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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으로 코옵할 수 있는가? 그럼 깍두기는?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벌어지던 놀이에는 깍두기라는 게 있었음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인생 경력이 그다지 길지 않은 어린이들의 사회에서는 한 두 살의 차이가 체력과 경험, 지혜 면에서 막대한 차이를 만들어냈고, 경우에 따라선 같은 놀이판에 끼기 어려울 정도의 격차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동네 놀이터의 멤버라는 건 늘 정해진 숫자였고, 원활한 놀이를 위해선 때로는 룰을 비틀어가며 경험이 부족한 친구에게 어드밴티지를 줘야 했다. < Back 온라인으로 코옵할 수 있는가? 그럼 깍두기는? 28 GG Vol. 26. 2. 10. 깍두기라는 룰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벌어지던 놀이에는 깍두기라는 게 있었음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인생 경력이 그다지 길지 않은 어린이들의 사회에서는 한 두 살의 차이가 체력과 경험, 지혜 면에서 막대한 차이를 만들어냈고, 경우에 따라선 같은 놀이판에 끼기 어려울 정도의 격차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동네 놀이터의 멤버라는 건 늘 정해진 숫자였고, 원활한 놀이를 위해선 때로는 룰을 비틀어가며 경험이 부족한 친구에게 어드밴티지를 줘야 했다. * 어린이들 사이에서 한 두살 차이는 어마어마한 피지컬 차이다. 보통은 경험과 피지컬이 부족한 막내들이 깍두기로 들어오곤 했다. 비단 놀이터에서만이 아니라 디지털게임 이전에 존재했던 많은 놀이에서 우리는 깍두기 개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 천년의 경력과 팬덤을 보유한 바둑에는 하수에게 몇 점 깔고 두도록 하는 접바둑이 있었고, 고수가 기물 하나를 떼고 두는 오드 체스 같은 개념들도 로컬에선 보편적이었다. 중년들의 골프에도 멀리건(실패 타수를 빼주는 방식), 컨시드(홀컵에 공이 붙으면 넣은 것으로 인정)와 같은 깍두기 룰이 일반적이라는 점은 적당히 수준이 맞는 게임 파트너를 현실에서 만나고 엮이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혼자 하는 놀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놀이는 최소한의 파트너를 요구한다. 소꿉놀이, 병정놀이부터 바둑, 장기, 체스와 카드게임, 놀이터의 오징어게임까지 놀이는 대체로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다. 놀이의 전제에 파트너가 있다는 사실은 <테니스 포 투>나 <스페이스 워>, <퐁>같은 초창기 비디오게임들 또한 2인용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말은 놀이의 대전제이기도 했다. 초기 컴퓨터를 활용한 디지털게임의 발전은 그래서 어느 정도는 같이 게임할 상대라는 대전제를 기계로 대체하는 데 집중되기도 했다. 2인용의 <퐁>은 공 튀기기의 상대를 사람에서 쌓인 블록으로 바꾸며 1인용인 <브레이크아웃>이 되었고, 기계 한 대에 동전 하나로 두 사람이 놀던 게임은 1대에 1명, 1코인으로 변화하며 수익률과 회전률 개선에도 영향을 주었다. <퐁>과 같은 2인용 게임은 상호 경쟁의 구조이지만 90년대에 등장하는 경쟁형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위시한 대전격투 게임과 비교한다면 이는 코옵에 가깝다. 둘의 차이는 두 플레이어가 서로 대결하느냐 아니냐에 있기보다는 투입한 코인의 가치를 두고 현실에서도 승패의 결과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퐁>이 마치 테니스 코트를 대여료를 내고 빌려 함께 노는 것과 같다면, <스트리트 파이터 2>는 좀더 본격적으로 코인을 걸고 벌이는 투기장에 가깝다. 분명 놀이를 위해 대전격투 게임의 두 참여자는 상호 조응하지만, 우리는 이를 코옵이라 부르지 않는다. 오락실의 코옵은 두 참여자가 같이 코인을 넣고 동일한 목표를 향해 플레이하며 실패시 둘 다 게임오버가 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플레이였다. 따라서 코옵은 이뤄지지 않는다. 오락실에서 일어나는 실질적 코옵과 경쟁형 멀티플레이 모두 딱히 깍두기 개념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앞서도 지적했듯이, 플레잉 파트너가 될 사람을 모으고 넓히는 기능으로 깍두기 룰이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경쟁이 아니라 함께 힘을 합치는 코옵이라면 깍두기가 아니라 그냥 패널티 플레이가 되고, 동전의 가치가 걸린 격투게임에서 깍두기 따위는 누가 허용하겠는가? (물론 친구라면 짠발을 안쓴다 정도의 동네 룰 안에 들어가긴 할 것이다.) 놀이 파트너를 모으는 일의 고단함 온라인게임 시대의 등장은 놀이의 오랜 고민 중 하나인 함께 할 파트너 문제를 대단히 놀라운 방식으로 해결해버렸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대전 상대를 찾아주는 기본적인 매칭 시스템은 누적된 플레이어의 전적을 점수화해 적당한 긴장감이 감도는 비슷한 실력의 대결로 만들어내는 형식으로 진화했다. 함께 5인용 던전을 돌아야 하는 MMORPG는 초기에는 사람 구하느라 광장에서 하루종일 외치기만 날리며 점프만 뛰는 구조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매칭 시스템이 도입되며 손쉽게 원하는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 파티찾기는 전용 채팅 채널에 올라오는 구인구직 글을 텍스트 필터링하는 애드온의 방식으로 시작했다. 이미지출처: 와우인벤 애드온게시판 이는 특히 <리그 오브 레전드>나 <오버워치>같이 게임의 기본적인 규칙이 고정된 팀원 수를 요구하는 게임에 이르면 매우 중요해진다. PC방 상황을 중심으로 그 앞 세대 게임일 <스타크래프트>의 플레이 양상과 비교해 보자. 세 명의 친구가 모여 PC방에서 놀기로 한다. <스타크래프트>시대였다면 이 셋의 선택은 대부분 세 사람이 한 팀이 되어 배틀넷의 모르는 세 사람과 대결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3:3 헌터 초보만요”가 이들이 만드는 방제였고, 셋은 오프라인의 지인이 협력해 익명의 팀 하나에 맞서는 플레이를 밤새 즐겼을 것이다. * <스타크래프트> 멀티플레이에서 고수는 설 자리가 없다. 모든 방은 초보만 찾는다. 같은 인원수가 <오버워치>와 <리그오브레전드>에 이르면 이 코옵은 조금 이상해진다. 다섯 명이 한 팀이어야 하는 것이 대전제인 <리그오브레전드>에서 이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세 사람이 대전에 뛰어들고, 이름도 실력도 모를 온라인의 두 사람을 팀원으로 받아들인다. 같은 세 명이지만, 게임의 대전제가 바뀌면서 이들의 놀이는 코옵에서 코옵이 아닌, 혹은 절반만 코옵인 어떤 상황으로 넘어간다. 같이 앉은 세 사람은 계속 목소리로 “정글 어디갔냐!”를 외치겠지만, 그 목소리는 같은 팀의 나머지 두 명에겐 닿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인원 수가 달라지면 상황은 좀더 극적으로 변한다. 네 명이라면 같은 두 상황에서 이들은 <스타크래프트>를 2:2로 구성할 것이다. 이 팀 매칭에는 꽤 많은 정보들이 들어간다. 참가한 네 사람의 게임실력, 경험, 친밀도가 팀 구성에서 검토된다. 하지만 <리그오브레전드>에서는 세 사람과 동일하게 그저 5인 팟의 한 자리를 용병으로 받는 구조가 된다. 물론 지인팟이 네 명이 된다는 점에서 패배의 책임을 좀더 용병에게 몰기 쉽다는 안정감은 발생할 것이다. 다섯 명의 상황은 <스타크래프트>에서는 다시금 깍두기 룰을 부활시키도록 만든다. 2:3의 팀 매칭을 위해서는 고수 2명과 하수 3명을 나누어 불균형한 팀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완벽한 5인팟을 짜는 기쁨을 누리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깍두기 룰의 원인이었던 파트너 찾기가 온라인에서 손쉬워지면서 깍두기는 없어져야 했겠지만, 우리는 5인팟에서 여전히 깍두기 룰이 살아남는 것을 보았다. 왜냐하면, 5인팟에서 파트너는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 5인 플레이는 정확히는 온라인 게임이 아니다. 네트워크를 사용해 여러 대의 PC를 연결했지만 우리는 이를 온라인게임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 글 안에서 쓰는 온라인게임의 의미는 정확히 ‘파트너를 온라인에서 찾는 게임’이고, 이는 좀더 구체적으로는 온라인에서 익명의 게임 파트너를 찾는 과정을 가리킨다. MMORPG의 던전 찾기라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을 것이다. 길드 같은 공간에서 5인팟을 찾는 것은 위의 구분으로라면 오프라인 파트너 매칭에 가깝고, 실제로 깍두기 룰과 유사한 방식, 이를테면 고렙 유저의 저렙 버스 태워주기가 횡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10인, 25인을 넘어 40인에 이르는 대규모 공격대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대형 콘텐츠를 플레이하려면 지인팟만으로 팀을 꾸리기 불가능하며, 이때부터는 구인공고를 날리고 면접을 보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다만 그렇게 구한 공대원은 정규 공격대일 경우 정기 출석과 채널 활동을 통해 서로 친목을 다지며 지인 혹은 준지인이 되며 다시금 오프라인 매칭에 가까운 인원이 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렇지 않은 공격대원의 사례다. 이른바 ‘막공’, 딱히 아는 네트워크가 아니지만 힐러가 모자라(힐러는 항상 모자라니까) 자리를 채워야 할 사람을 모으는 경우가 있고, 아예 이것이 정규화된 던전 찾기, 공격대 찾기와 같은 본격적인 온라인 익명매칭 시스템의 경우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지인, 혹은 준 지인의 사례와 이 둘은 완전한 대조를 이루는데, 그 결정적 차이는 이 관계가 매우 인스턴트하다는 점에 있다. 공격대 찾기나 막공 지원으로 들어온 플레이어와도 죽이 잘 맞으면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게 만난 관계는 일회적이다. 우리는 지난주 파티에서 함께 한 플레이어를 ‘전우’로 느낄 수 있는가?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 관계는 일회적이고 찰나적이며, 두 번 다시 마주칠 일이 없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렇기에 MMORPG 코옵의 온라인 매칭은 <리그오브레전드>의 그 팀 매칭과 인스턴트하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온라인게임의 등장이 함께 할 파트너를 손쉽게 찾아준다는 변화를 가져왔다고 앞서 설명한 말에 이제 의미 하나를 덧붙일 수 있겠다. 그 새로 찾은 파트너가 온라인이 아닌 매칭과 갖는 가장 큰 차이는 인스턴트함이다.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놀이상대는 언젠가 나의 친구가 될 수 있지만(물론 그렇기에 원수가 되는 일도 흔하다), 온라인 매칭은 그 목적이 코옵이건 아니건간에 대체로 일회적이며, 다분히 ‘게임을 같이 한다는’ 목적성만에 오롯이 부합하는 관계에 집중된 인스턴트 파트너 관계다. 합리화되는 놀이 속의 코옵 온라인게임의 인스턴트한 파트너 관계로 이뤄지는 코옵의 문제를 살펴보다 보면 베버가 이야기한 도구적 합리성 이야기에 매우 닿아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목적의 효율적 달성을 위해 수단을 계산하고 선택하는 행위로서의 도구적 합리성은 게임이라는 놀이를 할 때 순수하게 그 놀이 자체를 위해 필요한 항목들에 집중된 연산으로 구성되는 온라인 인스턴트 매칭으로 나타난다. 고레벨 아이템을 주는 레이드몹 사냥을 위해 최저 아이템렙과 공략경험을 필터링해 멤버를 구성하건, 개개인이 가진 게임 기록에 의거해 비슷한 점수대의 플레이어들을 한 팀으로 모아 비슷한 평균점수의 상대와 매칭시키건 상관없이 온라인게임에서의 코옵은 기본적으로 도구적 합리성의 결과에 가깝다. 베버의 논지를 곱씹어보면, 결국 깍두기란 매우 전근대(!)적인 놀이문화라는 결론에 닿게 된다. 게임이라는 규칙이 제시하는 승리나 대결의 우위보다 팀과 파트너를 구성하고 그 상호작용 자체, 혹은 그 놀이를 통해 매직 서클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놀이 결과와는 무관한 상호관계를 바라보는 깍두기 룰은 아마도 베버가 오늘날 온라인게임을 플레이했다면 지적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전근대적 요소였을 것이다. 베버는 언제나 분석에서 가치중립성을 강조하는 양반이었고 그의 근대, 전근대에 대한 분석은 딱히 어떤 가치판단이 들어간 결과물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온라인의 도입으로 인해 달라진 코옵과 팀매칭의 사례를 두고 무엇이 더 좋았다 나쁘다를 비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편으로는 친목과 우애가 만들어지는 오프라인의 팀매칭 코옵을 그리워하면서도 동시에 지인 베이스로는 4인팟도 꾸리지 못하는 현실에 낙담하며 온라인 매칭의 편리함을 즐기기도 하는 것이 나다. 하지만 정말 어느 순간 규칙의 사이를 메꾸던 윤활유로서의 깍두기가 모든 종류의 온라인 코옵에서 말라붙어버리는 것은 오래 묵은 게이머 입장에서는 그 매끄러움이 남긴 향수 때문이라도 아쉬움을 만드는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고백할 수 있겠다. 다시금 돌아보면 온라인 시대에 이뤄지는 온라인 기반의 코옵이라는 건 오래된 코옵의 방식을 대체했다기보다는 그 중의 일부를 더욱 매끄럽고 정밀하게 가다듬은 결과에 가까워 보인다. 그 과정에서 휘발된 오프라인 기반의 어떤 관계들은 결함이라기보단 기술과 제도에 의한 선택의 결과로서 어쩔 수 없이 놓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날아간 아쉬움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지는 못해도, 적어도 온라인게임을 굳이 PC방에 모여서 함으로써 아쉬운 무언가를 붙잡으려고들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PC방도 예전같지 않다는 말을 듣다보면, 그 PC방 시대와 함께 휘발되는 되게 오래된 무언가도 함께 예전같지 않다는 말에 묶여 있음을 어렴풋이 직감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게임제너레이션 GG

    < Back GG Vol. Tags: 게임비평공모전, 소버린 타워, 세이브 로드, 세이브 스컴, 완벽주의, 절차적 수사학, 이언 보고스트, 예스퍼 율, Sovereign Tower, Save Scumming, Procedural Rhetoric, Game Save System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 “개발자는 자기 자신을 향해 끝없이 질문해야 한다” - 죄책감 3부작의 개발자 somi 인터뷰

    세계에서 마주하게 되는 죄책감을 느슨한 연결로 풀어낸 SOMI의 ‘죄책감 3부작’이 막을 내렸다. 전의 두 작품이 세상 밖으로 닿는 길을 터주었다면, 2020년 신작 <더 웨이크>는 한 개인의 과거와 깊은 내면으로 안내한다. 암호를 해독하며 엔딩에 이르렀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가장 개인적인 삶은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 Back 01 GG Vol. 21.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Hyejeong Park Curious about the "people" who enjoy media and culture. Studies K-pop fandom, and finds joy in the work.

  • [논문세미나] Press X to Wait: The Cultural Politics of Slow Game Time in Red Dead Redemption 2

