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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미래: 1989년에 상상한 미래형 컨트롤러, U-Force와 파워 글러브의 대결
조이스틱과 게이머의 남근선망을 연결 짓는 비평(Pozo, 2015)은 어찌 보면 지나치게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례를 보면 어떨까. 2009년, “섹스와 테크놀로지”를 테마로 개최된 Arse Electronika 컨퍼런스에서 SF미디어 랩은 실험적인 게임 컨트롤러 하나를 선보였다. “조이딕(Joydick)”으로 명명된 이 게임 컨트롤러는 벨트로 부착시킨 원기둥 물체를 상하좌우로 움직여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당시 SF미디어랩의 공동대표였던 노아 와인스타인(Noa Weinstein)이 게시한 유튜브 영상에 의하면, 이러한 조이딕은 “사용자의 페니스를 네 개의 주요 방향 으로 화면의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는 조이스틱으로 변환시킨다." < Back 오래된 미래: 1989년에 상상한 미래형 컨트롤러, U-Force와 파워 글러브의 대결 11 GG Vol. 23. 4. 10. * JOYDICK의 사진. * 다양한 모양의 조이스틱들 “표준적” 컨트롤러? 조이스틱과 게이머의 남근선망을 연결 짓는 비평(Pozo, 2015)은 어찌 보면 지나치게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례를 보면 어떨까. 2009년, “섹스와 테크놀로지”를 테마로 개최된 Arse Electronika 컨퍼런스에서 SF미디어 랩은 실험적인 게임 컨트롤러 하나를 선보였다. “조이딕(Joydick)”으로 명명된 이 게임 컨트롤러는 벨트로 부착시킨 원기둥 물체를 상하좌우로 움직여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당시 SF미디어랩의 공동대표였던 노아 와인스타인(Noa Weinstein)이 게시한 유튜브 영상에 의하면, 이러한 조이딕은 “사용자의 페니스를 네 개의 주요 방향 으로 화면의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는 조이스틱으로 변환시킨다.” 1) 조이딕은 실제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기 보다는 당시의 게임문화에 대한 일종의 농담으로서 기획된 것이었다. "페니스"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조이딕을 본래 설계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조이딕은 아이러니한 방식을 통해 특정한 신체의 형태에 척도를 부과·이용하는 게임 컨트롤러의 속성을 조명한다.(Pozo, 2015). 컨트롤러를 연구하는 많은 연구자들은 보편적 형태의 컨트롤러가 특정 형태의 신체를 표준으로 상정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특정한 방식의 플레이스타일을 정석적인 것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을 비판한다 (Pozo, 2015; Boluk, LeMieux, 2017; Marcotte, 2018). 그렇다면, 표준에서 벗어난 형태의 컨트롤러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이 글에서는 1990년 초 게임 잡지에 실렸던 컨트롤러 기기들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1990년대 초까지의 비디오 게임 잡지에서는 다양한 모양, 질감, 그리고 기능을 가진 컨트롤러에 대한 광고와 리뷰가 범람하였다. 이를 통해 조이스틱과, 알록달록한 버튼, 그리고 고무 패킹과 같은 물성들이 당시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었음을, 그리고 이러한 인터페이스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경험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게임 소프트웨어와 컨트롤러 사이의 위계가 지금만큼 공고하게 구축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적인 형식의 컨트롤러를 먼저 개발한 다음, 그러한 컨트롤러가 추구하는 기능에 호환되는 게임 소프트를 개발하는 방식이 지금에 비해 더 빈번하게 일어났다. 한편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게임패드의 형식이 대체로 굳어지게 된다. 왼쪽에는 십자 모양의 방향키가, 오른쪽에는 네 개의 원형 버튼이 자리 잡고 있으며, 컨트롤러의 상단에는 검지로 누를 수 있는 L버튼(Left;왼쪽)과 R버튼(Right; 오른쪽)이 위치하는 오늘날과 유사한 형태의 게임 패드가 주류로 자리 잡게 된다. 컨트롤러 형식이 표준화되면서 그 모습도 서로 비슷해져 갔고, 이에 따라 90년대 중반부터는 게임 잡지에서 컨트롤러를 묘사하는 사진 이미지 경쟁도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게임이 더 이상 최신의 신기한 기술로 여겨지지 않게 되면서 게임 기기가 주는 물성에 매혹되기보다는 게임 자체의 스크린샷이나 공략에 더욱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 U-Force와 파워 글러브의 광고 U-Force와 파워 글러브(Power Glove)의 경쟁구도 1989년에는 브로더번드(Broderbund)사의 U-Force와 마텔(Mattel)사의 파워글러브(Power Glove)가 출시되었다. U-Force는 노트북처럼 펴고 접을 수 있는 폴더 형태로, 수직으로 맞물리는 적외선 장을 통해 손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기기였다. 그리고 파워 글러브는 장갑처럼 손에 착용하는 형태로, 손을 움직이거나 손가락을 굽히는 방식으로 게임을 조작할 수 있었다. 두 기기 모두 기존의 컨트롤러와는 매우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신기한 최신 장난감의 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하게 되었다. GamePro나, Electronig Gaming Monthly를 포함하여 다양한 게임 잡지들에서 둘을 비교하는 특집 기사를 다루었으며, 각 제품 개발의 책임자인 데이브 카퍼(Dave Capper)와 스캇 굿맨(Scott Goodman)의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2) * 파워글러브와 U-Force를 다루는 특집기사 U-Force와 파워글러브는 현실의 상호작용과 더 유사한 방식의 “향상된 상호작용”을 통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U-Force는 특히 플레이어의 행동이 아무런 접촉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비접촉식 플레이에 기술적으로 보다 진보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했다. 당시에 실렸던 광고 카피를 보자. “그 어떤 것도 들고 있거나, 올라타거나, 착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U-Force는 당신의 커맨드에 반응하는 파워-장을 만들어 내며, 바로 당신을 컨트롤러로 만듭니다.” 3) 다시 말해, U-Force 광고는 사용자가 기기에 접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사용자의 행동이 조이스틱이나 버튼을 사용하여 변형되거나 매개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Electronic Gaming Monthly의 인터뷰에 실린 데이브 카퍼의 인터뷰도 이러한 의도를 뒷받침한다. 그는 ”플레이어를 특정 루틴에 가두어 게임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는 신체적 접촉을 제거하여 게임 플레이 방식에 혁신을 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던 파워글러브는, 게이머의 플레이 행위에 삼차원 공간을 더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가령 GamePro 기사는 파워글러브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플레이어의 손 동작은, 일종의 조이스틱이 되어 3차원 공간에서 손과 손가락의 위치를 감지하는 파워글러브의 센서를 통해 화면의 개체와 캐릭터의 동작을 지시합니다.” 4) 파워글러브 또한 (U-Force와 마찬가지로) 플레이어의 동작이 컨트롤러를 거쳐서 입력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플레이어의 몸이 컨트롤러로 변환된다”는 수사를 사용한다. 스캇 굿맨은 인터뷰를 통해 ‘파워글러브 컨트롤러가 제공하는 움직임이 조이스틱이나 버튼의 그것보다 현실의 상호작용과 더욱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파워글러브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플레이에 추가된 3차원 특성이다. 실생활에서는 버튼을 누르거나 조이스틱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공을 감싸서 공을 잡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당시 게임 잡지에 실렸던 많은 리뷰들에서 알 수 있듯이 카퍼와 굿맨이 주장했던 “향상된 상호 작용”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플레이어는 새로운 컨트롤러를 사용하는 방법을 새롭게 습득해야 했으며, 이는 게임 플레이를 오히려 더 어렵고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다. Electronic Gaming Monthly의 리뷰 기사도 U-Force와 파워글러브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두 기기는 그들이 시도하려던 ‘향상된 상호작용’을 아주 간신히 성공시켰다. 비록 게임의 몰입도를 향상시켰기보다는 컨트롤러에 대한 개입만을 증가시킨 것이지만 말이다.” 6) * 1989년 12월, 텍사스 지역 신문인 New Braunfels Herald-Zeitung의 "산타에게 보내는 편지" 섹션. 많은 어린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파워 글러브를 받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 것을 알 수 있다. * VR 기기로 소개된 파워 글러브 비표준적인 컨트롤러의 가능성 게임의 물리적인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현실의 움직임과 더욱 유사한 플레이 경험을 만들고 싶다는 U-Force와 파워글러브의 상상은 오늘날의 VR기술과도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두 컨트롤러 기기를 포함하여 표준적이지 않은 형태의 컨트롤러들은, 2000년대 이후 게임 잡지에서는 초기 형태의 VR 장치로 간주되기도 한다. 1990년대 초 이전 시기에 시도·구상되었던 많은 가상현실 기술들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현대의 HMD 기기나 모션 캡처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초기 VR장치 중 일부는 상업적인 의미에서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VR 장치의 디자인이나 작동원리를 위한 길을 닦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Video Game & Computer Entertainment에 실린 기사에서, 저자들은 실험적인 인터페이스가 기존 컨트롤러를 사용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게이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7) 데이브 카퍼는, U-Force가 출시되기 이전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컨트롤러에 사용된 기술이 컴퓨터 및 의료 응용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을 지원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8) 물론 이것은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미사여구일 뿐, 정말로 그런 목적으로 컨트롤러가 설계되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표준적이지 않은 컨트롤러와 대안적인 인터페이스는 기술의 미래를 상상해줄 뿐 아니라 게임에 참여하고 플레이하는 보다 다양한 방식에 영감을 줄 수 있다. 혹은, 기술 혁신과 이용자의 저변을 넓히는 대안적 상상력은 애초부터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1989년보다 무려 3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어떤 컨트롤러를 상상할 수 있을까? 1) Through the use of a carefully designed strap-on interface, the users penis is converted into a joystick capable of moving the character onscreen in all four cardinal directions“.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8JORtc2gAsY 2) Marshall Rosenthall. (1989). Dare to compare: U-Force vs. Power Glove. Electronic Gaming Monthly, 2, 46-48. 3) There's nothing to hold, nothing to jump on, nothing to wear. U-Force creates a power field that responds to your every command--making you the controller. 출처: Nintendo Power Flash Canada. (1989, Summer-Fall). U-Force advertisement. Issue 05. 4) The action of the player's hand, which becomes the joystick, dictates the action of objects and characters on the screen via sensors in the power glove that perceive hand and finger positions in three-dimensional space. 출처: Marshall Rosenthall. (1989). Dare to compare: U-Force vs. Power Glove. Electronic Gaming Monthly, 2, 46-48. 5) But what really makes this and all the Glove games so good is the three-dimensional quality added to play. You actually grab a ball in real life by wrapping your fingers around it - not by pressing a button or moving a joystick. 출처: Marshall Rosenthall. (1989). Dare to compare: U-Force vs. Power Glove. Electronic Gaming Monthly, 2, 46-48. 6) Both units marginally succeed at what they're trying to do, although this 'enhanced interaction' is really added involvement with the controller units rather than an improved involvement with the games. 출처: Bill Kunkel & Joyce Worley. (1989, August). A question of control: A survey of joysticks & other devices for game players. Video Games & Computer Entertainment, 7, 42-45. 7) Bill Kunkel & Joyce Worley. (1989, August). A question of control: A survey of joysticks & other devices for game players. Video Games & Computer Entertainment, 7, 42-45. 8) Freiberger, P. (1989, January 12). Don't touch that joystick. The Kokomo Tribune, p. 22. 참고문헌-논문: Boluk, S., & LeMieux, P. (2017). About, Within, Around, Without: A Survey of Six Metagames. In P. Zagal & S. Deterding (Eds.), The Gameful World: Approaches, Issues, Applications (pp. 23-74). MIT Press. Marcotte, J. (2018). Queering control (lers) through reflective game design practices. Game Studies, 18(3), 1-16. Pozo, D. (2015). Countergaming’s porn parodies, hard-core and soft. In T. Apperley & D. J. O’Donoghue (Eds.), Rated M for Mature: Sex and Sexuality in Video Games (pp. 133-146). Bloomsbury Publishing. 참고문헌-신문기사 및 잡지: Bill Kunkel & Joyce Worley. (1989, August). A question of control: A survey of joysticks & other devices for game players. Video Games & Computer Entertainment, 7, 42-45. Freiberger, P. (1989, January 12). Don't touch that joystick. The Kokomo Tribune, p. 22. Marshall Rosenthall. (1989). Dare to compare: U-Force vs. Power Glove. Electronic Gaming Monthly, 2, 46-48. PC Leisure. (1990, Winter). Virtual unreality. (Issue 4). 44-47. The Cutting Edge: Slip Your Hand Into Action / Nothing Comes Between You and the Game. (1989, May). GamePro, 1, 6-7. Nintendo Power Flash Canada. (1989, Summer-Fall). U-Force advertisement. Issue 05. GamePro. (1989, May). Power Glove advertisement. Issue 1. New Braunfels Herald-Zeitung, December 17, 1989, "Local second graders pen letters to Santa Clau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김지윤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신체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임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 게이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202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 영화·미디어학과 (Cinema and Media Studies) 박사 과정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채팅 비활성화와 게임 커뮤니티 문화
2019년 브리아나 우는 게임이 단순한 모방 범죄와 폭력성을 유발하고 있다는 담론에서 벗어나 이제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와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또한 사회 문제가 생겼을 때 게임을 모방한 사건이나 게임 중독자의 일탈 행동 등 개인의 책임을 묻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게이머 문화와 커뮤니티의 유해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할 지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Dilute Enjoys analyzing the virtual worlds and stories that others have built with such care. Favorite genre is the RPG, and lately has been enjoying board games.
