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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경제’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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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3. 12. 10.

2023년 비디오 게임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RPG 게임을 꼽으라면, 대다수가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를 꼽을 것이다. 여론은 <발더스 게이트 3> 쪽이 우세다. <스타필드>는 전반적으로 나쁘진 않고 홍보에 힘입어 많은 판매량을 올렸지만, 게임 디자인에서 실망스러운 지점도 있어, 베데스다식 RPG 게임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을 받았다면 <발더스 게이트 3>는 풍부한 상호작용과 롤플레잉으로 RPG 장르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는 평을 받으며,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과 함께 올해의 게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게임 그 자체보다는, 두 게임이 대표하고 있는 2020년대 RPG 게임, 나아가 ‘전통적인 자본’이 지배하는 고예산 AAA 게임과 킥스타터와 얼리 액세스 같은 ‘후원 경제’에 기반한 중저예산 게임 개발 과정과 자본 경제 현상을 다루고자 한다. 게임 커뮤니티 내 여론을 살펴보면, <발더스 게이트 3>를 마치 <스타필드>를 위시한 AAA 게임과 똑같은 제작 과정을 거친 게임인 것처럼 비교하는 의견이 많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발더스 게이트 3>의 창의성과 풍부한 디테일 칭찬하면서, <스타필드>를 위시해 어딘가 부족하게 나온 AAA 게임이 <발더스 게이트 3>보다 태만했으며 최종적으로 AAA 게임 제작진이 책임을 회피했다고 비판하는 의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발언들이 좋은 게임에 대한 갈증이라던가, ‘좀 더 잘 나올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라는 당연한 감정에서 비롯된 발언이겠지만 이렇게 비교하고 비판하는 것엔 논리적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같은 장르에 속하고, 화제작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스타필드>와 <발더스 게이트 3>는 전혀 다른 방법론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다. 세부적인 게임 디자인 역시 1대 1로 비교할 수 없는 게임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타필드>는 거대 투자 자본의 지원으로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방향성으로 구축된 생산품이라면 <발더스 게이트 3>는 활성화된 후원 경제에 힘입어 만든 소수 취향을 노린 공예품에 가깝다.

     

물론 생산품과 공예품에는 어떤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취향에 기반한 ‘후원 경제’의 개입 여부가 어떤 중요한 차이점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스타필드>는 대자본의 투자로 거대한 상품을 만들려는 성격이 강한, 전형적인 AAA 게임이다.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25년 만의 새 IP라는 점을 강조한 토드 하워드의 인터뷰라던가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 쇼 등지에서 보여준 강력한 홍보 정책은 <스타필드>가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제니맥스 미디어, 마이크로소프트에 어떤 가치를 지닌 ‘상품’이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월 가의 투자자들 역시 이 게임에 거는 기대가 컸을 것이다.

     

한편 <스타필드> 제작진은 정보 공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는 디벨롭 컨퍼런스 2020에서 이뤄진 토드 하워드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인터뷰에서 그는 “<스타필드>의 정보 공개와 홍보는 출시 직전 짧고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를 반대로 말하자면 <스타필드>가 폐쇄적인 환경에서 제작되고 피드백을 받아왔다는 걸 보여준다. 이처럼 대다수의 AAA 게임은 개발 과정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으며, 피드백을 받는 과정 역시 내부 QA라던가 체험판 같은 곳으로 한정시켜 자신을 신비화한다. 그리고 발매일이 다가올수록 이런 신비화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게임에 대한 호기심과 구매 의사를 증폭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동시에, 오해와 실망을 낳을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스타필드> 발매 후 이어진 거센 실망과 비판의 목소리는, AAA 게임이 취하는 일방적인 개발이 개발진 (내지는 임원진과 주주)의 내부 예측과 수요층의 기대랑 어긋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스타필드>를 기대하고 구매한 유저 대부분은 풍부한 요소들로 가득한 우주 탐사와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특유의 노련한 RPG 디자인과 결합한 게임을 기대했다.