    이번 세미나에서 리뷰할 논문은 지난 2022년 8월 ‘게임 스터디즈(Game Studies)’라는 저널에 게재된 〈Press X to Wait: The Cultural Politics of Slow Game Time in Red Dead Redemption 2〉이다. 번역하면 “X를 눌러 기다리시오: 레드 데드 리뎀션 2에서 느리게 흘러가는 게임 시간의 문화정치” 정도 될 수 있다. 이 논문은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레드 데드 리뎀션 2〉과 시간에 대한 감각을 다룬다.  < Back [논문세미나] Press X to Wait: The Cultural Politics of Slow Game Time in Red Dead Redemption 2 11 GG Vol. 23. 4. 10. 이번 세미나에서 리뷰할 논문은 지난 2022년 8월 ‘게임 스터디즈(Game Studies)’라는 저널에 게재된 〈Press X to Wait: The Cultural Politics of Slow Game Time in Red Dead Redemption 2〉이다. 번역하면 “X를 눌러 기다리시오: 레드 데드 리뎀션 2에서 느리게 흘러가는 게임 시간의 문화정치” 정도 될 수 있다. 이 논문은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레드 데드 리뎀션 2〉과 시간에 대한 감각을 다룬다. 저자는 존 밴더호프(John Vanderhoef), 매튜 토마스 페인(Matthew Thomas Payne)이다. 둘 다 미국에서 미디어 관련 교수로 활동하고 있고, 특히 매튜 토마스 페인은 밀리터리 게임과 전쟁의 관계에 관한 저서를 쓴 이력이 있다. 게임 스터디즈는 게임의 학문적 연구를 주관하는 국제 학술 저널이다. 일반적으로 학교에 소속되어 있거나 열람권을 유료 결제해야 논문 전문을 읽을 수 있지만, 게임 스터디즈는 누구나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웹에서 무료로 논문을 제공하고 있다. 웹 기반으로 운영되며, 2001년부터 지금까지 게임을 주제로 한 전세계의 다양한 논문들이 게재되어 왔다. 원문을 확인하고 싶다면 아래 URL에 접속하여 직접 읽어볼 수 있다: https://gamestudies.org/2203/articles/vanderhoef_payne 논문의 배경은 게임 리뷰에서 나타난 ‘불만’ 레드 데드 리뎀션2(Red Dead Redemption 2, 이하 레데리2)는 미국의 게임회사 락스타 게임즈(Rockstar Games)의 ‘레드 데드(Red Dead)’ 시리즈의 3번째 작이다. 동일 회사의 GTA(Grand Theft Auto) 시리즈로 잘 알려진 오픈월드 시스템에 1800년대 말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게임이 펼쳐진다. 그래서 ‘서부판 GTA’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2018년 콘솔 플랫폼에 먼저 출시되었고, 1년 뒤에 PC 플랫폼에서도 플레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레데리2는 출시 되자마자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이 게임은 매우 현실적인 그래픽을 보여주었고 게임 전반에 탁월한 현실 고증이 배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초원을 활보하는 카우보이가 된 듯하게 말을 모는 방법이나 공간 이동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NPC가 플레이어의 상황에 반응하여 대화를 나누고, 야생 동물 등 주변 환경과 상호 작용이 현실감있게 구현 되었다. 레데리2의 자유도는 무궁무진해서 “이것도 될까?”하는 실험 영상 클립이 온라인 공유되어 게임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주목을 받았다. 2020년 스팀에서 올해의 게임을 수상할만큼 게임의 인기는 독보적이었고, 다수의 게임 어워드에서 노미네이트 되었다. 전작 이후 약 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개발된 이 게임은 출시된 이후 락스타 게임즈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각인시켰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레데리2의 인기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높은 평점과 별개로 사람들의 리뷰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불만이 있던 것이다. 장점을 언급한 다음 게임 플레이가 “너무 느리다”, “지루하다”, “답답하다”라는 표현이 일색인 것이 여러 리뷰에서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게임의 현실성이 장점으로 평가되었지만, 동시에 캐릭터가 현실적인 속도 그대로 행동하는 것을 지켜보는 데에 플레이어들은 지루하고 답답함을 느끼고 말았다. 연구자들은 이와 같이 현실성 구현이라는 단일한 특성이 가지는 양가적인 의미에 주목했다. "It is defiantly slow-paced, exuberantly unfun, and wholly unconcerned with catering to the needs or wants of its players" (이 게임은 분명히 느리고, 지루하며, 플레이어들의 요구나 욕구를 고려하지 않는다) – from 평론가 “game should be called Red Dead Slow Motion” (게임 이름은 '레드 데드 슬로우 모션'이라고 불려야 한다) – from 메타 크리틱 "It is a boring and tedious simulation game... with horribly unresponsive controls and terribly slow pacing” (이 게임은 지루하고 답답한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흉측할 만큼 반응이 늦은 컨트롤과 지나치게 느린 페이스로) – from 메타 크리틱 * 논문에서 언급된 레데리2의 해외 부정적인 리뷰들 무엇이 게임을 느리게 할까요? 우리는 ‘게임적 속도감’에 익숙해져있다. 떨어진 아이템에 스치면서 ‘줍기’ 버튼을 눌러 인벤토리로 즉시 이동시키고, 식재료를 선택하여 ‘요리하기’ 버튼을 누르면 순간적으로 음식이 완성이 되는 것이다. 이동할 때면 포탈이나 워프 기능을 사용해서 멀리 떨어진 거리를 단숨에 찾아갈 수 있다. 어찌보면 게임의 현실은 진행 속도가 빠르다기보다, 뒤따라 이어지는 불필요한(현실에서는 필요한) 과정을 삭제하고 바로 결과값을 제공하고 있다. ‘과정의 삭제’가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레데리2는 게임적 속도감이 적용되지 않는다. 논문에서 다양한 예시들이 언급되지만, 대표적으로 시체에서 아이템을 얻을 때 직접 허리를 굽혀 뒤적이는 것이 그 예이다. 집 안에서 파밍을 할 때면 방 전체를 돌아다니며 가구를 일일히 손으로 열어서 확인해야한다. 공간 이동의 경우, 원거리 워프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게임 안에 (눈에 안 뜨이게) 제공되고는 있지만, 레데리2는 드넓은 맵을 말을 타고 목적지까지 이동해야 하는 내러티브적 구조를 가진다. 게임에서 많은 일이 실제 우리가 행동하듯 벌어지도록 구현이 되어 있다. 이렇게 결과로 바로 이행되지 않고 현실처럼 모든 과정을 겪도록 하는 경험은 플레이어에게 불쾌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많은 사람들이 이 ‘느린’ 감각을 게임의 부정적인 면으로 꼽고 있으니, 게임을 만든 회사의 입장에서는 개선이 필요한 사항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게임 가격은 게임에 푹 빠지기 위한 값이다 레데리2는 AAA(트리플 A)게임이다. 트리플 A를 특집으로 다루었던 GG 지난 호에서 충분히 언급되었듯, AAA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 아주 긴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이 투입된다. 게임 산업에서 AAA는 영화 산업에서 쓰이는 ‘블록버스터’라는 말과 비슷하다. 게임의 퀄리티를 최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만큼 큰 자본을 투자했기 때문에 수려한 그래픽, 탄탄한 내러티브를 자랑하는 것이 특징이다. 플레이어가 품을 수 있는 상상을 게임 내에서 최대한 허용하며 호불호를 줄이고 자유도와 사용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한 테스트 과정도 거치며 게임의 모난 면은 둥글게 깎여나간다. AAA게임의 신작 출시 소식이 예정되면, 사람들은 게임에서 어떻게 시간이 ‘순삭’ 될지 기대한다. 지갑을 손에 쥐고 결코 저렴하지 않는 그 값을 기꺼이 지불할 순간만을 기다리기도 한다. 게임에 몰입한 채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방대한 맵을 탐험하다 정신차려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잘 시간이 되어있는 게 AAA 게임 플레이의 감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AAA게임 플레이어가 가지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개발사는 게임 제작에 많은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애니메이션 하나 하나 대충 그려내지 않기 위해 긴 시간동안 공을 들인다. 만약 표현이 어색해서 몰입이 깨지거나 개발 공수가 덜 들어간 것처럼 보여 게임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평을 듣게 되면 회사 이미지에 금이 갈 수도 있다. AAA 게임의 영역에서 게임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되는 그 ‘몰입적 리얼리티’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공수가 과도한 나머지 너무 디테일한 표현으로 플레이어가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기다려야하고 몰입이 깨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회사의 입장에서 게임의 현실감 추구가 가지는 모순적인 결과다. 논문의 저자들은 상업성의 최전선에 있는 AAA 게임이 현실적인 표현에서 두 가치의 충돌을 발생시키고 있는 현상을 문화정치(cultural politics)의 순간으로 보고 있다. 제목에도 쓰여 있는 문화정치라는 말은, 문화의 영역에서 다양한 의미들이 충돌하고 각각 관계와 역학이 드러나는 상태 를 뜻한다. 고자본 투입의 결과로 고급 노동력을 오랜 시간 투입하여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AAA게임을 개발했지만 그 가치는 역설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일부 이끌게 되었다. 효율적인 진행을 추구하는 게임 시간의 헤게모니 2007년 게임 학술 기관인 DiGRA 컨퍼런스에 ‘플레이의 헤게모니(hegemony of play)’라는 주제로 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는 빠른 상호작용에 능숙하고 복잡한 공간을 파악해 공간 전환을 잘 하는 사람에게 맞추어진 게임 디자인이 산업이나 플레이어 담론에서 주류 혹은 지향되어야 하는 가치로 일컫어지면서, 게임 플레이에서 일종의 헤게모니를 형성하고 있다는 주장을 했다. 문화 연구에서 주로 사용되는 헤게모니(hegemony)란 지배를 뜻하는 개념이다. 하나의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지배적인 위치에 놓여있는 것, 그러니까 어떠한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가 더 우월하고 지배적으로 생각되는 상태를 말한다. 2007년의 발표에 이어, 본 논문의 저자들은 레데리2를 통해 ‘게임 시간의 헤게모니 hegemonic game time’를 말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빠르고 효율적인 진행을 추구하는 것은 플레이어들에게 중요한 가치로 인정된다. 이는 하나의 게임을 어떻게 헤매지 않고 빠르게 클리어 했는지의 문제다.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최소한의 아이템과 시간을 소비하여 원하는 목표로 도달함은 ‘게임을 잘하는’ 능력이며 우월한 가치로 평가된다. 따라서 이러한 게임에서의 시간 개념은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와도 연결되고, 어떠한 헤게모니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플레이어들에게 추구되어야 할 가치이며 개발사도 그에 맞게 어느 정도 ‘편리한’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레데리2의 개발사는 그와는 반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게임을 통해 발견하는 우리 사회의 시간 개념 시간이라는 개념은 점차 발전해왔다. 산업자본주의, 후기 산업자본주의, 신자유주의를 거치며 시간은 낭비되어서는 안되는 귀한 가치로 여겨져 왔다. 동일한 시간 안에 더 많은 효율성을 추구하자는 목적 아래에 사회 시스템 전반의 모든 장치들이 움직이고 있다. ‘경제성’은 같은 의미를 뜻하는 말이다. 이러한 사회가 요구하는 시간 개념에 부합하기 위해서, 심지어 즐거움조차도 효율적이고 생산적이어야 한다. 이 논문과 마찬가지로, 최근 발간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도 비슷한 현상에 주목했다. 사람들은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15초 뒤로’ 또는 ‘배속’ 기능을 통해 빠르게 시청할 수 있다. 또는 영화를 시청하는 대신, 영화 줄거리를 간략하게 전달하는 영상을 시청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시간 압박이 발생하는 나머지 여가생활의 일환으로서 영화 한 편을 2시간동안 시청하는 과정보다 ‘영화를 봤다/안봤다’, ‘영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라는 경험의 유무로서 또는 지식의 습득으로서 콘텐츠 소비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적 시간 개념에서 즐거운 여가생활이란, 시간이 낭비된다는 감각이 드러나지 않는 상태에서 달성될 수 있다. 따라서 레데리2에서 플레이어가 주인공 아서 모건의 지난한 인생을 기다리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키패드에 손이 결박되는 것처럼 느끼는 답답함과 그로 인해 몰입이 끊기면서 내가 얼마나 게임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다시 ‘현생’을 자각하게 되는 이 감각은 우리 사회에서 귀중한 시간의 가치를 드러낸다. 온라인 리뷰에서 보이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그 가치와 멀어질 때 발생하는 긴장감과 불안함으로서 볼 수 있다고 분석될 수 있다. “(X)를 눌러 사색 하시겠습니까?” 이 논문은 그렇다고 레데리2가 극도로 느린 게임은 아니라고 주의한다. 글 전체에 걸쳐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지루함과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을 분석하고 있지만 게임을 더이상 못할 정도로 과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논문 또한 레데리2가 지루하다는 리뷰에 하나 더 첨가되는 것이 아니라, AAA게임으로서 추구되어야 하는 리얼리즘이라는 가치가 담겼으나 그것이 ‘과했을 때’ 플레이어들에게 부정적인 감각이 발생한 것에 주목하고, 게임을 통해 우리 사회에 어떠한 가치가 추구되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목적 하에 연구를 전개해나갔다. 콘솔 게임기 패드에서 ‘X’는 어떤 행동 수행을 결정하는 키다. 하지만 레데리2에서는 X는 곧 플레이어에게 (잠시의) 기다림을 요하는 키이기도 하다. 레데리2라는 게임을 통해 AAA게임 플레이어가 기대하는 게임 디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시간 압박 인식은 어떤 의미인지를 발견하게 된다. 필자는 더 나아가 이 논문을 통해 과정을 삭제하고 결과로 직행하는 ‘게임적 속도감’에 대해 주목하고 싶다. 게임이 현실을 대변한다고 하지만, 게임이 정말 현실과 같아졌을 때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인지해야 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게임문화연구자) 박이선 사회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연구합니다.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결국 인간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논문세미나] 베트남 게임 환경과 무협문학의 관계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무술과 영웅담은 문학, 영화, 텔레비전 등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되는 무협 이야기를 이루는 근간이 된다. 베트남 현지어로 키엠히엡(kiếm hiệp), 트루옌쯔엉(truyện chưởng)으로 불리는 무협물은 베트남에서 중요한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20세기 초 베트남에 처음 소개된 무협소설은 인쇄매체와 온라인게임을 통해 다양한 역사적 변천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는데, 우리는 이 글에서 오늘날의 베트남 디지털게임이 다루는 무협 콘텐츠가 어떠한 배경 속에서 무협문학으로부터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나는 초창기의 무협물에 관한 경험이 베트남의 동시대 게임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생애사적 접근법과 문화적 근접성의 개념을 활용해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 Back [논문세미나] 베트남 게임 환경과 무협문학의 관계 23 GG Vol. 25. 4. 10. 무협물은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문화에 크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판타지 문학의 하위 장르다. 특히 중국 문화권 혹은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Chen, 2009)을 대표하는 장르로 이야기된다.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무술과 영웅담은 문학, 영화, 텔레비전 등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되는 무협 이야기를 이루는 근간이 된다. 베트남 현지어로 키엠히엡(kiếm hiệp), 트루옌쯔엉(truyện chưởng)으로 불리는 무협물은 베트남에서 중요한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20세기 초 베트남에 처음 소개된 무협소설은 인쇄매체와 온라인게임을 통해 다양한 역사적 변천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는데, 우리는 이 글에서 오늘날의 베트남 디지털게임이 다루는 무협 콘텐츠가 어떠한 배경 속에서 무협문학으로부터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나는 초창기의 무협물에 관한 경험이 베트남의 동시대 게임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생애사적 접근법과 문화적 근접성의 개념을 활용해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베트남 무협의 초창기 영향력 베트남 무협 소설의 뿌리는 처음 베트남 독자들이 중국 무협소설을 경험한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작품들은 무술 소재에 유교적 이상, 역사 소설을 결합한 전통적Oldschool(Hamm, 2005) 중국 무협문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온 편이었다. 베트남 작가들은 무협물을 베트남 현지 상황에 맞게 각색하기 시작했고, 종종 베트남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룩밧( lục bát) [1] 구절과 같은 베트남 문학의 형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초창기 베트남의 무협물들은 중국 무협의 전통으로부터 강하게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로맨스 서사와 같은 프랑스 문학의 요소로부터도 영향받은 바 있어 중국 작품에 비해 보다 말랑말랑한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Phan. 1998). 그러나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된 이후 정치적 변화를 겪으며 북베트남에서 무협물은 탄압받게 된다. 북베트남 공산정부는 무협물을 체제전복의 도구이자 자본주의적 퇴폐의 상징으로 간주했고, 동시에 이를 해로운 외세의 영향이라고 보았다(Linh 외, 1977).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협물은 남베트남에서 여전히 번성했으며, 특히 홍콩과 대만에서 진용(김용), 량유성, 우롱성, 니광, 구롱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무협작가들이 등장하면서 베트남 대중문화의 한 축을 차지하기 시작했다(Vu, 2015). 베트남 무협물은 1975년 사이공(현 호치민)에서 북베트남이 승리를 거둔 이후 정부 당국으로부터의 지속적인 적대감에 직면했다. 북베트남 당국이 무협 서적을 전면 금지한 이후, 북베트남 사람들은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무협 서적을 돌려 읽기 시작했다. 출판 및 유통이 금지되어 불법으로 수입될 수 밖에 없었던 사본들이 시장 전체로 조용히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무협물의 매력은 오히려 더 커져갔다(응우엔 통, 2018). 