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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s view] 선언을 넘어선, 실천으로서의 게임문화
매우 급박하게 변하는 것 같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도도한 맥락을 놓치지 않고자 하는 것이 〈게임 제너레이션〉의 목표다. 첫 호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꾸준히 그리고 우직하게 그 길로 가고자 한다. 동시대의 교양으로서, 혹은 지금 시대의 가장 뜨거운 놀이로서 게임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 이어질 의 모든 이야기일 것이다. < Back [Editor's view] 선언을 넘어선, 실천으로서의 게임문화 01 GG Vol. 21. 6. 10. 디지털게임은 이제 뉴미디어라고 부르기엔 다소 민망한 나이가 되었다. 처음 등장한 것으로도 거의 반세기에 달하는 이 매체는 그러나 그 발전과 변화의 폭이 너무 넓어 초창기와 지금을 비교하면 도대체 어디까지를 공통점으로 봐야 할 것인지 난감할 지경의 다양성을 만들어 왔다. 지금까지도 게임이란 무엇인가 라는 정의를 쉽게 내리기 어려운 이유다. 등장 이래 조금씩 저변을 넓혀 온 게임은 이제 모바일 네트워크 시대에 이르러 서브컬처가 아닌 대중문화의 일환으로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설령 그것이 단순한 산업적 규모에 대한 찬사이건, 혹은 디지털게임이 만들어 낸 기존의 매체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사고와 감정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동경이건 간에 이제 게임은 대중문화의 프레임 밖에 두기 어려운 존재감을 확보했다. <게임 제너레이션>은 먼 훗날 최초의 게임 세대로 일컬어질 수 있을 바로 이 시대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자 시작된 잡지다. 게임이라는 매체를 만나 변화하기 시작한 인간의 삶과 생각, 행동이 다시 또 게임에 반영되는 과정 전반을 살피며 우리의 관심사는 게임을 넘어 게임하는 인간을 향한다. 게임을 곱씹어 거기에 비춰지는 우리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에의 탐색이 〈게임 제너레이션〉의 가장 큰 목표다. <게임 제너레이션>은 총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매 호마다 선정되는 ‘집중기획’을 통해 동시대 게임 담론의 주요 주제들을 깊은 호흡으로 검토하고, 빠르게 나타나고 사라지는 흐름을 ‘TRENDS’에서 놓치지 않도록 주시한다. 마지막으로 ‘ARTICLES’에서 오늘날 게임에 대한 비평과, 게임개발자 및 게이머라는 사람에게 묻는 인터뷰로 게임과 게이머라는 게임문화의 근간을 맨손으로 훑으며 우리 시대의 게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로서의 게임’을 손쉽게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그 말이 현재로서는 다분히 공허한 선언에 그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한다. ‘게임은 문화다’라고 선언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게임을 문화의 틀 안에서 바라보고 사고하며 이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일일 것이다. <게임 제너레이션>의 창간과 도전은 그런 실천을 통한 실험이며, 창간호의 기획도 그러한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문화로서의 게임'이라는 대주제를 두고 먼저 고민한 것은 다른 선배격의 매체들이 겪어 온 과정이었다. 영화와 만화라는 두 매체가 표현양식에서 서브컬처를 지나 대중매체로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지점들은 없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한송희, 이재민 두 평론가의 글에서 찾아보고자 했다. '문화'라는 말을 굳이 강조해야 하는 지금 게임의 상황은 어떤 사회적 배경에서 나타나는지에 대한 고민은 이정엽 교수가 고민의 결과로 가져왔다. 문화매체 성립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비평의 영역은 어떤 과정을 거쳐오고 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 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강신규 박사의 글도 적지 않은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동시에 같은 고민을 다른 지역에서 하고 있는 북미의 게임연구자 Mia Consalvo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동시대적 공통요소는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하고자 했다. TRENDS에서는 현재 가장 뜨거운 단어들의 현황을 살펴보고자 했다. 2021년 7월 다시한번 불타오른 셧다운제 이슈와 함께 게임 관련법들에 대한 관심이 재부상했는데, 수 차례 여러 가지 입법 발의는 뉴스에 나왔지만 실제로 입법되었는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실제 국회에서 게임법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이도경 비서관이 현업의 시각에서 관련 내용을 정리해 주었다. 게임 플레이와 콘텐츠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결제양식에 최근 불고 있는 새로운 변화인 구독형 결제는 어떤 변화와 가능성을 내포하는지를 홍성갑 기자가 점검했고, 비즈니스 워드로 2021년 하반기 중심에 선 메타버스라는 말이 게임과 갖는 유사성으로부터 시작되는 메타버스 게임에 대한 관심이 품고 있는 실체와 허상을 분리하고자 하는 고민을 김재석 기자가 담아냈다. 디지털게임에 대한 다양한 비평을 담는 Articles 코너에서는 비평이나 평론의 형식을 정의하지 않고 다양한 관점의 글들을 모아보고자 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전장 구성이 갖는 원근법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김얼터 작가의 글은 시각예술의 측면에서 게임디자인에 접근하는 흥미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2021년 상반기 트럭시위 사태로 화제가 되었던 〈로스트아크〉난민사태에서의 '난민'을 본격적으로 해석하고자 한 오영진 평론가의 도전은 실제 게이머들의 위상을 생각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스탠스들에 대한 고민을 안겨준다. 2021년 GOTY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잇 테이크 투〉를 살피는 이명규 기자의 시선은 코옵이라는 보기 드문 형태의 플레이를 이해하는 단초들을 제공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도 정작 '초딩 게임'이라는 선입견에 강하게 묶여 있는 〈로블록스〉의 의미는 박이선 연구자의 정리를 통해 좀더 뚜렷해진다. 야쿠자 게임으로만 알려져 있던 〈용과 같이〉에 접근하는 시사평론가 김민하의 글은 이 게임을 '관광 게임'으로 정의하며 일본이라는 현실배경과 게임의 연계를 되새기게끔 한다. 게임텍스트 뿐 아니라 사람으로도 이뤄지는 것이 게임문화다보니 매 호에서는 항상 사람을 향한 인터뷰를 포함하고자 했고, 첫 호에서는 두 사람을 만났다. 인디게임 개발자 somi는 스스로의 작품들을 '죄책감 3부작'이라고 부르며 연결성을 부여하고, 이는 게임에서의 작가론을 가능케 하는 점이다. 작가로서의 의미를 가능케 하는 somi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동시에 세계 최대 e스포츠를 운영하는 라이엇게임즈 코리아의 진예원 PD를 만나 한국 e스포츠의 현황과 미래에 대해 현업의 시각에서 느끼는 바를 받아적고자 했다. 격월로 정리하는 이슈들은 아무래도 시기마다 적절한 대응이라기보다는 좀더 긴 호흡에서 한국의 게임문화를 곱씹는 결과물로 자리할 것이다. 긴급한 소식에 대한 논의는 다른 여러 매체와 커뮤니티에 맡기고, 우리는 숨을 고를 때 비로소 보이는 문제들로 시선을 던지고 말을 걸고자 한다. 기획회의 내내 이야기했던, '웹진보다 무겁게, 학술지보다 가볍게'라는 기조는 주제와 소재, 톤까지를 아우르는 우리의 슬로건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글을 찾아 읽을 독자가 있을 거냐고 반문하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없으면 때로는 독자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도 잡지의 힘이자 의무이기도 했음을 잊지 않는다. 매우 급박하게 변하는 것 같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도도한 맥락을 놓치지 않고자 하는 것이 〈게임 제너레이션〉의 목표다. 첫 호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꾸준히 그리고 우직하게 그 길로 가고자 한다. 동시대의 교양으로서, 혹은 지금 시대의 가장 뜨거운 놀이로서 게임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 이어질 의 모든 이야기일 것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온라인 시대의 살아있는 화석, 보드게임 이야기
1938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되어 그 존재가 알려진 실러캔스라는 어류 개체가 있다. 실러캔스는 약 3억 7천 5백만년 전 지구상에 출현하여, 약 7천 5백만년 전 절멸했다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실러캔스는 살아있었다. < Back 08 GG Vol. 22. 10.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Changhwan Yoon Someone who makes board games. Wants to spread the joy of making board games far and wide. Always recruiting fellow board game players. Get in touch via Instagram @imakeboardgames.
- 왜 스네이크는 들개가 되었는가
1987년 코지마 히데오(小島秀夫, Hideo Kojima) 감독이 제작한 〈메탈 기어(Metal Gear)〉는 여러 가지 의미로 특이한 게임이었다. 한 명의 캐릭터로 적진을 돌파한다는 점은 같은 제작사의 〈콘트라(Contra)〉 시리즈, 그 외 많은 게임들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스테이지를 헤쳐나가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사뭇 새로운 감각이었다. < Back 03 GG Vol. 21. 1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Minho Jang Doctoral student in the Department of Genre Technology and Subculture Studies, Graduate School of Hanyang University. Received a master's degree in American literature studies and is interested in questions of human identity. Recent interests include the question of nonhuman identity in science fiction literature and the possibility of coexistence.
