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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각장애인에게 지하철역은 미로 던전이다 - <사운드스케이프> 제작사 오프비트 황재진 대표

    지난 11월 29일 개최된 ‘버닝비버 2024’는 인디게임 창작자들의 다양한 열정과 실험정신을 드러내기 위해 열린 인디게임 컬처&페스티벌이다. 사흘간 총 83개의 인디게임 부스가 열리고 1만여 명의 관람객이 참여한 이 행사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는 <사운드스케이프>다.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 이 게임은 전맹 시각장애인의 경험을 구현한 탈출 게임으로, 게임의 독특한 시각화 방식과 그 속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로 인해 호평을 받았다. 그간 유사한 컨셉의 게임이 소수 있었지만 특히 대학생으로 구성된 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 새롭다. < Back 시각장애인에게 지하철역은 미로 던전이다 - <사운드스케이프> 제작사 오프비트 황재진 대표 22 GG Vol. 25. 2. 10. 지난 11월 29일 개최된 ‘버닝비버 2024’는 인디게임 창작자들의 다양한 열정과 실험정신을 드러내기 위해 열린 인디게임 컬처&페스티벌이다. 사흘간 총 83개의 인디게임 부스가 열리고 1만여 명의 관람객이 참여한 이 행사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 중 하나는 <사운드스케이프>다.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 이 게임은 전맹 시각장애인의 경험을 구현한 탈출 게임으로, 게임의 독특한 시각화 방식과 그 속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로 인해 호평을 받았다. 그간 유사한 컨셉의 게임이 소수 있었지만 특히 대학생으로 구성된 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 새롭다. 이번 호에서는 <사운드스케이프>의 개발자이자 인디 게임 개발팀 ‘오프 비트’에서 활동하는 황재진 팀장을 만나, 게임의 제작 과정과 출시 계획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게임 씬의 젊은 게임 개발자 개인이 겪게 되는 다양한 궤적과 어려움에 대해서도 조명해 보았다. -------------------------------------------------------------------------------- 이경혁 편집장: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안녕하세요, 현재 아주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에 재학 중이고 ‘오프비트’라는 인디 게임 개발팀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황재진이라고 합니다. <플레이리스트>라는 리듬 게임을 시작으로 2023년부터 팀을 꾸려서 개발을 시작했고 2024년 여름부터는 <사운드스케이프>라는 게임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저희가 처음 버닝 비버에서 서로 만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런 게임이 나온다는 사실에 놀랐고 또 굉장히 젊은 분들이 만드셨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사운드스케이프>는 플레이어가 전맹 시각장애인의 입장이 되어 지하철 내 점자블록 같은 장애인 편의 시설을 실제로 활용해 보면서, 지하철을 타러 가거나 역을 나오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보는 게임입니다. 게임 내 배경인 대한민국 지하철 역을 최대한 현실과 동일하게 만들었고, 편의시설들도 기능적으로 모두 구현해서 최대한 시각장애인의 경험을 생생하게 살리자는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실 게임을 위한 아이디어 기획 단계에서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이 이 생각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고 봤거든요. 그래서 기획 단계에서 어떤 계기가 있어 이 아이템을 선택했는지 궁금합니다.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우선 제가 재미있게 했던 게임 중 <스캐너 솜브레>라는 게임이 있었어요. 지금 저희 게임에서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짚으면 점이 찍히며 소리가 시각화되는 시스템의 모티브가 된 게임입니다. <스캐너 솜브레>에는 라이다 스캐너라는 게 있는데 화면을 대고 클릭하면 그 공간에 점이 주르르 찍히거든요. 그런 식으로 공간을 파악해 가며 길을 찾는 걷기 시뮬레이션 공포 게임인데요. 처음 그 게임을 했을 때 이런 식으로도 게임의 비주얼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해서 그거를 유니티로 똑같이 구현해 봤거든요. 주변 지인들에게 한번 보여줘 봤더니 어느 선배가 이거 시각장애인이 체험하는 느낌 같다는 피드백을 줘서 염두에 두게 됐어요. 그러다가 제가 다니는 대학교의 학점 인정 프로그램을 활용해 이 프로젝트를 해보기로 했는데, 기획을 위해 좀더 조사를 해 보니 생각보다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인 점자나 점자블록 상태가 좋지 않더라고요. 제 기억으로 점자블록 설치율은 50%였고 그 중에서도 제대로 설치된 적정 설치율은 45% 정도였어요. 이런 부분을 게임으로 녹여내면 일종의 소셜 임팩트를 줄 수 있겠다 싶어서 <사운드스케이프>의 초기 기획안이 만들어졌고, 그걸로 계속해서 개발을 해온 상태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실제로 <사운드스케이프>를 여러 대회에 출품을 좀 하셨잖아요, 저도 버닝 비버를 포함해 적어도 두 군데서 본 것 같은데 좋은 반응이 많았고 인터뷰도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반응들에 대한 느낌이 어떠셨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게임을 개발했을 때 첫째로 걱정이 되었던 부분은 소셜 임팩트 측면에서 저희가 생각한 ‘시각 장애인 체험’이라는 의도가 플레이어에게 확실히 전달될까였고, 둘째는 이 게임이 ‘게임’으로서 재미있을까 였어요. 버닝 비버는 저희가 큰 규모로는 처음 참여하는 전시회였는데 거기서 사람들 피드백도 받아보며 질문을 드렸거든요. 첫 번째 고민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생각보다 게임의 의도가 아주 잘 전달된 것 같다고 느꼈어요. 두 번째 고민에 대해서는 반응이 두 부류로 갈렸던 것 같아요. 이 게임 자체가 비주얼적으로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다 보니까 새롭고 신기해서 재밌다는 분들도 있었고, 게임 자체가 재밌다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나름의 어느 정도 특색은 갖추고 있는 게임이 아닐까라고 저희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운드 스케이프>와 비슷한 컨셉 게임들이 있잖아요. 저는 반향정위를 응용한 VR 게임들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제작과정에서 <스캐너 솜브레>를 비롯해 다른 레퍼런스로 말씀해 주실 수 있는 게임들이 더 있을까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첫 번째 레퍼런스가 <스캐너 솜브레> 였다면, 두 번째는 <다크 에코>라는 2D 게임인데 걸어 다니면 발소리와 함께 주변으로 선 같은 게 퍼지다가 벽에 튕기며 공간이 파악되는 공포 게임이었어요. 발소리를 통해서 공간을 보여주는 거다 보니 소리 시각화 컨셉과 어느 정도 일치해서 레퍼런스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구요. 전체적으로 오픈월드 게임들도 봤는데, 시스템을 완전히 가져오지는 않았고 오픈월드가 플레이어를 유도하는 방식을 참고했어요. 예를 들어 <젤다의 전설>에서 빛을 밝게 만들어놔서 그쪽으로 플레이어가 가게 하거나, 게임을 시작하면 넓은 전경을 보여줘서 탐험하고 싶은 욕구를 만들게 하는 등 심리적으로 유도하는 부분들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사운드스케이프>도 점자 시스템이 플레이어 주변에 있으면 밝게 만들어서 플레이어를 유도하도록 구현했구요. 초기에는 튜토리얼도 만들어서 게임 내에 공간의 UI를 띄워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관심을 끌어 보려고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유도가 잘 안 되서 실패하긴 했지만요. 이경혁 편집장: 지하철 역을 게임 안 플레이 공간으로 만든다면 실제로도 지하철 역을 많이 가보셔야 했을 것 같습니다. 가장 많이 방문하셨던 곳이 어딘가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지하철 역을 선정할 때, 우리 스테이지로 만들기 적합한 곳을 찾기 위해서 네이버 지도 거리뷰와 교통공사 홈페이지의 편의시설 분포도를 확인했어요. 단계별로 스테이지가 점점 어려워지게 만들고 싶어서 스테이지 1은 나름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구축된 역, 스테이지 2는 적당하고 애매한 상태, 스테이지 3은 좀더 열악한 곳으로 고르려 했어요. 자료 찾아보고 거리뷰에서 출구 쪽 주변 상황은 어떤지도 보면서 그때 거의 1호선부터 수인분당선까지 대부분의 역을 찾아봤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첫 번째 스테이지로 선정한 곳이 신분당선의 청계산입구 역이었어요. 교통공사 측에 촬영 허가를 받고 데이터 수집을 하면서 거의 네 번 넘게 방문을 했고요. 그 외에 수인분당선의 보정역과 매교역 등 추가적인 스테이지도 선정한 상태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실 어려운 스테이지라고 하면 떠오르는 역들이 있는데(웃음) 오래된 역들이 확실히 편의시설이 구축이 덜 돼 있는 느낌도 있고요. 역들을 다니시다 보면 시각장애인들에게 이 공간이 어떤 의미였을지에 대한 여러 가지 느낌도 좀 받으실 것 같아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어떻게 보면 사람들마다 직업병이라는 게 있잖아요. <사운드스케이프>를 계속 만들다 보니 지하철을 타면 여기는 점자블록이 왜 이렇게 생겼지, 아 여기는 점자블록 깔려 있고 점자랑 음성유도기도 있네 이런 식으로 계속 눈에 밟히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건 저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역 내부는 시설이 잘 되어 있는데 역 외부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계산입구 역 같은 경우도 게임 내에서는 구현되지 않았지만 역 바깥으로 조금 걷다 보면 점자 블록이 끊기거든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역 내부까지는 교통공사의 관할이지만 밖은 아니어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가장 문제가 많았던 역은 인천 쪽 지하철역들이었어요. 저희가 대구나 부산 같은 곳까지는 가지 못하고 수도권 역만 조사한 것이긴 한데, 인천은 확실히 좀 오래된 것 같긴 하더라고요. 이경혁 편집장: 부천 출신으로서 공감합니다. 저는 되게 재밌는 게, 애초에 게임을 제작하실 때 뭔가 사회적인 메시지를 만들려고 시작하셨던 것은 아니지만, 하다 보니까 스스로도 자꾸 그게 눈에 밟히게 되신 거잖아요. 혹시 <사운드스케이프>를 하면서 이 팀이 준비하고 있는 게임에 대한 방향이 사회적 메시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좀 바뀌게 되신 걸까요? 아니면 여러 가지 제작 경험 중의 하나 정도로 생각하고 계신가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일단 팀원 분들께서 각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강조하는 게임에 치중하겠다는 생각까지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게임을 만들어 보며 느낀 건데, 사회적 메시지에 100% 치중하지 않더라도 이를 게임에 어느 정도 넣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예시로 게임 스토리에 사회적 풍자를 넣을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블랙 코미디처럼 연출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 식으로 게임에 사회적 메시지를 한 스푼 넣는다는 느낌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국내에서는 그런 시도는 거의 인디 쪽에서만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혹시 국내 인디 게임 중에서 좀 임팩트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작품이 있을까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제가 인디 씬에서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마음 먹는데 영향을 크게 준 게임들이 있어요. 대표적인 게 유명한 <스컬>입니다. 고등학교 입학 면접 전형날에 <스컬> 데모 플레이 영상을 봤는데 이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나요. 저희 게임과는 장르가 좀 멀고, 지금은 게임이 커져서 인디를 벗어난 것 같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인디 게임 중 하나에요. 그리고 <그리스>라는 스토리 형식의 퍼즐 게임이 있는데, 텍스트가 한 개도 없는데도 스토리가 전달되더라고요. 조작에 대한 튜토리얼 정도는 있지만 퍼즐 메카닉 설명도 없거든요. UI가 이렇게 없는데도 연출만으로도 게임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감명깊었어요. 또 좋아하는 게임이 <리듬 닥터>라는 리듬게임입니다. 크레딧이 나오는 스테이지가 있는데, 게임 크레딧까지 스토리에 전부 녹여버린다는 게 신기했어요. 보통 리듬게임이라 하면 위에서 노트가 내려와 치는 건데 실제로 리듬을 타야 하는 게임 시스템도 재미있고요. 이경혁 편집장: 이제 이야기가 슬슬 개발자 개인으로 향하고 있는데요, 2004년생이신데 게임 개발자 치고는 굉장히 젊은 나이이십니다. 언제 처음 게임을 만들겠다고 다짐을 하셨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제가 게임은 초등학생 때부터 계속 해왔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PC방을 가게 됐어요. <리그 오브 레전드>랑 <오버워치> 두 개를 거의 몇 천 시간을 했던 것 같아요. 이제 너무 질리는데 PC방에 있는 <바람의 나라>, <리니지> 같은 다른 게임들은 하고 싶지가 않은 거에요. 그때는 스팀의 존재를 아예 몰랐거든요. 그런 플랫폼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럼 이제 도대체 무슨 게임을 하지 하다가 그냥 내가 게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할 게임이 없었던 게 게임을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게임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아보다가 SBS 같은 게임 학원을 알게 되서 직접 문의도 드렸어요. 나중에는 학교 다니면서 학원에 주말반으로 들어가서 유니티랑 게임 기획 과정을 배웠고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게임 관련 진로를 잡으시는 데 집에서 반대가 있지는 않았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게임 학원 등록할 때만 해도 반대를 정말 많이 하셨어요.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잖아요. 보통 고등학교 졸업 뒤에 대학 가서 진로 찾아서 취업하는 게 수순일 것 같은데, 중학생 때부터 갑자기 아이가 게임 만들고 싶다고 하면 부모님 입장에서 당황하시는 게 당연했을 것 같아요. 게임 관련 진로를 잡으면서 고등학교도 특성화고를 선택하게 됐는데, 자랑은 아니지만 중학생 때 성적이 나쁘진 않았어서 갑자기 특성화고를 가버린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엄청 반대했어요. 교장 선생님께서 따로 부르실 정도로….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했죠(웃음). 이경혁 편집장: 고등학교도 특성화 고등학교로 가신 거군요. 게임 관련 분야로 가신 것이지요? 본인과 비슷한 입장의 학생들이 많았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제가 다녔던 곳에는 컴퓨터 게임 개발과와 e-스포츠 학과가 있었어요. 즉 게임을 하는 사람과 게임을 만드는 사람으로 나뉘어지는데, 게임을 만들려고 온 경우 제 기대와는 좀 다르게 게임 개발에 대한 큰 의지를 갖고 오진 않은 것 같았어요. 생각보다 예상과 많이 달라서 1학년 때는 무작정 애들을 모아서 게임을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무산이 됐어요. 그 이후부터는 적당히 팀 프로젝트 하면서 거의 원맨 팀으로 게임 만들고, 그런 식으로 게임 개발 공부하고 고등학교 나와서 대학 다니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제가 그쪽 커리큘럼을 잘 몰라서 궁금해서 드리는 질문이지만, 사실 게임 개발하려면 수학적인 기반이 되게 중요하지 않습니까. 특성화고에서 그런 수학에 대한 강의가 좀 충분하게 제공이 되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다른 학교들은 잘 모르겠지만 저희 학교는 사실 많이 부족했어요. 제가 들어올 때만 해도 커리큘럼은 1학년 때는 그냥 다양한 진로가 있다는 거를 보여주려고 자바스크립트나 웹 서버, C 프로그래밍,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밍 등등 이것저것 많이 해보는 식이었어요.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유니티배우면서 개발에 들어가는데, 정말로 수학적으로 베이스가 되는 부분은 알려주지 않고 대부분 툴 쓰는 법이나 언어 기초 위주였던 것 같아요. 다행히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저한테 엔진 프로그래밍 쪽에 눈을 뜨게 해준 좋은 선생님이 한 분 계셨어요. 그분께서 벡터 부분이라든지 행렬 연산 자원수 같이 게임에 필요한 수학들을 많이 알려주셨고 그 덕에 게임 개발에서 수학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서 공부를 했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주니어 개발자들이 기초 수학에 대한 이해가 너무 없는 상황이고 회사들 입장에서 신입을 뽑아 수학을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커리큘럼에 대한 전면적 재개발이 필요하지 않냐는 얘기가 많아 한번 여쭤봤습니다. 특성화고를 나올 경우 그냥 취업하시는 분들도 있고, 대학에 가는 분들도 있으실 텐데요. 대학을 선택한 이유가 특별히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디지털 관련 학과 소속이라고 하셨는데 세부전공에 게임이 있는 것이지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네, 대표적인 전공들이 영상이랑 게임 쪽이에요. 일단은 저희 고등학교는 다른 특성화고와 달리 대학 진학이 일반적인 케이스였고 취업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 분위기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고등학생 때 배우면서 아직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었어요. 이대로 취업하면 회사 생활을 배울 수는 있겠지만 기술을 갈고닦기는 어렵겠다 생각해서 좀 더 배우기 위해 대학을 갔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오프비트’라는 팀에 대한 것으로 옮겨볼까 합니다. 오프비트를 구성하게 된 계기와 팀의 첫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부탁드립니다.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오프비트는 지금은 저를 포함해 5명이 함께하고 있지만 2년 전 처음 결성했을 때는 2명으로 시작했습니다. 대학교 개강총회 자리에서 모션 그래픽이나 아트워크 영상을 정말 잘 만드는 친구를 만났는데, 게임에 이런 아트워크를 넣고 싶어서 제가 납치를 했어요(웃음). 그렇게 함께 만든 첫 작품이 <플레이리스트>라는 마우스로 플레이하는 리듬 게임이었어요. 이후에 그 친구가 생각보다 너무 유명해지고 바빠져서 그 작업은 마무리하고, <사운드스케이프> 기획안을 구성하고 팀원을 모아 지금에 이르게 됐어요. 팀원들도 같은 대학교의 비슷한 전공 사람들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아직 학교에 계시다 보니 어느 정도 팀이 유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사실 오프비트 활동이 지금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상황은 전혀 아닐 것 같습니다. 작업 동력은 어떤 식으로 생겨나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지금 팀 활동에 대한 경제적 이득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저도 사람들과 개발을 하려면 이 동기를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는데,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때는 그걸 잘 몰랐을 때라 충돌도 있었어요. 그때 이후로는 저희가 (오프비트 활동에 대해) 돈을 줄 수는 없는 상황이니까 개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선 '내가 만든 게 실제로 게임에서 이렇게 동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일례로 3D 작업을 할 때는 3D 모델이 나오면 최대한 게임에 바로 적용시킬 수 있게 만들어서 바로 팀원에게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게끔 했구요. UI 디자인을 하시는 분이 가져오면 제가 최대한 애니메이션화하여 게임에 들어갈 수 있게 해서, 팀원이 자신이 만든 리소스 활용에 대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워크 플로우를 구성했어요. 그리고 물론 가장 큰 동력은 버닝 비버에 선정되어 출품한 거였어요. 저희가 다같이 가서 전시를 했는데 실제 사람들의 반응을 바로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팀원 분들이 제일 많이 동력을 얻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사운드스케이프>가 버닝 비버에 나간 뒤 여러 게임회사에서도 굉장히 관심이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전시회에서의 반응들이 여러 가지로 동기나 감흥을 주셨을 것 같은데, 한편으로 이런 커리어를 쌓아 게임사에 취업하는 진로 방향을 생각하신 적은 있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다들 창업을 하기 전에 취업은 꼭 해봐야 된다라고 말씀을 하시기도 해서 회사도 한번 들어가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작업을 어떻게 하며 아트 부서랑 개발 부서가 있다면 협업이나 소통 같은 것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그런 것들을 배우려면 회사에 들어가는게 맞다고 생각해서요. 일단 이 팀은 제가 곧 군대를 가기 때문에 추가적인 개발이 어려운 상황이고, 팀원 중에는 4학년에 올라가는 분들도 있다 보니 다들 취업을 생각하는 상황이에요. 이경혁 편집장: 그렇다면 <사운드스케이프>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향후의 출시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듣고 싶습니다.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사운드스케이프>는 1월 31일자에 출시를 예정해두고 개발 중인 상황이에요. 원래는 얼리 억세스도 생각을 해봤지만, 아무래도 복무기간인 1년 반 동안 소식이 사라지는 거라 일단은 정식 출시를 먼저 해 놓고 군입대를 할 계획에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스팀 플랫폼에 정식 출시하는 게 1순위이고요, 버닝 비버에 출품했으니 스토브 쪽도 연락이 올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어요. 별도의 퍼블리셔는 없고 개인 사업자 단위로 출시할 것 같아요. 1.99달러 정도의 싼 가격의 유료 패키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기존에는 오프비트가 동아리 같은 느낌으로 작업하다가 결국 출시라는 상황을 맞게 되면 ‘사업자’가 되는 것이고, 실제로 수익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새로운 고민 앞에 서시게 될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게임 제작이라는 커리어를 쌓는 과정에서 그 고민이 진짜 고민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그래서 지금도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아는 것이 없으니까 정말 고민이긴 합니다. 제가 배웠던 아카데미에서는 기획 관련 부분에서는 도움을 받을 수 있어도, 그런 운영이나 사업적인 부분은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요. 근데 막상 게임 제작을 해보면 이 사업적인 부분과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프비트도 지금까지는 동아리였다고 생각을 해요. 영업 수익이 0원이었고 전시회 가는 교통비나 전시회 준비비까지 포함하면 마이너스였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게임을 출시해서 어느 정도 수익을 내려면 진짜로 회사 의 영역까진 아니어도 팀의 영역으로는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제작 과정에서 따로 클라우드 펀딩을 받거나 이런 것은 없었나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네, 일단 <사운드스케이프>는 시각장애인분들에 대한 인식에 도움을 주고 장애인 환경에 대한 개선을 도모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에요. 제가 게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컨셉에 잡아먹히는 것인데요. 그래서 소셜 임팩트 차원에서 강조하는 목적의 게임이라면 우리는 어차피 돈 벌 생각 없으니까 전부 기부하자고 해서, 실제로 수익이 얼마나 발생할지 모르겠지만 이 게임을 통해 판매 수익이 나온다면 전액을 기부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원래는 펀딩도 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텀블벅 쪽에 문의를 드렸더니 기부 목적의 펀딩은 안 된다고 하여 일단 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어쨌든 그걸로 지금 당장 돈을 벌겠다라는 입장은 아니신 거군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네, 저희로서는 이 게임을 만들고 출시해서 실제로 수익이 났다는 거에 좀 의의를 두고 싶은 그런 상황입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운드스케이프>를 출시할 경우 해외로도 나가게 될텐데요, 인터페이스도 전부 영어 버전으로 나가는 걸까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그렇습니다. 일단 출시일에는 한국어만 출시를 하고 입대가 2월 17일이니까 2주 안에 번역해서 업데이트할 계획에 있습니다. 고민이 많은 게, 원래는 영문 대응을 하고 싶었는데 가장 큰 문제가 시각장애인들의 음성유도기 문제였어요. 영문 버전으로 출력을 하면 한국 지하철인데 영문 TTS가 나오는 상황도 좀 이상한가 싶으면서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고증적인 측면에서도 고민이 됩니다. 저희가 그래도 나름 실제 지하철역을 동일하게 최대한 동일하게 구현한다는 컨셉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 지하철에서는 영어 TTS를 실제로는 이용하지 않으니까 컨셉과 안 맞지 않을까, 그냥 TTS에 영문 자막을 달까 등등의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쉽지 않겠지만, <사운드스케이프>의 컨셉은 오히려 해외에서 먹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마 이번에 겪어보셨겠지만 국내는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외국은 좀 다르다 보니 커리어상으로도 굉장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고요. 이런저런 얘기를 쭉 했는데 오늘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면, 처음부터 장애라는 사회적 메시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여러 결과로 나름의 파급력과 재미를 만드는 어떤 게임이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여러모로 이 프로젝트가 나중에도 좀 생각이 많이 나게 되실 것 같은데요. <사운드스케이프>라는 게임 하나와, 이 게임을 만들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의 소통들, 그리고 실제로 물리적으로 떨어지는 소프트웨어의 빌드 등 여러 경험들이 묶여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거잖아요. 이 덩어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어떠세요? 황재진 오프비트 팀장: 제가 아무래도 팀장이고 팀 활동의 거의 모든 일에 관여를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장단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례로 3D 만들 때의 방향이나 디자인을 게임에 가져왔을 때, UI 아트 부분의 애니메이팅. 게임 기획, 프로그래밍에 다 제가 얽혀 있다보니 제가 없으면 팀이 안 굴러가고 게임이 안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해요. 비록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서 굉장히 좋게 생각하고 있고 다음부터는 조금 내 일을 덜자라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입대를 통해서) 멈췄어요(웃음). 지금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총 4개 스테이지가 나오는데 원래는 버닝 비버 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서 여러 개를 더 만들어볼까 했지만 안 될 것 같더라고요. 너무 욕심을 내면 오히려 기획이 무산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이 조금은 아쉽더라도 딱 적절하게, 할 수 있는 만큼은 한 것 같습니다 저의 최종적인 목표는 나중에 어떤 형식으로든 창업을 해서 게임 회사를 만드는 것인데요. 지금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 같이 개발을 해왔는데 이 과정을 앞으로는 제가 창업을 할 때 정말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실제로도 개발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정말 귀중한 경험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머물렀던 곳은 어디였을까: 터치스크린 시대의 숙련도

