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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만의 게임 바깥에서 서성거리기 : 다크소울3과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 (장려상)

    다크소울3은 나의 첫 패키지 게임이었다.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이 게임을 소개하는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고딕 건물이 빛바랜 색감과 얽혀드는 게임 속 광경이 매력적이었고,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스팀 게임이라는 걸 구매해 봤다. 무턱대고 시작한 게임은 참 까다로웠다. 알고 보니 다크소울은 어려운 난이도로 이름이 높은 타이틀이었다. 이 게임의 디자인은 다양한 함정이나 어려운 전투를 활용해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부각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고 화면에 떠오르는 'You Died' 문구는 일종의 밈이 될 정도였다. < Back 그들만의 게임 바깥에서 서성거리기 : 다크소울3과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 (장려상) 07 GG Vol. 22. 8. 10. 1. 암호 설정 fromgall, 그곳의 ‘전통’ 다크소울3은 나의 첫 패키지 게임이었다.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이 게임을 소개하는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고딕 건물이 빛바랜 색감과 얽혀드는 게임 속 광경이 매력적이었고,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스팀 게임이라는 걸 구매해 봤다. 무턱대고 시작한 게임은 참 까다로웠다. 알고 보니 다크소울은 어려운 난이도로 이름이 높은 타이틀이었다. 이 게임의 디자인은 다양한 함정이나 어려운 전투를 활용해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부각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고 화면에 떠오르는 'You Died' 문구는 일종의 밈이 될 정도였다. 튜토리얼 보스인 '군다'를 9번의 시도 끝에 잡았을 때,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지고 말았다. 동시에 짜릿한 흥분이 온몸을 내달렸다. 거듭된 죽음 끝에 쟁취해낸 승리는 퍽 달콤했다. 그렇게 맵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는데, 공략을 봐도 내 힘으로 온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했다. 그러던 와중 '프롬 소프트웨어 갤러리(이하 : 프롬갤)'라는 사이트를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프롬 소프트웨어 사가 발매한 다크소울3을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이들은 fromgall이라는 통일된 서버 비밀번호를 설정해 까다로운 보스나 맵을 협력해줬고, ‘복지’와 같은 이름으로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뉴비에게 각종 템을 지원했다. 별도의 가입 절차 없이 익명으로도 글을 업로드할 수 있다는 갤러리의 특성은 이제 막 게임이라는 걸 시작한 당시의 나에게 더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눈팅 끝에 익명으로 도움 요청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댓글은 바로 달렸다. “그었음.” 나는 프롬갤의 게시글을 훑으며 게임 관련 새로운 정보를 발견하기도 하고, 타인의 기묘한 플레이를 보며 즐거움을 얻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특정한 게시글은 어떤 순간에서 내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분리감을 느끼게 했다. 프롬갤의 '전통'이었다. ‘어떤 한 집단에서 꾸준히 전해져 내려오는 행위’라는 전통의 사전적 의미를 환기하듯, 다양한 사람이 게임 내에서 유사한 행위를 수행하고 그것을 인증하는 형식으로 게시글을 작성했다. 많은 갤러들은 이에 긍정적으로 동조함으로써 긴 수명을 유지했다. 이 특정한 게시글은 일정한 포맷을 갖고 있다. 그 골자는 이러하다. 요르시카라는 이름의 NPC가 있다. 이 NPC는 '암월의 검'이라는 계약을 주관한다. 플레이어는 그와 계약을 맺고 특정 아이템을 모아 바쳐 보상을 얻는다. 아이템을 얻는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지난한 노가다를 요한다. 모든 노가다를 마쳐 보상을 다 얻은 플레이어는 요르시카를 (창의적으로) 죽인다. 2. “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 1) 프롬갤에 게시된 글을 바탕으로 이 온라인 커뮤니티의 전통 포맷을 한 번 살펴보자. “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는 글은 프롬갤의 전통의 요소를 모두 갖췄다. ‘드뎌(드디어) 끝났다’는 부사와 동사를 통해 작성자가 요르시카와 계약-서약자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장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준다. 작성자는 NPC의 이름 뒤로 디시인사이드에서 욕설 ‘시발’을 변용한 ‘야발년’을 결합하여 이 인물에게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캡쳐된 게임 화면에서 작성자의 캐릭터는 ‘탐욕의 낙인’이라는 머리 장비를 장착하고 있다. 이는 캐릭터의 발견력 스탯을 올려주는 장비로, 아이템 노가다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상자를 뒤집어 쓴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의 모습은 그 자체로 노가다 행위를 증빙해준다. 다크소울3에서 발견력 스탯을 증가시키는 장비는 제한적으로 존재하므로 공물 노가다에 뛰어든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외관은 전형적인 구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스크린샷 속 캐릭터의 모습은 작성자와 유사한 경험을 겪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표상이 된다. 작성자는 이제 막 암월의 검 노가다를 끝냈다. 공물 아이템 30개를 모아왔을 때 요르시카가 이를 보상과 교환하며 출력하는 특수 대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왼쪽 하단의 UI는 작성자의 캐릭터가 장착하고 있는 장비를 보여주는데, 윗칸은 주문 아이템이 할당된 자리이다. ‘암월의 빛의 검’이라고 적힌 흰 글씨는 스크린샷 속에서 캐릭터가 대검에 인챈트하고 있는 기적의 이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기적은 암월의 검 계약의 최종 보상이다. 작성자는 대사를 확인했으며, 노가다의 보상을 획득했다. 따라서 프롬갤의 전통이란 곧 게임 내 성취를 인증하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요르시카라는 NPC가 인게임에서 제공할 수 있는 물리적(인벤토리에 기입되는) 인센티브를 모두 취득했다. 이제 다른 동기가 개입하지 않는 이상 그와의 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 이에 그는 요르시카로부터 받아낸 기적을 살해에 직접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요르시카 어금니 꽉 깨물어라..’는 문장은 막 행할 폭력을 예고한다. 그는 자기 캐릭터가 암월의 빛의 검 기적을 대검에 바르는 순간적인 모션을 포착함으로써 역동성을 강화하며 이미지를 끝맺는다. 한편으로 NPC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죽였는지는 글의 매력을 판가름하는 요소가 된다. 이 글에서 인용한 게시글의 작성자는 오른손에 로스릭 기사의 대검으로 요르시카를 가격하려 한다. 그런데 UI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검의 이미지 우측 상단에 빨간 X자가 표시되어 있다. 이는 작성자의 캐릭터가 대검 아이템을 장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스탯을 갖지 않았다는 알림이자 경고다. 요구치를 충족하지 않은 장비는 제 성능을 낼 수 없으며 미진한 피해를 준다. ‘일부러 데미지 낮춰서 더 때릴꺼라는 생각은 안하십니까? 당신’이라는 타 갤러의 댓글은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작성자의 행위에 개연성을 부여해준다. 타인이 내러티브를 붙여 해석해줌으로써 작성자의 게시글은 전통의 계보에 안착하는 데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즉 전통이란 프롬갤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축적된 일정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발화 형식이라고 바라볼 수 있다. 3. 게임에서의 죽음 문제 여기서 내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살해 행위 그 자체가 아니다. 율이 게임 플레이를 두고 “플레이어가 게임 내부의 규칙과 상호작용 하면서 그 자신의 목표, 레퍼토리, 선호를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한 바 있듯, 게임은 플레이어의 직접적인 개입을 필요로 한다. 플레이어의 상호작용과 몰입을 강화하기 위한 요소로써 죽음은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왔다. 죽음은 지속해오던 모든 상태 일체로부터 정지되는 것이며,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는 영원한 단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게임 속 죽음은 플레이어가 규칙을 이해하게 해주는 수단이 된다. 특히나 RPG 게임과 같은 장르에서는 길을 막는 적을 제거하면서 특정한 장소에 도달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게임 메커닉으로 차용해 왔다. 플레이어가 경험한 죽음은 내부 규칙을 이해할 단초가 되며, 피드백을 거쳐 적을 성공적으로 살해할 경우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역량을 높인다. 게임에서의 죽음은 바로 이 지점에서 플레이어 개인의 폭력성·사회성에 대한 우려와 만나기도 한다. 화면 속이지만 누군가를 찌르고, 때리고, 살해하는 행위는 규범과 법률 속에서 자란 교양 시민과는 반대 선상에 놓인 행위로 이해된다. 게리 영은 이를 STA(Symbolic Taboo Activity)로 설명한다. 이는 가상에서는 가능한 행위이나 현실에서는 법과 도덕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들이라는 것이다 2) . 그러나 플레이어의 행동 범주를 설정하는 절대적인 배경으로 게임의 규칙이 존재한다. 특정한 행위를 유도하는 일련의 규칙이 있는 이상 이를 개인의 비도덕성 문제로 환원하기는 어렵다는 측면이 존재한다 3) . 실제로 요르시카를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인 '요르시카의 성령'은 강력한 살해 동기로 작동한다. 이렇게 바라보았을 때 단순히 요르시카를 죽이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주로 플레이어 개인이 그 게임 세계 내부에 시선을 두고 플레이를 수행하고 완결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는 놀이가 일상생활과 분리된 그 고유의 질서를 갖는다는 ‘매직 서클’의 의미를 환기한다. 4. 여기 ‘나쁜 남자’가 있다 프롬갤 전통이 갖는 독특한 지점은 커뮤니티에 전시하여 공유하는 과정에 있다. 전시는 게임 밖의 세계에 위치한 청중을 동반한다. 독특한 플레이는 화제성을 갖기 마련이다.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의 인터페이스는 경우에는 ‘추천’을 받아 ‘개념글’로 올라가는 구조를 통해 화제성을 수치화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위해 원칙과 같이 보편적인 범주로 규정된 것 이상으로 발휘된 폭력이 심저에서 불쾌감을 자극할 때, 게시글 아래에 달린 경악성의 댓글은 그가 수행한 괴멸적인 플레이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즐길 수 있다. 니스는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지는 행위에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즐거움을 준다”고 이야기한다. 4) 이 ‘나쁜 남자’와 같이 규범을 위협하는 존재에 자기를 동일시할 수 있는 데서 즐거움은 증폭된다. 전시는 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할수록 좋다. 그러한 목적성을 갖고 특정한 라인을 따라 행위를 수행하게 되면 갤러들은 익숙한 내용에 익숙한 반응과 익숙한 호의를 내비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플레이가 따라가야 할 일종의 포맷이 생기는 셈이다. 그렇게 형성된 게시판 내의 놀이 형식에 맞추어 나의 플레이를 만드는, 게임의 매직 서클 내외부를 넘나드는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프롬갤이라는 공동체 내의 동력이 게임 내 플레이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에서 작성자는 NPC를 폭행하기 위해 대검을 선택했다. 대검이라는 무기 종은 프롬갤 내부에서 특정한 상징성을 갖는데, ‘상남자’라면 마땅히 들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무기로 플레이하는지에 따라 ‘게이’와 ‘진짜 남자’를 구분하는 발화를 프롬갤 내에서 목격할 수 있다. 게이와 상남자의 구분을 통해 프롬갤이라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남성성에 대한 상상을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직검과 방패의 조합을 의미하는 ‘직방’은 이상적인 남성성을 갖추지 못한 ‘게이’와 동의어로 활용되는데, 이는 구르기를 통해 공격을 피하는 대신 방패로 막아내는 게 남자답지 못한 행위로 여겨지는 탓이다. 대검을 들기 위해서는 캐릭터가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어야 한다. 방패를 들지 않고서 자신의 체격을 훨씬 상회 하는 무기를 든 캐릭터는 그 자체로 공세적인 인상을 준다. 그는 비열하게 방패 뒤로 숨지 않는 ‘진정한 사나이’나 다름없다. 이는 수잔 제퍼드가 레이건 시대의 할리우드 남성 재현을 설명하기 위해 표현한 ‘하드 바디’를 떠올리게 한다. “지치지 않는, 근육질의, 무적의 남성 육체”에 대한 환상을 바탕으로 프롬갤은 “자신의 뜻을 남에게 강요하기 위해 강화된 몸”을 꿈꾼다. 5) 그러는 한편 암월의 검 계약은 플레이어를 노가다로 인도하며, 그는 희박한 확률이 그저 터지기만을 바라면서 주체성을 상실한다. 플레이어는 무력한 확률 앞에서 억울함을 환기한다. 프롬갤의 갤러들은 이를 남성 섹슈얼리티의 문제로 치환하여 요르시카를 정복함으로써 주체성을 되찾으려 한다. 게시글 작성자의 캐릭터는 대검을 들 수 없는 스탯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소화하기 힘든 장비를 들기를 고수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프롬갤이라는 집단 내부에서 설정된 남성성의 환상을 입고서 요르시카를 살해한 셈이다. 5. 밈 앞에서 웃지 못할 때 이길호는 디시인사이드에서 발생하는 게시물이 끝없이 분화하고 변형되는 과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산물은 하나의 갤러리 안에서 생산된다. 그것은 갤러들 사이의 관계에서 결과적으로는 어느 특정 갤러의 결과물로 도출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생산물의 소스는 명백히 다른 갤러에게 제공받았다. 그것은 여러 갤러들의 손을 거치면서 변형을 맞는다. 최종적으로 하나의 갤러가 일종의 ‘완성본’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매 순간 새로운 변형의 힘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미완성’이다.” 6) 이러한 갤러리 내 생산물의 분화 과정은 밈의 발생과 활용 방식을 닮아있다. 본래 밈이란 리처드 도킨스가 특정한 문화 요소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한 문화 유전자의 개념이나 온라인 생활에서는 달리 통용된다. 주로 밈이란 “특정한 이미지, 영상, 대사나 어휘 등이 유행하면서 퍼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7) 밈의 재미가 “공동의 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며, 이에 밈이 호응을 얻은 것은 “개인주의 시대에 나타나는 하나의 증상”이라는 분석이 존재한다. 8) 밈이 생산되는 환경은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와 유사해 보인다. 갤러들은 모여든 게시판에서 해당 주제를 갖고 말하기 위해 존재한다. 친목질을 배제한다는 엄격한 수평 관계를 유지하며 그저 한 개인으로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디시인사이드의 게임 게시판이 유머러스한 공간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게임 플레이라는 공감대를 나누는 과정에서 타 갤러와 동질감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유머란 곧 집단 내부에서 통용되는 규율이나 사고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프롬갤의 요르시카 살해 전통에서 유머를 느낀다면 그것은 어째서인가? 또 유머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전통이라는 밈에서 유머를 느낄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프롬 갤러들이 발화하는 여성 혐오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들 공동체 내부에서 승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르시카를 살해하는 게시글은 2016년 다크소울3이 발매된 이래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주 개념글로 올라갔다. 2022년 프롬 소프트웨어의 신작인 엘든링이 출시된 이래, 엘든링의 열기를 즐기는 지금의 시점에서 요르시카를 죽이는 전통은 이제 개념글에서 찾아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프롬갤의 전통을 전통으로 만들어낸 동원을 상실하지 않은 이상, 새로운 전통이 태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다만 밈이 될 정도로 화제성을 가진 플레이가 아직 전시되지 않았을 뿐이다. 나쁜 남자가 되기 위해 안달 난 프롬갤 앞에서, 나는 그저 서성거리고 있다. 1) 권천. “[일반] 똥3)요르시카 야발련아 드뎌끝났다.” 2021.11.28.등록. 2022.06.02.접속. 프롬소프트웨어 마이너 갤러리.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fromsoftware&no=2383063&page=1 2) Young, G. (2019). Enacting immorality within gamespace: Where should we draw the line, and why? In A. Attrill-Smith, C. Fullwood, M. Keep, & D. J. Kuss (Eds.), The Oxford handbook of cyberpsychology (pp. 588–608). Oxford University Press. pp. 589. 3) 미구엘 시카트. 김겸섭 역. 컴퓨터 게임의 윤리(n.p.: 커뮤니케이션 북스, 2014 4) Young, G. (2019). Enacting immorality within gamespace: Where should we draw the line, and why? In A. Attrill-Smith, C. Fullwood, M. Keep, & D. J. Kuss (Eds.), The Oxford handbook of cyberpsychology (pp. 588–608). Oxford University Press. pp. 600. 5) 수잔 제퍼드. 이형식 역. 하드 바디(n.p.:동문선, 2002) 6) 이길호. 우리는 디씨. (2012). 이매진: 서울. 82쪽. 7) 정지우. “무엇이 밈이 되는가”. 민음사. 릿터(32). 14쪽. 8) 이자연. “밈 검열, 그게 진짜이긴 해?”. 민음사. 릿터(32). 30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게임이 이야기를 경험시키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최근에는 <마라톤>을 플레이했습니다.

