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라는 실험: 아웃오브 인덱스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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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1. 12. 10.
"시장성, 대중성 보다는 개발자들의 창작과 실험 그 자체에 초점을 둔 게임 페스티벌을 만들어보자."
아웃 오브 인덱스 (Out Of Index: 이하 OOI) 는 국내 유일의 실험 게임 페스티벌이다. 자바 언어의 에러 메시지 중 ‘배열을 벗어났다’는 뜻의 ‘Array Index Out Of Bounds’ 에서 영감을 얻은 페스티벌의 이름은, ‘장르’나 ‘트렌드’ 와 같은 단어로 설명되어지는 일반적인 분류(Index) 밖에 자리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다루고자 하는 페스티벌의 철학을 담고 있다.
* Out Of Index 2019 하이라이트 영상
OOI는 다양한 실험 작품들을 통해 게임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줌으로써, 개발자들이 스스로의 창조성을 발현하고 게임 산업 전체의 창작의식을 고취하는데 주된 의의를 두고 있다. 아울러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창조적 실험이라는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창작자들을 대중들에게 소개하여 궁극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실험'을 해나갈 수 있는 씬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지난 여섯번의 OOI를 돌이켜보고, 그 동안 페스티벌이 변화해 온 과정을 소개하려고 한다.
* 이미지 출처: https://www.rockpapershotgun.com/the-2013-gdc-experimental-gameplay-workshop
2014년 OOI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자면 행사의 큰 영감이 된 Experimental Gameplay Worshop(EGW)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EGW는 매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Game Devleoper Conference(GDC)의 인기 세션 중 하나로, 전세계에게서 접수된 실험적인 프로토타입들 중 우수작들을 발표하는 자리다. 창의적인 게임플레이로 전설적인 작품들이 된 ‘괴혼', ‘Portal', Braid’ 같은 작품들이 초기 버전을 EGW에서 공개한 바 있으며, 도쿄게임쇼에서도 EGW의 영향을 받아 실험적인 게임을 발표하는 Sense Of Wonder Night라는 부대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나는 GDC 2013의 EGW 세션에서 내 게임 ‘6180 the moon’을 발표했는데, 게임의 상업적 완성도를 떠나서 창의적인 시도 자체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는 강의장의 분위기는 게임 개발자로서 내게 아주 큰 인상으로 남았다.
* 출처: https://blog.naver.com/kor_nvidia/220066159515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 나라에도 이런 행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무래도 이걸 직접 경험해 본 내가 가장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동료 개발자들과 함께 OOI를 만들었다. EGW는 컨퍼런스의 강연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발표한 게임들을 직접 플레이 해 볼 수가 없었던 것이 매우 아쉬웠는데, OOI에서는 행사를 크게 둘로 나누어 멋진 실험들을 발표하고, 발표된 게임들을 직접 플레이해 볼 수 있는 작은 파티를 만들기로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전세계에서 예상보다 많은 작품들이 접수되었고, 선정된 게임에 대한 반응 역시 매우 좋았다. 무엇보다 우리와 같은 성향을 가진 게임 개발자들이 서로를 발견하게 된 것이 좋았다. OOI 2014 당시 선정작 14개 작품들 중 세 작품이 한국 게임이었는데 그 중 두 개 작품의 개발자들이 OOI 기획단에 합류해서 페스티벌을 함께 기획하고 있다.
초기 페스티벌의 작품 선정 방식 역시 EGW의 방식을 따랐다. OOI의 작품 공모에 작품을 접수하려면 ‘이 게임이 왜 실험적인가' 라는 질문에 개발자 스스로가 답해야 한다. 이렇게 접수된 작품들 중 기획단의 자체 논의를 통해 공식 선정작을 결정한다. 기획단에서 선정작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중 하나는 ‘왜 이 게임을 선정했는가' 라는 질문에 기획단 스스로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페스티벌이 회를 거듭하면서 자연스럽게 몇 가지 선정 유형들이 생겼는데, 참가자들이 쉽게 영향을 받고 자신의 실험을 시작할 수 있도록 바람을 넣을 수 있는 ‘간단하지만 멋진 실험'들과 새로운 I/O 장비들을 만들거나 기존의 장비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작품들, 그리고 기존 장르의 문법들을 의도적으로 비틀고 파괴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주로 선정해왔다.
* OOI 2019 전시작 〈Hi-5 Heroes〉
2018년 부터는 새로운 전시 기획을 시작했다. 작품 공모를 통한 선정작 전시 외에 기획단이 직접 큐레이팅 한 초대전이 그것이다. 2018년에는 가까운 일본의 실험 작품들을 초대하여 전시했고, 2019년에는 개발자들이 직접 만든 전용 컨트롤러를 가지고 플레이 해야 하는 게임들을 모아서 전시했다. 작품 공모를 통해 전시작을 선정할 경우 각각의 작품들이 저마다 다른 철학과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페스티벌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가 되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고 판단했고, 한편으로는 초대전의 형식을 빌어 기획단에서 페스티벌 참가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멋진 실험들을 공모 접수작이라는 선택의 제약 없이 하나의 메시지로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 OOI 2018.
