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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게임, 그 충족되지 않는 욕망 - 핀볼과 월드플리퍼 사이에서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희소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살아왔다. 쾌락에는 상대적 희소성이라는 맥락이 필요하며, 너무 많으면 지루해진다. 무엇보다 쾌락이 ‘래칫 효과(rachet effect: 수준이 한번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지 않는 효과)’를 일으켜, 자연과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상품화되지 않은 쾌락을 밋밋하게 만들어버린다. 포장된 쾌락은 전에는 귀하고 드물었던 것을 흔하고 따분한 것으로 만든다. 결국 포장된 쾌락 바깥 세계에 대한 흥미가 점차 약해지며 우리는 더 이상 그 세계를 열망하지 않게 된다. 내가 〈몬스터헌터 라이즈〉를 즐길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월드플리퍼〉의 포장된 쾌락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angwoo Lee Graduated from the Department of Creative Writing at Chung-Ang University and wrote a master's thesis on video games in graduate school. Has thought about video games for a long time since, working to render the fascinating experiences games offer into prose. Contributes writing not only on games but across a range of fields; a related book is Game, Gamer, Play: Reading Games through the Humanities.
-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 발표
2024년 진행된 제3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작을 다음과 같이 발표합니다. < Back 20 GG Vol. 24.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게임 경험의 외재화 역사와 기억의 재전유 양상
디지털 게임은 처음 등장 당시 며칠을 두고 길게 플레이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1970년대에 등장한 아케이드 게임은 짧은 시간 동안 동전 투입이 여러 번 반복되어야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었기에 게임 플레이 역시 짧고 직관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미덕이었다. 반면 가정용 컴퓨터와 콘솔 게임은 아케이드와는 다른 조건 위에 있었다. 아케이드 기판은 개별 게임에 특화된 전용 하드웨어를 쓸 수 있어서 그래픽과 사운드가 훌륭했던 반면, 가정용 컴퓨터와 콘솔은 범용성을 추구해야 했기 때문에 물리적인 표현력에서 오랫동안 아케이드에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 Back 31 GG Vol. 26. 8. 10. Tags: 게임 세이브, 세이브 데이터, 언더테일, 니어 오토마타, 아우터 와일즈, 게임 기술사, 패스워드 시스템, Game Save Systems, Undertale, NieR Automata, Outer Wilds, Video Game History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eong Yeop Lee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Culture & Contents at Soonchunhyang University. Researches game storytelling and game design as central concerns, and led the founding of the Busan Indie Connect Festival—a leading indie game festival—where serves as head of the jury. Also a juror for the Independent Games Festival (IGF), one of the most prestigious indie game events internationally. Books include Digital Storytelling (co-authored, 2003), Digital Games: A New Territory of Imagination (2005), Indie Games (2015), Stories Become Transformers (co-authored, 2015), Mario, Born in '81 (co-authored, 2017), The Theory of Games (co-authored, 2019), and Games Are Games: Game × Ecosystem (co-authored, 2021).
- <용과 같이>, 관광게임 속의 정치적 맥락들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도 용과 같이 시리즈의 주인공 처럼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휴가를 내서 관광지로 여행을 떠난 경우가 그렇다. 일상으로 돌아가 해결해야 할 여러 복잡한 난제를 머리 속에 넣고 있는 상태에서도 우리는 도쿄 신주쿠, 오사카 도톤보리, 오키나와, 후쿠오카, 삿포로, 나고야, 요코하마 등의 거리를 거닐고 지역 음식 등 문화를 경험하면서 하루종일 즐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용과 같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우리는 코로나19 시대에 일본 관광을 즐기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게 이 시리즈가 본질적으로 관광 게임인 이유이다. < Back <용과 같이>, 관광게임 속의 정치적 맥락들 01 GG Vol. 21. 6. 10. ‘용과 같이 ’ 시리즈는 전직 야쿠자가 등장하는 느와르물을 표방하고 있다 . 리메이크를 포함해 따지면 국내에 시리즈 전체의 내용이 한글화 돼 소개됐다고 볼 수 있는데 유독 6 편은 정식 발매가 이뤄지지 않았다 . 그러나 스팀을 통해 PC 판이 구매 가능해진 걸 계기로 유저 한글패치가 나와 한국인도 게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 ‘용과 같이 ’ 시리즈는 ‘ 느와르 ’ 다운 스토리를 선보여 왔다 . 폭력조직 내외의 항쟁과 정치적 음모가 교차하는 가운데 사건에 휘말린 등장인물들의 비극적 운명 , 그리고 그것에 맞서는 의지를 강조하는 패턴이다 . 그런데 이러한 스토리에도 불구 ‘ 용과 같이 ’ 는 본질적으로 ‘ 관광 게임 ’ 이라는 생각이다 . 코로나 19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바로 그 관광이다 . 어째서인가 ? 지금부터 따져보자 . 먼저 시사평론가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역대 시리즈가 선택한 주제가 일본의 현실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 가령 1, 2 편의 소재인 폭력 조직 간의 대립구도나 정치인의 돈세탁은 ‘ 클리셰 ’ 인데 , 3 편의 미군 기지 이전과 부지 개발 문제는 여기서 더 나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실제로 민주당 정권 당시의 중요한 정치적 논쟁거리였기 때문이다 . 민주당 정권은 2009 년 후텐마 기지 이전을 공약하고 집권했다 . 미군 기지 이전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다 . 애초에 ‘ 류큐왕국 ’ 으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다 일본 제국에 병합된 역사가 있는데다 , 2 차대전 당시 본토를 향해 진격해온 미군과 이를 막으려는 일본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여 민간인 학살 등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아픔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 게다가 전후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동아시아 전략의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계획이 개발의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중 삼중의 피해를 감수하는 처지가 된 상태였다 . 이 점에서 민주당의 공약은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 최소한 오키나와현 밖으로의 이전 ’ 을 거듭 거론했으나 문제는 미국의 입장이었다 . 미국은 이미 후텐마 기지 반환과 대체 시설의 오키나와 내 건립에 대한 협상을 이전 자민당 정권과 진행한 바 있기 때문이다 . 이런 상황에서 기지 이전을 주장하는 민주당 정권은 미국의 이익을 훼손할 우려가 있었다 . 이러한 상황이 미일관계의 근본적 불안으로 이어지자 하토야마 정권은 결국 2010 년 후텐마 기지의 현외 이전을 포기했고 지지율은 폭락했다 . 용과 같이 3 편이 출시된 2009 년 3 월은 민주당이 집권하기 5 개월 전이다 . 자민당 정권의 미국과의 합의가 2006 년에 1 차로 이뤄졌고 민주당은 야당 시절부터 이에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는 점을 볼 때 관련한 논란이 제작에 반영됐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 작중에 오키나와 기지 이전 문제가 건설자본과 정치권의 유착을 넘어 CIA 와 국제 무기 밀매 조직의 등장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앞서의 구도가 게임적으로 과장돼 표현된 결과일 것이다 . 용과 같이 6 편에도 정치적 맥락을 떠올릴 수 있는 소재가 등장하는데 초야마토급의 전함과 전비횡령 , 이를 근거로 한 정경유착의 묘사가 그것이다 . 일본 사회는 오랫동안 족의원 - 관료 - 자본의 삼각동맹에 의한 정경유착을 대표적인 정치적 문제로 다뤄왔다 . 일본의 정치개혁 논의는 정경유착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민당 내 파벌 구도를 깨는 것에 집중돼왔다고 볼 수 있다 . 이를 상징하는 인물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인데 그를 중심으로 한 금권정치의 실상을 1974 년 고발한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가 지난 4 월 사망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지기도 했다 . 다치바나 다카시의 보도는 다나카 가쿠에이가 록히드 사건에 연루돼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계기가 됐는데 , 다나카 가쿠에이는 총리직에서 물러나 수사를 받게 된 이후에도 상당 기간 막후에서 돈과 인맥으로 일본 정치를 주물러 ‘ 어둠의 쇼군 ’ 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 용과 같이 6 편에 묘사된 흑막은 특정 인물을 그대로 모델로 옮겨 놓았다기 보다는 일본 정치의 이러한 현실이 오래 전 전쟁을 야기한 정치와 자본의 욕망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 그런 점에서 용과 같이 6 편의 메인 스토리 구도는 그 자체의 완결성과는 별개로 명확한 자기 주장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그런데 용과 같이 7 편의 경우는 일본 사회가 직면한 정치적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 가령 앞서의 정경유착 구도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그것과 맞서 싸울 ‘ 힘 ’ 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지도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쓰여왔다 . 선출되지 않은 ‘ 관료 ’ 와 그와 연합한 정치 파벌이 정경유착의 주범이라는 점에서 순수한 의미로의 ‘ 정치 ’ 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화되기도 했다 . 그러나 ‘ 대통령형 총리 ’ 로 불린 나카소네 야스히로 이후 총리 관저의 권한이 ‘ 개혁 ’ 이라는 명분 하에 지속적으로 확대돼 온 결과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신자유주의 전면 도입과 아베 신조의 유례없는 장기집권 및 극우화로 치달았다 . 용과 같이 7 편에 등장하는 도쿄도지사 역시 ‘ 선출된 권력 ’ 으로서 총리보다도 막강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 그는 ‘3K 작전 ’ 등으로 조직폭력배와의 전쟁을 벌이며 급진화 된 지지층을 동원하는 방식 등으로 ‘ 개혁 ’ 을 내세우지만 그 실상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구태정치 그 자체이다 . 이는 최근까지 세계적 문제로 다뤄졌던 극우포퓰리즘을 떠올리게 하는데 , 이게 아마 제작진이 아베 신조 , 이시하라 신타로 , 하시모토 도루 등을 보는 시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 그런데 용과 같이 시리즈 스토리의 핵심은 주인공이 이러한 사회 문제가 야기하는 현실적 갈등으로부터 자신과 주변의 삶을 지키기 위해 도망치다 결국 맞서게 된다는 것이다 . 즉 , 정치사회적 문제는 이렇든 저렇든 주인공의 일상을 위협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 행복을 지키기 위해선 결국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 이 점에서 ‘ 메인 스토리 ’ 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제작진은 유저에게 상당히 비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 그런데 게임에서 유저가 실체 ‘ 체험 ’ 하는 것은 이러한 비장함과는 사뭇 다른 감각이다 . 용과 같이 시리즈에서 등장인물들의 인생이 걸린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도중 ‘ 서브 스토리 ’ 나 ‘ 미니게임 ’ 등의 삼천포로 빠지는 일은 비일비재이다 . 특히 이 요소들은 메인 스토리의 비장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상적 소재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다소의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 서브 스토리 ’ 와 ‘ 미니게임 ’ 이 오히려 ‘ 메인스토리 ’ 를 압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 즉 , 용과 같이 시리즈의 게임적 본질은 영화와 같은 메인스토리를 감상하면서 동시에 소소한 일상을 경험하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야 말로 우리 일상 그 자체이다 . 실제 삶에서 우리는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뭔가 고민해야만 하는 순간을 만나게 돼있다 . 하지만 그러면서도 , 설혹 대통령이더라도 라면을 맛있게 끓이기 위해 물을 얼마나 넣을 것인지 , 면과 스프 중 무엇을 먼저 넣을 것인지 등의 사소한 일상적 고민을 외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 그런 점에서 ‘ 메인스토리 ’ 의 기준으로 보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요소들을 가득 넣어 놓은 현실은 울티마 7 이후 ‘ 상호작용 ’ 의 구현 , 모로윈드식의 자기 서사 구성 등과는 별개의 , ’ 자유도 구현 ’ 의 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 그런데 용과 같이 시리즈를 통한 체험과 우리의 일상이 갖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 그것은 직업을 갖고 있는 현실의 우리는 ‘ 서브스토리 ’ 와 ‘ 미니게임 ’ 을 오직 여가시간에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 반면 용과 같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전직 야쿠자는 무직자이기에 반복되는 ‘ 루틴 ’ 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 앞서의 ‘ 자유도 ’ 는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구현이 불가능하다 . 그러나 현실의 우리에게도 용과 같이 시리즈의 주인공 처럼 행동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 휴가를 내서 관광지로 여행을 떠난 경우가 그렇다 . 일상으로 돌아가 해결해야 할 여러 복잡한 난제를 머리 속에 넣고 있는 상태에서도 우리는 도쿄 신주쿠 , 오사카 도톤보리 , 오키나와 , 후쿠오카 , 삿포로 , 나고야 , 요코하마 등의 거리를 거닐고 지역 음식 등 문화를 경험하면서 하루종일 즐길 수 있다 . 그런 점에서 , 용과 같이 시리즈를 플레이하는 우리는 코로나 19 시대에 일본 관광을 즐기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 이게 이 시리즈가 본질적으로 관광 게임인 이유이다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시사평론가) 김민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지만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냉소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돼지의 왕』이 있고,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우파의 불만』, 『트위터, 그 140자 평등주의』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최근작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 매너리즘을 넘어서는 전통의 긍지: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원더
잘 짜인 레벨 디자인. 플랫포밍의 역사라 부를 수 있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시리즈는 1985년 첫 작품이 등장한 이후에도 현재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 시리즈는 40년 정도의 시간을 거치며 시리즈는 수많은 변화를 거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인 플레이 양상은 변화하지 않았다. 달리고. 뛰고. 밟으면서 코스를 돌파한다는 핵심적인 요소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ilkwon Jeong A farmer, a baker, and a barista. Currently in an eighth year of writing as a game journalist. Striving to experience and witness as much as possible within the limited time given.