- 아케이드가 할 수 있는 미래의 역할
오락실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아케이드 게임장은 1980~1990년대의 많은 게이머에게 여전히 소중한 존재로 남아있다. 점차 가정용 게임기와 PC가 보급되며 집에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어가는 환경에서도, 집에서 절대 즐길 수 없는,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게임을 동전 하나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의미를 넘어 게임 환경의 선두를 달린다는 이미지마저 주는 곳임을 뜻했고, 실제 게임 산업의 선두를 달리는 분야가 아케이드 게임이기도 했다. < Back 아케이드가 할 수 있는 미래의 역할 04 GG Vol. 22. 2. 10. 오락실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아케이드 게임장은 1980~1990년대의 많은 게이머에게 여전히 소중한 존재로 남아있다. 점차 가정용 게임기와 PC가 보급되며 집에서 게임을 즐기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어가는 환경에서도, 집에서 절대 즐길 수 없는,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게임을 동전 하나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의미를 넘어 게임 환경의 선두를 달린다는 이미지마저 주는 곳임을 뜻했고, 실제 게임 산업의 선두를 달리는 분야가 아케이드 게임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아케이드 게임장은 매리트가 많이 사라져, 한국에서는 그 명맥만 겨우 유지하는 시기이다. 가정용 게임기와 PC의 그래픽 성능이 더욱 좋을 정도로 더 이상 시각적으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온라인 환경이 발전한 결과 집에서 편하게 게이머들이 전 세계 상대들과 마음껏 경쟁을 할 수 있는 것도 크다. 오히려 실력으로만 놓고 보면 전 세계와 경쟁을 즐길 수 있는 지금이 경험적 측면에서 훨씬 풍부한 것도 사실이다. 아케이드에서 형성되었던 게이머들의 커뮤니티 역시 개인 SNS로 얼마든지 전 세계와 소통을 할 수 있는 지금은 발걸음을 옮길 만한 매리트로 이어지지 않는다. 더해 아케이드는 가장 저렴하게 게임을 즐길 방법이었으나, 지금은 기본 무료 게임들과 모바일 게임의 보급으로 고유의 가치가 크게 떨어졌으며, 에뮬레이터 프로그램으로 인해 아케이드 게임을 돈을 내고 즐기는 것이 아깝다는 그릇된 인식조차 생긴 상황이다. 결국 아케이드 게임장은 살아남기 위해 재미보다 감성을 공략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코인노래방과 인형 뽑기를 위주로, 여전히 집에서는 즐기기 어려운 체감형 게임 위주로 환경을 세팅하며, 스틱과 버튼으로 조작하는 게임은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인기 레트로 게임들로 편성하였다. 사실 2000년 이후 아케이드 게임 산업이 크게 줄어 신작 게임이 나오는 일이 드물어졌기 때문에, 이처럼 레트로 게임들로 꾸민 것은 그나마 소비자의 관심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이면서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인구가 훨씬 많고, 아케이드 게임 산업이 발달했던 미국이나 일본도 피해갈 수 없었다. 이미 미국의 아케이드 게임장은 테마파크나 레저시절에 같이 편승하여 체감형 게임 위주로 운영되고 있으며, 가장 게임 시장에서 아케이드의 영향력이 강했던 일본 역시 상징과 같았던 유명 게임장들이 연달아 문을 닫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인구의 규모가 커 여전히 새로운 게임들이 조금씩이나마 출시되고 있지만,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팬데믹 상황을 이야기하기가 민망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아케이드 게임장은 오랜 기간 매리트를 잃고 서서히 규모가 줄어들고 있으며, 한국의 경우 ‘동네 오락실’이라는 용어가 무색할 정도로 지역에 오락실이 있다는 사실조차 놀라는 시대가 되었다. 아케이드 게임장의 위기에 관련 회사들은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5년 전부터 도입된 VR기기이다. 아케이드가 주는 매력 중 하나가 집에서는 즐기기 어려운 새로운 체험이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노린 발상이다.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이었지만, 어떻게든 아케이드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겠다는 이 시도는 VR 산업이 예상보다 커지지 못하면서 소프트웨어의 부족과 기술 정체, 팬데믹 상황까지 겹쳐 현재까지 유의미한 결과를 이루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다. 더해 새로운 시도가 연달아 빠른 속도로 이어지다 보니 업계의 시도만큼 정책이 따라가지 못해, VR 테마파크를 건설하는 데 있어 법률 관련 문제가 미흡했거나, 아케이드 업체 입장에서 체감 게임이 주가 되는 이상 금형 비용 지원이 중요한데 정부는 여전히 소프트웨어 개발비를 기준으로 산업 육성 차원에서 지원하는 부분 등 산업 발전을 위해 손발을 맞추는 것도 버거운 모양새였다. 설상가상으로 비디오 게임 소매업체도 디지털 게임 구매의 가속화로 수익이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이 흐름이 아케이드 게임과 전혀 연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 게임을 위해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이유 자체가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아케이드는 미래의 역할을 진지하게 파악해야 할 때가 왔다. 새로운 시대는 피할 수 없고, 아케이드는 결국 변해야 한다. 비디오 게임 소매업체의 경우,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 속에 “사람들이 매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공간”에 대한 실험을 이미 전 세계에서 2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이 같은 실험에서 가장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곳은 미국 게임스탑의 컨셉 스토어이다. 협동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대형 TV와 소파, TRPG로 대표되는 테이블 게임, 함께 게임을 즐기기 위해 앉을 수 있는 12~36개의 게임 부스, 레트로 코너, 수집품 전시장 등의 코너를 준비했으며, TRPG의 경우 큰 히트를 기록해 일부 매장은 프리랜서 던전 마스터를 고용하기도 했다. 구매하기 전 즐기는 것을 넘어, 같은 게임이라도 이 공간에서 즐긴다는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PC방 서비스에 복합 게임 공간이 결합한 상황인 게임스탑의 실험 목적은 “게임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것”도 있으며, 게임스탑은 여전히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는 상황이지만 현재까지 유의미한 결과를 이루어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 같은 복합 오프라인 공간은 한국도 몇 곳이 존재하며, 모두 나름의 생존전략을 찾아 오프라인 및 온라인 이벤트로 수년 이상 활발하게 공간을 가동하고 있다. 2022년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실제 생활에서 게임들과 게임을 즐기기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결과를 끌어낸 것이다. * 오클라호마주 털사에 있는 게임스탑의 컨셉 스토어. 이 같은 사례로 미루어 볼 때, 결국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커뮤니티 형성이고, 아케이드는 여전히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프라인 커뮤니티의 형성은, 대상의 정보를 온라인보다 훨씬 많이 빠르게 습득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낯익은 얼굴이 밸런타인데이에 나와 같은 오락실에 나타났을 때 동질감을 느끼는 망상부터, 상대가 처한 환경을 보다 직접적으로 알 수 있기에, 특유의 커뮤니티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여전히 유효하다. 그만큼 게임에 있어 인성 역시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e스포츠 문화에 아케이드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킬러 콘텐츠와 오프라인 커뮤니티 특유의 예의 있는 교류가 합쳐진다면, 팬데믹이 지나 다시 한번 아케이드 게임 공간은 다시 사람들이 매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될 것이라 믿는다. * 디시디아 파이널 판타지 아케이드는 세 명이 팀을 이루어 다른 팀과 싸우는 게임으로, 낯선 사람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팀을 이루는 순간, 오프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유대감이 생겨난다. 따라서 현재 가장 큰 숙제는 커뮤니티를 이끌어갈 만한 아케이드만의 경쟁력 높은 콘텐츠이다. 소속 커뮤니티가 뭉쳐 지역 최강 → 국내 최강 → 세계 최강으로 향한다는 흐름은 2022년의 게임 업계에서 아케이드를 떠나 게임 커뮤니티의 단합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재의 아케이드는 네트워크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어 실제 자신의 세계 랭킹을 확인하는 것이 한국도 가능한 시대이고, 점포끼리 대전도 가능하다. 안타까운 것은 콘솔 시장을 이끄는 소프트 메이커들이 아케이드 게임 시장을 이끄는 구성이기도 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이 같은 인프라를 위해 달려들 기술력과 자본들 있는 아케이드 소프트 메이커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체험을 위해 구글 코리아가 기획한 게임 프로젝트인 구글 플레이 오락실 행사 역시, 애초 구글이 기획을 한 행사였기에 국내 게임사들의 다양한 모바일 게임을 전시하며 오락실이라는 명칭과 달리 유사 게임쇼 형식에 머무는 결과로 그쳤다. 90년대 출간된 만화 중 게이머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은 ‘브레이크 에이지’라는 만화가 있다. 작가가 미국의 아케이드 게임인 배틀 테크를 본 뒤 이와 연관된 미래를 상상하며 그린 이 만화는, 제한된 리소스 안에서 자신이 로봇을 자유롭게 커스텀 할 수 있는 통신대전형 체감 게임인 ‘데인저 플래닛(Danger Planet)’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출간 이후 버추어 온, 아머드 코어 등 조작이나 개념이 비슷한 게임이 출시될 때마다 ‘드디어 데인저 플래닛 같은 게임을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가’라는 말이 따라다닐 정도의 인기를 얻었고, 결국 2010년 중반에 재판이 출간하게 되었다. 실제 이 만화로 인해 게임 업계에 뛰어든 사람도 적지 않다. 사람들이 이 만화에 열광한 이유는, 게임의 개념이나 등장인물들의 매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다. 체감형 아케이드 게임이 주는 박력이 상상됨과 더불어 남녀노소가 게임을 통해 건전한 교류를 하는 따뜻한 모습과, 지금의 NFT 개념과 비슷하게 자신이 만든 커스텀 기체를 판매하고 쉽게 구할 수 없는 부품을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 및 실력만 있다면 개발사와 플레이어 모두 수익을 낼 수도 있는 건설적인 환경이 게이머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게임이 30년 전에는 SF에 그쳤을지 모르나, 현재의 기술로 만화 내용의 구현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현재의 아케이드 산업은 코인 노래방, 인형 뽑기, 체감형 게임으로 유지되는 상황이며, 시장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홀로그램 등 새로운 기술을 체감할 수 있는 최첨단 체감형 게임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지만,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는 킬러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이다. 다행인 것은 이 문제가 실제 전 세계의 대형 아케이드 게임 제작사들이 가장 중점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며, 올해도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 차례차례 등장할 예정이라는 점이다. 아케이드 산업을 살리겠다는 개발사들의 시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이상, 아케이드는 향후 다시 한번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게이머들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저 업계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열정이 꺾일 정도로 너무 늦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IGN코리아 대표) 이동헌 1999년 월간 게임라인을 시작으로 게임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기간을 게임 개발사에서 보낸 뒤, 게임 제작자보다 글로서 게임 문화에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2018년부터 IGN Korea를 운영하고 있다.
- Assessing Genshin’s Soft Power Impact on Southeast Asia
At the Anime Festival Asia (AFA) held in Singapore in November 2023, miHoYo assumed the prime spot at the exhibition—squarely at the entrance of the convention centre. Consequently, fans flocked to the booth for physical merchandise, resulting in three days of traffic slowdown. The booth had photo corners and character goods from the game Genshin Impact (GI), miHoYo’s ticket to global fame since its publication in 2020. < Back 29 GG Vol. 26.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GDC 2023 탐방기: 기술과 트렌드의 변화로부터 일어난 흐름들
길었던 팬데믹의 터널이 끝나고 게임쇼에도 봄이 돌아왔다. 물론 모든 게임쇼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발표되었던 E3 2023의 취소 소식은 게임 업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보스턴에서 3월 말에 열린 PAX EAST는 GDC 2023과 비슷한 시기에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B2C 부분에서 흥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필자 역시 4년 만에 GDC를 찾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20년부터 2022년 GDC에 모두 등록했었다. 다만 온라인으로 열렸던 2020년과 2021년에는 참석이 불가능했고, 작년은 패스를 등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 Back 11 GG Vol. 23. 4.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Jeong Yeop Lee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Culture & Contents at Soonchunhyang University. Researches game storytelling and game design as central concerns, and led the founding of the Busan Indie Connect Festival—a leading indie game festival—where serves as head of the jury. Also a juror for the Independent Games Festival (IGF), one of the most prestigious indie game events internationally. Books include Digital Storytelling (co-authored, 2003), Digital Games: A New Territory of Imagination (2005), Indie Games (2015), Stories Become Transformers (co-authored, 2015), Mario, Born in '81 (co-authored, 2017), The Theory of Games (co-authored, 2019), and Games Are Games: Game × Ecosystem (co-authored, 2021).
- 수퍼히어로물의 다음 세대를 건져올린 <디스패치>
가장 미국적인 문학 장르인 수퍼히어로는 경이(amazing)적 판타지의 장르다. 주인공 히어로와 빌런이 사용하는 초능력이라는 경이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때문에 판타지이며 개연성 대신 핍진성만이 작동하는 장르다. 이 장르는 만화와 라디오 드라마를 거쳐 영상 영화를 지나 게임까지 와 있다. < Back 28 GG Vol. 26. 2. 10. Tags: 히어로물, 코믹스, 골든에이지, 북미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Seonggap Hong Freelance writer—a job title suspected of being a synonym for "unemployed." Started out as a reporter at Ddanzi Ilbo, where broke the first story exposing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s comment-manipulation operation. A lifelong gamer who wrote a first piece of game criticism in 2001—and is very glad it has since been lost.