- 당신의 기억을 <언패킹>: 정리 게임이 기억을 다루는 방법
기억은 세부 사항이 완전히 보존된 텍스트의 형태가 아닌 부분적인 이미지의 집합으로 우리에게 떠오른다. 이때 사물은 기억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자신과 관련된 이미지를 무분별하게 소환한다. < Back 당신의 기억을 <언패킹>: 정리 게임이 기억을 다루는 방법 31 GG Vol. 26. 8. 10. * <언패킹> 시작 화면 당신이 불의의 사고로 기억을 잃었다고 가정해 보자. 기억을 되살리고 자신을 알기 위해선 우선 과거의 당신이 남긴 기록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일기부터 사진, SNS 게시물과 메신저의 대화 내역까지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숱한 기록을 남기며 살아간다. 그리고 기록은 선별된 기억이다. 어떠한 사실을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작성되는 ‘기록’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남긴 흔적과는 다르다. 이를테면 발 안쪽에 무게를 실어 걷는 버릇 때문에 안쪽만 닳은 신발 밑창은 기록이 아닌 흔적이다. 만들어질 때부터 의도와 해석이 개입되는 기록과 달리 흔적은 의도 바깥의 영역에서 생겨나고, 해석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흔적은 기록에 비해 태생적으로 소박하다. 그러나 때로 흔적은 기록보다 더 충실하게 그 주인을 설명해 준다. 기록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쓰일 수 있지만 물성을 갖춘 흔적은 정직하다. 그러니 기억을 잃은 사람이 자신을 알아가는 데 있어 가장 확실한 단서는 일기나 SNS가 아니라 자신이 쓰던 방의 물건들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소유하기로 처음 선택할 때는 필요와 취향이라는 의도가 개입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물 자체가 우리의 흔적이 되기도 한다. 최초의 의도를 벗어나 사물과 주인의 관계가 계속해서 재설정되기 때문이다. 흔적은 주인과 사물의 관계에서 태어나 사물에 내재되고 세월에 의해 변화한다. 덕분에 흔적에는 기록에는 없는 자생력이 깃든다. 벤야민이 자신의 서재를 정리하며 쓴 에세이 ‘나의 서재를 정리하다: 수집에 대한 이야기’에서 말했듯이, “사물이 수집가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집가 자체가 사물 속에 거주한다. [1] ” 대부분의 시간 우리의 인식에서 벗어나 있는 이 생기는 우리가 사물과 관계맺는 방식을 의식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할 때 예고 없이 분출된다. 사물과의 관계를 재정의한다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다시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물건을 버릴 것인가, 계속 가지고 있을 것인가? 손이 닿고 시야에 들어오는 곳에 둘 것인가, 구석에 넣어둘 것인가? 판단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우리는 다시 질문한다. 나는 여전히 이 물건이 필요한가? 얼마나 오래 가지고 있었나? 이전엔 어떻게 사용했나? 이 물건을 언제, 어떻게 소유하게 되었나? 흔적을 살피며 우리는 무의식의 영역에 있던 기억을 소환한다. 이삿짐을 정리하거나 대청소를 하다 보면 물건에 얽힌 추억을 들여다보다 정리는 뒷전이 되곤 하듯이. 2021년 출시된 정리 게임 <언패킹>은 바로 그런 순간들을 모아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한다. * 스테이지를 완료할 때마다 앨범에 사진이 쌓인다. 정리란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하는 일이다. 인간은 이 행위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넘어 쾌감을 얻도록 진화했다. 사실 정리만큼 놀이의 형식에 들어맞는 일도 없다. ‘호모 루덴스’의 개념을 주창한 하위징아에 따르면 놀이는 자유롭게 받아들여졌으되 엄격히 적용되는 규칙을 따르며 몰입을 통한 즐거움을 수반하는 일이다. 다만 실생활에서의 정리는 유희를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닌 노동이기에 놀이가 아닌 일상생활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정리와 놀이는 각자의 긴 역사 속에서 복수의 속성을 공유해왔으니, ‘정리 게임’이라는 게임 장르의 출현도 자연스럽다. 스팀에서 ‘정리(Organizing)’ 태그로 분류된 게임들을 살펴보면 주로 ‘퍼즐’, ‘릴랙싱’ 태그가 함께 붙어있다. , , 등이 대표적이다. 즉 게임으로서의 ‘정리’는 정답이 정해진 퍼즐을 푸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게 하되, 점수 경쟁이나 과하게 복잡한 규칙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행위로 여겨진다. <언패킹>도 마찬가지로 퍼즐 게임으로 분류된다. 이사 간 집에 짐을 풀어 제자리를 찾아 정리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의 전부다. 모든 물건의 자리가 정확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재량을 발휘해 취향껏 인테리어를 꾸밀 수도 있지만, 쓰임새에 따라 물건이 있어야 할 알맞은 공간은 지정되어 있어 최소한의 규칙은 따르며 진행해야 한다. 스테이지가 진행될수록 이삿짐은 점점 늘어나고 이사를 가는 집도 커져 정리가 한층 복잡해진다. 그러나 <언패킹>은 정리를 퍼즐과 꾸미기 이상의 행위로 설계했다. <언패킹>에서 정리라는 플레이는 사물이라는 흔적을 매개로 기억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이다. <언패킹>은 사물을 통해 유년기부터 가정을 이루기까지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처음으로 생긴 자기 방에서 시작해 대학 자취방, 사회초년생 생활, 애인과의 첫 동거, 이별 후 본가로의 귀환, 새 사랑과의 만남과 독립 등 삶의 주요 국면마다 주인공은 이사를 가게 된다.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정보는 몇 년도에 이사를 하게 되었는지와 소지품의 변화뿐이다. 정리를 완료한 후 사진을 찍으면 이사를 마친 주인공의 소회가 제시되지만, 새로운 집에 대한 평가나 이사 당일의 감정 표현 정도로 주인공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다. * 박스에서 랜덤으로 나온 이삿짐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널려 있다.(직접 캡처) 플레이어는 이삿짐을 꾸리는 과정에는 관여할 수 없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면 처음 보는 집에 이삿짐 박스가 잔뜩 쌓여 있고, 플레이어는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짐을 풀어야 한다. 1997년부터 2018년까지 20년에 걸친 시간 동안 소지품은 남아 있거나, 사라졌거나, 새롭게 추가된다. 플레이어는 이 흔적을 통해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추측하게 된다. 2010년, 주인공은 애인의 집으로 들어가 첫 동거를 하게 된다. 애인의 물건들 사이를 비집고 주인공의 짐을 밀어 넣다 보면 자연히 취향의 차이가 들어온다. 그는 취미로 기타를 연주하고,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신다. 2012년, 이별 후 주인공은 본가로 돌아간다. 사진 속 전 애인의 얼굴에 압정을 꽂아 놓은 것으로 보아 끝이 좋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를 통해 시작한 우쿨렐레 연주와 드립커피는 주인공의 취미와 취향으로 남았다. 2010년 스테이지 이후로 우쿨렐레와 악보집, 커피용품이 계속 등장한다는 것만으로 플레이어는 주인공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 * 주인공의 취향이 드러나는 거실(직접 캡처) 첫 스테이지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물건들을 들여다보자. 그녀는 그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사용하던 미술용품 브랜드를 프로 작가가 될 때까지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취향이 확고하고 그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재봉이 뜯어질 때까지 들고 다닌 돼지 인형에서도 그 고집이 엿보인다. 돼지 인형은 어릴 때부터 그녀의 모델이었고, 작가가 된 그녀가 출판한 동화책의 주인공이 된다. 인형 외에도 한 번 애정을 준 물건은 쉽게 놓지 못해 어렸을 때 사용한 연습장과 가장 좋아하는 책 시리즈는 어느 집의 책장이든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매번 늘어나는 비디오게임과 보드게임은 그녀의 가장 오래된 취미다. 좋아하는 물건을 살 때는 꼭 종류별로 모으는 수집가의 성향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의 삶을 상상하는 일은 퍼즐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위한 조건은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불가항력적으로 추론에 참여하게 된다. 박스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 어떤 순서로 물건이 나오는지 알 수 없어서 플레이어는 짐 하나를 꺼낼 때마다 유심히 그 물건을 들여다보고 평가해야 한다. 이때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물건을 기억하게 되고 반복적으로 등장하거나 새로 생긴 물건을 알아보게 된다. 스토리를 추론해 정답을 맞히거나 핵심 단서를 수집하게 하는 등, 이 과정을 적극적인 플레이 요소로 지정할 방법은 많다. 많은 정리·퍼즐 게임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내러티브적 요소를 구현한다.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 콘셉트인 의 경우 정리 과정에서 모은 단서로 회고록을 복원하게 하고, 는 NPC와의 대화와 ‘이상현상’이라는 미스터리 요소를 도입해 스토리를 인식하게 한다. 게임에서 정리라는 퍼즐이 내러티브와 결합하며 사물은 해석의 대상이 되고, 정리는 이를 들여다보는 행위가 된다. * 의 회고록 정리 화면 ⓒSecret Mode 여기서 <언패킹>이 여타의 정리 게임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드러난다. 현실에서의 정리와 게임에서의 정리 사이에는 자발성의 유무 이외의 목적 차이가 있다. 내러티브의 발견이 게임의 명시적인 목적으로 제시될 경우 사물의 위치는 해석 대상을 넘어 단서 혹은 증거로 구체화한다. 이때 역설적으로 사물은 그것이 담고 있는 기억, 의미와 분리된다. 내러티브의 구성을 최우선 목적으로 둔 플레이어는 전체 이야기를 짜맞추는 데 들어맞는 의미만을 부분적으로 탈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속 인간의 삶에는 대주제나 기승전결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정리에서도 각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지만 이를 하나의 서사로 묶는 것은 불가능하며, 우리는 산개한 기억을 더듬어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물질과 기억』(1896)에서 주장했듯 기억은 세부 사항이 완전히 보존된 텍스트의 형태가 아닌 부분적인 이미지의 집합으로 우리에게 떠오른다. 이때 사물은 기억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자신과 관련된 이미지를 무분별하게 소환한다. 정리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기억은 이처럼 예고 없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언패킹>이 제시하는 플레이는 정리와 기억이 연결되는 현실의 메커니즘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정리 게임에서 물건의 주인은 늘 가상의 인물이자 타인이다. 플레이어에게는 자신이 정리해야 할 물건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는 주인공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듯이, 혹은 잃었던 기억을 찾아가듯이 어렴풋하게나마 주인공의 자아를 구성할 수 있다. 어떠한 명시적 내러티브 없이 사물의 자리를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기억은 우리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관계맺은 사물 속에서도 거주하기 때문이다. 다시 벤야민의 상념을 빌려본다. “기억된 것, 생각된 것, 의식된 것, 이 모두는 자기 자산의 초석이 되고, 액자, 주각, 자물쇠가 된다. 시대, 주변 경관, 수공 작업, 이전의 소유주 — 소유주의 이러한 물건은 저마다 진정한 수집가에게 한데 모아져 하나의 마법적 백과사전이 되고, 그 총체가 소유주 대상물의 운명이 된다 [2] .” 그렇다면 <언패킹>에서 플레이어의 정리는 주인공에 대해 쓴 백과사전을 훑어보는 일이다. 백과사전을 읽는다고 세계를 완벽하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듯, 정리가 끝난 뒤에도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모든 것은 짐작될 뿐이다. 이 느슨한 이해의 방식은 앞서 언급한 <언패킹>의 유연한 규칙에도 반영되어 있다. 자리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물건은 없다. 그래서 현실의 우리도 정리를 한다. 제자리를 찾는 일에는 정답이 없어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물건의 자리도, 나 자신의 자리도. 넘치는 물건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을 정리하다 보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1] 발터 벤야민, 『라디오와 매체』, 고지현 역, 현실문화, 2021, 239. [2] 발터 벤야민, 앞의 책, 2021, 227. Tags: 기억, 언패킹, 정리 게임, 코지 게임, 사물과 기억, 발터 벤야민, Unpacking Game, Cozy Games, Environmental Storytelling, Memory in Game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에디터) 박유진 시사 유튜브·팟캐스트를 만드는 직장인이자 평범한 게이머. 시사를 녹여낸 게임 이야기를 전하는 일에 종종 함께합니다.