- 저자성이란 농담?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을 읽으며
브라이언 히카리 하츠하임의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론』은 코지마 히데오가 감독하거나 제작 과정에 참여한 게임을 다양한 매체 이론을 따라 살펴본다. 반전, 반핵의 주제 의식을 일관적으로 지켜나가는 스토리텔러이자 ‘모든 것을 감독하는 책임자’, 게임 업계의 유명 인사 등으로 읽혀 온, 혹은 그렇게 읽히고자 유도해 온 코지마의 행적 역시 집중적으로 비춘다. 하츠하임은 주로 코지마의 인터뷰와 서적, 그가 출연한 다큐멘터리와 출시 당시의 리뷰를 제시하며 그가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관철하려고 했으며 제작 과정에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를 도해한다. < Back Authorship as a Joke? Reading Bryan Hikari Hartzheim's Hideo Kojima: Progressive Game Design from Metal Gear to Death Stranding 30 GG Vol. 26. 6. 10. Bryan Hikari Hartzheim's Hideo Kojima: Progressive Game Design from Metal Gear to Death Stranding examines the games Hideo Kojima directed or took part in producing, following a range of media theories. It also trains an intensive light on the trajectory of Kojima—who has been read, or has induced himself to be read, as a storyteller who consistently holds to anti-war, anti-nuclear thematic concerns, as "the one responsible for directing everything," and as a celebrity of the game industry. Hartzheim mainly presents Kojima's interviews and books, the documentaries he appeared in, and reviews from the time of release, diagramming how Kojima sought to push through his intentions and in what ways he intervened in the production process. As one can guess without difficulty from the book's title, Hartzheim has a pointedly intentional design: to read the game designer as the source of the "authorship" within a game. I was a relatively recent fan, having come to Kojima's games through Death Stranding , and because I have no direct experience of how a game designer's authority operates in a commercial game produced through large-scale collaboration, I approached the book curious about how this design would unspool. Because it surveys Kojima's games chronologically, from the 1980s through the 2020s, reading it through also lets one trace the history of console hardware alongside the process by which Kojima's control over collaborative work expanded. As a theory for showing how Kojima's control over collaboration links to authorship, Hartzheim directly cites and grounds his design in the current of auteurist film criticism led, above all, by Cahiers du cinéma in the 1960s. A question is bound to arise about a setup that discusses games by reference to a particular current of film criticism; but this is less because Kojima himself draws strong inspiration from film, or because the use of cinematic cutscenes within his games is distinctive, than in order to compare production practices within the game industry with film production. By the author's account, contributors to auteur theory held that the "dissidence and singularity of commercial film," set against film-production practices within the Hollywood system, originate from a director who forms a consistent visual style and inner meaning. The leap of borrowing from film theory to explain games rests on the commonality that both games and film were media carried out as large-scale collaborations, under pressure to anonymize the producer and to orient toward marketability. The game designer's name, hidden as an "Easter egg" in a secret room, makes one recall in a suggestive way the old convention, in both the video game and film industries, of not foregrounding the creator's name. Hartzheim discloses the limitation that the critical current called auteurism "has been criticized for overvaluing the director's subjectivity and slighting the many other people involved in the particular context of production and the creative process," but he still regards that authorship as a valid and strategic tool for pinpointing and identifying the unconventionality that appears in collaborative work (Hartzheim 25–26). Along with this, the concept of "disruption" the author employs is drawn not from the language of film criticism but from Mary Flanagan's concept of Critical Play, encompassing innovations in game design that tend to subvert or weaken the system, and the invention of genre that follows from them. The author's approach carries the aim of expanding the concept of "critical play"—which tends to apply only to "games that seek to reform the present situation, artistic games, and the critical self-reflection they provoke; that is, only to games that hold a strong oppositional and critical stance toward commercial games"—so that it can apply as well to "commercial games" themselves, or to game designers working in the commercial game industry (Hartzheim 31). Through analysis of the production process, reception, reinvention of genre grammar, systems, and storylines of Snatcher , Policenauts , and the Metal Gear series, in which Kojima took part as planner, the author organizes Kojima's game design into four broad elements, and with these characterizes the critical play of Kojima's games that causes "disruption" to "the conventions of existing games." By mixing "elements of fiction and the real world into a linear narrative," they create a generic fable about the contemporary, and attempt a "remediation" of audiovisually oriented media such as animation, live-action film, or motion graphics. They build a "ruled system" that becomes the axis of "emergent play," and finally attempt the insertion of a "space for metafictional purposes" (Hartzheim 73). Here the author identifies two directions: the expression of the social consciousness the game designer holds as an author, and the creation of a formal mechanism that seeks to redefine the boundaries of play. The attitude of trying to discover a kind of dissident insistence in the direction of dismantling and breaking with formal conventionality is also an attempt to transpose into games the authorship that had been the critic's place to lean on, within a discourse that has defined the so-called "progressive text" as the opposite term to the classical text. It is a belief that if the game designer can be placed in the seat of the film director—a subject doing critical, experimental work within commercial constraints and material—then the properties of that experimental work, too, can be identified as a consistency attributed to the game designer. Hartzheim borrows the expression "progressive film genre"—which Barbara Klinger pinpointed as "formed not only on the ideological plane but by the words of progressive critics seeking rupture within the film form and structure of the time"—to form the concept of "progressive game design." Reading this as progressive game design, transformative game design, will pose no great difficulty for understanding (Hartzheim 28). Hideo Kojima: Progressive Game Design lays out, clearly and in order, the various modes of the progressive game design the author has defined, examining the systems within Kojima's games, the conditions that were necessary to produce those games, and the patterns of reception by studios and players. One passage not sufficiently explained is the context in which the expression "progressive film genre" was used in Klinger's original article, "'Cinema/Ideology/Criticism' Revisited: The Progressive Text." Klinger holds that the "classical text" that exists as the opposite term to the progressive text is in fact more aptly called the "classical text system." In Klinger's words, this system is produced "from an unstable combination of imbalance (excess, difference) and balance (containment, repetition)." Genre is a "tense permutation" of the system "that thrives on a play of variation and regulation," and a provider of "regulated variety." Presenting an economy of variation rather than rupture, genre permits "the (regulated) forms of excess and the (regulated) forms of display of that process," domesticating and besieging excess within itself (Klinger 43). The reason Klinger, in explaining genre as the "tense permutation" of the classical text system, proposes a far more continuous "variety" rather than dramatic events like disruption, rupture, and articulation is so as not to soft-pedal the powerful force of normalization. Klinger warns that a reading that overemphasizes, on the side of subversiveness, signifiers that seem to constitute a rupture from existing norms can result in underestimating the system's means of "negotiating a normalizing function even onto the most foregrounded, progressive, and deviant tendencies." In the face of the view that progressiveness and transformativity are determined as signifiers isolated within the text, and of an attachment to readings that can reinforce such a view, Klinger seeks to keep a critical distance. She points out that the critical perspective forming the "progressive film genre" presupposes a counterpart called the "classical text," one that can be articulated and ruptured by the transformativity of intratextual signifiers alone—and by this she poses the question of whether the term designated as classical and normative is really so homogeneous and uniform an object. When Hideo Kojima: Progressive Game Design borrows the analytical frame of "progressive game design," it regrettably does not deal deeply with the critical implication latent in this primal naming. The author does, of course, examine games' capacity as an interactive medium that is never one-directional or fixed and always mediates player, reception environment, and technical conditions. Aided by archival materials that let one confirm how Kojima's games were received in their day, he examines not an analysis isolated in the text's inner meaning and formal