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게임을 향하여: 게임 접근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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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1. 12. 10.
1. 왜 여전히 게임 접근성이 문제인가
‘장애인 게임 접근성’ 이슈가 2021년 국정감사를 뜨겁게 달궜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11월 14일 국정감사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에 장애인 게임 접근성 확대를 주문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콘진원 전체예산 중 장애인 사업관련 예산이 0.48%에 불과하며, 콘진원에서 2021년 한 해 동안 진행된 40여건의 연구 중 장애인 관련연구가 전무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김재석, 2021. 10. 14). 물론 장애인 게임 접근성 이슈가 진공에서 등장한 것은 아니다. 당장 지난 4월만 해도 장애인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게임법 개정안이 발의(대표발의: 국민의힘 하태경)된 바 있고(이두현, 2021. 4. 20), 국정감사 직전 국회입법조사처에 의해 장애인 게임 접근성 향상에 대한 정책적·산업적 고려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으며(이하은, 2021. 10. 15). 2021 지스타(G-STAR)에서는 장애인 게임 접근성 토론회가 개최되기도 했다(김재석, 2021. 11. 18). 그동안 장애인단체나 시민단체, 소수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다른 매체처럼 게임에서도 접근성 향상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있어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여전히 한국에서 게임 접근성 문제에 대한 가시적 성과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정부부처나 업계, 그리고 연구자·비평가들의 의식 부족과 미흡한 추진력 탓이 크다. 게임에 대한 사회 전반의 반쪽자리 인식도 문제다. 산업으로서의 게임은 미래의 신성장 동력으로 찬양받아왔지만, 성장의 의미 그리고 향유문화로서의 게임은 사회담론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돼왔다. 향유문화로서의 게임에 대한 빈약한 담론수준은 보다 많은 사람에게 게임이 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데 긍정적이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게임 접근성이라고 했을 때 단순히 시리어스 게임(serious game) 정도와 연결해 생각하고 마는 경우도 많다. 물론 국내·외에서 장애인이나 노인 등을 위한 다양한 시리어스 게임이 개발되고 있음에도, 이러한 생각은 자칫 장애인만을 위한 게임을 고려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2. 해외의 사례들
해외사례들이 한국과는 다른 사회·정치·문화적 맥락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만능이 될 수 없음을 감안한다 해도, 게임 접근성에 대한 해외의 여러 시도들은 현재의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준다.
게임 접근성에 대해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가이드라인 같은 것은 없다. 여러 단체들의 활동과 연구를 중심으로 한 개별적인 시도들만이 있어왔다. 대표사례는 미국 에이블게이머재단(AbleGamers Foundation)의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실질적 지침(A practical guide to game accessibility)’이다. 에이블게이머재단은 2004년 설립된 국제협력재단으로, 장애가 있는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활동목표로 삼는다. 다만 이들의 활동은 단순히 장애 플레이어가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디지털 시대에 배제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풍부한 사회적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개방된 소통과 교육, 연구 등을 수행하며, 웹사이트(ablegamers.org)를 통해 관련 커뮤니티 활동 등을 지원한다.
에이블게이머재단은 2012년 미국 장애인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people with Disabilities)에서 수여하는 헌 리더십 상(Hearne Leadership)을 수상했다. 또,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실질적 지침’ 제공을 통해 2013년 다발성경화증협회(MS Society)로부터 다 빈치 상(Da Vinci Awards)를 수상하기도 했다. 다 빈치 상 수상은 장애인을 위한 구체적 생산물이 아닌 일종의 기록-개념에 부여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실질적 지침’에는 운동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인지장애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포함된다. 그리고 각 장애별 수준에 따라 다른 세부지침을 제공한다. 그 밖에 최근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는 모바일게임에 대한 지침도 별도로 마련한 바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에이블게이머재단은 이후로도 비영리단체인 변화를 위한 게임(Games for Change)의 뱅가드 상(Vanguard Award, 2021), 여성 게이머 커뮤니티 게임허즈(gameHERs)의 로지텍 G 자선 상(Logitech G Charity of the Year Award, 2021) 등 여러 관련단체로부터 수많은 상을 받아왔다(에이블게이머재단 홈페이지, ablegamers.org).
* 에이블게이머재단 홈페이지(ablegamers.org)
국제게임개발자협회(International Game Developers Association: 이하 ‘IGDA’) 내 GA-SIG(Game Accessibility Special Interest Group)의 가이드라인 역시 주목할 사례다. 1994년 창립된 IGDA는 미국의 비영리기구이나, 전세계 개발자들이 가입해 활동한다. 협회 안에는 특정사안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는 이들이 모인 다양한 SIG들이 있는데, GA-SIG도 그 중 하나다. GA-SIG은 게임 접근성 향상이 플레이어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할 뿐 아니라, 게임 개발자나 퍼블리셔 등에게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게임 접근성이 플레이어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잠재적인 플레이어들을 유입하는 동기가 되며, 규제나 진흥의 쟁점을 조정하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게임에 기반한 교육을 확대할 가능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GA-SIG의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다음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① 컨트롤러 재구성 허용, ② 대체 컨트롤러 지원, ③ 오디오 차원의 대안 제시(대체자막, 캡션, 컨트롤러 진동, 시각적 대기열 등), ④ 오디오 개별영역 조정의 허용(음악·음향효과·대화의 볼륨 등에 대한), ⑤ 높은 가시성 그래픽 제공, ⑥ 색맹 친화적 디자인, ⑦ 광범위한 난이도 및 게임속도 조정 옵션 제공, ⑧ 연습, 교육, 자유로밍, 튜토리얼 모드 허용, ⑨ 단순화된 인터페이스 제공, ⑩ 기타 확장목록(단위색상 설정, 셀프 보이싱 기능 허용, 오디오 GPS 고려 등). 이 가이드라인은 게임을 만드는 사람/회사를 대상으로 하며, 실제 개념과 설명 뿐 아니라 풍부한 사례 제시를 통해 다양한 플랫폼에서 폭넓게 적용 가능하게끔 기획되었다(IGDA 홈페이지, igda-gasig.org).
