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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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8. 10.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디지털 미디어 교육에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어린이의 미디어 속 삶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그들의 삶과 문제상황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초등학생의 미디어 이용 중 가장 주목해야 할 플랫폼은 로블록스이다. 로블록스는 2023년 기준(2023, 한국언론진흥재단) 초등학생의 90%가 이용하는 플랫폼이며 10대에서는 남녀 상관없이 유튜브, 카카오톡에 이어 이용률이 가장 높다. 이용률 면에서도 주목해야 하지만, 로블록스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든 성별이 함께 이용하는 ‘메타버스’ 기반 게임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살아간다.
<디지털 시민교육을 위한 어린이 미디어 생활 연구: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는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이의 삶을 이해한 후, 비로소 의미있는 디지털 시민교육이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 소속인 교사 및 연구자들은 직접 로블록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로블록스 속 어린이의 삶을 질적연구방법론으로 분석하였다. 이 글에서는 위 보고서를 인용해 로블록스에서의 어린이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어린이들의 온라인 놀이터, 그리고 작은 지구촌
로블록스가 어린이들에게 중요한 플랫폼이 된 것은 팬더믹 시기 이후이다. 이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고립된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만나 놀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팬더믹 시기가 끝났지만 로블록스 공간은 어린이들의 온라인 놀이터로 살아남았다. 일상 속에 정착한 스마트기기 덕분이기도 했지만 사교육으로 부족해진 공동의 놀이 시간, 소음에 대해 늘 조심해야 하는 공동거주공간의 특성, 안전한 놀이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도시공간 등 다양한 요인이 어린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놀이터를 포기하고 온라인 놀이터를 선택하게 했다. 로블록스는 밤 늦게라도, 잠깐이라도 어린이들이 모여서 놀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거나 멀리 이사를 간 친구, 진학으로 멀어진 친구들과도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만날 수 있다.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공간 안에서 친구들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 만으로도 힐링이 된다고 한다. 서희(11, 여)가 그린 로블록스 경험은 놀이공원처럼 표현되었다. 소통과 어울림은 로블록스 경험의 중심에 있다.

어린이들이 로블록스 안에서 만나는 것은 친구나 가족뿐인 것은 아니다. 로블록스는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장이다. 진희(12, 여)는 로블록스에서 만난 온라인 친구와의 만남이 준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진희는 어린이들이 많이 경험하는 점프맵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했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함께 놀아주고 플레이할 때 기다려 주는 등 배려해 주면서 유대를 쌓았으며 이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많은 어린이들은 로블록스 안에서 친해진 온라인 친구를 여럿 가지고 있다.플레이어들의 다양성은 어린이들에게 국제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완전 핫하게 꾸민 스킨’이나 매너를 잘 지킨다는 이유로 외국인을 선호하는 어린이들도 있다. 특별히 영어를 잘 못해도, 바디랭귀지와 이모트, VR 등을 통해 소통은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스킨은 로블록스에서의 중요한 비언어적 소통수단이다. 어린이들은 모르는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스킨을 이용해 상대방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자신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무료스킨만으로 자신을 꾸미다가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거나 이유없이 욕을 먹을 수도 있다는 불문율도 어린이들 사이에 있다. 여러모로 로블록스에서의 삶 역시 비용이 드는 사회생활인 것이다.
로블록스에서의 부정적 경험들
무료 스킨의 일화에서 드러나듯, 모르는 사람들과의 만남엔 부정적 경험도 있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것은 폭력적 이용자들이다. 어린이들은 유독 한국 이용자들이 이런 특성이 많다고 호소한다. 게임을 하다가, 아이템을 거래하다가 이들은 폭력적으로 행동한다. 소통을 시도하다가 잘 안되어서 자리를 피하면 끝까지 쫓아와 욕을 하는 이용자도 있다. 어린이들은 이런 상황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게임 중 갑자기 욕을 먹은 경험 (김민아, 10, 여)
저학년 어린이들은 이런 일이 있을 때 자리를 피하거나 게임을 중단해 버리지만, 같이 맞서서 욕을 하거나 싸우는 어린이도 적지 않다. 게임 공간 안에서 폭력적 문화가 대물림되는 과정이다.
‘어드민’ 의 괴롭힘은 보다 적극적인 괴롭힘이다. Free Admin 게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어드민 권한을 가질 수 있는데, 어드민 등급이 로벅스 가격에 의해 결정되다보니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높은 등급의 어드민 이용자들이 다른 이용자들을 괴롭히거나 죽이는 명령어를 적용시켜 게임을 못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재윤(11, 여)은 ‘로블록스에 대한 내 생각’을 마인드맵으로 표현하였는데, ‘맵’ 키워드와 관련하여 경험한 기분나쁜 경험에 대한 생각을 가득 적었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점프맵’과 관련하여, ‘어드민이 많다.’, ‘나쁜 어드민’, ‘게임을 못하게 맵을 망가트린다.’ 등의 진술이 반복된다. 고은은 어드민처럼 보이는 사람이 못 가게 하더니 욕을 했고, 쫓아오면서 욕을 하길래 같이 욕을 했더니 그 사람이 신고를 해서 계정이 정지되었다.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어린이들이 경험하는 또 다른 충격적인 경험은 ‘사기’ 이다. 위의 재윤의 마인드맵에도, 다른 어린이들의 만화에도 사기 경험은 가장 높은 빈도수로 나타난다. ‘입양하세요’ 게임에서 이런 일이 특히 빈번하게 일어난다. 아원(16, 여)은 초등학교때 열심히 키우던 닭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용자가 다가와서 좋은 아이템으로 바꾸어준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용자는 닭을 받고 사라져버렸다. ‘실감이 안난다.’ ‘현실을 부정한다.’ ‘게임에서 열심히 번 것이어서 주저앉아 운다.’ 사기는 어린이들이 게임 공간에 들인 노력과 마음을 한 순간에 무너트린다.

