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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맛보다 눈맛, 사람들은 이제 게임을 ‘본다’

    2020년 초, 한 모바일 게임의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제 모두들 손 떼!”라고 외치고, 가끔씩만 만져줘도 맛이 최고라며 게이머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게임은 원래 이 맛”이라고 선언한다. “어머, 어딜 손 대요?”라며 능청을 부리기도 한다. 게임의 제목부터 “키보드에서 떨어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위 방치형 RPG로 불리는 〈AFK(Away from keyboard) 아레나〉 이야기다. < Back 손맛보다 눈맛, 사람들은 이제 게임을 ‘본다’ 03 GG Vol. 21. 12. 10. 잘못된 전제 2020년 초, 한 모바일 게임의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제 모두들 손 떼!”라고 외치고, 가끔씩만 만져줘도 맛이 최고라며 게이머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게임은 원래 이 맛”이라고 선언한다. “어머, 어딜 손 대요?”라며 능청을 부리기도 한다. 게임의 제목부터 “키보드에서 떨어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위 방치형 RPG로 불리는 〈AFK(Away from keyboard) 아레나〉 이야기다. 게임은 원래 ‘손맛’이 아니라 ‘보는 맛’이라 우기는 광고 카피. 적잖은 게이머들은 “게임은 플레이할려고 하는 거 아닌가? 본질을 없애버리네!”같은 댓글에 동의하고 공감했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진행되는 게임을 게임이라 부를 수 있는가? 키보드나 마우스로 입력을 하고 그래서 점수든 승리든 목표를 달성하는 것, 즉 게이머와 게임 텍스트의 상호작용이 게임의 매체적 본질 아니던가? 버릇처럼 텔레비전을 켜놓고 연예인들이 박장대소하며 히히덕대는 장면들을 멍하니 쳐다보는 카우치 포테이토족의 모습과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역동적인 게이머 모습은 당연히 구분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수동적 텔레비전 시청자와 능동적 게임 플레이어의 구분은 꽤 오랜 기간 양 미디어의 본질적 차이인 것처럼 여겨졌다. 직관적으로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암묵적인 전제가 있다. “본다”는 것은 (손을 움직이는 것보다) 수동적인 행위라는 전제가 있고, ‘상호작용성’이야말로 (텔레비전이나 영화와 차별되는) 게임의 매체적 본성이라는 전제가 있다. 크게 의심받지 않던 이 전제들. 최근,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들이 자꾸 생긴다. 자기가 게임을 하는 대신 남들이 게임하는 모습 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내가 조작을 하는 대신 기계가 알아서 내 캐릭터를 육성시켜주는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키보드에서 손 떼라는 게임도 나왔고, 성공했다. 우리가 뭔가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보는 행위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것은 그리 게으르고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흘긋) 보다(see)”와 “바라보다(look)”는 구별되어야 한다. 일상적 삶에서 우리 시선이 어떤 대상들에 우연히 머물거나 스쳐가는 상황이 아니라 목적성과 방향성을 가진 자발적인 행동으로서의 ‘바라봄’은 바라보는 ‘실천 행위’이다. 길가에서, 술집에서, 운전을 하다가, “뭘 봐, 인마!”라는 마술같은 네 글자로 인해 싸움이 일어나고 목숨이 왔다갔다하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해변에서, 클럽에서, 응시하는 자와 시선을 피하려는 자의 줄다리기는 드문 일이 아니다. CCTV로 잠재적 범죄자들을 감시하는 편의점 사장이나 몰래카메라로 누군가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변태 범죄자에게 ‘바라봄’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힘 있는 행위이다. 시선만으로도 권력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감옥의 간수와 죄수는 이 명제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사례다. 푸코(Michel Faucault)가 19세기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Jeremy Bentham)의 아이디어를 빌려와 원형 감옥의 작동 원리를 설파할 때, 그 핵심은 시선의 권력이 내면화된다는 점이었다. 중앙 첨탑에서 죄수의 방을 비춘다면 죄수는 첨탑의 간수를 볼 수 없다. 나는 그를 볼 수 없지만 그는 나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일차적인 권력의 자원이 된다면, 그가 지금 나를 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가 정한 규율과 표준을 내면화하여 행동해야 하는 것이 권력 작동의 최종 결과가 된다. 간수는 시각의 주체이다. 죄수는 대상이다. 시각중심주의는 주체와 대상을 공간적으로 분리하고, 주체에게 바라보고 분석할 힘을 준다. 이론(theory)의 어원은 본다(theoria)이다. 눈은 권력을 가졌지만 대상에 개입하지 못한다. 하지만 바라보는 주체는 능동적인 해석의 주체이기도 하다. 코미디를 보면서도 울 수 있다면 이를 어찌 수동적 수용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텍스트 중심주의의 미디어 문화이론이 수용자에 대한 관심으로 선회했던 이유도 바로 해석 주체의 능동성 때문이었다. 홀(Stuart Hall)이 부호화와 해독에 대한 도발적 논의를 시작한 때가 40여 년 전이고, 이를 이어받아 피스크(John Fiske)가 저항적 즐거움과 기호론적 민주주의를 제기한 지도 30년 이상이 흘렀다. 오히려 수용자의 능동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니냐는 반성이 나왔을 정도니,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신문기사나 만화를 보는 것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보다 수동적이라 믿어버리는 것은 시대착오적 전제가 아닐 수 없다. 게임은 과연 상호작용적 미디어인가? 하지만, 여전히, 게이머의 개입적 행동을 영화 관객의 해석적 행동과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는 없다. 게임의 본질이 ‘상호작용성’이라는 믿음도 여기서 출발한다. 주체와 대상이 공간적으로 분리된 전통적 시각매체와 달리, 게임에선 수용자가 대상 텍스트의 내용과 구조에 작용을 가하고(입력) 그 결과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점은 분명한 차별 지점이기 때문이다. 게임문화연구의 초기, 게임과 게임플레이를 유희의 관점에서 보는 접근(루돌로지)과 서사의 관점에서 보는 접근(내러톨로지)이 대립했을 때도 상호작용성에 대한 의심은 없었다. 전자는 게임의 본질을 게이머의 입력행위에서 찾았고 후자는 게임 텍스트가 상호작용적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놀이’가 놀이 주체(플레이어)의 작용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구성된다. 이것을 상호작용적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무엇과의 상호작용인가? 축구는 공과의 상호작용인가, 상대 팀과의 상호작용인가, 아니면 심판이나 관중과의 상호작용인가? 축구 경기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경기를 하나의 서사로 간주하는 비유이다. 이 서사는 선수들이 플레이함으로써 완성된다. 자유도는 높지만, 서사 구성의 정해진 규칙은 있다. 게임을 게이머의 참여로 완성되는 서사의 일종으로 이해했던 머리(Janet Murray)의 정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축구라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관중이다. 영화의 서사를 즐기듯, 축구 서사를 만끽한다. 놀이의 주체가 선수로부터 관중으로 옮겨지는 순간이다. 게임에 대한 두 가지 암묵적인 전제, 즉 ‘보는’ 행위가 수동적이라는 전제와 ‘상호작용성’이야말로 게임의 매체적 본성이라는 전제는 처음부터 불안한 기반 위에 놓여 있었다. 게임을 설명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일 수는 있지만, ‘본질’이라 말할 수는 없다. 게임의 주체도 게이머로부터 관중으로 옮겨질 수 있다. 이스포츠(eSporsts)나 게임 스트리밍 시청의 경우이다. 이스포츠의 경우, 프로 게이머가 게임 서사를 완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관중은 게임 서사를 (능동적으로) 바라보고 즐기는 주체가 된다. 방치형 게임 플레이어는 적극적인 입력을 하는 대신 서사의 전개과정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된다. 게임을 즐기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 게임의 본질을 거스르는 기형적 상황은 아니다. 시각성의 재림 게임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이라 치더라도, 왜 하필 지금 ‘보는 게임’이 각광을 받게 되었는지 의문은 남는다. 더 정확히 질문하자면, 시각과 청각과 촉각을 모두 사용하던 게임 플레이가 당연하던 시기를 지나 거의 전적으로 시각에만 의존하는 방식의 플레이(관람)가 중요해진 시기가 도래한 계기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쇄술의 발달 이후 시각은 다른 감각에 비해 상대적 우위에 있어 왔다. 매체 철학자인 맥클루언(Marshall McLuhan)은 인쇄술이 인간의 감각들을 서로 떼어 놓고, 다양한 감각들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방해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구술 중심의 부족문화에서 문자 중심의 필사문화로, 그리고 인쇄술 발전으로 인해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등장했다는 그의 매체사적 통찰 속에서, 시각은 필사문화 시기부터 중심적 감각으로 등장하여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시기에는 다른 감각들을 억압하는 지배적 감각이 된 것이다. 총체적 인간 감각이 분화되고, 시각이 나머지 감각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시각 권력은 근대성의 등장에 맞춰 지배적 지위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시각 권력과 원형감옥의 간수가 갖는 시각 권력이 같은 의미는 아니다. 맥클루언이 강조한 근대적 시각성의 지배는 인쇄술과 선형적 문자중심성과 더불어 등장, 강화되었고, 따라서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와 과학에 대한 맹신으로 이어진다. 신의 시점이 아닌 인간의 시점을 강조하면서 원근법에 충실한 과학적 그림이 등장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를 감시하거나 훔쳐보고 나아가 통제하는 생체권력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 제기이다. 다시 맥클루언을 인용하자면, 시각 중심으로 형성된 인쇄-미디어 문화가 주술적이며 마법적인 청각 세계를 붕괴시켰던 것처럼, 구텐베르크 은하계 역시 전기 미디어의 발명과 함께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신과 라디오, 텔레비전은 메시지를 찰나적으로 만들어 합리성보다는 직관과 통찰을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은 가장 탈근대적인 매체이다. 게임 내의 다양성과 차이들을 잠시 접어두고 단순화하자면, 게임은 시각중심성에 저항하는 감각 분산적 매체이다. 게임을 즐기는 이들의 태도는 인쇄매체에 담긴 선형적 언어를 따라가는 (맥클루언이 말하는) 시각중심적 자세도 아니고 경건한 자세로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벤야민이 말하는) 정신집중의 태도도 아니다. 7,80년대의 오락실에서 시작해 90년대말 PC방에 의해 대중화되고 21세기 이후의 모바일 미디어로 인해 폭발한 디지털 게임은 근대성에 대한 회의와 도전과 때를 같이한다. 그렇다면 이스포츠와 방치형 게임에서 발견되는 시각성의 재림은 근대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일까? 다시 시각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다는 단서로 이해해야 할까? 탈근대적 시각성의 게으름 여기서 근대적 시각성과 구별되는 탈근대적 시각성을 발견한다. 전자가 시지각에만 의존해서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사고하는 과정을 설명한다면, 후자는 시각 주체로서 대상을 바라보되 게으르고 산만하고 찰나적인 바라봄을 지칭한다. 물론 다른 감각기관이 주변화된다는 면에서는 유사하고, 시각중심적 문화라는 지칭도 온당하다. 그러나 디지털 영상을 보는 지금의 태도는 읽고 이해하고 해석해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탈근대적 시각성은 디지털 영상매체의 발전과 같은 속도로 전파되었다. 일방적으로 뿌려지는 (근대 성격의) 텔레비전 방송이 아닌, 개인화되고 상호작용적이며 시공간 제약도 극복할 수 있는 미디어들이 보편화되면서, 몰입하지만 자유로운, 유익하지만 심심풀이인 바라봄도 따라서 보편화되었다. 비유하자면, 노동과 생산을 위한 시각성이 아니라 여가와 휴식을 위한 시각성이다. 공을 차는 대신 축구 중계를 시청하고 먹는 대신 먹방을 즐겨보는 행위는 게으르고 산만하다. 방치형(idle) 게임의 idle은 게으름, 나태함, 빈둥거림을 뜻한다.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상태. 생산성 없는, 노동의 반대편에 있는 휴식의 상태이다. 노동의 반대편에는 휴식 대신 여가가 자리잡기도 한다. 일하지 않는 주말, 사람들은 열심히 여가활동을 즐긴다. 영화를 보거나 근교 관광지를 가거나, 아마 골프를 치러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낮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여가활동’이라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가활동’은 준(準)노동이기도 하다. 함께할 친구들과 미리 약속을 하고, 버스 시간을 알아보고,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야 하기도 한다. 생산하지 않는 행위라 하여 노동이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피곤한다. 이를 적극적/소극적 여가로 구분하기도 하고, ‘준노동적 여가’와 ‘보상적(compensatory) 여가’로 구분할 수도 있다. 혹은 (학술적 개념은 아니겠으나) ‘진지한’ 여가와 ‘게으르고 산만한’ 여가로 구분하는 편이 더 직관적일 수도 있겠다. 맑스의 사위이기도 한 라파르그(Paul Lafargue)는 자본주의에 저항하기 위한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찾는 운동을 제창한 바 있는데, 게으르고 산만한 여가야말로 이 운동에 딱 맞는 활동 아닐까. 방치형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진지한 플레이를 거부하는 것이고, 게으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시각 주체 노릇은 하지만 개입하지 않고, 열심히 바라보지만 해독하지 않는 게이머. 탈근대적 시각성은 게으르고 산만하다. 게임 본질주의의 쇠락 방치형(idle) 게임이라 퉁치기는 했지만, 게이머의 게으름에 기댄 게임의 종류는 상당히 많다. 역사도 결코 짧지 않다. 요즘은 흔해진 자동전투 기능도 방치의 일종이고, 방치를 필수 요건으로 만들어 놓은 파밍 게임들도 있다. 방치형 게임 연구 논문을 발표한 박이선은 게임의 방치 구조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5분 이내로 방치하면서 간헐적으로 게임에 진입하는 게임 (〈AFK아레나〉)도 있고, 몇 시간까지 게임을 켜두고 꾸준히 방치해야 하기 때문에 일과를 보내다가 잠시 게임이 생각나면 화면을 확인하고 개입하는 방식 (〈리니지2 레볼루션〉)도 있다. 플레이어가 게임에 접속하지 않아도 게임이 항상 진행되는 항시적 방치 게임(〈중년기사 김봉식〉)도 있다. 다양한 종류와 위계 속에서,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게으름’에 맞는 적절한 게임을 선택해서 즐긴다. 혹은 바라본다. 이스포츠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 남들이 게임하는 것을 관람하는 방식도 여러 종류이다. 특정 게임의 공략방법을 배우기 위한 유튜브 채널을 열심히 보는 사람도 있고, 셀러브리티의 미숙한 게임 플레이를 팬심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내가 플레이하는 대신 남들을 보며 즐기는 행동을 ‘상호수동성’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관찰주체는 감정을 다른 대상에게 위임함으로써 안도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시각에만 의존하여 즐거움을 얻는 이런 관람행위들은 근대적 의미의 진지한 바라봄과는 구별되는, 산만한 바라봄이라는 점이다. 플레이어의 적극적 개입 없이 시각에만 주로 의존하는 게임(관람) 방식이 확대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방치형 게임이 게임산업의 미래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스포츠가 게임보다 더 중요한 문화적 영역이 될 것이라는 뜻도 아니다. 빠르고 정확하게 자판이나 마우스, 컨트롤러를 움직이는 것이 게임 플레이의 지향점이 되는 시기를 벗어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PC방에서 컵라면 먹으며 밤을 새는 것이 전형적인 게이머의 이미지가 되는 시기가 지났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른 글이나 사석에서도, 나는 소위 ‘진짜’ 게이머가 설 자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다. 캐주얼 게이머, 노년 게이머, 방치형 게이머를 무시하며 “너희가 게임을 알아?”라며 언제든지 코웃음칠 자세가 되어 있던 이들이 점점 주변화됨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가장 중요한 ‘매체적 본질’이 상호작용성이라는 전제를 폐기한다면, 그리고 방치형 게이머의 산만한 바라봄을 근대적 시각 권력과 차별화하여 이해할 수 있다면, 게임 씬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변화는 소소한 유행이 아니라 거대한 문화적 변동의 일면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학교 과제를 하면서 자동 사냥을 흘긋 쳐다보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유형의) 게이머를 보며, 혹은 게임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이스포츠 중계에 열광하는 (과거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유형의) 게이머를 보면서, 사실은 탈근대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는 코끼리의 종아리 어딘가를 만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세대학교 교수) 윤태진 텔레비전 드라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20년 이상 미디어문화현상에 대한 강의와 연구와 집필을 했다. 게임, 웹툰, 한류, 예능 프로그램 등 썼던 글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활동들”을 탐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디지털게임문화연구』라는 작은 책을 낸 적이 있고, 요즘은 《연세게임·이스포츠 연구센터(YEGER)》라는 연구 조직을 운영하며 후배 연구자들과 함께 여러 게임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미술의 근간이 될 때, 〈게임사회〉 리뷰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현대 미술을 향유하는 이들과 관심이 거의 없는 일반 관객들 사이의 회색분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딱히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어렸을 때부터 향유해온 것도 아니지만 뒤늦게 재미를 붙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꿈보다 제법 마음에 드는 해몽이 나오면 그걸 감상으로 삼아 마음에 두기. 