  • 유럽 속의 타자, 게임 속의 동유럽

    서구, 오늘날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 불리는 이 말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북미와 유럽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근대를 이루는 많은 기술적, 정치적, 문화적 배경들의 원산지로서 서구는 일종의 기원으로 여겨지며, 그 중에서도 특히 근대적 의미로서의 북미가 사실상 유럽으로부터의 문명 이주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대 세계의 많은 부분은 유럽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Back 06 GG Vol. 22.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확률형 부분유료결제 앞에서의 EA가 마주한 고민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으면, 얼티메이트 팀을 구성할 수 없으므로 한국 시장에 은 핵심 요소가 사실상 탈거된 상태로 시장에 출시되었다. EA는 얼티밋 에디션과 FC 포인트 판매 제외의 이유에 관해 "국내법 변경으로 인해 한국에서 FC 포인트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한국 유저들이 7월 17일부터 선수팩, 드래프트, 소모품, 진화에 사용하는 FC 포인트를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소개했다. 국가의 규제와 게임사의 사업 전략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aeseok Kim Worked for eight years as a reporter at ThisIsGame. Now handles external relations at a subculture startup. Loves editors and the power of cheat codes.

  • The challenges of subscription-based gaming in Europe

    The last 15 years have witnessed major changes in the way we design and consume games made possible by better and faster internet connections, and new (mobile) technologies. Where computer games were once bought as physical copies in a retail shop, and then required the player to spend hours in front of the family computer or gaming console of the living room, games can now be played everywhere and at any time. But this has not only changed how we consume games, but also how games are designed and put to market. A range of very different new business models and monetization schemes have emerged such as games-as-service, microtransactions, cloud-gaming, in-game advertising along with collectibles and NFT´s and so forth.   < Back 09 GG Vol. 22.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Game Researcher) Ida Jørgensen (Game Researcher) Bora Na A game researcher. Game-playing goes back quite a long way, but the first encounter with game studies came by chance, through a game course taken at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Since graduating, has carried out research and writing centered on game history and culture, here and there.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Games, The Theory of Games, and Mario, Born in '81, among others.

  • 비디오 게임이라는 강신술의 세계에서(장려상)