articulation, but how the player forms meaning by interacting with the personality of the system that induces their action and with the technical conditions. That said, under an analytical setup in which Kojima expresses consistent authorial themes as he diverges from the established methods of the commercial video game industry, and in which those authorial themes generate this emergent divergence, "transformation" risks degenerating into a rhetoric that assumes a uniform "essence" in its opposite term. A passage like the following could serve as an example. In a gaming culture where building up a score through takedowns or victory was held to be good, a system that encourages weighing nonviolent options is an especially groundbreaking invention, but at the same time it also functions as a moral account, by raising questions about the logic of the war game—the contempt for human life it essentially harbors, and the stance of affirming armed conflict as the solution to a difficult objective. As in the real world, diplomacy or nonviolence is hard to achieve, but it holds the possibility of a far greater payoff in terms of human (and player) lives and of social order. (Hartzheim 88) Furthermore, if even the singularities that appeared as transformation or departure can be absorbed into commercial logic or generic inertia, then caution toward a "transformative" generic reading needs to be revisited once more. In particular, compared with film, the contemporary community of game reception, creation, and response tends to make the institutional engines driving universal canonization and classicization look unclear, while triggering almost simultaneous mutual reference; and so the distinction between "existing games" and "transformative games," and the identification of "authorship" grounded on that distinction, becomes an even more complex and subtle problem. But I am not trying to argue that it is better to discard the entire concept of authorship in games; I want to say that a kind of authorship is needed—one not established on the basis of hierarchization. Here I would like to refer to Im Ga-young's "Games and the Author," which likewise notes that authorship has been kept in a perpetually precarious place owing to the "withdrawal" of the author that arises because the game designer makes a game rather than gameplay, and owing to "players' consumer-centrism, and the common notion that sees the game as an industrial and technical product and a mere amusement." It hopes to "rediscover the author as a precarious and dependent being" in just this way, and to return the game to a place that becomes a "dialogue" between player and author, rediscovering the relationship the author forms with the player. Her essay finds the author in a voice that, having withdrawn into "agential distance" and "hidden itself," "steps out to greet" the player. The scene in which this gesture of withdrawal and welcome constitutes an author who addresses the player in a "direct voice" came to me as lovely and as important. This is probably because, in a medium captured between the admonition to root itself in entertainment and service and the stigma of being harmful because of that very root, I could feel all the more intensely the obstinacy of wanting to be more than, or less than, a commodity—the helpless necessity of an "it had to be this way." In this connection, I would like to close this piece by mentioning the excess of "paratext" that this book deals with throughout. In Kojima's games, the paratext appears by way of the technical possibilities and memory limits of the day, packaging practices, and the functions of physical interfaces such as the console and input device; the author explains the definition and function of paratext by citing Gérard Genette and Jonathan Gray. The literary theorist Gérard Genette defined the paratext as the threshold between a text and the things that constitute it. This includes not only formal frames such as the cover, title, and notes, but also explanatory frames such as newspaper reviews and magazine interviews. Jonathan Gray applied this to media like film and television as well, saying there are cases in which paratexts such as toys, games, spin-offs, novels, and websites "come to influence the text after the first interaction, or even redirect it." (Hartzheim 91–92) Jonathan Gray's words hint at a deep linkage between interactivity and the situation in which matter external to the narrative overflows into the narrative's interior. On the flooding of paratext, the author notes that in Metal Gear Solid 2 the game's physical package not only contains various setting materials about the world but also affects gameplay. Examples are the scene that, within gameplay, instructs you to use the decoding table printed in the game manual, and an interaction that mentions finding the frequency to tune the codec to in "the photograph on the back of the game software package" (Hartzheim 93). This is also a strategy frequently used in board games—which actively make use of physical elements—at moments of unexpected discovery. The "Find the home!" note one can find on the victim's body in Snatcher is also intriguing. This reads as if it means "the victim's house itself," or "examine the 'house model' in the dining room of the victim's house"—but in fact it is a literal answer: that you can press the "Home" key on the keyboard to decode the cipher (149). Through such depictions of paratext, the book restored, for me—someone who came to most of Kojima's games through emulation or remake editions, without using the game hardware of the time or encountering its packaging—jokes that I could not understand or whose context had dropped out. On the side of a game design that mediates and invites the player outside of play while expanding the play domain, the author cites Kojima's words: "If film is a medium that makes a person laugh, then in a game one's own action must be what leads to laughter." "Making the player laugh through their own action" reminds us that the player is "at once spectator and performer" (Hartzheim 148). Hartzheim sees this overlap as leading to an extension of the distancing effect that prompts the player's action within everyday life. Here I would like to add the layer of the sheer, unsublimated snigger when one is made "to laugh through one's own action," of an unavoidable becoming-slapstick-comedian. At this point the player physically encounters, first, a different kind of authorship—not the control that devises the totality and style of a game so as to put a critical distance between the player and an auteurist figure, that is, an ideological product. Something more like a mischievous stub of rock, a protruding threshold, that makes you suddenly plant your nose into the floor of the makeshift stage, bowing for no meaning whatsoever. The whole distinction between what lies outside gameplay and what is irrelevant or relevant to the virtual chain of meaning suddenly seems to turn trivial—and then, as if nothing had happened, it sends you back to immersive gameplay. This vividly reveals not a "meta" subsumed into self-reflection, but the occasion of the sitcom: getting right back up, returning to the act, playing innocent as though nothing had happened. Our protagonists, who brazenly cross between heavily armed soldiers with a flimsy cardboard box upside-down over their heads, or who start throwing punches at the screen when the player, sovereign over the camera, zooms in on their crotch. The authorship marked by Kojima's face, which haunts and drifts through this community as the punchline of a circulating joke or as a memetic sign, seems to me, after all, to be of this kind. References Hartzheim, Bryan Hikari. Hideo Kojima: Progressive Game Design from Metal Gear to Death Stranding. [Korean translation: Kojima Hideo-ui Geim-ron, trans. Mun Seong-ho, AK Communications, 2026.] Im Ga-young. "Games and the Author." Munjang Webzine, May 2026, Korea Arts Council Literature Platform, https://munjang.or.kr/board.es?mid=a20105000000&bid=0005&list_no=110333&act=view . Klinger, Barbara. "'Cinema/Ideology/Criticism' Revisited: The Progressive Text." Screen, vol. 25, no. 1, 1984, pp. 30–44.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ngHoon Majored in literature. Loves games and comics. The Sims 4 isn't really a favorite, yet has logged some 1,500 hours in it—unsure whether that's a source of shame or just funny. Also goes by the pen name Ttuibuchi.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스팀펑크적 제작 기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는 전투가 메인 컨텐츠인 MMORPG 게임이다. 세부적으로는 테마파크 유형이다. 작중의 세계에서 유저는 온갖 다양한 활동을, 현실의 그것을 모사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초나 광물을 채집할 수 있고, 낚시를 할 수 있고, 전투와 낚시를 통해 얻은 재료로는 요리를 할 수 있다. < Back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스팀펑크적 제작 기술 24 GG Vol. 25. 6. 10. 예술 매체는 현실을 모사한다. 인간의 문명사는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낸 역사다. 우리는 도구의 동물이다. 심지어 우리가 만든 가상 세계 속에서도 인간은 무언가를 만든다. 축약되고 변형된 형태로 모사한 것이지만 어쨌든 만든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는 전투가 메인 컨텐츠인 MMORPG 게임이다. 세부적으로는 테마파크 유형이다. 작중의 세계에서 유저는 온갖 다양한 활동을, 현실의 그것을 모사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초나 광물을 채집할 수 있고, 낚시를 할 수 있고, 전투와 낚시를 통해 얻은 재료로는 요리를 할 수 있다. 요리 외에도 만들 수 있는 것은 많다. 전문기술이라는 분류에는 채집과 제작 두 가지 종류의 기술이 있는데, 유저는 두 가지를 선택해 배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채집 기술 하나를 배우고 이 채집 재료를 이용하는 제작 기술 하나를 배우지만, 채집 둘 혹은 제작 둘을 배우는 경우도 있다. 약초를 채집했다면, 이를 재료로 사용하는 연금술과 주문각인을 고려해봄직하다. 채광 기술을 배웠다면, 광석을 이용하는 대장기술, 기계공학, 보석세공 등이 어울린다. 