전시 기획과 더불어 페스티벌의 공간 구성과 관련한 실험 역시 시도하였는데 2018년, 2019년 2년간 플라노 건축사사무소와의 협업을 통해 페스티벌의 공간 컨셉을 설정하고, 각 게임의 특성에 맞는 시연 부스를 제작했다. 테이블 위에 시연용 PC를 배치하는 것에서 벗어나 참가자들에게 전시작들을 공감각적으로 전달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다른 게임 이벤트들과 완전히 차별화된 방식의 공간 구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플라노 건축사사무소의 OOI 2018 공간 컨셉 구축 설명: https://www.plano.kr/article-pixel-forest)
2020년 부터는 아예 작품 접수 데드라인을 없앴다. 수 년간 페스티벌을 개최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OOI의 작품 공모 시작일 부터 실험을 시작해서 마감일에 그 실험을 끝내고 작품을 접수하는 개발자들이 있다는 거였다. 기획단 입장에서는 매우 즐거운 일인 것은 분명한데, 다른 한 편으로는 페스티벌의 작품 공모 기간이 개발자들의 실험에 제한 시간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창작자는 언제나 실험에 몰두해야 하며, 실험에는 마감일이라는 것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마감일을 없애고 작품을 상시 접수 하기로 했고, 아직 우리 페스티벌을 모르는 개발자들의 멋진 실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도 작품을 추천할 수 있도록 작품 접수 양식을 정비했다.
OOI는 항상 특이한 게임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기획단의 목표는 단지 특이한 게임을 소개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전시작들을 소개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전시작을 만든 개발자들이 어떤 생각와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는지를 참가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OOI 기획단에서 생각하는 페스티벌의 주된 참가자는 언제나 게임 개발자들이다. 게임 개발자들이 페스티벌에 와서 동료 개발자들이 만든 작품들을 체험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각 작품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비로소 그들이 자신의 스튜디오에 돌아가서 자신의 실험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페스티벌 안에서 더 다양한 ’말’들이 생겨날 수 있기를 바란다. 초기에는 선정된 개발자의 짧은 발표만을 듣고 그들이 만든 게임을 직접 체험하는 정도에서 그쳤기 때문에, 대부분의 발화가 거의 개발자들의 입에서만 나올 수 밖에 없어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기획단은 이후 꾸준히 페스티벌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을 담고 더 많은 논의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실험해왔다.
* OOI 2019 게임 토크 - 〈다시 만난 오징어〉
2015년에는 기획단의 시각에서 각 선정작을 왜 선택했는지를 설명하고 참가자의 작품이해을 넓히는 방식으로 발표를 확장했는데, 많은 참가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발표 & 크리틱 방식을 수년간 유지해왔는데, 이 크리틱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체 선정작을 모두 훑느라 수 시간을 소모하는 긴 발표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현재는 전체 발표를 여러개의 세션으로 적절히 나누고, 이 세션들이 전시를 방해하지 않고 페스티발 한 쪽 구석에서 따로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발화의 주체가 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개발자들의 발표와 기획단의 크리틱은 모두 단방향이었기 때문에 상호 소통을 통해서 논의의 깊이를 더하고 싶었다. 그래서 2018년 부터 GDC에서 열리는 인디 게임 페스티벌(IGF)의 파이널리스트 인터뷰 시리즈인 Road to the IGF에서 영감을 받아 선정작 개발자와의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데, 기획단으로서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올해 개최되는 OOI 2021에서는 기획단 외부의 인터뷰어들을 섭외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논의에 동참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사실 페스티벌 안에서 다양한 대화가 가능하게 하는데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참가자에게서 발화를 끌어내는 것이다. OOI에서는 ‘신선한 게임 플레이’ 라는 주제를 많은 이벤트에서 흔히들 사용하는 방식은 일종의 피드백 보드를 만들어서 참가자들이 직접 노트를 작성해서 보드에 붙일 수 있게 하는 식인데, OOI 기획단에서는 이 방법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메모지에 글을 써서 작품 옆에 있는 보드에 붙이는 방식은 단순 인상평일 수 밖에 없고, 간단한 의견을 써서 보드에 붙이고 끝나는 행위에는 소통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논의의 시발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OOI 기획단은 7회째에 접어드는 현시점에서도 참가자에게서 시작되는 대화를 효과적으로 끌어내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OOI 2021에서는 온라인이라는 플랫폼의 특성을 살려 채팅을 기반으로 한 실시간 문자 소통을 실험할 계획이나, 좀 더 섬세한 기획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아웃 오브 인덱스 (Out Of Index) 는 ‘분류 밖'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변화와 실험을 계속해왔다. 다른 예술 매체와 같이 창작자의 손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창작자가 아닌 게이머의 손으로 비로소 완성되어야 하는,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가진 특성은 게임 페스티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페스티벌 참가자들이 작품을 즐기고,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한 페스티벌 기획은 기획단에게 있어 게임 디자인의 또 다른 영역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OOI의 페스티벌 디자인 실험은 계속될 것이다. OOI가 만들어가고 있는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더 많은 참여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