베트남 정부는 1990년대 경제개혁과 미국의 금수조치가 종료되면서부터 무협물 제작과 유통에 대한 접근방식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무협 관련 자료들은 국영 출판사에서 제작하는 합법적 번역출판물들을 통해 다시금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인터넷이 등장하면서부터는 디지털 자료, 영화 콘텐츠, 게임 등을 통해 무협물을 접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들도 나타나게 되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온라인게임에서의 무협 인터넷 기술이 베트남에서 본격화하면서부터는 온라인 게임 플랫폼을 통해 무협물은 다시한번 부각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 온라인게임 Võ Lâm Truyền Kỳ(The Swordsman )와 Cửu Long Tranh Bá(9Dragons ) 가 베트남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플레이어들은 김용과 구룡의 작품에 등장했던 무술의 테마와 영웅들의 컨셉을 가져온 이 게임을 통해 무협의 무한한 세계를 경험했다. 무협 온라인 게임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무협소설(Ge, 2017)에 묘사된 복잡한 세계를 탐험하는 무협무술가 당사자로서의 이야기를 경험하게끔 함으로써 개별 플레이어들의 협력이 가능한 장을 조성했다. * 2000년대 베트남 무협 온라인게임 Võ Lâm Truyền Kỳ 베트남에서의 온라인 무협 게임 붐의 배경에는 플레이어들의 향수가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쳤다. 1980년대, 1990년대에 태어난 이들 무협 게임 플레이어들은 어린 시절부터 소설과 TV 프로그램, 영화 등을 통해 무협물에 익숙한 세대였기 때문이었다. 무협 게임 플레이는 이들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어린 시절 경험했던 무협물의 이야기와 캐릭터에 대해 가진 환상과 정서적 유대감을 다시금 일깨우며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Chan, 2006). 이러한 현상은 생애 초기의 경험이 이후의 행동과 선호도를 형성한다는 인생과정 이론과 일치한다. 베트남 게이머들의 경우, 무협물에 대한 노출이 게임 취향을 형성하는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베트남 – 중국 사이의 영토 분쟁으로 인해 반중 감정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베트남 게이머들은 정치적 갈등과 문화적 감상을 구분했고, 무협물을 비롯한 중국 미디어 콘텐츠들을 계속 수용하고 있었다. 향수는 베트남 전역에서 무협 게임의 인기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무협 관련 콘텐츠들은 베트남과 중국 사이에 존재하는 수천년 이상 이어진 문화적 연관성을 토대로 베트남 플레이어들을 매료시킨다. 양국 간의 역사적 연결은 양국 정부가 중국 미디어 콘텐츠를 베트남 이용자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문학 및 게임 등에서의 무협 소재를 베트남 이용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유지하는 가교로서 작용한다(Yoo et al, 2014). 베트남과 중국 사이의 영유권 분쟁으로 인한 정치적 긴장은 베트남 게이머들이 중국산 무협 게임 플레이를 즐기는 것을 막지는 못했는데, 이는 베트남 게이머들이 정치적 문제와 문화적 소비행동을 분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Kinh Hoa, 2018). 외국 미디어의 수용에 영향을 미치는 두 문화 간의 유사성 정도를 의미하는 문화적 근접성 개념 또한 베트남에서의 무협 게임 인기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념이다. 문화적 근접성은 베트남 시장에서 무협 게임의 수용을 촉진했으며, 플레이어는 충성심과 명예, 무술 철학과 같은 무협을 통해 공유된 문화적 주제와 가치를 반영하는 게임에 더욱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Straubhaar, 1991). 베트남 무협 게임 시장은 아시아 게임사들의 효과적인 홍보 전략을 통한 지속적인 사업전략적 선택 덕에 갈수록 번창하는 중이다. 게임 프랜차이즈로서의 무협물이 가진 인기에 힘입어 베트남 게임 개발사들은 무협을 주제로 한 게임들을 자사의 주요 제품 라인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이들 업체는 보다 저렴한 라이선스 비용으로 이미 무협 게임을 좋아하는 베트남 이용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무협 게임 수입에 많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게임사가 무협물을 테마로 선택하는 주요한 이유로 이들 무협물이 베트남 플레이어들의 문화적 선호도를 충분히 충족하고 있고, 무협물 콘텐츠에 대한 기존의 시장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MIC, 2019a). 이는 통계상으로도 드러난다. 베트남 정보통신부(MIC, 2019a)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 사이에 308개의 온라인 게임이 PC 혹은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으며, 이들 중 95%는 무협물 혹은 무협 컨셉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2019년 상반기에 수입된 게임 중에서는 90%가 무협 컨셉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MIC, 2019b). 베트남 문화부 웹사이트에 게시된 최신 보고서(MIC, 2024)에서도 무협 게임의 수입 우세가 뚜렷하게 기록되는 것으로 볼 때 무협물의 강세는 여전히 지속되는 중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와 같은 인기 MOBA게임이 무협게임의 소비자층을 줄이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한데, 다른 장르의 유행에도 불구하고 무협게임의 팬층 자체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맥락에서의 베트남 무협물 무협물은 베트남에서 큰 성공을 거둔 반면, 서구 시장에서는 그다지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중국 철학, 무술과 같은 소재들이 강조된 무협물 속의 문화적, 서사적 뉘앙스가 관련 배경지식이 없는 서양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무협물 서사는 중국 문화의 깊은 곳까지를 파고들기 때문에 서구권 수용자들에게 무협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Frisch, 2018). 실제로 무협물을 영어로 번역할 때 서양 언어에는 각각의 무협 개념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용어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 또한 무협물이 서구권에 알려지기에 어려운 또다른 요소로 작용한다(Earnshaw, 2018). 그 결과 무협 기반 게임은 베트남을 비롯한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보여준 성공과 달리 서구권에서는 상대적으로 틈새 시장에 머무는 형태가 되었다. 서양과 동양의 게임문화 간 차이는 무협 게임의 차별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서양 게임들은 종종 군사화된 남성성, 전략 기반의 전쟁, 식민지 서사를 강조하는 반면, 동아시아 게임에서는 판타지와 신화, 무술적 전통이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시적 기교에 가까운 무술의 기교나 무협물에서 활용하는 역사적 우화와 같은 간접적 뉘앙스들은 서구 이용자들의 무협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무협 서사가 가진 복잡성과 어려움은 무협 게임에도 영향을 미쳐, 서구권을 포함한 글로벌로의 진출이 제한되며 무협 게임은 주로 동아시아 특유의 문화현상으로서의 위상이 강화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서의 무협 게임은 문학과 영화 등을 통해 다양하게 각색된 장르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친화도 덕분에 게임업계에서는 지속적인 활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베트남의 게임산업 발전에 대한 열망 또한 무협물의 영향을 받았다. 투언 티엔 키엠(Thuận Thiên Kiếm) [2] 과 같은 베트남산 무협 게임을 제작하려는 시도는 국가의 역사와 신화를 게임 서사에 통합하려는 열망을 반영한다. 하지만 높은 제작비용, 각종 규제, 수입 게임과의 경쟁과 같은 문제는 베트남 내부에서 개발하는 무협 기반 게임들의 성공을 가로막고 있다. 그 결과, 베트남 게임업체들은 독창적인 게임 개발보다는 외산(중국산) 게임의 현지화에 보다 집중하였고, 이로 인해 무협물의 상당 부분은 중국산 무협 게임이 차지하게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과 베트남 도서 시장에는 셴샤(판타지), 옌칭(로맨스), 보이러브, 툼레이더와 같은 새로운 장르들이 등장하면서 무협소설의 출판량과 독자가 감소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무협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는 여전히 베트남 그리고 세계적인 규모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는 중이다. 고품질 게임을 만들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고자 한 중국 게임 스튜디오들의 노력 덕택에 무협물 게임은 전 세계, 그리고 특히 베트남에서 무협의 본질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나라카: 블레이드포인트>는 무협에서 영감을 얻은 블록버스터 게임을 개발하려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고, <검은 신화: 오공>은 그러한 열망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24엔터테인먼트의 게임개발자들은 배틀로얄 규칙에 양식화된 무술전투 메커니즘을 결합하여 <나라카: 블레이드포인트>를 제작했다. 2021년에 출시된 이 게임은 가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 서바이벌 개념을 따라가는 대담한 시도였다. <나라카>는 무협물이 가진 개방형의 미학을 속도감 넘치는 경쟁모드로 전환하면서 무협 게임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바 있다. 멀티플레이어 기반의 온라인게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 속에서 <나라카>는 중력을 거스르는 이동기술, 마샬 ‘아츠’ 로서의 검술, 신화적 요소와 같은 무협 게임의 기본적인 특징을 고스란히 유지했다. 중국과 서구시장 모두에서 이뤄낸 <나라카>의 성과는 무협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게임이 전통적 문화적 기반과 함께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한다(Obedkov, 2024) 한편 <검은신화: 오공>은 매혹적인 그래픽 속에서 중국 고전 <서유기>를 재해석해낸 신화적 이미지가 훌륭하게 연출되며 큰 인기를 모았다. <서유기>의 여정을 따라가는 주인공 캐릭터는 봉술이라는 무술의 전문가로 묘사되면서 무협 요소를 크게 차용했다. <오공>의 개발자들은 언리얼 5를 사용하면서 강한 몰입감과 영화적 영상연출을 동시에 일궈냈고, 이러한 접근방식은 무협 미디어가 발전하는 기술을 통해 어떻게 무협물의 국제화를 달성하고 기존의 수용자층을 넘어서는 범주 확장을 이뤄내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무협물 본연의 스토리텔링을 유지함으로써 <서유기>에 익숙한 이용자 뿐 아니라 서구권의 수많은 초심자들까지도 플레이어 풀에 끌어들이는지를 보여주었다(Meng, 2025). 결론 베트남 무협의 역사는 문학과 기술미디어, 디지털 엔터테인먼트가 갖는 복잡한 관계를 잘 보여준다. 인쇄소설에서 시작된 무협은 온라인게임의 디지털 전환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문화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유지해 왔다. 향수와 문화적 근접성은 중국발 무협 게임이 베트남에서 지속적인 인기를 가져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많은 플레이어들은 무협물을 일찌감치 다른 미디어를 통해 접해 왔다는 배경 속에 무협 장르를 게임을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무협 게임이 달성한 성공은 이 장르의 지속적인 매력을 인식한 베트남 게임사들의 비즈니스 전략에 힘입은 바 또한 크다. 다른 게임장르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무협 장르는 베트남 게임산업에서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유산은 베트남에서 무협소설이 문화적 중요성을 유지함과 동시에 변화하는 미디어 형식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나라카: 블레이드포인트> 와 <검은신화: 오공>의 성공은 무협 장르가 전세계 게임업계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장르이며, 게임만 잘 나온다면 동서양의 문화적 경계도 모호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 게임들은 현대적인 게임 플레이로부터의 요구에 적응하면서 전통적인 장르가 현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무협 장르의 지속가능성을 증명한다. 참고문헌 Chan, D. (2006). Playing with indexical Chineseness: The transnational cultural politics of Wuxia in digital games. Enter Text , 6 (1), 182–200. Chen, L. C. (2009). The value chain in the Asian online gaming industry: A case study of Taiwan [Doctoral dissertation]. University of Westminster. Earnshaw, G. (2018, November 1). I translated Chinese writer Louis Cha “Jin Yong.” Here’s why he never caught on in the West. South China Morning Post . https://www.scmp.com/news/china/society/article/2171127/i-translated-chinesewriter-louis-cha-jin-yong-heres-why-he-never Frisch, N. (2018, April 13). The gripping stories, and political allegories, of China’s best-selling author. The New Yorker . https://www.newyorker.com/books/page-turner/the-gripping-storiesand-political-allegories-of-chinas-best-selling-author Ge, S. S. (2017). The influence of Chinese culture on television to young people in Vietnam [Master’s thesis]. VNU University of Social Sciences and Humanities, Hanoi. Hamm, J. C. (2005). Paper swordsmen: Jin Yong and the modern Chinese martial arts novel. University of Hawai’i Press. Kinh Hoa. (2018). Kim Dung anh huong nguoi Viet nhu the nao? [How Jin Yong influences Vietnamese readers?]. https://www.rfa.org/vietnamese/in_depth/jin-young-and-vietnamese-11012018115035.html Linh, T., Hien, P., Quynh, T. T., Binh, H. L., Phuong, T., & Ta, T. H. (1977). Van hoa, van nghe mien Nam Viet Nam duoi che do My Nguy [Culture and Arts in South Vietnam under the regime of US-RVN]. Culture Publishing House. Meng, Q. (2025). Black Myth: Wukong – The Internationalization of Chinese Games. Journal of Modern Social Sciences, 2 (1), 13–19. https://doi.org/10.71113/JMSS.v2i1.173 Ministry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MIC). (2019a). List of online games with content approved from 2015 to 2018 and defunct games . http://www.mic.gov.vn/solieubaocao/Pages/TinTuc/139632/Danh-sach-cac-tro-choi-duoc-cap-quyet-dinhphe-duyet-noi-dung-kich-ban-tu-2015-2018–dang-phat-hanh–va-Danh-muc-tro-choi-truc-tuyen-da-thong-bao-ngung-phathanh.html Ministry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MIC). (2019b). List of online games with content approved in 2019 . http://www.mic.gov.vn/solieubaocao/Pages/TinTuc/139630/Danh-sach-cactro-choi-duoc-phe-duyet-noi-dung–kich-ban-nam-2019–denthang-8-2019-.html Ministry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MIC). (2024). List of online games with content approved from 2015 to 2023 (until December 2023). https://abei.gov.vn/danh-sach-cap-phep/danh-sach-cac-tro-choi-duoc-cap-quyet-dinh-phe-duyet-noi-dung-kich-ban-2015-2023-tinh-den-thang-122023/108392 Nguyen, Thong. (2018). Mot the he khong co Kim Dung [A generation without Jin Yong]. https://motthegioi.vn/van-hoa-giai-tri-c-80/tap-van-c-172/mot-the-he-khong-co-kim-dung-99979.html Obedkov, E. (2024). The First Descendant tops Steam charts, with Naraka: Bladepoint rising 56 positions and breaking its CCU record . https://gameworldobserver.com/2024/07/09/the-first-descendant-tops-steam-charts-naraka-bladepoint Phan, N. (1998). À la rencontre de deux cultures: l’influence de la littérature française au Viêt-nam [The meeting of two cultures: the influence of French literature in Vietnam]. Aséanie, Sciences humaines en Asie du Sud-Est , 1 , 123–143. Straubhaar, J. D. (1991). Beyond media imperialism: Asymmetrical interdependence and cultural proximity. Critical Studies in Mass Communication , 8 , 39–59. https://doi.org/http://doi.org/fw2vqv Vu, D. S. B. (2015). Kim Dung giua doi toi [Jin Yong in my life]. Tre Publishing House. Yoo, J., Jo, S., & Jung, J. (2014). The effects of television viewing, cultural proximity, and ethnocentrism on country image . Social Behavior and Personality, 42 (1), 89–96. https://doi.org/10.2224/sbp.2014.42.1.89 [1] 역자 주: 六八. 6음절 연과 8음절 연을 연이어 사용하는 베트남의 시 형태. 중국 고전문학에서 중간중간 분위기 전환을 위해 시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장면을 베트남 현지 분위기로 맞출 때 사용했음을 나타낸다. [2] 번역자 주: 順天劍, 순천검. 명나라와 싸워 베트남을 명의 지배로부터 독립시킨 Lê Lợi 왕이 가졌다고 알려진 전설의 검이다. Tags: 베트남, 무협, 온라인게임, MMORPG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베트남 국립대학교 학제 간 과학 및 예술 학교) 판꽝안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이경혁 게임평론가이자 연구자. 2015년부터 게임을 업으로 삼아, 평론가로서는 게임이 사회와 관계맺는 방식을, 연구자로서는 상품으로서의 게임이 사회 안에 자리잡는 구조를 살펴본다. 『81년생 마리오』(2017), 『현질의 탄생』(2022) 등을 썼고, 〈다큐프라임〉(EBS)을 비롯한 다큐멘터리와 여러 매체 연재에 참여했다. 디지털게임을 시간권리상품으로 분석한 연구로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연구소 '드래곤랩'대표를 맡고 있으며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 그려진 힘, 그리는 힘, 그림의 힘: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와 이미지, 그리고 리얼리즘