    매체라는 말은 A와 B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텔레비전과 영화, 스마트폰을 우리가 매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들이 각각 생각과 생각, 창작자와 수용자,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게임도 같은 의미에서 매체다. < Back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머물렀던 곳은 어디였을까: 터치스크린 시대의 숙련도 11 GG Vol. 23. 4. 10. 매체라는 말은 A와 B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텔레비전과 영화, 스마트폰을 우리가 매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들이 각각 생각과 생각, 창작자와 수용자,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게임도 같은 의미에서 매체다. 그러나 이 매체라는 말은 조금 더 파볼 여지를 갖는다. 이를테면 텔레비전 매체는 물리적 매개체로서 텔레비전 수상기라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시청각 정보를 시청자에게 매개한다.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물리적 매체 안의 콘텐츠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 다시말해 디스플레이 기기, 스피커,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 또한 매체로 불린다. 디지털게임에서 물리적 매체는 PC, 스마트폰, 콘솔게임기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다만 다른 매체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물리적 매체 영역 하나를 게임은 더 가지고 있는데, 바로 입력 인터페이스다. 물리적 피드백을 제공했던 게임 인터페이스들 조이스틱과 패드, 키보드와 마우스, ‘펌프 잇 업’의 발판에 이르기까지 디지털게임에는 사용자와 게임소프트웨어 사이를 연결하는 입력장치로서의 인터페이스가 중요한 매체로 자리한다. 게임 소프트웨어가 제시하는 규칙의 세계는 사용자가 규칙에 조응함으로써 완성되며, 때문에 디지털게임에는 사용자의 의도를 기호화하여 소프트웨어에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플레이어가 자신의 의도를 소프트웨어에 되먹이는 과정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 감각으로 받아들인 소프트웨어의 신호는 뇌에 이르러 체계화된 상으로 구성되고, 이를 토대로 플레이어는 상황을 추론하여 해법에 맞는 의도를 다시 쏘아보낸다. 경우에 따라서는 음성이나 몸짓 같은 경우도 인터페이스로 기능할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경우 이 과정을 매개하는 방식은 손과 같은 기관을 이용해 특정한 버튼을 눌러 정보를 입력하는 방식이다. 버튼을 누른다는 말로 대표되는 게임 인터페이스의 활용에는 디지털게임이라는 매체가 단순히 시청각매체로만 기능하는 것은 아닌 특정한 상황을 포함하기도 하는데, 촉각이다. 스틱과 패드, 키보드와 마우스와 같은 일반적인 게임 인터페이스들은 대체로 특정한 버튼을 누르거나 스틱을 일정한 방향으로 밀고 당기는 동작을 요구하는데, 이 때 스틱과 버튼, 키들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이 입력이 제대로 들어갔음을 알리는 특정한 촉각적 신호를 보내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오락실부터 유구하게 이어지는, 플레이어들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 ‘아! 눌렀는데!’는 이 촉각의 피드백과 게임 소프트웨어의 피드백이 보여주는 불일치(이기도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변명이기도 한)의 순간을 보여준다. 내 손에 들어온 감각으로는 제 때 스틱을 당기고 버튼을 눌렀지만, 소프트웨어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는 판정을 결과로 낼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어떤 순간에 손가락이 미끄러져 버튼을 제 타이밍에 누르지 못했거나 하는 순간 소프트웨어가 결과값을 출력하기 전에 이미 촉각 신호로부터 ‘아, 망했구나!’를 먼저 체감하기도 한다. 비단 버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스틱은 움직임의 제한값 – 다시말해 얼마나 오른쪽 방향으로 밀어낼 수 있는지의 한계를 스틱을 움직이다가 최대값의 벽에 부딪혔다는 촉각의 신호로 판단한다. 격투 게임에서 스틱이나 패드를 이용해 연속적으로 방향 커맨드를 입력해야 할 때 우리는 경우에 따라 스틱을 돌리는 모션을 취하곤 하는데, 이를테면 ←↙↓↘→같은 커맨드를 연속으로 입력할 때 우리는 반시계 방향으로 스틱을 끝까지 밀어 돌리게 된다. 이 때 그려지는 스틱의 움직임은 스틱의 가동범위 안에서 촉각을 통해 호의 모양으로 인지된다. 현실의 물리적 피드백이 사라지는 시대 소프트웨어와 상호작용해야 하는 디지털게임의 인터페이스는 그렇게 오랫동안 물리적이고 촉각적인 방식에서 비롯되는 또다른 피드백과 함께 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독특하게도 이런 피드백이 사라진 새로운 게임 인터페이스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바로 터치스크린이다. 모바일 기기들의 보편화되면서 모바일 기반의 게임들이 크게 대중화되었고, 그와 함께 터치스크린은 게임 인터페이스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단지 인터페이스의 중심이 바뀌었다는 말만으로 다 설명할 수 있는 변화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앞서 언급한, 촉각을 통한 피드백이 과거의 인터페이스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매끈한 유리 평면에서 이루어지는 플레이어의 입력은 더 이상 촉각적인 피드백과 함께 하지 못한다. 이른바 가상패드라고 불리는, 터치스크린 안에서 표현하는 별도의 입력방식을 통해 우리는 손가락으로 마치 스틱을 미는 듯한 움직임을 입력하지만, 이 때 손가락은 과거 스틱과는 달리 한없이 미끄러져나간다. 특정한 버튼을 누르면 여전히 소프트웨어는 우리의 입력에 반응하지만, 과거와 같이 게임 소프트웨어 바깥에서 주어지는 ‘눌렸음’의 촉각적 신호는 사라진다. 햅틱과 같은 기술을 통해 일정부분 보완한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물리적 방식에 기반한 촉각 신호와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일련의 가치판단으로 귀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제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들은 특유의 감각에 걸맞는 게임 규칙들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궁수의 전설’이나 ‘탕탕특공대’처럼 오로지 스와이프 동작만으로 이동과 공격을 묶어버리되 고전적인 입력방식의 형식을 유지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고, 아예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에 적합한 장르와 시점으로 넘어가버린 소셜네트워크게임류도 있다. 과거 스틱/패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대전격투게임과 같이 특정한 장르는 아무래도 소화하기 어려운 것이 터치스크린이겠지만, 이 또한 이후 장르가 어떻게 바뀔지는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숙련도가 머무는 곳은 어디였을까 촉각 피드백이 사라진다는 점을 조금 더 폭넓은 개념, 인터페이스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인간-소프트웨어 사이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형태가 보편화되고 이 과정에서 물리적 피드백이 점차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를테면 간혹 이야기되는 뇌파를 통한 게임 컨트롤을 예로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속 캐릭터의 행동을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컨트롤할 수 있는 경우를 상정한다면 이 과정에서 또한 물리적 인터페이스가 제공하던 촉각적 피드백은 사라진다. 컴퓨터와 신경망을 직접 연결하는, 마치 ‘사이버펑크 2077’같은 세계에서의 게임이라면 아마도 인터페이스의 촉각 피드백은 무의미할 것이다. 오히려 이런 상상 속에서라면 디지털기기가 가상으로 만들어내는 햅틱과 같은 촉각 피드백은 플레이어가 인터페이스를 활용할 때 나타나기보다는 차라리 마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촉각 수트를 입고 적의 공격을 유사하게 그려내는 것과 같은 방식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인터페이스가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물리적 피드백은 점차 사라지고, 그 빈자리는 가상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피드백이 메꾼다. 촉각은 아니지만 VR 헤드셋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플레이어가 VR 헤드셋을 쓰고 시선을 돌리면 센서는 플레이어 머리의 동작을 읽어낸 뒤 시선이 돌아간 만큼의 시야를 렌더링하여 실시간으로 뿌려주는 피드백을 제공한다. 현실에서 플레이하지만 인터페이스의 물리적 피드백이 사라질수록 우리가 체감하는 감각은 더욱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온전한 가상의 세계에 강하게 귀속된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띤다. 첫 번째는 말그대로 디지털게임이 그려내고자 했던 가상세계가 보다 제작자의 의도 그대로 전달될 수 있게 변화한다는 점이다. 시청각 뿐 아니라 촉각까지도 의도한 바 대로 피드백해줄 수 있다는 것은 현재도 적용되고 있는 콘솔 게임의 게임패드들에서 이미 시도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듀얼센스가 제공하는 트리거의 장력 변화나 특정한 상황에 제공하는 햅틱 등은 결국 촉각을 동원해 소프트웨어가 제공하고자 하는 정보를 보다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고자 함일 것이다. 두 번째는 잘 거론되지 않는 점인데, 이는 결국 플레이어 – 소프트웨어라는 길항구도 안에서 중립적인 영역이 사라져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앞서도 이야기했던 이른바 ‘눌렀는데!’는 바로 그 물리적 피드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터페이스 시대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변명이 될 것이다. 물론 신경망을 연결한다고 해도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 ‘접속노드가 이상한데?’, ‘핑이 별로네’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손에 직접 누른 타이밍에 들어오던 촉각적 피드백을 근거로 삼던 시절과는 달리 이 때의 항변은 오로지 소프트웨어가 제공한 결과값과 자신의 의도가 만드는 차이로만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인터페이스가 갖는 물리적 한계는 한계로만 머무르기보다는 디지털게임의 발전과정 안에서 그 또한 극복, 혹은 마주해야 할 어떤 대상으로 자리하며 게임 플레이 안에 함께 녹아들어 온 바 있었다. 터치스크린이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는 그 물리적 피드백의 공백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짝 체험하는 중이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게임들이 그 물리적 한계와 함께 어우러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신체가 유발하는 레이턴시를 넘어서는 완벽한 가상세계와의 합일을 꿈꾸게 하는 것도 인터페이스 기술의 발전이지만, 동시에 특유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부었던 인간의 노력과 그 성과들, 이른바 ‘피지컬’이라고 불렸던 일련의 숙련도가 만들어내던 재미의 영역은 그대로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영역에 눌려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레벨 업: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임 문화 개관

    분명히 는 말레이시아산 게임의 잠재력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구조적 문제에 얽매여 있기도 하다. 이 사례가 더 넓은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려면, 말레이시아 게임 산업 전반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Back 레벨 업: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임 문화 개관 26 GG Vol. 25. 10. 10. *** 이 글의 영문 버전은 아래 URL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gamegeneration.or.kr/article/4f5bf4be-c2c0-4cfe-afa8-85a124a83a98 어느 아담한 시골 마을의 늦은 오후. 수탉 렘보가 크게 울어 시골 분위기를 한층 더한다. 당신과 똑같이 생긴 쌍둥이, 그리고 유치원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들이 마당에서 팽이를 돌리고 있었다. 자유롭고 즐거운 하루가 또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렘보는 오후 산책길에서 소동을 벌이고 있었다. 빙수 장수에게 간식을 달라 떼를 쓰고, 숨바꼭질하던 아이들을 고자질하며,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을 놀려댔다. 그러다 마침내 천적인 마을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제 렘보는 장터와 빨랫줄 사이를 가로지르며 고양이에게 쫓기다가 숲 속으로 도망쳐 버린다. 이제 당신과 쌍둥이가 렘보를 잡아 마을 어른에게 데려다 주어야 한다. 이 사건들은 어드벤처 비디오 게임 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게임은 레스 코파케 프로덕션과 스트림라인 스튜디오가 협력하여 개발했으며, 사랑받는 말레이시아 애니메이션 시리즈 을 각색한 것이다. 게임은 장난기 가득한 일상 속 모험에 휘말린 두 어린 쌍둥이 형제가 가족, 우정, 공동체를 배워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과 더 단순했던 시절의 본질을 포착한다. 소란스러운 닭을 쫓는 것은 첫 번째 퀘스트일 뿐, 플레이어에게는 더 많은 탐험이 기다리고 있다. 2025년 7월 출시 행사에서 말레이시아의 디지털 장관인 고빈드 싱 데오는 이 게임이 “혁신성과 문화적 풍요로움을 구현함으로써 말레이시아 게임을 돋보기에 했다”라고 말했다(BERNAMA, 2025a).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동남아시아, 특히 말레이시아의 캄퐁 (시골 마을)에서 성장하는 경험으로 플레이어들을 초대한다. 퀘스트, 상호작용, 환경은 농촌 생활과 지역 유산의 매력을 반영하며, 게임을 즐거우면서도 동시에 교육적으로 만든다. 플레이어는 아늑한 목조 가옥, 분주한 야시장, 고즈넉한 논밭, 반딧불이가 빛나는 저녁 풍경 같은 무대를 체험할 수 있다. 메인 캠페인 외에도 낚시, 농사, 곤충잡기, 요리, 자전거 타기, RC카 경주 같은 미니 활동들이 준비되어 있다. 또한 이 게임은 애니메이션 원작의 따뜻하고 가족 친화적인 성격을 유지하며, 전투, 유료 결제, 실패 조건이 없는 오프라인 전용 게임이다. 이미지 출처: 스팀 안타깝게도, 큰 예산과 상당한 마케팅, 기존 팬층의 뒷받침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평가는 전반적으로 미지근했다. 디지털 플랫폼 스팀에서는 ‘대체로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유명 게임 웹사이트 카쿠초푸레이(Kakuchopurei)는 어설픈 조작감, 버그 투성이의 상태, 의미 있는 진행의 부재, 그리고 개발사를 둘러싼 노동 논란을 비판했다(Toyad, 2025). 온라인 공간 전반에서도 플레이어들은 RM180(미화 약 43달러)에 달하는 가격을 “제공되는 내용에 비해 너무 비싸다”고 보았으며, AAA 게임과 비교해 합리적 가성비가 아니라고 평가했다(Ralph, 2025). 애니메이션이 큰 인기를 끌었던 인도네시아에서도 유사한 비판이 현지 언론 Tempo 를 통해 보도되었다(M. Faiz Zaki, 2025). 소셜 미디어 보이콧과 홍보 위기 속에서도 개발팀은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패치와 수정을 내놓고 있다. 분명히 는 말레이시아산 게임의 잠재력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구조적 문제에 얽매여 있기도 하다. 이 사례가 더 넓은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려면, 말레이시아 게임 산업 전반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임 산업의 성장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다문화 국가로, 2025년 7월 31일 기준 인구는 3,420만 명이다(말레이시아 통계청, 2025). 게임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 6억 4,900만 달러의 매출이 예상되고, 연평균 7.55%의 성장률로 2027년에는 8억 700만 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BERNAMA, 2024). 이러한 전망은 기술력 부족, 기업 수 제한, 보조금 규모 축소, 인재 풀 협소 등으로 막 시작 단계였던 과거 보고서와 뚜렷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Chong, 2004). 말레이시아가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에 뛰어든 것은 1990년대였다. 모션 픽셀(Motion Pixel) 스튜디오는 루카스아츠의 글로벌 릴리즈 작품인 개발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한 바 있었다(Chong, 2004, p. 20). 2000년대에는 말레이시아의 주요 기업들이 글로벌 타이틀, 특히 MMORPG를 말레이시아 시장용으로 라이선스 받아 현지화하는 사업에 다수 착수한 바 있었다. 최근 말레이시아에는 게임 스튜디오 수가 급증했으며, 이들 대부분은 해외 유명 스튜디오들을 위한 게임 아트 아웃소싱 및 공동 개발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예로 패션 리퍼블릭(<디아블로 IV>, <언차티드 4>, <다크 소울 3>), 스트림라인 스튜디오(<스트리트 파이터 V>, <파이널 판타지 XV>), 레몬 스카이 스튜디오(<마블 스파이더맨>, <라스트 오브 어스 2>, <워크래프트 III: 리포지드>) 등이 있다. 이와 별도로, 말레이시아 스튜디오들은 자체 게임도 개발했다. 대표적인 3개 타이틀은 , , 로, 이들은 말레이시아가 글로벌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위상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Wong, 2024). 2023년, 말레이시아 디지털 크리에이티브 부문 산업은 53억 링깃(약 12억 5천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으며, 이 중 수출은 8억 링깃에 달했다(BERNAMA, 2025a). 다양한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정부는 MDEC(말레이시아 디지털 경제공사)을 통해 2030년까지 말레이시아를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지역·글로벌 허브로 육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BERNAMA, 2025a). MDEC은 현지 게임 개발 지원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플레이스테이션 스튜디오 말레이시아와 협력을 강화했다(BERNAMA, 2025b). 이미지 출처: 스팀 MDEC은 매년 이라는 동남아시아 게임 개발자 회의를 주최하여 역내외 전문가들을 끌어모은다. 행사 주요 내용에는 콘퍼런스, 비즈니스 네트워킹 프로그램, 전시회, 피칭, SEA 게임 어워드, 마스터클래스 워크숍이 포함된다. 또한 스팀에서 MDEC은 말레이시아산 게임을 전시할 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개발된 뛰어난 IP들을 글로벌 관객에게 소개한다. MDEC의 지원 덕분에 말레이시아의 게임 산업은 계속해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게임 개발 인력을 유지하고 육성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더 많은 산업적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말레이시아에서 인재 유지에 영향을 주는 주요 문제는 커리어 성장이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기업 환경이 거론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많은 인재들이 싱가포르, 미국, 유럽과 같은 고임금 시장으로 떠나고 있다(MDEC, 2024, p. 69). 말레이시아에서 제작된 게임들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풍부한 문화적 요소를 포함해 지역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킨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된 외에도 토닥 스튜디오의 야심찬 MOBA 게임 를 꼽을 수 있다. 이 게임은 고대 및 신화적 동남아시아, 즉 누산타라(Nusantara) 문화를 영감으로 삼아 개발되었으며, 최근 지역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오픈 베타를 시작했다(Kalita, 2025). 이와 유사한 주제는 최근 인디 게임 개발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성장해 온 배경인 말레이시아 문화를 어린 시절 추억의 향수와 결합했다(Chandy, 2024b). 어떤 개발자는 한국 MMORPG <란 온라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Chandy, 2024a).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이머들의 경향 비디오 게임은 단순한 여가 활동일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서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해 가고 있다. 2022년 조사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통신멀티미디어위원회(MCMC)는 인터넷 이용자의 35.7%가 온라인 게임에 참여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봉쇄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집에 머물렀던 2020년(42.8%)보다 감소한 수치였다(MCMC, 2022, p. 97). 온라인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오락, 스트레스 해소, 사회적 상호작용, 수익 창출, 현실 도피 등이 있다(Yunus et al., 2021). 2020년 말레이시아 게이머들로부터 발생한 수익은 약 27억 링깃(5억 7천만 달러)으로, 2019년 25억 링깃(5억 2천7백만 달러)에서 증가했다(Hassan, 2021). 많은 게이머들은 매달 200링깃(약 48달러) 이상을 파워업, 외형 아이템, 특별 캐릭터 구매에 기꺼이 지출한다고 보고되었으며, 이로 인해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지출이 가장 높은 시장 중 하나가 되었다(Hassan, 2021). 플랫폼 측면에서, 휴대전화의 접근성과 저렴한 데이터 요금은 말레이시아인들로 하여금 모바일 게임을 선호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수요와 수익에서 PC 게임을 앞질렀다(Lai, 2020). 말레이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대표적인 타이틀로는 과 <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이 있으며, 이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영상 스트리밍과 함께 성장하며 상호작용적 관람 문화의 성장을 이끌었다. e스포츠의 인기가 증가하고 있음을 인식한 MOONTON 게임즈는 최근 말레이시아 e스포츠 연맹(MESF)과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하여 체계적인 게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선수를 훈련하며, 다가오는 동남아시아(SEA) 게임에서 금메달 획득 가능성을 높이고자 하고 있다(Salim, 2025). 또한 말레이시아는 장애인을 포함하는 포괄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Yeoh, 2021). 더 넓은 게임 환경 속에서, 말레이시아 게이머들이 자신의 플레이에 문화적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창의적 주체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주목할 만한 사례로는 에서 말레이풍 결혼 행렬을 재현한 것(Zikri, 2020), <심즈 4>에서 목재 기둥과 라탄 가구로 된 전통 가옥을 건축한 것(Ashaari, 2020), <마인크래프트 > 에서 말레이시아의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를 축소 재현한 것(Tan, 2020), 그리고 <로블록스>에서 왕궁의 총리 취임식을 시뮬레이션한 것(As, 2025) 등이 있다. 또한 게이머들은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 > 을 활용해 코로나19 봉쇄 기간 동안 의미 부여, 사회적 교류, 생산적 활동을 이어갔다(Tengku Sabri et al., 2024a, 2025a, 2025b). 게이머들은 개인 페이지와 게임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들의 창작물을 공유한다. 이러한 창의적 노력의 사례들은 말레이시아인들이 단순한 수동적 게이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게임 플레이 속에 구현하는 능동적 생산자임을 보여주었다. 비디오 게임을 둘러싼 말레이시아의 사회적 긴장 말레이시아 게임 산업과 문화가 빠르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비디오 게임에 대한 수용은 도전 과제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비디오 게임이 말레이시아 대중에게 소개되었을 때, 사회적 불안과 긴장이 함께 뒤따랐다. 2000년대 초반, 오락실은 청소년의 무단 결석, 비행, 폭력적 행동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았다. 또한 도박및 자금 세탁과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받으며 정책에 의한 규제와 폐쇄를 겪기도 했다(Yoong, 2001). 같은 시기, 사이버카페(역자주: PC방)는 점점 인기를 얻었지만, 당국과 부모들에게는 해로운 생활 방식을 조장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불법 도박, 음란물, 사이버 범죄와 같은 우려가 제기되면서 이러한 카페들은 사회적으로 나쁜 평판을 얻게 되었다(Lee, 2014). 모바일 및 온라인 게임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종교적·문화적 우려도 제기되었다. 2016년에는 <포켓몬 GO>가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으며, 일부 종교 당국은 해당 게임에 대해 경고를 내리고 금지를 요구하기도 했다(Malay Mail, 2016). 최근에는 기도실에서 <모바일 레전드> 대회가 열리면서 논란이 일었고, 비판자들은 성스러운 공간을 모독했다고 주장했다(Fong, 2025). 결론 말레이시아 비디오 게임 산업과 문화는 개발사 수의 증가, 투자 확대, 인프라 강화에 힘입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의 사례가 보여주듯, 여전히 개선해야 할 많은 부분이 남아 있다. 인력 유지, 품질 보증, 공정한 가격 책정과 같은 구조적 문제가 주요 과제로 남아 있다. 기술적·경제적 측면을 넘어, 말레이시아의 비디오 게임 문화는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산업과 게이머들을 함께 살펴보면, 말레이시아인들이 어떻게 일상 속에서 게임의 기회와 긴장을 헤쳐 나가는지를 알 수 있다(Tengku Sabri et al., 2024b). 산업의 미래 성장은 기술 혁신과 정부 지원뿐 아니라, 더 넓은 문화적·사회적 차원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말레이시아의 게이머, 개발자, 제도 모두가 활기차고 포용적인 게임 문화를 향해 함께 ‘레벨 업’해 가고 있다. 참고문헌 As,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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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Tengku Intan Maimunah Tengku Intan Maimunah is a PhD student at the Department of Media and Communication Studies, Universiti Malaya, Malaysia. Her research explores video game paratexts, focusing on the creative works and practices that players build around their favourite titles. Her gaming journey began on a Windows 98 PC and continues today on a Steam Deck. Outside of gaming, she edits and publishes books on visual arts. She credits her brother for the first step into the world of video games, her father for the love of stories, and her mother for the eye to see beauty in everything.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영상의 환상이 사라진 지금, 숙제를 남긴 2023년의 두 유비식 오픈 월드