     

그러나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우주라는 공간에서 가능한 콘텐츠를 전부 구현하기엔 AAA 게임 제작 체계상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대대적으로 단순화하고 가지치기하는 방법을 취했다. 게임의 핵심이자 가장 논란이 되었던 우주 탐사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스타필드> 제작진은 행성 지형의 절차적 생성이라던가, 이착륙/이동 과정의 간소화 같은 다양한 ‘간소화’를 동원해 우주라는 공간의 크기는 유지하되, 만들어야 할 콘텐츠 가짓수는 줄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스타필드>를 기대한 사람들이 원했던 방법론이 아니었고, 게임에 대한 멸칭과 제작진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돌아왔을 뿐이다.

     

사실 <스타필드>는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의 유일한 예측 실패작은 아니다. 이미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폴아웃 76>에서 오픈 월드와 온라인 게이밍, 기존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RPG 게임 간의 결합이라는 무리한 전략과 현장 관리의 실패로 발매 초기 거센 비판을 받은 전력이 있다. <스타필드>는 <폴아웃 76> 때보다는 비교적 긴 시간과 공력을 들여 개발된 게임이라 상황이 낫긴 하다. 하지만 굳어진 AAA 게임의 일방적이고 효율을 추구하는 개발 과정이 유저의 기대와 얼마나 괴리될 수 있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럼에도 그런 과정을 쉽게 바꿀 수 없는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 <스타필드>에 대한 밋밋한 반응은 그 점에서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의 개발 노선에 재고가 필요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발더스 게이트 3>는 반대로 ‘후원 경제’의 지원받아 개발 과정을 공유하면서 진행한 게임이다. 우선 이 게임은 발매일까지 베타 테스트가 이뤄지던 얼리 액세스로 구매할 수 있었던 게임이었다. 킥스타터 같은 크라우드펀딩이 동원된 게임은 아니지만 (라리안 스튜디오는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이 성공한 이후 크라우드펀딩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완성될 때까지 이뤄질 게임 개발 과정을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 팬덤에게 공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베타 테스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공식 커뮤니티에서 게임 유저로서 제작진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고, 제작진 역시 커뮤니티 업데이트를 통해 개발 진척과 변경 사항을 공개하기도 했다. 요컨대 <발더스 게이트 3>의 개발 과정은 커뮤니티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지 가능한 과감한 개발 과정이다.

     

여기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얼리 액세스 3년 동안, TRPG가 제공하는 풍부한 자유도와 콘텐츠를 할 수 있는 한계치 내에서 최대한 구현하려고 애썼다. 이런 노력으로 완성된 높은 자유도는 이미 많은 리뷰와 플레이 영상들이 소개하고 있기에,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발더스 게이트 3>는 후원자들이 원하는 게임 디자인을 위해 모든 자원이 총동원되었고, 그 결과물에 대다수가 흡족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쉽지 않은 결정이며, 흥미로운 결과다. 게임이 제공하는 시스템 내에서 플레이어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개발 노선은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게임을 만드는 쪽이나 플레이하는 쪽이나 복잡하게 여길만한 구석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스타필드>랑 달리 주류화된 CRPG가 아닌 (시점 변환을 제공하지만) 고전적인 탑다운 RPG 게임이라는 점 역시 거대 자본한테서는 근심을 샀을 요소였을 것이다. 여기다 라리안 스튜디오 전작들보다도 더욱 방대해진 이야기와 세계관, 많은 이벤트 신을 요구하는 게임이었기에 개발 난도가 만만치 않았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와 라리안 스튜디오는 명백히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게임을 개발했으며, 성장 과정 역시 시대적 차이점도 있다.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개발 과정에서 유추할 수 있겠지만) 1990년대부터 정착한 전통적인 게임 스튜디오의 발전 과정과 거대 IT 기업에서 볼 수 있는 월가 투자자본과 연계된 인수합병 과정을 밟아오면서 커진 회사다. 베데스다가 RPG 제작사로 시작한 1990년대 초중반은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는 ‘경제’를 형성할 정도는 아니었고, ‘셰어웨어’로 대표되는 대안적인 유통/발매 체계는 물리 매체와 게임 소매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인터넷 환경의 한계로 ‘셰어웨어’는 게임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방적으로 게임 일부를 보여주고, ‘정식판’의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유저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게임을 개발하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개인 제작에 머물고 있던 시절이었다.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 역시 기존 회사 경영/재정 관리 방식에 통달한 CEO 로버트 올트먼과 제니맥스 미디어가 개입하면서였다. 지금의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월가로 대표되는 거대 기업과 투자자본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태다.