그게 나름의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 Back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미술의 근간이 될 때, 〈게임사회〉 리뷰 12 GG Vol. 23. 6. 10. 현대미술을 볼 때마다, 스스로가 현대 미술을 향유하는 이들과 관심이 거의 없는 일반 관객들 사이의 회색분자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딱히 현대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어렸을 때부터 향유해온 것도 아니지만 뒤늦게 재미를 붙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꿈보다 제법 마음에 드는 해몽이 나오면 그걸 감상으로 삼아 마음에 두기. 그게 나름의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현대 미술을 보기 시작한 때부터 비디오 게임 아트는 항상 있어왔고, 자연스레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게 본업과 연결이 되어서일까? 아니면 그저 게임 자체가 흥미로운 소재여서일까? 어쨌거나 ‘미술관에 게임을 집어넣기’ 는 마치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술관에 적합한 게임이란 무엇인가?” 이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굳이 구분지어야 할까?” 같은 번외격 논제는 차치하고 “정말로 게임의 바운더리는 한계가 없어서 미술관에도 적합한, 딱 알맞은 게임의 형태가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은 마치 우주를 향한 궁극의 질문처럼 달콤하면서도 답답한 명제였다. 물론, 그동안 게임을 소재로 한 미술 작업은 이미 많았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히토 슈타이얼이나 하룬 파로키 등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김희천, 강정석 등 많은 이들이 이미 비디오 게임, 그리고 게임 플레잉을 가지고 여러 작업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거기서 더 나아가는 건 게임 자체의 형태, 게임이라는 미디어 자체를 미술관에 들이려고 하는 시도들이다. 즉 이는 개인이 상호작용하는 예술이 어떻게 전시 예술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근래에는 각종 상용 게임 엔진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고, 또 게임 플레이 경험을 가진 세대가 작가가 되기 시작하면서 그런 경향이 더 늘어났다고 생각해왔다. 시도는 정말 많았다. 보는 게임을 소재로 한 영상 작업, 아니면 아예 보는 게임의 형태로 실제 플레이 가능한 게임을 피처링 하는 작품, 김희천의 작품처럼 VR을 끼고 가상현실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 하물며 아예 게임 엔진으로 제작되어 직접 플레이어가 되어볼 수 있는 작품들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미술관에 적합한 게임을 찾는 과정에서 전시관을 들락거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게임사회〉 는 그런 시도의 종합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플레이 가능한 게임, 그리고 게임의 형태를 한 미술 작업, 게임을 소재로 한 영상 작업, 해킹한 게임기 기판으로 실시간으로 작동하는 작품, 또는 게임을 비롯한 서브컬처를 특집처럼 다룬 작품들까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서 위의 그 질문, “미술관에 적합한 게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을 찾았는가 하면, 오히려 그 명제 자체를 뒤집어버리게 됐다. 〈게임사회〉 의 적지 않은 작품들은 그 형식 자체가 ‘비디오 게임’이라는 익숙한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각 작품을 해석하고 이해하는데에는 그런 ‘게이머로서의 경험’ 또는 기반지식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각 작품의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몇몇 전시 작품들이 ‘게이머적인 경험’ 의 연장선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 컸다. 게이머로서의 경험과 결합하여 이 작품을 이해했을 때 그 깨달음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코리 아칸젤의 〈/로데오/ 할리우드 플레이하기〉 였다. 이 작품은 코리 아칸젤이 얼마나 게이머적 경험을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작업이기도 했다. AI툴 또는 자동화 매크로를 통해 양산형 P2W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함으로서 비인격적으로 변한 게임을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소모시킴으로서 나오는 해학이 이 작업의 재미였다. 이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무분별한 결제유도와 반복적이고 재미없는 플레이로 가득 찬 양산형 모바일 게임에 대한 비판으로서 게이머들에게 매우 천착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또다른 좋은 예는 재키 코놀리의 〈지옥으로의 하강〉 이었다. 이 작품은 두가지의 보편적 경험에 기반하는데 먼저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한 사회봉쇄, 그리고 ‘GTA5’ 라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게임의 경험이다. 우리가 ‘GTA5’ 를 플레이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파괴적이고 소모적이다. ‘무엇이든 가능한 오픈월드’ 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며, 좀더 정확히 정의하자면 ‘각종 금기가 해제된 오픈월드’ 라고 할 수 있다. 즉, 가장 먼저 이 게임에서 생각하게 되는 건 살인과 약탈, 방화, 파괴 같은 현실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행위들이다. 형식적으로는 그보다 많은 행위가 가능하지만, 금기가 없다는 점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런 비일상적 일탈로 플레이가 귀결된다. 하지만 〈지옥으로의 하강〉 은 그런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플레이에서 벗어나 그 무대 자체를 보여준다. 얼마나 일상과 닮아있는지, 어떻게 이 세상이 대리세계로 인정받고 있는지를 비춘다. 고속도로 옆 편의점, 발전소 옆 철길, 이곳을 정처없이 걷는 주인공. 마치 플레이어들에게 묻는 것 같다. 당신이 살인과 약탈, 기타 파괴적 플레이로 물들였던 이곳이 사실은 판데믹 같은 우울한 시기에 우리가 조용히 묻어 지낼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니었냐고. 개인적으로 가장 나쁜 예는 〈노텔 (서울 에디션)〉 이었다. 전시 작품 중 가장 비디오 게임 그 자체의 형태를 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이 작품을 실망스럽다고 한 것이 의외일 수도 있다. 전시된 작품 중 우리가 알고 있는 ‘비디오 게임’ 의 형태와 가장 닮아있는 작품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오히려 기대치와 작품의 실제가 어긋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노텔 (서울 에디션)〉은 말그대로 비디오 게임 컨트롤러를 쥐고 인게임 3D 공간을 탐험하는 작품이다. 비주얼적으로도 훌륭하고, 흔히 미술가들이 만든 게임에서 발생하는 기술적인 문제도 크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관객은 이 작품을 그 자체로 게임으로 인식하게 되고, 흔히 알고 있는 게임의 기준으로 이 작품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 그렇게 되면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한계, 즉 어디까지나 공간을 구현하고 그 안에서 이동할 수 있도록 했을 뿐, 그 어떤 상호작용이나 탐험의 목적성이 결여되어 있음이 크게 다가온다. 그러한 이유로 〈노텔 (서울 에디션)〉은 전시장에서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낸 작품이기도 했는데, 과연 비 미술인 또는 미술 관객으로서의 경험이 없는 이들, 또는 게이머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작품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지 궁금해서였다. 작품은 누군가 플레이하면 그 주변에 둘러앉아 그걸 지켜볼 수 있게 되어 있었고, 많은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컨트롤러를 이어 받아가며 플레이했다. 하지만 그 반응은 대체로 한결같았다. “그래서 뭐지?”, “왜 아무 것도 없지?” 흥미롭게도 〈노텔 (서울 에디션)〉 그 형태적으로는 가장 게이머적 경험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직접 컨트롤러를 쥐고 플레이하며 겪게되는 경험은 ‘게임’ 이라고 하기엔 너무 황량한 것이었다. 굳이 이 작품을 게임의 장르적 해석으로 보자면 어드벤처 게임에 가까울 것이지만, 이 작품은 탐험의 이유와 목적, ‘왜’ 와 ‘무엇’ 이 결여되어 있었다. 물론 현대 미술 시조에서 그런 명확한 목표 지점을 설정하는 건 불필요한 일로, 또 작가가 관객의 이해를 제한하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결정적으로 이 작품은 ‘게임’ 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면서 동시에 좋은 미술 작업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해졌다. 오히려 정말로 디스토피아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비효율적인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작업들의 긍정과 부정을 정리해보면, 실상 게임을 미술관에 들여놓는데에 중요한 건 ‘형태’ 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지난해 보았던 이안 쳉의 〈세계건설〉 전시에서도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 이안 쳉의 〈사절〉 연작은 무한한 길이를 가진 일종의 자동화 시뮬레이션이다. 그러나 ‘무한한 길이’ 라고 되어있었지만 그 무한한 길이는 그 안에서 유의미한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적절히 하이라이트하지 못한다면 순간 만큼의 가치를 가지기 오히려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 는 스크린 뒤에서 PC를 통해 실시간 렌더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게임 라이브 컷씬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정작 그것이 관객에게 보여지는 방식은 폐쇄된 공간 안의 스크린 하나에서 상영되는 것이었기에 오히려 더 넓게 향유되고 더 깊이 플레이될 수 있는 작품이 이 공간에 갇혀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꼭 게임이라는 형태 자체에 집착할 필요는 없고, ‘게임플레이’ 라는 경험을 어떻게 미술관에서 재현하거나 또는 활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작가와 전시 관계자들이 ‘게이머로서의 경험’ 을 가지고, 이를 ‘게이머’ 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들고 구성하는게 더 중요하다는, 어쩌면 너무 정석적이면서도 원점회귀적인 결론에 다다르고 말았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부분은 이전의 어떤 전시들보다도 영유아, 중년층, 20대 남성 같은 기존의 현대 미술 전시의 주 소비층이 아니었던 이들이 많이 보인 전시였다는 점이다. 그만큼 게임이라는 소재 자체가 더 많은 이들을 현대 미술관이라는 장소로 이끌어낸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많은 관심이 갔다. 하지만 그 안에서 목격한, 그리고 간단히 이야기 해본 관객들에게서는 확실히 조금은 아쉬운 반응들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게이머들이 비디오 게임 아트라는 좋은 가교를 두고도 현대 미술로 넘어오기 어렵게 할까. 이번 전시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비디오 게임과 현대 미술의 불협화음은 ‘친절함’, 좀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UI/UX 였다. 일반 관객들의 시선에서 현대미술은 기본적으로 불친절함을 소양으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는 어느정도 오해와 편견이라는걸 알고 있다. 단순히 의미파악 자체에 여러모로 복합적인 사유와 다양한 의식의 단계가 필요한 것 자체로 불친절함이라고 부르는 건 다소 부적절한 표현이다. 많은 현대의 명시, 명작 영화들이 이해에 난점이 있다고 해서 ‘불친절’ 하다고 비판받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러나 미술관의 미술은 기본적으로 작품 외의 정보 전달을 극히 줄이고 설명이라고 할만한 것은 오직 스테이트먼트 하나만을 남겨 놓는다. 영상 작품들은 이미 상영되고 있고, 관객이 영상의 중간에 들어오게 되면 문맥을 파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즉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도 적고, 관람환경도 그렇지 않다. 그래서 어떤 전시 또는 작품을 이해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계속 ‘수용’ 하면서, 이를 머리속에서 정제하고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고난한 정신적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비디오 게임이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는 UI/UX 의 덕목과 상충되는 면이 있다. 비디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항상 일련의 튜토리얼이나 툴팁을 통해 게임을 이해하고 ‘이 게임을 플레이 하기 위해 지켜야하는 룰, 그리고 필요한 덕목’ 을 학습받는다. 심지어 명시화된 튜토리얼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라도 그런 학습 곡선을 고려해 게임의 구조를 만들기 마련이다. 그리고나서 플레이어는 비로소 게임을 이해해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바로 이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수많은 비디오 게임 아트 전시가 시도되어 왔지만 충분히 상호작용성을 바탕으로 한 게임적 경험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 전시가 적었던 이유는 바로 이 UI/UX 가 관객과 전시/작품 사이의 게임적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것이 가이드라인과 튜토리얼과 툴팁으로 채워져야 한다면 우리가 가지는 이해의 폭은 극도로 좁을 것이고 특정 가치관에 편향된 이해를 다수가 공유하게 되는 다소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결여된다면 이해 자체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기능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걸 하나의 재미로 여기고 있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현대미술이 소수의 향유자들이 아닌 일반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이유는 이 부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일반 대중에게 이제 미술관은 모던한 카메라 세트장처럼 쓰이고 있다. 즉 미술관은 비디오 게임처럼 ‘개인화된 경험’ 을 완전히 얻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환경이자 풍조를 가지고 있다. 이를 이번 전시에서 단적으로 느낀 지점은 바로 각종 ‘불편한’ 컨트롤러와 연결된 게임들을 사람들이 직접 플레이할 때였다. 많은 사람들은 왜 익숙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배치된 컨트롤러로 자신에게 이미 익숙한 게임을 플레이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스테이트먼트에는 그 의도가 써있기는 했지만 일목요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필자가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적응형 컨트롤러 또는 비직관적인 컨트롤러로 게임을 함으로서, 장애인이 일반적인 컨트롤러로 게임을 할 때의 불편함을 비장애인들이 체험한다.” 라는 의도를 덧붙이자 그제서야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결국 현대 미술관 내에서 이루어진 정규 전시이기에 기존에 잡혀있는 미술 전시의 틀을 바꿀 수는 없었고, 그것이 더 많은 이해를 원하는 이들에게 장벽처럼 작용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타까운 점은 분명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잘 녹아있는 좋은 작품들이 많았음에도 이를 수용하기 꽤 버거워하는 이들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게임사회〉 전시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게이머적인 경험이 베이스가 되었을 때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MOMA 소장 게임 컬렉션은 그냥 평범하게 전시되었다면 오히려 플레이 되기 어려운 환경에 가져다 놓은, 죽은 게임이 되었을테지만 적절한 컨트롤러의 변형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앞서 언급한 코리 아칸젤의 작품, 그리고 재키 코놀리의 작품은 그 형태는 분명 평범한 영상 전시의 폼을 하고 있음에도 게이머로서의 경험과 천착되어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전시에서 얻은 또다른 깨달음은 게임은 확실히 사람들을 미술관으로 모을 힘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다녀갔지만 그동안 지켜 본 비 미술인 관객들의 행태는 딱 둘 중 하나였다. 그냥 슥 보고 지나가거나, 배경으로 두고 사진을 찍을 뿐. 하지만 이번 전시는 사뭇 달랐다. 많은 이들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려고 했고, 작품을 보며 자신의 게임 경험을 떠올려 이야기하고, 직접 작품을 체험하고자 컨트롤러를 움직였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가진 힘, 그리고 동시에 오프라인 공간이라는 한계는 이중적인 면이 있다. 〈게임사회〉 전시 또한 기존의 미술 전시들이 가진 일종의 딜레마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 작품의 면면에서 느낀 ‘게이머로서의 경험’ 은 즐거웠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들러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을 더 느긋하게, 지긋이 관람하고 싶다. Tags: 게임사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미술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자) 이명규 게임 기자(2014~), 글쓴이(2006~), 게이머(1996~)