- 비평공모전 4년을 거쳐 온 편집장의 회고
그렇게 시작한 게임비평공모전을 네 번째 거쳐오는 동안 나에게도 적지 않은 경험이 쌓였고, 어쩌면 게임비평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을 듯 싶다. 이 글은 어찌 됐건 2020년대 이후 꾸준하게 게임비평의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고자 뛰어 왔던 한 개인의 회고록일 것이지만, 그 경험은 단지 개인 혼자 되새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될 것이라 생각해 지면 한 켠을 빌어 이야기를 새겨두고자 한다. < Back 26 GG Vol. 25.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KyungHyuk Lee Game critic and researcher. Since 2015, he has made games his life's work—as a critic, examining how games relate to society, and as a researcher, exploring how games, as commodities, take their place within it. He is the author of Mario, Born in '81 (2017) and The Birth of In-Game Spending (2022), among other works, and has contributed to documentaries including EBS's Docuprime as well as columns across various outlets. He received his Ph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Communication at Yonsei University for his research analyzing digital games as time-rights commodities. He is the director of the game research lab Dragon Lab and serves as editor-in-chief of Game Generation.
- 스팀의 ‘양식화된’ 태그를 통해서 본 예술로서의 게임, 혹은 게임으로서의 예술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12년 전, 그러니까 2014년에 ‘태그’ 기능이 스팀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스팀은 스스로 이 기능을 “새롭고 강력한 게임 구매 방법”이라 설명한다. “지속적으로 부착된 태그는 독립적인 부류로 나누어지고, 모두가 함께 정의한 장르, 주제, 특징으로 나누어진 상품들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즉 여기서 ‘태그’는 “장르, 주제, 특징”과는 다른 제4의 분류법이다. 나아가 스팀의 ‘태그’ 기능 소개 페이지는 “어떤 단어로도 태그를 달 수 있”음을 명시한다. < Back 스팀의 ‘양식화된’ 태그를 통해서 본 예술로서의 게임, 혹은 게임으로서의 예술 29 GG Vol. 26. 4. 10. “예술이 의지가 펼치는 궁극의 게임이라면 ‘스타일’은 이 게임을 하는 일련의 규칙으로 구성된다.” [1]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12년 전, 그러니까 2014년에 ‘태그’ 기능이 스팀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스팀은 스스로 이 기능을 “새롭고 강력한 게임 구매 방법”이라 설명한다. “지속적으로 부착된 태그는 독립적인 부류로 나누어지고, 모두가 함께 정의한 장르, 주제, 특징으로 나누어진 상품들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즉 여기서 ‘태그’는 “장르, 주제, 특징”과는 다른 제4의 분류법이다. 나아가 스팀의 ‘태그’ 기능 소개 페이지는 “어떤 단어로도 태그를 달 수 있”음을 명시한다. “장르를 분류할 때는 ‘퍼즐’을, 주제를 분류할 때는 ‘군사’를, 특징을 보여주고 싶으면 ‘어려움’을 쓰시면” 되지만, “제품에 걸맞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을 때도 있다 [2] . 이 문장을 읽자마자 예상할 수 있듯이, 이러한 임의적 민주주의는 해당 기능이 본래 의도한 대로 작동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실제 게임 내용과 “장르”적으로도 “주제”적으로도 “특징”적으로도 전혀 무관한 ‘밈’, ‘심리적 공포’, ‘LGBTQ+’ 등의 태그를 다는 장난질은 꾸준히 성행해 왔다. 그리고 이처럼 명백한 악용 사례를 넘어, 그 뒤에 숨겨진 의도조차 알기 힘든 태그도 있다. 바로 ‘양식화된’이다. 사실적인과 양식화된 ‘양식화된’은 영어 태그 ‘Stylized’를 번역한 것으로, 원본 단어를 보아도 그 뜻은 다소 아리송하다. ‘양식 (Style)’을 ‘스타일’로 직접 음차한 표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보통 무언가의 맵시가 멋지거나 뛰어날 때는 ‘스타일리쉬’하다는 형용사를 자주 쓰지, ‘스타일라이즈드’되었다는 수식어는 익숙하지 않다. 이 스타일라이즈드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시각적 게임 디자인의 두 갈래 중 하나로 ‘리얼리스틱’, 즉 ‘사실적인’의 반대편을 일컬을 때이다. <호라이즌 제로 던>과 <배틀필드> 시리즈 등 개발에 참여한 3D 디자이너 킴 아바 (Kim Aava)는 게임 디자인에서 사실주의가 실사를 모방하는 그래픽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양식화된 디자인은 현실을 굳이 재현의 기준으로 삼지 않은 채 자유로운 표현을 목표로 하는 방법론이라 규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구분하는 도중에 아바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을 강조한다. 바로 사실주의도 결국엔 양식에 속한다는 것이다. 사실주의는 어디까지나 더 ‘사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이상화된 현실의 이미지를 참조할 뿐이며, 무엇보다 “우리가 10년 전에 사실적으로 보인다 믿었던 것들이 오늘날엔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으며, 그것들은 누군가에겐, 당시에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렸던 선택들로 인해 심지어 양식화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3] .” 즉, 현실을 과장한 표현이든, 현실을 단순화한 표현이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모방하려 한 표현이든 전부 어떠한 ‘양식’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충실한 모방과 재현은 마치 예술가의 표현적 선택에서 면제되는 듯한 인식이 퍼져 있어, 사실상 ‘사실주의, 그리고 나머지’ 모든 작품이란 범주가 통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미국의 작가 수전 손택 (Susan Sontag)이 1965년도 에세이 <스타일에 관하여>에서 ‘리얼리즘도 하나의 스타일 관습에 지나지 않는다’ 가정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4] . 그렇다면 ‘양식화된’ 태그엔 ‘현실적’ 태그 바깥의 모든 게임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3월 16일 오전 5시 43분 시점에 해당 태그를 클릭해 들어갔을 시 가장 상위에 뜨는 3편의 게임은 중세 타워 디펜스 게임 <쓰론폴 (Thronefall)>, 아니메 확률형 아이템 수집 RPG 게임 <소녀전선2: 망명>, 코스믹 호러 낚시 게임 <드레지 (DREDGE)>이며, 조금 더 밑으로 내리면 <바둑>이란 제목의 아주 직설적인 바둑 게임도 있다. 확실히 네 편의 게임 모두 시각적 현실 재현이 목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점 외에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주의가 아닌 표현주의적 양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양식화된’이란 태그가 붙지 않은 게임들이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울트라킬 (ULTRAKILL)>, <멈추지 마, 걸리팝! (Don’t Stop, Girlypop!)>, <스프롤 (SPRAWL)>의 세 작품은 전부 극도로 강조된 색채나 한 알 한 알이 두드러지는 픽셀, 투박하게 각진 로우 폴리곤 등, 현대 기술 수준에서 재현할 수 있는 현실성과 아주 거리가 멀어 보이는 표현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양식화된’ 페이지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쓰론폴>과 <울트라킬> 사이를 나누는 그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쓰론폴>을 분류하는 태그인 ‘양식화된’은 <울트라킬>, <멈추지 마, 걸리팝!>, <스프롤>에 붙어 있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이 세 게임도 <쓰론폴>에게 없는 공통적인 태그를 하나 달고 있다. 바로 ‘부머 슈팅’이다. ‘부머 슈터’는 1990년대를 풍미했던, 다시 말해 베이비부머 세대가 즐겼던 ‘복고풍’ FPS 게임 양식을 일컫는 표현이다. ‘부머 슈팅’ 말고도 <울트라킬>이 속한 태그인 ‘복고풍’, <멈추지 마, 걸리팝!>을 장식하는 ‘1990년대’, <스프롤>을 부연하는 ‘올드 스쿨’이 이를 확인해 준다. 물론 정말 90년대 PSX 부머 슈터 게임을 표방하고 있는 <울트라킬>과 달리 <멈추지 마, 걸리팝!