이런 제작 기술은 마법이나 전투 능력 등의 기술과는 성격이 다르다. 즉발 효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물건, 즉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영구적인 장비일 수도 있고 쓰면 사라지는 소모품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제작품은 전투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적거나 아예 없기도 하다. 캐릭터가 착용하는 장비나 능력치를 일시적으로 올려주는 아이템 같은 경우는 전투에 도움은 되지만 절대적인 수준은 아니다. 반면 기계공학으로 만들어 일시적으로 활공을 할 수 있게 하는 글라이더 같은 아이템은 전투와는 거의 무관한 단순 장난감이다. 예는 더 들 수 있다. 연금술을 배워 만들 수 있는 비약과 영약, 회복 효과를 주는 물약, 무기를 일시 강화하는 대장기술의 숫돌과 무게추, 주문각인으로 만드는 레이드에서의 버프 아이템인 반투스 룬 같은 것은 전투를 돕지만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다. 기계공학으로는 전투 중에도 부활을 쓸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해서 공략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 보석세공 기술로 만들 수 있는 아이템 ‘보석 맞추기’를 사용하면 타일 매칭을 미니게임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물론 몇몇 클래스는 제작 기술이 아니어도 아이템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마법사는 마법으로 음식을 만들 수 있고, 흑마법사는 생명석이라는 회복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아이템은 제작 기술로 만든 아이템과 달리 영구적이지 않아서 게임에서 로그아웃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린다. 캐릭터가 사용하는 마법과 전투 기술은 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즉시적이고 직접적으로 효과를 낸다. 버프를 주는 마법을 쓰면 버프가 생기고, 데미지를 주는 기술을 쓰면 적에게 데미지가 들어간다. 직업 기술의 효과는 즉각적이다. 제작 기술의 효과는 아이템이라는 매개체를 만들어 효과를 미래로 유예시킨다. 둘 다 체계화가 되어 있고 둘 다 캐릭터가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보다는 차이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제작 기술만의 특징은 결과의 일부를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판다리아> 확장팩에서는 가죽세공과 대장기술의 일부 항목 또한 비슷했다. 대부분의 레시피는 전문가 NPC에게서 배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때는 다른 제조를 하면 그 결과로 배우는 레시피들도 생겼다. 이때의 연금술은 아예 모든 레시피를 배우는 것이 다른 레시피 제조의 결과로 배우는 방식이었는데, 무엇을 배우게 될지는 랜덤이라 예상할 수 없었다. 특히 기계공학에서는 이 점이 도드라진다. 전력선과 같은 기계공학의 전투 부활 아이템은 실패 가능성이 있다. 몇몇 기계공학 아이템은 낮은 확률이지만 폭발하여 캐릭터를 하늘 높이 날려보내거나 큰 데미지를 주기도 한다. 용군단 확장팩부터 연금술에 적용된 ‘실험’이라는 메커니즘은, 실험에 성공하면 새로운 레시피를 배우게 되지만 실패하면 빈사 상태로 만드는 데미지를 입게 된다. 연금술의 실험이라는 요소는 위험부담을 전제하는 것이다. * 연금술 실험이 실패했을 경우의 예시 (필자의 캐릭터 중 하나) <용군단> 확장팩부터 적용된 다른 요소도 있다. 전문 기술에만 적용되는 전용 스탯이 생겼다. 이로 인해 채집할 때는 확률에 의해 재료를 더 많이 채집하거나 희귀 재료를 추가로 채집하거나 할 수 있다. 제작 기술에서는 일정 확률로 재료를 적게 소모하거나, 아이템이 하나가 아닌 여럿이 제작되거나 한다. 예상 외의 추가 성과라는 형태로 ‘예상 외 요소’가 늘어났다. 이는 전투용 기술에 흔히 따라붙는, 치명타를 달성했을 때 추가 데미지와 같은 요소와는 성격이 다르다. 전투 기술의 예상 외 요소는 긍정적 효과를 제공하는 것이고, 부정적 효과를 제공하는 경우엔 반드시 예상할 수 있도록 한다. 반면 제작 기술은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 모두 확률을 따른다. * 전문기술 스탯 4종류 중에서 지혜는 재료를 덜 소모하는 확률을 결정하고 복수 제작은 결과물이 더 많이 나올 확률을 결정한다. 기계공학에도 연구라는 요소가 최근 들어왔다. 소정의 재료를 소모해 연구 결과를 쌓고, 이를 소모해 새로운 레시피를 배우는 형태다. 물론 배울 레시피 후보는 랜덤하게 정해지기 때문에 예상할 수가 없다. 이 경우에는 예측 불가능 요소 외에도 이전 성과를 쌓는 적층 구조를 전제하고 있다. 예측 불가능 요소가 존재하는 것은 해당 분야가 완전히 파악되어 철저히 분류화가 되지 않았다는 설정을 시사한다. 현실의 자연과학과 공학은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 여전히 있다. 와우의 제작 기술이 전투 기술과 달리 예상 외의 결과를 낳는 요소가 다수 있는 것은 이런 현실을 게임의 확률 체계를 통해 모사한 결과다. 이전 성과의 일부를 다음 성과로 끌어가는 적층 구조 요소는 현실의 기술 발전이 반드시 이전 세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모사한 결과다. 예술 매체는 현실을 모사하기 때문이다. 반면 현실의 모습을 모사하지 못한 혹은 모사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현실의 기술은 그것이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개인보다는 팀의 연구로 발전을 하고, 나아가 팀과 팀의 피드백 및 협업으로 진보한다. 줄여 표현하면 학계가 진보를 이끈다. 하지만 게임 내에서는 체제 전체를 이끄는 진보라는 것을 구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존재하는 레시피를 숨겨둘지언정, 유저가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게 한다는 아이디어는 실현된 적이 없다. 제작 기술에 존재하는 레시피는 어디까지나 제작사가 제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결과 현실과 같은 의미의 발전은 존재하지 않고, 유저는 이미 완성된 테크트리에서 숙련도를 쌓아 올리는 학생으로서만 기능한다. 물론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내지는 못해도 실험과 연구를 통해 몰랐던 레시피를 배워나가는 것은 충분히 기술의 적층성을 반영한 형태일 수 있다. 또한 기계공학으로 만드는 탈것처럼 들어가는 재료의 규모가 많은 아이템의 경우엔, 기계공학 외의 다른 제작 기술이 만들어내는 재료 아이템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는 서로 다른 기술의 수평적 협업을 구현한 요소다. 반면 이런 협업 제작품의 경우에도 결국 유저 개인으로 수렴한다는 한계는 존재한다. 최후에 오토바이, 비행기, 로봇 등 현실이라면 산업계 하나가 필요한 결과물도, 조립해내는 기계공학 유저는 한 명일 뿐이다. 이 형태에는 엄밀히 말하면 개인만이 존재한다. 홀로 아이언맨 수트를 제작한 토니 스타크의 서사가 떠오른다. 하지만 소수의 천재가 기술 분야를 선도하는 이야기는 에디슨/테슬라 시절의 서사이며, 사실 그때도 상당 부분 허구였고, IT 분야의 초기 시절에나 살펴볼 수 있다. 기술 분야가 개창된 초기에는 한두 천재가 이끌어가지만, 산업이 성립한 후에는 집단과 집단의 협업 및 경쟁이 발전을 주도하는 것이 역사다. 게다가 학문 분야의 적층화가 많이 진행되어 복잡해지면, 일개 개인은 모든 분야를 섭렵할 수가 없다. 인간의 두뇌에는 용량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리지널 시절 <와우>의 연금술에는 분야 특화가 존재했다. 물약, 비약, 변환의 세 영역으로 나눠서 일정 숙련도 이상에서는 ‘대가’라는 이름으로 특화를 선택할 수 있었다. 같은 시기의 대장기술 또한 무기 대가와 방어구 대가로 나뉘었다. 가죽세공 또한 세 가지의 대가 전문화가 있었다. 이렇게 전문 분야를 선택하면 선택한 전문 분야에서는 같은 양의 재료로 더욱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각 분야만이 배울 수 있는 심화된 레시피도 존재했다. 기계공학 또한 오리지널부터 <판다리아> 확장팩까지의 시간 동안 두 가지의 분화 트리를 갖고 있었다. 고블린과 노움의 경쟁 컨셉이 있었는데, 에디슨과 테슬라의 직류 대 교류 싸움을 연상시키는 형태였다. 고블린 기계공학과 노움 기계공학의 분류는 다른 제작 기술의 대가 전문화처럼 각각의 분야만 배울 수 있는 레시피가 따로 있었다. 폭탄류는 고블린 기계공학에서 배울 수 있고, 독특한 효과를 내는 장비는 노움 기계공학으로만 배울 수 있는 식이다. 이런 차별화된 세부 테크트리는 나름 분과 학문 혹은 숙련공을 모사한 결과다. 앞서 살펴본, 제작의 주체가 유저 개인으로 집중되는 모습의 천재적 기술자 서사와 합쳐 보면 근대적 기술 발전의 초기 시절이 떠오른다. 천재적 개인의 시대에서 세분화된 분과 학문의 시대로 전환되던 그 시기, 르네상스부터 세계대전에 이르는 시대다. SF 중에서 스팀펑크 장르는 이런 ‘근과거’의 기술적 특징을 중심 소재로 사용한다. 이 특성 때문에 <와우> 내에서 기계공학을 비롯한 제작 기술은 옅은 향수를 동반하고 있다. 스팀펑크 특유의 이 정서는 현대인이 실제로는 살아보지 않았지만 현 기술 문명의 근간을 이루던 시기를 재조직한 세계를 대할 때 발현된다. 이는 <와우>가 독보적인 몰입도를 이룩한 데에 도움이 되었을 수 있다. 비록 게임 내 서사와 설정을 보면 호드가 소형 핵무기를 사용하고 얼라이언스가 지하철을 운행하고 드레나이가 우주를 항행하는 등 미래형 SF가 중세형 판타지와 결합해 있지만, 그런 식으로 융합되어 있는 다수의 요소 중에는 ‘살지 않은 고향에 대한 향수’를 만들어내는 스팀펑크가 있다. *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팀펑크는 증기기관과 톱니바퀴가 공학의 중심이던 시절의 기술을 가져온다. SF지만 과거를 다룬다. 그리고 스팀펑크에서 가져와 재조직한 시절의 기술 발전이란, 현재도 그렇지만 현재보다 월등하게, 위험을 수반하는 진보였다. 고블린과 노움처럼 기술에 대한 대책 없는 낙관성이 있었고, 연금술의 연구 실험 시스템의 실패 폭발처럼 안전 대책은 취약했다. 이를 요약하는 이미지는 연구실에서 혼합물을 섞다가 폭발을 일으키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모습이다. 예술 매체는 현실을 모사하지만 렌즈를 거친다. <와우>는 전문 기술 중에서 제작 기술의 체계를 잡으면서 스팀펑크의 시대인 근과거, 기술 발전 초기의 세계관을 구현했다. 변인과 결과에 대한 완전한 파악이 되지 않아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기술, 아직 탐험 중이기에 위험 요소가 존재하는 측면의 기술, 기술 요소가 개인에게로 수렴되어 천재적 개인이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던 시절의 기술, 점차 분화가 쌓여가면서 다른 분야와의 협업과 이전 연구의 계승이 중요해지기 시작한 기술. 현재의 분업화, 조직화, 체계화된 연구는 좀 더 안전하고 세련되게 발전했지만 스팀펑크의 묘한 낭만은 없다. 그 낭만의 편린은 게임 안에서 살짝 맛볼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공포와 액션의 사이에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공포 게임의 공포는 반드시 옅어지고, 무뎌지고, 희석되고, 탈각된다. 바이오하자드/레지던트 이블이 9개의 넘버링과 3개의 외전과 3개의 리메이크, 그 외 다수의 서브 작품을 진행하면서 얻은 결론은 이 태생적 모순을 피하거나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7편의 방향성을 2~4편의 리메이크작과 8편 또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긍정하고 활용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 Back 19 GG Vol. 24. 8.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 제약과 위계, 설계와 창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어떻게 플레이어를 운영으로 유도하는가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는 일견 무한한 자유 내지는 전능성을 보장하는 듯하면서도, 이걸 제약하는 방식으로 플레이어를 궁극적으로 세계의 설계와 창출이라는 거대한 목표로 유도할지 궁리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 Back 제약과 위계, 설계와 창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어떻게 플레이어를 운영으로 유도하는가 27 GG Vol. 25. 12. 10. 기본적으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시설의 설치와 건설, 관리를 중심으로 거시적인 운영과 통제를 이뤄가는 장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면, 개인 가게 운영 같은 예외적인 소재를 빼면 대다수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전능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출발한다는 점에 있다. 플레이어는 삼인칭 전지적 시점 아래 놓인 텅 빈 (또는 개발되지 않은) 공간에 건설 내지는 설치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즉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전지적 시점에서 전능성을 플레이어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게임의 전제를 성립한다. 이 시점의 주체를 설명하기 위해 게임은 종종 플레이어를 보통 지도자나 경영자로 칭하곤 한다. 하지만, 이 전능은 어느 정도 기만적이다.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의 전지전능은 자유를 만끽하라고 부여하는 게 아니라, 설계와 창출이라는 과정과 목표를 달성하라고 부여하기 때문이다. 샌드박스 모드가 아닌 이상,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일정한 서사와 목표를 부여한다. 그 다음 자본과 자원의 제약을 부여하고 게임이 다루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설계해 운영하길 원한다. 이런 제약과 종속, 창출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이 어떻게 무한한 자유에 목적과 형식을 부여해 난관을 설정하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설계와 창출을 유도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숲과 나무, 두 시점 축 간의 제약과 쾌감 우선 운영 시뮬레이션의 시점을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일인칭 시점보다 삼인칭 시점으로 특정 공간 속 거대한 ‘흐름’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숲과 나무의 비유를 빌리자면, 나무를 상세히 배치해 숲으로 만들 능력을 요구하는 장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개별 나무를 보고 만질 수 있는 미시적인 시점이나 순간은 제한되는 데다 게임 디자인의 핵심에서도 벗어나 있다. 간단히 말해 이용객 (이 글에서 이용객은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 전반에 등장하는 손님이나 거주민을 총칭한다)을 통해 일인칭 시점으로 자신이 설계한 공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체험’하는 건 가능하지만 - <심시티>나 <시티즈> 시리즈 같은 게임처럼 일인칭으로 체감하기엔 복잡한 소재적 한계로 (예를 들어 무수한 데이터를 연산 처리해야 하는 도시 운영) 일인칭 시점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 세계를 설계, 나아가 운영하려면 시점의 주체가 보이지 않는, 전지전능한 삼인칭 조감 시점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렇기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일인칭 시점을 제공하는 이용객은 플레이어와 무관한 NPC이다. 다시 말해 플레이어가 이용객 시점으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들은 플레이어의 주체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용객은 게임 내 인공지능이 조합한 취향과 생각, 욕구 수치에 맞춰 플레이어가 설계한 공간에 속해, 거대한 흐름의 일부로서 움직일 뿐이다. 장르 자체가 인간으로서는 게임 진행을 할 수 없고, 신이 되길 요구한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이용객은 주체보다는, 객체이자 게임 내 평가 체계의 일부에 가깝다. NPC 인공지능인 ‘이용객’은 플레이어가 설계한 공간과 시설을 이용하고, 감상을 남긴다. 