  •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라는 실험: 아웃오브 인덱스의 여정

    아웃 오브 인덱스 (Out Of Index: 이하 OOI) 는 국내 유일의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다. 자바 언어의 에러 메시지 중 ‘배열을 벗어났다’는 뜻의 ‘Array Index Out Of Bounds’ 에서 영감을 얻은 페스티벌의 이름은, ‘장르’나 ‘트렌드’ 와 같은 단어로 설명되어지는 일반적인 분류(Index) 밖에 자리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다루고자 하는 페스티벌의 철학을 담고 있다. < Back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라는 실험: 아웃오브 인덱스의 여정 03 GG Vol. 21. 12. 10. "시장성, 대중성 보다는 개발자들의 창작과 실험 그 자체에 초점을 둔 게임 페스티벌을 만들어보자." 아웃 오브 인덱스 (Out Of Index: 이하 OOI) 는 국내 유일의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다. 자바 언어의 에러 메시지 중 ‘배열을 벗어났다’는 뜻의 ‘Array Index Out Of Bounds’ 에서 영감을 얻은 페스티벌의 이름은, ‘장르’나 ‘트렌드’ 와 같은 단어로 설명되어지는 일반적인 분류(Index) 밖에 자리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다루고자 하는 페스티벌의 철학을 담고 있다. * Out Of Index 2019 하이라이트 영상 OOI는 다양한 실험 작품들을 통해 게임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줌으로써, 개발자들이 스스로의 창조성을 발현하고 게임 산업 전체의 창작의식을 고취하는데 주된 의의를 두고 있다. 아울러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창조적 실험이라는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창작자들을 대중들에게 소개하여 궁극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실험'을 해나갈 수 있는 씬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지난 여섯번의 OOI를 돌이켜보고, 그 동안 페스티벌이 변화해 온 과정을 소개하려고 한다. * 이미지 출처: https://www.rockpapershotgun.com/the-2013-gdc-experimental-gameplay-workshop 2014년 OOI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자면 행사의 큰 영감이 된 Experimental Gameplay Worshop(EGW)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EGW는 매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Game Devleoper Conference(GDC)의 인기 세션 중 하나로, 전세계에게서 접수된 실험적인 프로토타입들 중 우수작들을 발표하는 자리다. 창의적인 게임플레이로 전설적인 작품들이 된 ‘괴혼', ‘Portal', Braid’ 같은 작품들이 초기 버전을 EGW에서 공개한 바 있으며, 도쿄게임쇼에서도 EGW의 영향을 받아 실험적인 게임을 발표하는 Sense Of Wonder Night라는 부대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나는 GDC 2013의 EGW 세션에서 내 게임 ‘6180 the moon’을 발표했는데, 게임의 상업적 완성도를 떠나서 창의적인 시도 자체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는 강의장의 분위기는 게임 개발자로서 내게 아주 큰 인상으로 남았다. * 출처: https://blog.naver.com/kor_nvidia/220066159515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 나라에도 이런 행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무래도 이걸 직접 경험해 본 내가 가장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동료 개발자들과 함께 OOI를 만들었다. EGW는 컨퍼런스의 강연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발표한 게임들을 직접 플레이 해 볼 수가 없었던 것이 매우 아쉬웠는데, OOI에서는 행사를 크게 둘로 나누어 멋진 실험들을 발표하고, 발표된 게임들을 직접 플레이해 볼 수 있는 작은 파티를 만들기로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전세계에서 예상보다 많은 작품들이 접수되었고, 선정된 게임에 대한 반응 역시 매우 좋았다. 무엇보다 우리와 같은 성향을 가진 게임 개발자들이 서로를 발견하게 된 것이 좋았다. OOI 2014 당시 선정작 14개 작품들 중 세 작품이 한국 게임이었는데 그 중 두 개 작품의 개발자들이 OOI 기획단에 합류해서 페스티벌을 함께 기획하고 있다. 초기 페스티벌의 작품 선정 방식 역시 EGW의 방식을 따랐다. OOI의 작품 공모에 작품을 접수하려면 ‘이 게임이 왜 실험적인가' 라는 질문에 개발자 스스로가 답해야 한다. 이렇게 접수된 작품들 중 기획단의 자체 논의를 통해 공식 선정작을 결정한다. 기획단에서 선정작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중 하나는 ‘왜 이 게임을 선정했는가' 라는 질문에 기획단 스스로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페스티벌이 회를 거듭하면서 자연스럽게 몇 가지 선정 유형들이 생겼는데, 참가자들이 쉽게 영향을 받고 자신의 실험을 시작할 수 있도록 바람을 넣을 수 있는 ‘간단하지만 멋진 실험'들과 새로운 I/O 장비들을 만들거나 기존의 장비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작품들, 그리고 기존 장르의 문법들을 의도적으로 비틀고 파괴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주로 선정해왔다. * OOI 2019 전시작 〈Hi-5 Heroes〉 2018년 부터는 새로운 전시 기획을 시작했다. 작품 공모를 통한 선정작 전시 외에 기획단이 직접 큐레이팅 한 초대전이 그것이다. 2018년에는 가까운 일본의 실험 작품들을 초대하여 전시했고, 2019년에는 개발자들이 직접 만든 전용 컨트롤러를 가지고 플레이 해야 하는 게임들을 모아서 전시했다. 작품 공모를 통해 전시작을 선정할 경우 각각의 작품들이 저마다 다른 철학과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페스티벌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가 되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고 판단했고, 한편으로는 초대전의 형식을 빌어 기획단에서 페스티벌 참가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멋진 실험들을 공모 접수작이라는 선택의 제약 없이 하나의 메시지로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 OOI 2018. 전시 기획과 더불어 페스티벌의 공간 구성과 관련한 실험 역시 시도하였는데 2018년, 2019년 2년간 플라노 건축사사무소와의 협업을 통해 페스티벌의 공간 컨셉을 설정하고, 각 게임의 특성에 맞는 시연 부스를 제작했다. 테이블 위에 시연용 PC를 배치하는 것에서 벗어나 참가자들에게 전시작들을 공감각적으로 전달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다른 게임 이벤트들과 완전히 차별화된 방식의 공간 구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플라노 건축사사무소의 OOI 2018 공간 컨셉 구축 설명: https://www.plano.kr/article-pixel-forest ) 2020년 부터는 아예 작품 접수 데드라인을 없앴다. 수 년간 페스티벌을 개최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OOI의 작품 공모 시작일 부터 실험을 시작해서 마감일에 그 실험을 끝내고 작품을 접수하는 개발자들이 있다는 거였다. 기획단 입장에서는 매우 즐거운 일인 것은 분명한데, 다른 한 편으로는 페스티벌의 작품 공모 기간이 개발자들의 실험에 제한 시간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창작자는 언제나 실험에 몰두해야 하며, 실험에는 마감일이라는 것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마감일을 없애고 작품을 상시 접수 하기로 했고, 아직 우리 페스티벌을 모르는 개발자들의 멋진 실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도 작품을 추천할 수 있도록 작품 접수 양식을 정비했다. OOI는 항상 특이한 게임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기획단의 목표는 단지 특이한 게임을 소개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전시작들을 소개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전시작을 만든 개발자들이 어떤 생각와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참가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OOI 기획단에서 생각하는 페스티벌의 주된 참가자는 언제나 게임 개발자들이다. 게임 개발자들이 페스티벌에 와서 동료 개발자들이 만든 작품들을 체험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각 작품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비로소 그들이 자신의 스튜디오에 돌아가서 자신의 실험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페스티벌 안에서 더 다양한 ’말’들이 생겨날 수 있기를 바란다. 초기에는 선정된 개발자의 짧은 발표만을 듣고 그들이 만든 게임을 직접 체험하는 정도에서 그쳤기 때문에, 대부분의 발화가 거의 개발자들의 입에서만 나올 수 밖에 없어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기획단은 이후 꾸준히 페스티벌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을 담고 더 많은 논의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실험해왔다. * OOI 2019 게임 토크 - 〈다시 만난 오징어〉 2015년에는 기획단의 시각에서 각 선정작을 왜 선택했는지를 설명하고 참가자의 작품이해을 넓히는 방식으로 발표를 확장했는데, 많은 참가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발표 & 크리틱 방식을 수년간 유지해왔는데, 이 크리틱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체 선정작을 모두 훑느라 수 시간을 소모하는 긴 발표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현재는 전체 발표를 여러개의 세션으로 적절히 나누고, 이 세션들이 전시를 방해하지 않고 페스티발 한 쪽 구석에서 따로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발화의 주체가 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개발자들의 발표와 기획단의 크리틱은 모두 단방향이었기 때문에 상호 소통을 통해서 논의의 깊이를 더하고 싶었다. 그래서 2018년 부터 GDC에서 열리는 인디 게임 페스티벌(IGF)의 파이널리스트 인터뷰 시리즈인 Road to the IGF에서 영감을 받아 선정작 개발자와의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데, 기획단으로서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올해 개최되는 OOI 2021에서는 기획단 외부의 인터뷰어들을 섭외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논의에 동참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사실 페스티벌 안에서 다양한 대화가 가능하게 하는데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참가자에게서 발화를 끌어내는 것이다. OOI에서는 ‘신선한 게임 플레이’ 라는 주제를 많은 이벤트에서 흔히들 사용하는 방식은 일종의 피드백 보드를 만들어서 참가자들이 직접 노트를 작성해서 보드에 붙일 수 있게 하는 식인데, OOI 기획단에서는 이 방법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메모지에 글을 써서 작품 옆에 있는 보드에 붙이는 방식은 단순 인상평일 수 밖에 없고, 간단한 의견을 써서 보드에 붙이고 끝나는 행위에는 소통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논의의 시발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OOI 기획단은 7회째에 접어드는 현시점에서도 참가자에게서 시작되는 대화를 효과적으로 끌어내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OOI 2021에서는 온라인이라는 플랫폼의 특성을 살려 채팅을 기반으로 한 실시간 문자 소통을 실험할 계획이나, 좀 더 섬세한 기획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아웃 오브 인덱스 (Out Of Index) 는 ‘분류 밖'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변화와 실험을 계속해왔다. 다른 예술 매체와 같이 창작자의 손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창작자가 아닌 게이머의 손으로 비로소 완성되어야 하는,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가진 특성은 게임 페스티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페스티벌 참가자들이 작품을 즐기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한 페스티벌 기획은 기획단에게 있어 게임 디자인의 또 다른 영역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OOI의 페스티벌 디자인 실험은 계속될 것이다. OOI가 만들어가고 있는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더 많은 참여를 바란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 개발자) 박선용 놀 게 없으면 만들어서 놀고, 놀이터가 없으면 만들어서 친구들을 모으는 사람. 그래서 게임을 만들고, 개발자 커뮤니티를 만들고, 게임 이벤트를 만듭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Eunki Jeon

    He majored in cultural anthropology and cultural research, and is currently working as a researcher at the Cheonggyecheon Technology and Culture Research Institute and Hanyang University Global Multicultural Research Institute. Eunki Jeon Eunki Jeon He majored in cultural anthropology and cultural research, and is currently working as a researcher at the Cheonggyecheon Technology and Culture Research Institute and Hanyang University Global Multicultural Research Institute. Read More 버튼 읽기 The Coevolution of Arcade Games, Gamers, and Interfaces As such, interfaces may evolve to accurately construct the ideals projected on the design, but that design can easily change based on coincidental chance. The modified interface also brings about transformation to one’s gameplay itself, and this change in gameplay can change the experience provided by the game, thus bringing about an effect that makes the game itself feel different. Therefore, the interface is not merely a simple input device nor a factor that does not bring any fundamental changes to the game, but rather is the very hardware that constitutes the game and simultaneously the “physicalized” mechanical object connected to the gamer. The interface does not evolve or progress according to the game’s design; it lies in the process of ever-changing co-evolution while interacting with the game, the gamer, and all environments tied to the self.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장민지 장민지 덕후 진화론(덕후는 정신적/육체적/기술적으로 진화한다)을 믿는 팬-미디어 연구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5년 박사논문〈유동하는 세계에서 거주하는 삶 : 20~30대 여성청년 이주민들의 집의 의미와 장소화 과정〉으로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학술상, 2016년 〈비인간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환상〉으로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방송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Read More 버튼 읽기 게임과 데이팅 세계 사랑은 일상적인 곳에서 온다. 그리고 그 일상은 현재 ‘디지털화’되었다. 연애관계의 돌입과 사랑의 속삭임을 우리는 ‘가상적으로, 디지털로, 플랫폼을 통해’ 수행(play)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관심은 인스타그램의 DM으로, 페이스북의 댓글로, 카카오 톡의 메신저로 꾸준히 접속하여 수치화된다. 버튼 읽기 A급과 B급의 차이, 끊임없이 저항하고 결국은 차지하는 우리는 가끔 B급, 다시 말해 A급이 아닌 ‘것’을 하나의 영역으로 묶어 생각한다. 딱 집어서 이야기할 수 없지만 B급은 ‘A급이 아닌 무언가’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B급을 인지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하는 것은 A급에 대한 정의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A는 늘 우리에게 ‘보편’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B를 보고나서야 A가 A임을, 다시 말해 그것이 우리에게 보편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버튼 읽기 1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어이쿠, 왕자님>, 게 섯거라 이놈아! 버틀러는 이러한 패러디적인 창조성을 원본이라는 것 자체도 원래 본질적으로 원본인 것이 아니라 원본이라고 가정되는 이상적 자질을 모방을 통해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원본이 동시에 모방본이라는 점에서 원본과 모방본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모방본도 원본도 원본의 상상적 특성들을 모방하는 것이고,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의 모방적 자질을 드러내주는 것이라면 이제 오히려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한다는 역설적인 생각까지 가능해진다. 이는 원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와 패러디의 모방본이 가진 창조성의 가치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오히려 패러디 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모방본이 원본에 선행하여 더 높은 창조적 위치를 점유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 낚시스피릿의 별매 낚시 컨트롤러로부터 본 게임 경험의 확장