>과 <스프롤>은 Y2K 2000년대 미학을 자칭하고 있으므로 저 태그들이 정확한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근접하게라도 이들이 지향하는 바를 일컬을 어휘가 스팀 상에 입력돼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당시에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렸던 선택들로 인해 심지어 양식화된 것으로 보’이게 된 양식을 말하는 ‘복고풍’이 저 셋을 더 잘 묶어줄 수 있겠지만, 스팀 사용자들의 임의성은 복고 ‘FPS’라는 특징에 더 주목을 해 ‘부머 슈팅’으로 퉁쳐 버린 듯하다). <쓰론폴>과 <드레지>의 경우엔 색채의 과장과 세부 묘사의 생략, 형상의 단순화 등을 통해 독특하고 고유한 양식을 이루고 있음에도, 이들이 구현하고 있는 양식을 일컬을 기존의 태그가 스팀에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히 이 두 게임에선 ‘양식이 두드러지지만’, 그 양식을 뭐라 따로 분류할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소녀전선 2: 망명>에겐 이미 ‘애니메이션’이란 태그가 존재하고, <바둑> 같은 경우는 배경 공간을 추상화하거나 생략했을 뿐 오히려 바둑판 자체는 꽤나 현실의 물건과 유사하게 구현된 듯하며 전체적으로 시각적 창의성과도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어째서 ‘양식화된’ 태그가 아래 있는 것인지 다소 아리송하다. 양식과 양식화된 태그의 최신 분류는 앞서 말한 사용자 중심 운영 체제의 임의성에 영향을 많이 받아 범주도 작품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수 있으니, ‘양식화된’ 태그 아래 ‘최고 평가’를 들어가 보자. 여기선 그나마 조금 그림이 명확해지는 듯한데, <펜티먼트 (Pentiment)>, <슬러지 라이프 (SLUDGE LIFE)>, <에코 포인트 노바 (Echo Point Nova)> 등 기존 장르 바깥의 고유한 양식이 확연히 두드러지는 게 보이는 게임들이 모여있다. 그런데 말이 쉽지, 이 ‘양식이 두드러진다’라는 건 애초에 무엇인가?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선. 앞서 리얼리즘을 당연시하는 풍조에 경종을 울렸던 수전 손택의 <스타일에 관하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손택은 우선 양식 혹은 스타일을 “작품의 인상 또는 리듬”이라고 표현한다 [5] . 그리고 단연 예술을 넘어 “어떤 말이나 움직임, 행동이나 사물이 직접적이고 실용적이고 무감한 표현이나 존재에서 벗어난 특질을 보인다면, 그것에 ‘스타일’이 있다” 말한다 [6] . 결국 이러한 개념과 사고의 확장과 전개는, 현실과의 관계에서 “스타일이 곧 예술”이라는 감격스러운 정의로 향한다 [7] . 이미 예술이 곧 스타일, 다시 말해 양식이라면, ‘양식화되었다’는 건 무슨 말인가? 손택은 예술가가 “주제와 형식 사이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구분을 지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스타일과 주제가 서로 대척할 때, 주제가 어떤 스타일로 다루어졌다”, 또는 ‘양식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8] . “‘스타일’과 ‘스타일화’을 나눈 것이 의지와 고집의 차이와 유사하다” [9] 그러니까 원론적으로 보면 ‘양식화된’은 비판적 표현이다. 이미 근본적으로 내용도 표현도 모든 것이 구분 없이 총체적으로 양식인 예술에서, 굳이 불필요하게 양식이라는 분리된 범주에 집착해 “조화가 부족한 과잉의 예술”이란 결과를 낳게 되는 경향을 질타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이니 말이다 [10] . 다만 스팀 페이지에서 게임에 부착된 ‘양식화된’이라는 태그가 해당 게임이 스타일을 실험하다 자기 복제에 빠져 상상력이 소진된 결과물을 낳았다고 비판하기 위해 적용된 것은 아니리라 믿어진다. 애초에 스팀이 자신 있게 알려주듯이, 태그 기능은 게임을 “구매”하라고 발명된 장치이지 않은가. 이 시점에서 손택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역은 ‘양식화된’ 자체보단 그 안의 ‘양식’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단서에 그친다. 그럼 다시 태그의 실제 사례들로 돌아가 보자면, <펜티먼트>, <슬러지 라이프>, <에코 포인트 노바>는 전부 각각이 고유한 “인상 또는 리듬”을 전면에 부각하고 있다. <펜티먼트>는 목판화를 차용한 2D 그래픽, 펜으로 직접 쓰이는 듯 서서히 나타나며 그 과정에서 밑줄 강조나 오타 수정들까지 애니메이팅되는 대사 글씨, 맵을 이동할 때 책 페이지가 넘겨지는 효과로 전환되는 화면 등, 게임 전체가 16세기 근세 유럽의 양식을 구현하고 있다. <슬러지 라이프>의 화면 전체에 색조 및 저해상도 필터가 강하게 들어가 있으며, 모델링은 전부 둥글둥글하고, 텍스처는 색조 필터 아래로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또 더 대비가 뚜렷하고 강한 단색을 기용하고 있다. 따라서 텍스처에선 (텍스처는 의미상 질감을 뜻함에도 불구하고) 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이는 모델링의 곡선과 공명해 그 ‘둥근’ 효과를 증폭시킨다. 하지만 화면 전환 및 UI 상의 VHS 효과, 맵 공간을 채우고 있는 녹색의 스모그, 그리고 담배, 캔, 팝업 창과 같은 일상 사물들의 반복 등은 필터로 잔뜩 왜곡되어 침침한 시야와 다시 만나 ’지저분한’ 감각을 생생히 느끼게 해주고, 이 상반되는 두 감각, 즉 ‘마찰 없는 더러움’은 제목인 ‘진흙탕 인생’을 하나의 고유하고 완결된 양식으로 구현한다. <에코 포인트 노바>에선 모든 것이 매끄럽게 빛나는 미래적 기술에 대한 예측이, 산산이 부서져 부유하는 자연 및 폐허와 만나, 마치 천상에 대한 환상과 같은 신비로운 감각을 준다. 그리고 이 감각을 앰비언트/드럼 앤 베이스 음악이 하나로 묶어, 빠르고 복잡한 이동 기술과 사격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스타일리쉬’한 액션과 융합한다. 그리고 이 세 게임은 <쓰론폴>, <드레지>와 마찬가지로, 각 작품의 양식을 설명해 줄 ‘부머 슈팅’과 같은 기존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펜티먼트>의 경우 시대적으로도 근세 배경에 ‘중세’ 태그는 부정확하고, <크루세이더 킹즈 (Crusader Kings)>나 <마운트 앤 블레이드 (Mount & Blade)> 같은 또 다른 ‘중세’ 게임들도 해당 시대를 그저 재현하는 데 치중하는 장르를 이룰 뿐이지 ‘중세 미학’ 그 자체를 재현하거나 재해석하는 양식을 선보이진 않는다. 나아가 <슬러지 라이프>와 <에코 포인트 노바>는 기존의 여타 어떤 양식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미학을 체화하고 있으니 당연히 스팀에 이들의 양식을 일컬을 범주가 없다. 단 하나의 항목만을 지니는 범주는 범주가 아니라 그저 그 개체 자체의 이름일 뿐이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여기서 ‘양식화된’은 어떠한 게임이 돋보이는 양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양식을 일컬을 기존의 다른 태그가 스팀 내에 없을 때 포괄해주는 분류 항목으로서 가장 일차적인 목적을 성취하는 듯 보인다. 양식과 플레이, 그리고 의지 ‘양식화된’이 그저 기존 분류에 담기지 않는 게임들을 위한 잔여 항목들의 모음집으로서 형성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 ‘기타 등등’들의 구심점으로 ‘양식화’라는 키워드가 선택되었어야 했던 이유엔 아직 더 파고들 구석이 남아 있는 듯하다. 어째서 태그 체계는 사실주의를 기준으로 삼아 그 나머지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 ‘양식화된’의 구도를 빌려와 분류 범주를 구성해야 했을까? 바꿔 말하자면, 어째서 게임은 하나의 양식과 나머지 양식으로 망라되어야 했으며, 양식이 이 모든 걸 나누는 윤곽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왜, 태그 분류 체계 안에 ‘양식화된’은 있는데 ‘내용화된’은 없는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먼저 태그 범주가 어떻게 양식과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스팀 내 태그들엔 ‘장르’, ‘하위 장르’, ‘비주얼 및 관점’, ‘테마 및 분위기’, ‘특징’이라는 상위 대분류가 있어 각 범주들을 또 한 차례 나눠 담고 있는데, 예를 들어 ‘양식화된’은 ‘비주얼 및 관점’에 속한다. 그뿐 아니라 시청각적 미학의 양식은 거의 ‘비주얼 및 관점’에 속하고 스토리나 주제의 내용적 특징은 주로 ‘테마 및 분위기’를 구성한다. 문제는 에코 포인트 노바에서 ‘스타일리쉬’하게 구사되는 액션, 즉 플레이 형식 같은 경우에 ‘장르’와 ‘하위 장르’를 오롯이 독차지하면서도 ‘비주얼 및 관점’과 ‘테마 및 분위기’, 그리고 ‘특징’에도 섞여 들어가 있어, 분류 체계 안에서 양식과도 혼재하고 내용과도 범주를 같이 쓴다는 것이다. ‘귀여운’이라는 미적 양식과 ‘1인칭’이라는 플레이 형식이 ‘비주얼 및 관점’ 아래 함께 들어가 있고, ‘포스트아포칼립스’나 ‘감정적인’이란 주제적 성질과 ‘낚시’나 ‘암살’의 플레이 형식이 ‘테마 및 분위기’ 아래 같이 속한다. ‘특징’은 오히려 또 다시 ‘장르’들처럼 플레이 형식 위주의 범주이지만 ‘PvP’와 ‘퍼마 데스’ 사이에 ‘풍부한 스토리’가 끼어 있다. 결국 플레이 형식은 태그를 양식과 내용으로 분류할 수 없도록 그 구분을 흐리는 주범이다. 그리고 게임 측에서 제공하는 플레이 형식에 더해 플레이어가 취하는 플레이 방식, 다시 말해 소위 ‘플레이스타일’이라 불리는 작품 향유 양식까지 고려하면 분류는 더욱 요원해진다. RPG 게임 등에서 가능한 한 모든 선택지를 보거나 최선의 선택지를 얻기 위해 세이브 파일 저장과 불러오기를 반복하는 ‘세이브 스커밍 (save scumming)’은 플레이어가 내용과 관계하는 방식을 일컫고, FPS 게임에서 컨트롤러를 흔들며 조준해 반동을 조절하는 ‘지터 에임 (jitter aim)’은 형식과 관계하는 방식을 말하지만 둘 모두 플레이스타일에 속한다. 예술 작품 자체가 본래 “경험하는 사람의 협력에 크게 의존”하지만, 그중에서도 독자를 더 가까이, 깊게 끌고 들어오는 게임이란 갈래에서 그 협력의 양식이 플레이어에게 수용되는 내용에든 양식에든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은 명백하다 [11] . 