    클레르 옵스퀴르〉는 그 제목부터 미술과 연관성이 명확하다. 잘 알려져 있듯 클레르 옵스퀴르(Clair-obscur)는 이탈리아어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키아로스쿠로는 chiaro(밝은)와 oscuro(어두운)의 합성어로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적으로 사용하는 미술 기법을 말한다. 이탈리아 맥락에서는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로 대표되는 바로크 양식의 연출을 꼽을 수 있고, 프랑스어인 클레르 옵스퀴르로 번역해서는 촛불 그림으로 유명한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 같은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 Back 24 GG Vol. 25. 6. 10.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Taehyun Kwon Writes and plans a range of projects. Works in the art world, yet is always more drawn to things not readily regarded as art. Explores how things outside art might be thought through as objects within it. Continues researching with weight placed on a perspective that grasps the political as a matter of the sensory. (7000eichen@gmail.com )

  • 눈 먼 돈 사냥: 멈춰버린 메타버스와 살아있는 메타버스 진흥법

    그 시절의 보도자료 중 대부분은 메타버스-NFT&P2E 소식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모든 기업이 '메타버스'를 선언했다. 게임사는 물론이고 통신사, 제조사, 심지어 은행까지 너도나도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보도자료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실체가 모호한 가상공간 그림 몇 장에 'MOU 체결', '생태계 확장', '미래 선도' 같은 단어들이 버무려져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은 메타버스를 완성할 열쇠처럼 여겨졌다. < Back 눈 먼 돈 사냥: 멈춰버린 메타버스와 살아있는 메타버스 진흥법 25 GG Vol. 25. 8. 10. 지금으로부터 대략 5년 전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자.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모두가 집 밖을 나가기 꺼리던 시절, 필자가 재직 중인 회사에서도 유례없는 재택근무를 실시했다. 콩나물시루처럼 사람으로 가득 찬 출근길 지하철을 탈 수 없다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하릴없이 침대에 누워 보도자료를 읽던 때였다. 필자는 또렷이 기억한다. 잠옷 바지에 와이셔츠를 챙겨 입고 화상인터뷰를 했던 나날들을. 공교롭게도 그 시절에는 읽을 만한 보도자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야외활동 대신 집에서 게임을 즐기라는 세계보건기구의 조언 덕인지 게임 유저는 날로 늘어갔고 매출도 잘 나왔지만, 모두가 원격으로 일을 해야 하는 시기여서 정작 다룰 만한 신작 소식은 드물었다. 여러 주요 기업들은 개발자들에게 파격적인 연봉 인상을 제안하면서 화제가 됐고, '단군 이래 최대 연봉 인상 직종'이라는 농담까지 돌았다. 그 시절의 보도자료 중 대부분은 메타버스-NFT&P2E 소식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모든 기업이 '메타버스'를 선언했다. 게임사는 물론이고 통신사, 제조사, 심지어 은행까지 너도나도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보도자료는 놀랍도록 비슷했다. 실체가 모호한 가상공간 그림 몇 장에 'MOU 체결', '생태계 확장', '미래 선도' 같은 단어들이 버무려져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은 메타버스를 완성할 열쇠처럼 여겨졌다. 과문한 필자의 눈에는 대단히 기이한 광경이었다. 수십 년간 'MMORPG' 또는 '가상세계' 내지는 그냥 '게임'이라고 불러온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메타버스'라는 이름표를 달고 미래를 구원할 신개념으로 등장한 것이다. 필자와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이들이 결코 적지 않았으나, 이 광풍은 수년간 꺼질 줄 몰랐다. 돌이켜보면 좋지 않은 어감의 게임 대신에 '메타버스'라는 비전을 판매하는 것이 더 쉽고 빠르게 투자를 유치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이 소란스러운 시장의 움직임을, 정치권에서는 '새로운 기회'의 신호로 읽었다. 기업들이 열광하고 언론이 떠드는 이 '메타버스'라는 것을 국가적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조급증이 퍼져 나갔다. 2025년, 지금 미디어에서 메타버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극히 줄어들었다. 그때 메타버스가 온다던 분들은 지금 인공지능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혹스럽다. 물론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의 결합을 추구할 수 있을 일이지만, 이렇게도 하나의 개념이 반짝였다가 수그러들 수 있는 것인지. 하지만 지금부터 필자가 하려는 이야기는 제법 씁쓸하다. 기술 유행어에 편승한 보여주기식 정책이 어떻게 산업 생태계를 왜곡하고 '눈먼 돈'의 향연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소극이자 비극이다. 메타버스의 홍보에는 이런 이미지가 왕왕 쓰였다. (출처: 블록체인어스) # 눈 먼 돈 사냥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기왕 과거로 온 김에 시계를 조금만 더 돌려보자.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행어가 널리 유포되던 2016년 10월, 정부는 VR을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 중 하나로 선정하며 본격적인 육성에 나섰다. 2020년까지 VR 전문기업 50개 육성, 1조 원 규모의 신시장 창출과 같은 구체적인 목표가 제시됐다. 언론은 연일 VR이 게임과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국방, 의료,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이에 발맞춰 과기정통부와 문체부는 수천억 원의 R&D 및 콘텐츠 제작 지원 예산을 편성했다. 전국의 지자체들은 앞다퉈 VR 체험관을 구축하며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예산 편성 소식에 전국의 연구자들과 기업도 발빠르게 반응했다. '다누리 엔진'도 그중 하나였다. 2015년부터 7년간, 357억 원의 세금이 투입된 국책 사업이다. 국산 VR 엔진과 저작도구를 개발해 외산 기술에 대한 종속을 끊고, 'K-VR' 생태계를 자립시키겠다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벌여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 VR 엔진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며, 실제로 현장에서 사용하는 사람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6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의 감사 결과로 이 모든 것은 사기극이었음이 드러났다. 감사를 해봤더니 연구를 주관하는 기관이었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실제로 엔진을 개발하지 않았다. 이들이 일을 맡긴 민간 기업이 가지고 있던 외산 엔진(아마 두 엔진 중 하나일 것이다)의 소스코드를 거의 그대로 복사해 '다누리'라는 이름만 붙여놓고는 "자체 개발한 국산 엔진"이라며 허위로 보고했다. 이뿐 아니라 이 엔진은 실사용이 불가능한 미완성 상태였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책임연구원은 자신의 제자가 창업한 업체에 7억 원 규모의 용역을 몰아주고, 공동연구기관으로부터 1천만 원의 현금을 받는 등 개인 비리까지 저지른 정황이 포착됐다. 국산화라는 대의명분 아래, 기술 사기와 부패가 공공연하게 벌어진 것이다. 이 '다누리 엔진' 사건은 뒤늦게 알려져 충격을 주었으나 어떻게 보면 수면 위로 드러난 하나의 관행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특별하거나 일회적인 일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모습은 필자가 반복적으로 목격해 온, 기술 유행을 좇는 '눈먼 예산'이 만들어내는 왜곡된 산업 생태계의 단면에 불과하다. 팬데믹 시절, 필자가 메일로 받은 무수히 많은 보도자료는 대체로 그 유행을 만들어내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눈 먼 돈 사냥 생태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필자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눈먼 돈 사냥’에는 일종의 패턴이 있다. — 과제가 뜰 수 있도록 외곽에서 부채질을 한다. VR나 메타버스는 거기에 동원된 중요한 개념어였다. 공무원들이 설득되고 정부 과제 공고가 뜬다. 이때 일을 쉽게 만들기 위해 산학협력단 또는 컨소시엄을 조직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사업계획서에는 온갖 유행어가 삽입된다. 때로는 내부자의 비호 아래 기술도 경험도 없는 업체가 수억 원의 용역을 수주하기도 한다. 이렇게 선정된 기업들은 단기 결과물 납품에만 집중할 뿐, 지속적인 서비스 운영이나 고도화에는 관심이 없다. 만들어서 납품하면 시쳇말로 ‘땡’이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인력은 흩어지고, 결과물은 방치된다. 전국적으로, 장기적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지금부터 하나씩 그 예를 불러드리겠다. 오세훈 시장이 65억 원을 투입하고도 하루 이용자 수백 명을 넘기지 못한 채 사라진 <메타버스 서울>, 10억 원을 들여 만들었으나 조악한 품질로 외면받은 <잼버리 메타버스>와 새만금의 실물 체험관, 통영 VR존, 광주 VR/AR 제작거점센터, <메타버스 대구>, <부산 메타버스>, <전주·익산 도서관 메타버스>, <강원 청소년 동계올림픽 메타버스>, 이밖에 셀 수 없이 많은 각종 VR, 메타버스 제작 지도 자격증과 '가상현실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들… 정부의 VR 사업 진흥 정책으로 본격화된 업계의 관행은 코로나19라는 새로운 흐름을 타고 메타버스라는 유행을 만나게 됐다. 수십억 규모의 메타버스 지원 사업이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다. 팬데믹이 끝난 지금도 활발하게 서비스되는 메타버스는 사실상 없다. 돈만 쓰고 활용도가 지극히 낮은 결과물만 남게 된 것이다. 소프트웨어로 제작된 프로젝트는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 이제 그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다누리 엔진이라는 것이 있었다. 2016년 정부는 VR을 미래 먹거리로 제시했지만,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다누리 엔진은 특별한 먹거리를 만들어주지 못했다. (출처: 다누리 엔진) # 후일담이 되었어야 할 이야기 ‘가상현실’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이제는 잠잠해졌다. 우리는 일상을 회복했고, 메타버스는 빠르게 잊혀져 갔다. 팬데믹도, 메타버스 유행도 끝났지만, 지금은 법이 남게 됐다. 후일담으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른바 '메타버스 진흥법'이 통과되어 법전에 명문화됐다. 미증유의 아이러니다. 2024년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같은 달 8월 시행을 시작한 가상융합산업 진흥법은 전 세계 최초의 메타버스 진흥 법률이다. 과기정통부 장관으로 하여금 3년마다 '가상융합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전담 기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우선 허용, 사후 규제' 원칙을 적용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에 대해 법령이 없거나 불분명할 경우, 일단 허용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나중에 규제하는 원칙을 명문화했다. 또 정부 주도의 직접 규제보다는 민간 중심 자율규제를 지원하는 체계를 구성했다. 이 법은 논의 단계에서부터 현행 '게임산업법'과의 중복 및 충돌 문제를 안고 있었다. 문체부는 메타버스 안에 게임이 있다면 당연히 게임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펼쳤다. <제페토>와 <이프랜드> 등의 메타버스가 등급분류를 피하게 되고, P2E의 뒷문을 열어버리면 또 다른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네이버제트를 포함한 업계와 과기부는 메타버스를 게임과 다른 새로운 산업으로 보고, 게임법의 엄격한 규제를 피하려 했다. 결국 접점은 '메타버스 안에 게임이 있다면 게임법의 적용을 받는다'라는 애매한 지점에 형성되었고, 혼란이 해결되기 전에 네이버제트를 제외한 다수의 사업자들이 메타버스에서 한 발 빼면서 지금의 애매한 형국이 나타나게 됐다. 업계는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설명하다가, 자신이 설명하려던 사업을 접어버렸고, 법은 남아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꼴이 되었다. 과기부 장관의 기본계획 정도가 거의 유일한 쟁점인데,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전문인력 양성과 연구 개발 기반 조성을 위한 국책사업을 펼칠 수 있다. 그동안 필자는 이 국책사업이라는 것이 어떻게 진행됐는지에 관해서 길게 설명해드렸다. 여기서는 그만 이야기하겠다. 지난 상반기, 서울회생법원은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사 컬러버스에 파산을 선고했다. 컬러버스는 카카오가 주도하던 프로젝트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라졌다. SKT의 <이프렌드>도 조용히 모습을 감추었다. 국내 주요 게임사들의 여러 메타버스 프로젝트도 거의 빛을 보지 못했다. 미래를 예견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지금까지의 메타버스는 명백히 실패했다. 과거를 점검하고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포스트모템이나 백서라도 잘 남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업자들은 그런 일도 하지 않았다. 공공의 지원사업은 물론이요 사기업의 메타버스가 얼마나 근시안적인 프로젝트였는지 보여주는 방증이다. 하긴 페이스북도 메타로 사명을 바꾸었으니 국내 기업만 탓할 일은 아니다. 혹자는 생성형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의 조합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예견했으나 그 물꼬도 좀처럼 트이지 않고 있다. 화려한 구호와 넘치는 지원사업 대신에 냉철한 평가와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한국형 인공지능을 다누리 엔진처럼 만들 수는 없을 일 아닌가. 정부가 추진 중인 가상융합세계 분야 규제 개선방안 도출 과정표. 과기정통부는 아직 이 계획에 대해 입장을 업데이트하지 않고 있다. (출처: 과기정통부) Tags: 게임산업, 정책, 공공기관, 메타버스, 산업진흥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작가) 김재석 8년 동안 디스이즈게임 취재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서브컬처 스타트업에서 대외협력을 맡고 있다. 에디터와 치트키의 권능을 사랑한다.