* IGDA GA-SIG의 가이드라인(igda-gasig.org)
국내에도 잘 알려진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Game Accessibility Guidelines)’은 유럽의 게임 연구자와 개발자 등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 가이드라인은 게임을 만드는 주체가 게임 플레이어들을 불필요하게 배제하는 것을 방지하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길 수 있게끔 하겠다는 목표를 지닌다. 에이블게이머재단의 지침과 마찬가지로 운동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인지장애를 고려하면서, 언어장애, 그리고 공통사항을 추가로 포함한다. 에이블게이머재단 지침이 장애별 수준에 따라 다른 세부지침을 제공한다면,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은 각 장애에 대해 단계별(기초-중급-상급)로 접근한다.
*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gameaccessibilityguidelines.com)
‘게임 접근성’은 최근 20년 사이에 제기된 상대적으로 새로운 개념이다. 게임이 단순히 오락기능만을 갖는 수준에 머물지 않으며, 재활이나 교육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고, 디지털 사회의 새로우면서도 주된 미디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해외사례들이 미국과 유럽을 주축으로 만들어졌다고는 해도, 일국적 차원에서 진행된 것은 아니다. (IGDA의 경우 전세계 개발자가 함께 활동한다는 점, 그리고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의 경우 유럽 여러 나라의 게임 전문가들이 협력해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국제적 차원에서 진행된 협력의 결과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노력이 국제적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게임을 통해 전개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그것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에 동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3.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해 고려해야 할 것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일차적으로는 장애나 노화로 인해 게임에 접근할 권한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경제적·사회적으로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누군가가 새로운 미디어 환경으로부터 불필요하게 배제되어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에이블게이머 재단이 미국 장애인협회와 다발성경화증협회가 주는 상을 받게 된 것은, 게임 접근성이 단지 신체적·정신적 불편함만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기술적 환경으로부터의 배제와도 연결되는 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낮은 접근성은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생산되는 결과물이다. 신체적·정신적 기능이라는 측면에 더해, 사회적·제도적 환경(의 미비라는) 측면, 그리고 인식(의 미흡이라는) 측면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게임 접근성에 대한 고려가 (지금 한국의 맥락에서처럼) 장애인에 대해서는 당연히 이뤄지면서, 보다 넓은 시각으로까지 확대돼야 함을 시사한다. 시각 확대를 위해서는 게임에서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살피는 일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소외계층은 통상적으로 신체적·세대적·경제적·지역적 약자로 구분되지만, 정확하게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소외계층으로 분류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분류주체마다 이견이 있다. 더욱이 ‘게임’에서 소외계층은 다른 소외계층과 다른 것일 확률이 높다. 사회일반에서 소외계층으로 분류되기 어려운 개인이나 집단이, 게임에서는 소외계층일 수 있다. 급격한 사회변화, 미디어 환경 및 이용행태 변화, 코로나19(COVID-19) 확산 등으로 인해 게임 소외계층 개념의 확대 혹은 재규정이 요구됨은 말할 것도 없다. 즉, 앞으로의 게임 접근성은 ‘제약조건 하에서조차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정도’를 말하는 개념으로, 여기서 제약조건은 신체적·정신적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적·제도적 차원의 모든 조건을 아우르는 것이다.
게임 접근성은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이해, 포용, 시혜 차원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요청되는 하나의 사회적 권리 차원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이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국제적 흐름에 전혀 동참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게임 접근성이 갖는 사회적 권리가 국가적 차원에서 경시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국의 게임산업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성장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기본적인 부분조차 챙기고 있지 못하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그러한 산업적 성장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게임 접근성 향상은 근본적이고 실질적이면서 구체적인 차원의 문제다(이동연·강신규·이광석·최준영·허민호, 2013).
게임 접근성을 우리 사회에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관련 제도와 사업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공공과 민간의 노력이 동시에 요청된다. 게임 접근성이 사회권 차원에서 제기되는 공공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공공이 먼저 관련 연구와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우리 사회의 게임 소외계층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고, 그들이 게임에 접근할 시 어려운 점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이용행태를 보이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해외사례를 참고해 한국적 맥락에서의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업계 및 플레이어들과 함께 만들어 가면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게임 접근성이라는 개념이 아직 낯선 것이므로 개념을 정립하고 관련 홍보 캠페인을 광범위하게 펼쳐나갈 필요도 있겠다. 민간의 경우 해외에서 진행되는 여러 활동들이 민간 재단이나 협회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게임 접근성을 높이려는 활동은 단기적으로 플레이어층을 확장하고, 장기적으로는 게임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초석이 된다. 정부부처 및 플레이어들과 함께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가이드라인을 게임에 반영하며, 광범위한 홍보 및 지원활동을 통해 게임 접근성을 다각도로 높여야 한다. 모두를 위한 게임이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누구나 게임을 즐길 수 있고,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에서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진정한 의미의 ‘게임 문화’가 시작될 것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