실로, ‘테마 및 분위기’ 아래 있는 ‘공포’, ‘귀여운’, ‘유머’ 등 정동을 중심으로 한 태그들은 게임에서뿐 아니라 다른 예술 장르에서도, 양식을 기술할 때도 사용될 수 있고 내용을 수식할 수도 있는 단어들이다. ‘양식이 두드러지는 게임’들, 그러니까 <펜티먼트>, <슬러지 라이프>, <에코 포인트 노바>의 ‘양식화된’ 삼총사든, <울트라킬>, <멈추지 마, 걸리팝!>, <스프롤>의 ‘복고풍’ 삼총사든, “직접적이고 실용적이고 무감한 표현이나 존재에서 벗어난 특질”을 첨예하게 구성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특별히 다른 게임에 비해 “주제와 형식 사이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구분을” 지으며 내용을 경시하거나 도구화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들 내에서 “스타일과 주제가 서로 대척”하긴커녕, 양식과 내용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상승시키며 “조화”를 이루고, 근본적으로 자신들 사이의 “굳이 필요하지 않은 구분”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최종적으로 묶는 건 ‘플레이’라는 기제다. 애초부터 게임을 다른 예술 장르와 구분하며, 기타 예술이 동경해 마지않는 그 궁극의 관객 참여 장치 말이다. 게임의 모든 예술적 요소들은 놀이라는 게임의 본색에 전적으로 징용된다. 그러니 플레이라는 대의 아래 양식이든 내용이든 나눠 봤자 하등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양식과 내용의 구별이 그렇게나 의미가 없다면, 왜 제3의 명칭이 아닌 ‘양식’이 아직도 태그의 이름에 포함되어 있는가? “스타일이 곧 예술”이라면, 플레이는 그 양식이 본격적으로 향유되어 작동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플레이 또한 그만의 고유한 양식을 갖는다. 게임에서 양식과 플레이는 서로가 서로를 작동시키고, 서로가 서로의 필요 조건인, 같은 진실의 두 화신 데미우르고스 [12] 다. 이 둘 모두를 발생시키는 공통된 진리는 바로 의지이다. “예술은 의지를 구현하고, 또 자극하거나 일깨우는 사물이나 공연이다. 예술가의 관점에서 보면 예술은 의지를 구현하는 것이며, 관객의 관점에서는 의지를 구현할 가상의 배경을 창조하는 것이다. [13] ” 양식은 의지가 발현되는 그 모습을 일컫는 것이지만, 게임에서 양식은 플레이라는 관객과 작품 간 상호작용에서 마침내 현현하고, 또 플레이가 자신의 양식을 가짐으로써 분리할 수 없는 영혼을 구성한다. 그리고 모든 예술이 “관객의 관점에서는 의지를 구현할 가상의 배경을 창조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일컬을 뚜렷하고 자연스러운 이름이 없어 ‘관객 참여형’과 같은 부자연스러운 접두사의 이식을 필요로 하는 반면, 게임은 플레이를 본원적으로 내재한다. “스타일은 예술 작품에서 결정의 원칙이자 예술가의 의지를 드러내는 특징적 표식이다. [14] ” 게임의 플레이에선 개발자의 의지뿐 아니라 플레이어의 의지도 춤을 추며, 플레이스타일은 그 춤선을 일컫는다. 그러니, 양식과 내용 모두 게임에서 플레이에 복무함에도 양식이 갖는 동등한 협업자적 위치와 내용의 순수한 기능적 위치는 다르다. “예술에서 ‘내용’이란 본질적으로 형식적 인 변형 과정에 의식을 끌어들이는 구실이며, 목적이자 미끼다. [15] ” 이 지점에서 내용과 양식 중 후자만이 그 두드러짐의 이름을 태그 분류 속에서 따로 얻게 된 연유는 분명해 보인다. 아무리 사실주의에 많은 환상이 덮어 띄워져 있다 하더라도, 그 사실주의조차 여전히 하나의 양식으로서 내용에 비해선 예술의 본질에 가까운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쾌감이 예술 작품의 유일하게 타당한 목적이며 그 자체로 충분히 정당화된다”면 게임에서 플레이는 그 쾌의 발생을 일컫고, 양식은 쾌가 발생되는 형태와 배경을 아우르는 관념이다 [16] . 그리고 내용은 양식에 속하는 한 부품에 불과하다. 만일 태그에 ‘내용이 두드러지는’ 게임을 담는 항목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양식화된’ 아래 하위 범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변화하는 미적 경험의 현장으로서 ‘양식화된’ ‘양식화된’의 정체를 추적하기 위해 손택의 지도를 따라간 자리엔, 우리가 ‘좋은 게임’이라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도 자리한 듯하다. 우리가 훌륭한 양식이라 부르는 것은 쾌를 탁월하게 제공하는 것이며, 게임에서 양식을 호명해야 했던 이유도 쾌 창출의 배경을 뛰어나게 구성하는 작품을 검색할 수 있어야 하는 필요에 의해서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좋은 게임은 어디까지나 쾌를 잘 주는, 재미있는 게임인 것이다. 예술이 그렇듯이. “세상은 궁극적으로 미적 현상이다. [17] ” 태그 체계의 작동은 재밌는 게임, 좋은 게임을 찾기 위한 플레이어들의 십시일반 노력이다. “작품이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파악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지각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반복을 인식해야만 예술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18] ” 이런 면에서 시청각적 양식을 넘어 향유 양식까지 모든 양식에 이름을 붙이는 태그 체계는 제품으로서 게임을 구매하기 위한 방법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작품의 패턴을 따라 그 궤적을 그리고자 하는 향유자의 태도를 나타낸다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명백하겠지만, 모든 태그는 각각이 곧 양식이다). 태그 체계는 때로 임의성이라는 예측 불능의 부산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향유자들이 자신의 감상을 기록하고 또 다른 잠재적 향유자에게 공유하는 이 미적 경험의 최전선이 얼마만큼의 열정과 혼돈을 (이 둘도 상호불가결하다) 품고 있는지 드러내는 지표일 뿐이다. 또 태그 체계가 스팀 측에서 제공한 장치임에도 각 항목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 또한, 사용자 책임 전가를 넘어, 결코 고정되는 일 없이 계속되는 과정인 열렬한 미적 경험의 한 양태였던 것이다. ‘양식화된’ 아래 게임들은 언제든지 자기 양식의 이름을 얻어 이사 나갈 수 있다. 어디까지나 ‘양식화된’은 당장 갈 곳 없는 게임들을 위한 임시 거처이니 말이다. <크루얼티 스쿼드 (Cruelty Squad)>, <마마의 잠든 천사들 (Mama‘s Sleeping Angels)>, <잼는 라쿤 게임 (Funi Raccoon Game)> 등 2020년대에 폭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이 ‘눈 아프고 머리 아프고 정신 없는’, ‘추함’의 미학을 선보이는 게임들은 지금은 그 미학을 일컬을 이름이 없지만 이렇게 점점 그 흐름을 쌓아나가다 보면 이름을 얻게 되는 것도 눈 깜짝할 사이이리라. 하지만 그들이 성장해 독립한다 해도 ‘양식화된’이란 집은 그 이후의 또 다른 이단아들과 새로운 흐름의 탄생을 위한 경계 공간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결국 ‘양식화된’은 사실주의의 단순한 안티 테제를 넘어, 게임이란 예술의 유동성을 대표하는 태그라 할 수 있다. [1] 수전 손택, 『해석에 반하여』 (서울: 윌북, 2025), 62쪽. [2] https://store.steampowered.com/tag/steam/?l=koreana [3] https://80.lv/articles/realistic-vs-stylized-technique-overview [4] 수전 손택, 『해석에 반하여』, 42쪽. [5] 위의 책, 56쪽. [6] 위의 책, 67쪽. [7] 위의 책, 58쪽. [8] 위의 책, 42쪽. [9] 위의 책, 63쪽. [10] 위의 책, 44쪽. [11] 위의 책, 46쪽. [12] 데미우르고스는 본래 유일신 신앙인 기독교에서 갈라져 나온 한 분파, 즉 영지주의에서 그 신의 또 다른 현현을 일컫는다. [13] 위의 책, 60쪽. [14] 위의 책, 61쪽. [15] 위의 책, 51쪽. [16] 위의 책, 57쪽. [17] 위의 책, 55쪽. [18] 위의 책, 65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영이 폭력과 고통, 분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을 제작하고 연극 <오페라 샬로트로니크>, <벼개가 된 사나히> 드라마터지를 맡았다. 『호르몬 일지』와 『게임 코러스』를 썼고, 『미친, 사랑의 노래』를 함께 썼다.
- 전쟁과 절차와 수사와 죽음과 : 탈군사주의와 전쟁 게임
글의 시작부터 이야기 했듯, 비디오 게임과 군사주의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파트너와도 같다. 즉 게임에 전쟁의 그림자가 조금이라도 드리우는 순간, 무시무시한 존재감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마사 이즈 데드」가 전쟁을 직접 지시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전쟁의 역량은 그 안에 깊숙히 파고든다. 다른 이유가 없다. 「마사 이즈 데드」가 비디오 게임이기 때문이다. < Back 25 GG Vol. 25. 8. 10. Tags: 군사주의, 욕망, 반전운동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unin Lee Writes and lectures freely across comics, games, and film. A lifework: clearing every Final Fantasy title except the MMORPGs. Mainly plays on the Steam Deck.