    2023년에 선보였던 대표적인 유비식 오픈 월드 게임인 <호그와트 레거시>와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모두, 다음 시리즈에서는 게임의 시스템과 세계관이 서로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잘 융합된 충격적인 작품으로 돌아오길 응원해 본다. < Back 영상의 환상이 사라진 지금, 숙제를 남긴 2023년의 두 유비식 오픈 월드 15 GG Vol. 23. 12. 10. 필자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 TV 나 영화관에서 펼쳐지는 영상들은 편집이라는 전문적인 기술 , 즉 편집 권력을 가진 PD 나 감독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어떤 것이라고 여겨지곤 했다 . 누가 만들었는지 그 내용은 무엇인지 의심하기보다 필터링 없이 바로 수용하는 , 경전과 같은 믿음의 영역이자 신비로운 무언가로 받아들인 것이다 . 발터 벤야민이 사진과 같은 복제 기술이 발전하면서 예술의 아우라가 사라졌다고 말했지만 , 어린 시절의 나에게 영상은 여전히 편성표의 시간과 TV 앞이라는 공간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 아우라가 있는 존재였다 . 그 시절 나에게 <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 는 누군지 알 수 없는 PD 님이 제작한 , 동물들에 대한 신성한 경전 그 자체였던 것이다 . 시각적인 표현을 주로 텍스트보다는 영상의 문법에 의지하는 게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지금 보면 조악한 도트로 그려진 < 포켓몬스터 골드 > 의 ‘ 불대문자 ’ 나 < 파이널 판타지 7> 의 투박한 폴리곤 움직임도 그 당시에는 ‘ 살아 움직인다 ’ 는 환상이 가득 담긴 , 사실적인 생명체의 모습이었다 . 그러나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했던 문자의 자리를 영상이 대체한 2023 년에 이런 영상 매체의 환상성을 설명하는 건 영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 ‘데크 ’ 라고 불렸던 수천만 원 상당의 편집기가 만들어낸 방송국의 영상 권력은 무너졌고 , 이제는 값비싼 테이프가 아니라 bit 단위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PC 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영상을 만들 수 있다 . 이렇게 대중적인 차원으로 내려온 영상은 스스로 신비로움이 사라진 채 , 우리로 하여금 ‘ 가짜 뉴스 ’ ‘ 어그로 ’ 등 영상을 감히 (?) 의심하고 , 선별하게 만드는 불경스러운 (?) 자세를 가지게끔 했다 . 얼마 전에 의심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 는 절대적인 동물 지식을 담고 있는 신성한 경전이 아니라 외국의 동물 다큐멘터리를 몰래 재가공한 누군가의 세속적인 창작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이렇듯 영상 매체와 그 체험은 더 이상 예전처럼 환상이 가득 담긴 상상력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 미디어의 변화에 따라 우리들의 감각이 달라진다고 했던 마셜 맥루한의 말을 생각해 보면 , 글을 읽는 것보다는 영상을 보는 것이 익숙한 , 더 나아가서는 영상을 만드는 것 자체가 보편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감각은 또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 그렇다면 이러한 감각의 변화 속에서 2023 년의 게임은 어떤 모습으로 내 기억에 남았을까 . 특히나 그 세계관의 구현이 시각적인 영상으로서 표현되는 게 중요한 오픈 월드 게임에서 말이다 . 서론이 좀 길었지만 이제 2023 년의 게임 중에서 기억에 남은 두 오픈 월드 게임을 소개할 차례가 됐다 . 바로 < 호그와트 레거시 > 와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이다 . 유비식 오픈월드 2023년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이 두 게임은 한쪽은 호그와트라는 가상의 마법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 , 다른 한쪽은 800 년대의 바그다드를 배경을 한다는 점의 차이만 있을 뿐 게임의 장르적인 부분에서는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 오히려 게임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시스템을 보고 쉽게 공통적인 한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 ‘ 유비식 오픈 월드 ’. * 누가 봐도 유비식 오픈 월드라는 것은 알아보기 쉽다 게임을 요리로 비유하자면 , 끝도 없이 펼쳐진 오픈 월드라는 메인 디쉬를 게이머 스스로 부위마다 다른 맛을 음미하며 전부 소화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 오히려 오픈된 가상 공간에서 플레이 목적을 잃거나 , 가늠 안 되는 규모에 지쳐 쓰러지는 등 게임 ‘ 소화 불량 ’ 상태가 되어 게임을 닫아 버리는 일도 생각보다 자주 있는 일이다 . 아무런 안내 없는 광활한 오픈 월드는 탐험의 욕구를 자극하지만 , 미지의 공포와 끝이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바로 뒤따라오기 때문일 것이다 . 이런 오픈 월드의 양면성 속에서 < 호그와트 레거시 > 와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는 ‘ 유비식 오픈 월드 ’ 라는 친절한 방식을 취했다 . 먹을 수 있는 부위와 먹는 방법이 자세하게 안내되어 있고 셰프가 서빙해주는 순서를 따라가기만 하는 오마카세처럼 , 하나하나 친절하게 마커로 표시해둔 유비식 시스템을 오픈 월드라는 거대한 음식의 소화제로써 선택한 것이다 . 그런데 이렇게 동일한 방식을 선택한 2023 년의 두 유비식 오픈 월드 게임을 막상 해보면 전체적인 틀은 비슷하지만 , 그 넓은 세계를 채우고 있는 방식이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으며 그로 인한 플레이 감도 상당히 이질적이라는 걸 바로 느낄 수 있다 . 비효율과 효율로 가득 찬 게임 <호그와트 레거시 > 는 굉장히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요소들이 많은 게임이다 . 게임은 유일한 무기인 마법 지팡이의 길이와 재료들을 디테일하게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 그런 내 선택이 게임의 플레이에 어떠한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 즉 게임에서의 효용성은 하나도 없는 , ‘ 기능으로만 보자면 ’ 전혀 무의미한 세팅일 뿐이다 . 주 무기에 옵션이 없던 게임이 최근에 있었던가 ? 싶다 . 게다가 이 지팡이를 이용해 새로운 주문을 배우는 순간 , 플레이어는 마법 문양의 모양을 따라 마치 현실에서 휘두르는 지팡이 궤적을 따라가듯 패드를 조작해야 한다 . 물론 이 역시 게임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가치가 적은 순간이며 , 그 부분만 뺀다고 하더라도 게임은 전혀 문제없이 흘러간다 . 소모품의 경우는 게임적인 효율성이 마이너스까지 도달한다 . 일반적인 게임의 포션에 해당하는 위젠웰드 물약은 필요의 방으로 직접 이동해서 15 초라는 현실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 AAA 게임에 그 흔한 휴대용 연금술 가방도 , 자동화 공정과 즉시 완료 시스템이 없다는 게임의 인상은 2023 년의 플레이어를 당황하게 만든다 . *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싶은 , 어딘가 번거롭고 거추장스러운 무언가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의 게임 플레이는 < 호그와트 레거시 > 의 거추장스러운 감각과는 다르다 . 시리즈 명칭에 걸맞게 암살 중심의 플레이 방식으로 선회한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분의 조작이나 선택이 게임 시스템의 기능적인 부분을 계속 드러내며 게임 진행 속 효율성을 강조한다 . 다양한 무기마다 정해진 특성과 스탯이 있으며 , 파쿠르를 통해 목표 지점까지 효율적으로 돌파하기도 하고 , ‘ 엔키두 ’ 는 소환의 딜레이 타임 없이 바로 하늘을 향해 날아가 암살 대상들을 체크한다 . 유비식 오픈 월드에서 지적받았던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서브 퀘스트들도 그 보상으로 NPC 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 토큰 ’ 이라는 특수 화폐를 챙겨줌으로써 스스로 게임적인 당위성을 챙긴다 . 재밌는 점은 이러한 무기 , 파쿠르 , 엔키두 , 토큰과 같은 게임적인 경험들은 어느 하나 무의미하게 쓰이는 요소 없이 , 모두 암살 (R1 버튼 ) 을 위한 기능적인 역할로 수렴한다는 부분이다 . 암살 버튼 하나를 누르기 위해서 위에 언급된 요소 하나하나가 최적화된 시간 속에서 허투루 낭비되지 않는다 . < 호그와트 레거시 > 의 의미 없는 지팡이 재료 고민이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에서는 암살을 위한 특성 세팅으로 , 현실의 시간을 들여 수고롭게 제작해야 하는 < 호그와트 레거시 > 의 소모품은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에서는 제작이 아닌 , 암살을 위해 빠르게 이동하며 나도 모르는 짧은 시간에 줍는 방식으로 적용되어 있다 . * 길이나 재료가 아닌 , 암살을 위한 스탯과 스킬이 적혀있는 무기 애초에 유비식 오픈 월드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게임 시스템을 경제적으로 전달한다는 점일 것이다 . 게임 내의 마커들은 모두 해당 컨텐츠에 도달하기 위한 ‘ 최단 거리 ’ 를 자동으로 떠올리게 만들고 그 컨텐츠들이 어떤 내용인지를 미리 파악할 수 있게 만든다 . 마커의 위치 , 마커의 모양 , 마커의 내용 모두 하나하나 다 ‘ 게임적인 기능 ’ 의 소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마치 본인이 이 시스템의 원조임을 자랑하듯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는 이 경제적인 유비식 시스템 위에 역시나 경제적으로 설계된 , 암살이라는 기능에 집중된 게임 플레이를 얹어 게이머들에게 선보이고 있는 느낌이다 . 그러나 < 호그와트 레거시 > 를 플레이했던 게이머라면 본인을 엔딩까지 이끌었던 , 플레이 욕구를 자극하는 부분이 게임의 이런 ‘ 기능적인 시스템 ’ 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 이 게임의 매력은 오히려 넓은 세계를 이동하며 적들을 물리치고 사건을 해결하는 그런 오픈 월드의 중심 영역에서 벗어난 변두리 ,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가 설계해 둔 그런 기능적인 시스템의 ‘ 외부 ’ 에 있다 . 게임 시스템의 노출과 사라지는 게임적인 환상 게임의 기능적인 시스템들은 많은 경우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니라 모니터 너머의 플레이어에게 질문을 던지고 계획과 선택을 유도한다 . “메인 암살하기 전에 위력 선물 토큰이나 벌어볼까 ?” 모니터 밖의 게이머가 스스로 질문하는 이 순간에 우리는 , 바그다드라는 공간이 bit 라는 최소 단위의 데이터들이 모여 그것이 이미지화된 것일 뿐임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모른 체 하는 것이다 . 누구도 800 년대 바그다드에 사는 캐릭터 바심이 ‘ 위력 선물 토큰 ’ 이라는 게임적인 시스템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그것을 인지하고 활용하게 되는 것은 모니터 밖의 ‘ 나 ’ 이다 . 이렇게 ‘ 토큰 ’ 이라는 편의적인 시스템을 활용하면서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는 플레이어의 조작이 디지털 데이터 0 과 1 이상의 의미 , 즉 살아있는 듯한 바심의 행동으로 치환된다는 게임적인 환상을 놓쳐버렸다 . ‘ 토큰 ’ 은 게임 진행을 위해서만 존재할 뿐 사실적으로 설계된 바그다드와는 굉장히 이질적이다 . 어디서부터 어떻게 날아오는지 모르는 엔키두가 동물 동료라는 몰입감을 주지 못한 채 , 암살을 하기 위한 하나의 부속 시스템에 불과한 것이라는 진실을 알아차리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 이렇게 게임의 세계관과 부드럽게 이어지지 못한 채 게임적으로 효율적이기만 한 시스템은 마치 마감 덜 된 노출 콘크리트로 내부를 장식한 카페를 보듯 , 숨어 있어야할 게임의 뼈대가 1200 년 전의 바그다드의 세계관을 뚫고 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 이와 동시에 사실적으로 묘사된 바그다드는 게임적인 데이터였을 뿐임을 다시 한번 게이머에게 상기시키며 살아있는 듯한 세계관과 장소로서의 매력을 잃어버린다 . * 엔키두는 결국 암살을 위한 정찰 드론 역할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 * 사실적인 바그다드 구현과 이질적인 , 게임을 위해 만들어진 토큰 ( 방송 소품과 비슷하다 ) 이와는 대조적으로 < 호그와트 레거시 > 의 거추장스러운 부분은 , 게임 외부에 존재하는 플레이어의 효율적인 게임 공략법을 버리게 하고 , 게임 속 캐릭터의 시선으로 그 세계관을 마주하게 만든다 . ‘ 나한테 어울리는 지팡이는 뭘까 ?’ ‘ 내 가방에서 동물이 나오고 있어 !’ 게임적인 기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필요의 방에서의 소모품 제작 역시 적절한 난이도 조절과 거추장스러운 여러 연출 효과로 이것이 게임의 시스템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임을 게이머에게 계속 주지시킨다 . 굳이 소모품을 챙길 필요도 없는 세계의 난이도와 자동으로 일하는 냄비와 자라나는 식물 앞에서 게이머는 더 이상 게임의 효율 탓을 하며 시스템을 떠올리지 않는다 . 이렇게 게임의 시스템은 감춰지고 , 눈앞에 남은 건 콘크리트 마감공사가 잘 된 위저드리 세계관일 뿐이다 . * 갑자기 등 뒤에서 날아오는 눈속임이 아니라 내 가방에서 직접 튀어나오는 장면을 보여준다 * 무조건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 위저드리 세계관에 맞게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네 … 이 외에도 흔히들 ‘ 위쳐 센스 ’ 라고 말하는 주변 상호작용 대상을 파악하는 게임적 기능을 구현해 놓은 방식을 살펴보면 두 게임이 게임적 시스템을 각각 어떻게 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의 ‘ 매의 눈 ’ 은 버튼을 누르면 1 초의 딜레이 없이 바로 화면 전환 효과와 함께 주변 사물들과 인물들을 감지해 낸다 . 마치 이제는 밈이 돼버린 스타필드의 ‘ 딸각 ’ 처럼 단순한 스위치의 ON/OFF 와 비슷하게 기능한다 . 어찌 보면 이 기능은 바심의 실제 행동인 것 같으면서도 , 모니터 밖의 내가 게임 진행을 위해 직접 스위치를 켜고 있다는 사실이 겹쳐 보이기도 하는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이와는 달리 < 호그와트 레거시 > 에서는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면 캐릭터는 ‘ 레벨리오 ’ 를 입으로 외치며 지팡이를 휘두르고 , 그 지팡이에선 파장이 서서히 퍼지는 동시에 주변 사물을 구분해 낸다 . 이는 레이더 같이 긴급하게 주변 사물을 감지해야 하는 본래의 기능적인 목적과는 전혀 상관없는 거추장스러운 연출 효과임은 분명하다 . 그러나 이 짧은 시퀀스는 게임 속 ‘ 캐릭터 ’ 와 게임의 ‘ 기능적인 시스템 ’ 사이의 미싱 링크를 찾아 노출 콘크리트 같았던 게임의 시스템을 마치 캐릭터의 행동인 것처럼 덮어버린다 . 우리가 종이책이 아닌 디지털 신호로 구성된 전자책을 읽을 때 단순한 슬라이드 전환을 보는 것보다는 종이 넘기는 모션과 함께 ‘ 사각 ’ 거리는 소리 표현이 있는 쪽이 비효율적이지만 더 낭만 있다고 여기는 것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 이렇게 ‘ 레벨리오 ’ 는 ‘ 매의 눈 ’ 보다 세계관 몰입에 더 가까워진다 . * 화면 전환과 함께 순식간에 펼쳐지는 매의 눈 * 똑같은 기능을 수행하지만 게임적으로는 비효율적인 액션과 음성으로 가려져있다 .. 사실적인 묘사가 주는 영향이 적어진 시대 물론 그렇다고 < 호그와트 레거시 > 의 게임 시스템과 동떨어진 채 덧붙여지기만한 요소들이 오픈 월드의 구현으로써 완벽하게 잘 굴러간다고 볼 수도 없다 . 게임의 기능적인 요소들과 떨어져 있는 많은 부분들은 캐릭터에 맞춰 상호작용한다기 보다 ,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또 다른 데이터 더미라는 것이 금방 밝혀지기 때문이다 . 종코의 장난감 가게에 전시된 , 상호작용 버튼을 누르면 반복적으로 반응하는 어딘가 공허한 장난감들의 반응을 떠올려보라 . 이를 ‘ 시커 스톤 ’ 이라는 장치와 다양한 상호작용들로 게임 속 캐릭터와 시스템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던 <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 > 플레이와 비교해 보면 이 반응들이 얼마나 아쉬운지 바로 체감된다 . <호그와트 레거시 > 가 살아있는 듯한 세계의 구현이 아니라 ‘ 테마파크 ’ 라고 계속 일컬어지는 것도 아마 이와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 * 세계관을 구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 게임으로서 들어오지 못한 아쉬움 앞서 서두에 얘기했던 2023 년 시대의 논의로 돌아가 보자 . 영상이 갖고 있던 환상이 사라진 시대의 우리들은 어떤 오픈 월드 게임에서 리얼한 세계관을 느끼게 될까 ? 하나 추측해 봄 직한 사실은 , 영상의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에서 게임의 세계관과 그 몰입은 더 이상 높은 해상도와 사실적인 묘사에서 나오진 않으리라는 점이다 .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티비에서 나오는 정갈하고 사실적인 영상은 진실하지 않은 , 가식적인 취급을 받으며 동시에 실제 화질이 더 떨어지는 유튜브의 거칠고 투박한 영상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삶에 더 가까운 리얼함으로 평가받는다 . 게임도 마찬가지다 . AAA 급 게임들이 화려하고 사실적인 그래픽을 앞세우지만 , 그것은 자본의 힘이라는 것을 게이머들은 안다 . 그와 동시에 누군가는 < 맞춤법 용사 > 와 같은 쯔꾸르 형식의 RPG 가 단순히 사실적인 묘사의 게임보다는 더 몰입력 있는 , 더 현실과 맞닿아 있는 리얼한 세계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 * 벌써 15 년 된 신뢰의 도약 말고 어떤 새로운 경험을 줄 것인가 사람들은 더 이상 사실적인 공간 묘사 자체에 예전처럼 충격 받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 오히려 ‘ 위력 제거 토큰 ’ 처럼 허구가 느껴지는 플레이감에 대한 반발심이 더 클지도 모른다 .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 > 이후 , 어쩌면 게이머들이 원하는 오픈 월드라는 건 사실적인 공간의 디자인이 아니라 모니터 밖의 나를 소환하지 않은 채 게임의 캐릭터와 시스템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 서로 유기적으로 엉켜 있는 그런 경험의 집합체가 아닐까 . 어쩌면 사실적인 세계를 구현하는 데까지 성공한 < 호그와트 레거시 > 와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를 비롯한 많은 오픈 월드 게임이 마주한 다음의 과제는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 2023년에 선보였던 대표적인 유비식 오픈 월드 게임인 < 호그와트 레거시 > 와 <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모두 , 다음 시리즈에서는 게임의 시스템과 세계관이 서로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잘 융합된 충격적인 작품으로 돌아오길 응원해 본다 . 두 시리즈 모두, ‘유비적인 ’ 오픈 월드의 시스템을 넘어 이 모든 게 ‘유기적인 ’ 오픈 월드로 돌아올 수 있길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프리랜서 영상PD) 장준수 시너지 없는 '토목공학'과 '국어국문학' 스킬트리를 타고 근데 이제 2차 전직을 '영상 제작'으로 선택해버린...혼종 (똥망캐까진 아무튼 아님). 게임 방송국 OGN 포함, 10년간의 방송국 PD생활을 거치고 이제는 퇴사 후 프리랜서 PD로 인생 '가챠'와 '덱빌딩' 사이에서 서커스 중.