    전세계에서 게임을 하는 입력 인터페이스로 가장 많이 이용 되는 것은 무엇일까. 몇 년 전이라면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은 터치 인터페이스 역시 적지 않기 때문에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 말할 수 는 없겠다. 다만 터치인터페이스 위에 구현되어있는 가상 패드까지 고려하면 현재에도 게임 입력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입력 인터페이스는 게임 패드일 것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보았을때의 경향이며, 한국에서는 가정용 게임기보다 개인용 컴퓨터를 통한 게임이 더 익숙하기 때문에 흔히 키마라고 부르는 키보드 마우스 컨트롤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 Back 낚시스피릿의 별매 낚시 컨트롤러로부터 본 게임 경험의 확장 11 GG Vol. 23. 4. 10. 전세계에서 게임을 하는 입력 인터페이스로 가장 많이 이용 되는 것은 무엇일까. 몇 년 전이라면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은 터치 인터페이스 역시 적지 않기 때문에 자신있게 게임 패드라 말할 수 는 없겠다. 다만 터치인터페이스 위에 구현되어있는 가상 패드까지 고려하면 현재에도 게임 입력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입력 인터페이스는 게임 패드일 것이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보았을때의 경향이며, 한국에서는 가정용 게임기보다 개인용 컴퓨터를 통한 게임이 더 익숙하기 때문에 흔히 키마라고 부르는 키보드 마우스 컨트롤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게임패드는 지금 보기에는 게임을 하기에 매우 당연한 도구이고, 게임을 나타내기 위한 아이콘으로도 흔하게 사용된다. 많은 게임들이 게임패드를 지원하며, XBOX용 패드가 윈도우와 매우 잘 호환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 게임은 게임패드에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합니다.” 같은 안내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이 처음부터 게임패드로 게임을 즐겼던 것은 아니다. 굳이 〈둘을 위한 테니스tennis for two〉 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신호탄을 쏜 〈퐁Pong〉은 다이얼 형태의 동그란 컨트롤러가 달려있었다. 어떤 아케이드 게임들은 조이스틱이 달려있기도 했다.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한 스틱에서 온 컨트롤러 형태는 기계식 게임기를 거쳐 전자 아케이드 게임에서도 그대로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해 자리 잡았다. 게임 개발자들은 이 스틱으로 굳이 비행기만 조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2차원 평면에서 움직여야 하는 모든 것들을 스틱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번째 가정용 게임기로 여겨지는 마그나복스의 컨트롤러는 흰색 직육면체에 3개의 다이얼이 달려있는 형태였으며 아타리가 가정용으로 제작한 TV퐁은 게임기에 다이얼이 달려있는 형태였다. 이러한 다이얼이 달린 컨트롤러는 아타리가 만든 가정용 게임기인 아타리 2600에서 패들paddle 이라 불리는 전용컨트롤러 형태가 일반적으로 되면서 회전을 위한 컨트롤러를 칭하는 놉(knob), 휠(wheel), 다이얼(dial)대신 패들(paddle)이란 단어가 일반적인 호칭으로 자리잡았다. 기존 입력장치의 이름이 아닌 탁구채를 뜻하는 패들이 대표적인 이름으로 이유는 해당 컨트롤러가 탁구를 모사한 퐁을 위한 컨트롤러 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타리 2600의 컨트롤러중에 가장 대중적이고 일반적이었던 것은 조이스틱이었다. 게임기에 기본으로 포함되어있는 이 조이스틱은 경쟁 게임 사들의 조이스틱 보다도 가장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직관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기는 아타리의 조이스틱을 가장 초기의 게임에 대한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 아타리 2600용 컨트롤러 미국 기업들이 과도한 경쟁 때문에 스스로 가정용 게임시장에 대한 매력을 못느껴 시장을 포기하는 동안 일본의 닌텐도는 패미콤을 준비해서 전 세계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차지했다. 자사의 게임&워치의 동키콩에서 사용한 방향키(D-pad)를 이용한 게임패드는 닌텐도 패미콤의 게임패드에도 들어갔다. 이 입력방식의 변화는 가정용 게임기의 입력방식의 가장 큰 패러다임 변화중 하나일 것이다. 방향키와 B,A 버튼이 달린 (그리고 스타트와 셀렉트버튼이 있는) NES의 게임 패드는 매끈한 플레이스테이션의 듀얼쇼크가 나오기 전까지 아타리의 조이스틱에 이어 게임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 북미 NES용 컨트롤러 닌텐도는 패미콤의 출시와 함께 자사의 서드파티를 강력하게 관리했다. 미국 게임기 제작사들의 부진을 소프트웨어 관리에 실패한 것으로 보았던 닌텐도는 패미콤으로 출시되는 게임들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미컴 용으로 제작하는 게임들은 대부분 게임패드에 최적화할 수 밖에 없었다. 오리사냥 같이 아주 특수한 닌텐도 전용 광선총(재퍼 - 일본에서는 그냥 총(Gun)으로 발매되었다. 모양 역시 그냥 리볼버 권총에 가까웠다.)을 지원하는 총 컨트롤러나 R.O.B나 파워글로브 같이 대중적으로 자리잡는데는 실패한 컨트롤러만이 게임패드와 차별화된 플레이를 제공했다. 패미콤 이후 가정용 게임의 컨트롤은 게임패드르 완전히 굳어졌다. 아케이드에서는 여전히 아케이드만의 독특한 조종 방식을 가진 게임들이 나왔지만, 이러한 아케이드용 게임들이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되는 경우에도 대부분은 게임패드에 최적화된 조종 방식으로 변경되었으며 추가로 부가장치가 나올 때가 있었지만 그 가격은 대부분 게임 보다 비쌌고 가끔씩은 게임기보다도 비쌌다. 방향키와 두개의 버튼만 존재하던 게임패드는 게임기의 세대가 거듭되며 발전하면서 지금은 방향키와 조이스틱 두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4개의 입력버튼과 범퍼로 불리는 상단 좌우에 두개씩 위치한 버튼들 스타트 버튼과 옵션 버튼. 그리고 조이스틱을 버튼으로 활용하는 L3, R3 까지 10개의 버튼과 3개의 축입력장치가 거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현재는 대부분 자이로를 통한 6축센서와 함께 게임기에 따라 터치등의 추가 인터페이스가 들어가있기도 하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게임을 시작하기에는 과거의 게임기 비해선 복잡해졌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익숙해지면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의 게임 패드는 게임을 오래 할 수 있는데 도움을 주며, 게임 안의 캐릭터를 설명서를 보지 않더라도 대충 이전에 했던 감각으로 조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익숙함은 게임패드에 어울리지 않는 게임들이 거실에 자리잡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여전히 키보드와 마우스가 게임패드보다 편한 실시간 전략 장르나 AOS 같은 장르의 게임은 가정용 게임기보다는 컴퓨터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게임기와 컴퓨터가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게임패드와 키보드 마우스이외의 컨트롤러는 한정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주로 시뮬레이션 장르이다. 드라이빙 시뮬레이션과 플라이트 시뮬레이션 장르를 위한 주변기기인 드라이빙 휠과 플라이트스틱은 꾸준히 발매되고 있으며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각 장르의 마니아에게는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필수로 갖추어야 하는 장비로 인지되고 있다. 드라이빙휠의 경우는 특히 기능에 따라 장비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으며 실제 운전할 때 처럼 운전 상황에 따라 운전대에게 힘을 전달하는 포스피드백 기능이 있는 드라이빙 휠은 특히 더 비싼 가격이며 이를 위한 거치대나 시트. 좀 더 사실적인 게임을 위한 사람들에게는 시트를 움직여주는 모션시뮬레이터등의 장비를 더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러한 부가장비의 경우 게임값을 넘어서 가끔은 컴퓨터 혹은 게임기 값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기는 힘들며, 이러한 게임들 대부분 게임 패드로도 게임을 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닌텐도 Wii 가 본격적으로 자이로와 가속센서를 사용하는 컨트롤러를 사용하면서 컨트롤러에 제한된 게임 플레이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스포츠게임이 있겠지만 그러한 변화를 하나를 언급하자면 기존에 존재하던 낚시 게임이 이러한 컨트롤러 특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스포츠로서의 낚시는 아무래도 “손맛”이라 부르는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아케이드를 제외한다면 지금으로선 실제 물고기의 움직임을 포스피드백으로 전달하는 낚시대 컨트롤러가 대중화된 적은 없다. 적어도 진동 덕분에 물고기가 미끼를 무는 부분은 비단 6축을 사용하지 않는 게임이라 하더라도 진동기능이 있는 컨트롤러를 사용한다면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동물의 숲에서의 낚시는 컨트롤러 진동의 특성을 잘 살려서 정품 컨트롤러가 아니면 그 느낌을 충분히 느낄수 없다. 컨트롤러를 흔들고 돌리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낚시 게임에 릴을 감는 행위를 컨트롤러를 돌리는 것으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 이 기능은 옵션이다. 손목의 건강과 함께 선택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 오락실은 점차 사라져가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극장 근처의 오락실이나 혹은 키즈카페 앞의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면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기계가 있다. * 쇼핑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딥 시 파티 딥 시 파티라는 이 게임은 국내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사실은 2012년에 일본에 출시된 반다이 남코의 〈낚시 스피릿〉과 흡사한 게임이다. 6인 까지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점은 비슷하긴 하지만 컨트롤러가 매립되어있어서 미끼를 던지는 것도 버튼으로 해야하며, 스크린이 1개라는 차이점이 있다.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반다이 남코의 〈낚시 스피릿(Ace Angler〉은 현실 낚시 보다는 일본의 전통축제에서 볼 수 있는 금붕어낚시 등의 영향이 더 큰 편이라 낚시 시뮬레이션이란 장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 로드, 플로트, 릴등을 선택해서 현실 낚시와 가깝게 즐기는 게임과는 결이 다르다. 낚시 스피릿의 플레이 실제 낚시와는 거의 다른 물고리를 낚아 메달을 모으는 게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게임에선 다른 종류의 낚시 게임과는 같은 지점이 있다. 릴을 컨트롤하며 물고기가 낚였을 때 릴을 감아야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는 점이다. 던지는 방향과 힘을 버튼으로 정하고 필살기가 있으며 보스 스테이지가 존재하는 현실 낚시와는 매우 동떨어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낚시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점이라면 바로 이 컨트롤러 일 것이다. 2012년에 출시가되어 이제는 10년이 넘어가는 시리즈인 이 게임은 컨트롤러의 특성상 아케이드에서밖에 즐길수 없었지만 2019년에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게임이 출시되면서 상황이 좀 바뀌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동전을 잡아먹는 아케이드 게임은 집에서 했으면 그 손맛을 위해 좋겠지만 6인용 게임기를 집에 들여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닌텐도 스위치의 조이콘은 다양한 플레이 방식을 지원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오락실에서 낚시대를 휘두르고 릴을 감는 그 느낌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개발사는 게임의 고유한 조작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스위치 조이콘의 자이로센서와 각속도를 이용하여 조이콘을 휘두르는 형태로 낚시대를 던지고, 들고 돌리는 행위로 릴을 감는 동작을 재현했다. 전통적인 닌텐도 스위치와 컨트롤러를 붙여서 쓰는 방식으로도 게임을 하는데는 문제는 없다. 이경우는 다른 많은 낚시게임이 그렇듯이 버튼으로 릴을 감는다. * 인게임 도움말 닌텐도 스위치 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기로도 낚시 게임은 많이 나오는 편이며 고전이며 명작으로 불리는 세가 배스 피싱 같은걸 언급하지 않더라도 굳이 낚시 스피릿을 가져온 이유는 이 게임이 전용컨트롤러가 아닌 기존 컨트롤러에 붙여 쓰는 “사오콘”을 별매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종류의 컨트롤러를 확장하는 개념은 Wii 리모콘부터 PS Move, 가깝게도 VR 컨트롤러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는 편이지만 낚시 스피릿의 경우 2019년에 〈Ace Angler 낚시스피릿 Nintendo Switch버전〉을 이번엔 2022년에 나온 〈Ace Angler 낚시스피릿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이 두차례에 걸쳐 나왔는데 추가장치로 나온 사오콘의 형태가 다르다. 물론 새로 나온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에서도 이전 버전의 추가장치를 지원하고는 있고 이러한 별매 사오콘이 없더라도 조이콘을 통해서 물리적으로 컨트롤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며, 게임에 연결한 상태에서 버튼으로 플레이할 수도 있다. * 호리사에서 나온 첫번째 사오콘 첫번째로 나온 사오콘의 특징이라면 결과적으로 조이콘 두개를 쥐고 흔드는 형태의 플레이를 좀 더 편하게 만들어주는 가이드에 가깝다. 일본의 게임용 주변기기 전문 업체인 HORI사에서 제작한 이 컨트롤러는 결과적으로는 이 컨트롤러 없이도 같은 형식의 플레이가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릴역할을 해주는 부분있어서 좀 더 줄을 감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에이스 앵글러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과 함께 나온 두번째 사오콘 두번째로 나온 파닥파닥 즐거운 수족관과 함께 나온 사오콘은 조이콘 두개를 쓰는 형태가 아닌 하나만 쓰는 형태로 돌릴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나는 릴이 달려있는 형태인데, 왼쪽 조이콘과 오른쪽 조이콘의 버튼 배치가 다른 것에 대응하기 위해 릴을 분리할 수 있는 형태의 아이디어가 특히 돋보였다. 두 컨트롤러의 중대한 차이점이라면 첫번째 사오콘이 조이콘 두개가 달려있으면서 또한 릴에 조이콘 하나가 붙어있어야만 하는 구조라서 실제로는 무거워서 플레이가 힘든 구조 였다면 두번째 사오콘은 처음부터 회전을 조이콘틀 통해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한바퀴 회전할 때마다 A버튼을 두번 누를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는 사실상의 연타기계라는 점이다. * 사오콘 연타 기믹 – 릴을 돌릴 때마다 흰 부분이 A버튼을 눌러준다 기계적으로 릴의 회전을 강제로 조이콘의 A버튼과 연결한 이 기믹 덕분에 정작 선택하는 A버튼을 누르기 힘들다는 단점이 생기긴 했으나 이전 버전보다 훨씬 가볍고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새로운 조이콘의 장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전 조이콘들의 조작 역시 지원을 하지만 낚시 스피릿의 후속작에서 조이콘을 직접 회전하는 방식이 아닌 버튼을 통한 입력으로 돌린 이유는 아무래도 무게가 동반된 회전 조작이 조종에 부담으로 작용했으리라 짐작한다. 이 게임은 컨트롤이 없더라도 1개의 컨트롤러로 즐길 때의 조작 방법으로 낚은 후에는 어찌되었던 열심히 릴을 감는 동작을 모사해야 물고기를 낚을수 있다는 점에서 낚시 게임이 가지고 있는 주요한 조작으로는 릴을 감는 행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낚시용 부가 컨트롤러로는 이미 Wii 리모트를 활용한 경우가 있었고 낚시 전용 컨트롤러로 가면 가정용 게임기는 물론 국내 PC용 게임으로도 나온 컨트롤러도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울 건 없다고 할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컨트롤러가 이러한 릴을 감는 장치를 어떻게든 구현해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낚시 컨트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VR 게임에서도 이러한 낚시 시뮬레이션이 점차 출시되고 있으며, 낚시가 주는 가장 큰 현장감을 제공하고 있다. VR 특유의 양손 컨트롤러는 현재로는 모두 게임패드를 절반으로 나눠 한쪽씩 쥐는 형태로 수렴하고 있으며 한손에 쥐기 편하도록 총의 손잡이 형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양손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많은 VR 게임들은 이 컨트롤러에 손을 매칭해서 두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가상 공간에 있는 물체와 상호작용 하도록 하고 있지만 물리적인 피드백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결국은 허우적대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따로 이러한 컨트롤러를 끼워서 사용 할 수 있는 확장 컨트롤러가 나오기도 한다. 현재로선 가장 인터페이스의 확장에 진심인 것은 따로 물리적 비용이 필요없는 VR 장르의 게임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회전시키는 입력장치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탄생과 함께 했지만 결국 기존 게임 컨트롤러에 포함되는데는 실패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레이싱휠이나 낚시 컨트롤러를 통해 이어져오고 있다. 지금은 아케이드에서 컨트롤러의 물성이 강하게 필요한 게임들만이 가정용 게임기에 피드백 되고 있지만 한차례 조이스틱이 사라졌다가 결국 게임패드에 포함되었던 것 처럼 새로운 물성이 게임 컨트롤러에 들어갈 수록 플레이의 가능성이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VR 공간이 될지 물리적 공간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플레이의 확장은 게이머에게도 게임디자이너에게도 좀 더 많은 가능성을 안겨 줄 수 있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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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 Vol. 23 디지털게임이 등장한 지도 반세기가 지났고, 우리는 게임이 본격화된 21세기를 맞이한 순간으로부터 사반세기를 보냈다. 