  • 게임커뮤니티가 걸어온 지난 25년과 오늘

    한 세기를 농구 한 경기로 본다면 이제 1쿼터의 막판이다. 쿼터나 25년이라고 하면 엄청 긴 세월은 아닌 것 같지만 사반세기로 지칭해 세기 개념이 오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묵직함이 있다. 한 쿼터도 긴 시간이고 역사의 한 두께다. < Back 게임커뮤니티가 걸어온 지난 25년과 오늘 23 GG Vol. 25. 4. 10. 한 세기를 농구 한 경기로 본다면 이제 1쿼터의 막판이다. 쿼터나 25년이라고 하면 엄청 긴 세월은 아닌 것 같지만 사반세기로 지칭해 세기 개념이 오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묵직함이 있다. 한 쿼터도 긴 시간이고 역사의 한 두께다. 그리고 사람. 두세 자릿수 이상의 사람들이 공통점을 갖고 모인 커뮤니티는 개체수의 조합으로 나올 수 있는 수만큼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이 역사가 사반세기 쌓이면서 이 또한 방대해진다. 가끔은 역사의 요약을 감히 할 수 있는가 겸허함이 들긴 하지만 그 두껍고 넓은 영토를 정리하는 일은 필요할 것이다. 공동체, 커뮤니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자 목적은 자기 방위다. 부족과 국가는 구성원들을 굶주림과 죽음에서 보호하는 기능이 최적이다. 종교는 그 기능을 위한 질서화 기능과 내면의 평안 기능을 제공하는 커뮤니티다. 반면 동호회를 비롯한 커뮤니티는 방위 기능이 거의 없고 대신 정보와 정서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기능이 더 중요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경우엔 물리적 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방위 기능은 심리적인 것 외에는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존재 가치이자 1차적 기능은 정보 제공 기능과 정서적 연대 기능이 된다. 그리고 정서적 연대 또한 정보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렇게 느슨한 형태의 부족을 형성한 것이 지난 25년 온라인 커뮤니티의 요약이다. 커뮤니티가 성립하면 그 내부에서는 두 가지의 길항 관계가 형성된다. 첫째는 정보 생산 주체가 누구인가다. 지배자, 엘리트 등의 상부에서 유통하는 경우와 민중, 대중 등의 집단 지성이 유통하는 경우로 나뉜다.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는 두 가지가 모두 작동한다. 한국의 게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 현상이 나타났는데, 외국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번역하여 가져오고 직접 생산도 하는 소위 ‘기자’와, 비슷한 일을 하지만 커뮤니티 운영 그룹은 아닌 ‘사용자’의 2중 구조다. 운영 그룹에 속하는 생산자들을 기자로 불렀다는 점에서 이는 이 집단이 언론인가 커뮤니티인가를 가르는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정체성의 측면에서 언론 기능에 치우치기를 선택한 대표적 예시가 디스이즈게임이다. 두 번째 길항 관계는 이 운영권에 있다. 커뮤니티가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는 집단, 국가라면 정부다. 운영 관리를 하는 집단은 내부의 질서도 잡아야 하고 그래서 규칙을 제정하여 강제한다. 이 집행 행위를 운영 집단이 직접 하는가와 사용자의 자율이나 사용자 일부에게 위임하는가의 경우가 있다. ‘운영자’와 ‘알바’의 페어다. 후자의 경우엔 서술의 순서를 뒤집으면 그게 곧 민주주의인데, 현실 정치에서도 질서와 자유는 길항 관계로 국가를 조직해간다. 중요한 것은 한계선의 존재인데, 자유가 선을 넘으면 혼돈이 되고 질서가 선을 넘으면 경직이 된다. 0. 20세기, 최초의 게임 커뮤니티 게임 커뮤니티가 온라인에 자리잡기 이전에도 같은 기능을 하는 커뮤니티 혹은 유사 커뮤니티는 있었다. 게임 잡지다. 90년대의 게임매거진, 게임라인 등의 게임 전문 매거진은 게임 정보를 번역하고 게임을 공략하는 기자와 전문 필진을 고용해 컨텐츠를 만들었다. 독자들은 편집부에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2차 컨텐츠를 만들고 교류를 했는데 특히 게임라인과 그 후신 게이머즈는 동호회의 창작 합평 같은 분위기의 독자 편지 코너를 갖고 있었다. * 단순한 Q&A 외에도 2차 창작물의 공유, 나아가서는 독자 자신과 담당자의 캐릭터성 만담이 이뤄지기도 하는 대화성 코너였다. 비슷한 시기에 PC통신 서비스가 생기면서 게시판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 동호회들이 생겨났고, 이것이 곧바로 꽃핀 인터넷 환경의 웹 게시판으로 옮겨갔다. 정보를 번역/생산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동호회는 인터넷 환경이 일반화되면서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로 자리를 옮기거나 플레이포럼, 루리웹 같은 팬 기반의 정보 공유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본 구조는 다들 비슷했다. 게시판 여럿이 병렬로 모인 게시판 집합체의 성격이었는데 이런 표준의 대표는 디시인사이드였다. * 디시인사이드 중세게임 갤러리, 속칭 중갤의 화면 질서 한계선을 높게 두었고, 생산을 사용자에게 일임했고 관리 또한 사용자 중 일부로 대체했다는 의혹도 있다. 게임뿐 아니라 수많은 관심사의 게시판들이 병렬로 모여 있고, 그 수의 게시판을 관리하려면 새로운 게시판이 생길 때마다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 디시인사이드는 기본적으로 직원이 관리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방임 정책이었다. 질서의 한계선이 자율에 가깝다 보니 한계가 매우 느슨한 무제한적 자유가 허용되었다. 반면 소속감은 매우 크다. 맹점은 생산되는 정보도, 정보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사용자도 많아. 큐레이팅 기능이 매우 떨어졌고 정치적 정서는 종종 극단으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게임 게시판의 대표격인 중세게임 마이너 갤러리가 그러한데, 이 경우엔 후일 악명 높은 일간베스트의 게임 게시판 사용자들을 흡수하기도 했다. 이러한 디시인사이드의 특징, 병렬화/파편화된 게시판 체제와 높은 자유도는 일간베스트, 인벤 등의 후계 주자들이 참고하는 지점이 되어 디시인사이드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대전제로서 존재한다. 1. 00년대 시작, 웹진과 카페 90년대 후반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시기, 정보화 혁명은 커뮤니티를 촉발시켰다. 정보를 번역하고 생산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모이면서 커뮤니티 운영이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프리챌과 디시인사이드를 필두로 한 웹 커뮤니티 시장이 열렸다. 게임만 다루는 커뮤니티 또한 플레이포럼, 루리웹, 그리고 플레이포럼에서 분화된 인벤 등 여러 플랫폼이 사업체 등록을 하면서 판이 시작되었다. 거의 모든 플랫폼의 구조는 디시인사이드에서 온 병렬형 게시판 구조였고, 정보 생산은 기존 정보 번역/생산을 하던 사람들이 기자 혹은 필진이 되어 웹진의 형태를 취했다. 오프라인의 레거시 매거진과 다른 점은 사용자들이 게시판을 기반으로 정보 생산 기여를 한다는 점이었다. 편지보다 훨씬 실시간 소통이 되는 웹의 특성 덕에 기자/필진 외에도 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정보를 제보하고, 플레이포럼과 인벤은 이런 컨텐츠를 큐레이팅해 기사 형태로 업로드되어 사이트 첫화면에 이미지 링크도 되었다. 이들은 인기 게임 별로 별도의 하위 사이트를 개설하고 여기에 관련 게시판을 정리해서 넣어두는, 나무뿌리 형태의 계층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가장 붐비는 곳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다루는 와우플포와 와우인벤이었다. 사이트 첫화면이라는 개념이 없는 구성의 디시인사이드와 루리웹은 게시판 상단에 고정글로 올려두는 방식을 택했고, 이후 추천글 목록이라는 별도의 위젯 시스템으로 발전해갔다. 후발주자인 인벤의 2004년 창립 다음 해에 디스이즈게임이 창립했지만, 시작부터 언론 기능에 치중하며 시작했던지라 커뮤니티 기능은 약했다. 이제 시작한 시장에 파란이 없을 수 없다. 시장 형성 직후인 2002년에 선두 주자였던 프리챌이 유료화라는 무리수를 던졌다가 비참하게 사라졌다. 경쟁자였던 포털 사이트가 이 커뮤니티 수요를 대거 흡수했다. 다음, 뒤이어 네이버가 내놓은 카페라는 이름의 커뮤니티 서비스가 대세가 되었고, 각 게임사는 게임 홈페이지에 커뮤니티 게시판을 열어두거나 아예 포털 카페에 팬 카페를 개설했다. 전자의 의도는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 홈페이지에 와야 하는 구조로 만들면서, 커뮤니티 기능 또한 홈페이지에서 소화하는 것이다. 웹진이나 포털의 커뮤니티를 사용하면 데이터 수집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의 트래픽을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개발사가 이 방법을 썼다. 작은 회사는 다음과 네이버로 갔다. 그래도 게임 커뮤니티의 헤게모니는 웹진과 게시판에 있는 형국이 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오래 가지는 못했으니, 업계가 너무 빨리 커졌다. 게임의 종류가 많아지고 각 게임의 역사도 깊어지면서, 필요 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해가 바뀌면 인기 온라인 게임이 대여섯 개씩 새로 출현한다. 업계에 돈이 돌고 시장이 커지면서 스탠드얼론 게임도 대작들이 점점 많아진다. 공략 생산과 정보 큐레이팅에 인력을 추가하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었다. 웹진 모델로는 게임 전반의 정보를 유의미하게 다루기가 어려워져 갔다. 결국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플레이포럼은 탈락했다. * 플레이포럼의 개편 이전 UI 디스이즈게임이 언론 기능을 목표로 삼고, 디시인사이드는 무한 자유의 놀이를 하는 도중, 똑같이 팬 기반의 울티마 온라인 정보 사이트로 출발한 플레이포럼은 실패 사례가 되었다. 트리거가 된 사건은 UI 개편의 실패였지만, 이를 전후하여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징후가 나타났다. 생산과 큐레이팅의 주체를 기자로 고집하면서 생산 주기가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기능을 과감히 포기한 디스이즈게임이나 처음부터 사용자에게 일임했던 디시인사이드/루리웹과 달리 어느 한쪽을 정하지도 균형점을 찾지도 못하고 개편 실패 이후 2012년 12월 31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플레이포럼의 커뮤니티 기능은 플레이포럼에서 파생되어 나온 후발주자인 인벤이 흡수했다. 2. 10년대의 질서, 게시판의 헤게모니 플레이포럼이 사라지면서 정보 생산의 무게추가 사용자들에게로 옮겨갔다. 기자/필진의 숫자도 사용자에게 밀렸지만, 공략과 분석이 업무이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 들이는 시간은 재미이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 들일 수 있는 시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인벤, 루리웹, 디시인사이드 등에 이미 모여 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생산하는 정보의 옥석을 가려내는 큐레이팅 기능이 중요해졌다. 인벤은 발 빠르게 각 게임의 담당 팀을 정보 생산 역할에서 큐레이팅 역할로 변신시키면서 변화에 적응했다. 루리웹과 디시인사이드는 초기부터 이미 직원 및 알바에게 게시판 관리 역할, 즉 게시판 큐레이터를 맡기고 있었다. 이후 인벤은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의 강자, 루리웹은 스탠드얼론 게임 커뮤니티의 강자 역할을 하고 있다. * 와우인벤의 첫화면 플레이포럼에서 분화되어 나온 인벤은 웹진으로 출발했고 현재도 언론 기능의 기본은 유지하고 있다. 사이트 체계부터 UI 구성까지 플레이포럼을 답습하다시피 한 인벤이 살아남은 이유는 적응력이다. 이들은 시시각각 광대해지는 담당 영역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빠르게 정보 생산 주체를 기자/필진에서 사용자로 이동시켰다. 이제 기자는 에디터로 변신하여 큐레이션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용자들이 게시판에 자신들의 공략, 분석, 외국 자료의 번역을 올리면 잘 정리된 것을 각 게임 사이트 첫화면에 올려준다. 이전에는 기자/필진들이 작성한 기사의 링크 이미지가 올라가던 자리다. 관리 주체 또한 디시인사이드, 루리웹과 달리 질서 한계선을 더 낮게 그어 제한을 더 두었다. 플레이포럼에서 따온, 회원이 활동량에 따라 아이디의 레벨을 높일 수 있는 구조는 장기간 고정 활동을 장려하고 정도 이상의 일탈을 자제시키는 정책이기도 했다. 또한 인벤은 ‘사건 사고 게시판’이라는 일종의 해방구 공간을 운영했다. 2005년부터 와우인벤을 비롯한 MMORPG 게임 페이지 하위에 개설된 이 게시판은, 게임 내에서 생긴 갈등을 가져와 여론 재판을 받는 재판정이다. 명분은 ‘이러이러한 비매너 유저를 고발한다’고, 따라서 여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집단 린치나 사이버 불링의 형태도 나타난다. 사건 사고 게시판은 소위 막장 드라마와 같은 길티 플레저이기도 하다. 마음껏 욕해도 되는 수준의 플레이어가 징벌대에 올라오고, 그에게 가학성을 드러낼 수 있고, 가끔은 고발한 사람이 진짜 나쁜놈이었다는 반전도 생기고, 어쩔 때는 고발 당한 플레이어가 억울하다며 등장해 싸우는 등, 온갖 엔터테인먼트가 이 게시판에 있다. 게다가 비난할 대상은 계속 재생산된다. 따라서 해방구가 되는 재판정 혹은 아예 결투장이기도 하다. 또한 합심하여 누군가를 공격하면 그 경험으로 인한 옅은 공동체 의식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아이디 레벨 제도가 합쳐지면 인벤의 커뮤니티 서비스 전반의 사용량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다. * 루리웹의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 게시판 자유도라는 점에서는 디시인사이드와 같은데, 반면 큐레이팅의 존재와 규칙과 운영은 오히려 인벤에 가까운 것이 루리웹의 특징이다. 루리웹 또한 정보 생산을 사용자들의 게시물에 의존하는데, 이는 인벤과 달리 초기부터 유지한 특징이다. 관리 주체는 운영사와 사용자가 함께 부담하며 이 인력이 큐레이팅도 하는데, 대신 몇몇 붐비는 게시판은 운영사 직할로 관리한다. 큐레이션 능력은 인벤만큼은 아니지만 아예 없는 디시인사이드보다는 나은 정도다. * 블레이드 앤 소울의 자체 커뮤니티 게시판 반면 10여 년의 시간 동안 게임 홈페이지의 자체 게시판은 별 역할이 없었다. 그나마 활성화가 되어도 정보 공유보다는 사용자 결집과 상호작용의 기능 정도만 수행했는데, 그마저도 ‘구 웹진’의 게시판에 빼앗기면서 서서히 도태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포털로 이동했다. 특히 모바일 게임의 경우엔 이쪽이 더 적합했다. 기술의 발전과 모바일 혁명으로 인해 위젯 기능 적용이 확장되면서, 게임을 실행하고 있는 동시에 옆 위젯으로 잠시 커뮤니티 화면을 불러오는 식의 구현이 가능해졌는데, 포털 대기업의 기술 지원은 이 구현을 용이하게 했다. 그러니 2018년 말, 또 한 번의 파란이 일었다. 게임사가 운영하는 게임 카페에 대해 네이버가 유료화 모델을 시도한 것이다.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카페의 상단 광고에 다른 회사 게임 광고를 노출시킨다는, 감탄이 나오는 전략에 몇몇 회사들은 포털을 탈출했다. 다시 자체 커뮤니티를 시도했고, 역시 이쪽이 회사 입장에서는 데이터 확보가 가장 편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세가 된 것은 더욱 혁신적인, 아예 게시판 기반 체제를 버리는 방안이었다. 3. 10년대 후반에서 20년대, 게시판 너머의 채팅방 어차피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사용자들이다. 개설과 존속에 드는 비용은 어느 회사인가가 댈 수 있지만 사람들이 모이도록 만드는 것은 비용 이상의 무엇이다. 그리하여 회사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와 별개로 사용자들은 새로운 플랫폼인 메신저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떠오른 커뮤니티 시장의 새 강자는 메신저, 특히 디스코드다. * 디스코드 채팅방에 개설된 아르테일의 채널 (출처: 게임인사이트, “활성화되어 있으나 원하는 정보를 찾기 까다롭다”는 캡션이 있다) 텍스트와 음성 채팅 두 가지를 기반으로 하는 디스코드의 체계는 게시판과는 다른 장단점을 가진다. 게시판은 생산한 정보가 게시글의 형태로 고정되어 후일에도 찾아올 수가 있다. 다만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기는 힘들다. 채팅방은 그 반대로, 과거의 유용한 정보를 되짚어 찾기는 어렵지만 실시간 교환은 매우 쉽다. 이 장점은 사용자 간에도 작용하지만 제작자와 사용자 사이에도 적용된다. 반면 유저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웹진과 포털보다 더 어려운 상대였다. 그리하여 현재의 게임 온라인 커뮤니티는 다섯 가지의 흐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높은 자유도만큼이나 혼란하고 정보량은 적은 디시인사이드의 갤러리, 자유도를 약간 희생했으나 큐레이팅 기능이 있어 진주가 묻혀 있는 루리웹, 언론의 기본 기능을 유지하면서 큐레이팅 기능을 강화해 양질의 정보를 보유한 인벤, 사실상 기능이 없는 채로 구색만 갖춘 것이 대부분인 게임사 자체 커뮤니티, 그리고 게시판을 벗어나 실시간 소통에 특화된 메신저 채팅방. 4. 온라인 부족 사회 모든 커뮤니티는 자체 존속을 위해서 여러 자원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자원은 구성원의 소속감, 즉 충성도다.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는 온라인 연결만 보장된다면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확장성이 높다. 기존의 커뮤니티는 지역에 묶였다. 국가의 정의 중에 영토가 있듯이 말이다. 따라서 공간을 뛰어넘는 커뮤니티의 범람은 인류가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다. 그 경험이 25년 남짓 되었다. 그동안 존속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제각각의 전략으로 구성원의 충성도를 얻었다. 커뮤니티 참여를 일상화시켜 소속감 또한 일상화시키는 방법은 인벤의 레벨제에서도 볼 수 있다. 디시인사이드의 몇몇 갤러리는 자신들만의 말투와 은어를 만들어 일체감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한 커뮤니티가 어느 정도 지속하면 커뮤니티마다의 특성이 생겨나는 것은 민족성의 발명 과정과 거의 유사하다. 장수하는 커뮤니티는 점차 온라인 부족의 색채를 얻게 되었다. 다중 소속도 가능한, 느슨한 형태의 부족인 셈이다. * 온라인 커뮤니티의 시대를 신(新)부족주의로 정의한 미셸 마페졸리의 저서 ‘부족의 시대’ 마페졸리는 이 책에서 신부족주의 행위자는 합리적 성인이 아니라 영원한 아이라고 보고 있다. 커뮤니티 부족들은 인벤의 사사게처럼 내부 갈등도 있지만 부족 간 갈등 내지는 고정관념도 생겨났다. 디시인사이드에는 루리웹을 “씹선비”라 부르며 멸시하는 경우가 있고, 이따금 ‘인벤 놈들은 역시 그 따위’ 식의 폄하도 찾아볼 수 있다. 오경택의 2023년 석사 논문은 게임 커뮤니티의 공정성 담론에 관한 연구인데, 여기서 소개한 정서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온라인 게임의 과금 유도에 지갑을 열어주는 사람은 게이머가 아니라 개돼지라는 정서. 진정성이라는 기준으로 다른 부족을 공격하면서도 동시에 ‘게이머’라는 이상적 주체를 상상하고 있다. 같은 계열의 게시물 중에서 오경택은, ‘진정한 게이머’인 자신과 모바일 게임이나 잠깐 하는 사람이 같은 게이머로 분류되는 것에 대한 불만에도 주목한다. 이는 ‘게이머’라는 대분류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인데, 부족성을 넘어 민족성 혹은 민족 개념이 싹트는 중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 성립의 과정은 언제나 폭력성을 수반한다. 우리와 타자의 경계를 나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근대의 민족 개념이 분쟁을 매개로 구체화 되었듯이 말이다. 또한 민족 개념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수용과 불수용의 충돌 또한 발생한다. 하드코어 게이머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반대에는 선민의식과 계급화를 경계하는 거부감이 있어 이 둘이 부딪힌다. 투쟁의 현장이기도 하니 폭력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런 폭력성의 발현 사례를 여럿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와우인벤의 사사게는 내부의 분노를 처리함과 동시에 집단 린치를 스포츠화하여 해소하는 형태다. 디시인사이드는 전통적으로 폭력성 노출을 문제 삼지 않는 갤러리가 많으며 게임 관련 갤러리는 특히 그렇다. 이런 기초 토양 위에 원세훈 치하 국정원의 심리전이 끼어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여론 조작 시도는 뉴스 댓글 몇 개 단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여론 흐름을 조작하려 하면서 일베에서 사용된 밈의 재료들과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심리학자의 자문까지 받은 이 시도에서 현재의 사회를 괴롭히는 극우화의 물결이 싹텄다고도 볼 수 있다. 때는 마침 게임 커뮤니티에서 정보 생산 주체가 사용자들로 이전되던 2010년 전후다. 새 판이 만들어지는 변화기는 오염 정보가 들어간 게시물, 심리를 건드려 선동하는 댓글이 침투하기 좋다. 15년이 지나는 동안 그 씨앗들이 재생산되고 변이하였다. 그리하여 인터넷 커뮤니티 전반, 특히 남성 게이머가 많은 게임 커뮤니티에는 페미니즘과 진보 정치성에 대해 현실과 다른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영어권 웹도 비슷한 역사를 겪었다. 팬 사이트 기반의 정보 사이트들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적응 또는 도태되고, 합종연횡하고, 서로 싸우고, 게이머 정체성을 놓고 충돌하고, 비평가에 대한 반엘리트주의적 반감을 드러내고, 그러다가 2013년에 게이머 게이트가 터졌다. 이 사건은 게임 언론의 분노를 촉발시켰고, 규모가 제법 커서 주류 언론의 눈길까지 끌고, 급기야는 극우의 숫자에 합류하여 수를 늘려주고, 도널드 트럼프의 초선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까지 커졌다. 이 과정에서 브레이트바트와 같은 대안 우파 언론, 대안 현실을 신봉하는 음모론 극우의 독이 스며들어 판을 키웠다. 그렇다면 거의 비슷한 과정을 밟으면서 탄생한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특히 게임 커뮤니티의 극우성이 윤석열 당선에 영향을 주었다는 서술은 가능할까?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해체 공약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가설은 반대로 생각해 볼 지점도 갖고 있다. 앞서 주장했듯 게이머 정체성은 일종의 민족 개념으로 정착하는 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서 갈등과 폭력성 표출은 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게임은 승리를 향한 경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과격성 발현은 정서상 자연스러울 수 있다. 물론 이런 해석에는 비현실적인 현실 인식에 대한 설명이 빈약하긴 하다. 게임 커뮤니티가 온라인에서 성립한 지 사반세기다. 그동안 우리는 게임에 관련한 여러 가지 때문에 검색을 해왔다. 수집품의 위치를 모를 때, 데미지 계산식을 근거로 했을 때 어떤 스킬 조합이 좋은지 궁금할 때, 버그가 발생했을 때, 새로운 업데이트에 대한 해석이나 요약이 궁금할 때 등이다. 검색의 결과로 우리는 인벤, 루리웹, 디시인사이드 등의 어느 구석에 있는 게시물에 도착한다. 거기에는 동료 게이머가 알아낸 공략과 분석, 혹은 외국의 어느 사이트나 디스코드 채팅방에서 가져온 정보가 있다. 한편으로는 정보를 올린 사람 혹은 거기에 댓글로 첨언하는 사람이 옆 게시물에서 ‘페미는 정신병’이나 ‘걔들은 전부 빨갱이’라는 식의 극우 정서를 표출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유용한 정보에서 한 발짝만 더 들어가면 쉽게 만나는 세상이다. 이미 다양한 형태로 이 극우 정서의 근원을 분석하는 연구가 많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다음 사반세기다. 과연 이 느슨한 부족의 크기와 실제 영향력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중이기 때문이다. 해악은 어떻게 극복하고 효용은 어떻게 유지할지의 답은 게임 커뮤니티의 실제 모습을 찾아내고 다시 찾아내고 또 찾아내는 발굴의 과정에서부터 만들어갈 수 있다. Tags: 커뮤니티, 디시, 루리웹, 펨코, 인벤, 게임웹진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덕질인) 홍성갑 프리랜서 작가. 이 직업명은 ‘무직’의 동의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딴지일보에서 기자를 시작하여 국정원 댓글 조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평생 게이머로서 살면서, 2001년에 처음 게임 비평을 썼고 현재 유실된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