  • [4회공모전수상작]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비평을 위한 시론 - 캐릭터 뽑기가 갖는 의의란

    하지만 ‘서브컬처’라는 명명에는 꽤나 기묘한 구석이 있다. 문화연구 분야에서 서브컬처는 고급 문화 혹은 주류 문화에 대응하는 하위 문화를 뜻하지만 근래에는 그 외연이 확장되어 “‘주변부’의 취향 공동체로, 전체 문화 속 문화 혹은 사회 내 다양한 문화들”로 규정되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국내에서는 일본의 오타쿠 문화와 거기서 파생된 컨텐츠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서브컬처가 수입 및 활용되며 정착된 사회적 의미가 존재한다. < Back [4회공모전수상작]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비평을 위한 시론 - 캐릭터 뽑기가 갖는 의의란 26 GG Vol. 25. 10. 10. 페이트/그랜드 오더, 블루 아카이브, 원신, 승리의 여신 니케 등등 2010년대 중후반부터 독자적인 시장을 확보해온 소위 서브컬처 게임이라고 불리는 일군의 게임 장르가 있다. 서브컬처 게임의 특징은 모에 캐릭터/수집형/확률형 뽑기로 여겨진다. 추가적으로 일부 웹게임도 존재하며 미호요(현 호요버스)가 2020년 공개한 원신과 같이 멀티 플랫폼을 지원하는 경우도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바일을 중심으로 향유되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기도 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하지만 ‘서브컬처’라는 명명에는 꽤나 기묘한 구석이 있다. 문화연구 분야에서 서브컬처는 고급 문화 혹은 주류 문화에 대응하는 하위 문화를 뜻하지만 근래에는 그 외연이 확장되어 “‘주변부’의 취향 공동체로, 전체 문화 속 문화 혹은 사회 내 다양한 문화들”로 규정되곤 한다. [1] 그러나 한편으로 국내에서는 일본의 오타쿠 문화와 거기서 파생된 컨텐츠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서브컬처가 수입 및 활용되며 정착된 사회적 의미가 존재한다. 유사하게 중국에서는 우리가 ‘서브컬처 게임’이라 부르는 장르를 2차원 모바일 게임(二次元手游)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2차원이란 단순히 그래픽이 2D냐 3D냐는 구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일본 오타쿠 컬처 에 바탕을 둔 ‘ACG(애니메이션・코믹・게임) 스타일’을 지칭한다. 즉 앞서 서브컬처 게임의 특징 중 하나로 언급한 모에한 이미지・그래픽으로 어느 정도 그 의미가 수렴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서브컬처 게임 시장은 오타쿠 문화에 깊은 이해를 공유하고 있는 한중일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증권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의 전체 게임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보다 서브컬처 게임 시장이 동일 기간 약 3배에 가까운 성장율을 보여왔으며 앞으로도 10% 이상의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2] 그러나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시장 상황과 달리 해당 장르는 진지한 비평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곤 한다. 게임 비평이 아니더라도 진성 게이머를 자처하는 이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뽑기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은 [3] 서브컬처 게임을 진정한 게임 미만의 것으로 치부하게 만드는 요인이곤 한다. 그 외에도 매력적인 캐릭터를 수집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하는 플레이어들의 향유 태도도 또한 게임의 플레이에서 오는 재미를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 서브컬처 게임에 대한 비평적 곤란함은 단순히 식자층이 던지는 자격 미달의 시선 때문만은 아니다. 전술했듯이 서브컬 처 게임은 대개 모바일 게임으로 완성된 패키지 게임이 아니라 라이브 서비스 게임으로 제공된다. 과거 온라인 MMORPG 게임 ‘서비스’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완결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다루는 비평이 작동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이렇게 끝이 지워지고 무한히 연속하는 라이브 서비스의 활동성live-ness은 유저에 의해 소유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실시간live으로 소화 및 접속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4] 때문에 라이브 서비스, 특히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을 두고 기존의 게임 비평은 하나의 메인 시나리오 혹은 하나의 캐릭터에 대한 서사적 분석 정도에 그치곤 했다. 간혹 게임 플레이에 중점을 둔 비평도 시도되었으나 캐릭터를 컨텐츠의 핵심으로 내세우는 서브컬처 게임의 모방적인 게임성으로 인해 한계가 뚜렷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과거와 같은 근대적 작품관에 입각한 비평으로는 동시대의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온전히 다룰 수 없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라이브 서비스를 다루기 위한 비평의 원리가 요청되고 있는 셈이다. 이 글에서는 특히 기존의 게임 비평이 상정해온 ‘게임성’과 일선을 달리하는 서브컬처 게임을 위한 비평의 시론을 전개하고자 한다. 서브컬처 게임의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필자는 캐릭터 수집 요소라고 본다. 해당 장르의 제작자도 향유자도 모두 게임이라는 특정한 플레이 경험 속에서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캐릭터를 필수불가결적으로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타 게임 장르에 비해서 유독 두드러지는 캐릭터 존재가 컨텐츠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 [5] 특히 호요버스가 2020년 공개한 〈원신〉 이래로 트리플 A급 게임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레퍼런스 삼아 유려한 그래픽과 거대한 볼륨의 컨텐츠를 앞세운 중국발 서브컬처 게임─‘원신 라이크’들은 이러한 장르적 핵심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최전선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캐릭터성의 강조에는 그것이 곧 뽑기라는 과금으로 이어지며 게임사의 매출과 직결한다는 이유도 존재한다. 게임 내 부분유료 컨텐츠로 제공되는 확률형 아이템, 즉 뽑기는 일반적으로 게임의 수익 모델로 여겨지곤 한다. 그리고 국내 게임 담론에서 BM에 대한 논의는 대개 사행성이나 유독성에 대한 논의에 머무르곤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뽑기는 게임성과 완전히 무관할까? 뽑기 시스템이 도입된 RPG 게임의 플레이 경험이나 그 게임성에 손상을 입힌다는 주장이 성립한다면, 특정 게임에서는 뽑기가 게임성을 구성하는 데에 핵심적일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메타 게이밍의 요소로서 현질을 플레이의 한 형식, 즉 ‘납금 플레이’로 이해하는 접근도 존재한다. [6] 그러나 여기서 납금이란 플레이 형식은 어디까지나 게임과 유저 사이에 존재하는 난이도와 숙련도 관계에 대한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지, 캐릭터의 매력이나 애정과 같은 게임 플레이에서 부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영역에서 추동되는 과금 행위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물론 서브컬처 게임에서 캐릭터 수집이 게임 플레이와 완전히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특히 앞서 설명한 것처럼 캐릭터가 컨텐츠 기획의 핵심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게임 내적 난이도와 캐릭터의 성능은 매우 직접적 관계를 갖는다. 소위 라이브 서비스 중 버전이 진행됨에 따라 게임의 재미를 제공하기 위해 점차 상승하는 난이도 및 다양한 기믹-메타에 최적화되어 최신 픽업 캐릭터가 디자인된다. 즉 최신 버전의 메타를 쾌적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최신 캐릭터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드는 점에서, 캐릭터의 사용가치는 중요하다. 그러나 캐릭터를 포함한 유료 아이템의 성능이 사업 모델과 직결하는 ‘페이 투 윈’ 과 조금 다른 이유는 성능이 다시 캐릭터의 매력으로 회수되기 때문이다. 그 예시로 원신에서 중국을 배경으로 한 리월 출신의 강력한 신이란 컨셉을 가진 종려 캐릭터가 자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실성능이 무척 낮다는 이유로 ‘자국 신임에도 성능이 낮다’와 ‘컨셉이 성능과 불일치한다’는 등의 이유로 반발을 샀다가 큰 상향을 받게 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오타쿠 문화에 익숙한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는 일찍부터 ‘외모도 성능이다’란 금언이 있었듯이, 실제 사용가치만으로 캐릭터 뽑기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성능 때문에 뽑기도 하지만,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자신의 취향에 완전히 맞지 않는 경우에는 그 어떤 게임 유저들과 다르게 강고한 거부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 바로 오타쿠 유저들이다. 원신 라이크 게임들에서는 각 버전마다 진행되는 메인 스토리에서 새로 추가된 픽업 캐릭터가 크게 활약하는 장면을 넣어두고 또 자연스러운 체험 플레이를 유도함으로써 ‘강제애착 스토리’를 제공하고 있다. [7] 하나의 게임 내에서 다양한 메인 스토리 및 이벤트, 서브 이벤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픽업 캐릭터의 매력을 어필하는 것은 다양한 매체를 동시에 전개하는 미디어 믹스적 전략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호요버스의 최신 작품인 〈젠레스 존 제로〉 속 유즈하 캐릭터의 경우 픽업과 함께 추가된 메인 에피소드 외에도 여름 바캉스 특집 이벤트에 맞춰 스킨이 출시되며 해당 스킨에 맞는 대규모 특별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게임 내에서 체험할 수 있는 이벤트성과 상품의 내적 연결고리가 강력하게 착종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상품의 사용가치(성능)와 별개로 상품이 갖는 일종의 기호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전략이 호요버스 게임 속에서 매우 첨예하게 갱신되고 있다. 한편으로, 이러한 서브컬처 게임의 최신 경향 속에서 캐릭터의 매력에 사로잡힌 유저가 자연스럽게 해당 캐릭터를 뽑아 수집하고자 한다는 일련의 흐름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대상에 대한 소유(수집)으로 이어진다는 비약이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사랑에서 비롯되는 독점욕이나 소유욕과 같은 본성적 차원으로 소급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욕망이 자연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오늘날 그것을 경험하는 방식은 비자연(=기술)적이기 때문이다. [8] 그런 의미에서 ‘비오타쿠의 현명함’이란 인터넷 밈은 복제가능한 이미지로서의 ‘캐릭터’가 게임 내 개인계정으로 수집되는 행위와 게임 외적으로 데이터로서의 기록(캡처)에 대한 의미론적 질문을 던지며 동시에 오타쿠적 소비 양태에 근간은 이루는 (과)몰입에 대한 냉소적 비판을 던지고 있다. 여기서 표적이 되는 것은 캐릭터라는 비실재 대상에 대한 애정과 몰입이라는 지 극히 ‘리비도적 경제’ 활동이다. 지금까지 많은 서브컬처 게임들이 서비스 종료됨에 따른 ‘최애’ 캐릭터들에 대한 상실과 그로 인한 불가능한 애도가 유저에게 문제가 되는 반면에, 페이 투 윈으로 유명한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의 서비스 종료는 유저 개인의 리비도가 아니라 아이템 재산이나 소유권 같은 지극히 실물 경제적 측면이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리비도적인 것의 차이를 도출할 수 있다. 동시대 서브컬처 게임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러한 리비도적인 것, 즉 애정과 몰입을 소유와 연결지어내는 마법과 같은 작업을 이해하는 데 있어 롤랑 바르트가 《사랑의 단상》에서 보여준 놀라운 통찰을 빌려와 설명해볼 수 있다. 바르트는 매혹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러한 ‘첫눈에 반한 사랑’은 대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에 대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말하는 장면이란 ‘사물들의 배치’이며, 특정 대상을 둘러싼 환경이 대상과 맺는 관계성이 대상을 특별하게 만들며 대상을 사랑에 빠질만한 것으로 ‘축성을 내린다’. 그리고 이러한 바르트의 통찰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뤄지는 상품화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플랫폼, 알고리즘과 같은 디지털 기술에 의한 기호적 환경에 대한 이해로 연결될 수 있다. [9] 앞서 예시로 들었듯이 젠존제라는 하나의 플랫폼 내에서 제공되는 미디어 믹스, 그 이미지와 서사, 플레이의 관계망 속에 배치된 유즈하에 대한 애정은 매우 잘 짜인 코드화의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0] 이처럼 종합적이고 중층적인 배치를 통해서 캐릭터가 제공되는 형태를 ‘장면화’라고도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게임 속 서사는 장면화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보다 정확히는 서사의 장면화는 게임에서 제공되는 단일한 서사가 아니라 서사가 제공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수집형 서브컬처 게임 속에서 서사와 캐릭터의 매력이 결합하여 제공되는 구조적 형태에 대해 연구한 이아름의 연구에 따르면, [11] 수집형 게임 속에서 무수히 병렬되며 추가되는 캐릭터들과 그 서사는 “전체를 아우르는 큰 이야기”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각자로 완전히 별개된 ‘커뮤니케이션(=일정량의 작은 이야기)’으로 전환된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하나의 서사(루트) 속에서 선택과 분기를 경험할 필요 없이 초월적 위치에서 모든 가능성을 확보하며 하나의 시간성(=무시간성)을 체험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집이란 행위는 실제로 시간성을 초월한 질서를 수집된 대상에 부여함으로써 무역사성 안에서 자기 폐쇄적인 형태를 추구하는 행위다. [12] “모든 시간은 수집품의 세계 안에서 동시 존재 또는 동시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호요버스 게임에서는 이러한 수집형 게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집품’의 서사적 시간성의 구조뿐만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기념품’으로서의 시간성의 구조 또한 발견할 수 있다. 기념품은 “각각의 경험을 특별하게 인식”하며 “이야기를 통해 본래의 맥락을 끊임없는 소비의 맥락으로 대체”한다. 나아가 과거와 현재의 ‘거리’를 의식하며 우리의 관심을 과거로 전치시켜 “과거 안에 현재를 가둬 넣는 기능”을 수행한다. [13] 이아름은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메인 스토리)와 함께 병치되는 다양한 이벤트 스토리 및 후속 이벤트를 통해서 메인 스토리에서 활약하지 못한 캐릭터의 주목도와 매력을 높이는 보완적 기능을 해낸다고 설명한다. [14] 그런데 흥미롭게도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이 ‘모바일 게임’으로서 갖는 특징은 과거에 진행된 픽업뿐만 아니라 한시적 이벤트까지도 반복해서 개최하는, 유실과 변형을 갖지 않는 무한 반복이 가능한 데이터성에서 비롯되는 소위 ‘복각’에 있었다. 하지만 출시 이래 원신은 기존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과 달리 현재까지 단 한 번도 과거에 이뤄진 이벤트를 복각한 적이 없었다. 유사하게 2015년 출시한 페그오의 경우도 2021년 이후로는 과거와 달리 거의 이벤트 복각이 이뤄지지 않는 운영 노선을 보여주고 있다. [15] 이처럼 무손실의 반복과 복제가 가능한 데이터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복각 정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메인・이벤트 서사와 함께 연동된 캐릭터의 매력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유저에게 매우 찰나적이며 한정적으로 제공되는 셈이다. 때문에 신규 캐릭터의 등장과 함께 유저가 느끼는 애정이 ‘뽑기’를 통한 소유로 나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계정 내의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그 ‘캐릭터 자체’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기 위한 기념품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가 뽑기를 통해 소유한 캐릭터는 해당 ‘캐릭터’에 대한 (상실과 추억의) 지표임과 동시에, 유저에 의해 뽑혀 게임 내에서 플레이됨으로써 상실된 과거에 대한 대상행동으로서 새롭게 생성되는 게임 내의 ‘행위서사’가 현재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의 핵심은 아즈마 히로키가 오타쿠 비평을 통해서 논한 바 있듯이 “캐릭터의 본질보다도 캐릭터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상상력의 환경”에 관한 것이다. [16] 아즈마가 분석하던 시기와 차이가 있을지라도 “이야기보다 캐릭터쪽이 기초적인 단위로서” 상정되고 있다는 상황 판단에는 여전히 시의성이 존재한다. 나아가 그는 작품 자체가 이미 소비 환경을 감안해 제작되었으므로 분석자도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환경 분석’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타쿠적 문화 소비의 가장 큰 특징은 ‘동인’이라고 하는 2차창작 향유라고 할 수 있다. 모에한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서브컬처 게임들은 과거에도 일러스트 공모전과 같은 수용자 참여를 독려하는 이벤트를 꾸준히 개최하곤 했다. 그러나 아예 제작사가 전면에 나서서 공식적으로 이를 독려하는 대대적인 장을 마련한 것은 역시나 호요버스가 선구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부터 개최되어 여러 분야의 크리에이터가 참여하는 호요페어는 ‘공식’이 제공하는 재미를 보충하고 확장하면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게임 내외부로 순환되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동인 품기’를 통해서 노리는 것은 역시나 게임 외적인 미디어 믹스가 빚어내는 ‘사물들의 배치’다. 나아가 현재 젠존제를 비롯한 호요버스의 게임들은 서비스 초기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신규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디테일하게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관련 유튜버들을 지원하여 신규 캐릭터에 대한 성능 및 육성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유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호요버스는 현재 서브컬처 게임 제작사 중 가장 소비 환경을 잘 활용하는 회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유저는 이처럼 게임 내외부의 환경 속 배치 안에서 해당 캐릭터의 매력에 매혹된다. 때문에 복제가능한 ‘모두의’ 캐릭터라고 할지라도 개인이 해당 캐릭터를 소유하고자 하는 것에는 ‘뽑은 캐릭터’가 고유명사로서의 캐릭터에 대한 기념품이자 수집품이란 양가적 의미로 성립한다. 뽑기는 단순히 해당 캐릭터를 구매하는 행위와는 다르다. 극악의 확률에 기대어 자신이 원하는 대상을 손에 넣는 우연성이 개입되어 있다. 물론 충분한 금액을 투여한다면 반천장과 같은 확률 조정 시스템을 통해 확실하게 얻을 수는 있지만 고래가 아닌 일반 유저들은 결국 확률에 기댈 수밖에 없고 유저들은 기원을 하게 된다. [17] 기도라는 행위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즉 우연(우발)성에 대한 요청이다. 그러나 만일 해당 기도의 내용이 이뤄진다면 기도란 행위 자체는 내용이 이뤄지는 것과 실질적인 인과성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후적으로 인과적 필연성으로 인식된다는 점에 기도의 신비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뽑기를 통해 특정 캐릭터를 갖게 된 것은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비오타쿠적인 현명함은 우연성을 포함한 총체적 ‘사물의 배치’ 외부에서 특정 대상만을 포착하는 것에서 비롯되지만, 오타쿠적 어리석음은 배치 안에서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엮어내는, 바로 그 양가성의 성립을 통해서만 활성화되는 리비도에서 기인한다. 마지막으로 서브컬처 게임 비평에 관해 한가지 짚어두자면, 그렇다면 과연 뽑기 시스템은 서브컬처 게임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호요버스의 원신 이래로 게임 내 뽑기의 평균 단가가 상승해 과금 부담이 매우 높아졌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서브컬처 게임의 중소과금 유저들의 뽑기 양태는 ‘명전’ [18] 으로 수렴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2025년 상반기에 발표된 중국 게임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모바일 서브컬처 게임 매출은 전년의 19%에서 11%로 크게 하락했다고 한다. [19] 이처럼 포화 상태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중국발 서브컬처 게임 시장에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20] 이러한 시도가 앞서 다룬 서브컬처 게임 장르의 핵심을 얼만큼 갱신시킬지는 아직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뽑기를 통해서 캐릭터와 유저가 맺게 되는 리비도 경제가 변화한다면 역시나 서브컬처 게임의 배치 또한 변화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게임성 자체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올 것임은 분명하다. 원신으로 시작된 거대자본 서브컬처 게임이 5년차를 맞이하면서 해당 장르의 변곡점에 진입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서브컬처 게임을 향한 비평의 움직임 또한 시동이 걸릴 최적의 시기가 아닐까 싶다. [1] 강신규, 《서브컬처 비평》, 커뮤니케이션북스, 2021, p.11 [2] 미래에셋증권, 〈시프트업─호요버스의 성장 스토리가 보인다〉, 2024.9.11 [3] 이경혁, 《현질의 탄생》, 이상북스, 2022, p.178-179 [4] KAI-YOU, 北出栞, 〈ソーシャルゲーム以降、主体的に生きることは可能なのか?──『マギレコ』サービス終了から始める批評原論〉, https://premium.kai-you.net/article/830 , 2024.8.21 [5] 기존 게임 장르 중 비슷한 경우는 격투 게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캐릭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게임 플레이 경험이 극적으로 달라지는 동시에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플레이어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레인보우 식스 시즈 등 다양한 장르에서 컨텐츠 기획이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방향으로 전환되어 왔다. 나아가 2021년 출시된 〈배틀필드 2024〉가 FPS 시리즈의 전통적인 병과 분류가 아니라 병과 내에서 비대칭 능력을 가진 개별 캐릭터(스페셜리스트)를 내세우며 변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이처럼 라이브 서비스 게임들에서 점차 캐릭터 중심으로 컨텐츠가 재편되는 현상에서 서브컬처 게임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6] 이경혁, 같은 책, p.182-183 [7] 그러나 동시에 해당 메인 스토리에서의 활약 이후에 다른 메인 스토리에서 주연으로 다시 활약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할 수 있다, 家無しララ, “なぜガチャ嫌いの私は課金沼に堕ちたのか? 沼らせるカラクリを鳴潮から学ぼう”, https://www.youtube.com/@NHLala , 2025.8.4. [8] 앨피 본, 박종주, 《게임 사랑 정치》, 시대의창, 2023, p.174 [9] 앨피 본, 같은 책, p.55-61 [10] 물론 그 코드의 다발은 또 ‘서브컬처’라고 하는 오타쿠 문화에서 공유되는 모에의 데이터베이스 소비를 통해 구성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11] 이아름, 디그라 한국학회 제1회 〈플레이어에서 프로듀서로─캐릭터 수집형 게임 시대의 게이머 주체성〉, 2025 [12] 수잔 스튜어트, 박경선, 《갈망에 대하여》, 산처럼, 2015, p.313 [13] 수잔 스튜어트, 같은 책, p.282-283, p.312 [14] 이아름, 같은 곳 [15] 이에 대해서는 2021년부터 페그오를 인수한 애니플렉스 측으로부터 공식적인 입장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일각에서는 페그오 자체가 매우 뒤떨어진 개발 엔진을 사용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버전간 호환이 어려워 복각이 시스템적으로 어렵다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2020년대 호요버스를 위시한 현재 서브컬처 게임 중 무복각 노선 운영이 일반적인 경우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면 신규 캐릭터・이벤트 중심으로 컨텐츠 지형이 이동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16] 아즈마 히로키, 이은미,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문학동네, 2007, p.27 [17] 〈원신〉에서 뽑기 시스템의 이름이 ‘기원'이며 이에 사용되는 교환 화폐의 이름은 ‘뒤얽힌 인연’이다. [18] 명함과 전용무기를 합쳐 줄여 부르는 용어. 명함은 중복 캐릭터 뽑기를 통해서 할 수 있는 돌파를 하지 않은 ‘돌파횟수 0’을 가르키는 말이다. 전용무기는 신규 캐릭터의 성능을 최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신규 무기를 가르킨다. [19] 게임메카, 〈중국 게임시장 성장 속, '서브컬처’는 쇠퇴하고 있다〉,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764382 , 2025.8.5. [20] 게임메카, 〈캐릭터 뽑기 삭제, 듀엣 나이트 어비스 10월 28일 출시〉,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765332 , 2025.8.27.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강현 한일 오타쿠 문화 독립연구자. 근래 PC 싱글 게임 구력을 보드게임 구력이 추월하고 있다. 최근까지 티바트 세계(원신)와 뉴에리두(젠존제)의 수호자로 활동하고 있다.