- 힘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번역가.
어쩌면 그래서 “힘세고 강한 아침” 같은 문장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 문장은 분명 이상하지만, 동시에 게임 번역의 역사 속 한 장면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게임을 전달하려고 했던 초기의 시행착오가 그대로 남아 있는 흔적이니까. < Back 힘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번역가. 29 GG Vol. 26. 4. 10. 안녕하신가! 힘세고 강한 아침,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왈도. 게임 커뮤니티를 조금이라도 돌아본 사람이라면 ‘힘세고 강한 아침’이라는 문장을 어디선가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나온 말인지, 정확히 어떤 맥락이었는지는 몰라도 묘하게 웃긴 문장이다. 단어 하나하나는 익숙한데 문장으로 묶이는 순간 어딘가 미묘하게 비틀린다. 마치 한국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 어색함이 웃음을 만든다. “깔깔깔, 힘세고 강한 아침이래! 이게 무슨 말이야!” 이 문장은 1998년 4월에 출시된 PC 게임 <마이트 앤 매직 6>의 국내 발매판 번역에서 등장한 대사다. 요즘 세대에게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말한 “이젠 가망이 없어.”라는 대사가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힘세고 강한 아침’은 그보다 훨씬 오래된, 일종의 조상 격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번역이 종종 인터넷 문화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사실이다. 번역이 어색할수록, 혹은 지나치게 직역에 가까울수록 오히려 새로운 재미가 생긴다. 커뮤니티에서는 스크린샷이 돌아다니고, 패러디가 생기고, 어느새 그 문장은 원래 게임과 별개로 독자적인 생명을 얻는다. 번역이 틀렸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이것도 번역이 겪게 되는 묘한 운명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범위를 넓혀 보면 이런 사례는 의외로 많다. 영화나 게임에서 어색하게 번역된 한 문장이 밈이 되어 커뮤니티를 떠돌다가, 나중에는 원작보다 더 널리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어떤 문장은 패러디가 되고, 어떤 문장은 유머의 소재가 되며, 어떤 문장은 인터넷 유행어가 되기도 한다. 언어가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는 셈이다. 배우를 비추는 조명 장치, 번역가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현상은 꽤 흥미롭다. 내가 번역가라는 직업을 설명할 때 종종 언급하는 책이 있다. 데이비드 즈와이그의 <인비저블>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겉으로 성과가 드러나지 않지만, 사회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다룬다. 난 번역가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번역은 기본적으로 눈에 띄지 않을수록 좋으니까. 게이머가 게임 속 텍스트를 읽으며 “아, 이거 번역이네!”라고 느끼는 순간, 어딘가에서 이미 삐걱거리고 있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읽히는 번역은 게이머의 기억에 거의 남지 않는다. 게이머는 번역문을 기억하기보다는 캐릭터와 이야기, 세계관과 게임 플레이를 기억한다. 번역은 그 경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배경이지만, 동시에 그 배경 속으로 사라져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번역을 종종 무대 뒤의 조명처럼 비유한다.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조명 장치가 독자적인 존재감을 드러내선 안 된다. 하지만 조명이 없으면 무대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번역 역시 비슷하다. 번역이 제대로 흘러간다면 게이머는 그것을 거의 인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번역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모든 시선은 번역으로 향한다. 아, 물론… 좋은 시선이 아니라, 안 좋은 시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커뮤니티에서 밈이 되는 번역은 이 원칙을 정반대로 뒤집는다. 번역이 너무 눈에 띄어서, 너무 이상해서, 그래서 오히려 기억에 남는다. 번역이 본래 지향하는 방향과는 완전히 반대의 방향이다. 게이머의 열망, 유저 번역의 시작 이런 기묘한 번역들은 사실 지금으로부터 약 20~25년 전, 해외 게임들이 ‘한국어 미지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국내에 들어오던 시기에 특히 많이 등장했다. 당시에는 해외 게임사가 정식으로 한국어 번역을 진행해 출시하는 일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한국 시장 자체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현지화라는 개념도 지금만큼 체계적으로 자리 잡지 않았던 시기였으니까. 게다가 그 시절에는 ‘게임을 정식으로 구매한다’라는 문화적 인식 역시 지금과는 꽤 달랐다. 많은 게이머가 웹하드 사이트에서 게임을 내려받고, 포털 사이트에 ‘○○ 게임 한글판’이나 ‘○○ 한글 패치’를 검색하며 인터넷을 뒤지곤 했다. 몇 시간을 헤매다 결국 바이러스에 걸려 컴퓨터를 수리 맡기는 엔딩을 맞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찾아다녀도 한글 패치를 끝내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검은 건 글자요, 하얀 건 배경이니라’ 하는 심정으로 게임을 하곤 했다. 퀘스트 설명은 물론, NPC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지만 일단 해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기묘한 플레이 방식이다. 이야기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 채로 퀘스트를 진행하고, 스킬 설명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로 스킬을 사용한다. 그런데도 게임은 이상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의미도 모른 채 버튼을 눌러 보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게임을 익혀 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모험처럼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게임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았고, 동시에 ‘한국어로 게임을 하고 싶다’라는 욕구도 강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유저 번역과 한글 패치 문화였다. 개인이나 소규모 팀이 자발적으로 게임 데이터를 뜯어 번역을 만들고, 그것을 패치 형태로 배포하는 일들이 이어졌다. 번역 품질은 들쭉날쭉했지만, 그 열정만큼은 놀라울 정도였다. 커뮤니티에서 이런 사람들이 ‘네임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면 거의 뭐 연예인 저리 가라는 수준으로 인기를 구사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작업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게임 파일 구조를 분석해야 했고, 텍스트 데이터를 추출해야 했으며, 때로는 프로그램을 직접 수정해야 했다. 그런데도 많은 게이머가 시간을 들여 자기들만의 번역을 만들었다. 순수하게 “이 게임을 한국어로 즐기고 싶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 시절의 번역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꽤 거칠었다. 문장은 어색했고, 용어는 제각각이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문맥조차 맞지 않았다. 하지만 게이머들은 그 번역을 붙잡고 게임을 했다. 왜냐하면 그 몇 줄의 문장이야말로 게임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게이머를 게임 속 세상으로 이끄는 존재, 현지화 담당자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대부분의 대형 게임은 출시와 동시에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현지화 과정도 훨씬 체계적으로 다듬어졌다. 현지화 담당자들은 용어집을 만들고, 세계관 설정을 확인하고, UI 글자 수를 맞추며, 필요하다면 개발팀과 소통하면서 문맥을 검증한다. 예를 들어 게임 번역에서는 단순히 문장을 옮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UI 버튼 하나에도 글자 수 제한이 있고, 아이템 이름이 너무 길어서 아이템 창을 벗어나거나 잘려선 안 되며, 캐릭터의 말투는 세계관과 어울려야 한다. 어떤 게임에서는 스킬 이름이 플레이 스타일을 암시하기도 하고, 어떤 게임에서는 아이템 설명이 세계관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게임 번역은 퍼즐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주어진 공간 안에서 의미와 어감을 모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문장이라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표현이 필요할 때도 있다. 대사인지, UI 문구인지, 아이템 설명인지에 따라 번역 방식이 달라지니까. 아, 물론 요즘에도 대부분의 중소 게임 회사에서는 퍼즐을 놓을 퍼즐 판조차 준비되지 않은 채로 번역을 들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번역 일을 시작한 뒤에는 게임을 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이야기를 따라가거나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UI 문장 하나, 스킬 이름 하나에도 눈이 멈춘다. “왜 이 표현을 썼을까, 왜 이 단어를 선택했을까, 글자 수 제한 때문에 이렇게 줄어든 것은 아닐까.” 게임을 하면서도 자꾸 번역의 흔적을 찾는 나 자신을 보면 ‘참, 이 게임도 제대로 즐기기에 글렀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야기에 날개를 달아주는 번역 조명 장치라고 말했지만, 사실 번역엔 조명 장치보다는 조금 더 능력을 뽐낼 기회가 존재한다. 문학성, 문장력, 흡입력… 같은 문장을 번역하더라도 번역가에 따라 결과물은 꽤 달라진다. 예를 들어 원문에 “He laughed.”라고 적혀 있다고 해보자. 가장 단순하게 번역하면 “그는 웃었다.”다. 틀린 번역은 아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피식 웃었다.”, “쓴웃음을 지었다.”, “껄껄 웃었다.”, “코웃음을 쳤다.” 같은 표현으로 바뀔 수도 있다. 같은 한 문장이지만 캐릭터의 성격과 장면의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런 순간은 의외로 자주 등장한다. 특히 캐릭터 대사에서는 말투 하나만 바뀌어도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캐릭터가 “Let’s go.”라고 말한다고 해서 항상 “가자.”라고 번역할 필요는 없다. 상황에 따라 “출발하지.”가 될 수도 있고, “가 보자고.”가 될 수도 있고, “따라와.”가 될 수도 있다.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같은 문장이 전혀 다른 온도를 갖게 된다. 그래서 게임 번역가는 종종 제2의 기획자가 되기도 한다. 원시 언어를 사용해서 최초의 이야기를 만드는 제1 기획자(대개 이야기 기획자, 시나리오 라이터 등), 그 이야기를 각 문화권에 맞춰 캐릭터를 조금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제2 기획자, 바로 나, 현지화 담당자. 번역이라곤 하지만, 결국 게이머들은 우리가 만든 번역문으로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 때문에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 지금 어떤 감정인지를 가장 나은 방법으로 게이머들에게 전달하는 게 바로 현지화 담당자이자 번역가인 우리들이 맡은 일이다. 사실 꽤 많은 경우에 원문 자체가 엉망인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경력 많고 경험 많은 현지화 담당자가 있다면 이런 원문의 부족한 부분을 번역으로 절묘하게 메꿔 꽤 볼만한 작품으로 탄생시키기도 한다. 가끔 이런 과정 속에서 특정한 문장이나 단어가 적절하게 번역되면 그런 걸 게이머들은 ‘초월 번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문과 단어 하나하나를 정확히 대응시키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의미를 더 잘 전달하는 번역이다. 물론 이 영역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번역가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원문에서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역가는 늘 두 가지 사이에서 줄타기하게 된다. 원문에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독자에게 더 자연스럽게 다가갈 것인가… 일정은 어떤지, 번역을 만든 이후의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내가 번역한 이 한마디가 게임에 언제 어떻게 어떤 형식으로 입혀지게 되는지를 모두 고려해야 하니까. 어쩌면 번역이라는 작업의 가장 재미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문장을 두고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어떤 말투를 사용할지, 어디까지 자연스럽게 다듬을지 같은 고민을 말이다. 물론 이런 고민이 항상 눈에 띄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번역은 여전히 조명 장치처럼 조용히 뒤에 서 있다. 하지만 가끔은 번역 덕분에 캐릭터가 더 또렷해지고, 장면이 더 생생해지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때면 번역은 단순히 문장을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이야기에 작은 날개를 달아주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게이머가 바라보는 번역과 내가 바라보는 번역 가끔 커뮤니티에서 번역 이야기가 화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표현이 어색하다거나, 특정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다. 게이머의 관점에서 그런 반응은 자연스럽다. 게임을 즐기는 과정에서 언어는 매우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요소기 때문이다. 다만 내 입장은 게이머들과 사뭇 다르다. 게이머들은 이백만 개의 글자 중 단 몇 개를 골라 자기가 원하는 바를 피력하지만, 현지화 담당자의 관점에서 그건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글자 수 제한, UI 레이아웃, 기존 용어와의 통일성, 세계관 설정 같은 여러 요소가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번역이 특별히 변명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뜻은 아니다. 번역은 결국 돈을 받고 번역이라는 작업을 한 ‘작업자’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자, 마지막으로 ‘고객’인 게이머에게 전달되는 결과물이다. 문장이 어색하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기보다는 더 나은 문장을 고민하는 편이 옳다. 다만 게임 번역이라는 작업이 생각보다 많은 제약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게이머’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없진 않다. 마치 맛없는 요리를 내놓은 요리사 주제에 요리의 과정에서 발생한 노고를 알아달라는 말처럼 이기적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힘세고 강한 아침” 같은 문장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 문장은 분명 이상하지만, 동시에 게임 번역의 역사 속 한 장면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게임을 전달하려고 했던 초기의 시행착오가 그대로 남아 있는 흔적이니까. 생각해 보면 번역은 늘 그런 일을 한다. 서로 다른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다. 그 다리가 때로는 삐걱거리기도 하고, 가끔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그 다리를 건너 게임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게이머가 번역이라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그 세계를 걸어 다닐 수 있다면, 아마 그 번역은 제 역할을 꽤 잘 해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난 내가 번역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참 즐겁게 생각한다. 게이머들에게 어떻게 하면 새로운 세계를 선물할지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상당히 즐겁기 때문이다. 누구의 입맛에도 맞는 최고의 작품을 선물하는 게 목표지만, 그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최소한 이것 하나만은 약속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게이머를 위해’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병욱 게임을 사랑하고, 이야기를 사랑하고, 그만큼 게이머를 사랑하는 번역가이자 작가. 캐릭터의 감정과 세계관을 말보다 섬세한 호흡으로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 물론 짝사랑이다 보니 가끔 게임에게 차이곤 한다.