로벅스가 만드는 삶의 고난
이런 문제들은 오프라인 공간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들의 삶의 공간이 무료가 아니라는 지극히 냉정한 현실에 기인한다. 로블록스는 로벅스 경제의 토대 위에 세워져 있고, 무료 포인트나 이벤트 등은 없다. 이상적으로는 이러한 로벅스 경제는 어린이들이 광고 없이 디지털 미디어 공간에서 건전한 경제생활을 연습할 수 있는 경험의 토대가 되겠지만, 이용자 중심의 로벅스 세계, 그리고 어린이들의 게임 머니를 통제하는 양육 관행은 어린이들을 로블록스 세계의 경제적 약자로 만들었다. 어린이들의 로블록스 경험에서는 앞서 언급한 ‘사기’ 외에도 ‘구걸’, ‘기부’. ‘노동’ 등의 키워드가 공통적으로, 그리고 높은 빈도수로 나타난다. 오프라인에서라면 아동권리 보호차원에서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온라인에서는 그런 보호가 없다. 미디어 기업 대 이용자의 관계가 아닌, 이용자와 이용자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플리즈 도네이트’ 게임은 기부를 위해 찾는 게임이다. 이곳에서는 기부, 즉 로벅스를 주고받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무과금 유저인 어린이들은 게임을 하고, 점프를 하고, 리액션을 하면서 로벅스를 기부받고 남는 로벅스를 기부하기도 한다. 인터뷰에 응한 어린이들은 이것을 ‘노동’이라고 표현했다. 재미있으려고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로벅스를 얻기 위해 무의미한 플레이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을 하고도 댓가를 받지 못하는 일도 많다. 현수(11, 여)는 이것을 공사장에서 노동을 했는데 월급을 못 받는 것과도 같다고 했다. 심지어 로벅스를 기부해달라고 ‘구걸’을 하는 일도 빈번하다. 기성세대가 듣기에 충격적인 이러한 일화들은 어린이들의 일상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는 2021년 일반논평 제 25호를 통해 디지털 환경에서의 아동권리 또한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것을 발표하였으나,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아직 정글에 가깝다.
디지털 시민의식, 그리고 온라인에서의 아동 권리
로블록스 경험 속에 포함된 부정적 경험들에 대해 기성세대들이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점은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차단은 근본적으로 디지털 미디어에서의 삶을 막을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이것은 어린이들이 미디어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소통과 즐거움의 기회, 그리고 미디어 이용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권리 침해에 해당한다.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 안에서 어린이들은 미디어 정글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고, 삶의 지식을 얻는다.
연구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면담 전에는 노동, 혐오와 차별, 성적 대상화, 상업적 이용, 언어폭력 등 많은 문제들을 권리침해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면담과 선생님과의 대화를 거치면서 로블록스에서 만난 위기에 대처하거나, 악성 이용자를 차단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나중에 찾아와서 나쁜 이용자를 차단한 이야기를 해 준 어린이도 있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디지털 시민교육이 좋은 로블록스 세계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로블록스는 자신들에게 소중한 공간이니, 서로서로 약속을 잘 지켜서 로블록스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어른들의 도움이다. 어른들은 보호자이기도 하지만, 로블록스와 같은 디지털 세계를 구성하는 이용자들이며, 아이들에게는 미디어 안의 강자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민의식이 어린이 청소년 뿐 아니라 모든 미디어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중요한 이유이다.
이 연구는 로블록스 본사에 전달되어, 어린이들의 의견들은 일부 새로운 정책에 적용되었다. 교사, 학부모, 어린이를 위한 가이드북[1]이 만들어지고, 로블록스의 신고기능을 강화하고, 필터를 없애는 대신 채팅기능을 연령별로 차단하는 등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어린이들의 경험이 지금 이 글처럼 더 많은 이용자들에게 공유되고, 게임 교육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끌어내는 것일 듯 하다. 디지털 시민들의 노력을 통해 더 안전한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길 기대한다.
[1] 로블록스-디지털 시민교육 가이드북은 KATOM 홈페이지(katom.me)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참고문헌
박유신, 김아미, 김세진, 김완수, 김원영, 박소현, 서용리, 양철진, 하윤영, 차은영(2023) 「디지털 시민교육을 위한 어린이 미디어 생활 연구: 로블록스에서 어린이는 어떻게 생활하는가?」,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