  • [북리뷰] 이토록 숭고한 게임 속 괴물들 - 『플레이어 vs. 몬스터』

    <다크 소울> 시리즈나 <엘든 링>과 같은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에는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음을 맞으면 화면에 빨갛게 떠오르는 ‘You Died’는 상징적인 밈으로 통용된다. 보스와의 전투는 게임의 까다로운 난이도를 구현하는 대표적인 축이다. 게임 유튜버들은 보스전을 성취하는 데에 몇 번의 ‘트라이’를 거쳤는지와 같은 극악한 고투를 부각하기도 한다. 한편 보스들의 기괴한 외형은 이러한 플레이를 더욱 각별하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다크 소울3>의 튜토리얼 보스인 군다는 2페이즈에서 별안간 검은색 고름 덩어리가 되고, <엘든 링>의 멀기트는 꼬리를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패턴 따위로 플레이어를 곤란하게 만든다. < Back [북리뷰] 이토록 숭고한 게임 속 괴물들 - 『플레이어 vs. 몬스터』 22 GG Vol. 25. 2. 10. <다크 소울> 시리즈나 <엘든 링>과 같은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에는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음을 맞으면 화면에 빨갛게 떠오르는 ‘You Died’는 상징적인 밈으로 통용된다. 보스와의 전투는 게임의 까다로운 난이도를 구현하는 대표적인 축이다. 게임 유튜버들은 보스전을 성취하는 데에 몇 번의 ‘트라이’를 거쳤는지와 같은 극악한 고투를 부각하기도 한다. 한편 보스들의 기괴한 외형은 이러한 플레이를 더욱 각별하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다크 소울3>의 튜토리얼 보스인 군다는 2페이즈에서 별안간 검은색 고름 덩어리가 되고, <엘든 링>의 멀기트는 꼬리를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패턴 따위로 플레이어를 곤란하게 만든다. 기이한 점은, 이렇게 적들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묘한 매료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플레이어 vs. 몬스터』의 저자인 야로슬라브 슈벨흐는 <블러드본>의 이브리에타스가 품은 괴물적인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경험을 서술한다. 그는 이 경이로운 생명체를 계속 바라보고 싶었기에 결국 싸움을 택하지 않았다. 그의 일화를 읽는데 문득 <다크 소울3>에서 미디르를 잡은 후, 묘한 허탈감에 시달리며 소사한 시체만 가득 쌓인 폐허를 한참 동안 서성이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처럼 게임에서의 괴물은 격퇴해야 할 목표로 상정되어 있으면서도 호승심을 초과하는 괴상야릇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렇다면 게임은 괴물을 어떻게 빚어내고 제시할까? 이 책에서 슈벨흐는 <스페이스 인베이더(1978)>부터 <컨트롤(2019)>까지 게임을 역사적으로 아우르며 괴물의 존재론을 탐구한다. 숭고하지 않은 괴물 많은 문화에서는 저마다의 괴물을 이야기한다. 일본에서는 각종 요괴담이 돌고, 톨킨은 <반지의 제왕>에서는 스마우그가, <헤일로>에서는 외계인이. 이렇듯 널뛰는 괴물을 한데 모아 이 책에서는 범박하게 “현대 과학의 시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생명체”로 범위를 한정 짓는다. 전통적으로 괴물은 바람직하지 않은 속성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기형적인 외모를 지녔거나 부덕한 내면을 가진 괴물은 규범을 위반하는 존재다. 이를테면 중세 유럽의 사람들은 얼굴이 가슴으로 함몰된 형태의 블렘미아이Blemmyae라는 괴물이 아프리카에서 산다고 상상했다. 중세인에게 정상적인 인간이란 온전한 머리를 통해 사물을 이해하는 존재이자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육체적 거울상”이었기 때문에 머리가 없는 블렘미아이는 육체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열등한 생물이었다 [1] . 이런 괴물들은 이성이 그려내는 세계의 너머를 자극하기에 공포스럽다. 성서 속 리바이어던처럼 창조주의 질서 안에 놓이되 동시에 그 권위를 위협하기도 하며, 부패한 고름이나 혈액과 같이 원래는 온전했‘던’ 육신에서부터 튀어나와 혐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해, 그 결과로 온갖 범주를 뒤섞어놓으며 인지적 혼란을 빚어내는 것이다. 슈벨흐는 괴물이 감상자에게 불러일으키는 특유의 감정을 숭고로 설명한다. 숭고함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우리의 표현 능력에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상상력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칸트는 이와 같은 숭고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큰 것, 혹은 엄청난 위력을 지닌 것으로부터 유래한다고 설명한다. 무한성(무형식)을 지닌 대상에서 발견되는 숭고는 인간 상상력과 지성의 한계 너머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우리를 매료시킨다는 것이다 [2] . 한편 슈벨흐는 인간 주체가 자신의 지식 구조에 괴물을 포함하려는 노력을 지속해 왔다고 말한다. 인간은 언제나 미지의 영역을 정복하려 해왔다. 지도를 그리며 잘 모르는 세계의 지형을 정교화하고, 백과사전을 편찬해 인간 아닌 종을 서술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신비한 힘을 지녔던 괴물 역시도 점차 인간의 체계 안에 편성된다. 정리 작업의 최종적인 목표는 괴물을 지식화하여 관리하고 이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슈벨흐는 괴물이 적이나 놀잇감의 형태로 단순화된다고 바라본다. 이누이트족의 투필라크는 그러한 설명과 걸맞은 사례이다. 본디 투필라크는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비밀스럽게 제작되는 복수귀였으나, 그린란드가 유럽에 복속된 이후 이누이트 문화의 이국성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관광 기념품이 되었다. 괴물이 품은 고유한 아우라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숭고를 완전히 상실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괴물이 지닌 특별한 맥락은 계속 갱신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가 부연 되기 때문이다. 좀비 모티프가 끝없이 진화하듯, 그들은 유순하게 길든 자리에서 심연을 응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괴물은 어떻게 그려지는가? 그에 앞서 슈벨흐는 비디오 게임이 놓인 역사적 맥락을 짚는다. 비디오 게임은 냉전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사고에 얽매여 있던 시기에 태동한 미디어이다. 정부나 군을 통해 직접적으로 제공받은 하드웨어나 컴퓨팅 프로젝트에 관한 후원은 비디오 게임의 토대를 이루었다. FPS 장르에 이르는 기술사적 계보를 추적한 김영대의 글은 흥미로운 사례이다. 그에 따르면 미군에서 폭격기 조종사를 양성하기 위해 개발되었던 시뮬레이션 시스템은 이미지를 빠르게 렌더링함으로써 실시간성을 만들어냈고, 이는 <스페이심>과 같은 비디오 게임의 전투에 영향을 미쳤다 [3] . 이처럼 비디오 게임은 냉전의 문화적 요인에 긴박 되어 있다. 과학사학자 폴 에드워즈는 냉전의 세계관을 ‘폐쇄 세계closed world’로 설명한다. “모든 사고와 언어 그리고 행동이 궁극적으로 중심 갈등을 향하는 꼼짝 없이 자기 참조적인 공간”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발전된 컴퓨터 기술은 중앙에서 실시간으로 군사 통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가상의 기획을 현실로 옮길 수 있었다. 그렇게 전산화된 세계는 하나의 형이상학적이고도 폐쇄적인 체계로 맺어졌다. “모든 요소가 통합되고 적절한 가중치가 부여되었다는 믿음 하에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실행하고 또 실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에 전적으로 적합”했다 [4] . 즉 적대적 존재를 시뮬레이션의 세계에서 빚어내 입력에 따른 결과를 연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디오 게임의 괴물은 바로 그러한 시뮬레이션 안에 놓여 있다. 기호로 모델링된 괴물은 곧 조작 가능한 정의에 의해 좌우된다. 본래 냉전 시기 군사 이데올로기가 시뮬레이션의 발달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바-적과 나를 일관적인 시스템 안에 체계적으로 편성한 후, 행동과 미래를 예측하는 전략의 수립-가 비디오 게임 안에서 실현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비디오 게임 속의 괴물이 “연산적이고(computational) 상품화된 타자성”을 지니며, 이로 인해 “분명 위협적인 존재이나 토벌 가능한 모순”으로 이해된다고 설명한다. 이 관점에서 그는 게임의 폭력성을 문제화할 때 살해 애니메이션이나 혈흔의 표현과 같이 피상적인 차원에서 다루기보다는, 그렇게 되도록 결정하고 배치하는 디지털적 권력을 문제 삼길 제안한다. 책의 2장과 3장에서는 게임 속 괴물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빚어지는지에 관한 사례가 부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던전 앤 드래곤>은 연산 가능한 괴물을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데에 기여한 타이틀이다. PvE(Player Vs. Environment)를 “인간 심판이나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의 제삼자가 일련의 장애물과 적을 제어하는 동안 플레이어가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캐릭터를 조작해 그와 대결하는 게임 플레이 상황”으로 정의한다면, <던전 앤 드래곤>이 PvE의 형식과 함께 만연해졌음을 이해할 수 있다. ‘던전’이라는 어휘로 매혹적인 모험을 형상화하는 이 프랜차이즈는 톨킨식 장르 문학이 대중화됨에 따라 큰 인기를 누렸다. 톨킨은 허구의 세계인 아르다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계보나 언어와 같은 설정을 섬세하게 써 내려갔는데, 일종의 백과사전 집필로도 표현할 수 있는 톨킨의 작업은 이후 RPG 게임에서 시나리오를 짜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던전 앤 드래곤>은 바로 그러한 이질적 존재들, 백과사전 항목에 등재된 사우론과 프로도에게 각종 ‘능력치’를 부여했다. 그런 면에서 <던전 앤 드래곤>은 컴퓨터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계산적(computational) 게임이었다. 온갖 종류의 이종들은 정확한 통계에서 비롯된 능력치를 부여받아 “하나의 수학 규칙 매트릭스에 맞게” 배치되었고, 주사위를 랜덤하게 굴렸을 때의 수치와 고정 능력치를 조합하여 게임 이벤트가 진전되었다. 그 결과 “이미지, 문화, 통계를 결합해 괴물을 만들어내는 공식”이 게임계에 자리 잡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괴물들은 게임 플레이의 흐름을 형성하는 중책을 맡는다.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는 일련의 명확한 목표가 앞에 있을 때 몰입할 가능성이 높다” [5] 고 칙센트미하이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일정 수준 내에서 까다로운 괴물과 전투를 치르고 그에 대해 보상을 얻는 일련의 과정은 플레이어를 충분히 몰입시킨다. 따라서 난관을 어떻게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형상화할 것인가가 디자인의 주요한 화두가 된다. <갓 오브 워>의 전투 디자이너인 데니 예는 괴물을 통해서 플레이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적이 가하는 공격은 일정한 패턴 속에서 이루어지며, 이를 충분히 관찰한 후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미리 예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릴 수 있어야” 하는 괴물은 사용자의 경험이라는 요소를 우선시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비디오 게임 속 괴물은 실용적인 방식으로 이해된다. 디자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실루엣 테스트는 괴물이 실용성과 미학성을 충족했는지 판별하기 위한 절차이다. 비교적 낯선 대상의 외형을 플레이어가 쉽게 판별하고, 다른 것들과 차별화해 구분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괴물은 외형적으로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면서도 그로 인해서 만족스러운 사용자 경험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 미학적 측면에서 리얼리즘은 비디오 게임의 괴물과 관련이 깊다. 환상 속의 존재를 그럴듯하게 제시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현실의 요소를 동원하기에 이른다. 슈벨흐는 리얼리즘을 두고 ‘현실적’이라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채택하는 일련의 미적이고 기술적인 관습들이라고 간략히 요약하는데, 특히나 비디오 게임에서 괴물을 디자인하는 데에 지배적인 것은 해부학적 리얼리즘이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비디오 게임에서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래리 해리하우젠과 같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창작 노트에서 상상 속 동물을 ‘자연스럽게’ 형상화할 수 있게 실존하는 동물의 생체적 지식을 기입하기도 했다. 그러한 인식은 비디오 게임 제작에서의 폴리곤 메쉬나 모션 캡쳐 등의 방식으로 계승되고 있다. 특히 비디오 게임에서의 시청각적 표현은 3D 그래픽으로 전환하며 초기 영화에서의 괴수 표현이 그러했듯 미니어처를 제작하는 형식으로 이해되었다. 타냐 크르지윈스카는 더 큰 그래픽 리소스가 아티스트들에게 “더욱 환상적인 개체를 만들 수 있을 자유”를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도 했으나, 현실의 AAA게임에서 포토리얼리즘이라는 규범이 맹위를 떨치는 한, 괴물을 주변 환경에 걸맞게 높은 수준의 디테일로 모델링한다는 해부학적 개연성의 틀에 맞춘 재현이 지배적인 관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요컨대 비디오 게임이 창조한 괴물은 기능적으로나 외형적으로나 “객관화되고 관리 가능한 존재”로 표현된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포스트휴먼이 괴물에게서 숭고를 느끼는 법 슈벨흐는 비디오 게임에서 괴물을 조형하는 방식이 <스페이스 인베이더> 이후로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고 서술한다. 기존의 PvE 도식을 고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시점에서 이와 같은 답보 상태는 문제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 주체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글로벌 금융 위기나 기후 재앙, 판데믹과 같은 사건을 겪으며 뒤흔들렸다. 전반적으로 현재 만연한 위기와 이에 대한 지적 대응은 무언가를 괴물 같은 타자로 식별하고 해석할 수 있는 관찰자의 특권을 불안정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시대 속에서 인간은 짓쳐 드는 위험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 패턴을 예측할 도피처도 없고, 그럴 만한 시간조차 없다. 더군다나 인간이 가상의 적을 효과적으로 적대하기 위해 고안한 테크놀로지는 버그나 데몬 같이 초자연적인 생명체처럼 움직이며 인간 제어를 무시하기도 한다. 버그는 컴퓨터의 오류를 의미하는 어휘로만 한정되지 않으며 ‘자그마한 오류’를 푸념하는 토마스 에디슨의 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지난한 역사를 지닌다. 기계 상의 오류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일컫는 방식의 수사는 이들을 괴물의 한 종류로 볼 가능성을 확보한다. 결론적으로 슈벨흐는 숭고 개념을 재검토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사실 숭고를 이야기한 칸트에 따르면 위력을 지닌 무엇이 발하는 숭고는 “그 위력이 우리에게 강제력(실제의 위협)을 발휘하지 못할 때” 느낄 수 있다. 폭풍우에 실제로 휩쓸리는 동안은 오직 공포를 느낄 뿐이다. 진정 숭고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산장과 같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후에 대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제야 인간은 “감성의 한계를 넘어선 ‘거대한’ 것을 표상할 수 있으며, 상상력의 확장 가능성을 느끼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7] . 그러나 임박한 재앙은 쉬이 파악될 수 없고, 안전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슈벨흐는 숭고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되, “헤아릴 수 없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타자성이라는 의미에서의 괴물”은 여전히 유효한 프레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 출처: E nvironmental_Pea791. “If the game was 3D, I think the enemies would look like this.”. Reddit.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해부학적 개연성에 지배되지 않은 비디오 게임 속 괴물의 사례를 탐구한다. <언더 테일>과 같이 연민을 유발하며 인간의 거리 두기를 위협하는 괴물, 목적 없이 등장하며 파괴 불가능한 성질을 지닌 <컨트롤>의 아스트랄 스파이크, 다른 개체와 두뇌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군체처럼 기능하는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의 쥐, 게임 코드나 인터페이스를 장악하는 <메탈 기어 솔리드>의 사이코 맨티스와 같은 사례는 기존의 PvE 도식이 전제하던 교전 개념을 유쾌하게 폐기한다. 이와 같은 존재를 감각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탐구하는 비판적 사유로서의 포스트휴먼 개념을 환기해 볼 수 있다. 포스트휴먼은 인간과 인간 아닌 것 사이를 엄격하게 나누는 이분법을 해체하려는 기획이다. 포스트휴먼의 사유에 의하면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 고유의 특별함 때문이 아니다. 다른 것들과 상호작용하는 네트워크 안에 놓인 어떠한 위치가 그를 개인으로 배치할 뿐이다 [8] . 마찬가지로 슈벨흐가 열거한 사례는 인간 플레이어가 본래 누리던 우월한 지위를 해체하고, 게임이 할당한 디지털적 권력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감각할 수 있게 한다. 책을 따라서 이와 같은 예시를 읽다 보면, 이토록이나 다양한 괴물들이 PvE의 규범을 해체하고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낄지도 모른다. 비디오 게임 속의 괴물 즉 기이한 이들과의 뒤얽힘 속에서 플레이어는 환경(Environment)과 오직 적대하기만 하는 인간이 아닌, 그 안에서 함께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1] 잭 하트넬. 장성주 역. 『중세 시대의 몸』. (2023). 서울: 시공사. 50쪽. [2] 김예경. (2018). 『프랑켄슈타인』, 숭고와 그로테스크. 우리어문연구,(62), 405-407쪽. [3] 김영대. (2019). 던전의 전투기들: FPS의 짧은 기술사. 문화연구, 7(1), 165-168. [4] 앙투안 부스케. 최석현 역. (2022). 미국 전쟁 기계의 사이버네틱스화: 냉전기 과학과 컴퓨터. 아카루트. 7-8쪽. [5]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이희재 역. 『몰입의 즐거움』. (2009). 서울: 해냄출판사. 45쪽. [6] Denny Yeh. Fighting a God: Behind the Scenes of God of War’s First Boss Battle. 2018.08.16.등록. 2025.01.24.접속. Playstation.Blog . https://blog.playstation.com/2018/08/16/fighting-a-god-behind-the-scenes-of-god-of-wars-first-boss-battle/ [7] 김예경. (2018). 『프랑켄슈타인』, 숭고와 그로테스크. 우리어문연구,(62), 408쪽. [8] 박준영. (2023). 『신유물론, 물질의 존재론과 정치학』. 서울: 그린비. 119-124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게임이 이야기를 경험시키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최근에는 <마라톤>을 플레이했습니다.