    미래의 비디오 게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구차한 물음에 수많은 미디어들은 상당량 유사한 패턴으로 반응한다. 이를테면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이자 해당 작품을 영화화한 작품 〈레디 플레이어 원〉은 육체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아바타 캐릭터로 이루어진 초대형 MMORPG라는 형태로 구현되는데, 지금 시점에서는 구태의연한 표현에 가깝다. 1994년 방영을 시작한 〈기동무투전 G 건담〉에서도 이미 플레이어의 육체를 트레이싱해 반응하는 아케이드 대전 액션 게임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주장하는 미래의 비디오 게임은 통상 플레이어 육체의 즉시적 피드백, VR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세계의 확립, 대체 육체가 활동할 수 있는 사이버 스페이스적 환경이라는 3개의 요소를 고정된 표징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다.  < Back 비디오 게임이라는 강신술의 세계에서(장려상) 07 GG Vol. 22. 8. 10. 미래의 비디오 게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구차한 물음에 수많은 미디어들은 상당량 유사한 패턴으로 반응한다. 이를테면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이자 해당 작품을 영화화한 작품 〈레디 플레이어 원〉은 육체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아바타 캐릭터로 이루어진 초대형 MMORPG라는 형태로 구현되는데, 지금 시점에서는 구태의연한 표현에 가깝다. 1994년 방영을 시작한 〈기동무투전 G 건담〉에서도 이미 플레이어의 육체를 트레이싱해 반응하는 아케이드 대전 액션 게임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주장하는 미래의 비디오 게임은 통상 플레이어 육체의 즉시적 피드백, VR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세계의 확립, 대체 육체가 활동할 수 있는 사이버 스페이스적 환경이라는 3개의 요소를 고정된 표징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다. 이 세가지 요소가 주장하는 것은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일체화된 움직임으로 정확히 환원된다. 이러한 미디어가 보통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면, 진보된 기술이 플레이어와 캐릭터라는 두 육체간에 발생하는 근원적인 ‘막(barrier)’을 제거해 줄 것이라는 상상에서 기인한 셈이다. 이는 역으로 그러한 막의 제거, 그러니까 일체적 경험을 제공하는 게임이 마치 ‘루두스적 이데아’로 인지되는 경향이 있음을 시사한다. 손가락으로 조작하는 컨트롤러,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시점과 시간성의 분리 등은 기술이라는 한계로 인해 구현하지 못하는 일체화의 우회적 시뮬레이션에 그친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이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잘못된 신화에서 기인한 인식이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비디오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캐릭터와의 일체화에 대해 끝없는 미끄러짐을 경험한다. 요컨데 처음 게임 컨트롤러를 잡아본 사람의 행위를 감상할 때에, 우리는 캐릭터의 움직임을 끝없이 트레이싱하려는 이상한 율동성을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게임에 익숙해질 때가 오면 그러한 율동은 금새 사라지고 마는데, 이는 어떠한 허들을 넘어가는 순간에 자신과 캐릭터가 분리된 육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게이머들에게 여전히 골칫거리로 분류되는 3D 멀미의 경우 또한 이런 미끄러짐의 정확한 예시가 된다. 3D 멀미의 주요 골자는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감각을 하나로 융합시켰을 때-요컨데 두 육체가 하나인 것으로 다룰 때- 양자가 느끼는 감각의 틀이 어긋남에 따라 발생한다. 공교롭게도 많은 경우 3인칭 모드로 변경하면 해소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육체는 캐릭터와의 분리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애당초 2D 플랫포머의 안정적인 플레이 감각이 이러한 모든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주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랍 풀롭Rob Fulop의 그 유명한 문장, “그는 나예요. 마리오는 하나의 커서입니다.He’s me. Mario is a cursor.”에서 오직 후자의 문장만을 취할 생각이다. 마리오는 커서이며, 그렇기에 내가 아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명령(command)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을 통해 하나의 총체적 현실을 도출하는 매체에서 양자의 연결을 무시한다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지 않다. 때문에 두 육체간의 일체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일정량 불가능한 문제다. 여기서 부정해야 하는 것은 두 육체가 완전한 합일을 지향한다는 목적론적 요청이다. 플레이어와 캐릭터는 확실히 일체화한다. 단, 그것은 완전한 합일을 지향하지 않는다. 애당초 플레이어와 캐릭터는 완전히 다른 감각, 시점, 정보들로 게임 내부의 세계를 바라본다. 그런 점에서 둘은 근본적으로 완전히 일체화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예를 들어 일련의 대전 액션 게임들은 상당히 단순한 현실-적과 나라는 일대일의 상황-만을 시뮬레이트하며, 플레이어는 캐릭터가 설정적으로 ‘숙달했을 것’이 당연한 동작들을 발생시키기 위해 특정한 조작을 필요로 한다.. 플레이어가 동작과 그 속성을 더 많이 익힐수록 캐릭터 역시 자신의 숙달성을 더 돋보이게 표출할 수 있기에 둘은 다소의 일체성을 지닌다. 하지만 여기서 양자간에는 완전히 다른 정보의 값을 갖는다. 플레이어는 캐릭터의 좌측면에서 상황을 바라보며-이를 통해 두 인물 간의 거리에 대해 객관적 정보를 얻는다-, 자신 뿐만이 아닌 ‘상대편 캐릭터’의 체력과 기력이라는 정보를 모두 확인할 수 있다. 게임 내부의 현실에서는 결코 가시화될 수 없는 정보다. 그 외에도 RPG의 레벨, 장비의 전투력, 스테이터스 이상이나 각 스킬의 수치화된 정보 역시 결코 캐릭터들의 현실에선 정량화될 수 없는 정보값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플레이어와 캐릭터가 일체의 위계를 형성한다는 결론으로 연결된다. 요컨데 플레이어는 캐릭터에 비해 월등히 초월적 존재이며 그러한 초월성을 가지지 못한 캐릭터와 분리된 채 현존한다. 물론 이 초월성이 영속적 전능성을 말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플레이어는 유대교적 신성이 아니라 그리스적 신성에 가깝다. 소위 말하는 갓 게임(God Game) 조차도 그 권능은 명백한 한계를 지닌다. (피터 몰리뉴의 〈파퓰러스〉나 〈가더스〉가 이러한 사실을 명백히 해준다.) 때문에 그 권능의 표출을 위해서는 권능을 현현할 그릇이 필요하며, 많은 경우 이는 캐릭터의 역할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의 영웅들은 플레이어라는 초월적 신성을 담기 위한 그릇, 단어 그대로의 ‘아바타(Avatar)’로 기능한다. 플레이어-캐릭터의 관계는 부분적 혹은 일시적 일체화이며 이는 강신(降神)의 메커니즘으로 이해한다면 오히려 더 명확해진다. 공교롭게도 조지프 캠벨은 영웅을 ‘신의 세계에 뛰어들어 현실의 대안을 찾아 돌아오는 자’로 규정하고, 전근대 종교에서 무당들이 행하던 사회적 역할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피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의 캐릭터들은 게임 내적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레이어라는 신성에게 일시적으로 몸을 빌려주는 강신술사(Channeler)에 더 가까운 존재인 셈이다. 이러한 사실을 게임 내 컷씬(Cut-Scene)의 문제에 대입해보면 흥미롭게 읽힌다. 컷씬은 플레이어로부터 명령권을 회수하는 불능의 시간이며, 때문에 캐릭터는 충분히 자아를 되찾은 듯 행동한다. 많은 비디오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 컷씬에서 캐릭터가 너무 쉽게 죽어버린다는 사실을 종종 지적하는데(게임 내부에는 명백히 회복이나 부활의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시적 권능의 해제로부터 발생한 일이라고 상상한다면 납득할 수 있는 문제가 된다. 캐릭터의 초월성은 오로지 초월적 존재-플레이어-의 강신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에 국한된다. 죽음이란 필멸자의 문제이며 애석하게도 불멸자의 위치는 오직 플레이어에게만 허용된 위치인 것이다. 절벽에 떨어진 마리오가 지정된 숫자만큼 다시 체크 포인트로 되돌아올 수 있는 건, 그 시간동안 플레이어라는 초월자에게 그 몸을 맡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디오 게임의 세계는 근본적으로 관념론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각각의 게임 캐릭터들은 그들이 플레이어를 받아들이는 정도에 있어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데, 크게 상이하다 말할 만큼 세분화되지는 않는다. 그러한 관점에서 캐릭터를 다음과 같은 유형화가 가능하다. 1-신성(Deity) : 갓 게임,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전략 시뮬레이션 등의 장르에서 발생하는 유형이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는 와중에 특별한 아바타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제공하는 권능을 육체의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 2-피그말리온 아바타(Pygmalion Avatar) : 캐릭터의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탑재한 일부의 게임들에서 발견되는 유형이다. 단 이 유형에서의 핵심은 인물의 조물성 그 자체라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캐릭터의 위치가 공백임을 전제한다는 점으로 특징된다. 말하자면 이 유형의 아바타는 캐릭터의 생성과 동시에 그 육체가 세계에 출현한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준다. 다수의 MMORPG의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이에 해당한다. 3-퍼펫 아바타(Puppet Avatar) : 이 유형은 피그말리온 아바타와는 달리 그 존재가 이미 세계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게임의 진행 시간 전체에서 꽤 밀도 높은 ‘자아의 공백’ 상태가 유지된다. 캐릭터는 말을 하지 않거나, 혹은 정확한 대화의 내용이 생략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한다. 말하자면 게임의 세계가 플레이어라는 신성을 강림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직조해낸 ‘비어있는 몸’에 가까운 존재다. 초기 아케이드 게임에서부터 〈드래곤 퀘스트〉 스타일의 JRPG까지 비교적 초기 게임에서는 보편적인 유형이었다. 4-샤먼 아바타(Shaman Avatar) : 이 유형은 서사적인 관점에서 명백한 자아를 갖추고 있다. 게임의 플레이 시간의 대부분 플레이어에게 육체를 내어주지만, 주체적으로 발언이 가능하다. 때로는 완전히 육체의 권리를 되찾아 일시적인 행위를 행한다.(컷씬) 플레이어는 이 육체가 허용하는 시점에 한해서만 그 육체를 점거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때문에 이 유형의 플레이어는 특히 자주 관객의 시점으로 게임을 지켜보게 된다. 내러티브 중시의 게임들에는 일상적인 유형이다. 