- “이걸 누가 읽는다고.” ─ 카라테카,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일지와 기록에 관하여
아마 슬슬 건강검진이 필요한 나이의 게이머 중에 페르시아의 왕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1989년에 나온 게임이니 젊은 게이머에게는 낯선 게임일 수도 있겠다. 가장 위대한 게임을 고르라면 1등이 아니더라도 100개 안에는 거의 반드시 들어갈 게임이고, 7세대 콘솔까지는 정규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며, 2025년에도 외전인 “로그: 페르시아의 왕자”가 나왔고, 흥행 성적은 아쉬웠지만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한 영화도 있으니 아직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IP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 Back "Who's Going to Read This?": On the Development Journals of Karateka and Prince of Persia, and on Keeping a Record 30 GG Vol. 26. 6. 10. March 5, 1990 … The Apple version of Prince of Persia sold fewer than 150 copies last month. To think it's dying out there like that. I can't believe it. Rory passed along to me what Latricia T., the marketing manager, supposedly said: "It's just an arcade game. Arcade games don't sell, you know." —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 (Starbeez, p. 297) There is probably almost no gamer of the age that warrants a regular health checkup by now who does not know Prince of Persia . It came out in 1989, so to younger gamers it may be an unfamiliar game. If you were asked to pick the greatest games, it would almost certainly land in the top 100 even if not at number one; its main series kept appearing through the seventh console generation; in 2025 a spin-off, The Rogue Prince of Persia , came out; and although it underperformed at the box office, there is even a film starring Jake Gyllenhaal—so might we not call it an IP that still holds its vitality? Of the Prince of Persia series, Jordan Mechner took part directly in developing the first and second games, and since game development back then was not so large in scale, his effort is contained in them almost in full. The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 is a book based on the development journal Mechner kept while making Prince of Persia 1 and 2. Some readers may already remember seeing this book. The cover might have been blue, or it might have been black—but the backstory of the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 needs explaining first. The journal came to be published not only because Mechner had kept his journal so well at the time, but because the first book began as a self-publication. In Korea, Jang Hee-jae took an interest in this book, got Mechner's permission, and carried out a domestic translation. Run through crowdfunding—an unfamiliar thing by the standards of the time—the project blew past its target of 1.2 million won (small by today's lights but a fairly large sum then) to reach 3.66 million won, and was even written up as a case of a successful funding campaign. Goodfunding, the service that hosted the campaign at the time, no longer exists. Clockwise from top left: the first original edition, the Goodfunding Korean translation, the U.S. 30th Anniversary Edition, and the Neukkimi Inneun Chaek Korean translation. I'll confess there is a reason it is hard for me to review this book objectively: I took part in the funding work around that time. By a strange turn, Jordan Mechner happened to be presenting his experiences at a classic-games session of GDC, held in San Francisco that year, and I went with a book I had ordered in advance from Amazon and had delivered to a San Francisco friend's place (the lodging I'd booked couldn't receive deliveries), got it signed, and used it for the funding. He wasn't the quickest to reply, but fortunately the communication wrapped up, the book came out safely, and it was later reissued with a new cover by the publisher Neukkimi Inneun Chaek. If you have a black Korean-language cover, you probably took part in the funding; a blue cover would be the later edition from the publisher. There is also an epub version on Dipia, excellent even by today's standards of quality. Because the e-book market had not yet fully settled, it was released at first only on Apple's iBooks and only later on domestic services—but it was a meaningful piece of work that folded in, as photos and videos, development materials from the time that the book itself could not hold. The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 brought out this way by the pooled efforts of many people, was—as I recall—probably the only one in Asia translated solely into Korean. Domestic publishing contracts, especially for foreign books, are mostly on a five-year basis, and after five years they usually go one of two ways: pay more to extend the contract, or let it go out of print. This contract term is one reason that, in today's publishing market especially, if you don't buy a book when it comes out you end up unable to get it. The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 went out of print in just that way, and as with many good books, it was not rare to see it listed at a premium of over 50,000 won in used bookshops. Around the time the Prince of Persia journal was published, we talked about how nice it would be if it sold well and the Karateka development journal (published in 2012) could come out too—but that did not actually happen. And only in 2026 did the Prince of Persia and Karateka development journals, which the game-book specialist publisher Starbeez had been steadily preparing all along, finally come out. Since it is a book made from a diary whose original already exists, one might think it does not differ much from the edition published in 2013; but in the interim Mechner donated the materials he had used in developing the games to The Strong museum in the U.S., and a 30th Anniversary Edition was newly published with Mechner's annotations added to those materials and the diary. Thanks to that, the Korean edition of the Prince of Persia journal published this time is based on the 30th Anniversary Edition, adding Mechner's additions explaining the circumstances of the time, extra visual materials that let you see that era, and the 30th-anniversary essay at the back. The newly published Karateka and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s. The covers use those of the original games. So, now that a quarter of the twenty-first century has passed, what we can gain from a diary spanning 1982 to 1993 is, frankly, hard to say. Since it is the development journal of a developer who made a masterpiece, you might expect it to hold some important secret of game development—but if you read this book with that aim, you will probably be disappointed. Something often handled in the software-development field is the retrospective. The word "retrospective" is not used only in software engineering, but it tends to have taken hold here in Korea as Agile development methodology was introduced. To me at least, as a programmer, the word wasn't all that familiar before then; the retrospective done in software engineering has more the sense of a methodology for looking back on past work and reviewing it so as to do the next work better. There is one good piece of culture in the American game industry: the postmortem. As you'll feel right away from the word, it is a medical term, and this too, like the retrospective, aims to organize and share what was done well and badly in development after a game is finished. A postmortem has no fixed format, but there is still a form shared to some degree: along with an overall description of the project, you organize three to five things the project did well and three to five things it did badly. This form wasn't so much proposed by anyone in particular as it was the format that used to be posted on the American game-development site Game Developer (formerly Gamasutra), and conferences and published magazines mainly used it too. Postmortems written this way were published under the title Postmortems from Game Developer , and in Korea under the title Seonggong-euro Ikkneun Geim Gaebal Story [Game Development Stories That Lead to Success]. The cover of Postmortems from Game Developer. In Korea, from the late 1990s and especially up to the mid-2000s, Western game-development theories were imported in quantity, and as the postmortem culture came in with them, the Korea Game Industry Agency translated the postmortems published on Gamasutra into Korean, while domestic game developers also wrote and shared postmortems of their own. This culture influenced not only Game Development Stories That Lead to Success but also the way postmortems of domestic games were additionally included at the back of the Korean-translated Widaehan Geim-ui Tansaeng [The Birth of Great Games]; the later volumes 2 and 3 then came out with domestic games only. Beyond that, there are cases like the Mabinogi development completion report, which was disclosed only internally at Nexon. The Mabinogi project completion report, exhibited at the 2019 exhibition 게임을 게임하다 /invite you_. Its contents are not disclosed to the public. The part most worth considering about such postmortems is that, just as that word "autopsy" suggests, the postmortem is a document written after a project ends. In fact, in a game market that has shifted toward online games, people used to joke, "Our game isn't dead yet—how can we do an autopsy?" Organizing what was done well and badly by reviewing things after a project ends is meaningful, but often only surviving projects get the chance to do such a postmortem, and a review done after the events are over inevitably carries bias. In this sense, the record that is a development journal is an important source for grasping the circumstances of the time, in that it is the product of whole decisions written out in a state of not knowing the future. We know the future, but back then it could not be known. At GDC 2012, Daniel Cook, a developer at Spry Fox, once made the radical argument to leave a diary instead of a game design document. The idea is that since the design will change anyway, you should write down reactions to ideas and your own thoughts—and I remember being struck by it at the time. Because it can leave a record of what intent lay behind a decision—something a postmortem can miss—this guidance lets you look back on the circumstances of the time more accurately than memory. In that respect, RPG no Tsukurikata: Hashino Katsura to "Metaphor: ReFantazio" [How to Make an RPG: Katsura Hashino and Metaphor: ReFantazio ], released in 2025 by Japan's Chikuma Shobō, is a book worth noting as a new type of archiving, hard to find among books published so far. Written by the Japanese writer, critic, and manga-story author Sayawaka—who interviewed developers inside Atlus over the period the game was being developed, starting from around when Metaphor: ReFantazio , before it earned the name Metaphor , had its development announced under the project name "PROJECT Re-FANTASY"—the book is also a singular attempt