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과 위계, 설계와 창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어떻게 플레이어를 운영으로 유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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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Vol.
25. 12. 10.

기본적으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시설의 설치와 건설, 관리를 중심으로 거시적인 운영과 통제를 이뤄가는 장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면, 개인 가게 운영 같은 예외적인 소재를 빼면 대다수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전능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출발한다는 점에 있다. 플레이어는 삼인칭 전지적 시점 아래 놓인 텅 빈 (또는 개발되지 않은) 공간에 건설 내지는 설치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즉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전지적 시점에서 전능성을 플레이어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게임의 전제를 성립한다. 이 시점의 주체를 설명하기 위해 게임은 종종 플레이어를 보통 지도자나 경영자로 칭하곤 한다.
하지만, 이 전능은 어느 정도 기만적이다.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의 전지전능은 자유를 만끽하라고 부여하는 게 아니라, 설계와 창출이라는 과정과 목표를 달성하라고 부여하기 때문이다. 샌드박스 모드가 아닌 이상,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일정한 서사와 목표를 부여한다. 그 다음 자본과 자원의 제약을 부여하고 게임이 다루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설계해 운영하길 원한다. 이런 제약과 종속, 창출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이 어떻게 무한한 자유에 목적과 형식을 부여해 난관을 설정하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설계와 창출을 유도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숲과 나무, 두 시점 축 간의 제약과 쾌감
우선 운영 시뮬레이션의 시점을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일인칭 시점보다 삼인칭 시점으로 특정 공간 속 거대한 ‘흐름’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숲과 나무의 비유를 빌리자면, 나무를 상세히 배치해 숲으로 만들 능력을 요구하는 장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개별 나무를 보고 만질 수 있는 미시적인 시점이나 순간은 제한되는 데다 게임 디자인의 핵심에서도 벗어나 있다.
간단히 말해 이용객 (이 글에서 이용객은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 전반에 등장하는 손님이나 거주민을 총칭한다)을 통해 일인칭 시점으로 자신이 설계한 공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체험’하는 건 가능하지만 - <심시티>나 <시티즈> 시리즈 같은 게임처럼 일인칭으로 체감하기엔 복잡한 소재적 한계로 (예를 들어 무수한 데이터를 연산 처리해야 하는 도시 운영) 일인칭 시점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 세계를 설계, 나아가 운영하려면 시점의 주체가 보이지 않는, 전지전능한 삼인칭 조감 시점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렇기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일인칭 시점을 제공하는 이용객은 플레이어와 무관한 NPC이다. 다시 말해 플레이어가 이용객 시점으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들은 플레이어의 주체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용객은 게임 내 인공지능이 조합한 취향과 생각, 욕구 수치에 맞춰 플레이어가 설계한 공간에 속해, 거대한 흐름의 일부로서 움직일 뿐이다. 장르 자체가 인간으로서는 게임 진행을 할 수 없고, 신이 되길 요구한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이용객은 주체보다는, 객체이자 게임 내 평가 체계의 일부에 가깝다. NPC 인공지능인 ‘이용객’은 플레이어가 설계한 공간과 시설을 이용하고, 감상을 남긴다. 이 감상은 곧 평가 데이터로서 치환된 후 누적되어 총체적인 세계에 대한 평갓값으로 제시된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이 이용객이 어떻게 행동할지 전혀 개입할 수 없지만, 그들이 남기는 감상과 이런 감상이 뭉쳐 만들어지는 빅 데이터 표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신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이용객을 위시해‘빙의’하듯이 시선을 빌어 자신이 설계해 운영하는 공간 속 흐름에 합류해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감상하는 공간은 결국 플레이어 자신이 만든 세계이기 때문에 이런 감상과 미적인 만족감엔 궁극적으로는 자기애적인 성향도 띄게 된다.
관련 팬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는 소통 역시 이런 두 시선 축의 교차에 기반하고 있다. 자신이 만들어낸 공간의 아름다움을 (물론 이 아름다움엔 단순히 숭고미 이외에도, ‘홀로코스트 타이쿤’으로 대표되는 골계미 역시 포함된다) 삼인칭 조감 시점과 일인칭 관찰자 시점을 오가는 다양한 카메라-눈으로 영상과 스크린숏으로 포착한 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다른 팬들과 소통한다. 인정 욕구와 승인, 성취감이 거시와 미시 두 시선 축을 오가면서 이뤄진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전지전능하며 거시적인 삼인칭 조감 시점을 기본으로 플레이어가 세계를 구축하도록 한 뒤, 세계가 작동하는 모습을 삼인칭 조감 시점과 동시에 수동적이며 미시적인 일인칭 이용객 시점으로도 볼 수 있게 한다. 이런 교차 속에서 게임은 빅 데이터로서 축적된 이용객의 감상/민원 표본을 수치로 치환해 플레이어가 운영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평가로 제시한다. 플레이어는 이 수치를 확인하면서 향후 운영을 어떻게 할지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이 삼인칭과 일인칭 시점을 교차할 수 있도록 하면서 거시적 감각과 미시적 감각을 동시에 제공해, 플레이어가 설계한 세계를 체험케 하면서 (어느 정도 자기애적 성향도 있는) 미적 쾌감을 누리도록 한다.