물론 이러한 구분이 모든 게임의 일체화의 패턴을 포용하지는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요컨데 피그말리온 아바타 혹은 퍼펫 아바타 수준의 게임들도 때로는 ‘말하지 않는 컷씬’이라는 독특한 패턴을 통해 자아의 수복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그들은 자아가 비어있기 때문에 언어를 잃었다기 보다는, 과묵한 존재라는 특정한 캐릭터리티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는 비디오 게임이 가지는 양상이 복잡해짐에 따라 플레이어의 개입이라는 패턴 역시 지나치게 다면화된 탓이다. 그런데 여기서 묘한 문제의 제기가 가능해진다. 비디오 게임 플레이가 신성한 외적 자아(플레이어)와 강신을 바라는 육체(캐릭터)의 합일의 결과라고 한다면, 이 때에 강신을 주도하는 것은 누구인가. 물론 강신이란 기본적으로 그것을 바라는 술사가 신의 허락을 취득하였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미 허락이 완료되었다면 이후 현상을 주도하는 것은 강신술을 다루는 술사의 몫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비디오 게임에서의 두 주체간의 주도권이란 매우 복잡한 양태로 발전된다. 캐릭터의 육체에 명령을 내리는 건 외적 자아인 플레이어이지만, 그러한 명령을 적극적으로 세계 내부에 소환하는 것은 캐릭터의 의지에 가깝다. 이 관념론적 개념을 현실의 언어로 다시 해석한다면, 플레이어는 어떠한 외삽(Mod 등)이 작동하기 전 까지는 게임 디자이너가 준비한 육체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가 된다. 때문에 종종 비디오 게임에 있어서는 원치 않는 자아와 원치 않는 육체라는 이중의 트러블이 발생하기도 한다. 불응하는 신성, 〈라스트 오브 어스 2〉 먼저 원치 않는 자아, 강신의 결과를 의도적으로 거부하려는 신성의 몸부림에 가장 근접한 예는 너티독의 〈라스트 오브 어스 2〉(이하 〈라오어2〉)일 것이다. 이 게임은 수많은 이슈를 표층으로 가져오며 순식간에 태풍의 눈으로 작동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문제가 바로 게이머 집단과 평단이라는 양자간의 가시화된 충돌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그러한 일이 다른 예술의 영역에서는 일상화된 문제라고 해도 말이다. 〈라오어2〉의 양 집단간 균열에 있어서 핵심을 정치적 공정성에 관한 해석 정도로 묶는 것은 문제를 지엽적으로 만든다. 사실 이 게임의 서사와 메시지는 수정주의 이후 웨스턴으로 수십번 반복된 헤묵은 것인데, 오직 그것을 양 인물에 대한 대리 체험으로 전달한다는 면에서만 특별하다. 플레이어는 서로간에 증오를 가진 두 인물-앨리와 애비-의 플레이를 번갈아 반복하면서 양자간의 입장을 밝히는 구조로 가지고 있다. 이 게임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갑자기 달려들어 별 수 없이 칼로 찔러 죽였던 한마리 개가, 이후 애비와의 공놀이를 위해 다시 등장하는 파트이다. 게임적으로 설정된 소규모 안타고니스트가 상호반응이 가능한 대상이었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 디자이너가 상정하는 이상적 구조가 대번에 파악되기 때문이다. 혹자는 여기서 개를 죽이지 않는 선택지를 삽입함으로써 플레이어가 맞이하게 될 정신적 충격을 완화할 수 있게 되기를 요청하곤 하지만, 아마 내가 시간을 돌려 최초의 플레이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 개를 죽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라오어2〉의 플레이 구조에 어떠한 탁월함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구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단 이 탁월함이란 어떠한 명백한 전제를 요청하고 있다. 이 게임의 핵심과 접촉하려면 플레이어가 두 인물 모두와 ‘일체화’해야만 한다. 이 평행한 구조의 두 서사는 두 인물 모두의 입장을 체험의 형태로 제공하며, 두 인물이 가진 상이함와 동일성을 인지시키기 위해 구축되어 있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적극적으로 두 인물과 일체화해야 하는데 〈라오어2〉의 작동은 많은 경우(특히 게이머 집단들의 경우에) 이 지점에서 정지한다. 바로 신성한 자아의 적극적인 불응이다. 이 게임을 기다려온 많은 플레이어들, 그러니까 전작 〈라스트 오브 어스〉의 주인공 조엘과 ‘일체화’를 겪었던 신성들은 감정적으로 애비라는 육체를 밀어낸다. 앞서 말했듯 플레이어라는 신성은 그리스적 신성이며, 그 초월성과 더불어 매우 감정적인 존재로 특화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프로듀서라는 강신술 메커니즘의 설치자에 의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앨리/애비라는 육체로 강림하지만 그들의 감정은 이러한 강신술의 결과를 수용하지 못한다. 때문에 육체의 활동은 정확한 경험으로 치환되지 못하고 그 시점에서 정지하거나(게임을 그만 두거나), 불편한 기억으로 남는다(게임을 계속 진행하거나). 이 합일이라는 현상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 중 하나를 만족해야 한다. 첫째, 조엘이라는 육체와의 합일을 감정적 문제로 남기지 않는다. 둘째, 그 합일의 기억을 의식적으로 잊을 수 있다. 셋째, 혹은 모든 합일을 흐릿하게 바라본다. 즉, 강림의 정도를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플레이어가 가지는 초월성이란 캐릭터에 대비해 상대적인 위치에서 그럴 뿐이다. 개별의 플레이어는 자신의 삶에서 결코 초월적이지 못하기에 이러한 조건의 내부에 들어가는 것은 극히 간단하지 않다. 때문에 〈라오어2〉의 메커니즘은 부분적으로 실패를 겪는다. 이 실패의 연유는 극히 간단하다. 닐 드럭만은 앞서 언급했던 ‘완벽한 일체성의 신화’로 게임의 메커니즘을 바라본다. 말하자면 플레이어는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일체화하며, 스스럼없이 그 체험을 추종한다는 전제로 게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때문에 신성이 육체에 불응할 것이라는 상상을 가지지 못한 채 현상을 바라본다. 그가 이를 윤리적 부재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 역시 이러한 사실에 기준한다. ‘당연한 합일’을 이루고도 이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성의 문제(실제로 그는 그러한 뉘앙스의 트윗을 게시했다.)이거나 윤리의 문제일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러한 자연스러운 일체화의 신화는 환상에 불과하다. 비디오 게임의 세계에서 신성한 자아와 육체가 빈번히 불화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커다란 실수다. 이는 완벽하지 않은 강신술의 가장 주요한 사례가 된다. 거부하는 육체, 〈라이브 어 라이브〉 하지만 때로 육체가 순수한 자아를 되찾기 위해 신성을 거부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슈퍼패미콤으로 발매된 스퀘어의 RPG 〈라이브 어 라이브〉(이하 〈LAL)는 이러한 보기 드문 현상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샘플이다. 본 게임의 8번째 시나리오인 ‘중세편’은 퍼펫 아바타의 유형으로 플레이어와 관계를 가지는데, 앞선 7개의 시나리오가 샤먼 아바타였다는 사실과 비교하자면 꽤나 흥미로운 변경점이다. 이 ‘중세편’은 전적으로 에닉스의 RPG 〈드래곤 퀘스트〉의 패러디이다. 왕과 공주, 마왕, 용사 등의 표상 조합을 통해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드래곤 퀘스트〉의 세계를 상상하게 되며, 주인공 올스테드가 자아가 비어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화룡점정을 맺는다. 앞선 시나리오들과의 차이에 불구하고 의문 없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것 역시 이러한 장치의 배치에 기인한다. 〈LAL〉은 철저하게 장르 중심적 시나리오를 제공하기에 중세편의 장치 역시 〈드래곤 퀘스트〉의 컨벤션을 따를 뿐이라 굳게 믿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세편의 종반에 모든 사건을 겪은 올스테드는 퍼펫 아바타의 한계를 스스로 깬다. 그는 자신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내 이름은 오디오, 마왕 오디오다!’라는 선언을 던진다. 퍼펫 아바타의 특성이 자아의 공백이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이 장면은 의도적으로 비워져있던 육체가 자아를 ‘생성해낸’ 장면으로 해석된다. 올스테드는 그 순간 자신의 육체를 점거하던 외적 자아(플레이어)를 밀어내고 그 위치에 자신의 자아를 안치시킨다. 플레이어가 일체화를 거부했던 〈라오어2〉와 반대의 역학이다. 올스테드는 비어있는 육체라는 정체성을 깨부수고 신성한 자아와의 합일을 스스로 거부한다. 때문에 이렇게 태어난 마왕 오디오는 9번째 시나리오 ‘통합편’에서 보스로 등장한다. 이 놀라운 반전은 얼핏 보면 서사적 구축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러톨로지적 관점으로는 결코 해석해낼 수 없다. 이 구성에는 캐릭터와 플레이어의 관계라는 근본적 역학에 대한 질문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올스테드의 각성이 왜 놀라운가? 단순히 그의 수동성이라는 설정을 반전시켰기 때문인가? 중세편 시나리오 자체에 도사리는 배신의 서사 때문인가? 가장 중요한 장치는 올스테드가 말을 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올스테드가 왜 말을 ‘하지 않는가’에 대해서도 답을 내어야 하는 구조다. 때문이 이 장면이 플레이어-캐릭터라는 분화된 자아-육체의 역학으로 환원되는 것이며, 캐릭터 자아의 공백은 오직 루두스적 목적에 복무하는 장치이다. 이 장면은 결코 서사적 동학의 결과물이라 말할 수 없다. 〈LAL〉의 이 사건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두가지다. 첫째, 플레이어-캐릭터라는 이분화된 구조를 분명히한다. 그 둘이 분리되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이 이벤트는 결코 성립하지 않는다. 둘째, 또한 플레이어의 권능을 무력화한다. 플레이어는 영구적으로 조종자라는 권능을 박탈 당하고(사실 마왕이 된 올스테드를 컨트롤할 수 있는 새드 엔딩의 선택지가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그는 퍼펫 아바타가 아니라 샤먼 아바타로 기능함으로써 박탈의 기능을 일정량 유지한다.), 강신술의 압력을 통해 스스로의 손으로 그 마왕을 해치우는 길로 내몰린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초월성에 대해 의심을 가진 채 게임의 남은 부분을 진행해야 한다. 말하자면 〈LAL〉은 초월적 권능을 가시화한 뒤 그 한계를 시험한다. 〈LAL〉은 플레이어 초월성에 대한 일정량의 실험이다. 물론 이는 소위 말하는 게임 시스템에 관한 실험은 아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서사적인 실험도 아니다. 차라리 이는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예술의 힘」에서 언급한 신실재론적 예술론의 개념에 가깝다. 게임이라는 콤포지션이 그 수용자와 어떤 장(場)을 이루는지 확고히 하려는 실험이라는, 매체 그 자체에 대한 실험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정신과 육체는 더욱 불화해야 한다. 비디오 게임은 완전한 합일이라는 신화로부터 가급적 빨리 탈피해야 한다. 곤살로 프라스카가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 게임」에서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언급하듯이 비디오 게임과 소격효과는 훌륭한 한쌍이다. 반응하기 때문에 몰입에 근간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관계를 간소화한 맥락의 도출이다. 비디오 게임의 메커니즘은 두 육체가 근본적으로 불화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 더 확고히 작동한다. 그렇다면 비디오 게임의 의미망은 결코 합일의 신화에 있지 않을 것이다. 〈바이오 쇼크〉에서 합일의 거짓이 폭로될 때에 비로소 의미망이 작동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신(플레이어)과 육체(캐릭터)는 더욱 불화해야 한다. 그것만이 의미의 오작동을 멈추고, 우리에게 사유의 기쁨을 가져다 줄 지름길일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평론가) 이선인 만화와 게임, 영화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합니다. MMORPG를 제외한 <파이널 판타지> 전 시리즈 클리어가 라이프 워크입니다. 스팀덱을 주로 사용합니다.