- 전자오락, 게이머, 인터페이스의 공진화
인터페이스는 설계에 투영된 이상을 정확히 구사하기 위해 발전할 수도 있지만, 우연한 계기들에 의해 손쉽게 그 설계가 변형되기도 한다. 변형된 인터페이스는 게이머들의 게임 실천 자체를 변형시키기도 하며, 이런 변화된 게임실천은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의 변형을 가져오고, 게임성 그 자체를 다르게 느끼게 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이처럼 인터페이스는 단순한 입력장치이고,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 없는 게임의 요소라기보다는 게임을 구성하고 있는 하드웨어이면서 동시에 게이머와 연결되어 신체화된 기계적 대상물이다.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설계에 따라 발전하거나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과 게이머는 물론이고 자신과 연결된 모든 환경과 함께 상호작용하며 변화무쌍하게 공진화(co-evolution)하는 과정 안에 놓여있다. < Back 전자오락, 게이머, 인터페이스의 공진화 02 GG Vol. 21. 8. 10. * 이 글은 2019년 8월 한국언론정보학회에 게재된 “조이스틱-아케이드 게임 문화의 생산자”를 보완하여 재구성하였습니다. 레트로 게임으로서의 전자오락기 레트로 게임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오래된 고전 게임을 말한다. 최근 레트로 게임 열풍이 불면서 과거 전자오락의 모습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 등장해 엄청난 인기를 끈 이후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자오락은 최초의 디지털 대중문화라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학계에서는) 잊힌 미디어에 가깝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전자오락이 대중들의 문화이고, 특히 그 대중들이 아동이나 청소년 중심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청년문화이자, 대중들의 하위문화로 여겨진 전자오락 문화는 언제나 일탈과 저항의 관점에서 얼마나 파괴적이고 반사회적인 영향을 청소년에게 미치는가에 주된 관심이 있어왔지만, 전자오락은 ‘1990년대부터 디지털 게임에 흡수되고 대체되면서 소멸했다’는 관점에 따라 이런 관심마저 사라진다. 그런데 전자오락을 흡수하고 대체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디지털 게임이란 무엇일까? 곤살로 프라스카(2008) 1) 는 “모든 형식의 컴퓨터 기반의 오락 소프트웨어, 즉 텍스트 게임이나 이미지 기반의 게임 모두를 포괄한다. 퍼스널 컴퓨터나 콘솔과 같은 전자적(electronic) 플랫폼을 사용하는 게임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육체적 게임이나 네트워크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게임들도 포괄한다.”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전자’ 오락은 말 그대로 디지털 게임이라는 정의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소멸되었다고 여겨지는 전자오락이란 것은 무엇일까? 사실 아케이드 게임장(전자오락실)들은 현재도 성업 중에 있다. 현재의 아케이드 게임장들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조건들이 다를 뿐이다. 음습한 소규모의 오락실들은 대형화되었으며, 오락실을 구성하는 게임들이 모방적 인터페이스를 이용하는 가상현실게임, 리듬액션게임, 체험형 게임들이 주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소멸되었다고 여겨지는 전자오락은 아마도 현재의 아케이드 게임장과는 다른 형태일 것이다. 우리는 전자오락에 대한 추억을 한 두 개쯤은 가지고 있는 전자오락실 세대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추억 속 ‘전자오락실’에서 구동되고 있는 오락들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전자오락실은 〈스페이스인베이더〉나 〈갤러그〉와 같은 슈팅게임으로 구성되어있고, 누군가에게는 인형이나 상품을 뽑는 크레인 게임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고, 〈스트리트 파이터〉시리즈나 〈철권〉시리즈와 같은 대전격투게임일수도 있고 〈DDR〉이나 〈PUMP IT UP〉과 같은 리듬액션게임일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오락실 한편에 놓인 코인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풀던 기억일 수도 있다. 이렇든 전자오락실은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지만 각각의 사람들에게는 모두 다른 물리적 공간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디어에 노출되어 레트로 게임으로 소개되는 전자오락은 구동되고 있는 특정 오락이라기보다는 전자오락기 캐비닛 그 자체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레트로 게임으로 인지되고 있는 전자오락이란 특정한 장르의 게임이나 시기의 게임이 아니라 조이스틱이라는 특별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게임과 상호작용하는 ‘게임 체험의 형식 그 자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제2롯데월드 내에 위치한 아케이드 게임장 ‘퓨처핸즈업’의 내부 (출처: 필자 직접 촬영) 게임인터페이스에 대한 오해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오프 하울랜드(1998) 2) 는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를 1) 디스플레이 되는 어떤 이미지, 그리고 그것들 위에서 실행되는 효과들 등 플레이어가 볼 수 있는 ‘그래픽’ 2) 게임을 하는 동안 재생되는 음악이나 음향효과 등을 포함하는 ‘사운드’, 3) 플레이어가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 사용하거나 접촉하는 것들과 같은 게임 컨트롤 시스템을 포함한 ‘인터페이스’, 4) 게임에 얼마나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는지와 같은 ‘게임플레이’, 5) 게임의 배경스토리나, 게임을 진행하면서 습득하게 되는 정보들을 포함한 ‘스토리’로 구분한다.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인터페이스라는 것은 게임을 논할 때 쉽게 망각되곤 한다. 게임이라는 것이 게이머와 상호작용을 할 때 언제나 신체(대체로 손)와의 매개 속에서 이뤄지는데도 말이다. 그 어떤 게임도 신체와 연결된 조작 장치들에 의해서 연결되지 않는다면, 게임은 비활성화된 코드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조작 장치를 통해 이뤄지는 화면 속의 움직임은 신체의 경험과 조화를 이루며 게이머들의 신체에 각인되는 총체적 감성과 지성이 작동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게임과 게이머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인터페이스는 단순히 신호를 전달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다시 말해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경험들을 게이머가 체험하게 해주는 하드웨어면서 동시에 게이머에겐 ‘확장된 신체’이다. 따라서 인터페이스도 게임이 변화하는 과정 안에서 계속해서 변해왔다. 그런데 인터페이스에 대한 그릇된 상상이 존재한다. 단적으로 제임스 뉴먼(2008, 260쪽)은 “변화, 진보 그리고 기술적 발전에만 집중한다면, 고전 게임을 고려함으로써 드러나는 게임의 지속성을 간과하게 될 우려가 있다. 대체로 바뀌지 않고 남아있게 될 요소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마 조종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즉, 게임 인터페이스는 1980년대의 낡은 콘솔에 부착된 것과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으며, 조금 더 편한 그립감을 제공하거나 배열이 조금 변했을 뿐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고, 입력을 조금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끔 진보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전자오락기의 조이스틱을 예로 들어 인터페이스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과 설계가 요구하는 것처럼 입력을 조금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끔 기술이 발전한 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수입된 기술의 사회적 재구성 조이스틱이란 인터페이스는 무엇을 위해 발전해왔는가는 현재 어떤 게임을 즐기기 위해 사용되는지 살펴보면 알기 쉽다. 현재 마우스와 키보드나 패드가 지배적인 게임의 인터페이스로 사용되지만, 아직도 대전격투게임이나 슈팅게임 등을 위해서는 조이스틱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조이스틱은 상하좌우를 입력하도록 만들어 놓은 십자키를 주로 사용하는 패드와 같은 입력장치들과 다르게 360° 방향입력을 위해, 특히 위나 아래의 방향키 중 하나와 좌, 우의 방향키 중 하나를 동시에 입력시키는 이른바 대각선 입력을 위해 주로 사용된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전자오락의 조이스틱은 대각선 입력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레버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사각의 가이드가 부착되어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다른 형태의 조이스틱이 사용되고 있다. 통칭 무각 레버라고 부르는 원형 가이드가 부착된 조이스틱은 한국에서만 사용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조이스틱이라는 기술이 일본에서 수입되어 한국에서 사용될 때 한국의 기술적 환경에 의해서 다시 새롭게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다. 현재에 들어 게임이 각광받는 산업의 하나가 되었지만, 전자오락은 정부가 진흥하거나 대기업의 주도로 들어온 산업이 아니었다. 3) 따라서 전자오락을 제조, 수입, 유통하는 것은 전자산업의 주변부에 있던 청계천 전자상가의 영세업체들이었다. 