시설의 위계와 조합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이 가장 먼저 플레이어에게 설치하길 요구하는 건 바로 도로나 철도 같은 ‘접근 수단’이다. ‘심시티’나 ‘타이쿤’ 류 게임을 플레이하면 알 수 있지만, ‘접근 수단’을 건설하지 않으면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공간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 접근성은 시설과 손님 간의 관계일 수도 있으며 (놀이공원 운영 시뮬레이션), 도시 내 다양한 개발 구역과 시설일 수도 있으며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 도시 내부 및 도시/국가 간 교통 체계일 수도 있다. (교통 운영 시뮬레이션)
이렇게 시설에 접근할 수단이 마련되고 나면,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시설 설계와 관리 단계로 넘어간다. 이 단계에서 게임은 설치할 수 있는 시설에 위계질서를 부여한다. 놀이공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이런 장르 내 시설 간 위계질서가 상징적이고 명징하게 드러내는 하위 장르일 것이다. 이 하위 장르를 대표하는 놀이기구로는 회전목마와 롤러코스터가 있다. 전자는 저자극 놀이기구를 대표하며 후자는 고자극 놀이기구로 대표한다.
하지만 이런 대표성과 별개로 게임 내 위계 차는 명확하다. 애당초 이 장르는 아예 ‘롤러코스터’를 게임 제목에 넣는 경향도 있기에 (<‘롤러코스터’ 타이쿤>, <플래닛 ‘코스터’>) 롤러코스터는 게임의 간판격이며 동시에 상당한 숙련 난이도를 요구하며 플레이어를 유혹한다. 반대로 회전목마는 롤러코스터보다 설치 비용도 저렴하고 간편하지만, 동시에 종합적인 수치 역시 롤러코스터보다 낮다. 장르 팬들 역시 아무리 회전목마를 선호하더라도 그것을 게임의 핵심으로까지 여기지 않는다.
설치 난도 면에서도 둘은 명백히 차이가 있다. 회전목마는 설치한 후 접근 수단을 깔아두는 것만으로도, 작동하며 즐거움 수치 역시 대체로 낮은 변화폭 속에서 균일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롤러코스터는 트랙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즐거움 수치가 천차만별로 변하기에 훨씬 더 공을 들이고 테스트로 확인해봐야 한다. 그렇기에 회전목마, 나아가 낮은 수치의 저자극 놀이기구들은 일종의 상징물이자 시나리오 초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하지만, 가동 이후 운영에서는 유지 보수 이외엔 비중이 줄어들며, 플레이어 역시 롤러코스터 설계나 총체적인 운영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즉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 내에서 ‘시설’은 게임으로서 현실의 시설 특성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수치화해 위계를 부여하고 그 위계에 맞춰 설치하고 운영하길 요구한다.
물론 이 위계질서가 일방적인 상하 관계로만 단정 짓기엔 어렵다. 이런 일방적인 상하 관계를 지양하고 특색의 강조, 상성과 조화로 상승 효과를 내려는 시도 역시 장르의 중요한 어법이기 때문이다. 다시 놀이공원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로 돌아가 보자. 롤러코스터는 훨씬 설치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놀이공원의 꽃으로 고수익을 보장하긴 하지만, 모든 이용객이 롤러코스터를 좋아한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심지어 롤러코스터 속에서도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격렬도나 흥미 수치를 무조건 높게 나오게 설계한다고 해서 높은 인기로 직결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회전목마로 대표되는 저자극 놀이기구도 시간이 지날수록 비중이 줄어들긴 하지만, 수요가 아예 사라지진 않는다.
이런 복잡한 위계질서를 잘 보여주는 놀이기구가 있다면 바로 운송 시설이 있다. 운송 시설은 여러모로 롤러코스터와 대조되는 놀이기구다. 기본적으로 운송 시설/기구는 열차나 모노레일 등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롤러코스터처럼 ‘트랙’ 기반으로 설계된다. 하지만 총체적인 즐거움 수치 면에서는 롤러코스터보다는 확실히 밑에 있으며, 이 시설만으로는 정상적인 놀이공원 운영을 할 수 없다. 그 점에서 운송 시설/기구는 롤러코스터처럼 트랙 기반 놀이기구임에도 명백히 회전목마처럼 저자극 놀이기구에 속한다.