이 감상은 곧 평가 데이터로서 치환된 후 누적되어 총체적인 세계에 대한 평갓값으로 제시된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이 이용객이 어떻게 행동할지 전혀 개입할 수 없지만, 그들이 남기는 감상과 이런 감상이 뭉쳐 만들어지는 빅 데이터 표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신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이용객을 위시해‘빙의’하듯이 시선을 빌어 자신이 설계해 운영하는 공간 속 흐름에 합류해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감상하는 공간은 결국 플레이어 자신이 만든 세계이기 때문에 이런 감상과 미적인 만족감엔 궁극적으로는 자기애적인 성향도 띄게 된다. 관련 팬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는 소통 역시 이런 두 시선 축의 교차에 기반하고 있다. 자신이 만들어낸 공간의 아름다움을 (물론 이 아름다움엔 단순히 숭고미 이외에도, ‘홀로코스트 타이쿤’으로 대표되는 골계미 역시 포함된다) 삼인칭 조감 시점과 일인칭 관찰자 시점을 오가는 다양한 카메라-눈으로 영상과 스크린숏으로 포착한 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다른 팬들과 소통한다. 인정 욕구와 승인, 성취감이 거시와 미시 두 시선 축을 오가면서 이뤄진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전지전능하며 거시적인 삼인칭 조감 시점을 기본으로 플레이어가 세계를 구축하도록 한 뒤, 세계가 작동하는 모습을 삼인칭 조감 시점과 동시에 수동적이며 미시적인 일인칭 이용객 시점으로도 볼 수 있게 한다. 이런 교차 속에서 게임은 빅 데이터로서 축적된 이용객의 감상/민원 표본을 수치로 치환해 플레이어가 운영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평가로 제시한다. 플레이어는 이 수치를 확인하면서 향후 운영을 어떻게 할지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이 삼인칭과 일인칭 시점을 교차할 수 있도록 하면서 거시적 감각과 미시적 감각을 동시에 제공해, 플레이어가 설계한 세계를 체험케 하면서 (어느 정도 자기애적 성향도 있는) 미적 쾌감을 누리도록 한다. 시설의 위계와 조합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이 가장 먼저 플레이어에게 설치하길 요구하는 건 바로 도로나 철도 같은 ‘접근 수단’이다. ‘심시티’나 ‘타이쿤’ 류 게임을 플레이하면 알 수 있지만, ‘접근 수단’을 건설하지 않으면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공간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 접근성은 시설과 손님 간의 관계일 수도 있으며 (놀이공원 운영 시뮬레이션), 도시 내 다양한 개발 구역과 시설일 수도 있으며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 도시 내부 및 도시/국가 간 교통 체계일 수도 있다. (교통 운영 시뮬레이션) 이렇게 시설에 접근할 수단이 마련되고 나면,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시설 설계와 관리 단계로 넘어간다. 이 단계에서 게임은 설치할 수 있는 시설에 위계질서를 부여한다. 놀이공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이런 장르 내 시설 간 위계질서가 상징적이고 명징하게 드러내는 하위 장르일 것이다. 이 하위 장르를 대표하는 놀이기구로는 회전목마와 롤러코스터가 있다. 전자는 저자극 놀이기구를 대표하며 후자는 고자극 놀이기구로 대표한다. 하지만 이런 대표성과 별개로 게임 내 위계 차는 명확하다. 애당초 이 장르는 아예 ‘롤러코스터’를 게임 제목에 넣는 경향도 있기에 (<‘롤러코스터’ 타이쿤>, <플래닛 ‘코스터’>) 롤러코스터는 게임의 간판격이며 동시에 상당한 숙련 난이도를 요구하며 플레이어를 유혹한다. 반대로 회전목마는 롤러코스터보다 설치 비용도 저렴하고 간편하지만, 동시에 종합적인 수치 역시 롤러코스터보다 낮다. 장르 팬들 역시 아무리 회전목마를 선호하더라도 그것을 게임의 핵심으로까지 여기지 않는다. 설치 난도 면에서도 둘은 명백히 차이가 있다. 회전목마는 설치한 후 접근 수단을 깔아두는 것만으로도, 작동하며 즐거움 수치 역시 대체로 낮은 변화폭 속에서 균일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는 트랙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즐거움 수치가 천차만별로 변하기에 훨씬 더 공을 들이고 테스트로 확인해봐야 한다. 그렇기에 회전목마, 나아가 낮은 수치의 저자극 놀이기구들은 일종의 상징물이자 시나리오 초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하지만, 가동 이후 운영에서는 유지 보수 이외엔 비중이 줄어들며, 플레이어 역시 롤러코스터 설계나 총체적인 운영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즉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 내에서 ‘시설’은 게임으로서 현실의 시설 특성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수치화해 위계를 부여하고 그 위계에 맞춰 설치하고 운영하길 요구한다. 물론 이 위계질서가 일방적인 상하 관계로만 단정 짓기엔 어렵다. 이런 일방적인 상하 관계를 지양하고 특색의 강조, 상성과 조화로 상승 효과를 내려는 시도 역시 장르의 중요한 어법이기 때문이다. 다시 놀이공원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로 돌아가 보자. 롤러코스터는 훨씬 설치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놀이공원의 꽃으로 고수익을 보장하긴 하지만, 모든 이용객이 롤러코스터를 좋아한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심지어 롤러코스터 속에서도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격렬도나 흥미 수치를 무조건 높게 나오게 설계한다고 해서 높은 인기로 직결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회전목마로 대표되는 저자극 놀이기구도 시간이 지날수록 비중이 줄어들긴 하지만, 수요가 아예 사라지진 않는다. 이런 복잡한 위계질서를 잘 보여주는 놀이기구가 있다면 바로 운송 시설이 있다. 운송 시설은 여러모로 롤러코스터와 대조되는 놀이기구다. 기본적으로 운송 시설/기구는 열차나 모노레일 등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롤러코스터처럼 ‘트랙’ 기반으로 설계된다. 하지만 총체적인 즐거움 수치 면에서는 롤러코스터보다는 확실히 밑에 있으며, 이 시설만으로는 정상적인 놀이공원 운영을 할 수 없다. 그 점에서 운송 시설/기구는 롤러코스터처럼 트랙 기반 놀이기구임에도 명백히 회전목마처럼 저자극 놀이기구에 속한다. 그렇다고 운송 시설을 잉여적이고 쓸모없는 놀이기구라 판단하기엔 성급하다. 분명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기 떄문이다. 운송 기구는 탑승하는 이용객의 에너지 감소 수치를 절감하거나 멀리 떨어진 다른 구역으로 수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롤러코스터가 할 수 없는 걸 수행할 수 있다. 어떤 지점에서는 놀이기구이면서도 접근 수단에 가까운 양태를 띄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운송 시설의 이런 복합적인 면모는 상성 등 복잡한 개별 요소들이 얽혀 있으며, 어떤 소수 의견과 즐거움 이외의 수치들이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의 변수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이점이 아닌 약점이나 제약으로 이런 위계질서에 복잡함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런 약점 위주로 변수를 구성하는 디자인은 놀이공원 운영보다는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디자인이다. 그렇기에 게임 속 시설들 역시, 이 시설이 과연 지금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도시와 걸맞은지를 판단하도록 요구하는 약점/제약이 많다. 혐오 시설 및 환경 판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오염 등급이라던가 특정 조건 (강가에만 설치할 수 있다던가)을 만족해야 설치할 수 있는 시설들이 대표적이다. 전반적으로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놀이공원 시뮬레이션 게임보다도 세계=도시 규모의 변화에 따라, 시설 활용도 역시 극적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어, 시설 확충이나 교체를 요구하는 경향이 짙다. 여기다 환경, 복지, 세금, 인프라 등 이용객 행복도 수치에 관여하는 변수가 많기에, 이 변수들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규모의 비례에 따라 시뮬레이션 난이도가 올라가는 장르적 경향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신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에서 시설 설치는 큼직한 인프라 위주로 이뤄지는 경향이 크다. 예를 들어 실제 도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거, 상업, 산업, 사무 같은 경우 접근 수단 (대표적으로 도로)을 깐 후 밀도별 구역 타일으로 배치하면 자동적으로 개발된다. 이는 <트랜스포트 타이쿤>이나 같은 교통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특히 후자 같은 경우 일본만의 특수성 때문에 하위 장르 간의 혼종적인 경향성도 띈다.), 좀 더 다루는 범위가 폭넓은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에서 잘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 같은 경우, 지형과 기후 같은 플레이어가 통제할 수 없는 상수나 돌발 별수가 자주 발생하기에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다층적으로 판단하고 보완할 능력이 필요하다. 즉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시설 간 관계는 일정한 위계가 있되 어떤 스펙트럼에 따라 위계와 활용 방식이 정해지며, 이 스펙트럼의 기준이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따라 전체적인 게임 방향성이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스펙트럼의 폭이 얼마나 넓으냐부터 시작해 스펙트럼 내 요소들이 어떤 위계를 띄느냐, 요소들의 조합이 어떤 효과를 내느냐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무한한(듯한) 자유를 길들여 경제 논리에 종속시키기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는 일견 무한한 자유 내지는 전능성을 보장하는 듯하면서도, 이걸 제약하는 방식으로 플레이어를 궁극적으로 세계의 설계와 창출이라는 거대한 목표로 유도할지 궁리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이 제약은 시점의 제약부터 시작해 (‘만들어낸 세계를 미적으로 만끽하고 싶으면 전지전능한 삼인칭 조감 시점으로 돌아가서 설계해야만 한다’), 시설의 상성과 조합까지 (‘시설은 스펙트럼에 기반한 일정한 위계와 상성 관계가 있으며, 접근 수단과 함께 효율적으로 설계 및 베치해 이용객을 만족시켜야 한다.’) 곳곳에 퍼져있다. 물론 샌드박스처럼 제약 일부를 풀어주는 모드도 제공하지만, 그럼에도 큰 목표는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기에 샌드박스 모드를 플레이할 때도 플레이어는 제약에 맞춰서 세계를 가꿔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특정한 세계 속 요소들이 어떻게 맞물려 들어가는지를 플레이어가 파악하고 따라주길 요청한다. 플레이어가 이런 요소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할 경우, 게임은 플레이어가 설계와 창출에 실패했다고 판정한다. 반대로 제대로 파악해 창출이라는 목표에 도달했을 때 게임은 (자기애적 성향도 일부 포함한) 미적인 쾌감을 안기는 방식으로 보상을 준다.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그 점에서 직접적인 자본 활용 이 외에도 자유를 제약하면서 어떤 창출 체계에 플레이어가 포섭되어 설계하길 요청하고, 상응하는 대가를 보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경제의 논리와 미학에 충실한 장르라 할 수 있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게임의 쓸데없음과 효율성의 미학: 게이머는 왜 하필 게임에서 효율적 행위를 추구할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게임 하느라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거야!’ 이어서 등짝 스매싱이 날아온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장시간 게임에 몰두하는 청년, 청소년들은 ‘가정-내-관리자’로부터 고함을 동반한 힐난은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 고통을 수반한 손길까지 언제든 주어질 수 있음을 감수해야 했다. < Back 게임의 쓸데없음과 효율성의 미학: 게이머는 왜 하필 게임에서 효율적 행위를 추구할까? 18 GG Vol. 24. 6. 10.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게임 하느라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거야!’ 이어서 등짝 스매싱이 날아온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장시간 게임에 몰두하는 청년, 청소년들은 ‘가정-내-관리자’로부터 고함을 동반한 힐난은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 고통을 수반한 손길까지 언제든 주어질 수 있음을 감수해야 했다. 가정, 학교, 직장, 사회 등 각계각층에 포진한 ‘관리자’들은 게임과 게이머를 향해 다양한 비판과 충고,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중에서도 빈출하기로 손꼽히는 것은 ‘게임은 쓸데없다.’라는 비판일 것이다. ‘게임을 한다고 밥이 나오는가, 쌀이 나오는가?’ 먹고 사는 일의 엄혹함을 환기하고 게임의 불필요함을 꼬집는 이러한 말 앞에서 게이머들은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게임에서 대체 어떠한 실용성, 생산적 의의를 발견할 수 있을까?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게임보다는 현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이고 생산적인 행위를 하라는, 그리고 현실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삶을 꾸리라는 세간의 충고에 게이머가 반론을 제기하기란 전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게임과 게이머에 대한 고언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게임이 실용성, 생산성, 효율성과 거리가 멀다는 비판은, 게이머의 비일관적 행태를 지적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간다. 이를테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게임을 하고 있으면서, 왜 정작 게임 내에선 가능한 효율적인 행위를 하고자 애쓰는가?’라는 것이다. 많은 경우,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게이머들은 게임 내에서 가장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행위를 수행하고자 분투한다. 그것은 최적화(optimization)에 대한 지향에서 확인된다. 이를테면, 레이싱 게임의 플레이어는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따라 최적의 속도로 코너링 등을 수행하고자 한다. 최적화된 동선, 순서, 계획의 수립과 그것의 효율적 수행은 ‘타임 어택’을 핵심 메커니즘으로 삼는 게임에서 공통으로 확인된다. 이와 유사하게 <문명>과 같은 턴제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피라미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등의 불가사의를 AI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매 턴 최적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가능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스타 크래프트> 같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자원의 수집과 유닛의 사용에 있어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행동했는지가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유닛 사용의 차원에서는, 소위 ‘마이크로 컨트롤’이라고 불리는, 소수의 유닛을 대단히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식과, 생산성을 문자 그대로 극한까지 추구하는 방식이 확인되기도 한다. * 압도적인 생산력을 자랑하며 ‘물량 테란’, ‘괴물 테란’ 등으로 불렸던 최연성 선수 이처럼 실제로 게이머들은 실용성, 유용성, 생산성을 갖추지 못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도 정작 게임 내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행위, 선택을 수행하기 위해 애쓴다. 