  • 간접경험으로서의 보는게임 -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및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를 중심으로

    보는 게임이란 무엇인가? 대다수는 'e-스포츠'와 '실황 플레이'를 예시로 들 것이고 실제로 이 두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두면서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2021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기고된 이경혁의 『보는 게임과 Z세대』라는 글에서는 보는 게임의 역사에 대해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구경하는 것과 PC방 문화를 보는 게임의 기원을 삼은 것이다. 후자 같은 경우 PC방이라는 한국적인 현상임을 감안해야 되겠지만, '보는 게임' 자체는 한국뿐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임을 염두에 두면 흥미로운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경혁의 글은 그 점에서 '보는 게임'이 관람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라는 오래된 인류의 유흥거리와 맞닿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 Back 간접경험으로서의 보는게임 -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및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를 중심으로 03 GG Vol. 21. 12. 10. 보는 게임이란 무엇인가? 대다수는 'e-스포츠'와 '실황 플레이'를 예시로 들 것이고 실제로 이 두 개념이 본격적으로 대두면서 보는 게임이라는 개념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다만 2021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서 기고된 이경혁의 『보는 게임과 Z세대』라는 글에서는 보는 게임의 역사에 대해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구경하는 것과 PC방 문화를 보는 게임의 기원을 삼은 것이다. 후자 같은 경우 PC방이라는 한국적인 현상임을 감안해야 되겠지만, '보는 게임' 자체는 한국뿐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임을 염두에 두면 흥미로운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경혁의 글은 그 점에서 '보는 게임'이 관람을 통해 얻는 만족감이라는 오래된 인류의 유흥거리와 맞닿아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실제적인 태동을 짚어야 한다면, 인터넷 방송의 역사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 방송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음악 라디오 개념에서 출발한다. 이 당시 영상 압축과 인터넷 환경은 영상을 촬영하고 재생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그러다가 2005년 유튜브, 아프리카TV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w플레이어나 다음팟TV 같은 사이트가 생기면서 영상 재생/공유 사이트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현 시점에서 대세라 할 수 있는 라이브 스트리밍이 등장하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이런 영상 재생/공유 사이트가 활성화되면서 '보는 게임' 문화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윤현정의 논문 『MCN 게이밍 콘텐츠의 스토리텔링 연구』 및 논문에서 인용한 Smith, T. 외의 논문 『Live-streaming changes the (video) game』를 참조하자면 게임 영상 콘텐츠는 경쟁이 존재하는 ‘e-스포츠’ 유형과 빠른 정복을 도전하는 '스피드 러닝', 그리고 스트리머가 게임 플레이에 서사적 코멘터리를 덧붙이는 'Let's play'로 분류할 수 있다. (p.28) 이 중에서 주목할 분류는 'Let's Play'로 지칭되는, 게임 플레이에 서사적 코멘터리를 붙이는 실황 플레이 영상이다. 현재 '보는 게임' 영상 중에서 유저 창작이 활발한 영상도 실황 플레이 영상이다. 'e-스포츠'와 '스피드 러닝'은 특수한 기술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기에 문턱이 높지만, 실황 플레이 영상은 비교적 문턱이 낮기 때문이다. 왜 실황 플레이 영상이 '보는 게임' 문화에서도 큰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 초창기 영상 사이트에서 실황 플레이 영상은, 실용적인 용도가 강했다. 그 이유를 찾으려면 게임 공략에 있어서 영상의 힘이 강력하며, 게임 커뮤니티 문화랑 밀접하게 발전해왔다는 점을 지적해야 되겠다. 실황 플레이 영상이 대두되기 전, 게임 공략은 글과 스크린 샷으로 설명하는 게 대다수였다. 영어 위키피디아 'Video game walkthrough' 항목에 따르면,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플레이어를 위한 게임 공략은 핫라인 통화를 통한 1대 1 전화 상담이나 텍스트 공유가 대다수였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꽤 오랫동안 게임 캡처, 특히 영상 캡처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특수 기기를 통해 게임 회사가 만든 공식 공략 영상이나 게임 언론 같은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게임 유저들은 제임스 롤프가 AVGN 33화 '닌텐도 파워' 편에서 회고했듯이 카메라를 플래시 쓰지 않고 위치도 TV에 맞춰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서 화면을 촬영해야 했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을 디지털 스캔하고 인터넷 공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다수 게임 유저들은 전문가들이 만든 공식 공략집이나 잡지를 통해서만 게임 스크린샷이나 영상을 접할 수 있었다. 그나마 1996년 '캠퍼의 일기 Diary of a Camper'라는 〈퀘이크〉 리플레이 영상을 통해 머시니마 개념이 등장하면서 유저들끼리 게임 영상을 공유한다는 문화가 등장했지만, 이 역시 게임 내 리플레이 파일을 등록해 재생하는 쪽에 가까웠다. 이런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지만 PC 게임은 물론이거니와 콘솔 게임에서 게임 스크린샷이나 영상을 공유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디오 파일로 유저들끼리 공유되는 공략 영상은 2005년 Something Awful라는 북미권 인터넷 코미디 포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로부터 비롯되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PC를 활용한 비디오 캡처 난이도가 대폭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기점으로 고전 게임을 중심으로 비디오 영상이 제작되었다. 최초의 유저 게임 공략 영상 역시 같은 포럼에서 마이클 "슬로비프" 소이어가 제작한, 〈The Immortal〉이라는 1990년 DOS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도 니코니코 동화라는 영상 공유 사이트에서 hacci 같은 초기 스트리머가 등장해 실황 플레이 영상을 올리면서, '보는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이런 '보는 게임' 문화 및 실황 플레이 영상이 폭발적으로 확장된 계기는, 2014년 PS4 셰어 버튼으로 시작한 콘솔 자체 공유 기능을 통해서였다. PS4 이전까지는 콘솔 게임은 기본적으로 영상 공유를 하기 쉽지 않았다. 콘솔 자체 캡처를 지원하지 않아서 캡처 보드를 필수로 했기 때문이다. PS4 셰어 버튼은 이런 캡처 보드 없이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 플레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XBOX와 닌텐도 스위치 역시 셰어 버튼 기능을 도입하면서 8세대 콘솔은 '보는 게임'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지나 실황 플레이 영상이 발전하면서, 영상의 경향도 조금씩 달라져 갔다. 초기 실황 플레이 영상은 공략이라는 개념에 충실한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목소리가 없거나 플레이어 '목소리'가 게임의 상황을 반영해 코멘트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게임 플레이 영상 역시 편집이 많이 개입해, 실수나 늘어지는 분량을 잘라내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경향이 있다. 화면에 뜬 실시간 채팅방도 그리 흔하지 않았기에 스트리머와 시청자 간의 소통은 댓글 란에서 사후적으로 이뤄지고, 밈보다는 영상 자체를 얘기하는 경향이 컸다. 그러다가 스트리밍 환경이 개선되자, 실시간으로 진행하면서 채팅으로 소통하는 부류의 실황 플레이 영상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런 실황을 진행하는 스트리머는 게임 플레이 그 자체보다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플레이어가 겪는 고충이나 유머를 즐기는 버라이어티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었다. 동시에 사후적인 게임 플레이가 아닌, 실시간 방송과 채팅을 통해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면 게임 플레이하는 경향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형성된 '보는 게임' 현상에 따르는 실황 플레이 영상과 팬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실황 플레이 영상의 특성은, 스트리머라는 대리자를 통해 간접 체험이 이뤄진다는 점에 있다. 기본적으로 실황 플레이 영상은 스트리머가 플레이하는 영상을 시청하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 게임 플레이를 하는 것은 스트리머기에 자연스럽게 시청자의 경험은 간접 경험이 된다. 그 점에서 스트리머의 존재는 매개체에 가깝다. 서사 역시 직접 경험보다는, 관람에 가까운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런 변모 때문에 게임에 대한 접근성 문턱 역시 낮춰지게 되었다. 또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스트리머의 개성이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같은 게임이더라도, 스트리머의 성향에 따라 영상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게임 때문에 보는 것이 아니라, 스트리머 때문에 게임을 보는 부류도 있을 정도다. 스트리머의 방송 스타일은 개별차가 있긴 하지만, 게임 내용에 대한 반응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경향이 크다. 그렇기에 '보는 게임' 현상을 따라 인기를 얻고 있는 게임 스트리머는, 다양한 게임을 다루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게임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 인기를 얻는 게임은 어떤 부류일까? 스트리머의 트위치 방송 관련해 통계를 내는 사이트인 트위치 트래커에서 시청자 선호에 기반한 게임 인기 순위를 보면 https://twitchtracker.com/statistics/games ) 2021년 11월 기준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GTA 5〉, 〈카운터 스트라이크〉, 〈콜 오브 듀티〉, 〈에이펙스 레전드〉, 〈발로란트〉,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가 상위권에 올라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인기 순위 절반 정도는 메타데이터가 없는 미등록 상태이기에, 순위권에 들었다는 뜻은 고정 시청자를 확보했다고 보는게 좋을 것이다. 이 중 주목해야할 게임은 〈GTA 5〉와 〈마인크래프트〉,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일 것이다. 이 두 게임은 언급한 게임들과 달리 E-스포츠라는 틀에 속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GTA 5〉와 〈마인크래프트〉는 오픈 월드 게임 장르이며, 플레이어의 창발적인 플레이가 방송의 주목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는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게임은 오픈 월드 게임이 아니라, 살인마와 생존자 간의 대결을 다루는 호러 멀티플레이 게임이다. 하지만 다른 멀티플레이 게임과 달리, E-스포츠형으로 실력을 겨루는 게임이 아닌, 생존 및 협력 플레이가 중심이 되고 있다. 사실 이 게임은 발매 초창기인 2016년에는 평단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했으며 게임 시스템이나 밸런스에서 많은 지적을 받았다. 전문가 평점 분포도를 보여주는 메타크리틱 및 오픈크리틱에서도 6-70대의 평균적인 평가를 받았다.〈GTA 5〉나 〈마인크래프트〉처럼 평단과 게임 유저에게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게임이라고 보기 힘들 것이다. *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발매 이후 트위치 평균 그래프 (2011.11 기준, https://twitchtracker.com/games/491487 ) 하지만 발매 후 5년이 지난 2021년 11월,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는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순위권에서 사라지지 않고 트위치 게임 채널 내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렇다면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는 어떻게 해서 스테디셀러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 우선 공략이나 분석을 제외한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실황 플레이 영상은 긴박한 생존 대결보다는 생존/협력 플레이 도중 일어나는 유머러스한 촌극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런 영상들은 자막이나 채팅을 활용해 코믹한 예능 분위기를 강조하고, 공포 게임와 거리가 먼 썸네일로 시청자를 유도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한국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팬덤에서 공유되고 있는 은어 및 별명은, 해당 게임의 팬덤이 어떻게 실황 플레이 영상을 소비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커뮤니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은어와 별명은 게임 내 상황과 캐릭터를 희화화 하는 용도로 인터넷 유행과 결합해 쓰이고 있다. 이런 희화화는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를 플레이하는 스트리머와 시청자들이 게임을 예능처럼 즐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의 이런 경향은, 게임 서사의 간접 체험 및 경험 공유이라는 지점에서 생각할 만한 여지를 남긴다.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의 공식적인 장르는 생존 호러다. 게임 제작자의 의도와 게임 향유층의 방향이 다소 상충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충되는 상황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 게임 플레이 나아가 서사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사실 전반적인 실황 플레이 영상 트렌드를 분석해보면,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에서 호러 게임이 인기가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퓨디파이 같은 유명 유튜버들이 인기를 얻은 계기 역시, 〈암네시아: 더 다크 디센트〉 같은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를 통해서였다. 또한 슈퍼매시브 게임의 PS4 〈언틸 던〉 같은 경우엔, 8세대 콘솔 초창기에 시네마틱 어드벤처 게임과 호러 장르의 조합으로 실황계에서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이런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 대다수는 게임의 질과 상관없이 스트리머가 얼마나 게임에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크다. 호러 게임 하는 스트리머 대다수는 과장되게 놀라거나 반대로 무덤덤하게 딴죽을 거는 경향을 보이며, 시청자 반응 역시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사례처럼) '축제'처럼 즐기는 쪽에 가깝다. 깜짝 놀라는 장면에서 놀라는 코멘트조차 진심으로 두려워하기 보다는, '정말 놀랐다'는 식으로 공유에 가깝게 표출된다. 왜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 축제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는 호러 영상물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화관에 가서 호러 영화를 보게 되면, 주변에 놀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만 무서워하게 되는게 아니구나'하는 공감대를 느끼고 동조하게 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두려움을 공유하면서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감정의 동조화를 파악해 관객과 상영 공간 자체를 '축제'화한 시도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195~60년대 미국 저예산 호러 영화 제작자로 유명했던 윌리엄 캐슬이 있다. 당시 미국은 심야 영화와 드라이브인 시어터를 통해, 영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체험하는 새로운 유형의 관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캐슬은 이런 관객들을 보면서, 어떤 감정의 동조화와 유희적인 성향이 있다는 걸 간파했다. 캐슬은 영화는 물론이고 영화관에 장치를 도입해 유원지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주력했는데, 그 점에서 심야 영화와 드라이브인 시어터로 대표되는 컬트 영화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실황 플레이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이 만들어내는 반응과 캐슬이 추구했던 '유원지' 연출, 나아가 컬트 영화 문화랑 완전히 같다고는 보기 힘들다. 윌리엄 캐슬이 만든 영화는 유원지 구성 요소를 차용해 관객이 직접 체험하는 쪽에 가까웠고, 실황 플레이는 스트리머가 제시하는 플레이 영상을 통한 간접 체험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체험과 유희화를 공유하고 만끽할 느슨한 '공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컬트 영화에겐 심야 상영이나 자동차 영화관 같은 공간이 있다면, 게임 실황 플레이 영상엔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채팅창이나 영상 댓글란이 있다. 물론 스트리머들에겐 좀 더 진지한 팬 사이트가 있긴 하지만 이런 채팅창이나 댓글란은 즉각적인 반응이 가능하기에, 유동적인 공동체가 형성되는 경향을 보인다. 어떤 지점에서는 컬트 영화보다도 더욱 거리낌없는 구석도 있는데 이런 채팅창이나 댓글란은 기본적으로 '익명'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호러 게임 실황 플레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명 스트리머들의 실황 플레이 영상에서는 서사의 간접 체험과 경험 공유를 통해 만들어지는 컬트 내지는 고유한 문화가 형성되는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전 격투 게임을 주로 하는 케인이라는 스트리머 팬들이 쓰는 밈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스트리머가 자주 쓰는 말이나 인터넷 유행어를 접목시켜 커뮤니티만의 고유한 하위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하위 문화는 위키백과나 케인 관련 커뮤니티에서 유통되어, 케인 팬들 간의 결속력을 강화한다. 또한 '보는 게임' 문화가 게임 문화의 문턱을 영화 감상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추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는 게임' 문화 도래 이전 게임 문화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한다는 전제를 내세우고 있었고, 그 전제가 어느 정도 문턱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보는 게임' 문화, 정확히는 실황 플레이 영상은 이런 문턱을 낮추고 영상으로 제시되는 간접 체험만으로도 게임 요소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실제로 '보는 게임'과 실황 플레이 영상을 다룬 정서현과 박주현의 논문 『1인 미디어 게임방송 이용 동기 및 이용 특성에 관한 탐색적 연구: 인터넷 게임방송 이용자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에서도 실황 플레이를 보게 되는 계기로 게임 정보 획득, 대리만족, 단발적 재미 추구를 언급했다고 밝히고 있다. (p.23) 게임 정보 획득과 대리만족을 거치고 난 뒤, 채팅방에 있는 다른 시청자들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경험 공유를 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보자면 '보는 게임' 시대에서 게임 서사는 직접 경험을 넘어서 간접 경험을 기반으로 소통의 재료로 쓰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서사를 체험하지만 체험에서 머물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실제로 게임 서사가 의도하는 방향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서사가 유도하는 반응과 반대의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런 체험을 공유하고 밈이나 유머로 승화하면서 즐기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서사의 원래 의도에서 이탈함과 동시에 발생하는 희화화와 축제적인 상황은 컬트 영화의 반응과 유사한데, 이런 유사성이 발생한 이유로는 느슨한 관람 공동체로써 공유할 만한 '공간'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컬트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모이는 관객과 특정 스트리머의 실황 플레이를 보기 위해 채팅방 및 댓글에 모이는 시청자는 느슨한 공동체적인 공간 속에서 경험, 나아가 유희와 코드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보는 게임' 문화의 대두는 현 시점에서 비디오 게임의 소비 양태의 다양화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본 글은 그 중에서도 플레이나 서사를 즐기는 방식이 간접 경험에 기반하며, '댓글'이나 '채팅방'을 통해 같이 경험을 공유하고 축제화 된다는 지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런 현상은 컬트 영화 상영이나 심야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현상과 유사하면서도, 동시에 고유한 차별점을 두고 있다. 향후 '보는 게임' 문화와 서사 체험, 경험 공유 비평 및 연구에 있어서 시청자/수용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참조 문헌 및 사이트 Video game walkthrough – Wikipedia 중 History 단락, https://en.wikipedia.org/wiki/Video_game_walkthrough AVGN 33화 '닌텐도 파워' 이경혁, 『보는 게임과 Z세대』, http://kofice.or.kr/b20industry/b20_industry_03_view.asp?seq=8042&page=1 (2021) 윤현정, 'MCN 게이밍 콘텐츠의 스토리텔링 연구' 및 Smith, T. 외의 논문 'Live-streaming changes the (video) game' (2016) 정서현과 박주현, 『1인 미디어 게임방송 이용 동기 및 이용 특성에 관한 탐색적 연구: 인터넷 게임방송 이용자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 (2019) https://twitchtracker.com/statistics/games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비평가) 이이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전문사 졸업 후 영화•게임 비평 기고 활동중. 어드벤처 게임 좋아함. (antistar23@gmail.com )

  • 오류는 최소로, 이해랑 오해는 풍부할 수 있도록 – 게임 번역의 역할

    주로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한 번역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 게임 몰입을 방해받았다는 ― 표현이 주를 이루지만, 넓은 범위에서 이 불만 토로는 게임에서 공통된 경험을 했다는 동질감을 확인하고, 나아가 게임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고 개진하는 유희와 교류 행위로 확장된다. < Back 오류는 최소로, 이해랑 오해는 풍부할 수 있도록 – 게임 번역의 역할 29 GG Vol. 26. 4. 10. 모든 번역은 어렵다. 아무리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다른 언어를 대하는 부담이 줄어든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그렇다. 번역은 글자의 뜻을 그대로 옮기는 것만이 아니라 그 뜻의 주위와 너머를 두루 살펴 옮기려는 언어에 알맞은 자리를 만드는 것까지 포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고스러운 일이기에 번역은 원래(그래서 앞으로도) 어렵다. 번역가 홍한별은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에서 번역의 수고로움을 “이쪽을 붙들면 저쪽을 놓치고, 저쪽을 잡으면 이쪽이 사라지는 단어를, 의미를 고정하는 순간 무수한 틈이 생겨버리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고 짚는다 [1] . ‘번역의 투명함’을 통해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번역은 투명해야 한다는데, 마치 우리말로 쓰인 것처럼 잘 읽히는 것도 투명한 번역이고, 매끄럽지 않더라도 번역된 표현임이 명확하게 드러나서 번역 너머의 원문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도 투명한 번역이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생각해보면, ‘발 번역’이나 ‘초월 번역’이라고 하는 표현은 되도록 신중하게 쓰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번역의 ‘어떤’ 투명함을 선택하느냐는 번역가에게도 그러하겠지만 선호라는 측면에서 수용자에게도 상관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임 번역’에 대해 회자되는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가 있다. ‘왈도체’로 불리는 〈마이트 앤 매직 6〉(Might and Magic Ⅵ)의 “힘세고 강한 아침”이나, 〈어쌔신 크리드 3〉(Assassin’S Creed Ⅲ)의 “불이야!”가 오역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례라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의 아이템 ‘서리한’(frostmourne)이나 〈오버 워치〉의 캐릭터 ‘맥크리’의 대사 “석양이 진다”는 좋은 번역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례다 [2] . 오역은 분명 문제다. 몰입을 방해할 수 있고 원문의 본래 의도를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게임에서 세계관에 적극 뛰어드는 걸 방해하거나 엉뚱한 플레이를 하게 만들어 게임 플레이 경험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힘세고 강한 아침”이나 “불이야!”를 앞서 언급한 ‘번역의 투명함’에 비추어 보거나 번역의 좋고나쁨을 이야기하는 사례로 다루기엔 아쉽다. 두 사례 모두 번역가의 고민과 선택을 거친 의도된 결과라기보다는 제한적인 작업 환경으로 인해 빚어진 사고에 가깝다는 것이 공식·비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을 감안한다면, 검수 절차가 충분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해프닝으로 양해하면 더 좋을 일이기 때문이다 [3] . 그보다 이 사례들을 게이머들 간의 게임 플레이 경험 공유와 표현의 맥락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주로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담지 못한 번역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 게임 몰입을 방해받았다는 ― 표현이 주를 이루지만, 넓은 범위에서 이 불만 토로는 게임에서 공통된 경험을 했다는 동질감을 확인하고, 나아가 게임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고 개진하는 유희와 교류 행위로 확장된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게임 번역 관련 게시물을 대상으로 게임 번역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응을 분석한 김홍균과 김순영 [4] 은 플레이와 스토리 이해에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 오탈자, 맞춤법 오류, 번역어 불일치 등 번역문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낮을 때 게이머들이 게임 번역에 불만을 느꼈으며, 상대적으로 우리말에 원문 그대로 옮길 표현이 마땅치 않아 의역을 하거나, 원문에는 없지만 게임 플레이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추가로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반응했음을 제시했다. 번역에 대한 문제 제기나 호응은 게임 제작자 측에 피드백으로 작용해서 오류를 정정하거나 게임의 요소로 반영되어 활용되기도 한다 [5] . 앞서 언급한 ‘번역의 투명함’에 비추어 볼 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게임 플레이를 돕는 번역은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전자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매끄럽지 않아 원문을 보이게 하는 후자의 투명함은 무엇일까. (비판 혹은 비난을 감수하고)원문의 문화적 맥락에만 충실하게 번역해 해석의 제한이나 오류가 발생할 여지를 두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번역의 투명함이 꼭 옮겨진 결과로만 비춰질까? 매끄럽지 않아 원문을 보이게 하는 투명함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발휘될 수는 없는 걸까? 게임 번역 팀 ‘팀 왈도’(Team Waldo)의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Dragon Age: Inquisition) 번역 작업을 참여관찰하고 번역 프로젝트 참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저 게임 번역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연구한 박수진 [6] 과 번역 프로젝트 참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스타필드〉(Starfield) 번역 작업을 주요 사례로 팀 왈도의 번역 작업을 연구한 이현표 [7] 는 게임 번역 작업에서 번역의 투명함이 드러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는 팀 왈도 게임 번역 작업의 특징은 자발적인 참여, 참여자들 간의 토론과 투표를 통해 최적의 번역어를 찾고 이를 작업에 반역하는 협업, 번역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 수집과 반영이다. 번역의 투명함은 최적의 번역어를 찾는 협업 과정에서 주로 발휘된다. 게임에서 반복적으로 다루어지거나 플레이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단어나 표현에 대해 자율적으로 논의하고 필요에 따라 투표로 결정해 작업에 적용한다. 시간을 들여 절차를 이어가는 과정이기에 이는 분명 수고로운 작업이다 [8] . 이 작업에서 투명함을 발휘되게 하는 것은 번역을 활용해 게임을 플레이할 다른 게이머가 자신이 느낀 재미를 잘 경험하기를 바라는 동료의식이다. 두 연구는 번역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자신이 게임에서 경험한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기를 바라는 문화 매개자로서의 동기가 크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는 ‘유저 한국어 패치 [9] ’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정품으로 구매해 패치를 사용할 것을 독려하고 [10] , 많은 공을 들였기에 애정이 있을 것임에도 번역 결과물의 유효기간을 게임 제작자 측이 공식적으로 언어를 지원하기 전까지로 두고,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맥락과도 연결된다. 더 나은 게임 생태계를 만들자는 이러한 게이머들의 우정과 환대는 게임의 재미와 경험을 옮겨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보다 잘 경험하도록 이끌고 밀어준다. 게임 플레이를 돕는 정확한 정보 전달을 추구하고, 번역에 대한 평가를 게임 플레이의 일환으로 다루며, 주관적인 만족이 주된 보상일지라도 수고로운 번역 작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모두 게임을 잘 경험하도록 돕는 일이다. 이것을 게임 번역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 드라마’ 열풍을 이끌었던 미드족 [11] 의 자막 제작은 게임 팬 번역과 유사하게 이루어졌고, 출판 분야에서 산업과 문화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번역에 대한 토론과 시도 역시 작품을 잘 경험하는 것에 연관된다. 오히려 다른 매체와 비교해 게임 번역이 갖는 차이는 번역이 닿지 않는 영역이 분명하게 있다는 점이다. 게임 번역은 게임의 세계관과 게임에서 해야 하는 역할을 이해하고 파악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그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부딪칠지는 게이머의 선택에 달려있다. 게이머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게이머는 제작자의 제안 또는 요구를 수행하거나 거부한다. 그리고 게임에 대한 게이머의 이해와 오해 모두 게임을 플레이한 경험으로서 받아들여진다. 이를 고려하면 게임 번역은 제작자와 수용자의 의도가 조응하거나 충돌하는 과정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 토대이기도 하다. 하여 게임 번역은 ‘이쪽을 잡으면 저쪽이 사라지는’, ‘고정하면 틈이 생기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딜레마는 동일해도 그 너머에 대한 기약의 범위가 넓다. “힘 세고 강한 아침”과 “불이야!”가 플레이를 방해할 수 있지만(강조하지만 오역은 문제다 분명히), 게임에서 정의와 자유, 현실과 환상을 마주하며 경험하고 고민하는 경험은 게이머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어있는/쓰이지 않은/채워지게 될 경험이 더욱 다양하게 이야기될수록 게임 번역이 더 나아질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 기약을 여백이라고 불러야 할까 희망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님 다르게 불러야 할까.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이 더욱 더 많아질수록 무어라 부를지도 점차 선명해질 것이다 [12] . [1] 홍한별,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위고, 2025년. [2] 게임에서 번역이 헤아리는 자리에 대한 기초적인 논의는 이경혁(2018)의 “게임 번역, 왈도체와 단순 현지화를 넘어서”를 참조. https://www.newstop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713 [3] 게임 번역 전문가들은 좋은 번역이 이루어지려면 충분한 일정이나 절차 못지 않게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거나 개발진과의 충분한 의사소통 등 게임에 대한 정보에 더 많이 접근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두 인터뷰를 참조. “어쩌다 ‘발번역’이 나오는 걸까?”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283861 , “라이엇게임즈 현지화 팀이 말하는 ‘좋은 번역’이란?” https://www.game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220 [4] 김홍균·김순영(2023). “국내 게임 이용자들의 게임 번역 평가 사례 연구—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게시된 게임 번역 관련 이용자 게시글을 사례로.” 『번역학연구』 24(4), 91-128. [5] 〈하스스톤〉(Hearthstone)의 캐릭터 ‘데스윙’의 대사 “나는 힘 그 자체다”를 “나는 임금 잡채다”로 들었다는 디시인사이드 하스스톤 갤러리의 글(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hearthstone&no=827575) 이 화제가 되었고, 게임 제작사인 블리자드는 게임 내 업적을 새로 추가하면서 ‘임금 잡채’를 업적 이름으로 사용했다. [6] 박수진(2021). “게임 팬 번역가들은 어떻게 번역하는가? -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Dragon Age: Inquisition)’의 현지화 사례를 통해 -.” 『한국게임학회 논문지』 21(5), 115-132. [7] 이현표(2025). “디지털 환경에서의 게임 유저 번역과 수용 : 팀 왈도 사례 연구.” 『통역과 번역』 27(1), 131-160. [8] 번역어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 토론 과정에서 해당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처럼 이 과정에서 번역 작업 참여자들의 이해도 깊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맥락들이 기록되고 공유된다면 거기서 출발하는 이야기들도 많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9] 게임에서 한국어로 번역되는 작업을 주로 ‘한글화’로 팬 번역 작업의 결과물을 ‘유저 한글 패치’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번역은 문자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옮기는 것이므로 ‘한국어화’가 바른 표현이다. 이를 적용하면 ‘한글판’, ‘유저 한글 패치’ 대신 ‘한국어판’, ‘유저 한국어 패치’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2010년, 한국 게임 잡지 《게이머즈》의 조기현 기자가 바로잡기를 제안한 이래 더디지만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https://x.com/kinophio/status/15316181741?s=46 [10] ‘유저 한국어 패치’는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 게임을 더 많은 게이머들이 플레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특히 스팀을 중심으로 인디 게임이 많이 알려지는 기회가 되었다. 패치를 배포하는 게이머들은 정품 게임을 구매해서 패치를 활용할 것을 적극 강조했고, 실질적으로 한국어로 플레이할 수 있는 인디 게임의 판매량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져 세계 인디 게임 개발자들이 한국 게임 시장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도록 도왔다. https://www.thisisgame.com/articles/73396 [11] 미드 동호회 ‘자막팀’이 자막을 제작하는 협업 방식은 게임 번역 작업과 큰틀에서 유사하다. 특히 더 나은 번역을 위해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자발적으로 맡는 호혜적 참여를 주목할 만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196544.html [12] 게임을 포함해 한국어로 제작된 문화콘텐츠가 외국어로 옮겨지는 사례가 늘면서 그동안 다른 언어를 한국어로 옮기면서 고민했던 번역의 투명함을 반대 방향으로 살피는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이에 대한 성찰과 토론이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사회학자) 강지웅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게이머즈〉를 비롯한 여러 게임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 〈게임과 문화연구〉(공저), 〈한국 게임의 역사〉(공저)가 있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게임이 삶의 수많은 순간을 어루만지는, 우리와 동행하는 문화임을 믿는다.