  •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좀비물은는 비단 디지털게임에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앞선 매체들인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좀비는 매력적인 소재로 특히 호러물에서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의 좀비 또한 앞선 매체들의 영향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에 등장하는 좀비의 의미는 다른 매체의 의미를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특유의 요소들로 인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좀비에 관한 긴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지털게임에서의 좀비라는 보다 좁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Back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너: 좀비의 과거와 오늘 19 GG Vol. 24. 8. 10. PC ESD플랫폼 ‘스팀’에는 늘상 좀비물이 넘쳐흐른다. AAA급 타이틀은 말할 것도 없고, 저예산의 소규모 게임들로 가면 온통 좀비 천국이다. 좀비의 인기는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호러 장르라면 좀비는 더욱 본격적이긴 하다. 좀비물은는 비단 디지털게임에서만 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앞선 매체들인 영화나 소설 등에서도 좀비는 매력적인 소재로 특히 호러물에서 자주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의 좀비 또한 앞선 매체들의 영향 아래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게임에 등장하는 좀비의 의미는 다른 매체의 의미를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게임 특유의 요소들로 인해 조금 더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좀비에 관한 긴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디지털게임에서의 좀비라는 보다 좁은 주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게임 속 좀비의 등장과 변화 단순하게 좀비라는 개념을 처음 게임 안에 가져다 놓은 게임을 꼽으라면 1984년의 <좀비 좀비Zombie Zombie>를 꼽을 수 있겠지만, 이 게임의 경우는 좀비 게임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정도의 특성만을 보여주었다. 좀비 영화가 나름의 흥행을 이어가던 시절, 이 게임은 그저 영상물로서 갖는 좀비의 인기를 비디오게임으로 가져오는 정도에 머물렀다. 고층 빌딩 위에서 좀비라고 불리는 적들을 밀어 낙사시키는 방식의 간단한 규칙 안에서 적 캐릭터들의 행동은 굳이 좀비가 아니어도 무방할 패턴이었기에 본격적인 좀비 게임의 시작이라고 <좀비 좀비>를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 <좀비 좀비>는 좀비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게임규칙 면에서 좀비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블 데드Evil Dead>(1984)나 <고스트 앤 고블린(일명 ‘마계촌’) Ghost N Goblins>(1985) 등의 게임부터는 우리에게 익숙한 좀비의 행동패턴이 게임 캐릭터 안에도 들어오는 흐름을 볼 수 있다. 다소 느릿한 움직임과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패턴을 통해 적 유닛으로서의 행동에 좀비 특유의 방식들이 녹아들기 시작하지만, 여기서도 언데드라고 불리는 그룹과 엄밀하게 구분해 좀비라고 부를 수 있는 만한 유니크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었다. * <이블 데드>와 <마계촌>부터는 언데드와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좀비의 행동적 특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마도 본격적으로 좀비라는 개념이 게임 안에서 자신의 위상을 드러내기 시작한 대중적 게임을 꼽으라면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1996)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언데드와 구분되는, 명확한 좀비로서의 외형과 움직임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게임 안의 공간이 어느 정도 3차원 공간으로 잡히는 시기와 엇비슷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적으로서 좀비가 갖는 특성 중 하나인 느릿한 움직임이 3차원 공간에서의 공격방식인 ‘조준하고 쏘기Aim and shoot’에서 좀더 두드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케이드 오락실에서 실감형 게임으로 직접 전자총을 들고 조준해 사격하는 방식인 <하우스 오브 데드House of Dead>(1997)이 주요 대상으로 좀비(혹은 언데드)를 대상으로 한 것도 어느 정도 같은 영향력 하에 나타난 일로 보인다. * 3차원 공간에서의 에임 앤 슛에서 좀비의 행동은 좀더 두드러진다. 하지만 ‘느릿한 움직임’이라는 좀비의 특성은 고정된 것은 아니기에 함부로 속단하기 어렵다. 오히려 2010년대 이후의 게임들에 등장하는 좀비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군집으로서의 양상이다. <데이즈 곤Dayz Gone>(2019), <그들은 수백만They are billions>(2017)등은 결코 느리다고 볼 수 없는 움직임의 좀비들을 투입하면서 대신 엄청난 숫자의 물량으로 밀려들어오는 좀비로부터 버터내야 하는 도전을 안기는 형태로 변화했다. 오늘날 좀비를 주적으로 삼는 많은 게임들에서 나타나는 좀비의 특성은 그래서 단일하다기보다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디지털게임과 좀비 디지털게임의 초창기부터 좀비라는 대상은 적으로 자주 활용되었는데,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좀비가 활용되는 것과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디지털게임의 특수성이 도드라지기도 하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워킹데드>같은 드라마들에서 좀비는 게임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적대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외형과 유사해 더욱더 불쾌감과 공포감을 주는 존재로 등장하지만, 게임의 경우에는 이러한 적에게 공격행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또다른 의미가 부여된다. 사회적으로 디지털게임은 폭력성에 관한 오해를 자주 받곤 하지만, 실제로 게임 안에서 강렬하고 적극적인 폭력행동을 수행하는 일은 게이머에겐 때론 버거운 윤리적 부담감을 안겨주는 일이 적지 않다. 유명한 사례인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에서의 ‘노 러시안’ 미션에서 많은 게이머들이 무고한 민간인에게 화력을 투사하라는 명령 앞에서 머뭇거렸다는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이것이 비록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폭력의 사용이 매우 높은 심리적 장벽 앞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경험한 바 있다. 이런 면에서 특히 액션이 중심이 되는 게임이라면 좀비는 매우 그럴듯하게 윤리적 문제를 비껴나갈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좀비의 신체는 인간의 신체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명백하게 이는 인간이 아님을 드러낸다. 작은 머리와 직립보행하는 두 다리, 양 팔을 가진 좀비의 신체는 액션게임에서의 조준과 식별 과정에서라면 실루엣상으로는 인간을 향한 사격과 동일하지만, 인간을 닮은 이들 폴리곤 위에 덧씌워진 텍스처는 아주 강력하게 이들이 인간이 아님을 어필한다. 사격의 기술적 과정에서는 인간을 쏘는 것과 동일하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좀비라는 존재는 막대한 화력을 투사할 때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앞서 이야기한 윤리적 장벽을 우회하며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좀비를 대상으로 하는 게임들의 상당수가 중화기를 동원한 강한 화력을 선보이는 구조로 만들어지는 것도 같은 의미다. 미니건이나 소형 전술핵과 같은 대량살상이 가능한 병기들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지만, 이를 인간을 향해 쏘는 일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좀비와 같은 대상이라면 보다 강력한 무기를 디자인하고 그 화력을 맛볼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근현대 화기가 갖는 위력이 만드는 강한 스펙터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좀비라는 타겟은 다른 매체와는 다른 게임만의 특징으로 거듭난다. 이러한 윤리적 문제는 좀비가 아닌 다른 대상으로도 나타나는데, <콜 오브 듀티: 나치 좀비> 나 <스나이퍼 엘리트: 나치 좀비 아미>와 같은 나치와 좀비를 결합한 게임들이다. 나치와 좀비의 콜라보레이션은 매우 간단한 의도가 담겨 있다. 중화기로 화력을 들이부어라! 이들은 ‘죽어도 싼’존재이기 때문이다! * 나치와 좀비를 콜라보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게임 속 좀비의 새로운 트렌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게임 속 좀비는 한 시기, 한 모습에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며, 매 시기마다 그 시기에 가장 걸맞는 형태로 변화해 온 바 있다. 그리고 이런 좀비는 윤리 문제를 넘어선 강한 화력의 투사대상이라는 관념 바깥으로도 확장되는 중이다. <식물 대 좀비Plants VS Zombies>에서 좀비는 전통적인, 위협적이지만 느릿한 존재이지만 공포보다는 코믹한 형태로 재구성된 대상이다. 코믹한 좀비는 혼자 사는 너드 아저씨 주인공의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들어오지만, 이를 막아내는 것은 감자, 해바라기, 콩 같은 앞마당의 채소들이다. 외부의 조력 없이 혼자 자신이 사는 집의 앞마당yard을 침공해오는 좀비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게임 속 플레이어의 활동은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물이지만, 이 때의 좀비는 공포가 제거된 대상이다. * <식물 대 좀비>에서 좀비는 공포를 뺀 대상으로 나타난다.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에는 동충하초 같은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좀비가 적으로 나오지만, 사실상 이 게임에서 가장 무섭고 위협적인 적은 좀비가 아니라 사람이다. 자주 이야기되는,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이야기가 <라스트 오브 어스> 세계관과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고, 이 속에서 좀비는 ‘차라리 사람보단 낫더라’라는 이야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폴아웃>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구울이라는 집단을 상정하는데, 방사능에 피폭되어 인간의 골격을 하고 있지만 외형은 좀비와 닮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명확하게 좀비라는 존재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지만, 그 좀비들과는 달리 지성을 갖고 집단을 이루며 인간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존재이며, 플레이어의 동료나 아군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여기까지 오면 우리는 좀비라는, 한때 ‘절대로 인간이 아님’을 강변하며 존재하던 개념 또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를 묻던 그 장면들처럼, 최근의 적지 않은 게임들은 완벽한 상상 속 창작물인 좀비 또한 반드시 인간으로부터 분리되고 구분지어져야만 하는 대상인가를 역으로 묻는다. 어떤 면에서, 좀비에 대한 이야기는 포스트휴먼에 관한 최근의 논의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우주에 손을 뻗는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세계에 고립되어 존재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하며 살아가는 현실에서 내가 아닌 타자와 진정으로 동기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심전심, 역지사지는 궁극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개념이기에 이상향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언어가 가진 소통 수단으로서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 Back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우주에 손을 뻗는다 29 GG Vol. 26. 4. 10.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세계에 고립되어 존재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하며 살아가는 현실에서 내가 아닌 타자와 진정으로 동기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심전심, 역지사지는 궁극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개념이기에 이상향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언어가 가진 소통 수단으로서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서로의 말을 듣고, 글을 읽으며, 서로의 생각과 의도를 이해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자신있게 서로를 칭송하고 비난한다. 협력하고 배제한다. 바벨탑의 저주는 어쩌면 사람들의 언어를 나누어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나뉜 언어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는 맹신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류가 자신의 우주를 뛰어넘어 다른 우주와 소통하기로 결심한 그 순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게 손을 뻗기 시작한 순간. 영영 이해할 수 없을 타자를 알아가기 위해 내 시간을 기꺼이 쏟겠다고 결심한 순간. 이 가공할 욕구는 어디서 나오는가?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길 원하며, 무엇 때문에 이해하려 하는가? 이는 비단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이야기가 아닌, 서로 다른 소통 방식을 구사하는 모든 개인을 향한 물음이다. 당신은 당신을 둘러싼 기이한 존재들-가족, 친구, 직장 상사 또는 부하 직원, 매일같이 소셜미디어에서 마주하는 익명의 존재들을,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길, 원하는가? 그러니, 처음부터 시작해보자. 우리의 애정과 관심 밖에 있는 존재들, 처음으로 마주하는 그 낯선 존재들을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갈망을 느끼는 순간. 낯선 세계에서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낯선 이들 사이를 단지 수첩과 펜을 들고 바지런히 뛰어다니는, <챈트 오브 세나르Chants of Sennaar> 속 이름도 얼굴도 없는 여행자로 존재하는 순간. 우리는 왜 그들을 이해하려 하는가?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왜 그들의 소통 방식을 이해하려 하는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이 진정 이해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너, 돕다, 나” 생전 게임을 해 본 적이 없는 친구들과 게임을 하다 보면 놀랄 때가 있다. 울타리 사이로 나 있는 틈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겠다는 친구, 여기서 뛰어내리면 더 빨리 내려갈 수 있지 않냐고 따지는 친구를 볼 때, 비로소 게임의 언어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비디오게임의 영역에서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그리고 으레 사용되는 언어가 존재한다. 키 매핑, 시청각적 가이드, 플레이어가 플레이할 수 있는 동사의 한계 범위는, 광범위하게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경험이 발휘되는 ‘감’의 영역이다. 어느새 2n년 동안 게임을 해온 나에게는 무의식적으로 사용되는 감각이지만, 게임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왜 저기 지나가는 저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없는지가 의문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게임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뭘 할 수 있고, 뭘 할 수 없는지 조금씩 파악한다. 몇 개의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 점프할 수 있는지, 얕은 개울에 들어갈 수 있는지, 의자에 앉을 수 있는지. 이것이 이 게임의 언어다. 키오스크나 AI 상담 챗봇을 사용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자유로워 보이는 게임이라도 플레이어에게 말을 건네는 규칙은 정해져 있다. 경험을 위해선 이 규칙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비슷한 이유로, 나는 긴 텍스트로 설명하는 튜토리얼과,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지저분한 시스템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렇게 복잡한 텍스트로 이루어진 튜토리얼은 플레이어가 순수하게 낯선 상태에서 게임을 알아가는 경험을 간섭한다. 플레이 중 직관적인 행동과 시도를 통해 게임의 언어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과 공식을 머릿속에 쏟아부으며 암기하게끔 한다. 반면 <챈트 오브 세나르>는 하나의 문제를 던져주며 플레이어에게 말을 건넨다. “문 열림”과 “문 닫힘”. * 여행자가 처음 만나는 인물은 퍼즐을 통해 기본적인 단어들을 전수한다. <챈트 오브 세나르>의 게임 언어는 단순한 편이다. 동사의 종류가 많지 않고, 처음 게임을 시작해서 홀로 길을 걷다가 첫 문제를 만나기 전까지의 30여 초 동안 플레이어는 모든 언어(규칙)를 다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플레이어는 비로소 이 작품에서 제시하는 소통의 본질을 경험한다. 낯선 문자의 의미를 파악해, 닫힌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 세 단어(문, 열다, 닫다)는 앞으로 플레이어가 마주하고 번역해야 하는 수많은 상형문자들과의 상호작용을 암시한다. 우리가 처음 시작한 게임의 규칙을 파악하는 것은 처음 접하는 언어를 파악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맞닿아있다. 모국어를 배우는 것은 자각이 없는 본능적인 행위였고, 학교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앞서 언급한, 긴 텍스트로 도움말을 쏟아붓는 학습 행위에 가까웠다. 그러나 결국, 스페이스바를 눌러보기 전엔 점프가 가능한 지 알 수 없고, 레버를 내려보기 전까진 이 문자가 “열림”인지 “닫힘”인지 알 수 없다. 언어가 담고 있는 의미를 감각하기 이전에 언어의 껍데기를 마주하는 것은 학습일 수는 있겠지만, 이해일 수는 없다. 나의 세계를 포착하는 단어장 만들기 작품에 등장하는 다섯 개의 언어는 모두 표의문자를 사용한다. 하나의 문자는 단순히 하나의 단어를 치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2층에 사는 전사들의 어떤 문자는 ‘집어들다’부터 ‘지니다’까지 광범위한 한국어 단어의 의미를 내포하지만, 추상적으로 그린다면 결국 하나의 개념에 수렴한다. 작품은 해당 문자가 어떤 단어에 조응하느냐가 아닌, 어떤 개념을 그리고 있는지에 접근한다. 때문에 여행자의 수첩에는 문자의 의미가 텍스트가 아닌 그림으로 그려진다. ‘문’이나 ‘열쇠’같이 대상이 명확한 개념부터 ‘아름답다’, ‘두렵다’ 같은 형용사, 심지어 숫자나 ‘금’, ‘은’처럼 형태가 없는 명사까지 모든 개념은 독창적일 정도의 간단한 그림으로 표현되고, 플레이어는 이 그림이 표현하는 개념에 걸맞은 문자를 짝짓는다. 만약 이를 텍스트로 표현했다면 그 순간 해당 문자의 의미는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규정되었을 것이다. * 여행자는 새롭게 알게 된 개념을 그림으로 기록한다. 이렇게 규정되어 치환된 단어는 해당 문자를 얼마나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예상하지 못한 함의와 뉘앙스가 섞여들어갈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는 표현의 중립성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수단이며, 플레이어로 하여금 각각의 언어와 문자에 어떠한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같은 개념이 다섯 개의 다른 문자로 표현될 수 있는 이상, 각각의 문자가 얼마나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까. 외국어 학습 유튜브 영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레퍼토리 중 하나는 ‘당신이 알던 것은 틀렸다’ 논조다. 우리가 한국어와 치환해서 사용하던 외국어 단어나 문장 구조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며, 때문에 그 언어에 더 적합한 다른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 부족이 사용하는 다섯 개의 언어는 문자도, 문법도, 문장 구성도, 어휘도 다르다. 연금술사들은 복수형을 표현하는 별도의 문자를 사용한다. 음유시인들은 목적어를 문장의 제일 앞에 제시한다. 은둔자들은 문자들을 결합해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 탑의 1층에 사는 신자들은 탑의 위쪽을 신이 있는 공간으로 여기며, 때문에 ‘위’를 ‘좋은 것’이라는 개념과 연결한다. 이들에게 ‘수도원’은 지리적으로 ‘위’에 있는 동시에 ‘좋은(신성한)’ 공간이기에, ‘위’라는 문자에 ‘공간’을 표현하는 부수를 붙여 ‘수도원’이라는 문자를 만든다. 이는 단순히 어떤 개념을 규정하는 것과 더불어, 해당 부족의 언어가 담고 있는 세계관과 정서를 보여준다. 사실 다섯 부족이 동일한 단어들을 단지 다른 문자로 표현하도록 설계한다면 개발 상의 편의를 확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부족들은 문자의 개수도 다르고, 사용하는 어휘도 다르다. 이는 각 언어의 세계관에 차이점을 둘 수 있다는 이점과 더불어, 다섯 개의 사회에서 경험할 수 있는 플레이 요소에도 차이를 둘 수 있다. 유일하게 숫자 어휘를 사용하는 연금술사들의 사회에서 금속을 계량하고 화합물을 만드는 퍼즐을 푸는 것은, 낯선 세계를 배회하는 여행자가 이들의 삶을 가장 밀접하게 체현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 음유시인들은 탑의 위로 올라갈 방법과 그럼에도 갈 수 없는 이유를 연극으로 만들었다. 견고한 관성의 경계 너머를 떠도는 유령이 있어 2층의 전사들은 1층의 신자들을 ‘불순하다’ 말하며 멸시하고, 3층의 음유시인들을 ‘선택받았다’ 표현하며 동경한다. 4층의 연금술사들은 5층의 은둔자들을 ‘요정’이라 부른다. 그리고 여행자는 완전한 이방인 그 자체다. 어디에서도 비롯되지 않았으며, 어떤 언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름도, 얼굴도, 말도 없는 그는 이 탑의 모든 층을 오르내리며 분리된 세계들을 관통하는 관계를 구축해낸다. 그의 여정을 함께하는 것은 칼이나 총이 아닌, 수첩과 펜 한 자루다. 이 유령은 탑 안에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다. 그러니까, 사상적으로. 이제 막 태어나, 어떠한 세계관과 편견에도 물들지 않은 순수한 상태. 사실상 이 게임을 이제 막 실행해 아무것도 모르는 플레이어와 마찬가지의 상태다. 때문에 여행자에게는 언어가 없다. 그는 언어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다른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 표현한다. 언어를 가진 다른 이들이 저지르는 실수들, 자신의 언어라는 장벽에 둘러싸인 세계, 그 편견에 스스로를 가두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탑에 사는 부족들의 분열과 몰이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모든 층이 견고하게 분리되어 있고, 때로는 잘못된 신념이, 우월주의적 오만이, 무시무시한 괴물이, 그리고 거대한 문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심지어 꼭대기 층에 살고 있는, 이 탑을 세웠다는 은둔자들은 서로마저 밀어내고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살고 있다. 이들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도 눈을 마주하거나 말을 나누지 않고 시뮬레이션 기계 안에서 세상을 관음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소통과 이해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스크린 속 모습만이 이들이 보고 있는, 보려 하는 세상의 전부다. 결국, 낯선 여행자가 이 탑에서 해내야 하는 일은, 단순히 다섯 언어를 공부해 소통을 매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해야 한다는 필요와 의지조차 없는 사람들의 관계를 매개해 주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이상을 좇는 것에 몰두한다는 삶의 방향을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각자가 머무는 층 안에서 그런대로 살아간다. 그리고 이 관성이 탑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시스템, 여행자가 궁극적으로 맞서야 하는 시스템의 본질이다. 여행자가 숨겨진 장소들에서 마주하는 탑의 관리자, 고립자는 이러한 고립이 탑에 거주하는 이들의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고 항변한다. 그러니까 고립자의 세계관, 시스템의 언어로 묘사되는 ‘안전’이라는 개념은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항구적인 불변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부족들 간의 아무런 접촉도, 그로부터 벌어지는 아무런 변수도 발생하지 않는 상태. 영원한 분열과 반목 속에서 서로를 자극하거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없는 상태. 탑으로 밀려드는 다른 부족들이 두려워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은둔자들은 이러한 관성이 자신들의 사회를 아사시키고 있음을 깨달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여행자를 만들었다. 여행자, 플레이어가 이 탑에 저지른 일은 단순히 다양한 언어들을 터득해 부족 간의 말을 번역해 준 것이 아니라, 이 항구적인 불변성에 변화의 씨앗을 심은 것이다. * 탑 곳곳에는 다른 부족과의 소통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전사들은 신자들 역시 자신들처럼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금술사들은 자신들이 음유시인들과 한 부족이었다는 발견을 음유시인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음유시인들의 사회를 떠받치던 노예들은 신자들의 사회에 노예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들이 찾고 있거나 혹은 찾아볼 생각도 못 했던 답을 다른 세계관을 가진 다른 사회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질문을 멈출 때, 사회는 숨이 멎는다. 사실은 이렇다. 모두가 소통을 원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모두가 낯선 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갈망을 느끼진 않을 수도 있다. 전 지구적 연결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연 그렇게까지 이 현실에 열광하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분명 고개를 젓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겐 너무나 많은 질문이 있고, 너무나 많은 답이 있다. 누군가는 답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더 이상 타인을 궁금해하지는 않으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만을 끊임없이 하고싶어한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와 만연하고 노골적인 몰이해에 둘러싸여, 우리는 더 이상 질문을, 궁금해하기를 멈추고, 자신만의 우주 안에 웅크린 채 관성에 의지해 살아가려 할지도 모른다. 소통을 해야 한다는 필요와 의지조차 상실한, 항구적인 불변의 상태. 그러나 이런 때조차도 소수의 몇몇이 존재한다. <챈트 오브 세나르>에서 스크린 속 다른 부족을 마주한 채 말을 던지는 사람들. 이들은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답을 갈망하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진다. 그리고 이들의 사이를 엮어주는 여행자. 완전히 다른 세계관에서 탄생하고 구조화된 두 언어를 매개하고, 두 세계가 서로의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 연금술사들은 전사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두 부족은 함께 괴물을 생포한다. 적어도 오늘날의 우리는 더 이상 수 백 년 전처럼 내가 사는 동네가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가진 않는다. 좋고 싫음과는 별개로 세상에 자신처럼 생각하는 사람만 있지는 않음을 알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쓰인 책과 영화, 음악, 게임을 매일같이 접하고, 직접 세상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큰 세상을 마주한다. 때로는 탑의 고립과 분열을 수호하려는 관리자가 등장할 수도 있고, 늘 관성에 의지해 그런대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사회에게 남은 미래는 서서히 죽어가는 것뿐이고, 종의 존속과 진화를 위해서는 유전적 돌연변이가 필수적이다. 누군가는 원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계속해서 낯선 세계를 이해하길 갈망할 것이고, 다른 우주로 손을 뻗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이머) 박해인 게임에서 삶의 영감을 탐색하는 게이머. 게임의 의도와 컨셉을 전달하는 방식들을 분석하는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 Beyond the K-Game