역사가 될 수 있을 만큼의 세월을 보낸 지금, 지난 25년간 우리와 우리의 게임이 겪어 온 변화를 되짚으며 다가올 미래를 꼽아 본다. '포터블'과 '모바일': 주머니 속 게임의 사반세기 변천사 '포터블'과 '모바일'이라는 두 개념의 차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 다 휴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문화적 의미와 게임 경험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2005-2011년 사이 닌텐도 DS 시리즈와 소니 PSP 시리즈가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과 병행하여 존재했던 시기에 주목하여 이 두 개념을 생산적으로 구분해서 사용하자고 제안한 연구도 있다(McCrea, 2011). Read More <사이렌> 속 불쾌한 플레이 리플레이 디자인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사이렌>의 내러티브는 더욱이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다. 이 게임의 내러티브 진행은 극도로 제한된 정보량으로 제공되는 내러티브 전개이다. 게이머는 일반적으로 주어진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면서 게임의 스토리를 파악하기 어렵다. <사이렌>은 그저 스테이지가 시작하면 게이머에게 클리어 조건을 제시하고 방치한다. Read More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현실과 가상의 구분을 없앴던 비범함에 대해서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2024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르웨이의 ‘마츠 스틴’라는 게이머의 삶에 주목한다. 작품은 작년 한 해 동안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더불어 여러 영화제에 이름을 올리며 유명세를 얻었고, 현재는 OTT서비스 ‘넷플릭스’와 계약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있다. Read More Collaborate, Compete, and Broadcast: Gaming’s 21st Century Cultural Shifts from MMOs to Live Streaming and Online Platforms If you’re a video game enthusiast born after the year 2000, chances are good that you grew up with relatively easy access to video game media. Though gaming still maintains some of its countercultural reputation, it has simultaneously become a facet of mainstream culture, and the sheer volume of player-produced video game content has done a lot of legwork to keep our favorite games alive in our eyes and ears long after we’ve signed off for the night. For even some of the most obscure games, it feels like there is a limitless amount of game content available for players to consume without even needing to play. Video gaming’s cultural spaces now weave in and out of games, online communities, and numerous digital platforms like Steam and Discord. Read More [Editor's View] 21세기 1쿼터를 마무리하며 나이든 게이머들에겐 섬뜩하게 들릴 수 있지만, 2000년대가 시작된 것도 올해로 벌써 25년, 한 쿼터가 지났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 말을 되새겨보면, 우리네 강산은 벌써 두 번 하고도 반은 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온라인 대중화에 힘입어 디지털게임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시점도 아마 그와 비슷한 만큼의 시간을 겪어왔을 것입니다. Read More [Interview] The Story of Digital Game Diversity & Accessibility and Making Books About it – Kyung-jin Lee, Diversity & Inclusion Director at Smilegate In August 2024, Smilegate – one of the best-known South Korean game developers & publishers, published two books aimed at game developers, focusing on game accessibility and diversity. The first book, “게임 접근성 개념과 사례 (Concepts and Cases of Game Accessibility)”, explores the concept and current state of accessibility and diversity in South Korean games and case studies. It also delves deep into design approaches to ensure all players can fully enjoy games without restrictions. Smilegate’s second book, “콘텐츠 다양성 개념과 사례(Concepts and Cases of Content Diversity)”, introduces the idea of "cultural diversity" and examines how it has been implemented in South Korean media and games. Read More [Paper Seminar] The Legacy Goes On: Wuxia and its impact seen in the gaming landscape of Vietnam Wuxia represents the martial arts and fantasy literary subgenre that dominates East Asian and Southeast Asian cultures (Chen, 2009), especially where Chinese-speaking societies are founded, or the trace of Chinese culture is recorded. The Chinese martial arts and heroics of ancient times take place in wuxia stories that have expanded into various media such as literature and movies and television programming. Wuxia under its local names kiếm hiệp and truyện chưởng has established itself as an important cultural phenomenon in Vietnam. Wuxia fiction introduced in Vietnam during the early 20th century experienced various historical transitions through print media and online gaming until reaching its current state. The current wuxia content in Vietnamese video games will be examined through an investigation of how wuxia originated historically from its literary heritage. This article has the life course approach and concepts like nostalgia and cultural proximity recruited to study the influence of early wuxia experiences on current gaming choices in Vietnam. Read More [논문세미나] 베트남 게임 환경과 무협문학의 관계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무술과 영웅담은 문학, 영화, 텔레비전 등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되는 무협 이야기를 이루는 근간이 된다. 베트남 현지어로 키엠히엡(kiếm hiệp), 트루옌쯔엉(truyện chưởng)으로 불리는 무협물은 베트남에서 중요한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20세기 초 베트남에 처음 소개된 무협소설은 인쇄매체와 온라인게임을 통해 다양한 역사적 변천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는데, 우리는 이 글에서 오늘날의 베트남 디지털게임이 다루는 무협 콘텐츠가 어떠한 배경 속에서 무협문학으로부터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나는 초창기의 무협물에 관한 경험이 베트남의 동시대 게임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생애사적 접근법과 문화적 근접성의 개념을 활용해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Read More [북리뷰] 도망쳐 도착한 곳의 낙원: 가브리엘 제빈,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심지어 게임을 업으로 삼은 이에게도. 그때 게임이 경이로웠던 것은 삶의 고통과는 무관한 신비 그 자체였기에 노스탤지어는 더욱 짙은 그리움을 부른다. 그럼 지금의 당신에게 게임은 어떤 경험인가. 지금 다시 플레이하면 분명 지루하게 느낄 그 시절의 게임들과 비교하면 오늘의 게임은 어떤 의미인가. 여전히 신비로운가, 혹은 신비를 잃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는 이 소설이 그렇게 묻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Read More [북미통신]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변화하는 북미 게임계의 DEI 기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하자마자 한 달안에 70개가 넘는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그 중에서도 취임 첫 날 바로 서명하고 공포한 행정명령들은 향후 정책적 방향을 가늠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중 하나가 백악관 행정명령 14151호다. 행정명령의 제목은 ‘급진적이고 낭비적인 정부 DEI 프로그램의 종료’다. Read More [인터뷰] 25년간 게임의 지평은 어떻게 바뀌었나? : 게임 역사연구자 나보라, 게임 아카이비스트 오영욱 대담회 한때 미래 세계를 의미했던 21세기가 들어선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 25년 동안 많은 문화적 변화가 야기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게임은 급격한 속도로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왔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게임 역사 연구자인 나보라 박사와 게임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오영욱 박사를 모시고 그동안 우리의 게임이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해 대담회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Read More [인터뷰] 근대에서 현대로의 궤적을 따르다,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 아로코트 개발자 작년 8월 열린 부산인디게임페스티벌(BIC)에 출품된 <더 파이어 노바디 스타티드(The Fire Nobody Started)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게임들과는 다른 내러티브와 아트의 독창성을 자랑하는 게임이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형식의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각각 특정 시대로 대변되는 기차 칸들을 오가며 유럽 근세사의 질곡을 체험하게 된다. 산업혁명기부터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는 이 게임에는 인류로부터 비롯되는 발전과 폭력이라는 양가적 주제가 녹아나 있다. Read More e스포츠 25년, 그 좌충우돌의 역사 초창기 e스포츠는 열악한 환경에서 탄생했다. 1999년 처음 중계된 제5회 하이텔배 KPGL(Korea Professional Gamers League) 당시에는 방송국 지원이 없어 탁구대에 천을 씌워 경기 테이블과 중계석으로 사용했으며, 경기복 두 벌을 출전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입었다. Read More 게임결제문화의 25년 변화가 드러내는 온라인게임의 특이점 디지털게임의 결제수단과 결제방식은 오늘날 게임계 이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단순히 신작 타이틀과 DLC, 시즌패스의 가격과 가성비 논란부터 시작해 최근에는 인게임 아이템의 가성비 문제, 이용자간 거래 문제, 그리고 확률형아이템 문제에 이르기까지 게임 분야의 핫 이슈 상당수는 게임의 결제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Read More 게임커뮤니티가 걸어온 지난 25년과 오늘 한 세기를 농구 한 경기로 본다면 이제 1쿼터의 막판이다. 쿼터나 25년이라고 하면 엄청 긴 세월은 아닌 것 같지만 사반세기로 지칭해 세기 개념이 오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묵직함이 있다. 한 쿼터도 긴 시간이고 역사의 한 두께다. Read More 넷마블 게임 박물관에 느꼈던 게임의 과거와 미래 2025년 3월 넷마블 게임 박물관이 정식으로 일반 공개를 시작했다. 넷마블 게임 박물관은 아직 정확하게 공지는 되지 않았지만 현재(2025년)기준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정부에 등록된 게임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국내에서 이름에 컴퓨터가 들어간 등록박물관은 2023년 기준으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유일하다.) Read More 오락실 시대의 대표주자 대전격투 게임, 어떻게 변해왔나 2000년대 이후 대전격투게임에 초점을 맞춰, 사반세기 동안 대전격투게임과 그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논의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대전격투게임의 주요 변화 양상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은 무엇이고, 그것이 게임 플레이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 역사적 맥락, 산업 구조, 기술 변화, 문화 수용 등의 차원을 고려한다. Read More 지금 우리는 무엇을 '롤플레이'하는가 21세기의 사반세기를 돌아 마주한 것은 언어의 순수에 대한 갈망 하나만이 아니다. 70년대에 탄생하고, 90년대에 완숙하여, 2000년대에 끝없이 분화한 이 장르를 태초의 조건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RPG’라고 부르던 조건은 이제, 수많은 가능성들에 의해 취사적으로 선택되고 조립되고 분화되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제 비디오 게임의 세계에 순수한 RPG라는 것은 규정 불가능하다. Read More 협업, 경쟁, 방송: MMO로부터 라이브 스트리밍과 온라인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21세기 북미 게임씬 만약 당신이 2000년 이후에 태어난 게임팬이라면 성장 과정에서 게임 매체를 비교적 쉽게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문화적(countercultural)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현 시점의 게임은 주류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으며, 플레이어들이 직접 제작한 게임 관련 콘텐츠의 양도 엄청나게 방대해져서 게임을 종료한 뒤에도 좋아하는 게임들을 눈과 귀로 계속 즐길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 아무리 마이너한 게임일지라도 직접 플레이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거의 무한히 느껴질 지경이다. Read More

  • 게임제너레이션::필자::김현철

    학부에서 산업디자인 및 뇌인지과학을 공부하고, 석사 과정에서는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시각인지연구실에 소속된 박사 과정 학생이다. 행동 및 생체 데이터를 활용하여,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경험을 평가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김현철 김현철 학부에서 산업디자인 및 뇌인지과학을 공부하고, 석사 과정에서는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시각인지연구실에 소속된 박사 과정 학생이다. 행동 및 생체 데이터를 활용하여,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경험을 평가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Read More 버튼 읽기 사라진 컨트롤러 : 가상현실 게임 속의 컨트롤러의 특징들 가상 현실 게임에서 대부분의 경우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컨트롤러는 게임 내에서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스팀(Steam)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가상현실 게임인 〈하프라이프: 알릭스 (Half Life: Alyx)〉나 PSVR2의 대표작인 〈호라이즌 콜 오브 더 마운틴 (Horizon Call of the Mountain)〉을 비롯한 다양한 슈팅 및 액션 게임에서도 대부분 손을 보여주는 방식의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필자::손이상

    미술을 공부하고 사진작업을 하다가 밴드 음악을 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공연 연출을 하다가 공공미술 기획자가 됐다. 윈도우95에서 구동되는 턴제 게임만 한다. 손이상 손이상 미술을 공부하고 사진작업을 하다가 밴드 음악을 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공연 연출을 하다가 공공미술 기획자가 됐다. 윈도우95에서 구동되는 턴제 게임만 한다. Read More 버튼 읽기 미술관에 놓인 게임: 게임은 미술관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한글로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다는 영아적 판타지가 위협받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그리스어Μουσείον을 무세이온이라고 표기해야 할 때다. 오랜 옛날 무사이Μουσαι의 신전을 부르던 이름이다. 갱스터 근성을 타고 태어난 로마인들이 그곳을 참숯으로 만들었다. 파편처럼 흩어진 여러 기록에 따르면, 무세이온은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을 거느린 거대기관으로, 세상의 온갖 학자들이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싸면서 각종 연구를 자행하였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보존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 모두를 위한 게임을 향하여: 게임 접근성 문제