  • 불멍을 넘어, 소비자본주의 너머: 게임 〈리틀 인페르노〉 비평(우수상)

    물건을 태워서 종잣돈을 늘리고 새로운 물건을 해금한다. 그리고 일종의 업적이기도 한 특정 물건의 조합을 찾아 태우는 재미는 분명 게임으로서의 즐거움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주된 게임성을 경험하게 하는 시스템을 플레이어로 하여금 회의하고 그 밖을 사유하기를 적극적으로 재촉한다. 이러한 점에서 게임 〈리틀 인페르노〉는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세지가 게임적 시스템과 충돌한다. < Back 07 GG Vol. 22.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woon Kim Driven by an interest in the indie music scene, devoted to research in the sociology of art and to (concert) photography. Took on the English translation of The Woman Does Not Exist, a book on Lacanian psychoanalytic philosophy.

  • 2023 동아시아 인디게임 답사기: bitsummit 그리고 G-eight

    제일 더운 7월에 개최하기로 마음먹은 듯한 일본의 인디 게임 행사 “BitSummit”과, 버닝 비버와 마찬가지로 작년으로 2회차를 맞이한, 그리고 날짜도 거의 비슷하게 12월 초에 개최하지만 훨씬 따뜻한 대만 타이베이의 “G-Eight”이 오늘 답사기의 주인공들이다. < Back 2023 동아시아 인디게임 답사기: bitsummit 그리고 G-eight 16 GG Vol. 24. 2. 10. 벌써 한 달이 넘게 과거가 되어버린 2023 년 , 일로 , 그리고 취미로 여러 게임 행사에 참여해 볼 수 있었다 . 방문한 일곱 개의 게임 쇼 중 인디게임을 메인으로 하는 게임 쇼는 네 개 , 그중 국내에서 개최한 행사는 두 개였다 . 이 둘은 벌서 8 년째 개최한 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 ( 이하 BIC) 과 , 스마일게이트가 주관하는 , 작년으로 2 회차를 맞이한 인디 행사 Burning Beaver( 이하 버닝 비버 ) 이다 . 둘 다 굉장히 특색 있고 매력적인 게임 쇼이니 , 시간이 있으신 분들은 꼭 방문하길 바란다 . BIC 는 주로 8~9 월에 , 버닝 비버는 12 월 첫 주에 개최한다 . 이렇게 BIC 와 버닝 비버에 이야기를 간략히 넘어간 이유는 , 오늘의 주인공은 다른 두 인디 게임 쇼이기 때문이다 . ‘ 엥 ? 왜 게임 쇼가 교토에 ?!’ 할지 모르는 , 이젠 제일 더운 7 월에 개최하기로 마음먹은 듯한 일본의 인디 게임 행사 “BitSummit” 과 , 버닝 비버와 마찬가지로 작년으로 2 회차를 맞이한 , 그리고 날짜도 거의 비슷하게 12 월 초에 개최하지만 훨씬 따뜻한 대만 타이베이의 “G-Eight” 이 오늘 답사기의 주인공들이다 . 이 자리를 빌려 , ‘ 게임 ’ 이 아니라 ‘ 게임 쇼 ’ 를 주인공으로 하여 두 행사를 방문한 경험과 인상 깊었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 * 사진자료 1, 2 K- 게임 쇼는 잠시 바이바이 ! 하지만 꼭 방문해 보시길 ! 교토에 게임쇼 ? BitSummit! 부끄러운 일이지만 , 방문하기 전까지 교토에 게임 쇼가 있는 줄 몰랐다 . 교토라는 도시는일본의 문화유산을 구경하기 위해 방문하는 장소라 생각했었다 . 그렇기에 게임 쇼를 , 그것도 헤이안 신궁 바로 앞의 ‘ 미야코 멧세 전시장을 이용해 행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꽤 놀라웠다 . 게다가 심지어 날짜는 여름 축제 기온마츠리와 정확히 겹치는 날짜였고 , 기온은 40 도에 육박했으니까 . * 사진자료 3, 4 헤이안 신궁으로 향하는 길 , 행사장은 실내라 다행입니다 . 다행히도 행사장 안은 쾌적했다 . 공간이 다소 협소한 편이기에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섰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덥거나 불쾌한 느낌은 없었다 . 부스들이라 부르기엔 다소 작은 사이즈의 책상이 자신들이 만든 게임을 어필하듯 꾸며져 빈틈없이 들어서 있었음에도 사람끼리 부딪힐지언정 축축하거나 한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으니까 . 밖이 더운 만큼 냉방에 신경을 쓴 것 같았다 . 또한 , 비록 개별 팀에 할당된 공간은 작을지라도 그걸 꾸미는 역량은 전적으로 팀들의 자율에 맡긴 부분이 놀라웠다 . 간단하게 아트북이나 브로마이드를 세워놓은 팀들도 있었지만 , 이런 걸 둬도 되나 ? 싶을 정도로 커다란 인형이나 , 책상 뒤편에 직접 프레임을 세워 배너를 달아놓은 팀도 많았다 . 할당된 공간과 위치에 맞춰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공들여 꾸며놓은 모습들에 꽤나 눈이 즐거웠다 . * 사진자료 5, 6. 책상 뒤에 프레임을 설치한 부스와 모서리 위치라는 장점을 이용해 인형을 세운 부스 . 효과는 뛰어났다 ! 공간 자체가 넓지 않았기 때문에 꽉 찬 느낌이 드는 행사였지만 ,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도 많았다 . 일부 게임은 독특한 컨트롤러를 지원하는 방식이었지만 ( 예를 들어 콜라병을 흔드는 방식으로 로켓을 쏘아 올린다던가 ), 그 자리를 마련하기가 힘들어 한 명 한 명 교대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밀려나고 , 줄을 설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 그렇다면 , 게임도 많지 않고 장소도 협소하며 바깥은 엄청나게 더운 BitSummit 최대의 매력은 무엇인가 ? 그건 바로 협소함에서 발생하는 떠들썩함과 놀라울 정도로 높은 비율의 외국인 , 그리고 본 행사 이후의 비공식적이지만 전통적으로 일어나는 가모 강 변의 네트워킹이다 . 장소가 좁다는 것은 몇 번 강조하였으니 외국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 개인적으로 여러 인디게임 쇼를 다녀보았지만 , 경험한 바로는 BitSummit 은 가장 글로벌한 행사였다 . 부스 자체를 소형화한 것은 혼자 먼 길 오는 외국인을 배려한 것이 아닐까 ? 싶을 정도로 말이다 . 타국에서 외국인들끼리 모여있다 보면 제법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 부스 손님을 맞이하다가도 , 눈 마주친 다른 부스의 개발자와 스몰토크를 하게 되고 , 개발 관련 고충을 토로하다 보면 어느새 행사가 끝나있다 . 하루가 짧을 정도로 . 그리고 그 짧게 느껴지는 하루를 보완하는 행사는 , 지나가던 말을 따르자면 비공식 전통행사 , 가모 강 변 네트워킹으로 보완된다 . * 사진자료 7, 8. 가모 강 변에 모인 업계인들 . 광기의 기사 서임식 . 왜 비공식 전통행사인가 ? 그것은 딱히 누가 가자 !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 그냥 맥주 한 캔 들고 서 있다 보면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 7 월의 교토 날씨는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밤에도 기온이 30 도를 넘나들고는 하는데 , BitSummit 이 진행되는 2023 년의 7 월 중순 역시 마찬가지였다 . 그러니 비교적 시원한 강변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 모이는 것이 아닐까 ? 중요한 점은 , 이젠 알아서 발생하는 이 모임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고 , 그곳에서 어슬렁거리다 보면 정말 별의별 사람들 다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 1 인 개발자 , 소규모 개발팀 , 대형 퍼블리셔 , 꿈을 이룬 사람 , 꿈을 꾸는 사람 , 가릴 것 없이 말이다 . 자신의 성향이 I 라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길 바란다 . 필자와 가모 강 변에서 술 마시고 친구가 된 사람 넷 중 셋은 INFP 였다 . 이 공간에서는 게임이라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 그러니 게임 개발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 그리고 그 꿈이 나만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라면 , 꼭 한번 참여해 보길 바란다 . BitSummit 장점 : 남녀노소 동서 구분 없는 다양함 , 활기찬 애프터 네트워킹 . BitSummit 단점 : 다소 협소한 공간 , 더운 날씨 . 어 , 잠깐 ! 이런 것도 전시해요 ? G-Eight BitSummit 이 끝나고 꽤 시간이 흘러 , 12 월 , 한국의 혹독한 추위 속에 불타는 비버를 구경하고 한 주가 지난 후 G-Eight 을 구경하기 위해 대만으로 향했다 . G-Eight 을 알게 된 경위도 사실 우연이었는데 , 앞서 이야기한 BitSummit 에서 “ 서브노티카 ” 개발자님이 찾아와 알려주었고 , 신청 , 참여하게 된 것이다 . 누군가는 필연이라 하겠지만 , 만약 게임 개발 꿈나무분들이 계신다면 많은 행사에 참여하고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시길 바란다 . 우연이든 필연이든 경험의 기회는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법이니까 . 다시 G-Eight 으로 돌아가자면 , G-Eight 은 버닝 비버와 마찬가지로 작년으로 2 년 차를 맞이한 행사이다 . 아마 2019-2021 판데믹 직후인 2022 년에 둘 다 시작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 빠르게 G-Eight 의 매력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 행사 공간에 주목하고 싶다 . 게임 행사장은 주로 별로 놀랍지 않게 검거나 짙은 색상의 부스로 꾸며진 경우가 많다 .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 게임을 하기 편안한 무드라는게 있기 때문인지 밝은 조명과 대비되는 어두운 부스 , 어딘가 사이버 펑키 한 LED 들로 장식되어 있기 마련이다 . 하지만 G-Eight 은 정 반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밝고 , 개별 부스들의 사이 공간이 넓으며 , 이는 핸드폰을 보며 걸어도 사람과 부딪히지 않을 정도였다 . * 사진자료 9, 10 부스 배치가 이렇게 널찍해도 되요 ? 줄도 편하게 서겠네 ! 대부분의 게임 행사 혹은 인디 게임 행사는 필연적으로 줄을 서서 플레이를 하기 마련인데 , 대기업 부스들을 제외한 부스들은 관람객분들이 줄을 서기 위해 통행로를 점유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 사실 기업 부스들의 경우에도 , 마련된 공간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복도를 차지하게 되는데 , 구경 온 사람들 입장인건 매한가지이니 이해가 되면서도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 하지만 G-Eight 은 부스와 맞은편 부스 사이게 공간을 충분히 두어 이런 불편함을 상당히 해소해 주었다 . 부스들 역시 공간이 여유로우니 꽤 놀라운 것들을 시도해 보는 팀들이 있었는데 , 가령 한 협동 게임은 방석을 두어 집에서처럼 편안히 게임을 할 수 있게 배려 해주고 있었다 . * 사진자료 11, 12. 공간 활용의 훌륭한 예시 . 거실과 같은 편안함이거나 , 층간 소음 신경 안 쓰고 뛸 수 있게 해 주거나 .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 행사장 외부 공간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 이는 대부분의 컨벤션 센터들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외진 곳에 자리 잡아 생기는 문제인데 , 게임 행사에 가면 주로 먹을 곳이 주변에 없거나 , 아니면 나가서 잠깐 쉬다 올 만한 곳이 별로 없기 마련이다 . 게임 행사는 걷고 , 줄 서고 , 게임하고 , 또 걷고의 반복이라 몹시 많은 체력이 소모되는데 , 심지어 나가도 밥을 먹을 곳이 없거나 , 푸드트럭을 이용해 서서 먹어야 하는 경우가 잦다 . 하지만 G-Eight 은 타이페이 엑스포 공원에서 행사를 진행하기에 외부에 시민들을 위한 시설이 상시 개방되어있다 . 사실 게임 행사장 밖으로 나가면 바로 공원이라 , 아이들과 산책하는 부부 , 장 보러 온 어르신들 , 춤 연습을 하는 청년들 , 곳곳에서 버스킹을 하는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 심지어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쑹산 국제공항이 있어 , 착륙을 위해 낮게 비행하는 항공기를 촬영하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 사회와 동떨어진 공간에서의 축제가 아니라 , 일상에 녹아있는 행사인 것이다 . 이건 그리고 관람객들에게도 굉장한 편의성으로 다가온다 . 행사장 밖에 나가면 휑한 광장이 있는 게 아니라 , 대만의 일상이 존재하니까 . * 사진자료 13, 14. 방문했을 때는 농산물 시장이 열려있었다 . 그리고 푸드코트 역시 훌륭함 . 잠깐 그렇게 허기를 채우고 나서 행사장으로 돌아가면 , G-Eight 만의 독특한 요소들이 눈에 띄게 된다 . 특히 자세히 살펴보면 PC 게임이 아닌 보드게임을 전시하고 판매하고 있는 팀이나 , 아예 사람들이 모여 ‘ 매직 더 개더링 ’ 을 플레이하는 구역 , 그리고 방문객들이 토큰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인기투표를 할 수 있는 돼지 저금통 등 , 독특한 매력을 가진 구역이 많다 . 사실상 여러 취향이 복합적으로 얽힌 놀이터에 가까운 느낌인데 , 이게 행사장 곳곳을 여러 번 돌아다니게 하는 매력이 있다 . 특히 저금통이 꽤 참신하게 느껴졌는데 , 일부로 반투명한 돼지 저금통을 사용하여 어떤 게임에 토큰이 얼마나 쌓여있나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게 해 두었다 .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관람객들은 토큰을 확인하고 해당 게임을 찾아가게 되는데 , 사실상 실시간 인기투표이자 실시간 추천 시스템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구현해 둔 셈이다 .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 * 사진자료 15, 16, 매직 더 개더링을 플레이하는 사람들, 그리고 최고의 시스템, 돼지 저금통. 이에 더해 , 사실 행사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가장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 사진촬영금지구역 ’ 이다 . 해당 구역을 마주한 후 주변을 살펴보면 , 마스코트 캐릭터 역시 다른 게임 행사의 마스코트들과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 BIC 의 스키복 펭귄이나 , Burning Beaver 의 불꽃머리 안경 비버와는 달리 , 뿔 달린 마족과 요정의 하프 같은 여성 캐릭터니까 . 이 캐릭터가 마스코트로써 다양한 곳에서 부각되지는 않는데 , 딱 세 곳 확인한 것이 방문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과 공식 굿즈샵 , 그리고 사진촬영 금지 안내판이었다 . 두 번이나 썼지만 , 이 게임 행사장에는 사진촬영 금지구역이 있다 . 간혹 한국 게임 행사에서도 잔인함을 이유로 성인 이용 등급을 받은 개별 부스가 검은 천으로 덮여있어 연령 확인을 하고 입장하고는 하는데 , 그것과는 달리 정확하게 선정성을 이유로 특별 마련된 구간이었다 . 생각해 보면 행사 주관 업체 중 한 곳이 Mango Party 라는 퍼블리셔인데 , 최근 한국에서 유명해진 해당 퍼블리셔의 게임으로는 ‘ 여닌자 타락시키기 ’ 와 ‘ 관리인의 엿보기 ’ 가 있다 . 그러니 굉장히 이색적이고 특이한 공간이 생길 수 밖에 . 정말 인상 깊었던 것은 , 안에서 , 그리고 해당 구역 출입구 앞에서 성인 용품을 판매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 * 사진자료 17, 18. 바로 그 사진촬영 금지 구역 , 그리고 그 앞의 유명 성인 용품 부스 . 정리하자면 , G-Eight 은 굉장히 개성 있는 행사이다 . 행사장은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은 밝은 분위기이고 , 각 부스들은 각자 전시하는 게임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꾸며져 있다 . 행사장 외부의 공간 역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공간이기에 게임 쇼 외에 즐길 거리 역시 많이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 관람하느라 지친 심신의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다 . 메인 행사존에서는 저스트 댄스 대회를 하기도 하고 , 인터뷰존을 통해 유튜브 라이브로 개발진과의 실시간 토크를 생중계하기도 한다 . 그러는 중 한 편에는 성인용 게임만을 위한 공간과 성인 용품 판매점 역시 자리하고 있다 . 어딘가 혼란스럽긴 하지만 , 컨텐츠는 분명 다양하다 .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 아직 신생 게임 행사이기에 로컬적인 색채가 굉장히 강하다 . BitSummit 에 이어 G-Eight 에서 만난 대만 친구는 ‘ 대체 이 행사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 ?’ 라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 부스를 세운 대부분의 개발자들 역시 영어를 매우 어려워하는데 ,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해야 할 부분이다 . 외국인이 한국 인디게임 쇼에 와도 마찬가지니까 . 읽을 수 없더라도 어렸을 적 일본어로 포켓몬을 하던 추억을 더듬으며 게임을 하면 , 언어가 다르다고 게임을 못할 것도 없다 . 헤매면 최대한의 영어로 열심히 설명해 준다 . 추가적으로 , 애프터행사가 다소 약하다 . 이는 BitSummit 이 특출나게 강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 G-Eight 이 게임 행사치고는 특이하게 오전 11 시부터 저녁 7 시라는 느지막한 스케줄을 가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 아쉬운 부분이다 . 바로 앞에 굉장히 여유로운 공간이 있는 만큼 , 다 같이 맥주 한 잔 들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시간이 있다면 더욱 즐겁지 않을까 ? 개별로 친해진 사람들끼리 따로 한잔 하러 가거나 , 특정 퍼블리셔가 주관하는 행사는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 하지만 이는 다시 한번 , BitSummit 이 특이한 부분임에 유의하자 . 상기 두 요인은 관람객이라면 무관한 요소들이나 , 인디게임 개발자의 입장에서 아쉬움을 논해보았다 . * 사진자료 19, 20. 이런 공간을 두고 없어서 아쉬운 애프터 파티와 다음날의 CWT. 게임과 애니는 뗄 수 없건만 이렇게 분산되다니!. 마지막으로 , 이건 일장일단이 있는 부분인데 , Comic World Taipei( 이하 CWT) 와 날짜가 겹쳤던 문제도 있다 . 게임 행사와 애니메이션 행사를 같은 날 같은 도시에서 열다니 , 대체 무슨 생각인가 ? 하면서도 , 한국에서 역시 작년 버닝비버가 Anime x Game Festival 과 같은 날짜에 열렸으니 할 말은 없다 .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 쇼를 찾아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단점으로 꼽았지만 , 덕분에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고 , 다른 날에는 CWT 를 구경하러 갈 수 있었으니 . BitSummit 장점 : 놀이터같이 다양한 행사장 , 다른 게임 쇼에서 보지 못한 광경 . BitSummit 단점 : 해외 게임팀이 거의 없음 , 아직 아쉬운 네트워킹 파티 . 맺으며 . 관람객 입장에서 BitSummit 과 G-Eight 은 정말 즐거운 행사였다 . 평소 시장에서 찾지 못했던 독특한 게임을 체험해 볼 기회이기도 했지만 , 둘 다 일상에 접해있는 장소에서 행사가 진행된 영향도 컸다고 본다 . 게임 쇼를 보다가 , 관광을 하다가 , 타국의 일상에 잠시 녹아있을 수 있었다 . 일로 떠난 것이라도 여행의 감각이 없는 것이 아니었으니 , 정말 만족스러웠다 . 개발자 입장에서 , 인디게임 쇼는 개발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게임을 선보일 기회이지만 , 다른 개발자들과 직접 만나 소통할 기회이기도 하다 . 최근에는 메이저 게임 쇼에서 역시 인디게임존을 따로 만들어 행사를 진행하고 , 인디게임 참여사만을 위한 애프터파티를 준비해 네트워킹 기회를 마련해 준다 . 인디 개발자들이 제일 만들기 힘든 기회를 게임 쇼를 통해 제공하고 , 더 좋은 게임들이 만들어질 확률을 늘리는 셈이다 . 그런 부분에서는 BitSummit 은 최고였고 , G-Eight 은 살짝 아쉬웠다 . 매년 많은 게임쇼가 열린다 . 인디 게임쇼는 어쩔 수 없이 메이저 게임쇼에 비해 방문 인원이 적은 편이다 . 더군다나 해외에 나간다 하면 , 인디게임쇼를 즐기기위해 출국장을 밟는 사람은 더욱 없으리라 . 하지만 BitSummit 은 교토의 축제 기간에 , 그리고 G-Eight 는 한국은 한창 춥고 대만은 따뜻한 12 월에 열린다 . 전략적으로 관광 시즌에 열리는 셈이다 . 그러니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 올해에는 해외 인디 게임 쇼를 구경 가보시는 건 어떻겠는가 ? 겸사겸사 관광 계획도 잡으면서 말이다 . 혹은 관람객이 아니라 , 개발자로써 행사에 참가해 그 어떤 티켓보다 빠르게 입장할 수 있는 패스를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물론 , 더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기획자) 임윤혁 육각형 캐릭터를 좋아해서 현실을 그렇게 사는지, 현실이 그래서 육각형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는 (구)이과생, (구)경제학도, (현)게임기획자. 즐기며 때떄로 배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 저자성이란 농담?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을 읽으며