     

반대로 라리안 스튜디오는 기존 회사 경영이나 상장하고는 관련 없이 설립되고 운영되는 회사다. 우선 제이슨 슈라이어의 기사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라리안 스튜디오는 최고경영자이자 디렉터인 스벤 빈케와 그의 아내가 소유한 개인 회사에 가깝다. 그렇기에 라리안 스튜디오는 게임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주주들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슈라이어는 동시에 이런 구조의 회사는 위험 부담 역시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제로 디비니티 시리즈 첫 작품인 <디바인 디비니티>는 그럭저럭 성공했지만,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후속작 <비욘드 디비니티> 개발 당시엔 회사 인원이 3명 밖에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는 비화가 있다. 그럼에도 라리안 스튜디오는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성공 이후로도 개인 기업 체제하에 특정 장르와 취향의 게임을 만들고 있다. 이 점에서 있어서 라리안 스튜디오는 중소기업 규모 하에 꾸준히 특정 취향의 JRPG를 만들어 흑자를 내는 니혼 팔콤하고도 비슷하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상장 회사 체제하의 다작하는 니혼 팔콤과 달리, 라리안 스튜디오는 크라우드펀딩 같은 ‘후원 경제’의 도움이 컸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라리안 스튜디오를 견인한 ‘후원 경제’의 양태다: 라리안 스튜디오의 지지 기반은 흔히 볼 수 있는 과거의 영광 재현보다는 순수한 장르 매니아들의 입소문과 지지에 가까웠다. 사실 라리안 스튜디오는 과거의 영광이라고 할만한 게 별로 없었던 회사였다. <디비니티> 초기작은 소소하게 성공한 편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지지 기반은 미약했던 편이다.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은 킥스타터로 대표되는 ‘후원 경제’ 형성기였던 2010년대 초중반에 등장한 프로젝트였지만, 정작 펀딩 당시엔 (<발더스 게이트>를 배급한 인터플레이 출신도 포함된) 기존 선점자들에게 밀려서 눈에 띄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은 결과적으로 고전 RPG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는 데 성공하면서, 선점자들보다 훨씬 더 ‘후원 경제’ 붐을 적극적으로 타고 고유의 팬층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팬층 형성은 여타 크라우드펀딩을 받은 과거 영광을 누렸던 개발자들과 달리 영광스러운 과거가 없었기에, 더욱 과감하게 재해석할 수 있었다는 점도 컸다. 요컨대 라리안 스튜디오는 과거에 가진 게 별로 없었기에, 시대의 조류에 얻을 게 많았던 포지션이었다.

     