    게임 접근성을 우리 사회에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관련 제도와 사업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공공과 민간의 노력이 동시에 요청된다. 게임 접근성이 사회권 차원에서 제기되는 공공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공공이 먼저 관련 연구와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우리 사회의 게임 소외계층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고, 그들이 게임에 접근할 시 어려운 점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이용행태를 보이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 Back 모두를 위한 게임을 향하여: 게임 접근성 문제 03 GG Vol. 21. 12. 10. 1. 왜 여전히 게임 접근성이 문제인가 ‘장애인 게임 접근성’ 이슈가 2021년 국정감사를 뜨겁게 달궜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11월 14일 국정감사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에 장애인 게임 접근성 확대를 주문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콘진원 전체예산 중 장애인 사업관련 예산이 0.48%에 불과하며, 콘진원에서 2021년 한 해 동안 진행된 40여건의 연구 중 장애인 관련연구가 전무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김재석, 2021. 10. 14). 물론 장애인 게임 접근성 이슈가 진공에서 등장한 것은 아니다. 당장 지난 4월만 해도 장애인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게임법 개정안이 발의(대표발의: 국민의힘 하태경)된 바 있고(이두현, 2021. 4. 20), 국정감사 직전 국회입법조사처에 의해 장애인 게임 접근성 향상에 대한 정책적·산업적 고려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며(이하은, 2021. 10. 15). 2021 지스타(G-STAR)에서는 장애인 게임 접근성 토론회가 개최되기도 했다(김재석, 2021. 11. 18). 그동안 장애인단체나 시민단체, 소수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다른 매체처럼 게임에서도 접근성 향상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있어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여전히 한국에서 게임 접근성 문제에 대한 가시적 성과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정부부처나 업계, 그리고 연구자·비평가들의 의식 부족과 미흡한 추진력 탓이 크다. 게임에 대한 사회 전반의 반쪽자리 인식도 문제다. 산업으로서의 게임은 미래의 신성장 동력으로 찬양받아왔지만, 성장의 의미 그리고 향유문화로서의 게임은 사회담론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돼왔다. 향유문화로서의 게임에 대한 빈약한 담론수준은 보다 많은 사람에게 게임이 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데 긍정적이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게임 접근성이라고 했을 때 단순히 시리어스 게임(serious game) 정도와 연결해 생각하고 마는 경우도 많다. 물론 국내·외에서 장애인이나 노인 등을 위한 다양한 시리어스 게임이 개발되고 있음에도, 이러한 생각은 자칫 장애인만을 위한 게임을 고려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2. 해외의 사례들 해외사례들이 한국과는 다른 사회·정치·문화적 맥락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만능이 될 수 없음을 감안한다 해도, 게임 접근성에 대한 해외의 여러 시도들은 현재의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준다. 게임 접근성에 대해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가이드라인 같은 것은 없다. 여러 단체들의 활동과 연구를 중심으로 한 개별적인 시도들만이 있어왔다. 대표사례는 미국 에이블게이머재단(AbleGamers Foundation)의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실질적 지침(A practical guide to game accessibility)’이다. 에이블게이머재단은 2004년 설립된 국제협력재단으로, 장애가 있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활동목표로 삼는다. 다만 이들의 활동은 단순히 장애 플레이어가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디지털 시대에 배제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풍부한 사회적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개방된 소통과 교육, 연구 등을 수행하며, 웹사이트( ablegamers.org )를 통해 관련 커뮤니티 활동 등을 지원한다. 에이블게이머재단은 2012년 미국 장애인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people with Disabilities)에서 수여하는 헌 리더십 상(Hearne Leadership)을 수상했다. 또,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실질적 지침’ 제공을 통해 2013년 다발성경화증협회(MS Society)로부터 다 빈치 상(Da Vinci Awards)를 수상하기도 했다. 다 빈치 상 수상은 장애인을 위한 구체적 생산물이 아닌 일종의 기록-개념에 부여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실질적 지침’에는 운동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인지장애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포함된다. 그리고 각 장애별 수준에 따라 다른 세부지침을 제공한다. 그 밖에 최근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는 모바일게임에 대한 지침도 별도로 마련한 바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에이블게이머재단은 이후로도 비영리단체인 변화를 위한 게임(Games for Change)의 뱅가드 상(Vanguard Award, 2021), 여성 게이머 커뮤니티 게임허즈(gameHERs)의 로지텍 G 자선 상(Logitech G Charity of the Year Award, 2021) 등 여러 관련단체로부터 수많은 상을 받아왔다(에이블게이머재단 홈페이지, ablegamers.org ). * 에이블게이머재단 홈페이지( ablegamers.org ) 국제게임개발자협회(International Game Developers Association: 이하 ‘IGDA’) 내 GA-SIG(Game Accessibility Special Interest Group)의 가이드라인 역시 주목할 사례다. 1994년 창립된 IGDA는 미국의 비영리기구이나, 전세계 개발자들이 가입해 활동한다. 협회 안에는 특정사안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는 이들이 모인 다양한 SIG들이 있는데, GA-SIG도 그 중 하나다. GA-SIG은 게임 접근성 향상이 플레이어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할 뿐 아니라, 게임 개발자나 퍼블리셔 등에게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게임 접근성이 플레이어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잠재적인 플레이어들을 유입하는 동기가 되며, 규제나 진흥의 쟁점을 조정하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게임에 기반한 교육을 확대할 가능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GA-SIG의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다음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① 컨트롤러 재구성 허용, ② 대체 컨트롤러 지원, ③ 오디오 차원의 대안 제시(대체자막, 캡션, 컨트롤러 진동, 시각적 대기열 등), ④ 오디오 개별영역 조정의 허용(음악·음향효과·대화의 볼륨 등에 대한), ⑤ 높은 가시성 그래픽 제공, ⑥ 색맹 친화적 디자인, ⑦ 광범위한 난이도 및 게임속도 조정 옵션 제공, ⑧ 연습, 교육, 자유로밍, 튜토리얼 모드 허용, ⑨ 단순화된 인터페이스 제공, ⑩ 기타 확장목록(단위색상 설정, 셀프 보이싱 기능 허용, 오디오 GPS 고려 등). 이 가이드라인은 게임을 만드는 사람/회사를 대상으로 하며, 실제 개념과 설명 뿐 아니라 풍부한 사례 제시를 통해 다양한 플랫폼에서 폭넓게 적용 가능하게끔 기획되었다(IGDA 홈페이지, igda-gasig.org ). * IGDA GA-SIG의 가이드라인( igda-gasig.org ) 국내에도 잘 알려진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Game Accessibility Guidelines)’은 유럽의 게임 연구자와 개발자 등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 가이드라인은 게임을 만드는 주체가 게임 플레이어들을 불필요하게 배제하는 것을 방지하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길 수 있게끔 하겠다는 목표를 지닌다. 에이블게이머재단의 지침과 마찬가지로 운동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인지장애를 고려하면서, 언어장애, 그리고 공통사항을 추가로 포함한다. 에이블게이머재단 지침이 장애별 수준에 따라 다른 세부지침을 제공한다면,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은 각 장애에 대해 단계별(기초-중급-상급)로 접근한다. *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 gameaccessibilityguidelines.com ) ‘게임 접근성’은 최근 20년 사이에 제기된 상대적으로 새로운 개념이다. 게임이 단순히 오락기능만을 갖는 수준에 머물지 않으며, 재활이나 교육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고, 디지털 사회의 새로우면서도 주된 미디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해외사례들이 미국과 유럽을 주축으로 만들어졌다고는 해도, 일국적 차원에서 진행된 것은 아니다. (IGDA의 경우 전세계 개발자가 함께 활동한다는 점, 그리고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의 경우 유럽 여러 나라의 게임 전문가들이 협력해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국제적 차원에서 진행된 협력의 결과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노력이 국제적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게임을 통해 전개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그것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에 동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3.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해 고려해야 할 것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일차적으로는 장애나 노화로 인해 게임에 접근할 권한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경제적·사회적으로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누군가가 새로운 미디어 환경으로부터 불필요하게 배제되어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에이블게이머 재단이 미국 장애인협회와 다발성경화증협회가 주는 상을 받게 된 것은, 게임 접근성이 단지 신체적·정신적 불편함만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기술적 환경으로부터의 배제와도 연결되는 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낮은 접근성은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생산되는 결과물이다. 신체적·정신적 기능이라는 측면에 더해, 사회적·제도적 환경(의 미비라는) 측면, 그리고 인식(의 미흡이라는) 측면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게임 접근성에 대한 고려가 (지금 한국의 맥락에서처럼) 장애인에 대해서는 당연히 이뤄지면서, 보다 넓은 시각으로까지 확대돼야 함을 시사한다. 시각 확대를 위해서는 게임에서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살피는 일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소외계층은 통상적으로 신체적·세대적·경제적·지역적 약자로 구분되지만, 정확하게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소외계층으로 분류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분류주체마다 이견이 있다. 더욱이 ‘게임’에서 소외계층은 다른 소외계층과 다른 것일 확률이 높다. 사회일반에서 소외계층으로 분류되기 어려운 개인이나 집단이, 게임에서는 소외계층일 수 있다. 급격한 사회변화, 미디어 환경 및 이용행태 변화, 코로나19(COVID-19) 확산 등으로 인해 게임 소외계층 개념의 확대 혹은 재규정이 요구됨은 말할 것도 없다. 즉, 앞으로의 게임 접근성은 ‘제약조건 하에서조차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정도’를 말하는 개념으로, 여기서 제약조건은 신체적·정신적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적·제도적 차원의 모든 조건을 아우르는 것이다. 게임 접근성은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이해, 포용, 시혜 차원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요청되는 하나의 사회적 권리 차원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이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국제적 흐름에 전혀 동참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게임 접근성이 갖는 사회적 권리가 국가적 차원에서 경시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국의 게임산업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성장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기본적인 부분조차 챙기고 있지 못하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그러한 산업적 성장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게임 접근성 향상은 근본적이고 실질적이면서 구체적인 차원의 문제다(이동연·강신규·이광석·최준영·허민호, 2013). 게임 접근성을 우리 사회에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관련 제도와 사업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공공과 민간의 노력이 동시에 요청된다. 게임 접근성이 사회권 차원에서 제기되는 공공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공공이 먼저 관련 연구와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우리 사회의 게임 소외계층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고, 그들이 게임에 접근할 시 어려운 점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이용행태를 보이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해외사례를 참고해 한국적 맥락에서의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업계 및 플레이어들과 함께 만들어 가면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게임 접근성이라는 개념이 아직 낯선 것이므로 개념을 정립하고 관련 홍보 캠페인을 광범위하게 펼쳐나갈 필요도 있겠다. 민간의 경우 해외에서 진행되는 여러 활동들이 민간 재단이나 협회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게임 접근성을 높이려는 활동은 단기적으로 플레이어층을 확장하고, 장기적으로는 게임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초석이 된다. 정부부처 및 플레이어들과 함께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가이드라인을 게임에 반영하며, 광범위한 홍보 및 지원활동을 통해 게임 접근성을 다각도로 높여야 한다. 모두를 위한 게임이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누구나 게임을 즐길 수 있고,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에서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진정한 의미의 ‘게임 문화’가 시작될 것이다. 참고문헌 김재석 (2021. 10. 14). [국정감사] “콘진원 장애인 사업 예산 0.46%, 장애인 게임 접근성 미비하다”. 〈디스이즈게임〉. URL: https://www.thisisgame.com/webzine/news/nboard/4/7664556?n=134726 김재석 (2021. 11. 18). [지스타 2021] 누구나 게임을 할 수 있다! 장애인 게임 접근성 토론회 열려. 〈디스이즈게임〉. URL: https://www.thisisgame.com/webzine/news/nboard/4/?n=137353 이경혁 (2021. 10. 30). 디지털 게임의 접근성 문제. 〈경향신문〉. URL: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10300300015/?utm_campaign=list_click&utm_source=reporter_article&utm_medium=referral&utm_content=%EC%9D%B4%EA%B2%BD%ED%98%81_%EA%B8%B0%EC%9E%90%ED%8E%98%EC%9D%B4%EC%A7%80 이동연·강신규·이광석·최준영·허민호 (2013). 〈게임 소외계층의 웹접근권 활성화 방안 연구〉.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두현 (2021. 4. 20). 하태경 의원, ‘장애인 게임접근성 향상법’ 대표발의. 〈인벤〉. URL: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254742 이하은 (2021. 10. 15). 260만 장애인, 게임 이용 어려워··· 접근성 개선 목소리 높아. 〈시사저널e〉. URL: http://www.sisajournal-e.com/news/articleView.html?idxno=238766 에이블게이머재단(The AbleGamers Foundation) (ablegamers.org) 국제게임개발자협회(IGDA) (igda-gasig.org)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Game Accessibility Guidelines) (gameaccessibilityguidelines.com)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강신규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 게임, 방송, 만화, 팬덤 등 미디어/문화에 대해 연구한다. 저서로 <흔들리는 팬덤: 놀이에서 노동으로, 현실에서 가상으로>(2024), <서브컬처 비평>(2020), <아이피, 모든 이야기의 시작>(2021, 공저), <서드 라이프: 기술혁명 시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2020, 공저), <게임의 이론: 놀이에서 디지털게임까지>(2019, 공저) 등이, 논문으로 ‘이기지 않아도 재미있다: 부모-자녀 게임 플레이의 사회성과 행위성, 그리고 분투형 플레이’(2024), ‘커뮤니케이션을 소비하는 팬덤: 아이돌 팬 플랫폼과 팬덤의 재구성’(2022), ‘‘현질’은 어떻게 플레이가 되는가: 핵납금 게임 플레이어 심층인터뷰를 중심으로’(2022, 공저), ‘게임화하는 방송: 생산자적 텍스트에서 플레이어적 텍스트로’(2019) 등이 있다.