그들은 전자오락기를 일본에서 수입해 올 때 관세를 줄이기 위해 완제품이 아닌 부속으로 분리해서 개별적으로 수입을 했고, 그 부속들은 청계천 일대에서 재조립되어 유통되었다. 이때 국산화가 가능한 제품들은 국내에서 제조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게임기 관련 부품시장의 생산자들에게 각 부속의 형태가 왜 그렇게 설계되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대각선입력을 위한 설계는 그렇게 무시되었고, 상하좌우 구동 값이 좋은 제품들을 생산해서 재조립하여 유통하였다. 일본의 조이스틱은 커맨드 입력 후 중립으로 되돌려주는 장치 역시 스프링의 탄성을 이용하는 것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이것을 고무로 대체하였다. 균일한 탄성을 지닌 스프링의 생산에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기도 했고 생산 단가도 높았기 때문이다. 재구성된 조이스틱에 적응된 게이머들 조이스틱이란 인터페이스는 이렇게 한국이라는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환경에 의해서도 변화했지만, 전자오락실이라는 물리적 환경에 의해서도 변화했다. 사실 조이스틱은 소모품이기에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교체해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현재는 폐업한 서울 대림동의 그린오락실 점주에 따르면 오락실 초기에는 이런 것을 숙지하고 있는 업장 점주가 드물었다고 한다. 게임장 초기에는 전문점이라는 개념이 없었어. 입력 값이 얼마나 정확하게 들어가는지 관심도 없었어. 기억해봐요. 옛날 업주들 방에 앉아서 돈만 바꿔줬지. (윤경식, 남, 68세, 아케이드 게임장 운영) 게임 제공을 하는 업주나 부품업체나 그런데서 소모품은 수명이 있거든. 근데 그걸 안지켜줬다는 거야. 소모품인데 내구성이 그렇게 강하지도 않은 제품들이 수명을 넘겨 쓰다보니깐 어떤 증상들이 나오느냐 하면 유격이 심해진 거야. 그런데 그런 걸로 게임을 배운거야 한국사람들은. 그러니깐 커맨드 영역이 클 수밖에 없지. 손이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거지. (윤경식, 남, 68세, 아케이드 게임장 운영) 부실한 관리로 유격이 심한 조이스틱을 이용하는 한국의 전자오락실 이용자들은 헐렁헐렁한 조이스틱에 적응하게 되었다. 손가락만을 이용해서 입력을 하는 다른 나라의 게이머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게이머들은 손목은 물론이고 팔 전체를 움직이며 조이스틱을 조작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기계적 대상물인 조이스틱은 그것을 도구로 이용하는 게이머들에 의해 변형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자신이 자신을 이용하는 게이머를 변화시키고 자신에게 적응하게 만들었다. 변화된 인터페이스와 그 인터페이스에 적응한 게이머들은 같은 게임도 다르게 즐겼다. 정확한 대각선 입력을 통한 기술을 사용하기보단 원형의 가이드를 이용해 스틱을 회전시키는 기술을 사용하는 플레이를 즐기기도 하고, 동체시력을 활용한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플레이보다 헐렁헐렁한 조이스틱을 빠르게 조작하여 심리전을 이용하는 플레이를 즐기기도 하였다. 특히나 철권 같은 대전격투게임에서 다른 나라 이용자들과는 다른 게임플레이 형식이 나타난 것은 조이스틱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조이스틱의 진화 한국에서 조이스틱은 얼마나 더 미세하고 정확하게 입력 값을 게임 상에 재현해낼 것인지가 아니라 자신이 적응시킨 게이머와의 관계 안에서 진화해 나갔다. 한국에서는 조금 레버가 살짝 멍청하게 만들어져야 해. 왜 그러냐면 민감하면 못한다고. 조금조금 움직였을 때 동작을 하면 커맨드 실수를 해. 오차범위를 줘서 어느 정도는 움직여도 동작을 안 하게 만들어 줘야해. 그걸 안 해주면 그 레버 못 쓴다해. 전자장치는 거짓말을 안하자나요. 근데 레버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해. 오차 범위 값을 얼마를 줘야한다는 걸 생각을 안 하니깐 자꾸 민감하게만 만들어. (윤경식, 남, 68세, 아케이드 게임장 운영) 한국의 맥락에 의해서 형성된 원형의 가이드와 유지 보수가 되지 않아 헐렁한 조이스틱에 익숙해진 한국의 게이머들과 연결된 조이스틱은 대각선 입력을 정확하게 하거나 더 민감하게 입력 값을 전달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하기 보다는 일정한 수준의 오차 값을 지니면서도, 더 적은 유지보수를 요구하는 형태로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과격하게 손을 움직이며 크게 커맨드를 입력하는 한국게이머들에게 미세하고 정확한 입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이스틱은 자신들의 실수를 고스란히 재현하기 때문에 못 쓰는 조이스틱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정확한 입력보다는 어느 정도의 ‘멍청함을 얼마나 꾸준하게 유지하는가’의 방식으로 변화해 갔다. 구리 접점을 통해서 입력 값을 전달하던 것은 구리 접점이 휘거나 눌어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구리와 구리 사이에 고무를 덧대는 형태로 변했다가 최근 스위치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변형되었고, 조이스틱을 중립으로 복귀시켜주는 탄성고무는 내구성이 조금 더 뛰어난 실리콘으로 바뀌었다. (그림 2. 그림3 그림 4 참조.) * 초기 조이스틱 (출처: 필자 직접 촬영) * 중기 조이스틱 (출처: 필자 직접 촬영) * 최신 조이스틱 (출처: 필자 직접 촬영) 그렇다고 해서 조이스틱이 초기의 조이스틱에 비해서 최신의 조이스틱으로 선형적으로 진보되고 개선되면서 완성되었다는 관점으로도 볼 수 없다. 게임을 하는 물리적 장소가 전자오락실에서 게이머의 사적인 공간으로 변화되는 등과 같이 게임과 게이머를 둘러싼 요소들의 변화에 따라 인터페이스는 언제든지 변화할 가능성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구리 접점을 이용하는 초기의 조이스틱은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도 가격이지만, 스위치가 만들어내는 소음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음으로 가득 찬 전자오락실이 아닌 집에서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이 늘어나면서 초기 조이스틱의 수요는 꾸준하게 존재하고 있다. 만약 게이머들이 더욱 마니아화 되고 ‘확장된 신체’로써의 인터페이스를 꾸준히 관리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확산된다면, 유지보수를 자주 해주더라도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진 구리접점 조이스틱이 주된 형식이 되어 진화를 시작할 것이다. 이처럼 인터페이스는 설계에 투영된 이상을 정확히 구사하기 위해 발전할 수도 있지만, 우연한 계기들에 의해 손쉽게 그 설계가 변형되기도 한다. 변형된 인터페이스는 게이머들의 게임 실천 자체를 변형시키기도 하며, 이런 변화된 게임실천은 게임이 제공하는 경험의 변형을 가져오고, 게임성 그 자체를 다르게 느끼게 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이처럼 인터페이스는 단순한 입력장치이고,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 없는 게임의 요소라기보다는 게임을 구성하고 있는 하드웨어이면서 동시에 게이머와 연결되어 신체화된 기계적 대상물이다.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설계에 따라 발전하거나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과 게이머는 물론이고 자신과 연결된 모든 환경과 함께 상호작용하며 변화무쌍하게 공진화(co-evolution)하는 과정 안에 놓여있다. 1) 곤살로 프라스카(2008).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 게임〉, 김겸섭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 Howland, G. (1998) Game Desine: the Essence of Computer Games. 제임스 뉴먼(2008), 〈비디오게임〉, 14쪽에서 재인용. 3) 조동원 (2019), “디지털문화 초기사 연구: 동아시아 지역횡단의 전자오락기·개인용 컴퓨터 복제를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보, 98, 153-178.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기술문화연구자) 전은기 문화인류학과 문화연구를 전공하고, 현재 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과 한양대학교글로벌다문화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모바일게임 이용자의 입장에서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에 대해 생각해보기
2022년 9월 29일 구글 스태디아의 서비스 종료가 발표되었다. 스태디아는 클라우드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서비스로 또 한가지의 특징은 월정액으로 구글이 계약해서 제공하는 여러 게임을 플레이할수 있는 게임 라이브러리 구독 서비스였다는 점이다. 다만 따로 돈을 내야하는 게임도 있어서 완전한 구독형 서비스는 아니었다. 제공하는 게임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고 최신 게임을 하려면 월정액 요금 외에도 추가적인 비용을 내야했기 때문에 구글 스테디아는 이용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고 결과적으로 구글의 의지 부족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 Back 10 GG Vol. 23. 2.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YoungWook Oh Game enthusiast, game programmer, and historian of games. A growing interest in Korean games turned into a hobby of collecting and organizing materials, and has been steadily gathering and archiving them since 2006. Co-authored books including The History of Korean Games and Mario, Born in '81, and contributed as a developer to games such as Dungeon & Fighter, Acropolis, Pony Town, and Timeline Dungeon.