게임의 불필요함과 게이머의 현실감각 부재에 개탄하는 ‘관리자’들은, 이러한 게이머들의 행태에서 ‘쓸모없는 일을 하며 효율성을 추구하는 비일관성’을 발견한다. 그들에 따르면, 게임은 쓸모없고, 게이머는 비일관적이다. 불필요한 게임의 불필요한 장애물 게임은 쓸모없고, 게이머는 비일관적인가? 철학자 버나드 슈츠는 게임의 가치와 의의에 관해 성찰한 바 있다. 철학과 게임. ‘관리자’들의 관점에서는 쓸모없는 것들 간의 불필요한 만남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슈츠는 그러한 시선에 개의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역시 게임이 쓸모없다는 주장에 대해 ‘어떤 맥락에선’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게임 플레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자발적인 시도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마리오를 조종하여 다양한 장애물을 넘어서는 것? 굳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짐 레이너가 되어 적을 물리치고 캐리건을 구해내는 것? 역시 꼭 필요한 일은 아니다. 소드코스트의 도시 발더스 게이트를 구하기 위해선 D&D 규칙에 따라 절대자(The Absolute)를 물리쳐야 하지만, D&D 룰을 우리가 왜 신경 써야 하며 게임 내 도시가 몰락하는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불필요하다. 그것들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그만두고 게임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불필요해지는 것들이다. 슈츠는 이처럼 게임 내에 존재하는 목표, 규칙, 서사, 재현, 메시지 등의 차원에서 게임의 의미, 가치, 효용을 끌어내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들이 실질적이거나 실용적인 의미를 갖지 못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주의할 것은, 그렇다고 그가 게임에 대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는 최종 평결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오히려 게임 내 장애물이 굳이 극복될 필요가 없는 것임에도 그것을 자발적으로 극복하려 하는 플레이어의 고투, 분투에서 게임의 의의를 도출한다. 이러한 슈츠의 관점에 따르면, 게임이 부과하는 제약과 틀 내에서 플레이어가 더 효율적인 행위, 최선의 선택, 최적화된 경로를 추구하는 것은 비일관적인 행태가 아니다. 그것은 주어진 장애물을 극복하려고 분투하는 자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다시 말해서, 플레이어가 게임의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분투, 고투하는 데 게임의 의의가 있다는 관점은, 게임에서의 효율성의 추구를 정당화할 수 있게 해준다. 플레이어가 게임 내 규칙과 제약 아래에서 최적화된 동선을 따르고, 효율적으로 유닛을 운용하고, 최선의 선택을 통해 AI를 앞지르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달성하게 되는 게임 내 목표 자체가 가치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분투 행위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 슈츠의 생각이다. 게임의 목표, 장애물 등이 무가치하다는 사실은 분투와 고투 자체를 즐기려는 자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게임에 관한 슈츠의 이러한 정의가 게임 일반을 아우르는지에 관해서는 물론 이론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그의 통찰이 시사하는 바는, 효율성이 곧 실용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실용적 가치, 생산적 가치를 찾기 어려운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효율성은 성립할 수 있다. 그러한 행위의 가치는 목표에서 비롯하지 않는다. 가치는 효율적으로 수행되는 행위 자체에서 발생할 수 있다. 그 가치는 심지어 예술적인 것일 수 있다. 행위성의 예술과 효율성의 미학 C. 티 응우옌은 그의 저작 <게임: 행위성의 예술>에서 슈츠의 사유를 발전적으로 계승한다. 티 응우옌은 게임의 가치가 서사적 탁월성, 세계의 재현, 사회 비판적 기능 등 다양한 차원에서 성립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게임이라는 매체가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은 그런 차원에 국한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티 응우옌은 슈츠에 동의하며, 게임 플레이어가 수행하는 분투 행위 자체에 주목한다. 게임은 비록 쓸모없고 불필요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을지언정, 플레이어가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행위성을 체험하게 하는 매체로 게임이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티즈: 스카이라인>에서 게이머들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공간을 미적으로 구성하는 행위성을 체험할 수 있다. <스트리트 파이터>에서는 민첩한 반응과 상대 플레이어와의 심리전이라는 행위성을 체험할 수 있다. <문명>은 전략적 사고와 최적화된 선택이라는 행위성을 체험하게 하는 게임이다. 여기서 게임의 예술적 가능성이 발원한다고 응우옌은 주장한다. 우리는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자 행동할 때 그 행위 자체에서 미적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우리는 리오넬 메시의 해트트릭 기록에도 감탄하지만,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유려한 움직임과 상대 선수를 기만하는 아름다운 동작을 되풀이하여 보곤 한다. FPS 게임에서 민첩한 반사신경과 정교한 조준으로 수적 열세마저 극복하는 플레이에는 환상적이라는 말을 붙인다. 체스 플레이어들은 허를 찌르는 그랜드마스터의 체스 말 운용에서 전율을 느낀다. 응우옌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행위성에서 미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하등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임과 행위성에서 예술적, 미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응우옌의 통찰은, 불필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행동하려는 게이머들을 이해하는 데에도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효율성 역시 미적 감각을 환기할 가능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화려한 드리블러의 발재간에도 환호하지만, 최소한의 동작으로 상대를 제치는 축구선수의 우아하고 효율적인 움직임에도 감탄해 마지않는다. 그러한 효율성은 일종의 절제미를 환기한다. 효율성은 정합성과 조화를 뜻하기도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요구되는 자원과 에너지가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효율적으로 투입되었을 때, 그것은 정합성과 조화에서 비롯하는 미적 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수학자들은 딱딱한 계산 기계가 아니다. 수학적 난제를 효율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풀이, 과정, 공식 앞에서 그들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흡사한 체험을 하기도 한다. 그와 유사하게, 오컴의 면도날은 단지 이론적 검약성만을 함의하지 않는다. 어려운 문제를 명쾌하고도 효율적으로 풀어내는 설명은 미감을 자극한다. 효율적 행위는 미적 체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게이머들은 굳이 게임의 ‘쓸 데 있음’을 입증하고자 항변할 필요가 없다. 쓸데없는 것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성립하는 행위성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게이머들이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효율성은 실용성과 동의어가 아니며, 효율적인 것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그리고 행위성과 효율성이 담지할 수 있는 가치에는 미적, 예술적 가치가 포함된다. 게임의 행위성, 행위의 효율성, 그리고 오컴의 반짝이는 면도날은 이런 점에서 미학적 대상일 수 있다. Tags: 무용성, 아름다움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철학연구자) 최건 철학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게임애호가 및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강의, 강연, 연구, 저술, 번역 활동에 임해왔으며, 현재는 인하대 등에서 학생들과 사유를 공유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 오류는 최소로, 이해랑 오해는 풍부할 수 있도록 – 게임 번역의 역할
주로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한 번역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 게임 몰입을 방해받았다는 ― 표현이 주를 이루지만, 넓은 범위에서 이 불만 토로는 게임에서 공통된 경험을 했다는 동질감을 확인하고, 나아가 게임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고 개진하는 유희와 교류 행위로 확장된다. < Back 오류는 최소로, 이해랑 오해는 풍부할 수 있도록 – 게임 번역의 역할 29 GG Vol. 26. 4. 10. 모든 번역은 어렵다. 아무리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다른 언어를 대하는 부담이 줄어든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그렇다. 번역은 글자의 뜻을 그대로 옮기는 것만이 아니라 그 뜻의 주위와 너머를 두루 살펴 옮기려는 언어에 알맞은 자리를 만드는 것까지 포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고스러운 일이기에 번역은 원래(그래서 앞으로도) 어렵다. 번역가 홍한별은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에서 번역의 수고로움을 “이쪽을 붙들면 저쪽을 놓치고, 저쪽을 잡으면 이쪽이 사라지는 단어를, 의미를 고정하는 순간 무수한 틈이 생겨버리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고 짚는다 [1] . ‘번역의 투명함’을 통해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번역은 투명해야 한다는데, 마치 우리말로 쓰인 것처럼 잘 읽히는 것도 투명한 번역이고, 매끄럽지 않더라도 번역된 표현임이 명확하게 드러나서 번역 너머의 원문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도 투명한 번역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생각해보면, ‘발 번역’이나 ‘초월 번역’이라고 하는 표현은 되도록 신중하게 쓰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번역의 ‘어떤’ 투명함을 선택하느냐는 번역가에게도 그러하겠지만 선호라는 측면에서 수용자에게도 상관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임 번역’에 대해 회자되는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가 있다. ‘왈도체’로 불리는 〈마이트 앤 매직 6〉(Might and Magic Ⅵ)의 “힘세고 강한 아침”이나, 〈어쌔신 크리드 3〉(Assassin’S Creed Ⅲ)의 “불이야!”가 오역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례라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의 아이템 ‘서리한’(frostmourne)이나 〈오버 워치〉의 캐릭터 ‘맥크리’의 대사 “석양이 진다”는 좋은 번역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례다 [2] . 오역은 분명 문제다. 몰입을 방해할 수 있고 원문의 본래 의도를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게임에서 세계관에 적극 뛰어드는 걸 방해하거나 엉뚱한 플레이를 하게 만들어 게임 플레이 경험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힘세고 강한 아침”이나 “불이야!”를 앞서 언급한 ‘번역의 투명함’에 비추어 보거나 번역의 좋고나쁨을 이야기하는 사례로 다루기엔 아쉽다. 두 사례 모두 번역가의 고민과 선택을 거친 의도된 결과라기보다는 제한적인 작업 환경으로 인해 빚어진 사고에 가깝다는 것이 공식·비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을 감안한다면, 검수 절차가 충분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해프닝으로 양해하면 더 좋을 일이기 때문이다 [3] . 그보다 이 사례들을 게이머들 간의 게임 플레이 경험 공유와 표현의 맥락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주로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한 번역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 게임 몰입을 방해받았다는 ― 표현이 주를 이루지만, 넓은 범위에서 이 불만 토로는 게임에서 공통된 경험을 했다는 동질감을 확인하고, 나아가 게임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고 개진하는 유희와 교류 행위로 확장된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게임 번역 관련 게시물을 대상으로 게임 번역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응을 분석한 김홍균과 김순영 [4] 은 플레이와 스토리 이해에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 오탈자, 맞춤법 오류, 번역어 불일치 등 번역문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낮을 때 게이머들이 게임 번역에 불만을 느꼈으며, 상대적으로 우리말에 원문 그대로 옮길 표현이 마땅치 않아 의역을 하거나, 원문에는 없지만 게임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추가로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반응했음을 제시했다. 번역에 대한 문제 제기나 호응은 게임 제작자 측에 피드백으로 작용해서 오류를 정정하거나 게임의 요소로 반영되어 활용되기도 한다 [5] . 앞서 언급한 ‘번역의 투명함’에 비추어 볼 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게임 플레이를 돕는 번역은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전자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매끄럽지 않아 원문을 보이게 하는 후자의 투명함은 무엇일까. (비판 혹은 비난을 감수하고)원문의 문화적 맥락에만 충실하게 번역해 해석의 제한이나 오류가 발생할 여지를 두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번역의 투명함이 꼭 옮겨진 결과로만 비춰질까? 매끄럽지 않아 원문을 보이게 하는 투명함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발휘될 수는 없는 걸까? 게임 번역 팀 ‘팀 왈도’(Team Waldo)의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Dragon Age: Inquisition) 번역 작업을 참여관찰하고 번역 프로젝트 참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저 게임 번역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연구한 박수진 [6] 과 번역 프로젝트 참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스타필드〉(Starfield) 번역 작업을 주요 사례로 팀 왈도의 번역 작업을 연구한 이현표 [7] 는 게임 번역 작업에서 번역의 투명함이 드러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는 팀 왈도 게임 번역 작업의 특징은 자발적인 참여, 참여자들 간의 토론과 투표를 통해 최적의 번역어를 찾고 이를 작업에 반역하는 협업, 번역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 수집과 반영이다. 