  •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

    <디지털 시민교육을 위한 어린이 미디어 생활 연구: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는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의 삶을 이해한 후, 비로소 의미있는 디지털 시민교육이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 소속인 교사 및 연구자들은 직접 로블록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로블록스 속 어린이의 삶을 질적연구방법론으로 분석하였다. 이 글에서는 위 보고서를 인용해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이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 Back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 25 GG Vol. 25. 8. 10.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디지털 미디어 교육에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어린이의 미디어 속 삶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그들의 삶과 문제상황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초등학생의 미디어 이용 중 가장 주목해야 할 플랫폼은 로블록스이다. 로블록스는 2023년 기준(2023, 한국언론진흥재단) 초등학생의 90%가 이용하는 플랫폼이며 10대에서는 남녀 상관없이 유튜브, 카카오톡에 이어 이용률이 가장 높다. 이용률 면에서도 주목해야 하지만, 로블록스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든 성별이 함께 이용하는 ‘메타버스’ 기반 게임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살아간다. <디지털 시민교육을 위한 어린이 미디어 생활 연구: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는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이의 삶을 이해한 후, 비로소 의미있는 디지털 시민교육이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 소속인 교사 및 연구자들은 직접 로블록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로블록스 속 어린이의 삶을 질적연구방법론으로 분석하였다. 이 글에서는 위 보고서를 인용해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이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어린이들의 온라인 놀이터, 그리고 작은 지구촌 로블록스가 어린이들에게 중요한 플랫폼이 된 것은 팬더믹 시기 이후이다. 이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고립된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만나 놀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팬더믹 시기가 끝났지만 로블록스 공간은 어린이들의 온라인 놀이터로 살아남았다. 일상 속에 정착한 스마트기기 덕분이기도 했지만 사교육으로 부족해진 공동의 놀이 시간, 소음에 대해 늘 조심해야 하는 공동거주공간의 특성, 안전한 놀이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도시공간 등 다양한 요인이 어린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놀이터를 포기하고 온라인 놀이터를 선택하게 했다. 로블록스는 밤 늦게라도, 잠깐이라도 어린이들이 모여서 놀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거나 멀리 이사를 간 친구, 진학으로 멀어진 친구들과도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만날 수 있다.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공간 안에서 친구들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 된다고 한다. 서희(11, 여)가 그린 로블록스 경험은 놀이공원처럼 표현되었다. 소통과 어울림은 로블록스 경험의 중심에 있다. 어린이들이 로블록스 안에서 만나는 것은 친구나 가족뿐인 것은 아니다. 로블록스는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장이다. 진희(12, 여)는 로블록스에서 만난 온라인 친구와의 만남이 준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진희는 어린이들이 많이 경험하는 점프맵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했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함께 놀아주고 플레이할 때 기다려 주는 등 배려해 주면서 유대를 쌓았으며 이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많은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친해진 온라인 친구를 여럿 가지고 있다.플레이어들의 다양성은 어린이들에게 국제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완전 핫하게 꾸민 스킨’이나 매너를 잘 지킨다는 이유로 외국인을 선호하는 어린이들도 있다. 특별히 영어를 잘 못해도, 바디랭귀지와 이모트, VR 등을 통해 소통은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스킨은 로블록스에서의 중요한 비언어적 소통수단이다. 어린이들은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스킨을 이용해 상대방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자신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무료스킨만으로 자신을 꾸미다가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거나 이유없이 욕을 먹을 수도 있다는 불문율도 어린이들 사이에 있다. 여러모로 로블록스에서의 삶 역시 비용이 드는 사회생활인 것이다. 로블록스에서의 부정적 경험들 무료 스킨의 일화에서 드러나듯, 모르는 사람들과의 만남엔 부정적 경험도 있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것은 폭력적 이용자들이다. 어린이들은 유독 한국 이용자들이 이런 특성이 많다고 호소한다. 게임을 하다가, 아이템을 거래하다가 이들은 폭력적으로 행동한다. 소통을 시도하다가 잘 안되어서 자리를 피하면 끝까지 쫓아와 욕을 하는 이용자도 있다. 어린이들은 이런 상황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게임 중 갑자기 욕을 먹은 경험 (김민아, 10, 여) 저학년 어린이들은 이런 일이 있을 때 자리를 피하거나 게임을 중단해 버리지만, 같이 맞서서 욕을 하거나 싸우는 어린이도 적지 않다. 게임 공간 안에서 폭력적 문화가 대물림되는 과정이다. ‘어드민’ 의 괴롭힘은 보다 적극적인 괴롭힘이다. Free Admin 게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어드민 권한을 가질 수 있는데, 어드민 등급이 로벅스 가격에 의해 결정되다보니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높은 등급의 어드민 이용자들이 다른 이용자들을 괴롭히거나 죽이는 명령어를 적용시켜 게임을 못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재윤(11, 여)은 ‘로블록스에 대한 내 생각’을 마인드맵으로 표현하였는데, ‘맵’ 키워드와 관련하여 경험한 기분나쁜 경험에 대한 생각을 가득 적었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점프맵’과 관련하여, ‘어드민이 많다.’, ‘나쁜 어드민’, ‘게임을 못하게 맵을 망가트린다.’ 등의 진술이 반복된다. 고은은 어드민처럼 보이는 사람이 못 가게 하더니 욕을 했고, 쫓아오면서 욕을 하길래 같이 욕을 했더니 그 사람이 신고를 해서 계정이 정지되었다.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어린이들이 경험하는 또 다른 충격적인 경험은 ‘사기’ 이다. 위의 재윤의 마인드맵에도, 다른 어린이들의 만화에도 사기 경험은 가장 높은 빈도수로 나타난다. ‘입양하세요’ 게임에서 이런 일이 특히 빈번하게 일어난다. 아원(16, 여)은 초등학교때 열심히 키우던 닭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용자가 다가와서 좋은 아이템으로 바꾸어준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용자는 닭을 받고 사라져버렸다. ‘실감이 안난다.’ ‘현실을 부정한다.’ ‘게임에서 열심히 번 것이어서 주저앉아 운다.’ 사기는 어린이들이 게임 공간에 들인 노력과 마음을 한 순간에 무너트린다. 로벅스가 만드는 삶의 고난 이런 문제들은 오프라인 공간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들의 삶의 공간이 무료가 아니라는 지극히 냉정한 현실에 기인한다. 로블록스는 로벅스 경제의 토대 위에 세워져 있고, 무료 포인트나 이벤트 등은 없다. 이상적으로는 이러한 로벅스 경제는 어린이들이 광고 없이 디지털 미디어 공간에서 건전한 경제생활을 연습할 수 있는 경험의 토대가 되겠지만, 이용자 중심의 로벅스 세계, 그리고 어린이들의 게임 머니를 통제하는 양육 관행은 어린이들을 로블록스 세계의 경제적 약자로 만들었다. 어린이들의 로블록스 경험에서는 앞서 언급한 ‘사기’ 외에도 ‘구걸’, ‘기부’. ‘노동’ 등의 키워드가 공통적으로, 그리고 높은 빈도수로 나타난다. 오프라인에서라면 아동권리 보호차원에서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온라인에서는 그런 보호가 없다. 미디어 기업 대 이용자의 관계가 아닌, 이용자와 이용자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플리즈 도네이트’ 게임은 기부를 위해 찾는 게임이다. 이곳에서는 기부, 즉 로벅스를 주고받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무과금 유저인 어린이들은 게임을 하고, 점프를 하고, 리액션을 하면서 로벅스를 기부받고 남는 로벅스를 기부하기도 한다. 인터뷰에 응한 어린이들은 이것을 ‘노동’이라고 표현했다. 재미있으려고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로벅스를 얻기 위해 무의미한 플레이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을 하고도 댓가를 받지 못하는 일도 많다. 현수(11, 여)는 이것을 공사장에서 노동을 했는데 월급을 못 받는 것과도 같다고 했다. 심지어 로벅스를 기부해달라고 ‘구걸’을 하는 일도 빈번하다. 기성세대가 듣기에 충격적인 이러한 일화들은 어린이들의 일상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는 2021년 일반논평 제 25호를 통해 디지털 환경에서의 아동권리 또한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것을 발표하였으나,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아직 정글에 가깝다. 디지털 시민의식, 그리고 온라인에서의 아동 권리 로블록스 경험 속에 포함된 부정적 경험들에 대해 기성세대들이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점은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차단은 근본적으로 디지털 미디어에서의 삶을 막을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이것은 어린이들이 미디어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소통과 즐거움의 기회, 그리고 미디어 이용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권리 침해에 해당한다.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 안에서 어린이들은 미디어 정글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고, 삶의 지식을 얻는다. 연구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면담 전에는 노동, 혐오와 차별, 성적 대상화, 상업적 이용, 언어폭력 등 많은 문제들을 권리침해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면담과 선생님과의 대화를 거치면서 로블록스에서 만난 위기에 대처하거나, 악성 이용자를 차단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나중에 찾아와서 나쁜 이용자를 차단한 이야기를 해 준 어린이도 있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디지털 시민교육이 좋은 로블록스 세계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로블록스는 자신들에게 소중한 공간이니, 서로서로 약속을 잘 지켜서 로블록스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어른들의 도움이다. 어른들은 보호자이기도 하지만, 로블록스와 같은 디지털 세계를 구성하는 이용자들이며, 아이들에게는 미디어 안의 강자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민의식이 어린이 청소년 뿐 아니라 모든 미디어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중요한 이유이다. 이 연구는 로블록스 본사에 전달되어, 어린이들의 의견들은 일부 새로운 정책에 적용되었다. 교사, 학부모, 어린이를 위한 가이드북 [1] 이 만들어지고, 로블록스의 신고기능을 강화하고, 필터를 없애는 대신 채팅기능을 연령별로 차단하는 등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어린이들의 경험이 지금 이 글처럼 더 많은 이용자들에게 공유되고, 게임 교육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끌어내는 것일 듯 하다. 디지털 시민들의 노력을 통해 더 안전한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길 기대한다. [1] 로블록스-디지털 시민교육 가이드북은 KATOM 홈페이지( katom.me )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참고문헌 박유신, 김아미, 김세진, 김완수, 김원영, 박소현, 서용리, 양철진, 하윤영, 차은영(2023) 「디지털 시민교육을 위한 어린이 미디어 생활 연구: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 Tags: 미디어리터러시, 교육, 어린이, 로블록스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교사) 박유신 초등학교 교사이며, 미디어와 교육 연구자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게임, AI에 이르기까지, 어린이들의 디지털 미디어에서의 삶과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더 알고 싶어하지만 쉽지 않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에서 회장직을 수행중이다.