    우리의 게임 실력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원코인, 즉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플레이 할때다. 다양한 BM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한다. 다행히 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인디 게임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넥슨은 참신한 도전을 위해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다. 심지어 여기서 만들어진 ‘데이브 더 다이브’는 스팀 인기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네오위즈 ‘P의 거짓’은 게임스컴 어워드 3관왕에 올랐다. 하면 된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거듭된 패배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동전을 넣던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 Back Beyond the K-Game 09 GG Vol. 22. 12. 10. K-게임은 어찌하여 호K호형 하지 못하는 신세로... 접두사 ‘K-’가 붙는 단어들이 있다. K-웹툰, K-드라마, K-POP, K-영화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닮은 점이 있다. 컨텐츠라는 점이다.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 안으로는 국민에게 사랑받고, 해외로는 우리의 자랑거리다. 그러나 K로 시작하는 컨텐츠임에도 저기에 끼지 못한 서자가 있다. 이름하여 K-게임이다.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많은 대중에게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게임업계는 항변할 것이다. K-게임은 컨텐츠 수출을 견인하는 산업일꾼이란 주장이다. 업계종사자 중에서는 억울한 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게임은 다른 K-게임과 다르다는 이유다. 맞다. 인정한다. 컨텐츠 수출액의 70%를 점하는 효자이고, 국내와 해외에서 사랑받는 K-게임도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있다. 수출역군의 일등공신도 BM(비즈니스 모델)이고, 대중에게 배척받는 이유도 BM이다. 예상하듯이, 그 BM은 확률형 아이템을 주 기반으로 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여러 자리에서 주장해 왔기에 ‘확무새’라고 지겹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주 독자층이 주로 ‘게임高관여층’일 것이기에 또 한번 쓸 수 밖에 없다. 태풍의 눈에 있으면 태풍의 세기를 체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극히 일반적인 게이머들의 생각을 되풀이해서 들어야 한다. 랜덤박스와 P2W의 결합: 게임사엔 최고의 궁합, 이용자는 최악의 조합 확률형 아이템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결과는 게임의 본질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한 달에 한 번 매직 더 개더링 카드팩을 살 수 있었다. 그 날은 매월 가장 설레는 날이었다. 카드팩을 뜯을 때 나던 그 특유의 카드 냄새, 드물게 나오는 레어카드의 기쁨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 'Mirri, Cat Warrior'. '매직 더 개더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템페스트 블록’중 엑소더스에 등장한 레어 카드. 당시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던 녹색 생물이다. 이 카드를 뽑고선 15년 인생 중 가장 큰 짜릿함을 경험했다. 문제는 확률형 아이템 모델이 ‘Pay to Win’(이하 P2W) 과 만났을 때다. P2W 시스템은 게임에서 승리하는 데에 필요한 핵심 조건, 즉 캐릭터 능력치나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하는 행위 및 이것을 유도하는 게임구조를 말한다. 이용자는 P2W을 통해 남들보다 적은 시간을 투자하여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 어찌 보면 참 편리한 시스템이다. 아울러 P2W 이 게임 밸런스를 과하게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살짝만 곁들여지면 게임의 재미를 더 높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다. 매운 맛을 좋아한다고 음식에 캡사이신 소스를 뿌려대면 응급실행이다. 마찬가지로 P2W이 과하면 게임을 해치는 독이 된다. 대다수의 P2W 아이템이 확률형 아이템 BM을 통해서만 획득하도록 강제하는 것도 문제다. 더 좋은 P2W 아이템일수록 더 낮은 획득 확률이고, 자연스럽게 사행심도 함께 부추겨진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낮은 확률을 뚫고 어렵사리 아이템을 구해도 안심할 수 없다. P2W 아이템을 계속해서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먼저, 어렵게 획득한 P2W 아이템보다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확’풀어 버린다. 그리고선 보다 높은 등급의 희귀 P2W 아이템을 랜덤박스로 내놓는다. 즉, 인위적으로 아이템 성능의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기존 아이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주로 대규모 패치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주기가 짧을수록 잦은 과금을 해야 한다. 지상 낙원을 꿈꿨던 랩처, 그러나 그 끝은 파국만이 있었다 “회사의 제1원칙은 수익 창출이다. 따라서 민간의 영리활동에 정부나 국회가 과하게 개입해선 안된다.” 업계의 논리다.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자유와 방종은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바이오쇼크'라는 게임시리즈가 있다. 심오한 세계관과 뛰어난 연출로 평론가, 이용자 모두에게 극찬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2007년에 출시된 '바이오쇼크 1'은 명작 중의 명작이다. '바이오쇼크1'은 수중도시 랩처가 배경 무대다. 이 곳은 앤드류 라이언이라는 자유지상주의자에 의해 건설된 도시다. 랩처엔 특징이 있다. 그 어떤 규제도, 간섭도, 책임도,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순도 100%의 자유로만 채워진 공간이다. 언뜻 들으면 낙원 같기도 하다. * 초기 랩처의 유토피아 모습. 그러나 랩처의 끝은 파멸이었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기본적인 규범과 도덕마저 부재했다. 욕망을 한껏 부추기는 환경은 즐비했지만, 제동장치는 없었다. 결국 랩처의 주민들은 광기에 빠져 공멸했고,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 방종으로 파멸한 랩처. 우리 게임업계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 BM의 폐단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개선의 기회도 충분히 주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무조건적인 규제가 아니라 업계에 자율규제를 맡겼다. 수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결과를 목도했다. 전 세계 초유의 게임이용자 집단 연쇄시위 사태, 이를 통한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를 코앞에 두고 있다. 문제는 업계의 대응 방식이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되자,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국회 문체위 모든 의원실에 입장문을 전달하는 협회의 모습에서 랩처의 그림자가 겹쳐보였다. 마치 랩처처럼, 협회는 게임 이용자들이 원하는 최소한의 규제, 최소한의 이용자 보호조치마저 거부했다. 그런가 하면 타 의원실을 통해 청부 입법하기도 했다. 자율규제를 유지·강화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끝에 결국 법안은 철회되었다. 그런가하면 민간 자율기구에서 사실을 왜곡하여 의원실을 폄훼하기도 했다. 업계 대응방식의 부작용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다시 '바이오쇼크 1' 이야기다. 스플라이서라는 존재들이 있다. 본래 평범했으나, 마약성 유전자 변형제인 '아담'에 중독되어 그 부작용으로 괴물화된 랩처의 주민이다. 업계 대응방식의 부작용은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이슈에 대해 여론이 돌아섰다. 질병코드 문제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2019년 당시와 지금을 놓고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3년 전에는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업계편에 서서 든든한 우군이 되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론전에서도 등재 찬성측을 압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랜덤박스 규제에 대한 업계의 대응을 보고 게이머들의 마음이 식어버렸다. 한번 차가워진 여론은 되돌리기 어렵다. 국내 게임사들은 이용자들에게 분노를 넘어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계가 게임 이용자들의 지지를 바라기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질병코드 등재에 찬성하고 나서는 게임 이용자들도 여럿 보이는가 하면, 확률형 아이템 위주의 게임을 도박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실제로 최근 질병코드 등재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사의 업보’라며 조소어린 관망세를 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K-게임업계의 대응은 스플라이서와 쌍둥이 꼴이었다. 본인의 선택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다. 원코인 남은 심정으로.. 지난 2년 동안 K-게임환경은 지각변동이 있었다. 연쇄 트럭시위, 마차 시위, 집단 소송은 물론 여러 정부 기관에 민원 제기까지, 이제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 게임업계는 이용자의 집단화를 두려워하고 피해야할 대상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도 애정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던 애정마저 식으면 K-게임의 엔딩은 ‘배드 루트’뿐일 것이다. 우리의 게임 실력이 가장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원코인, 즉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플레이 할때다. 다양한 BM을 도입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한다. 다행히 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마일게이트는 인디 게임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넥슨은 참신한 도전을 위해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다. 심지어 여기서 만들어진 ‘데이브 더 다이브’는 스팀 인기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네오위즈 ‘P의 거짓’은 게임스컴 어워드 3관왕에 올랐다. 하면 된다. ‘Here comes a new challenger’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거듭된 패배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동전을 넣던 정신이 필요한 시기다. * Here comes a new challenger!!!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국회 보좌관) 이도경 역대 국회 게임 관련 법안 최다 발의·최다 통과 시킨 것이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자부심은 와우에서 리치왕 하드모드 서버 퍼스트킬 한 것과 카오스 유명 클랜인 RoMg에서 샤먼을 했다는 사실입...