번역의 투명함은 최적의 번역어를 찾는 협업 과정에서 주로 발휘된다. 게임에서 반복적으로 다루어지거나 플레이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단어나 표현에 대해 자율적으로 논의하고 필요에 따라 투표로 결정해 작업에 적용한다. 시간을 들여 절차를 이어가는 과정이기에 이는 분명 수고로운 작업이다 [8] . 이 작업에서 투명함을 발휘되게 하는 것은 번역을 활용해 게임을 플레이할 다른 게이머가 자신이 느낀 재미를 잘 경험하기를 바라는 동료의식이다. 두 연구는 번역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자신이 게임에서 경험한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기를 바라는 문화 매개자로서의 동기가 크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유저 한국어 패치 [9] ’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정품으로 구매해 패치를 사용할 것을 독려하고 [10] , 많은 공을 들였기에 애정이 있을 것임에도 번역 결과물의 유효기간을 게임 제작자 측이 공식적으로 언어를 지원하기 전까지로 두고,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맥락과도 연결된다. 더 나은 게임 생태계를 만들자는 이러한 게이머들의 우정과 환대는 게임의 재미와 경험을 옮겨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보다 잘 경험하도록 이끌고 밀어준다. 게임 플레이를 돕는 정확한 정보 전달을 추구하고, 번역에 대한 평가를 게임 플레이의 일환으로 다루며, 주관적인 만족이 주된 보상일지라도 수고로운 번역 작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모두 게임을 잘 경험하도록 돕는 일이다. 이것을 게임 번역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 드라마’ 열풍을 이끌었던 미드족 [11] 의 자막 제작은 게임 팬 번역과 유사하게 이루어졌고, 출판 분야에서 산업과 문화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번역에 대한 토론과 시도 역시 작품을 잘 경험하는 것에 연관된다. 오히려 다른 매체와 비교해 게임 번역이 갖는 차이는 번역이 닿지 않는 영역이 분명하게 있다는 점이다. 게임 번역은 게임의 세계관과 게임에서 해야 하는 역할을 이해하고 파악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그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부딪칠지는 게이머의 선택에 달려있다. 게이머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게이머는 제작자의 제안 또는 요구를 수행하거나 거부한다. 그리고 게임에 대한 게이머의 이해와 오해 모두 게임을 플레이한 경험으로서 받아들여진다. 이를 고려하면 게임 번역은 제작자와 수용자의 의도가 조응하거나 충돌하는 과정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 토대이기도 하다. 하여 게임 번역은 ‘이쪽을 잡으면 저쪽이 사라지는’, ‘고정하면 틈이 생기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딜레마는 동일해도 그 너머에 대한 기약의 범위가 넓다. “힘 세고 강한 아침”과 “불이야!”가 플레이를 방해할 수 있지만(강조하지만 오역은 문제다 분명히), 게임에서 정의와 자유, 현실과 환상을 마주하며 경험하고 고민하는 경험은 게이머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어있는/쓰이지 않은/채워지게 될 경험이 더욱 다양하게 이야기될수록 게임 번역이 더 나아질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 기약을 여백이라고 불러야 할까 희망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님 다르게 불러야 할까.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이 더욱 더 많아질수록 무어라 부를지도 점차 선명해질 것이다 [12] . [1] 홍한별,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위고, 2025년. [2] 게임에서 번역이 헤아리는 자리에 대한 기초적인 논의는 이경혁(2018)의 “게임 번역, 왈도체와 단순 현지화를 넘어서”를 참조. https://www.newstop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713 [3] 게임 번역 전문가들은 좋은 번역이 이루어지려면 충분한 일정이나 절차 못지 않게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거나 개발진과의 충분한 의사소통 등 게임에 대한 정보에 더 많이 접근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두 인터뷰를 참조. “어쩌다 ‘발번역’이 나오는 걸까?”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283861 , “라이엇게임즈 현지화 팀이 말하는 ‘좋은 번역’이란?” https://www.game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220 [4] 김홍균·김순영(2023). “국내 게임 이용자들의 게임 번역 평가 사례 연구—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게시된 게임 번역 관련 이용자 게시글을 사례로.” 『번역학연구』 24(4), 91-128. [5] 〈하스스톤〉(Hearthstone)의 캐릭터 ‘데스윙’의 대사 “나는 힘 그 자체다”를 “나는 임금 잡채다”로 들었다는 디시인사이드 하스스톤 갤러리의 글(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hearthstone&no=827575) 이 화제가 되었고, 게임 제작사인 블리자드는 게임 내 업적을 새로 추가하면서 ‘임금 잡채’를 업적 이름으로 사용했다. [6] 박수진(2021). “게임 팬 번역가들은 어떻게 번역하는가? -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Dragon Age: Inquisition)’의 현지화 사례를 통해 -.”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21(5), 115-132. [7] 이현표(2025). “디지털 환경에서의 게임 유저 번역과 수용 : 팀 왈도 사례 연구.” 『통역과 번역』 27(1), 131-160. [8] 번역어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 토론 과정에서 해당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처럼 이 과정에서 번역 작업 참여자들의 이해도 깊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맥락들이 기록되고 공유된다면 거기서 출발하는 이야기들도 많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9] 게임에서 한국어로 번역되는 작업을 주로 ‘한글화’로 팬 번역 작업의 결과물을 ‘유저 한글 패치’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번역은 문자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옮기는 것이므로 ‘한국어화’가 바른 표현이다. 이를 적용하면 ‘한글판’, ‘유저 한글 패치’ 대신 ‘한국어판’, ‘유저 한국어 패치’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2010년, 한국 게임 잡지 《게이머즈》의 조기현 기자가 바로잡기를 제안한 이래 더디지만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https://x.com/kinophio/status/15316181741?s=46 [10] ‘유저 한국어 패치’는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 게임을 더 많은 게이머들이 플레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특히 스팀을 중심으로 인디 게임이 많이 알려지는 기회가 되었다. 패치를 배포하는 게이머들은 정품 게임을 구매해서 패치를 활용할 것을 적극 강조했고, 실질적으로 한국어로 플레이할 수 있는 인디 게임의 판매량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져 세계 인디 게임 개발자들이 한국 게임 시장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도록 도왔다. https://www.thisisgame.com/articles/73396 [11] 미드 동호회 ‘자막팀’이 자막을 제작하는 협업 방식은 게임 번역 작업과 큰틀에서 유사하다. 특히 더 나은 번역을 위해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자발적으로 맡는 호혜적 참여를 주목할 만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196544.html [12] 게임을 포함해 한국어로 제작된 문화콘텐츠가 외국어로 옮겨지는 사례가 늘면서 그동안 다른 언어를 한국어로 옮기면서 고민했던 번역의 투명함을 반대 방향으로 살피는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이에 대한 성찰과 토론이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 [인터뷰] 쥐와 함께 6년을 살아 온 인디게임사, <카셀게임즈> 황성진 대표
올해로 창립 6년 차를 맞은 카셀게임즈의 황성진 대표를 만나, 그의 창작 철학과 개발 과정에 대한 고민, 인디게임사 운영의 현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를 향한 구상까지 진솔하게 들어보았다. < Back [인터뷰] 쥐와 함께 6년을 살아 온 인디게임사, <카셀게임즈> 황성진 대표 25 GG Vol. 25. 8. 10. 이번 호 GG는 서강대학교 게임교육원 출신 학생들이 설립한 인디 게임 개발사 카셀게임즈를 주목한다. 카셀게임즈의 첫 작품 <래트로폴리스(Ratropolis)>는 카드 게임과 디펜스 장르의 요소를 결합하여 쥐들의 도시를 지키는 게임으로, 스팀 ‘탑셀링’ 카테고리 1위를 차지하며 게임 팬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뒤를 이은 차기작 <래토피아(Ratopia)>는 쥐들을 통치하여 사회를 건설하는 샌드박스-던전형 도시 경영 시뮬레이션이며 2023년 경기게임오디션에서 2위를 수상하는 등 가능성을 입증했다. 올해로 창립 6년 차를 맞은 카셀게임즈의 황성진 대표를 만나, 그의 창작 철학과 개발 과정에 대한 고민, 인디게임사 운영의 현실, 그리고 다음 프로젝트를 향한 구상까지 진솔하게 들어보았다. 중소 인디게임사의 살아남기 이경혁 편집장: GG의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게임사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황성진 대표: ‘카셀게임즈’는 서강대학교 평생교육원이라는 게임 교육 전문기관에서 교육받던 학생들이 창업해서 만든 게임 개발사입니다. 대학생 때 만든 <래트로폴리스>에 많은 분들께서 사랑과 응원을 주셔서 창업 기반을 다졌고, 지금은 차기작 <래토피아>를 개발하고 있구요. 회사 규모도 조금씩 키워나가면서 생존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한국에서 중소형 인디 개발사로 6년을 무사히 헤쳐나온 게 쉬운 일은 아니셨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중견급이라 할 수도 있을텐데요, 출시하신 작품 2개가 나름 시장에서 성과를 유의미하게 보이고 있는데 소회가 어떠신지요. 황성진 대표: 주변에 개발자 모임 가면 뵙고 싶었던 분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는 걸 보며 마음이 아픈데요. 저희도 응원해 주신 국내 팬 분들이나 정부나 기업체 지원이 아니었으면 현상 유지가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까지 주변에서 좋게 평가해 주시는데도 중소 개발자들의 어려움이 크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직 더 발전해야 된다는 걸 느끼고, ‘다음 작품은 더 대박나지 않으면 정말 힘들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하게 됩니다. 이경혁 편집장: 인터뷰는 카셀게임즈라는 회사 얘기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실제로 6년간 중소 게임사를 이끌며 겪었던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있었을 텐데요. 가장 힘들었던 점이나, 정부나 기관에서 개선해야 한다고 느끼는 문제점들이 있었을까요? 황성진 대표: 팀원들도 회사 생활이 처음이었고 저 역시 비슷하다 보니, 조직 내부에서 운영방향이나 비전, 체계를 정립하는 법을 배우고 서로 맞춰나가는 부분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대외적 차원에서 어려웠던 점은 법 이슈나 해외 사이트의 심의절차 정도가 생각나구요. 아니면 보험이나 퇴직금 문제들. 이런 것들을 저도 잘 모르다 보니 갑자기 지출이 확 나가면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어요. 전부 무지에서 비롯된 것들인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이곳을 창업하기 전에 다른 회사 경험은 없으셨던 거군요. 황성진 대표: 네. 제 경우 단기 인턴이나 지인 회사 일을 도와드린 수준의 경험만 있었고, 저희 다른 팀원들도 거의 다 알바생이었습니다. 그나마 같이 오래 협업했던 프로그래머 분이 회사나 사업 운영경험이 있으셔서, 공부를 따로 해서 회사처럼 운영하기 위한 노력들을 공유해 주셨어요. 지금 제가 대표직이긴 하나 경영 쪽은 그분이 좀 더 주도적으로 얘기해 주시고 협의하는 식으로 맞춰가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사람들이 ‘청년 창업’이라는 얘기를 쉽게 하지만 기업 경험을 많이 못 해 본 청년에게 창업 지원만 하는 게 과연 충분한가 싶어요. 특히 게임 개발사는 콘텐츠를 만들고 운영하는 능력과 기업을 운영하는 능력이 모두 필요한데, 이 둘은 서로 성격이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기업 운영과 관련된 교육이나 지원을 따로 받은 경험이 있으셨을까요? 황성진 대표: 그렇진 않았어요. 경기콘텐츠진흥원 등에서 창업교육 관련 프로그램들이 있긴 하지만 저희는 그 단계는 좀 건너뛴 상태였구요. 멤버들도 어떻게 보면 사원보다는 팀원의 형태에 가깝다보니, 경직된 회사 문화보다는 서로의 피드백을 통해 바꿔나가는 능동적인 운영형태를 원하기도 했어요. 기존의 일반적인 기업이 갖는 체계에 저희 개발자들을 맞추는 게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지금 팀원이 7명 정도인데, 앞으로 회사가 더욱 커진다면 이런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도 있을 텐데 계속 규모를 확장할 계획이 있으신 거죠? 황성진 대표: 추후 회사가 확장될 여지가 있다고 보지만, 아무래도 체계를 정립하고 규칙을 만들 때 생기는 문제들이 우려되긴 합니다. 기존의 멤버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부분도 있고, 규칙을 만드는 순간 그걸 관리해야 하는 관리자의 코스트도 있고. 없었던 게 규칙으로 생기면 그걸 지켜야 된다는 문제도 있을거구요. 이경혁 편집장: 동아리와 회사의 경계에 있는 조직들이 겪는 문제 같네요. 소규모일 때는 별 문제가 안 되다가 조직이 커지고 원래 우리 그룹이 아니었던 사람이 들어올 때 새로 생기는 문제에 대한 감각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황성진 대표: 네. 그렇다보니 신규 채용을 하고 나서도 자체적으로 조직 체계를 정리하는 시간도 한번 가져보고 이런 식으로 진행해 왔던 것 같아요. 저희 팀 운영을 하면서도 이런 점들이 쉽지 않은데, 다른 인디 개발사 대표님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더라고요. 다른 게임사는 팀원 간 조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리더쉽을 발휘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이경혁 편집장: 여러 고민이 많으시겠지만, 반대로 카셀게임즈가 6년간 회사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한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게임 개발 지망생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떠신가요? 관련 강연도 좀 하셨던 것 같은데요. 황성진 대표: 강연에서는 주로 저희가 게임을 어떤 식으로 개발해 왔고 그 과정에서 제가 느끼고 배운 점에 대해 얘기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느낀 점이나 배운 점들 모두 맥락은 똑같았어요. ‘우리는 가진 게 하나도 없으니까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된다’. 워낙 열악한 상황이니 남들보다 어떻게든 돈이 덜 드는 선에서 홍보 효과를 보려 노력하고, 꾸준히 개발 일지를 써서 공유하고 네트워킹에 열심히 참여하고 공모전 유저 피드백 같은 소통도 더 열심히 해야지 발전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취지로 얘기한 기억이 나네요. IP가 된 '쥐' 이야기 이경혁 편집장: 카셀게임즈의 작품 이야기로 넘어가볼까 합니다. <래트로폴리스>가 대표님의 첫 작업이신가요? 