- 산업의 트리플A, 이용자의 트리플A
한 때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을 더욱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 그 이상의 신성함을 게임에서 꿈꿔보자. 하나의 통일된 지향을 추구하기 보다는, 여러 방향의 주변화된 상상력이 각자의 방식으로 누적될 때 인류에게 진정으로 울림을 주는 더욱 경이로운 경험을 우리는 협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통해 가능한 것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그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 Back 산업의 트리플A, 이용자의 트리플A 10 GG Vol. 23. 2. 10. 트리플A(AAA)에 관하여 얼마전 게임과학연구원에서 20대 연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트리플A라는 단어가 더 이상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몇일 후, 이경혁 편집장에게서 트리플A 개념에 대한 원고 제안 전화를 받았다. 연달아 찾아온 우연이 운명같이 느껴진 걸까, 덥석 퀘스트를 수락하고 나서야 미련하게 후회가 밀려왔다. 고민의 끝에 나는 트리플A에 대해서, 나와 그 단어의 아주 사적인 관계를 벗어나 그에 대해 고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우선 고백부터 하고 싶다. 지금 하려는 트리플A의 이야기는 어떠한 학술적인 개념에 대한 분석이기 보다는, 오롯이 나의 존재-제약적 위치성(positionality)에 기반한 개인적인 심중소회라는 점을 말이다. 한때 나라는 개인의 삶에 의미를 지녔던 ‘존재’로서 그 용어가 퇴색되거나 희미해 져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 이자, 또 그 과정속에서 의미를 찾아보려는 노력에 대한 글이다.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 2010년 경만 해도, 게임 산업의 일원들은 누구나 트리플A를 꿈꿨다. 적어도 내가 만난 이들은 그랬다. 조금 과장하자면, 당시 "AAA"라는 레이블은 탁월함과 위신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많은 개발자들은 명성을 얻을 게임을 만들기를 열망했다. 당시 말단 주임이었던 나는, 그저 AAA 개발에 참여한다는 사실만으로 괜스레 혼자 자긍심에 벅차오르곤 했다. 게임의 세계에서 트리플A는 1990년 대 후반, 야심 찬 생산 가치를 지닌 게임의 유형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 당시 주요개발자들에게 트리플A는 가능한 한계를 확장하고, 훌륭한 게임은 어떤 것인지 정의하는 것을 칭했다. 실제 당시의 트리플A 게임들은 대체로 주요 스튜디오의 대표 타이틀로, 뛰어난 기술 활용을 바탕으로 그래픽, 사운드, 플레이어 경험 측면에서 매번 업계 표준의 진화를 쉼없이 이끌었다. PC게이머로서 나의 게임 경험은 플로피디스크와 비트 그래픽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도스화면에서부터 광케이블 인터넷까지 지나오는 동안 나에게 게임의 지속적인 변태(metamorphosis)를 지켜보는 일은 큰 즐거움이었다. 기술적 발전과 더불어 진화하는 게임의 세계와 경험은 늘 기대 이상이었다. 잔디 잎이 한 올 한 올 바람에 실랑이는 넓은 들판에 서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감성에 잠긴 때, 오픈월드를 산책자처럼 거닐 때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걸던 NPC AI가 더 이상 사물처럼 느끼지 않아졌을 때, 그리고 수천명의 사람들과 물러설 수 없는 전투를 벌이던 중 그 부하를 버텨내는 서버의 안전성을 새삼 인지했을 때, 매 순간이 ChatGPT를 만나던 순간만큼 경이로웠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이 디지털 게임이라는 것의 한계라는 것이 있을까? 앞으로 얼마나 더 대단한 경험을 하고, 또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즐거울 수 있을까? 그리고, 절실히 바랬다. 누구나 열망해왔지만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그런 경험을 만드는 여정에 동참할 수 있기를. 어쩌면 잊혀지고 변질되고 있는 이름 라떼 감상이 조금 길었는데 현재 시점으로 복귀해보자. 트위터 투표를 진행해봤다. “당신의 경험에 기반했을 때, 트리플A라는 용어가 최고 품질 게임 프로덕션의 의미로 여전히 자주 사용되나요?”라는 질문에 57.1%만이 ‘그렇다’, 그리고 18.6%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70여명의 소규모의 샘플임에도 나의 트위터 친구들이 대부분 게임, 이스포츠 관련 종사자, 연구자, 혹은 열정적인 게이머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적잖이 놀라웠다. 그리고 여전히 주변에서 용어 자체는 쓰이지만, 품질 보다는 개발비 규모의 표현이라도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친절한 댓글을 보았다. 이 어설픈 사전조사는 트리플A라는 용어는 보편적이지 않고, 트리플A 레이블은 ‘훌륭한 게임’ 즉 예술적 또는 기술적 성과보다는 높은 제작 예산과 마케팅 비용을 들여 얻는 상업적 성공과 산업 가시성의 수준을 나타낼 때 더 자주 사용된다는 결론을 지었다. 게임의 세계에서 트리플A의 개념이 인식되는 방식은 수년간 역동적인 변화를 거치면서 추억속의 소중한 의미는 퇴색되었나 보다. 안타까움과 함께 궁금해진다. 이 개념적 변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트리플A의 기원과 변천: 산업의 트리플A, 게이머의 트리플A 사실 AAA라는 용어의 기원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원래 AAA는 가장 높은 기준의 신용도를 보이는 채권에 부여되는 등급으로, 가장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낮은 채권을 의미했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90년대말 미국의 게임쇼에서 일부 개발사들이 사용하면서 게임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 용어가 게임을 수식하게 되었을 때, 그 관계로부터 중의적인 의미가 발생하게 되었다. 하나는 기원의 의미 그대로의 경제적 측면에서 ‘높은 신용’이다. 즉, 개발사나 투자자들에게 그들의 재무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안전한 투자 및 사업 기회를 의미했다. 그와 동시에 게이머들에게도 트리플A는 높은 게임퀄리티에 대한 ‘신뢰’의 약속을 의미했다. 일례로 전설적인 게임디자이너 시드마이어(Sid Meyer)는 ‘승인 표시(Seal of approval)’를 비디오 게임 역사 상 가장 주요한 혁신 3가지 중의 하나로 꼽은 적이 있다(Arendt, 2000). 패키지 박스에 ‘시드마이어’의 이름이나 닌텐도의 ‘품질보증표시(Seal of Quality)’가 있을 때, 게이머들은 특정 수준 이상의 게임 경험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이러한 관행이 대충 만들어서 쉽게 돈을 벌기 위한 ‘셔블웨어(Shovelware)’ 게임으로부터 게이머들을 보장하는 게임 퀄리티’의 기준을 설정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보았다. 한국이 온라인 게임의 제국으로 불리던 시절(Jin, 2010) NCSOFT에서도 게임이 출시되기 위해서는 ‘NC Quality’의 높은 벽을 넘어야했다. * 시드마이어의 <문명>(1991) 시작화면과 닌텐도의 품질보증표시 즉, 트리플A는 경제적 가치와 게임적 가치를 모두 지닌 게임, 그래서 모든 이해관계자가 신뢰할 수 있는 게임을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이 나아가야할 방향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용어가 지닌 경제적 가치와 게임적 가치의 균형 상태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경계선은 전자의 방향으로 점점 기울어갔다. 경제적 ‘생산가치’로서 트리플A는 초기에는 흥행이 보장된 ‘상품’을 그 자체만을 의미했으나, 게임이 비즈니스 모델이 확장팩을 비롯한 여러 방식으로 다각화 되는 과정에서 한 게임의 지속가능한 자산화(assetization) 역량까지 표현하게 되었다(Bernevega & Gekker, 2021). 이 과정에서 AAA+나 AAAA와 같은 변형된 용어도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디 게임이 더욱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그 반대 극부에서 기존 흥행 사례를 따라 표준화된 개발 방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위험도 낮은 게임개발시스템(Folléa, 2020)이나, 그로 인해 극도로 동질화 되어버린 게임 산업을 의미하기도 한다(Keogh, 2015). 마치 영화계의 ‘블록버스터’라는 용어가 진부해진 헐리우드식 흥행 공식에 갇혀버린 상업 영화를 의미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오늘날, 트리플A라는 용어는 반쪽짜리 지향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의미변화로 인해 트리플A라는 존재는 ‘훌륭한 게임’이라는 지향으로서 신성한 상징성, 즉 이정표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상징적 빈곤의 극복을 위하여 그렇다면 트리플A가 한때 지니던 상징적 기능의 상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개인적으로는 그 상징적 빈곤은 현 시대의 인류가 게임에 대해 지닌 사회적, 공동체적 상상력의 빈곤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임산업의 규모는 점차 방대해지고 있지만, 게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혼미한 상태에 처해있다. 나아가 게임에 대한 인식론적 간극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빈곤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많은 경우에 그들이 말하는 ‘게임’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게임연구자로서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현행법의 ‘게임물’의 정의를 수없이 읽었지만 여전히 아리송하다. 게임의 ‘등급’을 제시하는 사람들, 개발하는 사람들, 그리고 플레이 하는 사람들 사이의 인식론적 간극과 그로 인한 갈등은 점점 심화된다. 이 빈곤의 시대에, 여전히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일이지만, 오히려 그 원래부터 그 실체가 모호했던 트리플A라는 존재의 쇠퇴 과정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싶다. 왜냐하면, 여전히 트리플A는 그 개념의 상징적 몰락, 즉 어떠한 ‘신비로움’이 탈착되는 과정을 통해서 여전히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정표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먼저, 트리플A의 의미변화는 경제적 가치가 게임적(미학적, 기술적, 플레이경험적) 가치와 분리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게임에 대한 ‘(오락)상품’ 혹은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관점을 벗어나 그 매체적 잠재력에 대해 본질적으로 차원에서 고민해 볼 수 있는 틈을 얻는다. 지금까지 게임은 좁은 의미에서 여가를 위한 문화(엔터테인먼트)산업으로 기존 사회의 존재하는 것들 중에 가장 비슷한 개념들에 빗대어 표현되어왔다. 이러한 규범적, 인식론적 경계는 게임을 고정관념 속에 가둬왔다. 트리플A의 상징적 몰락은 이 틀을 인식함을 통해 약화시킬 수 있는 계기, 즉 사회가 게임을 인식하는 방식을 변혁할 수 있는 계기를 시사한다. 게임이라는 고유한 예술 혹은 기술 형식에 깃든 가치들은 그 고정관념 속에서는 도무지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우리는 ‘트리플A’ 혹은 그 이름이 상징했던 것에 대한 재정의 혹은 대안의 탐색을 추구할 수 있다. 이것은 생산자-소비자의 이분법적 경계를 넘어서, 게임에 대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추구할 수 있는 미래 게임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다시 모색하는 것이다. 게임의 가치가 예산이나 생산 가치가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는 경험과 감정에 있다는 것을 되새기자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트리플A의 쇠퇴는 게임이 더 이상 하위문화가 아니라 보편적 지위를 획득하였다는 점도 나타낸다는 점에서 또 한번 우리에게 어떠한 인식적 프레임을 부여한다. 최근 게임과학연구에서 ‘포스트게이머 전회’ 담론은 게이머라는 집단이 기존의 ‘젊은 백인 남성’의 하위문화적 스테레오타입에서 각각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발현되는 다양한 인간-게임의 관계에 따라 다원화된 여러 집단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논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트리플A는 당대의 상황속에서 비교적 동질성을 지닌 초기 게임 커뮤니티는 ‘훌륭한 게임’을 유사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는 점과, 동시에 다원화된 현 시대의 여러 ‘게이머 유형’들에게는 공통된 이정표가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도 드러낸다. 그렇다면, 환하게 빛나던 트리플A는 양초처럼 녹아내려 초라해짐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빛의 설계를 구체화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포괄성과 접근성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플레이어 중심 가치를 반영하거나 새로운 기술적 발전에 걸맞은 더 실험적이고 더 야심 찬 열망과 이상을 반영한 이정표 말이다. 그리고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경제적 생산 가치와의 협상에 있어, 더욱 윤리적이거나 지속가능한 방식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구축할 시점이라는 것을 인식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리플A를 기리며 게임에 대한 경제적 가치와 게임적 가치의 경계가 재협상되는 과정에서 정든 이름은 서서히 잊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대변하던 가치들과 의미변화 과정은 게임이라는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그만의 프레임을 우리에게 남긴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게임의 가치는 게이머와 개발자, 혹은 그 사이의 모호한 정체성의 여러 이해관계자의 모두의 변화하는 우선순위와 욕구를 반영하여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화하는 역동적인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이제 인간-기술의 본질적인 관계성이 재고되는 패러다임의 전회기에 서있다. 지난 몇 십 년에 걸친 디지털 시대가 디지털 기술을 기존 사회의 경제적 효율성의 논리속에서 활용하던 시기라면, 이제 우리 일상을 구성하던 대부분의 ‘물질적인 것’들이 디지털로 구현된 포스트디지털 시대는 미래의 규범들이 새롭게 쓰일 수 있다. 그리고 한 때 ‘쓸모없는 것’이었던 게임은 그 모든 가능성들의 테스트베드이다. 이스포츠나 디스코드의 예시에서 드러나듯, 게임과 관련 문화는 그 자체로 머무르지 않고 외부의 것들 것 혼성적으로 결합하면서, 기존 사회의 규범들을 무력화시키거나 변형시키고 있다. 한 때 트리플A가 상징했던 것들을 더욱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서, 그 이상의 신성함을 게임에서 꿈꿔보자. 하나의 통일된 지향을 추구하기 보다는, 여러 방향의 주변화된 상상력이 각자의 방식으로 누적될 때 인류에게 진정으로 울림을 주는 더욱 경이로운 경험을 우리는 협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통해 가능한 것의 경계를 계속 확장하고, 그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참고문헌 Arendt, S. (2000, March 4). Civilization Creator Lists Three Most Important Innovations in Gaming | WIRED. Wired. https://www.wired.com/2008/03/sid-meier-names/ Bernevega, A., & Gekker, A. (2021). The Industry of Landlords: Exploring the Assetization of the Triple-A Game. Https://Doi.Org/10.1177/15554120211014151, 17(1), 47–69. https://doi.org/10.1177/15554120211014151 Folléa, C. (2020). Experiencing, Experimenting with, and Performing Visual Narratives. Http://Journals.Openedition.Org/Inmedia, 8.1. https://doi.org/10.4000/INMEDIA.2031 Jin, D. Y. (2010). Korea’s online gaming empire. MIT Press. https://mitpress.mit.edu/books/koreas-online-gaming-empire Keogh, B. (2015). Between triple-a, indie, casual, and diy: Sites of tension in the videogames cultural industries. In K. Oakley & J. O’Connor (Eds.), The Routledge Companion to the Cultural Industries (1st ed., pp. 152–162). Routledge. https://doi.org/10.4324/9781315725437-21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Ph.D. 게임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University of Jyväskylä 박사후연구원) 진예원 게임·이스포츠를 통해 기술-인간(문화)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관심이 많다. 게임과학연구의 글로벌, 다학제간, 오픈사이언스 접근을 지지한다. DiGRA 한국 지부의 창립 멤버이고, 현재 Esports Research Network Board Member, 한국e스포츠학회 이사, APRU Games and Esports Research Working Group member로 활동하고 있다. 한동안 NCSOFT와 RiotGames Korea에서 근무했다. 저서로는 (2021, 챕터공저), ‘이스포츠의 기술성 분석을 통해본 포스트디지털 문화연구’(2022, 박사논문), ‘게이밍 경험에서의 일상과 게임 세계의 개념적 혼성’(2018, 논문) 등이 있다.