at a midpoint between development journal and archive. The Karateka and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s, unlike postmortems, contain the records of the time almost as they were, and so are excellent records for examining the mood and society of that era. That is true on the archival side. Even so, I do not want to place the value of these journals simply in being records of the time. August 29, 1983 … From now on I'll write this journal with more dignity. Oh, hell—who's going to read this anyway. — Karateka development journal (Starbeez, p. 164) We know what became of the game industry by 2026. Around the time the game industry's growth faltered once in the 1980s United States, Mechner—then a college student—bombs an exam, skips class, sometimes does no development at all, and agonizes over whether to do film work or computer work. He sometimes dreams that he will become a millionaire through games, looks at how other games did and optimistically figures he too can sell that many, gets disappointed with the results, and goes on making games all the same. The Apple II version of Prince of Persia didn't sell well, but it caught on as it was converted to other platforms. Thanks to that, we gained a decent IP in game history, and we get to read this development journal like this. The reissued Prince of Persia journal, befitting a 30th Anniversary Edition, adds period development materials and photos beyond Mechner's own materials—giving gamers who recall that era the pleasure of seeing the game's backstory, and letting young readers guess at the development environment of the time. But setting aside talk of the archive or of game-development knowledge and experience, these journals will offer you comfort too, in that they make you feel how, for anyone, master or not, pressing on along your own path while unable to know the future is a hard time. Books and Articles Mentioned Prince of Persia development journal (2026, Starbeez) Karateka development journal (2026, Starbeez) Widaehan Geim-ui Tansaeng [The Birth of Great Games], vols. 1–3 (2011–2013, Hanbit Media) Seonggong-euro Ikkneun Geim Gaebal Story [Game Development Stories That Lead to Success] (2004, Acorn) — Korean edition of Postmortems from Game Developer RPG no Tsukurikata: Hashino Katsura to "Metaphor: ReFantazio" (2025, Chikuma Shobō) "Want Innovation? Throw Out the Game Design Document" (2012, ThisIsGame, https://www.thisisgame.com/articles/31448 )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Inside BIC 2021- 감염병 시대의 인디게임페스티벌 참관기
부산행 전날, 병원에 들러 코로나 PCR 진단검사를 받았다.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벌(BIC Festival)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PCR 음성 확인증(혹은 백신 접종 완료증)을 제시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년 BIC-2020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감염병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었지만, 올해는 철저한 방역 절차 아래 오프라인에서도 행사가 개최되었다. 이렇듯,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의 대표적인 정서를 하나 꼽아보자면 ‘불안’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염자가 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다닐 수 있다는 불안감이 어딜 가든 짙게 깔려 있다. < Back Inside BIC 2021- 감염병 시대의 인디게임페스티벌 참관기 02 GG Vol. 21. 8. 10. 부산행 전날, 병원에 들러 코로나 PCR 진단검사를 받았다.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벌(BIC Festival)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PCR 음성 확인증(혹은 백신 접종 완료증)을 제시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작년 BIC-2020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감염병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었지만, 올해는 철저한 방역 절차 아래 오프라인에서도 행사가 개최되었다. 이렇듯,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의 대표적인 정서를 하나 꼽아보자면 ‘불안’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염자가 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다닐 수 있다는 불안감이 어딜 가든 짙게 깔려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에 게임은, 그 중에서도 인디 게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떠안은 채 9월 9일 부산으로 향했다. 서면 e스포츠 경기장에 도착해 PCR 확인 스티커를 받고, 온도체크와 QR 체크인을 완료한 후, 전시장의 게임 부스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올해 BIC-2021 행사의 일부로 기억되었다. BIC 페스티벌은 전 세계 40여개국에서 참여하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글로벌 인디게임 축제다. 2015년에 처음 개최된 이후, BIC 참가작들은 창의적인 게임 메커니즘을 시도 하거나 더 이상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요소를 과감하게 도입하면서 게임의 표현양식을 확장시켜 왔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상업적인 요소를 추구하는 참가작도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다양한 실험적인 게임들이 선보여지는 자리다. 안전한 성공의 공식만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디 게임은 불안을 기꺼이 감내하는 사람들의 게임이기도 하다. 나아가 불안은 게임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인 요소다. 게임 연구자 예스퍼 율(Jesper Juul)은 플레이어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게임은 지루한 게임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다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한다.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다는 불안함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게임인 것이다. 물론 게임에서 우리는 실패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에서의 실패는 그다지 무겁지 않다. 많은 경우, 사람은 게임에서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금방 털어낼 수 있다. (당신이 가챠 게임에 엄청난 액수를 낭비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게임은 실패와 불안에 대한 면역을 길러주는 백신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이번 BIC-2021의 참가작 들 중 일부를 현재의 코로나 상황과 연관 속에서 리뷰해보고자 한다. 전세계적인 감염병 유행이라는 초유의 상황 속에 이번 BIC-2021 참가작들을 맥락화해서 기록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게임 페스티벌의 특성상 완성된 게임이 아닌 데모버전의 게임들을 짧은 시간동안 플레이 해 보았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건택틱스〉 -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과거에는 사람이었던 존재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인간성을 상실하고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공격받은 사람은 또 다시 감염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한다. 좀비 감염병이 창궐한 상황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아군과 적군이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다. 누구나 좀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포 더 던〉, 〈배틀LIVE〉, 〈페이티드 얼라이브〉, 등, 감염에 대한 공포를 형상화하는 좀비가 등장하는 게임을 올해 참가작 중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의 〈건택틱스〉가 눈길을 끌었다. 3*3의 사각형 안에서 캐릭터 카드를 이동시키며 좀비와 싸우거나 피하거나를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좀비 서바이벌 카드 게임이다. 제한된 칸 안에서만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전략적인 사고가 중요하다. 사실 이 게임에서 ‘좀비’는 끝없이 몰려오는 적을 상징할 뿐, 아무리 많은 좀비를 처치하더라도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이 해결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좀비를 없애면 새로운 좀비 카드가 생산되어 필드에 나타나고, 다음 스테이지를 해금하면 더 강력한 좀비들이 나타난다. 게임 속 상황은 일견 절망적으로 보인다. 몇 달이면 코로나가 없었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믿었지만 1년 넘게 확진자 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금 우리의 상황 같기도 하다. 하지만 〈건택틱스〉를 플레이하다보면 불안과 긴장 속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하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스테이지에서 패배하더라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필드에서 주은 코인으로 캐릭터의 능력을 향상시켜 더 나은 조건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어쩔 때는 좀비에게 포위당해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 일도 생기지만, 그런 불안함 또한 이 게임을 스릴 있는 것으로 만드는 즐거움 중 하나다. * 〈건택틱스〉 플레이 화면. 〈디바이스0101〉 - 고립의 공포 낯선 방에서 눈을 뜬다. 모든 문은 잠겨있다. 플레이어는 숨겨진 아이템을 찾고 퍼즐을 풀어서 방을 탈출해야 한다. 복고풍 도트 그래픽과 퍼즐요소가 가미된 미스터리 어드벤처 게임이다. RPG메이커 제작툴을 이용해 만들어진 〈디바이스0101〉은 과거에 유행하던 방 탈출 게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주인공이 기억을 잃은 이유, 다른 가족들의 행방,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등, 초반부 스토리가 흡입력이 있어 완성이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편, 외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로 표상되는 위험이 존재하며 별장 내부에 고립되어 있는 게임 속 상황은, 오늘날 바이러스의 전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집에 머무르는 요즘 우리의 모습과도 맞닿아있는 것도 같다. * 〈디바이스0101〉 플레이 화면. 〈셔터냥〉, 너와 나를 이어주는 카메라 〈셔터냥〉은 길을 잃은 고양이가 카메라를 이용해 소녀에게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따뜻한 분위기의 플랫포머 게임이다. 마우스 왼쪽 클릭을 하면 고양이가 머리에 쓴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오른쪽 클릭을 눌러 찍은 사진을 맵에 배치할 수 있다. 다양한 오브젝트들을 복제해 그 위를 점프하고 이동하는, 제작자들이 ‘카메라 액션’이라고 이름 붙인 창의적인 게임 메커니즘이 돋보인다. 마찬가지로 카메라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게임으로 이 있다. 플레이어는 액션 영화를 촬영하는 배우이자 카메라가 되어, 건물들 사이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배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 혼자 플레이할 때는 왼손 키보드로 배우를 이동하는 동시에 오른손 마우스로는 카메라를 조종하고, 두 사람이 플레이하는 경우에는 각각 키보드-배우와 마우스-카메라를 담당해 플레이하면 된다. 카메라 화면 밖으로 배우의 모습이 완전히 벗어나면 게임 오버다. 왼손과 오른손의 조화, 배우를 조종하는 사람과 카메라를 조종하는 사람의 협동이 요구되는, 창의적이면서도 컨트롤 난이도가 있는 게임이다. 두 게임에서 게임 화면 속 ‘카메라’ 화면이 등장한다는 점이 인상 깊다. 모니터 속에 또 다른 화면이라는 점에서 두 게임 모두 메타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그것이 독특한 게임 컨트롤 메커니즘과도 연관되어 있어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 때 각각의 카메라는 두 존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셔터냥〉에서는 소녀와 고양이가 만날 수 있도록 매개해주는 역할을, 에서는 카메라와 배우의 협동을 이끌어낸다. 교실문이 잠기고, 많은 기업들은 비대면 출근을 시행하는 비대면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영상 통화나 화상 채팅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유지하고 있다. 〈셔터냥〉과 은 이 같은 매개된 연결감각이 반영된 게임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셔터냥〉 플레이 화면. * 〈Ready Action〉 플레이 화면. 〈더웨이크〉 -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혼수상태에 빠진 한 남자가 일기장을 남겼다. 일기장은 남자의 거짓말을 암호로 바꾸어 기록해주었다. 〈레플리카〉와 〈리갈던전〉에 이어 ‘죄책감 3부작’을 마무리하는 개발자 소미(Somi)의 신작 〈더웨이크〉이다. 플레이어는 일기장의 암호를 해독해 나가며 남자의 과거 기억들을 따라가게 된다. 일기장의 주인인 남자는 어린 시절 형제와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혐오하면서도 연민하며,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전철을 밟을까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런 모순된 감정을 남자는 “거짓”되었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어쩌면 내 삶은, 이 한 문장이 전부였구나, 싶다. ‘내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다.’“ 게임은 언뜻 한 남자의 개인적인 일생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기록’의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도 하다. 진실은 때로는 모순되며 논리적이지도 않다. 사건은 생략되고, 누락되거나, 혹은 강조되면서 여러 방식으로 비춰질 수 있다. 누락되어서 읽히지 않았던 암호가 해독된 후, 일기는 조금 더 복합적인 진실을 보여준다. 먼 훗날 우리는 코로나19 판데믹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하게 될까? 배달 플랫폼, 게임, 메타버스 산업의 성장을 촉진했지만, 동시에 청소년들의 학업 성취도를 낮추고 소중한 학창 시절 추억을 쌓을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성공적인 방역 관리 체계를 보여주었지만,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 주거 격차가 문제로 떠올랐다. 이런 2021년을 우리는 나중에 어떻게 떠올리게 될까?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김지윤 연세대학교에서 언론홍보영상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문화연구를 전공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게임을 하다가 게임의 신체적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게 되어 게임 연구를 시작했다. 여성 게이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분석한 석사학위 논문을 써서 202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우수 학위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 영화·미디어학과 (Cinema and Media Studies) 박사 과정에서 게임문화를 전공하고 있다.
- 북미의 루트박스: 한국과 다르면서 또 같은
