로 이어진다. 애초에 평론이라는 것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유지 가능하게끔 만들고 그 영향력이 다시금 게임제작자, 이용자들에게 미치게끔 하려는 일은 결국 ‘게임’ + ‘평론’ 이라는 두 개념 중 ‘평론’을 살리는 일에 가깝다. 하지만 특수성으로서의 ‘게임’은 일반론으로서의 ‘평론’을 활성화할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할 것이다. 가장 많은 대중들이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고, 산업적으로 가장 큰 매출의 덩어리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게임’ 이기 때문이다. 가장 대중적인 매체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해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비단 게임평론가들 뿐 아니라 평론이라는 것의 사회적 기능을 인지하고 그것에 일련의 의무감을 지닌 모두가 함께 해 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아니 역으로 생각해 보자면, 오히려 ‘게임’ 평론가는 차라리 다른 영역에 비해 조금 더 나은 인프라를 딛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게임연구자,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단 것이 10년 전이었고, 이런저런 활동 끝에 한 가지 해법으로 게임제너레이션이라는 잡지를 시작한 것이 3년 전이었다. 감히, 정말 감히 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을 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한 매체의 영향력에 다른 벡터를 부여할 수 있는 평론이라는 힘을 부여하는 데 있어 10년 전 보다는 먼지만큼이나마 나은 디딤돌이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온 경과를 뿌듯해하기엔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로막은 절벽이 더 높고 두터워 보인다. 현실의 전업 게임평론가는, 보통 이러한 고민을 붙잡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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