- 「주류 게임 내 우익 극단주의: 문헌 검토」 의 검토
2021년 11월, <로블록스>는 한 콘텐츠 제작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당한 루벤 심(Ruben Sim)이라는 인물은 사이버 폭력 집단을 조직해 플랫폼과 플레이어, 개발자들을 위협했다. 이미 수년 전 우익 극단주의적 수사법 사용과 플레이어 괴롭힘으로 차단된 바 있지만, 루벤은 타인의 계정을 빌려 계속 <로블록스>에 접속해왔다. < Back 「주류 게임 내 우익 극단주의: 문헌 검토」 의 검토 29 GG Vol. 26. 4. 10. 2021년 11월, <로블록스>는 한 콘텐츠 제작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당한 루벤 심(Ruben Sim)이라는 인물은 사이버 폭력 집단을 조직해 플랫폼과 플레이어, 개발자들을 위협했다. 이미 수년 전 우익 극단주의적 수사법 사용과 플레이어 괴롭힘으로 차단된 바 있지만, 루벤은 타인의 계정을 빌려 계속 <로블록스>에 접속해왔다. 그의 위협은 같은 해 10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로블록스> 개발자 컨퍼런스에 대한 폭력 위협으로까지 확대되어, 행사가 일시적으로 봉쇄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것이 결코 예외적인 사건은 아니다. <로블록스>는 해당 소송을 제기하기 훨씬 전인 2009년부터 이미 극단주의적 팬 제작 콘텐츠와 혐오 발언, 게임 내 행동 문제로 고심해 왔다. 해당 일화는 웰스(Garrison Wells)를 비롯한 6명의 연구자가 학술지 '게임과 문화(Games and Culture)'에 발표한 논문 「주류 게임 내 우익 극단주의: 문헌 검토(Right-Wing Extremism in Mainstream Games: A Review of the Literature)」(2024)의 서두를 여는 장면이기도 하다. 논문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극단주의 그룹이 온라인 게임 공간을 어떻게,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활용하는지 그 추세를 파악하는 일이 플레이어를 보호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이 인용하는 반명예훼손연맹(Anti-Defamation League)의 2021년 보고서는 이 문제의 규모를 잘 보여준다. 미국 내 플레이어 10명 중 1명은 온라인 게임에서 백인 우월주의 이데올로기를 접하고, 청소년 플레이어의 60%, 성인 플레이어의 83%가 괴롭힘을 경험했다. 여성, 흑인, 아시아계 미국인 플레이어 모두 지난 1년간 괴롭힘이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이 숫자를 게임 산업의 규모와 겹쳐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비디오 게임 산업은 영화와 음악 산업을 합친 것보다 더 큰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약 2억2,700만 명의 미국인이 게임을 즐긴다. 주간 평균 온라인 플레이 시간이 6.5시간에서 7.5시간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은, 온라인 게임이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의 핵심 장(場)이 되었음을 뜻한다. 극단주의 그룹은 과거에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활용했던 것처럼, 이제 이 거대한 공간을 모집과 이데올로기 정상화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학술적 검토는 이 논문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들은 바로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21년 9월까지의 관련 문헌을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논문은 체계적 문헌 검토라는 방법론을 채택했다. 2021년 3월부터 9월까지 3단계에 걸친 검색을 실시했으며, 웹 오브 사이언스(Web of Science), 스코퍼스(Scopus), 구글 스칼라(Google Scholar) 등 16개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했다. 검색어는 게임 관련 변형어를 백인 우월주의, 대안 우파(alt-right), 국내 극단주의와 관련된 76개 핵심 용어와 조합하는 방식이었다. 243개의 잠재적 자료를 식별한 뒤 선정 기준을 적용해, 우익 극단주의와 비디오 게임의 관계에 실질적으로 초점을 맞춘 문헌만을 남겼다. 최종 코퍼스는 학술 논문 37편, 웹 기사 및 정기간행물 28편, 편저의 개별 장 12편, 학위 논문 9편, 도서 6권, 보고서 5편 등 총 97편으로 구성되었다. 각 문헌은 최소 2명의 검토자가 독립적으로 읽고 주석을 비교했으며, 의견 차이가 있을 경우 제3의 검토자가 참여해 합의를 도출했다. 10주에 걸친 팀 토론을 통해 공통 주제와 논거를 합성했다. 이 연구의 방법론에는 분명한 강점이 있다. 사전에 정의된 검색 프로토콜과 선정 기준을 통해 선택 편향을 줄이려 했고, 복수 검토자에 의한 독립적 분석과 합의 과정은 주관성을 통제하기 위한 적절한 절차다. 그러나 저자들 스스로도 인정하듯 몇 가지 중요한 한계가 존재한다. 우선 코퍼스의 성격 문제다. 최종적으로 분석을 위해 선별된 97편 중 이론적 논문과 비판적 역사 분석 같은 비실증적 연구가 64.9%를 차지하고, 사례 연구·콘텐츠 분석·민속지학 등 질적 실증 연구가 28.9%다. 양적 연구는 극히 드물었다. 이것은 이 분야 자체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음을 반영하지만, 동시에 이 문헌 검토가 종합하는 것이 실증적 증거의 총체라기보다는 이론적 논거와 사례 분석의 집합에 가깝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저자들의 결론이“기존 문헌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2차적 진술이라는 것과, 그 기존 문헌 자체의 실증적 토대가 아직 얇다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확증 편향의 가능성도 있다. 저자들은 스스로 “본 검토의 설계는 우익 극단주의와 비디오 게임 사이에 실제로 기존의 관계가 있다는 가설 하에 수행되었다”고 밝히며, 이 관계를 반박하는 연구가 출판 편향으로 인해 미출판 상태일 수 있다고도 인정한다. 실제로 앤드루스(Andrews, 2023)는 게임화와 극단주의 공격 사이의 이론적 관계를 주장하기 전에 대안적 설명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으며, 저자들은 이를 한계점 부분에서 직접 언급한다. 이러한 투명성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독자로서는 논문이 제시하는 서사가 문헌 내의 지배적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지 확정된 인과관계가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범위의 인위적 제한 역시 논의가 필요하다. 미국 내 우익 극단주의로 초점을 좁힌 것은 분석의 깊이를 위한 합리적 선택이지만, 동시에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만든다. 우익 극단주의는 인종차별, 여성 혐오, 반유대주의를 토대로 구축되는데, 이 각각의 영역에 대한 게임 연구 문헌이 별도로 존재한다. 저자들도 이러한 연구 분야의 결과들을 통합한다면 작용 중인 복잡한 상호작용에 대해 더 넓고 맥락화된 이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문헌 수집이 2021년 9월에 종료되고 보충 검색이 2023년 2월까지 이루어졌지만, 이후 이 분야의 연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종합하면, 이 논문은 당시까지의 연구 지형을 지도로 그린 첫 번째 시도로서 의의가 분명하되, 그 지도가 보여주는 것은 확정된 사실의 총체라기보다는 학계가 주목하기 시작한 우려의 윤곽에 가깝다. 논문이 제시하는 첫 번째 핵심 주제는, 게임 산업 자체에 내재된 구조적 조건이 극단주의가 성장하기 좋은 토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네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 산업 내 다양성의 부족이다. 게임 산업은 백인 이성애자 남성에 의해 압도적으로 지배되어 왔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개발자의 비율은 불균형적으로 낮고, 여성은 리더십과 콘텐츠 주도 역할에서 심각하게 과소 대표된다. 부적절한 행동은 역사적으로 축소되거나 은폐되었으며, 2021년 캘리포니아 공정고용주택부가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상대로 제기한 성희롱·성차별 소송은 이 문제가 과거의 일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둘째, 1990년대부터 이어져 온 마케팅의 문제다. 주류 게임은 이미지와 콘텐츠 모두에서 백인 남성 교외 청소년만을 독점적 대상으로 삼았다. 전쟁, SF, 판타지 테마가 주를 이루면서 적을 정복하는 백인 남성 주인공이 중심이 되었고, 여성 캐릭터는 등장하더라도 연약하거나 성적으로 대상화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2021년 미국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ESA) 보고서가 미국 게임 플레이어의 45%가 여성이라고 밝혔음에도, 마케팅은 여전히 젊은 백인 남성에게 영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논의가 다소 단선적이라는 점은 지적할 수 있다. 2010년대 이후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대형 타이틀이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뒀고, 인디 게임에서는 다양한 정체성의 재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코퍼스가2021년까지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최근의 변화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셋째, 여성 혐오의 문제다. 게임 공간을 남성적 영역으로 젠더화하는 것은 남성 플레이어에게 우월감을 부여하고 내집단과 외집단의 분열을 조장한다. 여성의 존재감 증가는 ‘침입’으로 간주되며, 일부 남성 게이머들은 인종차별적·성차별적 행동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로 합리화한다. 극단적인 경우 강간 위협이나 살해 협박으로까지 이어진다. 넷째, ‘하드코어 게이머’ 정체성과 남성주의 온라인 생태계(Manosphere)의 연결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드코어 게이머 정체성에는 원망과 피해의식, 즉 자신들이 차별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감각이 포함되게 되었다. 이러한 감정은 학교, 직장, 놀이 공간의 여성화에 대한 반동적 백인 남성 조직의 공포와 맞닿아 있다. 논문에 따르면, 남성 권리 운동가들과 대안 우파 급진주의자들은 백인 남성 게이머들을 “디지털 공간을 침범하는 타자들에 맞서 싸우는 피해자”로 명명하면서 이들에게 호소한다. 지위 상실의 원인을 여성과 소수자에게 돌리는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정상화하고 세력을 확장하려는 극우 극단주의자들과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한다. 이 분석은 설득력이 있지만, 한 가지 주의가 필요하다. 하드코어 게이머라는 범주가 마치 본질적으로 극단주의에 취약한 것처럼 읽힐 수 있다는 점이다. 논문 자체도 퍼거슨과 글래스고(Ferguson & Glasgow, 2021)를 인용하며 “상황의 맥락은 복잡했으며, 이 운동의 많은 지지자들은 하드코어 게이머라는 고정관념의 범주 밖에 있었다”고 언급한다. 게임에 진지하게 몰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정체성 구성과 그것이 정치적으로 동원되는 방식이 문제라는 점을 구분해야 한다. 게이머게이트(Gamergate)는 하드코어 게이머 문화와 우익 극단주의가 결합한 분수령적 사건이다. 2014년, 한 여성 게임 개발자에 대한 근거 없는 루머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게임 저널리즘의 ‘윤리’를 표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게임 커뮤니티 내 다양성과 평등을 옹호하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에 대한 조직적 괴롭힘 캠페인이었다. 