황성진 대표: 제게는 팀을 결성해 만든 게임으로서는 여덟 번째 작품이구요. 다른 팀원들의 경우에도 세 번째 프로젝트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로젝트를 만들 때마다 단순히 학교에서 배운 프로세스를 적용해서 평가받고 끝내는 형태가 아니라 실제 유저에게 어떻게 재미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만들곤 해요. <래트로폴리스>는 마지막 학기에 했던 프로젝트였고,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어느 정도 갖춰진 상황에서 상용화 가능한 버전으로 도전하고 싶어 만든 게임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팀원들이 출시까지 함께 해주어 진행하게 됐습니다. 래트로폴리스 이경혁 편집장: 국내도 그렇지만 <래트로폴리스>는 특히 해외 반응이 좋았던 걸로 기억해요. 황성진 대표: 저도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국내에서도 잘 만든 인디 게임들이 굉장히 많지만 노출이 안 되어 묻히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는 공모전 수상으로도 도움을 받았고, 국내 스트리머들이 많이 플레이해 주시다 보니 한국 유저의 게임 구매율이 높아지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스팀에서 상위권을 유지해서 해외 유입도 지속될 수 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겸손하게 말씀해 주셨지만, 해외 반응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이 게임의 장르적 특이성 때문이라고도 생각했거든요. <래트로폴리스>는 한국의 소규모 개발사가 보통 만드는 장르들과는 차별화된 점도 있으니까요. 이 장르를 선택하게 된 배경이 있었나요? 황성진 대표: 인디 게임을 좋아하다보니 매번 출시작들을 탐구하곤 하는데, <슬레이 더 스파이어>가 워낙 인기였잖아요. 저도 정말 재미있게 한 게임인데 이 게임의 특성이 심플한 2D 위주라는 점에 주목해서 이런 시스템을 사용해서 게임을 만들어보려 했어요. 우리가 만들기에 기술력이 너무 뛰어난 모델은 (모티브로) 어렵지만, 노력해서 어느 정도는 따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면 용기가 생기거든요. 또 저희만의 차별점을 챙겨야 하기에 제가 즐겨했던 다른 게임들과도 조합해 봤어요. 처음엔 <문명>과 조합했더니 템포가 좀 느리고 요즘 트렌드에 잘 안 맞는 느낌이었어요. 이후 <킹덤>이라는 또 다른 게임을 참고해 실시간 전투나 디펜스를 참고해 조합했더니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대성공했던 해외 인디 게임 2개를 버무렸다 보니 운이 좋게도 해외 반응도 따라왔던 것 같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그래도 턴제 게임인 <슬레이 더 스파이어>를 <킹덤> 류의 실시간 액션으로 녹여낸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두 게임이 근본적으로 가진 차이도 있고요. 황성진 대표: 저희만의 차별성은 실시간과 피지컬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었어요. 다만 <킹덤>에 있는 뷰를 가져왔지만 그곳의 조작 방식이나 주인공 캐릭터를 등장시키지는 않을 거고, <슬레이 더 스파이어>의 시스템을 가져왔지만 거기서 발생하는 턴제의 신중한 결정 같은 걸 포함하지는 않겠다. 그 게임에서 호평받는 시스템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따라가면 (게임이) 완전히 비슷해질 수 있기 때문에 겹치지 않는 쪽으로 가려고 노력했어요. <슬더스>나 <킹덤>의 특정 부분들을 참고했으면 좋겠다는 유저 의견도 많았는데, 처음 이 게임을 만드려 했던 우리의 취지에 벗어나지 않도록 재고를 많이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가로선상에서 일어나는 전투는 <팔라독> 같은 당시 유행하던 모바일 횡스크롤 디펜스 게임의 영향도 크지 않았나 싶었어요. 황성진 대표: 오히려 <팔라독>이나 <냥코 대전쟁> 같은 게임은 거의 참고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긴 했는데 서로 비슷했던 부분이 있었다면 우연이거나 개발자들의 생각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이경혁 편집장: 두 게임을 베이스로 하여 새로운 메카닉을 만들어낸 건데, 이 메카닉의 외피가 ‘쥐’인 것도 흥미로워요. 캐릭터로 쥐를 선택하신 배경도 있을까요? 황성진 대표: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제가 평소에 이 얘기를 워낙 많이 해서 신선도는 떨어질 것 같지만요(웃음). 예전에 기획했던 게임 중 쥐들의 도시인 탑을 올라가서 보스를 잡는 리듬액션 게임이 있었습니다. 그런 컨셉이 마음에 들어서 이번 작품에서도 쥐가 주인공인 게임을 하고 싶었구요. 또 당시 모바일에서 고양이 컨셉 게임이 많이 나오는 상황이라 고양이보다 쥐로 가면 이목을 끌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 실험쥐 자체의 느낌이 참 인디게임과 비슷한 것 같아요. 신약 실험시 많은 실험쥐들에게 약을 투여하고 검사해서 그 중에 하나가 효과가 있으면 디벨롭해서 상용화된 약품으로 전 세계에 배급을 하잖아요. 인디 게임 또한 게임성에 대한 여러 실험들을 하고, 그게 <슬더스>처럼 잘 되면 대기업에서도 활용하게 되고 전 세계 사람들이 플레이할 기회가 생겨나는 거죠. 그런 부분 때문에 쥐라는 컨셉에 빠져들게 됐어요. 이경혁 편집장: 출시한 게임 두 가지가 모두 쥐를 디자인으로 한 것도 재미있었어요. 황성진 대표: 두 번째 게임까지 꼭 쥐로 캐릭터를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저희의 생존 전략이기도 했어요. 전작에서 어느 정도 유저 풀이 생기다 보니 어떻게든 이 유저분들도 차기작까지 하게끔 끌고 가게 하는 게 우리가 전략적으로 좀 더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해서요. 캐릭터의 모습은 더 예쁘고 귀엽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쥐들이 뭐랄까 전작보다 좀더 다양한 표현을 하더라고요. 카셀게임즈의 두 번째 게임으로 <래토피아>라는 게임이 나왔는데 전작과 장르가 완전히 다릅니다. <래토피아>는 어떤 게임일까요? 간단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황성진 대표: <래토피아>는 도시를 건설하고 경영하는 샌드박스 게임입니다. 플레이어가 쥐들의 도시의 지도자가 되어 마음대로 도시를 통치하면서 통치자의 고충도 한번 느껴보고, 쥐들의 도시가 발전하는 걸 보며 대리만족을 하기도 하는 그런 평화로운 게임이에요. <래토피아> 이경혁 편집장: 게임을 해보면 정말 쥐들이 굴을 파잖아요. 굴을 파서 도시를 만들고 운영하는 컨셉의 게임들도 적지 않을텐데, <래토피아> 제작 과정에서는 어떤 레퍼런스를 많이 보셨을까요? 황성진 대표: 가장 많이 참고한 게임은 클레이사의 <산소미포함>이었고 <크래프트 더 월드>라는 게임도 많이 참고했습니다. 그 외 2D 어드벤처 게임인 <스팀월드 디그>나 <테라리아>도 있고, 땅을 파는 게임들이 워낙 많다보니 그런 것들도 은연 중에 많이 참고한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개인적으로 그런 장르를 참 좋아하고 저 같은 경우 <캡틴 오브 인더스트리>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래토피아>도 처음 데모판을 해보며 국내에서 이런게 나와 참 반가웠던 기억이 있었어요. 이쪽 장르는 사실 처음 만들어 보셨을 텐데 이 장르에 처음 손을 댔을 때는 어떠셨나요? 황성진 대표: 저도 <산소미포함>도 원래 좋아했고 시뮬레이션 게임의 광팬이거든요. 학교 처음 들어갈 때부터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싶었구요. 그런데 전에도 주변에 말해보면 “뭔 소리냐, 우리는 테트리스 만드는 데도 세 달이 걸린다”는 얘기를 듣곤 했어요(웃음). 시뮬레이션은 개발이 그만큼 어려운 장르라 나중에 성공했을 때 도전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래트로폴리스> 이후 차기작 장르 논의할 때 <산소미포함>을 공유해 드렸더니 팀원들이 마음에 들어하셨어요. 게임이 워낙 어렵고 한두 시간 플레이해서는 알 수 없는 게임이지만, 저희가 자신감도 있었고 하다 보니 그렇게 개발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당시에 제가 완전 몰입해서 빠져들었던 게임 장르를 선택했고, 그 게임에서 더 개선했으면 재미있게 했었을 것 같은 부분을 녹여내려고 했어요. 이경혁 편집장: <래토피아>를 <산소미포함>처럼 어떤 기계공학적인 스타일로 만들지는 않으셨던 것 같아요. 황성진 대표: 그렇죠. 그거는 저조차도 너무 어려웠고, 유저 평가나 팀원들과 회의에서 그 부분이 취향에 안 맞는 것 같다는 분들이 많으셔서 좀 더 가벼운 스타일로 만들려 노력했습니다. 전투 시스템이 있으면 재밌겠다는 의견도 있어서 <래트로폴리스>에서 했던 전투 디펜스를 섞어보려 했구요. 이경혁 편집장: 메카닉 자체는 라이트해지되, 전투나 실시간 액션이 좀더 들어간 형태로 결과물이 나온 셈이네요. 현재 <래토피아>의 시장 반응은 어떻습니까? 황성진 대표: 아직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금 차가운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기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뭔가 저희가 크게 성장하거나 팀원 증원이나 사무실을 저희가 스스로 구할 수 있을 정도의 그런 성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전작의 경우에는 게임 스트리머들의 푸시도 좀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번에는 어땠나요? 황성진 대표: 이번 작품은 아무래도 저희 출시 직전에 <33 원정대>가 워낙 이목을 끌기도 했고, 스트리머 시장 자체도 많이 바뀌었다 보니 주목을 크게 받지는 못했습니다. 다행히 유튜버 풍월량님이 나중에 한 번 플레이하셔서 한국에 좀 알려졌던 것 같아요. 저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저희만의 착각이었고(웃음) 실제 국내 매출은 풍월량님 유튜브가 올라간 시점부터이지 싶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래트로폴리스>와 <래토피아>를 비교해보면 전작은 스테이지 기반이라 스트리밍으로 보여주기가 확실히 편할 것 같거든요. 후자는 특별한 엔딩이 없는 스타일이다보니 중간에 들어가서 보기도 애매하고 시작부터 쭉 긴 시간을 따라가기도 애매한 문제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황성진 대표: 그것도 큰 것 같아요. <래토피아>가 스트리머 분들이나 아니면 전시회 같은 데서 하기에 적합한 게임은 전혀 아니거든요. 이번 작품 같은 경우에는 그래서 홍보적인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해외 반응은 어떤가요? 이 게임 장르는 국내보다 해외가 더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요. 황성진 대표: 7월부터 저희가 정부지원으로 해외 인플루언서 대상 마케팅을 진행해보고 있는데요. 초창기 <래트로폴리스>처럼 스팀 탑 차트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유입되는 효과는 얻지 못하다 보니 그렇게 드라마틱한 효과는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얼리액세스 때는 해외 반응이 높았지만 정식 출시 이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나고 있지 않아서요. 다만 <래토피아>는 저희가 서비스하고 유저분들을 더 만나면서 길게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시뮬레이션 게임 플레이어들이 성향 자체가 신중하기도 하고 게임도 출시 직후보다 어느 정도 안정화된 게임을 선호하시는 영향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합니다. 이경혁 편집장: 아까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33 원정대>와 출시 시점이 겹쳤었군요. 알고 내셨던 걸까요? 이런 걸 다 피해 갈 수도 없는 거고 어렵네요. 황성진 대표: 네, 원래는 작년 말에 내려고 했다가 계속 부족한 부분들이 밟혀서 개선하다 보니 밀리게 됐거든요. 4월 말까지 갔다가 <33> 소식을 듣고 또 미루었지만 출시 약속은 지켜야겠다 싶어 5월 초로 잡은 건데. 어떻게든 여러 요인을 생각해본다면 그렇지만, 실은 <33>과 저희 유저 풀이 그렇게 겹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서 그냥 저희가 부족했던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혁 편집장: <래토피아> 같은 게임을 만들 때 제일 어려운 게 규모의 연산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식량을 얼마를 먹고 얼마간 활동할 수 있고 피로도가 얼마가 쌓이는지 처음에 설정한 기본적인 변수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개체가 늘고 공간이 넓어지면서 방대한 연산을 필요로 하게 되잖아요. 그때부터 기획자가 이 복잡한 연산의 결과를 얼마나 일일이 피드백을 해서 고쳐나갈 수 있는가가 제일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고 <산소미포함>이 그런 걸 되게 잘해냈다고 봐요. 실제 기획할 때 그 규모의 경제라 부르는 부분에서 마주했던 어려움 같은 건 없으셨어요? 황성진 대표: 제가 기술적인 담당은 아니다 보니 팀원분들의 의견을 듣고 그에 맞춰 기획 갈무리를 했거든요. 개체 수가 100명이 넘는 도시를 지향하기 때문에 지원하지 못하는 기존 게임의 기능을 어떻게 돌릴 수 있을지도 많이 논의했어요. 여러 아이디어를 건의하긴 했지만 기술적 검토 결과 최적화에 문제가 생기거나 구현이 어려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거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최적화가 안 좋아지면 결국 부정적인 유저 경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험에서도 최대한 최적화에 영향 없이 콘텐츠를 추가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정말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요즘 인디게임 개발사에서는 그런 점 때문에 AI를 넣어서 해결하자는 얘기를 하시는 대표님들이 좀 계십니다. AI가 참 효율적인데 어떻게 좀 붙여볼까라는 고민들을 다들 하시다보니 어떻게 생각하시나 싶은데, 카셀게임즈도 AI에 대한 검토를 하시는 편인가요? 황성진 대표: <래토피아>의 경우 AI가 활성화되기 이전 기반 시스템들을 만들어서 잘 접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AI 답변을 믿고 수정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AI가 아예 저희 시스템 전체를 이해를 해야 거기에 적합한 솔루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인디게임에서 실험적인 시도들이 나오고 결과가 좋으면 대기업이나 다른 팀들에서 그걸 활용하고 발전시킬 텐데요. 아무래도 결국 연산이나 최적화 규모가 커지는 문제다 보니 저희 입장에서 얼리 어댑터처럼 적용하기에는 형편이 그렇게 여유가 있지는 않을 것 같구요. 이경혁 편집장: 슬슬 마지막 얘기로 가야 될 것 같은데, 향후 <래토피아>는 어떤 업데이트 방향을 보고 계신지 궁금하고 차기 신작에 대한 고민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황성진 대표: <래토피아>는 일단 계속 유지보수를 하면서 후속 업데이트를 준비 중입니다. 제가 작성해 놓은 업데이트 리스트에만 몇백 개가 있고 실은 오늘도 10개 정도를 추가하긴 했는데(웃음) 너무 많은 수치라 유저들의 니즈가 큰 것들 위주로 선별해서 진행하려 합니다. 차기작 같은 경우에는 제가 출산을 했고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프로그래머 분께서 총괄 핸들을 맡아서 진행하고 계세요. 장르는 다키스트 던전류의 턴제 RPG가 되었고, 오토 배틀러 형태도 약간 고려를 하고 있습니다. 개발 속도는 빠르게 되고 있어서 올해 말쯤 데모 버전이나 프로토타입 정도가 완성될 것 같아요. 이경혁 편집장: 카셀게임즈의 세 번째 작품도 ‘쥐 시리즈’로 가게 될까요? 황성진 대표: 맞아요. 그리고 아트 담당자님들의 역량도 더 커졌기 때문에 더 귀엽고 애니메이션이 더욱 발전된 형태로 나갈 것 같습니다. 늘 유저분들이 보내주시는 응원에 감사하고, 저희들이 열심히 개발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많은 기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ags: 인디게임, 인터뷰, 게임산업, 래토피아, 래트로폴리스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문화연구자) 김지수 문화와 지식, 공간과 학술 장 등 다양한 영역을 공부합니다. 게임의 역사와 게이머의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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