  • 엘든 링: 황금 나무가 솟은 정원

    게임을 하다 보면 어떤 순간에 도달한다. 완성한 지도에서 더 이상 가지 않은 장소는 없으며, 무한한 탐험을 약속하던 세계는 더 이상 광야가 아니다. 그때 〈엘든 링〉은 그림 같은 정원에 가까워진다. 자연물과 폐허를 포함한 정원은 “열정적인 기억, 회한, 달콤한 멜랑콜리를 더 잘 자극할 목적으로 새로이 부재를 만들어낸다.”16) 설령 엔딩이 일종의 종말을 선언한 이후에도, 플레이어들은 불완전한 총체성을 해소할 길 없이 꿈꾸며 정원을 헤맨다. < Back 엘든 링: 황금 나무가 솟은 정원 10 GG Vol. 23. 2. 10. 조지 R. 마틴을 협업자로 병기한 첫 트레일러가 공개되며 기대를 모았던 〈엘든 링〉은 메타크리틱 97점을 기록하며 출발했다. 2022년 11월 15일을 기준으로 1,700만 장 이상이 판매되며 화제 되었고, 2022년의 최다 GOTY수상작으로 꼽혔다. 1) 〈엘든 링〉이 매끄럽게 GOTY의 궤도에 안착했는지 확언하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GOTY로 꼽은 언론들은 그에 호의적으로 일단락하는 듯하다. 디지털트렌드는 “프롬 소프트웨어의 어려운 게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며 탐험할 수 있다”며 2) , 폴리곤은 “섬세한 게임 디자인이 별도의 첨언 없이도 즐거운 탐험을 경험하게 해준다”고 3) 서술한다. 한편 이러한 코멘트는 〈엘든 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토론을 환기한다. 이전 작과 매우 흡사한 스타일로 출시된 〈엘든 링〉에게 과연 신작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대표적일 것이다. 조지 R. 마틴이 골격을 짰다는 〈엘든 링〉의 설정은 〈다크 소울〉 시리즈나 〈블러드본〉과 확연히 다르지만, 그러한 작품들의 연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태껏 스튜디오가 쌓아 올린 역량을 총합하여 게임을 제작했다는 디렉터 인터뷰는 이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4) 조언이나 혈흔과 같은 온라인 플레이 요소부터 시작해, 게임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메커닉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도처에 치명적인 함정을 배치하고 죽으면 여태껏 모은 자원을 잃는다는 페널티를 부과하며, 맵 탐색의 종착지에 보스전을 지정”하는 기획은 “세계를 근본적으로 추동하는 원리의 타락, 등장인물의 유산과 역사” 등의 요소와 맞물리며 특유의 효과를 자아낸다. 〈데몬즈 소울〉에서 유래한 스타일은 ‘소울본’ 게임의 문법을 확정한 것처럼 보인다. 5) 기존 다크 소울 시리즈는 엄격한 구성을 취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한정된 공간 내에 밀집한 함정을 파훼하며 길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가 플레이어에게 주어진다. 무사히 다음 세이브 지점으로 도달하는 과정에서 숱한 죽음을 겪으며 일종의 모범 답안을 찾아 나가야 하는 셈이다. 맵의 특정한 요소들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조율하며 일정한 질서를 형성한다. 잠긴 문과 같은 장치는 별도의 동선을 요구하며, 위험한 구간을 생략할 수 있게 해주는 숏컷은 맵의 구조를 상기시킨다. 반면에 〈엘든 링〉은 단선적인 길을 우회할 수 있는 선택지를 여러 갈래로 제공한다. 그러나 〈엘든 링〉이 오픈 월드라는 사실은 이전 작과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부각한다. 오픈 월드는 열려 있다는 의미의 ‘오픈(open)’과 게임 공간을 의미하는 ‘월드(world)’의 합성어로, 플레이 과정에 있어 고정된 순서가 존재하지 않아 공간 이동에 대한 제한이 없는 게임의 형식을 일컫는 용어다. 6) 초반에 배치된 보스인 트리 가드는 이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에서 보스전을 치르는 때는 맵 탐색을 완수했을 때이다. 보스전을 무사히 클리어하면 세이브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으며, 다음 맵으로 넘어가는 관문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림그레이브 초입에 튀어나온 트리 가드의 존재는 난데없다는 인상을 안긴다. 더불어 트리 가드를 처치하면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인 황금 할버드는 까다로울 만큼 높은 근력 수치를 요구한다.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가 실제로 활용하기까지 시차가 발생한다. 따라서 트리 가드 보스전에서 승리의 보상은 서버에 저장되지 않는 플레이어 고유의 경험을 강조하며, 정서 패턴을 구축한다. 설령 보스를 쓰러뜨리지 않더라도 엘레의 교회에서 세이브 포인트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전 작에서 학습한 메커닉과 배치되기도 한다. 물론 〈엘든 링〉에서 등장하는 모든 보스가 트리 가드처럼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프롬 소프트웨어는 기존의 문법을 연장하여 보스를 활용한다. 림그레이브에서 호수의 리에니에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접목의 고드릭이 놓여 있고, 도읍 로데일에 들어서려면 최소한 두 명의 데미갓을 제패해야 한다. 동선을 제한하는 조건을 둠으로써 플레이어의 행로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는 플레이어에게 시기에 따라 제한된 정보를 제공하여 광범위한 정보나 상황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유도하는 활성 제약이기도 하다. 7) 그러나 다양한 우회로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조건은 이전만큼의 당위성을 갖지 못한다. 플레이어는 반드시 고드릭 보스전을 거치지 않더라도 스톰 빌 성벽의 외곽을 통해 호수의 리에니에로 진출할 수 있으며, 아예 림그레이브 남부에서 함정 포탈을 타고서 도읍 로데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NPC들은 우회로의 존재를 넌지시 알려주기도 한다. 이는 단선의 우회라는 방식을 학습하게 하며, 우회로의 존재는 필드가 품은 넓은 역량을 상상하게끔 유도한다. 그 외에도 간편해진 시스템은 그 자체로 풍부한 선택지를 확보한다. 〈엘든 링〉에서는 지도를 통해 축복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며, 기동성이 뛰어난 영마를 쉽게 소환하고 해제하여 공간을 용이하게 정복한다. 위의 언론들에서 일컫던 ‘다양한 전술’에 기여하는 셈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자유도’라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게이머들이 오픈 월드라는 수사에 기대하는 가치를 고려해보았을 때 〈엘든 링〉이 이를 충족하는지 확언하기는 조금 어렵다. (비록 자유도라는 용어는 명확하게 정의된 바 없이 맥락마다 다른 의미를 갖지만) 놀이는 본질적으로 교란이며, 무언가의 정상적 상태를 교란하기 때문에 자유에 대한 기대는 근본적이다. 마인 크래프트와 같은 샌드박스 형 게임이 아니더라도, 플레이어는 그가 선택한 행위에 관해서 게임이 유의미한 피드백을 되돌려 주기를 원한다. 유원지로서 기대되는 오픈 월드는 다양한 행위를 수행하는 포괄적인 장이다. 그렇게 플레이어가 속한 세계에 대한 이해를 확충하게끔 해준다. 그러나 〈엘든 링〉에서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다지 넓지 않다. 플레이어가 게임에 개입하는 방식이 비/적대로 간소화되기 때문이다. 대면하는 거의 모든 것은 전투 가능한 상태이다. 언제든 죽음으로 정복될 여지를 가진다. 접촉 메커니즘은 적대와 평화를 가르는 한 번의 칼질로 규명된다. 그런 점에서 〈엘든 링〉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포함해 게임 세계에 놓인 구조물이 단순하다는 지적 역시 유효하다. NPC들은 원자화된 개인의 이합집산에 불과하며, 대사의 자막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이는 “실존적 복잡성에서 잠시 피난하여 적절한 행위를 산출하는 행위적 유형을 체득하게 한다”는 티 응우옌의 게임에 관한 정의를 떠올리게 한다. 8) 최종 보스전은 〈엘든 링〉의 성격을 함축적으로 구현한다. 라다곤의 육체는 녹아내려 한 자루의 칼로 빚어진다. 뒤이어 등장한 엘데의 짐승은 생명체라기보다 관념에 가까워 보이며, 이를 무엇인가로 확정해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보스전이라는 형태를 통해 플레이어의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상호작용하게 된다. 그렇게 플레이어는 때리고 구르고 피하는 일련의 행위로 그를 해석한다. 세계성을 구축하려는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그 스스로 인식하는 범위 이상으로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인상을 받길 바란다, 〈엘든 링〉의 메커니즘은 그러한 역량을 소거할 위험을 안긴다. 다크 소울 1에서는 게임 플레이의 장과 주변의 플레이 불가능한 공간을 흩뜨리는 방식으로 공간감을 높였다. 9) 플레이어는 숏컷을 뚫고, 현재 상호작용 불가능한 문 너머에서 반짝이는 아이템을 보며 공간에 관한 상상을 확장할 수 있다. 그 배후로 늘어진 배경 이미지는 비록 탐험 불가능한 영역일지라도 공간에 대한 경험을 통합해준다. 대신에 〈엘든 링〉은 풍경을 활용함으로써 플레이어가 탐구할 여백을 확보한다. NME는 〈엘든 링〉을 GOTY로 선정하며 풍경의 매력을 언급한다. 10) 확실히 풍경은 섬세한 오브젝트나 아름다운 색채 등을 통해 심미적 경험을 안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NME는 스톰 빌 성, 레아 루카리아와 같은 레거시 던전의 전체 윤곽이 포괄되는 시야로 이를 언급하고 있다. 공기원근법은 이전 작에 비해 약화하여 멀리 떨어진 대상을 눈앞으로 가져온다. 그렇게 풍경은 단순히 보고 읽는 배경이 아니라 실제로 플레이어가 횡단하며 상호작용하는 주된 장이라는 점에서 각별하게 다가오며, 경험을 정교하게 부연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11) 〈엘든 링〉에서 튜토리얼을 마치면 어두운 지하에서 승강기를 타고 올라와 림그레이브에 들어서게 된다. 위로 상승하는 동선은 널찍이 펼쳐진 바깥의 필드 중앙에 우뚝 선 황금 나무와 일치한다. 찬란하게 빛나는 나무는 틈새의 땅에서 살아가는 한갓 미물과 대비를 이룬다. 나무 아래 나열된 신수탑은 한눈에 포착된다. 주요 보스를 격파하고 방문하는 장소인 신수탑은 앞으로 진행할 여정을 집약적으로 제시한다. 그렇게 풍경은 플레이어가 사건을 겪고 맥락을 형성하게 될, 의미로 가득 찬 공간이 된다. 한편 필드에 늘어선 폐허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며 플레이어의 경험을 입체적으로 부연한다. H. 루에젠과 푹스는 폐허의 재현이라는 관점에서 언리얼 엔진 5 공개 영상을 독해한다. 그에 따르면 포토리얼리즘의 사실적 구현이 몰두하는 주요한 부분은 어떻게 더 사실적으로 몰락과 폐허를 그려낼 것인가의 문제다. 12) 폐허는 과거에 존재했던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면서 동시에 그 단절을 드러낸다. 유적석이나 신전석과 같은 재료는 한때 거기에 파편이 아닌 총체가 남아 있음을 주지시킨다. 설령 소멸이나 죽음이라 할지라도. 13) 이 때 게임이 플레이어의 내면에 불러일으키는 감상은 경외심과 공포를 함께 아우르는 낭만주의적 정서인 숭고와 닮았다. 지각과 감성의 한계를 넘어선 것을 표상하면서 숭고는 생겨난다. 벨라는 게임에서 “닫힌 가능성의 광대한 공간을 드러냄으로써” 유희적 숭고가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14) 이는 로어에서도 유사하게 발견 가능하다. 아이템 로어는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황금시대를 부분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엘든 링〉에서는 몹이나 지역에 관한 이해를 도와줄 별도의 코덱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도감이나 백과사전 따위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상과 관련한 이야깃거리는 장비 아이템의 설명란에 짤막하게 붙어 있을 따름이다. 수많은 아이템에 산개된 정보를 일일이 재조합해야 한다. NPC의 대사나 비석과 같이 특정한 국면에서 상호작용 가능한 정보는 플레이어가 별도로 스크린샷을 찍어두어야만 저장할 수 있다. 불친절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사실상 정보의 폐허이기도 하다.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 특유의 불분명한 스토리텔링은 그러한 로어를 짜 맞춰 ‘프롬뇌’를 굴리며 이야기를 추론하는 집단적 움직임을 활성화했다. 부재하려는 것을 되살리려는 고고학적 시도인 셈이다. 고고학자 빌 팔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Archaeology Tube가 Video Game Archaeology 카테고리를 통해 프롬 소프트웨어 게임을 그러한 시선으로 다루는 게 대표적이다. 15) 수직 요소를 적극적으로 가시화하는 〈엘든 링〉은 미스터리의 탐구를 종용하는 듯하다. 게임에서는 지도 후면을 통해 지하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지상의 이미지가 겹치며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저는 그 자체로 비밀을 품은 땅이다. 추레한 몰골의 고드윈이나 드넓게 펼쳐진 붉은 부패의 늪은 미스터리의 탐구를 흥미롭게 만든다. 이처럼 〈엘든 링〉은 가지 않은 장소에 대한 환상을 유지함으로써 유지되는 플레이 동기를 지속한다. 그 세계는 적대의 원리에 의해 고독하고 적의에 차 있으나 동시에 그 특유의 부동성으로 기억과 경험을 수용해준다. 게임을 하다 보면 어떤 순간에 도달한다. 완성한 지도에서 더 이상 가지 않은 장소는 없으며, 무한한 탐험을 약속하던 세계는 더 이상 광야가 아니다. 그때 〈엘든 링〉은 그림 같은 정원에 가까워진다. 자연물과 폐허를 포함한 정원은 “열정적인 기억, 회한, 달콤한 멜랑콜리를 더 잘 자극할 목적으로 새로이 부재를 만들어낸다.” 16) 설령 엔딩이 일종의 종말을 선언한 이후에도, 플레이어들은 불완전한 총체성을 해소할 길 없이 꿈꾸며 정원을 헤맨다. 1) Statistia, “Lifetime unit sales generated by Elden Ring worldwide as of November 2022”,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300663/elden-ring-sales-worldwide/ 2) Mike Mahardy and Polygon Staff, “The 50 best video games of 2022”, 2022.12.06., https://www.polygon.com/what-to-play/22956981/best-games-2022-list 3) Giovanni Colantonio and Tomas Franzese, “The 10 best video games of 2022”, 2022.12.05., https://www.digitaltrends.com/gaming/best-video-games-2022-top-10/ 4) “Elden Ring is based on a culmination of everything we've done with the Dark Souls series and with our games thus far.” Will Nelson, “‘Elden Ring’ is the “culmination” of FromSoftware’s games says Miyazaki“, 2021.12.30., https://www.gamesradar.com/elden-ring-fromsoftware-hidetaka-miyazaki-interview/ 참고. 5) Florence Smith Nicholas and Michael Cook, The Dark Souls of Archaeology: Recording Elden Ring. 2022. In Proceedings of the 17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the Foundations of Digital Games.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1p. 6) 김정선, 오픈월드 게임의 레벨디자인 및 시스템 요소 연구 :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을 중심으로, 2019 한국게임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 2019, vol.20(3), 300쪽. 7) 윗글, 301쪽. 8) C. 티 응우옌, 게임: 행위성의 예술, 이동휘 역, 서울: 워크룸프레스, (2022), 86쪽. 9) Daniel Vella, No mastery without mystery: Dark Souls and the ludic sublime, Game Studies, 2015. vol.15(1). 10) “Best Bit: The way Elden Ring uses stunning vistas to show your objectives: Stormveil looming over Limgrave, the reveal of Liurnia and Raya Lucaria afterwards, the descent to Siofra River, the dragon in Leyndell…”, NME, “The 20 best games of 2022”, 2022.12.06., https://www.nme.com/features/gaming-features/the-20-best-games-of-2022-3360445 11) Paul Martin, The pastoral and the sublime in Elder Scrolls IV: Oblivion, Game Studies, 2011, vol.11(3). 12) Eduardo H Luersen, Mathias Fuchs, Ruins of Excess: Computer Games Images and the Rendering of Technological Obsolescence, Games and Culture, 2021. vol. 16(8), 1091p. 13) 장 스타로뱅스키, 자유의 발명/이성의 상징, 이충훈 역, 파주: 문학동네, (2018) 202쪽. 14) Daniel Vella, No mastery without mystery: Dark Souls and the ludic sublime, Game Studies, 2015. vol.15(1) 15) Archaeology Tube, An Archaeologist Plays Elden Ring (FIRST IMPRESSIONS), 2022.02.27., https://www.youtube.com/watch?v=Imtkh8B3U2Q 16) . 장 스타로뱅스키, 224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게임이 이야기를 경험시키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최근에는 <마라톤>을 플레이했습니다.