그렇다고 운송 시설을 잉여적이고 쓸모없는 놀이기구라 판단하기엔 성급하다. 분명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기 떄문이다. 운송 기구는 탑승하는 이용객의 에너지 감소 수치를 절감하거나 멀리 떨어진 다른 구역으로 수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롤러코스터가 할 수 없는 걸 수행할 수 있다. 어떤 지점에서는 놀이기구이면서도 접근 수단에 가까운 양태를 띄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운송 시설의 이런 복합적인 면모는 상성 등 복잡한 개별 요소들이 얽혀 있으며, 어떤 소수 의견과 즐거움 이외의 수치들이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의 변수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이점이 아닌 약점이나 제약으로 이런 위계질서에 복잡함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런 약점 위주로 변수를 구성하는 디자인은 놀이공원 운영보다는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디자인이다. 그렇기에 게임 속 시설들 역시, 이 시설이 과연 지금 플레이어가 운영하는 도시와 걸맞은지를 판단하도록 요구하는 약점/제약이 많다. 혐오 시설 및 환경 판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오염 등급이라던가 특정 조건 (강가에만 설치할 수 있다던가)을 만족해야 설치할 수 있는 시설들이 대표적이다.
전반적으로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놀이공원 시뮬레이션 게임보다도 세계=도시 규모의 변화에 따라, 시설 활용도 역시 극적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어, 시설 확충이나 교체를 요구하는 경향이 짙다. 여기다 환경, 복지, 세금, 인프라 등 이용객 행복도 수치에 관여하는 변수가 많기에, 이 변수들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규모의 비례에 따라 시뮬레이션 난이도가 올라가는 장르적 경향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신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에서 시설 설치는 큼직한 인프라 위주로 이뤄지는 경향이 크다. 예를 들어 실제 도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거, 상업, 산업, 사무 같은 경우 접근 수단 (대표적으로 도로)을 깐 후 밀도별 구역 타일으로 배치하면 자동적으로 개발된다. 이는 <트랜스포트 타이쿤>이나 <A열차로 가자!> 같은 교통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특히 후자 같은 경우 일본만의 특수성 때문에 하위 장르 간의 혼종적인 경향성도 띈다.), 좀 더 다루는 범위가 폭넓은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에서 잘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도시 운영 시뮬레이션 같은 경우, 지형과 기후 같은 플레이어가 통제할 수 없는 상수나 돌발 별수가 자주 발생하기에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다층적으로 판단하고 보완할 능력이 필요하다.
즉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에서 시설 간 관계는 일정한 위계가 있되 어떤 스펙트럼에 따라 위계와 활용 방식이 정해지며, 이 스펙트럼의 기준이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따라 전체적인 게임 방향성이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스펙트럼의 폭이 얼마나 넓으냐부터 시작해 스펙트럼 내 요소들이 어떤 위계를 띄느냐, 요소들의 조합이 어떤 효과를 내느냐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무한한(듯한) 자유를 길들여 경제 논리에 종속시키기
운영 시뮬레이션 장르는 일견 무한한 자유 내지는 전능성을 보장하는 듯하면서도, 이걸 제약하는 방식으로 플레이어를 궁극적으로 세계의 설계와 창출이라는 거대한 목표로 유도할지 궁리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이 제약은 시점의 제약부터 시작해 (‘만들어낸 세계를 미적으로 만끽하고 싶으면 전지전능한 삼인칭 조감 시점으로 돌아가서 설계해야만 한다’), 시설의 상성과 조합까지 (‘시설은 스펙트럼에 기반한 일정한 위계와 상성 관계가 있으며, 접근 수단과 함께 효율적으로 설계 및 베치해 이용객을 만족시켜야 한다.’) 곳곳에 퍼져있다. 물론 샌드박스처럼 제약 일부를 풀어주는 모드도 제공하지만, 그럼에도 큰 목표는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기에 샌드박스 모드를 플레이할 때도 플레이어는 제약에 맞춰서 세계를 가꿔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특정한 세계 속 요소들이 어떻게 맞물려 들어가는지를 플레이어가 파악하고 따라주길 요청한다. 플레이어가 이런 요소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할 경우, 게임은 플레이어가 설계와 창출에 실패했다고 판정한다. 반대로 제대로 파악해 창출이라는 목표에 도달했을 때 게임은 (자기애적 성향도 일부 포함한) 미적인 쾌감을 안기는 방식으로 보상을 준다. 운영 시뮬레이션 게임은 그 점에서 직접적인 자본 활용 이 외에도 자유를 제약하면서 어떤 창출 체계에 플레이어가 포섭되어 설계하길 요청하고, 상응하는 대가를 보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경제의 논리와 미학에 충실한 장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