  •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쇼의 미래를 묻다

    ‘게임기자가 되면 뭐가 좋아요?’. 최근 술자리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후배가 물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필자는 게임기자를 대변할 깜냥도 없을뿐더러, 글밥을 벌어 먹고사는 것이 날로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굳이 게임기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Back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게임쇼의 미래를 묻다 20 GG Vol. 24. 10. 10. ‘게임기자가 되면 뭐가 좋아요?’. 최근 술자리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후배가 물었다. 쉽게 답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필자는 게임기자를 대변할 깜냥도 없을뿐더러, 글밥을 벌어 먹고사는 것이 날로 어려워진다는 사실은 굳이 게임기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목이 턱 막히는 질문이지만 이 답답함을 후배에게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가까스로 꺼낸 대답은 ‘게임기자는 게임쇼에 갈 수 있어’였다. 필자는 지금은 사라진 E3를 제외한 거의 모든 대형 게임쇼를 취재했다. 한국의 지스타, 플레이엑스포, BIC부터 중국의 차이나조이, 일본의 도쿄게임쇼, 대만의 타이베이게임쇼와 독일의 게임스컴, 미국의 GDC를 다녀왔다. 게임사들이 자체적으로 연 행사까지 포함한다면 필자가 다녀온 곳은 더 많다. 게임쇼는 여러 게임사가 신작을 발표하는 한편 개발 상황을 대중에 공유하는 쇼케이스이고, 사업적 기회를 찾는 기회의 장이며, 게임인들이 모이는 축제다. 게이머로서 게임쇼는 놓치기 아쉬운 현장이다. 필자가 이 원고를 탈고하는 지금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쎄에선 도쿄게임쇼가 막을 내렸다. 오는 11월, 지스타는 행사 20주년을 맞이한다. * 오는 11월 개막하는 지스타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다. 사진은 2024년 지스타의 행사장 조감도 일부 사라진 E3, 점점 올라가는 비용… 높아지는 게임쇼 무용론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디지털게임이 오프라인 쇼라는 형식을 통해 공유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를 경유하면서 온라인 쇼케이스 방식은 널리 퍼졌다. 신작 발표라면 소니의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나 제프 케일리의 초호화 발표회가 있고, 체험이라면 스팀의 얼리억세스가 있다. 북미를 대표하는 게임쇼는 E3는 사라진 게임쇼가 되었다. 단일 게임사 게임쇼로는 가장 유명한 블리즈컨은 개최와 미개최를 반복하고 있다. 요컨대 모든 사람이 코로나19를 지나며 비대면의 익숙함을 경험했지만, 디지털게임은 특별히 비대면 콘텐츠를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게임스탑이나 용산상가보다 온라인 유통망에서 게임을 구매하는 것이 익숙한 지금, 오프라인 게임쇼의 의미도 새로 생각해봐야 한다. 게임 CD와 CD-ROM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예전과는 달라진 것처럼 말이다. 최근 필자는 CD는 커녕 USB 저장장치를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이 대학생이 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아무튼, 이미 많은 업계인들이 <헤일로> 신작을 공개하면서 팔에 <헤일로> 문신을 보여주는 것보다 게임스컴 오프닝 라이브나 더 게임 어워드에 쇼케이스 자리를 구매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외신 에스콰이어에 폭로된 바에 따르면, 제프 케일리가 주최하는 각종 쇼케이스에 광고를 내려면 1분에 25만 달러, 약 3억 4,00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기자가 그간 만난 많은 업계인들이 오프라인 게임쇼에 출전하는 것보다 온라인 쇼케이스에 트레일러를 보내는 것이 저렴하다고 토로했다. 오프라인 게임쇼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플레이 가능한 게임빌드가 있어야 하고, 그게 없다고 하더라도 손님들을 만족시킬 적당한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하며, 코스프레 업체와 안내요원에게 인건비를 지불해야 하는 한편, 행사 주최측에게 부스 공간을 대여해야 한다. 철도로 운송이 가능한 경우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항공편으로 물자와 인력을 대야 하는 경우라면, 그 비용이 대단히 올라간다. 즉, 온라인 쇼케이스에 트레일러를 보내는 것은 게임쇼 직접 출전보다 경제적으로 더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다. 더구나 지금처럼 게임 업계가 감축 국면으로 접어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기자가 아는 모 게임사는 코로나19 이전까지 고용하고 있던 행사 관련 전담 인력을 대부분 내보냈다.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MS의 옛 게임사업부 대표를 맡은 피터 무어는 <헤일로 2>의 출시일을 문신으로 새겨 현장에서 공개했다. 현장 분위기는 열광의 도가니였다고 한다. 신작 발표의 플랫폼이 옮겨 가면서 이런 충격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듯한 인상이다. 한껏 기대를 받은 상황에서 출시된 <헤일로 2>는 대박이 났다. (출처: E3) 그럼에도 살아남은 게임쇼는 역대 최다 관중 갱신 그래서 오프라인 게임쇼에는 파리만 날리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각 게임쇼는 역대 최다 인원을 모객하고 있다. 지난 게임스컴과 올해 게임스컴은 소니와 닌텐도가 빠지고 그 자리를 한국과 중국의 게임사들이 채우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라인메쎄 사무국의 발표에 따르면, 2024년 게임스컴의 방문객 수는 총 120개국 출신의 33만 5,000여 명으로 역대 최고 관람객 수를 기록했다. 도쿄게임쇼의 방문객도 274,739명이 방문해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차이나조이도 338,000명의 집계를 올리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누군가에게는 무용한 논의일 수 있겠으나, 오프라인 게임쇼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느냐’에 달려있다. 현장에 찾아서 돈과 시간을 쓴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서 그 해 행사를 점검하는 한편, 다음 해에 대한 예측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게임쇼의 조직위원회가 꼬박꼬박 방문객 수를 집계하고 발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반대로 특정 게임쇼가 관람객 발표를 주저한다면, 이는 내년도 행사에 적신호가 될지도 모른다. E3가 사라진 가운데 주요 게임쇼들이 역대 최다 관람객 수치를 매년 갱신하면서 한때 코로나19로 침체됐던 오프라인 게임쇼에 대한 심리가 분출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엔 일상을 찾은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듯하다. 오프라인 게임쇼는 여전히 폭발력 있는 마케팅 창구이고, 방문객으로 하여금 대체 불가능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그중 백미는 단연 미발매 게임을 먼저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스컴은 소니와 닌텐도가 빠졌음에도 크래프톤이 <인조이>, 펄어비스가 <붉은사막>을 선보이며 전 세계 게이머를 사로잡았다. 소위 ‘국뽕’ 요소를 제하더라도 두 게임에 대한 열기는 <몬스터 헌터 와일즈>나 MS 게임패스 부스 못지 않게 뜨거웠다. 관람객들은 캠핑 의자를 끌고 와 5시간에서 6시간을 앉아 두 게임의 시연을 기다렸다. 지난해에도 게임사이언스의 <검은 신화: 오공>을 즐기려는 장사진이 들어섰다. “대기시간 수백 분”은 “사전예약자 몇만 명”보다 센 파급력을 지닌 듯하다. 사전예약은 버튼 터치로 가능하지만, 대기시간은 순전히 그 앞에서 기다려야 하지 않은가? 일반 관람객을 위한 ‘매직패스’ 부류의 탑승 예약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다. * 지난 게임스컴에서 수백 분의 대기시간을 기록한 크래프톤의 <인조이>. (필자 촬영) 챔피언의 사정, 컨텐더의 사정 그러나 단일 기업이 충분한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을 때에는 굳이 오프라인 게임쇼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듯하다. 소니의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가 그렇고, 닌텐도의 ‘닌텐도 다이렉트’가 그러하며 블리자드의 ‘블리즈컨’이 그러하다.(혹자는 이 문장을 과거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단일 게임쇼가 열리는 기간에 맞추어 자사 게임쇼를 열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2019년에는 EA가 E3를 앞두고 EA PLAY라는 이름의 자체 게임쇼를 열어 관객을 맞이했다. 앞으로도 세계 시장에서 주목도가 높은 게임사들은 자사의 마케팅 전략과 비용, 국가 내의 입지 등의 따라서 부스 출전을 결정할 것이다. 도쿄게임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닌텐도 부스를 한국의 플레이엑스포에서 찾을 수 있다.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라는 개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소니는 올해도 차이나조이에서 대형 부스를 냈지만, 굳이 독일 게임스컴까지 출전하지는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반면에 단일 회사와 IP의 지명도가 개별 게임쇼보다 부족하다면 그 기업은 여건이 되는 한 적극적으로 출전을 고려할 것이다. 당장 크래프톤과 펄어비스는 <인조이>와 <붉은사막>을 알리기 위해 수천 km를 날아갔고, 좋은 성과를 얻은 듯하다. (공교롭게도 두 회사는 모두 상장사인데) 다가오는 실적 발표에서 이들 기업이 출전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여러 비용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략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적인 물가 인상 기조가 끝나지 않는 이상, 오프라인 게임쇼 출전을 위한 비용도 올라갈 것인데, 그렇다면 이들 게임사들은 자사가 벌어들이는 영업이익의 규모를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차이나조이에 참가했던 소니는 게임스컴을 결석하고, 안방의 도쿄게임쇼에 다시 참가했다. 사진은 2024년 차이나조이에서 촬영한 소니 부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 PS5는 품귀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오공>이 출시됐기 때문. (필자 촬영) 몰맥락적 ‘쇼걸’ 대신 코스프레, 그리고 굿즈의 향연 게임업계의 올드비들은 게임쇼에서 ‘쇼걸’이 도열해 현장을 찾은 손님의 팔짱을 끼면서 부스 방문을 영업했다는 이야기를 전설처럼 꺼내곤 한다. 이제 그런 모습은 전과 달리 많이 사라졌다. 지금도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몇몇 곳은 ‘쇼걸’을 적극적으로 배치해 모객에 나서지만 이제는 대부분 찾아보기 어려운 문화가 됐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코스프레 모델로 보인다. 자사 IP와는 아무런 쇼걸보다는 맥락이 있는 전시로 평가되기 때문에 빠르게 쇼걸의 자리를 대체한 듯하다. 일각에서는 게임이 아닌 코스프레가 행사의 중심이 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내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본다. 행사장에는 매년 눈에 띄게 코스프레 참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매년 찾는 지스타에서도 코스프레 참가자가 늘어나는 것이 꾸준히 관측된다. 이런 개인 참가자 중 몇몇은 게임사에서 준비한 코스프레 모델을 뛰어넘는 수준의 분장을 보여주며 보는 사람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전 세계 어느 게임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는 포스트모템과 강연 중심의 GDC에서도 코스어를 여럿 목격했다. 이렇듯 게임쇼에서 코스프레는 이미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지도 오래다. 한국의 플레이엑스포는 코스프레 참가자를 위한 탈의실과 코스프레 가이드까지 안내하는 등 코스프레 친화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자도 누가 ‘택일하라’고 한다면 코스프레 중심의 게임쇼보다는 시연 중심의 게임쇼를 선호하는 쪽이지만, 그것은 개인의 호불호 영역에 불과할 뿐, 둘은 앞으로도 완전히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아시아권 게임쇼를 중심으로 코스프레 모델에게 과도한 촬영을 시도하는 몇몇 사진가들이 있어 유의가 필요할 듯하다. 여담이지만, 지난 게임스컴에서 필자는 한 업계 관계자로부터 ‘굿즈 배포의 관행’에 대한 사견을 들은 바 있다. 언젠가부터 게임 캐릭터나 게임사 로고 등으로 장식된 대형 비닐 백에 게임사에서 나눠주는 마우스패드, 휴대용 선풍기 등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게임쇼에서 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이 관계자는 이러한 굿즈 살포가 근래 트렌드가 된 ESG 경영에 맞춘 행보가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은 언제나 작은 성의에 감동하기 때문에 굿즈 배포의 문화를 단박에 없애기는 어렵겠지만, 행사장 한편에 무더기로 버려지는 종이부채 쓰레기를 보면, 다른 방식의 ‘작은 성의’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지스타 사진 중 기사에 쓰기 적합한 사진을 골랐다. 사진기사 본문에는 "부스에 미모의 여성들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라고 쓰여있다. (출처: 디스이즈게임) 오프라인 게임쇼의 미래는? 정리하자면, 게임업계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을 빠르게 학습했으며 지금도 비대면 행사와 마케팅이 자주 펼쳐지고 있다. 축소 국면에서 트레일러 마케팅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쓰이고 있고, 이 기조는 한동안 계속될 듯하다. 제프 케일리의 아성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플레이어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게임쇼의 현장감은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에 각 기업의 영업활동이 허락하는 한 오프라인 게임쇼는 계속될 것이다. 사라진 E3의 빈자리는 게임스컴 등 타 게임쇼들이 성공적으로 대체하고 있다. 본문에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같은 예술 행사에서도 게임은 당당히 현장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 소니와 닌텐도 같은 빅 플레이어들이 게임쇼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호사가들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게임사들은 근래 바둑을 두듯 빈자리를 파고 들어가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크래프톤과 펄어비스가 대표적이다. 지금으로서는 근거 없는 기자의 망상이지만, ‘퍼스트 펭귄’을 주시하는 업계의 특성상 이러한 시도는 당장 내년도부터 다른 한국 게임사들에 확대될 수 있다. 관람객들은 몇 시간씩 게임 시연에 줄을 서기도 하고, 자기 카드 덱을 들고 듀얼을 펼칠 수도 있고, 꼬리 달린 털옷을 입고 나와서 현장의 분위기를 돋울 수 있다. 오프라인 게임쇼의 성패는 언제나 얼마나 많은 관람객을 모았는지에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주최사와 게임업계에게 긍정적인 신호이고, 그들은 그 신호를 이어갈 수 있도록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채팅 비활성화와 게임 커뮤니티 문화

    2019년 브리아나 우는 게임이 단순한 모방 범죄와 폭력성을 유발하고 있다는 담론에서 벗어나 이제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와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사회 문제가 생겼을 때 게임을 모방한 사건이나 게임 중독자의 일탈 행동 등 개인의 책임을 묻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이머 문화와 커뮤니티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할 지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 Back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채팅 비활성화와 게임 커뮤니티 문화 03 GG Vol. 21. 12. 10. * 〈리그 오브 레전드〉 2021년 11월 21일 패치 노트 2021년 11월 21일,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게임 내 전체 채팅 기능이 사라졌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게임의 명성만큼이나 해로운 상호작용을 지닌 게임으로도 유명하다. 롤의 채팅 기능은 게임을 위한 전술을 교환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대신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번 패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팀원 간 채팅은 여전히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운영적인 측면에서는 기존에 존재하고 적극적으로 활용되던 기능을 삭제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고, 팀 내 채팅마저 삭제될 경우 당장 타인과 함께 플레이하지 않는 유저들 간에 전술을 교환할 수 있는 수단이 미흡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패치를 주목했다. 누군가는 진작 생겨야 할 기능이었다며 환영했고, 반쪽짜리 기능일 뿐이라며 못 미더워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체 채팅은 사라졌지만 게임이 끝나자마자 결과 화면에서 바로 상대 팀원에게 욕설을 퍼붓는 게이머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물론 이번 패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이미 제공되는 채팅 끄기 기능을 왜 쓰지 않냐면서 이번 패치로 인해 자신이 채팅할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빼앗겼다고 주장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 뿐만 아니라,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많은 게이머들은 게임 중 발생하는 폭력적인 대화들을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이미 게임 문화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폭력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게임 내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익명의 상대방에게 더 쉽게 저주를 퍼부을 수 있는가? 기존의 MMORPG 게임은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일정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요구됐다. 상위 컨텐츠를 플레이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 부대낄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면 (좋건 싫건 간에) 게임 속에서 사회 규범이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유저들과의 대결인 PVP 보다는 PVE 가 주목적이기 때문에 원망의 대상이 몬스터나 개발사 쪽으로 가지 유저로 가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MMORPG 중 PVP가 유명한 게임들의 경우 채팅 환경이 상대적으로 더 거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AOS 게임은 부계정을 만들기가 타 장르에 비해 쉬운 편이다. 캐릭터의 숙련도를 정하는 것은 캐릭터의 레벨이나 전설적인 장비가 아닌 자신의 피지컬, 즉 순수한 실력이다. 게임 규칙을 지키지 않아 채팅이 막히고 아이디가 정지되더라도 다른 아이디로 접속하면 전과 같은 환경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 타인과 경쟁하는 게임에서 원망의 대상은 자신에게 패배의 경험을 제공하는 상대방이다. 같은 편이어도 예외는 없다. 끊임없는 조작이 필요한 AOS 게임의 특성상 채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부정적인 경험(캐릭터의 사망, 승패가 가려진 후)을 한 직후밖에 없는데, 이때의 흥분되는 감정들이 직접적으로 상대방에게 쏟아지기 쉬울 수밖에 없다.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증오 표현과 성희롱을 하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해 게임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속된 말로 게임을 던지는) 것도 불사하는 행동, 때로는 게임 밖으로 까지 뻗어나가 사이버 괴롭힘과 스토킹까지 지속하는 이런 행위들을 서구권 게임 업계에서는 독성 행동(Toxicity, 일부 논문에서는 유해 행동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했다. 게이머게이트 사건 이후, 게임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독성 행동이 어떤 기반에서 생겨나게 되었는지, 이런 행동들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지 사회문화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북미의 경우 게임 커뮤니티에서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이들의 경우 대부분은 보수적인 성향을 띄며 여성 보다는 남성의 수가 많았다. 상대적으로 어리거나 젊은 게이머가 많았으며, 백인이고, 이성애자의 비율이 높아 주류 사회의 포지션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공격성은 위보다는 아래로 향하였고, 타인이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빼앗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약자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욕설 대상은 여성과 타 인종, 성소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1)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이런 경향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단일민족 국가 정체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타인종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욕설은 상대적으로 덜 하지만 그 부분을 여성에 대한 욕설이나 성희롱으로 채운다. 주목할만한 사실로는 상대방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더라도 어떤 캐릭터를 고르는지, 어떤 플레이 스타일을 가졌는지를 보고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못 미친다고 생각되는 순간 상대방을 여성이라 단정하고 공격하는 경향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2) 공통적으로 독성 행동은 나이가 어릴수록, 여성보다는 남성이, 팀워크를 통해 경쟁하는 게임을 경험했을수록 더 흔하게 발생한다. 남성 게이머는 나쁘고 여성 게이머가 덜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을 하는 유저들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온라인 활동을 하는 이용자들의 수가 애초에 적기 때문이다. 게임 이용자들 중 1.4%만이 적극적인 온라인 활동을 한다. 댓글을 남기는 비율을 포함해도 10% 미만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 중 악성 유저의 수는 소수이지만, 이 소수가 게임과 게임 커뮤니티의 의견을 과대표하게 되면서 이들의 의견이 게이머 전체의 의견인 양 노출되게 된다는 점이다. 3) 이런 독성 행동은 게임 밖 커뮤니티에서 특히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자신을 드러낼 필요성이 없는 익명 사이트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한데 문제는 한국의 경우 게임 커뮤니티의 상당수를 익명 사이트(대표적으로 디시인사이드가 있다.)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카페나 팬 사이트와 다르게 익명 사이트들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강조한다. 이들은 친목과 규칙을 거부하고 쉽고 빠르게 글을 쓴다. 날것의 감성을 강조하여 원색적인 표현을 쓸 수록 반응이 좋기 때문에 자극적인 글들이 많고, (루머를 포함한) 최신 정보도 다른 곳에 비해 빠르게 올라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당연히 게임 개발자나 운영자들 또한 익명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게 되고, 원색적인 단어에 놀라던 사람들도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자극에 익숙해져 “잘못된 것 같긴 하지만, 원래 게임이 그렇다.” 는 식으로 무뎌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익명 사이트 문화가 게임 문화의 일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런 익명 사이트는 몇몇 유저가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쉽다. 독성 행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타인의 독성 행동을 학습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디시인사이드의 경우 유저 수가 작은 마이너 갤러리가 하나 있다고 하자. 이 곳이 아무리 ‘DC스럽지 않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도 사람이 증가하면 독성 발언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된다. 이들은 수가 소수일 때는 침묵하다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 한 두 명 보이기 시작하면 그동안 게시판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말을 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곧 마이너 갤러리의 분위기는 다른 갤러리와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하게 되는 식이다. 이들은 하나의 익명 사이트만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익명 사이트에서 동시에 비슷한 행동을 한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게시물을 여러 사이트에 공유하고, 각종 혐오 문화를 밈(MEME)과, 동영상, 짤방을 통해 재생산하여 퍼뜨리다 보면 대형 커뮤니티까지 이런 글들이 확대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침묵하기를 선택하고, 그것을 견딜 수 없을 때가 되면 커뮤니티를 떠난다. (게임 이용자들의 절반이 커뮤니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러다 보면 게임 커뮤니티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추구하게 된다. 남들보다 우위를 차지해야 하며 그렇지 못한 것들은 남성이어도 쉽게 웃음거리가 된다. 수준 미달인 상대방을 놀리기 위해 원색적인 욕을 서슴없이 하며, 그것들을 가식 떨지 않는 솔직함으로 표현한다. ‘상남자’스럽지 않은 것은 계집들이나 게이들이 하는 일이며, 자신들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서클 안에 속하는 우리들 뿐이다. 그 곳에서 말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분명 게임 속 커뮤니케이션 문화에 질려 떠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 채팅 기능이 없는 〈스플래툰〉과 〈포켓몬 유나이트〉 독성 행동에 대한 해결 방법은 아직은 일반론적인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다만, 〈에이펙스 레전드〉(Apex Legends) 등 몇몇 게임에서 채팅 기능을 제거하고 핑(Ping) 시스템을 통한 간접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도입한 이후 많은 게임에서 핑 시스템을 적극 차용하고 있으며 채팅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게임들 또한 등장하고 있다. 핑 시스템이 완벽한 대안이라는 말이 아니다. 핑을 쉴 새 없이 찍어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고, 감정 표현을 통해 상대방을 비꼬는 행위는 여전히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채팅 기능이 삭제되는 것 만으로도 타인의 노골적인 적대적 감정을 원치 않는 순간에 맞닥뜨리는 빈도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게이머도 게임사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발매될 게임들 중 의사 소통의 수단으로 채팅을 사용하는 게임들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 시스템적으로 다양한 대안을 세운다 하더라도 헤게모니 적 남성성을 과시하는 커뮤니티가 살아 있는 한 게이머들의 독성 행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AI 봇의 차단을 피해가며 사람들의 기분을 망치기 위한 방법을 자랑스럽게 공유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 게이머를 참교육한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나눈다.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영상들을 유튜브 클립과 이미지를 통해 재생산되며 집단 내에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이 선을 넘은 행위로 게임을 정지당하더라도, 게임 커뮤니티에는 여전히 이들의 게시물과 동영상이 남아 있다. 자극적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고, 이는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런 문화는 점점 더 부추겨질 수 밖에 없으며, 알고리즘으로 인해 유입되어 그 문화를 학습한 다른 이용자들에 의해 독성 문화는 계속해서 퍼져나갈 수밖에 없다. “비디오 게임은 총기 난사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게이머 문화는 증오를 조장한다.” 4) 2019년 브리아나 우는 게임이 단순한 모방 범죄와 폭력성을 유발하고 있다는 담론에서 벗어나 이제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와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사회 문제가 생겼을 때 게임을 모방한 사건이나 게임 중독자의 일탈 행동 등 개인의 책임을 묻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이머 문화와 커뮤니티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할 지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1) Weird (2020.12.09),Toxicity in Gaming Is Dangerous. Here's How to Stand Up to It, (https://www.wired.com/story/toxicity-in-gaming-is-dangerous-heres-how-to-stand-up-to-it/) 2) 이현준,(2021), ‘혜지’가 구성하는 여성에 대한 특혜와 남성 역차별 : 공정성에 대한 남성 온라인 게임 이용자들의 열망은 어떻게 여성혐오로 이어지는가?, 방송과 커뮤니케이션 17-19p 3) 박소영, (2020.08.19), 게임이용자 중 1.4%만 적극적 온라인 활동... "남성 게이머 과대표됐다",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80901430002130) 4) Wu, B. 2019. Video Games Don’t Cause Mass Shootings. (https://www.washingtonpost.com/outlook/video-games-dont-cause-mass-shootings-but-gamer-culture-encourages-hate/2019/08/09/655409a0-b9f2-11e9-a091-6a96e67d9cce_story.html)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이머, 게임 리뷰어) 딜루트 타인이 공들여 만들어낸 가상 세계와 이야기를 분석하는 행위를 즐겨 합니다. 선호하는 장르는 RPG이며 최근에는 보드게임을 즐겨 하고 있습니다.

  • [editor's View] 기록 너머의 기억이 게임과 감응하는 과정에 대하여

    작은 메모리에 기록되는 수치화된 세이브 데이터부터 플레이어가 게임을 마치고 난 후에 갖는 감정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기억이라는 이름의 넓은 호수 표면을 탐색합니다. 때로 어떤 필자는 표면의 작은 물결에 이끌려 잠수해 들어가기도 할 것입니다. 기록 너머의 기억에 대해 게임이 할 수 있는 많은 말들에 귀기울여 주십시오. < Back [editor's View] 기록 너머의 기억이 게임과 감응하는 과정에 대하여 31 GG Vol. 26. 8. 10. 우리는 언어라는 체계 위에서 살고 사랑하고 사고합니다만, 그렇다고 마음 속의 모든 것이 언어기호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억이죠. 기억은 때로는 언어를 넘어섭니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놀이터에 비치던 햇살, 첫 단골 PC방에서 풍기던 특유의 방향제 냄새는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위해 언어로 표현하지만 그 기억 자체가 언어인 것은 아닙니다. 어찌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매체는 모두 각자의 기억이 주는 감정을 나누기 위해 기호화된 수단일 수도 있겠죠. 게임도 마찬가지로 기억이라는 방식에 다양하게 접근해 특유의 양식으로 이를 풀어냅니다. GG 31호는 그 기억과 게임이 맞물리는 지점을 생각하는 기획으로 꾸려졌습니다. 게임 속에서 기억은 때로는 주제와 소재로, 때로는 플레이 그 자체의 기록으로, 때로는 플레이어의 기억을 가상공간에서 이어나가기 위한 보조재로도 기능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나는 기억과 게임의 관계를 맥락화하기보다, 그 현상 자체를 폭넓게 널어놓고 조망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작은 메모리에 기록되는 수치화된 세이브 데이터부터 플레이어가 게임을 마치고 난 후에 갖는 감정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기억이라는 이름의 넓은 호수 표면을 탐색합니다. 때로 어떤 필자는 표면의 작은 물결에 이끌려 잠수해 들어가기도 할 것입니다. 기록 너머의 기억에 대해 게임이 할 수 있는 많은 말들에 귀기울여 주십시오. 아울러 GG가 5회째 여는 비평공모전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GG의 독자이시면서 동시에 할 말이 많은 분들이라면 망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공지의 마감일을 한번 더 확인해 주십시오. GG는 날이 선선해지면 다시 새 기획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드림. Tags: 기억, GG, 게임제너레이션, game critic, save, memory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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