  • 비디오게임과 기이한 유령들의 세계

    비디오게임에서 유령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물론 다들 이것이 꽤나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유령은 수많은 비디오게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슈퍼 마리오」시리즈의 부끄부끄부터 「F.E.A.R.」 시리즈의 알마까지, 비디오게임에는 다양한 아이코닉한 유령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 Back 비디오게임과 기이한 유령들의 세계 19 GG Vol. 24. 8. 10. 비디오게임에서 유령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물론 다들 이것이 꽤나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유령은 수많은 비디오게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슈퍼 마리오」시리즈의 부끄부끄부터 「F.E.A.R.」 시리즈의 알마까지, 비디오게임에는 다양한 아이코닉한 유령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다만 질문은 단순히 ‘유령 캐릭터가 있느냐’로 한정해 묻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들이 과연 ‘유령성’이라는 개념을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다. 가령, 「홈 스위트 홈」의 악령 ‘벨’과 「파피 플레이 타임」의 괴물 ‘허기우기’는 구분되는가? 이들이 각기 다른 개념의 존재로 인식되는가? 두 존재는 큰 틀에서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움직인다. 둘 모두 플레이어 캐릭터를 인식하고, 추적하며, 접촉하면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말하자면 비디오 게임에서의 유령은 대체로 물리적 존재인 괴물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들은 엄밀히 말해 가장 오래된 유령, 「팩맨」의 네 유령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바꿔말하면 비디오게임의 유령은 그 탄생부터 ‘접촉’을 기반으로 하는 물리적 오브젝트로 규정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질문은 크게 우회해 이렇게 바꿔볼 수 있다. 비디오게임에서 유령은 괴물과 구분될 수 있는가? 또는 비디오게임은 유령성을 가질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비디오게임에서의 유령성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유령과 접촉의 모순적 메커니즘 유령이란 물질과 비물질의 중간 지점, 접촉과 접촉 불가능성의 사이에 존재해야 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유령이란 물질적corporeal이면서도 비실체적incorporeal인 존재들이다. 그들은 벽을 투과하고 공중을 날아다니지만, 때때로 물건을 건드리고 소리를 발생시킨다. 유령이란 볼 수 있지만 만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물성을 초월한다. 앞서 말했듯 비디오게임의 유령이란 이 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모순적 개체들이다. 이 유령들은 언제나 플레이어 캐릭터를 향해 돌진하고, 그들과의 접촉을 위해 활동한다. 그들은 엄밀히 실존한다. 카메라로 악령을 퇴치하는 「령~제로~」 시리즈의 가장 대표적인 전략은 ‘공격당하기 전에 쓰러뜨린다’이다. 여기서 악령의 공격이란 접촉의 메커니즘을 전제한다. 플레이어는 그들이 ‘접촉해오기 전’에 촬영이라는 비실체적 공격으로 쓰러뜨려야 한다. 이는 전적으로 아이러니다. 여기서 물질성을 초월하는 존재는 악령이 아니라 (물질인) 카메라다. 「F.E.A.R.」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구조는 동일하다. 플레이어는 알마가 생성해낸 유령Ghost들을 총을 쏴 제거할 수 있다. 여기서도 차라리, 거리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총이 유령보다 훨씬 초월적이다. *「제로 : 월식의 가면」 비디오게임의 메커니즘은 (히트박스로 규정되는) 충돌을 전제한다. 결국 이 내부에서 물질성을 완전히 초월한다는 것은 게임적 구조를 뛰어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플레이어에게 있어 그런 조건은 전적으로 ‘글리치’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벽이라는 구조를 뚫고 들어오는 것은 유령적이라기보다는 ‘벽뚫는 버그’를 연상시키며 따라서 불공정의 감각을 초래한다. 비디오게임에서의 물질성의 초월은 그 한계지점의 돌파가 아니다. 오히려 물리적 위력의 일방적인 우위성에서 온다. 「화이트 데이」의 공포의 핵심은 일방적인 물리력을 행사하는 수위에게서 나타난다. 오히려 물리적 한계지점을 뛰어넘는, 구조와 무관하게 천천히 접근해오는 머리 귀신은, 그 시청각적 특성을 통해 아찔함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머리 귀신은 플레이어에게 직접적 위해를 가하지 못하기에 그다지 초월적인 존재로 여겨지지 못한다. 차라리 그들이 공포스러운 것은 접촉을 통해 수위라는 물리적 주체를 불러들인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머리 귀신조차 아찔한 감각과 그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접촉이라는 조건을 달성해야 한다. 따라서 비디오게임의 유령은 전적으로 현존presence한다. 있는듯 하지만 없거나 또는 없는듯 하지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그 존재를 가진다는 의미다. 이를 정확히 보여주는 게임이 바로 「파스모포비아」다. 이 게임은 다양한 방법론과 조건들로 어떠한 유령이 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말하자면 이 게임의 목적은 유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물론 유령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편 명백히 오브젝트로써 그 공간에 ‘존재한다’. 게다가 이 게임의 팬덤은 유령이 가진 감각 패턴을 밝혀냈는데, 재미있게도 그 가시범위는 물체에 의해 일정량 차단될 수 있다. 심지어는 유령의 종류에 따라 이동속도나 가속도 여부까지 부여되어 있다. [1] 이 게임에서 유령은 투명invisible하지만 비실체적incorporeal이지는 않다. 앞서 설명한대로 이 유령이 초월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철저히 일방적인 실체라는 정도일 것이다. *「파스모포비아」에서 유령의 감지 범위를 설명하는 이미지 (출처: 레딧) 데리다의 유령론으로부터 한편 유스티나 야닉Justyna Janik은 2019년의 에세이 《Ghosts of the Present Past: Spectrality in the Video Game Object》에서 비디오게임의 유령에 달리 접근한다. 야닉이 끌어들이는 것은 데리다의 유령론hauntology이다.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존재론ontology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념들을 설명하기 위해 이 유령론을 도입한다. 그의 정리에 있어 유령은 가시적이면서 비가시적인 존재, 과거의 존재이면서 현재까지 영향을 주는 그리고 미래까지 예시하는 존재다. 야닉은 특히 유령의 몰시간성anachronie [2] 을 중심으로 유령론의 적용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의 설명을 차용한다면, 비디오게임에는 오히려 유령을 탄생시킬만큼의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야닉은 이렇게 적는다. ‘게임 세계의 과거, 현재, 미래는 거의 동시에 제작되는 것 같다.It seems that the game world’s past, present, and future are produced almost simultaneously(...)’ [3] 즉 「F.E.A.R.」의 악령 캐릭터 알마는 유령이지만 그에게 주어진 과거는 어디까지나 게임 외적으로 설정되어진 과거에 불과하다. 알마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뛰어들고 마주친 그 순간에 형성된 현재 시제의 존재임이 분명하다. [4] 물론 야닉은 이러한 시간 형성의 동시성을 유령론의 몰시간성과 어느정도 동일시한다. 하지만 선형적 시간의 인과개념이 없다는 것은 압축할만한 시간의 원본도 없다는 의미가 된다. 알마가 몰시간성의 존재인 것은 사실이나, 애초에 과거조차 없는 존재다. 이것은 비디오게임의 유령 일반에서 반복되는 성질이다. 이 유령들에게 부여된 ‘유령이 된 배경’이라는 사건들은 (야닉이 규정한) 게임 세계 내부의 사건이 아니라 오직 허구적으로 구성된 이유에 불과하다. 결국 플레이어는 과거에 대한 증언, (「바이오쇼크」 등에서 볼 수 있는) 환영, 기록, 때로는 명백히 시각적인 컷씬 등을 통해 그들이 허구적 과거로부터 온 존재임을 인지할 수 있을 뿐이다. 실질적으로 마주치는 그들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시작함과 동시에 발생한 현재의 존재다. 만약 플레이어가 과거를 지시하는 허구적 기록들과 마주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영영 현재라는 시간에 묶일 수 밖에 없다. [5] *「룸」에 등장하는 러스티의 유령 물론 게임 세계의 과거를 통해 생성되는 유령들도 존재한다. 루카스아츠의 「룸」에서 주인공 보빈은 대장장이들의 도시 ‘포지’에 들어가기 위해 포지의 소년 러스티와 모습을 뒤바꾼다. 보빈이 포지에서 활동하던 중, 직전 이벤트에서 보빈에 의해 꼬리에 불이 붙은 검은 용이 포지의 앞에 나타난다. 용은 보빈의 모습을 한 러스티를 발견하고는 잡아먹어 버린다. 나중에 포지에서 나온 보빈은 러스티의 뼈 위에 떠오른 유령과 만난다. 그리고 이 유령은 생전과 달리 분노에 찬 표정으로 대사를 내뱉는다. 이 장면은 당대 기술적 한계 때문에 썩 공포스럽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행동이 가져온 하나의 비극으로써 강렬히 각인된다. 물론 러스티의 안타까운 경험은 전적으로 스크립트로 만들어진 것으로 결코 바꿀 수 없는 운명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스티의 유령은 명백히 게임 세계의 인과가 만들어낸 존재이다. 조금 더 내밀한 유령은 「메탈기어 솔리드 3」에서 마주하는 병사들의 유령이다. 보스 중 하나인 ‘더 소로우’는 주인공 네이키드 스네이크에게 죽음의 환영을 보여준다. 플레이어는 더 소로우를 따라 어두운 강을 거슬러 오르며 지금까지 자신이 죽인 모든 병사들의 유령과 마주친다. 병사들은 플레이어가 그들을 살해한 방식의 상처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 그에 따른 원통함의 대사를 내뱉는다. 러스티의 유령이 결코 회피 불가능한 인과가 만들어낸 유령이라 한다면, 병사들의 유령은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른 결과물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령들은 지난한 역사의 표출물이 아니라 단기적인 감각적 대상물로써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6] 이것은 야닉이 말한대로 비디오게임의 게임 세계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들이 표출하는 게임 세계의 역사란 극도로 짧기에 무언가의 기표가 되기엔 지나치게 순간적인 셈이다. 그 정도의 역사는 그저 현재라는 시간에 귀속되어 버린다. 기이한 유령들 이렇듯 비디오게임의 유령이란 (1) 물성을 가진 실체의 존재이며 (2) 과거로부터 오지 않은 현재의 존재다. 따라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란, 비디오게임의 유령은 괴물의 또 다른 버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마크 피셔가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에서 제시한 기이함과 으스스함의 개념을 가져올 수도 있다. 마크 피셔는 이렇게 적는다. “나는 기이한 것The weird이란 특정한 형태의 동요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이 포함된다. 기이한 존재 혹은 대상은 너무나 이상해서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혹은 적어도 여기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느끼게 한다.” [7] “으스스한 것The eerie은 인간이 던질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질문들,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질문들과 관계가 있다.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때에 여기 어째서 무언가 있는가? 무언가 있어야 하는 때에 어째서 여기 아무것도 없는가?” [8] 우리의 관점에서 기이함이란 괴물의 것이며 으스스함이란 유령의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비디오게임의 유령은 어째선지 계속 기이한 것으로 수렴되어 버린다. 비디오게임의 유령들은 움직여서는 안되지만 어째선지 움직이는 「프레디의 피자가게」의 인형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들은 어딘가 잘못된 존재들이지만(「슈퍼 마리오」의 부끄부끄는 다른 적들과는 다른 메커니즘을 가진다.) 철저히 존재감을 가진다(킹 부끄부끄의 존재감은 지나치다.). 비디오게임의 유령은 왜 기이한 존재일 수 밖에 없는가? 가장 쉬운 답이라면 비디오게임이 직관적 감각의 영역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비디오게임에는 실재하지 않는 것은 쉬이 존재할 수 없다. 그곳은 설령 보이지 않는 유령이라 하더라도 그 데이터가 공간 내부를 떠돌아다녀야 하는 곳이다. 결코 없어야 하는 것이 존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히려 이 규정을 넓혀본다면 다른 결론과 마주할 수도 있다. 진정 없어야 하는데 존재하는 것, 있어야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혹시 비디오게임의 본질적 속성이지 않는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존재하는 세계, 만져지지 않음에도 만져지는 디지털의 물성은 그 자체로 으스스한 것에 속한다. 즉, 비디오게임이 바로 으스스한 것이다. 그리고 비디오게임의 세계가 으스스한 세계라면, 그 내부에서 따로 으스스한 것이 존재할 수는 없다. 비디오게임의 내부에서는 모두가 유령이다. 그곳에서 따로 유령적인 것이 존재하는 지 묻는 것 자체가 곤란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하다가 사망했을 때, 혹은 「어몽어스」를 하다가 빠르게 처형당했을 때, 즉시 유령의 모습으로 뒤바뀌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지는 않는다. 이 전환이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신묘한 영적 세계의 탐구 같은 것은 없다. 전의 존재와 후의 존재 사이에서 어떠한 상태의 전환이 발생한 것일 뿐이라면, 사망하기 전에도 유령이었다고 규정하는 것이 그다지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애초에 비디오게임의 세계가 근본적으로 영적 세계다. 우리가 컨트롤러를 조작하지 않는다면, 그 껍데기(=플레이어 캐릭터)는 마치 영혼없는 골렘처럼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다. 플레이어 주체가 그들의 육체에 들어가는 영적 존재나 다름 없다. 적의 육체에 빙의해 싸우는 아케이드 게임 「판타즘」이나 다양한 물체에 빙의해 퍼즐을 풀어가는 「고스트 트릭」은 어떤 면에서 메타적 비디오게임처럼도 보인다. *「고스트 트릭」 결국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영적인 세계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아야 하지만 존재하는 오브젝트로 가득 차 있다. 활기찬 NPC들로 가득찬 오픈월드 게임의 도시를 보는 것은 허크 하비의 「영혼의 카니발」을 관람하는 것과 같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유령의 세계를 보는 것이다. 이 곳에는 인간 육체를 통해 만들어진 유령은 없으며, 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유령이다. 여기서 특별히 더 유령으로 규정될 존재는 없다. 차라리 이곳, 비디오게임의 세계를 유령과 괴물의 세계라고 부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1]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순간이동같은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2] 단어 anachronie의 번역은 《마르크스의 유령들》의 역자인 진태원의 번역을 따른다. [3] Justyna Janik, 《Ghosts of the Present Past: Spectrality in the Video Game Object》, Journal of the Philosophy of Games, 2019, p9 [4] 야닉은 이 개념의 설명을 위해 게임의 세계를 두 개의 층위로 나눈다. 하나는 게임의 서사 부분을 결정하는 허구적 세계fictional world이며 또 하나는 플레이어가 게임 플레이를 통해 접촉하는 게임 세계game world이다. ‘첫 번째 층위는 게임으로 표현되는 캐릭터, 사물, 장소, 사건의 디제이시스적 영역인 허구의 세계다. 두 번째 층위인 게임 세계는 비디오 게임 오브젝트의 물성에서 비롯된다.The first layer I will consider is the fictional world – the diegetic domain of characters, objects, places and events that is represented by the game. The second layer, the game world, emerges from the materiality of the video game object.’ (같은 책, p2) [5] 야닉은 허구적 세계와 게임 세계라는 두 층위의 긴장이 데리다적인 효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시간의 개념 뿐만 아니라 허구적 세계에서 의미론적인 효과가, 게임 세계에서 디지털 물성의 효과가 나타나 중간자적 개념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닉이 서술하는 효과를 만족하기 위해서는 허구적 세계의 층위가 긴장을 형성할 만큼 충분히 도드라지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디지털 물성을 감각하면서 의미론적 층위와 마주하지 못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며, 그 경우 과거는 없는 것과도 같다. [6] 「룸」에서 보빈은 러스티를 되살린다. 러스티의 유령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7] 마크 피셔,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구픽, 2019, p20 [8] 같은 책, p15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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