    브라이언 히카리 하츠하임의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은 코지마 히데오가 감독하거나 제작 과정에 참여한 게임을 다양한 매체 이론을 따라 살펴본다. 반전, 반핵의 주제 의식을 일관적으로 지켜나가는 스토리텔러이자 ‘모든 것을 감독하는 책임자’, 게임 업계의 유명 인사 등으로 읽혀 온, 혹은 그렇게 읽히고자 유도해 온 코지마의 행적 역시 집중적으로 비춘다. 하츠하임은 주로 코지마의 인터뷰와 서적, 그가 출연한 다큐멘터리와 출시 당시의 리뷰를 제시하며 그가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관철하려고 했으며 제작 과정에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를 도해한다. < Back 저자성이란 농담?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을 읽으며 30 GG Vol. 26. 6. 10. 브라이언 히카리 하츠하임의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은 코지마 히데오가 감독하거나 제작 과정에 참여한 게임을 다양한 매체 이론을 따라 살펴본다. 반전, 반핵의 주제 의식을 일관적으로 지켜나가는 스토리텔러이자 ‘모든 것을 감독하는 책임자’, 게임 업계의 유명 인사 등으로 읽혀 온, 혹은 그렇게 읽히고자 유도해 온 코지마의 행적 역시 집중적으로 비춘다. 하츠하임은 주로 코지마의 인터뷰와 서적, 그가 출연한 다큐멘터리와 출시 당시의 리뷰를 제시하며 그가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관철하려고 했으며 제작 과정에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를 도해한다. 서적의 제목에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듯이, 하츠하임은 게임 디자이너를 게임 속 “작가 의식”의 출처로 읽고자 하는 의도성 짙은 기획을 갖고 있다. 나는 <데스 스트랜딩>을 통해 코지마 게임을 접한,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팬이었고, 대규모 공동 작업이 이뤄지는 상업 게임에서 게임 디자이너의 권한이 작동하는 방식에 직접적인 경험이 없기에 이 기획이 어떤 식으로 풀려나올지 호기심을 갖고 책을 접했다. 80년대부터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코지마 게임을 시계열로 살피기 때문에, 이 책을 읽어 나감으로써 콘솔 장치의 역사와 더불어 코지마의 공동 작업에 대한 통제력이 어떻게 확대되는지 그 과정 역시 살필 수 있다. 하츠하임은 공동 작업에 대한 코지마의 통제력이 어떻게 작가 의식과 연계되는지 보이는 이론으로서 특히 1960년대 카이에 뒤 시네마를 필두로 한 작가주의 영화 비평 흐름을 직접적으로 인용하며 자신의 기획에 토대로 삼는다. 영화 비평의 특정 흐름을 참고해 게임을 논하는 구도에 의문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는 코지마 자신이 영화로부터 강한 영감을 받는다거나 게임 내 시네마틱 컷씬의 활용이 특징적이라는 이유보다는 게임 산업 내의 제작 관행을 영화 제작과 비교하기 위함이다. 저자의 정리에 따르면, 작가주의 이론의 기여자들은 할리우드 시스템 내 영화 제작 관행에 맞서는 “상업 영화의 반체제성, 특이성”이 일관된 시각적 스타일과 내적 의미를 형성하는 감독으로부터 기원한다고 보았다. 영화 이론으로부터 차용해 게임을 설명하는 도약은 게임과 영화 모두 대규모 공동 작업으로 진행되면서 제작자를 익명화하고 상품성을 지향하는 압력을 받는 매체였다는 공통점에 근거한다. 비밀의 방에 “이스터에그”로 숨겨져 있는 게임 디자이너의 이름은 옛 비디오 게임 업계와 영화 업계에서 크리에이터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던 관습을 의미심장한 방식으로 되새기게 만든다. 하츠하임은 작가주의로 일컬어진 비평적 흐름이 “감독의 주체성을 과도하게 중시하며 제작의 특정 문맥과 창작 프로세스에 관여하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경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는 한계를 밝히지만, 여전히 그 저자성이 공동 작업 상에 나타나는 비관습성을 지목하고 식별하는 데 유효하고 전략적인 도구라고 본다 (하츠하임 25-26). 이와 더불어 저자가 활용하는 ‘파열disruption’의 개념은 영화 비평의 언어보다는 메리 플래너건의 비판적 플레이(Critical Play) 개념을 가져온 것으로, 체제를 전복하거나 약체화하는 경향성이 있는 게임 디자인의 혁신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장르의 발명을 포괄한다. 저자의 접근법은 “현 상황을 개혁하려는 게임, 예술적인 게임, 그리고 그들이 일으키는 비판적 자아 성찰에 대해서만, 즉 상업 게임에 대해 강한 반발과 비판적인 입장을 지닌 게임에만” 적용되는 경향이 있는 ‘비판적 플레이’의 개념이 “상업 게임” 그 자체, 혹은 상업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게임 디자이너에게 역시 적용될 수 있도록 확대한다는 목표를 띠고 있다 (하츠하임 31). 코지마 히데오가 기획으로서 참여한 <스내처>, <폴리스너츠>와 <메탈 기어> 시리즈의 제작 과정, 반응, 장르적 문법의 재발명, 시스템과 스토리라인 분석을 통해서 저자는 코지마 게임 디자인을 크게 네 가지 요소로 정리하고, 이 요소들로 “기존 게임의 관습”에 파열을 일으키는 코지마 게임의 비판적 플레이를 특징 짓는다. “선형적 서사에 픽션과 현실 세계의 요소”를 혼합함으로써 현대에 대한 장르적 우화를 만들어내고,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나 모션 그래픽과 같은 시청각 지향 미디어의 “재매개화”를 시도한다. “창발적인 플레이”의 축이 되는 “규칙화된 시스템”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메타적인 목적을 위한 공간”의 삽입을 시도한다 (하츠하임 73). 저자는 여기서 작가로서 게임 디자이너가 갖는 사회적 의식의 표현과 플레이의 경계선을 재정의하고자 하는 형식적 메커니즘의 창조라는 두 가지 방향성을 확인한다. 형식적 관습성을 해체하고 그와 단절하는 방향성에서 어떠한 반체제적 고집을 발견하려는 태도는 소위 “프로그래시브한 텍스트”를 고전적 텍스트의 반대 항에서 규정해 온 담론 속에서 비평가가 의지할 자리였던 저자성을 게임으로 번안해 보려 한 시도이기도 하다. 상업적 제약과 질료 내에서 비판적, 실험적 작업을 하는 주체, 영화감독의 자리로서 게임 디자이너를 둘 수 있다면, 그 실험적 작업의 속성 역시 게임 디자이너에 귀속된 일관성으로서 규명될 수 있으리란 믿음이다. 하츠하임은 바바라 클링거(Barbara Klinger)가 “이데올로기 면에서만이 아니라 동시대의 영화 형식과 구조 내에 단절을 추구하는 진보적인 비평가들의 말에 의해 형성”된 걸로 지목한 “프로그래시브한 영화 장르”란 표현을 빌려와 “프로그래시브한 게임 디자인”이란 개념을 형성한다. 이를 진보적인 게임 디자인, 변혁적인 게임 디자인으로 봐도 이해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하츠하임 28).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은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 내 시스템과 그 게임을 생산하는 데 있어서 필요했던 제반 조건, 제작사 및 플레이어의 수용 양상을 살펴보면서 저자가 정의한 프로그래시브한 게임 디자인의 여러 양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한 가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대목은 “프로그래시브한 영화 장르”란 표현이 클링거의 원전 「‘시네마/이념/비평’ 재방문: 변혁적 텍스트Cinema/Ideology/Criticism’ Revisited: The Progressive Text」에서 사용된 맥락이다. 클링거는 변혁적 텍스트에 반대항으로 존재하는 “고전적 텍스트”란 사실 “고전적 텍스트 시스템”으로 불리는 게 알맞다고 본다. 클링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시스템은 “불균형(과잉, 차이)과 균형(견제, 반복)의 불안정한 조합으로부터” 생산되는 것이다. 장르는 “변주와 규제의 유희 위에서 번성하는” 시스템의 “긴박한 순열”이자 “규칙화된 다양성”의 제공자이다. 단절이 아닌 변주의 경제를 선보이는 장르는 “과잉의 (규제된) 형식들과 그 과정의 (규제된) 전시 형식들”을 허용하며 자기 안에 과잉을 길들이고 포위한다 (Klinger 43). 고전적 텍스트 시스템의 “긴박한 순열”로서 장르를 설명하고자 클링거가 파열, 단절, 분절과 같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훨씬 더 연속적인 “변주variety”를 제안하는 까닭은 규범화의 강력한 힘을 눙치지 않기 위함이다. 클링거는 기존 규범으로부터 단절을 구성하는 듯한 기표를 전복성의 측면에서 지나치게 강조하는 독해가 “심지어 가장 전면화되고, 변혁적이고 변형된 경향들에까지 규범적 기능을 협상해 내는” 체제의 수단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진보성과 변혁성이 텍스트 내부에 고립된 기표로 결정된다는 관점과 그러한 관점을 강화할 수 있는 독해를 향한 애착 앞에서 클링거는 비판적 거리감을 지키고자 한다. “프로그래시브한 영화 장르”를 형성하는 비평 관점이 텍스트 내 기표의 변혁성만으로 분절되고 파열될 수 있는 ‘고전적 텍스트’라는 상대 항을 전제함을 지적하고, 이로써 그는 고전적, 규범적인 것으로 지목된 항이 그토록 균질하고 동종적인 대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에서 “프로그래시브한 게임 디자인”의 분석 틀을 빌려 올 때, 이 태초의 호명에 잠재된 비판적 함의는 아쉽게도 깊이 다루지 않는다. 물론 저자는 일방적이거나 고정되지 않는, 언제나 플레이어와 수용 환경, 기술적 조건을 매개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로서 게임의 역량을 검토한다. 당대에 코지마 게임이 수용된 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아카이브 자료에 힘입어, 텍스트의 내적 의미와 형식적 분절에 고립된 분석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어떻게 자신의 행위를 유도하는 시스템 상의 개성 및 기술적 제반 조건과 상호작용을 행하며 의미를 형성해 나가는지 살펴 나간다. 다만, 코지마가 상업 비디오 게임 업계의 확립된 수법으로부터 분기해 나가면서 일관된 작가적 주제를 표현하고, 작가적 주제가 이러한 창발적 분기를 만들어 나간다는 분석 구도 하에서, 변혁이란 그 반대 항의 획일화된 ‘본질’을 가정하는 수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아래와 같은 대목이 그 예시가 될 것이다. 격파나 승리로 스코어를 쌓아나가는 것이 좋은 것으로 여겨졌던 게이밍 문화에서 비폭력적인 선택지 검토를 장려하는 시스템은 특히 획기적인 발명이지만, 동시에 전쟁 게임의 로직, 그것이 본질적으로 품고 있는 인명 경시, 어려운 목표의 해결책으로서 무력 충돌을 긍정하는 입장 에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도덕적인 설명으로도 기능한다.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외교나 비폭력은 달성하기 어렵지만, 인간(과 플레이어)의 목숨, 그리고 사회 질서 면에서 훨씬 커다란 대가를 얻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츠하임 88) 더 나아가 변혁이나 이탈로 나타났던 개성들조차 상업 논리나 장르적 관성으로 흡수될 수 있다면, ‘변혁적’ 장르 독해에 대한 주의는 다시 한번 들를 필요가 있을 터다. 특히 영화에 비해 동시대의 게임 수용, 창작, 반응 커뮤니티는 보편적인 정전화, 고전화를 추동하는 제도적 동력은 불분명해 보이게 만들면서 거의 동시다발적인 상호 참조를 촉발하는 측면을 갖기 때문에 ‘기존 게임’과 ‘변혁적 게임’의 구분과 그 구분에 근거한 ‘저자성’ 식별이란 더욱 복잡미묘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나는 게임에서 저자성이란 개념 일체를 폐기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라, 위계화를 기반으로 성립되는 게 아닌 종류의 저자성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에 임가영의 「게임과 작가」를 참조하고 싶은데, 본 글 역시 게임 디자이너가 게임 플레이가 아닌 게임을 만들기에 생기는 작가의 “물러남”, “플레이어들의 소비자 중심주의, 그리고 게임을 산업 및 기술적 생산물이자 단순한 오락거리로 보는 통념”으로 인해서 저자성이 줄곧 취약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주목한다. 그렇게 “취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로서 작가를 다시 발견”하고 플레이어와 작가의 “대화”가 되는 자리로 게임을 돌려놓으며 작가와 플레이어가 맺는 관계를 재발견하기를 바란다. 그의 글은 작가를 ‘행위적 거리’ 속으로 물러나 “몸을 숨기고” 있다가 플레이어를 “맞이하러 나서는” 목소리에서 발견한다. 이 물러남과 맞이함의 제스처가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인 목소리”로 말을 거는 작가를 구성하는 장면이 내게는 사랑스럽고 또 중요하게 다가왔다. 이는 엔터테인먼트와 서비스에 뿌리를 두라는 훈계와 그 뿌리로 인해 해롭다는 오명 사이에 포획된 매체에서, 오히려 상품 이상 혹은 상품 미만이고자 하는 아집, 이렇게 되어야만 했다는 식의 대책 없는 필연성을 더욱 강렬하게 감각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 서적이 꾸준히 다루는 ‘파라텍스트paratext’의 과잉에 대해서 언급하며 이 글을 마무리 짓고 싶다. 코지마 게임에서 파라텍스트란 당대의 기술적 가능성과 메모리 제한, 패키징 관행, 그리고 콘솔과 입력장치와 같은 물리적 인터페이스 기능들을 경유해 나타나는데, 저자는 제라르 주네트와 조나단 그레이를 인용하며 파라텍스트의 정의와 기능을 설명한다. 문학이론가인 제라르 주네트는 파라텍스트를 텍스트와 그것을 구성하는 것들 사이에 있는 문지방이라 정의했다. 여기에는 표지, 타이틀, 주석 등 형식적인 틀 외에도 신문의 평론이나 잡지 인터뷰 등 설명적인 틀도 포함된다. 조나단 그레이는 이것을 영화나 TV 등의 미디어에도 적용해, 장난감, 게임, 스핀오프, 소설, 웹사이트 등의 파라텍스트가 ‘최초의 인터랙션 후에 텍스트에 영향을 미치거나, 방향을 전환하게 만들기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하츠하임 91-92) 조나단 그레이의 말은 서사 외부의 물질이 서사 내부로 흘러넘치는 상황과 상호작용성 사이의 깊은 연계를 암시하고 있다. 파라텍스트의 범람을 두고 저자는 <메탈기어 솔리드 2>에서 게임의 물리적인 패키지가 세계관에 대한 다양한 설정 자료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게임 플레이에도 영향을 미침을 언급한다. 게임 플레이 내에서 게임 설명서에 기재된 해독표를 사용하라고 지시하는 장면, 무전에서 맞출 주파수를 “게임 소프트웨어 패키지 뒷면의 사진”에서 찾으라고 언급하는 등의 상호작용 등이 그 예이다 (하츠하임 93). 이는 물리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보드게임에서도 예상치 못한 발견의 국면에서 자주 활용되는 전략이기도 하다. <스내처>에서 피해자의 시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집을 찾아라!’는 메모 역시 흥미롭다. 이는 “피해자의 집 그 자체” 혹은 “피해자의 집의 다이닝 룸에 있는 ‘집 모형’을 조사하라는 의미”처럼 읽히지만 실은 키보드의 ‘홈Home’키를 눌러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다는 말 그대로의 해답이다 (149). 이같은 파라텍스트의 묘사를 통해서 책은 그 당시의 게임 기기를 쓰거나 패키징을 접해보지 않고 에뮬레이션이나 리메이크 판 등을 통해서 대부분의 코지마 게임에 접근하게 된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거나 그 맥락이 빠져 있던 농담을 복구해 주었다. 플레이 외부의 플레이어를 매개하고 초대하면서 플레이 영역을 확장하는 게임 디자인의 측면에서, “사람을 웃게 만들어주는 매체가 영화라면, 게임은 자신의 행위가 웃음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코지마의 말을 저자는 인용한다. “플레이어를 그 자신의 행위로 웃게 만들기“는 플레이어가 ”관객임과 동시에 연기자“란 걸 일깨운다 (하츠하임 148). 하츠하임은 이 겹쳐짐이 일상생활 속에서 플레이어의 행위를 촉구하는 소격 효과의 확장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나는 여기서 “그 자신의 행위로 웃게” 될 때의 순전하고 승화되지 않는 실소, 피치 못한 슬랩스틱 코미디언 되기의 층위를 추가하고 싶다. 이때 플레이어는 작가주의적 피규어, 그러니까 이데올로기적 산물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두게끔 게임의 총체와 스타일을 고안하는 통제력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저자성을 물리적으로 먼저 마주한다. 어떠한 의미도 없이 돌연 가설무대의 바닥과 코를 박고 인사하게 만드는 짓궂은 돌부리, 돌출된 문지방과 같은 것으로서 말이다. 무엇이 게임 플레이 외부에 있고, 무엇이 가상의 의미 연쇄와 무관하고 유관한 것인지 구분 일체가 갑자기 시덥잖아지나 싶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몰입적인 게임 플레이로 돌아가게끔 한다. 이는 자기성찰로 포섭되는 “메타”가 아니라 금방 몸을 일으켜 다시 연기로 돌아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는 시트콤의 계기를 선명하게 내보인다. 허술한 종이 상자를 거꾸로 뒤집어쓰고 중무장한 군인들 사이를 뻔뻔하게 가로지르거나 플레이어가 주권을 쥔 카메라로 고간을 확대하면 화면을 향해 주먹질하기 시작하는 우리의 주인공들. 통용되는 농담의 펀치라인이나 밈적 기호로 이 커뮤니티를 떠돌면서 출몰하는 코지마의 얼굴이 표시하는 저자성이란 아무래도 내게 이런 종류인 것 같다. 참고문헌 하츠하임, 브라이언 히카리.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 문성호 역, AK커뮤니케이션즈, 2026. 임가영. 「게임과 작가」. 『문장웹진』, 2026년 5월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광장, https://munjang.or.kr/board.es?mid=a20105000000&bid=0005&list_no=110333&act=view . Klinger, Barbara. "'Cinema/Ideology/Criticism' Revisited: The Progressive Text." Screen, vol. 25, no. 1, 1984, pp. 30-44.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성훈 문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만화를 좋아한다. <심즈 4>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 게임인데 1500시간 정도 했고 그게 수치스러운지 웃긴 건지 헷갈린다. 뚜이부치란 필명으로도 활동한다.