관계자 A는 “미국게임업계의 모바일 게임을 경시하는 풍조는 오히려 업계관계자들 특히나 게임개발자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다”고 말하며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들은 좋은 개발자를 영입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작이 아니면 거들떠도 안보는 사람들이 많다. 인게임 결제가 있는 게임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크다보니 오히려 수가 적고 따라서 로트박스 문제는 관심 밖이라는 느낌이 있다”고 말하며 루트박스가 커뮤니티 안에서 크게 회자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 Back 16 GG Vol. 24.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hoon Hong Lives in California and works in the game industry. Aims to offer insight to as many people as possible through podcast appearances and contributions to various outlets. Hopes to spend a lifetime writing engaging pieces across every field, from fashion to games.
- 음식, 요리 - 인류의 오래된 문화행위는 디지털공간에서 새롭게 의미지어지는가
오락실에서 <닌자 거북이>를 붙들어 본 이들은 너덜너덜해진 주인공 닌자거북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피자 한 조각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한 대 맞을 때마다 깎여나가던 체력이 어디선가 굴러나온 피자를 밟는 순간 차오르곤 했다. 언뜻 보기에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회복 메커니즘은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인데, 게임 속 피자를 그저 밟았다고 적에게 두들겨맞아 상처입은 체력이 회복된다는 맥락은 뭔가 앞뒤가 안맞기 때문이다. < Back 음식, 요리 - 인류의 오래된 문화행위는 디지털공간에서 새롭게 의미지어지는가 30 GG Vol. 26. 6. 10. 디지털게임은 음식을 어떻게 다뤄 왔으며, 우리는 그 화면을 통해 무엇을 보고 있는가 오락실에서 <닌자 거북이>를 붙들어 본 이들은 너덜너덜해진 주인공 닌자거북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피자 한 조각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한 대 맞을 때마다 깎여나가던 체력이 어디선가 굴러나온 피자를 밟는 순간 차오르곤 했다. 언뜻 보기에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회복 메커니즘은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인데, 게임 속 피자를 그저 밟았다고 적에게 두들겨맞아 상처입은 체력이 회복된다는 맥락은 뭔가 앞뒤가 안맞기 때문이다. 시청각만으로 굴러가는 디지털게임의 가상세계에서 맛과 향이 중심을 이루는 음식과, 그 음식을 먹는 행위는 뭔가 안 맞는 듯 하면서도 게임의 역사 속에서 때로는 주역으로, 때로는 조연으로 언제나 함께 해 온 바 있다. 마찬가지로 맛과 향의 전달이 불가능한 영상매체에서 “먹방”이라는 이름의 콘텐츠가 흥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수 있겠지만, 과정의 매체인 게임 속에서 이 먹는 행위와 그 먹는 대상은 좀더 큰 부피를 차지한다. 게임에서 먹는다는 행위는 무엇인가. 화면 속의 사과 한 알과 통닭 한 마리, 정성껏 차려낸 한 상의 밥은 플레이어의 입으로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그를 대신하는 무언가의 역할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기술이 두꺼워지고 장르가 갈라지는 동안 디지털 공간에 그려진 이 먹는 일은 함께 발전해 왔고, 무엇보다 바닥에 놓인 것을 줍는 일에서 무언가를 손수 짓는 일 쪽으로 슬그머니 무게를 옮겨온 바 있다. 줍고 메우는 음식 — 닿으면 사라지는 것 초창기 디지털게임에서 음식은 그저 화면 어딘가에 떨어져 있었고, 플레이어가 할 일은 거기에 닿는 것뿐이었다. 이를테면 ‘뱀 게임’으로 불리는 <니블러>류가 대표적이다. 화면을 기어다니는 뱀이 점점이 놓인 먹이를 삼킬 때마다 몸이 한 칸씩 길어지는데, 먹는다는 게 곧 쌓는다는 것임이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규칙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저 움직이는 막대기가 다른 색 도트에 가서 닿는다는 시각이미지이지만, 이는 ‘뱀’과 ‘먹이’라는 명명을 통해 ‘먹는 행위’를 거쳐 직관적인 이해에 도달한다. 여기 더해 먹이를 먹으면 몸길이가 그만큼 늘어나고, 그 늘어난 길이로 인해 결국 게임오버가 된다는 규칙은 먹는다는 행위가 몸을 키운다는 사실과 연결되며 도트 단위의 움직임을 좀더 먹는 행위에 가깝게 이해시킨다. * 구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스네이크 게임. 오브젝트와 충돌시 점점 길어지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라는 규칙은 사과를 먹는 뱀으로의 은유를 통해 게임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하필 사과와 뱀이라는 창세기적 모티프도 생각해봄직하다. 도트에 충돌하면 무언가를 먹는다고 이해하는 방식은 뱀이 먹이를 먹는 것에 머물지 않고 확장되었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아케이드 게임 <손손>은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보너스 점수를 획득하는 오브젝트로 다양한 간식류를 등장시켰다.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오브젝트에 충돌시키는 방식이었지만, 좀더 디테일하게 오브젝트를 음식으로 설정함으로써 우리는 점수를 획득한다가 아닌 ‘먹는다’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방식은 <버블보블>에 이르면 아예 게임을 간식 파티로 만드는데, 간단한 과일부터 시작해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사탕류를 지나 대형 보너스 점수는 거대한 간식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연출을 통해 게임에서 무언가를 획득하는 일에 음식을 강하게 연관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90년대 벨트스크롤 액션 시대에 들어 음식은 다른 일을 떠맡는다. 이 무렵부터는 적과 부딪히면 바로 한 번의 기회가 소진되는 방식이 아닌 체력 게이지를 통해 기회 상실을 점감하는 방식의 게임들이 나타나는데, 벨트스크롤 장르가 대표적이다. 체력 게이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음식과 먹는 행위는 깎인 체력을 채우는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파이널 파이트>에서 길가의 드럼통이나 공중전화 박스를 부수면 통닭이며 사과가 굴러나와 주인공의 체력을 채워주곤 했는데, 이 또한 앞서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해보면 다소 엉뚱한 구석을 갖고 있다. 적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체력이 깎인 주인공을 치료하는 방법은 사실 통닭을 뜯는 것이 아니라 약을 바르고 깁스를 하고 밴드를 붙이는 일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 <파이널 파이트>에서 체력 게이지가 빠진 캐릭터는 음식 오브젝트 옆에서 버튼을 누르면 음식을 '먹는'다. 왜 드럼통을 부수면 안에서 바베큐가 나오는지는 미지수이지만, 우리는 거기까지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먹어서 회복된다는 개념은 따지고 들면 응급처치라기보다 한참 느긋한 보양에 가까운 일이다. 식약동원, 뭔가를 먹는 것이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이 개념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널리 퍼져있는 덕분에 우리는 음식에 가서 부딪히면 체력이 차오르는 현장에 딱히 토를 달지 않는다. 디지털게임의 초창기부터 음식은 게임의 규칙과 굉장히 강하게 결부되어 가상공간 안에 자리해 왔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음식에 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초적 관념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가상공간에 펼쳐지는 규칙은 결국 현실의 누군가가 플레이하므로, 대부분의 규칙은 현실에서 익숙한 무언가의 재현일 수 밖에 없는데 음식이라는 모티프는 각각의 상황에서 규칙을 설명하기 위한 굉장히 유용한 보편 인식이었다. 요리의 등장 — 먹기 앞에 들어선 한 단계 아주 엄밀한 분석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게임 속의 음식이 처음부터 완성된 음식이 아닌 무언가 재료를 구해 만들어내는, 이른바 요리의 과정을 품게 되는 데에는 각각의 게임이 갖는 플레잉타임의 역할 또한 적지 않아 보인다. 세이브/로드 기능을 기반으로 수십, 수 백 시간을 이어가는 롤플레잉 게임과 이를 서버 기반으로 준영속적으로 확장한 온라인 게임 시대에 오면 게임 속 음식은 완성품보다도 그 만드는 과정 자체를 재현함으로써 추가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요리의 결과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에서 플레이어는 들판을 쏘다니며 캐낸 버섯과 고기, 과일을 요리한다. 추위를 견디게 해주거나 한동안 끌어올려 주는 버프가 이들 요리의 기능이며, 딱히 정답 레시피를 게임 안에서 좀처럼 직접적으로 일러주지 않는 덕분에 별도 공략에 의존하지 않는 많은 플레이어는 이것저것 냄비에 던져 넣어 보다가 더러 정체불명의 '수상한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과정을 거친다. 뭘 넣으면 뭐가 되는지를 몸으로 더듬어 익혀 가는 이 과정은, 요리라는 게 본래 숱한 시행착오가 쌓여 만들어진 지식이었음을 슬며시 일깨운다. *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에 나오는 레시피 공략 모음. 체력회복과 버프를 가진 요리들의 재료와 효과를 정리한다. 출처: 디시인사이드 닌텐도 마이너 갤러리. 다양한 롤플레잉 기반 게임들에서 요리는 이제 빼놓기 어려운 ‘생활 콘텐츠’로 불린다. ‘자연’이라 불리는 월드에서 채집과 농업, 수렵을 통해 획득한 재료는 ‘자연’월드와 대척점을 이루는 플레이어들의 ‘도시’ 혹은 공동체 안에서 요리가 되어 가상주체인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진일보에 기여한다. 이 대목에서 게임 속 음식은 비로소 식약동원의 자리에 올라선다. 먹어서 강해지되, 그 강함을 얻으려면 먼저 무언가를 기르거나 거둔 뒤 다듬어 지어야 한다는 것이 함께 작동한다. 주워서 메우던 음식이 길러서 짓는 음식으로 바뀌는 이 순간은 플레이어를 먹는 자로서만의 의미를 넘어 요리하는 자로서의 존재감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먹지 않으면 죽는 음식 — 생존과 식량의 재현 단순히 부딪히는 오브젝트에서 시작해 자연의 산물을 인공적으로 가공해 삶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바꿔내는 요리의 과정을 품게 된 게임 속 음식과 요리는 또다른 규칙과 만나면서 음식과 요리가 가졌던 가장 오래된 질문으로 되돌아가는데, 바로 ‘먹지 않으면 죽는다’이다. 사실상 서바이벌이라는 장르를 담는 모든 게임의 핵심 규칙은 먹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아니 애초부터 서바이벌 자체를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마존 정글에 떨어진 <그린 헬>의 플레이어는 허기 수치 하나만 들여다봐선 살아남지 못한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에 수분까지 네 갈래의 영양을 따로 챙겨야 하고, 고기만 내리 먹다 보면 탄수화물이 바닥을 긁는다. 날고기를 덥석 삼키면 기생충이 들러붙고 정신력이 깎이며, 그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몸은 환각과 병으로 주저앉는다. 눈 덮인 캐나다 산야를 헤매는 <더 롱 다크>도 사정이 비슷하다. 식재료마다 신선도가 매겨져 있어 상한 고기나 날것을 함부로 입에 넣으면 식중독을 각오해야 하고, 불에 익히는 일은 그 위험을 낮추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 기술로 제시된다. 이런 게임에서 요리란 능력치를 위한 선택지 같은 게 아니라 날것에 도사린 위험을 길들여 겨우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절박한 손질로 그려진다. 이는 개인으로서의 플레이어가 아닌 사회, 집단의 생존을 전제로 하는 운영시뮬레이션 영역에 들어오면 좀더 무게감을 갖는다. <배니쉬드>나 <안노> 시리즈에서 음식은 식량이라는 이름으로 이해된다. 대규모 사회집단이 생명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먹거리를 가리키는 식량은 좀더 사회적 개념이 되는데, 이 때도 요리의 개념은 여전히 작동한다. 서구권의 식량을 모티프로 삼는 많은 게임들에서는 밀을 경작하고 수확한 뒤 밀가루로 만들고, 이를 다시 빵으로 굽는 과정이 반드시 그려진다. 간단한 허기 해결에 머무르던 고깃덩어리는 향신료를 덧붙여 요리로 거듭나며 기분이나 행복도 같은 버프를 만들어낸다. 버프로서의 의미는 기본 전제인 ‘먹지 않으면 죽는다’와 어우러지며 복합적으로 게임의 분위기를 긍정적, 부정적 방향 모두로 이끌어가며, 사실상 이들 게임에서 식량과 요리는 게임의 핵심 뼈대로 기능한다. 앞 단계의 게임들이 음식을 예쁘고 푸짐한 무엇으로 그렸다면, 생존 게임에 이르러 음식은 다시 촌각을 다투는 생의 조건으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이게 그냥 출발점으로의 복귀는 아니다. 줍던 음식에서 짓던 음식을 거쳐 돌아온 이 식량은, 사람이 그래 왔듯 익히고 갈무리하고 손질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안전한 식량이 된다는 사실까지 함께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으로 음식을 이해한다는 것 닿기만 하면 되던 음식은 깎인 몸을 메우는 회복과 보양으로서의 의미를 보강했고, 손수 재료를 가져다 만들어 먹는 음식이 되었다가, 먹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필수재이자 사회적 자원으로도 나타난다. 이 흐름은 한편으로는 인류 문명이 먹거리를 대해 온 흐름과도 유사한 경로를 보인다. 닥치는 대로 주워 먹던 먹이에서 갈무리해 쟁여 두는 식량으로, 다시 익히고 차려 내는 음식으로 건너온 경로는 디지털공간에서 유사한 흐름으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레비-스트로스가 날것과 익힌 것의 대립으로 정리한, 익힌다는 행위가 곧 자연을 문화로 바꾸는 사람만의 표지라던 그 통찰은 디지털게임의 발전사 안에서 한 번 더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레비-스트로스가 음식에서 문화를 꺼내드는 일은 게임 속에 재현된 음식과 요리들을 익숙하게 만나 온 이들에게도 익숙한 흐름일 것이다. 사실 음식이라는 이름 자체에는 이미 생물학적 본능의 해결을 넘어선, 층층이 쌓아 온 문화의 두터움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성당에서 구세주의 살과 피를 빵과 술로 일컬었던 것처럼, 하늘과 땅에 올리는 제사에 반드시 ‘정성스런’ 음식을 차리는 과정이 들어있던 것처럼 음식과 요리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그 위에 쌓아올린 오랜 문화의 적층이다. 그리고 디지털게임에 재현된 음식과 요리 또한 같은 맥락에서 계속 새로운 의미를 쌓아 나간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즉시효과를 갖는 물약류와 달리 느린 회복과 버프의 의미로 작동하던 음식은 개별 음식에서 한상차림으로 업그레이드되며 레이드 전에 공대원이 다같이 모여 벌이는 의례의 형태를 갖게 되었고, 가상공간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가공의 요리들은 도리어 현실의 요리로 침범해 들어오며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깟 디지털 덩어리로 만들어진, 맛도 향도 없이 그저 이름만 음식이라 붙여졌을 뿐인 것이라고 부르기엔 그 디지털 덩어리가 오고 가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리 납작하지만은 않다. 세상 사는 일이 온통 먹는 일이다. 나는 가끔 농담조로, 텔레비전에서 시간 뜰 때 자주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도 먹방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살기 위해 달리는 톰슨가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다큐의 주인공 격인 사자나 하이에나의 입장에서 이건 분명 먹는 이야기다. 먹는 이야기가 생물학적 욕구를 넘어 사회문화적 의례로 자리잡았고, 우리는 그렇게 생겨난 새로운 의미들을 디지털게임에 옮기면서 다시금 또다른 의미의 상차림을 경험한다. 디자이너가 그려낸 이 의미들은 다시금 식탁에 앉은 플레이어들로부터 새로운 의미로 탄생한다. 먹는 이야기가 먹는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았듯, 게임 속에 그려낸 먹는 이야기 또한 결코 먹는 이야기에 머무르지는 않아 보인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Assessing Genshin’s Soft Power Impact on Southeast Asia
At the Anime Festival Asia (AFA) held in Singapore in November 2023, miHoYo assumed the prime spot at the exhibition—squarely at the entrance of the convention centre. Consequently, fans flocked to the booth for physical merchandise, resulting in three days of traffic slowdown. The booth had photo corners and character goods from the game Genshin Impact (GI), miHoYo’s ticket to global fame since its publication in 2020.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AAA의 한계를 뒤로 하는 북미 게임업계의 뉴미들
지난해 11월, 워너 브라더스 게임즈는 수년간 공들여 개발한 <수어사이드 스쿼드: 킬 더 저스티스 리그>에 오프라인 모드를 추가한다는 내용을 조용히 발표했다. 겉으로는 유저 편의를 위한 업데이트처럼 보였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사실상의 서비스 종료 예고로 받아들였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hoon Hong Lives in California and works in the game industry. Aims to offer insight to as many people as possible through podcast appearances and contributions to various outlets. Hopes to spend a lifetime writing engaging pieces across every field, from fashion to gam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