사실 <발더스 게이트 3>는 ‘후원 경제’로 성장해 어느 정도 체급을 키운 회사의 거대 프로젝트에 가깝다. 새로 설립된 지사를 제외하고도 본사 인원만으로 200명이나 동원했으니,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을 만들던 시절의 라리안 스튜디오하고 같다고도 볼 수 없다. 이렇게 보면 많은 게임 커뮤니티의 조롱감이 되었던 “그들은 운이 좋았다”로 요약할 수 있는, 제이슨 슈라이어나 자비에 넬슨 주니어 를 비롯한 업계 사람들의 주장도 틀린 것도 아니다. 슈라이어의 지적대로 개발 방향성에 비교적 자유로운 인디 게임 제작사는 라리안 스튜디오만큼 자본이나 인력을 투입할 수 없을 것이며, 반대로 라리안 스튜디오 이상으로 자본과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같은 개발사에서는 이런 기획이 통과될 가능성이 극히 낮다. 통과되더라도 상업적 타협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지점에서는 <발더스 게이트 3>는 프랜차이즈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가 라리안 스튜디오의 방법론에 신뢰를 보냈기에 가능했던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이랑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의 얼리 액세스는 거의 완성된 게임을 다듬어가고 보충해가는 비교적 전형적인 얼리 액세스였다면, <발더스 게이트 3>의 얼리 액세스는 무모할 정도로 긴 시간을 들여 팬들과 함께 게임을 만들어 간 쪽에 가깝다. 물론 얼리 액세스 스케줄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었는지 발매 후 내정되어 있던 콘텐츠가 삭제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이 정도면 프랜차이즈 소유주자 투자자로서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가 라리안 스튜디오에 많은 신뢰와 편의를 봐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발더스 게이트 3>의 ‘후원 경제’를 신뢰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수용한 개발론이 대대적으로 성공했다는 점은 2023년 비디오 게임계에서 주목해야 할 ‘현상’이라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발더스 게이트 3> 개발 과정에 적극적으로 돈을 내고 참여한 계층은, 거대 투자자본의 냉정한 시장 분석에 따르면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거금을 투자하기엔 손실이 따른다고 판단한 게임 장르의 팬들이었다. 이 팬들은 단순히 고전 RPG 장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하이퍼 FPS, 2D 플랫포머, 공룡 시뮬레이터 등… 200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ESD와 얼리 액세스, 크라우드펀딩의 등장, 인디 게임 시장의 체계화는 거대 투자자본에 소외당한 ‘팬덤’들이 대안적으로 자본과 경제를 형성하고 지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왔다. 얼리 액세스를 기반으로 커뮤니티와 소통하며 진행하는 개발 방법도 프론티어 디벨롭먼트의 <플래닛 코스터>를 비롯해 사례들이 나오고 있었다.

     

<발더스 게이트 3>의 대대적인 성공은 (자신들을 믿고 원하는 게임을 만들어달라는) ‘후원 경제’의 파급력이 인디와 팬덤의 영역을 넘어서 주류의 영역으로 올라왔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거대 자본의 투자와 베테랑 제작사의 야심에 차 보이지만 실은 안전하게 검증된 개발 노선으로 구성된 <스타필드>가 좋은 평을 듣지 못한 것과 대조해보면, 게임 유저들이 AAA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거대 자본이 판을 짠 안전한 AAA 게임 개발론에 진력을 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후원자들은 르네상스 시절 귀족들이 예술가나 공예가들에게 수공예품을 주문 제작하듯이, 게임 개발사가 돈 걱정하지 않고 후원자 자신들의 취향을 반영해준 게임을 만들어주길 원한다. 다만 르네상스 귀족 후원자들의 후원이 계급 권력을 통해 예술품이나 공예품을 독점하면서 특권을 누리기 위한 도구였다면, 이 새로운 후원자들의 후원은 공통된 취향을 지닌 익명의 소비자들이 기존 자본 권력에서 소외된 취향을 복권하고자 한다.

     

물론 이런 후원 경제가 항상 긍정적인 현상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며, <발더스 게이트 3>의 개발 과정은 근래 비디오 게임 개발 역사 중에서도 보기 드문 실험이자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라리안 스튜디오가 향후 만들 게임에서 이 실험을 계속 택할지는 알 수 없다. 차기작 개발에 6년이나 투자하고 싶지 않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 개발을 하고 싶다는 스벤 빈케의 인터뷰를 참조하면, 라리안 스튜디오의 차기작은 <발더스 게이트 3> 같은 개발 노선을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그저 운과 상황이 좋았던 짧고 행복했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 ‘후원 경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투자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발더스 게이트 3>의 성공은 2023년 비디오 게임계의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산업 전체가 <발더스 게이트 3>와 같은 길을 가긴 힘들겠지만, 적어도 몇몇 혁신가들에게는 탐구해볼 만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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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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