  • 게임 노동자들은 왜 노조를 만드는가? - 북미 게임 산업의 노동운동단체 GWU Montréal 인터뷰

    그런데 민주노총 같은 거대한 노동총연맹이나 기업별 노동조합이 아닌, 제 3자로서 게임 업계만을 지원하는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사실이 다소 의외였다. 새로운 층위를 보여주는 듯한 모습 같아서, 흥미로운 마음을 가지고 포스터에 적힌 링크를 통해 참여 의사를 전달했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Leesun Park Studies games from a social perspective. Believes that games, as a tool, ultimately offer a way to explore what it means to be human. These days, mainly writing.

  • [대담회]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스> 야스케 논란을 보는 여러 관점들

    2024년 공개된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는 시리즈 최초로 일본 전국시대를 무대로 삼으며, 여성 시노비와 흑인 사무라이라는 두 명의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작품이 공개된 이후 흑인 사무라이 주인공의 인종과 배경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으며, 이는 국내외 커뮤니티에서 역사 고증의 문제를 넘어 서구중심주의나 PC주의 비판 등의 다양한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이번호 GG에서는 홍현영 박사, 이정엽 박사, 강신규 박사 세 명의 디지털 게임연구자 및 인문사회 연구자들을 만나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둘러싼 여러 층위의 쟁점을 나누고, 오늘날 게임이 재현하는 역사와 정체성의 의미와 딜레마를 검토해 보았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isu Kim Studies a range of fields—culture and knowledge, space, and the academic field. Also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games and the lives of gamers.

  • 당신의 기억을 <언패킹>: 정리 게임이 기억을 다루는 방법

    기억은 세부 사항이 완전히 보존된 텍스트의 형태가 아닌 부분적인 이미지의 집합으로 우리에게 떠오른다. 이때 사물은 기억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자신과 관련된 이미지를 무분별하게 소환한다. < Back 당신의 기억을 <언패킹>: 정리 게임이 기억을 다루는 방법 31 GG Vol. 26. 8. 10. * <언패킹> 시작 화면 당신이 불의의 사고로 기억을 잃었다고 가정해 보자. 기억을 되살리고 자신을 알기 위해선 우선 과거의 당신이 남긴 기록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일기부터 사진, SNS 게시물과 메신저의 대화 내역까지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숱한 기록을 남기며 살아간다. 그리고 기록은 선별된 기억이다. 어떠한 사실을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작성되는 ‘기록’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남긴 흔적과는 다르다. 이를테면 발 안쪽에 무게를 실어 걷는 버릇 때문에 안쪽만 닳은 신발 밑창은 기록이 아닌 흔적이다. 만들어질 때부터 의도와 해석이 개입되는 기록과 달리 흔적은 의도 바깥의 영역에서 생겨나고, 해석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흔적은 기록에 비해 태생적으로 소박하다. 그러나 때로 흔적은 기록보다 더 충실하게 그 주인을 설명해 준다. 기록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쓰일 수 있지만 물성을 갖춘 흔적은 정직하다. 그러니 기억을 잃은 사람이 자신을 알아가는 데 있어 가장 확실한 단서는 일기나 SNS가 아니라 자신이 쓰던 방의 물건들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소유하기로 처음 선택할 때는 필요와 취향이라는 의도가 개입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물 자체가 우리의 흔적이 되기도 한다. 최초의 의도를 벗어나 사물과 주인의 관계가 계속해서 재설정되기 때문이다. 흔적은 주인과 사물의 관계에서 태어나 사물에 내재되고 세월에 의해 변화한다. 덕분에 흔적에는 기록에는 없는 자생력이 깃든다. 벤야민이 자신의 서재를 정리하며 쓴 에세이 ‘나의 서재를 정리하다: 수집에 대한 이야기’에서 말했듯이, “사물이 수집가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집가 자체가 사물 속에 거주한다. [1] ” 대부분의 시간 우리의 인식에서 벗어나 있는 이 생기는 우리가 사물과 관계맺는 방식을 의식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할 때 예고 없이 분출된다. 사물과의 관계를 재정의한다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다시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물건을 버릴 것인가, 계속 가지고 있을 것인가? 손이 닿고 시야에 들어오는 곳에 둘 것인가, 구석에 넣어둘 것인가? 판단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우리는 다시 질문한다. 나는 여전히 이 물건이 필요한가? 얼마나 오래 가지고 있었나? 이전엔 어떻게 사용했나? 이 물건을 언제,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나? 흔적을 살피며 우리는 무의식의 영역에 있던 기억을 소환한다. 이삿짐을 정리하거나 대청소를 하다 보면 물건에 얽힌 추억을 들여다보다 정리는 뒷전이 되곤 하듯이. 2021년 출시된 정리 게임 <언패킹>은 바로 그런 순간들을 모아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한다. * 스테이지를 완료할 때마다 앨범에 사진이 쌓인다. 정리란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하는 일이다. 인간은 이 행위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넘어 쾌감을 얻도록 진화했다. 사실 정리만큼 놀이의 형식에 들어맞는 일도 없다. ‘호모 루덴스’의 개념을 주창한 하위징아에 따르면 놀이는 자유롭게 받아들여졌으되 엄격히 적용되는 규칙을 따르며 몰입을 통한 즐거움을 수반하는 일이다. 다만 실생활에서의 정리는 유희를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닌 노동이기에 놀이가 아닌 일상생활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정리와 놀이는 각자의 긴 역사 속에서 복수의 속성을 공유해왔으니, ‘정리 게임’이라는 게임 장르의 출현도 자연스럽다. 스팀에서 ‘정리(Organizing)’ 태그로 분류된 게임들을 살펴보면 주로 ‘퍼즐’, ‘릴랙싱’ 태그가 함께 붙어있다. , , 등이 대표적이다. 즉 게임으로서의 ‘정리’는 정답이 정해진 퍼즐을 푸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게 하되, 점수 경쟁이나 과하게 복잡한 규칙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행위로 여겨진다. <언패킹>도 마찬가지로 퍼즐 게임으로 분류된다. 이사 간 집에 짐을 풀어 제자리를 찾아 정리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의 전부다. 모든 물건의 자리가 정확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재량을 발휘해 취향껏 인테리어를 꾸밀 수도 있지만, 쓰임새에 따라 물건이 있어야 할 알맞은 공간은 지정되어 있어 최소한의 규칙은 따르며 진행해야 한다. 스테이지가 진행될수록 이삿짐은 점점 늘어나고 이사를 가는 집도 커져 정리가 한층 복잡해진다. 그러나 <언패킹>은 정리를 퍼즐과 꾸미기 이상의 행위로 설계했다. <언패킹>에서 정리라는 플레이는 사물이라는 흔적을 매개로 기억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이다. <언패킹>은 사물을 통해 유년기부터 가정을 이루기까지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처음으로 생긴 자기 방에서 시작해 대학 자취방, 사회초년생 생활, 애인과의 첫 동거, 이별 후 본가로의 귀환, 새 사랑과의 만남과 독립 등 삶의 주요 국면마다 주인공은 이사를 가게 된다.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정보는 몇 년도에 이사를 하게 되었는지와 소지품의 변화뿐이다. 정리를 완료한 후 사진을 찍으면 이사를 마친 주인공의 소회가 제시되지만, 새로운 집에 대한 평가나 이사 당일의 감정 표현 정도로 주인공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다. * 박스에서 랜덤으로 나온 이삿짐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널려 있다.(직접 캡처) 플레이어는 이삿짐을 꾸리는 과정에는 관여할 수 없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면 처음 보는 집에 이삿짐 박스가 잔뜩 쌓여 있고, 플레이어는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짐을 풀어야 한다. 1997년부터 2018년까지 20년에 걸친 시간 동안 소지품은 남아 있거나, 사라졌거나, 새롭게 추가된다. 플레이어는 이 흔적을 통해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추측하게 된다. 2010년, 주인공은 애인의 집으로 들어가 첫 동거를 하게 된다. 애인의 물건들 사이를 비집고 주인공의 짐을 밀어 넣다 보면 자연히 취향의 차이가 들어온다. 그는 취미로 기타를 연주하고,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신다. 2012년, 이별 후 주인공은 본가로 돌아간다. 사진 속 전 애인의 얼굴에 압정을 꽂아 놓은 것으로 보아 끝이 좋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를 통해 시작한 우쿨렐레 연주와 드립커피는 주인공의 취미와 취향으로 남았다. 2010년 스테이지 이후로 우쿨렐레와 악보집, 커피용품이 계속 등장한다는 것만으로 플레이어는 주인공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 * 주인공의 취향이 드러나는 거실(직접 캡처) 첫 스테이지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물건들을 들여다보자. 그녀는 그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사용하던 미술용품 브랜드를 프로 작가가 될 때까지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취향이 확고하고 그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재봉이 뜯어질 때까지 들고 다닌 돼지 인형에서도 그 고집이 엿보인다. 돼지 인형은 어릴 때부터 그녀의 모델이었고, 작가가 된 그녀가 출판한 동화책의 주인공이 된다. 인형 외에도 한 번 애정을 준 물건은 쉽게 놓지 못해 어렸을 때 사용한 연습장과 가장 좋아하는 책 시리즈는 어느 집의 책장이든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매번 늘어나는 비디오게임과 보드게임은 그녀의 가장 오래된 취미다. 좋아하는 물건을 살 때는 꼭 종류별로 모으는 수집가의 성향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의 삶을 상상하는 일은 퍼즐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위한 조건은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불가항력적으로 추론에 참여하게 된다. 박스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 어떤 순서로 물건이 나오는지 알 수 없어서 플레이어는 짐 하나를 꺼낼 때마다 유심히 그 물건을 들여다보고 평가해야 한다. 이때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물건을 기억하게 되고 반복적으로 등장하거나 새로 생긴 물건을 알아보게 된다. 스토리를 추론해 정답을 맞히거나 핵심 단서를 수집하게 하는 등, 이 과정을 적극적인 플레이 요소로 지정할 방법은 많다. 많은 정리·퍼즐 게임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내러티브적 요소를 구현한다.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 콘셉트인 의 경우 정리 과정에서 모은 단서로 회고록을 복원하게 하고, 는 NPC와의 대화와 ‘이상현상’이라는 미스터리 요소를 도입해 스토리를 인식하게 한다. 게임에서 정리라는 퍼즐이 내러티브와 결합하며 사물은 해석의 대상이 되고, 정리는 이를 들여다보는 행위가 된다. * 의 회고록 정리 화면 ⓒSecret Mode 여기서 <언패킹>이 여타의 정리 게임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드러난다. 현실에서의 정리와 게임에서의 정리 사이에는 자발성의 유무 이외의 목적 차이가 있다. 내러티브의 발견이 게임의 명시적인 목적으로 제시될 경우 사물의 위치는 해석 대상을 넘어 단서 혹은 증거로 구체화한다. 이때 역설적으로 사물은 그것이 담고 있는 기억, 의미와 분리된다. 내러티브의 구성을 최우선 목적으로 둔 플레이어는 전체 이야기를 짜맞추는 데 들어맞는 의미만을 부분적으로 탈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속 인간의 삶에는 대주제나 기승전결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정리에서도 각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지만 이를 하나의 서사로 묶는 것은 불가능하며, 우리는 산개한 기억을 더듬어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물질과 기억』(1896)에서 주장했듯 기억은 세부 사항이 완전히 보존된 텍스트의 형태가 아닌 부분적인 이미지의 집합으로 우리에게 떠오른다. 이때 사물은 기억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자신과 관련된 이미지를 무분별하게 소환한다. 정리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기억은 이처럼 예고 없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언패킹>이 제시하는 플레이는 정리와 기억이 연결되는 현실의 메커니즘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정리 게임에서 물건의 주인은 늘 가상의 인물이자 타인이다. 플레이어에게는 자신이 정리해야 할 물건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주인공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듯이, 혹은 잃었던 기억을 찾아가듯이 어렴풋하게나마 주인공의 자아를 구성할 수 있다. 어떠한 명시적 내러티브 없이 사물의 자리를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기억은 우리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관계맺은 사물 속에서도 거주하기 때문이다. 다시 벤야민의 상념을 빌려본다. “기억된 것, 생각된 것, 의식된 것, 이 모두는 자기 자산의 초석이 되고, 액자, 주각, 자물쇠가 된다. 시대, 주변 경관, 수공 작업, 이전의 소유주 — 소유주의 이러한 물건은 저마다 진정한 수집가에게 한데 모아져 하나의 마법적 백과사전이 되고, 그 총체가 소유주 대상물의 운명이 된다 [2] .” 그렇다면 <언패킹>에서 플레이어의 정리는 주인공에 대해 쓴 백과사전을 훑어보는 일이다. 백과사전을 읽는다고 세계를 완벽하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듯, 정리가 끝난 뒤에도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모든 것은 짐작될 뿐이다. 이 느슨한 이해의 방식은 앞서 언급한 <언패킹>의 유연한 규칙에도 반영되어 있다. 자리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물건은 없다. 그래서 현실의 우리도 정리를 한다. 제자리를 찾는 일에는 정답이 없어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물건의 자리도, 나 자신의 자리도. 넘치는 물건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을 정리하다 보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1] 발터 벤야민, 『라디오와 매체』, 고지현 역, 현실문화, 2021, 239. [2] 발터 벤야민, 앞의 책, 2021, 227. Tags: 기억, 언패킹, 정리 게임, 코지 게임, 사물과 기억, 발터 벤야민, Unpacking Game, Cozy Games, Environmental Storytelling, Memory in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에디터) 박유진 시사 유튜브·팟캐스트를 만드는 직장인이자 평범한 게이머. 시사를 녹여낸 게임 이야기를 전하는 일에 종종 함께합니다.

  • DejaVu Sans The NFT Games Dream – is it yet another tulip mania or path to our future?