  • [북리뷰] 이토록 숭고한 게임 속 괴물들 - 『플레이어 vs. 몬스터』

    <다크 소울> 시리즈나 <엘든 링>과 같은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에는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음을 맞으면 화면에 빨갛게 떠오르는 ‘You Died’는 상징적인 밈으로 통용된다. 보스와의 전투는 게임의 까다로운 난이도를 구현하는 대표적인 축이다. 게임 유튜버들은 보스전을 성취하는 데에 몇 번의 ‘트라이’를 거쳤는지와 같은 극악한 고투를 부각하기도 한다. 한편 보스들의 기괴한 외형은 이러한 플레이를 더욱 각별하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다크 소울3>의 튜토리얼 보스인 군다는 2페이즈에서 별안간 검은색 고름 덩어리가 되고, <엘든 링>의 멀기트는 꼬리를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패턴 따위로 플레이어를 곤란하게 만든다. < Back [북리뷰] 이토록 숭고한 게임 속 괴물들 - 『플레이어 vs. 몬스터』 22 GG Vol. 25. 2. 10. <다크 소울> 시리즈나 <엘든 링>과 같은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에는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다.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죽음을 맞으면 화면에 빨갛게 떠오르는 ‘You Died’는 상징적인 밈으로 통용된다. 보스와의 전투는 게임의 까다로운 난이도를 구현하는 대표적인 축이다. 게임 유튜버들은 보스전을 성취하는 데에 몇 번의 ‘트라이’를 거쳤는지와 같은 극악한 고투를 부각하기도 한다. 한편 보스들의 기괴한 외형은 이러한 플레이를 더욱 각별하게 만든다. 대표적으로 <다크 소울3>의 튜토리얼 보스인 군다는 2페이즈에서 별안간 검은색 고름 덩어리가 되고, <엘든 링>의 멀기트는 꼬리를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패턴 따위로 플레이어를 곤란하게 만든다. 기이한 점은, 이렇게 적들을 마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묘한 매료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플레이어 vs. 몬스터』의 저자인 야로슬라브 슈벨흐는 <블러드본>의 이브리에타스가 품은 괴물적인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경험을 서술한다. 그는 이 경이로운 생명체를 계속 바라보고 싶었기에 결국 싸움을 택하지 않았다. 그의 일화를 읽는데 문득 <다크 소울3>에서 미디르를 잡은 후, 묘한 허탈감에 시달리며 소사한 시체만 가득 쌓인 폐허를 한참 동안 서성이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처럼 게임에서의 괴물은 격퇴해야 할 목표로 상정되어 있으면서도 호승심을 초과하는 괴상야릇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렇다면 게임은 괴물을 어떻게 빚어내고 제시할까? 이 책에서 슈벨흐는 <스페이스 인베이더(1978)>부터 <컨트롤(2019)>까지 게임을 역사적으로 아우르며 괴물의 존재론을 탐구한다. 숭고하지 않은 괴물 많은 문화에서는 저마다의 괴물을 이야기한다. 일본에서는 각종 요괴담이 돌고, 톨킨은 <반지의 제왕>에서는 스마우그가, <헤일로>에서는 외계인이. 이렇듯 널뛰는 괴물을 한데 모아 이 책에서는 범박하게 “현대 과학의 시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생명체”로 범위를 한정 짓는다. 전통적으로 괴물은 바람직하지 않은 속성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기형적인 외모를 지녔거나 부덕한 내면을 가진 괴물은 규범을 위반하는 존재다. 이를테면 중세 유럽의 사람들은 얼굴이 가슴으로 함몰된 형태의 블렘미아이Blemmyae라는 괴물이 아프리카에서 산다고 상상했다. 중세인에게 정상적인 인간이란 온전한 머리를 통해 사물을 이해하는 존재이자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육체적 거울상”이었기 때문에 머리가 없는 블렘미아이는 육체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열등한 생물이었다 [1] . 이런 괴물들은 이성이 그려내는 세계의 너머를 자극하기에 공포스럽다. 성서 속 리바이어던처럼 창조주의 질서 안에 놓이되 동시에 그 권위를 위협하기도 하며, 부패한 고름이나 혈액과 같이 원래는 온전했‘던’ 육신에서부터 튀어나와 혐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해, 그 결과로 온갖 범주를 뒤섞어놓으며 인지적 혼란을 빚어내는 것이다. 슈벨흐는 괴물이 감상자에게 불러일으키는 특유의 감정을 숭고로 설명한다. 숭고함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우리의 표현 능력에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상상력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칸트는 이와 같은 숭고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큰 것, 혹은 엄청난 위력을 지닌 것으로부터 유래한다고 설명한다. 무한성(무형식)을 지닌 대상에서 발견되는 숭고는 인간 상상력과 지성의 한계 너머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우리를 매료시킨다는 것이다 [2] . 한편 슈벨흐는 인간 주체가 자신의 지식 구조에 괴물을 포함하려는 노력을 지속해 왔다고 말한다. 인간은 언제나 미지의 영역을 정복하려 해왔다. 지도를 그리며 잘 모르는 세계의 지형을 정교화하고, 백과사전을 편찬해 인간 아닌 종을 서술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신비한 힘을 지녔던 괴물 역시도 점차 인간의 체계 안에 편성된다. 정리 작업의 최종적인 목표는 괴물을 지식화하여 관리하고 이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슈벨흐는 괴물이 적이나 놀잇감의 형태로 단순화된다고 바라본다. 이누이트족의 투필라크는 그러한 설명과 걸맞은 사례이다. 본디 투필라크는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비밀스럽게 제작되는 복수귀였으나, 그린란드가 유럽에 복속된 이후 이누이트 문화의 이국성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관광 기념품이 되었다. 괴물이 품은 고유한 아우라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숭고를 완전히 상실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괴물이 지닌 특별한 맥락은 계속 갱신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가 부연 되기 때문이다. 좀비 모티프가 끝없이 진화하듯, 그들은 유순하게 길든 자리에서 심연을 응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괴물은 어떻게 그려지는가? 그에 앞서 슈벨흐는 비디오 게임이 놓인 역사적 맥락을 짚는다. 비디오 게임은 냉전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사고에 얽매여 있던 시기에 태동한 미디어이다. 정부나 군을 통해 직접적으로 제공받은 하드웨어나 컴퓨팅 프로젝트에 관한 후원은 비디오 게임의 토대를 이루었다. FPS 장르에 이르는 기술사적 계보를 추적한 김영대의 글은 흥미로운 사례이다. 그에 따르면 미군에서 폭격기 조종사를 양성하기 위해 개발되었던 시뮬레이션 시스템은 이미지를 빠르게 렌더링함으로써 실시간성을 만들어냈고, 이는 <스페이심>과 같은 비디오 게임의 전투에 영향을 미쳤다 [3] . 이처럼 비디오 게임은 냉전의 문화적 요인에 긴박 되어 있다. 과학사학자 폴 에드워즈는 냉전의 세계관을 ‘폐쇄 세계closed world’로 설명한다. “모든 사고와 언어 그리고 행동이 궁극적으로 중심 갈등을 향하는 꼼짝 없이 자기 참조적인 공간”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발전된 컴퓨터 기술은 중앙에서 실시간으로 군사 통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가상의 기획을 현실로 옮길 수 있었다. 그렇게 전산화된 세계는 하나의 형이상학적이고도 폐쇄적인 체계로 맺어졌다. “모든 요소가 통합되고 적절한 가중치가 부여되었다는 믿음 하에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실행하고 또 실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에 전적으로 적합”했다 [4] . 즉 적대적 존재를 시뮬레이션의 세계에서 빚어내 입력에 따른 결과를 연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디오 게임의 괴물은 바로 그러한 시뮬레이션 안에 놓여 있다. 기호로 모델링된 괴물은 곧 조작 가능한 정의에 의해 좌우된다. 본래 냉전 시기 군사 이데올로기가 시뮬레이션의 발달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바-적과 나를 일관적인 시스템 안에 체계적으로 편성한 후, 행동과 미래를 예측하는 전략의 수립-가 비디오 게임 안에서 실현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비디오 게임 속의 괴물이 “연산적이고(computational) 상품화된 타자성”을 지니며, 이로 인해 “분명 위협적인 존재이나 토벌 가능한 모순”으로 이해된다고 설명한다. 이 관점에서 그는 게임의 폭력성을 문제화할 때 살해 애니메이션이나 혈흔의 표현과 같이 피상적인 차원에서 다루기보다는, 그렇게 되도록 결정하고 배치하는 디지털적 권력을 문제 삼길 제안한다. 책의 2장과 3장에서는 게임 속 괴물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빚어지는지에 관한 사례가 부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던전 앤 드래곤>은 연산 가능한 괴물을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데에 기여한 타이틀이다. PvE(Player Vs. Environment)를 “인간 심판이나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의 제삼자가 일련의 장애물과 적을 제어하는 동안 플레이어가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캐릭터를 조작해 그와 대결하는 게임 플레이 상황”으로 정의한다면, <던전 앤 드래곤>이 PvE의 형식과 함께 만연해졌음을 이해할 수 있다. ‘던전’이라는 어휘로 매혹적인 모험을 형상화하는 이 프랜차이즈는 톨킨식 장르 문학이 대중화됨에 따라 큰 인기를 누렸다. 톨킨은 허구의 세계인 아르다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계보나 언어와 같은 설정을 섬세하게 써 내려갔는데, 일종의 백과사전 집필로도 표현할 수 있는 톨킨의 작업은 이후 RPG 게임에서 시나리오를 짜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던전 앤 드래곤>은 바로 그러한 이질적 존재들, 백과사전 항목에 등재된 사우론과 프로도에게 각종 ‘능력치’를 부여했다. 그런 면에서 <던전 앤 드래곤>은 컴퓨터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계산적(computational) 게임이었다. 온갖 종류의 이종들은 정확한 통계에서 비롯된 능력치를 부여받아 “하나의 수학 규칙 매트릭스에 맞게” 배치되었고, 주사위를 랜덤하게 굴렸을 때의 수치와 고정 능력치를 조합하여 게임 이벤트가 진전되었다. 그 결과 “이미지, 문화, 통계를 결합해 괴물을 만들어내는 공식”이 게임계에 자리 잡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괴물들은 게임 플레이의 흐름을 형성하는 중책을 맡는다.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는 일련의 명확한 목표가 앞에 있을 때 몰입할 가능성이 높다” [5] 고 칙센트미하이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일정 수준 내에서 까다로운 괴물과 전투를 치르고 그에 대해 보상을 얻는 일련의 과정은 플레이어를 충분히 몰입시킨다. 따라서 난관을 어떻게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형상화할 것인가가 디자인의 주요한 화두가 된다. <갓 오브 워>의 전투 디자이너인 데니 예는 괴물을 통해서 플레이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적이 가하는 공격은 일정한 패턴 속에서 이루어지며, 이를 충분히 관찰한 후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미리 예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릴 수 있어야” 하는 괴물은 사용자의 경험이라는 요소를 우선시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비디오 게임 속 괴물은 실용적인 방식으로 이해된다. 디자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실루엣 테스트는 괴물이 실용성과 미학성을 충족했는지 판별하기 위한 절차이다. 비교적 낯선 대상의 외형을 플레이어가 쉽게 판별하고, 다른 것들과 차별화해 구분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괴물은 외형적으로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면서도 그로 인해서 만족스러운 사용자 경험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 미학적 측면에서 리얼리즘은 비디오 게임의 괴물과 관련이 깊다. 환상 속의 존재를 그럴듯하게 제시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현실의 요소를 동원하기에 이른다. 슈벨흐는 리얼리즘을 두고 ‘현실적’이라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채택하는 일련의 미적이고 기술적인 관습들이라고 간략히 요약하는데, 특히나 비디오 게임에서 괴물을 디자인하는 데에 지배적인 것은 해부학적 리얼리즘이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비디오 게임에서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래리 해리하우젠과 같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창작 노트에서 상상 속 동물을 ‘자연스럽게’ 형상화할 수 있게 실존하는 동물의 생체적 지식을 기입하기도 했다. 그러한 인식은 비디오 게임 제작에서의 폴리곤 메쉬나 모션 캡쳐 등의 방식으로 계승되고 있다. 특히 비디오 게임에서의 시청각적 표현은 3D 그래픽으로 전환하며 초기 영화에서의 괴수 표현이 그러했듯 미니어처를 제작하는 형식으로 이해되었다. 타냐 크르지윈스카는 더 큰 그래픽 리소스가 아티스트들에게 “더욱 환상적인 개체를 만들 수 있을 자유”를 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도 했으나, 현실의 AAA게임에서 포토리얼리즘이라는 규범이 맹위를 떨치는 한, 괴물을 주변 환경에 걸맞게 높은 수준의 디테일로 모델링한다는 해부학적 개연성의 틀에 맞춘 재현이 지배적인 관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요컨대 비디오 게임이 창조한 괴물은 기능적으로나 외형적으로나 “객관화되고 관리 가능한 존재”로 표현된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포스트휴먼이 괴물에게서 숭고를 느끼는 법 슈벨흐는 비디오 게임에서 괴물을 조형하는 방식이 <스페이스 인베이더> 이후로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고 서술한다. 기존의 PvE 도식을 고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시점에서 이와 같은 답보 상태는 문제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 주체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글로벌 금융 위기나 기후 재앙, 판데믹과 같은 사건을 겪으며 뒤흔들렸다. 전반적으로 현재 만연한 위기와 이에 대한 지적 대응은 무언가를 괴물 같은 타자로 식별하고 해석할 수 있는 관찰자의 특권을 불안정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시대 속에서 인간은 짓쳐 드는 위험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 패턴을 예측할 도피처도 없고, 그럴 만한 시간조차 없다. 더군다나 인간이 가상의 적을 효과적으로 적대하기 위해 고안한 테크놀로지는 버그나 데몬 같이 초자연적인 생명체처럼 움직이며 인간 제어를 무시하기도 한다. 버그는 컴퓨터의 오류를 의미하는 어휘로만 한정되지 않으며 ‘자그마한 오류’를 푸념하는 토마스 에디슨의 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지난한 역사를 지닌다. 기계 상의 오류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일컫는 방식의 수사는 이들을 괴물의 한 종류로 볼 가능성을 확보한다. 결론적으로 슈벨흐는 숭고 개념을 재검토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사실 숭고를 이야기한 칸트에 따르면 위력을 지닌 무엇이 발하는 숭고는 “그 위력이 우리에게 강제력(실제의 위협)을 발휘하지 못할 때” 느낄 수 있다. 폭풍우에 실제로 휩쓸리는 동안은 오직 공포를 느낄 뿐이다. 진정 숭고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산장과 같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후에 대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제야 인간은 “감성의 한계를 넘어선 ‘거대한’ 것을 표상할 수 있으며, 상상력의 확장 가능성을 느끼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7] . 그러나 임박한 재앙은 쉬이 파악될 수 없고, 안전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슈벨흐는 숭고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되, “헤아릴 수 없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타자성이라는 의미에서의 괴물”은 여전히 유효한 프레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 출처: E nvironmental_Pea791. “If the game was 3D, I think the enemies would look like this.”. Reddit.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해부학적 개연성에 지배되지 않은 비디오 게임 속 괴물의 사례를 탐구한다. <언더 테일>과 같이 연민을 유발하며 인간의 거리 두기를 위협하는 괴물, 목적 없이 등장하며 파괴 불가능한 성질을 지닌 <컨트롤>의 아스트랄 스파이크, 다른 개체와 두뇌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군체처럼 기능하는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의 쥐, 게임 코드나 인터페이스를 장악하는 <메탈 기어 솔리드>의 사이코 맨티스와 같은 사례는 기존의 PvE 도식이 전제하던 교전 개념을 유쾌하게 폐기한다. 이와 같은 존재를 감각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탐구하는 비판적 사유로서의 포스트휴먼 개념을 환기해 볼 수 있다. 포스트휴먼은 인간과 인간 아닌 것 사이를 엄격하게 나누는 이분법을 해체하려는 기획이다. 포스트휴먼의 사유에 의하면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 고유의 특별함 때문이 아니다. 다른 것들과 상호작용하는 네트워크 안에 놓인 어떠한 위치가 그를 개인으로 배치할 뿐이다 [8] . 마찬가지로 슈벨흐가 열거한 사례는 인간 플레이어가 본래 누리던 우월한 지위를 해체하고, 게임이 할당한 디지털적 권력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감각할 수 있게 한다. 책을 따라서 이와 같은 예시를 읽다 보면, 이토록이나 다양한 괴물들이 PvE의 규범을 해체하고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낄지도 모른다. 비디오 게임 속의 괴물 즉 기이한 이들과의 뒤얽힘 속에서 플레이어는 환경(Environment)과 오직 적대하기만 하는 인간이 아닌, 그 안에서 함께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1] 잭 하트넬. 장성주 역. 『중세 시대의 몸』. (2023). 서울: 시공사. 50쪽. [2] 김예경. (2018). 『프랑켄슈타인』, 숭고와 그로테스크. 우리어문연구,(62), 405-407쪽. [3] 김영대. (2019). 던전의 전투기들: FPS의 짧은 기술사. 문화연구, 7(1), 165-168. [4] 앙투안 부스케. 최석현 역. (2022). 미국 전쟁 기계의 사이버네틱스화: 냉전기 과학과 컴퓨터. 아카루트. 7-8쪽. [5]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이희재 역. 『몰입의 즐거움』. (2009). 서울: 해냄출판사. 45쪽. [6] Denny Yeh. Fighting a God: Behind the Scenes of God of War’s First Boss Battle. 2018.08.16.등록. 2025.01.24.접속. Playstation.Blog . https://blog.playstation.com/2018/08/16/fighting-a-god-behind-the-scenes-of-god-of-wars-first-boss-battle/ [7] 김예경. (2018). 『프랑켄슈타인』, 숭고와 그로테스크. 우리어문연구,(62), 408쪽. [8] 박준영. (2023). 『신유물론, 물질의 존재론과 정치학』. 서울: 그린비. 119-124쪽. Tags: 글이 맘에 드셨다면 공유해보세요. Facebook X (Twitter) Copy link Previous Next (연구자) 김규리 게임이 이야기를 경험시키는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최근에는 <마라톤>을 플레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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