신상 털기, 살해 위협, 강간 협박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주목할 만한 분석은 우익 극단주의 운동의 지도자들이 게이머게이트를 모집의 기회로 포착했다는 부분이다. 당시 보수 뉴스 사이트 브라이트바트(Breitbart News)에서 활동하던 스티브 배넌(Steve Bannon)과 마일로 이아노풀로스(Milo Yiannopoulos)는 자신들의 자원을 활용해 이 증오 캠페인을 우익 운동으로 포섭했다. 이후 레딧(Reddit) 하위 커뮤니티 분석에서 게이머게이트 지지자들과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 상당한 중복이 확인되었다. 게이머게이트에서 사용된 전술들, 즉 ‘안전 공간(safe space)’이나 ‘눈송이(snowflake)’ 같은 용어를 통한 진보적 견해의 묵살, 신상 털기, 트롤링, 폭력 위협 등은 이후 온라인 극단주의의 표준적 전술이 되었다. 논문의 표현을 빌리면, 이러한 전술들은 극단주의자들의 “온라인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게이머게이트는 “게임이라는 현대 청소년 문화의 중심 무대에 조직화된 우익 극단주의가 공식적으로 데뷔한 사건”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도 비평적 시각이 필요하다. 게이머게이트에서 우익 극단주의로의 이행을 너무 매끈한 직선으로 그리면, 게이머게이트 참여자들의 다양한 동기와 그중 상당수가 극단주의와 무관했을 수 있다는 복잡성이 가려진다. 저자들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서술의 전체적 흐름은 게이머게이트를 거의 필연적으로 극단주의로 이어지는 경로의 일부로 읽히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기능한 측면이 있는 것과 본질적으로 그러한 운동이라는 판단은 다르다. 극단주의가 게임 공간에 스며드는 구체적인 방식도 분류한다. 주목하는 것은 유머와 암호화된 언어를 통한 침투다. 극단주의자들은 밈과 농담을 활용해 혐오를 트롤링이나 풍자로 위장한다. 논문이 인용하는 콘디스(Condis, 2019a)의 표현이 정곡을 찌른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보여주는 동시에 ‘발뺌의 여지(plausible deniability)’라는 방패막을 활용하여, 특정 인종차별적 메시지가 진심인지 장난인지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만든다. 대표적 사례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인종차별을 자행하는 길드들이 흑인 플레이어를 ‘오크’로 지칭한 것이 제시된다. 게임 용어 뒤에 인종차별을 숨기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암호신호(dog whistles)’를 사용한 수법은 일반 플레이어에게는 무해한 게임 용어처럼 보이지만,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이들에게는 분명한 신호로 작동한다. 모딩(modding)을 통한 극단주의 콘텐츠 삽입도 중요한 경로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을 반영한 게임을 직접 개발하기도 했지만, 제작 품질이 낮아 인기가 제한적이었다. 최근에는 주류 게임에 모드를 통해 극단주의 콘텐츠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초점이 이동했다. <둠>이나 <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은 1인칭 슈팅 게임에 나치 테마나 KKK 스킨을 삽입하고, <하츠 오브 아이언IV>나 <문명> 같은 역사 전략 게임에서는 나치 독일로 플레이하거나 특정 인종 집단의 말살을 승리 조건으로 설정하는 모드가 만들어진다. 살바티(Salvati, 2019)의 표현을 빌리면, “명시적으로 인종차별적, 민족주의적 또는 신파시스트적 테마를 포함하도록 전략 게임을 모딩하는 관행은 최근 몇 년 동안 일종의 가내 수공업처럼 확산”되었다. 이러한 모드는 극단주의 그룹에게 직접 개발한 조잡한 게임보다 훨씬 주류적 매력을 가진 모집과 유포 도구로 활용된다.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주류 게임 자체가 의도치 않게 극단주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이른바 ‘은근한 주입(soft sell)’에 관한 논의다. <콜 오브 듀티>나 <메달 오브 아너> 같은 중동 배경 전쟁 게임이 미국의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고, <문명>이나 <하츠 오브 아이언> 같은 전략 게임이 민족주의·제국주의적 환상을 실행할 수 있어 우익 극단주의자들에게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킹과 레너드(King & Leonard, 2016)에 따르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바이오 하자드>, <그랜드 테프트 오토> 등은 극단주의 커뮤니티에서 “재미의 원천임과 동시에 백인 민족주의를 찬양하거나 홍보할 수 있게 해주는 게임”으로 인용된다.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이런 게임을 인종 전쟁 준비를 위한 훈련 모듈로까지 인식한다고 한다. 우익 급진주의를 비판하려 한 <파 크라이5>조차도, 극단주의 집단의 신념을 완전히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을 부적격하고 무능한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을 도왔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은근한 주입에 관한 논의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지만, 동시에 가장 신중한 독해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극단주의자가 특정 게임을 자신들의 세계관에 맞게 해석한다는 것과, 그 게임이 실제로 극단주의를 촉진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주장이다. 성경이나 셰익스피어도 극단주의자에 의해 전유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텍스트 자체의 본질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저자들 역시 이러한 게임들이 극단주의를 의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의도치 않은 효과와 수용자의 전유 사이의 구분이 더 명확했다면 논의의 설득력이 한층 높아졌을 것이다. 다만, 게임 내 캐릭터 묘사의 고정관념 문제는 별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레너드(Leonard, 2006)의 표현처럼, 동양인을 범죄자나 무술가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폭력적 악당이나 운동선수로, 여성을 피해자나 성적 대상으로 반복 묘사하는 패턴은 “인종에 관한 지배적인 아이디어를 반영함으로써 일상적 및 제도적 관계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마지막에 제기되는 문제의식은 게임 업계와 입법자들의 대응 부족이다. 게임 회사들은 흔히 탈정치적 입장을 표방하지만, 필자들은 이것이 실질적으로 극단주의의 방치를 의미한다고 비판한다. 콘디스(Condis, 2019a)의 표현을 빌리면, “플랫폼 관리 책임에서 손을 떼려는 기술 기업들의 욕구는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다른 증오 집단들이 악용할 수 있는 핵심적인 특징”이 된다. 스팀과 디스코드는 극단주의 활동의 허브로 자주 인용되며, 디스코드는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극우 집회의 조직 허브 역할까지 한 바 있다. 콘텐츠 중재의 경제학도 문제다. 논문은 기업들이 혐오 표현이 유발하는 참여도 증가를 통해 이윤을 높이면서, 이를 해결하는 비용은 회피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혐오 표현을 생성하는 플레이어들이 가장 열성적인 소비자라는 역설이 중재에 대한 방임적 접근을 부추긴다. 플레이어에게 제공되는 신고 시스템은 사후적으로만 작동하며, 중재의 부담을 커뮤니티 자원봉사자에게 전가하는 구조다. 많은 플레이어는 시스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신고 자체를 포기한다. 이러한 행동을 근절하지 못한 결과는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환경을 조성했으며, 많은 플레이어는 혐오적 행위를 게임 플레이의 예상되거나 정상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체념하게 되었다. 법률의 한계도 크다. 미국의 통신품위법 제230조는 플랫폼에 사용자 생성 콘텐츠에 대한 법적 책임을 면제해 준다.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폭넓은 해석은 혐오 표현이 법망을 빠져나가게 만들며, 코헨-알마고르(Cohen-Almagor, 2018)에 따르면 이것은 “혐오 발언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계속하도록 정상화하거나 심지어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돕는다.” 게이머게이트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집단 괴롭힘은 기존 법률로는 처벌이 거의 불가능하다. 수많은 사람이 한 마디씩 보태며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상황에서, 법 집행 기관은 공격에 가담한 한 명을 기소하는 것조차 난관에 부딪힌다. 이와 같은 지적 역시 비평적 균형이 필요하다. 논문의 서술은 주로 기업의 무책임과 법률의 부재를 강조하는데, 콘텐츠 중재의 현실적 어려움과 표현의 자유와 규제 사이의 진정한 딜레마, 그리고 과도한 규제가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물론 이것은 문헌 검토 논문의 성격상 기존 문헌의 논조를 반영한 것이지 저자들만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대편 논의도 함께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검토한 논문의 결론은 이렇다. 많은 주류 게임은 업계에 내재된 형평성 및 포용성 문제를 반영하고 있으며, 비백인·비남성을 외부인으로 규정하는 문화적 모델을 유포한다. 이는 소외된 플레이어를 향한 적대와 배제를 조장했고, 한때 비주류였던 우익 극단주의적 견해가 점차 정상화되는 문화를 허용했다. 지적하는 바는 분명하다. 게임 공간에서의 혐오와 극단주의는 나쁜 개인 몇 명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역사와 구조, 문화적 관행, 플랫폼의 설계와 정책, 법률적 환경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체계적 문제라는 것이다. 극단주의 그룹은 유머, 밈, 모딩, 암호화된 언어 등 다양한 전술을 통해 게임 공간을 모집과 정상화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업계와 법률의 대응은 부족하다. 그러나 이 논의가 말해주지 못하는 것도 있다. 97편의 연구 대부분이 이론적·비판적 역사적 작업이며, 대규모 양적 데이터에 기반한 실증 연구는 극히 드물다. ‘게임이 플레이어를 극단주의로 급진화시키는가’라는 핵심 질문에 대한 인과적 증거는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 논문의 서사는 일견 납득이 가능한 것이지만, 설득력과 증거는 다른 문제다. 미국 중심의 분석이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 유럽 등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의 게임과 극단주의의 관계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게임 산업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 예컨대 다양성 확대 노력, 포용적 캐릭터 디자인, 커뮤니티 관리 혁신 등도 이 문헌 검토의 범위 밖에 있다. 이 논문이 게임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 스스로 연구의 한계를 인정하며, 게임 공간의 가능성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게임이 아니라 방치다. 다만, 게임 오픈 채팅창에서 “ㅋㅋ 장난인데 왜 진지해”라는 말을 보게 되면, 이 분석을 상기해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장난이 누구의 진입로(on-ramp)인지는 웃는 쪽이 아니라 웃지 못하는 쪽이 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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