    Constraints can become stepping stones to innovation. The disproportionate market attention towards integrating blockchain technology into games is perhaps stemming from people’s desire to overcome the current constraints. Here, the idea of combining blockchains and games can be examined from two perspectives: First, exploring the intention behind advocating for this change, and second, discussing why such a change is deemed necessary at this time. Combining the findings from these two would allow us to acquire a comprehensive view of this matter and thus enable critical reflections on what the innovation could bring to our future. < Back DejaVu Sans The NFT Games Dream – is it yet another tulip mania or path to our future? 15 GG Vol. 23. 12. 10. Are NFTs for now or for the future? Constraints can become stepping stones to innovation. The disproportionate market attention towards integrating blockchain technology into games is perhaps stemming from people’s desire to overcome the current constraints. Here, the idea of combining blockchains and games can be examined from two perspectives: First, exploring the intention behind advocating for this change, and second, discussing why such a change is deemed necessary at this time. Combining the findings from these two would allow us to acquire a comprehensive view of this matter and thus enable critical reflections on what the innovation could bring to our future. Notably, a significant portion of the ongoing discourse about integrating a blockchain into games is concentrating on optimistic views toward the future. Discussions about related topics like Play-to-Earn (P2E) and Non-Fungible Tokens (NFTs) are also revolving around on the view towards the future rather than present; on what could happen, and should happen according to the previous attempts. Here, we cannot get away from the feeling that something is not right – something is off. Of course, one could still argue that these messy attempts and discourse are stepping stones towards the next paradigm shift and that we must first prioritise broader and newer attempts rather than hindering innovation with over-verification. Coming from this context, this article aims to delve into the issue of NFTs in games, exploring both the social and technical contexts. First, we take a look at the context of non-fungibility and decentralisation and the game industry’s vision towards its future, along with its remaining technical challenges. From there we look more in-depth at where these endeavours might leave their mark on games. Contexts of Non-Fungibility In recent days in South Korea, the term Non-Fungible Tokens (NFTs) is most commonly used in discussions regarding virtual assets, emphasising their potential value deriving from unique ownership attribution over notions about their technological aspects. Meaning, rather than delving into the technical feasibility of obtaining this non-fungibility status, the discourse surrounding NFTs tends to focus more on how much value can be derived from those assets and how to leverage it. Under current South Korean law, it is not possible to introduce NFTs into games, including its live operation services. There are many restrictions and thus a considerable amount of time would be needed before any NFT games can be fully in operation at a viable commercial level in this country. But the potential gain could be high: If NFT games can somehow reach the mainstream market, they could quickly become the most accessible medium for trading cryptocurrencies, using already existing in-game markets – without making much of an early investment in facilitating entirely new channels. Not to mention, South Korean game players are already accustomed to taking financial burden while playing games. Active players are more likely to become devoted fans of the game, and for them, paying to access the blockchain currency may be perceived as an acceptable range of costs. Here it’s worth closely looking at the case of the game “CryptoKitties” (Dapper Labs, 2017) a prime example of games and blockchain integration. The in-game transactions of “CryptoKitties” occur through trading with the virtual currency Ethereum, providing opportunities to trade more exotic digitally-generated cats at higher monetary values. So, what makes this game ‘fun’? Do players find it ‘fun’ when they successfully create exotic digital cats, or does the enjoyment come from engaging in monetary trading as the prices of digital cats might increase? While the game’s primary game design mechanic revolves around collecting and breeding cute digital cats, “CryptoKitties” trade mechanisms combined with real-world monetary values (i.e., currency that can be used even outside the game) make it hard for us to articulate what the particular design elements are that truly resonate with a feeling of ‘fun’ of players. Let’s consider a hypothetical situation where someone has successfully generated an exotic, high-valued cat in the game. If one considers acquiring a unique cat in the “CryptoKitties” through collecting and breeding as ‘fun’: Does that feeling stem from the self-satisfaction of acquiring a rare item (in this case, an exotic digital cat), or does that come from the optimistic expectations of being able to trade it for a higher amount of money? Perhaps it could be a bit of both. Even if the player has no intention of trading that digital cat, just having an expensive object may already give the person a prestigious and satisfying feeling. This somewhat resembles other game business models already common in some South Korean MMO games – and potentially online games from other regions. Then the question is, why NFTs? What makes incorporating NFTs into the game differerent from other conventional game design and business mechanics? In the next chapter, let’s examine the benefits of NFTs from the perspectives of game companies and gamers. Contrasting views towards Non-Fungibility At the current state, one of the primary issues is that game companies have yet to clearly define how the introduction of NFTs can make more ‘fun’ to the game, and what exact innovative changes they envision for their game’s live service. For example, the game “Nine Chronicles” (Planetarium, 2020) demonstrates the notion of decentralisation by going open-source as a blockchain game. But most blockchain game projects do not seem to provide a solid answer on why they need to choose blockchain technology in particular, and rather adopt blockchain first and then find its reasoning as they run. Furthermore, one of the most widely accepted business models among these blockchain-backed games is the pre-sales scheme, selling items early in advance, which is not entirely something new (from the consumer’s standpoint) but more of a replication of existing business models but with added blockchain hype. This inconsistency leads to worrying public views on game companies’ intentions regarding NFTs, which question the corporate vision as the attempt to introduce cryptocurrency into game services while evading state regulations. From the consumer’s standpoint, the company seems to be attempting to profit from the player-to-player item trades through NFTs. (Translator’s note: South Korean game law prevents game companies from directly facilitating player-to-player item trades if it involves purchasing or selling virtual items with real-world money, KRW. Instead, various third-party currency exchange agencies, apart from the game service providers, can mediate the exchange of virtual items with real money, subject to a certain amount of transaction fees.) Many blockchain game proposals from some major South Korean game companies aim to gain control over direct real-world item trade; Proposing to install virtual item trade through company-issued cryptocurrencies, which is a clear indication of the corporation’s attempt to evade government’s regulations. While game companies’ vision toward NFTs is still fixated on product value, for players, the future it presents has somewhat conflicting implications. Some players may view NFTs as a channel for game items as monetary investments, while others see them as collectibles that could last even after the termination of the game’s service. Considering that all online game services’ assets and efforts that gamers accumulate over time could vanish once the game service ends, without any reliable method to possess such intangible values made in games, NFTs can perhaps provide players a permanent ownership of the things that they have achieved in games. Here, NFTs can be interpreted as a token through which players could feel personally connected with the games that they love. Perhaps the NFTs could be perceived as a medium through which players can express their attachment towards the game — a non-fungible token that signifies their devotion as a fan of the game. For these individuals, NFTs are no longer just about the technical wonder but rather a tool for the meaning-making journey of their gameplay. For instance, online game players are aware that the online game service will eventually end. Despite knowing this potential future, they remain devoted to their current satisfactions with the game, accumulating virtual assets that may one day no longer be available. Perhaps NFTs can resolve this uncertainty (the risk) that players must endure, by becoming a proof of record of in-game items that can last indefinitely. A token with which they can enshrine their love towards the game that can safely be stored without the risk of losing it. Contexts of decentralisation What the blockchain currently guarantees in terms of non-fungibility is the data. While attempts to enhance technologies such as proof-of-work (PoW) and hardware storage capacities are in progress, uploading the entire game system to run on the blockchain is still challenging. Let’s consider a hypothetical scenario where the game system remains outside the blockchain, perhaps locally or internally within the game company’s server, while the game state (data) is kept on the blockchain. In this setup, even if the game company is no longer able to manage the game services — terminating its live operation — the records of the items still exist on the blockchain to prove who owns that particular item. However, without the game system to actually run or operate that specific item this is just a data record, which diminishes its non-fungibility – and thus, become basically worthless. While the game company could add more data, but this could significantly decrease the amount of data that can be stored in the blockchain, leading to higher costs. Higher production costs may result in slower updates , and keeping track of all gamers’ play data on the blockchain could burden computational power, potentially hindering seamless gameplay. Recent new methods proposed to improve blockchain usage (e.g., power consumption, transaction costs, and transaction times) contradict the goal of decentralisation for efficiency in proof delegation. Furthermore, most current blockchain transactions are mediated through trading platforms, which deviates from decentralisation in the first place. Another important note here is that if the game company intends to establish a genuinely centralised way to control its game service and trades, a blockchain is perhaps, unnecessary. As even with the conventional techniques already in use in current game technologies, the company could still choose and guarantee the value of their gamers’ data (and their item’s value) – and perhaps be able to do so more efficiently in terms of speed and cost than using a blockchain. Therefore, game corporations must truthfully reveal their intentions and reasoning for adding blockchains in games despite the corresponding complexity and cost risks. Without such justification, their proposals can only be seen, from the players’ standpoint, as a deceptive corporate manoeuvre – promising non-valuable values in an attempt to evade the law. What we find fascinating in attempts to decentralise games is not to facilitate a central server to operate and manage the game but rather to have it open by envisioning a pivotal shif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game companies and users – a relationship that has historically been one-sided and hierarchical. In decentralised games, the relationship between game companies and gamers can take on a more flat and open structure. This collective relationship could also influence how in-game interactions and business models are designed, potentially addressing or altering the stress on gameplay (as recently highlighted in South Korean gaming culture) caused by game designs that favour competition and a win-or-lose mentality. Finding somewhere in between What NFTs could bring to games? In this chapter, we explore intriguing attempts to mediate, compromise, negotiate, and introduce new models that could inspire further innovations. Technical enhancements could one day be able to solve blockchain-related issues. In particular, blockchain has been a significant concern because of its high power consumption due to proof-of-work (PoW). Therefore, newer technologies that do not rely on PoW are being introduced. While it is unlikely that existing blockchains already in operation will alter or adopt these new methods, it could potentially offer further future technical alternatives to issues related to non-fungibility and decentralisation that may arise. In contrast, the game corporations’ attempts to leverage blockchain technology to free themselves from laws and social responsibilities cannot be achieved solely through technical solutions. First, let’s acknowledge that the idea (or attempt) of connecting in-game currency with real-world currency without violating the law is not particularly new; perhaps there’s a good reason for that. The issue is more fundamentally interconnected with the world, and thus, no particular technology—let alone blockchain—can be a magic wand. We believe that even if the use of blockchain becomes more common than ever before, for instance in the banking system, the practices are likely to be somewhere between convention and innovation – a fusion of blockchain technology with the existing banking system. As such, the compatibility between virtual assets and real currency should be mediated, perhaps within the scope that satisfies the existing laws of our society. Implications could also involve using blockchain technology to enhance communication between game companies and players. One such inspiration is the game “EVE Online” and its annual event, ‘Eve Fan Fest,’ which any EVE Online player can sign up for and participate in. Among the many side events in Eve Fan Fest, one we would like to point out is the ‘Player Presentation,’ which offers a 40-minute presentation or a roundtable discussion to pre-registered players. The game operates a single shared universe (global region server) for players worldwide, eliciting user participation both in and outside gameplay: At the event, EVE Online players from various factions gather for discussions and negotiations regarding faction relationships and agreements. Perhaps we could use the blockchain to create and enable various forums like Eve Fan Fest, where South Korean game devs and players can join and engage together. Company representatives can listen to players’ opinions and reflect those ideas into the game’s service, enabling a feedback loop with real in-game implications. Such attempts can perhaps prevent potential conflicts or issues that may stagnate if the company solely dictates decision-making by dismissing the power of collecting intelligence from players. Instead, the blockchain could contribute to recording and tracing player’s ideas and opinions efficiently, supporting the enhancement of fairness and transparency in player communication and game company service decisions. In addition, if the game service continues for a long time, it can serve as an archive of accumulated communication between game developers and players. The blockchain may help regain the trust between South Korean players and game developers, which has reached a dangerously precarious state in recent years. Perhaps loot box probability disclosure, mandated by law in Korea from March 2024, can be verifiably realised by archiving all records of randomised items created in the game on the blockchain. Players may be able to further verify whether the game’s system is operating as the game company intends. At the time of writing, it seems evident that many in South Korean game companies and developers are concerned about what this new law could bring to the industry and how to even comply with this upcoming regulation. Perhaps with blockchain’s potential for transparency and decentralisation, the disclosure of loot box probabilities in South Korea is not far from reality. Of course, we cannot emphasise enough how a careful implementation of new technology, like blockchain, should be based on a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 real world and our real problems. Lastly, we again ask: So what do game companies hope to achieve through NFTs? Is the phenomenon of NFT games a futuristic indicator towards our near future, or are they just a mere reflection of the pending issues of our current reality? Attempts are being made to identify the nature of this phenomenon and clarify our understanding of the blockchain game discourse. Finding the right pathway cannot be achieved unless one can figure out one’s location, calculated based on observing the terrain relative to the starting point where one began one’s journey. As such, we must concentrate on navigating through our future discourse while carefully traversing our current and upcoming terrain of topics and never stop asking the very fundamental starting question: “What is fun in games—and can a game still be called a game when its purpose is something other than the pursuit of fun?”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octoral researcher at Aalto University, Finland) Solip Park Born and raised in Korea and now in Finland, Solip’s current research interest focused on immigrant and expatriates in the video game industry and game development cultures around the world. She is also the author and artist of "Game Expats Story" comic series. www.parksolip.com (게임개발자, 연구자) 오영욱 게임애호가, 게임프로그래머, 게임역사 연구가. 한국게임에 관심이 가지다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2006년부터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있다. 〈한국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으며, 〈던전 앤 파이터〉, 〈아크로폴리스〉, 〈포니타운〉, 〈타임라인던전〉 등의 게임에 개발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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